감지금니 풍으로 다시 그린 고려 사경 법화경 변상도

어의구전 — 남묘호렌게쿄

御義口伝 · 南無妙法蓮華経어서 708–709쪽
강술
니치렌 대성인
필록
닛코 상인
구성
28품 · 개결 이경 · 231개조
쪽수
어서 708–709쪽
계보
六 남묘호렌게쿄준비 중
본문 · 원전 대조어서 708–709쪽
어서 원문

御義口伝に云く南無とは梵語なり此には帰命と云う、人法之れ有り人とは釈尊に帰命し奉るなり法とは法華経に帰命し奉るなり又帰と云うは迹門不変真如の理に帰するなり命とは本門随縁真如の智に命くなり帰命とは南無妙法蓮華経是なり、釈に云く随縁不変一念寂照と、又帰とは我等が色法なり命とは我等が心法なり色心不二なるを一極と云うなり、釈に云く一極に帰せしむ故に仏乗と云うと、又云く南無妙法蓮華経の南無とは梵語妙法蓮華経は漢語なり梵漢共時に南無妙法蓮華経と云うなり、又云く梵語には薩達磨芬陀梨伽蘇多覧と云う此には妙法蓮華経と云うなり、薩は妙なり、達磨は法なり、芬陀梨伽は蓮華なり蘇多覧は経なり、九字は九尊の仏体なり九界即仏界の表示なり、妙とは法性なり法とは無明なり無明法性一体なるを妙法と云うなり蓮華とは因果の二法なり是又因果一体なり経とは一切衆生の言語音声を経と云うなり、釈に云く声仏事を為す之を名けて経と為すと、或は三世常恒なるを経と云うなり、法界は妙法なり法界は蓮華なり法界は経なり蓮華とは八葉九尊の仏体なり能く能く之を思う可し已上。

번역 · 한국어 어서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나무(南無)란 범어(梵語)이며 여기서는 귀명(歸命)이라 하느니라. 인법(人法)이 있으니 인(人)이란 석존(釋尊)을 받들어 귀명(歸命)하고 법(法)이란 법화경(法華經)을 받들어 귀명(歸命)함이라. 또 귀(歸)라 함은 적문불변진여(迹門不變眞如)의 이(理)에 귀의(歸依)함이며 명(命)이란 본문수연진여(本門隨緣眞如)의 지(智)에 의거(依據)함이라. 귀명(歸命)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석(釋)에 가로되, 수연불변(隨緣不變)·일념적조(一念寂照)라고, 또 귀(歸)란 우리들의 색법(色法)이고 명(命)이란 우리들의 심법(心法)이며 색심불이(色心不二)임을 일극(一極)이라고 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 일극(一極)에 귀(歸)하게 하는 고(故)로 불승(佛乘)이라 한다라고. 또 가로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나무(南無)란 범어(梵語)이고·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한어(漢語)이며, 범한(梵漢) 공시(共時)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하느니라. 또 가로되 범어(梵語)로는 살달마(薩達磨)·분다리가(芬陀梨伽)·소다람(蘇多覽)이라 하며, 여기서는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 하느니라, 살(薩)은 묘(妙)이고 달마(達磨)는 호(法)이며 분다리가(芬陀梨伽)는 렌게(蓮華)이고 소다람(蘇多覽)은 쿄(經)이니라. 구자(九字)는 구존(九尊)의 불체(佛體)이며, 구계즉불계(九界卽佛界)의 표시(表示)이니라. 묘(妙)란 법성(法性)이고 호(法)란 무명(無明)이며 무명(無明) 법성(法性)이 일체(一體)임을 묘호(妙法)라 하느니라. 렌게(蓮華)란 인과(因果)의 이법(二法)이고, 이것 또한 인과일체(因果一體)이니라. 쿄(經)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언어(言語) 음성(音聲)을 쿄(經)라고 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 성불사(聲佛事)를 함을 이름하여 쿄(經)라 한다고, 혹(或)은 삼세상항(三世常恒)임을 쿄(經)라고 하느니라. 법계(法界)는 묘호(妙法)이고 법계(法界)는 렌게(蓮華)이며 법계(法界)는 쿄(經)니라. 렌게(蓮華)란 팔엽구존(八葉九尊)의 불체(佛體)이니라, 차근차근히 이를 생각할지어다, 이상(已上).

어의구전(御義口伝)은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법화경 28품과 개결 이경의 요문을 강의하시고, 닛코 상인이 이를 받아 적은 것이다. 그 첫머리가 바로 「남묘호렌게쿄」다. 짧은 한 단락 안에 나무·묘·법·연화·경의 한 글자 한 글자가 풀려 있고, 그 풀이가 곧 대성인 불법의 생명관 전체를 압축하고 있다.

왜 남묘호렌게쿄가 첫머리에 오는가

어의구전이 남묘호렌게쿄로 시작하는 것은, 남묘호렌게쿄가 일체경의 근본이고 법화경의 간요이기 때문이다.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이 점을 거듭 밝히셨다.

南無妙法蓮華経と申すは一代の肝心たるのみならず法華経の心なり体なり所詮なり

남묘호렌게쿄라 함은 일대의 간심일 뿐만 아니라 법화경의 마음이요 체요 소전이니라.

「소야전어반사」 · 어서 1058쪽

어의구전 안의 「이십팔품이 모두 남묘호렌게쿄인 일」에서는 묘락의 소를 인용하며, 한 경을 맺는 요체는 명·용·체·종의 넷이고 그 추병, 곧 손잡이가 제목의 다섯 자이며, 그것을 상행보살에게 수여했다고 풀이하신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내리신다.

今日蓮等の弘通の南無妙法蓮華経は体なり心なり廿八品は用なり廿八品は助行なり題目は正行なり正行に助行を摂す可きなり

지금 니치렌 등이 홍통하는 남묘호렌게쿄는 체요 마음이며, 이십팔품은 용이다. 이십팔품은 조행이요 제목은 정행이니, 정행에 조행을 포섭해야 하느니라.

「어의구전」 · 어서 793쪽

「사신오품초」는 초심의 수행자가 그 뜻을 다 알지 못해도 행하면 저절로 뜻에 맞는다고 가르치며, 흐린 물이 마음이 없어도 달을 얻어 스스로 맑아지고 초목이 비를 맞으면 깨달음이 없어도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신다.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는 경문도 아니고 그 뜻도 아니며 오직 한 부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 불법의 최고봉인 법화경이라도 남묘호렌게쿄를 근본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읽고 배워도 참으로 법화경을 읽은 것이 되지 않는다. 대성인은 「일대성교대의」에서 이 법화경을 모르고 배워 논하는 자는 다만 이전경의 이익일 뿐이라 하시고, 「개목초」에서는 당세에 모두 법화경을 믿는 듯하지만 법화경이 아니라고 문상의 독법을 엄하게 경계하셨다.

설계도와 집 — 당체연화와 비유연화

강의는 여기서 도다 조세이 제2대 회장의 법화경 서품 해석을 소개한다. 서품에는 영취산에 성문·보살·잡중이 수십만 모였다고 하는데, 그 많은 대중이 어떻게 모였고 석존의 음성이 어떻게 모두에게 들렸는가. 제석·범천이나 용왕·긴나라 같은 존재는 또 어떻게 믿을 것인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서품부터 의문에 부딪혀 28품을 다 읽을 수 없고, 그렇다고 믿지 않으면 석존과 대성인을 망어의 부처로 만드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도다 회장은 이를 법화경의 두 가지 뜻, 곧 당체연화(当体蓮華)와 비유연화(譬喩蓮華)로 풀었다. 당체연화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를 직접 설명한 것이고, 비유연화는 그 진리를 비유를 빌려 설명한 것이다. 서품의 삼류 대중이 모인 장면은 비유연화이며, 그 당체는 수많은 성문·보살·잡중이 모두 석존 자신의 마음속 십계라는 것이다. 묘법연화경은 석존의 생명이요 마음이니, 십계의 중생이 모두 석존의 내증에 머문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석존의 불법은 집의 설계도이고, 대성인의 불법인 남묘호렌게쿄는 집 그 자체다. 석가 불법은 남묘호렌게쿄를 설명하는 비유연화이고, 대성인이 건립하신 어본존이 당체연화다.

그러므로 어의구전에 의해 비로소 법화경의 한 글자 한 구절이 뜻을 갖고 살아나며, 생활 속에서 실감으로 맥박치게 된다. 법화경은 서품부터 생명 그 자체를 설하고 있고, 무수한 철학자와 사상가가 풀려고 애쓴 생명의 실태, 그 본체가 남묘호렌게쿄다. 글자로는 일곱 자이지만 그 뜻은 깊고 그윽하다.

단락의 구조

이 한 단락은 다음과 같이 열두 마디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앞의 다섯 마디가 「나무」, 곧 귀명을 풀고, 뒤의 일곱 마디가 「묘법연화경」의 글자를 하나씩 푼다.

一南無 = 帰命나무는 범어, 뜻으로 옮기면 귀명
二人法석존(인)과 법화경(법)에 귀명
三帰 · 命귀=적문 불변진여의 이, 명=본문 수연진여의 지
四随縁不変 一念寂照두 진여가 한 찰나의 생명에 함께 있음
五色心不二 = 一極귀=색법, 명=심법, 둘이 아닌 것이 일극
六梵漢共時나무는 범어, 묘법연화경은 한어
七九字 九尊살달마·분다리가·소다람 — 구계즉불계
八妙 · 法묘=법성, 법=무명, 무명법성일체
九蓮華인과의 이법, 인과일체 — 인과구시
十經일체중생의 언어음성, 삼세상항
十一法界법계는 묘법이고 연화이며 경
十二八葉九尊연화는 팔엽구존의 불체

어구 풀이

南無 · 帰命나무·귀명
범어 나마스를 소리로 옮긴 것이 「나무」(음역), 뜻으로 옮긴 것이 「귀명」(의역)이다. 대성인은 「남무어서」에서 귀명을 「목숨을 법화경에 바치는 것」이라 하시고, 「백미일표어서」에서는 재물이 있든 없든 목숨보다 큰 재물은 없으니 옛 성인·현인은 목숨을 부처에게 바쳐 부처가 되었다고 하셨다.
釈尊석존
통상 석가모니불이지만 교판에 따라 여섯 가지 석존이 있다. 장교·통교·별교의 석존, 법화경 적문과 본문의 석존, 그리고 본문 문저의 석존이다. 여섯째가 교주 석존, 곧 구원원초 자수용보신여래인 니치렌 대성인이다.
法華経법화경
석존 일대 50년 설법 가운데 앞의 42년은 방편의 제경이고, 무량의경의 「사십여년 미현진실」로 이를 가른 뒤 8년간 설한 진실의 경이다. 육역삼존 가운데 구마라집 역 「묘법연화경」이 가장 바르게 불의를 전하며 대성인도 이를 쓰셨다. 이처삼회의 의식 속에 적문은 이승작불과 여인·악인 성불을, 본문은 지용보살의 출현과 수량품의 구원을 설하고, 문저에 삼대비법을 감추었다.
不変真如の理불변진여의 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의 이치. 법화경 적문이 제법실상에 의거해 십계호구·백계천여·일념삼천의 이치를 밝힌 것, 천태가 마하지관에서 이의 일념삼천을 세운 것이 이에 해당한다.
随縁真如の智수연진여의 지
연을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 속에서 불계를 용현해 가는 생명의 활동. 부처의 실제 행동을 근본으로 일념삼천을 밝힌 본문이 이에 해당하며, 신심에 약하면 「지」는 「신」의 다른 이름이다.
随縁不変 一念寂照수연불변 일념적조
수연은 수연진여의 지, 불변은 불변진여의 이, 일념은 한 찰나의 생명. 적(寂)은 고요함, 조(照)는 비추어 빛남이다. 찰나찰나의 생명 활동이 대우주의 리듬에 합치해 묘법에 비추어진 경애를 말한다.
色心不二색심불이
색은 물질·육체, 심은 정신·마음의 작용. 둘이면서 둘이 아닌 한 몸임을 불이라 한다.
一極일극
색심불이의 생명 철학이 최고·궁극의 법리라는 뜻. 곧 삼대비법의 어본존을 가리킨다.
薩達磨芬陀梨伽蘇多覧살달마분다리가소다람
Saddharma-puṇḍarīka-sūtra의 음역. 살=묘, 달마=법, 분다리가=연화, 소다람=경. 천태의 법화현의에는 「살달마·분다리·소다람」의 아홉 자로 나온다.
九字 九尊구자 구존
아홉 자는 아홉 존의 불체라는 뜻. 구존은 진언밀교 태장계 만다라 중대팔엽원의 대일여래와 주위 팔엽의 사불·사보살이다. 대성인은 이를 의에 의해 문을 판단(의의판문)하시어 「구계즉불계의 표시」로 읽으셨다.
無明 · 法性무명·법성
무명은 미혹, 진리에 어두워 지혜의 빛이 비치지 않는 상태. 법성은 그와 짝을 이루는 깨달음이다.

인법에 귀명하다

귀명이라 해도 여러 가지 귀명이 있다. 옛 가신은 주군에게 목숨을 바쳤고, 어떤 사람은 일이나 연구에 목숨을 걸고 몰두하며, 어떤 등산가는 산에서 목숨을 버리는 것을 본망으로 삼는다. 이것도 모두 일종의 귀명이지만, 절대적 행복으로 통하는 귀명은 아니다.

무엇에 귀명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 인생의 행불행이 정해진다. 눈앞의 일에만 사는 인생, 낮은 목적에만 귀명하며 만족하는 인생만큼 가엾은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인생 최고무상의 귀명, 본원적인 귀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성인께 귀명하고 남묘호렌게쿄에 귀명하는 데 다한다. 여기서 「인」은 문저의 석존, 곧 인본존인 대성인이고, 「법」은 말법의 법화경, 곧 법본존인 남묘호렌게쿄다. 인법일개의 어본존에 귀명하는 것이 진실 중의 진실한 귀명이다.

一心欲見仏 不自惜身命

일심으로 부처를 뵙고자 하여 스스로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

「묘법연화경」 여래수량품 제16 · 자아게

영원한 생명을 깨닫고 법을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신명을 아끼지 않는 신심과 실천이야말로 귀명의 궁극이다. 「관심본존초」의 다음 구절도 같은 뜻이다.

釈尊の因行果徳の二法は妙法蓮華経の五字に具足す我等此の五字を受持すれば自然に彼の因果の功徳を譲り与え給う

석존의 인행과덕의 이법은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에 구족되어 있다. 우리가 이 다섯 자를 수지하면 저절로 그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신다.

「관심본존초」 · 어서 246쪽

어본존을 믿고 창제하는 것은 권·적·본의 석존이 인위에서 닦은 만행과 과위에서 이룬 만덕을 그대로 갖추는 일이며, 우주의 본원력에 귀명하는 모습이다. 수지즉관심이 곧 바른 귀명의 모습이다.

귀는 불변진여의 이, 명은 수연진여의 지

석가 불법의 전개

석존은 이전경에서 이승은 성불하지 못한다고 설하고 여인과 악인의 성불도 부정했으며, 보살의 수행에 오십이위의 계단을 세웠다. 오랜 수행을 쌓은 끝에 깨달음을 얻는다는 가르침이었다.

법화경 적문에 와서 이 설을 뒤집어 이승작불·여인성불·악인성불을 설하고, 제법실상을 설해 삼라만상이 모두 묘법의 당체임을 보였다. 이 원리에 따르면 누구든 묘법의 당체이고, 비정의 초목·와석까지, 나아가 온 우주가 묘법의 당체다. 예외는 없으며 시간과 공간에 따라 바뀌지도 않는다. 적문은 이 우주 본원의 이치, 곧 불변진여의 이를 설해 밝힌 것이다.

이(理)와 사(事)의 차이

이론적으로 보면 삼라만상은 모두 백계천여·일념삼천의 당체이고 유정·비정 모두 불계와 불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분석적 고찰은 어디까지나 이치에 지나지 않는다.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가치가 생기지 않는다. 자신이 묘법의 당체이고 불계를 갖추었다고 이론으로 이해해도, 병의 고뇌와 경제적 압박으로 매일이 근심인 생활이라면 결코 불계의 용현이라 할 수 없다. 이와 사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

우리의 생명 활동은 끊임없이 「연」에 닿으며 일어난다. 지옥에서 부처까지 십계의 생명은 한 생명에 엄연히 갖추어져 있지만 연을 만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지옥계부터 보살계까지 구계의 모습은 자기에게서도 남에게서도 늘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계란 어떤 생명 상태이며,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가. 이것이 불법의 중대 문제다.

所以に世間の無常は眼前に有り豈人界に二乗界無からんや、無顧の悪人も猶妻子を慈愛す菩薩界の一分なり、但仏界計り現じ難し九界を具するを以て強いて之を信じ疑惑せしむること勿れ

세간의 무상은 눈앞에 있으니 어찌 인계에 이승계가 없겠는가. 돌아볼 줄 모르는 악인도 오히려 처자를 자애하니 보살계의 일분이다. 다만 불계만은 나타내기 어렵다. 구계를 갖추었으니 굳이 이를 믿어 의혹하지 말라.

「관심본존초」 · 어서 241쪽

이 나타내기 어려운 불계를 나타내는 것, 여기서 「증득」이 중요해진다. 적문은 이구의 불계를 설했다. 본문은 본인·본과·본국토를 밝혀, 석존 자신이 언제 어디서 무슨 원인으로 부처가 되었는가라는 실제의 행동과 증득 위에서 일념삼천을 설했다. 이 부처로서의 구체적 행동이 「수연진여의 지」이고, 그래서 「본문 수연진여의 지」라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석가 불법 범위 안의 이론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석존의 법화경은 본적이 모두 「적」이 되고 모두 「불변진여의 이」가 된다. 「본인묘초」는 일대 응불의 흐름을 따르는 쪽은 이 위의 법상이므로 한 부 모두 이의 일념삼천이요 적 위의 본문 수량이라고 밝힌다. 법화경 28품은 모두 말법에 출현하신 대성인과 어본존의 설명서, 곧 건물의 설계도다. 그래서 석가 불법은 「적문 불변진여의 이」가 되고, 대성인의 불법이야말로 「본문 수연진여의 지」가 된다.

신(信)으로 지혜(智慧)를 대신하다

대성인이 대지혜로 말법 만년의 인류 구제에 나서신 것이 수연진여의 지(智)다. 신심에 약하면 「지」는 「신」의 다른 이름이다. 경에 「이신대혜(以信代慧)」, 믿음으로 지혜를 대신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말대의 유치한 범부라도 어본존을 믿고 제목을 부르는 직도로 불계를 용현할 수 있다.

수연(隨緣)의 연어본존
지(智)신심

이 경우 「수연」의 연은 어본존에 해당하고, 「진여」는 불계, 「지」는 신심이다.

당체의초의 두 구절

問う妙法蓮華経とは其の体何物ぞや、答う十界の依正即ち妙法蓮華の当体なり

묻는다, 묘법연화경이란 그 체가 무엇인가. 답한다, 십계의 의정이 곧 묘법연화의 당체이니라.

「당체의초」 · 어서 510쪽

이에 따르면 일체중생이 모두 묘법의 당체다. 그런데 같은 「당체의초」를 더 읽어 가면 대성인은 이렇게 판정하신다.

所詮妙法蓮華の当体とは法華経を信ずる日蓮が弟子檀那等の父母所生の肉身是なり

소전 묘법연화의 당체란 법화경을 믿는 니치렌의 제자 단나 등의 부모소생의 육신이 이것이니라.

「당체의초」 · 어서 512쪽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다만 법화경을 믿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사람은 번뇌·업·고의 삼도가 법신·반야·해탈의 삼덕으로 바뀌고, 그 사람이 머무는 곳이 상적광토라고 하신다. 앞 구절은 불변진여의 이에 약해 말씀하신 것이고, 행불행과는 별개의 문제다. 뒤 구절은 행불행이 제일의 문제이며 최고의 가치를 창조하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이것이 곧 수연진여의 지다.

귀하고 명하다 — 두 가지 비유

적문 불변진여의 이에 귀한다는 것은 대우주의 본원력인 남묘호렌게쿄, 그 본원에 돌아가는 것이다. 내 몸도 묘법의 당체이고 우주도 묘법 그 자체다. 우리가 묘법을 부를 때 내 생명이 대우주 본원의 리듬에 합치한다. 그리고 그 본원력이 현실 생활과 생명 활동 위에 용현해, 그 생명력과 지혜가 원천이 되어 고난을 타개하고 인간혁명·생활혁명을 이루어 간다. 이것이 「수연진여의 지에 명한다」는 뜻이다.

비유 하나 · 어서 공부

어서 그 자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철리이니 불변진여의 이다. 지금 우리가 열심히 어서를 공부하는 것은 불변진여의 이에 귀하는 모습이다. 그 어서를 신심과 지혜로 체득해 자기 생활의 양식으로, 인생관·사회관의 원천으로 삼아 가는 것은 수연진여의 지에 명한 것이다.

비유 둘 · 마이크로폰

마이크로폰의 구조 자체는 불변진여의 이다. 기계 자체가 소리를 키우는 소질을 갖추고 있고, 그 원리에 귀해 있다. 여기에 스위치를 넣고 전기를 흘려 실제로 작동시키면 소리가 커져 실생활의 활동이 시작된다. 이것이 수연진여의 지에 명한 것이다.

「귀명이란 남묘호렌게쿄 이것이니라」 —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것은 우주의 리듬에 합치한, 도리에 맞는 자연 본연의 모습이며, 그 힘이 현실 생활에서 위대한 지혜와 활력이 되어 발휘된다.

수연불변 · 일념적조

수연진여의 지와 불변진여의 이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실재하는 법리다. 불변진여의 이는 큰 바다와 같고 수연진여의 지는 파도와 같다. 또 H₂O를 불변진여의 이라 하면, 연에 따라 찬물·더운물·수증기·얼음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은 수연진여의 지에 비유할 수 있다.

비유 셋 · 「A」라는 사람

A라는 한 사람이 가진 법은 불변진여의 이다. 그 A는 어떤 때는 밥을 먹고, 어떤 때는 전철을 타고, 걷고, 자고, 화내고, 웃고, 일하며 시시각각 변해 간다. 이 모든 활동은 수연진여의 지에 근거한다. 그러나 A는 언제나 A이지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다. 수연을 떠나 불변이 있는 것도, 불변 없이 수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일체 만물의 사상이 모두 수연과 불변을 함께 갖추고 있다. 이 둘이 함께 내재한 것이 생명의 실상이요 본질이며 묘법의 실체다. 대성인은 이것을 「수연불변·일념적조」라고 하셨다. 「입정관초」에는 전교대사의 혈맥을 인용한 구절이 있다.

目を開いて妙法を思えば随縁真如なり目を閉じて妙法を思えば不変真如なり此の両種の真如は只一言の妙法に有り我妙法を唱うる時・万法茲に達し一代の修多羅一言に含す

눈을 뜨고 묘법을 생각하면 수연진여이고, 눈을 감고 묘법을 생각하면 불변진여이다. 이 두 가지 진여는 다만 한마디의 묘법에 있다. 내가 묘법을 부를 때 만법이 여기에 이르고 일대의 경전이 한마디에 담긴다.

「입정관초」 · 어서 533쪽

어의구전의 「수연불변·일념적조」와 입정관초의 「이 두 가지 진여는 다만 한마디의 묘법에 있다」는 같은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일념적조」란 곧 「묘법」을 뜻한다.

일념 — 색심을 함께 갖춘 찰나의 생명

「일념적조」의 일념은 유심론의 단순한 「마음」이 아니다. 색심을 함께 갖춘 찰나찰나의 생명이며, 무명과 법성, 구계와 불계를 함께 품은 일념이다. 이 일념이 십계의 활동을 하고 생명과 생활 위에 현상을 드러내므로, 유심의 일념도 아니고 유물까지 좌우하는 일념이니 색심불이의 일념이다. 이는 「당체의초」가 말하는 「인과구시·부사의의 일법(因果倶時不思議の一法)」과 같은 뜻이다.

니치칸 상인은 「당체의초 문단」에서 이 부사의한 일법의 체를 「일념의 심법」, 곧 색심을 모두 갖춘 총재의 일념이라 하고, 인과구시를 두 가지로 풀었다. 첫째는 일왕 구인일과에 약한 것으로, 한 마음에 십법계를 갖추되 구계를 인으로 불계를 과로 하여 십계가 서로 갖추고 융합하며 일념에 있다는 뜻이다. 둘째는 재왕 각구에 약한 것으로, 예컨대 지옥의 인과에서는 진에가 악구의 인이고 악구가 진에의 과이며, 불계의 인과에서는 신심이 창제의 인이고 창제가 신심의 과다. 인과를 갖추었어도 오직 한 찰나에 있으므로 인과구시라 한다.

지옥계의 인과진에(瞋恚)는 악구의 인 악구(惡口)는 진에의 과
불계의 인과신심(信心)은 창제의 인 창제(唱題)는 신심의 과

찰나 속에 담긴 삼세

생명이라 해도 결국 찰나의 연속이다. 찰나 밖에 생명의 실재는 없다. 과거는 「있었던」 것이고 미래는 「있을」 것이지, 지금 여기 「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 찰나의 생명은 과거의 인과 미래의 과를 안에 품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과거 원원겁의 모든 인과 미래 영겁의 모든 과가 그 찰나의 생명 안에 들어 있다.

過去と未来と現在とは三なりと雖も一念の心中の理なれば無分別なり

과거와 미래와 현재는 셋이라 해도 일념의 심중의 이치이므로 분별이 없느니라.

「총감문초」 · 어서 562쪽

강의는 여기서 칸트를 잠시 언급한다. 칸트 이전의 철학자들은 시간과 공간을 객관적 존재로 여겼지만, 칸트는 그것이 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주관의 형식이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이를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에 견주었다. 그의 시간·공간론은 불법에 한 걸음 다가선 것으로 흥미롭다. 도다 회장은 지금이라고 생각한 찰나가 곧 과거가 되고 미래라 여긴 찰나가 현재가 되었다가 다시 과거로 옮겨 가니, 있다 하면 없고 없다 하면 있는 「공」의 실재이며,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 찰나에 행복과 불행, 희망과 실망을 느끼며 사니 이 찰나가 생명 전체라고 말했다.

불법은 이 찰나의 생명을 세로로는 구원원초와 구원즉말법으로, 가로로는 이 일념이 법계에 두루 미친다고 설하며, 「우주즉아」의 대원리를 밝힌다. 세로로 미래 영겁과 과거 원원겁을 품고 가로로 시방에 두루 미치는 찰나의 생명을, 불법의 심수는 일념삼천의 원리로 설명한다. 「일념삼천이사」는 묘락의 「홍결」을 인용해, 십계에 약하지 않으면 사를 두루 거두지 못하고, 삼제에 약하지 않으면 이를 두루 포섭하지 못하며, 십여를 말하지 않으면 인과가 갖추어지지 않고, 삼세간이 없으면 의정이 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곧 일념적조의 일념에는 십계도, 인과도, 의정도 모두 갖추어져 있다.

적조와 적멸

「적조」는 소승이 말하는 「적멸」·「공적」과 대비되는 말이다. 소승교는 「생멸멸이 적멸위락(生滅滅已 寂滅為楽)」이라 하여 번뇌를 끊어 없애고 생사를 떠나는 데 깨달음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대승이 말하는 「적조」는 번뇌즉보리요 생사즉열반이다. 이 땅이 그대로 상적광토이고, 이 세상을 떠나서는 깨달음이 없으며, 이 몸이 그대로 상락아정이라고 설한다.

적멸(寂滅) — 소승번뇌를 끊고 생사를 떠나 홀로 깨달음을 구한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 계율에 묶여 자기만의 해탈에 힘쓴다.
적조(寂照) — 말법의 법화경번뇌즉보리 · 생사즉열반. 묘법에 비추어져 구계의 현실 속에서 유희하며, 자기를 최고로 발휘해 행복을 누리면서 사회의 번영에 힘쓴다.

석존 자신이 「사십여년 미현진실」이라 하여 소승·이전의 수행을 깨뜨린 것도 이 때문이다. 말법의 법화경이 설하는 「적조」는 묘법에 비추어져 구계의 현실 속을 살아가는 인생이며, 절대적 행복의 생활을 하면서 사회의 번영에 힘쓰는 최고선의 행동이다.

귀는 색법, 명은 심법 — 색심불이가 일극

「귀」는 끊임없이 신진대사하며 우주로 환원되어 가는 육체, 곧 색법이다. 「명」은 심법으로, 끊임없이 우주의 리듬에 명합하려는 작용이다. 「색」은 눈에 보이는 것, 물질·형질·육체를 뜻하고, 「심」은 물질이 아닌 것, 성질·성분·정신·내재하는 힘을 뜻한다. 이 색심불이의 생명 철학이 최고의 대철리라는 것이 대성인의 확신이시다.

유물 사상은 물질이 근원이라 하고, 유심 사상은 정신이 본원이며 물질은 그 환영이라 한다. 둘 다 어떤 한 면의 진리를 말한 것이지만, 부분관을 전체관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생명 그 자체는 유심도 유물도 아니다.

강의는 19세기 프랑스의 실험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가 유심·유물 논쟁은 실험 생활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한 말을 들어, 두 사상이 생명 연구의 방해가 되어 왔음을 보인다. 또 정신신체의학이 떠오르며 병의 원인을 몸만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찾게 된 흐름, 술이 뇌에 작용해 마음을 바꾸고 공포라는 마음이 혈관·심장·혈압을 바꾸는 예, 생명은 과학으로 정의할 수 없고 체험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는 한 생물학자의 말, 의학이 생명과 마음의 신비에 대해서는 아직 거의 모른다는 한 의학자의 고백을 차례로 소개한다. 이 모두가 불법이 삼천 년 전부터 설해 온 색심불이의 생명관에 한 걸음 다가선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어떻게 파악하며, 어떤 체험을 하라는 것인가가 중대 문제다.

생명은 「색심불이」다. 이것이야말로 철학·생물학·의학이 모두 결국 귀착해 갈 사실이다.

일극에 귀하게 하므로 불승이라 한다

일극이란 최고의 철학, 곧 삼대비법의 어본존이다. 불승은 일불승, 성불의 경애를 말한다. 묘법이라는 최고의 철리·대사상을 실천할 때에만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행복 경애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낮은 철학과 치우친 사상을 바탕으로 하면 반드시 모순이 생겨 혼란과 불행을 부른다. 이 한 구절은 천태의 글을 인용해, 최고봉의 대사상·영원불멸의 대철학이 여기 있다고 하신 대성인의 선언이다.

범한공시 — 세계의 불법

「나무는 범어, 묘법연화경은 한어, 범한공시에 남묘호렌게쿄」라는 말씀은 동양의 광선유포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예언으로도 배독된다. 대성인의 불법에 치우침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본존의 중앙에는 「남묘호렌게쿄 니치렌」이라 쓰여 있는데, 나무는 범어, 묘법연화경은 한어, 니치렌은 일본어다. 좌우 십계의 중생에도 범·한·일 세 나라의 문자가 모두 들어 있으며, 양 끝의 범자는 부동명왕과 애염명왕을 나타낸다.

이것은 대성인의 불법이 일본만이 아니라 동양 전체, 온 세계의 불법임을 의미한다. 남묘호렌게쿄의 대불법이 동양으로, 세계로 흘러가는 것은 시대의 요구이며 인간 본연의 욕구로서,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분류다.

구자는 구존의 불체 — 구계즉불계

묘법연화경은 범어 살달마·분다리가·소다람(Saddharma-puṇḍarīka-sūtra)을 구마라집이 뜻으로 옮긴 것이다. 살은 묘, 달마는 법, 분다리가는 연화, 소다람은 경이다. 이 아홉 자는 팔엽구존을 뜻하며, 생명론에 약하면 구계즉불계를 나타낸다.

묘법을 무명과 법성에 약해 말하면, 묘는 법성이요 깨달음이고 법은 무명이요 미혹이다. 그러므로 「묘법」이라고 하는 순간 이미 무명과 법성이 한 몸임이 드러나 있다. 미혹을 떠나 깨달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연화는 인과일체 — 인과구시

「연화란 인과의 이법이며 이 또한 인과일체이니라」는 인과구시를 설하신 구절이다.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있다. 구계를 인, 불계를 과로 하면 구계즉불계·불계즉구계이며, 구계와 불계가 함께 일념의 심법에 있으므로 「인과구시 부사의의 일법」이다.

본과묘인 석가 불법은 인과이시의 가르침이고, 본인묘인 대성인의 불법은 인과구시를 밝힌다. 생명의 본질을 논하면 결국 인과구시다. 「본인묘초」는 종의 사중을 이렇게 가른다.

一に因果異性の宗・方便権教なり、二に因果同性の宗・是れ迹門なり、三に因果並常の宗・即ち本門なり、四に因果一念の宗・文に云く「芥爾も心有れば即ち三千を具す」と、是れ即ち末法純円・結要付属の妙法なり

첫째 인과이성의 종은 방편권교, 둘째 인과동성의 종은 적문, 셋째 인과병상의 종은 본문, 넷째 인과일념의 종은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으면 곧 삼천을 갖춘다」는 것으로, 이것이 말법 순원·결요부촉의 묘법이다.

「본인묘초」 · 어서 871쪽
  1. 一因果異性방편권교
  2. 二因果同性적문
  3. 三因果並常본문
  4. 四因果一念말법의 묘법

석가 불법은 인과를 떼어 놓거나 대립시켜 생각한다. 세상의 현상을 겉으로만 보면 인과이시다. 몸이 좋지 않을 때 약을 먹으면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생명에 내재한 근본의 인과율은 인과구시이며, 그 인과율의 깊은 밑바닥까지 밝히신 것이 대성인의 불법이다.

석존은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갖춘 색상장엄의 부처로 설해졌다. 당시 중생에게 이상의 인격을 그리게 하고, 부처가 되기까지 긴 인위의 수행을 거쳤음을 보여 부처를 갈앙하게 한 것이다. 「관심본존초」는 교주 석존이 삼혹을 이미 끊은 부처이고 시방세계 국주와 일체 보살·이승·인천의 주군이니 어찌 우리 범부의 기심에 머물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것은 수지즉관심을 설하기 위한 물음으로, 석가 불법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석가 불법은 오랜 수행을 거쳐 불과를 얻는다고 하므로 어디까지나 인과이시다. 본문이라 해도 오백진점겁 이전에 오래 보살도를 행했다고 하니 인과이시요 본과묘의 불법이다. 대성인의 불법은 범부즉관심의 불법이고 인과구시이며, 곧 본인묘의 불법이다. 우리가 남묘호렌게쿄를 수지하면, 그 안에 우주 전체의 복지와 공덕이 거두어진다.

경은 일체중생의 언어음성

세상 사람들은 경이라 하면 불전의 경문을 떠올린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경은 그것만이 아니다. 우주 삼라만상의 말과 동작이 모두 경이다. 현철의 언행도 경이고 한 범부의 외침도 경이다. 이 경은 그것 자체의 진리와 가치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비정보다 유정의 경이 높고, 유정 가운데서도 짐승보다 사람의 경이, 사람 가운데서도 범부보다 지자의, 지자 가운데서도 대지자의, 그리고 대지자 가운데서도 부처라 이름하는 분의 경이 가장 높다.

우리 생활로 옮겨 보면, 생선가게는 생선가게로서의 경을 날마다 읽고 있다. 정치가는 정치가의, 목수는 목수의, 공장 노동자는 노동자의, 노동운동의 지도자는 그 운동의 경을 읽고 있다. 불멸 후 오늘날 묘법연화경의 경이 가장 높은 까닭은, 묘법은 최대의 가치를 지닌 생명이고 연화는 그 최고의 생명을 품은 옥체이며, 최고선을 영위하는 대선 생활의 경이야말로 최고요 진리이기 때문이라고 도다 회장은 늘 말했다.

장안대사가 「소리가 불사를 짓는 것, 이를 이름하여 경이라 한다」고 한 것처럼, 남묘호렌게쿄야말로 최고의 경이다. 또 생명이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걸쳐 영원히 이어지는 것을 경이라 한다. 결국 대우주도, 나의 생명도, 삼라만상이 모두 묘법이고 연화이며 경이다. 우주 생명의 근원을 묘법연화경이라 한다.

연화는 팔엽구존의 불체

팔엽구존은 일왕 진언밀교가 설하는 태장계 만다라의 중대팔엽원을 가리킨다. 한가운데에 대일여래가 앉고, 동·서·남·북과 동남·동북·서남·서북의 여덟 잎에 사불·사보살이 앉아 모두 아홉 존이 된다. 이것은 대일경에 설해진 권대승의 교설이지만, 실대승인 법화경의 눈으로 열어 보면 「구계즉불계」의 뜻을 설명하고 있다. 권대승인 대일경은 구계즉불계를 설하지 못하므로 생명론을 밝히는 전제로 하나의 형식을 보였을 것이다.

대성인이 이를 인용하신 것도 생명론으로서다. 그래서 앞에서 「구자는 구존의 불체이며 구계즉불계의 표시」라 하셨다. 구계는 인이고 불계는 과이니 구계즉불계는 곧 인과구시이며, 인과구시가 곧 연화의 법이다. 묘법에 비추어져 거기에 엄연히 불계가 드러나는 모습을 「팔엽구존」이라 하신 것이다.

흉간의 팔엽 연화

불교에서는 우리 가슴 속에 팔엽의 연화가 있다고 말한다. 해부학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니치칸 상인의 「당체의초 문단」과 도다 회장의 해설에 따르면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우리 생명 그 자체가 묘법연화경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 생명이 묘법연화경 즉 당체연화임을 우리 몸 안에서 찾아낸 것이다. 두 폐에 둘러싸인 심장의 모습이 연꽃을 닮았기에, 이를 흉간의 팔엽 연화라 부른다.

도미의 지느러미 뿌리에 도미 모양의 뼈가 있어 「도미 속 도미」라 부르고, 화장한 뒤 사람 모양을 닮은 뼈를 「목젖 부처」라 부르는 것과 같다. 전교대사의 「우두결」도 당체연화란 일체중생의 가슴 사이의 팔엽 연화라고 했다. 가슴 속에 팔엽 연화가 있다는 말은, 우리 자신이 묘법연화경의 당체임을 강하게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열반경의 「불성을 보는 자는 여인이라 해도 남자라 이름한다」는 문을 들어, 묘법을 수지한 여성은 그 생명력이 남성과 다름없이 된다고 풀었다. 흉간의 연화는 백련화라고 정해지며, 대일경도 「내심의 묘한 백련은 팔엽이 바르게 원만하다」고 했다. 「법화전」과 「석서」에는 법화경을 독송한 이의 임종에 흰 연꽃이 피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이는 묘법 독송의 공용으로 가슴의 백련화가 드러난 것을 말한다. 니치칸 상인은 상법 시대에도 그러했거늘 지금 창제에 힘쓰는데 어찌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妙法蓮華経の体のいみじくおはしますは何様なる体にておはしますぞと尋ね出してみれば我が心性の八葉の白蓮華にてありける事なり

묘법연화경의 체가 훌륭하시다 함은 어떠한 체이신가 하고 찾아내어 보면, 나의 심성의 팔엽의 백련화이시니라.

「십여시사」 · 어서 411쪽

어본존 중앙에 「남묘호렌게쿄 니치렌」이라 쓰신 니치렌은 곧 백련화를 뜻한다. 백련은 해를 따라 피고 닫힌다는 말처럼, 니치렌의 체가 그대로 중앙의 어본존이며 백련화다. 닛코 상인이 「백련아사리」라 이름하신 것도 이름이 반드시 체를 드러내는 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법 하종의 삼보는 우리 중생 가슴 속 팔엽의 백련화다.

맺으며 — 어의구전의 구성

어의구전은 이 「남묘호렌게쿄」의 한 단락에서 시작해, 법화경 28품과 개경 무량의경, 결경 보현경의 요문을 한 조목씩 풀어 간다. 각 품에 몇 개의 대사가 있는지는 다음과 같다.

  • 서품7
  • 방편품8
  • 비유품9
  • 신해품6
  • 약초유품5
  • 수기품4
  • 화성유품7
  • 오백제자수기품3
  • 수학무학인기품2
  • 법사품16
  • 견보탑품20
  • 제바달다품8
  • 권지품13
  • 안락행품5
  • 종지용출품1
  • 여래수량품27
  • 분별공덕품3
  • 수희공덕품2
  • 법사공덕품4
  • 상불경보살품30
  • 여래신력품8
  • 촉루품3
  • 약왕보살본사품6
  • 묘음보살품3
  • 관세음보살보문품5
  • 다라니품6
  • 묘장엄왕본사품3
  • 보현보살권발품6
  • 무량의경6
  • 보현경5
모두 231개조 — 이 밖에 별전이 있다고 전한다. 가장 많은 것은 상불경보살품 30개조, 여래수량품 27개조, 견보탑품 20개조.

차근차근히 이를 생각할지어다 — 남묘호렌게쿄는 문자로는 일곱 자이지만, 그 안에 귀명의 대상도, 생명의 이치와 활동도, 색심도, 인과도, 삼세도, 온 법계도 모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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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246쪽 · 241쪽준비 중관심본존초観心本尊抄어서 510 · 512쪽준비 중당체의초当体義抄어서 531 · 533쪽준비 중입정관초立正観抄어서 871쪽준비 중본인묘초本因妙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