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의 본존초」는 니치렌 대성인이 사도 유배 중이던 문영 10년(1273) 4월 25일, 쉰두 살에 한문으로 지으신 어서다. 「개목초」가 「사람」으로서의 본존, 곧 말법의 주사친 삼덕을 밝힌 책이라면, 이 어서는 「법」으로서의 본존, 곧 말법의 중생이 무엇을 받아 지니고 무엇을 근본으로 삼아 성불하는가를 밝힌 책이다. 대성인은 이튿날 송장을 붙여 시모우사의 도키조닌에게 보내시며 「이 일은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라 하셨고, 둘이 셋이 나란히 앉아 읽지 말라고까지 당부하셨다. 이 서강은 본론 31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어서가 언제 · 어디서 · 누구에게 · 어떤 정황에서 쓰였는지, 전체가 무엇을 말하고 그 깊은 뜻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초」라는 긴 제목 하나하나에 어떤 법리가 담겼는지를 차례로 살핀다. 마지막으로 이 사이트가 31장과 송장을 여덟 편으로 묶은 구성을 소개해, 앞으로의 읽기 지도를 펼쳐 둔다.
관심의 본존초는 대성인의 어서 가운데에서도 가장 읽기 어려운 글로 꼽힌다. 문답이 서른 번 넘게 이어지고, 『마하지관』 · 『법화현의』 · 『법화문구』와 묘락대사의 『홍결』 · 『석첨』, 그리고 법화경과 그 개경 · 결경의 문장이 빽빽하게 인용된다. 대성인 스스로 송장에서 「이 글은 어려운 문답이 많고 대답은 적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글의 길이 때문이 아니라, 이 어서가 묻는 물음 자체가 불법 전체의 근본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일념삼천이라는 천태의 극설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범부의 마음에 정말 부처의 경계가 갖추어져 있는가, 갖추어져 있다면 범부는 어떻게 그것을 「볼」 수 있는가, 그리고 말법의 범부가 받아 지녀야 할 본존은 무엇인가 — 이것이 본초를 꿰뚫는 물음이다.
창가학회 교학은 이 어서를 니치칸 상인(日寛上人)의 「관심본존초 문단(観心本尊抄文段)」을 길잡이로 삼아 읽어 왔다. 이 사이트가 바탕으로 삼은 강의(창가교학연구실 블로그에 정리된 장별 강의)도 그러하다. 서강의 3부에서 제호를 한 글자씩 풀어 가는 방식은 문단의 첫머리를 거의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 편은 그 강의의 序講 1 · 2를 빠짐없이 다시 정리하되, 역사 사실에 관해서는 연구서와 연표로 보충하고, 강의가 인용한 어서는 원문을 대조해 실었다.
이 서강에서 다루는 항목은 다음과 같다.
如来滅後五五百歳始観心本尊抄 本朝沙門日蓮撰
저술 연월과 송장
관심의 본존초는 니치렌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되어 계시던 때, 성수(聖壽) 52세에 지으신 어서다. 본문 끝에는 「문영 10년 태세 계유 4월 25일 니치렌이 이것을 주(註)하다」라는 날짜가 분명히 적혀 있다. 그리고 바로 이튿날인 26일,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송장」을 붙여 이 글을 시모우사 지방의 도키 도노(富木殿)에게 보내셨다.
文永十年太歳癸酉卯月二十五日 日蓮之を註す
문영 10년 태세 계유 4월 25일, 니치렌이 이것을 주하다.
文永十年太歳癸酉卯月廿六日 日 蓮 花押
문영 10년 태세 계유 4월 26일, 니치렌 (화압).
「주(註)하다」라는 말은 겸손한 표현이다. 대성인은 이 글을 스스로 「관심의 법문을 조금 적었다」고 송장에 쓰셨다. 그러나 그 「조금」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송장의 나머지 문장이 곧 밝힌다. 이것은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大事)」이며, 불멸 후 2,220여 년 동안 아직 아무도 이 글의 마음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식 제목은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초(如来滅後五五百歳始観心本尊抄)」이고, 제목 아래에 「본조사문 니치렌 찬(本朝沙門日蓮撰)」이라고 지은이를 밝히셨다. 제목과 서명에 담긴 뜻은 3부와 4부에서 따로 살핀다.
송장의 첫머리는 「帷一つ・墨三長・筆五官給び候い了んぬ(홑옷 한 벌, 먹 세 자루, 붓 다섯 자루를 잘 받았습니다)」로 시작한다. 도키조닌이 사도로 보낸 물품 가운데 먹과 붓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종이 · 먹 · 붓조차 넉넉하지 않던 사도의 집필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뒤의 「사도의 저술」 절 참조).
대고중 도키조닌
이 어서의 대고중(對告衆), 곧 대성인이 이 글을 직접 건네신 상대는 도키 다네쓰구(富木胤継)다. 자세히는 도키 고로자에몬노조 다네쓰구(富木五郎左衛門尉胤継)라 하며, 본래 이나바 지방(因幡国) 사람이었다. 젊어서 가마쿠라 막부에 출사했고, 시모우사 지방 가쓰시카군(葛飾郡) 와카미야(若宮)에 살았다. 뒤에 입도(入道)하여 조닌(常忍)이라 칭했고, 대성인의 절복 교화를 받아 니치조(日常)라는 법휘를 받았다. 행학이 차츰 깊어져, 대성인의 지도를 받으면서 보소(房総) · 간토 방면 신도들의 중심에 서서 오타(大田) · 소야(曾谷) 두 사람과 함께 대성인 문하로 활약했다. → 인물탐구 도키조닌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으로 국가를 간효하시자 곧바로 삼류의 강적이 다투어 일어났다. 격분한 염불자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박해에 나섰고, 마쓰바가야쓰(松葉ヶ谷)의 초암이 불태워졌다. 거처를 잃으신 대성인을 맞아 보호한 사람이 바로 도키 다네쓰구였다고 강의는 적는다. 그 뒤로 이어진 여러 법난에서도 그는 가마쿠라의 시조깅고와 긴밀히 연락하며 늘 외호(外護)의 소임을 맡았다.
강의는 이 점에 특히 주목한다. 대성인 문하에서 두 기둥으로 꼽히는 중서(重書) 가운데 「개목초」는 시조깅고에게, 「관심의 본존초」는 도키조닌에게 주어졌다. 이것은 시조와 도키 두 사람이 대성인을 외호하는 두 날개였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는 것이다. 도키조닌이 받은 어서는 매우 많다. 본초 밖에도 「법화취요초」 · 「사신오품초」 같은 십대부(十大部)의 어서를 비롯해 「데라도마리어서」 · 「사도어서」 · 「시문불승의」 · 「조닌초」 · 「관심의 본존득의초」 등을 합치면 수십 편에 이른다.
니치코 상인(日亨上人)은 도키조닌을 이렇게 평했다.
니치코 상인(日亨上人)의 평 — 도키조닌은 가까이 있는 오타 · 소야 등의 무사들과 손잡고 가마쿠라의 시조 씨와 결합하여 외호에 나섰으며, 안국론 상진을 전후한 법난을 견디어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용맹정진했다. 그리하여 신도의 수령으로서 늙은 제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이르렀고, 본문 제일의 중서인 관심의 본존초를 비롯해 수십 편의 의초(義抄)를 받았으며, 간토의 중진으로서 성교(聖教)가 자연히 그에게 모여 지금까지 전해진다.
대고중을 둘러싼 이설과 그 논파
그런데 본초 본문에는 대고중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게다가 송장에 「관심의 법문을 조금 적어 오타 도노 · 교신 고보(教信御房) 등에게 드린다」는 구절이 있다 보니, 이 구절을 잘못 읽어 여러 이설이 생겼다. 하나는 이 어서가 소야 입도(曾谷入道, 법명 교신)에게 준 것이라는 설이고, 또 하나는 오타 · 소야 두 사람에게 준 것이며 도키조닌은 곁들여 받았을 뿐이라는 설이다.
강의는 이 설들이 모두 잘못이라고 단정하고, 그 근거로 건치 원년(1275)의 「관심의 본존득의초」를 든다. 이 어서는 도키조닌에게 보내신 편지인데, 소야 교신이 본초의 「미득(未得)」 등의 문자를 근거로 「적문은 읽지 않겠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 대성인이 답하신 대목이다.
抑も今の御状に云く教信の御房・観心本尊抄の未得等の文字に付て迹門をよまじと疑心の候なる事・不相伝の僻見にて候か、去る文永年中に此の書の相伝は整足して貴辺に奉り候しが其の通りを以て御教訓有る可く候
무릇 이번 편지에 따르면, 교신 고보가 관심의 본존초의 「미득」 등의 문자를 근거로 적문을 읽지 않겠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상전(相傳)을 받지 못한 그릇된 견해이리라. 지난 문영 연간에 이 글의 상전은 빠짐없이 갖추어 귀하에게 드렸으니, 그 뜻대로 가르쳐 주시기 바라노라.
「이 글의 상전은 빠짐없이 갖추어 귀하에게 드렸다」 — 이 한 문장으로 본초를 받은 사람이 도키조닌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소야 교신은 오히려 본초를 잘못 읽어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나온다. 송장에 오타 · 교신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도키조닌을 중심으로 시모우사의 몇몇 동지가 함께 읽도록 허락하신 뜻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상전(相傳)」은 이 어서의 내용과 그 읽는 법을 대성인이 직접 전해 주셨다는 뜻이다. 「득의초」라는 제목 자체가 「본초를 바르게 이해하는 요령」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정필 17지와 나카야마 법화경사
본초의 어정필(御正筆)은 한문체로 쓰인 17지(紙)이며, 송장과 함께 지바현 이치카와시 나카야마의 법화경사(法華経寺)에 지금도 전한다. 법화경사는 도키 니치조를 개조로 하는 절이다. 니치조는 와카미야 땅에 법화사(法華寺)를 일으키고, 오타 조묘의 아들인 소쓰 아사리 닛코(帥阿闍梨 日高)를 머물게 했다. 뒤에 오타 집안이 그 거처에 본묘사(本妙寺)를 세우자, 와카미야의 절과 합쳐 지금의 법화경사가 되었다.
표기 주의 — 이 편에는 같은 「닛코 · 니치코」로 읽히는 이름이 여럿 나온다. 제2조 닛코상인(日興上人), 오타 조묘의 아들 닛코(日高), 근대의 니치코 상인(日亨上人), 에도 시대 불수불시파의 니치코(日講)다. 사이트에서는 처음 나올 때마다 한자를 붙인다.
닛코상인의 문류에 전하는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富士一跡門徒存知事)」는 대성인 어서의 목록을 적으면서 관심의 본존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一、観心本尊抄一巻
하나, 관심본존초 한 권.
已上の三巻は因幡国富城荘の本主・今は常住下総国五郎入道日常に賜わる、正本は彼の在所に在り
이상 세 권(관심본존초 · 취요초 · 사신오품초)은 이나바 지방 도키노쇼(富城荘)의 본래 주인이며 지금은 시모우사 지방에 상주하는 고로 입도 니치조에게 주신 것이니, 정본은 그의 거처에 있다.
이 기록으로 두 가지가 분명해진다. 대성인의 어정필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카야마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어서를 받은 사람이 도키 니치조라는 것이다. 오늘날 나카야마에 도키 · 오타 · 소야 등에게 주신 대성인의 진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도키조닌의 공적이라 할 수 있다.
강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묻는다. 대성인이 도키조닌 등에게 그토록 많은 어서를 주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미래를 위해 가장 안전한 곳에 어서를 남기려 하신 것이 아닐까.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서민의 집이나 정해진 절이 없는 승니에게 맡겨서는 긴 세월 동안 흩어져 없어질 염려가 크다. 나라 전체가 삼재칠난에 시달리던 시대에 어서를 보존하는 일은 몹시 어려웠을 것이다. 「불지(佛智)는 헤아리기 어렵다」고 강의는 덧붙인다.
비장의 당부 — 송장이 말하는 것
대성인이 어서를 쓰신 것은 일차로는 재세의 사람들을 위해서지만, 다시 생각하면 멸후의 사람들을 위해서다. 특히 중요한 어서는 「영법구주(令法久住)」, 곧 법을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말법 만년의 일체중생을 구하기 위해 남겨 두신 것이다. 강의는 그 예로 「삼대비법품승사」를 오타 입도에게 주신 취지를 든다.
今日蓮が時に感じて此の法門広宣流布するなり予年来己心に秘すと雖も此の法門を書き付て留め置ずんば門家の遺弟等定めて無慈悲の讒言を加う可し、其の後は何と悔ゆとも叶うまじきと存ずる間貴辺に対し書き送り候、一見の後・秘して他見有る可からず口外も詮無し
지금 니치렌이 때에 감응하여 이 법문을 광선유포하는 것이니라. 나는 여러 해 동안 기심에 감추어 왔으나, 이 법문을 적어 남겨 두지 않는다면 문하의 남은 제자들이 반드시 무자비한 참언을 더할 것이니라. 그 뒤에는 아무리 뉘우쳐도 소용없으리라 생각하여 귀하에게 적어 보내노라. 한 번 본 뒤에는 감추어 남에게 보이지 말고, 입 밖에 내는 것도 소용없느니라.
대성인은 멸후를 위해 이 법문을 적으셨다고 밝히고, 오타 입도에게 그것을 소중히 지켜 후세에 남기라고 당부하신다. 관심의 본존초도 마찬가지다. 송장은 이렇게 말한다.
観心の法門少少之を注して大田殿・教信御房等に奉る、此の事日蓮身に当るの大事なり之を秘す
관심의 법문을 조금 적어 오타 도노 · 교신 고보 등에게 드리노라. 이 일은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이니 이것을 감추노라.
此の書は難多く答少し未聞の事なれば人耳目之を驚動す可きか、設い他見に及ぶとも三人四人座を並べて之を読むこと勿れ、仏滅後二千二百二十余年未だ此の書の心有らず、国難を顧みず五五百歳を期して之を演説す乞い願くば一見を歴来るの輩は師弟共に霊山浄土に詣でて三仏の顔貌を拝見したてまつらん
이 글은 어려운 물음이 많고 대답은 적으며, 일찍이 듣지 못한 일이니 사람들의 귀와 눈을 놀라게 하리라. 설령 남에게 보이게 되더라도 서너 사람이 자리를 나란히 하여 읽어서는 안 되느니라. 불멸 후 2,220여 년 동안 아직 이 글의 마음은 없었느니라. 국난을 돌아보지 않고 오오백세를 기하여 이것을 연설하노라. 바라건대 한 번 이 글을 본 사람들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영산정토에 나아가 세 부처님의 얼굴을 우러러 뵙기를.
그러므로 당시 재가 문하 가운데 본초를 읽을 수 있었던 사람은 도키 니치조를 중심으로 시모우사의 두세 사람뿐이었을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출가 제자 가운데서도 늘 곁에서 시봉하며 집필을 도운 닛코상인 같은 분 말고는 이 어서의 상전이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성인 제자들이 남긴 본초의 사본은 닛코상인의 것과 나카야마의 닛코(日高)의 것 정도다. 또 현존하는 대성인의 유문(遺文) 가운데 「입정안국론」이라는 이름은 스무 곳 넘게, 「개목초」는 네 곳에 보이지만, 「본존초」라는 이름은 「관심의 본존득의초」의 한 곳에 나올 뿐이다. 송장에서 「당신(當身)의 대사」라 하신 그대로, 「서너 사람이 나란히 앉아 읽지 말라」는 훈계를 지켜 엄격히 지켜 전해졌다는 것이 강의의 설명이다.
왜 감추셨는가
대성인은 왜 이 어서를 널리 공개하려 하지 않으셨을까. 강의는 무엇보다 아직 일종(一宗) 홍통의 시작이었고, 문하 가운데 이처럼 전대미문의 중서를 이해할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성인 멸후에 오노승(五老僧)이 공공연히 「천태 사문」이라 자칭한 것만 보아도 그 사정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송장에 이름이 나오는 오타 입도와 소야 입도조차 본초의 「일품이반 밖은 소승교 · 사교 · 미득도교 · 부상교라 이름한다」는 문장을 잘못 읽어 「적문은 읽지 않는다」는 견해를 일으켰다.
一品二半よりの外は小乗教・邪教・未得道教・覆相教と名く
일품이반 밖은 소승교 · 사교 · 미득도교 · 부상교라 이름하느니라.
이에 대성인은 「사보살조립초」에서 이렇게 엄하게 경계하셨다.
私ならざる法門を僻案せん人は偏に天魔波旬の其の身に入り替りて人をして自身ともに無間大城に堕つべきにて候つたなしつたなし
사사롭지 않은 법문을 멋대로 그릇되게 헤아리는 사람은 오로지 천마파순이 그 몸에 들어앉아, 남과 자신을 함께 무간대성에 떨어뜨리는 것이니라.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이때는 본초를 지으신 문영 10년(1273)에서 이미 7년이 지난 홍안 2년(1279)이었다. 대성인의 일생으로 보아도 만년에 해당하는 시기에, 제자들은 본적(本迹)의 구분에서조차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직접 본초를 받은 도키조닌마저 홍안 2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올린 듯하다.
本門久成の教主釈尊を造り奉り脇士には久成地涌の四菩薩を造立し奉るべしと兼て聴聞仕り候いき、然れば聴聞の如くんば何の時かと
본문 구성(久成)의 교주 석존을 조성하고, 협사로는 구성의 지용 사보살을 조립해야 한다고 전에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들은 대로라면 그것은 언제입니까.
강의는 도키조닌이 대흑천을 모시거나 석존의 불상을 조립하는 등 천태 계열의 조불(造佛) · 조상(造像)에 대한 집착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는 점도 사실로 지적한다. 불법에 대한 이 정도의 이해로는 종탈상대(種脫相對)나 「제삼의 법문」을 알 수 없었을 것이며, 관심의 본존초에 미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강의에 따르면 이 본존초는 말법 만년의 일체중생을 구하는 본존을 밝힌 책이므로, 둘도 없는 신심에 서지 않으면 받들 수 없다. 거꾸로 이것을 비방하면 무간지옥의 불길에 휩싸여 영구히 고뇌에 잠긴다. 그래서 대성인은 이 어서를 문하에 널리 공개하지 않고 도키 니치조에게 맡겨 미래를 위해 남기셨다. 그것은 도키조닌이 본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라기보다, 대성인의 어서를 소중히 후세에 남길 사람이라고 신뢰하셨기 때문이라고 강의는 추측한다.
닛코상인과 후대의 거울
강의는 대성인의 정법 정의가 오직 제2조 닛코상인에 의해 이어져 후세에 전해졌다고 본다. 닛코상인이 대성인 입멸 뒤에 여러 어서를 모으신 일은 유명하며, 손수 많은 어서를 필사하셨다. 현존하는 닛코상인의 사본으로는 「입정안국론」 · 「법화취요초」 · 「본존문답초」 · 「개목초」 · 「관심의 본존초」 · 「시문불승의」 등이 있다. 이것은 닛코상인이 대성인의 어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셨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다.
강의는 도키 니치조가 본존초 등 많은 어서를 남긴 것은 신심이라기보다 가보로서 소중히 간직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 닛코상인은 오노승이 어서를 소홀히 하고 심지어 불태우기까지 한 것을 단호히 경계하며 어서를 모으고 될 수 있는 한 베껴 쓰셨다. 그것은 오로지 영법구주를 위해, 말법 만년의 민중 구제를 위해서였다. 그 정신이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의 다음 한 구절에 배어 있다고 강의는 말한다.
具に之を註して後代の亀鏡と為すなり
이것을 자세히 적어 후대의 귀감으로 삼노라.
본존초야말로 멸후의 명경(明鏡)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던 분이 닛코상인이었다는 것이다.
멸후를 위한 어서
이상으로 대성인이 본존초를 쓰신 것은 무엇보다 멸후의 사람들을 위해서였음이 분명해진다. 강의는 그 멸후 가운데서도 「화의(化儀)의 광선유포」의 때를 위해 쓰셨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한다. 대성인 재세는 「법체(法體)의 광선유포」의 시대였다. 대성인은 그 시대에 말법의 온갖 원리를 남겨 두셨고, 홍안 2년(1279)에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을 건립하신 것도 일차로는 재세의 사람들을 위해서지만, 다시 생각하면 오늘을 위해서이며 전 인류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라고 강의는 본다. 법체의 광선유포 때에는 대성인 한 분의 싸움이 중심이었다. 그런 때에 본존초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할 필요는 없었고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었으니, 이것을 감추어 후세에 남기신 것은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때를 기다릴 뿐」이라는 말씀이 이제 「때가 왔다」는 현실이 되었다고 강의는 말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화의의 광선유포에 매진하는 오늘의 문하야말로 관심의 본존초를 비롯한 모든 어서의 대고중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 항목의 결론이다.
- 1253건장 5년 4월 28일입종 선언, 남묘호렌게쿄의 제목 건립
- 1260문응 원년 7월 16일「입정안국론」으로 첫 국가 간효 / 8월 27일 마쓰바가야쓰 법난
- 1261홍장 원년 5월 12일이즈 이토 유배 (1263 사면)
- 1264문영 원년고마쓰바라 법난
- 1268문영 5년열한 통의 서장으로 공장 대결을 촉구
- 1271문영 8년 9월 12일다쓰노쿠치 법난 · 발적현본
- 1271문영 8년 10월 10일에치 출발 → 28일 사도 상륙 → 11월 1일 쓰카하라 도착
- 1272문영 9년 1월쓰카하라 문답
- 1272문영 9년 2월「개목초」 (인본존 개현의 서) · 이월 소동(자계반역난)
- 이치노사와로 옮기심시기 확인 중 (강의: 1273년 4월 / 일반 연표: 1272년 여름 무렵)
- 1273문영 10년 4월 25일「관심의 본존초」 (법본존 개현의 서) · 성수 52세
- 1273문영 10년 4월 26일「관심의 본존초송장」, 도키조닌에게
- 1274문영 11년사면, 가마쿠라로 귀환
- 1275건치 원년「관심의 본존득의초」 「이 글의 상전은 빠짐없이 갖추어 귀하에게 드렸다」
- 1279홍안 2년「사보살조립초」 · 10월 12일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 (강의)
- 1282홍안 5년 10월 13일입멸, 61세
저술의 배경 (1) — 입정안국론에서 다쓰노쿠치까지
대성인이 관심의 본존초를 지으신 것은 문영 10년(1273) 4월 25일, 사도 지방 이치노사와(一谷)에서였다. 이 어서를 받드는 데에는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쓰였는지를 아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의는 말한다. 강의는 그 배경을 사도 유배 중의 대성인의 행동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시간을 거슬러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으로 사이묘지 입도(最明寺入道, 호조 도키요리)를 간하셨다. 첫 번째 국가 간효다. 곧 삼류의 강적이 일어나, 같은 해 8월 27일에는 마쓰바가야쓰 법난을 당하셨고, 이듬해 홍장 원년(1261) 5월 12일에는 이즈 이토로 유배되셨다. 홍장 3년(1263)에 사면되어 가마쿠라로 돌아오셨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이듬해 문영 원년(1264)에 아와에 가셨다가 고마쓰바라 법난을 당하셨다. 제자가 목숨을 잃고 대성인 자신도 상처를 입으신 큰 사건이었다.
문영 5년(1268)에 대성인은 열한 통의 서장으로 막부와 종교계를 간하며 공장(公場) 대결을 촉구하셨다. 대성인의 마음속에는 몽골의 침공, 곧 타국침핍난이 가까웠다는 예견이 있었고, 이 최대의 국난에서 나라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하는 굳은 결의가 있었다고 강의는 본다.
그 뒤 문영 8년(1271)에 들어 막부는 다시 탄압을 시작했다. 그 배후에는 기우(祈雨)의 승부에서 패하고 대성인에게 철저히 파절당해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 고쿠라쿠사 료칸(極楽寺良観) 등의 음험한 공작이 있었다. 그때의 모습을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이렇게 전하신다.
さりし程に念仏者・持斎・真言師等・自身の智は及ばず訴状も叶わざれば上郎・尼ごぜんたちに・とりつきて種種にかまへ申す
그러는 사이에 염불자 · 지재(持齋) · 진언사 등은 자신의 지혜로는 미치지 못하고 소장(訴狀)도 뜻대로 되지 않자, 높은 신분의 부인 · 비구니들에게 매달려 갖가지로 꾸며 아뢰었느니라.
禅僧数百人・念仏者数千人・真言師百千人・或は奉行につき或はきり人につき或はきり女房につき或は後家尼御前等について無尽のざんげんをなせし程に
선승 수백 명, 염불자 수천 명, 진언사 백천 명이 혹은 봉행에게, 혹은 권세 있는 자에게, 혹은 권세 있는 여인에게, 혹은 과부 비구니 등에게 붙어 끝없는 참언을 하였으므로
極楽寺の生仏の良観聖人折紙をささげて上へ訴へ建長寺の道隆聖人は輿に乗りて奉行人にひざまづく
고쿠라쿠사의 산 부처라는 료칸 성인은 문서를 받들어 위에 호소하고, 겐초사의 도류 성인은 가마를 타고 가서 봉행 앞에 무릎을 꿇었느니라.
「보은초」의 같은 대목은 그들이 「대성인은 일본국을 망하게 하려고 저주하는 법사이며, 고 사이묘지 도노와 고쿠라쿠사 도노가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말하는 법사이니, 따질 것도 없이 당장 목을 베고, 제자들도 목을 베거나 먼 지방으로 보내거나 감옥에 넣으라」고 참소했다고 전한다. 강의는 이 문장들에서 그 광경이 눈앞에 떠오른다고 말한다.
마침내 9월 10일, 대성인은 봉행소로 불려가 헤이노사에몬노조(平左衛門尉)의 심문을 받으셨다. 이어 9월 12일, 막부는 대성인을 체포해 다쓰노쿠치의 형장에 앉혔다. 이른바 다쓰노쿠치 법난이다. 그러나 어떤 국가 권력도 본불의 경애를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밤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빛나는 물체에 관리들은 혼비백산했다.
日蓮申すやう・いかにとのばら・かかる大禍ある召人にはとをのくぞ 近く打ちよれや打ちよれやと・たかだかと・よばわれども・いそぎよる人もなし
니치렌이 말하기를 「어찌 된 일인가, 여러분. 이렇게 큰 죄가 있는 죄인에게서 멀리 물러나다니. 가까이 오라, 가까이 오라」고 소리 높여 불렀으나 서둘러 다가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느니라.
같은 대목에서 대성인은 「날이 밝으면 보기 흉하리니, 벨 것이면 서둘러 베라」고 재촉하셨으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고 적으셨다. 강의는 이것을 「장엄한 의식」이라 부르며, 바로 이 순간이 대성인이 「적(迹)」의 모습을 벗으시고 본불의 경지를 여신 때, 곧 발적현본(發迹顯本)의 때였다고 본다.
저술의 배경 (2) — 「목숨을 버린 곳」
다쓰노쿠치와 사도 유배는 대성인 일생에서, 대성인 자신의 몸으로 보나 문하 전체로 보나 「사도 이전」과 「사도 이후」를 선명하게 가르는 대전환점이었다. 강의는 그 사실을 다음 어서로 보여 준다.
相州のたつのくちこそ日蓮が命を捨てたる処なれ
사가미 지방의 다쓰노쿠치야말로 니치렌이 목숨을 버린 곳이니라.
若し然らば日蓮が難にあう所ごとに仏土なるべきか、娑婆世界の中には日本国・日本国の中には相模の国・相模の国の中には片瀬・片瀬の中には竜口に日蓮が命を・とどめをく事は法華経の御故なれば寂光土ともいうべきか
만약 그렇다면 니치렌이 난을 당하는 곳마다 불토이리라. 사바세계 가운데 일본국, 일본국 가운데 사가미 지방, 사가미 지방 가운데 가타세, 가타세 가운데 다쓰노쿠치에 니치렌이 목숨을 남겨 둔 것은 법화경 때문이니 적광토라고도 해야 하리라.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이번에 법화경의 행자로서 유죄와 사죄에 이르렀다. 유죄는 이토, 사죄는 다쓰노쿠치」라 하시고, 「시방불토 가운데 오직 일승법만 있다(十方仏土中唯有一乗法)」는 경문을 들어 법화경 때문에 난을 당하는 곳은 모두 불토라고 하셨다. 다쓰노쿠치에서 「목숨을 버렸다」, 「목숨을 남겨 두었다」고 하신 것은, 범부의 몸을 버리고 상행보살로서의 적(迹)의 모습을 벗으셨다는 뜻이라고 강의는 해석한다.
「개목초」는 그 일을 이렇게 적는다.
日蓮といゐし者は去年九月十二日子丑の時に頸はねられぬ、此れは魂魄・佐土の国にいたりて返年の二月・雪中にしるして有縁の弟子へをくればをそろしくて・をそろしからず・みん人いかに・をぢぬらむ、此れは釈迦・多宝・十方の諸仏の未来日本国・当世をうつし給う明鏡なりかたみともみるべし
니치렌이라고 하던 자는 지난해 9월 12일 자시와 축시 사이에 목이 베였느니라. 이것은 혼백이 사도 지방에 이르러 이듬해 2월 눈 속에서 적어 인연 있는 제자에게 보내는 것이니, 두려운 듯하나 두렵지 않으니라. 보는 사람은 얼마나 두려워하랴. 이것은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이 미래의 일본국과 오늘의 세상을 비추어 두신 명경이니, 유품으로 여겨 보라.
강의는 이 가운데 「혼백이 사도 지방에 이르러」라는 구절이 구원원초 자수용보신여래(久遠元初自受用報身如來), 곧 말법의 본불로서의 생명이 탄생했음을 뜻한다고 본다. 니치칸 상인 이래 창가학회 교학이 이 대목을 대성인의 발적현본으로 읽어 온 것이 이것이다.
「개목초」 223쪽의 원문은 「頸はねられぬ」(블로그 강의 인용은 「頚」)이다. 여기서는 本文 표기를 따랐다.
저술의 배경 (3) — 쓰카하라 삼매당
다쓰노쿠치 법난 뒤 대성인은 사가미 지방 에치(依智)로 옮겨져 20여 일을 머무셨다. 그 사이 가마쿠라에서는 불이 잦고 살인도 빈번해 세상이 어수선했다. 염불자들은 저마다 막부에 참언을 올려, 방화와 살인은 대성인의 제자들이 막부의 처사를 원망해 저지른 일이라고 꾸며 댔다. 실은 그 방화 등은 염불자들의 책략이었다고 강의는 말한다. 그 결과 대성인의 사도 유배가 결정되었고, 제자 260여 명의 이름이 명부에 올라 모두 먼 섬으로 유배할 것인가 목을 벨 것인가가 논의되었다.
대성인은 문영 8년(1271) 10월 10일 에치를 떠나 28일 사도에 상륙하시고, 11월 1일 쓰카하라(塚原)에 도착하셨다.
同十月十日に依智を立つて同十月二十八日に佐渡の国へ著ぬ、十一月一日に六郎左衛門が家のうしろ塚原と申す山野の中に洛陽の蓮台野のやうに死人を捨つる所に一間四面なる堂の仏もなし、上はいたまあはず四壁はあばらに雪ふりつもりて消ゆる事なし
같은 10월 10일에 에치를 떠나 같은 10월 28일에 사도 지방에 닿았느니라. 11월 1일에 로쿠로자에몬의 집 뒤 쓰카하라라는 산과 들 가운데, 교토의 렌다이노처럼 죽은 사람을 버리는 곳에 있는, 사방 한 칸짜리 불상도 없는 당에 들었느니라. 위로는 판자가 맞지 않고 사방 벽은 성기어, 눈이 쌓여 녹을 줄을 몰랐느니라.
같은 대목은 이어서, 그런 곳에 가죽을 깔고 도롱이를 걸치고 밤을 새우고 날을 보내니, 밤에는 눈 · 우박 · 번개가 그칠 새가 없고 낮에도 햇빛이 비치지 않는 마음 쓸쓸한 거처였다고 적는다. 그리고 옛날 이릉(李陵)이 오랑캐 땅의 바위굴에 갇히고, 법도 삼장이 휘종 황제에게 얼굴에 낙인이 찍혀 강남으로 쫓겨난 일도 지금의 자신과 같다고 하셨다.
かくて・すごす程に庭には雪つもりて・人もかよはず堂にはあらき風より外は・をとづるるものなし
이렇게 지내는 동안 뜰에는 눈이 쌓여 사람의 발길도 끊기고, 당에는 거친 바람 말고는 찾아오는 것이 없었느니라.
사도는 혹한의 땅이었고 한 번 유배되면 살아 돌아오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름은 유죄였지만 사실상 사죄와 다름없었다. 계절은 겨울로 접어드는 가장 혹독한 때였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이, 불기 없는 곳에서 북국의 혹한을 지내신 대성인의 처지는 상상을 넘는다. 감시도 엄해 제자들이 대성인을 찾아가는 일조차 지극히 어려웠다.
게다가 염불승들은 호시탐탐 대성인의 목숨을 노렸다.
塚原と云う所に只一人ありいかにがうなりとも力つよくとも人なき処なれば集りていころせかしと云うものもありけり
쓰카하라라는 곳에 홀로 있으니, 아무리 강하고 힘이 세다 해도 사람이 없는 곳이니 모여서 쏘아 죽이자고 하는 자도 있었느니라.
이 대목 앞에서 대성인은 사도의 지재 · 염불자인 유이아미타불(唯阿弥陀仏) · 쇼유보(生喩房) · 인쇼보(印性房) · 지도보(慈道房) 등 수백 명이 모여 「아미타불의 큰 원적, 일체중생의 악지식인 니치렌보가 이 나라에 유배되었다. 이 나라에 유배된 사람이 끝내 살아남은 적이 없고, 살아남는다 해도 돌아간 적이 없다. 쳐 죽여도 벌을 받지 않는다」고 의논했다고 전하신다. 대성인의 목숨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박해의 손길은 가마쿠라의 제자들에게도 뻗쳤다. 영지를 몰수당하는 자, 처자를 빼앗기는 자, 감옥에 갇히는 자가 잇따랐고, 그 괴로움에 물러서는 자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성인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셨다. 난이 크면 클수록 본불로서의 큰 확신 위에 서서 제자들을 격려하셨다.
저술의 배경 (4) — 쓰카하라 문답과 사도의 저술
대성인의 행동은 그야말로 사자왕의 모습이었다고 강의는 말한다. 문영 9년(1272) 정월, 이름난 쓰카하라 문답이 열렸다. 모여든 승려는 수백 명이었다.
越後・越中・出羽・奥州・信濃等の国国より集れる法師等なれば
에치고 · 엣추 · 데와 · 오슈 · 시나노 등의 여러 지방에서 모여든 법사들이었으므로
호쿠리쿠와 오우 일대의 승려들이 대성인과 문답하려고 달려왔지만, 대성인의 사자후가 한 번 울리자 모두 굴복하고 말았다.
利剣をもて・うりをきり大風の草をなびかすが如し
날카로운 칼로 오이를 자르고 큰바람이 풀을 쓰러뜨리는 것과 같았느니라.
같은 대목에서 대성인은 그들이 지관 · 진언 · 염불의 법문에 대해 말하는 바를 하나하나 확인해 승복시키고 한두 마디로 꼼짝 못 하게 하셨으며, 그들은 불법에 어두울 뿐 아니라 자어상위(自語相違)에 빠지거나 경문을 잊고 논이라 하고 해석을 잊고 논이라 했다고 전하신다. 선도(善導)가 버드나무에서 떨어진 일, 홍법(弘法)이 삼고저를 던진 일과 대일여래로 나타났다는 이야기 등을 망어요 미친 짓이라고 하나하나 꾸짖자, 어떤 자는 욕을 하고 어떤 자는 입을 다물고 어떤 자는 얼굴빛을 잃었으며, 「염불은 그릇된 일이었다」고 말하는 자, 그 자리에서 가사와 염주를 버리고 다시는 염불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쓴 자도 있었다.
사도에서 쓰신 어서들
대성인은 사도에 계시는 동안 많은 어서를 쓰셨다. 「생사일대사혈맥초」 · 「초목성불구결」 · 「기도초」 · 「제법실상초」 · 「여설수행초」 · 「현불미래기」 · 「사도어서」 · 「당체의초」 등, 강의에 따르면 현존하는 중요한 저술만도 38편에 이른다. 그 가운데서도 대성인 불법의 골수라 할 인본존(人本尊) 개현의 서 「개목초」와 법본존(法本尊) 개현의 서 「관심의 본존초」는 가장 빛나는 것이다.
佐渡の国は紙候はぬ上
사도 지방은 종이가 없는 데다가
종이와 먹, 붓조차 넉넉하지 않은 유배 생활 2년 남짓 동안에 이토록 많고 중요한 어서를 쓰셨다는 사실에서, 강의는 대성인의 경애가 범부의 상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 내용도 바위 같은 본불의 경애와 광선유포에 대한 절대의 확신으로 가득하다.
我日本の柱とならむ我日本の眼目とならむ我日本の大船とならむ等とちかいし願やぶるべからず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안목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큰 배가 되리라고 맹세한 서원은 깨뜨리지 않으리라.
日蓮が流罪は今生の小苦なれば・なげかしからず、後生には大楽を・うくべければ大に悦ばし
니치렌의 유죄는 금생의 작은 고통이니 한탄스럽지 않노라. 후생에는 큰 즐거움을 받을 것이니 크게 기쁘노라.
이것이 혹한의 한겨울 눈 속에서 적힌 글이라고 누가 상상하겠는가. 무엇에도 침범당하지 않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모든 민중의 행복과 영원한 미래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념에 철저하신 모습이라고 강의는 말한다.
天下万民・諸乗一仏乗と成つて妙法独り繁昌せん時、万民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唱え奉らば吹く風枝をならさず雨壤を砕かず
천하 만민이 모든 승(乘)이 일불승이 되어 묘법만이 홀로 번창할 때, 만민이 다 함께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한다면 부는 바람은 가지를 울리지 않고 비는 흙덩이를 부수지 않으리라.
같은 대목은 이어서 세상은 복희 · 신농의 시대처럼 되어 금생에는 불길한 재난을 물리치고 장생의 술을 얻으며, 사람과 법이 함께 불로불사의 이치가 나타날 때를 각자 보라, 현세 안온의 증문에 의심이 있을 수 없다고 하신다.
日蓮一人はじめは南無妙法蓮華経と唱へしが、二人・三人・百人と次第に唱へつたふるなり、未来も又しかるべし、是あに地涌の義に非ずや、剰へ広宣流布の時は日本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唱へん事は大地を的とするなるべし
니치렌 한 사람이 처음에는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렀으나, 두 사람 · 세 사람 · 백 사람으로 차례로 불러 전하는 것이니라. 미래도 또한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의 뜻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광선유포의 때에는 일본이 모두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를 것은 대지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당시 대성인의 처지를 모르는 사람이 이 글들을 읽는다면, 광선유포가 순조롭게 나아가 아침 해처럼 기세가 오르고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라, 대성인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역경 속에 계셨다. 강의는 그 외침이 700년 뒤의 오늘에 사실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오늘날 창가학회의 광선유포 운동을 대성인의 선언이 허망하지 않다는 증거로 든다. 대성인이 「나에게 세 번의 고명(高名)이 있다」고 하신 그대로 재세 중의 예언이 모두 적중했으니, 그 역경 한가운데서 「대지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다」고까지 단언하신 광선유포의 말씀은 오늘이 있을 것을 아시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余に三度のかうみようあり
나에게 세 번의 고명이 있느니라.
仏法必ず東土の日本より出づべきなり
불법은 반드시 동쪽 땅 일본에서 나오리라.
「현불미래기」에서 대성인은 「부처의 미래기는 이미 이와 같다. 그대의 미래기는 어떠한가」라는 물음에 「부처의 미래기에 따라 헤아려 보면 이미 후오백세의 처음에 해당한다. 불법은 반드시 동쪽 땅 일본에서 나오리라」고 답하셨다. 사도에서 대성인은 일본의 광선유포만이 아니라, 일본에서 일어난 불법이 반드시 서쪽으로 서쪽으로 도도히 흘러갈 것을 단정하셨다. 그리고 관심의 본존초는 이렇게 선언한다.
一閻浮提第一の本尊此の国に立つ可し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서리라.
일염부제는 오늘의 말로 하면 전 세계다. 대성인이 나타내신 본존이 전 세계에 유포된다는 선언이라고 강의는 읽는다.
저술의 배경 (5) — 이월 소동과 이치노사와
문영 9년(1272) 2월, 대성인이 전해 9월 10일의 심문과 12일 다쓰노쿠치 법난 때 헤이노사에몬노조를 향해 하신 예언이 현실이 되었다.
遠流・死罪の後・百日・一年・三年・七年が内に自界叛逆難とて此の御一門どしうちはじまるべし
원류와 사죄 뒤 백일 · 일 년 · 삼 년 · 칠 년 안에 자계반역난이라 하여 이 일문의 내분이 시작되리라.
같은 말씀은 이어서 「그 뒤에는 타국침핍난이라 하여 사방에서, 특히 서쪽에서 공격당하실 것이다」라고 한다. 호조 도키무네의 이복형 도키스케(時輔)가 동생이 집권이 된 것에 불만을 품고 정권을 빼앗으려 했다는 이른바 「이월 소동(二月騒動)」이다. 음모는 사전에 발각되어, 가마쿠라에서는 나고에 도키아키(名越時章) · 노리토키(教時) 형제가 토벌되고 교토에서는 도키스케가 살해되었다. 막부는 일단 수습했지만 이 사건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동요를 남겼다. 집권과 그 형이 동족끼리 서로 해치는 모습이 그대로 세상의 거울에 비친 것이다. 게다가 때는 몽골 침공을 바로 앞둔 무렵이었다. 대성인은 그 무렵의 모습을 이렇게 적으셨다.
相州鎌倉より北国佐渡の国・其の中間・一千余里に及べり、山海はるかに・へだて山は峨峨・海は濤濤・風雨・時にしたがふ事なし、山賊・海賊・充満せり
사가미 지방 가마쿠라에서 북국 사도 지방까지 그 사이가 천여 리에 이르느니라. 산과 바다가 멀리 가로막고, 산은 험하고 바다는 물결이 거세며, 바람과 비는 때를 따르지 않고, 산적과 해적이 가득하니라.
같은 글은 「게다가 지금 세상은 어지러워 지난해부터 모반하는 자가 나라에 가득하고, 올해 2월 11일 합전이 있었으며, 그 뒤 지금 5월 말까지도 아직 세상이 안온하지 않다」고 이어진다.
대성인은 예언의 적중과 함께 『약사경』의 「자계반역난」, 『인왕경』의 「성인이 떠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 『금광명경』의 「삼십삼천이 각각 노여움을 내는 것은 그 국왕이 악을 내버려 두고 다스리지 않기 때문이다」 등의 경문에 비추어, 자신이야말로 말법의 본불임을 선언하셨다고 강의는 본다.
日蓮は此関東の御一門の棟梁なり・日月なり・亀鏡なり・眼目なり・日蓮捨て去る時・七難必ず起るべしと去年九月十二日御勘気を蒙りし時大音声を放てよばはりし事これなるべし
니치렌은 이 간토 일문의 동량이요 일월이요 귀감이요 안목이니라. 니치렌을 버릴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지난해 9월 12일 칙감을 입었을 때 큰 소리로 외친 것이 이것이리라.
「사도어서」의 이 대목은 「호지(宝治)의 합전으로부터 이미 26년, 올해 2월 11일과 17일에 또 합전이 있었다. 외도나 악인은 여래의 정법을 깨뜨리기 어렵다. 불제자들이 반드시 불법을 깨뜨린다. 사자 몸속의 벌레가 사자를 먹는다」로 시작해, 「니치렌은 성인이 아니지만 법화경을 설한 대로 수지하니 성인과 같다」고 하시고, 겨우 60일에서 150일 사이에 이 일이 일어났으니 이것은 꽃의 과보(華報)일 뿐이며 참된 과보(實果)가 이루어질 때는 얼마나 한탄스럽겠느냐고 맺으신다.
막부의 동요는 컸다. 타국침핍난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자계반역난도 적중하자, 막부는 다쓰노쿠치 법난 이래 붙잡아 두었던 제자들을 풀어 주는 한편, 사도에도 사자를 보내 대성인을 쓰카하라의 삼매당에서 이치노사와로 옮기도록 했다. 그 뒤 감시는 훨씬 느슨해졌고, 문영 11년(1274) 2월 사면되어 대성인은 무사히 가마쿠라로 돌아오셨다. 그때에도 염불자들은 대성인을 본토로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온갖 준비를 했지만, 날씨가 나쁘면 백 일, 오십 일씩 기다려야 하고 순풍이라도 사흘은 걸리던 동해의 거친 바다를, 더없이 좋은 날씨와 순풍을 만나 짧은 시간에 건너셨기에 그들의 계획은 빗나가고 말았다고 강의는 전한다.
이치노사와로 옮기신 시기에 대해, 강의는 「문영 10년(1273) 4월 막부가 사자를 보내」 옮기도록 명했다고 적는다. 그러나 일반 연표에서는 문영 9년(1272) 여름 무렵 이치노사와로 옮기셨다고 보는 경우가 많고, 관심의 본존초가 이치노사와에서 쓰였다는 강의 자신의 서술과도 맞추어 볼 필요가 있다. 사면 시기도 사면장이 내려진 것은 2월, 사도를 떠나 가마쿠라에 돌아오신 것은 3월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술 배경의 결론 — 본불의 행동으로서의 저술
이상 사도 유배 중의 대성인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것은 본불의 행동 이외의 무엇도 아니라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관심의 본존초와 개목초를 비롯한 사도의 어서들은 모두 본불이 하신 일이다. 대성인은 다쓰노쿠치 법난과 사도 유배라는 대법난을 계기로 현본(顯本)하시고, 본불의 입장에서 출세의 본회인 본존 건립을 향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셨다고 강의는 본다.
이 흐름 속에서 보면 개목초와 본존초가 짝을 이루는 까닭이 드러난다. 문영 9년 2월의 「개목초」는 대성인 자신이 말법의 주사친 삼덕을 갖춘 분임을 밝혀 「사람」으로서의 본존을 열었다. 이듬해 4월의 「관심의 본존초」는 말법의 중생이 받아 지녀야 할 「법」으로서의 본존을 열었다. 이 두 어서는 인(人)과 법(法)의 두 측면에서 본존을 밝힌 한 쌍의 중서이며, 이 둘을 함께 읽을 때 사도 시절 대성인의 사상이 온전히 드러난다. 이 점은 3부 「「始」 — 처음 넓히다」 절에서 「미사와초」와 함께 다시 살핀다.
- 저술
- 문영 9년(1272) 2월 · 사도 쓰카하라
- 받은 이
- 문하 일동(시조깅고를 통해)
- 밝힌 것
- 말법의 주사친 삼덕 — 사람의 본존
- 저술
- 문영 10년(1273) 4월 25일 · 사도 이치노사와
- 받은 이
- 도키조닌
- 밝힌 것
- 말법의 중생이 수지할 법 — 법의 본존
두 어서는 사람과 법의 두 측면에서 본존을 밝힌 한 쌍의 중서이다.
네 단으로 읽는 논지
강의는 본초의 논지를 크게 네 단으로 나누어 정리한다. 강의는 본초가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을 밝힌 어서라는 점을 뒤에서 자세히 논하겠다고 예고한 뒤, 그 본존을 밝히기 위한 논리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본다.
- 제1단 — 일념삼천의 출처를 보여, 관심의 본존을 밝히기 위한 서분(序分)으로 삼는다.
- 제2단 — 관심의 본존 가운데 「관심」을 밝힌다.
- 제3단 — 말법에 건립되는 삼대비법을 밝힌다.
- 제4단 — 구원원초 자수용신인 니치렌 대성인이 묘법 오자의 본존을 건립하심을 밝힌다.
- 1일념삼천의 출처제1~4장「夫れ一心に十法界を具す」무릇 일심에 십법계를 갖춘다.
- 2관심제5~16장「観心とは我が己心を観じて十法界を見る是を観心と云うなり」관심이란 나의 기심을 관하여 십법계를 보는 것.
- 3삼대비법의 본존제17~25장「彼は脱此れは種なり」저것은 탈이요 이것은 종이니라.
- 4본화의 출현과 본존 건립제26~31장「末代幼稚の頸に懸けさしめ給う」말대 유치의 목에 걸어 주시느니라.
왜 일념삼천의 출처에서 시작하는가
말법에 홍통되는 관심의 본존을 밝히는 어서가 왜 첫머리에서 굳이 『마하지관』의 일념삼천 문을 들고, 그것이 『현의』 · 『문구』나 지관의 앞 네 권에는 없다는 「출처」의 문제부터 따지는가. 강의의 답은 분명하다. 법화경의 적문에도 본문에도 일념삼천은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다. 일념삼천의 당체는 곧 말법에 건립되는 관심의 본존이며, 문저하종 사행(事行)의 일념삼천이란 삼대비법 가운데 하나인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1단은 천태가 이(理)로 설한 일념삼천을 먼저 확인해 두고, 그 일념삼천이 사(事)로서 나타난 것이 무엇인가를 뒤에서 밝히기 위한 준비라는 것이다. 제1편(1~4장)이 이 단을 다룬다. 일념삼천의 법리 자체는 불교 교학 五 일념삼천 페이지를 함께 읽으면 좋다.
제2단 — 관심을 밝히다
제2단은 관심의 본존 가운데 「관심」을 논한다. 먼저 관심의 뜻을 이렇게 정의하신다.
観心とは我が己心を観じて十法界を見る是を観心と云うなり
관심이란 나의 기심을 관하여 십법계를 보는 것, 이것을 관심이라 하느니라.
그러나 관심에는 천태가(天台家)의 관심과 니치렌 대성인의 관심, 두 가지가 있다. 이 문장은 「부문(附文)의 측면」과 「원의(元意)의 측면」으로 나누어 받들지 않으면 관심의 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고 강의는 말한다. 문장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부문의 측면이요 천태가의 관심이다. 원의의 측면에서 읽으면 「기심을 관한다」는 본존을 믿는 뜻이고, 「십법계를 본다」는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뜻이니, 이것이 대성인의 관심이다.
관심의 뜻을 보이신 뒤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관심을 십계호구의 면에서 논하신다. 십계호구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 어리석은 범부인 우리가 부처가 될 소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믿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먼저 전제로서 십계호구를 보인 법화경의 경문을 인용하신다(제6장). 이어 실생활 위에서 우리 생명에 육도와 삼성(三聖)이 갖추어져 있음을 밝히고(제8 · 9장), 「다만 불계만은 나타내기 어렵다」는 물음을 받아 말대의 어리석은 우리 생명 속에 불계가 갖추어져 있음을 밝히신다(제10장).
두 가지 큰 비난 — 교주의 난과 경론의 난
다음은 「수지(受持)에 약(約)하여 관심을 밝히는」 단이다. 먼저 교주, 곧 부처에 약하여 의심을 강하게 일으키고 바른 해답을 청한다. 권교 · 적문 · 본문의 석존이 인위(因位)에서 닦은 만행과 과위(果位)에서 이룬 만덕을 들어, 주사친 삼덕을 갖춘 훌륭한 부처가 어찌 범부의 열등한 마음에 있을 수 있겠느냐고 의심하는 것이다(제11장).
이어 경론의 면에서, 불교 안에는 십계호구가 있을 수 없다고 의심한다. 처음에 『화엄경』 · 『인왕경』 · 『금강반야경』 등의 세 경과 『기신론』 · 『유식론』 등의 두 논을 들고, 다음에 법화경 방편품의 「모든 법 가운데 악을 끊는다(断諸法中悪)」는 문장을 인용해 십계호구를 부정한다(제12장).
이 두 가지 난 가운데 처음의 교주의 난은 잠시 두고, 먼저 경론의 난에 답하시면서 네 가지 뜻을 들어 논박하신다(제13장). 방편품의 문장에 대해서도 「그것은 법화경에 이전의 경문을 실은 것이다. 가서 보면 경문에 분명히 십계호구를 설하고 있다」고 답하시고, 십계호구를 설해 밝힌 법화경이야말로 최고 유일임을 논하신다.
수지즉관심
교주의 난에 답하실 때에는, 먼저 이것이 얼마나 난신난해한가를 보이고(제14장), 소수(所受)의 본존의 덕용을 법화경의 개경 · 결경의 문장으로 밝히신 뒤(제15장), 마지막으로 바로 수지즉관심(受持即観心)을 밝히신다(제16장).
왜 관심을 밝히는 데 본존의 역용이 문제가 되는가. 강의는 이렇게 설명한다. 천태는 관념 · 관법을 통해 자력으로 기심의 십법계를 보려 했다. 이에 대해 말법의 관심은 본존의 덕용에 의해 관심의 뜻을 이룬다. 그러므로 관심을 말하려면 반드시 받아 지니는 본존이 무엇인가가 함께 물어져야 한다.
文の心は釈尊の因行果徳の二法は妙法蓮華経の五字に具足す我等此の五字を受持すれば自然に彼の因果の功徳を譲り与え給う
글의 마음은, 석존의 인행과 과덕의 두 법은 묘법연화경의 오자에 구족되어 있으니, 우리가 이 오자를 수지하면 저절로 그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시느니라.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대성인은 『무량의경』의 「아직 육바라밀을 수행하지 못했어도 육바라밀이 저절로 앞에 나타난다」, 법화경의 「구족의 도를 듣고자 한다」, 『열반경』의 「살(薩)이란 구족을 이름한다」, 용수의 「살이란 여섯이다」, 『무의무득대승사론현의기』의 「사(沙)란 번역하여 여섯이라 한다. 호법(胡法)에서는 여섯으로 구족의 뜻을 삼는다」, 길장의 소의 「사란 번역하여 구족이라 한다」, 천태대사의 「살이란 범어이니 여기서는 묘라 번역한다」를 차례로 드신다. 그리고 「사사로이 회통을 더하면 본문을 더럽히는 것과 같으나」라고 하신 뒤 위의 결론을 내리신다. 요컨대 독일본문(獨一本門)의 본존에 권 · 적 · 본의 석존이 인위에서 닦은 만행과 과위에서 이룬 만덕이 갖추어져 있고, 우리는 이 본존을 수지함으로써 저절로 그 복덕을 모두 물려받아 관심을 이룬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이 단은 제2편(5~10장)과 제3편(11~16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강의 序講은 이 수지즉관심의 문장을 한 곳에서 「0256:11」로 적었으나, 本文의 쪽은 246쪽 11행이다(같은 강의의 「교행증」 항목은 0246:11로 바르게 적었다). 여기서는 246쪽으로 적는다.
제3단 · 제4단 — 삼대비법과 본존의 건립
제3단은 말법에 건립되는 삼대비법의 본존을 밝힌다. 먼저 간략하게, 얕은 데서 깊은 데로 나아가는 순서(從淺至深)를 따라 본존을 밝힌다. 곧 권적숙익(權迹熟益)의 본존, 본문탈익(本門脫益)의 본존, 문저하종(文底下種)의 본존이다(제17~19장). 이어 이것을 자세히 논해 오중삼단(五重三段)의 교판으로 본존을 밝힌다(제21~25장). 오중삼단이란 일대삼단 · 십권삼단 · 적문숙익삼단 · 본문탈익삼단 · 문저하종삼단이며, 삼단은 서분 · 정종분 · 유통분이다. 문저하종삼단을 밝히는 단의 끝에서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在世の本門と末法の始は一同に純円なり但し彼は脱此れは種なり彼は一品二半此れは但題目の五字なり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은 똑같이 순원(純圓)이니라. 다만 저것은 탈(脫)이요 이것은 종(種)이며, 저것은 일품이반이요 이것은 다만 제목의 오자이니라.
석존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본문 사이의 종탈 승렬을 논해, 말법에 유통하는 본존의 정체를 보여 관심의 본존을 결성하신 것이다. 이로써 말법의 관심의 본존이 무엇인가는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본존은 누가, 언제, 어디서 건립하고 홍통하는가. 제4단이 이것을 말한다. 먼저 법화경 본문의 서분 · 정종분 · 유통분의 증문을 각각 인용해, 수량품의 간요인 남묘호렌게쿄는 오직 지용보살에게만 부촉되었음을 밝히신다(제26~28장). 이어 지용보살은 정법 · 상법 2,000년 동안에는 출현하지 않고 오직 말법에 한해 출현함을 경문으로 논증하시고, 자계반역 · 서해침핍의 두 난이 일어난 지금이야말로 지용보살이 출현해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하는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을 건립할 때라고 말씀하신다(제29 · 30장).
此の時地涌千界出現して本門の釈尊を脇士と為す一閻浮提第一の本尊此の国に立つ可し
이때 지용천계가 출현하여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하는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서리라.
강의는 여기서 「지용보살」은 외용(外用)의 측면, 곧 부촉의 의식을 밟아 하신 말씀이며, 내증(內證)의 측면에서 보면 구원원초 자수용신이 그대로 말법에 출현해 전 세계의 민중을 구하는 본존을 건립하신다는 선언이라고 본다. 구원원초 자수용신의 재탄이 곧 니치렌 대성인이며, 말법의 본불로서 본존을 말대 유치의 목에 걸어 주신다는 것을 다음 문장으로 말씀하시고 본초를 맺으셨다.
一念三千を識らざる者には仏・大慈悲を起し五字の内に此の珠を裹み末代幼稚の頸に懸けさしめ給う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부처가 대자비를 일으켜 오자 안에 이 구슬을 싸서 말대 유치의 목에 걸어 주시느니라.
원의 — 삼대비법과 출세의 본회
삼대비법이란
대성인이 출현하신 뜻은 일체중생을 행복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민중을 교화하시는 데 일대에 걸쳐 갖가지 법문을 설하셨지만, 홍통하신 법문이 마침내 다다르는 곳은 삼대비법이다. 삼대비법이란 첫째 본문의 본존, 곧 남묘호렌게쿄의 본존이요, 둘째 본문의 계단, 곧 본존이 계시는 곳이요, 셋째 본문의 제목, 곧 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성인이 불멸 후 2,220여 년 말법 탁악의 세상에 출현하셔서 왜 삼대비법을 드러내셨는가, 그리고 삼대비법은 어떤 법인가. 이 최대의 신비한 법문을 설해 밝힌 것이 대성인의 문저하종 불법이다. 대성인이 재세 중에 쓰신 어서는 400여 편에 이르지만, 그 가운데 삼대비법을 말씀하신 것은 매우 적다. 「삼대비법품승사」 · 「보은초」 · 「법화취요초」 · 「법화행자봉난사」 · 『어의구전』 등이다. 강의는 「보은초」의 한 대목을 든다.
天台伝教の弘通し給わざる正法ありや、答えて云く有り求めて云く何物ぞや、答えて云く三あり、末法のために仏留め置き給う迦葉.阿難等・馬鳴・竜樹等.天台・伝教等の弘通せさせ給はざる正法なり、求めて云く其の形貌如何、答えて云く一には日本・乃至一閻浮提・一同に本門の教主釈尊を本尊とすべし、所謂宝塔の内の釈迦多宝・外の諸仏・並に上行等の四菩薩脇士となるべし、二には本門の戒壇、三には日本・乃至漢土・月氏・一閻浮提に人ごとに有智無智をきらはず一同に他事をすてて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べし
(묻기를) 천태 · 전교가 홍통하지 않으신 정법이 있는가. 답하기를, 있다. 구하여 묻기를, 무엇인가. 답하기를, 셋이 있다. 말법을 위해 부처님이 남겨 두신 것으로, 가섭 · 아난 등, 마명 · 용수 등, 천태 · 전교 등이 홍통하지 않으신 정법이니라. 구하여 묻기를, 그 모습은 어떠한가. 답하기를, 첫째는 일본 내지 일염부제가 다 함께 본문의 교주 석존을 본존으로 해야 하나니, 이른바 보탑 안의 석가 · 다보, 밖의 제불, 아울러 상행 등의 사보살이 협사가 되리라. 둘째는 본문의 계단, 셋째는 일본 내지 한토 · 월지 · 일염부제에 사람마다 지혜가 있고 없음을 가리지 않고 다 함께 다른 일을 버리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러야 하느니라.
같은 대목은 「이 일은 아직 퍼지지 않았다. 일염부제 안에서 불멸 후 2,225년 동안 한 사람도 부르지 않았다. 니치렌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 남묘호렌게쿄 하고 소리를 아끼지 않고 부르는 것이다」로 이어진다.
입종에서 본존 건립까지
대성인은 건장 5년(1253) 4월 28일, 32세에 입종을 선언하시고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건립하셨다. 그리고 27년째인 홍안 2년(1279) 10월 12일에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을 도현(圖顯)하셨다고 강의는 서술한다. 대성인의 출세의 본회가 이 본존의 건립에 있었다는 것은 다음 어서에 분명하다고 강의는 본다.
去ぬる建長五年太歳癸丑四月二十八日に安房の国長狭郡の内東条の郷今は郡なり、天照太神の御くりや右大将家の立て始め給いし日本第二のみくりや今は日本第一なり、此の郡の内清澄寺と申す寺の諸仏坊の持仏堂の南面にして午の時に此の法門申しはじめて今に二十七年・弘安二年太歳己卯なり、仏は四十余年・天台大師は三十余年・伝教大師は二十余年に出世の本懐を遂げ給う、其中の大難申す計りなし先先に申すがごとし、余は二十七年なり其の間の大難は各各かつしろしめせり
지난 건장 5년 태세 계축 4월 28일에, 아와 지방 나가사군의 도조 향 — 지금은 군이 되었느니라. 덴쇼다이진의 미쿠리야로서 우대장가가 처음 세우신 일본 제이의 미쿠리야, 지금은 일본 제일이니라 — 이 군 안의 세이초사라는 절의 제불방 지불당 남쪽에서 정오에 이 법문을 말하기 시작하여 지금 27년, 홍안 2년 태세 기묘이니라. 부처님은 40여 년, 천태대사는 30여 년, 전교대사는 20여 년에 출세의 본회를 이루셨느니라. 그 사이의 대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이 앞서 말한 바와 같으니라. 나는 27년이니라. 그 사이의 대난은 각자가 대강 알고 있으리라.
강의는 이어 대성인이 홍안 5년(1282) 10월 13일 61세로 입멸하셨으며, 그에 앞서 말대의 화의의 광선유포를 닛코상인에게 맡기셨다고 서술한다.
원의 — 문저하종 관심의 본존
대성인 일대 불법의 큰 줄기는 삼대비법이며, 그 가운데서도 요체는 본존에 있다. 이 요체를 모르고서는 대성인이 홍통하신 법문을 천만 마디로 논해도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群盲評象)이요, 나무나 돌이 가사와 발우를 걸친 것과 같다고 강의는 말한다. 그러므로 홍안 2년의 본존 건립에서 거슬러 대성인 일대를 받들면 모든 설법과 행동의 참뜻이 분명해진다. 그 가운데서도 본초가 재세 문상 탈익의 본존을 가려내고 바로 문저하종 관심의 본존을 설해 밝힌 어서임을 체득할 수 있다. 이것이 본초의 진수이며 원의(元意)라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본존에 미혹함 — 「개목초」의 비판
강의는 이 본존에 미혹한 데에 모든 잘못의 원인이 있고 불행의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대성인은 재세 당시의 종교가 근본으로 존경해야 할 본존에 미혹해 있는 모습을 「개목초」에서 이렇게 지적하셨다.
而るを天台宗より外の諸宗は本尊にまどえり、倶舎・成実・律宗は三十四心・断結成道の釈尊を本尊とせり、天尊の太子が迷惑して我が身は民の子とをもうがごとし、華厳宗・真言宗・三論宗・法相宗等の四宗は大乗の宗なり、法相・三論は勝応身ににたる仏を本尊とす大王の太子・我が父は侍と・をもうがごとし、華厳宗・真言宗は釈尊を下げて盧舎那・大日等を本尊と定む天子たる父を下げて種姓もなき者の法王のごとくなるに・つけり、浄土宗は釈迦の分身の阿弥陀仏を有縁の仏とをもうて教主をすてたり、禅宗は下賤の者・一分の徳あつて父母をさぐるがごとし、仏をさげ経を下す此皆本尊に迷えり、例せば三皇已前に父をしらず人皆禽獣に同ぜしが如し
그런데 천태종 밖의 여러 종은 본존에 미혹하였느니라. 구사 · 성실 · 율종은 삼십사심으로 번뇌를 끊고 성도한 석존을 본존으로 하니, 천존(天尊)의 태자가 헷갈려 자기는 백성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라. 화엄종 · 진언종 · 삼론종 · 법상종 등 네 종은 대승의 종이니라. 법상 · 삼론은 승응신과 비슷한 부처를 본존으로 하니, 대왕의 태자가 자기 아버지는 무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라. 화엄종 · 진언종은 석존을 깎아내리고 노사나 · 대일 등을 본존으로 정하니, 천자인 아버지를 깎아내리고 가문도 없는 자가 법왕인 양하는 데 붙은 것이니라. 정토종은 석가의 분신인 아미타불을 인연 있는 부처라 여겨 교주를 버렸느니라. 선종은 비천한 자가 조그마한 덕이 있어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를 깎아내리고 경을 낮추니, 이는 모두 본존에 미혹한 것이니라. 예컨대 삼황 이전에 아버지를 몰라 사람이 모두 금수와 같았던 것과 같으니라.
강의는 대성인 멸후 700년이 가까운 오늘의 종교계는 본존의 혼란이 예전보다 더 심하다고 진단한다. 수많은 교단이 저마다 다른 교의와 본존을 내세우면서도 종교로서 가장 근본적인 본존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 강의는 이 대목에서 그 강의가 쓰인 시대(1960년대)의 일본 종교계의 교단 수와 현황을 들어 비판한다. 시대에 매인 수치와 서술이므로 여기서는 논지만 남겼다.
무엇을 본존으로 삼을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본존으로 삼아야 하는가. 대성인은 「본존문답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問うて云く末代悪世の凡夫は何物を以て本尊と定むべきや、答えて云く法華経の題目を以て本尊とすべし
묻기를, 말대 악세의 범부는 무엇으로 본존을 정해야 하는가. 답하기를, 법화경의 제목으로 본존을 삼아야 하느니라.
이 답의 근거로 대성인은 세 문장을 드신다. 법화경 법사품의 「약왕이여, 곳곳에서 설하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쓰거나 경권이 있는 곳에는 모두 칠보탑을 세워 지극히 높고 넓고 장엄하게 꾸며야 한다. 다시 사리를 모실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가운데 이미 여래의 전신이 계시기 때문이다」, 『열반경』 여래성품의 「제불이 스승으로 삼는 것은 이른바 법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공경하고 공양한다. 법이 상주하므로 제불도 상주한다」, 그리고 천태대사 『법화삼매』의 「도량 가운데 좋은 높은 자리를 펴고 법화경 한 부를 안치하되, 반드시 형상이나 사리나 다른 경전을 둘 필요는 없다. 오직 법화경 한 부를 두라」이다.
復次に迦葉諸仏の師とする所は所謂法なり是の故に如来恭敬供養す法常なるを以ての故に諸仏も亦常なり
또 가섭이여, 제불이 스승으로 삼는 것은 이른바 법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공경하고 공양하느니라. 법이 상주하므로 제불도 또한 상주하느니라.
같은 어서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석가를 본존으로 하지 않고 법화경의 제목을 본존으로 하는가.」 그리고 답한다.
釈尊と天台とは法華経を本尊と定め給へり
석존과 천태는 법화경을 본존으로 정하셨느니라.
위에 든 경문과 해석을 보라, 이것은 사사로운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법화경의 제목」이란 수량문저에 비침된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의 대만다라를 가리킨다고 강의는 본다. 본초에도 같은 취지의 문장이 거듭 나온다.
此の本門の肝心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に於ては仏猶文殊薬王等にも之を付属し給わず何に況や其の已外をや
이 본문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오자는 부처님께서 문수 · 약왕 등에게도 부촉하지 않으셨거늘, 하물며 그 밖의 사람들에게랴.
我が内証の寿量品を以て授与すべからず末法の初は謗法の国にして悪機なる故に之を止めて地涌千界の大菩薩を召して寿量品の肝心たる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の衆生に授与せしめ給う
나의 내증의 수량품을 (적화의 보살들에게) 주어서는 안 되느니라. 말법의 처음은 방법의 나라이며 악한 기근이므로 이를 멈추고, 지용천계의 대보살을 불러 수량품의 간심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염부의 중생에게 주게 하셨느니라.
是好良薬とは寿量品の肝要たる名体宗用教の南無妙法蓮華経是なり
「이 좋은 양약」이란 수량품의 간요인 명 · 체 · 종 · 용 · 교의 남묘호렌게쿄가 이것이니라.
이 문장들은 마침내 본존을 가리킨다고 강의는 말한다. 또 「본존문답초」의 「본존이란 뛰어난 것을 써야 한다(本尊とは勝れたるを用うべし)」(366쪽)라는 말씀을 받든다면, 니치렌 문하를 자칭하면서 석존이나 용신, 조상의 계명 등 무엇이든 모셔 본존으로 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가장 뛰어난 남묘호렌게쿄의 본존이어야 한다는 것이 강의의 주장이다.
본초가 설한 본존의 상모
본초는 본존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한다(제19장).
其の本尊の為体本師の娑婆の上に宝塔空に居し塔中の妙法蓮華経の左右に釈迦牟尼仏・多宝仏・釈尊の脇士上行等の四菩薩・文殊弥勒等は四菩薩の眷属として末座に居し迹化他方の大小の諸菩薩は万民の大地に処して雲閣月卿を見るが如く十方の諸仏は大地の上に処し給う迹仏迹土を表する故なり
그 본존의 모습은, 본사(本師)의 사바세계 위에 보탑이 허공에 있고, 탑 안의 묘법연화경의 좌우에 석가모니불 · 다보불, 석존의 협사인 상행 등의 사보살이 있으며, 문수 · 미륵 등은 사보살의 권속으로서 말석에 있고, 적화 · 타방의 크고 작은 여러 보살은 만민이 대지에 있으면서 운각월경(雲閣月卿)을 우러러보는 것과 같으며, 시방의 제불은 대지 위에 계시니, 적불 · 적토를 나타내기 때문이니라.
또 건치 3년(1277) 8월의 「니치뇨부인답서」에서 대성인은, 석존 멸후 정법 시대의 용수 · 천친도, 상법 시대의 천태 · 전교도 나타내지 못한 본존을 대성인이 처음으로 도현하셨음을 말씀하시고 그 상모를 밝히셨다.
されば首題の五字は中央にかかり・四大天王は宝塔の四方に坐し・釈迦・多宝・本化の四菩薩肩を並べ
그러므로 수제의 오자는 가운데에 걸리고, 사대천왕은 보탑의 사방에 앉으며, 석가 · 다보와 본화의 사보살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대목은 보현 · 문수, 사리불 · 목련, 일천 · 월천 · 제육천의 마왕 · 용왕 · 아수라, 부동 · 애염, 악역의 제바달다와 우치의 용녀, 귀자모신 · 십나찰녀, 그리고 일본국의 수호신들까지 열거한 뒤, 이 불보살 · 대성 등과 서품에 열좌한 이계팔번(二界八番)의 잡중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어본존 안에 머무시어 묘법 오자의 광명에 비추어 본유(本有)의 존형(尊形)이 된다. 이것을 본존이라 한다」고 맺는다. 강의는 이 문장들이 장차 건립될 본존의 상모를 미리 말씀하신 것이라고 본다.
이 사이트는 본존의 상모를 설한 어서 문장은 인용 · 해설하되, 본존의 구성이나 배치를 그림이나 도식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본존의 상모를 설한 제19장은 제4편에서 자세히 다룬다.
그리고 마침내 출세의 본회인 본존 건립의 때가 왔다. 강의에 따르면 건장 5년의 입종 선언으로부터 27년째인 홍안 2년(1279) 10월 12일, 대성인은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을 나타내셨다. 앞에 든 「성인어난사」의 「나는 27년이니라」가 그것이다. 이 본존이야말로 본초에서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서리라」고 하신 본존이라는 것이 강의의 이해다.
강의는 이 대목에서 대성인이 입멸에 앞서 모든 것을 닛코상인에게 부촉하시고 닛코상인이 다시 다음 대에 부촉하셨다는 내용을, 상승(相承)을 전하는 문서를 인용해 서술한다. 이 사이트는 상승의 권위를 내세우는 서술은 싣지 않기로 했으므로 그 인용은 생략한다.
광선유포의 예언과 화의의 절복
강의는 이 본존이 일본 전국은 물론 전 세계로 광선유포되어, 말법 만년에서 영원한 미래에 걸쳐 모든 민중을 고뇌에서 구하고 즉신성불의 대공덕을 얻게 하며 평화로운 낙토를 건설하게 한다는 것이 불교의 예언이라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다섯 문장을 든다.
- 법화경 약왕품 — 「내가 멸도한 뒤 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하라」
- 미륵보살의 『유가론』 — 「동방에 작은 나라가 있으니, 그 가운데 오직 대승의 종성만이 있다」
- 천태대사 —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
- 묘락대사 — 「말법의 처음에 명리(冥利)가 없지 않다」
- 전교대사 — 「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 법화일승의 기근은 지금 바로 그때이다」
대성인은 일생에 걸쳐 「입정안국론」의 대정신을 설하시고 본존을 건립하셔서 「법체의 광선유포」를 이루셨지만, 「화의의 광선유포」는 미래의 제자에게 유명(遺命)하셨다고 강의는 본다.
梵天・帝釈等の御計として日本国・一時に信ずる事あるべし、爾時我も本より信じたり信じたりと申す人こそおほくをはせずらんめとおぼえ候
범천 · 제석 등의 계획으로 일본국이 한꺼번에 믿는 일이 있으리라. 그때 「나도 본래부터 믿었다, 믿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생각하노라.
강의는 오늘날 창가학회의 손으로 광선유포의 예언이 착착 실현되고 있으며, 지금이야말로 화의의 광선유포, 곧 순연광포(順緣廣布)의 때라고 말한다. 그 근거로 본초 제29장의 다음 문장을 든다.
当に知るべし此の四菩薩折伏を現ずる時は賢王と成つて愚王を誡責し摂受を行ずる時は僧と成つて正法を弘持す
마땅히 알라, 이 사보살이 절복을 나타낼 때는 현왕이 되어 어리석은 왕을 꾸짖고, 섭수를 행할 때는 승(僧)이 되어 정법을 넓혀 지니느니라.
니치칸 상인은 이 문장을 이렇게 풀었다.
니치칸 상인의 「문단」 — 절복에는 두 뜻이 있다. 하나는 법체의 절복이니, 「법화는 절복하여 권문의 이를 깨뜨린다」는 것과 같으며 대성인의 수행이 이것이다. 둘은 화의의 절복이니, 『열반경』에 「정법을 호지하는 자는 오계를 받지 않고 위의를 닦지 않으며 마땅히 칼과 활 등을 지녀야 한다」고 한 것으로, 선예국왕 등이 이것이다. 지금 화의의 절복에 견주어 법체의 절복을 섭수라 이름한 것이다. 혹은 아울러 순연광포의 때를 판단한 것인가.
이처럼 화의의 절복에 상대하면, 수많은 대난을 당하신 대성인의 절복행조차 성승(聖僧)으로서 섭수를 행하시는 모습이 된다. 다만 이 경우의 섭수는 석가 불법에서 말하는 섭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의는 덧붙인다. 그리고 오늘의 문하는 선예국왕처럼 무기를 들지는 않지만, 대성인의 불법 철리를 근저에 두고 언론 · 문화 · 예술 ·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싸움을 펼치고 있으니, 그 모습이야말로 「현왕이 되어 어리석은 왕을 꾸짖는」 모습이라고 강의는 확신을 밝힌다.
교 · 행 · 증에서 본초의 자리
교(敎)는 부처가 설한 교법, 행(行)은 교법에 따라 세운 수행법, 증(證)은 교와 행으로 증득하는 과덕을 말한다.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당체의초 문단」을 바탕으로, 대성인의 어서 가운데 「개목초」 · 「관심의 본존초」 · 「당체의초」를 교 · 행 · 증에 배대한다. 개목초는 교의 중(重), 본초는 행의 중, 당체의초는 증의 중이다.
개목초 — 교의 중
개목초가 교의 중인 것은 일대 제경의 승렬과 천심을 판정하기 때문이다. 그 판정은 다섯 단계의 교상, 곧 오중상대(五重相對)로 이루어진다.
첫째, 내외상대(內外相對). 일대의 제경을 통틀어 외도와 견주어 논한다.
一代・五十余年の説教は外典外道に対すれば大乗なり大人の実語なるべし
일대 50여 년의 설교는 외전 · 외도에 대하면 대승이며 대인의 진실한 말씀이리라.
둘째, 권실상대(權實相對). 8년의 법화경을 진실로 삼아 40여 년의 권교와 견주어 논한다.
大覚世尊は四十余年の年限を指して其の内の恒河の諸経を未顕真実・八年の法華は要当説真実と定め給し
대각세존은 40여 년의 햇수를 가리켜 그 안의 항하처럼 많은 경들은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시고, 8년의 법화는 「반드시 진실을 설하리라」고 정하셨느니라.
셋째, 권적상대(權迹相對). 적문의 이승작불을 이전 경들의 영불성불(永不成佛)과 견주어 논한다.
此の法門は迹門と爾前と相対して爾前の強きやうに・をぼゆ
이 법문은 적문과 이전을 상대하면 이전이 강한 듯이 생각되느니라.
넷째, 본적상대(本迹相對). 본문을 이전 · 적문과 견주어 논한다.
本門にいたりて始成正覚をやぶれば四教の果をやぶる、四教の果をやぶれば四教の因やぶれぬ、爾前迹門の十界の因果を打ちやぶつて本門の十界の因果をとき顕す
본문에 이르러 시성정각을 깨뜨리니 사교의 과(果)가 깨어지고, 사교의 과가 깨어지니 사교의 인(因)이 깨어졌느니라. 이전 · 적문의 십계의 인과를 깨뜨리고 본문의 십계의 인과를 설해 나타내셨느니라.
다섯째, 종탈상대(種脫相對). 수량품의 문상은 탈익이고 문저는 하종이다.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의 본문 수량품의 문저에 잠겨 있느니라.
이렇게 다섯 겹으로 상대해야 비로소 대성인의 본회에 이른다. 「일념삼천 문저비침」이란 「다만 법화경」, 「다만 본문 수량품」, 「다만 문저에 비침되어 있다」는 뜻이니, 권실 · 본적 · 종탈의 상대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 1내외상대불교 ↔ 외도개목초 188쪽
- 2권실상대법화경 ↔ 40여 년의 권교개목초 188쪽
- 3권적상대적문(이승작불) ↔ 이전개목초 195쪽
- 4본적상대본문 ↔ 이전 · 적문개목초 197쪽
- 5종탈상대문저 하종 ↔ 문상 탈익개목초 189쪽「文の底にしづめたり」(문저에 잠겨 있느니라)
이 종탈상대를 본초에서는 「저것은 탈이요 이것은 종이니라」(249쪽)라고 판정하셨고, 「조닌초」에서는 이렇게 판정하셨다.
日蓮が法門は第三の法門なり
니치렌의 법문은 제삼의 법문이니라.
강의는 여러 종파의 무리가 내외상대만 알고 나머지 상대는 모르며, 일치파(一致派)의 무리는 본적상대를 모르고, 승렬파(勝劣派)라 해도 본적상대까지는 알지만 종탈상대는 모른다고 비판한다. 그러니 대성인의 본문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묘락대사는 「모든 법문은 상대하는 바에 따라 같지 않다」고 했고, 대성인은 「법화취요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所詮所対を見て経経の勝劣を弁うべきなり
결국 상대하는 바를 보고 경들의 승렬을 분별해야 하느니라.
이런 금언이 있는데도 다른 문류의 사람들이 이를 모르는 것은 애석한 일이며, 법문을 논하는 데 이 판정의 기준이 없으면 공론 · 맹론이 된다고 강의는 말한다.
본초 — 행의 중
본존초가 행의 중인 것은 본초에서 수지즉관심의 뜻을 밝히기 때문이다. 앞에 든 「석존의 인행과 과덕의 두 법은 묘법연화경의 오자에 구족되어 있으니, 우리가 이 오자를 수지하면 저절로 그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신다」(246쪽)와,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부처가 대자비를 일으켜 오자 안에 이 구슬을 싸서 말대 유치의 목에 걸어 주신다」(254쪽)는 문장이 그것이다. 강의는 이 문장들이 「사(事)의 일념삼천의 본존을 수지하면 사의 일념삼천의 관행(觀行)을 성취한다」는 것을 밝힌 명문이라고 본다.
당체의초 — 증의 중
당체의초가 증의 중인 것은 다음 문장으로 분명하다.
日蓮が一門は正直に権教の邪法・邪師の邪義を捨てて正直に正法・正師の正義を信ずる故に当体蓮華を証得して常寂光の当体の妙理を顕す事は本門寿量の教主の金言を信じて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るが故なり
니치렌의 일문이 정직하게 권교의 사법 · 사사의 사의를 버리고 정직하게 정법 · 정사의 정의를 믿기 때문에 당체연화를 증득하여 상적광의 당체의 묘리를 나타내는 것은, 본문 수량의 교주의 금언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기 때문이니라.
本門寿量の当体蓮華の仏とは日蓮が弟子檀那等の中の事なり
본문 수량의 당체연화의 부처란 니치렌의 제자 · 단나 등 가운데의 일이니라.
덧붙여 「교행증어서」에서 말법에는 교만 있고 행과 증은 없다고 하신 것은 석가 불법에는 행과 증이 없다는 뜻이며, 말법에는 대성인의 불법에 교 · 행 · 증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 강의의 설명이다.
니치칸 상인 「문단」의 첫머리
본초의 제호를 풀기에 앞서 강의는 니치칸 상인 「관심본존초 문단」의 첫머리(首文)를 읽는다. 그 대의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니치칸 상인 「관심본존초 문단」 첫머리 — 이 어서가 밝히는 관심의 본존이란, 일대 제경 가운데서는 다만 법화경, 법화경 28품 가운데서는 다만 본문 수량품, 본문 수량품 가운데서는 다만 문저 심비(深秘)의 대법이요 본지 유밀(唯密)의 정법이다. 이 본존에는 사람이 있고 법이 있다. 사람은 구원원초의 경지명합(境智冥合)한 자수용보신이요, 법은 구원명자(久遠名字)의 본지 난사(難思)한 경지(境智)의 묘법이다. 법에 즉해서는 이것이 사람이요, 사람에 약해서는 이것이 법이니, 사람과 법은 다르지만 그 체는 늘 하나이다. 체는 하나이지만 사람과 법은 뚜렷하다. 그러므로 이 어서는 인즉법(人即法)의 본존의 어서일 뿐이다. 이것은 제불 제경을 낳는 근원이며 제불 제경이 돌아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시방삼세 항하사 같은 공덕과 시방삼세 미진 같은 경들의 공덕이 모두 이 문저하종의 본존에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으니, 백천의 가지와 잎이 같이 한 뿌리로 향하는 것과 같다.
문단은 이어서 말한다. 그러므로 이 본존의 공덕은 무량무변하고 광대심원한 묘용이 있다. 잠시라도 이 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면 기도로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고, 죄로서 소멸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복으로서 오지 않는 것이 없고, 이치로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다. 묘락이 말한 「바른 경계에 연하면 공덕이 오히려 많다」가 이것이다. 이것은 곧 대성인 출세의 본회요, 본문 삼대비법 가운데 하나요, 말법 하종의 정체요, 수행하는 사람이 닦는 바의 명경이다. 그러므로 대성인이 「이 글은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일생의 대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 첫머리가 보이듯 관심의 본존초가 말하는 본존은 시방삼세의 부처와 시방삼세의 경전이 모두 귀일하는 본존이며, 그러므로 그 공덕은 광대심원해서 범부의 기도가 모두 이루어지고 어떤 무거운 죄도 소멸하며 인생의 행복이 범부의 한 몸에 갖추어진다고 풀이한다. 그리고 이 본존이 바로 홍안 2년(1279) 10월 12일에 건립된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이라고 이해한다.
강의는 이어서, 강의가 쓰인 당시의 창가학회원은 광선유포에 이르지 못한 오늘에도 이 본존을 친히 배알할 수 있고, 각 가정에서는 그 분신으로서 어본존을 받아 아침저녁으로 근행할 수 있으니 그 복운이 얼마나 큰가라고 말한다.
이 대목은 강의가 쓰인 시기의 신앙 실천을 그대로 전한 것이다. 강의의 서술로 싣는다.
강의는 또 이렇게 경계한다. 아무리 관심의 본존초를 연구하고 공부해도, 본존에 대한 신앙과 감격, 광선유포의 결의가 없다면 그 깊은 뜻에 이를 수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게으름에 빠지고 법을 비방하는 무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공부와 신심을 떼어 놓지 말라는 이 경계는 이 사이트가 교학을 다루는 태도이기도 하다.
고래의 해석들
강의는 니치렌 종학자를 자칭하는 승속이 예부터 많았지만, 그들이 이 본존을 알지 못한 채 석가 본존 · 석가 불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본초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교토 요법사(要法寺)의 니치신(日辰), 팔품파(八品派)의 닛추(日忠) 등이다. 다만 아와 묘본사(妙本寺)의 니치가(日我)만은 어느 정도 대요를 얻었으나 그래도 아직 불완전하다고 니치칸 상인은 평했다. 하물며 그 밖의 여러 종파의 학자들과 근래의 갖가지 해석은 모두 문저하종의 삼대비법에 미혹한 망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강의의 판단이다.
이제 강의는 제호를 풀면서 니치칸 상인의 분단을 따라, 먼저 문점(文點, 한문의 읽는 법)을 두루 밝히고(통석), 다음에 네 부분을 따로 풀며(별석), 끝에 제호 전체에 담긴 뜻을 맺는다(총결).
「始」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시 · 응 · 기 · 법
본초의 제호는 한문이므로, 어떻게 토를 다느냐(文點)에 따라 읽는 법이 갈리고 뜻이 전혀 달라진다. 예부터 다음과 같은 읽기가 있었다.
- (1) 「오오백세에 처음으로 마음을 관하는 본존초(五五百歳に始めて心を観る本尊抄)」
- (2) 「오오백세의 처음(五五百歳の始め)」
- (3) 「오오백세에 시작된 마음의 본존을 관하는 초(五五百歳に始まりたる心の本尊を観る抄)」
- (4) 「오오백세에 시작되는 관심본존초(五五百歳に始まる観心本尊抄)」
강의는 이 고래의 문점이 모두 어의(御意)에 어긋난 잘못이며, 바르게는 시(時) · 응(應) · 기(機) · 법(法)의 네 뜻(四義)을 모두 갖추어 읽어야 온전해진다고 본다.
사의를 설명하면 이렇다. 「시」는 부처가 세상에 나오는 때, 「응」은 중생의 기근에 응해 부처가 출현해 법을 설하는 등의 행위, 「기」는 중생의 기근, 「법」은 부처가 설하고 넓히는 법체다. 중생에게 기근이 있어 부처의 출세를 감(感)하고 부처는 이에 응(應)한다. 이것을 감응(感應)이라 한다. 거꾸로 중생에게 기근이 없는 곳에는 부처가 출세하지 않고, 부처의 출세를 만나지 못하는 중생은 그만한 기근이 없는 것이다. 『어의구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衆生に此の機有つて仏を感ず故に名けて因と為す、仏機を承けて而も応ず故に名けて縁となす
중생에게 이 기근이 있어 부처를 감하므로 이름하여 인(因)이라 하고, 부처가 기근을 받아 응하므로 이름하여 연(緣)이라 하느니라.
이 원리를 오늘의 우리에게 맞추면, 「시」는 말법이요, 「응」은 니치렌 대성인이 구원의 본불로 출현하심이요, 「기」는 우리 말법의 중생이요, 「법」은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다. 이것을 제호에 배대하면 다음과 같다.
- 시(時) — 여래멸후 오오백세 — 상행이 세상에 나오는 때를 밝힌다
- 응(應) — 始(처음 넓히다) — 상행이 처음으로 넓히는 뜻을 밝힌다
- 기(機) — 관심 — 문저하종 불법에 인연 있는 중생의 관심
- 법(法) — 본존 — 인즉법(人即法)의 본존
그러므로 이 제호는 「여래멸후 오오백세에 처음 넓히는(始む) 관심의 본존초」로 읽는 것이 바르며, 그 뜻은 「여래멸후 오오백세에 상행보살이 처음으로 넓히는 관심의 본존초」가 된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다섯 가지 증명
이 읽기가 왜 바른가. 니치칸 상인은 그 이유를 다섯 문(門)으로 증명한다.
① 제호가 의지한 본문에 따라
이 제호는 법화경 신력품 제21의 「내가 멸도한 뒤에 마땅히 이 경을 수지하라(於我滅度後 應受持斯經)」는 문장에 의거한 것이다. 신력품에서 상행보살에게 별부촉(別付囑)이 있었고, 상행보살이 말법에 출현해 삼대비법을 홍통하는 바른 증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멸도한 뒤」는 「여래멸후 오오백세」에 해당해 말법의 때를 보인다. 「응(應)」 한 글자는 부처가 권하고 장려함을 보이니 곧 「始(처음 넓히다)」에 해당한다. 「수지」는 기근에 약하니 「관심」에 해당하고, 「사경(斯經)」은 법에 약하니 「본존」에 해당한다. 이처럼 제호가 의지한 신력품의 문장과 일치해 사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② 사의 구족의 예에 따라
법화경에는 사의를 갖춘 문장이 있다. 방편품과 수량품의 첫머리다.
- 방편품 — 시: 「그때(爾の時)」 / 응: 「세존께서 고하시기를」 / 기: 「사리불에게」 / 법: 「제불의 지혜는 매우 깊고 한량없다(諸仏智慧甚深無量)」
- 수량품 — 시: 「그때」 / 응: 「부처님께서 고하시기를」 / 기: 「여러 보살과 일체 대중에게」 / 법: 「여래의 비밀 신통의 힘(如来秘密神通之力)」
- 시
- 如来滅後五五百歳여래멸후 오오백세
- 응
- 始처음 넓히다
- 기
- 観心관심
- 법
- 本尊본존
- 시
- 我が滅度の後내가 멸도한 뒤
- 응
- 応마땅히
- 기
- 受持수지
- 법
- 斯経이 경
- 시
- 爾の時그때
- 응
- 世尊は告げて云く세존께서 고하시기를
- 기
- 舎利弗に사리불에게
- 법
- 諸仏智慧甚深無量제불의 지혜는 매우 깊고 한량없다
- 시
- 爾の時그때
- 응
- 仏告げて云く부처님께서 고하시기를
- 기
- 諸菩薩及一切大衆여러 보살과 일체 대중에게
- 법
- 如来秘密神通之力여래의 비밀 신통의 힘
바른 읽기 — 여래멸후 오오백세에 처음 넓히는 관심의 본존초 (니치칸 상인 「관심본존초 문단」)
③ 사의 구족의 명문에 따라
본초 자신의 문장 가운데에도 바로 사의를 갖춘 것이 있다.
此の時地涌の菩薩始めて世に出現し但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幼稚に服せしむ
이때 지용보살이 처음으로 세상에 출현하여 다만 묘법연화경의 오자로써 유치한 이들에게 먹이느니라.
여기서 「이때」는 시, 「지용보살이 처음으로 세상에 출현하여」는 응, 「다만 묘법연화경의 오자로써」는 법, 「유치한 이들에게 먹인다」는 기다. 또 제31장의 「부처가 대자비를 일으켜(응) 오자 안에 이 구슬을 싸서(법) 말대(시) 유치(기)의 목에 걸어 주신다」(254쪽)도 그러하다. 이런 명문에 비추어 보아도 제호 또한 사의를 갖추어야 함은 분명하다.
④ 「始」 자를 응에 약한 명문에 따라
구호본존(救護本尊)의 단서(端書)에 「후오백세의 때에 상행보살이 세상에 출현하여 처음으로 이것을 넓힌다」는 명문이 있다. 여기서 「始」 자는 「처음으로 넓힌다」는 「응」의 뜻이 된다. 구호본존은 「만년구호의 본존」이라고도 하며, 문영 11년(1274)에 대성인이 나타내신 어본존으로 현재 호타(保田)의 묘본사에 있다고 강의는 적는다.
⑤ 고래 여러 스승의 문점을 가려냄
예부터 여러 스승이 단 문점은 다음과 같이 잘못이라고 니치칸 상인은 하나하나 논파한다.
- 『몽초(蒙抄)』 — 불수불시파 니치코(日講)의 저술. 「오오백세에 처음으로 마음의 본존을 관하는 초」로 읽고, 「始」 자는 정법 · 상법을 가려 「미증유(未曾有)」라는 말에 맞춘 것이라고 한다. 니치칸 상인은 이렇게 논파한다. 『몽초』가 말하는 「처음으로 관한다」는 기(機)에 약한 것이고, 「미증유」라는 말은 법(法)에 약해 쓸 말이니 둘이 맞을 리 없다. 더구나 그렇게 읽으면 「처음으로 관한다」가 체(體)가 되고 본존 두 글자가 용(用)이 되어 본초의 대지(大旨)에 어긋난다.
- 『충초(忠抄)』 — 팔품파 닛추(日忠)의 저술. 오오백세의 처음 200년에 대성인이 출현하시므로 「오오백세의 처음」으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 논파: 그것은 글은 달라도 뜻은 같음(文異義同)을 모르고 번거롭게 겹치는 잘못을 부른다. 그렇다면 굳이 「여래멸후 오오백세」라고 할 필요가 없다. 하물며 「처음으로 이것을 넓힌다」는 구호본존의 문장에 어긋나니 쓸 수 없다.
- 『상초(常抄)』 — 나카야마파 니치유(日祐)의 저술. 「오오백세에 시작된 마음의 본존을 관하는 초」로 읽고, 이것이 상전이라고 한다. 논파: 『상초』는 도키 입도 니치조의 저술이 아니라 나카야마파 3대 니치유의 글이다. 상전이라 하면서도 같은 일치파의 『몽초』조차 이 읽기를 쓰지 않는다. 더구나 그렇게 읽으면 이미 시작된 일이 되어, 지금 처음 넓힌다는 본초의 대지에 어긋난다.
- 『신초(辰抄)』 — 요법사 니치신(日辰)의 저술. 만년의 처음을 가리켜 「始」라 한다고 한다. 논파: 오오백세가 이미 말법의 처음을 가리키는데 어째서 거듭 「始」라 하겠는가.
- 『니치가초(日我抄)』 — 묘본사 니치가(日我)의 저술. 「오오백세에 시작되는 관심본존초」로 읽는다. 「始」를 법에 약하고 지금 시작됨에 약해 「미증유」라는 말에 맞으며 광선유포의 문장에도 응한다는 것이다. 논파: 니치가는 넓혀지는 쪽(所弘)에 약하므로 「시작된다」고 읽었지만, 지금 넓히는 쪽(能弘)에 약하면 「처음 넓힌다」가 된다. 넓히는 쪽을 들면 저절로 넓혀지는 쪽을 포섭한다. 곧 처음 넓히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넓힌다」로 읽으면 니치가의 「시작된다」는 읽기를 저절로 포함한다. 더구나 광선유포라는 말은 넓히는 쪽, 곧 대성인이 처음으로 넓히신다는 뜻을 강하게 말씀하신 것이니 니치가의 읽기를 쓸 것이 아니다.
니치가초를 논파하는 근거로 강의는 「현불미래기」의 다음 문장을 든다.
此の人は守護の力を得て本門の本尊・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提に広宣流布せしめんか
이 사람은 수호의 힘을 얻어 본문의 본존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로써 염부제에 광선유포하게 하리라.
「이 사람」이 「광선유포하게 한다」 — 넓히는 주체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관심본존」의 문점 — 교상의 본존과 관심의 본존
다음은 「관심본존」 네 글자의 문점이다. 예부터 여러 스승은 (1) 「마음의 본존을 관하는 초(心の本尊を観ずる抄)」, (2) 「마음을 관하는 본존초(心を観ずる本尊抄)」, (3) 토를 달지 않고 「관심본존초」 등으로 읽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잘못이며, 바르게는 「관심의 본존초(観心の本尊抄)」로 읽어야 한다고 강의는 말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불교의 여러 법상(法相)은 대개 서로 상대해 이름을 세운다. 십쌍권실(十雙權實) · 육중본적(六重本迹)은 물론이고 대소 · 권실 · 적본 등이 모두 상대 위에 세운 법문이다. 교상(敎相)과 관심(觀心)의 구분은 여러 종파에 공통된 구분이다. 이런 상대의 법문에서는 「사(事)」라는 말은 「이(理)」를 가려내고, 「과(果)」라는 말은 「인(因)」을, 「대(大)」는 「소(小)」를, 「실(實)」은 「권(權)」을, 「본(本)」은 「적(迹)」을 가려낸다. 그러므로 「관심」이라는 말도 「교상」을 가려낸다. 삼대비법 가운데 「본문의 본존」이라 할 때 본 · 적 가운데 적문의 본존을 가려내는 것과 같이, 「관심의 본존」이란 교상의 본존을 가려낸 본존이다.
그렇다면 교상의 본존과 관심의 본존은 체가 어떻게 다른가. 교상의 본존이란 문상 탈익 · 적문 · 이(理)의 일념삼천의 본존이고, 관심의 본존이란 문저 하종 · 본문 · 사(事)의 일념삼천을 본존으로 하는 것이다. 강의는 이 뜻을 니치칸 상인의 문단에 따라 세 단으로 설명한다.
대성인이 세우신 교상과 관심
교상과 관심은 각 종파가 모두 세우지만, 대성인이 세우신 교상 · 관심은 어떤 모습인가. 강의는 다섯 문장을 들어 설명한다.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의 본문 수량품의 문저에 잠겨 있느니라.
여기서 「일념삼천」은 관심의 법문이며, 문저를 관심이라 이름하므로 문상의 법문은 모두 교상임을 알 수 있다.
法華本門の観心の意を以て一代聖教を按ずるに菴羅果を取つて掌中に捧ぐるが如し、所以は何ん迹門の大教起れば爾前の大教亡じ・本門の大教起れば迹門爾前亡じ・観心の大教起れば本迹爾前共に亡ず此れは是れ如来所説の聖教・従浅至深して次第に迷を転ずるなり
법화 본문의 관심의 뜻으로 일대 성교를 살피면 암라과를 따서 손바닥 위에 받드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적문의 대교가 일어나면 이전의 대교가 없어지고, 본문의 대교가 일어나면 적문 · 이전이 없어지며, 관심의 대교가 일어나면 본적 · 이전이 함께 없어지느니라. 이것이 여래께서 설하신 성교가 얕은 데서 깊은 데로 나아가 차례로 미혹을 바꾸는 것이니라.
이전 · 적문 · 본문 · 관심으로 세웠는데, 넷째의 관심은 여러 종파가 말하는 관심과 달리 문저하종의 법문을 관심이라 이름한 것이다. 문저하종의 법문을 관심이라 하므로 이전 · 적문 · 본문은 모두 교상이 된다.
一には名体無常の義・爾前の諸経諸宗なり、二には体実名仮.迹門.始覚無常なり、三には名体倶実・本門本覚常住なり、四には名体不思議是れ観心直達の南無妙法蓮華経なり
첫째는 명(名)과 체(體)가 무상한 뜻이니 이전의 제경 · 제종이니라. 둘째는 체는 실이나 명은 가(假)이니 적문 · 시각 · 무상이니라. 셋째는 명과 체가 함께 실이니 본문 · 본각 · 상주이니라. 넷째는 명과 체가 부사의하니 이것이 관심 직달의 남묘호렌게쿄이니라.
문저를 「관심 직달(直達)」이라 이름하므로 이전 · 적문 · 본문이 모두 교상에 속함이 분명하다.
迹門を理具の一念三千と云う脱益の法華は本迹共に迹なり、本門を事行の一念三千と云う下種の法華は独一の本門なり、是を不思議実理の妙観と申すなり
적문을 이구(理具)의 일념삼천이라 하니 탈익의 법화는 본적이 함께 적이니라. 본문을 사행(事行)의 일념삼천이라 하니 하종의 법화는 독일(獨一)의 본문이니라. 이것을 부사의 실리의 묘관이라 하느니라.
문저하종 본문 사의 일념삼천을 부사의 실리의 묘관으로 삼으므로, 문상 탈익의 적문도 이(理)의 일념삼천이 되어 교상에 속한다.
一代応仏のいきをひかえたる方は理の上の法相なれば一部共に理の一念三千迹の上の本門寿量ぞと得意せしむる事を脱益の文の上と申すなり、文の底とは久遠実成の名字の妙法を余行にわたさず直達の正観・事行の一念三千の南無妙法蓮華経是なり
일대 응불(應佛)의 숨결을 이어받은 쪽은 이(理) 위의 법상이므로 한 부가 모두 이의 일념삼천이요 적 위의 본문 수량이라고 알게 하는 것을 탈익의 문상이라 하느니라. 문저란 구원실성의 명자의 묘법을 다른 수행에 건네지 않는 직달의 정관, 사행의 일념삼천의 남묘호렌게쿄가 이것이니라.
문저하종 법문의 사의 일념삼천을 직달 정관이라 이름하므로, 문상 탈익 적문 이의 일념삼천은 교상에 속한다. 이 여러 문장으로 대성인이 세우신 교상과 관심이 참으로 분명해진다고 강의는 말한다.
하종의 세 가지 교상 — 제삼의 법문
둘째로 강의는 대성인이 세우신 하종의 세 가지 교상을 천태의 삼종교상과 대비한다. 천태대사는 『법화현의』에서 법화경이 다른 경과 다른 점을 세 가지 교상으로 보였다. 첫째는 근성(根性)의 융(融) · 불융(不融)의 상, 둘째는 화도(化導)의 시종(始終) · 불시종의 상, 셋째는 사제(師弟)의 원근(遠近) · 불원근의 상이다.
강의에 따르면 천태의 첫째 · 둘째는 대성인 불법의 제일 법문인 권실상대에 해당하고, 천태의 셋째 법문은 대성인 불법의 제이 법문인 본적상대에 해당한다. 그리고 대성인 불법의 제삼 법문은 종탈상대로서, 천태 · 전교도 일찍이 홍통한 적이 없는 깊고 비밀한 법문이다.
法華経と爾前と引き向えて勝劣・浅深を判ずるに当分・跨節の事に三つの様有り日蓮が法門は第三の法門なり、世間に粗夢の如く一二をば申せども第三をば申さず候、第三の法門は天台・妙楽・伝教も粗之を示せども未だ事了えず所詮末法の今に譲り与えしなり、五五百歳は是なり
법화경과 이전을 맞세워 승렬과 천심을 판정하는 데 당분(當分)과 과절(跨節)에 세 가지 모습이 있으니, 니치렌의 법문은 제삼의 법문이니라. 세간에서는 대강 꿈처럼 첫째와 둘째는 말하지만 셋째는 말하지 않느니라. 제삼의 법문은 천태 · 묘락 · 전교도 대강 보였으나 아직 일을 마치지 않았으니, 결국 말법의 지금에 물려준 것이니라. 오오백세가 이것이니라.
그런데 니치렌의 이름을 앞세운 여러 문류는 천태의 제삼 법문을 곧바로 대성인의 제삼 법문으로 해석한다고 강의는 비판한다. 이것은 대성인 출세의 본회인 종탈상대를 모르고, 문저와 문상의 승렬에 미혹한 데서 생긴 혼란이라는 것이다. 대성인 출세의 본회인 종탈 승렬의 깊은 뜻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의는 강조한다.
본초는 하종 관심의 본존을 드러낸다
셋째로, 본초는 재세 탈익의 본존을 가려내고 바로 하종 관심의 본존을 드러낸다. 강의는 여러 어서를 아울러 그 이유를 밝힌다.
一は待教立観.爾前・本.迹の三教を破して不思議実理の妙法蓮華経の観を立つ
첫째는 대교입관(待敎立觀)이니, 이전 · 본문 · 적문의 세 교를 깨뜨리고 부사의 실리의 묘법연화경의 관을 세우느니라.
「부사의 실리의 묘법연화경의 관」이 곧 문저하종 관심의 본존이다. 그러므로 적문 · 본문 모두 문상 숙탈의 교상을 깨뜨리는 것이 분명하다.
四に会教顕観・教相の法華を捨てて観心の法華を信ぜよ
넷째로 회교현관(會敎顯觀)이니, 교상의 법화를 버리고 관심의 법화를 믿으라.
「교상의 법화」는 문상 숙탈의 법화경이고, 「관심의 법화」는 문저하종의 법화경, 곧 관심의 본존이다.
본초 자신의 문장도 같다. 「이 본문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오자는 부처님께서 문수 · 약왕 등에게도 부촉하지 않으셨다」(247쪽)에서, 「본문」이라는 말은 본적상대로 적문 탈익의 본존을 가려내고, 「간심」이라는 말은 종탈상대로 문상 탈익의 본문을 가려내며, 「남묘호렌게쿄」는 문저하종 관심의 본존을 드러낸다. 「지용천계의 대보살을 불러 수량품의 간심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염부의 중생에게 주게 하셨다」(250쪽)와 「「이 좋은 양약」이란 수량품의 간요인 명 · 체 · 종 · 용 · 교의 남묘호렌게쿄가 이것이다」(251쪽)에서도, 「수량품」은 적문을 가려내고, 「간심」 · 「간요」는 문상 탈익의 본문을 가려내며, 「남묘호렌게쿄」는 바로 문저하종의 본존을 드러낸다. 그리고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은 똑같이 순원이니라. 다만 저것은 탈이요 이것은 종이니라」(249쪽). 이 여러 문장으로 본초가 문상 탈익의 본존을 가려내고 문저하종 관심의 본존을 드러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별석 1 — 여래멸후 오오백세
이제 제호의 네 부분을 따로 풀어 간다(별석). 강의는 이번에도 니치칸 상인의 문단에 따라 「여래멸후 오오백세」 · 「始」 · 「관심」 · 「본존」의 네 항으로 나눈다.
여래 멸후 다섯째 오백 년에 광선유포한다는 것은 법화경 약왕품의 문장이다. 이 문장에 따라 「오오백세」라 하셨지만, 그렇게 세우신 바른 뜻은 신력품의 「내가 멸도한 뒤에 마땅히 이 경을 수지하라」는 문장에 있다. 「여래」란 삼신즉일(三身即一)의 응신여래다. 「멸후」라 하면 정법 · 상법 · 말법의 삼시에 걸치지만 그 뜻은 말법에 있다. 「오오백세」는 500년에 걸치지만 그 뜻은 본존이 건립되는 말법의 처음이다. 대성인이 거듭 「불멸 후 2,220여 년」이라 하신 것이 이것이다.
대집경의 오오백세 — 『대집경』은 불멸 후를 다섯 개의 오백 년으로 나누어 해탈견고 · 선정견고 · 독송다문견고 · 다조탑사견고 · 투쟁언송 백법은몰의 때로 설한다. 다섯째 오백 년이 「투쟁언송 백법은몰」의 말법의 처음이다. 법화경 약왕품의 「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하라」는 이 다섯째 오백 년을 가리킨다. 오오백세와 말법의 시간 구조는 제7편(29~31장)에서 다시 다룬다.
별석 2 — 「始」: 처음으로 넓히다
「始」는 정법 · 상법 2,000년 동안 아직 넓혀진 적이 없는 본존을 말법의 처음에 구원의 본불이 출현해 처음으로 홍통하신다는 뜻이다. 강의는 「본존문답초」를 든다.
此の御本尊は世尊説きおかせ給いて後二千二百三十余年が間・一閻浮提の内にいまだひろめたる人候はず、漢土の天台日本の伝教ほぼしろしめしていささかひろめさせ給はず当時こそひろまらせ給うべき時にあたりて候へ
이 어본존은 세존께서 설해 두신 뒤 2,230여 년 동안 일염부제 안에 아직 넓힌 사람이 없느니라. 한토의 천태, 일본의 전교는 대강 아시고도 조금도 넓히지 않으셨느니라. 지금이야말로 넓혀지실 때에 해당하느니라.
사도 이전과 사도 이후
그렇다면 대성인은 일대 가운데 언제 이것을 시작하셨는가. 건장 5년(1253)에 입종하셨지만 그때는 제목뿐이었고 아직 삼대비법이라는 이름조차 없었다. 그래서 대성인은 사도 이전의 법문은 부처의 이전경(爾前經)으로 여기라고 말씀하셨다.
又法門の事はさどの国へながされ候いし已前の法門は・ただ仏の爾前の経とをぼしめせ
또 법문에 관해서는, 사도 지방으로 유배되기 이전의 법문은 다만 부처님의 이전경이라고 생각하시라.
이 어서는 이어서, 이 나라의 국주가 나라를 보존하고자 한다면 진언사 등과 대결시키실 것이니 그때 참된 대사를 말하려 했고, 제자들에게도 은밀히 말하면 그것이 퍼져 그들이 알게 되어 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해 각자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신다. 그리고 「지난 문영 8년 9월 12일 밤 다쓰노쿠치에서 목이 베이려 한 때부터 뒤로는, 가엾게도 나를 따른 사람들에게 참된 일을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사도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은밀히 말하는 법문이 있다」고 맺으신다.
사도 이전에는 아직 신업(身業)의 독송이 끝나지 않았다. 사도에 이르러 비로소 「은밀히 말하는 법문」으로서 개목초와 관심의 본존초를 지으셨다. 개목초에서는 대성인이 상행보살의 재탄이시며 말법의 주사친 삼덕을 갖춘 본불이 대성인이시라 하여, 말법에 건립되는 사람의 본존을 개현하셨다. 이어 관심의 본존초에서는 법의 본존을 개현하시고, 말대 삼독이 강성한 중생이 즉신성불하는 본존의 상모를 바로 설해 보이셨다고 강의는 서술한다.
출세의 본회
그렇다면 사도에서 처음으로 본존을 건립해 궁극의 본회를 이루신 것인가. 강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본존의 건립은 광선유포의 때에 본문의 계단이 건립될 것을 내다본 것이며, 그때 본문의 대계단에 안치될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의 건립이야말로 참된 극설 중의 극설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강의는 「성인어난사」의 「부처님은 40여 년, 천태대사는 30여 년, 전교대사는 20여 년에 출세의 본회를 이루셨다. …… 나는 27년이니라」(1189쪽)를 든다.
강의는 이 대목에서도 상승을 전하는 문서를 인용해 홍안 2년의 본존이 부촉되어 전해졌다고 서술한다. 상승 서술을 싣지 않는 원칙에 따라 그 인용은 생략했다.
니치칸 상인이 말한 세 가지 불가사의
홍안 2년에 출세의 본회를 이루신 점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대성인과 천태대사를 견주어 그 불가사의를 말한다.
- 천태대사 — 수나라 개황 14년, 57세. 4월 26일부터 『마하지관』을 설하기 시작해 한 여름(一夏) 동안 설했다. 그 4년 뒤인 개황 17년, 60세 11월에 입멸.
- 니치렌 대성인 — 문영 10년 4월 25일 본존초를 마치셨다. 홍안 2년, 58세 10월 12일 계단의 본존을 나타내시고, 그 4년 뒤 홍안 5년, 61세 10월에 입멸.
여기에 세 가지 불가사의가 있다고 니치칸 상인은 말한다. 첫째, 천태는 57세에 지관을 설하고 대성인은 58세에 본존을 나타내셨으며, 천태는 60세, 대성인은 61세에 입멸하셨으니, 상법의 천태가 말법의 대도사보다 한 해씩 앞선다. 둘째, 천태는 4월 26일에 지관을 시작했고 대성인은 4월 25일에 본존초를 완성하셨으며, 천태는 11월, 대성인은 10월에 입멸하셨다. 대성인은 뒤에 태어나셨어도 하종의 본불이시므로 숙익의 교주인 천태보다 앞서 교화를 마치셨다는 것이다. 셋째, 천태도 대성인도 똑같이 입멸 4년 전에 궁극의 극설을 나타내셨다.
관심의 본존초를 마치신 날(4월 25일)과 천태가 『마하지관』 강설을 시작한 날(4월 26일)의 대비는 니치칸 상인의 해석이다. 『마하지관』 강설이 개황 14년(594) 4월 26일에 형주 옥천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장안대사 관정의 서문에 근거한 전승이다(대정장 쪽은 확인 중).
「2,220여 년」과 「2,230여 년」
강의는 또 하나의 문제를 다룬다. 여러 어서와 어본존의 협서(脇書)에 「2,220여 년」과 「2,230여 년」이 함께 나오는데, 그 차이는 언제부터 생기는가. 불멸 2,230년이 되는 것은 홍안 4년(1281)인데, 홍안 원년(1278) 이후 이미 「2,230여 년」이라 하신다. 홍안 원년 7월의 「센니치니부인답서」에 「불멸도 후 이미 2,230여 년이 되었다」, 같은 해 9월의 「본존문답초」에 「2,230여 년」(373쪽)이 그것이다.
그런데 홍안 원년은 불멸 후 2,227년이다. 왜 「30여 년」이라 하셨는가. 니치칸 상인은 여기에 깊은 뜻이 있다고 말한다. 석존의 법화경은 8년에 걸쳐 28품이 설해졌으므로 1년에 3.5품꼴이 된다. 72세에 법화경을 설하기 시작했다면 76세에 수량품을, 77세에 신력품을 설해 지용천계에 부촉하고, 그 4년 뒤 80세에 입멸한 셈이 된다. 그러므로 석가불 출세의 본회인 수량품을 설해 나타낸 때부터 세면 홍안 원년은 2,231년이 된다. 「이 어본존은 수량품에 설해 나타내신 것」이라는 뜻과, 「본존문답초」의 「이 어본존은 세존께서 설해 두신 뒤」라는 문장의 뜻에서, 수량품 설법으로부터 세어 홍안 원년 이후를 바로 2,230여 년이라 하셨다고 받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별석 3 — 관심: 우리 중생의 관심
관심을 풀면서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문단에 따라 두 단으로 나눈다.
누구의 관심인가
문저하종의 일념삼천을 관심이라 이름한다는 것은 앞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그 관심은 누구의 관심인가. 말법 지금의 우리 중생의 관심이라는 것이 답이다. 이유는 본초의 두 문장, 「이때 지용보살이 처음으로 세상에 출현하여 다만 묘법연화경의 오자로써 유치한 이들에게 먹인다」(253쪽)와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부처가 대자비를 일으켜 오자 안에 이 구슬을 싸서 말대 유치의 목에 걸어 주신다」(254쪽)에 분명하다. 「먹인다(服せしむ)」와 「걸어 주신다(懸けさしむ)」는 모두 관심의 뜻이며, 「말대 유치」가 말법 지금의 우리 중생임은 분명하다.
또 『신초』는 관심 두 글자가 능화(能化, 교화하는 쪽)와 소화(所化, 교화받는 쪽)에 통한다고 말한다. 일반론으로는 그 말이 맞지만, 이 제호의 관심 두 글자는 소화에 약해야 한다. 이미 「始」 자가 능화의 동작이므로 관심을 소화에 약하는 것이 바르다.
『니치가초』는 이렇게 말한다. 「당류의 뜻은, 관이란 지(智)요 지란 신(信)이니, 신이란 신지(信智)의 남묘호렌게쿄이다. 심이란 기심이요, 기(己)란 말법에 출현한 지용이다. 지용의 심법이 묘법연화경인 곳이 관심이다. 말세의 중생을 구하려고 출현하셨으니 본존이다.」 이처럼 관심 두 글자를 지용보살의 경지(境智)의 두 법에 약했으니, 어찌 우리 중생의 관심이라 하겠느냐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것을 관심과 본존을 혼동한 것이라고 논파한다. 본문의 본존이란 본지 난사의 경지의 묘법이다. 지용보살로는 본존 두 글자를 풀어야지 관심 두 글자를 풀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삼대비법 가운데 「본문의 본존」과 지금의 「관심의 본존」은 뜻이 같지 않다. 어찌 관심 두 글자를 본존 두 글자와 같다고 하겠는가. 만약 관심이 곧 본존이라 한다면 시 · 응 · 기 · 법의 사의를 빠뜨리게 되어 철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 중생의 관심의 모습
우리 중생의 관심의 모습은 앞에 든 「본인묘초」의 「구원실성의 명자의 묘법을 다른 수행에 건네지 않는 직달의 정관, 사행의 일념삼천의 남묘호렌게쿄가 이것이니라」(877쪽)에 보인 그대로다.
관심의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정법 1,000년의 중생은 가장 뛰어난 근기였으므로, 혹은 일어나지 않은 일념(不起の一念)을 관하고 혹은 팔식 원초의 일념을 관했다. 상법에 들어서는 중생도 둔근이 되어, 근(根)과 진(塵)이 마주할 때 찰나에 일어나는 육식(根塵相対芥爾六識)에 삼천의 성품이 갖추어져 있음을 관하는 것을 관심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말법에는 다만 제목을 부르는 것을 관심으로 삼는다는 것인가.
말법 지금은 「이즉 단망(理即但妄)」의 범부이니, 정법 · 상법의 관심과 말법의 관심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상법 시대의 관심도 한결같지는 않았다. 전교대사가 천태산 국청사에서 도수(道邃) 화상에게 「사개(四箇)의 대사」를 상전받았는데, 그 가운데 일심삼관 · 일념삼천이 있고, 거기에 깊은 구전이 있다. 「법구(法具)의 일심삼관이란 임종의 괴로움 때에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라」, 또 「임종의 일념삼천이란 묘법연화경이니, 임종 때에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목을 부르는 것이 관심이라는 것은 이미 천태종에서도 깊은 구전으로 되어 있었다고 강의는 말한다.
상법 적문의 때에도 이러했으니, 말법 본문의 때에는 오직 신심과 구창(口唱)으로 관심을 삼는다. 천태대사가 「마음에 사유하지 않아도 법계에 두루 비춘다」고 풀고, 전교대사가 「본문 실증의 때에는 무사무념으로 삼관을 닦는다」고 푼 것이 이것이라는 것이다.
「창법화제목초」의 문장을 둘러싼 의문
천태류의 사고를 하는 사람은 이렇게 의문을 낼 것이다. 「창법화제목초」에 다음 문장이 있다.
愚者多き世となれば一念三千の観を先とせず其の志あらん人は必ず習学して之を観ずべし
어리석은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니 일념삼천의 관을 먼저 하지 않느니라. 그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배워 익혀 이것을 관해야 하느니라.
이 문장에 따르면 일념삼천의 관을 배워야지 신심과 구창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강의는 다음 여러 어서와, 이 문장이 대성인의 어서 가운데 어디에 놓이는지를 생각하면 분명해진다고 답한다.
汝何ぞ一念三千の観門を勧進せず唯題目許りを唱えしむるや
그대는 어찌하여 일념삼천의 관문을 권하지 않고 오직 제목만을 부르게 하는가.
「사신오품초」는 이 물음에 답하여 말법 초심의 행자에게는 오직 제목을 부르게 하는 뜻을 밝히신다.
利智精進にして観法修行するのみ法華の機ぞと云つて無智の人を妨ぐるは当世の学者の所行なり是れ還つて愚癡邪見の至りなり、一切衆生・皆成仏道の教なれば上根・上機は観念・観法も然るべし下根下機は唯信心肝要なり
지혜가 날카롭고 정진하여 관법을 수행하는 자만이 법화의 기근이라 하여 무지한 사람을 막는 것은 지금 세상 학자의 소행이니, 이는 도리어 우치 사견의 극치이니라. 일체중생이 모두 불도를 이루는 가르침이니, 상근 · 상기는 관념 · 관법도 좋으나 하근 · 하기는 오직 신심이 간요하니라.
真実に円の行に順じて常に口ずさみにすべき事は南無妙法蓮華経なり、心に存すべき事は一念三千の観法なり、これは智者の行解なり・日本国の在家の者には但一向に南無妙法蓮華経ととなへさすべし、名は必ず体にいたる徳あり
참으로 원교의 수행에 따라 늘 입에 올려야 할 것은 남묘호렌게쿄요,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일념삼천의 관법이니라. 이것은 지자의 행해(行解)이니라. 일본국의 재가자에게는 다만 오로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게 해야 하느니라. 이름에는 반드시 체에 이르는 덕이 있느니라.
이 어서들의 뜻에 비추면 저절로 분명해진다. 「창법화제목초」는 사도 이전 문응 원년(1260)의 저술로서 일단 천태에 수순한 해석이며 대성인의 정의(正意)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력 · 행력과 불력 · 법력
신심과 구창만으로 곧 관행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성인의 뜻으로 보면, 본존을 믿고 제목을 부르면 곧 믿고 부르는 대상인 본존의 불력과 법력으로 빠르게 관행을 이룬다고 강의는 말한다. 그 근거로 「당체의초」를 든다.
正直に方便を捨て但法華経を信じ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る人は煩悩・業・苦の三道・法身・般若・解脱の三徳と転じて三観・三諦・即一心に顕われ其の人の所住の処は常寂光土なり、能居所居・身土・色心・倶体倶用・無作三身の本門寿量の当体蓮華の仏とは日蓮が弟子檀那等の中の事なり是れ即ち法華の当体・自在神力の顕わす所の功能なり敢て之を疑う可からず之を疑う可からず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다만 법화경을 믿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사람은 번뇌 · 업 · 고의 삼도가 법신 · 반야 · 해탈의 삼덕으로 바뀌어 삼관 · 삼제가 곧 일심에 나타나고, 그 사람이 머무는 곳은 상적광토이니라. 능거 · 소거, 신 · 토, 색 · 심, 구체구용의 무작삼신인 본문 수량의 당체연화의 부처란 니치렌의 제자 · 단나 등 가운데의 일이니라. 이것이 곧 법화의 당체, 자재신력이 나타내는 공능이니라. 결코 이것을 의심하지 말라, 이것을 의심하지 말라.
이 문장에서 「다만 법화경을 믿어」는 신력(信力)이요,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른다」는 행력(行力)이다. 「법화의 당체」는 법력(法力)이요, 「자재신력」은 불력(佛力)이다. 그러므로 신력과 행력을 다할 때 불력과 법력으로 관행을 성취한다.
같은 「당체의초」의 「본문 수량의 교주의 금언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기 때문이니라」(518쪽)에서도, 「본문 수량의 교주」는 사람의 본존인 불력이며 문저하종 수량품의 교주는 곧 니치렌 대성인이시다. 「금언」은 요(要)의 법화경 · 의(意)의 법화경 · 하종의 법화경이니 곧 본존의 법력이다. 「믿고」는 신력, 「부르기」는 행력이다. 신력 · 행력을 다할 때 법력 · 불력으로 관행을 성취함이 분명하다. 전교대사의 신비한 구전에도 「임종 때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면 묘법 삼력(三力)의 공으로 빨리 보리를 이룬다」고 했다. 묘법 삼력이란 법력 · 불력 · 신력이며,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것이 곧 행력이니, 앞의 당체의초의 뜻과 똑같다고 강의는 말한다.
五に住不思議顕観・文に云く理は造作に非ず故に天真と曰う・証智円明なるが故に独朗と云う云云、釈の意は口唱首題の理に造作無し、今日熟脱の本迹二門を迹と為し久遠名字の本門を本と為す、信心強盛にして唯余念無く南無妙法蓮華経と唱え奉れば凡身即仏身なり
다섯째로 주부사의현관(住不思議顯觀)이니, 글에 「이(理)는 조작이 아니므로 천진이라 하고, 증지가 원명하므로 독랑이라 한다」고 했느니라. 해석의 뜻은, 구창하는 수제의 이치에 조작이 없다는 것이니라. 금일 숙탈의 본적 두 문을 적으로 삼고, 구원명자의 본문을 본으로 삼느니라. 신심이 강성하여 오직 다른 생각 없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면 범부의 몸이 곧 부처의 몸이니라.
그러므로 문저하종의 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를 때 불력 · 법력으로 관행을 성취하며, 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성취할 수 없다. 「지묘법화문답초」의 다음 문장이 이 뜻이다.
唯我一人・能為救護の仏の御力を疑い以信得入の法華経の教への繩をあやぶみて決定無有疑の妙法を唱へ奉らざらんは力及ばず菩提の岸に登る事難かるべし、不信の者は堕在泥梨の根元なり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능히 구호한다」는 부처님의 힘을 의심하고, 「믿음으로써 들어감을 얻는다」는 법화경의 가르침의 밧줄을 미덥지 않게 여겨, 「결정코 의심이 없다」는 묘법을 봉창하지 않는다면 힘이 미치지 못해 보리의 언덕에 오르기 어려우리라. 불신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는 근원이니라.
별석 4 — 본존: 그 체덕
본존을 풀면서도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문단에 따라 체덕(體德)과 명의(名義)의 두 단으로 나눈다.
재세 팔품의 본존과 말법의 본존
무릇 본존이란 우리 중생이 수지하는 법체이며, 믿고 제목을 부르는 대만다라다. 바로 본존을 밝힌 본초의 대의는 재세 팔품(八品)의 본존이 아니다. 재세 본문 팔품의 의식은 다만 재세 탈익의 본존이지 말법 하종의 본존이 아니다. 그러므로 본초 안에서 이것을 자세히 가려내어, 문저 신비의 대법이요 본지 난사 · 경지명합 · 본유무작인 사의 일념삼천의 묘법을 말법 유치의 본존으로 삼았다. 이것이 본초가 펼친 원의라고 강의는 말한다.
이의 일념삼천과 사의 일념삼천
사의 일념삼천에 대해서도 여러 문류의 이설이 갖가지다. 당류의 뜻은 다음과 같다고 강의는 정리한다.
- 적문은 제법실상에 약해 일념삼천을 밝히므로 이(理)의 일념삼천이라 이름한다.
- 본문은 인 · 과 · 국(因果國)에 약해 일념삼천을 밝히므로 사(事)의 일념삼천이라 이름한다.
- 다만 문저 신비의 「구원원초 자수용신 즉 일념삼천」을 참된 사의 일념삼천이라 이름한다.
구원원초 자수용신
구원원초 자수용신의 몸의 모습을 찾으면, 일본 각지의 여러 문류는 열응신 · 승응신 · 보신 · 법신, 그리고 응불이 승진한 자수용신은 알아도 아직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은 모른다. 그러므로 니치렌의 이름을 앞세운 문류는 많지만 똑같이 본존에 미혹해 있다고 강의는 비판한다.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란 본지 난사 · 경지명합 · 본유무작의 참된 부처이시며, 명자(名字) 범부의 당체요 본인묘(本因妙)의 교주이시다.
釈迦如来・五百塵点劫の当初・凡夫にて御坐せし時我が身は地水火風空なりと知しめして即座に悟を開き給いき
석가여래가 오백진점겁의 당초에 범부로 계셨을 때, 내 몸은 지 · 수 · 화 · 풍 · 공이라고 아시고 즉석에서 깨달음을 여셨느니라.
강의는 이 문장을 이렇게 푼다. 구원이므로 「오백진점」이라 하고, 원초이므로 「당초」라 한다. 「안다(知)」는 한 글자는 본지 난사의 지묘(智妙)요, 「내 몸」 등은 본지 난사의 경묘(境妙)다. 이 경과 지가 명합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므로 즉석에서 깨달음을 열어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이 자수용신의 색법(色法)인 경묘도 일념삼천의 남묘호렌게쿄다. 곧 석존의 오대(五大)가 바로 십법계의 오대다. 지옥계에서 불계에 이르는 십법계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구성 요소인 오대종(五大種)은 하나다.
五行とは地水火風空なり五大種とも五薀とも五戒とも五常とも五方とも五智とも五時とも云う、只一物・経経の異説なり内典・外典・名目の異名なり、今経に之を開して一切衆生の心中の五仏性・五智の如来の種子と説けり是則ち妙法蓮華経の五字なり、此の五字を以て人身の体を造るなり本有常住なり
오행이란 지 · 수 · 화 · 풍 · 공이니, 오대종이라고도 오온이라고도 오계라고도 오상이라고도 오방이라고도 오지라고도 오시라고도 하느니라. 다만 한 가지 것이며 경마다의 다른 설이요, 내전 · 외전의 이름의 다른 호칭이니라. 이 경에서는 이것을 열어 일체중생의 마음속의 오불성, 오지여래의 종자라고 설했으니, 이것이 곧 묘법연화경의 오자이니라. 이 오자로 사람 몸의 체를 만드니 본유상주이니라.
또 이 자수용신의 심법(心法)인 지묘도 일념삼천의 남묘호렌게쿄다.
至理は名無し聖人理を観じて万物に名を付くる時・因果倶時・不思議の一法之れ有り之を名けて妙法蓮華と為す此の妙法蓮華の一法に十界三千の諸法を具足して闕減無し
지극한 이치에는 이름이 없느니라. 성인이 이치를 관하여 만물에 이름을 붙일 때, 인과구시 · 부사의의 한 법이 있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묘법연화라 하느니라. 이 묘법연화의 한 법에 십계 삼천의 제법을 구족하여 빠짐이 없느니라.
이 문장의 「인과구시 · 부사의의 한 법」은 자수용신의 일념의 심법이므로 「한 법」이라 한다. 인과구시이므로 「연화」라 이름하고, 부사의의 한 법이므로 「묘법」이라 이름한다. 이 묘법연화경의 일념의 심법에 십계 삼천의 제법이 갖추어져 있으니, 자수용신의 묘심 · 묘지가 곧 일념삼천의 남묘호렌게쿄라는 것이다.
경지명합과 인과
이 무시(無始)의 색심, 곧 묘경과 묘지가 경지명합하는 곳에 인과가 있다. 그러므로 천태대사는 「경과 지가 명합하면 곧 인과가 있다. 경을 비추어 아직 다하지 못함을 인이라 하고, 근원을 다함을 과라 한다」고 했다. 「경을 비추어 아직 다하지 못한다」는 자신의 지혜가 아직 객관 세계를 다 꿰뚫어 보지 못한 상태로, 하종가(下種家)의 본인묘 · 구계다. 「근원을 다한다」는 지혜가 객관 세계를 다 꿰뚫는 것으로, 하종가의 본과묘 · 불계다. 이 본인 · 본과는 찰나의 시종이요 일념의 인과이며, 참된 십계호구 · 백계천여 · 일념삼천의 남묘호렌게쿄다. 이처럼 본지 난사의 경지명합, 본유무작의 사의 일념삼천인 남묘호렌게쿄를 증득한 것을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라 이름한다.
이때 법을 찾으면 사람 밖에 따로 법이 없고 사람의 전체가 곧 법이다. 이때 사람을 찾으면 법 밖에 따로 사람이 없고 법의 전체가 곧 사람이다. 이미 경지명합해 인법일체이므로 사의 일념삼천이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자수용신 즉 일념삼천」이라 하셨고, 전교대사는 「일념삼천 즉 자수용신」이라 했다. 이것이 지금 여기서 설해 밝히려는 본존이며, 그러므로 사의 일념삼천의 본존이라 한다.
대만다라의 도현과 수지의 공덕
이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 말법에 출현해 니치렌 대성인으로 나타나셨지만, 「가까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雖近而不見)」고 하듯 누구도 자수용신 즉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므로 모두 본존에 미혹해 있다. 본존에 미혹하므로 자신의 색심에 미혹하고, 자신의 색심에 미혹하므로 생사를 떠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본불이신 대성인은 대자비를 일으켜, 대성인이 증득하신 경지 전체를 한 폭의 대만다라에 도현해 말법 유치의 일체중생에게 주셨다고 강의는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이 본존을 믿고 다른 일을 섞지 않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면,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해도 저절로 자수용신 즉 일념삼천의 본존을 알게 된다. 본존을 알게 되면 자신의 색심 전체가 사의 일념삼천의 본존임을 알게 된다. 비유하면 젖먹이가 젖의 맛을 알지 못해도 저절로 그 몸이 자라고, 명의의 양약은 그 이치를 몰라도 먹으면 저절로 병이 낫는 것과 같다. 이것이 본존의 불력 · 법력이 나타내는 공덕이니, 결코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강의는 맺는다.
별석 4 — 본존: 그 명의
「본존」이라는 이름은 외도에도 내도에도, 권교에도 실교에도, 적문에도 본문에도 통한다. 그러므로 모든 종파가 저마다 주사친을 본존으로 삼는다.
夫れ一切衆生の尊敬すべき者三あり所謂主師親これなり
무릇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이른바 주 · 사 · 친이 이것이니라.
이처럼 각 종파에서 「근본으로 삼아 존경하는 것」을 본존이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각 종파가 본존을 세우지만 그 당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유교에서는 삼황오제를 본존으로 하고, 신을 본존으로 하는 종교도 있으며, 여우 · 뱀 같은 짐승을 본존으로 하는 것도 있다. 불교에서는 구사 · 성실 · 율종과 선종 등은 삼장교 · 열응신의 소석가(小釋迦)를 본존으로 한다. 법상 · 삼론의 두 종은 통교의 승응신 · 대석가를 본존으로 한다. 정토종은 아미타불을, 화엄종은 노사나 보신을, 진언종은 대일여래를 본존으로 한다. 혹은 홍법대사처럼 조사라 해서 본존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천태대사는 지관의 사종삼매 때에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별시(別時)의 일념삼천 때에는 남악(南岳)이 전한 십일면관음을 본존으로 했으며, 바로 법화삼매 가운데에서는 다만 법화경 한 부를 본존으로 정했다. 전교대사는 적문 계단에 사교 개회(開會)의 적문 교주 석존을 본존으로 했다. 근본중당의 본존은 약사여래인데 여기에는 여러 상전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각 종파에 많은 본존이 있지만, 모두 근본으로 삼아 존경하는 것이 곧 본존이다. 대성인의 불법도 그러하다. 문저 심비의 대법 · 본지 난사의 경지명합 · 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 · 본유무작의 사의 일념삼천인 남묘호렌게쿄를 근본으로 삼아 존경하고 이것을 본존이라 이름한다. 이것은 시방삼세 제불의 본존이며 말법 하종의 주사친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의는 「본존문답초」의 앞 문장(365쪽)을 다시 길게 인용한다. 그 뒷부분은 이렇게 이어진다.
疑つて云く天台大師の摩訶止観の第二の四種三昧の御本尊は阿弥陀仏なり、不空三蔵の法華経の観智の儀軌は釈迦多宝を以て法華経の本尊とせり、汝何ぞ此等の義に相違するや
의심하여 묻기를, 천태대사 『마하지관』 제2권의 사종삼매의 본존은 아미타불이며, 불공삼장의 『법화경 관지의궤』는 석가 · 다보를 법화경의 본존으로 삼았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런 뜻과 어긋나는가.
대성인은 이것은 사사로운 뜻이 아니라 위에 든 경문과 천태대사의 해석이라고 답하신다. 『마하지관』 사종삼매의 본존이 아미타불이라는 것은 상좌 · 상행 · 비행비좌의 세 삼매의 본존이 아미타불이라는 것으로, 『문수문경』 · 『반주삼매경』 · 『청관음경』 등에 의한 것이며 이것은 이전 제경 가운데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은 경이다. 반행반좌삼매에는 둘이 있으니, 하나는 『방등경』의 칠불 · 팔보살 등을 본존으로 하는 것으로 그 경에 의한 것이고, 둘은 법화경의 석가 · 다보 등을 모시지만 법화삼매로 헤아리면 법화경을 본존으로 해야 한다. 불공삼장의 법화의궤는 보탑품의 문장에 의한 것으로 법화경의 교주를 본존으로 한 것이니 법화경의 정의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맺으신다.
上に挙ぐる所の本尊は釈迦・多宝・十方の諸仏の御本尊・法華経の行者の正意なり
위에 든 본존은 석가 · 다보 · 시방 제불의 본존이며, 법화경 행자의 정의이니라.
인법의 본존과 여러 해석
이 본존에는 사람과 법이 있다. 사람은 곧 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이요, 법은 곧 사의 일념삼천의 대만다라다. 사람에 즉해 이것이 법이므로 사의 일념삼천의 대만다라를 주사친으로 하고, 법에 즉해 이것이 사람이므로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인 니치렌 대성인을 주사친으로 한다. 사람과 법의 이름은 다르지만 그 체는 늘 하나다. 이것이 말법 우리의 하종의 주사친 삼덕이다. 그런데 일본의 여러 문류는 자신의 주사친을 알지 못하고 재세 탈익의 삼덕에 집착해, 남의 주사친을 자기의 주사친으로 삼고 도리어 자기의 주사친을 깎아내리고 있다고 강의는 탄식한다.
본존이라는 이름에 대한 다른 해석도 강의는 소개한다. 『몽초』는 「이 본존은 본유의 존상이므로 본존이라 한다」고 하고, 『충초』는 「본문 사구(事具) 삼천의 존경이므로 본존이라 한다」고 하며, 『니치가초』는 「본이란 본지요, 존이란 적불의 사려가 미치지 못하는 무시 색심 묘경 묘지의 존체이므로 본존이라 한다」고 한다. 강의는 이 여러 뜻이 모두 일부분의 뜻이며, 바른 뜻은 앞에 보인 그대로라고 평한다.
총결 — 제호에 담긴 다섯 뜻
이 어서의 제호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해석을 간추려 다섯 가지로 보인다.
-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
- 정상미홍 · 말법홍통
- 관심 =
- 본문의 제목
- 본존 =
- 본문의 본존 (그 머무는 곳 = 본문의 계단)
- 관심 =
- 구계
- 본존 =
- 불계
- 관심본존 =
- 십계호구 · 사의 일념삼천
- 본존 =
- 경묘
- 신심 =
- 지묘
- 구창 =
- 행묘
- 믿고 부르는 우리 =
- 위묘
- 십계 분명 =
- 법
- 경지명합 =
- 묘
- 일념의 인과 =
- 연화
- 본유상주 =
- 경
- 始 =
- 불력
- 본존 =
- 법력
- 관심 =
- 신력 · 행력
하나, 삼대비법을 담는다
「여래멸후 오오백세에 처음 넓힌다」는 정법 · 상법에는 넓히지 않고 말법에 넓힌다(正像未弘 · 末法弘通)는 뜻이다. 「관심」 두 글자는 제목이다. 왜냐하면 본문의 제목이란 다만 본문의 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것이며, 지금의 관심도 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뜻이니 관심이 곧 제목이기 때문이다. 「본존」 두 글자는 바로 본문의 본존이며, 그 본존이 계시는 곳은 본문의 계단이다. 그러므로 이 어서의 제호는 정법 · 상법에 넓히지 않은 말법의 삼대비법이다.
둘, 사의 일념삼천을 담는다
「여래멸후 오오백세에 처음 넓힌다」는 말법 홍통의 처음이요, 「관심본존」은 홍통하는 사의 일념삼천이다. 「관심」 두 글자는 우리 중생이 능히 행하는 뜻이니 구계(九界)요, 「본존」 두 글자는 일념삼천 즉 자수용신의 불계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본존을 믿으면 본존 전체가 곧 우리 기심이니 불계 즉 구계다. 그러므로 「관심본존」 네 글자는 곧 십계호구 · 백계천여 · 사의 일념삼천이다. 그러므로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초」는 또한 말법 홍통의 사의 일념삼천이다.
셋, 본인의 사묘를 담는다
「여래멸후 오오백세」는 말법 하종의 처음이다. 「관심본존」은 곧 본인묘이며, 이 본인묘에 다시 경(境) · 지(智) · 행(行) · 위(位)의 사묘(四妙)가 갖추어져 있다. 「본존」은 경묘(境妙)다. 「관심」은 우리의 신심과 구창인데, 신심은 지묘(智妙)요 구창은 행묘(行妙)이며, 이것을 믿고 부르는 우리는 이즉 단망의 위묘(位妙)다. 이 사묘를 합해 종가(種家)의 본인묘라 이름한다. 사묘의 이름은 같아도 탈가(脫家)의 본인묘와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그러므로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초」는 말법 하종의 본인묘초다.
넷, 사행의 제목을 담는다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는 말법 사행의 처음이요, 「관심본존」은 사행의 제목이다. 관심은 능히 닦는 구계요, 본존은 닦아지는 불계이니, 십계 · 십여가 분명해 「법」 자에 해당한다. 이처럼 구계와 불계가 감응도교하고 능수(能修)와 소수(所修)가 경지명합해, 그 깊은 경계는 말로 다할 수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으니(言語道斷 · 心行所滅) 「묘」 자에 해당한다. 또 신심은 제목을 부르는 처음이므로 본인묘요, 제목을 부르는 것은 신심의 끝이므로 본과묘다. 이것이 찰나의 시종이요 일념의 인과로서 「연화」에 해당하며, 이 묘법연화경은 본유상주이므로 「경」 자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초」는 말법 사행의 제목초다.
다섯, 결정작불의 뜻을 담는다
여래멸후 오오백세에 「처음 넓힌다」는 곧 말법 하종의 교주 · 본지 자행의 참된 부처 · 최극무상의 불력이다. 「본존」은 곧 구원원초 자증의 본법 · 존무과상(尊無過上)의 법력이다. 「관심」은 우리 중생이 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뜻이니 신력 · 행력이다. 신력 · 행력 · 불력 · 법력은 결정코 성불하는 뜻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초」는 「어아멸도후 응수지차경 시인어불도 결정무유의초(於我滅度後 應受持此經 是人於佛道 決定無有疑抄)」라고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력품의 「내가 멸도한 뒤에 마땅히 이 경을 수지하라. 이 사람은 불도에 결정코 의심이 없으리라」는 게송이 바로 이 어서의 제목이라는 뜻이다.
본존을 가려 신행하라
봉황은 나무를 골라 깃들고 현인은 왕을 골라 섬긴다고 한다. 불법을 배우는 사람이 어찌 본존을 고르지 않고 신행할 수 있겠는가. 바른 본존이 아니면 아무리 신력 · 행력을 다해도 불종(佛種)을 이룰 수 없다. 본초를 잘 받들어 법화경 문상 · 탈익 · 교상의 본존을 가려내고, 하종 관심의 본존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강의는 말한다. 이 본존은 삼세 제불의 은사요, 팔만법장의 간요요, 바른 것 가운데 바른 경계(正中の正境)요, 묘한 것 가운데 묘한 경계다. 그러므로 이 본존을 한 생각이라도 믿고 이해하는 공덕은 오십전전(五十展轉)의 공덕을 넘어서며, 「묘법의 경력으로 즉신성불한다」고 하는 것이다.
말법의 오늘 불도를 수행하려는 사람은 마땅히 신력 · 행력의 관심을 다해야 한다. 지혜제일의 제자라 불린 사리불조차 믿음으로써 득도했다(以信得入). 하물며 말대의 어리석은 우리는 신심 없이는 결코 성불 득도할 수 없다. 강의는 상법의 지자로 우러름받은 천태대사조차 날마다 제목을 만 번씩 불렀다는 전승을 들며, 어찌 말대의 우리가 제목을 부르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다행히 사람의 몸을 받았는데 금생을 헛되이 마친다면 만겁이 지나도 다시 사람의 몸을 받기 어렵다. 일생을 헛되이 보내 영겁에 뉘우치지 말라 — 이것이 제호 강의의 맺음말이다.
본조 사문
제호 아래에 대성인은 「본조사문 니치렌 찬(本朝沙門日蓮撰)」이라고 지은이를 밝히셨다. 「본조(本朝)」는 일본국을 말하고, 「사문(沙門)」은 출가해 불도를 닦는 사람의 통칭이다. 사문은 상문(桑門)이라고도 하며 「근식(勤息)」이라고 풀이한다. 선법을 부지런히 닦고 악법을 그친다는 뜻이다.
강의는 대성인이 특별히 「본조 사문」이라고 쓰신 까닭을, 일본국이야말로 민중을 구하는 본존이 출현하는 곳이며, 그 일이 불도를 닦는 사문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뜻을 담으신 것이라고 본다. 개목초에서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고 맹세하신 대성인이, 법의 본존을 밝히는 글에 「본조의 사문」이라고 서명하신 것이다.
「日」 자의 뜻
「日」 자에는 겹겹의 구전이 있다고 강의는 말한다. 석존의 씨족은 「일종(日種)」이라 불렸고 석존은 「일종 태자」라고도 했다. 또 「혜일대성존(慧日大聖尊)」이라고도 불렸는데, 대성존이란 곧 대성인이라는 뜻이다. 「유아일인(唯我一人)」이라 하든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하든 같은 뜻이며, 「존(尊)」이란 사람을 가리킨다. 또 본화 지용보살을 신력품은 「해와 달의 광명이 모든 어둠을 없애듯이, 이 사람은 세간에서 행하여 능히 중생의 어둠을 없앤다」고 설했다. 이것은 본화의 대보살을 해와 달에 비유한 것이다. 그 지용보살이 출현하는 나라의 이름은 일본이고, 그 일본국의 주신을 「일신(日神)」이라 부르며, 더구나 본문의 계단이 건립될 땅을 「대일연화산(大日蓮華山)」이라 한다. 모두 「日」 자를 쓴 것은 자연의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강의는 말한다.
이처럼 문저하종의 교주이시므로 「니치렌(日蓮)」이라 이름하셨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 깊은 뜻에 대해 다음 어서들을 참조하라고 한다.
摩耶夫人は日をはらむとゆめにみて悉達太子をうませ給う、かるがゆへに仏のわらわなをば日種という、日本国と申すは天照太神の日天にてましますゆへなり
마야 부인은 해를 잉태하는 꿈을 꾸고 실달 태자를 낳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의 어릴 적 이름을 일종이라 하느니라. 일본국이라 하는 것은 덴쇼다이진이 일천(日天)이시기 때문이니라.
富士は郡名なり実名をば大日蓮華山と云うなり、我中道を修行する故に是くの如く国をば日本と云い神をば日神と申し仏の童名をば日種太子と申し予が童名をば善日・仮名は是生・実名は即ち日蓮なり
후지는 군의 이름이요, 참이름은 대일연화산이라 하느니라. 내가 중도를 수행하므로 이와 같이 나라를 일본이라 하고, 신을 일신이라 하며, 부처님의 어릴 적 이름을 일종 태자라 하고, 나의 어릴 적 이름은 젠니치, 가명은 제쇼, 실명은 곧 니치렌이니라.
久遠元始の天上天下・唯我独尊は日蓮是なり、久遠は本・今日は迹なり、三世常住の日蓮は名字の利生なり
구원원시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니치렌이 이것이니라. 구원은 본이요 금일은 적이니라. 삼세상주의 니치렌은 명자의 이익이니라.
「蓮」 자의 뜻
「蓮」 자에는 진흙에서 나되 진흙에 물들지 않는 덕, 종자를 잃지 않는 덕, 인과구시(因果俱時)의 덕, 그 밖에 십팔원만(十八圓滿) 등 갖가지 깊은 뜻이 있다. 또 본화 지용보살을 종지용출품은 「연꽃이 물에 있는 것과 같다(如蓮華在水)」고 설했고, 더구나 홍통하시는 법은 묘법연화경이다. 강의는 이 깊은 뜻을 여기서 다 설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다음 어서를 함께 읽으라고 권한다.
「당체의초」는 전체의 대지가 연화의 당체와 비유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어서다. 「연화」가 비유(譬喩蓮華)인가 당체(當體蓮華)인가를 묻고, 묘법연화경이 곧 우리 생명의 당체라는 것을 밝힌다. 「십팔원만초」는 그 첫머리에 이렇게 묻고 답한다.
問うて云く十八円満の法門の出処如何、答えて云く源・蓮の一字より起れるなり、問うて云く此の事所釈に之を見たりや、答えて云く伝教大師の修禅寺相伝の日記に之在り此法門は当世天台宗の奥義なり秘すべし秘すべし
묻기를, 십팔원만의 법문의 출처는 어떠한가. 답하기를, 근원은 연(蓮) 한 글자에서 일어났느니라. 묻기를, 이 일을 해석에서 보았는가. 답하기를, 전교대사의 수선사 상전 일기에 있느니라. 이 법문은 지금 세상 천태종의 오의이니 감추고 감추어라.
이어서 이 어서는 십팔원만에 대해 자세히 설한다.
혜일대성존과 주사친 삼덕
「혜일대성존」은 부처의 통호로, 방편품에 「혜일대성존께서 오랫동안 이 법을 설하신다」고 나온다. 그러므로 「니치렌 대성인」이라고 부르는 이름은 「혜일대성존」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고 강의는 말한다. 대성인은 스스로 여러 어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当世には日本第一の大人なりと申すなり
지금 세상에서는 일본 제일의 대인이라 하느니라.
日蓮は一閻浮提第一の聖人なり
니치렌은 일염부제 제일의 성인이니라.
今日本国の高僧等も南無日蓮聖人ととなえんとすとも南無計りにてやあらんずらん
지금 일본국의 고승들도 「나무 니치렌 성인」이라고 부르려 해도 「나무」라고만 하고 말리라.
또 「日」 자는 주사친 삼덕을 나타낸다. 장안대사는 『열반경회소』 제2권에서 「日 자에 세 뜻이 있다. 첫째, 높고 둥글게 밝은 것은 주(主)의 덕에 비유하고, 만물을 자라게 하는 것은 친(親)의 덕에 비유하며, 환히 비추어 어둠을 없애는 것은 사(師)의 덕에 비유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여러 어서에서 대성인이 말법 지금의 주사친 삼덕을 갖추신 본불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또 「日」 자는 유아독존의 뜻을 나타낸다. 『운회(韻會)』에 「통론(通論)에 이르기를 하늘에 두 해가 없으므로 글자에서 …… 하나를 日로 삼는다」 하였고, 경에 「세상에 두 부처가 없고 나라에 두 임금이 없으며, 한 부처의 경계에 두 존귀한 이가 없다」고 했다. 「현불미래기」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四天下の中に全く二の日無し四海の内豈両主有らんや
사천하 가운데 결코 두 해가 없으니, 사해 안에 어찌 두 임금이 있으리오.
「백육개초」의 「구원원시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니치렌이 이것이니라」(863쪽)도 같은 뜻이다. 이렇게 보면 「日」 자가 나타내는 대성인의 이름은 혜일대성존과 같은 호이며, 주사친 삼덕을 갖춘 구원원초의 유아독존이시다. 그러므로 문저하종의 교주이시며 말법 지금의 사람의 본존이심이 분명하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상행보살의 재탄과 구원원초 자수용신
그런데 니치렌의 이름을 앞세운 일본 각지의 여러 문류는 이 뜻을 모르고, 혹은 석존을 불보(佛寶)로 삼고 대성인을 승보(僧寶)로 낮추며, 혹은 「니치렌 대보살」로 낮추어 본존에 미혹해 있다고 강의는 비판한다.
구원원초에는 자수용보신이라 부르고, 영취산에서는 상행보살이라 부르며, 말법에는 니치렌 대성인이라 부르지만, 이름은 달라도 한 몸의 이익(利益)이시다. 그러므로 「백육개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本地自受用報身の垂迹上行菩薩の再誕・本門の大師日蓮
본지 자수용보신의 수적인 상행보살의 재탄, 본문의 대사 니치렌.
또 닛코상인의 제자인 산미 니치준(三位日順)은 『전요초(詮要抄)』에서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란 렌소(蓮祖) 성인의 일이라고 정해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여러 문류의 학자는 다만 대성인이 상행보살의 재탄이심만 알고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심은 아직 모른다. 게다가 도리어 대성인의 정의를 깨뜨리려 하니, 묘락대사가 다음과 같이 말한 꾸짖음을 받을 것이라고 강의는 말한다.
묘락대사 『법화현의석첨』 권8 — 학자가 법을 깨뜨리고 사람을 헐뜯는 것은 참으로 체는 같고 이름은 다름(體同名異)을 모르기 때문이다. 천주(天主)의 천 가지 이름을 모르고 교시가(憍尸迦)는 제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넓히는 사람이 여기서 뜻을 잃으면, 아마도 법을 넓히고 남을 이롭게 한 공이 법을 비방하고 사람을 헐뜯은 허물을 메우지 못하리라.
아무리 훌륭한 법을 설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고 민중을 구하려 애써도,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 곧 니치렌 대성인이심을 모르고 정법의 정의를 비난한다면, 법을 넓히고 남을 이롭게 한 공은 없고 그 방법의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의는 말한다.
이 뜻을 모르는 사람은 「대성인은 상행보살의 재탄이신데 어찌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라 하는가」 하고 의심할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렇게 답한다. 천태대사는 약왕보살의 재탄이요 전교대사는 그 후신이지만, 산문(山門, 히에이산)의 구전에서는 천태 · 전교를 교주 석존이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구원원초 자수용신의 수적이 상행의 재탄이요, 상행보살의 재탄이 니치렌 대성인이시므로,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 곧 니치렌 대성인이시라는 것이다.
제호 아래의 서명에 대해서는, 이 사이트의 니치렌 대성인 인물 페이지가 이름과 생애를 따로 다룬다. 「연화」의 비유와 당체에 대해서는 불교 교학 六 남묘호렌게쿄를 함께 읽으면 좋다.
31장과 송장, 그리고 여덟 편
관심의 본존초 본문은 문답이 이어지는 하나의 긴 글이지만, 창가교학연구실의 강의는 이것을 31장으로 나누어 풀었다. 이 사이트는 그 31장과 송장을 논지의 마디에 따라 여덟 편으로 묶어 읽는다(2026-10-02 결정). 첫 편이 지금 읽고 있는 서강이며, 이어지는 일곱 편이 본론이다. 각 편의 범위와 요지는 다음과 같다.
논리의 흐름 — 출처에서 총결까지
31장을 한 줄로 이어 보면 본초의 논리는 하나의 큰 물음을 향해 좁혀 들어간다. 그 물음은 「말법의 범부는 무엇을 받아 지니고 어떻게 성불하는가」이다.
먼저 제1편에서 대성인은 천태의 일념삼천을 출발점으로 삼으신다. 일념삼천은 범부의 한 생각에 삼천의 제법이 갖추어져 있다는, 천태가 『마하지관』 제5권에 이르러 처음 밝힌 극설이다. 대성인은 그것이 『현의』 · 『문구』에도 지관의 앞 네 권에도 없다는 것을 굳이 확인하신다. 일념삼천이 「종궁구경의 극설」임을 분명히 해 두어야, 뒤에서 그 일념삼천이 「사(事)」로서 무엇인가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정과 비정에 걸친다는 제4장의 논의는 뒤의 본존론(목화이상 · 초목성불)과 이어진다.
제2편은 일념삼천을 「관심」의 문제로 바꾼다. 관심이란 기심을 관해 십법계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범부가 자기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육도의 감정이고, 사성(四聖), 특히 불계는 보이지 않는다. 대성인은 명경의 비유로, 거울 없이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듯 경문이라는 거울 없이는 기심의 십계를 볼 수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 「다만 불계만은 나타내기 어렵다」는 물음에 이르러 논의는 가장 깊은 곳에 닿는다.
제3편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교주의 난과 경론의 난이라는 두 가지 큰 반론을 세운 뒤 하나씩 풀어, 마침내 「수지즉관심」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범부가 스스로 관법을 닦아 불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석존의 인행과 과덕이 모두 갖추어진 묘법 오자를 수지하면 그 공덕이 저절로 물려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관심」은 「본존」과 떼어 놓을 수 없게 된다. 무엇을 수지하는가가 곧 관심의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제4편과 제5편은 그 수지의 대상, 곧 본존을 밝힌다. 제4편은 얕은 데서 깊은 데로 세 가지 본존을 견주고, 제5편은 오중삼단이라는 교판으로 그 결론을 엄밀히 확인한다.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은 똑같이 순원이나, 저것은 탈이요 이것은 종이다」라는 한 문장이 이 두 편의 귀결이다.
제6편과 제7편은 그 본존을 누가 언제 넓히는가를 밝힌다. 본문의 서 · 정 · 유통의 경문으로 부촉의 대상이 지용보살임을 논증하고(제6편), 그 지용보살이 출현하는 때가 바로 지금 말법의 처음이며 그때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서리라고 예언하신다(제7편).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부처가 대자비로 오자 안에 일념삼천의 구슬을 싸서 목에 걸어 주신다고 맺으신다. 제1장의 일념삼천이 제31장의 「구슬」로 돌아오는 것이다. 첫머리의 이(理)의 일념삼천이 끝머리에서 범부가 몸에 지닐 수 있는 사(事)의 일념삼천이 되어 돌아오는 이 구조가 관심의 본존초 전체를 꿰뚫는 큰 흐름이다.
본초의 큰 흐름 — 일념삼천의 출처(이의 일념삼천) → 관심(기심의 십계) → 수지즉관심(묘법 오자를 수지함) → 본존(문저하종의 본존) → 오중삼단(종탈의 판정) → 지용보살에의 부촉 → 말법 출현과 총결(오자에 싼 일념삼천의 구슬). 서강이 「제호에 이미 이 모든 것이 담겼다」고 본 것은 이 흐름을 한 줄로 압축한 것이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이기 때문이다.
이 사이트에서 읽는 법
각 편은 장마다 「본문 → 풀이 → 어구 풀이 → 해설」의 순서로 되어 있다. 처음 읽는 독자는 각 장의 본문 풀이와 해설의 첫 절만 이어 읽어도 논리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깊이 공부하려는 독자는 어구 풀이에서 천태 삼대부와 묘락의 해석이 원래 어떤 맥락에 있었는지를 함께 확인하면 좋다.
관심의 본존초는 혼자 서 있는 글이 아니다. 같은 사도 시절의 「개목초」(인본존 개현의 서), 이 어서를 바르게 읽는 법을 일러 준 「관심의 본존득의초」, 본존을 다시 문답으로 정리한 「본존문답초」, 삼대비법을 정면으로 다룬 「삼대비법품승사」와 함께 읽을 때 그 뜻이 더 분명해진다. 일념삼천 · 구원실성 · 남묘호렌게쿄 같은 기초 교리는 불교 교학 페이지(五 일념삼천 · 四 구원실성 · 六 남묘호렌게쿄)와 인물탐구의 천태대사 · 도키조닌 페이지가 이어 준다.
이 편을 맺으며
서강은 관심의 본존초를 펼치기 전에 세 가지를 확인했다. 첫째는 이 어서가 놓인 자리다. 문영 8년의 다쓰노쿠치 법난을 경계로 대성인은 발적현본하셨고, 목숨이 바람 앞의 등불 같던 사도의 설원에서 인본존 개현의 서 「개목초」를, 이어 이치노사와에서 법본존 개현의 서 「관심의 본존초」를 쓰셨다. 대성인은 그것을 「몸에 해당하는 대사」라 하시며 도키조닌에게 맡기셨고, 서너 사람이 나란히 앉아 읽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 신중함은 이 글이 멸후 만년을 위한 글이었음을 거꾸로 보여 준다.
둘째는 이 어서가 말하는 것이다. 일념삼천의 출처에서 출발해 관심 · 수지즉관심 · 본존 · 오중삼단 · 지용보살의 부촉 · 말법 출현으로 나아가는 4단의 논지는, 「말법의 범부는 무엇을 받아 지니고 어떻게 성불하는가」라는 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강의는 그 원의를 「재세 문상 탈익의 본존을 가려내고 문저하종 관심의 본존을 밝힌 것」으로 보았고, 개목초 · 본존초 · 당체의초를 교 · 행 · 증에 배대해 본초를 「행의 중」으로 자리매김했다.
셋째는 제호다.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초」는 시 · 응 · 기 · 법의 사의를 갖추어 「여래멸후 오오백세에 처음 넓히는 관심의 본존초」로 읽어야 하며, 그 안에는 삼대비법, 사의 일념삼천, 본인의 사묘, 사행의 제목, 결정작불의 뜻이 모두 담겨 있다. 니치칸 상인이 이 제호를 「어아멸도후 응수지차경 시인어불도 결정무유의초」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이 어서가 결국 믿고 부르는 사람의 성불을 보증하는 글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본조사문 니치렌」이라는 서명은 그 본존을 처음 넓히는 분이 누구인가를 말없이 밝힌다.
다음 제1편 「일념삼천의 출처」에서는 본초의 첫 문장, 『마하지관』 제5권의 「무릇 일심에 십법계를 갖춘다」로 들어간다. 대성인이 왜 하필 이 문장으로 법본존 개현의 서를 시작하셨는지, 그리고 그 일념삼천이 『현의』 · 『문구』에는 왜 「이름」으로조차 나오지 않는지를 묘락대사의 해석과 함께 따라가 본다.
참고 문헌
원전
- 「관심의 본존초」 · 「관심의 본존초송장」,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238–255쪽 (창가학회판)
- 「관심의 본존득의초」 · 「개목초」 · 「본존문답초」 · 「보은초」 · 「선시초」 · 「법화취요초」 · 「당체의초」 · 「삼대비법품승사」 · 「본인묘초」 · 「백육개초」 등, 같은 어서전집
-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 같은 어서전집 1601–1609쪽
- 『묘법연화경』, 대정장 T9 no.262 / 『무량의경』 T9 no.276 / 『대반열반경』 T12 no.374
- 천태대사 『마하지관』 T46 no.1911 (일념삼천 문 T46, 54a) / 『법화현의』 T33 no.1716 / 『법화문구』 T34 no.1718
- 묘락대사 『지관보행전홍결』 T46 no.1912 / 『법화현의석첨』 T33 no.1717
- 니치칸 상인 「관심본존초 문단」 · 「당체의초 문단」 (강의를 통해 참조)
연구 · 강의
- 창가교학연구실 블로그, 「0238~0255 如来滅後五五百歳始観心本尊抄 序講 1 · 2」
- 창가학회 교학부, 『世界広布の翼を広げて 教学研鑽のために — 観心本尊抄』 제2판, 세이쿄신문사, 2024
- 茂田井教亨, 『観心本尊抄研究序説 — 宗学体系化への試み』, 입정대학 학위논문, 1989
- 庵谷行亨, 「『観心本尊抄』題号における「観心本尊」の意味」, 『法華文化研究』 46, 2020, 11–32쪽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