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연못 위에 핀 금빛 연꽃과 연밥, 물에 비친 그림자

제법실상

諸法實相법화경 방편품 · 천태 『법화현의』 · 「제법실상초」

법화경 방편품에서 석존은 삼매에서 일어나 사리불에게 말한다. 부처가 이룬 법은 제일의 희유하고 알기 어려운 법이어서,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모든 법의 참모습, 곧 제법실상(諸法實相) 을 끝까지 다 안다고. 법화경 적문의 모든 법문 — 이승작불, 개삼현일, 일불승 — 이 이 한 구절 위에 서 있다.

그런데 「모든 법의 참모습」이라는 말은 법화경이 처음 쓴 말이 아니다. 초기 불교는 연기를 「여래가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머무는 법의 성품」이라 불렀고, 아비달마는 모든 법이 저마다 고유한 참모습(自相)을 가진다고 보았으며, 반야경과 용수는 모든 법의 참모습이 공(空)이라고 했다. 같은 물음에 불교사는 여러 번 다르게 답했다. 법화경의 답은 그 앞의 답들과 무엇이 다르고, 천태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으며, 니치렌 대성인은 「제법실상초」에서 무엇을 새로 드러냈는가.

둘째 자리 공·중도에서 우리는 공·가·중이 한 법의 세 면임을 보았다. 셋째 자리는 그 한 법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대성인의 답은 한 줄이다. 「실상이라 함은 묘법연화경의 다른 이름이다.」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 방편품의 물음

방편품의 첫머리는 법화경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다. 서품 내내 무량의처삼매에 들어 있던 석존이 조용히 삼매에서 일어나, 청하는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말을 시작한다(無問自說).

諸佛智慧 甚深無量 其智慧門 難解難入 一切聲聞辟支佛 所不能知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고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지혜의 문은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워, 일체의 성문과 벽지불이 알 수 없는 바이다.

그리고 부처가 이룬 법의 내용을 밝힌다.

佛所成就 第一希有 難解之法 唯佛與佛 乃能究盡 諸法實相 所謂諸法 如是相 如是性 如是體 如是力 如是作 如是因 如是緣 如是果 如是報 如是本末究竟等

부처가 성취한 것은 제일의 희유하고 알기 어려운 법이다.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모든 법의 실상을 다 궁구할 수 있으니, 이른바 모든 법의 이와 같은 상, 이와 같은 성, 이와 같은 체, 이와 같은 역, 이와 같은 작, 이와 같은 인, 이와 같은 연, 이와 같은 과, 이와 같은 보, 이와 같은 본말구경등이다.

구마라집 역, T9 no.262

이 짧은 대목에서 세 가지를 짚어 두자.

첫째, 제법실상은 부처의 지혜가 아는 내용으로 제시된다. 이론이나 교리의 한 항목이 아니라, 깨달은 자가 본 세계의 모습이다. 그래서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唯佛與佛)」라는 제한이 붙는다.

둘째, 그 실상은 열 가지 「이와 같음(如是)」 으로 풀린다. 실상은 모든 차별을 넘어선 텅 빈 하나가 아니라, 상·성·체·역·작·인·연·과·보라는 구체적 존재 방식을 갖춘 모습이다.

셋째, 이 법은 성문과 벽지불이 알 수 없다. 소승의 성자들이 도달한 깨달음과 부처의 깨달음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선언이다. 그 차이가 무엇인가 — 이것이 이 글 전반부의 물음이다.

석존은 여기서 말을 멈추고 「그만두자, 사리불아, 더 설할 필요가 없다(止止不須說)」고 한다. 사리불이 세 번 청하고 나서야 설법이 이어지고, 그사이 오천 명의 증상만이 자리를 떠난다. 이 드라마 자체가 제법실상이 앞선 가르침의 연장선에 있지 않다는 것, 듣는 이의 기존 이해를 한 번 무너뜨려야 들어갈 수 있는 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 기원전 5세기인도초기 경전법성 · 삼법인
  2. 기원전 2세기~인도아비달마자상 · 자성
  3. 기원전 1세기~3세기인도반야 · 중관실상 = 공
  4. 4~5세기인도유식 · 여래장진여
  5. 406중국구마라집 『묘법연화경』열 가지 如是
  6. 6세기중국천태 『법화현의』경묘 · 십여시
  7. 7~8세기중국화엄성기
  8. 8세기중국묘락 『금강비』실상사필
  9. 1273일본니치렌 대성인「제법실상초」
도표 1 · 제법실상의 계보

말의 뿌리 — 산스크리트 원문과 구마라집의 열 가지 如是

오늘 우리가 읽는 「십여시」는 구마라집(鳩摩羅什)이 406년 장안에서 번역한 『묘법연화경』의 형태다. 현존하는 산스크리트 사본의 해당 대목은 이와 다르다. 산스크리트본은 여래만이 아는 법의 측면을 다섯 가지로 든다.

축법호(竺法護)의 『정법화경』(286년)도 열 가지 如是 형태가 아니다. 그렇다면 열 가지 如是는 어디서 왔는가. 학계에서는 구마라집이 함께 번역한 『대지도론』 권32에서 모든 법이 갖추는 아홉 가지 측면 — 체(體), 법(法), 력(力), 인(因), 연(緣), 과(果), 성(性), 한애(限礙), 개통방편(開通方便) — 을 드는 대목과의 관련이 자주 지적된다. 구마라집이 원문의 다섯 물음을 대승 논서의 분석 틀로 넓혀 옮겼다는 해석이다.

구마라집『대지도론』산스크리트본
如是相—yallakṣaṇa
如是性性yatsvabhāva
如是體體—
如是力力—
如是作——
如是因因—
如是緣緣—
如是果果—
如是報——
本末究竟等——

대응 없음 — 『대지도론』 法 · 限礙 · 開通方便 / 산스크리트본 ye · yathā · yādṛśa

대응은 학계의 추정이며 확정이 아니다.
도표 2 · 다섯 물음, 아홉 측면, 열 가지 如是

이 사실은 두 가지 뜻을 가진다. 하나는 문헌학적 사실로서, 십여시가 구마라집 한역에서 성립한 형태라는 것. 다른 하나는 사상사적 사실로서, 천태가 일념삼천을 세운 토대가 바로 이 한역 십여시라는 것이다. 둘째 자리에서 용수의 게송을 한역으로 다시 읽어 삼제가 나왔듯, 여기서도 한역 경전을 깊이 읽는 데서 동아시아 불교의 가장 큰 체계가 나온다. 번역은 원문에서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원문이 품은 가능성을 새 언어로 여는 일일 수 있다.

「실상(實相)」이라는 말도 구마라집 번역의 특징어다. 그는 dharmatā(법성), tathatā(진여), bhūtakoṭi(실제), tattva(진실) 같은 여러 원어를 문맥에 따라 「실상」으로 옮겼다. 그래서 한역 불전에서 「실상」은 특정 학파의 전문어가 아니라, 여러 전통이 「궁극의 참모습」이라고 부른 것들을 한데 묶는 말이 되었다.

초기 불교 — 법성과 세 가지 법인

연기는 부처가 만든 것이 아니다

초기 경전에서 「참모습」에 가장 가까운 말은 법성(法性, dhammatā)이다. 『잡아함경』 299경에서 한 비구가 연기법은 부처님이 만든 것이냐고 묻자, 부처님은 답한다.

緣起法者 非我所作 亦非餘人作 然彼如來出世及未出世 法界常住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여래가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법계는 늘 머문다.

팔리 경전(SN 12.20)도 같은 내용을 전한다. 여래가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그 이치는 확립되어 있으니, 곧 법으로서 머묾(dhammaṭṭhitatā), 법으로서 정해짐(dhammaniyāmatā), 이것을 조건으로 함(idappaccayatā)이다.

첫째 자리에서 본 십이연기가 여기서 「부처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는 법의 참모습」으로 자리매김된다. 부처는 실상을 만든 자가 아니라 발견한 자다. 이 구도는 법화경의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궁구한다」와 이어진다. 실상은 부처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만이 끝까지 보는 것이다.

세 가지 법인

초기 불교와 뒤의 소승 전통은 참된 가르침인지를 가리는 표지로 삼법인(三法印) 을 세웠다.

(경론에 따라 일체개고를 더해 사법인이라 하기도 한다.)

삼법인은 세계의 실상을 무상·무아로 보고, 그 실상을 바로 볼 때 도달하는 경지를 열반으로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조다. 세간은 무상하고 괴로운 것, 열반은 그 세간을 떠나 고요한 것. 세간과 열반이 두 영역으로 나뉜다.

소승 열반의 한계

이 구조가 끝까지 가면 소승의 이상은 회신멸지(灰身滅智) 가 된다. 몸을 재로 만들고 지혜마저 없애, 다시는 삼계에 태어나지 않는 무여열반에 드는 것이다. 성문·연각이 도달하는 아라한과는 번뇌의 불이 꺼진 자리이지만, 그 자리는 세간 밖에 있다. 그리고 세간 밖에 있으므로, 거기서는 다시 중생을 교화할 수도, 부처가 될 수도 없다.

대승 경전들이 이승을 「불에 탄 종자(焦種)」, 곧 성불할 수 없는 자로 몰아세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법화경 방편품이 「일체의 성문과 벽지불이 알 수 없다」고 한 것도 이 지점이다. 이승이 본 실상은 세간을 떠나야 도달하는 실상이었다. 부처가 본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차이를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는 것이 방편품 게송의 한 구절이다.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이 법은 법의 자리에 머물고, 세간의 모습이 그대로 상주한다.

세간의 모습이 무너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간의 모습 그대로 상주한다. 실상은 세간 너머가 아니라 세간 그 자체다. 법화경의 제법실상은 삼법인의 구도를 뒤집는다.

소승 · 삼법인
諸行無常제행무상諸法無我제법무아涅槃寂靜열반적정
세간
무상 · 고
떠남열반
적정
회신멸지
대승 · 일실상인諸法實相제법실상세간열반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도표 3 · 소승의 삼법인과 대승의 일실상인

아비달마 — 법마다 고유한 참모습

부처님 입멸 후 아비달마 논사들은 「법」을 분석의 궁극 단위로 삼았다.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법은 「자기 특징(自相, svalakṣaṇa)을 지니는 것」이다. 땅의 요소는 견고함, 물의 요소는 습함, 느낌은 받아들임이 그 자상이다. 여기에 모든 유위법이 함께 가지는 특징, 곧 무상·고·공·무아 같은 공상(共相, sāmānyalakṣaṇa) 이 더해진다.

이 체계에서 「법의 참모습」은 곧 자상과 자성이다. 각 법은 저마다의 변하지 않는 본질을 가지고, 그 본질이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실재한다(三世實有 法體恒有). 둘째 자리에서 보았듯, 반야경과 용수가 겨냥한 것이 바로 이 법의 자성이었다.

아비달마의 분석은 결코 가볍지 않다. 천태가 십여시의 첫 셋, 곧 상·성·체를 풀 때 쓰는 말들 — 밖으로 드러나 구별되는 것, 안에서 바뀌지 않는 것, 그 둘의 주체 — 은 아비달마가 벼려 놓은 개념어의 계승이다. 다만 천태는 그 개념들을 자성이 없는 것들의 존재 방식으로 다시 쓴다. 상·성·체는 있되, 고정된 실체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반야와 중관 — 실상은 공이며 무상(無相)이다

반야경과 용수에게서 「제법실상」은 곧 공이다. 『대지도론』은 모든 법의 실상을 이렇게 말한다.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있지도 없지도 않고,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 그것은 「하나의 모습, 곧 모습 없음(一相所謂無相)」이다. 『대지도론』은 또 여(如)·법성(法性)·실제(實際)를 모두 제법실상의 다른 이름으로 풀이한다.

소승이 삼법인으로 가르침을 가렸다면, 대승은 일실상인(一實相印), 곧 제법실상 하나로 가렸다. 법화경 방편품 게송에도 「중생을 위해 실상의 인을 설한다(為說實相印)」는 구절이 있고, 천태는 『법화현의』에서 소승은 세 가지 법인으로, 대승은 오직 하나의 법인, 곧 제법실상으로 가르침을 인증한다고 정리했다.

용수의 『중론』 귀경게가 말하는 팔불(八不) — 불생·불멸·불상·부단·불일·불이·불래·불출 — 은 이 실상을 부정의 형태로 드러낸 것이다. 삼론종이 팔불중도를 제법실상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긴장이 남는다. 반야의 실상이 「모습 없음(無相)」이라면, 방편품의 실상은 「이와 같은 상(如是相)」에서 시작한다. 모습이 없다는 실상과, 열 가지 모습을 갖춘 실상. 이 둘은 어떻게 만나는가. 이 물음에 답한 것이 천태의 삼전독문이다(8절). 공으로 읽으면 무상이고, 가로 읽으면 열 가지 모습이며, 중으로 읽으면 그 둘이 하나다.

대승의 여러 실상 — 진여, 법계, 성기

대승 불교는 「궁극의 참모습」을 여러 이름으로 불렀다. 천태의 제법실상을 제자리에 놓으려면 이 이웃들을 알아야 한다.

유식(唯識). 유가행파는 모든 것을 세 가지 성품으로 나눈다. 망상으로 덧씌운 것(遍計所執性), 조건에 의지해 일어난 것(依他起性), 의타기에서 망상이 떠난 완성된 진실(圓成實性)이다. 실상은 원성실성, 곧 진여(眞如) 다. 진여는 변하지 않는 진실이며, 현상(의타기)과는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 그러나 유식에서 진여는 조건을 따라 스스로 일어나지 않는다(凝然眞如). 실상과 현상 사이에 여전히 한 겹의 거리가 있다.

여래장(如來藏). 『승만경』, 『대승기신론』 계통은 모든 중생 안에 여래가 될 성품이 감추어져 있다고 본다. 『기신론』의 한 마음에는 두 문이 있다. 변하지 않는 진여문과 조건을 따라 생멸하는 생멸문이다. 진여가 조건을 따라 현상이 된다(隨緣眞如). 둘째 자리에서 어의구전의 「불변진여·수연진여」를 잠깐 보았는데, 그 개념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화엄(華嚴). 화엄종은 세계를 네 겹의 법계로 본다. 현상의 세계(事法界), 이치의 세계(理法界), 이치와 현상이 걸림 없이 통하는 세계(理事無礙法界), 현상과 현상이 서로 걸림 없이 들어가는 세계(事事無礙法界)다. 그리고 모든 현상은 청정한 불성이 조건을 따라 일어난 것이라는 성기(性起) 사상을 세웠다.

여기서 천태와 화엄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난다. 화엄의 성기는 청정한 성품이 일어나 현상이 된다고 본다. 성품 그 자체에는 악이 없다. 천태는 이와 달리 성구(性具), 곧 성품이 본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선도 악도, 부처의 세계도 지옥의 세계도 성품 안에 본래 갖추어져 있다. 천태 계통의 『관음현의』는 이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 부처는 닦아서 생긴 악(修惡)은 다 끊었으나 성품에 갖추어진 악(性惡) 은 그대로 있다고까지 말한다.

이 성구 사상이 뒤에서 볼 「제법실상초」의 한 구절, 「아비지옥의 의보와 정보는 온전히 극성(極聖)의 자심에 있다」로 곧장 이어진다. 부처의 마음에 지옥이 갖추어져 있다. 이것은 부처를 깎아내리는 말이 아니라, 지옥의 중생을 버리지 않는 부처의 참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유식眞如진여 · 원성실성응연진여 — 조건을 따라 스스로 일어나지 않음
여래장 · 기신론一心二門일심이문수연진여 — 진여가 조건을 따라 현상이 됨
화엄性起사법계성기 — 성품은 청정
천태性具제법즉실상성구 — 성품에 선악 모두
성기 — 청정한 성품이 일어남성구 — 성품에 본래 갖춤
도표 4 · 대승의 여러 실상 — 진여·법계·성기·성구

법화경의 제법실상 — 개삼현일과 불지견

방편품이 제법실상을 설한 목적은 분명하다. 성문·연각·보살의 세 가르침(三乘)이 모두 방편이었고, 오직 하나의 부처의 수레(一佛乘)가 진실이라는 것, 곧 개삼현일(開三顯一) 이다. 석존은 부처가 세상에 나온 단 하나의 큰 일(一大事因緣)을 이렇게 밝힌다.

諸佛世尊 欲令眾生開佛知見 使得清淨故 出現於世 欲示眾生佛之知見故 出現於世 欲令眾生悟佛知見故 出現於世 欲令眾生入佛知見道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열어(開) 청정함을 얻게 하려고, 부처의 지견을 보이려고(示), 부처의 지견을 깨닫게 하려고(悟), 부처의 지견의 길에 들게 하려고(入) 세상에 나오신다.

제법실상은 「부처와 부처만이 궁구하는」 지혜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부처가 세상에 나온 목적은 바로 그 지혜를 중생에게 열어 보이고 깨닫게 하고 들게 하는 것이다. 부처만이 아는 실상을 모든 중생이 알게 하는 것 — 이 역설이 법화경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근거가 제법실상 자체에 있다. 모든 법이 똑같이 열 가지 如是를 갖추고 있다면, 지옥의 중생도 이승도 부처도 존재 방식에서 차별이 없다. 차별이 없으므로, 누구나 부처의 지견을 열 수 있다.

그래서 방편품 이후 적문은 차례로 성불의 약속(授記)을 준다. 사리불을 시작으로 가섭·수보리·가전연·목건련에게, 이어 부루나와 오백 제자에게, 아난과 라후라와 이천 명의 성문에게 성불의 수기가 주어진다. 대승 경전들이 성불할 수 없다고 했던 이승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이승작불(二乘作佛) 은 제법실상의 논리적 귀결이다.

이 구조를 둘째 자리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반야의 공은 이승의 열반이 세간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반야경은 여전히 이승을 꾸짖었다. 공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 모든 중생의 성불로 연 것이 법화경의 제법실상이다.

부처의 지견을 — 불지견
  1. 開열다
  2. 示보이다
  3. 悟깨닫게 하다
  4. 入들게 하다
성불의 약속 — 수기
  1. 방편품제법실상
  2. 비유품사리불 수기
  3. 수기품4대성문
  4. 오백제자수기품
  5. 수학무학인기품아난·라후라·2천 성문
  6. 이승작불
도표 5 · 개시오입과 수기의 흐름

천태의 제법실상 (1) — 체(體)로서의 실상과 십여시

오중현의의 「체」

천태 지의는 『법화현의』에서 경을 다섯 겹으로 해석하는 틀, 곧 오중현의(五重玄義) 를 세웠다. 이름(名)·본체(體)·근본 취지(宗)·작용(用)·가르침의 자리(敎)다. 그리고 법화경의 본체를 이렇게 정한다. 「실상을 체로 삼는다(以實相為體).」 법화경이라는 경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묻는다면, 그 답은 제법실상이다.

열 가지 如是의 풀이

천태는 『법화현의』 권2에서 십여시를 하나하나 정의한다.

해 질 녘 한 연못 — 왼쪽 물가엔 얇은 얼음판이 떠 있고, 가운데는 고요한 물, 오른쪽은 물 위로 안개가 피어오르는 금박 수묵화
그림 1 · 물·얼음·안개
여시천태의 정의풀이
상(相)밖에 근거하여, 보아서 구별할 수 있는 것겉으로 드러난 모습
성(性)안에 근거하여, 스스로의 분(分)이 바뀌지 않는 것안에 있는 성질
체(體)주된 바탕상과 성을 갖춘 본체
역(力)공능(功能)안에 있는 힘, 잠재력
작(作)구조(構造)하는 것힘이 밖으로 드러난 작용
인(因)습인(習因)결과를 낳는 직접 원인
연(緣)조인(助因)인을 돕는 조건
과(果)습과(習果)인과 연이 어울려 생긴 결과
보(報)보과(報果)그 결과가 밖으로 드러난 갚음
본말구경등처음의 상이 본, 끝의 보가 말, 돌아가는 곳이 구경하여 같음아홉이 하나로 꿰어짐
본체
相밖에 근거하여, 보아서 구별할 수 있는 것性안에 근거하여, 스스로의 분(分)이 바뀌지 않는 것體주된 바탕
작용
力공능(功能)作구조(構造)하는 것
인과
因습인(習因)緣조인(助因)果습과(習果)報보과(報果)
일관本末究竟等처음의 상이 본, 끝의 보가 말, 돌아가는 곳이 구경하여 같음
도표 6 · 십여시의 구조 — 본체·작용·인과·일관

열 가지는 네 묶음으로 나뉜다. 상·성·체는 존재의 본체, 역·작은 그 작용, 인·연·과·보는 인과의 흐름, 본말구경등은 그 모두를 꿰는 일관성이다. 한 법은 모습과 성질과 바탕을 가지고, 힘을 지니고 작용하며, 원인과 조건에 따라 결과를 맺고, 그 처음부터 끝까지가 하나로 꿰어져 있다.

첫째 자리의 십이연기가 인과의 사슬을 시간의 흐름으로 보여 주었다면, 십여시는 그 인과(因·緣·果·報)를 한 존재의 구조 안에 넣었다. 연기는 바깥에서 사물들을 잇는 끈이 아니라, 모든 법이 안에 품고 있는 존재 방식이 된다.

삼전독문 — 공·가·중으로 읽는 실상

둘째 자리 끝에서 본 삼전독문(三轉讀文) 이 여기서 제자리를 찾는다. 천태는 같은 글자를 세 번 끊어 읽는다.

(세 읽기는 상부터 보까지 아홉 如是에 적용되며, 열째 본말구경등은 아홉을 하나로 꿰는 자리로 따로 풀린다.)

5절에서 남겨 둔 물음 — 반야의 「모습 없는 실상」과 방편품의 「열 가지 모습을 갖춘 실상」은 어떻게 만나는가 — 의 답이 여기 있다. 같은 경문을 공으로 읽으면 반야의 무상이 되고, 가로 읽으면 십여시의 차별이 되며, 중으로 읽으면 둘이 하나인 실상이 된다. 실상은 무상이면서 모든 상을 갖춘다.

是相如是性如是體如是力如是作如是因如是緣如是果如是報如열째 · 그대로如是本末究竟等空공
如是相如是性如是體如是力如是作如是因如是緣如是果如是報假가
相如是性如是體如是力如是作如是因如是緣如是果如是報如是中중
열째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은 세 번 끊어 읽는 대상이 아니라, 처음의 상(本)부터 마지막의 보(末)까지 아홉을 하나로 꿰는 자리다.
도표 7 · 삼전독문

천태의 제법실상 (2) — 경묘와 여섯 자리, 원교의 즉(即)

경묘(境妙) — 지혜가 비추는 여섯 경계

『법화현의』는 법화경의 묘(妙)를 열 가지로 나누어 풀고(迹門十妙), 그 첫째가 경묘, 곧 지혜가 비추는 대상의 묘함이다. 천태는 여기에 여섯 경계를 든다.

  1. 십여시의 경계(十如境)
  2. 인연의 경계(因緣境) — 십이인연
  3. 사제의 경계(四諦境)
  4. 이제의 경계(二諦境)
  5. 삼제의 경계(三諦境)
  6. 일제의 경계(一諦境) — 하나의 실다운 진리(一實諦)

이 목록을 이 사이트의 여섯 자리와 나란히 놓아 보라. 십이연기(一)가 인연경에, 공·중도(二)의 이제와 삼제가 이제경·삼제경에, 제법실상(三)의 십여시가 십여경에 대응한다. 천태는 불교사가 차례로 내놓은 진리들을 모두 부처의 지혜가 비추는 경계로 거두어들이고, 그 끝에 일실제(一實諦), 곧 하나의 실다운 진리를 둔다. 그 일실제가 제법실상이다. 이 사이트가 계보를 따라 내려가는 방식은 천태가 경묘에서 한 일을 되풀이하는 셈이다.

경묘 — 여섯 경계이 사이트의 여섯 자리
  1. 十如境십여시의 경계
  2. 因緣境인연의 경계
  3. 四諦境사제의 경계
  4. 二諦境이제의 경계
  5. 三諦境삼제의 경계
  6. 一諦境일제의 경계
  1. 一십이연기
  2. 二공 · 중도
  3. 三제법실상
  4. 四구원실성본문
  5. 五일념삼천관심
  6. 六남묘호렌게쿄문저
도표 8 · 경묘의 여섯 경계와 이 사이트의 여섯 자리

사교의 실상

둘째 자리에서 화법사교가 공을 보는 네 깊이였듯, 실상에 대해서도 사교는 네 깊이다.

가르침실상을 어디에 두는가
장교세간을 분석하여 떠난 곳, 회신멸지의 열반 (偏眞)
통교세간 그 자체가 공함 — 그러나 공에 머묾 (但空)
별교공과 가를 넘어 그 위에 따로 있는 중도 (但中) — 실상은 제법 너머
원교제법이 곧 실상 (諸法即實相) — 실상은 제법 그 자체

별교와 원교의 차이가 핵심이다. 별교에서 실상은 현상 뒤에, 현상을 넘어서 있다. 오랜 수행으로 현상의 층을 하나씩 벗겨 내야 도달한다. 원교에서 실상은 현상 뒤에 있지 않다. 지금 보이는 꽃 한 송이, 지금 일어나는 한 생각이 그대로 실상이다. 「한 빛깔 한 향기도 중도 아님이 없다(一色一香 無非中道)」는 『마하지관』의 말이 이것이다.

십계호구에서 일념삼천으로

원교의 제법실상이 가장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 곳이 일념삼천이다. 천태는 『마하지관』 권5에서 이렇게 짠다. 지옥에서 부처까지 열 세계(十界)가 저마다 열 세계를 갖추니 백 세계(十界互具)요, 백 세계가 저마다 십여시를 갖추니 천여(千如)요, 그 천여가 중생·국토·오음의 세 세간을 갖추니 삼천이다. 그리고 이 삼천이 한 생각에 갖추어져 있다.

제법실상의 「제법」이 삼천으로, 「실상」이 그것을 갖춘 한 생각으로 펼쳐진 것이다. 일념삼천은 다섯째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여기서는 이것만 짚어 두자. 일념삼천의 재료 가운데 십여시는 방편품의 제법실상에서, 십계호구는 방편품 이후 적문 전체의 이승작불에서, 삼세간의 국토세간은 본문 수량품의 상주 국토에서 온다. 제법실상은 일념삼천의 세 기둥 가운데 첫째다.

十界\十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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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계호구 = 백계 → 천여 → × 삼세간 = 삼천 (五 일념삼천에서)

도표 9 · 십계 × 십여시 격자 — 백계천여 (五 예고)

묘락 — 의정(依正)과 실상의 네 「반드시」

천태의 제법실상을 한 걸음 더 밀고 나간 이는 당나라의 묘락대사 담연(湛然, 711–782) 이다. 「제법실상초」가 인용하는 세 구절이 모두 묘락의 것이다.

의보와 정보가 늘 묘경을 편다

依報正報 常宣妙經

의보와 정보가 늘 묘한 경(묘법연화경)을 편다.

『법화문구기』 권10하

정보(正報)는 과보를 받는 주체인 중생의 몸과 마음, 의보(依報)는 그 몸과 마음이 의지하는 환경과 국토다. 둘 다 과거의 업의 갚음(報)이므로 이렇게 부른다. 묘락은 중생뿐 아니라 산하대지, 풀과 나무까지 묘법을 설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상은 마음 있는 것들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실상의 네 「반드시」

實相必諸法 諸法必十如 十如必十界 十界必身土

실상은 반드시 제법이고, 제법은 반드시 십여이며, 십여는 반드시 십계이고, 십계는 반드시 몸과 국토이다.

『금강비』

「실상사필(實相四必)」이라 불리는 이 구절은 제법실상을 네 단계로 풀어낸다. 실상은 제법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제법은 열 가지 如是를 갖출 수밖에 없으며, 그 如是는 열 세계의 차별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 세계는 반드시 몸(정보)과 국토(의보)를 가진다. 실상은 추상에 머물 수 없다. 반드시 구체적인 몸과 땅으로 내려온다. 창가학회 교학의 강의는 이 구절을 일념삼천의 간결한 표현으로 풀어, 제법이 삼천이고 실상이 일념이라고 정리한다.

  1. 實相실상
  2. 必諸法제법
  3. 必十如십여
  4. 必十界십계
  5. 必身土몸과 국토
身 = 정보
오음 · 중생세간
土 = 의보
국토세간
실상 = 일념제법 = 삼천
도표 10 · 실상의 네 「반드시」

아비지옥과 비로자나

阿鼻依正 全處極聖之自心 毘盧身土 不逾凡下之一念

아비지옥의 의보와 정보는 온전히 극성(부처)의 자심에 있고, 비로자나불의 몸과 국토는 범부의 한 생각을 넘지 않는다.

『금강비』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이 서로 안에 있다. 부처의 마음에 가장 깊은 지옥이 갖추어져 있고, 범부의 한 생각에 법신불의 몸과 국토가 갖추어져 있다. 6절에서 본 성구의 논리가 이 한 구절에 응축되어 있다. 십계호구를 지옥과 부처라는 양 끝으로 대표해 보인 것이다.

極聖の自心부처의 마음阿鼻の依正아비지옥의 의보·정보십계호구성구凡下の一念범부의 한 생각毘盧の身土비로자나불의 몸·국토

阿鼻依正 全處極聖之自心 毘盧身土 不逾凡下之一念

도표 11 · 극성의 자심과 범하의 일념 — 서로 안에 있음

『금강비』의 본래 주제는 무정유성(無情有性), 곧 마음 없는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에도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 묘락은 화엄 쪽의 반론에 맞서, 진여가 모든 것에 두루하다면 무정물을 거기서 뺄 수 없다고 논증했다. 의보와 정보가 함께 묘경을 편다는 앞의 구절과 같은 흐름이다. 대성인은 이 무정유성의 논리를 「목회이상(木繪二像) 개안」과 「초목성불」의 법문으로 받아들였고, 「제법실상초」 끝의 「같은 초목이라도 부처로 만들어지는 것은 숙연」이라는 말도 여기에 닿아 있다.

「제법실상초」 (1) — 십계의 의정이 모두 묘법연화경의 모습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는 문영 10년(1273) 5월 17일, 대성인이 유배지 사도의 이치노사와에서 제자 최련방(最蓮房)에게 보낸 편지다. 최련방은 천태종의 학승이었다. 그가 천태가의 핵심 법문인 제법실상의 참뜻을 물었고, 대성인이 답했다. 한 달 전인 4월에는 「관심본존초」가 쓰였다. 이 편지는 관심본존초에서 밝힌 본존의 법문을 한 제자를 위해 다른 각도에서 풀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첫머리는 이렇다.

問うて云く法華経の第一方便品に云く「諸法実相乃至本末究竟等」云云、此の経文の意如何、答えて云く下地獄より上仏界までの十界の依正の当体・悉く一法ものこさず妙法蓮華経のすがたなりと云ふ経文なり、依報あるならば必ず正報住すべし

물어 이르되, 법화경 제1권 방편품에 「제법실상 내지 본말구경등」이라 하였으니, 이 경문의 뜻은 무엇인가. 답하여 이르되, 아래로는 지옥에서 위로는 불계까지 십계의 의보와 정보의 당체가 모두 한 법도 남김없이 묘법연화경의 모습이라는 경문이다. 의보가 있다면 반드시 정보가 머물 것이다.

제법실상초, 일본어판 1358쪽

천태의 학승이 물었으니, 대성인은 먼저 천태가의 틀로 답한다. 제법은 십계의 의보와 정보, 실상은 묘법연화경이다. 이어서 앞 절에서 본 묘락의 세 구절을 차례로 인용하고, 이렇게 맺는다.

されば法界のすがた妙法蓮華経の五字にかはる事なし

그러므로 법계의 모습은 묘법연화경의 오자와 다르지 않다.

두 가지 새로움

이 답은 겉보기에 천태·묘락의 해석을 정리한 것 같지만, 두 군데에서 결정적으로 새롭다.

첫째, 실상에 이름이 붙었다. 천태에게 실상은 「중도」, 「일실제」, 「불가사의한 경계」였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궁극으로서, 결국 관법으로 비추어 보아야 하는 것이었다. 대성인은 그 실상을 묘법연화경, 곧 경의 제목이라고 부른다. 뒤에서 더 분명히 말한다. 「실상이라 함은 묘법연화경의 다른 이름이다(実相と云うは妙法蓮華経の異名なり).」 말로 다할 수 없던 것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얻었다. 부를 수 있으므로 부를(唱) 수 있다. 이것이 창제로 가는 길이다.

둘째, 의보가 정보보다 먼저 온다. 보통은 「정보가 있으면 반드시 의보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중생이 먼저이고 환경은 그 뒤이기 때문이다. 대성인은 거꾸로 「의보가 있다면 반드시 정보가 머문다」고 쓴다. 창가학회 교학의 강의는 이것을, 이전의 경전들이 십계를 열 가지 서로 다른 세계(의보) 로 설해 왔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지옥은 저 아래 있는 장소였고, 불계는 저 멀리 있는 정토였다. 대성인은 그 「장소로서의 십계」를 받아서, 그 장소에는 반드시 그 세계를 사는 생명(정보) 이 있다고 말한다. 십계는 지도 위의 장소가 아니라 생명의 상태다. 그리고 생명과 환경은 둘이 아니다(依正不二).

依報あるならば必ず正報住すべし

이전 경전 — 장소로서의 십계
  1. 지옥
  2. 아귀
  3. 축생
  4. 수라
  5. 인
  6. 천
  7. 성문
  8. 연각
  9. 보살
  10. 불
지옥은 저 아래, 불계는 저 위 — 칸마다 끊긴 장소
「제법실상초」 — 생명으로서의 십계하나의 원 안에 십계가 둘러 있고, 안쪽은 정보, 바깥 고리는 의보, 가운데는 의정불이.의보 — 국토정보 — 생명지옥아귀축생수라인천성문연각보살불依正不二장소마다 그 세계를 사는 생명 — 생명과 환경은 둘이 아니다
도표 12 · 의보와 정보 — 장소로서의 십계에서 생명으로서의 십계로

「제법실상초」 (2) — 허공회, 사상(事相)으로 나타난 실상

이어서 대성인은 방편품의 제법실상에서 곧바로 허공회(虛空會) 로 넘어간다.

釈迦多宝の二仏と云うも妙法等の五字より用の利益を施し給ふ時・事相に二仏と顕れて宝塔の中にして・うなづき合い給ふ

석가·다보 두 부처라 하는 것도, 묘법 등의 오자로부터 작용의 이익을 베푸실 때 사상(事相)으로 두 부처로 나타나 보탑 안에서 서로 고개를 끄덕이신 것이다.

구름 위 허공에 뜬 칠보의 보탑, 열린 문 안에 두 부처가 한 자리에 나란히 앉고 대중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금박 수묵화
그림 2 · 허공회 — 이불병좌

허공회란 무엇인가

법화경의 설법은 두 장소, 세 모임으로 이루어진다(二處三會). 서품부터 법사품까지는 영취산에서(前靈鷲山會), 견보탑품부터 촉루품까지는 허공에서(虛空會), 약왕품부터 끝까지는 다시 영취산에서(後靈鷲山會) 설해진다.

견보탑품에서 땅에서 칠보로 장식된 거대한 탑이 솟아올라 허공에 머물고, 그 안에서 과거의 부처인 다보여래가 석존의 설법이 모두 진실이라고 증명한다. 석존은 시방에서 분신의 부처들을 모으고, 탑의 문을 열어 다보여래와 나란히 앉는다(二佛並坐). 그리고 신통력으로 대중을 모두 허공으로 들어 올린다. 이 허공의 자리에서 지용보살이 땅에서 솟아오르고(종지용출품), 석존의 구원의 성불이 밝혀지며(여래수량품), 지용보살의 상수 상행보살에게 멸후의 홍통이 맡겨진다(여래신력품).

  • 11견보탑품 — 이불병좌
  • 15종지용출품
  • 16여래수량품
  • 21여래신력품 — 결요부촉
도표 13 · 이처삼회와 허공회

방편품에서 허공회로

대성인은 왜 제법실상의 물음에 허공회로 답하는가. 방편품의 제법실상은 말로 설해진 이치다. 허공회는 그 이치가 눈에 보이는 광경으로 나타난 것, 곧 사상(事相)이다. 석가와 다보라는 두 부처는 묘법연화경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작용(用)으로서 나타난 모습이고, 그 두 부처가 한 탑 안에서 고개를 끄덕인 것은 둘이 설하고 증명한 법이 묘법연화경 하나임을 보인 것이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이 두 부처의 뜻을 이렇게 푼다. 「다보는 경(境)이요 석가는 지(智)이니, 경과 지가 둘이면서 경지불이(境智不二)의 내증이다」(「사조금오전어반사」). 다보여래는 과거에 이미 입멸한 부처로서 진리 그 자체(境) 를, 석존은 지금 설하는 부처로서 그 진리를 비추는 지혜(智) 를 나타낸다. 둘이 한 자리에 나란히 앉은 것은 진리와 지혜가 하나로 어울린 모습, 곧 경지명합(境智冥合) 이다. 방편품에서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궁구한다」고 한 그 지혜와 실상이 허공회에서 두 부처의 모습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보탑 안 왼쪽에 다보(경), 오른쪽에 석가(지)가 나란히 앉고, 탑 위에 묘법연화경. 경지이이 · 경지불이 → 경지명합.妙法蓮華經多寶境진리釋迦智지혜이불병좌境智而二 · 境智不二 → 境智冥合

어본존: 가운데 남묘호렌게쿄,
좌우 석가모니불 · 다보여래

도표 14 · 이불병좌와 경지명합

사(事)의 일념삼천

그리고 대성인은 이렇게 선언한다.

地涌の菩薩の中の上首唱導・上行・無辺行等の菩薩より外は、末法の始の五百年に出現して法体の妙法蓮華経の五字を弘め給うのみならず、宝塔の中の二仏並座の儀式を作り顕すべき人なし、是れ即本門寿量品の事の一念三千の法門なるが故なり

지용보살 가운데 상수로서 앞장서 이끄는 상행·무변행 등의 보살 말고는, 말법의 처음 오백 년에 출현하여 법체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넓힐 뿐 아니라 보탑 안의 이불병좌의 의식을 만들어 나타낼 사람이 없다. 이것은 곧 본문 수량품의 사(事)의 일념삼천의 법문이기 때문이다.

「이불병좌의 의식을 만들어 나타낸다」 — 이것은 대성인이 허공회의 의식을 빌려 어본존을 도현하신 것을 가리킨다. 어본존의 한가운데에 「남묘호렌게쿄」가 쓰이고, 그 좌우에 「석가모니불」과 「다보여래」가 있다. 방편품에서 말로 설해진 제법실상이, 허공회에서 광경으로 나타나고, 대성인에게서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한 폭의 본존으로 나타났다. 이치(理)에서 사상(事)으로, 사상에서 수지(受持)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이것이 「사의 일념삼천」이다.

천태에게 일념삼천은 마음을 관하여 비추어 보는 이치였다. 대성인에게 일념삼천은 본존으로 나타나 믿고 부를 수 있는 사실이 되었다. 이 전환은 다섯째 자리 일념삼천과 여섯째 자리 남묘호렌게쿄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제법실상초」 (3) — 체(體)의 삼신과 용(用)의 삼신

「제법실상초」에서 가장 대담한 대목이 이어진다.

されば釈迦・多宝の二仏と云うも用の仏なり、妙法蓮華経こそ本仏にては御座候へ、経に云く「如来秘密神通之力」是なり、如来秘密は体の三身にして本仏なり、神通之力は用の三身にして迹仏ぞかし、凡夫は体の三身にして本仏ぞかし、仏は用の三身にして迹仏なり

그러므로 석가·다보 두 부처라 하는 것도 작용의 부처이며, 묘법연화경이야말로 본불이시다. 경에 「여래비밀 신통지력」이라 한 것이 이것이다. 여래비밀은 체의 삼신으로서 본불이요, 신통지력은 용의 삼신으로서 적불이다. 범부는 체의 삼신으로서 본불이요, 부처는 용의 삼신으로서 적불이다.

「여래비밀 신통지력」의 두 해석

이 구절은 여래수량품 첫머리에서 석존이 「너희는 여래의 비밀과 신통의 힘을 잘 들으라」고 한 데서 나왔다. 천태는 『법화문구』 권9하에서 이를 풀어, 한 몸이 곧 세 몸인 것을 「비(秘)」, 세 몸이 곧 한 몸인 것을 「밀(密)」이라 하고, 「신(神)」은 천연 불변의 진리이므로 법신, 「통(通)」은 막힘없이 통달하는 지혜이므로 보신, 「역(力)」은 자유자재한 작용이므로 응신이라 했다. 여래비밀은 체(體)의 삼신, 신통지력은 용(用)의 삼신이다.

경문천태의 풀이체·용「제법실상초」
여래비밀일신즉삼신(秘) · 삼신즉일신(密)체의 삼신본불 — 묘법연화경, 범부
신통지력신=법신 · 통=보신 · 역=응신용의 삼신적불 — 석가·다보, 경에 설해진 부처
도표 15 · 체의 삼신과 용의 삼신

범부가 본불이라는 말

대성인은 천태의 풀이를 받아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본체는 묘법연화경이고, 경전에 설해진 장엄한 부처들 —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갖춘 석가, 보탑 안의 다보 — 은 그 묘법의 작용이 나타난 모습, 곧 용의 부처다. 그리고 묘법연화경의 당체로서 본체를 갖춘 것은 범부다. 그래서 「범부는 체의 삼신으로서 본불」이라고 한다.

이어서 대성인은 이렇게 말한다. 석가불이 우리 중생을 위해 주·사·친의 삼덕을 갖추신 줄 알았으나, 오히려 부처에게 삼덕을 입혀 드리는 것은 범부라고. 천태가 「여래란 시방삼세의 제불·이불·삼불·본불·적불의 통호」라고 한 것을 두고, 여기서 본불이라 한 것은 범부요 적불이라 한 것은 부처라고 풀이한다.

창가학회 교학의 강의는 이 「범부」를 두 겹으로 읽는다. 별(別)해서는 묘법의 당체를 몸소 나타내신 대성인 자신이며, 총(總)해서는 대성인의 가르침대로 남묘호렌게쿄를 믿고 자행화타에 힘쓰는 말법의 중생이다. 문저 교학은 이 대목에서 구원원초의 자수용신과 인법체일의 법문을 읽는다.

미오의 차이와 구체구용

그렇다면 범부와 부처는 무엇이 다른가.

然れども迷悟の不同にして生仏・異なるに依つて倶体・倶用の三身と云ふ事をば衆生しらざるなり

그러나 미혹과 깨달음이 같지 않아 중생과 부처가 다르므로, 체와 용을 함께 갖춘 삼신(倶体倶用)이라는 것을 중생은 알지 못한다.

본체는 같다. 다른 것은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다. 이 대목은 둘째 자리에서 본 「일생성불초」의 거울 비유와 정확히 겹친다. 일념무명의 미심과 법성진여의 명경은 두 개의 거울이 아니라 닦였느냐 닦이지 않았느냐의 차이다. 「일념삼천법문」(어서)에도 같은 뜻이 있다. 삼신여래는 밖에 있지 않고 내 몸이 곧 삼덕구경의 몸이니, 이것을 아는 것을 여래라 하고 모르는 것을 범부라 한다.

「제법실상초」 (4) — 지옥은 지옥의 모습 그대로

그리고 대성인은 제법실상을 가장 구체적인 말로 정의한다.

さてこそ諸法と十界を挙げて実相とは説かれて候へ、実相と云うは妙法蓮華経の異名なり・諸法は妙法蓮華経と云う事なり、地獄は地獄のすがたを見せたるが実の相なり、餓鬼と変ぜば地獄の実のすがたには非ず、仏は仏のすがた凡夫は凡夫のすがた、万法の当体のすがたが妙法蓮華経の当体なりと云ふ事を諸法実相とは申すなり

그래서 제법으로 십계를 들어 실상이라고 설하신 것이다. 실상이라 함은 묘법연화경의 다른 이름이니, 제법은 묘법연화경이라는 뜻이다. 지옥은 지옥의 모습을 보인 것이 참된 모습이다. 아귀로 변하면 지옥의 참된 모습이 아니다. 부처는 부처의 모습, 범부는 범부의 모습, 만법의 당체의 모습이 묘법연화경의 당체라는 것을 제법실상이라 하는 것이다.

모습을 바꾸지 않는 실상

「지옥은 지옥의 모습을 보인 것이 참된 모습이다.」 이 한 문장은 이 글이 걸어온 길 전체를 뒤집는 무게를 가진다.

소승에서 실상은 세간을 떠나야 도달하는 열반이었다. 별교에서 실상은 현상의 층을 벗겨 내야 도달하는 중도였다. 그 모든 구도에서 지옥은 벗어나야 할 곳, 실상은 지옥이 아닌 곳에 있었다. 대성인은 말한다. 지옥이 지옥의 모습으로 있는 것, 그것이 실상이다. 지옥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실상을 찾는 것이 아니다. 지옥의 모습이 곧 묘법연화경의 당체다.

「아귀로 변하면 지옥의 참된 모습이 아니다」는 구절은 이전 경전들의 성불관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전 경전에서는 지옥의 중생이 오랜 세월 죄를 갚아 인계로 오르고, 거기서 다시 오랜 보살행을 거쳐야 부처가 된다고 했다(歷劫修行). 모습을 바꾸어 가며 한 단계씩 올라가는 성불이다. 제법실상의 성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모습 그대로, 그것이 묘법의 당체임을 알 때 부처가 된다.

천태 계통의 문헌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지옥은 지옥 그대로, 아귀는 아귀 그대로, 내지 불계는 불계 그대로, 고치지 않고 법이자연한 실상이다」(『삼십사개사서』). 그러나 대성인의 말이 이것과 다른 점은, 그 실상에 묘법연화경이라는 이름을 주고, 그 이름을 부르는 수행을 세웠다는 데 있다.

앵매도리 — 다시 이 사이트의 이름으로

둘째 자리 끝에서 이 사이트의 이름 「앵매도리」를 삼제로 읽었다. 셋째 자리에서 그 구절은 한층 선명해진다.

桜梅桃李の己己の当体を改めずして無作三身と開見すれば

앵매도리 각각의 당체를 고치지 않고 무작삼신으로 열어 본다면

어의구전, 어서 784쪽

「지옥은 지옥의 모습」과 「앵매도리 각각의 당체를 고치지 않고」는 같은 법문이다. 벚꽃은 매화가 되지 않고, 복숭아는 자두가 되지 않는다. 각자가 각자의 모습으로 피어 있는 것이 그대로 무작삼신의 부처다. 「제법실상초」의 체의 삼신이 어의구전의 무작삼신이고, 「만법의 당체의 모습이 묘법연화경의 당체」라는 말이 「앵매도리의 당체를 고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적문의 이름, 본문의 법

대성인은 이 대목을 천태의 말이라 전해지는 한 구절로 맺는다.

天台云く「実相の深理本有の妙法蓮華経」と云云、此の釈の意は実相の名言は迹門に主づけ本有の妙法蓮華経と云うは本門の上の法門なり

천태가 이르기를 「실상의 깊은 이치는 본유의 묘법연화경」이라 하였다. 이 풀이의 뜻은, 실상이라는 이름은 적문에 속한 것이고, 본유의 묘법연화경이라 함은 본문 위의 법문이라는 것이다.

(이 인용은 현존하는 천태 저술에서 출전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부록 C)

「실상」이라는 이름은 방편품, 곧 적문의 말이다. 그 실상의 깊은 이치를 「본래부터 있는(本有) 묘법연화경」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본문, 곧 수량품의 구원의 부처와 이어진 법문이 된다. 적문의 제법실상은 모든 법이 평등하게 묘법의 모습이라는 법의 보편성을 밝혔다. 본문은 그 법이 구원부터 늘 있어 온 부처의 생명임을 밝힌다. 제법실상이 넷째 자리 구원실성으로 넘어가는 문이 여기에 있다. 대성인은 「이 풀이를 잘 마음속에 헤아려 보라」고 당부한다.

적문 (방편품)
  • 「실상」이라는 이름
  • 법의 보편성
  • 구계즉불계
実相の深理
本有の妙法蓮華経
본문 (수량품)
  • 「본유의 묘법연화경」
  • 부처의 보편성
  • 불계즉구계

→ 四 구원실성 (준비 중)

도표 16 · 적문과 본문 — 법의 보편성과 부처의 보편성

실상을 사는 법 — 여시아문, 숙연, 신·행·학

「제법실상초」의 후반은 교리에서 삶으로 내려온다. 제법실상을 아는 것이 어떻게 한 사람의 신심이 되는가.

여시아문 — 실상을 들은 자

대성인은 제일결집의 장면을 그린다. 석존 입멸 후 천 명의 아라한이 모여 경을 결집할 때, 문수보살이 「묘법연화경」이라 부르자 아난이 울면서 「여시아문(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이라 답했고, 나머지 아라한들은 흐르는 눈물을 벼루의 물로 삼아 여시아문 위에 묘법연화경이라 적었다. 그리고 대성인은 말한다. 지금 나도 그와 같다. 석가·다보가 미래 일본국의 일체중생을 위해 남겨 두신 묘법연화경이라고, 이와 같이 나도 들었다.

천태는 『법화문구』에서 「여시는 들은 바의 법체를 드는 것이요, 아문은 능히 지니는 사람」이라 했다. 제법실상이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궁구하는」 법이라면, 그것을 「이와 같이 들었다」고 말하는 자는 그 법을 제 몸으로 받아 지닌 자다. 실상은 바깥에서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들리고, 받아 지녀지고, 울며 적혀지는 것이다.

같은 초목이라도

法華経の行者となる事は過去の宿習なり、同じ草木なれども仏とつくらるるは宿縁なるべし、仏なりとも権仏となるは又宿業なるべし

법화경의 행자가 되는 것은 과거의 숙습이다. 같은 초목이라도 부처로 만들어지는 것은 숙연이요, 부처라 하더라도 권불이 되는 것은 또 숙업이다.

물가의 살아 있는 나무, 작업대 위의 같은 나무 토막, 그 나무로 깎은 작은 좌불이 한 줄로 놓인 금박 수묵화
그림 3 · 같은 초목 — 나무에서 불상으로

10절에서 본 묘락의 무정유성이 여기서 한 그루 나무의 비유가 된다. 같은 나무라도 불사를 만나 불상으로 깎이는 것은 인연이고, 어떤 불상으로 깎이느냐는 업이다. 모든 법이 똑같이 묘법의 당체라는 것(제법실상)과, 그 당체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느냐는 인연과 업에 달려 있다는 것(십여시의 인·연·과·보)이 한 문장 안에 함께 있다. 실상은 평등하고, 드러남은 인과를 따른다.

신·행·학

편지의 끝에서 대성인은 제법실상의 법문을 실천의 세 기둥으로 요약한다.

一閻浮提第一の御本尊を信じさせ給へ … 行学の二道をはげみ候べし、行学たへなば仏法はあるべからず、我もいたし人をも教化候へ、行学は信心よりをこるべく候、力あらば一文一句なりともかたらせ給うべし

일염부제 제일의 어본존을 믿으라. … 행과 학의 두 길에 힘쓰라. 행과 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있을 수 없다.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라. 행과 학은 신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힘이 있다면 한 글, 한 구절이라도 이야기하라.

제법실상은 부처만이 궁구하는 경지였다. 그 경지가 허공회에서 광경이 되고, 어본존으로 나타났다. 이제 범부는 그것을 믿고(信), 부르고 넓히며(行), 배운다(學). 부처만이 궁구하던 실상을, 범부가 신·행·학으로 산다. 이 사이트가 「깊이 읽기」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학(學)은 신심에서 일어나고, 다시 신심을 깊게 한다.

  1. ①방편품말로 설해진 제법실상理
  2. ②허공회광경으로 나타난 실상事相
  3. ③어본존믿고 부를 수 있는 실상受持
信行 · 學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난다
도표 17 · 이치에서 사상으로, 사상에서 수지로

다음 자리로 — 구원실성

제법실상은 모든 법이 평등하게 묘법연화경의 모습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러나 대성인이 「본유의 묘법연화경은 본문 위의 법문」이라고 한 것처럼, 그 법이 누구의 생명인가라는 물음은 아직 남아 있다.

방편품의 석존은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 깨달은 부처(始成正覚)로서 제법실상을 설했다. 그 부처가 실은 헤아릴 수 없는 먼 옛날에 이미 성불한 부처였다는 것이 밝혀질 때, 제법실상은 한 부처가 새로 발견한 진리가 아니라 구원부터 늘 있어 온 부처의 생명 그 자체가 된다. 넷째 자리 구원실성에서는 여래수량품의 오백진점겁, 개근현원(開近顯遠), 그리고 「늘 영취산에 있다(常在靈鷲山)」는 부처의 상주를 읽는다.

참고 문헌

원전

  • 『묘법연화경』 구마라집 역, T9 no.262 / 『정법화경』 축법호 역, T9 no.263 / Saddharmapuṇḍarīka-sūtra
  • 『잡아함경』 299경, T2 no.99 / Saṃyutta Nikāya 12.20
  • 『대지도론』 구마라집 역, T25 no.1509
  • 천태 지의, 『법화현의』 T33 no.1716 / 『법화문구』 T34 no.1718 / 『마하지관』 T46 no.1911
  • 『관음현의』 T34 no.1726
  • 묘락 담연, 『법화문구기』 T34 no.1719 / 『금강비』 T46 no.1932
  • 『대승기신론』 T32 no.1666
  • 니치렌 대성인, 「제법실상초」 · 「관심본존초」 · 「일생성불초」 · 「사조금오전어반사」 · 『어의구전』(어서 784쪽)

연구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安藤俊雄, 『天台性具思想論』, 法藏館, 1953
  • 田村芳朗·梅原猛, 『絶対の真理〈天台〉』(仏教の思想 5), 角川書店, 1970
  • 横超慧日 編, 『法華思想』, 平楽寺書店, 1969
  • Paul L. Swanson, Foundations of T'ien-t'ai Philosophy, Asian Humanities Press, 1989
  • Brook Ziporyn, Evil and/or/as the Good: Omnicentrism, Intersubjectivity, and Value Paradox in Tiantai Buddhist Thought,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2000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