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넓은 강가 평원에 홀로 선 큰 보리수와 그 아래 아주 작게 앉은 뒷모습, 지평선 위의 샛별을 그린 금박 수묵화

석가모니 세존

釋迦牟尼世尊기원전 5세기경 · 사바세계의 교주

기원전 5세기경, 히말라야 남쪽 기슭의 작은 나라 석가족에서 한 태자가 태어났다. 그는 스물아홉(동아시아 전승으로는 열아홉)에 궁을 떠나 여섯 해를 수행한 끝에 서른다섯(동아시아 전승으로는 서른)에 깨달음을 얻었고, 여든에 쿠시나가라의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서 생애를 마치기까지 갠지스 강 유역을 걸으며 법을 설했다. 사람들은 그를 「석가족의 성자」, 석가모니(釋迦牟尼)라 불렀다.

석존의 생애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뜻밖에도 전기(傳記)가 아니다. 초기 경전에는 탄생부터 입멸까지를 한 줄로 이은 이야기가 없다. 석존은 제자들에게 설법하다가 이따금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아버지의 집에서 얼마나 곱게 자랐는지, 누구에게 배우고 왜 떠났는지, 어떻게 고행을 버렸는지. 그 조각난 회상들이 경전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리고 입멸을 앞둔 마지막 여행만은 『대반열반경』이라는 한 편의 긴 경으로 남았다. 태어나서 출가하기까지의 이야기, 곧 흰 코끼리 꿈과 룸비니 동산의 탄생, 네 문 밖에서 본 늙음·병·죽음, 한밤중의 출가는 대부분 그보다 뒤에 쓰인 불전 문학이 엮은 것이다.

이 페이지는 그 두 층을 가려 가며 생애를 따라간다. 초기 경전이 전하는 것은 초기 경전으로, 불전 문학이 전하는 것은 불전 문학으로 밝힌다. 전승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다. 전승은 사람들이 석존을 어떻게 기억하고 무엇을 배우려 했는지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료다.

그리고 그 생애를 또 하나의 눈으로 읽는다. 니치렌 대성인은 석존을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주·사·친」의 첫 모범으로 받드셨다. 「관심본존초」에서는 「실달 태자는 인계(人界)에서 불신(佛身)을 이루었다」고 하셨다. 인간이 인간의 몸으로 부처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 모든 사람의 생명에 부처의 경애가 갖추어져 있다는 「현증(現證)」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대성인은 석존의 불법을 「재세(在世)」의 불법으로, 말법의 사람들을 구하는 법은 그 밑바닥에 담긴 남묘호렌게쿄라고 보셨다. 창가학회는 이 두 겹의 눈으로 석존을 배운다. 이 페이지는 그 관점을 따라,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본다.

생애의 네 자리탄생 — 룸비니성도 — 보드가야초전법륜 — 사르나트입멸 — 쿠시나가라
일대 오십 년서른에 성도하여 여든에 입멸하기까지 — 대성인의 표현, 「개목초」 188쪽천태의 오시 —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 법화열반
  1. 룸비니탄생
  2. 카필라밧투석가족의 도읍 — 틸라우라코트 · 피프라와 두 후보, 정해지지 않음
  3. 라자가하마가다의 도읍 · 죽림정사
  4. 보드가야우루벨라 · 성도
  5. 사르나트이시파타나(녹야원) · 초전법륜
  6. 사밧티코살라의 도읍 · 기원정사
  7. 베살리비구니 교단 · 마지막 여행
  8. 코삼비갠지스의 새 도시
  9. 쿠시나가라입멸
강줄기와 산기슭은 대략의 윤곽이며 측량 지도가 아니다 · 금 테두리는 네 대성지 · 점을 누르면 해당 절로 간다
도표 1 · 석존 생애의 땅 — 갠지스 강 중류
1부 석가족의 태자

시대 — 갠지스의 새 도시들과 사문

기원전 6~5세기 · 갠지스 강 중류

석존이 태어난 무렵 북인도는 큰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다. 수백 년에 걸쳐 동쪽으로 옮겨 온 아리아인의 사회가 갠지스 강 중류의 비옥한 평야에 자리를 잡았고, 철제 농기구와 벼농사가 넓은 땅을 열었다. 남는 곡물은 교역을 불렀고, 교역은 도시를 키웠다. 학계는 인더스 문명 이후 인도 아대륙에서 다시 도시가 일어난 이 시기를 「두 번째 도시화」라 부른다. 석존이 뒤에 법을 설하게 되는 라자가하(王舍城), 사밧티(舍衛城), 바라나시, 베살리(毘舍離), 코삼비가 모두 이 무렵 성벽을 두르고 시장을 연 새 도시들이었다.

초기 경전은 이 시대의 나라를 「열여섯 대국(十六大國)」으로 헤아린다. 그 가운데 갠지스 남쪽의 마가다와 북쪽의 코살라가 가장 강했다. 마가다는 빔비사라 왕이 라자가하를 도읍으로 다스렸고, 코살라는 파세나디 왕(波斯匿王)이 사밧티를 도읍으로 다스렸다. 두 나라는 모두 왕 한 사람이 다스리는 왕국이었다. 반면 갠지스 북쪽의 밧지족이나 말라족, 그리고 석존이 태어난 석가족은 여러 귀족 가문의 대표가 공회당에 모여 일을 정하는 공화정의 나라였다. 큰 왕국들이 이 작은 공화국들을 하나씩 삼켜 가던 때였다. 석존의 생애 끝 무렵 석가족이 코살라에게 멸망하는 것(4부)도 이 흐름 속에 있다.

왕국마가다 — 라자가하 · 빔비사라 왕코살라 — 사밧티 · 파세나디 왕밤사 — 코삼비아반티 — 서남쪽
공화국석가 — 카필라밧투 · 코살라에 복속(DN 27)콜리야말라 — 쿠시나가라 · 파바밧지 — 베살리
열여섯 대국의 목록은 경전마다 조금씩 다르다 · 경계는 개념도
도표 2 · 열여섯 대국과 석가족 — 기원전 5세기경 갠지스 중류의 나라들

사상의 세계도 흔들리고 있었다. 오래도록 인도 사회의 정신을 이끈 것은 베다의 제사를 맡은 브라만이었다. 제사가 바르게 치러지면 신들이 응하고 세계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 도시의 상인과 무사들에게는 제사의 권위가 예전만 못했다. 그 틈에서 집을 떠나 숲과 거리를 떠돌며 스스로 진리를 구하는 수행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을 「애써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문(沙門, samaṇa)이라 불렀다.

사문들은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았다. 초기 경전 『사문과경(沙門果經)』(DN 2, 『장아함』 「사문과경」 T1 no.1)은 이름난 여섯 사문의 가르침을 전한다. 선악의 행위에는 과보가 없다는 이, 모든 것은 정해진 운명대로 흘러간다는 이, 사람은 땅·물·불·바람의 네 원소로 흩어질 뿐이라는 이, 어떤 물음에도 확답하지 않는 이, 그리고 엄격한 고행으로 업을 태워 없애야 한다는 자이나교의 니간타 나타풋타. 불교는 이들을 「육사외도(六師外道)」라 불렀다. 대성인도 「개목초」에서 석존이 세상에 나올 무렵 「육사외도」가 있었다고 적으셨다(187–188쪽).

사문과 브라만이 한결같이 묻고 있던 것은 윤회였다. 사람은 죽어도 끝나지 않고 지은 업(業)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는다. 그 되풀이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석존의 물음도 여기서 시작된다. 다만 석존은 이 물음을 제사로도, 운명론으로도, 극단의 고행으로도 풀지 않았다. 그 길은 2부에서 본다.

석가족과 카필라밧투

히말라야 남쪽 기슭 · 지금의 인도·네팔 국경

석가족(釋迦族, Sakya)은 히말라야 남쪽 기슭, 지금의 인도와 네팔 국경 부근 테라이 평원에 살던 작은 부족이다. 도읍은 카필라밧투(迦毘羅衛, Kapilavatthu)였다. 벼농사를 짓는 땅이었다. 석존의 아버지 이름 숫도다나(Suddhodana)를 한역 경전이 「정반왕(淨飯王)」, 곧 「깨끗한 밥의 왕」이라 옮긴 것도, 그 집안의 형제들 이름이 모두 「반(飯)」 자 돌림으로 전하는 것도 이 벼농사의 땅과 무관하지 않다.

석가족은 스스로 무사 계급(크샤트리아)이라 여겼고, 성은 고타마(Gotama, 瞿曇)였다. 석존이 경전에서 흔히 「사문 고타마」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성인도 「개목초」에서 제바달다의 입을 빌려 석존을 「구담(瞿曇)」이라 부르신다(205쪽). 태자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싯닷타(Siddhattha, 悉達多)는 「목적을 이룬 이」라는 뜻인데, 초기 경전에는 이 이름이 나오지 않고 뒤의 문헌에서 쓰인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 이름을 「실달 태자 · 일체의성취보살(一切義成就菩薩)」이라 풀어 적으셨다(196쪽).

석가족의 「왕」은 큰 왕국의 전제 군주와 달랐다. 공회당에 모이는 귀족 가문의 대표 가운데 하나였고, 나라 자체는 이웃 코살라의 영향 아래 있었다. 초기 경전은 그것을 분명히 적는다.

Sakyā kho pana, vāseṭṭha,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anuyuttā bhavanti.

바셋타여, 석가족은 코살라의 파세나디 왕에게 복속해 있다.

DN 27 「세기경」

그러니 「태자」라는 말도 대국의 왕위 계승자를 떠올리면 조금 어긋난다. 석존은 작은 공화국의 유력한 귀족 가문에서 난 맏아들이었다. 그럼에도 한역 경전과 불전 문학, 그리고 대성인의 어서는 한결같이 석존을 「정반왕의 태자」로 부른다. 대성인은 석존의 출가를 「십선(十善)의 자리를 버리고」(「주사친어서」, 386쪽)라고 쓰셨다. 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하려는 표현이다.

한 집안의 사람들

석가족의 계보는 여러 전승에서 조금씩 다르다. 대성인이 어서에서 쓰신 계보는 중국에 전해진 경론의 전승을 따른다. 석존은 「사자협왕(師子頰王)의 손자, 정반왕의 적자(嫡子)」이고(「개목초」, 196쪽 · 「주사친어서」, 386쪽), 사자협왕의 네 아들 가운데 맏이가 정반왕, 그 아우가 곡반왕(斛飯王)이다. 대성인은 「아난 존자는 곡반왕의 둘째 아들이요, 라후라 존자는 정반왕의 손자다(阿難尊者は斛飯王の次男・羅睺羅尊者は浄飯王の孫なり)」(「개목초」, 204쪽)라고 적으셨고, 제바달다에게는 「나는 곡반왕의 적자요 아난 존자의 형이다(我は斛飯王の嫡子・阿難尊者が兄)」(205쪽)라고 말하게 하셨다.

이 계보를 한 장에 그려 보면, 석존의 생애에 나오는 사람들 상당수가 한 집안이었음을 알게 된다. 석존의 곁을 스물다섯 해 지킨 시자 아난, 교단을 빼앗으려 한 제바달다, 석존의 아들 라후라, 그리고 3부에서 볼 첫 비구니 마하파자파티. 석존의 생애는 한 집안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 사자협왕師子頰王
    • 정반왕淨飯王═마야 부인摩耶夫人═마하파자파티摩訶波闍波提비구니
      • 석존悉達太子어머니 마야 부인═야소다라耶輸陀羅비구니
        • 라후라羅睺羅출가
      • 난다출가어머니 마하파자파티
    • 백반왕白飯王
    • 곡반왕斛飯王
      • 제바달다提婆達多출가팔리 전승 — 야소다라의 오빠
      • 아난阿難출가팔리 전승 — 감로반왕의 아들
    • 감로반왕甘露飯王
대성인이 어서에 쓰신 계보를 본선으로 삼음(「개목초」 204–205쪽) · 전승마다 다름 · 점선 칸은 팔리 전승 · ═ 는 배우자
도표 3 · 석가족의 계보 — 대성인이 어서에 쓰신 계보를 중심으로

연대 대조 — 아난과 제바달다의 아버지를 한역 경론과 대성인의 어서는 곡반왕으로 적는다(「개목초」, 204–205쪽). 팔리 전승은 아난의 아버지를 아미토다나(甘露飯王)로 전하며, 제바달다는 석존의 아내 야소다라의 오빠로 전하는 문헌이 많다. 이 페이지의 계보 도표는 어서의 계보를 본선으로, 팔리 전승을 점선으로 함께 적는다.

카필라밧투는 어디인가

카필라밧투가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두 곳이 후보로 꼽힌다. 하나는 네팔 쪽의 틸라우라코트, 다른 하나는 국경 너머 인도 쪽의 피프라와·간와리아다. 1898년 피프라와의 옛 탑에서 사리 항아리가 발견되었고, 그 겉에 석가족이 붓다의 유골을 모셨다는 뜻의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1970년대에는 같은 유적에서 「카필라밧투」라는 글자가 찍힌 도장들이 나왔다고 보고되었다. 한편 틸라우라코트에서는 성벽과 해자를 두른 옛 도성의 흔적이 드러났다. 어느 쪽이 석존이 자란 도성인지, 혹은 시대에 따라 도읍이 옮겨졌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연구 노트 — 피프라와의 사리 항아리 명문은 학계에서 석가족이 석존의 유골을 나누어 받아 탑을 세웠다는 『대반열반경』의 기록(4부)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자주 언급된다. 다만 명문의 읽는 법과 연대, 도장의 해석을 두고 견해가 갈린다. 이 페이지는 두 후보지를 모두 지도에 적고 어느 쪽으로도 정하지 않는다.

탄생 — 룸비니 동산

기원전 5세기경 · 룸비니 · 동아시아 전승으로 4월 8일

석존의 어머니는 마하마야(摩訶摩耶), 흔히 마야 부인(摩耶夫人)이라 불리는 이다. 전승에 따르면 출산을 앞둔 마야 부인은 당시의 관습대로 친정으로 가던 길에 룸비니 동산에서 쉬다가 아이를 낳았다. 룸비니는 카필라밧투와 마야 부인의 고향 데바다하 사이에 있는 숲이었다.

히말라야 아래 봄의 숲, 연한 금빛 꽃이 핀 사라나무들이 작은 연못을 둘러싸고, 나무 아래 길에 여인들이 멀리 작게 모여 있으며 먼 뒤로 흰 설산 능선이 보이는 금박 수묵화
그림 1 · 룸비니 동산

탄생의 이야기는 초기 경전에서도 이미 기적으로 둘러싸여 있다. 『맛지마 니카야』의 「희유미증유법경」(MN 123, 『중아함』 「미증유법경」 T1 no.26(32))은 아난이 석존께 들은 보살 탄생의 놀라운 일들을 늘어놓는다. 보살은 도솔천에서 내려와 어머니의 태에 들었고, 어머니는 선 채로 아이를 낳았으며,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땅에 서서 일곱 걸음을 걷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aggohamasmi lokassa, jeṭṭhohamasmi lokassa, seṭṭhohamasmi lokassa.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

나는 세상에서 으뜸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MN 123

동아시아에 널리 알려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이 말이 한역 불전에서 자리 잡은 형태다.

天上天下唯我為尊 三界皆苦吾當安之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내가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괴로우니 내가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수행본기경』, T3 no.184

뒤의 구절이 앞의 구절의 뜻을 정한다. 「오직 내가 존귀하다」는 오만의 선언이 아니라, 괴로움에 빠진 삼계를 편안하게 하겠다는 서원과 한 쌍으로 전해졌다. 창가학회는 이 「유아독존」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그 자체로 둘도 없이 존귀하다는 선언으로 읽어 왔다.

연구 노트 —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초기 경전 안에서도 석존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디가 니카야』의 「대본경」(DN 14, 『장아함』 「대본경」 T1 no.1(1))은 과거의 부처 비파시가 태어날 때 같은 일이 있었다고 전하며, 모든 부처에게 공통된 「법칙(dhammatā)」으로 설명한다. 학계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부처라는 존재의 보편성을 말하기 위해 정형화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아시타 선인의 눈물

탄생의 소식을 듣고 히말라야에서 한 늙은 선인이 내려왔다. 아시타(阿私陀)다. 『숫타니파타』의 「날라카경」(Sn 3.11)은 이 장면을 전한다. 아시타는 아기를 안아 들고 그 몸에 갖추어진 모습을 살펴본 뒤, 이 아이는 반드시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리라고 기뻐했다. 그러고는 눈물을 흘렸다. 석가족 사람들이 놀라 불길한 일이 있느냐고 묻자, 아시타는 아이에게는 아무 해가 없다고 답했다. 자신은 늙어 이 아이가 깨달음을 얻어 법을 설할 때까지 살지 못하니 그것이 슬프다는 것이었다.

대성인은 「찬시초」에서 이 이야기를 들어, 법이 널리 퍼지는 때에 태어나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를 말씀하셨다.

例せば阿私陀仙人が悉達太子の生れさせ給いしを見て悲んで云く現生には九十にあまれり太子の成道を見るべからず後生には無色界に生れて五十年の説法の坐にもつらなるべからず正像末にも生るべからずとなげきしがごとし、道心あらん人人は此を見ききて悦ばせ給え正像二千年の大王よりも後世ををもはん人人は末法の今の民にてこそあるべけれ

예컨대 아시타 선인이 실달 태자가 태어나신 것을 보고 슬퍼하며 「이번 생에는 이미 아흔이 넘었으니 태자의 성도를 보지 못할 것이고, 다음 생에는 무색계에 태어나 오십 년 설법의 자리에도 끼지 못할 것이며, 정법·상법·말법에도 태어나지 못하리라」 하고 한탄한 것과 같다. 도심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들어 기뻐하시라. 정법·상법 이천 년의 대왕보다도, 후세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말법 지금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찬시초」, 260쪽

천태·묘락·전교가 법화경이 퍼지는 두 때, 곧 석존 재세의 법화경 팔 년과 말법의 처음 오백 년에서 모두 벗어나 태어난 것을 한탄했다는 대목 바로 뒤에 이 비유가 온다. 석존의 탄생을 슬퍼한 아시타의 눈물이, 대성인의 글에서는 말법에 태어난 사람들의 기쁨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해를 품은 꿈

불전 문학은 석존이 어머니의 태에 드는 장면을 흰 코끼리의 꿈으로 그린다.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이다. 대성인이 「찬시초」에서 쓰신 것은 이와 다른 전승이다.

摩耶夫人は日をはらむとゆめにみて悉達太子をうませ給う、かるがゆへに仏のわらわなをば日種という

마야 부인은 해를 품는 꿈을 꾸고 실달 태자를 낳으셨다. 그러므로 부처의 어릴 적 이름을 일종(日種)이라 한다.

「찬시초」, 282쪽

「일종」은 산스크리트 아디탸반두(Ādityabandhu), 곧 「해의 친족」을 옮긴 말로, 석가족이 태양의 후예를 자처한 데서 온 이름이다. 초기 경전에서도 석존은 「해의 친족(ādiccabandhu)」으로 불린다(Sn 3.1 등). 대성인은 이 대목에서 꿈에 해를 쏘는 것이 길몽일 수 없다는 논지를 펴시며, 해와 석존과 일본국을 한 줄로 이으셨다. 해를 이름에 담은 대성인이 석존을 「해의 아들」로 적으셨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하다.

이레 만의 이별

탄생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희유미증유법경」은 짧게 적는다.

sattāhajāte, ānanda, bodhisatte bodhisattamātā kālaṃ karoti, tusitaṃ kāyaṃ upapajjati.

아난다여, 보살이 태어나고 이레 만에 보살의 어머니는 목숨을 마치고 도솔천에 태어난다.

MN 123

태자를 기른 것은 이모 마하파자파티 고타미(摩訶波闍波提)였다. 마야 부인의 여동생으로, 숫도다나 왕의 또 다른 아내가 되어 태자를 친자식처럼 키웠다. 훗날 불교 최초의 비구니가 되는 사람이다(3부). 불전 문학은 석존이 성도한 뒤 도리천에 올라 어머니 마야 부인을 위해 법을 설했다고 전한다. 대성인도 「찬시초」에서 「어머니를 위해 도리천에 구십 일 동안 머무시며 마야경을 설하셨다(悲母の御ために忉利天に九十日が間籠らせ給いしには摩耶経をとかせ給う)」(257쪽)라고 적으셨다.

  1. ① 동아시아 전통기원전 1029–949대성인이 따르신 연대 · 『주서이기』
  2. ② 남방 불교기원전 624–544스리랑카의 역사서 · 1956년 불멸 2500년
  3. ③ 학계 장기약 기원전 560–480입멸 기원전 480년 전후 (483 · 486 등)
  4. ④ 학계 단기약 기원전 460–380입멸 기원전 400년 전후 (383 · 386 등)
  5. 949 + 정법 1000 + 상법 1000 → 1052 말법의 시작
네 설 모두 수명 80년 · ③ ④는 끝을 흐리게 하여 「전후」를 표시 · 3절 연대 대조 상자
도표 4 · 입멸 연대의 여러 설

연대 대조 — 석존의 연대는 크게 네 갈래로 전한다. ① 동아시아 전통 연대: 『주서이기(周書異記)』에 기대어 주 소왕 24년(기원전 1029년) 탄생, 목왕 52년(기원전 949년) 입멸로 본다. 중국과 일본의 불교가 오래 따랐고, 대성인도 이 연대로 정법 천 년 · 상법 천 년을 헤아려 1052년을 말법의 시작으로 보셨다. 「보은초」(1276년)의 「불멸 후 2,225년」도 이 계산이다. ② 남방 불교 연대: 스리랑카의 역사서에 기대어 기원전 624년 탄생, 544년 입멸로 본다. 1956년 남방 불교국들은 이 연대로 「불멸 2500년」을 기념했다. ③ 학계의 장기 연대: 스리랑카 역사서의 아소카 왕 즉위 연대 기록을 그리스 사료와 맞추어 입멸을 기원전 480년 전후(483년 · 486년 등)로 본다. 중국에 전한 「중성점기(衆聖點記)」의 기원전 485년도 가깝다. ④ 학계의 단기 연대: 북방 전승의 「불멸 후 백여 년에 아소카 왕」을 따라 입멸을 기원전 400년 전후(나카무라 하지메는 383년, 우이 하쿠주는 386년)로 본다. 탄생일은 동아시아에서 4월 8일(대성인도 「4월 8일은 세존 탄생의 날(四月八日は世尊御誕生の日)」, 「법화취요초」 332쪽이라 하셨다), 남방 불교에서는 탄생·성도·입멸을 모두 베사카 달 보름날로 기린다. 여든의 수명은 모든 전승이 같다.

아소카 왕의 돌기둥

석존의 탄생지를 가장 분명히 증언하는 것은 경전이 아니라 돌이다. 1896년 네팔 남부 룸민데이에서 땅에 묻힌 돌기둥 하나가 드러났다.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이 세운 것으로, 그 겉에 브라흐미 문자로 이런 뜻의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왕이 즉위 20년에 몸소 이곳에 와서 예배했다. 「여기서 붓다 석가모니가 태어나셨기 때문이다(hida budhe jāte sakyamunī ti)」. 그래서 돌담을 쌓고 돌기둥을 세웠으며, 룸비니 마을은 세금을 면하고 수확의 팔분의 일만 내게 했다.

석존 입멸 뒤 이백 년쯤 지나, 인도 아대륙 대부분을 다스린 왕이 이 작은 마을까지 와서 석존의 탄생을 기념했다. 이 돌기둥은 석존이 실재한 인물이었음을 보여 주는 가장 이른 금석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97년 룸비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태자의 나날 — 세 궁전과 잠부나무 그늘

유년에서 청년까지 · 카필라밧투

태자가 어떻게 자랐는지에 대해 초기 경전은 드물게 석존 자신의 회상을 전한다. 『앙굿타라 니카야』의 「유연경」(AN 3.38, 『중아함』 「유연경(柔軟經)」 T1 no.26(117))이다.

ahaṃ kho, bhikkhave, sukhumālo ahosiṃ paramasukhumālo accantasukhumālo.

비구들이여, 나는 곱게 자랐다. 더없이 곱게, 끝없이 곱게 자랐다.

AN 3.38

석존은 이어서 그 호사를 하나하나 떠올린다. 아버지의 집에는 연못이 여럿 있어 푸른 연꽃, 붉은 연꽃, 흰 연꽃이 피었다. 몸에 바르는 전단은 바라나시에서 온 것만 썼고, 옷도 바라나시의 비단이었다. 밤낮으로 흰 일산이 받쳐져 추위와 더위, 먼지와 풀과 이슬이 닿지 않게 했다. 궁전은 셋이었다. 겨울 궁전, 여름 궁전, 우기의 궁전. 우기의 넉 달 동안에는 여인들만의 악사에 둘러싸여 궁전 아래로 내려오지도 않았다. 남의 집에서는 하인들에게 싸라기에 쉰 죽을 주었지만, 아버지의 집에서는 하인들에게도 쌀밥과 고기를 주었다.

그리고 회상은 뜻밖의 방향으로 돌아선다.

그렇게 풍족하고 그렇게 곱게 자라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기도 늙을 몸이고 늙음을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늙은 남을 보면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 나도 늙을 몸이고 늙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늙은 남을 보고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내게 걸맞지 않다. 이렇게 살피자 젊음에 대한 교만이 모두 끊어졌다.

— AN 3.38

같은 생각이 병과 죽음에 대해 되풀이된다. 병을 벗어나지 못한 몸이 병든 이를 보고 싫어하는 것은 걸맞지 않다. 그리하여 건강에 대한 교만이 끊어졌다. 죽음을 벗어나지 못한 몸이 죽은 이를 보고 싫어하는 것은 걸맞지 않다. 그리하여 삶에 대한 교만이 끊어졌다. 이것이 초기 경전이 전하는 석존의 「세 가지 교만(三憍慢)」의 끊음이다.

이 회상에는 극적인 사건이 없다. 늙은이를 우연히 마주친 날도, 마부와의 문답도 없다. 대신 한 젊은이가 자기 안을 들여다본다. 남의 늙음과 병과 죽음을 싫어하는 마음 밑에, 자기도 그것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교만이 있음을 본다. 석존의 출가는 바깥의 광경보다 먼저 이 안쪽의 물음에서 싹텄다고 초기 경전은 말한다.

잠부나무 그늘의 첫 선정

또 하나의 회상이 있다. 『맛지마 니카야』의 「삿차카 대경」(MN 36)에서 석존은 여섯 해의 고행 끝에 몸이 말라 뼈만 남았을 때 어린 날의 한 기억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abhijānāmi kho panāhaṃ pitu sakkassa kammante sītāya jambucchāyāya nisinno …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itā.

나는 기억한다. 아버지 석가족 사람이 일할 때, 서늘한 잠부나무 그늘에 앉아 … 첫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던 것을.

MN 36

「아버지가 일할 때」를 불전 문학은 봄의 밭갈이 의식으로 그린다. 왕이 몸소 첫 쟁기를 잡는 행사 날, 어린 태자는 잠부나무 그늘에 홀로 앉아 있다가 저절로 고요한 마음에 들었다. 불전 문학은 여기에 한 장면을 더한다. 쟁기에 뒤집힌 흙에서 벌레가 나오고, 새가 날아와 그 벌레를 쪼아 먹고, 더 큰 새가 그 새를 채어 가는 것을 보고 태자가 생명이 서로 먹고 먹히는 괴로움을 슬퍼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초기 경전에는 없다. 초기 경전이 전하는 것은 그늘과 고요뿐이다.

갓 갈아엎은 봄 들판 멀리 소와 쟁기를 끄는 농부들이 작게 보이고, 가까이 큰 잠부나무의 둥근 그늘 속에 아이 하나가 작게 가부좌하고 앉은 금박 수묵화
그림 2 · 잠부나무 그늘

이 기억이 뒤에 석존을 고행에서 돌아서게 한다. 괴로움으로 몸을 몰아세우는 길이 아니라, 저 어린 날의 고요한 마음이 깨달음의 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2부). 태자 시절의 한 오후가 성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야소다라와 라후라

태자는 결혼하여 아들을 얻었다. 아내의 이름은 전승에 따라 여럿이지만 야소다라(耶輸陀羅)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아들의 이름은 라후라(羅睺羅)다. 대성인은 「주사친어서」에서 석존이 「오천축 제일의 미녀 야수다라녀를 뿌리치고(五天竺第一なりし美女耶輸多羅女をふりすてて)」(386쪽) 출가했다고 쓰셨다. 초기 경전은 결혼과 아들의 탄생을 따로 이야기로 남기지 않았다. 다만 율장에는 석존이 성도 뒤 카필라밧투에 돌아왔을 때 어린 라후라가 어머니의 말을 따라 아버지에게 「유산을 주십시오」 하고 따라왔고, 석존이 그를 출가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한다(3부). 야소다라도 뒤에 비구니가 되었다. 대성인은 「개목초」와 「여인성불초」에서 야소다라가 법화경 권지품에서 「구족천만광상여래」의 수기를 받았다고 적으셨다(「개목초」, 191쪽 · 「여인성불초」, 473쪽).

연구 노트 — 「라후라」라는 이름은 흔히 「장애」 또는 「속박」으로 풀이되어,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태자가 「장애가 생겼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로 전한다. 이는 후대 주석서의 풀이이며, 월식을 일으키는 별 라후(Rāhu)에서 온 이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네 문 밖에서 — 늙음 · 병 · 죽음 · 사문

불전 문학의 전승 · 출가 직전

석존의 출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사문유관(四門遊觀)」, 곧 네 문 밖을 나가 본 일이다. 불전 문학이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태자가 태어났을 때 점치는 이들은 이 아이가 집에 있으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고, 집을 떠나면 부처가 되리라고 했다. 아버지 숫도다나는 아들이 집을 떠나지 않도록 괴로운 것은 무엇 하나 보이지 않게 했다. 어느 날 태자는 마부 찬나를 데리고 동쪽 문으로 성을 나섰다가, 머리가 희고 이가 빠지고 허리가 굽어 지팡이에 몸을 기댄 사람을 보았다. 저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마부는 늙은 사람이며, 모든 사람이 저렇게 늙는다고 답했다. 태자는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왔다. 다른 날 남쪽 문을 나섰다가 병든 사람을, 서쪽 문을 나섰다가 장례 행렬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북쪽 문을 나섰을 때 태자는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은 채 고요히 걸어가는 한 사문을 보았다. 저 사람은 무엇을 하는 이냐고 묻자 마부는 집을 떠나 도를 닦는 이라고 답했다. 태자는 그때 출가를 결심했다.

  1. 동문 — 늙은 이「저것은 무엇인가」
  2. 남문 — 병든 이「모든 사람이 그러한가」
  3. 서문 — 주검「나도 그러한가」
  4. 북문 — 사문「저 길이 있다」
초기 경전 — AN 3.38 세 가지 교만의 끊음늙음 ↔ 젊음의 교만병 ↔ 건강의 교만죽음 ↔ 삶의 교만
네 문의 이야기는 불전 문학 · 초기 경전에서는 과거불 비파시의 생애(DN 14)
도표 5 · 네 문 — 동 · 남 · 서 · 북 문에서 본 것과 태자의 물음

늙음, 병, 죽음. 태어난 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이 셋에, 태어남 자체를 더해 불교는 「생로병사(生老病死)」, 네 가지 괴로움이라 부른다. 그리고 네 번째 문에서 본 사문이 그 괴로움을 넘어서는 길이 있다는 것을 보였다. 이야기는 간결하고, 누구나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한다. 동아시아의 불교는 이 이야기를 수없이 그리고 새겨 왔다.

해 질 녘 흙담에 난 큰 성문 밖 길 위에 작은 수레 한 대가 서 있고, 길을 따라 멀리 지팡이 짚은 노인, 누운 병자, 상여, 걸어가는 수행자가 떨어져 작게 보이는 금박 수묵화
그림 3 · 네 문

연구 노트 — 네 문의 이야기는 초기 경전에서는 석존이 아니라 과거불 비파시의 생애로 나온다(DN 14 「대본경」, 『장아함』 「대본경」 T1 no.1(1)). 경은 이것을 모든 부처에게 되풀이되는 일로 설명하며, 뒤의 불전 문학(『불소행찬』 T4 no.192, 『과거현재인과경』 T3 no.189, 『불본행집경』 T3 no.190 등)이 이를 석존의 생애로 옮겨 자세히 그렸다. 학계에는 4절에서 본 「유연경」의 내면적 회상이 더 오래된 층이고, 네 문의 이야기는 그 회상을 극적인 장면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두 전승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한쪽은 안에서 일어난 물음을, 다른 한쪽은 그 물음이 일어난 계기를 그린다.

두 전승을 나란히 놓으면 한 가지가 선명해진다. 석존을 출가로 이끈 것은 특별한 계시가 아니었다. 늙은이와 병자와 주검은 카필라밧투의 거리에 늘 있었다. 누구나 보는 것이었다. 다른 점은 태자가 그것을 남의 일로 넘기지 않았다는 데 있다. 「나도 늙을 몸이고 늙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한 문장에서 석존의 구도가 시작된다.

대성인은 석존의 출가를 한 줄로 적으셨다.

釈迦仏は師子頬王の孫・浄飯王には嫡子なり十善の位をすて五天竺第一なりし美女耶輸多羅女をふりすてて十九の御年・出家して勤め行ひ給いしかば三十の御年・成道し御坐して

석가불은 사자협왕의 손자요 정반왕의 적자다. 십선의 자리를 버리고 오천축 제일의 미녀 야수다라녀를 뿌리치고 열아홉 살에 출가하여 수행하셨으므로, 서른 살에 성도하셨다.

「주사친어서」, 386쪽

연대 대조 — 출가와 성도의 나이는 전승에 따라 다르다. 팔리 전승은 스물아홉에 출가하여 서른다섯에 성도했다고 전한다. 『대반열반경』(DN 16)에서 석존은 마지막 제자 수밧다에게 「수밧다여, 나는 스물아홉에 출가하여 선(善)을 구했다(ekūnatiṃso vayasā subhadda, yaṃ pabbajiṃ kiṃkusalānuesī)」고 말하며, 한역 『장아함』 「유행경」도 「나이 스물아홉에 출가하여 선한 도를 구했다(我年二十九 出家求善道)」(T1 no.1(2))로 같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열아홉 출가, 서른 성도가 정설이 되었고, 대성인도 어서에서 한결같이 이를 따르셨다(「개목초」, 196쪽 · 「주사친어서」, 385–386쪽 · 「선무외삼장초」, 884쪽). 대성인은 초기 어서 「일대성교대의」에서 그 근거를 밝혀 두셨다. 「부처가 열아홉에 출가하고 서른에 성도했다고 정하는 것은 『대지도론』에 보인다. 일대성교 오십 년이라는 것은 열반경에 보인다. 법화경 이전 사십이 년이라는 것은 무량의경에 보인다. 법화경 팔 년이라는 것은 열반경의 오십 년과 무량의경의 사십이 년 사이를 헤아리면 팔 년이다. 이상, 열아홉 출가 · 서른 성도 · 오십 년의 전법륜 · 여든 입멸로 정해야 한다(仏は十九出家・三十成道と定むる事は大論に見えたり……已上十九出家・三十成道・五十年の転法輪・八十入滅と定む可し)」(397쪽). 여든 입멸은 모든 전승이 같으므로, 팔리 전승으로는 설법 45년, 동아시아 전승으로는 설법 50년이 된다. 대성인이 「일대 오십 년」이라 하신 것은 이 동아시아 전승에 따른 것이다.

대성인은 「관심본존초」에서 사람의 생명에 부처의 경애가 갖추어져 있음을 믿기 어렵다는 물음에 이렇게 답하셨다. 「불경보살은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의 몸을 보았고, 실달 태자는 인계에서 불신을 이루었다. 이러한 현증으로 이것을 믿어야 한다(不軽菩薩は所見の人に於て仏身を見る悉達太子は人界より仏身を成ず此等の現証を以て之を信ず可きなり)」(242쪽). 석가족의 태자는 신이 아니었다. 곱게 자란 한 젊은이였고, 자기도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교만을 버린 사람이었다. 창가학회는 석존의 생애를 무엇보다 이 「현증」으로 읽는다. 인간의 몸 그대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한 사람이 처음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2부 출가와 성도

출가 — 한밤의 성문

팔리 전승 29세 · 동아시아 전승 19세

태자가 집을 떠난 날을 초기 경전은 석존 자신의 말로 짧게 전한다. 『맛지마 니카야』의 「성구경(聖求經)」(MN 26, 『중아함』 「라마경」 T1 no.26(204))이다.

so kho ahaṃ, bhikkhave, aparena samayena daharova samāno susukāḷakeso bhadrena yobbanena samannāgato paṭhamena vayasā akāmakānaṃ mātāpitūnaṃ assumukhānaṃ rudantān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ṃ.

비구들이여, 그 뒤 나는 아직 젊어 머리칼이 새까맣고 복된 젊음을 갖춘 인생의 첫 시기에, 원치 않는 부모가 눈물 젖은 얼굴로 우는데도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

MN 26

같은 경에서 석존은 출가의 까닭도 스스로 밝힌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더러워질 몸이면서, 똑같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구한다. 처자와 하인, 소와 말, 금과 은이 모두 그러하다. 이것을 석존은 「성스럽지 않은 구함(anariyā pariyesanā)」이라 불렀다. 자기가 그러한 몸임을 알고, 태어남도 늙음도 병도 죽음도 없는 위없는 안온, 곧 열반을 구하는 것이 「성스러운 구함(ariyā pariyesanā)」이다. 태자는 이 성스러운 구함을 위해 집을 떠났다. 1부에서 본 「나도 늙을 몸이다」라는 자각이 여기서 구함의 방향을 정한다.

불전 문학이 그리는 출가의 밤은 훨씬 극적이다. 라후라가 태어난 날 밤, 태자는 잠든 궁녀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궁이 무덤 같다고 느꼈다. 잠든 아내와 아기의 방을 문턱에서 한 번 들여다보고 돌아섰다. 마부 찬나를 깨워 애마 칸타카에 올랐고, 신들이 말발굽 소리를 막고 성문을 열었다. 아노마 강가에 이르자 태자는 칼로 머리를 자르고 장신구와 말을 찬나에게 맡겨 돌려보냈다.

연구 노트 — 초기 경전의 「원치 않는 부모가 우는데도」와 불전 문학의 「한밤중에 몰래 성을 나섰다」는 서로 맞지 않는다. 학계에는 앞의 것이 더 오래된 층으로, 태자가 부모의 반대 속에서 공개적으로 출가했음을 전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불전 문학의 밤 장면은 출가의 결단을 극적으로 그리기 위해 발전한 것으로 본다. 어머니 마야 부인은 태자가 태어나고 이레 만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부모」의 어머니는 양모 마하파자파티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성인은 불전 문학의 전승을 따라 이 출가를 「한밤중에 성을 빠져나간 일」로 쓰셨다. 그리고 그것을 부모의 뜻을 거스른 불효로 보는 눈을 넘어서는 이야기로 풀어 주셨다. 형 이케가미 무네나카가 아버지에게 의절당해 흔들리던 아우 무네나가에게 보낸 편지다.

今度あひやすき父母のことばを・そむきて・あひがたき法華経のともにはなれずば我が身・仏になるのみならず・そむきしをやをもみちびきなん、例せば悉達太子は浄飯王の嫡子なり国をもゆづり位にもつけんと・をぼして・すでに御位につけまいらせたりしを御心をやぶりて夜中城をにげ出でさせ給いしかば不孝の者なりと・うらみさせ給いしかども仏にならせ給うては・まづ浄飯王・麻耶夫人をこそ・みちびかせ給いしか

이번에 만나기 쉬운 부모의 말씀을 거스르고서라도 만나기 어려운 법화경의 벗에게서 떠나지 않는다면, 내 몸이 부처가 될 뿐 아니라 거스른 부모도 인도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실달 태자는 정반왕의 적자였다. 왕은 나라를 물려주고 자리에 앉히려고 생각하여 이미 그 자리에 앉혔는데, 태자가 그 마음을 깨고 한밤중에 성을 빠져나갔으므로 불효자라고 원망하셨다. 그러나 부처가 되시고 나서는 가장 먼저 정반왕과 마야 부인을 인도하셨다.

「병위지전어반사」, 1092쪽

「보은초」는 같은 밤을 다른 쪽에서 그린다. 석존이 법화경을 설할 부처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제6천의 마왕이 태자의 생애 처음부터 방해했다는 것이다. 마왕은 의사로 변해 마야 부인에게 독을 주고, 태어날 때는 돌을 내리고 젖에 독을 섞었으며, 「성을 나오실 때는 검은 독사로 변해 길을 막았다(城を出でさせ給いしには黒き毒蛇と変じて道にふさがり)」(297쪽). 대성인은 이것을 법화경 법사품의 「이 경은 여래가 계신 때에도 원망과 질투가 많다(如來現在猶多怨嫉)」의 첫 예로 드신다. 석존의 출가는 부처가 되는 길의 시작인 동시에, 그 길을 막으려는 힘과의 싸움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두 스승 —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

출가 직후 · 마가다

출가한 사문 고타마는 남쪽으로 내려가 갠지스를 건너 마가다의 도읍 라자가하로 갔다. 『숫타니파타』의 「출가경」(Sn 3.1)은 이때의 한 장면을 전한다. 탁발하는 젊은 사문의 모습을 궁에서 본 빔비사라 왕이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다. 왕은 판다바 산기슭에 앉은 사문에게 가서, 그대는 젊고 좋은 가문의 사람으로 보이니 군대를 거느리고 재물을 누리라고 권하며 출신을 물었다. 사문은 답했다.

ādiccā nāma gottena, sākiyā nāma jātiyā; tamhā kulā pabbajitomhi, na kāme abhipatthayaṃ.

성은 「해의 후예」요, 태생은 석가족이다. 그 가문에서 나는 출가했다. 욕망을 구하지 않는다.

Sn 3.1

1부에서 본 「일종(日種)」, 해의 친족이 여기서 석존 자신의 입으로 나온다. 불전 문학은 이때 빔비사라 왕이 깨달음을 얻으면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아와 달라고 청했다고 전한다. 석존은 성도 뒤 그 약속을 지킨다(3부).

사문 고타마는 당시 이름난 두 스승을 차례로 찾았다. 「성구경」은 그 경험을 자세히 전한다. 첫 스승은 알라라 칼라마(阿羅邏迦羅摩)였다. 고타마는 곧 그의 가르침을 입으로 외고 이해했을 뿐 아니라, 스승이 스스로 체험했다는 경지, 곧 「아무것도 없다」고 관하는 선정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었다. 알라라는 기뻐하며 제자들을 함께 이끌자고 청했다. 그러나 고타마는 이렇게 생각했다.

nāyaṃ dhammo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yāvadeva ākiñcaññāyatanūpapattiyā.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의 사라짐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뛰어난 앎으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다. 다만 무소유처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다.

MN 26

둘째 스승은 웃다카 라마풋타(鬱頭藍弗)였다. 그의 아버지 라마가 체험했다는 더 깊은 선정, 곧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고타마는 다시 들었다. 웃다카는 고타마를 스승의 자리에 모시려 했다. 그러나 고타마의 판단은 같았다. 이 경지도 열반이 아니다. 선정이 끝나면 마음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선정의 깊이가 괴로움의 뿌리를 끊지는 못한다.

열반계단의 연장이 아님
무색계비상비비상처← 웃다카 라마풋타 (스승 라마의 경지)
무색계무소유처← 알라라 칼라마
무색계식무변처
무색계공무변처
색계사선
색계삼선
색계이선
색계초선← 잠부나무 그늘 (MN 36)
MN 26 · 선정은 깊어져도 다시 돌아온다
도표 6 · 두 스승과 선정의 단계 — 색계 사선과 무색계 사처

대성인은 「찬시초」에서 양나라 무제의 서원을 인용하신다. 「차라리 제바달다가 되어 무간지옥에 잠길지언정 울두라불은 되지 않겠다(寧ろ提婆達多となて無間地獄には沈むとも欝頭羅弗とはならじ)」(260쪽). 울두라불은 이 웃다카 라마풋타다. 가장 높은 선정에 이르러 스스로 도를 얻었다고 여기면서 부처의 법을 만나지 못한 사람의 상징으로 전해진 것이다. 석존은 그 스승을 만나 그 경지에 이르고, 그 경지를 떠났다.

여섯 해의 고행

우루벨라 · 네란자라 강가

두 스승을 떠난 고타마는 마가다 땅을 떠돌다 우루벨라의 세나니가마에 이르렀다. 「성구경」은 그곳을 이렇게 그린다. 「나는 아름다운 땅을 보았다. 기분 좋은 숲이 있고, 맑은 강이 흐르며, 좋은 나루와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둘레에는 탁발할 마을이 있었다」(MN 26). 네란자라 강(尼連禪河)이다. 고타마는 여기서 정진하기로 했다. 불전 문학에 따르면 아버지가 보낸 다섯 사람, 콘단냐를 비롯한 다섯 수행자가 그 곁을 지켰다.

건기의 넓은 모래 강, 건너편 숲의 나무 아래 아주 여윈 사람 하나가 멀리 작게 앉아 있고 곁에 다섯 사람이 떨어져 앉은 금박 수묵화
그림 4 · 네란자라 강

그리고 고타마는 당시 사문들이 행하던 가장 혹독한 고행에 몸을 던졌다. 「삿차카 대경」(MN 36)과 「사자후 대경」(MN 12)에서 석존은 그 여섯 해를 돌아본다.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붙여 마음을 짓눌렀다. 입과 코와 귀의 숨을 막아 머리가 칼로 찔리는 듯한 고통을 견뎠다. 음식을 하루 한 줌의 콩죽으로 줄였다.

먹는 것이 너무 적어 나의 팔다리는 마디진 넝쿨 줄기처럼 되었다. 엉덩이는 낙타의 발굽 같았다. 등뼈는 줄에 꿴 구슬처럼 드러났다. 갈비뼈는 무너진 헛간의 서까래처럼 튀어나왔다. 눈은 깊은 우물 밑에 비친 별처럼 움푹 꺼졌다. 배를 만지면 등뼈가 잡혔다.

— MN 36 요약

신들조차 사문 고타마가 죽었다고 말할 지경이었다. 간다라에서 만들어진 「고행상」은 바로 이 모습을 새긴 것이다. 그러나 석존은 그 끝에서 이렇게 판단했다.

과거의 어떤 사문이나 브라만이 격렬하고 쓰라린 고통을 겪었다 하더라도, 이것이 가장 극심한 것이며 이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혹독한 고행으로 인간의 법을 넘어선 거룩한 지견에 이르지 못했다.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 MN 36

그때 떠오른 것이 1부에서 본 잠부나무 그늘의 기억이었다. 어린 날 아버지가 일하던 들판에서, 욕망과 불선한 마음에서 떠나 저절로 첫째 선정에 들었던 오후. 「그것이 깨달음의 길이 아닐까.」 그리고 석존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kiṃ nu kho ahaṃ tassa sukhassa bhāyāmi yaṃ taṃ sukhaṃ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i.

나는 어째서 저 즐거움을 두려워하는가. 욕망과도 불선한 법과도 관계없는 저 즐거움을.

MN 36

이렇게 여윈 몸으로는 그 즐거움에 이를 수 없다. 석존은 고행을 버리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불전 문학은 이때 한 여인이 우유죽을 공양했다고 전한다. 팔리 주석 전승은 그 이름을 수자타로 전하고, 한역 불전은 목동의 딸로 전하며 이름을 달리 적는다. 석존이 음식을 먹자 다섯 수행자는 떠났다. 「사문 고타마는 사치에 빠졌다. 정진을 버리고 사치로 돌아갔다」(MN 36).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니다. 이 양극단을 떠난 길을 석존은 뒤에 첫 설법에서 「중도(中道)」라 부른다(3부). 궁의 세 궁전에서 누린 쾌락의 극단과 네란자라 강가의 고행의 극단을 모두 몸으로 겪은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길이었다. 교리 二 「공·중도」가 다룬 중도의 첫 뜻이 여기에 있다.

쾌락의 극단세 궁전 · 연꽃 연못바라나시의 비단과 전단AN 3.38
중도잠부나무 그늘의 기억음식을 먹음보리수 아래첫 설법에서 「중도」라 이름 붙임(3부) · 교리 二 「공·중도」
고행의 극단숨 막기 · 단식「낙타의 발굽 같은 엉덩이」MN 36
도표 7 · 두 극단과 중도 — 궁의 쾌락 · 우루벨라의 고행 · 보리수 아래의 중도

대성인은 석존의 이 구도의 세월을 여러 가지로 적으셨다. 「주사친어서」는 「단특산(檀特山)이라는 산에 들어가 높은 봉우리에 올라 땔나무를 하고 깊은 골짜기에 내려가 물을 길으며 난행고행하셨다(檀特山と申す山に篭らせ給ひ、高峯に登つては妻木をとり深谷に下つては水を結び難行苦行して)」(385쪽)고 한다. 「개목초」는 무량의경을 들어 「내가 먼저 도량 보리수 아래에 단정히 앉기를 여섯 해(我先きに道場菩提樹の下に端坐すること六年)」(196–197쪽)라고 하셨다. 그리고 같은 「개목초」의 다른 대목은 석존의 구도 전체를 이렇게 요약하신다.

教主釈尊もかれに習い伝えて外道の弟子にて・ましませしが苦行・楽行・十二年の時・苦・空・無常・無我の理をさとり出してこそ外道の弟子の名をば離れさせ給いて無師智とはなのらせ給いしか、又人天も大師とは仰ぎまいらせしか

교주 석존도 그들에게 배워 외도의 제자로 계셨으나, 고행과 낙행 열두 해 만에 고·공·무상·무아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아 내셨기에, 외도의 제자라는 이름을 떠나 「스승 없이 얻은 지혜(無師智)」라 이름하셨고, 인간과 하늘도 큰 스승으로 우러르게 된 것이다.

「개목초」, 208쪽

두 스승에게 배운 일을 대성인은 감추지 않으셨다. 석존도 처음에는 외도의 제자였다. 그 스승들의 가르침을 끝까지 배워 그 한계를 보았기에, 스스로 깨달은 지혜를 「무사지」라 부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대 대조 — 구도의 기간은 전승마다 다르다. 팔리 전승과 무량의경은 여섯 해를 말한다(29세 출가 → 35세 성도). 동아시아의 19세 출가 · 30세 성도 전승을 따르면 그 사이는 열한두 해가 되며, 「개목초」의 「고행·낙행 열두 해」(208쪽)는 이 전승에 따른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를 다섯 해의 배움과 여섯 해의 고행으로 나누어 전하기도 한다. 「주사친어서」의 「단특산」은 동아시아 불교에서 석존의 수행지로 전해 온 이름이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서 단특산은 간다라 지방의 산으로, 수대나 태자의 본생 이야기와 이어져 있어, 네란자라 강가의 고행지와는 다른 곳이라는 지적이 있다.

보리수 아래 — 마라를 물리치고

팔리 전승 35세 · 동아시아 전승 30세, 12월 8일 · 보드가야

기운을 되찾은 고타마는 네란자라 강을 건너 한 그루 아슈밧타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뒤에 「깨달음의 나무」, 보리수(菩提樹)라 불리게 되는 나무다. 그곳이 지금의 보드가야다. 불전 문학은 고타마가 풀 베는 사람에게 얻은 길상초를 깔고 앉으며,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전한다.

마라의 군대

깨달음의 문턱에서 고타마를 가로막은 것은 마라(魔羅), 곧 죽음과 욕망의 왕이었다. 『숫타니파타』의 「정진경」(Sn 3.2)은 네란자라 강가에서 정진하던 고타마에게 마라가 다가와 부드러운 말로 속삭였다고 전한다. 그대는 여위고 안색이 나쁘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 살아야 한다. 살아서 공덕을 쌓으라. 고타마는 답한다. 그리고 마라의 군대를 하나하나 이름 부른다.

kāmā te paṭhamā senā, dutiyā arati vuccati; tatiyā khuppipāsā te, catutthī taṇhā pavuccati.

욕망이 너의 첫째 군대요, 둘째는 싫증이라 불린다. 셋째는 굶주림과 목마름이요, 넷째는 갈애라 불린다.

Sn 3.2

다섯째는 나태와 졸음, 여섯째는 두려움, 일곱째는 의심, 여덟째는 위선과 고집, 아홉째는 부당하게 얻은 이익과 명성과 존경, 열째는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깔보는 것이다. 「나무치여, 이것이 너의 군대다. 비겁한 자는 이기지 못하지만, 이긴 자는 즐거움을 얻는다.」 마라의 군대는 바깥의 괴물이 아니다.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에 차례로 일어나는 것들의 이름이다.

  1. ①욕망kāma
  2. ②싫증arati
  3. ③굶주림과 목마름khuppipāsā
  4. ④갈애taṇhā
  5. ⑤나태와 졸음thīnamiddha
  6. ⑥두려움bhīru
  7. ⑦의심vicikicchā
  8. ⑧위선과 고집makkha-thambha
  9. ⑨부당한 이익 · 명성 · 존경lābha-siloka-sakkāra-yasa
  10. ⑩자기를 높이고 남을 깔봄attukkaṃsana-paravambhana
바깥의 군대가 아니라 수행하는 마음에 일어나는 것들
도표 8 · 마라의 열 군대 — 「정진경」(Sn 3.2)

연구 노트 — 「정진경」은 마라와의 대결을 성도의 밤이 아니라 고행의 시기에 둔다. 마라가 코끼리를 탄 군대를 이끌고 보리수 아래로 쳐들어오는 장면은 불전 문학과 간다라·아잔타의 조각과 그림이 발전시킨 것이다. 학계에는 초기의 내면적 싸움이 뒤에 외적인 전투 장면으로 그려졌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밤, 평지 한가운데 큰 보리수 아래 작은 뒷모습 하나가 고요히 앉아 있고, 화면 가장자리 멀리 코끼리와 깃발의 군대가 먹 그림자처럼 안개로 흩어지는 금박 수묵화
그림 5 · 보리수와 마라의 밤

불전 문학의 장면에서는 마지막에 마라가 묻는다. 그 자리가 네 것이라는 증인이 누구냐. 고타마는 오른손을 내려 손끝으로 땅을 가리킨다. 대지가 증인이 되고, 마라의 군대는 흩어진다. 보드가야의 불상들이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려 땅을 짚은 모습, 곧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은 이 장면을 새긴 것이다.

대성인도 이 「땅의 주인」을 둘러싼 다툼을 어서에 적으셨다. 「법화취요초」는 범천왕이 「이 땅은 스물아홉 겁 전부터 내가 다스려 온 땅」이라 하고 제6천·제석·사천왕도 그러하다고 했는데, 「석존과 범왕 등이 처음으로 누가 먼저 다스렸는가를 다투었으나, 석존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이들을 항복시킨 뒤로 범천은 머리를 숙이고 마왕은 손을 모아, 삼계의 중생을 석존께 귀복시켰다(釈尊と梵王等と始めて知行の先後之を諍論す爾りと雖も一指を挙げて之を降伏してより已来梵天頭を傾け魔王掌を合せ三界の衆生をして釈尊に帰伏せしむる)」(332–333쪽)라고 하신다. 「개목초」는 「부처가 서른에 성도하신 때 대범천왕과 제6천 등이 다스리던 사바세계를 빼앗으셨다(仏三十成道の御時は大梵天王・第六天等の知行の娑婆世界を奪い取り給いき)」(214쪽)라고 쓰신다. 성도는 한 사람의 깨달음인 동시에, 이 사바세계의 주인이 바뀐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창가학회는 이것을 석존이 사바세계의 교주, 주·사·친 가운데 「주(主)」의 덕을 갖춘 부처가 된 일로 읽는다(6부).

성도의 밤

마라를 물리친 밤, 고타마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삿차카 대경」(MN 36)은 그 밤을 셋으로 나누어 전한다. 초저녁에는 자신의 지난 수많은 생을 낱낱이 떠올렸다(숙명지). 한밤에는 중생들이 지은 업에 따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았다(천안지). 새벽녘에는 괴로움과 그 원인과 그 소멸과 그 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번뇌가 다하였음을 알았다(누진지). 이 셋을 「삼명(三明)」이라 한다. 석존은 각각의 끝에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무명이 부서지고 밝음이 일어났다.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일어났다(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율장 『대품』(Vinaya, Mahāvagga I.1)과 『우다나』(Ud 1.1–3)는 성도 직후를 다른 방식으로 전한다.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서 이레 동안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며 앉아 있었고, 밤의 세 때에 걸쳐 연기(緣起)를 따라 관하고 거슬러 관했다. 무명에 의지하여 행이 있고, 행에 의지하여 식이 있으며 … 태어남에 의지하여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이 있다. 무명이 사라지면 행이 사라지고 … 태어남이 사라지면 늙음과 죽음이 사라진다. 그리고 이렇게 읊었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 yato pajānāti sahetudhammaṃ.

애써 선정에 든 수행자에게 법이 참으로 드러날 때, 그의 모든 의심은 사라진다. 원인과 함께하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Ud 1.1

석존이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초기 경전의 답은 이 연기, 그리고 괴로움과 그 소멸에 관한 네 가지 진리였다. 이 사이트의 불교 교학은 그 첫 자리를 십이연기로 시작했다. 교리 一 「십이연기」가 바로 이 성도의 밤에서 출발한다.

초저녁숙명지지난 생을 떠올림「무명이 부서지고 밝음이 일어났다」 (MN 36)
한밤천안지중생의 죽고 태어남을 봄「무명이 부서지고 밝음이 일어났다」 (MN 36)
샛별 — 동아시아 전승, 12월 8일새벽누진지사성제를 알고 번뇌가 다함「무명이 부서지고 밝음이 일어났다」 (MN 36)
유전 — 순관
  1. 무명
  2. 행
  3. 식
  4. 명색
  5. 육입
  6. 촉
  7. 수
  8. 애
  9. 취
  10. 유
  11. 생
  12. 노사
환멸 — 역관

율장 『대품』(Vinaya Mv I.1) · 교리 一 「십이연기」

도표 9 · 성도의 밤 — 세 때와 삼명, 그리고 연기의 순관 · 역관

동아시아의 불교는 이 밤을 12월 8일 새벽, 샛별이 떠오를 때로 전한다. 샛별을 보는 순간 활연히 깨달았다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절에서 「성도회(成道會)」를 이날 여는 것은 이 전승에 따른다. 남방 불교는 탄생과 같은 베사카 달 보름날로 기린다.

설할 것인가 — 범천의 권청

성도 직후 · 보리수 아래

깨달은 붓다에게 먼저 찾아온 것은 기쁨이 아니라 망설임이었다. 「성구경」(MN 26)과 율장 『대품』은 붓다가 이렇게 생각했다고 전한다.

kicchena me adhigataṃ, halaṃ dāni pakāsituṃ; rāgadosaparetehi, nāyaṃ dhammo susambudho.

애써서 내가 얻은 것을 이제 설해서 무엇 하겠는가. 탐욕과 성냄에 사로잡힌 이들은 이 법을 잘 깨닫지 못하리라.

MN 26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고요하며 미묘하다. 집착을 즐기는 세상 사람들에게 연기와 열반은 보기 어렵다. 설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나만 지칠 뿐이다. 붓다의 마음은 법을 설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른 아침 연못 — 물속에 잠긴 봉오리, 수면에 닿은 봉오리, 물 위로 높이 솟아 핀 연꽃들이 함께 있고 뒤로 나무들과 작은 보리수가 보이는 금박 수묵화
그림 6 · 연못의 연꽃

그때 사바세계의 주인이라는 범천 사함파티가 붓다 앞에 나타나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청했다. 세상에는 눈에 먼지가 적은 중생들이 있습니다. 법을 듣지 못하면 그들은 쇠퇴할 것이고, 들으면 깨달을 것입니다. 붓다는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폈다. 그리고 연못의 연꽃을 보았다. 어떤 연꽃은 물속에 잠겨 자라고, 어떤 연꽃은 수면까지 올라오고, 어떤 연꽃은 물 위로 솟아 물에 젖지 않았다. 중생도 그와 같았다. 번뇌의 때가 적은 이도 많은 이도, 근기가 날카로운 이도 둔한 이도, 가르치기 쉬운 이도 어려운 이도 있었다. 붓다는 게송으로 답했다.

apārutā tesaṃ amatassa dvārā,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ṃ.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자는 믿음을 내어라.

MN 26

apārutā tesaṃ amatassa dvārā — 불사의 문은 열렸다 (MN 26)

물의 단면 그림: 물속 깊이 잠긴 봉오리, 수면에 닿은 봉오리, 물 위로 솟아 핀 연꽃 세 줄기.수면
물속때가 많고 근기가 둔한 이수면그 사이의 이물 위때가 적고 근기가 날카로운 이
방편품 — 「내가 지금 얻은 도도 마땅히 삼승으로 나누어 설하리라」
도표 10 · 연못의 연꽃 — 물속 · 수면 · 물 위의 연꽃과 중생의 근기

법화경 방편품은 같은 망설임을 석존 자신의 게송으로 전한다. 초기 경전에서 한 번 있었던 망설임이, 법화경에서는 부처가 왜 사십여 년 동안 방편을 썼는가를 밝히는 열쇠가 된다.

我始坐道場 觀樹亦經行 於三七日中 思惟如是事 我所得智慧 微妙最第一 衆生諸根鈍 著樂癡所盲 如斯之等類 云何而可度

내가 처음 도량에 앉아 나무를 바라보며 또 거닐면서, 세 이레 동안 이 일을 생각했다. 내가 얻은 지혜는 미묘하여 가장 으뜸인데, 중생은 근기가 둔하고 즐거움에 집착하며 어리석음에 눈이 멀었다. 이러한 무리를 어떻게 건질 수 있겠는가.

법화경 방편품, T9 no.262

我寧不說法 疾入於涅槃 尋念過去佛 所行方便力 我今所得道 亦應說三乘

차라리 법을 설하지 말고 속히 열반에 들까 하다가, 과거의 부처님들이 행하신 방편의 힘을 떠올리고, 내가 지금 얻은 도도 마땅히 삼승으로 나누어 설하리라 생각했다.

같은 곳

범천의 청은 방편품에서도 나온다. 다만 방편품의 석존은 설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어떻게 설할 것인가를 정한다. 깨달은 그대로의 법(一佛乘)을 바로 설하면 중생은 믿지 못하고 도리어 법을 비방하여 악도에 떨어진다. 그래서 먼저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삼승으로 나누어 설하고, 때가 이르면 그 모두가 하나의 불승이었음을 밝힌다. 이것이 석존 일대 설법의 설계도다. 5부에서 보는 천태의 오시는 이 설계도를 경전의 순서로 읽은 것이다.

대성인은 「찬시초」에서 이 망설임을 「때」의 문제로 읽으셨다. 성도의 자리, 적멸도량에는 시방의 부처와 대보살과 범천·제석이 모여 설법을 청했다. 「그러나 세존은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은 이름조차 감추시고, 즉신성불과 일념삼천의 간심은 그 뜻을 펴지 않으셨다. 이는 오로지 기(機)는 있었으나 때가 오지 않았으므로 펴지 않으신 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설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였다(世尊は二乗作仏・久遠実成をば名字をかくし即身成仏・一念三千の肝心、其義を宣べ給はず、此等は偏にこれ機は有りしかども時の来らざればのべさせ給はず経に云く「説く時未だ至らざるが故」等云云)」(256쪽). 석존의 망설임은 법의 깊이에 대한 두려움이면서, 법을 펼 「때」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했다. 「찬시초」는 그 글 전체가 「무릇 불법을 배우려면 반드시 먼저 때를 배워야 한다」로 시작하는 글이다.

「관심본존초」에서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석존의 인행과 과덕의 두 법은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에 갖추어져 있다. 우리가 이 다섯 자를 받아 지니면 자연히 그 인과의 공덕을 물려받는다(釈尊の因行果徳の二法は妙法蓮華経の五字に具足す我等此の五字を受持すれば自然に彼の因果の功徳を譲り与え給う)」(246쪽). 궁을 떠난 밤, 두 스승을 떠난 결단, 여섯 해의 고행과 그것을 버린 용기, 마라의 군대를 하나하나 이름 불러 물리친 정진. 이것이 석존의 「인행(因行)」이고, 보리수 아래의 깨달음이 「과덕(果德)」이다. 창가학회는 석존의 이 구도를 깊이 존경하면서도, 말법의 범부가 그 길을 그대로 되밟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석존을 부처로 만든 원인과 결과가 모두 묘법에 갖추어져 있으므로, 그 묘법을 믿고 부르는 한 사람에게 석존의 공덕이 물려진다는 것이다. 「수지즉관심(受持卽觀心)」의 가르침이다. 석존이 「무사지」로 홀로 연 길은,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로 열린다.

3부 법륜을 굴리다

사르나트의 첫 설법

성도 직후 · 바라나시 교외 이시파타나(녹야원)

누구에게 먼저 설할 것인가. 붓다가 가장 먼저 떠올린 이는 두 스승이었다.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라면 이 법을 곧 알아들으리라. 그러나 신들이 알렸다. 알라라는 이레 전에, 웃다카는 어젯밤에 세상을 떠났다고(MN 26). 그다음 떠오른 것이 고행의 시절을 함께한 다섯 수행자였다. 그들은 바라나시 교외의 이시파타나, 사슴들이 노니는 동산에 있었다. 한역 경전은 이곳을 녹야원(鹿野苑)이라 부른다. 지금의 사르나트다.

이른 아침 들판의 숲, 사슴들이 풀을 뜯는 가운데 큰 나무 아래 빈터에 여섯 사람이 둥글게 앉아 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다른 이들을 마주하는 금박 수묵화
그림 7 · 녹야원의 새벽

보드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이백 킬로미터가 넘는 길이다. 「성구경」은 그 길 위의 한 만남을 전한다. 아지비카의 수행자 우파카가 붓다의 맑은 얼굴빛을 보고 물었다. 벗이여, 그대는 누구를 스승으로 출가했는가. 누구의 법을 따르는가. 붓다는 답했다.

sabbābhibhū sabbavidūhamasmi … na me ācariyo atthi, sadiso me na vijjati.

나는 모든 것을 이긴 이, 모든 것을 아는 이다. … 나에게는 스승이 없고, 나와 같은 이도 없다.

MN 26

2부에서 본 「개목초」의 「무사지(無師智)」가 바로 이것이다. 우파카는 「그럴 수도 있겠지, 벗이여」 하고 고개를 저으며 다른 길로 갔다. 깨달은 붓다의 첫 대화는 이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끝났다. 붓다의 법은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곧바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었다.

다섯 수행자는 멀리서 오는 붓다를 보고 서로 약속했다. 저기 사치에 빠진 사문 고타마가 온다. 인사하지도, 일어나 맞지도 말자. 그러나 붓다가 다가오자 그들은 저도 모르게 일어나 자리를 펴고 발 씻을 물을 가져왔다. 붓다는 그들에게 말했다. 나를 「벗」이라 부르지 말라. 여래는 사치에 빠진 것이 아니다. 여래는 불사(不死)를 얻었다.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초전법륜(初轉法輪)」, 곧 처음으로 법의 바퀴를 굴린 설법이 시작되었다. 『상윳타 니카야』의 「전법륜경」(SN 56.11, 『잡아함』 379경 T2 no.99)이 전하는 그 첫 마디는 2부에서 본 두 극단이었다.

비구들이여, 출가한 이가 가까이해서는 안 될 두 극단이 있다. 하나는 욕망에 빠져 쾌락을 좇는 것이니, 저열하고 범속하며 성스럽지 않고 이익이 없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데 몰두하는 것이니, 괴롭고 성스럽지 않으며 이익이 없다. 여래는 이 두 극단을 떠나 중도(majjhimā paṭipadā)를 깨달았다. 그것은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키며, 고요함과 뛰어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끈다.

— SN 56.11

그 중도가 무엇인가. 붓다는 이어서 그것이 여덟 가지 바른 길, 곧 팔정도(八正道)라고 밝혔다.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알아차림, 바른 선정이다. 그리고 이 설법의 중심인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곧 사성제(四聖諦)를 설했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ṃ ariyasaccaṃ: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b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aṃ … 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다. 태어남도 괴로움이요, 늙음도 괴로움이요, 병도 괴로움이요, 죽음도 괴로움이다. 싫은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요,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요,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줄여 말하면,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五取蘊)가 괴로움이다.

SN 56.11
  1. 고성제(苦聖諦) — 괴로움의 진리. 태어남 · 늙음 · 병 · 죽음의 네 괴로움에, 싫은 것과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 ·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愛別離苦) · 구해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 · 다섯 무더기에 집착하는 괴로움(五陰盛苦)을 더해 여덟 가지 괴로움(八苦)이라 한다. 1부 4절과 5절에서 태자가 마주한 늙음 · 병 · 죽음이 여기 첫머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2. 집성제(集聖諦) —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의 진리. 그것은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고 기쁨과 탐욕을 동반하여 여기저기서 즐거움을 찾는 갈애(taṇhā), 곧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 존재에 대한 갈애 ·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다. 2부 9절에서 마라의 넷째 군대로 이름 불린 「갈애」가 이것이다.
  3. 멸성제(滅聖諦) — 괴로움이 사라진 진리. 그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지고 버려지고 벗어나 집착이 없는 것, 곧 열반이다. 2부 6절에서 태자가 「성스러운 구함」으로 찾아 나선 것이 이것이다.
  4. 도성제(道聖諦) —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 곧 팔정도이며, 두 극단을 떠난 중도다.
쾌락의 극단
중도 majjhimā paṭipadā= 팔정도
  1. 정견
  2. 정사유
  3. 정어
  4. 정업
  5. 정명
  6. 정정진
  7. 정념
  8. 정정
고행의 극단콘단냐의 법안 — 「일어나는 것은 모두 사라지는 것」 (SN 56.11)
사성제 —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1. 고 苦여덟 가지 괴로움
  2. 집 集갈애
  3. 멸 滅열반
  4. 도 道팔정도↑ 위의 중도 · 팔정도
삼전십이행상 — 네 진리를 세 번씩
시전示轉이것이 괴로움이것이 원인이것이 소멸이것이 길
권전勸轉두루 알아야끊어야실현해야닦아야
증전證轉두루 알았다끊었다실현했다닦았다
천태의 네 가지 사제생멸(장)무생(통)무량(별)무작(원)
녹야원 · 아함시 — 대성인, 「주사친어서」 387쪽 「생멸의 사제」
도표 11 · 초전법륜 — 두 극단 · 중도 · 팔정도 · 사성제

붓다는 이 네 진리를 세 번 굴려 설했다고 경은 전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진리다」라고 보이고(示轉), 「괴로움의 진리는 두루 알아야 한다, 원인은 끊어야 한다, 소멸은 실현해야 한다, 길은 닦아야 한다」라고 권하고(勸轉), 「괴로움은 두루 알았다, 원인은 끊었다, 소멸은 실현했다, 길은 닦았다」라고 증명했다(證轉). 네 진리를 세 번씩, 모두 열두 가지 모습으로 설했으므로 이것을 「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이라 한다. 붓다는 「이 네 진리를 세 번 굴려 열두 가지로 있는 그대로 알고 본 앎이 청정해지기 전까지는,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선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SN 56.11). 사성제는 첫 설법의 내용일 뿐 아니라, 붓다 자신의 깨달음을 검증하는 틀이기도 했다.

사성제는 병을 고치는 의사의 방법에 자주 견주어진다. 병을 알고(고), 병의 원인을 알고(집), 병이 나은 상태를 알고(멸), 그에 이르는 처방을 안다(도). 태자 시절 늙음과 병과 죽음 앞에서 품었던 물음에, 여섯 해의 구도 끝에 스스로 찾은 답을 붓다는 이렇게 하나의 처방으로 내놓았다. 2부 9절에서 본 성도의 밤, 새벽녘의 누진지에서 붓다가 「있는 그대로 안」 것도 이 네 진리였다(MN 36). 연기의 순관이 괴로움이 일어나는 길(집)을, 역관이 괴로움이 사라지는 길(멸)을 밝힌 것처럼, 교리 一 「십이연기」와 사성제는 같은 깨달음의 두 표현이다.

설법이 끝났을 때 다섯 가운데 콘단냐가 먼저 법의 눈을 떴다.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ṃ.

무엇이든 일어나는 성질을 지닌 것은 모두 사라지는 성질을 지닌 것이다.

SN 56.11

붓다는 「콘단냐가 깨달았다, 콘단냐가 깨달았다(aññāsi vata bho koṇḍañño)」 하고 기뻐했다. 그래서 그는 「안냐 콘단냐」, 한역으로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라 불린다. 며칠 사이에 나머지 네 사람도 법의 눈을 떴고, 붓다는 이어서 「무아상경」(SN 22.59)을 설했다. 몸과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앎, 이 다섯 가지는 「나」가 아니다. 이 설법을 듣고 다섯 사람은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이 세상에 붓다와 다섯 아라한, 여섯 사람의 교단이 섰다. 불교에서 부처(佛)·가르침(法)·승가(僧)의 삼보가 처음 갖추어진 날이다.

대성인은 이 녹야원의 설법을 천태의 오시 가운데 둘째, 아함시로 적으셨다. 「일대성교대의」는 무량의경의 「처음에 사제를 설했다(初に四諦を説き)」를 들어 이것이 아함경이라 하고(397쪽), 「주사친어서」는 이렇게 쓴다.

其の二乗の機根叶はざりしかば瓔珞細輭の衣をぬぎすて麤弊垢膩の衣を著・波羅奈国・鹿野苑に趣いて十二年の間・生滅四諦の法門を説き給ひしに阿若・倶鄰等の五人証果し八万の諸天は無生忍を得たり

그 (화엄의) 가르침이 이승의 근기에 맞지 않았으므로, 구슬 꾸미개와 부드러운 옷을 벗어 버리고 거칠고 때 묻은 옷을 입고 바라나국 녹야원에 가서 열두 해 동안 생멸의 사제 법문을 설하셨다. 그러자 아야·구린 등 다섯 사람이 과를 증득하고 팔만의 하늘 사람들이 무생인을 얻었다.

「주사친어서」, 387쪽

「구슬 꾸미개를 벗고 거친 옷을 입었다」는 표현은 법화경 신해품의 장자궁자(長者窮子)의 비유에서 온다. 큰 부잣집 아버지가 집을 나가 가난하게 떠돌던 아들을 찾았으나, 아들이 두려워 달아나자 아버지는 화려한 옷을 벗고 때 묻은 옷을 입고 가까이 다가가 품팔이 일부터 시켰다. 붓다가 가장 높은 법을 곧바로 설하지 않고 중생의 눈높이로 내려와 설한 것을 이 아버지에 견준 것이다. 5부에서 이 비유를 다시 본다.

「주사친어서」가 「생멸(生滅)의 사제」라고 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천태는 같은 사성제도 가르침의 깊이에 따라 넷으로 읽힌다고 보았다. 괴로움과 그 원인을 실제로 생기고 사라지는 것으로 보는 「생멸사제」(삼장교), 그것이 본래 공하여 생기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보는 「무생사제」(통교), 보살이 헤아릴 수 없는 모습의 괴로움과 번뇌를 다 알아야 한다고 보는 「무량사제」(별교), 그리고 번뇌가 곧 보리이고 생사가 곧 열반이어서 따로 끊고 닦을 것이 없다고 보는 「무작사제」(원교)다.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가 들은 것은 그 첫째, 괴로움을 끊고 떠나는 사제였다. 같은 네 진리가 법화경에 이르러서는 괴로움의 한가운데서 부처의 경애를 여는 원교의 눈으로 다시 읽힌다. 교리 三 「제법실상」과 五 「일념삼천」이 그 뒤의 이야기다.

연구 노트 — 「전법륜경」의 네 가지 진리와 팔정도의 정형은 초기 경전 전체에서 되풀이되지만, 학계에는 이 첫 설법의 형태가 뒤에 정리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성구경」(MN 26)은 첫 설법의 내용을 적지 않고, 붓다가 다섯 사람을 둘씩 셋씩 번갈아 가르쳤으며 나머지가 탁발해 온 것으로 여섯이 먹었다고만 전한다.

교단이 자라다 — 가섭 삼형제와 두 상수 제자

첫 우기 이후 · 바라나시에서 라자가하로

바라나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 야사가 한밤중에 집을 나와 「아, 괴롭다, 아, 번거롭다」 하며 헤매다 붓다를 만나 출가했다. 그의 친구 쉰네 명이 뒤따랐다. 교단은 예순한 명이 되었다. 그러자 붓다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냈다. 율장 『대품』(Vinaya, Mahāvagga I.11)이 전하는 이 말은 불교가 처음부터 무엇을 향했는지를 보여 준다.

caratha, bhikkhave, cārik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Vinaya, Mahāvagga I.11

율장은 이어서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고 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곳에 가라는 것이다. 붓다 자신은 우루벨라로 돌아갔다.

우루벨라의 가섭 삼형제

우루벨라에는 불을 섬기는 브라만 수행자 가섭(迦葉) 삼형제가 있었다. 맏형 우루벨라 가섭은 오백 명, 둘째 나디 가섭은 삼백 명, 막내 가야 가섭은 이백 명의 제자를 거느렸다. 율장은 붓다가 여러 신통으로 우루벨라 가섭의 교만을 꺾었다고 전한다. 가섭은 마침내 붓다에게 귀의했고, 그 제자들이 불을 섬기던 도구를 강에 흘려 보내자 아래쪽의 두 아우도 형을 따랐다. 천 명의 수행자가 한꺼번에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붓다는 이들을 데리고 가야시사 산에 올라 법을 설했다. 불을 섬기던 이들에게 설한 것은 불의 법문이었다. 「연소경(燃燒經)」(SN 35.28)이다.

sabbaṃ, bhikkhave, ādittaṃ.

비구들이여,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SN 35.28

눈이 불타고, 눈에 보이는 것이 불타고, 눈의 앎이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불타는가.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으로 불타고 있다. 불을 섬기던 사람들에게 붓다는 섬겨야 할 불이 바깥이 아니라 자기 안에 타고 있다고 가르쳤다. 듣는 이의 삶에서 출발하는 설법, 이것이 붓다의 방식이었다.

빔비사라 왕과 죽림정사

천 명의 제자와 함께 붓다는 라자가하로 갔다. 출가 직후 판다바 산기슭에서 한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7절). 빔비사라 왕은 수많은 브라만과 장자들을 이끌고 붓다를 맞았다. 그들은 처음에 누가 스승인지 몰라 망설였다. 이름 높은 우루벨라 가섭이 저 젊은 사문의 제자가 되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가섭이 일어나 붓다의 발에 이마를 대고 「세존은 나의 스승이시고 나는 제자입니다」라고 말하자 의심이 풀렸다. 빔비사라 왕은 재가 신도가 되었고, 도성 가까운 대나무 숲을 교단에 바쳤다. 불교 최초의 정사, 죽림정사(竹林精舍)다.

사리불과 목건련

라자가하에는 회의론자 산자야의 제자인 두 벗이 있었다. 사리풋타(舍利弗)와 목갈라나(目犍連)다. 두 사람은 먼저 불사(不死)의 법을 얻는 이가 다른 이에게 알려 주기로 약속했다. 어느 날 사리풋타는 거리에서 탁발하는 한 비구의 고요한 몸가짐에 마음이 끌려 그를 따라가 물었다. 다섯 비구 가운데 한 사람인 앗사지였다. 앗사지는 자신은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르침을 자세히 말할 수 없다며, 그 요지만을 한 게송으로 전했다.

ye dhammā hetuppabhavā, tesaṃ hetuṃ tathāgato āha; tesañca yo nirodho, evaṃvādī mahāsamaṇo.

모든 법은 원인에서 생긴다.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셨다. 그리고 그것들의 소멸도. 위대한 사문은 이렇게 설하신다.

Vinaya, Mahāvagga I.23

諸法從緣起 如來說是因 彼法因緣盡 是大沙門說

모든 법은 인연에서 일어난다.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셨다. 그 법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 이것이 위대한 사문의 가르침이다.

「연기법송」, 한역 여러 율장·경전

이 네 구절을 듣자마자 사리풋타는 법의 눈을 떴다. 목갈라나도 사리풋타에게서 같은 게송을 듣고 깨달았다. 두 사람은 산자야의 제자 이백오십 명을 이끌고 붓다에게 왔다. 붓다는 이 두 사람을 가리켜 「나의 으뜸가는 두 제자가 될 것」이라 했다. 뒤에 사리풋타는 지혜제일, 목갈라나는 신통제일로 불린다. 이 「연기법송」은 인도 곳곳의 불탑과 불상에 새겨져, 불교의 가르침을 가장 짧게 요약한 게송으로 널리 퍼졌다. 교리 一 「십이연기」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얼마 뒤 라자가하의 부유한 브라만 가문 출신으로 고행에 뜻을 두었던 마하깟사파(摩訶迦葉)가 귀의했다. 우루벨라의 가섭과는 다른 사람이다. 그는 뒤에 두타제일로 불리며, 붓다가 입멸한 뒤 제1결집을 이끈다(4부).

다섯 비구녹야원5
야사와 벗들바라나시+55 → 61
가섭 삼형제우루벨라+1,000
사리불 · 목건련과 산자야의 제자라자가하+250연기법송 — 「모든 법은 인연에서 일어난다」
→ 「1,250인의 대비구중」
수는 경전의 전승 · 막대 길이는 수에 비례
도표 12 · 교단의 성장

대성인은 이 제자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개목초」에서 분명히 적으셨다.

此れをもつて思うに今諸の大声聞は本と外道・婆羅門の家より出でたり、又諸の外道の長者なりしかば諸王に帰依せられ諸檀那にたつとまる、或は種姓・高貴の人もあり或は富福・充満のやからもあり、而るに彼彼の栄官等をうちすて慢心の幢を倒して俗服を脱ぎ壊色の糞衣を身にまとひ白払・弓箭等をうちすてて一鉢を手ににぎり貧人・乞丐なんどの・ごとくして世尊につき奉り

이로써 생각하건대, 지금의 여러 대성문은 본래 외도와 브라만의 집안에서 나왔다. 또 여러 외도의 우두머리였으므로 여러 왕의 귀의를 받고 많은 단나에게 존경받았다. 혹은 신분이 높은 이도 있고 혹은 재물이 넘치는 무리도 있었다. 그런데 그 영화로운 자리들을 버리고 교만의 깃발을 쓰러뜨리고, 속인의 옷을 벗고 누더기 옷을 몸에 걸치고, 흰 불자와 활과 화살을 버리고 바리때 하나를 손에 쥐고, 가난한 사람이나 걸인처럼 되어 세존을 따랐다.

「개목초」, 205쪽

우루벨라 가섭은 천 명을 거느린 스승이었고,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이름난 학파의 수제자였다. 그들이 이룬 자리를 버리고 젊은 사문의 제자가 되었다. 대성인은 이것을 「교만의 깃발을 쓰러뜨렸다」고 하셨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제자들이 겪은 난을 적으신다(4부).

기원정사 — 황금을 깐 동산

성도 후 수년 · 코살라의 사밧티

코살라의 도읍 사밧티에 수닷타라는 큰 상인이 있었다.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에게 늘 음식을 베풀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외로운 이들에게 밥을 주는 장자」, 아나타핀디카(給孤獨長者)라 불렀다. 율장 『소품』(Vinaya, Cullavagga VI.4)에 따르면, 수닷타는 장사 일로 라자가하에 갔다가 처남의 집에서 붓다가 오신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설레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이 오기도 전에 세 번이나 일어나 성문을 나섰고, 어둠 속 공동묘지 곁을 지나 붓다를 찾아갔다. 붓다는 새벽 숲길을 거닐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오라, 수닷타여.」

수닷타는 사밧티에 붓다와 교단이 머물 곳을 마련하기로 했다. 가장 알맞은 땅은 코살라의 왕자 제타(祇陀)의 동산이었다. 왕자는 팔 생각이 없어 「그 땅에 금화를 빈틈없이 깔면 팔겠다」고 했다. 수닷타는 수레로 금화를 실어 와 동산에 깔기 시작했다. 입구 쪽 한 귀퉁이만 남았을 때 제타 왕자는 마음이 움직여, 남은 땅과 그 위의 나무를 자신이 바치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 정사를 「제타의 숲, 아나타핀디카의 동산」, 한역으로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줄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라 한다. 석존은 생애 후반의 우기를 이곳에서 가장 많이 보냈고, 수많은 경전이 「한때 부처님께서 사밧티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로 시작한다.

오래된 나무들이 선 동산 앞 빈 땅에 작은 금화가 고르게 깔리고, 문 가까이 좁은 한 줄만 남은 곳에 소달구지 두세 대가 멀리 작게 서 있는 저녁의 금박 수묵화
그림 8 · 황금을 깐 동산

대성인은 수닷타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들려주신다. 아쓰와라 법난 뒤 가난 속에서도 돈 한 관을 보내온 스무 살 남짓의 난조 도키미쓰에게 보낸 편지다.

月氏国にす達長者と申せし者は七度貧になり・七度長者となりて候いしが・最後の貧の時は万民皆にげうせ・死にをはりて・ただ.めおとこ二人にて候いし時・五升の米あり五日のかつてとあて候いし時・迦葉.舎利弗・阿難・羅睺羅・釈迦仏の五人・次第に入らせ給いて五升の米をこひとらせ給いき、其の日より五天竺第一の長者となりて・祇園精舎をば・つくりて候ぞ

인도에 수달 장자라는 사람은 일곱 번 가난해지고 일곱 번 장자가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가난했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달아나거나 죽고 다만 부부 두 사람만 남았다. 다섯 되의 쌀이 있어 닷새의 양식으로 삼았을 때, 가섭·사리불·아난·라후라·석가불 다섯 분이 차례로 들어오셔서 그 다섯 되의 쌀을 청하여 받으셨다. 그날부터 오천축 제일의 장자가 되어 기원정사를 지었다.

「상야전어반사(수달장자어서)」, 1574쪽

금화를 깐 대부호의 이야기가, 대성인의 편지에서는 마지막 다섯 되의 쌀을 내놓은 가난한 부부의 이야기가 된다. 기원정사는 부의 크기가 아니라 가장 가난할 때 내놓은 한 줌의 정성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역 경전에 전하는 전승이다.

같은 무렵 코살라의 파세나디 왕(波斯匿王)도 붓다에게 귀의했다. 사밧티 동쪽에는 여성 재가 신도 위사카(毘舍佉)가 녹자모강당(鹿子母講堂)을 지어 바쳤다. 마가다의 라자가하와 코살라의 사밧티, 갠지스 남북의 두 대국 도읍이 붓다의 두 거점이 되었다. 붓다는 해마다 우기 석 달은 한곳에 머물고(안거), 나머지 아홉 달은 두 도읍 사이와 그 둘레의 마을을 걸어 다니며 법을 설했다.

  1. 라자가하죽림정사 · 영취산 — 마가다의 도읍
  2. 사밧티기원정사 · 녹자모강당 — 코살라의 도읍
  3. 베살리대림 중각강당 · 암바팔리 동산
  4. 코삼비고시타 정사
우기 석 달은 안거, 아홉 달은 유행 · 굵은 점선은 두 도읍을 잇는 주 통로(개념)
도표 13 · 붓다가 머문 곳

비구니 교단 — 마하파자파티

성도 후 수년 · 베살리

1부에서 태자를 기른 이모이자 양모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를 보았다. 남편 숫도다나 왕이 세상을 떠난 뒤, 그녀는 카필라밧투의 니그로다 동산에 머물던 붓다를 찾아가 여인도 출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붓다는 세 번 거절했다. 마하파자파티는 물러서지 않았다. 스스로 머리를 깎고 누런 옷을 입고, 같은 뜻을 품은 석가족 여인들과 함께 맨발로 베살리까지 붓다를 따라갔다. 율장 『소품』(Vinaya, Cullavagga X.1)과 『앙굿타라 니카야』(AN 8.51)는 그녀가 발이 부르트고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된 채 눈물을 흘리며 문밖에 서 있었다고 전한다.

그 모습을 본 아난이 붓다에게 물었다. 세존이시여, 여인도 출가하여 수행하면 깨달음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까. 붓다는 답했다. 얻을 수 있다. 아난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세존을 길러 준 이모, 어머니를 여읜 세존에게 젖을 먹여 키운 마하파자파티의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붓다는 마하파자파티가 여덟 가지 공경의 법(八敬法)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으로 출가를 허락했다. 그녀는 「머리를 감은 젊은이가 연꽃 화환을 받아 머리에 얹듯이」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세계 종교사에서 가장 이른 여성 출가 교단 가운데 하나인 비구니 교단이 섰다. 석존의 아내였던 야소다라도 뒤에 비구니가 되었다.

초기 경전의 『테리가타(長老尼偈)』에는 이 비구니들이 스스로 지은 깨달음의 노래가 모여 있다. 부유한 집의 딸, 기녀, 아이를 잃은 어머니, 가난한 집의 아내들이 저마다의 괴로움과 해방을 노래했다. 여인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경전으로 남은 드문 예다.

연구 노트 — 여덟 가지 공경의 법(비구니는 비구에게 예를 갖추어야 한다는 등)과, 여인의 출가로 정법이 천 년에서 오백 년으로 줄었다는 이야기(AN 8.51)는 학계에서 많이 논의된다. 이것들이 붓다 자신의 말인지, 교단이 뒤에 덧붙인 것인지를 두고 견해가 갈린다. 다만 붓다가 「여인도 깨달음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분명히 답했다는 점은 모든 전승이 같다.

대성인은 이 마하파자파티를 여러 어서에서 여인 성불의 증거로 드셨다. 법화경 권지품에서 마하파자파티는 「일체중생희견여래(一切衆生喜見如來)」, 야소다라는 「구족천만광상여래(具足千萬光相如來)」의 수기를 받는다. 「여인성불초」는 제바달다품의 용녀 성불을 「비롯하여」 석존의 이모 마하파자파티 비구니 등이 수기를 받았다고 적는다(473쪽). 사도까지 천 리 길을 찾아온 여인에게 보낸 「일묘성인어서」에서는 이렇게 쓰셨다. 「용녀의 즉신성불도, 마하파자파티 비구니가 수기를 받은 것도, 혹시 부처와 보살이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 것이었는지 모른다. 또 재세의 일이다(竜女が即身成仏も摩訶波闍波提比丘尼の記莂にあづかりしも、しらず権化にや・ありけん、又在世の事なり)」(1216–1217쪽). 그러니 말법에 범부의 몸으로 법을 구해 천 리를 온 이 여인이야말로 더 귀하다는 것이다. 1부의 아시타 이야기처럼, 여기서도 석존 재세의 일이 말법의 한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귀향 — 아버지와 아들

성도 후 · 카필라밧투

성도한 아들의 소식을 들은 숫도다나 왕은 아들을 불러오라고 거듭 사자를 보냈다. 불전 문학에 따르면 사자들은 붓다의 설법을 듣고 출가해 버려 돌아오지 않았고, 마지막에 태자의 어릴 적 벗 칼루다이가 붓다를 모시고 돌아왔다.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카필라밧투에 이르러, 다른 사문들처럼 집집마다 탁발을 했다. 왕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달려와, 우리 가문에서 탁발한 이는 없다고 나무랐다. 붓다는 답했다. 「그것은 왕족의 가문이지만, 나의 가문은 과거의 부처들의 가문이다. 부처들은 모두 탁발로 살았다.」 불전 문학은 이때 왕이 법을 듣고 귀의했다고 전한다. 2부에서 본 「병위지전어반사」의 말, 「불효자라고 원망하셨으나 부처가 되시고 나서는 가장 먼저 정반왕을 인도하셨다」가 이 장면이다.

대성인은 「찬시초」에서 이 무렵의 일을 이렇게 적으셨다. 「세존의 자부 정반대왕이 간절히 그리워하셨으므로 부처가 궁에 드시어 관불삼매경을 설하셨다(世尊の慈父の浄飯大王ねんごろに恋せさせ給いしかば仏・宮に入らせ給いて観仏三昧経をとかせ給い)」(257쪽).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이렇게 물으신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무슨 비밀의 법을 아끼셨겠는가. 그런데도 법화경은 설하지 않으셨다. 기(機)가 아니라 때(時)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누구보다 사랑한 아들도 때가 이르기 전에는 가장 깊은 법을 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후라의 유산

율장 『대품』(Vinaya, Mahāvagga I.54)은 한 장면을 더 전한다. 붓다가 궁에 들른 날, 야소다라는 일곱 살 된 라후라에게 말했다. 저분이 너의 아버지다. 가서 유산을 달라고 하여라. 라후라는 붓다 앞에 가서 「사문이시여, 당신의 그늘은 즐겁습니다」 하고 말하고, 붓다가 떠나자 뒤를 따르며 「사문이시여, 저에게 유산을 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붓다는 사리풋타에게 라후라를 출가시키라고 했다. 세간의 재산은 괴로움을 낳는 유산이다. 나는 이 아이에게 보리수 아래에서 얻은 성스러운 재산을 물려주겠다. 라후라는 교단 최초의 사미(沙彌)가 되었다.

아들과 손자를 모두 출가로 잃게 된 숫도다나 왕은 붓다에게 청했다. 부모의 허락 없이는 자식을 출가시키지 말아 달라. 아들이 떠날 때 살갗을 찢고 살을 찢고 뼈를 찢는 듯했다. 붓다는 이 청을 받아들여 계율로 정했다. 부모의 허락 없이는 출가시키지 않는다.

뒤에 라후라는 계율을 가장 잘 지키는 「밀행제일」로 불렸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법화경 수학무학인기품에서 라후라가 「도칠보화여래」의 수기를 받는다고 적으셨다(191쪽).

석가족 청년들과 이발사 우팔리

이 무렵 석가족의 여러 젊은이가 붓다를 따라 출가했다. 율장 『소품』(Vinaya, Cullavagga VII.1)이 전하는 이름 가운데에는 사촌 아누룻다, 아난, 그리고 제바달다가 있었다. 이들이 출가하러 떠날 때 따라온 이가 있었다. 석가족 왕족들의 머리를 다듬던 이발사 우팔리(優波離)였다. 석가족 청년들은 붓다에게 청했다. 우리 석가족은 교만합니다. 이 이발사를 먼저 출가시켜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그에게 절하고 일어나 맞으며 합장하게 되어, 석가족의 교만이 꺾일 것입니다. 붓다는 우팔리를 먼저 출가시켰다. 교단에서는 먼저 출가한 이가 윗사람이다. 신분이 낮은 이발사가 왕족들의 선배가 되었다.

우팔리는 뒤에 「지계제일」로 불렸고, 붓다 입멸 뒤 제1결집에서 계율을 외워 전하는 역할을 맡는다(4부). 태어난 신분이 아니라 행위가 사람을 정한다. 붓다는 『숫타니파타』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어남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남에 의해 브라만이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고, 행위에 의해 브라만이 된다(na jaccā vasalo hoti, na jaccā hoti brāhmaṇo; kammunā vasalo hoti, kammunā hoti brāhmaṇo)」(Sn 1.7).

십대 제자
  • 브라만사리불지혜제일화광여래
  • 브라만목건련신통제일
  • 브라만마하가섭두타제일광명여래
  • 왕족아나율천안제일
  • 상인수보리해공제일
  • 브라만부루나설법제일
  • 브라만가전연논의제일
  • 이발사우바리지계제일
  • 왕족라후라밀행제일도칠보화여래
  • 왕족아난다문제일산해혜자재통왕불
비구니
  • 왕족마하파자파티첫 비구니일체중생희견여래
  • 왕족야소다라석존의 아내구족천만광상여래
재가 후원자
  • 왕빔비사라마가다의 왕 · 죽림정사
  • 왕파세나디코살라의 왕
  • 상인수닷타급고독 장자 · 기원정사
  • 상인위사카녹자모강당
오른쪽 위는 출신(전승) · 아래 줄은 법화경에서 받은 수기명(「개목초」 191쪽)
도표 14 · 붓다 곁의 사람들 — 십대 제자와 첫 비구니 · 재가 후원자

「개목초」는 석존을 「일체중생의 대도사 · 대안목 · 대교량 · 대선사(大導師・大眼目・大橋梁・大船師)」라 부르고(188쪽), 「선무외삼장초」는 석존이 사바세계 일체중생의 주군이고 부모이며 「본사(本師)」라고 한다(884쪽). 3부에서 본 석존은 무엇보다 스승이었다. 스승 없이 깨달은 이가 스승이 되어, 불을 섬기던 이들에게는 마음의 불을, 회의하던 이들에게는 원인과 소멸의 법을, 가난한 부부에게는 다섯 되의 쌀의 공덕을, 이발사와 왕족에게는 행위의 평등을 가르쳤다. 대성인은 「관심본존초」에서 「묘각의 석존은 우리의 혈육이다(妙覚の釈尊は我等が血肉なり)」(246쪽)라고 하셨다. 창가학회는 석존의 교단에서 사람을 신분이 아니라 행위로 보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맞추어 법을 설하는 스승의 모습을 배운다. 그 모습이 스승과 제자가 함께 법을 넓혀 가는 창가학회 사제의 원형이라고 본다.

4부 난과 마지막 여행

제바달다

석존 만년 · 라자가하

3부에서 석가족 청년들과 함께 출가한 제바달다(提婆達多, Devadatta)는 처음에는 신통을 갖춘 뛰어난 비구로 이름이 났다. 율장 『소품』(Vinaya, Cullavagga VII)은 그가 마가다의 태자 아자타삿투(阿闍世)에게 신통을 보여 그의 신임을 얻었다고 전한다. 태자는 아침저녁으로 오백 대의 수레에 음식을 실어 그에게 보냈다. 이익과 존경이 쌓이자 제바달다의 마음에 한 생각이 일었다. 내가 교단을 이끌어야 한다.

어느 날 제바달다는 왕과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붓다에게 말했다. 세존께서는 이제 늙으셨습니다. 편히 쉬시고 교단을 저에게 맡기십시오. 붓다는 거절했다. 「나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에게도 교단을 맡기지 않는다. 하물며 남이 뱉은 침을 먹는 자에게 맡기겠느냐.」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 장면과 제바달다의 원한을 이렇게 그리셨다.

例せば世尊・提婆達多を汝愚人・人の唾を食うと罵詈せさせ給しかば毒箭の胸に入るがごとく・をもひて・うらみて云く「瞿曇は仏陀にはあらず我は斛飯王の嫡子・阿難尊者が兄・瞿曇が一類なり、いかにあしき事ありとも内内・教訓すべし、此等程の人天大会に此程の大禍を現に向つて申すもの大人・仏陀の中にあるべしや、されば先先は妻のかたき今は一座のかたき今日よりは生生・世世に大怨敵となるべし」と誓いしぞかし

예컨대 세존께서 제바달다를 「너 어리석은 자여, 남의 침을 먹는 자여」 하고 꾸짖으시자, 제바달다는 독화살이 가슴에 박힌 듯 여겨 원망하며 말했다. 「구담은 부처가 아니다. 나는 곡반왕의 적자요 아난 존자의 형이며 구담과 한 집안이다. 아무리 나쁜 일이 있더라도 안에서 조용히 가르쳐야 할 일이다. 이렇게 많은 인간과 하늘의 대중 앞에서 이런 큰 허물을 대놓고 말하는 자가 큰 사람, 부처 가운데 있겠는가. 그러므로 예전에는 아내를 두고 원수였고 지금은 한 자리의 원수이니, 오늘부터는 세세생생 큰 원적이 되리라」 하고 맹세했다.

「개목초」, 205쪽

「예전에는 아내를 두고 원수」라는 말은, 태자 시절 야소다라를 두고 다투었다는 한역 불전의 전승을 가리킨다. 한 집안의 사촌이 가장 깊은 적이 되었다.

제바달다는 아자타삿투에게 말했다. 옛날에는 사람의 수명이 길었지만 지금은 짧다. 그대는 태자인 채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대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라. 나는 붓다를 죽이고 붓다가 되겠다. 아자타삿투는 아버지 빔비사라 왕, 곧 붓다의 첫 후원자를 가두어 굶겨 죽였다. 대성인은 「법화취요초」에서 이것을 「아사세 태자가 빈바사라왕을 죽이고 석존을 등져 제바달다에게 붙은 것」(331–332쪽)이라 적으셨다.

그리고 제바달다는 붓다의 목숨을 노렸다. 율장은 세 번의 시도를 전한다. 자객들을 보냈으나 그들은 붓다의 설법을 듣고 오히려 귀의했다. 영취산 비탈에서 큰 바위를 굴려 떨어뜨렸는데, 바위는 부서졌으나 그 조각이 붓다의 발을 다치게 하여 피가 났다. 이것이 오역죄의 하나인 「부처의 몸에서 피를 낸 죄(出佛身血)」다. 마지막으로 사나운 코끼리 날라기리에게 술을 먹여 붓다가 지나는 좁은 길에 풀어 놓았다. 코끼리는 코를 쳐들고 달려왔으나, 붓다가 자애의 마음으로 손을 뻗자 멈추어 머리를 숙였다.

목숨을 빼앗는 데 실패하자 제바달다는 교단을 가르려 했다. 그는 다섯 가지 계율을 요구했다. 비구는 평생 숲에서 살고, 탁발로만 먹고, 버려진 천으로만 옷을 짓고, 나무 아래에서만 자고, 생선과 고기를 먹지 말라. 붓다는 이것을 원하는 이는 지키되 모두에게 강요하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제바달다는 붓다가 사치를 허락한다고 선전하며,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비구 오백 명을 데리고 가야시사로 떠났다. 붓다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보냈고, 두 사람은 제바달다가 잠든 사이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여 그들을 모두 데리고 돌아왔다.

연구 노트 — 제바달다의 「다섯 가지 요구(五法)」는 더 엄격한 고행주의를 내세운 것이었다. 5세기 초 인도를 여행한 법현과 7세기의 현장은 제바달다를 따르는 수행자 무리가 여전히 있다고 기록했다. 학계에는 제바달다를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교단의 수행 방식을 두고 다른 노선을 주장한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천왕여래

그런데 법화경은 이 제바달다에게 뜻밖의 자리를 준다. 법화경 제바달다품에서 석존은 과거세에 자신이 왕이었을 때 아사타 선인을 섬겨 법화경을 배웠는데, 그 선인이 지금의 제바달다라고 밝힌다. 「제바달다라는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육바라밀과 …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갖추어 정등각을 이루었다(由提婆達多善知識故 令我具足六波羅蜜 … 成等正覺)」. 그리고 제바달다가 미래에 「천왕여래(天王如來)」가 되리라고 수기한다.

대성인은 「찬시초」에서 이것을 법화경이 설해진 「때」의 증거로 드셨다. 「영산회상의 자리에는 염부 제일의 불효자였던 아사세 대왕이 자리를 함께했고, 일대의 방법자 제바달다에게는 천왕여래라는 이름을 주었다(霊山会上の砌には閻浮第一の不孝の人たりし阿闍世大王座につらなり、一代謗法の提婆達多には天王如来と名をさづけ)」(256쪽). 석존을 죽이려 한 사람도, 그 사람과 손잡고 아버지를 죽인 왕도 법화경에서는 부처가 될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해석 대조 — 대성인은 사도의 삼매당에서 「헤이노 사에몬노조야말로 제바달다요, 사가미노카미 님이야말로 선지식이다」(「종종어진무어서」, 917쪽)라고 쓰셨다(인물탐구 「니치렌 대성인」 15절). 창가학회와 일련정종은 모두 제바달다품의 「선지식」을, 박해자가 도리어 법화경 행자를 부처로 만드는 인연이 된다는 가르침으로 받든다.

구횡의 대난

일대 오십 년에 걸쳐

제바달다의 일만이 아니었다. 석존의 생애는 비방과 박해로 이어졌다. 대성인은 이것을 「구횡(九橫)의 대난」, 곧 뜻밖에 닥친 아홉 가지 큰 난으로 부르셨다. 사도에서 문하에게 보낸 「법화행자봉난사」는 그 목록을 이렇게 적는다.

仏に九横の大難有り所謂孫陀利の謗と金鏘と馬麦と琉璃の釈を殺すと乞食空鉢と旃遮女の謗と調達が山を推すと寒風に衣を索むるとなり

부처에게 구횡의 대난이 있었다. 이른바 손타리의 비방, 금창, 말먹이 보리, 유리왕이 석가족을 죽인 일, 탁발하고도 빈 바리때, 전차녀의 비방, 조달(제바달다)이 산에서 바위를 민 일, 찬바람에 옷을 구한 일이다.

「법화행자봉난사」, 966쪽

초기 경전과 율장에서 그 하나하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손타리의 비방
내용다른 교단이 여인을 죽여 정사 곁에 묻고 제자들에게 누명 — 이레 뒤 진범이 드러남
출전Ud 4.8
대성인의 견줌—
금창
내용발이 날카로운 것에 찔린 일
출전한역 경론
대성인의 견줌—
말먹이 보리
내용베란자에서 공양을 잊혀, 말먹이 보리로 석 달
출전율장 「바라이」 첫머리
대성인의 견줌—
유리왕의 석가족 살해
내용비두다바 왕이 고향 석가족을 멸함
출전주석 전승 · 『증일아함』
대성인의 견줌부처 재세를 넘는 큰 난
탁발하고도 빈 바리때
내용판차살라 마을에서 빈 바리때로 돌아옴
출전SN 4.18
대성인의 견줌부처 재세를 넘는 큰 난
전차녀의 비방
내용배에 바리때를 묶어 임신을 꾸민 거짓 고발
출전『법구경』 주석
대성인의 견줌—
조달이 산을 밈
내용영취산 비탈에서 굴린 바위 조각에 발을 다침
출전율장 『소품』 VII
대성인의 견줌—
찬바람에 옷을 구함
내용한겨울 밤 가사를 한 벌씩 더 걸침
출전율장 『대품』 VIII
대성인의 견줌부처 재세를 넘는 큰 난
「법화행자봉난사」 966쪽 · 「금창」의 뜻은 한역 경론에 전하는 풀이
도표 15 · 구횡의 대난 — 대성인이 적으신 여덟 난과 그 출전

연구 노트 — 「구횡」의 목록은 경론마다 조금씩 다르다. 『대지도론』 권9는 부처가 받은 「아홉 가지 죄보(九罪報)」로 손타리의 비방, 전차 여인의 비방, 제바달다가 산을 밀어 발가락을 다치게 한 일, 나무 가시에 발을 찔린 일, 유리왕의 석가족 살해, 말먹이 보리, 찬바람으로 인한 등의 통증, 여섯 해의 고행, 빈 바리때를 든다. 「법화행자봉난사」는 여덟 가지를 들고, 「개목초」(205쪽)와 「성인어난사」(1189쪽)는 아사세 왕의 취한 코끼리, 제자들의 박해를 함께 든다. 「금창」의 뜻은 게재 전 확인한다(부록 C).

대성인은 이 난들이 우연이 아니라고 보셨다. 1262년 이즈 유배지에서 쓰신 「사은초」는 그 까닭을 사바세계라는 이름에서 찾는다.

此の世界をば娑婆と名く娑婆と申すは忍と申す事なり・故に仏をば能忍と名けたてまつる

이 세계를 사바라 이름한다. 사바란 「참음(忍)」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처를 「잘 참는 이(能忍)」라 이름한다.

「사은초」, 935쪽

이 세계에는 과거의 악업으로 삼악도를 거쳐 온 중생이 모여 산다. 그래서 석가여래가 세상에 나오자 사람들은 음식에 독을 섞고, 칼과 몽둥이와 사나운 코끼리로 해치려 하고, 여인을 범했다고 헐뜯고, 천한 자라고 욕하고, 마주치면 얼굴을 가렸다(935쪽). 「선무외삼장초」도 같은 뜻을 적는다. 석가여래는 이 땅에 들어오며 「일체중생의 비방을 탓하지 않고 잘 참으셨으므로」 능인이라 이름한다(885쪽). 산스크리트 「석가모니」의 「모니」를 한역에서는 「능인적묵(能仁寂默)」으로 풀기도 한다. 석존의 이름 자체가 이 세계에서의 인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석가족의 멸망

석존 만년 · 카필라밧투

석존의 생애 끝 무렵, 그 고향 석가족은 멸망했다. 이 이야기는 초기 경전 본문이 아니라 『법구경』과 『자타카』의 주석 전승, 그리고 한역 『증일아함경』 등에 전한다.

코살라의 파세나디 왕은 석가족과 혼인하기를 원했다. 자존심 높은 석가족은 왕의 청을 거절할 수도, 그렇다고 순수한 왕족의 딸을 보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한 귀족이 하녀에게서 얻은 딸을 왕족의 딸이라 속여 보냈다. 그 딸이 낳은 아들이 비두다바(毘琉璃), 한역으로 유리왕(琉璃王)이다. 뒤에 외가인 카필라밧투를 찾았던 비두다바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석가족 사람들이 「하녀의 자식이 앉은 자리」라며 우유로 씻어 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두다바는 왕이 되면 이 자리를 석가족의 피로 씻겠다고 맹세했다.

아버지 파세나디를 몰아내고 왕이 된 비두다바는 군대를 이끌고 카필라밧투로 향했다. 전승은 석존이 그 길목의 잎이 거의 없는 마른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고 전한다. 왕이 물었다. 세존이시여, 잎이 무성한 나무가 저기 있는데 어찌 이 마른 나무 아래 앉아 계십니까. 석존이 답했다. 「친족의 그늘이 시원하다.」 왕은 군대를 돌렸다. 이렇게 세 번 군대를 돌렸으나, 네 번째에는 석존도 석가족의 업이 무르익었음을 보고 더는 막지 않았다. 석가족은 무참히 살해되었다.

대성인은 이것을 석존이 겪은 난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의 하나로 보셨다. 「개목초」의 「헤아릴 수 없는 석가족 사람들이 파유리왕에게 죽임을 당했다(無量の釈子は波瑠璃王に殺され)」(205쪽), 「성인어난사」의 같은 구절(1189쪽). 그리고 「법화행자봉난사」에서는 자신의 난과 견주어 이렇게 쓰셨다.

又九横の難一一に之在り、所謂琉璃殺釈と乞食空鉢と寒風索衣とは仏世に超過せる大難なり

또 구횡의 난이 하나하나 (나에게도) 있다. 이른바 유리왕이 석가족을 죽인 일, 탁발하고도 빈 바리때, 찬바람에 옷을 구한 일은 부처 재세를 넘어서는 큰 난이다.

「법화행자봉난사」, 966쪽

문하가 잡혀 가고 영지를 빼앗긴 일, 사도의 굶주림, 삼매당의 눈. 대성인은 석존의 구횡을 하나하나 자신의 몸에서 확인하셨다. 법사품의 「여래가 계신 때에도 원망과 질투가 많은데,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如來現在猶多怨嫉 況滅度後)」가 말법의 행자에게 현실이 된 것이다.

연구 노트 — 석가족 멸망의 이야기는 초기 경전 본문에는 없고 주석 전승과 한역 경전에 전한다. 학계에는 코살라가 기원전 5세기 무렵 주변 공화국들을 병합한 역사적 사실이 이 이야기에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1부 2절에서 본 「석가족은 코살라에 복속해 있다」(DN 27)가 그 배경이다. 비두다바 자신은 그 뒤 곧 강의 범람으로 군대와 함께 죽었다고 전한다.

마지막 여행

80세 · 라자가하에서 쿠시나가라까지

석존의 마지막 한 해는 초기 경전 가운데 가장 긴 경, 『대반열반경』(DN 16, 『장아함』 「유행경」 T1 no.1(2))에 한 편의 여행기로 남아 있다. 석존의 생애 가운데 초기 경전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서 전하는 유일한 대목이다.

여행은 라자가하의 영취산에서 시작된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아자타삿투가 갠지스 북쪽의 밧지족을 치려고 대신을 보내 붓다의 뜻을 물었다. 붓다는 대신 앞에서 아난에게 물었다. 밧지족은 자주 모여 회의하는가.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일어나는가. 정한 법을 지키는가. 어른을 공경하는가. 여인을 억누르지 않는가. 사당을 지키는가. 성자들을 보호하는가. 그렇다면 밧지족은 쇠퇴하지 않고 번영할 것이다.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七不衰法)」을 붓다는 이어서 교단에 그대로 적용했다. 공화국 석가족에서 태어난 붓다가 교단을 어떻게 이끌려 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붓다는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날란다를 지나, 갠지스 남쪽 기슭의 작은 마을 파탈리가마에서 붓다는 이 마을이 장차 큰 도시가 되리라고 말했다. 뒤의 마우리아 왕조의 도읍 파탈리푸트라, 지금의 파트나다. 갠지스를 건너 베살리에 이르자, 기녀 암바팔리가 붓다와 비구들을 공양에 초청했다. 뒤따라 온 베살리의 귀족들이 큰돈을 줄 테니 그 공양을 양보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붓다는 귀족들의 초청을 사양하고 기녀의 공양을 받았다. 암바팔리는 자신의 망고 동산을 교단에 바쳤다.

자신을 등불로, 법을 등불로

베살리 근처 벨루바 마을에서 우기를 보내는 동안 붓다는 죽을 만큼 아팠다. 병에서 일어난 붓다에게 아난이 말했다. 세존께서 교단에 대해 아무 말씀도 없이 입멸하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하여 겨우 마음을 놓았습니다. 붓다는 답했다.

아난다여, 교단이 나에게 무엇을 더 바라는가. 나는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법을 설했다. 여래의 법에는 스승이 제자에게 감추어 쥐고 있는 주먹(ācariyamuṭṭhi)이 없다. … 아난다여, 나는 이제 늙어 나이 여든이 되었다. 낡은 수레가 가죽끈으로 묶여 겨우 움직이듯, 여래의 몸도 그렇게 겨우 움직인다.

— DN 16

그리고 이렇게 가르쳤다.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 머물라. 남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 머물라.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DN 16

當自熾燃 熾燃於法 勿他熾燃 當自歸依 歸依於法 勿他歸依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며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라. 스스로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며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

『장아함』 「유행경」, T1 no.1(2)

팔리어 「dīpa」는 「섬」과 「등불」 두 뜻을 가진다. 팔리 전승은 이를 홍수 속의 섬으로, 한역은 어둠 속의 등불로 옮겼다. 동아시아에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으로 알려진 가르침이다. 붓다는 자신이 떠난 뒤 누구를 의지하라고 하지 않았다. 스스로와 법을 의지하라고 했다.

그 뒤 베살리의 차팔라 사당에서 붓다는 석 달 뒤 입멸하리라고 선언했다. 이것을 수명의 형성력을 놓았다(壽命行捨)고 한다. 교리 四 「구원실성」 2절에서 본 대목, 곧 원한다면 「한 겁이나 그 남은 동안 머물 수 있다」는 말을 붓다가 세 번 했으나 아난이 알아듣지 못해 청하지 않았다는 장면이 이때다. 베살리를 떠나며 붓다는 코끼리가 온몸을 돌려 뒤돌아보듯 베살리를 돌아보았다. 「아난다여, 이것이 여래가 베살리를 보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대성인은 이 입멸을 다른 쪽에서 보셨다. 「사은초」다.

又果地の三分の功徳・二分をば我が身に用ひ給ひ、仏の寿命・百二十まで世にましますべかりしが八十にして入滅し、残る所の四十年の寿命を留め置きて我等に与へ給ふ恩をば四大海の水を硯の水とし一切の草木を焼て墨となして一切のけだものの毛を筆とし十方世界の大地を紙と定めて注し置くとも争か仏の恩を報じ奉るべき

또 부처가 되어 얻은 공덕을 셋으로 나누어 둘만 자신에게 쓰셨다. 부처의 수명은 백이십 세까지 세상에 계실 것이었는데 여든에 입멸하시어, 남은 사십 년의 수명을 머물러 두어 우리에게 주셨다. 그 은혜는 네 바다의 물을 벼룻물로 삼고, 모든 초목을 태워 먹으로 삼고, 모든 짐승의 털을 붓으로 삼고, 시방세계의 대지를 종이로 삼아 적는다 해도 어찌 다 갚을 수 있겠는가.

「사은초」, 938쪽

초기 경전의 「머물 수 있었으나 머물지 않았다」가, 대성인의 글에서는 「남은 수명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가 된다. 입멸은 떠남이 아니라 줌이었다는 것이다.

춘다의 공양

파바 마을에서 대장장이의 아들 춘다(純陀)가 붓다를 공양에 초청했다. 그가 올린 음식 가운데 「수카라맛다바」라는 것이 있었다. 붓다는 그것을 자신에게만 올리고 남은 것은 구덩이에 묻으라고 했다. 공양 뒤 붓다는 피가 섞인 설사를 하는 심한 병에 걸렸다. 그럼에도 붓다는 쿠시나가라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아난에게 일렀다. 누군가 춘다에게 「네 공양 때문에 여래가 입멸했다」고 후회하게 할지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전하여라. 여래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 받은 공양과 입멸하기 전에 받은 공양, 이 두 공양은 똑같이 가장 큰 공덕이 있다고.

연구 노트 — 「수카라맛다바」는 「돼지의 부드러운 것」이라는 뜻으로, 연한 돼지고기라는 해석과 돼지가 즐겨 먹는 버섯 등의 식물이라는 해석이 옛 주석서 때부터 갈린다. 대승의 『대반열반경』(T12 no.374)은 춘다를 부처에게 마지막 공양을 올린 이로 크게 기리며, 경의 한 품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

쿠시나가라, 말라족의 작은 마을 변두리의 사라나무 숲에 이르러, 붓다는 두 그루 사라나무(沙羅雙樹)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누웠다. 때가 아닌데도 사라나무에 꽃이 피어 붓다의 몸 위로 흩날렸다.

밤의 사라나무 숲, 나란히 선 두 그루 큰 사라나무 사이 낮은 자리에 오른쪽으로 누운 작은 모습이 있고, 철 아닌 금빛 꽃이 흩날리며 둘레에 많은 사람이 작게 둥글게 앉은 금박 수묵화
그림 9 · 두 그루 사라나무

그날 밤 수밧다라는 늙은 유행자가 찾아왔다. 아난은 세존이 지쳐 계시다며 막았으나, 붓다는 그를 불러들였다. 붓다는 그에게 법을 설했고, 수밧다는 붓다의 마지막 직제자가 되었다. 2부 연대 대조 상자에서 본 「나는 스물아홉에 출가하여 선을 구했다」는 붓다가 이 수밧다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붓다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아난다여, 너희는 「스승의 말씀은 끝났다. 이제 우리에게 스승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내가 설하고 제정한 법과 율, 그것이 내가 떠난 뒤 너희의 스승이 될 것이다.

— DN 16

세 번 물었다. 부처와 법과 승가와 길과 실천에 대해 의심이 있는 비구는 지금 물어라. 뒤에 「스승 앞에서 묻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말라. 비구들은 모두 잠잠했다. 그러자 붓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handa 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a.

자, 비구들이여, 이제 너희에게 말한다. 모든 형성된 것은 무너지는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여라.

DN 16

붓다는 선정에 들어 첫째 선정부터 멸진정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첫째 선정까지 내려오고, 또 넷째 선정까지 올라가 그 선정에서 나와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땅이 흔들리고 천둥이 쳤다.

  1. ①라자가하영취산 ·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
  2. ②날란다
  3. ③파탈리가마뒤의 파탈리푸트라 — 갠지스를 건넘
  4. ④베살리 · 벨루바암바팔리 · 우안거 · 자등명 법등명 · 수명행을 놓음
  5. ⑤파바춘다의 공양
  6. ⑥쿠시나가라사라쌍수 · 수밧다 · 마지막 말
DN 16 『대반열반경』의 경로 · 점을 누르면 해당 대목으로 간다
도표 16 · 마지막 여행 — 라자가하에서 쿠시나가라까지

대성인은 입멸의 날에 일어난 일들을 여러 어서에 적으셨다. 「현불미래기」는 「부처가 입멸하실 때 열두 줄기의 흰 무지개가 남북으로 뻗고, 큰 해가 빛을 잃어 캄캄한 밤과 같았다」(508쪽)고 하고, 「찬시초」와 「보은초」는 아사세 왕이 하늘에서 달이 떨어지는 꿈을, 수발다라가 해가 떨어지는 꿈을 꾸었는데 「부처의 입멸」이었다고 전한다(「찬시초」, 282쪽 · 「보은초」, 317쪽). 대승의 『대반열반경』은 이날 석존이 가장 마음에 걸려 한 사람이 아사세 왕이었다고 전한다. 대성인은 남편을 잃고 병든 아이들을 홀로 키우던 묘이치니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大覚世尊・御涅槃の時なげいてのたまはく・我涅槃すべし但心にかかる事は阿闍世王のみ、迦葉童子菩薩・仏に申さく仏は平等の慈悲なり一切衆生のためにいのちを惜み給うべし、いかにかきわけて阿闍世王一人と・をほせあるやらんと問いまいらせしかば、其の御返事に云く「譬えば一人にして七子有り是の七子の中に一子病に遇えり、父母の心平等ならざるには非ず、然れども病子に於ては心則ち偏に重きが如し」

대각세존께서 열반하실 때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나는 열반하려 한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사세 왕뿐이다.」 가섭동자보살이 여쭈었다. 「부처님은 평등한 자비이시니 일체중생을 위해 목숨을 아끼셔야 할 터인데, 어찌 가려서 아사세 왕 한 사람이라 하십니까.」 그 답에 이르기를, 「비유하면 한 사람에게 일곱 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아들이 병에 걸렸다. 부모의 마음이 평등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병든 아들에게는 마음이 치우쳐 무거운 것과 같다」 하셨다.

「묘일니어전어소식」, 1252쪽

아버지를 죽이고 붓다의 적이 된 왕을, 붓다는 마지막까지 병든 자식처럼 걱정했다. 대성인은 「광일방어서」에서 그 아사세 왕이 석존 입멸의 날인 2월 15일에 온몸에 악창이 돋았고, 마침내 부처 앞에 나아가 참회하여 죄가 사라졌다고 쓰셨다(930–931쪽).

연대 대조 — 석존 입멸의 날을 동아시아는 2월 15일로 기리며(열반회), 대성인도 「법화취요초」에서 「2월 15일은 석존 입멸의 날(二月十五日は釈尊御入滅の日)」(332쪽)이라 하셨다. 남방 불교는 탄생·성도와 같은 베사카 달 보름날로 기린다. 「사은초」의 「백이십 세의 수명」은 한역 경론에 전하는 전승이다.

사리를 나누고 법을 모으다

입멸 직후 · 쿠시나가라와 라자가하

말라족 사람들은 이레 동안 춤과 노래와 향과 꽃으로 붓다의 유해를 공양한 뒤 화장했다. 마하깟사파가 오백 명의 비구와 함께 도착할 때까지 불이 붙지 않았다고 경은 전한다. 화장이 끝나자 여러 나라와 부족이 사리를 달라고 군대를 이끌고 왔다. 마가다의 아자타삿투, 베살리의 릿차비족, 카필라밧투의 석가족, 그리고 여러 부족들이었다. 싸움이 일어나려 하자 도나라는 브라만이 나섰다. 붓다는 인내를 가르친 분이다. 가장 뛰어난 분의 유골을 두고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 사리는 여덟으로 나뉘었고, 각 나라와 부족은 돌아가 탑(塔, 스투파)을 세웠다(DN 16). 1부 2절에서 본 피프라와의 사리 항아리는 이 여덟 몫 가운데 석가족의 몫과 이어져 있다는 견해가 있다.

대성인은 「선무외삼장초」에서 석존이 「여든에 입멸하시어 사리를 머물러 두어 일체중생을 정·상·말에 걸쳐 구하신다(八十にして御入滅・舎利を留めて一切衆生を正像末に救ひ給ふ)」(884쪽)고 하셨고, 「관심본존초」도 「여든에 입멸하시어 사리를 머물러 두어 정·상·말을 이익하신다(八十御入滅舎利を留めて正像末を利益し給う)」(243쪽)고 적으셨다.

제1결집

입멸 소식을 들은 비구들 가운데에는 이렇게 말한 이도 있었다. 「이제 됐다. 우리를 이래라저래라 하던 그 대사문에게서 벗어났다.」 마하깟사파는 이 말을 듣고, 법과 율이 흐트러지기 전에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해 우기, 라자가하 교외의 칠엽굴(七葉窟)에 오백 명의 아라한이 모였다. 율장 『소품』(Vinaya, Cullavagga XI)이 전하는 제1결집이다. 마하깟사파가 묻고, 우팔리가 율을, 아난이 법을 외웠다. 스물다섯 해 동안 붓다 곁에서 가장 많이 들은 아난은 경을 외울 때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ṃ me sutaṃ, 如是我聞)」로 시작했다. 모든 경전이 이 네 글자로 시작하게 된 까닭이다. 3부에서 본, 석가족 왕족보다 먼저 출가한 이발사 우팔리가 교단의 계율 전체를 외워 전한 사람이 되었다.

대성인은 「보은초」에서 이 결집을 법화경과 이어 읽으셨다. 아난과 문수는 팔 년 동안 법화경을 한 구절도 빠짐없이 들었다. 「부처의 멸후 결집 때 구백구십구 명의 아라한이 붓을 적시고 있는데, 먼저 『묘법연화경』이라 쓰고 『여시아문』이라 부르셨다(仏の滅後に結集の時・九百九十九人の阿羅漢が筆を染めてありしに先づはじめに妙法蓮華経とかかせ給いて如是我聞と唱えさせ給いし)」(325쪽). 경의 제목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보다 앞에 있다는 것은, 제목의 다섯 자가 경 전체의 간심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붓다가 남긴 법을 모은 일이, 대성인의 눈에서는 그 법의 간심을 가리키는 일이 된다.

사리 — DN 16쿠시나가라에서 여덟으로 나뉜 사리: 마가다, 릿차비, 석가, 불리, 콜리야, 베타디파, 파바의 말라, 쿠시나가라의 말라. 도나의 항아리 탑과 모리야의 재 탑.마가다릿차비석가피프라와?불리콜리야베타디파파바의 말라쿠시나가라의 말라쿠시나가라도나의 항아리 탑모리야의 재 탑
결집 — 율장 『소품』 XI라자가하 칠엽굴 · 오백 아라한마하가섭 — 주재
우팔리→ 율아난→ 경
evaṃ me sutaṃ · 如是我聞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보은초」 325쪽 — 먼저 묘법연화경이라 쓰고 「여시아문」이라 부름

도표 17 · 사리와 결집 — 여덟 몫의 사리탑과 칠엽굴의 제1결집

대성인은 「주사친어서」에서 법화경 법사품의 한 구절을 들어 쓰셨다. 「이 경은 여래가 계신 때에도 원망과 질투가 많은데,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而も此の経は如来の現在すら猶怨嫉多し況や滅度の後をや)」. 그리고 이어서, 삼십이상을 갖추고 범천·제석이 좌우에 선 부처조차 미워하는 이가 많았으니, 「말대 악세에 이 경을 있는 그대로 설하는 사람에게는 적이 많으리라」(386쪽)고 하셨다. 4부의 석존은 난을 겪는 부처다. 사촌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여인들의 거짓 고발에 휘말리고, 말먹이 보리로 석 달을 견디고, 고향이 멸망하는 것을 보았다. 창가학회는 이 모습에서 「부처는 난을 겪지 않는 이가 아니라, 난을 이기는 이」라는 것을 배운다. 대성인이 자신의 난을 석존의 구횡과 하나하나 견주신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처는 마지막 날 아버지를 죽인 왕을 병든 자식처럼 걱정했다. 모든 중생을 자식으로 보는 이 마음을 대성인은 주·사·친 가운데 「친(親)」의 덕이라 부르셨다(6부).

5부 일대 오십 년의 설법

수많은 경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석존 멸후 · 인도에서 중국으로

1부부터 4부까지는 초기 경전과 율장이 전하는 석존을 따라왔다. 그런데 동아시아에 전해진 불교 경전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아함경과 율장 곁에 화엄경, 반야경, 유마경, 아미타경, 대일경, 법화경, 열반경이 있었고, 그 모두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에 계셨다」로 시작했다. 모두 석존이 설한 경이라면, 석존은 서로 다른 이 가르침들을 언제, 누구에게, 왜 설했는가. 어느 경이 석존의 참뜻인가.

중국의 불교도들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경전들을 석존의 생애 위에 배열하고 그 깊이를 가렸다. 이것을 「교상판석(敎相判釋)」, 줄여서 교판(敎判)이라 한다. 여러 교판 가운데 가장 체계적이고 영향이 컸던 것이 수나라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의 「오시팔교(五時八敎)」다. 대성인은 이 교판을 이어받아 석존 일대의 설법을 읽으셨다.

연구 노트 — 근대 불교학은 대승 경전들이 석존 입멸 뒤 수백 년에 걸쳐, 대체로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성립했다고 본다. 법화경의 성립도 기원 전후에서 2세기 무렵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따라서 석존이 서른에 화엄경을, 일흔을 넘어 법화경을 설했다는 오시의 연대는 역사학의 연대기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한편 오시의 교판은 본래 경전들의 가르침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어느 것이 방편이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를 가리는 해석의 틀이다. 이 페이지는 1~4부를 역사학의 연대에 따라 쓰고, 5부는 천태와 대성인이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그 교판의 틀 안에서 쓴다. 두 층을 섞지 않는다.

오시 — 다섯 때의 설법

천태의 교판 · 대성인의 「일대성교대의」

대성인은 입종 5년 뒤인 1258년의 「일대성교대의(一代聖敎大意)」에서 오시를 이렇게 정리하셨다.

華厳経は三七日の間の説・阿含経は十二年の説・方等・般若は三十年の説、已上華厳より般若に至る四十二年なり

화엄경은 세 이레 동안의 설법이요, 아함경은 열두 해의 설법이요, 방등·반야는 서른 해의 설법이다. 이상 화엄에서 반야에 이르기까지 사십이 년이다.

「일대성교대의」, 396–397쪽

그리고 법화경 팔 년, 열반경은 입멸 하루 낮 하루 밤. 이 다섯 때를 차례로 보면 이렇다.

1. 화엄시(華嚴時) — 성도 직후 세 이레(21일). 적멸도량에서 깨달은 그대로의 경지를 대보살들에게 설했다. 그러나 이승(성문·연각)은 귀머거리 같고 벙어리 같아 알아듣지 못했다. 「주사친어서」는 「처음에는 화엄경이라는 경을 … 법혜·공덕림·금강당·금강장 네 보살에게 세 이레 동안 설하셨다」(387쪽)고 한다. 2부 10절에서 본 방편품의 「세 이레 동안 생각했다」가 여기에 겹친다.

2. 아함시(阿含時) — 열두 해. 화엄의 가르침이 이승의 근기에 맞지 않자, 석존은 「구슬 꾸미개와 부드러운 옷을 벗고 거친 옷을 입고」 녹야원에 가서 사제·십이인연 등 소승의 법을 설했다(3부 11절). 1~4부에서 본 초기 경전의 석존이 이 아함시의 석존이다.

3. 방등시(方等時) — 대승을 널리 설하여 소승에 머문 이들을 꾸짖고(彈呵), 대승을 사모하게 했다. 유마경, 승만경, 아미타경 등이 여기에 든다. 「주사친어서」는 「유마의 방에 삼만 이천의 자리를 펴고」(387쪽) 설한 장면을 든다.

4. 반야시(般若時) — 모든 것이 공하다는 반야의 지혜로, 소승과 대승을 나누는 집착마저 씻어 냈다(淘汰). 「백로지 가의 열여섯 번 법회(白鷺池の辺・十六会)」(「주사친어서」, 387쪽)에서 대반야경을 설했다. 교리 二 「공·중도」가 다룬 반야의 공이 이것이다.

5.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 — 마지막 팔 년 동안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입멸하는 날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경을 설했다.

성도 · 30세 (동아시아 전승)입멸 · 80세
아함 12년방등 · 반야 30년법화 8년
↑ 화엄 21일열반 하루 ↑
화엄시華嚴時
설처
적멸도량
대상
대보살 — 이승은 알아듣지 못함
오미
유 乳
교리 페이지
—
아함시阿含時
설처
녹야원
대상
이승(성문 · 연각)
오미
낙 酪
교리 페이지
一 십이연기
방등시方等時
설처
여러 곳 · 유마의 방
대상
소승에 머문 이들을 꾸짖음(탄가)
오미
생소 生酥
교리 페이지
—
반야시般若時
설처
백로지 등
대상
대승 · 소승을 나누는 집착을 씻어 냄(도태)
오미
숙소 熟酥
교리 페이지
二 공·중도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
설처
영취산과 사라쌍수
대상
모든 대중 — 이승작불 · 구원실성
오미
제호 醍醐
교리 페이지
三四五六
천태의 교판 — 역사학의 연대가 아님(21절 연구 노트) · 축 길이는 「일대성교대의」 396–397쪽의 햇수 비율
도표 18 · 오시 — 다섯 때의 설법

다섯 가지 맛

천태는 이 다섯 때를 열반경의 비유로 설명한다. 소에서 우유(乳)가 나오고, 우유에서 낙(酪), 낙에서 생소(生酥), 생소에서 숙소(熟酥), 숙소에서 제호(醍醐)가 나온다. 제호가 가장 뛰어난 맛이다. 화엄은 우유, 아함은 낙, 방등은 생소, 반야는 숙소, 법화열반은 제호에 해당한다. 중생의 근기가 우유에서 제호로 차츰 익어 가듯, 석존은 사십여 년에 걸쳐 중생을 법화경의 자리까지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가르침의 순서가 곧 중생을 기르는 과정이었음을 보여 준다.

네 가지 가르침의 내용

천태는 가르침의 내용도 넷으로 나누었다. 「일대성교대의」는 그 첫머리에서 「사교란 첫째 삼장교, 둘째 통교, 셋째 별교, 넷째 원교다(四教は一には三蔵教・二には通教・三には別教・四には円教なり)」(390쪽)라고 이름을 들고 하나하나 풀어 간다. 이것을 「화법사교(化法四敎)」라 한다.

그리고 가르침을 설하는 방식을 넷으로 나눈 것이 「화의사교(化儀四敎)」다. 깨달은 그대로 단번에 설하는 돈교(頓敎), 얕은 데서 깊은 데로 차츰 설하는 점교(漸敎), 같은 자리에서 서로 모르게 다른 이익을 주는 비밀교(秘密敎), 같은 자리에서 저마다 다르게 알아듣는 부정교(不定敎)다. 화법사교와 화의사교를 합쳐 「팔교(八敎)」라 한다. 오시와 합쳐 「오시팔교」다.

화법화엄아함방등반야법화열반
화의돈점점점비돈비점 · 개회—
화의 비밀·부정비밀교 · 부정교 — 모든 시에 걸침
장●●●
통●●●
별●●●●
원●●●순원●
법화 = 순원(금 테두리) · 열반 = 추설추민(흐린 금) · 비밀 · 부정은 모든 시에 걸친다
도표 19 · 오시팔교 — 화의사교와 화법사교

사십여 년의 방편, 그리고 법화경

법화경 · 영취산

왜 석존은 사십여 년 동안 방편을 설했는가. 2부 10절에서 본 방편품의 게송이 그 답이었다. 깨달은 그대로를 바로 설하면 중생은 믿지 못한다. 그래서 먼저 삼승으로 나누어 설했다. 법화경의 개경인 무량의경은 이것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 대성인은 「일대성교대의」에서 이 문장을 들어 오시 전체의 성격을 정하셨다.

此等の四十二年の説教は皆法華経の汲引の方便なり、其の故は無量義経に云く「我先に道場菩提樹下に端坐すること六年阿耨多羅三藐三菩提を成ずることを得たり○方便力を以てす、四十余年には未だ真実を顕さず

이 사십이 년의 설교는 모두 법화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이다. 그 까닭은, 무량의경에 이르기를 「내가 먼저 도량 보리수 아래에 단정히 앉기를 여섯 해, 무상정등각을 얻었다. … 방편의 힘으로써 하였으니, 사십여 년 동안에는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였기 때문이다.

「일대성교대의」, 397쪽

「사십여 년 미현진실(四十餘年未顯眞實)」. 이 한 구절은 대성인의 어서 전체에 걸쳐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경문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법화경 방편품에서 석존은 마침내 이렇게 선언한다.

正直捨方便 但說無上道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다만 위없는 도를 설한다.

법화경 방편품, T9 no.262

世尊法久後 要當說眞實

세존은 법을 오래 설한 뒤에 반드시 진실을 설하리라.

같은 곳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석존을 「대인(大人)」이라 부르며, 그 까닭을 석존이 실어(實語)의 사람이기 때문이라 하셨다. 그리고 그 대인이 「오직 일대사인연을 위해 세상에 출현했다(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고 이름하고, 「세존은 법을 오래 설한 뒤 반드시 진실을 설하리라」, 「정직하게 방편을 버린다」고 설했다(191쪽)고 적으셨다. 석존이 세상에 나온 단 하나의 큰 일, 그것은 모든 중생에게 부처의 지견을 열고(開) 보이고(示) 깨닫게 하고(悟) 들어가게(入) 하는 것이었다. 교리 三 「제법실상」이 다룬 방편품의 핵심이다.

법화경이 밝힌 두 가지

법화경이 사십여 년의 경전들과 다른 점을 대성인은 둘로 요약하셨다. 적문의 이승작불(二乘作佛), 곧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버려졌던 성문과 연각도 부처가 된다는 것. 그리고 본문의 구원실성(久遠實成), 곧 석존은 가야성 근처에서 처음 부처가 된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옛날에 이미 부처였다는 것이다. 「개목초」는 이 둘을 「일대의 강골(綱骨)이요 일체경의 심수(心髓)」라 부른다(197쪽).

늦은 오후, 넓은 강 평원 위 바위 언덕의 평평한 꼭대기를 수백 명의 대중이 여러 겹 둥근 줄로 채우고 앉아 한 그루 나무 아래 바위 자리의 아주 작은 모습을 향하는 금박 수묵화
그림 10 · 영취산의 법화경

3부에서 본 사리불, 가섭, 목건련, 아난, 라후라, 마하파자파티, 야소다라가 법화경에서 차례로 미래의 부처가 된다는 수기를 받는다. 사리불은 화광여래, 가섭은 광명여래, 아난은 산해혜자재통왕불, 라후라는 도칠보화여래, 마하파자파티는 일체중생희견여래, 야소다라는 구족천만광상여래(「개목초」, 191쪽). 4부에서 본 제바달다도 천왕여래의 수기를 받는다. 사십여 년 동안 석존 곁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가, 여기서 비로소 부처가 될 사람으로 이름 불린다.

그리고 여래수량품에서 석존은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내가 석가족의 궁을 나와 가야성 가까운 도량에서 처음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이다」라고 밝힌다. 1부부터 4부까지 따라온 석존의 생애, 곧 카필라밧투의 태자가 스물아홉에(혹은 열아홉에) 출가하여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법화경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자취(迹)였다고 뒤집힌다. 그리고 여든의 입멸도 중생을 위해 「방편으로 나타낸 열반(方便現涅槃)」이었다고 한다.

이 법문의 자세한 뜻 — 오백진점겁, 불신론, 삼신상주, 사바즉적광, 그리고 문저의 구원원초 — 은 교리 四 「구원실성」에서 다루었다. 이 페이지에서는 한 가지만 짚는다. 생애를 따라온 우리에게 수량품이 말하는 것은, 1~4부의 석존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석존의 생명이 그 생애보다 훨씬 깊다는 것이다. 교리 四에서 본 천태의 비유대로, 수많은 물에 비친 달(여러 경전의 부처)은 거짓이 아니지만, 그 근원에는 하늘의 달 하나(구원의 부처)가 있다.

1~4부의 생애
  1. 탄생
  2. 출가
  3. 성도 — 가야성 부근
  4. 오십 년 설법
  5. 입멸
迹本발적현본然善男子그러나 선남자여
수량품
  1. 오백진점겁의 성불
  2. 늘 이 사바세계에서 설법
  3. 방편의 열반
實不滅度 常住此說法
교리 四 「구원실성」에서 자세히 — 도표 11 「세 겹의 구원」
도표 20 · 역사의 석존과 법화경의 석존

법화경의 팔 년과 사라쌍수의 열반경

석존 만년 · 영취산과 쿠시나가라

대성인은 법화경이 설해진 「팔 년」을 불법 전체에서 특별한 때로 보셨다. 「찬시초」는 이렇게 쓴다. 석존이 나온 것은 사람의 수명이 백 세일 때였다. 재세 오십 년, 멸후 정법·상법 이천 년과 말법 만 년. 「그 가운데 법화경이 널리 퍼지는 때가 두 번 있다. 이른바 재세의 팔 년과, 멸후에는 말법의 처음 오백 년이다(其の中間に法華経の流布の時・二度あるべし所謂在世の八年・滅後には末法の始の五百年なり)」(260쪽). 1부 3절에서 본 아시타 선인의 한탄은 바로 이 두 때 모두에 태어나지 못함을 한탄한 것이었다.

재세 50년 끝 8년 · 법화경정법 천 년상법 천 년말법 처음 오백 년
「찬시초」 259–260쪽 · 아시타의 한탄(1부 3절)과 천태 · 묘락 · 전교의 한탄 · 칸 길이는 햇수에 비례하지 않음
도표 21 · 법화경이 퍼지는 두 때

열반경 — 이삭을 줍는 가르침

법화경을 설한 뒤, 석존은 입멸하는 날 사라쌍수 아래에서 다시 열반경을 설했다. 4부 19절의 초기 경전 『대반열반경』(DN 16)과는 다른, 대승의 『대반열반경』(T12 no.374)이다. 이 경은 부처는 늘 머물고(如來常住)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는 것을 설한다.

그렇다면 열반경이 법화경보다 뒤에 설했으니 더 깊은가. 중국 천태 이전의 여러 스승들은 그렇게 보았다. 대성인은 열반경 자신의 경문으로 이것을 가리셨다. 열반경은 「이 경이 세상에 나온 것은 … 법화경 가운데서 팔천 성문이 수기를 받아 큰 열매를 이룬 뒤,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여(秋收冬藏) 다시 할 일이 없는 것과 같다」고 스스로 말한다. 「보은초」는 이렇게 풀었다. 「법화경은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는 큰 열매의 자리, 열반경은 가을 끝 겨울 처음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捃拾) 자리로 정하셨다(法華経をば秋収冬蔵の大菓実の位・涅槃経をば秋の末・冬の始捃拾の位と定め給いぬ)」(299–300쪽). 법화경에서 거두지 못한 이들을 마지막으로 거둔 것이 열반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태는 열반경을 「추설추민(追說追泯)」, 곧 법화경을 뒤따라 거듭 설한 경이라 했다.

마지막 유언 —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대성인이 열반경에서 가장 무겁게 받아들이신 것은 한 구절이었다.

但し我等が慈父・雙林最後の御遺言に云く「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等云云

다만 우리의 자부(慈父)께서 사라쌍수 아래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에 이르기를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하셨다.

「개목초」, 219쪽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보은초」에서 대성인은, 여러 종파가 저마다 제일이라 다투는 것을 보고 어느 것을 따를지 의심하다가 여덟 종, 열 종 어디에도 따르지 않고 경문을 스승으로 삼겠다는 서원을 세웠고, 그때 이 구절을 기준으로 삼으셨다고 쓰셨다. 여러 종파가 저마다 제일이라 다투지만, 「법에 의지한다」는 것은 경전에 의지하는 것이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처를 제외한 보살과 인사(人師)의 말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고(294쪽). 인물탐구 「니치렌 대성인」 4절에서 본 대성인의 유학의 기준이 바로 이 석존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초기 경전의 석존이 「법과 율이 너희의 스승」이라 한 것(DN 16)과, 대승 열반경의 석존이 「법에 의지하라」고 한 것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떠나는 스승은 자신이 아니라 법을 남겼다.

「관심본존초」는 석존 일대의 경전을 하나로 묶는다. 「법화경 한 부 여덟 권 스물여덟 품, 나아가 앞의 네 맛(화엄·아함·방등·반야), 물러나서는 열반경 등 일대의 여러 경을 모두 묶으면 다만 한 경이다(法華経一部八巻二十八品・進んでは前四味・退いては涅槃経等の一代の諸経惣じて之を括るに但一経なり)」(248쪽). 화엄에서 반야까지는 서분, 무량의경·법화경·보현경은 정종분, 열반경은 유통분이다. 사십여 년의 방편도, 팔 년의 법화경도, 마지막 날의 열반경도 하나의 경의 서론과 본론과 결론이었다는 것이다. 창가학회는 이것을 석존이 오십 년을 걸쳐 오직 한 가지, 모든 사람을 부처로 만드는 법을 설하려 했다는 뜻으로 읽는다. 그리고 「관심본존초」는 같은 대목에서 이 일대의 경을 다시 「본문」의 눈으로 묶어, 그 정종이 수량품 한 품과 앞뒤 반 품이며, 그것이 말법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249쪽). 석존 일대의 설법이 어떻게 말법으로 이어지는가. 그것이 6부의 물음이다.

6부 대성인이 본 석존

주 · 사 · 친 — 석존의 세 가지 덕

「개목초」 · 「주사친어서」 · 「선무외삼장초」

인물탐구 「니치렌 대성인」 17절에서 보았듯, 대성인은 사도에서 쓰신 「개목초」를 이렇게 시작하셨다. 「무릇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이른바 주·사·친이다(夫れ一切衆生の尊敬すべき者三あり所謂主師親これなり)」(186쪽). 사람들을 지키는 주군(主)의 덕, 이끄는 스승(師)의 덕, 자애로 품는 어버이(親)의 덕이다. 「개목초」는 유교와 인도 사상이 받드는 주·사·친을 살핀 뒤 불교로 들어가, 이 세 덕을 모두 갖춘 이가 석존임을 밝히고, 끝에서 말법의 주·사·친을 말한다.

주·사·친이라는 말은 대성인이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쓰신 말이다. 입종 두 해 뒤인 1255년의 「주사친어서」는 첫 문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釈迦仏は我等が為には主なり師なり親なり一人してすくひ護ると説き給へり、阿弥陀仏は我等が為には主ならず親ならず師ならず

석가불은 우리에게 주군이요 스승이요 어버이다. 혼자서 구하고 지킨다고 설하셨다. 아미타불은 우리에게 주군도 아니고 어버이도 아니고 스승도 아니다.

「주사친어서」, 385쪽

「혼자서 구하고 지킨다」는 법화경 비유품의 한 게송에서 온다. 대성인은 「하산어소식」에서 이 게송을 「법화경 제2권에 주와 어버이와 스승의 세 가지 큰일을 설하셨다. 한 경의 간심이다(法華経の第二の巻に主と親と師との三大事を説き給へり一経の肝心ぞかし)」(360쪽)라고 하시며 인용하셨다.

今此三界 皆是我有 其中衆生 悉是吾子 而今此處 多諸患難 唯我一人 能爲救護

지금 이 삼계는 모두 나의 것이요, 그 가운데 중생은 모두 나의 자식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많은 환난이 있으니,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능히 구하고 지킬 수 있다.

법화경 비유품, T9 no.262

「삼계는 모두 나의 것」은 주의 덕, 「중생은 모두 나의 자식」은 친의 덕, 「오직 나 한 사람만이 구하고 지킨다」는 사의 덕이다.

「선무외삼장초」는 같은 삼덕을 조금 더 풀어서 말한다. 석가여래는 세 가지 까닭으로 다른 부처들을 제치고 사바세계 일체중생과 인연 있는 부처가 되었다. 첫째, 이 사바세계 일체중생의 세존, 곧 주군이다. 아미타불은 이 나라의 대왕이 아니다. 둘째, 사바세계 일체중생의 부모다. 셋째, 사바세계 일체중생의 본사(本師)다(884쪽). 그리고 그 본사의 생애를 한 줄로 적는다. 「이 부처는 현겁 제9 · 인수 백 세 때 중천축 정반대왕의 아들로, 열아홉에 출가하고 서른에 성도하여 오십여 년 동안 일대성교를 설하고 여든에 입멸하시어 사리를 머물러 두어 일체중생을 정·상·말에 걸쳐 구하신다」(884쪽).

이 페이지의 1~4부를 이 세 덕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

『어의구전』은 수량품의 삼덕을 이렇게 가려 읽는다. 적문의 부처의 삼덕은 비유품의 「지금 이 삼계」의 글이고, 본문의 부처의 삼덕은 수량품에 있다. 「주의 덕은 『나의 이 땅은 안온하다(我此土安穩)』의 글이요, 사의 덕은 『늘 법을 설하여 교화한다(常說法敎化)』의 글이요, 친의 덕은 『나 또한 세상의 아버지다(我亦爲世父)』의 글이다(主の徳は我此土安穏の文なり師の徳は常説法教化の文なり親の徳は此の我亦為世父の文是なり)」(『어의구전』 수량품 제16, 757쪽).

主주지키는 주군① 경문今此三界 皆是我有비유품我此土安穩수량품③ 생애 — 2부 9절성도의 밤 — 사바세계를 빼앗음
師사이끄는 스승① 경문唯我一人 能爲救護비유품常說法敎化수량품③ 생애 — 3부다섯 비구에서 천이백오십 대중까지
親친품는 어버이① 경문其中衆生 悉是吾子비유품我亦爲世父수량품③ 생애 — 4부 19절아버지를 죽인 아사세 왕을 걱정함

② 어서 — 「주사친어서」 385쪽 · 「선무외삼장초」 884쪽 · 『어의구전』 757쪽

「개목초」 186쪽 — 夫れ一切衆生の尊敬すべき者三あり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셋

도표 22 · 석존의 삼덕 — 주 · 사 · 친

재세의 탈익, 말법의 하종

「관심본존초」 · 『어의구전』

석존이 주·사·친의 삼덕을 갖춘 부처라면, 말법의 사람들도 석존을 믿고 석존의 법화경을 읽으면 되지 않는가. 대성인의 답은 한 겹 더 깊다. 교리 四 「구원실성」 8절에서 본 하종(下種)·숙익(熟益)·탈익(脫益)의 법문이다.

부처가 중생을 성불시키는 과정은 농사와 같다. 먼저 씨를 뿌리고(下種), 기르고(熟益), 거둔다(脫益). 법화경 수량품에 따르면 석존 재세의 제자들은 구원의 옛날에 이미 씨를 받았고, 대통지승불 이래 오랜 세월 길러졌으며, 석존 일대의 가르침, 특히 법화경을 듣고 거두어졌다. 1~4부에서 본 사리불도, 가섭도, 아난도, 마하파자파티도 그렇게 거두어진 사람들이다. 석존은 이미 익은 열매를 거두는 부처, 곧 「탈익의 부처」였다.

그러나 말법의 중생은 아직 씨를 받지 않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확이 아니라 씨 자체다. 「관심본존초」는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本門を以て之を論ずれば一向に末法の初を以て正機と為す所謂一往之を見る時は久種を以て下種と為し大通前四味迹門を熟と為して本門に至つて等妙に登らしむ、再往之を見れば迹門には似ず本門は序正流通倶に末法の始を以て詮と為す、在世の本門と末法の始は一同に純円なり但し彼は脱此れは種なり彼は一品二半此れは但題目の五字なり

본문으로 이를 논하면 오로지 말법의 처음을 바른 근기로 삼는다. 한 번 보면, 구원의 씨를 하종으로 삼고, 대통 · 앞의 네 맛 · 적문을 숙으로 삼아, 본문에 이르러 등각·묘각에 오르게 한다. 거듭 보면, 적문과 달리 본문은 서분·정종분·유통분이 모두 말법의 처음을 목적으로 삼는다.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은 똑같이 순수한 원교다. 다만 저것은 탈(脫)이고 이것은 종(種)이다. 저것은 한 품과 두 반 품이고, 이것은 다만 제목의 다섯 자다.

「관심본존초」, 249쪽

『어의구전』은 수량품의 「내가 실로 성불한 이래(我實成佛已來)」를 풀면서 같은 뜻을 이렇게 맺는다.

然りと雖も而も当品は末法の要法に非ざるか其の故は此の品は在世の脱益なり題目の五字計り当今の下種なり、然れば在世は脱益滅後は下種なり仍て下種を以て末法の詮と為す

그러나 이 품은 말법의 요법이 아닐 것이다. 그 까닭은 이 품은 재세의 탈익이고, 제목의 다섯 자만이 지금의 하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세는 탈익이고 멸후는 하종이다. 이에 하종을 말법의 목적으로 삼는다.

『어의구전』 수량품 제3, 753쪽
재세
  1. 구원의 하종下種
  2. 대통 이래 숙익熟益
  3. 석존 일대화엄 ~ 법화
  4. 수량품의 탈익脫益
彼は脱此れは種なり · 彼は一品二半此れは但題目の五字なり「관심본존초」 249쪽
말법
  1. 제목 다섯 자의 하종지금
『어의구전』 753쪽 — 재세는 탈익, 멸후는 하종
도표 23 · 재세와 말법 — 탈익과 하종

석존도 법을 스승으로 삼았다

탈익의 부처인 석존은 무엇을 깨달아 부처가 되었는가. 2부의 끝에서 본 「관심본존초」의 말이 그 답이다. 「석존의 인행과 과덕의 두 법은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에 갖추어져 있다」(246쪽). 그리고 대성인은 이즈의 유배지에서 「사은초」에 이렇게 쓰셨다.

法の恩を申さば法は諸仏の師なり諸仏の貴き事は法に依る、されば仏恩を報ぜんと思はん人は法の恩を報ずべし

법의 은혜를 말하자면, 법은 모든 부처의 스승이다. 모든 부처가 존귀한 것은 법에 의해서다. 그러므로 부처의 은혜를 갚으려는 사람은 법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

「사은초」, 938쪽

석존을 부처로 만든 것은 법이다. 교리 四 8절은 이것을 문저의 법문으로 보았다. 오백진점겁에 성불한 석존에게도 「처음」이 있으며, 석존이 그 처음에 수행하여 깨달은 근원의 법이 경문의 밑바닥(文底)에 잠긴 남묘호렌게쿄라는 것이다. 창가학회는 이 이해에 서서, 석존을 존경하되 석존이 스승으로 삼은 그 법을 말법의 사람들이 직접 받아 지니는 것을 신앙의 근본으로 삼는다. 4부에서 본 석존의 마지막 유언, 「법과 율이 너희의 스승」,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어의구전』은 수량품의 「여래」를 이렇게 읽는다. 「여래란 석존이며, 총해서는 시방삼세의 제불이고, 별해서는 본지무작의 삼신이다. 지금 니치렌 등의 뜻으로는, 총해서는 여래란 일체중생이며, 별해서는 니치렌의 제자 단나다(如来とは釈尊・惣じては十方三世の諸仏なり別しては本地無作の三身なり、今日蓮等の類いの意は惣じては如来とは一切衆生なり別しては日蓮の弟子檀那なり)」(『어의구전』 수량품 제1, 752쪽). 석존 한 사람의 이름이던 「여래」가 법을 받아 지니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열린다.

해석 대조 — 창가학회와 일련정종은 모두 석존을 재세 탈익의 부처로, 말법의 하종의 부처를 니치렌 대성인으로 받든다(인물탐구 「니치렌 대성인」 26절). 두 교단이 이 법문을 다르게 풀이하는 대목은 본존과 관련된 것이므로 이 페이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멸후의 부촉 — 정법 · 상법 · 말법

석존 멸후 이천여 년

석존은 떠나면서 법을 누구에게 맡겼는가. 초기 경전의 답은 「법과 율이 너희의 스승」(DN 16)이었고, 역사 속에서 그 법은 4부 20절의 제1결집으로 모아져 가섭과 아난에게서 그 제자들로 이어졌다. 법화경은 또 하나의 답을 준다. 여래신력품에서 석존은 대지에서 솟아난 지용보살의 우두머리 상행(上行) 등 네 보살에게 이 경의 요체를 맡긴다. 이것을 「결요부촉(結要付囑)」이라 한다.

대성인은 「관심본존초」에서 이 부촉을 이렇게 풀었다. 신력품의 열 가지 신통은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를 상행 · 안립행 · 정행 · 무변행 등 네 대보살에게 준 것이다. 앞의 다섯 신통은 재세를 위한 것이고 뒤의 다섯 신통은 멸후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거듭 논하면 오로지 멸후를 위한 것이다(此の十神力は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上行・安立行・浄行・無辺行等の四大菩薩に授与し給うなり前の五神力は在世の為後の五神力は滅後の為なり、爾りと雖も再往之を論ずれば一向に滅後の為なり)」(252쪽). 그리고 이 보살들을 이렇게 불렀다.

地涌千界は教主釈尊の初発心の弟子なり寂滅道場に来らず雙林最後にも訪わず不孝の失之れ有り迹門の十四品にも来らず本門の六品には座を立つ但八品の間に来還せり、是くの如き高貴の大菩薩・三仏に約束して之を受持す末法の初に出で給わざる可きか

지용천계의 보살은 교주 석존의 처음 발심한 때의 제자다. 적멸도량에도 오지 않고 사라쌍수의 마지막에도 찾아오지 않았으니 불효의 허물이 있다. 적문 열네 품에도 오지 않았고 본문의 여섯 품에서는 자리를 떴으며, 다만 여덟 품 동안에만 와 있었다. 이러한 고귀한 대보살이 세 부처에게 약속하여 이것을 받아 지녔으니, 말법의 처음에 나오시지 않겠는가.

「관심본존초」, 253쪽

성도의 자리(적멸도량)에도, 입멸의 자리(쌍림)에도 없었던 제자. 1~4부의 석존의 생애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던 제자. 대성인은 바로 그 제자들이 석존 멸후, 말법의 처음을 위해 맡겨진 이들이라고 보셨다.

정법 · 상법 · 말법

석존 멸후의 시간을 대성인은 셋으로 나누셨다. 「남조병위칠랑전어서」는 이렇게 쓴다.

仏入滅の次の日より千年をば正法と申して持戒の人多く得道の人これあり。正法千年の後は像法千年なり・破戒の者は多く得道すくなし、像法千年の後は末法万年なり持戒もなし破戒もなし無戒の者のみ国に充満せん

부처가 입멸한 다음 날부터 천 년을 정법이라 하니, 계를 지키는 이가 많고 도를 얻는 이가 있다. 정법 천 년 뒤는 상법 천 년이니, 계를 깨는 이가 많고 도를 얻는 이는 적다. 상법 천 년 뒤는 말법 만 년이니, 계를 지키는 이도 계를 깨는 이도 없고 계가 없는 이만 나라에 가득하리라.

「남조병위칠랑전어서」, 1495쪽

1부 3절의 연대 대조 상자에서 본 대로, 대성인은 석존 입멸을 기원전 949년으로 보는 동아시아의 전통 연대에 따라 1052년을 말법의 시작으로 보셨다. 정법 천 년에는 가섭 · 아난 · 용수 · 천친 등이 인도에서 법을 넓혔고, 상법 천 년에는 중국의 천태와 일본의 전교가 법화경을 넓혔다. 그리고 말법의 처음, 대집경이 「투쟁견고(鬪諍堅固) · 백법은몰(白法隱沒)」이라 한 「다섯 번째 오백 년(第五の五百歲)」에 법화경의 요체가 퍼진다고 대성인은 경문으로 논증하셨다. 「관심본존초」의 온전한 이름이 「여래멸후오오백세시관심본존초(如來滅後五五百歲始觀心本尊抄)」, 곧 「여래 멸후 다섯 번째 오백 년에 처음으로 밝히는 관심의 본존」인 것도 그 때문이다.

  1. 기원전 949입멸 — 동아시아 전통 연대
  2. 정법 천 년인도 — 가섭 · 아난 · 용수 · 천친서 → 동
  3. 52 ~상법 천 년 — 중국 천태(538–597) · 일본 전교(767–822)서 → 동
  4. 1052 ~말법 — 제5의 오백 년동 → 서 · 「현불미래기」 508쪽
  5. 1222–1282니치렌 대성인 — 말법 170년 지점
입멸은 동아시아 전통 연대(기원전 949년) — 도표 4 ①
도표 24 · 석존 멸후의 삼시 — 정법 · 상법 · 말법

서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석존의 불법은 인도에서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으로 동쪽으로 흘렀다. 대성인은 「현불미래기」에서 그 흐름이 말법에 뒤집힌다고 하셨다.

月は西より出でて東を照し日は東より出でて西を照す仏法も又以て是くの如し正像には西より東に向い末法には東より西に往く

달은 서쪽에서 나와 동쪽을 비추고,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을 비춘다. 불법도 이와 같다. 정법·상법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말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

「현불미래기」, 508쪽

1부에서 본 석존의 이름 「일종(日種)」, 해의 친족이 여기서 다른 뜻으로 돌아온다. 석존의 불법은 서쪽에서 떠오른 달처럼 동쪽을 비추었다. 말법의 불법은 동쪽에서 떠오른 해처럼 서쪽을 비춘다. 창가학회는 이 「불법서환(佛法西還)」을 20세기 이후 세계로 퍼져 나간 민중 운동의 뜻으로 읽는다.

넓은 가로 풍경 — 왼쪽 서쪽 산 너머로 금빛 초승달이 지고, 오른쪽 동쪽 섬들이 있는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며, 그 사이로 평원과 강과 산과 해안이 이어지는 금박 수묵화
그림 11 · 서쪽의 달, 동쪽의 해

「관심본존초」는 이렇게 말한다. 「묘각의 석존은 우리의 혈육이다. 인과의 공덕은 골수가 아니겠는가(妙覚の釈尊は我等が血肉なり因果の功徳は骨髄に非ずや)」(246쪽). 석존은 이천오백 년 전 갠지스 강가를 걸은 먼 성자가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늙음과 병과 죽음 앞에 교만을 버리고, 여섯 해를 싸우고, 마라를 이름 불러 물리치고, 사십여 년을 걸어 다니며 가르치고, 사촌의 원한과 고향의 멸망과 병든 몸을 견디고, 마지막 날까지 적을 자식처럼 걱정한 그 부처의 인행과 과덕이 모두 묘법의 다섯 자에 갖추어져, 그것을 받아 지니는 한 사람의 피와 뼈가 된다. 창가학회가 석존을 배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석존의 생애는 우리가 흉내 내야 할 먼 모범이기 이전에, 인간이 인간의 몸 그대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현증」이고(1부), 그 부처의 공덕이 이미 우리 안에 물려져 있다는 증거다.

세 층의 석존

이 페이지는 석존을 세 층으로 읽었다.

누구인가
역사의 석존석가족 귀족 가문의 맏아들, 고타마
법화경의 석존사바세계의 교주, 구원의 부처
대성인이 본 석존주·사·친의 삼덕을 갖춘 재세 탈익의 교주
언제 부처가 되었는가
역사의 석존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35세 · 동아시아 전승 30세)
법화경의 석존헤아릴 수 없는 옛날(오백진점겁)
대성인이 본 석존그 인행과 과덕이 모두 묘법 다섯 자에 갖추어짐
무엇을 설했는가
역사의 석존연기 · 중도 · 괴로움의 소멸
법화경의 석존사십여 년의 방편과 법화경의 진실
대성인이 본 석존법화경 본문, 그 문저에 잠긴 남묘호렌게쿄
입멸이란 무엇인가
역사의 석존쿠시나가라에서 여든에 완전한 열반
법화경의 석존중생을 위해 방편으로 나타낸 열반
대성인이 본 석존남은 수명을 우리에게 남겨 주심, 법을 부촉하심
우리에게 무엇인가
역사의 석존스스로와 법을 의지처로 삼으라고 가르친 스승
법화경의 석존모든 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수기를 준 부처
대성인이 본 석존인간이 부처가 된다는 현증, 그 공덕을 물려받는 근원

| | 역사의 석존 | 법화경의 석존 | 대성인이 본 석존 | |---|---|---|---| | 누구인가 | 석가족 귀족 가문의 맏아들, 고타마 | 사바세계의 교주, 구원의 부처 | 주·사·친의 삼덕을 갖춘 재세 탈익의 교주 | | 언제 부처가 되었는가 |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35세 · 동아시아 전승 30세) | 헤아릴 수 없는 옛날(오백진점겁) | 그 인행과 과덕이 모두 묘법 다섯 자에 갖추어짐 | | 무엇을 설했는가 | 연기 · 중도 · 괴로움의 소멸 | 사십여 년의 방편과 법화경의 진실 | 법화경 본문, 그 문저에 잠긴 남묘호렌게쿄 | | 입멸이란 무엇인가 | 쿠시나가라에서 여든에 완전한 열반 | 중생을 위해 방편으로 나타낸 열반 | 남은 수명을 우리에게 남겨 주심, 법을 부촉하심 | | 우리에게 무엇인가 | 스스로와 법을 의지처로 삼으라고 가르친 스승 |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수기를 준 부처 | 인간이 부처가 된다는 현증, 그 공덕을 물려받는 근원 |

세 층은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 역사의 석존을 알수록 법화경의 석존이 왜 그토록 대담한 선언이었는지가 보이고, 법화경의 석존을 알수록 대성인이 말법을 위해 무엇을 밝히셨는지가 보인다. 초기 경전의 석존이 「스스로를 등불로, 법을 등불로 삼으라」고 한 말과, 대성인이 「법은 모든 부처의 스승」이라 한 말은 같은 곳을 가리킨다.

생애의 연대는 아래 연표에 모았다.

  1. 기원전 5세기경4월 8일(동아시아)탄생룸비니 · 마야 부인 · 이레 뒤 어머니 별세(MN 123)
  2. ——아시타 선인의 예언Sn 3.11 · 「찬시초」 260
  3. ——잠부나무 그늘의 첫 선정MN 36 · 전승
  4. ——결혼 · 라후라 탄생야소다라
  5. ——출가29세(팔리) / 19세(동아시아) · MN 26
  6. ——알라라 칼라마 · 웃다카 라마풋타에게 배움MN 26
  7. ——여섯 해의 고행우루벨라 · MN 36
  8. —12월 8일(동아시아)성도35세(팔리) / 30세(동아시아) · 보드가야
  9. ——범천권청MN 26 · 방편품
  10. ——초전법륜녹야원 · 다섯 비구 · SN 56.11
  11. ——야사와 벗들 · 전도 선언Mv I.11
  12. ——가섭 삼형제 귀의 · 연소경SN 35.28
  13. ——빔비사라 왕 귀의 · 죽림정사라자가하
  14. ——사리불 · 목건련 귀의연기법송
  15. ——기원정사수닷타 · 사밧티
  16. ——귀향 · 라후라 출가 · 석가족 청년들과 우팔리전승
  17. ——마하파자파티 출가 · 비구니 교단베살리 · AN 8.51
  18. ——제바달다의 반역Cv VII
  19. ——빔비사라 왕 죽음 · 아자타삿투 즉위—
  20. ——석가족 멸망비두다바 · 주석 전승
  21. ——마지막 여행DN 16 · 라자가하 → 쿠시나가라
  22. —2월 15일(동아시아)입멸80세 ·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23. ——사리 여덟 분배DN 16
  24. ——제1결집라자가하 칠엽굴 · 마하가섭 · 우팔리 · 아난
  25. BCE 3세기—아소카 왕 룸비니 석주즉위 20년
  26. (전통) BCE 1029–949—동아시아 전통 연대주서이기 · 대성인이 따르심
  27. (전통) 1052—말법의 시작전통 연대 + 2000년
참고 문헌
경전 · 율장

팔리: Dīgha Nikāya 2 · 14 · 16 · 27 / Majjhima Nikāya 12 · 26 · 36 · 123 / Saṃyutta Nikāya 4.18 · 22.59 · 35.28 · 56.11 / Aṅguttara Nikāya 3.38 · 8.51 / Sutta Nipāta 1.7 · 3.1 · 3.2 · 3.11 / Udāna 1.1 · 4.8 / Vinaya Piṭaka, Mahāvagga · Cullavagga. 한역: 『장아함경』 T1 no.1 · 『중아함경』 T1 no.26 · 『잡아함경』 T2 no.99 · 『수행본기경』 T3 no.184 · 『과거현재인과경』 T3 no.189 · 『불본행집경』 T3 no.190 · 『불소행찬』 T4 no.192 · 『묘법연화경』 T9 no.262 · 『대반열반경』(북본) T12 no.374 · 『대지도론』 T25 no.1509

어서

창가학회판 『日蓮大聖人御書全集』(일본어판) 쪽수. 본문에서 인용한 어서: 「개목초」 · 「관심본존초」 · 「찬시초」 · 「보은초」 · 「법화취요초」 · 「주사친어서」 · 「일대성교대의」 · 「선무외삼장초」 · 「사은초」 · 「하산어소식」 · 「현불미래기」 · 「법화행자봉난사」 · 「성인어난사」 · 「여인성불초」 · 「일묘성인어서」 · 「병위지전어반사」 · 「상야전어반사(수달장자어서)」 · 「묘일니어전어소식」 · 「광일방어서」 · 「남조병위칠랑전어서」 · 『어의구전』

교학

창가교학연구실 어서 강의 · 창가학회 교학부 『교학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