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대지진 뒤의 가마쿠라 산기슭 — 무너진 산문과 기운 지붕, 갈라진 길, 먼 하늘의 엷은 연기

재난 유래의 근본 원인

입정안국론 · 제1편 · 제1단 제1~2장

立正安国論 — 災難由来の根本原因を明かす어서 17쪽
저술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 가마쿠라
단
제1단 제1~2장
쪽수
어서 17:01–17:14
올린 이
호조 도키요리(야도야 입도를 통해)

아홉 편 · 입정안국론 10단 구성도

10단 46장 → 아홉 편
  1. 序講17 앞 · 33–35저술의 유래 · 대의 · 예언의 적중 · 오서 · 어감유래 · 별장
  2. 재난의 원인과 경증
    제1편재난 유래의 근본 원인지금 읽는 편
    제1단 제1~2장0017:01~0017:14
  3. 재난의 원인과 경증
  4. 방법의 정체 — 악한 승려와 법연
  5. 방법의 정체 — 악한 승려와 법연
  6. 방법의 정체 — 악한 승려와 법연
  7. 방법 대치의 방법
  8. 방법 대치의 방법
  9. 방법 대치의 방법
  10. 정법 귀의와 맹세

입정안국론은 한 나그네의 탄식으로 시작한다. 근년부터 근일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이변과 땅의 재앙, 기근과 역병이 온 나라에 가득하여, 소와 말이 거리에 쓰러지고 해골이 길을 메웠다. 사람들은 염불을 외고, 약사경을 읽고, 인왕경의 백좌백강을 열고, 진언의 오병에 물을 붓고, 문마다 칠귀신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굶주림과 역병은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해와 달은 제대로 돌고 삼보도 세상에 있는데 왜 이 세상은 이토록 일찍 쇠하였는가. 객의 이 물음에 주인은 단 한 줄로 답한다. 「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갔다. 그러므로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났고 성인은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가 오고 귀가 와서 재난이 일어난다.」 아홉 편 가운데 첫 편인 이 두 장은 입정안국론 전체가 풀어 가야 할 물음과 그 대답의 뼈대를 한꺼번에 세운다.

입정안국론 아홉 편은 네 갈래로 이어진다. 재난의 원인과 그 경증을 밝히는 제1 · 2편, 방법(謗法)의 정체를 악한 승려와 법연(法然)의 『선택집(選択集)』에서 찾아내는 제3~5편, 방법을 다스리는 길을 논하는 제6~8편, 그리고 정법에 귀의하여 객이 맹세하는 제9편이다. 이 편은 그 첫 갈래의 앞머리로, 객과 주인이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다. 객이 늘어놓은 참상과 기도의 목록은 문응 원년(1260) 무렵 일본의 현실 그 자체였고, 주인이 내놓은 대답은 그 현실 전체를 「정법에 등진 결과」로 읽는 전혀 새로운 진단이었다.

제1장은 객의 말만으로 이루어진다. 재해의 참상, 사람들이 기대던 열 가지 남짓한 기도, 그 기도가 아무 효험이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은 제대로 운행하고 삼보도 세상에 계시며 백왕의 수도 아직 다하지 않았는데」라는 의문이 차례로 나온다. 그 의문은 「이것은 어떠한 화로 인하며 어떠한 잘못으로 말미암는가」라는 한 줄로 모인다. 제2장은 주인의 첫 대답이다. 주인은 객과 함께 탄식하고, 출가한 사람의 본분이 법에 의해 성불을 기약하는 데 있음을 말한 뒤, 신술도 불위도 효험이 없는 지금의 현실을 경문에 비추어 본 결론을 내놓는다. 이 결론이 입정안국론의 핵심 명제이며, 제2편부터 제9편까지는 모두 이 명제를 경문으로 증명하고, 그 「악」의 정체를 밝히고, 그 대치의 방법을 논하는 과정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제1단의 이 두 장은 개인의 불행과 국토의 재난을 하나의 뿌리에서 보는 의정불이(依正不二)의 원리를 처음으로 드러낸 대목이다. 그래서 이 편은 재해의 역사를 길게 더듬는 동시에, 「정」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선신이란 무엇이며 왜 나라를 버리는가를 교학적으로 깊이 묻는다.

이 편의 장

第一章災難の由来を問う제1단 제1장 재난의 유래를 묻다 — 객이 정가 · 정원 연간의 천변지요 · 기근 · 역병의 참상과 갖가지 기도의 실패를 들고, 이 세상이 어떠한 화와 잘못으로 이토록 쇠하였는가를 묻는다.
第二章災難の根本原因を明かす제1단 제2장 재난의 근본 원인을 밝히다 — 주인이 경문을 펼쳐 「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간 까닭에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성인이 떠나, 마와 귀가 와서 재난이 일어난다」고 답한다.
제1단 제1장 재난의 유래를 묻다
어서 17쪽 1~9행 · 第一段 第一章 災難の由来を問う

본문

원문 대조어서 17쪽 1~9행
本文 · 어서 원문

旅客来りて嘆いて曰く、近年より近日に至るまで、天変・地夭・飢饉・疫癘、遍く天下に満ち、広く地上に迸る。牛馬巷に斃れ、骸骨路に充てり。死を招くの輩、既に大半に超え、之を悲まざる族、敢えて一人も無し。 然る間、或は「利剣即是」の文を専らにして西土教主の名を唱え、或は「衆病悉除」の願を持って東方如来の経を誦し、或は「病即消滅・不老不死」の詞を仰いで法華真実の妙文を崇め、或は「七難即滅・七福即生」の句を信じて百座百講の儀を調え、有るは秘密真言の教に因って五瓶の水を灑ぎ、有るは坐禅入定の儀を全うして空観の月を澄し、若しくは七鬼神の号を書して千門に押し、若しくは五大力の形を図して万戸に懸け、若しくは天神地祇を拝して四角四堺の祭祀を企て、若しくは万民百姓を哀んで国主・国宰の徳政を行う。 然りと雖も、唯肝胆を摧くのみにして、弥飢疫に逼り、乞客目に溢れ、死人眼に満てり。臥せる屍を観と為し、並べる尸を橋と作す。観れば、夫れ、二離・璧を合せ、五緯・珠を連ぬ。三宝も世に在し、百王も未だ窮まらざるに、此の世早く衰え、其の法何ぞ廃れたる。是れ何なる禍に依り、是れ何なる誤に由るや。

풀이

나그네(旅客)가 와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근년부터 근일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이변(天変)과 땅의 재앙(地夭), 기근(飢饉)과 역병(疫癘)이 두루 천하에 가득하고 널리 땅 위에 들끓고 있느니라. 소와 말이 거리마다 쓰러져 있고 해골이 길에 가득하니라. 죽음을 맞은 무리가 이미 태반을 넘었고, 이를 슬퍼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느니라. 그리하여 어떤 이는 「날카로운 칼이 곧 이것이다(利剣即是)」라는 글을 오로지하여 서방 정토의 교주(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고, 어떤 이는 「온갖 병이 다 낫는다(衆病悉除)」라는 서원을 지녀 동방 여래(약사여래)의 경을 읽으며, 어떤 이는 「병이 곧 사라져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病即消滅・不老不死)」라는 말씀을 우러러 법화경 진실의 묘문을 숭상하고, 어떤 이는 「칠난이 곧 멸하고 칠복이 곧 생긴다(七難即滅・七福即生)」라는 구절을 믿어 백 개의 고좌에서 백 명의 법사가 강하는 백좌백강(百座百講)의 의식을 갖추며, 어떤 이는 비밀 진언의 가르침에 따라 다섯 병(五瓶)의 물을 뿌리고, 어떤 이는 좌선입정의 의식을 온전히 하여 공관(空観)의 달을 맑히느니라. 또 어떤 이는 칠귀신(七鬼神)의 이름을 써서 천 개의 문에 붙이고, 어떤 이는 오대력보살(五大力)의 형상을 그려 만 집에 걸며, 어떤 이는 하늘과 땅의 신들을 절하여 네 귀퉁이 네 경계의 제사(四角四堺の祭祀)를 꾀하고, 또 어떤 이는 만민 백성을 가엾이 여겨 국주와 국재(国宰)가 덕정(徳政)을 베푸느니라. 그러나 그렇게 하여도 다만 애간장을 태울 뿐, 굶주림과 역병은 더욱 닥쳐오고, 걸식하는 이가 눈에 넘치고 죽은 사람이 눈에 가득하니라. 누운 주검을 쌓아 망루로 삼고, 늘어선 시체를 이어 다리로 삼을 지경이니라. 살펴보건대 해와 달(二離)은 구슬을 합한 듯 나란히 빛나고, 다섯 별(五緯)은 구슬을 꿴 듯 질서 있게 돌고 있느니라. 삼보도 세상에 계시고 백왕(百王)의 수도 아직 다하지 않았는데, 이 세상은 어찌하여 이토록 일찍 쇠하고 그 법은 어찌하여 무너졌는가. 이것은 어떠한 화(禍)로 인한 것이며, 어떠한 잘못으로 말미암은 것이냐.

어구 풀이

旅客나그네 · 객
입정안국론은 객(客)과 주인(主人)의 열 번 문답(십문구답)으로 이루어진다. 객은 당시 사람들의 상식과 위정자의 처지를 대변하는 자리에 서고, 주인은 대성인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제1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객의 말이다.
天変・地夭천변 · 지요
하늘의 이변과 땅의 재앙. 천변은 일식 · 월식 · 혜성 · 별의 이상 운행 같은 천체의 이변, 지요는 지진 · 홍수 · 가뭄 같은 땅 위의 이변을 말한다. 「요(夭)」는 재앙 · 괴이의 뜻이다.
飢饉・疫癘기근 · 역려
굶주림과 돌림병. 「역려」는 유행병 전반을 가리킨다. 문응 원년 무렵의 일본은 정가 연간의 대지진과 대풍에 이어 정원 연간의 기근과 역병이 겹친 때였다.
牛馬巷に斃れ、骸骨路に充てり소와 말이 거리에 쓰러지고 해골이 길에 가득하다
사람뿐 아니라 가축까지 쓰러졌다는 것은 생물 전체의 생명력이 바닥까지 떨어졌음을 보여 준다. 짧은 구절이지만 당시 민중이 얼마나 극한의 고통 속에 있었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利剣即是이검즉시
정토가에서 「아미타불의 명호는 번뇌를 끊는 날카로운 칼이다」라고 하는 글귀. 이 글을 오로지 믿고 서방 정토의 교주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곧 칭명 염불이다.
衆病悉除중병실제
「온갖 병이 다 사라진다」. 약사경에 설해진 약사여래의 서원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 서원에 기대어 동방 정유리세계의 교주 약사여래의 경을 읽는 일이 천태종 등에서 행해졌다.
病即消滅・不老不死병즉소멸 · 불로불사
「병이 곧 사라져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 법화경의 글로, 이 글을 믿어 병을 낫게 하려고 법화경을 독송하는 것을 말한다.
七難即滅・七福即生칠난즉멸 · 칠복즉생
인왕경 권하 수지품 제7의 글. 그 나라 안에 일곱 가지 난이 있을 때 일체의 국왕이 이 난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강독하면 칠난이 곧 멸하고 칠복이 곧 생겨 만민이 안락하고 제왕이 기뻐한다고 한다. 인왕경의 칠난은 ① 일월실도난(해와 달의 이변) ② 성수실도난(별의 이변) ③ 재화난(갖가지 화재) ④ 우수난(이상한 비 · 눈과 홍수) ⑤ 악풍난(이상한 바람) ⑥ 항양난(가뭄) ⑦ 악적난(안팎의 도적에 의한 전란)이다. 칠복은 이 일곱 난이 멸하는 것을 말하며, 『인왕경소』 권하가 설하는 악룡 · 귀신을 진정시키는 덕 등 일곱 가지 덕을 가리키기도 한다.
百座百講백좌백강
인왕경에 따라 백 개의 고좌를 마련하고 백 명의 법사를 청하여 인왕경을 강설하게 하는 법회. 나라의 재난을 물리치려는 국가적 기도로 거듭 행해졌다.
五瓶오병
밀교에서 재난을 없애는 기도를 할 때 대단(大壇)의 한가운데와 네 귀퉁이에 놓는 다섯 개의 보병(寶瓶)으로, 오지(五智) · 오부(五部) · 오불(五佛) 등을 나타낸다. 스승이 제자에게 법문을 전하는 관정(灌頂) 의식에서는 이 오병에 향수를 담아 받는 이의 정수리에 지혜의 물로 붓는다.
坐禅入定の儀を全うして空観の月を澄し좌선입정의 의식을 온전히 하여 공관의 달을 맑힌다
선종에서 좌선하여 선정에 들고 공(空)을 관하는 수행으로 재난을 물리치려 한 것을 가리킨다. 맑은 달은 망념이 걷힌 마음을 비유한다.
七鬼神칠귀신
『각온황신주경(却温黄神呪経)』에 역병을 일으킨다고 설해진 일곱 귀신. 몽다난귀 · 아가니귀 · 니가시귀 · 아가나귀 · 바라니귀 · 아비라귀 · 바제리귀의 이름을 써서 문에 붙여 두면 귀신과 마가 다가오지 못해 역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대성인 당시 재액을 면하려고 칠귀신의 이름을 쓴 종이를 문에 붙이는 일이 행해졌다.
五大力오대력
오대력보살. 국왕이 불 · 법 · 승의 삼보를 받들어 지키면 이 다섯 보살이 국토의 사방과 중앙에서 국왕을 수호한다고 한다. 구마라집 역 인왕경 권하 수지품 제7에 설해진 인왕회의 본존이다. 중세에는 오대력보살이 천재지변과 역병을 없앤다는 신앙이 민간에도 퍼져, 그 그림이 부적으로 문에 붙여졌다.
天神地祇・四角四堺の祭祀천신지기 · 사각사경의 제사
하늘의 신과 땅의 신. 사각사경제(四角四堺祭)는 음양도의 재앙 물리치는 의식이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막부의 네 귀퉁이에서 지내는 것을 사각제, 가마쿠라 시가지의 네 경계에 해당하는 고부쿠로자카 · 고쓰보 · 무쓰라 · 가타세에서 지내는 것을 사경제라 하였다.
国主・国宰の徳政국주 · 국재의 덕정
국주는 나라의 주인, 국재는 나라의 정사를 맡은 재상 · 관리. 덕정은 세금을 덜거나 빚을 탕감하고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는 등 백성을 위한 정치를 말한다.
臥せる屍を観と為し、並べる尸を橋と作す누운 주검으로 망루를 삼고 늘어선 시체로 다리를 삼는다
「관(観)」은 높이 쌓아 올린 망루. 쌓인 주검이 망루처럼, 길에 늘어선 시체가 다리처럼 보였다는 처참한 묘사다.
二離・璧を合せ이리가 벽을 합한다
「이리(二離)」는 해와 달. 「리(離)」에는 밝다 · 나란하다 · 잇다의 뜻이 있고, 『역』의 괘에서 「불」에 배당되어 「밝음」이 되므로 해와 달에 대어졌다. 「벽(璧)을 합한다」는 둥근 옥 두 개를 맞춘 듯 해와 달이 제 길을 어김없이 운행함을 말한다.
五緯・珠を連ぬ오위가 구슬을 꿴다
「오위(五緯)」는 다섯 행성, 곧 세성(목성) · 형혹성(화성) · 진성(토성) · 태백성(금성) · 진성(수성)의 총칭이다. 「위(緯)」는 천체 가운데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다섯 별이 구슬을 꿴 듯 질서 있게 돈다는 뜻이다.
百王백왕
백 대에 걸친 천황, 또는 백 번째 천황.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천황의 대는 백 대에서 다한다는 일종의 종말 사상이 퍼져 있었는데, 이를 백왕 사상 · 백왕설이라 한다. 입정안국론을 쓰실 무렵의 천황은 제90대로 헤아려졌다.

이 장의 자리 — 객의 탄식으로 열리는 십문구답

입정안국론은 객이 주인을 찾아와 탄식하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제1장은 그 객의 첫 발언이며, 세 마디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첫째는 재해의 참상이다. 천변지요 · 기근 · 역병이 천하에 가득하여 죽은 이가 태반을 넘었다. 둘째는 그 재해를 막으려던 갖가지 방책이다. 정토의 염불, 약사여래의 경, 법화경의 독송, 인왕경의 백좌백강, 진언의 오병, 선의 좌선, 칠귀신과 오대력보살의 부적, 음양도의 사각사경제, 그리고 위정자의 덕정까지, 당시 사람들이 손에 쥘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다. 셋째는 그 모든 것이 헛되었다는 사실과 그로부터 솟아나는 물음이다. 해와 달과 별은 제 길을 돌고, 삼보도 세상에 있으며, 백왕의 수도 아직 남았는데 왜 이 세상은 이토록 일찍 쇠하였는가.

객의 이 물음은 당시 마음 있는 위정자라면 누구나 품었을 거짓 없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는 일이 곧 입정안국론의 골수다. 최고 위정자였던 호조 도키요리조차 이 재난의 근원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잘못의 뿌리를 모른 채 다만 탄식할 뿐이었다. 대성인은 이 탄식을 객의 입에 담아 펼쳐 보이시고, 이어지는 주인의 말로 그 뿌리를 단번에 드러내신다.

  1. ① 참상천변 · 지요 · 기근 · 역병이 천하에 가득하고 죽은 이가 태반을 넘었다
  2. ② 방책염불약사법화 독송인왕경 백좌백강진언 오병좌선칠귀신오대력사각사경제덕정
  3. ③ 의문해와 달과 별은 바르고 삼보도 계시며 백왕도 다하지 않았는데 왜 세상은 이토록 일찍 쇠하였는가
「이것은 어떠한 화로 인하며 어떠한 잘못으로 말미암는가」是れ何なる禍に依り、是れ何なる誤に由るや
도표 1 · 제1장 객의 탄식 — 세 마디

말법의 시작과 「투쟁언송 · 백법은몰」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을 쓰신 무렵의 세상은 그야말로 물정이 소란한 때였다. 이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는 대집경이 설한 다섯 오백 년, 곧 오오백세(五五百歳)의 예언이다.

我が滅度の後の五百歳の中には解脱堅固・次の五百年には禅定堅固……次の五百年には読誦多聞堅固・次の五百年には多造塔寺堅固……次の五百年には我法の中に於て闘諍言訟して白法隠没せん

내가 멸도한 뒤 첫 오백 년에는 해탈이 견고하고, 다음 오백 년에는 선정이 견고하며, 다음 오백 년에는 독송다문이 견고하고, 다음 오백 년에는 탑과 절을 많이 짓는 것이 견고하며, 다음 오백 년에는 나의 법 가운데서 다투고 송사하여 백법이 숨어 없어지리라.

『대방등대집경』
  1. 첫 오백 년해탈견고정법
  2. 둘째 오백 년선정견고정법
  3. 셋째 오백 년독송다문견고상법
  4. 넷째 오백 년다조탑사견고상법
  5. 다섯째 오백 년투쟁견고말법의 시작
「다투고 송사하여 백법이 숨어 없어진다」闘諍言訟して白法隠没せん

일본에서는 말법의 시작을 1052년(영승 7년)으로 보았다

도표 2 · 대집경의 오오백세

일본에서는 말법에 들어선 해를 1052년으로 보았다. 석존 멸후 해가 갈수록 알맹이를 잃고 형식만 남은 석존의 불법은 이 무렵부터 이상하게도 경문 그대로 「투쟁언송 · 백법은몰」의 세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섭관 정치가 쇠하고 그 자리를 무사가 차지해 가던 때였다. 불교의 퇴폐는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천태종조차 자각대사(慈覺, 엔닌)와 지증대사(智證, 엔친)에 의해 진언이 섞여 들어 정법의 모습을 잃었고, 히에이잔의 승려들은 승병이 되어 도다이사 · 고후쿠사의 승병과 맞서 싸우는 추태를 보였다. 우대신 후지와라노 무네타다의 일기 『중우기(中右記)』는 장치 원년(1104)의 일을 이렇게 탄식했다. 「요즈음 히에이잔의 대중이 어지러워 동탑과 서탑의 승려가 서로 싸운다. 혹은 불을 놓아 승방을 태우고, 혹은 화살 두 대를 맞아 목숨을 잃는다. 배움의 자리가 도리어 싸움터가 되었다. 불법의 파멸이 이미 이때인가.」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1059년에는 방화가 너무 잦아 여러 문에 경비를 세웠고, 1082년 무렵에는 동란의 세상을 상징하듯 후지산이 분화했다고 전한다. 1156년의 보원의 난과 1159년의 평치의 난은 천황가와 섭관가 안에서 같은 핏줄끼리 서로 다툰 싸움이었다. 무가에서도 보원의 난 뒤에 겐지의 우두머리 미나모토노 요시토모가 아버지 다메요시를 비롯한 많은 친족을 베어야 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불교의 자비 정신에 따라 약 340년 동안 폐지되어 있던 사형도 말법에 들어 신제이(信西) 입도에 의해 되살아났다. 이런 시대의 민중은 체념과 퇴폐의 기분에 젖었고, 그 틈을 타 정토의 가르침이 퍼져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정토를 구하는 사람까지 나왔다고 전한다.

불법은 무너지고 정치는 어지러워, 불법과 왕법이 함께 다하고 사람들의 생명력이 극도로 약해지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 가뭄 · 기근 · 큰불 · 지진 · 역병이 잇달아 사람들은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숱한 재앙을 만났다.

헤이안 말에서 가마쿠라로 — 거듭되는 재해

1177년, 4월부터 엔랴쿠사 대중의 강소(強訴)가 일어나 반년이 넘도록 도읍을 시끄럽게 하던 와중에, 4월 28일 밤 여덟 시 무렵 도미노코지의 한 병자의 집에서 불이 났다. 마침 거센 바람에 불길이 번져 대내리(大內裏)에까지 이르렀고, 도읍의 3분의 1이 잿더미가 되었다. 도읍이 생긴 이래 가장 큰 화재였다. 우대신 후지와라노 가네자네는 일기 『옥엽(玉葉)』에 그 소회를 이렇게 적었다. 「오조 남쪽에서 일어난 불이 팔성(八省)의 관아에까지 미친 것은 일찍이 없던 일이다. 이렇게 번져 타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닐 것이다. 화재 · 도적 · 대중의 병란 · 위아래의 소동, 참으로 난세의 극치다. 사람의 힘이 미칠 바가 아니다.」

가마쿠라 초기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의 하나인 가모노 조메이(鴨長明)의 『방장기(方丈記)』는 1177년의 큰불을 비롯하여 1180년의 회오리바람, 그 뒤에 이어진 전국적인 대기근, 1185년의 대지진 같은 천변지요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 기근의 대목은 이렇다. 「흙담 가에도 길가에도 굶어 죽는 이가 헤아릴 수 없었다. 치울 방도도 없으니 썩는 냄새가 온 세상에 가득하고, 변해 가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이 많았다. …… 도읍 안, 일조 남쪽 · 구조 북쪽, 교고쿠 서쪽 · 주작대로 동쪽의 길가에 있던 머리만 모두 4만 2천3백여였다. 하물며 그 앞뒤에 죽은 이도 많고, 강가 · 시라카와 · 서경 · 여러 길가를 더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하물며 일곱 도의 여러 나라는 어떠하겠는가.」

대지진의 대목은 또 이렇다. 「산은 무너져 강을 메우고, 바다는 기울어 뭍을 잠기게 하였다. 땅이 갈라져 물이 솟고, 바위가 쪼개져 골짜기로 굴러떨어졌다. 물가를 젓던 배는 물결에 떠돌고, 길 가던 말은 발 디딜 곳을 잃었다. 도읍 근처에는 곳곳의 당사와 탑묘가 하나도 온전한 것이 없었다. 무너지고 쓰러졌다. 먼지와 재가 피어올라 짙은 연기 같았다. 땅이 흔들리고 집이 부서지는 소리는 천둥과 다르지 않았다. 집 안에 있으면 금세 짓눌릴 것 같고, 뛰쳐나가면 땅이 갈라진다. 날개가 없으니 하늘을 날 수도 없다. 용이라면 구름이라도 탈 것을. 두려운 것 가운데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지진이라고 절감하였다.」

늦여름의 메마른 계단식 논과 비어 있는 산골 마을 — 시든 벼와 갈라진 논바닥, 인적 없는 초가 몇 채
그림 · 늦여름의 메마른 계단식 논과 비어 있는 산골 마을 — 시든 벼와 갈라진 논바닥, 인적 없는 초가 몇 채

『방장기』 같은 기록에서도, 때가 말법에 들고 인심이 어지러워지자 재앙이 폭풍처럼 일어났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난들도 앞으로 닥칠 삼재칠난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 뒤로 「악세 말법」의 경문 그대로 아수라 같은 피비린내 나는 다툼이 펼쳐지고, 재앙이 재앙을 불러 삼재칠난은 더욱 격렬해졌다. 그리고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을 쓰시기 직전에 그 정점에 이르렀다.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 인심이 얼마나 어지러워졌는가는 방화의 건수와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연구 3년(1071)부터 1155년까지를 헤이안 말기, 1156년부터 1184년까지를 과도기, 1185년부터 1249년까지를 가마쿠라 전기로 나누어 보면, 가마쿠라 전기의 방화 사건은 헤이안 말기의 두 배로 늘었다. 같은 방화라도 헤이안 말기에는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으나 그 뒤로는 강도와 약탈을 노린 것이 많아졌다. 또 헤이안 말기와 과도기에는 공경과 황족의 거처에 대한 방화가 눈에 띄지만, 가마쿠라 전기에는 사원과 서민의 집에 대한 방화가 많다. 승구 3년(1221)의 기록에도 「요즈음 방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말이 보인다. 관희 연간(1229~1231)에 이르면 민가에 대한 강도 방화가 극심해지고 칼부림과 살해가 따르는 흉악한 범죄가 들끓었다. 민중의 살림이 얼마나 막다른 데까지 몰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사원 쪽을 보면, 손쇼사 · 엔쇼사 · 사이쇼코인 · 렌게조인 · 호조사 등 원정이 화려하던 시절에 세워진 절들이 쇠락하여 도둑의 행패에 내맡겨질 뿐이었다. 이 사원들의 말로야말로 석가 불법이 숨어 없어져 가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재해동란
  1. 1052말법에 듦
  2. 1059방화가 잦아 여러 문을 경비
  3. 1082 무렵후지산 분화
  4. 1104히에이잔 동탑 · 서탑의 승려가 서로 싸움『중우기』
  5. 1156보원의 난 · 1159 평치의 난
  6. 1177도읍의 3분의 1을 태운 큰불『옥엽』『방장기』
  7. 1180회오리바람
  8. 1180년대 초전국 대기근
  9. 1185대지진『방장기』
  10. 1185~1249가마쿠라 전기, 방화가 헤이안 말기의 두 배
  11. 1221「요즈음 방화가 끊이지 않는다」
  12. 1229~1231관희 연간, 강도 방화 · 살상의 횡행
도표 3 · 말법에 든 뒤의 재해와 동란

눈을 가리는 참상 — 정가 · 정원의 재난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을 올리신 지 여덟 해 뒤인 문영 5년(1268)에 쓰신 「안국론어감유래」에서, 이 글을 짓게 된 재난의 경과를 이렇게 적으셨다.

正嘉元年太歳丁巳八月廿三日戌亥の時前代に超え大に地振す・同二年戊午八月一日大風・同三年己未大飢饉・正元元年己未大疫病同二年庚申四季に亘つて大疫已まず万民既に大半に超えて死を招き了んぬ

정가 원년 정사년 8월 23일 술해시에 전대를 넘는 큰 지진이 일어났느니라. 같은 2년 무오년 8월 1일에는 큰 바람, 같은 3년 기미년에는 큰 기근, 정원 원년 기미년에는 큰 역병이 있었고, 같은 2년 경신년에는 사계절 내내 큰 역병이 그치지 않아 만민이 이미 태반을 넘어 죽음을 맞았느니라.

「안국론어감유래」, 33쪽
1257~1260
  1. 1257정가 원년(1257) 8월 23일 술해시전대를 넘는 대지진
  2. 1258정가 2년(1258) 8월 1일큰 바람
  3. 1259정가 3년(1259)큰 기근정원 원년(1259)큰 역병
  4. 1260정원 2년(1260, 4월 문응으로 바뀜)사계절 내내 역병이 그치지 않음
1260문응 원년(1260) 7월 16일입정안국론을 올리심
「만민이 이미 태반을 넘어 죽음을 맞았다」万民既に大半に超えて死を招き了んぬ(「안국론어감유래」, 33쪽)
도표 4 · 정가 · 정원의 재난

죽은 이가 태반을 넘었다는 것은 얼마나 처참한 일인가. 죽음은 그림자처럼 몸에 붙어 다니고 사방에는 주검 썩는 냄새가 떠돌았다. 굶주림과 돌림병과 살육에 둘러싸인 세계, 그것은 그대로 삼악도(三惡道) · 사악취(四惡趣)의 모습이었다.

특히 기근의 참상은 눈을 가릴 정도였다. 영주의 가혹한 수탈 아래 진흙과 풀에 묻혀 살던 농민들, 떠돌다 도시 한구석에서 먹을 것을 줍던 가난한 이들이 약한 사람부터 차례로 굶어 죽어 갔다. 『백련초(百練抄)』 · 『역대편년집성』 등은, 정원 원년에 전국적인 대기근과 대역병이 덮쳤을 때 교토에 열네댓 살쯤 된 어린 비구니가 나타나, 우치노에서 주작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며 겹겹이 쓰러진 주검의 살을 뜯어 먹는 참혹한 일이 있었다고 전한다. 굶주림 끝에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역병의 폭위 앞에서도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시의 의술로는 이질 같은 병도 고칠 길이 없었고, 그보다 더한 돌림병은 그 기세가 꺾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소와 말까지 거리에 쓰러졌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약해져 있었는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천변 · 지요 · 기근 · 역려가 두루 천하에 가득하고 널리 땅 위에 들끓는다. 소와 말이 거리에 쓰러진다」는 본문은 짧은 말이지만, 민중이 겪은 고통의 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치료할 방법도 없고 가난한 이를 건질 손길도 없었다. 해골은 길을 메우고, 죽은 이는 태반을 넘었으며, 고난과 절망에 짓눌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객이 든 열 가지 기도 — 당시 종교의 지형

객이 늘어놓은 기도와 방책은 그대로 13세기 중엽 일본 종교계의 지도다. 하나하나가 당시 실제로 행해지던 일이었다.

정토「날카로운 칼이 곧 이것」(利剣即是)을 믿어 서방 교주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름
천태 등「온갖 병이 다 낫는다」(衆病悉除)는 서원을 지녀 동방 약사여래의 경을 읽음
법화경「병이 곧 사라져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病即消滅・不老不死)를 우러러 법화경을 숭상
인왕경「칠난이 곧 멸하고 칠복이 곧 생긴다」(七難即滅・七福即生)를 믿어 백좌백강
진언오병의 물을 뿌림
선좌선입정으로 공관의 달을 맑힘
민간 신앙칠귀신의 이름을 천 개의 문에 붙임
인왕경 신앙오대력보살의 그림을 만 집에 걺
음양도천신지기를 절하여 사각사경제
정치국주 · 국재의 덕정
「그러나 다만 애간장을 태울 뿐」唯肝胆を摧くのみにして
도표 5 · 객이 든 기도와 방책

정토종은 「아미타불의 명호는 번뇌를 끊는 날카로운 칼」이라는 글을 오로지 믿어 염불을 외었다. 천태종 등은 약사경의 「온갖 병이 다 낫는다」는 서원에 기대어 약사여래의 경을 읽었다. 법화경을 읽는 이도 있었다. 「병이 곧 사라져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법화경의 글을 우러러 그 묘문을 숭상한 것이다. 인왕경에 따라 백 명의 법사가 백 개의 고좌에서 인왕경을 강하는 백좌백강도 거행되었다.

진언종은 비밀 진언의 가르침에 따라 오병의 수법을 닦았다. 오병의 수법이란, 단 위에 흰색 · 푸른색 · 붉은색 · 누른색 · 검은색의 다섯 병을 놓고, 저마다에 오보(금 · 은 · 유리 · 진주 · 수정), 오향(침향 · 백단 · 정향 · 울금 · 훈륙 또는 용뇌), 오약(적전 · 인삼 · 복령 · 석창포 · 천문동), 오곡(쌀 · 보리 · 조 · 기장 · 콩)의 스무 가지를 섞어 오색 비단에 싸서 넣고, 물을 부은 뒤 꽃을 꽂아 행하는 기도다. 교의를 궁구하고 철학적으로 밝히는 일보다 이런 주술적 수법을 본령으로 삼은 것이 당시 진언종의 모습이었다. 선종은 좌선하여 선정에 들고 공(空)을 관하였다.

불교 밖의 방책도 있었다. 『각온황신주경』에 따라 칠귀신의 이름을 써서 천 개의 문에 붙이고, 인왕경의 오대력보살 그림을 부적처럼 만 집에 걸었다. 음양도는 하늘과 땅의 신들에게 절하여, 막부의 네 귀퉁이와 가마쿠라의 네 경계에서 재앙을 물리치는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위정자는 만민을 가엾이 여겨 덕정을 베풀었다.

이 목록에서 눈여겨볼 것은, 그 안에 염불 · 진언 · 선만이 아니라 법화경의 독송까지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객이 보기에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 그런데도 굶주림과 역병은 더욱 심해졌다. 이 목록 자체가 이어지는 주인의 대답을 기다리는 물음이 된다. 무엇이 모자랐는가. 대성인은 제2장에서, 문제는 기도의 양이 아니라 「정(正)」과 「악(惡)」을 가리는 데 있다고 답하신다.

「이 세상은 일찍 쇠하고」 — 이리 · 오위 · 삼보 · 백왕

객의 의문은 두 겹이다. 하나는 하늘의 질서에 대한 의문이다. 해와 달은 구슬을 맞춘 듯 나란히 돌고, 다섯 행성은 구슬을 꿴 듯 제 길을 간다. 하늘에는 아무 탈이 없는데 땅 위에서는 사람이 죽어 나간다. 다른 하나는 불법과 왕법에 대한 의문이다. 불 · 법 · 승의 삼보는 엄연히 세상에 계신다. 또 백 대의 왕을 지키겠다는 하치만 대보살의 맹세가 있다. 대성인은 「간효팔번초」에서 그 탁선을 이렇게 전하신다.

平城天皇の御宇に八幡の御託宣に云く『我は是れ日本の鎮守八幡大菩薩なり百王を守護せん誓願あり』

헤이제이 천황 때 하치만의 탁선에 이르기를 「나는 일본의 진수 하치만 대보살이다. 백왕을 수호하겠다는 서원이 있다」고 하였느니라.

「간효팔번초」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천황의 대는 백 대에서 다한다는 백왕 사상이 퍼져 있었고, 백왕을 지킨다는 하치만신에 대한 신앙이 성하였다. 입정안국론을 쓰실 무렵의 천황은 제90대로 헤아려졌다. 아직 백 대에 이르지 않았으니 하치만의 수호가 살아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세상은 벌써 쇠하고 왕법은 무너졌다. 객은 길게 탄식한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고 별의 길도 어지럽지 않으며 세상에는 삼보도 계시는데, 왜 이 세상은 이토록 쇠하고 왕법은 다하였는가. 이것은 어떠한 허물에서 생겨났으며 어떠한 잘못에서 이리되었는가.

이 물음은 당시 사람들이 품었던 세계관의 위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들이 기대던 하늘의 질서, 삼보의 위덕, 신들의 맹세가 모두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재난은 그치지 않았다. 이 모순을 풀 열쇠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사람들은 잘못의 뿌리를 알지 못한 채 탄식할 뿐이었고, 최고 위정자인 호조 도키요리조차 그 근원을 알지 못했다.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은 뒤의 수레에 대한 경계라는 옛말처럼, 이 물음은 어느 시대의 위정자에게나 던져지는 물음이다.

대법 흥폐의 서상

혹독한 삼재칠난을 겪은 당시 사람들이 참으로 민중을 행복하게 할 큰 사상, 큰 종교를 찾은 것은 필연이었다. 한편으로는 귀족화하고 쇠퇴한 기성 불교에 대한 불신과 의혹을 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 속에 뿌리내린 힘 있는 종교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바른 법을 가릴 지혜가 없었기에 허둥대며 조급해하다가 염불 같은 가르침을 온 나라에 넘치게 한 것도 사실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삼재칠난의 모습이야말로 큰 불법이 일어날 앞선 모습이며, 큰 선(善) 앞의 큰 악이었다. 대성인은 「현불미래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仏記に順じて之を勘うるに既に後五百歳の始に相当れり仏法必ず東土の日本より出づべきなり、其の前相必ず正像に超過せる天変地夭之れ有るか……而るに去ぬる正嘉年中より今年に至るまで或は大地震・或は大天変・宛かも仏陀の生滅の時の如し、当に知るべし仏の如き聖人生れたまわんか……当に知るべし通途世間の吉凶の大瑞には非ざるべし惟れ偏に此の大法興廃の大瑞なり

부처의 예언에 따라 이를 헤아려 보건대 이미 후오백세의 처음에 해당하느니라. 불법은 반드시 동쪽 땅 일본에서 나와야 하느니라. 그 앞선 모습으로 반드시 정법 · 상법 시대를 넘어서는 천변지요가 있을 것이니라. …… 그런데 지난 정가 연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혹은 큰 지진, 혹은 큰 천변이 마치 부처가 나시고 멸하실 때와 같으니라. 마땅히 알라, 부처와 같은 성인이 태어나실 것인가. …… 마땅히 알라, 이것은 세간의 흔한 길흉의 큰 상서가 아니요, 오로지 이 대법이 일어나고 무너지는 큰 상서이니라.

「현불미래기」, 508쪽

이 어서는 부처가 태어나실 때 · 법륜을 굴리실 때 · 열반에 드실 때에 길한 상서와 흉한 상서가 앞뒤에 끊어질 만큼 크게 나타났다고 하신다. 부처가 탄생하실 때에는 오색의 빛이 사방에 두루 퍼져 밤도 낮과 같았고, 입멸하실 때에는 열두 줄기 흰 무지개가 남북에 걸치고 큰 해가 빛을 잃어 캄캄한 밤과 같았다. 그 뒤 정법 · 상법 이천 년 동안 불교 안팎의 성인이 나고 멸하였으나 이만한 큰 상서는 없었다. 그런데 정가 연간부터 큰 지진과 큰 천변이 마치 부처가 나고 멸하실 때와 같았다는 것이다.

부처의 탄생오색의 빛이 사방에 두루 퍼져 밤도 낮과 같음
부처의 입멸열두 줄기 흰 무지개가 남북에 걸치고 해가 빛을 잃음
정법 · 상법 이천 년성인이 나고 멸하였으나 이만한 상서는 없음
정가 연간 이후큰 지진 · 큰 천변이 부처의 생멸 때와 같음
「오로지 이 대법이 일어나고 무너지는 큰 상서이니라」惟れ偏に此の大法興廃の大瑞なり(「현불미래기」, 508쪽)
도표 6 · 대법 흥폐의 큰 상서

글 가운데 「부처와 같은 성인이 태어나실 것인가」는 말법의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출현을 가리킨다. 「대법 흥폐의 큰 상서」에서 「흥(興)」은 대성인의 불법이 일어남을, 「폐(廢)」는 석가 불법이 무너짐을 뜻한다. 당시의 삼재칠난은 석가 불법으로는 더 이상 민중을 구할 수 없다는 실증이며, 동시에 대성인의 불법이 일어날 것을 보이는 표지였다. 대성인의 출현과 대백법의 현현은 그야말로 때가 그렇게 시킨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정가 이후의 대지진 · 대천변은 세간의 흔한 길흉이 아니라 「대법 흥폐의 큰 상서」다. 석가 불법의 효력이 다하고 말법의 대백법이 일어날 때가 왔음을 국토가 먼저 보인 것이다.

당시의 종교계 — 천태의 변질과 승병

헤이안 말기부터 급속히 깊어 가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갈 기력을 잃고, 법연이 시작한 아미타불의 칭명에 기대어 덧없는 내세의 정토를 바랄 뿐이었다. 특히 살아갈 희망을 잃은 몰락 귀족들은 이 정토의 가르침에 막대한 재물을 바치며 헛된 기도를 올렸다. 또 천변지요가 심해질수록 미신이 판을 치고 진언의 가지기도가 유행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

당시 불교계의 중심이던 천태종의 타락도 심했다. 전교대사는 간무 천황 앞에서 남도 육종을 논파하고 히에이잔에 적문의 계단을 세워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제3대 좌주 자각과 제5대 좌주 지증이 본사 전교대사의 정신을 등지고 진언을 끌어들인 뒤로, 천태종은 국가 권력과 손잡고 타락해 갔다. 히에이잔은 더 이상 참된 의미에서 불교계의 중심이 아니었다. 부패와 혼란의 세상을 그대로 비추는, 진흙탕 같은 정쟁의 마당이 되어 있었다.

원정기에 들어서자 좌주 자리를 둘러싼 문벌의 다툼은 더욱 격렬해졌고, 그 다툼은 곧바로 정치의 움직임과 얽혔다. 예컨대 메이운(明雲)은 다이라 씨의 힘을 배경으로 좌주가 되었으나 정치의 동요에 따라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수영 2년(1183)에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조복하는 기도를 위해 호주사에 머물던 중 기소 요시나카의 군대에 붙잡혀 목이 베였다. 이 일은 대성인의 어서에 자세히 나온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진언으로 남을 조복하려던 기도가 도리어 제 몸에 돌아온 「환착어본인(還著於本人)」의 전형적인 현증이다.

윗자리가 이러하니 아래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학문을 일으키는 기풍은 찾아볼 수 없었고, 당중(堂衆)과 절 영지의 병사들과 함께 다만 폭도가 되어 있었다. 특히 엔랴쿠사의 승병과 법상종 고후쿠사의 승병의 다툼은 격렬했다. 그들은 서로 상대의 절에 불을 지르고 서로 죽였다. 때로는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절의 진수신의 가마와 신목을 받들고 떼를 지어 도읍에 들어와 조정과 법황을 위협하며 직소하였다. 그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되풀이되었다.

에이큐 원년(1113) 에이큐의 강소 때 대중의 진압을 기원한 이와시미즈 하치만궁의 선명(宣命)에는 당시 승병의 실태가 이렇게 그려져 있다. 「근년 이래 신인(神人)은 난폭함을 앞세우고 승려는 탐욕을 근본으로 삼아, 혹은 공사의 논밭을 가로채고 혹은 위아래의 재물을 빼앗는다. 도읍과 기내를 가리지 않고 변경을 마다하지 않으며, 무리를 지어 성을 덮고 성곽에 넘친다. 인민을 멸망시킬 뿐 아니라 같은 무리끼리도 걸핏하면 싸움을 벌인다. 배움을 내던지고 칼과 병기를 가로차며, 가사를 벗고 갑옷과 투구를 입는다. 절을 불태우고 승방을 부순다. 활과 화살을 좌우의 벗으로 삼고 화살과 돌을 아침저녁의 노리개로 삼는다. 공부하는 방이 이 때문에 전장으로 바뀌고, 수행하는 곳이 이로 말미암아 군진이 되었다.」 대집경이 설한 「투쟁언송 · 백법은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승려의 타락

승려 일반도 몹시 타락해 있었다. 대보율령의 규정에 따르면 승려는 농민에게 가장 괴로운 부역을 면제받았고, 승려가 되는 데 신분의 제약도 없었다. 그래서 농민 가운데 승려가 되려는 이가 많았다. 율령제가 엄하던 무렵에는 일정한 수행을 쌓아 나라의 공인을 받은 사람에게만 출가가 허락되었고, 공인 없이 승려가 된 사도승(私度僧)은 엄하게 단속되었다. 그러나 헤이안 말기부터 그 체제가 무너져 갑자기 머리를 깎은 승려가 늘어났고, 그 질의 저하는 무서울 정도였다.

914년 미요시 기요유키(三善清行)가 천황에게 올린 「의견봉사 12개조」는 이렇게 아뢴다. 「여러 절의 연분도자와 임시 도자가 한 해에 이삼백 명이나 되는데, 그 절반 이상이 사악하고 문란한 무리입니다. 또 여러 지방의 백성이 부역을 피하고 조세를 벗어나려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법복을 걸치는 자가 요즈음 많아서, 천하의 3분의 2가 모두 머리 깎은 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집에 처자를 두고 입으로는 비린 것을 먹으며, 모습은 사문과 같으나 마음은 짐승 잡는 백정과 같다」고 당시 승려의 실태를 전한다.

게다가 절에는 귀족이 바친 많은 영지가 있었고, 귀족들의 기도 의뢰가 끊이지 않아 넉넉한 보시가 모였다. 절 안의 생활은 편하고 화려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승려가 되었고 자연히 절로 모여들었다. 생활의 이해에만 민감해졌고, 이해와 이해의 충돌은 격렬한 갈등을 낳았다. 이미 승려의 세계는 아귀계이고 수라계였으며, 때로는 아비규환으로 날을 보냈다. 열반경은 말법의 비구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持律に似像して少し経を読誦し飲食を貪嗜して、其の身を長養し袈裟を著すと雖も猶猟師の細めに視て徐かに行くが如く猫の鼠を伺うが如し

계율을 지키는 듯 꾸미고 조금 경을 읽으며, 음식을 탐하여 제 몸만 기르고, 가사를 걸쳤으나 마치 사냥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과 같고 고양이가 쥐를 엿보는 것과 같다.

『대반열반경』

경은 이어서, 그들이 늘 「나는 아라한을 얻었다」고 외치며 겉으로는 어질고 착한 모습을 보이나 속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품고, 실로는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하고 삿된 견해가 치성하여 정법을 비방한다고 설한다. 당시 승려의 모습은 이 경문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들어맞았다.

승려와 국가 권력의 결탁도 더욱 성해졌다. 재난을 없애기 위해 위정자가 승려의 기도에 기댈 수밖에 없었으므로 승려를 특히 중히 여긴 데도 원인이 있었다. 승려들 또한 민중의 무지를 틈타 겉으로는 성인처럼 행세하여 이름을 얻고, 권력자에게 교묘히 다가갔다. 예컨대 선종의 개조로 받들어지는 에이사이(栄西)는 스스로 대사의 칭호를 얻으려고 뇌물까지 써 가며 운동하였으나 결국 권승정에 그쳤다고, 지엔의 『우관초(愚管抄)』와 후지와라노 데이카의 일기 등에 전한다.

나아가 염불자 넨아(念阿), 선종의 도류(道隆), 율종의 료칸(良観) 등은 정치권력을 움직이며 제 세상을 만난 듯 구가하였다. 대성인이 유일 최고의 정법을 부르짖고 그릇된 종교의 근원을 밝혀 사개격언(四箇格言)을 선언하시자, 그들은 권력자와 결탁하여 대성인을 박해하였다. 특히 고쿠라쿠사 료칸은 그 가장 앞에 선 사람이었다. 마쓰바가야쓰 초암의 습격과 이즈 유배를 행한 고쿠라쿠사 입도 호조 시게토키의 배후에도 료칸의 참언이 있었다고 보며, 대성인을 다쓰노구치의 형장으로 끌고 가게 한 것도 료칸이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를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염불을 철저히 파하신 까닭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에서 특히 염불종을 파하셨다. 당시 가장 널리 퍼진 것이 염불이었고, 그 해독이 사람들의 생명을 가장 깊이 좀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가마쿠라 무사는 몸과 마음의 단련과 실천을 중히 여겼으므로 선의 기풍과 잘 맞아 선종이 크게 지지를 받은 것처럼 말하지만, 이것은 실상과 다르다. 겐초사 도류와 호조 도키요리의 결합도 있어서 도키요리 이래 무사 가운데 참선하는 이가 꽤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로 보면 가마쿠라 무사 역시 대부분 염불을 믿었다.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할 때에도 많은 무사가 마지막에 염불을 외며 죽어 갔다고 전한다.

대성인은 정토종의 파절에 초점을 모으시고, 그 안에 모든 그릇된 종교의 파절을 담으셨다. 입정안국론을 건성으로 읽으면, 법연이라는 승려가 『선택집』을 지어 세상 사람을 미혹하게 하고 이제 염불의 슬픈 소리가 온 나라에 퍼져 망국의 조짐이 나타났으므로 염불을 철저히 파하신 글로만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 제1단에서 이미 분명히 하신 것은, 온갖 종교 · 온갖 신 · 정치와 도덕이 모두 그릇된 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재난이 일어난다는 것, 그 그릇된 법을 그치고 정법을 세워야 비로소 국가가 안태해진다는 것이다. 염불은 그 「악」 가운데 가장 앞에 선 「일흉(一凶)」으로서 뒤의 단들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시대가 요구한 대백법

결론하면 당시의 종교계는 일찍이 없던 혼란의 시기에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썩고 형식화한 기성의 귀족 불교를 떠나, 민중 속에 뿌리내린 힘 있는 종교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에 대한 민중의 무지를 틈타 숱한 그릇된 가르침과 미신이 횡행했다. 무엇보다 입정안국론에서 「이 일흉(此の一凶)」이라 지목된 염불종이 역병처럼 번졌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전례 없는 종교의 혼란은 기성의 권위에 대한 민중의 동집생의(動執生疑) — 굳은 집착이 흔들려 의심이 생기는 것 — 이며, 새롭고 위대한 종교를 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비친 것이다.

법화경은 큰 정법이 세워지고 유포되는 때가 바로 이런 종교계의 혼란기라고 예언한다. 약왕보살본사품은 「내가 멸도한 뒤 후오백세 가운데 염부제에 광선유포하여 단절시키지 말라」고 하였다. 백법이 숨어 없어지는 말법에 큰 정법이 광선유포한다는 것이다. 안락행품은 「뒤의 말세에 법이 멸하려 할 때」라고 하였다. 이런 경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경문만이 아니다. 천태대사는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わん)」고 하였고, 묘락대사도 「말법의 처음에 명리가 없지 않다(末法の初め冥利無きにあらず)」고 단언하였으며, 전교대사 또한 이렇게 외쳤다.

正像稍過ぎ已っ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法華一乗の機今正しく是れ其の時なり、何を以て知ることを得る、安楽行品に云く末世法滅の時なり

정법 · 상법 시대가 거의 지나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와 있다. 법화일승의 기근은 지금이 바로 그때다.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안락행품에 「말세 법멸의 때」라고 하였다.

전교대사

석존 · 천태 · 묘락 · 전교의 선철들이 모두 절대의 확신을 가지고, 다섯째 오백 년인 투쟁견고의 시대에 대백법이 유포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니치렌 대성인의 출현은 우연이 아니었다. 민중의 갈망이었고, 시대의 요구였으며, 역사의 필연이었다.

「어떠한 화로 인하며 어떠한 잘못으로 말미암는가」

객의 이 물음이야말로 당시 마음 있는 위정자의 거짓 없는 심정이었고, 이 물음의 해결이 입정안국론의 골수를 이룬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모든 사람이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병을 고치려면 그 원인과 본체를 밝히고, 거기서 바른 처방에 따라 치료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또 실천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회와 나라를 덮치는 재액에 대해서는, 흔히 피할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겨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대부분은 재해가 덮친 뒤에 그 자리를 수습하는 것이 고작이다. 적어도 한 나라의 안온에 책임을 진 위정자라면 그것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재해를 근본에서 규명해야 한다. 민중의 괴로움을 제 괴로움으로 여기지 못하고 사사로운 이익에만 마음을 쓰는 이는 나라를 맡을 자격이 없다.

객이 「어떠한 화로 인하며 어떠한 잘못으로 말미암는가」라고 물은 것은, 바로 이 근본을 묻는 것이다. 객이 늘어놓은 기도들은 모두 증상을 누르려는 처방이었다. 병의 뿌리가 무엇인지 묻지 않은 채 약만 바꾸어 온 것이다. 주인은 제2장에서 처음으로 그 뿌리를 짚는다.

악정의 때에 재난이 가장 크다 — 재해와 정치의 역사

재해와 정치의 관계를 더 살펴보면, 역사 위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악정의 때에 재난이 가장 맹위를 떨친다는 것이다. 위정자가 민중을 잊고 제 몸 지키기에 급급하여 서로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며 수라의 다툼을 일삼을 때, 재해는 가장 크게 나타난다. 이것은 냉엄한 실상이다.

대성인의 시대 — 기근 · 역병과 니가쓰 소동

문영 10년(1273) 무렵부터 여러 지방에 기근이 일어났고, 이어서 건치 3년(1277) 봄 이래 전국에 역병이 퍼져 홍안 원년(1278)에 이르도록 맹위를 떨쳤다. 이 무렵의 처참한 모습을 대성인은 어서에 이렇게 그리셨다.

日本国数年の間打ち続きけかちゆきて衣食たへ・畜るひをば食いつくし・結句人をくらう者出来して或は死人或は小児或は病人等の肉を裂取て魚鹿等に加へて売りしかば人是を買いくへり此の国存の外に大悪鬼となれり、又去年の春より今年の二月中旬まで疫病国に充満す、十家に五家・百家に五十家皆やみ死し或は身はやまねども心は大苦に値へりやむ者よりも怖し、たまたま生残たれども或は影の如くそいし子もなく眼の如く面をならべし夫婦もなく・天地の如く憑し父母もをはせず生きても何にかせん・心あらん人人争か世を厭はざらん、三界無安とは仏説き給て候へども法に過ぎて見え候

일본국은 여러 해 동안 기근이 잇달아 옷과 먹을 것이 끊어지고, 가축을 모두 먹어 치우고, 끝내는 사람을 먹는 자까지 나와서 혹은 죽은 사람, 혹은 어린아이, 혹은 병자 등의 살을 찢어 내어 물고기와 사슴 고기에 섞어 팔았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사 먹었느니라. 이 나라는 뜻밖에도 큰 악귀가 되었느니라. 또 지난해 봄부터 올해 2월 중순까지 역병이 나라에 가득하여, 열 집에 다섯 집, 백 집에 쉰 집이 모두 앓아 죽고, 혹은 몸은 앓지 않더라도 마음은 큰 고통을 만났으니 앓는 이보다도 두려우니라. 어쩌다 살아남았어도 그림자처럼 따르던 자식도 없고, 두 눈처럼 얼굴을 나란히 하던 부부도 없고, 하늘과 땅처럼 의지하던 부모도 계시지 않으니 살아도 무엇하겠느냐. 마음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세상을 싫어하지 않겠느냐. 「삼계는 편안함이 없다」고 부처가 설하셨으나 그 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느니라.

1389쪽

또 다른 어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去今年は大えき此の国にをこりて人の死ぬ事大風に木のたうれ大雪に草のおるるがごとし・一人ものこるべしともみへず候いき……去ぬる寛喜・正嘉にもこえ来らん三災にも・おとらざるか、自界叛逆して盗賊国に充満し他界きそいて合戦に心をつひやす、民の心不孝にして父母を見る事他人のごとく・僧尼は邪見にして狗犬とエン猴とのあへるがごとし、慈悲なければ天も此の国をまほらず・邪見なれば三宝にも・すてられたり

지난해와 올해는 큰 역병이 이 나라에 일어나, 사람이 죽는 것이 큰 바람에 나무가 쓰러지고 큰 눈에 풀이 꺾이는 것과 같아서 한 사람도 남지 못할 것처럼 보였느니라. …… 지난 관희 · 정가 때보다도 더하고, 장차 올 삼재에도 못하지 않을 것이니라. 자계반역하여 도적이 나라에 가득하고, 타계가 다투어 와서 싸움에 마음을 쏟고 있느니라. 백성의 마음은 불효하여 부모를 남처럼 보고, 승니는 삿된 견해에 빠져 개와 원숭이가 만난 것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느니라. 자비가 없으니 하늘도 이 나라를 지키지 않고, 삿된 견해에 빠졌으니 삼보에게도 버림을 받았느니라.

「우에노전답서」, 1552쪽

이 글은 앞부분에서, 그해 날씨가 철을 따라 오곡이 논밭에 가득하고 초목이 우거져 요순의 시대나 성겁의 처음 같았는데, 8월과 9월의 큰비와 큰 바람에 온 일본이 흉작이 되어 남은 만민이 겨울을 나기 어렵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 역병도 잠시 그친 듯했으나 귀신이 다시 들어온 탓인지 북쪽 · 동쪽 · 서쪽 · 남쪽 나라가 한결같이 앓으며 탄식한다고 하셨다.

이 두 글에 드러나듯 그때의 삼재칠난은 참으로 혹독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당시의 정세가 얼마나 불안했는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 뒤의 글에 「자계반역하여 도적이 나라에 가득하고, 타계가 다투어 와서 싸움에 마음을 쏟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 짧은 글 속에 당시의 정세가 드러날 뿐 아니라 재해의 근원이 남김없이 설해져 있다. 「자계반역」은 나라 안의 싸움이고, 「타계가 다투어 온다」는 다른 나라와의 싸움이다. 그리고 「자비가 없으니 하늘도 이 나라를 지키지 않고, 삿된 견해에 빠졌으니 삼보에게도 버림을 받았다」는 한 줄은, 제2장의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떠났다」는 입정안국론의 논리를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자계반역의 실례가 문영 9년(1272) 2월의 이른바 니가쓰 소동(二月騒動)이다. 집권 호조 도키무네의 배다른 형 도키스케(時輔)가 정실의 아들이 아니라는 까닭으로 가독을 도키무네에게 빼앗긴 것을 원망하여 몰래 모반을 꾀하다 발각되었다고 하며, 가마쿠라에서는 나고에 도키아키라 등이 토벌되고 교토에서는 도키스케가 토벌되었다. 이 사건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동요를 주었다. 집권과 그 형이 서로 다투는 추한 모습이 그대로 세상의 거울에 비친 것이다. 입정안국론이 「자계반역난」을 예언한 지 열두 해 만의 일이었다. 대성인은 사도에서 그해 5월 무렵의 세상을 이렇게 전하셨다.

相州鎌倉より北国佐渡の国.其の中間・一千余里に及べり、山海はるかに.へだて山は峨峨.海は涛涛・風雨.時にしたがふ事なし、山賊.海賊・充満せり、宿宿とまり・とまり・民の心・虎のごとし.犬のごとし、現身に三悪道の苦をふるか、其の上当世は世乱れ去年より謀叛の者・国に充満し今年二月十一日合戦、其れより今五月のすゑ・いまだ世間安穏ならず

사가미의 가마쿠라에서 북쪽 나라 사도까지는 그 사이가 천여 리에 이르느니라. 산과 바다가 멀리 가로막아 산은 험하고 바다는 물결치며, 비바람은 때를 따르지 않고, 산적과 해적이 가득하니라. 묵는 곳마다 머무는 곳마다 백성의 마음은 범과 같고 개와 같으니, 이 몸으로 삼악도의 고통을 겪는 것인가. 게다가 지금 세상은 어지러워 지난해부터 모반하는 자가 나라에 가득하고, 올해 2월 11일에 싸움이 있었으며, 그로부터 지금 5월 말까지 아직 세상이 편안하지 않느니라.

「니치묘성인어서」, 1217쪽
  1. 1260문응 원년(1260)입정안국론, 「자계반역난 · 타국침핍난」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경고
  2. 1272문영 9년(1272) 2월니가쓰 소동자계반역
  3. 1273문영 10년(1273) 무렵부터여러 지방의 기근
  4. 1274문영 11년(1274)몽골의 첫 내습타국침핍
  5. 1277건치 3년(1277) 봄부터전국의 역병, 홍안 원년(1278)까지
  6. 1278홍안 원년 8 · 9월큰비 · 큰 바람으로 흉작
「자계반역하여 도적이 나라에 가득하고, 타계가 다투어 와서 싸움에 마음을 쏟는다」自界叛逆して盗賊国に充満し他界きそいて合戦に心をつひやす(1552쪽)
도표 7 · 대성인 시대의 재난과 정세

「타계가 다투어 와서 싸움에 마음을 쏟는다」는 몽골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막부가 규슈에 대군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어 안의 정치에 힘을 쏟을 여유조차 없었던 형편을 보여 준다. 이리하여 악정 때문에 재해가 일본 전국을 맹렬히 뒤덮고 민중을 도탄의 괴로움으로 몰아넣은 것이 당시의 분명한 현상이었다.

그러면 왜 이런 열악한 정치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을 풀 길은 없었는가. 결국 탐 · 진 · 치의 삼독에 물든 사람들의 추한 권력 다툼, 제 몸 지키기에 급급하여 많은 민중을 잊은 어리석은 모습이 아니었던가. 정치 부패라는 현상에만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그 밑바닥에 흐르는 것이 중요하며, 그 근원을 끝까지 캐어야 한다. 입정안국론은 그 근원을 사람들의 마음이 따르는 「법」의 정사(正邪)에서 찾는다.

무로마치 중기 · 후기

무로마치 중기,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시대에 들어 악정에 악정이, 폭정에 폭정이 겹치자 이에 호응하듯 재해가 잇달아 곳곳에서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조로쿠 3년(1459)은 연초부터 날씨가 이상하여 3월 모내기 준비 때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았고, 해가 둘로 보이거나 요성이 달을 범하는 이변이 있어 인심이 흔들렸다. 9월에는 큰 폭풍우가 덮쳐 가모가와가 크게 넘쳤고, 도읍 안에 빠져 죽은 이가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교토로 쌀을 나르는 길이 막혀 쌀값이 치솟고 굶어 죽는 이가 잇달았으며, 잇키(一揆)도 성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로쿠 4년(1460)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가뭄이 계속되어 모내기 때 물이 모자랐고, 5월 말부터는 반대로 심한 장마와 이상 저온이 이어져 여름에도 겨울옷을 입을 지경이었다. 오미에서는 비와코가 넘쳐 논이 잠겼고, 역병까지 돌았다. 가을이 되자 큰 바람이 불고, 하늘을 어둡게 할 만큼 메뚜기 떼가 몰려와 벼가 큰 피해를 입었다.

이윽고 간쇼 2년(1461) 정월부터 식량 부족이 전국에 미쳐 2월에 절정에 이르렀다. 정월부터 2월 말까지 교토에서 굶어 죽은 이가 8만 2천에 이르렀다고 한다. 잇단 기근으로 죽은 이의 수가 서민의 3분의 2에 이르렀다는 기록도 있다. 가모가와는 주검으로 메워져 물길이 막히고 썩는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고 한다. 게다가 역병이 돌아 기근과 겹쳐 날마다 삼백에서 육칠백 명씩 잇달아 죽어 갔다고 전한다.

도읍은 물론 온 나라가 굶주림에 몰려 고뇌의 밑바닥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막부에서는 기둥인 하타케야마 가문에서 요시나리와 마사나가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쇼군 요시마사는 이마마이리노쓰보네라는 탐욕스럽고 질투심 깊은 측실에게 휘둘려 그 뜻대로 움직였고, 토목 공사 등으로 민중을 괴롭혔으며, 공가와 무가의 귀인들과 화려한 행렬을 지어 꽃구경을 다니며 유흥에 빠졌다. 이래서는 위정자로서의 자격을 잃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카가 쇼군의 권위가 이미 땅에 떨어진 덴분 9년(1540)에도 큰 기근이 있었다. 덴분 연간은 요시하루가 제12대 쇼군을 이었으나 뒤에 권신에게 쫓겨나는 시세였고, 세상은 완전히 어지러웠다. 이 동란 한가운데인 덴분 8년(1539)과 9년에는 풍수해로 기근이 일어나 엄청난 사망자가 나왔다. 민중이 겪은 도탄의 괴로움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에도 후기

에도 시대 후기의 큰 기근, 곧 덴메이 기근(1782~1787)과 덴포 기근(1833~1839)도 막부의 체제가 흔들리고 다스리는 이들의 횡포가 가혹해진 때에 일어났다. 니시무라 마코토 · 요시카와 이치로가 엮은 『일본흉황사고(日本凶荒史考)』는 덴메이 기근에 대해 「히로사키 · 하치노헤 · 모리오카의 여러 영지가 가장 처참하여,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사람이 서로 잡아먹기에 이르렀다. 해를 넘겨 4년, 이해는 칠팔 할의 작황으로 곳에 따라서는 풍작이라는 말도 있었으나 보리 수확을 기다리지 못하고 굶어 죽는 이가 많았다. 지난해 9월부터 6월까지 쓰가루 한 군에서만 8만 7천여로 헤아려지고, 떠도는 백성 또한 적지 않았다」고 적는다.

덴포 기근에 대해서는 「동북의 여러 지방은 덴포 초년부터 잇달아 굶어 죽고, 그 뒤에도 그치지 않아 굶어 죽은 이와 떠도는 백성이 매우 많았다. 4년부터 10년에 이르는 일곱 해 동안 쓰가루 한 군에서만 죽은 이가 3만 5천6백여, 다른 고장으로 흩어진 이가 4만 7천여 명을 헤아렸다」고 하여, 그 혹독한 재해의 실상을 전한다. 이 밖에도 메이와 · 안에이 · 덴메이 · 간세이 연간의 화산 분화와 백성 잇키 등, 재해와 소란의 예는 헤아릴 수 없다.

시대가마쿠라
재해몽골 내습의 대비와 겹친 문영~홍안의 기근 · 역병
그때의 정치문영 9년(1272) 니가쓰 소동
시대무로마치(조로쿠 · 간쇼)
재해조로쿠 3~4년(1459~1460)의 이상 기후 · 홍수 · 메뚜기 떼, 간쇼 2년(1461) 교토의 아사자 8만 2천
그때의 정치하타케야마 가문의 내분과 쇼군 요시마사의 실정
시대무로마치(덴분)
재해덴분 8~9년(1539~1540) 풍수해와 기근
그때의 정치쇼군의 권위 실추
시대에도 후기
재해덴메이(1782~1787) · 덴포(1833~1839)의 큰 기근
그때의 정치막부 체제의 동요
「악정의 때에 재난이 가장 크다」
도표 8 · 재해와 악정의 역사

역사는 되풀이하여 같은 것을 보여 준다. 지도자가 민중을 잊고 다툼과 사치에 빠질 때 재해는 가장 크게 덮친다. 그러나 입정안국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악정 자체가 무엇에서 생겨나는가, 지도자와 민중의 마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객의 물음 「이것은 어떠한 화로 인하며 어떠한 잘못으로 말미암는가」는 바로 그 근원을 향해 있고, 주인의 대답은 그 근원을 「정법에 등지고 악법에 돌아간 것」에서 찾는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재해의 피해를 키우는 것은 악정이고, 악정을 낳는 것은 삼독에 물든 사람의 마음이며, 그 마음을 이끄는 것은 그 사람이 따르는 법이다. 입정안국론은 재난의 근원을 정치나 기술의 차원을 넘어 「법의 정사」에서 묻는다.

제1단 제2장 재난의 근본 원인을 밝히다
어서 17쪽 10~14행 · 第一段 第二章 災難の根本原因を明か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17쪽 10~14행
本文 · 어서 원문

主人の曰く、独り此の事を愁いて胸臆に憤悱す。客来つて共に嘆く、屡談話を致さん、夫れ出家して道に入る者は法に依つて仏を期するなり。而るに今神術も協わず、仏威も験しなし。具に当世の体を覿るに、愚にして後生の疑を発す。然れば則ち円覆を仰いで恨を呑み、方載に俯して、慮を深くす。 倩ら微管を傾け、聊か経文を披きたるに、世皆正に背き、人悉く悪に帰す。故に善神は国を捨てて相去り、聖人は所を辞して還りたまわず。是れを以て魔来り鬼来り、災起り難起る。言わずんばある可からず。恐れずんばある可からず。

풀이

주인이 말하기를, 나 홀로 이 일을 근심하여 가슴속에 답답함과 분함을 품고 있었느니라. 마침 객이 와서 함께 탄식하니, 이에 대하여 거듭 이야기를 나누어 보리라. 무릇 출가하여 불도에 들어선 자는 법에 의하여 성불을 기약하는 것이니라. 그런데 지금은 신들의 술법도 맞지 않고 부처의 위덕에도 효험이 없느니라. 지금 세상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내세에 대한 의심만 일으키고 있느니라. 그러므로 둥글게 덮은 하늘(円覆)을 우러러 한을 삼키고, 모나게 실은 땅(方載)에 엎드려 깊이 생각에 잠기느니라. 곰곰이 좁은 소견(微管)을 기울여 조금이나마 경문을 펼쳐 보니, 세상이 모두 정(正)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惡)에 돌아갔느니라. 그러므로 선신(善神)은 나라를 버리고 떠나 버렸고, 성인(聖人)은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으시느니라. 이 때문에 마(魔)가 오고 귀(鬼)가 와서, 재(災)가 일어나고 난(難)이 일어나는 것이니라. 이것은 말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어구 풀이

胸臆に憤悱す가슴속에 분비하다
「분(憤)」은 마음속으로 알고자 하나 통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것, 「비(悱)」는 말하고자 하나 말이 나오지 않아 애태우는 것이다. 주인 역시 객보다 먼저 홀로 이 재난을 근심하고 있었음을 보인다.
屡談話を致さん거듭 이야기를 나누리라
객의 탄식을 받아 문답을 시작하겠다는 말이다. 이 한마디로 입정안국론 열 번의 문답이 열린다.
出家して道に入る者출가하여 도에 드는 자
한 번 말하면(一往) 머리를 깎고 세속의 일을 버린 승려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再往) 재가의 신자라도 몸을 바쳐 법을 넓히는 강한 신심을 가진 사람은 이 말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法に依つて仏を期する법에 의하여 부처를 기약한다
승려가 되는 목적은 불법을 바르게 수행하여 부처의 경애를 깨닫는 데 있다는 뜻이다. 「기(期)」는 기약하다, 목표로 삼다.
神術も協わず、仏威も験しなし신술도 맞지 않고 불위도 효험이 없다
「신술」은 신들에게 비는 술법, 「불위」는 부처의 위덕이다. 제1장에서 객이 든 신기(神祇)의 제사와 여러 불교의 기도가 모두 효험이 없었음을 받는다.
愚にして後生の疑を発す어리석어 후생의 의심을 일으킨다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이렇게 현세의 기도가 듣지 않으니 내세의 구제도 과연 있겠는가 하고 의심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円覆・方載원복 · 방재
원복은 하늘, 방재는 땅을 말한다. 고대 중국 사람들은 땅을 네모난 평면으로, 하늘을 그것을 덮는 둥근 면으로 생각했다. 하늘이 만물을 덮고 땅이 만물을 싣는 것을 복재(覆載)라 한다.
微管미관
가는 대롱. 가는 대롱으로 들여다보면 넓은 전체가 보이지 않으므로, 좁은 소견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다. 어리석은 범부의 좁은 견해를 비유한다.
世皆正に背き、人悉く悪に帰す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간다
입정안국론 전체의 핵심 명제다. 「정」은 정법, 「악」은 악법을 말한다. 위로는 국주에서 아래로는 만민에 이르기까지 정법을 등지고 그릇된 법에 귀의하였다는 진단이다.
善神は国を捨てて相去り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난다
정법을 지키는 사람과 나라를 수호하는 제천선신이 정법의 법미(法味)를 맛보지 못해 위광을 잃고 나라를 버리고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는 뜻이다. 이를 신천상(神天上)의 법문이라 한다.
聖人성인
유교에서 성인은 요 · 순 두 천자, 역대 왕조의 창업자인 우(하) · 탕왕(은) · 무왕(주), 무왕의 아우 주공단, 유학을 집대성한 공자를 가리켰다.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외전에 이르기를 아직 싹트지 않은 것을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 내전에 이르기를 삼세를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고 하셨다. 불법에서는 부처를 말하며, 일본에서는 종파의 조사를 높여 부르는 말로도 쓰였다.
魔来り鬼来り마가 오고 귀가 온다
「마」와 「귀」는 모두 사람의 선한 마음을 부수고 생명을 흐리게 하여 불행하게 하는 작용이다. 선신과 성인이 떠난 자리에 그들 대신 들어오는 것이다.
災起り難起る재가 일어나고 난이 일어난다
「재」와 「난」은 삼재칠난을 가리킨다. 사람의 생명에 마 · 귀가 들어오는 것(정보)과 국토에 재난이 일어나는 것(의보)이 한 줄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
言わずんばある可からず。恐れずんばある可からず말하지 않을 수 없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진단을 알게 된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대성인의 결의와, 이 인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한 경고가 겹쳐 있다. 입정안국론을 위정자에게 올리신 근본 동기가 이 두 구절에 담겨 있다.

이 장의 자리 — 입정안국론의 핵심

이 장은 인생의 불행과 국토의 삼재칠난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밝힌 대목이며, 입정안국론의 가장 중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그 가운데서도 「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의 한 구절이 가장 중요하다. 이 구절의 참뜻을 알면, 종교의 바르고 그름을 가려 참되고 가장 높은 종교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여기서 말하는 「정(正)」은 말법의 정법인 삼대비법을 가리킨다.

재난이 오는 까닭에는 자세히 보면 세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첫째는 정에 등지고 악에 돌아갔기 때문이다(背正帰惡). 둘째는 선신과 성인이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神聖去辭). 셋째는 마와 귀가 와서 어지럽히기 때문이다(魔鬼來亂). 이 세 가지는 차례로 원인과 결과를 이룬다. 사람들이 정법을 등지니 선신과 성인이 떠나고, 선신과 성인이 떠난 빈자리에 마와 귀가 들어와 재난이 일어난다.

  1. ①배정귀악「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간다」世皆正に背き、人悉く悪に帰す
  2. 그러므로(故に)
    ②신성거사「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나고 성인은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善神は国を捨てて相去り、聖人は所を辞して還りたまわず
  3. 이 때문에(是れを以て)
    ③마귀내란「마가 오고 귀가 와서 재가 일어나고 난이 일어난다」魔来り鬼来り、災起り難起る
「말하지 않을 수 없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도표 9 · 재난이 오는 세 가지 뜻

주인의 대답은 다섯 걸음으로 나아간다. 먼저 객과 함께 탄식한다. 주인도 홀로 이 일을 근심하던 차였다. 다음으로 출가한 사람의 본분을 말한다. 출가자는 법에 의해 성불을 기약하는 사람이다. 셋째로 그 본분에 비추어 지금의 현실을 본다. 신술도 불위도 효험이 없고, 사람들은 내세의 구제까지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넷째로 하늘을 우러러 한을 삼키고 땅에 엎드려 깊이 생각한 끝에 경문을 펼친다. 다섯째로 경문에 비추어 얻은 결론을 내놓는다. 객이 제1장에서 늘어놓은 모든 기도가 효험이 없었다는 사실은 여기서 「법에 의하여」라는 말과 맞부딪친다. 기도가 효험이 없었던 것은 기도의 정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기도가 기대고 있던 법이 그릇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결론은 「경문을 펼쳐 보니」라는 말에서 나온다. 주인은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문이 그렇게 설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객은 다음 제2단에서 곧바로 「그 경문의 증거를 듣고 싶다」고 묻게 되고, 주인은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 · 약사경의 네 경을 들어 답한다. 이것이 입정안국론 제2편 「재난 유래의 경증 — 네 경의 명문」의 내용이다.

「출가하여 도에 드는 자는 법에 의하여 부처를 기약한다」

승려가 되는 목적은 불법을 바르게 수행하여 부처의 경애를 깨닫는 데 있다. 부처의 경애란 영원한 생명을 깨닫고, 자기 생명이 우주와 하나임을 알아,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행복의 경지에 머무는 것이다. 대성인의 불법을 믿는 것도 그 궁극은 성불에 있다.

여기서 「출가하여 도에 드는 자」라 한 것은 한 번 말하면 머리를 깎고 세속의 일을 버린 승려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재가의 신자라도 몸을 바쳐 법을 넓히는(死身弘法) 강한 신심을 가진 사람은 이 말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대성인의 불법은 일부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불법이 아니라 모든 민중을 건지는 큰 불법이다. 그래서 어서의 곳곳에 「니치렌의 제자 단나 등」이라고 말씀하셨다. 「단나」는 재가의 신자다. 출가한 제자이든 재가의 단나이든 본존 앞에서는 평등하며, 중요한 것은 강한 신심이 서 있는가 아닌가다. 출가한 사람이라도 신심이 약하면 대성인의 마음에 맞는 「출가하여 도에 드는 자」가 될 수 없고, 거꾸로 재가라도 신심이 강하면 대성인의 마음에 맞아 성불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몽골의 국서가 온 뒤 대성인이 문하에게 보내신 「제자단나중에의 어장」은 그 각오를 이렇게 밝힌다.

大蒙古国の簡牒到来に就いて十一通の書状を以て方方へ申せしめ候、定めて日蓮が弟子檀那・流罪・死罪一定ならん少しも之を驚くこと莫れ方方への強言申すに及ばず是併ながら而強毒之の故なり、日蓮庶幾せしむる所に候、各各用心有る可し少しも妻子眷属を憶うこと莫れ権威を恐るること莫れ、今度生死の縛を切つて仏果を遂げしめ給え

대몽골국의 국서가 온 일에 대하여 열한 통의 서장으로 여러 곳에 아뢰었느니라. 반드시 니치렌의 제자 단나는 유죄 · 사죄가 정해질 것이나 조금도 이에 놀라지 말라. 여러 곳에 강한 말로 아뢴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억지로 독을 주는(而強毒之)」 까닭이니라. 이는 니치렌이 바라는 바이니라. 저마다 마음을 단단히 하라. 조금도 처자 권속을 생각하지 말고 권위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번에 생사의 속박을 끊고 불과를 이루라.

「제자단나중에의 어장」, 177쪽

이 어장은 문영 5년(1268) 10월, 몽골의 내습이 확실해져 온 나라가 놀라던 때에 대성인이 막부를 비롯한 여러 대사찰에 국가 간효를 하실 때 문하에게 보내신 편지다. 일본으로서도 일찍이 없던 국난이었고, 그것을 강하게 간하는 일은 대성인 문하에게도 일찍이 없던 박해와 탄압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말씀하신 「처자 권속을 생각하지 말고 권위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각오가 곧 참된 출가다. 거꾸로 모습은 출가이면서 처자 권속을 거느리고 생계에 급급하며 권위에 아첨하는 승려는 참된 출가가 아니다. 그것은 겉모습만 부처의 권속을 닮은, 불도를 가로막는 무리와 다름없다. 「출가하여 도에 드는 자는 법에 의하여 부처를 기약한다」는 주인의 말은, 제1장에서 객이 든 수많은 승려들의 기도가 왜 효험이 없었는가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들은 출가의 모습을 하였으나 법에 의하여 부처를 기약하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의 신행은 화기애애하고 기쁨이 넘치는 것이어야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이 어장에 담긴 용기와 확신과 위대한 각오가 없으면 참된 불도 수행을 완수할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때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不自惜身命) 법을 지키는 사람이야말로 대성인의 칭찬을 받을 수 있으며, 곧 성불이라는 가장 높고 절대적인 행복의 경애를 얻을 수 있다.

불법을 믿고 배우고 수행하는 궁극의 목적은 이 「부처를 기약하는 것」, 곧 절대적 행복의 경애를 얻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은 모든 조건을 갖추어 행복한 생활을 누리며 궁극의 목표에 이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온갖 고난을 견디며 중간의 작은 목적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직 성불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참된 출가로서의 강한 신심과, 어떤 어려움도 넘어서 나아가는 큰 용맹정진이 있어야 비로소 일생성불을 이룰 수 있다.

인생의 목적과 성불

「법에 의하여 부처를 기약한다」는 말은 곧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불법의 대답이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동서를 가리지 않고 철학자와 인생에 진지하게 맞선 사람들을 늘 괴롭혀 온 문제이며, 철학의 근본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인도의 우파니샤드 철학은 브라만(梵)과 아트만(我)의 합일을 설했다. 중국의 유교는 인(仁)을 이상으로 삼았고, 도교는 인간 본래의 모습을 무위(無爲)로 보아 그 자연의 모습에 철저하기를 설했다.

그러나 이런 사상들은 인간 생명의 본질을 밝히지 못했다는 점에서, 무른 모래땅 위에 세운 건물과 같다.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기쁨과 희망과 용기를 주고, 남이 보기에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주기 어렵다. 그러므로 가장 높은 사상, 가장 깊은 철학, 그릇됨이 없는 이념으로 인류의 행복과 평화와 번영을 쌓아야 한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분명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현실의 인생이란 무엇인가조차 분명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람마다 목적과 희망과 이상은 있다.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학자나 의사, 교육자나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할 것이다. 소박한 가정을 꾸려 평범하더라도 평온하게 살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망은 끝없이 자란다. 하나의 목적을 이루면 반드시 더 크고 새로운 목적이 생기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시 새로운 고뇌를 되풀이해야 한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인간을 형성하는 귀중한 양식이며, 그것이 있기에 인간 문화의 끝없는 전진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으로 논할 때 이런 목적들은 모두 중간의 작은 목적이지 궁극의 목적이 될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두루 통하는 철학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면서도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 답을 한마디로 가르친 것이 「성불」, 곧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오늘의 말로 옮기면 절대적 행복이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 행복을 확립하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도, 유교의 인도, 도교의 무위도 그것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행복의 경지가 세워진다고 생각했기에 제창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상들은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모든 사람이 자기 삶에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성을 갖추지 못했다. 사람으로서의 이상을 그릴 수는 있어도 윤리적 · 도덕적 추상론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그 이상을 향해 노력하는 일 자체를 선으로 삼는 데 그쳤다.

상대적 행복과 절대적 행복

사람들이 구하는 행복이라 해도 그 뜻은 실로 천차만별이다. 가까운 예로 생각해 보자. 몹시 배고프던 사람이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 먹는 일과 먹은 뒤의 포만감에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행복은 두세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다섯 시간쯤 지나면 다시 배가 고파진다. 집을 갖고 싶다, 보석을 갖고 싶다는 욕망도 그것이 채워진 당장의 행복감은 아무리 커도 세월이 흐르면 엷어진다. 게다가 불이 나서 집이 타 버리거나 보석을 도둑맞으면 도리어 큰 불행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상대적 행복배고플 때의 식사집보석채워진 당장은 크나 시간이 지나면 엷어지고, 조건이 바뀌면 도리어 불행이 된다
절대적 행복(성불)영원한 생명을 깨달아
  •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고
  • 공간에 좌우되지 않으며,
  • 어떤 난관도 강한 생명력으로 넘어서는 경애
「법에 의하여 부처를 기약한다」法に依つて仏を期するなり
도표 10 · 상대적 행복과 절대적 행복

불법이 설하는 행복은 인간 생명 깊은 곳의 진리에 서서, 그 위에 세워진 절대적 행복이 구체적인 생활의 모든 장면을 통해 실증되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철학성 · 합리성 · 실증성이 있다. 그러면 불법의 생명관은 어떤 것이며, 행복과 불행을 어떻게 설하고, 절대적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가장 알기 쉽게 설한 것이 십계론(十界論)이다. 십계란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 · 천 · 성문 · 연각 · 보살 · 불이다.

십계로 본 생명의 경애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갖가지 마음을 들어 십계를 보이셨다.

数ば他面を見るに但人界に限つて余界を見ず自面も亦復是くの如し如何が信心を立てんや、答う数ば他面を見るに或時は喜び或時は瞋り或時は平に或時は貪り現じ或時は癡現じ或時は諂曲なり、瞋るは地獄・貪るは餓鬼・癡は畜生・諂曲なるは修羅・喜ぶは天・平かなるは人なり他面の色法に於ては六道共に之れ有り四聖は冥伏して現われざれども委細に之を尋ねば之れ有る可し

(묻기를) 자주 남의 얼굴을 보아도 다만 인계에 한정될 뿐 다른 계는 보이지 않고, 제 얼굴 또한 이와 같으니 어찌 믿음을 세울 수 있겠는가. 답하기를, 자주 남의 얼굴을 보면 어느 때는 기뻐하고, 어느 때는 성내고, 어느 때는 평온하고, 어느 때는 탐냄이 나타나고, 어느 때는 어리석음이 나타나며, 어느 때는 아첨하여 굽어 있느니라. 성내는 것은 지옥, 탐내는 것은 아귀, 어리석음은 축생, 아첨하여 굽은 것은 수라, 기뻐하는 것은 천, 평온한 것은 인이니라. 남의 얼굴의 색법에는 육도가 모두 있느니라. 사성은 숨어 있어 나타나지 않으나 자세히 찾아보면 있을 것이니라.

「관심의 본존초」, 241쪽

지옥이라 하든 아귀라 하든, 또는 부처라 하든, 모두 우리 인간 생명의 갖가지 모습에 다름 아니라는 위대한 이치를 말씀하신 것이다.

지옥은 성냄에 사로잡혀 생활이 부서지고 괴로움과 번민에 빠진 경애다. 아귀는 탐욕에 지배되어 만족을 모르는 상태다. 축생은 「십법계명인과초」에 「어리석고 부끄러움이 없어 헛되이 신자의 보시를 받고도 이를 갚지 않는 자가 이 과보를 받는다(愚癡無慙にして徒に信施の他物を受けて之を償わざる者此の報を受く)」(430쪽)고 하셨듯이, 어리석어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힌 나머지 멀고 큰 근본을 잊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것이다.

수라는 늘 남보다 나으려 하고 저 혼자 잘났다고 여기는 것이다. 천태대사의 『마하지관』은 수라의 마음을 이렇게 그린다.

若し其の心、念念に常に彼に勝らんことを欲し耐えざれば人を下し他を軽しめ己を珍ぶこと鵄の高く飛びて、下視が如し、而も外には仁・義・礼・智・信を掲げて下品の善心を起し阿修羅の道を行ずるなり

만일 그 마음이 생각마다 늘 남보다 나으려 하여 그것을 참지 못하면, 남을 낮추고 다른 이를 업신여기며 저를 귀히 여기는 것이 솔개가 높이 날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인 · 의 · 예 · 지 · 신을 내걸어 하품의 착한 마음을 일으키니, 이것이 아수라의 도를 행하는 것이다.

천태대사, 『마하지관』

이 남을 이기려는 마음(勝他の念) 때문에 이른바 수라의 다툼이라 하듯 싸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첨하여 굽은 것은 수라」라 하신 것은 마음이 비뚤어져 남의 호의를 호의로 받지 못하고, 차갑고 교활한 생명을 뜻한다. 지옥 · 아귀 · 축생을 삼악도, 수라를 더하여 사악도라 한다.

인계는 평온한 상태, 사람으로서 지극히 보통의, 평안한 생명의 경애다. 천계는 갖고 싶던 것을 손에 넣었다거나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다거나 하는 만족감으로 기쁨을 느끼는 상태다. 그러나 그 기쁨은 한때의 것이고 좁은 범위의 것이어서, 천인도 「오쇠(五衰)를 받는다」고 설해지듯 시간이 지나면 엷어지고 다른 조건이 바뀌면 덧없이 무너져 버린다. 사악도에 인 · 천의 두 도를 더하여 육도라 하며, 대부분의 사람의 생활은 이 육도를 되풀이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육도윤회라 한다.

이에 대하여 노력과 정진과 탐구로 얻어지는, 더 깊고 더 높고 더 긴 행복의 경애가 있다. 그것이 성문 · 연각 · 보살 · 불이며, 삼악도 · 사악도에 대하여 사성(四聖)이라 한다. 성문은 가르침을 듣고 배워 진리의 한 끝을 깨닫는 경애, 연각은 스스로 사물의 연(緣)을 관하여 진리의 한 끝을 깨닫는 경애다. 보살은 자기의 덕성을 발휘하여 남과 사회를 위해 힘쓰는 작용이다. 경전에 나오는 보살들은 그 덕성의 상징이니, 문수보살은 지혜를, 미륵보살은 자비를 나타낸다.

마지막 불계는 생명의 영원성을 깨닫고 자기 생명과 우주가 하나인 경애에 서서, 모든 것을 그릇됨 없이 보고 한없는 생명력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관에 서므로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고, 우주와 하나인 경애이므로 공간에 좌우되지도 않는다. 절대의 행복 경애다. 이 자기 확립을 바탕으로 현실의 모든 문제에 그릇됨 없이 대처하고, 어떤 난관도 강한 생명력으로 넘어서고 깨뜨려 나갈 수 있다.

  1. 지옥성냄 · 괴로움에 묶인 경애「성내는 것은 지옥」삼악도사악도육도
  2. 아귀탐욕에 지배되어 만족을 모름「탐내는 것은 아귀」삼악도사악도육도
  3. 축생어리석어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힘「어리석음은 축생」삼악도사악도육도
  4. 수라남을 이기려는 마음 · 아첨하여 굽음「아첨하여 굽은 것은 수라」사악도육도
  5. 인평온한 상태「평온한 것은 인」육도
  6. 천바람이 이루어진 기쁨 — 오쇠를 면치 못함「기뻐하는 것은 천」육도
  7. 성문 · 연각배우고 스스로 관하여 진리의 한 끝을 깨달음사성
  8. 보살남과 사회를 위해 힘쓰는 자비사성
  9. 불영원한 생명을 깨달은 절대의 행복 경애사성
지옥~축생은 삼악도, 수라를 더해 사악도, 인 · 천을 더해 육도, 성문~불은 사성
「성내는 것은 지옥, 탐내는 것은 아귀, 어리석음은 축생, 아첨하여 굽은 것은 수라, 기뻐하는 것은 천, 평온한 것은 인이니라」瞋るは地獄・貪るは餓鬼・癡は畜生・諂曲なるは修羅・喜ぶは天・平かなるは人なり(「관심의 본존초」, 241쪽)
도표 11 · 십계 — 생명의 열 가지 경애

인생의 궁극 목적은 이 불계 생명의 용현(涌現), 곧 일생성불에 있다. 그 방법은 도덕적인 정신 수양도 아니고, 사람다운 욕망을 억지로 누르는 계율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불계 생명의 당체인 삼대비법의 본존에 경지명합(境智冥合)함으로써 우리 생명의 깊은 곳에서 불계가 솟아 나타난다. 곧 대성인이 출세의 본회로서 홍안 2년(1279) 10월 12일에 도현하신 일염부제 총여의 대어본존에 귀명하여, 자행화타에 걸친 남묘호렌게쿄를 끝까지 부르는 데에 다한다.

생활은 생명 활동의 발로

사람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그것은 모두 행복을 구하는 생활이다. 그렇다면 그 행복과 불행이 종교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은 어떤 까닭인가. 이를 알려면 사람의 생활 자체를 살펴보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생활이란 생명 활동이 나타난 현실이다. 곧 순간순간의 생명 활동의 발로다. 그리고 이 생명의 깊은 곳을 움직이는 것이 사상이며 철학이며 종교다.

앞에서 사람의 생명 활동을 열 가지 범주로 설한 십계를 보았다. 지옥은 괴로움과 번뇌의 생명 활동, 아귀는 탐내는 생명 활동, 축생은 약육강식의 본능대로의 생명 활동, 수라는 남을 이기려는 다툼의 생명 활동, 인은 평온한 보통의 생명 활동, 천은 기쁨, 성문은 이론과 진리를 추구해 갈 때의 생명 활동, 연각은 빼어난 음악을 듣고 넋을 잃거나 연주자가 연주에 온전히 몰입하여 한 조각 깨달음을 여는 생명 활동, 보살은 남을 이롭게 하려는 자애의 생명 활동이다. 그리고 열 번째 불계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굳이 말한다면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는 절대의 행복 경애, 곧 대우주의 리듬과 하나 되어 아무 장애 없는 자재한 생명 활동이다.

지옥계에서 불계까지의 이 생명 활동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성내는 생명 활동이 없는 사람도 없고, 기쁨의 생명 활동이 전혀 없는 사람도 없으며, 괴로움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것은 만인에게 공통된 본래의 생명 활동이다. 그리고 이 생명 활동은 모두 연(緣)을 만나 나타난다.

사상과 종교가 생명에 미치는 영향

그릇된 사상, 낮은 철학, 따라서 그릇된 인생관과 사회관을 바탕으로 생활하면 자기의 생명은 지옥 · 아귀 · 축생의 삼악도, 또 수라계를 더한 사악도만 왕성해지고 탐 · 진 · 치가 가득 차게 된다. 그것은 생명에 쉽게 씻을 수 없는 탁함을 낳고 일정한 버릇을 지니게 한다. 탁해지고 버릇이 든 생명은 이미 우주의 리듬과 조화하지 못하고, 생명력이 극도로 약해져 우주의 갖가지 사태에 응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일조차 괴로워져 불행의 거리를 떠돌게 된다. 또 생명의 탁함은 편협한 인격을 만들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중생의 사회가 탁해지며, 거기서 태어나는 편협한 지도자는 미친 듯이 나라의 앞길을 그르치고 세상을 혼란으로 이끈다. 생명 활동의 동기가 되고 생명의 깊은 세계를 움직이고 이끌어야 할 사상이 사악하고 낮고 간교하며 편협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종교의 영향은 매우 크다. 만일 그릇된 종교라면 모르는 사이에 사람의 생명을 좀먹는다. 신앙이라는 관계를 통해, 그 사상에 나타나 있는, 또는 본존 같은 대경(對境)에 배어 있는 생명의 파동이 강하게 우리 생명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을 받들어 섬기는가가 그 사람의 생명을 가장 깊은 곳에서 물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갔다. 그러므로 …… 마가 오고 귀가 와서 재가 일어나고 난이 일어난다」는 한 줄의 무게가 드러난다. 「마가 오고 귀가 온다」는 사람의 생명, 곧 정보(正報)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재가 일어나고 난이 일어난다」는 그 사람이 사는 국토, 곧 의보(依報)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생명과 환경은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依正不二). 사람의 생명이 탁해지면 그 탁함이 개인의 생활을 부수고, 나아가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며, 국토에도 재난을 불러온다.

「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 아무도 몰랐던 진단

이 구절은 개인의 불행도, 국토의 삼재칠난도 그 근본 원인은 그릇된 종교 · 그릇된 교의에 있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예상조차 하지 못한 경천동지의 일이었다. 이 사자후가 한번 울리자, 안일에 빠져 있던 당시의 종교계는 크게 당황했을 것이고, 그릇된 가르침에 미혹된 사람들의 놀람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곧 질투와 격노로 바뀌어 삼류 강적의 폭풍이 되어 나타났다. 그들의 허둥거림 자체가 자기 본질이 남김없이 꿰뚫어 보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개목초」에서 대성인은 「이것을 아는 이는 다만 니치렌 한 사람뿐이다(此れを知れる者は但日蓮一人なり)」라고 하셨다. 누구나 무관심했고 누구나 몰랐던 종교의 정사 · 선악의 분별이야말로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결정선이며, 이것을 대성인 홀로 아셨다. 그리고 그 앎은 곧 실천의 서원으로 이어졌다.

詮ずるところは天もすて給え諸難にもあえ身命を期とせん、身子が六十劫の菩薩の行を退せし乞眼の婆羅門の責を堪えざるゆへ、久遠大通の者の三五の塵をふる悪知識に値うゆへなり、善に付け悪につけ法華経をすつるは地獄の業なるべし、大願を立てん日本国の位をゆづらむ、法華経をすてて観経等について後生をごせよ、父母の頚を刎ん念仏申さずば、なんどの種種の大難・出来すとも智者に我義やぶられずば用いじとなり、其の外の大難・風の前の塵なるべし、我日本の柱とならむ我日本の眼目とならむ我日本の大船とならむ等とちかいし願やぶるべからず

결국은 하늘도 버리려면 버리고, 온갖 난도 만나려면 만나라, 신명을 걸겠노라. 사리불이 육십 겁의 보살행에서 물러난 것은 눈을 구걸한 바라문의 책망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요, 구원과 대통 때에 법을 들은 이들이 삼천진점 · 오백진점의 긴 세월을 떠돈 것은 악지식을 만났기 때문이니라. 선으로든 악으로든 법화경을 버리는 것은 지옥의 업이니라. 큰 서원을 세우리라. 「일본국의 왕위를 물려주겠다, 법화경을 버리고 관경 등에 의지해 후생을 빌어라」, 「염불을 외지 않으면 부모의 목을 베겠다」 하는 등 갖가지 큰 난이 일어나더라도, 지자에게 나의 뜻이 깨지지 않는 한 결코 따르지 않으리라. 그 밖의 큰 난은 바람 앞의 티끌이니라.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안목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큰 배가 되리라 하고 맹세한 서원은 깨뜨리지 않으리라.

「개목초」, 232쪽

입정안국론의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바로 이 서원에서 나온 말이다. 재난의 근원을 아는 이가 오직 한 사람이라면, 그 한 사람이 말하지 않는 한 나라는 그 근원을 끝내 모른 채 무너져 간다. 말하면 반드시 난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씀하신 것이 입정안국론이다.

현세의 이익과 영원한 행복

현세의 이익이란 바꾸어 말하면 현실 생활에서의 행복이다. 사람의 생활을 자세히 나누어 보면 그 내용은 모두 행복한 생활을 구해 나아가려는 끊임없는 가치 창조다. 크게 보면 인류가 여기까지 발전해 온 것도 행복을 구해 쉼 없이 쌓아 온 수천 년 사람들의 노력과 땀의 결정이다. 현세의 이익을 구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반드시 모순에 부딪친다.

예부터 숱한 사상가와 철학자가 인간 생활의 행복 문제와 진지하게 씨름하여 그 해명에 얼마나 마음을 썼던가. 행복을 추구하는 일을 저속하다고 업신여기며 생활과 무관한 공리공론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관념론일 뿐이다. 하물며 불법은 가장 높은 생활법이다. 공상의 철학도 아니고, 미래를 핑계로 현실을 체념하게 하는 나약한 철학도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힘찬 생명력을 솟게 하여 현실 생활을 열어 가는 굳센 실천력과 생활력을 일으키는 큰 종교다.

물론 불법이 설하는 것이 모두 현세의 이익을 목표로 한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이익은 큰 이익에서 보면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의 기도조차 이루지 못하는 힘없는 종교로 어떻게 미래 영원의 행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한 길 도랑을 넘지 못하는 이가 어찌 열 길, 스무 길 도랑을 넘을 수 있겠는가. 함부로 정신세계만을 설하는 것이 종교라 하며 현실 생활로부터의 도피나 초월을 설하여 종교를 미화하고 그것이 깊고 고상한 가르침인 듯 꾸미는 것은 민중을 속이는 일이다.

법화경 약초유품은 「이 모든 중생이 이 법을 듣고 나서 현세에 안온하고 뒤에 좋은 곳에 나서 즐거움을 받으며, 또한 법을 들을 수 있다(是の諸の衆生、是の法を聞き已って現世安穏にして後に善処に以って楽を受け、亦法を聞くことを得)」고 설한다. 이 세상에서 불법을 바르게 믿으면 현실의 생활이 행복해지고 안정된 평화로운 삶을 누리며, 미래에도 행복한 경애로 태어나 삼세에 걸친 영원한 생명 위에서 변함없는 행복한 생활을 보낼 수 있다는 문증이다.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이렇게 단언하셨다.

法華経の八の巻に云く「若し後の世に於て是の経典を受持し読誦せん者は乃至諸願虚しからず、亦現世に於て其の福報を得ん」又云く「若し之を供養し讃歎すること有らん者は当に今世に於て現の果報を得べし」等云云、此の二つの文の中に亦於現世・得其福報の八字・当於今世・得現果報の八字・已上十六字の文むなしくして日蓮今生に大果報なくば如来の金言は提婆が虚言に同じく多宝の証明は倶伽利が妄語に異ならじ、謗法の一切衆生も阿鼻地獄に堕つべからず、三世の諸仏もましまさざるか、されば我が弟子等心みに法華経のごとく身命もおしまず修行して此の度仏法を心みよ

법화경 제8권에 「만일 후세에 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는 자는 …… 모든 원이 헛되지 않고, 또한 현세에 그 복보를 얻으리라」 하고, 또 「만일 이를 공양하고 찬탄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금세에 현재의 과보를 얻으리라」고 하였느니라. 이 두 글 가운데 「역어현세 득기복보」의 여덟 자와 「당어금세 득현과보」의 여덟 자, 이상 열여섯 자의 글이 헛되어 니치렌이 금생에 큰 과보가 없다면, 여래의 금언은 제바달다의 거짓말과 같고 다보여래의 증명은 구가리의 망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니라. 방법의 일체중생도 아비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요, 삼세의 제불도 계시지 않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나의 제자들은 시험 삼아 법화경대로 신명을 아끼지 않고 수행하여 이번에 불법을 시험해 보라.

「선시초」, 291쪽

법화경의 경문을 들어 현세의 큰 공덕을 밝히신 글이다. 바르게 신심을 다해 나아가면 현실의 생활에 공덕이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으며, 그렇지 않다면 불법은 모두 허망하다는 엄한 말씀이다. 그 현실의 증거를 무시한 불법은 있을 수 없다. 대성인은 「현세에 말해 둔 말이 어긋나지 않는 것을 보고 미래를 헤아려라(現世に云をく言の違わざるを見て、未来を推せよ)」(957쪽)라고 하셨고, 또 「니치렌이 불법을 시험해 보건대 도리와 증문보다 나은 것이 없고, 또 도리와 증문보다도 현증보다 나은 것이 없다(日蓮仏法をこころみるに道理と証文とにはすぎず、又道理証文よりも現証にはすぎず)」(「삼삼장기우사」, 1468쪽)고 하셨다. 그리고 「가까운 현증을 끌어 먼 믿음을 취해야 한다(近き現証を引いて遠き信を取るべし)」고 하셨다. 불법은 도리이며 인과의 법칙의 엄한 철리다. 눈앞의 현증을 보고 법을 믿은 사람은, 대성인이 성불의 경애로 설하신 영원하고 불멸하는 행복의 경애를 반드시 얻을 수 있다.

방법의 과보 — 비유품과 「무명의 술」

영원한 생명관에 서서 보면, 그릇된 종교를 받들면 그 사람의 생명의 본질이 무너지므로 미래 영겁에 걸쳐 불행이 이어진다. 살아서는 고뇌에 짓눌리고 죽어서는 무간지옥의 불꽃에 숨이 막힌다. 법화경 비유품은 정법을 등지고 이 경을 비방한 사람이 죽은 뒤 어떻게 되는가를 이렇게 설한다.

もし人信ぜずして、この経を毀謗せば、則ち一切世間の仏種を断ぜん。或はまた顰蹙して疑惑を懐かん。汝当に、この人の罪報を説くを聴くべし……その人は命終して阿鼻獄に入らん。一劫を具足して、劫尽きなば更生まれん。是の如く展転して、無数劫に至らん。地獄より出でては、当に畜生に堕つべし。

만일 사람이 믿지 않고 이 경을 헐뜯어 비방하면 곧 일체 세간의 부처의 종자를 끊으리라. 혹은 또 얼굴을 찌푸리고 의혹을 품으리라. 그대는 이 사람의 죄보를 설하는 것을 들어라. …… 그 사람은 목숨이 다하여 아비지옥에 들어가리라. 일 겁을 다 채우고 겁이 다하면 다시 태어나, 이렇게 굴러다니며 무수한 겁에 이르리라. 지옥에서 나오면 마땅히 축생에 떨어지리라.

『묘법연화경』 비유품

경은 이어서, 개나 여우로 태어나면 몸은 여위고 옴과 문둥병에 시달려 사람들에게 미움과 천대를 받으며 늘 굶주리고, 낙타나 나귀로 태어나면 늘 무거운 짐을 지고 매를 맞으며, 큰 뱀으로 태어나면 귀먹고 어리석고 발 없이 배로 기어 작은 벌레들에게 뜯어 먹히며 밤낮 쉴 새 없이 고통을 받는다고 설한다.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모든 감각이 어둡고 둔하며, 말을 해도 남이 믿어 주지 않고, 가난하고 천하여 남에게 부림을 받고, 병이 많아 의지할 데가 없으며, 얻은 것이 있어도 곧 잃어버리고, 좋은 약을 먹어도 병이 더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죄인은 늘 어려운 곳에 태어나 지옥에 있기를 동산에서 노는 것처럼 하고, 다른 악도에 있기를 제집에 있는 것처럼 한다. 각 대목은 「이 경을 비방한 까닭에 죄를 얻음이 이와 같다(斯の経を謗ずるが故に、罪を獲ること是の如し)」는 말로 맺어진다.

이 경문은 관념도 허구도 아니다. 생명의 엄한 실상을 설한 것이다. 대성인은 법화경에 대하여 「육만 구천삼백팔십사 글자가 모두 부처이다」라고 하시어, 그 한 말 한 구절이 모두 진실임을 보이셨다. 「성우문답초」에서는 우리가 무시 이래 겪어 온 윤회의 모습을 이렇게 탄식하셨다.

悲しいかな痛しいかな我等無始より已来無明の酒に酔て六道・四生に輪回して或時は焦熱・大焦熱の炎にむせび或時は紅蓮・大紅蓮の氷にとぢられ或時は餓鬼・飢渇の悲みに値いて五百生の間飲食の名をも聞かず……此くの如く三界の間を車輪のごとく回り父子の中にも親の親たる子の子たる事をさとらず夫婦の会遇るも会遇たる事をしらず、迷へる事は羊目に等しく暗き事は狼眼に同し

슬프도다, 아프도다. 우리는 무시 이래 무명의 술에 취하여 육도 · 사생에 윤회하며, 어느 때는 초열 · 대초열지옥의 불꽃에 숨이 막히고, 어느 때는 홍련 · 대홍련지옥의 얼음에 갇히며, 어느 때는 아귀의 굶주림과 목마름의 슬픔을 만나 오백 생 동안 마시고 먹는 것의 이름조차 듣지 못하였느니라. …… 이렇게 삼계 사이를 수레바퀴처럼 돌아, 부자 사이에서도 어버이가 어버이임을, 자식이 자식임을 깨닫지 못하고, 부부가 만나도 만난 줄을 모르느니라. 헤매는 것은 양의 눈과 같고 어두운 것은 이리의 눈과 같으니라.

「성우문답초」, 474쪽

이 글은 그 사이에 축생으로 태어나 작은 것은 큰 것에 먹히고 짧은 것은 긴 것에 감기는 잔해(殘害)의 고통, 수라의 다툼의 고통, 사람으로 태어나 생 · 노 · 병 · 사와 애별리고 · 원증회고 · 구부득고 · 오성음고의 팔고, 하늘에 태어나 오쇠를 받는 것을 차례로 든다. 우리가 과거 아득한 겁부터 얼마나 불행에 시달리며 고뇌의 거리를 떠돌아 왔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 생명 속에 얼마나 많은 불행한 숙명이 숨어 있는가를 보이신 것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여기서 「무명의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은 그릇된 가르침이다. 그릇된 가르침은 한 사람의 일생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에 걸쳐 생명의 깊은 곳을 지배한다.

나라 안의 싸움인 자계반역, 다른 나라의 침략인 타국침핍, 삼재 가운데 병혁(兵革)의 재앙도 마찬가지다. 그 원인은 「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간」 데에 있다는 것이 입정안국론의 단언이다. 싸움 자체가 삼악도의 생명에 지배된 사람의 일념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뿌리를 끊으려면 정법에 의한 숙명의 전환, 생명의 정화밖에 없다. 숙명은 정해진 것이라 하여 체념하게 하는 가르침은 사람의 본성을 무시하는 힘없는 철학이다. 인생의 실상은 숙명과의 대결이며, 사람들의 노력은 숙명을 깨뜨리는 쪽으로 향해 있다. 숙명을 깨뜨리는 위대한 종교를 놓치면 사람들은 다시 미래 영겁에 걸쳐 삼악도 · 사악도 · 육도의 어둠 속을 헤맬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

그릇된 종교는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있다. 참으로 그릇된 종교 · 그릇된 교의 · 그릇된 지혜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며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대성인은 「도키전어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智者は怨家・蛇・火毒・因陀羅・霹靂・刀杖諸の悪獣・虎狼・師子等を畏るべからず、彼は但能く命を断じて人をして畏るべき阿鼻獄に入らしむること能わず、畏るべきは深法を謗ずると及び謗法の知識となり決定して人をして畏るべき阿鼻獄に入らしむ

지자는 원수 · 뱀 · 불과 독 · 인드라의 벼락 · 칼과 몽둥이 · 온갖 사나운 짐승 · 범과 이리 · 사자 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느니라. 그것들은 다만 목숨을 끊을 뿐, 사람을 두려워해야 할 아비지옥에 들어가게 하지는 못하느니라. 두려워해야 할 것은 깊은 법을 비방하는 것과 방법의 지식(知識)이니, 이것은 반드시 사람을 두려워해야 할 아비지옥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도키전어서」, 969쪽

이 해독을 알기에 사람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을 알면서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면 그것은 비겁하고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개목초」는 이렇게 말한다.

我が父母を人の殺さんに父母につげざるべしや、悪子の酔狂して父母を殺すをせいせざるべしや、悪人・寺塔に火を放たんにせいせざるべしや、一子の重病を炙せざるべしや、日本の禅と念仏者とを・みて制せざる者は・かくのごとし「慈無くして詐り親しむは即ち是れ彼が怨なり」等云云

남이 나의 부모를 죽이려 하는데 부모에게 알리지 않겠느냐. 못된 자식이 술에 취해 미쳐서 부모를 죽이려는 것을 말리지 않겠느냐. 악인이 절과 탑에 불을 놓으려는 것을 말리지 않겠느냐. 외아들의 중병에 뜸을 뜨지 않겠느냐. 일본의 선과 염불자를 보고도 막지 않는 자는 이와 같으니라. 「자비 없이 거짓으로 친한 척하는 것은 곧 그의 원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개목초」, 237쪽

참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이란 무엇인가 — 세 종류의 신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났다」는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신」이란 무엇인가를 정리해 두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논하지만, 있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고 하는 사람도 신 자체에 대해서는 대개 막연한 생각밖에 갖고 있지 않다. 인류의 미개 시대의 정령 숭배와 무속의 관념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신」을 입에 올릴 때 그것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천지를 지었다는 창조의 신이다.

둘째는 씨족의 조상을 신격화한 씨신(氏神), 또는 생전에 공적이 있던 사람을 높여 죽은 뒤에도 이름을 남기려 한 신사의 신체(神體) 같은 것이다. 앞의 예로는 일본의 천신 칠대 · 지신 오대를 비롯하여 바라문교의 범천 · 제석,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 등 아시아와 각지의 신들이 있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는 천황가 또는 야마토 민족의 조상신이고, 오쿠니누시노미코토는 이즈모 씨족의 조상신이라고 한다. 뒤의 예로는 하치만 신사에 오진 천황이 모셔진 것 등이 있다. 조상에게 감사하고 공로자에게 경의를 품는 것은 바른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도덕의 범주다. 도덕상의 존경과 종교적인 구제는 전혀 다르다. 모셔진 조상이나 공로자는 땅을 개척한 이로서, 또는 어떤 분야에 재능 있는 이로서 위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생의 고뇌를 해결한 것도, 영원한 생명을 깨달아 성불한 것도 아니며, 미혹한 중생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자신조차 구하지 못한 이들이 죽어서 중생을 구하는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셋째는 불교에 설해진 신이다. 이것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말법의 세상에 정법을 지니고 넓히는 사람을 지키겠다고 서원한 제천선신(諸天善神)이다. 이 신의 작용은 실재의 개념보다 오히려 작용의 개념으로 보아야 하며, 대성인의 불법을 지닐 때 그 사람을 불행에서 지키고 박해하는 자로부터 지키는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대성인은 「간효팔번초」에서 그 서원을 이렇게 전하신다.

有る経の中に仏・此の世界と他方の世界との梵釈・日月・四天・竜神等を集めて我が正像末の持戒・破戒・無戒等の弟子等を第六天の魔王・悪鬼神等が人王・人民等の身に入りて悩乱せんを見乍ら聞き乍ら治罰せずして須臾もすごすならば必ず梵釈等の使をして四天王に仰せつけて治罰を加うべし……若し然らずんば三世の諸仏の出世に漏れ永く梵釈等の位を失いて無間大城に沈むべしと釈迦多宝十方の諸仏の御前にして起請を書き置れたり

어떤 경 가운데, 부처가 이 세계와 다른 세계의 범천 · 제석 · 해와 달 · 사천왕 · 용신 등을 모아, 「나의 정법 · 상법 · 말법 시대의 계를 지키는 이, 계를 깨는 이, 계가 없는 이 등의 제자들을 제6천의 마왕 · 악귀신 등이 국왕과 백성의 몸에 들어가 괴롭히는 것을 보고 듣고서도 다스려 벌하지 않고 잠시라도 지나친다면, 반드시 범천 · 제석 등의 사자로 하여금 사천왕에게 명하여 다스려 벌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삼세 제불의 출세에서 빠지고 영원히 범천 · 제석 등의 지위를 잃어 무간지옥에 가라앉으리라」고,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 앞에서 서약서를 써 두었느니라.

「간효팔번초」, 578쪽

또 「치병대소권실위목」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法華宗の心は一念三千・性悪性善・妙覚の位に猶備われり元品の法性は梵天・帝釈等と顕われ元品の無明は第六天の魔王と顕われたり

법화종의 마음은 일념삼천이니, 성악과 성선이 묘각의 지위에도 여전히 갖추어져 있느니라. 근원의 법성은 범천 · 제석 등으로 나타나고, 근원의 무명은 제6천의 마왕으로 나타났느니라.

「치병대소권실위목」, 997쪽
첫째천지를 지었다는 창조의 신
둘째씨족의 조상이나 공로자를 신격화한 신(천신 칠대 · 지신 오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 오쿠니누시, 하치만 신사의 오진 천황 등)조상과 공로자를 기리는 것은 도덕의 범주이며 종교적 구제와는 다르다
셋째불교의 제천선신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정법을 지니는 사람과 국토를 지키는 작용
「근원의 법성은 범천 · 제석 등으로 나타나고, 근원의 무명은 제6천의 마왕으로 나타났다」元品の法性は梵天・帝釈等と顕われ元品の無明は第六天の魔王と顕われたり(「치병대소권실위목」, 997쪽)
도표 12 · 세 종류의 「신」

제천선신 — 생명에 갖추어진 수호의 작용

법화경 서품은 법화경의 회좌에 천계의 중생이 모여드는 모습을 이렇게 설한다.

爾の時に釈提桓因其の眷属二万の天子と倶なり、復、名月天子、普香天子、宝光天子、四大天王有り、爾の眷属の天子と倶なり。自在天子、大自在天子、その眷属三万の天子と倶なり、娑婆世界の主梵天王、尸棄大梵、光明大梵等、その眷属二千人の天子と倶なり

그때 석제환인(제석천)이 그 권속 이만의 천자와 함께 있었다. 또 명월천자 · 보향천자 · 보광천자 · 사대천왕이 그 권속의 천자들과 함께 있었다. 자재천자 · 대자재천자가 그 권속 삼만의 천자와 함께 있었다. 사바세계의 주인 범천왕 · 시기대범 · 광명대범 등이 그 권속 이천의 천자와 함께 있었다.

『묘법연화경』 서품

천계의 중생만이 아니다. 보살계의 중생도, 성문 대중도, 그 밖의 잡중(雜衆)도 모여들어 그 수는 참으로 엄청나다. 이 서품의 의식은 무엇을 뜻하는가. 도다 조세이 제2대 회장은 이렇게 풀었다. 기사굴산에 모인 성문중 · 보살중 · 잡중의 수를 대강 세어 보면 삼십만에 가깝다. 그만한 사람이 어떻게 모일 수 있었으며, 모였다 해도 석존의 음성이 어떻게 그들에게 들렸겠는가. 부처에게는 범음성이 있다고 하여 그 한 상으로 정리한다 해도 말대의 범부는 믿을 수 없다. 더욱이 잡중 가운데 제석천 · 자재천 · 대범천, 사람이 아닌 용왕 · 긴나라 · 건달바 · 가루라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부처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을 뜻하는가. 법화경에는 당체연화(當體蓮華)와 비유연화(譬喩蓮華)의 뜻이 있다. 당체연화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의 직접 설명이고, 비유연화는 그 진리를 비유를 빌려 설명한 것이다. 인과구시의 법 그 자체를 설할 때는 당체연화이고, 그 법을 연꽃의 꽃과 열매가 동시에 있는 것을 빌려 설명하는 것은 비유연화다. 서품에 세 부류의 대중이 모인 것은 비유연화이지 당체연화가 아니다. 그러면 서품의 당체연화는 무엇인가. 몇만의 성문, 몇만의 보살, 몇만의 잡중은 모두 석가의 기심(己心)의 성문이요 기심의 잡중이다. 묘법연화경은 석가의 생명이요 석가의 마음이니, 십계의 중생이 모두 석가의 내증에 산다고 하여도 조금도 틀림이 없다.

이처럼 서품의 의식은 모두 일념삼천의 생명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다. 범천이니 제석이니 하는 제천선신은 그림에 그려진 모습으로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본질에 갖추어진 작용에 다름 아니다. 부처의 생명이든 우리의 생명이든 모두 이 작용을 갖추고 있다. 국토도, 아니 대우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며 이 작용은 대우주에 두루 차 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생활을 지키는 작용을 제천선신이라 한다.

앞에 든 「근원의 법성은 범천 · 제석으로 나타난다」는 글처럼, 본존에 의해 불계가 나타날 때 우리 생명 안의 범천 · 제석의 작용이 활발해지고, 그에 호응하여 대우주가 범천 · 제석으로서 우리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어떤 재난, 어떤 압박에도 침범당하지 않는 유유자적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 천체의 운행이든, 햇빛이든, 별의 반짝임이든, 비와 바람이든, 산천초목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두가 우리의 행복을 실현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거꾸로 「근원의 무명은 제6천의 마왕으로 나타났다」는 글처럼, 그릇된 가르침에 미혹하면 마음속에 악귀 · 마귀의 작용이 일어나 숱한 재난을 불러오고 괴로움에 시달리는 인생이 된다. 세상의 모든 현상이 우리의 생활을 불행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 관계를 대성인은 「법화초심성불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我が己心の妙法蓮華経を本尊とあがめ奉りて我が己心中の仏性・南無妙法蓮華経とよびよばれて顕れ給う処を仏とは云うなり、譬えば籠の中の鳥なけば空とぶ鳥のよばれて集まるが如し、空とぶ鳥の集まれば籠の中の鳥も出でんとするが如し口に妙法をよび奉れば我が身の仏性もよばれて必ず顕れ給ふ、梵王・帝釈の仏性はよばれて我等を守り給ふ

나의 기심의 묘법연화경을 본존으로 우러러 받들어, 나의 기심 속의 불성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고 불려서 나타나시는 곳을 부처라고 하느니라. 비유하면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불려서 모여드는 것과 같고, 하늘을 나는 새가 모여들면 새장 속의 새도 나오려 하는 것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을 부르면 내 몸의 불성도 불려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 · 제석의 불성은 불려서 우리를 지켜 주시느니라.

「법화초심성불초」, 557쪽

제천선신은 바른 사람을 지키고 국토를 지키며 그릇된 사람을 벌하는 생명의 작용이다. 나아가 이런 작용을 하는 사람도 제천선신이다. 대성인이 이즈의 이토로 유배되셨을 때 대성인을 끝까지 지킨 후나모리 야사부로 부부에게 대성인은 이렇게 쓰셨다.

法華経第四に云く「及清信士女供養於法師」と云云、法華経を行ぜん者をば諸天善神等或はをとことなり或は女となり形をかへさまざまに供養してたすくべしと云う経文なり、弥三郎殿夫婦の士女と生れて日蓮法師を供養する事疑なし

법화경 제4권에 「청신사녀를 보내어 법사를 공양하게 하리라(及清信士女供養於法師)」고 하였느니라. 법화경을 행하는 자를 제천선신 등이 혹은 남자가 되고 혹은 여자가 되어 모습을 바꾸어 갖가지로 공양하여 돕는다는 경문이니라. 야사부로 님 부부가 사녀로 태어나 니치렌 법사를 공양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느니라.

「후나모리야사부로허어서」, 1445쪽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제천선신은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 정법을 지니는 사람과 국토를 지키는 생명의 작용이다. 근원의 법성이 범천 · 제석으로, 근원의 무명이 제6천의 마왕으로 나타나므로, 사람이 정법을 등지면 수호의 작용은 떠나고 파괴의 작용이 들어온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하치만 대보살의 뜻

그러면 둘째 종류의 신, 곧 씨신 신앙의 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하치만 대보살이 대성인의 불법에서 정법 수호의 신으로 쓰이는 것은 어떤 관계인가. 신도에서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도 하치만 대보살도 예배의 대상이지만, 불법에서는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 묘법의 작용으로 본다. 그러므로 이름은 같아도 내용은 전혀 다르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본래 천황가 또는 야마토 민족의 조상신이지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먼 과거의 조상신이 아니라 일본의 국토를 지키고 그 백성을 번영하게 하는 생명의 작용으로 설해진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일신(日神)이라고도 한다. 「산탕상승사」에는 「후지는 군의 이름이다. 실제 이름은 대일연화산이라 한다. 내가 중도를 수행하는 까닭에 이와 같이 나라를 일본이라 하고, 신을 일신이라 하며, 부처의 어린 이름을 일종태자라 하고, 나의 어린 이름을 젠니치, 가명은 제쇼, 실명은 곧 니치렌이라 하느니라(富士は郡名なり実名をば大日蓮華山と云うなり、我中道を修行する故に是くの如く国をば日本と云い神をば日神と申し仏の童名をば日種太子と申し予が童名をば善日・仮名は是生・実名は即ち日蓮なり)」(879쪽)라고 하였다. 또 「간효팔번초」에는 「천축국을 월지국이라 하는 것은 부처가 출현하실 이름이요, 부상국을 일본국이라 하니 어찌 성인이 나오시지 않겠는가(天竺国をば月氏国と申すは仏の出現し給うべき名なり、扶桑国をば日本国と申すあに聖人出で給わざらむ)」(588쪽)라고 하였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일본은 말법의 어본불이 출현하신 나라이며 해와 같은 대백법이 일어난 나라다. 그 국토에 깃들어 불법을 유포하게 하고 국토를 번영하게 하는 힘, 이것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라 이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란 묘법의 작용이며, 묘법이 그릇된 가르침에 덮이면 그 작용이 없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하치만 대보살은 신도에서는 옛 일본의 공로자인 제15대 오진 천황을 모시고 뒤에 이를 하치만신의 화신이라 하여 이런 칭호를 준 것이다. 그러나 대성인의 불법에서 하치만 대보살은 어떤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법칙, 생명의 작용을 나타낸다. 「본존삼개상전」은 「하치만 대보살의 체는 곧 법화경」이라 하고, 「팔(八)」은 법화경 여덟 권을 뜻하며, 「번(幡)」 자의 변인 「건(巾)」은 옷의 무리, 몸은 쌀(米)과 밭(田)으로 이루어져 곡식의 무리를 뜻하니, 옷과 먹을 것 두 가지가 모두 하치만의 덕이라고 풀었다고 전한다. 묘법연화경의 힘으로 입고 먹는 데 어려움이 없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작용을 하는 사람, 곧 백성에게 불편 없는 생활을 누리게 하는 위정자 또한 하치만 대보살의 자리에 선다.

제1장에서 객은 「백왕을 수호하겠다」는 하치만의 맹세가 있는데도 세상이 쇠하였다고 탄식했다. 그 탄식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하치만도 아마테라스도 묘법의 작용이므로, 나라 전체가 정법을 등지면 그 수호의 작용은 일어날 수 없다. 맹세가 깨진 것이 아니라 맹세가 작동할 조건이 무너진 것이다.

인적 끊긴 늦가을 산속의 옛 신사 — 낙엽에 덮인 돌계단과 빛바랜 붉은 문, 비어 있는 배전, 엷은 안개
그림 · 인적 끊긴 늦가을 산속의 옛 신사 — 낙엽에 덮인 돌계단과 빛바랜 붉은 문, 비어 있는 배전, 엷은 안개

신천상의 법문

「신천상(神天上)」이란 이 장의 본문에 있듯이, 사람들이 모두 정법을 등지고 악법에 귀의하였기 때문에 수호의 제천선신이 정법의 법미에 굶주려 위광을 잃고 그 국토를 버리고 천계로 돌아가 버리므로, 그 나라와 그 백성 속에 악귀 · 마신의 생명이 들어와 갖가지 재난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정법의 법미란 말할 것도 없이 묘법연화경이다. 제천선신이 법미를 맛보지 못하면 세력을 잃어 국토를 떠난다는 것은, 제천선신이 본래 묘법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묘법이 방법에 덮여 버리면 그 작용이 사라지는 것이다. 신천상은 또 국토에 제천의 작용을 하는 자리의 사람, 곧 백성을 지키고 국토를 편안하게 해야 할 위정자가 그 구실을 잃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1. 정법에 등짐(배정귀악)
  2. 제천선신이 정법의 법미에 굶주려 위광을 잃음
  3. 국토를 버리고 천계로 돌아감
  4. 빈자리에 악귀 · 마신이 들어옴
  5. 삼재칠난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나고 성인은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善神は国を捨てて相去り、聖人は所を辞して還りたまわず
도표 13 · 신천상의 법문

이처럼 분명한 대성인의 글이 있었으나, 대성인 멸후 문하에서는 신사 참배를 둘러싸고 견해가 갈렸다.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는 그 경위를 이렇게 전한다.

一、五人一同に云く、諸の神社は現当を祈らんが為なり仍つて伊勢太神宮と二所と熊野と在在所所に参詣を企て精誠を致し二世の所望を願う。日興一人云く、謗法の国をば天神地祇並びに其の国を守護するの善神捨離して留らず、故に悪鬼神・其の国土に乱入して災難を致す云云、此の相違に依つて義絶し畢んぬ。

하나, 다섯 사람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여러 신사는 현세와 내세를 빌기 위한 것이다」 하여, 이세 대신궁과 두 곳과 구마노 등 곳곳에 참배를 꾀하고 정성을 다해 두 세상의 소망을 빌었다. 닛코 한 사람이 말하기를 「방법의 나라는 천신지기와 그 나라를 수호하는 선신이 버리고 떠나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귀신이 그 국토에 어지러이 들어와 재난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이 상위에 의하여 의절하였다.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 1602쪽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닛코 상인은 이 일에서 입정안국론의 신천상의 법문을 그대로 지키신 것이다. 신천상은 입정안국론 제1단의 한 줄에서 시작하여, 대성인 멸후 문하의 신앙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바른 종교가 사람에게 주는 것

정법에 등지면 선신이 떠나고 마와 귀가 온다. 그렇다면 거꾸로 정법에 돌아가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일어나는가. 이것을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위대한 종교는 반드시 저마다의 복운을 늘리는 작용을 가진다. 어떤 악운도 어떤 불운도, 가장 높은 종교는 삼세의 생명관에 선 생명 철학으로 숙명을 근본에서 바꾸어 복운과 좋은 운을 준다. 세상에는 운명론자라 하는 사람도 있고 거꾸로 운명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모두 그릇되었다. 운명론자의 말대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인생의 노력과 정진은 전혀 무의미해진다. 한편 인생을 깊이 생각할수록 운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운명은 바꿀 필요가 없고 더욱 키워 가면 된다. 그러나 나쁜 숙명은 바꾸어 복운으로 돌려야 한다.

둘째, 위대한 종교는 큰 지혜를 발휘하게 한다. 이신대혜(以信代慧), 곧 믿음으로써 지혜를 대신한다는 것은 불법의 위대한 철리다. 불계를 솟아나게 하는 것이 대불법의 극치이며, 본존을 믿음으로써 참으로 훌륭한 부처의 지혜를 솟아나게 할 수 있다. 지혜는 인생을 이겨 나가는 요체다. 그러나 이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나 그 집적이 아니다.

셋째, 위대한 종교는 저마다에게 위대한 사상과 철학을 주고 위대한 사회관 · 인생관 · 세계관을 몸에 지니게 한다. 짐승조차 모두 먹기 위해 애쓰고 생활과 싸우며 권속을 기르고 무리와 종족의 발전에 힘을 다한다. 사람으로서 굳건한 사상과 철학과 인생관을 지니지 못한다면 짐승보다 못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 사상과 철학은 편협하고 불합리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도리가 바르고, 모든 사람에게 두루 통하며, 모든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넷째, 위대한 종교를 믿는 사람은 제천선신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 제천이니 선신이니 하면 미신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불법의 생명관을 모르는 데서 오는 생각이다. 그림이나 나무로 만든 신불의 형상을 제천선신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우주 자체가 하나의 큰 생명체이며 그 안에는 사람을 지키는 작용이 가득하다. 도리가 바른 위대한 종교를 받드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건전하게 성장하고 안심하고 생활해 갈 수 있는 작용을 한 몸에 받는다. 이 작용을 제천선신의 작용이라 한다.

복운삼세의 생명관에 서서 숙명을 근본에서 바꾼다
지혜이신대혜, 믿음으로 지혜를 대신하여 부처의 지혜를 솟게 한다
사상도리가 바르고 모두에게 통하는 인생관 · 세계관을 몸에 지닌다
수호제천선신의 가호를 받는다
정법에 등지면「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난다」정법에 돌아가면「범왕 · 제석의 불성은 불려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梵王・帝釈の仏性はよばれて我等を守り給ふ(「법화초심성불초」, 557쪽)
도표 14 · 정법에 돌아간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

제2장의 주인의 말은 이렇게 하여 「정에 등지면 무엇이 일어나는가」라는 경고이자 「정에 돌아가면 무엇이 일어나는가」라는 약속이 된다. 다만 주인은 아직 「정」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이름을 들어 말하지 않았다. 객은 다음 단에서 먼저 그 경문의 증거를 묻고, 이어서 그 「악」이 누구이며 어떤 법인가를 차례로 따져 묻게 된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입정안국론의 첫 문답은 한 사람의 탄식과 한 사람의 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객은 정가 · 정원 연간의 대지진 · 큰 바람 · 기근 · 역병이 온 나라를 덮어 죽은 이가 태반을 넘은 현실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염불을 외고, 약사경을 읽고, 법화경을 독송하고, 인왕경의 백좌백강을 열고, 진언의 오병에 물을 붓고, 좌선하고, 문마다 칠귀신의 이름과 오대력보살의 그림을 붙이고, 사각사경의 제사를 지내고, 덕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해와 달과 별은 바르게 돌고 삼보도 계시며 백왕의 수도 다하지 않았는데 왜 세상은 이토록 일찍 쇠하였는가. 객의 물음은 당시의 세계관이 기대던 모든 버팀목이 그대로 서 있는데도 세상이 무너지는 모순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그 시대는 대집경이 예언한 「투쟁언송 · 백법은몰」의 말법이었다. 히에이잔의 승려는 승병이 되었고, 출가는 생계의 수단이 되었으며, 승려는 권력과 손잡았다. 재해의 피해는 악정의 때에 가장 컸고, 그 악정은 삼독에 물든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왔다. 그러나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정가 이후의 큰 지진과 큰 천변은 동시에 「대법 흥폐의 큰 상서」이기도 했다. 석가 불법의 효력이 다한 자리에 말법의 대백법이 일어날 때가 온 것이다.

주인의 대답은 한 줄이었다. 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갔다. 그러므로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났고 성인은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가 오고 귀가 와서 재가 일어나고 난이 일어난다. 이 진단은 재난의 원인을 하늘에서도, 기도의 부족에서도, 정치의 기술에서도 찾지 않고, 사람들이 따르는 「법」의 정사에서 찾는다. 출가자가 법에 의하여 부처를 기약하는 사람이듯, 사람은 누구나 법에 의하여 살아간다. 그 법이 그릇되면 생명이 탁해지고, 생명이 탁해지면 수호의 작용인 제천선신은 떠나고 파괴의 작용인 마와 귀가 들어와 국토에 재난이 일어난다. 십계의 생명관과 의정불이의 원리, 그리고 신천상의 법문이 이 한 줄을 받친다.

그러나 주인은 아직 경문의 증거를 하나도 들지 않았다. 「경문을 펼쳐 보니」라고만 했을 뿐이다. 객은 곧바로 묻는다. 그 경문은 무엇인가. 다음 입정안국론 제2편 「재난 유래의 경증 — 네 경의 명문」에서 주인은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 · 약사경의 네 경을 펼쳐, 정법을 버린 나라에서 선신이 떠나고 칠난과 삼재가 일어난다는 부처의 말씀을 하나하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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