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원년(1257) 8월 23일 밤, 가마쿠라를 전에 없던 큰 지진이 덮쳤다. 이듬해에는 큰바람이, 그 이듬해에는 큰 기근이 들었고, 정원 원년(1259)부터는 역병이 해를 넘겨 그치지 않았다. 대성인은 뒤에 「만민이 이미 태반을 넘어 죽음을 불렀다」고 그때를 적으셨다(「안국론어감유래」, 33쪽). 몇 해 뒤 그 시절을 돌아보며 쓰신 「성우문답초」는 이렇게 시작한다. 「무릇 생을 받은 뒤로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이치는 어진 임금으로부터 천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이를 알지만, 참으로 이를 큰일로 여기고 이를 탄식하는 자는 천만 명에 한 사람도 있기 어렵다.」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진다는 이 오래된 진리를, 대성인은 탄식으로 끝내지 않으셨다.
무상(無常)은 불교의 가장 오래된 말이면서 가장 오해받기 쉬운 말이다. 흔히 무상은 「덧없음」으로 읽힌다. 꽃이 지고 사람이 늙고 나라가 망한다. 그러니 무엇에도 마음을 두지 말라. 헤이안 문학의 「모노노아와레」와 중세의 무상관(無常觀)은 이 정서를 미감으로 다듬었고, 그 미감은 오늘날까지 무상이라는 말에 쓸쓸한 빛깔을 입혀 놓았다. 그러나 석존이 무상을 말한 자리는 탄식의 자리가 아니었다. 석존은 「변하지 않는 자아가 있다」는 인도 사상의 오랜 전제를 깨뜨리려고 무상을 말했고,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 것은 사라지는 법이니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로 그 가르침을 맺었다. 무상은 처음부터 사람을 멈추게 하는 말이 아니라 움직이게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불교사는 무상을 둘러싸고 하나의 커다란 물음을 안게 된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면 부처도, 열반도, 진리도 무상한가. 대승은 『열반경』에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선언했고, 법화경은 「세간의 모습이 그대로 상주한다」고 설했다. 무상을 가르친 불교가 어떻게 상주를 말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상주는 무상을 부정하는 것인가, 무상을 끌어안는 것인가.
이 페이지는 무상이라는 개념이 걸어온 길을 여섯 부로 나누어 읽는다. 1부는 석존의 무상 — 「일어난 것은 모두 사라지는 법」이라는 통찰과 마지막 유훈. 2부는 아비달마의 무상 — 찰나마다 생멸하는 존재의 분석과 무상을 관하는 수행. 3부는 대승의 무상 — 물거품 같은 몸, 설산동자의 반 게송, 그리고 무상과 상주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열반경』. 4부는 법화경과 천태 — 무상의 세계를 「불타는 집」이라 하면서 동시에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고 설하는 법화경과, 그것을 읽어 낸 천태의 교판. 5부는 대성인의 무상 — 정가의 재난 한가운데서 무상을 말씀하시고, 자식을 잃은 어머니와 함께 「무상하도다」라고 우신 편지들. 6부는 무상을 상주로 여는 법문 — 『어의구전』의 「무상을 상주라고 설한다」와 「본유의 생사」다.
- 우파니샤드변하지 않는 아트만(nitya)
- 석존「제행은 무상하다」(Dhp 277)
- 아비달마생·주·이·멸, 찰나멸
- 용수「불상역부단」 무상도 자성이 없다
- 『열반경』「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 · 여래상주
- 법화경「시법주법위 세간상상주」 · 수량품의 상주
- 천태「일어남은 법성의 일어남, 사라짐은 법성의 사라짐」
- 니치렌 대성인「무상을 상주라고 설한다」 · 본유의 생사
「늘 그러함」을 부정하는 말
무상은 산스크리트 아니티야(anitya), 팔리어 아닛차(anicca)의 번역이다. 니티야(nitya)는 「늘 그러한 것」, 「영원한 것」이라는 뜻이고, 앞의 a는 그것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무상은 처음부터 무엇인가를 부정하는 말로 태어났다. 부정당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석존 이전의 우파니샤드 철학은 우주의 근본 원리 브라흐만(brahman)과 개인의 본체 아트만(ātman)이 하나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를 가르쳤다. 이 아트만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고, 몸이 바뀌어도 그대로 남는 니티야한 존재였다. 업과 윤회의 사상도 이 변하지 않는 자아를 전제로 했다. 후대의 『바가바드기타』가 말하듯, 몸은 낡은 옷처럼 갈아입지만 옷을 입는 자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석존이 「모든 것은 무상하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은 꽃이 진다는 감상이 아니라 이 「변하지 않는 무엇」의 존재를 겨눈 철학적 선언이었다. 1부 끝에서 보듯이, 대성인은 석존이 외도의 스승들에게서 배우다가 「고·공·무상·무아의 이치를 깨달아 내어」 비로소 외도의 제자라는 이름을 벗었다고 말씀하신다.
세 가지 교만이 꺾이던 날
석존 자신의 무상 체험은 어떻게 전해지는가. 후대의 불전은 이를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이야기로 그린다. 왕궁의 동·남·서문으로 나간 태자가 차례로 노인과 병자와 죽은 이를 보고, 마지막 북문에서 출가 사문을 보고 출가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다만 팔리 경전에서 이 네 광경의 이야기는 과거불 비파시의 생애로 전해지며(『디가 니까야』 「대본경」, DN 14), 석존 자신의 생애로 정형화된 것은 후대의 불전에서다.
석존이 스스로 자신의 젊은 날을 회고한 말은 『앙굿따라 니까야』의 「유연경(柔軟經)」(Sukhumāla sutta)에 남아 있다. 석존은 아버지의 궁전에서 계절마다 다른 궁전에 머물며 비단옷을 입고 지냈다고 말한 뒤, 이렇게 회고한다. 어리석은 범부는 자신도 늙는 존재이면서 늙은 이를 보면 싫어하고 부끄러워한다. 자신도 병드는 존재이면서 병든 이를 보면 싫어한다. 자신도 죽는 존재이면서 죽은 이를 보면 싫어한다. 「나 또한 늙는 존재이고 늙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 이렇게 숙고했을 때, 젊음에 대한 교만(yobbanamada)이 모두 끊어졌다. 병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그러하여, 건강에 대한 교만(ārogyamada)과 삶에 대한 교만(jīvitamada)이 끊어졌다.
- 젊음의 교만(yobbanamada)「나도 늙는 존재다」
- 건강의 교만(ārogyamada)「나도 병드는 존재다」
- 삶의 교만(jīvitamada)「나도 죽는 존재다」
남의 늙음·병·죽음을 싫어하는 마음은 자신의 무상을 잊은 교만이다(「유연경」, AN 3.38)
이 회고에서 무상은 바깥 세계의 관찰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자각이다. 남의 늙음을 보고 싫어하는 마음은 사실 「나는 늙지 않는다」는 무의식의 교만에서 나온다. 무상을 안다는 것은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세상 속에 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5부에서 볼 「성우문답초」가 「먼저 간 이는 덧없고 남은 이는 현명한 듯이 여긴다」고 꾸짖은 것도 바로 이 교만이다.
「제행은 무상하다」
석존의 무상 가르침을 가장 짧게 담은 말은 『담마파다(법구경)』의 게송이다.
Sabbe saṅkhārā aniccā'ti, yadā paññāya passati; atha nibbindati dukkhe, esa maggo visuddhiyā.
「모든 지어진 것은 무상하다」고 지혜로써 볼 때, 그때 사람은 괴로움에 싫증을 내어 떠난다.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지어진 것」으로 옮긴 상카라(saṅkhāra)는 한역에서 「행(行)」이 되었다. 원인과 조건이 모여 만들어진 모든 것, 곧 유위법(有爲法)을 가리킨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네 글자는 이 게송의 첫 구절이다. 이어지는 두 게송(278·279송)은 같은 형식으로 「모든 지어진 것은 괴로움이다(sabbe saṅkhārā dukkhā)」, 「모든 법은 내가 아니다(sabbe dhammā anattā)」를 말한다. 무상·고·무아의 세 특징(삼상, tilakkhaṇa)이 이렇게 나란히 놓였다.
이 게송에서 무상은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무상을 「지혜로써 볼 때」 사람은 싫증을 내어 떠나고(nibbidā), 그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 된다. 무상을 보는 것은 길의 첫걸음이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무상은 어떻게 괴로움과 무아로 이어지는가. 『상윳따 니까야』의 「무상한 것 경」(Yadanicca sutta)은 그 연쇄를 이렇게 정식화한다.
Rūpaṃ, bhikkhave, aniccaṃ. Yadaniccaṃ taṃ dukkhaṃ; yaṃ dukkhaṃ tadanattā.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인 것은 내가 아니다.
경은 같은 말을 느낌·지각·의지 작용·의식에 대해서도 되풀이한다. 다섯 무더기(오온) 모두가 무상하고, 그러므로 괴로움이며, 그러므로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다」. 석존의 두 번째 설법으로 전하는 「무아상경」(SN 22.59)은 같은 논리를 문답으로 펼친다.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습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인 것은 내가 아니다」(SN 22.15)
여기서 무상이 괴로움인 까닭은 변화 자체가 괴로워서가 아니다.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붙잡으려 할 때 괴로움이 생긴다. 무상은 세계의 사실이고, 괴로움은 그 사실과 어긋나는 마음의 결과다. 그리고 그 어긋남의 뿌리에 「나」라는 집착이 있다. 무상과 고와 무아는 하나의 통찰을 세 방향에서 본 것이다. 무아와 오온의 문제는 핵심 개념 「무아 · 오온」에서 따로 다룬다.
생겨나는 것은 모두 사라지는 것
석존의 첫 설법을 들은 다섯 비구 가운데 콘단냐가 처음으로 「법의 눈」을 얻었을 때, 경전은 그가 본 것을 한 문장으로 적는다.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ṃ.
무엇이든 일어나는 성질을 가진 것은 모두 사라지는 성질을 가진 것이다.
최초의 제자가 얻은 깨달음이 이 한 문장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일어나는 것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관찰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연기(緣起)의 다른 표현이다.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일어난 것은 원인과 조건이 다하면 사라진다. 무엇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이미 그것이 사라질 것임을 품고 있다. 무상은 연기하는 세계의 시간적 얼굴이다. 연기에 관해서는 계보 一 「십이연기」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그리고 이 문장은 거꾸로도 읽힌다. 괴로움도 일어난 것이라면 괴로움도 사라지는 성질을 가진다.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고, 무상하기 때문에 수행은 사람을 바꿀 수 있다. 만약 모든 것이 항상하다면 번뇌도 항상하여 끊을 수 없고, 깨달음도 이미 있거나 영원히 없을 것이다. 무상은 해탈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들숨과 날숨 사이 — 죽음의 새김
석존은 무상을 머리로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날마다 몸으로 새기게 했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죽음의 새김 경」(Maraṇassati sutta)에서 석존은 비구들에게 죽음을 어떻게 새기고 있는지 묻는다. 한 비구는 「하루 낮 하루 밤만 더 살 수 있다면 세존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많은 일을 할 텐데」라고 새긴다고 답한다. 다른 비구들은 하루 낮, 한 끼 밥을 먹는 동안, 네다섯 숟갈을 씹어 삼키는 동안, 한 숟갈을 삼키는 동안이라고 차례로 답한다. 마지막 비구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 내쉬고 들이쉬는 동안만 살 수 있다면」이라고 답한다.
석존은 앞의 비구들을 「게으르게 죽음을 새기는 자」라 하고, 한 숟갈과 한 호흡을 말한 비구들을 「부지런히 죽음을 새기는 자」라 칭찬한다.
- 하루 낮 하루 밤
- 하루 낮
- 한 끼 밥을 먹는 동안
- 네다섯 숟갈을 삼키는 동안
- 한 숟갈을 삼키는 동안
-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
(「죽음의 새김 경」, AN 6.19)
5부에서 보듯이, 대성인은 「지묘법화문답초」에서 「나가는 숨은 들어오는 숨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쓰시고, 이어서 「목숨은 이미 한 생각을 넘지 않는다」고 하셨다. 죽음을 한 호흡의 거리에 두라는 석존의 가르침이, 한 생각의 신심에 모든 것을 거는 법화경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겨자씨 한 줌 — 키사 고타미
무상을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로, 『담마파다』의 주석서와 장로니게 주석서가 전하는 키사 고타미의 일화가 있다. 어린 아들을 잃은 키사 고타미는 죽은 아이를 안고 약을 구하러 다니다 석존을 찾아간다. 석존은 「한 번도 사람이 죽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 한 줌을 얻어 오라」고 이른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으나 죽음을 겪지 않은 집은 한 곳도 없었다. 그녀는 비로소 죽음이 자기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아이를 묻은 뒤 출가했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에서 석존은 슬픔을 꾸짖지 않는다. 「무상하니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그녀가 스스로 걸어서 무상을 알게 한다. 무상의 지혜는 슬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홀로 짊어진 사람을 다른 이들의 슬픔과 이어 주는 것이다. 5부에서 볼,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에게 보낸 대성인의 편지들은 이 이야기와 또 다른 방식으로 슬픔 곁에 서신다.
마지막 말과 제석천의 게송
『디가 니까야』의 「대반열반경」(DN 16)은 쿠시나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석존이 남긴 마지막 말을 이렇게 전한다.
Handa 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ā.
이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이르노라. 모든 지어진 것은 사라지는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여 이루라.
마지막 말이 무상이었다. 그리고 그 무상은 곧바로 「게으르지 말라(appamāda)」로 이어진다. 무상은 체념의 근거가 아니라 정진의 근거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해야 한다.
같은 경은 석존이 반열반에 드신 순간 제석천(삭카)이 읊었다는 게송을 전한다.
Aniccā vata saṅkhārā, uppādavayadhammino; uppajjitvā nirujjhanti, tesaṃ vūpasamo sukho.
참으로 모든 지어진 것은 무상하니,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그 성질이다. 일어났다가는 사라진다. 그것들이 고요히 가라앉음이 즐거움이다.
이 게송은 3부에서 볼 『열반경』의 설산게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과 구조가 거의 같다. 「무상하다 — 생멸이 그 성질이다 — 생멸이 그치면 — 고요함이 즐거움이다.」 초기 경전에서 석존의 반열반을 기리던 게송이, 대승의 『열반경』에서는 석존이 과거세에 몸을 던져 얻은 진리의 게송으로 다시 태어난다. 같은 네 구절이 어떤 문맥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깊이를 얻게 되는 과정을 3부에서 따라가 보자.
- 무상
- 생멸이 그 성질
- 생멸이 그침
- 고요함이 즐거움
외도의 「상」을 깨뜨린 무상
대성인은 석존이 무상을 설한 의의를 어떻게 보셨는가. 「개목초」는 석존 이전의 인도 사상이 모두 「이천·삼선(二天三仙)」의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씀하신 뒤, 석존도 처음에는 그들에게서 배웠다고 쓰신다.
教主釈尊もかれに習い伝えて外道の弟子にて・ましませしが苦行・楽行・十二年の時・苦・空・無常・無我の理をさとり出してこそ外道の弟子の名をば離れさせ給いて無師智とはなのらせ給いしか
교주 석존도 그들에게서 배워 전하여 외도의 제자로 계셨으나, 고행과 낙행의 열두 해 끝에 고·공·무상·무아의 이치를 깨달아 내시고서야 외도의 제자라는 이름을 떠나시어 스승 없이 얻은 지혜(무사지)라고 이름하셨느니라.
석존을 외도의 제자에서 부처로 만든 것이 「고·공·무상·무아의 이치」였다. 무상은 불교를 불교이게 한 첫 번째 표지다. 「보은초」는 이것을 외도와의 대비로 더 분명히 하신다.
外道は常.楽・我.浄と立てしを仏・世に出でさせ給いて苦.空・無常.無我と説かせ給いき、此のものどもは常楽我浄といへり
외도는 상·락·아·정을 세웠는데, 부처가 세상에 나오시어 고·공·무상·무아라고 설하셨느니라. 그런데 이자들은 상락아정이라고 하는구나.
이것은 마명과 용수가 대승을 펼 때 소승의 무리가 던진 비난을 대성인이 소개하시는 대목이다. 소승의 사람들은 「부처는 외도의 상락아정을 깨뜨리려고 무상을 설했는데, 대승을 말하는 자들이 다시 상락아정을 말하니 외도로 돌아간 것이다」라고 공격했다. 이 비난은 3부의 핵심 물음을 미리 보여 준다. 무상을 설한 불교가 다시 「상(常)」을 말할 때, 그것은 외도로의 후퇴인가, 무상을 넘어선 한 걸음인가.
「소야입도전답서」는 아함경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하신다.
阿含経の題目は一経の所詮・無常の理をおさめたり、外道の経の題目のあうの二字にすぐれたる事百千万倍なり、九十五種の外道・阿含経の題目を聞いてみな邪執を倒し無常の正路におもむきぬ
아함경의 제목은 한 경의 결론인 무상의 이치를 거두었느니라. 외도의 경의 제목인 「아우(阿漚)」 두 글자보다 백천만 배 뛰어나니, 아흔다섯 종의 외도가 아함경의 제목을 듣고 모두 그릇된 집착을 무너뜨리고 무상의 바른 길로 나아갔느니라.
「아우(阿漚)」는 외도의 경전이 첫머리에 둔다는 두 글자로, 묘락대사는 「아(阿)는 무(無), 우(漚)는 유(有)」라고 풀이했다. 외도의 사상이 결국 유와 무의 두 견해에 머문다는 뜻이다.
대성인은 아함경의 무상을 경의 사다리 맨 아래에 두시면서도 「외도보다 백천만 배 뛰어나다」고 하셨다. 무상은 버려야 할 낡은 가르침이 아니라 불교 전체의 토대다. 다만 대성인은 같은 편지에서 이어서, 반야경·화엄경·대일경의 제목을 들은 사람들도 각기 공과 중도의 이치는 깨달았으나 「아직 십계호구·백계천여·삼천세간의 묘각의 공덕은 듣지 못했다」고 하신다. 무상의 바른 길은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다. 이 사다리를 4부에서 다시 오른다.
유위의 네 모습
석존 입멸 뒤 부파의 논사들은 「무상」을 존재 분석의 언어로 바꾸었다. 무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유위법(有爲法), 곧 원인과 조건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이 갖는 특징이다. 『아비달마구사론』은 근품(根品)에서 유위법에는 네 가지 모습(사유위상, 四有爲相)이 있다고 정리한다. 생겨남(生), 머무름(住), 달라짐(異), 사라짐(滅). 어떤 존재든 이 네 단계를 거친다. 생겨난 것은 잠시 머무르고, 머무르는 동안 달라지고, 마침내 사라진다.
초기 경전에도 이미 「유위의 세 가지 특징」 — 생겨남이 알려지고, 사라짐이 알려지고, 머무는 동안 달라짐이 알려진다(『앙굿따라 니까야』 「유위상경」, AN 3.47) — 이 설해져 있었다. 아비달마는 이것을 네 모습으로 나누고, 이 네 모습 자체가 어떤 성격의 존재인지를 두고 길게 논쟁했다. 설일체유부는 생·주·이·멸을 각각 독립된 실체(심불상응행법)로 세웠고, 경량부는 그것이 실체가 아니라 존재의 흐름을 이름 붙인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원인과 조건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유위법)의 특징 (『구사론』 근품)
찰나멸 — 이 네 모습이 한 찰나 안에 다 지나간다
찰나멸 — 사라짐에는 원인이 필요 없다
무상의 분석이 극한에 이른 것이 찰나멸(刹那滅, kṣaṇika)의 이론이다. 존재는 한동안 머물다 어느 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 찰나 생겨나 바로 그 찰나에 사라진다. 우리가 「같은 것이 계속 있다」고 느끼는 것은, 비슷한 것이 찰나마다 새로 생겨나 이어지기 때문이다. 촛불이 밤새 같은 불꽃으로 보이지만 실은 찰나마다 새로운 불꽃이 앞의 불꽃을 잇고 있는 것과 같다.
『구사론』은 업품에서 이 찰나멸을 논증한다. 그 핵심은 「사라짐에는 원인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장작이 타서 재가 될 때 우리는 불이 장작을 사라지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사라짐에 원인이 필요하다면, 원인을 만나지 않은 것은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 그런데 어떤 유위법도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라짐은 바깥 원인의 결과가 아니라 유위법이 본래 가진 성질이다. 생겨난 것은 생겨났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사라진다. 불이 하는 일은 장작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찰나에 장작 대신 재가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이 논증은 1부에서 본 「일어나는 성질을 가진 것은 모두 사라지는 성질을 가진 것이다」를 논리의 언어로 다시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찰나멸은 새로운 물음을 낳았다. 모든 것이 찰나마다 사라진다면 어제 지은 업은 무엇이 이어받는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어떻게 같은 사람인가. 설일체유부는 과거·현재·미래의 법이 모두 실재한다는 삼세실유(三世實有)로 답했고, 경량부는 마음의 흐름에 심어진 종자(種子)가 상속하며 변해 간다고 답했다. 이 논쟁은 핵심 개념 「업」의 2부에서 「업은 어떻게 남는가」라는 물음으로 이미 보았다. 무상을 철저히 밀고 가면 연속성의 문제가 떠오르고, 그 문제는 유식학의 아뢰야식과 핵심 개념 「구식」으로 이어진다.
두 가지 무상 — 찰나무상과 상속무상
이렇게 해서 무상은 두 층으로 나뉘어 이해되었다. 『대지도론』은 무상을 「한 생각 한 생각마다 사라짐(念念滅)」과 「이어지던 것이 무너짐(相續法壞)」의 둘로 나누는데, 뒤에 이를 찰나무상·상속무상이라 불렀다. 하나는 찰나무상(刹那無常) 또는 염념무상(念念無常)으로, 모든 것이 한 생각 한 생각마다 생멸한다는 미세한 무상이다. 다른 하나는 상속무상(相續無常)으로, 찰나의 이어짐이 어느 때 끊어지는 것 — 사람이 죽고 집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는 — 눈에 보이는 무상이다.
보통 사람이 무상을 느끼는 것은 상속무상 쪽이다. 누군가 죽었을 때, 정든 집을 떠날 때 우리는 무상을 실감한다. 그러나 수행자가 관하는 것은 찰나무상이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 이미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5부에서 보듯이 대성인이 「목숨은 이미 한 생각을 넘지 않는다」고 하신 것은 찰나무상의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그 한 생각이 무상하기에 「한 생각의 수희(一念隨喜)」가 성불의 문이 된다고 하셨다.
사념처와 네 가지 전도
무상은 관찰의 대상만이 아니라 수행의 방법이 되었다. 초기 경전 이래 가장 기본적인 수행법의 하나가 사념처(四念處), 곧 네 가지 새김의 확립이다.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의 네 대상을 차례로 관찰한다. 아비달마와 천태의 교학은 이 네 관찰을 네 가지 전도(四顚倒)를 깨뜨리는 수행으로 정리했다. 범부는 깨끗하지 않은 몸을 깨끗하다고, 괴로운 느낌을 즐겁다고, 무상한 마음을 항상하다고, 내가 없는 법을 나라고 여긴다. 사념처는 이 넷을 하나씩 바로잡는다.
대성인은 초기 저술인 「일대성교대의」(1258)에서 삼장교(소승교)의 수행 단계를 도표로 정리하시면서 이 사념처를 이렇게 적으셨다.
一に身 ――― 外道は身を浄と言い仏は不浄と説き給う
二に受 ――― 外道は三界を楽と言い仏は苦と説き給う
三に心 ――― 外道は心を常と言い仏は無常と説き給う
四に法 ――― 外道は一切衆生に我有りと云い仏は無我と説き給う(별상념처) 첫째 몸: 외도는 몸을 깨끗하다 하고 부처는 깨끗하지 않다고 설하셨다 / 둘째 느낌: 외도는 삼계를 즐겁다 하고 부처는 괴롭다고 설하셨다 / 셋째 마음: 외도는 마음을 항상하다 하고 부처는 무상하다고 설하셨다 / 넷째 법: 외도는 일체중생에게 내가 있다 하고 부처는 무아라고 설하셨다.
이어서 대성인은 「외도는 상·락·아·정이라 하고 부처는 고·부정·무상·무아라고 설한다. 총상념처(總想念處)란 앞의 고·부정·무상·무아를 단련하여 관하는 것이니라」라고 쓰신다. 넷을 따로따로 관하는 별상념처에서, 넷을 하나로 아울러 관하는 총상념처로 나아간다. 무상은 이 넷 가운데 「마음」에 배당되었다. 외도가 무엇보다 마음을 항상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 대상몸(身)외도의 전도깨끗하다(淨)부처의 가르침깨끗하지 않다(不淨)
- 대상느낌(受)외도의 전도즐겁다(樂)부처의 가르침괴롭다(苦)
- 대상마음(心)외도의 전도항상하다(常)부처의 가르침무상하다(無常)
- 대상법(法)외도의 전도내가 있다(我)부처의 가르침무아다(無我)
무상을 관하여 몸과 지혜를 재로 — 이승의 길
무상을 관하는 수행이 끝까지 가면 어디에 이르는가. 소승의 수행자는 고·공·무상·무아를 관하여 번뇌(견혹·사혹)를 끊고 아라한이 된다. 아라한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번뇌가 없으니 다음 생을 부르는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죽으면 몸도 마음도 남김없이 사라진다. 이것을 회신멸지(灰身滅智), 곧 「몸을 재로 만들고 지혜를 없앤다」고 한다.
대성인은 「십법계명인과초」에서 성문과 함께 연각(독각)의 길을 이렇게 쓰신다.
二には麟喩独覚・無仏の世に在りて飛花落葉を見て苦・空・無常・無我の観を作し見思を断じて永不成仏の身と成る
둘째는 인유독각(麟喩獨覺)이니, 부처가 없는 세상에 있으면서 날리는 꽃과 지는 잎을 보고 고·공·무상·무아의 관을 지어 견혹과 사혹을 끊고 영원히 성불하지 못하는 몸이 되느니라.
「날리는 꽃과 지는 잎(飛花落葉)」을 보고 무상을 깨닫는다 — 스승 없이 자연의 변화에서 홀로 진리를 깨치는 연각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 결말을 「영원히 성불하지 못하는 몸」이라고 쓰신다. 「일대성교대의」도 삼장교를 두고 「부처도 보살도 연각도 회신멸지하는 가르침」이라 하셨다. 무상을 깨달아 무상한 세계를 떠나는 길은, 결국 자기 자신도 무상과 함께 지워 버리는 길이었다.
여기서 무상 사상의 첫 번째 한계가 드러난다. 무상을 철저히 보면 집착이 끊어진다. 그러나 집착과 함께 생명 자체를 끊어 버리면, 무상을 본 지혜는 어디에도 쓰이지 못한다. 대승이 소승을 「이승」이라 부르며 비판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무상을 아는 것과 무상에서 도망치는 것은 다르다. 이 구별이 3부 이후의 모든 논의를 이끈다.
이 몸은 물거품 덩이와 같다
대승 경전은 무상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무상의 비유를 더 풍부하고 생생하게 만들었다. 『유마경』 방편품에서 병을 핑계로 누운 유마힐은 문병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한다.
是身如聚沫 不可撮摩 是身如泡 不得久立 是身如炎 從渴愛生 是身如芭蕉 中無有堅
이 몸은 물거품 덩이와 같아 잡을 수 없고, 이 몸은 물방울과 같아 오래 서 있지 못하며, 이 몸은 아지랑이와 같아 목마른 애착에서 생기고, 이 몸은 파초와 같아 속에 단단함이 없다.
유마힐은 이어서 이 몸은 환영 같고, 꿈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뜬구름 같고, 번개 같다고 비유를 쌓아 간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낸다. 이러한 몸은 싫어할 만하니, 마땅히 부처의 몸(法身)을 구하라. 무상한 몸을 보는 것이 곧 무상하지 않은 몸을 구하는 출발점이 된다.
『금강반야경』의 마지막 게송도 같은 비유의 계열에 있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모든 유위법은 꿈·환영·물거품·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하라.
꿈, 환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파초. 이 비유들은 대성인의 편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5부에서 볼 「성우문답초」의 「이슬보다 위태롭고 파초보다 무르고 물거품보다 덧없다」, 「마쓰노전답서」의 「번갯불 같고 아침 이슬이 해를 향해 사라지는 것과 같으며 바람 앞의 등불이 꺼지기 쉽고 파초 잎이 찢어지기 쉬운 것과 다르지 않다」가 그것이다.
- 물거품 덩이(聚沫)물방울(泡)아지랑이(炎)파초(芭蕉)『유마경』 방편품
- 꿈(夢)환영(幻)물거품(泡)그림자(影)이슬(露)번개(電)『금강경』
- 물거품과 아지랑이(水沫泡焰)법화경 수희공덕품
- 이슬파초물거품물에 비친 달풀잎의 이슬「성우문답초」 497쪽
- 번갯불아침 이슬바람 앞의 등불파초 잎「마쓰노전답서」 1383쪽
무상도 자성이 없다
그런데 대승의 무상은 비유만 풍부해진 것이 아니다. 반야경과 용수의 공(空) 사상은 무상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물었다. 아비달마는 존재를 찰나마다 생멸하는 법(dharma)의 흐름으로 분석했지만, 그 분석은 「찰나의 법」이라는 실체를 남겨 두었다. 반야경은 그 법들조차 자성이 없다(空)고 했다. 용수는 『중론』 첫머리의 귀경게에서 연기를 이렇게 노래한다.
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出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항상하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으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다.
「항상하지도 않고(不常) 끊어지지도 않는다(不斷)」 — 연기하는 세계는 상견(常見)으로도 단견(斷見)으로도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무상을 「모든 것이 끊어져 사라진다」는 뜻으로 붙잡으면 그것은 단견이 된다. 무상조차 실체로 붙잡으면 안 된다. 생멸하는 것은 자성이 없기에 생멸하고, 자성이 없기에 실은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다(不生不滅)」. 『반야심경』이 「모든 법은 공한 모습이어서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할 때, 그것은 무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상을 실체로 만드는 집착을 부정하는 것이다. 공과 중도에 관해서는 계보 二 「공 · 중도」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대성인은 「입정관초」에서 선종을 비판하실 때 바로 이 상견과 단견의 틀을 쓰신다. 선종은 부처가 이미 멸도했다고 보니 「외도의 무(無)의 견해」, 곧 단견이요, 방편의 선(禪)을 「진실 상주의 법」이라 하니 「외도의 상견」이라는 것이다. 무상을 잘못 붙잡아도, 상주를 잘못 붙잡아도 외도가 된다. 이 대목은 4부에서 다시 읽는다.
설산동자의 반 게송
대승의 무상 이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가 『대반열반경』 성행품의 설산동자(雪山童子) 이야기다. 석존이 과거세에 설산에서 홀로 수행하던 바라문이었을 때, 제석천이 그의 마음을 시험하려고 무서운 나찰(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게송의 앞 반을 읊었다.
諸行無常 是生滅法
모든 지어진 것은 무상하니, 이것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이다.
이 반 게송을 들은 동자는 기뻐하며 나머지 반을 청했다. 나찰은 굶주려 말할 힘이 없다며, 사람의 따뜻한 살과 피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동자는 나머지 반을 들려주면 자기 몸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나찰은 나머지 반을 읊었다.
生滅滅已 寂滅爲樂
생겨나고 사라짐이 다 사라지고 나면, 적멸이 즐거움이 된다.
동자는 이 게송을 바위와 벽과 나무에 새겨 뒷사람이 보게 한 뒤, 높은 나무에서 나찰의 입으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나찰은 제석천의 모습으로 돌아와 동자를 받아 내려놓고 예배했다고 경은 전한다.

이 게송의 앞 반은 1부에서 본 초기 불교의 무상관 그대로다. 「제행은 무상하고 생멸이 그 법이다.」 동자가 앞 반만으로 만족하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마음 있는 사람이면 이미 아는 사실이다. 창가교학연구실의 「니치묘성인어서」 강의는 이 대목을 이렇게 풀이한다. 앞 반은 소승적 무상관을 나타낸다. 뒤 반의 「생멸이 멸하고 나면 적멸을 즐거움으로 삼는다」에 이르러 소승적 무상관을 넘어선 대승의 사상이 드러난다. 여기에 보이는 것은 적멸이라는 공관(空觀)이지만, 거기에 상락아정의 절대적 경지가 있음을 설하여 단순한 무상의 공관을 넘어서 있다. 그리고 그 경지는 생사 유전하는 범부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상주불변의 법을 구할 때 얻어진다. 동자의 행동 자체가 이 게송의 가르침을 그대로 몸으로 나타낸 것이다.
창가학회 교학에서 설산게의 앞 반은 무상을 아는 지혜, 뒤 반은 무상을 넘어 상락아정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길은 이론이 아니라, 생멸하는 몸을 법을 위해 던지는 실천 속에서 열린다.
앞 반을 듣고 뒤 반을 위해 몸을 던졌다 — 무상한 몸으로 상주의 법을 구함(『열반경』 성행품)
일본에서 이 네 구절은 특별한 운명을 겪었다. 가나 마흔일곱 자를 한 번씩만 써서 지은 「이로하 노래(いろは歌)」가 이 설산게를 일본어로 옮긴 것이라는 해석이 중세 이래 널리 전해졌다. 「향기로운 꽃도 지고 마는 것을(色は匂へど散りぬるを)」이 「제행무상」, 「우리 세상 누군들 영원하리(我が世誰ぞ常ならむ)」가 「시생멸법」, 「덧없는 깊은 산을 오늘 넘어(有為の奥山今日越えて)」가 「생멸멸이」, 「얕은 꿈 꾸지 않으리 취하지도 않으리(浅き夢見じ酔ひもせず)」가 「적멸위락」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 대응설은 12세기 무렵부터 문헌에 보이며, 노래의 본래 뜻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이로하가 글자 익히기에 쓰였으니, 대성인 시대의 일본인에게 설산게의 네 구절은 그 대응설과 함께 꽤 가까운 말이었을 것이다.
여덟 가지 전도와 열반의 네 덕
『열반경』은 설산게만 남긴 것이 아니다. 이 경은 무상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뒤집는 듯한 선언을 한다. 열반은 상(常)·락(樂)·아(我)·정(淨)이다.
2부에서 본 사념처는 범부의 네 가지 전도를 깨뜨렸다.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고 보는 것, 괴로운 것을 즐겁다고 보는 것, 내가 없는 것을 나라고 보는 것,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고 보는 것. 『열반경』은 여기에 또 하나의 네 전도를 더한다. 이승의 전도다. 이승은 범부의 전도를 깨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그 칼로 열반과 부처마저 베어 버렸다. 항상한 열반을 무상하다고, 즐거운 열반을 괴롭다고, 참된 나인 부처를 무아라고, 깨끗한 법신을 깨끗하지 않다고 본다. 범부의 네 전도와 이승의 네 전도를 합해 여덟 가지 전도(八顚倒)라 한다.
세간에 대해서는 무상, 열반과 여래에 대해서는 상주(『대반열반경』)
이 구조에서 무상은 틀린 가르침이 아니다. 세간을 무상으로 보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 시선을 그대로 부처와 열반에까지 넓히면 전도가 된다. 무상은 세간에 대한 진리이고, 상주는 여래에 대한 진리다. 『열반경』은 이것을 「여래는 상주하여 변함이 없다(如來常住無有變易)」라는 말로 거듭 선언한다. 그리고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를 무상하다고 말한다면, 어찌하여 그 사람의 혀가 떨어지지 않겠는가」라고까지 말한다. 5부에서 보듯이 대성인은 「현방법초」에서 이 경문으로 방법(謗法)의 모습을 설명하신다.
1부에서 소승의 무리가 대승을 「외도의 상락아정으로 돌아갔다」고 비난한 장면을 기억하자. 『열반경』의 대답은 이것이다. 외도의 상락아정은 무상을 모르는 상이다. 열반의 상락아정은 무상을 철저히 안 뒤에, 무상을 넘어선 자리에서 말하는 상이다. 같은 「상」이라는 글자가 무상의 이편에 있느냐 저편에 있느냐에 따라 전도가 되기도 하고 진실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열반경』의 이 구조는 아직 하나의 물음을 남긴다. 세간은 무상이고 열반은 상주라면, 상주에 이르려면 무상한 세간을 떠나야 하는가. 설산게의 「생멸이 멸하고 나면」은 생멸이 끝난 저편에 적멸이 있다는 뜻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이 법화경이고, 그것을 끝까지 읽어 낸 것이 6부에서 볼 대성인의 「무상을 상주라고 설한다」이다.
「삼계는 편안함이 없어 불타는 집과 같다」
법화경도 무상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비유품의 「삼거화택(三車火宅)의 비유」는 무상한 세계를 불타는 낡은 집에 비유한다. 집 안에서 아이들은 불이 난 줄도 모르고 놀이에 빠져 있다. 장자(부처)는 그 집을 이렇게 노래한다.
三界無安 猶如火宅 衆苦充滿 甚可怖畏 常有生老 病死憂患 如是等火 熾然不息
삼계는 편안함이 없어 불타는 집과 같으니, 온갖 괴로움이 가득하여 몹시 두렵다. 늘 태어남과 늙음과 병과 죽음의 근심이 있어, 이와 같은 불길이 거세게 타올라 그치지 않는다.
생로병사가 「불길」이고, 그 불길은 「그치지 않는다」. 무상의 현실에 대한 법화경의 인식은 초기 경전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대성인은 「지묘법화문답초」를 맺으시며 이 경문을 「여래의 가르침」으로 들고, 「적광의 도읍이 아니면 어디든 다 괴로움이리라」고 쓰셨다.
같은 법화경의 화성유품은 「화성보처(化城寶處)의 비유」를 설한다. 오백 유순의 험한 길을 가던 사람들이 지쳐 돌아가려 하자, 길잡이가 신통력으로 길 중간에 성 하나를 만들어 쉬게 한다. 사람들이 쉬고 나자 길잡이는 성을 없애고, 이것은 쉬게 하려고 만든 성(化城)일 뿐 참된 보배가 있는 곳(寶處)은 가까이 있으니 더 가자고 이끈다. 이승이 얻은 열반이 바로 이 화성이다. 2부에서 본, 무상을 관해 번뇌를 끊고 회신멸지에 이르는 열반은 참된 목적지가 아니라 지친 이를 쉬게 하려는 방편이었다. 6부에서 대성인은 이 화성을 「무상」, 보처를 「상주」로 읽으시고, 「화성이 곧 보처」라고 여신다.
무상한 세간을 벗어나 쉬는 열반은 아직 목적지가 아니다
「이 법은 법의 자리에 머물러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
그런데 같은 법화경의 방편품은 무상의 세계를 전혀 다른 눈으로 본다.
諸佛兩足尊 知法常無性 佛種從緣起 是故說一乘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於道場知已 導師方便說
모든 부처 양족존은 법이 늘 자성이 없음을 알고, 부처의 종자가 연(緣)을 따라 일어남을 알기에 일승을 설하느니라. 이 법은 법의 자리에 머물러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 도량에서 이를 알고 나서 도사는 방편으로 설하느니라.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世間相常住)」. 불타는 집이라고 했던 바로 그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앞 구절이 말하듯 법은 「늘 자성이 없다(常無性)」.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어서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법이 자성 없이 연을 따라 일어나는 그 모습 그대로가 진여의 자리(法位)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무상하게 변해 가는 하나하나의 모습이, 변해 가는 그대로 실상의 나타남이다.
창가교학연구실의 「입정관초」 강의는 이 경문을 「일체의 만법은 진여의 법위에 머물러 있으므로, 갖가지 차별을 지닌 무상한 세간의 모습도 그대로 평등하고 상주하는 진여의 나타남」이라고 풀이한다. 『열반경』이 세간=무상, 열반=상주로 나누었다면, 법화경 방편품은 무상한 세간의 모습 그 자체를 상주라고 본다. 둘을 나누던 경계선이 여기서 사라진다. 계보 三 「제법실상」에서 본 「제법실상」, 곧 모든 법이 그대로 실상이라는 법화경의 세계관이 무상의 문제에 적용된 것이다.
대성인은 「입정관초」에서 이 경문을 기준으로 선종을 비판하신다.
然而法華経の仏は寿命無量・常住不滅の仏なり、禅宗は滅度の仏と見るが故に外道の無の見なり、是法住法位・世間相常住の金言に背く僻見なり、禅は法華経の方便無得道の禅なるを真実常住法と云うが故に外道の常見なり
그러나 법화경의 부처는 수명이 무량하고 상주불멸하는 부처이니라. 선종은 멸도한 부처로 보기 때문에 외도의 무(無)의 견해이니, 「이 법은 법의 자리에 머물러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는 금언에 어긋나는 그릇된 견해이니라. 선은 법화경에서 볼 때 방편이요 득도가 없는 선이거늘, 이를 진실 상주의 법이라 하니 외도의 상견(常見)이니라.
같은 글에서 단견과 상견이 함께 비판된다. 부처를 「이미 사라진 것」으로 보는 것은 무상을 잘못 붙잡은 것이고, 방편의 수행을 「영원한 진실」로 붙잡는 것은 상주를 잘못 붙잡은 것이다. 법화경의 상주는 이 둘 사이에 있다. 무상하게 변하는 세간의 모습을 떠나지 않으면서, 그 모습 하나하나를 진여의 나타남으로 보는 것이다.
수량품 — 멸도하지 않는 멸도
법화경 본문(本門)의 여래수량품은 이 세간상상주를 부처 자신의 생명으로 보여 준다. 석존은 오백진점겁의 아득한 옛날에 이미 성불했고, 그 뒤로 줄곧 이 사바세계에서 법을 설해 왔다. 그런데 왜 석존은 쿠시나라에서 열반에 들었는가.
爲度衆生故 方便現涅槃 而實不滅度 常住此說法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에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 보이지만, 실은 멸도하지 않고 늘 여기에 머물러 법을 설하느니라.
부처가 늘 곁에 있으면 사람들은 게을러지고 공경하는 마음을 잃는다. 그래서 부처는 「만나기 어렵다」는 마음을 일으키려고 방편으로 죽음을 보인다. 1부에서 본 석존의 마지막 말 「모든 지어진 것은 사라지는 법이니 게으르지 말라」를 수량품의 눈으로 다시 읽으면, 부처의 죽음 자체가 「게으르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던 셈이다. 부처의 무상은 방편이고, 그 바탕은 상주다.
수량품은 또 부처가 세계를 보는 눈을 이렇게 설한다.
如來如實知見三界之相 無有生死 若退若出 亦無在世及滅度者 非實非虛 非如非異 不如三界見於三界
여래는 삼계의 모습을 실제 그대로 알고 보나니, 생사의 물러남이나 나옴이 없으며, 세상에 있는 자도 멸도하는 자도 없으며, 실도 아니고 허도 아니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니, 삼계가 삼계를 보는 것과 같지 않게 보느니라.
「생사의 물러남이나 나옴이 없다(無有生死 若退若出)」. 이것은 생사가 없다는 말인가. 6부에서 대성인은 이 경문을 「본유의 생사로 보면 생사가 없다. 다만 생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읽으신다. 그리고 수량품은 세계의 종말 앞에서도 이렇게 설한다. 「중생이 겁이 다하여 큰불에 타는 것을 볼 때에도 나의 이 국토는 안온하여 천인이 늘 가득하다(衆生見劫盡 大火所燒時 我此土安隱 天人常充滿)」. 불타는 집이 그대로 안온한 국토다. 수량품의 구원과 상주에 관해서는 계보 四 「구원실성」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법화경은 무상의 경인가 — 남북조의 교판
법화경이 상주를 설했다는 것은 지금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중국 불교사에서는 오래 다투어진 문제였다. 남북조 시대의 학승들은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시간 순서로 나누는 교판(敎判)을 세웠다. 남쪽 도량사(道場寺)의 혜관(慧觀)이 세웠다고 전하는 오시교(五時敎)는 이렇다. 아함경은 유상교(有相敎), 반야경은 무상교(無相敎), 유마경 등은 억양교(抑揚敎), 법화경은 동귀교(同歸敎), 그리고 마지막 열반경이 상주교(常住敎)다. 이 교판에서 법화경은 「삼승이 일승으로 함께 돌아간다」는 것을 밝혔을 뿐 아직 부처의 상주를 밝히지 못한 경, 곧 무상의 경이었다. 양나라의 광택사 법운(法雲)도 이 견해를 이어 열반경을 법화경 위에 두었다.
대성인은 「수호국가론」에서 묻는 이의 말을 빌려 이 논쟁을 이렇게 소개하신다.
光宅の法雲法師並に道場の慧観等の碩徳は法華経を以て第四時の経と定め無常の熟蘇味と立つ、天台智者大師は法華涅槃同味と立つと雖も亦捃拾の義を存す
광택사의 법운 법사와 도량사의 혜관 등 큰 덕을 지닌 이들은 법화경을 제4시의 경으로 정하여 무상(無常)의 숙소미(熟蘇味)라고 세웠고, 천태 지자대사는 법화경과 열반경을 같은 맛이라고 세우면서도 또한 (열반경을) 이삭줍기(군습)라 하는 뜻을 두었느니라.
「선시초」는 그 시대의 판단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신다. 남북의 학승들은 일대성교 가운데 「화엄경이 제일, 열반경이 제이, 법화경이 제삼」이라 하고, 법화경은 아함·반야 등에 비하면 진실이지만 「열반경에 비하면 무상교(無常敎)·불요의경(不了義經)·사견의 경」이라 했다(「선시초」, 261쪽). 천태대사가 이것을 뒤집어 「법화경이 제일, 열반경이 제이, 화엄경이 제삼」이라고 판정했다(「선시초」, 262쪽).
- 유상교(아함)
- 무상교(반야)
- 억양교(유마 등)
- 동귀교(법화)
- 상주교(열반)
천태의 반론은 두 가지였다. 첫째, 법화경은 이미 수량품에서 부처의 상주를 밝혔다. 「실은 멸도하지 않고 늘 여기에 머물러 법을 설한다」가 그것이다. 열반경의 「여래상주」는 법화경이 밝힌 것을 다시 설한 것이다. 둘째, 법화경은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으로 모든 중생의 성불을 밝힌 「큰 수확」이고, 열반경은 그 수확에서 빠진 이들을 거두는 「이삭줍기(捃拾)」다. 상주를 「처음」 설한 경이 아니라, 상주를 「설한 뒤에 거둔」 경이 열반경이다.
이 논쟁의 뜻은 깊다. 무상을 설한 경과 상주를 설한 경을 줄 세우면 상주가 위에 온다. 그러나 천태의 판정은, 법화경이 무상의 경도 상주의 경도 아니라 무상과 상주가 하나인 실상을 밝힌 경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는 무상한 세간을 떠나지 않는 상주다.
네 가지 사제 — 같은 무상을 넷으로 본다
천태는 무상을 보는 눈에도 깊이의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법화현의』는 사제(四諦)를 네 가르침(장·통·별·원)에 따라 넷으로 나누는 「사종사제(四種四諦)」를 세운다.
장교(藏敎, 소승)의 생멸사제(生滅四諦)는 괴로움과 그 원인이 실제로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본다. 무상은 실재하는 생멸이고, 그것을 끊어 없애는 것이 열반이다. 통교(通敎)의 무생사제(無生四諦)는 생멸하는 것이 그대로 공하여 실은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다고 본다. 3부에서 본 반야와 용수의 자리다. 별교(別敎)의 무량사제(無量四諦)는 공에 머물지 않고 세간의 한량없는 차별상을 다 알아야 한다고 본다. 보살이 중생을 구하려면 무상한 세계의 갖가지 모습을 하나하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교(圓敎)의 무작사제(無作四諦)는 미혹과 깨달음의 당체가 그대로 실상이어서 끊을 것도 닦을 것도 따로 없다고 본다. 생사가 곧 열반이고, 번뇌가 곧 보리다.
같은 무상을 두고, 장교는 그것을 실제의 생멸로 보아 끊으려 하고, 통교는 그 생멸이 공함을 보며, 별교는 그 생멸의 한량없는 모습을 보고, 원교는 그 생멸이 그대로 실상임을 본다. 1부에서 본 「소야입도전답서」의 사다리 — 무상 → 석공(析空)·체공(體空)·단공(但空)·부단공(不但空) → 단중(但中)·부단중(不但中) → 십계호구·백계천여·삼천세간 — 는, 대성인이 천태 사교의 용어로 여러 경의 제목을 견주신 것이다.
般若経の題目を聞いては体空・但中・不但中の法門をさとり華厳経の題目を聞く人は但中・不但中のさとりあり、大日経・方等・般若経の題目を聞く人は或は析空・或は体空・或は但空或は不但空・或は但中・不但中の理をばさとれどもいまだ十界互具・百界千如・三千世間の妙覚の功徳をばきかず
반야경의 제목을 들어서는 체공·단중·부단중의 법문을 깨닫고, 화엄경의 제목을 듣는 사람은 단중·부단중의 깨달음이 있으며, 대일경·방등·반야경의 제목을 듣는 사람은 혹은 석공, 혹은 체공, 혹은 단공, 혹은 부단공, 혹은 단중·부단중의 이치는 깨닫지만, 아직 십계호구·백계천여·삼천세간의 묘각의 공덕은 듣지 못했느니라.
- 원교 · 무작사제생멸이 그대로 실상, 생사 즉 열반(부단중: 공·가·중이 원융)
- 별교 · 무량사제생멸하는 한량없는 차별상을 다 안다(단중: 공·가를 떠난 중도)
- 통교 · 무생사제생멸이 그대로 공,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다(체공)
- 장교 · 생멸사제무상은 실제의 생멸, 끊어 없앤다(석공: 쪼개어 공에 이름)
「일어남은 법성의 일어남, 사라짐은 법성의 사라짐」
원교의 무상 이해를 천태는 『마하지관』에서 한 구절로 압축한다.
起是法性起 滅是法性滅
일어남은 법성의 일어남이요, 사라짐은 법성의 사라짐이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을 떠나 법성(진리)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생겨나는 것은 법성이 생겨나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은 법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생멸이 그대로 법성의 움직임이다. 1부에서 「일어나는 것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라는 무상의 통찰이 연기의 시간적 얼굴이었다면, 천태의 이 구절은 그 생멸이 그대로 실상의 얼굴이라고 말한다. 6부에서 보듯이 대성인은 「생사일대사혈맥초」에서 이 구절을 인용해 「생사도 오직 묘법연화경의 생사」라고 하신다.
「아직 무상을 면하지 못한 부처」
부처의 몸에도 무상과 상주의 구별이 있다. 대성인은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과 「당체의초」에서 전교대사의 『수호국계장』의 글로 이것을 거듭 보이신다.
又云く「権教の三身は未だ無常を免れず前三教の修行の仏実教の三身は倶体倶用なり後の円教の観心の仏」
또 이르기를 「권교의 삼신은 아직 무상을 면하지 못하였다(앞의 세 가르침을 수행하여 이룬 부처). 실교의 삼신은 체(體)도 함께하고 용(用)도 함께한다(뒤의 원교의 관심(觀心)의 부처)」 하였느니라.
권교의 부처는 오랜 수행 끝에 「이루어진」 부처다. 이루어진 것은 무너진다. 무엇인가를 쌓아 올려 얻은 부처는, 생겨난 것이 반드시 사라진다는 무상의 법칙 안에 있다. 「당체의초」는 이를 더 짧게 「권교의 삼신이 아직 무상을 면하지 못하는 까닭은 꿈속의 헛된 부처이기 때문」이라 하신다. 반면 실교의 부처는 본래 그러한 부처, 곧 6부에서 볼 「무작(無作)」의 부처다. 무상과 상주를 가르는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만들어진 것인가 본래 그러한 것인가」다. 삼신에 관해서는 핵심 개념 「삼신」에서 다시 다룬다.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고, 본래 그러한 것은 상주한다
무상의 시대
대성인이 살았던 13세기 일본은 무상이 시대의 공기였던 때다. 대성인이 태어나기 십 년 전인 1212년, 가모노 조메이는 『호조키(方丈記)』를 「흘러가는 강물은 끊이지 않되, 그러면서도 본래의 물이 아니다(ゆく河の流れは絶えずして、しかももとの水にあらず)」로 시작했다. 같은 시대에 형태를 갖추어 간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는 「기원정사의 종소리에 제행무상의 울림이 있다(祇園精舎の鐘の声、諸行無常の響きあり)」로 시작한다. 겐페이 전쟁의 끝없는 살육, 거듭되는 지진과 기근과 역병 속에서 사람들은 무상을 노래하고, 이 더러운 땅을 싫어하여 떠나 서방 정토를 그리워하라(厭離穢土 欣求淨土)는 정토교의 가르침에 마음을 맡겼다.
대성인의 무상론은 이 시대 정서와 정면으로 만난다. 대성인은 무상을 누구보다 깊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결론은 「이 세상을 떠나라」가 아니었다. 글머리에서 본 「성우문답초」의 첫머리를 다시 읽자.
夫れ生を受けしより死を免れざる理りは賢き御門より卑き民に至るまで人ごとに是を知るといへども実に是を大事とし是を歎く者千万人に一人も有がたし、無常の現起するを見ては疎きをば恐れ親きをば歎くといへども先立つははかなく留るはかしこきやうに思いて昨日は彼のわざ今日は此の事とて徒らに世間の五慾にほだされて白駒のかげ過ぎやすく羊の歩み近づく事をしらずして空しく衣食の獄につながれ徒らに名利の穴にをち三途の旧里に帰り六道のちまたに輪回せん事心有らん人誰か歎かざらん誰か悲しまざらん
무릇 생을 받은 뒤로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이치는 어진 임금으로부터 천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이를 알지만, 참으로 이를 큰일로 여기고 이를 탄식하는 자는 천만 명에 한 사람도 있기 어렵다. 무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먼 이의 일이면 두려워하고 가까운 이의 일이면 탄식하지만, 먼저 간 이는 덧없고 남은 이는 현명한 듯이 여겨, 어제는 저 일 오늘은 이 일 하며 헛되이 세간의 오욕에 얽매여, 흰 망아지가 문틈을 지나듯 세월이 빨리 지나가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의 걸음처럼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옷과 밥의 감옥에 묶이고 헛되이 명예와 이익의 구덩이에 떨어져, 삼악도의 옛 고향으로 돌아가 육도의 갈림길을 윤회할 일을, 마음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탄식하지 않으며 누가 슬퍼하지 않으랴.
「흰 망아지(白駒)」는 『장자』의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문틈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에서, 「양의 걸음」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의 걸음을 무상에 비유한 『열반경』에서 온 말이다. 대성인은 이어서 「노소부정은 사바의 습속이요 회자정리는 뜬세상의 이치」라 하시고, 정가 초년에 세상을 떠난 이들 — 어린 자식을 두고, 늙은 부모를 남겨 두고, 아직 한창 나이에 저승길에 오른 이들 — 의 마음을 헤아리신다.
창가교학연구실의 강의는 이 첫머리를 이렇게 풀이한다. 대성인이 무상의 모습을 이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무상을 탄식하거나 세상의 덧없는 즐거움으로 근심을 달래려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무상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바로 그렇기에 참된 불법으로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여 미래 영겁에 걸친 상락아정의 인생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려는 것이다. 무상의 강조는 상주하는 인생과 경지를 여는 참된 불법을 구해야 한다는 가르침의 복선이다.
「성우문답초」의 무상은 탄식의 무상이 아니라 구도의 무상이다. 무상을 철저히 보는 것이 상주의 법을 구하는 출발점이 된다.
이슬보다 위태롭고 파초보다 무르다
「성우문답초」는 뒤에서 무상을 다시 한 번, 더 구체적인 비유로 말씀하신다.
悲いかな生者必滅の習なれば設ひ長寿を得たりとも終には無常をのがるべからず、今世は百年の内外の程を思へば夢の中の夢なり、非想の八万歳未だ無常を免れず忉利の一千年も猶退没の風に破らる、況や人間・閻浮の習は露よりも・あやうく芭蕉よりも・もろく泡沫よりもあだなり、水中に宿る月のあるか・なきかの如く草葉にをく露のをくれ・さきだつ身なり
슬프도다. 생한 자는 반드시 멸하는 것이 습속이니, 설령 장수를 얻는다 해도 끝내는 무상을 벗어날 수 없느니라. 이 세상은 백 년 안팎임을 생각하면 꿈속의 꿈이니라. 비상천의 팔만 세도 아직 무상을 면하지 못하고, 도리천의 일천 년도 오히려 물러나 떨어지는 바람에 깨어지느니라. 하물며 인간 염부제의 습속은 이슬보다 위태롭고 파초보다 무르며 물거품보다 덧없으니, 물속에 깃든 달이 있는 듯 없는 듯하고, 풀잎에 맺힌 이슬이 늦게 지고 먼저 지는 것과 같은 몸이니라.
천상의 가장 높은 곳인 비상비비상처의 「팔만 세」 수명도 끝이 있다. 무상은 인간만의 운명이 아니라 육도 전체의 법칙이다. 3부에서 본 『유마경』과 『금강경』의 비유 — 이슬, 파초, 물거품 — 에 물에 비친 달까지 여기에 모여 있다.
그러나 이 대목은 무상의 탄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성인은 이어서 「만약 이 도리를 안다면 후세를 큰일로 삼으라」고 하시고, 정법을 펴는 각덕비구를 지키다 목숨을 마친 유덕왕의 이야기를 드신다. 강의는 여기서 중요한 구별을 한다. 이 장의 내용을 겉으로만 보면 이 세상의 목숨을 덧없는 것으로 가볍게 여기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의 목숨에 한계가 있음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삼세를 꿰뚫는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목숨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의 길은 크게 둘로 나뉜다. 짧은 인생이니 마음껏 즐기자는 길과, 한정된 목숨을 통해 더 큰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려는 길이다. 대성인이 가르치신 것은 물론 뒤의 길이다.
설산동자의 무상관 — 「마쓰노전답서」
3부에서 본 설산동자 이야기를 대성인은 여러 편지에서 들려주셨다. 가장 자세한 것이 스루가 지방의 문하 마쓰노 입도에게 보낸 「마쓰노전답서」다. 대성인은 먼저 동자가 왜 법을 구하게 되었는지를 이렇게 쓰신다.
此の雪山童子おもはれけるは倩世間を観ずるに生死無常の理なれば生ずる者は必ず死す、されば憂世の中のあだはかなき事譬ば電光の如く朝露の日に向ひて消るに似たり、風の前の灯の消へやすく・芭蕉の葉の破やすきに異ならず、人皆此の無常を遁れず終に一度は黄泉の旅に趣くべし
이 설산동자가 생각하기를, 곰곰이 세간을 관하니 생사무상의 이치이므로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므로 근심스러운 세상의 덧없음은, 비유하면 번갯불과 같고 아침 이슬이 해를 향해 사라지는 것과 같으며, 바람 앞의 등불이 꺼지기 쉽고 파초 잎이 찢어지기 쉬운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은 모두 이 무상을 피하지 못하고 마침내 한 번은 저승길에 나서야 한다.
동자는 이어서 저승길이 얼마나 어둡고 외로운지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는 부모와 처자와 친척이 모여 있지만 저승길에는 누구도 함께 가지 않는다. 늙은이가 먼저 가고 젊은이가 남는 것은 순리이니 슬픔 속에서도 위로할 길이 있겠지만, 늙은이가 남고 젊은이가 먼저 가는 일도 있다. 「원한의 지극한 원한은 어려서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이요, 탄식의 지극한 탄식은 늙어서 자식을 앞세우는 부모」다. 그리고 동자의 생각은 이렇게 이어진다.
是くの如く生死・無常・老少不定の境あだに・はかなき世の中に・但昼夜に今生の貯をのみ思ひ朝夕に現在の業をのみなして、仏をも敬はず法をも信ぜず無行無智にして徒らに明し暮して、閻魔の庁庭に引き迎へられん時は何を以つてか資糧として三界の長途を行き、何を以て船筏として生死の曠海を渡りて実報寂光の仏土に至らんやと思ひ
이와 같이 생사·무상·노소부정의 경계로 덧없고 허무한 세상에서, 다만 밤낮으로 이 생의 저축만 생각하고 아침저녁으로 눈앞의 일만 하여, 부처도 공경하지 않고 법도 믿지 않으며 행도 없고 지혜도 없이 헛되이 날을 보내다가, 염라의 뜰에 끌려가는 때에는 무엇을 양식으로 삼아 삼계의 먼 길을 가며, 무엇을 배와 뗏목으로 삼아 생사의 넓은 바다를 건너 실보토·적광토의 불국토에 이르겠는가 하고 생각하여,
강의는 이 장을 이렇게 풀이한다. 대성인은 마쓰노 입도의 심경과 시대 풍조에 맞추어, 설산동자의 예로써 소승의 무상관을 먼저 보여 그를 이끄셨다. 무상이라는 생각은 그 자체로 진리의 한 부분이며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진리의 한 부분을 붙잡아 그것을 전부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소승교는 이 세계가 무상하기에 생로병사를 면할 수 없고, 그러므로 고행으로 번뇌를 다 없애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 맞서면서도 현실에서 도피한 것이다. 대성인은 무상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되 거기서 도피하지 않고, 무상한 것 속에서 그 본질에 있는 상주, 곧 본유의 실체를 보아 변화하는 무상에 좌우되지 않는 흔들림 없는 인생을 설하셨다. 그것이 본유상주의 생명관이요 상락아정의 인생이다.
반 게송에 몸을 던지다
동자가 수행하던 설산에 「제행무상 시생멸법」이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時に諸行無常・是生滅法と云う音ほのかに聞ゆ、童子驚き四方を見給うに人もなし
그때 「제행무상 시생멸법」이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동자가 놀라 사방을 보았으나 사람은 없었다.
동자는 무서운 귀신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미를 잃은 송아지가 어미 소리를 희미하게 들은 것처럼」 기뻐한다. 나머지 반을 청하는 동자에게 귀신은 사람의 따뜻한 살과 피를 요구한다. 그때 동자의 대답에 무상관의 전환이 있다.
雪山童子の云く此の身は終に死すべし徒に死せん命を法の為に投げばきたなく・けがらはしき身を捨てて後生は必ず覚りを開き仏となり清妙なる身を受くべし、土器を捨てて宝器に替るが如くなるべし
설산동자가 이르기를, 이 몸은 마침내 죽을 것이다. 헛되이 죽을 목숨을 법을 위해 던진다면, 더럽고 부정한 몸을 버리고 후생에는 반드시 깨달음을 열어 부처가 되고 맑고 묘한 몸을 받으리라. 질그릇을 버리고 보배 그릇으로 바꾸는 것과 같으리라.
「이 몸은 마침내 죽을 것이다」 — 무상의 인식이 여기서 법을 구하는 결단의 근거가 된다. 어차피 사라질 몸이기에, 사라지는 것을 영원한 것과 바꿀 수 있다. 무상을 아는 것이 체념이 아니라 결단이 되는 순간이다. 귀신이 나머지 반을 읊자 동자는 게송을 바위와 벽과 나무에 새겨 뒷사람이 「그 뜻을 깨달아 참된 길에 들어가기를」 빌고, 높은 나무에서 몸을 던진다.
사도에서 쓰신 「니치묘성인어서」는 같은 이야기를 더 짧게 전하면서, 동자가 앞 반을 듣고 느낀 마음을 이렇게 쓰신다.
昔雪山童子と申す人ありき、雪山と申す山にして外道の法を通達せしかども・いまだ仏法をきかず、時に大鬼神ありき説いて云く「諸行無常是生滅法」等云云、只八字計りを説いて後をとかず時に雪山童子・此の八字を得て悦きはまりなけれども半なる如意珠を得たるがごとく華さき菓ならざるに・にたり、残の八字を・きかんと申す
옛날 설산동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설산이라는 산에서 외도의 법에는 통달하였으나 아직 불법을 듣지 못하였다. 그때 큰 귀신이 있어 「제행무상 시생멸법」이라 설하고는 다만 여덟 자만 설하고 뒤를 설하지 않았다. 그때 설산동자는 이 여덟 자를 얻고 기쁨이 그지없었으나, 반쪽의 여의주를 얻은 것 같고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한 것과 같았다. 그래서 나머지 여덟 자를 듣고자 하였다.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했다」 — 무상을 아는 것은 꽃이고, 그 무상을 넘는 것이 열매다. 편지는 「저 동자는 지금의 석존이요 저 귀신은 지금의 제석이니라」로 이 이야기를 맺는다(1215쪽). 가마쿠라에서 어린 딸을 데리고 사도까지 대성인을 찾아온 니치묘 성인에게, 대성인은 법을 구하는 그 마음이 설산동자의 마음과 같다고 칭찬하셨다.
나가는 숨은 들어오는 숨을 기다리지 않는다
「지묘법화문답초」는 무상을 신심의 「지금」과 이으신다.
出ずる息は入る息をまたず何なる時節ありてか毎自作是念の悲願を忘れ何なる月日ありてか無一不成仏の御経を持たざらん
나가는 숨은 들어오는 숨을 기다리지 않느니라. 어느 때가 있어 「늘 스스로 이 생각을 한다(每自作是念)」는 부처의 비원을 잊으며, 어느 세월이 있어 「한 사람도 성불하지 못하는 이가 없다(無一不成佛)」는 경을 지니지 않겠는가.
1부의 「죽음의 새김 경」에서 석존이 칭찬한 비구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만 산다면」이라고 죽음을 새겼다. 대성인은 그 한 호흡의 무상을 신심의 지금으로 바꾸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들에서 무상의 인식을 더 깊이 밀고 가신다.
臨終已に今にありとは知りながら我慢偏執・名聞利養に著して妙法を唱へ奉らざらん事は志の程・無下にかひなし
임종이 이미 지금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만과 편집, 명예와 이익에 집착하여 묘법을 부르지 않는다면 그 뜻의 정도가 참으로 보잘것없느니라.
又命已に一念にすぎざれば仏は一念随喜の功徳と説き給へり
또 목숨은 이미 한 생각을 넘지 않으므로 부처는 한 생각 수희하는 공덕을 설하셨느니라.
강의는 이 두 문장을 이렇게 풀이한다. 앞 문장은 사람이 언제 임종을 맞을지 모른다는 생사의 문제다. 수명을 알 수 있다 해도, 영원한 생명에서 보면 백 년의 인생도 한순간이니 「임종이 이미 지금에 있다」는 상태와 다르지 않다. 뒤 문장은 그것을 더 철저히 하여 무상의 궁극이 사람 목숨의 한 생각(一念)에 있다는 깊은 통찰에서 나왔다. 생명이 영원하다 해도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있는 것은 지금 이 한순간뿐이다. 생명은 결국 이 한순간의 이어짐이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한순간의 생명을 어떻게 지니느냐다. 그러므로 법화경 법사품은 법화경의 한 게송 한 구절을 듣고 한 생각이라도 수희하면 성불의 수기를 준다고 설했다.
2부에서 본 「찰나무상」이 여기서 정반대의 의미를 얻는다. 아비달마에서 찰나무상은 집착을 끊기 위해 관하는 것이었다. 대성인에게 찰나무상은 그 한 찰나에 성불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뜻이 된다. 한 생각이 무상하기에, 그 한 생각을 묘법에 바치는 일이 결정적이 된다.
강의는 같은 자리에서 대성인이 묘호니에게 보내신 편지의 한 구절을 함께 인용한다. 대성인은 어려서부터 불법을 배우며 「사람의 수명은 무상하다. 나가는 숨은 들어오는 숨을 기다리지 않는다. 바람 앞의 이슬도 오히려 비유가 되지 못한다. 현명한 이도 어리석은 이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정함이 없는 것이 세상의 습속이다. 그러므로 먼저 임종의 일을 배우고 그 뒤에 다른 일을 배우리라」고 염원하셨다는 것이다(「묘호니부인답서」, 1404쪽). 무상을 아는 것을 모든 배움의 맨 앞에 두신 이 말씀은, 1부에서 본 석존의 「세 가지 교만이 꺾이던 날」과 멀리서 호응한다.
이어서 「지묘법화문답초」는 무상의 풍경을 노래처럼 그리신다.
世間の無常をさとらん事は眼に遮り耳にみてり、雲とやなり雨とやなりけん昔の人は只名をのみきく、露とや消え煙とや登りけん今の友も又みえず、我れいつまでか三笠の雲と思ふべき春の花の風に随ひ秋の紅葉の時雨に染まる、是れ皆ながらへぬ世の中のためしなれば法華経には「世皆牢固ならざること水沫泡焰の如し」とすすめたり
세간의 무상을 깨닫게 하는 일은 눈에 가득하고 귀에 넘치느니라. 구름이 되었는가 비가 되었는가, 옛사람은 다만 이름만 들릴 뿐이요, 이슬로 사라졌는가 연기로 올라갔는가, 지금의 벗도 또한 보이지 않느니라. 나는 언제까지 미카사산의 구름(높은 벼슬)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봄꽃은 바람을 따라 지고 가을 단풍은 늦가을 비에 물드느니, 이는 모두 오래가지 않는 세상의 본보기이므로 법화경에는 「세상은 모두 굳건하지 않아 물거품과 아지랑이와 같다」고 권하였느니라.
강의는 이 장을 「대성인의 적극적인 무상관」이라 부른다. 천연과 인생의 무상을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무상을 철저히 응시한 위에서 그것을 영원한 것으로 승화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것이다.
(「지묘법화문답초」 466쪽)
무상을 보는 마음이 이승계다
대성인은 무상을 느끼는 마음 자체에도 깊은 의미를 두셨다. 「관심의 본존초」는 인간의 생명에 십계가 갖추어져 있음을 보이시면서, 사람에게 이승계(성문·연각)가 있다는 증거를 이렇게 드신다.
所以世間の無常は眼前に有り豈人界に二乗界無からんや、無顧の悪人も猶妻子を慈愛す菩薩界の一分なり
그 까닭은 세간의 무상이 눈앞에 있으니 어찌 인계에 이승계가 없겠는가. 돌아볼 줄 모르는 악인도 오히려 처자를 자애하니 이는 보살계의 일부니라.
2부에서 연각은 「날리는 꽃과 지는 잎」을 보고 무상을 깨쳤다. 그 연각의 마음이 특별한 수행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무상을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쓸쓸해지는 그 마음이 우리 안의 이승계다. 창가교학연구실의 「십법계명인과초」 강의는 이 구절을 들어, 사람이 세간의 현상에서 무상을 느끼는 작용을 갖추고 있는 것이 이승을 갖춘 증거라고 풀이한다.
이것은 무상을 느끼는 마음을 긍정하는 동시에, 그 마음에 머무는 것의 한계도 보여 준다. 무상을 보고 쓸쓸해하는 것은 이승계다. 이승계는 십계의 하나로서 소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회신멸지의 길이 된다. 무상을 느끼는 마음이 보살계의 자비, 나아가 불계와 어우러질 때 그 마음은 성불의 재료가 된다.
무상하도다, 무상하도다
무상에 관한 대성인의 말씀 가운데 가장 가슴을 치는 것은 교리를 설명하신 대목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문하에게 보내신 편지들이다. 홍안 3년(1280) 9월 5일, 난조도키미쓰의 막내 동생 시치로고로가 열여섯 살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난조효에시치로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어머니는 이 아들을 의지 삼아 십사오 년을 살아왔다. 불과 석 달 전 형과 함께 미노부로 대성인을 찾아뵈었던 소년이었다. 사십구재를 맞은 어머니에게 대성인은 이렇게 쓰셨다.
抑故五郎殿かくれ給いて既に四十九日なり、無常はつねの習いなれども此の事うち聞く人すら猶忍びがたし、況や母となり妻となる人をや・心の中をしはかられて候
그런데 돌아가신 고로 님이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사십구 일이 되었습니다. 무상은 늘 있는 습속이지만 이 일은 전해 듣는 사람조차 오히려 견디기 어렵거늘, 하물며 어머니가 되고 아내가 되는 사람이야. 그 마음속이 헤아려집니다.
「무상은 늘 있는 습속이지만」 — 대성인은 무상의 이치를 모르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이치가 슬픔을 덜어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아신다. 편지는 어머니의 마음이 되어 이어진다.
まことならば・いかんがせん、さける花は・ちらずして・つぼめる花のかれたる、をいたる母は・とどまりて・わかきこは・さりぬ、なさけなかりける無常かな・無常かな
참말이라면 어찌하리오. 핀 꽃은 지지 않고 봉오리 진 꽃이 시들었으며, 늙은 어미는 남고 젊은 자식은 떠났습니다. 무정하기도 한 무상이여, 무상이여.
설산동자의 무상관에서 「원한의 지극한 원한은 어려서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이요, 탄식의 지극한 탄식은 늙어서 자식을 앞세우는 부모」라고 쓰셨던 그 탄식이, 여기서는 한 어머니의 현실이 되었다. 강의는 이 단락을 두고, 어머니 자신이 된 것처럼 그 심정을 절절히 그리신 대목이라 하고, 여기에 「일체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는 것은 모두 니치렌 한 사람의 괴로움」이라는 대성인의 대자비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풀이한다.
그리고 편지는 이렇게 권하신다.
かかる.なさけなき国をば・いとい・すてさせ給いて故五郎殿の御信用ありし法華経につかせ給いて.常住不壊のりやう山浄土へとくまいらせ給うちちはりやうぜんにまします・母は娑婆にとどまれり
이러한 무정한 나라를 싫어하여 버리시고, 돌아가신 고로 님이 믿으셨던 법화경을 따르시어 상주불괴(常住不壞)의 영산정토로 어서 가십시오. 아버지는 영산에 계시고 어머니는 사바에 남아 계십니다.
「무상하도다」로 울던 편지가 「상주불괴의 영산정토」로 끝난다. 무상의 슬픔을 함께 울고 나서, 그 슬픔 너머에 무너지지 않는 자리가 있음을 보이신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대성인은 슬픔을 건너뛰어 상주를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듬해 12월, 병중의 대성인은 같은 어머니에게 다시 쓰셨다.
ふりし雪も又ふれり・ちりし花も又さきて候いき、無常ばかり・またも・かへりきこへ候はざりけるか、あらうらめし・あらうらめし
내렸던 눈도 다시 내렸고 졌던 꽃도 다시 피었습니다. 무상만은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군요. 아, 원망스럽습니다, 원망스럽습니다.
눈은 다시 내리고 꽃은 다시 핀다. 계절은 돌아오는데 떠난 사람만은 돌아오지 않는다. 자연의 순환과 사람의 죽음을 대비한 이 구절에서, 대성인은 무상을 「원망스럽다」고까지 하신다. 그리고 편지 끝에 「나도 이 세상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고로 님을 만날 것입니다. 어머니보다 먼저 만나면 어머니의 탄식을 전하겠습니다」라고 쓰셨다. 이 편지를 쓰신 열 달 뒤, 대성인은 이케가미에서 입멸하셨다.
아와 지방의 고니치니에게는 무사였던 아들 야시로를 잃은 슬픔에 이렇게 답하셨다.
をやこのわかれにも・をやはゆきて・子は・とどまるは同じ無常なれども・ことはりにもや、をひたるはわは・とどまりて・わきき子のさきにたつ・なさけなき事なれば神も仏もうらめしや
부모와 자식의 이별에도, 부모가 가고 자식이 남는 것은 같은 무상이라도 이치에 맞는 일이겠지요. 늙은 어머니는 남고 젊은 자식이 먼저 가는 것은 무정한 일이니, 신도 부처도 원망스럽구나.
「신도 부처도 원망스럽구나」. 부처의 법을 전하는 분이 어머니의 입을 빌려 부처를 원망하신다. 무상의 슬픔 앞에서 교리를 앞세우지 않으시는 대성인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1부에서 석존이 키사 고타미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 것처럼, 대성인도 「무상은 이치이니 슬퍼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다. 다만 고니치니에게도 대성인은 이어서, 무사로 살다 간 아들의 죄가 무겁더라도 「큰 돌도 바다에 뜨는 것은 배의 힘」이라 하시며 법화경을 지니는 어머니의 신심이 아들을 구한다고 격려하셨다(핵심 개념 「업」 5부).
- 「우에노전모친답서」(1280, 시치로고로의 사십구재)「なさけなかりける無常かな・無常かな」무정하기도 한 무상이여, 무상이여「常住不壊のりやう山浄土へ」상주불괴의 영산정토로
- 「우에노전모친답서」(1281)「ふりし雪も又ふれり・ちりし花も又さきて候いき、無常ばかり・またも・かへりきこへ候はざりけるか」내렸던 눈도 다시 내렸고 졌던 꽃도 다시 피었으나 무상만은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가
- 「고니치보어서」(1276)「同じ無常なれども」같은 무상이라도「神も仏もうらめしや」신도 부처도 원망스럽구나

무상에 머무는 것은 방법이다
무상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시던 대성인은, 교리의 자리에서는 무상에 머무는 것을 엄하게 경계하셨다. 3부에서 본 『열반경』의 「여래를 무상하다고 말하면 혀가 떨어진다」는 경문을 「현방법초」는 이렇게 다루신다.
答えて云く涅槃経第五に云く「若し人有りて如来は無常なりと言わん云何ぞ是の人舌堕落せざらん」等云云、此の文の心は仏を無常といはん人は舌堕落すべしと云云
답하여 이르기를, 열반경 제5에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는 무상하다고 말한다면 어찌하여 이 사람의 혀가 떨어지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느니라. 이 글의 뜻은 부처를 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혀가 떨어지리라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소승경에서 부처를 무상하다고 설한 부처와 제자들도 모두 혀가 떨어지는가. 대성인은 스스로 이 물음을 세우고 답하신다.
問うて云く諸の小乗経に仏を無常と説かるる上又所化の衆皆無常と談じき若爾らば仏・並に所化の衆の舌堕落すべしや、答えて云く小乗経の仏を小乗経の人が無常ととき談ずるは舌ただれざるか、大乗経に向つて仏を無常と談じ小乗経に対して大乗経を破するが舌は堕落するか、此れをもつて・をもうにをのれが依経には随えども依経より・すぐれたる経を破するは破法となるか
묻기를, 여러 소승경에 부처를 무상하다고 설하셨고, 또 교화받은 대중도 모두 무상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부처와 교화받은 대중의 혀가 떨어지겠는가. 답하기를, 소승경의 부처를 소승경의 사람이 무상하다고 설하고 말하는 것은 혀가 문드러지지 않는 것인가. 대승경을 향하여 부처를 무상하다고 말하고, 소승경을 가지고 대승경을 깨뜨리는 것이 혀가 떨어지는 것인가. 이로써 생각건대, 자기가 의지하는 경을 따르는 것은 좋으나 의지하는 경보다 뛰어난 경을 깨뜨리는 것은 파법이 되는 것인가.
무상을 설하는 것 자체가 죄가 아니다. 무상의 가르침에 머물러, 상주를 밝힌 더 깊은 가르침을 거부할 때 그것이 방법이 된다. 강의는 이렇게 풀이한다. 소승교는 무상관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부처를 무상하다 해도 법을 깨뜨리는 것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처의 생명이 상주한다고 밝힌 대승경에 등을 돌리고 무상관에 고집하면 방법이 된다.
같은 글은 뒤에서 외도·소승·대승·법화경의 이치를 한 줄에 놓고 비교하신다.
但し脇尊者の金杖の譬は小乗経は多しといえども同じ苦空無常無我の理なり、諸人同く此の義を存じて十八部・二十部相ひ諍論あれども但門の諍にて理の諍にはあらず故に共に謗法とならず、外道が小乗経を破するは外道の理は常住なり小乗経の理は無常なり空なり故に外道が小乗経をはするは謗法となる、大乗経の理は中道なり小乗経は空なり小乗経の者が大乗経をはするは謗法となる大乗経の者が小乗経をはするは破法とならず
다만 협존자의 금 지팡이의 비유는, 소승경은 많지만 같은 고·공·무상·무아의 이치라는 것이니라.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이 뜻을 지니고 있어 십팔부·이십부가 서로 다투었으나 다만 문(門)의 다툼이요 이치의 다툼은 아니었으므로 모두 방법이 되지 않느니라. 외도가 소승경을 깨뜨리는 것은, 외도의 이치는 상주이고 소승경의 이치는 무상이며 공이므로, 외도가 소승경을 깨뜨리면 방법이 되느니라. 대승경의 이치는 중도이고 소승경은 공이니, 소승경의 사람이 대승경을 깨뜨리면 방법이 되고 대승경의 사람이 소승경을 깨뜨리면 파법이 되지 않느니라.
- 법화경개회의 이치 · 이승작불과 구원실성
- 대승경「中道」중도 (아직 개회하지 않은 이치)
- 소승경「無常なり空なり」무상이요 공
- 외도「常住」상주 (무상을 모르는 상)
외도의 「상주」와 소승의 「무상」과 대승의 「중도」. 이 순서는 1부부터 따라온 무상 사상의 흐름 그대로다. 외도의 상을 소승의 무상이 깨뜨렸고, 소승의 무상을 대승의 중도가 넘어섰다. 그리고 법화경은 그 모든 것을 「개회(開會)」한다. 개회란 낮은 가르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본래 법화경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었음을 열어 보여 법화경의 한 부분으로 살리는 것이다. 개회된 자리에서는 무상도 버려지지 않는다. 무상이 곧 상주의 한 얼굴로 살아난다. 이것이 6부의 주제다.
병든 이에게 — 「무상은 면하기 어렵지만」
핵심 개념 「업」에서 본 「도키니부인답서」에도 무상이 나온다. 오래 앓던 도키 부인에게 대성인은 이렇게 쓰셨다.
病なき人も無常まぬかれがたし但しとしのはてにはあらず、法華経の行者なり非業の死にはあるべからずよも業病にては候はじ、設い業病なりとも法華経の御力たのもし
병 없는 사람도 무상은 면하기 어렵지만, 다만 아직 수명이 다할 나이는 아니니라. 법화경의 행자이니 비업(非業)의 죽음은 있을 수 없느니라. 설마 업병은 아닐 것이니라. 설령 업병이라 하여도 법화경의 힘이 믿음직하니라.
「병 없는 사람도 무상은 면하기 어렵다」 — 대성인은 병든 이에게 무상을 감추지 않으신다. 그러나 곧바로 「다만」이라고 하신다. 무상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지금이 그때는 아니다. 무상의 진실을 인정하는 것과 지금 살아갈 희망을 주는 것이 한 문장 안에 함께 있다.
「무상을 상주라고 설한다」
5부에서 대성인은 무상을 깊이 슬퍼하시면서도 무상에 머무는 것을 경계하셨다. 그렇다면 무상을 넘어선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그것은 무상한 세간을 떠난 저편인가. 『어의구전』의 화성유품 첫 대목은 이 물음에 정면으로 답한다. 4부에서 본 화성보처의 비유 — 지친 이를 쉬게 하려고 만든 성(化城)과 참된 보배가 있는 곳(寶處) — 를 대성인은 이렇게 읽으신다.
御義口伝に云く化とは色法なり城とは心法なり、此の色心の二法を無常と説くは権教の心なり法華経の意は無常を常住と説くなり化城即宝処なり、所詮今日蓮等の類い南無妙法蓮華経と唱え奉る者は色心妙法と開くを化城即宝処と云うなり、十界皆化城・十界各各宝処なり
어의구전에 이르기를, 화(化)란 색법이요 성(城)이란 심법이니라. 이 색심의 두 법을 무상이라고 설하는 것은 권교의 마음이요, 법화경의 뜻은 무상을 상주라고 설하는 것이니, 화성이 곧 보처이니라. 결국 지금 니치렌 등의 무리로서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자는 색심을 묘법이라고 여는 것을 화성즉보처라 하느니라. 십계가 모두 화성이요, 십계가 저마다 보처이니라.
「무상을 상주라고 설한다」. 여기에 무상 사상의 전 역사가 하나의 전환점을 맞는다. 화성은 우리의 몸(색법)과 마음(심법)이다. 이 색심을 무상하다고 설하는 것이 권교다. 1부부터 5부까지 본 무상의 가르침 — 무상한 몸, 물거품 같은 마음, 불타는 집 — 이 모두 「권교의 마음」으로 정리된다.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방편이다. 법화경의 참뜻은 무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상을 상주라고」 설하는 것이다. 무상한 이 색심이 그대로 상주한다. 화성을 떠나 보처로 가는 것이 아니라 「화성이 곧 보처(化城即寶處)」다.
같은 대목은 이렇게 이어진다.
我等が色心の二法を無常と説くは権教なり常住と説くは法華経なり無常と執する執情を滅するを即滅化城と云うなり、化城は皮肉.宝処は骨なり色心の二法を妙法と開覚するを化城即宝処の実体と云うなり、実体とは無常常住・倶時相即・随縁不変・一念寂照なり一念とは南無妙法蓮華経・無疑曰信の一念なり即の一字心を留めて之を思う可し云云
우리의 색심의 두 법을 무상이라고 설하는 것은 권교요, 상주라고 설하는 것은 법화경이니라. 무상이라고 집착하는 집정(執情)을 멸하는 것을 「곧 화성을 멸한다(卽滅化城)」고 하느니라. 화성은 가죽과 살이요 보처는 뼈이니라. 색심의 두 법을 묘법이라고 열어 깨닫는 것을 화성즉보처의 실체라 하느니라. 실체란 무상과 상주가 동시에 상즉하고(無常常住·俱時相即), 연을 따르되 변하지 않으며(隨緣不變), 한 생각이 고요히 비추는(一念寂照) 것이니라. 한 생각이란 남묘호렌게쿄요, 「의심 없음을 믿음이라 한다(無疑曰信)」는 한 생각이니라. 「즉(卽)」 한 글자에 마음을 두어 이를 생각할지어다.
「무상과 상주가 동시에 상즉한다(無常常住·俱時相即)」. 무상이 먼저 있고 상주가 나중에 오는 것이 아니다. 무상을 버리고 상주를 얻는 것도 아니다. 무상과 상주가 같은 때에(俱時), 하나로 붙어(相卽) 있다. 「화성은 가죽과 살이요 보처는 뼈」라는 비유가 그것을 보여 준다. 가죽과 살은 늘 바뀌고 늙고 상하지만, 뼈와 따로 있지 않다. 한 몸 안에 무상한 것과 상주하는 것이 함께 있다.
그리고 「멸해야 할 화성」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그것은 무상한 몸과 마음이 아니라 「무상이라고 집착하는 집정」이다. 2부에서 이승은 무상을 관해 몸과 지혜를 재로 만들었다. 대성인이 멸하라고 하신 것은 몸이 아니라, 몸을 무상한 것으로만 보는 마음의 집착이다. 3부에서 본 『열반경』의 여덟 전도에서 「상을 무상이라 하는」 이승의 전도가 바로 이 집정이다.
멸하지 않는 멸
같은 화성유품의 여섯째 대목은 죽음 그 자체를 다룬다.
御義口伝に云く我等が滅する当体は化城なり、此の滅を滅と見れば化城なり不滅の滅と知見するを宝処とは云うなり、是を寿量品にしては而実不滅度とは説くなり
어의구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멸하는 당체는 화성이니라. 이 멸을 멸이라고 보면 화성이요, 멸하지 않는 멸이라고 알고 보는 것을 보처라 하느니라. 이것을 수량품에서는 「실은 멸도하지 않는다(而實不滅度)」고 설하느니라.
우리는 죽는다. 그 죽음을 「끝」으로만 보면 그것은 화성, 곧 무상의 세계다. 같은 죽음을 「멸하지 않는 멸(不滅の滅)」로 알고 보면 그것이 보처다. 죽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보는 눈이 바뀐다. 4부에서 본 수량품의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지만 실은 멸도하지 않는다」가 석존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멸하는 당체」의 일로 읽힌다. 대성인은 이 대목을 「지금 니치렌 등의 무리로서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자는 화성즉보처요, 우리가 사는 산골짜기와 넓은 들이 모두 상적광의 보처」라고 맺으신다.
본유의 생사
이 생사관을 가장 깊이 펼친 것이 『어의구전』 수량품의 넷째 대목이다. 4부에서 본 수량품의 「여래는 삼계의 모습을 실제 그대로 알고 보나니, 생사의 물러남이나 나옴이 없다(如來如實知見三界之相 無有生死 若退若出)」를 대성인은 이렇게 읽으신다.
御義口伝に云く如来とは三界の衆生なり此の衆生を寿量品の眼開けてみれば十界本有と実の如く知見せり、三界之相とは生老病死なり本有の生死とみれば無有生死なり生死無ければ退出も無し唯生死無きに非ざるなり、生死を見て厭離するを迷と云い始覚と云うなりさて本有の生死と知見するを悟と云い本覚と云うなり、今日蓮等の類い南無妙法蓮華経と唱え奉る時本有の生死本有の退出と開覚するなり
어의구전에 이르기를, 여래란 삼계의 중생이니라. 이 중생을 수량품의 눈을 열고 보면 십계가 본유라고 실제와 같이 알고 보느니라. 「삼계의 모습」이란 생로병사이니라. 본유의 생사라고 보면 「생사가 있음이 없다(無有生死)」이니라. 생사가 없으면 물러남도 나옴도 없느니라. 다만 생사가 없는 것은 아니니라. 생사를 보고 싫어하여 떠나는 것을 미혹이라 하고 시각(始覺)이라 하며, 본유의 생사라고 알고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 하고 본각(本覺)이라 하느니라. 지금 니치렌 등의 무리로서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를 때 본유의 생사, 본유의 퇴출이라고 열어 깨닫느니라.
이 대목은 무상에 관한 불교사의 모든 물음에 대한 대성인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여섯 가지를 짚어 두자.
첫째, 「여래란 삼계의 중생」이다. 수량품의 여래는 저 멀리 계신 부처가 아니라 삼계에서 생로병사를 겪는 바로 우리다.
둘째, 「삼계의 모습이란 생로병사」다. 경문의 「삼계의 모습」을 대성인은 추상적인 세계 구조가 아니라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명의 모습으로 읽으신다. 1부에서 석존이 출가하게 된 까닭, 석존의 세 가지 교만을 꺾은 바로 그 생로병사다.
셋째, 「본유의 생사라고 보면 생사가 있음이 없다」. 「본유(本有)」란 본래 그렇게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생사는 우연히 닥친 재앙도, 벗어나야 할 감옥도 아니고, 생명이 본래 지닌 모습이다. 그렇게 보면 생사는 있되 생사에 묶이는 일은 없다.
넷째, 「다만 생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한 구절이 결정적이다. 대성인은 생사가 환상이라고 하지 않으신다. 사람은 실제로 태어나고 실제로 죽는다. 5부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와 함께 「무상하도다」라고 우신 것은 생사가 실재하기 때문이다. 무상은 부정되지 않는다.
다섯째, 「생사를 보고 싫어하여 떠나는 것을 미혹이라 하고 시각이라 한다」. 생사를 싫어하여 떠나려는 것 — 2부의 이승이 그러했고, 5부 첫머리에서 본 가마쿠라 시대의 염리예토가 그러했다 — 이 미혹이다. 이것을 「시각」이라 부르는 까닭은, 그것이 미혹에서 출발하여 수행으로 차츰 깨달음을 「비로소」 얻어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시각의 길에서 생사는 벗어나야 할 대상이다.
여섯째, 「본유의 생사라고 알고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 하고 본각이라 한다」. 생사를 떠나지 않고, 생사 그대로가 본래의 깨달음의 모습임을 아는 것이 본각이다. 그리고 그것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를 때」 열린다.
같은 대목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又云く無も有も生も死も若退も若出も在世も滅後も悉く皆本有常住の振舞なり、無とは法界同時に妙法蓮華経の振舞より外は無きなり有とは地獄は地獄の有の侭十界本有の妙法の全体なり、生とは妙法の生なれば随縁なり死とは寿量の死なれば法界同時に真如なり
또 이르기를, 없음도 있음도, 삶도 죽음도, 물러남도 나옴도, 재세도 멸후도 모두 다 본유상주의 몸짓이니라. 없음이란 법계가 동시에 묘법연화경의 몸짓 밖에는 없는 것이요, 있음이란 지옥은 지옥 그대로 십계 본유의 묘법의 전체이니라. 삶이란 묘법의 삶이므로 연을 따름(隨緣)이요, 죽음이란 수량의 죽음이므로 법계가 동시에 진여이니라.
「삶도 죽음도 모두 본유상주의 몸짓(振舞)」. 삶과 죽음은 상주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상주가 움직이는 모습이다. 대성인은 이어서 「무(無)·사(死)·퇴(退)·멸(滅)은 공이요, 유(有)·생(生)·출(出)·재(在)는 가요, 여래여실은 중도」라 하시고, 이것이 무작(無作)의 보신·응신·법신이라고 하신다. 죽음은 공(空)의 모습이고 삶은 가(假)의 모습이며, 그 둘을 실제 그대로 보는 것이 중도다. 4부에서 본 「권교의 삼신은 아직 무상을 면하지 못한다」의 반대편에, 생사 그 자체를 몸으로 하는 무작의 삼신이 있다. 삼신에 관해서는 핵심 개념 「삼신」에서 다시 다룬다.
창가학회 교학에서 「본유의 생사」는 영원한 생명을 근저에 둔 생사의 유전을 뜻한다. 관념으로 영원한 생명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신심의 한 생각을 열 때 무상의 세계가 그대로 상주의 세계로 나타난다.
법성의 대지를 생사생사로
『어의구전』 비유품은 이 본유의 생사를 한 폭의 그림으로 보여 준다. 4부에서 본 불타는 집의 비유에서, 장자는 아이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려고 양·사슴·소의 세 수레를 약속했고, 아이들이 나오자 그보다 훨씬 큰 흰 소가 끄는 수레(大白牛車) 하나를 주었다.
御義口伝に云く一門とは法華経の信心なり車とは法華経なり牛とは南無妙法蓮華経なり宅とは煩悩なり自身法性の大地を生死生死と転ぐり行くなり云云
어의구전에 이르기를, 한 문(一門)이란 법화경의 신심이요, 수레란 법화경이며, 소란 남묘호렌게쿄요, 집이란 번뇌이니라. 자신이라는 법성의 대지를 생사생사로 굴러가느니라.
「법성의 대지를 생사생사로 굴러간다」. 수레바퀴는 구르면서 늘 땅의 다른 곳에 닿는다. 한 바퀴 한 바퀴가 생이고 사다. 그러나 바퀴가 구르는 땅은 법성의 대지 하나다. 4부에서 본 천태의 「일어남은 법성의 일어남, 사라짐은 법성의 사라짐」이 여기서 움직이는 수레의 모습이 되었다. 대성인은 난조도키미쓰에게 보낸 「대백우거서」에서도 「심왕은 소와 같고 생사는 두 바퀴와 같다」고 쓰셨다(1543쪽). 생과 사는 수레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두 바퀴다. 한쪽 바퀴만으로는 수레가 가지 못한다.
비유품 첫 대목에서 대성인은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隠とは死なり顕とは生なり長風とは我等が息なり空月とは心月なり法華の生死とは三世常恒にして隠顕之無し
숨음(隱)이란 죽음이요, 드러남(顯)이란 삶이니라. 긴 바람이란 우리의 숨이요, 하늘의 달이란 마음의 달이니라. 법화의 생사란 삼세에 늘 그러하여 숨음과 드러남이 없느니라.
이 대목은 묘락대사의 「법을 설하는 실상이 어찌 숨고 어찌 드러나겠는가. 긴 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하늘의 달은 늘 걸려 있다」라는 해석을 풀이하신 것이다. 죽음은 숨는 것이고 삶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달은 늘 하늘에 있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도 달은 하늘에 있고, 구름이 걷혀 보일 때도 달은 같은 달이다. 생명은 삶으로 드러나고 죽음으로 숨지만, 그 생명 자체는 「삼세에 늘 그러하다」.

묘는 죽음, 법은 삶
사도에서 쓰신 「생사일대사혈맥초」는 같은 생사관을 「묘법」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읽어 내신다.
妙は死法は生なり此の生死の二法が十界の当体なり又此れを当体蓮華とも云うなり
묘(妙)는 죽음이요 법(法)은 삶이니라. 이 생사의 두 법이 십계의 당체이니, 또 이것을 당체연화라고도 하느니라.
伝教大師云く「生死の二法は一心の妙用・有無の二道は本覚の真徳」と文、天地・陰陽.日月・五星.地獄・乃至仏果・生死の二法に非ずと云うことなし、是くの如く生死も唯妙法蓮華経の生死なり、天台の止観に云く「起は是れ法性の起・滅は是れ法性の滅」云云
전교대사가 이르기를 「생사의 두 법은 한마음의 묘한 작용이요, 유무의 두 길은 본각의 참된 덕이다」라고 하였느니라. 하늘과 땅, 음과 양, 해와 달과 다섯 별, 지옥에서 불과에 이르기까지 생사의 두 법이 아닌 것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사도 오직 묘법연화경의 생사이니라. 천태의 지관에 이르기를 「일어남은 법성의 일어남이요 사라짐은 법성의 사라짐이다」라고 하였느니라.
창가교학연구실의 강의는 「묘는 죽음, 법은 삶」을 이렇게 풀이한다. 만물은 생겨나서는 사라져 간다. 「생」으로 드러나고 「사」로 잠재하면서 생사생사를 시작도 끝도 없이 되풀이하는 것이 생명의 참모습이다. 묘(妙)란 불가사의라는 뜻이니, 죽음의 상태에 있는 생명은 빛깔도 없고 눈으로 보거나 붙잡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있기에 「묘는 죽음」이다. 법(法)이란 겉으로 나타난 모습이니, 희로애락과 순간순간의 변화와 갖가지 작용으로 보고 만질 수 있기에 「법은 삶」이다. 그리고 전교대사의 말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 것도 상주하는 본체인 묘법연화경의 불가사의한 작용이요, 태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도 죽어 「없어지는」 것도 본래의 깨달음에 갖추어진 덕용이라는 뜻이다.
1부에서 무상은 「일어나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였다. 대성인은 그 일어남과 사라짐을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묘법의 이름 안에 거두신다. 사라짐(死)이 묘(妙)이고 일어남(生)이 법(法)이다. 무상의 두 얼굴이 그대로 묘법의 두 글자다. 『어의구전』 방편품은 이것을 「권교의 뜻은 생사를 멀리 떠나는 가르침이므로 사불지견(四佛知見)이 아니니라. 지금 경(법화경)의 때에 생사의 두 법은 한마음의 묘용이요 유무의 두 길은 본각의 진덕이라고 열어 깨닫는 것을 사불지견이라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716쪽).
생의 부처, 사의 부처
이 법문을 대성인은 남편을 잃은 한 여성에게 가장 단순한 말로 전하셨다. 난조도키미쓰의 어머니, 곧 5부에서 아들 시치로고로를 잃은 그 어머니에게, 그보다 여섯 해 앞서 남편 난조효에시치로를 생각하며 보내신 편지다.
いきてをはしき時は生の仏・今は死の仏・生死ともに仏なり、即身成仏と申す大事の法門これなり
살아 계실 때는 생(生)의 부처, 지금은 사(死)의 부처, 생사가 모두 부처이니라. 즉신성불이라고 하는 큰 법문이 바로 이것이니라.
죽음은 부처임을 끝내지 않는다. 살아서 부처였던 이는 죽어서도 부처다. 「본유의 생사」를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비추면 이렇게 된다. 같은 편지는 이어서, 장례의 풍경 하나하나 — 무덤의 구덩이, 시신을 태우는 불, 지팡이, 삼도천, 죽음의 산 — 가 법화경을 지닌 이에게는 그대로 부처의 경계로 뒤집힌다고 하신다.
此の法華経をたもちたてまつる人は此れをうちかへし・地獄は寂光土・火焔は報身如来の智火・死人は法身如来・火坑は大慈悲為室の応身如来、又つえは妙法実相のつえ、三途の愛河は生死即涅槃の大海・死出の山は煩悩即菩提の重山なり
이 법화경을 지니는 사람은 이것을 뒤집어, 지옥은 적광토요, 불길은 보신여래의 지혜의 불이요, 죽은 이는 법신여래요, 불구덩이는 「대자비를 방으로 삼는다」는 응신여래요, 또 지팡이는 묘법실상의 지팡이요, 삼도의 애하는 생사즉열반의 큰 바다요, 죽음의 산은 번뇌즉보리의 겹겹의 산이니라.
강의는 이 대목을 이렇게 풀이한다. 현실 세계에 있는 것, 현실에서 행해지는 일들이 그 사람의 생명의 경계에 따라 지옥의 극심한 괴로움을 주는 것도 되고 거꾸로 적광정토를 가져오는 것도 된다. 무상의 풍경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보는 생명이 바뀌면 같은 풍경이 정토가 된다. 「삼도의 애하는 생사즉열반의 큰 바다」 — 생사를 건너 열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생사의 강이 그대로 열반의 바다다.
삼재를 떠난 상주의 정토
무상은 사람의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교의 우주론은 세계 자체도 이루어지고(成), 머물고(住), 무너지고(壞), 비는(空) 네 겁을 되풀이한다고 설했다. 세계가 무너질 때는 불·물·바람의 세 재난(大三災)이 일어난다. 무상은 국토의 운명이기도 하다.
「관심의 본존초」는 이 국토의 무상을 두고 이전·적문과 본문을 가르신다.
夫れ始め寂滅道場・華蔵世界より沙羅林に終るまで五十余年の間・華蔵・密厳・三変・四見等の三土四土は皆成劫の上の無常の土に変化する所の方便・実報・寂光・安養・浄瑠璃・密厳等なり能変の教主涅槃に入りぬれば所変の諸仏随つて滅尽す土も又以て是くの如し
무릇 처음 적멸도량의 화장세계에서부터 사라쌍수 숲에서 끝나기까지 오십여 년 동안의 화장·밀엄·삼변·사견 등의 삼토·사토는 모두 성겁 위의 무상한 국토에 변화하여 나타난 방편토·실보토·적광토·안양·정유리·밀엄 등이니라. 변화를 일으킨 교주가 열반에 들면 변화로 나타난 제불도 따라서 멸진하니, 국토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今本時の娑婆世界は三災を離れ四劫を出でたる常住の浄土なり仏既に過去にも滅せず未来にも生ぜず所化以て同体なり
지금 본시(本時)의 사바세계는 삼재를 떠나고 사겁을 벗어난 상주의 정토이니라. 부처가 이미 과거에도 멸하지 않고 미래에도 생하지 않으니, 교화받는 이도 그와 한 몸이니라.
이전·적문의 정토들은 아무리 장엄해도 「성겁 위의 무상한 국토」였다. 그 국토를 나타낸 부처가 열반에 들면 국토도 함께 사라진다. 4부에서 본 「권교의 삼신은 아직 무상을 면하지 못한다」가 국토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그러나 수량품에서 부처가 「과거에도 멸하지 않고 미래에도 생하지 않는다」고 밝혀지자, 그 부처가 머무는 이 사바세계가 그대로 「삼재를 떠나고 사겁을 벗어난 상주의 정토」가 된다. 불타는 집이 그대로 상주의 정토다. 4부에서 본 수량품의 「중생이 겁이 다하여 큰불에 타는 것을 볼 때에도 나의 이 국토는 안온하다」가 이것이다.
창가교학연구실의 「관심의 본존초」 강의는 이 대목을 이렇게 풀이한다. 현상의 면만 보면 모든 것은 변화하고 유전한다. 그러나 최고의 불법은 변화하고 유전하는 면만을 설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그 근저에 상주의 세계를 밝힌다. 그리고 그 상적광의 세계는 어딘가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우리 자신의 생명이 바로 그것이라고 설해 마쳤다. 국토를 사바라고 느끼는 것도 상적광이라고 느끼는 것도 그곳에 사는 사람의 경애, 곧 한 생각의 힘에 달려 있다.
- 성
- 주
- 괴
- 공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은 이 상주를 생명 자체의 말로 쓰신다.
生と死と二つの理は生死の夢の理なり妄想なり顚倒なり本覚の寤を以て我が心性を糾せば生ず可き始めも無きが故に死す可き終りも無し既に生死を離れたる心法に非ずや、劫火にも焼けず水災にも朽ちず剣刀にも切られず弓箭にも射られず芥子の中に入るれども芥子も広からず心法も縮まらず虚空の中に満つれども虚空も広からず心法も狭からず
삶과 죽음 두 이치는 생사의 꿈의 이치이니, 망상이요 전도이니라. 본각의 깨어남으로 자기의 심성을 살피면, 생겨날 처음도 없으므로 죽을 끝도 없느니라. 이미 생사를 떠난 심법이 아니겠는가. 겁화에도 타지 않고 수재에도 썩지 않으며, 칼에도 베이지 않고 활에도 맞지 않으며, 겨자씨 속에 넣어도 겨자씨도 넓어지지 않고 심법도 줄어들지 않으며, 허공 속에 가득 차도 허공도 넓어지지 않고 심법도 좁아지지 않느니라.
「겁화에도 타지 않는다」 — 세계를 끝내는 큰불도 이 생명은 태우지 못한다. 같은 글은 바로 앞에서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인 적광의 극락을 두고 「생멸무상의 모습을 떠났으므로 무상(無相)이라 한다」고 하시고(563쪽), 또 금강처럼 부서지지 않는 이 몸을 생멸무상의 몸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생각은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가 된 것과 같다는 해석을 인용하신다(568쪽). 무상의 몸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꿈이다.
다만 여기서 「삶과 죽음 두 이치는 생사의 꿈의 이치」라는 말을, 『어의구전』의 「다만 생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와 함께 읽어야 한다. 생사가 꿈이라는 것은 생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생사를 「끝」과 「시작」으로만 보는 눈이 꿈이라는 뜻이다. 본각의 깨어남에서 보면 생사는 있되 그 생명에는 처음도 끝도 없다.
무상은 어제의 꿈
「성우문답초」는 5부에서 본 무상의 탄식 끝에, 묘법 다섯 글자를 밝히시며 이렇게 쓰신다.
誠に生死を恐れ涅槃を欣い信心を運び渇仰を至さば遷滅無常は昨日の夢・菩提の覚悟は今日のうつつなるべし
참으로 생사를 두려워하고 열반을 기뻐 구하여 신심을 다하고 목마르게 우러러 구한다면, 옮겨 가고 사라지는 무상은 어제의 꿈이 되고 보리의 깨달음은 오늘의 현실이 되리라.
「무상은 어제의 꿈」. 「성우문답초」는 무상의 탄식으로 시작하여 무상을 어제의 꿈으로 만드는 신심으로 끝난다. 무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상에 휘둘리던 삶이 어제의 꿈이 된다.
「지묘법화문답초」의 맺음도 같다.
過去遠遠の苦みは徒らにのみこそ・うけこしか、などか暫く不変常住の妙因をうへざらん・未来・永永の楽みは・かつかつ心を養ふともしゐてあながちに電光朝露の名利をば貪るべからず
과거 아득한 옛날부터의 괴로움은 헛되이 받아 오기만 하였으니, 어찌 잠시라도 변하지 않고 상주하는 묘한 원인을 심지 않겠는가. 미래 영원한 즐거움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마음을 기를지언정, 굳이 번갯불과 아침 이슬 같은 명예와 이익을 탐내서는 안 되느니라.
「번갯불과 아침 이슬」은 무상의 비유다. 「변하지 않고 상주하는 묘한 원인」은 상주의 씨앗이다. 무상한 이 생에서 상주의 씨앗을 심는 것 — 그것이 대성인이 무상을 말씀하신 끝에 가리키신 실천이다. 그리고 편지는 「적광의 도읍이 아니면 어디든 다 괴로움이리라. 본각의 거처를 떠나 무엇이 즐거움이 되겠는가」로 이어진다(467쪽). 4부에서 본 「삼계는 편안함이 없어 불타는 집과 같다」가, 적광의 도읍과 본각의 거처라는 상주의 말과 나란히 놓인다. 그 적광의 도읍은 불타는 집 밖이 아니라, 「화성이 곧 보처」라는 바로 그 자리에 있다.
흐르는 강과 하늘의 달
석존은 「변하지 않는 자아」를 깨뜨리려고 무상을 말했다. 무상은 외도의 「상」을 무너뜨린 첫 번째 표지였고, 무상을 지혜로써 보는 것이 청정에 이르는 첫걸음이었다. 석존은 젊음과 건강과 삶의 교만을 무상의 자각으로 꺾었고, 마지막 순간에도 「모든 것은 사라지는 법이니 게으르지 말라」고 했다. 무상은 처음부터 사람을 멈추게 하는 말이 아니라 움직이게 하는 말이었다.
아비달마는 그 무상을 찰나의 생멸로 분석하고, 사념처로 관하는 수행을 세웠다. 그러나 무상을 철저히 본 끝에 몸과 지혜를 재로 만드는 이승의 열반은, 무상을 아는 지혜가 무상에서 도망치는 길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대승은 무상의 비유를 더 풍부하게 하면서도 무상조차 자성이 없다고 보았고, 『열반경』은 세간의 무상과 여래의 상주를 나누어 이승의 전도를 바로잡았다. 설산동자는 무상을 아는 반 게송에 만족하지 않고, 무상을 넘는 반 게송을 위해 무상한 몸을 던졌다.
법화경은 무상한 세계를 불타는 집이라 부르면서, 동시에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고 설했다. 천태는 같은 무상을 네 깊이로 보는 사종사제를 세우고, 「일어남은 법성의 일어남, 사라짐은 법성의 사라짐」이라 했다. 만들어진 부처는 무상을 면하지 못하고, 본래 그러한 부처만이 상주한다.
대성인은 정가의 재난 한가운데서 무상을 말씀하셨고, 자식을 잃은 어머니와 함께 「무상하도다, 무상하도다」라고 우셨다. 그러나 무상에 머무는 것은 방법이라고 엄히 경계하셨고, 『어의구전』에서 「법화경의 뜻은 무상을 상주라고 설하는 것」이라고 밝히셨다. 무상과 상주는 동시에 상즉한다. 생사를 보고 싫어하여 떠나는 것은 미혹이요, 본유의 생사라고 알고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묘는 죽음이요 법은 삶이니, 생사의 두 바퀴가 법성의 대지를 굴러간다. 살아서는 생의 부처, 죽어서는 사의 부처다.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 같은 물이 두 번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강물에 비치는 달은 흐르지 않는다. 무상과 상주는 강과 달처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 하나하나에 같은 달이 비치듯 함께 있다. 이 페이지가 따라온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하나의 통찰이 「그러니 떠나라」에서 「그러니 지금 정진하라」로, 다시 「변하는 그대로 상주한다」로 깊어져 간 길이다.
더 읽기
- 一 십이연기 — 연기와 생사의 유전
- 二 공 · 중도 — 상견과 단견을 넘어
- 三 제법실상 — 모든 법이 그대로 실상
- 四 구원실성 — 수량품의 상주
- 핵심 개념 · 업 — 전중경수와 숙명전환
- 석가모니 세존 — 인물탐구
참고 문헌
원전
- 『담마파다』(Dhammapada) — 제277~279송
- 『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 — 「유연경」 AN 3.38, 「유위상경」 AN 3.47, 「죽음의 새김 경」 AN 6.19
-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 Nikāya) — 「무상한 것 경」 SN 22.15, 「무아상경」 SN 22.59, 「초전법륜경」 SN 56.11
-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 「대본경」 DN 14, 「대반열반경」 DN 16
- 세친 『아비달마구사론』 근품 · 업품, 현장 역, T29 no.1558
- 용수 『중론』, 구마라집 역, T30 no.1564
- 『대지도론』, 구마라집 역, T25 no.1509
- 『유마힐소설경』 방편품, 구마라집 역, T14 no.475
-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 역, T8 no.235
- 『대반열반경』(북본) 성행품 등, 담무참 역, T12 no.374
- 『묘법연화경』 방편품 · 비유품 · 화성유품 · 여래수량품 · 수희공덕품, 구마라집 역, T9 no.262
- 천태대사 지의 『법화현의』 T33 no.1716, 『마하지관』 T46 no.1911
- 니치렌 대성인 「성우문답초」 · 「지묘법화문답초」 · 「마쓰노전답서」 · 「니치묘성인어서」 · 「관심의 본존초」 · 「개목초」 · 「보은초」 · 「소야입도전답서」 · 「일대성교대의」 · 「십법계명인과초」 · 「수호국가론」 · 「선시초」 · 「입정관초」 · 「현방법초」 · 「당체의초」 ·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 · 「우에노전모친답서」 · 「우에노전미망인답서」 · 「고니치보어서」 · 「도키니부인답서」 · 「생사일대사혈맥초」 · 「대백우거서」 · 『어의구전』 (창가학회판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강의 · 연구
- 창가교학연구실, 「聖愚問答抄」 · 「持妙法華問答抄」 · 「松野殿御返事(十四誹謗抄)」 · 「日妙聖人御書」 · 「上野殿母御前御返事(中隠書)」 · 「上野殿後家尼御返事」 · 「如来滅後五五百歳始観心本尊抄」 · 「顕謗法抄」 · 「立正観抄」 · 「生死一大事血脈抄」 · 「十法界明因果抄」 · 「一代聖教大意」 · 「曾谷入道殿御返事」 · 「守護国家論」 각 장 강의
- 平川彰, 『インド仏教史』 上, 春秋社, 1974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