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겨울 저녁의 사도 — 눈 덮인 묘지 들판 한가운데 홀로 선 판자 틈 벌어진 작은 당, 눈에 반쯤 묻힌 묘석과 마른 나무 사이로 벽 틈의 희미한 등불 하나가 비치는 금박 수묵화

개목초

서강 · 개목초를 펼치며 — 유래 · 대의 · 원의

開目抄어서 186–237쪽 (상권 186–210 · 하권 210–237)
저술
1272년(문영 9) 2월, 사도 쓰카하라 삼매당 · 51세
구성
상 · 하 2권 61장 · 서강과 아홉 편
쪽수
어서 186–237쪽

아홉 편 · 개목초 61장 구성도

61장 → 아홉 편
  1. 서강개목초를 펼치며지금 읽는 편
    序講186 앞유래 · 대의 · 원의
  2. 1 주사친 삼덕과 오중상대
  3. 1 주사친 삼덕과 오중상대
  4. 1 주사친 삼덕과 오중상대
  5. 2 말법의 법화경 행자
  6. 2 말법의 법화경 행자
  7. 3 지용출현과 다섯 번의 부르심
  8. 3 지용출현과 다섯 번의 부르심
  9. 4 삼류의 강적과 결권
  10. 4 삼류의 강적과 결권

「개목초(開目抄)」는 니치렌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되신 이듬해인 1272년(문영 9) 2월, 쓰카하라의 삼매당에서 완성하신 상 · 하 두 권의 대저다. 다쓰노쿠치에서 목이 베일 뻔한 지 다섯 달, 눈과 바람이 그치지 않는 묘지 한가운데에서 대성인은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 셋 — 주 · 사 · 친」이라는 한 줄로 글을 시작하여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라는 한 줄로 맺으셨다. 그 사이에 유교와 인도 외도, 석존 일대의 경교를 다섯 겹으로 견주어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긴 일념삼천을 가려내고, 권지품이 예언한 삼류의 강적을 몸으로 겪은 사람이야말로 말법의 법화경 행자임을 논증하셨다. 니치칸 상인(日寛上人)은 이 책을 말법 하종의 인본존(人本尊)을 드러낸 「인본존 개현의 서」로, 이듬해의 「관심의 본존초」를 「법본존 개현의 서」로 짝지었다. 서강은 이 대저를 펼치기 전에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쓰였는가(유래), 무엇을 말하는가(대의), 그 밑바닥의 뜻은 무엇인가(원의) — 를 차례로 살피고, 61장 전체를 아홉 편으로 나누어 안내한다.

「개목」이라는 제목은 문자 그대로 「눈을 뜨게 한다」는 뜻이다. 무엇에 가려 무엇을 보지 못하던 눈을 뜨게 하는가. 니치칸 상인은 그 답을 네 겹으로 풀었다. 세간의 삼덕에 집착해 출세간의 삼덕을 보지 못하는 눈, 이전 권교의 삼덕에 집착해 법화경의 삼덕을 보지 못하는 눈, 적문의 삼덕에 집착해 본문의 삼덕을 보지 못하는 눈, 그리고 문상 탈익의 삼덕에 집착해 문저 하종의 삼덕을 보지 못하는 눈이다. 제목의 바른 뜻은 넷째에 있다고 상인은 말한다. 개목초 전체가 얕은 데서 깊은 데로 한 걸음씩 올라가는 구조로 짜여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또한 의문의 책이다. 경문대로 난을 만나는데 왜 제천의 수호가 없는가, 그렇다면 나는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가 — 대성인은 이 물음을 「이 글의 간심, 일기의 대사」라 부르시고 책 곳곳에 되풀이해 쓰셨다. 물음을 강하게 세울수록 답은 단단해진다. 그 답의 끝에서 대성인은 「하늘도 버리시라, 여러 난도 만나리라, 신명을 걸겠다」는 서원과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 눈이 되리라, 큰 배가 되리라」는 맹세를 내놓으셨다.

창가교학연구실 강의 序講은 이 책을 신심으로 읽는 책(信読の書), 몸으로 읽는 책(身読の書)이라 부르며 시작한다. 서강의 항목은 아래와 같다.

第一本抄の御述作の由来저술의 유래 — 대고중 시조깅고와 정필의 행방, 「내내 말하는 법문」과 발적현본, 입정안국론에서 쓰카하라까지의 배경
第二本抄の大意대의 — 제호 「개목」의 두 뜻과 네 가지 맹목, 표 · 석 · 결 세 단, 오중상대와 문저, 법화경 행자의 의문과 서원
構成開目抄の構成개목초의 구성 — 상 · 하 2권 61장을 아홉 편으로
第三本抄の元意원의 — 말법의 주사친, 말법의 법화경 행자, 범부즉극의 본불, 「대성인」의 이름, 해와 달, 본인묘의 교주
第一 저술의 유래 (1)대고중과 정필
序講 第一 本抄の御述作の由来 · 一 対告衆と御真筆

문영 9년 2월, 사도에서

개목초는 대성인이 사도 유배 중이던 1272년(문영 9) 2월, 51세 때 저술하신 글이다. 어서전집 첫머리의 머리 줄에는 「문영 9년 2월, 51세 저술, 문하 일동에게 줌, 사도 쓰카하라에서(文永九年二月 五十一歳御作 与門下一同 於佐渡塚原)」라고 적혀 있다. 강의는 이 글이 시조 나카쓰카사 사부로사에몬노조 요리모토(四条中務三郎左衛門尉頼基), 곧 시조깅고에게 주어졌다고 본다. 근거는 대성인 자신의 회상이다. 사도 유배 전후를 스스로 적으신 「종종어진무어서」에 이렇게 나온다.

去年の十一月より勘えたる開目抄と申す文二巻造りたり、頸切るるならば日蓮が不思議とどめんと思いて勘えたり、此の文の心は日蓮によりて日本国の有無はあるべし、譬へば宅に柱なければ・たもたず人に魂なければ死人なり、日蓮は日本の人の魂なり平左衛門既に日本の柱をたをしぬ、只今世乱れてそれともなく・ゆめの如くに妄語出来して此の御一門どしうちして後には他国よりせめらるべし、例せば立正安国論に委しきが如し、かやうに書き付けて中務三郎左衛門尉が使にとらせぬ

작년 십일월부터 생각해 온 개목초라는 글 두 권을 지었느니라. 목이 베인다면 니치렌의 불가사의를 남겨 두고자 생각하여 지은 것이니라. 이 글의 마음은, 니치렌에 의해 일본국의 존망이 있다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집에 기둥이 없으면 지탱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혼이 없으면 죽은 사람이니라. 니치렌은 일본 사람의 혼이니라. 헤이노사에몬은 이미 일본의 기둥을 쓰러뜨렸느니라. 머지않아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근거 없는 말이 꿈처럼 일어나 이 일문이 서로 싸우고, 뒤에는 타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리라. 예컨대 「입정안국론」에 자세히 적은 바와 같으니라. 이렇게 써서 나카쓰카사 사부로사에몬노조의 심부름꾼에게 맡겼느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9쪽

이 한 단락에 개목초의 성격이 거의 다 들어 있다. 첫째, 집필은 사도에 도착한 직후인 1271년(문영 8) 11월에 시작되어 이듬해 2월에 끝났다. 둘째, 「목이 베인다면」 남겨 두려 했다는 말 그대로 이 책은 유언의 성격을 띤다. 셋째, 책의 마음은 「니치렌에 의해 일본국의 존망이 있다」는 데 있다. 대성인은 자신을 집의 기둥, 사람의 혼에 견주시는데, 이는 개목초 끝에서 밝히시는 「일본의 기둥 · 눈 · 큰 배」, 곧 주사친 삼덕과 그대로 이어진다. 넷째, 완성된 원고는 시조깅고의 심부름꾼 편에 가마쿠라로 보내졌다.

「종종어진무어서」의 이 대목이 말하는 「일문의 동사(同士)싸움」은 개목초가 완성된 바로 그달인 1272년 2월, 가마쿠라와 교토에서 호조 일족 사이에 벌어진 내분(이른바 2월 소동)으로 현실화되었다고 전한다. 「사도어서」의 「겨우 60일 내지 150일에 이 일이 일어날까(纔に六十日乃至百五十日に此事起るか)」(957쪽)라는 말도 같은 사건을 가리킨다고 본다. 「타국으로부터의 공격」은 1274년(문영 11) 10월의 몽골 내습으로 이어졌다.

책의 머리 줄에는 「문하 일동에게」라 되어 있고, 대성인의 회상에는 시조깅고의 심부름꾼에게 맡겼다고 되어 있다. 두 기록은 어긋나지 않는다. 대성인은 가마쿠라 문하의 중심에 있던 시조깅고에게 글을 맡기심으로써 그를 통해 문하 전체, 나아가 말법 만년의 제자들에게 이 책을 남기신 것이다.

신독의 서 — 니치코 상인의 말

강의는 개목초를 무엇보다 「신독(信読)의 서」라고 규정한다. 니치코 상인(日亨上人)은 이렇게 말했다.

佐渡流罪中、筆舌に尽くせぬ大法難の最中、深縁の門下に、筆紙ご窮乏のなかから、遺言的にしたためられた重書であるから、信読、身読にあらざれば、奥旨に達することはできぬ

사도 유배 중, 붓과 혀로 다할 수 없는 큰 법난의 한가운데에서, 인연 깊은 문하에게, 종이와 붓조차 모자란 가운데 유언처럼 써 주신 중요한 글이므로, 믿음으로 읽고 몸으로 읽지 않으면 깊은 뜻에 이를 수 없다.

글자의 뜻을 따라가는 독서만으로는 이 책의 깊은 뜻에 닿을 수 없다는 말이다. 개목초가 가장 힘주어 묻는 것은 「법화경의 행자가 누구인가」이고, 그 답은 경문을 몸으로 읽은 사람의 삶에서만 나온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같은 자세가 요구된다는 것이 강의의 출발점이다.

시조깅고 — 다쓰노쿠치에 함께한 제자

시조깅고는 당시의 관례에 따라 관직의 당나라식 이름으로 「깅고(金吾)」라 불렸다. 호조 일족인 에마(江間) 가문을 대대로 섬긴 충신으로, 무예와 함께 의술에도 통달했다고 전한다. 대성인의 교화를 받아 입신한 것은 건장(建長) 연간으로, 이케가미 형제와 비슷한 무렵이었으리라고 강의는 추정한다.

시조깅고의 이름을 문하의 역사에 새긴 것은 1271년(문영 8) 9월 12일 밤의 일이다. 다쓰노쿠치 형장으로 끌려가시는 대성인의 말고삐에 매달려 함께 죽을 각오로 따라간 사람이 시조깅고였다. 대성인은 뒷날 그 일을 이렇게 적으셨다.

かかる日蓮にともなひて法華経の行者として腹を切らんとの給う事かの弘演が腹をさいて主の懿公がきもを入れたるよりも百千万倍すぐれたる事なり、日蓮・霊山にまいりて・まづ四条金吾こそ法華経の御故に日蓮とをなじく腹切らんと申し候なりと申し上げ候べきぞ

이러한 니치렌을 따라 법화경의 행자로서 함께 배를 가르겠다고 말씀하신 일은, 저 홍연이 배를 갈라 주군 의공의 간을 넣은 것보다 백천만 배 뛰어난 일이니라. 니치렌이 영산에 가서 먼저 「시조깅고야말로 법화경 때문에 니치렌과 함께 배를 가르겠다고 말한 사람이옵니다」라고 아뢰리라.

「시조깅고전어소식」, 1113쪽

홍연(弘演)과 의공(懿公)의 고사는 개목초 제2장에서도 「충의 본보기」로 등장한다(本文에서는 「공윤(公胤)」). 대성인은 유교의 충의 본보기보다 법화경을 위한 시조깅고의 결의가 백천만 배 뛰어나다고 하셨다. 개목초가 유교의 삼덕에서 출발해 불법의 삼덕으로 올라가는 구조를 생각하면, 이 비교 자체가 개목초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당시 대성인 문하의 재가 제자 가운데에는 가마쿠라의 시조깅고, 시모우사의 도키 입도(도키조닌), 그리고 뒤에 스루가 우에노의 난조 도키미쓰가 중심이 되어 교단을 밖에서 지켰다. 강의는 세 사람의 역할을 이렇게 정리한다. 시조깅고는 강한 신심으로 신앙의 거울이 되었고, 도키 입도는 「관심의 본존초」 등 중요한 법문을 받아 많은 어서를 후세에 전했으며, 난조 도키미쓰는 대성인 멸후 닛코 상인을 우에노 땅에 맞아들였다.

개목초가 시조깅고에게 주어진 까닭을 강의는 이렇게 본다. 이 책은 신심으로 읽어야 하는 중서다. 다쓰노쿠치의 대법난에서 지극한 신심을 몸으로 보인 시조깅고야말로 이 책을 받을 자격을 지닌 사람이었고, 대성인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개목초가 보내진 곳은 삼류의 강적이 들고일어난 본거지 가마쿠라였다. 박해의 한가운데에 남은 제자에게, 박해의 한가운데에 있는 스승이 써 보낸 책 — 그것이 개목초다.

강의는 개목초를 받을 자격을 「지극한 신심, 몸으로 읽는 사람」에서 찾는다. 다쓰노쿠치에서 목숨을 함께 건 시조깅고에게 이 책이 맡겨졌다는 사실은, 개목초가 지식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신심으로 읽는 책임을 보여 준다.

불자석신명의 삶

1253년(건장 5) 4월 28일 입종선언 이래 대성인은 거듭되는 법난을 받으셨다. 「기조보어서」에 「이 다섯 자를 홍통하려면 불자석신명이 이것이니라(此の五字を弘通せんには不自惜身命是なり)」(892쪽)라 하신 그대로, 대성인의 생애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법을 넓히는 삶이었다. 그리고 다쓰노쿠치와 사도 유배를 거쳐 대성인은 발적현본(発迹顕本)하여 본불(本仏)의 경애를 드러내셨다고 강의는 본다. 이 발적현본은 아래 「내내 말하는 법문」 절에서 다시 다룬다.

정필의 행방과 사본

개목초의 정필(대성인 친필 원본)은 미노부 구온지(久遠寺)에 전해졌으나 1875년(명치 8) 미노부의 큰불로 타 버려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다. 강의는 대성인이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생활 가운데 당시의 문하와 말법 만년의 제자들을 위해 남기신 법문서를 화재로 잃은 것을 후대 문도의 수호 소홀로 엄하게 탄식하고, 「현불미래기」의 한 구절을 들어 이를 경계한다.

伝持の人無れば 猶木石の衣鉢を帯持せるが如し

전하여 지니는 사람이 없으면 마치 나무나 돌이 가사와 발우를 걸치고 있는 것과 같으니라.

「현불미래기」, 508쪽

정필이 사라진 뒤 개목초의 본문을 전하는 것은 사본이다. 닛코 상인은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에서 개목초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佐土国の御作・四条金吾頼基に賜う、日興所持の本は第二転なり、未だ正本を以て之を校えず

사도국에서의 저술. 시조깅고 요리모토에게 주셨다. 닛코가 가진 본은 두 번째로 옮겨 쓴 본이며, 아직 정본으로 대조하지 못했다.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 1604쪽

강의에 따르면 확실한 사본으로 닛코 상인의 사본이 오모스 혼몬사(重須本門寺)에 전한다. 이 사본에는 닛코 상인의 서명이 없으나 끝에 「정화 6년(1317) 6월 26일 어영당에서」라는 기록이 있어, 닛코 상인이 입적하기 16년 전의 사본으로 본다. 또 에도 시대 초기의 승려 닛켄(日乾)이 정필과 대조한 대교본(対校本)이 교토 혼만지(本満寺)에 현존한다. 정필이 남아 있던 시기에 정필과 직접 대조한 본이므로, 오늘날 개목초 본문 연구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1. 1253.4.28입종선언
  2. 1260.7「입정안국론」으로 호조 도키요리에게 간언 · 8.27 마쓰바가야쓰 초암 습격
  3. 1261.5.12이즈 이토 유배
  4. 1264.11고마쓰바라 법난
  5. 1268.1몽골 국서 도착 · 10.11 십일통어서
  6. 1271.9.10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의 심문
  7. 9.12마쓰바가야쓰 체포 · 다쓰노쿠치 법난
  8. 9.13에치의 혼마 저택
  9. 10.10에치 출발 · 10.28 사도 도착
  10. 11.1쓰카하라 삼매당 · 11월 개목초 구상 시작
  11. 1272.1.16쓰카하라 문답
  12. 1272.2「개목초」 완성 — 시조깅고의 심부름꾼 편에 가마쿠라로
  13. 1273.4「관심의 본존초」
  14. 1274.2사면 · 3월 가마쿠라 귀환
도표 1 · 개목초 저술의 연표
第一 저술의 유래 (2)「내내 말하는 법문」과 발적현본
序講 第一 · 御述作の由来

사도 이전의 법문은 이전경으로 여기라

개목초가 왜 사도에서 쓰였는가. 강의는 그 답을 「미사와초」에서 찾는다. 대성인은 사도 이전과 이후의 법문을 이렇게 구분하셨다.

又法門の事はさどの国へながされ候いし已前の法門は・ただ仏の爾前の経とをぼしめせ

또 법문에 대해서는, 사도국에 유배되기 이전의 법문은 다만 부처의 이전경(爾前経)이라고 생각하시라.

而るに去る文永八年九月十二日の夜たつの口にて頚をはねられんとせし時より・のちふびんなり、我につきたりし者どもにまことの事をいわざりけるとをもうて・さどの国より弟子どもに内内申す法門あり

그런데 지난 문영 8년 9월 12일 밤 다쓰노쿠치에서 목이 베이려 한 때부터 뒤로는, 가엾게도 나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참된 일을 말하지 않았구나 생각하여, 사도국에서 제자들에게 은밀히 말하는 법문이 있느니라.

「미사와초」, 1489쪽

대성인은 그 전까지 참된 대사를 말씀하지 않으신 까닭도 밝히셨다. 이 나라의 국주가 자신의 치세를 지키려 한다면 진언사 등과 대론하게 할 것이니 그때 참된 대사를 말하리라, 제자들에게 미리 말하면 퍼져서 저들이 알게 될 것이니 그러면 대론이 성립하지 않으리라 — 그래서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쓰노쿠치에서 목이 베일 뻔한 일을 겪고 나서, 나를 따른 이들에게 참된 것을 말하지 않은 채 끝날 뻔했다는 생각에 사도에서 은밀히 법문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그 법문은 어떤 것인가. 대성인은 이어서, 이것은 부처 이후 가섭 · 아난 · 용수 · 천친 · 천태 · 묘락 · 전교 · 의진 등 대논사 · 대인사들이 알면서도 마음속에 감추고 입 밖에 내지 않은 법문이며, 그 까닭은 부처가 「나의 멸후 말법에 들지 않으면 이 대법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제지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日蓮は其の御使にはあらざれども其の時剋にあたる上・存外に此の法門をさとりぬれば・聖人の出でさせ給うまでまづ序分にあらあら申すなり

니치렌은 그 사자는 아니지만 그 시각을 만난 데다 뜻밖에도 이 법문을 깨달았으므로, 성인이 나오실 때까지 우선 서분으로서 대강 말하는 것이니라.

「미사와초」, 1489쪽

이 법문이 나타나면 정법 · 상법 시대의 논사 · 인사들이 말한 법문은 모두 해가 뜬 뒤의 별빛과 같고, 뛰어난 장인이 나온 뒤에 서툰 솜씨를 아는 것과 같으며, 그때에는 정상 시대의 절과 불당의 불상 · 승려의 영험은 모두 사라지고 다만 이 대법만이 일염부제에 유포하리라고 대성인은 맺으신다.

「내내 말하는 법문」 — 문저의 일념삼천

강의는 「미사와초」의 「은밀히 말하는 법문(内内申す法門)」이 바로 개목초의 다음 한 구절에 담겨 있다고 본다.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竜樹・天親・知つてしかも・いまだ・ひろいいださず但我が天台智者のみこれをいだけり。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 용수 · 천친은 알면서도 아직 건져 내지 않았고, 다만 우리 천태지자만이 이것을 품었느니라.

「개목초 상」, 189쪽

용수 · 천친이 「알면서도 건져 내지 않았다」는 표현은 「미사와초」의 「알면서도 마음속에 감추었다」와 정확히 겹친다. 대성인이 넓히시는 법문은 정법 · 상법 시대에는 넓혀지지 않은 비밀의 대법, 곧 사(事)의 일념삼천이다. 강의는 이 대법을 넓히는 대성인은 곧 본인묘(本因妙)의 교주이며 말법의 주사친 삼덕을 갖추신 본불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어의구전』의 「본존이란 법화경 행자의 일신의 당체이니라(本尊とは法華経の行者の一身の当体なり)」(760쪽)를 들어, 말법의 인본존을 드러내신 책이 개목초이며, 법본존을 드러내신 「관심의 본존초」와 함께 특히 중서로 받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발적현본 — 「목이 베였느니라」

그렇다면 「사도 이전의 법문은 이전경으로 여기라」는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강의는 다쓰노쿠치의 목 자리에서 대성인이 범부의 몸, 상행보살 재탄이라는 수적(垂迹)의 모습을 벗고(発迹)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라는 본지(本地)를 드러내셨다(顕本)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답한다. 강의가 근거로 드는 것은 「백육개초」의 한 구절이다.

久遠名字より已来た本因本果の主・本地自受用報身の垂迹上行菩薩の再誕・本門の大師日蓮

구원 명자로부터 이래의 본인 · 본과의 주인, 본지 자수용보신의 수적인 상행보살의 재탄, 본문의 대사 니치렌.

「백육개초」, 854쪽

그리고 개목초 하권, 삼류의 강적을 밝히는 대목 첫머리에 대성인 스스로 이렇게 쓰셨다.

日蓮といゐし者は去年九月十二日子丑の時に頸はねられぬ、此れは魂魄・佐土の国にいたりて返年の二月・雪中にしるして有縁の弟子へをくればをそろしくて・をそろしからず・みん人いかに・をぢぬらむ、此れは釈迦・多宝・十方の諸仏の未来日本国・当世をうつし給う明鏡なりかたみともみるべし。

니치렌이라고 하던 자는 작년 9월 12일 자시 · 축시에 목이 베였느니라. 이것은 혼백이 사도국에 이르러 해가 바뀐 2월 눈 속에서 적어 인연 있는 제자에게 보내는 것이니, 무서운 것 같아도 무섭지 않으니라. 보는 사람은 얼마나 두려워할 것인가. 이것은 석가 · 다보 · 시방 제불이 미래 일본국의 당세를 비추어 주신 밝은 거울이니라. 유품으로도 보라.

「개목초 하」, 223쪽

「니치렌이라고 하던 자」라는 과거형, 「목이 베였느니라」라는 완료형. 강의는 이 구절에 발적현본이 「밝고 뚜렷하게(明々赫々)」 드러나 있다고 본다. 범부 니치렌의 목은 다쓰노쿠치에서 베였고, 지금 사도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은 그 「혼백」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유품(かたみ)」으로 보내진다는 말도 앞의 「종종어진무어서」의 「목이 베인다면 남겨 두고자」와 겹친다. 그러므로 이런 대사를 보여 주신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둘 없는 신심으로 받들어야 하며, 다쓰노쿠치의 목 자리에서 사도 유배에 이르는 고난과 그 가운데 보이신 본불로서의 행적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의는 강조한다.

강의의 관점에서 「사도 이전」과 「사도 이후」의 경계는 다쓰노쿠치의 발적현본이다. 개목초는 그 경계를 넘은 직후, 「혼백」의 자리에서 쓰인 첫 대저이며, 말법의 주사친 — 인본존을 드러낸 책이다.

第一 저술의 유래 (3)배경: 입정안국론에서 쓰카하라까지
序講 第一 · 三 背景

국간과 거듭된 법난

1260년(문응 원년) 7월,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을 당시의 최고 실권자 호조 도키요리에게 올려, 그릇된 법을 금하고 바른 법을 세워 나라를 편안히 하라, 그렇지 않으면 자계반역난(自界叛逆難)과 타국침핍난(他国侵逼難)의 두 난이 일어나리라고 경고하셨다. 막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같은 해 8월 27일 마쓰바가야쓰의 초암이 습격당했고, 이듬해 1261년(홍장 원년) 5월 12일에는 대성인을 이즈의 이토로 유배했다.

1262년(홍장 2) 사면되어 가마쿠라로 돌아오신 대성인은 1264년(문영 원년) 11월 아와에서 고마쓰바라 법난을 당하시는 등, 박해는 해마다 거세졌다. 그리고 「입정안국론」으로부터 만 7년이 지난 1268년(문영 5) 정월, 몽골의 국서가 도착해 타국침핍의 예언이 현실로 다가왔다. 막부는 여러 사찰과 신사에 몽골 항복을 기원하게 했는데, 강의는 이를 방법(謗法)을 거듭한 일로 본다. 국가 존망의 위기 앞에서 대성인은 그해 10월 11일 열한 통의 서신(십일통어서)을 막부 요인과 여러 종파의 대표에게 보내 미망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하고 공개 대론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막부는 이를 듣지 않았고, 막부 요인의 부인들에게 다가간 염불 · 진언 · 율 등 여러 종파 승려들의 말에 휘둘려 대성인과 그 문하에 대한 탄압을 더욱 거세게 했다.

문영 8년 9월 — 헤이노사에몬과 「일작일어서」

1271년(문영 8) 9월 10일, 막부의 군사 · 경찰권을 쥐고 평소 대성인을 가장 미워하던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는 집권을 대리하는 자격으로 대성인을 막부에 불러, 전 집권 호조 도키요리와 호조 시게토키가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혐의로 심문했다. 대성인은 헤이노사에몬을 엄연히 간하여 다가오는 국난 앞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하셨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이틀 뒤인 9월 12일, 대성인은 다시 반성을 촉구하는 서장을 보내셨다. 이것이 「일작일어서(一昨日御書)」다.

抑貴辺は当時天下の棟梁なり何ぞ国中の良材を損せんや、早く賢慮を回らして須く異敵を退くべし世を安じ国を安ずるを忠と為し孝と為す、是れ偏に身の為に之を述べず君の為仏の為神の為一切衆生の為に言上せしむる所なり

그대는 지금 천하의 동량이니라. 어찌 나라 안의 좋은 재목을 해치려 하는가. 어서 현명한 생각을 돌려 마땅히 이국의 적을 물리쳐야 하리라. 세상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편안히 하는 것을 충이라 하고 효라 하느니라. 이것은 오로지 내 몸을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를 위하여, 부처를 위하여, 신을 위하여, 일체중생을 위하여 아뢰는 것이니라.

「일작일어서」, 183쪽

「충」과 「효」, 「군주 · 부처 · 신 · 일체중생을 위하여」라는 말은 개목초 첫머리의 주사친 삼덕과 유교의 충효로 곧장 이어진다. 그러나 이 간언은 헤이노사에몬의 분노에 불을 붙였을 뿐이었다.

9월 12일 — 「일본의 기둥을 쓰러뜨린다」

헤이노사에몬은 스스로 대장이 되어 대성인 한 분을 잡으려고 수백 명의 무사를 이끌고 마쓰바가야쓰의 초암으로 몰려왔다. 그의 부하 쇼보(少輔房)는 달려들어 법화경 제5권으로 대성인의 얼굴을 쳤고, 다른 무리는 법화경 두루마리를 흩뜨리고 발로 밟고 몸에 감았다. 법화경 제5권에는 권지품이 들어 있다. 권지품은 「칼과 몽둥이를 가하리라(刀杖を加う)」고 말법의 법화경 행자가 받을 박해를 예언한 품이며, 개목초 하권의 삼류 강적론이 바로 이 권지품 이십행게에 기대고 있다. 이때 대성인은 큰 소리로 외치셨다.

あらをもしろや平左衛門尉が・ものにくるうを見よ、とのばら但今日本国の柱をたをす

아아 재미있구나, 헤이노사에몬노조가 미쳐 날뛰는 것을 보라. 그대들은 지금 일본국의 기둥을 쓰러뜨리는 것이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2쪽

오히려 잡으러 온 무사들이 얼굴빛을 잃었다. 「일본국의 기둥」이라는 말은 앞의 919쪽 회상, 그리고 개목초의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로 그대로 이어진다.

다쓰노쿠치의 목 자리

12일 밤, 대성인은 엄중한 경비 속에 와카미야 대로를 지나 가마쿠라를 나서 유이 해변에서 고시고에의 다쓰노쿠치로 향하셨다. 도중 하치만궁 앞에서 말에서 내려, 큰 소리로 하치만 대보살에게 법화경의 행자를 수호하지 않느냐고 꾸짖으셨다. 유이 해변에서 다쓰노쿠치 형장까지 대성인의 말고삐에 매달려 따라간 사람이 개목초의 대고중 시조깅고였다.

다쓰노쿠치 해안의 동트기 전 — 잔잔한 밤바다 저편 에노시마의 검은 그림자, 하늘을 가로지르는 달 같은 둥근 빛, 모래밭에서 물러서는 아주 작은 사람 그림자들이 보이는 금박 수묵화
그림 · 다쓰노쿠치 앞바다의 한밤, 에노시마 쪽 하늘을 가로지르는 둥근 빛

목 자리에 앉으셨을 때의 일을 대성인은 이렇게 적으셨다.

此にてぞ有らんずらんと・をもうところに案にたがはず兵士どもうちまはり・さわぎしかば、 左衛門尉申すやう只今なりとなく、日蓮申すやう不かくのとのばらかな・これほどの悦びをば・わらへかし、いかに・やくそくをば・たがへらるるぞと申せし時、江のしまのかたより月のごとく・ひかりたる物まりのやうにて辰巳のかたより戌亥のかたへ・ひかりわたる

여기서 끝나리라 생각하던 차에 예상대로 병사들이 둘러싸고 소란을 피우므로, 사에몬노조(시조깅고)가 「바로 지금입니다」 하고 울었느니라. 니치렌이 말하기를 「못난 사람이로다. 이렇게 기쁜 일을 웃어라. 어찌 약속을 어기는가」 하고 말할 때, 에노시마 쪽에서 달처럼 빛나는 것이 공처럼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빛나며 건너갔느니라.

十二日の夜のあけぐれ人の面も・みへざりしが物のひかり月よのやうにて人人の面もみなみゆ、太刀取目くらみ・たふれ臥し兵共おぢ怖れ・けうさめて一町計りはせのき

12일 밤 새벽녘 어둠이라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 빛이 달밤과 같아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보였느니라. 칼잡이는 눈이 아찔하여 쓰러져 엎드리고, 병사들은 겁에 질려 흥이 깨져 한 정(町)쯤 달아나 물러났느니라.

日蓮申すやう・いかにとのばら・かかる大禍ある召人にはとをのくぞ近く打ちよれや打ちよれやと・たかだかと・よばわれども・いそぎよる人もなし、さてよあけば・いかにいかに頸切べくはいそぎ切るべし夜明けなばみぐるしかりなんと・すすめしかども・とかくのへんじもなし

니치렌이 「어찌하여 그대들은 이토록 큰 죄가 있는 죄인에게서 멀어지는가. 가까이 오라, 가까이 오라」 하고 높이 외쳤으나 서둘러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날이 새면 어쩌려는가. 목을 벨 것이면 어서 베라. 날이 밝으면 보기 흉하리라」 하고 재촉했으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느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3쪽

강의는 이를 본불이기에 나타난 불가사의이며, 제천의 가호 앞에 형리들이 떨며 물러서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고 말한다.

강의에 따르면 다쓰노쿠치의 참수는 헤이노사에몬의 독단이었으며, 집권 호조 도키무네는 대성인의 무죄를 인정하고 아타미에서 요양 중이던 무사시노카미 노부토키에게 사자를 보내 형의 중지를 지시했다고 한다.

에치에서 사도로

이튿날 13일, 막부의 관리들은 대성인을 사가미의 에치에 있는 혼마 로쿠로사에몬의 저택으로 모셨다. 대성인의 모습을 보고 오랜 염불 신앙을 버리는 무사들이 잇따랐고, 헤이노사에몬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마쿠라로 돌아갔다. 13일 밤, 수십 명의 무사가 지키는 가운데 대성인은 뜰에 나가 밤하늘의 달을 향해, 법화경을 수호하겠다고 맹세해 놓고 아무 징표도 없는 것은 어찌 된 일이냐고 꾸짖으셨다. 그러자 하늘에서 샛별 같은 큰 별이 내려와 뜰의 매화나무 가지에 걸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에치에 머무신 20여 일 사이 가마쿠라에서 잇따라 불이 났고, 염불자들은 이를 대성인 제자들의 짓이라고 모함했다. 이 모략으로 탄압의 손길이 다시 뻗쳐, 제자와 신도들은 유배되거나 옥에 갇히는 등의 박해를 받았다. 대성인에게도 사도 유배가 결정되어, 10월 10일 에치를 떠나 28일 사도에 도착하시고, 11월 1일 쓰카하라의 삼매당에 드셨다.

쓰카하라 삼매당

十一月一日に六郎左衛門が家のうしろ塚原と申す山野の中に洛陽の蓮台野のやうに死人を捨つる所に一間四面なる堂の仏もなし、上はいたまあはず四壁はあばらに雪ふりつもりて消ゆる事なし、かかる所にしきがは打ちしき蓑うちきて夜をあかし日をくらす、夜は雪雹雷電ひまなし昼は日の光もささせ給はず心細かるべきすまゐなり

11월 1일, 로쿠로사에몬의 집 뒤 쓰카하라라고 하는 산야 가운데, 교토의 렌다이노처럼 죽은 사람을 버리는 곳에 사방 한 칸의 당이 있었는데 불상도 없었느니라. 위로는 지붕 널빤지가 맞지 않고 사방 벽은 틈투성이라, 눈이 쌓여 녹을 줄을 몰랐느니라. 이런 곳에 가죽을 깔고 도롱이를 입고 밤을 새우고 날을 보내었느니라. 밤에는 눈 · 우박 · 번개가 그칠 새 없고 낮에도 햇빛이 비치지 않으니, 마음 쓸쓸한 거처였느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6쪽

때는 한겨울이었다. 불기운이 있을 리 없는 이 당에서, 함께 따라온 닛코 상인과 둘이서 지내신 혹한의 생활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더구나 사도는 염불 신앙이 강한 땅이어서, 대성인을 염불의 원수, 불법의 이단자로 여겨 목숨을 노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원래 북면무사였고 염불의 독실한 신자였다고 전하는 아부쓰보가 대성인을 해치려고 찾아와 「염불이 무간지옥이라는 까닭을 말하라」고 다그쳤다가 도리어 논파되어 염불을 버린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쓰카하라 문답

해가 바뀐 1272년(문영 9) 1월 16일, 사도는 물론 에치고 · 엣추 · 데와 · 오슈 · 시나노 등지에서 염불 · 진언의 승려들이 모여들고 근처 사람들까지 더해 수백 명이 대성인을 둘러싸고 법론을 벌였다. 이것이 쓰카하라 문답이다. 여러 종파의 승려들은 대성인의 정의를 당하지 못했다.

止観・真言・念仏の法門一一にかれが申す様を・でつしあげて承伏せさせては・ちやうとはつめつめ・一言二言にはすぎず、鎌倉の真言師・禅宗・念仏者・天台の者よりも・はかなきものどもなれば只思ひやらせ給へ、利剣をもて・うりをきり大風の草をなびかすが如し

지관 · 진언 · 염불의 법문을 하나하나 그들이 말하는 대로 다짐받아 승복하게 한 다음 딱딱 몰아붙이니 한두 마디를 넘지 않았느니라. 가마쿠라의 진언사 · 선종 · 염불자 · 천태종 사람들보다도 보잘것없는 자들이었으니 짐작해 보시라. 날카로운 칼로 오이를 자르고 큰 바람이 풀을 쓰러뜨리는 것과 같았느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8쪽

그 자리에서 그릇된 신앙을 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염불자들은 가마쿠라에 사람을 보내 무사시노젠지에게 참소하고, 대성인의 신자가 된 사람은 나라에서 내쫓거나 옥에 가두라는 명령을 내리게 하는 음험한 수단까지 썼다.

눈 속의 집필

개목초는 이처럼 상상을 넘는 부자유와, 대성인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의 한가운데에서 쓰였다. 강의에 따르면 그 종이와 붓조차 제자 닛코 상인과 신자가 된 아부쓰보 등이 간신히 구해 공양한 것이었다. 그런 고경 속에서도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が仏にならん第一のかたうどは景信・法師には良観・道隆・道阿弥陀仏と平左衛門尉・守殿ましまさずんば争か法華経の行者とはなるべきと悦ぶ

니치렌이 부처가 되는 데 첫째가는 편은 가게노부, 법사로는 료칸 · 도류 · 도아미다부쓰, 그리고 헤이노사에몬노조와 고노토노(집권 도키무네)이니, 이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찌 법화경의 행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하고 기뻐하느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7쪽

박해자를 「성불의 첫째가는 편(かたうど)」으로 받아들이는 이 경애가, 개목초 하권의 「법화경의 행자는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하늘도 버리시라」는 서원의 바탕이 된다. 강의는 다쓰노쿠치의 빛, 에치의 불가사의, 그리고 사도의 혹한 속에서 오로지 민중 구제를 위해 중요한 법문을 적으신 대성인의 대자대비를 생각하며, 말법 진실의 주사친임을 선언하신 이 책을 열렬한 신심과 구도심으로 깊이 받들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대성인은 사도 유배 중 인본존을 드러낸 개목초에 이어 1273년(문영 10) 4월 「관심의 본존초」로 법본존을 드러내셨고, 그 밖에도 「제법실상초」 · 「여설수행초」 · 「현불미래기」 · 「당체의초」 등 중요한 어서를 많이 쓰셨다. 그리고 1274년(문영 11) 2월 사면되어 가마쿠라로 돌아오셨다.

第二 대의 (1)제호 「개목」
序講 第二 本抄の大意 · 一 当抄題号の事

말법 하종의 인본존을 드러내다

개목초는 말법 하종의 인본존을 드러낸 어서다. 곧 말법에 출현하신 니치렌 대성인이야말로 주사친 삼덕을 갖추신 부처임을 논증한 책이라는 것이 강의의 대의 규정이다.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개목초 문단」(강의는 「개목초우기(開目抄愚記)」로 인용)에 따라 개목초의 대의를 살핀다. 먼저 제호에 대한 상인의 풀이다.

「개(開)」의 두 뜻 — 소제와 소견

今開目抄を題することは盲目を開く義なり、所謂日本国の一切衆生、執権等の膜に覆わる為に真実の三徳を見ること能わず故に盲目の如し、然るに当抄に一切衆生をして盲目を開かしむるの相を明かす。故に開目抄と名づくるなり

지금 「개목초」라 제목한 것은 맹목을 연다는 뜻이다. 이른바 일본국의 일체중생은 권(權)에 집착하는 등의 막에 덮여 진실의 삼덕을 보지 못하므로 맹인과 같다. 그런데 이 초에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맹목을 열게 하는 모습을 밝힌다. 그러므로 「개목초」라 이름한다.

니치칸 상인, 「개목초 문단」

상인은 「연다(開)」는 글자에 두 뜻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없애는 것(所除)」이고 하나는 「보는 것(所見)」이다.

所除は即ち執権等なり、所見は即ち三徳なり、譬えば世の盲目の膜を除き物を見るを目を開くと名づくる如し。若し膜を除かずば是れ目を開くに非ず、若し物を見ずんば亦目を開くに非ず

없애는 것은 권에 대한 집착 등이요, 보는 것은 삼덕이다. 비유하면 세상에서 눈의 막을 없애고 사물을 보는 것을 「눈을 뜬다」고 하는 것과 같다. 막을 없애지 않으면 눈을 뜬 것이 아니고, 사물을 보지 못해도 눈을 뜬 것이 아니다.

같은 곳

상인은 이 두 뜻의 근거로 묘락대사의 『법화문구기』를 든다. 「발(發)이란 개(開)이다. 없애는 쪽에 의거해 발적(発迹)이라 하고, 보는 쪽에 의거해 현본(顕本)이라 한다」는 풀이다. 개목의 「개」는 곧 발적현본의 「발」이며, 막을 걷어 내는 것과 참된 것을 보는 것이 하나의 작용이다. 앞 절에서 본 다쓰노쿠치의 발적현본과 개목초라는 제호가 여기서 한 줄로 이어진다.

네 가지 맹목

그러면 「맹목」이란 누구인가. 상인은 네 부류의 사람을 든다.

첫째, 외전(外典)의 사람이다. 세간 유위(有爲)의 삼덕에만 집착해 출세간 무위(無爲)의 삼덕을 보지 못한다. 둘째, 이전(爾前)의 사람이다. 이전 권교의 삼덕에만 집착해 법화경 진실의 삼덕을 보지 못한다. 셋째, 적문(迹門)의 사람이다. 적문 숙익(熟益)의 삼덕에만 집착해 본문 구원의 삼덕을 보지 못한다. 넷째, 탈익(脱益)의 사람이다. 문상 탈익의 삼덕에만 집착해 문저 하종의 삼덕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개목」에도 네 겹의 뜻이 있다. 세간 유위의 삼덕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출세간 무위의 삼덕을 보는 것, 이전 권교의 삼덕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법화 진실의 삼덕을 보는 것, 적문의 삼덕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본문 구원의 삼덕을 보는 것, 문상 탈익의 삼덕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문저 하종의 삼덕을 보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 「개목초 문단」
  1. 1외전의 맹목집착세간 유위의 삼덕에 집착봄출세간 무위의 삼덕을 봄내외상대
  2. 2이전의 맹목집착이전 권교의 삼덕에 집착봄법화 진실의 삼덕을 봄권실상대
  3. 3적문의 맹목집착적문 숙익의 삼덕에 집착봄본문 구원의 삼덕을 봄본적상대
  4. 4탈익의 맹목집착문상 탈익의 삼덕에 집착봄문저 하종의 삼덕을 봄종탈상대
今題号の意正しく第四に在り지금 제호의 뜻은 바로 넷째에 있다
도표 2 · 네 가지 맹목과 개목

상인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今題号の意正しく第四に在り、然りと雖も此の義幽微にして彰われ難し、故に浅き従り深きに至り次第して之を判ずるなり

지금 제호의 뜻은 바로 넷째에 있다. 그러나 이 뜻은 그윽하고 미묘하여 드러나기 어렵다. 그러므로 얕은 데서 깊은 데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이를 판정하는 것이다.

같은 곳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하고, 먼 곳에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한다. 개목초가 유교와 외도에서 시작해 이전 · 적문 · 본문을 거쳐 문저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는 것은 이 때문이며, 상인은 배우는 이가 이 차례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당부한다. 네 가지 맹목은 아래에서 볼 오중상대의 다섯 단계와 짝을 이룬다. 외전의 맹목은 내외상대에서, 이전의 맹목은 권실상대(와 그 앞의 대소상대)에서, 적문의 맹목은 본적상대에서, 탈익의 맹목은 종탈상대에서 각각 열린다.

니치칸 상인의 해석에 따르면 「개목」은 막을 걷는 것(발적)과 참된 것을 보는 것(현본)의 두 작용이며, 그 궁극의 대상은 문저 하종의 삼덕, 곧 말법의 주사친인 대성인이다.

대의 — 세 비법을 품은 인본존의 책

이어서 상인은 개목초의 대의를 이렇게 정리한다.

凡そ当抄の大意は末法下種の人本尊を顕わすなり、謂く蓮祖出世の本懐は但三箇の秘法に在り、然りと雖も佐渡已前に於ては末だ其の義を顕わさず

무릇 이 초의 대의는 말법 하종의 인본존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르자면 니치렌 대성인 출세의 본회는 다만 세 가지 비법에 있다. 그러나 사도 이전에는 아직 그 뜻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같은 곳

사도 이후에 그 뜻을 드러내셨으나 개목초 등에서는 아직 「삼대비법」이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 뜻은 늘 세 가지 비법에 있으며, 그 가운데 개목초는 먼저 말법 하종의 인본존을 드러낸 책이라는 것이다. 상인은 개목초의 흐름을 이렇게 요약한다. 처음에 삼덕의 존경을 표시하고, 유교 · 외도에 이어 불교를 풀이하는 가운데 먼저 일대의 천심을 판정해 숙탈의 삼덕을 드러내고, 다음에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임을 밝히고, 권말에 이르러 바로 하종의 삼덕을 드러내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라고 한다.

상인은 다른 어서도 함께 생각하라고 한다. 「종종어진무어서」의 「니치렌은 일본 사람의 혼이니라」는 대성인이 일본국의 주사친이기 때문이며, 「보은초」에서 「첫째는 본문의 교주석존을 본존으로 하여야 한다, 둘째는 본문의 계단, 셋째는 본문의 제목이니라」라고 삼대비법을 밝히신 뒤 「일본국 일체중생의 맹목을 연 공덕이 있다」고 하신 것도 같은 뜻이라는 것이다. 개목초의 「개목」과 「보은초」의 「맹목을 연 공덕」이 여기서 만난다.

第二 대의 (2)표 · 석 · 결
序講 第二 本抄の大意 · 標 · 釈 · 結

세 단으로 읽는 상 · 하 두 권

강의는 상 · 하 두 권의 글을 크게 표(標) · 석(釈) · 결(結)의 세 단으로 나눈다. 첫째 표에서는 말법 하종의 인본존을 드러내기 위해 먼저 주사친 삼덕을 존경해야 함을 표시한다. 둘째 석에서는 유교 · 외도 · 불법에서 설한 삼덕을 들어 풀이하는데, 특히 불교의 삼덕에 대해서는 먼저 일대성교의 승렬 · 천심을 판정해 숙탈의 삼덕을 드러내고, 다음에 대성인이야말로 말법에 출현한 진실한 법화경의 행자임을 밝혀 바로 하종의 삼덕을 드러낸다. 셋째 결에서는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라고, 대성인 자신이 주사친 삼덕을 갖추신 말법의 구세주임을 밝히신다.

표(標)제1장 186쪽夫れ一切衆生の尊敬すべき者三あり所謂主師親これなり무릇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이른바 주 · 사 · 친이니라
석(釈)제2~60장 186–236쪽① 유가의 삼덕 ② 외도의 삼덕 ③ 불교의 삼덕
  1. —일대의 천심을 판정해 숙탈의 삼덕을 드러냄(오중상대)
  2. →대성인이 말법의 법화경 행자임을 밝힘(삼류의 강적)
  3. →하종의 삼덕을 드러냄
결(結)제61장 237쪽日蓮は日本国の諸人にしうし父母なり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
도표 3 · 표 · 석 · 결

표 — 주사친과 유 · 외 · 내

夫れ一切衆生の尊敬すべき者三あり所謂主師親これなり、又習学すべき物三あり、所謂儒外内これなり。

무릇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이른바 주 · 사 · 친이니라. 또 배워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이른바 유 · 외 · 내이니라.

「개목초 상」, 186쪽

이것이 처음에 삼덕을 표시한 글이다. 주사친은 사람(人)을, 유 · 외 · 내는 법(法)을 나타낸다. 강의는 개목초에서는 법을 곁(傍)으로 하고 사람의 삼덕을 바른 뜻(正意)으로 한다고 본다. 곧 유가 · 외도 · 내도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그 가르침이 저마다 받드는 주사친을 가려내기 위해서다. 강의는 이 표시의 글과 결의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를 함께 읽어 대성인의 원의(元意)를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니치코 상인은 이 표 · 결의 호응에 대해, 이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온 심신을 기울여 한마음으로 신독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미망의 사상과 배덕의 행위가 생겨난다고 경계했다. 강의는 대성인의 내증을 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한 문류에서는 이 표 · 결 두 글의 원의를 놓쳐, 대성인을 말법 하종의 삼덕으로 보지 않고 상행보살이나 석존의 제자로만 보게 되었다고 논한다.

석 (1) — 유가와 외도의 삼덕

석의 첫머리는 유가의 삼덕이다.

儒家には三皇・五帝・三王・此等を天尊と号す諸臣の頭目・万民の橋梁なり

유가에서는 삼황 · 오제 · 삼왕, 이들을 천존이라 부르느니라. 모든 신하의 우두머리요 만민의 다리이니라.

「개목초 상」, 186쪽

강의는 유교에도 주사친의 삼덕이 있어 삼황 · 오제 · 삼왕을 삼덕을 갖춘 천존으로 받든다고 풀이한다. 이 천존들이 삼덕을 갖추었기에 충을 가르치고 효를 가르치며, 주인의 덕으로 만민을 사랑한다. 여기에 스승과 제자의 길이 서고 스승의 은혜를 가르치게 된다. 이어서 외도의 삼덕을 드는데, 먼저 법을 설하는 사람(능설의 사람)을 들어 그들이 존경받는 모습을 보이고, 다음에 그들이 설한 법(소설의 법)을 들어 배우는 모습을 보인다. 셋째로 불가의 뜻에서 유교와 외도의 삿된 뜻을 깨뜨리고, 그것들을 불법 안에 거두어들여(会入) 그 자리를 정한다. 유교와 외도는 불교로 들어가는 첫 문(初門)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제1편에서 자세히 다룬다).

석 (2) — 대각세존의 삼덕과 오중상대

내전(불교)의 삼덕은 다음 글에서 시작된다.

三には大覚世尊は此一切衆生の大導師・大眼目・大橋梁・大船師・大福田等なり

셋째로 대각세존은 이 일체중생의 큰 도사, 큰 안목, 큰 다리, 큰 뱃사공, 큰 복전 등이니라.

「개목초 상」, 188쪽

여기서부터 얕은 데서 깊은 데로(従浅至深) 나아가며 숙탈의 삼덕을 설하고 말법 하종의 삼덕을 밝힌다. 먼저 일대의 천심을 판정해 숙탈 삼덕의 큰 은혜를 드러내는데, 설하는 교주인 대각세존을 들어 그 삼덕을 찬탄하고, 이어 설해진 교법을 들어 그 천심을 판정한다.

대성인은 석존 일대 오십 년의 경전을 판정하실 때 다섯 단계의 교상, 곧 오중상대(五重相対)를 세우셨다. 내외상대(불교와 불교 밖의 가르침) · 대소상대(대승과 소승) · 권실상대(권대승과 실대승 = 이전경과 법화경) · 본적상대(법화경 적문과 본문) · 종탈상대(본문 문상의 탈익과 문저의 하종)의 다섯이다. 강의는 개목초를 오중상대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대성인의 참뜻을 받들 수 없다고 말한다. 다섯째 종탈상대는 문저의 진실을 판정한 것으로, 개목초의 다음 글이 그 근거다.

但し此の経に二箇の大事あり倶舎宗・成実宗・律宗・法相宗・三論宗等は名をもしらず華厳宗と真言宗との二宗は偸に盗んで自宗の骨目とせり、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竜樹・天親・知つてしかも・いまだ・ひろいいださず但我が天台智者のみこれをいだけり。

다만 이 경에 두 가지 대사가 있느니라. 구사종 · 성실종 · 율종 · 법상종 · 삼론종 등은 그 이름조차 모르고, 화엄종과 진언종의 두 종은 몰래 훔쳐서 자기 종의 뼈대로 삼았느니라.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 용수 · 천친은 알면서도 아직 건져 내지 않았고, 다만 우리 천태지자만이 이것을 품었느니라.

「개목초 상」, 189쪽

강의는 이것을 「문저 심비(深秘)의 진문(真文)」이라 부른다. 니치칸 상인은 이 글에 의거해 「삼중비전초」의 깊은 뜻을 세웠다.

久遠下種名字の妙法は一代教の中には但法華経、法華経の中には但本門寿量品、本門寿量品の中には但文底に秘沈するなり

구원 하종 명자의 묘법은 일대교 가운데에서는 다만 법화경, 법화경 가운데에서는 다만 본문 수량품, 본문 수량품 가운데에서는 다만 문저에 감추어져 잠겨 있다.

니치칸 상인, 「삼중비전초」의 뜻

그래서 「일념삼천 문저비침」이라 한다. 강의는 이 일념삼천이 천태의 이(理) · 사(事)의 일념삼천이 아니라 문저에 비침된 말법 하종의 사행(事行)의 일념삼천이라고 해석한다. 또 니치칸 상인은 「용수 · 천친은 …」 이하의 글을 맺어, 이 글이 말법 하종의 일념삼천이 정법 · 상법 시대에는 넓혀지지 않고 말법에 유포함을 보인 글이라고 했다.

일념삼천이라는 말 자체는 천태대사의 『마하지관』 권5상(T46 no.1911, 54a)의 「무릇 일심에 십법계를 갖추고 …… 이 삼천은 일념의 마음에 있다」는 대목에서 나왔다. 천태는 이를 관법(관심)의 극치로 설했으나 『법화현의』 · 『법화문구』에서는 이것을 법화경 경문의 해석 원리로도 썼다. 「개목초」의 「두 가지 대사」는 적문 방편품의 십여시 · 이승작불(제2편)과 본문 수량품의 구원실성(제3편)을 가리키며, 이 둘이 갖추어질 때 일념삼천이 완성된다는 것이 개목초의 논지다. 자세한 교리는 「일념삼천」 페이지를 참조.

  1. 1내외상대유교 · 외도 ↔ 불교제1편(1~5장)
  2. 2대소상대소승 ↔ 대승제1편(5~6장)
  3. 3권실상대이전 권경 ↔ 법화경제1편 6장 · 제2편(11~17장 권적상대)
  4. 4본적상대적문 ↔ 본문제3편(18~24장) · 제6편(35~41장)
  5. 5종탈상대문상 탈익 ↔ 문저 하종제1편 7장 · 제6편(39~41장 탈익과 하종의 삼덕)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189쪽
도표 4 · 오중상대

석 (3) — 말법 법화경 행자의 소유

이어서 대성인이 말법의 법화경 행자임을 밝혀 말법 하종 삼덕의 깊은 은혜를 드러낸다. 먼저 그 까닭(所由)을 든다.

此に日蓮案じて云く世すでに末代に入つて二百余年・辺土に生をうけ其の上下賤・其の上貧道の身なり

이에 니치렌이 생각하여 말하기를, 세상은 이미 말대에 들어 이백여 년, 변방의 땅에 태어나고 게다가 신분이 낮으며 게다가 가난한 승려의 몸이니라.

「개목초 상」, 200쪽

강의는 이 글을 이렇게 읽는다. 말법 하종의 법화경 행자는 삼류의 강적이 다투어 일어남으로써 경문의 예언에 바르게 부합한다. 또 사지(邪智) · 방법의 사람이 가득한 말법에서는 하종 역연(逆縁)의 공덕에 의해서만 일체중생이 구제되므로, 대성인은 범부의 모습으로 비천한 중생 가운데 출현하셨다. 비천한 몸으로 태어나셨으나 일본 제일의 존귀한 덕을 갖추셨으니 존귀한 가운데서도 지극히 존귀한 분이라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대성인이 하천한 몸으로 태어나신 뜻을 여섯 가지(六意)로 밝혔다고 강의는 덧붙인다.

석 (4) — 「이 글의 간심, 일기의 대사」

이어서 널리 의문을 들어 바로 법화경의 행자임을 풀이하는 단이 온다. 대성인은 먼저 의문을 세우신다.

されば日蓮が法華経の智解は天台・伝教には千万が一分も及ぶ事なけれども難を忍び慈悲のすぐれたる事は・をそれをも・いだきぬべし、定んで天の御計いにもあづかるべしと存ずれども一分のしるしもなし、いよいよ重科に沈む、還つて此の事を計りみれば我が身の法華経の行者にあらざるか、又諸天善神等の此の国をすてて去り給えるか・かたがた疑はし

그러므로 니치렌의 법화경에 대한 지해는 천태 · 전교에 천만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지만, 난을 참고 자비가 뛰어난 점은 두려움마저 품을 만하니라. 반드시 하늘의 보살핌을 입으리라 생각했으나 조금의 징표도 없고 더욱 무거운 죄에 빠지느니라. 돌이켜 이 일을 헤아려 보건대 내 몸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 것인가, 또는 제천선신 등이 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신 것인가, 이모저모로 의심스럽도다.

「개목초 상」, 202쪽

그리고 이 의문이 책 전체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스스로 밝히신다.

但し世間の疑といゐ自心の疑と申しいかでか天扶け給わざるらん、諸天等の守護神は仏前の御誓言あり法華経の行者には・さるになりとも法華経の行者とがうして早早に仏前の御誓言を・とげんとこそをぼすべきに其の義なきは我が身・法華経の行者にあらざるか、此の疑は此の書の肝心・一期の大事なれば処処にこれをかく上疑を強くして答をかまうべし。

다만 세간의 의문이라 하고 자기 마음의 의문이라 하는 것은, 어찌하여 하늘이 도와주시지 않는가 하는 것이니라. 제천 등 수호신은 부처 앞에서 맹세하신 말씀이 있느니라. 법화경의 행자에게는 설령 원숭이라 해도 법화경의 행자라 부르며 하루빨리 부처 앞의 맹세를 이루려 하셔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은 것은 내 몸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기 때문인가. 이 의문은 이 글의 간심이요 일기(一期)의 대사이므로 곳곳에 이를 쓰고, 게다가 의문을 강하게 하여 답을 마련하리라.

「개목초 상」, 203쪽

강의는 이 의문을 개목초의 간심, 곧 대성인이 말법의 법화경 행자인가 아닌가의 의문으로 본다. 이것은 말법 하종의 삼덕을 드러내기 위해, 곧 말법의 본불 · 인본존을 드러내기 위해 세운 의문이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이를 「일기의 대사」라 하셨다. 개목초가 상권의 이승 · 보살의 은혜론(제5편)과 하권의 지용출현(제6편), 보탑품 · 제바품(제7편)을 거쳐 삼류의 강적(제8편)에 이르기까지 길게 돌아가는 것은 이 하나의 의문을 「강하게」 세우고 빈틈없이 답하기 위해서다.

석 (5) — 삼류의 강적과 행자의 확정

의문을 세운 뒤 대성인은 법화경 권지품의 경문을 인용해 삼류의 강적 — 속중증상만 · 도문증상만 · 참성증상만 — 을 드러내시고, 지금 삼류의 강적이 눈앞에 있으므로 말법의 법화경 행자는 대성인 외에 없음을 단정하신다. 이 단의 첫머리가 앞에서 본 「니치렌이라고 하던 자는 작년 9월 12일 자시 · 축시에 목이 베였느니라」(223쪽)이다. 강의는 범부로서의 대성인의 목은 베였으나 본불로서의 생명은 사도로 가서 일본국의 모든 사람을 구하려 하신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면 법화경의 행자에게 왜 제천선신의 가호가 없고 난이 닥치는가. 대성인은 세 가지 까닭을 드신다(제55장).

강의는 본문의 뜻에 따라 이렇게 정리한다. 일본국은 악국 · 방법의 나라이므로 제천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떠났고, 중생의 기근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 정해진 역연의 중생이며, 대성인은 과거세에 방법이 있었기에 비방하는 자에게 현벌이 없고 대성인과 문하에 큰 난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대성인이 스스로 과거세의 방법을 말씀하신 것은 범부와 같은 모습을 보이시는 쪽(示同凡夫)에서이며, 또 방법의 중생만 있는 이 시대에 출현하는 부처에 의거하기 때문이라고 강의는 덧붙인다.

  1. ①보탑품 삼개의 칙선부처 멸후 누가 이 경을 호지하겠는가43장
  2. ②제바품 이개의 간효제바달다의 성불(악인성불) · 용녀의 성불(여인성불)48장
  3. ③已上五箇の鳳詔にをどろきて勧持品の弘経あり이상 다섯 번의 봉조에 놀라 권지품의 홍경이 있느니라223쪽
  4. ④권지품 이십행게 → 삼류의 강적속중증상만 · 도문증상만 · 참성증상만49~53장
  5. ⑤三類はすでにあり法華経の行者は誰なるらむ삼류는 이미 있다, 법화경의 행자는 누구인가54장
  6. ⑥행자가 난을 만나는 세 까닭55장
  7. ⑦서원我日本の柱とならむ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56장
  8. ⑧전중경수 · 불구자득 · 섭수와 절복57~60장
  9. ⑨결日蓮は日本国の諸人にしうし父母なり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61장
도표 5 · 다섯 번의 부르심에서 삼류의 강적까지

석 (6) —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

법화경의 행자를 드러내는 글을 맺는 자리에서 대성인은 이렇게 서원하신다.

詮ずるところは天もすて給え諸難にもあえ身命を期とせん、身子が六十劫の菩薩の行を退せし乞眼の婆羅門の責を堪えざるゆへ、久遠大通の者の三五の塵をふる悪知識に値うゆへなり、善に付け悪につけ法華経をすつるは地獄の業なるべし、大願を立てん日本国の位をゆづらむ、法華経をすてて観経等について後生をごせよ、父母の頸を刎ん念仏申さずば、なんどの種種の大難・出来すとも智者に我義やぶられずば用いじとなり、其の外の大難・風の前の塵なるべし、我日本の柱とならむ我日本の眼目とならむ我日本の大船とならむ等とちかいし願やぶるべからず。

결국은 하늘도 버리시라, 여러 난도 만나리라, 신명을 걸겠느니라. 신자(사리불)가 육십 겁의 보살행에서 물러난 것은 눈을 구걸한 바라문의 책망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요, 구원 · 대통의 사람들이 삼천진점 · 오백진점의 긴 세월을 지낸 것은 악지식을 만났기 때문이니라. 선에 붙든 악에 붙든 법화경을 버리는 것은 지옥의 업이니라. 큰 서원을 세우리라. 「일본국의 왕위를 물려주겠다, 법화경을 버리고 관경 등에 의지하여 후생을 빌라」, 「염불을 하지 않으면 부모의 목을 베겠다」는 등 갖가지 대난이 일어난다 해도, 지자에게 나의 뜻이 깨지지 않는 한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그 밖의 대난은 바람 앞의 티끌이니라.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눈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큰 배가 되리라」고 맹세한 서원은 깨뜨리지 않으리라.

「개목초 하」, 232쪽

강의는 이것이야말로 말법 하종의 주사친 삼덕을 갖추신 부처의 결의라고 본다. 기둥은 주(主)의 덕, 눈(안목)은 사(師)의 덕, 큰 배는 친(親)의 덕을 나타낸다. 앞에서 의문을 「강하게」 세운 만큼, 여기서 내놓는 답은 제천의 수호 여부를 넘어선다. 하늘이 버려도 좋다는 것, 이것이 「일기의 대사」에 대한 대성인의 마지막 답이다. 이어지는 장에서 대성인은 「나와 나의 제자는 여러 난이 있어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리라」(234쪽)고 제자들에게 같은 길을 권하신다.

석 (7) — 섭수와 절복

석의 끝에서 대성인은 말법에 알맞은 홍경(弘経)을 밝히신다.

末法に摂受・折伏あるべし所謂悪国・破法の両国あるべきゆへなり、日本国の当世は悪国か破法の国かと・しるべし。

말법에 섭수 · 절복이 있으리라. 이른바 악국과 파법의 두 나라가 있기 때문이니라. 일본국의 당세는 악국인가 파법의 나라인가를 알아야 하느니라.

「개목초 하」, 235쪽

니치칸 상인은 이 글을 교 · 기 · 시 · 국 · 서(教機時国序)의 오의(五義)에 비추어, 일본국은 사지 · 방법의 나라이므로 말법은 절복이라고 단정했다고 강의는 전한다.

결 — 주사부모

셋째 결은 대성인이 삼덕을 갖추신 말법의 본불임을 말씀하신 부분이다.

日蓮は日本国の諸人にしうし父母なり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

「개목초 하」, 237쪽

이 한 줄은 첫머리의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이른바 주 · 사 · 친이니라」와 정확히 호응한다. 처음에 「존경해야 할 주사친은 누구인가」를 묻고, 유교 · 외도 · 불교의 모든 삼덕을 차례로 넘어선 끝에 「바로 니치렌이 그 주사친이다」라고 답하는 것 — 이것이 개목초 두 권의 큰 줄기다.

개목초의 구성상 · 하 2권 61장, 아홉 편
開目抄 上 186–210 · 開目抄 下 210–237 · 全六十一章

아홉 편으로 나누어 읽기

개목초는 상권(186–210쪽)과 하권(210–237쪽)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창가교학연구실 강의는 이를 61장으로 나누는데, 상권이 제1~34장, 하권이 제35~61장이다. 앵매도리는 이 61장을 내용의 흐름에 따라 아홉 편으로 묶어 해설한다. 앞의 세 편(제1~3편)은 오중상대로 일대의 천심을 판정해 숙탈의 삼덕을 드러내는 부분, 가운데 두 편(제4~5편)은 「법화경의 행자인가」라는 의문을 세우고 상권을 맺는 부분, 뒤의 네 편(제6~9편)은 하권으로서 탈익과 하종의 삼덕, 다섯 번의 부르심과 삼류의 강적, 서원과 섭절을 거쳐 결에 이르는 부분이다.

표(1장)—석(2~60장)—결(61장)
도표 6 · 개목초의 구성

각 편의 요지

  1. 一제1편
    제1~10장 · 186–190쪽

    「존경해야 할 것 셋 — 주 · 사 · 친」과 「배워야 할 것 셋 — 유 · 외 · 내」를 표시하고, 유가의 삼황 · 오제 · 삼왕과 충효의 본보기, 인도 외도의 삼선 · 사위타를 차례로 살핀다. 유교와 외도는 과거 · 미래를 모르는 가르침으로서 불교의 첫 문(初門)이 되고, 이어 대각세존의 삼덕(내외상대), 법화경만이 석존의 바른 말씀이라는 권실상대, 일념삼천이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다는 문저의 판정으로 단숨에 나아간다. 외도 · 외전과 화엄 · 진언이 남의 뜻을 훔쳐 자기 종의 뼈대로 삼았다는 비판, 한토의 남삼북칠과 천태, 일본의 육종과 전교로 이어지는 불교 전래사가 이 편을 맺는다.

    1. 제1장삼덕을 표시하다
    2. 제2장유가의 삼덕
    3. 제3장불교의 초문이 됨을 밝히다
    4. 제4장외도의 삼덕
    5. 제5장내외상대하여 판정하다
    6. 제6장권실상대하여 판정하다
    7. 제7장문저의 진실을 판정하다
    8. 제8장외도 · 외전이 불교의 뜻을 훔침을 밝히다
    9. 제9장한토의 불교 전래
    10. 제10장일본의 불법 전래
  2. 二제2편
    제11~17장 · 190–196쪽

    사십여 년의 이전경과 법화경 팔 년의 차이를 「이승작불 · 구원실성」 두 가지로 압축하고, 먼저 이승작불을 다룬다. 법화경에서 사리불 · 가섭 · 수보리 · 목련 등이 성불의 수기를 받는 한편, 「유마경」 · 「대품반야경」 등은 이승을 「영불성불」이라 꾸짖었으니 한 부처의 두 말(일불이언)이 된다. 이 모순을 다보여래와 시방분신 제불의 증명으로 풀고, 멸후에 이 경을 믿기 어려운 모습과 육난구이의 명증으로 「믿기 어려운 것을 믿으라」고 권한다.

    1. 제11장권적상대하여 판정하다
    2. 제12장일불이언 · 난신의 모습
    3. 제13장유마경 등이 이승불성불을 정함을 밝히다
    4. 제14장반야경 등의 이승 가책을 보이다
    5. 제15장다보 · 분신의 증명을 보이다
    6. 제16장멸후 난신의 모습을 밝히다
    7. 제17장명증을 들어 난신의 신을 권하다
  3. 三제3편
    제18~24장 · 196–200쪽

    둘째 대사 구원실성으로 넘어가, 이전경과 적문이 모두 석존이 금생에 처음 성불했다(시성정각)고 설했음을 보이고 수량품이 이를 한마디로 깨뜨렸음을 밝힌다. 이전 · 적문의 두 허물 — 행포(行布)를 남겨 적문의 일념삼천을 숨기고, 시성을 말해 본문의 구원을 숨긴 것 — 을 드러내며, 「하늘의 달을 모르고 다만 연못의 달을 본다」는 천태의 말로 그 어리석음을 비춘다. 법상종 · 화엄 · 진언의 해석을 들어 멸후 난신의 모습을 맺는다.

    1. 제18장본적상대하여 판정하다
    2. 제19장본문에 구원실성을 설함을 보이다
    3. 제20장이전 · 적문의 두 허물을 드러내다
    4. 제21장난신의 모습을 보이다
    5. 제22장법상종의 그릇된 해석을 들다
    6. 제23장화엄 · 진언의 그릇된 해석을 들다
    7. 제24장멸후의 난신을 맺다
  4. 四제4편
    제25~28장 · 200–203쪽

    「이에 니치렌이 생각하여 말하기를」로 시작해, 말대의 변토에 비천하고 가난한 몸으로 태어난 대성인이 이 법문을 말하면 큰 난이 일어날 줄 알면서도 말하기로 서원하신 까닭을 밝힌다. 이십여 년의 홍교에서 만난 네 번의 큰 난과 두 번의 왕난이 법화경 경문과 하나하나 부합함을 보이고, 「그런데도 하늘의 도움이 없는 것은 내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기 때문인가」라는 의문을 「이 글의 간심, 일기의 대사」로 내건다.

    1. 제25장말법 법화경 행자의 소유
    2. 제26장간략히 법화경의 행자임을 풀다
    3. 제27장경문 하나하나에 부합함을 밝히다
    4. 제28장의문을 들어 법화경의 행자임을 풀다
  5. 五제5편
    제29~34장 · 203–210쪽

    의문을 풀기 위해 사대성문 등 이승이 법화경에서 입은 깊은 은혜를 논하고, 이전경에서 꾸짖음 받던 옛일을 증거로 든다. 그토록 은혜를 입은 이승 · 보살 · 제천이 왜 법화경의 행자를 지키지 않는가를 거듭 묻고, 보살과 천인들도 이전경에서는 실익이 없었으며 법화경에 와서야 참된 은혜를 입었음을 밝힌다. 「묘법연화경」 다섯 자의 뜻을 풀어 상권을 맺는다.

    1. 제29장이승의 법화 심은을 논하다
    2. 제30장옛 탄가를 인증하다
    3. 제31장이승의 수호가 없음을 의심하다
    4. 제32장보살 등에 대해 이전의 무은을 밝히다
    5. 제33장법화의 심은을 밝히다
    6. 제34장묘법연화경을 풀다
  6. 六제6편
    제35~41장 · 210–216쪽

    하권 첫머리. 보탑품의 부르심과 지용천계 대보살의 출현, 미륵의 의문에 답하는 약개근현원과 수량품의 광개근현원을 통해 석존의 구원이 드러난다. 과거의 상주가 드러나면 시방의 제불은 모두 석존의 분신이 되니 탈익의 삼덕이 밝혀지고, 천태종 밖의 제종이 본존에 미혹했음을 꾸짖으며 하종의 아버지를 밝힌다. 각 종파가 다투는 「종자」를 법화경에 의거해 판별한다.

    1. 제35장법화의 심은을 거듭 밝히다
    2. 제36장지용 출현을 밝히다
    3. 제37장약개근현원을 보이다
    4. 제38장광개근현원을 보이다
    5. 제39장탈익의 삼덕을 밝히다
    6. 제40장본존에 미혹함을 꾸짖고 바로 하종의 아버지를 밝히다
    7. 제41장종자의 덕용과 종자의 의경을 가리다
  7. 七제7편
    제42~48장 · 216–223쪽

    보살 · 제천의 수호가 없다는 의문을 맺은 뒤, 당세의 염불 · 선 등이 법화경의 적임을 경석의 밝은 거울로 보이고자 보탑품의 세 번의 칙선을 인용한다. 이금당(已今当) 삼설과 육난구이로 제경의 천심 · 승렬을 판정하고 제종 조사들의 해석을 파절하며, 제바품의 두 간효 — 제바달다의 성불과 용녀의 성불 — 로 일대의 성불 · 불성불을 판정한다.

    1. 제42장보살 등의 수호가 없다는 의문을 맺다
    2. 제43장보탑품 삼개의 칙선을 인용하다
    3. 제44장제경의 천심 · 승렬을 판정하다
    4. 제45장제종의 그릇된 해석을 파절하고 정의를 보이다
    5. 제46장일가의 정의를 밝히고 비슷한 경문을 회통하다
    6. 제47장제종이 교리의 천심 · 승렬을 알지 못함을 보이다
    7. 제48장이개의 간효를 인용해 일대의 성불 · 불성불을 판정하다
  8. 八제8편
    제49~56장 · 223–232쪽

    다섯 번의 봉조에 응한 권지품 이십행게를 들어, 「니치렌이라고 하던 자는 …… 목이 베였느니라」는 선언과 함께 속중 · 도문 · 참성증상만의 삼류 강적을 밝히고, 이를 가마쿠라 당시의 제종과 료칸 · 넨아 등에 비춘다. 「삼류는 이미 있다, 법화경의 행자는 누구인가」를 묻고, 행자가 난을 만나는 세 까닭을 밝힌 뒤,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의 서원으로 법화경의 행자를 드러내는 글을 맺는다.

    1. 제49장삼류의 강적을 드러내다
    2. 제50장삼류에 대해 풀다
    3. 제51장따로 속중 · 도문을 밝히다
    4. 제52장제3 참성증상만을 밝히다
    5. 제53장제종의 그릇됨을 가리다
    6. 제54장바로 법화경의 행자임을 드러내다
    7. 제55장행자가 난을 만나는 까닭을 밝히다
    8. 제56장법화경의 행자를 드러내는 글을 맺다
  9. 九제9편
    제57~61장 · 232–237쪽

    유죄 · 사죄가 과거의 숙업 때문임을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에 반니원경의 전중경수(転重軽受)로 답하고, 「나와 나의 제자는 여러 난이 있어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리라」는 불구자득의 큰 이익을 밝힌다. 말법에 섭수 · 절복이 있음과 절복을 행하는 이익을 보이고,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로 첫머리의 표시와 호응하며 전권을 맺는다.

    1. 제57장전중경수를 밝히다
    2. 제58장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는 큰 이익
    3. 제59장때에 맞는 홍경을 밝히다
    4. 제60장절복을 행하는 이익
    5. 제61장결권

아홉 편을 꿰는 두 줄기

아홉 편은 두 줄기로 꿰어 읽을 수 있다. 하나는 법의 줄기, 곧 오중상대다. 내외상대에서 시작해 권실 · 본적을 지나 종탈상대에 이르는 이 줄기는 제1편에서 한꺼번에 개관되고(5~7장), 제2 · 3편에서 「두 가지 대사」인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으로 자세히 풀리며, 제6편에서 탈익과 하종의 삼덕으로 완성된다. 다른 하나는 사람의 줄기, 곧 「법화경의 행자는 누구인가」다. 제4편에서 세워진 의문은 제5편의 은혜론과 제7편의 다섯 번의 부르심을 거쳐 제8편의 삼류 강적과 서원으로 답해지고, 제9편의 「주사부모」로 맺어진다. 법의 줄기의 끝에 있는 「문저 하종의 삼덕」과 사람의 줄기의 끝에 있는 「주사부모」가 하나로 만나는 곳 — 니치칸 상인이 말하는 인본존 개현이 바로 거기다.

법의 줄기(오중상대)
  1. 내외
  2. 대소
  3. 권실
  4. 본적
  5. 종탈「문저 하종의 삼덕」
사람의 줄기(법화경의 행자)
  1. 의문我が身・法華経の行者にあらざるか (203쪽)내 몸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가
  2. 은혜와 수호
  3. 다섯 번의 봉조
  4. 삼류의 강적三類はすでにあり삼류는 이미 있다
  5. 서원我日本の柱とならむ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
  6. 결日蓮は日本国の諸人にしうし父母なり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
만나는 곳말법의 주사친 — 인본존
도표 7 · 법의 줄기와 사람의 줄기
第三 원의 (1)말법의 주사친 · 말법의 법화경 행자
序講 第三 本抄の元意 · 一 · 二

원의를 논하는 까닭

개목초가 인본존을 드러낸 어서라는 점은 유래와 대의에서 이미 보았다. 강의는 대성인이야말로 말법의 본불로서 말법 만년의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일본국에 출현하셨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다른 문류에서는 석가를 본존으로 하거나 대성인을 「니치렌 대보살」이라 부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더 나아가 이나리(稲荷)나 용신(竜神)을 본존으로 받드는 것은 불법이라 할 수 없고 불법 밖의 가르침(외도)이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논한다. 말법의 주사친을 모르고 본존에 미혹한다면 구제의 길을 잃는다 — 그래서 강의는 대성인이 삼덕을 갖추신 본불이며 우리가 근본으로 존경해야 할 인본존임을 논하는 것을 개목초의 원의로 삼는다.

말법의 주사친

개목초는 첫머리에 삼덕을 표시하고, 유교 · 외도의 삼덕을 보이고, 불법 일대의 승렬을 판정해 숙탈의 삼덕을 드러내고, 대성인이 말법의 법화경 행자임을 밝힌 뒤, 마지막에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237쪽)로 대성인 자신이 삼덕을 갖추신 본불임을 보이셨다. 강의는 다른 어서에서도 같은 뜻을 찾는다.

日蓮は日本国の人人の父母ぞかし・主君ぞかし・明師ぞかし・是を背ん事よ

니치렌은 일본국 사람들의 부모이니라, 주군이니라, 명사이니라. 이를 등지는 일이여.

「이치노사와입도어서」, 1330쪽

日蓮は此関東の御一門の棟梁なり・日月なり・亀鏡なり・眼目なり・日蓮捨て去る時・七難必ず起るべしと去年九月十二日御勘気を蒙りし時大音声を放てよばはりし事これなるべし

니치렌은 이 간토 일문의 동량이요, 해와 달이요, 거울이요, 안목이니라. 니치렌을 버리고 떠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작년 9월 12일 노여움을 입었을 때 큰 소리로 외친 것이 이것이니라.

「사도어서」, 957쪽

「사도어서」는 이어서 「니치렌은 당세에는 이 일문의 부모이니라(日蓮当世には此御一門の父母なり)」라고 맺는다. 강의는 동량을 주의 덕, 해와 달 · 거울 · 안목을 사의 덕, 부모를 친의 덕으로 본다.

日蓮が慈悲曠大ならば南無妙法蓮華経は万年の外・未来までもながるべし、日本国の一切衆生の盲目をひらける功徳あり、無間地獄の道をふさぎぬ

니치렌의 자비가 넓고 크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 너머 미래까지도 흐르리라. 일본국 일체중생의 맹목을 연 공덕이 있으며, 무간지옥의 길을 막았느니라.

「보은초」, 329쪽

자비가 넓고 큼은 친의 덕, 맹목을 엶은 사의 덕, 무간지옥의 길을 막음은 주의 덕이다. 「보은초」의 「맹목을 연 공덕」은 개목초의 제호와 그대로 겹친다. 이처럼 말법의 주사친이 분명히 밝혀져 있는데도 이를 보지 못하는 것, 강의는 그것이야말로 맹목이라고 말한다.

「개목초 하」232쪽
주
柱기둥
사
眼目눈
친
大船큰 배
「개목초 하」237쪽
주사부모
しうし父母주사부모
「사도어서」957쪽
주
棟梁동량
사
日月 · 亀鏡 · 眼目해와 달 · 거울 · 안목
친
父母부모
「이치노사와입도어서」1330쪽
주
主君주군
사
明師명사
친
父母부모
「보은초」329쪽
주
無間地獄の道をふさぎぬ무간지옥의 길을 막음
사
盲目をひらける맹목을 엶
친
慈悲曠大자비가 넓고 큼
도표 8 · 어서에 보이는 대성인의 주사친

말법의 법화경 행자

다음으로 강의는 대성인이 스스로 말법의 법화경 행자임을 선언하신 글들을 든다.

日蓮は日本第一の法華経の行者なる事あえて疑ひなし

니치렌이 일본 제일의 법화경 행자인 것은 결코 의심할 바 없느니라.

「선시초」, 284쪽

「법화증명초」에서는 서명 자리에 「법화경의 행자 니치렌(法華経の行者 日蓮)」(1586쪽)이라 적으셨다.

我が言は大慢に似たれども仏記を扶け如来の実語を顕さんが為なり、然りと雖も日本国中に日蓮を除いては誰人を取り出して法華経の行者と為さん汝日蓮を謗らんとして仏記を虚妄にす豈大悪人に非ずや

나의 말은 큰 교만 같으나 부처의 예언을 돕고 여래의 진실한 말씀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니라. 그렇지만 일본국 안에서 니치렌을 빼고는 누구를 내세워 법화경의 행자라 하겠는가. 그대가 니치렌을 비방하려다가 부처의 예언을 허망하게 만드니 어찌 큰 악인이 아니겠는가.

「현불미래기」, 507쪽

강의는 이런 글이 이루 셀 수 없이 많다고 하면서, 「말법의 법화경 행자」란 곧 말법의 본불이라는 뜻이며, 대성인이 말법 일체중생을 위해 출현하신 본불임을 스스로 일컬으신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 『어의구전』을 든다.

如来とは釈尊・惣じては十方三世の諸仏なり別しては本地無作の三身なり、今日蓮等の類いの意は惣じては如来とは一切衆生なり別しては日蓮の弟子檀那なり、されば無作の三身とは末法の法華経の行者なり無作の三身の宝号を南無妙法蓮華経と云うなり

여래란 석존이요, 총체적으로는 시방삼세의 제불이며, 개별적으로는 본지 무작의 삼신이니라. 지금 니치렌 등의 부류의 뜻으로는 총체적으로 여래란 일체중생이요, 개별적으로는 니치렌의 제자 단나이니라. 그러므로 무작의 삼신이란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니라. 무작 삼신의 보호(宝号)를 남묘호렌게쿄라 하느니라.

『어의구전』, 752쪽

『어의구전』은 또 「본존이란 법화경 행자의 일신의 당체이니라」(760쪽)라고 한다. 강의는 이 두 글에 의거해, 말법의 법화경 행자인 대성인이야말로 무작삼신이요 남묘호렌게쿄 여래이며 인본존이라고 결론짓는다.

第三 원의 (2)범부즉극의 본불
序講 第三 本抄の元意 · 三 · 四

체의 삼신과 용의 삼신

강의는 대성인이 본불임을 보이는 글로 다음을 든다.

されば釈迦・多宝の二仏と云うも用の仏なり、妙法蓮華経こそ本仏にては御座候へ、経に云く『如来秘密神通之力』是なり、如来秘密は体の三身にして本仏なり、神通之力は用の三身にして迹仏ぞかし、凡夫は体の三身にして本仏ぞかし、仏は用の三身にして迹仏なり

그러므로 석가 · 다보 두 부처라 하는 것도 용(用)의 부처이니라. 묘법연화경이야말로 본불이시니라. 경에 「여래비밀 신통지력」이라 한 것이 이것이니라. 여래비밀은 체(体)의 삼신으로서 본불이요, 신통지력은 용의 삼신으로서 적불이니라. 범부는 체의 삼신으로서 본불이요, 부처는 용의 삼신으로서 적불이니라.

「제법실상초」, 1358쪽

강의는 이 글의 「범부」를 총체적으로는 일체중생, 개별적으로는 범부즉극(凡夫即極) · 무작삼신 여래인 대성인으로 읽고, 「부처」를 색상(色相)으로 장엄한 부처, 곧 삼십이상을 갖추고 인도에 응현해 태어난 석존으로 읽는다. 그러므로 「범부는 체의 삼신으로서 본불이요, 부처는 용의 삼신으로서 적불」이라 하셨으니, 석존은 본불 대성인에 대해 수적이며 용의 부처라는 것이 강의의 해석이다.

「여래비밀 신통지력(如来秘密神通之力)」은 『묘법연화경』 여래수량품 제16(T9 no.262)에서 석존이 구원의 본지를 밝히기 직전에 대중에게 「여래의 비밀 · 신통의 힘을 자세히 들으라」고 이르는 구절이다. 천태는 『법화문구』에서 이를 삼신(법신 · 보신 · 응신)에 배당해 풀었다. 「제법실상초」는 이 구절을 체와 용으로 나누어 읽어 「범부가 본불」이라는 데까지 나아간다.

末法の仏とは凡夫なり凡夫僧なり、法とは題目なり僧とは我等行者なり、仏とも云われ又凡夫僧とも云わるるなり

말법의 부처란 범부이며 범부승이니라. 법이란 제목이요, 승이란 우리 행자이니라. 부처라고도 불리고 또 범부승이라고도 불리느니라.

『어의구전』, 776쪽

강의는 이로써 대성인이 말법의 본불임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개목초가 「하천 · 빈도의 몸」(200쪽)이라는 말로 행자의 소유를 시작하는 것은, 말법의 부처가 바로 범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이 뜻과 맞물린다.

「대성인」이라 부르는 까닭

강의는 이어서 대성인이 스스로 「성인(聖人)」이라 일컬으신 글들을 든다.

南無日蓮聖人ととなえんとすとも南無計りにてやあらんずらん

「남무 니치렌 성인」이라고 부르려 해도 「남무」라고만 하고 끝나지 않을까.

「선시초」, 287쪽

外典に曰く未萠をしるを聖人という内典に云く三世を知るを聖人という余に三度のかうみようあり

외전에 이르기를 아직 싹트지 않은 것을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하고, 내전에 이르기를 삼세를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하느니라. 나에게는 세 번의 큰 공명(高名)이 있느니라.

「선시초」, 287쪽

「세 번의 공명」은 「입정안국론」의 상신을 비롯해 국난을 미리 알려 간한 세 번의 국간을 가리킨다. 또 「성인지삼세사」에서는 「니치렌은 일염부제 제일의 성인이니라(日蓮は一閻浮提第一の聖人なり)」(974쪽)라 하시고, 「선시초」에서는 「일본 제일의 대인이니라(日本第一の大人なり)」(289쪽)라고 하셨다.

개목초 자체가 성인 · 대인이 부처의 별명임을 밝히고 있다.

仏世尊は実語の人なり故に聖人・大人と号す

부처 세존은 진실한 말씀의 사람이니라. 그러므로 성인 · 대인이라 부르느니라.

「개목초 상」, 191쪽

此等の人人に勝れて第一なる故に世尊をば大人とは・申すぞかし

이러한 사람들보다 뛰어나 제일이므로 세존을 대인이라 하느니라.

「개목초 상」, 191쪽

경문에서도 석존을 「혜일대성존(慧日大聖尊)」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대성인이 자신을 대인이라, 성인이라 일컬으신 것은 곧 본불임을 밝히신 것이며, 창가학회가 「니치렌 대성인」이라 부르는 것은 대성인을 본불로 받들고 광선유포의 싸움을 이어받는 데서 나온 것이라고 강의는 설명한다.

第三 원의 (3)석존과 대성인
序講 第三 本抄の元意 · 五 · 六 · 七

해와 달 — 「간효팔번초」

강의는 대성인이 석존보다 뛰어난 본불임을 보이는 글로 「간효팔번초」를 든다.

이른 아침 동쪽 바다 — 오른쪽 수평선에서 큰 해가 떠올라 물 위에 긴 빛길을 놓고, 왼쪽 서쪽 하늘 높이 가는 달이 새벽빛에 스러지는 금박 수묵화
그림 · 동쪽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와 서쪽 하늘에 엷게 지는 달

天竺国をば月氏国と申すは 仏の出現し給うべき名なり、扶桑国をば日本国と申すあに聖人出で給わざらむ、月は西より東に向へり月氏の仏法の東へ流るべき相なり、日は東より出づ日本の仏法の月氏へかへるべき瑞相なり、月は光あきらかならず在世は但八年なり、日は光明・月に勝れり五五百歳の長き闇を照すべき瑞相なり

천축국을 월지국이라 하는 것은 부처가 출현하실 이름이니라. 부상국을 일본국이라 하니 어찌 성인이 나오시지 않겠는가. 달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니 월지의 불법이 동쪽으로 흐를 모습이요, 해는 동쪽에서 뜨니 일본의 불법이 월지로 돌아갈 상서로운 모습이니라. 달은 빛이 밝지 못하니 재세는 다만 팔 년이요, 해는 광명이 달보다 뛰어나니 오오백세의 긴 어둠을 비출 상서로운 모습이니라.

仏は法華経謗法の者を治し給はず在世には無きゆへに、 末法には一乗の強敵充満すべし 不軽菩薩の利益此れなり

부처는 법화경을 방법하는 자를 다스리지 않으셨으니 재세에는 없었기 때문이니라. 말법에는 일승의 강적이 가득하리라. 불경보살의 이익이 이것이니라.

「간효팔번초」, 588쪽

강의는 이를 대성인의 불법을 해에, 석존의 불법을 달에 비유한 것으로 본다. 석존은 한정된 사람들만 구할 수 있었고 대성인은 일체중생을 남김없이 구해 나가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 글이 바로 종탈의 승렬을 밝힌다고 하며 세 가지 뜻으로 풀었다.

첫째, 나라 이름에 의거한다. 월지는 적문의 이름이므로 탈익 적문의 부처가 출현하고, 일본은 본문의 이름이니 하종의 본불이 어찌 출현하지 않겠는가. 둘째, 순역(順逆)에 의거한다. 달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니 왼쪽으로 도는 역(逆)이요,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드니 오른쪽으로 도는 순(順)이다. 셋째, 길고 짧음에 의거한다. 달은 빛이 밝지 못해 재세는 다만 팔 년이요, 해는 빛이 밝아 말법 만년의 어둠을 비춘다. 그리고 「법화경을 비방하는 자를 다스리지 않음」은 재세 탈익의 적불이요, 말법은 불경보살의 이익과 같으니 어찌 하종의 본불이 아니겠는가 — 이것이 상인이 읽은 종탈의 뜻이다.

강의는 「십장초」가 적문을 달에, 본문을 해에 비유한 것도 같은 뜻이라고 하며, 인도에 응현한 석존은 본불 대성인에 견주면 햇빛에 비추어 맑은 빛을 내는 달과 같은 적불이라고 말한다.

「교주석존보다 소중한 행자」

「시모야마어소식」에는 「교주석존보다 소중한 행자(教主釈尊より大事なる行者)」(363쪽)라는 말씀이 있다. 또 「호렌초」 등 여러 어서에서 대성인은, 석존을 비방하는 것보다 말법의 법화경 행자를 비방하는 죄가 백천만억 배 무겁고, 거꾸로 석존을 삼업이 상응하여 일 겁 동안 공양하는 것보다 말법의 법화경 행자를 계모가 의붓자식을 장난삼아 한마디 칭찬하는 정도로 칭찬하는 공덕이 더 뛰어나다고 말씀하셨다고 강의는 소개한다.

「종종어진무어서」에는 이런 말씀도 있다.

かかる日蓮を用いぬるともあしくうやまはば国亡ぶべし

이러한 니치렌을 쓴다 해도 잘못 공경하면 나라가 망하리라.

「종종어진무어서」, 919쪽

강의는 이 글에 의거해, 「니치렌」을 이름에 걸고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종파라 해도 대성인을 보살로 부르는 것은 「잘못 공경하는」 큰 방법이라고 논파하며, 그 죄의 무거움을 엄하게 경계한다.

석존상을 본존으로 하지 않는 까닭

다음으로 강의는 석존의 불상을 본존으로 하지 않는 까닭을 니치칸 상인의 「말법상응초」에 따라 도리 · 문증 · 차난(遮難)의 세 면으로 정리한다.

도리 — 첫째, 석존은 탈익의 교주이고 말법은 하종의 때다. 색상을 장엄한 부처는 재세 숙탈의 교주이지 말법 하종의 본불이 아니다. 둘째, 삼덕의 인연이 얕기 때문이다. 정법 · 상법 시대의 중생은 본래 선근이 있는(本已有善) 중생이어서 색상의 부처와 인연이 두텁지만, 말법의 중생은 본래 선근이 없는(本未有善) 중생이어서 색상의 부처와 인연이 엷다. 셋째, 색상의 부처에는 사람과 법의 승렬이 있기 때문이다. 본존은 뛰어난 것을 써야 하는데, 색상의 부처는 열등하고 법이 뛰어나므로 법을 본존으로 해야 한다.

문증 — 법화경 법사품에는 「경권이 있는 곳에 탑을 세우되 사리를 안치할 필요가 없다」는 뜻의 글이 있다. 천태의 『법화문구』 권8은 「이 경은 법신의 사리이므로 생신의 사리를 둘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풀었고, 『법화삼매참의』에는 「법화경 한 부를 안치하고 형상 · 사리를 안치하지 않는다」는 뜻의 글이 있다. 대성인은 「본존문답초」에서 「법화경의 제목을 본존으로 하여야 하느니라(法華経の題目を以て本尊とすべし)」(365쪽)라고 하셨다. 닛코 상인도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에서 다른 문류가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세우고 제자 · 단나 가운데 불상 조립 · 공양을 권한 어서가 있다고 내세운다는 사실을 적어 이를 비판했다(1605쪽). 강의는 이들 문증이 모두 취의(取意)이며 그 밖에도 같은 부류의 글이 무수하다고 덧붙인다.

차난 — 어서에 석가상의 조립을 찬탄하신 대목이 있고, 대성인이 석존의 일체불(一体仏)을 지니셨다는 것을 들어 반론하는 이가 있다. 강의는 대성인의 바른 뜻은 결코 석존의 불상에 있지 않다고 하며, 그것을 허락하신 까닭을 셋으로 든다. 첫째, 사도 이전 등의 어서는 일종 홍통의 처음이므로 바른 뜻이 아니더라도 형편에 따라 취사하셨다. 둘째, 당시 일본국은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문하가 아미타를 버리고 석존을 세운 것을 찬탄하셨다. 셋째, 대성인의 관심(観心)에서 보면 석존의 일체불도 그대로 일념삼천 자수용신의 본불로 비쳤다.

본인묘의 교주석존

「보은초」의 다음 글을 들어 「석존을 본존으로 해야 하지 않느냐」고 논란하는 이들이 있다.

一には日本・乃至一閻浮提・一同に本門の教主釈尊を本尊とすべし、所謂宝塔の内の釈迦多宝・外の諸仏・並に上行等の四菩薩脇士となるべし

첫째는 일본 내지 일염부제가 한결같이 본문의 교주석존을 본존으로 하여야 하느니라. 이른바 보탑 안의 석가 · 다보, 밖의 제불, 아울러 상행 등의 사보살이 협사가 되리라.

「보은초」, 328쪽

강의는 이것이 「석존」의 뜻을 모르는 데서 나온 논란이라고 하며, 석존에는 대략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보은초」가 말하는 「교주석존」은 이 가운데 문저의 석존이며, 곧 대성인을 가리킨다는 것이 강의의 해석이다. 「석존」이라는 말은 반드시 인도에 응현한 석존에 한정되지 않고, 「여래」와 같이 부처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강의는 「교행증어서」를 근거로 든다.

爾前迹門の釈尊なりとも物の数ならず何に況や其の以下の等覚の菩薩をや、まして権宗の者どもをや、法華経と申す大梵王の位にて民とも下し鬼畜なんどと下しても其の過有らんやと意を得て宗論すべし

이전 · 적문의 석존이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느니라. 하물며 그 아래의 등각 보살이랴, 더구나 권종의 사람들이랴. 법화경이라는 대범왕의 자리에서 백성이라 낮추고 귀축이라 낮춘다 한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하는 뜻을 얻어 종론하여야 하느니라.

「교행증어서」, 1282쪽

久遠五百塵点のそのかみ唯我一人の教主釈尊とは我等衆生の事なり

구원 오백진점의 그 옛날 유아일인의 교주석존이란 우리 중생을 말하는 것이니라.

「후나모리야사부로허어서」, 1446쪽

강의는 「오백진점의 그 옛날」을 구원원초로, 「우리 중생」을 총체적으로는 일체중생, 개별적으로는 무작삼신 여래인 대성인으로 읽는다. 구원원초의 교주석존이 말법에 범부승으로 출현하신 대성인이라는 것이다. 「백육개초」는 이를 더 분명히 한다.

久遠元始の天上天下・唯我独尊は日蓮是なり

구원원시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니치렌이 이것이니라.

「백육개초」, 863쪽

久遠の釈尊の修行と今日蓮の修行とは芥子計も違わざる

구원의 석존의 수행과 지금 니치렌의 수행은 겨자씨만큼도 다르지 않으니라.

「백육개초」, 864쪽

自受用身は本・上行日蓮は迹なり、我等が内証の寿量品とは脱益寿量の文底の本因妙の事なり、其の教主は某なり

자수용신은 본이요, 상행 니치렌은 적이니라. 우리 내증의 수량품이란 탈익 수량품의 문저의 본인묘를 말하는 것이니라. 그 교주는 나이니라.

「백육개초」, 863쪽

강의는 또 이렇게 논한다. 「보은초」의 「교주석존」을 인도의 석존으로 본다면, 바로 뒤에 보탑 안의 석가가 협사가 된다는 글과 모순된다. 「관심의 본존초」의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하는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세워지리라(本門の釈尊を脇士と為す一閻浮提第一の本尊此の国に立つ可し)」(254쪽), 같은 초에서 본존의 모습을 밝힌 글(247쪽), 「니치뇨부인답서」의 글(1243쪽)에도 석존은 협사의 자리에 있다. 강의는 실제로 대성인이 나타내신 대어본존도 그러하다고 설명한다. 「본존문답초」의 글과 함께 생각하면, 「보은초」의 「본문의 교주석존」이란 인도의 석존이 아니라 「남묘호렌게쿄를 소지하신 부처」, 곧 말법의 인본존인 대성인이라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말법상응초」에서 「보은초」의 이 글을 표(標)와 석(釈)으로 나누었다. 「본문의 교주석존」은 표의 글로서 인본존에 의거하고, 「이른바 보탑」 이하는 법본존에 의거하며, 법으로 사람을 풀이한 글이므로 인법체일(人法体一)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곧 「본문의 교주석존을 본존으로 하여야 한다. 이른바 교주석존의 당체가 그대로 십계호구 · 백계천여 · 일념삼천의 대만다라이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라고 상인은 풀었다.

寿量品に建立する所の本尊は五百塵点の当初より以来此土有縁深厚本有無作三身の教主釈尊是れなり

수량품에 건립하는 바의 본존은 오백진점의 그 옛날 이래 이 국토에 인연이 깊고 두터운 본유 무작삼신의 교주석존이 이것이니라.

「삼대비법품승사」, 1022쪽

강의는 이 「교주석존」도 앞의 논점과 『어의구전』의 「무작의 삼신이란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니라」(752쪽)에 비추어 대성인이라고 해석한다.

강의가 원의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개목초를 읽는 목적이 「말법의 주사친은 누구인가」를 아는 데 있다는 점이다. 강의는 대성인의 본불으로서의 정신을 읽어 내지 못하면 몇십 번, 몇천 번 개목초를 읽어도 읽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대어본존을 믿고 불도 수행에 힘쓰는 가운데서만 이 책을 참으로 읽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서강은 개목초를 세 겹으로 펼쳐 보았다. 유래에서는, 다쓰노쿠치의 목 자리를 지나 쓰카하라의 눈 속에서 「목이 베인다면 남겨 두고자」 쓰신 유언의 책이 시조깅고의 손을 거쳐 문하 일동에게 전해졌음을 보았다. 「미사와초」가 말하는 「은밀히 말하는 법문」은 수량품 문저의 일념삼천이며, 「니치렌이라고 하던 자는 목이 베였느니라」는 선언은 발적현본의 표명이다. 대의에서는, 니치칸 상인의 풀이에 따라 「개목」이 막을 걷고 참된 것을 보는 두 작용이며 네 가지 맹목을 차례로 여는 것임을, 그리고 개목초가 표 · 석 · 결의 세 단으로 「주사친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책임을 보았다. 원의에서는, 그 답이 말법의 주사친 · 말법의 법화경 행자 · 범부즉극의 본불인 대성인이라는 강의의 결론을 따라갔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간다. 제1편은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 셋」이라는 첫 줄에서 시작해 유가 · 외도의 삼덕을 살피고, 대각세존의 삼덕과 오중상대의 처음 세 단계를 거쳐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라는 문저의 판정에 이른다. 얕은 데서 깊은 데로 오르는 개목초의 첫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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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원전

  • 「개목초」 상 · 하,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186–237쪽 (창가학회판)
  • 「종종어진무어서」 · 「미사와초」 · 「시조깅고전어소식」 · 「사도어서」 · 「보은초」 · 「선시초」 · 「현불미래기」 · 「간효팔번초」 · 「백육개초」 · 『어의구전』 ·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 등, 같은 책
  • 『묘법연화경』 T9 no.262 (견보탑품 · 제바달다품 · 권지품 · 여래수량품 · 법사품)
  • 천태대사 『마하지관』 T46 no.1911 · 『법화문구』 T34 no.1718 / 묘락대사 『법화문구기』 T34 no.1719
  • 니치칸 상인 「개목초 문단」 · 「삼중비전초」 · 「말법상응초」 (강의를 통해 참조)

연구

  • 창가교학연구실 강의 「0186~0237 開目抄 序講」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The Opening of the Eyes」 수록)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Paul L. Swanson (tr.), Clear Serenity, Quiet Insight: T'ien-t'ai Chih-i's Mo-ho chih-kuan,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8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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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에 인용된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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