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에서 주인은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을 들어 「악한 승려가 나라를 무너뜨린다」고 밝혔다. 객은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상의 승려들은 임금과 현자가 우러르는 이들인데, 도대체 누구를 악비구라 부르는가. 제4편은 이 물음에 주인이 처음으로 이름을 들어 답하는 자리다. 그 이름은 법연이고, 그 책은 『선택집』이다. 주인은 『선택집』의 글을 길게 인용해 그것이 법화경을 포함한 일대 성교를 「버리라 · 닫으라 · 제쳐 두라 · 내던지라」 하는 책임을 보이고, 정토 삼부경과 법화경의 두 경문으로 그 죄를 단정한 뒤, 「만 가지 기도를 닦기보다 이 일흉을 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한 구절로 단을 맺는다. 아홉 편 가운데 넷째인 이 편은, 재난의 원인으로 지목된 「방법」이 구체적으로 누구의 어떤 가르침인지를 처음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입정안국론의 아홉 편은 네 갈래로 이어진다. 재난의 원인과 그 경증을 밝히는 제1 · 2편, 방법의 정체를 악한 승려와 법연에게서 찾는 제3 · 4 · 5편, 방법을 대치하는 길을 묻는 제6 · 7 · 8편, 그리고 정법에 귀의하고 맹세하는 제9편이다. 이 편은 둘째 갈래의 한가운데에 있다. 제3편이 경문으로 「악한 승려」라는 범주를 세웠다면, 이 편은 그 범주에 이름을 넣고, 제5편은 그 가르침이 나라를 망친 현증을 중국과 일본의 역사에서 찾는다.
네 장의 짜임은 단단하다. 제1장에서 객은 더욱 성내어 「세상의 승려는 천하가 귀의하는 바」라며 사람의 권위를 들어 반박한다. 제2장에서 주인은 고토바인 치세의 법연과 그 『선택집』을 들고, 성도문과 정토문 · 난행도와 이행도 · 잡행과 정행을 가르는 대목, 『정원입장록』의 대승경 637부 2,883권을 한 구절에 거두어 버리는 대목, 결구의 「각(閣)」과 「포(抛)」를 그대로 인용한다. 제3장은 그 인용을 「사 · 폐 · 각 · 포」의 네 글자로 요약하고, 법연이 의지한 『무량수경』의 「오직 오역과 정법 비방을 제외한다」와 법화경 비유품의 「아비지옥에 들어가리라」로 죄를 단정한다. 제4장은 그 결과로 전교대사 이래의 히에이잔이 영락하고 성승과 선신이 떠난 모습을 그리고, 재난을 그치게 하는 길은 저 일흉을 금하는 데 있다고 결론짓는다.
이 편을 읽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대성인은 법연을 비판하면서 「법화 · 진언」을 앞세우셨지만, 그것이 당시의 천태종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권교와 실교를 가르는 권실상대의 자리에서 한 논법이며, 그 끝은 말법에 넓혀야 할 법이 무엇이냐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또 하나, 대성인은 이 단정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알고 계셨다. 입정안국론을 올린 지 한 달 남짓 지나 마쓰바가야쓰의 초암이 습격당했고, 이듬해에는 이즈로 유배되셨다. 「이 일흉을 금하라」는 한 구절은 그 모든 난의 출발점이었다.
이 편의 장
본문
客猶憤りて曰く、明王は天地に因つて化を成し、聖人は理非を察して世を治む。世上の僧侶は天下の帰する所なり。 悪侶に於ては、明王信ず可からず。聖人に非ずんば、賢哲仰ぐ可からず。今賢聖の尊重せるを以て、則ち竜象の軽からざるを知んぬ。 何ぞ妄言を吐いて、強ちに誹謗を成し、誰人を以て悪比丘と謂うや。委細に聞かんと欲す。
객이 더욱 성내어 말하기를, 밝은 임금(明王)은 하늘과 땅의 도리에 따라 백성을 교화하고, 성인(聖人)은 이치와 그름을 살펴 세상을 다스리느니라. 세상의 승려들은 천하가 귀의하는 바이니라. 악한 승려라면 밝은 임금이 믿을 리 없고, 성인이 아니라면 현철(賢哲)이 우러를 리 없느니라. 지금 현인과 성인이 이들을 존중하는 것을 보면, 그 용상(竜象)들이 가볍지 않음을 알겠노라. 그런데 어찌 망령된 말을 토하여 굳이 비방을 하며, 누구를 가리켜 악비구라 하는가. 자세히 듣고자 하느니라.
어구 풀이
- 客猶憤りて曰く객이 더욱 성내어 말하기를
- 제3단 첫머리에서 객은 이미 「얼굴빛을 바꾸어」 성내며 물었다. 주인이 이 나라의 절과 승려가 많아도 모두 정법을 비방하는 무리라고 답하자, 객은 앞보다 갑절로 노여움이 커졌다. 「猶(더욱)」 한 글자가 문답의 긴장이 한 단계 높아졌음을 보인다.
- 明王밝은 임금
- 덕과 지혜를 갖춘 군주. 본문의 자리에서는 교토의 조정과 가마쿠라 막부, 좁혀 말하면 호조 씨를 가리키고, 넓혀 말하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 일반을 가리킨다.
- 天地に因つて化を成し하늘과 땅의 도리에 따라 교화를 이룬다
- 「천지에 따른다」는 하늘과 땅의 이치, 곧 자연의 질서와 세상의 움직임에 맞추어 다스린다는 뜻이다. 「화(化)」는 덕으로 백성을 이끌고 감화시켜 선량한 풍속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 聖人は理非を察して世を治む성인은 이치와 그름을 살펴 세상을 다스린다
- 성인은 좁혀 말하면 불법의 지도자, 넓혀 말하면 사회를 바르게 이끄는 지도자다. 「이비를 살핀다」는 도리에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공평하게 가린다는 뜻이다.
- 世上の僧侶は天下の帰する所なり세상의 승려는 천하가 귀의하는 바이다
- 당시의 승려는 학문과 기술을 지닌 지식 계층이었고, 조정과 막부와 민중이 모두 그들에게 기댔다. 객은 그 사회적 신망을 근거로 주인의 말을 반박한다.
- 悪侶악한 승려
- 제3단에서 주인이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을 들어 보인 「악비구」를 받는 말이다. 겉으로는 계를 지니고 학문이 있는 듯하나 정법을 비방하여 나라를 기울게 하는 승려를 가리킨다.
- 賢哲현철
-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 학식과 덕망이 있어 세상이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 竜象용상
- 물에서 가장 힘센 것이 용이고 뭍에서 가장 힘센 것이 코끼리이므로, 뛰어난 고승 · 대덕을 이렇게 부른다. 객은 세상이 우러르는 고승들을 가리켜 이 말을 썼다.
- 妄言を吐いて、強ちに誹謗を成し망령된 말을 토하여 굳이 비방한다
- 객의 눈에 주인의 말은 근거 없는 비방으로 보였다. 이 말은 거꾸로, 뒤에서 주인이 경문과 『선택집』의 글을 낱낱이 들어 답하는 까닭이 된다.
- 悪比丘악비구
- 비구는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남자 승려. 악비구는 정법을 비방하고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승려를 말한다. 객은 그것이 「누구(誰人)」인지 이름을 대라고 요구한다.
객의 분노가 여는 단 — 제4단의 자리
제4단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불행의 밑바닥에 빠뜨린 가장 악한 승려의 대표로 법연을 들고, 그가 지은 『선택집』이 사법을 넓히고 정법을 비방하는 원흉임을 밝혀 나가는 단이다. 단의 제목이 「정법 비방의 원흉의 귀착을 밝힌다(正法誹謗の元凶の所帰を明かす)」인 것도 그 때문이다. 제2단에서 네 경의 명문으로 재난의 유래를 보이고, 제3단에서 「악한 승려」라는 범주를 경문으로 세운 뒤, 제4단에 와서 비로소 그 범주에 구체적인 이름이 들어간다.
이 단의 첫 장은 객의 물음이다. 앞 단에서 주인은 객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이 나라에는 분명히 절이 많고 승려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모두 정법을 비방하는 가르침뿐이다. 그 때문에 세상은 행복해지기는커녕 도리어 재난이 다투어 일어나고 있다. 주인은 삼재칠난의 근원을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다.
객에게 이 답은 전혀 뜻밖이었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세상의 승려들은 모두 천하 만민이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주인의 말처럼 악한 승려라면 세상 사람들이 존경할 리 없고, 그런 종파가 융성할 리도 없지 않은가. 객은 바로 그 점을 들어 「그렇게 말한다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켜 악한 승려라 하는가」라고 따진다. 이것이 이 장의 물음이다.
- 객제1장 객의 물음세상이 우러르는 승려를 왜 비방하는가, 누가 악비구인가
- 주인제2장 주인의 답고토바인 치세의 법연과 『선택집』 — 성도 · 정토, 난행 · 이행, 잡행 · 정행
- 주인제3장 단정사 · 폐 · 각 · 포의 네 글자, 성승 매리 — 가까이는 정토 삼부경의 서원을, 멀리는 법화경의 경계를 어기다
- 주인제4장 결론히에이잔의 영락, 성승과 선신이 떠나다
「세상의 승려는 천하가 귀의하는 바」 — 당시 승려의 자리
「세상의 승려는 천하가 귀의하는 바이다」라는 객의 말을 이해하려면,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승려가 어떤 자리에 있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승려는 그 사회의 지식 계층이었고 지도 계층이었다. 대륙의 앞선 문물을 처음 일본에 가져온 것도 불법을 배우러 대륙에 건너간 학승들과, 송나라에서 법을 넓히러 건너온 승려들이었다.
그런 승려들 가운데에는 대륙에서 의술이나 토목 공법, 농사법까지 배워 와서 그것을 응용하고 지도하는 이가 드물지 않았다. 이러한 특수한 기능이 불교 신앙과 결합하면서 승려의 사회적 지위는 더욱 높아졌다. 진언의 홍법(弘法, 구카이)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장안에서 진언을 배우는 한편 뜸 치료와 토목 기술도 익혀 돌아왔고, 귀국한 뒤 그 기술로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대성인 당시 율종의 고쿠라쿠사 료칸(極楽寺良観)이나 선종의 에이사이(栄西) · 도겐(道元)도 사정이 비슷했다. 겉으로는 이러한 기능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듯 보이면서, 그 가르침은 정법을 등져 사람들을 악도로 이끌고 삼재칠난을 부르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법연에 대해서는 뒤의 장에서 자세히 살피지만, 그는 당시 일본 전역을 휩쓴 정토종의 개조였다. 세지보살의 재탄인가, 아미타불의 화신인가 하는 말까지 들었을 만큼 사후에 더욱 존경을 모았다. 그를 우러른 것은 서민만이 아니었다. 황족과 공가, 그리고 호조 일족까지 열심히 믿고 받들었다. 현명하고 학식도 있는 이들조차 존숭하는 승려인데, 그 승려가 악한 승려이며 불행의 원인이라니 믿을 수 없다 — 이것이 객의 말이 담고 있는 실감이다.
많은 사람이 따른다고 바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찬성하고 지지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바른 것은 아니다. 이름난 지도자나 학자, 식견 있는 사람들이 믿는다고 해서 그 가르침이 반드시 바르다고도 할 수 없다. 거꾸로 따르는 사람이 적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객의 논리는 「누가 믿는가」로 가르침의 옳고 그름을 재는 논리다. 주인의 논리는 「무엇을 가르치는가」로 잰다. 이 두 논리의 어긋남이 제4단 전체를 끌고 간다.
불교의 오랜 기준도 주인의 편에 있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열반경의 유계는, 사람의 명성이 아니라 그 사람이 설하는 법이 경문에 맞는가를 먼저 물으라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주인은 제2장에서 법연의 인품이나 세평을 논하지 않고 곧바로 『선택집』의 글을 인용한다. 그 글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보이면, 그 승려가 용상인지 악비구인지는 저절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존경받는 자리일수록 죄는 무겁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다. 객은 「존경받는 승려이니 악할 리 없다」고 했지만,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오히려 많은 민중에게 존경받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의 죄는 한층 무겁다.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초대 회장은 가치론에서, 같은 죄라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저지르면 그만큼 큰 악이 된다고 가르쳤다. 이를 세간의 일에 견주어 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잘못과 한 나라를 이끄는 사람의 잘못은 그 영향이 미치는 넓이가 다르다.
불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 깊은 곳의 원리를 설하므로 쉽게 납득하기 어렵지만, 도리는 같다. 법연을 비롯한 승려들은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사람을 악도로 이끌고 세상에 큰 해독을 흘린다. 객이 법연을 감싸는 근거로 든 「천하가 귀의하는 바」가, 주인의 눈에는 도리어 그 죄의 무게를 말해 주는 근거가 된다.
「명왕」과 「성인」 — 지도자의 본래 모습
객은 당시의 정치 지도자와 사상 지도자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며 이 말을 했다. 그러나 이 글을 한 걸음 더 깊이 읽으면, 대성인은 객의 물음을 통해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고 계신다. 「밝은 임금은 하늘과 땅의 도리에 따라 교화를 이루고, 성인은 이치와 그름을 살펴 세상을 다스린다」는 구절은 사회를 이끄는 이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모습을 분명히 밝힌 말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명왕은 문면으로는 가마쿠라 시대의 권력자, 곧 교토의 조정이나 가마쿠라 막부, 좁혀서는 호조 씨를 가리키지만, 넓혀 말하면 위정자와 사회의 지도자다. 성인은 좁혀서는 불법의 지도자를 뜻하지만 넓혀서는 사회의 지도자로도 볼 수 있다. 「성(聖)」이라는 글자에는 귀가 잘 뚫려 보통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 듣는다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민중의 소리 없는 소리를 잘 듣고 민중을 바르게 이끄는 이를 성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천지에 따라 교화를 이룬다」는, 한 나라의 지도자는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일단 말하면 우주의 운행이고, 다시 말하면 사회의 움직임이다. 민중의 미묘한 마음과 바람, 시대의 흐름을 살피고, 사회의 구조와 기구를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화(化)」라는 글자는 본래 덕으로 백성을 이끌고 감화시켜 선량한 풍속과 습관을 만든다는 뜻이다.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때에 맞추어 사회를 번영시키고 민중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구체적인 일이다.
「성인은 이치와 그름을 살펴 세상을 다스린다」의 「이비를 살핀다」는, 바른 도리인가 아닌가를 분명히 가르고 그것을 사회의 근본 이념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도리는 사람으로서의 도리이며, 더 근원적으로는 생명의 철리여야 한다. 「세상을 다스린다」는 그 가르침과 주장을 실제의 다스림에 비추어, 끝까지 민중의 생활 안정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왕과 성인은 무엇에 의해 나오는가.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정치든 경제든 교육이든 모든 문화는 사람의 영위이며 사람의 생명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 생명 자체를 바르게 이끌고 바꾸어 가장 높이 발휘하게 하는 근원의 길, 곧 바른 불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불법상의 「성인」의 자리다. 그리고 그 불법의 자비 정신을 근본으로 삼아 다스림 속에 민중의 복리를 실현해 가는 사람이 「명왕」의 자리다. 지난 역사를 펼쳐 보면, 참으로 민중과 나라를 생각하는 지도자가 나왔을 때 나라는 크게 번영했고, 나쁜 위정자에게 지배되었을 때 나라와 백성은 비참한 처지에 놓였다. 그 선악을 가른 것은 지도자가 지닌 법과 이념의 바르고 그름, 높고 낮음이었다.
객은 명왕과 현철이 믿는다는 사실로 승려들을 감쌌다. 그러나 명왕이 참으로 명왕이려면 그가 의지하는 법이 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 입정안국의 「입정(立正)」, 곧 바른 법을 세우는 일이 「안국(安国)」에 앞서는 까닭이 이 구절 속에 이미 들어 있다. 뒤의 제7단에서 마침내 누그러진 객이 스스로 「나라는 법에 의해 번창하고 법은 사람에 의해 귀해진다」고 말하게 되는 것도 이 뜻과 이어져 있다.
「누구를 악비구라 하는가」 — 이름을 요구하는 물음
객의 물음은 마지막에 「누구를 가리켜 악비구라 하는가. 자세히 듣고자 한다」로 모인다. 제3단에서 주인은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을 들어 「악한 승려」의 모습을 보였다. 인왕경은 악한 비구가 명리를 구해 국왕 앞에서 나라를 깨뜨리는 인연을 설한다고 했고, 법화경은 악세의 비구가 삿된 지혜로 아첨하며 아련야에 머물러 세상의 공경을 받는다고 했으며, 열반경은 계를 지닌 듯 보이나 속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품은 비구를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경문의 일반적인 묘사였다. 객은 이제 그 묘사에 해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름을 대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는 주인에게 피할 수 없는 물음이다. 이름을 대지 않으면 주인의 말은 막연한 비난에 머물고, 이름을 대면 그 사람을 받드는 온 나라의 반발을 각오해야 한다. 대성인은 다음 장에서 망설임 없이 그 이름을 대신다. 고토바인 치세의 법연, 그리고 그가 지은 『선택집』이다. 대성인의 비판이 사람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법에 대한 판정이라는 점은, 주인이 법연이라는 이름 바로 뒤에 『선택집』의 글을 길게 늘어놓는 데서 드러난다. 사람을 지목하되, 그 근거는 그 사람이 남긴 글로 보이는 것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가르침의 옳고 그름은 그것을 믿는 사람의 지위와 수가 아니라 그 가르침이 경문에 맞는가로 가려진다. 존경받는 자리에서 정법을 비방하는 이일수록 그 죄는 무겁고, 참된 명왕 · 성인은 바른 법을 세우는 데서 나온다.
본문
主人の曰く、後鳥羽院の御宇に法然と云うもの有り。選択集を作る。則ち一代の聖教を破し、遍く十方の衆生を迷わす。 其の選択に云く「道綽禅師、聖道・浄土の二門を立て、聖道を捨てて正しく浄土に帰するの文。初めに聖道門とは之に就いて二有り、乃至之に準じて之を思うに、応に密大及以び実大をも存すべし。 然れば則ち今の真言・仏心・天台・華厳・三論・法相・地論・摂論、此等の八家の意正しく此に在るなり。 曇鸞法師の往生論の注に云く、謹んで竜樹菩薩の十住毘婆沙を案ずるに云く、菩薩、阿毘跋致を求むるに二種の道有り。 一には難行道、二には易行道なりと。此の中に難行道とは、即ち是れ聖道門なり。易行道とは即ち是れ浄土門なり。 浄土宗の学者、先ず須く此の旨を知るべし。設い先より聖道門を学ぶ人なりと雖も、若し浄土門に於て其の志有らん者は、須く聖道を棄てて浄土に帰すべし」と。
주인이 말하기를, 고토바인(後鳥羽院)의 치세에 법연(法然)이라는 자가 있어 『선택집(選択集)』을 지었느니라. 그리하여 일대의 성교를 깨뜨리고 두루 시방의 중생을 미혹하게 하였느니라. 그 『선택집』에 이르기를, 「도작선사(道綽禅師)가 성도(聖道) · 정토(浄土)의 이문(二門)을 세워, 성도를 버리고 바로 정토에 귀의하는 글. 처음에 성도문이란 이에 대하여 둘이 있다. (중략) 이에 준하여 이를 생각하건대 마땅히 밀대승(密大)과 실대승(実大)도 (성도문에) 넣어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진언 · 불심 · 천태 · 화엄 · 삼론 · 법상 · 지론 · 섭론, 이 여덟 가(家)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담란법사(曇鸞法師)의 『왕생론주(往生論註)』에 이르기를, 『삼가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을 살펴보건대, 보살이 아비발치(阿毘跋致, 불퇴의 자리)를 구함에 두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난행도(難行道), 둘째는 이행도(易行道)이다』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난행도란 곧 성도문이요, 이행도란 곧 정토문이다. 정토종의 학자는 먼저 모름지기 이 뜻을 알아야 한다. 설령 먼저부터 성도문을 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만약 정토문에 뜻이 있는 자라면 모름지기 성도를 버리고 정토에 귀의해야 한다」라고 하였느니라.
又云く「善導和尚、正雑の二行を立て、雑行を捨てて正行に帰するの文。第一に読誦雑行とは、上の観経等の往生浄土の経を除いて已外、大小乗・顕密の諸経に於て、受持・読誦するを悉く読誦雑行と名づく。 第三に礼拝雑行とは、上の弥陀を礼拝するを除いて已外、一切の諸仏菩薩等及び諸の世天等に於て、礼拝し恭敬するを悉く礼拝雑行と名づく。 私に云く、此の文を見るに、須く雑を捨てて専を修すべし。豈、百即百生の専修正行を捨てて、堅く千中無一の雑修雑行に執せんや。 行者能く之を思量せよ」と。
또 이르기를, 「선도화상(善導和尚)이 정(正) · 잡(雑)의 이행(二行)을 세워, 잡행을 버리고 정행에 귀의하는 글. 첫째로 독송잡행(読誦雑行)이란, 위의 『관경(観経)』 등 왕생정토의 경을 제외한 그 밖의 대승 · 소승 · 현교 · 밀교의 여러 경을 수지하고 독송하는 것을 모두 독송잡행이라 이름한다. 셋째로 예배잡행(礼拝雑行)이란, 위의 미타를 예배하는 것을 제외한 그 밖의 일체의 제불 · 보살 등과 여러 세천(世天) 등을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을 모두 예배잡행이라 이름한다. 사사로이 말하건대, 이 글을 보건대 모름지기 잡(雑)을 버리고 전(専)을 닦아야 한다. 어찌 백이면 백이 다 왕생하는(百即百生) 전수정행(専修正行)을 버리고, 천 가운데 하나도 없는(千中無一) 잡수잡행(雑修雑行)에 굳게 집착하겠는가. 수행자는 이를 잘 헤아려라」라고 하였느니라.
又云く「貞元入蔵録の中に、始め大般若経六百巻より法常住経に終るまで、顕密の大乗経、総じて六百三十七部・二千八百八十三巻なり。 皆須く読誦大乗の一句に摂すべし。当に知るべし、随他の前には、暫く定散の門を開くと雖も、随自の後には、還って定散の門を閉ず。 一たび開いて以後永く閉じざるは、唯是れ念仏の一門なり」と。
또 이르기를, 「『정원입장록(貞元入蔵録)』 가운데 처음 『대반야경』 육백 권에서 시작하여 『법상주경(法常住経)』에서 끝나기까지, 현밀의 대승경은 모두 637부 2,883권이다. 이는 모두 마땅히 『독송대승(読誦大乗)』이라는 한 구절에 거두어야 한다. 마땅히 알라, 수타의(随他意)의 앞에서는 잠시 정산(定散)의 문을 열었으나, 수자의(随自意)의 뒤에는 도리어 정산의 문을 닫았다. 한 번 열린 뒤 영원히 닫히지 않는 것은 오직 염불의 한 문뿐이다」라고 하였느니라.
又云く「念仏の行者、必ず三心を具足す可きの文。観無量寿経に云く、同経の疏に云く、問うて曰く、若し解行の不同、邪雑の人等有らば、外邪異見の難を防がん。 或は行くこと一分二分にして、群賊等喚び廻すとは、即ち別解・別行の悪見の人等に喩う。私に云く、又此の中に一切の別解・別行・異学・異見等と言うは、是れ聖道門を指すなり」已上。 又最後、結句の文に云く「夫れ速かに生死を離れんと欲せば、二種の勝法の中に、且く聖道門を閣いて、選んで浄土門に入れ。 浄土門に入らんと欲せば、正雑二行の中に、且く諸の雑行を抛って、選んで応に正行に帰すべし」已上。
또 이르기를, 「염불의 행자는 반드시 삼심(三心)을 갖추어야 하는 글. 『관무량수경』에 이르기를 … 같은 경의 소(疏)에 이르기를, 『묻기를, 만약 이해와 수행이 같지 않은 사(邪) · 잡(雑)의 사람 등이 있다면 … 외도와 다른 견해의 비난을 막으리라. … 혹은 한 걸음 두 걸음 가는데 군적(群賊) 등이 불러 되돌린다 함은 곧 별해(別解) · 별행(別行)의 악견의 사람 등에 비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사로이 말하건대, 또 이 가운데 일체의 별해 · 별행 · 이학(異学) · 이견(異見) 등이라 한 것은 성도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상. 또 맨 끝 결구의 글에 이르기를, 「무릇 속히 생사를 떠나고자 한다면, 두 가지 수승한 법 가운데 잠시 성도문을 제쳐 두고(閣いて) 골라서 정토문에 들어가라. 정토문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정 · 잡 두 행 가운데 잠시 여러 잡행을 내던지고(抛って) 골라서 마땅히 정행에 귀의하라」 이상.
어구 풀이
- 後鳥羽院고토바인
- 고토바 상황. 다카쿠라 천황의 넷째 황자로 이름은 다카히라(尊成). 쓰치미카도 · 준토쿠 · 주쿄의 세 천황에 걸쳐 원정(院政)을 폈다. 호조 요시토키를 치라는 원선을 내려 승구의 난을 일으켰으나 패하여, 유배 직전에 출가해 법황이 되었다. 오키노쿠니로 유배되었으므로 오키 법황이라고도 부른다.
- 法然법연
- 헤이안 시대 말기의 승려로 일본 정토종의 개조. 휘는 겐쿠(源空), 미마사카 사람이며 어릴 때 이름은 세이시마루(勢至丸)라 전한다. 열다섯 살에 히에이잔에 올라 공덕원의 고엔(皇円)을 섬기고, 구로다니의 에이쿠(叡空)에게 배웠다. 마흔세 살 때 선도의 『관경소』와 겐신의 『왕생요집』을 보고 전수염불에 귀의하여 정토종을 열었다. 문하의 일로 염불이 금지되어 유배되었고, 건력 원년(1211) 교토로 돌아와 이듬해 여든 살로 죽었다. 저서로 『선택집』 2권, 『정토삼부경석』 3권, 『왕생요집석』 1권 등이 있다.
- 選択集『선택집』
- 『선택본원염불집(選択本願念仏集)』의 약칭. 구조 가네자네(九条兼実)의 청으로 지었다고 한다. 정토 삼부경과 선도의 『관무량수경소』의 글을 끌어 염불의 법문을 펼쳤다. 열여섯 장으로 나뉘며, 석존 일대의 불교를 성도문과 정토문, 난행도와 이행도, 잡행과 정행으로 나누어 법화경을 포함한 삼부경 밖의 모든 가르침을 물리치고, 아미타불의 서원에 근거한 칭명염불만이 극락에 태어나는 가장 높은 수행이라고 설한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과 「수호국가론」 등에서 그 잘못을 파절하셨다.
- 道綽禅師도작선사
- 중국 수 · 당 시대의 승려로 중국 정토교의 조사 가운데 한 사람. 병주 문수 사람. 열네 살에 출가하여 열반경을 배웠으나, 현중사에서 담란의 비문을 보고 감동하여 정토교에 귀의했다. 석존의 일대 성교를 성도문과 정토문으로 나누고, 성도문은 「한 사람도 얻은 이가 없다(未有一人得者)」는 가르침이라 하여 물리쳤다. 제자로 선도가 있고, 저서로 『안락집(安楽集)』 2권이 있다.
- 聖道・浄土の二門성도 · 정토의 이문
- 도작의 『안락집』에 설한 두 문. 성도문은 자력으로 이 세상에서 성불할 수 있다고 설하는 가르침이고, 정토문은 사바세계를 더러운 땅으로 싫어하여 타력으로 극락왕생을 바라는 가르침이다. 『안락집』은 성도의 길은 지금 시대에는 증득하기 어렵고, 오직 정토의 한 문만이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길이라고 하였다.
- 密大及以び実大밀대승과 실대승
- 밀대(密大)는 밀교의 대승, 곧 진언의 경들이고, 실대(実大)는 실교의 대승, 곧 법화경이다. 법연은 『안락집』이 성도문에 넣은 것은 현교의 권대승(顕大 · 権大)뿐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이에 준하여 생각하면」 밀대와 실대도 성도문에 넣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뒤에 보는 「준지사지」의 네 글자다.
- 真言・仏心・天台・華厳・三論・法相・地論・摂論진언 · 불심 · 천태 · 화엄 · 삼론 · 법상 · 지론 · 섭론
- 법연이 성도문으로 묶어 버린 여덟 종. 불심종은 선종을 말한다. 지론종은 세친의 『십지경론』에 의지한 종으로, 남북 두 파로 갈라졌다가 북도파는 섭론종에, 남도파는 뒤에 화엄종에 흡수되었다. 섭론종은 무착의 『섭대승론』에 의지하여 진제를 조사로 한 종으로, 현장의 신역과 법상종의 흥기로 쇠퇴하여 사라졌다.
- 曇鸞法師담란법사
- 중국 북위 시대의 승려로 정토교의 조사 가운데 한 사람. 처음 용수 계통의 교리를 배우고 뒤에 신선의 글을 배우다가, 낙양에서 역경승 보리유지를 만나 『관무량수경』을 받고 정토교에 귀의했다. 『십주비바사론』의 난행도 · 이행도의 뜻을 염불은 이행도, 그 밖의 수행은 난행도로 풀었다. 만년에 분주의 현중사에 머물렀다. 저서로 『왕생론주(往生論註)』 2권, 『약론안락정토의』 1권, 『찬아미타불게』 1권 등이 있다.
- 十住毘婆沙『십주비바사론』
- 용수가 지었다고 하는 논서. 『십지경』의 초지 · 제2지를 주석한다. 구마라집이 불타야사의 구송에 의거해 번역했다고 전한다. 담란이 『왕생론주』에 인용하면서 정토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
- 阿毘跋致아비발치
- 범어 avinivartanīya 또는 avaivartika의 음사. 아유월치(阿惟越致)라고도 쓰고 불퇴(不退)라 옮긴다. 불도 수행에서 어떤 유혹이나 박해가 있어도 물러서지 않는 보살의 자리를 말한다.
- 難行道・易行道난행도 · 이행도
- 실천하기 어려운 수행과 쉬운 수행의 법문. 「이행」이라는 말은 본디 『십주비바사론』 이행품 제9에 나온다. 거기서는 보살이 불퇴의 자리에 이르는 데 스스로 애써 정진하는 길을 뭍길을 걷는 것에 견주어 난행도라 하고, 오직 부처의 힘을 믿는 길을 물길을 배로 가는 것에 견주어 이행도라 하였다. 담란은 이를 독자적으로 풀어, 이행인 염불로만 성불할 수 있다고 하였다.
- 善導和尚선도화상
- 중국 초당의 승려로 중국 정토교 선도류의 대성자. 어려서 출가하여 경장을 뒤지다 『관무량수경』을 보고 서방정토에 뜻을 두었다. 정관 연간에 현중사로 가서 도작에게 『관경』을 배우고, 스승이 죽은 뒤 광명사에서 칭명염불을 넓혔다. 정 · 잡 이행을 세워 잡행의 사람은 「천 가운데 하나도 없다」, 정행의 사람은 「열이면 열이 다 왕생한다」고 하였다. 저서로 『관경소』 4권, 『왕생예찬』 1권 등이 있다. 일본의 법연은 『관경소』를 보고 오로지 정토의 한 문에 귀의했다고 한다.
- 正雑の二行정 · 잡의 이행
- 정행과 잡행. 선도는 『관무량수경소』 권4 산선의에서 「행에 나아가 믿음을 세운다는 것은, 행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행, 둘째는 잡행이다」라 하여, 서방정토 왕생으로 이끄는 수행을 정행, 그 밖의 여러 수행을 잡행이라 하였다.
- 観経『관경』
- 『관무량수경』 1권, 유송 시대 강량야사 번역. 악한 아들 아사세가 있는 탁한 세상을 한탄하며 극락정토를 원하는 위제희 부인에게, 석존이 신통력으로 여러 정토를 보이고 거기 태어나기 위한 세 가지 정업(淨業)과 아미타불 및 그 정토의 장엄을 열여섯 가지 관법으로 설한 경이다. 범어 원전과 티베트어 번역이 발견되지 않아 중국에서 지어졌다는 설도 있다.
- 往生浄土の経왕생정토의 경
- 정토에 왕생함을 설한 경. 『아미타경』 · 『무량수경』 · 『관무량수경』의 정토 삼부경. 법연이 『선택집』에서 이 셋을 「미타의 삼부이므로 정토의 삼부경이라 이름한다」고 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 世天세천
- 인간계 · 천상계의 신들. 범천 · 제석 · 사천왕 등의 제천선신이 여기에 든다.
- 百即百生・千中無一백즉백생 · 천중무일
- 선도의 『왕생예찬』에 「열이면 열이 다 태어나고, 백이면 백이 다 태어난다」고 하여, 잡행을 버리고 염불하면 모두 극락에 왕생한다고 하였다. 반대로 정행 밖의 가르침을 닦으면 왕생하는 이가 천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고 한 것이 「천중무일」이다.
- 貞元入蔵録『정원입장록』
- 『정원신정석교목록(貞元新定釈教目録)』의 약칭으로 한역 불전의 목록. 당 정원 16년(800)에 원조(円照)가 엮은 30권. 『개원석교록』을 늘려, 후한 명제 영평 10년(67)부터 정원 16년(800)까지 734년 동안 번역 · 저술된 불전 2,417부 7,388권을 실었다.
- 法常住経『법상주경』
- 역자 미상의 1권. 「법은 상주한다. 부처가 있든 없든 법이 머무는 것은 본래와 같다」는 글이 있어 이 이름이 붙었다. 법은 상주하지만 부처가 세상에 나와 그 깊은 뜻을 분별하고 삼승의 근기에 따라 설해 건지는 데서 상주의 법이 드러난다고 설한다.
- 定散の門정산의 문
- 정선(定善)과 산선(散善)의 법문. 정선은 마음을 한곳에 모아 닦는 선행, 산선은 흩어진 마음 그대로 행하는 선행이다. 법연은 염불 밖의 자력의 행을 설하는 법화경 등의 법문을 이렇게 불렀다.
- 随他・随自수타의 · 수자의
- 수타의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설한 방편의 가르침, 수자의는 중생의 근기에 상관없이 부처가 자기의 깨달음을 그대로 설한 진실의 가르침이다. 부처의 수자의는 법화경인데, 법연은 아무 근거도 밝히지 않고 염불을 부처의 수자의로 삼았다.
- 三心삼심
- 『관무량수경』에 설한, 극락왕생에 필요하다는 세 가지 마음. 지성심(참되게 정토를 원하는 마음) · 심심(깊이 정토를 원하는 마음) · 회향발원심(공덕을 돌려 정토 왕생을 원하는 마음).
- 群賊等喚び廻す군적 등이 불러 되돌린다
- 열반경과 『대지도론』에 있는 폭 너덧 치의 흰 길(白道)의 비유를 선도가 끌어 극락왕생을 권한 글. 흰 길을 가려는 나그네를 도적 떼가 불러 되돌린다는 것은 「별해 · 별행의 악견의 사람」, 곧 성도문의 사람들을 말하며, 그들의 말에 따르지 말라고 선도는 염불자에게 경고했다. 그런데 법연은 용수 · 천친 · 남악 · 천태 · 전교를 모두 이 군적 속에 넣어 버렸다.
객의 물음에 답하여 — 원흉으로 법연을 들다
악한 승려가 누구냐는 객의 물음에 대해, 주인은 방법의 악승 가운데 원흉으로 법연의 이름을 들고 그 『선택집』의 그릇된 뜻을 철저히 파절한다. 이것이 이 장이다. 법연은 『선택집』을 지어 법화경을 포함한 일체경을 버리고 닫고 제쳐 두고 내던지라 하여 불교를 깨뜨리고 민중을 미혹하게 했으므로, 주인은 그를 악비구라 한 것이다.
당시 종교계의 실정을 보면, 나라의 태반이 염불자가 되어 법연에게 귀의하고 있었다. 천태 · 진언 · 선 · 율 등의 여러 종도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활동했지만, 정토종의 발전에 비하면 천태 · 진언 · 율은 정체기에 있었고, 법상 · 화엄 등은 몰락기였으며, 선종은 아직 미미한 세력이었다. 개창 이래 수십 년을 지나 염불은 아침 해가 솟는 기세를 보이는 신흥 세력의 패자였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 가르침은 권교로써 실교를 깨뜨리는 것이었고, 경문에 비추어 삼재칠난의 원흉임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염불의 개조인 법연의 이름을 들고, 특히 법연이 『선택집』을 지어 사 · 폐 · 각 · 포를 외치며 불교를 깨뜨리고 민중을 미혹하게 한 실태를 보여 그 파절에 나서신 것이다. 다만 주인이 말하는 악한 승려는 법연 한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넓혀 말하면 모든 종의 승려를 포함한다.
왜 그런가. 이미 제1단에서 객은 「그러는 사이 혹은 「이검즉시(利剣即是)」의 글을 오로지하여 서방 교주의 이름을 부르고」로 시작하여 「만민 백성을 불쌍히 여겨 국주 · 국재가 덕정을 행한다」에 이르기까지, 나라 안의 모든 가르침이 저마다 힘을 다해 국난을 물리치는 기도를 하고 있는데도 전혀 효험이 없고 오히려 재난과 불행만 더해 간다고 한탄했다. 이것은 어떤 종도 삼재칠난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은 물론, 결국 그들이야말로 재난을 키우는 원인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또 제3단에서 인왕경 · 열반경 · 법화경의 경문을 들어 보인 악한 승려의 모습은 당시의 어느 종에나 공통된 것이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러한 승려는 모두 불법 가운데의 원수이며, 법연은 그 가운데 가장 흉악한 대표로 들려진 것이다.
「준지사지」 네 글자 — 법화경을 성도문에 넣은 논법
법연은 담란 · 도작 · 선도의 그릇된 뜻을 더 밀고 나가 갖가지 그릇된 뜻을 세웠다. 그것이 얼마나 논리의 비약이 숨은 교묘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조금만 따져 보면 분명하다.
먼저 성도문과 정토문의 구분은 도작의 『안락집』에 있는 설이다. 그러나 도작은 법화경 이전의 여러 경을 성도 · 정토 두 문으로 나누어 성도문을 버리고 정토문에 귀의하라고 했을 뿐, 아직 법화경을 그 안에 넣지 않았다. 그런데 법연은 『선택집』에서 성도문에 법화경을 넣어 이를 버리라고 논했다. 「이에 준하여 이를 생각하건대(準之思之)」라는 네 글자로 해석을 넓혀, 도작이 세운 성도 · 정토의 이문을 법화경에까지 미치게 한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담란의 난행도 · 이행도, 선도의 정행 · 잡행도 이 네 글자로 넓혀 풀어, 법화경을 비방하는 큰 죄를 지었다.
대성인은 「수호국가론」에서 이렇게 밝히셨다.
此の文の意は、道綽禅師の安楽集の意は法華已前の大小乗経に於て聖道浄土の二門を分つと雖も、我私に法華・真言等の実大・密大を以て四十余年の権大乗に同じて聖道門と称す『準之思之』の四字是なり、此の意に依るが故に亦曇鸞の難易の二道を引く時、亦私に法華真言を以て難行道の中に入れ、善導和尚の正雑二行を分つ時も亦私に法華真言を以て雑行の内に入る。総じて選択集の十六段に亘つて無量の謗法を作す根源は偏に此の四字より起る。誤れるかな畏しきかな
이 글의 뜻은, 도작선사의 『안락집』의 뜻은 법화 이전의 대소승경에서 성도 · 정토의 이문을 나누었으나, 내가 사사로이 법화 · 진언 등의 실대 · 밀대를 사십여 년의 권대승과 같이 하여 성도문이라 부른다는 것이니, 「준지사지」의 네 글자가 이것이다. 이 뜻에 의하므로 또 담란의 난이 이도를 끌 때에도 사사로이 법화 · 진언을 난행도 안에 넣고, 선도화상의 정 · 잡 이행을 나눌 때에도 사사로이 법화 · 진언을 잡행 안에 넣었다. 모두 『선택집』 열여섯 단에 걸쳐 한량없는 방법을 짓는 근원은 오로지 이 네 글자에서 일어난다. 그릇되도다, 두렵도다.
「수호국가론」은 이 대목에 앞서 「용수보살과 세 스승은 법화 · 진언 등을 난행 · 성도 · 잡행 가운데 넣지 않았는데, 겐쿠(법연)가 사사로이 이를 넣었다는 것은 무엇으로 아는가」라는 물음을 세우고, 『선택집』 제1편의 「사사로운 헤아림(私の料簡)」의 대목을 그대로 인용해 답한다. 법연 스스로 「지금 이 『안락집』의 뜻은 오직 현대승과 권대승만을 남긴다」고 인정한 바로 다음에 「이에 준하여 생각하면 밀대와 실대도 남겨야 한다」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근거를 대지 않은 채 「준하여 생각하면」 한마디로 법화경을 버려야 할 쪽에 옮겨 놓은 것, 그것이 『선택집』 열여섯 장의 모든 방법이 흘러나오는 근원이라고 대성인은 보셨다.
- 담란의 난행 · 이행
- 도작의 성도 · 정토
- 선도의 정행 · 잡행
이 법연의 그릇된 뜻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뒤에서 담란 · 도작 · 선도를 하나씩 살피며 다시 보기로 하고, 먼저 그토록 허술한 그릇된 뜻이 왜 당시에 그렇게 퍼졌는지를 보자. 당시 종교계에서 법연이 차지한 자리, 법연의 일생, 그리고 『선택집』의 성격의 순서로 살핀다.
말법의 불안과 염불의 확산
연력 13년(794) 헤이안쿄로 도읍을 옮긴 이래 화려한 문화를 자랑하던 시대도, 11세기에 들어서자 정치의 부패, 불교계의 타락, 승병의 횡포, 무사단의 대두로 세상이 어수선해졌다. 잇따르는 천재와 기근 속에 사람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때까지 천태종을 중심으로 하던 불교계는 안의 갈등으로 부패와 문란이 극에 달했고, 보원 · 평치의 난과 겐페이 전쟁의 잇따른 전란에 스스로 휘말려 사람들을 구할 아무 힘도 없음을 드러냈다. 이렇게 하여 이 세상을 더러운 땅(穢土)으로 싫어하고 정토 왕생을 바라는 염불 사상이 차츰 민중 속에 스며들었다.
게다가 영승 7년(1052)은 석존 멸후 꼭 2,000년, 곧 말법에 들어가는 해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종래의 번거로운 이론을 지닌 불교에는 공력이 없다고 여기고, 단순하고 새로운 가르침이 나오기를 갈망했다.
법연의 염불 사상은 이러한 시대의 풍조를 탄 것이었다. 그때까지의 천태 · 진언처럼 어려운 교의는 조금도 필요 없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염불만 부르면 극락에 왕생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가르침이었다. 법연에게 귀의한 이들의 대부분이 소박하고 배움 없는 무사와 서민이었다는 것은 기성 불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그들에게 번거로운 교의는 필요하지 않았다. 듣기만 해도 넋을 잃게 하는 극락정토에 대한 동경, 열광적인 춤추는 염불(踊り念仏)의 유행, 젊은 염불승이 고운 목소리로 부르는 화찬(和讃) 같은 것을 타고 전수염불의 신앙은 민간에 깊이 파고들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조금이라도 불교를 알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면 법연의 교의가 근거가 희박하고 정법을 비방하는 위험한 설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히에이잔의 학승 가운데에도 이를 파하여 세상에 경고를 보낸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 민중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 가르침은 역병이 번지듯 퍼져 나갔다. 법연이 설한 전수염불은 그 제자들의 손으로 순식간에 전국에 퍼져, 나라의 위아래가 모두 여기에 빠졌다. 그 뒤 시종(時宗)의 잇펜(一遍) 등은 전국을 두루 돌며 염불을 넓혔다.
이 무렵에는 법연의 염불 밖에도 선종이 호조 도키요리의 후원을 얻어 일어나 에이사이 · 도겐 · 도류(道隆) 등의 승려를 중심으로 융성하기 시작했고, 율종에서도 료칸이 막부에 교묘히 다가가 자신의 세력을 넓혀 가고 있었다. 입정안국론이 쓰인 문응 원년(1260)의 가마쿠라는 바로 이러한 종교 지형 위에 있었다.
법연의 일생
법연의 생애를 간략히 더듬어 보자. 법연은 장승 2년(1133) 미마사카노쿠니 구메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우루마 도키쿠니(漆間時国)는 구메군의 압령사(押領使)였고, 어머니도 그 지방 호족 출신이었다. 법연이 아홉 살 때, 아버지 도키쿠니는 오랫동안 다투어 온 그 땅의 장원 관리인 아카시 사다아키(明石定明)에게 밤에 습격을 받아 죽었다. 이런 사건은 당시 관리들 사이, 중앙 관료와 지방 호족 사이의 다툼으로 흔히 있던 일이었다.
정토종 쪽의 전기에 따르면, 이 습격 때 숨을 거두던 아버지가 법연에게 원수 갚기를 엄히 말리고 일체중생이 쉽게 구제될 법문을 열기 위해 출가하라고 타일렀다고 하지만, 어릴 때 이름이 세이시마루(勢至丸)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당시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구안 3년(1147) 열다섯 살에 어머니에게 하직하고 히에이잔에 올라 지호보 겐코(持宝房源光)의 문하에 들어갔다가 공덕원의 고엔(皇円)에게 옮겨, 11월에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그곳에서 3년 동안 배운 뒤, 열여덟 살 때 구로다니의 지겐보 에이쿠(慈眼房叡空)의 제자가 되어 법연방 겐쿠(法然房源空)라 이름을 고쳤다. 이 구로다니에서 그는 혜심승도 겐신의 『왕생요집』을 비롯한 여러 종의 장소(章疏)를 배웠고, 그 가운데 선도의 『관경소』에 있는 「일심으로 오로지 미타의 명호를 염한다(一心専念弥陀名号)」는 글을 보고, 승안 5년(1175) 마흔세 살 되던 봄에 정토종을 열었다.
그 교의의 특색은, 그때까지 불교계의 중심이던 천태종 등이 어려운 교학을 근본으로 삼은 데 대하여, 계 · 정 · 혜의 삼학을 비롯한 일체경을 버리라 · 닫으라 · 제쳐 두라 · 내던지라 외치고 오직 아미타불에 대한 강한 믿음만을 강조한 데 있다. 이 때문에 일반 서민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게 되었지만,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것은 바로 불법을 숨어 없어지게 하는 폭론이기도 했다.
포교의 방식도 달랐다. 종래의 승려는 산속에 들어가거나 엄숙한 절 깊은 곳에 있어, 서민 가운데서도 유녀나 천대받던 이들과 말을 나누거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없었다. 법연 등은 그런 이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가 포교를 펼쳤다. 이렇게 하여 많은 무사와 서민이 잇달아 염불을 부르기 시작했고, 귀족 가운데서는 관백 구조 가네자네 등이 귀의하여 법연의 교의는 위아래로 뻗어 나갔다.
- 장승 2년(1133)미마사카에서 태어남
- 9세아버지 우루마 도키쿠니가 습격으로 죽음
- 구안 3년(1147) 15세히에이잔에 올라 겐코 · 고엔에게 배움
- 18세구로다니 에이쿠의 제자가 되어 법연방 겐쿠로 이름을 고침
- 승안 5년(1175) 43세선도 『관경소』를 보고 정토종을 엶
- —구조 가네자네의 청으로 『선택집』을 지음
- 원구 원년(1204)히에이잔 대중의 금지 요구에 칠개조 제계, 문도 190인 연서
- 건영 원년(1206)안라쿠 · 주렌의 염불 모임 사건
- 이듬해안라쿠 · 주렌 사형, 법연 유배, 문도 추방
- 건력 원년(1211)사면되어 교토로 돌아옴
- 이듬해(1212)80세로 죽음
- 가록 3년(1227)엔랴쿠사의 소송으로 염불 금지의 칙선, 묘와 당우가 파괴되고 유해는 가모가와에 흘려졌다고 전함
이 때문에 히에이잔 · 고후쿠사 등 옛 불교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어, 여러 번 염불 금지의 상주가 있었다. 처음에는 이 상주가 모두 각하되어 흐지부지되었다. 그런데 건영 원년(1206), 법연이 일흔네 살 때, 그의 제자로 용모와 목소리가 빼어나기로 소문난 안라쿠(安楽)와 주렌(住蓮)이 연 염불 모임에, 고토바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궁중의 여관 몇이 참석했다. 그리고 그 여관들이 안라쿠 · 주렌과 정을 통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것이 상황의 큰 노여움을 불렀다.
해가 바뀌자 법연 문하의 승려들이 잇달아 붙잡혀, 안라쿠 · 주렌 두 사람은 사형에 처해지고, 법연 자신도 유배되었으며, 많은 문도가 섬으로 유배되거나 추방되었다. 유배지는 도사로 정해졌으나 실제로는 사누키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풍기 문제를 계기로 내려진 이 처벌은, 국난을 구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간효하시어 삼류의 강적을 불러일으킨 대성인의 법난과는 그 성격이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법연은 유배 길에서도 유녀와 어부 등 서민에게 포교를 이어 갔다고 하며, 건력 원년(1211)에 사면되어 교토로 돌아왔으나 이듬해 여든 살로 죽었다. 그 뒤 가록 3년(1227), 곧 그가 죽은 지 15년 뒤, 엔랴쿠사 승도의 소송으로 염불 금지의 칙선이 내려지고, 묘와 당우가 파괴되었으며 유해는 가모가와에 흘려졌다고 전한다. 이 염불 금지의 역사는 입정안국론 제6편 「염불 금지 감장의 상주」에서 본문을 따라 다시 살핀다.
칠개조 제계 — 금지 앞에서 물러선 법연
법연을 종교 개혁가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법연은 만년인 원구 원년(1204), 제자가 늘어나 히에이잔의 대중이 전수염불의 금지를 천태좌주에게 요구하자, 탄압을 피하려고 다른 종의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칠개조 제계를 정하고 스승과 제자 190인이 연서하여 천태좌주에게 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하나아미타불 밖의 불보살을 비방하지 않는다
- 둘다른 가르침의 사람과 즐겨 논쟁하지 않는다
- 셋다른 가르침의 사람에게 그 신앙을 버리게 하지 않는다
- 넷염불문에서는 계가 없다 하여 음행 · 술 · 고기를 권하지 않는다
- 다섯멋대로 자기 교의를 세워 남과 다투지 않는다
- 여섯창도(唱導)로 무지한 사람들을 교화하지 않는다
- 일곱그릇된 가르침을 거짓으로 스승의 설이라 하지 않는다
『선택집』에서는 정토 삼부경 밖의 모든 경을 버리고 닫으라 하고 아미타 밖의 모든 부처를 제쳐 두라 하면서, 히에이잔 대중이 염불 금지를 요구하자 곧바로 「다른 불보살을 비방하지 않는다」 「다른 가르침의 사람에게 신앙을 버리게 하지 않는다」고 서약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크게 불어나 내닫기 시작한 열광은 법연의 손으로도 어찌할 수 없게 되어, 끝내 조정의 염불 금압을 불렀다.
모든 종의 그릇됨을 경증을 들어 논증하고, 방법을 끊으라고 사자왕처럼 외치신 대성인과 견주면, 그 차이는 분명하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으로 비롯된 모든 난 속에서 한 번도 그 주장을 거두지 않으셨다. 이 대비는 제4장에서 「일흉」의 결론과 함께 다시 보게 된다.
불설에 의지하지 않은 책 — 『선택집』
법연은 생애에 몇 가지 저작을 남겼지만, 그 대표가 『선택본원염불집』이다. 그가 세운 그릇된 뜻은 이 한 책에 모여 있으며,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이 그 뒤 오랫동안 일본에 퍼진 염불의 해독의 근원이다.
『선택집』에 대한 파절은 대성인의 여러 어서에 걸쳐 있으나, 그 가운데 체계적으로 남김없이 파한 것이 「수호국가론」이다. 입정안국론에서는 그 큰 줄기만을 들어 논하셨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이미 분명하듯, 『선택집』의 그릇된 뜻이 기대는 곳은 모두 담란 · 도작 · 선도 · 혜심승도 같은 인사(人師)의 설이며, 부처의 말씀인 경문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따지거나 근거로 삼지 않았다.
왜 불설을 근거로 삼지 않았는가. 법연이 외치려는 교의가 경문의 어디에도 설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법연의 정토종은 이름은 불교이지만 내용으로는 불설에 근거하지 않은, 법연 한 사람의 설에 지나지 않는다.
무릇 불교라 이름하는 이상, 그 주장에 그릇됨이 없다는 것이 경문 위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래서는 발전이 없지 않은가」 하고 반론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그럴듯한 반론이다. 그러나 불법은 하나하나의 사실을 모아 결론을 쌓아 가는 귀납과는 본질이 다른, 연역에 선 가르침이다. 부처의 깨달음과 경지는 절대적인 것이어서 거기에 모든 원리가 있고 근원이 있다. 부처가 설한 팔만사천의 법문에 모든 것이 설해져 있다. 그러므로 부처의 금언, 부처의 예언에 어긋나는 설은 그릇된 설이라 단정할 수 있다. 이것이 불교를 배우는 이의 신념이며 철칙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도, 만약 부처의 설과 다른 설을 세우려면 부처의 설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를 분명히 한 뒤에 세워야 한다. 그것을 전혀 무시한 채 다른 설을 외치고, 그 위에 독단적으로 정토 삼부경만이 바르고 다른 것은 모두 그르니 버리라고 하는 것은 민중을 눈먼 이로 여기고 업신여기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근거 없는 설에 맹목적으로 따라 삼부경에만 집착하고 가장 높은 법화경을 비롯한 부처의 경설을 버리는 사람들을 크게 꾸짖어 깨우고 정법을 가르치신 분이 니치렌 대성인이다. 눈을 뜨고 보면 말법 중생의 주사친, 곧 어본불은 니치렌 대성인이시며, 그 대성인께서 설하신 성불득도의 대백법이 삼대비법의 대어본존이라는 것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의 입장이다. 이 입정안국론, 특히 이 장 등에서 법연의 그릇된 뜻을 책하실 때, 난행도 · 성도문 · 잡행 속에 법화 · 진언을 넣은 법연의 아견(我見)을 특히 강조하신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선택집』은 건구 9년(1198) 구조 가네자네의 청으로 지어졌다고 전하며, 법연 생전에는 문하의 일부에게만 베껴 쓰기가 허락되었다고 한다. 널리 간행된 것은 법연이 죽은 뒤의 일이다.
「실교로부터 이를 책망해야 한다」 — 권실상대의 논법
「법화 · 진언」은 대성인 당시로 말하면 일단 히에이잔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언뜻 보면 대성인이 법연의 정토종을 책하고 천태종에 귀의하라고 주장하신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성인의 참뜻이 천태종 같은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은, 입정안국론 첫머리의 객의 물음에서 천태종의 기도도 전혀 효험이 없다고 한탄하게 하신 데서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여기서 「법화 · 진언」이라 하셨는가. 이것은 권실상대(権実相対)의 자리에서 논하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설수행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末法の始めの五百年には純円・一実の法華経のみ広宣流布の時なり、此の時は闘諍堅固・白法隠没の時と定めて権実雑乱の砌なり、敵有る時は刀杖弓箭を持つ可し 敵無き時は弓箭兵杖何にかせん、今の時は権教即実教の敵と成るなり、一乗流布の時は権教有つて敵と成りて・まぎらはしくば実教より之を責む可し、是を摂折二門の中には法華経の折伏と申すなり
말법의 처음 오백 년에는 순원 · 일실의 법화경만이 광선유포할 때이다. 이때는 투쟁견고 · 백법은몰의 때로 정해져 있으니 권교와 실교가 뒤섞여 어지러운 때이다. 적이 있을 때는 칼과 지팡이와 활과 화살을 지녀야 하지만, 적이 없을 때는 활과 화살과 병장기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지금 때는 권교가 곧 실교의 적이 되는 것이다. 일승이 유포할 때에 권교가 있어 적이 되어 헷갈리게 한다면 실교로부터 이를 책망해야 한다. 이것을 섭수 · 절복의 두 문 가운데 법화경의 절복이라 하느니라.
정토종이 의지하는 경은 권교다. 일본에서는 전교대사가 나와 실교인 법화경을 넓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토종이 퍼진 것은 권교와 실교가 뒤섞여 어지러워진 모습이며, 더구나 법연이 법화경을 버리라 닫으라 제쳐 두라 내던지라 하는 것은 바로 권교가 실교의 적이 된 모습이다.
이때야말로 「실교로부터 이를 책망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권실상대의 자리에서 권교인 아미타의 경들에 대하여 실교인 법화경을 세우고, 권불인 아미타여래에 대하여 실교의 교주인 석가여래를 세우셨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먼저 법화경이야말로 가장 높은 유일한 가르침임을 알게 하고, 나아가 법화경의 경문 위에서 말법에 나타나신 대성인이 경문에 예언된 말법의 어본불이심을 알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같은 법화경, 같은 실교라 해도 그것이 천태의 불법의 법화경이 아니라는 것은 「관심의 본존득의초」의 말씀에서도 분명하다.
設い天台伝教の如く法のままありとも今末法に至ては去年の暦の如
설령 천태 · 전교처럼 법대로 행한다 하더라도, 지금 말법에 이르러서는 지난해의 달력과 같으니라.
「여설수행초」의 「순원 · 일실의 법화경」 「일승 유포」도 말법에 유포할 삼대비법을 말하는 것으로 읽힌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말법의 민중의 생명력을 북돋우고 흔들림 없는 행복의 삶을 열어 주는 근원은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저에 감추어진 삼대비법이며,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양약이다. 대성인의 본뜻은 끝까지 이 대양약을 먹게 하는 데 있지, 천태의 불법에 귀의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 권교정토 삼부경 · 권불 아미타여래 · 「법화 · 진언까지 버리라」는 『선택집』
- 실교법화경 · 교주 석가여래「실교로부터 이를 책망해야 한다」実教より之を責む可し「여설수행초」, 503쪽
- 그 너머천태 · 전교의 법도 말법에는 「지난해의 달력」말법에 유포할 법은 문저의 삼대비법
정토교의 성립 — 담란 · 도작 · 선도
법연의 그릇된 뜻이 더 깊은 까닭은, 부처의 경설에 의지하지 않고 인사의 그릇된 설에 의지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인사의 설조차 굽혀 버렸다는 데 있다. 이를 밝히기 위해 담란 · 도작 · 선도가 어떤 설을 세웠고, 그것을 법연이 어떻게 더 그르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보자.
- 용수정법 시대의 논사『십주비바사론』 이행품난행 · 이행, 법화 이전의 권대승 안에서
- 천친정법 시대의 논사『왕생론』(원생게)
- 담란인사『왕생론주』난행도 · 이행도
- 도작인사『안락집』성도문 · 정토문
- 선도인사『관경소』 · 『왕생예찬』정행 · 잡행, 천중무일 · 백즉백생
- 혜심승도 겐신인사『왕생요집』법연이 정토에 뜻을 둔 계기
- 법연『선택집』「준지사지」로 법화 · 진언까지 성도 · 난행 · 잡행에 넣어 사 · 폐 · 각 · 포
담란
담란은 5세기 말에서 6세기에 걸친 남북조 시대의 사람이다. 처음에는 사론(四論)을 배웠으나 뒤에 병을 얻어 오래 살고 죽지 않는 법을 구해, 강남의 도사 도홍경(陶弘景)을 찾아가 선경(仙経)을 얻어 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낙양에서 보리유지(菩提留支)를 만나 그 법을 듣고 곧 뜻을 바꾸어 선경을 태우고 오로지 정토교에 귀의했다. 위나라 황제의 귀의를 받아 병주의 대암사에 머물렀고, 만년에는 석벽산 현중사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저서로는 『왕생론주』 2권, 『약론안락정토의』, 『찬아미타불게』 같은 정토교의 책부터, 『요백병잡방환』 3권, 『논기치료방』 1권 같은 도교식 의서까지 있다. 대표작인 『왕생론주』는 보리유지가 번역한 천친보살의 『무량수경우바제사원생게』를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 이행품 등의 설을 끌어들여 논한 것이다.
용수와 천친은 정법 시대에 나온 바른 스승으로, 그 설은 권대승경의 유포에 본뜻이 있었고 권대승 안에서 천심 · 승렬을 밝힌 것이었다. 거기서는 권대승과 실교가 분명히 나뉘어 논해졌다. 담란의 『왕생론주』도 난행 · 이행의 두 길을 나누었지만 어디까지나 권대승의 여러 경 안에서의 논의였고, 법화경을 난행도에 넣지는 않았다. 법화경까지 한데 묶어 논한 것은 법연이 처음 만든 제멋대로의 설이다.
대성인은 이를 「수호국가론」에서 이렇게 파하셨다.
釈迦如来五十年の説教に総じて先き四十二年の意を無量義経に定めて云く「険逕を行くに留難多き故に」と無量義経の已後を定めて云く「大直道を行くに留難無きが故に」と仏自ら難易・勝劣の二道を分ちたまえり、仏より外等覚已下末代の凡師に至るまで自義を以て難易の二道を分ち此の義に背く者は外道魔王の説に同じきか
석가여래 오십 년의 설교에서, 모두 앞의 사십이 년의 뜻을 무량의경에서 정하여 「험한 길을 가니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라 하시고, 무량의경 이후를 정하여 「크고 곧은 길을 가니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라 하시어, 부처께서 스스로 난이 · 승렬의 두 길을 나누셨다. 부처 밖의 등각 이하 말대의 범부 스승에 이르기까지 자기 뜻으로 난이의 두 길을 나누어 이 뜻을 등지는 자는 외도 · 마왕의 설과 같으리라.
이어서 대성인은, 사의의 대사인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은 법화 이전에서 난이의 두 길을 나누었을 뿐 사십여 년 이후의 경에 난행의 뜻을 두지 않았다고 하시고, 만약 닦기 쉬움을 이행이라 한다면 법화경의 오십전전(五十展転)의 행이 칭명염불보다 백천만억 배나 행하기 쉽고, 만약 뛰어남을 이행이라 한다면 분별공덕품에 이전 경의 팔십만억 겁 동안의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염불삼매 등 오바라밀의 공덕을 법화경의 일념신해(一念信解)의 공덕에 견주어 일념신해의 공덕이 백천만억 배 뛰어나다고 설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맺으셨다.
難易・勝劣と云い行浅功深と云い観経等の念仏三昧を法華経に比するに難行の中の極難行・劣が中の極劣なり
난이 · 승렬로 말하든 행은 얕고 공은 깊다는 것으로 말하든, 『관경』 등의 염불삼매를 법화경에 견주면 난행 가운데 가장 어려운 행이요, 열등한 것 가운데 가장 열등한 것이니라.
이처럼 난행 · 이행을 논한다면 법화경이 가장 쉬운 행이라는 것은 부처께서 스스로 정하신 바다. 그러므로 담란조차 법화경을 난행도에 넣기를 꺼렸다. 그런데 법연은 불설을 등지고 담란의 가르침마저 짓밟아 법화경을 난행도에 넣고 이를 버리라고 한 것이다.
도작
도작은 6세기 후반에서 당 초에 걸친 승려로, 담란이 죽은 지 20년 뒤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담란과 도작 사이에 직접의 사승 관계는 없다. 현중사를 찾은 도작이 담란의 비문을 보고, 당시의 말법 사상을 타고 담란의 사상을 넓힌 것이 그 실상이다. 도작은 처음 찬선사(讃禅師)에게 열반학을 배웠으나, 담란의 비문을 보고 정토교를 세워 『안락집』 등을 지었다.
그 설은 법화경 이전의 대소승교에 대하여 성도문과 정토문의 둘로 나누고, 성도문은 「천중무일」, 곧 천 사람이 닦아도 한 사람도 성불하지 못하며, 정토 삼부경만이 「백즉백생」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법연은 「사사로운 헤아림」으로서 「처음에 성도문이란 이에 대하여 둘이 있다. 하나는 대승, 둘은 소승이다. 대승 가운데 현 · 밀 · 권 · 실 등의 차이가 있으나 지금 이 『안락집』의 뜻은 오직 현대승과 권대승만을 남긴다. 그러므로 역겁우회의 행에 해당한다. 이에 준하여 생각하면 마땅히 밀대와 실대도 남겨야 한다」라고 하여, 이치에 맞지 않게도 법화경마저 천중무일의 성도문이라고 단정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또한 불설을 업신여기는 큰 방법이며, 정토종의 조사로 받드는 도작의 본뜻마저 짓밟은 것이다.
선도
선도도 당나라 승려로, 태어난 곳은 산둥이라고도 안후이라고도 하여 분명하지 않다. 소년 시절 법화경 · 유마경을 읽고 익혔으나, 우연히 절 안의 서방변상도(西方変相図)를 보고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여 『관무량수경』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현중사에서 도작의 가르침을 받고, 종남산 오진사, 장안의 광명사 등을 옮겨 다녔다.
그 수행은 삼십여 년 동안 잠자리를 정하지 않고, 길을 걸을 때는 눈을 내리깔아 여인을 보지 않았으며, 날마다 탁발하여 그것을 대중에게 베풀었다고 전한다. 『아미타경』을 십만 권 베껴 쓰고 정토변상도 삼백 폭을 그려 나누어 주었으며, 무너진 탑과 절을 보면 반드시 고쳤다고도 한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런 모습은 대성인 당시의 닌쇼 료칸 등과 같아, 제3편에서 본 열반경의 「율을 지니는 듯 보인다」는 경문에 해당한다. 겉으로는 덕 높은 이름난 승려처럼 보이지만, 그 교의는 석존과 천태의 정의에 어긋나는 자기 뜻이었다는 것이다.
저작으로 『관무량수경소』 · 『왕생예찬』 · 『반주찬』 · 『관념법문』 등이 있고, 의식에 음악적 요소를 들인 것도 선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승이라는 평판은 천하에 울려, 많은 남녀가 귀의하여 『아미타경』 독송 30만 번, 날마다 칭명 10만 번 하는 염불 신자도 나타났고, 왕생을 바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선도 자신도 많은 신자가 그 극락왕생의 모습을 보려고 모인 가운데 절 앞의 버드나무에 줄을 걸고 목을 매었는데, 가지가 부러졌는지 줄이 끊어졌는지 땅에 떨어져 허리뼈를 다치고 칠일 칠야를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숨졌다고 전한다. 대성인은 「염불무간지옥초」에서 이 전승을 들어 염불자를 꾸짖으셨다(제3장에서 본다).
선도의 가르침은 석존의 가르침에 어긋나 극락왕생을 이상으로 삼고 「사십여 년에는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권교에 집착했다는 점에서,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릇된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왕생예찬』의 정행 · 잡행의 구분은 오로지 섭론종을 파하기 위한 판정이었고, 법화경을 잡행에 넣으려는 뜻은 전혀 없었다. 이것을 제멋대로 고쳐 법화경을 잡행에 넣고 천태 등을 군적 속에 넣은 것도 법연이다.
담란 · 도작 · 선도의 설은 결국 부처의 참뜻인 법화경에 어긋나는 설이었다. 그러나 법화경을 버리라고 하는 결정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그래서 「수호국가론」에서 대성인은 세 스승의 설이 「대부분 본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같은 세 스승을 제3장 본문에서는 「그릇된 해석(謬釈)」이라 하셨는데, 이 두 평가의 관계는 제3장에서 여탈(与奪)의 논법으로 살핀다.
혜심승도 겐신
법연이 정토 신앙으로 돌아선 계기가 된 것이 혜심승도 겐신(源信)의 『왕생요집』이다. 혜심은 히에이잔 제18대 좌주 자에(慈恵)대사 료겐(良源)의 제자로, 교상을 중시하는 단나류(檀那流)에 대하여 관심을 중시하는 혜심류(慧心流)를 세운 학승이다. 『왕생요집』은 겉으로 보면 정토를 선양하는 듯하지만, 그 대문 제10 문답요간(問答料簡) 가운데 제7 「제행승렬(諸行勝劣)」에서 염불과 법화경의 일념신해의 공덕을 견주어 일념신해 쪽이 염불삼매보다 백천만억 배 뛰어나다고 결론짓는다.
곧 『왕생요집』은 법화경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설하기 위해 지은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전히 염불의 냄새가 남아 있었고, 혜심은 뒤에 앞의 잘못을 뉘우쳐 『일승요결(一乗要訣)』을 지어 법화 최승의 뜻을 분명히 논했다고 한다. 법연이 이를 읽어 내지 못하고 단지 정토 선양의 책으로 받아들인 것은 그 읽음이 얕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혹은 자기 뜻을 꾸미기 위해 형편에 맞는 곳만 취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너그럽게 보아 준(与) 논의이고, 엄하게 따지면(奪) 혜심이 법연의 그릇된 뜻의 원천이 된 것은 사실이다.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혜심을 사자 몸속의 벌레라 하셨다.
法然が念仏宗のはやりて一国を失わんとする因縁は慧心の往生要集の序よりはじまれり、師子の身の中の虫の師子を食うと仏の記し給うはまことなるかなや
법연의 염불종이 유행하여 한 나라를 잃게 하려는 인연은 혜심의 『왕생요집』 서문에서 시작되었느니라. 사자 몸속의 벌레가 사자를 먹는다고 부처께서 기록하신 것은 참으로 그러하도다.
또 같은 「선시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は真言・禅宗・浄土等の元祖を三虫となづく、又天台宗の慈覚・安然・慧心等は法華経・伝教大師の師子の身の中の三虫なり
니치렌은 진언 · 선종 · 정토 등의 원조를 세 벌레라 이름하느니라. 또 천태종의 자각 · 안넨 · 혜심 등은 법화경과 전교대사라는 사자 몸속의 세 벌레이니라.
법화경을 받드는 천태종 안에서 염불의 씨가 자랐다는 것, 그것이 「사자 몸속의 벌레」라는 말의 뜻이다. 밖에서 온 적보다 안에서 자란 벌레가 사자를 쓰러뜨린다. 『선택집』은 그 벌레가 다 자란 모습이었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선택집』의 근거는 경문이 아니라 인사의 설이며, 그 인사의 설마저 「준지사지」 네 글자로 넓혀 법화경을 버릴 쪽에 넣었다. 대성인이 「법화 · 진언」을 앞세우신 것은 권실상대의 논법이며, 그 끝은 말법에 유포할 문저의 삼대비법에 있다.
본문
之に就いて之を見るに、曇鸞・道綽・善導の謬釈を引いて、聖道・浄土、難行・易行の旨を建て、法華・真言惣じて一代の大乗、六百三十七部・二千八百八十三巻、一切の諸仏菩薩及び諸の世天等を以て、皆聖道・難行・雑行等に摂して、或は捨て、或は閉じ、或は閣き、或は抛つ。 此の四字を以て、多く一切を迷わし、剰え三国の聖僧、十方の仏弟を以て、皆群賊と号し、併せて罵詈せしむ。 近くは所依の浄土三部経の「唯除五逆誹謗正法」の誓文に背き、遠くは一代五時の肝心たる法華経の第二の「若し人信ぜずして、此の経を毀謗せば、乃至其の人命終して、阿鼻獄に入らん」の誡文に迷う者なり。
이 『선택집』에 나아가 이를 살펴보건대, 담란 · 도작 · 선도의 그릇된 해석(謬釈)을 끌어다 성도 · 정토, 난행 · 이행의 뜻을 세우고, 법화 · 진언을 비롯하여 모두 일대의 대승 637부 2,883권과 일체의 제불 · 보살 및 여러 세천 등을 모두 성도 · 난행 · 잡행 등에 거두어 넣어, 혹은 버리라(捨) 하고, 혹은 닫으라(閉) 하고, 혹은 제쳐 두라(閣) 하고, 혹은 내던지라(抛) 하였느니라. 이 네 글자로 널리 일체를 미혹하게 하고, 게다가 삼국(三国)의 성승(聖僧)과 시방의 불제자를 모두 군적(群賊)이라 부르며 아울러 욕하게 하였느니라. 가까이는 의지하는 정토 삼부경의 「오직 오역과 정법을 비방하는 자는 제외한다(唯除五逆誹謗正法)」는 서원의 글을 등지고, 멀리는 일대 오시의 간심(肝心)인 법화경 제2권의 「만약 사람이 믿지 아니하고 이 경을 훼방한다면 (내지) 그 사람은 목숨이 다하여 아비지옥에 들어가리라」는 경계의 글에 미혹한 자이니라.
어구 풀이
- 曇鸞・道綽・善導の謬釈담란 · 도작 · 선도의 그릇된 해석
- 법연이 의지한 중국 정토교 세 조사의 해석. 제2장에서 본 것처럼 「수호국가론」에서는 세 스승의 설이 「대부분 본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여기서는 「그릇된 해석」이라 하셨다. 앞은 너그럽게 보아 준(与) 말이고, 여기는 엄하게 따진(奪) 말이다.
- 法華・真言법화 · 진언
- 대성인 당시 히에이잔의 천태종은 자각대사 이래 진언의 영향을 깊이 받아 법화와 진언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그래도 히에이잔은 적문의 계단이 세워진 땅이고 불교계의 중심이었다. 권실상대의 자리에서, 권교인 정토종이 실교를 세운 천태종을 등지고 업신여긴 것을 방법이라 단정하신 것이다.
- 一代の大乗、六百三十七部・二千八百八十三巻일대의 대승 637부 2,883권
- 제2장에 인용한 『선택집』의 『정원입장록』 대목을 받는다. 법연은 이 모든 대승경을 『관경』의 「독송대승」 한 구절에 거두어 버리라고 하였다.
- 捨・閉・閣・抛사 · 폐 · 각 · 포
- 버리라 · 닫으라 · 제쳐 두라 · 내던지라. 『선택집』의 여러 대목에서 대성인이 뽑아 모으신 네 글자다. 「성도를 버리고」 「잡을 버리고」의 사(捨), 「정산의 문을 닫는다」의 폐(閉), 「잠시 성도문을 제쳐 두고」의 각(閣), 「잠시 여러 잡행을 내던지고」의 포(抛)다.
- 三国の聖僧、十方の仏弟삼국의 성승, 시방의 불제자
- 인도 · 중국 · 일본 세 나라의 성승과 시방세계의 부처의 제자들. 법연은 선도의 「군적」을 성도문의 사람들로 풀어, 용수 · 천친 · 남악 · 천태 · 전교까지 모두 그 안에 넣었다.
- 罵詈매리
- 욕하고 꾸짖음. 법연 자신이 욕했을 뿐 아니라 그 글을 읽은 염불자들이 아울러 욕하게 만들었다는 뜻에서 「아울러 욕하게 하였다(併せて罵詈せしむ)」라 하셨다.
- 唯除五逆誹謗正法오직 오역과 정법 비방을 제외한다
- 『무량수경』에 설한 법장비구의 사십팔원 가운데 제18원의 끝 구절. 염불하면 반드시 극락에 왕생한다고 서원하면서, 오역죄를 지은 자와 정법을 비방한 자만은 제외한다고 하였다.
- 一代五時の肝心일대 오시의 간심
- 석존 일대의 설법을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 법화열반의 다섯 시기로 나눈 천태대사의 교판에서, 그 가장 중요한 핵심인 법화경을 말한다.
- 法華経の第二법화경 제2권
- 여덟 권의 법화경 가운데 제2권. 비유품 제3의 끝부분 게송에 아래의 경계의 글이 있다.
- 阿鼻獄아비지옥
- 팔대지옥의 하나. 아비는 범어 Avīci의 음사로 무간(無間)이라 옮긴다. 고통을 받는 것이 끊임이 없으므로 무간지옥이라고도 한다. 일곱 겹의 쇠 성벽과 일곱 층의 쇠 그물에 둘러싸여 아비대성 · 무간대성이라고도 부른다. 대초열지옥 아래, 욕계의 맨 밑에 있으며 다른 일곱 지옥보다 천 배나 고통이 크다고 한다. 오역죄와 정법을 비방한 자가 떨어진다고 한다.
인용에서 단정으로 — 이 장의 자리
앞 장에서 『선택집』을 길게 인용한 데 이어, 이 장에서는 경문 가운데서 문증을 끌어 이를 파절하신다. 제2장이 법연 자신의 말로 그 주장을 드러낸 「현시(顕示)」의 장이라면, 제3장은 그 주장을 경문의 저울에 올려놓는 「단정(断定)」의 장이다.
짧은 본문은 세 마디로 되어 있다. 첫째 마디는 『선택집』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세 스승의 해석을 끌어 성도 · 정토, 난행 · 이행을 세우고, 법화 · 진언을 비롯한 일체의 대승경과 제불 · 보살 · 세천을 모두 버려야 할 쪽에 넣어 「사 · 폐 · 각 · 포」 했다는 것이다. 둘째 마디는 그 위에 더한 죄, 곧 삼국의 성승과 시방의 불제자를 군적이라 부르며 욕하게 한 죄를 든다. 셋째 마디는 두 경문으로 그 죄를 단정한다. 가까이는 법연 스스로 의지한 정토 삼부경, 멀리는 일대 오시의 간심인 법화경이다.
「그릇된 해석」과 「대부분 본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 여탈의 논법
본문 첫머리에 「담란 · 도작 · 선도의 그릇된 해석」이라 하셨다. 그런데 앞 장에서 본 「수호국가론」에서는 세 스승의 해석이 「대부분 본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둘은 서로 어긋나는가. 그렇지 않다. 여기서는 엄하게 따져서(奪) 논하신 것이고, 「수호국가론」에서는 법연의 그릇된 뜻에 견주어 너그럽게 보아 주어(与) 논하신 것이다.
같은 예가 「당세염불자무간지옥사」에도 있다. 너그럽게 보아 준 말씀은 이렇다.
浄土の三師に於ては書釈を見るに難行・雑行・聖道の中に法華経を入れたる意粗之有り。然りと雖も法然が如き放言の事之無し
정토의 세 스승은 그 글과 해석을 보면 난행 · 잡행 · 성도 가운데 법화경을 넣은 뜻이 대략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법연처럼 함부로 말한 일은 없느니라.
같은 어서에서 엄하게 따진 말씀은 이렇다.
三師並に法然此の義を弁えずして諸行の中に法華・涅槃並に一代を摂して末代に於て之を行ぜん者は千中無一と定むるは近くは依経に背き遠くは仏意に違う者なり
세 스승과 법연은 이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제행 가운데 법화 · 열반과 일대의 가르침을 거두어 넣어, 말대에 이를 행하는 자는 천 가운데 하나도 없다고 정하였으니, 가까이는 의지하는 경을 등지고 멀리는 부처의 뜻에 어긋나는 자이니라.
왜 너그럽게 보아 주며 논하시는가. 법연의 그릇된 뜻에 견주면 세 스승의 그릇된 뜻은 문제 삼을 것도 못 된다는 자리에서, 법연의 악을 더 뚜렷이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시 엄하게 따져 논하시는 것은, 법연의 그릇된 뜻이 세 스승의 그릇된 뜻 위에 세워진 것이므로, 세 스승의 잘못을 들면서 그 위에 선 법연의 그릇됨이 얼마나 방법에 철저한지를 보이기 위해서다. 어느 쪽이든 초점은 법연에게 맞추어져 있다. 앞의 「당세염불자무간지옥사」의 말씀이 「가까이는 의지하는 경을 등지고 멀리는 부처의 뜻에 어긋난다」로 맺어진 것도, 이 장 본문의 「가까이는 …, 멀리는 …」과 같은 짜임이다.
- 세 스승은 「대부분 본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수호국가론」
- 「법연처럼 함부로 말한 일은 없다」「당세염불자무간지옥사」, 109쪽
- 「담란 · 도작 · 선도의 그릇된 해석」입정안국론
- 「가까이는 의지하는 경을 등지고 멀리는 부처의 뜻에 어긋난다」「당세염불자무간지옥사」, 104쪽
「사 · 폐 · 각 · 포」 — 네 글자로 일체를 미혹하게 하다
참으로 법연은 중국 세 스승의 그릇된 해석에 한 겹을 더하여, 법화경을 비롯한 석존 일대의 성교를 정토 삼부경 밖은 모두 성도문 · 난행도 · 잡행으로 만들어 버리고, 일체경을 버리라 · 닫으라 · 제쳐 두라 · 내던지라 하는 「사 · 폐 · 각 · 포」의 네 글자로 위아래 만민을 미혹하게 한 장본인이다.
이 네 글자는 『선택집』에 한자리에 모여 있는 말이 아니다. 대성인이 제2장에 인용하신 여러 대목에서 하나씩 뽑아 모으신 것이다. 도작의 성도 · 정토 대목의 「성도를 버리고」와 선도의 정 · 잡 대목의 「잡을 버리고」에서 「사(捨)」, 『정원입장록』 대목의 「도리어 정산의 문을 닫는다」에서 「폐(閉)」, 결구의 「잠시 성도문을 제쳐 두고」에서 「각(閣)」, 같은 결구의 「잠시 여러 잡행을 내던지고」에서 「포(抛)」다. 흩어진 말을 네 글자로 묶어 보이시니, 『선택집』 한 권이 결국 무엇을 하라는 책인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이 네 글자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본문은 빠짐없이 적는다. 경으로는 「법화 · 진언을 비롯한 일대의 대승 637부 2,883권」, 부처와 보살로는 「일체의 제불 · 보살」, 신으로는 「여러 세천」이다. 경 · 부처 · 신 어느 것 하나 남기지 않았다. 제1단에서 주인이 밝힌 재난의 근본 원인이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었음을 떠올리면, 여러 세천까지 예배잡행이라 하여 버리게 한 이 가르침이 그 원인과 곧바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승을 군적이라 욕하다
게다가 법연은 법화경 등을 바르게 전한 성승과 시방의 부처의 제자를 군적이라 하여, 자기의 그릇된 뜻 위에 다시 성승을 욕하는 죄를 지었다.
선도가 말한 「군적」은 본래 흰 길의 비유에서, 극락으로 가는 좁은 흰 길을 걷는 나그네를 뒤에서 불러 되돌리는 도적 떼였다. 선도는 이를 「별해 · 별행의 악견의 사람」이라 하여 염불의 길을 흔드는 이들에 비유했다. 그런데 법연은 「사사로이 말하건대」 이것이 성도문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성도문에는 법화경이 들어 있고, 법화경을 넓힌 이는 용수 · 천친 같은 인도의 논사, 남악 · 천태 같은 중국의 대사, 전교 같은 일본의 대사다. 결국 삼국의 성승이 모두 도적 떼가 되어 버린 것이다. 본문의 「삼국의 성승, 시방의 불제자를 모두 군적이라 부르며 아울러 욕하게 하였다」는 이 일을 가리킨다.
가까이는 의지하는 경을 등지다 — 제18원의 「오직 제외한다」
이러한 법연의 그릇된 뜻에 대하여 대성인은 두 경문을 들어 파절하셨다. 하나는 그들이 의지하는 아미타의 삼부경 가운데서, 하나는 법화경 가운데서다.
먼저 그들이 의지하는 삼부경의 「오직 오역과 정법 비방을 제외한다」는 경문이다. 이것은 『무량수경』에 법장비구의 사십팔원 가운데 제18원으로 설해져 있다. 「설령 내가 부처가 될 때 시방의 중생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즐거워하며 내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여 열 번까지라도 염한다면, 만약 태어나지 못한다면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라. 오직 오역과 정법을 비방하는 자는 제외한다.」
법장비구의 사십팔원에 대해 조금 설명을 더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 헤아릴 수 없는 겁에 연등불 등 쉰세 부처가 나타난 뒤 세자재왕여래가 나와 민중을 교화했다. 그때 한 국왕이 그 부처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여 보리심을 일으키고, 마침내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장비구라 하였다. 그는 보살도를 행하여 자기의 불국토를 장엄하기를 원하여, 세자재왕불에게 지금까지 여러 부처가 어떻게 정토를 장엄했는지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세자재왕불은 이백일십억 부처의 앞선 예를 설했다. 법장비구는 다섯 겁 동안 불국토를 장엄하고 청정하게 하는 행을 사유하고 골라서, 그 부처 앞에 나아가 자기 국토를 장엄하고 깨끗이 하는 서원으로 사십팔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 제18원이 앞의 경문이며, 그 불국토는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의 불국토를 지난 곳에 있다고도 설해진다. 이것이 정토의 가르침에서 말하는 극락정토이고, 여기서 이 세상은 더러운 땅이며 죽은 뒤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한다는 가르침이 나왔다.
그런데 염불을 부르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그들의 유일한 근거인 바로 그 제18원 속에 「오직 오역과 정법 비방을 제외한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그들이 의지하는 삼부경은 석존이 「사십여 년에는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신 이전의 경이지만, 가령 이것을 바른 것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염불을 부른 사람이 백이면 백 모두 반드시 극락에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법장비구의 서원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는 것이다.
곧 오역죄를 지은 자와 정법을 비방한 자는 아무리 아미타를 염해도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없다. 이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들 자신의 의지하는 경에 밝혀져 있다. 그런데도 그 단서를 감추고 누구나 서방정토에 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을 퍼뜨린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자기에게 불리한 곳은 덮어 감추고 유리한 곳만 쓰는 모습이 여기에 있다. 더구나 법화경을 버리라 한 『선택집』의 가르침 자체가 정법 비방이므로, 그 가르침을 따라 염불하는 이는 의지하는 경의 서원에 의해서조차 왕생에서 제외되는 셈이다. 이것이 「가까이는 의지하는 정토 삼부경의 서원을 등진다」는 말씀의 뜻이다.
멀리는 법화경의 경계에 미혹하다 — 비유품의 경문
이어서 대성인은 둘째로, 엄하게 따지는 자리에서 법화경 비유품의 「만약 사람이 믿지 아니하고 이 경을 훼방한다면 (내지) 그 사람은 목숨이 다하여 아비지옥에 들어가리라」는 한 구절로 파절하셨다.
여기 인용된 비유품의 글에서 줄인 부분을 넣어 보면 다음과 같다.
若し人は信ぜずして此の経を毀謗せば則ち一切世間の仏種を断ぜん、或は復た顰蹙して疑惑を懐かん、汝は当に此の人の罪報を説くを聴くべし。若しは仏の在世若しは滅度の後に其れ斯の如き経典を誹謗すること有らん、経を読誦し書持すること有らん者を見て軽賤憎嫉して結恨を懐かん。此の人の罪報を汝今復た聴け、其の人は命終して阿鼻獄に入らん
만약 사람이 믿지 아니하고 이 경을 훼방한다면 곧 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으리라. 혹은 또 얼굴을 찌푸리며 의혹을 품으리라. 너는 마땅히 이 사람의 죄보를 설함을 들으라. 부처가 세상에 있을 때나 멸도한 뒤에나 이와 같은 경전을 비방하는 일이 있고, 경을 독송하고 서지하는 이를 보고 가벼이 여기고 천대하며 미워하고 시기하여 원한을 품는다면, 이 사람의 죄보를 너는 이제 다시 들으라. 그 사람은 목숨이 다하여 아비지옥에 들어가리라.
이 아래에는 정법을 비방한 이가 받는 고뇌와 비참한 모습이 자세히 설해져 있다. 그 어느 대목을 보아도 정법 비방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보여 준다. 정토 삼부경의 서원이 「가까이」의 증거라면 이 경문은 「멀리」의 증거다. 앞의 것은 상대가 스스로 의지하는 경으로 상대를 꺾는 것이고, 뒤의 것은 일대 오시의 간심인 법화경의 경계로 근본에서 판정하는 것이다. 앞의 것이 너그럽게 보아 준 논법이라면, 뒤의 것은 엄하게 따진 논법이다.
임종의 모습으로 본 현증
대성인은 염불의 무간지옥의 모습을 선도 · 법연 등 개조들의 임종 모습으로 가르치셨다. 「당세염불자무간지옥사」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而るに十悪五逆を作らざる当世の念仏の上人達並に大檀那等の臨終の悪瘡等の諸の悪重病並に臨終の狂乱は意を得ざる事なり。而るに善導和尚の十即十生と定め、又定得往生等の釈の如きは疑無きの処に、十人に九人往生すと雖も、一人往生せざれば猶不審発る可し。何に況や念仏宗の長者為る善慧・隆観・聖光・薩生・南無・真光等・皆悪瘡等の重病を受けて臨終に狂乱して死するの由、之を聞き又之を知る。其の已下の念仏者の臨終の狂乱其の数を知らず
그런데 십악 · 오역을 짓지 않은 지금 세상의 염불의 상인들과 큰 시주들이 임종에 악창 같은 여러 무거운 병에 걸리고 임종에 미쳐 어지러워지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선도화상이 「열이면 열이 다 태어난다」고 정하고 또 「반드시 왕생을 얻는다」고 해석한 것대로라면 의심이 없어야 할 터인데, 열 사람 가운데 아홉이 왕생하더라도 한 사람이 왕생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의문이 일어날 것이다. 하물며 염불종의 우두머리인 젠에 · 류칸 · 쇼코 · 삿쇼 · 난무 · 신코 등이 모두 악창 같은 중병에 걸려 임종에 미쳐 어지러워져 죽었다는 것을 듣기도 하고 알기도 한다. 그 아래 염불자의 임종의 광란은 그 수를 알 수 없느니라.
선도는 앞 장에서 본 것처럼 버드나무에 목을 매다 떨어져 칠일 동안 고통 속에 죽었다고 전하고, 법연은 죽은 뒤 칙명으로 묘가 파헤쳐지고 유해가 가모가와에 버려졌다고 전한다. 그 뒤를 이은 높은 지위의 제자들도 무거운 병으로 미쳐 어지러운 채 숨졌다고 대성인은 들으셨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이야말로 경문의 「목숨이 다하여 아비지옥에 들어가리라」 그대로의 모습이다. 종을 세운 개조가 그러하니 그 제자와 시주도 예외일 수 없다. 앞의 어서에서 「큰 시주들이 임종에 악창 같은 여러 무거운 병에 걸리고 임종에 미쳐 어지러워지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 하신 것은 이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 「염불무간지옥초」에서는 선도의 최후를 들어 이렇게 물으셨다.
浄土門に入つて師の跡を踏む可くば、臨終の時善導が如く自害有る可きか。念仏者として頸をくくらずんば、師に背く咎有る可きか如何
정토문에 들어가 스승의 발자취를 밟으려 한다면 임종 때 선도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겠는가. 염불자로서 목을 매지 않는다면 스승을 등진 허물이 있겠는가, 어떠한가.
물론 이 물음은 자해를 권하는 말씀이 아니다. 개조의 최후를 이상으로 받들면서 그 길을 따르지 않는 모순을 찌르시어, 그 가르침 자체가 사람을 살리는 법이 아님을 깨닫게 하려는 반어다. 대성인은 사개격언에서 「염불은 무간지옥」이라 한마디로 파절하셨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정법을 등지고 염불에 집착하는 것은 반드시 괴로운 과보를 부르는 길이라는 것이다.
정법 비방의 과보 — 「성인어난사」의 사벌
이 법화경의 경문을 더 넓혀 생각하면, 법연의 염불에 한하지 않고 말법의 법화경을 비방하는 모든 이에게 같은 도리가 미친다. 대성인 재세 당시 대성인에게 적대한 이들에게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성인어난사」에 이렇게 법벌의 현증을 말씀하셨다.
大田の親昌・長崎次郎兵衛の尉時綱・大進房が落馬等は、法華経の罰のあらわるるか。罰は総罰・別罰・顕罰・冥罰、四候。日本国の大疫病と大けかちとどしうちと他国よりせめらるるは総ばちなり、やくびやうは冥罰なり。大田等は現罰なり、別ばちなり
오타노 지카마사 · 나가사키 지로효에노조 도키쓰나 · 다이신보의 낙마 등은 법화경의 벌이 나타난 것인가. 벌에는 총벌 · 별벌 · 현벌 · 명벌의 넷이 있느니라. 일본국의 큰 역병과 큰 기근과 동족끼리의 싸움과 다른 나라에서 쳐들어오는 것은 총벌이요, 역병은 명벌이니라. 오타 등은 현벌이요 별벌이니라.
오타노 지카마사 · 나가사키 도키쓰나 · 다이신보 등은 아쓰하라 법난 때 대성인의 문하를 박해한 이들로, 낙마하여 고통 속에 죽었다고 대성인은 기록하셨다.
대성인 재세 중 대성인과 그 문하에 가장 격렬한 탄압을 가한 이는 당시의 권력자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平左衛門尉頼綱)였다. 요리쓰나는 가마쿠라 막부 안에서 군사와 경찰을 한 손에 쥔 자리에 있으며, 문영 8년(1271) 9월 12일의 다쓰노구치 법난과 이어진 사도 유배 등 여러 법난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냉혹하게 대성인과 문하를 탄압한 장본인이었다. 홍안 2년(1279)의 아쓰하라 법난도 그 최고 책임자는 요리쓰나였다.
탄압 당시에는 요리쓰나와 그 주변에 아무런 불행도 없었다. 오히려 대성인 입멸 3년 뒤인 홍안 8년(1285) 11월, 막부 안에서 세력을 다투던 아다치 야스모리 일파를 쳐서(시모쓰키 소동) 그 지위는 굳건해졌고, 집권 호조 씨를 능가한다고까지 일컬어졌다. 그러나 그 정치는 전횡과 공포의 정치였다고 전한다. 요리쓰나의 아들 무네쓰나 · 이이누마 스케무네, 아우 나가사키 미쓰쓰나 등이 갑자기 권력을 쥐고 중앙에 나섰다. 정응(正応) 6년(1293, 그해 8월 영인(永仁)으로 연호가 바뀜) 4월 13일 가마쿠라에 큰 지진이 일어나 장군의 저택과 겐초사 등 여러 절이 무너지고 불탔으며, 죽은 이가 2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보력간기(保暦間記)』에 따르면, 맏아들 무네쓰나가 「아버지 요리쓰나가 아우 이이누마 스케무네를 장군으로 세우려 한다」고 집권 사다토키에게 밀고했다고 한다. 그 음모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요리쓰나가 집권을 능가하는 권세를 가졌던 것은 확실한 듯하다. 같은 해 4월 22일, 마침내 사다토키가 군사를 보내 요리쓰나의 저택을 급습하여 요리쓰나와 스케무네는 자결하고, 맏아들 무네쓰나는 사도로 유배되었으며, 일족과 그 무리는 모두 붙잡혔다. 아쓰하라 법난으로부터 꼭 14년 뒤, 대성인 멸후 11년째의 일이다.
「성인어난사」에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過去現在の末法の法華経の行者を軽賎する王臣万民、始めは事なきやうにて終にほろびざるは候はず
과거와 현재의,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를 업신여기는 왕 · 신하 · 만민은,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하지만 끝내 망하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선시초」에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は閻浮第一の法華経の行者なり。此れをそしり此れをあだむ人を結構せん人は。閻浮第一の大難にあうべし
니치렌은 염부 제일의 법화경의 행자이니라. 이를 헐뜯고 이를 원수로 여기는 사람을 편드는 사람은 염부 제일의 큰 난을 만나리라.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불법은 어디까지나 엄정한 인과의 이법이며, 그 이치에 비추면 조금의 예외도 없다. 믿는 이에게는 큰 공덕이 있고, 까닭 없이 비방하는 이에게는 엄연한 벌이 있다.
비방하는 「정법」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정법을 비방한다고 할 때 그 「정법」이란 무엇인가.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그것은 남묘호렌게쿄이며, 결국 그것은 나 자신의 생명의 궁극의 당체에 다름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정법을 비방한다는 것은 자기 밖에 있는 무언가를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명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짓밟고 상처 입히고 무너뜨리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정법 비방의 벌이라 해도 그것은 부처가 내리는 것이 결코 아니며, 자기 일념의 인과에 의해 자기 생명으로 실감하는 것이다. 법화경 비유품이 「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으리라」고 한 것도 이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정법을 비방하는 것은 밖의 무언가를 해치는 일이기 전에, 자기 안의 부처의 종자를 스스로 끊는 일이다. 법연의 『선택집』이 「버리라 · 닫으라 · 제쳐 두라 · 내던지라」 한 것은 결국 사람들에게 자기 안의 부처의 종자를 버리고 닫으라고 가르친 것이 된다. 이것이 대성인이 법연을 「정법 비방의 원흉」이라 하신 근본의 까닭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법연의 죄는 법화경을 포함한 일대 성교를 「사 · 폐 · 각 · 포」의 네 글자로 버리게 하고 삼국의 성승을 군적이라 욕하게 한 데 있다. 그 죄는 법연 자신이 의지한 『무량수경』의 서원과 일대 오시의 간심인 법화경 비유품의 경계, 두 경문으로 단정된다. 비방하는 정법은 곧 자기 생명의 근본이며, 그 과보는 자기 일념의 인과로 받는다.
본문
是に於て代末代に及び、人、聖人に非ず。各冥衢に容つて、並びに直道を忘る。悲しいかな瞳矇を拊たず、痛ましいかな徒に邪信を催す。 故に上国王より下土民に至るまで、皆経は浄土三部の外に経無く、仏は弥陀三尊の外に仏無しと謂えり。
이리하여 시대는 말대에 이르고,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라. 저마다 어두운 갈림길(冥衢)에 들어가 다 함께 곧은 길(直道)을 잊었느니라. 슬프도다, 어두운 눈을 두드려 깨우는 이가 없고, 애통하도다, 헛되이 삿된 믿음만 일으키는구나. 그러므로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로는 토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이라 하면 정토 삼부경 밖에 경이 없고, 부처라 하면 미타 삼존 밖에 부처가 없다」고 여기느니라.
仍って伝教・義真・慈覚・智証等、或は万里の波涛を渉つて渡せし所の聖教、或は一の山川を廻って崇むる所の仏像、若しくは高山の巓に華界を建てて、以て安置し、若しくは深谷の底に蓮宮を起てて、以て崇重す。 釈迦・薬師の光を並ぶるや、威を現当に施し、虚空・地蔵の化を成すや、益を生後に被らしむ。故に国王は郡郷を寄せて、以て灯燭を明らかにし、地頭は田園を充てて、以て供養に備う。
그런데 전교 · 의진 · 자각 · 지증 등이 혹은 만 리의 파도를 건너 가져온 성교와, 혹은 온 산천을 돌며 숭앙한 불상을, 혹은 높은 산꼭대기에 화계(華界)를 세워 안치하고, 혹은 깊은 골짜기 밑에 연궁(蓮宮)을 세워 숭중하였느니라. 석가 · 약사가 빛을 나란히 하여 위덕을 현세와 당래에 베풀고, 허공장 · 지장이 교화를 이루어 이익을 이생과 후생에 입혔느니라. 그러므로 국왕은 군(郡)과 향(郷)을 기진하여 등촉을 밝히고, 지두는 전원(田園)을 대어 공양에 갖추었느니라.
而るを法然の選択に依つて、則ち教主を忘れて西土の仏駄を貴び、付属を抛って東方の如来を閣き、唯四巻三部の教典を専らにして、空しく一代五時の妙典を抛つ。 是を以て、弥陀の堂に非ざれば、皆供仏の志を止め、念仏の者に非ざれば、早く施僧の懐いを忘る。 故に仏堂零落して、瓦松の煙老い、僧房荒廃して、庭草の露深し。然りと雖も、各護惜の心を捨てて、並びに建立の思を廃す。 是を以て住持の聖僧、行いて帰らず、守護の善神、去つて来ること無し。是れ偏に法然の選択に依るなり。 悲しいかな、数十年の間、百千万の人、魔縁に蕩かされて、多く仏教に迷えり。傍を好んで正を忘る、善神怒を為さざらんや。 円を捨てて偏を好む、悪鬼便りを得ざらんや。如かず、彼の万祈を修せんよりは、此の一凶を禁ぜんには。
그러나 법연의 『선택집』에 의하여, 곧 교주를 잊고 서방 국토의 부처를 귀히 여기며, 부촉을 내던지고 동방의 여래를 제쳐 두고, 오직 네 권 세 부의 경전만을 오로지하여 헛되이 일대 오시의 묘전을 내던졌느니라. 이 때문에 미타의 당이 아니면 모두 부처께 공양하려는 뜻을 그치고, 염불하는 자가 아니면 일찍이 승려에게 보시하려는 마음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불당은 영락하여 기와 위에 이끼가 솔처럼 돋고 연기도 늙었으며, 승방은 황폐하여 뜰의 풀에 이슬이 깊으니라. 그런데도 저마다 보호하고 아끼는 마음을 버리고, 다 함께 건립하려는 생각을 버렸느니라. 이 때문에 머물러 지키던 성승은 떠나서 돌아오지 않고, 수호하는 선신은 떠나서 다시 오지 않느니라. 이는 오로지 법연의 『선택집』 때문이니라. 슬프도다, 수십 년 동안 백천만의 사람이 마연(魔縁)에 홀려 많이 불교에 미혹하였느니라. 방(傍)을 좋아하고 정(正)을 잊으니 선신이 어찌 노하지 않겠는가. 원(円)을 버리고 편(偏)을 좋아하니 악귀가 어찌 틈을 얻지 않겠는가. 저 만 가지 기도를 닦기보다는 이 일흉(一凶)을 금하는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어구 풀이
- 代末代に及び、人、聖人に非ず시대는 말대에 이르고 사람은 성인이 아니다
- 이미 말법에 들어 법의 바르고 그름을 스스로 가릴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탄식이다. 제1장에서 객이 「명왕 · 성인 · 현철」을 들어 승려들을 감싼 말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 冥衢명구
- 「명(冥)」은 빛이 없어 어두운 것, 「구(衢)」는 갈림길 · 네거리다. 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길에 헤매어 들어간 모습에 견준 말이다.
- 直道곧은 길
- 성불에 이르는 곧은 길. 무량의경의 「크고 곧은 길을 가니 어려움이 없다」는 말과 통하여, 법화경의 길을 가리킨다.
- 瞳矇を拊たず어두운 눈을 두드려 깨우지 않는다
- 「동(瞳)」은 눈동자, 「몽(矇)」은 사리에 밝지 못함이다. 「부(拊)」는 가볍게 두드림. 그릇된 스승에게 홀려 어두운 길에 든 중생의 눈을 뜨게 해 주는 이가 없다는 뜻이다.
- 弥陀三尊미타 삼존
- 아미타불과 그 협시인 관음보살 · 세지보살.
- 伝教전교
- 일본 천태종의 개조. 휘는 사이초(最澄). 신호경운 원년(767) 오미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오미 국분사의 교효(行表)에게 출가하고, 연력 4년(785) 도다이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 곧 히에이잔에 초암을 맺었다. 연력 23년(804) 역어승 의진을 데리고 당에 건너가 도수(道邃) · 행만(行満)에게 천태의 깊은 뜻을 배우고, 이듬해 돌아와 연력 25년(806) 일본 천태종을 열었다. 홍인 13년(822) 6월 4일 쉰여섯 살로 입적했으며, 입적 이레 뒤 대승계단 건립이 칙허되었다. 저서로 『법화수구』 · 『현계론』 · 『수호국계장』 · 『산가학생식』 등이 있다.
- 義真의진
- 헤이안 초기 천태종의 승려로 히에이잔 엔랴쿠사의 초대 좌주. 전교대사의 통역으로 함께 당에 건너갔다. 천장 원년(824) 초대 천태좌주가 되었다. 「보은초」에는 「의진 · 원징(円澄)은 제1 · 제2의 좌주이다. 제1의 의진만은 전교대사를 닮았다」고 하셨다.
- 慈覚자각
- 제3대 천태좌주 엔닌(円仁). 전교대사를 섬긴 뒤 당에 건너가 소실지경 등의 밀교를 가져와, 천태의 밀교를 진언종에 맞설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법화경과 밀교는 이치는 같지만 사상(事相)에서는 밀교가 뛰어나다는 「이동사승(理同事勝)」의 설에 섰다. 오대산의 염불삼매를 들여온 것이 뒤에 히에이잔 정토 신앙의 기원이 되었다. 대성인은 「보은초」에서 그를 「박쥐 같다」고 하여, 이름은 전교의 제자이나 법문은 전혀 제자가 아니라고 엄하게 파하셨다.
- 智証지증
- 제5대 천태좌주 엔친(円珍). 당에 건너가 밀교를 배우고, 엔닌이 진행한 천태의 밀교화를 더 밀고 나가 밀교가 이치와 사상 모두 법화경보다 뛰어나다는 「이사구승(理事俱勝)」의 입장에 섰다. 엔친 이후 엔닌 문하와 엔친 문하의 대립이 깊어져 10세기 말에 산문파 · 사문파로 갈라졌다.
- 華界・蓮宮화계 · 연궁
- 둘 다 승원 · 불당을 말한다.
- 釈迦・薬師석가 · 약사
- 히에이잔 서탑에 안치된 석가여래와 동탑 근본중당(지관원)에 안치된 약사여래를 가리킨다.
- 虚空・地蔵허공장 · 지장
- 히에이잔 요카와의 한냐다니에 안치된 허공장보살과 가이신다니에 모셔진 지장보살을 가리킨다.
- 現当・生後현당 · 생후
- 「현당」은 현세와 당래(내세), 「생후」는 이생과 후생. 히에이잔의 불보살이 현세와 내세 두 세상에 걸쳐 이익을 주었다는 뜻이다.
- 教主を忘れて西土の仏駄を貴び교주를 잊고 서방 국토의 부처를 귀히 여긴다
- 사바세계의 교주 석가모니불을 잊고, 서방 십만억 국토 저편에 있다는 아미타불을 받든다는 것이다. 「불타(仏駄)」는 부처(Buddha)의 음사다.
- 付属を抛って東方の如来を閣き부촉을 내던지고 동방의 여래를 제쳐 둔다
- 석존이 법화경을 부촉하신 일을 내던지고, 전교대사가 히에이잔 근본중당에 모신 동방 정유리세계의 약사여래를 제쳐 둔다는 것이다.
- 四巻三部네 권 세 부
- 『무량수경』 2권 · 『관무량수경』 1권 · 『아미타경』 1권, 모두 네 권인 정토 삼부경.
- 瓦松の煙老い기와 위의 이끼에 연기가 늙는다
- 「와송(瓦松)」은 건물이 낡아도 고치는 이가 없어 기와에 이끼가 끼어 멀리서 보면 소나무처럼 보이는 모습. 「연기가 늙는다」는 그곳에서 오르는 부엌 연기마저 가늘고 힘없이 영락한 모습이다.
- 魔縁마연
- 불도 수행을 방해하는 마의 인연. 여기서는 법연의 가르침을 가리킨다.
- 傍を好んで正を忘る방을 좋아하고 정을 잊는다
- 곁가지인 방편의 가르침(염불)을 좋아하고 바른 가르침(법화경)을 잊는다는 것이다.
- 円を捨てて偏を好む원을 버리고 편을 좋아한다
- 원만한 가르침인 법화경을 버리고, 한쪽에 치우친 가르침인 염불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 一凶일흉
- 하나의 흉악한 근본. 온갖 재난을 일으키는 단 하나의 원인, 곧 법연의 방법을 말한다.
「이 일흉을 금하라」 — 사자후와 그 대가
앞 장에서 법연의 『선택집』을 경문으로 파절하신 데 이어, 이 장에서는 정토종의 융성이 천태의 불법을 쇠망하게 하고 불교의 정통의 흐름을 흐려 어지럽혀 나라를 망치는 근원이 되었음을 지적하신다.
이 장 끝의 「저 만 가지 기도를 닦기보다는 이 일흉을 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삼재칠난의 원흉은 법연의 그릇된 뜻에 있으며 이를 금하는 것이 재난을 다스리는 요체라는 대사자후다. 당시 나라의 위아래가 모두 염불을 믿던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외치시는 대성인에게 큰 박해가 폭풍처럼 몰아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과연 대성인은 그해 8월 27일, 염불승들에게 부추김을 받은 무리에게 마쓰바가야쓰의 초암을 습격당하셨다. 이어 이듬해 홍장 원년(1261) 5월 12일에는 이즈로 유배되셨다. 그 뒤로도 고마쓰바라 법난, 다쓰노구치의 목 자리, 사도 유배 등 숱한 큰 난을 만나셨다. 그 모든 근원이 이 단언에 있었다. 그러나 대성인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셨다.
앞에서 본 것처럼 법연은 『선택집』에서 정토 삼부경 밖의 모든 경을 닫으라, 아미타 밖의 모든 부처를 버리라 하면서도, 히에이잔 대중이 염불 금지를 요구하자 곧바로 스승과 제자 190인이 연서하여 스스로를 단속하는 서약을 냈다. 대성인은 그보다 몇 배나 무서운 권력을 적으로 돌리면서도 평생 정의를 외치기를 그치지 않으셨다. 이것은 깊고 깊은 마음 밑바닥에서 나온 외침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 가르침을 듣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는 나라가 망하고 민중은 미래 영겁에 아비의 불길에 숨 막히게 된다. 그것을 건지기 위해 대성인은 스스로의 생명을 던지셨다.

「일흉」의 한 구절에 담긴 주사친의 삼덕
민중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자기밖에 없다는 강한 책임감은 주(主)의 덕이다. 사법의 미혹에서 깨워 바른 길을 가르치려는 위대한 지혜는 사(師)의 덕이다. 그리고 모든 민중을 자식처럼 가엾이 여겨 그들을 건지기 위해 몸과 목숨을 던지는 대자비는 친(親)의 덕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주사친의 삼덕이야말로 어본불이심의 증명이며, 「저 만 가지 기도를 닦기보다는 이 일흉을 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한 구절 속에서 주사친 삼덕을 갖추신 어본불의 경지를 우러를 수 있다.
「사도어서」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は此関東の御一門の棟梁なり、日月なり、亀鏡なり、眼目なり。日蓮捨て去る時、七難必ず起るべし
니치렌은 이 간토 어일문의 동량이요, 해와 달이요, 거울이요, 눈이니라. 니치렌이 버리고 떠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나리라.
「이 간토의 어일문」이란 당시의 위정자인 호조 일족이다. 그 동량이라는 것은 주군의 덕을, 해와 달 · 거울 · 눈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비추어 바르고 그름을 밝히는 스승의 덕을 나타낸다. 그리고 같은 어서의 이 대목은 「니치렌은 지금 세상에서 이 어일문의 부모이다」라는 말씀으로 이어져 부모의 덕을 밝히신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주사친 삼덕을 갖추신 대성인에 의하지 않고서는 삼재칠난을 피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시대는 말대에 이르고 사람은 성인이 아니다」 — 악의 지혜가 커지는 시대
본문 첫머리는 이미 시대가 말법에 들어, 불법의 바르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이 가득하여 헛되이 사법에 미혹하고 있음을 탄식하신 것이다.
대성인은 「감겁어서」에서, 사람이 나아갈수록 악의 지혜가 커진다는 것을 지적하시고, 그에 대해 어떤 불법이 구원의 손을 내밀어 왔는지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말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今の代は外経も、小乗経も、大乗経も、一乗法華経等も、かなわぬよとなれり。ゆえいかんとなれば、衆生の貪・瞋・癡の心のかしこきこと、大覚世尊の大善にかしこきがごとし
지금 세상은 외경도, 소승경도, 대승경도, 일승 법화경 등도 들어맞지 않는 세상이 되었느니라. 어째서인가 하면, 중생의 탐 · 진 · 치의 마음이 영리함이 대각세존께서 큰 선에 영리하심과 같기 때문이니라.
어서는 이어서 개는 코가 사람보다 영리하고, 올빼미는 귀가, 솔개는 눈이, 참새는 혀가, 용은 몸이 영리한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비유를 들고, 그처럼 말대 탁세의 탐욕 · 진에 · 우치의 영리함은 어떤 현인 · 성인도 다스리기 어렵다고 하신다. 그 까닭은 부처께서 탐욕은 부정관(不浄観)의 약으로, 진에는 자비관으로, 우치는 십이인연관으로 다스리셨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법문을 설하여 사람을 떨어뜨리고 탐 · 진 · 치를 더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そのやうに末代濁世の心の貪欲・瞋恚・愚癡のかしこさは、いかなる賢人・聖人も治めがたき事なり
그처럼 말대 탁세의 마음의 탐욕 · 진에 · 우치의 영리함은 어떤 현인 · 성인도 다스리기 어려운 일이니라.
방편의 가르침이 실교의 철리로 꾸며져 사람을 악도로 이끄는 가르침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악의 지혜」의 모습이다. 법연이 법화경을 성도문에 넣은 「준지사지」의 네 글자도 그 하나다. 악의 지혜를 깨뜨리려면 선의 큰 지혜가 필요하다. 같은 「감겁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しかれば代のをさまらん事は、大覚世尊の智慧のごとくなる智人世に有りて、仙予国王のごとくなる賢王とよりあひて
그러므로 세상이 다스려지는 것은, 대각세존의 지혜와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에 있어 선예국왕과 같은 어진 왕과 만나서 (함께 그릇된 스승을 다스릴 때 세상이 조금 다스려지리라).
「감겁어서」의 이 대목은 이어서 그릇된 스승을 다스리는 옛 예를 들지만, 선예국왕 등 열반경의 선례가 말법에서 어떤 뜻을 갖는지는 입정안국론 제7편과 제8편에서 다룬다. 대성인은 석존 이후의 방법 대치를 「그 보시를 멈추는 것」이라 밝히셨다.
그리고 「감겁어서」는 법화경 방편품의 「제법실상 …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능히 다 깨달아 아신다」를 들어 이렇게 맺으신다.
本末究竟と申すは本とは悪のね善の根、末と申すは悪のをわり善の終りぞかし。善悪の根本枝葉をさとり極めたるを仏とは申すなり
본말구경이라 함은, 본이란 악의 뿌리 · 선의 뿌리요, 말이라 함은 악의 끝 · 선의 끝이니라. 선악의 근본과 가지와 잎을 깨달아 다한 이를 부처라 하느니라.
곧 부처의 지혜인 남묘호렌게쿄의 대법으로 비로소 말법 중생의 탐 · 진 · 치의 악을 깨뜨릴 수 있다. 또 이 불법의 몸을 바로잡을 때 세간의 그림자는 저절로 바로잡힌다. 천태대사는 「일체 세간의 생업은 모두 실상과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였고,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仏法は体のごとし世間はかげのごとし体曲れば影ななめなり
불법은 몸과 같고 세간은 그림자와 같으니라. 몸이 굽으면 그림자도 기우느니라.
말법의 뜻 — 석존의 불법이 숨는 때, 대법이 나타나는 때
여기서 말법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자. 말법이란 「끝의 법」이라는 뜻이 아니라 「불법의 공력이 사라져 숨어 없어지는 때」를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석존의 불법을 가리킨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 의문이 생길 것이다. 석존의 불법이란 무엇인가, 불법은 석존이 설한 것인데 그 밖에 무엇이 있는가, 공력이 없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불법은 부처가 설한 가르침이지만, 그 부처에는 삼세시방의 부처라 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가 있고, 그 부처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법을 설한다. 석가불의 법은 법화경 28품이고, 니치렌 대성인의 법은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라는 것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의 입장이다. 또 법화경에는 과거 위음왕불의 상법 시대에 불경보살이 나타나 스물네 글자의 법화경을 설했다고 설해져 있다.
정법이란 그 부처와 깊은 인연이 있는 중생이 태어나는 시대로, 법이 바르고 깨끗하게 전해진다. 상법에 들어가면 태어나는 중생의 기연이 떨어져 불법이 형식으로 흐른다. 말법이 되면 태어나는 중생은 그 부처와 전혀 인연이 없어, 불법은 이름뿐이고 진지하게 수행하는 이도 없으며 건지는 힘도 없어진다.
그러나 부처는 삼세를 꿰뚫어 보아 그르침이 없다. 석존은 스스로 자기 법의 앞날을 예언하여 대집경에 이렇게 설했다.
我が滅後に於て五百年の中は解脱堅固・次の五百年は禅定堅固以上千年、次の五百年は読誦多聞堅固・次の五百年は多造搭寺堅固以上二千年、次の五百年は我が法の中に於いて闘諍言訟して白法隠没せん
나의 멸후 오백 년 동안은 해탈견고, 다음 오백 년은 선정견고 — 이상 천 년. 다음 오백 년은 독송다문견고, 다음 오백 년은 다조탑사견고 — 이상 이천 년. 다음 오백 년은 나의 법 가운데서 다투고 말다툼하여 백법이 숨어 없어지리라.
- 제1의 오백 년해탈견고
- 제2의 오백 년선정견고
- 제3의 오백 년독송다문견고
- 제4의 오백 년다조탑사견고
- 제5의 오백 년투쟁언송 · 백법은몰석존의 불법이 숨어 없어지는 때이자법화경 문저의 대법이 나타나 유포하는 때闘諍言訟して白法隠没せん
처음 천 년은 석존의 불법으로 민중이 해탈하고 선정을 얻으므로 정법이라 하고, 다음 천 년은 독송다문 · 다조탑사의 형식이 성하므로 상법이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제5의 오백 년은 불법이 숨어 없어지므로 말법이라 한다.
이처럼 말법의 시대는 석존의 불법이 숨어 없어지는 시대이지만, 동시에 법화경의 문저에 감추어진 대불법이 나타나 유포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법화경 종지용출품에서 상행보살을 우두머리로 하는 육만 항하사의 본화의 보살이 나타나고, 여래신력품에서 대법 유포의 부촉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법 · 상법 시대의 바른 스승들은 모두 말법을 천하게 여기고 싫어한 것이 아니라 그 대법을 그리워하고 사모했다. 중국 송나라 천태종의 승려 준식(遵式)은 스물두 살에 국청사에 들어가 일생을 천태의 교법 유포에 바쳐 문하가 천 명이 넘었다고 하는 고승인데, 그는 「처음 서쪽에서 전해진 것은 달이 돋는 것과 같고, 이제 다시 동쪽에서 돌아오는 것은 해가 떠오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서쪽에서 전해진 석존의 불법을 달에, 동쪽 일본에서 나타날 말법의 대법을 해에 견준 것이다.
상법 시대의 도사라 불린 천태대사는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고 하여 묘법이 유포할 말법의 세상을 그리워하였다. 전교대사도 「지금은 사람의 근기가 모두 바뀌어 소승의 근기가 전혀 없다. 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고 말법이 아주 가까이 있다. 법화일승의 근기는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라고 하여, 이 말에도 말법을 동경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말법의 불안과 정토교 — 이 세상을 버리는 가르침
그러나 불법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법이 오는 것을 헛되이 두려워했다. 실제로 말법에 들어간 헤이안 시대 말기의 일본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상감으로 몰아넣는 어지러운 세상이기도 했다. 귀족 문화의 퇴폐와 무기력, 무사 계급의 대두에 따른 전란의 연속, 잇따르는 천재지변, 승병의 횡포 등 불교계 자체도 문란이 극에 달했다.
그러니 이 인생을 무상하다 하고 이 세계를 더러운 땅이라 하는 현실 부정의 생각이 힘을 얻은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현세를 부정하고 서방정토를 동경하며, 자력의 법문보다 타력 본원의 이행을 외치는 정토교가 환영받은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문에 비추어 현실을 똑바로 보고 현실에 과감히 맞서 해결의 길을 외치신 분이 니치렌 대성인이다. 그리고 대성인은 말법 만년, 미래 영겁까지 유포할 대불법을 설하셨다. 본문의 「저마다 어두운 갈림길에 들어가 다 함께 곧은 길을 잊었다」는, 말법의 불안 속에서 사람들이 곧은 길인 법화경을 잊고 정토라는 갈림길로 들어간 모습을 그린 것이다.
히에이잔의 영화와 영락 — 성승이 떠나고 선신이 오지 않는다
본문의 둘째 마디는 법연 이전의 모습을 그린다. 전교대사와 의진, 그리고 자각 · 지증이 혹은 만 리의 파도를 건너 가져온 경전, 혹은 중국 각지를 돌며 숭앙한 불상을 높은 산꼭대기의 불당과 깊은 골짜기의 승방에 모셨다. 히에이잔 서탑의 석가여래와 동탑 근본중당의 약사여래는 빛을 나란히 하여 현세와 내세에 위덕을 베풀었고, 요카와 한냐다니의 허공장보살과 가이신다니의 지장보살도 이생과 후생에 이익을 주어 만민이 우러렀다. 그래서 국주는 한 군 · 한 향을 기진하여 등명료로 삼고, 지두는 논밭과 장원을 바쳐 공양했다. 법화경을 중심으로 한 히에이잔의 천태종은 이렇게 융성을 누렸다.
그런데 이 대목에 이름이 나란히 오른 네 사람의 평가는 같지 않다. 대성인은 「보은초」에서 초대 좌주 의진만은 전교대사를 닮았다고 하셨고, 제3대 자각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第三の慈覚大師は始めは伝教大師の御弟子に・にたり、御年四十にて漢土に・わたりてより名は伝教の御弟子・其の跡をば・つがせ給えども法門は全く御弟子にはあらず
제3의 자각대사는 처음에는 전교대사의 제자를 닮았다. 마흔 살에 중국에 건너간 뒤로는 이름은 전교의 제자로서 그 자취를 이으셨으나 법문은 전혀 제자가 아니니라.
여기서 전교 · 의진 · 자각 · 지증을 나란히 드신 것은, 법연 이전 히에이잔이 나라의 불법의 중심으로 받들어지던 모습을 그리기 위한 것이다. 자각 · 지증이 천태를 밀교로 기울게 한 잘못은 대성인이 다른 어서에서 엄하게 파하신 바이지만, 이 대목의 논지는 그 히에이잔조차 법연의 『선택집』 이후 버려지고 말았다는 데 있다.
본문의 셋째 마디가 그 변화다. 『선택집』에 의해 사람들은 교주 석존을 잊고 서방의 아미타불을 받들었으며, 석존의 부촉을 내던지고 전교대사가 모신 동방의 약사여래를 제쳐 두고, 오직 네 권 세 부의 정토 경전만을 믿고 일대 오시의 성교를 헛되이 내던졌다. 그래서 아미타의 당이 아니면 부처께 공양하려는 뜻을 버리고, 염불승이 아니면 아무 보시도 하지 않게 되었다. 불당은 영락하여 기와에 이끼가 솔처럼 돋고 오르는 연기도 가늘며, 승방도 황폐하여 우거진 뜰의 풀에 이슬이 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법을 지키고 아끼는 마음을 버리고 다시 세우려는 생각도 없어졌다.

- 전교 · 의진 · 자각 · 지증이 가져온 성교와 불상
- 석가 · 약사가 빛을 나란히 하고, 허공장 · 지장이 이익을 베풂
- 국왕은 군향을 기진하고 지두는 전원을 바침
- 교주를 잊고 서방의 부처를 귀히 여김 · 부촉을 내던지고 동방의 여래를 제쳐 둠
- 사권삼부만을 오로지함
- 미타의 당이 아니면 공양하지 않고 염불자가 아니면 보시하지 않음
- 불당 영락 · 승방 황폐
- 성승은 떠나 돌아오지 않고 선신은 떠나 다시 오지 않음
그 결과 「머물러 지키던 성승은 떠나서 돌아오지 않고, 수호하는 선신은 떠나서 다시 오지 않는다」. 이 구절은 제1단에서 주인이 밝힌 재난의 근본 원인, 곧 「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가므로,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나고 성인은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과 정확히 맞물린다. 제1단에서 원리로 말한 신천상(神天上)의 법문이, 여기서는 『선택집』 이후 일본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는 오로지 법연의 『선택집』 때문이다」라는 단정이 그래서 나온다.
석존의 불법과 대성인의 불법 — 종탈상대의 눈
본문에서 전교 · 의진 등이 법화경 적문을 넓혔다고 하지만,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로부터 받들어진 불법이었다. 본문에 「국왕은 군과 향을 기진하여 등촉을 밝히고, 지두는 전원을 대어 공양에 갖추었다」고 하신 그대로다. 이 점을 석존의 불법과 대성인의 불법의 대비로 살펴볼 수 있다. 대성인의 불법은 본인묘(本因妙)의 불법이고 석존의 불법은 본과묘(本果妙)의 불법이며, 불법의 본체는 대성인의 불법이고 석존의 불법은 그 그림자이자 자취(迹)로서, 대성인의 불법이 나타나기 위한 준비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의 입장이다.
먼저 교주를 보자. 석존은 인도 가비라위성의 태자로 태어나 아무 부족함 없는 소년 시절을 보내고, 열아홉 살에 인생의 무상을 알아 이를 해결하려고 출가하여 서른 살에 깨달음을 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대성인은 스스로 「바닷가 전다라(旃陀羅)의 자식」이라 하셨듯이 아와노쿠니의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그리고 평생 가난한 범부승의 모습으로 삼장사마 · 삼류의 강적과 싸우시면서, 어본불로서 모든 민중을 건질 대불법을 세우셨다. 범부의 몸 그대로 오직 법에 의해 어떤 권력도 무너뜨릴 수 없는 가장 존귀한 경애를 세울 수 있음을 보이신 것이다.
다음으로 설해진 법문을 보자. 석존의 법문은 일대 오십 년의 설법으로 팔만 법장에 이르고, 그 극설인 법화경도 본문과 적문을 합해 28품이나 되어 그 철학을 다 배우기는 쉽지 않다. 이에 대해 대성인의 불법은 일곱 글자의 법화경이며, 본존 · 제목 · 계단의 삼대비법에 일체의 법이 남김없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곧바로 법문의 궁극에 이르러 실천할 수 있다.
수행의 방법을 보면, 석존의 불법에서는 수지 · 독 · 송 · 해설 · 서사의 다섯 가지 수행을 실천해야 한다. 법화경 28품을 수지하는 것만도 어려운데, 이를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베껴 쓰려면 상당한 지능과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스스로 일하지 않고도 생계가 보장되는 왕족과 귀족 같은 이들이어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수행이었다.
이것은 표면만을 상식적으로 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리의 자리에서 보면 본이유선(本已有善)과 본미유선(本未有善), 숙탈(熟脱)과 하종익(下種益), 본인묘와 본과묘 등 여러 관점에서 논할 수 있으며, 그 결론으로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석존의 불법을 말법의 민중을 건지는 법이 아니라고 본다. 법연의 염불은 이 공백을 「오직 염불만」이라는 쉬움으로 메우려 했지만,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것은 민중을 무기력하게 하고 법화경을 버리게 하여 재난을 부르는 길이었다. 말법의 민중이 참으로 지닐 법은 본인묘의 삼대비법이라는 것이 대성인의 결론이다.
「일흉」 — 염불의 애음과 이 땅의 불국토
대성인이 염불을 「이 일흉」으로 들어 철저히 파절하신 것은 염불의 「애음(哀音)」, 곧 슬픈 가락을 파절하신 것이기도 하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정토의 가르침은 이 현실 세계를 더러운 땅으로 싫어하고 서방 십만억 국토라는 저편의 세계에 덧없는 꿈을 맡기는 현실 도피의 가르침이다. 염불의 애음이란 이 현실을 굳세게 살아가는 자세를 잃은, 어둡고 종말적인 울림이며 슬픔이 서린 생명의 가락이다. 대성인은 이 애음을 불행의 원흉으로 파절하셨다.
그것은 염불이 당시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염불이 가져오는 염세 사상과 종말관이야말로 사람들의 행복 건설의 의욕을 가로막는 근본악이기 때문이었다. 염불의 애음을 파절하지 않으면 입정안국을 실현할 수 없다. 말세의 종말적 울림과 입정안국은 근본적으로 서로 반대되기 때문이다.
대성인 재세 당시에는 삼재칠난이 나란히 일어나고 염불의 애음이 한 세상을 덮고 있었다. 그 속에서 대성인은 바로 이 현실 사회 안에 불국토를 세우고 상적광토를 열어야 한다고 외치셨다. 「일흉을 금하라」는 결론은 그래서 입정안국론 전체의 결론인 「삼계는 모두 불국이다」로 곧바로 이어진다. 서방의 정토를 바라는 가르침을 금하는 것은, 이 땅을 정토로 바꾸는 가르침을 세우는 일과 하나다.
이 장의 「방(傍)을 좋아하고 정(正)을 잊으니 선신이 어찌 노하지 않겠는가. 원(円)을 버리고 편(偏)을 좋아하니 악귀가 어찌 틈을 얻지 않겠는가」라는 두 구절도 같은 구조를 보인다. 정법을 잊으면 선신이 노하여 떠나고, 원교를 버리면 악귀가 틈을 얻는다. 제1단에서 원리로 말한 「선신이 떠나고 마 · 귀가 온다」가 여기서 법연의 『선택집』이라는 구체적인 원인과 이어져, 「저 만 가지 기도보다 이 일흉을 금하라」는 결론이 된다. 객이 제1단에서 늘어놓은 여러 기도 — 「이검즉시」의 염불, 「중병실제」의 약사경, 「병즉소멸 · 불로불사」의 법화경, 「칠난즉멸 · 칠복즉생」의 백좌백강, 진언의 오병의 물, 좌선입정, 칠귀신 · 오대력의 부적, 사각사경의 제사 — 가 모두 효험이 없었던 까닭이 이 한 구절로 정리된다. 만 가지 기도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흉을 금하는 것, 그것이 재난을 다스리는 근본이다.
이 결론을 들은 객은 다음 제5단에서 더욱 얼굴빛을 바꾸며, 석존이 정토 삼부경을 설하신 이래 담란 · 도작 · 선도 · 혜심이 모두 정토에 귀의했는데 어찌 법연을 비방하느냐고 맞선다. 그에 대해 주인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에서 염불이 나라를 어지럽힌 현증을 들어 답한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선택집』 이후 사람들은 교주와 부촉을 잊고 염불에만 공양하여, 성승과 선신이 떠나는 신천상의 모습이 일본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재난을 그치게 하는 길은 만 가지 기도가 아니라 정법 비방의 일흉을 금하는 데 있으며, 그 외침에 주사친 삼덕을 갖추신 어본불의 경지가 있다.
이 편을 맺으며
제4단의 네 장은 하나의 물음과 그 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구를 악비구라 하는가.」 객은 명왕이 믿고 현철이 우러르는 승려를 비방하는 것은 망언이라며 이름을 대라고 요구했다. 사람의 권위로 가르침을 재는 객의 논리에 대하여, 주인은 법으로 사람을 잰다. 그래서 주인은 법연이라는 이름을 대자마자 곧바로 『선택집』의 글을 길게 인용한다. 법연을 단죄하는 근거는 그의 인품이나 세평이 아니라 그가 남긴 글이다.
그 글이 보여 준 것은 도작 · 담란 · 선도가 법화경 이전의 권대승 안에서 나눈 성도와 정토, 난행과 이행, 잡행과 정행의 구분을 「이에 준하여 생각하면」 네 글자로 법화경과 진언에까지 넓혀, 637부 2,883권의 대승경과 일체의 제불 · 보살 · 세천을 모두 버려야 할 쪽에 넣었다는 사실이었다. 대성인은 그 흩어진 말을 「사 · 폐 · 각 · 포」의 네 글자로 묶어 보이시고, 법연이 스스로 의지한 『무량수경』 제18원의 「오직 오역과 정법 비방을 제외한다」와, 일대 오시의 간심인 법화경 비유품의 「그 사람은 목숨이 다하여 아비지옥에 들어가리라」로 그 죄를 단정하셨다. 여탈의 두 논법은 모두 법연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대성인은 그 가르침이 일본에 가져온 결과를 그리셨다. 사람들은 교주와 부촉을 잊고 염불에만 공양하여, 전교대사 이래의 히에이잔이 영락하고, 머물던 성승은 떠나 돌아오지 않으며 수호하는 선신은 떠나 다시 오지 않는다. 제1단에서 원리로 말한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성인이 떠난다」가 여기서 구체적인 역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하나다. 「저 만 가지 기도를 닦기보다는 이 일흉을 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한 구절은 재난을 다스리는 길이 기도를 더하는 데 있지 않고 근본의 방법을 끊는 데 있음을 밝힌 대사자후이며, 그 뒤 대성인이 겪으신 모든 법난의 출발점이었다. 대성인이 「법화 · 진언」을 앞세워 법연을 책하신 것은 권실상대의 논법이었고, 그 끝에는 말법의 민중이 지닐 법, 곧 문저의 삼대비법이 있다.
다음 입정안국론 제5편 「화한의 예로 보인 염불 망국」에서 객은 더욱 얼굴빛을 바꾼다. 석존이 정토 삼부경을 설하신 이래 담란은 사론의 강설을 버리고, 도작은 열반경의 넓은 업을 제쳐 두고, 선도는 잡행을 내던지고, 혜심은 염불의 한 행을 종으로 삼았는데, 어찌 그 뒤를 이은 법연을 비방하느냐는 것이다. 주인은 이에 대하여 주나라 말기와 당 무종 회창 연간의 일, 그리고 고토바인의 일을 들어, 염불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망친 현증을 중국과 일본의 역사에서 보인다. 이 편이 경문과 『선택집』의 글로 「무엇이 방법인가」를 밝혔다면, 다음 편은 역사의 현증으로 「그 방법이 무엇을 불렀는가」를 보인다.
더 읽기
- 입정안국론 제3편 「정법 비방의 유래와 망국의 증거」 —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으로 「악한 승려」의 모습을 세운 앞 편
- 입정안국론 제5편 「화한의 예로 보인 염불 망국」 — 염불이 나라를 망친 현증을 중국과 일본의 역사에서 찾는 다음 편
- 입정안국론 — 서강 「입정안국론을 펼치며」 — 저술의 유래와 십문구답의 전체 구조
- 선시초 — 혜심을 「사자 몸속의 벌레」라 하고, 말법의 대법 유포를 「때」의 관점에서 밝힌 어서
- 보은초 — 전교대사 이후 히에이잔의 좌주들과 자각 · 지증의 밀교화를 자세히 다룬 어서
- 오시팔교 — 「일대 오시의 간심」과 「사십여 년에는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의 교판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입정안국론」,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일본어판) 17–33쪽 — 인용한 다른 어서의 쪽은 본문 각 인용에 적었다
- 『묘법연화경』 비유품 제3, T9 no.262
- 『불설무량수경』(제18원),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 정토 삼부경
- 『대방등대집경』 — 오오백세의 경문
- 법연, 『선택본원염불집』 — 입정안국론과 「수호국가론」의 인용을 통해
- 담란, 『왕생론주』 · 도작, 『안락집』 · 선도, 『관무량수경소』 · 『왕생예찬』 · 겐신, 『왕생요집』 — 인용과 해설서를 통해
- 『보력간기(保暦間記)』 —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의 멸망 기사(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연구
- 立正大学日蓮教学研究所 編, 『昭和定本日蓮聖人遺文』, 身延山久遠寺, 1952–1959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On Establishing the Correct Teaching for the Peace of the Land」 수록)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