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초 여섯 편 가운데 마지막 제6편은 서른여섯 장의 끝 두 장, 곧 제35장과 제36장을 읽는다. 앞의 제5편에서 대성인은 스스로를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 · 지인 · 성인 · 대인이라 밝히시고, 「당세 일본국의 지인들은 뭇별과 같고 니치렌은 보름달과 같다」는 선언으로 「대만(大慢)」의 힐난에 답하셨다. 이 편은 그 선언에 대해 「옛날에도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는가」라는 마지막 물음에서 시작한다. 대성인은 전교대사의 「이미 불설에 의거하니 어찌 자찬이겠는가」라는 글로 답하시고, 보현품의 열여섯 글자 — 「또한 현세에 그 복보를 얻으리라」 「반드시 금세에 현재의 과보를 얻으리라」 — 가 헛되지 않음을 당신의 몸으로 증명하겠다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시험 삼아 법화경대로 신명도 아끼지 말고 수행하여 이번에 불법을 시험해 보라」고 명하신다. 이어 제36장에서는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낀다」는 경문의 참뜻을 묻고, 그것이 입당 구법이나 소신 공양이 아니라 삼류의 강적과 맞서 「법화경이 일체경의 정상에 있다」고 외치는 일임을 밝히신다. 선시초는 「영산정토의 교주 석존 …… 이 그윽이 더하고 드러나게 돕지 않으신다면 한때 하루라도 안온할 수 있겠는가」라는 한 문장으로 끝난다. 이 편이 묻는 것은, 「때」를 가려 세운 법이 어떻게 한 사람의 몸에서 현증(現證)이 되는가이다.
선시초는 「무릇 불법을 배우려면 반드시 먼저 시를 익혀야 하느니라」로 시작했다. 그 「시」의 논의는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과 정상말 삼시의 역사를 거쳐, 말법의 처음 오백 년에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한다는 선언에 이르렀고(선시초 제1편), 정법 · 상법 이천 년 동안 누가 무엇을 펼쳤는가를 인도 · 중국 · 일본 삼국에 걸쳐 확인했으며(제2 · 3편), 정토 · 선 · 진언 — 특히 홍법 · 자각의 진언 — 이 왜 말법의 때에 맞지 않는 그릇된 법인가를 낱낱이 가렸다(제4편). 그리고 제5편에서 「그렇다면 지금 그 법을 펼치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답했다. 이 편의 두 장은 그 모든 논의를 「증거」의 차원에서 마무리한다. 제35장이 「현증의 글」, 곧 경문과 석문이 약속한 공덕과 과보를 들어 법과 사람의 일치를 보인다면, 제36장은 「어신의 부합」, 곧 경문이 예언한 「불석신명」과 「삼류의 강적」이 대성인 당신의 몸에 그대로 들어맞았음을 보인다.
여섯 편으로 나눈 선시초 전체에서 이 편은 「말법의 법화경 행자」라는 넷째 갈래의 둘째 편으로, 제5편과 짝을 이룬다. 제5편이 지인 · 성인 · 대인이라는 이름으로 「누구인가」를 밝혔다면, 이 편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 그리고 그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밝힌다. 그래서 이 편의 두 장에는 선시초의 다른 어느 대목보다 제자를 향한 말씀이 짙다. 「나의 제자들은 시험 삼아 ……」라는 명령과, 「일본국에서 이 법문을 세우는 것은 큰일」이라는 고백, 그리고 「명가현조(冥加顕助)」의 확신이 그것이다.
이 편은 또한 선시초 전체의 결론이다. 「시」를 가리는 일은 결국 「지금 이때에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고, 대성인은 그 물음에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로 답하셨다. 편 끝의 「맺으며」에서 여섯 편을 한 줄기로 다시 꿰어 본다.
이 편의 장
이 편: 제35~36장 · 어서 290:15–292:17 · 선시초의 끝 — 현증과 불석신명
본문
問うて云く古へかくのごとくいえる人ありや、 答えて云く伝教大師の云く「当に知るべし他宗所依の経は未だ最為第一ならず其の能く経を持つ者も亦未だ第一ならず天台法華宗は所持の経最為第一なるが故に能く法華を持つ者も亦衆生の中に第一なり、已に仏説に拠る豈自歎ならんや」等云云、 夫れ驥の尾につけるだにの一日に千里を飛ぶといゐ、転王に随える劣夫の須臾に四天下をめぐるというをば難ずべしや疑うべしや、 豈自歎哉の釈は肝にめいずるか若し爾らば法華経を経のごとくに持つ人は梵王にもすぐれ帝釈にもこえたり、 修羅を随へば須弥山をもになひぬべし竜をせめつかはば大海をもくみほしぬべし、
묻노니, 옛날에도 이와 같이 말한 사람이 있었느냐. 답하노니, 전교대사가 이르되 「마땅히 알지니라. 다른 종파가 의지하는 경은 아직 최위제일(最爲第一)이 아니므로 능히 그 경을 지니는 자도 또한 아직 제일이 아니니라. 천태법화종은 지니는 바의 경이 최위제일이므로 능히 법화경을 지니는 자도 또한 중생 가운데 제일이니라. 이미 불설에 의거하였으니 어찌 스스로 찬탄함이겠느냐」라고 하였느니라. 무릇 준마(驥)의 꼬리에 붙은 진드기가 하루에 천 리를 날아가고, 전륜왕을 따르는 못난 사내가 잠깐 사이에 사천하를 돈다고 하는 것을 비난하겠느냐, 의심하겠느냐. 「어찌 자찬이겠느냐」라는 석을 간에 새겼느냐. 만약 그렇다면 법화경을 경대로 지니는 사람은 범천왕보다도 뛰어나고 제석천보다도 넘어서느니라. 아수라를 거느리면 수미산도 짊어질 수 있을 것이요, 용을 부리면 큰 바다도 다 퍼내어 말릴 수 있으리라.
伝教大師云く「讃むる者は福を安明に積み謗る者は罪を無間に開く」等云云、 法華経に云く「経を読誦し書持すること有らん者を見て軽賤憎嫉して結恨を懐かん乃至其の人命終して阿鼻獄に入らん」等云云、 教主釈尊の金言まことならば多宝仏の証明たがわずば十方の諸仏の舌相一定ならば今日本国の一切の衆生・無間地獄に堕ちん事疑うべしや、 法華経の八の巻に云く「若し後の世に於て是の経典を受持し読誦せん者は乃至所願虚しからず、亦現世に於て其の福報を得ん」又云く「若し之を供養し讃歎すること有らん者は当に今世に於て現の果報を得べし」等云云、 此の二つの文の中に亦於現世・得其福報の八字・当於今世・得現果報の八字・已上十六字の文むなしくして日蓮今生に大果報なくば如来の金言は提婆が虚言に同じく多宝の証明は倶伽利が妄語に異ならじ、 謗法の一切衆生も阿鼻地獄に堕つべからず、三世の諸仏もましまさざるか、 されば我が弟子等心みに法華経のごとく身命もおしまず修行して此の度仏法を心みよ、南無妙法蓮華経・南無妙法蓮華経。
전교대사가 이르되 「찬탄하는 자는 복을 안명(安明, 수미산)처럼 쌓고, 비방하는 자는 죄를 무간지옥에 여느니라」라고 하였느니라. 법화경(비유품)에 이르되 「경을 독송하고 서지(書持)하는 자를 보고 업신여기고 천대하며 미워하고 시기하여 원한을 품으면 …… 그 사람은 목숨이 다하여 아비지옥에 들어가리라」라고 하였느니라. 교주 석존의 금언이 참되고, 다보불의 증명이 어긋나지 않으며, 시방 제불의 설상(舌相)이 틀림없다면, 지금 일본국의 일체중생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을 의심할 수 있겠느냐. 법화경 제8권(보현보살권발품)에 이르되 「만약 후세에 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는 자는 …… 원하는 바가 헛되지 않으며, 또한 현세에 그 복보(福報)를 얻으리라」, 또 이르되 「만약 이를 공양하고 찬탄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금세(今世)에 현재의 과보를 얻으리라」라고 하였느니라. 이 두 글 가운데 「역어현세 득기복보(亦於現世 得其福報)」의 여덟 글자와 「당어금세 득현과보(當於今世 得現果報)」의 여덟 글자, 이상 열여섯 글자의 경문이 헛되어 니치렌이 금생에 큰 과보가 없다면, 여래의 금언은 제바달다의 거짓말과 같고 다보불의 증명은 구가리의 망어와 다르지 않으리라. 또 비방하는 일체중생도 아비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요, 삼세의 제불도 계시지 않는 것이 되리라. 그러므로 나의 제자들은 시험 삼아 법화경대로 신명도 아끼지 말고 수행하여 이번에 불법을 시험해 보라. 남무묘법연화경, 남무묘법연화경.
어구 풀이
- 古へかくのごとくいえる人ありや옛날에도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느냐
- 앞 장(제34장) 끝의 「당세 일본국의 지인들은 뭇별과 같고 니치렌은 보름달과 같다」를 받아 묻는 말이다. 풀어 옮기면 「니치렌은 보름달과 같다고 하셨는데, 옛날에도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는가」이다. 「대만(大慢)」의 힐난에 대한 마지막 확인 문답이다.
- 当に知るべし他宗所依の経は…「마땅히 알지니라, 다른 종파가 의지하는 경은 ……」
- 전교대사가 만년에 쓴 『법화수구(法華秀句)』의 글이다. 다른 종파가 의지하는 경이 제일이 아니므로 그 경을 지니는 사람도 제일이 아니고, 천태법화종이 지니는 법화경은 최위제일이므로 그것을 지니는 사람도 중생 가운데 제일이라고 논한다. 끝의 「이미 불설에 의거하니 어찌 자찬이겠는가」가 이 장의 열쇠다.
- 最為第一최위제일
- 「가장 제일이 된다」. 법화경 법사품 · 안락행품 등에서 법화경이 모든 경 가운데 으뜸임을 말하는 말이다. 전교대사는 이 경문의 말을 그대로 써서 「소지(所持)의 경」의 제일에서 「능지(能持)의 사람」의 제일을 이끌어 낸다.
- 驥の尾につけるだに준마의 꼬리에 붙은 진드기
- 기(驥)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명마다. 『사기(史記)』 백이열전에 「안연은 독실하게 배웠으나 기미(驥尾)에 붙어 행실이 더욱 드러났다」고 하여, 공자의 제자 안연(안회)이 스승의 이름을 따라 세상에 알려진 것을 쉬파리가 준마의 꼬리에 붙어 먼 길을 가는 데 견주었다. 「입정안국론」에도 「쉬파리가 기미에 붙어 만 리를 건너고, 벽라(碧蘿)가 소나무 끝에 걸려 천 길을 뻗는다」는 같은 비유가 있다.
- 転王 · 劣夫전륜왕 · 못난 사내
- 전륜왕은 전륜성왕으로, 하늘에서 윤보(輪寶)를 받아 사천하 온 세계를 다스린다는 이상의 왕이다. 전륜성왕은 한순간에 사천하를 돈다고 하며, 아무리 못난 사내라도 전륜왕을 따르면 함께 한순간에 사천하를 돈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여기서 「전왕」은 삼대비법의 본존, 「열부」는 우리 범부를 가리킨다.
- 四天下사천하
- 수미산을 둘러싼 동승신주 · 남섬부주(염부제) · 서우화주 · 북구로주의 네 대륙. 곧 온 세계다.
- 梵王 · 帝釈범천왕 · 제석천
- 범천왕은 색계 초선천의 왕으로 사바세계의 주인이라 하고, 제석천은 도리천(수미산 꼭대기)의 주인이다. 둘 다 법화경 회좌에 연이 있는 정법 수호의 제천이다. 니치칸 상인은 범왕보다 뛰어남을 친(親)의 덕, 제석을 넘어섬을 주(主)의 덕으로 푼다.
- 修羅 · 須弥山아수라 · 수미산
- 아수라는 싸움을 일삼는 큰 힘의 존재이고, 수미산은 세계 한가운데 솟은 큰 산이다. 아수라를 거느리면 수미산도 짊어지고, 용을 부리면 바닷물도 다 퍼낸다는 것은, 법화경을 지니는 사람의 힘이 지닌 법의 힘에 따라 한없이 커짐을 비유한 것이다.
- 讃むる者は福を安明に積み…「찬탄하는 자는 복을 안명에 쌓고 ……」
- 전교대사의 『의빙천태집(依憑天台集)』(의빙집)의 글이다. 안명(安明)은 수미산의 다른 이름이다. 곧 「법화경을 찬탄하는 자는 복을 수미산처럼 높이 쌓고, 비방하는 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큰 죄를 짓는다」는 뜻이다.
- 軽賤憎嫉して結恨を懐かん업신여기고 미워하며 원한을 품으면
- 법화경 비유품 제3의 경문. 법화경을 독송하고 서지하는 사람을 보고 가볍게 여기고(軽) 천대하며(賤) 미워하고(憎) 시기하여(嫉) 원한을 맺는 자는 목숨을 마치고 아비지옥에 들어간다고 설한다. 비유품은 법화경을 비방하는 죄의 과보를 길게 설하는 품으로, 대성인이 「십사비방」으로 정리하신 내용의 근거가 된다.
- 阿鼻獄 · 無間地獄아비지옥 · 무간지옥
- 아비(阿鼻)는 범어 아비치의 음사로 「사이가 없다(無間)」는 뜻이다. 팔대지옥 가운데 가장 밑에 있으며 고통이 잠시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오역죄와 정법 비방의 과보로 떨어진다.
- 多宝仏の証明 · 十方の諸仏の舌相다보불의 증명 · 시방 제불의 설상
- 견보탑품에서 다보불이 보탑 안에서 「석가모니세존이 설하신 바는 모두 진실이다」라고 증명하고, 여래신력품에서 석존과 시방 분신의 제불이 넓고 긴 혀를 범천에 이르도록 내어 그 말이 진실함을 보증한 것을 말한다. 석존의 금언 · 다보의 증명 · 제불의 설상, 이 셋이 법화경의 진실을 받치는 「삼불의 증명」이다.
- 法華経の八の巻법화경 제8권
- 구마라집 역 『묘법연화경』 8권 가운데 마지막 권으로,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부터 보현보살권발품 제28까지가 들어 있다. 여기서 인용한 두 글은 보현보살권발품의 경문이다.
- 亦於現世得其福報 · 当於今世得現果報「또한 현세에 그 복보를 얻으리라」 · 「반드시 금세에 현재의 과보를 얻으리라」
- 보현보살권발품의 두 경문으로, 각각 여덟 글자, 합해 열여섯 글자다. 법화경을 수지 · 독송하고 공양 · 찬탄하는 사람은 내세를 기다리지 않고 이 몸 이 세상에서 복보와 과보를 받는다고 약속한다.
- 提婆が虚言제바달다의 거짓말
- 제바달다는 석존의 사촌으로 출가하였으나 석존을 시기하여 교단을 나누고 석존을 해치려 한 사람이다. 법화경의 금언이 헛되다면 석존의 말씀이 제바달다의 거짓말과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강한 반어다.
- 倶伽利구가리
- 범어 코카리카의 음사로, 구가리(瞿伽利) · 구가리(仇伽離)라고도 쓴다. 석가족 출신으로 제바달다의 제자다. 『대지도론』 권13에 따르면, 구가리는 늘 사리불과 목건련의 허물을 찾았는데, 어느 날 두 사람이 비를 피해 도공의 집에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먼저 와 있던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여인이 빨래하는 것을 증거로 구가리는 셋이 부정한 행을 했다고 두 사람을 비방했다. 범천이 그렇지 않다고 타이르고 석존도 세 번 꾸짖었으나 듣지 않았고, 뒤에 온몸에 악창이 나서 울부짖으며 죽어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 三世の諸仏삼세의 제불
-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부처. 법화경의 금언이 헛되다면 그 법화경을 설하고 증명한 삼세의 제불 자체가 있지 않은 것이 된다는 뜻이다.
- 心みに · 心みよ시험 삼아 · 시험해 보라
- 「こころみる」는 시험하다, 실제로 해 보아 확인하다의 뜻이다. 이 한 구절은 「불법을 실천해 그 진실을 몸으로 확인하라」는 대정신으로 읽힌다.
「옛날에도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는가」 — 마지막 문답의 자리
제35장은 선시초의 결론부를 여는 짧은 문답으로 시작한다. 바로 앞 제34장에서 대성인은 「대만(大慢)」이라는 힐난에 답하여, 석존이 「삼계 제일」이라 하신 것이나 전교대사가 남도 칠대사의 비난을 받으면서 천태법화종이 여러 종보다 뛰어나다고 한 것은 자찬훼타가 아니라고 논하시고, 마침내 「당세 일본국의 지인들은 뭇별과 같고 니치렌은 보름달과 같다(当世日本国の智人等は衆星のごとし日蓮は満月のごとし)」(290쪽)고 맺으셨다. 묻는 이는 다시 한 번 따진다 — 그 말이 아무리 경문에 맞는다 해도, 옛날에 그처럼 말한 사람이 있었는가. 불교의 전통 안에서 선례가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대성인의 답은 전교대사의 『법화수구』다. 이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선시초 제3편에서 보았듯이, 전교대사는 상법의 끝에 일본에 나와 법화경 적문의 원돈계단을 세운 사람이며, 남도 육종의 학장들과 맞서 법화경 제일을 주장한 사람이다. 대성인은 선시초 전체에서 전교대사를 「법화경의 행자」의 선례로 거듭 드셨고, 제14장에서는 「일본국에 불법이 건너온 지 칠백여 년, 전교대사와 니치렌 외에는 한 사람도 법화경의 행자가 없다」고까지 하셨다. 그런 전교대사가 이미 「법화경을 지니는 자는 중생 가운데 제일」이라고 썼으니, 니치렌이 스스로를 보름달에 견준 것은 새로운 교만이 아니라 전통 안에 확고한 근거를 가진 말이 된다.
이 장 전체는 「현재 뛰어난 것을 뛰어나다고 말한다(現に勝れたるを勝れたりという)」는 원리를 증명하는 「현증의 글」을 드는 장이다. 제34장 끝에서 대성인은 「현재 뛰어난 것을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과 비슷하지만 큰 공덕이 된다」는 뜻을 밝히셨는데, 제35장은 그것이 전교대사의 글과 법화경의 경문 — 곧 「현증의 글」 — 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현증」은 두 겹으로 쓰인다. 하나는 경석의 글이 「지금 눈앞에 드러나 있는 뛰어남」을 증명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장의 끝에서 보듯 법화경의 약속이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과보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이 두 겹이 장의 앞뒤를 이룬다.
- 다른 종파가 의지하는 경은 아직 최위제일이 아니다他宗所依の経は未だ最為第一ならず
- 그 경을 지니는 자도 아직 제일이 아니다其の能く経を持つ者も亦未だ第一ならず
- 천태법화종이 지니는 경은 최위제일이다天台法華宗は所持の経最為第一なるが故に
- 능히 법화경을 지니는 자도 중생 가운데 제일이다能く法華を持つ者も亦衆生の中に第一なり
기미의 진드기와 전륜왕의 열부 — 법이 묘하므로 사람이 귀하다
전교대사의 글을 드신 뒤 대성인은 두 가지 비유를 드신다. 준마의 꼬리에 붙은 진드기는 스스로는 한 치도 날지 못하지만 하루에 천 리를 간다. 전륜왕을 따르는 못난 사내는 스스로는 한 걸음도 멀리 가지 못하지만 잠깐 사이에 사천하를 돈다. 이것을 두고 「진드기가 천 리를 날았다니 거짓말이다」라고 비난하거나 의심할 수 있겠는가. 진드기의 힘이 아니라 준마의 힘이고, 열부의 힘이 아니라 전륜왕의 힘이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동아시아의 고전에서 익숙한 것이다. 『사기』 백이열전은 공자의 제자 안연이 독실하게 배운 사람이었지만 「기미(驥尾)에 붙어」 — 곧 공자라는 스승의 이름에 따라 — 그 행실이 더욱 세상에 드러났다고 썼다. 대성인도 「입정안국론」에서 이 비유를 객의 입이 아니라 주인의 입으로 쓰셨다.
蒼蝿驥尾に附して万里を渡り、碧蘿松頭に懸って千尋を延ぶ
쉬파리가 준마의 꼬리에 붙어 만 리를 건너고, 푸른 덩굴이 소나무 끝에 걸려 천 길을 뻗는다.
「입정안국론」에서 이 비유는 대성인 자신이 보잘것없는 몸이지만 대승을 배웠기에 그 법의 힘으로 국가의 재난을 논할 수 있다는 겸양의 뜻으로 쓰였다. 선시초에서는 같은 비유가 방향을 바꾸어, 법화경이라는 「준마」 · 「전륜왕」에 붙은 사람은 그 법과 함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확신의 뜻으로 쓰인다. 두 용례는 사실 하나다. 사람의 귀함은 사람 자신의 힘에서가 아니라 그가 지닌 법에서 온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法妙なるが故に人貴し・人貴きが故に所尊し
법이 묘하므로 사람이 귀하고, 사람이 귀하므로 그곳이 존귀하다.
されば持たるる法だに第一ならば持つ人随つて第一なるべし
그러므로 지니는 법이 제일이라면, 지니는 사람도 따라서 제일이 되는 것이다.
「지묘법화문답초」의 이 글은 전교대사의 『법화수구』를 그대로 일본어 산문으로 풀어 놓은 것과 같다. 이 글 바로 앞에서 대성인은 「법은 귀하다고 하면서 그 사람은 만인이 미워한다」는 세간의 모순을 지적하고, 천태대사의 「부처의 세상에서도 사람으로써 법을 드러냈거늘 말대에 어찌 법은 귀하나 사람은 천하다 하겠는가」라는 뜻의 석을 들어, 법과 사람을 떼어 놓을 수 없음을 밝히셨다. 그리고 「그 사람을 헐뜯는 것은 그 법을 헐뜯는 것이요, 그 자식을 천대하는 것은 곧 그 어버이를 천대하는 것」이라고 맺으셨다. 선시초 제35장의 논리는 바로 이것이다. 법화경이 일체경 가운데 제일이라는 것은 선시초가 처음부터 경문과 역사로 논증해 온 바이니, 그 법화경을 「경대로」 지니는 사람이 제일이라는 것은 자찬이 아니라 논리의 귀결이다.
이 비유는 한 걸음 더 깊이 읽을 수 있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전왕」은 삼대비법의 본존이요, 「열부」는 우리 범부다. 말법의 범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진드기나 열부처럼 미약하지만, 본존을 지니고 그 법을 따를 때 진드기가 천 리를 가듯 성불의 경지에 이른다. 이 「법묘인귀」의 원리를 신앙의 실천으로 옮기면, 우리 같은 유치하고 빈궁한 무리도 순수하게 신심과 절복에 힘써 나아갈 때 사회 어디에서나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고 민중이 의지할 곳이 된다.
범왕보다 뛰어나고 제석을 넘어선다 — 주 · 사 · 친의 삼덕
비유를 드신 뒤 대성인은 묻는 이에게 되물으신다. 「어찌 자찬이겠는가」라는 전교대사의 석을 간에 새겼는가. 새겼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법화경을 경대로 지니는 사람은 범왕보다도 뛰어나고 제석보다도 넘어선다.」 범천왕은 사바세계의 주인이라 일컬어지는 색계의 왕이고, 제석천은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의 주인이다. 세간과 천상의 위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이다. 법화경을 지니는 사람이 이들을 넘어선다는 것은, 그가 지닌 법이 이들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여기서 니치칸 상인의 해석을 보자. 범왕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어버이의 덕(친덕(親徳))이요, 제석을 넘어선다는 것은 주군의 덕(주덕(主徳))이다. 이 장에서 스승의 덕은 생략되었으나, 앞 장 끝의 「니치렌은 보름달과 같다」가 바로 스승의 덕(사덕(師徳))이다. 이렇게 읽으면 제34장 끝과 제35장 첫머리는 한데 이어져 주 · 사 · 친의 삼덕을 갖춘 사람을 그려 보인다. 범천왕은 사바세계 중생의 어버이로 일컬어지므로 범왕을 넘어섬이 친덕이 되고, 제석은 천상의 왕으로 사천왕을 거느리므로 제석을 넘어섬이 주덕이 되며, 뭇별 가운데 홀로 밝은 보름달은 어둠 속의 사람들에게 길을 비추므로 사덕이 된다.
주사친 삼덕은 선시초 앞부분에서 이미 대성인 스스로 밝히신 바다. 제14장에서 대성인은 「법화경을 펼치는 자는 일본국 일체중생의 부모」라 하시고, 장안대사의 「저를 위해 악을 없애는 것은 곧 저의 어버이」라는 석을 드신 뒤 「그러므로 니치렌은 당제(當帝)의 부모요, 염불자 · 선중 · 진언사 등의 사범이요, 또 주군이다(されば日蓮は当帝の父母、念仏者・禅衆・真言師等が師範なり又主君なり)」(265쪽)라고 선언하셨다. 제35장의 「범왕 · 제석」과 제34장의 「보름달」은 이 선언을 「법화경을 경대로 지니는 사람」 일반의 원리로 다시 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이 대목의 「법화경을 경대로 지닌다」는 말은 「본존을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대로 지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범왕에도 뛰어나고 제석에도 넘어서서 친덕 · 주덕을 갖추고, 보름달과 같은 사덕까지 갖추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대로(経のごとくに)」라는 한정이다. 법화경을 지닌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았다. 선시초 제4편이 낱낱이 밝혔듯이, 자각 · 지증은 천태좌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법화경을 진언의 아래에 두었고, 홍법은 법화경을 「희론」이라 했다. 이름으로 법화경을 지니는 것과 「경대로」 지니는 것은 전혀 다르다. 경대로 지닌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다음 장(제36장)에서 「최재기상」의 네 글자와 삼류의 강적으로 구체적으로 밝혀진다.
아수라와 용의 비유는 이 지니는 사람의 힘을 다시 강조한다. 아수라를 거느리면 수미산도 짊어질 수 있고, 용을 부리면 큰 바다도 퍼내 말릴 수 있다. 앞의 두 비유(진드기 · 열부)가 「따름」의 힘을 말했다면, 뒤의 두 비유는 「거느림」의 힘을 말한다. 법을 따르는 사람은 마침내 그 법의 힘으로 천룡팔부까지 거느리게 된다. 장의 끝과 다음 장의 끝에서 제천의 수호가 거듭 말해지는 것도 이 흐름 위에 있다.
찬탄의 복과 비방의 죄 — 삼불의 증명 위에 선 경고
장의 후반은 전교대사의 또 하나의 글로 시작한다. 「찬탄하는 자는 복을 안명에 쌓고, 비방하는 자는 죄를 무간에 연다.」 『의빙천태집』의 이 글은 『법화수구』의 논리를 뒤집어 말한 것이다. 법화경을 지니는 사람이 중생 가운데 제일이라면, 그 사람을 찬탄하는 자의 복은 수미산처럼 높이 쌓이고, 그를 비방하는 자의 죄는 무간지옥의 문을 연다. 사람의 귀함이 법에서 오듯, 사람을 향한 찬탄과 비방의 과보도 법에서 온다.
대성인은 이것을 법화경 비유품의 경문으로 뒷받침하신다. 법화경을 독송하고 서지하는 사람을 보고 업신여기고 천대하며 미워하고 시기하여 원한을 품는 자는 목숨이 다하면 아비지옥에 들어간다. 비유품은 법화경을 비방하는 죄의 과보를 길게 설하는 품이며, 그 가운데 이 대목은 경 자체에 대한 비방뿐 아니라 「경을 지니는 사람」에 대한 경천 · 증질을 무간의 업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이 장의 논리에 꼭 맞는다.
그리고 대성인은 법화경의 진실을 받치는 세 증명을 하나로 묶으신다. 교주 석존의 금언이 참되고, 다보불의 증명이 어긋나지 않으며, 시방 제불의 설상이 틀림없다면 — 이 셋은 법화경이 다른 모든 경과 다른 점이다. 다른 경은 석존 한 분이 설하셨지만, 법화경은 석존이 설하고, 과거불인 다보불이 보탑 안에서 「모두 진실이다」라고 증명하고, 시방에서 모인 분신의 제불이 넓고 긴 혀를 내어 보증했다. 「개목초」가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의 증명을 거듭 들어 법화경의 예언을 「허망이 될 수 없는 것」이라 하신 것과 같은 논법이다. 이 삼불의 증명이 진실이라면, 법화경의 행자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지금 일본국의 일체중생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이 경고는 냉혹한 저주가 아니다. 선시초 제14장에서 대성인은 「법화경을 펼치는 자는 일본국 일체중생의 부모」라 하시고, 박해하는 자들을 두고 「어리석은 자는 저주한다고 생각하겠지만」이라고 미리 말씀하셨다. 무간의 과보를 말하는 것은 그 길을 막으려는 어버이의 경계이며, 장안대사의 「저를 위해 악을 없애는 것은 곧 저의 어버이」가 그 뜻이다. 찬탄과 비방의 갈림길을 분명히 보이는 것 자체가 자비의 일이다.
보현품의 열여섯 글자 — 경문이 헛되지 않음을 몸으로 보인다
비방의 죄를 말씀하신 뒤 대성인은 반대쪽, 곧 수지 · 찬탄의 복을 약속하는 경문으로 넘어가신다. 법화경 제8권, 마지막 품인 보현보살권발품의 두 글이다. 「만약 후세에 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는 자는 …… 원하는 바가 헛되지 않으며, 또한 현세에 그 복보를 얻으리라.」 「만약 이를 공양하고 찬탄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금세에 현재의 과보를 얻으리라.」 보현보살권발품은 보현보살이 동방에서 와서 부처의 멸후에 이 경을 지니는 사람을 수호하겠다고 서원하는 품이며, 석존이 그 서원에 답하여 법화경을 수지하는 사람의 공덕을 설하는 것으로 법화경 전체가 끝난다. 곧 이 두 글은 법화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약속이다.
대성인은 이 두 글에서 「역어현세 득기복보」의 여덟 글자와 「당어금세 득현과보」의 여덟 글자를 뽑아 「이상 열여섯 글자」라 하신다. 두 글의 공통점은 「현세」 · 「금세」, 곧 이 세상에서의 과보라는 것이다. 내세의 복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법화경은 수지하는 사람이 이 몸 이 세상에서 복보를 받는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이 세상에서 시험될 수 있다.
그리고 대성인은 그 시험대에 당신 자신을 올리신다. 이 열여섯 글자가 헛되어 「니치렌이 금생에 큰 과보가 없다면」, 여래의 금언은 제바달다의 거짓말과 같고 다보불의 증명은 구가리의 망어와 다르지 않다. 비방하는 일체중생도 아비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요, 삼세의 제불도 계시지 않는 것이 된다. 제바달다는 석존을 시기하여 교단을 나누고 부처를 해치려 한 사람이고, 구가리는 그 제자로서 사리불 · 목건련을 거짓으로 모함하다 산 채로 악창에 시달려 지옥에 떨어졌다고 『대지도론』이 전하는 사람이다. 법화경의 약속이 대성인의 몸에서 실현되지 않는다면, 석존과 다보불이 이 두 망어자와 같은 자리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법화경의 진실과 대성인 한 몸의 운명을 완전히 하나로 묶는 말이다.
이 논법은 대성인의 다른 어서에서도 되풀이된다. 「개목초」에서 대성인은 권지품의 「모든 무지한 사람이 악구 · 매리하고 칼과 막대를 가한다」는 게송을 들고, 「니치렌이 없었다면 이 한 게송의 미래기는 망어가 되었으리라(日蓮なくば此の一偈の未来記は妄語となりぬ)」(202쪽)고 하셨다. 만년의 「성인어난사」에서는 더 분명히 말씀하신다.
日蓮末法に出でずば仏は大妄語の人・多宝・十方の諸仏は大虚妄の証明なり、仏滅後二千二百三十余年が間・一閻浮提の内に仏の御言を助けたる人・但日蓮一人なり
니치렌이 말법에 나오지 않았다면 부처는 큰 망어를 한 사람이요, 다보와 시방의 제불은 큰 허망의 증명이 되리라. 부처 멸후 이천이백삼십여 년 동안 일염부제 안에서 부처의 말씀을 도운 사람은 오직 니치렌 한 사람이니라.
「개목초」와 「성인어난사」가 주로 난(難)의 예언 — 「악구 · 매리」 · 「칼과 막대」 · 「자주 쫓겨남」 — 이 대성인의 몸에서 실현되었음을 말한다면, 선시초 제35장은 복보의 예언 — 「현세에 그 복보를 얻으리라」 — 이 실현될 것을 말한다. 난의 예언과 복보의 예언은 같은 법화경의 두 얼굴이다. 법화경을 경대로 지니는 사람은 경이 예언한 난을 받고, 동시에 경이 약속한 복보를 받는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헛되다면 법화경 전체가 헛되다.
현증을 앞세우는 불법 — 가까운 현증으로 먼 믿음을 취한다
「현세에 그 복보를 얻으리라」는 이 대목은 「현증」의 원리로 풀이할 수 있다. 선시초는 이미 대성인이 「미래를 미리 아는(兼知未萠)」 성인이시기에 재세 중에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이 예언대로 들어맞았다는 것을 밝혔다(선시초 제5편의 「세 번의 고명」). 재세 중에 대성인의 말씀대로 된 것을 보았으니, 멸후 미래에 대해서도 대성인의 예언이 조금도 어긋날 리 없다. 대성인 스스로 이 원리를 말씀하신 어서들을 보자.
近き現証を引いて遠き信を取るべし
가까운 현증을 들어 먼 믿음을 취해야 한다.
当世の高僧・真言・天台等の人人……小事たる今生の御いのりの叶はぬを用つてしるべし・大事たる後生叶うべしや
당세의 고승 · 진언 · 천태 등의 사람들은 …… 작은 일인 금생의 기도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알아야 한다. 큰일인 후생이 이루어지겠는가.
이처럼 현증이 없으면 무엇도 믿을 수 없고, 현증이 분명하다면 믿지 않는 쪽이 잘못이다. 그 원리를 가장 단적으로 보이신 것이 다음 두 글이다.
日蓮仏法をこころみるに道理と証文とにはすぎず、又道理証文よりも現証にはすぎず
니치렌이 불법을 시험해 보건대 도리와 증문보다 나은 것이 없고, 또 도리와 증문보다도 현증보다 나은 것은 없느니라.
設い日蓮富楼那の弁を得て目連の通を現ずとも勘うる所当らずんば誰か之を信ぜん
설령 니치렌이 부루나의 변재를 얻고 목련의 신통을 나타낸다 해도, 헤아린 바가 들어맞지 않는다면 누가 이를 믿겠는가.
「삼삼장기우사」의 글은 이 장의 「시험해 보라」(心みよ)와 같은 동사 「시험하다」(こころみる)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대성인 자신이 불법을 「시험해 보셨고」, 그 시험의 기준은 도리(道理) · 증문(證文) · 현증(現證)의 세 가지이며, 그 가운데 현증이 가장 중하다. 선시초는 앞의 서른네 장에서 도리와 증문을 다 갖추었다. 시를 가리는 도리를 세웠고, 법화경 · 대집경 · 열반경과 천태 · 묘락 · 전교의 증문을 쌓았다. 그 마지막에 남은 것이 현증이다. 제35장이 「현증의 글을 든다」는 제목을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입정의초」의 글은 같은 문제를 다른 쪽에서 비춘다. 부루나는 석존의 제자 가운데 설법 제일, 목련은 신통 제일이다. 아무리 말이 뛰어나고 신통을 보여도, 예언한 것이 들어맞지 않으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에서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을 예언하신 것은 바로 이 「헤아린 바(勘うる所)」였고, 그것이 문영 9년(1272)의 이월소동과 문영 11년(1274)의 몽골 내습으로 들어맞았다. 선시초가 쓰인 건치 원년(1275)은 바로 그 첫 내습의 이듬해다. 대성인의 「헤아린 바」가 들어맞았다는 현증은 그 시대 사람들의 눈앞에 있었다.
선시초 제3편 「용수 · 천태 · 전교의 홍통과 말법의 비법」에서, 전교대사가 「라집삼장은 혀가 타지 않았고 현장 · 자은은 혀가 탔다」고 법상종을 책하자 간무 천황이 도리로 여겨 천태법화종으로 옮겼다는 本文(제16장)을 풀며 「불법은 현증을 첫째로 삼는다」고 하고 같은 어서들을 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법의 진위는 결국 말이 아니라 사실로 판가름 난다. 제35장은 그 원리를 대성인 당신의 금생에 적용하시는 장이다.
- 도리(시를 가림)
- 증문(경 · 석)
- 현증(세 번의 고명 · 열여섯 글자)
「금생의 큰 과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대성인이 「니치렌이 금생에 큰 과보가 없다면」이라고 하실 때의 「큰 과보」란 무엇일까. 선시초를 쓰실 무렵의 대성인은 이즈 유배와 사도 유배를 거치고, 다쓰노구치에서 목이 베일 뻔한 난을 겪은 뒤, 미노부의 깊은 산중에서 겨우 몸을 의탁하고 계셨다. 세간의 눈으로 보면 부귀나 지위 같은 「과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선시초 제14장에서 대성인 스스로 「니치렌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크게 한탄스럽다. 금생에는 만인에게 공격받아 잠시도 편치 못하고, 후생에는 악도에 떨어질 것이니 말할 수 없이 비참하다」고 자문하신 대목이 있을 정도다.
여기서 같은 시기의 「개목초」가 실마리가 된다. 사도 유배 중, 내일을 알 수 없는 극한의 처지에서 쓰신 이 글에서 대성인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当世・日本国に第一に富める者は日蓮なるべし命は法華経にたてまつり名をば後代に留べし
당세 일본국에서 제일로 부유한 자는 니치렌일 것이다. 목숨은 법화경에 바치고 이름은 후대에 남기리라.
이 「제일로 부유함」은 재물이 아니라, 일체경의 승렬을 알고 법화경의 「육난구이」를 깨달아 일체경을 손에 쥔 것과 같은 경지, 그리고 경문이 예언한 난을 몸으로 읽어 법화경을 신독(身讀)한 경지를 가리킨다. 선시초의 「큰 과보」도 이와 떨어져 있지 않다. 경문대로 난을 받고 경문대로 법을 펼쳐, 법화경의 예언과 약속이 한 몸 위에 모두 실현되는 것 — 그것이 법화경 행자에게 주어지는 금생의 과보다. 그리고 그 과보는 대성인의 예언이 들어맞는 현증으로, 또 대성인의 법이 한 사람에서 두 사람, 세 사람으로 이어져 가는 현증으로 세상에 드러난다.
이것을 신앙하는 사람의 생활 쪽에서 말하면 이렇다. 요컨대 우리의 소원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이 세상에서 절대의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열여섯 글자의 뜻이다. 신앙하는 가운데에도 가난이나 병 같은 갖가지 불행과 고뇌가 있지만, 그 모든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신심하는 것이다. 「현세에 그 복보를 얻으리라」를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 반드시 확인될 현증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대성인 스스로 이 열여섯 글자의 진위를 당신의 금생에 걸으셨기 때문이다.
「이번에 불법을 시험해 보라」 — 제자에게 남긴 명령
그리고 장은 제자들을 향한 한마디로 끝난다. 「그러므로 나의 제자들은 시험 삼아 법화경대로 신명도 아끼지 말고 수행하여 이번에 불법을 시험해 보라. 남무묘법연화경, 남무묘법연화경.」
이 말은 세 겹의 뜻을 갖는다. 첫째, 「시험해 보라」는 것은 불법이 맹목의 신앙이 아니라 실천으로 확인되는 것이라는 선언이다. 대성인 자신이 「니치렌이 불법을 시험해 보건대」라고 하셨듯이, 제자들도 스스로 불법을 시험할 수 있고 시험해야 한다. 열여섯 글자의 약속이 진실인가는 대성인 한 분의 몸에서만이 아니라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에서 확인될 일이다.
둘째, 그 시험의 조건은 「법화경대로(法華経のごとく)」 · 「신명도 아끼지 말고(身命もおしまず)」다. 앞의 「법화경을 경대로 지니는 사람」과 같은 말이다. 경대로가 아닌 수행, 신명을 아끼는 수행으로는 시험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바로 다음 제36장의 주제가 된다. 제35장의 마지막 명령이 제36장의 물음을 부르는 것이다.
셋째, 「이번에(此の度)」라는 말이다. 이번 생, 지금 이때 — 선시초가 처음부터 가려 온 「때」가 바로 이번이다. 대집경의 제5의 오백 년, 백법은몰의 때, 그리고 그 뒤에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하는 때가 지금이다. 그 때를 만난 이번 생에 불법을 시험하지 않는다면 언제 하겠는가. 선시초 제6장에서 대성인이 「정상 이천 년의 대왕보다 후세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법 지금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그 「말법의 지금」이 「이번」이다.
장의 끝에 두 번 거듭된 「남무묘법연화경」은 이 명령에 대성인 스스로의 서원을 겹친 것이다. 「나의 제자들은 시험 삼아 ……」라는 대성인의 말씀대로 대정신을 가지고 강하고 굳세게 나아갈 일이다. 시험의 내용은 남묘호렌게쿄를 부르고 펼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열여섯 글자의 약속대로 이 세상에서 드러난다. 선시초 서른여섯 장 가운데 「시험해 보라」는 이 명령만큼 제자의 실천을 직접 요구하는 말은 없다.
제35장은 「현증의 글」을 드는 장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법화경을 경대로 지닌다」를 본존을 대성인의 가르침대로 지니는 것으로, 열여섯 글자를 금세에 확인되는 현증의 약속으로, 「이번에 불법을 시험해 보라」를 신심과 실천의 대정신으로 읽는다.
본문
抑此の法華経の文に「我身命を愛せず但無上道を惜しむ」涅槃経に云く「譬えば王使の善能談論して方便に巧なる命を他国に奉るに寧ろ身命を喪うとも終に王所説の言教を匿さざるが如し智者も亦爾なり凡夫中に於て身命を惜まずかならず大乗方等如来の秘蔵一切衆生に皆仏性有りと宣説すべし」等云云いかやうな事のあるゆへに身命をすつるまでにてあるやらん委細にうけ給わり候はん、 答えて云く予が初心の時の存念は伝教・弘法・慈覚・智証等の勅宣を給いて漢土にわたりし事の我不愛身命にあたれるか、 玄奘三蔵の漢土より月氏に入りしに六生が間・身命をほろぼししこれ等か、 雪山童子の半偈のために身をなげ、薬王菩薩の七万二千歳が間・臂をやきし事かなんどをもひしほどに経文のごときんば此等にはあらず、
대저 이 법화경(권지품)의 글에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끼노라」라 하고, 열반경에 이르되 「비유하면 왕의 사신이 담론을 잘하고 방편에 능하여 명을 받들고 다른 나라에 가서,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끝내 왕이 설한 말과 가르침을 숨기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지자도 또한 그러하여, 범부 가운데서 신명을 아끼지 말고 반드시 대승방등 여래의 비장(秘藏)인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를 선설해야 하느니라」라고 하였느니라. 어떠한 일이 있기에 신명을 버리기까지 하는 것인지 자세히 듣고자 하나이다. 답하노니, 내가 초심 때에 품었던 생각은, 전교 · 홍법 · 자각 · 지증 등이 칙선(勅宣)을 받아 한토(중국)에 건너간 일이 「아불애신명(我不愛身命)」에 해당하는가, 현장삼장이 한토에서 월지(인도)에 들어갈 때 여섯 생 동안 신명을 잃은 것이 이것인가, 설산동자가 반 게송을 위해 몸을 던지고, 약왕보살이 칠만이천 세 동안 팔을 태운 일인가 하고 생각하였으나, 경문대로라면 이것들이 아니니라.
経文に我不愛身命と申すは上に三類の敵人をあげて彼等がのりせめ刀杖に及んで身命をうばうともみへたり、 又涅槃経の文に寧喪身命等ととかれて候は次下の経文に云く「一闡提有り羅漢の像を作し空処に住し方等経典を誹謗す、諸の凡夫人見已つて皆真の阿羅漢是れ大菩薩なりと謂わん」等云云、 彼の法華経の文に第三の敵人を説いて云く「或は阿蘭若に納衣にして空閑に在つて乃至世に恭敬せらるること六通の羅漢の如き有らん」等云云、 般泥洹経に云く「羅漢に似たる一闡提有つて悪業を行ず」等云云、 此等の経文は正法の強敵と申すは悪王悪臣よりも外道魔王よりも破戒の僧侶よりも、持戒有智の大僧の中に大謗法の人あるべし、 されば妙楽大師かいて云く「第三最も甚し後後の者は転識り難きを以ての故なり」等云云、 法華経の第五の巻に云く「此の法華経は諸仏如来の秘密の蔵なり、諸経の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等云云、 此の経文に最在其上の四字あり、されば此の経文のごときんば法華経を一切経の頂にありと申すが法華経の行者にてはあるべきか、
경문에 「아불애신명」이라 한 것은, 위에 삼류의 적인을 들어 그들이 욕하고 공격하며 칼과 막대에 이르러 신명을 빼앗는다고 보이는 것이니라. 또 열반경의 글에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등이라 설한 것은, 바로 이어지는 경문에 「일천제가 있어 아라한의 모습을 하고 한적한 곳에 살며 방등경전을 비방하리라. 모든 범부는 이를 보고 다 참된 아라한이요 대보살이라고 하리라」라고 하였느니라. 저 법화경의 글에 셋째 적인을 설하여 이르되 「혹은 아란야에서 누더기를 입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 세상의 공경을 받기를 육신통의 아라한과 같이 하는 자가 있으리라」라고 하였느니라. 반니원경에 이르되 「아라한을 닮은 일천제가 있어 악업을 행하리라」라고 하였느니라. 이 경문들은, 정법의 강적이라 하는 것은 악왕 · 악신보다도, 외도 · 마왕보다도, 파계한 승려보다도, 계를 지니고 지혜 있는 대승(大僧) 가운데에 큰 비방자가 있다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묘락대사가 써서 이르되 「셋째가 가장 심하니, 뒤로 갈수록 점점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니라」라고 하였느니라. 법화경 제5권(안락행품)에 이르되 「이 법화경은 제불여래의 비밀한 장(藏)이라,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느니라」라고 하였느니라. 이 경문에 「최재기상(最在其上)」의 네 글자가 있으니, 그러므로 이 경문대로라면 법화경을 일체경의 정상에 있다고 말하는 이가 법화경의 행자이리라.
而るを又国王に尊重せらるる人人あまたありて、法華経にまさりてをはする経経ましますと申す人にせめあひ候はん時、 かの人は王臣に御帰依あり法華経の行者は貧道なるゆへに、国こぞつてこれをいやしみ候はん時、 不軽菩薩のごとく賢愛論師がごとく申しつをらば身命に及ぶべし、此れが第一の大事なるべしとみへて候此の事は今の日蓮が身にあたれり、 予が分斉として弘法大師・慈覚大師・善無畏三蔵・金剛智三蔵・不空三蔵なんどを法華経の強敵なり経文まことならば無間地獄は疑なしなんど申すは裸形にて大火に入るはやすし須弥山を手にとてなげんはやすし大石を負うて大海をわたらんはやすし日本国にして此の法門を立てんは大事なるべし云云。 霊山浄土の教主釈尊・宝浄世界の多宝仏・十方分身の諸仏・地涌千界の菩薩等・梵釈・日月・四天等・冥に加し顕に助け給はずば一時一日も安穏なるべしや。
그런데 또 국왕에게 존중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들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맞서 다툴 때, 저 사람들은 왕과 신하의 귀의를 받고 법화경의 행자는 가난한 수행자(貧道)이므로 온 나라가 함께 그를 천대할 때, 불경보살처럼, 현애논사처럼 굽히지 않고 말한다면 신명에 미칠 것이니, 이것이 제일의 대사(大事)라고 보이느니라. 이 일은 지금의 니치렌의 몸에 들어맞았느니라. 나의 분수로 홍법대사 · 자각대사 · 선무외삼장 · 금강지삼장 · 불공삼장 등을 법화경의 강적이라 하고, 경문이 참되다면 무간지옥은 의심 없다고 말하는 것은, 벌거벗은 몸으로 큰 불에 들어가는 것은 쉽고, 수미산을 손에 들어 던지는 것도 쉽고, 큰 돌을 지고 큰 바다를 건너는 것도 쉬우나, 일본국에서 이 법문을 세우는 것은 큰일이니라. 영산정토의 교주 석존, 보정세계의 다보불, 시방 분신의 제불, 지용천계의 보살들, 범천 · 제석 · 일천 · 월천 · 사천왕 등이 그윽이 더하고 드러나게 돕지 않으신다면 한때 하루라도 안온할 수 있겠느냐.
어구 풀이
- 我身命を愛せず但無上道を惜しむ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끼노라
- 법화경 권지품 제13의 이른바 「이십행의 게」를 맺는 구절이다.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들이 부처 멸후 악세의 법화경 홍통을 서원하며, 삼류의 강적이 일으킬 갖가지 난을 다 참고 「신명을 아끼지 않겠다」고 맹세한 말이다. 한문으로 「我不愛身命 但惜無上道」.
- 王使の善能談論して…왕의 사신이 담론을 잘하여 ……
- 『대반열반경』의 비유. 말 잘하고 방편에 능한 왕의 사신이 명을 받아 다른 나라에 가면, 목숨을 잃을지언정 왕의 말을 숨기지 않는다. 지자도 그와 같이 범부 가운데서 신명을 아끼지 않고 「일체중생 실유불성」의 대승 가르침을 펼쳐야 한다고 설한다. 장안대사는 이를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寧喪身命不匿教)」로 요약하여 「몸은 가볍고 법은 무겁다」고 풀었다.
- 大乗方等如来の秘蔵대승방등 여래의 비장
- 대승경전을 통틀어 방등이라 한다. 열반경은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一切衆生悉有仏性)」는 가르침을 여래가 감추어 두었던 비밀의 창고로 본다.
- 伝教・弘法・慈覚・智証等の勅宣を給いて漢土にわたりし事전교 · 홍법 · 자각 · 지증 등이 칙선을 받아 한토에 건너간 일
- 이들은 모두 조정의 명을 받아 당에 건너가 불법을 구했다. 『예산대사전(叡山大師伝)』에 따르면, 전교대사는 연력 23년(804) 가을 제2선에 올라 서쪽으로 가던 중 큰 바다 한가운데서 갑자기 검은 구름이 일고 배가 뒤집힐 듯하여 모두가 살아 있는 기분이 아니었는데, 대사가 큰 자비심을 일으켜 지니고 있던 사리를 바다의 용왕에게 바치자 곧 악풍이 그치고 무사히 대륙에 건너갔다고 한다. 입당의 고난은 저마다 있었다.
- 玄奘三蔵현장삼장
- 당나라 초의 역경승. 국법을 무릅쓰고 장안을 떠나 서역을 거쳐 인도에 이르러 나란다사에서 배우고, 수많은 경론을 가지고 돌아와 번역했다. 그 여행기가 『대당서역기』다. 本文은 현장이 「여섯 생 동안 신명을 잃고」 일곱째 생에 비로소 인도에 이르렀다는 전승을 따른다.
- 雪山童子설산동자
- 석존이 과거세에 보살도를 닦을 때의 이름. 설산에서 고행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열반경』 권14 등에 설해진다. 제석천이 나찰로 변해 과거불의 게송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是生滅法)」의 반을 읊자, 동자는 나머지 반을 듣기 위해 제 몸을 나찰에게 먹이기로 약속하고 「생멸멸이 적멸위락(生滅滅已・寂滅為楽)」을 들었다. 동자는 그 게송을 돌 · 벽 · 나무 · 길에 써 두고 높은 나무에 올라 몸을 던졌는데, 나찰은 제석의 모습으로 돌아와 동자를 받아 땅에 내려놓고 그 불석신명을 찬탄하며 미래에 반드시 성불하리라고 하였다. 설령 나찰 귀신이라도 그가 지닌 법을 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 薬王菩薩の七万二千歳が間・臂をやきし약왕보살이 칠만이천 세 동안 팔을 태운 일
-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 제23에, 약왕보살이 과거세에 일체중생희견보살로서 일월정명덕불 아래에서 수행하며, 어느 생에서는 몸을 태우고, 다음 생에서는 칠만이천 세 동안 팔을 태워 등불로 삼아 부처께 공양했다고 설한다.
- 三類の敵人 · 第三の敵人삼류의 적인 · 셋째 적인
- 삼류의 강적이라고도 한다. 부처 멸후 악세에 법화경을 펼치는 사람을 박해하는 사람들로, 법화경 권지품 제13에 설해진다. 묘락대사 담연이 『법화문구기』 권8의4에서 세 종류로 나누었다. ① 속중증상만 — 불법에 무지한 재가의 박해자로 악구 · 매리하고 칼과 막대로 해친다. ② 도문증상만 — 비구로서, 삿된 지혜와 굽은 마음으로 참된 불법을 다 알지 못하면서 제 생각에 집착해 스스로 뛰어나다고 여기며 박해한다. ③ 참성증상만 — 성자처럼 우러름을 받지만 박해의 원흉이 되는 고승으로, 평소에는 세간을 떠난 곳에 살며 자기 이익만 탐하고 악심을 품어, 참언으로 권력자를 움직여 탄압하게 한다. 묘락대사는 셋 가운데 참성증상만이 알아보기 어려워 가장 악하다고 했다.
- 一闡提일천제
- 범어 잇찬티카의 음사로, 불법을 믿지 않아 성불의 인이 끊어진 사람을 말한다. 열반경은 정법을 비방하는 사람을 일천제라 하며, 그가 오히려 아라한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경계한다.
- 阿蘭若 · 納衣 · 六通の羅漢아란야 · 납의 · 육신통의 아라한
- 아란야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수행처, 납의는 버려진 헝겊을 기워 만든 승복, 육신통은 아라한이 갖춘다는 여섯 가지 신통이다. 세간을 떠나 검소하게 수행하는 겉모습으로 세상의 공경을 받는 셋째 적인의 모습이다.
- 般泥洹経반니원경
- 『대반니원경』. 『열반경』의 한역 가운데 하나로, 4~5세기 동진에서 활동한 법현의 번역으로 전하며 6권이다. 반니원은 석존의 입멸을 말하며 대반열반 · 열반이라고도 한다. 북본 『열반경』 40권 가운데 앞 10권의 내용에 해당한다. 本文의 「아라한을 닮은 일천제가 있어 악업을 행하리라」는 『대반니원경』 제6권의 글이다.
- 第三最も甚し後後の者は転識り難き셋째가 가장 심하니, 뒤로 갈수록 점점 알아보기 어렵다
- 묘락대사 담연의 『법화문구기』 권8의4의 글. 속중보다 도문이, 도문보다 참성이 그 그릇됨을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셋째가 가장 악하다고 한다.
- 最在其上최재기상
- 「가장 그 위에 있다」. 법화경 제5권 안락행품 제14의 「이 법화경은 제불여래의 비밀한 장이라,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의 네 글자다. 대성인은 선시초 제14장에서도 「어제경중 최재기상」을 들어, 법화경이 대일경 · 화엄경 · 열반경 · 반야경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을 경문은 법화경의 행자라고 한다고 하셨다.
- 貧道빈도
- 가난한 수행자. 본래 승려가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왕신의 귀의와 후원을 받는 큰 절의 고승들과 대비하여, 기댈 곳 없는 법화경 행자의 처지를 말한다.
- 不軽菩薩불경보살
-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제20에 설해지는 상불경보살. 석존의 과거세 수행의 한 모습이다. 위음왕불의 상법 시대에 「나는 깊이 그대들을 공경하며 감히 업신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보살의 도를 행하여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 — 구마라집의 한역으로 스물네 글자이므로 「이십사자의 법화경」이라 한다 — 을 외며 만나는 모든 사람을 예배했으나, 증상만의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이 수행이 성불의 인이 되었다고 설해진다.
- 賢愛論師현애논사
- 범어 바드라루치. 『대당서역기』 권11에 따르면, 남인도에 대만바라문이라는 바라문이 있어 외전과 역법에 통하여 국왕과 백성의 존경을 받았는데, 교만해져 외도의 세 하늘(대자재천 · 바수천 · 나라연천)과 석존의 상을 만들어 높은 자리의 네 다리로 삼고 그 위에 올라 자기 덕이 네 성인보다 낫다고 설법했다. 서인도에서 온 현애논사가 법론으로 그 그릇된 견해를 꺾었다. 국왕이 대만을 처형하려 하자 현애가 목숨을 구해 주었으나, 대만은 다시 현애를 욕하고 대승을 비방하다가 땅이 갈라져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 予が分斉나의 분수
- 「분제(分齊)」는 분수 · 처지. 한낱 승려에 지나지 않는 니치렌의 처지로서라는 뜻이다.
- 弘法大師・慈覚大師・善無畏三蔵・金剛智三蔵・不空三蔵홍법대사 · 자각대사 · 선무외삼장 · 금강지삼장 · 불공삼장
-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은 당나라에 진언 밀교를 전하고 번역한 인도 · 서역 출신의 세 삼장이며, 홍법(구카이)은 일본 진언종의 개조, 자각(엔닌)은 천태좌주로서 천태종에 진언을 끌어들인 사람이다. 선시초 제4편이 그 그릇됨을 낱낱이 파한 사람들이다.
- 霊山浄土 · 宝浄世界 · 地涌千界영산정토 · 보정세계 · 지용천계
- 영산정토는 석존이 법화경을 설한 영취산을 부처의 정토로 부르는 말이다. 보정세계는 다보불의 본토다. 지용천계의 보살은 종지용출품에서 땅에서 솟아 나와 여래신력품에서 멸후의 홍통을 부촉받은 본화의 보살들로, 그 수가 천 세계를 부순 티끌과 같다고 하여 「천계」라 한다.
- 冥に加し顕に助け그윽이 더하고 드러나게 돕다
- 명가(冥加)는 눈에 보이지 않게 가호하는 것, 현조(顕助)는 눈에 보이게 돕는 것이다. 불보살과 제천의 수호가 보이지 않는 힘과 보이는 일 양쪽으로 미침을 말한다.
마지막 물음 — 「어떤 일이 있기에 신명을 버리기까지 하는가」
제35장이 「신명도 아끼지 말고 수행하여 이번에 불법을 시험해 보라」로 끝났으므로, 묻는 이는 자연스럽게 그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장은, 대성인이 말법의 어본불이시고 일염부제 제일의 지인 · 성인 · 대인이심을 밝혀 온 끝에, 마지막으로 석존의 예언에 대성인의 어신이 부합함을 밝히는 장이다. 그 예언으로 든 것이 법화경 권지품의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와 열반경의 「왕의 사신」의 글이다. 둘 다 삼류의 강적, 그리고 신명을 버려 싸워 내는 일을 말하는 경문이다.
권지품의 「아불애신명 단석무상도」는 이십행의 게를 맺는 서원이다. 부처가 「누가 멸후에 이 경을 펼치겠는가」라고 물은 데 대해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들은, 멸후의 악세에 일어날 온갖 박해 — 무지한 사람들의 악구 · 매리와 칼과 막대, 삿된 지혜를 지닌 비구들의 교만, 세상의 공경을 받는 아란야의 고승들이 국왕 · 대신에게 참언하는 일, 「자주 쫓겨나는」 일 — 를 하나하나 들고, 그 모든 것을 참고 이 경을 펼치겠다고 맹세했다. 그 맹세의 끝이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낀다」이다.
열반경의 비유도 같은 구조다. 왕의 사신은 다른 나라에 가서 목숨을 잃을지언정 왕의 말을 숨기지 않는다. 지자도 그와 같아 범부 가운데서 신명을 아끼지 않고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는 가르침을 펼친다. 장안대사는 이 경문을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로 요약하고 「몸은 가볍고 법은 무겁다」고 풀었다. 대성인은 젊은 날의 「교기시국초」(442쪽)에서 이미 권지품의 「아불애신명」 · 열반경의 「왕사」 · 장안의 「영상신명불닉교」를 나란히 들고, 이렇게 맺으셨다.
此等の本文を見れば三類の敵人を顕さずんば法華経の行者に非ず之を顕すは法華経の行者なり。而れども必ず身命を喪わんか、例せば師子尊者・提婆菩薩等の如くならん
이 본문들을 보면, 삼류의 적인을 드러내지 않으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요, 이를 드러내는 자가 법화경의 행자이니라. 그러나 반드시 신명을 잃게 될 것인가. 예컨대 사자존자 · 제바보살 등과 같으리라.
홍장 2년(1262) 이즈 유배 중의 이 글과 건치 원년(1275)의 선시초 제36장은 같은 경문을 같은 순서로 들고 있다. 다른 것은, 열세 해 전에는 「반드시 신명을 잃게 될 것인가」라는 예견이었던 것이, 이제는 「이 일은 지금의 니치렌의 몸에 들어맞았다」는 사실의 확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마쓰바가야쓰의 습격, 이즈 유배, 고마쓰바라의 칼날, 다쓰노구치의 법난, 사도 유배가 있었다. 「어신의 부합」이라는 장 제목은 이 열세 해의 무게를 담고 있다.
초심 때의 생각 — 「아불애신명」의 네 가지 오해
대성인의 답은 뜻밖에도 당신 자신의 젊은 날의 생각을 털어놓는 데서 시작한다. 「내가 초심 때에 품었던 생각은 …….」 대성인은 출가 이후 오랫동안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네 가지 일로 생각하셨다고 한다.
첫째는 전교 · 홍법 · 자각 · 지증 등이 칙명을 받아 당에 건너간 일이다. 견당사의 배는 자주 난파했다. 『예산대사전』은 전교대사가 연력 23년(804) 가을 제2선을 타고 가던 중 큰 바다 한가운데서 검은 구름이 일어 배가 뒤집힐 뻔했으나, 지니고 있던 사리를 용왕에게 바치자 바람이 그쳐 무사히 건너갔다고 전한다. 같은 해 구카이(홍법)도 견당사의 배로 건너갔고, 엔닌(자각)은 그 뒤 승화 5년(838)에, 엔친(지증)은 인수 3년(853)에 각각 바다를 건넜다. 목숨을 걸고 만 리의 파도를 건너 법을 구한 것은 분명 신명을 아끼지 않는 일처럼 보인다.
둘째는 현장삼장의 인도 구법이다. 현장은 당나라 초에 국경을 넘어 사막과 설산을 지나 인도에 이르렀다. 本文은 그가 「여섯 생 동안 신명을 잃은」 끝에 일곱째 생에 인도에 이르렀다는 전승을 따른다. 곧 「여섯 번이나 목숨을 잃고 일곱 번째에야 겨우 인도에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설산동자가 반 게송을 위해 몸을 던진 일이다. 「제행무상 시생멸법」의 반 게송을 들은 동자는 나머지 반 「생멸멸이 적멸위락」을 듣기 위해 제 몸을 나찰에게 주기로 하고, 게송을 써 둔 뒤 높은 나무에서 몸을 던졌다.

넷째는 약왕보살이 칠만이천 세 동안 팔을 태워 부처께 공양한 일이다. 약왕보살은 과거에 일체중생희견보살로서 법화경을 듣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몸을 태웠고, 다시 태어나서는 칠만이천 세 동안 팔을 태워 등불로 삼았다.
이 넷은 모두 불교의 전통이 「불석신명」의 본보기로 우러러 온 일이다. 그런데 대성인은 「경문대로라면 이것들이 아니다」라고 단언하신다. 왜 아닌가. 풀어 보면 이렇다. 「신명을 버린다」는 것이 무엇인가는 때에 따라 다르다. 어떤 때에는 만 리의 파도를 건너 가르침과 경전을 구하는 것이 되고, 어떤 때에는 반 게송을 위해 몸을 던지거나 칠만이천 세 동안 팔을 태우는 것이 신명을 버리는 일이 된다. 그러나 말법의 니치렌 대성인에게는 삼류의 강적과 싸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해석은 선시초 전체의 주제인 「시」와 정확히 맞물린다. 대성인은 「사도어서」에서 같은 원리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仏法は摂受・折伏時によるべし譬ば世間の文・武二道の如しされば昔の大聖は時によりて法を行ず雪山童子・薩埵王子は身を布施とせば法を教へん菩薩の行となるべしと責しかば身をすつ、肉をほしがらざる時身を捨つ可きや紙なからん世には身の皮を紙とし筆なからん時は骨を筆とすべし
불법은 섭수 · 절복을 때에 따라야 한다. 비유하면 세간의 문 · 무 두 길과 같다. 그러므로 옛 대성인들은 때에 따라 법을 행하였다. 설산동자 · 살타왕자는 「몸을 보시하면 법을 가르쳐 주겠다, 그것이 보살의 행이다」라고 다그쳐 왔으므로 몸을 버렸다. 고기를 원하지 않을 때에 몸을 버려야 하겠는가. 종이가 없는 세상에서는 몸의 가죽을 종이로 삼고, 붓이 없을 때에는 뼈를 붓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같은 글은 이어서, 계율을 깨뜨리는 자를 꾸짖고 계율과 정법을 쓰는 세상에서는 계를 굳게 지니고, 유교 · 도교로 불교를 막는 날에는 도안 · 혜원 · 법도삼장처럼 왕과 논쟁하여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대소 · 권실 · 현밀이 뒤섞인 때에는 천태 · 전교처럼 강하게 가려야 한다고 하신 뒤, 「악왕이 정법을 깨뜨릴 때 삿된 법의 승려들이 그 편이 되어 지자를 없애려 할 때에는 사자왕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가 반드시 부처가 된다. 예컨대 니치렌과 같다(悪王の正法を破るに邪法の僧等が方人をなして智者を失はん時は師子王の如くなる心をもてる者必ず仏になるべし例せば日蓮が如し)」(957쪽)고 맺으셨다. 불석신명의 「형태」는 때에 따라 다르다. 설산동자의 때에는 몸을 나찰에게 주는 것이, 현장의 때에는 사막을 건너는 것이 불석신명이었다. 말법의 지금, 악왕과 삿된 승려가 한편이 되어 정법을 누르는 때의 불석신명은 사자왕의 마음으로 그들과 맞서는 것이다.
「사도어서」는 또 이렇게도 말씀하신다. 「세간의 얕은 일에는 신명을 잃으면서도 큰일인 불법 따위에는 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부처가 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世間の浅き事には身命を失へども大事の仏法なんどには捨る事難し故に仏になる人もなかるべし)」(956쪽). 사람은 세간의 은혜나 체면을 위해서는 목숨을 버리면서도, 정작 가장 큰일인 불법을 위해서는 몸을 아낀다. 불석신명이 어려운 것은 그것이 막연한 희생이 아니라, 지금 이때의 가장 큰 적을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 ①전교 · 홍법 · 자각 · 지증이 칙명으로 당에 건너간 일勅宣を給いて漢土にわたりし事
- ②현장삼장이 여섯 생 동안 신명을 잃으며 인도에 들어간 일六生が間・身命をほろぼし
- ③설산동자가 반 게송을 위해 몸을 던진 일半偈のために身をなげ
- ④약왕보살이 칠만이천 세 동안 팔을 태운 일七万二千歳が間・臂をやきし
경문이 가리키는 불석신명 — 권지품의 삼류의 적인
그렇다면 경문이 말하는 「아불애신명」은 무엇인가. 대성인은 단 한 문장으로 답하신다. 「경문에 아불애신명이라 한 것은, 위에 삼류의 적인을 들어 그들이 욕하고 공격하며 칼과 막대에 이르러 신명을 빼앗는다고 보이는 것이다.」 곧 「아불애신명」은 그 앞에 나열된 삼류의 강적의 박해를 받아들이는 맹세다.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몸을 태우거나 먼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법화경을 펼치는 까닭에 남이 신명을 빼앗으려 할 때 그것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권지품의 이십행의 게는 묘락대사의 해석에 따라 세 무리로 나뉜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 세 무리를 경문과 석으로 길게 논하셨다.
諸の無智の人の悪口罵詈等し、及び刀杖を加うる者有らん
모든 무지한 사람이 악구 · 매리 등을 하고, 칼과 막대를 가하는 자가 있으리라.
悪世の中の比丘は邪智にして心諂曲に、未だ得ざるを為れ得たりと謂い、我慢の心充満せん
악세 가운데의 비구는 삿된 지혜에 마음이 아첨하고 굽어,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하며 아만의 마음이 가득하리라.
或は阿練若に、納衣にして空閑に在り、自ら真の道を行ずと謂いて、人間を軽賤する者有らん。利養に貪著するが故に、白衣の与に法を説いて、世に恭敬せらるること、六通の羅漢の如くならん
혹은 아련야에서 누더기를 입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스스로 참된 도를 행한다고 하며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가 있으리라. 이양에 탐착하므로 재가인에게 법을 설하여, 세상의 공경을 받기를 육신통의 아라한과 같이 하리라.
이 셋째 무리의 게송은 이어서 「늘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우리를 헐뜯으려고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와 다른 비구들을 향해 우리의 허물을 비방하여 말하기를, 이들은 삿된 견해의 사람으로 외도의 논의를 설한다고 하리라」, 그리고 「악귀가 그 몸에 들어가 나를 욕하고 헐뜯으리라(悪鬼其の身に入つて、我を罵詈し毀辱せん)」고 설한다. 참성증상만의 무서움은 그 자신이 칼을 드는 것이 아니라, 국왕과 대신에게 참언하여 권력의 칼을 움직이게 한다는 데 있다. 「아불애신명」은 이 모든 박해 — 무지한 대중의 악구와 폭력, 승려들의 교만과 공격, 그리고 성자로 우러름받는 고승이 권력과 손잡고 가하는 탄압 — 를 다 받아 내겠다는 맹세다.
「아라한을 닮은 일천제」 — 열반경 · 반니원경과 묘락의 해석
대성인은 열반경의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도 같은 뜻이라고 하신다. 그 근거는 열반경 자체에 있다. 「왕의 사신」 비유 바로 뒤에 이어지는 경문이 「일천제가 있어 아라한의 모습을 하고 한적한 곳에 살며 방등경전을 비방하리라. 모든 범부는 이를 보고 다 참된 아라한이요 대보살이라고 하리라」이기 때문이다. 곧 열반경이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고 할 때, 그 상대는 아라한의 모습을 한 일천제, 세상이 대보살로 우러르는 정법의 비방자다.
대성인은 여기에 권지품의 셋째 적인 — 「아란야에서 누더기를 입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 세상의 공경을 받기를 육신통의 아라한과 같이 하는 자」 — 를 겹치시고, 다시 반니원경의 「아라한을 닮은 일천제가 있어 악업을 행하리라」를 드신다. 반니원경은 법현의 번역으로 전하는 6권본 『대반니원경』으로, 북본 열반경의 앞 10권에 해당한다. 「개목초」에서 대성인은 이 반니원경의 글을 더 길게 인용하셨다.
羅漢に似たる一闡提有つて悪業を行じ一闡提に似たる阿羅漢あつて慈心を作さん
아라한을 닮은 일천제가 있어 악업을 행하고, 일천제를 닮은 아라한이 있어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리라.
아라한을 닮았지만 실은 일천제인 자가 있고, 일천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라한인 자가 있다. 「개목초」의 같은 대목은 이어서, 일천제를 닮은 아라한이란 성문을 꾸짖고 널리 방등을 설하여 「나와 그대들은 모두 보살이다. 일체에 다 여래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며, 그런데도 중생은 그를 일천제라 부른다고 경문을 이어 인용하신다. 겉모습과 실상이 뒤바뀌는 것, 그것이 말법의 특징이다. 세상의 존경을 받는 고승이 정법의 적이고, 세상의 천대를 받는 한 승려가 참된 법화경의 행자다.
이 경문들에서 대성인은 결론을 내리신다. 「정법의 강적이라 하는 것은 악왕 · 악신보다도, 외도 · 마왕보다도, 파계한 승려보다도, 계를 지니고 지혜 있는 대승 가운데에 큰 비방자가 있다는 것이다.」 정법을 해치는 자의 차례를 밖에서 안으로 좁혀 가는 이 문장은, 가장 무서운 적이 가장 밖에 있는 폭군이나 이교도가 아니라 가장 안쪽 — 계율을 지키고 학식이 높아 모두가 우러르는 불교계의 중심 — 에 있다고 말한다.
그 근거가 묘락대사의 『법화문구기』 권8의4다. 「셋째가 가장 심하니, 뒤로 갈수록 점점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속중증상만은 무지한 재가 대중이므로 그 악은 겉으로 드러난다. 도문증상만은 승려이므로 그보다 알아보기 어렵다. 참성증상만은 성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가장 알아보기 어렵다. 알아보기 어려울수록 그 해악은 깊다.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르며, 그가 정법을 비방하면 그 비방을 정론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개목초」는 묘락의 이 석에 이어 묘락의 제자 지도법사의 『동춘(東春)』의 글 「셋째 『혹유아련야』 아래 세 게송은 곧 출가의 처소에 일체의 악인을 거둔다(第三に或有阿練若より下の三偈は即是出家の処に一切の悪人を摂す)」를 들고, 그것이 당세 일본국의 어디인가를 물으신다.
華洛には聖一等・鎌倉には良観等ににたり、人をあだむことなかれ眼あらば経文に我が身をあわせよ
교토에서는 쇼이치 등, 가마쿠라에서는 료칸 등과 닮았다.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눈이 있다면 경문에 제 몸을 맞추어 보라.
쇼이치(聖一)는 교토 도후쿠사를 연 선승 엔니 벤엔(円爾弁円)이고, 료칸(良観)은 가마쿠라 고쿠라쿠사의 율승 닌쇼(忍性)다. 둘 다 당대에 계율과 학식, 자선 사업으로 조정과 막부의 깊은 귀의를 받던 고승이었다. 특히 료칸은 문영 8년(1271) 여름 막부의 명으로 기우의 기도를 했으나 비가 내리지 않았고, 그 뒤 대성인을 고소하는 데 깊이 관여했다고 대성인의 어서들은 전한다. 그해 9월 12일 다쓰노구치의 법난이 일어났다. 또 가마쿠라 겐초사는 송나라에서 건너온 선승 란케이 도류(蘭渓道隆)를 개산으로 하여 호조 도키요리가 세운 절이며, 선시초 제5편에서 보았듯이 대성인은 문영 8년 9월 12일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겐초사 · 주후쿠사 · 고쿠라쿠사 · 다이부쓰 · 조라쿠사 등」의 염불자 · 선승들의 그릇됨을 들어 간하셨다. 이렇게 경문의 「참성증상만」은 대성인 당시의 가마쿠라에서 구체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개목초」의 이 대목이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눈이 있다면 경문에 제 몸을 맞추어 보라」로 끝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삼류의 강적을 논하는 것은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경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누가 법화경의 행자이고 누가 그 적인가를 스스로 가려 보라는 것이다. 「개목초」의 다른 대목에서 대성인은 「저 삼류의 원적 가운데 우리가 들어 있는가, 또는 법화경의 행자 가운데 있는가, 의심스럽다」고까지 하셨다. 삼류의 강적의 교설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 악왕 · 악신悪王悪臣
- 외도 · 마왕外道魔王
- 파계한 승려破戒の僧侶
- 계를 지니고 지혜 있는 대승 가운데의 큰 비방자持戒有智の大僧の中に大謗法の人
「최재기상」의 네 글자 — 누가 법화경의 행자인가
강적의 정체를 밝히신 뒤, 대성인은 반대쪽, 곧 법화경의 행자의 정의로 넘어가신다. 법화경 제5권 안락행품의 「이 법화경은 제불여래의 비밀한 장이라,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 이 경문에 「최재기상」의 네 글자가 있다. 그러므로 이 경문대로라면 「법화경을 일체경의 정상에 있다고 말하는 이가 법화경의 행자」다.
이 정의는 단순하지만 날카롭다. 법화경을 읽는 사람, 법화경을 강의하는 사람, 법화경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법화경이 일체경의 정상에 있다고 — 곧 대일경보다도, 화엄경보다도, 열반경보다도 위에 있다고 — 분명히 말하는 사람만이 경문이 말하는 법화경의 행자다. 선시초 제14장에서 대성인은 같은 경문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경문에 「능히 이 경을 지니고 능히 이 경을 설한다(能持是経能説此経)」고 한 것의 뜻은 「어제경중 최재기상」이라 하여 대일경 · 화엄경 · 열반경 · 반야경 등보다 법화경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자를 경문은 법화경의 행자라 한다는 것이며, 그렇다면 일본에 불법이 건너온 지 칠백여 년 동안 전교대사와 니치렌 외에는 한 사람도 법화경의 행자가 없다고.
이 정의가 앞의 삼류의 강적과 이어지는 지점이 바로 이 장의 핵심이다. 법화경을 「최재기상」이라고 말하는 순간, 법화경보다 다른 경을 높이는 모든 종파 — 특히 국가의 후원을 받는 진언 — 와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그 종파의 고승들은 「계를 지니고 지혜 있는 대승」, 세상이 아라한처럼 우러르는 사람들이다. 법화경의 행자가 되는 것과 삼류의 강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같은 일의 양면이다. 대성인이 「교기시국초」에서 「삼류의 적인을 드러내지 않으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요, 이를 드러내는 자가 법화경의 행자」라고 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국왕에게 존중받는 사람들과 빈도의 행자 — 불경보살과 현애논사
대성인은 그 충돌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리신다. 국왕에게 존중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과 맞서 논쟁할 때, 저쪽은 왕과 신하의 귀의를 받고 있고 법화경의 행자는 빈도, 곧 기댈 곳 없는 가난한 승려다. 그러므로 온 나라가 함께 행자를 천대한다. 그때 불경보살처럼, 현애논사처럼 굽히지 않고 말한다면 신명에 미칠 것이다. 「이것이 제일의 대사라고 보인다.」
여기서 대성인이 드시는 두 선례는 의미심장하다. 불경보살은 위음왕불의 상법 시대에 증상만의 비구들이 세력을 떨칠 때,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는 그대들을 깊이 공경하며 감히 업신여기지 않는다. 그대들은 모두 보살도를 행하여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예배하다가, 막대로 맞고 돌을 맞았다. 그는 맞으면서도 멀리 달아나 다시 소리 높여 같은 말을 했다. 현애논사는 국왕과 만민이 스승으로 우러르던 대만바라문의 교만을 홀로 꾸짖다가, 대만의 제자와 단나들에게 갖은 거짓말로 욕을 먹고 매를 맞으면서도 조금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꾸짖었다. 선시초 제24장에서 대성인은 이 현애논사의 이야기를 길게 드시고, 진언사들이 일체의 부처를 모아 관정의 자리에 까는 것이 대만바라문이 네 성인을 자리의 다리로 삼은 것과 같다고 하셨다.
두 선례의 공통점은, 세상의 권위와 다수가 저쪽에 있고 이쪽은 홀로라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굽히지 않고 「말했다(申しつをらば)」는 것이다. 불석신명은 홀로 남을 각오로 진실을 말하는 일이다. 「시모야마어소식」에서 대성인은 당신의 홍교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加刀杖瓦石数数見擯出の文に任せて流罪せられ刀のさきにかかりなば法華経一部よみまいらせたるにこそとおもひきりてわざと不軽菩薩の如く覚徳比丘の様に竜樹菩薩・提婆菩薩・仏陀密多・師子尊者の如く弥強盛に申しはる
「칼과 막대와 기와와 돌을 가하고」 「자주 쫓겨나리라」는 경문대로 유배되고 칼끝에 걸린다면 법화경 한 부를 다 읽어 드린 것이라고 마음을 정하고, 일부러 불경보살처럼, 각덕비구처럼, 용수보살 · 제바보살 · 불타밀다 · 사자존자처럼 더욱더 강하게 말하였노라.
「일부러(わざと)」라는 말에 대성인의 결의가 담겨 있다. 난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않고, 경문의 예언을 몸으로 읽기 위해 일부러 더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것이 「경문대로」의 불석신명이다.
「이것이 제일의 대사」 — 세 가지 「쉽다」와 하나의 「큰일」
그리고 대성인은 마침내 이 경문들을 당신의 몸에 대신다. 「이 일은 지금의 니치렌의 몸에 들어맞았다.」 장 제목 「어신의 부합」이 가리키는 바로 그 문장이다. 니치렌이라는 한 승려의 분수로 홍법대사 · 자각대사 · 선무외삼장 · 금강지삼장 · 불공삼장 같은 이들을 「법화경의 강적」이라 하고 「경문이 참되다면 무간지옥은 의심 없다」고 말하는 것 — 그것이 얼마나 큰일인가를 대성인은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하신다.
벌거벗은 몸으로 큰 불에 들어가는 것은 쉽다. 수미산을 손에 들어 던지는 것도 쉽다. 큰 돌을 지고 큰 바다를 건너는 것도 쉽다. 그러나 일본국에서 이 법문을 세우는 것은 큰일이다.
이 비유는 법화경 견보탑품의 「육난구이(六難九易)」를 떠올리게 한다. 견보탑품에서 석존은, 수미산을 들어 다른 곳에 던지는 것이나 마른 풀을 지고 겁화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것 같은 아홉 가지 일은 오히려 쉽고(九易), 부처의 멸후 악세에 이 경을 지니고 설하는 여섯 가지 일이 어렵다(六難)고 설했다. 「개목초」에서 대성인은 「법화경의 육난구이를 분별하면 일체경을 읽지 않아도 따르게 될 것이다(法華経の六難九易を弁うれば一切経よまざるにしたがうべし)」(223쪽)라고 하셨다. 선시초 제36장의 세 가지 「쉽다」는 그 육난구이를 대성인 당신의 처지로 옮겨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견보탑품의 「어려움」은 일반적인 말이었지만, 대성인에게 그 어려움은 구체적이었다. 일본국에서, 조정과 막부가 몽골 조복의 기도를 맡기고 있는 진언의 조사들을 이름으로 들어 「법화경의 강적」이라 말하는 것이었다.
왜 하필 진언의 다섯 사람인가. 선시초 제4편이 낱낱이 밝혔듯이,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은 당나라에서 진언을 펼치며 법화경의 일념삼천을 훔쳐 대일경에 넣고 「이동사승(理同事勝)」을 세운 사람들이고, 홍법은 일본에서 법화경을 「희론」이라 하여 대일경 · 화엄경의 아래 셋째에 두었으며, 자각은 전교대사의 제자로 천태좌주가 되면서도 진언을 법화경 위에 두어 히에이산을 진언화했다. 선시초가 「이것보다 백천만억 배 믿기 어려운 가장 큰 악사가 있다(これよりも百千万億倍・信じがたき最大の悪事はんべり)」(279쪽)라고 하여 자각의 그릇됨을 가장 무겁게 다룬 것은, 자각이 법화경을 지닌다는 이름 아래서 법화경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계를 지니고 지혜 있는 대승」이요, 세상이 대보살로 우러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법화경의 강적이라 부르는 것은 일본 불교 전체의 권위에 맞서는 일이었다. 선시초 제5편의 「세 번의 고명」 가운데 셋째, 문영 11년(1274) 4월 8일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몽골 조복을 진언사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간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성인의 생애에서 이 「제일의 대사」는 이즈와 사도의 두 번의 유배, 다쓰노구치에서 목이 베일 뻔한 법난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를 띠었다. 대성인은 이 큰일을 「벌거벗고 큰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시면서도, 이미 그것을 해내셨다. 「이 일은 지금의 니치렌의 몸에 들어맞았다」는 것은 예언의 확인이자 실천의 보고다.
명가현조 — 「한때 하루라도 안온할 수 있겠는가」

선시초는 한 문장으로 끝난다. 「영산정토의 교주 석존, 보정세계의 다보불, 시방 분신의 제불, 지용천계의 보살들, 범천 · 제석 · 일천 · 월천 · 사천왕 등이 그윽이 더하고 드러나게 돕지 않으신다면 한때 하루라도 안온할 수 있겠느냐.」
이 문장에 늘어선 이름들은 법화경의 회좌 그 자체다. 영산정토의 석존은 법화경을 설한 부처, 보정세계의 다보불은 그것을 증명한 부처, 시방 분신의 제불은 그 진실을 설상으로 보증한 부처들이다. 제35장에서 「교주 석존의 금언 · 다보불의 증명 · 시방 제불의 설상」으로 법화경의 진실을 받쳤던 삼불이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지용천계의 보살 — 종지용출품에서 땅에서 솟아 나와 여래신력품에서 멸후의 홍통을 부촉받은 본화의 보살들 — 과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왕 같은 법화경 수호의 제천이 뒤따른다. 법화경을 설하고 증명하고 부촉받고 수호하기로 서원한 모든 존재가 니치렌 한 사람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하루라도 안온할 수 있겠는가」라는 반어에는 두 가지가 함께 들어 있다. 하나는 대성인의 처지가 그만큼 위태롭다는 것이다. 벌거벗고 큰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을 하고 있으니, 사람의 힘만으로는 하루도 버틸 수 없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대성인은 지금 살아서 이 글을 쓰고 계신다는 것이다. 다쓰노구치에서 목이 베이지 않았고, 사도에서 죽지 않고 돌아왔으며, 지금 미노부에서 선시초를 쓰고 계신다. 그 자체가 명가현조의 현증이다. 그래서 이 문장은 「명으로 현으로 수호하시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수호가 없다면 하루 한때도 안온하게 홍통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대성인은 만년의 「성인어난사」에서 문하에게 같은 확신을 주셨다.
設い大鬼神のつける人なりとも日蓮をば梵釈・日月・四天等・天照太神・八幡の守護し給うゆへにばつしがたかるべしと存じ給うべし、月月・日日につより給へ・すこしもたゆむ心あらば魔たよりをうべし
설령 대귀신이 붙은 사람이라 해도, 니치렌은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왕 등과 천조태신 · 팔번이 수호하시므로 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라. 달마다 날마다 강해지라. 조금이라도 해이한 마음이 있으면 마가 틈을 얻으리라.
명가현조는 앉아서 기다리는 보호가 아니다. 「성인어난사」가 「달마다 날마다 강해지라」고 덧붙이듯, 그것은 법화경을 경대로 행하는 사람에게 응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이 언제나 눈에 보이는 형태로 오는 것도 아니다. 「개목초」에서 대성인은 「나와 나의 제자는 여러 난이 있더라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리라. 하늘의 가호가 없음을 의심하지 말라. 현세가 안온하지 않음을 한탄하지 말라(天の加護なき事を疑はざれ現世の安穏ならざる事をなげかざれ)」(234쪽)고 하셨다. 「명가」는 보이지 않는 가호다. 난이 있다고 해서 가호가 없는 것이 아니며, 난을 이겨 내고 신심을 지키는 그 자체가 가호의 증거다.
제자에게 — 「삼류의 적인은 반드시 있다」
「신명을 버린다」의 뜻은 때에 따라 다르며, 말법의 대성인에게는 삼류의 강적과 싸우는 것이 그것이었다. 여기에 이렇게 덧붙일 수 있다. 우리는 니치렌 대성인의 권속이므로, 우리가 신명을 버리는 것도 삼류의 강적과의 싸움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대성인 스스로 제자들에게 거듭 말씀하신 바다. 「여설수행초」에서 대성인은 이렇게 경계하셨다.
真実の法華経の如説修行の行者の師弟檀那とならんには三類の敵人決定せり、されば此の経を聴聞し始めん日より思い定むべし況滅度後の大難の三類甚しかるべしと
진실한 법화경의 여설수행의 행자의 사제 · 단나가 된다면 삼류의 적인은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이 경을 듣기 시작한 날부터 마음에 정해 두어야 한다 — 「하물며 멸도 후」의 대난인 삼류가 심하리라고.
이 글은 이어서 「그런데 나의 제자 가운데에도 미리 들었으면서 크고 작은 난이 오면 이제 처음 놀라 간이 떨어져 신심을 깨뜨렸다」고 탄식하신다. 선시초 제35장의 「나의 제자들은 시험 삼아 ……」와 제36장의 「아불애신명」은 이 탄식의 반대편에서, 제자들이 난이 올 때 놀라지 않도록 미리 그 뜻을 밝혀 두신 것이다.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막연한 희생의 각오가 아니라, 법화경을 경대로 행하면 반드시 삼류의 강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그때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러서지 않음의 근거가 명가현조다. 「성인어난사」는 같은 자리에서 「각각 사자왕의 마음을 꺼내어 아무리 사람이 위협해도 두려워하지 말라. 사자왕은 백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자의 새끼도 또한 이와 같다(各各師子王の心を取り出して・いかに人をどすともをづる事なかれ、師子王は百獣にをぢず・師子の子・又かくのごとし)」(1190쪽)고 하셨다. 스승의 몸에 경문이 부합했듯이, 제자의 몸에도 경문은 부합한다. 삼류의 강적이 제자에게도 일어나고, 명가현조도 제자에게 미친다. 선시초가 「나의 제자들은 시험 삼아 ……」로 시작해 「명가현조」로 끝나는 마지막 두 장은, 스승의 길이 곧 제자의 길이라는 것을 보이는 하나의 가르침이다.
제36장은 석존의 예언에 대성인의 어신이 부합함을 밝히는 장이다. 「신명을 버린다」는 것의 형태는 때에 따라 다르며 말법에는 삼류의 강적과 싸우는 것이 그것이니, 대성인의 권속인 제자들의 불석신명도 삼류의 강적과의 싸움에 있다.
이 편을 맺으며
이 편의 두 장은 선시초의 마지막 증명이다. 제35장에서 대성인은 「옛날에도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전교대사의 『법화수구』로 답하시어, 법화경을 지니는 사람이 중생 가운데 제일이라는 것이 자찬이 아니라 「이미 불설에 의거한」 논리의 귀결임을 보이셨다. 준마의 꼬리에 붙은 진드기와 전륜왕을 따르는 열부의 비유는 「법이 묘하므로 사람이 귀하다」는 원리를 드러내고, 범왕보다 뛰어나고 제석을 넘어서며 보름달과 같다는 말씀은 주 · 사 · 친의 삼덕을 갖춘 사람을 그려 보였다. 이어서 대성인은 찬탄의 복과 비방의 죄를 석존의 금언 · 다보의 증명 · 시방 제불의 설상 위에 세우시고, 보현품의 열여섯 글자 — 「또한 현세에 그 복보를 얻으리라」 「반드시 금세에 현재의 과보를 얻으리라」 — 의 진위를 당신의 금생에 거셨다. 그리고 「나의 제자들은 시험 삼아 법화경대로 신명도 아끼지 말고 수행하여 이번에 불법을 시험해 보라」고 명하셨다. 도리와 증문을 다 갖춘 선시초가 마지막으로 요구한 것은 현증이며, 그 현증은 스승과 제자의 실천 위에서 드러난다.
제36장은 그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의 참뜻을 밝혔다. 대성인은 젊은 날 입당 구법 · 현장의 여행 · 설산동자 · 약왕보살을 불석신명으로 생각하셨으나, 경문대로라면 그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권지품의 「아불애신명」은 그 앞에 설해진 삼류의 강적의 박해를 받아들이는 맹세이며, 열반경의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도 아라한의 모습을 한 일천제와 맞서는 일을 말한다. 정법의 가장 무서운 적은 악왕이나 외도가 아니라 「계를 지니고 지혜 있는 대승」 가운데 있으며, 묘락대사의 말대로 「셋째가 가장 심하다」. 법화경을 「최재기상」이라 말하는 사람이 법화경의 행자이고, 그렇게 말하는 순간 국왕에게 존중받는 고승들과 부딪쳐 신명에 미치게 된다. 대성인은 그것을 「제일의 대사」라 하시고, 「이 일은 지금의 니치렌의 몸에 들어맞았다」고 확인하셨다. 벌거벗고 큰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그 일을 해내고 지금 살아 계신 것 자체가, 영산의 석존 · 다보 · 시방의 제불 · 지용의 보살 · 제천이 그윽이 더하고 드러나게 도우신 증거다.
선시초 여섯 편을 돌아보며
선시초는 「무릇 불법을 배우려면 반드시 먼저 시를 익혀야 한다(夫れ仏法を学せん法は必ず先づ時をならうべし)」(256쪽)로 시작하여 「그윽이 더하고 드러나게 돕지 않으신다면 한때 하루라도 안온할 수 있겠는가」로 끝난다. 처음과 끝을 나란히 놓으면 이 긴 글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가 보인다. 「시」를 익힌다는 것은 결국 지금 이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고, 대성인은 그 답을 당신의 몸으로 보이셨다.
제1편은 그 「시」의 원리를 세웠다. 대통지승불이 십 소겁 동안 침묵하고 석존이 사십여 년 동안 법화경을 설하지 않은 것은 「설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며, 부처의 설법은 기보다 시에 따른다.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 가운데 지금은 투쟁견고 · 백법은몰의 제5의 오백 년이고, 그 뒤에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한다는 것이 경문과 천태 · 묘락 · 전교의 석으로 증명되었다.
제2편과 제3편은 그 원리를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실제 역사에 대어 보았다. 정법의 처음 오백 년에는 가섭 · 아난이 소승을, 뒤의 오백 년에는 용수 · 천친이 권대승을 펼쳤고, 상법에 들어 불법은 중국으로 건너가 천태대사가 법화경 적문의 일념삼천을 세웠으며, 상법의 끝에는 전교대사가 일본에서 그것을 펼쳤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펼치지 않은 「최대의 심밀한 정법」이 남아 있었고, 그것은 말법의 처음 오백 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4편은 같은 척도로 여러 종파의 그릇됨을 가렸다. 정토는 「천중무일」로 법화경을 버리게 했고, 선은 교외별전을 내세워 경전을 가볍게 했으며, 진언은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에서 홍법 · 자각 · 지증으로 이어지며 법화경을 대일경의 아래에 두었다. 특히 전교대사의 제자로서 천태좌주가 된 자각이 법화경을 진언 아래에 둔 것은 「이것보다 백천만억 배 믿기 어려운 가장 큰 악사」였다.
제5편은 그렇다면 말법에 누가 그 법을 펼치는가에 답했다. 대성인은 법화경을 위해 국토에 강적을 많이 만들고 처음으로 「남묘호렌게쿄」를 부르고 권한 사실로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이심을, 재앙의 근원을 아는 「지인」, 세 번의 고명으로 미래를 맞힌 「성인」, 일본 제일의 「대인」이심을 밝히시고, 「대만」의 힐난에 「뭇별과 보름달」로 답하셨다.
그리고 이 제6편이 그 모든 것을 「현증」과 「어신의 부합」으로 마무리했다. 경문이 약속한 복보와 경문이 예언한 난이 모두 대성인 한 몸 위에서 실현되었고, 대성인은 제자들에게도 같은 길을 걸어 불법을 시험해 보라고 명하셨다. 「시」의 논의는 이렇게 하여 한 사람의 「불석신명」으로 귀결한다. 때를 안다는 것은 지금이 삼류의 강적이 일어나는 때이며 동시에 남묘호렌게쿄가 광선유포하는 때라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 때를 아는 사람은 신명을 아끼지 않고 법을 펼친다.
서강에서 보았듯 선시초의 원의(元意)는 말법의 광선유포에 있으며, 본문의 겉에서는 정상말 삼시에 걸친 삼국 불교의 흐름을 논하면서도 그 속뜻은 문저비침의 대법이 광선유포해야 할 것과 대성인이 하종의 주사친이심을 밝히는 데 있다. 이 두 뜻은 이 마지막 두 장에서 하나로 만난다. 법이 묘하므로 사람이 귀하고(제35장), 그 사람은 경문대로 신명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법을 세상에 세운다(제36장). 법과 사람이 둘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길이 제자의 길이 된다는 것 — 선시초 서른여섯 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가르침이다.
시를 밝힌다 제1편 · 제1~6장「불법을 배우려면 먼저 시를 익혀라」「무릇 불법을 배우려면 반드시 먼저 시를 익혀야 한다」夫れ仏法を学せん法は必ず先づ時をならうべし대집경 오오백세 · 후오백세 광선유포정상말 홍교의 역사 여러 종파의 그릇됨 제4편 · 제20~27장「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홍법 · 자각의 그릇됨말법의 법화경 행자 제5편 · 제28~34장「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지인 · 성인 · 대인, 「뭇별과 보름달」제6편 · 제35~36장「현증의 글과 어신의 부합」열여섯 글자「이번에 불법을 시험해 보라」此の度仏法を心みよ「아불애신명」명가현조그윽이 더하고 드러나게 돕다冥に加し顕に助け
선시초의 여섯 편은 여기서 끝난다. 처음으로 돌아가 서강 「선시초를 펼치며」에서 저술의 배경과 대의 · 원의를 다시 확인하고, 같은 시기의 「보은초」, 그리고 삼류의 강적을 정면으로 논한 「개목초」와 함께 읽으면,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때」를 가려 쓰신 이 글의 무게가 더 분명해질 것이다.
더 읽기
- 선시초 서강 「선시초를 펼치며 — 저술 · 대의 · 원의」 — 선시초 전체의 저술 배경과 원의, 여섯 편 구성
- 선시초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 — 지인 · 성인 · 대인」 — 「뭇별과 보름달」 · 세 번의 고명, 이 편의 바로 앞
- 선시초 제4편 「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 — 홍법 · 자각의 그릇됨」 — 「법화경의 강적」으로 이름 불린 진언의 조사들과 현애논사 · 대만바라문
- 개목초 제8편 「삼류의 강적과 법화경의 행자」 — 권지품 이십행의 게와 묘락 · 동춘의 석, 쇼이치 · 료칸
- 인물탐구 「전교대사」 — 『법화수구』와 『의빙천태집』의 저자, 입당 구법
- 불교 교학 「남묘호렌게쿄」 — 장의 끝에 두 번 거듭된 「남무묘법연화경」의 뜻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선시초」 · 「개목초」 · 「교기시국초」 · 「사도어서」 · 「여설수행초」 · 「성인어난사」 · 「시모야마어소식」 · 「지묘법화문답초」 · 「난조전답서」 · 「호렌초」 · 「삼삼장기우사」 · 「현입정의초」 · 「법문을 말씀하시는 방법지사」 · 「입정안국론」 — 일본어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 『묘법연화경』(구마라집 역) T9 no.262 — 비유품 제3 · 견보탑품 제11 · 권지품 제13 · 안락행품 제14 · 종지용출품 제15 · 상불경보살품 제20 · 여래신력품 제21 · 약왕보살본사품 제23 · 보현보살권발품 제28
- 『대반열반경』(북본) T12 no.374
- 『대반니원경』(6권) T12 no.376
- 묘락대사 담연, 『법화문구기』 T34 no.1719
- 전교대사 사이초, 『법화수구』 · 『의빙천태집』
- 『대지도론』 T25 no.1509
- 현장, 『대당서역기』 T51 no.2087
- 『예산대사전』
- 사마천, 『사기』 백이열전
- 니치칸 상인, 「선시초 문단(撰時抄文段)」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연구
- 『선시초 강의』 — 제35 · 36장의 本文 · 現代語訳 · 語釈 · 講義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The Selection of the Time」 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