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초의 여덟 편 가운데 마지막인 이 편은 「지은보은과 삼대비법」의 갈래를 맺는 자리다. 앞 편에서 대성인은 스스로의 지은보은을 밝히시고, 남묘호렌게쿄가 법화경 일부의 간심임을 약 · 광 두 겹으로 보이셨다. 그러자 곧바로 물음이 돌아온다 — 그토록 훌륭한 법이라면 어찌하여 가섭 · 아난도, 마명 · 용수도, 천태 · 전교도 이를 권하지 않았는가. 대성인은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통이 시대가 내려갈수록 더 깊은 법으로 나아갔음을 보이신 뒤, 그 누구도 넓히지 않은 세 가지 법 —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 · 본문의 제목 — 을 처음으로 이름 붙여 밝히신다. 그리고 그 공덕 전부를 옛 스승 도젠보의 영전에 돌리며 「꽃은 뿌리로 돌아가고 참맛은 흙에 머문다」고 붓을 놓으신다. 보은의 도리로 시작한 한 권의 글이 보은의 실천으로 닫히는 것이다.
보은초는 첫머리에서 「늙은 여우는 무덤을 뒤로하지 않고 흰 거북은 모보의 은혜를 갚는다」고 하며 보은의 도리를 세웠고, 은혜를 참으로 갚으려면 불법을 배워 익혀 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요술(要術)을 밝혔다. 그 뒤 서른 장이 넘도록 이어진 것은 일대 성교의 승렬, 정법 · 상법 시대의 홍통과 법난, 진언으로 기운 예산에 대한 파절, 그리고 대성인 자신의 국가 간효였다. 이 모든 긴 논증이 이 편에 이르러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한 보은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모인다. 그 대답이 삼대비법이며, 그 삼대비법을 넓히는 공덕을 스승에게 돌리는 것이 보은초의 맺음이다.
이 편에서 대성인이 「삼대비법」의 세 이름을 나란히 드러내신 것은 오대부 어서 가운데 처음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송문에서 「이 글은 상당히 대사 중의 대사를 적었다」고 거듭 당부하시고, 도리를 모르는 이들에게 함부로 들려주지 말라고 하셨다. 같은 송문은 이 글을 다카가모리 산마루에서 두세 번, 도젠보의 묘 앞에서 한 번 읽으라고 지시한다. 논문으로서의 보은초와 추선의 글로서의 보은초가 송문에서 하나로 겹친다.
아래 다섯 부분은 다음과 같이 읽어 나간다. 제34장은 정법 시대 대승 논사들이 받은 의심과 박해를, 제35장은 상법 시대 천태 · 전교의 홍통과 그들이 받은 비난, 그리고 인도 · 중국 · 일본 계단의 역사를 다룬다. 제36장은 삼대비법과 그것을 넓히는 대성인의 주사친 삼덕을, 제37장은 회향의 글과 날짜 · 수신을, 송문은 이 글을 어떻게 받아 읽을 것인가를 다룬다.
이 편의 장
본문
問うて云く此の法実にいみじくばなど迦葉・阿難・馬鳴・竜樹・無著・天親・南岳・天台・妙楽・伝教等は善導が南無阿弥陀仏とすすめて漢土に弘通せしがごとく、 慧心・永観・法然が日本国を皆阿弥陀仏になしたるがごとく・すすめ給はざりけるやらん、答えて云く此の難は古の難なり今はじめたるにはあらず、馬鳴・竜樹菩薩等は仏の滅後・六百年・七百年等の大論師なり、
묻기를, 이 법이 참으로 훌륭하다면 어찌하여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 · 남악 · 천태 · 묘락 · 전교 등은, 선도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권하여 한토에 홍통한 것처럼, 또 혜심 · 영관 · 법연이 일본국을 모두 아미타불의 나라로 만든 것처럼 이를 권하지 않으셨는가. 답하기를, 이 힐난은 옛날의 힐난이니 지금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니라. 마명 · 용수보살 등은 부처님 멸후 육백 년 · 칠백 년 무렵의 대논사이니라.
此の人人世にいでて大乗経を弘通せしかば諸諸の小乗の者・疑つて云く迦葉・阿難等は仏の滅後・二十年・四十年住寿し給いて正法をひろめ給いしは如来一代の肝心をこそ弘通し給いしか、 而るに此の人人は但苦・空・無常・無我の法門をこそ詮とし給いしに今.馬鳴・竜樹等かしこしといふとも迦葉.阿難等にはすぐべからず是一、迦葉は仏にあひまいらせて解をえたる人なり、 此の人人は仏にあひたてまつらず是二、外道は常.楽・我.浄と立てしを仏・世に出でさせ給いて苦.空・無常.無我と説かせ給いき、此のものどもは常楽我浄といへり、 されば仏も御入滅なり又迦葉等もかくれさせ給いぬれば 第六天の魔王が此のものどもが身に入りかはりて仏法をやぶり外道の法となさんとするなり、されば仏法のあだをば頭をわれ頚をきれ命をたて食を止めよ国を追へと諸の小乗の人人申せしかども馬鳴・竜樹等は但・一二人なり昼夜に悪口の声をきき朝暮に杖木をかうふりしなり、 而れども此の二人は仏の御使ぞかし、正く摩耶経には六百年に馬鳴出で七百年に竜樹出でんと説かれて候、其の上楞伽経等にも記せられたり又付法蔵経には申すにをよばず、 されども諸の小乗のものどもは用いず但めくらぜめにせめしなり、如来現在・猶多怨嫉・況滅度後の経文は此の時にあたりて少しつみしられけり、提婆菩薩の外道にころされ師子尊者の頚をきられし此の事をもつて・おもひやらせ給へ。
이 사람들이 세상에 나와 대승경을 홍통하자 여러 소승의 무리가 의심하여 말하기를 「가섭 · 아난 등은 부처님 멸후 이십 년 · 사십 년을 세상에 머무시며 정법을 넓히셨으니 여래 일대의 간심을 홍통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다만 고(苦) · 공(空) · 무상(無常) · 무아(無我)의 법문을 요지로 삼으셨는데, 지금 마명 · 용수 등이 아무리 현명하다 하더라도 가섭 · 아난 등보다 뛰어날 수는 없다. 이것이 첫째이다. 가섭은 부처님을 만나 뵙고 이해를 얻은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부처님을 만나 뵙지 못하였다. 이것이 둘째이다. 외도는 상(常) · 낙(樂) · 아(我) · 정(淨)이라고 세웠는데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고 · 공 · 무상 · 무아라고 설하셨다. 그런데 이자들은 상락아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부처님도 입멸하셨고 가섭 등도 세상을 떠나셨으므로, 제육천의 마왕이 이자들의 몸에 들어가 바뀌어 불법을 깨뜨리고 외도의 법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의 원수는 머리를 깨뜨려라, 목을 베어라, 목숨을 끊어라, 먹을 것을 끊어라, 나라에서 쫓아내라」 하고 여러 소승의 사람들이 말하였으나, 마명 · 용수 등은 다만 한두 사람이었으니 밤낮으로 악구의 소리를 듣고 아침저녁으로 지팡이와 몽둥이를 맞았느니라.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은 부처님의 사자이니라. 바로 『마야경』에는 육백 년에 마명이 나오고 칠백 년에 용수가 나오리라고 설해져 있느니라. 그 위에 『능가경』 등에도 기록되어 있고, 『부법장경』은 말할 것도 없느니라. 그러나 여러 소승의 무리는 이를 쓰지 않고 다만 덮어놓고 공격하였느니라.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라는 경문은 이때에 이르러 조금 실감되었느니라. 제바보살이 외도에게 살해되고 사자존자가 목을 베인 일도 이로써 헤아려 보시라.
어구 풀이
- 此の法実にいみじくば이 법이 참으로 훌륭하다면
- 「이 법」은 앞의 제32 · 33장에서 법화경 일부의 간심으로 밝힌 남묘호렌게쿄를 가리킨다. 「いみじ」는 매우 뛰어나다는 뜻이다. 질문자는 그 훌륭함을 인정하는 척하면서, 그렇다면 선성들이 넓히지 않은 까닭을 대라고 따진다.
- 迦葉가섭
- 마하가섭. 「마하」는 「크다」는 뜻이다. 석존의 십대제자 가운데 두타 제일로 불렸으며, 아난과 함께 소승 석존의 협시로 여겨진다. 부처님 멸후 이십 년 동안 소승교를 홍통하였다고 전한다.
- 阿難아난
- 자세히는 아난타. 십대제자의 한 사람으로 늘 곁에서 시봉하여 다문 제일로 불렸고 석존이 설한 경에 통달하였다. 제바달다의 아우이며 석존의 사촌 동생이다. 부처님 멸후 가섭의 뒤를 이어 여러 나라를 다니며 중생을 이익되게 하였다.
- 慧心혜심
- 혜심(겐신) 승도 원신(源信, 942~1017). 비예산 제18대 좌주 자혜대사 양원의 제자. 야마토국 가쓰라기군에서 태어나 아홉 살에 비예산에 올랐고, 열세 살에 득도하였다. 사십대 초반에 『왕생요집』을 지어 염불의 행에 기울었기 때문에 정토종 문도는 그를 일본 정토교의 선구로 받든다. 그러나 뒤에 뉘우쳐 법화 신앙으로 돌아와 『일승요결』을 지었다고 전한다. 일흔여섯에 입적하였다.
- 永観영관
- 1032~1111. 헤이안 중기의 승려. 나라 동대사에서 삼론 · 법상 · 화엄을 닦았으나 교토 선림사(禪林寺)에서 정토교를 포교하였다. 동대사 별당을 지낸 뒤에도 염불을 넓혔다. 저서에 『왕생습인(往生拾因)』이 있다.
- 馬鳴마명
- 범어 아슈바고샤의 한역. 1~2세기 중인도 출신의 대승 논사로, 부법장의 전등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불소행찬』 5권, 『건치범찬』 1권 등을 지었고 『대승기신론』 1권도 마명의 저작이라고 전한다.
- 竜樹용수
- 범어 나가르주나의 한역. 2~3세기 남인도 출신의 대승 논사로, 부법장의 제14. 처음에는 소승을 배웠으나 히말라야 지방에서 한 노비구에게 대승 경전을 받은 뒤 대승 선양에 힘썼다. 『십이문론』 1권, 『십주비바사론』 17권, 『중관론』 4권 등을 지었다.
- 苦・空・無常・無我고 · 공 · 무상 · 무아
- 소승교가 세운 인생관. 세간은 괴로움이요, 실체가 없고, 늘 변하며, 고정된 나가 없다고 보아 이를 깨달아 번뇌를 끊으라고 가르친다.
- 常・楽・我・浄상 · 낙 · 아 · 정
- 외도는 범부가 집착하는 세간 그대로를 영원하고 즐겁고 참된 나이며 깨끗하다고 세웠다. 대승 경전, 특히 『열반경』은 불계의 덕을 상락아정의 네 덕으로 설한다. 이름은 같아도 가리키는 바가 전혀 다르다.
- 第六天の魔王제육천의 마왕
- 타화자재천왕. 욕계의 하늘은 여섯 겹인데 타화자재천이 그 맨 위 여섯째에 있으므로 제육천이라 하고, 거기 살며 불도를 가로막는 마왕을 제육천의 마왕이라 한다. 삼장사마 가운데 천자마에 해당한다.
- 摩耶経마야경
- 자세히는 『마하마야경』, 또는 『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 남제(南齊)의 담경(曇景)이 옮겼다. 부처님이 어머니 마야부인의 은혜를 갚기 위해 도리천에 올라 설법한 일과, 멸후의 불법 전승을 예언한 대목을 담는다.
- 楞伽経능가경
- 『능가아발다라보경』 · 『입능가경』 · 『대승입능가경』의 세 번역이 남아 있다. 부처님이 능가산 꼭대기에서 대혜보살의 물음에 답해 여러 법문을 설한 경으로, 선종의 의경 가운데 하나다. 달마가 이 경을 여래의 궁극의 설로 여겨 혜가에게 주었다고 전한다.
- 付法蔵経부법장경
- 『부법장인연전』. 부처님 멸후 정법 천 년 동안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 법을 넓힌 부법장 스물네 사람의 인연을 적은 책이다. 6권이며 길가야(吉迦夜)와 담요(曇曜)가 함께 옮겼다.
- めくらぜめ덮어놓고 공격함
- 이치를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몰아붙이는 것. 경문의 예언이 분명한데도 그것을 쓰지 않고 박해만 한 소승 무리의 태도를 가리킨다.
- 如来現在・猶多怨嫉・況滅度後여래현재 유다원질 황멸도후
-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문.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라고 읽는다. 「여래의 현재」는 석존 재세, 「멸도 후」는 정법 · 상법 · 말법에 두루 통하지만 그 바른 뜻은 말법에 있다.
- 提婆菩薩제바보살
- 가나제바. 부법장의 제15. 남인도 바라문 출신으로, 「제바」는 하늘, 「가나」는 외눈이라는 뜻이다. 용수 밑에서 출가하여 여러 나라에서 중생을 교화하였고, 외도에게 살해되었다.
- 師子尊者사자존자
- 사자비구라고도 한다. 부처님 멸후 1,200년 무렵 중인도에서 태어나 학륵야나(鶴勒夜那)에게 법을 받은 부법장 스물네 사람의 마지막 전등자. 계빈국에서 국왕에게 목을 베였다.
「이 힐난은 옛날의 힐난이다」 — 물음이 겨누는 것
앞의 제33장은 남묘호렌게쿄가 법화경 이십팔품의 간심이며, 대성인이 남묘호렌게쿄를 넓히면 나무아미타불의 작용은 달이 이지러지듯, 조수가 빠지듯 사라져 갈 것이라고 맺었다. 그토록 위력 있는 바른 법이라면 어찌하여 지난날 인도 · 중국 · 일본에 넓혀지지 않았는가 — 제34장의 물음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질문자는 선성들의 이름을 정법 · 상법의 순서대로 늘어놓는다. 가섭 · 아난(정법 전반의 소승 홍통), 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정법 후반의 대승 논사), 남악 · 천태 · 묘락(중국 상법의 천태 계보), 전교(일본 상법).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선도 · 혜심 · 영관 · 법연이라는 염불 홍통자의 이름을 놓는다. 선도는 중국에서 나무아미타불을 권하여 넓혔고, 혜심 · 영관 · 법연은 일본국을 「모두 아미타불로 만들었다」. 그러니 참으로 뛰어난 법이라면 이 선성들도 마땅히 그처럼 권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 힐난은 옛날의 힐난이니 지금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신다. 이 말에는 두 겹의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대성인이 삼대비법을 세우신 처음부터 이 물음이 줄곧 따라다녔다는 사실이다. 뒤의 제36장에서 자세히 밝히듯 삼대비법은 부처님 멸후 이천여 년 동안 누구도 넓히지 않았고 그 이름조차 설해 낸 사람이 없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말법의 처음에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 다시 태어나 처음 세우시는 법이다. 그러므로 「왜 지금까지 없었는가」라는 물음은 이 법이 세워지는 순간부터 피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단계의 법이 나타날 때마다 같은 물음이 되풀이되었다는 역사다. 대성인은 곧바로 정법 시대 마명 · 용수의 예를 드신다. 그들이 대승을 펼 때 소승의 무리는 「가섭 · 아난이 넓히지 않은 것을 어찌 너희가 넓히느냐」고 따졌다. 제35장에서는 천태가 남삼북칠에게서, 전교가 남도의 여러 종에게서 같은 비난을 받는다. 그러니 이 힐난은 대성인 한 분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법이 깊어질 때마다 반복된 「옛날의 힐난」이다.
이 대목에서 함께 읽어야 할 어서가 「조닌초」다.
法華経と爾前と引き向えて勝劣・浅深を判ずるに当分・跨節の事に三つの様有り日蓮が法門は第三の法門なり、世間に粗夢の如く一二をば申せども第三をば申さず候、第三の法門は天台・妙楽・伝教も粗之を示せども未だ事了えず所詮末法の今に譲り与えしなり、五五百歳は是なり
법화경과 이전의 경을 맞대어 승렬과 천심을 판단함에 당분(當分)과 과절(跨節)의 일에 세 가지 양식이 있다. 니치렌의 법문은 제3의 법문이다. 세간에서는 꿈처럼 첫째와 둘째는 대략 말하지만 제3은 말하지 않는다. 제3의 법문은 천태 · 묘락 · 전교도 대략 보였으나 아직 일을 마치지 못하였고, 결국 말법의 지금에 양보하여 준 것이다. 「오오백세」란 이것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이 「제3의 법문」은 종탈상대, 곧 삼대비법을 가리킨다고 본다. 세간은 권실과 본적의 승렬은 꿈결처럼 말해도 문저의 하종의 법은 말하지 못한다. 천태 · 묘락 · 전교는 그것을 대략 시사했을 뿐 일을 마치지 않고 말법에 넘겨주었다. 게다가 말법의 처음은 『대집경』이 설하는 「백법은몰(白法隱沒)」 · 「투쟁견고(鬪諍堅固)」의 시대다. 이런 시대에 처음 세워지는 법이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옛날의 힐난」이라는 대답은 그 어려움이 법의 결함이 아니라 법이 깊고 시대가 탁하기 때문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소승의 무리가 내세운 의심 — 「가섭보다 뛰어날 수 없다」
本文에서 소승의 무리가 마명 · 용수를 공격한 논리는 정연하다. 대성인은 그것을 「이것이 첫째」, 「이것이 둘째」라고 헤아리며 그대로 옮기신다.
첫째는 정통성의 논리다. 가섭과 아난은 부처님 멸후 각각 이십 년, 사십 년을 세상에 머물며 정법을 넓혔다. 부처님에게서 직접 법을 받은 그들이 넓힌 것이야말로 여래 일대의 간심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요지로 삼은 것은 고 · 공 · 무상 · 무아의 법문이었다. 그러니 마명 · 용수가 아무리 현명해도 가섭 · 아난보다 뛰어날 수는 없다.
둘째는 직접성의 논리다. 가섭은 부처님을 직접 만나 이해를 얻은 사람이다. 마명 · 용수는 부처님을 만나 뵌 일이 없다. 직접 듣지 않은 자가 직접 들은 자를 넘어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셋째로 교리 내용의 논리가 덧붙는다. 외도는 상 · 낙 · 아 · 정을 세웠고, 부처님은 그것을 깨뜨리려고 고 · 공 · 무상 · 무아를 설하셨다. 그런데 마명 · 용수는 다시 상락아정을 말한다. 소승의 눈에 이것은 부처님이 깨뜨린 외도의 설로 되돌아가는 일로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부처님도 가섭도 세상을 떠나신 틈을 타 제육천의 마왕이 이자들의 몸에 들어가 불법을 외도의 법으로 바꾸려 한다」고 단정했다.
- 첫째가섭 · 아난은 멸후 이십 년 · 사십 년 머물며 일대의 간심을 넓혔으니 마명 · 용수가 더 뛰어날 수 없다迦葉・阿難等にはすぐべからず是一
- 둘째가섭은 부처님을 만나 이해를 얻었고 이들은 만나지 못했다此の人人は仏にあひたてまつらず是二
- 교리외도의 상락아정을 부처님이 고 · 공 · 무상 · 무아로 깨뜨렸는데 이들이 다시 상락아정을 말한다
- 결론제육천의 마왕이 몸에 들어갔다→ 「머리를 깨뜨려라 · 목을 베어라 · 목숨을 끊어라 · 먹을 것을 끊어라 · 나라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이 논리에는 맹점이 있다. 외도가 말한 상락아정과 대승이 설한 상락아정은 이름만 같을 뿐 가리키는 바가 다르다. 외도의 상락아정은 무상하고 괴로운 세간을 영원하고 즐거운 것으로 잘못 보는 범부의 집착이다. 소승의 고 · 공 · 무상 · 무아는 그 집착을 깨뜨리는 약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불계의 덕을 드러내지 못한다. 대승, 특히 『열반경』은 그 너머에서 부처님의 법신이 지닌 덕을 상 · 낙 · 아 · 정의 네 덕으로 설한다. 소승의 무리는 앞 단계의 약을 최종의 진리로 붙들었기 때문에 더 깊은 법이 나타나자 그것을 외도로의 퇴행으로밖에 보지 못했다. 이것이 「옛날의 힐난」의 구조다. 앞선 법을 넓힌 사람의 권위가 크면 클수록, 다음 법을 넓히는 사람은 그 권위를 거스르는 자로 몰린다.
「제육천의 마왕」은 욕계 여섯 하늘의 꼭대기인 타화자재천의 왕이다. 『대지도론』 권9는 이 하늘의 이름을 「이 하늘은 다른 이가 변화해 만든 것을 빼앗아 스스로 즐기므로 타화자재라 한다」(此の天は他の化する所を奪って而して自ら娯楽するが故に他化自在と言う)고 풀이한다. 불도를 가로막는 삼장사마 가운데 천자마에 해당한다. 소승의 무리는 마명 · 용수를 마왕이 들린 자로 몰았지만, 대성인은 본초 전체에 걸쳐 마왕이 오히려 정법을 넓히는 사람을 가로막는 쪽에서 작용한다는 것을 보이셨다. 누가 마의 편인가에 대한 판단이 정반대로 뒤집혀 있는 것이다.
「머리를 깨뜨리고 목을 베라」 — 한두 사람이 견딘 박해
소승의 무리는 많았고 마명 · 용수는 「다만 한두 사람」이었다. 그 수의 차이가 박해의 모습을 결정했다. 「불법의 원수는 머리를 깨뜨려라, 목을 베어라, 목숨을 끊어라, 먹을 것을 끊어라, 나라에서 쫓아내라」는 다섯 마디는 육체적 위해에서 생계의 단절, 추방에 이르기까지 박해의 전 범위를 담고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밤낮으로 악구의 소리를 듣고 아침저녁으로 지팡이와 몽둥이를 맞았다」. 대승을 처음 펴는 일은 이처럼 고독한 싸움이었다.
마명(아슈바고샤)은 1~2세기 중인도 출신이다. 처음에는 외도를 믿어 논쟁을 벌이며 「지면 혀를 잘라 사죄하겠다」고 자부할 만큼 오만했으나, 부나사(富那奢)에게 논파되어 불교에 귀의하였다. 그 뒤 불교를 크게 선양하고 중생을 잘 교화하였다. 『불소행찬』 5권, 『건치범찬』 1권 등을 지었고, 『대승기신론』 1권도 마명의 저작이라고 전한다.
용수(나가르주나)는 2~3세기 남인도 출신으로 부법장의 제14이다. 뒤에 나온 천친보살과 함께 정법 시대 후반의 정법 호지자로 이름이 높다. 처음에는 소승을 배웠으나 히말라야 지방에서 한 노비구에게 대승 경전을 받은 뒤 대승 선양에 생애를 바쳤다. 『십이문론』 1권, 『십주비바사론』 17권, 『중관론』 4권 등이 그의 저작이다.
대성인은 이 두 사람이 「부처님의 사자」라는 증거로 세 경론을 드신다. 첫째가 『마야경』이다. 이 경은 자세히는 『마하마야경』 또는 『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이라 하며 남제의 담경이 옮겼다. 부처님이 어머니 마야부인의 은혜를 갚기 위해 4월 15일 도리천에 올라 7월 15일 돌아올 때까지 구십 일 동안 설법하여 어머니에게 초과(初果)의 이익을 얻게 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경에는 「빈자의 일등(一燈)」 가르침도 있다 — 많은 재물을 보시해도 신심이 약하면 성불할 수 없지만, 가난해도 신심이 강하고 뜻이 깊으면 성불은 의심할 바 없다는 것이다. 또 부처님이 입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마야부인이 급히 도리천에서 내려와 열반의 자리에 달려가 부처님의 발우와 석장을 끌어안고 울자, 부처님이 대신통력으로 금관의 뚜껑을 열고 몸을 일으켜 털구멍에서 천백의 광명을 놓고, 그 광명마다 천백의 화불을 나타내어 모자가 서로 만났으며, 어머니를 위해 세상의 무상의 이치를 설한 뒤 다시 관의 뚜껑을 닫았다고 설한다. 보은의 경이라 할 이 『마야경』이 멸후 육백 년에 마명이, 칠백 년에 용수가 나오리라고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은을 주제로 한 본초의 흐름과도 은근히 맞닿는다.
둘째가 『능가경』이다. 『능가아발다라보경』 · 『입능가경』 · 『대승입능가경』의 세 번역이 남아 있으며, 부처님이 능가산 꼭대기에서 대혜보살의 물음에 답해 여러 법문을 설한 경이다. 선종의 의경 가운데 하나로, 달마가 이 경을 여래의 궁극의 설로 여겨 혜가에게 주었다고 전한다. 셋째가 『부법장경』, 곧 『부법장인연전』이다. 부처님 멸후 정법 천 년 동안 부촉을 받아 법을 넓힌 스물네 사람의 인연을 적은 6권의 책으로, 길가야와 담요가 함께 옮겼다. 마명 · 용수가 이 부법장의 계보에 들어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경문의 예언이 분명한데도 「여러 소승의 무리는 이를 쓰지 않고 다만 덮어놓고 공격하였다」. 문증을 들어도 귀를 닫는 태도 — 이것 역시 제35장의 남삼북칠과 남도 여러 종, 그리고 대성인 당시의 여러 종이 되풀이하는 모습이다.
마명을 부법장의 몇 번째로 헤아리는가는 전승에 따라 다르다. 열한 번째로 헤아리는 설과 열두 번째로 헤아리는 설이 함께 전한다.
유다원질 황멸도후 — 제바보살과 사자존자
대성인은 마명 · 용수의 박해를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라는 경문과 연결하신다. 「여래의 현재」는 석존 재세, 「멸도한 후」는 정법 · 상법 · 말법에 두루 통하지만 그 바른 뜻은 말법에 있다. 그런데 대성인은 마명 · 용수의 박해로 이 경문이 「조금 실감되었다」(少しつみしられけり)고 하신다. 「조금」이라는 한 마디가 중요하다. 정법 시대의 박해는 경문이 예언한 「황멸도후」의 일부, 그것도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 경문의 정의가 말법의 법화경 행자에게서 온전히 드러난다고 보며, 대성인이 말법의 어본불로서 마쓰바가야쓰의 습격 · 이즈 유배 · 고마쓰바라의 난 · 다쓰노구치와 사도 유배라는 네 번의 대난을 겪으신 것을 그 실증으로 읽는다. 송문의 「이 법화경은 부처님 재세보다 멸후, 정법보다 상법, 상법보다 말법의 처음에 차례로 원적이 강해진다」는 말씀이 이 「조금」과 짝을 이룬다.
이어 대성인은 「제바보살이 외도에게 살해되고 사자존자가 목을 베인 일도 이로써 헤아려 보라」고 하신다.
제바보살은 가나제바로, 부법장의 제15다. 남인도 바라문 출신이며, 「제바」는 범어로 하늘, 「가나」는 외눈이라는 뜻이다. 한쪽 눈이 없었으므로 이렇게 불렸다. 한 눈을 천신에게 바쳤다고도 하고, 한 여인에게 주어 그녀로 하여금 몸의 부정함을 깨닫게 했다고도 전한다. 용수 밑에서 출가하여 여러 나라를 다니며 널리 중생을 구했다. 어느 때 남인도의 왕이 외도에 귀의한 것을 구하려고 왕 앞에서 온갖 외도를 논파했는데, 스승이 굴복한 것을 부끄러워한 한 외도의 무지하고 흉악한 제자가 제바에게 위해를 가했다. 그러나 제바는 오히려 그 미친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 외도를 구제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사자존자는 사자비구라고도 하며, 부처님 멸후 1,200년 무렵 중인도에서 태어나 학륵야나에게서 법을 배우고 부촉을 받아 불법을 넓혔다. 부법장 스물네 사람의 마지막 전등자다. 사자존자가 계빈국에서 불법을 유포하고 있을 때 그 나라의 왕 단미라(檀彌羅)는 사견이 강성하여 바라문의 권유에 따라 많은 절과 탑을 부수고 많은 승려를 죽인 끝에 마침내 사자존자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존자의 목에서는 한 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고 흰 젖만이 솟아 나왔다고 전한다.
이 두 사람의 죽음은 정법을 넓히는 일이 목숨을 건 일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대성인이 이들을 드신 뜻은 비극을 강조하는 데 있지 않다. 정법 시대에도 이러했으니 하물며 말법의 처음, 삼대비법을 넓히는 사람에게 닥칠 원질은 어떠하겠는가 — 본초 제30장에서 대성인이 술회하신 스스로의 법난은 바로 이 「황멸도후」의 정의가 실현된 모습이다.
흰 말을 울린 마명 — 「백마는 니치렌이다」

「마명」이라는 이름에는 오래된 고사가 얽혀 있다. 과거세에 윤타왕(輪陀王)이라는 대왕이 있었다. 왕에게는 천 마리의 흰 말이 있었는데 그 울음소리가 매우 좋았다. 흰 말이 울면 대왕은 덕이 늘고, 울지 않으면 덕이 줄었다. 그런데 이 흰 말들은 흰 백조를 볼 때에만 좋은 소리로 울고, 흰 백조를 보지 못하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왕은 널리 흰 백조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이렇게 포고하였다. 「만일 바라문 외도가 흰 말을 울게 하면 불교를 깨뜨리고 외도를 존숭하겠다. 만일 불제자가 흰 말을 울게 하면 외도를 깨뜨리고 불교를 존숭하겠다.」 그때 한 승려가 불교의 유포를 원하여 삼세시방의 부처님께 기원하니 천 마리의 흰 백조가 나타났고, 천 마리의 흰 말이 일제히 울었다. 이로써 마침내 그 나라에 정법이 세워졌으며, 세상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여 「말을 울린 이」, 곧 마명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성인은 이 고사를 「소야전답서」에서 당신과 제자들에게 겹쳐 말씀하셨다.
白馬は日蓮なり・白鳥は我らが一門なり・白馬のなくは我等が南無妙法蓮華経のこえなり、此の声をきかせ給う梵天・帝釈・日月・四天等いかでか色をましひかりをさかんになし給はざるべき、いかでか我等を守護し給はざるべきと・つよづよと・をぼしめすべし
흰 말은 니치렌이요 흰 백조는 우리 일문이다. 흰 말이 우는 것은 우리가 부르는 남묘호렌게쿄의 소리다. 이 소리를 들으시는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 등이 어찌 빛을 더하고 광명을 왕성하게 하지 않으시겠는가, 어찌 우리를 수호하지 않으시겠는가 하고 굳게굳게 생각하시라.
윤타왕의 덕이 흰 말의 울음에 따라 늘고 줄었듯, 제천선신의 위광은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소리에 따라 더해진다. 그리고 흰 말이 흰 백조를 보아야 울었듯, 대성인의 법은 그것을 받아 지니는 일문이 있을 때 비로소 세상에 울려 퍼진다. 마명 · 용수가 「다만 한두 사람」으로 고립되었던 정법 시대와 달리, 말법의 법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내는 소리로 넓혀진다는 뜻이 이 비유에 담겨 있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왜 지금까지 넓혀지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은 법이 깊어질 때마다 되풀이된 「옛날의 힐난」이다. 마명 · 용수가 받은 박해는 「황멸도후」 경문의 일부만을 실감하게 했을 뿐이며, 그 경문의 정의는 말법에 삼대비법을 넓히는 사람에게서 온전히 드러난다.
질문자가 내세운 염불 홍통자들 — 선도에서 법연까지
질문자가 대비의 예로 든 염불 홍통자들도 짚어 둘 필요가 있다. 선도는 중국 정토교를 크게 일으킨 사람으로, 본초 제26장 「선도의 악몽을 예로 들다」에서도 그 이름이 다시 나온다(보은초 제6편 「진언의 악한 현증과 홍법의 광혹」).
혜심, 곧 원신(942~1017)은 야마토국 가쓰라기군 다이마향에서 태어나 아홉 살에 비예산에 올라 자혜대사 양원의 제자가 되었다. 열세 살에 득도하여 원신이라 이름하였고, 서른두 살에 궁중 논의에 나가 재능과 변설로 만좌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마흔둘에 권소승도에 임명되어 요카와 능엄원의 검교가 되었으며, 사십대 초반에 『왕생요집』을 지어 염불의 행에 기울었다. 정토종 문도가 그를 일본 정토교의 선구로 받드는 까닭이 여기에 있으며, 『왕생요집』은 뒤에 법연이 정토 신앙에 들어서는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신의 본뜻은 이전(爾前)의 염불의 이익과 법화경의 일념신해의 공덕을 견주어 일념신해가 염불삼매보다 백만 배나 뛰어나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있었다고 한다. 다만 『왕생요집』이 염불의 색채를 강하게 띠었으므로, 이를 깨달은 원신은 예순다섯 무렵 『일승요결』을 지어 법화 최승의 깊은 뜻을 논하였다. 권소승도의 지위도 사양했다고 전한다. 『일승요결』의 「일본 한 주는 원교의 근기가 순일하다」(日本一州円機純一 — 일본국 안은 법화에 인연 있는 근기의 사람뿐이며 장 · 통 · 별 삼교에 인연 있는 자는 없다)는 구절은 유명하며, 대성인도 여러 어서에서 이를 인용하셨다. 그 뒤 원신은 제자 교육과 저술에 힘써 천태의 관심 법문을 선양하였고, 교상을 중시하는 단나류에 대해 관문을 중시하는 혜심류 천태학의 근원이 되었다. 『법화과문』 · 『법화약관』 · 『법화변체』 등의 저술도 있으며 일흔여섯에 입적하였다.
영관(1032~1111)은 헤이안 중기의 승려로 나라 동대사에서 삼론 · 법상 · 화엄을 닦았으나, 교토 선림사에서 정토교를 포교하였다. 동대사 별당에 임명되어 그 직을 수행한 뒤에도 염불을 넓혔으며 『왕생습인』 등을 지었다.
질문자가 이들을 들고나온 것은 「많은 사람이 따랐다」는 사실을 법의 진실성의 증거로 삼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대성인의 대답은 그 전제를 뒤집는다. 진실한 법은 오히려 처음에는 소수에 의해, 박해 속에서 넓혀진다. 넓혀진 범위가 아니라 넓혀지는 때와 법의 깊이가 문제라는 것 — 이 논점은 제35장의 「내증은 같으나 유포는 뛰어나다」와 제36장의 「때가 그렇게 하는 것일 뿐」에서 완성된다.
본문
又仏滅後・一千五百余年にあたりて月氏よりは東に漢土といふ国あり陳隋の代に天台大師出世す、此の人の云く如来の聖教に大あり小あり顕あり密あり権あり実あり、 迦葉・阿難等は一向に小を弘め馬鳴・竜樹・無著・天親等は権大乗を弘めて実大乗の法華経をば或は但指をさして義をかくし或は経の面をのべて始中終をのべず、 或は迹門をのべて本門をあらはさず、或は本迹あつて観心なしといひしかば、南三・北七の十流が末・数千万人・時をつくりどつとわらふ、世の末になるままに不思議の法師も出現せり、 時にあたりて我等を偏執する者はありとも後漢の永平十年丁卯の歳より今陳隋にいたるまでの三蔵・人師・二百六十余人をものもしらずと申す上謗法の者なり悪道に墜つるといふ者・出来せり、 あまりの・ものくるはしさに法華経を持て来り給へる羅什三蔵をも・ものしらぬ者と申すなり、漢土はさてもをけ月氏の大論師・竜樹・天親等の数百人の四依の菩薩もいまだ実義をのべ給はずといふなり、 此をころしたらん人は鷹をころしたるものなり鬼をころすにもすぐべしとののしりき、又妙楽大師の時・月氏より法相・真言わたり漢土に華厳宗の始まりたりしを・とかくせめしかば・これも又さはぎしなり。
또 부처님 멸후 일천오백여 년에 이르러, 월지에서 동쪽에 한토라는 나라가 있으니 진(陳) · 수(隋)의 시대에 천태대사가 세상에 나오셨느니라. 이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의 성교에는 대(大)가 있고 소(小)가 있으며, 현(顯)이 있고 밀(密)이 있으며, 권(權)이 있고 실(實)이 있다. 가섭 · 아난 등은 오로지 소승을 넓혔고, 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 등은 권대승을 넓히고 실대승인 법화경은 혹은 다만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고 뜻을 숨겼으며, 혹은 경의 겉만 펴고 시(始) · 중(中) · 종(終)을 펴지 않았으며, 혹은 적문을 펴고 본문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혹은 본적은 있으나 관심이 없다」고 하니, 남삼(南三) · 북칠(北七)의 열 갈래의 말류 수천만 명이 함성을 지르며 와 하고 비웃었느니라. 「세상이 말세가 되어 가니 괴이한 법사도 나타났구나. 때때로 우리에게 고집을 부려 맞서는 자는 있었다 하더라도, 후한의 영평 10년 정묘년부터 지금 진 · 수에 이르기까지의 삼장 · 인사(人師) 이백육십여 명을 아무것도 모르는 자라고 할 뿐 아니라 방법(謗法)의 자요 악도에 떨어진다고 말하는 자가 나왔다. 너무나 미친 나머지 법화경을 가지고 오신 나집삼장마저 모르는 자라고 한다. 한토는 그렇다 치더라도 월지의 대논사 용수 · 천친 등 수백 명의 사의(四依)의 보살도 아직 실의(實義)를 펴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자를 죽이는 사람은 매를 죽인 자이니, 귀신을 죽이는 것보다도 낫다」고 욕하였느니라. 또 묘락대사 때에 월지에서 법상 · 진언이 건너오고 한토에서 화엄종이 시작된 것을 이것저것 꾸짖자, 이것 또한 소란이 일었느니라.
日本国には伝教大師が仏滅後・一千八百年にあたりて・いでさせ給い天台の御釈を見て欽明より已来二百六十余年が間の六宗をせめ給いしかば在世の外道・漢土の道士・日本に出現せりと謗ぜし上・仏滅後・一千八百年が間・月氏・漢土・日本になかりし円頓の大戒を立てんというのみならず、 西国の観音寺の戒壇・東国下野の小野寺の戒壇・中国大和の国・東大寺の戒壇は同く小乗臭糞の戒なり瓦石のごとし、其を持つ法師等は野干・猿猴等のごとしとありしかばあら不思議や法師ににたる大蝗虫・国に出現せり仏教の苗一時に・うせなん、 殷の紂・夏の桀・法師となりて日本に生まれたり、後周の宇文・唐の武宗・二たび世に出現せり仏法も但今失せぬべし国もほろびなんと大乗・小乗の二類の法師出現せば修羅と帝釈と項羽と高祖と一国に並べるなるべしと、 諸人手をたたき舌をふるふ、在世には仏と提婆が二の戒壇ありて・そこばくの人人・死にき、されば他宗には・そむくべし我が師天台大師の立て給はざる円頓の戒壇を立つべしという不思議さよ・あらおそろしおそろしとののしりあえりき、
일본국에는 전교대사가 부처님 멸후 일천팔백 년에 이르러 나오시어, 천태의 어석을 보고 긴메이 천황 이래 이백육십여 년 동안의 육종(六宗)을 꾸짖으시자, 「재세의 외도와 한토의 도사가 일본에 나타났다」고 비방하였느니라. 그 위에 「부처님 멸후 일천팔백 년 동안 월지 · 한토 · 일본에 없었던 원돈의 대계를 세우겠다고 할 뿐 아니라, 서국 관음사의 계단, 동국 시모쓰케 오노데라의 계단, 중국(中國) 야마토국 동대사의 계단은 똑같이 소승 취분(臭糞)의 계로서 기와 조각이나 돌멩이와 같고, 그것을 지니는 법사들은 야간(野干)이나 원숭이와 같다고 하니, 아아 괴이하구나, 법사를 닮은 큰 메뚜기가 나라에 나타났다. 불교의 싹이 한꺼번에 사라지리라. 은의 주왕 · 하의 걸왕이 법사가 되어 일본에 태어났다. 후주의 우문 · 당의 무종이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불법도 이제 곧 사라질 것이요 나라도 망하리라. 대승 · 소승 두 부류의 법사가 나타난다면 수라와 제석, 항우와 고조가 한 나라에 나란히 선 것과 같으리라」 하고 여러 사람이 손뼉을 치고 혀를 내둘렀느니라. 「재세에는 부처님과 제바의 두 계단이 있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므로 다른 종에는 등을 돌려도 좋으나, 우리 스승 천태대사께서 세우지 않으신 원돈의 계단을 세우겠다니 이 괴이함이여, 아아 두렵고 두렵다」고 서로 욕하였느니라.
されども経文分明にありしかば叡山の大乗戒壇すでに立てさせ給いぬ、されば内証は同じけれども法の流布は迦葉・阿難よりも馬鳴・竜樹等はすぐれ馬鳴等よりも天台はすぐれ 天台よりも伝教は超えさせ給いたり、 世末になれば人の智はあさく仏教はふかくなる事なり、例せば軽病は凡薬・重病には仙薬・弱人には強きかたうど有りて扶くるこれなり。
그렇지만 경문에 분명히 있었으므로 예산(叡山)의 대승계단은 마침내 세워지셨느니라. 그러므로 내증은 같지만 법의 유포는 가섭 · 아난보다 마명 · 용수 등이 뛰어나고, 마명 등보다 천태가 뛰어나며, 천태보다 전교는 뛰어넘으셨느니라. 세상이 말세가 되면 사람의 지혜는 얕아지고 불교는 깊어지는 법이니라. 예컨대 가벼운 병에는 보통의 약, 무거운 병에는 선약(仙藥), 약한 사람에게는 강한 편이 있어서 돕는 것이 이것이니라.
어구 풀이
- 始中終をのべず시 · 중 · 종을 펴지 않음
- 석존 일대에 설해진 가르침의 처음 · 중간 · 마지막의 차이를 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경의 겉면은 말해도 일대 성교 가운데 그 경이 어디에 놓이는가는 밝히지 않은 것이다.
- 南三・北七の十流남삼 · 북칠의 열 갈래
- 중국 남북조 시대에 불교계는 양쯔강 남쪽에 세 파, 북쪽에 일곱 파로 모두 열 파로 갈라져 있었다. 남삼은 호구산의 급사(笈師) · 종애법사 · 도량사의 관법사, 북칠은 북지사 · 보리유지 · 불타삼장 · 유사(오종) · 유사(육종) · 북지선사(이종대승) · 북지선사(일음교)다. 이 열 종의 설은 모두 화엄 제일 · 열반 제이 · 법화 제삼으로 세웠으며, 천태대사에게 논파되었다.
- 後漢の永平十年丁卯の歳후한의 영평 10년 정묘년
- 서기 67년. 중국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다고 하는 해다. 본초는 이 해부터 진 · 수에 이르기까지 법을 전하고 풀이한 이를 「삼장 · 인사 이백육십여 명」으로 헤아린다.
- 三蔵삼장
- 경 · 율 · 논에 통달한 고승. 여기서는 인도 · 서역에서 경전을 가져와 옮긴 역경승을 가리킨다.
- 四依の菩薩사의의 보살
- 부처님 멸후 중생이 의지할 만한 네 단계의 대사(大士). 본문에서는 용수 · 천친 같은 정법 시대 대논사들을 가리킨다.
- 伝教大師전교대사
- 767~822. 일본 천태종의 개조. 휘는 최징(最澄), 전교대사는 시호다. 근본대사 · 산가대사라고도 한다. 오미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오미 국분사의 행표 밑에서 출가하였고, 연력 23년(804) 입당하여 천태의 깊은 뜻을 배운 뒤 이듬해 귀국, 연력 25년(806) 일본 천태종을 열었다.
- 道士도사
- ①도교를 닦아 그 도에 숙달한 사람, ②신선의 술법을 행하는 사람, ③불도를 수행하는 사람. 여기서는 불교와 맞섰던 중국 도교의 도사를 가리킨다.
- 円頓の大戒원돈의 대계
- 전교대사가 법화경의 뜻에서 이끌어 낸 대승계. 남도 칠대사가 따르던 소승계와 서로 용납되지 않았다.
- 西国の観音寺の戒壇・東国下野の小野寺の戒壇・中国大和の国・東大寺の戒壇서국 관음사 · 동국 시모쓰케 오노데라 · 야마토 동대사의 계단
- 당나라에서 건너온 감진이 나라 동대사에 계단을 세우고, 이어 서국 사람을 위해 쓰쿠시의 관세음사에, 동국 사람을 위해 시모쓰케의 약사사에 각각 계단을 쌓았다. 이를 일본의 소승 삼계단이라 한다.
- 野干야간
- 사간(射干)이라고도 쓴다. 여우를 닮은 짐승의 일종. 『번역명의집』 권2는 「실가라. 이를 야간이라 한다. 여우를 닮았으나 작다. 빛은 청황색으로 개와 같다. 무리 지어 다니며 밤에 이리처럼 운다」고 설명한다.
- 大蝗虫큰 메뚜기
- 곡식의 싹을 먹어 치우는 황충. 불교의 싹을 먹어 치울 자라는 비난의 말이다.
- 殷の紂・夏の桀은의 주왕 · 하의 걸왕
-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폭군. 두 왕조가 이들 때문에 망했다고 전한다.
- 後周の宇文후주의 우문
- 북주의 제3대 황제 무제(재위 560~578). 성은 우문, 휘는 옹(邕). 유교를 중시하고 불교를 배척하여, 혜원 법사 등의 항의도 듣지 않고 경전과 불상을 모조리 파괴하고 승려와 도사를 환속시켰다. 무제가 죽은 지 3년 만에 북주는 망하였다.
- 唐の武宗당의 무종
- 당의 제15대 황제(재위 840~846). 도교에 기울어 불교를 배척하고, 도사 조귀진 등을 써서 회창 5년(845) 천하의 절을 부수고 승니를 환속시켰다. 이를 회창의 폐불이라 한다. 그 이듬해 도교에서 불로불사의 약이라던 단약에 중독되어 죽었다.
- 修羅と帝釈수라와 제석
- 『관불삼매경』 권1에 전하는 아수라왕과 제석천의 싸움. 서로 원수가 되어 맞서는 두 세력의 비유다.
- 項羽と高祖항우와 고조
- 진나라가 무너진 뒤 천하를 놓고 다툰 초의 항우와 한의 고조 유방. 한 나라에 두 패자가 맞선 비유다.
- そこばく그 많은
- 「若干」 · 「幾許」로 쓴다. ①얼마간, ②매우 많음의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보인다.
- 仏と提婆が二の戒壇부처님과 제바의 두 계단
- 제바달다는 석존에게 맞서 상두산(象頭山)에 따로 계단을 세웠다고 전한다.
상법 시대의 두 도사 — 천태가 밝힌 앞선 홍통의 한계
제34장이 정법 시대의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를 다루었다면, 이 장은 상법 시대의 천태대사와 전교대사를 다룬다. 천태대사가 남삼북칠을 깨뜨리고 법화경을 세웠을 때 열 파가 보인 반응, 그리고 전교대사가 소승의 계를 깨뜨리고 원돈의 대계를 세우려 했을 때의 모습이 차례로 그려진다.
천태대사는 부처님 멸후 일천오백여 년, 중국 진 · 수의 시대에 나왔다. 천태는 먼저 여래의 성교를 대 · 소, 현 · 밀, 권 · 실의 세 기준으로 나눈다. 그리고 앞선 선성들의 홍통을 이 기준으로 재어 그 한계를 하나하나 짚는다. 가섭 · 아난은 「오로지 소승」을 넓혔다. 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 등은 권대승을 넓혔고, 실대승인 법화경에 대해서는 네 가지 모습 가운데 어느 하나에 머물렀다. 혹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고 뜻을 숨겼다. 혹은 경의 겉만 펴고 시 · 중 · 종, 곧 일대 성교 속에서 그 경이 차지하는 자리를 펴지 않았다. 혹은 적문만 펴고 본문을 나타내지 않았다. 혹은 본문 · 적문은 있으되 관심이 없었다.
- ①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고 뜻을 숨김但指をさして義をかくし
- ②경의 겉만 펴고 시 · 중 · 종을 펴지 않음経の面をのべて始中終をのべず
- ③적문을 펴고 본문을 나타내지 않음迹門をのべて本門をあらはさず
- ④본적은 있으나 관심이 없음本迹あつて観心なし
이 네 단계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법이 드러나 온 차제의 정리이기도 하다. 정법 시대의 논사들은 법화경을 알면서도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그 뜻을 다 펴지 않았다. 천태는 그것을 「아직 실의를 펴지 않았다」고 판정함으로써 스스로 법화경의 실의를 펴는 사람으로 나섰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천태 자신의 홍통 또한 다음 장에서 밝히는 「본문의 삼대비법」에 이르지 못한 적문의 홍통이었다. 「본적은 있으나 관심이 없다」는 판정의 기준이 다시 한 단계 깊어진 데서 대성인의 법이 세워진다.
「이자를 죽이면 매를 죽인 것」 — 남삼북칠의 비웃음
천태의 판정에 대한 반응은 격렬했다. 남삼북칠의 열 파의 말류 수천만 명이 「함성을 지르며 와 하고 비웃었다」. 남삼은 양쯔강 남쪽의 세 파 — 호구산의 급사, 종애법사, 도량사의 관법사 — 이고, 북칠은 북쪽의 일곱 파 — 북지사, 보리유지, 불타삼장, 오종교를 세운 유사, 육종교를 세운 유사, 이종대승을 세운 북지선사, 일음교를 세운 북지선사 — 다. 이들은 서로 갈래는 달라도 화엄 제일 · 열반 제이 · 법화 제삼이라는 점에서 같았고, 그 판정을 천태가 뒤집은 것이다.
그들이 퍼부은 비난의 논리를 本文은 생생하게 옮긴다. 첫째, 세상이 말세가 되니 괴이한 법사가 나왔다. 둘째, 지금까지도 자기들에게 맞서는 자는 있었지만, 후한 영평 10년(67) 불교 전래 이래 진 · 수에 이르기까지의 삼장 · 인사 이백육십여 명을 「아무것도 모르는 자」라 하고, 나아가 방법의 자요 악도에 떨어진다고까지 하는 자는 없었다. 셋째, 그는 법화경을 가지고 온 구마라집 삼장마저 모르는 자라고 한다. 넷째, 한토는 그렇다 쳐도 월지의 용수 · 천친 등 수백 명의 사의의 보살마저 실의를 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이자를 죽이는 사람은 매를 죽인 자이니, 귀신을 죽이는 것보다도 낫다」.
여기서 「매를 죽인다」는 것은 작은 새를 해치는 사나운 매를 없애는 일이 오히려 공덕이 된다는 비유다. 정법을 펴는 사람을 해치는 일을 공덕으로 여기는 이 전도된 의식은, 제34장에서 소승의 무리가 마명 · 용수를 「불법의 원수」로 몰아 「머리를 깨뜨려라」고 외친 것과 똑같은 구조다. 그리고 대성인 당시 염불자들이 대성인을 해치는 것을 공덕이라 여긴 것과도 이어진다.
천태 이후에도 같은 일은 되풀이되었다. 묘락대사(담연) 때에는 월지에서 법상종과 진언종이 건너오고 한토에서 화엄종이 시작되었다. 묘락이 이를 이것저것 꾸짖자 「이것 또한 소란이 일었다」. 세 종의 전래와 천태 멸후의 미란은 본초 제10장 「천태 멸후 세 종의 미란」에서 자세히 다루어졌다(보은초 제3편 「천태 · 전교의 홍통」).
전교대사와 원돈의 대계
일본에서는 부처님 멸후 일천팔백 년에 전교대사가 나왔다. 전교대사(767~822)는 휘가 최징이며, 근본대사 · 산가대사라고도 불린다. 속명은 미쓰노오비토 히로노, 아버지는 미쓰노오비토 모모에다. 선조는 후한 효헌제의 자손 등만귀(登萬貴)로 오진 천황 때 일본에 귀화하였다고 전한다. 진고케이운 원년(767) 오미(지금의 시가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열두 살에 오미 국분사의 행표 밑에서 출가하였다. 연력 4년(785) 동대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나 곧 비예산에 초암을 짓고 여러 경론을 궁구하였다. 연력 23년(804) 천태법화종 환학생으로 의진을 데리고 입당하여 도수(道邃) · 행만(行滿) 등에게서 천태의 깊은 뜻을 배우고 이듬해 귀국하였으며, 연력 25년(806) 일본 천태종을 열었다. 옛 불교계의 반대 속에서 새로운 대승계를 세우려는 노력을 계속했고, 그 노력은 사후 대승계단의 건립으로 열매를 맺었다. 저서에 『법화수구』 3권, 『현계론』 3권, 『수호국계장』 9권, 『산가학생식』 등이 있다.
전교대사는 천태의 어석을 보고, 긴메이 천황 이래 이백육십여 년 동안 일본에 자리 잡은 남도 육종을 꾸짖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재세의 외도와 한토의 도사가 일본에 나타났다」고 비방했다. 여기서 도사는 불교와 맞섰던 중국 도교의 수행자를 가리킨다. 비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교가 부처님 멸후 일천팔백 년 동안 인도 · 중국 · 일본 어디에도 없었던 원돈의 대계를 세우려 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세 계단 — 서국의 관음사, 동국 시모쓰케의 오노데라, 야마토의 동대사 — 을 「소승 취분의 계」, 「기와 조각과 돌멩이 같다」고 하고, 그 계를 지니는 법사들을 「야간이나 원숭이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원돈의 대계는 전교대사가 법화경의 뜻에서 이끌어 낸 대승계다. 홍인 10년(819) 3월 15일에 지은 「천태법화종연분도자회소향대식(天台法華宗年分度者回小向大式)」, 흔히 「사조식(四條式)」이라 부르는 글에서 전교는 두 가지 계와 두 가지 수계를 구별한다. 대승의 대승계는 십중금계와 사십팔경계를 정하여 대승의 승려가 지닐 계로 삼는다. 수계의 방식에서도 대승계는 『보현경』에 의해 석가모니불을 보살계의 화상으로, 문수사리보살을 갈마아사리로, 미륵보살을 교수아사리로 청하고, 시방의 모든 부처를 증명하는 스승으로, 시방의 모든 보살을 함께 배우는 벗으로 청한다. 그리고 눈앞의 한 사람 전계사를 현전의 스승으로 삼는다. 전계사가 없으면 천 리 안에서 청하고, 천 리 안에도 계를 줄 사람이 없으면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반드시 좋은 상을 얻은 뒤 불상 앞에서 스스로 맹세하여 계를 받으라고 했다. 그리고 천태종의 연분도자와 소승에서 대승으로 마음을 돌린 처음 수행자에게는 이 대승계를 주어 대승의 승려로 삼겠다고 밝혔다.
반면 남도 칠대사가 따르던 소승계는 소승의 율에 따라 눈앞의 열 명의 스승을 청하여 백사갈마(白四羯磨)로 계를 준다. 청정하게 율을 지키는 대덕 열 사람을 청하여 삼사칠증(三師七證)으로 삼으며,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계를 얻지 못한다. 수계의 권위를 눈앞의 승단에 두는 소승계와, 그것을 부처님과 보살에게 두는 대승계는 서로 용납될 수 없었다. 전교대사의 이 상표는 남도 칠대사 고승들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전교의 생전에는 대승계단의 칙허가 내리지 않았다.
- ·소승의 율에 의함
- ·눈앞의 열 스승을 청해 백사갈마
- ·청정한 대덕 열 사람으로 삼사칠증
-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계를 얻지 못함
- ·십중금계 · 사십팔경계
- ·『보현경』에 의해 석가모니불을 화상, 문수를 갈마아사리, 미륵을 교수아사리, 시방제불을 증사, 시방보살을 동학으로 청함
- ·현전의 전계사 한 사람
- ·없으면 천 리 안에서 청하고, 그래도 없으면 참회하여 호상을 얻은 뒤 불상 앞에서 자서수계
本文의 「동국 시모쓰케의 오노데라」는 감진이 동국 사람을 위해 계단을 세운 시모쓰케의 약사사(藥師寺)를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한다. 서국의 관음사는 쓰쿠시(지금의 후쿠오카현)의 관세음사다.
「법사를 닮은 큰 메뚜기」 — 전교에게 쏟아진 비난과 그 고사
전교대사에게 쏟아진 비난의 말은 중국 역사의 가장 어두운 이름들을 끌어온다. 本文은 그것을 거의 숨 쉴 틈 없이 늘어놓는다.
첫째는 「법사를 닮은 큰 메뚜기」다. 황충이 곡식의 싹을 갉아 먹듯 전교가 불교의 싹을 한꺼번에 없애리라는 것이다.
둘째는 「은의 주왕 · 하의 걸왕이 법사가 되어 일본에 태어났다」는 말이다. 주왕과 걸왕은 각각 은과 하를 망하게 한 폭군의 대명사다.
셋째는 「후주의 우문 · 당의 무종이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는 말이다. 후주의 우문은 북주의 제3대 황제 무제(재위 560~578)로, 성은 우문, 휘는 옹이다. 유교를 중시하고 불교를 배척하여 혜원 법사 등의 항의도 듣지 않고 경전과 불상을 모조리 부수었으며 승려와 도사를 환속시켰다. 무제가 죽은 지 3년 만에 어리석은 후계자 때문에 북주는 망했다. 당의 무종(재위 840~846)은 당의 제15대 황제로, 도교에 기울어 도사 조귀진 등을 쓰고 회창 5년(845) 천하의 절을 부수고 승니를 환속시켰다. 이것이 회창의 폐불이다. 그 이듬해 무종은 도교에서 불로불사의 약이라던 단약에 중독되어 죽었다. 전교의 비판자들은 그를 이런 폐불의 군주에 견주며 「불법도 이제 곧 사라질 것이요 나라도 망하리라」고 외쳤다.
넷째는 「대승 · 소승 두 부류의 법사가 나타난다면 수라와 제석, 항우와 고조가 한 나라에 나란히 선 것과 같으리라」는 말이다. 수라와 제석의 싸움은 『관불삼매경』 권1에 전한다. 향산의 건달바의 딸과 아수라왕 사이에서 태어난 딸 열의(悅意)를 제석이 아내로 맞았다. 어느 날 제석이 많은 채녀와 환희원에서 노니는 것을 보고 질투한 열의가 아버지 아수라왕에게 호소했다. 아수라왕은 크게 노하여 네 종류의 군대를 일으키고, 제석이 사는 희견성과 수미산을 흔들며 사대해의 물을 출렁이게 하여 제석을 쳤다. 제석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선법당에서 큰 향을 피우고 반야바라밀을 지녀 불도를 수호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우며 수라가 물러가기를 염했다. 그때 허공에서 큰 칼의 바퀴가 내려와 아수라의 귀 · 코 · 손 · 발을 잘랐다. 아수라는 두려워 떨었으나 달아날 곳이 없어 작은 몸이 되어 연꽃 실의 구멍 속에 숨었다고 한다. 대성인은 「사도어서」에서 이 고사를 이렇게 쓰셨다.
おごれる者は必ず強敵に値ておそるる心出来するなり、例せば修羅のおごり帝釈にせめられて無熱池の蓮の中に小身と成て隠れしが如し
교만한 자는 반드시 강적을 만나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예컨대 수라가 교만하다가 제석에게 공격받아 무열지의 연꽃 속에 작은 몸이 되어 숨은 것과 같다.
항우와 고조의 고사는 진이 무너진 뒤의 일이다. 한의 고조 유방은 진 시황이 죽은 이듬해(기원전 209) 초의 회왕을 받들어 군사를 일으켰다. 항우는 초나라 무장의 후손으로 회계에서 군사를 일으켜 진의 도읍 함양을 함락하고 서초패왕이라 일컬었다. 진이 망한 뒤 고조는 회왕을 죽인 항우의 불의를 꾸짖으며 다섯 해에 걸쳐 천하를 다투었다. 해하의 싸움에서 한군이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은 항우는 한이 이미 초를 얻었다고 여겨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달아났으며,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원전 202년 고조는 황위에 올라 장안에 도읍하고 한 왕조를 세웠다.
다섯째, 그들은 재세의 일을 끌어와 위협한다. 「재세에는 부처님과 제바의 두 계단이 있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제바달다는 석존에게 맞서 상두산에 따로 계단을 세웠다고 전한다. 한 나라에 두 계단이 서는 것은 곧 교단의 분열이요 재앙이라는 논리다. 그래서 「다른 종에는 등을 돌려도 좋으나, 우리 스승 천태대사께서 세우지 않으신 원돈의 계단을 세우겠다니 이 괴이함이여」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마지막 비난은 천태의 이름을 빌려 전교를 치는 것이다. 제34장의 소승 무리가 가섭 · 아난의 권위로 마명 · 용수를 쳤듯, 이번에는 천태의 권위로 전교를 친다. 「선사(先師)가 하지 않은 일을 왜 하느냐」 — 「옛날의 힐난」은 여기서도 같은 모습으로 되풀이된다.
- 「법사를 닮은 큰 메뚜기」法師ににたる大蝗虫불교의 싹을 한꺼번에 없앤다
- 「은의 주왕 · 하의 걸왕이 법사가 되어 태어났다」殷の紂・夏の桀・法師となりて日本に生まれたり왕조를 망친 폭군
- 「후주의 우문 · 당의 무종이 다시 나타났다」後周の宇文・唐の武宗・二たび世に出現せり북주 무제의 폐불(560~578 재위) · 회창의 폐불(845)
- 「수라와 제석, 항우와 고조가 한 나라에 나란히 선 것」修羅と帝釈と項羽と高祖と一国に並べる두 세력의 대립
- 「부처님과 제바의 두 계단」仏と提婆が二の戒壇교단 분열의 재앙
- 「우리 스승 천태대사께서 세우지 않으신 원돈의 계단」我が師天台大師の立て給はざる円頓の戒壇선사의 권위를 빌린 비난
「경문이 분명하였으므로」 — 예산 대승계단의 성립
그 모든 비난에도 불구하고 「경문에 분명히 있었으므로 예산의 대승계단은 마침내 세워졌다」. 전교대사는 남도의 여러 종의 그릇된 뜻을 파절하고 법화 적문의 원돈계단을 세우는 데 몸을 바쳤다. 그 염원은 전교가 세상을 떠난 지 이레 만에 칙허가 내리고 제자 의진의 손으로 실현되었다. 이로써 예산의 원돈계단은 나라 안 모든 승려가 계를 받아야 할 근본 도량이 되었고, 종교계와 사상계의 중심이 되었다.
대성인이 이 대목에서 강조하시는 것은 「경문이 분명했다」는 점이다. 수천만의 비웃음, 폭군에 견주는 비방, 선사의 권위를 빌린 위협도 경문의 증거 앞에서는 결국 힘을 잃었다. 법의 진위를 가리는 기준은 따르는 사람의 수도, 앞선 이의 권위도 아니라 경문이라는 것 — 이것은 본초 첫머리에서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를 세운 이래 일관된 원칙이다(보은초 제1편 「보은의 도리와 여러 종의 미란」).
인도 · 중국 · 일본 계단의 역사
전교대사의 계단 건립이 지닌 뜻을 헤아리려면 계단의 역사를 함께 보아야 한다.
계단이란 일반적으로 불도 수행자의 몸 · 입 · 뜻 세 업을 가다듬기 위한 계법을 주는 도량이다. 계는 그릇됨을 막고 악을 그치게 한다(防非止惡)는 뜻이며, 정(定) · 혜(慧)와 함께 삼학이라 불린다. 계 · 정 · 혜 삼학은 불법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법이다. 그러나 소승 · 권대승 · 법화 적문 · 법화 본문 · 문저 독일본문에 따라 정과 혜가 다르듯, 계법과 계단의 모습도 그에 따라 다르다.
역사에서 계단의 발상을 찾으면 인도의 기원정사다. 석존이 성도한 지 10년, 마갈타국에서 불가사왕(弗迦沙王)을 위해 설법하였을 때, 누지보살이 비구에게 계를 주기를 청하여 기원정사 바깥뜰 동남쪽에 소승계단을 세웠다고 한다. 당나라 남산 도선율사의 『계단도경』에 따르면 이 계단은 삼중으로 되어 있었고 불상 등은 없었으며, 네 모퉁이에 사천왕상이 수계의 의식을 지키는 모습으로 안치되었다. 인도에서는 그 뒤로 많은 계단이 세워졌으나 모두 소승계단이었고, 뒷날 중국 · 일본의 계단과 같은 국가적 의의는 없었다. 대체로 소승교는 계를 중시하고 정 · 혜의 비중은 가벼웠으므로, 계를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자격을 엄격히 따졌다.
중국에서는 후한 말, 서기 67년에 불교가 전해졌다고 한다. 계단이 처음 세워진 것은 서기 249년 조위(曹魏) 제3대 제왕(齊王) 때 천축의 담마가라 삼장에 의한 것이라고도 하고, 서기 434년 유송 문제 원가 11년 구나발마에 의한 남림사의 계단이라고도 한다. 그 뒤 각지에 잇달아 계단이 세워져 수백의 소승계단이 그 지방 승니 수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중국 대승계단의 처음은 당 대종 영태 원년(765) 대흥선사의 방등계단이며, 그 뒤 수십 곳에 이르렀다. 대승계단에는 사천왕을 두지 않고 석가상을 두었다. 덧붙여 천태대사는 관법의 이(理)를 중시하고 행동의 사(事)를 가볍게 보았으므로, 일단 원돈의 이계(理戒)를 세우기는 했으나 실제 수계는 소승계를 썼다.
일본에서는 감진이 중국에서 계법을 전하여(753년 일본에 도착), 먼저 나라의 동대사와 당초제사에, 이어 동국의 시모쓰케 약사사와 서국의 쓰쿠시 관세음사에 각각 소승계단을 세웠다. 동대사 · 약사사 · 관세음사를 소승 삼계단이라 한다. 동대사에서는 먼저 천황 · 황후 · 태자 · 공경 430여 명이 계를 받는 등, 소승이기는 해도 국가적 의의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동대사 계단은 석가 · 다보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다보탑을 가운데 두고 사천왕이 네 모퉁이를 지키는 모습이었고, 약사사의 모습은 지금은 알 수 없으며, 관세음사는 노사나불을 본존으로 문수 · 미륵을 협시로 하였다. 예산의 계단은 문수 · 미륵을 협시로 하는 석가상이다.
그러나 계단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위업은 비예산 엔랴쿠사에 법화 적문의 계단을 세운 전교대사의 일이다. 전교는 스물두 살에 비예산사를 열고, 뒤에 당에 유학하여 도수 화상에게서 대승 원돈계를 받았으며, 귀국하여 천태종을 열고 천황을 비롯한 만민의 존숭 속에서 법화 적문의 홍통에 힘썼다. 그리고 남도 육종의 여러 절과 여러 승려의 그릇된 뜻을 파절하고 원돈계단 건립에 몸을 바쳤다.
- 인도
- 성도 10년석존 성도 10년, 누지보살의 청으로 기원정사 바깥뜰 동남에 소승계단(『계단도경』: 삼중 · 불상 없음 · 네 모퉁이 사천왕)
- 중국
- 6767년 불교 전래
- 249/434249년 조위 담마가라 또는 434년 유송 구나발마의 남림사 계단
- 수백의 소승계단
- 765765년 대흥선사 방등계단(대승계단의 처음, 석가상)
- 천태대사는 원돈의 이계를 세웠으나 수계는 소승
- 일본
- 753753년 감진 도착
- 동대사 · 당초제사, 이어 시모쓰케 약사사 · 쓰쿠시 관세음사(소승 삼계단)
- 전교대사
- 819홍인 10년(819) 「연분도자회소향대식」
- 사후 이레사후 이레 만에 칙허
- 의진이 예산 원돈계단을 실현(법화 적문의 계단)
- 말법
- 본문의 본존이 계신 곳이 뜻으로 계단에 해당
이상 정법 · 상법 이천 년 계단의 역사를 간추렸다. 이 계단들의 공통점은 승니 등에게 계를 주는 도량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불교계, 나아가 사상계의 통일과 나라의 번영, 민중의 행복을 기하였다. 이제 말법에 들어 니치렌 대성인의 삼대비법에서는 본문의 본존이 계신 곳이 뜻(義)으로서 계단에 해당한다. 이 「본문의 계단」이 다음 제36장에서 삼대비법의 둘째로 이름 붙여진다.
「내증은 같으나 유포는 뛰어나다」 — 시대가 내려갈수록 깊어지는 법
이 장의 결론은 한 문장에 모인다. 「내증은 같지만 법의 유포는 가섭 · 아난보다 마명 · 용수 등이 뛰어나고, 마명 등보다 천태가 뛰어나며, 천태보다 전교는 뛰어넘으셨다.」 가섭 · 아난도, 마명 · 용수도, 천태 · 전교도 마음속에 깨달은 바(내증)는 같다. 그러나 무엇을 얼마나 펴 보였는가(유포)에서는 뒤에 나온 사람일수록 더 깊고 넓다. 가섭 · 아난은 소승을, 마명 · 용수는 권대승을, 천태는 법화경의 이론(理)을, 전교는 그 위에 원돈의 계단이라는 사(事)를 세웠다.
그 까닭을 대성인은 「세상이 말세가 되면 사람의 지혜는 얕아지고 불교는 깊어진다」고 밝히신다. 석존 재세보다 멸후 정법 시대, 정법 시대보다 상법 시대, 상법 시대보다 말법으로 내려갈수록 사람의 지혜는 차츰 얕아진다. 그리고 말법의 중생은 삼독이 강성하고 본래 선근이 없는 본미유선(本未有善)의 중생이다. 그러므로 못한 중생을 구하려면 불법은 더 높고 더 깊은 정법이어야 한다. 대성인은 이를 세 가지 비유로 보이신다. 가벼운 병에는 보통의 약, 무거운 병에는 신선의 약, 약한 사람에게는 강한 편이 있어서 돕는다.
- 정법 전반가섭 · 아난— 소승
- 정법 후반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 권대승
- 상법(중국)천태— 법화경 적문의 이(理)
- 상법(일본)전교— 적문의 원돈계단
- 말법니치렌 대성인— 본문의 삼대비법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차제의 끝은 전교에서 멈추지 않는다. 전교는 법화경 적문의 도사이고, 법화경 본문의 대도사는 니치렌 대성인이다. 대성인이야말로 위없는 가운데서도 지극히 위없는 대도사이며 어본불이시다. 무거운 병에 선약이 필요하듯, 지혜가 가장 얕아진 말법의 중생에게는 가장 깊은 법 — 다음 장에서 밝히는 본문의 삼대비법 — 이 필요하다. 제34장의 「왜 선성들은 넓히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여기서 완성된다. 넓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때와 근기에 맞추어 차례로 펴 왔으며, 가장 깊은 법은 가장 탁한 시대를 위해 남겨 두었다는 것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천태 · 전교의 홍통은 법화 적문의 홍통이다.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통은 내증은 같되 유포가 차례로 깊어졌으며, 그 끝에 말법의 본미유선의 중생을 위해 본문의 삼대비법이 남겨져 있다. 전교가 세운 적문의 계단에 대해 말법에는 본문의 본존이 계신 곳이 뜻으로 계단이 된다.
본문
問うて云く天台伝教の弘通し給わざる正法ありや、答えて云く有り求めて云く何物ぞや、答えて云く三あり、末法のために仏留め置き給う迦葉.阿難等・馬鳴・竜樹等.天台・伝教等の弘通せさせ給はざる正法なり、 求めて云く其の形貌如何、答えて云く一には日本・乃至一閻浮提・一同に本門の教主釈尊を本尊とすべし、所謂宝塔の内の釈迦多宝・外の諸仏・並に上行等の四菩薩脇士となるべし、 二には本門の戒壇、三には日本・乃至漢土・月氏・一閻浮提に人ごとに有智無智をきらはず一同に他事をすてて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べし、此の事いまだ・ひろまらず一閻浮提の内に仏滅後・二千二百二十五年が間一人も唱えず日蓮一人・南無妙法蓮華経・南無妙法蓮華経等と声もをしまず唱うるなり、
묻기를, 천태 · 전교가 홍통하지 않으신 정법이 있는가. 답하기를, 있다. 구하여 말하기를, 그것은 무엇인가. 답하기를, 셋이 있다. 말법을 위하여 부처님께서 남겨 두신 것으로, 가섭 · 아난 등, 마명 · 용수 등, 천태 · 전교 등이 홍통하지 않으신 정법이니라. 구하여 말하기를, 그 모양은 어떠한가. 답하기를, 첫째는 일본 내지 일염부제가 한결같이 본문의 교주 석존을 본존으로 해야 하느니라. 이른바 보탑 안의 석가 · 다보, 밖의 제불, 아울러 상행 등의 사보살이 협시가 될 것이니라. 둘째는 본문의 계단. 셋째는 일본 내지 한토 · 월지 · 일염부제에서 사람마다 유지(有智) · 무지(無智)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다른 일을 버리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러야 하느니라. 이 일은 아직 넓혀지지 않았느니라. 일염부제 안에 부처님 멸후 이천이백이십오 년 동안 한 사람도 부르지 않았느니라. 니치렌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등이라고 소리도 아끼지 않고 부르는 것이니라.
例せば風に随つて波の大小あり薪によつて火の高下あり池に随つて蓮の大小あり雨の大小は竜による根ふかければ枝しげし源遠ければ流ながしと・いうこれなり、 周の代の七百年は 文王の礼孝による秦の世ほどもなし始皇の左道によるなり、日蓮が慈悲曠大ならば 南無妙法蓮華経は万年の外・未来までもながるべし、 日本国の一切衆生の盲目をひらける功徳あり、無間地獄の道をふさぎぬ、此の功徳は伝教・天台にも超へ竜樹・迦葉にもすぐれたり、極楽百年の修行は穢土の一日の功徳に及ばず、 正像二千年の弘通は末法の一時に劣るか、是れひとへに日蓮が智のかしこきには・あらず時のしからしむる耳、春は花さき秋は菓なる夏は・あたたかに冬は・つめたし時のしからしむるに有らずや。
예컨대 바람에 따라 파도의 크고 작음이 있고, 장작에 따라 불의 높고 낮음이 있으며, 연못에 따라 연꽃의 크고 작음이 있고, 비의 크고 작음은 용에 달려 있느니라.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근원이 멀면 흐름이 길다고 하는 것이 이것이니라. 주(周)나라의 칠백 년은 문왕의 예와 효에 의한 것이요, 진(秦)나라의 세상이 얼마 가지 못한 것은 시황의 그릇된 도에 의한 것이니라. 니치렌의 자비가 광대하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 밖 미래까지도 흐를 것이니라. 일본국 일체중생의 눈먼 눈을 뜨게 하는 공덕이 있으며, 무간지옥의 길을 막았느니라. 이 공덕은 전교 · 천태보다도 넘어서고 용수 · 가섭보다도 뛰어나니라. 극락에서 백 년 수행하는 것은 예토(穢土)에서의 하루의 공덕에 미치지 못하고,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통은 말법의 한때에 못하지 않겠는가. 이는 오로지 니치렌의 지혜가 현명해서가 아니라 때가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니라.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으며, 여름은 따뜻하고 겨울은 차가운 것도 때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我滅度の後・後の五百歳の中に広宣流布して閻浮提に於て断絶して悪魔・魔民・諸の天竜・夜叉・鳩槃荼等に其の便りを得せしむること無けん」等云云、 此の経文若しむなしくなるならば舎利弗は華光如来とならじ迦葉尊者は光明如来とならじ目犍は多摩羅跋栴檀香仏とならじ阿難は山海慧自在通王仏とならじ 摩訶波闍波提比丘尼は一切衆生喜見仏とならじ耶輸陀羅比丘尼は具足千万光相仏とならじ、 三千塵点も戯論となり・五百塵点も妄語となりて恐らくは教主釈尊は無間地獄に堕ち多宝仏は阿鼻の炎にむせび十方の諸仏は八大地獄を栖とし一切の菩薩は一百三十六の苦をうくべし・いかでかその義候べき、 其の義なくば日本国は一同の南無妙法蓮華経なり、
「내가 멸도한 후, 후오백세 중에 광선유포하여 염부제에서 단절시켜 악마 · 마민 · 여러 천 · 용 · 야차 · 구반다 등이 그 틈을 얻게 하는 일이 없게 하리라」 등이라 하였느니라. 이 경문이 만일 헛되게 된다면 사리불은 화광여래가 되지 못하고, 가섭존자는 광명여래가 되지 못하고, 목건련은 다마라발전단향불이 되지 못하고, 아난은 산해혜자재통왕불이 되지 못하고, 마하파사파제 비구니는 일체중생희견불이 되지 못하고, 야수다라 비구니는 구족천만광상불이 되지 못하리라. 삼천진점도 희론이 되고 오백진점도 망어가 되어, 아마도 교주 석존은 무간지옥에 떨어지고, 다보불은 아비의 불길에 숨이 막히며, 시방의 제불은 팔대지옥을 거처로 삼고, 일체의 보살은 일백삼십육의 고통을 받으리라. 어찌 그런 뜻이 있겠는가. 그런 뜻이 없다면 일본국은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이니라.
어구 풀이
- 末法のために仏留め置き給う말법을 위하여 부처님께서 남겨 두신
- 삼대비법은 정법 · 상법의 선성이 넓힐 법이 아니라, 처음부터 말법의 중생을 위해 남겨진 법이라는 뜻이다. 「소야입도전허어서」의 「일대비법을 남겨 두셨다」와 같은 뜻이다.
- 一閻浮提일염부제
- 염부제는 범어 잠부드비파의 음사. 「염부」는 나무 이름, 「제」는 섬(洲)으로 옮긴다.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서는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고 그 사방에 동불바제 · 서구야니 · 남염부제 · 북울단월의 네 대주가 있다고 한다. 이 남염부제 전체를 일염부제라 하며, 곧 전 세계를 뜻한다.
- 本門の教主釈尊본문의 교주 석존
- 법화경 본문의 글 위에 설해진 구원실성 오백진점겁의 석존이 아니라, 문저에 나타난 구원원초의 자수용법신여래, 곧 니치렌 대성인을 가리킨다고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풀이한다.
- 有智無智をきらはず유지 · 무지를 가리지 않고
- 학식이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삼대비법의 제목은 교학의 깊이를 조건으로 삼지 않는 만인의 수행임을 보인다.
- 二千二百二十五年이천이백이십오 년
- 부처님 입멸을 주(周)나라 목왕 53년 임신(기원전 949년)으로 보는 전통 연대에 따라 건치 2년(1276)까지를 헤아린 햇수다.
- 周の代の七百年は文王の礼孝による주나라 칠백 년은 문왕의 예와 효에 의한다
- 문왕은 주 왕조의 기초를 닦은 군주로 이상적인 명군으로 꼽힌다. 성은 희(姬), 이름은 창(昌). 주의 치세가 칠백 년이나 이어진 것은 문왕이 예를 두터이 하고 지극히 효성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 秦の世ほどもなし始皇の左道によるなり진의 세상이 얼마 못 간 것은 시황의 그릇된 도에 의한다
- 진 시황의 치세 37년, 2세 호해의 3년, 3세 자영은 겨우 46일로, 전후 40년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끝났다. 「좌도」는 바르지 못한 도, 곧 무도한 다스림이다.
- 慈悲曠大자비 광대
- 넓고 큰 자비.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 구절에서 대성인의 부모의 덕(친덕)을 읽는다.
- 極楽百年の修行は穢土の一日の功徳に及ばず극락 백 년의 수행은 예토 하루의 공덕에 미치지 못한다
- 괴로움 없는 정토에서의 오랜 수행보다 고난이 가득한 이 사바세계에서의 하루의 수행이 공덕이 크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정법 · 상법의 홍통과 말법의 홍통을 견주는 비유로 쓰였다.
- 夜叉야차
- 범어 야크샤의 음사. 약차라고도 쓰며 포악 등으로 옮긴다. 숲에 사는 귀신으로, 땅 · 허공 · 하늘의 세 부류가 있어 하늘과 허공의 야차는 날 수 있고 땅의 야차는 날지 못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호법신이 되어 북방 다문천왕(비사문천)의 권속이 된다.
- 鳩槃荼구반다
- 범어 쿰반다의 음사. 사람의 정기를 먹는 말 머리에 사람 몸을 한 귀신. 불교에서는 호법신이 되어 남방 증장천왕의 권속에 든다.
- 舎利弗は華光如来사리불은 화광여래
- 사리불은 범명 샤리푸트라의 음사로 신자(身子) · 추로자로 옮긴다. 십대제자의 한 사람으로 지혜 제일. 법화경 비유품 제3에서 방편품의 「제법실상」의 묘리를 깨닫고 미래에 화광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
- 迦葉尊者は光明如来가섭존자는 광명여래
- 마하가섭. 대음광(大飲光)으로 옮긴다. 두타 제일. 신해품 제4에서 사대성문의 한 사람으로 개삼현일의 불의를 깨닫고, 수기품 제6에서 광명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 目犍は多摩羅跋栴檀香仏목건련은 다마라발전단향불
- 마하목건련. 신통 제일. 수기품 제6에서 다마라발전단향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 阿難は山海慧自在通王仏아난은 산해혜자재통왕불
- 다문 제일. 수학무학인기품 제9에서 산해혜자재통왕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 摩訶波闍波提比丘尼は一切衆生喜見仏마하파사파제 비구니는 일체중생희견불
- 석존의 이모이자 양모로, 교단 최초의 비구니. 권지품 제13에서 일체중생희견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 耶輸陀羅比丘尼は具足千万光相仏야수다라 비구니는 구족천만광상불
- 실달태자의 정비이며 라후라의 어머니. 권지품 제13에서 구족천만광상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 三千塵点・五百塵点삼천진점 · 오백진점
- 화성유품 제7에 설한 대통지승불 이래의 아득한 시간(삼천진점겁)과, 여래수량품 제16에 설한 석존 성불 이래의 더욱 아득한 시간(오백진점겁).
- 一百三十六の苦일백삼십육의 고통
- 일백삼십육 지옥. 팔대지옥마다 열여섯의 소지옥이 있어 소지옥 백이십팔에 대지옥 여덟을 더하면 백삼십육이 된다.
「대사 중의 대사」를 적은 장
이 장에서 마침내 본문의 삼대비법이 밝혀진다. 대성인이 송문에서 「이 글은 상당히 대사 중의 대사를 적었다」고 하신 것은 바로 이 삼대비법을 밝히셨기 때문이다.
대성인의 생애를 통틀어 오대부로 꼽히는 어서 가운데 「입정안국론」 · 「개목초」 · 「관심의 본존초」 · 「선시초」의 어디에도 삼대비법의 명목은 아직 드러나 있지 않다. 「입정안국론」은 사도 이전의 글로 오로지 법연의 염불을 파한 권실상대가 주안이다. 「개목초」는 오중상대를 통해 인본존을 밝히고, 「관심의 본존초」는 말법에 유포될 본존을 밝혔다. 「선시초」는 여러 종의 그릇된 뜻을 깨뜨리고 「천태 · 전교가 아직 홍통하지 않으신 최대의 심밀한 정법이 경문의 겉에 나타나 있다」(天台・伝教のいまだ弘通しましまさぬ最大の深密の正法経文の面に現前なり, 「선시초」, 272쪽)고 판정했지만, 그 정법이 무엇인지 세 가지 이름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그 「천태 · 전교가 아직 홍통하지 않은 정법」의 내용이 이 장에서 「셋이 있다」는 대답으로 처음 오대부 안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본초를 「대사 중의 대사」라 하신 것이다.
다만 오대부 밖으로 눈을 돌리면, 문영 11년(1274)의 「법화취요초」에 이미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이다」(本門の本尊と戒壇と題目の五字となり, 「법화취요초」, 336쪽)라는 대답이 보인다. 「법화취요초」가 짧은 문답 속에서 세 법의 이름을 처음 드러냈다면, 보은초는 정법 · 상법의 홍통사 전체를 거쳐 그 이름을 다시 세우고, 각각의 형모를 밝히며, 그것을 넓히는 사람의 덕과 공덕, 그리고 경문의 보증까지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 장이 「대사 중의 대사」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선성은 왜 넓히지 않았는가 — 네 가지 까닭
本文의 물음은 제34장의 물음을 다시 정면으로 받는다. 「천태 · 전교가 홍통하지 않으신 정법이 있는가.」 대답은 「있다」, 「셋이 있다」. 그것은 부처님이 말법을 위해 남겨 두신 법으로, 가섭 · 아난 등, 마명 · 용수 등, 천태 · 전교 등 정법 · 상법의 누구도 홍통하지 않은 대백법이다. 「조닌초」에서 「제3의 법문은 천태 · 묘락 · 전교도 대략 보였으나 아직 일을 마치지 못하였고, 결국 말법의 지금에 양보하여 준 것이다」라고 하신 그 법이다.
그렇다면 이 선성들은 왜 삼대비법을 넓히지 않았는가. 대성인은 「소야입도전허어서」에서 그 까닭을 넷으로 드셨다.
一には自身堪えざるが故に二には所被の機無きが故に三には仏より譲り与えられざるが故に四には時来らざるが故なり
첫째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입을 근기가 없기 때문이요, 셋째는 부처님에게서 양여받지 못했기 때문이요, 넷째는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으면 대성인의 홍통의 까닭이 된다. 첫째는 자신이 능히 감당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입을 근기가 있기 때문이요, 셋째는 부처님에게서 양여받았기 때문이요, 넷째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報恩抄文段)」에서 이 네 가지를 「저들은 … 이들은 …」의 대구로 풀고, 그 하나하나에 어서의 문증을 붙였다.
첫째 — 「저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이들은 능히 감당한다」
니치칸 상인은 첫째 까닭의 문증으로 「관심의 본존초」의 다음 구절을 든다.
夫れ文殊師利菩薩は東方金色世界の不動仏の弟子・観音は西方無量寿仏の弟子・薬王菩薩は日月浄明徳仏の弟子・普賢菩薩は宝威仏の弟子なり一往釈尊の行化を扶けん為に娑婆世界に来入す又爾前迹門の菩薩なり本法所持の人に非れば末法の弘法に足らざる者か
무릇 문수사리보살은 동방 금색세계 부동불의 제자요, 관음은 서방 무량수불의 제자요, 약왕보살은 일월정명덕불의 제자요, 보현보살은 보위불의 제자다. 일단 석존의 교화를 돕기 위해 사바세계에 들어왔다. 또 이전 · 적문의 보살이다. 본법을 지닌 사람이 아니므로 말법의 홍법에 부족한 자인가.
상인은 여기의 「이전 · 적문」을 이렇게 푼다. 오늘 석존 일대에 설한 적문과 본문, 두 문을 통틀어 「적문」이라 이름한다. 그것이 모두 적(迹)의 가운데서 설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원명자(久遠名字)의 묘법을 「본법」이라 이름한다(久遠名字の妙法を本法と名づくるなり). 관음 · 약왕 등은 적의 가운데 거듭된 교화의 자리에서 적문과 본문의 설법을 들었고, 그것을 능히 지니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 문저에 비침된 구원명자의 묘법의 부촉은 받지 않았다. 대대로 거듭된 교화 어디에서도 그 법을 부촉받지 않았으니 어찌 그것을 지닐 수 있겠는가.
그런데 본화의 보살은 구원명자 이래의 제자로서 이 본법을 받아 지닌 보살이다. 그러므로 이 경을 넓히는 일이 마치 물고기가 물에 익숙하고 새가 허공에서 자재한 것과 같다. 관음 · 약왕 등은 자신이 이미 감당하지 못하므로 이를 넓히지 않고, 니치렌 대성인은 자신이 능히 감당하므로 이를 넓히신다 — 이것이 첫째 까닭에 대한 상인의 풀이다. 정법 · 상법의 선성들은 이 적화 · 타방의 보살들이 그 시대에 나타난 모습이니, 그들이 삼대비법을 넓히지 않은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애초에 그 법을 부촉받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째 — 「저들에게는 입을 근기가 없고 이들에게는 있다」
둘째 까닭의 문증은 「입정관초」다.
天台大師は霊山の聴衆として如来出世の本懐を宣べたもうと雖も時至らざるが故に妙法の名字を替えて止観と号す迹化の衆なるが故に本化の付属を弘め給わず正直の妙法を止観と説きまぎらかす故に有のままの妙法ならざれば帯権の法に似たり、故に知んぬ天台弘通の所化の機は在世帯権の円機の如し、本化弘通の所化の機は法華本門の直機なり
천태대사는 영산의 청중으로서 여래 출세의 본회를 펴셨지만,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 묘법의 명자를 바꾸어 「지관」이라 하였다. 적화의 무리이므로 본화의 부촉을 넓히지 않으셨다. 정직한 묘법을 지관이라 설하여 흐려 놓았으므로 있는 그대로의 묘법이 아니어서 대권(帶權)의 법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알라, 천태가 홍통할 때 교화받은 근기는 재세의 대권의 원기(圓機)와 같고, 본화가 홍통할 때 교화받는 근기는 법화 본문의 직기(直機)다.
천태가 교화한 이들은 이미 대권의 원기, 곧 방편을 띤 채로 원교를 받아들이는 근기였지, 본문의 직기가 아니었다. 그런 근기에게 어찌 본문의 대법을 줄 수 있겠는가. 반면 말법의 중생은 법화 본문의 직기다. 상인은 「직기」를 「곧바로 본인하종(本因下種)의 근기」라고 풀이한다. 말법의 중생은 과거에 심은 선근이 없는 본미유선의 중생이기에 오히려 처음으로 성불의 씨앗을 받아야 할 근기이며, 그렇기 때문에 대성인은 본인하종의 요법인 삼대비법을 넓히신다. 제35장의 「세상이 말세가 되면 사람의 지혜는 얕아지고 불교는 깊어진다」는 원리가 근기의 면에서 다시 확인되는 것이다.
셋째와 넷째 — 부촉과 때
셋째 까닭은 부촉이다. 니치칸 상인은 다시 「관심의 본존초」를 든다.
所詮迹化他方の大菩薩等に我が内証の寿量品を以て授与すべからず、末法の初は謗法の国にして悪機なる故に之を止めて地涌千界の大菩薩を召して寿量品の肝心たる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の衆生に授与せしめ給う
결국 적화 · 타방의 대보살 등에게 나의 내증의 수량품을 주어서는 안 된다. 말법의 처음은 방법의 나라이고 악한 근기이므로 이들을 멈추게 하고, 지용천계의 대보살을 불러 수량품의 간심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염부의 중생에게 주게 하셨다.
여기서 「내증의 수량품」이란 문저의 본인묘(本因妙)의 사(事)를 가리킨다고 상인은 풀이한다. 상인은 이 대목에서 다시 타방 · 본화, 적화 · 본화를 앞뒤로 나누어 자세히 논하지만, 그 요지는 하나다. 부처님은 적화 · 타방의 보살에게 이 법을 맡기지 않고 지용의 보살에게 맡기셨다. 정법 · 상법의 선성들이 이 법을 넓히지 않은 것은 부처님에게서 양여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넷째 까닭은 때다. 부처님은 이미 본화의 보살에게 부촉을 마친 뒤, 그 법이 유포될 때를 바로 가리키셨다. 그것이 약왕품의 「후오백세 중 광선유포」다. 그러므로 상인은 「세 가지 비법은 말법에 유포될 대백법이니, 어찌 정법 · 상법에 이를 홍통하겠는가」라고 맺는다. 이 넷째 까닭은 本文의 뒷부분에서 「때가 그렇게 하는 것일 뿐」과 약왕품의 예언으로 다시 울린다.
종교의 오강과 종지의 삼비 — 「본문」의 삼대비법이라는 이름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의 종의(宗義)의 큰 줄기는 「종교의 오강(五綱)」과 「종지의 삼비(三秘)」로 정리된다. 종교의 오강은 교(敎) · 기(機) · 시(時) · 국(國) · 교법유포의 전후(前後)이고, 종지의 삼비는 본문의 삼대비법이다. 앞의 오강은 어떤 법을 어떤 사람에게 어느 때 어느 나라에서 어떤 순서로 펴야 하는가를 가리는 기준이며, 뒤의 삼비는 그 기준으로 가려낸 말법의 법 그 자체다. 보은초가 제33장까지 일대 성교의 승렬, 시대와 근기, 일본이라는 나라, 정법 · 상법 홍통의 차제를 길게 논한 것은 오강을 논증한 것이었고, 이 장의 삼대비법은 그 결론인 셈이다.
왜 「본문의」 삼대비법이라 하는가. 그것이 본문 수량품의 문저에 비침된 대법이기 때문이다. 대성인은 「소야입도전허어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大覚世尊仏眼を以って末法を鑒知し此の逆・謗の二罪を対治せしめんが為に一大秘法を留め置きたもう……爾の時に大覚世尊寿量品を演説し然して後に十神力を示現して四大菩薩に付属したもう、其の所属の法は何物ぞや……所謂妙法蓮華経の五字・名・体・宗・用・教の五重玄なり
대각세존은 불안으로 말법을 내다보시고 이 역(逆) · 방(謗)의 두 죄를 대치하게 하기 위해 하나의 대비법을 남겨 두셨다. …… 그때 대각세존은 수량품을 연설하시고 그 뒤에 열 가지 신력을 나타내시어 사대보살에게 부촉하셨다. 그 부촉하신 법은 무엇인가. …… 이른바 묘법연화경의 오자로서 명(名) · 체(體) · 종(宗) · 용(用) · 교(敎)의 오중현(五重玄)이다.
本文의 「말법을 위하여 부처님께서 남겨 두신」이라는 말은 이 「일대비법을 남겨 두셨다」와 정확히 겹친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 일대비법, 곧 묘법오자가 그대로 본문의 본존이며, 본존이 계신 곳이 본문의 계단이고, 본존을 믿고 행하는 것이 본문의 제목이라고 본다. 하나의 대비법을 열면 세 가지 비법이 되는 것이다. 이 관계는 수량품 「양의의 비유」의 한 구절로도 풀이된다. 「이 좋은 약을 지금 여기에 남겨 두니 너희는 가져다 먹으라」(是好良薬 今留在此 汝可取服) — 「이 좋은 약」은 본존, 「지금 여기에 남겨 둔다」는 계단, 「너희는 가져다 먹으라」는 제목이다.
「본문의 교주 석존을 본존으로 하라」 — 인본존의 뜻
삼대비법의 첫째에 대해 本文은 「일본 내지 일염부제가 한결같이 본문의 교주 석존을 본존으로 해야 한다」고 하신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이 구절은 인본존(人本尊)을 보이신 것으로 읽는다.
「교주 석존」에는 여러 뜻이 있다. 장교 · 통교 · 별교, 법화경의 적문 · 본문, 그리고 문저에 각각의 교주 석존이 있다. 법화경 적문의 교주는 금생에 처음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시성정각의 부처이고, 본문의 글 위의 교주는 구원실성 오백진점겁의 부처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신 「교주 석존」은 본문 수량품 문저 하종의 교주 석존이다. 곧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며, 말법에 니치렌 대성인으로 출현하신 교주라고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풀이한다.
이렇게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재세의 석존은 서른두 가지 상호로 장엄된 색상장엄의 부처로, 법이 뛰어나고 사람이 못한 법승인렬(法勝人劣)의 부처다. 법화경을 설한 석존도 스스로 법화경을 받들고 그 법에 의해 성불했다. 그러나 구원명자의 교주 석존은 사람과 법이 하나인 인법일개(人法一箇)의 부처다. 범부의 몸 그대로 묘법을 깨달아 그 몸이 곧 묘법인 부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존으로 삼는 교주 석존이란 곧 사행(事行)의 일념삼천의 대만다라라고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본다.
本文은 이어 「이른바 보탑 안의 석가 · 다보, 밖의 제불, 아울러 상행 등의 사보살이 협시가 될 것이다」라고 하신다. 이것은 법화경 허공회의 의식을 빌려 본존의 상모를 말로 보이신 것이다. 「관심의 본존초」에서 「그 본존의 모양은 본사의 사바 위에 보탑이 허공에 머물고, 탑 안의 묘법연화경의 좌우에 석가모니불 · 다보불」(其の本尊の為体本師の娑婆の上に宝塔空に居し塔中の妙法蓮華経の左右に釈迦牟尼仏・多宝仏, 247쪽)이라고 하신 것과 같은 뜻으로, 대성인이 그 의식을 문자로 나타내신 본존을 가리킨다. 이 본존은 말로 이해할 대상이지 그림으로 옮길 대상이 아니다.
본문의 계단과 「다른 일을 버리고」 부르는 제목
둘째의 본문의 계단에 대해 本文은 「둘째는 본문의 계단」이라고 이름만 드실 뿐 그 형모를 더 밝히지 않으신다. 제35장에서 정법 · 상법 이천 년 계단의 역사를 살핀 끝에, 말법에는 본문의 본존이 계신 곳이 뜻으로 계단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전교가 세운 계단이 법화 적문의 계단이었다면, 말법의 계단은 본문의 본존과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본문의 계단이다. 대성인의 계단에 관한 자세한 가르침은 「삼대비법품승사」에서 밝혀지며, 그 글은 계단의 건립에 대해 「때를 기다릴 뿐」(時を待つべきのみ)이라고 맺는다.
셋째의 본문의 제목에 대해 本文은 가장 자세하다. 「일본 내지 한토 · 월지 · 일염부제에서 사람마다 유지 · 무지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다른 일을 버리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러야 한다.」 여기에는 세 겹의 뜻이 담겨 있다. 첫째는 범위다. 일본에서 시작해 중국 · 인도를 거쳐 온 세계에 이른다. 불법이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동쪽을 향해 왔다면, 이 법은 일본에서 서쪽으로 되돌아간다. 둘째는 사람이다. 지혜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는다. 앞서 본 원돈의 대계조차 승려의 수계를 위한 것이었지만, 이 제목은 출가 · 재가, 학식의 유무를 묻지 않는 만인의 수행이다. 셋째는 신행의 자세다. 「다른 일을 버리고」 부른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본문의 제목은 신(信)과 행(行)을 갖춘다. 신은 행의 처음이니 곧 본인묘이고, 행은 신의 마침이니 곧 본과묘다. 이것은 한 찰나의 처음과 끝이며, 한 생각의 인과다. 지금의 本文에서 「한결같이 다른 일을 버리고」는 신심이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른다」는 수행이다. 믿음과 부름이 둘이 아니라 한 찰나에 인과를 함께 갖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성인은 「이 일은 아직 넓혀지지 않았다. 일염부제 안에 부처님 멸후 이천이백이십오 년 동안 한 사람도 부르지 않았다. 니치렌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등이라고 소리도 아끼지 않고 부르는 것이다」라고 선언하신다. 이천이백이십오 년은 부처님 입멸을 기원전 949년으로 보는 전통 연대에 따라 이 글을 쓰신 건치 2년(1276)까지를 헤아린 햇수다. 제34장의 질문자는 「왜 선성들은 이 법을 권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대성인의 대답은 이것이다 — 그 이천여 년 동안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니치렌 한 사람이 부르고 있다. 「한 사람」이라는 말은 고독의 탄식이 아니라 말법의 법이 이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다는 선언이다.
바람과 파도, 뿌리와 가지 — 주(周)와 진(秦)의 고사
대성인은 이어서 여섯 가지 비유를 겹쳐 놓으신다. 바람에 따라 파도의 크고 작음이 있다. 장작에 따라 불의 높고 낮음이 있다. 연못에 따라 연꽃의 크고 작음이 있다. 비의 크고 작음은 용에 달려 있다.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다. 근원이 멀면 흐름이 길다. 모두 결과의 크기가 원인의 크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연꽃과 용의 비유는 앞의 제33장에서 「연꽃을 보고 연못의 크기를 헤아리고 비를 보고 용의 크기를 헤아린다」고 하신 것과 짝을 이룬다.
여기에 역사의 예가 더해진다. 주나라의 칠백 년은 문왕의 예와 효에 의한 것이다. 문왕은 주 왕조의 기초를 닦은 군주로 이상적인 명군으로 꼽힌다. 성은 희, 이름은 창이다. 태공망을 비롯한 많은 명신을 모으고 주위의 여러 부족을 복속시켜 풍(鄷)에 도읍을 정했다. 생전에는 은 왕조에 반기를 들지 않았지만 세력이 강대하여 중국 서부의 지배를 맡아 서백(西伯)이라 불렸다. 그가 죽은 뒤 아들 무왕이 은을 멸하고 주 왕조를 세우면서 그에게 문왕이라는 시호를 올렸다. 주의 치세가 칠백 년이나 이어진 것은 문왕이 예를 두터이 하고 지극히 효성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진나라의 세상이 얼마 가지 못한 것은 시황의 그릇된 도 때문이다. 진 시황의 치세는 37년, 2세 호해의 대는 3년, 3세 자영은 겨우 46일로, 전후 40년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끝났다. 시황의 무도한 다스림이 그 원인이었다.
이 비유와 고사는 모두 바로 다음 구절, 「니치렌의 자비가 광대하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 밖 미래까지도 흐를 것이다」를 이끌기 위한 것이다. 근원이 멀면 흐름이 길고, 문왕의 예와 효가 칠백 년을 지탱했듯, 법을 넓히는 사람의 자비가 광대하면 그 법은 만년을 넘어 흐른다. 법이 얼마나 오래 흐르는가는 그 법을 세운 사람의 자비의 깊이에 달려 있다.
「니치렌이 자비 광대하다면」 — 주사친 삼덕
앞 단에서 세 가지 비법을 밝히시고, 이 단에서는 니치렌 대성인의 주사친 삼덕을 밝히신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 친(親)의 덕「니치렌의 자비가 광대하다면」日蓮が慈悲曠大ならば
- 사(師)의 덕「일본국 일체중생의 눈먼 눈을 뜨게 하는 공덕이 있다」日本国の一切衆生の盲目をひらける功徳あり
- 주(主)의 덕「무간지옥의 길을 막았다」無間地獄の道をふさぎぬ
자비가 광대함은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덕이다. 일체중생의 눈먼 눈을 뜨게 함은 가르쳐 이끄는 스승의 덕이다. 무간지옥의 길을 막음은 중생을 지키는 주군의 덕이다. 「개목초」에서 대성인은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친이다」라는 뜻을 밝히셨는데, 보은초는 그 삼덕을 삼대비법과 나란히 놓는다. 「교주 석존을 본존으로 해야 한다」고 밝히신 바로 뒤에 자신의 삼덕을 밝히신 것은, 니치렌 대성인이 본인묘의 교주 석존이며 말법의 사람의 본존이심을 보이신 것이라고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읽는다.
「만년 밖 미래」라는 말에도 중대한 뜻이 있다. 어떤 부처라도 그 법은 정법 몇 년, 상법 몇 년 하는 식으로 수명이 정해져 있다. 석존의 불법도 정법 천 년, 상법 천 년을 지나 말법에 들면 「백법은몰」하여 이익을 잃는다. 그러나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말법 만년을 넘어 미래 영원의 중생을 구하여 다함이 없다. 바람이 크면 파도가 크고 근원이 멀면 흐름이 길듯, 그 자비가 광대하기 때문이다.
이 공덕은 「전교 · 천태보다도 넘어서고 용수 · 가섭보다도 뛰어나다」. 제35장에서 정법 · 상법의 홍통을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 → 천태 → 전교로 차례로 깊어지게 놓으셨다면, 이 장에서는 그 순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 전교 · 천태, 용수 · 가섭 — 그 모두를 넘는다고 하신다. 홍통의 차제가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다.
「극락 백 년의 수행은 예토 하루의 공덕에 미치지 못한다」
「극락에서 백 년 수행하는 것은 예토에서의 하루의 공덕에 미치지 못하고,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통은 말법의 한때에 못하지 않겠는가.」 이 구절은 용수 · 천친보다도, 천태 · 전교보다도 니치렌 대성인의 공덕이 가장 뛰어남을 밝힌 것이다.
극락은 괴로움이 없고 수행을 가로막는 것이 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의 백 년의 수행보다, 탐 · 진 · 치가 들끓고 박해가 가득한 예토에서의 하루의 수행이 공덕이 크다. 같은 이치로, 정법 · 상법 이천 년 동안 비교적 순탄한 조건에서 행해진 홍통의 공덕은 말법의 한때의 수행에도 미치지 못한다. 제34장과 제35장에서 본 것처럼 정법 · 상법의 선성들도 박해를 받았지만, 그것은 「조금」이었다. 말법은 「황멸도후」의 경문이 온전히 실현되는 시대이며, 그 시대에 법을 넓히는 하루는 이천 년에 맞먹는다.
이 원리는 오늘날 이 법을 지니는 사람의 신앙에 비추어 보아도 뜻이 깊다. 비교적 편한 조건에서 이어 가는 신앙과, 갖가지 어려움과 싸우면서 이어 가는 신앙을 견주어 볼 수 있다. 생활의 조건이 넉넉지 못한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는 것은 한편으로 무척 힘든 일이지만, 바로 그 어려움 속의 하루가 큰 공덕의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움츠러들거나 푸념할 일이 아니며, 반대로 여러 면에서 혜택받은 사람도 방심하지 말고 불도 수행에 힘써야 한다.
「때가 그렇게 하는 것일 뿐」
대성인은 이 모든 공덕을 「오로지 니치렌의 지혜가 현명해서가 아니라 때가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신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으며, 여름은 따뜻하고 겨울은 차가운 것도 때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깊은 말씀이다.
이 말씀은 겸양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가장 강한 확신의 표현이다. 공덕이 개인의 지혜에서 나온다면 그 지혜가 다하면 공덕도 다한다. 그러나 그것이 「때」에서 나온다면, 봄이 오면 꽃이 피듯 아무도 막을 수 없다. 불법에서는 특히 「때」가 중요하다. 「선시초」가 첫머리에서 「무릇 불법을 배우는 법은 반드시 먼저 때를 배워야 한다」고 하셨듯, 보은초 또한 삼대비법의 유포를 때의 필연으로 보신다. 「삼대비법품승사」에서 계단 건립에 대해 「때를 기다릴 뿐」이라고 하신 것도 같은 시간관 위에 있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法華経を信ずる人は冬のごとし冬は必ず春となる, 「묘이치니부인어소식」, 1253쪽)고 하셨다. 누가 의심하든, 누가 원질하든, 누가 반대하고 박해하든, 니치렌 대성인의 삼대비법의 불법이 반드시 온 세계에 유포되고 절대의 공덕이 있으리라는 것은, 겨울이 봄이 되고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보다 확실하다는 것이 이 구절에 담긴 확신이다. 그것은 오로지 「때가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백법이 유포되어 가는 길 위에는 크고 작은 박해와 마찰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난다는 것은 어본불의 금언이다. 그러나 높은 곳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삼대비법은 반드시 온 세계에 유포되어 간다.
약왕품의 예언과 「교주 석존은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本文의 마지막 단은 이 확신의 경문적 근거를 보인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내가 멸도한 후, 후오백세 중에 광선유포하여 염부제에서 단절시켜 악마 · 마민 · 여러 천 · 용 · 야차 · 구반다 등이 그 틈을 얻게 하는 일이 없게 하리라」는 예언이다.
여기 나오는 야차는 범어 야크샤의 음사로 약차라고도 쓰며 포악 등으로 옮긴다. 숲에 사는 귀신으로, 땅의 야차 · 허공의 야차 · 하늘의 야차의 세 부류가 있어 하늘과 허공의 야차는 날 수 있고 땅의 야차는 날지 못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호법신이 되어 북방 다문천왕(비사문천)의 권속이 된다. 구반다는 범어 쿰반다의 음사로, 사람의 정기를 먹는 말 머리에 사람 몸을 한 귀신이다. 불교에서는 호법신이 되어 남방 증장천왕의 권속이 된다. 약왕품은 광선유포를 가로막으려는 이런 존재들이 틈을 얻지 못하리라고 설한다.
대성인은 이 경문이 헛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를 차례로 드신다. 먼저 법화경에서 수기를 받은 성문과 비구니들의 성불이 모두 무너진다.
사리불은 범명 샤리푸트라의 음사로, 신자 · 추로자로 옮긴다. 마갈타국 왕사성 밖 바라문의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여덟 살에 왕사성의 여러 학자와 논의하여 지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육사외도의 한 사람인 산사야에게 사사했으나 뒤에 같은 문하의 목련과 함께 석존에게 귀의했다. 지혜 제일로 불린다. 법화경 비유품 제3에서 방편품 제2에 설한 「제법실상」의 묘리를 깨달아 뛸 듯이 기뻐하였고, 미래에 화광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
가섭은 범명 마하카샤파의 음사로, 대음광이라 옮긴다. 왕사성 바라문 출신으로 석존의 제자가 된 지 여드레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의식주의 욕심에 집착하지 않고 엄격한 수행 생활을 관철하여 두타 제일로 불린다. 석존 멸후 부법장의 제1로서 왕사성 밖 필발라굴에서 첫 번째 불전 결집을 주재했고, 이후 이십 년 동안 소승교를 홍통한 뒤 아난에게 법을 부촉하고 계족산에서 입적했다고 한다. 법화경 신해품 제4에서 수보리 · 가전연 · 가섭 · 목련의 사대성문은 「삼거화택의 비유」를 통해 개삼현일의 불의를 깨닫고, 사리불이 미래 성불의 수기를 받는 것을 눈앞에서 보며 뛸 듯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수기품 제6에서 가섭은 미래에 광명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고, 다른 세 사람도 수기를 받았다.
목건련은 범명 마하마우드갈리야야나의 음사인 마하목건련으로, 대목건련 · 목건련이라고도 쓰며 목건 · 목련은 줄인 이름이다. 마갈타국 왕사성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사리불과 함께 산사야에게 사사했으나, 석존의 가르침을 구하여 이백오십 명의 제자와 함께 불제자가 되었다. 신통 제일로 불린다. 『우란분경』에 따르면 어머니가 아귀도에 떨어진 것을 신통력으로 알았으나 자신의 힘으로는 구하지 못해 석존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공양의 공덕을 회향하여 구했다고 한다. 가섭 · 아난과 함께 비유품의 비유를 듣고 득도하였고 수기품 제6에서 다마라발전단향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아난은 범명 아난다의 음사인 아난타의 약칭이다. 석존을 늘 곁에서 시봉하여 석존이 설한 경에 통달했으며 다문 제일로 불린다. 제바달다의 아우로 석존의 사촌 동생이다. 부처님 멸후 마하가섭의 뒤를 이어 부법장의 제2로서 여러 나라를 다니며 중생을 이익되게 했다. 법화경 수학무학인기품 제9에서 산해혜자재통왕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마하파사파제는 범명 마하프라자파티의 음사로, 마하발랄사발저라고도 쓴다. 석가족 여성의 대표로서 고타미라고도 불리며 교담미로 음사한다. 석존의 이모다. 석존의 생모 마야부인이 석존을 낳은 지 이레 만에 세상을 떠나자, 부인을 대신해 정반왕의 왕비가 되어 석존을 길렀다. 정반왕이 죽은 뒤 출가를 뜻하여 세 번 석존에게 청한 끝에 허락받아 석존 교단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다. 법화경 권지품 제13에서 일체중생희견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야수다라는 범명 야쇼다라의 음사로, 야수 대신의 딸이다. 실달태자의 정비이며 라후라의 어머니다. 석존이 성도한 지 12년째 가비라위국에 돌아왔을 때 교화를 받아 비구니가 되었다. 권지품 제13에서 구족천만광상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수기만이 아니다. 「삼천진점도 희론이 되고 오백진점도 망어가 된다.」 삼천진점겁은 화성유품 제7에 설해진 시간이다. 삼천대천세계의 땅을 갈아 먹물로 만들어 천 개의 국토를 지날 때마다 한 점씩 떨어뜨려 그 먹물을 다 쓰고, 다시 점이 떨어진 곳과 떨어지지 않은 곳의 국토를 모두 티끌로 만들어 한 티끌을 한 겁으로 삼아도 그보다 더 오래된 옛날이다. 그 옛날 대통지승불이 법화경을 설했고, 그 부처의 멸후에 열여섯 왕자가 아버지의 설법을 다시 강설하여 많은 중생을 교화했는데, 그 열여섯째 왕자가 석존이라고 설한다. 오백진점겁은 여래수량품 제16에 설해진 시간이다. 오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의 삼천대천세계를 갈아 티끌로 만들고 동쪽으로 오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의 나라를 지날 때마다 한 티끌씩 떨어뜨려 그 티끌을 다 쓴 뒤, 티끌이 떨어진 세계와 떨어지지 않은 세계를 모두 티끌로 만들어 한 티끌을 한 겁으로 삼아도, 부처가 성불한 이래는 그보다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겁이 더 지났다고 설한다. 석존의 성도가 오백진점겁이라는 아득한 옛날에 있었고, 그 이래 중생과 사제의 인연을 맺어 왔음을 밝혀 영원한 생명을 설한 것이다. 약왕품의 예언이 헛되면 이 두 가지 장대한 설법이 모두 희론과 망어가 된다.
그리하여 「아마도 교주 석존은 무간지옥에 떨어지고, 다보불은 아비의 불길에 숨이 막히며, 시방의 제불은 팔대지옥을 거처로 삼고, 일체의 보살은 일백삼십육의 고통을 받으리라.」 무간지옥은 아비지옥의 뜻을 옮긴 말이다. 아비는 범어 아비치의 음사로 무간으로 옮기며, 대아비지옥 · 아비대성이라고도 한다. 괴로움을 받는 것이 끊임없다는 뜻이며, 「대성」이라 하는 것은 무간지옥이 일곱 겹의 쇠 성과 일곱 층의 쇠 그물로 둘러싸여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욕계의 맨 밑, 대초열지옥 아래에 있다고 하며, 팔대지옥 가운데 다른 일곱보다 천 배나 괴로움이 크다고 한다. 오역죄와 정법을 비방한 자가 떨어진다. 일백삼십육의 고통은 일백삼십육 지옥이다. 팔대지옥마다 열여섯의 소지옥이 있어 소지옥 백이십팔에 대지옥 여덟을 더하면 백삼십육이 된다. 죄의 경중에 따라 떨어지는 지옥이 다르며, 『법화현의』 권6하는 「무거운 자는 백삼십육을 두루 거치고, 중간인 자는 두루 거치지 않으며, 가벼운 자는 다시 줄어든다」(重き者は遍く百三十六を歴、中なる者は遍くせず、下なる者は復た減ず)고 한다.
부처라도 약왕품의 「후오백세 중 광선유포」의 예언이 들어맞지 않는다면 가장 무거운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참으로 엄한 말씀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이것은 부처의 예언은 반드시 들어맞는다는 대확신이다. 그러므로 「어찌 그런 뜻이 있겠는가. 그런 뜻이 없다면 일본국은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이니라」고 맺으신다. 이 결론은 다른 어서의 다음 말씀들과 같은 뜻이다.
剰へ広宣流布の時は日本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唱へん事は大地を的とするなるべし
더욱이 광선유포의 때에는 일본이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를 것은 대지를 과녁으로 삼는 것과 같다.
梵天・帝釈等の御計として日本国・一時に信ずる事あるべし
범천 · 제석 등의 계획으로 일본국이 한꺼번에 믿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성인은 예언을 하는 사람의 자격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현세에 말해 둔 말이 어긋나지 않음으로써 후생을 의심하지 말라」(現世に云をく言の違はざらんをもて後生の疑をなすべからず, 「사도어서」, 957쪽), 「성인이라 함은 삼세를 자세히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聖人と申すは委細に三世を知るを聖人と云う, 「성인지삼세사」, 974쪽). 「입정안국론」에서 예언하신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은 문영 9년(1272)의 내란과 문영 11년(1274)의 몽골 내습으로 나타났고, 대성인은 이것을 당신의 말이 어긋나지 않은 증거로 거듭 말씀하셨다. 현세의 예언이 들어맞았으니, 「일본국은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는 미래의 예언 또한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법을 지니고 넓히는 사람들은 대성인의 이 말씀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자각으로 나아간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정법 · 상법의 선성이 넓히지 않은 정법은 셋, 곧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 · 본문의 제목이다. 그것은 부처님이 말법을 위해 남겨 두신 일대비법을 연 것이며, 그것을 넓히는 니치렌 대성인은 「자비 광대」 · 「맹목을 엶」 · 「무간의 길을 막음」의 주사친 삼덕을 갖춘 말법의 본존이시다. 그 유포는 「때가 그렇게 하는 것」이며, 약왕품의 예언이 그것을 보증한다.
본문
されば花は根にかへり真味は土にとどまる、此の功徳は故道善房の聖霊の御身にあつまるべし、南無妙法蓮華経・南無妙法蓮華経。 建治二年太歳丙子七月二十一日 之を記す 甲州波木井郷身延山より安房の国・東条の郡・清澄山・浄顕房・義成房の許に奉送す
그러므로 꽃은 뿌리로 돌아가고 참맛은 흙에 머무느니라. 이 공덕은 돌아가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니라.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건치 2년 태세 병자 7월 21일 이를 적는다. 갑주(甲州) 하키리향 미노부산에서 아와국 도조군 기요스미산의 조켄보 · 기조보 앞으로 받들어 보낸다.
어구 풀이
- 花は根にかへり꽃은 뿌리로 돌아가고
- 핀 꽃은 지면 그 나무의 뿌리로 돌아가 다시 나무를 기른다. 제자가 이룬 공덕이 그 근원인 스승에게 돌아간다는 비유다.
- 真味は土にとどまる참맛은 흙에 머문다
- 열매의 참된 맛, 곧 생명의 정수는 흙에 머물러 다음 생명을 기른다. 쓰인 말은 「진미(眞味)」이며, 「열매는 흙에 머문다」로 풀어 읽기도 한다.
- 故道善房の聖霊돌아가신 도젠보의 성령
- 도젠보는 대성인이 열두 살에 세이초사에 올랐을 때의 스승이다. 건치 2년(1276), 이 글을 쓰기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대성인은 그 소식을 지난달에 들으셨다고 송문에 적으셨다. 「성령」은 죽은 이의 영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 御身にあつまるべし몸에 모일 것이다
- 삼대비법 광선유포의 공덕이 모두 도젠보에게 모여 돌아간다는 뜻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 구절을 「회향의 글」이라 하였다.
- 建治二年太歳丙子건치 2년 태세 병자
- 1276년. 「태세」는 해의 간지를 나타낼 때 붙이는 말로, 이해의 간지가 병자임을 적은 것이다. 대성인 쉰다섯 살, 미노부에 들어가신 지 3년째 되는 해다.
- 甲州波木井郷身延山갑주 하키리향 미노부산
- 지금의 야마나시현 미노부. 문영 11년(1274) 5월 대성인이 들어가신 곳으로, 하키리 일족의 영지였다.
- 安房の国・東条の郡・清澄山아와국 도조군 기요스미산
- 지금의 지바현 가모가와시. 대성인이 출가하고 건장 5년(1253) 입종 선언을 하신 세이초사가 있는 산이다.
- 浄顕房・義成房조켄보 · 기조보
- 세이초사에서 대성인의 형제자 격이던 두 승려. 本文의 「義成房」은 기조보(義淨房)다. 입종 직후 도조 가게노부의 박해 때 대성인을 숨겨 기요스미를 벗어나게 하였다.
- 奉送す받들어 보낸다
- 존경을 담아 보낸다는 뜻이다. 옛 스승 쪽 사람들에게 보내는 글이기에 대성인은 「받들어」라는 말을 쓰셨다.
일부의 총결 — 「회향의 글」
이 짧은 장은 보은초 한 권 전체의 총결이다.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에서 이 대목을 「회향의 글이다」(廻向の文なり)라고 하였다. 곧 앞 장에서 밝힌 세 가지 비법이 광선유포되는 공덕이 모두 도젠보의 몸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여기에는 엄연한 사실 하나가 놓여 있다. 불법은 자업자득의 인과를 설한다. 자신이 지은 업의 과보는 자신이 받는다. 그 면에서 보면 도젠보는 구제되기 어렵다. 도젠보는 끝내 대성인의 가르침에 온전히 귀의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앞의 제31장에서 대성인 스스로 그 사정을 숨김없이 적으셨다.
故道善房はいたう弟子なれば日蓮をば・にくしとは・をぼせざりけるらめども・きわめて臆病なりし上・清澄を・はなれじと執せし人なり
돌아가신 도젠보는 몹시 아끼던 제자였으므로 니치렌을 밉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겠지만, 지극히 겁이 많았던 데다 기요스미를 떠나지 않으려고 집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대성인은 「이 공덕은 돌아가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다」라고 단언하신다.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삼대비법의 공덕이 그만큼 광대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앞 장에서 밝히셨듯 니치렌 대성인의 대자대비가 말법 만년을 넘어 미래까지 흐르기 때문이다. 자업자득의 인과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제자의 공덕이 스승을 끌어올린다. 끝내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했던 도젠보에게까지 보은을 다하시는 데에, 대성인의 보은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 강한지가 드러난다.
보은초는 「늙은 여우는 무덤을 뒤로하지 않고 흰 거북은 모보의 은혜를 갚는다」(老狐は塚をあとにせず白亀は毛宝が恩をほうず, 「보은초」, 293쪽)는 보은의 도리로 시작했다. 짐승조차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그리고 참된 보은은 불법을 배워 익혀 지자가 되는 데 있다는 것이 첫머리의 논지였다. 그로부터 서른여섯 장을 지나 지자가 되어 찾아낸 법 — 삼대비법 — 의 공덕을 스승에게 돌리는 것으로 한 권이 닫힌다. 보은의 도리로 열고 보은의 실천으로 맺는 수미의 호응이다.
- 요술(제2장)불법을 배워 익혀 지자가 되어야 한다
- 과정(제3~35장)일대 성교의 승렬 · 정법 · 상법의 홍통 · 진언 파절 · 국가 간효
- 발견(제36장)본문의 본존 · 계단 · 제목
「꽃은 뿌리로 돌아가고 참맛은 흙에 머문다」
나무에 핀 꽃은 그 나무의 영광이다. 그러나 꽃은 지면 뿌리로 돌아가 다시 그 나무를 기른다. 열매의 참맛도 결국 흙에 머물러 다음 생명의 양분이 된다. 대성인은 당신이 이룬 삼대비법 홍통의 공덕을 꽃과 열매에, 도젠보를 뿌리와 흙에 비유하셨다. 대성인이라는 꽃을 피운 뿌리는 열두 살의 소년을 받아들여 기른 기요스미의 스승이다. 그러므로 그 꽃이 맺은 공덕은 당연히 뿌리로 돌아간다.
같은 비유를 대성인은 「화과성취어서」에서 더 자세히 펴셨다. 이 어서는 보은초를 받은 조켄보 · 기조보에게 보내신 글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더 깊이 밝힌다.
さればいねは華果成就すれども必ず米の精・大地にをさまる、故にひつぢおひいでて二度華果成就するなり、日蓮が法華経を弘むる功徳は必ず道善房の身に帰すべし・あらたうとたうと、よき弟子をもつときんば師弟・仏果にいたり・あしき弟子をたくはひぬれば師弟・地獄にをつといへり、師弟相違せばなに事も成べからず
그러므로 벼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도 반드시 쌀의 정기가 대지에 거두어진다. 그러므로 움벼가 돋아나 두 번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니치렌이 법화경을 넓히는 공덕은 반드시 도젠보의 몸에 돌아갈 것이다. 아아, 존귀하고 존귀하도다. 좋은 제자를 두면 스승과 제자가 함께 불과에 이르고, 나쁜 제자를 기르면 스승과 제자가 함께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어긋나면 무슨 일도 이룰 수 없다.
벼는 이삭이 여물어 거두어진 뒤에도 그 정기가 대지에 남아, 베어 낸 그루터기에서 움벼가 돋아 다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대성인이 법화경을 넓힌 공덕이 도젠보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 「두 번의 화과성취」다. 스승이라는 대지에 거두어진 제자의 공덕이 스승을 다시 꽃피운다.
이 어서는 이어서 사제의 엄한 원리를 밝힌다. 좋은 제자를 두면 사제가 함께 불과에 이르고, 나쁜 제자를 기르면 사제가 함께 지옥에 떨어진다. 사제가 서로 어긋나면 무슨 일도 이룰 수 없다. 도젠보는 대성인에게 결코 좋은 스승이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대성인은 「좋은 제자」가 됨으로써 그 스승마저 불과로 이끄셨다. 보은초의 맺음은 사제의 길이 스승의 됨됨이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제자의 정진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
두 번의 「남묘호렌게쿄」 — 제목으로 하는 회향
회향(回向)이란 자신이 닦은 선근과 공덕을 돌려 다른 이에게 향하게 하는 것이다. 보통의 추선은 경을 읽거나 불사를 베풀어 그 공덕을 죽은 이에게 돌린다. 그런데 보은초의 회향은 특별한 의식을 덧붙이지 않는다. 「이 공덕은 돌아가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다」라고 하신 바로 뒤에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라는 두 번의 제목이 놓일 뿐이다.
이 두 번의 제목은 앞 장의 한 구절과 겹쳐 읽힌다. 제36장에서 대성인은 「니치렌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등이라고 소리도 아끼지 않고 부르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천이백여 년 동안 아무도 부르지 않은 제목을 홀로 부르시는 그 소리가, 이제 옛 스승의 영전을 향해 울린다. 삼대비법 가운데 본문의 제목이 곧 회향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삼대비법을 밝힌 논문의 맨 끝이 그 제목 자체로 닫힌다는 점에서, 보은초는 논증과 실천이 하나인 글이라 할 수 있다.
도젠보라는 사람과 대성인의 보은
도젠보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대성인은 열두 살에 아와의 세이초사에 올라 수학하셨고, 그때의 스승이 도젠보였다. 조켄보와 기조보는 형제자에 해당하는 이들이었다. 건장 5년(1253) 4월 28일, 대성인은 이 세이초사에서 처음으로 남묘호렌게쿄를 부르셨다. 그러나 지두 도조 가게노부는 강성한 염불자로서 대성인을 박해했고, 세이초사 안의 대중도 대부분 대성인에게 반대했다. 대성인은 조켄보 · 기조보 두 사람이 숨겨 준 덕분에 겨우 기요스미를 벗어나셨다.
그런 상황 속에서 도젠보는 겁이 많고 소심하여 지두의 권위를 두려워하고 세이초사에서의 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했다. 대성인의 가르침이 옳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만년에는 「조금 믿으셨다」고 할 만큼 마음이 움직이기도 했으나, 자신의 처지를 지키려는 두려움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대성인은 제31장에서 「사도까지 갔는데도 한 번도 찾아보지 않으신 일은 법화경을 믿은 것이 아니다」라고까지 적으셨다. 그 같은 스승의 부음을 들으시고 대성인은 「불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잠겨, 달려가서 묘를 두드리며 경을 한 권이라도 읽고 싶다」고 하셨으며, 몸소 갈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이 한 권의 글을 지어 보내셨다.
그러므로 보은초의 맺음은 어떤 이상적인 스승에게 바치는 찬사가 아니다. 겁 많고 흔들렸던 한 사람에게, 그럼에도 그가 자신을 길러 준 스승이었다는 사실 하나로, 자신이 이룬 최고의 공덕을 바치는 일이다. 은혜를 받은 사실은 은혜를 준 사람의 됨됨이로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보은초가 가르치는 보은의 엄격함이며 또한 너그러움이다.
이 맺음은 오늘날 이 법을 지니고 넓히는 사람들에게도 길을 가리킨다. 공덕을 쌓고 은혜를 갚는 길은 삼대비법을 믿고 넓히는 데 있으며, 그 공덕이 부모와 스승, 그리고 일체중생에게 돌아간다. 「보은의 요술은 삼대비법을 믿고 넓히는 데 있다」는 보은초 전체의 결론이 이 회향의 글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확인된다.
날짜와 수신 — 미노부에서 기요스미로
本文은 회향의 말씀과 두 번의 「남묘호렌게쿄」 뒤에 날짜와 수신을 적는다. 「건치 2년 태세 병자 7월 21일 이를 적는다.」 건치 2년은 1276년으로, 대성인이 미노부에 들어가신 지 3년째, 쉰다섯 살 때다. 「태세 병자」는 이해의 간지가 병자임을 밝힌 것이다.
수신은 「갑주 하키리향 미노부산에서 아와국 도조군 기요스미산의 조켄보 · 기조보 앞으로 받들어 보낸다」이다. 보낸 곳과 받는 곳의 지명을 군 · 향 · 산까지 또박또박 적은 이 한 줄에는 미노부와 기요스미 사이의 먼 거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대성인은 도젠보의 묘에 몸소 가고자 하셨으나 「사람들은 둔세라고 여길 터인데 까닭 없이 뛰쳐나가면 끝까지 관철하지 못한다고 여길 것」이기에 가지 않으셨다(제31장). 그 대신 이 글이 미노부에서 기요스미로 갔다. 받는 이는 도젠보가 아니라, 입종 때 대성인을 숨겨 준 두 형제자 조켄보와 기조보다. 本文의 「義成房」은 곧 기조보다.
보은초의 정필은 미노부에 전해졌으나 메이지 8년(1875)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닛코 상인은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에서 대성인의 주요 저술을 들면서 보은초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報恩抄一巻、今開して上下と為す。身延山に於て本師道善房聖霊の為に作り清澄寺に送る日向が許に在りと聞く、日興所持の本は第二転なり、未だ正本を以て之を校えず
보은초 1권. 지금 펼쳐서 상 · 하로 한다. 미노부산에서 본사 도젠보의 성령을 위해 지어 세이초사에 보냈다. 니코의 처소에 있다고 들었다. 닛코가 지닌 본은 두 번 옮겨 쓴 것이며, 아직 정본과 대조하지 못하였다.
이 기록은 보은초가 도젠보의 추선을 위해 지어졌다는 저술 사정을 닛코 상인이 분명히 증언한 것이며, 송문에 나오는 「이 어방」, 곧 글을 가지고 간 니코가 정본을 지니고 있었음을 전한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제37장은 보은초 전체를 맺는 회향의 글이다. 자업자득의 인과로는 구제되기 어려운 스승에게도, 삼대비법의 광대한 공덕과 대성인의 자비는 미친다. 「꽃은 뿌리로 돌아간다」 — 제자가 이룬 공덕은 스승에게 돌아가며, 그것이 보은의 완성이다.
본문
報恩抄送文 御状給り候畢ぬ、親疎と無く法門と申すは心に入れぬ人にはいはぬ事にて候ぞ御心得候へ、御本尊図して進候・此の法華経は仏の在世よりも仏の滅後・正法よりも像法・像法よりも末法の初には次第に怨敵強くなるべき由をだにも御心へあるならば日本国に是より外に法華経の行者なしこれを皆人存じ候ぬべし、 道善御房の御死去の由・去る月粗承わり候、自身早早と参上し此の御房をも・やがてつかはすべきにて候しが自身は内心は存ぜずといへども人目には遁世のやうに見えて候へばなにとなく此の山を出でず候、 此の御房は又内内・人の申し候しは宗論や・あらんずらんと申せしゆへに十方にわかて経論等を尋ねしゆへに国国の寺寺へ人をあまたつかはして候に此の御房はするがの国へつかはして当時こそ来て候へ、
보은초 송문 보내신 글은 잘 받았느니라. 친하든 소원하든 가리지 않고, 법문이라는 것은 마음에 두지 않은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 것이니 그리 아시라. 어본존을 그려 드리느니라. 이 법화경은 부처님 재세보다 부처님 멸후, 정법보다 상법, 상법보다 말법의 처음에는 차례로 원적이 강해진다는 것만이라도 아신다면, 일본국에 이 밖에 법화경의 행자는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을 것이니라. 도젠 어방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지난달에 대강 들었느니라. 스스로 서둘러 찾아가고 이 어방도 곧 보내야 했으나, 나 자신은 마음속으로는 그리 여기지 않지만 남의 눈에는 둔세한 것처럼 보이므로 어쩐지 이 산을 나가지 않고 있느니라. 이 어방은 또, 남몰래 사람들이 「종론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기에 시방에 나누어 경론 등을 찾게 하려고 여러 나라의 절들에 사람을 많이 보냈는데, 이 어방은 스루가국에 보냈다가 마침 지금 돌아와 있느니라.
又此の文は随分大事の大事どもをかきて候ぞ詮なからん人人にきかせなば・あしかりぬべく候、又設いさなくとも・あまたになり候はばほかさまにも・きこえ候なば御ため又このため安穏ならず候はんか、 御まへと義成房と二人・此の御房をよみてとして嵩がもりの頂にて二三遍・又故道善御房の御はかにて一遍よませさせ給いては此の御房にあづけさせ給いてつねに御聴聞候へ、 たびたびになり候ならば心づかせ給う事候なむ、恐恐謹言。 七月二十六日 日 蓮 花 押 清澄御房
또 이 글은 상당히 대사 중의 대사를 적은 것이니라. 분별없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지 않을 것이니라. 또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여러 사람에게 퍼져 바깥으로도 들리게 되면, 그대들을 위해서도 또 이 법을 위해서도 안온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대와 기조보 두 사람이 이 어방을 읽는 사람으로 삼아 다카가모리 꼭대기에서 두세 번, 또 돌아가신 도젠 어방의 묘에서 한 번 읽게 하시고, 그 뒤에는 이 어방에게 맡겨 두고 늘 청문하시라. 거듭 듣다 보면 깨닫는 바가 있으리라. 공공근언. 7월 26일 니치렌 화압 기요스미 어방
어구 풀이
- 親疎と無く친하든 소원하든 가리지 않고
- 가까운 사이든 먼 사이든 관계없이. 친분이 법문을 말해 줄 기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 心に入れぬ人마음에 두지 않은 사람
- 법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사람, 곧 신심이 없는 사람.
- 御本尊図して進候어본존을 그려 드린다
- 대성인이 어본존을 써서 조켄보 등에게 주셨다는 뜻이다. 「図す」는 그려 나타낸다는 뜻이다.
- 次第に怨敵強くなるべき차례로 원적이 강해진다
- 법사품의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의 뜻을 재세 · 멸후, 정법 · 상법 · 말법의 세 단계로 펴신 것이다.
- 遁世둔세
- 세상을 버리고 은둔하는 것. 대성인의 미노부 입산은 세상 사람들에게 둔세로 비쳤다.
- 此の御房이 어방
- 보은초를 가지고 기요스미에 간 제자 민부 니코(民部日向). 아와 · 가즈사 방면 출신으로 전한다.
- 宗論종론
- 여러 종이 공적인 자리에서 교의의 우열을 겨루는 논쟁. 대성인은 이에 대비하여 제자들을 여러 나라에 보내 경론을 모으게 하셨다.
- するがの国스루가국
- 지금의 시즈오카현 중부. 닛코 상인이 홍교하던 후지 방면이 여기에 속한다.
- 大事の大事대사 중의 대사
- 본초에서 밝힌 본문의 삼대비법을 가리킨다.
- 詮なからん人人분별없는 사람들
- 법문의 뜻을 헤아릴 줄 모르는, 들어도 소용이 없는 사람들.
- 嵩がもりの頂다카가모리의 꼭대기
- 기요스미산 가까이에 있는 산마루. 옛 어서 판본 가운데에는 「산의 높은 숲」처럼 읽은 것도 있으나 이는 고유한 지명이다.
- よみて읽는 사람
- 낭독자. 니코가 낭독자가 되어 조켄보 · 기조보 두 사람에게 읽어 들려주라는 지시다.
- 清澄御房기요스미 어방
- 수신인. 세이초사의 조켄보를 가리킨다.
송문의 자리 — 닷새 뒤에 쓴 편지
송문은 말할 것도 없이 보은초를 보낼 때 붙인 편지다. 보은초 本文의 날짜가 7월 21일이고 송문은 7월 26일이니, 닷새 뒤에 이 짧은 편지를 덧붙여 니코의 손에 들려 보내신 것이다. 수신은 「기요스미 어방」으로 되어 있고, 편지 안에서 「그대와 기조보 두 사람」이라고 하시므로 직접 받는 이는 조켄보다.
송문은 짧지만 여러 겹의 지시를 담고 있다. 법문을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어본존을 주신 일, 원적이 차례로 강해진다는 것, 도젠보의 부음과 몸소 가지 못한 사정, 사자로 간 제자의 일, 이 글이 「대사 중의 대사」라는 것, 그리고 이 글을 어디서 몇 번 읽을 것인가. 보은초 本文이 논문이라면 송문은 그 논문을 어떻게 받아 지닐 것인가에 대한 실천의 지침이다.
「법문은 마음에 두지 않은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송문의 첫 당부는 「친하든 소원하든 가리지 않고, 법문이라는 것은 마음에 두지 않은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 것이니 그리 아시라」이다. 처음부터 법문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보면, 세이초사 안에는 아직 대성인의 법에 반대하는 세력이 상당히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입종 때 도조 가게노부의 박해가 있었고, 그 뒤에도 엔치보 · 지쓰조보 같은 이들이 대성인에게 적대했다는 사실(제31장)을 떠올리면, 기요스미에서 삼대비법을 말한다는 것은 조켄보 · 기조보에게도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이 말씀은 법을 감추라는 뜻이 아니다. 대성인 자신은 「소리도 아끼지 않고」 제목을 부르셨다(제36장). 다만 법문의 깊은 뜻, 특히 이 글에 적은 「대사 중의 대사」는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들려주면 오히려 비방을 부르고 듣는 사람에게도 말하는 사람에게도 해가 된다. 「친하든 소원하든」이라는 말이 붙은 것도 뜻이 깊다. 기요스미에는 조켄보 · 기조보와 오랜 친분이 있는 승려들이 많았을 것이다. 친분이 있다고 해서 법문을 나눌 상대가 되는 것은 아니며, 기준은 오직 법을 마음에 두는가에 있다.
「어본존을 그려 드린다」
이어서 대성인은 「어본존을 그려 드린다」고 하신다. 앞의 당부가 법문을 아무에게나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곧이어 어본존을 주셨다고 하시니, 조켄보 등은 이미 어본존을 받을 만큼 신심이 깊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입종 때 대성인을 숨겨 기요스미에서 벗어나게 한 두 사람의 행동을, 대성인은 제31장에서 「천하 제일의 법화경의 봉공」이라 하시고 「후생은 의심하지 마시라」고 보증하셨다. 그 두 사람이 이제 어본존을 받아 지니는 사람이 된 것이다.
보은초 本文에서 「본문의 교주 석존을 본존으로 해야 한다」고 밝히신 그 본존이, 송문에서는 「어본존을 그려 드린다」는 구체적인 일로 나타난다. 이론으로서의 삼대비법과 수행의 대상으로서의 어본존이 한 통의 편지 안에서 만난다.
「차례로 원적이 강해진다」 — 일본국의 유일한 법화경의 행자
「이 법화경은 부처님 재세보다 부처님 멸후, 정법보다 상법, 상법보다 말법의 처음에는 차례로 원적이 강해진다는 것만이라도 아신다면, 일본국에 이 밖에 법화경의 행자는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은 보은초 本文 전체의 논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제34장에서 마명 · 용수의 박해로 「황멸도후」의 경문이 「조금」 실감되었다고 하셨고, 제35장에서는 천태 · 전교에게 더 큰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고 본초 중반부에서 대성인은 스스로 당하신 법난을 밝히셨다. 재세 → 멸후, 정법 → 상법 → 말법으로 내려갈수록 원적은 강해진다. 그렇다면 가장 강한 원적을 만난 사람이 경문대로의 법화경의 행자다. 말법의 처음 일본국에서 그런 원적을 만난 사람은 니치렌 대성인 말고는 없다. 이것만 알면 누가 법화경의 행자인지는 저절로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 ①법문은 마음에 두지 않은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心に入れぬ人にはいはぬ事にて候)
- ②어본존을 그려 드린다 (御本尊図して進候)
- ③재세 → 멸후, 정법 → 상법 → 말법의 처음으로 차례로 원적이 강해진다 (次第に怨敵強くなるべき)→ 일본국에 이 밖에 법화경의 행자는 없다
- ④이 글은 대사 중의 대사 (随分大事の大事どもをかきて候ぞ)
- 니코를 낭독자로
- 다카가모리 꼭대기에서 두세 번 (嵩がもりの頂にて二三遍)
- 돌아가신 도젠보의 묘에서 한 번 (故道善御房の御はかにて一遍)
- 니코에게 맡겨 두고 늘 청문 (つねに御聴聞候へ)
몸소 가지 못한 사정과 「이 어방」 니코
「도젠 어방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지난달에 대강 들었다.」 대성인은 스스로 서둘러 기요스미로 가고, 제자도 곧 보내야 했다고 하신다. 그러나 「나 자신은 마음속으로는 그리 여기지 않지만 남의 눈에는 둔세한 것처럼 보이므로」 미노부를 나서지 않으셨다. 제31장에서도 같은 사정을 「불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잠겨 달려가서 묘를 두드리며 경을 한 권이라도 읽고 싶지만」 갈 수 없다고 적으셨다. 미노부 입산은 세 번 국가를 간효하고도 쓰이지 않자 산에 들어가신 것이었으므로, 까닭 없이 산을 나서면 그 뜻이 흐려진다. 대성인의 내심은 둔세가 아니었으나, 세상이 그렇게 보는 이상 그 시선까지 헤아려 처신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자로 간 사람이 「이 어방」, 곧 민부 니코다. 니코는 아와 · 가즈사 방면 출신이라고 전하며, 기요스미에 사정이 밝은 사람으로서 이 소임에 맞았을 것이다. 송문은 니코가 그 무렵 스루가 방면에 파견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남몰래 사람들이 종론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기에」, 대성인은 여러 종과의 공적인 논쟁에 대비하여 시방에 제자들을 나누어 보내 여러 나라의 절에서 경론을 찾아 모으게 하셨다. 니코는 스루가로 갔다가 마침 돌아와 있었으므로 기요스미로 보내진 것이다.
니코의 스루가 파견에는 후지 방면에서 홍교하던 닛코 상인을 돕는 뜻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체동심사」에 「호키보 · 사도보 등의 일」(はわき房さど房等の事, 1463쪽)이라는 말이 보이는데, 여기서 사도보가 곧 니코이며 호키보는 닛코 상인이다. 후지 방면의 홍교가 얼마나 활발했는지는 닛코 상인 직계의 많은 제자 · 단나의 활동이 전해지는 것으로도, 그리고 이로부터 2~3년 뒤에 일어난 아쓰하라 법난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대사 중의 대사」 — 왜 함부로 들려주지 말라 하셨는가
「또 이 글은 상당히 대사 중의 대사를 적은 것이다.」 대사 중의 대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니치렌 대성인의 출세의 본회인 삼대비법의 가르침에 다름 아니다. 제36장에서 살폈듯, 오대부 가운데 앞선 네 어서는 삼대비법의 명목을 아직 드러내지 않았고, 보은초에서 처음으로 본존 · 계단 · 제목의 세 이름이 정법 · 상법 홍통사의 결론으로 나란히 밝혀졌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두 가지를 경계하신다. 하나는 「분별없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법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법문은 비방의 빌미가 될 뿐이다. 다른 하나는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여러 사람에게 퍼져 바깥으로도 들리게 되면, 그대들을 위해서도 또 이 법을 위해서도 안온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도 들려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결국 신심 없는 이들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그러면 기요스미에 있는 조켄보 · 기조보의 신변이 위태로워지고, 아직 넓혀질 때를 기다리는 법 자체도 해를 입는다. 첫머리의 「마음에 두지 않은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다」와 이 경계가 송문의 처음과 끝을 감싸고 있다.
다카가모리에서 두세 번, 묘 앞에서 한 번
송문의 마지막 지시는 구체적이다. 「그대와 기조보 두 사람이 이 어방을 읽는 사람으로 삼아 다카가모리 꼭대기에서 두세 번, 또 돌아가신 도젠 어방의 묘에서 한 번 읽게 하시고, 그 뒤에는 이 어방에게 맡겨 두고 늘 청문하시라.」
왜 다카가모리 꼭대기인가. 세이초사 경내가 아니라 산마루를 고르신 데에는, 앞에서 경계하신 대로 이 글이 기요스미의 반대 세력에게 들리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 눈을 피한 산마루에서 세 사람만이 두세 번 이 글을 읽는다. 그리고 도젠보의 묘 앞에서 한 번 읽는다. 앞의 것이 살아 있는 제자들이 법문을 배우는 낭독이라면, 뒤의 것은 돌아가신 스승의 영전에 보은의 글을 올리는 추선의 낭독이다. 논문으로서의 보은초와 회향의 글로서의 보은초가 이 두 장소에서 각각 읽히는 것이다.
대성인의 이 지시는 그대로 실행되었다. 뒷날 대성인은 조켄보 · 기조보에게 보내신 「화과성취어서」에서 「그런데 건치 무렵 돌아가신 도젠보 성인을 위해 두 통의 글을 써서 보내 드린 것을 다카가모리에서 읽게 하셨다니 매우 기쁘다」(さては建治の比・故道善房聖人のために二札かきつかはし奉り候を嵩が森にてよませ給いて候よし悦び入つて候, 900쪽)고 하셨다.
「다카가모리(嵩がもり)」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옛 어서 판본 가운데 이를 「산의 높은 숲」 또는 「산 높은 숲」처럼 보통명사로 읽은 것이 있었으나, 이는 기요스미 가까이 있는 산의 고유한 이름으로 읽어야 한다.
그 뒤에는 이 글을 니코에게 맡겨 두고 「늘 청문하라」고 하신다. 한두 번 읽고 끝낼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듭 듣다 보면 깨닫는 바가 있으리라」고 맺으신다. 이 한 마디에는 보은초를 받는 사람에 대한 대성인의 기대가 담겨 있다. 대사 중의 대사는 단번에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 듣는 가운데 마음에 스며들어 깨달음이 된다. 보은초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듭 읽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송문은 보은초를 받아 지니는 법을 가르친다. 법문은 마음에 두는 사람에게 말하고, 대사 중의 대사인 삼대비법은 신중히 지키며, 스승의 묘 앞에서 회향하고, 거듭 들어 깨닫는다. 원적이 차례로 강해지는 말법의 처음에 그 원적을 한 몸에 받은 니치렌 대성인이 일본국의 유일한 법화경의 행자이시다.
이 편을 맺으며
이 편은 하나의 물음으로 시작했다. 「이 법이 참으로 훌륭하다면 어찌하여 선성들은 이를 권하지 않았는가.」 대성인은 이것이 법이 깊어질 때마다 되풀이된 「옛날의 힐난」임을 보이셨다. 정법 시대의 마명 · 용수는 가섭 · 아난의 권위를 앞세운 소승의 무리에게 「불법의 원수」로 몰려 밤낮으로 악구와 장목을 받았고, 제바보살과 사자존자는 목숨을 잃었다(제34장). 상법 시대의 천태는 남삼북칠에게서 「죽이면 매를 죽인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전교는 남도의 여러 종에게서 「법사를 닮은 큰 메뚜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래도 「경문이 분명하였으므로」 예산의 대승계단은 세워졌다. 그리고 그 홍통은 「내증은 같으나 유포는 뛰어나다」 — 세상이 말세가 될수록 사람의 지혜는 얕아지고 불교는 깊어진다(제35장).
그 차제의 끝에서 대성인은 정법 · 상법의 누구도 넓히지 않은 세 가지 정법을 밝히셨다. 본문의 본존, 본문의 계단, 본문의 제목이다. 그것은 부처님이 말법을 위해 남겨 두신 일대비법을 연 것이며, 선성들이 넓히지 않은 것은 감당할 사람 · 입을 근기 · 부촉 · 때의 네 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니치렌이 자비 광대하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 밖 미래까지도 흐를 것이다」라는 선언에는 주사친 삼덕이 담겨 있고, 「때가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라는 말씀과 약왕품의 예언이 그 유포를 보증한다(제36장).
그리고 그 공덕 전부가 옛 스승에게 돌아간다. 「꽃은 뿌리로 돌아가고 참맛은 흙에 머문다. 이 공덕은 돌아가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다」(제37장). 송문은 이 「대사 중의 대사」를 함부로 들려주지 말고, 다카가모리 산마루에서 두세 번, 스승의 묘 앞에서 한 번 읽고, 거듭 들어 깨달으라고 당부한다.
이로써 보은초 여덟 편은 끝난다. 첫 편 「보은의 도리와 여러 종의 미란」에서 늙은 여우와 흰 거북의 비유로 세운 보은의 도리는, 불법을 배워 익혀 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요술을 거쳐, 일대 성교의 승렬과 정법 · 상법의 홍통, 진언 파절과 국가 간효를 지나, 마침내 삼대비법의 발견과 그 공덕의 회향으로 완성되었다. 보은초 전체의 구성과 저술의 유래는 허브 「보은초」에서 다시 한눈에 볼 수 있다.
더 읽기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보은초」 · 「보은초 송문」,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293–330쪽
- 「관심의 본존초」 · 「선시초」 · 「법화취요초」 · 「입정관초」 · 「조닌초」 · 「소야입도전허어서」 · 「소야전답서」 · 「사도어서」 · 「성인지삼세사」 · 「제법실상초」 · 「우에노전답서」 · 「묘이치니부인어소식」 · 「화과성취어서」 · 「이체동심사」, 같은 어서전집
- 닛코 상인,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 같은 어서전집 1601–1609쪽
- 『묘법연화경』(법사품 제10 · 화성유품 제7 · 여래수량품 제16 · 약왕보살본사품 제23 등), T9 no.262
- 『부법장인연전』 · 『마하마야경』 · 『능가경』 · 『관불삼매경』 · 『대지도론』 · 『법화현의』 T33 no.1716 · 『번역명의집』
- 니치칸 상인, 「보은초 문단」(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연구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On Repaying Debts of Gratitude」 수록)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