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겹겹의 금빛 능선과 운해 사이 벼랑 위에 작은 암자 하나와 가는 폭포가 있고, 검은 수면에 산이 비친 금박 수묵화

일념삼천

一念三千천태 『마하지관』 권5 · 「관심본존초」 · 「일념삼천법문」

천태 지의는 『마하지관』 권5에서 이렇게 말한다.

此三千在一念心 若無心而已 介爾有心 即具三千

이 삼천은 한 생각의 마음에 있다. 마음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으면 곧 삼천을 갖춘다.

일념삼천(一念三千) — 한 생각에 삼천이 갖추어져 있다. 여기서 「삼천」은 셀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 모든 것을 가리킨다. 지옥에서 부처까지의 모든 생명의 상태, 그 상태들이 갖는 모든 존재 방식, 그리고 그 생명이 사는 몸과 사회와 국토까지. 그 전부가 지금 일어나는 한 생각 안에 있다.

앞의 네 자리는 이 한 줄을 위해 놓인 돌이었다. 一 십이연기에서 모든 것이 조건에 의지해 일어남을, 二 공·중도에서 그렇게 일어난 것이 공이면서 가이며 둘이 하나인 중도임을, 三 제법실상에서 모든 법이 평등하게 열 가지 如是를 갖춘 실상임을, 四 구원실성에서 그 실상이 시작 없는 부처의 생명이며 부처와 중생과 국토가 함께 상주함을 보았다. 천태는 이 모든 것을 한 생각 안에 거두어들였다.

니치렌 대성인은 이 법문을 「일대의 강골, 일체경의 심수」라 하고, 동시에 「경문의 밑바닥에 잠겨 있다」고 했다. 다섯째 자리의 물음은 이것이다. 천태가 세운 일념삼천은 무엇이며, 대성인은 그것을 어떻게 다시 읽어 범부가 부를 수 있는 한 법으로 바꾸었는가.

삼천은 어떻게 셈해지는가 — 한 생각의 구조

먼저 숫자부터 보자. 대성인은 「일념삼천법문(一念三千法門)」에서 이 셈을 이렇게 풀었다.

十界の衆生・各互に十界を具足す合すれば百界なり … 此の千如是に衆生世間・国土世間・五陰世間を具すれば三千なり

십계의 중생이 저마다 서로 십계를 갖추니 합하면 백계다. … 이 천여시에 중생세간·국토세간·오음세간을 갖추면 삼천이다.

「일념삼천법문」, 413쪽

셈은 세 단계다.

단계셈근거
십계호구십계 × 십계 = 백계법화경 적문의 이승작불, 본문의 구원실성
백계천여백계 × 십여시 = 천여방편품의 제법실상(十如是)
삼천세간천여 × 삼세간 = 삼천『대지도론』의 삼세간
  1. 十界10지옥 ~ 불
  2. 百界× 十界 = 100이승작불 · 구원실성
  3. 千如× 十如 = 1,000방편품 십여시
  4. 三千× 三世間 = 3,000『대지도론』 삼세간
십계 × 십계 × 십여시로 이루어진 천여의 판 세 장이 오음세간·중생세간·국토세간으로 겹쳐 삼천을 이룬다.10 × 10 × 10五陰世間衆生世間國土世間× 3
삼천은 개수가 아니라 차원
도표 1 · 삼천의 셈 — 10 × 10 × 10 × 3

곱셈이라는 형식에 속으면 안 된다. 삼천은 창고에 쌓인 물건의 개수가 아니다. 천태가 말하려는 것은 어떤 한 생명의 한 순간을 잡아도, 그 안에 열 세계 모두의 가능성이 있고(십계호구), 그 가능성 하나하나가 열 가지 존재 방식을 갖추며(십여시), 그것이 몸과 관계와 환경 전체에 걸쳐 드러난다(삼세간) 는 것이다. 곱셈은 그 입체의 차원을 셈하는 방법일 뿐이다.

밤, 솔잎 끝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속에 능선·강·암자·구름·달이 작게 비치고, 둘레로 같은 풍경이 금박과 먹으로 흐릿하게 펼쳐진 금박 수묵화
그림 1 · 한 방울에 비친 산하

이 세 요소는 모두 앞의 자리들에서 이미 나왔다.

그래서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렇게 말한다. 적문만으로는 「참된 일념삼천도 나타나지 않는다」, 본문에 이르러야 「참된 십계호구·백계천여·일념삼천」이 된다(四 7절). 일념삼천은 법화경 전체, 적문과 본문의 합으로만 성립한다.

십계 — 열 가지 생명의 상태

장소에서 상태로

십계(十界) 는 지옥·아귀·축생·수라·인·천·성문·연각·보살·불의 열 세계다. 앞의 여섯을 육도(六道), 뒤의 넷을 사성(四聖)이라 한다.

대성인은 「십법계명인과초(十法界明因果抄)」(1260)에서 여러 경론을 인용해 각 세계에 떨어지는 원인을 하나하나 밝힌다. 그 첫머리는 법화경 법사공덕품의 한 구절, 곧 「지옥의 소리, 축생의 소리, 아귀의 소리, 아수라의 소리 … 성문의 소리, 벽지불의 소리, 보살의 소리, 부처의 소리」다. 이 경문에서 십계는 이미 들리는 것, 곧 지금 이 세계 안에서 울리는 생명의 목소리로 나타난다.

三 11절에서 보았듯, 이전의 경전들은 십계를 서로 떨어진 장소로 설했다. 지옥은 땅 아래, 천상은 하늘 위, 정토는 먼 곳에. 대성인은 「관심본존초」에서 그 십계를 한 사람의 얼굴 안에서 찾는다.

数ば他面を見るに或時は喜び或時は瞋り或時は平に或時は貪り現じ或時は癡現じ或時は諂曲なり、瞋るは地獄・貪るは餓鬼・癡は畜生・諂曲なるは修羅・喜ぶは天・平かなるは人なり

자주 남의 얼굴을 보면, 어떤 때는 기뻐하고 어떤 때는 성내며, 어떤 때는 평온하고 어떤 때는 탐욕이 나타나고, 어떤 때는 어리석음이 나타나고 어떤 때는 아첨한다. 성냄은 지옥, 탐냄은 아귀, 어리석음은 축생, 아첨함은 수라, 기뻐함은 천, 평온함은 인이다.

「관심본존초」, 241쪽

그리고 사성도 사람 안에 있다고 한다.

世間の無常は眼前に有り豈人界に二乗界無からんや、無顧の悪人も猶妻子を慈愛す菩薩界の一分なり、但仏界計り現じ難し … 末代の凡夫出生して法華経を信ずるは人界に仏界を具足する故なり

세간의 무상함은 눈앞에 있으니 어찌 인계에 이승계가 없겠는가. 앞뒤를 돌아보지 않는 악인도 처자는 아끼니 보살계의 일분이다. 다만 불계만은 드러나기 어렵다. … 말대의 범부가 태어나 법화경을 믿는 것은 인계에 불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241쪽
  • 地獄瞋る성냄
  • 餓鬼貪る탐냄
  • 畜生癡어리석음
  • 修羅諂曲아첨
  • 人平か평온
  • 天喜ぶ기쁨
  • 聲聞·緣覺無常を知る무상을 앎
  • 菩薩妻子を慈愛처자를 아낌
  • 佛法華經を信ずる법화경을 믿음現じ難し
출전 — 「관심본존초」 241쪽
도표 2 · 한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십계

이 대목의 논리는 날카롭다. 불계는 「드러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증거가 있다. 이 험한 세상에 태어난 범부가 법화경을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 안에 불계가 있다는 증거다. 불계가 없다면 부처의 가르침을 믿으려는 마음이 일어날 수 없다.

십계는 서로를 갖춘다

십계호구(十界互具) 는 열 세계가 각각 나머지 아홉 세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옥의 생명에도 부처의 생명이 있고, 부처의 생명에도 지옥의 생명이 있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렇게 말한다.

一念三千は十界互具よりことはじまれり

일념삼천은 십계호구에서 비롯되었다.

「개목초」, 189쪽

십계호구가 없으면 성불은 다른 존재가 되는 일이 된다. 지옥의 중생은 지옥의 존재를 버리고 부처라는 다른 존재로 바뀌어야 한다. 이전 경전들의 「구계를 싫어해 끊는(厭離斷九)」 성불관이 이것이다. 「일대성교대의」는 이것을 이렇게 비판한다. 이전 경전들은 십계호구를 밝히지 않았으므로 부처가 되려면 반드시 구계를 싫어하고 악을 멸하고 번뇌를 끊어야 한다고 했으니, 결국 범부가 부처가 된 일은 없었다고.

십계호구가 있으면 성불은 지금의 생명 안에 이미 있는 불계를 여는 일이 된다. 三 14절의 「지옥은 지옥의 모습 그대로」, 四 9절의 「앵매도리 당체를 고치지 않고」가 모두 이 십계호구 위에 서 있다.

이승이 막고 있던 문

그렇다면 왜 십계호구는 법화경에서야 밝혀졌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이 「십법계사(十法界事)」와 「이전이승보살부작불사(爾前二乘菩薩不作佛事)」다. 두 어서의 논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전의 경전들은 이승(성문·연각)을 결코 부처가 될 수 없는 자로 설했다(永不成佛). 그런데 십계가 서로를 갖추려면 이승계에도 불계가 있어야 한다. 이승계에 불계가 없다면, 불계에도 이승계가 없게 되고, 그렇다면 십계는 서로를 갖추지 못한다. 이 한 칸이 빠지면 십계호구 전체가 무너진다. 그래서 이승이 성불하지 못한다면, 보살도 참된 의미에서 성불하지 못한다. 보살의 성불도 십계호구 위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전 경전 — 이승 영불성불
十界\十界

성문·연각의 행과 열이 비어 — 불계도 온전하지 않고, 원이 닫히지 않음

법화경 — 이승작불
十界\十界

열 세계가 저마다 열 세계를 갖춤 — 백계, 원이 닫힘

이승작불은 십계호구라는 원을 닫는 마지막 한 칸
도표 3 · 이승의 한 칸 — 십계호구가 무너지는 곳

四에서 본 「법화진언승렬사」의 말, 「이승을 영불성불로 가려내니 셋 가운데 둘을 버리고 백 가운데 육십여가 득도하지 못하면 부처의 대비가 어찌 되겠는가」가 이것이다. 이승작불은 한 부류의 제자를 구제한 사건이 아니라, 십계호구라는 원을 닫는 마지막 한 칸이었다.

십여시와 삼세간 — 존재의 결과 세계의 층

십여시

三에서 자세히 보았듯, 십여시(十如是) 는 모든 법이 갖추는 열 가지 존재 방식이다. 상·성·체(본체), 역·작(작용), 인·연·과·보(인과), 본말구경등(일관).

대성인은 「일념삼천법문」에서 천태의 풀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只天台の御料簡に十如是と云うは十界なり此の十界は一念より事起り十界の衆生は出来たりけり

천태의 풀이에 따르면 십여시란 십계다. 이 십계는 한 생각에서 일이 일어나, 십계의 중생이 생겨난 것이다.

415쪽

십여시는 십계 각각이 어떻게 있는지를 말한다. 지옥에는 지옥의 상·성·체가 있고, 지옥을 만드는 인·연이 있고, 지옥의 과·보가 있다. 불계에도 불계의 열 가지가 있다. 그리고 십계가 서로를 갖추므로, 지옥 안에 갖추어진 불계도 제 나름의 열 가지를 갖는다. 이렇게 백계가 저마다 열 가지를 갖추어 천여가 된다.

삼세간

세간(世間) 은 「차별」, 곧 저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층이라는 뜻이다. 천태는 『대지도론』에서 세 가지 세간을 가져왔다.

지옥의 생명에게는 지옥의 몸과 마음이 있고, 지옥의 관계가 있고, 지옥의 국토가 있다. 같은 도시, 같은 집에 살아도 지옥의 마음으로 사는 이에게 그곳은 지옥의 국토다. 三 11절의 의정불이(依正不二), 곧 생명(정보)과 환경(의보)이 둘이 아니라는 법문이 여기서 구조를 얻는다. 묘락의 「십계는 반드시 몸과 국토다(十界必身土)」가 바로 이 삼세간이다.

세 겹의 동심원: 안쪽 오음세간(몸·마음), 가운데 중생세간(개인·관계·사회), 바깥 국토세간(환경·자연). 바깥 고리에 풀과 돌 — 마음 없는 것도 포함된다.五陰世間몸 · 마음衆生世間개인 · 관계 · 사회國土世間환경 · 자연十界必身土묘락
依正不二생명(정보)과 환경(의보)은 둘이 아니다
非情도 포함一草一木 各一佛性바깥 고리의 풀과 돌
도표 4 · 삼세간 — 몸·관계·국토의 세 층

「일념삼천법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삼천에 마음 없는 것(非情) 까지 들어간다고 한다.

一草一木・一礫一塵・各一仏性・各一因果・具足縁了

한 풀, 한 나무, 한 조약돌, 한 티끌이 저마다 하나의 불성을 갖고 저마다 하나의 인과를 갖추어 연인·요인을 구족한다.

415쪽

이 구절은 묘락의 『금강비』에서 온 것으로, 三 10절에서 본 무정유성(無情有性) 의 논리다. 국토세간이 삼천에 들어가 있으므로, 일념삼천은 마음 있는 생명만의 법이 아니라 풀과 나무와 돌까지 포함한 세계 전체의 법이 된다. 대성인이 목상과 화상에 개안(開眼)의 의미를 부여하고, 종이와 먹으로 된 어본존을 부처의 당체로 세운 근거가 여기에 있다(「목회이상개안지사」).

천태 — 『마하지관』 권5와 부사의경

법화삼대부 속의 자리

천태 지의(538–597)의 법화경 해석은 세 책으로 정리된다. 경의 제목과 깊은 뜻을 푼 『법화현의』, 경문을 한 구절씩 풀이한 『법화문구』, 그리고 법화경의 가르침을 수행(관법) 으로 옮긴 『마하지관』이다. 이 셋을 법화삼대부라 한다.

일념삼천은 이 가운데 『마하지관』에서, 그것도 열 권 가운데 권5에 이르러서야 처음 나온다. 천태가 강의 말년, 수행의 한가운데에서 제시한 법문이다. 묘락은 이것을 이렇게 평가했다.

故に止観に正しく観法を明かすに至つて並びに三千を以て指南と為す乃ち是れ終窮究竟の極説なり

그러므로 『지관』에서 바로 관법을 밝히는 데 이르러 모두 삼천으로 지침을 삼았으니, 이것이 곧 끝까지 궁구한 궁극의 가르침이다.

『지관보행전홍결』 권5, 「개목초」 등에서 인용
玄義『법화현의』경의 이름 · 깊은 뜻
文句『법화문구』경문 풀이
止觀『마하지관』수행
『마하지관』 열 권
  1. 권1
  2. 권2
  3. 권3
  4. 권4
  5. 권5
  6. 권6
  7. 권7
  8. 권8
  9. 권9
  10. 권10
↑ 一念三千
「終窮究竟の極說」묘락 『지관보행전홍결』
도표 5 · 법화삼대부와 일념삼천의 자리

십경과 십승관법

『마하지관』의 수행 체계는 무엇을 관하는가(십경, 十境)와 어떻게 관하는가(십승관법, 十乘觀法)로 짜여 있다.

십경의 첫째는 음입계경(陰入界境), 곧 지금 이 몸과 마음을 이루는 오음·십이입·십팔계다. 천태는 번뇌, 병, 업, 마, 선정, 견해 같은 특별한 대상보다 먼저, 지금 여기의 평범한 몸과 마음을 관하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오음의 마지막인 식(識), 곧 지금 일어나는 한 생각의 마음을 관의 대상으로 삼는다.

십승관법의 첫째는 관부사의경(觀不思議境), 곧 그 한 생각의 마음이 「불가사의한 경계」임을 관하는 것이다. 일념삼천은 바로 이 관부사의경의 내용으로 설해진다. 가장 뛰어난 수행자(上根)는 이 첫째 관만으로 깨닫고, 그렇지 못한 이들을 위해 나머지 아홉 관(발보리심, 선교안심, 파법편 …)이 차례로 베풀어진다.

十境무엇을 관하는가十乘觀法어떻게 관하는가
陰入界境음입계觀不思議境관부사의경
煩惱번뇌發眞正菩提心발진정보리심
病患병환善巧安心止觀선교안심지관
業相업상破法遍파법편
魔事마사識通塞식통색
禪定선정道品調適도품조적
諸見제견對治助開대치조개
增上慢증상만知次位지차위
二乘이승能安忍능안인
菩薩보살無法愛무법애

陰入界境 — 觀不思議境 : 여기서 일념삼천

뒤의 아홉 관은 차례로 베풀어진다 — 상근은 첫째 관만으로 깨닫는다
도표 6 · 십경과 십승관법

권5의 성립 대목

『마하지관』 권5의 해당 대목은 이렇다.

夫一心具十法界 一法界又具十法界 百法界 一界具三十種世間 百法界即具三千種世間 此三千在一念心 若無心而已 介爾有心 即具三千

무릇 한 마음에 십법계가 갖추어져 있고, 한 법계에 또 십법계가 갖추어져 있으니 백법계다. 한 법계에 삼십 종의 세간이 갖추어져 있으니(십여시 × 삼세간), 백법계에는 곧 삼천 종의 세간이 갖추어져 있다. 이 삼천은 한 생각의 마음에 있다. 마음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으면 곧 삼천을 갖춘다.

「관심본존초」는 이 문장을 첫머리에 인용하며 시작한다.

「介爾(개이)」는 「아주 미미한」이라는 뜻이다. 깊은 선정 속의 청정한 마음이 아니라, 아주 미미한 한 생각, 성냄이든 탐냄이든 지금 막 일어난 평범한 한 생각에 삼천이 갖추어져 있다.

밤, 끝없는 운해와 수많은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 꼭대기 바위에 한 스님이 등을 보이고 작게 좌선하는 금박 수묵화
그림 2 · 화정봉의 선정 — 천태 지의

가로도 세로도 아니다

천태는 곧이어 가장 중요한 단서를 붙인다.

若從一心生一切法者 此則是縱 若心一時含一切法者 此即是橫 縱亦不可 橫亦不可 祇心是一切法 一切法是心 故非縱非橫 非一非異 玄妙深絕 非識所識 非言所言 所以稱為不可思議境

만약 한 마음에서 일체법이 생겨난다고 하면 이것은 세로(縱)다. 만약 마음이 한순간에 일체법을 품는다고 하면 이것은 가로(橫)다. 세로도 옳지 않고 가로도 옳지 않다. 다만 마음이 곧 일체법이고 일체법이 곧 마음이다. 그러므로 세로도 아니고 가로도 아니며, 하나도 아니고 다름도 아니다. 현묘하고 깊이 끊어져 앎으로 알 바가 아니고 말로 말할 바가 아니므로, 불가사의경이라 한다.

이 단서가 일념삼천을 두 가지 흔한 오해로부터 지킨다.

천태는 둘 다 부정한다. 마음이 세계를 만드는 것도, 마음이 세계를 담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곧 세계다(即). 둘째 자리에서 본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즉」이 여기서 「심즉일체법 일체법즉심」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앎으로 알 바가 아니고 말로 말할 바가 아니다」. 二 1절에서 읽은 「일생성불초」의 「마음도 미치지 못하고 말도 미치지 못한다」와 같은 자리다.

心一切法縱 · 세로유심론 — 마음이 세계를 낳는다
心一切法橫 · 가로포함론 — 마음이 세계를 담는다
心即一切法非縱非橫 · 非一非異 · 非縱非橫 · 非一非異即 · 곧마음이 곧 일체법, 일체법이 곧 마음
縱亦不可 橫亦不可 — 앞의 두 칸은 천태가 부정한 읽기
도표 7 · 세로도 가로도 아니다 — 縱·橫·即

화엄의 「마음은 화가와 같다」와의 차이

화엄경에는 이와 비슷해 보이는 구절이 있다.

心如工畫師 畫種種五陰 一切世界中 無法而不造 …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마음은 솜씨 좋은 화가와 같아 갖가지 오음을 그리니, 일체 세계 가운데 짓지 않는 법이 없다. …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

천태도 이 구절을 『마하지관』에서 인용한다. 그렇다면 화엄경에도 일념삼천이 있는가. 앞서 블로그에서 읽은 「창법화제목초」 강의는 이 물음에 분명히 답한다. 화엄경의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은 법화경의 십계호구와 말은 비슷하지만, 그 「마음」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이 없다. 그래서 그 무차별은 추상적 관념에 머물 뿐, 실제로 누가 어떻게 부처가 되는지를 보증하지 못한다. 천태가 화엄의 구절을 쓴 것은 법화경의 입장에서 그것을 끌어와 쓴 것(會入)이지, 화엄경에 일념삼천이 설해져 있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마음이 화가처럼 그린다」는 구절은 그대로 읽으면 세로(縱) 의 구조, 곧 마음이 세계를 만든다는 유심론이다. 천태는 그 구절을 쓰면서 곧바로 「세로도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비슷한 말을 빌려도, 그 말을 다시 읽는 틀이 다르다.

묘락과 그 이후 — 몸과 국토, 그리고 한 생각의 무명

묘락 — 신토(身土)의 일념삼천

묘락 담연은 천태의 일념삼천을 국토까지 밀어붙였다. 『지관보행전홍결』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当に知るべし身土一念の三千なり故に成道の時此の本理に称うて一身一念法界に遍し

마땅히 알라. 몸과 국토가 한 생각의 삼천이다. 그러므로 성도할 때 이 본래의 이치에 맞아, 한 몸 한 생각이 법계에 두루 미친다.

부처가 깨달을 때, 그 깨달음은 부처 한 사람의 마음속 사건이 아니다. 몸과 국토를 포함한 삼천 전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한 사람의 성불이 국토의 변화와 이어진다는 생각, 뒷날 대성인의 「입정안국론」으로 이어지는 의정불이의 실천이 이 구절에 씨앗으로 있다.

「삼천은 한 생각의 무명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성인이 초기 어서 「일념삼천이사(一念三千理事)」에서 모아 둔 천태·묘락의 구절들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三千は一念の無明を出でず

삼천은 한 생각의 무명을 벗어나지 않는다.

「일념삼천이사」, 408쪽 부근

一念の心に於て十界に約せざれば事を収むること徧からず

한 생각의 마음에서 십계에 맞추어 보지 않으면 일을 거두는 것이 두루하지 않다.

삼천이 갖추어진 그 한 생각은 무명의 한 생각, 미혹한 범부의 마음이다. 깨달은 이의 청정한 마음에서만 삼천이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천태 일념삼천의 가장 과감한 점이며, 동시에 뒤의 논쟁의 씨앗이 되었다.

산가와 산외 — 어떤 마음을 관하는가

송나라 때 천태종 안에서 큰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산가(山家)·산외(山外) 논쟁이다. 쟁점은 「일념삼천을 관할 때 그 한 생각은 어떤 마음인가」였다.

山外晤恩 · 源淸 등관의 대상眞心청정한 진심화엄 · 『대승기신론』의 영향「진여가 연을 따라 삼천」
山家四明知禮관의 대상妄心음입계경 — 번뇌에 물든 지금의 마음「무명의 한 생각에 삼천」성구(性具)
「일생성불초」 「선악에 따라 일어나는 염심의 당체」
도표 8 · 산가·산외 논쟁 — 진심관과 망심관

지례가 정통으로 인정되면서, 천태의 일념삼천은 범부의 미혹한 한 생각에 삼천이 갖추어져 있다는 입장으로 자리 잡았다. 三 6절의 성구(性具) 사상, 곧 성품에 선과 악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천태의 특색이 여기서 완성된다. 그리고 이 입장이 그대로 「일생성불초」의 「선악에 따라 일어나는 염심의 당체」로 이어진다.

일본 천태와 본각 사상

일본 천태에서는 이 흐름이 더 나아가 본각 사상(本覺思想) 을 낳았다. 중생은 본래 깨달아 있으며(本覺), 현상의 모습 그대로가 깨달음이라는 사상이다. 대성인의 여러 어서, 특히 초기 어서에 「본각의 여래」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것은 이 시대의 언어를 쓴 것이다. 다만 본각 사상이 「본래 깨달아 있으니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흐를 때, 대성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성인에게 본각은 믿고 부르고 닦아서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 차이가 다음 절의 주제다.

천태 일념삼천의 한계 — 이(理)의 일념삼천

천태의 일념삼천은 불교 사상사의 한 정점이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것을 이(理)의 일념삼천이라 불렀다. 왜인가.

관법이라는 문

일념삼천은 『마하지관』에서 관(觀)의 대상으로 설해졌다. 고요히 앉아 지금 일어나는 한 생각을 비추어, 그것이 즉공즉가즉중이며 삼천을 갖춘 불가사의경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이치로서」 모든 사람의 한 생각에 삼천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밝혔지만, 그것을 실제로 체득하는 길은 높은 근기와 오랜 지관 수행을 요구했다.

대성인은 「일념삼천법문」에서 이 점을 짚는다.

一念三千・一心三観等の観心計りが法華経の肝心なるべくば題目に十如是を置くべき処に

일념삼천·일심삼관 등의 관심만이 법화경의 간심이라면, (부처는) 경의 제목에 십여시를 두었어야 할 것인데 …

415쪽

부처가 법화경의 제목으로 「십여시」나 「일념삼천」이 아니라 「묘법연화경」을 둔 까닭이 있다는 것이다. 관법은 법화경의 한 면이지 전부가 아니다. 대성인은 같은 어서에서 선종이 「관심을 본회로 삼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종의 한 면」일 뿐이라고도 한다.

적문의 이, 본문의 사

四에서 보았듯, 「삼대비법품승사」는 두 종류의 일념삼천을 나눈다.

方便品に云く「諸法実相 …」等云云、底下の凡夫・理性所具の一念三千か、寿量品に云く「然我実成仏已来・無量無辺」等云云、大覚世尊・久遠実成の当初証得の一念三千なり

방편품의 「제법실상 …」은 가장 낮은 범부의 이성(理性)에 갖추어진 일념삼천인가. 수량품의 「그러나 내가 실로 성불한 이래 무량무변」은 대각세존이 구원실성의 당초에 증득한 일념삼천이다.

1023쪽

천태는 법화경 전체를 바탕으로 일념삼천을 세웠지만, 그 관법은 결국 범부의 이성에 갖추어진 삼천을 관하여 비추는 것이었다. 창가학회 교학의 용어 해설은 이것을 이렇게 정리한다. 이의 일념삼천은 적문에서 제법실상·십여시·사불지견이 설해지고 개삼현일에 의해 이승작불·악인성불·여인성불이 밝혀져 십계호구·백계천여가 확립된 것이다. 사의 일념삼천은 천태 교학에서는 여래수량품에서 부처의 행위를 통해 사실로 드러난 것을 가리키지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대성인이 명자즉의 범부로서 몸소 나타내신 남묘호렌게쿄, 곧 삼대비법을 가리킨다.

이(理)의 일념삼천사(事)의 일념삼천
근거 경문방편품수량품 문저
성격이성에 갖춘 가능성구원에 증득한 사실
수행지관 관법수지 · 창제
대상상근말법의 범부
나타난 형태『마하지관』의 관법본존
도표 9 · 이의 일념삼천과 사의 일념삼천

「개목초」 — 문저에 잠긴 일념삼천

가장 유명한 한 문장

대성인은 「개목초」 첫 부분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竜樹天親知つてしかもいまだひろいいださず但我が天台智者のみこれをいだけり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글의 밑바닥에 잠겨 있다. 용수와 천친은 알면서도 아직 건져 내지 않았고, 다만 우리 천태 지자만이 이것을 품었다.

「개목초」, 189쪽

이 한 문장에 세 가지가 담겨 있다.

첫째, 일념삼천은 「다만」 법화경에만 있다. 화엄에도 대일경에도 없다. 앞 절에서 본 대로다.

둘째, 법화경 안에서도 본문 수량품에 있다. 방편품에서 재료가 나왔지만, 그것이 참된 일념삼천이 되는 것은 수량품의 구원실성에 이르러서다. 四 7절의 「본문에 이르러 참된 십계호구·백계천여·일념삼천」이 이것이다.

셋째, 수량품에서도 「글의 밑바닥에」 잠겨 있다(文底秘沈). 수량품의 경문에 「일념삼천」이라는 말은 없다. 그것은 경문의 표면이 아니라 밑바닥에 있다. 천태는 그것을 「품었다」. 그러나 대성인은 다른 곳에서, 천태도 그것을 이(理) 로서 품었을 뿐 사(事) 로서 세우지는 않았다고 본다.

삼중비전 — 세 번 걸러 내기

일본 근세의 교학자 일관(日寬, 1665–1726)은 「삼중비전초(三重祕傳抄)」에서 이 한 문장을 세 겹으로 풀었다.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 「글의 밑바닥」의 세 구절이 각각 한 번의 걸러 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단계어서의 구절걸러 냄남는 것
1. 권실상대「다만 법화경」방편의 경(爾前)과 진실의 경(법화)을 가림법화경
2. 본적상대「본문 수량품」적문과 본문을 가림본문 수량품
3. 종탈상대「글의 밑바닥」수확의 가르침(脫益, 문상)과 씨의 가르침(下種, 문저)을 가림문저의 남묘호렌게쿄
一代聖教석존 일대의 가르침
권실상대「但法華經」
法華經법화경
본적상대「本門壽量品」
本門壽量品본문 수량품
종탈상대「文の底」
文底의 南無妙法蓮華經문저의 남묘호렌게쿄
오른쪽 구절 — 「개목초」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글의 밑바닥에」
도표 10 · 삼중비전 — 세 번의 걸러 냄

셋째 단계가 四 8절에서 본 하종과 탈익의 구별이다. 수량품의 경문은 재세의 중생을 거두는 탈익의 가르침이고, 그 밑바닥에 잠긴 씨, 말법의 중생에게 처음 심어야 할 씨가 문저의 일념삼천, 곧 남묘호렌게쿄다.

「관심본존초」 — 관(觀)이 받아 지님(受持)으로

대성인이 사도 유배 중인 1273년에 쓴 「관심본존초」는 일념삼천을 사(事) 로 세운 어서다. 제목 자체가 그것을 말한다. 관심(觀心) 은 천태의 수행, 곧 마음을 관하는 일이다. 본존(本尊) 은 믿고 받드는 대상이다. 천태에서 수행이었던 일념삼천이, 대성인에게서 본존이 된다.

관심이란 무엇인가

観心とは我が己心を観じて十法界を見る是を観心と云うなり

관심이란 나의 자기 마음을 관하여 십법계를 보는 것, 이것을 관심이라 한다.

240쪽

여기까지는 천태와 같다. 그런데 곧이어 대성인은 거울의 비유를 든다. 자기 얼굴은 스스로 볼 수 없고 거울에 비추어야 보인다.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에 갖추어진 십계, 특히 불계는 스스로 볼 수 없고 비추어 줄 거울이 필요하다. 그 거울이 무엇인가 — 이 물음이 이 어서 전체를 이끈다.

수지즉관심

대성인의 답은 이것이다.

釈尊の因行果徳の二法は妙法蓮華経の五字に具足す我等此の五字を受持すれば自然に彼の因果の功徳を譲り与え給う

석존의 인행과 과덕의 두 법은 묘법연화경의 오자에 구족되어 있다. 우리가 이 오자를 수지하면 자연히 그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신다.

246쪽

석존이 구원에 수행한 원인(因行)과 그 결과 얻은 공덕(果德) — 四에서 본 본인·본과 — 가 모두 다섯 글자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그 다섯 글자를 받아 지니는 것(受持) 이 곧 마음을 관하는 것(觀心)이 된다. 이것을 수지즉관심(受持即觀心) 이라 한다.

천태의 관법에서는 범부가 스스로의 힘으로 지관을 닦아 자기 마음의 삼천을 비추어야 했다. 대성인의 수지에서는 이미 부처의 인과 전체가 갖추어진 다섯 글자를 믿고 받아 지닐 때, 그 다섯 글자가 거울이 되어 범부 자신의 마음에 갖추어진 불계를 비춘다.

天台 — 관법
  1. 凡夫
  2. 止觀 수행길고 가파른 계단
  3. 己心의 三千을 觀
  4. 佛界

釋尊の因行果德の二法は妙法蓮華經の五字に具足す

大聖人 — 수지
  1. 凡夫
  2. 五字 受持거울
  3. 己心의 佛界가 비침

受持即觀心

도표 11 · 관심에서 수지로 — 천태와 대성인

구슬을 싸서 목에 걸다

새벽, 옛집 툇마루에 앉은 아이의 뒷모습 — 목에 건 작은 천 주머니 사이로 구슬이 은은히 빛나고, 안개 낀 산길 멀리 노인이 떠나가는 금박 수묵화
그림 3 · 목에 걸린 구슬

그리고 이 어서의 결론부에 가장 널리 사랑받는 문장이 나온다.

一念三千を識らざる者には仏大慈悲を起し五字の内に此の珠を裹み末代幼稚の頸に懸けさしめ給う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 부처는 대자비를 일으켜, 다섯 글자 안에 이 구슬을 싸서 말대의 어린아이들 목에 걸어 주신다.

254쪽

일념삼천은 구슬이다. 그 구슬의 값을 알려면 『마하지관』 열 권을 읽고 오랜 지관을 닦아야 한다. 그러나 말법의 중생은 그 값을 모르는 「어린아이」다. 부처는 그 아이들을 위해 구슬을 다섯 글자에 싸서 목에 걸어 준다. 아이는 구슬의 구조를 몰라도, 목에 걸린 구슬은 온전히 그의 것이다.

「개목초」가 「일념삼천도 우리는 한 조각의 지혜도 없다. 그러나 일대의 여러 경 가운데 이 경만이 일념삼천의 구슬을 품었다」고 한 것도 같은 비유다. 이해의 깊이와 공덕의 온전함이 분리된다. 이것이 대성인 불법의 가장 큰 전환이다.

사의 일념삼천으로서의 본존

四 12절에서 보았듯, 「제법실상초」는 「이불병좌의 의식을 만들어 나타내는 것」을 「본문 수량품의 사의 일념삼천의 법문」이라 했다. 「관심본존초」는 그 본존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본사(本師)의 사바 위에 보탑이 허공에 걸리고, 탑 가운데 묘법연화경의 좌우에 석가모니불과 다보불, 석존의 협사로 상행 등 사보살 …

이 본존은 일념삼천을 그린 것이다. 가운데 남묘호렌게쿄는 불계이자 삼천 전체를 꿰는 근본이고, 그 주위에 십계의 대표들이 빠짐없이 자리한다. 십계의 모든 생명이 묘법의 빛에 비추어져 본래의 존귀한 모습을 드러낸 광경 — 이것이 범부가 마주할 수 있는 거울로 나타난 일념삼천이다.

南無妙法蓮華經가운데 띠 · 불계이자 삼천을 꿰는 근본
釋迦석가모니불多寶다보불
  • 菩薩상행 등 사보살
  • 聲聞성문
  • 緣覺연각
  • 天천
  • 人인
  • 修羅수라
  • 畜生축생
  • 餓鬼아귀
  • 地獄지옥
십계의 모든 생명이 묘법에 비추어진 모습 — 사의 일념삼천
배치 도식 — 본존 자체를 그린 것이 아니며, 가운데 금색 띠는 글자 대신 자리만 나타낸다
도표 12 · 본존에 나타난 일념삼천 — 가운데 묘법, 둘레 십계

초기 어서들 — 십계와 일념삼천의 사색

첨부하신 목록의 어서들(일본어판 406~437쪽)은 대성인이 입정안국론(1260)을 전후한 30대 후반에 쓴 것으로, 일념삼천과 십계에 관한 사색이 집중되어 있다. 연대순으로 보면 대성인의 생각이 어떻게 자라났는지가 보인다.

어서시기핵심
「일념삼천이사」(406)1258, 37세십이인연도에서 시작해 삼도·삼신·천태와 묘락의 일념삼천 문장을 모음. 연기(一)에서 일념삼천(五)으로 이어지는 공부 노트
「십여시사」(410)1258, 37세「내 몸이 삼신즉일의 본각의 여래」, 「내 몸의 체성을 묘법연화경이라 한다」. 한 번의 남묘호렌게쿄가 법화경 한 부를 읽는 것
「일념삼천법문」(412)1258, 37세백계·천여·삼천의 셈, 관심만이 간심이 아님, 「묘법연화경은 우리 심성의 팔엽 백련화의 이름」, 「사바는 이근득도의 나라」
「십법계사」(417)1260 무렵이전 경전의 이승·보살은 참된 단혹이 아님 — 십계호구 없이는 성불 없음
「이전이승보살부작불사」(424)1260 무렵이승이 성불하지 못하면 보살도 성불하지 못함
「십법계명인과초」(427)1260, 39세경론에 따라 십계 각각의 인과를 밝히고, 법화경의 십계호구로 맺음
  1. 1258
    • 「일념삼천이사」십이인연도에서 천태·묘락의 일념삼천 문장까지 — 공부 노트
    • 「십여시사」「묘법연화경은 내 몸의 이름」
    • 「일념삼천법문」백계·천여·삼천의 셈 · 「이근득도의 나라」
  2. 1260
    • 「십법계사」십계호구 없이는 성불 없음
    • 「이전이승보살부작불사」이승이 성불하지 못하면 보살도 성불하지 못함
    • 「십법계명인과초」십계 각각의 인과 → 법화경의 십계호구
    • (「입정안국론」)
  3. 1272
    • 「개목초」일념삼천은 수량품의 글의 밑바닥에
  4. 1273
    • 「관심본존초」「수지즉관심」
    • 「제법실상초」「실상은 묘법연화경의 이명」
15년의 사색
도표 13 · 초기 어서 여섯 편의 흐름

「십여시사」 — 경의 이름이 곧 내 몸의 이름

이 가운데 「십여시사」는 짧지만 대성인 불법의 씨앗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어서다.

我が身が三身即一の本覚の如来にてありける事を今経に説いて云く「如是相・如是性・如是体」

내 몸이 삼신즉일의 본각의 여래라는 것을 이 경에서 설하여 「이와 같은 상, 이와 같은 성, 이와 같은 체」라 하였다.

410쪽

我が身の体性を妙法蓮華経とは申しける事なれば経の名にてはあらずして・はや我が身の体にてありけると知りぬれば我が身頓て法華経にて

내 몸의 체성을 묘법연화경이라 하는 것이니, 경의 이름이 아니라 이미 내 몸의 체라는 것을 알면 내 몸이 곧 법화경이 되어 …

411쪽

是を信じて一遍も南無妙法蓮華経と申せば法華経を覚て如法に一部をよみ奉るにてあるなり

이것을 믿고 한 번이라도 남묘호렌게쿄라고 하면 법화경을 깨달아 여법하게 한 부를 읽는 것이 된다.

411쪽

십여시의 첫 셋, 상·성·체가 곧 부처의 삼신이며, 그것이 내 몸의 존재 방식이다. 묘법연화경은 책의 제목이 아니라 내 몸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경 전체를 읽는 것이다. 三의 「제법실상초」에서 본 「실상이라 함은 묘법연화경의 다른 이름」(1273)보다 15년 앞서, 같은 생각이 이미 여기에 있다.

「일념삼천법문」 — 귀로 듣는 성불

此の妙法蓮華経とは我等が心性・総じては一切衆生の心性・八葉の白蓮華の名なり

이 묘법연화경이란 우리의 심성, 총체적으로는 일체중생의 심성인 팔엽 백련화의 이름이다.

415쪽

妙法蓮華経と唱うる時・心性の如来顕る耳にふれし類は無量阿僧祇劫の罪を滅す

묘법연화경이라 부를 때 심성의 여래가 나타난다. 귀에 닿은 이들은 무량 아승기겁의 죄를 멸한다.

415쪽

그리고 이 세계를 「이근득도(耳根得道)의 나라」, 곧 귀로 들어 도를 얻는 나라라고 한다. 천태의 관법이 보는(觀) 수행이었다면, 여기서 대성인은 듣고 부르는 수행을 세운다. 일념삼천의 구조는 그대로이되, 그것에 이르는 문이 눈(관)에서 귀와 입(청·창)으로 옮겨 간다.

念念に一心三観・一念三千の謂を観ずれば我が身本覚の如来なること悟り出され … 一念三千の観念も一心三観の観法も妙法蓮華経の五字に納れり

생각마다 일심삼관·일념삼천의 뜻을 관하면 내 몸이 본각의 여래임을 깨닫게 된다. … 일념삼천의 관념도 일심삼관의 관법도 묘법연화경의 다섯 글자에 들어 있다.

414쪽

천태의 관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전부가 다섯 글자에 들어 있다. 1258년의 이 문장이 1273년 「관심본존초」의 수지즉관심으로 곧장 이어진다.

일념삼천을 산다는 것

한 생각이 바뀌면

일념삼천은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이기 전에, 변화의 원리다. 삼천이 한 생각에 갖추어져 있다면, 한 생각이 바뀔 때 삼천이 함께 바뀐다. 지옥의 한 생각에서는 몸과 관계와 국토가 모두 지옥의 모습을 띠고, 불계의 한 생각에서는 같은 몸과 관계와 국토가 불계의 모습을 띤다. 二에서 공이 「희망을 말하는 말」이었듯, 일념삼천은 한 사람의 변화가 세계의 변화와 이어진다는 구조를 준다. 창가학회가 「인간혁명」이라 부르는 것, 곧 한 사람의 생명의 변혁이 사회와 국토의 변혁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의 교학적 토대가 여기에 있다.

한 골짜기가 가운데서 부드럽게 나뉘어, 왼쪽은 먹구름 아래 헐벗은 나무와 닫힌 집, 오른쪽은 같은 집과 강이 새벽 금빛 속에 꽃나무와 불 켜진 창으로 바뀐 금박 수묵화
그림 4 · 한 생각이 바뀌면 — 같은 골짜기의 두 얼굴

두 가지 오해를 넘어

그러나 이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아니다. 천태가 「세로도 옳지 않다」고 했듯, 마음이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몸과 관계와 국토는 조건에 따라 분명히 있는 것(가)이고, 병은 지금 아프고 빚은 지금 갚아야 한다(二의 대본에서 본 대로). 동시에 그 모든 것은 고정된 자성이 없고(공), 지금의 한 생각과 떼어 놓을 수 없다(중). 일념삼천은 세계를 마음으로 환원하지도, 마음을 세계에 맡겨 버리지도 않는다. 둘이 즉(即) 해 있는 자리에서 한 생각을 바꾼다.

앵매도리, 다시

벚꽃과 매화와 복숭아와 자두가 저마다의 모습으로 피어 있다. 그 한 송이 한 송이에 삼천이 갖추어져 있다. 벚꽃은 매화가 될 필요가 없다. 벚꽃의 한 생각에 이미 십계가 있고, 십여시가 있고, 벚꽃의 몸과 벚꽃이 이루는 풍경과 벚꽃이 뿌리내린 땅이 있다. 그 전부를 고치지 않은 채로 무작삼신으로 여는 것 — 三과 四에서 읽은 이 사이트의 이름은, 다섯째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의 일념삼천이 된다.

다음 자리로 — 남묘호렌게쿄

다섯 자리를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면 남은 물음은 하나다. 이 한 생각의 삼천을 범부는 어떻게 여는가. 「관심본존초」는 그것을 다섯 글자에 싸서 목에 걸어 주었다고 했다. 여섯째 자리 남묘호렌게쿄에서는 그 다섯 글자(또는 일곱 글자)가 무엇인지, 『어의구전』이 「남무」·「묘법」·「연화」·「경」을 어떻게 풀었는지, 그리고 본존·제목·계단의 삼대비법이 어떻게 일념삼천을 범부의 삶 속의 사실로 만드는지를 읽는다.

참고 문헌

원전

  • 『묘법연화경』 방편품 · 법사공덕품 · 여래수량품, T9 no.262
  • 『대방광불화엄경』(60권본) 야마천궁보살설게품, T9 no.278
  • 『대지도론』 T25 no.1509
  • 천태 지의, 『마하지관』 T46 no.1911 / 『법화현의』 T33 no.1716 / 『법화문구』 T34 no.1718
  • 묘락 담연, 『지관보행전홍결』 T46 no.1912 / 『금강비』 T46 no.1932
  • 사명 지례, 『십불이문지요초』 T46 no.1928
  • 니치렌 대성인, 「일념삼천이사」 · 「십여시사」 · 「일념삼천법문」 · 「십법계사」 · 「이전이승보살부작불사」 · 「십법계명인과초」 · 「개목초」 · 「관심본존초」 · 「삼대비법품승사」 · 「일대성교대의」
  • 일관, 「삼중비전초」

연구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安藤俊雄, 『天台性具思想論』, 法藏館, 1953
  • 田村芳朗·梅原猛, 『絶対の真理〈天台〉』(仏教の思想 5), 角川書店, 1970
  • 池田魯参, 『詳解 摩訶止観』, 大蔵出版
  • Paul L. Swanson (tr.), Clear Serenity, Quiet Insight: T'ien-t'ai Chih-i's Mo-ho chih-kuan,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8
  • Brook Ziporyn, Evil and/or/as the Good,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2000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