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의 겨울밤 — 묘석이 흩어진 눈 덮인 들판의 작은 삼매당 위로 금빛 보름달이 뜨고, 얼지 않은 검은 웅덩이에 같은 달이 더 옅게 비치는 금박 수묵화

본적상대 — 구원실성과 이전 · 적문의 두 허물

개목초 · 제3편 · 제18~24장

開目抄 · 第三編 本迹相対 — 久遠実成と爾前迹門の二失어서 196–200쪽
저술
1272년(분에이 9) 2월 · 사도 쓰카하라
대고중
문하 일동
장
제18~24장 (7장)
쪽수
어서 196–200쪽
계보
오중상대 제4 본적상대

「개목초」는 제11장에서 석존 일대의 가르침 가운데 법화경 이전 40여 년과 법화경 8년을 가르는 두 가지 큰 차이를 내걸었다. 하나는 이승작불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실성이다. 제2편이 앞의 것을 권적상대의 자리에서 밝혔다면, 이 제3편은 뒤의 것을 본적상대의 자리에서 밝힌다. 석존은 인도에서 태어나 서른에 성도한 부처인가, 아니면 헤아릴 수 없는 먼 옛날에 이미 성불한 부처인가. 이 물음은 부처의 나이를 묻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대성인은 이 물음에 「이전 · 적문의 두 허물」이라는 판정을 얹어, 십계의 인과가 무시(無始)로부터 상주한다는 본문의 법문만이 「참된 십계호구 · 백계천여 · 일념삼천」이라고 단언하신다. 그리고 바로 그 법문이 가장 믿기 어렵다는 사실, 곧 법상 · 화엄 · 진언의 대학장들이 모두 이전의 경에 기울었고 말세로 갈수록 바른 법을 지니는 이는 손톱 위의 흙만큼 적어진다는 사실로 편을 맺으신다.

이 편의 일곱 장은 하나의 논증으로 이어져 있다. 제18장과 제19장은 화엄경에서 무량의경, 법화경 방편품에 이르기까지 석존이 한결같이 「처음 도량에 앉아 성도했다」고 일컬어 왔음을 경문으로 하나하나 짚고, 마침내 여래수량품의 「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무량무변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니라」에 이르러 그 모든 말이 뒤집혔음을 보인다. 제20장은 그 뒤집힘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교리로 정리한다. 이전의 경에는 「행포(行布)를 남긴」 허물과 「시성(始成)을 말한」 허물이 있어 각각 적문의 일념삼천과 본문의 구원을 감추었고, 적문은 앞의 허물 하나만 벗었을 뿐이므로 그 일념삼천은 「물속의 달」이요 그 이승작불은 「뿌리 없는 풀」이라는 것이다.

제21장부터 제24장까지는 방향을 바꾸어 「그러므로 이 법문은 믿기 어렵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대성인은 먼저 스스로 반문을 세워, 이전 · 적문 · 본문의 대부분 · 열반경까지 모두 시성을 말하는데 어찌 종지용출품과 여래수량품 두 품에만 의지하겠느냐고 물으신다(제21장). 이어 법상종의 오성각별, 화엄종과 진언종이 내세우는 경문과 상승의 권위를 차례로 들어, 이 반론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이신다(제22 · 23장). 그리고 재세보다 멸후, 정법보다 말법으로 갈수록 이 난신은 더욱 깊어진다고 맺으신다(제24장). 이 맺음은 곧바로 제25장 「이에 니치렌이 생각하건대」로 이어져, 이 믿기 어려운 법을 말법에 홀로 외치는 법화경의 행자가 누구인가라는 「개목초」 본래의 물음으로 넘어간다.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개목초 문단」을 따라, 이 편을 오중상대 가운데 본적상대에 해당하는 대목으로 읽으면서도 그 원의(元意)는 문저(文底)에 있다고 본다. 수량품 문상(文上)의 본문조차 문저의 사(事)의 일념삼천에 비하면 이(理)의 일념삼천이 된다는 제20장 강의의 마지막 말이 그것이다. 이 편을 읽는 독자는 본적상대의 논리를 따라가는 동시에, 그 논리가 다음 단계인 종탈상대를 향해 열려 있다는 점을 함께 보아야 한다.

오중상대의 제4 본적상대
  1. 내외상대제5장
  2. 대소상대
  3. 권실상대제6장
  4. 본적상대이 편 제18~24장
  5. 종탈상대문저 · 제7장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의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

이 편의 물음: 석존은 시성정각의 부처인가, 구원실성의 부처인가

도표 1 · 이 편의 위치

이 편의 장

第十八章本迹相対して判ず제18장 본적상대하여 판정하다 — 최고의 화엄경조차 「시성정각」을 세 곳에서 일컬어 구원을 감추었다
第十九章本門に久遠実成を説くを示す제19장 본문에 구원실성을 설함을 보이다 — 무량의경 · 방편품까지 이어진 시성의 말을 수량품이 깨뜨리다
第二十章爾前迹門の二失を顕わす제20장 이전 · 적문의 두 허물을 드러내다 — 행포와 시성의 두 허물, 본인본과와 참된 일념삼천
第二十一章難信の相を示す제21장 난신의 모습을 보이다 — 응신 · 보신의 현본은 용출 · 수량 두 품에만 있다
第二十二章法相宗の謬解を挙ぐ제22장 법상종의 그릇된 해석을 들다 — 삼국에 퍼진 오성각별의 권위
第二十三章華厳・真言の謬解を挙ぐ제23장 화엄 · 진언의 그릇된 해석을 들다 — 「불가사의겁」과 「일체의 본초」
第二十四章滅後の難信を結す제24장 멸후의 난신을 맺다 — 정법은 손톱 위의 흙, 방법은 시방의 흙
제18장 본적상대하여 판정하다
어서 196쪽 2~14행 · 第十八章 本迹相対して判ず

본문

원문 대조어서 196쪽 2~14행
本文 · 어서 원문

二には教主釈尊は住劫・第九の減・人寿百歳の時・師子頰王には孫・浄飯王には嫡子・童子悉達太子・一切義成就菩薩これなり、 御年十九の御出家・三十成道の世尊・始め寂滅道場にして実報華王の儀式を示現して十玄・六相・法界円融・頓極微妙の大法を説き給い十方の諸仏も顕現し一切の菩薩も雲集せり、 土といひ機といひ諸仏といひ始めといひ何事につけてか大法を秘し給うべき、 されば経文には顕現自在力・演説円満経等云云、 一部六十巻は一字一点もなく円満経なり、 譬へば如意宝珠は一珠も無量珠も共に同じ一珠も万宝を尽して雨し万珠も万宝を尽すがごとし、 華厳経は一字も万字も但同事なるべし、 心仏及衆生の文は華厳宗の肝心なるのみならず法相・三論・真言・天台の肝要とこそ申し候へ、 此等程いみじき御経に何事をか隠すべきなれども二乗闡提・不成仏と・とかれしは珠のきずと・みゆる上三処まで始成正覚と・なのらせ給いて久遠実成の寿量品を説きかくさせ給いき、 珠の破たると月に雲のかかれると日の蝕したるがごとし不思議なりしことなり、 阿含・方等・般若・大日経等は仏説なれば・いみじき事なれども華厳経にたいすれば・いうにかいなし、 彼の経に秘せんこと此等の経経にとかるべからず、 されば雑阿含経に云く「初め成道」等云云、 大集経に云く「如来成道始め十六年」等云云、 浄名経に云く「始め仏樹に坐して力めて魔を降す」等云云、 大日経に云く「我昔道場に坐して」等云云、 仁王般若経に云く「二十九年」等云云。

풀이

둘째로, 교주 석존은 주겁(住劫) 제9의 감겁, 사람의 수명이 백 세이던 때에 사자협왕에게는 손자요 정반왕에게는 적자로서, 동자 때의 이름은 실달태자이니 일체의성취보살이 곧 이분이시니라. 열아홉에 출가하시고 서른에 성도하신 세존은, 처음 적멸도량에서 실보토(實報土) 화왕(華王)의 의식을 시현하시어 십현(十玄) · 육상(六相) · 법계원융 · 돈극미묘의 대법을 설하셨고, 시방의 제불도 나타나시고 일체의 보살도 구름처럼 모였느니라. 국토로 보나 근기로 보나 제불로 보나 설법의 처음이라는 점으로 보나, 무슨 일로 대법을 감추실 리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경문에는 「자재한 힘을 나타내어 원만한 경을 연설하신다」 등이라 하였으니, 한 부 60권은 한 글자 한 점도 빠짐없이 원만경이니라. 비유하면 여의보주는 한 알이나 무량한 알이나 모두 같아서, 한 알도 만 가지 보배를 다 비 내리고 만 알도 만 가지 보배를 다 비 내리는 것과 같으니, 화엄경은 한 글자나 만 글자나 다만 같은 일이니라. 「마음과 부처와 중생(心佛及衆生)」의 문은 화엄종의 간심일 뿐 아니라 법상 · 삼론 · 진언 · 천태의 간요라고 하느니라. 이토록 훌륭한 경에 무엇을 감추시겠는가마는, 이승과 천제(闡提)는 성불하지 못한다고 설하신 것은 구슬의 흠으로 보이는 데다, 세 곳에서까지 「처음 정각을 이루었다(始成正覺)」고 일컬으시어 구원실성의 수량품을 설하여 감추셨느니라. 구슬이 깨진 것과 같고, 달에 구름이 걸린 것과 같고, 해가 일식한 것과 같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니라. 아함 · 방등 · 반야 · 대일경 등은 부처의 설이므로 훌륭한 것이기는 하나 화엄경에 대면 말할 거리도 못 되느니라. 저 화엄경에 감추신 것이 이들 경경에 설해질 리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잡아함경에 이르되 「처음 성도하여」 등, 대집경에 이르되 「여래가 성도하신 지 비로소 16년」 등, 정명경(유마경)에 이르되 「처음 불수(佛樹) 아래 앉아 힘써 마를 항복받았다」 등, 대일경에 이르되 「내가 옛날 도량에 앉아서」 등, 인왕반야경에 이르되 「29년」 등이라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住劫・第九の減주겁 제9의 감겁
불교의 우주론은 한 세계가 생겨나 머물고 무너지고 비는 네 시기를 성겁 · 주겁 · 괴겁 · 공겁의 사겁으로 나눈다. 주겁 안에서는 사람의 수명이 줄어드는 시기와 늘어나는 시기가 되풀이된다. 한 설에 따르면 처음에 무량하던 수명이 백 년에 한 살씩 줄어 열 살에 이르는 것이 제1 소겁이고, 그 뒤 열 살에서 8만 살까지 늘었다가 다시 열 살까지 줄어드는 증감이 18회 되풀이되며, 마지막 제20 소겁에서 수명이 다시 무량으로 늘어난다. 「제9의 감」은 이 스무 번의 증감 가운데 아홉 번째 감겁으로, 석존이 출현한 때가 수명이 백 세로 줄어드는 시기였다는 뜻이다.
師子頰王사자협왕
중인도 가비라위국의 왕으로 정반왕의 아버지, 곧 석존의 조부다. 『대지도론』 권3은 일종(日種)의 왕 사자협에게 네 아들이 있어 정반 · 백반 · 곡반 · 감로반이라 했다고 전한다.
浄飯王정반왕
범어 슈도다나(Śuddhodana)의 번역. 사자협왕의 장자이며 석존의 아버지다. 아들의 출가에 반대했으나, 성도한 석존이 가비라위성에 돌아왔을 때 불법에 귀의했다.
悉達太子실달태자
석존의 출가 전 이름. 실달은 싯다르타(Siddhārtha)의 음사로 실다 · 실달다라고도 쓴다. 석가족의 왕자였으므로 「태자」라 불렀다.
一切義成就菩薩일체의성취보살
역시 석존의 출가 전 이름이다. 싯다르타를 뜻으로 옮기면 「일체공덕성취」, 사르바르타싯다(Sarvārthasiddha)를 음사하면 살바갈랄타실타(약칭 살바실다), 뜻으로 옮기면 「일체의성취」가 된다. 『불조통기』 권2는 태자가 태어날 때 온갖 보배 창고가 저절로 열리고 상서롭지 않은 일이 없었으므로 바라문이 「살바실다」라 이름 짓기를 권했다고 전한다.
寂滅道場적멸도량
석존이 깨달음을 얻은 곳. 열아홉에 출가한 석존은 여러 바라문에게 배웠으나 해탈의 법이 아님을 알고, 6년의 고행 끝에 그것도 버린 뒤 니련선하에서 몸을 씻고 목녀 난타바라가 바친 우유죽으로 기력을 되찾았다. 이어 가야성 근처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에 길상이 바친 풀을 깔고 앉아 49일 동안 사유한 끝에 마를 항복받고 12월 8일 새벽에 깨달음을 열었다고 전한다. 그 자리에서 삼칠일(21일) 동안 시방에서 모인 대보살들에게 설한 것이 화엄경이라 하므로, 적멸도량은 성도의 땅이자 화엄경의 설처다.
実報실보
실보토(實報土). 사토(四土) 가운데 범부와 성인이 섞여 사는 범성동거토, 이승이 머무는 방편유여토, 부처의 상적광토와 달리, 중도를 증득하고 무명을 끊은 대보살(별교 초지 이상, 원교 초주 이상)이 사는 정토다.
華王の儀式화왕의 의식
화왕은 연화장세계의 왕, 곧 노사나 보신불이다. 화엄경은 높은 지위의 보살과 영리한 근기를 위해 설해졌으므로 보살이 머무는 실보토의 장엄을 그대로 드러내었고, 그 장엄한 설법의 모습을 「화왕의 의식」이라 한다.
十玄・六相십현 · 육상
화엄종 교학의 중심 법문. 십현은 모든 현상이 서로 걸림 없이 들어가고 비추는 모습을 열 가지 문으로 보인 「십현연기」, 육상은 총 · 별 · 동 · 이 · 성 · 괴의 여섯 모습이 서로 원융하다는 「육상원융」이다. 화엄종은 이 둘로 법계원융의 교리를 세운다.
心仏及衆生심불급중생
화엄경(60권본) 야마천궁보살설게품의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화엄종은 이를 자종의 간심으로 삼았으나, 법상 · 삼론 · 진언 · 천태도 저마다 이 문을 자기 교리의 근거로 썼다. 제18장 해설에서 자세히 다룬다.
三処まで始成正覚세 곳에서까지 시성정각
화엄경이 여러 곳에서 석존을 「처음 정각을 이룬」 부처로 일컬은 것을 가리킨다. 대성인은 하권 제38장에서 이를 「화엄경의 세 곳의 『시성정각』」이라 다시 들어, 수량품의 한 마디가 이를 깨뜨린다고 하신다.
浄名経정명경
『유마힐소설경』(유마경)의 다른 이름. 유마힐(Vimalakīrti)을 뜻으로 옮기면 「정명」이 된다. 불국품의 게송에 석존이 처음 보리수 아래 앉아 마를 항복받았다는 구절이 있다.

화엄경조차 감춘 것 — 본적상대의 출발점

제18장 첫머리의 「둘째로(二には)」는 제11장에서 대성인이 내건 두 가지 대사를 받는다. 대성인은 거기서 전 40여 년과 후 8년의 차이 가운데 세간의 학자도 인정하고 대성인 자신도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 「이승작불 · 구원실성」 두 가지라고 하셨다. 강의는 이 구분을 따라, 제11장부터 제17장까지가 첫째인 이승작불을 권적상대(爾前의 권경과 법화경 적문을 상대함)의 자리에서 밝힌 대목이고, 제18장부터가 둘째인 구원실성을 본적상대(적문과 본문을 상대함)의 자리에서 밝히는 대목이라고 정리한다.

대성인이 구원실성을 논하면서 가장 먼저 화엄경을 드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강의에 따르면 화엄경은 석존이 성도한 직후 처음 설한 경이며, 법화경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법문을 담고 있다. 너무 높아서 그 자리의 대중은 그 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그래서 석존은 이어 점교(漸敎)인 아함경을 설하여 초보부터 단계를 밟아 가르쳤다는 것이 천태의 오시 교판이 그리는 일대의 흐름이다. 그렇다면 화엄경은 감출 이유가 가장 적은 경이다. 대성인은 그 이유를 넷으로 드신다. 설한 국토가 실보토의 장엄이었고(토), 듣는 이가 대보살이었으며(기), 시방의 제불이 나타나 함께했고(제불), 설법의 처음이었다(시). 이 네 가지 어느 쪽으로 보아도 대법을 감출 까닭이 없다.

더구나 화엄경 스스로 「자재한 힘을 나타내어 원만한 경을 연설한다」고 자부한다. 대성인은 이를 받아, 60권 전체가 한 글자 한 점도 빠짐없이 원만경이며, 여의보주가 한 알이든 만 알이든 똑같이 만 가지 보배를 비 내리듯 화엄경은 한 글자든 만 글자든 같은 진리를 드러낸다고 그 위상을 한껏 인정하신다. 이것은 반어가 아니다. 상대를 가장 높은 자리에 세워 놓은 뒤에 그 흠을 짚어야 판정이 무게를 갖기 때문이다.

「심불급중생」을 둘러싼 여러 종의 해석

본문이 「심불급중생의 문은 화엄종의 간심일 뿐 아니라 법상 · 삼론 · 진언 · 천태의 간요」라고 하신 대목에 대해,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개목초 문단」(강의는 「寛記」라 부른다)을 들어 각 종이 이 한 구절을 어떻게 자기 교리로 끌어갔는지를 정리한다.

강의는 이 문의 요지를 이렇게 풀이한다. 깨달은 마음이든 미혹한 마음이든, 깨달은 중생이든 미혹한 중생이든 모두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중생이 한 부처를 믿고 그 가르침대로 행하면 그 부처와 같은 경애를 얻을 수 있다. 또 그 부처도 중생과 똑같은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자기와 같은 경애를 얻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부처와 중생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없다는 이 원리가 여러 종의 간요가 된 까닭이다.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은 60권 화엄경 야마천궁보살설게품의 게송으로, 천태대사는 『법화현의』에서 「묘법」의 「법」을 중생법 · 불법 · 심법의 삼법으로 풀면서 이 게송을 근거로 썼다. 천태 교학에서 이 게송이 갖는 무게는 이처럼 크지만, 천태 교학은 이를 법화경의 십계호구 · 일념삼천 안으로 거두어 푼 것이다. 제9장에서 대성인이 「화엄종은 징관 때에 화엄경의 『마음은 솜씨 좋은 화가와 같다』는 문에 천태의 일념삼천 법문을 훔쳐 넣었다」고 하신 비판이 이 대목과 이어진다.

구슬의 흠, 달의 구름, 해의 일식

이처럼 훌륭한 경인데도 화엄경에는 두 가지 흠이 있다고 대성인은 말씀하신다. 첫째는 이승과 일천제가 성불하지 못한다고 설한 것이다. 이것은 제2편에서 다룬 이승불성불의 문제로, 여기서는 「구슬의 흠으로 보인다」고만 하고 지나가신다. 둘째가 이 편의 주제다. 화엄경은 세 곳에서까지 석존이 「처음 정각을 이루었다」고 일컬어, 구원실성을 밝히는 수량품의 법문을 설하지 않고 감추었다.

대성인은 이 상태를 세 가지 비유로 그리신다. 구슬이 깨졌고, 달에 구름이 걸렸고, 해가 일식했다. 세 비유는 모두 본래 완전한 것이 가려지거나 이지러진 모습이다. 화엄경이 아무리 원만경을 자부해도, 부처가 언제 성불했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이번 생에 처음」이라고 말하는 한, 그 원만은 이지러진 원만이다. 대성인이 이를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신 것은 놀라움의 표현이면서, 가장 높은 경조차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는 판정이기도 하다.

이 판정에서 다음 논리가 곧장 나온다. 아함 · 방등 · 반야 · 대일경도 부처의 설이니 훌륭하기는 하지만, 화엄경에 견주면 말할 거리가 못 된다. 화엄경에서조차 감춘 법이 그보다 낮은 경에 설해졌을 리 없다. 그래서 대성인은 다섯 경의 문을 차례로 드신다.

  1. 화엄경세 곳의 「시성정각」
  2. 잡아함경初め成道처음 성도하여
  3. 대집경如来成道始め十六年여래가 성도하신 지 비로소 16년
  4. 정명경始め仏樹に坐して力めて魔を降す처음 불수 아래 앉아 힘써 마를 항복받았다
  5. 대일경我昔道場に坐して내가 옛날 도량에 앉아서
  6. 인왕반야경二十九年29년
  7. 무량의경我先きに道場菩提樹の下に端坐すること六年내가 앞서 도량 보리수 아래 단좌하기 6년
  8. 법화경 방편품我始め道場に坐し樹を観じて亦経行す내가 처음 도량에 앉아 나무를 보고 또 거닐었다
수량품然るに善男子・我実に成仏してより已来無量無辺・百千万億・那由佗劫なり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무량무변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니라
도표 2 · 시성정각을 말한 경문

다섯 경의 문은 표현은 달라도 같은 사실을 말한다. 잡아함경은 「처음 성도하여」라 하고, 대집경은 성도한 지 16년이라 하며, 유마경은 처음 보리수 아래 앉아 마를 항복받았다고 하고, 대일경의 부처도 「내가 옛날 도량에 앉아」라 말하며, 인왕경은 성도 후 29년이라 한다. 모두 석존이 이 세상에서 출가하고 수행해 서른에 성도했다는 시성정각의 틀 안에 있다. 진언종이 법화경보다 높다고 내세우는 대일경까지 이 목록에 들어 있다는 점은 뒤의 제23장과 겹쳐 읽어야 한다.

이 목록은 하권 제38장에서 거의 그대로 다시 나타난다. 거기서 대성인은 수량품의 「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을 들어 이렇게 판정하신다.

此の文は華厳経の三処の「始成正覚」阿含経に云く「初成」浄名経の「始坐仏樹」大集経に云く「始十六年」大日経の「我昔坐道場」等・仁王経の「二十九年」無量義経の「我先道場」法華経の方便品に云く「我始坐道場」等を一言に大虚妄なりと・やぶるもんなり。

이 문은 화엄경의 세 곳의 「시성정각」, 아함경의 「처음 성도」, 정명경의 「처음 불수에 앉아」, 대집경의 「비로소 16년」, 대일경의 「내가 옛날 도량에 앉아」, 인왕경의 「29년」, 무량의경의 「내가 앞서 도량에」, 법화경 방편품의 「내가 처음 도량에 앉아」 등을 한마디로 큰 허망이라고 깨뜨리는 문이니라.

「개목초 하」, 213쪽

제18장은 이 판정의 앞부분, 곧 「깨뜨려질 쪽」의 목록을 먼저 펼쳐 놓는 장이다. 제19장이 그 목록에 무량의경과 방편품을 더하고, 제38장이 수량품의 한마디로 목록 전체를 지운다.

화엄경에도 없는 것 — 생명의 영원 · 사바즉적광 · 일념삼천

강의는 이 장의 뜻을 한 문장으로 맺는다. 법화경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화엄경조차 생명의 영원을 설하지 않았고, 이 사바세계를 정토라고 단정하지 않았으며, 일념삼천의 법문은 그림자조차 없다. 하물며 아함 · 방등 · 반야에 있을 리가 없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부처가 이번 생에 처음 성불했다면 부처의 생명에는 시작이 있고, 그 부처가 머무는 국토도 성도 이후에 비로소 정토가 된다. 그래서 이전의 경들은 시방의 다른 국토를 정토라 하고 이 사바를 예토라 했다. 반대로 부처가 무량겁 전부터 이 사바세계에서 설법 교화해 왔다면, 부처의 생명과 함께 이 국토도 본래부터 부처의 국토가 된다. 「관심의 본존초」는 수량품에 이르러 드러난 이 국토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今本時の娑婆世界は三災を離れ四劫を出でたる常住の浄土なり仏既に過去にも滅せず未来にも生ぜず所化以て同体なり此れ即ち己心の三千具足三種の世間なり迹門十四品には未だ之を説かず法華経の内に於ても時機未熟の故なるか

지금 본시(本時)의 사바세계는 삼재를 여의고 사겁을 벗어난 상주의 정토이니라. 부처가 이미 과거에도 멸하지 않고 미래에도 생하지 않으며, 교화받는 이도 이와 동체이니라. 이것이 곧 기심(己心)의 삼천구족 · 삼종세간이니라. 적문 14품에는 아직 이를 설하지 않았으니, 법화경 안에서도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관심의 본존초」, 247쪽

제18장에서 「주겁 제9의 감」이라는 우주론의 시간 위에 석존의 출생을 놓고 시작하신 것도 이 대비와 맞닿아 있다. 이전의 석존은 성 · 주 · 괴 · 공의 사겁 가운데 한 시점에 태어나 성도하고 입멸하는 부처, 곧 사겁 안에 갇힌 부처다. 수량품의 부처는 「삼재를 여의고 사겁을 벗어난」 국토의 부처다. 장의 첫 문장이 이미 장 전체가 깨뜨릴 대상을 정확하게 그려 놓고 있는 셈이다.

강의는 화엄경을 법화경 다음가는 최고의 경으로 인정한 뒤, 그 최고의 경조차 시성정각을 말해 구원실성을 감추었으므로 그 아래의 아함 · 방등 · 반야 · 대일경에 구원이 있을 리 없다고 본다. 영원한 생명, 사바세계의 상주정토, 일념삼천은 모두 수량품의 구원실성과 함께 비로소 드러나는 법문이다.

제19장 본문에 구원실성을 설함을 보이다
어서 196쪽 15행~197쪽 11행 · 第十九章 本門に久遠実成を説くを示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196쪽 15행 ~ 197쪽 11행
本文 · 어서 원문

此等は言うにたらず只耳目を・をどろかす事は無量義経に華厳経の唯心法界・方等・般若経の海印三昧・混同無二等の大法をかきあげて或は未顕真実・或は歴劫修行等・下す程の御経に我先きに道場菩提樹の下に端坐すること六年阿耨多羅三藐三菩提を成ずることを得たりと初成道の華厳経の始成の文に同ぜられし不思議と打ち思うところに此は法華経の序分なれば正宗の事をいはずもあるべし、 法華経の正宗・略開三・広開三の御時・唯仏与仏・乃能究尽・諸法実相等・世尊法久後等・正直捨方便等・多宝仏・迹門八品を指して皆是真実と証明せられしに何事をか隠すべきなれども久遠寿量をば秘せさせ給いて我始め道場に坐し樹を観じて亦経行す等云云、 最第一の大不思議なり、 されば弥勒菩薩・涌出品に四十余年の未見今見の大菩薩を仏・爾して乃ち之を教化して初めて道心を発さしむ等と・とかせ給いしを疑つて云く「如来太子為りし時・釈の宮を出でて伽耶城を去ること遠からず道場に坐して阿耨多羅三藐三菩提を成ずることを得たまえり、是より已来始めて四十余年を過ぎたり世尊・云何ぞ此の少時に於て大いに仏事を作したまえる」等云云、 教主釈尊此等の疑を晴さんがために寿量品を・とかんとして爾前迹門のききを挙げて云く「一切世間の天人及び阿修羅は皆今の釈迦牟尼仏・釈氏の宮を出でて伽耶城を去ること遠からず道場に坐して阿耨多羅三藐三菩提を得たまえりと謂えり」等と云云、 正しく此の疑を答えて云く「然るに善男子・我実に成仏してより已来無量無辺・百千万億・那由佗劫なり」等云云。 華厳・乃至般若・大日経等は二乗作仏を隠すのみならず久遠実成を説きかくさせ給へり、

풀이

이들 경은 말할 거리도 못 되느니라. 다만 귀와 눈을 놀라게 하는 것은 무량의경이니, 화엄경의 유심법계(唯心法界), 방등 · 반야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 · 혼동무이(混同無二) 등의 대법을 들어 올려 혹은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未顯眞實)」, 혹은 「역겁수행(歷劫修行)」 등이라 깎아내릴 정도의 경에서, 「내가 앞서 도량 보리수 아래 단좌하기 6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하여 첫 성도 때의 화엄경이 말한 시성의 문과 같게 하신 것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것은 법화경의 서분이므로 정종분의 일은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리라. 법화경의 정종분, 약개삼 · 광개삼 때에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능히 제법실상을 구진하셨다(唯佛與佛 乃能究盡 諸法實相)」 등, 「세존은 법을 오래 하신 뒤에(世尊法久後)」 등,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正直捨方便)」 등이라 하시고, 다보불이 적문 8품을 가리켜 「모두 진실이니라(皆是眞實)」고 증명하셨으니 무엇을 감추시겠는가마는, 구원의 수량은 숨기시고 「내가 처음 도량에 앉아 나무를 바라보고 또 거닐었다」 등이라 하셨느니라. 이것이 가장 첫째가는 큰 불가사의이니라. 그러므로 미륵보살은 종지용출품에서, 40여 년 동안 본 적이 없다가 지금 처음 보는 대보살들을 두고 부처께서 「내가 그들을 교화하여 처음으로 도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등이라 설하신 것을 의심하여 말하되, 「여래께서 태자이셨을 때 석씨의 궁을 나와 가야성에서 멀지 않은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셨나이다. 그로부터 이제 겨우 40여 년이 지났을 뿐인데, 세존이시여, 어찌 이 짧은 동안에 이토록 크게 불사를 지으셨나이까」 등이라 하였느니라. 교주 석존은 이러한 의심을 풀어 주시려고 수량품을 설하시려 할 때 이전 · 적문에서 들어 온 바를 들어 말씀하시되, 「일체 세간의 천 · 인 및 아수라는 모두, 지금의 석가모니불이 석씨의 궁을 나와 가야성에서 멀지 않은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다고 생각하느니라」 등이라 하시고, 바로 이 의심에 답하여 말씀하시되, 「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무량무변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니라」 등이라 하셨느니라. 화엄 내지 반야 · 대일경 등은 이승작불을 감추었을 뿐 아니라 구원실성도 설하지 않고 감추셨느니라.

어구 풀이

無量義経무량의경
법화경을 설하기 직전에 설한 경으로 법화경의 개경(開經), 곧 법화삼부경의 첫째다. 설법품에 「40여 년에는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四十餘年 未顯眞實)」는 문이 있어 이전의 경을 방편으로 판정하는 근거가 된다. 대성인은 이 경을 「법화경의 서분」이라 부르신다.
唯心法界유심법계
구역 화엄경 권26의 「삼계는 오직 한마음이요, 마음 밖에 다른 법이 없다(三界唯一心 心外無別法)」는 문에서 나온 말로, 화엄종에서 근본 법문으로 삼는다.
海印三昧해인삼매
화엄경 · 대집경 · 대반야경 등에 설해진 삼매. 삼매는 마음을 한곳에 두어 흔들리지 않게 하고 관하는 법을 바르게 받아 마음의 어지러움과 굽음을 바로잡는 것이다. 바다의 물결이 가라앉아 물이 맑으면 수면에 모든 사물의 모습이 비치듯, 부처의 지혜 바다에 일체법이 또렷이 비치는 경지를 해인삼매라 한다. 대집경 권15 허공장보살품은 염부제의 모든 중생의 몸과 바깥의 모든 빛깔이 바닷속에 모두 그 모습을 찍어 두므로 「대해인」이라 하듯, 보살도 이 삼매를 얻으면 일체중생의 마음의 움직임을 분별해 보고 모든 법문에 지혜의 밝음을 얻는다고 설한다.
混同無二혼동무이
반야경의 「일체제법 혼동무이(一切諸法 混同無二)」의 약칭. 모든 사상(事象)은 연기로 존재하므로 그 자체에 고정된 실체가 없고 서로 관계하여 나눌 수 없다는 뜻이다. 곧 구법계가 닦는 법과 불계의 법이 그 성품에서는 차별이 없이 같은 법성이라는 뜻이다.
歴劫修行역겁수행
무량한 겁을 지나며 차례로 닦아 올라가는 수행. 무량의경은 이전의 수행법을 「역겁수행」이라 하여, 그 길로는 끝내 무상보리를 이루지 못한다고 판정한다.
略開三약개삼
약개삼현일(略開三顯一)의 줄임. 방편품 전반에서 개삼현일을 간략히 설한 것이다. 개삼현일이란 이전의 경에서 설한 성문 · 연각 · 보살의 삼승 수행이 방편이며, 부처의 참뜻은 모든 사람을 성불로 이끄는 일불승에 있다고 밝힌 것이다.
広開三광개삼
광개삼현일(廣開三顯一). 방편품의 장행부터 수학무학인기품 제9까지, 법설 · 비유 · 인연의 세 번(삼주)에 걸쳐 삼승이 일불승을 위한 방편이었음을 널리 밝힌 것이다. 「삼」은 이전의 경, 「일」은 법화경을 가리킨다.
唯仏与仏・乃能究尽유불여불 · 내능구진
방편품의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능히 제법의 실상을 구진하셨다(唯佛與佛 乃能究盡 諸法實相)」. 이 문에 이어지는 십여시가 일념삼천의 출처가 된다. (강의의 표제어는 「及能究尽」으로 적혀 있으나 경문은 「乃能究盡」이다.)
弥勒菩薩미륵보살
「자씨(慈氏)」라 번역하며, 이름은 아일다(무능승)다. 인도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석존의 제자가 되었고, 석존의 부처 자리를 이을 보처의 보살이 되었다. 석존보다 먼저 입멸하여 도솔천 내원에 태어나 56억 7천만 년 뒤에 다시 세상에 나와 석존을 잇는다고 『보살처태경』에 설해진다. 법화경 종지용출품에서는 발기중(發起衆)이 되고, 수량품 · 분별공덕품 · 수희공덕품에서는 대고중이 된다.
涌出品용출품
법화경 종지용출품 제15. 법사품 이래 석존이 멸후의 홍통을 권하자 적화 · 타방의 보살들이 서원을 세웠으나, 석존은 「그만두라, 선남자여. 너희가 이 경을 호지함을 쓰지 않으리라」며 이를 물리친다. 그때 상행 · 무변행 · 정행 · 안립행의 사보살을 상수로 하는 지용의 보살이 대지에서 솟아오른다. 석존이 「내가 그들을 교화해 처음 도심을 일으키게 했다 … 나는 구원부터 이 무리를 교화해 왔다」고 답하자, 미륵이 대중을 대표해 의문을 일으킨다. 이 품은 구원실성을 밝히는 서가 되므로 약개근현원이라 한다.
伽耶城가야성
중인도 마가다국의 도성으로, 지금의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 가야시에 해당한다. 그 남쪽 약 11킬로미터에 석존 성도의 땅 붓다가야가 있다.
久遠実成구원실성
인도에 태어나 이번 생에 성불했다고 설해 온 석존이 실은 오백진점겁이라는 아득한 과거(구원)에 이미 성불했다는 것. 수량품에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무량무변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니라」, 「내가 부처를 얻은 이래 지나온 모든 겁수는 무량 백천만억재 아승기니라」라고 한다. 석존은 나아가 구원부터 사바세계에서 많은 중생을 설법 교화하고 하종 결연해 왔음을 밝혔으며, 오백진점겁의 이 하종 결연을 구원하종이라 한다.

서분도 정종분도 감춘 것 — 「가장 첫째가는 큰 불가사의」

제18장이 화엄경과 아함 · 방등 · 반야 · 대일경의 시성정각을 들었다면, 제19장은 법화경 자체의 문으로 들어온다. 대성인은 「이들은 말할 거리도 못 된다」고 앞 장을 정리한 뒤, 「다만 귀와 눈을 놀라게 하는 것」으로 두 경문을 드신다. 하나는 법화경의 개경인 무량의경이고, 다른 하나는 법화경 정종분인 방편품이다.

무량의경이 놀라운 까닭은 그 경이 이전의 대법들을 정면으로 깎아내린 경이기 때문이다. 화엄의 유심법계, 방등 · 반야의 해인삼매와 혼동무이 같은 대법을 일일이 들어 올려 놓고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 「역겁수행이다」라고 판정한 바로 그 경에서, 석존은 「내가 앞서 도량 보리수 아래 단좌하기 6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다」고 말해 화엄경의 시성정각과 똑같은 말을 한다. 이전을 깨뜨리는 경이 부처의 성도에 대해서는 이전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를 「불가사의」라 하시면서도, 무량의경은 서분이므로 정종분의 일은 아직 말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한 걸음 물러나신다.

그러나 정종분에 이르러서도 사정은 같았다. 방편품에서 석존은 약개삼과 광개삼으로 삼승이 방편임을 밝히고,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능히 제법실상을 구진하셨다」, 「세존은 법을 오래 하신 뒤에 반드시 진실을 설하시리라」,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오직 무상도를 설한다」고 선언했다. 견보탑품에서는 다보불이 솟아올라 적문 8품을 가리켜 「모두 진실이니라」라고 증명했다. 제2편에서 본 일불이언 · 다보의 증명이 모두 이 자리다. 이토록 진실을 거듭 선언한 경이라면 무엇 하나 감출 리 없다. 그런데도 방편품의 게송에서 석존은 「내가 처음 도량에 앉아 나무를 바라보고 또 거닐었다」고 말해, 여전히 시성정각의 부처로 자신을 드러낸다. 대성인이 이를 「가장 첫째가는 큰 불가사의」라 부르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전의 경이 시성을 말한 것은 이전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모두 진실」이라 증명받은 적문조차 부처의 본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왜 적문에서조차 감추었는가

강의는 법화경의 본문 수량품에 이르기까지는 생명의 영원이 설해지지 않았고 십계의 상주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정리한다. 아함 · 방등은 말할 것도 없고 반야경도 화엄경도 한결같이 석존이 이 세상에서 성불했다고 설했으며, 무량의경도 방편품도 인도에 태어나 성도했다고 같은 말을 했다. 수량품에 이르러서야 출세의 본회인 십계본유상주를 설하고 영원한 생명을 밝혔다. 그러면 왜 적문에서조차 이를 감추었는가. 강의는 「관심의 본존초」의 한 구절로 답한다.

迹門十四品には未だ之を説かず法華経の内に於ても時機未熟の故なるか

적문 14품에는 아직 이를 설하지 않았으니, 법화경 안에서도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관심의 본존초」, 247쪽

같은 법화경 안에서도 적문의 대중은 아직 부처의 본지를 들을 때와 근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그래서 적문은 개삼현일로 이승작불을 밝히는 데까지 나아가고, 개근현원은 본문으로 미루어졌다는 것이다.

미륵의 의심과 「동집생의」

대성인은 이어 종지용출품의 장면으로 옮겨 가신다. 대지에서 무수한 보살이 솟아오르고, 석존은 그들이 모두 자기가 교화하여 처음 도심을 일으키게 한 제자라고 말한다. 미륵은 40여 년 동안 석존을 따랐지만 이 보살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대중을 대표해 묻는다. 석존께서 태자로서 석씨의 궁을 나와 가야성 가까운 도량에서 성도하신 지 겨우 40여 년인데, 어찌 그 짧은 동안에 이토록 큰 불사를 이루셨는가.

이 의문의 무게는 그 비유에서 드러난다. 용출품에서 미륵은 이 상황을, 이제 막 스물다섯 된 젊은이가 머리 희고 얼굴 주름진 백 살 노인을 가리켜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비긴 이 비유는, 성도 40여 년의 부처가 헤아릴 수 없는 대보살을 「나의 제자」라 부르는 모순을 그대로 드러낸다. 석존이 시성정각의 부처라면 이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석존이 거짓을 말할 리도 없다. 시성정각이라는 이전 · 적문의 이해에 붙들려 있던 대중이 이 모순 앞에서 그 집착이 흔들리고 의심을 일으키는 것을 천태 교학은 「동집생의(動執生疑)」라 부른다. 수량품은 바로 이 의심에 답하는 품이다.

  1. ①종지용출품: 지용의 보살 출현, 석존爾して乃ち之を教化して初めて道心を発さしむ내가 그들을 교화하여 처음 도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2. ②미륵의 의심是より已来始めて四十余年を過ぎたり世尊・云何ぞ此の少時に於て大いに仏事を作したまえる그로부터 겨우 40여 년, 어찌 이 짧은 동안에 크게 불사를 지으셨나이까
  3. ③수량품, 이전 · 적문의 이해를 듦一切世間の天人及び阿修羅は皆今の釈迦牟尼仏…道場に坐して阿耨多羅三藐三菩提を得たまえりと謂えり일체 세간의 천 · 인 · 아수라는 모두 … 도량에 앉아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생각한다
  4. ④정답然るに善男子・我実に成仏してより已来無量無辺・百千万億・那由佗劫なり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무량무변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니라
도표 3 · 동집생의에서 개근현원으로

수량품에서 석존은 답하기 전에 먼저 「일체 세간의 천 · 인 및 아수라는 모두 지금의 석가모니불이 … 도량에 앉아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생각한다」고, 이전 · 적문에서 대중이 들어 온 이해를 그대로 들어 보인다. 대성인은 이를 「이전 · 적문의 들음(爾前迹門のきき)」이라 하신다. 강의는 이 대목에서 석존이 이번 생에 태어나 성불했다는 이해가 전적으로 허망임을 깨뜨렸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이 바로 그 의심에 대한 정답이다.

왜 「천 · 인 · 아수라」라 하고 이승과 보살을 들지 않았는가

수량품이 이전 · 적문의 이해를 가진 자로 「천 · 인 및 아수라」만 들고 이승이나 보살을 들지 않은 데에도 뜻이 있다. 강의는 「십법계사」의 판정을 든다. 본문에 이르면, 이전 · 적문에서 무명을 끊었다고 하던 보살들조차 천 · 인 · 수라에 거두어진다는 것이다.

是を以て本門に至つては則ち爾前迹門に於て随他意の釈を加え又天人修羅に摂し貪著五欲妄見網中為凡夫顚倒と説き

그러므로 본문에 이르러서는 이전 · 적문에 대해 수타의(隨他意)라는 해석을 더하고, 또 천 · 인 · 수라에 거두어 「오욕에 탐착하여 망견의 그물 속에 있는 범부의 전도」라고 설하였느니라.

「십법계사」, 422쪽

이전 · 적문에서 얼마나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하든, 부처의 구원을 모르는 한 그 단혹(斷惑)은 실제로 끊은 것이 아니며, 본문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오욕과 망견에 얽힌 범부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천 · 인 · 아수라」라는 말 하나로 이전 · 적문의 모든 대중을 묶은 것이다. 「십법계사」는 같은 대목에서, 용출품에서 이전 · 적문의 보살들이 지용보살의 50소겁 찬탄을 반나절처럼 여겼다고 설한 것도 그들이 수량품의 구원의 부처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실성불이래」를 어떻게 읽는가 — 본적일치설에 대한 강의의 반론

수량품의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무량무변…(我實成佛已來 無量無邊)」은 본적상대의 핵심 문이다. 강의는 이 문을 본적일치의 증거로 읽은 해석을 들어 반박한다. 「일건초(日健抄)」는 이 문을 쪼개어 「아실(我實)은 본문, 성불(成佛)은 적문」, 또는 「아실성불은 본문, 이래무량무변은 적문」이라고 하여, 한 문 안에 본문과 적문이 함께 있으니 본적이 일치한다고 했다. 강의는 이를 불법을 해치는 극심한 오류라고 거세게 비판한다.

강의가 드는 근거는 둘이다. 첫째, 천태대사는 이 문을 본지(本地)의 삼신에 배대하여 「아(我)는 법신, 성불(成佛)은 보신, 이래(已來)는 응신」이라 풀었다(강의는 출처를 「玄文第七」이라 적는다). 「성불」 두 글자가 이미 본지의 보신인데 어찌 이를 적문이라 할 수 있는가. 둘째, 이 문은 「가까운 것(시성)을 깨뜨려 실(구원)을 드러내는 문」, 곧 적을 깨뜨려 본을 바로 드러내는 문이다. 적을 깨뜨리는 문을 본적일치의 증거로 삼는 것은 문의 취지를 거꾸로 읽은 것이다.

강의는 이어 대성인이 본문과 적문의 차이를 얼마나 크게 보셨는지를 「치병대소권실위목」의 한 구절로 보인다.

法華経に又二経あり、所謂迹門と本門となり本迹の相違は水火天地の違目なり、例せば爾前と法華経との違目よりも猶相違あり

법화경에 또 두 경이 있으니, 이른바 적문과 본문이니라. 본적의 상위는 물과 불,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이니, 예컨대 이전과 법화경의 차이보다도 더 큰 상위가 있느니라.

「치병대소권실위목」, 996쪽

본적의 차이가 이전과 법화경의 차이보다도 크다고 하신 이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고 본적일치를 세우는 것은 스승의 뜻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어의구전』은 같은 「아실성불이래 무량무변」을 다른 차원에서 읽는다. 「아」는 법계의 중생, 곧 십계 각각을 가리키고, 「실」은 무작삼신의 부처이며, 「성」은 「연다(開く)」는 뜻이고, 「이래」의 말 속에 과거 · 미래와 함께 현재가 있다고 풀며, 「백천」 두 글자를 「백은 백계, 천은 천여」로 읽어 「이것이 곧 사(事)의 일념삼천」이라 하신다(752–753쪽). 본적일치설이 이 문을 본과 적으로 쪼갠 데 비해, 『어의구전』은 이 문 전체를 문저의 사의 일념삼천으로 읽는다. 이 읽기는 제20장의 「참된 십계호구 · 백계천여 · 일념삼천」과 이어진다.

강의는 무량의경과 방편품까지 이어진 시성정각의 말이 수량품의 「아실성불이래」로 한꺼번에 깨뜨려졌다고 본다. 적문에서조차 구원을 감춘 것은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며, 본문과 적문의 차이는 이전과 법화경의 차이보다도 크다. 그러므로 이 문을 본적일치의 근거로 삼는 해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승작불과 구원실성 — 두 가지를 함께 감춘 이전

장의 마지막 한 문장, 「화엄 내지 반야 · 대일경 등은 이승작불을 감추었을 뿐 아니라 구원실성도 설하지 않고 감추셨느니라」는 제11장 이래의 논의 전체를 묶고 제20장으로 넘기는 이음매다. 제2편이 이전의 경이 이승작불을 감추었음을 보였고, 제18 · 19장이 같은 경들이 구원실성도 감추었음을 보였다. 이 두 가지 감춤이 다음 장에서 「두 가지 허물」로 정식화된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대성인이 「감추었다(かくす)」는 말을 일관되게 쓰신다는 점이다. 이전의 경에 구원실성이 「없다」고 하지 않고 「감추었다」고 하신다. 부처는 처음부터 구원의 부처였고, 그 사실을 근기에 맞추어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라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제20장 끝에서 화엄의 대상 노사나불, 아함의 장육 석가, 대일경의 대일여래가 모두 수량품 부처의 「물에 비친 그림자」라는 비유로 이어진다.

옛 인도 가야 근처의 들 — 잔잔한 니련선하 강가에 가지를 넓게 펼친 큰 보리수가 서 있고 그 아래는 비어 있으며, 먼 언덕 위로 옅은 새벽 하늘이 열리는 금박 수묵화
그림 · 가야의 보리수와 니련선하 — 시성정각의 무대인 도량을 멀리서 본 풍경
제20장 이전 · 적문의 두 허물을 드러내다
어서 197쪽 11행~198쪽 3행 · 第二十章 爾前迹門の二失を顕わ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197쪽 11행 ~ 198쪽 3행
本文 · 어서 원문

此等の経経に二つの失あり、 一には行布を存するが故に仍お未だ権を開せずとて迹門の一念三千をかくせり、 二には始成を言うが故に尚未だ迹を発せずとて本門の久遠をかくせり、 此等の二つの大法は一代の綱骨・一切経の心髄なり、 迹門方便品は一念三千・二乗作仏を説いて爾前二種の失・一つを脱れたり、 しかりと・いえども・いまだ発迹顕本せざれば・まことの一念三千もあらはれず二乗作仏も定まらず、 水中の月を見るがごとし・根なし草の波の上に浮べるににたり、 本門にいたりて始成正覚をやぶれば四教の果をやぶる、 四教の果をやぶれば四教の因やぶれぬ、 爾前迹門の十界の因果を打ちやぶつて本門の十界の因果をとき顕す、 此即ち本因本果の法門なり、 九界も無始の仏界に具し仏界も無始の九界に備りて・真の十界互具・百界千如・一念三千なるべし、 かうて・かへりみれば華厳経の台上十方・阿含経の小釈迦・方等般若の金光明経の阿弥陀経の大日経等の権仏等は・此の寿量の仏の天月しばらく影を大小の器にして浮べ給うを・諸宗の学者等・近くは自宗に迷い遠くは法華経の寿量品をしらず水中の月に実の月の想いをなし或は入つて取らんと・をもひ或は繩を・つけて・つなぎとどめんとす、 天台云く「天月を識らず但池月を観ず」等云云。

풀이

이들 경경에는 두 가지 허물이 있느니라. 첫째는 「행포(行布)를 남기므로 여전히 아직 권(權)을 열지 못했다」 하여 적문의 일념삼천을 감추었고, 둘째는 「시성(始成)을 말하므로 여전히 아직 적(迹)을 열지 못했다」 하여 본문의 구원을 감추었느니라. 이 두 가지 대법은 일대의 강골(綱骨)이요 일체경의 심수(心髓)이니라. 적문 방편품은 일념삼천 · 이승작불을 설하여 이전의 두 가지 허물 가운데 하나를 벗어났느니라. 그렇기는 하나 아직 발적현본(發迹顯本)하지 않았으므로 참된 일념삼천도 나타나지 않고 이승작불도 정해지지 않았느니라. 물속의 달을 보는 것과 같고, 뿌리 없는 풀이 물결 위에 떠 있는 것과 비슷하니라. 본문에 이르러 시성정각을 깨뜨리면 사교(四敎)의 과(果)를 깨뜨리고, 사교의 과를 깨뜨리면 사교의 인(因)도 깨뜨려지느니라. 이전 · 적문의 십계의 인과를 쳐부수고 본문의 십계의 인과를 설하여 나타내셨으니, 이것이 곧 본인본과(本因本果)의 법문이니라. 구계도 무시(無始)의 불계에 갖추어지고 불계도 무시의 구계에 갖추어져서, 참된 십계호구 · 백계천여 · 일념삼천이 되느니라. 이렇게 하여 돌이켜 보면, 화엄경의 대상(臺上)의 시방 부처, 아함경의 작은 석가, 방등 · 반야의, 금광명경의, 아미타경의, 대일경 등의 권불(權佛)들은 이 수량품의 부처라는 하늘의 달이 잠시 크고 작은 그릇에 그림자를 띄우신 것이거늘, 여러 종의 학자들은 가까이는 자기 종에 미혹하고 멀리는 법화경의 수량품을 알지 못하여, 물속의 달을 진짜 달로 생각하고 혹은 들어가서 잡으려 하고 혹은 새끼줄을 매어 붙들어 두려 하느니라. 천태가 이르되 「하늘의 달을 알지 못하고 다만 못의 달만 본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行布행포
「차별」의 뜻. 본래는 보살의 수행 계위를 52위로 나누어 차례대로 늘어놓고(行列布置) 차별을 두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이전의 경이 이승은 성불하지 못한다 하여 십계 사이에 차별을 둔 것을 가리킨다. 니치칸 상인은 「삼중비전초」에서 이를 풀어, 옛 경경은 십계의 차별을 남겼으므로 구계의 권을 열지 못했고, 그러므로 십계호구의 뜻이 없어 적문의 일념삼천을 감추었다고 하셨다.
仍お未だ権を開せず여전히 아직 권을 열지 못했다
「권(權)을 연다」는 이전에서 방편으로 세운 삼승의 차별을 열어 일불승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 곧 개권현실(開權顯實)이다. 이전의 경은 행포를 남겼으므로 이 개권에 이르지 못했다.
尚未だ迹を発せず여전히 아직 적을 열지 못했다
「적(迹)을 연다」는 시성정각이라는 자취를 열어 구원실성이라는 본지를 드러내는 것, 곧 발적현본이다. 이전의 경은 시성을 말했으므로 이 발적에 이르지 못했다.
綱骨・心髄강골 · 심수
그물의 벼리와 몸의 뼈대, 그리고 마음과 골수. 적문의 일념삼천과 본문의 구원이 석존 일대 교설의 골격이자 일체경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発迹顕本발적현본
「적을 열어 본을 나타낸다」고 읽는다. 적(衆生을 이끌기 위해 나타낸 임시의 모습)을 열어 본지(본래의 경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① 수량품에서 석존이 시성정각이라는 적을 열고 구원실성이라는 본지를 나타낸 것을 천태대사가 이렇게 불렀다. ② 니치렌 대성인의 발적현본은, 다쓰노쿠치 법난을 계기로 숙업과 고뇌를 지닌 범부라는 적을 열고, 생명에 갖추어진 본원적인 자비와 지혜의 부처(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여래)라는 본지를 범부의 몸 그대로 나타내신 것을 말한다.
四教の果・四教の因사교의 과 · 인
사교는 천태의 화법사교인 장교 · 통교 · 별교 · 원교. 각 가르침이 설하는 부처(果)와 그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因)을 말한다. 사교의 부처는 모두 이번 생에 성도한 부처이므로, 시성정각이 깨뜨려지면 그 부처들이 모두 깨뜨려지고, 그 부처에 이르는 수행도 함께 깨뜨려진다.
本因本果본인본과
수량품이 밝힌 부처의 본래의 인(本因)과 본래의 과(本果).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무량무변…」이 본과,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 이룬 수명은 지금도 아직 다하지 않았다」가 본인이다. 구원의 부처에게도 성불의 인이 있었고 그 인행인 구계가 지금도 다하지 않았다는 데서 무시무종의 십계호구가 성립한다.
華厳経の台上十方화엄경의 대상 시방
화엄경의 부처를 가리키는 말. 화엄경에서는 노사나 보신불이 연화장세계의 연화대 한가운데(中臺)에 앉고, 연꽃 천 잎 위에 천 석가, 그 잎마다 백억의 작은 석가가 있다고 한다.
阿含経の小釈迦아함경의 작은 석가
아함경이 설하는 키 1장 6척(丈六)의 열응신(劣應身) 석가. 34심으로 번뇌를 끊고 성도한 장교의 부처다.
天月・池月하늘의 달 · 못의 달
하늘의 달은 본체, 물에 비친 달은 그 그림자. 강의는 니치칸 상인을 따라 하늘의 달을 본문, 못의 달을 적문에 비긴다.

두 가지 허물 — 행포와 시성

제20장은 제18 · 19장에서 경문으로 확인한 사실을 두 개의 명제로 정식화한다. 이전의 경들에는 두 가지 허물(二失)이 있다. 첫째, 행포를 남겼으므로 아직 권을 열지 못했고, 그 때문에 적문의 일념삼천을 감추었다. 둘째, 시성을 말했으므로 아직 적을 열지 못했고, 그 때문에 본문의 구원을 감추었다.

첫째 허물의 열쇠말인 「행포」는 본래 보살의 52위를 차례로 늘어놓는 것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차별 일반을 뜻한다. 니치칸 상인은 「삼중비전초」에서 이렇게 풀이하셨다.

行布とは即ち是れ差別の異名なり。所謂昔の経経には十界の差別を存するが故に仍未だ九界の権を開せず。故に十界互具の義無し、故に迹門の一念三千を隠せりと云うなり

행포란 곧 차별의 다른 이름이니라. 이른바 옛 경경에는 십계의 차별을 남겼으므로 여전히 아직 구계의 권을 열지 못했느니라. 그러므로 십계호구의 뜻이 없고, 그러므로 적문의 일념삼천을 감추었다고 하는 것이니라.

니치칸 상인, 「삼중비전초」

이전의 경은 이승은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여 이승계와 불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세웠다. 십계 가운데 어느 한 계라도 불계를 갖추지 못한다면 십계호구는 성립하지 않고, 십계호구가 없으면 일념삼천도 없다. 제7장에서 대성인이 「일념삼천은 십계호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신 것이 이 논리의 바탕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차별은 단지 이승을 낮게 본 것이 아니라, 일념삼천 전체를 가린 것이다.

둘째 허물의 「시성」은 제18 · 19장에서 본 대로 부처가 이번 생에 처음 성도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부처가 시성의 부처라면 부처의 생명에는 시작이 있고, 그 이전에는 부처가 없었다. 이런 부처관 아래서는 부처의 생명이 본래부터 상주한다는 본문의 구원이 드러날 수 없다.

대성인은 이 두 가지, 곧 적문의 일념삼천(이승작불이 그 표현)과 본문의 구원을 「일대의 강골이요 일체경의 심수」라 하신다. 제11장에서 「이승작불 · 구원실성」을 전 40여 년과 후 8년을 가르는 두 대사로 내거신 것이 여기서 일념삼천과 구원이라는 법의 차원으로 옮겨진 것이다.

첫째 허물行布を存するが故に仍お未だ権を開せず행포를 남기므로 아직 권을 열지 못했다감춘 것迹門の一念三千적문의 일념삼천법화경 적문(방편품 · 이승작불)에서 벗어남
둘째 허물始成を言うが故に尚未だ迹を発せず시성을 말하므로 아직 적을 열지 못했다감춘 것本門の久遠본문의 구원법화경 본문(수량품 · 구원실성)에서 벗어남
맺음此等の二つの大法は一代の綱骨・一切経の心髄なり이 두 가지 대법은 일대의 강골이요 일체경의 심수이니라
도표 4 · 이전의 두 가지 허물

「하산어소식」의 강의는, 대성인이 「관심의 본존초」에서 이전의 경을 「모두 겸대(兼帶)이기 때문에 구원을 덮어 감춘다」고 하신 대목을 니치칸 상인이 「관심본존초 문단」에서 바로 이 두 허물로 풀었다고 소개한다. 두 허물은 「개목초」 한 곳의 표현이 아니라 대성인 교판의 기본 틀로 쓰였다는 뜻이다.

적문은 한 허물만 벗었다 — 물속의 달, 뿌리 없는 풀

법화경 적문의 방편품은 십여시를 통해 일념삼천을 설하고 이승작불을 밝혀, 두 허물 가운데 첫째인 행포의 허물을 벗었다. 그러나 둘째인 시성의 허물은 그대로 남았다. 제19장에서 본 대로 방편품의 석존은 여전히 「내가 처음 도량에 앉아」라고 말하는 부처다. 대성인은 이 한계를 이렇게 판정하신다. 아직 발적현본하지 않았으므로 참된 일념삼천도 나타나지 않고, 이승작불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 판정은 미묘하다. 적문에 일념삼천과 이승작불이 「없다」고 하지 않으신다. 적문은 분명히 일념삼천의 출처인 십여시를 설했고, 사리불 등 성문에게 수기를 주었다. 그러나 그 일념삼천은 「참된(まことの)」 일념삼천이 아니고, 그 이승작불은 「정해지지 않았다」. 대성인은 이 상태를 두 가지 비유로 그리신다. 적문의 일념삼천은 물속의 달을 보는 것과 같고, 적문의 이승작불은 뿌리 없는 풀이 물결 위에 떠 있는 것과 같다.

강의의 현대어역은 두 비유를 이렇게 풀어 준다. 물속의 달은 모양은 달 그대로이지만 달 자체는 아니다. 적문의 일념삼천은 이치(理)의 위에서 설해졌을 뿐이어서, 그 모양은 일념삼천이지만 생명의 실체를 드러내지 못했다. 뿌리 없는 풀은 물결 위에 떠서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다. 적문에서 이승이 성불한다고는 했지만, 불계와 구계의 본체가 설해지지 않았으므로 지금 성불한다는 것만 있을 뿐 그 원인도 과거세의 하종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신 것이다.

니치칸 상인의 해석 — 「본무금유」와 「유명무실」

강의는 이 대목을 니치칸 상인의 「개목초 문단」에 따라 더 정밀하게 분석한다. 니치칸 상인은 적문의 일념삼천과 이승작불에 각각 두 가지 허물이 있다고 하셨다. 하나는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다」는 본무금유(本無今有)의 허물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다」는 유명무실(有名無實)의 허물이다.

적문의 일념삼천본무금유아직 발적하지 않아 적을 드리운 채이므로 「지금 있음(今有)」, 아직 현본하지 않아 본지의 하종이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본래 없음(本無)」유명무실일념삼천의 이름은 들었으나 그 뜻(義)은 본문에 한정됨비유水中の月を見るがごとし물속의 달을 보는 것과 같다
적문의 이승작불본무금유구원의 하종을 밝히지 않았으므로 「본래 없음」, 지금 작불을 설하므로 「지금 있음」유명무실성불은 삼혹을 끊는 것인데 적문의 이승은 견사혹조차 끊지 못함비유根なし草の波の上に浮べるににたり뿌리 없는 풀이 물결 위에 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도표 5 · 적문의 두 허물 — 본무금유와 유명무실

적문 일념삼천의 본무금유. 적문은 아직 발적하지 않았다. 곧 석존이 시성정각이라는 자취를 드리운 채이므로 「지금 있음」이다. 또 아직 현본하지 않았다. 곧 부처의 본지와 하종이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본래 없음」이다. 불계가 이미 본무금유라면, 불계를 갖춘다는 구계도 마찬가지로 본무금유다. 강의는 이 해석의 근거로 「십법계사」를 든다.

迹門には但是れ始覚の十界互具を説きて未だ必ず本覚本有の十界互具を明さず故に所化の大衆能化の円仏皆是れ悉く始覚なり若し爾らば本無今有の失何ぞ免るることを得んや

적문에는 다만 시각(始覺)의 십계호구를 설하고 아직 반드시 본각본유의 십계호구를 밝히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교화받는 대중도 교화하는 원교의 부처도 모두 다 시각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본무금유의 허물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

「십법계사」, 421쪽

「시각」은 수행을 통해 비로소 깨닫는 것, 「본각본유」는 본래부터 깨달아 있음이다. 적문의 십계호구는 부처가 이번 생에 비로소 깨달아 얻은 십계호구이므로, 교화하는 부처도 교화받는 대중도 시작이 있는 존재다. 시작이 있는 십계호구는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생긴 것이니 본무금유를 면할 수 없다. 「십법계사」는 같은 대목에서 이어, 그러므로 적문은 무시의 본불을 알지 못하고 무시무종의 뜻과 무시의 색심상주의 뜻이 빠져 있다고 하신다.

적문 일념삼천의 유명무실. 적문은 일념삼천의 이름을 내걸었지만 그 뜻(義)은 갖추지 못했다. 강의는 「십장초」를 든다.

一念三千の出処は略開三の十如実相なれども義分は本門に限る・爾前は迹門の依義判文・迹門は本門の依義判文なり、但真実の依文判義は本門に限るべし

일념삼천의 출처는 약개삼의 십여실상이지만 그 뜻의 몫은 본문에 한정되느니라. 이전은 적문의 의의판문(依義判文)이요 적문은 본문의 의의판문이니라. 다만 참된 의문판의(依文判義)는 본문에 한정되느니라.

「십장초」, 1274쪽

일념삼천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문은 방편품의 십여시이지만, 그 말이 담아야 할 뜻 전체는 본문에서야 갖추어진다. 이전의 경을 적문의 뜻으로 읽고 적문을 본문의 뜻으로 읽을 수는 있어도, 경문 그대로 일념삼천의 뜻을 판정할 수 있는 곳은 본문뿐이다. 그러므로 적문은 구원실성을 설하지 않았고, 따라서 참된 일념삼천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이승작불이 「정해지지 않은」 까닭

니치칸 상인은 이어 적문의 이승작불에도 같은 두 허물이 있다고 하셨다.

이승작불의 본무금유. 성불이란 자기 생명에 심어진 종자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적문은 근원의 종자를 밝히지 않았다. 「관심의 본존초」는 석존 재세의 성불을 종 · 숙 · 탈로 이렇게 정리하신다.

久種を以て下種と為し大通前四味迹門を熟と為して本門に至つて等妙に登らしむ

구원의 종자를 하종으로 삼고, 대통지승불 때와 이전의 사미(四味) · 적문을 숙(熟)으로 삼아, 본문에 이르러 등각 · 묘각에 오르게 하느니라.

「관심의 본존초」, 249쪽

재세 중생의 성불은 구원에 심어진 종자에서 비롯된다. 적문은 그 구원의 하종을 밝히지 않았으므로 「본래 없음」이고, 그런데도 이승이 작불한다고 설했으므로 「지금 있음」이다. 강의는 수량품의 「본심을 잃었다(失本心)」를 『법화현의석첨』 권6이 「본래 받은 것을 잊었으므로 실심(失心)이라 한다」고 푼 것을 들어, 적문의 이승은 아직 본심으로 돌아가지 못한 상태라고 덧붙인다. 자기가 구원에 무엇을 받았는지를 잊은 자가 작불한다고 해도, 그 작불은 근거를 모르는 작불이다.

이승작불의 유명무실. 성불은 견사혹 · 진사혹 · 무명혹의 삼혹을 끊는 것이다. 그런데 적문의 이승은 아직 견사혹조차 끊지 못했으니 무명혹은 말할 것도 없다. 본원의 종자에 미혹해 있다는 것 자체가 견사혹이며, 무명혹에 빠져 있다는 증거다. 「십법계사」가 「그러므로 알라, 적문의 이승은 아직 견사를 끊지 못했고 적문의 보살은 아직 무명을 끊지 못했다」(421쪽)고 하신 것과 같은 판정이다. 이름은 작불이지만 실제로는 삼혹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유명무실이다.

이처럼 니치칸 상인의 분석에서 「물속의 달」은 참된 일념삼천이 나타나지 않음의 비유이고, 「뿌리 없는 풀」은 이승작불이 정해지지 않음의 비유다.

옛 노래로 읽는 두 비유

니치칸 상인은 이 두 비유를 풀면서 천태대사의 말과 일본의 옛 노래 몇 수를 끌어 오셨다. 강의는 이를 그대로 소개한다.

먼저 「물속의 달」이다. 천태대사는 『법화현의』 권7에서 「하늘의 달을 알지 못하고 다만 못의 달만 본다」고 했다. 니치칸 상인은 하늘의 달을 본문, 못의 달을 적문에 비기고, 「하늘의 달을 알지 못함」이 본무, 「다만 못의 달만 봄」이 금유라고 푸셨다. 이어 에신 승도(慧信僧都)의 노래를 드신다. 「손에 떠 올린 물에 깃든 달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세상에 머무는구나(手に結ぶ水に宿れる月影の、有るか無きかの世にも住むかな)」. 손바닥의 물에 비친 달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적문의 일념삼천이 그와 같다.

다음은 「뿌리 없는 풀」이다. 뿌리 없는 풀이란 부평초(浮萍草)다. 니치칸 상인은 오노노 고마치(小野小町)의 노래 두 수를 드신다. 첫째는 「쓸쓸하니 이 몸은 뿌리 끊긴 부평초, 이끄는 물이 있다면 따라가리라 생각하네(侘びぬれば身を萍の根を絶えて、誘う水有らんば往なんぞと思う)」. 이승작불이 부평초처럼 떠돌며 정해지지 않음의 비유다. 둘째는 「뿌리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씨앗 삼아 부평초는 물결의 이랑마다 돋아 무성한가(蒔かなくに何を種とて萍の、波の畝畝生い芿るらん)」. 니치칸 상인은 이 노래의 윗구 「뿌리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씨앗 삼아」가 본무이고, 아랫구 「물결의 이랑마다 돋아 무성한가」가 금유라고 하셨다. 씨앗을 뿌린 적이 없는데 풀이 무성하다는 노래가 구원의 하종을 밝히지 않은 채 작불을 설한 적문의 모습과 꼭 맞는다.

강의는 헤이안 시대 귀족 사회를 대표하는 미인 가인이었던 고마치의 사랑 노래로 적문의 두 허물을 드러낸 니치칸 상인의 해석이 참으로 흥미롭다고 덧붙인다. 교리의 정밀한 분석이 일본인의 몸에 밴 노래의 감각과 만나는 대목이다.

고요한 못가의 밤 — 하늘의 보름달 하나가 큰 질그릇 · 작은 사발 · 나무 물통과 못물에 저마다 작게 비치고, 못 위에 뿌리 없는 개구리밥이 떠 있는 금박 수묵화
그림 · 하늘의 달 하나가 크고 작은 그릇과 연못의 물에 저마다 그림자를 띄운 밤 풍경, 물결 위에는 부평초가 떠 있다

「미(未)」 자는 본적일치의 증거인가 — 니치코(日講)의 『계몽』에 대한 반론

강의는 이 대목에 대해서도 예로부터 많은 그릇된 해석이 있었다고 하며, 대표로 니치코(日講)의 『계몽(啓蒙)』을 든다. 니치코는 불수불시파(不受不施派)에 속하며 교의로는 본적일치를 세운 학승이다.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논파를 따라 그의 주장 셋을 차례로 반박한다.

첫째 주장 — 「아직 발적현본하지 않았다」의 「미」 자

니치코는 「아직 발적현본하지 않았다(いまだ発迹顕本せざれば)」의 「아직(未)」이라는 글자가 오히려 본적일치의 증거라고 했다. 아직 현본하지 않았을 때는 본과 적이 갈라져 있지만, 이미 현본하고 나면 적이 곧 본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곧바로 반문이 나온다. 그렇다면 무량의경의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未顯眞實)」의 「미」 자는 권실일치의 증거인가. 이미 진실이 나타나고 나면 권이 곧 실이 되지 않는가. 니치코는 이 반문에 다시 답해, 그런 권실의 예를 드는 비난은 그릇된 생각의 극치라고 하면서, 만약 반드시 권실과 본적이 같은 예라면 대성인께서 왜 「내가 읽는 적문」이라 하시고 아미타경은 읽지 않으셨겠느냐고 했다. 곧 본적은 일치하지만 권실에는 차이가 있다고 강변한 것이다.

강의는 이 반론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권실 · 본적은 모두 법체(法體)에 맞추어 말하는 것으로, 시대가 달라도 그 법체에는 늘 정해진 승렬이 있다. 반면 독송은 수행에 맞추어 말하는 것이어서 때에 따르고 근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성인께서 방편품을 읽으신 것은 수행의 문제이지, 적문과 본문의 법체가 같다는 뜻이 아니다. 니치코는 법체와 수행이라는 이 기본 구분조차 혼동했다는 것이 강의의 비판이다.

둘째 주장 — 다보 · 분신의 증명이 있으니 적문의 이승작불은 정해져 있다

니치코는 이승작불에 대해서도 본적일치를 세웠다. 『계몽』은, 적문의 이승작불에는 다보불 · 분신불이 진실이라고 증명했으므로 아직 발적현본하지 않았어도 참된 일념삼천이 나타났고 이승작불도 정해졌다고 하면서, 「개목초」가 참된 일념삼천이 나타나지 않고 이승작불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 것은 구성(久成)으로 시성을 빼앗은 것일 뿐이며, 그 원의는 때 지난 천태의 적문을 깨뜨린 데 있다고 했다.

강의는 이를 대성인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큰 잘못이라 하고, 「소대(所對)에 따라 판정이 달라진다」는 원리로 답한다. 적문에서 다보 · 분신이 진실이라고 증명한 것은 권실상대 위에서 적문이 진실임을 세운 것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제17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の法門は迹門と爾前と相対して爾前の強きやうに・をぼゆ

이 법문은 적문과 이전을 상대하여 이전이 강한 것처럼 생각되느니라.

「개목초 상」, 195쪽

반면 「참된 일념삼천도 나타나지 않고 이승작불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본적상대하여 적문을 깨뜨리신 말씀이다. 같은 법문이라도 무엇과 상대하느냐에 따라 판정이 달라진다. 내외상대의 자리에서 대성인은 석존 일대의 가르침 전체를 이렇게까지 높이셨다.

此の仏陀は三十成道より八十御入滅にいたるまで五十年が間・一代の聖教を説き給へり、一字一句・皆真言なり一文一偈・妄語にあらず

이 부처는 서른의 성도부터 여든의 입멸까지 50년 동안 일대의 성교를 설하셨느니라. 한 글자 한 구절이 모두 참된 말이요, 한 문 한 게송도 망어가 아니니라.

「개목초 상」, 188쪽

외전 · 외도에 대하면 이전의 경조차 「대인의 실어」가 된다. 그렇다면 이전에 대하여 적문을 진실이라 하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본문에 대해서도 적문이 진실이라는 뜻은 아니다. 니치코는 이 소대의 차이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1. 내외상대一字一句・皆真言なり한 글자 한 구절이 모두 참된 말이니라 (188쪽)외도에 대하면 이전도 진실
  2. 권실상대다보 · 분신의皆是真実모두 진실이니라이전에 대하면 적문이 진실此の法門は迹門と爾前と相対して이 법문은 적문과 이전을 상대하여 (195쪽)
  3. 본적상대まことの一念三千もあらはれず二乗作仏も定まらず참된 일념삼천도 나타나지 않고 이승작불도 정해지지 않았다 (197쪽)본문에 대하면 적문은 진실이 아님
도표 6 · 소대에 따라 달라지는 판정

셋째 주장 — 본화보살의 지견으로는 원래 일치한다

『계몽』은 또 본적상대를 회통하여, 본화(本化)의 보살의 지견으로 보면 원래 일치의 묘법이며, 여러 어서에 본적의 구분을 밝힌 것은 듣는 이의 마음이 옮겨 감(機情移轉)에 맞춘 일왕(一往)의 뜻이고 재왕(再往)은 본적일치라고 했다. 니치칸 상인은 이를 네 가지 뜻으로 깨뜨리셨다.

  1. 석가불 재세의 제자들은 가까운 것과 먼 것(시성과 구원)에 미혹했지만, 본화의 보살은 본문과 적문을 모두 분명히 알고 계셨다. 이는 묘락대사의 해석에 분명하다. 본화보살의 지견이 본적을 분명히 가른다는 것이지, 본적을 하나로 섞는다는 것이 아니다.
  2. 대성인은 일대 제경의 천심 · 승렬을 오로지 법화경의 분명한 경문으로 판정하셨다. 그런데 어찌 본적상대를 듣는 이의 마음이 나아감(機情昇進)에 맞춘 것이라 하는가.
  3. 대성인께서는, 일본국의 사람들이 여러 가르침도 일불승으로 개회하면 어느 법이든 모두 법화경이어서 천심 · 승렬이 없다고 하는 데 대해, 불법을 수행하는 사람은 우러러 부처의 금언을 지켜야 하며 무량의경에 「40여 년에는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했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권실상대에서조차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본적상대에서도 대성인의 정의는 분명하다. 수량품의 「여래의 성제(誠諦)의 말」, 「소법(小法)을 좋아하는」,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등은 모두 이전과 적문을 깨뜨리는 문이다. 그런데 어찌 니치코는 이를 기정의 옮겨 감이라 하는가.
  4. 설령 개회한 적문이라 해도 여전히 체내(體內)의 본문에는 미치지 못한다. 「십장초」는 「설사 개회를 깨달은 염불이라 해도 여전히 체내의 권이며 체내의 실에는 미치지 못한다」(1275쪽)고 하셨다. 또 「십법계사」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本門顕れ已りぬれば迹門の仏因は即ち本門の仏果なるが故に天月水月本有の法と成りて本迹倶に三世常住と顕るるなり

본문이 나타나고 나면 적문의 불인(佛因)은 곧 본문의 불과(佛果)이므로, 하늘의 달과 물의 달이 본유의 법이 되어 본문과 적문이 함께 삼세상주로 나타나느니라.

「십법계사」, 423쪽

본문이 나타난 뒤에는 물의 달도 본유의 법이 되어 삼세상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삼세상주의 물의 달은 어디까지나 삼세상주의 하늘의 달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이 말씀의 뜻이다. 현본한 뒤라고 해서 본적이 일치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강의는 묻는다.

강의는 니치칸 상인을 따라, 적문의 일념삼천과 이승작불은 본무금유 · 유명무실의 두 허물을 면하지 못하므로 「물속의 달」, 「뿌리 없는 풀」이라고 본다. 권실 · 본적의 승렬은 법체의 문제이고 독송은 수행의 문제이며, 같은 법문도 소대에 따라 판정이 달라진다. 개회한 뒤에도 적문은 체내의 본문에 미치지 못하므로 본적일치설은 성립하지 않는다.

사교의 인과를 깨뜨리다 — 본인본과의 법문

본문 후반은 수량품이 무엇을 깨뜨리고 무엇을 세웠는지를 인과의 틀로 설명한다. 강의에 따르면 수량품의 「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이 시성정각을 깨뜨리는 문이다. 시성정각이 깨뜨려지면 사교의 과, 곧 장 · 통 · 별 · 원 네 가르침이 설해 온 부처가 모두 깨뜨려진다. 강의의 현대어역이 풀이하듯, 그 부처들이 아무리 장엄한 모습으로 설해졌어도 모두 인도에서 수행해 이번 생에 성불한 부처이기 때문이다. 과가 깨뜨려지면, 그 과에 이르기 위한 수행인 인도 함께 깨뜨려진다.

여기서 「십계의 인과」란 십계 각각이 저마다 갖추는 인과가 아니라, 구계를 인으로 하고 불계를 과로 하는 인과를 말한다. 이전 · 적문은 구계에서 수행하여(인) 불계에 이른다(과)는 일방향의 인과를 설했다. 강의는 장교 · 통교도 의보(依報)로는 육계만 밝히지만 정보(正報)로는 십계를 밝히고 있으며, 수량품은 별교 · 원교까지 포함한 사교의 인과를 모두 깨뜨렸다고 덧붙인다.

깨뜨림
  1. ①然るに善男子・我実に成仏してより已来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수량품 → 시성정각을 깨뜨림
  2. ②四教の果をやぶる사교의 과를 깨뜨림장 · 통 · 별 · 원의 이번 생 성도의 부처
  3. ③四教の因やぶれぬ사교의 인도 깨뜨려짐그 부처에 이르는 수행
  4. ④爾前迹門の十界の因果を打ちやぶつて本門の十界の因果をとき顕す이전 · 적문의 십계 인과를 쳐부수고 본문의 십계 인과를 설해 나타냄
세움
  1. ⑤此即ち本因本果の法門なり이것이 곧 본인본과의 법문이니라본과我実成仏已来無量無辺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무량무변…본인我本行菩薩道所成寿命今猶未尽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 이룬 수명은 지금도 아직 다하지 않았다
  2. ⑥九界も無始の仏界に具し仏界も無始の九界に備りて구계도 무시의 불계에 갖추어지고 불계도 무시의 구계에 갖추어져→ 참된 십계호구 · 백계천여 · 일념삼천
도표 7 · 사교의 인과를 깨뜨리고 본인본과를 세우다

그 자리에 본문이 세운 것이 「본문의 십계의 인과」, 곧 본인본과의 법문이다. 수량품은 본과의 상주를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무량무변…」이라 설하고, 본인의 상주를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 이룬 수명은 지금도 아직 다하지 않았다(我本行菩薩道 所成壽命 今猶未盡)」고 설했다. 구원에 성불한 부처의 과가 상주할 뿐 아니라, 그 부처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던 인, 곧 구계의 생명도 지금껏 다하지 않고 상주한다. 강의는 이것이 본유상주의 십계호구이며 참된 사(事)의 일념삼천이라고 한다.

이로써 대성인의 결론이 나온다. 구계도 무시의 불계에 갖추어지고, 불계도 무시의 구계에 갖추어진다. 강의의 현대어역을 빌리면, 지옥이나 보살 등의 구계도 무시상주의 불계에 갖추어져 있고, 불계도 다른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 무시상주의 구계에 갖추어져 있다. 「무시(無始)」라는 두 글자가 열쇠다. 적문의 십계호구는 부처가 이번 생에 성불하여 비로소 이룬 시각의 호구였으므로 본무금유를 면하지 못했다. 본문의 십계호구는 시작이 없는 불계와 시작이 없는 구계가 서로를 갖춘 호구이므로, 본래부터 있고 지금도 있는 호구다. 이것이 「참된 십계호구 · 백계천여 · 일념삼천」이다.

문저에서 보면 — 문상의 본문도 이의 일념삼천

강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수량품이 밝힌 본유상주의 십계호구는 참된 사의 일념삼천이다. 그러나 문저하종 · 직달정관(直達正觀)의 사행(事行)의 일념삼천에 대할 때는, 문상의 법화경은 적문과 본문을 막론하고 모두 이(理)의 일념삼천이 된다. 이 본문의 원의는 실로 여기에 있으며, 자세한 것은 「삼중비전」 · 종탈상대의 자리에서 논하는 바와 같다는 것이 강의의 말이다.

이 지적은 이 편 전체를 읽는 열쇠다. 제7장에서 대성인은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의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고 하셨다.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의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

「개목초 상」, 189쪽

「문 밑(文の底)」이라는 말은 수량품의 문상 그대로가 아니라 그 밑바닥에 일념삼천이 잠겨 있다는 뜻이다. 니치칸 상인은 「삼중비전초」에서 이 한 문을 권실상대 · 본적상대 · 종탈상대의 세 겹으로 풀어, 「다만 법화경」은 권실, 「본문 수량품」은 본적, 「문 밑에 잠겨 있다」는 종탈의 상대라 하셨다. 제20장은 이 셋 가운데 둘째 겹을 경문으로 펼친 장이고, 그 너머에 셋째 겹이 있음을 강의는 놓치지 않는다. 『어의구전』이 「무작의 삼신이란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이니라」(752쪽)라 하고 「아실성불이래」의 「백천」을 백계천여로 읽어 사의 일념삼천이라 하신 것도 이 셋째 겹의 읽기다.

하늘의 달과 물속의 달 — 권불은 수량불의 그림자

장의 마지막 대목에서 대성인은 다시 「달」의 비유로 돌아오신다. 이번에는 적문의 일념삼천이 아니라 이전 · 적문에서 설해진 모든 부처가 물에 비친 달이다. 화엄경의 연화대 중앙과 시방의 부처, 아함경의 장육 석가, 방등 · 반야, 금광명경, 아미타경, 대일경 등에 설해진 권불들은 모두 수량품의 부처라는 하늘의 달이 잠시 크고 작은 그릇의 물에 그림자를 띄운 것이다. 그릇의 크고 작음은 근기의 차이이고, 그림자의 크고 작음은 각 경이 설한 부처의 차이다. 그러나 비친 달은 모두 같은 하늘의 달이다.

그런데 여러 종의 학자들은 가까이는 자기 종의 개조나 선배의 말에 미혹하고, 멀리는 법화경 수량품을 알지 못하여, 물속의 달을 진짜 달로 여긴다. 어떤 이는 물에 들어가 달을 잡으려 하고, 어떤 이는 새끼줄을 매어 붙들어 두려 한다. 화엄종은 노사나불을, 정토종은 아미타불을, 진언종은 대일여래를 저마다 궁극의 부처로 세우지만, 그것은 모두 물에 비친 그림자를 붙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천태대사가 「하늘의 달을 알지 못하고 다만 못의 달만 본다」고 한 것은 이처럼 본불에 미혹하여 적불에 집착하는 이들을 가리킨 말이다.

이 비유는 하권의 제39 · 40장으로 이어진다. 거기서 대성인은 구원실성이 드러나면 「여러 부처가 모두 석존의 분신」이 되고, 화엄 · 방등 · 반야 · 대일경의 부처들이 모두 석존의 권속이 된다고 하신 뒤, 여러 종이 「본존에 미혹했다」고 판정하신다.

此の過去常顕るる時・諸仏皆釈尊の分身なり爾前・迹門の時は諸仏・釈尊に肩を並べて各修・各行の仏なり、かるがゆへに諸仏を本尊とする者・釈尊等を下す

이 과거상주가 나타날 때 여러 부처는 모두 석존의 분신이니라. 이전 · 적문 때에는 여러 부처가 석존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저마다 닦고 저마다 행한 부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러 부처를 본존으로 삼는 자는 석존 등을 낮추느니라.

「개목초 하」, 214쪽

제20장의 「하늘의 달」과 「물속의 달」은 이 판정을 미리 그려 보인 것이다. 하늘의 달을 아는 것이 「눈을 뜨는(開目)」 것이라면, 물속의 달을 붙드는 것은 눈을 감은 채 그림자를 쫓는 일이다.

此の寿量の仏の天月이 수량품의 부처라는 하늘의 달
華厳経の台上十方화엄경의 대상 시방
阿含経の小釈迦아함경의 작은 석가
方等般若방등 · 반야
金光明経금광명경
阿弥陀経아미타경
大日経대일경
둘레의 그릇 — 권불
水中の月に実の月の想いをなし물속의 달을 진짜 달로 생각함천태天月を識らず但池月を観ず하늘의 달을 알지 못하고 다만 못의 달만 본다
도표 8 · 하늘의 달과 그릇의 달
제21장 난신의 모습을 보이다
어서 198쪽 4~8행 · 第二十一章 難信の相を示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198쪽 4~8행
本文 · 어서 원문

日蓮案じて云く二乗作仏すら猶爾前づよにをぼゆ、 久遠実成は又にるべくも・なき爾前づりなり、 其の故は爾前・法華相対するに猶爾前こわき上・爾前のみならず迹門十四品も一向に爾前に同ず、 本門十四品も涌出・寿量の二品を除いては皆始成を存せり、 雙林最後の大般涅槃経・四十巻・其の外の法華・前後の諸大経に一字一句もなく法身の無始・無終はとけども応身・報身の顕本はとかれず、 いかんが広博の爾前・本迹・涅槃等の諸大乗経をばすてて但涌出・寿量の二品には付くべき。

풀이

니치렌이 생각하건대, 이승작불조차 여전히 이전 쪽이 강한 것처럼 여겨지느니라. 구원실성은 또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이전 쪽으로 기우느니라. 그 까닭은, 이전과 법화를 상대하면 여전히 이전이 강한 데다, 이전뿐 아니라 적문 14품도 오로지 이전과 같으며, 본문 14품도 용출 · 수량 두 품을 빼고는 모두 시성을 남기고 있느니라. 쌍림 최후의 대반열반경 40권과 그 밖의 법화 전후의 여러 대경에도 한 글자 한 구절도 없으니, 법신의 무시무종은 설하였으나 응신 · 보신의 현본은 설하지 않았느니라. 어찌 넓고 많은 이전 · 본적 · 열반 등의 여러 대승경을 버리고 다만 용출 · 수량 두 품에만 붙을 수 있겠는가.

어구 풀이

爾前づよ・爾前づり이전 쪽이 강함 · 이전 쪽으로 기욺
「づよ」는 「強(つよ)」, 「づり」는 「づより(強り)」의 줄임이다. 경문의 무게와 세간의 판단이 이전의 경 쪽으로 쏠려 있다는 뜻으로, 제17장 끝의 「이전이 강한 것처럼 생각된다(爾前の強きやうに・をぼゆ)」, 제23장 끝의 「여전히 이전 쪽으로 기운다고 생각된다(猶爾前づりにこそをぼうれ)」와 같은 표현이다.
迹門十四品・本門十四品적문 14품 · 본문 14품
법화경 28품을 천태대사가 둘로 나눈 것. 서품 제1부터 안락행품 제14까지가 적문, 종지용출품 제15부터 보현보살권발품 제28까지가 본문이다. 본문 14품 가운데서도 부처의 구원을 직접 밝힌 것은 용출품의 후반과 수량품, 그리고 이를 받는 분별공덕품의 전반이며, 이를 「일품이반(一品二半)」이라 한다.
雙林最後쌍림 최후
석존은 여든 살 2월 15일, 하루 낮 하룻밤 동안 법을 설하고 입멸했다고 한다. 이것이 열반경이며, 대고중은 대장장이 순타, 설처는 구시나가라성 밖 발제하 가의 사라쌍수 숲이었다. 이 설처를 따서 열반의 때를 「쌍림 최후」라 한다.
大般涅槃経대반열반경
석존의 입멸 모습과 그때 설한 가르침을 기록한 경으로 대승 · 소승에 여러 본이 있다. 대승으로는 북량의 담무참이 옮긴 40권(북본), 이를 유송의 혜관 · 혜엄 · 사영운이 다듬은 36권(남본), 동진의 법현이 옮긴 『대반니원경』 6권이 있고, 소승으로는 법현이 옮긴 『대반열반경』 3권 등이 있다. 대승 열반경은 불신의 상주와 열반의 사덕인 상 · 락 · 아 · 정을 설하고 「일체중생 실유불성」을 밝혀 선근을 끊은 일천제도 성불한다고 한다. 천태 교학은 법화경 뒤에 설한 이 경을 법화경의 이익에서 빠진 이들을 주워 모아 구하는 「군습교(捃拾敎)」라 하여 법화경을 보충하는 경으로 본다. 소승 열반경은 석존의 입멸부터 사리 분배까지의 행적을 기록한다.
法身・報身・応身법신 · 보신 · 응신
부처의 본질적인 세 측면인 삼신. ① 법신은 부처가 깨달은 진실 · 진리, ② 보신은 최고의 깨달음의 지혜를 비롯해 부처가 된 과보로 얻은 갖가지 뛰어난 특성, ③ 응신은 사람들을 고뇌에서 구하기 위해 각각에 맞추어 현실에 나타낸 모습, 곧 자비의 측면이다.
顕本현본
「본(本)을 나타냄」. 부처가 본지를 드러내는 것. 여기서는 응신 · 보신이 구원부터 상주해 왔음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대성인이 스스로 세운 반문

제21장은 「니치렌이 생각하건대(日蓮案じて云く)」로 시작한다. 제17장의 「니치렌이 말하되(日蓮云く)」, 제25장의 「이에 니치렌이 생각하건대(此に日蓮案じて云く)」와 같이, 대성인이 경론의 인용에서 물러나 자신의 판단을 직접 말씀하시는 자리다. 강의는 이 장을 본적상대 가운데 셋째 단락, 곧 「난신의 모습」을 보이는 장으로 자리매김한다. 제18 · 19장이 본문에 구원실성이 설해졌음을 보이고 제20장이 그 법문의 의의를 밝혔다면, 제21장은 바로 그 법문이 믿기 어렵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대성인의 논리는 단계적이다. 이승작불조차 경문의 무게로 보면 이전 쪽이 강하다. 제2편에서 보았듯 이전의 경들은 수십 년에 걸쳐 많은 경에서 이승불성불을 거듭 설했고, 법화경은 겨우 8년 동안 그것을 뒤집었다. 하물며 구원실성은 이전 쪽으로 기우는 정도가 이승작불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 까닭을 대성인은 네 겹으로 드신다.

  1. 이전과 법화를 상대하면 이미 이전 쪽이 강하다. 설한 기간도 길고 경의 수도 많다.
  2. 시성정각에 관해서는 이전뿐 아니라 적문 14품도 오로지 이전과 같다.
  3. 본문 14품조차 용출 · 수량 두 품을 빼면 모두 시성의 입장을 남기고 있다.
  4. 석존이 입멸 직전에 설한 열반경 40권을 비롯해 법화경 전후의 여러 대승경에도 한 글자 한 구절도 없으니, 법신의 무시무종은 설해도 응신 · 보신의 현본은 설하지 않았다.

이렇게 쌓아 올린 뒤 대성인은 반문의 형식으로 맺으신다. 그 넓고 많은 이전 · 법화의 본적 · 열반의 대승경을 다 버리고, 어찌 용출 · 수량 단 두 품에만 의지할 수 있겠는가.

  1. 이전의 여러 경(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 대일 등)시성정각
  2. 법화경 적문 14품一向に爾前に同ず오로지 이전과 같음
  3. 법화경 본문 14품 가운데 용출 · 수량 이외皆始成を存せり모두 시성을 남김
  4. 열반경 40권과 법화 전후의 대경法身の無始・無終はとけども応身・報身の顕本はとかれず법신의 무시무종은 설하였으나 응신 · 보신의 현본은 설하지 않음
  5. 용출품 · 수량품 두 품법 · 보 · 응 삼신의 상주를 설함

강의: 법신만의 무시무종은 「일왕 가설적」인 관념에 머물고, 삼신의 상주가 생명의 실상이며 「무시무종의 생명관」

도표 9 · 구원실성을 설한 곳과 설하지 않은 곳

이 반문은 대성인 자신의 의심이 아니다. 경문의 양으로 진실을 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대성인이 미리 대변하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 곧 진실의 법이 경문 전체 가운데 단 두 품에만 있고 나머지는 모두 반대쪽을 가리킨다는 점이 본문의 「난신」이다. 제2편의 이승작불이 「일불이언(一佛二言)」의 난신이었다면, 이 편의 구원실성은 그보다 훨씬 깊은 난신이다.

「일품이반」 — 진실이 놓인 좁은 자리

대성인이 「용출 · 수량 두 품」이라 하신 것은 천태 교학의 「일품이반」과 같은 범위를 가리킨다. 용출품 후반의 약개근현원, 수량품 전체의 광개근현원, 분별공덕품 전반의 미륵 게송까지가 본문의 정종분이다. 「관심의 본존초」는 이 좁은 범위를 기준으로 일대의 경을 판정하신다.

一品二半よりの外は小乗教邪教未得道教覆相教と名く

일품이반 밖의 것은 소승교 · 사교 · 미득도교 · 복상교라 이름하느니라.

「관심의 본존초」, 249쪽

같은 대목에서 대성인은 「이전 · 적문의 원교조차 불인(佛因)이 아니다」라고까지 하신다. 경전 전체의 양으로 보면 일품이반은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한 줌만이 부처의 본지를 밝혔으므로 나머지는 모두 그 서분이 된다. 제21장의 반문은 이 판정이 얼마나 「상식」을 거스르는 것인지를 보여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법신의 상주와 보신 · 응신의 현본

이 장의 교리적 핵심은 「법신의 무시무종은 설하였으나 응신 · 보신의 현본은 설하지 않았다」는 한 구절이다. 강의는 법 · 보 · 응 삼신의 현본은 수량품에 한정되며, 여러 대승경은 물론 법화경 적문조차 시성정각을 설했으므로 법화경 본문은 더욱 믿기 어렵다고 이 장의 뜻을 정리한다.

열반경을 비롯한 대승경이 「불신상주」를 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상주는 법신, 곧 부처가 깨달은 진리의 상주였다. 진리는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은 대승의 여러 경이 공통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 진리를 깨달은 지혜인 보신과, 그 지혜를 중생 앞에 나타낸 몸인 응신은 여전히 이번 생에 성도하고 여든에 입멸하는 시작과 끝이 있는 존재로 설해졌다. 수량품만이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무량무변…」이라 하여 보신의 상주를,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설법 교화한다」는 취지로 응신의 상주를 밝혔다. 법신만의 상주가 아니라 삼신이 함께 상주한다는 것, 이것이 수량품이 다른 모든 경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강의는 법신의 무시무종이 일왕(一往) 가설적인 것이라고 본다. 아직 생명의 실상을 다 설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우주가 상주한다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는 일이지만, 그 우주에 부처가 현상으로서 상주한다는 것은 관념에 머문다. 용출 · 수량을 뺀 다른 경문들은 모두 이 두 품이 법 · 보 · 응 삼신의 상주를 설하기 위한 전제였을 뿐, 아직 진실을 설한 것이 아니다.

강의는 이 삼신상주를 철학적으로 풀면 다음과 같다고 하면서도, 이것은 좀처럼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먼저 밝힌다. 믿을 수 없다고 해서 거짓이라 할 수 없고, 모른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참된 불교가 설하는 삼신상주는 생명의 실상이며, 이것이야말로 우리 생명의 참된 모습이다. 그리고 강의는, 이 경애를 여기서 설명하더라도 독자가 그것을 스스로 증득하려면 니치렌 대성인이 세우신 삼대비법의 불법에 귀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덧붙여 둔다고 말한다.

강의의 생명론 — 변화하면서 이어지는 하나의 생명

제21장 강의의 대부분은 삼신상주를 현대인의 말로 풀어내려는 생명론이다. 강의는 결론부터 제시한다. 우리가 지금 지닌 육체가 어린아이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어떤 경향을 따라 변화하듯, 우리의 오늘의 육체와 정신이 영원히 변화하면서 실재하는 것, 그것이 법 · 보 · 응 삼신의 상주이며 무시무종의 생명관이다. 강의는 이 결론을 세 단계로 논증한다.

첫째 — 육체의 변화와 일관된 경향

강의는 먼저 육체의 변화를 관찰한다. 우리는 한순간 한순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변화하면서 운명의 길을 걷는다. 정신과 운명의 문제는 잠시 두고 육체만 보면, 세포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생겨나고 스러지며, 강의가 인용하는 당시의 생리학 통설에 따르면 7년이면 눈동자의 심부터 뼛골의 세포까지 모두 새것으로 바뀐다.

이 변화는 정신이나 운명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의 작용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에는 하나로 꿰뚫는 경향이 보인다. 만약 변화를 일으키는 근본 원동력에 정해진 경향과 본질이 없다면, 7년 사이에 긴 손가락이 짧아지거나 눈이 작아지거나 낮은 코가 높아지는 일이 생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갓난아이 때를 기준으로 한 세포의 늘고 줆에 지나지 않는다.

강의가 쓰인 당시에는 「몸의 세포가 7년이면 모두 바뀐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었다. 오늘날의 생물학에서는 조직마다 세포가 바뀌는 속도가 크게 다르고, 뇌의 신경세포처럼 대부분 평생 유지되는 세포도 있다고 본다. 강의의 논지는 세포 교체의 정확한 햇수가 아니라, 몸을 이루는 물질이 끊임없이 바뀌는데도 한 사람의 생명이 일관된 경향을 지니고 이어진다는 데 있다.

둘째 — 책임의 연속과 심육불이

강의는 다음으로 책임의 문제를 든다. 서른 살에 어떤 일을 저질렀다면, 그 책임은 법률에 걸리든 걸리지 않든 마흔이 되어도 쉰이 되어도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육체론으로만 말하면 서른일곱이 되면 전혀 다른 육체가 되어 있으니 7년 전의 책임을 질 필요가 없어야 한다. 잊었다는 것 이전에, 아예 관계가 끊어져야 마땅하다. 뇌의 세포까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책임은 전혀 다른 것이 된 육체가 지고, 또 스스로 그 책임을 느낀다.

강의는 이것이 생명의 연속이 육체와 정신 활동을 함께 그 연속에 관련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생명이란 마음과 몸이 둘이 아닌(心肉不二) 것으로, 육체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면서 육체와 정신에 끊임없이 작용을 미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육체와 정신과 운명에 뚜렷하게 배어 나오는 것, 그것이 생명이다.

셋째 — 삼세에 걸친 생명

생명이 영원하다면 이 세상에서 죽은 뒤 다음 세상에서도 생명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 강의는 다른 종교들이 다음 세상의 생명 활동을 서방 정토나 천상계 같은 가공의 세계관을 만들어 거기서 산다고 하는 데 대해, 그것은 법신론의 생명관이지 사실의 생명관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다음 세상에 태어나는 곳은 우리가 오늘 사는 것과 같은 사바세계다. 이 지적은 제18장에서 본 「사바즉상주정토」의 국토관과 이어진다. 이전의 경이 시방의 다른 국토를 정토라 하고 이 사바를 예토라 한 것처럼, 법신만 상주하고 보 · 응이 상주하지 않는 생명관은 생명의 다음 자리를 이 국토 밖에서 찾는다.

그렇다면 세간에서 말하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인가. 강의는 사실은 아주 비슷하지만, 다시 태어난다고 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도 생각될 수 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같은 사람이냐 하면 같은 사람도 아니다. 일곱 살의 A와 마흔 살의 A는 물질의 구성도 정신 활동도 운명도 전혀 다르면서, 같은 A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금세의 A와 내세의 A는 생명의 연속에서는 같은 생명의 연속이지만, 육체도 정신도 운명도 금세의 그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일곱 살의 A가 마흔 살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연속하면서 육체도 정신도 운명도 변화의 연속을 이루었듯, 금세의 생명이 내세의 생명으로 이를 때에도 금세의 육체 · 정신 · 운명이 내세로 변화의 연속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화장한 몸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 「공」의 상태

여기서 강의는 큰 의문 하나를 스스로 제기한다. 죽어서 불에 태워 가루가 되어 사라진 육체가 죽은 뒤에도 그 육체의 연속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강의는 앞에서 말한 것, 곧 육체든 정신이든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생명의 반영이라는 점을 다시 떠올려 달라고 하면서, 먼저 생명이 어떤 상태로 내세에 이어지는지를 설명한다. 우리가 죽으면 육체를 어떻게 처리하든 우리의 생명은 대우주의 생명으로 녹아든다. 우주는 하나의 위대한 생명체다. 대우주의 생명체로 녹아든 우리의 생명은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다. 대우주의 생명 그 자체다. 이것을 「공(空)」이라 한다.

강의는 「공」을, 존재한다고 하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존재로 나타나는 실체라고 정의한다. 「있다」와 「없다」라는 두 개념 바깥의 개념이다. 강의의 비유는 이렇다. 누가 「당신은 화내는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면 「그 성품을 지금 보여 주십시오」라고 할 때 보여 줄 수가 없으니 「없다」와 같다. 「없습니다」라고 답해도 연을 만나면 화내는 성품이 나타난다. 이런 상태의 존재를 「공」이라 한다. 죽은 뒤의 생명도 이 「공」이라는 상태로 존재하며, 연을 만나 50년, 100년, 또는 1년 뒤에 다시 이 사바세계에 앞의 생명의 연속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태어난 육체는 과거의 생존과 과거의 죽음을 거쳐 이어져 온 생명을 바탕으로 우주의 물질로 구성된다. 시간의 차이는 있어도 생명이 연속인 이상, 육체도 정신도 운명도 과거세 생존의 연속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강의는 이를 바둑에 비유한다. 두 사람이 하루 종일 바둑을 두었으나 반판밖에 두지 못해, 내일 마저 두기로 하고 바둑돌을 모두 거두어 통에 넣는다. 다음 날 두 사람이 다시 바둑판을 마주하면 어제 둔 데까지 흑백의 돌을 어제와 똑같이 놓고 그 뒤를 이어 둔다. 판 위의 돌은 한 번 모두 흩어졌지만 판국은 그대로 이어진다. 생명이 과거의 경향을 띠고 세상에 나타난다면, 그 경향에 맞추어 우주에서 물질을 모아 육체를 이루는 것이므로 과거세의 연속으로 볼 수밖에 없다.

  1. ①생육체 · 정신 · 운명이 한순간 한순간 변화하면서도 하나의 경향으로 이어짐(7세의 A와 40세의 A)
  2. ②사대우주의 생명으로 녹아듦, 「공」의 상태에서 업을 느끼며 변화(「화내는 성품」의 비유)
  3. ③생연을 만나 사바세계에 생명체로 나타남, 우주의 물질로 과거의 경향에 맞는 몸을 이룸(바둑판을 다시 놓는 비유)

「죽어서는 태어나고 태어나서는 죽으며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생명의 본질」

도표 10 · 강의의 생명론 — 변화하면서 이어지는 생명

강의는 이렇게 맺는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는 죽음이라는 조건으로 대우주의 생명에 녹아들고, 「공」의 상태에서 업을 느끼면서 변화하다가, 어떤 기연을 만나 생명체로 나타난다. 이처럼 죽어서는 태어나고 태어나서는 죽으며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생명의 본질이다.

난신의 법을 믿는다는 것 — 제21장의 자리

강의의 생명론을 장의 본문과 겹쳐 읽으면, 왜 이 대목이 「난신의 모습」 장에 놓였는지가 드러난다. 법신의 상주, 곧 진리가 영원하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보신과 응신, 곧 지혜를 지니고 몸을 가진 부처가 무시로부터 이 사바세계에 상주한다는 것, 그리고 그 부처의 생명과 같은 생명이 우리 각자에게서도 생사를 거듭하며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은 경험과 상식을 훨씬 넘어선다. 경문의 양으로도 이전 쪽이 강하고, 상식으로도 이전 쪽이 받아들이기 쉽다. 이중의 의미에서 「이전 쪽으로 기운다」.

그렇기에 대성인은 제17장에서 이미 「난신의 신을 권하신」 것이고, 이 장 이후 제22~24장에서 그 난신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보이신다. 강의가 생명론의 머리에서 「믿을 수 없다고 해서 거짓이라 할 수 없고, 모른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이 장이 독자에게 묻는 바를 그대로 옮긴 말이기도 하다.

강의는 법신의 무시무종만을 설한 여러 대승경과 달리, 용출 · 수량 두 품만이 법 · 보 · 응 삼신의 상주를 밝혔으며, 그것이 바로 믿기 어려운 까닭이라고 본다. 삼신상주는 관념이 아니라 생명의 실상이며, 지금의 육체와 정신이 생사를 거듭하며 변화하면서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무시무종의 생명관이다. 이 경애는 삼대비법의 불법에 귀의해야 증득된다.

제22장 법상종의 그릇된 해석을 들다
어서 198쪽 9행~199쪽 3행 · 第二十二章 法相宗の謬解を挙ぐ

본문

원문 대조어서 198쪽 9행 ~ 199쪽 3행
本文 · 어서 원문

されば法相宗と申す宗は西天の仏滅後・九百年に無著菩薩と申す大論師有しき、 夜は都率の内院にのぼり弥勒菩薩に対面して・一代聖教の不審をひらき・昼は阿輸舎国にして法相の法門を弘め給う、 彼の御弟子は世親・護法・難陀・戒賢等の大論師なり、 戒日大王・頭をかたぶけ五天幢を倒して此れに帰依す、 尸那国の玄奘三蔵・月氏にいたりて十七年印度百三十余の国国を見ききて諸宗をばふりすて此の宗を漢土にわたして太宗皇帝と申す賢王にさづけ給い昉・尚・光・基を弟子として大慈恩寺並に三百六十余箇国に弘め給い、 日本国には人王三十七代・孝徳天皇の御宇に道慈・道昭等ならいわたして山階寺にあがめ給へり、 三国第一の宗なるべし、 此の宗の云く始め華厳経より終り法華・涅槃経にいたるまで無性有情と決定性の二乗は永く仏になるべからず、 仏語に二言なし一度・永不成仏と定め給いぬる上は日月は地に落ち給うとも大地は反覆すとも永く変改有べからず、 されば法華経・涅槃経の中にも爾前の経経に嫌いし無性有情・決定性を正くついさして成仏すとは・とかれず、 まづ眼を閉じて案ぜよ法華経・涅槃経に決定性・無性有情・正く仏になるならば無著・世親ほどの大論師・玄奘・慈恩ほどの三蔵・人師これをみざるべしや此をのせざるべしやこれを信じて伝えざるべしや、 弥勒菩薩に問いたてまつらざるべしや、 汝は法華経の文に依るやうなれども天台・妙楽・伝教の僻見を信受して其の見をもつて経文をみるゆえに爾前に法華経は水火なりと見るなり、

풀이

그러므로 법상종이라는 종은, 서천에서 부처 멸후 9백 년에 무착보살이라는 대논사가 있었느니라. 밤에는 도솔천 내원에 올라 미륵보살을 대면하여 일대 성교의 의문을 풀고, 낮에는 아수사국에서 법상의 법문을 넓히셨느니라. 그 제자는 세친 · 호법 · 난타 · 계현 등의 대논사이니라. 계일대왕이 머리를 숙이고, 오천축의 사람들이 저마다 세운 깃발을 쓰러뜨리고 이에 귀의하였느니라. 지나국의 현장삼장은 월지에 가서 17년 동안 인도 130여 나라를 보고 듣고는 여러 종을 떨쳐 버리고 이 종을 한토에 건너오게 하여 태종 황제라는 현왕에게 전수하셨고, 신방 · 가상 · 보광 · 규기를 제자로 삼아 대자은사와 360여 개 나라에 넓히셨느니라. 일본국에는 인왕 37대 고토쿠 천황 때에 도지 · 도쇼 등이 배워 건너와 야마시나데라에서 받드셨느니라. 삼국 제일의 종이라 할 것이니라. 이 종이 말하되, 처음 화엄경부터 마지막 법화 · 열반경에 이르기까지 무성유정과 결정성의 이승은 영원히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 부처의 말에는 두 말이 없으니, 한번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정하신 이상에는 해와 달이 땅에 떨어지고 대지가 뒤집힐지라도 영원히 고쳐짐이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법화경 · 열반경 안에서도 이전의 경경에서 싫어한 무성유정 · 결정성을 바로 가리켜 성불한다고는 설하지 않았느니라. 먼저 눈을 감고 생각해 보라. 법화경 · 열반경에서 결정성 · 무성유정이 바로 부처가 된다면, 무착 · 세친만 한 대논사와 현장 · 자은만 한 삼장 · 인사가 이를 보지 못했겠는가, 이를 싣지 않았겠는가, 이를 믿고 전하지 않았겠는가. 미륵보살에게 여쭙지 않았겠는가. 그대는 법화경의 문에 의지하는 듯하지만 천태 · 묘락 · 전교의 치우친 견해를 믿고 받아 그 견해로 경문을 보기 때문에 이전과 법화경이 물과 불처럼 다르다고 보는 것이니라.

어구 풀이

無著菩薩무착보살
범어 아상가(Asaṅga)의 번역. 아승가로 음사하며 무장애라고도 옮긴다. 4세기 무렵 북인도 건타라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화지부(상좌부 계통의 한 부파)에서 출가했으나 공의 가르침에 마음을 두었고, 미륵에게 대승의 공관을 배운 뒤 대승으로 돌아와 유가 · 유식의 가르침을 넓혔다. 소승의 논사였던 아우 세친을 교화해 대승으로 이끈 이야기가 유명하다. 『섭대승론』 3권, 『금강반야론』 2권, 『현양성교론』 20권, 『순중론』 2권 등을 지었다.
都率도솔
육욕천의 넷째인 도솔천. 범어 투시타(Tuṣita)의 음사로 도솔 · 도사다라고도 쓰며 상족 · 묘족 · 지족 · 희족 · 희락 등으로 옮긴다. 즐거움이 가득하여 스스로 만족을 안다 하여 이 이름이 있다. 야마천 위에 있고 넓이는 사방 8만 유순이다. 내원과 외원으로 나뉘며, 내원의 도솔천궁에서는 석존보다 먼저 입멸한 미륵보살이 천인을 위해 설법한다고 한다. 외원은 천중이 욕락을 누리는 곳이다. 이 하늘의 수명은 인간의 4백 년을 하루 낮 하룻밤으로 하여 4천 세라 하며, 인간의 햇수로 환산하면 5억 7,600만 년에 해당한다.
弥勒菩薩미륵보살
여기서의 미륵에는 두 뜻이 있다. ① 미래불로 신앙되는 보살. 일생보처의 보살로 도솔천 내원에 살며 석존 멸후 56억 7천만 년 뒤에 부처로서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 중생을 구한다고 한다. ② 유가 · 유식의 학문을 바탕으로 하는 법상종의 개조 마이트레야(Maitreya). 3~4세기 또는 4~5세기 무렵의 사람으로 여겨진다. 무착이 도솔천에 올라 미륵보살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전승 때문에 이 논사 미륵은 미래불 미륵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世親・護法・難陀・戒賢세친 · 호법 · 난타 · 계현
유식의 대논사들. 세친(바수반두)은 무착의 아우로 『유식삼십송』을 지었다. 호법은 유식 십대논사의 한 사람으로 『유식삼십송』을 주석했으며, 뒤에 현장이 호법의 해석을 중심으로 다른 해석을 취사하여 유식의 교리와 수행의 계위를 세웠다. 난타도 유식 십대논사의 한 사람으로 전하는 6세기 인도의 학승이다. 계현(시라바드라)은 동인도 사마타타국 왕족 출신으로 날란다사에서 호법에게 출가했으며, 서른 살에 남인도에서 온 외도를 논파하여 국왕이 가람을 지어 맞았다고 한다. 현장이 찾아갔을 때 백 살이 넘은 날란다사의 대장로로서 현장에게 유가 · 유식을 전했다. 법상종은 계현을 미륵 · 무착 · 세친 · 호법을 잇는 제5조로 높인다.
戒日大王계일대왕
고대 북인도 바르다나 왕조의 하르샤 바르다나(Harṣa Vardhana). 희증(喜增)이라 옮기며, 즉위 후 이름을 실라디티야로 고쳤으니 그 한역이 계일왕이다. 재위(606~647) 중에 현장이 인도에 들어왔다. 굽타 왕조 말기에 갈라진 북인도를 통일하고 30년 동안 전란 없이 내치에 힘썼으며, 아육왕을 정치의 이상으로 삼았다. 스스로 시인으로서 불교 희곡 『나가난다(용의 환희)』 등을 지었다. 처음 소승을 믿다가 뒤에 대승을 받들어 많은 사탑을 세웠고, 해마다 승려들을 모아 경론을 논의하게 하고 5년마다 무차대회를 열었으며, 현장도 이 대회에 참가한 기록을 남겼다. 왕이 죽은 뒤 왕조의 세력은 급속히 기울어 북인도는 다시 분열했다.
五天幢を倒して오천이 깃발을 쓰러뜨리고
오천축, 곧 인도 전역의 학자들이 저마다 내건 자기 주장의 깃발을 내리고 귀의했다는 뜻이다.
太宗皇帝태종 황제
당의 제2대 황제 이세민(598~649, 재위 626~649). 수 말의 혼란 속에 아버지 이연과 함께 태원에서 군사를 일으켜 천하를 평정했고, 방현령 · 두여회 · 위징 등의 명신을 써서 「정관의 치」를 이루었다.
昉・尚・光・基방 · 상 · 광 · 기
신방 · 가상 · 보광 · 규기의 줄임으로 모두 현장의 제자다. 규기는 자은대사로 『법화현찬』 등을 지어 이름을 떨쳤으나, 전교대사는 도쿠이치에게 보낸 『수호국계장』에서 법상종의 그릇된 해석을 논파했다.
山階寺야마시나데라
나라에 있는 법상종 대본산 고후쿠지(興福寺)의 옛 이름. 669년 후지와라노 가마타리의 유지에 따라 부인 가가미노오키미가 야마시로국 야마시나에 세운 절에서 비롯되었고, 672년 아스카로 옮겨 우마야사카데라라 했으며, 710년 헤이조쿄 천도 때 가마타리의 아들 후히토가 지금 자리로 옮기고 이름을 고쳤다.
無性有情무성유정
법상종의 「오성각별(五性各別)」에서 나온 말. 법상종은 중생이 본래 지닌 성질을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에 따라 다섯으로 나누고 그 구분이 영원하다고 한다. ① 성문정성(아라한과를 얻기로 정해진 자), ② 연각정성(벽지불과를 얻기로 정해진 자), ③ 보살정성(불과를 얻기로 정해진 자), ④ 부정성(삼승 어느 쪽으로도 정해지지 않은 자), ⑤ 무성(삼승의 종자가 없어 영원히 생사의 고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 이 다섯째를 무성유정이라 한다. 「유정」은 중생을 뜻하는 현장의 신역어다.
決定性の二乗결정성의 이승
결정종성. 이전의 경에서 성문 · 연각의 이승은 육도로도, 보살 · 불계로도 절대 나아갈 수 없다고 한 그 이승을 가리킨다. 법상종은 이를 특히 강조하여 법화경과 정반대로 「일승은 방편, 삼승은 진실」이라 세우고, 제법실상을 설해 십계의 평등을 밝힌 법화경을 방편이라 했다.

왜 이 장이 「난신」의 증거가 되는가

강의는 「개목초」의 구성을 이렇게 정리한다. 제11장의 「이에 내가 우견으로(此に予愚見をもつて)」부터는 난신난해로써 법화의 진실을 드러내는 대목이고, 제22장부터는 그릇된 해석을 들어 난신을 맺는 대목이다. 그 첫째로 법상종의 그릇된 해석을 들어, 법화경은 믿기 어렵고 법상종은 삼국에 홍통되었으므로 마치 가장 뛰어난 가르침인 것처럼 착각하기 쉬운 사정을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 장의 서술 방식은 독특하다. 대성인은 법상종을 처음부터 비판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계보와 권위를 최대한 장엄하게 펼쳐 보이신다. 인도에서는 불멸 후 9백 년에 무착보살이 나와 밤에는 도솔천에 올라 미륵보살에게 의문을 묻고 낮에는 아수사국에서 법을 넓혔으며, 그 문하에 세친 · 호법 · 난타 · 계현 같은 대논사가 이어졌다. 북인도를 통일한 계일대왕이 머리를 숙였고, 인도 전역의 학자들이 깃발을 내렸다. 중국에서는 현장삼장이 17년 동안 130여 나라를 돌아본 끝에 다른 종을 모두 버리고 이 종만을 가져왔으며, 정관의 치를 이룬 태종 황제가 그것을 받았다. 신방 · 가상 · 보광 · 규기의 네 제자가 대자은사를 중심으로 360여 나라에 넓혔다. 일본에서는 고토쿠 천황 때 도지 · 도쇼가 전해 야마시나데라(고후쿠지)에서 받들었다. 대성인은 이를 「삼국 제일의 종이라 할 것」이라고까지 하신다.

이렇게 권위를 세운 뒤 법상종의 주장을 그들의 목소리로 옮기신다. 화엄경부터 법화 · 열반경까지 무성유정과 결정성의 이승은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 부처의 말에 두 말이 없으니, 한번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정한 이상 해와 달이 땅에 떨어지고 대지가 뒤집혀도 바뀔 수 없다. 그래서 법화경 · 열반경 안에서도 이전의 경이 싫어한 무성유정과 결정성을 바로 가리켜 성불한다고 설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법상종은 반문한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라. 법화경 · 열반경에서 그들이 정말 성불한다면 무착 · 세친 같은 대논사와 현장 · 자은 같은 삼장이 그것을 못 보았겠는가, 책에 싣지 않았겠는가, 믿고 전하지 않았겠는가, 미륵보살에게 직접 묻지 않았겠는가. 그대가 법화경의 문에 의지하는 것 같지만 실은 천태 · 묘락 · 전교의 치우친 견해로 경문을 읽기 때문에 이전과 법화가 물과 불처럼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이 반문이 무게를 가지는 것은, 앞의 계보가 모두 사실로서 장엄하기 때문이다. 법화경의 이승작불 · 구원실성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삼국의 대학장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 「난신」은 경문의 양만이 아니라 역사 속 권위의 무게로도 나타난다.

오성각별과 「일불이언」

법상종의 주장에서 눈여겨볼 것은 「부처의 말에 두 말이 없다(仏語に二言なし)」는 논리다. 이것은 제2편 제12장의 「일불이언」과 정확히 같은 문제를 반대쪽에서 본 것이다. 제12장에서 대성인은 같은 부처가 이전에서는 이승이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 하고 법화경에서는 성불한다 했으니, 두 말 가운데 어느 쪽이 진실이냐고 물으셨다. 대성인은 부처 스스로 「40여 년에는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직하게 방편을 버린다」고 하셨고 다보 · 분신이 증명했으므로 법화경이 진실이라고 판정하셨다. 법상종은 같은 「일불이언」의 상황에서 반대로 이전의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를 고칠 수 없는 부처의 말로 붙잡는다.

그래서 법상종은 오성각별을 세워, 중생에게는 날 때부터 정해진 다섯 종성이 있으며 그 가운데 성문정성 · 연각정성 · 무성유정은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구 풀이에서 보았듯 이 입장은 「일승은 방편, 삼승은 진실」이라는, 법화경과 정반대의 교판으로 이어진다. 제7장에서 대성인이 「법상과 삼론은 팔계를 세우고 십계를 알지 못하니 하물며 호구를 알겠는가」라고 하신 것도 이 점을 가리킨다.

法相と三論とは八界を立てて十界をしらず況や互具をしるべしや

법상과 삼론은 팔계를 세우고 십계를 알지 못하니, 하물며 호구를 알겠는가.

「개목초 상」, 189쪽

결정성의 이승과 무성유정에게 영원히 불계가 없다면 십계호구는 성립하지 않고, 십계호구가 없으면 일념삼천도 없다. 제20장의 첫째 허물, 곧 「행포를 남겨 적문의 일념삼천을 감춘」 허물을 가장 철저하게 교리로 굳힌 것이 법상종이다.

제9장에서 대성인은 법상종이 「오로지 천태종에 적대하는 종」이지만, 현장삼장 · 자은대사가 천태의 해석을 자세히 보면서 자기 종의 사견이 뒤집혔는지 「자기 종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그 마음은 천태에 귀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셨다(190쪽). 자은대사 규기는 『법화현찬』을 지었고, 일본에서는 전교대사가 법상종의 도쿠이치와 삼일권실 논쟁을 벌여 『수호국계장』 등으로 오성각별을 논파했다. 본문의 「천태 · 묘락 · 전교의 치우친 견해」는 법상종의 입장에서 천태 계통의 해석을 가리켜 한 말을 대성인이 그 입을 빌려 옮기신 것이다.

강의는 이 장을 그릇된 해석을 들어 난신을 맺는 대목의 첫째로 본다. 법상종은 삼국에 넓게 홍통되었기 때문에 마치 가장 뛰어난 가르침인 것처럼 보이기 쉽고, 그 때문에 법화경은 더욱 믿기 어려워진다.

제23장 화엄 · 진언의 그릇된 해석을 들다
어서 199쪽 3~11행 · 第二十三章 華厳・真言の謬解を挙ぐ

본문

원문 대조어서 199쪽 3~11행
本文 · 어서 원문

華厳宗の杜順・智儼・法蔵・澄観・真言宗の善無畏・金剛智・不空等は天台・伝教には・にるべくもなき高位の人なり、 其の上善無畏等は大日如来より糸みだれざる相承あり、 此等の権化の人いかでか悞りあるべき、 随つて華厳経には「或は釈迦・仏道を成じ已つて不可思議劫を経るを見る」等云云、 大日経には「我れは一切の本初なり」等云云、 何ぞ但久遠実成・寿量品に限らん、 譬へば井底の蝦が大海を見ず山左が洛中を・しらざるがごとし、 汝但寿量の一品を見て華厳・大日経等の諸経をしらざるか、 其の上月氏・尸那・新羅・百済等にも一同に二乗作仏・久遠実成は法華経に限るというか。 されば八箇年の経は四十余年の経経には相違せりというとも先判・後判の中には後判につくべしというとも猶爾前づりにこそをぼうれ、

풀이

화엄종의 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 진언종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등은 천태 · 전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니라. 더구나 선무외 등은 대일여래로부터 실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상승(相承)이 있느니라. 이러한 권화(權化)의 사람들에게 어찌 잘못이 있겠는가. 따라서 화엄경에는 「혹은 석가가 불도를 이루고 나서 불가사의한 겁을 지나는 것을 본다」 등이라 하였고, 대일경에는 「나는 일체의 본초이니라」 등이라 하였느니라. 어찌 구원실성이 다만 수량품에만 한정되겠는가. 비유하면 우물 바닥의 개구리가 큰 바다를 보지 못하고, 산골 사람이 도성 안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그대는 다만 수량품 한 품만 보고 화엄 · 대일경 등의 여러 경은 알지 못하는가. 더구나 월지 · 지나 · 신라 · 백제 등에서도 모두 한결같이 이승작불 · 구원실성은 법화경에 한정된다고 하더란 말인가. 그러므로 8년의 경이 40여 년의 경경과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먼저의 판(先判)과 뒤의 판(後判) 가운데서는 뒤의 판을 따라야 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전 쪽으로 기운다고 생각되느니라.

어구 풀이

杜順두순
(557~640) 중국 화엄종의 개조. 제심존자라고도 한다. 열여덟에 출가해 승진을 섬겼고, 당 태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화엄종을 넓혔다. 『화엄법계관문』 1권 등을 지었다.
智儼지엄
(602~668) 화엄종 제2조. 지상대사 · 운화존자라고도 한다. 열네 살에 두순을 따라 출가해 사분율과 열반경 등을 배웠으나 뒤에 화엄경 연구에 전념했다. 『화엄경수현기』 5권, 『화엄공목장』 4권 등을 지었다.
法蔵법장
(643~712) 화엄종 제3조. 화엄화상 · 현수대사 · 향상대사라는 이름이 있다. 지엄에게 화엄경을 배웠고 실차난타의 화엄경 신역에도 참여했다. 법화경에 의지한 천태대사에 맞서 화엄경을 근거로 하는 일대 교판인 오교십종판을 세웠다. 『화엄경탐현기』 · 『화엄오교장』 · 『화엄경전기』 등을 지었으며 측천무후의 귀의를 받았다.
澄観징관
(738~839) 화엄종 제4조. 청량대사. 열한 살에 출가해 남산율 · 삼론 등을 배우고, 묘락대사 담연에게 천태의 지관 등을 배웠다. 오대산 청량사에 머물며 화엄종을 넓혔다. 『화엄경소』 60권, 『화엄경수소연의초』 90권 등 저술이 많다.
善無畏선무외
(637~735) 범어 슈바카라싱하(Śubhakarasiṃha). 수파가라로 음사하며 선무외는 그 뜻 옮김이다. 중국 당대 진언종의 개조. 동인도 오다국의 왕자로 태어나 열세 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형의 시기를 받아 자리를 물려주고 출가했다. 마가다국 날란다사에서 달마국다에게 밀교를 배우고, 716년 중국에 와서 현종 황제에게 국사로 맞아들여졌다. 『대일경』 · 『소바호동자경』 · 『소실지갈라경』 등을 번역하고 『대일경소』를 엮어 중국에 처음 밀교를 전했다. 특히 『대일경소』에서 천태대사의 일념삼천의 뜻을 훔쳐 넣어 「이(理)는 같고 사(事)는 진언이 뛰어나다(理同事勝)」는 그릇된 뜻을 세웠다고 대성인은 비판하신다. 금강지 · 불공과 함께 「삼삼장」이라 불린다.
金剛智금강지
(671~741) 범어 바즈라보디(Vajrabodhi). 발일라보리로 음사한다. 인도의 왕족 또는 바라문 출신이라 한다. 열 살에 날란다사에서 출가해 적정지에게 배웠고, 서른한 살에 용수의 제자 용지에게 가서 7년 동안 밀교를 배웠다. 뒤에 당에 들어와 720년 낙양에 이르렀다. 제자로 불공 등이 있다.
不空불공
(705~774) 범어 아모가바즈라(Amoghavajra). 아목거발절라로 음사하며 뜻으로는 불공금강, 불공은 그 줄임이다. 당대 진언종 삼삼장의 한 사람으로 중국 밀교를 완성했다. 열다섯에 장안에 들어와 금강지를 따라 출가했고, 금강지가 죽은 뒤 남천축과 사자국(스리랑카)에 가서 밀장과 여러 경론을 얻어 다시 당으로 돌아왔다. 현종 황제의 깊은 귀의를 받았으며, 구마라집 · 현장 · 진제와 함께 중국 4대 역경가로 꼽히고 『금강정경』 등 많은 밀교 경전을 번역했다.
大日如来より糸みだれざる相承대일여래로부터 흐트러지지 않은 상승
진언종의 주장에 따르면, 대일여래가 색구경천 법계궁에서 대일경을, 금강궁에서 금강정경을 설했고, 이를 금강살타가 결집해 남천축의 철탑에 두었다. 불멸 후 7백 년 무렵 용맹(용수)이 그 철탑을 열어 금강살타에게서 경전을 받아 용지에게 전했고, 용지는 대일경을 선무외에게, 금강정경을 금강지에게 전했다. 이를 불공이 이어받아 혜과에게 전했고, 혜과가 홍법(구카이)에게 전했다고 한다.
権化권화
부처 · 보살이 중생을 이끌기 위해 임시로 사람의 모습을 나타낸 것. 여기서는 화엄 · 진언의 조사들을 부처 · 보살의 화신으로 높이는 그 종들의 주장을 대성인이 그대로 옮기신 말이다.
井底の蝦・山左우물 바닥의 개구리 · 산골 사람
좁은 견문에 갇혀 큰 세계를 모르는 사람의 비유.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모르고, 산골에 사는 사람은 도성 안을 모른다. 여기서는 화엄 · 진언 쪽이 수량품만 아는 법화경 측을 이렇게 비웃는 말이다.
先判・後判선판 · 후판
한 물건에 대해 양도자가 받는 이에게 준 양도 문서(讓狀)가 두 통 있을 때 앞의 것을 선판, 뒤의 것을 후판이라 한다. 「판」은 판형, 곧 화압(花押)이다. 가마쿠라 막부의 「어성패식목(御成敗式目)」 제26조는, 소령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안도의 하문서를 받은 뒤라도 부모가 이를 돌이켜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면 후판의 양도에 따라 판결한다고 정했다. 여기서는 40여 년의 이전 권교의 설법을 선판, 그 뒤 「40여 년에는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오직 무상도를 설한다」, 「세존은 법을 오래 하신 뒤에 반드시 진실을 설하시리라」라 하고 설한 법화경을 후판으로 삼는다.

화엄 · 진언이 내세우는 두 문

강의는 이 장이 화엄종과 진언종의 주장 위에서 법화경의 난해를 설한 대목이라고 정리한다. 법상종의 반론이 오성각별, 곧 이승작불을 겨냥했다면, 화엄 · 진언의 반론은 구원실성을 겨냥한다. 이전의 경에도 구원실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번에도 상대의 권위를 먼저 세우신다. 화엄종의 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 진언종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은 천태 · 전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다. 더구나 선무외 등에게는 대일여래로부터 실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상승이 있다. 이런 권화의 사람들이 어찌 잘못을 범하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내세우는 두 문이 나온다. 화엄경의 「혹은 석가가 불도를 이루고 나서 불가사의한 겁을 지나는 것을 본다」와 대일경의 「나는 일체의 본초이니라」다. 이 문들이 있으니 구원실성이 어찌 수량품에만 한정되겠는가. 그대는 우물 안 개구리, 도성을 모르는 산골 사람처럼 수량품 한 품만 보고 화엄 · 대일경은 모르는 것 아닌가. 인도 · 중국 · 신라 · 백제에서 모두 한결같이 이승작불 · 구원실성은 법화경에 한정된다고 했는가.

화엄경의 「불가사의겁」 — 「혹견(或見)」의 두 글자

강의에 따르면 화엄종의 징관은 화엄경의 이 문을 풀며, 「이미 여러 겁을 지나는 것을 본다고 하였으니 화엄경이 시성을 말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하고, 또 「이 문에 의하면 천태가 구원실성은 법화경에 한정된다고 한 잘못이 드러난다. 곧 천태가 화엄은 시성을 말한다고 한 비난을 막는 것이다」라고 했다(강의는 출처를 「華厳疏抄八十」이라 적는다).

이에 대해 천태종 쪽에서는 이렇게 논파했다. 화엄경의 문은 「혹은 본다(或見)」라고 했으니, 중생의 근기에 따라 혹 그렇게 보는 자도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하물며 보현보살 같은 구계의 중생이 어찌 부처 수명의 구원을 알 수 있겠는가(강의는 이 논파의 출처를 「輔註」라 적는다). 이 밖에도 이에 대한 겹겹의 논파가 있다. 결국 화엄종의 주장은 법화경보다 낮은 화엄경의 지위를 어떻게든 끌어올리려는 얼버무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강의의 판단이다.

이 반론의 요점은 문의 주어에 있다. 수량품에서는 부처가 스스로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이라고 밝힌다. 부처 자신의 선언이다. 화엄경의 문은 누군가가 「혹은 그렇게 본다」는 것이다. 근기에 따라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는 것은 부처의 본지를 밝힌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것을 보는 주체가 보살이라면, 제19장에서 본 대로 이전 · 적문의 보살은 본문에서 천 · 인 · 수라에 거두어지는 존재이니 부처의 구원을 알 수 없다.

대일경의 「일체의 본초」 — 법신의 본유에 대한 말

「나는 일체의 본초이니라」는 대일경 권3 전자륜만다라행품의 문이다. 『대일경의석』 권9는 이 문을 풀어 「본초란 곧 수량의 뜻」이라 하여, 대일여래가 수량품의 구원실성과 같은 것을 말했다고 했다. 강의는 이것도 큰 잘못이라고 한다. 「일체의 본초」는 법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이치에 맞추어 한 말이다. 강의는 「본유의 이(理)에 돌아가므로 본초라 하며, 본유의 불성을 이름하여 자각이라 한다」는 해석을 근거로 든다(강의는 출처를 「玄私七」이라 적는다).

「하산어소식」의 강의는 같은 해석을 『대일경소』 권12의 문으로 소개하며, 『대일경소』가 「나는 일체의 본초이니라」를 「장차 비장을 설하려 하여 스스로 덕을 찬탄한 것이니, 이 법은 믿기 어렵기 때문에 장차 법화를 설하려 하여 스스로 찬탄한 것과 같다. 본초란 곧 수량의 뜻이다」라고 풀었다고 한다. 『대일경의석』(14권)과 『대일경소』(20권)는 같은 일행 찬술 주석의 두 계통이어서 권수가 다르게 전한다.

이 판정을 제21장과 겹쳐 보면 뜻이 분명해진다. 제21장에서 대성인은 여러 대승경이 「법신의 무시무종은 설하였으나 응신 · 보신의 현본은 설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대일경의 「일체의 본초」가 바로 그런 예다. 법신의 이치가 본래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어도, 그것은 응신 · 보신으로서의 부처가 구원에 성불했다는 수량품의 현본과는 차원이 다르다. 진언종은 법신의 본유와 삼신의 구원을 섞어 같은 것이라 한 것이다.

법상종(제22장)근거無性有情と決定性の二乗は永く仏になるべからず무성유정과 결정성의 이승은 영원히 부처가 되지 못한다권위무착 · 세친 · 현장 · 자은, 삼국 제일응답이전의 「영원히 성불 못함」을 고칠 수 없는 말로 붙잡은 것, 팔계만 세워 십계호구를 모름
화엄종(제23장)근거或は釈迦・仏道を成じ已つて不可思議劫を経るを見る혹은 석가가 불도를 이루고 불가사의한 겁을 지나는 것을 본다권위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응답「혹견(或見)」은 근기에 따른 견해일 뿐, 구계의 보살은 불수의 구원을 알 수 없음
진언종(제23장)근거我れは一切の本初なり나는 일체의 본초이니라권위선무외 · 금강지 · 불공, 대일여래로부터의 상승응답「본초」는 법신 본유의 이(理)에 대한 말, 보신 · 응신의 현본이 아님
도표 11 · 세 종의 반론과 강의의 응답

일념삼천을 훔친 두 종

강의는 이 장의 뜻을 이렇게 맺는다. 화엄 · 진언의 무리가 천태의 가르침을 시기하고 아집에 붙들려, 「혹은 석가가 불도를 이루고 나서 불가사의한 겁을 지나는 것을 본다」는 문과 「나는 일체의 본초이니라」는 문을 억지로 일념삼천의 출처로 삼아 일념삼천의 법문을 훔치고, 그것으로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내세우려 한 사정을 대성인이 밝히셨다는 것이다.

이는 제7장과 제9장에서 이미 예고된 판정이다. 대성인은 제7장에서 「화엄종과 진언종의 두 종은 몰래 훔쳐 자기 종의 골목(骨目)으로 삼았다」고 하셨고, 제9장에서는 그 구체적인 경위를 말씀하셨다.

善無畏三蔵・金剛智三蔵・天台の一念三千の義を盗みとつて自宗の肝心とし其の上に印と真言とを加て超過の心ををこす

선무외삼장 · 금강지삼장은 천태의 일념삼천의 뜻을 훔쳐 자기 종의 간심으로 삼고, 그 위에 인(印)과 진언을 더하여 뛰어넘었다는 마음을 일으켰느니라.

「개목초 상」, 190쪽

제23장에서 화엄 · 진언 쪽이 「천태 · 전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 자부하는 바로 그 조사들이, 실은 천태의 일념삼천을 훔쳐 자기 종의 골격으로 삼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대성인의 판정이다. 이 장에서 대성인이 그들의 자부를 길게 옮기신 것은 그 자부가 얼마나 세간을 압도하는지를 보이기 위해서이며, 그만큼 법화경의 구원실성이 믿기 어려운 처지에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선판과 후판 — 그래도 「이전 쪽으로 기운다」

장의 마지막 문장은 중요한 법리 하나를 끌어온다. 「선판과 후판 가운데서는 후판을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다. 가마쿠라 막부의 「어성패식목」 제26조는, 부모가 소령을 한 아들에게 물려주는 문서를 쓰고 막부의 안도까지 받았더라도 부모가 마음을 바꾸어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는 문서를 다시 쓰면 뒤의 문서에 따라 판결한다고 정했다. 같은 사람이 같은 물건에 대해 두 번 처분했다면 나중의 처분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 법리를 불교에 적용하신다. 같은 부처가 이전에서는 이승불성불 · 시성정각을 설했고(선판), 뒤에 「40여 년에는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오직 무상도를 설한다」, 「세존은 법을 오래 하신 뒤에 반드시 진실을 설하시리라」고 하며 법화경을 설했다(후판). 그렇다면 당연히 후판인 법화경을 따라야 한다. 당시 무사 사회의 누구나 아는 상속의 법리를 빌린 이 논증은 매우 명쾌하다.

그런데도 대성인은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전 쪽으로 기운다고 생각된다」고 맺으신다. 법리로는 후판이 이기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마음은 경문의 양과 조사들의 권위에 끌려 선판 쪽으로 기운다. 제17장의 「이전이 강한 것처럼 생각된다」, 제21장의 「이전 쪽이 강하다」 · 「이전 쪽으로 기운다」가 여기서 다시 한번 되풀이된다. 이 반복은 제2 · 3편 전체에 걸쳐 대성인이 그리신 「난신」의 실상이다.

강의는 화엄종이 내세우는 「불가사의겁」의 문은 「혹은 본다」는 근기의 견해일 뿐이고, 진언종의 「일체의 본초」는 법신 본유의 이치를 말한 것이어서 모두 수량품의 구원실성과 같지 않다고 본다. 화엄 · 진언은 이 문들을 억지로 일념삼천의 출처로 삼아 천태의 법문을 훔치고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내세웠다.

제24장 멸후의 난신을 맺다
어서 199쪽 11행~200쪽 1행 · 第二十四章 滅後の難信を結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199쪽 11행 ~ 200쪽 1행
本文 · 어서 원문

又、但在世計りならば・さもあるべきに滅後に居せる論師・人師・多は爾前づりにこそ候へ、 かう法華経は信じがたき上、世もやうやく末になれば聖賢はやうやく・かくれ迷者はやうやく多し、 世間の浅き事すら猶あやまりやすし何に況や出世の深法悞なかるべしや、 犢子・方広が聡敏なりし猶を大小乗経にあやまてり、 無垢・摩沓が利根なりし権実・二教を弁えず、 正法一千年の内、在世も近く月氏の内なりし・すでにかくのごとし、 況や尸那・日本等は国もへだて音もかはれり人の根も鈍なり寿命も日あさし貪瞋癡も倍増せり、 仏世を去つてとし久し仏経みなあやまれり誰れの智解か直かるべき、 仏涅槃経に記して云く「末法には正法の者は爪上の土・謗法の者は十方の土」とみへぬ、 法滅尽経に云く「謗法の者は恒河沙・正法の者は一二の小石」と記しをき給う、 千年・五百年に一人なんども正法の者ありがたからん、 世間の罪に依つて悪道に堕る者は爪上の土・仏法によつて悪道に堕る者は十方の土・俗よりも僧・女より尼多く悪道に堕つべし。

풀이

또 다만 재세뿐이라면 그럴 수도 있으려니와, 멸후에 있는 논사 · 인사도 대부분 이전 쪽으로 기울어 있느니라. 이처럼 법화경은 믿기 어려운 데다, 세상도 점점 말세가 되면 성인 · 현인은 점점 숨고 미혹한 자는 점점 많아지느니라. 세간의 얕은 일조차 오히려 그르치기 쉬운데, 하물며 출세간의 깊은 법에 어찌 잘못이 없겠는가. 독자 · 방광은 총명하였으나 오히려 대승경 · 소승경을 그르쳤고, 무구 · 마답은 근기가 영리하였으나 권교 · 실교의 두 가르침을 분별하지 못하였느니라. 정법 1천 년 안, 재세에도 가깝고 월지 안에서조차 이미 이와 같았느니라. 하물며 지나 · 일본 등은 나라도 떨어져 있고 말소리도 다르며, 사람의 근기도 둔하고 수명도 짧으며, 탐 · 진 · 치도 갑절로 늘었느니라. 부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되어 불경을 모두 그르쳤으니, 누구의 지해(智解)가 바르겠는가. 부처께서 열반경에 기록하여 이르시되 「말법에는 정법을 지니는 자는 손톱 위의 흙, 법을 비방하는 자는 시방의 흙」이라 하셨고, 법멸진경에 이르되 「법을 비방하는 자는 항하의 모래, 정법을 지니는 자는 한두 개의 작은 돌」이라고 기록해 두셨느니라. 천 년 · 5백 년에 한 사람조차 정법의 사람은 있기 어려우리라. 세간의 죄로 악도에 떨어지는 자는 손톱 위의 흙이요, 불법으로 악도에 떨어지는 자는 시방의 흙이니라. 속인보다 승려가, 여인보다 비구니가 많이 악도에 떨어지리라.

어구 풀이

論師・人師논사 · 인사
논사는 인도에서 논서를 지어 불법을 넓힌 이(용수 · 천친 · 무착 등), 인사는 중국 · 일본에서 경론을 풀어 종을 세운 이(천태 · 법장 · 선무외 · 자은 등)를 가리킨다.
犢子・方広독자 · 방광
둘 다 불교에 붙은 외도(附佛法外道)로 불린다. 독자는 소승의 한 분파인 독자부의 부주로, 외도에서 불교에 귀의했으나 「말할 수 없는 아(不可說我)」를 세워 무아의 이치에 미혹했다. 방광은 「일체법은 불생불멸이며 공하여 있는 바가 없다」고 하여 외도에 떨어졌다. 묘락대사는 『지관보행전홍결』에서 독자는 소승에 의해, 방광은 대승에 의해 아견을 세웠다고 했다.
無垢・摩沓무구 · 마답
무구는 무구논사로 가습미라국 사람이다. 소승으로 출가해 오천축을 돌며 삼장을 배웠으나, 뒤에 대승을 비방하고 세친보살에 맞섰다. 그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혀가 다섯으로 갈라져 피를 쏟고 죽었다고 한다. 마답은 마답바로 수론파의 학자다. 널리 배우고 많이 들었으나 덕혜보살에게 논파되어 엿새째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대당서역기』가 전한다.
利根이근
영리한 근기. 둔근의 반대말이다.
爪上の土・十方の土손톱 위의 흙 · 시방의 흙
열반경의 비유로, 손톱 위에 올린 한 줌의 흙과 시방세계의 흙을 견주어 지극히 적은 것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대비한다. 대성인은 이를 말법에 정법을 지니는 이와 법을 비방하는 이의 수에 견주어 쓰시며, 제17장에서도 같은 비유를 드셨다.
法滅尽経법멸진경
『불설법멸진경』 1권. 역자 미상. 부처의 열반이 가까워 설법도 하지 않고 광명도 나타내지 않자 아난이 세 번 여쭈었고, 부처는 말법에 법이 멸할 때 마가 비구가 되어 나타나 법에 어긋난 언행을 하리라고 설했다.

재세보다 멸후, 정법보다 말법

강의는 이 장이 재세와 멸후를 상대하여 법화경이 더욱더 믿기 어려워지고 정법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음을 설하신 장이라고 정리한다.

제18장부터 제23장까지 대성인이 보이신 난신은 주로 경문과 학장의 차원이었다. 이 장에서 대성인은 시간의 축을 더하신다. 석존 재세라면, 이전의 경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이 설해졌으므로 마지막에 설해진 법화경을 지혜로운 이는 믿더라도 많은 사람이 이전이 뛰어나고 법화경이 못하다고 여겼다는 것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멸후에 나온 논사 · 인사도 대부분 이전 쪽으로 기울었다. 법화경이 본래 믿기 어려운 데다 세상이 말세로 내려가면 성현은 숨고 미혹한 이는 늘어난다. 세간의 얕은 일조차 그르치기 쉬운데, 출세간의 깊은 법에서 어찌 잘못이 없겠는가.

대성인은 그 증거로 정법 시대 인도의 네 사람을 드신다. 독자와 방광은 총명했으나 대승과 소승을 그르쳤고, 무구와 마답은 영리했으나 권교와 실교를 분별하지 못했다. 석존 재세에서 가깝고 같은 인도 안에서조차 이러했다. 하물며 중국 · 일본은 나라도 멀고 말도 다르며, 사람의 근기는 둔하고 수명은 짧고 탐 · 진 · 치의 삼독은 갑절로 늘었다. 불경을 모두 그르쳤으니 누구의 이해가 바르겠는가.

손톱 위의 흙과 시방의 흙

대성인은 이 상황을 두 경의 예언으로 맺으신다. 열반경은 말법에 정법을 지니는 이는 손톱 위의 흙만큼 적고 법을 비방하는 이는 시방의 흙만큼 많다고 했고, 법멸진경은 방법자는 항하의 모래만큼 많고 정법을 지니는 이는 한두 개의 작은 돌만큼 적다고 했다. 천 년, 5백 년에 한 사람이라도 정법의 사람이 있기 어려울 것이다.

이 「손톱 위의 흙」은 제17장에서 이미 한 번 쓰신 비유다. 거기서 대성인은 이렇게 물으셨다.

日本の諸人は爪上の土か日蓮は十方の土かよくよく思惟あるべし

일본의 사람들이 손톱 위의 흙인가, 니치렌이 시방의 흙인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하리라.

「개목초 상」, 195쪽

제17장에서 대성인이 일본국 전체를 상대로 홀로 법화경의 진실을 주장하는 자신의 처지를 이 비유로 물으셨다면, 제24장은 그 처지가 우연이 아니라 경문에 예언된 말법의 필연임을 보이신다. 정법의 사람이 손톱 위의 흙만큼 적은 시대에, 그 적은 쪽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이 물음이 그대로 제25장 「이에 니치렌이 생각하건대 세상은 이미 말대에 들어 2백여 년」으로 이어진다.

강의는 이 대목을 오늘의 종교 상황에 빗대어 덧붙인다. 이전의 경과 법화경은 우주의 실상과 생명의 철리를 설하는 데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이전의 경은 이를 부분적으로, 또는 전제로서 다루었고, 법화경은 전체적이고 근본적으로 설했다. 오늘날에도 부분적이고 피상적인 종교는 널리 퍼져 있지만 지혜로운 이나 학자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지혜로운 이가 듣고 수긍하는 가장 높고 순일한 가르침은 오히려 대중에게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다. 이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 장의 뜻을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세간의 죄와 불법의 죄 — 세 가지 법

장의 마지막 문장은 매우 엄중하다. 세간의 죄로 악도에 떨어지는 이는 손톱 위의 흙만큼 적고, 불법으로 악도에 떨어지는 이는 시방의 흙만큼 많다. 속인보다 승려가, 여인보다 비구니가 많이 악도에 떨어질 것이다. 강의의 현대어역대로, 강도나 살인 같은 세간의 죄로 악도에 떨어지는 이보다 불법을 그르치고 방법의 죄를 지어 악도에 떨어지는 이가 비교할 수 없이 많다. 그리고 불법을 직접 다루는 출가자가 그 위험에 가장 가까이 서 있다.

강의는 이 말씀을 불법의 법칙이 얼마나 엄격한지를 보이신 중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 인생의 행 · 불행을 정하는 법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세간법정의사회의 풍속 · 관습 · 관행규제의 성격규제가 상대적이고 느슨함, 지방마다 다름어겼을 때어기면 웃음거리 · 험담 · 교제 단절 정도
국법정의국가 ·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법률규제의 성격정상참작은 있어도 규칙은 굽지 않음 · 그래도 불법에 비하면 「눈이 성긴 그물」어겼을 때위반이 확인되면 벌금 · 체형 등 실질적 효과
불법정의자기 생명의 인과율규제의 성격생명의 본원을 밝힌 깊은 철학이어서 정사의 판별이 어렵고, 수행을 방해하는 마의 작용도 성함어겼을 때어기면 반드시 그 결과인 벌의 현증을 면할 수 없음
도표 12 · 세간법 · 국법 · 불법

첫째는 세간법이다. 사회의 풍속 · 습관 · 관행으로, 그 규제는 상대적이고 느슨하다. 어떤 지방에서 금하는 일도 다른 지방에서는 허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어겨도 기껏해야 웃음거리가 되거나 험담을 듣거나 교제를 끊기는 정도에 그친다.

둘째는 국법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법률로, 이를 어긴 일이 분명히 확인되면 형벌을 받는다. 벌금이든 체형이든 실질적인 효과를 가지며, 어느 정도 정상참작은 있어도 법에 정해진 규칙은 굽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조차 불법에 비하면 매우 성긴 그물이라 할 수 있다.

셋째는 불법이다. 불법은 자기 생명의 인과율이어서, 불법에 어긋난 일을 하면 그 결과로 생기는 벌의 현증을 절대로 면할 수 없다. 더구나 세간법과 국법은 옳고 그름의 판별이 비교적 쉽지만, 불법은 생명의 본원을 밝힌 깊고 깊은 철학이다. 게다가 이를 수행하는 사람을 방해하려는 마의 작용도 성하다. 그러므로 불법에 미혹하여 벌을 받고 악도에 떨어지는 이는 세간이나 국법의 죄로 악도에 떨어지는 이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다.

강의는 이렇게 맺는다. 참된 인생의 행복을 바란다면 세간법과 국법을 알고 지키는 것은 당연하고, 가장 근본적으로 행 · 불행을 좌우하는 불법을 알고 지켜야 한다. 그것을 밝혀 보이신 것이 부처의 한 마디 한 구절, 곧 경문이며 대성인의 어서다.

이 강의를 본문과 겹쳐 읽으면, 대성인이 「불법으로 악도에 떨어지는 자는 시방의 흙」이라 하신 까닭이 제18장부터의 논의 전체와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엄경을 최고로 여긴 학장, 오성각별을 세운 법상의 대논사, 대일경의 「본초」를 수량품과 같다고 한 진언의 삼장은 모두 세간의 기준으로는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물속의 달을 진짜 달로 붙들었다면, 그 잘못은 세간의 어떤 죄보다 깊다. 불법의 죄가 무거운 것은 그것이 생명의 근본 인과에 대한 잘못이기 때문이며, 그 잘못이 그들을 따르는 무수한 사람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강의는 재세보다 멸후, 정법보다 말법으로 갈수록 법화경은 더욱 믿기 어려워지며, 말법에 정법을 지니는 이는 손톱 위의 흙만큼 적다고 본다. 세간법 · 국법보다 근본적으로 행 · 불행을 좌우하는 것이 생명의 인과율인 불법이며, 불법에 미혹하여 악도에 떨어지는 이가 세간의 죄로 떨어지는 이보다 훨씬 많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제3편의 일곱 장은 하나의 물음, 곧 「석존은 언제 성불했는가」를 축으로 움직였다. 제18장은 법화경 다음가는 화엄경조차 세 곳에서 시성정각을 일컬었고, 아함 · 대집 · 유마 · 대일 · 인왕경이 모두 같은 말을 했음을 보였다. 제19장은 이전을 깎아내린 무량의경도, 「모두 진실」이라 증명받은 방편품도 「내가 처음 도량에 앉아」라고 말했다가, 수량품의 「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무량무변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니라」에 이르러 그 모든 말이 한꺼번에 뒤집혔음을 보였다. 미륵의 의심, 곧 성도 40여 년의 부처가 어떻게 무수한 대보살을 교화했느냐는 물음이 그 뒤집힘을 불러낸 계기였다.

제20장은 이 뒤집힘을 교리로 정식화했다. 이전의 경에는 행포와 시성의 두 허물이 있어 적문의 일념삼천과 본문의 구원을 감추었다. 적문은 행포의 허물만 벗었으므로 그 일념삼천은 물속의 달이요 그 이승작불은 뿌리 없는 풀이다. 강의는 니치칸 상인을 따라 이를 본무금유 · 유명무실의 두 허물로 분석했고, 「십법계사」 · 「십장초」 · 「관심의 본존초」로 그 근거를 보였다. 본문에 이르러 시성정각이 깨뜨려지자 사교의 과와 인이 함께 깨뜨려지고, 무시의 불계와 무시의 구계가 서로를 갖추는 본인본과의 법문, 곧 참된 십계호구 · 백계천여 · 일념삼천이 드러났다. 그리고 강의는 이 본문의 사의 일념삼천조차 문저의 사행의 일념삼천에 대하면 이의 일념삼천이 된다고 하여, 이 편이 종탈상대를 향해 열려 있음을 짚었다. 이전 · 적문의 모든 부처는 수량품 부처라는 하늘의 달이 크고 작은 그릇에 띄운 그림자이며, 그림자를 붙드는 것이 여러 종의 잘못이다.

제21장부터는 같은 법문을 「믿기 어려움」의 쪽에서 비추었다. 응신 · 보신의 현본은 용출 · 수량 두 품에만 있고, 나머지 모든 경은 시성을 말하거나 법신의 상주만을 말한다. 강의는 이 삼신상주를 생사를 거듭하며 변화하면서 이어지는 하나의 생명으로 풀었다. 제22 · 23장은 삼국에 홍통된 법상종의 오성각별, 화엄의 「불가사의겁」과 진언의 「일체의 본초」를 들어 그 난신이 역사 속 권위의 무게로도 나타남을 보였고, 선판 · 후판의 법리로도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이전 쪽으로 기운다고 맺었다. 제24장은 재세보다 멸후, 정법보다 말법으로 갈수록 그 난신이 깊어져, 말법에 정법의 사람은 손톱 위의 흙만큼 적다는 경문의 예언에 이른다.

이렇게 하여 「개목초」 상권 전반의 긴 교판, 곧 내외 · 대소 · 권실 · 본적의 상대가 일단 끝을 맺는다. 다음 제4편 「말법 법화경 행자의 소유」에서 대성인은 이 손톱 위의 흙의 자리에 선 한 사람, 「세상은 이미 말대에 들어 2백여 년, 변방에 태어나」 이 믿기 어려운 법을 외치면 부모 · 형제 · 스승과 국주의 난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기로 결심한 니치렌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신다. 본적상대의 결론인 「믿기 어려움」이 법화경 행자의 「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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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개목초」(1272),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186–237쪽
  • 니치렌 대성인, 「관심의 본존초」 · 「십법계사」 · 「십장초」 · 「치병대소권실위목」 · 『어의구전』,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수록
  • 『묘법연화경』(구마라집 역), T9 no.262 — 방편품 · 견보탑품 · 종지용출품 · 여래수량품
  • 『무량의경』, T9 no.276
  • 『대반열반경』(40권), T12 no.374
  • 『유마힐소설경』, T14 no.475
  • 『화엄경』(60권), T9 no.278
  • 『대일경』, T18 no.848
  • 『대지도론』, T25 no.1509
  • 천태대사 지의, 『법화현의』, T33 no.1716 / 『법화문구』, T34 no.1718 / 『마하지관』, T46 no.1911
  • 묘락대사 담연, 『법화현의석첨』, T33 no.1717 / 『지관보행전홍결』, T46 no.1912
  • 니치칸 상인, 「삼중비전초」 · 「개목초 문단」(강의를 통해)

연구

  • 창가교학연구실, 「0186~0237 開目抄」 제18~24장 강의 (블로그)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The Opening of the Eyes」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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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247 · 249쪽관심의 본존초어서 421 · 422 · 423쪽십법계사어서 1274 · 1275쪽십장초어서 996쪽치병대소권실위목어서 752 · 753쪽어의구전어서 188 · 189 · 190 · 195쪽개목초 상어서 213 · 214쪽개목초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