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목초는 「무릇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주 · 사 · 친이요, 익히고 배워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유 · 외 · 내이니라」라는 두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두 문장이 상 · 하 두 권에 걸친 긴 논증 전체의 과제를 세운다. 사람이 마땅히 존경할 대상은 누구이며, 그 대상을 가르쳐 주는 가르침은 어떤 것인가. 대성인은 먼저 중국의 유가와 인도의 외도가 내세운 주사친을 차례로 검토하고, 이어 불교 안에서 다시 권교와 실교를 가르고, 마침내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긴 일념삼천에 이르러 판정을 내리신다. 그러고 나서 그 일념삼천이 외도 · 외전과 여러 종파에게 어떻게 도용되어 왔는지를 한토와 일본의 불교사로 짚으신다. 제1편은 개목초가 「사람(人)」을 묻는 글이라는 사실과,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법(法)」을 다섯 겹으로 가려내는 방법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다.
개목초는 문영 9년(1272) 2월, 사도의 쓰카하라 삼매당에서 쓰여 문하 일동에게 보내졌다. 다쓰노쿠치 법난(1271년 9월)을 겪고 유배지에 내려온 지 석 달 남짓, 눈 덮인 묘지 한가운데의 작은 당에서 대성인은 「법화경의 행자라면 어찌하여 제천의 수호가 없는가」라는 문하와 세간의 의심에 정면으로 답하려 하셨다. 그런데 그 답은 곧바로 박해의 해명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대성인은 먼저 인류가 존경해 온 스승들의 계보 전체를 한자리에 펼쳐 놓으신다. 삼황 · 오제 · 공자 · 노자에서 인도의 삼선 · 육사외도를 거쳐 석존의 일대 오십 년 설법까지를 하나의 저울에 올려, 무엇이 참된 주사친인가를 묻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개목초 문단」에서 이 글을 「인본존 개현의 서」, 관심의 본존초를 「법본존 개현의 서」라고 구분했다. 제1편은 그 「인(人)」의 탐구가 어떤 구도로 짜여 있는지를 보여 준다. 주 · 사 · 친이라는 사람의 세 덕을 앞세우고, 유 · 외 · 내라는 법의 세 갈래를 곁에 둔다. 법을 가려내는 일은 결국 그 법을 설한 사람이 참된 주사친인지를 판정하기 위한 것이다. 강의는 이 구조를 따라, 개목초의 결론이 하권 끝의 「니치렌은 일본국 모든 사람에게 주사부모이니라」에 이른다는 점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읽으라고 권한다.
또 이 편에는 개목초를 꿰는 판정 방법, 곧 오중의 상대가 처음 나타난다. 제5장의 내외상대, 제6장의 권실상대, 그리고 제7장의 문저 판정이 그것이다. 특히 제7장의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는 구절은 니치칸 상인이 「삼중비전초」 한 권을 따로 지어 풀이할 만큼 무거운 대목이며, 앵매도리의 五 일념삼천과 관심의 본존초 제1편이 다룬 일념삼천의 이론이 여기서 「문저」라는 새 차원과 만난다.
이 편의 장
본문
開目抄上 文永九年二月 五十一歳御作 与門下一同 於佐渡塚原 夫れ一切衆生の尊敬すべき者三あり所謂主師親これなり、又習学すべき物三あり、所謂儒外内これなり。
개목초 상 — 문영 9년(1272) 2월, 쉰한 살에 지으심. 문하 일동에게 주심. 사도 쓰카하라에서. 무릇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이른바 주(主) · 사(師) · 친(親)이 이것이니라. 또 익히고 배워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이른바 유(儒) · 외(外) · 내(內)가 이것이니라.
어구 풀이
- 一切衆生일체중생
-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를 가리키며, 그 가운데서도 사람을 중심에 둔다. 인종 · 남녀 · 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류 전체를 포함하는 말이다. 개목초 첫 문장의 주어가 「일체중생」이라는 점은, 이 글이 특정 신도 집단만이 아니라 인간 일반이 무엇을 존경해야 하는가를 묻는 글임을 보여 준다.
- 主師親주사친
- 주군 · 스승 · 어버이. 사람은 누구나 어버이에게서 생명을 받아 길러지고, 스승에게서 지혜를 닦으며, 주군(사회 · 공동체)에게 보호받아 삶의 의미를 이룬다. 강의의 어석은 민주주의 시대에는 「주」를 곧 사회로 읽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불교에서 주사친의 삼덕을 모두 갖춘 이는 부처이므로, 이 세 글자는 개목초 전체에서 「부처」의 다른 이름으로 쓰인다.
- 儒外内유외내
- 유는 유교로, 노자 · 장자의 도가와 함께 중국 사상의 큰 줄기를 이룬다. 외는 외도로, 고대 인도의 바라문 사상과 그에서 갈라진 여러 학파를 가리키며 석존 당시 95파가 있었다고 전한다. 내는 내도, 곧 불교다. 어석은 유교에 윤리 · 도덕이 집대성되었고, 외도 바라문에는 훗날 유럽 문화까지 포함하는 아리아 문화가 집성되었다고 설명한다.
- 尊敬すべき者존경해야 할 것
- 「者」는 사람을 가리킨다. 존경의 대상이 사람(주 · 사 · 친)이라는 점에서 개목초의 정의(正意)가 「인(人)」에 있음이 드러난다.
- 習学すべき物익히고 배워야 할 것
- 「物」은 가르침, 곧 법을 가리킨다. 사람을 표시한 「者」와 법을 표시한 「物」이 짝을 이룬다. 대성인은 법을 곁(傍)으로, 사람을 바로(正)로 두어 이 글을 시작하셨다고 강의는 읽는다.
- 文永九年二月・於佐渡塚原문영 9년 2월 · 사도 쓰카하라에서
- 1272년 음력 2월, 사도 쓰카하라의 삼매당에서 쓰셨다는 기록이다. 51세. 받는 이는 「문하 일동」이며, 실제로는 가마쿠라의 시조 깅고를 통해 문하 전체에 전해진 것으로 전한다.
사람이 바로, 법은 곁 — 개목초의 대의
강의는 개목초의 대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은 주사친의 삼덕이며, 이 글은 그 삼덕 가운데 말법 하종의 삼덕인 니치렌 대성인의 깊은 은혜를 드러낸 글이라는 것이다. 첫머리의 두 문장은 그 대의를 처음으로 「표시(標示)」하는 자리다.
여기서 두 문장의 관계를 정확히 보아야 한다. 주 · 사 · 친은 사람(人)을 나타내고, 유 · 외 · 내는 법(法)을 나타낸다. 그러나 대성인은 법을 곁(傍)으로 두고 사람의 삼덕을 바로(正) 삼으신다. 곧 「유교에도, 외도에도, 불교에도 각기 주사친이 있는데, 그 가운데 누구를 존경해야 하는가」가 이 글의 물음이다. 그래서 개목초는 유가의 삼덕(제2 · 3장)과 외도의 삼덕(제4장)을 차례로 검토해 깨뜨리고, 내도의 삼덕인 법화경의 석존을 가장 존경해야 함을 밝히며(제5장 이하), 그 석존의 삼덕을 숙(熟) · 탈(脫)의 삼덕으로 드러낸 뒤(하권의 제39장 「탈익의 삼덕」), 마지막에는 말법 법화경의 행자인 니치렌 대성인이야말로 하종의 삼덕이며 일체중생의 주사친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결론은 하권 맺음의 한 구절에 그대로 드러난다.
日蓮は日本国の諸人にしうし父母なり
니치렌은 일본국 모든 사람에게 주사부모이니라
강의는 이 구절을 대성인이 말법의 본불이심을 선언한 말로 받는다. 주사친의 삼덕은 곧 부처의 덕이므로, 대성인을 일체중생의 주사친이라 함은 대성인을 말법의 부처라 함과 같다. 강의는 이것이 「본초의 안목」이라고 한다. 그리고 개목초를 처음 펼치는 독자에게, 이 글이 대성인을 본불로 밝힌 글이라는 점을 마음에 두고 읽으면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가 뚜렷이 하나로 꿰인다고 권한다.
강의는 같은 자리에서 다른 문류의 해석을 비판한다. 대성인을 상행보살로만 우러르고 그 내증인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으로 우러르지 않는 해석은, 법화경 문상(文上)의 석존을 부처로 세우고 대성인을 보살이나 석존의 제자로 두게 되어, 사람과 법을 서로 다르게 보는 설이 된다는 것이다. 강의는 대성인의 불법이 결코 석존의 불법의 한 갈래가 아니라고 말하며, 그 근거로 「본인묘초」의 한 구절을 든다.
一代応仏のいきをひかえたる方は理の上の法相なれば一部共に理の一念三千迹の上の本門寿量ぞと得意せしむる事を脱益の文の上と申すなり、文の底とは久遠実成の名字の妙法を余行にわたさず直達の正観・事行の一念三千の南無妙法蓮華経是なり
일대 응불의 숨결을 이어받은 쪽은 이(理) 위의 법상이므로, 한 부(部) 전체가 다 이의 일념삼천이요 적(迹) 위의 본문 수량품이라고 알게 하는 것을 탈익의 문상이라 하느니라. 문저란 구원실성의 명자의 묘법을 다른 수행에 건네지 않고 곧바로 통달하는 정관, 곧 사행(事行)의 일념삼천인 남묘호렌게쿄가 이것이니라
여기서 처음으로 「문상(文の上)」과 「문저(文の底)」라는 짝말이 등장한다. 석존 일대의 응불이 설한 법화경은 그 본문 수량품조차 「탈익의 문상」이며, 문저는 구원실성의 근원에 있는 명자(名字)의 묘법, 곧 사행의 일념삼천인 남묘호렌게쿄라는 것이다. 이 짝말은 제7장의 「문의 밑」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개목초의 첫 두 문장은 「사람의 삼덕(주사친)」과 「법의 세 갈래(유외내)」를 함께 세우되, 사람을 바로 삼고 법을 곁으로 둔다. 법을 가려내는 모든 논증은 결국 「누가 참된 주사친인가」에 답하기 위한 것이며, 그 답은 하권 끝의 「니치렌은 일본국 모든 사람에게 주사부모이니라」(237쪽)이다.
삼덕을 갖춘 이는 오직 부처
세간의 삼덕과 그 한계
물론 세간에도 주사친의 덕을 한 부분씩 갖춘 사람은 있다. 개목초가 보여 주듯 중국의 유교도, 인도의 바라문교도 저마다 주군으로서, 스승으로서, 어버이로서 우러르는 이상적 인물을 내세웠다.
중국 유교는 삼황 · 오제 · 삼왕을 「천존」이라 부르고 「모든 신하의 우두머리, 만민의 다리」로 공경했다. 그러나 강의는 그들이 설한 바가 결국 영원한 생명에 서 있지 않은 낮은 철학이며,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덕이나 처세법을 설한 데 그쳤다고 평가한다. 개목초 本文도 이 점을 분명히 판정한다(제3장).
此等の賢聖の人人は聖人なりといえども過去を・しらざること凡夫の背を見ず・未来を・かがみざること盲人の前をみざるがごとし……而りといえども過去未来をしらざれば父母・主君・師匠の後世をもたすけず不知恩の者なり・まことの賢聖にあらず
이러한 현성들은 성인이라 하지만 과거를 알지 못함은 범부가 제 등을 보지 못함과 같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함은 맹인이 앞을 보지 못함과 같으니라. …… 그러나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므로 부모 · 주군 · 스승의 후세도 돕지 못하니 은혜를 모르는 자요 참된 현성이 아니니라
그러면서도 유교는 주사친을 숭상해야 함을 강조함으로써 불법이 유포되기 위한 첫 문, 길을 여는 선도의 역할을 다했다고 강의는 덧붙인다.
인도의 바라문교는 마혜수라천과 비뉴천을 일체중생의 자부 · 비모 · 천존 · 주군으로 숭상했다. 그러나 마혜수라는 파괴의 아버지 신, 비뉴는 보호의 어머니 신이라 할 뿐 실체가 모호하고 교의도 없다고 강의는 본다. 이른바 삼선 — 가비라 · 우루승거 · 늑사바 — 가 바라문교의 성전인 베다를 완성했다고 하여 이들에게 사덕을 붙일 수는 있으나, 그들은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유교와 바라문의 삼덕은 불법이 설하는 삼덕에 견주면 취할 것이 없으며, 단 한 사람도 영원한 행복으로 이끌지 못하는 얕은 것이라고 강의는 판정한다. 개목초 本文의 말로 하면 다음과 같다(제5장).
外典・外道の四聖・三仙其の名は聖なりといえども実には三惑未断の凡夫・其の名は賢なりといえども実に因果を弁ざる事嬰児のごとし、彼を船として生死の大海をわたるべしや彼を橋として六道の巷こゑがたし
외전 · 외도의 사성 · 삼선은 그 이름은 성인이지만 실은 삼혹을 끊지 못한 범부요, 그 이름은 현인이지만 실은 인과를 분별하지 못함이 갓난아이와 같으니라. 저들을 배로 삼아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널 수 있겠는가, 저들을 다리로 삼아 육도의 갈림길을 넘기 어려우니라
경문과 어서가 밝히는 「삼덕 구비」
참된 삼덕은 외전 · 외도에서 구할 수 없고, 삼덕을 모두 갖춘 이는 오직 부처뿐이다. 강의는 그 명문으로 먼저 법화경 비유품의 게송을 든다.
今此三界 皆是我有 其中衆生 悉是吾子 而今此處 多諸患難 唯我一人 能爲救護
지금 이 삼계는 다 나의 소유이니라(주). 그 가운데 중생은 모두 나의 자식이니라(친). 그런데 지금 이곳에는 온갖 환난이 많으니,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능히 구호할 수 있느니라(사).
「나의 소유」가 주덕, 「나의 자식」이 친덕, 「나 한 사람만이 구호한다」가 사덕이다. 이 게송은 화택(火宅)의 비유를 맺는 대목에 놓여 있어, 불타는 집 안에서 놀이에 빠진 아이들을 건져 내는 장자의 모습이 곧 삼계의 주인이자 어버이이자 인도자인 부처의 모습임을 보여 준다.
대성인도 여러 어서에서 이 삼덕 구비를 거듭 말씀하셨다.
釈迦如来は我等衆生には親なり師なり主なり……ひとり三徳をかねて恩ふかき仏は釈迦一仏に・かぎりたてまつる
석가여래는 우리 중생에게 어버이요 스승이요 주군이니라. …… 홀로 삼덕을 겸하여 은혜 깊은 부처는 석가 한 부처에 한정되느니라
「기도초」는 삼덕을 하나씩 떼어 놓고 다른 부처들과 비교하여, 왜 석가불만이 삼덕을 겸하는지를 자세히 논증한다.
仏は人天の主・一切衆生の父母なり・而も開導の師なり、父母なれども賎き父母は主君の義をかねず、主君なれども父母ならざればおそろしき辺もあり、父母・主君なれども師匠なる事はなし・諸仏は又世尊にてましませば主君にては・ましませども・娑婆世界に出でさせ給はざれば師匠にあらず・又『其中衆生悉是吾子』とも名乗らせ給はず・釈迦仏独・主師親の三義をかね給へり
부처는 인천의 주군이요 일체중생의 부모이며, 또한 열어 이끄는 스승이니라. 부모라도 미천한 부모는 주군의 뜻을 겸하지 못하고, 주군이라도 부모가 아니면 두려운 면이 있으며, 부모이자 주군이라도 스승인 일은 없느니라. 여러 부처는 또한 세존이시므로 주군이기는 하시나 사바세계에 나오시지 않았으므로 스승이 아니요, 또 「그 가운데 중생은 모두 나의 자식이니라」라고 이름하지도 않으셨느니라. 석가불만이 홀로 주 · 사 · 친의 세 뜻을 겸하셨느니라
곧 주사친의 삼덕은 부처의 다른 이름이다. 다만 한마디로 부처라 해도 소승의 부처, 권대승의 부처, 법화경 적문의 부처, 법화경 본문의 부처가 있고, 다시 문저 하종의 본불이 있다. 강의는 이 다섯 층을 차례로 검토한다.
- 소승의 부처회신멸지의 아라한을 궁극으로 삼음 → 삼덕이 실질적으로 없음
- 권대승의 부처역겁수행을 설함 · 화엄경은 법혜 등 네 보살의 설 → 삼덕이 없음
- 법화경 적문의 부처서른에 처음 정각(시성정각) → 삼덕이 이 세상에 한정됨
- 법화경 본문의 부처구원실성 →주我此土安穏나의 이 국토는 안온하니라사常説法教化항상 법을 설하여 교화하느니라친我亦爲世父나 또한 세상의 아버지이니라
- 문저 하종의 본불본미유선의 말법 중생을 구하는 삼덕 →日蓮は日本国の諸人にしうし父母なり니치렌은 일본국 모든 사람에게 주사부모이니라237쪽
다섯 층의 부처와 삼덕
첫째, 소승교의 부처. 소승은 몸을 재로 만들고 지혜를 없애는 회신멸지(灰身滅智)의 아라한을 깨달음의 궁극으로 가르친다. 그러므로 일단 삼덕을 갖추었다고 해도 실질은 오히려 주사친 삼덕이 모두 없다고 강의는 본다. 스스로 사라짐을 목표로 하는 이가 중생을 지키고 이끌고 사랑하는 덕을 영원히 지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권대승의 부처. 권대승은 소승에서 가르친 이승의 수행을 철저히 꾸짖고(탄가) 보살의 수행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 수행은 헤아릴 수 없는 겁을 거쳐야 하는 역겁수행(歷劫修行)이어서 도저히 해낼 수 없다. 해낼 수 없는 가르침을 설하는 스승은 의미가 없다. 또 권대승의 교리는 성도 직후 최초의 화엄경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 화엄경은 연화장세계에서 법혜 등 네 보살이 설한 것이지 석존의 직접 설법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방편 · 권교이므로, 권대승의 석존에게는 주사친의 삼덕이 모두 없다고 강의는 판정한다.
셋째, 법화경 적문의 부처. 석존 스스로 자신이 삼덕 구비의 부처임을 밝힌 것은 앞의 비유품 문처럼 법화경에 와서다. 그러나 적문의 석존은 아직 인도에 태어나 서른 살에 처음 정각을 이룬 부처(시성정각)이므로, 그 삼덕도 이 세상에 한정된 매우 얕은 것이다.
넷째, 법화경 본문의 부처. 오백진점겁의 구원으로부터 상주하는 삼덕을 밝힌 것은 본문 수량품이다. 본문의 부처의 주덕은 「나의 이 국토는 안온하니라(我此土安穏)」에, 사덕은 「항상 법을 설하여 교화하느니라(常説法教化)」에, 친덕은 「나 또한 세상의 아버지이니라(我亦爲世父)」에 뚜렷이 선언되어 있다. 강의는 적문과 본문의 우열이 한눈에 분명하다고 말하고, 「교행증어서」의 한 구절을 든다.
爾前迹門の釈尊なりとも物の数ならず
이전 · 적문의 석존이라 하더라도 셈에 들 것이 아니니라
다섯째, 문저 하종의 본불. 그러나 말법의 오늘에는 오직 문저 하종의 본불이신 니치렌 대성인만이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삼덕 구비의 부처라고 강의는 말한다. 본문의 석존이라 하더라도, 본래 선근을 심은 적이 없는 본미유선(本未有善)의 말법 중생에게는 삼덕의 인연이 없고 구할 힘도 없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강의는 「소야입도전허어서」를 든다.
正像二千余年には猶下種の者有り例せば在世四十余年の如し……今は既に末法に入つて在世の結縁の者は漸漸に衰微して権実の二機皆悉く尽きぬ
정법 · 상법 이천여 년에는 아직 하종을 받은 자가 있었으니, 예컨대 재세 사십여 년과 같으니라. …… 이제는 이미 말법에 들어와 재세에 인연을 맺은 자는 점점 쇠미하여 권 · 실 두 근기가 모두 다 없어졌느니라
석존의 불법은 석존과 과거에 인연을 맺은 중생(본이유선)을 숙(熟)하게 하고 탈(脫)하게 하는 불법이다. 그 인연이 다한 말법에는 처음으로 성불의 씨앗을 심는 하종의 부처가 필요하다. 개목초 하권의 「탈익의 삼덕」(제39장)과 「하종의 아버지」(제40장)는 이 구분을 정면으로 다룬다.
다섯 층의 부처를 구분하는 이 틀은 니치칸 상인이 오중상대(내외 · 대소 · 권실 · 본적 · 종탈)를 부처의 신분에 적용한 것과 겹친다. 같은 「석존」이라는 이름 아래에도 어느 경에서 어떤 모습으로 설해졌는가에 따라 삼덕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이 요점이다.
주사친 삼덕의 오늘의 의미
강의는 이어서 주사친의 삼덕이 오늘의 생활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길게 논한다. 먼저 정의를 세운다. 주덕은 권속을 지켜 가는 힘 · 작용, 사덕은 권속을 이끌어 가는 힘 · 작용, 친덕은 권속을 자애하는 작용이다. 삼덕을 신분이나 지위가 아니라 「작용」으로 정의한 것이 이 논의의 출발점이다.
봉건적 삼덕과의 구별
현대인은 주사친이라고 하면 흔히 복고적이고 봉건적인 것으로 여긴다. 강의는 이것이 근대 이후 유럽의 개인주의 · 자아 중심주의를 잘못 이해한 데서 생긴 반응이라고 본다. 자아의 독립을 앞세운 나머지 부모에게 반항하고 무시하는 것을 옳은 일처럼 여기고, 스승의 존재를 부정하며 홀로 걷는 것을 높이 치고, 주군의 의의를 단지 봉건 사상의 폐단으로 배척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자기 확립도, 사회의 지속적 향상도 주사친 삼덕의 올바른 의의가 철저해지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의는 말한다. 강의는 삼덕의 확립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기반이자 근원이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봉건 시대에는 주 · 사 · 친의 의의가 편협하게 평가되어 자아가 경시되고 억압되었으며 많은 폐해가 있었다. 「주군을 위해서는 목숨도……」라는 충군 사상, 「스승에게서 세 자 물러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사제론, 「어버이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효행 사상은 모두 가지와 잎에 사로잡혀 뿌리인 자기를 무시한 본말전도의 사고방식이었다. 그 결과 「효를 다하려 하면 충이 되지 못하고, 충을 다하려 하면 효가 되지 못한다」며 괴로워한 다이라노 시게모리의 이야기나, 아버지 말을 들으면 짚신을 신으라 하고 어머니 말을 들으면 나막신을 신으라 하는 효자 이야기처럼,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비극이 생겨났다고 강의는 지적한다.
강의가 지금 주사친을 논하는 것은 그런 불합리를 되살리자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확립을 중심으로 한 인생의 활동, 곧 최고의 자기 완성이라 할 일생성불을 근본으로 한 인생의 본질론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의는 분명히 한다.
주덕 — 지키는 힘
주덕은 권속을 지키는 힘 · 작용이므로 고정된 것이 아니며, 시대가 바뀌면 주인의 형태도 바뀐다. 봉건 사회에서는 주군에게 생살여탈의 권한이 맡겨져 있었고, 일본에서는 천황을 주인으로 삼은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대에는 사회 그 자체가 주인이다. 사회에도 여러 층이 있어, 한 집에서는 집안의 기둥이 되는 사람이, 회사에서는 그 중심이 되는 존재가 주인이다. 오늘날 주인으로서의 작용을 가장 강하게 지닌 것은 국가 사회다.
본래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무리를 이루어 사회를 만든 것은 살아가기 위한 필연적 요구였다. 그러므로 사회는 전체와의 조화 속에서 개인의 행복을 지키고 키워야 하며, 그럴 때에야 주덕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사회나 국가가 반드시 거기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지키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개인의 행복을 희생시켜 성립하기도 한다. 이것은 주덕을 잃은 모습이며, 그 속에 사는 사람만큼 불행한 이는 없다. 강의는 묘법을 근저로 하지 않는 사회는 참된 주덕을 발휘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누구도 사회를 떠나 살 수 없으며 사회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입고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 거꾸로 사회에 미(美)와 이(利)의 가치를 내놓는 것이 당연하며, 이 행위를 선(善)이라 한다. 강의는 불행한 이들에게 신앙을 전해 살아갈 희망과 기쁨을 주는 절복이야말로 최고의 선이라고 말한다. 사회가 아무리 개인의 행복을 지킨다 해도 그것은 행복의 일부분을 지키는 것이어서 주덕의 일부를 지닌 데 지나지 않는다. 모든 민중의 행복을 근저에서 끝까지 지켜 내는 것은 오직 니치렌 대성인이며, 이것이 주덕의 궁극이라고 강의는 결론짓는다.
사덕 — 이끄는 힘, 지식과 지혜
사덕은 권속을 이끄는 힘 · 작용이다. 「스승」이라 하면 곧 학교의 교사나 대학 교수를 떠올리며, 그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사덕의 일부를 갖추었다. 그러나 강의는 많은 교육자가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노동자처럼 되어 버린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교육 당국이 내건 인재 육성의 구호도 표면적 호소이거나 통치에 편리한 인물을 만들려는 것일 뿐, 인생관과 사회관을 확립하게 하고 인격을 완성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참된 스승은 제자에게 지식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지혜를 드러나게 해야 한다. 지식은 지혜를 여는 문이다. 지식을 넓고 깊게 익히면 인생에 윤택함과 풍요가 생긴다. 건강에 관한 지식, 법률에 관한 지식, 정치에 관한 지식이 생활 향상에 얼마나 필요한지, 무지 때문에 민중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생각하면 지식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식은 지혜 그 자체가 아니다. 지식인이 반드시 인생의 지혜로운 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지식을 살려 행복을 부르는 것도, 그것을 악용해 불행을 가져오는 것도 인간 생명에서 드러나는 지혜의 작용에 달려 있다.
강의는 여기서 어서에 인용된 『법화현의』 권5의 문을 든다.
玄義の五に云く恵能く惑を破し理を顕す・理は惑を破すこと能わず、理若し惑を破せば一切衆生・悉く理性を具す何が故ぞ破せざる、若し此の恵を得れば則ち能く惑を破す故に智を用って乗体と為す
『현의』 권5에 이르기를, 「지혜는 능히 미혹을 깨뜨리고 이치를 드러내지만, 이치는 미혹을 깨뜨리지 못한다. 이치가 만약 미혹을 깨뜨린다면 일체중생이 모두 이성(理性)을 갖추었는데 어찌하여 깨뜨리지 못하는가. 만약 이 지혜를 얻으면 곧 능히 미혹을 깨뜨리므로 지혜를 승(乘)의 체로 삼는다」 하였느니라
이치(理)는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미혹을 깨뜨리지 못하고, 미혹을 깨뜨리는 것은 지혜다. 어떤 고난도 깨뜨리고 당당히 인생을 걸어가는 근원은 지혜이며, 오늘의 교육이 결함을 드러내는 것은 이 점에 유의하지 않고 지식을 위한 지식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강의는 진단한다. 진학 시험 · 취업 시험을 위한 주입식 교육, 직함을 얻기 위한 교육은 사덕 없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사람들에게 근원적 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정법뿐이며, 모든 지식은 정법의 지혜로 인생과 사회에 최고로 살아난다. 강의는 삼대비법의 본존을 믿음으로써 「이신대혜(以信代慧)」, 곧 믿음으로 지혜를 대신하는 원리에 따라 인생의 바른 눈이 열리고,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나라의 앞길과 세계의 평화까지 세워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이것이 대성인과 본존이 사덕의 궁극인 까닭이라고 한다. 「이신대혜」는 니치렌 불법의 수행론에서 말법의 범부가 지혜가 아니라 믿음으로 묘법에 들어간다는 원리로, 개목초의 「눈을 연다(開目)」는 제목과도 맞닿는다.
친덕 — 자애하는 힘, 효의 완성
친덕은 권속을 자애하는 작용이다. 어버이를 공경해야 함은 당연하다. 대성인도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지묘법화문답초」, 464쪽)라고 자주 말씀하셨듯이, 이 귀한 그릇과 같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온갖 어려움을 넘어 자애 속에 길러 준 은혜는 헤아릴 수 없다. 법률조차 어버이를 죽이는 것을 특별히 무겁게 처벌했고, 불법에서도 어버이를 해치는 것은 오역죄의 하나로서 이를 범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설한다.
어버이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것은 외전과 내전이 함께 설한다. 그러나 유교는 왜 효도해야 하는지의 궁극을 설하지 않고, 효도의 방법도 표면적 · 형식적인 삶의 방식만 보인다. 불법은 어버이에게 물건을 드리거나 어버이 뜻을 따르는 것을 하품 · 중품의 낮은 효양으로 보고, 참된 효양은 최고의 불법으로 자신도 변혁하고 어버이에게도 최고의 행복을 주는 것이라고 설한다. 더구나 영원한 생명관에 서서, 살아 있는 어버이뿐 아니라 세상을 떠난 어버이에게까지 추선공양의 원리로 공양할 수 있음을 밝힌다.
法華経を持つ人は父と母との恩を報ずるなり、我が心には報ずると思はねども此の経の力にて報ずるなり
법화경을 지니는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은혜를 갚는 것이니라. 내 마음으로는 갚는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이 경의 힘으로 갚는 것이니라
본존을 지니는 것 자체가 이미 최고의 효도라는 말씀이다. 유교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도덕 교육이 형식적으로 효양을 강요하는 것과 대조된다고 강의는 말한다.
또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과 미움처럼 상대적인 것이어서, 때로는 그 사랑이 오히려 자식의 성장을 막기도 한다. 이에 비해 부처의 자비는 절대적이며, 그 가운데서도 본불의 자비는 더없이 크다. 강의는 개목초 안의 한 구절을 그 증거로 든다.
されば日蓮が法華経の智解は天台・伝教には千万が一分も及ぶ事なけれども難を忍び慈悲のすぐれたる事は・をそれをも・いだきぬべし
그러므로 니치렌의 법화경 지해는 천태 · 전교에게 천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난을 참고 자비가 뛰어난 것은 두려움마저 품을 만하니라
난을 견디며 일체중생을 위해 법을 넓힌 자비, 그것이 대성인이 일체중생의 어버이인 까닭이라고 강의는 읽는다. 불법은 이렇게 사람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도리를 설하며, 참된 인간성의 확립과 사회의 번영을 위해서도 대성인의 색심불이(色心不二)의 불법에 눈떠야 한다고 강의는 맺는다.
강의는 주 · 사 · 친을 신분이 아니라 「지키는 작용 · 이끄는 작용 · 자애하는 작용」으로 정의한다. 사회 · 교사 · 부모는 각기 그 일부를 지니지만, 삼덕을 모두, 그리고 삼세에 걸쳐 갖춘 이가 부처이며, 말법에서 그 삼덕의 궁극은 니치렌 대성인이라는 것이 이 장 해설의 결론이다.
본문
儒家には三皇・五帝・三王・此等を天尊と号す諸臣の頭目・万民の橋梁なり、三皇已前は父をしらず人皆禽獣に同ず五帝已後は父母を弁て孝をいたす、 所謂重華はかたくなはしき父をうやまひ沛公は帝となつて大公を拝す、武王は西伯を木像に造り丁蘭は母の形をきざめり、 此等は孝の手本なり、比干は殷の世の・ほろぶべきを見て・しゐて帝をいさめ頭をはねらる、公胤といゐし者は懿公の肝をとつて我が腹をさき肝を入て死しぬ此等は忠の手本なり、 尹寿は堯王の師・務成は舜王の師・大公望は文王の師・老子は孔子の師なり此等を四聖とがうす、天尊・頭をかたぶけ万民・掌をあわす、 此等の聖人に三墳・五典・三史等の三千余巻の書あり、其の所詮は三玄をいでず三玄とは一には有の玄・周公等此れを立つ、 二には無の玄・老子等・三には亦有亦無等・荘子が玄これなり、玄とは黒なり父母未生已前をたづぬれば或は元気よりして生じ或は貴賤・苦楽・是非・得失等は皆自然等云云。 かくのごとく巧に立つといえども・いまだ過去・未来を一分もしらず玄とは黒なり幽なりかるがゆへに玄という但現在計りしれるににたり、 現在にをひて仁義を制して身をまほり国を安んず此に相違すれば族をほろぼし家を亡ぼす等いう、
유가에서는 삼황 · 오제 · 삼왕, 이들을 천존(天尊)이라 일컬으니, 모든 신하의 우두머리요 만민의 다리이니라. 삼황 이전에는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 사람이 모두 새나 짐승과 같았으나, 오제 이후에는 부모를 분별하여 효를 다하였느니라. 이른바 중화(重華)는 완고한 아버지를 공경하였고, 패공(沛公)은 황제가 되어 아버지 태공에게 절하였으며, 무왕은 서백(西伯)을 나무 상으로 만들었고, 정란(丁蘭)은 어머니의 모습을 새겼으니, 이들은 효의 본보기이니라. 비간(比干)은 은나라가 망할 것을 보고 굳이 임금에게 간하다가 목이 베였고, 공윤(公胤)이라는 자는 의공(懿公)의 간을 꺼내 자기 배를 갈라 그 간을 넣고 죽었으니, 이들은 충의 본보기이니라. 윤수(尹寿)는 요왕의 스승, 무성(務成)은 순왕의 스승, 태공망은 문왕의 스승, 노자는 공자의 스승이니 이들을 사성(四聖)이라 일컬으니라. 천존도 머리를 숙이고 만민도 합장하였느니라. 이 성인들에게 삼분 · 오전 · 삼사 등 삼천여 권의 책이 있으나 그 귀결은 삼현(三玄)을 벗어나지 않느니라. 삼현이란, 첫째는 유(有)의 현이니 주공 등이 이를 세웠고, 둘째는 무(無)의 현이니 노자 등이요, 셋째는 역유역무(亦有亦無) 등이니 장자의 현이 이것이니라. 현(玄)이란 검다는 뜻이니라. 부모가 낳기 이전을 물으면 혹은 원기(元氣)에서 생겨났다 하고, 혹은 귀천 · 고락 · 시비 · 득실 등은 모두 저절로 그러한 것(自然)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교묘하게 세웠다 하지만 아직 과거와 미래를 조금도 알지 못하느니라. 현이란 검다는 뜻이요 그윽하다는 뜻이니, 그러므로 현이라 하느니라. 다만 현재만을 아는 것 같으니라. 현재에 있어서 인의(仁義)를 정하여 몸을 지키고 나라를 편안히 하며, 이에 어긋나면 일족을 멸하고 집안을 망친다고 하느니라.
어구 풀이
- 三皇삼황
- 중국 고대 전설의 군주. 복희 · 신농 · 황제로 보는 설이 널리 알려졌으나, 복희 · 신농까지는 같고 셋째를 여와 · 수인 · 축융으로 보는 설도 있다. 또 천황 · 지황 · 인황으로 보는 설도 있다.
- 五帝오제
- 오행에서 이끌어 낸 관념이라고도 보며, 누구를 가리키는지 이설이 많다. 『사기』 오제본기는 황제 · 전욱 · 제곡 · 당요(요왕) · 우순(순왕)을 든다. 대성인은 「화한왕대기」에서 소호 · 전욱 · 제곡 · 요왕 · 순왕을 오제로 드셨다.
- 三王삼왕
- 순에게서 왕위를 이어 하 왕조를 연 우왕, 은 왕조를 연 탕왕, 주의 문왕(또는 무왕)을 말한다.
- 重華중화
- 오제의 한 사람인 순왕(우순)의 이름. 완고하고 어리석은 아버지가 후처의 말에 미혹되어 여러 번 순을 죽이려 했다. 지붕에 올려 놓고 불을 지르기도 하고 우물에 생매장하려 하기도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마침내 아버지는 눈이 멀었으나 순은 끝까지 효양을 계속했다고 『서경』 요전 등에 전한다. 효행의 교훈서 「이십사효」의 하나로 꼽힌다.
- 沛公패공
- 전한을 연 고조 유방. 패현 출신이어서 이렇게 불렸다. 진시황이 죽은 이듬해(기원전 209) 군사를 일으켜 항우 등과 함께 진을 무너뜨리고, 뒤에 항우를 꺾어 천하를 통일했다. 기원전 202년 제위에 올라 장안에 도읍했다. 닷새에 한 번씩 아버지 태공에게 절했다고 전한다.
- 武王무왕
- 주 왕조의 시조. 이름은 발(發). 아버지 서백의 뜻을 이어 은의 주왕(紂王)을 칠 때 아버지의 모습을 나무 상으로 새겨 수레에 싣고 출정했다. 주왕을 치고 천하를 통일해 주 왕조를 세웠으며, 아버지에게 문왕이라는 시호를 올렸다. 호경에 도읍하고 아우 주공 단을 보좌로, 태공망을 스승으로 삼아 선정을 폈다.
- 西伯서백
- 주의 문왕. 성은 희(姬), 이름은 창(昌). 이상적 명군으로 꼽힌다. 태공망을 비롯한 명신을 모아 주변 부족을 아우르고 풍읍에 도읍했다. 살아서는 은 왕조에 반기를 들지 않았으나 세력이 강대해 중국 서부의 지배를 맡아 서백이라 불렸다.
- 丁蘭정란
- 후한의 효자.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열다섯 살 때 어머니의 모습을 나무 상으로 새겨 살아 있는 어머니처럼 섬겼다. 아내와 이웃이 그 상을 업신여겼으나 몸으로 상을 지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효자전』 등에 전한다.
- 比干비간
- 『사기』 은본기에 따르면, 은의 주왕이 달기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비간은 「신하 된 자는 죽음으로써 간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강하게 간했다. 주왕은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구멍이 있다고 들었다」며 이를 확인한다는 구실로 비간의 가슴을 갈라 죽였다고 한다(어석은 달기가 성인의 심장 구멍 수를 들어 주왕을 부추겼다는 전승도 전한다). 은은 더욱 어지러워져 마침내 주 무왕에게 망했다. 비간은 기자 · 미자와 함께 「은의 세 어진 이(殷の三仁)」로 일컬어진다.
- 公胤공윤
- 공연(公演) · 홍연(弘演)이라고도 쓴다. 춘추 시대 기원전 660년 무렵 위(衛)의 의공을 섬긴 충신. 사신으로 나가 있던 중 위나라가 적(狄)에게 공격당해 의공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통곡했다. 의공의 내장이 흩어져 있었으므로 스스로 배를 갈라 의공의 간을 넣어 주군의 수치를 감추었다. 중국에서는 군자가 간을 남의 눈에 드러내는 것을 가장 큰 수치로 여겼다.
- 尹寿・務成윤수 · 무성
- 요와 순은 모두 이상적 군주였으나, 각각 윤수와 무성을 스승으로 삼아 천하를 잘 다스렸다. 이상적 군주라도 한 걸음 위에서 조언하고 이끄는 국부(國父) · 국사(國師)가 있어야 가장 완전하다는 뜻을 담는다.
- 堯王・舜王요왕 · 순왕
- 요는 성이 이기(伊祁), 이름은 방훈(放勲)으로, 도(陶)와 당(唐)에 봉해져 도당씨 · 당요라고도 한다. 덕으로 천하를 다스려 중국 황제의 모범으로 꼽혔다. 아들 단주가 불효하여 왕위를 효심 깊은 순에게 물려주었다. 순은 성이 우(虞), 이름은 중화(重華)로, 서른 살에 요의 신임을 얻어 섭정이 되고 요가 죽은 뒤 즉위해 팔원 · 팔개라 불린 열여섯 인재를 써서 선정을 폈다. 아들 상균이 있었으나 홍수를 다스린 공이 있는 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우는 하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 大公望태공망
- 성은 강(姜), 씨는 여(呂), 이름은 상(尚). 은 시대에 반계(磻溪)에 숨어 낚시를 하다가 주의 서백에게 청을 받아 그 스승이 되었다. 문왕의 할아버지 태공이 기다려 바라던(望) 인물이라는 뜻으로 태공망이라 불렸다. 문왕이 죽은 뒤 무왕을 도와 은의 주왕을 멸하고 제(齊)의 군주가 되었다.
- 孔子공자
- 기원전 551년 무렵~기원전 479년. 춘추 시대의 사상가로 유교의 시조.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노나라 창평향 추읍(지금의 산둥성 취푸) 사람. 노나라에서 쓰이지 못하고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 요 · 순 · 문왕 · 주공 단을 존경하고 인(仁)을 이상의 덕으로 삼아 충효의 도를 가르쳤다. 만년에 노나라로 돌아와 저술과 제자 교육에 힘썼고 육경을 편찬했다고 한다. 사후 제자들이 그 언행을 기록한 것이 『논어』다.
- 老子노자
- 생몰년 미상. 『사기』 열전에 따르면 초나라 고현 사람으로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耼) 또는 백양(伯陽). 주나라 장서실의 관리였다. 주 말기의 혼란을 피해 은거하려고 관문을 지날 때 관령 윤희가 도를 청하자 오천여 자의 『노자도덕경』을 지어 주고 떠났다고 한다. 사상의 중심은 「도」이며, 도에는 일(一) · 현(玄) · 허무의 뜻이 있어 만물을 낳는 근원으로서 현상 세계를 다스리고, 사람이 도의 원리를 본받아 행하면 현실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한다.
- 三墳・五典삼분 · 오전
- 공자가 엮었다는 오경의 하나인 『상서』(서경)의 서문에, 삼황의 책을 삼분, 오제의 책을 오전이라 하며 분은 큰 도를, 전은 떳떳한 도를 뜻한다고 했다. 그러나 둘 다 지금 전하지 않아 내용을 알 수 없다.
- 三史삼사
- 사마천의 『사기』, 반고와 누이 반소의 『한서』, 범엽의 『후한서』를 말하나 이설도 있다.
- 周公주공
- 주공 단.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아우. 무왕과 함께 은의 주왕을 쳤고, 무왕이 죽은 뒤 어린 성왕을 도와 동방의 반란을 진압했다. 이를 계기로 황하 하류 평원을 통치권에 넣고 낙읍(뒤의 낙양)을 건설해 주 왕조의 기초를 다졌다. 일족과 공신을 각지에 보내 봉건제를 시행하고, 은대의 신정 제도에 더해 사회 도덕을 관습화한 「예(禮)」를 사회 질서의 기초로 삼았다. 여기서 중국의 유교 사상이 싹텄으며, 공자 등 유학자들이 그 인격과 치세를 깊이 존경했다.
- 荘子장자
- 기원전 370년 무렵~기원전 300년 무렵. 이름은 주(周). 송나라 몽 사람으로 칠원(漆園)의 관리였다고 한다. 『장자』 33편(내편 7 · 외편 15 · 잡편 11)이 전하나, 많은 부분은 전국 시대부터 전한에 걸친 여러 사상가의 손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하며, 내편의 소요유 · 제물론이 장자 본래의 것으로 꼽힌다. 소요유는 도를 체득한 이가 만물 · 자연과 하나 되어 생사를 넘어선 절대 자유의 경지를, 제물론은 만물을 꿰는 도를 체득하여 피차 · 시비 · 선악 · 미추의 대립을 넘어 만물을 평등하게 보는 것을 설한다. 노자와 함께 노장 사상으로 불렸고, 당 현종이 「남화진인」으로 추존했다.
- 三玄삼현
- 유교 · 도가 삼천여 권의 귀결을 셋으로 묶은 말. 유의 현(주공 등), 무의 현(노자), 역유역무의 현(장자). 「현(玄)」은 깊고 그윽한 이치를 뜻하지만, 대성인은 그 글자의 본뜻인 「검다 · 그윽하다」를 들어, 과거와 미래가 캄캄하여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뒤집어 읽으셨다.
- 元気・自然원기 · 자연
- 원기는 천지 만물이 생겨나는 근원의 기운. 자연은 귀천 · 고락 등이 다른 원인 없이 「저절로 그러함」을 뜻한다. 생명의 기원을 원기로, 삶의 처지를 자연으로 설명하는 것이 외전의 생명관이라고 대성인은 정리하셨다.
능설의 사람 — 천존과 효 · 충 · 사도의 본보기
강의는 이 장을 「유교에도 주사친의 삼덕이 있음과, 그 삼덕이 불교에 견주어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설하신 장」으로 규정하고, 대성인의 서술을 세 단계로 나눈다. 첫째, 법을 설한 사람(능설의 사람)을 들어 그 존숭받는 모습을 보이신다. 둘째, 그 성인들이 설한 법(소설의 법)을 들어 그 귀결을 보이신다. 셋째, 「이와 같이 교묘하게 세웠다 하지만」 이하에서 불교의 입장으로 그것을 비판하신다. 이 세 단계 — 사람을 들고, 법을 들고, 비판한다 — 는 다음 제4장의 외도 서술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먼저 삼황 · 오제 · 삼왕은 주사친의 삼덕을 갖춘 「천존」이다. 강의는 「모든 신하의 우두머리」를 어버이이자 스승의 덕으로, 「만민의 다리」를 주군의 덕으로 읽는다. 이 천존이 삼덕을 갖추었으므로 충을 가르치고 효를 가르치며, 주덕으로 만민을 사랑하고 사제의 도를 세워 스승의 은혜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어 효 · 충 · 사도의 본보기를 차례로 드신다.
- 효의 본보기 — 중화(순왕) · 패공(한 고조) · 무왕 · 정란. 완고한 아버지를 끝까지 공경한 순, 황제가 되어서도 아버지에게 절한 유방, 아버지의 목상을 앞세우고 출정한 무왕, 어머니의 목상을 산 어머니처럼 섬긴 정란.
- 충의 본보기 — 비간 · 공윤. 망해 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간한 비간, 죽은 주군의 수치를 제 몸으로 덮은 공윤.
- 사도의 본보기 — 윤수(요의 스승) · 무성(순의 스승) · 태공망(문왕의 스승) · 노자(공자의 스승). 이 넷을 「사성」이라 한다.
- 윤수 — 요왕의 스승
- 무성 — 순왕의 스승
- 태공망 — 문왕의 스승
- 노자 — 공자의 스승
이 목록은 단순한 일화의 나열이 아니다. 「삼황 이전에는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 사람이 모두 새나 짐승과 같았으나, 오제 이후에는 부모를 분별하여 효를 다하였다」는 앞 문장이 보여 주듯, 대성인은 유교가 인류 역사에서 이룬 공적 — 사람을 짐승의 상태에서 끌어올려 효와 충과 사제의 도리를 세운 것 — 을 먼저 정당하게 평가하신다. 현대어역이 풀어 쓰듯, 삼황 · 오제의 시대부터 예의와 인도(人道)가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개목초가 다른 사상을 깨뜨릴 때에도 먼저 그 사상이 이룬 바를 충분히 인정하고 나서 한계를 짚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은, 이 글 전체의 서술 태도로서 기억해 둘 만하다.
또 사성의 목록에서 「노자는 공자의 스승」이라 한 것은 『사기』 노자열전 등이 전하는,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는 전승에 바탕한다. 유가와 도가를 한 계열로 묶어 「유가」의 삼덕으로 다루신 것은, 일본 중세의 불교 문헌이 흔히 그러했듯 중국 사상 전체를 「외전」으로 한데 묶는 시각이다.
삼황 · 오제의 구성원, 삼왕의 셋째(문왕 또는 무왕) 등은 중국 고전 사이에서도 일정하지 않다. 대성인은 「화한왕대기」에서 오제를 소호 · 전욱 · 제곡 · 요 · 순으로 드셨는데, 이는 『사기』 오제본기(황제 · 전욱 · 제곡 · 요 · 순)와 다르며, 황제를 삼황에 넣는 계열의 설과 맞물린다.
본보기들이 보여 주는 것 — 효와 충의 높이와 한계
대성인이 든 본보기들은 하나하나가 유교 윤리의 정수를 보여 주면서, 동시에 다음 장에서 판정될 한계를 미리 비추고 있다.
순의 효는 상대의 덕에 좌우되지 않는 효다. 아버지는 후처의 말에 미혹되어 아들을 불태우고 생매장하려 했으나, 순은 끝까지 효양을 그치지 않았다. 효가 어버이의 됨됨이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자식 된 이의 근본 도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유방의 예는 황제가 된 뒤에도 아버지에게 절했다는 것으로, 주군의 자리보다 자식의 자리를 앞세운 이야기다. 주덕과 친덕이 한 사람 안에서 부딪칠 때 친덕을 앞세운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무왕과 정란의 예는 세상을 떠난 어버이에 대한 효다. 무왕은 아버지의 목상을 앞세워 그 숙원을 이루었고, 정란은 어머니의 목상을 산 어머니처럼 섬겼다. 효가 어버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지극한 이야기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유교의 한계도 드러난다. 그들이 세상을 떠난 어버이를 위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모습을 새겨 섬기는 것까지였다. 어버이의 생명이 지금 어디에서 어떤 과보를 받고 있는지, 그 후세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는 유교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다. 제3장의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므로 부모 · 주군 · 스승의 후세도 돕지 못하니 은혜를 모르는 자」라는 판정은 이 지극한 효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비간과 공윤의 충도 마찬가지다. 비간은 목숨을 걸고 간했고, 공윤은 제 몸을 갈라 죽은 주군의 수치를 덮었다. 충의 극치다. 그러나 비간의 간언은 나라를 구하지 못했고, 공윤이 지킨 것은 주군의 몸과 이름이었다. 주군의 생명 그 자체를 삼세에 걸쳐 구하는 길은 거기에 없다.
대성인은 개목초의 뒤쪽(제12장)에서 외전 전체의 귀결을 이렇게 정리하신다.
外典・三千余巻の所詮に二つあり所謂孝と忠となり忠も又孝の家よりいでたり、孝と申すは高なり天高けれども孝よりも高からず又孝とは厚なり地あつけれども孝よりは厚からず、聖賢の二類は孝の家よりいでたり何に況や仏法を学せん人・知恩報恩なかるべしや
외전 삼천여 권의 귀결은 둘이 있으니 이른바 효와 충이니라. 충도 또한 효의 집에서 나왔느니라. 효라 함은 높음(高)이니, 하늘이 높다 하나 효보다 높지 않으며, 또 효란 두터움(厚)이니, 땅이 두텁다 하나 효보다 두텁지 않으니라. 성현의 두 부류는 효의 집에서 나왔느니라. 하물며 불법을 배우는 사람이 지은보은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유교가 세운 효와 충의 높이를 대성인은 조금도 깎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높이를 기준으로 삼아, 불법을 배우는 이는 더욱 지은보은해야 한다고 하신다. 제2장의 본보기들은 개목초 전체에서 「보은」이라는 주제가 시작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소설의 법 — 삼분 · 오전 · 삼사와 삼현
다음으로 대성인은 이 성인들이 설한 법을 드신다. 삼분 · 오전 · 삼사 등 삼천여 권의 책이 그 법이며, 그 원리는 유의 현 · 무의 현 · 역유역무의 현이라는 「삼현」을 벗어나지 않는다.
- 유(有)의 현 — 주공 등이 세웠다. 현대어역은 「천지를 유(有)에 맞추어 세운 현」이라 풀이한다. 세계를 실재하는 것으로 보고 그 위에 예와 질서를 세우는 입장이다.
- 무(無)의 현 — 노자. 천지 자연을 무(無)에 맞추어 세운다. 『도덕경』이 「유는 무에서 생긴다」고 하여 만물의 근원을 무명 · 무형의 도에 둔 것과 통한다.
- 역유역무(亦有亦無)의 현 — 장자. 천지 자연을 유이기도 하고 무이기도 하다고 세운다. 제물론이 유와 무, 피와 차의 대립을 넘어서려 한 것과 통한다.
이 세 갈래는 다음 장의 외도의 세 극리(인중유과 · 인중무과 · 인중역유과역무과)와 정확히 대구를 이룬다. 중국 사상과 인도 사상이 각각 「있다 · 없다 ·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는 세 입장으로 정리되는 것이다. 불교의 교학에서 유 · 무 · 역유역무 · 비유비무의 넷을 「사구(四句)」라 하여, 사물을 판단하는 범부의 사고가 이 네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는데, 대성인은 외전 · 외도의 극리를 이 사구의 틀로 정리하여, 그것이 아무리 정교해도 사구의 분별을 벗어나지 못함을 은연중에 보이신다고 볼 수 있다.
원기와 자연 — 생명관이 서지 않은 철학
삼현의 철학은 생명의 기원과 인생의 처지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대성인은 두 가지로 요약하신다. 부모가 낳기 이전을 물으면 「원기에서 생겨났다」고 하고, 귀천 · 고락 · 시비 · 득실 같은 삶의 차별은 「모두 자연」이라고 한다.
강의는 이 두 설명을 차례로 검토한다. 부모가 낳기 이전의 일은 알 수 없으므로 원기에서 생겼다고 하지만, 그 원기라는 것은 관념적인 것이어서 「천지의 정기」라고 설명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할 뿐이다. 참으로 미덥지 못하지만, 생명관이 확립되지 않은 유교로서는 이렇게 다루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강의는 말한다. 또 생활의 문제인 귀천 · 고락 · 시비 · 득실을 자연의 것, 바꾸어 말하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으로 보는 것도, 삼세에 걸친 인과의 법칙을 모르는 이로서는 달리 생각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강의는 오늘날에도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지적하고, 그것은 참된 불교 철학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한다. 그들의 학설은 아무리 교묘하게 짜여 있어도 생명의 진실을 다 설하지 못한 점에서 서양 철학의 어떤 흐름과도 닮은 데가 있다고 강의는 본다.
「현이란 검다는 뜻이니라」 — 현재만 아는 가르침
이 장의 두 번째 단락에서 대성인은 「현(玄)」이라는 글자를 붙잡아 유가 철학 전체를 뒤집어 보이신다. 「현」은 본래 노자가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玄之又玄)」고 했듯이 깊고 그윽한 이치를 가리키는 최고의 찬사다. 그런데 대성인은 그 글자의 본뜻인 「검다 · 그윽하다」를 들어, 현이란 과거와 미래가 캄캄하여 보이지 않는다는 고백이라고 풀이하신다. 「이와 같이 교묘하게 세웠다 하지만 아직 과거와 미래를 조금도 알지 못하느니라. 현이란 검다는 뜻이요 그윽하다는 뜻이니, 그러므로 현이라 하느니라」.
강의는 이 대목을 생명론으로 받는다. 생명은 영원하며, 과거 · 현재 · 미래는 알든 모르든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은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므로 「현」이라 하고, 검다 · 모른다 · 그윽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삼천여 권의 책도 「현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말고는 다루지 못했다. 현대어역도 「다만 현재의 일만은 아는 것 같지만 그것도 불법과 같은 실상은 물론 알 리 없다」고 풀어, 「현재만을 아는 것 같다(しれるににたり)」의 「닮았다」에 담긴 단서를 놓치지 않는다.
그 현재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현재에 있어서 인의를 정하여 몸을 지키고 나라를 편안히 하며, 이에 어긋나면 일족을 멸하고 집안을 망친다」. 곧 유교는 인의(仁義)라는 현세의 규범을 세워, 지키면 일신과 국가가 편안하고 어기면 일족이 망한다는 현세의 인과만을 말한다. 이 현세의 인과는 그 자체로는 틀리지 않지만, 생명이 삼세에 걸쳐 있다면 그것은 인과의 한 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 장에서 대성인은 바로 이 지점, 곧 「과거와 미래를 모르면 부모 · 주군 · 스승의 후세를 돕지 못한다」는 데서 유교의 삼덕이 참된 삼덕이 될 수 없음을 판정하신다.
유가의 삼덕은 사람을 짐승의 상태에서 끌어올린 공적이 크다. 그러나 그 가르침의 귀결인 삼현은 생명의 기원을 원기로, 삶의 차별을 자연으로 설명할 뿐 과거 · 미래를 알지 못한다. 대성인은 「현(玄)」을 「검다」로 읽어, 유교가 현세의 인의에 머문 가르침임을 드러내셨다.
본문
此等の賢聖の人人は聖人なりといえども過去を・しらざること凡夫の背を見ず・未来を・かがみざること盲人の前をみざるがごとし、 但現在に家を治め孝をいたし堅く五常を行ずれば傍輩も・うやまい名も国にきこえ賢王もこれを召して或は臣となし或は師とたのみ或は位をゆづり天も来て守りつかう、 所謂周の武王には五老きたりつかえ後漢の光武には二十八宿来つて二十八将となりし此なり、而りといえども過去未来をしらざれば父母・主君・師匠の後世をもたすけず不知恩の者なり・まことの賢聖にあらず、 孔子が此の土に賢聖なし西方に仏図という者あり此聖人なりといゐて外典を仏法の初門となせしこれなり、 礼楽等を教て内典わたらば戒定慧をしりやすからせんがため・王臣を教て尊卑をさだめ父母を教て孝の高きをしらしめ師匠を教て帰依をしらしむ、 妙楽大師云く「仏教の流化実に玆に頼る礼楽前きに馳せて真道後に啓らく」等云云、天台云く「金光明経に云く一切世間所有の善論皆此の経に因る、 若し深く世法を識れば即ち是れ仏法なり」等云云、止観に云く「我れ三聖を遣わして彼の真丹を化す」等云云、 弘決に云く「清浄法行経に云く月光菩薩彼に顔回と称し光浄菩薩彼に仲尼と称し迦葉菩薩彼に老子と称す天竺より此の震旦を指して彼と為す」等云云。
이러한 현성들은 성인이라 하지만 과거를 알지 못함은 범부가 제 등을 보지 못함과 같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함은 맹인이 앞을 보지 못함과 같으니라. 다만 현재에 집안을 다스리고 효를 다하며 굳게 오상(五常)을 행하면 동료도 공경하고 이름도 나라에 알려져, 어진 왕도 이를 불러 혹은 신하로 삼고 혹은 스승으로 의지하며 혹은 왕위를 물려주고, 하늘도 와서 지키고 섬기느니라. 이른바 주의 무왕에게는 다섯 노인이 와서 섬기고, 후한의 광무제에게는 이십팔수가 와서 이십팔 장수가 된 것이 이것이니라. 그러나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므로 부모 · 주군 · 스승의 후세도 돕지 못하니 은혜를 모르는 자요 참된 현성이 아니니라. 공자가 「이 땅에는 현성이 없다. 서방에 불도(佛圖)라는 이가 있으니 이것이 성인이다」라고 하여 외전을 불법의 첫 문으로 삼은 것이 이것이니라. 예악 등을 가르쳐서 내전이 건너오면 계 · 정 · 혜를 알기 쉽게 하려고, 왕과 신하를 가르쳐 존비를 정하고, 부모를 가르쳐 효의 높음을 알게 하고, 스승을 가르쳐 귀의를 알게 하였느니라. 묘락대사가 이르기를 「불교가 흘러 퍼져 교화함이 실로 이에 힘입었다. 예악이 앞서 달리고 참된 도가 뒤에 열렸다」 하였고, 천태가 이르기를 「금광명경에 이르기를, 일체 세간의 모든 선한 논은 다 이 경에 말미암는다. 만약 세상 법을 깊이 알면 곧 이것이 불법이니라」 하였으며, 지관에 이르기를 「내가 세 성인을 보내어 저 진단(震旦)을 교화한다」 하였고, 홍결에 이르기를 「청정법행경에 이르기를, 월광보살은 그곳에서 안회라 일컫고, 광정보살은 그곳에서 중니(仲尼)라 일컫고, 가섭보살은 그곳에서 노자라 일컬었다. 천축에서 이 진단을 가리켜 그곳이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 五常오상
- 유교에서 사람이 늘 지켜야 할 다섯 도리. 오륜 · 오행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의(義), 어머니는 자(慈), 형은 우(友), 아우는 공(恭), 자식은 효(孝)라는 설이 있고, 『백호통의』는 인 · 의 · 예 · 지 · 신을, 『맹자』는 부자유친 · 군신유의 · 부부유별 · 장유유서 · 붕우유신을 든다.
- 周の武王には五老きたりつかえ주의 무왕에게 다섯 노인이 와서 섬기고
- 무왕이 아버지 문왕의 숙원을 이루려 군사를 일으켰을 때, 오제성(五帝星)이 화현한 다섯 노신이 와서 섬겼다는 전승. 『여씨춘추』 권25는 주공 단 · 소공 석 · 여상 · 필공 고 · 소분생을 든다.
- 後漢の光武には二十八宿来って후한의 광무제에게 이십팔수가 와서
- 광무제는 후한의 시조 유수(劉秀). 자는 문숙. 서기 22년에 거병하고 이듬해 곤양에서 왕망의 군대를 깨뜨렸으며, 25년에 즉위해 한을 다시 일으켰다. 낙양에 도읍하여 내치와 문교에 힘썼고, 36년에 중국을 통일했다. 하늘의 스물여덟 별자리(이십팔수)가 응현하여 스물여덟 장수가 되어 지키고 섬겼다는 이야기가 『후한서』 · 『십팔사략』에 보인다(운대 이십팔장).
- 仏図불도
- 붓다의 음사. 석존을 가리킨다.
- 孔子が此の土に賢聖なし西方に仏図という者あり공자가 이 땅에 현성이 없고 서방에 불도라는 이가 있다
- 『열자』 중니편의 문답에 바탕한다. 상(商)의 태재가 공자에게 「그대는 성인인가」 묻자 공자는 「널리 배우고 많이 아는 자일 뿐」이라 답하고, 삼왕 · 오제 · 삼황이 성인인가 묻는 데에도 각각 지용 · 인의 · 때에 맡긴 이들일 뿐 성인인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태재가 놀라 그러면 누가 성인이냐고 묻자, 공자는 한참 뒤에 「서방 사람 가운데 성인이 있다.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믿고, 교화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해지며, 넓고 넓어 백성이 이름 붙일 수 없다」고 했다.
- 妙楽大師묘락대사
- 711~782. 당대의 천태종 제9조로 중흥의 조사. 이름은 담연(湛然). 상주 진릉현 형계 사람으로 형계존자라고도 하며, 처음 묘락사에 머물러 묘락대사라 불렸다. 대대로 유학을 업으로 한 집안 출신이다. 730년 좌계 현랑에게 천태 교학을 배우고 748년 38세에 출가했다. 선 · 화엄 · 진언 · 법상이 성하고 천태가 쇠퇴하던 시대에 법화일승의 입장에서 여러 종을 논파하고 천태삼대부의 주석서 『법화현의석첨』 · 『법화문구기』 · 『지관보행전홍결』 등을 지었다. 현종 · 숙종 · 대종의 부름에도 병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고, 만년에 천태산 국청사에 들어가 불롱도량에서 입적했다. 전교대사가 사사한 도수 · 행만이 그 제자다.
- 天台천태
- 538~597. 천태종의 개조(혜문 · 혜사에 이어 제3조, 용수를 개조로 하면 제4조). 이름은 지의(智顗), 자는 덕안. 천태산에 머물러 천태대사, 지자대사라 존칭한다. 형주 화용현 사람. 18세에 출가해 560년 광주 대소산으로 남악대사 혜사를 찾아갔다. 남악은 「옛날 영산에서 함께 법화를 들었다. 숙세의 인연이 따라 지금 다시 왔다」며 만남을 기뻐했다. 대소산 수행 끝에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의 「이것이 참된 정진이요, 이것을 참된 법으로 여래께 공양함이라 한다」는 구절에 이르러 몸과 마음이 활연히 열려 법화삼매를 얻었다(대소개오). 금릉 와관사에서 8년간 강설하고 575년 천태산에 들어가 수선사를 세웠다. 587년 『법화문구』를 강설하고, 591년 진왕 양광(뒤의 양제)에게 보살계를 주어 지자대사의 호를 받았으며, 형주 옥천사에서 『법화현의』 · 『마하지관』을 강설했다. 그 강설은 제자 장안대사 관정이 필록해 법화삼대부로 정리되었다.
- 止観지관
- 『마하지관』. 594년 4월 26일부터 한여름 90일 동안 형주 옥천사에서 천태대사가 강술한 것을 장안대사가 필록했다. 불교의 실천 수행을 「지관」으로 체계화했으며, 법화경의 일심삼관 · 일념삼천을 열어 보여 자기 마음에 증득하는 수행의 방법을 제시해 천태대사 출세의 본회로 꼽힌다. 정설분은 대의 · 석명 · 체상 · 섭법 · 편원 · 방편 · 정수 · 과보 · 기교 · 지귀의 십광(十広)으로 짜였으나, 정수장의 십경 가운데 제8 증상만경 이하는 설해지지 않은 채 끝난다. 본문이 인용한 「세 성인을 보낸다」는 문은 청정법행경의 문이다.
- 弘決홍결
- 『지관보행전홍결』 10권. 묘락대사가 지은 『마하지관』 주석서. 무정불성에 관한 십난(十難)과, 화엄종의 법화점돈 · 화엄돈돈설을 깨뜨리는 등 마하지관의 묘지를 밝히며 천태 안팎의 이의를 파절한다.
- 清浄法行経청정법행경
- 「천축의 동북 진단의 백성은 아직 믿지 않는 죄가 많다. 내가 이제 먼저 제자 세 성인을 보낸다. 모두 보살이다. 가서 나타나게 한다. 마하가섭은 그곳에서 노자라 일컫고, 광정동자는 중니라 이름하며, 월명유동은 안연이라 부른다. 공자와 안회가 스승과 제자로서 오경 · 시전 · 예전 · 위의 · 법칙을 강론하여 점차로 이끌어 교화한 뒤 불교가 그곳에 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경. 중국에서 찬술된 경전으로 본다.
- 月光菩薩월광보살
- 월정 · 월광변조라고도 한다. 약사여래의 오른쪽 협시로 일광보살과 짝을 이룬다. 『관정경』은 과거 무량겁 전광여래 때 오탁에 찬 사바세계에서 한 범지 의왕의 두 아들 일조 · 월조가 중생의 고통을 보고 발심해 부처께 공양했고, 그 공덕으로 아버지는 약사여래, 일조는 일광보살, 월조는 월광보살이 되었다고 설한다.
- 顔回안회
- 안연이라고도 한다. 춘추 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회, 자는 자연. 공자의 제자로 공자가 가장 신뢰했다. 공자보다 서른 살 어렸으나 서른두 살에 요절해 공자가 「아,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 하고 통탄했다. 가난을 견디며 도를 즐기고 스승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켰다. 한 고조가 복성공(復聖公)으로 봉하고 당대에는 아성(亞聖)의 호를 받았다.
외전을 판정하는 세 단계
강의는 제2장과 제3장을 한 묶음으로 읽는다. 첫째, 삼황 · 오제 · 삼왕이라는 유가가 존경하는 사람을 들고(제2장 첫머리), 둘째, 「이 성인들에게 삼분 · 오전 · 삼사 등 삼천여 권의 책이 있다」고 하여 설한 법을 보이며, 셋째, 「이와 같이 교묘하게 세웠다 하지만」 이하에서 불교의 입장으로 이것을 비판하신다. 그리고 그 비판 안에서도 다시 두 단계가 있다. 먼저 그 법을 깨뜨리고 그 사람을 깨뜨린 뒤, 「공자가 이 땅에 현성이 없다고 하였다」를 든 대목부터는 유교를 불교 안으로 받아들여(會入) 「불교의 첫 문」으로 삼아야 함을 보이신다.
곧 이 장의 논리는 「파(破)」와 「회(會)」의 두 겹이다. 유교는 과거 · 미래를 모르므로 참된 현성이 아니라고 깨뜨리고(파), 그러나 그 유교는 불교가 들어오기 위한 길을 닦은 것이므로 불교의 첫 문이라고 받아들인다(회). 이 「파하고 회하는」 방식은 다음 장의 외도에서도 「외도의 귀결은 내도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긴요하다」로 되풀이되며, 천태 교학이 이전의 여러 경을 법화경으로 「개회(開會)」하는 방식과도 구조가 같다.
- 묘락「예악이 앞서 달리고 참된 도가 뒤에 열렸다」
- 금광명경「세상 법을 깊이 알면 곧 이것이 불법」
- 지관「세 성인을 보내어 진단을 교화한다」
- 청정법행경「월광보살=안회 · 광정보살=중니 · 가섭보살=노자」
- 열반경「외도의 경서는 다 부처의 설」
-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삼독이 있음을 보이고 사견의 모습을 나타낸다」
과거를 모름은 등을 보지 못함과 같다
현세의 덕과 그 보상
대성인은 먼저 유가 현성의 덕을 충분히 인정하신다. 현세에서 집안을 다스리고 효를 다하며 오상을 굳게 행하면 동료가 공경하고 이름이 나라에 알려지며, 어진 왕이 불러 신하로 삼거나 스승으로 의지하거나 왕위를 물려주기까지 하고, 하늘의 신들도 와서 지키고 섬긴다. 무왕에게 다섯 노신이 오고 광무제에게 이십팔수가 장수로 내려왔다는 것이 그 예다. 현대어역은 「하늘도 와서 지키고 섬긴다」를 「제천선신도 와서 지키고 섬겼다」로 풀이한다. 유교의 덕이 현세에서 얼마나 높은 보상을 받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불지은의 자」 — 후세를 돕지 못하는 은혜
그러나 대성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결정적 한계를 지적하신다.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므로, 존경하는 부모 · 주군 · 스승이 세상을 떠나면 그 내세의 행복을 도울 수 없다. 그러므로 결국 은혜를 모르는 자이며 참된 현성이 아니다.
강의는 이 판정의 바탕에 종교의 목적에 관한 근본 물음이 있다고 본다. 종교의 목적은 사람을 영원한 생명 속에 안주하게 하는 데 있다. 영원한 생명을 인정하면 과거 · 현재 · 미래의 삼세 생명관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생명을 인으로 하여 현재의 생명이 과가 되고, 현재의 생명이 다시 인이 되어 미래의 생명이 과가 된다. 이 삼세 유전의 생명이 인과의 법칙에 따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인과의 법칙을 세우지 못하는 유교에서는 참된 인생관이 확립될 수 없으므로, 불교에 대해 유교를 「외도」라 한다는 것이 강의의 설명이다. 「범부가 제 등을 보지 못한다」는 비유는, 과거가 실은 자기 생명의 뒤쪽에 늘 붙어 있는데도 스스로 보지 못한다는 뜻이고, 「맹인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비유는 미래가 바로 눈앞에 놓여 있는데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유교는 현재를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지를 가르치지만, 과거 · 미래를 모르므로 「부모 · 주군 · 스승의 후세도 돕지 못하니 은혜를 모르는 자요 참된 현성이 아니니라」고 판정된다. 강의는 「불지은(不知恩)」을 주사친의 삼덕에 현재와 미래를 통해 보은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고, 은혜를 갚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특권을 버리고 짐승과 같아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가가 효와 충으로 사람을 짐승의 상태에서 끌어올렸다면(제2장), 바로 그 효와 충을 완성하지 못함으로써 다시 「불지은」에 머문다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지은 · 보은은 개목초 전체를 꿰는 주제다. 하권으로 이어지는 제12장 이하에서 대성인은 「외전 삼천여 권의 귀결은 효와 충」이며 「불제자는 반드시 사은(四恩)을 알아 지은보은해야 한다」고 하시고, 이승이 부모를 영영 성불하지 못하는 길에 들게 하므로 「도리어 불지은의 자」가 된다고 판정하신다. 유가의 불지은(제3장)과 이승의 불지은(제12장)이 같은 논리로 짝을 이룬다.
외전은 불교의 첫 문
공자의 「서방의 성인」
이어 대성인은 공자가 「이 땅에는 현성이 없다. 서방에 불도라는 이가 있으니 이것이 성인이다」라고 하여 외전을 불법의 첫 문으로 삼았다고 하신다. 이 말은 『열자』 중니편의 문답에 바탕한다. 상나라 태재가 공자에게 성인이냐고 묻고, 이어 삼왕 · 오제 · 삼황이 성인이냐고 차례로 묻는데, 공자는 그들이 지용 · 인의 · 때에 맡긴 이들일 뿐 성인인지는 모르겠다고 답한다. 놀란 태재가 그러면 누가 성인이냐고 묻자, 공자는 한동안 침묵한 뒤 「서방 사람 가운데 성인이 있다.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믿으며, 교화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해진다. 넓고 넓어 백성이 이름 붙일 수 없다. 나는 그가 성인인 듯하다고 의심하지만 참으로 성인인지 아닌지는 모른다」고 답한다. 태재는 말없이 속으로 「공구가 나를 속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성인 당시 일본과 중국의 불교계에서는 이 「서방의 성인」을 석존으로 읽는 해석이 널리 통용되었다. 대성인은 그 해석을 받아들여, 유교의 시조 자신이 더 높은 성인의 출현을 예고함으로써 외전이 불교로 들어가는 첫 문이 되었다고 보신다.
『열자』는 전국 시대 열어구(列禦寇)의 이름을 붙인 책이지만, 현전본은 위진 시대에 정리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학계에서 유력하며, 「서방의 성인」을 붓다로 읽는 해석도 불교가 중국에 정착한 뒤의 독법으로 본다. 청정법행경 역시 중국에서 찬술된 경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대성인이 이 문헌들을 드신 취지는 문헌의 연대가 아니라, 외전과 불법의 관계 — 낮은 가르침이 높은 가르침을 위한 길을 닦는다는 구조 — 를 보이는 데 있다.
예악이 먼저 달리고 참된 도가 뒤에 열린다
그 첫 문의 내용을 대성인은 이렇게 정리하신다. 유교가 예악 등을 가르친 것은 뒤에 불교가 건너왔을 때 계 · 정 · 혜를 알기 쉽게 하려는 것이었다. 왕과 신하를 가르쳐 존비를 정한 것은 주덕을, 부모를 가르쳐 효의 높음을 알게 한 것은 친덕을, 스승을 가르쳐 귀의를 알게 한 것은 사덕을 드러낸 것이다. 현대어역이 이렇게 셋을 삼덕에 맞추어 풀이하듯, 유교의 주사친은 불교의 주사친을 이해하기 위한 예비 교육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네 개의 문이 이어진다.
첫째, 묘락대사의 「불교가 흘러 퍼져 교화함이 실로 이에 힘입었다. 예악이 앞서 달리고 참된 도가 뒤에 열렸다」. 현대어역은 「불교의 유포는 실로 유교의 힘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유교의 예악이 먼저 유포되고 참된 도인 불법이 뒤에 홍통되었다」로 풀이한다.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묘락대사가 이렇게 말한 것은 무게가 있다.
둘째, 천태대사가 인용한 금광명경의 「일체 세간의 모든 선한 논은 다 이 경에 말미암는다. 만약 세상 법을 깊이 알면 곧 이것이 불법이니라」. 세간의 선한 가르침은 그 근원을 캐 들어가면 모두 불법에서 나온 것이며, 세상 법을 깊이 아는 것이 곧 불법이라는 것이다. 법화경 법사공덕품의 「모든 세간의 치세의 언어와 생업을 설하는 것이 다 정법에 따른다」는 정신과도 통하는 문으로,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도 이 문을 들어 세법과 불법의 관계를 설하셨다.
셋째, 『마하지관』의 「내가 세 성인을 보내어 저 진단을 교화한다」.
넷째, 『지관보행전홍결』이 인용한 청정법행경의 「월광보살은 그곳에서 안회라 일컫고, 광정보살은 그곳에서 중니라 일컫고, 가섭보살은 그곳에서 노자라 일컬었다」. 현대어역은 이들이 모두 석존의 사자로서 불교의 선구로 유교를 설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어석에 실린 청정법행경의 원문은 이 파견의 목적을 더 분명히 한다. 진단의 백성은 아직 믿지 않는 죄가 많으므로 먼저 세 보살을 보내어 오경 · 시전 · 예전 · 위의 · 법칙을 강론해 점차로 이끌고, 그런 뒤에 불교가 그곳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삼세의 생명관에서 본 「삼성 파견」
강의는 「월광보살이 안회라 일컫고 광정보살이 중니라 일컫고 가섭보살이 노자라 일컬었다」는 사상이 과학만을 앞세우는 오늘의 사회에는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완전하고 참되게 발전된 동양의 생명 철학으로 보면 수긍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생명이 삼세에 걸쳐 있음을 깨닫는다면, 홍결이 이렇게 단언한 것을 확실한 일로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보살이 중생을 이끌기 위해 그 시대와 땅에 맞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상은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삼십삼신이나 묘음보살품의 삼십사신과도 통한다.
오늘의 도덕과 불법
강의는 이 장의 결론으로 도덕과 종교의 관계를 논한다. 유교와 같은 것은 현세의 도덕 수양의 길을 가르치는 데 지나지 않는 작은 법이어서, 미개한 사람이나 어린아이에게는 효도하라,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가르침이 필요하겠지만, 사악함이 넘치는 시대에는 그것만으로 통하지 않는다고 강의는 본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정도의 도덕은 누구나 알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도덕도 참된 불법이 핵심이 되고 그 근원에 서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 된다는 것이 강의의 주장이다. 이 주장은 유교를 불교의 「첫 문」으로 본 대성인의 판정을 뒤집어 말한 것이기도 하다. 첫 문은 첫 문으로서 귀하지만, 그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문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다.
대성인은 유가의 현성을 「과거 · 미래를 모르므로 부모 · 주군 · 스승의 후세를 돕지 못하는 불지은의 자」로 깨뜨리면서도(파), 공자의 「서방의 성인」 · 묘락의 「예악이 앞서 달린다」 · 청정법행경의 「삼성 파견」을 들어 외전이 불교의 첫 문임을 밝히셨다(회). 유교의 주 · 사 · 친은 불교의 주사친을 이해하기 위한 예비였다.
본문
二には月氏の外道・三目八臂の摩醯首羅天・毘紐天・此の二天をば一切衆生の慈父・悲母・又天尊・主君と号す、 迦毘羅・漚楼僧佉・勒娑婆・此の三人をば三仙となづく、此等は仏前八百年・已前已後の仙人なり、 此の三仙の所説を四韋陀と号す六万蔵あり、乃至・仏・出世に当つて六師外道・此の外経を習伝して五天竺の王の師となる支流・九十五六等にもなれり、 一一に流流多くして我慢の幢・高きこと非想天にもすぎ執心の心の堅きこと金石にも超えたり、其の見の深きこと巧みなるさま儒家には・にるべくもなし、 或は過去・二生・三生・乃至七生・八万劫を照見し又兼て未来・八万劫をしる、其の所説の法門の極理・或は因中有果・或は因中無果・或は因中亦有果・亦無果等云云、 此れ外道の極理なり所謂善き外道は五戒・十善戒等を持つて有漏の禅定を修し上・色・無色をきわめ上界を涅槃と立て屈歩虫のごとく・せめのぼれども非想天より返つて三悪道に堕つ一人として天に留るものなし而れども天を極むる者は永くかへらずと・をもえり、 各各・自師の義をうけて堅く執するゆへに或は冬寒に一日に三度・恒河に浴し或は髪をぬき或は巌に身をなげ或は身を火にあぶり或は五処をやく或は裸形或は馬を多く殺せば福をう或は草木をやき或は一切の木を礼す、 此等の邪義其の数をしらず師を恭敬する事・諸天の帝釈をうやまい諸臣の皇帝を拝するがごとし、しかれども外道の法・九十五種・善悪につけて一人も生死をはなれず善師につかへては二生・三生等に悪道に堕ち悪師につかへては順次生に悪道に堕つ、 外道の所詮は内道に入る即最要なり或外道云く「千年已後・仏出世す」等云云、或外道云く「百年已後・仏出世す」等云云、 大涅槃経に云く「一切世間の外道の経書は皆是れ仏説にして外道の説に非ず」等云云、法華経に云く「衆に三毒有りと示し又邪見の相を現ず我が弟子是くの如く方便して衆生を度す」等云云。
둘째로 월지(月氏)의 외도는 눈이 셋이요 팔이 여덟인 마혜수라천과 비뉴천, 이 두 하늘을 일체중생의 자애로운 아버지 · 슬피 여기는 어머니요 또 천존 · 주군이라 일컫느니라. 가비라 · 우루승거 · 늑사바, 이 세 사람을 삼선(三仙)이라 이름하니, 이들은 부처 이전 팔백 년 전후의 선인이니라. 이 삼선이 설한 바를 사위타(四韋陀)라 일컬으니 육만 장(藏)이 있느니라. 내지 부처가 세상에 나오실 때에 이르러 육사외도가 이 외경을 배워 전하여 오천축 왕의 스승이 되었고, 그 갈래가 아흔다섯, 아흔여섯 등이 되었느니라. 하나하나에 갈래가 많아 아만의 깃대가 높기는 비상천보다도 높고, 집착하는 마음이 굳기는 쇠와 돌보다도 더하였느니라. 그 견해가 깊고 교묘한 모습은 유가에 견줄 바가 아니니라. 혹은 과거의 두 생 · 세 생 내지 일곱 생, 팔만 겁을 비추어 보고, 또 아울러 미래 팔만 겁을 아느니라. 그들이 설한 법문의 극리는 혹은 인중유과(因中有果), 혹은 인중무과(因中無果), 혹은 인중역유과역무과(因中亦有果亦無果) 등이니, 이것이 외도의 극리이니라. 이른바 좋은 외도는 오계 · 십선계 등을 지니고 유루의 선정을 닦아 위로 색계 · 무색계를 다하고, 상계를 열반이라 세워 자벌레처럼 기어 올라가지만, 비상천에서 되돌아와 삼악도에 떨어지느니라. 한 사람도 하늘에 머무는 자가 없건만, 그런데도 하늘을 다한 자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느니라. 저마다 자기 스승의 뜻을 받아 굳게 집착하므로, 혹은 겨울 추위에 하루 세 번 항하에 몸을 씻고, 혹은 머리털을 뽑고, 혹은 바위에 몸을 던지고, 혹은 몸을 불에 쬐고, 혹은 다섯 곳을 태우고, 혹은 벌거벗고, 혹은 말을 많이 죽이면 복을 얻는다 하고, 혹은 풀과 나무를 태우고, 혹은 모든 나무에 절하느니라. 이러한 그릇된 뜻은 그 수를 알 수 없느니라. 스승을 공경하기를 제천이 제석을 공경하고 신하들이 황제에게 절하듯 하였느니라. 그러나 외도의 법 아흔다섯 종은 선이든 악이든 한 사람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였느니라. 좋은 스승을 섬기면 두 생 · 세 생 뒤에 악도에 떨어지고, 나쁜 스승을 섬기면 바로 다음 생에 악도에 떨어지느니라. 외도의 귀결은 내도에 들어가는 것이 곧 가장 긴요하니라. 어떤 외도는 「천 년 뒤에 부처가 세상에 나오신다」 하고, 어떤 외도는 「백 년 뒤에 부처가 세상에 나오신다」 하였느니라. 대열반경에 이르기를 「일체 세간의 외도의 경서는 다 이것이 부처의 설이요 외도의 설이 아니니라」 하였고, 법화경에 이르기를 「대중에게 삼독이 있음을 보이고 또 사견의 모습을 나타내니, 나의 제자는 이와 같이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 月氏월지
- 중국과 일본에서 쓴 인도의 호칭. 기원전 3세기 후반까지 둔황과 기련산맥 사이에 있던 월지족이 기원전 2세기에 흉노에게 쫓겨 중앙아시아로 옮겨 가고 뒤에 인도 일부까지 영토로 삼았다. 이 땅을 거쳐 불교가 중국에 전해졌으므로 중국에서는 월지를 인도 자체로 보았다. 『대당서역기』 권2는 「무명의 긴 밤을 비추는 달과 같다는 뜻에서 월지라 한다」고 하나, 현장 자신은 「인도(印度)」로 음사했다.
- 摩醯首羅天마혜수라천
- 힌두교의 신 시바의 별명 마헤슈바라의 음사로, 대자재천이라 번역한다. 시바는 파괴의 공포와 만병을 구하는 두 면을 겸한 신이다. 『홍결』 권10에 따르면 색계 사선천의 맨 위인 색구경천(아가니타천)에 있으며, 눈이 셋이요 팔이 여덟(三目八臂)으로 천관을 쓰고 흰 소를 타고 삼지창을 쥐며, 큰 위력으로 세계를 뒤엎을 수 있다 하여 온 세상이 존경했다고 한다.
- 毘紐天비뉴천
- 힌두교의 신 비슈누의 음사. 위뉴천이라고도 쓴다. 세계의 유지를 맡은 신이다. 불교에서는 색계 제3선천에 산다고 본다. 『대지도론』 권2는 「팔이 넷이고 소라를 쥐고 바퀴를 들고 금시조를 탄다」고 하며, 권10은 「세간에 큰 부귀와 명성을 지닌 이가 있는 것은 다 내 몸의 위덕의 몫이다. 나는 세간을 이루고 또 세간을 부순다」고 그 작용을 전한다. 『홍결』 권10은 대범천왕의 아버지이자 일체중생의 어버이로 여겨졌다고 한다. 다른 이름 나라야나는 나라연천으로 음사하며 금강역사라고도 한다.
- 迦毘羅가비라
- 카필라의 음사. 인도 육파철학의 하나인 수론학파(상키야)의 개조. 황두 · 황발 등으로 번역하며, 머리털과 얼굴이 붉은 황색이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인중유과론을 설했다.
- 漚楼僧佉우루승거
- 우루카의 음사. 우루승거(優楼僧佉) · 구류 등으로도 쓴다. 육파철학의 하나인 승론학파(바이셰시카)의 개조. 인중무과론을 설했다.
- 勒娑婆늑사바
- 리샤바의 음사로 고행이라 번역한다. 니건자 외도(뒤의 자이나교)의 개조라고 한다. 현세에 고행하면 미래에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고 설해 고득외도의 조사가 되었다. 나형외도라고도 하며 벌거벗고 재와 가시 속에 눕는 등 갖가지 고행을 했다. 석존의 출가 전 아들로 불제자가 되었다가 외도에 가까이하여 퇴전하고 현신에 지옥의 큰 고통을 받았다는 선성비구도 이 계열로 전한다. 인중역유과역무과론을 설했다.
- 四韋陀사위타
- 네 베다. 베다는 「안다」에서 나온 말로 지식, 특히 성스러운 지식을 뜻하며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네 성전을 통칭한다. 리그베다(찬송) · 야주르베다(제사) · 사마베다(노래) · 아타르바베다(재앙을 물리침)다. 각 베다의 중심 부분을 상히타(본집)라 하고, 부속 문헌인 브라흐마나(제의서) · 아란야카(삼림서) · 우파니샤드(오의서)를 포함해 넓은 뜻의 베다라 한다. 성립 연대는 기원전 1500년 무렵 등 여러 설이 있으나 기원전 500년 무렵까지 편찬되었다는 데는 일치한다.
- 六師外道육사외도
- 석존 재세 때 갠지스강 중류 지역에서 세력을 떨친 여섯 명의 불교 밖 사상 지도자. 기성 바라문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유로운 사상을 펼쳐 신흥 왕후 귀족과 상인의 지지를 받았으며, 당시 사회에서 새로운 사상의 대표로 여겨졌다.
- 支流・九十五六지류 아흔다섯 · 아흔여섯
- 석존 재세 때 아흔다섯 또는 아흔여섯 갈래의 외도. 그 이름과 주장의 상세는 알 수 없다. 육사외도에게 각각 열다섯 제자가 있어 아흔여섯으로 나뉘어 다투었다는 설과, 그 가운데 한 사람만은 인과의 도리에 가까운 것을 가르쳤으므로 아흔다섯이라는 설이 있다.
- 非想天비상천
- 비상비비상천. 삼계 가운데 무색계의 제4천으로 가장 위의 하늘이어서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한다. 거친 생각의 번뇌는 없으므로 비상, 미세한 생각의 번뇌는 없지 않으므로 비비상이라 한다. 외도는 이 하늘을 궁극의 경지로 삼았다. 『대비바사론』 권84는 「이 경지에는 분명한 생각의 모습도 없고 생각 없음의 모습도 없다」고 한다.
- 八万劫を照見し팔만 겁을 비추어 보고
- 비상비비상천 중생의 수명은 팔만 대겁이라 한다. 외도도 생명의 과거 팔만 겁, 미래 팔만 겁을 알 수 있었다. 외도의 견해는 유가보다 훨씬 깊지만 결국 단견 · 상견의 두 견해를 벗어나지 못한다. 죽으면 무로 돌아간다는 것이 단견, 생명의 상주는 설하지만 새는 새, 사람은 사람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견이다. 삼세에 걸친 바른 생명의 인과론이 외도에는 없다. 이러한 외도의 견해가 예순두 가지여서 「육십이견」이라 한다.
- 因中有果인중유과
-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는 설. 가비라를 조사로 하는 수론학파는 만유의 생성을 자성(프라크리티)의 전개로 보아, 자성 안에 만유의 결과가 본래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모래를 짜도 기름이 나오지 않지만 깨를 짜면 기름이 나오듯, 원인 속에 처음부터 결과의 성품이 없으면 결과가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지만 연(緣)을 설하지 않는 부분적 사상이어서 운명 결정론에 빠진다.
- 因中無果인중무과
- 「원인 속에 결과가 없다」는 설. 우루승거의 승론학파는 원인에 화합인 · 불화합인 · 조인의 셋이 있어 여러 원인이 합해져야 하나의 결과가 생긴다고 한다. 도자기는 흙이 없으면 생기지 않지만 흙이 반드시 도자기가 되는 것은 아니니, 흙은 화합인일 뿐이고 다른 조인이 있어야 도자기가 되며 조인이 바뀌면 다른 것이 된다. 그러므로 원인과 결과는 각각 별개라는 것이다. 연을 설한 점은 얼마간 성과가 있으나, 인생의 행불행은 저절로 일어나므로 체념할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우연론이다.
- 因中亦有果亦無果인중역유과역무과
- 「원인 속에 결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설. 자이나교의 조사로 여겨진 늑사바의 가르침. 세간의 현상은 어떤 때는 원인 속에 결과의 성품이 있어 전개되고 어떤 때는 없다고 한다. 얼핏 중도처럼 들리지만 인중유과와 인중무과를 단순히 절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有漏の禅定유루의 선정
- 무루선에 대한 말. 삼계를 구지(九地)로 나누고, 아래 경지를 싫어하고 위 경지를 기뻐하는 육행관(외도의 수행법)으로 차례로 올라가는 좌선 관법이다. 이 선정으로 욕계를 떠나 초선천에 들고, 이선 · 삼선 · 사선의 색계를 다하며, 마침내 무색계의 공처 · 식처 · 무소유처를 거쳐 비상비비상처에 오른다. 이 하늘에 이르면 다시 태어나지 않고 오래 열반의 즐거움을 얻는다고 했다. 그러나 아래 경지를 떠났다 해도 참으로 미혹을 끊은 것이 아니며, 특히 삼계 제9지의 미혹은 견줄 위 경지가 없어 누르지도 끊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비상천에 올라도 한 사람도 머무는 이가 없다. 삼계를 떠나려면 무루도를 닦을 수밖에 없으며, 외도의 유루선은 불법에 들어가는 서분의 하나일 뿐이다.
- 屈歩虫굴보충
- 자벌레.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벌레로, 아래 경지를 버리고 위 경지로 한 단계씩 올라가는 유루선의 수행을 비유한다.
- 五処をやく다섯 곳을 태우다
- 손발과 머리, 곧 몸의 다섯 곳을 불로 지지는 고행. 현대어역은 「손발과 머리의 다섯 곳」으로 풀이한다.
- 衆に三毒有りと示し又邪見の相を現ず대중에게 삼독이 있음을 보이고 또 사견의 모습을 나타낸다
-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 제8의 게송. 성문 제자들이 단지 성문의 모습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삼독을 지닌 범부로 태어나고 사견의 모습을 나타내기까지 하여, 이와 같이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부루나의 수기를 계기로 설해진 게송으로, 성문의 모습 자체가 보살의 방편이라는 「내비보살 외현성문(內秘菩薩 外現聲聞)」의 뜻을 담는다.
능설의 사람과 소설의 법 — 이천 · 삼선과 사베다
강의는 이 장도 제2 · 3장과 같은 세 단계로 나눈다. 첫째, 이천(二天) · 삼선 등 법을 설한 사람을 든다. 둘째, 「이 삼선이 설한 바를 사위타라 일컫는다」며 그 법문을 말하고, 외도들이 저마다 스승을 배우는 모습을 보인다. 셋째, 「이른바 좋은 외도는」 이하에서 외도의 그릇된 뜻을 깨뜨리면서, 「외도의 귀결은 내도에 들어가는 것이 곧 가장 긴요하니라」고 하여 회입(會入)의 입장에서 외도의 자리를 보이신다.
이천은 주 · 친, 삼선은 사
바라문교는 마혜수라천과 비뉴천을 일체중생의 「자애로운 아버지 · 슬피 여기는 어머니」요 「천존 · 주군」이라 불렀다. 앞의 둘이 친덕, 뒤의 둘이 주덕에 해당한다. 그리고 가비라 · 우루승거 · 늑사바의 삼선은 각 학파의 조사로서 사덕에 해당한다. 이렇게 외도에도 주사친의 삼덕이 갖추어져 있다.
강의는 바라문도 낮은 정도이기는 하나 생명의 본질, 생명의 본체란 무엇인가를 사유하여 그 결론을 실천 활동으로 옮겼다고 평가한다. 마혜수라천 · 비뉴천을 부모 · 천존 · 주군으로 삼아 주사친의 삼덕을 세우고, 삼선이 유파의 조사가 되어 어떻게 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를 연구해 정리한 것이 사베다다. 「육만 장」이라 하니 상당히 많은 설이 있었을 것이다.
「부처 이전 팔백 년 전후의 선인」이라는 연대는 불교 전승에 따른 것이다. 오늘날의 인도 사상사에서는 베다의 성립을 기원전 1500년 무렵부터 기원전 500년 무렵까지로 보며, 상키야 · 바이셰시카 학파의 체계화와 자이나교의 성립은 그보다 뒤의 일로 본다. 또 늑사바(리샤바)는 자이나교 전승에서 최초의 조사(티르탄카라)로 받드는 인물이다. 대성인 시대의 불교 문헌은 삼선을 베다의 작자로 함께 묶어 외도의 대표로 다루었다.
육사외도와 아흔다섯 갈래
석존이 출세할 무렵에는 육사외도가 이 외경을 배워 전하여 오천축 왕들의 스승이 되었고, 그 지류가 아흔다섯, 아흔여섯 갈래로 나뉘었다. 강의는 석존 시대에 아흔다섯 갈래의 철학이 서로 논쟁하고 있었으니, 오늘 일본의 철학계보다 더 장관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하나하나에 다시 많은 갈래가 있어 「아만의 깃대가 높기는 비상천보다도 높고, 집착하는 마음이 굳기는 쇠와 돌보다도 더하였다」.

외도의 생명관 — 유가를 넘어선 깊이
대성인은 외도의 견해가 유가보다 깊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신다. 「그 견해가 깊고 교묘한 모습은 유가에 견줄 바가 아니다. 혹은 과거의 두 생 · 세 생 내지 일곱 생, 팔만 겁을 비추어 보고, 또 아울러 미래 팔만 겁을 안다」.
강의는 이 차이를 행복관의 차이로 설명한다. 외도의 생명관은 과거 · 현재 · 미래를 알아, 유교처럼 현세에만 법을 세운 것과 달리 상당히 깊은 곳까지 연구를 진전시켰다. 과거 · 현재 · 미래를 생각하면 현재의 불행을 미래까지 끌고 가지 않고 미래에는 절대적 행복을 얻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외도의 행복관은 유교의 현세적 · 근시안적인 것이 아니라 더 원시안적인 것이 된다. 그러면 자연히 생명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생 · 두 생 · 세 생 내지 일곱 생, 팔만 겁을 안다면, 이 과거 · 현재 · 미래를 꿰는 하나의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어석이 지적하듯 외도의 견해는 결국 단견과 상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죽으면 무로 돌아간다는 단견, 생명은 상주하지만 새는 새, 사람은 사람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상견. 삼세에 걸친 바른 생명의 인과론은 외도에 없으며, 이러한 외도의 견해를 모두 헤아려 「육십이견」이라 한다. 팔만 겁이라는 숫자도 비상비비상천의 수명에서 나온 것으로, 외도가 볼 수 있는 시야는 삼계의 맨 꼭대기까지일 뿐 삼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세 극리 — 인중유과 · 인중무과 · 인중역유과역무과
이 생명의 본질을 묻는 데서 외도의 세 극리가 나온다. 강의는 그 셋을 인생의 고락에 대한 세 가지 태도로 정리한다. 인생의 고통과 행복은 인과가 일체라는 설(인중유과), 원인과 결과는 별개이므로 인생의 행불행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어서 체념할 수밖에 없다는 설(인중무과), 원인 속에 때로는 결과가 있고 때로는 없다는 설(인중역유과역무과)이다.
- 인중유과 — 가비라의 수론학파. 깨에서 기름이 나오고 모래에서 나오지 않듯, 결과의 성품은 원인 속에 본래 있다. 원인만 보고 연을 보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는 운명 결정론에 빠진다.
- 인중무과 — 우루승거의 승론학파. 흙이 도자기가 되려면 다른 조인이 필요하듯, 원인과 결과는 별개다. 연을 설한 점은 진전이지만, 결과가 원인과 무관하게 일어난다면 인생의 행불행은 우연이며 체념할 수밖에 없다.
- 인중역유과역무과 — 늑사바의 니건자 외도. 때로는 있고 때로는 없다. 중도처럼 들리지만 앞의 둘을 기계적으로 절충한 것일 뿐이다.
이 세 극리가 제2장의 삼현(유 · 무 · 역유역무)과 정확히 대구를 이룬다는 점은 앞에서 보았다. 강의는 그들이 이것을 극설로 삼아 서로 논쟁했다고 말한다. 불교의 연기설은 원인(因)과 조건(緣)이 화합하여 결과가 생긴다고 보아, 결과가 원인 속에 이미 있다는 결정론과 원인과 무관하다는 우연론을 함께 넘어선다. 나아가 법화경에 이르러서는 십여시의 「여시인 · 여시연 · 여시과 · 여시보」가 한 생명 안에 갖추어진다고 설하여, 인과가 일념에 구족된다는 일념삼천의 인과관에 이른다. 외도의 세 극리는 바로 그 바른 인과관이 나타나기 전의 모색이었다.
유루의 선정과 고행 — 실천의 한계
좋은 외도 — 자벌레처럼 올라 비상천에서 떨어진다
외도는 극리를 실천으로 옮겼다. 그 가운데 「좋은 외도」는 오계 · 십선계 등을 지니고 유루의 선정을 닦아, 위로 색계 · 무색계를 다하고, 그 상계를 열반이라 세워 자벌레처럼 한 걸음씩 기어 올라갔다. 그러나 비상천에서 되돌아와 삼악도에 떨어진다. 한 사람도 하늘에 머무는 자가 없다. 그런데도 외도를 믿는 이들은 그 근본이 사견이기 때문에 천계에서 삼악도로 떨어진 줄 모르고, 하늘을 다한 자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석은 그 까닭을 정밀하게 밝힌다. 유루선은 아래 경지를 싫어하고 위 경지를 기뻐하는 관법으로 한 단계씩 올라가지만, 아래 경지를 떠났다고 해서 참으로 미혹을 끊은 것이 아니다. 특히 삼계의 마지막 제9지인 비상비비상처의 미혹은 그보다 위에 견줄 경지가 없으므로 누르지도(伏) 끊지도(斷) 못한다. 그러므로 비상천에 오른 이도 그 수명이 다하면 다시 삼계 안으로 떨어진다. 삼계를 벗어나려면 미혹 자체를 끊는 무루도를 닦을 수밖에 없다. 외도의 유루선이 불법에 들어가는 서분의 하나라는 것은 이 뜻이다.
그릇된 고행의 목록
좋은 외도가 이러하니 다른 외도는 말할 것도 없다. 저마다 자기 스승의 뜻을 받아 굳게 집착하여, 겨울 추위에 하루 세 번 항하에 몸을 씻고, 머리털을 뽑고, 바위에 몸을 던지고, 몸을 불에 쬐고, 손발과 머리의 다섯 곳을 태우고, 벌거벗고, 말을 많이 죽이면 복을 얻는다 하고, 풀과 나무를 태우고, 모든 나무에 절했다. 그리고 그 스승을 공경하기를 제천이 제석을 공경하고 신하들이 황제에게 절하듯 했다.
강의는 이 목록을 두고, 오늘날 자연과학이 크게 진보했는데도 철학과 종교의 세계는 석존 시대에서 진보도 발전도 없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단견 · 상견, 인중유과 등의 논쟁, 오계 · 십선계를 지니라는 가르침, 추운 겨울에 물을 뒤집어쓰거나 몸을 불에 쬐거나 벌거벗거나 모든 나무에 절하는 원시적인 종교 행위가 지금도 그대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것들이 최고의 불교 철학에서 보면 아이 속임수와 같아 얻을 것이 없다고 판정한다.
종교와 과학
이 대목에서 강의는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논한다. 종교를 논할 때 과학과 반대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가 있으나 이것은 큰 잘못이다. 과학은 물질을 대상으로, 또는 마음의 작용을 대상으로 깊이 연구하지만, 참된 종교, 곧 최고의 동양 철학은 생명의 본질을 궁구하는 것이어서 결코 과학과 상반되는 자리에 있지 않으며, 나란히 서서 서로 인생을 이롭게 한다. 다만 종교는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궁구된 최고 이론을 실천으로 옮김으로써 생활 위의 행복을 얻는 것이다. 과학에서 밝혀진 방정식이 실제 생활에 응용되어 쓸모를 갖는 것과 같다고 강의는 말한다. 외도의 고행은 바로 이 「이론을 실천으로 옮긴다」는 종교의 구조를 갖추었지만, 그 이론 자체가 낮았기 때문에 실천도 그릇되었다는 것이 강의의 진단이다.
천상에 나기를 최고의 행복으로
강의는 외도가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긴 것이, 아미타경의 서방정토 왕생과 같은 낮은 사고와 닮았다고 지적한다. 사후에 다른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구원으로 삼는 사고는, 지금 이 몸 이 땅에서 성불을 구하는 법화경의 즉신성불 사상과 대조된다.
외도의 귀결은 내도에 들어가는 것
선사 · 악사, 누구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성인은 외도에 대한 판정을 이렇게 맺으신다. 외도의 법 아흔다섯 종은 선이든 악이든 한 사람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좋은 스승을 섬기면 그때는 일이 없어도 두 생 · 세 생 뒤에 악도에 떨어지고, 나쁜 스승을 섬기면 바로 다음 생에 악도에 떨어진다. 현대어역은 이를 「한 사람도 번뇌 · 생사의 근본을 깨닫지 못한다」고 풀이한다. 좋은 외도와 나쁜 외도의 차이는 악도에 떨어지는 시기의 차이일 뿐, 떨어진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다.
「외도의 소전은 내도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긴요하다」
그러나 대성인은 외도를 단지 버리지 않으신다. 「외도의 귀결은 내도에 들어가는 것이 곧 가장 긴요하니라」. 외도의 존재 의의는 불교로 들어가는 길에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어떤 외도는 「천 년 뒤에 부처가 출세한다」, 어떤 외도는 「백 년 뒤에 부처가 출세한다」고 예언했다. 현대어역은 이것을 외도가 갖가지 가르침을 설해도 모두 불법으로 흘러들게 하는 방편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이어 두 경문이 이 회입의 근거가 된다. 대열반경의 「일체 세간의 외도의 경서는 다 이것이 부처의 설이요 외도의 설이 아니니라」. 그리고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의 「대중에게 삼독이 있음을 보이고 또 사견의 모습을 나타내니, 나의 제자는 이와 같이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현대어역은 이 게송을, 성문의 제자들이 단지 성문의 모습을 보일 뿐 아니라 삼독의 범부로 태어나고 사견의 모습까지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외도의 모습조차 부처의 제자가 방편으로 나타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3장에서 유교의 성인들이 실은 석존이 보낸 보살이라고 한 청정법행경의 문과 같은 구조다.
바라문은 인도 불교의 서분
강의는 이 장을 이렇게 정리한다. 유교가 불법이 한토에 건너가는 서분이었듯이, 바라문도 인도에 불교가 시작되는 서분이다. 유교와 바라문은 모두 낮은 가르침이지만, 사람들에게 주사친을 공경하는 마음, 삼세를 생각하는 마음을 길러 높은 가르침이 들어올 자리를 준비했다.
외도는 과거 · 미래 팔만 겁을 보아 유가보다 깊었으나 단견 · 상견과 세 극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유루선과 고행으로는 누구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외도의 귀결은 내도에 들어가는 것」이며, 외도는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되기 위한 서분이었다.
본문
三には大覚世尊は此一切衆生の大導師・大眼目・大橋梁・大船師・大福田等なり、外典・外道の四聖・三仙其の名は聖なりといえども実には三惑未断の凡夫・其の名は賢なりといえども実に因果を弁ざる事嬰児のごとし、 彼を船として生死の大海をわたるべしや彼を橋として六道の巷こゑがたし我が大師は変易・猶を・わたり給へり況や分段の生死をや元品の無明の根本猶を・かたぶけ給へり況や見思枝葉の麤惑をや、 此の仏陀は三十成道より八十御入滅にいたるまで五十年が間・一代の聖教を説き給へり、一字一句・皆真言なり一文一偈・妄語にあらず外典・外道の中の聖賢の言すらいうこと・あやまりなし事と心と相符へり況や仏陀は無量曠劫よりの不妄語の人・されば一代・五十余年の説教は外典外道に対すれば大乗なり大人の実語なるべし、 初成道の始より泥洹の夕にいたるまで説くところの所説・皆真実なり。
셋째로 대각세존은 이 일체중생의 큰 도사요, 큰 눈이요, 큰 다리요, 큰 뱃사공이요, 큰 복전(福田) 등이시니라. 외전 · 외도의 사성 · 삼선은 그 이름은 성인이지만 실은 삼혹을 끊지 못한 범부요, 그 이름은 현인이지만 실은 인과를 분별하지 못함이 갓난아이와 같으니라. 저들을 배로 삼아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널 수 있겠는가, 저들을 다리로 삼아 육도의 갈림길을 넘기 어려우니라. 우리 대사(大師)께서는 변역의 생사조차 건너셨거늘 하물며 분단의 생사이겠는가. 원품의 무명의 뿌리조차 기울이셨거늘 하물며 견사(見思)라는 가지와 잎의 거친 미혹이겠는가. 이 부처께서는 서른에 성도하시어 여든에 입멸하시기까지 오십 년 동안 일대의 성교를 설하셨느니라. 한 글자 한 구절이 모두 참된 말씀이요, 한 문장 한 게송도 망어가 아니니라. 외전 · 외도 가운데 성현의 말조차 말하는 것에 그릇됨이 없어 일과 마음이 서로 맞거늘, 하물며 부처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 겁 전부터 망어하지 않는 분이시니라. 그러므로 일대 오십여 년의 설교는 외전 · 외도에 대하면 대승이요 대인의 진실한 말씀이니라. 처음 성도하신 때부터 열반하신 저녁에 이르기까지 설하신 바는 모두 진실이니라.
어구 풀이
- 大覚世尊대각세존
- 석존의 다른 이름. 대각은 부처의 깨달음, 세존은 부처의 열 가지 호칭의 하나로 세상 중생에게 존경받는 이라는 뜻이다.
- 大導師・大眼目・大橋梁・大船師큰 도사 · 큰 눈 · 큰 다리 · 큰 뱃사공
- 중생을 이끄는 스승, 바른 길을 보는 눈, 생사의 강을 건네주는 다리와 뱃사공. 유가의 천존을 「만민의 다리」라 한 제2장과 대비되어, 참된 다리 · 참된 배는 부처라는 뜻을 드러낸다.
- 大福田큰 복전
- 복전은 복덕을 낳는 밭. 밭이 곡식을 맺듯 부처와 승가를 공경하고 보시하면 복덕이 생기므로 이렇게 부른다. 『대지도론』 권9는 「부처는 삼계에서 제일의 복전」이라 한다. 「대복전」은 부처의 존칭이다.
- 四聖사성
- 제2장의 「윤수는 요왕의 스승, 무성은 순왕의 스승, 태공망은 문왕의 스승, 노자는 공자의 스승이니 이들을 사성이라 일컫는다」(186쪽)를 가리킨다.
- 三仙삼선
- 제4장의 「가비라 · 우루승거 · 늑사바, 이 세 사람을 삼선이라 이름한다」(187쪽)를 가리킨다.
- 三惑未断の凡夫삼혹을 끊지 못한 범부
- 번뇌는 팔만사천이지만 성질로 크게 나누면 셋이다. ① 견사혹(界內見思の惑) — 삼계 육도의 고통을 부르는 미혹으로, 사물의 도리에 어두운 견혹(후천적으로 형성된 사상 · 신념의 미혹)과, 태어나면서부터 따라붙는 구생혹인 사혹(감각 · 감정의 미혹)으로 나뉜다. 사혹은 욕계에 탐 · 진 · 치 · 만, 색계와 무색계에 탐 · 치 · 만이 있어 모두 81품이다. 이 견사혹을 끊으면 성문 · 연각의 경지에 이른다. ② 진사혹(界外化導障塵沙の惑) — 이승과 보살이 수행 과정에서 작은 과보와 공의 이치에 집착하여 중생 교화에 장애가 되는 미혹으로, 그 수가 티끌과 모래처럼 많아 이렇게 부르며 대승의 큰 보살만이 깨뜨린다. ③ 무명혹(中道障無明の惑) — 중도의 법성을 가리는 모든 생사 · 번뇌의 근본으로, 별교에서는 12품, 원교에서는 42품을 세운다. 원교의 42품 가운데 마지막 무명을 원품의 무명이라 하며, 이것을 끊어 다하면 성불한다. 외전 · 외도의 사성 · 삼선은 이 삼혹 가운데 어느 것도 끊지 못했으므로 범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 六道の巷육도의 갈림길
- 육도 윤회. 불법을 모르는 중생이 육도를 돌며 벗어나지 못하고 미혹과 고뇌의 생사를 되풀이하는 것.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은 고대 인도인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야 할 이상이었으나, 바라문교와 육사외도의 가르침은 생사의 인과를 알지 못해 그릇된 행을 낳고 해탈을 얻지 못한다. 바른 불법에 의하지 않고는 이 미혹을 벗어날 수 없다.
- 変易변역
- 변역의 생사. 견사혹을 끊고 수명과 형상에 나뉨과 단계가 있는 범부의 몸(분단신)을 바꾸어, 깨달음의 지혜를 열고 삼계 육도의 윤회를 벗어난 성문 · 연각 · 보살의 생을 말한다. 방편토 · 실보토라는 변역의 국토에서 자유로이 몸을 바꿀 수 있는 생이다. 그러나 참으로 궁극에 이르러 변역을 건너는 것은 오직 부처뿐이다.
- 分段の生死분단의 생사
- 삼계 육도의 생사, 곧 미혹의 생사. 한 생 동안의 선업 · 악업 · 번뇌라는 인연으로 육도에 각기 과보의 몸을 나타내며, 길고 짧은 수명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분한(分限)과 단락이 있으므로 분단이라 한다. 변역의 생사와 합해 두 가지 생사(이종생사)라 한다.
- 元品の無明원품의 무명
- 원교 42품 무명 가운데 마지막 한 품. 모든 미혹의 근본이다. 본문의 「원품의 무명의 뿌리조차 기울이셨다(かたぶけ給へり)」는 그 뿌리째 쓰러뜨렸다는 뜻이다.
- 見思枝葉の麤惑견사라는 가지와 잎의 거친 미혹
- 「추혹(麤惑)」은 거칠고 얕은 미혹. 무명이 뿌리라면 견사혹은 가지와 잎에 해당한다는 비유다.
- 一字一句・皆真言なり한 글자 한 구절이 모두 참된 말씀
- 진언에는 ① 부처의 진실한 말(실어), ② 밀교에서 부처 · 보살의 지혜와 힘을 상징하는 주문, ③ 진언종의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내외상대하면 내도인 불교의 설은 바라문교 · 육사외도 등 인도의 사상과 유교 · 도교 등 중국의 사상에 대해 모두 진실이라는 것이다. 내도와 외도의 차이는 생사를 넘어 삼세에 걸친 생명의 행불행의 인과를 자신의 안에서 찾아내는가 아닌가에 있다.
- 泥洹니원
- 열반(니르바나)의 다른 음사. 「니원의 저녁」은 석존이 입멸한 쿠시나가라 사라쌍수의 저녁을 가리킨다.
오중의 상대로 읽는 개목초
강의는 이 장의 해설을 「오중상대」라는 개목초 독해의 큰 틀에서 시작한다. 개목초의 뜻은 오중의 상대로 읽지 않으면 그 참뜻에 이를 수 없다. 관심의 본존초에서는 이것을 정리하여 「오중삼단」으로 밝히셨는데, 개목초의 순서에 따라 표시하고 본존초의 오중삼단에 대응시키면 다음과 같다고 강의는 제시한다.
- 제1 내외상대 — 「이 부처께서는」 이하의 문 · 제5장 · 일대 일경 삼단의 뜻
- 제2 권실상대 — 「다만 불교에」 이하의 문 · 제6장 · 법화 일경 삼단의 뜻
- 제3 종탈상대 — 「다만 이 경에」 이하의 문 · 제7장 · 문저 하종 삼단의 뜻
- 제4 권적상대 — 「이에 내가 어리석은 견해로」 이하의 문 · 제11장 · 적문 숙익 삼단의 뜻
- 제5 본적상대 — 「둘째로 교주 석존은」 이하의 문 · 제18장 · 본문 탈익 삼단의 뜻
관심의 본존초의 오중삼단이란,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서분 · 정종분 · 유통분의 삼단으로 다섯 번 거듭 나누어, 마지막에 문저 하종의 삼단에 이르는 구성을 말한다. 일대의 모든 경을 하나의 경으로 보아 나누면(일대 일경 삼단) 법화 삼부경이 정종분이 되고, 법화경 열 권을 하나로 보아 나누면(법화 일경 삼단) 정종분이 다시 좁혀지며, 적문을 나누면(적문 숙익 삼단), 본문을 나누면(본문 탈익 삼단), 마지막에 말법을 위한 문저 하종의 삼단에서는 수량품의 문저에 잠긴 남묘호렌게쿄 하나가 정종분이 된다. 개목초가 이 다섯 판정을 같은 순서로 나열하지 않고, 권실상대(제6장) 바로 뒤에 문저의 판정(제7장)을 먼저 내보인 다음 권적 · 본적의 상세한 논증(제11장 · 제18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 글의 독특한 구성이다. 결론을 먼저 세우고 그 근거를 뒤에서 자세히 논증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오중상대는 내외 · 대소 · 권실 · 본적 · 종탈의 순서로 정리된다. 강의가 제시한 개목초의 순서에서는 대소상대가 따로 서지 않고 제6장의 「소승 있고 대승 있고 권경 있고 실경 있고」 안에 함께 포함되며, 대신 법화경 안의 적문을 이전과 견주는 「권적상대」(제11장)가 독립된 단계로 선다. 같은 오중의 판정을 개목초의 장 순서에 맞추어 배열한 것이다. 관심의 본존초의 오중삼단은 앵매도리 관심의 본존초 제5편에서 다루었다.
이 장의 내외상대에서 판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강의는 그것을 「생명의 인과」로 요약한다. 석존 일대의 가르침은 생명의 인과의 이법을 설해 그릇됨이 없고, 외도의 논의는 생명의 인과의 법리를 알지 못하므로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생명에 삼세에 걸친 인과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람마다 제각각인 숙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이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것은 우주의 엄연한 사실이라고 강의는 말한다.
대각세존 — 다리와 배의 비유
이 장은 「셋째로」라는 말로 시작한다. 첫째 유가(제2장), 둘째 외도(제4장)에 이어 셋째로 내도의 주사친을 드는 것이다. 대각세존은 일체중생의 큰 도사 · 큰 눈 · 큰 다리 · 큰 뱃사공 · 큰 복전이다. 현대어역은 이를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보여 준 근본의 스승」으로 풀이한다.
다섯 칭호는 모두 앞의 장들과 호응한다. 유가의 천존은 「모든 신하의 우두머리, 만민의 다리」였다. 그러나 대성인은 이제 묻는다. 「저들을 배로 삼아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널 수 있겠는가, 저들을 다리로 삼아 육도의 갈림길을 넘기 어려우니라」. 유가의 「다리」는 현세의 사회를 건너게 해 줄 수는 있어도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해 주지는 못한다. 참된 다리, 참된 배는 생사를 건넌 이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대성인은 「우리 대사」의 경지를 두 겹의 「하물며」로 드러내신다. 변역의 생사조차 건넜으니 하물며 분단의 생사이겠는가. 원품의 무명의 뿌리조차 쓰러뜨렸으니 하물며 견사의 가지와 잎이겠는가. 현대어역은 「석가불은 역겁수행의 보살행을 이미 채워 변역조차 건넌 분」이라고 풀이한다. 분단의 생사는 육도 범부의 생사, 변역의 생사는 이승 · 보살의 생사다. 견사혹은 이승이 끊는 미혹, 진사혹은 보살이 끊는 미혹, 무명혹은 부처만이 끊어 다하는 미혹이다. 이 이중의 대비 — 생사의 두 층과 미혹의 세 층 — 가 부처와 외전 · 외도의 성현 사이의 거리를 정확히 잰다.
- 견사혹(견혹 · 사혹)→ 끊으면 이승
- 진사혹→ 보살이 끊음
- 무명혹(원교 42품, 마지막이 원품의 무명)→ 끊어 다하면 부처
삼혹 미단의 범부 — 오늘의 지도자에 대한 물음
강의는 「외전 · 외도의 사성 · 삼선은 그 이름은 성인이지만 실은 삼혹을 끊지 못한 범부요, 그 이름은 현인이지만 실은 인과를 분별하지 못함이 갓난아이와 같으니라」라는 구절을 오늘의 세계로 끌어와 읽는다. 이 금언을 대하면 오늘 세계의 정치 · 경제 · 사상 · 교육 · 예술 각계의 지도자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수상이나 대통령으로, 또는 사상의 지도자나 위인으로 존숭받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좁은 지도자일 뿐 민중을 행복하게 하고 인류를 구제할 수는 없다고 강의는 말한다. 어떤 이는 학문 탐구에 천재적이지만 그 연구 성과가 대량 살상과 문명 파괴에 악용될 수도 있다. 어떤 정치가는 자기 나라의 번영에 공을 세워 존경받지만 다른 나라 국민에게는 큰 악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고도 가난 속에서 괴로운 일생을 마친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생명의 인과를 알지 못함이 갓난아이와 같고, 견사 · 진사 · 무명의 삼혹을 끊지 못한 범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강의의 진단이다.
아무리 머리가 명석하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내세는커녕 한 치 앞도 어둠이다. 과거 · 현재 · 미래에 걸친 자기 생명의 실체를 알 수 없다. 강의는 동양 불법의 극리인 사(事)의 일념삼천의 본존이라는 밝은 거울로 이 삼세의 생명관을 세우고,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 행복을 건설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바른 생명관 · 행복관을 굳게 지닌 지용의 보살이야말로 참된 세계의 지도자로서 사명을 자각해야 하며, 그것이 「본문의 지도자」라고 강의는 호소한다.
원품의 무명을 끊는 이검 — 신(信)의 한 글자
그러면 삼혹의 근본이요 모든 미혹 · 번뇌의 근원인 원품의 무명은 어떻게 끊을 수 있는가. 부처는 그것을 「기울였다」고 본문은 말한다. 말법의 범부에게 그 길은 무엇인가. 강의는 『어의구전』의 두 대목을 든다.
一念三千も信の一字より起り三世の諸仏の成道も信の一字より起るなり、此の信の字元品の無明を切る利剣なり其の故は信は無疑曰信とて疑惑を断破する利剣なり解とは智慧の異名なり信は価の如く解は宝の如し三世の諸仏の智慧をかうは信の一字なり智慧とは南無妙法蓮華経なり、信は智慧の因にして名字即なり信の外に解無く解の外に信無し信の一字を以て妙覚の種子と定めたり
일념삼천도 신(信)의 한 글자에서 일어나고, 삼세 제불의 성도도 신의 한 글자에서 일어나느니라. 이 신이라는 글자는 원품의 무명을 베는 이검(利劍)이니라. 그 까닭은 신이란 「의심 없음을 신이라 한다(無疑曰信)」 하여 의혹을 깨뜨리는 이검이기 때문이니라. 해(解)란 지혜의 다른 이름이니라. 신은 값과 같고 해는 보배와 같으니, 삼세 제불의 지혜를 사는 것은 신의 한 글자이니라. 지혜란 남묘호렌게쿄이니라. 신은 지혜의 인(因)이요 명자즉이니라. 신 밖에 해가 없고 해 밖에 신이 없으니, 신의 한 글자로써 묘각의 종자로 정하였느니라
此の本法を受持するは信の一字なり、元品の無明を対治する利剣は信の一字なり無疑曰信の釈之を思ふ可し
이 본법을 수지하는 것은 신의 한 글자이니라. 원품의 무명을 다스리는 이검은 신의 한 글자이니라. 「의심 없음을 신이라 한다」는 해석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부처가 무량겁의 수행으로 끊은 원품의 무명을, 말법의 범부는 신의 한 글자로 벤다. 신은 값이고 해(지혜)는 보배여서, 값을 치르면 보배를 얻듯 믿음으로 부처의 지혜를 얻는다. 그 지혜가 곧 남묘호렌게쿄다. 그리고 신은 「명자즉」, 곧 처음 묘법을 듣고 믿는 범부의 자리에 있으면서 이미 묘각(부처의 깨달음)의 종자가 된다. 그러므로 신심이야말로 원품의 무명을 끊고, 팔만사천의 모든 번뇌를 그대로 보리로 바꾸며, 인생을 유희하는 절대적 행복의 근원이라고 강의는 말한다. 제1장에서 본 「이신대혜(以信代慧)」가 여기서 원품의 무명이라는 가장 깊은 미혹과의 관계로 다시 확인되는 것이다.
「한 글자 한 구절이 모두 진실」과 「사십여 년 미현진실」
이 장의 마지막 문제는 하나의 모순처럼 보이는 것이다. 대성인은 여기서 석존 일대의 성교가 「한 글자 한 구절이 모두 참된 말씀이요, 한 문장 한 게송도 망어가 아니라」고 하신다. 그런데 석존 자신은 무량의경에서 「사십여 년 동안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四十餘年未顯眞實)」고 설했다. 일대 성교가 모두 진실이라면서 앞의 사십여 년은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니,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
강의는 둘 다 옳다고 답한다. 어떻게 둘 다 옳은가. 「무엇에 대하는가(所對)」에 따라 판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그러므로 일대 오십여 년의 설교는 외전 · 외도에 대하면 대승이요 대인의 진실한 말씀이니라」고 하셨다. 곧 삼혹을 끊지 못한 범부인 외전 · 외도 성인의 설에 견주면, 부처가 설한 것은 아무리 낮은 가르침이라도 훨씬 높고 진실하다. 현대어역도 「어떤 낮은 가르침이라도 외전 · 외도에 대하면 대승이요 대인의 실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그 부처의 오십여 년 설법 가운데 처음 사십여 년은 마지막 법화경을 설하기 위한 서분이고 방편이어서, 인생의 근본 고뇌를 다 해명하지 못했다. 「반드시 진실을 설하리라(要當說眞實)」고 선언하고 설한 법화경이야말로 석존 출세의 본회이며 일체중생을 득탈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것이 다음 제6장의 권실상대다.
그리고 강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말법에 출현하신 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삼대비법의 대백법에 견주면, 석존의 법화경이라 하더라도 서분이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제7장의 문저 판정이다. 같은 법이 무엇에 대하느냐에 따라 진실이 되기도 하고 방편이 되기도 한다는 「상대(相對)」의 논리가, 이 장에서 처음 명시적으로 등장해 개목초 전체의 방법이 된다.
내외상대의 기준은 「생명의 인과를 아는가」다. 삼혹을 끊고 두 생사를 건넌 부처의 말씀은, 외전 · 외도에 대하면 일대 오십 년이 모두 진실이다. 그러나 같은 말씀도 법화경에 대하면 사십여 년은 방편이 되고, 다시 문저에 대하면 법화경 문상도 방편이 된다. 「무엇에 대하는가」가 오중상대의 핵심이다.
본문
但し仏教に入て五十余年の経経・八万法蔵を勘たるに小乗あり大乗あり権経あり実経あり顕教・密教・輭語・麤語・実語・妄語・正見・邪見等の種種の差別あり、 但し法華経計り教主釈尊の正言なり三世・十方の諸仏の真言なり、大覚世尊は四十余年の年限を指して其の内の恒河の諸経を未顕真実・八年の法華は要当説真実と定め給しかば多宝仏・大地より出現して皆是真実と証明す、 分身の諸仏・来集して長舌を梵天に付く此の言赫赫たり明明たり晴天の日よりも・あきらかに夜中の満月のごとし仰いで信ぜよ伏して懐うべし。
다만 불교에 들어가 오십여 년의 경경과 팔만 법장을 살펴보면 소승이 있고 대승이 있고, 권경이 있고 실경이 있으며, 현교 · 밀교, 부드러운 말 · 거친 말, 진실한 말 · 망령된 말, 바른 견해 · 삿된 견해 등 갖가지 차별이 있느니라. 다만 법화경만이 교주 석존의 바른 말씀이요, 삼세 시방 제불의 참된 말씀이니라. 대각세존은 사십여 년이라는 햇수를 가리켜 그 안의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여러 경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팔 년의 법화경은 「반드시 진실을 설하리라」고 정하셨으므로, 다보불이 대지에서 솟아 나와 「모두 이것은 진실이니라」고 증명하였고, 분신의 제불이 모여 와서 긴 혀를 범천에 닿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혁혁하고 명명하여 맑은 날의 해보다도 밝고 한밤의 보름달과 같으니라. 우러러 믿고 엎드려 생각할지니라.
어구 풀이
- 八万法蔵팔만 법장
- 번뇌의 수를 팔만사천의 진로(塵勞)라 하고, 이를 다스리는 가르침의 수를 팔만사천 법장이라 한다. 줄여서 팔만 법장. 석존 일대의 모든 가르침을 가리킨다.
- 小乗・大乗・権経・実経소승 · 대승 · 권경 · 실경
- 소승은 자기 해탈을 목표로 하는 성문 · 연각의 가르침, 대승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목표로 하는 보살의 가르침. 권경은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임시로 설한 방편의 경, 실경은 부처의 깨달음 그대로를 설한 진실의 경으로, 법화경을 가리킨다.
- 顕教・密教현교 · 밀교
- 진언종이 세운 교판으로, 응신의 석존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 드러내어 설한 가르침을 현교, 법신 대일여래가 스스로 법락을 누리려고 내증의 비밀한 경지를 설한 가르침을 밀교라 한다. 대성인은 이 구분 역시 일대 성교 안의 갖가지 차별의 하나로 열거하실 뿐, 그 우열은 권실의 기준으로 다시 판정하신다.
- 輭語・麤語연어 · 추어
- 연어는 부드러운 말, 뜻을 다한 말. 추어는 거친 말, 뜻을 다하지 않은 말.
- 三世・十方の諸仏삼세 · 시방의 제불
- 삼세는 과거 · 현재 · 미래, 시방은 동서남북의 사방과 동북 · 동남 · 서북 · 서남의 사유, 그리고 상하. 「센니치니부인답서」는 「법화경은 시방 삼세 제불의 스승이니라」 하고, 시방의 부처로 동방 선덕불 · 동남방 무우덕불 · 남방 전단덕불 · 서남방 보시불 · 서방 무량명불 · 서북방 화덕불 · 북방 상덕불 · 동북방 삼승행불 · 상방 광중덕불 · 하방 명덕불을, 삼세의 부처로 과거 장엄겁의 천불 · 현재 현겁의 천불 · 미래 성수겁의 천불을 들어, 그 모든 부처와 보살이 다 법화경의 「묘」 한 글자에서 나왔다고 하신다(1315쪽). 『십주비바사론』 등에 의거한 것으로, 이것으로 전부라는 뜻은 아니다.
- 未顕真実미현진실
- 무량의경 설법품의 「사십여 년 동안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四十餘年未顯眞實)」. 법화경의 개경인 무량의경에서 석존 스스로 이전의 설법을 방편이라고 밝힌 문이다.
- 要当説真実요당설진실
- 법화경 방편품의 「세존은 법이 오래된 뒤에 반드시 진실을 설하리라(世尊法久後 要當說眞實)」.
- 皆是真実개시진실
- 법화경 견보탑품에서 다보여래가 보탑 안에서 큰 음성으로 「석가모니 세존께서 설하신 바는 모두 이것이 진실이니라(如是如是 釋迦牟尼世尊 如所說者 皆是眞實)」고 증명한 말씀.
- 長舌を梵天に付く긴 혀를 범천에 닿게 하다
- 인도에서는 혀를 내미는 것을 말이 진실하다는 증거로 삼았다. 법화경 여래신력품에서 석존과 분신의 제불이 광장설(넓고 긴 혀)을 내어 위로 범천에 이르게 한 일을 가리킨다. 「관심의 본존초」는 「경에 이르기를, 그때 세존이 내지 일체 대중 앞에서 큰 신력을 나타내시어 광장설을 내어 위로 범세에 이르게 하시고, 내지 시방세계의 뭇 보배나무 아래 사자좌 위의 제불도 또한 이와 같이 광장설을 내셨다」고 인용하신다(251쪽).
- 赫赫たり明明たり혁혁하고 명명하다
- 빛나고 밝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모습.
일대 성교의 갖가지 차별
제5장에서 일대 오십여 년의 설교가 외전 · 외도에 대해서는 모두 진실이라고 하신 대성인은, 이 장 첫머리에서 「다만(但し)」이라는 한마디로 판정의 기준을 바꾸신다. 이제는 불교 바깥이 아니라 불교 안으로 들어가 경과 경을 견주는 것이다.
불교 안으로 들어가 오십여 년의 경, 팔만 법장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소승과 대승, 권경과 실경, 현교와 밀교, 연어와 추어, 실어와 망어, 정견과 사견 등 갖가지 차별이 있다. 이 목록 자체가 하나의 교판이다. 소승 · 대승은 대소상대, 권경 · 실경은 권실상대의 기준이며, 현교 · 밀교는 진언종이 세운 교판의 용어다. 대성인은 진언종의 현밀 판정도 일대 성교 안의 「갖가지 차별」의 하나로 나란히 열거하실 뿐, 그것을 최종 기준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 최종 기준은 바로 다음 문장에서 선언된다. 「다만 법화경만이 교주 석존의 바른 말씀이요, 삼세 시방 제불의 참된 말씀이니라」.
미현진실과 요당설진실 — 석존 자신의 판정
법화경만이 진실이라는 판정은 누가 내렸는가. 대성인은 그것이 석존 자신의 판정임을 강조하신다. 대각세존은 사십여 년이라는 햇수를 가리켜 그 사이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경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정하고, 팔 년의 법화경은 「반드시 진실을 설하리라」고 정하셨다.
무량의경의 「사십여 년 미현진실」은 법화경을 설하기 직전에 석존 스스로 이전 사십여 년의 설법을 방편이라고 규정한 문이며, 방편품의 「세존은 법이 오래된 뒤에 반드시 진실을 설하리라」는 이제부터 설하는 법화경이 진실이라고 선언한 문이다. 여기에 방편품의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다만 무상도를 설한다(正直捨方便 但說無上道)」를 더하면, 이전과 법화경의 관계가 석존의 말로 완결된다. 대성인의 다른 판정과 달리 권실상대는 경문 그 자체가 판정을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객관적인 판정이라 할 수 있다.
다보의 증명과 분신의 증명
석존 한 사람의 선언으로 그치지 않는다. 법화경에서는 석존의 말을 다른 부처들이 증명한다.
첫째, 다보여래의 증명. 견보탑품에서 칠보탑이 대지에서 솟아 허공에 머물고, 그 안에서 다보여래가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석가모니 세존께서 설하신 바는 모두 이것이 진실이니라」고 큰 음성으로 증명한다. 다보여래는 과거 동방 보정세계의 부처로, 성불한 뒤 시방 어디서든 법화경이 설해지면 그 앞에 보탑으로 솟아 증명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과거불이 현재불의 말을 증명한 것이다.
둘째, 분신 제불의 증명. 석존이 시방에서 교화하던 분신의 제불이 모여 와서, 여래신력품에서 석존과 함께 광장설을 내어 범천에 닿게 한다. 인도에서 혀를 내미는 것은 말이 진실하다는 맹세였다. 시방의 부처가 모두 혀를 내밀어 법화경이 진실임을 맹세한 것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이 증명을 「혁혁하고 명명하여 맑은 날의 해보다도 밝고 한밤의 보름달과 같다」고 하시고, 「우러러 믿고 엎드려 생각할지니라」고 맺으신다. 다보 · 분신의 증명은 개목초 제15장 「다보 · 분신의 증명을 보이다」에서 자세히 다루어지며, 거기서는 특히 이승작불이라는 믿기 어려운 가르침을 증명하는 의미로 전개된다.
권실상대의 의의와 대성인 출세의 본회
강의는 이 장의 의의를 이렇게 정리한다. 내외상대에서 먼저 외도를 파절하고, 이어서 권실상대를 보여 법화경이 제일인 까닭을 설해 보이셨다. 선종 · 정토종 · 진언종 · 화엄종 등 사십여 년의 권교를 의거로 하는 종파는 이미 중국에서 천태대사에게 완전히 파절되었고, 일본에서는 다시 전교대사에게 파절되어 온 나라가 전교대사의 법화경에 귀의했다. 그런데 세상이 쇠퇴하는 틈을 타 다시 불교계가 혼란에 빠지고 그릇된 가르침이 횡행했으므로, 대성인은 권실상대를 세워 파절하셨다. 이 역사는 제9장 · 제10장에서 대성인 자신의 말로 서술된다.
그러나 강의는 여기서 중요한 구별을 강조한다. 대성인 출세의 본회는 삼대비법의 건립에 있으며, 결코 석존의 법화경을 넓히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성인이 법화경을 쓰시므로 석가 불법의 한 부분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강의는 이것이 불교관에서 가장 큰 잘못이라고 본다. 개목초는 이 잘못을 바로잡은 큰 가르침이라는 것이 강의의 시각이다.
강의는 두 부처의 자리를 이렇게 대비한다. 석존은 정법 · 상법의 부처, 대성인은 말법의 부처다. 석존은 법화경 이십팔품을 출세의 본회로 삼아 중생을 구했고, 대성인은 일곱 글자의 삼대비법인 남묘호렌게쿄를 출세의 본회로 삼아 말법의 고뇌하는 중생을 구하려 하셨다. 그러므로 두 부처의 자격과 입장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대성인의 시대인 말법에는 석존 불법의 이익이 없다고 강의는 말한다. 그런데도 염불 · 선종 등이 이미 지난해의 달력과 같은 석가 불법에 집착해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것을 강의는 엄하게 비판한다.
권실상대는 그 자체로 끝나는 판정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는 디딤돌이다. 법화경이 이전의 여러 경보다 뛰어나다는 판정이 서야, 다음 장에서 그 법화경 안의 무엇이 진실의 핵심인가를 물을 수 있다. 대성인은 바로 다음 문장을 「다만 이 경에 두 가지 대사가 있느니라」로 시작하신다.
권실상대는 석존 자신의 「미현진실 · 요당설진실」과 다보의 「개시진실」, 분신 제불의 광장설이라는 세 겹의 증명 위에 선다. 그러나 강의는 법화경 제일을 세우는 것이 대성인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문저의 삼대비법을 드러내기 위한 단계라고 강조한다.
본문
但し此の経に二箇の大事あり倶舎宗・成実宗・律宗・法相宗・三論宗等は名をもしらず華厳宗と真言宗との二宗は偸に盗んで自宗の骨目とせり、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竜樹・天親・知つてしかも・いまだ・ひろいいださず但我が天台智者のみこれをいだけり。 一念三千は十界互具よりことはじまれり、法相と三論とは八界を立てて十界をしらず況や互具をしるべしや、 倶舎・成実・律宗等は阿含経によれり六界を明めて四界をしらず、十方唯有一仏と云つて一方有仏だにもあかさず、 一切有情・悉有仏性とこそ・とかざらめ一人の仏性猶ゆるさず、而るを律宗・成実宗等の十方有仏・有仏性なんど申すは仏滅後の人師等の大乗の義を自宗に盗み入れたるなるべし、
다만 이 경에 두 가지 대사(大事)가 있느니라. 구사종 · 성실종 · 율종 · 법상종 · 삼론종 등은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고, 화엄종과 진언종 두 종은 몰래 훔쳐 자기 종의 뼈대로 삼았느니라.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 용수 · 천친은 알면서도 아직 건져 내지 않았고, 다만 우리 천태지자만이 이것을 품었느니라. 일념삼천은 십계호구에서 비롯되느니라. 법상과 삼론은 팔계를 세우고 십계를 알지 못하니, 하물며 호구를 알겠는가. 구사 · 성실 · 율종 등은 아함경에 의거하니, 육계를 밝히고 사계를 알지 못하며, 「시방에 오직 한 부처만 있다」고 하여 한 방위에 부처가 있다는 것조차 밝히지 않느니라. 「일체 유정에 모두 불성이 있다」고는 설하지 않거니와, 한 사람의 불성조차 허락하지 않느니라. 그런데도 율종 · 성실종 등이 「시방에 부처가 있고 불성이 있다」 따위를 말하는 것은, 부처 멸후의 인사(人師)들이 대승의 뜻을 자기 종에 훔쳐 넣은 것이리라.
어구 풀이
- 二箇の大事두 가지 대사
- 법화경에만 있는 두 가지 큰 일. 현대어역은 이것을 적문의 이(理)의 일념삼천과 본문의 사(事)의 일념삼천으로 풀이한다. 적문의 이승작불(성문 · 연각도 성불한다)과 본문의 구원실성(석존은 오백진점겁 전에 이미 성불했다)이 각각 그 바탕이 되며, 개목초는 제11장 이하에서 이승작불을, 제18장 이하에서 구원실성을 자세히 논한다.
- 倶舎宗구사종
-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을 소의로 하는 종파. 중국에서는 옛날 비담종이라 불렀다.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설하고 일체 제법을 오위(색법 · 심법 · 심소법 · 심불상응행법 · 무위법)로 나누어 그 본성을 추구하며, 사제의 이치를 관하여 아라한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남북조 시대 진제가 『구사론석론』을 지은 뒤 구사종이라 불렸다. 일본에는 658년 지통 · 지달이 당에 들어가 전했고, 나라 시대 겐보 등이 가져와 고후쿠지 등에서 성하게 연구했다. 남도 육종의 하나이나 여러 종에서 겸학한 학문이어서 일정한 상승 계보는 없다.
- 成実宗성실종
- 4세기 무렵 인도의 학승 하리발마의 『성실론』을 소의로 하는 종. 자아도 법도 공하다는 인법이공(人法二空)을 설하고, 이 공관에 바탕해 수행 단계를 27로 나누어(이십칠현성) 번뇌에서 벗어남을 가르친다. 소승 가운데 가장 진전된 교의로 꼽혔다. 5세기 초 구마라집이 『성실론』을 한역한 뒤 그 문하에서 성하게 연구되었으나, 천태대사와 길장이 소승으로 판정한 뒤 쇠퇴했다. 일본에는 삼론종과 함께 전래되었다. 남도 육종의 하나.
- 律宗율종
- 계율을 지니는 수행으로 열반의 경지를 얻으려는 종파. 중국에서는 『사분율』에 의한 학파를 말하며, 대표가 당 초기 도선이 연 남산종이다. 일본에는 남산종을 배운 감진이 754년 건너와 도다이지에 계단원을 세우고, 759년 도쇼다이지를 열어 율 연구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율종이 성립했다. 시모쓰케 야쿠시지와 쓰쿠시 간제온지에도 계단이 설치되어 일본의 승니는 이 세 곳 가운데 한 곳에서 수계하게 되었다. 헤이안 시대에 쇠퇴했다가 가마쿠라 시대에 한때 부흥했다.
- 法相宗법상종
- 『해심밀경』 · 『유가사지론』 · 『성유식론』 등 육경십일론을 소의로 하는 종파. 당대 현장이 인도에서 유가유식의 학문을 전하고 규기(자은)가 대성했다. 오위백법을 세워 일체 제법의 성품과 모습을 분별하고, 제법은 모두 중생 마음속 근본식인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가 전변한 것이라고 설한다. 석존 일대의 설을 유 · 공 · 중도의 삼시교로 나누어 자종을 제3 중도교라 하고, 오성각별을 설해 삼승이 진실이고 일승은 방편이라고 세운다. 일본에는 653년 도쇼가 당에 들어가 현장에게 배우고 660년 돌아와 간고지에서 넓힌 것을 초전으로 한다. 남도 육종의 하나.
- 三論宗삼론종
- 용수의 『중론』 · 『십이문론』과 제바의 『백론』 세 논을 소의로 하는 종파. 구마라집이 세 논을 한역한 뒤 그 제자들이 이어받았고, 수대 가상사의 길장이 대성했다. 대승의 공의 이치로, 자아를 실유로 보는 외도와 법을 실유로 보는 소승(구사종)을 깨뜨리고 성실종의 치우친 공도 깨뜨린다. 불생 · 불멸 · 부단 · 불상 · 불일 · 불이 · 불래 · 불거의 팔불로 여러 치우친 견해를 깨뜨리는 것이 중도의 진리를 드러내는 길이라는 팔불중도를 주장했다. 일본에는 625년 길장의 제자인 고구려 승 혜관이 전한 것을 초전으로 한다. 나라 시대 남도 육종의 하나로 융성했으나 뒤에 쇠퇴했다.
- 華厳宗화엄종
- 화엄경을 소의로 하는 종파. 당대 두순이 열고 법장이 대성했다. 일체 만법이 서로 융통하여 걸림이 없어, 일체를 하나에 거두고 하나가 일체에 두루 한다는 법계연기를 세우고, 이를 깨달으면 속히 불과를 이룬다고 설한다. 오교십종의 교판을 세워 화엄경을 제일로 삼는다. 일본에는 736년 당의 도선(道璿)이 화엄 장소를 전하고, 740년 신라의 심상이 강경하여 그 가르침을 받은 로벤이 도다이지에서 종지를 넓혔다. 남도 육종의 하나.
- 真言宗진언종
-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 등을 소의로 하고 대일여래를 교주로 하는 종파. 구카이(홍법)가 당에 들어가 진언 밀교를 전해 개종했다. 현밀 이교판을 세워, 대일경 등은 법신 대일이 스스로 법락을 누리려고 내증의 비밀한 경지를 설한 밀교이고 다른 종의 가르침은 응신 석가가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드러내어 설한 현교라고 한다. 진언종을 동밀, 지카쿠 · 지쇼가 천태종에 끌어들인 밀교를 태밀이라 한다.
- 骨目골목
- 뼈대와 눈. 가장 중요한 부분, 핵심이라는 뜻.
- 文の底문의 밑(문저)
- 경문의 겉뜻(문상)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잠긴 진실의 뜻. 강의는 「しづめたり(잠겼다)」를 「ひししづめたり(감추어 잠겼다)」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 니치칸 상인은 이것을 「일념삼천 문저비침」이라 부르고 「삼중비전초」에서 풀이했다.
- 竜樹용수
- 부법장의 제14조. 부처 멸후 700년 무렵 남인도에서 나와 대승을 크게 넓힌 논사로, 범명 나가르주나. 뒤에 나온 천친과 함께 정법 시대 후반의 정법 호지자로 이름 높다. 처음 소승을 배웠으나 히말라야에서 한 노비구에게 대승경전을 받은 뒤 대승 선양에 힘썼다. 남인도 국왕이 외도를 믿자 붉은 깃발을 들고 칠 년 동안 왕궁 앞을 오가다 마침내 외도와의 논쟁에서 모두 논파해 국왕의 귀의를 얻었다고 전한다. 『십이문론』 · 『십주비바사론』 · 『중관론』 등을 지었다.
- 天親천친
- 4~5세기 무렵 인도의 학승. 범어 바수반두, 세친이라고도 번역한다. 북인도 간다라 출신으로 무착의 아우. 처음 설일체유부의 소승을 배워 『대비바사론』을 강설하고 『구사론』을 지었다. 뒤에 형 무착의 인도로 대승에 들어갔는데, 소승에 집착했던 잘못을 뉘우쳐 혀를 자르려 하자, 형이 「혀로 대승을 비방했다면 이후 혀로 대승을 찬탄해 죄를 갚으라」고 타일렀다. 이후 많은 대승 논서를 지어 「천부의 논사」라 불렸다. 『구사론』 · 『십지경론』 · 『법화론』 · 『섭대승론석』 · 『불성론』 등이 있다.
- 天台智者천태지자
- 천태대사 지의. 제3장 어구 풀이 참조. 「우리 천태지자」라는 친밀한 호칭에는 대성인이 천태의 법화 해석을 바른 계보로 받아들이신다는 뜻이 담겨 있다.
- 十界互具십계호구
- 법화경에 보인 만인 성불의 원리. 지옥계에서 불계까지 십계의 각 계 중생의 생명에, 다음에 나타날 십계가 인(因)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 이로써 구계와 불계의 단절이 없어져, 모든 중생이 곧바로 불계를 열 수 있음이 보였다. 천태대사는 이 십계호구를 근간으로 일념삼천의 법문을 확립했다.
- 八界・六界・四界팔계 · 육계 · 사계
- 육계는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 · 천의 육도, 사계는 성문 · 연각 · 보살 · 불의 사성(四聖). 아함경은 육도 윤회는 밝혔으나 사성의 경지를 십계의 구조로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팔계는 십계에서 두 세계가 빠진 것으로, 이승을 영영 성불하지 못하는 자로 배척하는 권대승의 입장을 가리킨다고 풀이된다.
- 十方唯有一仏시방유유일불
- 「시방에 오직 한 부처만 있다」. 소승에서는 한 세계 한 시대에 부처는 오직 하나뿐이라고 하여, 석존 외에 시방에 다른 부처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 一切有情・悉有仏性일체 유정 실유불성
- 「일체 유정에 모두 불성이 있다」. 열반경의 「일체중생 실유불성」과 같은 대승의 교의. 소승은 이를 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석존 한 사람 외에는 누구의 불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 人師인사
- 경을 설한 부처가 아니라 경을 해석한 후대의 학승 · 논사.
「다만 이 경에 두 가지 대사가 있느니라」
이 장은 개목초 전체에서 가장 무거운 대목이다. 제6장에서 「다만 법화경만이」 진실이라고 판정하신 대성인은, 다시 「다만 이 경에」라고 하여 그 법화경 안으로 판정의 칼날을 들이미신다. 법화경에는 두 가지 대사가 있다.
현대어역은 그 두 대사를 적문의 이(理)의 일념삼천과 본문의 사(事)의 일념삼천으로 풀이한다. 적문 방편품은 「제법실상 · 십여시」를 설해 십계의 중생이 모두 같은 실상을 갖추었음을 밝히고, 그 위에서 성문 · 연각에게도 성불의 수기를 주었다(이승작불). 이로써 십계가 서로를 갖춘다는 십계호구가 이치(理)로 성립한다. 본문 수량품은 석존이 실은 오백진점겁의 구원에 이미 성불했음을 밝혀(구원실성), 부처의 생명이 상주하며 구계와 함께 있음을 부처의 몸 위에서 보였다. 이로써 십계호구가 사실(事)로 성립한다. 강의는 제9장에서 대일경에 일념삼천이 있을 수 없는 까닭을 「기소구성(記小久成)」, 곧 이승에게 수기를 준 일과 구원실성이 대일경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이것은 두 가지 대사가 일념삼천 성립의 두 기둥이라는 뜻이다.
이 두 가지 대사를 여러 종파는 어떻게 대했는가. 구사종 · 성실종 · 율종 · 법상종 · 삼론종 등은 그 이름조차 모른다. 화엄종과 진언종은 몰래 훔쳐 자기 종의 뼈대로 삼았다. 그 도용의 경위는 제9장에서 자세히 서술된다.
「문의 밑에 잠겨 있느니라」 — ひししづめたり
그리고 개목초 전체의 열쇠가 되는 한 문장이 나온다.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竜樹・天親・知つてしかも・いまだ・ひろいいださず但我が天台智者のみこれをいだけり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 용수 · 천친은 알면서도 아직 건져 내지 않았고, 다만 우리 천태지자만이 이것을 품었느니라
강의는 먼저 「しづめたり」라는 한 구절의 읽기를 문제 삼는다. 이 구절은 「ひししづめたり」, 곧 「감추어 잠갔다」로 읽는 것이 삼중비법의 뜻에서 바르고 또 깊은 비밀의 법문을 뜻한다는 것이다. 단지 「잠겨 있다」는 상태의 서술이 아니라, 부처가 의도적으로 감추어 두었다는 뜻을 담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저비침(文底秘沈)」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강의는 여기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법화경 방편품은 십여실상에 맞추어 일념삼천을 설하고, 수량품은 본인 · 본과 · 본국토의 세 묘(三妙)를 합하여 논함으로써 일념삼천을 밝혔다. 그런데 어찌하여 「문저에 감추어 잠겼다」고 하는가. 또 잠겨 있는 실체는 무엇인가. 강의는 이것이야말로 대성인 홍교의 본뜻이요 후지 문류의 깊은 비밀의 법문이며, 이것을 분명히 깨달으면 일대 성교가 거울에 비추듯 흐림이 없어지고 삼시 홍교의 차례가 환히 드러나며, 이 시대에 태어나 정법을 믿는 이들의 임무도 저절로 분명해진다고 말한다.
삼중비전 — 「다만(但)」의 세 겹
「삼중비전초」의 문 삼단 · 의 십문
이 문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삼중비전초」를 지어, 문(文)을 세 단으로 나누고 뜻(義)을 열 문으로 열어 후지 문류의 오의를 자세히 서술했다.
문의 삼단은 다음과 같다.
- 표(標) — 「일념삼천의 법문은」
- 석(釋) —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
- 결(結) — 「용수 · 천친은 알면서도 아직 건져 내지 않았고, 다만 우리 천태만이 이것을 품었느니라」
의의 십문은 다음과 같다.
- 일념삼천의 법문은 듣기 어려움을 보인다.
- 문상(文相)의 대지를 보인다.
- 일념삼천의 수량을 보인다.
- 일념에 삼천을 갖추는 모습(相貌)을 보인다.
- 권실상대하여 일념삼천을 밝힘을 보인다.
- 본적상대하여 일념삼천을 밝힘을 보인다.
- 종탈상대하여 일념삼천을 밝힘을 보인다.
- 사(事) · 이(理)의 일념삼천을 보인다.
- 정법 · 상법 시대에 아직 넓히지 않은 까닭을 보인다.
- 말법에 유포하는 대백법임을 보인다.
십문의 차례 자체가 하나의 논증이다. 일념삼천이 무엇인지(제1~4문)를 먼저 밝히고, 그것을 세 겹의 상대로 가려내며(제5~7문), 사와 이를 구분한 뒤(제8문), 왜 정 · 상 이천 년에 넓혀지지 않았고 왜 말법에 넓혀지는가(제9 · 10문)로 맺는다.
-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권실상대 · 제1법문 · 이전의 권교를 가림천태의 「근성의 융 · 불융」 「화도의 시종 · 불시종」이 여기에 속함
- 但本門・寿量品다만 본문 수량품→ 본적상대 · 제2법문 · 적문을 가림천태의 「사제의 원근 · 불원근」이 여기에 속함
- 但……文の底にしづめたり다만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 종탈상대 · 제3법문 · 문상의 탈익을 가림천태의 교판에 없음
「다만」이 세 번 걸린다
니치칸 상인은 이 문에 삼중비전의 뜻을 보여, 「다만(但)」이라는 한 글자가 세 겹에 걸린다고 판정했다. 그 요지는 다음 문에 있다.
久遠下種の名字の妙法は一代経の中には但法華経、法華経の中には但本門寿量品、本門寿量品の中には但文底に秘沈する故に一念三千文底秘沈と云うなり
구원 하종의 명자의 묘법은, 일대경 가운데서는 다만 법화경, 법화경 가운데서는 다만 본문 수량품, 본문 수량품 가운데서는 다만 문저에 감추어 잠겼으므로 「일념삼천 문저비침」이라 하느니라
곧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이라 하여 이전의 권교를 가려내는 것이 권실상대 · 제1법문이다. 다음 「다만 본문 수량품」이라 하여 적문을 가려내는 것이 본적상대 · 제2법문이다. 다음 「다만 문의 밑에 잠겨 있다」고 하여 문상의 탈익을 가려내는 것이 종탈상대 · 제3법문이다. 한 글자 「다만」이 세 번 걸려 세 겹의 가려냄을 이루는 것이다.
천태의 삼종교상과 당가의 삼중
니치칸 상인은 이 삼중의 밝은 거울에 천태의 교판을 비추어 본다. 천태대사는 『법화현의』에서 법화경이 다른 경과 다른 점을 「삼종교상」으로 밝혔다. 제1 근성의 융 · 불융(중생의 근기가 원만히 융합되었는가), 제2 화도의 시종 · 불시종(부처의 교화가 처음과 끝을 갖추었는가), 제3 사제의 원근 · 불원근(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먼가 가까운가)이다. 앞의 둘은 법화경 적문이 이전의 경보다 뛰어난 점을, 셋째는 본문 수량품이 석존과 제자의 인연을 구원에서 밝힌 점을 말한다.
니치칸 상인에 따르면, 천태가 세운 제1법문 근성의 융 · 불융과 제2법문 화도의 시종 · 불시종은 모두 당가의 제1법문 권실상대에 속하고, 천태의 제3법문 사제의 원근 · 불원근은 당가의 제2법문 본적상대에 속한다. 그러므로 당가의 제3법문 종탈상대는 천태의 교판에 없다. 대성인이 「다만 우리 천태지자만이 이것을 품었다」고 하신 것은, 천태가 일념삼천을 설했으되 그것을 안으로 품었을 뿐 그 실의(實義)를 드러내지 않았음을 보이신 것이다.
천태의 「삼종교상」은 『법화현의』 권1상에서 법화경의 교상을 다른 경과 구별하는 세 기준으로 제시된다. 천태 교학 안에서 이 셋은 모두 법화경이 이전보다 뛰어난 점을 밝히는 것으로, 문상과 문저를 가르는 「종탈」의 기준은 들어 있지 않다. 니치칸 상인은 이 공백을 대성인의 독자적 판정이 열린 자리로 본다.
용수 · 천친은 건져 내지 않고, 천태는 품었다
결(結)의 단은 정법 · 상법의 논사들이 일념삼천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말한다. 정법 시대의 용수 · 천친은 알면서도 아직 건져 내지 않았다. 상법 시대의 천태는 이것을 품었다. 품었다는 것은 안으로 깨달았다는 뜻이며, 현대어역도 「다만 우리 천태지자대사만이 이것을 마음속으로 깨달았다」고 풀이한다.
천태는 일념삼천을 『마하지관』 권5에서 체계적으로 설했다. 그런데 왜 「품었을 뿐」이라고 하는가. 「관심의 본존초」가 그 까닭을 밝힌다.
像法の中末に観音・薬王・南岳・天台等と示現し出現して迹門を以て面と為し本門を以て裏と為して百界千如・一念三千其の義を尽せり、但理具を論じて事行の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並びに本門の本尊未だ広く之を行ぜず所詮円機有つて円時無き故なり
상법의 중 · 말에 관음 · 약왕이 남악 · 천태 등으로 나타나 출현하여, 적문을 겉으로 삼고 본문을 속으로 삼아 백계천여 · 일념삼천의 뜻을 다하였느니라. 다만 이구(理具)를 논하였을 뿐, 사행(事行)의 남묘호렌게쿄 다섯 글자와 본문의 본존은 아직 널리 행하지 않았으니, 결국 원교의 근기는 있었으나 원교의 때가 없었기 때문이니라
천태는 적문을 겉(面)으로 하고 본문을 속(裏)으로 하여 일념삼천의 뜻을 다했으나, 그것은 「이구(理具)」, 곧 일념에 삼천이 이치로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논한 데 그쳤다. 사행의 남묘호렌게쿄와 본문의 본존은 아직 행하지 않았다. 원교를 받아들일 근기는 있었으나 그것을 넓힐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은초」는 천태 · 전교가 넓히지 않은 정법이 있음을 문답으로 밝힌다.
問うて云く天台伝教の弘通し給わざる正法ありや、答えて云く有り求めて云く何物ぞや、答えて云く三あり、末法のために仏留め置き給う
묻기를, 천태 · 전교가 넓히지 않으신 정법이 있는가. 답하기를, 있느니라. 구하기를, 무엇인가. 답하기를, 셋이 있으니 말법을 위하여 부처가 남겨 두셨느니라
강의는 이 어서들에 따라 이렇게 정리한다. 일념삼천의 법문은 온전히 대성인이 지니신 것이다. 석존은 인도에서 적문에서는 이치 위에서 설하고 본문에서는 불신(佛身)에 맞추어 설했으나, 그 둘은 모두 탈익이요 적(迹)이어서 물에 비친 달 그림자와 같다. 천태는 적면본리의 일념삼천을 세워 이구는 다 논했으나 사행의 일념삼천에는 아직 미치지 않았다.
사행의 일념삼천 — 삼대비법
말법의 본불이 세운 사의 일념삼천
말법에 들어와 법화경의 예언대로 명자 범부의 모습으로 출현하신 대성인은, 마침내 불법의 극리인 사행의 일념삼천을 세워 삼대비법으로서 말법의 중생에게 주셨다고 강의는 말한다. 수량품 문저 하종의 사행의 일념삼천이란 본문의 본존이며, 이 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부르는 것이 곧 석존 일대에서도 말하지 않고 문저에 잠가 둔 사행의 일념삼천이라는 것이 강의의 설명이다.
「삼대비법품승사」는 그 삼대비법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는가를 이렇게 밝힌다.
問う所説の要言の法とは何物ぞや、答て云く夫れ釈尊初成道より四味三教乃至法華経の広開三顕一の席を立ちて略開近顕遠を説かせ給いし涌出品まで秘せさせ給いし実相証得の当初修行し給いし処の寿量品の本尊と戒壇と題目の五字なり
묻기를, 설하신 바 요언의 법이란 무엇인가. 답하기를, 무릇 석존께서 처음 성도하신 때부터 사미 · 삼교 내지 법화경의 광개삼현일의 자리를 떠나 약개근현원을 설하신 용출품에 이르기까지 감추어 두신, 실상을 증득하신 당초에 수행하신 바의 수량품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다섯 글자이니라
이 문이 말하는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삼대비법은 석존이 성도 이래 용출품까지 감추어 두었다는 것. 「비침(秘沈)」의 「비(秘)」가 여기에 있다. 둘째, 삼대비법은 석존이 「실상을 증득한 당초에 수행한」 법이라는 것. 곧 석존이 구원에 성불할 때 그 원인으로서 수행한 법이 삼대비법이다. 강의는 이것을 「삼대비법은 실로 석존이 구원에 성도하던 당초에 수행한 삼대비법」이라고 요약한다.
어느 문의 밑에 잠겼는가 — 「아본행보살도」
그러면 그 삼대비법은 수량품의 어느 문 밑에 잠겨 있는가.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개목초 문단」을 들어 답한다. 니치칸 상인은 먼저 다른 문류의 옛 주석서에 있는 여섯 가지 설을 소개한다.
- ①如來如實知見여래는 여실하게 지견한다
- ②是好良藥이 좋은 약
- ③如來秘密神通之力여래의 비밀 신통의 힘
- ④수량품의 제목인 묘법
- ⑤수량품 한 품 전체
- ⑥然我實成佛已來그러나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 「여래는 여실하게 삼계의 모습을 지견한다(如來如實知見)」 등의 문 — 이 문은 능히 아는 지견을 설하지만, 문저에서는 알려지는 대상인 삼천에 있기 때문이라는 설.
- 「이 좋은 약(是好良藥)」의 문 — 좋은 약의 체가 곧 묘법의 일념삼천이기 때문이라는 설.
- 「여래의 비밀 신통의 힘(如來秘密神通之力)」의 문 — 문면은 본지의 상즉삼신을 설하지만 문저에 법체의 일념삼천을 머금었기 때문이라는 설.
- 다만 수량품의 제목인 묘법 — 「관심의 본존초」가 「일념삼천의 구슬을 싸서」라고 한 것이 이것이라는 설.
- 수량품 한 품의 문 전체 — 발적현본 위에 일념삼천을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설.
- 「그러나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然我實成佛已來)」의 문 — 「비밀초」가 이 문을 들어 일념삼천을 증명하고, 『어의구전』이 사의 일념삼천에 맞추어 이 문을 풀이하기 때문이라는 설.
니치칸 상인은 이 여섯 설을 「모두 사람의 생각일 뿐, 어찌 성인의 뜻에 관계되겠는가」라고 물리치고, 정의를 이렇게 밝힌다.
御相伝に云く本因妙の文なり○当に知るべし後後の位に登る所以は並に前前の所修に由る、故に知んぬ我本行菩薩道の文底に久遠名字の妙法を秘沈し給うなり
상전(相傳)에 이르기를 「본인묘의 문이니라」 하였느니라. ……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뒤뒤의 지위에 오르는 까닭은 모두 앞앞에 닦은 바에 말미암느니라. 그러므로 알지니라,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의 문 밑에 구원 명자의 묘법을 감추어 잠그셨느니라
문단의 논증을 풀어 보면 이렇다. 수량품의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 이룬 수명은 지금도 아직 다하지 않았다(我本行菩薩道 所成壽命 今猶未盡)」는 석존이 구원에 성불하기 전 보살도를 행한 「본인(本因)」을 설한 문이다. 이 문을 문상으로 논하면 그 보살도는 초주(初住) 이상의 지위에 있다. 그러므로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초주 이상의 지위가 아니라면 어찌 상주하는 수명을 얻겠는가. 그래서 이 문을 풀이한 해석에 「초주에 오를 때 이미 상주하는 수명을 얻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마땅히 알아야 한다. 뒤의 지위에 오르는 까닭은 모두 앞의 지위에서 닦은 바에 말미암는다. 초주에 오른 것은 그 앞의 명자즉, 곧 처음 묘법을 듣고 믿은 범부의 자리에서 닦은 수행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본행보살도」의 문상은 초주 이상의 보살도를 말하지만, 그 문저에는 구원의 명자의 묘법, 곧 석존이 범부로서 처음 듣고 믿어 성불의 원인으로 삼은 묘법이 감추어져 있다. 이것이 니치칸 상인의 결론이며, 상인은 이것을 대성인의 「본인묘초」와 닛코상인의 「문저대사초」에 근거한다고 하고 「감출지어다, 감출지어다」로 맺는다.
「아본행보살도」의 문을 문저비침의 문으로 보는 이 해석은 니치칸 상인이 「본인묘초」의 상전에 근거해 세운 후지 문류의 해석이다. 상인이 소개한 여섯 설은 대성인 입멸 뒤 여러 문류의 주석서에 보이는 해석으로, 각각 수량품의 다른 구절에 주목했다. 이 해석들의 차이는 무엇을 「일념삼천의 법체」로 보는가의 차이이기도 하다.
다른 문류에 대한 강의의 비판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명백한 가르침이 있는데도 다른 문류는 그 진실을 쉽게 붙잡지 못하고 그릇됨에 그릇됨을 거듭해 왔다고 비판한다. 적문의 시성정각을 가려내고 본문 수량품을 드러내는 데까지는 설하는 이가 많지만, 「문저비침」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상을 고수하므로 본불을 석존으로 세워 천태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문저의 참뜻, 곧 종탈상대 위에서 니치렌 대성인을 하종의 본불로 우러러야 한다는 것이 강의가 이 장에서 거듭 강조하는 결론이다.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의 「다만」은 권실 · 본적 · 종탈의 세 겹에 걸린다. 천태는 이 가운데 권실 · 본적까지를 밝히고 일념삼천을 이구로 「품었을」 뿐이며, 문저에 잠긴 사행의 일념삼천, 곧 「아본행보살도」의 문 밑에 감추어진 구원 명자의 묘법을 삼대비법으로 드러낸 것은 대성인이시다. 이것이 개목초가 「인본존 개현의 서」인 까닭의 핵심이다.
십계호구에서 비롯된다 — 여러 종파의 한계
일념삼천의 출발점
문저의 판정을 내리신 대성인은 이어 「일념삼천은 십계호구에서 비롯되느니라」고 하여, 일념삼천을 모르는 여러 종파의 한계를 하나하나 짚으신다. 일념삼천은 지옥에서 부처까지의 십계가 서로 십계를 갖추어 백계가 되고, 백계 하나하나가 십여시를 갖추어 천여가 되며, 그것이 다시 오음 · 중생 · 국토의 삼세간에 걸쳐 삼천이 되는 법문이다. 그 출발점은 십계호구다. 십계를 모르면 호구를 알 수 없고, 호구를 모르면 일념삼천은 성립하지 않는다. 일념삼천의 구조 자체는 앵매도리의 五 일념삼천과 관심의 본존초 제1편에서 다루었다.
법상 · 삼론 — 팔계를 세우고 십계를 모른다
법상종과 삼론종은 대승이지만 팔계를 세우고 십계를 알지 못한다. 하물며 호구를 알겠는가. 법상종은 중생의 성품을 다섯으로 나누는 오성각별을 설해, 성문 · 연각의 성품이 정해진 이는 영영 성불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승을 성불의 길에서 배제하면 십계 가운데 성문 · 연각의 두 세계는 부처의 세계와 통하지 못하고, 십계호구는 성립하지 않는다. 대성인이 이들을 「팔계」라 하신 것은 이렇게 이승을 버리는 권대승의 입장을 가리킨다고 풀이된다. 제7장의 「두 가지 대사」 가운데 첫째인 이승작불이 없으면 일념삼천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 여기서 다시 확인된다.
구사 · 성실 · 율 — 아함에 의거해 육계만 안다
구사 · 성실 · 율종 등은 아함경에 의거한다. 아함경은 지옥에서 천까지의 육계는 밝혔으나 성문 · 연각 · 보살 · 부처의 사계를 십계의 구조 안에서 알지 못한다. 또 「시방에 오직 한 부처만 있다」고 하여 석존 외에는 한 방위에 부처가 있다는 것조차 밝히지 않는다. 「일체 유정에 모두 불성이 있다」고 설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불성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후대의 율종이나 성실종 등이 「시방에 부처가 있고 불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부처 멸후의 인사들이 대승의 뜻을 자기 종에 훔쳐 넣은 것이라고 대성인은 판정하신다. 이 「훔쳐 넣었다」는 말이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실마리다. 본문은 여기서 끊기지 않고 「예컨대 외전 · 외도 등은……」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소승 종파가 대승의 뜻을 훔치고, 화엄 · 진언이 일념삼천을 훔친 것이, 외도와 외전이 불교의 뜻을 훔친 것과 같은 구조라는 것이다.
삼대비법과 과학 — 강의의 변증
강의는 이 장의 해설에서 삼대비법의 본존의 공덕을 논하며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다시 다룬다. 삼대비법의 본존에는 법력 · 불력이 있어 범부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위대한 공능이 있으며, 의사가 고치지 못한 병이 낫거나 평생 가난해야 할 숙명의 사람이 그 숙명을 깨뜨리는 현상이 있다고 강의는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인이 많겠지만, 그것은 불교의 철리를 모르는 이의 말이라는 것이다.
강의는 먼저 학문 세계의 구조를 살핀다. 과학은 모두 우주의 현상을 대상으로 하지만 분과로 보면 물질 방면의 물리학 · 화학 · 수학 · 의학, 마음 방면의 윤리학 · 철학, 사회 방면의 경제학 · 법학 · 사회학 등이 있다. 이 분과들 사이에는 아무런 상극이 없다. 수학과 법률은 서로 다툴 일이 없고, 법학과 경제학은 분야가 다를 뿐 서로 존중하며 그 정리를 쓴다. 마찬가지로 과학과 불교도 대립하지 않는다. 참된 불교는 같은 우주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전시킨 것이며, 그 궁극은 생명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불교는 살아 있다는 사실, 몸과 마음이 차별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공리로 삼아 최고의 정리까지 전개되었고, 그 연구와 발전은 대성인에 의해 최고의 극한에 이르렀다는 것이 강의의 주장이다.
강의는 여기서 장안대사가 천태대사의 일념삼천을 찬탄한 말을 끌어온다. 장안대사는 『마하지관』 서문에서 「천축의 대론도 그 무리가 아니요, 진단의 인사가 어찌 수고로이 말할 것이 있으랴.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법상(法相)이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천태의 학리가 그 시대 불교로서는 더 이상이 없을 만큼 높은 데까지 이르렀으므로 장안은 이렇게 큰 확신으로 찬탄했다. 강의는 이와 같이 본불 대성인은 부처의 경지에 서서 불교의 최고 극리, 고뇌하는 중생을 구제하는 궁극의 대철리를 설하셨다고 하며, 장안의 말을 빌려 「서양 철학의 대론도 그 무리가 아니요, 동양의 불교도가 어찌 수고로이 말할 것이 있으랴.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법상이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라고 찬탄한다.
그리고 강의는 하나의 유비를 든다. 과학에서 원자론 연구가 고도화되어 원자핵 분열의 원리가 발표되자 곧 그것이 실제 기술로 옮겨졌듯이, 불교에서도 우주의 실체는 무엇인가, 생명의 실상은 어떠한가, 불행한 생활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궁극의 대정리가 대성인의 가슴에 솟아난 이상, 부처의 자비로서 고뇌하는 중생의 생활에 실천의 형태로 주어지지 않을 리가 없다. 이것이 사의 일념삼천, 삼대비법의 본존이며, 그러므로 그 공능은 결코 미신이 아니라 이론적 입장에서 건립된 것이라고 강의는 말한다. 제4장에서 「이론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종교」라고 한 논의가 여기서 문저의 일념삼천과 본존의 관계로 완결되는 셈이다.
일념삼천은 십계호구에서 시작하므로, 이승을 버리는 권대승(팔계)도 사성을 모르는 소승(육계)도 일념삼천을 알지 못한다. 법화경만이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의 「두 가지 대사」로 일념삼천을 세우며, 그 일념삼천의 근원은 수량품 문저에 감추어진 구원 명자의 묘법이다. 강의는 이 사행의 일념삼천을 이론에서 실천으로 옮긴 것이 삼대비법이라고 설명한다.
본문
例せば外典・外道等は仏前の外道は執見あさし仏後の外道は仏教をききみて自宗の非をしり巧の心・出現して仏教を盗み取り自宗に入れて邪見もつとも・ふかし、 附仏教・学仏法成等これなり、外典も又又かくのごとし漢土に仏法いまだ・わたらざりし時の儒家・道家は・いういうとして嬰児のごとく・はかなかりしが後漢・已後に釈教わたりて対論の後・釈教やうやく流布する程に釈教の僧侶・破戒のゆへに或は還俗して家にかへり或は俗に心をあはせ儒道の内に釈教を盗み入れたり、 止観の第五に云く「今世多く悪魔の比丘有つて戒を退き家に還り駈策を懼畏して更に道士に越済す、 復た名利を邀て荘老を誇談し仏法の義を以て偸んで邪典に安き高を押して下に就け尊を摧いて卑に入れ概して平等ならしむ」云云、 弘に云く「比丘の身と作つて仏法を破滅す若しは戒を退き家に還るは衛の元嵩等が如し、即ち在家の身を以て仏法を破壊す、 此の人正教を偸竊して邪典に助添す、押高等とは道士の心を以て二教の概と為し邪正をして等しからしむ義是の理無し、 曾つて仏法に入つて正を偸んで邪を助け八万・十二の高きを押して五千・二篇の下きに就け用つて彼の典の邪鄙の教を釈するを摧尊入卑と名く」等云云、 此の釈を見るべし次上の心なり。
예컨대 외전 · 외도 등은, 부처 이전의 외도는 집착하는 견해가 얕았으나, 부처 이후의 외도는 불교를 듣고 보아 자기 종의 그릇됨을 알고 교묘한 마음이 생겨나 불교를 훔쳐 자기 종에 넣었으므로 사견이 가장 깊으니라. 부불교(附佛敎) · 학불법성(學佛法成) 등이 이것이니라. 외전도 또한 이와 같으니, 한토에 불법이 아직 건너오지 않았을 때의 유가 · 도가는 느긋하여 갓난아이처럼 덧없었으나, 후한 이후에 석교(釋敎)가 건너와 대론한 뒤 석교가 점차 유포됨에 따라, 석교의 승려가 파계한 까닭에 혹은 환속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혹은 세속에 마음을 맞추어 유교 · 도교 안에 석교를 훔쳐 넣었느니라. 지관 제5에 이르기를 「지금 세상에는 악마 같은 비구가 많아 계를 물리고 집으로 돌아가며, 처벌을 두려워하여 다시 도사에게로 넘어가느니라. 또 명리를 구하여 장자 · 노자를 과장하여 말하고, 불법의 뜻을 훔쳐 사전(邪典)에 붙여, 높은 것을 눌러 낮은 데로 나아가게 하고 존귀한 것을 꺾어 비천한 데 넣어 대체로 평등하게 하느니라」 하였고, 홍결에 이르기를 「비구의 몸이 되어 불법을 파멸하느니라. 혹 계를 물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위원숭 등과 같으니, 곧 재가의 몸으로 불법을 파괴하느니라. 이 사람은 바른 가르침을 훔쳐 사전을 도와 보태느니라. 높은 것을 누른다 함은 도사의 마음으로 두 가르침의 잣대를 삼아 사와 정을 같게 하는 것이니, 이러한 이치는 없느니라. 일찍이 불법에 들어와 바른 것을 훔쳐 삿된 것을 돕고, 팔만 · 십이부의 높은 것을 눌러 오천 자 · 두 편의 낮은 것에 나아가게 하여, 그것으로 저 책의 삿되고 비루한 가르침을 풀이하는 것을 존귀한 것을 꺾어 비천한 데 넣는다(摧尊入卑)고 이름하느니라」 하였느니라. 이 해석을 보아야 하느니라. 바로 앞의 뜻이니라.
어구 풀이
- 仏前の外道・仏後の外道부처 이전의 외도 · 부처 이후의 외도
- 석존 출세 이전의 외도는 자기 견해에 집착했으나 그 집착이 얕았고, 석존 이후의 외도는 불교를 듣고 자기 교의의 결함을 알자 불교의 교리를 훔쳐 자기 교의를 꾸몄으므로 사견이 더 깊어졌다는 대비.
- 附仏教・学仏法成부불교 · 학불법성
- 본래 낮은 외도이면서 불법의 가르침을 훔쳐 마치 원래 자기 종의 뜻인 것처럼 세우는 이. 「일대성교대의」는 「외도에 세 사람이 있다. 첫째는 불법 밖의 외도로 아흔다섯 종의 외도. 둘째는 부불법성의 외도로 소승. 셋째는 학불법의 외도로 묘법을 알지 못하는 대승의 외도이니라」(403쪽)라고 하신다. 불법 안에 있으면서도 그 참뜻을 모르면 외도와 다름없다는 엄한 판정이다.
- いういうとして느긋하여
- 유유(悠悠)히. 한가롭고 느긋하여 절박함이 없는 모습. 갓난아이에 견주어, 불교를 만나기 전 유가 · 도가의 소박한 상태를 말한다.
- 釈教석교
- 석가의 가르침, 곧 불교.
- 駈策を懼畏して처벌을 두려워하여
- 구책(駈策)은 처벌 · 책벌. 구(駈)는 쫓아내는 것, 책(策)은 지팡이 등으로 꾸짖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비구 · 비구니가 율에 어긋나는 비법 · 악행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일을 말한다. 구외(懼畏)는 두려워함.
- 道士に越済す도사에게로 넘어가다
- 도사는 도교를 넓히는 이. 월제(越濟)는 자기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출가해 승려가 되거나, 퇴전하여 불법을 깨뜨리고 도사가 되는 것을 말한다. 『마하승기율』(동진의 불타발타라 · 법현 공역, 40권) 권23은 「식전에는 불도 수행자의 표식을 달고 그 옷을 입고 걸식하며, 식후에는 외도의 표식을 달고 외도의 옷을 입고 걸식하러 다닌다. 이러한 사람을 월인(越人)이라 한다」고 설한다.
- 荘老を誇談し장자 · 노자를 과장하여 말하다
- 장로(莊老)는 장자와 노자로, 도교의 조사로 받든다. 과담(誇談)은 과장하여 말하는 것으로, 마치 도가의 깨달음을 얻은 듯이 큰소리치는 것이다.
- 衛の元嵩위원숭
- 북주의 승려 위원숭. 생몰년은 알 수 없으나 천태대사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해 망명 법사의 제자가 되었으나 명리를 구하는 마음이 강해 마침내 환속했다.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북주 무제에게 상소해 폐불을 진언했고, 무제는 이를 믿어 불교를 탄압했다(북주의 폐불, 574년). 원숭은 이 방법(謗法)으로 혀가 문드러져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전한다. 「마쓰노전어소식」에 「숭법사는 혀가 문드러지고」, 「현방법초」에 「숭령법사 등은 정법을 비방하여 현신에 대아비지옥에 떨어지고 혀가 입안에서 문드러졌다」고 하신다.
- 八万十二팔만 · 십이
- 팔만 법장과 십이부경을 줄인 말. 곧 석존 일대의 불교.
- 五千二篇오천 자 · 두 편
- 노자 『도덕경』. 오천여 자로 이루어지고 상편(도경) · 하편(덕경)의 두 편으로 나뉘므로 이렇게 부른다.
- 摧尊入卑최존입비
- 존귀한 것(불교)을 꺾어 비천한 것(외전)에 넣는 것.
- 押高就下압고취하
- 높은 것을 눌러 낮은 데로 나아가게 하는 것. 불교의 높은 뜻을 끌어내려 도가의 낮은 가르침에 맞추는 일이다.
- 概して平等ならしむ대체로 평등하게 하다
- 개(槪)는 됫박 위를 평평하게 고르는 평미레. 높고 낮음을 깎고 메워 같게 만든다는 뜻으로, 불교와 도교를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을 가리킨다.
- 次上の心なり바로 앞의 뜻이니라
- 이 지관 · 홍결의 해석이 바로 앞 제7장에서 말한 「율종 · 성실종 등이 대승의 뜻을 훔쳐 넣었다」, 「화엄 · 진언이 일념삼천을 훔쳤다」는 뜻과 같다는 말이다.
부처 이전의 외도와 부처 이후의 외도
제7장의 마지막 문장 「부처 멸후의 인사들이 대승의 뜻을 자기 종에 훔쳐 넣은 것이리라」는 끊기지 않고 이 장의 「예컨대」로 이어진다. 현대어역은 이 연결을 괄호 안에 풀어, 「화엄 · 진언의 대승종도, 율종 · 성실종 등의 소승종도 법화경의 일념삼천을 훔쳐 넣어 자기 종의 뜻으로 삼았다. 그 모습은 예컨대……」로 이어 읽는다. 곧 이 장은 불교 안의 도용을 설명하기 위해 불교 바깥의 도용을 예로 드는 장이다.
대성인은 먼저 인도의 외도를 두 시기로 나누신다. 부처 이전의 외도는 집착하는 견해가 얕았다. 그런데 부처 이후의 외도는 불교를 듣고 보아 자기 종의 그릇됨을 알자 교묘한 마음이 생겨 불교를 훔쳐 자기 종에 넣었으므로 사견이 가장 깊어졌다. 부불교 · 학불법성의 외도가 이것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역설이 있다. 불교를 알게 된 외도가 오히려 사견이 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자기 교의의 결함을 알았다면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않고 불교의 교리로 결함을 메워 그럴듯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 깨뜨리기 어려운 사견이 된 것이다. 「일대성교대의」가 소승과 묘법을 모르는 대승까지 외도의 범주에 넣은 것도 같은 시각이다. 불교의 이름과 용어를 쓰더라도 그 참뜻을 모르고 자기 뜻대로 끌어다 쓰면 외도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외전 — 승려의 파계와 도교의 도용
외전도 이와 같다. 한토에 불법이 건너오기 전의 유가 · 도가는 느긋하여 갓난아이처럼 덧없었다. 그런데 후한 이후 불교가 건너와 대론한 뒤 점차 유포되자, 불교의 승려가 파계한 까닭에 혹은 환속해 집으로 돌아가고 혹은 세속에 마음을 맞추어, 유교 · 도교 안에 불교를 훔쳐 넣었다.
대성인은 이것을 『마하지관』 권5와 『지관보행전홍결』의 문으로 증명하신다. 지관은 「지금 세상에는 악마 같은 비구가 많다」고 개탄한다. 그들은 계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며, 처벌이 두려워 도사에게로 넘어간다. 또 명리를 구해 장자 · 노자를 과장하여 말하고, 불법의 뜻을 훔쳐 도가의 경전에 붙인다. 그리하여 높은 것을 눌러 낮은 데로 나아가게 하고, 존귀한 것을 꺾어 비천한 데 넣어, 결국 불교와 도교를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홍결은 이것을 구체적으로 풀이한다. 비구의 몸으로 불법을 파멸한 예가 위원숭이다. 그는 계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재가의 몸으로 불법을 파괴했다. 그는 바른 가르침을 훔쳐 사전을 도왔다. 「높은 것을 누른다」는 것은 도사의 마음으로 두 가르침을 재는 잣대를 삼아 사와 정을 같게 만드는 것이니, 그런 이치는 있을 수 없다. 일찍이 불법에 들어와 바른 것을 훔쳐 삿된 것을 돕고, 팔만 법장 · 십이부경의 높은 가르침을 눌러 오천 자 두 편의 『노자』에 나아가게 하여, 그것으로 노자의 가르침을 풀이하는 것을 「존귀한 것을 꺾어 비천한 데 넣는다」고 한다.
위원숭의 상소와 북주 무제의 폐불(574년)은 중국 불교사의 이른바 「삼무일종의 법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무제는 불교와 도교를 함께 폐지했으나 그 과정에서 유 · 불 · 도 삼교의 우열 논쟁이 거듭 열렸다. 천태대사가 『마하지관』을 강설한 것(594년)은 이 폐불의 기억이 생생한 시대였다.
- 부처 이후의 외도불교를 훔쳐 자기 종에 넣음 →附仏教・学仏法成부불교 · 학불법성
- 한토의 도가환속한 승려가 불법의 뜻을 장로에 붙임 → 위원숭押高就下압고취하摧尊入卑최존입비
- 율종 · 성실종대승의十方有仏・有仏性시방에 부처가 있고 불성이 있다을 훔침
- 진언 · 선무외 · 금강지일념삼천을 훔치고 인과 진언을 더함 → 이동사승
- 화엄 · 징관心如工画師마음은 솜씨 좋은 화가와 같다에 일념삼천을 넣음
「바로 앞의 뜻」 — 불교 안의 같은 구조
대성인은 이 장을 「이 해석을 보아야 하느니라. 바로 앞의 뜻이니라」로 맺으신다. 지관과 홍결이 말한 외전의 도용이 바로 앞에서 말한 불교 안의 도용과 같은 뜻이라는 것이다. 율종 · 성실종 등의 소승이 대승의 「시방유불 · 유불성」을 훔치고, 화엄 · 진언이 법화경의 일념삼천을 훔친 것은, 외도가 불교를 훔치고 도사가 불법을 노자에 붙인 것과 구조가 같다.
이 구조는 두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낮은 가르침이 높은 가르침을 훔쳐 자기를 꾸미는 것이다(외도 · 외전의 불교 도용, 소승의 대승 도용, 화엄 · 진언의 일념삼천 도용). 다른 하나는 그 결과로 높은 가르침이 낮은 가르침과 같은 것으로 끌어내려지는 것이다(압고취하 · 최존입비 · 개평등). 앞의 것은 낮은 쪽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뒤의 것, 곧 높은 쪽을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대성인은 도용을 단지 표절의 문제가 아니라 정법을 파괴하는 문제로 보신다.
강의는 이 「대체로 평등하게 한다」는 구조가 오늘의 종교계에서도 되풀이된다고 경고한다. 불교 밖의 가르침이 불교의 보시행 등을 끌어들여 불교를 흉내 내는 경우, 그리고 대승의 종파가 말법에 들어 경법의 힘을 잃자 대중에게 잊히지 않으려고 세간의 도덕을 설하거나 불교 밖의 신앙 요소를 경내에 들이는 경우가 그것이다. 강의는 중국에서는 외도가 불교를 「최존입비」하여 파불의 원인이 되었지만, 근대에는 오히려 기성 종교가 불교 밖의 설을 끌어들여 불법 파괴의 선구가 되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한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정과 사의 경계를 지워 「대체로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처 이후의 외도와 불교 전래 이후의 도가는 불교를 훔쳐 자기를 꾸몄으므로 사견이 더 깊어졌다. 지관 · 홍결이 말한 「압고취하 · 최존입비 · 개평등」은 높은 법을 낮은 법과 같게 만드는 도용의 구조이며, 대성인은 이것이 「바로 앞의 뜻」, 곧 화엄 · 진언이 일념삼천을 훔친 것과 같다고 하신다.
본문
仏教又かくのごとし、後漢の永平に漢土に仏法わたりて邪典やぶれて内典立つ、内典に南三・北七の異執をこりて蘭菊なりしかども陳隋の智者大師にうちやぶられて仏法二び群類をすくう、 其の後・法相宗・真言宗・天竺よりわたり華厳宗又出来せり、此等の宗宗の中に法相宗は一向・天台宗に敵を成す宗・法門水火なり、 しかれども玄奘三蔵・慈恩大師・委細に天台の御釈を見ける程に自宗の邪見ひるがへるかのゆへに自宗をば・すてねども其の心天台に帰伏すと見へたり、 華厳宗と真言宗とは本は権経・権宗なり善無畏三蔵・金剛智三蔵・天台の一念三千の義を盗みとつて自宗の肝心とし其の上に印と真言とを加て超過の心ををこす、 其の子細をしらぬ学者等は天竺より大日経に一念三千の法門ありけりと・うちをもう、華厳宗は澄観が時・華厳経の心如工画師の文に天台の一念三千の法門を偸み入れたり、 人これをしらず。
불교 또한 이와 같으니라. 후한의 영평 연간에 한토에 불법이 건너와 사전이 깨지고 내전이 섰느니라. 내전에 남삼 · 북칠의 다른 집착이 일어나 난초와 국화처럼 다투었으나, 진 · 수의 지자대사에게 깨뜨려져 불법이 다시 중생을 구하였느니라. 그 뒤 법상종 · 진언종이 천축에서 건너오고 화엄종이 또 생겨났느니라. 이 여러 종 가운데 법상종은 오로지 천태종과 적이 되는 종으로 법문이 물과 불 같으니라. 그러나 현장삼장 · 자은대사가 천태의 해석을 자세히 보고 나서는 자기 종의 사견을 뉘우쳤는지, 자기 종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그 마음은 천태에게 귀복한 것으로 보이느니라. 화엄종과 진언종은 본래 권경 · 권종이니라. 선무외삼장 · 금강지삼장이 천태의 일념삼천의 뜻을 훔쳐 자기 종의 간심(肝心)으로 삼고, 그 위에 인(印)과 진언을 더하여 법화경을 뛰어넘는다는 마음을 일으켰느니라. 그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학자들은 천축에서부터 대일경에 일념삼천의 법문이 있었다고 생각하느니라. 화엄종은 징관 때에 화엄경의 「마음은 솜씨 좋은 화가와 같다(心如工畫師)」는 문에 천태의 일념삼천의 법문을 훔쳐 넣었느니라.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어구 풀이
- 後漢の永平に漢土に仏法わたりて후한의 영평 연간에 한토에 불법이 건너와
- 『불조통기』 권35에 따르면, 후한 명제는 영평 7년에 키가 장육이나 되는 금인(金人)이 목에 햇빛을 띠고 궁정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신하들에게 물으니 태사 부의가 주 소왕 때 서방에 성인이 나타났는데 그 이름을 부처라 한다고 들었다고 아뢰었다. 명제는 사자를 서역에 보내 불도를 구하게 했고, 일행은 대월지국에서 가섭마등과 축법란을 만나 불상과 범어 경전을 얻어 흰 말에 싣고 영평 10년(67) 낙양에 돌아왔다. 명제는 이듬해 낙양 서쪽에 백마사를 세워 불교를 펴게 했고, 두 사람은 도사들과 법론하여 이를 깨뜨려 중국 불법 유포의 실마리를 열었다고 전한다.
- 南三・北七남삼 · 북칠
- 천태대사 이전 남북조 시대의 교판을 세운 학파들. 강남에 세 학파, 강북에 일곱 학파가 있어 저마다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다르게 판정하고 서로 다투었다. 『법화현의』 권10이 이들의 교판을 소개하고 깨뜨린다.
- 蘭菊난초와 국화
- 봄의 난초와 가을의 국화가 저마다 아름다움을 다투듯, 여러 학설이 각기 우열을 겨루는 모습.
- 陳隋の智者大師진 · 수의 지자대사
- 천태대사 지의. 진(陳)과 수(隋) 두 왕조에 걸쳐 활동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제3장 어구 풀이 참조.
- 玄奘三蔵현장삼장
- 602~664. 당대의 승려로 중국 법상종의 개조. 낙주 구씨현 사람. 열세 살에 출가해 율 · 성실 · 구사를 배우고, 인도 각지를 순례하여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돌아왔다. 『대반야경』 600권을 비롯해 75부 1335권을 번역했다고 하며, 태종의 칙명으로 16년에 걸친 여행을 기록한 것이 『대당서역기』다.
- 慈恩大師자은대사
- 632~682. 당대의 승려로 법상종 제2조이자 사실상의 개조. 이름은 규기(窺基). 장안 사람으로 성은 울지(尉遲). 열일곱 살 때 인도에서 돌아온 현장의 제자로 출가해 대자은사에서 현장을 섬기며 역경에 종사했다. 『성유식론술기』 · 『성유식론장중추요』 등을 지었다.
- 善無畏三蔵선무외삼장
- 637~735. 당대 진언 밀교의 승려로 범명 슈바카라심하. 동인도 오다국의 왕자로 열세 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형의 시기로 양위하고 출가했다. 나란다사에서 달마국다에게 밀교를 배우고 716년 중국에 건너와 현종에게 국사로 맞아들여졌다. 『대일경』 · 『소바호동자경』 · 『소실지갈라경』 등을 번역하고 『대일경소』 20권을 편찬해 처음으로 중국에 밀교를 전했다. 특히 『대일경소』에서 천태대사의 일념삼천의 뜻을 훔쳐 넣어 「이동사승(理同事勝)」의 설을 세웠다. 금강지 · 불공과 함께 삼삼장이라 불린다.
- 金剛智三蔵금강지삼장
- 671~741. 당대 진언 밀교의 승려로 범명 바즈라보디. 인도의 왕족 또는 바라문 출신이라 한다. 열 살에 나란다사에서 출가하고, 스물한 살에 용수의 제자 용지에게 가서 칠 년 동안 밀교를 배웠다. 720년 낙양에 들어가 현종의 영접을 받았다. 제자에 불공 등이 있다.
- 印と真言인과 진언
- 인은 손가락으로 맺는 인계(印契, 무드라), 진언은 주문(만트라). 밀교의 수행에서 몸의 인계와 입의 진언, 마음의 관상을 합하는 삼밀가지를 말한다. 진언종은 이 「사(事)」의 실천이 있으므로 이치는 법화경과 같고 실천은 뛰어나다(이동사승)고 주장했다.
- 澄観징관
- 738~839. 당대의 승려로 중국 화엄종 제4조. 청량국사라 불렸다. 열한 살에 출가해 법화경 등 여러 경론을 배우고, 775년 소주에서 묘락대사에게 천태의 지관과 법화 · 유마를 배우는 등 많은 스승을 찾았다. 오대산 대화엄사에서 화엄경을 강하고 『화엄경소』 60권, 『화엄경수소연의초』 90권 등을 지어 화엄종을 일으켰다. 『연의초』 권1에서 「법화는 다른 경을 거두어 화엄으로 돌아간다. 이는 곧 법화도 화엄을 가리켜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라고 하여 화엄경을 모든 경의 근본으로 삼았고, 권19에서는 화엄경의 「심여공화사」의 문을 천태의 일념삼천이 설해진 뒤에야 가능한 성악 · 성선의 법문으로 해석했다.
- 心如工画師심여공화사
- 화엄경 야마천궁보살설게품의 「마음은 솜씨 좋은 화가가 갖가지 오음을 그려 내는 것과 같아, 일체 세계 가운데 법으로서 짓지 않는 것이 없다」는 문. 우리 한마음이 모든 법을 짓는 것을 솜씨 좋은 화가가 갖가지 그림을 그리는 데 비유했다. 징관은 천태의 일념삼천을 훔쳐 이 문이 일념삼천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영평의 전래 — 불교가 한토에 서다
제8장이 외전 · 외도의 도용을 말했다면, 이 장은 「불교 또한 이와 같으니라」로 시작해 불교 안의 도용을 중국 불교사를 따라 서술한다. 그 첫머리가 후한 영평 연간의 불교 전래다.
대성인은 이 전래의 경위를 「시조깅고전답서」에서 생생하게 서술하셨다.
漢土には後漢の第二の明帝、永平七年に金神の夢を見て、博士蔡愔・王遵等の十八人を月氏につかはして、仏法を尋ねさせ給いしかば、中天竺の聖人摩騰迦・竺法蘭と申せし二人の聖人を、同永平十年丁卯の歳迎へ取りて崇重ありしかば
한토에는 후한의 제2대 명제가 영평 7년에 금신(金神)의 꿈을 꾸고, 박사 채음 · 왕준 등 열여덟 사람을 월지에 보내 불법을 찾게 하시니, 중천축의 성인 가섭마등 · 축법란이라는 두 성인을 같은 영평 10년 정묘년에 맞아들여 숭상하셨느니라
그러자 본래 황제의 기도를 맡던 유가 · 도가의 사람 수천 명이 이를 시기하여 호소했고, 영평 14년 정월 15일에 양측을 맞대어 겨루게 했다. 도사들은 당토의 신 백령(百靈)을 본존으로 삼고, 두 성인은 부처의 사리와 석가불의 화상과 다섯 부의 경을 본존으로 의지했다. 도사들이 본래 왕 앞에서 익혀 온 선경과 삼분 · 오전 · 이성 · 삼왕의 책을 장작에 쌓아 태우니, 예전에는 타지 않던 것이 재가 되었고, 전에는 물에 뜨던 것이 가라앉았으며, 귀신을 불러도 오지 않았다. 너무나 부끄러워 저선신 · 비숙재 등의 도사는 분을 품고 죽었다. 두 성인이 설법하니 사리는 하늘에 올라 빛을 놓아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화상의 석가불은 미간에서 빛을 놓았다. 여혜통 등 육백여 명의 도사가 귀복해 출가했고, 삼십 일 사이에 열 개의 절이 섰다. 「사전이 깨지고 내전이 섰다」는 본문의 한 구절은 이 대론의 결말을 가리킨다.

영평 연간의 「감몽구법」 이야기는 『사십이장경』 서문과 『모자이혹론』 등에 처음 보이고, 도사와의 대론(영평 14년)은 뒤에 성립한 『한법본내전』 등에 근거하여 후대의 불교사서에 실린 전승이다. 오늘날의 불교사 연구에서는 불교가 그 이전부터 서역 교역로를 통해 조금씩 전해졌다고 보며, 영평 전래는 중국 불교가 스스로의 기원으로 기억한 상징적 사건으로 다룬다.
남삼북칠과 천태의 파석
불교가 선 뒤 내전 안에 남삼 · 북칠의 다른 집착이 일어났다. 현대어역은 양자강 남쪽에 세 파, 북쪽에 일곱 파가 난립해 저마다 자종에 집착하고 쟁론이 어지러워 불교 안이 흐트러졌다고 풀이한다. 이들은 저마다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판정하는 교판을 세웠는데, 대부분 화엄경이나 열반경을 최고로 두고 법화경을 그 아래에 두었다.
진 · 수의 시대에 천태지자대사가 나와 이 다른 집착을 모두 깨뜨리고 법화경이 진실임을 세웠으므로, 불법은 다시 중생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천태대사가 『법화현의』 권10에서 남삼북칠의 교판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비판한 뒤 오시팔교의 교판을 세운 것이 이것이다. 「불법이 다시 중생을 구했다」는 말은, 교판이 어지러우면 무엇이 성불의 법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불법이 중생을 구하는 힘을 잃는다는 뜻을 담는다.
법상종 — 물과 불, 그러나 마음은 귀복
천태 이후 법상종과 진언종이 천축에서 건너오고 화엄종이 생겨났다. 이 가운데 법상종은 오로지 천태종과 적이 되는 종으로, 그 법문이 물과 불 같다. 현대어역은 법상종이 초목성불이나 자수용신의 유위 · 무위 등 교의 전반에 걸쳐 천태종에 반대하는 법문을 세웠다고 풀이한다. 특히 오성각별 — 중생의 성품은 다섯으로 정해져 있어 일부는 영영 성불하지 못한다 — 은 법화경의 일승 · 개성불도와 정면으로 대립한다.
그런데 대성인은 현장삼장과 자은대사가 천태의 해석을 자세히 본 뒤 자기 종의 사견을 뉘우쳤는지, 자기 종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그 마음은 천태에게 귀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신다. 「보인다」, 「뉘우쳤는지」라는 신중한 표현에 주의해야 한다. 대성인은 확정적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법상종 조사의 저술에 보이는 흔적을 근거로 추정하신다. 이 판단은 개목초 제22장 「법상종의 그릇된 해석을 들다」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진언 — 일념삼천을 훔치고 인과 진언을 더하다
선무외 · 금강지의 도용
화엄종과 진언종은 본래 권경에 의거한 권종이다. 그런데 선무외삼장 · 금강지삼장은 천태의 일념삼천의 뜻을 훔쳐 자기 종의 간심으로 삼고, 그 위에 인과 진언을 더해 법화경을 뛰어넘는다는 마음을 일으켰다. 현대어역은 이것을 「대일경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세웠다」고 풀이한다. 이것이 이른바 「이동사승(理同事勝)」, 곧 이치는 법화경과 같고 인 · 진언이라는 사(事)의 실천이 있으므로 대일경이 뛰어나다는 주장이다. 그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진언의 학자들은 처음부터 인도의 대일경에 일념삼천의 법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진언이 내세우는 문과 그 파석
강의는 진언종이 대일경에 일념삼천이 밝혀져 있다고 주장하며 내세우는 문을 구체적으로 든다. 선무외삼장의 뜻을 받아 일행선사가 대일경을 풀이한 『의석』(『대일경의석』)의 문이다.
世尊已に広く心の実相を説く彼れに諸法実相と言うは即ち是れ此の経の心の実相なり
세존은 이미 널리 마음의 실상을 설하셨다. 저(법화경)에서 제법실상이라 한 것은 곧 이 경의 마음의 실상이니라
법화경의 「제법실상」이 곧 대일경의 「심실상(心實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강의는 대일경에는 「기소구성」, 곧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이 밝혀져 있지 않으므로 일념삼천이 밝혀져 있을 도리가 없다고 반박한다. 제7장에서 본 「두 가지 대사」가 없으면 일념삼천은 서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일경의 「마음의 실상」은 결국 소승의 치우친 진리(偏眞)의 실상에 지나지 않으며, 어찌 법화경의 제법실상과 같이 볼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 반박의 근거로 두 문을 든다. 묘락대사는 『홍결』 권1하에서 이렇게 말했다.
娑婆の中に処処に皆実相と云う、是くの如き等の名・大乗と同じ、是を以て応に須らく義を以て判属すべし
사바 가운데 곳곳에서 모두 실상이라 하니, 이와 같은 이름들은 대승과 같다. 그러므로 마땅히 뜻으로써 판정하여 소속시켜야 한다
「실상」이라는 이름은 여러 경에 나오지만 이름이 같다고 뜻이 같은 것은 아니며, 그 뜻으로 판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대사도 『수호국계장』에서 이렇게 선무외의 주장을 깨뜨렸다.
実相の名有りと雖も偏真の実相なり、是の故に名同義異なり
실상이라는 이름이 있다 하더라도 치우친 진리의 실상이다. 그러므로 이름은 같고 뜻은 다르다
「이름은 같고 뜻은 다르다(名同義異)」 — 이것이 진언의 도용을 깨뜨리는 열쇠다. 도용은 이름을 훔치지만 뜻까지 훔칠 수는 없다. 뜻의 근거인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이 그 경에 없기 때문이다.
홍법의 「대나라연」 해석
그 뒤 일본에서 홍법대사(구카이)는 대일경에도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이 밝혀져 있다고 주장했다. 강의는 홍법의 『잡문답』의 문을 든다.
問う此の金剛等の中の那羅延力・大那羅延力・執金剛とは若し意有りや、答う意無きに非ず上の那羅延力は大勢力を以て衆生を救う、次の大那羅延力は是れ不共の義なり、謂く一闡提人は必死の病・二乗の定性は已死の人なり余教の救う所に非ず、唯・此の秘密神通の力のみ能く救療す、不共力を顕わさんが為に大を以て之を別つ
묻기를, 이 금강 등 가운데 나라연력 · 대나라연력 · 집금강에는 무슨 뜻이 있는가. 답하기를, 뜻이 없지 않다. 앞의 나라연력은 큰 세력으로 중생을 구하고, 다음의 대나라연력은 함께하지 않는(不共) 뜻이다. 이른바 일천제인은 반드시 죽을 병이요, 정성(定性)의 이승은 이미 죽은 사람이어서 다른 가르침이 구할 바가 아니다. 오직 이 비밀 신통의 힘만이 능히 구하고 치료한다. 함께하지 않는 힘을 드러내려고 「대」 자로 구별했다
대일경의 청중 목록에 나오는 「대나라연력 집금강」이라는 이름의 「대」 자에서, 이승을 구하는 불공의 힘을 읽어 낸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것을 이렇게 꾸짖는다. 홍법은 억지로 청중 가운데 대나라연을 들어 이승작불을 드러낸다 하지만, 참으로 이치에 닿지 않는 인증이다. 대일경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승작불의 뜻이 없다. 만약 있다면 바로 그 겁의 이름 · 나라 이름 · 부처의 이름을 보여야 하지만 대일경에는 설해지지 않았다. 하물며 이승작불은 법화경 안에 분명히 설해져 있는데 「다른 가르침이 구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큰 방법이 아닌가. 법화경에서 사리불은 화광여래, 가섭은 광명여래로 수기를 받으며, 그 겁 · 나라 · 이름이 구체적으로 설해진다(개목초 제12장 첫머리). 수기란 그런 것이다.
「아일체본초」와 구원실성
선무외삼장은 또 『의석』에서 대일경의 「나는 일체의 본초이다(我一切本初)」를 풀이해 「아일체본초 등이란 장차 비장(秘藏)을 설하려고 먼저 스스로 덕을 찬탄한 것이다. 본초란 곧 수량의 뜻이다」라고 하여, 대일경에도 수량품의 구원실성이 있다고 끌어다 붙였다. 그러나 강의는 「아일체본초」란 법신이 본래 있다는 이치(法身本有の理)에 지나지 않으며, 법화경의 삼신 상주의 구원실성과는 견줄 수도 없다고 반박한다. 법화경 수량품의 구원실성은 법신의 이치가 본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석존이라는 한 부처가 오백진점겁 전에 실제로 성불하여 그 뒤로 줄곧 이 사바세계에서 설법해 왔다는, 보신 · 응신까지 포함한 삼신의 상주를 말한다.
그리고 묘락대사는 『홍결』 끝부분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법화 이전의 여러 경을 두루 찾아보아도 실로 이승작불의 문과 여래 구원의 수명을 밝힌 것은 없다」. 묘락대사는 당의 천보 연간 사람이므로 진언의 가르침을 모두 보았다. 그러므로 진실한 가르침 가운데 기소구성이 전혀 없으니 일념삼천은 설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화엄 — 「심여공화사」에 훔쳐 넣다
화엄종은 징관 때에 화엄경의 「마음은 솜씨 좋은 화가와 같다」는 문에 천태의 일념삼천을 훔쳐 넣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징관의 말을 바르다고 믿는다. 징관은 젊어서 묘락대사에게 천태의 지관과 법화 · 유마를 배운 사람이다. 그는 『화엄경수소연의초』에서 「법화는 다른 경을 거두어 화엄으로 돌아간다」고 하여 화엄경을 모든 경의 근본으로 삼았고, 「심여공화사」의 문을 천태의 일념삼천이 있어야만 가능한 성악 · 성선의 법문으로 해석했다. 한마음이 모든 법을 그린다는 화엄경의 문은 마음이 만법을 낳는다는 유심의 사상이지만, 십계호구와 이승작불 · 구원실성이 없으므로 일념삼천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문에 일념삼천의 내용을 채워 넣고 화엄경이 근원이라 한 것은, 제8장의 「압고취하」와 같은 구조다.
도용의 구조는 그 뒤에도 — 강의의 시각
강의는 중국에서 화엄종 · 진언종이 천태의 일념삼천을 훔쳐 자기 종을 꾸민 것처럼, 일본에서도 대성인 입멸 뒤 여러 문류가 후지 문류의 교의를 끌어들였다고 본다. 그리고 이름은 장엄하게 들리지만 결정된 교의와 의식이 없고 본존론조차 정하지 못한 문류의 상태를 「느긋하여 갓난아이와 같다」는 제8장의 말에 견준다. 대성인 개교의 근본 뜻인 「니치렌 본불」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문상의 석존을 본불로 세우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강의의 비판이다.
후한 영평의 전래로 한토에 선 불교는 남삼북칠의 교판 다툼으로 흐트러졌다가 천태에 의해 다시 바로 섰다. 그 뒤의 진언 · 화엄은 천태의 일념삼천을 훔쳐 대일경 · 화엄경을 꾸몄으나, 이승작불 · 구원실성이 없는 경에는 일념삼천이 있을 수 없다. 묘락 · 전교의 「이름은 같고 뜻은 다르다」가 그 도용을 깨뜨리는 열쇠다.
본문
日本・我朝には華厳等の六宗・天台・真言・已前にわたりけり、華厳・三論・法相・諍論水火なりけり、 伝教大師・此の国にいでて六宗の邪見をやぶるのみならず真言宗が天台の法華経の理を盗み取て自宗の極とする事あらはれ・をはんぬ、 伝教大師・宗宗の人師の異執をすてて専ら経文を前として責めさせ給しかば六宗の高徳・八人・十二人・十四人・三百余人・並に弘法大師等せめをとされて日本国・一人もなく天台宗に帰伏し南都・東寺・日本一州の山寺・皆叡山の末寺となりぬ、 又漢土の諸宗の元祖の天台に帰伏して謗法の失を・まぬかれたる事もあらはれぬ、又其の後やうやく世をとろへ人の智あさく・なるほどに天台の深義は習うしないぬ、 他宗の執心は強盛になるほどにやうやく六宗・七宗に天台宗をとされて・よわりゆくかの・ゆへに結句は六宗・七宗等にもをよばず、 いうにかいなき禅宗・浄土宗にをとされて始めは檀那やうやくかの邪宗にうつる、結句は天台宗の碩徳と仰がる人人みな・をちゆきて彼の邪宗をたすく、 さるほどに六宗・八宗の田畠・所領みなたをされ正法失せはてぬ天照太神・正八幡・山王等・諸の守護の諸大善神も法味を・なめざるか国中を去り給うかの故に悪鬼・便を得て国すでに破れなんとす。
일본 우리 조정에는 화엄 등의 육종이 천태 · 진언보다 먼저 건너왔느니라. 화엄 · 삼론 · 법상은 쟁론이 물과 불 같았느니라. 전교대사가 이 나라에 나와 육종의 사견을 깨뜨렸을 뿐 아니라, 진언종이 천태의 법화경의 이치를 훔쳐 자기 종의 극치로 삼은 일도 드러나고 말았느니라. 전교대사가 여러 종의 인사(人師)의 다른 집착을 버리고 오로지 경문을 앞세워 책하시니, 육종의 고승 여덟 사람 · 열두 사람 · 열네 사람 · 삼백여 사람과 홍법대사 등이 책망을 당해 꺾이고, 일본국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천태종에 귀복하여, 남도 · 도지 · 일본 한 나라의 산사가 모두 에이잔의 말사가 되었느니라. 또 한토의 여러 종의 원조가 천태에게 귀복하여 방법의 허물을 면한 일도 드러났느니라. 또 그 뒤 점점 세상이 쇠하고 사람의 지혜가 얕아짐에 따라 천태의 깊은 뜻은 익히다 잃어버렸느니라. 다른 종의 집착은 강성해지니, 점점 육종 · 칠종에게 천태종이 밀려 약해져 가는 까닭에, 마침내는 육종 · 칠종 등에도 미치지 못하고 말할 것도 없는 선종 · 정토종에게 밀려나, 처음에는 단나가 점점 저 사종으로 옮겨 가고, 마침내는 천태종의 석덕(碩德)으로 우러름받던 사람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 저 사종을 돕느니라. 그러는 사이 육종 · 팔종의 논밭과 영지가 모두 넘어지고 정법은 없어지고 말았느니라. 천조태신 · 정팔번 · 산왕 등 여러 수호의 큰 선신들도 법미를 맛보지 못하여 나라 안을 떠나셨는지, 그러므로 악귀가 틈을 얻어 나라가 이미 깨지려 하느니라.
어구 풀이
- 華厳等の六宗화엄 등의 육종
- 나라 시대의 남도 육종. 화엄 · 삼론 · 법상 · 구사 · 성실 · 율. 제7장 어구 풀이 참조.
- 伝教大師전교대사
- 767~822. 헤이안 초기의 승려로 일본 천태종의 개조. 이름은 사이초(最澄), 전교는 시호이며 근본대사 · 산가대사라고도 한다. 속명은 미쓰노오비토 히로노. 오미 시가군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오미 국분사 행표에게 출가하고, 785년 도다이지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 곧 히에이산에 초암을 짓고 경론을 연구했다. 804년 천태법화종 환학생으로 의진을 데리고 당에 들어가 도수 · 행만 등에게 천태의 오의를 배우고, 이듬해 돌아와 806년 일본 천태종을 열었다. 구불교계의 반대 속에서 대승계 설립에 힘썼고, 입적 뒤 대승계단이 세워져 결실을 맺었다. 『법화수구』 · 『현계론』 · 『수호국계장』 · 『산가학생식』 등을 지었다.
- 六宗の高徳・八人・十二人・十四人・三百余人육종의 고승 여덟 · 열둘 · 열넷 · 삼백여 사람
- 802년 정월 19일 다카오사에서 간무 천황이 임석한 가운데 남도 육종의 석덕들과 전교대사의 토론이 열려 전교대사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육종의 석덕으로 선의(삼론) · 승유(화엄) · 봉기(법상) · 총인 · 현옥(법상) · 안복 · 근조(삼론) · 수원(법상) · 자고 · 현요 · 세광 · 도증(법상) · 광증 · 관민(삼론) 등 십여 명이 전한다. 이 법론에 진 육종 · 칠대사는 모두 귀복장을 냈다고 한다. 「선시초」 · 「보은초」에 자세하다.
- 弘法大師홍법대사
- 774~835. 헤이안 초기의 승려로 일본 진언종의 개조. 이름은 구카이(空海), 홍법은 시호. 사누키 다도군 출신. 793년 근조에게 득도하고, 804년 유학생으로 당에 들어가 불공의 제자인 청룡사 혜과에게 밀교의 관정을 받아 변조금강의 호를 받았다. 806년 귀국. 816년 고야산을 하사받아 금강봉사를 창건하기 시작하고, 823년 도지를 하사받아 진언종의 근본 도량으로 삼았다. 불교를 현밀 이교로 나누어 밀교인 대일경을 제일, 화엄경을 제이, 법화경을 제삼의 열등한 경이라는 설을 세웠다. 『삼교지귀』 · 『변현밀이교론』 · 『십주심론』 · 『비장보약』 등을 지었다.
- 南都・東寺남도 · 도지
- 남도는 나라의 여러 대사(남도 육종), 도지는 교토의 진언종 근본 도량.
- 叡山の末寺에이잔의 말사
- 히에이산 엔랴쿠지, 곧 천태종의 아래 절. 일본 불교 전체가 천태 법화종에 귀복했다는 뜻이다.
- 禅宗・浄土宗선종 · 정토종
- 가마쿠라 시대에 크게 일어난 두 종. 대성인은 이들을 육종 · 칠종에도 미치지 못하는 「말할 것도 없는」 종으로 판정하신다. 현대어역은 「보잘것없는 선종 · 정토종 등의 신흥 종교」로 풀이한다.
- 檀那단나
- 보시하는 사람, 시주. 절을 경제적으로 떠받치는 신자를 말한다.
- 碩徳석덕
- 학덕이 높은 고승.
- 天照太神・正八幡・山王천조태신 · 정팔번 · 산왕
- 일본의 대표적 수호신. 천조태신은 황실의 조상신, 정팔번은 하치만 대보살, 산왕은 히에이산의 수호신인 히요시 산왕. 불법을 지키는 선신으로 여겨졌다.
- 法味をなめざる법미를 맛보지 못하다
- 선신은 정법의 맛(법미)을 양식으로 삼아 위세를 얻는다고 한다. 정법이 없어지면 선신은 힘을 잃고 나라를 떠난다. 「입정안국론」의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서로 떠나며, 성인은 땅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와 같은 법리다.
- 悪鬼・便を得て악귀가 틈을 얻어
- 선신이 떠난 틈을 타 악귀가 들어와 재난을 일으킨다는 것.
육종에서 천태종으로 — 전교대사의 파석
한토의 불교사를 서술한 대성인은 이 장에서 일본의 불교사로 눈을 돌리신다. 그 구조는 제9장과 같다. 여러 종이 어지럽게 다투다가 법화경의 정법을 세운 이에게 깨뜨려져 정법이 서고, 그 뒤 다시 정법이 쇠퇴한다.
일본에는 천태 · 진언보다 먼저 화엄 등의 남도 육종이 건너왔고, 화엄 · 삼론 · 법상은 서로 쟁론하여 물과 불 같았다. 전교대사가 나와 육종의 사견을 깨뜨렸을 뿐 아니라, 중국의 진언종이 천태의 법화경의 이치를 훔쳐 자기 종의 극치로 삼은 사실도 드러냈다. 전교대사는 여러 종 인사의 다른 집착을 버리고 오로지 경문을 앞세워 책하셨다. 「인사의 해석이 아니라 경문으로」라는 이 방법은 대성인 자신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 결과 육종의 고승 여덟 · 열둘 · 열넷 · 삼백여 사람과 홍법대사 등이 꺾여, 일본국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천태종에 귀복했고, 남도 · 도지 · 일본 한 나라의 산사가 모두 에이잔의 말사가 되었다. 또 한토의 여러 종의 원조가 천태에게 귀복해 방법의 허물을 면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현대어역은 이것을 「중국에서 여러 종의 원조가 처음에는 자종을 세웠으나 뒤에 천태에 귀복하여 방법의 허물을 면할 수 있었다는 현증」으로 풀이한다. 제9장의 「현장 · 자은이 마음은 천태에 귀복했다」와 호응하는 대목이다.
- 나라 시대남도 육종 전래 · 화엄 · 삼론 · 법상의 쟁론諍論水火쟁론이 물과 불 같았다
- 802년다카오사 법론 · 육종의 석덕이 전교대사에게 귀복
- 806년일본 천태종 개종 · 같은 해 구카이 귀국
- 822년전교대사 입적 · 그 뒤 대승계단 건립
- 그 뒤天台の深義は習うしないぬ천태의 깊은 뜻은 익히다 잃어버렸다육종 · 칠종에 밀림
- 가마쿠라 시대선종 · 정토종이 성함 · 천태의 석덕도 그쪽을 도움
- 귀결正法失せはてぬ정법은 없어지고 말았다国すでに破れなんとす나라가 이미 깨지려 하느니라
- 1272년 2월개목초 · 니가쓰 소동
- 1274년문영의 역
다카오사 법론(802)은 구카이가 당에서 돌아오기(806) 이전의 일이다. 대성인은 전교대사가 일대에 걸쳐 남도 육종과 진언을 파석한 일들을 하나로 묶어 「육종의 고승과 홍법대사 등이 꺾였다」고 서술하셨다. 「여덟 · 열둘 · 열넷 · 삼백여 사람」이라는 숫자는 서로 다른 자리의 법론과 귀복을 차례로 든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선시초」 · 「보은초」에도 같은 사건이 서술되어 있다.
천태종의 쇠퇴 — 세상이 쇠하고 지혜가 얕아지다
그러나 그 뒤 세상이 점점 쇠하고 사람의 지혜가 얕아짐에 따라 천태의 깊은 뜻은 익히다 잃어버렸다. 현대어역은 「말법에 가까워짐에 따라」라고 덧붙인다. 다른 종의 집착은 강성해져, 천태종은 점점 육종 · 칠종에게 밀려 약해지고, 마침내는 육종 · 칠종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말할 것도 없는」 선종 · 정토종에게 밀려나, 처음에는 단나가 점점 저 종으로 옮겨 가고, 마침내는 천태종의 석덕으로 우러름받던 사람들까지 모두 떨어져 나가 저 종을 돕게 되었다.
이 서술은 대성인 당시 히에이산의 실정을 정확히 반영한다. 정토종의 호넨, 선종의 에이사이와 도겐은 모두 히에이산에서 출가하고 수학한 이들이었다. 천태종 안에서 자란 이들이 천태를 떠나 새 종을 세우고, 천태의 학승들조차 염불과 선에 기울었다. 앞서 「입정안국론」에서 대성인이 호넨의 염불을 집중적으로 파석하신 것도 이 흐름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 사이 육종 · 팔종의 논밭과 영지는 모두 넘어지고 정법은 없어지고 말았다. 현대어역은 이것을 「병란의 재앙을 입어」 영지마저 잃었다고 풀이한다. 정법이 없어지면 그 정법을 떠받치던 물질적 기반도 함께 무너진다.
선신이 떠난 나라 — 「나라가 이미 깨지려 하느니라」
이 장은 개목초 제1편의 마지막 문장으로 끝난다. 천조태신 · 정팔번 · 산왕 등 여러 수호의 큰 선신들도 법미를 맛보지 못해 나라 안을 떠나셨는지, 그러므로 악귀가 틈을 얻어 나라가 이미 깨지려 한다.
이것은 「입정안국론」의 선신 사국(善神捨國)의 법리 그대로다. 정법이 없어지면 선신은 법미를 잃고 나라를 떠나며, 그 빈자리에 악귀가 들어와 재난을 일으킨다. 현대어역은 「나라는 이미 삼재칠난이 잇따라 망국이 되려 하고 있다」고 풀이한다.
강의는 이 예언이 「나라는 이미 깨졌다」는 현증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참으로 두려운 사실이 아닌가.
개목초가 쓰인 문영 9년(1272) 2월에는 가마쿠라와 교토에서 호조 일족의 내분(이른바 「니가쓰 소동」)이 일어났고, 문영 11년(1274)에는 몽골군이 쓰시마 · 이키를 거쳐 규슈 북부에 상륙했다(문영의 역).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에서 예언하신 자계반역난 · 타국침핍난이 개목초 집필 전후로 잇따라 현실이 된 것이다.
정법 유포의 서원 — 「현불미래기」의 예언
강의는 이 장을 정법 유포의 서원으로 맺는다. 「정법의 흥폐」의 전조는 이미 나타났다. 이제야말로 이 대정법을 광선유포하여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고, 일체중생을 삼악도의 갈림길에서 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꿈이나 이상이 아니라 부처의 금언이요 예언이므로, 부처의 참된 제자의 출현으로 반드시 실현될 사실이라고 강의는 말한다.
그 근거로 강의는 「현불미래기」의 두 대목을 든다.
四味・三教等の邪執を捨て実大乗の法華経に帰せば諸天善神並びに地涌千界等の菩薩・法華の行者を守護せん此の人は守護の力を得て本門の本尊・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提に広宣流布せしめんか、例せば威音王仏の像法の時・不軽菩薩・我深敬等の二十四字を以て彼の土に広宣流布し一国の杖木等の大難を招きしが如し、彼の二十四字と此の五字と其の語殊なりと雖も其の意是れ同じ
사미 · 삼교 등의 그릇된 집착을 버리고 실대승의 법화경에 귀의하면, 제천선신과 지용천계 등의 보살이 법화의 행자를 수호하리라. 이 사람은 수호의 힘을 얻어 본문의 본존인 묘법연화경의 다섯 글자로써 염부제에 광선유포하게 하리라. 예컨대 위음왕불의 상법 때에 불경보살이 「아심경」 등 스물네 글자로써 그 나라에 광선유포하여 한 나라의 장목 등의 대난을 부른 것과 같으니라. 저 스물네 글자와 이 다섯 글자는 그 말은 다르지만 그 뜻은 같으니라
강의는 이 어서에 광선유포에 대한 대성인의 큰 확신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제10장에서 정법이 없어지고 선신이 떠난 나라를 말씀하신 대성인은, 같은 사도 유배 시기에 쓰신 이 어서에서 바로 그 나라에서 정법이 다시 일어날 것을 예언하셨다. 「법화의 행자를 수호한다」는 말은 개목초 전체의 물음 — 법화경의 행자에게 왜 제천의 수호가 없는가 — 과 정면으로 맞닿는다.
四天下の中に全く二の日無し四海の内豈両主有らんや、疑つて云く何を以て汝之を知る、答えて云く月は西より出でて東を照し日は東より出でて西を照す仏法も又以て是くの如し正像には西より東に向い末法には東より西に往く
사천하 가운데 결코 두 해가 없으니 사해 안에 어찌 두 임금이 있겠는가. 의심하여 이르기를, 무엇으로 그대는 이것을 아는가. 답하여 이르기를, 달은 서쪽에서 나와 동쪽을 비추고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을 비추느니라. 불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정법 · 상법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말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느니라
강의는 이 문을 대성인의 불법이 한반도와 중국과 인도로 건너가는 예언, 이른바 「불법 서환(佛法西還)」으로 읽는다. 제9장 · 제10장이 서술한 불교 동점의 역사 — 인도에서 한토로, 한토에서 일본으로 — 가 말법에는 거꾸로 일본에서 서쪽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 부처의 말씀을 돕는 것이 제자의 사명이며, 그렇지 않으면 부처를 망어의 사람으로 만드는 죄가 크다고 말한다.
일본 불교사도 한토와 같은 길을 걸었다. 전교대사가 남도 육종과 진언을 파석해 온 나라가 천태 법화종에 귀복했으나, 세상이 쇠하자 천태의 깊은 뜻은 잃어지고 선 · 정토가 성해 정법이 없어졌다. 선신이 떠난 나라는 이미 깨지려 한다. 그러나 「현불미래기」는 바로 그 나라에서 본문의 본존 · 묘법연화경의 다섯 글자가 광선유포하여 서쪽으로 돌아갈 것을 예언한다.
이 편을 맺으며
개목초 제1편의 열 장은 하나의 큰 물음과 그 물음에 답하는 방법을 세운다. 물음은 첫 문장에 있다.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주 · 사 · 친은 누구인가. 방법은 그 뒤의 아홉 장에 있다. 사람의 삼덕을 바로 삼고 법을 곁으로 두되, 그 법을 차례로 견주어 가려냄으로써 사람을 판정하는 것이다.
대성인은 먼저 중국의 유가를 보셨다(제2 · 3장). 삼황 · 오제 · 삼왕과 효 · 충 · 사도의 본보기는 사람을 짐승의 상태에서 끌어올린 공적이 있지만, 그 철학의 귀결인 삼현은 과거와 미래를 모르는 「검은(玄)」 것이어서, 부모 · 주군 · 스승의 후세를 돕지 못하는 불지은에 머문다. 다만 그것은 불교로 들어가는 첫 문이었다. 이어 인도의 외도를 보셨다(제4장). 외도는 팔만 겁의 과거 · 미래를 보아 유가보다 깊었으나 세 극리와 유루선은 생사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 귀결은 내도에 들어가는 데 있었다.
그리고 불교의 판정에 들어가셨다. 삼혹을 끊고 두 생사를 건넌 부처의 말씀은 외전 · 외도에 대해 모두 진실이다(제5장 · 내외상대). 그러나 불교 안에서는 법화경만이 진실이며, 그것은 석존 · 다보 · 분신 제불이 함께 증명했다(제6장 · 권실상대). 그리고 그 법화경 안에서도 일념삼천은 다만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감추어져 있다(제7장 · 문저). 「다만」의 세 겹은 권실 · 본적 · 종탈의 세 판정이며, 천태가 이구로 「품었던」 일념삼천은 말법에 대성인에 의해 사행의 삼대비법으로 드러난다.
마지막 세 장(제8~10장)은 그 일념삼천이 어떻게 도용되어 왔는가의 역사다. 부처 이후의 외도와 불교 전래 이후의 도가가 불교를 훔쳤듯이, 진언 · 화엄은 천태의 일념삼천을 훔쳤다. 이름은 같아도 뜻은 다르다. 그리고 한토에서도 일본에서도 정법은 법화경의 행자에 의해 세워졌다가 세상이 쇠하면서 잃어졌고, 선신이 떠난 나라는 이미 깨지려 하고 있다.
제2편은 이 판정을 이어받아 「이에 내가 어리석은 견해로 앞의 사십여 년과 뒤의 팔 년의 차이를 생각해 보건대」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제7장에서 일념삼천의 두 기둥이라 한 「두 가지 대사」 가운데 첫째, 곧 이승작불을 중심으로 권적상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며, 이전의 여러 경이 이승을 어떻게 꾸짖었는지, 그리고 법화경에서 그 이승이 성불한다는 믿기 어려운 가르침을 다보 · 분신이 어떻게 증명했는지가 다루어진다. 제1편이 세운 「누가 참된 주사친인가」라는 물음은 그 논증을 거쳐 하권의 「하종의 아버지」로 이어진다.
더 읽기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개목초」(「개목초 상」 186–210쪽). 그 밖에 「난조효에시치로전어서」 · 「기도초」 · 「교행증어서」 · 「소야입도전허어서」 · 「본인묘초」 · 「지묘법화문답초」 · 『어의구전』 · 「관심의 본존초」 · 「보은초」 · 「삼대비법품승사」 · 「센니치니부인답서」 · 「일대성교대의」 · 「마쓰노전어소식」 · 「현방법초」 · 「시조깅고전답서」 · 「현불미래기」 · 「입정안국론」
- 『묘법연화경』 T9 no.262 (비유품 · 방편품 · 오백제자수기품 · 견보탑품 · 여래수량품 · 여래신력품)
- 『무량의경』 T9 no.276
- 『대반열반경』 T12 no.374
- 『화엄경』(60권) T9 no.278
- 『대일경』 T18 no.848
- 『대지도론』 T25 no.1509
- 천태대사, 『마하지관』 T46 no.1911 (권5상의 일념삼천 문은 T46, 54a) · 『법화현의』 T33 no.1716
- 묘락대사, 『지관보행전홍결』 T46 no.1912
- 전교대사, 『수호국계장』
- 니치칸 상인, 「삼중비전초」 · 「개목초 문단」 (창가교학연구실 강의를 통해)
- 『사기』 · 『열자』 · 『노자』 · 『장자』
연구
- 창가교학연구실, 「0186~0237 開目抄」 강의 (제1~10장)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Paul L. Swanson (tr.), Clear Serenity, Quiet Insight: T'ien-t'ai Chih-i's Mo-ho chih-kuan,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8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The Opening of the Ey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