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팔교 五時八教

오시팔교

천태의 교판과 관법

五時八教「마하빠리닙바나 경」 · 『무량의경』 · 『묘법연화경』 신해품 · 『대반열반경』 · 『법화현의』 · 『천태사교의』 · 『어의구전』

10세기 중엽, 중국 남동쪽 오월국의 왕 전홍숙은 한 구절의 뜻을 알 수 없어 고승들에게 물었다. 그 구절은 천태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었으나, 정작 천태종의 책들은 당나라 말기의 전란과 불교 탄압을 거치며 중국 땅에서 거의 흩어져 사라진 뒤였다. 책이 바다 건너 고려에 남아 있다는 말을 들은 왕은 사신을 보냈다. 960년 무렵, 고려 광종은 그 요청에 답해 한 승려에게 천태의 전적을 들려 바다를 건너게 했다. 그가 제관(諦觀)이다. 제관은 천태산 아래 나계(螺溪)에서 의적(義寂)을 스승으로 섬기며 열 해를 머물다 그곳에서 입적했다. 전하는 바로는, 그가 늘 곁에 두던 낡은 상자에서 빛이 새어 나와 사람들이 열어 보니 한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천태사교의(天台四教儀)』다. 「천태지자대사는 오시팔교로써 동쪽으로 흘러온 일대의 성교를 판석하여 남김없이 다하였다.」 그 첫 문장이 이후 천 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불교를 배우는 이들이 처음 펼치는 지도가 되었다.

불교의 경전은 많다. 많을 뿐 아니라 서로 다르다. 어떤 경은 이 세상이 괴로움이니 욕망을 끊고 생사를 벗어나라고 하고, 어떤 경은 모든 것이 공하여 벗어날 생사도 없다고 하며, 어떤 경은 이 몸 그대로 부처가 된다고 한다. 어떤 경에서 성문은 깨달음의 길을 걷는 성자이고, 어떤 경에서는 「불에 그을린 씨앗」처럼 영원히 부처가 될 수 없는 자이며, 또 어떤 경에서는 미래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는다. 이 모든 경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한다. 모두 한 분의 부처, 석존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한 분의 부처가 왜 이토록 다른 가르침을 남겼는가. 그 가르침들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이며, 무엇이 방편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이 물음에 답하려는 시도를 교상판석(敎相判釋), 줄여서 교판(敎判)이라 한다. 「가르침의 모습(敎相)을 가르고 풀이한다(判釋)」는 뜻이다. 교판은 단지 경전의 목록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어느 경을 부처의 진실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수행의 길이 달라지고, 누가 부처가 될 수 있느냐는 답이 달라진다. 핵심 개념 「구식」에서 본 법상종의 「삼승이 진실이요 일승은 방편」도, 그에 맞선 전교의 「일승이 진실이요 삼승은 방편」도 교판의 다툼이었다.

교판은 중국에서 꽃피었다. 인도에서 수백 년에 걸쳐 차례로 성립한 경전들이, 중국에는 순서 없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기 때문이다. 5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남조와 북조의 학승들은 저마다의 교판을 세웠고, 그 수는 열 갈래에 이르렀다. 천태대사 지의는 그 모두를 검토하고 비판한 끝에, 부처의 일대 가르침을 설법의 때(時)와 가르치는 방식(化儀)과 가르침의 내용(化法)이라는 세 축으로 읽는 체계를 세웠다. 뒤의 천태종은 그것을 「오시팔교(五時八敎)」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다. 다섯 때와 여덟 가르침이다.

이 페이지는 오시팔교가 걸어온 길을 일곱 부로 나누어 읽는다. 1부는 석존의 설법 — 듣는 이에 따라 차례를 밟아 가는 가르침과, 「손바닥의 잎」. 2부는 경전이 말하는 경전의 순서 — 해의 비유, 다섯 가지 맛, 세 번 굴린 법륜, 「사십여 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집을 나간 아들의 비유. 3부는 남삼북칠 — 경전이 순서 없이 밀려온 중국에서 세워진 열 가지 교판. 4부는 천태의 오시 — 다섯 때와 다섯 맛,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연대표가 아닌 까닭. 5부는 팔교 — 처방의 형식인 화의사교와 약재의 맛인 화법사교, 그리고 그 여덟을 넘는 법화경. 6부는 니치렌 대성인과 오시팔교 — 「교상을 밝히지 않으면 문의가 빠진다」와 「여덟 가르침의 그물코를 넘은 벼리」. 7부는 오시팔교를 넘어 — 「오시팔교의 이익은 그림자와 같고 본문의 법문은 나무와 같다」는 법문과, 일대의 교법을 찧고 체로 쳐서 빚은 「묘법 한 알의 양약」이다.

  1. 석존「anupubbiṃ kathaṃ kathesi」차례를 따른 이야기를 설했다「etadeva bahutaraṃ yaṃ vo mayā abhiññāya anakkhātaṃ」내가 알고서도 너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2. 경전들「以方便力 四十餘年 未顯眞實」방편의 힘으로 사십여 년 동안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무량의경』)해의 비유 · 다섯 가지 맛 · 궁자의 비유
  3. 남북조남삼북칠 — 돈 · 점 · 부정, 열 갈래의 교판
  4. 천태「若弘法華 不明教相 文義有闕」법화경을 넓히면서 교상을 밝히지 않으면 문의에 빠짐이 있다(『법화현의』)오시와 팔교
  5. 제관「以五時八敎 判釋東流一代聖敎」오시팔교로써 동쪽으로 흘러온 일대의 성교를 판석하였다(『천태사교의』)
  6. 니치렌 대성인「此の経の題目は八教の網目に超えて大綱と申す物なり」이 경의 제목은 여덟 가르침의 그물코를 넘은 벼리라는 것「如来一代の教法を擣簁和合して妙法一粒の良薬に丸ぜり」여래 일대의 교법을 찧고 체로 쳐서 섞어 묘법 한 알의 양약으로 빚었다
도표 1 · 오시팔교 사상의 계보
1부 석존의 설법차례를 밟아 가는 가르침

차례를 따른 이야기

석존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곧바로 가장 깊은 법을 설하지 않았다. 초기 경전에는 거듭 되풀이되는 한 장면이 있다. 니간타(자이나교)의 재가 신자였던 장자 우빨리가 석존과 논쟁하러 왔다가 도리어 귀의하는 「우빨리 경」의 끝머리다.

Atha kho bhagavā upālissa gahapatissa anupubbiṃ kathaṃ kathesi, seyyathidaṃ — dānakathaṃ sīlakathaṃ saggakathaṃ, kāmānaṃ ādīnavaṃ okāraṃ saṃkilesaṃ, nekkhamme ānisaṃsaṃ pakāsesi. Yadā bhagavā aññāsi upāliṃ gahapatiṃ kallacittaṃ muducittaṃ vinīvaraṇacittaṃ udaggacittaṃ pasannacittaṃ, atha yā buddhānaṃ sāmukkaṃsikā dhammadesanā taṃ pakāsesi — dukkhaṃ, samudayaṃ, nirodhaṃ, maggaṃ.

그러자 세존께서는 장자 우빨리에게 차례를 따른 이야기를 설하셨다. 곧 보시의 이야기, 계의 이야기, 하늘에 나는 이야기, 그리고 감각적 욕망의 재난과 천박함과 더러움, 욕망을 떠남의 공덕을 밝히셨다. 장자 우빨리의 마음이 준비되고 부드러워지고 덮개가 걷히고 고양되고 맑아진 것을 아셨을 때, 세존께서는 부처님들께만 있는 뛰어난 법의 가르침, 곧 괴로움 · 그 원인 · 그 소멸 · 그 길을 밝히셨다.

『맛지마 니까야』 「우빨리 경」, MN 56

「차례를 따른 이야기(anupubbikathā)」. 남에게 베풀라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계를 지키라는 이야기, 그렇게 살면 하늘에 태어난다는 이야기로 나아가고, 다시 그 하늘의 즐거움조차 욕망의 그물이라는 이야기를 거쳐, 듣는 이의 마음이 「준비되고 부드러워졌을 때」 비로소 사성제를 설한다. 이 설법은 듣는 이의 마음을 보며 한 계단씩 올라간다. 석존의 설법은 처음부터 「누구에게, 언제, 어떤 순서로」를 품고 있었다. 뒤의 교판이 물은 것은 바로 이 「차례」였다.

물속의 연꽃

석존이 깨달음을 얻은 직후, 처음에는 법을 설하기를 망설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법은 깊고 미묘하여 탐욕에 물든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범천이 내려와 법을 설해 달라고 청하자 석존은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았다. 「성스러운 구함 경」은 그때 석존이 본 것을 이렇게 전한다.

Seyyathāpi nāma uppaliniyaṃ vā paduminiyaṃ vā puṇḍarīkiniyaṃ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ṃ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nimuggaposīni, appekaccāni … udakā accuggamma tiṭṭhanti anupalittāni udakena.

마치 청련 · 홍련 · 백련의 연못에서, 어떤 연꽃은 물속에서 나서 물속에서 자라 물 위로 나오지 못한 채 물속에 잠겨 자라고, … 어떤 연꽃은 물 위로 솟아올라 물에 젖지 않고 서 있는 것과 같았다.

『맛지마 니까야』 「성스러운 구함 경」, MN 26

어떤 이는 눈에 먼지가 적고 어떤 이는 많으며, 어떤 이는 근기가 날카롭고 어떤 이는 무디다. 그것을 본 석존은 「불사의 문은 열렸다(apārutā tesaṃ amatassa dvārā)」고 선언하고 설법의 길에 나섰다. 같은 법이라도 듣는 이는 같지 않다. 듣는 이가 같지 않으니 설하는 방식도 같을 수 없다. 뒤에 동아시아 불교가 「근기(根機)에 따라 설한다(隨機說法)」고 부른 원리가 여기에 있다.

차례를 따른 이야기
보시
계
하늘에 남
욕망의 재난
욕망을 떠남의 공덕
(마음이「kallacittaṃ muducittaṃ」준비되고 부드러워졌을 때)
사성제
괴로움원인소멸길

(「우빨리 경」, MN 56)

연못의 연꽃
물속에 잠긴 연꽃
물과 같은 높이의 연꽃
「udakā accuggamma tiṭṭhanti」물 위로 솟아 선 연꽃

(「성스러운 구함 경」, MN 26)

같은 법, 같지 않은 듣는 이근기에 따라 설한다

도표 2 · 차례를 따른 이야기와 연못의 연꽃

손바닥의 잎과 스승의 주먹

석존은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말하지 않았다. 『상윳따 니까야』의 「싱사빠 경」에서 석존은 꼬삼비의 싱사빠 숲에서 나뭇잎 몇 장을 손에 쥐고 비구들에게 묻는다. 내 손 안의 잎과 이 숲의 잎 가운데 어느 것이 많은가. 숲의 잎이 훨씬 많다고 답하자 석존은 말한다.

Evameva kho, bhikkhave, etadeva bahutaraṃ yaṃ vo mayā abhiññāya anakkhātaṃ. Kasmā cetaṃ, bhikkhave, mayā anakkhātaṃ? Na hetaṃ, bhikkhave, atthasaṃhitaṃ nādibrahmacariyakaṃ.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내가 알고서도 너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비구들이여, 나는 왜 그것을 말하지 않았는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이익을 주지 못하고 청정한 삶의 근본에 이바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윳따 니까야』 「싱사빠 경」, SN 56.31

석존이 설한 것은 손바닥의 잎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것, 곧 사성제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감추었다는 뜻이 아니다. 석존은 입멸을 앞두고 아난에게 「나는 안과 밖의 구별 없이 법을 설했다. 여래의 법에는 스승의 주먹(ācariyamuṭṭhi)이 없다」고 했다(「마하빠리닙바나 경」, DN 16). 제자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주먹 속에 쥐고 있다가 마지막에야 펴 보이는 비밀의 가르침은 없다는 것이다.

두 말씀은 어긋나 보이지만 하나의 태도를 가리킨다. 석존은 아는 것을 다 쏟아 놓지 않고, 듣는 이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골라 설했다. 감춘 것은 없으나 다 설하지도 않았다. 석존은 또 자신의 가르침을 강을 건너는 뗏목에 비유하여 「건너기 위한 것이지 붙잡기 위한 것이 아니다(nittharaṇatthāya, no gahaṇatthāya)」라고 했다(「뱀의 비유 경」, MN 22). 가르침은 듣는 이를 저편으로 건네주는 도구이며, 건넌 뒤에도 메고 다닐 짐이 아니다.

초기 경전의 이 태도는 뒷날 대승 경전에서 전혀 다른 무게를 얻는다. 2부에서 보듯이 『무량의경』은 석존이 「사십여 년 동안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말한다. 초기 경전에서 「말하지 않은 것」은 이익이 되지 않아 접어 둔 숲의 잎이었다. 대승의 교판에서 「아직 드러내지 않은 것」은 가장 깊은 진실, 마지막까지 아껴 둔 부처의 본뜻이 된다. 같은 「말하지 않음」이 정반대의 자리에 놓인 것이다. 교판의 역사는 이 두 「말하지 않음」 사이의 긴 거리를 걸어간 역사이기도 하다.

  • 손바닥의 잎「etadeva bahutaraṃ yaṃ vo mayā abhiññāya anakkhātaṃ」내가 알고서도 말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이익이 되지 않으므로(SN 56.31)
  • 스승의 주먹「natthānanda, tathāgatassa dhammesu ācariyamuṭṭhi」아난아, 여래의 법에는 스승의 주먹이 없다(DN 16)
  • 뗏목「nittharaṇatthāya, no gahaṇatthāya」건너기 위한 것이지 붙잡기 위한 것이 아니다(MN 22)
초기 경전말하지 않은 것 = 이익이 되지 않아 접어 둔 숲의 잎
『무량의경』「四十餘年 未顯眞實」사십여 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껴 둔 부처의 본뜻
도표 3 · 손바닥의 잎, 스승의 주먹, 뗏목
2부 경전이 말하는 경전의 순서

대승 경전은 스스로를 어디에 두는가

석존이 입멸하고 수백 년이 지나 대승 경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유마경』, 『열반경』, 『해심밀경』 같은 경전들이다. 이 경전들에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저마다 이전의 가르침을 의식하고, 그 가르침들 속에서 자기 자리를 매긴다는 것이다. 소승을 「작은 수레」라 부르고 자신을 「큰 수레」라 부르는 이름부터가 이미 하나의 교판이다. 동아시아의 교판은 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경전들이 스스로 남긴 이 자리매김에서 출발했다. 여기서는 뒤의 천태 오시팔교의 재료가 된 다섯 경의 말을 차례로 본다.

해는 먼저 높은 산을 비춘다 — 『화엄경』

『화엄경』은 석존이 깨달음을 이룬 바로 그 자리,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에서 설한 경으로 자리매김된다. 경의 「보왕여래성기품」은 부처의 지혜가 중생을 비추는 모습을 해돋이에 비유한다.

譬如日出 先照一切諸大山王 次照一切大山 次照金剛寶山 然後普照一切大地

비유하면 해가 떠오를 때, 먼저 모든 큰 산의 왕을 비추고, 다음에 모든 큰 산을 비추며, 다음에 금강의 보배 산을 비추고, 그런 뒤에 온 대지를 두루 비추는 것과 같다.

『화엄경』 보왕여래성기품, 불타발타라 역 60권본, T9 no.278

해는 하나다. 그러나 햇빛이 닿는 데는 차례가 있다. 가장 높은 산의 봉우리가 먼저 빛나고, 골짜기와 평지는 해가 높이 올라야 밝아진다. 부처의 지혜도 하나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 — 큰 보살 — 에게 먼저 닿고, 그 밖의 중생에게는 차례로 닿는다. 4부에서 보듯이 천태는 이 비유로 『화엄경』을 「해가 높은 산을 비추는 때」라 불렀다.

우유에서 제호로 — 『열반경』

『대반열반경』 성행품은 부처의 가르침이 나온 차례를 우유가 무르익어 가는 과정에 비유한다.

譬如從牛出乳 從乳出酪 從酪出生酥 從生酥出熟酥 從熟酥出醍醐 醍醐最上 … 佛亦如是 從佛出生十二部經 從十二部經出修多羅 從修多羅出方等經 從方等經出般若波羅蜜 從般若波羅蜜出大涅槃 猶如醍醐 言醍醐者 喩于佛性

비유하면 소에서 우유가 나오고, 우유에서 락(酪)이 나오고, 락에서 생소(生酥)가 나오고, 생소에서 숙소(熟酥)가 나오고, 숙소에서 제호(醍醐)가 나오니, 제호가 가장 뛰어난 것과 같다. … 부처도 그와 같아서, 부처에게서 십이부경이 나오고, 십이부경에서 수다라가 나오고, 수다라에서 방등경이 나오고, 방등경에서 반야바라밀이 나오고, 반야바라밀에서 대열반이 나오니, 제호와 같다. 제호라 하는 것은 불성을 비유한 것이다.

『대반열반경』 성행품, 담무참 역, T12 no.374

우유(乳) · 락(酪) · 생소(生酥) · 숙소(熟酥) · 제호(醍醐). 다섯 가지 맛, 곧 오미(五味)다. 우유를 발효시키고 졸이고 걸러 가며 점점 진하고 깨끗한 것을 얻는다. 맨 마지막의 제호는 가장 정제된 것이어서, 먹으면 모든 병이 낫는다고 했다. 경은 이것을 부처의 가르침이 나온 차례 — 십이부경 → 수다라 → 방등 → 반야 → 열반 — 에 겹쳐 놓았다. 앞의 맛은 버릴 것이 아니라 뒤의 맛을 낳는 바탕이다. 우유가 없이는 제호도 없다. 이 비유가 천태 오시의 이름, 곧 「오미」가 된다.

「從牛出乳 從乳出酪 從酪出生酥 從生酥出熟酥 從熟酥出醍醐 醍醐最上」소에서 우유가, 우유에서 락이, 락에서 생소가, 생소에서 숙소가, 숙소에서 제호가 나오니 제호가 가장 뛰어나다
우유(乳)
십이부경
락(酪)
수다라
생소(生酥)
방등경
숙소(熟酥)
반야바라밀
제호(醍醐)
대열반
「言醍醐者 喩于佛性」제호라 하는 것은 불성을 비유한 것이다(『대반열반경』 성행품)
도표 4 · 다섯 가지 맛 — 『열반경』

세 번 굴린 법륜 — 『해심밀경』

핵심 개념 「구식」에서 본 유식학의 근본 경전 『해심밀경』은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리를 매긴다. 무자성상품에서 승의생보살은 부처가 법륜을 세 번 굴렸다고 말한다. 첫째 때에는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성문승을 향하는 이들을 위해 「사제의 모습으로(以四諦相)」 법륜을 굴렸다. 둘째 때에는 대승을 닦는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이 자성이 없다는 것을 「감추어진 모습으로(以隱密相)」 굴렸다. 그리고 지금 셋째 때에는 모든 수레를 향하는 이들을 위해 같은 무자성을 「드러난 모습으로(以顯了相)」 굴린다. 앞의 두 법륜은 「위가 있고(有上) 받아들일 여지가 있으니(有容) 아직 완전한 뜻이 아닌 것(未了義)」이고, 셋째 법륜만이 「위가 없고(無上) 완전한 뜻(眞了義)」이다.

유(有)를 설한 아함, 공(空)을 설한 반야, 그리고 유도 공도 아닌 중도를 설한 『해심밀경』. 법상종은 이것을 유 · 공 · 중의 삼시교(三時敎)로 정리하고, 법화경도 셋째 때의 경에 넣되 그 「일승」의 말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이들을 이끄는 방편으로 보았다. 핵심 개념 「구식」에서 본 「삼승이 진실이요 일승은 방편」이라는 판정은 이 삼시교와 오성각별 위에 서 있었다. 6부에서 보듯이 이 삼시교를 천태가 깨뜨렸느냐는 물음은 뒤에 일본에서 날카로운 논쟁거리가 된다.

「사십여 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 『무량의경』

천태와 대성인의 교판에서 가장 무거운 한 구절은 『무량의경』 설법품에 있다. 『무량의경』은 법화경을 설하기 직전에 설한 경, 곧 법화경의 「여는 경(開經)」으로 받아들여졌다. 경에서 석존은 대장엄보살에게 이렇게 말한다.

我先道場菩提樹下 端坐六年 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以佛眼觀一切諸法 不可宣說 所以者何 知諸衆生性欲不同 性欲不同 種種說法 種種說法 以方便力 四十餘年 未顯眞實

나는 앞서 도량의 보리수 아래 여섯 해를 단정히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다. 부처의 눈으로 모든 법을 보니 펼쳐 말할 수 없었다. 왜 그런가. 모든 중생의 성품과 바람이 같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품과 바람이 같지 않으므로 갖가지로 법을 설했다. 갖가지로 법을 설하되 방편의 힘으로 하였으니, 사십여 년 동안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량의경』 설법품, 담마가타야사 역, T9 no.276

경은 이어서 그 사십여 년 동안 설한 것을 차례로 든다. 처음에 사제를 설해 성문을 구하는 이를 위하고, 다음에 십이인연을 설해 벽지불을 구하는 이를 위하고, 다음에 방등의 십이부경 · 마하반야 · 화엄해공을 설해 보살이 겁을 거쳐 닦는 행을 펼쳤다(初說四諦 … 次說方等十二部經 摩訶般若 華嚴海空 宣說菩薩歷劫修行). 1부에서 본 「차례를 따른 이야기」와 「말하지 않은 것」이 여기서 하나로 만난다. 석존의 설법에는 차례가 있었고, 그 차례의 끝에 아직 드러내지 않은 진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실을 드러내는 경이 바로 다음에 설해질 법화경이다.

「오직 일승의 법만 있다」 — 『법화경』 방편품

법화경 방편품은 그 진실을 이렇게 선언한다.

十方佛土中 唯有一乘法 無二亦無三 除佛方便說 … 正直捨方便 但說無上道

시방의 불국토 가운데 오직 일승의 법만 있고, 둘도 없고 셋도 없으니, 부처가 방편으로 설한 것은 제외한다. … 바르고 곧게 방편을 버리고 다만 위없는 도를 설한다.

『묘법연화경』 방편품, 구마라집 역, T9 no.262

성문승 · 연각승 · 보살승의 세 수레는 부처가 듣는 이의 근기에 맞추어 방편으로 설한 것이고, 진실은 모두를 부처로 이끄는 하나의 수레(一乘)뿐이다. 세 수레를 열어 하나의 수레를 드러낸다(開三顯一). 이 법문의 구조는 계보 三 「제법실상」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교판의 눈으로 보면, 법화경은 자신을 이전의 모든 가르침의 「목적지」로 놓는 경이다. 방편품은 「갖가지 길을 보이지만 실은 부처의 수레를 위한 것이다(雖示種種道 其實爲佛乘)」라고 한다. 이전의 경들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법화경으로 이끄는 길로서 제자리를 얻는다.

『화엄경』「先照一切諸大山王 … 然後普照一切大地」먼저 큰 산의 왕을 비추고 … 그런 뒤에 온 대지를 두루 비춘다= 빛이 닿는 차례
『열반경』우유 → 락 → 생소 → 숙소 → 제호= 무르익는 차례
『해심밀경』「以四諦相」사제의 모습「以隱密相」감추어진 모습「以顯了相」드러난 모습= 세 번 굴린 법륜 (법상의 삼시교)
『무량의경』「初說四諦 … 次說方等十二部經 摩訶般若 華嚴海空」처음 사제를 설하고 … 다음에 방등 · 반야 · 화엄을 설했다「四十餘年 未顯眞實」사십여 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방편의 차례
『법화경』「唯有一乘法 無二亦無三」오직 일승의 법만 있고 둘도 셋도 없다= 목적지
도표 5 · 경전이 말하는 경전의 순서

집을 나간 아들 — 신해품의 비유

법화경 신해품에는 뒤의 오시에 결정적인 재료가 된 비유가 있다. 방편품과 비유품에서 「성문도 부처가 된다」는 가르침을 들은 수보리 · 가전연 · 가섭 · 목건련의 네 큰 성문이 기쁨에 넘쳐, 자신들이 이해한 바를 비유로 아뢰는 대목이다. 이것을 장자궁자(長者窮子)의 비유라 한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버리고 달아난 아들이 있었다(捨父逃逝). 그는 오십 년 동안 다른 나라를 떠돌며 가난하게 살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헤매다 한 도시에 머물러 큰 부자가 되었다. 어느 날 품을 팔며 떠돌던 아들이 우연히 아버지의 집 문 앞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한눈에 아들을 알아보았으나, 아들은 위엄 있는 장자를 보고 겁에 질려 달아났다. 아버지가 곁의 사람을 보내 급히 붙잡아 오게 하자(卽遣傍人 急追將還), 아들은 잡혀 죽는 줄 알고 기절해 땅에 쓰러졌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이 낮고 비천함을 알고, 그를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방편을 썼다. 초라한 모습의 두 사람을 몰래 보내, 거름을 치우는 일에 품삯을 곱절로 주겠다며 아들을 데려오게 했다. 아버지는 스스로 영락과 좋은 옷을 벗고 때 묻은 옷을 입고서 거름 치우는 아들에게 다가가, 부지런히 일하라고 격려하며 차츰 가까워졌다. 이십 년이 지나자 아들은 장자의 집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게 되었다. 장자는 병이 들자 아들에게 집안의 모든 재물과 창고를 맡겨 관리하게 했다. 아들은 그것을 다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고 문밖의 초가에 머물렀다. 마침내 임종이 가까워지자 장자는 국왕과 대신과 친족을 모아 놓고 선언했다.

此實我子 我實其父 … 今吾所有一切財物 皆是子有

이 사람은 참으로 나의 아들이요, 나는 참으로 그의 아버지다. … 지금 내가 가진 모든 재물은 다 이 아들의 것이다.

『묘법연화경』 신해품

아들은 크게 기뻐하며 생각했다. 「나는 본래 구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이제 이 보배 창고가 저절로 이르렀다.」 네 성문은 이 비유를 마치며 말한다. 「위없는 보배 무더기를 구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얻었습니다(無上寶聚 不求自得).」

비유의 장자는 부처이고, 아들은 성문, 곧 중생이다. 아들은 처음부터 장자의 아들이었다. 다만 그 자신이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며, 거름을 치우는 일부터 시작해 창고를 맡기는 데까지 한 걸음씩 이끌었다. 1부에서 본 「차례를 따른 이야기」가 여기서 한 편의 긴 이야기가 된다. 4부에서 보듯이, 천태는 이 비유의 장면들을 오시에 하나하나 배당했다.

들판 사이로 굽이진 흙길이 이어지고, 길 끝에 기와지붕을 얹은 큰 대문이 두 짝 문을 활짝 열어 둔 채 서 있으며, 그 뒤로 담장과 저택 지붕, 큰 나무들과 먼 산, 하늘에 둥근 달이 뜬 금박 수묵화
그림 1 · 문을 열어 둔 큰 저택
  1. ①「捨父逃逝」아버지를 버리고 달아나다오십 년의 떠돌이
  2. ②「卽遣傍人 急追將還」곁의 사람을 보내 급히 붙잡아 오게 하다아들이 놀라 기절하다
  3. ③거름을 치우는 일초라한 두 사람을 보내 데려오다 · 아버지도 때 묻은 옷으로
  4. ④집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다 → 창고와 재물을 맡아 관리하다그러나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다
  5. ⑤「此實我子 我實其父」이 사람은 참으로 나의 아들이요 나는 참으로 그의 아버지다「今吾所有一切財物 皆是子有」지금 내가 가진 모든 재물은 다 이 아들의 것이다
「無上寶聚 不求自得」위없는 보배 무더기를 구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얻었다(『묘법연화경』 신해품)
도표 6 · 집을 나간 아들 — 신해품의 다섯 장면
3부 남삼북칠순서 없이 밀려온 경전들

들어온 순서와 설해진 순서

교판이 중국에서 꽃핀 데에는 분명한 까닭이 있었다. 인도에서 경전들은 수백 년에 걸쳐 차례로 성립했지만, 중국에는 그 성립의 순서와 상관없이 번역자가 손에 넣은 순서대로 들어왔다. 2세기에 안세고가 아함 계통의 경전과 선정의 경전을 옮겼고, 같은 무렵 지루가참이 『도행반야경』 같은 대승 경전을 옮겼다. 3세기 말에 축법호가 『정법화경』을 옮겼다. 5세기 초 구마라집이 장안에서 『대품반야경』 · 『묘법연화경』 · 『유마경』 · 『대지도론』 · 『중론』을 잇달아 옮겼고, 그 직후 불타발타라가 『화엄경』 60권을, 담무참이 『대반열반경』 40권을 옮겼다. 유식의 『해심밀경』은 6세기 초 보리류지가 『심밀해탈경』으로 옮긴 뒤, 7세기 중엽 현장이 다시 옮겼다.

중국의 학승들 앞에는 이 경전들이 한꺼번에 펼쳐져 있었다. 모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시작하는 부처의 말씀이었으나, 어떤 경은 아라한을 성자의 끝으로 기리고, 어떤 경은 아라한을 꾸짖으며, 어떤 경은 모든 것이 공하다고 하고, 어떤 경은 부처가 상주한다고 했다. 이것을 어떻게 한 분의 부처의 말씀으로 이해할 것인가. 경전이 들어온 순서가 설해진 순서가 아니라면, 설해진 순서는 무엇인가. 교판은 이 물음에서 나왔다.

이 물음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구마라집의 제자 도생(道生)은 법현이 옮긴 6권본 『니원경』을 읽고, 경문에 「일천제(선근이 끊어진 이)는 불성이 없다」고 되어 있는데도 「일천제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문에 어긋난다 하여 그는 승단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몇 해 뒤 담무참이 옮긴 40권본 『대반열반경』이 남쪽에 전해지자, 거기에 일천제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대목이 있었다. 어떤 경을 먼저 손에 넣느냐에 따라 「누가 부처가 될 수 있는가」의 답이 바뀌었던 것이다. 경전 전체의 질서를 세우는 일은 학문의 취미가 아니라, 성불의 근거를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1. 2세기안세고:아함 계통의 경 · 선정의 경지루가참:『도행반야경』
  2. 3세기 말축법호:『정법화경』
  3. 5세기 초구마라집:『대품반야경』 · 『묘법연화경』 · 『유마경』 · 『대지도론』 · 『중론』불타발타라:『화엄경』 60권법현:6권본 『니원경』담무참:『대반열반경』 40권
  4. 7세기 중엽현장:『해심밀경』 · 『성유식론』
들어온 순서 ≠ 설해진 순서교판의 물음도생: 6권본에는 「일천제는 불성이 없다」40권본에서 일천제의 불성이 드러나다
도표 7 · 경전이 들어온 순서

돈 · 점 · 부정 — 남쪽의 공통된 틀

5세기 남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교판은 도량사 혜관(慧觀)의 것이었다. 혜관은 부처의 가르침을 먼저 둘로 나누었다. 깨달은 직후 곧바로 깊은 법을 설한 돈교(頓敎) — 『화엄경』 — 와, 얕은 데서 깊은 데로 차츰 이끈 점교(漸敎)다. 그리고 점교를 다시 다섯 때로 나누었다. 유상교(아함) · 무상교(반야) · 억양교(유마 · 사익) · 동귀교(법화) · 상주교(열반)다. 이것이 이교오시(二敎五時)다. 이 교판에서 법화경은 「삼승이 하나로 돌아간다」는 넷째 때의 경이고, 아직 부처의 상주를 밝히지 못한 경으로서 『열반경』 아래에 놓였다. 이 판정과 그에 대한 천태의 반론은 핵심 개념 「무상」 4부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남조의 교판들은 대개 이 틀을 공유했다. 부처의 가르침을 돈 · 점 · 부정(不定)의 세 가지 방식으로 나누는 틀이다. 돈은 『화엄경』, 점은 아함에서 열반까지 차례로 설한 가르침, 그리고 부정은 돈에도 점에도 들지 않으면서 불성의 상주를 밝힌 『승만경』 · 『금광명경』 같은 경이었다. 남조의 학승들이 서로 갈라진 것은 이 「점」을 몇 때로 나누느냐였다. 5부에서 보듯이 천태의 화의사교 — 돈 · 점 · 비밀 · 부정 — 는 바로 이 남쪽의 틀을 이어받아 고쳐 세운 것이다.

양나라에 이르러 이 남조 교학의 정점에 선 이가 광택사의 법운(法雲)이었다. 그는 『법화경』을 깊이 강의하여 「법화경의 대가」로 불렸지만, 법화경이 아직 부처의 상주를 온전히 밝히지 못했다고 보았다. 법화경을 가장 깊이 연구한 사람이 법화경을 열반경 아래에 둔 것이다. 지의의 『법화문구』는 곳곳에서 광택의 해석을 불러내어 비판한다.

북쪽의 교판들

북조에서는 다른 갈래의 교판들이 세워졌다. 보리류지는 부처의 가르침을 반자교(半字敎, 소승)와 만자교(滿字敎, 대승)의 둘로 나누었다. 글자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반쪽 글자부터 가르치고 나중에 온전한 글자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핵심 개념 「구식」에서 본 지론종 남도의 혜광(광통율사)은 사종(四宗)을 세웠다. 인연종(설일체유부의 아비달마) · 가명종(『성실론』) · 광상종(반야와 『중론』 — 모든 모습이 거짓이라는 가르침) · 상종(『열반경』 · 『화엄경』 — 불성의 상주를 밝힌 가르침)이다. 이 밖에도 사종에 『화엄경』의 법계종을 더한 오종, 다시 진종 · 원종을 더한 육종, 대승을 유상과 무상의 둘로 나눈 이종대승, 그리고 부처는 오직 한 소리로 설했으나 듣는 이가 저마다 달리 들었을 뿐이라는 일음교(一音敎)가 있었다.

천태대사 지의는 『법화현의』 권10상에서 이 모든 교판을 열 가지로 정리했다. 남쪽의 셋과 북쪽의 일곱, 곧 남삼북칠(南三北七)이다. 남쪽의 셋은 모두 돈 · 점 · 부정의 틀 위에서 점교를 셋으로 나눈 삼시, 넷으로 나눈 사시, 다섯으로 나눈 오시였다. 북쪽의 일곱은 오시 · 반만 · 사종 · 오종 · 육종 · 이종대승 · 일음이었다. 지의는 이 열 가지를 하나하나 들어 그 취할 것과 버릴 것(去取)을 가렸다.

남쪽의 셋공통 틀: 돈 · 점 · 부정
  • ①삼시점교를 유상 · 무상 · 상주의 셋으로
  • ②사시유상 · 무상 · 동귀 · 상주
  • ③오시유상 · 무상 · 억양 · 동귀 · 상주(혜관 등)
북쪽의 일곱
  • ④오시인천교를 더한 다섯 때
  • ⑤반만반자교(소승) · 만자교(대승)(보리류지)
  • ⑥사종인연종 · 가명종 · 광상종 · 상종(혜광)
  • ⑦오종사종 + 법계종
  • ⑧육종오종 + 진종 · 원종
  • ⑨이종대승유상대승 · 무상대승
  • ⑩일음교부처는 한 소리로 설하고 듣는 이가 달리 들었다

대부분의 교판에서 법화경은 열반경 · 화엄경 아래에 놓였다(『법화현의』 권10상)

도표 8 · 남삼북칠 — 열 가지 교판

지의가 본 남북의 공통된 잘못

열 갈래의 교판은 서로 달랐지만, 지의가 보기에 하나의 공통된 결론에 이르러 있었다. 대부분이 법화경을 열반경이나 화엄경 아래에 두었다는 것이다. 법화경은 「삼승이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은 밝혔지만 부처의 상주는 아직 밝히지 못한 경, 혹은 화엄처럼 곧바로 깊은 법을 설한 경에는 미치지 못하는 점교의 한 단계였다.

지의의 비판은 둘로 모인다. 첫째, 남북의 교판들은 경전의 겉모습 — 무엇을 설했느냐 — 만 보고, 그 가르침이 듣는 이를 어떻게 이끌어 어디로 데려가느냐는 부처의 뜻을 보지 않았다. 법화경도 이미 수량품에서 부처의 영원함을 밝혔고, 무엇보다 법화경은 이전의 모든 가르침을 하나의 수레로 열어 모으는 「목적지」다. 둘째, 그들은 한 가지 기준 — 있음과 공함, 반쪽과 온전함, 혹은 상주 — 만으로 경전을 줄 세웠다. 그러나 부처의 가르침은 한 가지 잣대로 줄 세울 수 없다. 설한 때와, 설한 방식과, 설한 내용을 함께 보아야 한다. 이것이 4부와 5부에서 볼 오시와 팔교, 세 축의 교판이다.

남조의 공통 틀돈(화엄) · 점(아함 → 열반) · 부정(승만 · 금광명)= 설하는 방식 하나의 축 + 점교 안의 시간 순서
지의의 비판
한 가지 잣대로 줄 세움법화경을 열반 · 화엄 아래에 둠
천태의 틀 — 세 축
  • 설한 때 = 오시
  • 설한 방식 = 화의사교(돈 · 점 · 비밀 · 부정)
  • 설한 내용 = 화법사교(장 · 통 · 별 · 원)
법화경 — 팔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팔교를 여는 경
도표 9 · 남쪽의 틀에서 천태의 틀로
4부 천태의 오시다섯 때와 다섯 맛

「법화경을 넓히면서 교상을 밝히지 않으면」

천태대사 지의(538~597)는 대소산에서 남악 혜사에게 법화삼매를 배운 뒤, 진나라의 도읍 금릉의 와관사에서 여덟 해 동안 법화경을 강의했고, 천태산에 들어가 수행했으며, 만년에는 형주의 옥천사에서 『법화현의』와 『마하지관』을 강설했다. 제자 장안대사 관정이 이 강의를 받아 적었다. 『법화현의』는 「묘법연화경」이라는 다섯 글자의 제목을 이름 · 체 · 종 · 용 · 교의 다섯 측면(오중현의)으로 풀이한 책이고, 그 마지막 다섯째가 「교상(敎相)」, 곧 이 경이 부처의 일대 가르침 가운데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밝히는 부분이다. 지의는 그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若弘餘經 不明教相 於義無傷 若弘法華 不明教相 文義有闕

만약 다른 경을 넓힌다면 교상을 밝히지 않더라도 뜻에 손상이 없다. 그러나 만약 법화경을 넓히면서 교상을 밝히지 않는다면 글과 뜻에 빠짐이 있다.

천태대사 지의 『법화현의』 권10상, T33 no.1716

다른 경은 그 경 하나만 읽어도 뜻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법화경은 그렇지 않다. 법화경은 「사십여 년 동안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말로, 「세 수레를 열어 하나의 수레를 드러낸다」는 말로, 이전의 모든 가르침을 전제하고 그것들을 하나로 모으는 경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무엇이 설해졌는지 모르면, 법화경이 무엇을 열고 무엇을 드러내는지도 알 수 없다. 교판은 법화경을 읽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법화경을 읽는 일 그 자체의 일부다. 6부에서 보듯이 대성인은 이 구절을 「일대성교대의」에서 그대로 인용하신다.

다섯 때

지의가 세운 오시는 석존의 일대 설법을 다섯 때로 나눈다. 뒤에 제관의 『천태사교의』가 정리한 바를 따라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는 화엄시(華嚴時)다.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룬 직후, 깨달은 그대로의 경지를 큰 보살들에게 설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성문들은 「귀머거리 같고 벙어리 같아(如聾如啞)」 알아듣지 못했다. 이것은 듣는 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본 설법이라 하여 의의(擬宜)라 한다.

둘째는 아함시(阿含時), 혹은 녹원시(鹿苑時)다. 화엄의 법을 알아듣지 못한 이들을 위해, 석존은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부터 다섯 비구에게 사제를 설한 것을 비롯해 아함의 소승 가르침을 설했다. 낮은 데서 시작하여 이끌어 들인다 하여 유인(誘引)이라 한다.

셋째는 방등시(方等時)다. 『유마경』 · 『사익경』 · 『능가경』 · 『승만경』 · 『금광명경』 같은 대승 경전을 설해, 소승의 깨달음에 머문 이들을 꾸짖고 대승을 사모하게 했다. 『유마경』에서 유마거사가 사리불 같은 큰 성문들을 차례로 꾸짖는 장면이 그 전형이다. 꾸짖어 이끈다 하여 탄가(彈呵)라 하고, 작은 것을 부끄러워하고 큰 것을 사모하게 한다 하여 치소모대(恥小慕大)라 한다.

넷째는 반야시(般若時)다. 여러 『반야경』을 설해, 모든 것이 공함을 밝히고 대승과 소승을 가르는 집착까지 씻어 냈다. 씻어 걸러 낸다 하여 도태(淘汰)라 한다. 『반야경』에서 석존은 성문인 수보리에게 보살을 위해 반야를 설하게 한다. 성문이 부처를 대신해 대승의 법을 설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침을 맡기고 재물을 넘겨준다 하여 전교부재(轉敎付財)라 한다.

다섯째는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다. 법화경에서 석존은 마침내 세 수레를 열어 하나의 수레를 드러내고, 성문도 부처가 된다고 수기했다. 이전의 모든 가르침을 열어 하나로 모은다 하여 개회(開會)라 한다. 『열반경』은 법화경에서 미처 거두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입멸의 자리에서 다시 설한 경이어서, 큰 수확 뒤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다 하여 군습(捃拾)의 가르침이라 한다.

  1. ① 화엄시깨달은 직후 · 큰 보살에게성문은「如聾如啞」귀머거리 같고 벙어리 같다의의(擬宜)시험해 봄
  2. ② 아함시(녹원시)녹야원에서 · 소승의 사제유인(誘引)이끌어 들임
  3. ③ 방등시『유마경』 · 『승만경』 등 · 소승을 꾸짖어 대승을 사모하게탄가(彈呵)꾸짖음치소모대(恥小慕大)작은 것을 부끄러워하고 큰 것을 사모함
  4. ④ 반야시여러 『반야경』 · 공으로 집착을 씻음도태(淘汰)전교부재(轉敎付財)수보리가 반야를 설함
  5. ⑤ 법화열반시법화경: 개삼현일 · 이승작불『열반경』: 떨어진 이삭을 줍는 군습(捃拾)개회(開會)

(『천태사교의』의 정리)

도표 10 · 다섯 때 — 오시

다섯 맛과 집을 나간 아들

지의는 이 다섯 때를 2부에서 본 두 비유와 겹쳐 놓았다. 하나는 『열반경』의 다섯 가지 맛이다. 화엄시는 소에서 갓 나온 우유(乳), 아함시는 락(酪), 방등시는 생소(生酥), 반야시는 숙소(熟酥), 법화열반시는 제호(醍醐)다. 우유를 다 가공해야 제호가 나오듯이, 앞의 네 때는 버려진 실패가 아니라 제호를 얻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법화경과 『열반경』은 같은 제호의 맛이다. 『열반경』이 스스로를 제호라 한 것을, 천태는 법화경과 열반경을 함께 묶은 다섯째 때의 맛으로 읽었다. 이 때문에 오시를 오미(五味)라고도 한다.

다른 하나는 신해품의 궁자의 비유다. 지의의 『법화문구』는 비유의 장면들을 오시에 배당한다. 장자가 아들을 알아보고 곁의 사람을 보내 붙잡게 하자 아들이 놀라 기절한 장면이 화엄시다. 깨달은 그대로의 법을 곧바로 설하자 성문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과 같다. 초라한 두 사람을 보내 거름을 치우는 일로 데려온 장면이 아함시다. 거름을 치운다는 것은 견혹 · 사혹이라는 미혹을 끊는 소승의 수행이다. 아들이 장자의 집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게 된 장면이 방등시다. 꾸짖음을 받으며 대승을 가까이하게 된 것이다. 장자가 창고와 재물을 맡겨 관리하게 했으나 아들이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은 장면이 반야시다. 성문이 부처를 대신해 반야를 설하면서도, 그것이 자기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과 같다. 그리고 장자가 친족을 모아 「이 사람은 참으로 나의 아들이다」라고 선언하고 모든 재물을 물려준 장면이 법화시다. 성문이 장차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은 것이다.

이 겹침은 오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오시는 부처가 마음 내키는 대로 이런저런 경을 설한 기록이 아니다. 한 아버지가 집을 나간 아들을 되찾기까지의 긴 과정이다. 아들이 처음부터 아들이었던 것처럼, 중생은 처음부터 부처가 될 존재였다. 다만 그 사실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는 거름을 치우는 일부터 함께했다. 부처의 오십 년은 이 기다림의 오십 년이었다.

화엄시우유(乳)곁의 사람을 보내 붙잡자 아들이 기절하다의의
아함시락(酪)거름을 치우는 일로 데려오다유인
방등시생소(生酥)집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다탄가
반야시숙소(熟酥)창고를 맡았으나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다도태
법화열반시제호(醍醐)「此實我子 我實其父」이 사람은 참으로 나의 아들이요 나는 참으로 그의 아버지다개회

오시 = 한 아버지가 아들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열반경』 성행품 · 『법화경』 신해품 · 『법화문구』)

도표 11 · 다섯 때 · 다섯 맛 · 다섯 장면

해가 비추는 차례

지의는 2부에서 본 『화엄경』의 해돋이 비유도 오시에 겹쳤다. 경은 큰 산의 왕 · 큰 산 · 보배 산 · 대지의 차례를 말했는데, 천태는 그것을 높은 산 · 깊은 골짜기 · 평지의 세 단계로 다시 짜서 오시에 맞추었다. 해가 떠오르면 먼저 높은 산을 비추니 화엄시다. 다음에 깊은 골짜기를 비추니 아함시다. 해가 더 올라 평지를 비추는데, 그것을 다시 아침밥 때(방등시)와 한낮이 가까운 때(반야시)로 나눈다. 그리고 해가 하늘 한가운데에 이르는 정오가 법화시다. 『천태사교의』는 이 법화의 때를, 해가 한낮에 이르러 비스듬히 기운 그림자가 남지 않는 때라고 그렸다. 해가 기울어 있는 동안에는 산과 나무에 그림자가 진다. 해가 바로 위에 이를 때 비로소 그림자 없이 모든 것이 고르게 비추어진다. 7부에서 보듯이 대성인은 이 「그림자」라는 말을 다른 자리에서 전혀 다른 깊이로 쓰신다.

나지막한 언덕에서 내려다본 넓은 평원, 바둑판처럼 나뉜 논밭과 드문드문 선 나무들 사이로 강이 골짜기를 따라 흐르고, 먼 산들까지 고르게 빛을 받은 금박 수묵화
그림 2 · 한낮의 평원과 골짜기
  1. 해돋이높은 산을 비춘다= 화엄시「先照一切諸大山王」먼저 모든 큰 산의 왕을 비춘다(『화엄경』)
  2. 깊은 골짜기를 비춘다= 아함시
  3. 평지를 비춘다
  4. 아침밥 때= 방등시
  5. 한낮이 가까운 때= 반야시
  6. 정오해가 하늘 한가운데= 법화시비스듬한 그림자가 남지 않는다(『천태사교의』)

해는 하나, 비추는 차례가 다섯

도표 12 · 해가 비추는 차례

연대표가 아니다 — 별오시와 통오시

오시는 흔히 석존의 생애를 다섯 시기로 나눈 연대표처럼 소개된다. 실제로 뒤의 천태종에서는 「화엄은 처음 삼칠일(21일), 아함은 열두 해, 방등은 여덟 해, 반야는 스물두 해, 법화와 열반은 함께 여덟 해」라는 게송이 널리 외워졌다. 6부에서 보듯이 일본 천태종 안에서도 방등과 반야의 햇수를 두고 여러 설이 갈렸다.

그러나 천태의 오시는 단순한 연대표가 아니다. 천태 교학은 오시를 두 겹으로 본다. 하나는 다섯 때를 시간의 앞뒤로 나누어 보는 별오시(別五時)다. 다른 하나는 같은 성격의 가르침이 시간에 매이지 않고 일대에 걸쳐 두루 설해졌다고 보는 통오시(通五時)다. 예컨대 소승에 머문 이를 꾸짖어 대승으로 이끄는 방등의 가르침은 특정한 몇 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듣는 이가 있으면 언제든 설해졌다. 『열반경』이 법화경 뒤에 있으면서도, 법화경 이전의 가르침들을 다시 거두어 설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곧 오시의 「때(時)」는 달력의 시간이라기보다 듣는 이의 마음이 무르익어 가는 시간이다. 우유가 제호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 아들이 아들임을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 점을 놓치면 오시는 쉽게 무너지는 연대기가 되고, 이 점을 붙잡으면 오시는 부처의 교화가 어떤 길을 밟아 가는가를 보여 주는 지도가 된다.

근대 불교학의 문헌 연구는 대승 경전들이 석존 입멸 뒤 수백 년에 걸쳐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 차례로 성립했음을 밝혔다. 그러므로 오시를 석존 생애의 실제 연대기로 읽을 수는 없다. 그러나 뒤의 천태 교학은 오시를 별오시와 통오시의 두 겹으로 보았고, 6부에서 보듯이 대성인도 「설법의 차례」와 「법문의 얕고 깊은 차례」를 따로 세우셨다. 오시의 무게는 연대의 정확성보다, 가르침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으며 듣는 이를 어디로 이끄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5부 여덟 가르침약방문과 약재의 맛

『천태사교의』의 첫 문장

글머리에서 본 제관의 『천태사교의』는 오시팔교 전체를 이렇게 요약하며 시작한다.

天台智者大師 以五時八敎 判釋東流一代聖敎 罄無不盡 言五時者 一華嚴時 二鹿苑時 三方等時 四般若時 五法華涅槃時 是爲五時 亦名五味 言八敎者 頓漸祕密不定藏通別圓 是名八敎 頓等四敎是化儀 如世藥方 藏等四敎名化法 如辯藥味

천태지자대사는 오시팔교로써 동쪽으로 흘러온 일대의 성교를 판석하여 남김없이 다하였다. 오시라 함은 첫째 화엄시, 둘째 녹원시, 셋째 방등시, 넷째 반야시, 다섯째 법화열반시이니, 이것이 오시이며 오미라고도 한다. 팔교라 함은 돈 · 점 · 비밀 · 부정 · 장 · 통 · 별 · 원이니, 이것을 팔교라 한다. 돈 등 네 가르침은 화의(化儀)이니 세간의 약방문과 같고, 장 등 네 가르침은 화법(化法)이라 하니 약재의 맛을 가리는 것과 같다.

제관 『천태사교의』, T46 no.1931

부처를 의사에, 중생을 병자에, 가르침을 약에 비유하는 것은 불교의 오래된 전통이다. 제관은 그 비유를 교판에 적용했다. 화의(化儀)는 「교화의 의식」, 곧 가르치는 방식이다. 약을 어떤 형식으로 처방하느냐 — 한꺼번에 줄 것인가, 조금씩 나누어 줄 것인가 — 에 해당한다. 화법(化法)은 「교화의 법」, 곧 가르침의 내용이다. 그 약에 어떤 약재가 들어 있고 어떤 맛과 효능이 있느냐에 해당한다. 같은 약재를 다른 방식으로 처방할 수 있고, 같은 방식으로 다른 약재를 처방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읽으려면 처방의 형식과 약재의 맛을 함께 보아야 한다.

처방의 네 형식 — 화의사교

화의사교(化儀四敎)는 돈 · 점 · 비밀 · 부정이다. 돈교(頓敎)는 듣는 이를 단계적으로 이끌지 않고 깨달은 그대로를 곧바로 설하는 방식이다. 화엄시가 이것이다. 점교(漸敎)는 얕은 데서 깊은 데로 차츰 이끄는 방식이다. 아함 · 방등 · 반야의 세 때가 이것이다. 여기까지는 3부에서 본 남조의 돈 · 점과 같다.

천태가 새로 세운 것은 나머지 둘이다. 비밀교(秘密敎)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부처의 설법을 들으면서도, 듣는 이마다 저마다 다른 가르침을 듣고 저마다 다른 이익을 얻되, 서로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다. 부정교(不定敎)는 같은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이익을 얻되, 서로 그것을 아는 경우다. 남조의 「부정」은 돈에도 점에도 넣기 어려운 몇몇 경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천태는 그것을 경의 분류가 아니라, 부처의 한 소리가 듣는 이의 근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3부에서 본 북조의 「일음교」 — 부처는 한 소리로 설했고 듣는 이가 달리 들었다 — 가 품고 있던 통찰이 여기에 거두어져 있다. 1부에서 본 연못의 연꽃처럼, 같은 연못에서도 어떤 연꽃은 물 위로 솟고 어떤 연꽃은 아직 물속에 있다.

  • 돈교(頓敎)깨달은 그대로를 곧바로= 화엄시
  • 점교(漸敎)얕은 데서 깊은 데로 차츰= 아함 · 방등 · 반야시
  • 비밀교(秘密敎)같은 자리, 저마다 다른 가르침과 이익서로 알지 못한다
  • 부정교(不定敎)같은 자리, 저마다 다른 이익서로 안다
「頓等四敎是化儀 如世藥方」돈 등 네 가르침은 화의이니 세간의 약방문과 같다(『천태사교의』)

남조의 돈 · 점 · 부정을 이어받아 고쳐 세움

도표 13 · 처방의 네 형식 — 화의사교

약재의 네 맛 — 화법사교

화법사교(化法四敎)는 장 · 통 · 별 · 원이다. 이것은 지의가 『사교의』와 『법화현의』 등에서 가장 공들여 세운 체계이고, 천태 교학 전체의 뼈대다.

장교(藏敎)는 경 · 율 · 논의 삼장(三藏)으로 이루어진 소승의 가르침이다. 성문 · 연각 · 보살이 각각 따로 수행하며, 존재를 잘게 쪼개어 실체가 없음을 아는(析空) 지혜로 견혹 · 사혹을 끊고 삼계의 생사를 벗어난다. 사제를 실제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보므로 생멸사제(生滅四諦)라 한다.

통교(通敎)는 대승의 처음이다. 성문 · 연각 · 보살의 세 부류가 함께 배우므로 「통한다」고 하고, 앞으로는 장교에 통하고 뒤로는 별교 · 원교에 통한다고도 한다. 존재를 쪼개지 않고 그 자체가 그대로 공함을 아는(體空) 지혜를 설한다. 『반야경』의 공이 그 중심이며, 사제는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는 무생사제(無生四諦)로 본다.

별교(別敎)는 오직 보살만을 위한, 앞의 두 가르침과 「다른」 가르침이다. 공에 머물지 않고 세간의 한량없는 차별상을 다 알아 중생을 구하며, 공 · 가 · 중의 세 진리(三諦)를 설한다. 그러나 별교에서 세 진리는 서로 떨어져 있고(隔歷), 수행자는 공을 보고 다음에 가를 보고 마지막에 중도에 이르는 식으로 차례를 밟는다. 중도는 공과 가를 떠난 저편에 따로 있는 진리(但中)다. 사제는 무량사제(無量四諦)로 본다.

원교(圓敎)는 원만하고 치우침 없는 가르침이다. 공 · 가 · 중의 세 진리는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가 곧 셋이요 셋이 곧 하나로 원만하게 어우러져 있으며(圓融三諦), 한마음에 세 가지 관찰이 함께 이루어진다(一心三觀). 미혹과 깨달음의 당체가 그대로 실상이므로 끊을 것도 닦을 것도 따로 없다 하여 사제를 무작사제(無作四諦)로 본다.

네 가르침이 사제를 보는 네 깊이는 핵심 개념 「무상」 4부에서, 네 가르침이 저마다 세우는 네 부처 — 장교의 열응신, 통교의 대열승응신, 별교의 원만보신, 원교의 청정법신 — 는 「삼신」 4부에서, 석공 · 체공의 구별은 계보 二 「공 · 중도」에서 다루었다.

  • 장교(藏敎)삼장의 소승삼승이 따로석공(析空): 쪼개어 공을 안다생멸사제
  • 통교(通敎)대승의 처음삼승이 함께체공(體空): 그대로 공함을 안다무생사제
  • 별교(別敎)보살만공 · 가 · 중이 떨어져 차례로(隔歷)단중(但中): 공 · 가를 떠난 중도무량사제
  • 원교(圓敎)원만공 · 가 · 중이 하나로 어우러짐(圓融)일심삼관무작사제
「藏等四敎名化法 如辯藥味」장 등 네 가르침은 화법이라 하니 약재의 맛을 가리는 것과 같다(『천태사교의』)
도표 14 · 약재의 네 맛 — 화법사교

다섯 때에 섞인 맛 — 겸 · 단 · 대 · 대

이제 오시와 화법사교를 겹쳐 보면, 한 때의 경에 한 가지 가르침만 있는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지의는 『법화현의』 권1상에서 이것을 네 글자로 요약했다.

華嚴兼 三藏但 方等對 般若帶 此經無復兼但對帶 專是正直無上之道 故稱爲妙法也

화엄은 겸(兼)하고, 삼장은 단(但)하며, 방등은 대(對)하고, 반야는 대(帶)한다. 이 경에는 다시 겸 · 단 · 대 · 대가 없으니, 오로지 바르고 곧은 위없는 도다. 그러므로 묘법이라 일컫는다.

천태대사 지의 『법화현의』 권1상

화엄시의 경은 원교를 설하되 별교를 겸(兼)하여 설했다. 아함시의 경은 다만(但) 장교 하나만 설했다. 방등시의 경은 장 · 통 · 별 · 원의 네 가르침을 나란히 마주 세워(對) 설했다. 반야시의 경은 원교를 설하되 통교 · 별교를 띠고(帶) 설했다. 화엄이든 방등이든 반야든 원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원교는 늘 다른 가르침과 섞여 있거나, 다른 가르침과 맞세워져 있거나, 다른 가르침을 띠고 있었다. 법화경만이 다른 가르침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 원교, 곧 순원(純圓)이다.

행 — 오시 / 열 — 장 · 통 · 별 · 원

장통별원
화엄시「華嚴兼」화엄은 겸한다
아함시「三藏但」삼장은 다만 하나
방등시「方等對」방등은 마주 세운다
반야시「般若帶」반야는 띤다
법화시순원(純圓)
「此經無復兼但對帶 專是正直無上之道」이 경에는 다시 겸 · 단 · 대 · 대가 없으니 오로지 바르고 곧은 위없는 도다(『법화현의』 권1상)
도표 15 · 다섯 때와 네 가르침 — 겸 · 단 · 대 · 대

여덟을 넘는 제호 — 상대와 절대

그렇다면 법화경은 팔교 가운데 어디에 있는가. 화의의 면에서 보면 법화경은 돈도 아니고 점도 아니며, 비밀도 부정도 아니다. 화법의 면에서 보면 순수한 원교이지만, 이전의 원교와 같은 「원교」라는 칸에 그대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묘락대사 담연은 『법화문구기』에서 법화경 첫머리의 「이와 같이(如是)」를 「여덟을 넘은(超八) 여시」라 했다. 법화경은 팔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팔교를 넘어선 제호라는 것이다. 6부에서 보듯이 대성인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법화경의 제목을 「여덟 가르침의 그물코를 넘은 벼리」라 하신다.

팔교를 넘는다는 것은 팔교를 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지의는 법화경의 묘(妙)를 두 가지로 풀이했다. 하나는 상대묘(相待妙)다. 이전의 가르침과 견주어(待) 그보다 뛰어나다는 묘다. 거친 것(麤)과 맞세워 묘한 것을 드러낸다. 다른 하나는 절대묘(絶待妙)다. 견줌 자체를 끊은 묘다. 거친 것을 열면 그것이 그대로 묘한 것이 된다(開麤顯妙). 아함의 소승도, 방등의 꾸짖음도, 반야의 공도, 법화경에 이르러 열리면 모두 일승의 일부로서 묘한 것이 된다. 2부에서 본 「갖가지 길을 보이지만 실은 부처의 수레를 위한 것」이 이것이다. 거름을 치우던 일도, 창고를 맡았던 일도, 아들임을 선언받는 순간 모두 아버지의 집을 물려받기 위한 과정이 된다.

상대묘(相待妙)이전의 가르침과 견주어 뛰어남거친 것(麤)과 맞세워 묘를 드러낸다거친 것묘
절대묘(絶待妙)견줌을 끊음거친 것을 열면 그대로 묘개추현묘(開麤顯妙)거친 것묘
담연 — 「초팔(超八)」 팔교를 넘은 여시 (『법화문구기』)법화경 = 팔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팔교를 여는 경
「雖示種種道 其實爲佛乘」갖가지 길을 보이지만 실은 부처의 수레를 위한 것(방편품)
도표 16 · 여덟을 넘는 제호 — 상대묘와 절대묘

「오시팔교」라는 이름

오늘날 천태 교학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오시팔교」라는 틀이, 지의 자신의 저술에 완성된 형태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지의의 『법화현의』 · 『사교의』 · 『유마경현소』 등에는 오미와 돈 · 점 · 비밀 · 부정, 장 · 통 · 별 · 원이 여러 곳에 흩어져 나오고, 이것들은 지의가 세운 교판의 재료다. 그것을 「오시팔교」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간결한 체계로 묶어 낸 것은 묘락대사 담연을 거쳐, 글머리에서 본 제관의 『천태사교의』에 이르러서였다. 창가교학연구실의 「조닌초」 어구 풀이도 오시팔교를 「천태대사 지의가 밝힌 교판을 후대의 천태종이 체계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관과 같은 시기, 같은 의적의 문하에는 또 한 사람의 고려 승려가 있었다. 의통(義通)이다. 그는 중국에 남아 송나라 천태종의 법통을 이었고, 그 제자 사명 지례가 송대 천태 교학을 크게 일으켰다. 고려에서 건너간 책과 사람이 중국 천태종의 부흥을 떠받친 것이다. 한편 20세기 일본의 천태학자 세키구치 신다이(関口真大) 등은 「오시팔교는 지의 자신의 교판이 아니다」라는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둘러싸고 지의의 원래 교판과 뒤의 체계화를 구별하는 연구가 이어졌다.

6부 니치렌 대성인과 오시팔교「교상을 밝히지 않으면」

「일대 오시 사이에 앞뒤를 세우고」

대성인은 처음부터 오시팔교를 교상의 기초로 쓰셨다. 문응 원년(1260), 대성인이 최고 권력자 호조 도키요리에게 올린 「입정안국론」은 법연의 『선택집』을 비판하는 근거를 이렇게 밝히신다.

釈尊説法の内、一代五時の間に、先後を立てて権実を弁ず。而るに曇鸞・道綽・善導既に権に就いて実を忘れ、先に依って後を捨つ。

석존이 설법하신 가운데, 일대 오시 사이에 앞과 뒤를 세워 권(權)과 실(實)을 가리셨느니라. 그런데 담란 · 도작 · 선도는 이미 권에 나아가 실을 잊고, 앞에 의지하여 뒤를 버렸느니라.

「입정안국론」, 24쪽

정토교의 조사들이 의지한 『관무량수경』 등은 오시로 보면 방등시의 경이다. 그것은 법화경으로 이끌기 위한 앞의 가르침, 곧 권(權)의 가르침이었다. 그들은 앞의 가르침에 머물러 뒤의 진실을 버렸다. 「앞과 뒤를 세워 권과 실을 가린다」는 이 한 줄이 오시의 핵심이고, 대성인이 생애에 걸쳐 여러 종파를 비판하신 근거의 출발점이다.

대성인은 천태의 업적을 두 가지로 요약하신다. 「하키리사부로전답서」는 상법 시대에 천태대사가 나타나 「남북의 그릇된 뜻을 깨뜨리고 바른 뜻을 세우셨으니, 이른바 교문의 오시와 관문의 일념삼천이 이것이니라(所謂教門の五時・観門の一念三千是なり)」라고 하신다(1372쪽). 「관심의 본존초」도 천태가 「현의」 · 「문구」 등에서 「오시 · 팔교 · 백계천여를 밝히고 앞선 오백여 년의 잘못들을 꾸짖었다」고 하신다(239쪽). 가르침의 질서를 밝힌 오시팔교(교문)와, 그 질서의 끝에서 열린 마음의 관법인 일념삼천(관문) — 천태의 두 기둥이다. 일념삼천은 계보 五 「일념삼천」에서 다루었고, 여기서는 교문을 본다.

「법화경을 알기 위해서」 — 「일대성교대의」

대성인의 초기 저술 「일대성교대의」는 5부에서 본 화법사교와 4부에서 본 오시를 차례로 풀이한 뒤, 그 까닭을 이렇게 밝히신다.

上の四教・四時の経論を書き挙ぐる事は此の法華経を知らん為なり、法華経の習としては前の諸経を習わずしては永く心を得ること莫きなり、爾前の諸経は一経・一経を習うに又余経を沙汰せざれども苦しからず、故に天台の御釈に云く「若し余経を弘むるには教相を明さざれども義に於て傷むこと無し若し法華を弘むるには教相を明さずんば文義闕くること有り」文

위에서 사교와 사시의 경론을 써서 든 것은 이 법화경을 알기 위해서이니라. 법화경을 배우는 법으로는 앞의 여러 경을 배우지 않고서는 끝내 그 마음을 얻을 수 없느니라. 이전의 여러 경은 한 경 한 경을 배울 때 다른 경을 따지지 않아도 지장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천태의 해석에 이르기를 「만약 다른 경을 넓힌다면 교상을 밝히지 않더라도 뜻에 손상이 없다. 만약 법화경을 넓히면서 교상을 밝히지 않는다면 글과 뜻에 빠짐이 있다」 하였느니라.

「일대성교대의」, 397쪽

4부에서 본 『법화현의』의 구절이 그대로 인용된다. 창가교학연구실의 강의는, 법화경은 일대의 불교를 거두어 부처의 본회를 드러낸 경이므로 이전의 경들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배운 뒤가 아니면 법화경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풀이한다. 오시팔교는 대성인에게도 법화경을 읽는 문법이었다.

같은 글에서 대성인은 오시의 설시(說時)를 정리하시며, 일본 천태종 안의 여러 설을 함께 소개하신다. 화엄은 삼칠일, 아함은 열두 해이고, 방등과 반야를 합쳐 서른 해이니, 화엄에서 반야까지가 마흔두 해다. 히에이산(山門)의 설은 방등의 설한 때와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고, 온조사(寺門)의 설은 방등 열여섯 해, 반야 열네 해라 하며, 「비장의 대사의 뜻」은 둘을 합쳐 서른 해이되 방등이 앞이고 반야가 뒤라고 한다(396쪽). 4부에서 본 대로 오시의 햇수는 처음부터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강의는 히에이산의 설이 방등의 꾸짖음(탄가)을 「언제 어디서든 그런 교화가 있으면 방등」이라고 본 것이라고 설명한다. 4부의 통오시가 여기에 살아 있다.

설한 차례와 법문의 깊이

그리고 대성인은 「일대성교대의」에서 오시를 읽는 데 결정적인 구별을 세우신다.

私に云く説の次第に順ずれば華厳・阿含・方等・般若・法華・涅槃なり、法門の浅深の次第を列ぬれば阿含・方等・般若・華厳・涅槃・法華と列ぬべし、されば法華経・涅槃経には爾くの如く見えたり。

사사로이 이르건대, 설한 차례를 따르면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 법화 · 열반이니라. 법문의 얕고 깊은 차례로 늘어놓으면 아함 · 방등 · 반야 · 화엄 · 열반 · 법화로 늘어놓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법화경과 열반경에는 그와 같이 보이느니라.

「일대성교대의」, 397쪽

같은 글에서 대성인은 석존의 「열아홉 출가 · 서른 성도 · 오십 년 설법 · 여든 입멸」을 그대로 받으시면서도, 이렇게 설한 차례와 법문의 깊이를 따로 세우셨다. 설한 차례로는 화엄이 맨 앞이다. 그러나 법문의 깊이로는 화엄이 아함 · 방등 · 반야보다 깊되 열반과 법화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열반경은 설한 차례로는 법화경 뒤에 오지만, 법문의 깊이로는 법화경 앞에 놓인다. 이 구별은 오시의 무게가 시간의 순서보다 법의 깊이에 있음을 보여 준다. 2부에서 본 『무량의경』이 「처음에 사제, 다음에 십이인연, 다음에 방등 · 반야 · 화엄」이라고 화엄을 뒤에 든 것도, 설한 차례와는 다른 이 깊이의 차례에 가깝다고 읽을 수 있다.

「説の次第」설한 차례「法門の浅深の次第」법문의 얕고 깊은 차례
화엄아함방등반야법화열반
아함방등반야화엄열반법화

(「일대성교대의」 397쪽)

설시의 여러 설화엄 삼칠일 · 아함 열두 해 · 방등과 반야 합쳐 서른 해 = 마흔두 해히에이산방등은 때와 곳이 정해지지 않음온조사방등 열여섯 해 · 반야 열네 해비장의 뜻합쳐 서른 해, 방등이 앞(396쪽)
도표 17 · 설한 차례와 법문의 깊이

「여덟 근기가 저마다 다르니」 — 「십법계사」

5부에서 본 오시와 팔교의 교차를, 「십법계사」의 문답은 이렇게 정리한다.

若し爾前の中に八教有りとは頓は則ち華厳・漸は則ち三味・秘密と不定とは前四味に亘る蔵は則ち阿含方等に亘る通は是れ方等・般若・円・別は是れ則ち前四味の中に鹿苑の説を除く、此くの如く八機各各不同なれば教説も亦異なり

이전의 경 가운데 팔교가 있다는 것은, 돈은 곧 화엄이요, 점은 곧 (아함 · 방등 · 반야의) 세 맛이요, 비밀과 부정은 앞의 네 맛에 걸치며, 장교는 곧 아함과 방등에 걸치고, 통교는 방등과 반야이며, 원교와 별교는 앞의 네 맛 가운데 녹야원의 설(아함)을 뺀 것이니라. 이와 같이 여덟 근기가 저마다 같지 않으므로 가르침도 또한 다르니라.

「십법계사」, 420쪽

5부의 「겸 · 단 · 대 · 대」 표를 한 문장으로 쓴 것과 같다. 주목할 것은 첫머리의 「이전의 경 가운데(爾前の中に)」다. 팔교는 법화경 이전, 곧 앞의 네 맛(前四味)의 일이다. 그리고 문장의 끝은 「여덟 근기가 저마다 같지 않으므로 가르침도 다르다」고 맺는다. 1부에서 본 연못의 연꽃이 여기서 여덟 근기가 되었다. 팔교는 부처가 여덟 갈래로 다른 듣는 이를 만난 흔적이다. 같은 글은 이어서 「근기가 다르므로 가르침이 다르고, 가르침이 다르므로 수행이 다르며, 수행이 다르므로 얻는 결과도 다르다」고 한다. 법화경에 이르기 전의 이익은 저마다 따로따로였다.

「겸 · 단 · 대 · 대의 방편 유인」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은 부처의 일대 가르침을 남을 교화하기 위한 가르침(化他)과 부처 스스로의 깨달음을 그대로 설한 가르침(自行)의 둘로 나누고, 화타의 경을 「사교 가운데는 삼장교 · 통교 · 별교의 셋이요, 오시 가운데는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이니, 법화 이전의 사시의 경교」라고 하신다(558쪽). 그리고 여러 종파를 이렇게 판정하신다.

四十二年の化他の経を以て立る所の宗宗は華厳・真言・達磨・浄土・法相・三論・律宗・倶舎・成実等の諸宗なり此等は皆悉く法華より已前の八教の中の教なり皆是方便なり兼・但・対・帯の方便誘引なり、三世諸仏の説教の次第なり此の次第を糾して法門を談ず若し次第に違わば仏法に非ざるなり

마흔두 해의 화타의 경으로 세운 종파들은 화엄 · 진언 · 달마(선) · 정토 · 법상 · 삼론 · 율종 · 구사 · 성실 등의 여러 종이니라. 이것들은 모두 다 법화 이전의 팔교 가운데의 가르침이요, 모두 방편이니라. 겸 · 단 · 대 · 대의 방편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니라. 이것이 삼세제불의 설교의 차례이니, 이 차례를 바로잡아 법문을 논하느니라. 만약 차례에 어긋나면 불법이 아니니라.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 572쪽

5부에서 본 『법화현의』의 「겸 · 단 · 대 · 대」가 여기서 여러 종파를 가리는 잣대가 된다. 화엄종은 화엄시의 경에, 법상종과 삼론종은 방등 · 반야의 경에, 구사종 · 성실종 · 율종은 아함의 가르침에, 정토종은 방등의 경에 의지했다. 모두 「팔교 가운데의 가르침」이고 「방편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례는 석존 한 분이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삼세제불의 설교의 차례」다. 방편품이 「삼세제불의 설법의 의식과 같이 나도 지금 또한 이와 같다」고 한 것을 받으신 것이다.

「頓は則ち華厳・漸は則ち三味・秘密と不定とは前四味に亘る」돈은 곧 화엄이요 점은 곧 세 맛이요 비밀과 부정은 앞의 네 맛에 걸친다
「八機各各不同なれば教説も亦異なり」여덟 근기가 저마다 같지 않으므로 가르침도 다르다(「십법계사」 420쪽)
  • 화엄시
    화엄종
  • 아함시
    구사 · 성실 · 율종
  • 방등시
    정토 · 법상 등
  • 반야시
    삼론 등
「皆悉く法華より已前の八教の中の教なり…兼・但・対・帯の方便誘引なり」모두 법화 이전의 팔교 가운데의 가르침이요 … 겸 · 단 · 대 · 대의 방편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若し次第に違わば仏法に非ざるなり」만약 차례에 어긋나면 불법이 아니다(「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 572쪽)
도표 18 · 오시 · 팔교와 여러 종파

남삼북칠과 제호를 둘러싼 다툼 — 「선시초」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3부에서 본 남북조의 교판을 이렇게 회고하신다.

其の後・魏・晋・宋・斉・梁の五代が間・仏法の内に大小・権実・顕密をあらそひし程にいづれこそ道理ともきこえずして上み一人より下も万民にいたるまで不審すくなからず南三・北七と申して仏法十流にわかれぬ所謂南には三時・四時・五時・北には五時・半満・四宗・五宗・六宗、二宗の大乗・一音等・各各義を立て辺執水火なり、しかれども大綱は一同なり

그 뒤 위 · 진 · 송 · 제 · 양의 다섯 왕조 동안, 불법 안에서 대승과 소승, 권교와 실교, 현교와 밀교를 다투었으나, 어느 것이 도리인지도 들리지 않아 위로는 임금 한 사람부터 아래로는 만민에 이르기까지 의심이 적지 않았느니라. 남삼 · 북칠이라 하여 불법이 열 갈래로 나뉘었으니, 이른바 남쪽에는 삼시 · 사시 · 오시, 북쪽에는 오시 · 반만 · 사종 · 오종 · 육종 · 이종의 대승 · 일음 등이니라. 저마다 뜻을 세워 한쪽에 집착함이 물과 불 같았느니라. 그러나 큰 줄기는 하나같았느니라.

「선시초」, 261쪽

그 「하나같은 큰 줄기」가 무엇이었는지 — 화엄경이 제일, 열반경이 제이, 법화경이 제삼이라는 판정 — 와 그것을 천태가 뒤집은 일은 핵심 개념 「무상」 4부에서 보았다. 그런데 「선시초」에는 오시팔교를 둘러싼 또 하나의 흥미로운 논쟁이 있다. 2부에서 본 『열반경』의 다섯 맛 가운데 마지막 「제호」가 누구의 것이냐는 다툼이다.

일본 진언종의 홍법대사 구카이는 법화경을 다섯 맛 가운데 넷째인 숙소미(熟酥味)에 두고, 진언의 다라니야말로 제호라고 했다. 그 근거는 당나라 중기에 반야삼장이 옮긴 『육바라밀경』이 부처의 가르침을 다섯 장(藏)으로 나누어 다섯 맛에 비유하고 다섯째의 다라니장을 제호라 한 대목이었다. 그리고 구카이는 「중국의 인사들이 다투어 제호를 훔쳐 저마다 자기 종에 이름 붙였다」며, 천태 등이 진언의 제호를 훔쳐 법화경을 제호라 했다고 비난했다. 대성인은 이렇게 반론하신다.

法華経を醍醐味と称することは陳隋の代なり六波羅蜜経は唐の半に般若三蔵・此れをわたす、六波羅蜜経の醍醐は陳隋の世にはわたりてあらばこそ天台大師は真言の醍醐をば盗ませ給はめ、傍例あり日本の得一が云く天台大師は深密経の三時教をやぶる三寸の舌をもつて五尺の身をたつべしとののしりしを伝教大師此れをただして云く深密経は唐の始玄奘これをわたす天台は陳隋の人・智者御入滅の後・数箇年あつて深密経わたれり、死して已後にわたれる経をばいかでか破り給うべきとせめさせ給いて候いしかば得一はつまるのみならず舌八にさけて死し候いぬ

법화경을 제호미라 일컬은 것은 진 · 수의 시대이니라. 『육바라밀경』은 당나라 중엽에 반야삼장이 이것을 건너오게 하였느니라. 『육바라밀경』의 제호가 진 · 수의 세상에 건너와 있었다면야 천태대사가 진언의 제호를 훔치셨다고 하겠지마는. 비슷한 예가 있으니, 일본의 득일(덕일)이 「천태대사는 『해심밀경』의 삼시교를 깨뜨렸으니, 세 치의 혀로 다섯 자의 몸을 끊어야 한다」고 욕하였을 때, 전교대사가 이를 바로잡아 이르기를 「『해심밀경』은 당나라 초에 현장이 건너오게 하였다. 천태는 진 · 수의 사람이니, 지자대사가 입멸하신 뒤 여러 해가 지나서 『해심밀경』이 건너왔다. 죽은 뒤에 건너온 경을 어떻게 깨뜨리실 수 있겠는가」 하고 따지시니, 득일은 말이 막혔을 뿐 아니라 혀가 여덟 갈래로 찢어져 죽었느니라.

「선시초」, 277~278쪽

3부에서 본 「들어온 순서」의 문제가 여기서 다시 나타난다. 경전이 중국에 건너온 연대는 교판 논쟁의 무기가 되었다. 천태가 법화경을 제호라 한 것은 『열반경』의 다섯 맛에 근거한 것이고, 그때 『육바라밀경』은 아직 중국에 없었다. 2부에서 본 법상종의 삼시교도, 현장이 돌아와 『해심밀경』을 옮기고 그 제자 자은이 정리한 교판이니 천태보다 뒤의 것이다. 같은 대목에서 대성인은 「법화경을 제호라 일컬은 것은 천태 등의 사사로운 말이 아니라, 부처가 『열반경』에서 법화경을 제호라 설하시고 천친보살도 법화경 · 열반경을 제호라 썼다」고 덧붙이신다. 오시의 다섯 맛은 천태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경전 자신의 말에서 나왔다.

홍법(구카이)법화경 = 넷째 숙소미진언의 다라니 = 제호근거: 『육바라밀경』의 다섯 장「천태가 진언의 제호를 훔쳤다」
진 · 수 / 당 중엽
대성인「法華経を醍醐味と称することは陳隋の代なり六波羅蜜経は唐の半に…此れをわたす」법화경을 제호미라 일컬은 것은 진 · 수의 시대요 『육바라밀경』은 당나라 중엽에 건너왔다
비슷한 예
덕일「천태가 『해심밀경』의 삼시교를 깨뜨렸다」
진 · 수 / 당 초
전교「死して已後にわたれる経をばいかでか破り給うべき」죽은 뒤에 건너온 경을 어떻게 깨뜨리겠는가

(「선시초」 277~278쪽)

법화경 = 제호 — 『열반경』의 다섯 맛 · 천친의 말(천태의 사사로운 말이 아니다)

도표 19 · 제호를 둘러싼 다툼

「여덟 가르침의 그물코를 넘은 벼리」

대성인의 오시팔교 이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소야입도전답서」다. 대성인은 법화경 첫머리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의 네 글자를 풀이하시며, 모든 경의 「이와 같이(如是)」는 그 경의 제목을 가리킨다고 하신다. 그리고 여러 경의 제목을 견주신다. 아함경의 제목은 무상의 이치를 거두었고, 반야경 · 화엄경 · 대일경 · 방등의 제목을 듣는 이는 혹은 석공, 혹은 체공, 혹은 단중 · 부단중의 이치를 깨닫지만, 아직 십계호구 · 백계천여 · 삼천세간의 공덕은 듣지 못했다(이 견줌은 핵심 개념 「무상」 4부에서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맺으신다.

その詮を説かざれば法華経より外は理即の凡夫なり、彼の経経の仏・菩薩はいまだ法華経の名字即に及ばず何に況や題目をも唱へざれば観行即にいたるべしや、故に妙楽大師の記に云く「若し超八の如是に非ずんば安んぞ此の経の所聞と為さん」云云、彼彼の諸経の題目は八教の内なり網目の如し、此の経の題目は八教の網目に超えて大綱と申す物なり、

그 핵심(십계호구 · 백계천여 · 삼천세간)을 설하지 않았으므로 법화경 밖은 이즉(理卽)의 범부이니라. 그 경들의 부처 · 보살은 아직 법화경의 명자즉(名字卽)에도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제목조차 부르지 않으니 어찌 관행즉에 이르겠는가. 그러므로 묘락대사의 『문구기』에 이르기를 「만약 팔교를 넘은 여시가 아니라면 어찌 이 경에서 들은 바라 하겠는가」 하였느니라. 저 여러 경의 제목은 팔교 안에 있으니 그물코와 같고, 이 경의 제목은 팔교의 그물코를 넘어서 벼리라고 하는 것이니라.

「소야입도전답서」, 1057쪽

그물은 수많은 그물코(網目)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물을 들어 올리는 것은 그물코가 아니라 그물 가장자리를 꿰는 굵은 줄, 곧 벼리(大綱)다. 벼리를 잡아당기면 모든 그물코가 함께 올라온다. 5부에서 본 담연의 「초팔(超八)」을, 대성인은 이 비유로 풀어내신다. 이전의 경들은 저마다 팔교 가운데 한 칸, 그물코 하나다. 법화경의 제목은 그 그물코들 사이의 또 하나의 칸이 아니라, 모든 그물코를 꿰어 들어 올리는 벼리다. 5부의 「절대묘」 — 거친 것을 열면 그대로 묘가 된다 — 가 여기서 손에 잡히는 그림이 된다. 벼리를 잡으면 그물코 하나하나가 비로소 그물이 된다.

그리고 대성인은 그 벼리를 「제목」이라 하신다. 「제목조차 부르지 않으니」라는 말씀이 이미 다음 걸음을 예고한다. 7부에서 보듯이, 대성인에게 오시팔교의 끝에 있는 것은 법화경이라는 한 권의 경을 넘어, 그 경의 제목인 남묘호렌게쿄다.

「若し超八の如是に非ずんば安んぞ此の経の所聞と為さん」만약 팔교를 넘은 여시가 아니라면 어찌 이 경에서 들은 바라 하겠는가(묘락 『문구기』, 「소야입도전답서」 1057쪽 인용)
벼리(大綱)
아함반야화엄방등
그물코(網目)「彼彼の諸経の題目は八教の内なり網目の如し」저 여러 경의 제목은 팔교 안에 있으니 그물코와 같다아함 = 무상의 이치반야 · 화엄 · 방등 = 석공 · 체공 · 단중 · 부단중
벼리(大綱)「此の経の題目は八教の網目に超えて大綱と申す物なり」이 경의 제목은 팔교의 그물코를 넘어서 벼리라고 하는 것이다십계호구 · 백계천여 · 삼천세간

벼리를 당기면 모든 그물코가 함께 올라온다 = 개회

도표 20 · 그물코와 벼리
7부 오시팔교를 넘어「그림자와 같고, 나무와 같다」

「법화 이전에도 삼제가 있으나」

5부에서 보았듯이 화엄 · 방등 · 반야에도 원교가 있다. 「일대성교대의」는 이것을 「이전의 원교(爾前の円)」라 부르며, 화엄경의 「처음 발심할 때 곧 정각을 이룬다」, 반야경의 「처음 발심할 때부터 곧 도량에 앉는다」 같은 경문을 그 증거로 드신다. 그러나 그 원교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마경』은 범부와 번뇌는 열어 모으되 이승은 열지 않았고, 반야경은 이승이 배운 법문은 열되 이승인 사람과 악인은 열지 않았다(396쪽). 「창법화제목초」는 이 차이를, 이전의 원교는 법화경의 두 가지 묘 가운데 상대묘와는 같지만 절대묘와는 같지 않다고 정리하신다(8쪽). 그렇다면 법화경의 원교와 이전의 원교는 무엇이 다른가. 『어의구전』은 방편품의 「오직 일대사인연으로(唯以一大事因緣)」를 풀이하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御義口伝に云く一とは法華経なり大とは華厳なり事とは中間の三味なり、法華已前にも三諦あれども砕けたる珠は宝に非ざるが如し云云

어의구전에 이르기를, 일(一)이란 법화경이요, 대(大)란 화엄이요, 사(事)란 그 사이의 세 맛(아함 · 방등 · 반야)이니라. 법화 이전에도 삼제는 있으나, 깨진 구슬은 보배가 아닌 것과 같으니라.

『어의구전』 방편품 8개의 대사 제3 「유이일대사인연의 일」, 716쪽

「일대사(一大事)」라는 세 글자에 오시가 들어 있다. 일(一)은 법화경, 대(大)는 화엄, 사(事)는 그 사이의 아함 · 방등 · 반야다. 부처가 세상에 나온 「일대사인연」은 오시 전체를 꿰는 인연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 곧 법화경이 첫자리에 놓인다.

「깨진 구슬」이라는 말이 무겁다. 이전의 경에도 공 · 가 · 중의 삼제는 있었다. 그러나 별교의 삼제는 서로 떨어져 차례를 밟는 것이었고, 이전의 원교는 이승과 악인을 열지 못했다. 같은 보석의 조각을 가지고 있어도, 깨어진 조각들은 보배 구슬이 아니다. 하나로 온전히 이어져야 비로소 보배다. 5부에서 본 「겸 · 대 · 대」 — 다른 가르침과 섞이고, 맞세워지고, 다른 가르침을 띤 원교 — 가 이 깨어진 모습이었고, 「순원」이 이어진 구슬이었다.

「설한 바에 팔교가 있으나」 — 오시팔교가 닿지 못하는 곳

그런데 대성인은 오시팔교라는 틀 자체가 닿지 못하는 곳이 있다고 하신다. 「치병대소권실위목」의 말씀이다.

法華経に又二経あり所謂迹門と本門となり本迹の相違は水火天地の違目なり、例せば爾前と法華経との違目よりも猶相違あり爾前と迹門とは相違ありといへども相似の辺も有りぬべし、所説に八教あり爾前の円と迹門の円は相似せり爾前の仏と迹門の仏は劣応・勝応・報身・法身異れども始成の辺は同じきぞかし、今本門と迹門とは教主已に久始のかわりめ百歳のをきなと一歳の幼子のごとし

법화경에 또 두 경이 있으니, 이른바 적문과 본문이니라. 본문과 적문의 다름은 물과 불, 하늘과 땅의 차이이니라. 예컨대 이전의 경과 법화경의 차이보다도 더욱 다르니라. 이전의 경과 적문은 다름이 있다 하나 서로 닮은 데도 있을 것이니라. 설한 바에 팔교가 있으니, 이전의 원교와 적문의 원교는 서로 닮았느니라. 이전의 부처와 적문의 부처는 열응신 · 승응신 · 보신 · 법신으로 다르지만, 처음 성불했다(始成)는 점에서는 같으니라. 이제 본문과 적문은 교주가 이미 구원과 시성으로 바뀌었으니, 백 살의 노인과 한 살의 어린아이와 같으니라.

「치병대소권실위목」, 996쪽

오시팔교는 이전의 경과 법화경을 가르는 틀이었다. 그 틀 안에서 이전의 원교와 법화경 적문의 원교는 「서로 닮았다」. 둘 다 원교이고, 둘 다 「이 세상에서 처음 성불한 부처(始成正覺)」가 설한 가르침이다. 핵심 개념 「삼신」 4부에서 본 네 가르침의 네 부처 — 열응신 · 승응신 · 보신 · 법신 — 도 모두 「처음 성불한 부처」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법화경 본문의 수량품은 부처가 이 세상에서 처음 성불한 것이 아니라 아득한 구원에 이미 성불했다고 밝힌다(계보 四 「구원실성」). 이 차이는 팔교의 어느 칸으로도 나타낼 수 없다. 교주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경과 적문의 차이보다, 적문과 본문의 차이가 더 크다.

오시팔교는 「석존의 일대 오십 년」을 하나의 질서로 읽는 틀이다. 그 틀은 석존이 이 세상에서 깨달음을 이룬 때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수량품은 그 출발점 자체를 무너뜨린다. 깨달음은 사십여 년 전이 아니라 오백진점겁 전의 일이었다. 오시팔교의 지도가 아무리 정밀해도, 그 지도가 그려진 땅 밖에 있는 것을 담을 수는 없다.

나무와 그림자 — 「조닌초」

대성인은 「조닌초」에서 이 관계를 하나의 비유로 말씀하신다. 『열반경』의 「만약 삼보에 대해 다른 생각을 닦는 자는 … 성문 · 연각 · 보살의 과를 끝내 얻지 못한다」는 경문을 들어 그것이 법화경 수량품을 드러낸 글이라 하시고, 이렇게 이으신다.

此の経文は正しく法華経の寿量品を顕説せるなり寿量品は木に譬え爾前・迹門をば影に譬うる文なり、経文に又之有り、五時・八教・当分・跨節・大小の益は影の如し本門の法門は木の如し云云

이 경문은 바로 법화경의 수량품을 드러내어 설한 것이니라. 수량품은 나무에 비유하고 이전의 경과 적문은 그림자에 비유한 글이니라. 경문에 또 이것이 있느니라. 「오시 · 팔교 · 당분 · 과절 · 대승과 소승의 이익은 그림자와 같고, 본문의 법문은 나무와 같다」 운운.

「조닌초」, 981쪽

4부에서 본 『천태사교의』는 법화의 때를 「해가 한낮에 이르러 비스듬한 그림자가 남지 않는 때」라 그렸다. 대성인의 말씀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오시 · 팔교 · 당분(제자리의 이익) · 과절(마디를 넘은 이익) · 대승과 소승 — 천태 교학이 공들여 세운 가르침의 모든 구별과 그 이익 — 이 통틀어 「그림자」이고, 본문의 법문이 「나무」다. 창가교학연구실의 강의는 「경문에 또 이것이 있다」를 『열반경』의 「나무로 말미암아 나무의 그림자가 있는 것과 같다」는 경문을 가리킨 것으로 보고, 수량품 이전의 경들의 이익은 본래 수량품의 힘에 의한 것이어서 수량품을 떠나면 성불 · 득도라는 글만 있고 실체는 없다고 풀이한다. 그림자는 나무가 있어야 생긴다. 이전의 경과 적문의 이익이 실제로 있었다면, 그것은 그 뒤에 서 있는 나무 — 구원의 부처와 그 법 — 의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오시팔교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그림자는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준다. 그림자의 모양을 정밀하게 그린 지도가 오시팔교라면, 그 지도는 나무를 찾는 데 쓰일 때 제 몫을 다한다. 대성인이 「일대성교대의」에서 오시팔교를 그토록 자세히 풀이하신 것도, 「조닌초」에서 그것을 그림자라 하신 것도, 같은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천태사교의』 — 법화의 때 = 해가 한낮에 이르러 비스듬한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五時・八教・当分・跨節・大小の益は影の如し」오시 · 팔교 · 당분 · 과절 · 대승과 소승의 이익은 그림자와 같다이전의 경 · 적문
나무「本門の法門は木の如し」본문의 법문은 나무와 같다(「조닌초」 981쪽)수량품
「爾前の円と迹門の円は相似せり」이전의 원교와 적문의 원교는 서로 닮았다
「本門と迹門とは教主已に久始のかわりめ」본문과 적문은 교주가 이미 구원과 시성으로 바뀌었다

(「치병대소권실위목」 996쪽)

도표 21 · 그림자와 나무

「위없음에 겹겹의 까닭이 있다」

신해품의 끝에서 네 성문은 「위없는 보배 무더기를 구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얻었다(無上寶聚 不求自得)」고 했다. 『어의구전』은 이 「위없음(無上)」이라는 말을 풀이하며, 오시팔교가 그린 사다리를 끝까지 올라가신다.

御義口伝に云く無上に重重の子細あり、外道の法に対すれば三蔵教は無上・外道の法は有上なり又三蔵教は有上・通教は無上・通教は有上・別教は無上・別教は有上・円教は無上、又爾前の円は有上・法華の円は無上・又迹門の円は有上・本門の円は無上、又迹門十三品は有上・方便品は無上・又本門十三品は有上・一品二半は無上、又天台大師所弘の止観は無上・玄文二部は有上なり、今日蓮等の類いの心は無上とは南無妙法蓮華経・無上の中の極無上なり

어의구전에 이르기를, 위없음(無上)에는 겹겹의 까닭이 있느니라. 외도의 법에 견주면 삼장교는 위없고 외도의 법은 위가 있느니라. 또 삼장교는 위가 있고 통교는 위없으며, 통교는 위가 있고 별교는 위없으며, 별교는 위가 있고 원교는 위없느니라. 또 이전의 원교는 위가 있고 법화의 원교는 위없으며, 또 적문의 원교는 위가 있고 본문의 원교는 위없느니라. 또 적문 열세 품은 위가 있고 방편품은 위없으며, 또 본문 열세 품은 위가 있고 일품이반은 위없느니라. 또 천태대사가 넓힌 지관은 위없고 현의 · 문구의 두 부는 위가 있느니라. 지금 니치렌 등의 부류의 마음으로는, 위없음이란 남묘호렌게쿄이니 위없음 가운데 지극한 위없음이니라.

『어의구전』 신해품 6개의 대사 제5 「무상보취 불구자득의 일」, 727쪽

이 말씀은 「위없다」는 것이 언제나 무엇과 견주어 하는 말임을 보여 준다. 외도에 견주면 소승의 삼장교도 위없다. 그러나 삼장교는 통교에 견주면 위가 있다. 이렇게 한 계단씩 오르면, 장 → 통 → 별 → 원의 화법사교가 나오고, 이전의 원교 → 법화의 원교가 나오며, 거기서 다시 적문 → 본문, 그리고 본문 가운데서도 수량품을 중심으로 한 「일품이반」으로 오른다. 마지막에 「위없음 가운데 지극한 위없음(極無上)」으로 남묘호렌게쿄가 놓인다.

이 사다리의 아래쪽 절반은 5부에서 본 화법사교와 「이전의 원교 · 법화의 원교」의 구별, 곧 오시팔교 그 자체다. 위쪽 절반 — 적문과 본문, 일품이반, 그리고 남묘호렌게쿄 — 은 오시팔교가 닿지 못한 곳이다. 「개목초」의 오중상대(내외 · 대소 · 권실 · 본적 · 종탈)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오시팔교는 이 긴 사다리의 아래쪽 계단으로서 제자리를 얻는다.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르는 길의 일부가 된다.

  1. 남묘호렌게쿄「無上とは南無妙法蓮華経・無上の中の極無上なり」위없음이란 남묘호렌게쿄이니 위없음 가운데 지극한 위없음(『어의구전』 727쪽)
  2. 일품이반「一品二半は無上」일품이반은 위없다
  3. 본문의 원「迹門の円は有上・本門の円は無上」적문의 원교는 위가 있고 본문의 원교는 위없다
  4. = 오시팔교 밖= 오시팔교의 끝
  5. 법화의 원「爾前の円は有上・法華の円は無上」이전의 원교는 위가 있고 법화의 원교는 위없다
  6. = 화법사교
    1. 원교
    2. 별교
    3. 통교
    4. 삼장교
  7. 외도(위가 있음)
「無上に重重の子細あり」위없음에는 겹겹의 까닭이 있다
도표 22 · 위없음의 겹겹

아버지의 큰 은혜

『어의구전』은 같은 신해품의 마지막 대목, 네 성문이 「세존의 큰 은혜」를 찬탄하는 구절을 이렇게 읽으신다.

御義口伝に云く世尊とは釈尊大恩とは南無妙法蓮華経なり、釈尊の大恩を報ぜんと思わば法華経を受持す可き者なり是れ即ち釈尊の御恩を奉じ奉るなり、大恩を題目と云う事は次下に以稀有事と説く、希有の事とは題目なり、此の大恩の妙法蓮華経を四十余年の間秘し給いて後八箇年に大恩を開き給うなり

어의구전에 이르기를, 세존이란 석존이요, 큰 은혜란 남묘호렌게쿄이니라. 석존의 큰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법화경을 수지해야 하느니라. 이것이 곧 석존의 은혜를 받드는 것이니라. 큰 은혜를 제목이라 하는 것은, 바로 다음에 「희유한 일로써(以稀有事)」라 설하였으니, 희유한 일이란 제목이니라. 이 큰 은혜인 묘법연화경을 사십여 년 동안 감추어 두셨다가, 뒤의 여덟 해에 큰 은혜를 여셨느니라.

『어의구전』 신해품 6개의 대사 제6 「세존대은의 일」, 727쪽

1부에서 본 「손바닥의 잎」 — 알고서도 말하지 않은 것 — 과, 2부에서 본 『무량의경』의 「사십여 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가 여기서 「큰 은혜」라는 이름을 얻는다. 사십여 년 동안 감추어 둔 것은 부처가 인색해서가 아니었다. 거름 치우는 일부터 창고를 맡기는 일까지, 아들이 그것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 시간이었다. 같은 대목은 장안대사가 든 부처의 열 가지 은혜(十恩)를 인용하는데, 그 가운데 녹야원에서 작은 가르침을 베푼 은혜(鹿苑施小), 작은 것을 부끄러워하고 큰 것을 사모하게 한 은혜(恥小慕大), 집안일을 맡긴 은혜(領知家業), 아버지와 아들임을 확정한 은혜(父子決定)가 있다. 4부에서 본 궁자의 비유의 장면, 곧 오시의 장면이 하나하나 부처의 「은혜」로 헤아려진다. 그리고 대성인은 그 은혜의 본체를 남묘호렌게쿄라 하시고, 십은을 들기 바로 앞에서 「지금 니치렌 등의 부류가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러 일본국의 일체중생을 돕고자 하는 것은 어찌 세존의 큰 은혜가 아니겠는가」라고도 하신다.

교를 아는 것

대성인은 이즈 유배 중에 쓰신 「교기시국초」에서, 불법을 넓히는 이가 알아야 할 다섯 가지를 드셨다. 교(敎) · 기(機) · 시(時) · 국(國) · 교법 유포의 앞뒤(序)다. 그 첫째, 교를 아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所以に法華経は一切経の中の第一の経王なりと知るは是れ教を知る者なり。

그러므로 법화경은 일체경 가운데 제일의 경왕이라고 아는 것이 곧 교를 아는 것이니라.

「교기시국초」, 440쪽

이어서 대성인은 광택사의 법운과 도량사의 혜관은 열반경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 하고, 징관과 홍법은 화엄경 · 대일경이, 길장과 자은은 반야경 · 해심밀경이 뛰어나다 했으나, 천태대사 한 사람만이 법화경이 가장 뛰어나다고 세웠다고 하신다. 3부의 남삼북칠과 6부의 여러 종파가 여기에 한 줄로 늘어선다. 「이러한 서로 다름을 잘 가려낸 이가 교를 아는 사람이다.」 오시팔교는 이 「교를 아는 것」의 체계다.

그러나 대성인에게 교를 아는 것은 다섯 가운데 첫째일 뿐이다. 듣는 이의 근기(機)를 알고, 지금이 어떤 때(時)인지를 알고, 이 나라(國)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고, 앞서 무엇이 넓혀졌는지(序)를 알아야 한다. 천태는 교를 남김없이 밝혔지만, 그때는 상법이었다. 오시팔교가 「석존의 일대」를 읽는 지도라면, 대성인은 그 지도를 들고 「말법의 지금, 이 나라에서」 무엇을 넓혀야 하는가를 물으셨다. 그 답이 6부에서 본 「그물코를 넘은 벼리」, 곧 제목이었다.

묘법 한 알의 양약

5부에서 제관은 팔교를 약방문과 약재에 비유했다. 대성인은 「성우문답초」에서 그 비유를 끝까지 밀고 가신다. 법리를 알지 못하는 이가 믿기만 해서 부처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답하시는 대목이다.

既に仏を良医と号し法を良薬に譬へ衆生を病人に譬ふされば如来一代の教法を擣簁和合して妙法一粒の良薬に丸ぜり豈知るも知らざるも服せん者・煩悩の病愈えざるべしや

이미 부처를 훌륭한 의사라 부르고, 법을 훌륭한 약에 비유하며, 중생을 병자에 비유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래 일대의 교법을 찧고 체로 쳐서 섞어 묘법 한 알의 양약으로 빚었으니, 알든 모르든 먹는 이가 어찌 번뇌의 병이 낫지 않겠는가.

「성우문답초」, 499쪽

「찧고 체로 쳐서 섞는다(擣簁和合)」는 법화경 수량품의 양의(良醫)의 비유에 나오는 말이다. 훌륭한 의사가 독을 마신 자식들을 위해 좋은 약초를 구해 「찧고 체로 쳐서 섞어(擣簁和合)」 약을 지어 준다. 오시팔교는 일대의 가르침을 약방문과 약재로 가려 놓았다. 대성인은 그 모든 약재가 끝내 하나로 빚어졌다고 하신다. 아함의 쓴맛도, 방등의 꾸짖음도, 반야의 씻어 냄도 버려지지 않고 찧어지고 걸러지고 섞여서, 「묘법 한 알」이 되었다. 『어의구전』은 이 「찧고 체로 쳐서 섞는다」를 이렇게 풀이하신다.

御義口伝に云く此の経文は空仮中の三諦戒定慧の三学なり、色香美味の良薬なり擣は空諦なり簁は仮諦なり和合は中道なり与は授与なり子は法華の行者なり服すると云うは受持の義なり

어의구전에 이르기를, 이 경문은 공 · 가 · 중의 삼제요, 계 · 정 · 혜의 삼학이니라. 빛깔과 향기와 맛이 좋은 양약이니라. 찧음(擣)은 공제요, 체로 침(簁)은 가제요, 섞음(和合)은 중도이니라. 줌(與)은 주는 것이요, 자식(子)은 법화의 행자이며, 먹는다(服)는 것은 수지의 뜻이니라.

『어의구전』 수량품 27개의 대사 제8 「도사화합여자령복의 일」, 755쪽

찧는 것은 공, 체로 거르는 것은 가, 섞는 것은 중도다. 5부에서 본 화법사교의 핵심이 공 · 가 · 중의 삼제를 어떻게 보느냐 — 쪼개어 보느냐, 그대로 보느냐, 떨어뜨려 차례로 보느냐, 하나로 어우러진 것으로 보느냐 — 였다면, 여기서 삼제는 약을 짓는 손길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그 약을 먹는 것은 「수지」, 곧 받아 지니는 것이다. 바로 다음 대목인 「이 좋은 양약을 지금 여기에 남겨 둔다(是好良藥 今留在此)」에서 『어의구전』은 「양약」을 「말법에서는 남묘호렌게쿄」라 하고, 「먹는다는 것은 부르는 일」이라 하신다(756쪽).

창가학회 교학에서 오시팔교는 석존 일대의 가르침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으며 모두 법화경으로 향한다는 것을 밝히는 「교를 아는」 체계다. 대성인은 그것을 법화경을 읽는 문법으로 존중하시면서, 그 전체가 본문의 법문이라는 나무의 그림자이고, 법화경의 제목은 팔교의 그물코를 넘은 벼리라고 하셨다. 일대의 교법은 버려지지 않고 찧어지고 걸러지고 섞여 「묘법 한 알의 양약」, 곧 남묘호렌게쿄가 되었다. 그 약은 알든 모르든 받아 지녀 부르는 이의 병을 낫게 한다.

약방문과 약재「頓等四敎是化儀 如世藥方 藏等四敎名化法 如辯藥味」돈 등 넷은 화의이니 약방문과 같고 장 등 넷은 화법이니 약재의 맛을 가리는 것과 같다(『천태사교의』)
「如来一代の教法を擣簁和合して妙法一粒の良薬に丸ぜり」여래 일대의 교법을 찧고 체로 쳐서 섞어 묘법 한 알의 양약으로 빚었다(「성우문답초」 499쪽)
「擣は空諦なり簁は仮諦なり和合は中道なり」찧음은 공제요 체로 침은 가제요 섞음은 중도擣 = 공簁 = 가和合 = 중「服すると云うは受持の義なり」먹는다는 것은 수지의 뜻(『어의구전』 755쪽)
양약 = 말법에서는 남묘호렌게쿄 · 먹는다 = 부른다(756쪽)
도표 23 · 일대의 교법에서 한 알의 양약으로

가르침을 보는 다섯 눈

석존 이래 불교가 그 많은 가르침을 읽어 온 방식을 돌아보면, 다섯 번 눈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석존은 듣는 이의 마음을 보며 차례를 따라 설했고, 아는 것을 다 쏟지 않고 이익이 되는 것을 골라 설했다. 다음에 대승 경전들은 해의 비유, 다섯 가지 맛, 세 번의 법륜, 「사십여 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로 스스로를 그 차례 속에 자리매김했다. 셋째로 중국의 학승들은 순서 없이 밀려온 경전을 앞에 두고 열 갈래의 교판을 세웠다. 넷째로 천태는 때와 방식과 내용의 세 축으로 오시팔교를 세웠고, 법화경을 팔교를 넘은 제호로 보았다. 다섯째로 대성인은 그 오시팔교를 법화경을 읽는 문법으로 받으시면서, 그 전체를 본문이라는 나무의 그림자로, 법화경의 제목을 그물의 벼리로, 일대의 교법을 묘법 한 알의 양약으로 보셨다.

  1. ① 석존차례를 따른 설법「anupubbiṃ kathaṃ kathesi」차례를 따른 이야기를 설했다손바닥의 잎
  2. ② 대승 경전「四十餘年 未顯眞實」사십여 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해의 비유 · 다섯 맛 · 궁자
  3. ③ 남북조남삼북칠 · 돈 · 점 · 부정
  4. ④ 천태 · 제관오시 · 화의사교 · 화법사교「此經無復兼但對帶」이 경에는 다시 겸 · 단 · 대 · 대가 없다초팔의 제호
  5. ⑤ 니치렌 대성인「八教の網目に超えて大綱」팔교의 그물코를 넘은 벼리「五時・八教…の益は影の如し本門の法門は木の如し」오시 · 팔교의 이익은 그림자와 같고 본문의 법문은 나무와 같다「妙法一粒の良薬」묘법 한 알의 양약
도표 24 · 가르침을 보는 다섯 눈
맺으며

상자 속의 지도

제관은 고려에서 가져간 천태의 책들을 중국에 전하고, 스스로 한 권의 짧은 책을 써서 상자에 넣어 두었다. 그 책은 천태가 평생 강설한 방대한 가르침을, 처음 배우는 이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로 접어 놓은 것이었다. 다섯 때와 여덟 가르침. 그 지도는 천 년 동안 동아시아의 불교 학인들이 처음 펼치는 책이 되었다.

지도가 필요했던 까닭은 길이 많았기 때문이다. 석존은 듣는 이의 마음을 보며 한 계단씩 차례를 밟아 설했고, 아는 것을 다 쏟아 놓지 않았다. 대승 경전들은 저마다 그 차례 속에서 자기 자리를 매겼다. 해는 높은 산을 먼저 비추고, 우유는 제호가 되기까지 다섯 번 맛을 바꾸며, 부처는 사십여 년 동안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집을 나간 아들은 거름을 치우는 일부터 시작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 사람은 참으로 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경전이 순서 없이 밀려든 중국에서 학승들은 열 갈래로 갈라져 다투었고, 천태는 그 다툼을 넘어 때와 방식과 내용의 세 축으로 일대의 가르침을 읽어 냈다. 화엄은 겸하고, 아함은 다만 하나이며, 방등은 마주 세우고, 반야는 띠고, 법화경만이 순수하게 원만하다. 법화경은 팔교 가운데 한 칸이 아니라 팔교를 여는 제호였다.

대성인은 이 지도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법화경을 넓히면서 교상을 밝히지 않으면 문의에 빠짐이 있다」는 천태의 말을 그대로 받으시고, 설한 차례와 법문의 깊이를 가리시며, 여러 종파를 「차례에 어긋나면 불법이 아니다」로 판정하셨다. 그러나 대성인은 지도를 땅으로 착각하지 않으셨다. 오시팔교의 이익은 그림자이고 본문의 법문이 나무다. 이전의 원교와 적문의 원교는 서로 닮았지만, 본문의 부처는 이 세상에서 처음 깨달은 부처가 아니다. 그리고 법화경의 제목은 팔교의 그물코 사이의 또 하나의 칸이 아니라, 모든 그물코를 꿰어 들어 올리는 벼리다.

제관은 팔교를 약방문과 약재에 비유했다. 약방문은 어떤 약을 어떻게 지을지를 알려 주고, 약재의 맛을 가리는 법은 무엇이 무엇에 듣는지를 알려 준다. 그러나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약방문이 아니라 약이다. 대성인은 「여래 일대의 교법을 찧고 체로 쳐서 섞어 묘법 한 알의 양약으로 빚었다」고 하셨다. 오시팔교가 가려 놓은 모든 약재가 버려지지 않고 그 한 알 안에 들어 있다. 찧는 것은 공이요, 체로 치는 것은 가요, 섞는 것은 중도다. 그리고 그 약은 약방문을 다 외운 이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알든 모르든 먹는 이가 어찌 병이 낫지 않겠는가.」

신해품의 아들은 오십 년을 떠돌고 이십 년을 거름을 치운 끝에, 아버지의 집이 처음부터 자기의 것이었음을 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본래 구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이제 이 보배 창고가 저절로 이르렀다.」 부처의 오십 년의 설법이 그 오랜 기다림이었다면, 오시팔교는 그 기다림의 길을 그린 지도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건네지는 것은 지도가 아니라, 손바닥 위의 한 알의 약이다.

낡은 나무 탁자 위에 공이를 꽂아 둔 돌절구와 고운 가루가 남은 대나무 체가 놓이고, 그 둘레에 말린 뿌리 · 열매 · 꽃 같은 약재들이 흩어져 있으며, 가운데 작은 접시 위에 환약 한 알이 놓인 금박 수묵화
그림 3 · 돌절구와 체, 한 알의 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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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원전

  •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 「성스러운 구함 경」 MN 26, 「우빨리 경」 MN 56, 「뱀의 비유 경」 MN 22
  •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 Nikāya) — 「싱사빠 경」 SN 56.31
  •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 「마하빠리닙바나 경」 DN 16
  • 『화엄경』(60권본) 보왕여래성기품, 불타발타라 역, T9 no.278
  • 『대반열반경』 성행품, 담무참 역, T12 no.374
  • 『해심밀경』 무자성상품, 현장 역, T16 no.676
  • 『무량의경』 설법품, 담마가타야사 역, T9 no.276
  • 『묘법연화경』 방편품 · 신해품 · 여래수량품, 구마라집 역, T9 no.262
  •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 반야 역, T8 no.261
  • 천태대사 지의 『법화현의』 권1상 · 권10상, T33 no.1716 · 『법화문구』 권6, T34 no.1718 · 『사교의』, T46 no.1929
  • 묘락대사 담연 『법화문구기』, T34 no.1719
  • 제관 『천태사교의』, T46 no.1931
  • 니치렌 대성인 「입정안국론」 · 「하키리사부로전답서」 · 「관심의 본존초」 · 「일대성교대의」 · 「십법계사」 ·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 · 「선시초」 · 「소야입도전답서」 · 「창법화제목초」 · 「치병대소권실위목」 · 「조닌초」 · 「교기시국초」 · 「성우문답초」 · 『어의구전』 (창가학회판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강의 · 연구

  • 창가교학연구실, 「一代聖教大意」 · 「十法界事」 · 「三世諸仏総勘文教相廃立」 · 「曾谷入道殿御返事」 · 「常忍抄」 각 장 강의와 語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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