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교토 히가시야마 기슭에 늘어선 큰 절 지붕과 탑, 짙어 오는 먹구름

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 — 홍법 · 자각의 그릇됨

선시초 · 제4편 · 제20~27장

浄土・禅・真言を破す — 弘法・慈覚の誤り어서 273–283쪽
저술
건치 원년(1275) · 미노부
장
제20~27장 (여덟 장)
쪽수
어서 273:18–283:06
시대 구분
말법의 세 재앙(염불 · 선 · 진언)을 파함
계보
선시초 제3편 → 제4편 → 제5편

여섯 편 · 선시초 36장 구성도

36장 → 여섯 편
  1. 序講256 앞저술 · 대의 · 원의
  2. 시를 밝힌다
  3. 정상말 홍교의 역사
  4. 정상말 홍교의 역사
  5. 여러 종파의 그릇됨
  6. 말법의 법화경 행자
  7. 말법의 법화경 행자

선시초의 여섯 편 가운데 이 제4편은 「여러 종파의 그릇됨」을 밝히는 갈래 전체를 혼자 맡는다. 제1편이 불법은 시(時)를 따라야 한다는 총론을 세우고, 제2 · 3편이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교를 더듬어 말법에 퍼질 「비법(秘法)」을 예고했다면, 제19장은 그 비법을 말하기에 앞서 세 가지 큰 재앙이 있다고 하였다. 염불종 · 선종 · 진언종이다. 이 편의 여덟 장은 그 세 재앙의 정체를 하나씩 드러낸다. 염불은 담란 · 도작 · 선도를 거쳐 법연에 이르는 계보로, 선은 「교외별전」의 주장으로, 진언은 선무외 · 일행의 『대일경소』와 홍법(구카이)의 교판으로 파하고, 마지막 세 장은 전교대사의 제자이면서 히에이산을 진언으로 돌려놓은 자각대사(엔닌)에게 겨눈다. 대성인은 이 비판을 「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는 기준 위에 세우시고, 끝에서 몽골 내습 앞의 진언 기도를 승구의 난의 선례로 경계하신다.

이 편이 묻는 것은 결국 하나다. 말법이라는 「시」에 무엇을 가지고 사람들을 구할 것인가. 제19장에서 대성인은 「불법에는 오역을 돕고 불효를 구하나, 다만 비방 일천제로서 계율을 지니고 제일인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뜻을 들어, 세상이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세 종파가 도리어 가장 무거운 허물을 짓고 있다고 하셨다. 염불은 「일본국에 가득하여 사부대중의 입놀림」이 되었고, 선은 「삼의일발의 대만의 비구」가 사해에 가득하며, 진언은 히에이산 · 동사 · 나라의 칠대사 · 온조사의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이 편의 여덟 장은 그 세 종파가 어떤 경문 해석과 어떤 역사적 우연을 거쳐 그 자리에 이르렀는지를 하나하나 짚는다.

서술의 무게는 뒤로 갈수록 무거워진다. 염불(제20장)과 선(제21장)은 이미 「입정안국론」 이래 거듭 파해 온 대상이어서 짧게 계보와 근거의 허술함을 밝히는 데 그친다. 그러나 진언은 「위의 두 재앙과는 견줄 수도 없는 큰 그릇된 견해(大僻見)」라 하여 중국의 선무외(제22장), 일본의 홍법(제23장), 그 말류인 쇼카쿠보(제24장)를 차례로 다루고, 마침내 「이보다 백천만억 배나 믿기 어려운 가장 큰 악사」로서 자각대사를 세 장(제25~27장)에 걸쳐 논한다. 밖의 적보다 안의 적이 무겁다는 것, 곧 「사자 몸속의 벌레가 사자를 먹는다」는 원리가 이 편 전체를 꿰뚫는 축이다.

이 편은 니치칸 상인의 「선시초 문단(撰時抄文段)」에 기대어 읽는다. 담란 · 도작에게 각각 두 가지 허물을 묻고, 자각의 이동사승(理同事勝)을 여섯 갈래로 논파하며, 전교대사가 법화를 진언보다 뛰어나다고 본 증거 셋을 든다. 아울러 종교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을 경문(문증) · 도리(이증) · 현증의 셋으로 정리하고, 자각의 「해를 쏘는 꿈」을 그 셋 어디에도 서지 못하는 근거로 읽는다. 이 편을 읽을 때는 비판의 날카로움보다 그 비판이 기대는 기준 — 경문의 연대, 경문의 유무, 본사(本師)의 뜻, 그리고 현실의 결과 — 을 따라가는 것이 요긴하다.

  1. 시를 밝힌다(제1편 · 총론과 경석의 증거)
  2. 정상말 홍교의 역사(제2 · 3편)
  3. 여러 종파의 그릇됨(제4편 · 이 편 — 제20~27장)
  4. 말법의 법화경 행자(제5 · 6편)
이 편 안
  1. 염불(제20장)
  2. 선(제21장)
  3. 진언 — 선무외(제22장) · 홍법(제23장) · 쇼카쿠보(제24장)
  4. 자각(제25~27장)
도표 1 · 여섯 편 가운데 제4편의 자리

이 편의 장

第20章浄土宗を破す제20장 정토종을 파하다 — 담란 · 도작 · 선도에서 법연으로 이어진 염불의 계보와, 온 나라가 법연의 제자가 된 오십 년
第21章禅宗を破す제21장 선종을 파하다 — 「교외별전」의 근거 없음과 지재(持斎)의 겉모습, 나라를 먹는 메뚜기
第22章真言の善無畏を破す제22장 진언의 선무외를 파하다 — 선무외가 일행을 끌어들여 『대일경소』로 법화와 대일을 하나로 엮은 경위와 전교대사의 침묵
第23章真言の弘法を破す제23장 진언의 홍법을 파하다 — 「제일 진언 · 제이 화엄 · 제삼 법화」와 「희론」 「무명의 변역」 「제사 숙소미」 「제호를 훔친다」의 그릇됨
第24章聖覚房を破す제24장 쇼카쿠보를 파하다 — 「사리강식」의 말과 대만바라문 · 삼계선사의 선례
第25章慈覚を破す제25장 자각을 파하다 — 히에이산의 입을 막은 자각, 안연 · 혜심과 「사자 몸속의 벌레」
第26章慈覚の本師違背の失제26장 자각이 본사를 어긴 허물 — 전교대사의 뜻과 자각의 이동사승, 「해를 쏘는 꿈」
第27章問答帰釈して慈覚を破す제27장 문답으로 귀결하여 자각을 파하다 — 「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 꿈의 길흉, 승구의 난과 몽골 앞의 진언 기도
제20장 정토종을 파하다
어서 273쪽 18행~274쪽 17행 · 第20章 浄土宗を破す

본문

本文 · 一어서 273쪽 18행 ~ 274쪽 2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云く此の三宗の謬悞如何答えて云く浄土宗は斉の世に曇鸞法師と申す者あり本は三論宗の人竜樹菩薩の十住毘婆娑論を見て難行道易行道を立てたり、 道綽禅師という者あり唐の世の者本は涅槃経をかうじけるが曇鸞法師が浄土にうつる筆を見て涅槃経をすてて浄土にうつて聖道・浄土二門を立てたり、 又道綽が弟子に善導という者あり雑行正行を立つ、

풀이

묻노라. 이 세 종파의 그릇됨은 어떠한가. 답하노라. 정토종은 제(斉)나라 때에 담란 법사(曇鸞法師)라 하는 자가 있었으니, 본디 삼론종의 사람으로서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을 보고 난행도(難行道) · 이행도(易行道)를 세웠느니라. 도작 선사(道綽禅師)라 하는 자가 있었으니 당나라 때의 사람으로서 본디 『열반경』을 강하던 이였는데, 담란 법사가 정토로 옮겨 간 글을 보고 『열반경』을 버리고 정토로 옮겨 가서 성도(聖道) · 정토(浄土)의 두 문을 세웠느니라. 또 도작의 제자에 선도(善導)라 하는 자가 있어 잡행(雑行) · 정행(正行)을 세웠느니라.

本文 · 二어서 274쪽 2~17행
本文 · 어서 원문

日本国に末法に入つて二百余年・後鳥羽院の御宇に法然というものあり一切の道俗をすすめて云く仏法は時機を本とす法華経大日経天台真言等の八宗九宗一代の大小・顕密・権実等の経宗等は上根上智の正像二千年の機のためなり、 末法に入りてはいかに功をなして行ずるとも其の益あるべからず、其の上・弥陀念仏にまじへて行ずるならば念仏も往生すべからず此れわたくしに申すにはあらず竜樹菩薩・曇鸞法師は難行道となづけ、 道綽は未有一人得者ときらひ善導は千中無一とさだめたり、此等は他宗なれば御不審もあるべし、慧心先徳にすぎさせ給へる天台真言の智者は末代にをはすべきか彼の往生要集には顕密の教法は予が死生をはなるべき法にはあらず、 又三論の永観が十因等をみよされば法華真言等をすてて一向に念仏せば十即十生・百即百生とすすめければ、 叡山・東寺・園城・七寺等始めは諍論するやうなれども、往生要集の序の詞道理かとみへければ顕真座主落ちさせ給いて法然が弟子となる、 其の上設い法然が弟子とならぬ人々も弥陀念仏は他仏ににるべくもなく口ずさみとし心よせにをもひければ日本国皆一同に法然房の弟子と見へけり、 此の五十年が間・一天四海・一人もなく法然が弟子となる法然が弟子となりぬれば日本国一人もなく謗法の者となりぬ、 譬へば千人の子が一同に一人の親を殺害せば千人共に五逆の者なり一人阿鼻に堕ちなば余人堕ちざるべしや、 結句は法然・流罪をあだみて悪霊となつて我並びに弟子等をとがせし国主・山寺の僧等が身に入つて或は謀反ををこし或は悪事をなして皆関東にほろぼされぬ、 わづかにのこれる叡山・東寺等の諸僧は俗男俗女にあなづらるること猿猴の人にわらはれ俘囚が童子に蔑如せらるるがごとし、

풀이

일본국에서는 말법에 들어 이백여 년, 고토바인(後鳥羽院)의 치세에 법연(法然)이라 하는 자가 있어 모든 도속(道俗)에게 권하여 말하기를 「불법은 시(時)와 기(機)를 근본으로 한다. 법화경 · 대일경, 천태 · 진언 등의 팔종 · 구종, 일대의 대승 · 소승, 현교 · 밀교, 권교 · 실교 등의 경과 종은 상근상지(上根上智)인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기근을 위한 것이다. 말법에 들어서는 아무리 공을 들여 수행하여도 그 이익이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아미타 염불에 섞어서 행한다면 염불로도 왕생하지 못한다. 이는 내가 사사로이 하는 말이 아니다. 용수보살 · 담란 법사는 이를 난행도라 이름하였고, 도작은 『아직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다(未有一人得者)』고 싫어하였으며, 선도는 『천 가운데 하나도 없다(千中無一)』고 정하였다. 이들은 다른 종파의 사람이니 미심쩍게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혜심 선덕(慧心先徳)보다 뛰어난 천태 · 진언의 지자가 말대에 있겠는가. 그의 『왕생요집』에는 『현교 · 밀교의 교법은 내가 생사를 떠날 법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 삼론의 영관(永観)이 쓴 『왕생십인』 등을 보라. 그러므로 법화 · 진언 등을 버리고 오로지 염불하면 열이면 열 모두 왕생하고 백이면 백 모두 왕생한다」고 권하였느니라. 그리하여 히에이산 · 동사(東寺) · 온조사(園城寺) · 나라의 칠대사 등이 처음에는 다투어 논하는 듯하였으나 『왕생요집』 서문의 말이 도리인 듯 보였으므로 겐신(顕真) 좌주가 무너져 법연의 제자가 되었느니라. 더구나 비록 법연의 제자가 되지 않은 사람들도 아미타 염불만은 다른 부처와 견줄 바 없다 하여 입버릇으로 외고 마음을 기울였으므로 일본국이 모두 한결같이 법연방의 제자처럼 보였느니라. 이 오십 년 동안 온 천하 사해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법연의 제자가 되었고, 법연의 제자가 되었으니 일본국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방법(謗法)의 자가 되었느니라. 비유하건대 천 명의 자식이 한꺼번에 한 어버이를 살해하면 천 명이 모두 오역죄를 지은 자이니, 한 사람이 아비지옥에 떨어진다면 나머지 사람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결국은 법연이 유죄된 것을 원망하여 악령이 되어서, 자기와 제자들을 벌한 국주와 산사의 승려들의 몸에 들어가 혹은 모반을 일으키게 하고 혹은 악사를 저지르게 하여 모두 간토(関東)에 멸망당하였느니라. 겨우 남은 히에이산 · 동사 등의 여러 승려는 속세의 남녀에게 업신여김을 받음이, 원숭이가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포로가 아이들에게 멸시당하는 것과 같으니라.

어구 풀이

浄土宗정토종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고 그 명호를 불러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약하는 종파. 중국에서는 여산 혜원의 흐름 · 도작 선도의 흐름 · 자민의 흐름의 세 갈래가 있었고, 남북조의 담란과 당대의 도작 · 선도에 의해 독립된 가르침으로 대성되었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말기에 법연이 정토 삼부경(『아미타경』 · 『무량수경』 · 『관무량수경』)과 세친의 『정토론(왕생론)』, 곧 「삼경일론」에 의거하고 선도의 교판을 받아 전수염불(専修念仏)을 세워 개종하였다.
曇鸞法師담란 법사
(476~542) 북위의 승려로 정토교 조사의 한 사람. 처음 용수 계통의 교리를 배우고, 뒤에 신선술의 책을 익히다가 낙양에서 역경승 보리유지를 만나 『관무량수경』을 받고 정토교에 귀의하였다고 전한다. 『십주비바사론』의 난행 · 이행의 뜻을 자기 식으로 풀어 염불을 이행도로, 그 밖의 수행을 난행도로 물리쳤다. 만년에 분주 현중사에 머물렀다. 『정토론주(왕생론주)』 2권 · 『약론안락정토의』 · 『찬아미타불게』 등을 지었다.
難行道易行道난행도 · 이행도
실천하기 어려운 길과 쉬운 길. 본디 용수의 저작으로 전하는 『십주비바사론』 이행품 제9에서, 보살이 불퇴의 자리(초지 · 환희지)에 이르는 데 스스로 애써 정진하는 길을 육로를 걷는 것에, 불력을 믿는 길을 물길로 배를 타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담란은 이를 『왕생론주』에서 따로 풀어, 이행인 염불로만 성불할 수 있다고 하였다.
道綽禅師도작 선사
(562~645) 수 · 당의 승려로 중국 정토교 조사의 한 사람. 병주 문수(산시성 태원) 사람으로 14세에 출가해 『열반경』을 배웠으나, 현중사에서 담란의 비문을 보고 정토교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성도문 · 정토문으로 나누고, 법화경을 포함한 성도문을 「未有一人得者」의 가르침이라 하여 물리쳤다. 저서 『안락집』 2권. 제자에 선도가 있다.
聖道・浄土二門성도 · 정토 이문
도작의 『안락집』에 설한 두 문. 성도문은 자력으로 이 현실 세계에서 성불한다는 가르침, 정토문은 사바세계를 더러운 곳이라 싫어하고 타력으로 극락왕생을 바라는 가르침이다. 『안락집』은 성도의 길은 지금 시대에 증득하기 어렵고 오직 정토의 한 문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善導선도
(613~681) 초당의 승려로 중국 정토교 선도류의 대성자. 사주(안후이성) 사람이라 하고 일설에는 산둥성 임치 사람이라 한다. 『관무량수경』을 보고 서방정토에 뜻을 두었으며, 현중사에서 도작에게 배우고 스승이 죽은 뒤 광명사에서 칭명염불을 폈다. 정행 · 잡행을 세워 잡행의 자는 「천중무일」, 정행의 자는 「십즉십생」이라 하였다. 『관경소』 4권 · 『왕생예찬』 등을 지었다. 일본의 법연은 『관경소』를 보고 오로지 정토문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雑行正行잡행 · 정행
선도는 『관무량수경소』 권4 산선의에서 수행을 정행과 잡행으로 나누어, 서방정토 왕생으로 이끄는 수행을 정행, 그 밖의 여러 수행을 잡행이라 하였다.
法然법연
(1133~1212) 일본 정토종의 개조. 휘는 원공(源空), 미마사카 사람이다. 15세에 히에이산에 올라 황원(皇円)에게, 이어 구로다니의 예공(叡空)에게 배웠다. 승안 5년(1175) 43세 때 선도의 『관경산선의』와 겐신의 『왕생요집』을 보고 전수염불에 귀의하여 정토종을 열었다. 건영 2년(1207) 문하 승려의 일로 염불이 금지되고 도사(실제로는 사누키)로 유배되었다가 같은 해 사면되어, 건력 원년(1211) 교토로 돌아와 이듬해 80세로 죽었다. 주저는 『선택본원염불집(선택집)』 2권이다.
千中無一천중무일
「천 가운데 하나도 없다」. 선도의 『왕생예찬』의 말로, 다섯 가지 정행 이외의 가르침을 수행하면 왕생할 수 있는 자가 천 명 중에 한 사람도 없다는 뜻이다.
慧心先徳혜심 선덕
(942~1017) 겐신(源信). 혜심(恵心)이라고도 쓰며 일본 천태종 혜심류의 조사로 꼽힌다. 선덕은 존칭이다. 야마토 사람으로 어려서 히에이산에 올라 자혜대사 양원(良源)에게 배웠다. 요카와 혜심원에 머물렀으므로 혜심승도라 불렸다. 관화 원년(985) 『왕생요집』 3권을 완성하였고, 만년(관홍 3년, 1006년 무렵)에는 『일승요결』 3권을 지어 법상종의 오성각별을 파하고 법화의 일승을 드러냈다.
往生要集왕생요집
3권. 겐신이 관화 원년(985)에 지은 책. 극락왕생에 관한 경론의 요문을 모은 것으로 10장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싫어하여 떠나야 할 육도의 모습(염리예토)을, 다음에 구해야 할 정토의 모습(흔구정토)을 말하고, 끝으로 왕생을 위해 염불을 권한다.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정토교 저술로 정토종 성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永観영관
(1033~1111) 헤이안 말기 삼론종의 승려. 교토 동쪽 선림사에서 출가하여 밀교의 관정을 받았고, 도다이사에서 삼론 · 법상 · 화엄을 배운 뒤 야마시로 광명산에서 십 년간 정토교를 익혔다. 뒤에 도다이사 별당이 되었고 만년에 선림사로 돌아가 『왕생십인』 · 『왕생강식』 등을 지었다. 하루 수만 번 염불을 불렀다고 전한다.
十即十生・百即百生십즉십생 · 백즉백생
선도의 『왕생예찬』의 말. 잡행 · 잡수를 버리고 염불을 부르면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모두 극락에 왕생한다는 것.
顕真座主겐신 좌주
(1131~1192) 히에이산 엔랴쿠사 제61대 좌주. 문치 2년(1186) 법연을 오하라 승림원에 초청하여 전수염불의 뜻을 물었고(이른바 오하라 문답), 그 뒤 염불에 귀의하였다고 하며 정토종에서는 법연의 제자가 되었다고 널리 말하였다. 문치 6년(1190) 좌주가 되었다.
法然・流罪법연의 유죄
건영 2년(1207) 2월 법연은 승적을 박탈당하고 환속되어 도사(실제로는 사누키)로 유배되었다. 법연이 죽은 지 15년 뒤에는 엔랴쿠사 대중에 의한 이른바 가록의 법난(1227)이 일어나 『선택집』의 판목이 불태워지고 묘소가 파헤쳐졌다.
俘囚포로
사로잡혀 온 사람. 本文에서는 남은 승려들이 속인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모습을 원숭이와 포로에 비유하였다.

담란 — 난행도 · 이행도와 「본론 위배」

이 장부터 제27장까지가 제19장에서 예고한 「세 가지 재앙」의 논파다. 대성인은 먼저 염불을 파하시는데, 그 순서가 의미 있다. 중국의 세 조사(담란 · 도작 · 선도)를 먼저 들고, 이어 일본의 법연을 든다. 일본에서 법연이 내세운 논리가 모두 중국 조사들의 말을 끌어온 것이므로, 뿌리를 먼저 드러내면 가지는 저절로 드러난다는 서술이다.

담란은 중국 정토교의 실질적인 개조다. 그는 세친의 『정토론』에 붙인 주석(『왕생론주』)의 첫머리에서 「謹んで竜樹菩薩の十住毘婆娑を案ずるに云く、菩薩、阿毘跋致を求むるに二種の道有り。一には難行道、二には易行道なり」라고 썼다. 삼가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을 살피건대, 보살이 불퇴의 자리(아비발치)를 구하는 데 두 길이 있으니 하나는 난행도, 하나는 이행도라는 것이다. 용수라는 권위를 앞세운 이 한 문장이 이후 동아시아 정토교 전체의 출발점이 되었다.

니치칸 상인은 「선시초 문단」에서 담란에게 두 가지 허물이 있다고 정리한다. 첫째는 본론 위배(本論違背)의 허물, 곧 근거로 삼은 『십주비바사론』의 본뜻을 어긴 허물이요, 둘째는 집권방실(執権謗実)의 허물이다. 『십주비바사론』 권5 이행품의 본문은 이렇다. 「仏法に無量の門有り。世間の道に難有り、易有るが如し、陸道の歩行は則ち苦しく、水道の乗船は則ち楽し。菩薩道も亦是の如し」 — 불법에는 한량없는 문이 있어 세간의 길에 어려운 길과 쉬운 길이 있음과 같으니, 육로를 걷는 것은 괴롭고 물길에 배를 타는 것은 즐겁다. 보살도도 그러하다. 또 같은 품은 보살이 이 몸으로 불퇴지에 이르러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면 시방의 여러 부처를 염하여 그 명호를 불러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용수가 말하는 염불의 대상은 시방의 여러 부처이지 아미타불 한 부처가 아니며, 그 목적도 이 땅에서 불퇴에 드는 것이다.

담란은 이것을 「難行道とは五濁無仏の時に於て阿毘跋致を求むるを難しと為す」, 곧 오탁의 무불(無仏)의 시대에 불퇴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으로 바꾸고, 이행도를 「但信仏の因縁を以て浄土に生ぜんと願い、仏の願力に乗ちて、便ち彼の清浄の土に往生することを得」, 곧 부처를 믿는 인연으로 정토에 나기를 원하여 부처의 원력을 타고 저 청정한 국토에 왕생하는 것이라고 풀었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 어긋남은 세 가지다. 첫째, 용수의 본론은 널리 불도에 어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다고 했을 뿐인데 담란은 이를 「무불 오탁의 시대」로 좁혔다. 둘째, 본론이 말하는 난행이란 역겁수행(歴劫修行)의 가르침, 곧 한량없는 겁에 걸쳐 근행 정진하는 길인데, 담란은 무불 오탁의 시대에 이 국토에서 불퇴에 드는 것을 난행이라 하였다. 셋째, 본론은 이 국토에서 불퇴에 드는 것이 이행이라고 밝혔는데, 담란은 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이행이라 하였다. 근거로 삼은 논서의 뜻을 세 군데에서 뒤집은 셈이다.

둘째 허물인 집권방실이란 이전 사십여 년의 권교에 집착하여 실교인 법화경을 비방하는 허물이다. 정토 삼부경은 천태의 교판으로 보면 방등부에 속하는 권경이며, 그 권경을 가장 뛰어난 길로 삼고 법화경을 「난행」으로 밀어내는 것이 이 허물이다. 교판 전체의 구도는 핵심 개념 「오시팔교」 페이지가 자세히 다루므로 여기서는 이 정도로 그친다.

도작 — 성도 · 정토 이문과 「소립불성」

도작의 성도문 · 정토문은 담란의 난행 · 이행을 고쳐 말한 것이므로 그 잘못도 같다. 그러나 니치칸 상인은 도작에게도 따로 두 허물을 묻는다. 하나는 소립불성(所立不成), 곧 세운 주장이 성립하지 않는 허물이요, 또 하나는 담란과 같은 집권방실의 허물이다.

도작의 『안락집』은 이렇게 말한다. 「一には謂く聖道、二には謂く往生浄土なり。其の聖道の一種は今時証し難し。一には大聖を去ること遥遠なるに由り、二には理深解微なるに由る」 — 하나는 성도요 둘은 왕생정토이니, 성도의 한 갈래는 지금 시대에 증득하기 어렵다. 첫째는 대성(부처)이 가신 지 아득히 멀기 때문이요, 둘째는 이치가 깊고 이해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집월장경』을 끌어 「我が末法時中、億々の衆生行を起し、道を修するに末だ一人の得者有らず」, 곧 말법 가운데 억억의 중생이 수행을 일으켜 도를 닦아도 아직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다고 하고, 지금 말법은 오탁악세이므로 오직 정토의 한 문만이 들어갈 길이라고 결론짓는다.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이 주장은 세 곳에서 무너진다. 첫째, 도작이 말하는 성도문은 담란의 난행도요, 난행도란 역겁장원(歴劫長遠)한 권대승의 수행이다. 그런 수행은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라도 어렵다. 그런데 어째서 「부처가 가신 지 멀어서」 어렵다고 하는가. 둘째, 높은 산꼭대기의 물일수록 깊은 골짜기까지 내려가는 힘이 있듯이, 가장 높은 가르침일수록 가장 낮은 근기까지 구하는 힘이 있다. 가벼운 병에는 범상한 약을, 무거운 병에는 선약(仙薬)을 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치가 깊다면 이해가 미약하다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이해가 미약한 가르침이라면 이치가 깊다고 할 수 없다. 「이심해미(理深解微)」라는 말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셋째, 『대집경』의 「백법은몰(白法隠没)」이란 얕은 이치의 가르침이 숨어 사라지고 깊은 이치의 큰 백법이 광선유포한다는 뜻인데, 도작이 끌어온 경의 뜻은 깊은 이치가 숨는다는 뜻이 되어 버렸다. 더 나아가 도작이 인용한 그 문장 자체가 『대집경』에 없다. 근거가 성립하지 않으니 「소립불성」이요, 권경인 정토의 한 문에 집착하여 「未有一人得者」라며 법화경을 비방하니 「집권방실」이다.

『대집경』의 오오백세와 백법은몰이 말법의 시를 정하는 경문으로서 어떻게 읽히는지는 선시초 제1편 「불법을 배우려면 먼저 시를 익혀라」에서 다루었다. 도작이 같은 「말법」이라는 말로 정반대의 결론을 끌어낸 점이 이 장의 쟁점이다.

선도 — 정행 · 잡행과 「천중무일」

선도 역시 담란 · 도작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다. 그는 수행을 정행과 잡행으로 나누고, 정행에 독송 · 관찰 · 예배 · 칭명 · 찬탄의 다섯 가지를 두었다. 다시 이 다섯을 정(正)과 조(助)로 나누어 칭명 하나를 정정(正定)의 업으로, 나머지 넷을 조업(助業)으로 삼았다. 그리고 아미타 삼부경에 의한 정행 이외의 모든 수행을 잡행이라 하여, 잡행은 「천중무일」, 정행의 공덕은 「십즉십생」이라 하였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결국 법화경을 잡행이라 비방하는 것이며, 입아비옥(入阿鼻獄)의 죄를 범한 것이다.

선도의 최후에 관한 전승도 함께 보자. 선도는 정토의 법문을 삼십 년에 걸쳐 설하였는데, 끝내 마음이 어지러워져 절 앞의 버드나무에 올라 몸을 던져 왕생을 꾀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열나흘 동안 고통 속에 죽었다고 전한다. 대성인도 「시모야마어소식」에서 이 전승을 들어 「現身に狂人と成りて楊柳に登りて身を投げ堅土に落ちて死にかねて」라고 쓰셨다. 현세에 미친 사람이 되어 버드나무에 올라 몸을 던졌으나 굳은 땅에 떨어져 죽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염불을 해 지는 저녁볕 같은 덧없는 가르침으로 보며, 그 가르침이 생명력을 약하게 하고 소극적인 사람을 만든다는 점을 선도의 이 전승이 보여 준다고 읽는다.

  1. 담란(476~542)
    「난행도 · 이행도」『십주비바사론』의 본뜻을 어김(본론 위배)권교에 집착해 실교를 비방함(집권방실)
  2. 도작(562~645)
    「성도 · 정토 이문」「아직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다(未有一人得者)」주장이 성립하지 않음(소립불성: 재세에도 난행 · 이심해미의 모순 · 대집경에 없는 문)집권방실
  3. 선도(613~681)
    「정행 · 잡행」「천 가운데 하나도 없다(千中無一)」 「열이면 열 모두 왕생(十即十生)」— 법화경을 잡행으로 비방
  4. 혜심(942~1017)
    『왕생요집』(985)— 서문의 말이 히에이산을 무너뜨림
  5. 영관(1033~1111)
    『왕생십인』
  6. 법연(1133~1212)
    전수염불 · 『선택집』의 「버리고 · 닫고 · 놓아두고 · 내던지라(捨閉閣抛)」— 온 나라가 법연의 제자가 됨
도표 2 · 정토교의 계보와 세 조사의 두 허물

법연의 논리 — 「불법은 시기를 근본으로 한다」

일본의 법연은 이 중국 조사들의 말을 한데 묶어 하나의 논리로 만들었다. 本文이 전하는 법연의 권유는 세 단으로 짜여 있다. 첫째, 「불법은 시기(時機)를 근본으로 한다」. 법화 · 대일, 천태 · 진언을 비롯한 팔종 · 구종과 일대의 대소 · 현밀 · 권실의 가르침은 모두 상근상지인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기근을 위한 것이요, 말법에는 아무리 애써도 이익이 없다. 둘째, 그런 가르침을 염불에 섞으면 염불마저 왕생의 힘을 잃는다. 셋째, 이것은 자기 말이 아니라 용수 · 담란 · 도작 · 선도의 말이며, 다른 종파의 말이라 미덥지 않다면 천태종의 혜심도 『왕생요집』에서 같은 말을 했다.

이 논리에서 눈여겨볼 것은 첫머리의 「불법은 시기를 근본으로 한다」는 말이다. 선시초는 처음부터 「불법을 배우려면 반드시 먼저 시를 익혀야 한다」고 시작한 어서다. 법연 역시 「시」를 말하였다. 다만 법연은 말법이라는 시를 「아무 가르침도 통하지 않는 시대」로 읽고 권교인 정토의 한 문으로 물러섰으며, 대성인은 같은 말법을 「백법은몰」 뒤에 법화경의 간심인 대백법이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할 시로 읽으셨다. 선시초가 정토종을 맨 먼저 파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를 말한다는 점에서 가장 가까워 보이는 주장이 시를 가장 거꾸로 읽고 있기 때문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법연의 「말법에는 법화경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은 시를 잘못 읽은 대표적인 예다. 말법은 가르침이 무력해지는 시가 아니라, 가장 깊은 법이 가장 낮은 근기를 구하는 시라는 것이 선시초 전체의 결론이다.

법연은 『선택집』에서 성도문의 여러 경을 버리고(捨) 닫고(閉) 놓아두고(閣) 내던지라(抛)고 권하였는데, 대성인이 「입정안국론」 이래 이것을 「사 · 폐 · 각 · 방」이라 요약하여 거듭 파하신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선시초의 이 장은 그 결론보다 그 결론을 떠받친 권위의 사슬 — 용수 · 담란 · 도작 · 선도, 그리고 혜심 — 을 드러내는 데 무게를 둔다.

혜심의 『왕생요집』과 겐신 좌주 — 히에이산이 무너진 경위

법연의 권유가 힘을 얻은 결정적인 고리는 천태종 안에서 나왔다. 혜심, 곧 겐신의 『왕생요집』이다. 本文은 「혜심 선덕보다 뛰어난 천태 · 진언의 지자가 말대에 있겠는가」라는 법연 쪽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천태종의 대학자가 「현교 · 밀교의 교법은 내가 생사를 떠날 법이 아니다」라고 썼으니, 천태종 사람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히에이산 · 동사 · 온조사 · 나라의 칠대사가 처음에는 논쟁하는 듯하다가 결국 『왕생요집』 서문의 말이 도리라고 여기게 되었고, 히에이산의 좌주 겐신까지 법연의 제자가 되었다. 겐신이 문치 2년(1186) 오하라에서 법연을 청해 염불의 뜻을 물은 일이 정토종에서 「좌주가 법연의 제자가 되었다」고 널리 말해진 사정은 語釈이 전하는 대로다.

그런데 대성인은 혜심을 한쪽으로만 보지 않으신다. 어서는 혜심을 여(与) · 탈(奪) 두 면에서 논한다. 여의 면은 「수호국가론」이다. 거기서 대성인은 겐신이 많은 책을 지은 것은 모두 법화를 펴기 위함이었고, 『왕생요집』은 이전 사십여 년의 경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염불을 들어 법화경의 가장 낮은 공덕과 견주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법화경으로 이끌려 한 책이라고 보셨다.

当に知るべし往生要集の意は爾前最上の念仏を以て法華最下の功徳に対して人をして法華経に入らしめんが為に造る所の書なり、故に往生要集の後に一乗要決を造つて自身の内証を述ぶる時・法華経を以て本意と為すなり

마땅히 알라, 『왕생요집』의 뜻은 이전 경 가운데 가장 높은 염불을 법화경의 가장 낮은 공덕과 견주어 사람들을 법화경에 들게 하려고 지은 책이다. 그러므로 『왕생요집』 뒤에 『일승요결』을 지어 자신의 내증을 말할 때에는 법화경을 본의로 삼았다.

「수호국가론」, 49쪽

탈의 면은 바로 선시초다. 제30장에서 대성인은 「慈覚・安然・慧心等は法華経・伝教大師の師子の身の中の三虫なり」라 하시어, 혜심을 자각 · 안연과 함께 「법화경 · 전교대사라는 사자의 몸속의 세 벌레」로 꼽으셨다. 전기에 따르면 혜심은 천태종의 권소승도이면서 43세에 『왕생요집』을 지어 염불로 기울었고, 60세 무렵 미타 염불을 뉘우쳐 법화경 독송과 천태의 일심삼관의 공덕을 들었으며, 61세 무렵 『일승요결』을 지어 오승방편 · 일승진실을 논하고 법화 최승을 밝혔다. 그 뒤로는 법화경을 중심으로 제자를 가르쳐 혜심류의 조사가 되었다. 그러나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염불을 권한 『왕생요집』이 승려와 민중을 염불로 몰아넣은 죄는 크니, 대성인이 그를 「세 벌레」의 하나로 꾸짖으신 까닭이 거기에 있다. 제25장이 「법연의 염불종이 유행하여 한 나라를 잃게 하려는 인연은 혜심의 『왕생요집』 서문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천 명의 자식과 한 어버이 — 온 나라가 방법이 된다는 뜻

本文은 법연 이후 「이 오십 년 동안」 온 천하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법연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직접 법연의 문하에 들지 않은 사람도 아미타불을 다른 부처와 견줄 수 없는 부처로 여겨 입버릇처럼 부르고 마음을 기울였으니, 겉보기로는 일본국 전체가 법연의 제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연의 제자가 되었으니 일본국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방법의 자가 되었다」고 이어진다.

여기서 대성인은 천 명의 자식이 함께 한 어버이를 죽이는 비유를 드신다. 천 명이 함께 저질렀다고 죄가 천분의 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천 명이 모두 오역죄인이다. 한 사람이 아비지옥에 떨어진다면 나머지가 떨어지지 않을 까닭이 없다. 방법(謗法)의 죄는 다수가 함께 짓는다고 가벼워지지 않으며, 오히려 온 나라가 함께 짓는 방법은 한 나라 전체의 업이 된다. 제19장이 인용한 「불법에는 오역을 돕고 불효를 구하나 비방 일천제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뜻이 여기서 구체적인 모습을 얻는다. 법화경이 일체중생의 어버이라면, 법화경을 버리라는 가르침에 온 나라가 따르는 것은 천 명의 자식이 한 어버이를 해치는 것과 같다.

법연의 유죄와 가록의 법난, 그리고 간토에 멸망한 사람들

本文의 끝 대목은 역사를 압축한다. 법연이 유죄된 것을 원망하여 악령이 되어 자기와 제자들을 벌한 국주와 산사의 승려들의 몸에 들어가 모반을 일으키게 하고 악사를 짓게 하여 모두 간토에 멸망당했다는 것이다. 이 「간토에 멸망당했다」는 말은 승구 3년(1221)의 승구의 난에서 고토바 상황을 비롯한 조정과 이를 편든 대사원 세력이 가마쿠라 막부에 패한 일을 가리킨다고 읽힌다. 풀어 옮기면 「조정과 히에이산과 미이데라는 가마쿠라 막부에 멸망당하였다」가 된다. 그 승구의 난에서 진언의 조복 기도가 오히려 기도한 쪽을 망하게 했다는 논의는 제27장에서 다시 나온다.

법연에 대한 처벌의 역사는 語釈이 자세히 전한다. 건영 2년(1207) 2월 법연은 승적을 박탈당하고 환속되어 도사(실제로는 사누키)로 유배되었다. 법연이 죽은 지 15년 뒤인 가록 3년(1227)에는 이른바 가록의 법난이 일어났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이 일을 「법연방이 죽은 뒤에도 거듭 산문(히에이산)이 소를 올려, 고호리카와인의 치세 가록 3년에 교토의 여섯 곳에서 『선택집』과 그 판목을 거두어 대강당 뜰에서 삼천 대중이 모여 삼세 불은에 보답한다며 태우고, 법연방의 묘소는 이누지닌에게 명하여 파내어 가모강에 흘려보냈다」는 뜻으로 적으셨다. 語釈에 따르면 그해 6월 천태좌주가 조정에 융관 · 행서 · 공아 · 증공 등 정토종 승려의 유죄와 법연 묘소의 파괴를 청하였고, 엔랴쿠사의 승병이 묘소를 습격하자 정토종 쪽은 서둘러 유해를 파내어 사가 · 우즈마사로 옮겼으며, 7월에 융관 · 행서 · 공아가 무쓰 · 이키 · 사쓰마로 유배되고, 10월에 『선택집』의 판목이 히에이산 대강당 뜰에서 불태워졌다. 이듬해 안정 2년(1228) 1월 유해는 니시야마로 옮겨져 여러 곳에 나뉘어 묻혔다. 語釈은 이를 「법연은 살아서는 유죄, 죽어서도 떠도는 몸이었다」고 맺는다.

그러나 本文이 말하려는 것은 법연을 벌한 쪽의 승리가 아니다. 법연을 벌한 히에이산 · 미이데라와 조정이 결국 간토에 멸망당했고, 겨우 남은 히에이산 · 동사의 승려들은 속인에게 원숭이처럼 웃음거리가 되고 포로처럼 업신여김을 받는다. 법연을 처벌한 힘이 정법의 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염불을 막겠다던 히에이산 자신이 이미 혜심의 『왕생요집』으로 염불의 문을 열었고, 뒤에 보듯 자각 이래 진언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 장의 끝은 그래서 다음 장들, 곧 히에이산 안의 진언화와 자각 비판을 미리 가리키고 있다.

제21장 선종을 파하다
어서 274쪽 17행~275쪽 4행 · 第21章 禅宗を破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74쪽 17행 ~ 275쪽 4행
本文 · 어서 원문

禅宗は又此の便を得て持斎等となつて人の眼を迷かしたつとげなる気色なればいかにひがほうもんをいゐくるへども失ともをぼへず、 禅宗と申す宗は教外別伝と申して釈尊の一切経の外に迦葉尊者にひそかにささやかせ給へり、されば禅宗をしらずして一切経を習うものは、 犬の雷をかむがごとし、猿の月の影をとるににたり云云、此の故に日本国の中に不孝にして父母にすてられ無礼なる故に、 主君にかんどうせられあるいは若なる法師等の学文にものうき遊女のものぐるわしき本性に叶る邪法なるゆへに皆一同に持斎になりて国の百姓をくらう蝗虫となれり、 しかれば天は天眼をいからかし地神は身をふるう、

풀이

선종은 또 이 틈을 얻어 지재(持斎) 등이 되어 사람의 눈을 미혹하고 존귀한 듯한 기색이므로, 아무리 그릇된 법문을 말하며 미쳐 날뛰어도 허물로 여겨지지 않느니라. 선종이라 하는 종은 교외별전(教外別伝)이라 하여 「석존이 일체경 밖에 가섭존자에게 남몰래 속삭여 주셨다. 그러므로 선종을 모르고 일체경을 배우는 자는 개가 우레를 물려는 것과 같고 원숭이가 달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운운하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일본국 안에서 불효하여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 무례하여 주군에게 의절당한 자, 혹은 젊은 법사들 가운데 배움을 귀찮아하는 자, 유녀의 미친 듯한 본성에 꼭 맞는 그릇된 법이므로, 모두 한결같이 지재가 되어 나라의 백성을 먹어 치우는 메뚜기가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은 천안(天眼)을 부릅뜨고 땅의 신은 몸을 떠느니라.

어구 풀이

此の便이 틈
앞 장에서 말한 사정, 곧 염불이 온 나라에 퍼지고 히에이산 · 동사 등이 업신여김을 받을 만큼 불교계가 어지러워지고 쇠한 틈을 가리킨다.
持斎지재
재계(斎戒)를 지니는 자. 보통 팔재계를 말한다. ① 살생하지 않음 ② 훔치지 않음 ③ 음행하지 않음 ④ 거짓말하지 않음 ⑤ 술 마시지 않음 ⑥ 꽃다발 · 향 · 몸치장을 하지 않고 노래 · 춤을 보거나 듣지 않음 ⑦ 높고 넓은 큰 평상에 앉지 않음 ⑧ 때 아닌 때에 먹지 않음(정오부터 이튿날 해 뜨기 전까지 먹지 않음). ⑥은 십계 가운데 두 계를 합친 것이다. 本文에서는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 듯한 겉모습으로 사람들의 눈을 미혹하는 선승들을 가리킨다.
禅宗선종
보리달마가 전한 선정 관법으로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불법의 진수는 교리를 따지는 데 있지 않고 좌선입정의 수행으로 스스로 체득하는 것이라 하여 교외별전 · 불립문자 · 직지인심 · 견성성불을 내세운다. 대성인 재세 무렵에는 대일방 능인(大日房能忍)과 제자 불지방 각안(仏地房覚晏)이 편 임제선의 흐름, 곧 양기파 대혜파의 졸암 덕광(拙庵徳光)에게서 인가받은 간화선이 성하였다. 능인 사후 가마쿠라 시대에 에이사이가 임제종을, 도겐이 조동종을 열었고, 에도 시대에 명나라 승려 은원이 황벽종을 열었다.
教外別伝교외별전
부처의 깨달음과 본의는 문자 · 언어로 나타낸 경전과 교리에 의하지 않고 경문 밖에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따로 전해졌다는 선종의 교의. 「불립문자」는 참된 깨달음은 경론의 문자로 보일 수 없다는 것, 「교외별전」은 말과 글을 물리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한다는 것이다. 선종은 그 법이 석존에서 마하가섭에게 문자 없이 전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교 밖의 경서를 배우고 글을 짓고 교의를 설하니 스스로 모순된다.
迦葉尊者にひそかにささやかせ給へり가섭존자에게 남몰래 속삭여 주셨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의 뜻을 따라 이렇게 표현하신 것. 석존이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마하가섭만이 얼굴을 펴고 미소하였으므로 마음속에 품은 미묘한 법을 가섭에게만 부촉했다는 이른바 「염화미소」의 이야기다. 이 경은 중국에서 지어진 위경(偽経)이다.
犬の雷をかむがごとし개가 우레를 무는 것과 같다
천태대사의 『마하지관』에 참된 묘법을 듣지 못하고 소승 · 권교에 집착하는 자를 비유하여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좇고 미친 개가 우레를 무는 것과 같으니 어찌 이치를 얻겠는가」라는 뜻의 글이 있다. 선종이 이 『마하지관』의 글을 끌어 다른 종을 비판하는 모습을 말씀하신 것이다.
猿の月の影をとるににたり원숭이가 달그림자를 잡는 것과 같다
『벽암록』에 「향상의 한 길은 천 명의 성인도 전하지 못하니, 배우는 자가 애써 형상을 구하는 것은 원숭이가 그림자를 잡는 것과 같다」는 뜻의 글이 있다. 진여는 말로 전할 수 없으니 말로 나타내려 하는 것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원숭이처럼 위태롭다는 뜻이다. 스스로 체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취지이나, 語釈은 이것이 결국 경문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라고 본다.
蝗虫메뚜기
「이나고」. 가을에 벼를 먹어 치우는 벌레. 대성인은 법을 그르치면서 공양을 받는 승려를 나라의 곡식을 먹어 치우는 메뚜기에 거듭 비유하셨다.
天眼をいからかし천안을 부릅뜨다
하늘의 여러 신이 노하여 눈을 부릅뜸. 지신이 몸을 떤다는 것과 함께 천변지요(天変地夭), 곧 하늘의 이변과 땅의 재앙이 끊이지 않는 모습을 말한다.
理即・名字即이즉 · 명자즉
천태의 육즉(六即) 가운데 첫째 · 둘째 자리. 이즉은 이치로는 불성을 갖추었으나 아직 그 이름조차 듣지 못한 범부의 자리, 명자즉은 비로소 바른 법의 이름을 듣고 믿는 자리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선종의 「견성」 주장을 이 자리에 비추어 논파한다.

지재의 겉모습 — 존귀해 보이는 것과 바른 것

염불에 이어 대성인은 둘째로 선종을 파하신다. 이 장의 本文은 짧지만 날카롭다. 선종은 「이 틈」, 곧 염불이 온 나라를 덮고 히에이산 · 동사의 권위가 무너져 불교계가 어지러워진 틈을 타서 퍼졌다. 그리고 그 퍼지는 방식이 「지재(持斎)」였다.

지재란 팔재계 같은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정오가 지나면 먹지 않고, 몸을 꾸미지 않으며, 노래와 춤을 멀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보다 청정한 수행자가 없다. 그래서 本文은 「존귀한 듯한 기색이므로 아무리 그릇된 법문을 말하며 미쳐 날뛰어도 허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사람들은 법의 내용보다 수행자의 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쉽다. 이것은 제19장에서 말한 「비방 일천제로서 계율을 지니고 제일인 자(誹謗一闡提の者持戒にして第一なる)」의 바로 그 모습이다. 계율을 지키는 모습이 훌륭할수록 그 사람이 펴는 그릇된 법은 더 깊이 사람들 마음에 들어간다. 선시초가 선종을 「세 재앙」의 하나로 꼽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제19장은 선종을 「삼의일발(三衣一鉢)의 대만(大慢)의 비구가 사해에 가득하여 한 나라의 밝은 길잡이라고 여긴다」고 묘사했다. 세 벌의 가사와 한 벌의 바리때만 가진 청빈한 모습, 그러나 그 속에 경전을 넘어섰다는 큰 교만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대성인 재세 무렵 일본의 선은 語釈이 정리하듯 대일방 능인의 흐름, 곧 송나라 졸암 덕광에게서 인가받은 간화선이 성하였고, 에이사이와 도겐이 각각 임제와 조동의 흐름을 열었다. 가마쿠라의 무사들이 선을 깊이 믿었던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야겐타입도전어소식」을 함께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마쿠라의 무사에게 보내신 이 편지에서 대성인은 선종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本権教より起りて候しを・今は教外別伝と申して物にくるひて我と外道の法と云うか

본래 권교에서 일어났는데, 이제는 교외별전이라 하여 미쳐서 스스로 외도의 법이라 하는 것인가.

「야겐타입도전어소식」, 1229쪽

이 한 구절에는 선종 비판의 두 겹이 담겨 있다. 선종이 근거로 드는 경전이 있다 해도 그것은 법화경에 견주면 권교다. 그런데 그 권교라는 지적을 받을 필요도 없이, 「교외별전」이라 하여 스스로 부처의 경전을 떠나 버렸으니 외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외별전」의 근거 — 염화미소와 『대범천왕문불결의경』

선종이 내세우는 교외별전의 근거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의 다음 이야기다. 그 글은 이렇다. 「世尊、霊山会上に在り。華を拈じて衆に示す。衆皆な黙然たり。唯だ迦葉のみ破顔微笑す。世尊云わく、吾れに正法眼蔵、涅槃妙心、実相無相、微妙法門、不立文字、教外別伝有り、摩訶迦葉に付属す」. 세존이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자 대중은 모두 잠잠하였고 오직 가섭만이 얼굴을 펴고 미소하였다. 세존이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정법안장 · 열반묘심 · 실상무상 · 미묘법문 · 불립문자 · 교외별전이 있으니 마하가섭에게 부촉한다. 本文의 「가섭존자에게 남몰래 속삭여 주셨다」는 바로 이 이야기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모순이 있다. 첫째는 자어상위(自語相違)다.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경전 밖에 따로 전한다」고 하면서 그 주장의 근거를 경전의 문자에서 찾고 있다.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주장이 문자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그 경전 자체의 출처다. 「연성초」는 이 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此の文は上古の録に載せず中頃より之を載す

이 글은 옛 목록에는 실려 있지 않고 중간 무렵부터 실렸다.

「연성초」, 150쪽

당나라의 경전 목록인 『개원석교록』 · 『정원신정석교목록』에 이 경은 나오지 않고, 당나라 말에 혜거(慧炬)가 『보림전』을 지으면서 처음으로 이 글을 인용하였다. 語釈은 이 경을 중국에서 지어진 위경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교외별전의 근거로 내세운 유일한 경전이 정식 경록에 없는 경이라는 것은, 선종이 스스로 경전을 떠났다는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준다.

주장 · 근거주장
  • 교외별전(教外別伝)
  • 불립문자(不立文字)
  • 직지인심(直指人心)
  • 견성성불(見性成仏)
근거『대범천왕문불결의경』— 꽃을 들자 가섭만 미소함(염화미소)→「가섭존자에게 남몰래 속삭여 주셨다」迦葉尊者にひそかにささやかせ給へり
논파
  1. ①자어상위 —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서 경문을 근거로 듦
  2. ②위경 —「옛 목록에는 실려 있지 않고 중간 무렵부터 실렸다」此の文は上古の録に載せず中頃より之を載す(「연성초」) · 개원록 · 정원록에 없고 당 말 혜거의 『보림전』이 처음 인용
  3. ③외도 — 「교외별전이라 하여 미쳐서 스스로 외도의 법이라 하는가」(「야겐타입도전어소식」)
  4. ④열반경 —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 · 「부처의 설에 따르지 않는 자는 마의 권속」
도표 3 · 선종의 주장과 그 논파

개와 우레, 원숭이와 달 — 선종이 다른 종을 깎아내리는 말

本文은 선종이 다른 종을 비웃는 말을 그대로 옮긴다. 선종을 모르고 일체경을 배우는 것은 「개가 우레를 무는 것」 「원숭이가 달그림자를 잡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語釈은 이 두 비유의 출처를 밝힌다. 앞의 것은 원래 천태대사의 『마하지관』에서 참된 묘법을 듣지 못하고 소승 · 권교에 집착하는 자를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좇고 미친 개가 우레를 무는 것과 같으니 어찌 이치를 얻겠는가」라고 비유한 데서 온 것이다. 법화경의 묘법을 모르고 권교에 매달리는 자를 꾸짖은 천태의 말을, 선종이 거꾸로 경전을 배우는 자를 꾸짖는 데 쓰고 있다. 남의 칼을 빌려 그 칼의 주인을 베는 격이다.

뒤의 것은 송나라 공안집 『벽암록』의 「향상의 한 길은 천 명의 성인도 전하지 못하니, 배우는 자가 애써 형상을 구하는 것은 원숭이가 그림자를 잡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진여는 아무리 많은 성인이 있었어도 말로 전할 수 없으며, 말로 나타내려 하면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원숭이처럼 헛되고 위태롭다는 취지다. 語釈은 스스로 체험해야 안다는 이 말이 결국 경문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 된다고 지적한다. 부처가 설한 경문이 진여에 닿지 못하는 「달그림자」라면, 부처의 설법 전체가 헛수고였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 — 견성의 주장에 대한 논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선종의 근본 주장인 「직지인심 · 견성성불」, 곧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보면 성불한다는 주장을 열반경의 두 구절로 논파한다. 하나는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願って心の師とはなるとも心を師とせざれ)」이고, 또 하나는 「부처의 설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알라, 이는 마의 권속이다(仏の所説に順わざる者あらば、まさに知るべし、これ魔の眷属なり)」이다.

중생의 마음은 그대로 두면 탐 · 진 · 치에 휘둘린다. 그런 마음을 스승으로 삼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미혹을 깨달음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천태의 육즉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 아무리 내 몸에 불성이 있다 해도, 범부는 아직 이즉(理即) · 명자즉(名字即)의 부처일 뿐이다. 이치로 불성을 갖추었다는 것과 그 불성을 실제로 드러내는 것 사이에는 수행이 있어야 하며, 그 수행은 부처가 설한 법을 스승으로 삼을 때에만 바른 길이 된다. 그러므로 불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바른 법을 믿지도 않으면서 「나는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천마(天魔)의 소행이다. 마음이 무엇이며 어떤 층위에서 미혹과 깨달음이 갈리는가에 대해서는 핵심 개념 「구식」 페이지가 다루는 심식론과 함께 읽으면 이 논점이 더 분명해진다.

불효한 자 · 무례한 자 · 배우기 싫어하는 자

本文은 선종이 어떤 사람들의 본성에 들어맞는 법인지를 열거한다. 불효하여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 무례하여 주군에게 의절당한 자, 배움을 귀찮아하는 젊은 법사, 그리고 미친 듯한 유녀의 본성이다. 대성인의 이 묘사는 날카롭지만, 그 논리는 앞의 교의 비판과 이어져 있다. 경전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불립문자」는 배우기 싫어하는 자에게 가장 편한 가르침이다. 스승과 경전의 권위를 넘어선다는 「교외별전」은 부모와 주군의 은혜를 저버린 자의 마음과 통한다. 부처라는 어버이의 가르침을 버리고 스스로의 마음만을 스승으로 삼는 것이 곧 불법에서의 불효이기 때문이다. 선시초가 앞 장에서 염불을 「천 명의 자식이 한 어버이를 죽이는 것」에 비유한 것과 같은 축 위에 있는 비판이다.

나라의 백성을 먹는 메뚜기

가을 들판 위로 낮게 번져 오는 메뚜기 떼의 먹빛 그림자와 고개 숙인 벼
그림 · 가을 들판 위로 낮게 번져 오는 메뚜기 떼의 먹빛 그림자와 고개 숙인 벼

本文은 그런 사람들이 「모두 한결같이 지재가 되어 나라의 백성을 먹어 치우는 메뚜기가 되었다」고 맺는다. 메뚜기는 가을에 벼를 먹어 치우는 벌레다. 중국 대륙 같은 곳에서는 예로부터 메뚜기 떼가 덮치면 모든 풀과 곡식이 사라졌다. 대성인이 그릇된 가르침을 이 해충에 비유하신 뜻이 여기에 있다. 스스로 생산하지 않으면서 계율을 지키는 모습으로 공양을 받고, 그 대가로 사람들의 마음에서 바른 법의 싹을 먹어 치운다는 것이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도 같은 비유를 쓰셨다. 「가책방법멸죄초」에는 「国の大蝗虫たる諸僧等、近臣等が日蓮を讒訴する、弥盛んならば大難倍来るべし」(1130쪽), 곧 나라의 큰 메뚜기인 여러 승려와 근신들이 니치렌을 참소하는 일이 더욱 성해지면 큰 난이 더욱 닥칠 것이라 하셨다. 「보은초」에는 「あら不思議や法師ににたる大蝗虫・国に出現せり仏教の苗一時に・うせなん」(328쪽), 아아 이상하구나, 법사를 닮은 큰 메뚜기가 나라에 나타났으니 불교의 모가 한꺼번에 사라지리라 하셨다. 「불교의 모」라는 표현이 이 비유의 핵심을 드러낸다. 메뚜기가 먹는 것은 곡식이지만, 그릇된 승려가 먹는 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자라야 할 성불의 싹이다. 선시초 제30장도 「진언의 선무외 · 선종의 삼계 등 · 정토종의 선도 등은 불교라는 사자의 살에서 생겨난 메뚜기 비구」라는 뜻으로 같은 비유를 쓴다.

本文의 마지막 구절 「하늘은 천안을 부릅뜨고 땅의 신은 몸을 떤다」는 이 방법이 천변지요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입정안국론」 이래 대성인은 바른 법을 버린 나라를 선신이 버리고 떠나 재난이 일어난다는 원리를 거듭 말씀하셨다. 선시초의 뒤쪽(제28장)에서 「불멸 후 이천이백삼십여 년 동안 아직 나타나지 않은 큰 혜성, 아직 흔들린 적 없는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하시는 것도 같은 원리 위에 있다. 이 원리가 몽골 내습의 위기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선시초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에서 다룬다.

제22장 진언의 선무외를 파하다
어서 275쪽 4행~276쪽 18행 · 第22章 真言の善無畏を破す

본문

本文 · 一어서 275쪽 4~9행
本文 · 어서 원문

真言宗と申すは上の二のわざはひにはにるべくもなき大僻見なりあらあら此れを申すべし、所謂大唐の玄宗皇帝の御宇に善無畏三蔵・金剛智三蔵・不空三蔵、 大日経・金剛頂経・蘇悉地経を月支よりわたす、此の三経の説相分明なり其の極理を尋ぬれば会二破二の一乗・其の相を論ずれば印と真言と計りなり、 尚華厳般若の三一相対の一乗にも及ばず天台宗の爾前の別円程もなし但蔵通二教を面とするを善無畏三蔵をもはく此の経文をあらわにいゐ出す程ならば華厳法相にもをこづかれ天台宗にもわらはれなん大事として月支よりは持ち来りぬさてもだせば本意にあらずとやをもひけん、

풀이

진언종이라 하는 것은 위의 두 재앙과는 견줄 수도 없는 큰 그릇된 견해이니, 대강 이것을 말하리라. 이른바 대당(大唐) 현종 황제의 치세에 선무외 삼장 · 금강지 삼장 · 불공 삼장이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을 월지(인도)에서 건너오게 하였느니라. 이 세 경의 설상(説相)은 분명하니, 그 극리를 찾아보면 이승을 모으는 듯하다가 이승을 깨뜨리는 일승(会二破二の一乗)이요, 그 모습을 논하면 인(印)과 진언뿐이니라. 오히려 화엄 · 반야의 삼승과 일승을 맞세운 일승(三一相対の一乗)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태종이 말하는 이전 경의 별교 · 원교만도 못하며, 다만 장교 · 통교의 두 교를 겉으로 삼은 것이니라. 이에 선무외 삼장이 생각하기를, 이 경문을 드러내어 말할 정도라면 화엄 · 법상에게도 업신여김을 받고 천태종에게도 웃음거리가 되리라. 큰일이라 여겨 월지에서 가지고 왔는데, 그렇다고 잠자코 있자니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던가.

本文 · 二어서 275쪽 9행 ~ 276쪽 8행
本文 · 어서 원문

天台宗の中に一行禅師という僻人一人ありこれをかたらひて漢土の法門をかたらせけり、一行阿闍梨うちぬかれて三論・法相・華厳等をあらあら・かたるのみならず天台宗の立てられけるやうを申しければ善無畏をもはく天台宗は天竺にして聞きしにも・なをうちすぐれてかさむべきやうもなかりければ善無畏・一行をうちぬひて云く和僧は漢土には・こざかしき者にてありけり、 天台宗は神妙の宗なり今真言宗の天台宗にかさむところは印と真言と計りなりといゐければ一行さもやとをもひければ善無畏三蔵一行にかたて云く、 天台大師の法華経に疏をつくらせ給へるごとく大日経の疏を造りて真言を弘通せんとをもう汝かきなんやといゐければ一行が云くやすう候、 但しいかやうにかき候べきぞ天台宗はにくき宗なり諸宗は我も我もとあらそいをなせども一切に叶わざる事一あり、 所謂法華経の序分に無量義経と申す経をもつて前四十余年の経経をば其の門を打ちふさぎ候いぬ、法華経の法師品・神力品をもつて後の経経をば又ふせがせぬ肩をならぶ経経をば今説の文をもつてせめ候大日経をば三説の中にはいづくにかをき候べきと問ひければ爾の時に善無畏三蔵大に巧んで云く大日経に住心品という品あり無量義経の四十余年の経経を打ちはらうがごとし、 大日経の入漫陀羅已下の諸品は漢土にては法華経・大日経とて二本なれども天竺にては一経のごとし、 釈迦仏は舎利弗・弥勒に向つて大日経を法華経となづけて印と真言とをすてて但理計りをとけるを羅什三蔵此れをわたす天台大師此れをみる、 大日如来は法華経を大日経となづけて金剛薩埵に向つてとかせ給う此れを大日経となづく我まのあたり天竺にしてこれを見る、 されば汝がかくべきやうは大日経と法華経とをば水と乳とのやうに一味となすべし、もししからば大日経は已今当の三説をば皆法華経のごとくうちをとすべし、 さて印と真言とは心法の一念三千に荘厳するならば三密相応の秘法なるべし、三密相応する程ならば天台宗は意密なり真言は甲なる将軍の甲鎧を帯して弓箭を横たへ太刀を腰にはけるがごとし、 天台宗は意密計りなれば甲なる将軍の赤裸なるがごとくならんといゐければ、一行阿闍梨は此のやうにかきけり、

풀이

천태종 가운데 일행 선사(一行禅師)라는 비뚤어진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이를 꾀어서 한토의 법문을 말하게 하였느니라. 일행 아사리는 감쪽같이 속아 삼론 · 법상 · 화엄 등을 대강 말할 뿐 아니라 천태종이 세운 바를 말하였더니, 선무외가 생각하기를 천태종은 천축에서 들은 것보다도 더욱 뛰어나 그 위에 올라설 길이 없겠다 싶어, 선무외가 일행을 속여 말하기를 「스님은 한토에서는 영리한 사람이로다. 천태종은 신묘한 종이다. 지금 진언종이 천태종보다 위에 있는 점은 인과 진언뿐이다」라고 하니, 일행이 그런가 하고 생각하였으므로, 선무외 삼장이 일행에게 말하기를 「천태대사가 법화경에 소(疏)를 지으신 것처럼 『대일경』의 소를 지어 진언을 홍통하려 한다. 그대가 써 주겠는가」 하니, 일행이 말하기를 「쉬운 일입니다. 다만 어떻게 쓰면 되겠습니까. 천태종은 얄미운 종입니다. 여러 종이 저마다 다투지만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법화경의 서분에 『무량의경』이라는 경으로써 앞의 사십여 년의 경경을 그 문을 닫아 버렸고, 법화경의 법사품 · 신력품으로써 뒤의 경경을 또 막았으며,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경은 『지금 설한다(今説)』는 문으로 꾸짖습니다. 『대일경』은 세 가지 설(已今当) 가운데 어디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었느니라. 그때 선무외 삼장이 크게 꾀를 내어 말하기를 「『대일경』에 주심품(住心品)이라는 품이 있으니 『무량의경』이 사십여 년의 경경을 쳐서 물리치는 것과 같다. 『대일경』의 입만다라품 이하의 여러 품은 한토에서는 법화경 · 대일경이라 하여 두 본이지만 천축에서는 한 경과 같다. 석가불은 사리불 · 미륵을 향하여 『대일경』을 법화경이라 이름하여 인과 진언을 버리고 다만 이치만을 설하셨으니, 이것을 나집 삼장이 건너오게 하고 천태대사가 이것을 보았다. 대일여래는 법화경을 『대일경』이라 이름하여 금강살타를 향하여 설하셨으니, 이것을 『대일경』이라 이름한다. 나는 천축에서 이것을 눈앞에 보았다. 그러므로 그대가 쓸 방법은 『대일경』과 법화경을 물과 젖처럼 한맛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대일경』은 이금당의 세 설을 모두 법화경처럼 쳐서 떨어뜨릴 것이다. 그리고 인과 진언으로 마음의 일념삼천을 장엄하면 삼밀상응(三密相応)의 비법이 될 것이다. 삼밀이 상응한다면 천태종은 의밀(意密)뿐이요, 진언은 뛰어난 장군이 갑옷을 입고 활과 화살을 비껴 메고 큰 칼을 허리에 찬 것과 같다. 천태종은 의밀뿐이니 뛰어난 장군이 벌거벗은 것과 같으리라」 하니, 일행 아사리는 이대로 썼느니라.

本文 · 三어서 276쪽 8~18행
本文 · 어서 원문

漢土三百六十箇国には此の事を知る人なかりけるかのあひだ始めには勝劣を諍論しけれども善無畏等は人がらは重し天台宗の人人は軽かりけり、 又天台大師ほどの智ある者もなかりければ但日日に真言宗になりてさてやみにけり、年ひさしくなればいよいよ真言の誑惑の根ふかくかくれて候いけり、 日本国の伝教大師・漢土にわたりて天台宗をわたし給うついでに真言宗をならべわたす、天台宗を日本の皇帝にさづけ真言宗を六宗の大徳にならはせ給う、 但し六宗と天台宗の勝劣は入唐已前に定めさせ給う、入唐已後には円頓の戒場を立てう立てじの論の計りなかりけるかのあひだ敵多くしては戒場の一事成りがたしとやをぼしめしけん、 又末法にせめさせんとやをぼしけん皇帝の御前にしても論ぜさせ給はず弟子等にもはかばかしくかたらせ給はず、 但し依憑集と申す一巻の秘書あり七宗の人人の天台に落ちたるやうをかかれて候文なり、かの文の序に真言宗の誑惑一筆みへて候

풀이

한토의 삼백육십 개 나라에는 이 일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까닭에, 처음에는 승렬을 다투어 논하였으나 선무외 등은 인품이 무겁고 천태종의 사람들은 가벼웠느니라. 또 천태대사만한 지혜 있는 자도 없었으므로 다만 날마다 진언종이 되어 그것으로 끝나 버렸느니라. 세월이 오래 지나니 진언의 속임의 뿌리가 더욱 깊이 숨어 버렸느니라. 일본국의 전교대사는 한토에 건너가 천태종을 전하시는 김에 진언종을 나란히 전하셨느니라. 천태종을 일본의 황제에게 주고 진언종은 육종의 대덕들에게 배우게 하셨느니라. 다만 육종과 천태종의 승렬은 입당 이전에 정하셨느니라. 입당 이후에는 원돈(円頓)의 계단을 세우느냐 세우지 않느냐 하는 논쟁뿐이었던 까닭에, 적이 많아서는 계단이라는 한 가지 일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하셨던가. 또 말법에 이르러 책하게 하려고 생각하셨던가. 황제 앞에서도 논하게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도 분명히 말하지 않으셨느니라. 다만 『의빙집(依憑集)』이라는 한 권의 비밀한 책이 있으니, 일곱 종의 사람들이 천태에 귀복한 모습을 쓰신 글이니라. 그 글의 서문에 진언종의 속임이 한 줄 보이느니라.

어구 풀이

玄宗皇帝현종 황제
당의 제6대 황제(재위 712~756). 그의 치세(개원 연간)에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이 잇따라 장안에 와서 밀교를 전하였다.
善無畏三蔵선무외 삼장
(637~735) 인도의 밀교승.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오장나국 불종왕의 태자로, 13세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인도의 79개국 9만 리를 돌며 여러 경론을 배웠고, 북인도 금속왕 아래에서 기원할 때 허공에 대일여래를 가운데로 한 태장계 만다라가 나타났다고 한다. 중국에 건너와 현종 황제의 두터운 대우를 받으며 『대일경』을 옮기고 진언 밀교를 전하였다.
金剛智三蔵금강지 삼장
(671~741) 남인도 출신의 밀교승. 개원 연간에 바닷길로 중국에 와서 금강정경 계통의 밀교를 전하였다. 불공의 스승이다.
不空三蔵불공 삼장
(705~774) 금강지의 제자. 스승을 따라 중국에 와서 많은 밀교 경전을 옮기고 현종 · 숙종 · 대종 세 황제의 귀의를 받았다. 선시초 제19장은 그가 인도에서 돌아와 「수량품을 아미타불이라 썼다」고 꾸짖는다.
会二破二の一乗회이파이의 일승
이승(성문 · 연각)을 일승에 모으는 듯하면서도 끝내 이승을 깨뜨려 버려 이승의 성불을 허락하지 않는 일승. 대성인은 진언 삼부경이 설하는 일승을 이렇게 규정하여, 삼승과 일승을 맞세우는 화엄 · 반야의 일승(三一相対の一乗)보다도 낮다고 하셨다.
蔵通二教장교 · 통교
천태의 화법사교(장 · 통 · 별 · 원) 가운데 앞의 둘. 장교는 소승, 통교는 대승의 초문이다. 진언 삼부경은 겉으로 이 두 교를 설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 本文의 판정이다.
一行禅師일행 선사
(683~727) 당의 학승. 천태학 · 선 · 율을 닦았고, 선무외가 당에 오자 함께 『대일경』을 옮겼으며, 선무외의 『대일경』 강의를 받아 적어 『대일경소』 20권을 지었다. 진언종의 조사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수학 · 천문학의 대가로서 『개원대연력』을 만들었다.
大日経の疏대일경소
20권. 선무외가 일행의 청을 받아 행한 『대일경』 강설을 일행이 받아 적은 주석서. 법화경과 『대일경』의 이치가 같다는 해석의 바탕이 되었다.
住心品주심품
『대일경』의 첫 품(입진언문주심품). 중생의 마음의 여러 모습을 설한다. 선무외는 이 품을 법화경의 서분인 『무량의경』에 견주었다.
已今当の三説이금당의 세 설
법화경 법사품의 「이미 설했고 지금 설하고 앞으로 설할 것(已説 · 今説 · 当説)」 가운데 법화경이 가장 뛰어나다는 문. 천태는 이설을 이전 경, 금설을 『무량의경』, 당설을 『열반경』으로 본다.
三密相応삼밀상응
신밀 · 어밀 · 의밀. 손으로 인을 맺고(신밀) 입으로 진언을 외우고(어밀) 뜻으로 본존을 염하는(의밀) 밀교의 수행. 삼밀상응이란 삼밀가지라고도 하며 수행자의 삼밀과 본존의 삼밀이 감응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라 하고, 이로써 즉신성불한다고 한다.
甲なる将軍の甲鎧を帯して뛰어난 장군이 갑옷을 입고
「갑(甲)」은 을(乙)보다 뛰어나다는 뜻. 자각의 『소실지경소』에 삼밀의 갑주를 법계의 몸에 입고 선정과 지혜의 손에 아(阿)자의 날카로운 칼을 쥐니, 용사가 남몰래 갑주를 입고 칼을 쥐고 도적 떼 속에 들어가면 나와 남이 함께 편안함과 같다는 뜻의 글이 있다.
円頓の戒場원돈의 계단
전교대사가 히에이산에 세우려 한 대승계단. 나라 불교 측의 거센 반대 속에서 전교대사 생전에는 칙허가 내리지 않았고, 사후 7일 만에 허락이 내렸다.
依憑集의빙집
「대당신라제종의장의빙천태의집」의 약칭. 전교대사가 홍인 4년(813)에 짓고 홍인 7년(816)에 서문을 붙여 공표한 한 권의 책. 중국 · 신라 여러 종의 학장들이 천태대사의 가르침에 의지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법화문구기』 권10 끝의 글을 끌어 「천축의 명승이 대당의 천태의 교적이 가장 사정을 가리기에 알맞다는 말을 듣고 우러러 찾았다」는 인연을 싣는다.

진언 삼부경의 정체 — 「인과 진언뿐」

염불과 선에 이어 대성인은 셋째로 진언을 파하신다. 그 첫마디가 이 편 전체의 무게중심을 정한다. 「진언종이라 하는 것은 위의 두 재앙과는 견줄 수도 없는 큰 그릇된 견해다」. 염불과 선은 권교에 집착하거나 경전을 떠난 잘못이지만, 진언은 법화경의 이치를 훔쳐 자기 것으로 삼고 그 위에 올라섰다는 점에서 훨씬 깊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진언 비판은 이 장에서 선무외를, 다음 장에서 홍법을, 그다음 장에서 쇼카쿠보를 파하는 차례로 짜여 있다.

本文은 먼저 진언 삼부경이 어떤 경인지를 판정한다. 당 현종의 치세에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의 세 삼장이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을 인도에서 가져왔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개원 4년(716) 무렵 선무외가 장안에 들어와 『대일경』과 『소실지경』을 옮기고, 이어 금강지와 그 제자 불공이 금강정경 계통의 밀교를 전했다고 한다. 이 세 경의 설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 극리를 찾으면 「회이파이의 일승」이요, 그 모습을 논하면 「인과 진언뿐」이다. 화엄 · 반야의 「삼일상대의 일승」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태가 말하는 이전 경의 별교 · 원교만도 못하며, 겉으로는 장교 · 통교를 설하는 데 그친다.

이 판정은 천태의 교판, 곧 오시팔교의 틀에 따른 것이다. 경의 가치는 그 경이 설하는 이치의 깊이로 정해진다. 진언 삼부경에는 이승작불도 구원실성도 없으니 이치로는 법화경에 미칠 수 없다. 진언이 법화보다 뛰어나다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손으로 맺는 인과 입으로 외우는 진언, 곧 의식의 형식뿐이다. 이 판정이 뒤의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선무외와 일행 — 『대일경소』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本文의 중심은 선무외가 일행을 끌어들여 『대일경소』를 만들게 한 경위를 그린 대목이다. 대성인은 이 경위를 마치 극의 한 장면처럼 대화로 재구성하신다.

선무외는 인도에서 큰일이라 여겨 가져온 경을 그대로 내놓으면 화엄 · 법상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천태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잠자코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천태종 안의 일행이라는 사람을 꾀어 중국의 법문을 말하게 했다. 일행은 삼론 · 법상 · 화엄은 물론 천태종의 교리까지 설명했고, 선무외는 천태종이 인도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 그 위에 올라설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선무외는 일행을 추어올리며 「천태종은 신묘한 종이지만 진언이 천태보다 뛰어난 점은 인과 진언이다」라고 했고, 천태대사가 법화경에 소를 지었듯이 『대일경』에도 소를 지어 달라고 청했다.

일행의 물음은 정곡을 찌른다. 천태종이 「얄미운 종」인 까닭은 법화경이 앞뒤와 옆의 모든 경을 막아 두었기 때문이다. 앞의 사십여 년의 경은 서분인 『무량의경』의 「사십여 년 동안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四十余年未顕真実)」로 막혀 있고, 뒤의 경들은 법사품 · 신력품으로 막혀 있으며, 같은 때의 경들은 「지금 설한다(今説)」로 꾸짖음을 당한다. 그러니 『대일경』을 이금당의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일행의 이 질문은, 천태의 교판 앞에서 『대일경』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천태종 사람 스스로가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선무외의 답은 「크게 꾀를 낸」 답이었다. 첫째, 『대일경』의 주심품은 『무량의경』처럼 다른 경을 물리치는 품이다. 둘째, 『대일경』의 입만다라품 이하는 인도에서는 법화경과 한 경이었다. 석가불은 사리불 · 미륵에게 이것을 법화경이라 이름하여 인과 진언을 빼고 이치만 설했고, 그것을 구마라집이 옮기고 천태가 보았다. 대일여래는 같은 경을 『대일경』이라 이름하여 금강살타에게 설했으니, 이는 자신이 인도에서 직접 보았다. 셋째, 그러므로 『대일경』과 법화경을 「물과 젖처럼 한맛」으로 만들면 『대일경』도 법화경처럼 이금당을 모두 쳐서 떨어뜨릴 수 있다. 넷째, 여기에 인과 진언으로 일념삼천을 장엄하면 삼밀이 상응하는 비법이 되니, 의밀뿐인 천태는 벌거벗은 장군이요 진언은 갑옷을 입은 장군이 된다. 일행은 이대로 썼다.

  1. ①세 삼장이 세 경을 전함(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 이치는 「회이파이의 일승」, 모습은 「인과 진언뿐」
  2. ②선무외가 일행을 꾀어 중국의 법문을 들음— 천태종이 더 뛰어남을 앎
  3. ③「진언이 천태보다 뛰어난 점은 인과 진언뿐(印と真言と計りなり)」
  4. ④일행의 물음— 『대일경』을 이금당의 어디에 두는가
  5. ⑤선무외의 꾀
    • 주심품 = 『무량의경』
    • 입만다라품 이하는 인도에서 법화경과 한 경
    • 「물과 젖처럼 한맛(水と乳とのやうに一味)」
    • 삼밀상응 — 갑옷 입은 장군과 벌거벗은 장군
  6. ⑥일행이 그대로 씀→ 『대일경소』 20권
  7. ⑦중국이 날마다 진언이 됨— 「인품이 무겁고 천태 사람은 가벼웠다」
도표 4 · 『대일경소』가 만들어진 경위

이 장면이 바로 「이동사승(理同事勝)」의 뿌리다. 법화경과 『대일경』은 이치(理)는 같고, 인과 진언이라는 사(事)에서 『대일경』이 뛰어나다는 주장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선무외가 일행과 함께 온갖 꾀를 써서 이 방법의 근원을 만든 것이다. 이 주장이 뒤에 일본의 자각에게서 어떻게 완성되는지는 제26장에서 다시 다룬다.

갑옷 입은 장군의 비유와 그 논파

선무외의 마지막 비유, 곧 갑옷 입은 장군과 벌거벗은 장군의 비유는 일본에서 자각이 그대로 이어받았다. 語釈이 인용하는 자각의 『소실지경소』는 삼밀의 갑주를 법계의 몸에 입고 정혜의 손에 아자의 칼을 쥐면, 용사가 갑주를 입고 칼을 쥐고 도적 떼 속에 들어가도 나와 남이 함께 편안한 것과 같다고 한다.

대성인은 다른 곳에서 이 비유를 정면으로 뒤집으셨다. 語釈이 전하는 그 글은 이렇다. 「裸形の猛者と甲冑を帯せる猛者との譬の事、裸形の猛者の進んで大陣を破ると甲冑を帯せる猛者の退いて一陣をも破らざるとは何(いず)れが勝るるや、又猛者は法華経なり甲冑は大日経なり、猛者無くんば甲冑何の詮か之有らん此れは理同の義を難ずるなり」. 벌거벗은 용사가 나아가 큰 진을 깨뜨리는 것과 갑주를 입은 용사가 물러나 한 진도 깨뜨리지 못하는 것은 어느 쪽이 나은가. 또 용사는 법화경이요 갑주는 『대일경』이다. 용사가 없다면 갑주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것은 이동(理同)의 뜻을 꾸짖는 것이다.

이 반박의 요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싸움의 승패를 정하는 것은 갑옷이 아니라 용사라는 것이다. 성불을 정하는 것은 인과 진언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법의 이치다. 또 하나는 더 근본적이다. 진언이 「이치는 같다」고 할 때 그 이치란 사실 법화경의 일념삼천이다. 『대일경』 자체에는 그 이치가 없고, 일행이 천태의 법문을 듣고 『대일경소』에 옮겨 놓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용사는 처음부터 법화경이었고 『대일경』은 그 위에 걸친 갑옷에 지나지 않는다. 갑옷이 용사보다 뛰어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선무외의 최후 — 염마왕의 책망

선무외의 생애와 함께 그의 최후에 관한 전승을 보자.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인도 79개국을 돌고, 금속왕 아래서 기원할 때 허공에 태장계 만다라가 나타났다는 이 고승은 중국에 와서 현종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한때 갑자기 죽었을 때, 많은 옥졸이 와서 쇠사슬 일곱 가닥을 걸어 염마왕의 궁으로 끌고 갔다고 전한다.

왕위까지 버리고 불도에 들어 멀리 중국까지 법을 편 삼장이 어째서 염마의 책망을 받았는가. 대성인은 「선무외삼장초」에서 그 허물을 둘로 밝히신다.

一つには大日経は法華経に劣るのみに非ず涅槃経・華厳経・般若経等にも及ばざる経にて候を法華経に勝れたりとする謗法の失なり、二つには大日如来は釈尊の分身なり而るを大日如来は教主釈尊に勝れたりと思ひし僻見なり

첫째는 『대일경』은 법화경보다 못할 뿐 아니라 열반경 · 화엄경 · 반야경 등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인데 이것을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한 방법의 허물이다. 둘째는 대일여래는 석존의 분신인데 대일여래가 교주 석존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 그릇된 견해이다.

「선무외삼장초」, 887쪽

또 「시모야마어소식」에서는 「善無畏三蔵は閻魔王のせめにあづかるのみならず又無間地獄に堕ちぬ、汝等此の事疑あらば眼前に閻魔堂の画を見よ」, 곧 선무외 삼장은 염마왕의 책망을 받았을 뿐 아니라 무간지옥에 떨어졌으니, 이 일을 의심한다면 눈앞의 염마당 그림을 보라고 하셨다. 당시 가마쿠라의 염마당 같은 곳에는 선무외가 옥졸에게 책망받다가 법화경의 「지금 이 삼계는(今此三界)」 등의 게를 외워 겨우 쇠사슬이 끊어진 그림이 걸려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대일경소』에도 선무외 스스로 이 일을 적은 대목이 있다고 한다. 진언의 개조가 법화경의 게를 외워 풀려났다는 이 전승은, 그 자체가 법화경과 『대일경』의 우열을 말해 준다.

중국이 진언으로 기운 까닭 — 「인품은 무겁고 천태 사람은 가벼웠다」

本文 셋째 단은 이 속임이 어떻게 중국 불교계 전체로 번졌는지를 말한다. 처음에는 승렬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선무외 등은 「인품이 무거웠고」 천태종 사람들은 「가벼웠다」. 선무외 등은 고귀한 출신이었고 천태종 사람들은 신분이 가벼웠다는 뜻이다. 왕자 출신의 인도 삼장과 황제의 신임이라는 무게 앞에서, 천태대사만한 지혜를 가진 사람도 없었던 당시의 천태종은 맞서지 못했다. 그리하여 날마다 진언종이 되어 그대로 끝났고, 세월이 흐를수록 「진언의 속임의 뿌리가 더욱 깊이 숨었다」.

이 대목은 선시초가 처음부터 강조해 온 「시」와 「사람」의 문제와 이어진다. 바른 법이 있어도 그것을 지킬 지혜로운 사람이 없으면 법은 권위 앞에 무너진다. 천태의 교판이 아무리 분명해도, 그 교판을 들고 선무외와 맞설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제17장에서 천태대사가 남삼북칠을 꺾은 장면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전교대사의 침묵과 『의빙집』의 한 줄

本文은 끝으로 일본의 전교대사를 든다. 전교대사는 당에 건너가 천태종을 전하는 김에 진언종도 나란히 가져왔다. 그리고 천태종은 황제에게 주고, 진언종은 나라 육종의 대덕들에게 배우게 했다. 육종과 천태종의 승렬은 입당 이전에 이미 정해 두었다. 그러나 입당 이후에는 히에이산에 원돈의 계단을 세우느냐 마느냐의 논쟁에 매달려야 했다.

그렇다면 전교대사는 왜 진언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따지지 않았는가. 대성인은 두 가지 추측을 드신다. 하나는 적이 많으면 계단이라는 한 가지 일조차 이루기 어렵다고 보셨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말법에 이르러 책하게 하려고 남겨 두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제 앞에서도 논하지 않았고 제자들에게도 분명히 말하지 않았다. 다만 『의빙집』이라는 한 권의 비밀한 책이 있어, 그 서문에 진언종의 속임이 한 줄 보인다.

제26장의 해설에서는 그 한 줄을 「新来の真言家は即ち筆受の相承を泯ぼし」로 든다. 새로 들어온 진언가는 곧 받아 적은 사람(일행)의 상승을 없애 버렸다는 뜻이다. 『대일경소』가 사실은 일행이 천태의 법문을 듣고 받아 적어 만든 것인데, 진언가는 그 사정을 감추고 자기 종의 독자적 법문인 것처럼 내세운다는 비판이다. 『의빙집』 전체가 중국 · 신라 여러 종의 학장들이 천태에 의지하고 있음을 밝힌 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한 줄은 진언 역시 천태에 기대어 성립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전교대사의 침묵」은 다음 장들의 열쇠가 된다. 전교대사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제자인 자각은 스승이 진언을 「자세히 배우지 못했다」고 여길 수 있었다. 그리고 대성인은 전교대사가 말법에 남겨 둔 그 일을 이제 자신이 행한다고 하신다. 진언의 역사와 홍법 · 자각 · 지증의 행적은 본존문답초 제3편 「세 대사의 사적과 불법의 전래」에서도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선시초가 그 역사를 「시」의 관점에서 어떻게 배열하는지에 집중한다.

제23장 진언의 홍법을 파하다
어서 276쪽 18행~278쪽 10행 · 第23章 真言の弘法を破す

본문

本文 · 一어서 276쪽 18행 ~ 277쪽 6행
本文 · 어서 원문

弘法大師は同じき延暦年中に御入唐・青竜寺の慧果に値い給いて真言宗をならはせ給へり、御帰朝の後・一代の勝劣を判じ給いけるに第一真言・第二華厳・第三法華とかかれて候、 此の大師は世間の人人もつてのほかに重ずる人なり、但し仏法の事は申すにをそれあれども・もつてのほかにあらき事どもはんべり、 此の事をあらあら・かんがへたるに漢土にわたらせ給いては但真言の事相の印真言計り習いつたえて其の義理をばくはしくもさはくらせ給はざりけるほどに日本にわたりて後大に世間を見れば天台宗もつてのほかに・かさみたりければ、 我が重ずる真言宗ひろめがたかりけるかのゆへに本日本国にして習いたりし華厳宗をとりいだして法華経にまされるよしを申しけり、 それも常の華厳宗に申すやうに申すならば人信ずまじとやをぼしめしけん・すこしいろをかえて此れは大日経・竜猛菩薩の菩提心論・善無畏等の実義なりと大妄語をひきそへたりけれども天台宗の人人いたうとがめ申す事なし。

풀이

홍법대사는 같은 연력 연간에 입당하시어 청룡사의 혜과(慧果)를 만나 진언종을 배우셨느니라. 귀국하신 뒤 일대 가르침의 승렬을 판정하시기를 제일 진언, 제이 화엄, 제삼 법화라고 쓰셨느니라. 이 대사는 세간 사람들이 몹시 중히 여기는 사람이니라. 다만 불법의 일에 대해서는 말하기 두려우나 몹시 거친 일들이 있느니라. 이 일을 대강 생각해 보건대, 한토에 건너가셔서는 다만 진언의 사상(事相)인 인과 진언만을 익혀 전하고 그 뜻과 이치는 자세히 따지지 않으셨던 까닭에, 일본에 돌아오신 뒤 세간을 크게 둘러보니 천태종이 몹시 위세를 떨치고 있었으므로, 자기가 중히 여기는 진언종을 펴기 어려웠던 까닭인지 본디 일본국에서 배웠던 화엄종을 꺼내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말하였느니라. 그것도 보통의 화엄종이 말하는 대로 말한다면 사람들이 믿지 않으리라 생각하셨던지, 조금 빛깔을 바꾸어 「이것은 『대일경』과 용맹보살의 『보리심론』과 선무외 등의 참된 뜻이다」라고 큰 망어를 덧붙였으나, 천태종 사람들은 심하게 꾸짖는 일이 없었느니라.

本文 · 二어서 277쪽 6~13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云く弘法大師の十住心論・秘蔵宝鑰・二教論に云く「此くの如き乗乗自乗に名を得れども後に望めば戯論と作す」又云く「無明の辺域にして明の分位に非ず」又云く「第四熟蘇味なり」又云く「震旦の人師等諍つて醍醐を盗んで各自宗に名く」等云云、 此等の釈の心如何、答えて云く予此の釈にをどろいて一切経並びに大日の三部経等をひらきみるに華厳経と大日経とに対すれば法華経戯論・六波羅蜜経に対すれば盗人・守護経に対すれば無明の辺域と申す経文は一字一句も候はず此の事はいとはかなき事なれども此の三四百余年に日本国のそこばくの智者どもの用いさせ給へば定めてゆへあるかとをもひぬべし、 しばらくいとやすきひが事をあげて余事のはかなき事をしらすべし、

풀이

묻노라. 홍법대사의 『십주심론』 · 『비장보약』 · 『이교론』에 이르기를 「이와 같은 승(乗)들은 저마다 자기 승에서 이름을 얻으나 뒤에 견주면 희론(戯論)이 된다」, 또 이르기를 「무명의 변역(辺域)이요 명(明)의 분위(分位)가 아니다」, 또 이르기를 「제사 숙소미(熟蘇味)이다」, 또 이르기를 「진단의 인사들이 다투어 제호(醍醐)를 훔쳐 저마다 자기 종에 이름 붙였다」 등이라 하니, 이러한 해석의 뜻은 어떠한가. 답하노라. 나는 이 해석에 놀라 일체경과 대일 삼부경 등을 펼쳐 보았으나, 화엄경과 『대일경』에 견주면 법화경은 희론이요, 『육바라밀경』에 견주면 도둑이요, 『수호경』에 견주면 무명의 변역이라는 경문은 한 글자 한 구절도 없느니라. 이 일은 몹시 덧없는 일이나 이 삼사백여 년 동안 일본국의 수많은 지자들이 쓰셨으므로 반드시 까닭이 있는가 하고 생각할 것이니라. 잠시 아주 쉬운 잘못을 들어 다른 일의 덧없음을 알게 하리라.

本文 · 三어서 277쪽 13행 ~ 278쪽 10행
本文 · 어서 원문

法華経を醍醐味と称することは陳隋の代なり六波羅蜜経は唐の半に般若三蔵・此れをわたす、六波羅蜜経の醍醐は陳隋の世にはわたりてあらばこそ天台大師は真言の醍醐をば盗ませ給はめ、 傍例あり日本の得一が云く天台大師は深密経の三時教をやぶる三寸の舌をもつて五尺の身をたつべしとののしりしを伝教大師此れをただして云く深密経は唐の始玄奘これをわたす天台は陳隋の人・智者御入滅の後・数箇年あつて深密経わたれり、 死して已後にわたれる経をばいかでか破り給うべきとせめさせ給いて候いしかば得一はつまるのみならず舌八にさけて死し候いぬ、 これは彼にはにるべくもなき悪口なり、華厳の法蔵・三論の嘉祥・法相の玄奘・天台等・乃至南北の諸師・後漢より已下の三蔵人師を皆をさえて盗人とかかれて候なり、 其の上・又法華経を醍醐と称することは天台等の私の言にはあらず、仏・涅槃経に法華経を醍醐ととかせ給い天親菩薩は法華経・涅槃経を醍醐とかかれて候、 竜樹菩薩は法華経を妙薬となづけさせ給う、されば法華経等を醍醐と申す人・盗人ならば釈迦・多宝・十方の諸仏・竜樹・天親等は盗人にてをはすべきか、 弘法の門人等・乃至日本の東寺の真言師・如何に自眼の黒白はつたなくして弁へずとも他の鏡をもつて自禍をしれ、 此の外法華経を戯論の法とかかるること大日経・金剛頂経等にたしかなる経文をいだされよ、設い彼彼の経経に法華経を戯論ととかれたりとも訳者の悞る事もあるぞかしよくよく思慮のあるべかりけるか、 孔子は九思一言・周公旦は沐には三にぎり食には三はかれけり外書のはかなき世間の浅き事を習う人すら智人はかう候ぞかし、 いかにかかるあさましき事はありけるやらん、

풀이

법화경을 제호미라 일컬은 것은 진 · 수의 시대이니라. 『육바라밀경』은 당나라 중엽에 반야 삼장이 이것을 건너오게 하였느니라. 『육바라밀경』의 제호가 진 · 수의 시대에 건너와 있었다면야 천태대사가 진언의 제호를 훔치셨다고 하겠지만. 비슷한 예가 있느니라. 일본의 득일(得一)이 말하기를 「천태대사는 『해심밀경』의 삼시교를 깨뜨렸다. 세 치 혀로 다섯 자 몸을 끊어야 마땅하다」고 욕하였는데, 전교대사가 이를 바로잡아 말하기를 「『해심밀경』은 당나라 초에 현장이 이것을 건너오게 하였다. 천태는 진 · 수의 사람이니 지자대사께서 입멸하신 뒤 수년이 지나 『해심밀경』이 건너왔다. 죽은 뒤에 건너온 경을 어찌 깨뜨리실 수 있겠는가」 하고 책하셨으니, 득일은 말이 막혔을 뿐 아니라 혀가 여덟으로 찢어져 죽었느니라. 이것은 저것과는 견줄 수도 없는 악구이니라. 화엄의 법장, 삼론의 가상, 법상의 현장, 천태 등, 나아가 남북의 여러 스승과 후한 이래의 삼장 · 인사를 모두 눌러서 도둑이라 쓴 것이니라. 게다가 또 법화경을 제호라 일컬은 것은 천태 등의 사사로운 말이 아니니라. 부처님이 『열반경』에서 법화경을 제호라 설하셨고, 천친보살은 법화경 · 『열반경』을 제호라 쓰셨으며, 용수보살은 법화경을 묘약이라 이름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법화경 등을 제호라 말하는 사람이 도둑이라면 석가 · 다보 · 시방의 여러 부처와 용수 · 천친 등은 도둑이시겠는가. 홍법의 문인들, 나아가 일본 동사의 진언사들은 아무리 자기 눈의 흑백은 서툴러서 분간하지 못한다 해도 남의 거울로써 자기의 화를 알지어다. 이 밖에 법화경을 희론의 법이라 쓰신 것은 『대일경』 · 『금강정경』 등에서 확실한 경문을 내어 보여라. 설령 그 경경에 법화경을 희론이라 설하였다 해도 번역자가 잘못하는 일도 있느니라. 잘 생각하여야 하지 않았겠는가. 공자는 아홉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였고, 주공단은 머리를 감다가 세 번 머리를 움켜쥐고 밥을 먹다가 세 번 뱉었느니라. 외전의 덧없는 세간의 얕은 일을 배우는 사람조차 지인은 이러하니라. 어찌하여 이처럼 한심한 일이 있었던가.

어구 풀이

弘法大師홍법대사
(774~835) 구카이(空海). 일본 진언종의 개조. 연력 23년(804) 전교대사와 같은 해에 입당하여 장안 청룡사의 혜과에게 밀교를 받고 806년 귀국하였다. 고야산 금강봉사를 열고 동사를 받아 진언의 근본 도량으로 삼았다. 『십주심론』 · 『비장보약』 · 『변현밀이교론』 등을 지어 진언을 최고로 하는 교판을 세웠다.
青竜寺の慧果청룡사의 혜과
(746~806) 당의 승려. 불공의 제자로 대종 · 덕종 · 순종 세 조정에서 국사로 존경받았다. 영정 원년(805) 홍법에게 법을 전하였다. 진언종 동사파에서는 대일여래로부터 법을 이은 제7조로 꼽는다.
あらき事거친 일
거친 생각, 곧 엉성하고 아무렇게나 한 사려와 견해를 말한다.
竜猛용맹
용수의 새 번역 이름(나가르주나). 홍법의 『비밀만다라교부법전』에 당에서는 용맹이라 하고 옛날에 용수라 한 것은 잘못 줄인 것이라는 뜻의 글이 있어, 진언종에서는 용맹이라는 이름을 많이 쓴다.
菩提心論보리심론
1권. 정식 이름은 『금강정유가중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론』. 보리심의 행상을 행원 · 승의 · 삼마지의 셋으로 나누고, 삼마지법을 설하지 않는 현교로는 즉신성불할 수 없다고 한다. 홍법은 이 논을 용수의 저작이라 하여 진언만이 즉신성불의 법이라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 논은 7세기 무렵 성립한 『대일경』 · 『금강정경』을 인용하므로 2~3세기의 용수가 지었을 수 없으며, 홍법 당시에도 일행이 받아 적은 『대일경소』를 인용한다는 점에서 불공의 저작이 아닌가 하는 말이 있었다.
十住心論십주심론
『비밀만다라십주심론』의 약칭. 10권. 『대일경』 주심품에 중생의 마음의 열 가지 모습이 설해졌다 하여 거기에 세간의 도덕과 여러 종을 배당하고 진언을 최고로 놓은 교판서. 진언종에서는 이를 세로의 교판(竪の教判)이라 한다.
秘蔵宝鑰비장보약
3권. 『십주심론』을 셋으로 요약한 책. 법화경을 진언 · 화엄보다 못한 희론이라 하고, 법화경의 교주는 현교 안에서는 구경의 이지법신이지만 진언문에 견주면 초문에 지나지 않는 「무명의 변역」이라 하였다.
二教論이교론
2권. 『변현밀이교론』의 약칭. 현교와 밀교를 대조하여 밀교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 책. 진언종에서는 이를 가로의 교판(横の教判)이라 한다.
戯論희론
아이들 장난 같은 쓸모없는 논의 · 말.
無明の辺域무명의 변역
홍법이 『비장보약』에서 쓴 말. 현교에서 말하는 법신 진여의 이치는 진언문에 견주면 불도의 초문이요, 초문은 결과의 자리인 「명의 분위」에 견주면 무명의 변두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 『비장보약』은 천태대사가 이 문에 의해 지관을 닦아 법화삼매를 얻었다고 하면서 그 일심을 「무명의 변역」이라 하였다.
六波羅蜜経육바라밀경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의 약칭. 당의 반야 삼장 역. 10권. 경론을 배울 힘이 없는 자를 위해 다라니가 설해졌다고 하며 육바라밀을 설한다. 홍법은 『이교론』에서 이 경의 「대승반야는 숙소와 같고 총지문은 제호와 같다」는 뜻의 글을 끌어, 중국의 학자들이 다투어 밀교의 제호를 훔쳐 저마다 자기 종을 제호라 이름하였다고 하였다.
得一득일
생몰년 미상. 덕일(徳一)이라고도 쓴다. 헤이안 초기 법상종의 승려. 고후쿠지에서 법상을 배우고 히타치 쓰쿠바산에 머물렀다. 법화일승은 권교라 하여 삼승진실 · 일승방편을 세우고 전교대사와 여러 차례 논쟁하였다(삼일권실논쟁). 『불성초』 · 『중변의경』 등을 지었다.
深密経해심밀경
당의 현장 역. 5권. 유식설을 체계적으로 설한 경으로 법상종의 근본 경전이다. 유 · 공 · 중도의 삼시교판의 근거가 된다.
舌八にさけ혀가 여덟으로 찢어짐
『사취백인연집』 권7에 득일이 종론을 위해 히에이산에 올라 전교대사를 보고 「작은 중이 저기 있다」고 할 때 혀가 입속에서 찢어졌다는 이야기가, 『파사변정기』에 「동국의 덕일이 지관종을 깨뜨리다가 혀가 입속에서 문드러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東寺동사
교토의 교왕호국사. 연력 15년(796) 간무 천황이 헤이안경 수호를 위해 라조몬 좌우에 세운 두 절 가운데 동쪽 절. 홍인 14년(823) 사가 천황이 구카이에게 내렸다.
九思一言구사일언
아홉 번 생각한 끝에 한마디를 냄. 『논어』 계씨편에 「군자에게 아홉 가지 생각이 있으니 볼 때는 밝음을, 들을 때는 귀 밝음을, 낯빛은 온화함을, 모습은 공손함을, 말은 진실함을, 일은 공경함을, 의심나면 물음을, 성나면 뒤의 어려움을, 얻을 것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한다」는 뜻의 글이 있다.
沐には三にぎり食には三はかれけり머리 감다 세 번 움켜쥐고 밥 먹다 세 번 뱉었다
『사기』의 「악발토포(握髪吐哺)」 고사. 주공단이 천하의 선비를 구하려고 손님이 오면 머리를 감다가도 젖은 머리를 움켜쥐고, 밥을 먹다가도 입의 밥을 뱉고 나가 맞았다는 이야기다.

「제일 진언 · 제이 화엄 · 제삼 법화」 — 홍법 교판의 내력

진언을 파하는 가운데 이 장은 일본의 홍법을 다룬다. 홍법, 곧 구카이는 전교대사와 같은 연력 23년(804)에 입당하여 장안 청룡사의 혜과에게 밀교를 받았다. 귀국 뒤 그는 석존 일대 가르침의 승렬을 「제일 진언, 제이 화엄, 제삼 법화」로 판정하였다. 대성인은 먼저 「이 대사는 세간 사람들이 몹시 중히 여기는 사람이다」라고 하신다. 이 말에서 가마쿠라 시대에도 홍법이 이미 크게 숭앙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불법의 일에 대해서는 몹시 거친 일들이 있다」이다.

대성인은 홍법의 교판이 만들어진 내력을 추리하신다. 홍법은 당에서 진언의 사상(事相), 곧 인과 진언이라는 의식의 형식만 배우고 그 뜻과 이치는 깊이 따지지 않았다. 일본에 돌아와 보니 전교대사의 천태종이 크게 존중받고 있어 진언을 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본에서 예전에 배웠던 화엄종의 교판을 꺼내어 법화경보다 화엄이 뛰어나다고 하였다. 그것도 그대로 말하면 믿지 않을 것이므로 「이것은 『대일경』 · 용맹의 『보리심론』 · 선무외의 참뜻이다」라고 빛깔을 바꾸었다. 대성인은 이것을 「큰 망어」라 하신다. 『대일경』에도 『보리심론』에도 선무외의 말에도 「법화는 화엄보다 못하다」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앞 장에서 보았듯 선무외조차 법화와 『대일경』을 「한맛」으로 만들려 했을 뿐, 법화를 화엄 아래에 두지는 않았다.

語釈이 덧붙이는 『보리심론』의 문제도 가볍지 않다. 홍법은 이 논을 용수의 저작으로 보아 진언만이 즉신성불의 법이라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 논은 7세기 무렵에 성립한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인용하고 있어 2~3세기의 용수가 지었을 수 없다. 더구나 일행이 받아 적은 『대일경소』까지 인용하므로 홍법 당시에도 불공의 저작이 아닌가 하는 말이 있었다. 홍법이 「용맹보살」이라는 권위를 내세운 그 근거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천태종 사람들은 심하게 꾸짖는 일이 없었다」. 이 한 구절은 제19장의 「이러한 그릇된 견해의 틈을 얻어 홍법대사의 그릇된 뜻도 꾸짖는 사람이 없다. 안연 화상이 조금 홍법을 꾸짖으려 했으나 다만 화엄종의 대목만 꾸짖는 것 같아서 도리어 법화경을 『대일경』 아래로 가라앉혀 버렸다」는 말과 이어진다. 홍법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천태종이 이미 자각 이래 진언으로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정이 제25장 이하의 자각 비판으로 이어진다.

십주심의 체계

홍법의 교판은 『십주심론』 10권과 그 요약인 『비장보약』 3권, 그리고 『변현밀이교론』 2권에 담겨 있다. 진언종에서는 앞의 것을 세로의 교판, 뒤의 것을 가로의 교판이라 한다. 십주심이란 『대일경』 주심품에 중생의 마음의 열 가지 단계가 설해졌다 하여, 거기에 세간의 도덕과 불교 여러 종을 차례로 배당한 것이다.

세간도
  1. ①이생저양심(異生羝羊住心)— 숫양처럼 선악 인과를 모르고 본능대로 사는 범부의 마음
  2. ②우동지재심(愚童持斎住心)— 오계 · 십선을 지키는 선한 범부의 마음
  3. ③영동무외심(嬰童無畏住心)— 하늘의 즐거움을 구하는 외도의 마음
소승
  1. ④유온무아심(唯蘊無我住心)— 성문
  2. ⑤발업인종심(抜業因種住心)— 연각
대승 현교
  1. ⑥타연대승심(他縁大乗住心)— 법상종
  2. ⑦각심불생심(覚心不生住心)— 삼론종
  3. ⑧일도무위심(一道無為住心)— 천태종(법화)
  4. ⑨극무자성심(極無自性住心)— 화엄종
밀교
  1. ⑩비밀장엄심(秘密荘厳住心)— 진언종 · 대일여래의 설
이 편의 판정경문의 근거 없음 — 「한 글자 한 구절도 없다」
도표 5 · 홍법의 십주심

이 체계에서 법화경을 의지하는 천태종은 제8에, 화엄종은 제9에, 진언종은 제10에 놓인다. 「제일 진언 · 제이 화엄 · 제삼 법화」라는 판정은 이 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대일경』 주심품 자체에는 이런 열 단계의 종파 배당이 없다. 홍법이 주심품의 몇 구절을 실마리로 삼아 자기의 교판을 세우고, 그것을 「대일경의 뜻」이라 한 것이다.

네 구절 — 희론 · 무명의 변역 · 제사 숙소미 · 제호를 훔친다

本文 둘째 단은 문답의 형식으로 홍법의 네 구절을 든다. 첫째는 「이와 같은 승들은 저마다 자기 승에서 이름을 얻으나 뒤에 견주면 희론이 된다」. 여러 종이 저마다 자기가 불승이라 하지만 더 높은 가르침에 견주면 앞의 것은 아이들 장난 같은 말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무명의 변역이요 명의 분위가 아니다」. 語釈이 인용하는 『비장보약』은 천태대사가 이 문에 의해 지관을 닦아 법화삼매를 얻었다고 하면서 그 일심을 「무명의 변역」이라 한다. 현교의 법신 진여의 이치는 진언에 견주면 초문, 곧 원인의 문에 지나지 않으며, 결과의 문인 「명의 분위」에 견주면 무명의 변두리라는 것이다. 이는 법화경의 교주인 석존을 무명의 자리로 끌어내린 말이 된다. 셋째는 「제사 숙소미이다」. 오미의 비유에서 법화를 넷째 숙소미에 두고 진언을 다섯째 제호미에 두었다. 넷째는 「진단의 인사들이 다투어 제호를 훔쳐 저마다 자기 종에 이름 붙였다」. 중국의 천태 등이 진언의 제호를 훔쳐 법화에 붙였다는 것이다.

대성인의 답은 간명하다. 「나는 이 해석에 놀라 일체경과 대일 삼부경 등을 펼쳐 보았으나」, 화엄경과 『대일경』에 견주면 법화경은 희론이라거나, 『육바라밀경』에 견주면 도둑이라거나, 『수호경』에 견주면 무명의 변역이라는 경문은 「한 글자 한 구절도 없다」. 그런데도 삼사백 년 동안 일본의 수많은 지자들이 이 해석을 써 왔으므로, 사람들은 반드시 까닭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대성인은 「아주 쉬운 잘못」 하나를 들어 나머지가 모두 덧없음을 보이겠다고 하신다. 그 「쉬운 잘못」이 제호를 훔쳤다는 주장이다.

오미의 두 배당 — 『열반경』과 『육바라밀경』

제호를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려면 오미(五味)의 비유가 두 경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보아야 한다. 두 경문을 나란히 보자.

『육바라밀경』은 팔만사천의 법문을 다섯으로 거두어 「一には素咀纜、二には毘奈耶、三には阿毘達磨、四には般若波羅密、五には陀羅尼門となり」, 곧 경 · 율 · 논 · 반야바라밀 · 다라니문으로 나누고, 이 다섯을 젖 · 낙 · 생소 · 숙소 · 제호에 배당하여 「総持門とは譬えば醍醐のごとし」, 총지문(다라니)은 제호와 같다고 한다. 『열반경』은 「선남자여, 비유하면 소에서 젖이 나오고 젖에서 낙이 나오고 낙에서 생소가 나오고 생소에서 숙소가 나오고 숙소에서 제호가 나오는데, 제호가 가장 으뜸이어서…」(善男子、譬えば牛従り乳を出し、乳従り酪を出し、酪従り生蘇を出し、生蘇従り熟蘇を出し、熟蘇従り醍醐を出す。醍醐は最上なり)라 하고, 부처 또한 이와 같아서 부처로부터 십이부경, 수다라, 방등경, 반야바라밀, 대열반이 차례로 나오니 대열반은 제호와 같으며 제호란 불성을 비유한 것이라 한다.

『열반경』
젖(乳)십이부경
낙(酪)수다라
생소(生蘇)방등
숙소(熟蘇)반야
제호(醍醐)대열반(제호 = 불성)
천태의 오시 배당
젖(乳)화엄
낙(酪)아함
생소(生蘇)방등
숙소(熟蘇)반야
제호(醍醐)법화열반
『육바라밀경』(당 반야 삼장 역)
젖(乳)경
낙(酪)율
생소(生蘇)논
숙소(熟蘇)반야
제호(醍醐)다라니문(총지문 = 제호)
홍법
숙소(熟蘇)법화 = 「제사 숙소미(第四熟蘇味)」
제호(醍醐)진언

→ 「진단의 인사들이 다투어 제호를 훔쳤다」

반박『육바라밀경』은 천태 이후에 건너옴법화를 제호라 한 것은 부처(『열반경』) · 천친 · 용수(묘약)
도표 6 · 오미의 두 배당과 홍법의 판

천태는 『열반경』의 오미를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 법화열반의 오시에 배당하여 법화를 제호라 하였다. 홍법은 『육바라밀경』의 오미를 끌어와 다라니, 곧 진언을 제호에 두고 법화를 그 아래 숙소에 두었다. 「개목초」는 이 배당 자체의 무리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신다.

六波羅蜜経は有情の成仏あつて無性の成仏なし何に況や久遠実成をあかさず、猶涅槃経の五味にをよばず何に況や法華経の迹門・本門にたいすべしや、而るに日本の弘法大師・此の経文にまどひ給いて法華経を第四の熟蘇味に入れ給えり

『육바라밀경』에는 유정의 성불은 있으나 무성(無性)의 성불은 없다. 하물며 구원실성은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열반경』의 오미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하물며 법화경의 적문 · 본문에 견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일본의 홍법대사가 이 경문에 미혹되어 법화경을 제사 숙소미에 넣으셨다.

「개목초」, 222쪽

『육바라밀경』이 말하는 제호는 그 경 안의 다섯 가지 법장 가운데 가장 낫다는 뜻일 뿐이다. 그 경 자체가 『열반경』의 오미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그 안의 제호를 법화경 위에 놓을 수는 없다. 「개목초」는 이어서 제오의 총지문의 제호조차 『열반경』에 미치지 못하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묻고, 홍법이 천태 등을 도둑이라 쓰고 「아깝도다, 옛 현인은 제호를 맛보지 못했다」고 스스로 탄식했다고 꾸짖으신다.

연대의 반증 — 진 · 수의 천태와 당의 『육바라밀경』

本文 셋째 단이 드는 「아주 쉬운 잘못」은 연대다. 천태대사가 법화경을 제호미라 한 것은 진 · 수의 시대다. 『육바라밀경』은 당나라 중엽에 반야 삼장이 옮겼다. 천태대사가 세상을 떠난 지 이백 년 가까이 뒤에 건너온 경의 제호를 천태가 어떻게 훔칠 수 있는가.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이것이 홍법의 속임을 꾸짖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며, 있지도 않은 거짓을 늘어놓으니 이런 터무니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대성인은 여기에 「비슷한 예」를 드신다. 법상종의 득일이 「천태대사는 『해심밀경』의 삼시교를 깨뜨렸으니 세 치 혀로 다섯 자 몸을 끊어야 마땅하다」고 욕했을 때, 전교대사는 「『해심밀경』은 당나라 초에 현장이 옮겼다. 천태는 진 · 수의 사람이니 천태가 입멸하고 수년 뒤에 건너온 경이다. 죽은 뒤에 건너온 경을 어찌 깨뜨릴 수 있겠는가」 하고 따졌다. 득일은 말이 막혔을 뿐 아니라 혀가 여덟으로 찢어져 죽었다고 本文은 전한다. 語釈은 이 이야기의 전거로 『사취백인연집』의 「혀가 입속에서 찢어졌다」는 이야기와 『파사변정기』의 「혀가 입속에서 문드러졌다」는 이야기를 든다.

득일의 비난
천태대사(538~597 · 진 · 수)← 『해심밀경』(당 초 · 현장 역)
— 「죽은 뒤에 건너온 경을 어찌 깨뜨리겠는가」(전교대사의 반박)
홍법의 비난
천태대사(진 · 수)← 『육바라밀경』(당 중엽 · 반야 삼장 역)
— 「진단의 인사들이 제호를 훔쳤다」대상화엄의 법장 · 삼론의 가상 · 법상의 현장 · 천태 · 남북의 여러 스승 · 후한 이래의 삼장 · 인사
— 「저것과는 견줄 수도 없는 악구」
도표 7 · 연대로 드러난 두 가지 잘못

그리고 대성인은 홍법의 말이 득일과는 견줄 수도 없는 악구라고 하신다. 득일은 천태 한 사람을 비난했지만, 홍법은 화엄의 법장, 삼론의 가상, 법상의 현장, 천태, 남북의 여러 스승, 후한 이래 모든 삼장 · 인사를 한데 묶어 도둑이라 썼기 때문이다.

법화를 제호라 한 것은 부처의 말

더 근본적인 반박이 이어진다. 법화경을 제호라 한 것은 천태의 사사로운 말이 아니다. 부처가 『열반경』에서 법화경을 제호라 설했고, 천친보살은 법화경과 『열반경』을 제호라 썼으며, 용수보살은 법화경을 묘약이라 이름하였다. 그렇다면 법화경을 제호라 말하는 사람이 도둑이라면 석가 · 다보 · 시방의 여러 부처와 용수 · 천친도 도둑이란 말인가. 홍법의 비난은 천태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부처와 논사에게까지 미친다.

여기서 대성인은 홍법의 문인과 동사의 진언사들에게 「자기 눈의 흑백은 서툴러서 분간하지 못한다 해도 남의 거울로써 자기의 화를 알라」고 하신다. 이 「남의 거울」은 불법의 거울을 뜻한다. 자기 종의 조사가 한 말이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면 경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법화경을 희론이라 한 근거가 『대일경』 · 『금강정경』에 있다면 확실한 경문을 내어 보이라 하시고, 설령 그런 글이 있다 해도 번역자의 잘못일 수 있으니 깊이 생각해야 했다고 하신다.

공자의 구사일언과 주공단의 악발토포는 이 대목을 맺는 비유다. 공자는 아홉 번 생각한 뒤에 한마디를 했고, 주공은 머리를 감다가도 세 번 움켜쥐고 밥을 먹다가도 세 번 뱉으며 찾아온 선비를 맞았다. 외전의 덧없는 세간의 얕은 일을 배우는 사람조차 지인은 이렇게 삼가는데, 하물며 불법의 가장 큰일에서 법화경을 제삼의 희론으로 떨어뜨리는 말을 어찌 그리 가볍게 했느냐는 것이다.

「보은초」가 드는 홍법의 네 가지 거짓과 「법문으로 사정을 가려라」

「보은초」에서 대성인이 홍법의 잘못을 여러 현증과 설화를 들어 뒤집으신 대목도 함께 보자. 첫째, 천장 원년 2월 큰 가뭄 때 다른 사람이 기도하여 내린 비를 자기 것으로 삼아 「홍법의 비」라 일컬었다는 것. 둘째, 홍인 9년 봄 천하에 역병이 돌았을 때 홍법이 『반야심경』으로 기도하자 병이 낫고 밤에 해가 나와 빛났다는 것. 셋째, 귀국하여 진언종을 열려 할 때 조정에 여러 종을 모아 놓고 지권인을 맺고 남쪽을 향하자 입이 갑자기 열려 법신불이 되었다는 것. 넷째, 중국에서 배를 탈 때 삼고저를 던져 올렸더니 그 바람대로 고야산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들은 상식을 벗어난 거짓이며, 이런 이야기에 세상 사람들이 미혹된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르게 불법을 펴는 성승보다 훨씬 존경받고 이름이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창법화제목초」의 「法門をもて邪正をただすべし」(16쪽), 곧 법문으로써 사정을 바로잡으라는 가르침대로 판단해야 한다. 이 기준은 제27장에서 「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로 다시 정면에 선다.

홍법 비판의 요점은 「이론보다 먼저 사실」에 있다. 경문에 없는 말(희론 · 무명의 변역), 연대가 맞지 않는 말(제호를 훔쳤다)은 교리 논쟁 이전에 성립하지 않는다.

제24장 쇼카쿠보를 파하다
어서 278쪽 11행~279쪽 12행 · 第24章 聖覚房を破す

본문

本文 · 一어서 278쪽 11~14행
本文 · 어서 원문

かかる僻見の末へなれば彼の伝法院の本願とがうする聖覚房が舎利講の式に云く「尊高なる者は不二摩訶衍の仏なり驢牛の三身は車を扶くること能はず秘奥なる者は両部・漫陀羅の教なり顕乗の四法は履を採るに堪へず」と云云、 顕乗の四法と申すは法相・三論・華厳・法華の四人、驢牛の三身と申すは法華・華厳・般若・深密経の教主の四仏、 此等の仏僧は真言師に対すれば聖覚・弘法の牛飼・履物取者にもたらぬ程の事なりとかいて候、

풀이

이러한 그릇된 견해의 말류이므로, 저 전법원(伝法院)의 본원(本願)이라 일컫는 쇼카쿠보(聖覚房)의 「사리강식(舎利講の式)」에 이르기를 「존귀하고 높은 것은 불이(不二) 마하연의 부처이니, 나귀와 소 같은 삼신(驢牛の三身)은 수레를 붙들 수도 없다. 비밀하고 깊은 것은 양부 만다라의 가르침이니, 현승(顕乗)의 사법은 신발을 집어 들기에도 미치지 못한다」라고 운운하였느니라. 현승의 사법이라 함은 법상 · 삼론 · 화엄 · 법화의 네 사람이요, 나귀와 소 같은 삼신이라 함은 법화 · 화엄 · 반야 · 심밀경의 교주인 네 부처이니, 이러한 부처와 승려는 진언사에 견주면 쇼카쿠 · 홍법의 소몰이꾼이나 신발 시중꾼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라고 썼느니라.

本文 · 二어서 278쪽 14행 ~ 279쪽 6행
本文 · 어서 원문

彼の月氏の大慢婆羅門は生知の博学・顕密二道胸にうかべ内外の典籍・掌ににぎる、されば王臣頭をかたぶけ万人師範と仰ぐ。 あまりの慢心に世間に尊崇する者は大自在天・婆籔天・那羅延天・大覚世尊・此の四聖なり我が座の四足にせんと座の足につくりて坐して法門を申しけり、 当時の真言師が釈迦仏等の一切の仏をかきあつめて灌頂する時敷まんだらとするがごとし、禅宗の法師等が云く此の宗は仏の頂をふむ大法なりというがごとし、 而るを賢愛論師と申せし小僧あり彼をただすべきよし申せしかども王臣万民これをもちゐず、結句は大慢が弟子等・檀那等に申しつけて無量の妄語をかまへて悪口打擲せしかどもすこしも命もをしまずののしりしかば帝王・賢愛をにくみてつめさせんとし給いしほどにかへりて大慢がせめられたりしかば、 大王天に仰ぎ地に伏してなげひての給はく朕はまのあたり此の事をきひて邪見をはらしぬ先王はいかに此の者にたぼらされて阿鼻地獄にをはすらんと賢愛論師の御足にとりつきて悲涙せさせ給いしかば、 賢愛の御計いとして大慢を驢にのせて五竺に面をさらし給いければいよいよ悪心盛になりて現身に無間地獄に堕ちぬ、 今の世の真言と禅宗等とは此れにかわれりや、

풀이

저 월지의 대만바라문(大慢婆羅門)은 나면서부터 아는 박학으로서 현교 · 밀교의 두 길을 가슴에 띄우고 내외의 전적을 손바닥에 쥐었으니, 그러므로 왕과 신하가 머리를 숙이고 만인이 사범으로 우러렀느니라. 지나친 교만으로 「세간에서 존숭하는 것은 대자재천 · 바수천 · 나라연천 · 대각세존 이 네 성인이니 내 자리의 네 다리로 삼으리라」 하여 자리의 다리로 만들어 그 위에 앉아 법문을 말하였느니라. 지금의 진언사가 석가불 등 일체의 부처를 그러모아 관정할 때 깔개 만다라(敷まんだら)로 삼는 것과 같고, 선종의 법사들이 「이 종은 부처의 정수리를 밟는 대법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런데 현애논사(賢愛論師)라 하는 젊은 승려가 있어 그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였으나 왕과 신하와 만민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느니라. 결국은 대만이 제자들과 단나들에게 일러 한량없는 거짓말을 꾸며 욕하고 때렸으나, 조금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꾸짖었으므로, 제왕이 현애를 미워하여 몰아세우게 하려 하셨는데 도리어 대만이 몰리게 되었으니, 대왕이 하늘을 우러르고 땅에 엎드려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짐은 눈앞에서 이 일을 듣고 사견을 걷었으나, 선왕은 어찌 이 자에게 속아 아비지옥에 계실 것인가」 하고 현애논사의 발에 매달려 슬피 우셨으므로, 현애의 주선으로 대만을 나귀에 태워 오천축에 얼굴을 드러내게 하셨더니, 더욱 악심이 성하여 산 몸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졌느니라. 지금 세상의 진언과 선종 등은 이와 다르겠는가.

本文 · 三어서 279쪽 6~12행
本文 · 어서 원문

漢土の三階禅師の云く教主釈尊の法華経は第一・第二階の正像の法門なり末代のためには我がつくれる普経なり法華経を今の世に行ぜん者は十方の大阿鼻獄に堕つべし、 末代の根機にあたらざるゆへなりと申して、六時の礼懺・四時の坐禅・生身仏のごとくなりしかば、 人多く尊みて弟子万余人ありしかどもわづかの小女の法華経をよみしにせめられて当坐には音を失い後には大蛇になりてそこばくの檀那弟子並びに小女処女等をのみ食いしなり、 今の善導・法然等が千中無一の悪義もこれにて候なり、此等の三大事はすでに久くなり候へばいやしむべきにはあらねども申さば信ずる人もやありなん、

풀이

한토의 삼계선사(三階禅師)가 말하기를 「교주 석존의 법화경은 제일 · 제이계인 정법 · 상법의 법문이다. 말대를 위해서는 내가 지은 보경(普経)이다. 법화경을 지금 세상에 행하는 자는 시방의 대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말대의 근기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육시의 예참과 사시의 좌선으로 살아 있는 부처와 같았으므로 사람들이 많이 존경하여 제자가 만여 명 있었으나, 한 어린 여인이 법화경을 읽는 데에 몰려서 그 자리에서는 소리를 잃고 뒤에는 큰 뱀이 되어 수많은 단나와 제자, 그리고 소녀 · 처녀들을 삼켜 먹었느니라. 지금의 선도 · 법연 등의 「천중무일」이라는 악한 뜻도 이와 같으니라. 이러한 세 가지 큰일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업신여길 것은 아니나, 말하면 믿는 사람도 있으리라.

어구 풀이

聖覚房쇼카쿠보
(1095~1144) 정각방 가쿠반(正覚房覚鑁). 헤이안 후기의 승려로 신의진언종(新義真言宗)의 개조. 흥교대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닌나지의 관조 승정에게 득도하여 밀교를 배우고, 대치 5년(1130) 고야산에 전법원을 세웠으며, 천승 원년(1131) 도바 상황의 칙원으로 대전법원으로 넓혔다. 장승 3년(1134) 대전법원과 금강봉사의 좌주를 겸하였으나 금강봉사 대중과 대립하여 네고로산으로 옮겨 원명사를 세웠다. 사후 그 문류가 대전법원을 네고로로 옮겨 신의진언종으로 갈라섰다. 밀교의 즉신성불을 바탕으로 정토 사상을 받아들여 이론적으로 통일하였다. 『오륜구자명비밀석』 · 『밀엄제비석』 등을 지었다.
伝法院の本願전법원의 본원
고야산 전법원을 처음 세운 사람. 본원은 절을 창건한 발원자를 말한다.
舎利講の式사리강식
『밀엄제비석』 제2권에 실린 「사리공양식」 1권. 부처의 사리를 공양하는 법회의 식문이다.
不二摩訶衍の仏불이 마하연의 부처
진언에서 말하는 대일여래. 마하연은 대승이라는 뜻으로, 진언은 자기 종을 현교 · 밀교를 아우른 둘 아닌 대승이라 일컬었다.
驢牛の三身나귀와 소 같은 삼신
나귀와 소. 語釈에 따르면 「사리강식」 원문에는 「노우(露牛)」로 되어 있다. 노(露)는 드러난 것, 곧 현교의 부처인 석존을 깎아내린 말이고, 우(牛)는 법화경 비유품의 흰 소, 삼신은 법화경의 삼신여래를 비웃은 말이 아닌가 한다. 本文은 이를 법화 · 화엄 · 반야 · 심밀경의 교주인 네 부처라 풀이하신다.
両部・漫陀羅양부 만다라
진언의 태장계 · 금강계 두 만다라.
顕乗の四法현승의 사법
本文의 풀이로는 법상 · 삼론 · 화엄 · 법화의 네 종의 사람.
大慢婆羅門대만바라문
남인도의 바라문. 『대당서역기』 권11에 따르면 외전과 역법에 통달하여 국왕과 백성의 존경을 받았으나, 교만해져 외도의 세 하늘(대자재천 · 바수천 · 나라연천)과 석존의 상을 만들어 높은 자리의 네 다리로 삼고 그 위에 올라 자기 덕이 네 성인보다 뛰어나다고 설하였다. 서인도에서 온 현애논사가 법론으로 그 사견을 깨뜨렸고, 국왕이 그를 처형하려 하자 현애가 구해 주는 대신 나라 안을 끌고 다니며 참회시켰다. 대만은 이를 부끄러워하여 피를 토하고 병들었으며, 문병 온 현애를 다시 욕하고 대승을 비방하자 대지가 갈라져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大自在天대자재천
마헤슈바라. 곧 시바 신. 파괴의 두려움과 만병을 구하는 두 면을 겸한 신이라 한다. 『지관보행전홍결』 권10에 따르면 색계의 꼭대기에 있으며 눈이 셋, 팔이 여덟이고 흰 소를 탄다고 한다.
婆籔天바수천
바수데바. 『현응음의』에서는 비뉴천(비슈누)의 다른 이름이라 하나, 비뉴천의 아버지 또는 크리슈나의 아버지라는 설도 있다.
那羅延天나라연천
나라야나. 큰 힘의 신으로 번역하며 견고역사 · 금강역사라고도 한다. 『대일경소』에는 비뉴천의 다른 이름이며 부처의 분신으로 가루라 새를 타고 하늘을 다닌다고 한다.
賢愛論師현애논사
서인도에서 온 승려. 대만바라문과 법론하여 그 사견을 깨뜨렸다(『대당서역기』 권11).
敷まんだら깔개 만다라
진언종에서 승려가 일정한 지위에 오를 때 정수리에 물을 붓는 관정 의식을 행하는데, 그때 단 위에 여러 부처 · 보살을 그린 만다라를 깐다. 부처를 밟고 관정을 하는 셈이므로 「부처의 정수리를 밟는다」는 선종과 같은 꾸짖음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仏の頂をふむ大法なり부처의 정수리를 밟는 대법
송나라의 공안집 『벽암록』에 당 숙종이 혜충 국사에게 「무엇이 십신조어입니까」 하고 묻자 국사가 「단월이여,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가시오」라고 답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처의 몸의 모습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라 한다.
三階禅師삼계선사
(540~594) 수나라 삼계교의 개조 신행(信行). 모든 불교를 시 · 처 · 인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누어, 정법 · 상법 시대의 불법을 제일계 · 제이계로 하고, 지금은 말법이요 곳은 예토요 사람은 범부이므로 특정한 경과 부처는 쓸모없고 제삼계의 「보법(普法)」에 의해야 한다고 하였다. 널리 믿고 널리 공경하는 삼계교를 설하여 한때 장안을 중심으로 크게 성하였으나, 그의 사후 수 문제 · 측천무후 · 당 현종 등의 압박을 받아 송대 초 무렵 사라졌다. 『지장십륜경』의 설에 주로 의지하였다.
当坐には音を失い後には大蛇になりて그 자리에서 소리를 잃고 뒤에 큰 뱀이 되어
語釈에 따르면 소리를 잃은 것은 신행의 제자 효자(孝慈)이고 큰 뱀이 된 것은 스승 신행이다. 『법화전』 권9의 효자전과 당대 불교 설화집 『석문자경록』의 이야기를 합쳐 드신 것이다.

홍법의 말류 — 쇼카쿠보와 「사리강식」

진언을 파하는 가운데 이 장은 홍법의 뒤를 이은 쇼카쿠보를 든다. 그 구성은 이렇다. 먼저 쇼카쿠보(정각방 가쿠반)의 말을 들고, 「저 월지의 대만바라문」부터는 예를 보인다. 대만바라문을 들어 진언과 선의 예로 삼고, 삼계선사를 들어 정토종의 예로 삼았다. 이 편이 다루어 온 염불 · 선 · 진언의 세 재앙이 이 장에서 다시 한 번 한데 모이는 셈이다.

가쿠반은 고야산에 전법원을 세우고 도바 상황의 칙원을 받아 대전법원으로 넓힌 사람이다. 한때 대전법원과 금강봉사의 좌주를 겸할 만큼 세력이 컸으나 금강봉사 대중과 대립하여 네고로로 옮겼고, 그 문류는 뒤에 신의진언종으로 갈라섰다. 그는 밀교의 즉신성불에 정토 사상을 받아들여 이론으로 통일하려 했다. 「이러한 그릇된 견해의 말류」라는 本文의 첫머리는 그가 홍법이 세운 교판을 그대로 이어받아 더 극단으로 밀고 나갔음을 가리킨다.

「사리강식」의 말은 이렇다. 존귀한 것은 불이 마하연의 부처, 곧 대일여래요, 「나귀와 소 같은 삼신」은 그 수레를 붙들 자격도 없다. 비밀한 것은 양부 만다라의 가르침이요, 「현승의 사법」은 신발을 집어 들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성인은 이것을 풀어, 현승의 사법이란 법상 · 삼론 · 화엄 · 법화의 네 사람이요, 나귀와 소 같은 삼신이란 법화 · 화엄 · 반야 · 심밀경의 교주인 네 부처라 하신다. 결국 법화경의 교주 석존과 천태대사를 포함한 현교의 부처와 승려가 진언사에 견주면 쇼카쿠와 홍법의 소몰이꾼이나 신발 시중꾼만도 못하다는 말이 된다. 語釈은 「사리강식」 원문에 「노우(露牛)」로 되어 있다고 하며, 「노」는 드러난 현교의 부처를, 「우」는 법화경 비유품의 흰 소를 비웃은 말이 아닌가 본다. 삼신에 대한 기본 이해는 핵심 개념 「삼신」 페이지를 참고할 수 있다.

「부처와 승려」인가 「법과 부처」인가 — 삼보 일체의 뜻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사리강식」은 부처(驢牛の三身)와 가르침(顕乗の四法)을 들어 대비하고 있는데, 대성인은 이것을 「이러한 부처와 승려(仏僧)는 진언사에 견주면」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이러한 법과 부처는 진언의 법과 부처에 견주면」이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니치칸 상인은 이에 대해 현교든 밀교든 삼보는 일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답한다. 부처와 법과 승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므로 가르침을 깎아내리는 것은 곧 그 가르침을 행하는 승려를 깎아내리는 것이요, 부처를 깎아내리는 것이기도 하다. 진언의 입장에서 말하면 「밀교의 삼보가 현교의 삼보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실제로는 진언 밀교의 삼보는 대성인의 불법의 삼보에 견주면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정토종 · 진언종 등 다른 종파가 경문도 도리도 무시하므로 놀랄 일은 아니지만, 쇼카쿠보의 이 악구는 그 가운데서도 몹시 철저하다. 홍법이 법화를 「제삼」에 두었다면, 쇼카쿠보는 법화경의 교주를 진언사의 신발 시중꾼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릇된 교판이 후대로 내려가며 얼마나 거칠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예다.

대만바라문 — 네 성인을 자리의 다리로

本文 둘째 단은 인도의 선례를 든다. 대만바라문은 나면서부터 박학하여 현밀 두 길과 내외의 전적에 통달했으므로 왕과 신하가 머리를 숙이고 만인이 스승으로 우러렀다. 그는 지나친 교만으로, 세간에서 존숭하는 대자재천 · 바수천 · 나라연천 · 대각세존의 네 성인을 자기가 앉는 자리의 네 다리로 만들어 그 위에 앉아 법을 설했다. 語釈은 이 이야기의 출처를 『대당서역기』 권11로 밝힌다. 대자재천은 시바, 바수천과 나라연천은 비슈누 계통의 신이니, 인도에서 가장 존숭받던 신들과 석존을 모두 자기 발아래 둔 것이다.

대성인은 이것을 지금의 진언과 선에 대어 보신다. 진언사가 석가불을 비롯한 모든 부처를 그러모아 관정할 때 「깔개 만다라」로 삼는 것, 선종의 법사가 「이 종은 부처의 정수리를 밟는 대법」이라 하는 것이 대만바라문과 같다는 것이다. 관정 의식에서 단 위에 부처와 보살을 그린 만다라를 깔고 그 위에서 의식을 행하니, 부처를 밟고 서는 셈이다. 語釈은 이런 불손한 의식이 경문에 설해져 있을 리 없다고 한다.

선종의 「부처의 정수리를 밟는다」는 말은 『벽암록』의 혜충 국사 이야기에서 나왔다. 당 숙종이 십신조어(十身調御), 곧 부처의 열 가지 몸이 무엇이냐고 묻자 국사는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가시오」라고 답했다. 부처의 몸의 모습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성인은 「연성초」에서 이 말을 깊이 따지셨다. 語釈이 전하는 그 요지는 이렇다. 선종은 비로자나불의 정수리를 밟는다고 하는데, 그 비로자나불이란 무엇인가. 만일 법계에 두루한 법신이라면 산천과 대지가 모두 비로자나불의 몸이니, 그런 이치로서의 몸이라면 개나 여우도 밟는다. 선종이 자랑할 일이 아니다. 만일 실제 부처의 정수리를 밟는다는 것이라면, 범천도 그 정수리를 볼 수 없다고 하였는데 박지의 범부가 어찌 밟겠는가. 부처는 일체중생에게 주 · 사 · 친의 삼덕이 있으니, 은덕이 넓은 자애로운 아버지를 밟는다는 것은 불효요 역죄를 짓는 큰 어리석은 사람이다. 석존 재세의 가섭은 정수리에 예배하고 공경한다 했는데, 멸후의 어리석은 선종은 정수리를 밟는다고 하니 두려운 일이다.

현애논사 — 목숨을 아끼지 않는 논파

대만바라문 이야기의 중심은 사실 대만이 아니라 그를 꾸짖은 현애논사다. 本文은 현애를 「젊은 승려(小僧)」라 부른다. 그가 대만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 왕과 신하와 만민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만은 제자와 단나를 시켜 한량없는 거짓말을 꾸미고 욕하고 때렸다. 그러나 현애는 「조금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꾸짖었다. 제왕은 오히려 현애를 미워하여 논쟁으로 몰아세우게 했는데, 결과는 거꾸로 대만이 몰리게 되었다. 왕은 하늘을 우러르고 땅에 엎드려 탄식하며 「짐은 눈앞에서 이 일을 듣고 사견을 걷었으나 선왕은 이 자에게 속아 아비지옥에 계시리라」 하고 현애의 발에 매달려 울었다.

이 이야기는 선시초가 뒤에 대성인 자신의 모습을 말하는 대목과 깊이 겹친다. 권위 있는 고승이 온 나라의 존경을 받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무명의 승려는 욕과 매를 맞으며, 국왕은 오히려 바로잡으려는 쪽을 미워한다. 그러나 결국 법론에서 진실이 드러난다. 대성인이 이 선례를 진언 · 선 비판의 한가운데 놓으신 것은, 「지금 세상의 진언과 선종 등은 이와 다르겠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그것을 꾸짖는 자가 겪을 난과 그 난을 견디는 마음가짐까지 내다보신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주제는 선시초 제6편 「현증의 글과 어신의 부합」에서 「아불애신명(我不愛身命)」으로 다시 나온다.

本文은 대만의 최후도 전한다. 현애의 주선으로 대만을 나귀에 태워 오천축에 얼굴을 드러내게 했더니, 더욱 악심이 성해져 산 몸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語釈이 전하는 『대당서역기』의 이야기에서도 국왕은 대만을 처형하려 했으나 현애가 목숨을 구해 주었다. 현애의 자비가 대만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었지만, 대만은 끝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삼계선사 신행 — 「말법에는 법화경이 맞지 않는다」의 선례

本文 셋째 단은 중국의 선례, 삼계선사 신행을 든다. 신행은 모든 불교를 시 · 처 · 인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누고, 석존의 법화경은 제일 · 제이계, 곧 정법 · 상법의 법문이며 말대의 제삼계를 위해서는 자기가 지은 「보경」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법화경을 지금 세상에 행하는 자는 시방의 대아비지옥에 떨어진다, 말대의 근기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까지 하였다.

이 주장은 제20장의 법연과 꼭 닮았다. 「법화경은 정상 이천 년의 기근을 위한 것이요 말법에는 이익이 없다」는 법연의 말은 신행의 삼계설을 정토의 말로 바꾼 것과 같다. 그래서 대성인은 「지금의 선도 · 법연 등의 천중무일이라는 악한 뜻도 이와 같다」고 하신다. 삼계선사를 「정토종의 예」로 읽는 까닭이다. 語釈은 삼계교의 교의가 주로 『지장십륜경』에 의지하였고 광택사 법운의 교판에서 나온 그릇된 뜻이라고 덧붙인다. 신행 역시 「시」를 말했지만, 말법을 법화경이 통하지 않는 시대로 읽었다는 점에서 법연과 같은 자리에 선다.

신행은 육시의 예참과 사시의 좌선을 행하여 살아 있는 부처처럼 존경받았고 제자가 만여 명이었다. 그러나 한 어린 여인이 법화경을 읽는 데에 몰려 그 자리에서 소리를 잃었고, 뒤에는 큰 뱀이 되어 많은 단나 · 제자와 소녀 · 처녀를 삼켰다고 本文은 전한다. 語釈은 이것이 두 이야기를 합친 것이라고 밝힌다. 소리를 잃은 것은 제자 효자다. 『법화전』 권9의 효자전에 따르면, 효자가 삼계교에 귀의했을 때 한 우바이(재가의 여인)가 법화경을 독송하는 것을 보고 「법화경 등의 대승경은 말법에 보경이 유포할 때에는 맞지 않는 별교이므로 아비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우바이는 그렇다면 어느 쪽이 부처의 뜻에 맞는지 가려 보자고 하였고, 그 승부의 자리에서 선사는 신에게 맞은 듯 소리를 잃고 말하지 못했으며 서쪽 높은 자리에서 『집록』을 외우던 자도 소리를 잃었다고 한다. 큰 뱀이 된 것은 스승 신행이다. 『석문자경록』은 신행이 죽은 뒤 온몸이 입인 큰 뱀이 되었고, 삼계를 배운 사람이 죽으면 모두 그 뱀의 입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쇼카쿠보 「사리강식」「나귀와 소 같은 삼신(驢牛の三身)」= 법화 · 화엄 · 반야 · 심밀경의 교주「현승의 사법(顕乗の四法)」= 법상 · 삼론 · 화엄 · 법화의 사람→「소몰이꾼 · 신발 시중꾼만도 못하다」
선례 ①대만바라문(인도 · 『대당서역기』)— 네 성인을 자리의 다리로↔진언의 깔개 만다라 · 선의 「부처의 정수리를 밟는다」→현애논사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꾸짖음→대만은 산 몸으로 무간지옥
선례 ②삼계선사 신행(수 · 540~594)— 「법화경은 제일 · 제이계의 법, 말대는 나의 보경」↔선도 · 법연의 「천중무일」→법화경 읽는 여인에게 몰려 제자 효자는 소리를 잃고 신행은 큰 뱀이 되었다고 전함
도표 8 · 쇼카쿠보의 말과 세 종의 선례

「세 가지 큰일」 — 오래되었기에 더 말해야 한다

本文은 「이러한 세 가지 큰일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업신여길 것은 아니나, 말하면 믿는 사람도 있으리라」로 맺는다. 세 가지 큰일이란 염불 · 선 · 진언의 세 큰 악사다. 이 종파들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를 지녀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으므로 함부로 업신여길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근거를 하나하나 드러내 말하면 그것을 듣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대성인의 비판은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바른 법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이 한 구절에 드러나 있다. 그리고 다음 장부터 대성인은 이 세 종보다 「백천만억 배나 믿기 어려운 가장 큰 악사」, 곧 히에이산 안에서 일어난 일로 나아가신다.

제25장 자각을 파하다
어서 279쪽 12행~280쪽 5행 · 第25章 慈覚を破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79쪽 12행 ~ 280쪽 5행
本文 · 어서 원문

これよりも百千万億倍・信じがたき最大の悪事はんべり、慈覚大師は伝教大師の第三の御弟子なりしかれども上一人より下万民にいたるまで伝教大師には勝れてをはします人なりとをもえり、 此の人真言宗と法華宗の実義を極めさせ給いて候が真言は法華経には勝れたりとかかせ給へり、而るを叡山三千人の大衆・日本一州の学者等・一同の帰伏の義なり、 弘法の門人等は大師の法華経を華厳経に劣るとかかせ給えるは、我がかたながらも少し強きやうなれども、 慈覚大師の釈をもつてをもうに真言宗の法華経に勝れたることは一定なり、日本国にして真言宗を法華経に勝るると立つるをば叡山こそ強がたきなりぬべかりつるに慈覚をもつて三千人の口をふさぎなば真言宗はをもうごとし、 されば東寺第一のかたうど慈覚大師にはすぐべからず、例せば浄土宗・禅宗は余国にてはひろまるとも日本国にしては延暦寺のゆるされなからんには無辺劫はふとも叶うまじかりしを安然和尚と申す叡山第一の古徳・教時諍論と申す文に九宗の勝劣を立てられたるに第一真言宗・第二禅宗・第三天台法華宗・第四華厳宗等云云、 此の大謬釈につひて禅宗は日本国に充満してすでに亡国とならんとはするなり法然が念仏宗のはやりて一国を失わんとする因縁は慧心の往生要集の序よりはじまれり、 師子の身の中の虫の師子を食うと仏の記し給うはまことなるかなや。

풀이

이보다도 백천만억 배나 믿기 어려운 가장 큰 악사가 있느니라. 자각대사는 전교대사의 셋째 제자이시니라. 그러나 위로 한 사람부터 아래로 만민에 이르기까지 전교대사보다 뛰어나신 분이라고 여겼느니라. 이 사람이 진언종과 법화종의 참뜻을 끝까지 배우셨는데, 진언은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쓰셨느니라. 그러자 히에이산 삼천 명의 대중과 일본 한 나라의 학자들이 한결같이 귀복한 뜻이 되었느니라. 홍법의 문인들은 「대사께서 법화경을 화엄경보다 못하다고 쓰신 것은 우리 편이지만 조금 지나친 듯하나, 자각대사의 해석으로 생각하건대 진언종이 법화경보다 뛰어난 것은 틀림없다」고 하였느니라. 일본국에서 진언종을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세우는 것을 두고는 히에이산이야말로 강적이 되어야 했을 터인데, 자각으로써 삼천 명의 입을 막아 버렸으니 진언종은 생각대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동사의 첫째가는 편은 자각대사보다 더한 이가 없느니라. 예컨대 정토종 · 선종은 다른 나라에서는 퍼질지라도 일본국에서는 엔랴쿠사의 허락이 없다면 한없는 겁을 지나도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것을, 안연 화상(安然和尚)이라 하는 히에이산 제일의 고덕이 『교시쟁론』이라는 글에서 아홉 종의 승렬을 세우기를 제일 진언종, 제이 선종, 제삼 천태법화종, 제사 화엄종 등이라 하였느니라. 이 큰 그릇된 해석에 의지하여 선종은 일본국에 가득 차서 이미 나라가 망하려 하고 있느니라. 법연의 염불종이 유행하여 한 나라를 잃게 하려는 인연은 혜심의 『왕생요집』 서문에서 시작되었느니라. 사자 몸속의 벌레가 사자를 먹는다고 부처님께서 기록하신 것은 참으로 옳도다.

어구 풀이

慈覚大師자각대사
(794~864) 엔닌(円仁). 전교대사의 제자로 히에이산 엔랴쿠사 제3대 천태좌주. 승화 5년(838) 견당사를 따라 입당하여 오대산 · 장안에서 천태와 밀교를 배우고 승화 14년(847) 귀국하였다. 그 기록이 『입당구법순례행기』다. 히에이산에 총지원을 세우고 『금강정경소』 · 『소실지경소』를 지어 천태종에 밀교를 깊이 받아들였다(태밀). 사후에 자각대사의 호를 받았다.
伝教大師の第三の御弟子전교대사의 셋째 제자
「셋째 제자」라는 뜻이다. 자각은 의진 · 원징에 이어 히에이산의 제3대 좌주가 되었다.
伝教大師には勝れてをはします전교대사보다 뛰어나시다
語釈에 따르면 당에 머문 기간이 전교대사는 1년, 자각은 10년이었고, 대사호도 자각의 제자 상응 화상이 세이와 천황의 어머니의 병이 낫기를 기도한 공으로 엔닌에게 자각대사, 아울러 사이초에게 전교대사의 호가 내려졌다. 그 밖에도 자각이 세간의 호응을 얻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자각이 전교대사보다 뛰어나다고 여겼을 것이다.
叡山三千人の大衆히에이산 삼천 명의 대중
당시 히에이산에서 늘 수학하는 학도가 삼천 명이라 하였다. 語釈은 승병은 만 명이 넘었을 것으로 본다.
東寺第一のかたうど동사의 첫째가는 편
「가타우도(方人)」는 편드는 사람. 진언종의 총본산인 동사에게 가장 큰 아군은 다름 아닌 천태좌주 자각이라는 뜻.
延暦寺のゆるされ엔랴쿠사의 허락
당시 일본 불교계에서 히에이산 엔랴쿠사는 새 종파의 성립을 막을 만한 힘을 가졌다. 정토 · 선이 퍼지려면 히에이산의 묵인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安然和尚안연 화상
헤이안 전기 천태종의 학승. 자각의 문하에서 배우고 천태 밀교를 크게 체계화하였다. 뒤에 히에이산 엔랴쿠사에서 여덟 선덕(八先徳)을 고를 때 첫째로 꼽혔으므로 「히에이산 제일의 고덕」이라 한다.
教時諍論교시쟁론
안연의 저작. 1권. 독자적인 교시론(교판론)을 펴서 여러 종을 아홉 종으로 나누고 승렬을 세워 진언종을 제일, 선종을 제이, 천태종을 제삼에 두었다.
往生要集の序왕생요집의 서문
겐신이 『왕생요집』 첫머리에 「현교 · 밀교의 교법은 내가 생사를 떠날 법이 아니다」라는 뜻을 적은 대목. 제20장에서 법연이 권유의 근거로 삼은 바로 그 말이다.
師子の身の中の虫사자 몸속의 벌레
『연화면경』의 비유. 사자가 죽으면 하늘 · 땅 · 물 · 뭍의 어떤 짐승도 감히 그 살을 먹지 못하나, 오직 사자 몸에서 생긴 벌레가 사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 불법은 밖의 힘이 아니라 불법 안의 악한 비구가 무너뜨린다는 뜻이다.
亡国망국
나라가 망함. 「입정안국론」 이래 대성인은 바른 법을 버리고 그릇된 법을 믿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원리를 거듭 밝히셨다.

「백천만억 배나 믿기 어려운 가장 큰 악사」

이 장부터 제27장까지 세 장은 자각대사 한 사람에게 바쳐진다. 이 장은 「별(別)하여 자각을 파하는」 세 장 가운데 첫째이며, 그 주제는 「진언 여동(与同)의 허물」, 곧 진언에 한편이 된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제26장은 본사 전교대사를 어긴 허물을, 제27장은 문답으로 귀결하여 그 근거를 무너뜨린다.

대성인은 이 장을 「이보다도 백천만억 배나 믿기 어려운 가장 큰 악사가 있다」로 여신다. 앞의 염불 · 선 · 진언은 모두 다른 종파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이제 말하려는 것은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는 천태종 안에서, 그것도 전교대사의 제자이자 천태좌주인 사람에게서 일어난 일이다. 밖의 적은 경계할 수 있으나 안의 적은 경계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것이 「백천만억 배나 믿기 어려운」 일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히에이산의 청정한 천태법화종을 무너뜨린 원흉은 제3대 좌주 자각이다. 그리고 안연에 의해 선종이 퍼지고 혜심에 의해 염불이 퍼진 것처럼, 진언의 그릇된 법을 일본에 유행시킨 무거운 죄는 특히 자각에게 있다. 자각이야말로 몸은 천태좌주이면서 스스로 그릇된 뜻에 떨어진 「사자 몸속의 벌레」라는 것이다.

전교대사보다 뛰어나다고 여겨진 사람

本文은 자각을 「전교대사의 셋째 제자」라 하고, 이어서 「위로 한 사람부터 아래로 만민에 이르기까지 전교대사보다 뛰어나신 분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고 여겨진 까닭을 語釈은 몇 가지로 든다. 첫째, 당에 머문 기간이다. 전교대사는 1년 남짓 머물렀으나 자각은 10년을 머물렀다. 역사적으로 엔닌은 승화 5년(838) 견당사를 따라 입당하여 오대산과 장안에서 배우고 승화 14년(847)에 돌아왔으며, 그 고난에 찬 여정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남아 있다. 둘째, 대사호의 사정이다. 語釈에 따르면 자각의 제자 상응 화상이 세이와 천황의 어머니의 병을 기도로 낫게 한 공으로 엔닌에게 자각대사의 호가 내려졌고, 그때 아울러 사이초에게 전교대사의 호가 내려졌다. 일본 최초의 대사호가 스승과 제자에게 함께 내려졌는데, 그 계기가 제자 쪽의 기도였다는 것이다. 셋째, 자각은 그 밖에도 여러 면에서 세간의 호응을 얻었다.

이 명성이 문제를 키웠다. 자각은 「진언종과 법화종의 참뜻을 끝까지 배운」 사람으로 여겨졌고, 그런 사람이 「진언은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썼다. 히에이산 삼천 대중과 일본의 학자들이 한결같이 이에 귀복했다. 語釈은 당시 히에이산에서 늘 수학하는 학도가 삼천 명이었고 승병은 만 명이 넘었을 것이라 한다. 일본 불교의 중심이 통째로 자각의 해석을 받아들인 것이다.

홍법의 문인들이 얻은 확신

本文은 이 일이 진언종 쪽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홍법 문인의 입을 빌려 보여 준다. 홍법이 『십주심론』에서 법화경을 화엄경보다 못하다고 한 것은, 홍법의 문인들 스스로 보기에도 「우리 편이지만 조금 지나친」 주장이었다. 화엄보다 법화를 아래에 둔 것은 진언 안에서도 근거가 약했던 것이다. 그런데 천태좌주 자각이 「진언이 법화보다 뛰어나다」고 하니, 이제 진언이 법화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틀림없는」 결론이 되었다. 홍법의 지나친 주장은 버려도 좋다. 천태종의 수장이 스스로 진언의 우위를 인정했으니, 진언으로서는 그보다 강한 증거가 없다.

대성인은 여기서 이 일의 구조를 꿰뚫으신다. 일본에서 진언을 법화보다 위에 세우려 할 때, 가장 강하게 맞서야 할 적은 히에이산이었다.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는 천태종의 본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각이 그 히에이산 삼천 명의 입을 막아 버렸으니 진언종은 생각대로 되었다. 「그러므로 동사의 첫째가는 편은 자각대사보다 더한 이가 없다」. 진언의 총본산 동사에게 가장 큰 아군은 진언종 안의 누구도 아닌 천태좌주 자각이었다는 것이다. 이 역설이 「백천만억 배나 믿기 어려운」 까닭이다.

안연의 『교시쟁론』과 혜심의 『왕생요집』

대성인은 같은 구조를 선종과 정토종에서도 보신다. 정토와 선은 다른 나라에서는 퍼질 수 있었겠지만, 일본에서는 엔랴쿠사의 허락이 없으면 한없는 겁을 지나도 퍼질 수 없었다. 당시 히에이산은 새 종파의 성립을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에이산 제일의 고덕 안연이 『교시쟁론』에서 아홉 종의 승렬을 세우면서 제일 진언, 제이 선, 제삼 천태법화, 제사 화엄으로 정했다. 천태종의 대학자가 자기 종을 진언과 선 아래에 두었으니, 선종이 히에이산의 반대를 걱정할 까닭이 없어졌다. 「이 큰 그릇된 해석에 의지하여 선종은 일본국에 가득 차서 이미 나라가 망하려 하고 있다」.

안연에 대해 제19장은 「안연 화상이 조금 홍법을 꾸짖으려 했으나 다만 화엄종의 대목만 꾸짖는 것 같아서 도리어 법화경을 『대일경』 아래로 가라앉혀 버렸다」고 하였다. 안연은 홍법이 법화를 화엄 아래에 둔 것은 비판했지만, 진언이 법화보다 위라는 점은 자각을 따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그의 교판은 진언과 선을 천태 위에 두는 것이 되었다.

염불도 마찬가지다. 「법연의 염불종이 유행하여 한 나라를 잃게 하려는 인연은 혜심의 『왕생요집』 서문에서 시작되었다」. 제20장에서 법연이 「혜심 선덕보다 뛰어난 천태 · 진언의 지자가 말대에 있겠는가」라며 『왕생요집』의 서문을 들어 권유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히에이산 안에서 문을 연 세 사람
  • 자각(794~864 · 제3대 천태좌주)— 「진언은 법화경보다 뛰어나다」→진언이 생각대로 됨 · 「동사의 첫째가는 편」
  • 안연(히에이산 제일의 고덕)— 『교시쟁론』 아홉 종의 승렬: 제일 진언 · 제이 선 · 제삼 천태법화 · 제사 화엄→선종이 일본국에 가득 참
  • 혜심(942~1017)— 『왕생요집』의 서문→법연의 염불이 한 나라를 잃게 하는 인연
제30장「자각 · 안연 · 혜심 등은 법화경 · 전교대사라는 사자의 몸속의 세 벌레(師子の身の中の三虫)」견주어전교대사는 나라의 육종 학장들을 「여섯 벌레(六虫)」라 하였고, 대성인은 진언 · 선 · 정토의 원조를 「세 벌레(三虫)」라 하셨다
도표 9 · 사자 몸속의 세 벌레

사자 몸속의 벌레 — 『연화면경』의 비유

本文은 「사자 몸속의 벌레가 사자를 먹는다고 부처님께서 기록하신 것은 참으로 옳도다」로 맺는다. 이 비유는 『연화면경』에서 나왔다. 선시초 제30장은 그 경문을 이렇게 인용한다.

譬えば師子の命終せんに若しは空若しは地若しは水若しは陸所有の衆生敢て師子の身の宍を食わず唯師子自ら諸の虫を生じて自ら師子の宍を食うが如し

비유하면 사자가 목숨을 마쳤을 때 하늘이나 땅이나 물이나 뭍에 있는 모든 중생이 감히 사자의 살을 먹지 못하고, 오직 사자 스스로 여러 벌레를 내어 스스로 사자의 살을 먹는 것과 같다.

「선시초」 제30장, 285~286쪽

경은 이어서 부처의 법은 다른 자가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법 안의 악한 비구가 부처가 삼대 아승기겁에 걸쳐 쌓은 불법을 깨뜨린다고 한다. 사자는 살아서는 물론이요 죽어서도 다른 짐승이 감히 다가가지 못할 만큼 위엄이 있다. 그러나 그 몸속에서 생긴 작은 벌레에게는 속절없이 먹혀 버린다. 불법도 그렇다. 외도나 다른 종교가 아무리 공격해도 불법은 무너지지 않는다. 불법을 무너뜨리는 것은 불법 안에서, 그것도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나온다.

대성인은 이 비유를 선시초 제30장에서 체계적으로 쓰신다. 전교대사는 삼론 · 법상 · 화엄 등 일본의 학장들을 「여섯 벌레(六虫)」라 썼고, 대성인은 진언 · 선 · 정토의 원조를 「세 벌레(三虫)」라 이름하였으며, 또 천태종의 자각 · 안연 · 혜심 등은 「법화경 · 전교대사라는 사자의 몸속의 세 벌레」라 하셨다. 앞의 두 무리가 불교라는 큰 사자 안의 벌레라면, 뒤의 세 사람은 법화경이라는 사자, 전교대사라는 사자 바로 그 몸속의 벌레다. 이 장은 그 세 벌레가 각각 어떤 문을 열었는지를 보여 주고, 다음 두 장은 그 가운데 가장 무거운 자각의 일을 깊이 따진다.

「사자 몸속의 벌레」는 이 편의 요점이다. 바른 법을 무너뜨리는 가장 큰 힘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바른 법을 지켜야 할 자리에 선 사람의 변절에서 나온다.

자각의 최후에 관한 어서의 기록

이 장에는 자각에 관한 다른 어서의 말씀을 모아 둔다. 먼저 「삼대비법품승사」는 히에이산의 계법이 무너진 경위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叡山に座主始まつて第三・第四の慈覚・智証・存の外に本師伝教・義真に背きて理同事勝の狂言を本として我が山の戒法をあなづり戯論とわらいし故に、存の外に延暦寺の戒・清浄無染の中道の妙戒なりしが徒に土泥となりぬる事云うても余りあり歎きても何かはせん

히에이산에 좌주가 시작되어 제3 · 제4의 자각 · 지증이 뜻밖에도 본사 전교 · 의진을 등지고 이동사승의 미친 말을 근본으로 삼아 우리 산의 계법을 업신여기고 희론이라 비웃었으므로, 뜻밖에도 엔랴쿠사의 계가 청정무염한 중도의 묘계였던 것이 헛되이 흙탕이 되어 버린 일은 말해도 다함이 없고 탄식해도 어찌할 수 없다.

「삼대비법품승사」, 1023쪽

또 이 방법의 죄로 자각의 죽음의 모습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여러 어서에 보인다. 「보은초」에는 「死去の後は墓なくてやみぬ」(310쪽), 곧 죽은 뒤에는 무덤도 없이 끝났다고 하셨다. 「지카쿠대사사」에는 다음 말씀이 있다.

慈覚大師の御はかは・いづれのところに有りと申す事きこへず候、世間に云う御頭は出羽の国・立石寺に有り云云、いかにも此の事は頭と身とは別の所に有るか

자각대사의 무덤은 어느 곳에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세간에서는 머리는 데와 지방의 릿샤쿠지에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 일은 머리와 몸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인가.

「지카쿠대사사」, 1019쪽

그리고 같은 글은 「死の後の恥辱は悪人・愚人・誹謗正法の人招くわざわいなり」, 곧 죽은 뒤의 치욕은 악인 · 우인 · 정법을 비방한 사람이 부르는 재앙이라고 맺는다. 이러한 기록이 제27장에서 대성인이 자각의 「꿈」을 따지시는 대목의 배경이 된다.

제26장 자각이 본사를 어긴 허물
어서 280쪽 6행~281쪽 15행 · 第26章 慈覚の本師違背の失

본문

本文 · 一어서 280쪽 6~12행
本文 · 어서 원문

伝教大師は日本国にして十五年が間・天台真言等を自見せさせ給う生知の妙悟にて師なくしてさとらせ給いしかども、 世間の不審をはらさんがために漢土に亘りて天台真言の二宗を伝へ給いし時漢土の人人はやうやうの義ありしかども我が心には法華は真言にすぐれたりとをぼしめししゆへに真言宗の宗の名字をば削らせ給いて天台宗の止観・真言等かかせ給う、 十二年の年分得度の者二人ををかせ給い、重ねて止観院に法華経・金光明経・仁王経の三部を鎮護国家の三部と定めて宣旨を申し下し永代・日本国の第一の重宝・神璽・宝剣・内侍所とあがめさせ給いき、 叡山第一の座主・義真和尚・第二の座主・円澄大師までは此の義相違なし、

풀이

전교대사는 일본국에서 열다섯 해 동안 천태 · 진언 등을 스스로 보셨느니라. 나면서부터 아는 묘한 깨달음으로 스승 없이 깨달으셨으나, 세간의 의심을 풀기 위하여 한토에 건너가 천태 · 진언의 두 종을 전하셨을 때, 한토의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뜻이 있었으나 자기 마음에는 법화가 진언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셨던 까닭에 진언종이라는 종의 이름을 깎아 버리시고 「천태종의 지관 · 진언」 등이라 쓰셨느니라. 열두 해의 연분득도자(年分得度) 두 사람을 두시고, 거듭 지관원에서 법화경 · 금광명경 · 인왕경의 세 부를 진호국가의 삼부로 정하여 선지(宣旨)를 받아 내리시어, 영원히 일본국 제일의 보배인 신새(神璽) · 보검 · 나이시도코로(内侍所)처럼 받드셨느니라. 히에이산 제1대 좌주 의진 화상, 제2대 좌주 원징 대사까지는 이 뜻에 어긋남이 없었느니라.

本文 · 二어서 280쪽 12행 ~ 281쪽 2행
本文 · 어서 원문

第三の慈覚大師・御入唐・漢土にわたりて十年が間・顕密二道の勝劣を八箇の大徳にならひつたう、 又天台宗の人人・広修・惟蠲等にならはせ給いしかども心の内にをぼしけるは真言宗は天台宗には勝れたりけり、 我が師・伝教大師はいまだ此の事をばくはしく習せ給わざりけり漢土に久しくもわたらせ給わざりける故に此の法門はあらうちにみをはしけるやとをぼして日本国に帰朝し・叡山・東塔・止観院の西に総持院と申す大講堂を立て御本尊は金剛界の大日如来・此の御前にして大日経の善無畏の疏を本として金剛頂経の疏七巻・蘇悉地経の疏七巻・已上十四巻をつくる、 此の疏の肝心の釈に云く「教に二種有り一は顕示教謂く三乗教なり世俗と勝義と未だ円融せざる故に、 二は秘密教謂く一乗教なり世俗と勝義と一体にして融する故に、秘密教の中に亦二種有り一には理秘密の教諸の華厳般若維摩法華涅槃等なり但だ世俗と勝義との不二を説いて未だ真言密印の事を説かざる故に、 二には事理倶密教謂く大日経金剛頂経蘇悉地経等なり亦世俗と勝義との不二を説き亦真言密印の事を説く故に」等云云、 釈の心は法華経と真言の三部との勝劣を定めさせ給うに真言の三部経と法華経とは所詮の理は同じく一念三千の法門なり、 しかれども密印と真言等の事法は法華経かけてをはせず法華経は理秘密・真言の三部経は事理倶密なれば天地雲泥なりとかかれたり、

풀이

제3대 자각대사는 입당하시어 한토에 건너가 열 해 동안 현밀 두 길의 승렬을 여덟 대덕에게 배워 전하고, 또 천태종의 사람들인 광수 · 유견 등에게 배우셨으나, 마음속에 생각하시기를 「진언종은 천태종보다 뛰어나구나. 나의 스승 전교대사는 아직 이 일을 자세히 배우지 못하셨다. 한토에 오래 건너가 계시지 않았던 까닭에 이 법문은 대강만 보셨구나」 하시어, 일본국에 돌아와 히에이산 동탑 지관원의 서쪽에 총지원(総持院)이라는 큰 강당을 세우고 본존은 금강계의 대일여래로 하여, 이 앞에서 『대일경』의 선무외의 소를 근본으로 삼아 『금강정경소』 7권, 『소실지경소』 7권, 모두 14권을 지으셨느니라. 이 소의 간심이 되는 해석에 이르기를 「가르침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시교(顕示教)이니 이른바 삼승교이다. 세속과 승의가 아직 원융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은 비밀교(秘密教)이니 이른바 일승교이다. 세속과 승의가 한 몸으로 융합하기 때문이다. 비밀교 가운데 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비밀(理秘密)의 가르침이니 여러 화엄 · 반야 · 유마 · 법화 · 열반 등이다. 다만 세속과 승의가 둘이 아님을 설하고 아직 진언과 밀인(密印)의 일을 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은 사리구밀(事理倶密)의 가르침이니 이른바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 등이다. 또한 세속과 승의가 둘이 아님을 설하고 또한 진언과 밀인의 일을 설하기 때문이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해석의 뜻은, 법화경과 진언 삼부의 승렬을 정하심에 진언 삼부경과 법화경은 설하는 이치는 같아서 일념삼천의 법문이나, 밀인과 진언 등의 사법(事法)은 법화경에 빠져 있으니, 법화경은 이비밀이요 진언 삼부경은 사리구밀이므로 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의 차이라고 쓰셨느니라.

本文 · 三어서 281쪽 2~15행
本文 · 어서 원문

しかも此の筆は私の釈にはあらず善無畏三蔵の大日経の疏の心なりとをぼせどもなをなを二宗の勝劣不審にやありけん、 はた又他人の疑いをさんぜんとやをぼしけん、大師慈覚の伝に云く「大師二経の疏を造り功を成し已畢つて心中独り謂らく此の疏仏意に通ずるや否や若し仏意に通ぜざれば世に流伝せじ仍つて仏像の前に安置し七日七夜深誠を翹企し祈請を勤修す五日の五更に至つて夢らく正午に当つて日輪を仰ぎ見弓を以て之を射る其の箭日輪に当つて日輪即転動す夢覚めての後深く仏意に通達せりと悟り後世に伝うべし」等云云、 慈覚大師は本朝にしては伝教・弘法の両家を習いきわめ異朝にしては八大徳並に南天の宝月三蔵等に十年が間・最大事の秘法をきわめさせ給える上二経の疏をつくり了り重ねて本尊に祈請をなすに智慧の矢すでに中道の日輪にあたりてうちをどろかせ給い、 歓喜のあまりに仁明天王に宣旨を申しそへさせ給い・天台の座主を真言の官主となし真言の鎮護国家の三部とて今に四百余年が間・碩学稲麻のごとし渇仰竹葦に同じ、 されば桓武・伝教等の日本国・建立の寺塔は一宇もなく真言の寺となりぬ公家も武家も一同に真言師を召して師匠とあをぎ官をなし寺をあづけ給ふ、 仏事の木画の開眼供養は八宗一同に大日仏眼の印真言なり。

풀이

더구나 이 글은 사사로운 해석이 아니라 선무외 삼장의 『대일경소』의 뜻이라고 생각하셨으나, 그래도 여전히 두 종의 승렬이 미심쩍으셨던가, 혹은 또 다른 사람의 의심을 풀려고 생각하셨던가. 『자각대사전』에 이르기를 「대사가 두 경의 소를 지어 공을 이루고 나서 마음속으로 홀로 생각하기를, 이 소가 부처의 뜻에 통하는가 통하지 않는가. 만일 부처의 뜻에 통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유전시키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불상 앞에 안치하고 이레 낮 이레 밤 깊은 정성으로 발돋움하여 기청을 부지런히 닦았다. 닷새째 오경에 이르러 꿈꾸기를, 정오에 해를 우러러보고 활로 이를 쏘니 그 화살이 해에 맞아 해가 곧 흔들려 움직였다. 꿈에서 깬 뒤 깊이 부처의 뜻에 통달하였음을 깨닫고 후세에 전하리라 하였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자각대사는 본조에서는 전교 · 홍법 두 집안을 끝까지 배우고, 이국에서는 여덟 대덕과 남천축의 보월 삼장 등에게 열 해 동안 가장 큰 비법을 끝까지 배우신 위에 두 경의 소를 지어 마치고, 거듭 본존에게 기청하니 지혜의 화살이 이미 중도의 해에 맞았으므로 놀라시어, 기쁨에 넘쳐 닌묘 천황에게 선지를 청하여 덧붙이시고, 천태의 좌주를 진언의 관주(官主)로 삼고 진언의 진호국가 삼부라 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백여 년 동안 석학은 벼와 삼처럼 많고 우러름은 대와 갈대 같으니라. 그러므로 간무 천황 · 전교대사 등이 일본국에 세운 절과 탑은 한 채도 남김없이 진언의 절이 되었느니라. 공가도 무가도 한결같이 진언사를 불러 스승으로 우러르고 벼슬을 주고 절을 맡기시느니라. 불사인 목상 · 화상의 개안공양은 팔종이 한결같이 대일 · 불안의 인과 진언으로 하느니라.

어구 풀이

年分得度の者연분득도자
각 종에서 해마다 나라가 정한 정원에 따라 출가를 허락받는 자. 연분도자라고도 한다. 전교대사는 『산가학생식』에서 천태종의 승려는 출가 뒤 열두 해 동안 히에이산에 머물며 수행에 전념하도록 정하였다. 두 사람 가운데 지관업(止観業)은 법화경 등의 현교를 배우고 지관을 닦으며, 차나업(遮那業)은 밀교를 전공한다.
止観院지관원
일승지관원. 전교대사가 히에이산에 들어가 약사여래를 모신 작은 당을 세운 데서 시작한다. 이 약사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당 · 경장을 세워 약사당을 중당 · 근본중당이라 하였고, 뒤에 이 셋을 묶어 지관원이라 하였다.
鎮護国家の三部진호국가의 삼부
법화경 · 금광명경 · 인왕경. 전교대사가 지관원에서 강설하게 하여 나라를 지키는 세 경으로 정하였다.
神璽・宝剣・内侍所신새 · 보검 · 나이시도코로
황위의 표지인 세 가지 신기(곡옥 · 검 · 거울). 나이시도코로는 거울을 모신 곳으로 거울 자체를 가리킨다. 전교대사가 진호국가 삼부를 이처럼 나라의 가장 큰 보배로 받들었다는 뜻이다.
義真의진
(781~833) 전교대사의 제자. 통역으로 함께 입당하였다. 전교대사가 죽은 뒤 엔랴쿠사의 운영을 맡아 천장 원년(824) 초대 천태좌주가 되었다.
円澄원징
(772~837) 전교대사의 제자. 의진의 뒤를 이어 제2대 좌주가 되었다. 대성인은 「보은초」에서 전교대사의 가르침이 의진에게는 순수하게 전해졌으나 원징 때부터 반쯤 밀교가 들어와 흐려졌다고 하셨다.
八箇の大徳여덟 대덕
자각이 당에서 현밀을 배운 여덟 스승. 남천축 출신의 보월 삼장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広修광수
(771~843) 당의 천태종 승려. 지행존자라고도 한다. 도수 화상의 제자로 천태산 선림사에서 천태의 교관을 배웠다. 개성 5년(840) 히에이산의 엔사이가 제2대 좌주 원징의 천태 교학에 관한 질문 30조를 가지고 당에 오자 이에 답하였는데, 그 가운데 『대일경』은 오시교판에서 셋째 방등부의 경이라고 하였다.
惟蠲유견
광수의 고제로 국청사에 머물렀다. 원징의 질문에 광수와 함께 답하여 『대일경』을 역시 방등부에 속한다고 하였다. 이 문답을 「징당결(澄唐決)」이라 한다. 本文의 「등」에는 오대산 대화엄사에서 자각에게 지관을 가르친 지원(志遠)도 들어간다.
東塔동탑
히에이산 엔랴쿠사의 세 구역(동탑 · 서탑 · 요카와) 가운데 하나. 근본중당(일승지관원)을 비롯해 대강당 · 계단원 등이 있는 한 산의 중심이다.
総持院총지원
법화불정총지원. 엔랴쿠사 동탑의 본원. 자각이 인수 원년(851)에 세웠으며 대일여래를 본존으로 한다.
金剛頂経の疏・蘇悉地経の疏금강정경소 · 소실지경소
자각이 지은 『금강정경』의 주석 7권과 『소실지경』의 주석 7권. 이 두 소에서 현시교 · 비밀교, 이비밀 · 사리구밀의 교판을 세웠다.
大師慈覚の伝자각대사전
진적 친왕이 자각의 남은 제자들의 기록을 모아 엮고, 그 아들 미나모토노 히데아키라가 완성하였다고 한다.
宝月三蔵보월 삼장
남인도 출신으로 장안 청룡사에 머문 승려. 자각에게 밀교를 전한 여덟 대덕 가운데 한 사람이다.
仁明天王닌묘 천황
(810~850) 제54대 천황. 사가 천황의 둘째 아들.
大日仏眼の印真言대일 · 불안의 인과 진언
대일여래와 불안불모의 인과 진언. 목상 · 화상에 혼을 넣는 개안공양을 진언의 의식으로 행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전교대사의 뜻 — 「진언종」이라는 이름을 깎다

이 장은 자각을 따로 파하는 가운데 본사 전교대사를 어긴 허물을 밝힌다. 本文은 먼저 전교대사가 진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정리한다. 전교대사는 일본에서 열다섯 해 동안 천태와 진언의 가르침을 스스로 보았다. 나면서부터 아는 묘한 깨달음으로 스승 없이도 깨달았지만, 세간의 의심을 풀기 위해 당에 건너가 천태와 진언의 두 종을 전했다. 당시 중국에는 여러 견해가 있었으나 전교대사는 마음속으로 법화가 진언보다 뛰어나다고 보았다. 그래서 「진언종」이라는 종의 이름을 깎아 버리고 「천태종의 지관 · 진언」이라 썼다. 진언을 독립된 종으로 세우지 않고 천태종 안의 한 과목으로 두었다는 것이다.

이 뜻은 제도로도 나타났다. 전교대사는 열두 해 동안 히에이산에 머물며 수학하는 연분득도자 두 사람을 두었다. 하나는 지관업, 하나는 차나업이다. 그리고 지관원에서 법화경 · 금광명경 · 인왕경을 진호국가의 삼부로 정하여 선지를 받아 내리고, 이를 일본국 제일의 보배인 세 가지 신기처럼 받들었다. 나라를 지키는 근본은 법화경이었고, 밀교는 그 아래의 한 과목이었다. 제1대 좌주 의진과 제2대 좌주 원징까지는 이 뜻에 어긋나지 않았다.

語釈은 대성인이 「보은초」에서 전교대사의 가르침이 의진에게는 순수하게 전해졌으나 원징 때부터 반쯤 밀교가 섞여 흐려졌다고 보셨다고 전한다. 이 장의 本文이 원징까지는 어긋남이 없었다고 하신 것은 교판의 근본, 곧 법화가 진언보다 뛰어나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뒤집지는 않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전교대사가 법화를 진언보다 뛰어나다고 본 세 가지 증거

그런데 전교대사가 법화를 진언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자각 쪽에서는 전교대사가 진언을 자세히 배우지 못했다고 하고, 전교대사 스스로도 진언을 정면으로 논하지는 않았다(제22장). 니치칸 상인은 이 물음에 세 가지 증거를 든다.

첫째, 법화경을 종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법화수구』에 「浅きは易く深きは難しとは釈迦の所判なり、浅きを去って深きに就くは丈夫の心なり。天台大師は釈迦に信順して法華宗を助けて震旦に敷掦し、叡山の一家は天台に相承し法華宗を助けて日本に弘通す」라 하였다. 얕은 것은 쉽고 깊은 것은 어렵다는 것은 석가의 판정이요, 얕은 것을 버리고 깊은 것에 나아가는 것은 장부의 마음이다. 천태대사는 석가를 믿고 따라 법화종을 도와 중국에 폈고, 히에이산의 일가는 천태를 이어 법화종을 도와 일본에 편다. 니치칸 상인은 이 글이 『대일경』의 얕음을 버리고 법화경의 깊음에 나아가는 것을 종지로 삼았다는 뜻이니 승렬이 분명하다고 한다.

둘째, 『대일경』을 곁의 의지처(傍依)로 삼았기 때문이다. 『수호국계장』에 「いま山家所伝の円教宗の依経は、正には法華経及び無量義経に依り、傍には大涅槃、華厳、維摩等、般若甚深の諸大乗に説くところの円教」라 하였다. 산가가 전하는 원교종의 의지하는 경은 바르게는 법화경과 『무량의경』이요, 곁으로는 『대열반경』 · 화엄 · 유마 등 깊은 대승에 설한 원교다. 법화를 바른 의지처로, 『대일경』 등을 곁의 의지처로 삼았으니 승렬이 분명하다.

셋째, 진언종의 잘못을 간략히 파했기 때문이다. 『의빙집』 서문에 「新来の真言家は即ち筆受の相承を泯ぼし」, 곧 새로 들어온 진언가는 받아 적은 이의 상승을 없앴다고 하였다. 제22장에서 대성인이 「그 글의 서문에 진언종의 속임이 한 줄 보인다」고 하신 바로 그 한 줄이다. 더구나 『의빙집』은 『법화문구기』 권10에 실린 함광(含光)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이 점까지 보면 전교대사의 뜻은 분명하다.

자각의 스승들조차 『대일경』을 방등부에 두었다

本文은 자각이 당에서 「여덟 대덕」에게 현밀의 승렬을 배우고, 또 천태종의 광수 · 유견 등에게도 배웠다고 한다. 語釈이 전하는 광수 · 유견의 일은 이 장에서 특히 흥미롭다. 개성 5년(840), 히에이산의 엔사이가 제2대 좌주 원징이 낸 천태 교학에 관한 질문 30조를 가지고 당에 왔다. 전교대사 이후 일본 천태종에서는 천태 교학 안에서 밀교를 어디에 둘 것인가가 큰 과제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광수는 『대일경』이 오시교판의 셋째 방등부의 경이라고 답했고, 유견도 같은 물음에 방등부에 속한다고 답했다. 이 문답을 「징당결」이라 한다.

곧 자각이 당에서 배운 천태종의 스승들은 『대일경』을 법화경보다 훨씬 아래인 방등부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각은 마음속으로 「진언종은 천태종보다 뛰어나구나. 나의 스승 전교대사는 아직 이 일을 자세히 배우지 못하셨다. 당에 오래 계시지 않았으니 이 법문을 대강만 보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각은 천태의 스승에게서 천태의 판정을 듣고도, 진언의 스승에게서 들은 판정을 따랐다. 本文이 자각의 이 속생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신 것은, 이것이 바로 「본사를 어긴 허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총지원과 열네 권의 소

일본에 돌아온 자각은 히에이산 동탑 지관원의 서쪽에 총지원이라는 큰 강당을 세우고 금강계 대일여래를 본존으로 모셨다. 語釈은 총지원이 인수 원년(851)에 세워졌다고 한다. 전교대사가 세운 근본중당, 곧 일승지관원 바로 곁에 대일여래를 본존으로 하는 강당이 선 것이다. 그리고 자각은 그 앞에서 선무외의 『대일경소』를 근본으로 삼아 『금강정경소』 7권과 『소실지경소』 7권, 모두 14권을 지었다.

  1. 전교대사(767~822)
    • 804 입당 · 805 귀국
    • 「천태종의 지관 · 진언」 — 진언종의 이름을 깎음
    • 연분득도자 두 사람(지관업 · 차나업)
    진호국가 삼부 = 법화경 · 금광명경 · 인왕경
  2. 제1대 좌주 의진(824 좌주)
  3. 제2대 좌주 원징
    • — 「이 뜻에 어긋남이 없었다」
  4. 840 징당결
    • — 광수 · 유견: 『대일경』은 방등부
  5. 제3대 좌주 자각(794~864)
    • 838~847 입당 10년 — 여덟 대덕 · 보월 삼장
    • 851 총지원(본존 금강계 대일)
    • 『금강정경소』 7권 · 『소실지경소』 7권
    • 이비밀 · 사리구밀 = 이동사승
    • 해를 쏘는 꿈
    • 닌묘 천황의 선지 — 「천태의 좌주를 진언의 관주로」
  6. 뒤에 좌주가 된 지증(엔친)이 이 흐름을 이음
    • (「삼대비법품승사」는 「제3 · 제4의 자각 · 지증」이라 하심)
  7. 그 뒤 사백여 년
    • — 간무 · 전교가 세운 절과 탑이 모두 진언의 절이 됨
도표 10 · 히에이산이 진언으로 기운 연보

「현시교 · 비밀교」 — 이동사승의 교판

本文이 인용하는 소의 간심은 이렇다. 가르침에는 현시교와 비밀교가 있다. 현시교는 삼승교이니 세속과 승의가 아직 원융하지 않다. 비밀교는 일승교이니 세속과 승의가 한 몸으로 융합한다. 비밀교 안에 다시 둘이 있으니, 이비밀교는 화엄 · 반야 · 유마 · 법화 · 열반 등으로서 세속과 승의가 둘 아님은 설하나 진언과 밀인은 설하지 않는다. 사리구밀교는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으로서 세속과 승의의 불이를 설하고 진언과 밀인도 설한다.

대성인은 이 해석의 뜻을 이렇게 풀이하신다. 진언 삼부경과 법화경은 설하는 이치(所詮の理)는 같아서 일념삼천의 법문이다. 그러나 밀인과 진언 같은 사법이 법화경에는 빠져 있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이비밀, 진언 삼부경은 사리구밀이니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세속을 사(事)로, 승의를 이(理)로 보면, 자각이 말하려는 것은 바로 이동사승(理同事勝), 곧 이치는 같고 사에서 진언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제22장에서 선무외가 일행에게 「진언이 천태보다 뛰어난 점은 인과 진언뿐」이라 한 것이 일본에서 천태좌주의 손으로 교판이 된 것이다. 이 교판이 일념삼천을 진언에 옮겨 놓은 것이라는 점은 「일념삼천」 페이지의 논의와 함께 보면 더 분명하다.

자각의 교판
현시교(삼승교 · 세속과 승의가 원융하지 않음)
비밀교(일승교)
  • 이비밀(理秘密)화엄 · 반야 · 유마 · 법화 · 열반— 진언 · 밀인을 설하지 않음
  • 사리구밀(事理倶密)『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 진언 · 밀인을 설함
→ 「이치는 같고 사에서 뛰어나다(理同事勝)」
니치칸 상인의 여섯 논파
  1. ①진언 삼부경에는 개권현실 · 이승작불이 없고 십계호구도 없으니 이치가 같을 수 없다
  2. ②성불은 십계호구의 묘리에 의하며 인 · 진언은 성불하면 저절로 갖추어진다
  3. ③진언은 구원실성의 사를 설하지 않으니 사에서도 뛰어나지 않다
  4. ④전교 · 천태는 법화를 가장 뛰어나다고 했다 — 어찌 본사를 어기는가
  5. ⑤「전교는 1년만 있었다」 「천태 때는 『대일경』이 없었다」 해도 석가 · 다보 · 분신의 증명은 어찌할 것인가
  6. ⑥일대 불교에 「진언이 뛰어나고 법화가 못하다」는 글은 한 글자 한 구절도 없다
도표 11 · 자각의 교판과 이동사승의 논파

이동사승에 대한 여섯 논파

니치칸 상인은 「선시초 문단」에서 자각의 이동사승을 여섯 갈래로 논파한다.

첫째, 이치가 같다는 말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진언 삼부경에는 개권현실의 묘리가 설해져 있지 않다. 이승작불의 글도 뜻도 없다. 그러니 십계호구의 이치도 없다. 진언에 참된 묘리가 있을 리 없는데 어찌 법화와 이치가 같다고 하겠는가. 일념삼천의 이치는 법화경에만 있으며, 진언이 그것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일행이 천태의 법문을 『대일경소』에 옮겨 놓았기 때문일 뿐이다.

둘째, 중생의 성불은 오직 십계호구의 묘리에 의한다. 인과 진언이라는 겉의 형태는 성불한 뒤에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다. 십계호구의 묘리에 맞아 즉신성불하면 인과 진언은 저절로 갖추어진다. 성불은 했는데 인도 없고 진언도 없는 부처란, 벙어리 부처나 손발을 못 쓰는 부처와 같아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물어야 할 것은 십계호구가 있느냐 없느냐이지 인과 진언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만일 하나하나 다 설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경이 사에서 못하다고 한다면, 아함경에는 설해져 있으나 『대일경』에는 없는 것도 있으니 아함이 사에서 뛰어나다고 할 것인가.

셋째, 하물며 진언은 인과 진언은 설하지만 구원실성의 사를 설하지 않는다. 부처가 언제 성불했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사」가 없는데 어찌 사에서 뛰어나다고 하겠는가.

넷째, 전교대사는 법화경을 가장 뛰어난 경으로 삼았고 천태대사도 그러했다. 자각은 그 흐름을 이으면서 어찌 본사를 어기는가.

다섯째, 전교대사는 당에 1년밖에 없었으니 공부가 모자랐다거나, 천태대사 때는 『대일경』이 건너오지 않았으니 그 뛰어남을 몰랐다고 한다면, 석가 · 다보 · 분신의 여러 부처는 어떠한가. 이 부처들이 법화가 제일이라고 증명한 것도 거짓이라는 말인가.

여섯째, 석존 일대의 모든 가르침 가운데 진언이 뛰어나고 법화가 못하다는 글은 한 글자 한 구절도 없다.

해를 쏘는 꿈 — 『자각대사전』의 기록

히에이산 동탑 숲속의 큰 강당 지붕 위, 한낮 하늘 높이 뜬 해
그림 · 히에이산 동탑 숲속의 큰 강당 지붕 위, 한낮 하늘 높이 뜬 해

本文 셋째 단은 자각이 자기 소에 대해 품은 의심과 그것을 푼 꿈을 『자각대사전』에서 인용한다. 대성인은 자각이 이 해석을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선무외의 『대일경소』의 뜻이라고 여기면서도, 여전히 두 종의 승렬이 미심쩍었거나 다른 사람의 의심을 풀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신다. 『자각대사전』은 이렇게 전한다. 자각은 두 경의 소를 다 짓고 나서, 이 소가 부처의 뜻에 통하는지 통하지 않는지, 통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퍼뜨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소를 불상 앞에 두고 이레 낮 이레 밤 깊은 정성으로 기청했다. 닷새째 새벽(오경)에 꿈을 꾸었는데, 정오의 해를 우러러보고 활로 쏘자 화살이 해에 맞아 해가 흔들려 움직였다. 꿈에서 깨어난 뒤 자각은 깊이 부처의 뜻에 통달했다고 깨닫고 후세에 전하기로 했다. 이 대목은 「해는 동요하여 떨어졌다」로 풀 수 있다.

대성인은 이 일화를 자각의 전기에 실린 그대로 인용하신다. 자각은 일본에서는 전교 · 홍법 두 집안의 가르침을 다 배우고, 중국에서는 여덟 대덕과 남천축의 보월 삼장 등에게 열 해 동안 비법을 배웠으며, 두 경의 소를 짓고 거듭 본존에게 기청했다. 그리고 「지혜의 화살이 이미 중도의 해에 맞았다」고 여겨 크게 기뻐했다. 곧 「바른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착각하였다」는 것이다. 이 꿈이 과연 길몽인가 흉몽인가는 제27장의 주제가 된다. 대성인은 다른 곳에서도 이 꿈을 들어 자각을 「박쥐 새와 같아서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니며」 「법화경의 아버지를 먹고 법화경을 지니는 자의 어머니를 무는 것이니 해를 쏜다고 꿈에 본 것이 이것이다」라는 뜻으로 꾸짖으셨다(「보은초」, 310쪽).

천태의 좌주가 진언의 관주가 되다

꿈에서 확신을 얻은 자각은 기쁨에 넘쳐 닌묘 천황에게 선지를 청했다. 그 결과 「천태의 좌주를 진언의 관주로 삼고」, 진언의 세 경을 진호국가의 삼부라 했다. 전교대사가 법화경 · 금광명경 · 인왕경을 진호국가의 삼부로 정한 것을 생각하면, 자각은 스승이 세운 나라 수호의 근본을 진언으로 바꾸어 놓은 셈이다.

그 뒤 사백여 년 동안 석학은 벼와 삼처럼 많고, 이를 우러르는 자는 대와 갈대처럼 많았다. 간무 천황과 전교대사가 일본에 세운 절과 탑은 한 채도 남김없이 진언의 절이 되었다. 공가도 무가도 한결같이 진언사를 불러 스승으로 우러르고, 벼슬을 주고 절을 맡겼다. 불상과 불화에 혼을 넣는 개안공양조차 팔종이 모두 대일 · 불안의 인과 진언으로 하게 되었다. 이 마지막 사실, 곧 개안공양이 진언의 의식이 되었다는 것은 제27장에서 대성인이 「인과 진언이 없으면 목상 · 화상의 개안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어리석은 말」이라고 논파하시는 데로 이어진다.

이 장의 요점은 「본사 위배」에 있다. 자각의 잘못은 진언을 배운 데 있지 않다. 스승 전교대사가 분명히 세운 법화 제일의 뜻을, 스승이 「자세히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뒤집은 데 있다.

제27장 문답으로 귀결하여 자각을 파하다
어서 281쪽 16행~283쪽 6행 · 第27章 問答帰釈して慈覚を破す

본문

本文 · 一어서 281쪽 16행 ~ 282쪽 6행
本文 · 어서 원문

疑つて云く法華経を真言に勝ると申す人は此の釈をばいかがせん用うべきか又すつべきか、答う仏の未来を定めて云く「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竜樹菩薩の云く「修多羅に依れるは白論なり修多羅に依らざれば黒論なり」天台の云く「復修多羅と合せば録して之を用ゆ文無く義無きは信受すべからず」伝教大師云く「仏説に依憑して口伝を信ずること莫れ」等云云、 此等の経論釈のごときんば夢を本にはすべからずただついさして法華経と大日経との勝劣を分明に説きたらん経論の文こそたいせちに候はめ、 但印真言なくば木画の像の開眼の事・此れ又をこの事なり真言のなかりし已前には木画の開眼はなかりしか、 天竺・漢土・日本には真言宗已前の木画の像は或は行き或は説法し或は御物言あり、印・真言をもて仏を供養せしよりこのかた利生もかたがた失たるなり、 此れは常の論談の義なり、此の一事にをひては但し日蓮は分明の証拠を余所に引くべからず慈覚大師の御釈を仰いで信じて候なり。

풀이

의심하여 이르노라. 법화경이 진언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 해석을 어찌하겠는가. 쓸 것인가, 또 버릴 것인가. 답하노라. 부처님께서 미래를 정하여 말씀하시기를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하셨고, 용수보살은 「수다라(경)에 의지한 것은 백론(白論)이요 수다라에 의지하지 않은 것은 흑론(黒論)이다」 하였으며, 천태는 「또 수다라와 합하면 기록하여 이를 쓰고, 글도 없고 뜻도 없는 것은 믿고 받아서는 안 된다」 하였고, 전교대사는 「부처님의 설에 의지하고 구전을 믿지 말라」 하셨느니라. 이러한 경 · 논 · 석과 같다면 꿈을 근본으로 삼아서는 안 되느니라. 다만 곧바로 법화경과 『대일경』의 승렬을 분명히 설한 경론의 글이야말로 소중하리라. 다만 인과 진언이 없으면 목상 · 화상의 개안을 할 수 없다는 것, 이 또한 어리석은 일이니라. 진언이 없었던 이전에는 목상 · 화상의 개안이 없었던가. 천축 · 한토 · 일본에는 진언종 이전의 목상 · 화상이 혹은 걸어 다니고 혹은 설법하고 혹은 말씀을 하셨느니라. 인과 진언으로 부처를 공양하게 된 뒤로는 이익도 이리저리 사라졌느니라. 이것은 늘 논하여 온 뜻이니라. 이 한 가지 일에 대해서는 니치렌은 분명한 증거를 다른 데서 끌어올 필요가 없으니, 자각대사의 해석을 우러러 믿느니라.

本文 · 二어서 282쪽 6~15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云く何にと信ぜらるるや、答えて云く此の夢の根源は真言は法華経に勝ると造定めての御ゆめなり、 此の夢吉夢ならば慈覚大師の合せさせ給うがごとく真言勝るべし、但日輪を射るとゆめにみたるは吉夢なりというべきか、 内典五千七千余巻外典三千余巻の中に日を射るとゆめに見て吉夢なる証拠をうけ給わるべし、少少此れより出し申さん阿闍世王は天より月落るとゆめにみて耆婆大臣に合せさせ給しかば大臣合せて云く仏の御入滅なり須抜多羅天より日落るとゆめにみる我とあわせて云く仏の御入滅なり、 修羅は帝釈と合戦の時まづ日月をいたてまつる、夏の桀・殷の紂と申せし悪王は常に日をいて身をほろぼし国をやぶる、 摩耶夫人は日をはらむとゆめにみて悉達太子をうませ給う、かるがゆへに仏のわらわなをば日種という、 日本国と申すは天照太神の日天にてましますゆへなり、されば此のゆめは天照太神・伝教大師・釈迦仏・法華経をいたてまつれる矢にてこそ二部の疏は候なれ、 日蓮は愚癡の者なれば経論もしらず但此の夢をもつて法華経に真言すぐれたりと申す人は今生には国をほろぼし家を失ひ後生にはあび地獄に入るべしとはしりて候、

풀이

묻노라. 어떻게 믿으시는가. 답하노라. 이 꿈의 근원은 진언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지어 정한 뒤의 꿈이니라. 이 꿈이 길몽이라면 자각대사가 풀이하신 대로 진언이 뛰어날 것이니라. 다만 해를 쏜다고 꿈에 본 것을 길몽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내전 오천 · 칠천여 권과 외전 삼천여 권 가운데 해를 쏜다고 꿈에 보고 길몽이었다는 증거를 들려주기 바라노라. 조금 이쪽에서 들어 보이리라. 아사세왕은 하늘에서 달이 떨어지는 꿈을 꾸고 기바 대신에게 풀이하게 하셨더니 대신이 풀이하여 「부처님의 입멸이옵니다」 하였느니라. 수발타라는 하늘에서 해가 떨어지는 꿈을 꾸고 스스로 풀이하여 「부처님의 입멸이다」 하였느니라. 수라는 제석과 싸울 때 먼저 해와 달을 쏘느니라. 하나라의 걸, 은나라의 주라는 악왕은 늘 해를 쏘아 몸을 망치고 나라를 무너뜨렸느니라. 마야부인은 해를 잉태하는 꿈을 꾸고 실달태자를 낳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의 어릴 적 이름을 일종(日種)이라 하느니라. 일본국이라 하는 것은 천조태신이 일천(日天)이시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이 꿈은 천조태신 · 전교대사 · 석가불 · 법화경을 쏜 화살이야말로 두 부의 소이니라. 니치렌은 어리석은 자이므로 경론도 모르나, 다만 이 꿈으로써 법화경보다 진언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은 금생에는 나라를 망치고 집을 잃으며 후생에는 아비지옥에 들어갈 것임을 알고 있느니라.

本文 · 三어서 282쪽 15행 ~ 283쪽 6행
本文 · 어서 원문

今現証あるべし日本国と蒙古との合戦に一切の真言師の調伏を行ひ候へば日本かちて候ならば真言はいみじかりけりとおもひ候なん、 但し承久の合戦にそこばくの真言師のいのり候しが調伏せられ給し権の大夫殿はかたせ給い、後鳥羽院は隠岐の国へ御子の天子は佐渡の嶋嶋へ調伏しやりまいらせ候いぬ、 結句は野干のなきの身にをうなるやうに還著於本人の経文にすこしもたがはず叡山の三千人かまくらにせめられて一同にしたがいはてぬ、 しかるに又かまくら日本を失はんといのるかと申すなり、これをよくよくしる人は一閻浮提一人の智人なるべしよくよく知るべきか。 今はかまくらの世さかんなるゆへに東寺・天台・園城・七寺の真言師等と並びに自立をわすれたる法華宗の謗法の人人・関東にをちくだりて頭をかたぶけひざをかがめやうやうに武士の心をとりて、 諸寺・諸山の別当となり長吏となりて王位を失いし悪法をとりいだして国土安穏といのれば、将軍家並びに所従の侍已下は国土の安穏なるべき事なんめりとうちをもひて有るほどに法華経を失う大禍の僧どもを用いらるれば国定めてほろびなん、

풀이

이제 현증이 있으리라. 일본국과 몽골의 싸움에 모든 진언사의 조복(調伏)을 행하는데, 일본이 이긴다면 진언은 훌륭하다고 생각하리라. 다만 승구(承久)의 합전에 수많은 진언사가 기도하였으나, 조복당하신 곤노다유도노(権の大夫殿)는 이기시고, 고토바인은 오키 지방으로, 그 아드님인 천자는 사도의 섬들로 조복하여 보내 드리고 말았느니라. 결국은 야간(野干)이 울어서 제 몸에 화를 부르는 것처럼, 「도리어 본인에게 붙는다(還著於本人)」는 경문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히에이산 삼천 명이 가마쿠라에 공격당하여 한결같이 굴복하고 말았느니라. 그런데 또 가마쿠라가 일본을 잃으라고 기도하는가 하고 말하는 것이니라.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일염부제의 한 사람의 지인일 것이니, 잘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가마쿠라의 세상이 성한 까닭에 동사 · 천태 · 온조사 · 나라 칠대사의 진언사들과 아울러 자기 본분을 잊은 법화종의 방법의 사람들이 간토로 내려와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히며 여러 가지로 무사의 비위를 맞추어 여러 절 · 여러 산의 별당이 되고 장리가 되어, 왕위를 잃게 한 악한 법을 꺼내어 국토가 안온하라고 기도하니, 쇼군가와 그 아래의 무사들은 국토가 안온해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법화경을 잃게 하는 큰 화의 승려들을 쓰시니 나라는 반드시 망하리라.

本文 셋째 단 가운데 「그런데 또 가마쿠라가 일본을 잃으라고 기도하는가 하고 말하는 것이니라.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일염부제의 한 사람의 지인일 것이니, 잘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しかるに又かまくら日本を失はんといのるかと申すなり、これをよくよくしる人は一閻浮提一人の智人なるべしよくよく知るべきか)의 대목은 어서전집 본문에는 실려 있지 않고, 다른 전적에 인용된 글이 있어 덧붙인 것이라 한다.

어구 풀이

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열반경』의 사의(四依) 가운데 첫째. 부처가 멸후의 불도 수행의 기준을 보이신 말로, 사람의 권위가 아니라 법(경문)에 따라 판단하라는 것이다.
修多羅に依れるは白論なり修多羅に依らざれば黒論なり경에 의지한 것은 백론, 의지하지 않은 것은 흑론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 제7 분별법사품 제13의 말. 수다라는 경전이다. 경전에 근거한 논은 바른 논(백론), 근거하지 않은 논은 그릇된 논(흑론)이다.
復修多羅と合せば録して之を用ゆ文無く義無きは信受すべからず수다라와 합하면 기록하여 쓰고 글도 뜻도 없는 것은 믿지 말라
천태대사의 『법화현의』 권10 상의 글. 경론과 맞는 뜻은 쓰되 경론에 문증도 뜻도 없는 것은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仏説に依憑して口伝を信ずること莫れ불설에 의지하고 구전을 믿지 말라
전교대사의 『법화수구』 하권의 글. 「불설경명시의승」 제2의 끝에 「참으로 바라건대 일승의 군자는 불설에 의지하고 구전을 믿지 말며, 참된 글을 우러러 믿고 거짓된 해석을 믿지 말라」는 뜻의 글이 있다.
木画の像の開眼목상 · 화상의 개안
새로 만든 목상 · 화상에 혼을 넣는 의식. 本文에 따르면 당시에는 팔종이 모두 진언의 인과 진언으로 이를 행하였다.
或は行き或は説法し或は御物言あり혹은 걷고 혹은 설법하고 혹은 말씀함
「호렌초」에 「우전대왕의 목상은 걸음을 옮기고 마등의 화상은 일체경을 설하셨다」는 뜻의 글이 있다. 또 엔슈 우타데라(鵜田寺)의 약사상은 물 밑에서 「나를 건져라, 나를 건져라」 하고 소리를 내어 발굴되었다고 전한다.
阿闍世王아사세왕
마가다국의 왕. 하늘에서 달이 떨어지는 꿈을 꾸고 기바 대신에게 묻자, 기바는 부처의 입멸을 알리는 꿈이라고 풀이하였다고 本文은 전한다.
須抜多羅수발타라
수밧다(수바드라). 부처의 입멸 때 교화를 받은 마지막 제자. 『대지도론』 권3에 따르면 어느 밤, 모든 사람이 눈을 잃고 벌거벗은 채 어둠 속에 서 있으며 해가 떨어지고 대지가 갈라지며 큰 바다가 마르고 큰 바람이 수미산을 흩어 버리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 부처가 오늘 밤 열반에 드신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출가하여 그날 밤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修羅수라
아수라. 제석천과 늘 싸우는 신으로, 싸울 때 먼저 해와 달을 쏜다고 本文은 전한다.
夏の桀・殷の紂하나라의 걸 · 은나라의 주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폭군. 本文은 이들이 늘 해를 쏘아 몸을 망치고 나라를 무너뜨렸다고 한다.
摩耶夫人마야부인
카필라국 정반왕의 비이자 석존의 생모. 석존이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세상을 떠나 동생 마하파사파제가 석존을 길렀다고 전한다. 여섯 상아의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였다는 전승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本文은 해를 잉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하신다.
日種일종
고대 인도의 여러 왕가는 그 조상신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개 해의 신이나 달의 신에 이르는데, 앞의 것을 일종, 뒤의 것을 월종이라 한다. 석가족은 일종이라 전한다.
権の大夫殿곤노다유도노
호조 요시토키. 건보 5년(1217) 우경권대부가 된 데서 이렇게 불린다. 승구의 난(1221)에서 막부군을 이끌어 조정군을 이겼다.
野干のなきの身にをうなる야간이 울어 제 몸에 화를 부름
야간은 시르갈라의 음사로 여우를 닮은 짐승, 곧 자칼이다. 『번역명의집』 권2에 여우와 비슷하나 작고 무리 지어 다니며 밤에 이리처럼 운다는 뜻의 글이 있다. 일본에는 살지 않아 여우의 다른 이름으로 쓰였다. 밤에 울기 때문에 도리어 다른 짐승에게 들켜 잡아먹힌다는 데서, 진언의 그릇된 법으로 기도하면 도리어 스스로 화를 부른다는 비유로 쓰셨다.
還著於本人환착어본인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의 글. 「도리어 본인에게 붙는다」. 법화경의 행자를 저주나 독약으로 해치려는 자는 도리어 자기 몸에 그 해를 입는다는 뜻이다. 대성인은 승구의 난 때 상황 쪽이 진언의 기도를 써서 패한 것을 이 도리로 보시고, 몽골 내습 앞에서 조정과 막부가 진언사에게 조복 기도를 시키는 것도 망국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別当・長吏별당 · 장리
큰 절의 사무를 총괄하는 승직. 진언사들이 가마쿠라 무사의 비위를 맞추어 여러 절의 높은 자리를 얻었다는 뜻이다.

「이 해석을 쓸 것인가 버릴 것인가」 — 판단의 네 가지 기준

이 장은 자각을 따로 파하는 마지막 장이다. 이 장은 문답으로 해석을 귀결시켜 자각을 파한다. 물음은 단도직입적이다. 법화경이 진언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각의 이 해석을, 그것도 꿈으로 확증까지 받았다는 해석을 어찌할 것인가. 쓸 것인가, 버릴 것인가.

대성인은 답의 첫머리에 네 개의 기준을 나란히 세우신다. 부처는 『열반경』에서 미래를 정하여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하셨다. 용수보살은 『십주비바사론』에서 「경에 의지한 것은 백론이요, 경에 의지하지 않은 것은 흑론」이라 하였다. 천태대사는 『법화현의』에서 「경과 합하면 기록하여 쓰고, 글도 뜻도 없는 것은 믿지 말라」 하였다. 전교대사는 『법화수구』에서 「불설에 의지하고 구전을 믿지 말라」 하였다. 부처 · 논사 · 인사의 세 층위가 모두 같은 말을 한다. 판단의 근거는 경문이지, 사람의 권위나 체험이나 전승이 아니다.

경· 부처(『열반경』)「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
논· 용수(『십주비바사론』)「경에 의지한 것은 백론, 의지하지 않은 것은 흑론」修多羅に依れるは白論なり修多羅に依らざれば黒論なり
석· 천태(『법화현의』)「경과 합하면 쓰고 글도 뜻도 없는 것은 믿지 말라」文無く義無きは信受すべからず
석· 전교(『법화수구』)「불설에 의지하고 구전을 믿지 말라」仏説に依憑して口伝を信ずること莫れ
→ 결론「꿈을 근본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夢を本にはすべからず
삼증으로 정리하면
  • 문증(경문)
  • 이증(도리 — 일념삼천)
  • 현증(공덕과 벌)

— 법화경이 제일, 진언은 일곱 겹으로 못함

도표 12 · 무엇으로 법의 승렬을 정하는가

이 네 기준에 비추면 결론은 분명하다. 「꿈을 근본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법화경과 『대일경』의 승렬을 분명히 설한 경론의 글이다. 이것을 종교의 우열을 정하는 기준으로 다시 정리해 보자. 종교의 승렬은 꿈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문(문증)과 도리(이증)와 현증에 의해서만 정해진다. 석존 일대의 경전으로 보아도, 일념삼천의 도리로 보아도, 공덕과 벌이라는 현증으로 보아도 법화경이 가장 뛰어나며, 진언 등은 일곱 겹이나 못하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자세히 살펴 온 바다.

자각의 꿈은 이 세 증 가운데 어디에도 서지 못한다. 꿈은 경문이 아니고, 꿈은 도리가 아니며, 꿈은 다른 사람이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의 결과도 아니다. 그런데 대성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신다. 「이 한 가지 일에 대해서는 니치렌은 분명한 증거를 다른 데서 끌어올 필요가 없으니, 자각대사의 해석을 우러러 믿는다」. 자각의 꿈을 근거로 삼지 말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바로 그 꿈을 자각의 잘못을 증명하는 증거로 삼으시겠다는 것이다. 이 역설이 이 장의 묘미다.

목상 · 화상의 개안 — 진언 이전의 불상은 혼이 없었는가

그 전에 대성인은 진언 쪽의 또 다른 주장 하나를 정리하신다. 인과 진언이 없으면 목상 · 화상에 혼을 넣는 개안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제26장 끝에서 보았듯 당시에는 팔종이 모두 대일 · 불안의 인과 진언으로 개안공양을 했다. 대성인은 이것을 「어리석은 일」이라 하신다. 그렇다면 진언이 없던 때에는 개안이 없었다는 말인가. 오히려 인도 · 중국 · 일본에는 진언 이전의 목상 · 화상이 걷고 설법하고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語釈은 그 예로 「호렌초」의 「優填大王の木像は歩をなし摩騰の画像は一切経を説き給ふ」, 곧 우전대왕의 목상은 걸음을 옮기고 마등의 화상은 일체경을 설했다는 말씀을 들고, 엔슈 우타데라의 약사상이 물 밑에서 「나를 건져라」 하고 소리를 내어 발굴되었다는 전승을 소개한다. 「호렌초」는 그런 큰 덕을 지닌 부처이기에 멸후에 만든 목상 · 화상도 불가사의한 힘을 갖추었다고 하신다. 그런데 本文은 인과 진언으로 부처를 공양하게 된 뒤로 「이익도 이리저리 사라졌다」고 한다.

이 대목은 대성인의 불법에서 목상 · 화상이 어떻게 생신의 부처가 되는가라는 문제로 넓혀 볼 수 있다.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国土世間と申すは草木世間なり、草木世間と申すは五色のゑのぐは草木なり画像これより起る、木と申すは木像是より出来す、此の画木に魂魄と申す神を入るる事は法華経の力なり天台大師のさとりなり、此の法門は衆生にて申せば即身成仏といはれ画木にて申せば草木成仏と申すなり

국토세간이란 초목세간이다. 초목세간이란 오색의 물감은 초목이니 화상은 여기서 일어나고, 나무란 목상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이 그림과 나무에 혼백이라는 신(神)을 넣는 것은 법화경의 힘이요 천태대사의 깨달음이다. 이 법문은 중생으로 말하면 즉신성불이라 하고, 그림과 나무로 말하면 초목성불이라 한다.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 1145쪽

목상 · 화상에 혼을 넣는 것은 인과 진언이 아니라 법화경의 힘, 곧 일념삼천의 법문이다.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이 「법화경」은 수량품 문저의 본존이다. 그 근거로 「관심의 본존초」의 「詮ずる所は一念三千の仏種に非ずんば有情の成仏・木画二像の本尊は有名無実なり」(246쪽), 곧 결국 일념삼천의 불종이 아니면 유정의 성불도 목상 · 화상 두 가지 본존도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다는 말씀과, 「개목초」의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느니라」(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 189쪽)를 들 수 있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만 초목성불도, 목상 · 화상의 성불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상 · 화상이 걷고 설법하는 일이 일어나느냐는 물음이 생긴다. 본존의 공덕이란 범부를 한 사람도 남김없이 즉신성불하게 하는 큰 공덕이며, 불상이 걷거나 설법한다 해도 정작 괴로워하는 중생에게 공덕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관심의 본존초」가 묘락대사의 해석을 끌어 「一身一念法界に遍し」(247쪽), 곧 한 몸 한 생각이 법계에 두루한다고 하신 것처럼, 사의 일념삼천의 본존에 의해 범부도 즉신성불의 큰 이익을 얻어 그 한 몸 한 생각이 온 우주에 두루한다. 그러므로 죽은 조상도 성불하게 할 수 있으며, 삼대비법의 본존의 참된 법력 · 불력에 의해 전 인류의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쌓을 수 있다.

꿈과 깨어 있음 — 꿈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자각의 꿈을 다루기에 앞서 불법에서 꿈을 어떻게 보는지를 정리해 두자. 꿈에는 실체가 없으므로 불법은 미혹을 꿈에, 깨달음을 깨어 있음에 비유한다. 「당체의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人夢に種種の善悪の業を見・夢覚めて後に之を思えば我が一心に見る所の夢なるが如し、一心は法性真如の一理なり夢の善悪は迷悟の無明法性なり」(510쪽). 사람이 꿈에 여러 가지 선악의 업을 보고 깨어난 뒤에 생각하면 자기의 한마음이 본 꿈인 것과 같다. 한마음은 법성진여의 한 이치요, 꿈의 선악은 미오(迷悟)의 무명과 법성이다. 이로 보면 꿈을 버리고 깨어 있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더 근본에서 논하면 꿈과 깨어 있음은 그 체가 하나요, 무명과 법성도 체가 하나다.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은 이를 더 밀고 나간다. 「夢の時の心を迷いに譬え寤の時の心を悟りに譬う」, 곧 꿈꿀 때의 마음을 미혹에, 깨어 있을 때의 마음을 깨달음에 비유하며, 구계의 생사의 꿈을 보는 내 마음도 불계 상주의 깨어 있는 마음도 다르지 않고, 꿈을 보는 곳이 깨어 있는 곳과 바뀌지 않으며 심법도 장소도 다르지 않지만 「夢は皆虚事なり寤は皆実事なり」, 꿈은 모두 헛된 일이요 깨어 있음은 모두 참된 일이라 하신다(566쪽).

그렇다고 꿈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다. 법화경 안락행품은 법을 지니는 자의 공덕을 「若しは夢の中に於いても 但だ妙なる事を見ん」, 꿈속에서도 다만 묘한 일을 보리라고 설한다. 꿈에 십신에 들고 십주 · 십행 · 십회향 · 십지로 나아가 마침내 묘각의 자리에 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공덕을 받아 생활이 공덕으로 가득하게 되면 그런 행복한 꿈을 꾸게 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반대로 방법을 범하면 불행해지고, 불행해지면 불행한 꿈만 꾼다. 「개목초」의 「いたうの大悪人ならざる者が正法を誹謗すれば即時に夢みて・ひるがへる心生ず」(231쪽)는 『열반경』에 설해진 원리로, 지나친 대악인이 아닌 자가 정법을 비방하면 곧 꿈을 꾸고 마음을 돌이키게 된다는 것이다. 꿈은 그 사람의 생명의 상태를 비추는 거울일 수는 있어도, 법의 승렬을 정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

해를 쏘는 꿈은 길몽인가

이제 대성인은 자각의 꿈 자체를 따지신다. 이 꿈은 진언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지어 정한 뒤」의 꿈이다.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그것을 확인받으려고 기청하여 꾼 꿈이다. 이 꿈이 길몽이라면 자각의 풀이대로 진언이 뛰어날 것이다. 그러나 해를 쏘는 꿈을 길몽이라 할 수 있는가. 내전 오천 · 칠천여 권, 외전 삼천여 권 가운데 해를 쏘는 꿈이 길몽이었다는 증거를 하나라도 대 보라고 대성인은 물으신다.

그리고 거꾸로 해와 달에 관한 꿈과 일의 예를 드신다. 아사세왕은 하늘에서 달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고, 기바 대신은 이를 부처의 입멸이라고 풀이했다. 수발타라는 하늘에서 해가 떨어지는 꿈을 꾸고 스스로 부처의 입멸이라고 풀이했다. 語釈이 전하는 『대지도론』의 기록에서 수발타라의 꿈은 모든 사람이 눈을 잃고 벌거벗은 채 어둠 속에 서 있고, 해가 떨어지고 대지가 갈라지며 큰 바다가 마르는 꿈이었다. 아수라는 제석과 싸울 때 먼저 해와 달을 쏜다. 하나라의 걸, 은나라의 주라는 악왕은 늘 해를 쏘아 몸을 망치고 나라를 무너뜨렸다. 해를 쏘는 것은 부처의 입멸, 신들에 대한 반역, 폭군의 망국과 이어지는 일이다.

한편 마야부인은 해를 잉태하는 꿈을 꾸고 실달태자를 낳았고, 그래서 부처의 어릴 적 이름을 일종이라 한다. 語釈은 고대 인도의 왕가들이 해의 신과 달의 신에서 비롯한다고 하여 일종 · 월종으로 나뉘었고 석가족은 일종이라 전한다고 설명한다. 해는 곧 부처다. 또 「일본국」이라는 이름은 천조태신이 일천(日天)이시기 때문이다. 해는 곧 이 나라다.

흉
  • 아사세왕— 하늘에서 달이 떨어지는 꿈 → 기바 대신 「부처님의 입멸」
  • 수발타라— 하늘에서 해가 떨어지는 꿈 → 스스로 「부처님의 입멸」
  • 아수라— 제석과 싸울 때 먼저 해와 달을 쏨
  • 하의 걸 · 은의 주— 늘 해를 쏘아 몸을 망치고 나라를 무너뜨림
길
  • 마야부인— 해를 잉태하는 꿈 → 실달태자 · 부처의 어릴 적 이름 「일종(日種)」
  • 「일본국」— 천조태신이 일천이시기 때문
자각의 꿈정오의 해를 쏘아 맞힘→「천조태신 · 전교대사 · 석가불 · 법화경을 쏜 화살이야말로 두 부의 소」天照太神・伝教大師・釈迦仏・法華経をいたてまつれる矢にてこそ二部の疏は候なれ
도표 13 · 해와 달의 꿈 — 길한가 흉한가

결론은 무겁다. 「이 꿈은 천조태신 · 전교대사 · 석가불 · 법화경을 쏜 화살이야말로 두 부의 소」다. 풀어 말하면, 자각의 꿈은 천조태신 · 전교대사 · 석가불 · 법화경을 쏘는 화살이며, 그가 지은 두 부의 소가 곧 법화경을 쏘는 화살이라는 것이다. 해가 부처요 법화경이요 전교대사요 일본국이라면, 해를 쏘아 맞혔다는 꿈은 자각의 소가 그 모두를 쏘아 맞혔다는 뜻이 된다. 대성인이 「자각대사의 해석을 우러러 믿는다」고 하신 뜻이 여기서 드러난다. 다른 증거를 끌어올 필요가 없다. 자각 자신이 기록한 꿈이 자각의 소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꿈은 흉몽 가운데서도 큰 흉몽이다. 해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는 꿈을 진언이 바르다는 증거로 삼는 것은 보통의 판단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성인은 겸손하게 「니치렌은 어리석은 자이므로 경론도 모르나」라고 하시면서, 이 꿈을 근거로 법화경보다 진언이 뛰어나다고 하는 사람은 금생에는 나라를 망치고 집을 잃으며 후생에는 아비지옥에 들어갈 것임을 「알고 있다」고 단언하신다.

승구의 난 — 「도리어 본인에게 붙는다」

本文 셋째 단에서 대성인은 그 「나라를 망친다」는 말을 현증으로 뒷받침하신다. 「이제 현증이 있으리라」. 지금 일본은 몽골과 싸우려 하고 있고, 모든 진언사가 적국 조복의 기도를 행하고 있다. 만일 일본이 이긴다면 사람들은 진언이 훌륭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선례가 있다. 승구의 합전이다.

승구 3년(1221), 고토바 상황은 가마쿠라 막부의 호조 요시토키를 치려고 군사를 일으켰고, 그때 수많은 진언사가 요시토키를 조복하는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결과는 거꾸로였다. 조복당한 곤노다유도노, 곧 요시토키는 이겼고, 기도를 올린 쪽의 고토바인은 오키로, 그 아들인 천자는 사도 등의 섬으로 유배되었다. 대성인은 이것을 「조복하여 보내 드리고 말았다」고 표현하신다. 남을 조복하려던 기도가 자기를 섬으로 보내는 조복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대성인은 두 비유로 꿰뚫으신다. 하나는 야간, 곧 자칼이 밤에 울어 제 위치를 알리는 바람에 도리어 다른 짐승에게 잡아먹힌다는 비유다. 또 하나는 법화경 보문품의 「도리어 본인에게 붙는다(還著於本人)」는 경문이다. 법화경의 행자를 저주나 독약으로 해치려는 자는 도리어 그 해를 자기가 입는다. 승구의 난에서 히에이산 삼천 대중은 가마쿠라를 망하게 하려고 기도했다가 도리어 가마쿠라에 공격당해 한결같이 굴복했다. 제20장 끝에서 「모두 간토에 멸망당하였다」고 하신 그 일이다.

승구의 합전(1221)조정 쪽 — 수많은 진언사가 곤노다유도노(호조 요시토키) 조복을 기도→요시토키가 이김고토바인은 오키로, 아드님 천자는 사도의 섬들로→「조복하여 보내 드리고 말았다」히에이산 삼천 명은 가마쿠라에 굴복
원리야간이 울어 제 몸에 화를 부름「도리어 본인에게 붙는다(還著於本人)」(법화경 보문품)
지금: 몽골과의 싸움— 가마쿠라가 「왕위를 잃게 한 악한 법」으로 국토 안온을 기도→「나라는 반드시 망하리라(国定めてほろびなん)」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일염부제의 한 사람의 지인」
도표 14 · 승구의 선례와 몽골 앞의 기도

「일염부제의 한 사람의 지인」

그리고 대성인은 묻으신다. 그런데 이제 가마쿠라가 일본을 잃으라고 기도하는 것인가. 승구의 난에서 조정을 망하게 한 바로 그 진언의 기도를, 이제 가마쿠라가 몽골을 물리친다며 쓰고 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일염부제의 한 사람의 지인일 것이다」.

이 「일염부제의 한 사람의 지인」을 깊이 읽어 보자. 「개목초」는 「無眼の者・一眼の者・邪見の者は末法の始の三類を見るべからず一分の仏眼を得るもの此れをしるべし」(229쪽), 곧 눈이 없는 자 · 한 눈인 자 · 사견의 자는 말법 초의 삼류를 보지 못하며 한 분의 불안을 얻은 자가 이를 알 것이라 하셨다. 「지카쿠대사사」는 「三千年に一度花開くなる優曇花は転輪聖王此れを見る。究竟円満の仏にならざらんより外は法華経の御敵は見しらさ(不知)んなり、一乗のかたき夢のごとく勘へ出して候」(1019쪽), 곧 삼천 년에 한 번 피는 우담화는 전륜성왕이 보며, 구경원만한 부처가 아니고서는 법화경의 적을 알아보지 못할 것인데 일승의 적을 꿈처럼 생각해 내었다고 하셨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이 말씀들의 뜻을 깊이 살피면, 삼류의 적인을 알고 드러내고 그것을 물리치신 「일염부제의 한 사람의 지인」이란 말법의 어본불의 다른 이름이다. 자각이 꿈에 의지하여 해를 쏘았다면, 대성인은 경문의 눈으로 그 꿈의 정체를 꿰뚫어 보셨다. 이 「지인」의 주제는 선시초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 — 지인 · 성인 · 대인」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가마쿠라로 내려간 진언사들

本文의 마지막 단은 당시의 현실을 그린다. 지금은 가마쿠라의 세상이 성하므로, 동사 · 천태 · 온조사 · 나라 칠대사의 진언사들과 자기 본분을 잊은 천태법화종의 방법의 사람들이 간토로 내려와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혀 무사들의 비위를 맞추고, 여러 절과 산의 별당 · 장리가 되었다. 그리고 「왕위를 잃게 한 악한 법」, 곧 승구의 난에서 조정을 망하게 한 진언의 기도를 꺼내어 국토 안온을 기도한다. 쇼군가와 그 아래 무사들은 그러면 나라가 편안해지리라 여기지만, 법화경을 잃게 하는 큰 화의 승려들을 쓰고 있으니 「나라는 반드시 망하리라」.

「자기 본분을 잊은 법화종」이라는 말은 이 편 전체를 마무리한다. 천태종은 본디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는 종이다. 그런데 자각 이래 진언으로 기울어, 이제는 법화종이라는 자기의 근본을 잊은 채 진언사와 나란히 가마쿠라에 머리를 숙이고 있다. 제20장에서 법연을 벌한 히에이산이 결국 간토에 멸망당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 이 편은, 그 히에이산이 이제 간토에 내려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려 한다는 경고로 끝난다. 그리고 그 잘못을 꿰뚫어 아는 「한 사람의 지인」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다음 편으로 넘어간다.

이 장의 기준은 「문증 · 이증 · 현증」이며, 자각의 꿈은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근거다. 그리고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그 꿈의 정체와 진언의 기도가 부를 결과를 미리 꿰뚫어 아신 분이 「일염부제의 한 사람의 지인」, 곧 말법의 어본불이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제19장에서 대성인은 말법에 퍼질 비법을 말하기에 앞서 「세 가지 재앙」이 있다고 하셨고, 이 편의 여덟 장은 그 재앙의 정체를 차례로 드러냈다. 염불은 용수의 논을 비튼 담란, 경에 없는 글을 끌어온 도작, 법화경을 「천중무일」의 잡행이라 한 선도를 거쳐, 「불법은 시기를 근본으로 한다」며 말법에는 법화경이 맞지 않는다고 한 법연에게서 완성되었다. 선은 경전을 떠난다면서 위경을 근거로 삼았고, 계율을 지키는 겉모습으로 나라의 곡식과 사람들 마음의 싹을 먹었다. 진언은 선무외가 일행을 끌어들여 천태의 일념삼천을 『대일경소』에 옮겨 놓고 「인과 진언」으로 그 위에 올라섰으며, 홍법은 경문에 없는 「희론」 「무명의 변역」과 연대가 맞지 않는 「제호를 훔쳤다」로 법화경을 셋째로 떨어뜨렸고, 쇼카쿠보는 법화경의 교주를 신발 시중꾼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이 편의 중심은 마지막 세 장이다. 밖의 세 재앙보다 「백천만억 배나 믿기 어려운」 일은 법화경을 지켜야 할 히에이산 안에서, 전교대사의 제자이자 천태좌주인 자각에게서 일어났다. 자각은 스승이 「진언종」의 이름까지 깎아 가며 지킨 법화 제일의 뜻을 「스승은 자세히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뒤집었고, 이동사승의 교판을 세웠으며, 그 교판을 해를 쏘는 꿈으로 확인받았다. 안연은 진언과 선을, 혜심은 염불을 히에이산의 이름으로 열어 주었다. 「사자 몸속의 벌레가 사자를 먹는다」는 『연화면경』의 말이 이 편의 결론이다.

대성인이 이 모든 비판의 바탕에 두신 것은 하나의 기준이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고승의 명성도, 황제의 신임도, 십 년의 유학도, 이레 밤낮의 기청 끝에 꾼 꿈도 경문을 대신할 수 없다. 이것은 문증 · 이증 · 현증의 세 기준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그 현증은 이미 승구의 난에서 나타났다. 조정을 위해 진언사들이 올린 조복의 기도는 「도리어 본인에게 붙어」 상황을 섬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제 몽골 앞에서 가마쿠라가 바로 그 기도를 쓰려 한다. 대성인은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일염부제의 한 사람의 지인」이라 하셨다.

다음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 — 지인 · 성인 · 대인」은 바로 그 「한 사람」을 정면에서 말한다. 망국의 슬픔과 망신의 탄식 속에 목숨을 버리고 이 일을 드러낸다는 제28장의 첫머리부터, 대성인은 자신을 염부제 제일의 법화경 행자이자 지인 · 성인 · 대인으로 밝히시고, 세 번의 고명과 그 실현, 그리고 「대만」이라는 힐난에 대한 답으로 나아가신다. 이 편이 「누가 법화경을 잃게 하는가」를 물었다면, 다음 편은 「누가 법화경을 지키는가」를 묻는다.

더 읽기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선시초」(어서 256~292쪽) 및 본문에 인용한 어서(「수호국가론」 · 「연성초」 · 「야겐타입도전어소식」 · 「가책방법멸죄초」 · 「보은초」 · 「선무외삼장초」 · 「시모야마어소식」 · 「개목초」 · 「창법화제목초」 · 「삼대비법품승사」 · 「지카쿠대사사」 · 「당체의초」 ·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 ·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 · 「관심의 본존초」 · 「호렌초」)
  • 『묘법연화경』 T9 no.262 / 『대반열반경』 T12 no.374 / 『대일경』 T18 no.848 / 『대일경소』(선무외 · 일행) T39 no.1796
  • 『십주비바사론』(용수) T26 no.1521 / 『대지도론』(용수) T25 no.1509
  • 『왕생론주』(담란) T40 no.1819 / 『안락집』(도작) T47 no.1958 / 『관무량수경소』(선도) T37 no.1753
  • 『법화현의』 T33 no.1716 / 『마하지관』 T46 no.1911 (천태대사)
  • 『대당서역기』(현장) T51 no.2087 /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 T8 no.261 / 『해심밀경』 T16 no.676
  • 전교대사 『법화수구』 · 『수호국계장』 · 『의빙천태집』 / 홍법 『비밀만다라십주심론』 · 『비장보약』 · 『변현밀이교론』 / 자각 『금강정경소』 · 『소실지경소』 / 겐신 『왕생요집』 / 법연 『선택본원염불집』 / 안연 『교시쟁론』
  • 니치칸 상인 「선시초 문단(撰時抄文段)」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연구

  • 『선시초 강의』 — 제20~27장의 本文 · 現代語訳 · 語釈 · 講義
  • Ryūichi Abé, The Weaving of Mantra: Kūkai and the Construction of Esoteric Buddhist Discours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Edwin O. Reischauer, Ennin's Travels in T'ang China, Ronald Press, 1955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The Selection of the Time」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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