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와 기요스미산 위에서 내려다본 해 뜨기 직전의 태평양 수평선과 산 위의 작은 절 지붕

지은보은과 제목의 간심

보은초 · 제7편 · 제30~33장

報恩抄 — 知恩報恩と題目肝心어서 321–326쪽
저술
건치 2년(1276) 7월 21일 · 미노부
장
제30~33장
쪽수
어서 321:14–326:11
받는 이
아와 세이초사의 조켄보 · 기조보

여덟 편 · 보은초 37장 구성도

37장 + 송문 → 여덟 편
  1. 序講293 앞저술의 유래 · 대의 · 원의
  2. 보은의 도리와 불법을 배우는 길
  3.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4.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5.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6.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
  7.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
  8. 지은보은과 삼대비법
  9. 지은보은과 삼대비법

제6편까지 대성인은 인도 · 중국 · 일본 삼국의 불교사를 법화경 한 경의 잣대로 판정하시고, 진언이 나라를 어지럽힌 근원임을 밝히셨다. 제7편은 그 판정을 내리신 대성인 자신에게로 눈을 돌린다. 「이 일은 일본국 가운데 다만 니치렌 한 사람만이 알고 있다」 — 알기에 말씀하셨고, 말씀하셨기에 이즈 · 다쓰노구치 · 사도의 대난을 받으셨으며, 그 모든 것이 부모 · 스승 · 삼보 · 국가의 은혜를 갚기 위한 것이었다고 술회하신다. 이어서 이 글을 쓰게 한 옛 스승 도젠보의 신앙을 엄하게 판정하시면서도, 불에 들어가고 물에 빠져서라도 그 묘를 찾고 싶다는 마음을 감추지 않으신다. 그리고 갑자기 묻는다 — 법화경 스물여덟 품 가운데 무엇이 간심인가. 도젠보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법화경의 간심을 묻는 물음으로 바뀌는 곳, 보은의 이야기가 남묘호렌게쿄의 법체로 넘어가는 경첩이 이 편이다.

「보은초」의 여덟 편은 네 갈래로 이어진다. 보은의 도리와 불법을 배우는 길을 세우는 제1편, 정법 · 상법 시대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을 따라가는 제2~4편,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을 다루는 제5 · 6편, 그리고 지은보은과 삼대비법을 밝히는 제7 · 8편이다. 제7편은 마지막 갈래의 앞부분으로, 제6편에서 진언 파절을 맺은 뒤 대성인 자신의 보은과 법화경의 간심을 밝혀 제8편의 삼대비법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된다.

이 편의 네 장은 겉으로 보면 두 가지 다른 이야기이다. 제30 · 31장은 대성인의 법난의 생애와 옛 스승 도젠보, 그리고 세이초사의 사람들에 관한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제32 · 33장은 경의 제목과 부처의 이름, 법운 · 천태 · 장안 · 묘락의 풀이, 갖가지 비유로 이루어진 교학의 문답이다. 그러나 두 이야기는 하나의 물음으로 이어져 있다. 자업자득의 과보로 스스로 구원받기 어려운 도젠보를 무엇이 구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이 「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 다섯 자」, 곧 남묘호렌게쿄이며, 이 법이 마침내 본문의 삼대비법으로 드러날 때 본초의 마지막 말씀 「이 공덕은 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다」가 성립한다.

이 편의 장

第30章日蓮大聖人の知恩報恩제30장 니치렌 대성인의 지은보은 — 「니치렌 한 사람만이 안다」는 확신에서 시작해 이즈 유배 · 다쓰노구치 · 사도 · 미노부 입산까지, 법난의 생애 전체를 사은에 대한 보은으로 술회하시다
第31章道善房への報恩제31장 도젠보에 대한 보은 — 자업자득의 엄정함으로 옛 스승의 신앙을 판정하시면서도 그를 그리는 마음과, 조켄보 · 기조보의 「천하 제일의 법화경에 대한 봉공」을 말씀하시다
第32章略して題目肝心を示す제32장 간략히 제목의 간심을 보이다 — 경의 제목과 부처의 이름이 그 전체를 거두듯 묘법연화경 다섯 자가 일체경의 간심이며, 우자라도 그 제목을 부르는 공덕이 크다는 것을 보이시다
第33章広く題目肝心を明かす제33장 널리 제목의 간심을 밝히다 — 여섯 가지 견해를 넘어 「남묘호렌게쿄가 간심」이라 단정하시고, 결집 · 네 사람의 풀이 · 일곱 비유 · 여섯 비유로 그 법체가 일체의 작용을 거둠을 밝히시다
제30장 니치렌 대성인의 지은보은
어서 321쪽 14행 ~ 323쪽 5행 · 第30章 日蓮大聖人の知恩報恩

본문

本文 · 一어서 321쪽 14행 ~ 322쪽 3행
本文 · 어서 원문

此の事・日本国の中に但日蓮一人計りしれり、いゐいだすならば殷の紂王の比干が胸を・さきしがごとく夏の桀王の竜蓬が頚を切りしがごとく檀弥羅王の師子尊者が頚を刎ねしがごとく竺の道生が流されしがごとく法道三蔵のかなやきをやかれしがごとく・ならんずらんとは・かねて知りしかども法華経には「我身命を愛せず、但無上道を惜しむ」ととかれ涅槃経には「寧身命を喪うとも教を匿さざれ」といさめ給えり、 今度命をおしむならば・いつの世にか仏になるべき、又何なる世にか父母・師匠をも・すくひ奉るべきと・ひとへに・をもひ切りて申し始めしかば案にたがはず或は所をおひ或はのり或はうたれ或は疵を・かうふるほどに去ぬる弘長元年辛酉五月十二日に御勘気を・かうふりて伊豆の国伊東にながされぬ、 又同じき弘長三年癸亥二月二十二日にゆりぬ。

풀이

이 일은 일본국 가운데 다만 니치렌 한 사람만이 알고 있느니라. 이를 말해 내면 은(殷)의 주왕(紂王)이 비간(比干)의 가슴을 가른 것처럼, 하(夏)의 걸왕(桀王)이 용봉(竜蓬)의 목을 벤 것처럼, 단미라왕(檀弥羅王)이 사자존자(師子尊者)의 목을 친 것처럼, 축도생(竺道生)이 유배된 것처럼, 법도삼장(法道三蔵)이 쇠 낙인을 맞은 것처럼 되리라는 것은 미리부터 알고 있었으나, 법화경에는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끼노라」고 설하셨고, 열반경에는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고 훈계하셨느니라. 이번에 목숨을 아낀다면 어느 세상에 부처가 될 것이며, 또 어느 세상에 부모와 스승을 구해 드릴 수 있겠는가 하고 오로지 마음을 굳게 정하여 말하기 시작하였더니, 예상한 그대로 혹은 거처에서 쫓겨나고 혹은 욕을 듣고 혹은 맞고 혹은 상처를 입는 가운데, 지난 홍장(弘長) 원년 신유(辛酉) 5월 12일에 막부의 견책을 받아 이즈국 이토로 유배되었느니라. 또 같은 홍장 3년 계해(癸亥) 2월 22일에 사면되었느니라.

本文 · 二어서 322쪽 3~17행
本文 · 어서 원문

其の後弥菩提心強盛にして申せば・いよいよ大難かさなる事・大風に大波の起るがごとし、昔の不軽菩薩の杖木のせめも我身に・つみしられたり覚徳比丘が歓喜仏の末の大難も此れには及ばじとをぼゆ、 日本六十六箇国・嶋二の中に一日・片時も何れの所に・すむべきやうもなし、古は二百五十戒を持ちて忍辱なる事・羅云のごとくなる持戒の聖人も富楼那のごとくなる智者も日蓮に値いぬれば悪口をはく・正直にして魏徴・忠仁公のごとくなる賢者等も日蓮を見ては理をまげて非とをこなう、 いわうや世間の常の人人は犬のさるをみたるがごとく猟師が鹿を・こめたるににたり、日本国の中に一人として故こそ・あるらめと・いう人なし道理なり、 人ごとに念仏を申す人に向うごとに念仏は無間に堕つるというゆへに、人ごとに真言を尊む真言は国をほろぼす悪法という、国主は禅宗を尊む日蓮は天魔の所為というゆへに我と招ける・わざわひなれば人の・のるをも・とがめず・とがむとても一人ならず、 打つをも・いたまず本より存ぜしがゆへに・かう・いよいよ身も・をしまず力にまかせて・せめしかば禅僧数百人・念仏者数千人・真言師百千人・或は奉行につき或はきり人につき或はきり女房につき或は後家尼御前等について無尽のざんげんをなせし程に最後には天下第一の大事・日本国を失わんと咒そする法師なり、 故最明寺殿・極楽寺殿を無間地獄に堕ちたりと申す法師なり御尋ねあるまでもなし 但須臾に頚をめせ弟子等をば又頚を切り或は遠国につかはし或は篭に入れよと尼ごぜんたち・いからせ給いしかば・そのまま行われけり。

풀이

그 뒤 더욱 보리심을 강성히 하여 말하니, 더욱더 대난이 겹치는 것이 큰 바람에 큰 파도가 이는 것과 같으니라. 옛 불경보살(不軽菩薩)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당한 책망도 내 몸으로 겪어 알게 되었고, 각덕비구(覚徳比丘)가 환희불(歓喜仏)의 말법에 당한 대난도 이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생각되느니라. 일본 66개국과 두 섬 가운데 하루 한때라도 어느 곳에 머물 수 있는 데가 없느니라. 옛날에는 250계를 지니고 인욕하기가 라운(羅云)과 같던 지계의 성인도, 부루나(富楼那)와 같던 지자도 니치렌을 만나면 악구를 내뱉고, 정직하기가 위징(魏徴) · 충인공(忠仁公)과 같던 현자들도 니치렌을 보면 도리를 굽혀 그릇된 일을 행하느니라. 하물며 세간의 보통 사람들은 개가 원숭이를 본 것과 같고 사냥꾼이 사슴을 몰아넣은 것과 같으니라. 일본국 가운데 한 사람도 「무슨 까닭이 있겠지」 하고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것도 도리이니라. 사람마다 염불을 하니,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염불은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하기 때문이며, 사람마다 진언을 존숭하니 진언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악법이라고 말하며, 국주는 선종을 존숭하니 니치렌은 천마의 소행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니라.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이므로 남이 욕하는 것도 탓하지 않으며 — 탓하려 해도 한 사람이 아니니라 — 때리는 것도 아파하지 않으니, 본래부터 각오한 일이기 때문이니라. 이리하여 더욱더 몸도 아끼지 않고 힘닿는 대로 책하였더니, 선승 수백 인 · 염불자 수천 인 · 진언사 백천 인이 혹은 봉행(奉行)에게 붙고, 혹은 권세 있는 사람에게 붙고, 혹은 권세가의 여방(女房)에게 붙고, 혹은 후가니고젠(後家尼御前) 등에게 붙어 끝없는 참언을 하였으므로, 마침내는 「천하 제일의 큰일이다. 일본국을 망하게 하려고 저주하는 법사이다. 고 최명사전(最明寺殿) · 극락사전(極楽寺殿)을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말하는 법사이다. 조사할 것도 없다. 당장 목을 베라. 제자들은 또 목을 베거나 먼 지방으로 보내거나 옥에 넣으라」고 니고젠들이 노하셨으므로 그대로 행해졌느니라.

本文 · 三어서 322쪽 17행 ~ 323쪽 5행
本文 · 어서 원문

去ぬる文永八年辛未九月十二日の夜は相模の国たつの口にて切らるべかりしが、いかにしてやありけん其の夜は・のびて依智というところへつきぬ、又十三日の夜はゆりたりと・どどめきしが又いかにやありけん・さどの国までゆく、 今日切るあす切るといひしほどに四箇年というに結句は去ぬる文永十一年太歳甲戌二月十四日に・ゆりて同じき三月二十六日に鎌倉へ入り同じき四月八日平の左衛門の尉に見参してやうやうの事申したりし中に今年は蒙古は一定よすべしと申しぬ、 同じき五月の十二日にかまくらをいでて此の山に入れり、これは・ひとへに父母の恩・師匠の恩・三宝の恩・国恩をほうぜんがために身をやぶり命をすつれども破れざれば・さでこそ候へ、 又賢人の習い三度国をいさむるに用いずば山林にまじわれと・いうことは定まるれいなり、

풀이

지난 문영(文永) 8년 신미(辛未) 9월 12일 밤에는 사가미국 다쓰노구치에서 베일 뻔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그날 밤은 미루어져 에치(依智)라는 곳에 닿았느니라. 또 13일 밤에는 사면되었다고 떠들썩하였으나 또 어찌된 일인지 사도국까지 가게 되었느니라. 오늘 벤다 내일 벤다 하는 사이에 4년이 지나, 결국은 지난 문영 11년 태세 갑술(甲戌) 2월 14일에 사면되어 같은 해 3월 26일에 가마쿠라에 들어가고, 같은 해 4월 8일 헤이노사에몬노조(平左衛門尉)를 만나 여러 가지를 말한 가운데 「올해는 몽골이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다」고 말하였느니라. 같은 해 5월 12일에 가마쿠라를 나와 이 산에 들어왔느니라. 이는 오로지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국가의 은혜를 갚고자 몸을 깨뜨리고 목숨을 버렸으나, 깨뜨려지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있는 것이니라. 또 현인의 관습으로, 세 번 나라를 간하여 쓰이지 않으면 산림에 섞이라고 하는 것은 정해진 예이니라.

어구 풀이

殷の紂王の比干が胸を・さき은의 주왕이 비간의 가슴을 가르다
은 왕조 마지막 임금 주왕은 달기(妲己)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충신 비간이 거듭 간하자 달기는 「상성(上聖)의 심장에는 구멍이 아홉, 중성은 일곱, 하성은 다섯이 있다는데 비간은 중성이니 갈라 보라」고 부추겼고, 주왕은 그 말대로 비간의 가슴을 갈랐다고 전한다. 그 뒤 은은 더욱 어지러워져 주(周)의 무왕에게 멸망했다.
夏の桀王の竜蓬が頚を切り하의 걸왕이 용봉의 목을 베다
하 왕조 마지막 임금 걸왕은 매희(妺嬉)에게 빠진 폭군이었다. 신하 관용봉(関竜逢)이 간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목을 베었다. 그 뒤 하는 급속히 쇠하여 은의 탕왕에게 망했다고 전한다. 비간과 용봉은 「신하된 자는 죽음으로써 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간신(諫臣)의 본보기로 함께 일컬어진다.
檀弥羅王の師子尊者が頚を刎ね단미라왕이 사자존자의 목을 치다
사자존자는 부법장(付法蔵) 24인의 마지막 전등자로, 학륵야나(鶴勒夜那)에게 법을 받아 계빈국(罽賓国)에서 법을 넓혔다. 이를 시기한 외도가 불제자로 가장해 왕궁에 들어가 화를 일으키고 달아나자, 노한 단미라왕이 존자의 목을 베었다. 피 대신 흰 젖이 솟고, 칼을 든 왕의 오른팔이 땅에 떨어져 이레 뒤 왕이 죽었다고 전한다.
竺の道生が流され축도생이 유배되다
도생은 동진에서 남조 송에 걸친 고승으로, 축법태(竺法汰)에게 출가하고 뒤에 장안에서 구마라집의 문하에 들어가 「집문 사철(四哲)」의 하나로 꼽혔다. 『반니원경』을 배우고 일천제(一闡提)도 성불한다는 뜻을 세웠다가 대중의 원질을 사서 여산(廬山)으로 쫓겨났다. 뒤에 담무참이 옮긴 『열반경』이 전해져 그의 뜻이 옳았음이 증명되었고, 원가 11년(434) 여산의 법좌에서 설법을 마치고 잠들듯 입적했다고 전한다.
法道三蔵のかなやきをやかれ법도삼장이 쇠 낙인을 맞다
북송 휘종 때의 고승. 선화 원년(1119), 도교를 비호하던 휘종이 조칙으로 승려의 칭호를 고치려 하자 법도는 글을 올려 간했다. 노한 휘종은 법도의 얼굴에 불 낙인을 찍어 강남의 도주(道州)로 내쫓았고, 법도는 선화 7년(1125)에 사면되어 돌아왔다고 전한다.
我身命を愛せず、但無上道を惜しむ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끼노라
『묘법연화경』 권지품 제13에서 여러 보살이 부처님 멸후의 악세에 법화경을 넓히겠다고 맹세하는 게송의 한 구절. 대성인은 이 구절을 몸으로 읽는 것을 법화경 행자의 표지로 삼으셨다.
寧身命を喪うとも教を匿さざれ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
『대반열반경』의 훈계. 정법을 알면서 목숨을 아껴 말하지 않는 것을 경계한 문으로, 권지품의 「불애신명」과 짝을 이루어 대성인의 간효의 근거가 되었다.
不軽菩薩の杖木のせめ불경보살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당한 책망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제20의 상불경보살. 위음왕불 멸후 상법 시대에 나타나 「나는 깊이 그대들을 공경하여 감히 가벼이 여기지 않노라. 그대들은 모두 보살도를 행하여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외치며 사중을 예배했고, 증상만의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에게 악구매리와 장목와석(杖木瓦石)의 박해를 받았다. 석존의 과거세의 모습이다.
覚徳比丘が歓喜仏の末の大難각덕비구가 환희불의 말법에 당한 대난
『열반경』 금강신품의 이야기. 환희증익여래의 말법에 정법을 지킨 각덕비구가 파계한 악승들에게 공격받자 유덕왕(有徳王)이 싸워 지켰다. 왕은 온몸에 상처를 입고 죽었으나 호법의 공덕으로 아촉불의 첫째 제자가 되었고, 뒤에 석존으로 태어났다고 설한다.
日本六十六箇国・嶋二일본 66개국과 두 섬
일본 전국을 가리키는 말. 당시 일본은 66개국으로 나뉘어 「66주」라고도 했으며, 이키와 쓰시마는 66개국에 넣지 않고 「두 섬」이라 불렀다.
二百五十戒250계
소승교에서 출가한 비구가 지니는 구족계. 비구니는 500계라 한다. 20세 이상 70세 이하로 몸과 감관이 온전하고 허물이 없는 이에게만 허락되었다.
羅云라운
나후라(羅睺羅)의 다른 이름. 석존이 출가하기 전 야수다라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로, 20세에 출가해 사리불 밑에서 수행하여 「밀행 제일」로 불렸다. 법화경 수학무학인기품에서 도칠보화여래(蹈七宝華如来)의 수기를 받았다.
富楼那부루나
부루나미다라니자의 약칭. 석존의 십대제자 가운데 「설법 제일」. 변론이 뛰어나 많은 사람을 제도하여 후세에 말 잘하는 것을 「부루나의 변」이라 했다.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서 법명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魏徴위징
(580~643) 당 태종을 섬긴 문신. 본래 태종의 큰형 이건성을 섬겼으나, 정적이던 그를 태종이 높이 사 등용하자 감격하여 「인생은 의기에 감응하는 것이니 공명을 누가 다시 논하랴」라는 시를 지었다. 간의대부로 굽힘 없는 직언을 올리며 재상(시중)에 이르렀고, 「정관의 치」를 떠받쳤다. 그가 죽자 태종은 「짐은 거울 하나를 잃었다」고 탄식했다고 전한다.
忠仁公충인공
(804~872) 후지와라노 요시후사(藤原良房). 좌대신 후지와라노 후유쓰구의 둘째 아들로, 신하로서 처음 태정대신과 섭정에 올라 후지와라 북가의 권력 기반을 세웠다. 『정관격식』 · 『속일본후기』 편찬에도 관여했다. 시호가 충인공이다.
故最明寺殿・極楽寺殿고 최명사전 · 극락사전
최명사전은 가마쿠라 막부 제5대 집권 호조 도키요리(北条時頼, 1227~1263)로, 최명사에서 출가해 그렇게 불렸다. 대성인은 문응 원년(1260) 그에게 「입정안국론」을 올리셨다. 극락사전은 도키요리의 연서(連署)를 지낸 호조 시게토키(北条重時)로, 열렬한 염불 신자였으며 그 아들 나가토키가 집권일 때 대성인의 이즈 유배가 행해졌다.
三宝の恩삼보의 은혜
삼보는 불 · 법 · 승. 『구경일승보성론』 제2에 「선근 없는 중생은 백천만 겁을 지나도 얻지 못하니 세간에서 얻기 어려움이 세상의 보배와 같으므로 보배라 한다」는 뜻의 풀이가 있다. 불보는 주사친의 삼덕을 갖춘 부처, 법보는 그 부처가 설한 법, 승보는 그 법을 배워 전해 가는 사람이다. 『심지관경』은 삼보의 은혜를 사은의 하나로 든다.
三度国をいさむるに用いずば세 번 나라를 간하여 쓰이지 않으면
현인의 처신을 말하는 옛 법도. 공자의 『효경』 간쟁장에 「三諫不納奉身以退(세 번 간하여 받아들이지 않으면 몸을 받들어 물러난다)」는 뜻의 말이 있다고 한다.

이 일을 아는 이는 니치렌 한 사람뿐

이 장은 「이 일은 일본국 가운데 다만 니치렌 한 사람만이 알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바로 앞의 제29장은 진언 · 선 · 염불이 차례로 겹쳐 들어온 끝에 승구의 난(1221)에서 고토바 상황이 오히려 패하여 오키로 유배된 일을 들고, 이것은 작은 일일 뿐이며 이제 일본국의 신하와 만민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른 나라에 공격당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맺었다. 「이 일」이란 이 경고 전체, 곧 그릇된 종교와 그릇된 뜻이야말로 민중이 불행해지는 근본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이 두려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일본국 가운데, 아니 온 세계 가운데 대성인 한 분뿐이라는 선언이며, 여기에 대성인의 깊은 확신이 드러난다.

「개목초」에도 같은 뜻의 말씀이 있다.

日本国に此れをしれる者は但日蓮一人なり

일본국에 이것을 아는 사람은 다만 니치렌 한 사람뿐이니라

「개목초」, 200쪽

「개목초」는 이 말에 이어, 이것을 한마디라도 꺼내면 부모 · 형제 · 스승에게까지 국주의 박해가 반드시 닥치고, 말하지 않으면 자비가 없는 것이 된다고 고뇌하신 끝에 「말하자」고 결단하신 경위를 적는다. 본 장의 「이를 말해 내면 … 되리라는 것은 미리부터 알고 있었으나」는 바로 그 결단을 「보은초」의 맥락에서 다시 술회하신 것이다.

도다 조세이 제2대 회장은 「개목초」를 풀면서 이 대목을 두고, 대성인은 명예도 영달도 생각지 않고 범부의 몸으로 신명을 버려 대중을 구하는 일에 나서셨으며, 말법에 오직 한 분이 민중 구제의 대원리를 아셨기에 이분이야말로 성인이요 부처이시고, 이 한마디 속에 대성인의 용맹심과 정신력이 엿보인다고 풀었다. 「알고 있다」는 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안 이상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자비와 책임의 문제라는 뜻이다.

이 장의 주제는 장 제목 그대로 대성인 자신의 지은보은이다. 본초가 밝히는 보은은 부모 · 스승 · 삼보 · 국주의 사은을 들지만, 별(別)해서 말하면 그 중심은 스승의 은혜에 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어떻게 갚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하면 일대 성교와 팔종의 장소(章疏)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제2장 「보은의 요술」의 결론이었으나,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삼대비법의 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며 몸을 아끼지 않고 법을 넓히는 것만이 유일한 지은 · 보은이 된다. 이즈 유배 · 다쓰노구치 법난 · 사도 유배 · 미노부 입산으로 이어지는 대성인의 생애는 말법의 어본불로서 영원한 미래의 일체중생을 구하기 위한 대자대비의 생애였으며, 이 장은 그 생애를 「보은」이라는 한 줄로 꿰어 보이신다.

대성인의 법난과 세 번의 고명
  1. 건장 5년(1253) 4월 28일입종
  2. 문응 원년(1260) 7월 16일「입정안국론」 상서(첫 번째 고명)
  3. 홍장 원년(1261) 5월 12일이즈 이토 유배
  4. 홍장 3년(1263) 2월 22일사면
  5. 문영 원년(1264) 11월 11일고마쓰바라 법난
  6. 문영 8년(1271) 9월 12일다쓰노구치 법난 ·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두 번째 고명
  7. 9월 13일에치
  8. 사도 유배(4년)
  9. 문영 11년(1274) 2월 14일사면
  10. 3월 26일가마쿠라
  11. 4월 8일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세 번째 고명「올해는 몽골이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다」
  12. 5월 12일가마쿠라를 떠나 미노부로
맺음「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국가의 은혜를 갚고자」父母の恩・師匠の恩・三宝の恩・国恩をほうぜんがために
도표 1 · 신명을 버린 보은의 길

죽음으로 간한 신하들과 법을 위해 몸을 버린 사람들

대성인은 말을 꺼내면 어떤 일이 닥칠지를 다섯 가지 옛 일로 드신다. 이 다섯은 두 무리로 나뉜다.

첫째 무리는 세간의 간신(諫臣)이다. 은의 비간과 하의 용봉은 모두 폭군에게 바른말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주왕은 달기의 말에 따라 비간의 가슴을 갈랐고, 걸왕은 용봉의 간언을 듣지 않고 목을 베었다. 두 사람은 「신하된 자는 죽음으로써 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간신의 소임을 목숨과 바꾸어 다했다. 그리고 간언을 물리친 두 왕조는 곧 무너졌다. 주는 무왕에게, 하는 탕왕에게 멸망한 것이다. 이 두 고사가 여기 놓인 까닭은 분명하다. 대성인의 국가 간효 역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근본을 지적하는 간언이며, 그 간언을 물리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구도가 똑같기 때문이다.

둘째 무리는 불법을 위해 몸을 버린 사람들이다. 사자존자는 부법장의 마지막 전등자로서 계빈국에서 법을 넓히다 외도의 모략에 걸려 단미라왕에게 목이 베였다. 축도생은 일천제도 성불한다는 뜻을 세웠다가 대중의 원질로 여산에 쫓겨났는데, 그때 「나의 설이 경의 뜻에 어긋난다면 이 몸에 나쁜 병이 나타날 것이요, 실상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목숨이 다할 때 사자좌에 오르기를 바란다」고 맹세했다고 전한다. 뒤에 『열반경』이 전해져 그의 뜻이 옳았음이 드러났고, 맹세대로 법좌에서 설법을 마치고 입적했다. 법도삼장은 도교를 높이고 불교를 누르려는 휘종에게 간하다 얼굴에 낙인을 맞고 쫓겨났다. 이 세 사람은 법화경의 행자로서 몸을 버려 법을 넓히고 신명을 아끼지 않은 수행의 본보기로 든 것이다.

두 무리를 한자리에 둔 데에는 뜻이 있다. 대성인의 간효는 세간의 간언이면서 동시에 불법의 정사를 가리는 일이다. 나라를 위한 충언과 법을 위한 사신홍법(死身弘法)이 대성인의 한 몸에서 하나로 겹쳐 있으며, 그러므로 그 앞에 닥칠 박해 또한 두 무리가 겪은 박해를 한꺼번에 받는 것이 된다.

앞서 간 사람들
세간의 간신
비간은 주왕에게 가슴이 갈림
관용봉하 걸왕에게 목이 베임
간언을 물리친 왕조는 곧 망함
불법을 위해 몸을 버린 사람들
사자존자단미라왕에게 목이 베임
축도생여산으로 유배
법도삼장휘종에게 얼굴 낙인 · 도주 유배
법화경에 설한 과거의 대난
불경보살장목와석
각덕비구환희증익여래의 말법 · 유덕왕의 호법
대성인「이에는 미치지 못하리라」此れには及ばじ
도표 2 · 미리 알고도 말씀하시다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 — 경문의 명령과 결단

박해가 닥치리라는 것을 다 아시면서도 대성인이 말하기 시작하신 근거는 두 경문이다. 하나는 권지품의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끼노라」요, 다른 하나는 『열반경』의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이다. 앞의 것은 멸후 악세에 법화경을 넓히겠다는 보살들의 서원이고, 뒤의 것은 정법을 숨기는 것을 경계하는 부처님의 유계이다. 대성인의 결단은 개인의 기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경문의 명령을 그대로 받아 행하신 것이라는 점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그 결단의 내용은 「이번에 목숨을 아낀다면 어느 세상에 부처가 될 것이며, 또 어느 세상에 부모와 스승을 구해 드릴 수 있겠는가」이다. 성불과 보은이 한 줄로 이어져 있다. 자신이 부처가 되지 않고서는 부모도 스승도 구할 수 없으며, 부처가 되는 길은 지금 이 생에서 신명을 아끼지 않고 법을 말하는 데 있다. 본초 첫머리에서 세운 「은혜를 갚으려면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가 여기서 실천의 모습으로 완성된다. 지자가 되는 것은 아는 데서 끝나지 않고, 안 것을 목숨 걸고 말하는 데까지 가야 비로소 보은이 된다.

이렇게 말하기 시작하시자 「혹은 거처에서 쫓겨나고 혹은 욕을 듣고 혹은 맞고 혹은 상처를 입는」 박해가 이어졌다. 입종 직후 도조 가게노부(東條景信)의 노여움으로 세이초사를 떠나셔야 했던 일, 문응 원년(1260) 「입정안국론」을 올리신 뒤 가마쿠라 마쓰바가야쓰의 초암이 습격당한 일이 그것이다. 그리고 홍장 원년(1261) 5월 12일, 마침내 막부의 견책으로 이즈국 이토에 유배되셨다. 이 유배는 집권 호조 나가토키의 이름으로 행해졌으나, 그 배후에는 나가토키의 아버지이자 열렬한 염불 신자였던 극락사전 호조 시게토키가 있었다고 전한다. 시게토키는 대성인의 파절에 원한을 품었고, 아와 도조 지방의 영지 문제와도 얽혀 대성인을 몹시 미워하여 마쓰바가야쓰 습격을 묵인했다고 하며, 유배 이듬달 갑자기 병들어 그해 11월에 죽었다고 한다.

이즈 유배는 홍장 3년(1263) 2월 22일에 풀렸다. 「성인어난사」는 그 사면의 사정을 이렇게 전한다.

故最明寺殿の日蓮をゆるししと此の殿の許ししは禍なかりけるを人のざんげんと知りて許ししなり

고 최명사전이 니치렌을 사면한 것과 이 어른(호조 도키무네)이 사면한 것은, 허물이 없는데 남의 참언 때문이었음을 알고 사면한 것이니라

「성인어난사」, 1190쪽

곧 이즈 사면은 최명사전 도키요리의 뜻이었다. 도키요리는 「입정안국론」을 받고도 반성하지 않았으나, 대성인에게 죄가 없다는 것만은 알았던 것이다. 박해의 근원이 정당한 법의 집행이 아니라 참언이었다는 사실은 이 장 뒤쪽의 「끝없는 참언」과 그대로 이어진다.

큰 바람에 큰 파도 — 불경보살과 각덕비구

사면된 뒤 대성인은 물러서지 않으셨다. 「그 뒤 더욱 보리심을 강성히 하여 말하니, 더욱더 대난이 겹치는 것이 큰 바람에 큰 파도가 이는 것과 같다.」 바람이 셀수록 파도가 높아지듯 법을 말하는 힘이 강할수록 박해도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법화경 법사품의 「유다원질 황멸도후(猶多怨嫉況滅度後)」, 곧 「여래가 계신 때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 후이랴」는 경문이 그대로 몸에 나타난 모습이다.

대성인은 이 대난을 법화경과 『열반경』이 설하는 과거의 두 대난에 견주신다. 불경보살은 위음왕불 멸후 상법 시대에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 하여 누구에게나 「나는 깊이 그대들을 공경한다」고 예배했으나, 증상만의 사중에게 욕을 듣고 지팡이와 기왓장으로 맞았다. 그러나 불경보살은 끝까지 예배를 멈추지 않았고, 임종에 법화경을 널리 설하자 그를 업신여기고 박해했던 이들이 모두 믿고 따랐다. 다만 그들은 다 없애지 못한 방법의 남은 죄로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서 고통을 받은 뒤 다시 불경보살의 교화를 만나 불도에 머물게 되었다고 설한다. 대성인은 「불경보살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당한 책망도 내 몸으로 겪어 알게 되었다」고 하신다. 경전 속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으로 확인했다는 뜻이다.

각덕비구의 이야기는 『열반경』 금강신품에 있다. 환희증익여래의 말법에 정법을 지키는 각덕비구가 파계한 악승들에게 공격받자, 유덕왕이 무기를 들고 싸워 그를 지켰다. 왕은 온몸에 상처를 입고 죽었으나 호법의 공덕으로 아촉불 나라에 태어나 첫째 제자가 되었고, 그것이 뒤의 석존이라고 설한다. 정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공격받으며, 그를 지키는 자에게는 큰 공덕이 있다는 원리가 여기 담겨 있다. 대성인은 「각덕비구가 당한 대난도 이에는 미치지 못하리라」고 하신다.

그리하여 「일본 66개국과 두 섬 가운데 하루 한때라도 어느 곳에 머물 수 있는 데가 없다」. 당시 일본 전국을 가리키는 「66개국과 두 섬(이키 · 쓰시마)」이라는 말을 쓰시어, 나라 안 어디에도 몸 둘 곳이 없었던 처지를 말씀하신다.

지계의 성인과 정직한 현자가 도리를 굽히다

대성인을 미워한 것은 무지한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250계를 지니고 인욕하기가 라운과 같던 지계의 성인도, 부루나와 같던 지자도 니치렌을 만나면 악구를 내뱉고, 정직하기가 위징 · 충인공과 같던 현자들도 니치렌을 보면 도리를 굽혀 그릇된 일을 행한다.」 라운(나후라)은 밀행 제일, 부루나는 설법 제일의 제자이고, 위징은 당 태종이 「거울」이라 부른 직신이며, 충인공 후지와라노 요시후사는 신하로서 처음 섭정에 오른 재상이다. 계율과 지혜와 정직을 대표하는 이 이름들을 빌려, 겉으로는 덕이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대성인 앞에서는 본성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마쿠라 극락사의 닌쇼 료칸(忍性良観) 등을 가리킨다. 료칸은 막부 고관과 그 부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선 사업을 벌여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부처처럼 받들어졌다. 그러나 대성인의 파절을 받자, 대성인의 원품의 법성에 부딪쳐 료칸의 원품의 무명이 맹렬히 타올라 대성인을 원망하고 악구하며 비열한 방법으로 뒤에서 박해를 꾸몄다. 문영 8년(1271) 여름의 기우(祈雨) 대결에서 진 뒤 대성인을 막부에 고소하는 일의 배후가 되었다고 전하는 것도 그 한 예이다. 「개목초」가 권지품의 삼류의 강적 가운데 가장 깊고 무서운 셋째로 든 참성증상만(僭聖増上慢)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이런 비난 앞에서 대성인이 취하신 태도는 「개목초」의 다음 말씀에 잘 드러난다.

皆法華経のゆへなればはぢならず愚人にほめられたるは第一のはぢなり

모두 법화경 때문이므로 부끄러움이 아니니라. 어리석은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이야말로 첫째가는 부끄러움이니라

「개목초」, 237쪽

석존이 외도에게 대악인이라 욕을 듣고, 천태대사가 남북의 학자들에게, 전교대사가 남도의 학자들에게 비방받은 것은 모두 법화경 때문이므로 부끄러움이 아니다. 오히려 그릇된 이들에게 칭찬받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세간의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법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 대성인의 길이었다.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 — 세 종의 파절과 참언의 그물

세간의 보통 사람들은 「개가 원숭이를 본 것과 같고 사냥꾼이 사슴을 몰아넣은 것과 같았다」. 「무슨 까닭이 있겠지」 하고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것을 「도리」라고 하신다. 이유는 셋이다. 사람마다 염불을 하는데 그들에게 「염불은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하고, 사람마다 진언을 존숭하는데 「진언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악법이다」고 말하고, 국주(호조 도키무네)가 선종을 존숭하는데 「선종은 천마의 소행이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당대의 민중 · 귀족 · 무가가 받드는 세 가르침을 정면으로 파하셨으니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이다. 남이 욕해도 탓하지 않고 — 탓하려 해도 상대가 한두 사람이 아니며 — 맞아도 아파하지 않으니,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담담한 말씀 속에, 박해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법을 위해 스스로 택한 길로 받아들이신 대성인의 마음이 있다.

그리하여 「더욱더 몸도 아끼지 않고 힘닿는 대로 책하였더니」, 선승 수백 인 · 염불자 수천 인 · 진언사 백천 인이 권력의 여러 통로를 따라 참언을 퍼뜨렸다. 봉행(막부의 실무 관리), 권세 있는 사람, 그 집안의 여방, 그리고 신분 높은 후가니고젠들이 그 통로였다. 참언의 내용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대성인은 일본국을 망하게 하려고 저주하는 법사이다, 고 최명사전과 극락사전이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말하는 법사이다, 그러니 조사할 것도 없이 당장 목을 베고 제자들도 베거나 유배하거나 옥에 넣으라는 것이었다. 높은 지위의 니고젠들이 노하여 이렇게 요구하자 「그대로 행해졌다」. 정식 심리도 없이 박해가 집행되었다는 이 말씀은, 앞에서 본 「성인어난사」의 「허물이 없는데 남의 참언 때문」과 맞물려 박해의 부당함을 증언한다.

사람마다 염불「염불은 무간지옥에 떨어진다」念仏は無間に堕つ
사람마다 진언을 존숭「진언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악법」真言は国をほろぼす悪法
국주는 선종을 존숭「천마의 소행」天魔の所為
선승 수백 인
염불자 수천 인
진언사 백천 인
참언의 통로
봉행
권세 있는 사람
권세가의 여방
후가니고젠
참언의 내용
  • 나라를 저주하는 법사
  • 최명사전 · 극락사전이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하는 법사
  • 조사할 것 없이 목을 베라
「그대로 행해졌다」そのまま行われけり
도표 3 · 세 종을 파하고 참언을 받다

다쓰노구치에서 미노부까지

늦여름 밤 사가미 해안의 소나무 길과 먼 바다 위의 달 — 사람 없음
그림 · 늦여름 밤 사가미 해안의 소나무 길과 먼 바다 위의 달 — 사람 없음

그 결과가 문영 8년(1271) 9월 12일 밤의 다쓰노구치 법난이다. 대성인은 사가미국 다쓰노구치에서 목이 베일 뻔하셨으나 「어찌된 일인지」 그날 밤은 미루어져 에치에 닿으셨다. 13일 밤에는 사면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또 「어찌된 일인지」 사도 유배가 정해졌다. 두 번 되풀이되는 「어찌된 일인지」라는 표현에는, 사람의 뜻을 넘어선 힘이 작용했다는 깊은 감회가 담겨 있다. 그날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하신 간효가 두 번째 고명이다.

사도에서는 「오늘 벤다, 내일 벤다」 하는 위협 속에 4년이 흘렀다. 그리고 문영 11년(1274) 2월 14일 사면, 3월 26일 가마쿠라 귀환, 4월 8일 헤이노사에몬노조와의 대면이 이어진다. 그 자리에서 대성인은 「올해는 몽골이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세 번째 고명이다. 문응 원년(1260) 「입정안국론」의 상서, 문영 8년 다쓰노구치 법난 때의 간효와 함께 세 번의 국가 간효가 여기서 완결된다. 그리고 그해 10월, 몽골군은 실제로 쓰시마 · 이키를 거쳐 규슈 북부에 이르렀다(문영의 역). 「입정안국론」이 경문에 비추어 예고한 타국침핍난이 현실이 된 것이다.

같은 해 5월 12일, 대성인은 가마쿠라를 떠나 「이 산」, 곧 미노부에 들어가셨다. 이 장의 날짜들은 「보은초」를 쓰신 미노부의 자리에서 지난 십수 년의 법난을 하나하나 되짚으신 것이며, 그 하나하나가 보은의 발걸음이었다.

대성인의 법난은 대성인 한 분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성인의 법을 이어 온 사람들의 역사 또한 박해와 법난의 역사였으며, 에도 시대에도 투옥 · 추방 · 유배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법을 바르게 넓히는 곳에 반드시 난이 따른다는 원리가 시대를 넘어 되풀이된 것이다.

몸을 깨뜨려도 깨뜨려지지 않았다 — 사은과 「세 번의 간언」

이 모든 것을 대성인은 한 문장으로 맺으신다. 「이는 오로지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국가의 은혜를 갚고자 몸을 깨뜨리고 목숨을 버렸으나, 깨뜨려지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있는 것이다.」 지난 이십여 년의 법난은 모두 사은을 갚기 위한 것이었다. 몸을 버리려 했으나 버려지지 않았다는 말씀에는, 목숨을 건 실천과 그것을 지켜 낸 불가사의한 가호가 함께 담겨 있다.

여기서 드신 사은은 부모 · 스승 · 삼보 · 국가이다. 「사은초」의 사은(일체중생 · 부모 · 국왕 · 삼보)과 견주면 일체중생의 은혜 대신 스승의 은혜가 들어가 있다. 이 글이 옛 스승 도젠보를 위한 보은의 글이므로 스승의 은혜를 따로 열어 보이신 것이다. 삼보의 은혜에 대해서는 『구경일승보성론』이 삼보를 보배라 부르는 까닭을, 선근 없는 중생은 백천만 겁을 지나도 얻을 수 없어 세간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 세상의 보배와 같기 때문이라고 풀었다. 그토록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난 은혜를 갚는 길도, 결국 그 법을 넓히는 데 있다.

그리고 「현인의 관습으로, 세 번 나라를 간하여 쓰이지 않으면 산림에 섞이라고 하는 것은 정해진 예이다」. 『효경』 간쟁장의 「三諫不納奉身以退(세 번 간하여 받아들이지 않으면 몸을 받들어 물러난다)」에 해당하는 옛 법도이다. 세 번의 고명을 다하신 대성인이 미노부에 들어가신 것은 이 현인의 법도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대성인은 「내 마음에는 둔세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둔세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하신다. 미노부 입산은 세상을 버린 은둔이 아니라, 국가 간효를 다한 뒤 제자를 기르고 법을 후세에 남기는 새로운 투쟁의 자리였다. 이 「보은초」 자체가 바로 그 미노부에서 쓰인 글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보은의 요체는 사은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 머물지 않고, 신명을 아끼지 않고 정법을 말하여 스스로 부처가 되고 부모 · 스승 · 일체중생을 구하는 데 있다. 대성인의 법난의 생애 전체가 그 보은의 실천이었다.

제31장 도젠보에 대한 보은
어서 323쪽 5행 ~ 324쪽 3행 · 第31章 道善房への報恩

본문

本文 · 一어서 323쪽 5~15행
本文 · 어서 원문

此の功徳は定めて上三宝・下梵天・帝釈・日月までも・しろしめしぬらん、父母も故道善房の聖霊も扶かり給うらん、但疑い念うことあり目連尊者は扶けんとおもいしかども母の青提女は餓鬼道に墜ちぬ、 大覚世尊の御子なれども善星比丘は阿鼻地獄へ墜ちぬ、これは力のまますくはんと・をぼせども自業自得果のへんは・すくひがたし、故道善房はいたう弟子なれば日蓮をば・にくしとは・をぼせざりけるらめども・きわめて臆病なりし上・清澄を・はなれじと執せし人なり、 地頭景信がをそろしさといゐ・提婆・瞿伽利に・ことならぬ円智・実成が上と下とに居てをどせしをあながちにをそれて・いとをしと・をもうとしごろの弟子等をだにも・すてられし人なれば後生はいかんがと疑わし、 但一の冥加には景信と円智・実成とが・さきにゆきしこそ一のたすかりとは・をもへども彼等は法華経十羅刹のせめを・かほりて・はやく失ぬ、後にすこし信ぜられてありしは・いさかひの後のちぎりきなり、 ひるのともしびなにかせん其の上いかなる事あれども子弟子なんどいう者は不便なる者ぞかし、力なき人にも・あらざりしがさどの国までゆきしに一度もとぶらはれざりし事は法華経を信じたるにはあらぬぞかし・

풀이

이 공덕은 반드시 위로는 삼보, 아래로는 범천 · 제석 · 일월까지도 아실 것이니라. 부모도 고 도젠보(道善房)의 성령도 도움을 받으실 것이니라. 다만 의심스럽게 생각되는 것이 있느니라. 목련존자는 구하려 하였으나 어머니 청제녀(青提女)는 아귀도에 떨어졌고, 대각세존의 아들이지만 선성비구(善星比丘)는 아비지옥에 떨어졌느니라. 이것은 힘닿는 대로 구하려 해도 자업자득의 과보인 쪽은 구하기 어려운 것이니라. 고 도젠보는 몹시 아끼는 제자였으므로 니치렌을 밉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겠지만, 지극히 겁이 많은 데다 기요스미를 떠나지 않으려고 집착한 사람이니라. 지두(地頭) 가게노부가 두려운 것은 물론이고, 제바 · 구가리와 다르지 않은 엔치(円智) · 지쓰조(実成)가 위아래에 자리 잡고 위협하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여,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던 여러 해의 제자들조차 버리신 사람이므로 후생은 어떠할까 의심스러우니라. 다만 하나의 명가(冥加)는 가게노부와 엔치 · 지쓰조가 먼저 죽은 것이 하나의 도움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들은 법화경과 십나찰의 책망을 받아 일찍 죽은 것이니라. 뒤에 조금 믿으셨다는 것은 싸움이 끝난 뒤의 몽둥이이니라. 대낮의 등불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 위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식이나 제자라는 것은 가엾은 것이니라. 힘없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사도국까지 갔을 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으신 것은 법화경을 믿은 것이 아니니라.

本文 · 二어서 323쪽 15행 ~ 324쪽 3행
本文 · 어서 원문

それにつけても・あさましければ彼の人の御死去ときくには火にも入り水にも沈み・はしりたちても・ゆひて御はかをも・たたいて経をも一巻読誦せんとこそ・おもへども賢人のならひ心には遁世とは・おもはねども人は遁世とこそ・おもうらんに・ゆへもなくはしり出ずるならば末へも・とをらずと人おもひぬべし、 さればいかにおもひたてまつれども・まいるべきにあらず、但し各各・二人は日蓮が幼少の師匠にて・おはします、勤操僧正・行表僧正の伝教大師の御師たりしが・かへりて御弟子とならせ給いしがごとし、 日蓮が景信にあだまれて清澄山を出でしにかくしおきてしのび出でられたりしは天下第一の法華経の奉公なり後生は疑いおぼすべからず。

풀이

그렇다고는 하나 너무도 애달프므로,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불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빠지며 달려가서라도 묘를 두드리고 경을 한 권이라도 독송해 드리고 싶었으나, 현인의 관습으로 내 마음에는 둔세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남들은 둔세라고 생각할 터인데 까닭도 없이 뛰쳐나간다면 끝까지 뜻을 관철하지 못하였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그리워하여도 찾아갈 수 없느니라. 다만 그대들 두 분은 니치렌의 어린 시절의 스승이시니라. 근조승정(勤操僧正) · 행표승정(行表僧正)이 전교대사의 스승이었으나 도리어 그 제자가 되신 것과 같으니라. 니치렌이 가게노부에게 원수로 미움을 받아 기요스미산을 나올 때 숨겨 두었다가 몰래 빠져나가게 해 주신 것은 천하 제일의 법화경에 대한 봉공이니라. 후생은 의심하지 마시라.

어구 풀이

上三宝・下梵天・帝釈・日月위로 삼보, 아래로 범천 · 제석 · 일월
대성인의 사신홍법의 공덕을 위로는 불 · 법 · 승의 삼보가, 아래로는 불법을 지키는 제천이 모두 증명한다는 말씀. 공덕이 부처님의 뜻에도 제천의 수호에도 어긋나지 않음을 보이신다.
梵天범천
색계 초선천의 주인인 대범천왕. 본래 인도 신화의 브라흐마로, 만물의 근원 브라흐만을 신격화한 것이다. 불교에 들어와 제석과 함께 불법 수호신이 되었으며, 둘을 아울러 「범석(梵釈)」이라고도 한다.
帝釈제석
산스크리트 샤크로 데바남 인드라의 번역으로, 석제환인 · 천제석이라고도 한다. 본래 인도 신화의 최고신이자 뇌신이었으나 불법에서는 호법의 제천선신이 되었다. 욕계 제2 도리천의 주인으로 수미산 꼭대기 희견성에 살며 삼십삼천을 다스린다. 법화경 서품에서 권속 2만 천자와 함께 회좌에 참석했다.
目連尊者は扶けんとおもいしかども목련존자는 구하려 하였으나
목련(대목건련)은 석존의 십대제자 가운데 「신통 제일」. 『불설우란분경』에 따르면 천안으로 어머니 청제녀가 인색과 탐욕의 죄로 아귀도에 떨어진 것을 보고 밥을 주었으나 입에 들어가기 전에 불꽃이 되었고, 물을 부으니 장작이 되어 더 타올랐다. 석존의 가르침에 따라 시방의 스님들을 공양하여 겨우 구했다고 한다.
善星比丘선성비구
석존이 출가하기 전의 아들이라 한다. 『열반경』 권33에 따르면 출가하여 제4선정을 얻었으나 이것을 참된 열반이라 여기고 고득외도(苦得外道)를 가까이하여 악견을 일으키고, 석존에게 악심을 품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
阿鼻地獄아비지옥
아비대성이라고도 한다. 아비는 산스크리트 아비치의 음역으로 「무간(無間)」이라 옮기며, 고통이 끊임없음을 뜻한다. 일곱 겹의 쇠성과 일곱 층의 쇠그물에 둘러싸여 벗어날 수 없으므로 대성이라 한다. 욕계의 가장 아래, 대초열지옥 밑에 있으며 팔대지옥 가운데 고통이 가장 크다. 오역죄와 정법 비방의 죄를 지은 자가 떨어진다.
自業自得果자업자득의 과보
스스로 지은 업의 과보를 스스로 받는 것. 아무리 큰 힘을 가진 이가 구하려 해도 당사자의 깊은 방법의 업은 대신 없앨 수 없다는 인과의 엄정함을 말한다.
瞿伽利구가리
산스크리트 음역으로 악시자(悪時者) · 수우(守牛) 등으로 옮긴다. 석가족 출신으로 정반왕의 명으로 출가했으나 뒤에 제바달다를 스승으로 삼아 사리불 · 목련을 비방하고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
地頭景信지두 가게노부
도조 가게노부(東條景信). 아와국 도조 지방의 지두(장원의 관리 · 징세를 맡은 막부 쪽 관리)로, 강성한 염불 신자였다. 입종 때 대성인을 핍박했고, 문영 원년(1264) 11월 11일 고마쓰바라 법난의 주모자였다.
円智・実成엔치 · 지쓰조
엔치보(円智房)와 지쓰조보(実成房). 둘 다 세이초사에 머물던 승려로 보이며, 대성인에게 적대했다.
いさかひの後のちぎりき싸움이 끝난 뒤의 몽둥이
「치기리키(乳切木)」는 땅에 세우면 가슴께까지 닿는다고 하여 붙은 이름의 몽둥이로, 짐을 메는 데도 쓰고 몸을 지키는 데도 썼다. 싸움이 끝난 뒤에 몽둥이를 드는 것처럼 때를 놓쳐 아무 소용이 없음을 뜻하며, 바로 뒤의 「대낮의 등불」과 같은 뜻이다.
ひるのともしび대낮의 등불
해가 밝게 비치는 낮에 켠 등불은 쓸모가 없다는 데서, 때를 놓친 일을 비유한다.
遁世둔세
세속을 떠나 산림에 숨는 것. 미노부 입산을 세상 사람들은 둔세로 보았으나 대성인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勤操僧正근조승정
삼론종의 승려. 전교대사가 간무 천황 앞에서 남도 6종 7대사의 고승 십여 인을 논파했을 때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行表僧正행표승정
전교대사를 득도시킨 스승. 뒤에 근조 등과 함께 전교대사에게 귀복했다.
天下第一の法華経の奉公천하 제일의 법화경에 대한 봉공
입종 직후 도조 가게노부의 노여움을 사 기요스미산을 떠나야 했던 대성인을 조켄보와 기조보가 숨겨 몰래 빠져나가게 한 일을 가리킨다. 법화경의 행자를 지킨 일이 곧 법화경에 대한 최고의 봉공이라는 말씀이다.

이 공덕은 위로 삼보, 아래로 제천까지

앞 장에서 사은을 갚고자 신명을 버리신 생애를 술회하신 대성인은 이 장에서 그 공덕의 행방을 말씀하신다. 「이 공덕은 반드시 위로는 삼보, 아래로는 범천 · 제석 · 일월까지도 아실 것이다. 부모도 고 도젠보의 성령도 도움을 받으실 것이다.」 사신홍법의 공덕은 위로 부처님과 법과 승가가 증명하고, 아래로 법화경의 회좌에서 행자 수호를 맹세한 범천 · 제석 · 일천 · 월천이 증명한다. 그러므로 그 공덕은 반드시 부모와 옛 스승에게 미친다는 것이 이 장의 첫째 논지이다.

이 장은 대성인이 옛 스승 도젠보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심정을 말씀하신 대목이다. 본초를 쓰시게 된 직접 계기가 도젠보의 부음이었으므로, 이 장은 「보은초」 전체에서 가장 사사로운 정이 드러나는 곳이면서, 동시에 보은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엄정하게 묻는 곳이기도 하다.

자업자득의 과보는 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성인은 곧바로 「다만 의심스럽게 생각되는 것이 있다」고 하신다. 그 근거로 드신 것이 목련과 선성비구의 두 예이다.

목련은 신통 제일의 제자였다. 『불설우란분경』에 따르면 그는 천안으로 어머니 청제녀가 생전의 인색과 탐욕의 죄로 아귀도에 떨어진 것을 보았다. 밥을 가져가 드렸으나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불꽃이 되었고, 신통으로 물을 부으니 물이 장작으로 변해 더욱 타올랐다. 자력으로는 아무리 해도 구할 수 없었던 목련은 석존의 가르침을 받아 시방의 스님들에게 공양하고서야 겨우 어머니를 구했다. 그러나 이것은 소승의 가르침에 따른 공양으로, 어머니를 아귀도에서 건졌을 뿐 성불시킨 것은 아니었다. 「우란분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詮するところは目連尊者が自身のいまだ仏にならざるゆへぞかし、自身仏にならずしては父母をだにもすくいがたし・いわうや他人をや

결국은 목련존자 자신이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자신이 부처가 되지 않고서는 부모조차 구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남이랴

「우란분어서」, 1429쪽

목련이 법화경에 귀명하여 다마라발전단향불(多摩羅跋栴檀香仏)의 수기를 받았을 때 비로소 어머니 청제녀도 성불할 수 있었다. 앞 장에서 대성인이 「이번에 목숨을 아낀다면 어느 세상에 부처가 될 것이며, 또 어느 세상에 부모와 스승을 구해 드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신 것과 정확히 같은 원리이다.

선성비구는 석존의 출가 이전의 아들이라 한다. 『열반경』 권33에 따르면 그는 출가하여 제4선정까지 얻었으나 그것을 참된 열반으로 착각하고, 고득외도를 가까이하여 악견을 일으켰다. 나아가 아버지인 석존에게 악심을 품어 산 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졌다.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더할 수 없는 인연도 본인의 방법의 업 앞에서는 힘이 없었던 것이다.

대성인은 이 두 예를 들어 「힘닿는 대로 구하려 해도 자업자득의 과보인 쪽은 구하기 어렵다」고 하신다. 인과는 참으로 엄하다. 구하려는 쪽의 힘이 아무리 커도, 구원받을 사람 자신이 정법에 등을 돌린 업은 대신 지워 줄 수 없다. 이 말씀은 도젠보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면서, 동시에 보은이 감상이 아님을 보이는 것이다.

목련존자와 어머니 청제녀
  1. 인색과 탐욕의 죄로 아귀도
  2. 밥은 불꽃, 물은 장작
  3. 소승의 공양으로 아귀도에서만 건짐
  4. 목련이 법화경에서 다마라발전단향불이 되었을 때 어머니도 성불
석존과 선성비구
  1. 제4선정을 열반으로 착각
  2. 고득외도를 가까이함
  3. 석존에게 악심
  4. 산 채로 아비지옥
맺음
「자업자득의 과보인 쪽은 구하기 어렵다」自業自得果のへんは・すくひがたし「자신이 부처가 되지 않고서는 부모조차 구하기 어렵다」(「우란분어서」, 1429쪽)
도표 4 · 구하려 해도 구하기 어려운 것

지극히 겁이 많았던 스승 — 도젠보의 성품

이어서 대성인은 도젠보의 사람됨을 그대로 말씀하신다. 도젠보에게 대성인은 몹시 아끼는 제자였으니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겁이 많은 데다 기요스미를 떠나지 않으려고 집착한 사람」이었다. 지두 도조 가게노부가 두려웠고, 석존 시대의 제바달다 · 구가리와 다르지 않은 엔치보 · 지쓰조보가 절의 위아래에 자리 잡고 위협하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했다. 그래서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던 여러 해의 제자들조차 버렸다」. 권위를 두려워하고 지두를 두려워하고 엔치 · 지쓰조를 두려워하여, 세이초사 주지로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만 마음을 썼던 소심하고 일 없기만을 바라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젠보가 대성인의 스승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곳에는 깊고 깊은 불연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인연을 살리지 못한 것은 도젠보 자신의 겁 많음과 집착이었다. 「본존문답초」는 도젠보를 이렇게 회상하신다.

故道善御房は師匠にておはしまししかども法華経の故に地頭におそれ給いて心中には不便とおぼしつらめども外にはかたきのやうににくみ給いぬ、後にはすこし信じ給いたるやうにきこへしかども臨終にはいかにやおはしけむおぼつかなし地獄まではよもおはせじ又生死をはなるる事はあるべしともおぼへず中有にやただよひましますらむとなげかし

고 도젠 어방은 스승이셨지만 법화경 때문에 지두를 두려워하시어 마음속으로는 가엾게 여기셨겠지만 겉으로는 원수처럼 미워하셨느니라. 뒤에는 조금 믿으신 듯 들렸으나 임종에는 어떠하셨는지 염려되느니라. 지옥까지는 설마 가지 않으셨겠지만 또 생사를 떠나셨으리라고도 생각되지 않으니, 중유(中有)에 떠돌고 계시지나 않을까 탄식하노라

「본존문답초」, 373쪽

「보은초」보다 2년 뒤인 홍안 원년(1278)의 글로 전하는 이 말씀에서도 대성인의 판단은 같다. 마음속의 연민과 겉의 적대, 뒤늦은 조금의 믿음과 불확실한 임종 — 도젠보의 모습은 일관되게 「두려움 때문에 법을 택하지 못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선무외삼장초」(문영 7년, 1270)는 그보다 앞서 대성인이 직접 도젠보를 만나 파절하신 장면을 전한다. 문영 원년(1264) 11월 14일, 고마쓰바라 법난 사흘 뒤 니시조 하나부사의 승방에서 대성인을 만난 도젠보는 이렇게 말했다.

我智慧なければ請用の望もなし、年老いていらへなければ念仏の名僧をも立てず世間に弘まる事なれば唯南無阿弥陀仏と申す計りなり、又我が心より起らざれども事の縁有つて阿弥陀仏を五体まで作り奉る是れ又過去の宿習なるべし、此の科に依つて地獄に堕つべきや

나는 지혜가 없으니 초빙받을 바람도 없고, 나이 들어 기력이 없으니 염불의 이름난 스님을 스승으로 세우지도 않으며, 세간에 퍼진 일이므로 다만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할 뿐이오. 또 내 마음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일의 인연이 있어 아미타불을 다섯 구까지 만들어 모셨으니 이 또한 과거의 숙습일 것이오. 이 죄로 지옥에 떨어지겠소

「선무외삼장초」, 888~889쪽

대성인은 처음에는 온건히 말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셨으나, 생사의 세계는 늙고 젊음이 정해져 있지 않아 다시 만나기 어려우리라 여기시고, 도젠보의 형 도기보(道義房)의 임종이 좋지 않았던 일을 떠올리시며 「아미타불을 다섯 구 만드신 것은 다섯 번 무간지옥에 떨어지실 것」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법화경에는 석가여래가 우리의 친아버지이고 아미타불은 백부라고 설하는데, 백부는 다섯 구나 만들어 공양하고 친아버지는 한 구도 만들지 않았으니 불효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 뒤 도젠보가 법화경을 지니고 석가불을 조성했다는 소식을 들으신 대성인은 「선무외삼장초」에서 그 강한 말이 오히려 사람을 살리는 참된 말(실어 · 연어)이었다고 하셨다.

今既に日蓮・師の恩を報ず定めて仏神・納受し給はんか

이제 이미 니치렌은 스승의 은혜를 갚았노라. 반드시 부처와 신이 받아들이시리라

「선무외삼장초」, 889쪽

그러나 6년 뒤 「보은초」에서 대성인은 도젠보의 신앙을 「싸움이 끝난 뒤의 몽둥이」라고 하신다. 조금 믿기는 했으나 끝내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지두 도조 가게노부강성한 염불 신자 · 고마쓰바라 법난의 주모자
엔치보 · 지쓰조보「제바 · 구가리와 다르지 않은」 세이초사의 승려 — 위아래에서 위협
도젠보기요스미를 떠나지 않으려는 집착
결과여러 해의 제자들조차 버림 · 사도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음
「뒤에 조금 믿으셨다는 것은 싸움이 끝난 뒤의 몽둥이」後にすこし信ぜられてありしは・いさかひの後のちぎりきなり「대낮의 등불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ひるのともしびなにかせん
도표 5 · 도젠보가 두려워한 것들

가게노부와 세이초사 — 대성인이 지키신 절

도젠보가 두려워한 도조 가게노부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세이초사대중중」(건치 2년, 1276)은 이렇게 전한다.

東条左衛門景信が悪人として清澄のかいしし等をかりとり房房の法師等を念仏者の所従にし・なんとせしに日蓮敵をなして領家のかたうどとなり清澄・二間の二箇の寺・東条が方につくならば日蓮法華経をすてんと、せいじやうの起請をかいて日蓮が御本尊の手にゆいつけていのりて一年が内に両寺は東条が手をはなれ候いしなり

도조 사에몬 가게노부가 악인이 되어 기요스미의 기르는 사슴들을 사냥하고 여러 승방의 법사들을 염불자의 종으로 삼으려 하였을 때, 니치렌이 적이 되어 영가(領家) 편을 들어 「기요스미 · 후타마 두 절이 도조 쪽으로 넘어간다면 니치렌은 법화경을 버리겠다」고 맹세한 기청문을 써서 니치렌의 본존의 손에 묶어 기원하였더니 1년 안에 두 절은 도조의 손을 떠났느니라

「세이초사대중중」, 894쪽

가게노부는 염불자의 후원을 업고 천태종이던 기요스미 일산을 염불로 바꾸려 했고, 후타마사까지 영가에게서 떼어 내려 했다. 절에서 기르던 사슴을 사냥한 것은 기요스미에 대한 일종의 시위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성인은 영가와 기요스미 편에 서서 싸우셨고, 1년 안에 소송에서 이겼다. 영가는 대성인의 부모도 은혜를 입은 집안이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세이초사와 영가를 위해 싸우신 은인이며, 도젠보도 그 은의를 느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도젠보는 자기 제자가 지두에게 쫓겨나고 사도에 유배되어도 돕지도 위로하지도 않았다.

본문은 「다만 하나의 명가는 가게노부와 엔치 · 지쓰조가 먼저 죽은 것」이라고 한다. 강한 방법의 사람들이 먼저 죽어 밖에서 누르던 힘이 없어졌으니 하나의 도움이라고는 생각된다. 그러나 그들은 「법화경과 십나찰의 책망을 받아 일찍 죽은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법화경 행자를 박해한 데 대한 현벌이었다.

「싸움 뒤의 몽둥이」 「대낮의 등불」

방해하던 사람들이 사라진 뒤에야 도젠보는 조금 법화경을 믿게 되었다. 대성인은 그것을 「싸움이 끝난 뒤의 몽둥이」, 「대낮의 등불」이라 하신다. 때가 지난 뒤의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신앙은 위험이 사라진 뒤의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 두려움 한가운데서 법을 택하는 일이어야 한다.

이어서 대성인은 「그 위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식이나 제자라는 것은 가엾은 것」이라고 하신다. 부모가 자식을, 스승이 제자를 가엾게 여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도젠보는 「힘없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사도국까지 갔을 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법화경을 믿은 것이 아니다」. 이 판정의 기준은 분명하다. 법화경을 믿는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조금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법화경의 행자가 박해받을 때 그를 지키고 찾아가는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도젠보는 뒤에 조금 마음이 움직였고, 이 장은 자업자득의 과보는 구할 길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본초의 마지막에서 대성인은 「이 공덕은 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다」라고 맺으신다. 이 둘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이 장에서 도젠보의 신앙을 엄정히 판정하신 뒤, 대성인은 다음 장부터 일대 불교의 간요 골수인 삼대비법을 밝히시고, 그 법이 대성인의 대자대비로 말미암아 만년 밖 미래 영원까지 흐르리라고 단언하신 다음에 비로소 그 공덕을 도젠보에게 돌리신다. 도젠보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받기 어려우나, 삼대비법이라는 위대한 법과 그것을 넓히신 제자의 공덕은 그 한계를 넘어선다. 이 장의 엄한 판정과 결말의 회향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삼대비법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드러내기 위한 앞뒤의 짝이다.

불에 들어가고 물에 빠져서라도 — 성묘의 마음과 「둔세」

본문 둘째 단락은 대성인의 인간적인 정이 가장 짙게 드러나는 곳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너무도 애달프므로,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불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빠지며 달려가서라도 묘를 두드리고 경을 한 권이라도 독송해 드리고 싶었다.」 앞 단락의 엄한 판정 바로 뒤에 놓인 이 말씀은 그 판정이 결코 정이 없어서가 아님을 보여 준다. 옳고 그름은 엄정히 가리되, 스승을 그리는 마음은 누구보다 깊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성인은 가지 않으셨다. 「현인의 관습으로 내 마음에는 둔세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남들은 둔세라고 생각할 터인데, 까닭도 없이 뛰쳐나간다면 끝까지 뜻을 관철하지 못하였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 장에서 세 번 간하여 쓰이지 않으면 산림에 섞인다는 현인의 법도에 따라 미노부에 들어가셨으니, 그 뜻을 스스로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이다. 「보은초 송문」도 같은 사정을 말씀하신다.

道善御房の御死去の由・去る月粗承わり候、自身早早と参上し此の御房をも・やがてつかはすべきにて候しが自身は内心は存ぜずといへども人目には遁世のやうに見えて候へばなにとなく此の山を出でず候

도젠 어방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지난달 대강 들었노라. 내 몸이 서둘러 찾아가고 이 어방(니코)도 곧 보내야 했으나, 나 자신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남의 눈에는 둔세한 것처럼 보이므로 어쩐지 이 산을 나서지 않노라

「보은초 송문」, 330쪽

대성인은 직접 가시는 대신 이 「보은초」를 써서 제자 민부 니코(民部日向)에게 들려 보내시고, 다카가모리 꼭대기와 도젠보의 묘 앞에서 읽게 하셨다. 묘를 두드리고 경을 읽고 싶다는 마음은 이 글 자체로 이루어진 것이다.

근조 · 행표와 전교대사 — 어린 시절의 두 스승

본문은 이어서 이 글을 받는 두 사람, 조켄보와 기조보에게로 향한다. 「그대들 두 분은 니치렌의 어린 시절의 스승이시다.」 두 사람은 대성인이 세이초사에서 배우실 때의 사형으로, 어린 대성인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대성인은 이 관계를 전교대사와 그 두 스승에 견주신다.

근조는 삼론종의 승려로, 전교대사가 간무 천황 앞에서 남도 6종 7대사의 고승 십여 인을 논파했을 때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행표는 전교대사를 득도시킨 스승이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전교대사의 스승이었으나 뒤에 근조 등과 함께 전교대사에게 귀복하여 오히려 그 제자가 되었다. 조켄보와 기조보도 처음에는 대성인의 스승이었으나 이제는 대성인의 법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뒤바뀐 이 관계는 법이 사람보다 무겁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한 일을 말씀하신다. 「니치렌이 가게노부에게 원수로 미움을 받아 기요스미산을 나올 때 숨겨 두었다가 몰래 빠져나가게 해 주신 것은 천하 제일의 법화경에 대한 봉공이다. 후생은 의심하지 마시라.」 건장 5년(1253) 입종 직후, 도조 가게노부의 노여움으로 대성인이 기요스미를 떠나셔야 했을 때 두 사람이 대성인을 숨기고 길을 안내해 무사히 빠져나가게 했다. 도젠보가 두려움 때문에 제자를 버렸다면, 이 두 사람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법화경의 행자를 지켰다. 「본존문답초」도 조켄보에게 같은 말씀을 주신다.

貴辺は地頭のいかりし時・義城房とともに清澄寺を出でておはせし人なれば何となくともこれを法華経の御奉公とおぼしめして生死をはなれさせ給うべし

귀하는 지두가 노하였을 때 기조보와 함께 세이초사를 나오신 분이므로, 무엇이 없더라도 이것을 법화경에 대한 봉공으로 생각하시고 생사를 떠나시라

「본존문답초」, 373쪽

「보은초」와 같은 해(건치 2년) 정월의 「세이초사대중중」에도 「조켄 어방 · 기조보 등에게는 말씀해 주시라(浄顕の御房・義城房等には申し給うべし)」고 하여, 대성인이 두 사람을 기요스미에서의 의지처로 여기셨음이 드러난다. 「보은초」가 두 사람 앞으로 보내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법화경의 행자를 지킨 한 번의 행동이 그들의 후생을 보증한다는 것이 이 장의 결론이며, 도젠보에 대한 판정과 정확히 대조를 이룬다.

기요스미산 시절의 대성인

여기서 대성인이 어린 시절 도젠보를 스승으로 배우신 기요스미산 시절을 조금 살펴 둔다.

대성인은 승구의 난(1221)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승구 4년(1222) 2월 16일, 아와국 도조 지방 고미나토의 어부 집안에서 태어나셨다. 아버지는 누키나 시게타다(貫名重忠), 어머니는 기요하라 씨로 우메기쿠(梅菊)라 했다고 전한다. 어려서부터 매우 영특하고 굳센 기질이셨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당시의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어서에 비추어 출가의 동기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당시 성하던 염불을 부르는 사람들이 모두 나쁜 모습을 드러내며 괴롭게 죽어 가는 것을 보시고, 행복해지기 위해 믿는 불법을 믿고서 지옥에 떨어지는 모습에 깊은 의문을 품으셨다. 둘째, 일본에 불교가 팔종 · 십종으로 나뉘어 있는데 어느 것이 참으로 바른 불교인가 하는 의문이다. 셋째, 승구의 난에서 어째서 조정 쪽이 패하고 세 상황이 섬으로 유배되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셋째 의문은 본초 제29장이 다룬 바로 그 사건이다.

대성인은 이 의문들을 하루빨리 풀어 일체중생을 구하고자 덴푸쿠 원년(1233) 5월, 12세에 기요스미산에 올라 배우기 시작하셨다. 당시 불법의 중심은 히에이산이요 정치의 중심은 가마쿠라였으며, 고미나토는 히에이산에서 보면 아득히 먼 변방이었으나 인연이 있어 가까운 기요스미산에 올라 도젠보를 스승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허공장보살에게 「일본 제일의 지자가 되게 해 주소서」라고 기원하셨다. 「본존문답초」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하신다.

生年十二同じき郷の内・清澄寺と申す山にまかり登り住しき、遠国なるうへ寺とはなづけて候へども修学の人なし然而随分・諸国を修行して学問し候いしほどに我が身は不肖なり人はおしへず十宗の元起勝劣たやすくわきまへがたきところに

나이 열둘에 같은 고을 안의 세이초사라는 산에 올라 머물렀느니라. 먼 지방인 데다 절이라고 이름은 붙었으나 배우는 사람이 없었느니라. 그리하여 힘닿는 대로 여러 지방을 다니며 수행하고 학문하였으나 내 몸은 불초하고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어 십종의 근원과 승렬을 쉽게 분별하기 어려웠느니라

「본존문답초」, 370쪽

「선무외삼장초」도 허공장보살에게 세운 원을 전한다.

幼少の時より虚空蔵菩薩に願を立てて云く日本第一の智者となし給へと云云、虚空蔵菩薩眼前に高僧とならせ給いて明星の如くなる智慧の宝珠を授けさせ給いき

어린 시절부터 허공장보살에게 원을 세워 「일본 제일의 지자가 되게 해 주소서」라고 하였더니, 허공장보살이 눈앞에 고승의 모습이 되시어 샛별 같은 지혜의 보주를 주셨느니라

「선무외삼장초」, 888쪽

같은 글은 이어서 「이 여러 경 · 여러 논 · 여러 종의 잘못을 분별하는 것은 허공장보살의 이익과 본사 도젠 어방의 은혜(此の諸経・諸論・諸宗の失を弁うる事は虚空蔵菩薩の御利生・本師道善御房の御恩なるべし)」라고 하신다. 대성인은 자신의 지혜의 출발점에 도젠보의 은혜가 있음을 분명히 인정하셨다. 이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 「보은초」의 출발점이다.

16세에 출가하여 이름을 제쇼보 렌초(是生房蓮長)라 하시고 더욱 엄하게 불법을 궁구하셨다고 전한다. 세이초사는 천태 · 진언을 겸한 절이었고 스승 도젠보는 염불에도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대성인은 도젠보에게 유학의 뜻을 밝히고 먼저 가마쿠라로 가서 정토종 · 선종의 교의를 살피셨고, 이어 히에이산 · 온조사 · 고야산 · 덴노사, 나아가 교토와 여러 시골 절을 찾아 연구하셨다. 「묘호비구니답서」는 그 편력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随分に・はしりまはり十二・十六の年より三十二に至るまで二十余年が間、鎌倉・京・叡山・園城寺・高野・天王寺等の国国・寺寺あらあら習い回り候し程に

힘닿는 대로 뛰어다니며 열둘 · 열여섯 살 때부터 서른둘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동안 가마쿠라 · 교토 · 히에이산 · 온조사 · 고야산 · 덴노사 등 여러 지방 여러 절을 대강 배우며 돌아다녔느니라

「묘호비구니답서」, 1407쪽

「파료칸등어서」에도 먼저 정토종 · 선종을 듣고 뒤에 히에이산 · 온조사 · 고야산 · 교토 · 시골의 여러 곳에서 자타 종의 법문을 배웠으나 자신의 의문이 풀리지 않아, 논사 · 역자 · 인사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경문을 근본으로 삼기로 하셨다는 뜻의 술회가 있다(1292쪽). 이리하여 대성인은 마침내 법화경이야말로 석존 50년 설법의 간요이며 출세의 본회임을, 또 법화경 신력품의 부촉에 따라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말법에 넓혀 일체중생을 구해야 함을 깨달으셨다. 그리고 건장 5년(1253) 4월 28일, 32세에 세이초사 도젠보의 지불당 남면에서 입종을 선언하셨다. 「세이초사대중중」은 그날을 「건장 5년 4월 28일, 아와국 도조 지방 세이초사 도젠의 방 지불당 남면에서 조엔보라는 사람과 몇몇 대중에게 이것을 말하기 시작하였다」고 전한다(894쪽).

  1. 승구 4년(1222) 2월 16일아와국 고미나토에서 탄생
  2. 덴푸쿠 원년(1233) 5월12세, 기요스미산에 올라 도젠보를 스승으로 배움허공장보살에게 「일본 제일의 지자가 되게 해 주소서」
  3. 16세 출가 · 제쇼보 렌초(전승)
  4. 가마쿠라(정토 · 선) · 히에이산 · 온조사 · 고야산 · 덴노사 · 교토 등 유학
  5. 건장 5년(1253) 4월 28일32세, 세이초사 지불당 남면에서 입종
  6. 도조 가게노부의 노여움 · 조켄보 · 기조보의 도움으로 기요스미를 나옴
출가의 세 의문
  1. 염불자의 괴로운 임종
  2. 팔종 십종 가운데 어느 것이 바른가
  3. 승구의 난에서 조정이 패한 까닭
도표 6 · 기요스미산 시절에서 입종까지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보은은 은혜를 입은 사람의 잘못까지 덮어 주는 것이 아니다. 스승의 신앙을 엄정히 판정하시면서도 그 스승을 그리는 마음을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그 공덕을 마침내 삼대비법의 공덕으로 스승에게 돌리시는 데에 대성인의 지은보은이 있다.

제32장 간략히 제목의 간심을 보이다
어서 324쪽 4행 ~ 325쪽 3행 · 第32章 略して題目肝心を示す

본문

本文 · 一어서 324쪽 4~11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云く法華経・一部・八巻.・二十八品の中に何物か肝心なるや、答えて云く華厳経の肝心は大方広仏華厳経・阿含経の肝心は仏説中阿含経・大集経の肝心は大方等大集経・般若経の肝心は摩訶般若波羅蜜経・雙観経の肝心は仏説無量寿経・観経の肝心は仏説観無量寿経・阿弥陀経の肝心は仏説阿弥陀経・涅槃経の肝心は大般涅槃経・かくのごとくの一切経は皆如是我聞の上の題目・其の経の肝心なり、 大は大につけ小は小につけて 題目をもつて肝心とす、大日経・金剛頂経・蘇悉地経等・亦復かくのごとし、仏も又かくのごとし大日如来・日月燈明仏・燃燈仏・大通仏・雲雷音王仏・是等の仏も又名の内に其の仏の種種の徳をそなへたり、 今の法華経も亦もつて・かくのごとし、如是我聞の上の妙法蓮華経の五字は即一部八巻の肝心、亦復・一切経の肝心・一切の諸仏・菩薩・二乗・天人・修羅・竜神等の頂上の正法なり、

풀이

묻노라. 법화경 한 부 여덟 권 스물여덟 품 가운데 무엇이 간심(肝心)인가. 답하노라. 화엄경의 간심은 「대방광불화엄경」, 아함경의 간심은 「불설중아함경」, 대집경의 간심은 「대방등대집경」, 반야경의 간심은 「마하반야바라밀경」, 쌍관경의 간심은 「불설무량수경」, 관경의 간심은 「불설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의 간심은 「불설아미타경」, 열반경의 간심은 「대반열반경」이니라. 이와 같이 일체경은 모두 「여시아문(如是我聞)」 위의 제목이 그 경의 간심이니라.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제목으로써 간심을 삼느니라.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 등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부처도 또한 이와 같으니, 대일여래 · 일월등명불 · 연등불 · 대통불 · 운뢰음왕불, 이 부처들도 이름 안에 그 부처의 갖가지 덕을 갖추고 있느니라. 지금의 법화경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 다섯 자는 곧 한 부 여덟 권의 간심이요, 또한 일체경의 간심이며, 일체의 제불 · 보살 · 이승 · 천인 · 수라 · 용신 등의 정상의 정법이니라.

本文 · 二어서 324쪽 11행 ~ 325쪽 3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云く南無妙法蓮華経と心もしらぬ者の唱うると南無大方広仏華厳経と心もしらぬ者の唱うると斉等なりや浅深の功徳差別せりや、答えて云く浅深等あり、 疑て云く其の心如何、答えて云く小河は露と涓と井と渠と江とをば収むれども大河ををさめず・大河は露乃至小河を摂むれども大海ををさめず、阿含経は井江等露涓ををさめたる小河のごとし、 方等経・阿弥陀経・大日経・華厳経等は小河ををさむる大河なり、法華経は露・涓・井.江・小河・大河.天雨等の一切の水を一渧ももらさぬ大海なり、譬えば身の熱者の大寒水の辺にいねつればすずしく.小水の辺に臥ぬれば苦きがごとし、 五逆・謗法の大きなる一闡提人・阿含・華厳.観経・大日経等の小水の辺にては大罪の大熱さんじがたし、法華経の大雪山の上に臥ぬれば五逆・誹謗・一闡提等の大熱忽に散ずべし・されば愚者は必ず法華経を信ずべし、 各各経経の題目は易き事・同じといへども愚者と智者との唱うる功徳は天地雲泥なり、譬へば大綱は大力も切りがたし小力なれども小刀をもつて・たやすく・これをきる、 譬へば堅石をば鈍刀をもてば大力も破がたし、利剣をもてば小力も破りぬべし、譬へば薬はしらねども 服すれば病やみぬ食は服すれども病やまず、譬へば仙薬は命をのべ凡薬は病をいやせども命をのべず。

풀이

묻노라. 남묘호렌게쿄를 그 마음도 모르는 사람이 부르는 것과, 나무대방광불화엄경을 그 마음도 모르는 사람이 부르는 것은 같은가, 공덕의 얕고 깊음에 차별이 있는가. 답하노라. 얕고 깊음 등이 있느니라. 의심하여 말하노라. 그 마음은 어떠한가. 답하노라. 작은 강은 이슬과 물방울과 우물과 도랑과 개울을 거두어들이지만 큰 강은 거두어들이지 못하며, 큰 강은 이슬 내지 작은 강을 거두어들이지만 큰 바다는 거두어들이지 못하느니라. 아함경은 우물 · 개울 등과 이슬 · 물방울을 거두어들인 작은 강과 같고, 방등경 · 아미타경 · 대일경 · 화엄경 등은 작은 강을 거두어들이는 큰 강이니라. 법화경은 이슬 · 물방울 · 우물 · 개울 · 작은 강 · 큰 강 · 하늘의 비 등 일체의 물을 한 방울도 새지 않게 거두는 큰 바다이니라. 비유하면 몸에 열이 나는 사람이 크고 찬 물가에 누우면 시원하고 작은 물가에 누우면 괴로운 것과 같으니라. 오역 · 방법의 큰 일천제인은 아함 · 화엄 · 관경 · 대일경 등의 작은 물가에서는 큰 죄의 큰 열을 흩어 버리기 어려우나, 법화경의 대설산 위에 누우면 오역 · 비방 · 일천제 등의 큰 열이 홀연히 흩어질 것이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은 반드시 법화경을 믿어야 하느니라. 각각의 경의 제목은 부르기 쉬운 것이 같다 하더라도,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이 부르는 공덕은 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만큼 다르니라. 비유하면 큰 밧줄은 힘센 사람도 끊기 어렵지만 힘이 약하더라도 작은 칼로는 쉽게 끊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단단한 돌은 무딘 칼을 가지면 힘센 사람도 깨기 어렵지만 날카로운 칼을 가지면 힘이 약한 사람도 깰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약은 그 이치를 모르더라도 먹으면 병이 낫지만 음식은 먹어도 병이 낫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선약은 목숨을 늘리고, 보통 약은 병을 고치되 목숨을 늘리지는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어구 풀이

一部・八巻・二十八品한 부 여덟 권 스물여덟 품
구마라집이 옮긴 『묘법연화경』 전체를 가리킨다. 여덟 권 스물여덟 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천태대사는 앞 열네 품을 적문, 뒤 열네 품을 본문으로 나누었다.
肝心간심
간과 심장처럼 가장 중요한 핵심. 본 장과 다음 장은 법화경 전체의 간심이 무엇인가를 묻고, 그것이 묘법연화경의 제목, 곧 남묘호렌게쿄임을 밝힌다.
如是我聞여시아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경전 첫머리에 놓이는 말로, 결집 때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사람(아난 등)이 들은 그대로 전한다는 뜻을 보인다. 「여시아문 위의 제목」이란 이 말 앞에 놓인 경의 이름을 가리킨다.
大日如来대일여래
『대일경』 · 『금강정경』 등 밀교 경전의 교주. 진언종은 이 부처를 법신불로 높이 받든다.
日月燈明仏일월등명불
법화경 서품에 설해진 과거의 부처. 석존이 법화경을 설하기 전 상서를 보이자 미륵이 그 까닭을 묻고, 문수가 과거 일월등명불도 같은 상서를 보인 뒤 법화경을 설했다고 답한다. 같은 이름의 부처가 2만 분 잇따라 나왔고, 마지막 일월등명불은 『무량의경』을 설하고 무량의처삼매에 든 뒤 묘광보살에게 법화경을 설하고 열반에 들었다. 그때의 묘광보살이 지금의 문수라고 한다.
燃燈仏연등불
법화경 서품에 따르면 일월등명불의 여덟 왕자 가운데 막내로, 묘광보살을 따라 법화경을 닦아 마지막으로 성불한 부처이다. 태어날 때 몸의 빛이 등불 같아 연등불이라 했다. 『태자서응본기경』에는 석존이 과거에 유동보살로서 정광불(錠光仏, 연등불의 다른 번역)에게 다섯 줄기 푸른 연꽃을 바치고 머리카락을 길에 펴 부처님이 밟고 지나가게 하여 「장차 석가모니불이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설한다.
大通仏대통불
대통지승불. 법화경 화성유품 제7에 설해진다. 삼천진점겁의 옛날 대통지승불이 열여섯 왕자에게 법화경을 설하고, 왕자들이 다시 각각 법화경을 설해 중생을 교화했다. 그 가운데 열여섯째 왕자가 석존의 과거세의 모습이며, 이 인연을 대통결연이라 한다.
雲雷音王仏운뢰음왕불
법화경 묘음보살품 제24에 설해진 과거의 부처. 그 나라는 현일체세간, 겁은 희견이라 했다. 묘음보살은 1만 2천 년 동안 십만 가지 기악을 이 부처님께 공양하고 8만 4천 개의 칠보 발우를 바친 과보로 34신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는 신력을 얻었다.
頂上の正法정상의 정법
일체의 제불 · 보살로부터 천인 · 수라 · 용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이 머리에 받들어야 할 최고의 법이라는 뜻.
一闡提人일천제인
일천제는 산스크리트 잇찬티카의 음역으로, 일천저가라고도 하며 단선근(断善根) · 신불구족(信不具足)이라 옮긴다. 부처님의 정법을 믿지 않아 성불할 기연이 없는 중생을 말한다.
五逆오역
아버지를 죽이는 것, 어머니를 죽이는 것, 아라한을 죽이는 것,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내는 것, 화합승을 깨뜨리는 것.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가장 무거운 죄로 여겨진다.
天地雲泥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
차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큼을 이르는 말.
仙薬선약
목숨을 늘린다고 전해지는 신선의 약. 병만 고치는 보통 약(범약)과 대비된다.

도젠보에 대한 보은에서 제목의 간심으로

이 장은 법화경의 제목이 간심임을 간략히 밝힌다. 그런데 앞 장에서 옛 스승 도젠보에 대한 보은을 다 말씀하신 대성인이 왜 여기서 갑자기 법화경 한 부 여덟 권의 간심을 묻는가.

앞 장의 결론은 엄했다. 도젠보는 법화경을 믿지 않은 사람이며, 뒤에 조금 믿는 듯했으나 그것은 대낮의 등불 같은 것이었고,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되었을 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으니 법화경을 믿었다고 할 수 없다. 자업자득의 과보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장 이후에 대성인은 일대 불교의 간요 골수인 삼대비법을 넓히시고, 마지막에 「이 공덕은 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다」라고 맺으신다. 곧 이 장부터는 삼대비법을 드러내기 위한 문답과 해명이 시작되는 것이며, 겉으로는 화제가 바뀐 듯 보여도 글의 뜻은 한 줄로 이어져 있다. 도젠보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기 어렵다면 무엇이 그를 구할 수 있는가 — 그 대답이 바로 이제부터 밝힐 법이다.

이 장과 다음 장은 하나의 짝을 이룬다. 이 장은 「간략히(略)」 제목이 간심임을 보이고, 다음 장은 「널리(広)」 그것을 밝힌다. 그리고 그 뒤 제34장부터는 이 법이 어째서 정법 · 상법 시대에 넓혀지지 않았는가를 묻고, 마침내 제36장에서 본문의 삼대비법을 밝히는 데 이른다.

경의 제목이 그 경의 간심이다

물음은 「법화경 한 부 여덟 권 스물여덟 품 가운데 무엇이 간심인가」이다. 대성인은 곧바로 법화경을 말씀하지 않고, 먼저 모든 경에 통하는 원칙을 세우신다. 화엄경의 간심은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제목이고, 아함경의 간심은 「불설중아함경」, 대집경은 「대방등대집경」, 반야경은 「마하반야바라밀경」, 쌍관경은 「불설무량수경」, 관경은 「불설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은 「불설아미타경」, 열반경은 「대반열반경」이다. 「일체경은 모두 여시아문 위의 제목이 그 경의 간심이다.」

경의 제목은 단순한 이름표가 아니라 그 경 전체의 뜻을 한데 거둔 것이다.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곧 대승경은 대승경대로 소승경은 소승경대로 제목이 그 경의 간심이 된다. 진언종이 받드는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도 예외가 아니다. 이 원칙은 대승 · 소승, 현교 · 밀교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경에 통한다.

경
  •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
  • 아함경「불설중아함경」
  • 대집경「대방등대집경」
  • 반야경「마하반야바라밀경」
  • 쌍관경「불설무량수경」
  • 관경「불설관무량수경」
  • 아미타경「불설아미타경」
  • 열반경「대반열반경」
  •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도 같음
부처
대일여래일월등명불연등불대통불운뢰음왕불
「이름 안에 그 부처의 갖가지 덕을 갖추고 있다」名の内に其の仏の種種の徳をそなへたり
법화경「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 다섯 자는 곧 한 부 여덟 권의 간심」如是我聞の上の妙法蓮華経の五字は即一部八巻の肝心
도표 7 · 이름 안에 그 덕이 갖추어지다

부처의 이름에 그 덕이 갖추어지다

이 원칙은 경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부처도 또한 이와 같다.」 대성인이 드신 다섯 부처는 모두 그 이름 안에 그 부처의 갖가지 덕을 갖추고 있다.

대일여래는 진언 밀교의 교주이다. 일월등명불은 법화경 서품에 나온다. 석존이 법화경을 설하기에 앞서 하늘에서 만다라화가 내리고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며 미간의 백호에서 빛을 놓아 동방 1만 8천 세계를 비추자, 대중이 놀라 미륵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문수는 과거에 일월등명불이라는 부처가 있어, 성문에게는 사제를, 연각에게는 십이인연을, 보살에게는 육바라밀을 설했고, 그 뒤 같은 이름의 부처가 2만 분 잇따라 나왔다고 답한다. 그 마지막 일월등명불에게는 출가 전 여덟 왕자가 있어 모두 아버지를 따라 출가했다. 부처는 『무량의경』을 설하고 무량의처삼매에 든 뒤 지금과 같은 상서를 나타내고, 800 제자의 우두머리인 묘광보살에게 법화경을 설했다. 그때의 묘광보살이 바로 나 문수이며, 일월등명불은 법화경을 다 설하고 열반에 들었으니 지금의 석가불도 그와 같으리라는 것이다.

연등불도 같은 서품에 나온다. 일월등명불의 여덟 왕자는 묘광보살을 따라 법화경을 닦아 차례로 성불했는데, 마지막으로 성불한 이가 연등불이다. 태어날 때 몸의 빛이 등불 같았으므로 성불한 뒤에도 연등불이라 했다. 한편 『태자서응본기경』에 따르면 석존이 인위의 수행 때 유동보살로서 오백 금전으로 산 다섯 줄기 푸른 연꽃을 정광불에게 바치고, 자기 머리카락을 길에 펴 부처님이 밟고 지나가게 했다. 그 공덕으로 부처님은 「그대는 장차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불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등불이 되리라」고 수기했다. 정광불은 연등불의 다른 번역이므로 연등불은 석존의 스승이 되고, 그 연등불은 묘광보살, 곧 문수의 제자이므로 문수를 「석존의 아홉 대에 걸친 스승」이라 일컫는다.

대통불, 곧 대통지승불은 법화경 화성유품에 나온다. 삼천진점겁의 옛날 대통지승불이 열여섯 왕자에게 법화경을 설하고, 그 왕자들이 다시 각각 법화경을 설해 중생을 교화했다. 그 가운데 열여섯째 왕자가 석존의 과거세의 모습이며, 이 왕자와 맺은 인연을 대통결연이라 한다. 그 중생은 셋으로 나뉜다. 첫째는 물러나지 않은 이(불퇴), 둘째는 대승에서 물러나 소승을 취한 이(퇴대취소), 셋째는 아예 발심하지 않은 이(미발심)이다. 「사도어서」는 말법의 우리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大通第三の余流にもやあるらん

대통결연의 셋째 무리의 남은 흐름이 아닐까

「사도어서」, 958쪽

곧 말법의 중생은 구원의 하종을 잊어버려, 대통불 때 법화경을 들었어도 발심조차 하지 않은 무리의 후예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운뢰음왕불은 묘음보살품에 나오는 과거불로, 묘음보살이 이 부처님께 1만 2천 년 동안 십만 가지 기악을 공양하고 8만 4천 개의 칠보 발우를 바친 과보로 34신을 나타내 법을 설하는 신력을 얻었다고 설한다.

이 부처들의 이름을 드신 뜻은, 부처의 이름이 그 부처의 수행과 깨달음과 덕을 모두 거두고 있다는 데 있다. 경의 제목이 경 전체를 거두듯 부처의 이름은 부처의 전체를 거둔다. 「지금의 법화경도 또한 이와 같다.」 그리하여 결론이 나온다. 「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 다섯 자는 곧 한 부 여덟 권의 간심이요, 또한 일체경의 간심이며, 일체의 제불 · 보살 · 이승 · 천인 · 수라 · 용신 등의 정상의 정법이다.」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는 법화경 한 경의 간심에 그치지 않고 일체경의 간심이며, 모든 생명이 머리에 받들어야 할 최고의 법이다.

여시아문 위의 묘법 다섯 자 — 취법과 공귀

「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 다섯 자는 곧 한 부 여덟 권의 간심」이라는 말씀은 대성인 불법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여시아문 위의 묘법에는 두 뜻이 있다. 하나는 취법(就法), 곧 법 그 자체에 나아가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귀(功帰), 곧 공덕이 돌아가는 곳을 보는 것이다.

먼저 취법에는 다시 두 뜻이 있다. 하나는 이름이 통한다는 명통(名通)이고, 다른 하나는 뜻이 다르다는 의별(義別)이다. 묘락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略して経題を挙ぐるに、玄に一部を収む

간략히 경의 제목을 들면 그윽이 한 부를 거둔다

묘락대사

「간략히 경의 제목을 든다」는 것이 명통이요, 「그윽이 한 부를 거둔다」는 것이 의별이다. 『법화현의석첨』 권1에는 「妙法の両字は通じて本迹を詮す(묘법 두 자는 두루 본문과 적문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묘법 두 자」는 명통이요, 「두루 본적을 드러낸다」는 의별이다. 법화경 한 경을 통틀어 묘법연화경이라는 이름은 같으나, 그 뜻을 따져 보면 적문의 묘법과 본문의 묘법은 같지 않다. 이것이 취법의 관점이다.

둘째, 공귀에도 두 뜻이 있다. 본과(本果)와 본인(本因)이다. 『법화현의』 권1에 이렇게 말한다.

此の妙法蓮華経は本地甚深の奥蔵なり、三世諸仏の証得する所なり

이 묘법연화경은 본지의 매우 깊은 오장(奥蔵)이요, 삼세 제불이 증득하는 바이니라

천태대사, 『법화현의』 권1

또 『법화현의석첨』 권1에 「迹中に説くと雖も、功を推すに在る有り故に本地と云う(적문 가운데 설했지만 그 공을 미루어 보면 있는 곳이 있으므로 본지라 한다)」고 한다.

먼저 본과란 석존이 본과에서 증득하신 묘법을 가리켜 「본지의 매우 깊은」 등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외적(外適)의 측면, 곧 수량품의 문상(文上)의 뜻이다. 다음으로 본인이란 본인 명자(本因名字)의 지위에서 증득하신 법을 가리켜 「본지의 매우 깊은」 등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감(内鑑)의 측면, 곧 수량품 문저(文底)의 뜻이다.

그렇다면 본인 명자에서 증득하신 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삼대비법을 모두 갖춘 묘법연화경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법화현의』의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힌다. 문의 「본지(本地)」는 곧 본문의 계단이니, 본존이 머무시는 땅이므로 본지라 하며, 본존이 머무시는 땅이 곧 계단이다. 문의 「매우 깊은(甚深)」은 곧 본문의 본존이니, 실상의 매우 깊음이란 일념삼천의 본존이다. 문의 「오장(奥蔵)」은 찬탄하는 말로서 곧 본문의 제목이니, 제목 가운데 만행을 다 감싸 거두기 때문이다.

이처럼 삼대비법을 모두 갖춘 묘법에 의거하므로 「이 묘법연화경은 본지의 매우 깊은 오장이다」라고 한다. 석존이 설한 한 부 여덟 권 스물여덟 품은 그 공을 논하면, 가까이는 본과에서 증득한 법으로 돌아가고 멀리는 본인에서 증득한 법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본인 명자에서 증득한 법을 「본 가운데의 본, 묘 가운데의 묘」로 삼는 것이다. 「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 다섯 자」가 한 부의 간심이라는 말씀은, 공귀의 깊은 뜻에서 보면 바로 이 문저의 남묘호렌게쿄를 가리키는 것이다.

취법 · 공귀의 두 관점은 니치칸 상인이 「문저비침초」 · 「보은초 문단」 등에서 묘법연화경의 제목의 뜻을 「일왕 취법(一往就法)」 · 「재왕 공귀(再往功帰)」로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두 가지 뜻
취법(법에 나아가 봄)
명통이름은 같음 — 「간략히 경의 제목을 든다」
의별뜻은 다름 — 「그윽이 한 부를 거둔다」 · 「두루 본적을 드러낸다」
공귀(공덕이 돌아가는 곳)
본과석존이 본과에서 증득한 묘법 · 외적 · 수량품 문상
본인본인 명자에서 증득한 법 · 내감 · 수량품 문저
「이 묘법연화경은 본지의 매우 깊은 오장이다」此の妙法蓮華経は本地甚深の奥蔵なり
본지
본문의 계단
매우 깊음
본문의 본존
오장
본문의 제목
본인 명자에서 증득한 법 = 「본 가운데의 본, 묘 가운데의 묘」
도표 8 · 여시아문 위의 묘법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 다섯 자가 일체경의 간심이라는 말씀은, 문상으로는 법화경의 제목을, 문저로는 삼대비법을 모두 갖춘 남묘호렌게쿄를 가리킨다. 이 장에서 시작된 제목의 간심에 관한 문답은 제36장의 본문의 삼대비법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마음을 모르고 부르는 제목 — 공덕의 얕고 깊음

이어서 둘째 문답이 나온다. 「남묘호렌게쿄를 그 마음도 모르는 사람이 부르는 것과, 나무대방광불화엄경을 그 마음도 모르는 사람이 부르는 것은 같은가, 공덕의 얕고 깊음에 차별이 있는가.」 대성인의 답은 짧다. 「얕고 깊음 등이 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다. 경의 뜻을 모르고 제목을 부른다는 점은 같아도, 무엇을 부르느냐에 따라 공덕은 다르다. 종교는 믿는 대상, 곧 본존에 따라 결정된다. 신앙이란 본존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감응과 이익을 믿는 것이다. 어떻게 믿느냐는 그다음의 문제이다. 이 원리를 잘 보여 주는 말로 묘락대사의 말로 인용되는 다음 구절이 있다. 「가령 발심이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바른 경계에 인연하면 공덕이 오히려 많고, 만약 바른 경계가 아니면 가령 거짓이 없더라도 또한 종자가 되지 않는다.」 믿는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진실해도 대상이 바르지 않으면 성불의 종자가 되지 못하고, 마음이 미숙해도 대상이 바르면 공덕이 크다는 것이다. 이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사신오품초」의 다음 말씀도 같은 뜻이다.

妙法蓮華経の五字は経文に非ず其の義に非ず唯一部の意なるのみ、初心の行者其の心を知らざれども而も之を行ずるに自然に意に当るなり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는 경문도 아니요 그 뜻도 아니며 다만 한 부의 마음일 뿐이니라. 초심의 행자가 그 마음을 알지 못하더라도 이것을 행하면 자연히 그 뜻에 맞느니라

「사신오품초」, 342쪽

뜻을 다 알지 못하는 초심자라도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를 부르면 자연히 법화경 한 부의 마음에 맞는다. 「그 마음도 모르는 사람」이 부르는 남묘호렌게쿄에 큰 공덕이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슬에서 큰 바다까지 — 물의 비유

산골의 개울과 강들이 모여 넓고 잔잔한 바다로 흘러드는 하구의 새벽
그림 · 산골의 개울과 강들이 모여 넓고 잔잔한 바다로 흘러드는 하구의 새벽

그 마음은 무엇이냐는 거듭된 물음에 대성인은 물의 비유로 답하신다. 작은 강은 이슬 · 물방울 · 우물 · 도랑 · 개울을 거두어들이지만 큰 강은 거두지 못한다. 큰 강은 이슬에서 작은 강까지 거두지만 큰 바다는 거두지 못한다. 이처럼 거두는 것과 거두어지는 것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차례가 있다.

이것을 경에 맞추면, 아함경은 우물 · 개울 · 이슬 · 물방울을 거둔 작은 강이요, 방등경 · 아미타경 · 대일경 · 화엄경 등은 작은 강을 거두는 큰 강이다. 그리고 법화경은 이슬 · 물방울 · 우물 · 개울 · 작은 강 · 큰 강 · 하늘의 비 등 일체의 물을 한 방울도 새지 않게 거두는 큰 바다이다. 법화경은 다른 모든 경을 거두지만 다른 경은 법화경을 거두지 못한다. 진언종이 높이는 대일경이 화엄경 등과 함께 「큰 강」의 자리에 놓여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앞의 여러 장에서 거듭 파한 진언의 「대일경 제일」이 여기서 비유로 다시 판정된 것이다.

다음은 몸의 열의 비유이다. 열이 나는 사람이 크고 찬 물가에 누우면 시원하지만 작은 물가에 누우면 괴롭다. 오역죄와 방법을 지은 큰 일천제인은 아함 · 화엄 · 관경 · 대일경 등의 작은 물가에서는 큰 죄의 큰 열을 흩어 버릴 수 없다. 그러나 법화경이라는 대설산 위에 누우면 오역 · 비방 · 일천제의 큰 열이 홀연히 흩어진다. 죄가 무거울수록 그것을 녹일 법도 커야 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은 반드시 법화경을 믿어야 한다」.

  1. 이슬 · 물방울 · 우물 · 도랑 · 개울
  2. 작은 강 = 아함경
  3. 큰 강 = 방등경 · 아미타경 · 대일경 · 화엄경
  4. 큰 바다 = 법화경「일체의 물을 한 방울도 새지 않게」一切の水を一渧ももらさぬ大海
열병의 비유
작은 물가(아함 · 화엄 · 관경 · 대일경)큰 열이 흩어지지 않음
법화경의 대설산오역 · 비방 · 일천제의 큰 열이 홀연히 흩어짐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은 반드시 법화경을 믿어야 한다」されば愚者は必ず法華経を信ずべし
도표 9 · 이슬에서 큰 바다까지

우자와 지자 — 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

이어서 대성인은 「각각의 경의 제목은 부르기 쉬운 것이 같다 하더라도,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이 부르는 공덕은 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만큼 다르다」고 하신다. 이 말씀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법화경의 제목을 부르는 공덕은 크게 뛰어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권경의 제목을 부르는 공덕은 크게 뒤떨어진다. 그러므로 지자와 우자가 부르는 공덕이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지혜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부르는 법의 우열이 공덕을 결정한다.

이어지는 네 비유도 모두 이 뜻이다. 첫째, 큰 밧줄은 힘센 사람도 끊기 어렵지만 힘이 약한 사람도 작은 칼로는 쉽게 끊는다. 큰 밧줄은 오역 · 방법의 무거운 죄요, 작은 칼은 법화경의 제목이다. 둘째, 단단한 돌은 무딘 칼로는 힘센 사람도 깨지 못하지만 날카로운 칼이면 힘이 약한 사람도 깬다. 날카로운 칼이 법화경의 제목이다. 셋째, 약은 그 효능을 모르고 먹어도 병이 낫지만 음식은 아무리 먹어도 병이 낫지 않는다. 약이 법화경의 제목이다. 넷째, 선약은 목숨을 늘리지만 보통 약은 병을 고칠 뿐 목숨을 늘리지 못한다. 선약이 법화경의 제목이다.

네 비유에서 「힘이 약한 사람」 · 「효능을 모르는 사람」은 모두 지혜가 없는 범부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가 쥔 도구 — 작은 칼, 날카로운 칼, 약, 선약 — 가 뛰어나면 결과는 달라진다. 반대로 힘센 사람(지자)이라도 무딘 칼(권경)로는 돌을 깨지 못한다.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어떠한 악인이라도, 한번 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공덕은 절대적이다. 이것은 악인의 성불과 모든 계층의 구제를 훌륭히 보여 주신 말씀이다. 마지막 선약의 비유는 특히 깊다. 권경의 제목이 보통 약처럼 눈앞의 병만 고친다면, 법화경의 제목은 목숨 그 자체를 늘린다. 곧 일시의 이익이 아니라 생명의 근본을 바꾸는 법이라는 것이다.

네 비유
큰 밧줄과 작은 칼
큰 밧줄(오역 · 방법) ↔ 힘센 사람도 끊기 어려움
힘이 약한 사람도 작은 칼(법화경의 제목)로 쉽게 끊음
단단한 돌과 날카로운 칼
단단한 돌 ↔ 무딘 칼로는 힘센 사람도 못 깸
날카로운 칼(법화경의 제목)이면 약한 사람도 깸
약과 음식
약(법화경의 제목)은 효능을 몰라도 먹으면 병이 나음
음식은 먹어도 병이 낫지 않음
선약과 보통 약
선약(법화경의 제목)은 목숨을 늘림
보통 약은 병만 고침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이 부르는 공덕은 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愚者と智者との唱うる功徳は天地雲泥なり
도표 10 · 우자라도 법화경의 제목을
제33장 널리 제목의 간심을 밝히다
어서 325쪽 4행 ~ 326쪽 11행 · 第33章 広く題目肝心を明かす

본문

本文 · 一어서 325쪽 4~15행
本文 · 어서 원문

疑つて云く二十八品の中に何か肝心ぞや、答えて云く或は云く品品皆事に随いて肝心なり、或は云く方便品・寿量品肝心なり、或は云く方便品肝心なり、或は云く寿量品肝心なり、 或は云く開示悟入肝心なり、或は云く実相肝心なり。 問うて云く汝が心如何答う南無妙法蓮華経肝心なり、其の証如何阿難・文殊等・如是我聞等云云、問うて云く心如何、答えて云く阿難と文殊とは八年が間・此の法華経の無量の義を一句・一偈・一字も残さず聴聞してありしが仏の滅後に結集の時・九百九十九人の阿羅漢が筆を染めてありしに先づはじめに妙法蓮華経とかかせ給いて如是我聞と唱えさせ給いしは妙法蓮華経の五字は一部・八巻・二十八品の肝心にあらずや、 されば過去の燈明仏の時より法華経を講ぜし光宅寺の法雲法師は「如是とは将に所聞を伝えんとす前題に一部を挙ぐるなり」等云云、霊山にまのあたり・きこしめしてありし天台大師は「如是とは所聞の法体なり」等云云章安大師の云く記者釈して曰く「蓋し序王とは経の玄意を叙し玄意は文心を述す」等云云、 此の釈に文心とは題目は法華経の心なり妙楽大師云く「一代の教法を収むること法華の文心より出ず」等云云、

풀이

의심하여 말하노라. 스물여덟 품 가운데 무엇이 간심인가. 답하노라. 어떤 이는 「품마다 모두 일에 따라 간심이다」고 하고, 어떤 이는 「방편품 · 수량품이 간심이다」고 하고, 어떤 이는 「방편품이 간심이다」고 하고, 어떤 이는 「수량품이 간심이다」고 하고, 어떤 이는 「개시오입(開示悟入)이 간심이다」고 하고, 어떤 이는 「실상이 간심이다」고 하느니라. 묻노라. 그대의 마음은 어떠한가. 답하노라. 남묘호렌게쿄가 간심이니라. 그 증거는 무엇인가. 아난 · 문수 등의 「여시아문」 등이니라. 묻노라. 그 마음은 어떠한가. 답하노라. 아난과 문수는 8년 동안 이 법화경의 한량없는 뜻을 한 구 · 한 게 ·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들었는데, 부처님 멸후 결집할 때 999인의 아라한이 붓을 적실 적에 먼저 처음에 「묘법연화경」이라 쓰시고 「여시아문」이라 부르셨으니,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는 한 부 여덟 권 스물여덟 품의 간심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과거의 등명불 때부터 법화경을 강설하였다는 광택사의 법운법사는 「여시란 들은 바를 전하려 하는 것이니, 앞의 제목에 한 부를 든 것이다」 등이라 하였고, 영산에서 직접 들으셨던 천태대사는 「여시란 들은 바의 법체이다」 등이라 하였으며, 장안대사는 「기록하는 자가 풀이하여 말한다. 대개 서왕(序王)이란 경의 현의(玄意)를 서술한 것이요, 현의는 글의 마음을 서술한 것이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이 풀이에서 「글의 마음」이란 제목이 법화경의 마음이라는 것이니라. 묘락대사는 「일대의 교법을 거두는 것은 법화의 글의 마음에서 나온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本文 · 二어서 325쪽 15행 ~ 326쪽 3행
本文 · 어서 원문

天竺は七十箇国なり総名は月氏国・日本は六十箇国・総名は日本国・月氏の名の内に七十箇国・乃至人畜・珍宝みなあり、日本と申す名の内に六十六箇国あり、 出羽の羽も奥州の金も乃至国の珍宝・人畜乃至寺塔も神社もみな日本と申す二字の名の内に摂れり、天眼をもつては日本と申す二字を見て六十六国乃至人畜等をみるべし・法眼をもつては人畜等の此に死し彼に生るをもみるべし・譬へば人の声をきいて体をしり跡をみて大小をしる蓮をみて池の大小を計り雨をみて竜の分斉をかんがう、 これはみな一に一切の有ることわりなり、阿含経の題目には大旨一切はあるやうなれども但小釈迦・一仏のみありて他仏なし、華厳経・観経・大日経等には又一切有るやうなれども二乗を仏になすやうと久遠実成の釈迦仏いまさず、 例せば華さいて菓ならず雷なつて雨ふらず鼓あつて音なし眼あつて物をみず女人あつて子をうまず人あつて命なし又神なし、

풀이

천축은 70개국이니 총칭은 월지국이요, 일본은 60개국이니 총칭은 일본국이니라. 월지라는 이름 안에 70개국 내지 사람 · 짐승 · 진귀한 보배가 다 있고, 일본이라는 이름 안에 66개국이 있느니라. 데와의 깃털도 오슈의 금도, 내지 나라의 진귀한 보배와 사람 · 짐승, 내지 절과 탑도 신사도 모두 「일본」이라는 두 글자의 이름 안에 거두어지느니라. 천안으로는 「일본」이라는 두 글자를 보고 66개국 내지 사람 · 짐승 등을 볼 것이요, 법안으로는 사람 · 짐승 등이 여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나는 것까지도 볼 것이니라. 비유하면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알고, 발자국을 보고 크고 작음을 알며, 연꽃을 보고 못의 크고 작음을 헤아리고, 비를 보고 용의 분제를 헤아리는 것과 같으니라. 이것은 모두 하나에 일체가 있다는 도리이니라. 아함경의 제목에는 대체로 일체가 있는 듯하지만 다만 작은 석가 한 부처만 있고 다른 부처는 없느니라. 화엄경 · 관경 · 대일경 등에는 또 일체가 있는 듯하지만 이승을 부처로 만드는 법과 구원실성의 석가불은 계시지 않느니라. 예를 들면 꽃이 피어도 열매가 맺지 않고, 천둥이 울려도 비가 내리지 않으며, 북이 있어도 소리가 없고, 눈이 있어도 사물을 보지 못하며, 여인이 있어도 아이를 낳지 못하고, 사람이 있어도 목숨이 없으며 또 혼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本文 · 三어서 326쪽 3~11행
本文 · 어서 원문

大日の真言・薬師の真言・阿弥陀の真言・観音の真言等又かくのごとし、彼の経経にしては大王・須弥山・日月・良薬・如意珠・利剣等のやうなれども法華経の題目に対すれば雲泥の勝劣なるのみならず皆各各・当体の自用を失ふ、 例せば衆星の光の一の日輪にうばはれ諸の鉄の一の磁石に値うて利性のつき大剣の小火に値て用を失ない牛乳・驢乳等の師子王の乳に値うて水となり衆狐が術・一犬に値うて失い、 狗犬が小虎に値うて色を変ずるがごとし、南無妙法蓮華経と申せば南無阿弥陀仏の用も南無大日真言の用も観世音菩薩の用も一切の諸仏・諸経・諸菩薩の用皆悉く妙法蓮華経の用に失なはる、 彼の経経は妙法蓮華経の用を借ずば皆いたづらのものなるべし当時眼前のことはりなり、日蓮が南無妙法蓮華経と弘むれば南無阿弥陀仏の用は月のかくるがごとく塩のひるがごとく秋冬の草の・かるるがごとく冰の日天に・とくるがごとく・なりゆくをみよ。

풀이

대일의 진언 · 약사의 진언 · 아미타의 진언 · 관음의 진언 등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그 경들에서는 대왕 · 수미산 · 일월 · 좋은 약 · 여의주 · 날카로운 칼 등과 같지만, 법화경의 제목에 대하면 구름과 진흙만큼의 승렬일 뿐 아니라 모두 각각 당체의 자용(自用)을 잃느니라. 예를 들면 뭇 별의 빛이 하나의 해에 빼앗기고, 모든 쇠가 하나의 자석을 만나 날카로운 성질이 다하며, 큰 칼이 작은 불을 만나 쓰임을 잃고, 소젖 · 나귀젖 등이 사자왕의 젖을 만나 물이 되며, 뭇 여우의 술법이 한 마리 개를 만나 사라지고, 개가 작은 호랑이를 만나 얼굴빛이 변하는 것과 같으니라.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면 나무아미타불의 작용도, 나무대일진언의 작용도, 관세음보살의 작용도, 일체의 제불 · 제경 · 제보살의 작용도 모두 다 묘법연화경의 작용에 빼앗기느니라. 그 경들은 묘법연화경의 작용을 빌리지 않으면 모두 헛된 것이 될 것이니, 지금 눈앞의 도리이니라. 니치렌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넓히면 나무아미타불의 작용은 달이 숨는 것처럼, 조수가 빠지는 것처럼, 가을 겨울의 풀이 시드는 것처럼, 얼음이 햇볕에 녹는 것처럼 되어 가는 것을 보라.

어구 풀이

開示悟入개시오입
법화경 방편품 제2의 광개삼현일(広開三顕一)의 문. 「제불 세존은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열어(開) 청정함을 얻게 하려고, 중생에게 불지견을 보이려고(示),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깨닫게 하려고(悟),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의 길에 들게 하려고(入) 세상에 출현하신다」는 일대사인연의 문이다.
実相실상
방편품의 「제법실상」. 모든 존재의 참모습을 뜻하며, 본문과 적문이 모두 제법실상을 체(体)로 삼는다 하여 이것을 간심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다.
阿難・文殊아난 · 문수
아난은 석존의 시자로 「다문 제일」이며 결집 때 경을 외워 낸 사람이다. 문수는 지혜를 대표하는 보살로, 대승경의 결집에 관여했다고 전한다. 두 사람이 법화경을 8년 동안 남김없이 들었다고 하신다.
九百九十九人の阿羅漢999인의 아라한
부처님 멸후 경전을 결집할 때 모였다고 전하는 아라한들.
過去の燈明仏の時より法華経を講ぜし과거의 등명불 때부터 법화경을 강설하였다
본초 제8장에 「어떤 사람의 꿈에 이 사람(법운)은 과거의 등명불 때부터 법화경을 강설한 사람이라고 나타났다」고 한 것을 받은 말로, 당시 법운이 지나치게 높이 평가되었던 것을 꼬집으신 것이다.
光宅寺の法雲法師광택사의 법운법사
(467~529) 남북조 양나라의 승려. 개선사의 지장, 장엄사의 승민과 함께 「양의 삼대법사」로 불렸으며 성실 · 열반의 학장으로 이름 높았다. 7세에 출가해 30세에 법화경 · 정명경을 강설했다. 천감 7년(508) 칙명으로 광택사의 주지가 되었고, 천감 10년(511) 화림원에서 법화경을 강설할 때 하늘에서 꽃이 내리는 상서를 느꼈다고 한다. 보통 6년(525) 대승정이 되었다. 남삼북칠 가운데 남삼의 셋째인 오시교를 써서 열반경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霊山にまのあたり・きこしめしてありし영산에서 직접 들으셨던
천태대사가 과거에 약왕보살로서 영취산의 법화경 회좌에서 직접 들었다는 뜻. 『법화전기』 권2의 지의전에 남악은 관음, 천태는 약왕의 후신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天台大師천태대사
(538~597) 중국 천태종의 개조. 휘는 지의, 자는 덕안. 18세에 출가하고, 진의 천가 원년(560) 대소산에서 남악대사에게 배워 법화삼매를 깨달았다. 『법화현의』 · 『법화문구』 · 『마하지관』의 법화 삼대부를 완성하고, 『마하지관』에서 십계호구 · 일념삼천의 법리와 관심 수행의 법도를 밝혔다.
章安大師장안대사
(561~632) 천태대사의 제자 관정. 25세에 천태대사를 만난 뒤 늘 곁에서 모시며 설한 법문을 모두 들어 천태 삼대부를 비롯해 백여 권을 엮었다. 스승이 죽은 뒤 『열반현의』 · 『열반경소』를 지었다. 삼론의 가상대사가 장안의 『의기』를 빌려 읽고 천태에게 귀복했다고 한다.
蓋し序王とは대개 서왕이란
장안대사가 『법화현의』 첫머리의 「서왕(序王)」의 요점을 풀이한 말. 천태대사의 서왕은 법화경의 현의를 서술한 것이며, 그 현의인 묘법연화경은 법화경 한 부의 글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妙楽大師묘락대사
(711~782) 당나라 사람. 천태종 제9조로, 천태대사로부터 6대째의 법손이며 「중흥의 조」라 일컬어진다. 휘는 담연. 선 · 화엄 · 진언 · 법상 등이 성하고 천태종이 쇠하던 때 법화 일승의 입장에서 여러 종을 논파하고 『법화현의석첨』 · 『법화문구기』 · 『지관보행전홍결』 등을 지어 천태학을 크게 선양했다.
出羽の羽데와의 깃털
『풍토기』의 문으로 인교 천황 때 독수리 깃털을 여러 번 공물로 바쳐 상을 받았고, 그 깃털이 나는 곳이라 하여 데와(出羽)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奥州の金오슈의 금
쇼무 천황 천평 21년(749), 나라의 대불을 만들 때 나라 안에서 황금이 나기를 기원하자 무쓰의 국수 백제왕 경복(百済王敬福)이 나라 안에서 났다며 황금을 바쳤다.
天眼・法眼천안 · 법안
오안(육안 · 천안 · 혜안 · 법안 · 불안) 가운데 둘. 천안은 멀고 가까운 것, 안과 밖을 막힘없이 보는 눈이고, 법안은 보살이 중생을 건지기 위해 모든 법문과 중생의 생사를 꿰뚫어 보는 눈이다.
久遠実成구원실성
석존이 여래수량품 제16에서 오백진점겁의 옛날에 이미 성불했음을 밝혀 부처의 본지를 드러낸 것. 이전의 경과 적문에서는 인도에 태어나 30세에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 성불했다(시성정각)고 설했으나, 수량품에서 그 시성정각을 깨뜨리고 구원의 성불을 밝혔다.
二乗を仏になすやう이승을 부처로 만드는 법
이승작불. 이전의 경에서 성불할 수 없다고 했던 성문 · 연각이 법화경 적문에서 수기를 받아 성불이 허락된 것. 구원실성과 함께 법화경의 두 골수로 일컬어진다.
当体の自用당체의 자용
그 자체가 지닌 본래의 작용. 다른 경 · 다른 부처의 진언과 제목도 그 경 안에서는 큰 힘이 있는 듯하나 법화경의 제목 앞에서는 본래의 작용마저 잃는다는 뜻.

스물여덟 품 가운데 무엇이 간심인가 — 여섯 가지 견해

이 장은 제목이 간심임을 널리 밝힌다. 앞 장이 「법화경 한 부 여덟 권 스물여덟 품 가운데」 무엇이 간심인가를 물어 「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 다섯 자」라고 간략히 답했다면, 이 장은 「스물여덟 품 가운데」 무엇이 간심인가를 다시 물어 여러 견해를 들고 그것을 넘어서는 답을 증거와 비유로 자세히 밝힌다.

질문에 대해 대성인은 먼저 여섯 가지 견해를 드신다. 이것은 천태 학자들 사이에 있었던 여러 이견을 드신 것으로 보이며, 각각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첫째, 「품마다 모두 일에 따라 간심이다」. 스물여덟 품이 각각 그 설하는 일에 따라 저마다 간심이라는 견해이다. 둘째, 「방편품 · 수량품이 간심이다」.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이 이 경의 골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 「방편품이 간심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바른 뜻, 곧 진실을 드러낸 것(현실)을 풀이한 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넷째, 「수량품 한 품이 간심이다」. 본지를 드러내어 부처의 수명이 영원함을 밝힌 것을 생명으로 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다만 개시오입 한 문이 간심이다」. 이것은 적문의 요체이지만 본지를 드러낸 뒤에는 곧 본문의 요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섯째, 「제법실상 한 문이 간심이다」. 본문 · 적문 두 문이 모두 제법실상을 체현의(体玄義)로 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갖가지 논의가 있었으나, 대성인은 「남묘호렌게쿄가 간심이다」라고 단정하신다. 여섯 견해는 모두 법화경의 어느 품이나 어느 구절을 간심으로 삼은 것인데, 대성인은 그 모든 것을 거두는 제목 자체를 간심으로 세우신 것이다. 「사신오품초」의 말씀이 이 뜻을 잘 보여 준다.

妙法蓮華経の五字は経文に非ず其の義に非ず唯一部の意なるのみ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는 경문도 아니요 그 뜻도 아니며 다만 한 부의 마음일 뿐이니라

「사신오품초」, 342쪽

품 · 구절 · 뜻은 모두 법화경의 부분이지만,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는 그 부분들을 넘어선 「한 부의 마음」이다.

여섯 견해와 근거
  1. ①품마다 일에 따라 간심
  2. ②방편품 · 수량품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이 골수
  3. ③방편품출세의 바른 뜻 · 현실을 풀이
  4. ④수량품 한 품현본원수(본지를 드러내 수명이 영원함)를 생명으로 삼음
  5. ⑤개시오입 한 문적문의 요체이나 본지를 드러내면 본문의 요체
  6. ⑥제법실상 한 문본적 두 문이 모두 실상을 체로 삼음
대성인「남묘호렌게쿄가 간심이다」南無妙法蓮華経肝心なり증거: 아난 · 문수의 「여시아문」
도표 11 · 스물여덟 품 가운데 무엇이 간심인가

아난 · 문수의 「여시아문」 — 결집의 증거

「그 증거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성인은 「아난 · 문수 등의 여시아문」이라고 답하신다. 아난과 문수는 8년 동안 법화경의 한량없는 뜻을 한 구 · 한 게 ·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들은 사람들이다. 부처님 멸후 999인의 아라한이 모여 경을 결집할 때, 그들은 먼저 「묘법연화경」이라 쓰고 그다음에 「여시아문」이라 불렀다. 법화경 전체를 남김없이 들은 이들이 그 전체를 대표하는 말로 맨 앞에 묘법연화경이라는 제목을 놓았으니,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가 한 부 여덟 권 스물여덟 품의 간심이라는 것은 결집의 사실 자체가 증명한다는 논리이다.

「여시아문」의 「여시(이와 같이)」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앞에 놓인 제목, 곧 들은 법의 전체이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네 사람의 풀이는 모두 「여시」와 「제목」의 관계를 둘러싼 것이다.

개시오입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여 둔다. 개시오입은 방편품의 광개삼현일의 문으로, 넓게 삼승을 열어 일승을 드러내는 것이다. 법화경 이전에는 성문 · 연각 · 보살을 나누어 삼승의 법을 설했으나 법화경에 이르러 진실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직 하나라고 하여 일불승의 법을 설했다. 방편품에서 수학무학인기품까지가 삼승을 열어 일승에 모으는 부분이다. 『어의구전』은 개시오입을 이렇게 읽는다.

開とは信心の異名なり信心を以て妙法を唱え奉らば軈て開仏知見するなり、然る間信心を開く時南無妙法蓮華経と示すを示仏知見と云うなり、示す時に霊山浄土の住処と悟り即身成仏と悟るを悟仏知見と云うなり、悟る当体・直至道場なるを入仏知見と云うなり、然る間信心の開仏知見を以て正意とせり

개란 신심의 다른 이름이니, 신심으로 묘법을 부르면 곧 불지견을 여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신심을 열 때 남묘호렌게쿄라고 보이는 것을 시불지견이라 하고, 보일 때 영산정토의 머무는 곳이라 깨닫고 즉신성불이라 깨닫는 것을 오불지견이라 하며, 깨닫는 당체가 곧바로 도량에 이르는 것을 입불지견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신심의 개불지견을 바른 뜻으로 삼느니라

『어의구전』, 716쪽

개시오입을 간심으로 삼는 견해도,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결국 신심으로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데로 모인다.

법운 · 천태 · 장안 · 묘락의 증언

대성인은 이어서 네 사람의 풀이를 증거로 드신다.

첫째는 광택사의 법운이다. 대성인은 그를 「과거의 등명불 때부터 법화경을 강설하였다는」 법운이라 부르신다. 본초 제8장에서 어떤 사람의 꿈에 법운이 등명불 때부터 법화경을 강설한 사람이라고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소개하신 것을 받은 말로, 당시 법운이 지나치게 높이 받들어졌던 것을 꼬집으신 표현이다. 법운은 양나라의 삼대법사로 이름을 떨쳤고, 화림원의 법화경 강설에서 꽃이 내리는 상서를 느꼈다고 하며 대승정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는 오시교를 써서 열반경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한 사람으로, 천태대사가 남삼북칠을 파할 때 특히 날카롭게 비판한 인물이다. 그런 법운조차 「여시란 들은 바를 전하려 하는 것이니, 앞의 제목에 한 부를 든 것이다(如是とは将に所聞を伝えんとす前題に一部を挙ぐるなり)」라고 하여, 제목이 한 부 전체를 든 것임을 인정했다. 법화경을 낮춘 학자마저 제목이 간심이라는 점은 부정하지 못했다는 데에 이 인용의 무게가 있다.

둘째는 「영산에서 직접 들으셨던」 천태대사이다. 「가책방법멸죄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薬王菩薩は天台大師となり観世音は南岳大師と成り

약왕보살은 천태대사가 되고 관세음은 남악대사가 되었느니라

「가책방법멸죄초」, 1128쪽

이 인연은 『법화전기』 권2의 지의전에 실려 있다. 남산의 도선율사가 하늘에 「진나라의 혜사와 수나라의 지의는 신이한 덕이 무리를 뛰어넘는데, 옛날 영산에서 함께 법화경을 들었다 하니 본래 누구였는가」라고 묻자, 「둘 다 두루 다니는 대사로 본래 옛 부처이니, 혜사는 관음으로 보문품 한 품으로 그 이익을 설하였고, 지의는 약왕으로 일월정명덕불의 세상에 나와 몸을 버려 법에 공양하였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천태대사가 남악대사 밑에서 사안락행을 받고, 약왕보살본사품의 「이것이 참된 정진이요, 이것을 참된 법공양이라 한다」는 문에서 깨달음을 열었다는 것, 남악대사가 보문품을 썼다는 것에서도 천태는 약왕보살, 남악은 관세음보살의 후신이라 일컬어진다. 그런 천태대사가 「여시란 들은 바의 법체이다(如是とは所聞の法体なり)」라고 했다. 여시가 가리키는 것은 들은 법의 체, 곧 묘법연화경 그 자체라는 것이다.

셋째는 장안대사이다. 그는 천태대사가 설한 법문을 늘 곁에서 듣고 삼대부를 엮은 기록자였다. 그래서 자신을 「기록하는 자」라 부르며 이렇게 풀었다.

記者釈して曰く「蓋し序王とは経の玄意を叙し玄意は文心を述す」

기록하는 자가 풀이하여 말한다. 「대개 서왕이란 경의 현의를 서술한 것이요, 현의는 글의 마음을 서술한 것이다」

장안대사, 본초 325쪽 인용

천태대사가 『법화현의』 첫머리의 서왕에서 서술한 것은 법화경의 현의이며, 그 현의인 묘법연화경은 법화경 한 부의 글의 마음이다. 대성인은 이 풀이에 대해 「글의 마음이란 제목이 법화경의 마음이라는 것」이라고 맺으신다.

넷째는 묘락대사이다. 「일대의 교법을 거두는 것은 법화의 글의 마음에서 나온다(一代の教法を収むること法華の文心より出ず)」. 석존 일대의 모든 가르침을 거두어 하나로 모으는 힘이 법화경의 글의 마음, 곧 제목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법운에서 묘락까지, 법화경을 낮춘 이에서 법화경을 높인 이까지 모두가 제목이 간심임을 증언한다.

네 사람의 풀이
법운열반경을 높임광택사 · 양의 삼대법사「여시란 들은 바를 전하려 하는 것, 앞의 제목에 한 부를 든 것」如是とは将に所聞を伝えんとす前題に一部を挙ぐるなり
천태대사약왕보살의 후신 · 영산에서 직접 들음「여시란 들은 바의 법체」如是とは所聞の法体なり
장안대사삼대부의 기록자「서왕은 경의 현의를, 현의는 글의 마음을 서술한 것」蓋し序王とは経の玄意を叙し玄意は文心を述す
묘락대사천태 중흥의 조「일대의 교법을 거두는 것은 법화의 글의 마음에서 나온다」一代の教法を収むること法華の文心より出ず
대성인「글의 마음이란 제목이 법화경의 마음」文心とは題目は法華経の心なり
도표 12 · 「여시」가 가리키는 것

「일본」이라는 두 글자 — 하나에 일체가 있는 도리

이어서 대성인은 이름이 전체를 거둔다는 도리를 나라 이름으로 비유하신다. 천축은 70개국인데 그 총칭이 월지국이다. 일본은 66개국인데 그 총칭이 일본국이다. 월지라는 이름 안에 70개국과 사람 · 짐승 · 보배가 다 있고, 일본이라는 이름 안에 66개국이 있다. 데와의 깃털도, 오슈의 금도, 나라의 보배와 사람 · 짐승도, 절과 탑과 신사도 모두 「일본」이라는 두 글자 안에 거두어진다.

데와의 깃털은 인교 천황 때 독수리 깃털을 공물로 바쳐 상을 받았고 그 깃털이 나는 곳이라 하여 데와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풍토기』의 이야기로 전하는 산물이며, 오슈의 금은 쇼무 천황 천평 21년(749) 나라의 대불을 조성할 때 무쓰의 국수 백제왕 경복이 바친 황금이다. 둘 다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산물로, 대성인은 이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일본」 두 글자가 나라의 모든 것을 품고 있음을 보이신다.

그리고 천안으로 「일본」 두 글자를 보면 66개국과 사람 · 짐승을 볼 수 있고, 법안으로 보면 그 사람 · 짐승이 여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나는 것까지 볼 수 있다. 목소리를 듣고 사람의 몸을 알고, 발자국을 보고 크고 작음을 알며, 연꽃을 보고 못의 크기를 헤아리고, 비를 보고 용의 크기를 헤아리는 것과 같다. 이것은 모두 「하나에 일체가 있는 도리」이다.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에 일체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이름 · 소리 · 자취처럼 누구나 경험하는 일로 보이신 것이다.

꽃은 피어도 열매가 없다 — 일곱 비유

그러면 다른 경의 제목에도 일체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가. 대성인은 이렇게 답하신다. 아함경의 제목에는 대체로 일체가 있는 듯하지만 다만 작은 석가 한 부처만 있고 다른 부처는 없다. 화엄경 · 관경 · 대일경 등에도 일체가 있는 듯하지만 이승을 부처로 만드는 법과 구원실성의 석가불이 없다.

천안으로 「일본」 두 글자를 보면 일본의 모든 것이 보이듯이, 아함 · 화엄 · 관경 · 대일경의 제목에도 일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화경의 두 골수인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이 빠져 있다. 이승작불이 없으면 일체중생의 성불이 성립하지 않고, 구원실성이 없으면 부처의 생명의 영원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겉모습은 갖추었으나 안이 비어 있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것을 일곱 비유로 보이신다. 꽃이 피어도 열매가 맺지 않고, 천둥이 울려도 비가 내리지 않으며, 북이 있어도 소리가 없고, 눈이 있어도 사물을 보지 못하며, 여인이 있어도 아이를 낳지 못하고, 사람이 있어도 목숨이 없으며, 또 혼이 없다. 니치칸 상인은 이 일곱 비유 가운데 앞의 다섯 — 꽃이 피어도 열매가 맺지 않음, 천둥이 울려도 비가 내리지 않음, 북이 있어도 소리가 없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함, 여인이 있어도 아이를 낳지 못함 — 은 이승작불이 없음을 비유하고, 뒤의 둘 — 사람이 있어도 목숨이 없음, 또 혼이 없음 — 은 구원실성이 없음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또 일곱 비유가 모두 두 가지를 아울러 비유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풀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꽃 · 천둥 · 북 · 눈 · 여인은 모두 결과를 낳아야 할 것들이다. 꽃은 열매를, 천둥은 비를, 북은 소리를, 눈은 보는 일을, 여인은 아이를 낳아야 한다. 이승작불이 없다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이 중생의 성불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니, 이 다섯 비유가 거기에 맞는다. 한편 목숨과 혼은 존재 그 자체의 근본이다. 구원실성이 없다는 것은 부처의 생명의 근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니, 뒤의 두 비유가 거기에 맞는다. 구원실성이란 석존이 수량품에서 인도에 태어나 30세에 처음 성불했다는 시성정각을 깨뜨리고, 오백진점겁의 옛날에 이미 부처였음을 밝힌 것이다. 이것으로 부처의 생명이 영원함이 처음 드러났다.

일곱 비유
  • 아함경의 제목작은 석가 한 부처뿐, 다른 부처 없음
  • 화엄경 · 관경 · 대일경 등일체가 있는 듯하나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이 없음
이승작불이 없음을 비유
  1. ①꽃이 피어도 열매가 맺지 않음華さいて菓ならず
  2. ②천둥이 울려도 비가 내리지 않음雷なつて雨ふらず
  3. ③북이 있어도 소리가 없음鼓あつて音なし
  4. ④눈이 있어도 보지 못함眼あつて物をみず
  5. ⑤여인이 있어도 아이를 낳지 못함女人あつて子をうまず
구원실성이 없음을 비유
  1. ⑥사람이 있어도 목숨이 없음人あつて命なし
  2. ⑦또 혼이 없음又神なし
(일곱 비유가 모두 두 가지를 아우른다고도 봄)
도표 13 · 꽃은 피어도 열매가 없다

뭇 별의 빛이 해 하나에 빼앗기듯 — 당체의 자용을 잃다

대일의 진언 · 약사의 진언 · 아미타의 진언 · 관음의 진언도 마찬가지다. 그 경들 안에서는 각각의 제목과 진언이 대왕 · 수미산 · 일월 · 좋은 약 · 여의주 · 날카로운 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법화경의 제목에 대하면 구름과 진흙만큼의 승렬이 있을 뿐 아니라, 모두 「당체의 자용」, 곧 그 자체가 본래 지니고 있던 작용까지 잃어버린다. 단순히 덜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아예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여섯 비유로 보이신다. 뭇 별의 빛은 해 하나가 뜨면 빼앗긴다. 모든 쇠는 자석 하나를 만나면 끌려가 날카로운 성질이 다한다. 큰 칼도 작은 불을 만나면 무디어진다. 소젖 · 나귀젖은 사자왕의 젖을 만나면 물이 된다. 뭇 여우의 술법은 개 한 마리를 만나면 사라진다. 개는 작은 호랑이를 만나도 얼굴빛이 변한다. 여섯 비유는 모두 수가 많고 크기가 커도 본질이 다른 하나를 만나면 힘을 잃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별은 수없이 많아도 해 하나를 당하지 못하고, 개는 커도 작은 호랑이를 당하지 못한다. 다른 경과 다른 부처의 진언이 아무리 많아도 묘법연화경의 제목 하나 앞에서 그 작용을 잃는다.

그러므로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면 나무아미타불의 작용도, 나무대일진언의 작용도, 관세음보살의 작용도, 일체의 제불 · 제경 · 제보살의 작용도 모두 다 묘법연화경의 작용에 빼앗긴다」. 그리고 「그 경들은 묘법연화경의 작용을 빌리지 않으면 모두 헛된 것이 된다」. 다른 경의 부처와 보살이 어떤 작용을 한다면 그것은 본래 묘법연화경의 작용을 빌린 것이라는 뜻이다. 대성인은 이것을 「지금 눈앞의 도리」라고 하시어 절대의 확신을 보이신다.

여섯 비유
뭇 별의 빛해 하나
모든 쇠의 날카로움자석 하나
큰 칼작은 불
소젖 · 나귀젖사자왕의 젖(물이 됨)
뭇 여우의 술법개 한 마리
개작은 호랑이(얼굴빛이 변함)
나무아미타불 · 나무대일진언 · 관세음보살 · 일체의 제불 · 제경 · 제보살의 작용
묘법연화경의 작용
쇠퇴의 네 비유
달이 숨듯조수가 빠지듯가을 겨울의 풀이 시들듯얼음이 햇볕에 녹듯
月のかくるがごとく塩のひるがごとく秋冬の草の・かるるがごとく冰の日天に・とくるがごとく
도표 14 · 하나를 만나 힘을 잃다

제목의 간심은 법체 — 「법화경의 제목으로 본존을 삼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제목의 간심」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부르는 소리만이 아니라 법체 그 자체를 가리킨다. 「본존문답초」의 첫머리와 같은 뜻이다.

法華経の題目を以て本尊とすべし

법화경의 제목으로써 본존을 삼아야 하느니라

「본존문답초」, 365쪽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 제목이 곧 대성인께서 「교오전답서」에서 말씀하신 십계호구의 삼대비법의 본존이라고 본다.

日蓮がたましひをすみにそめながして・かきて候ぞ信じさせ給へ

니치렌의 혼을 먹물에 물들여 흘려서 썼으니 믿으시라

「교오전답서」, 1124쪽

본 장이 「간략히」에서 「널리」로 나아가 밝힌 제목의 간심은 이처럼 다음 편에서 밝힐 본문의 본존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앞 장의 공귀의 풀이에서 「매우 깊음」을 본문의 본존으로 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화경의 제목이 일체경의 간심이요 일체의 작용을 거두는 법체이기에, 그것이 말법의 본존이 되는 것이다.

달이 숨듯, 조수가 빠지듯 — 「지금 눈앞의 도리」

이 장은 다음 말씀으로 맺어진다. 「니치렌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넓히면 나무아미타불의 작용은 달이 숨는 것처럼, 조수가 빠지는 것처럼, 가을 겨울의 풀이 시드는 것처럼, 얼음이 햇볕에 녹는 것처럼 되어 가는 것을 보라.」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가 한번 나타나면 권교 · 소승의 여러 경의 공덕이 다해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네 비유는 모두 자연의 이치이다. 해가 뜨면 달은 숨고, 때가 되면 조수는 빠지며, 가을 겨울이 오면 풀은 시들고, 햇볕을 받으면 얼음은 녹는다. 누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때와 이치가 그렇게 만든다. 염불이 세상을 뒤덮고 있던 당시에 대성인은 남묘호렌게쿄가 넓혀짐에 따라 그 힘이 자연히 쇠해 가리라고 단언하시고, 「보라」고 그 증거를 미래에 맡기셨다. 「선무외삼장초」에서 대성인이 십여 년 전에는 모두 염불자였으나 이제는 열 사람 가운데 한두 사람이 오로지 남묘호렌게쿄를 부르고, 두세 사람은 양쪽을 부르게 되었다고 하신 것은, 이 「눈앞의 도리」가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우에노전답서」의 다음 말씀도 같은 뜻이다.

正法・像法には此の法門をひろめず余経を失わじがためなり、今末法に入りぬれば余経も法華経もせんなし、但南無妙法蓮華経なるべし

정법 · 상법에는 이 법문을 넓히지 않았으니 다른 경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이제 말법에 들어서면 다른 경도 법화경도 소용이 없고 다만 남묘호렌게쿄여야 하느니라

「우에노전답서」, 1546쪽

이 말씀은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물음을 미리 보여 준다. 이토록 뛰어난 법이라면 어째서 정법 · 상법의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 · 천태 · 전교는 넓히지 않았는가. 그 답은 「다른 경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때가 말법에 이르러서야 남묘호렌게쿄만을 넓혀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보은초 제8편 「본문의 삼대비법과 보은의 맺음」은 바로 이 물음에서 시작한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법화경의 간심은 어느 한 품이나 한 구절이 아니라 묘법연화경의 제목, 곧 남묘호렌게쿄이다. 그 제목은 일체경과 일체 제불의 작용을 거두는 법체이며, 말법에 삼대비법으로 나타나 모든 가르침의 작용을 거두어들인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제7편의 네 장은 「보은」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두 방향에서 밝혔다.

제30장에서 대성인은 「이 일은 일본국 가운데 다만 니치렌 한 사람만이 알고 있다」고 하시며, 알기에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결단을 권지품의 「불애신명」과 『열반경』의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에 두셨다. 이번에 목숨을 아끼면 어느 세상에 부처가 되어 부모와 스승을 구하겠느냐는 물음이 그 결단의 핵심이다. 이즈 유배, 큰 바람에 큰 파도가 이는 듯한 대난, 지계의 성인과 정직한 현자마저 도리를 굽힌 비방, 참언의 그물, 다쓰노구치와 사도, 세 번째 고명, 미노부 입산 — 이 모든 것을 대성인은 사은을 갚기 위해 몸을 깨뜨리려 했으나 깨뜨려지지 않은 발걸음으로 술회하셨다.

제31장은 그 보은의 공덕이 옛 스승 도젠보에게 미칠 것인가를 묻는다. 목련과 선성비구의 예가 보이듯 자업자득의 과보는 구하기 어렵다. 겁이 많고 기요스미에 집착한 도젠보는 가게노부와 엔치 · 지쓰조를 두려워해 제자들을 버렸고, 뒤늦은 믿음은 「싸움 뒤의 몽둥이」 · 「대낮의 등불」이었다. 그러나 대성인은 불에 들어가고 물에 빠져서라도 그 묘를 찾고 싶다고 하셨고, 근조 · 행표처럼 스승이면서 제자가 된 조켄보 · 기조보의 봉공을 「천하 제일」이라 하시며 그 후생을 보증하셨다. 엄정한 판정과 깊은 정이 함께 있는 것이 대성인의 지은보은이다.

제32 · 33장은 그 엄정한 판정 뒤에 법화경의 간심을 묻는다. 경의 제목이 경 전체를, 부처의 이름이 부처의 덕 전체를 거두듯, 「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 다섯 자」는 일체경의 간심이요 일체 생명의 정상의 정법이다. 취법 · 공귀의 풀이에서 보면 그것은 문저의 본인 명자에서 증득된, 삼대비법을 모두 갖춘 묘법이다. 마음을 모르고 불러도 그 공덕은 다른 경의 제목과 하늘과 땅만큼 다르며, 어리석은 사람도 작은 칼로 큰 밧줄을 끊듯 법화경의 제목으로 큰 죄를 녹인다. 여섯 견해를 넘어 「남묘호렌게쿄가 간심」이라 단정하신 대성인은 결집의 사실과 법운 · 천태 · 장안 · 묘락의 풀이, 「일본」 두 글자의 비유, 일곱 비유와 여섯 비유로 그 법체가 일체 제경 · 제불의 작용을 거두어들임을 밝히셨다. 그리고 「달이 숨듯, 조수가 빠지듯」 그 도리가 눈앞에 나타날 것을 「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이토록 뛰어난 법을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 · 천태 · 전교는 왜 넓히지 않았는가. 제8편 「본문의 삼대비법과 보은의 맺음」은 이 물음으로 시작하여 정법 · 상법의 홍통의 차례를 밝히고, 마침내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 · 본문의 제목을 세우며, 그 공덕을 「꽃은 뿌리로 돌아가고 참맛은 흙에 머문다」는 말씀과 함께 고 도젠보에게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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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일본어판) — 「보은초」 293–329쪽, 「보은초 송문」 330쪽, 「개목초」, 「본존문답초」, 「선무외삼장초」, 「세이초사대중중」, 「성인어난사」, 「사신오품초」, 「사도어서」, 「가책방법멸죄초」, 『어의구전』, 「우에노전답서」, 「묘호비구니답서」 등
  • 『묘법연화경』 T9 no.262 (서품 · 방편품 · 화성유품 · 권지품 · 여래수량품 · 상불경보살품 · 약왕보살본사품 · 묘음보살품)
  • 『대반열반경』 T12 no.374
  • 천태대사, 『법화현의』 T33 no.1716 / 묘락대사, 『법화현의석첨』
  • 『불설우란분경』

연구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On Repaying Debts of Gratitude」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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