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직전의 산마을 — 지붕 위의 닭과 숲 가장자리의 두견새, 때를 아는 생명

불법을 배우려면 먼저 시를 익혀라 — 시의 요긴함과 경석의 증거

선시초 · 제1편 · 제1~6장

撰時抄 — 時の要なるを標す ~ 釈の文を引いて証す어서 256–260쪽
저술
건치 원년(1275) · 54세 · 미노부
장
제1~6장
쪽수
어서 256:01–260:11
시대 구분
정법 · 상법 · 말법, 대집경 오오백세

여섯 편 · 선시초 36장 구성도

36장 → 여섯 편
  1. 序講256 앞저술 · 대의 · 원의
  2. 시를 밝힌다
  3. 정상말 홍교의 역사
  4. 정상말 홍교의 역사
  5. 여러 종파의 그릇됨
  6. 말법의 법화경 행자
  7. 말법의 법화경 행자

「선시초」는 「무릇 불법을 배우려면 반드시 먼저 시(時)를 익혀야 하느니라」라는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편은 선시초 여섯 편 가운데 첫째로, 서른여섯 장 전체의 총론에 해당하는 제1장부터 제6장까지를 읽는다. 대성인은 먼저 대통지승불 · 석존 · 노자 · 미륵, 그리고 두견새와 닭까지 들어 「때」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 없음을 보이시고, 이어 화엄의 적멸도량과 법화의 영산회상을 견주어 부처의 설법이 기(機)보다 시(時)에 따른다는 것을 밝히신다. 다시 섭수와 절복의 두 갈래 경문을 천태 · 장안의 석으로 풀어 「시에 맞을 뿐」이라는 원칙을 세우시고,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을 펼쳐 지금이 백법은몰의 제5의 오백 년이며 그 뒤에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한다고 선언하신다. 끝으로 법화경의 열 경문과 천태 · 묘락 · 전교의 글을 들어 이 선언을 경(經)과 석(釋)으로 증명하신다. 이 편이 묻는 것은 하나다 — 지금은 어떤 때이며, 그때에 맞는 법은 무엇인가.

선시초는 건치 원년(1275), 미노부에 들어가신 이듬해에 쓰신 글로, 십대부 어서의 하나이며, 「시(時)」라는 한 글자를 표제에 내건 저술이다. 「찬시(撰時)」, 곧 「때를 가린다」는 제목 그대로, 이 글은 불교 이천 년의 역사를 「언제 무엇이 펼쳐졌는가」의 관점에서 다시 읽고, 말법이라는 지금의 때에 펼쳐져야 할 법이 법화경 본문의 문저에 감추어진 남묘호렌게쿄임을 논증한다. 그 논증의 출발점이 이 편의 여섯 장이다. 여기에서 세워진 원칙 — 시가 교 · 기 · 국 · 서를 결정한다는 것, 부처는 기가 있어도 시가 이르지 않으면 설하지 않는다는 것, 대집경의 제5의 오백 년이 곧 「후오백세 광선유포」의 때라는 것 — 은 뒤의 서른 장 전체를 꿰뚫는 척도가 된다.

여섯 편으로 나눈 선시초 전체에서 이 편은 「시를 밝힌다」는 첫째 갈래, 곧 총론과 경석(經釋)의 증거를 맡는다. 이어지는 선시초 제2편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교와 묘법 유포의 필연」과 제3편 「용수 · 천태 · 전교의 홍통과 말법의 비법」은 이 편의 원칙을 정상(正像) 이천 년의 실제 역사에 대어 보는 부분이고, 제4편 「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는 그 척도로 여러 종파의 그릇됨을 가린다. 마지막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와 제6편 「현증의 글과 어신의 부합」은, 이 편의 제5장이 경문으로 그려 보인 「지인 한 사람」이 바로 대성인 자신임을 밝히는 데로 나아간다. 이 편을 꼼꼼히 읽어 두면, 선시초가 왜 그토록 많은 역사와 논쟁을 거쳐 마지막에 「니치렌은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라는 결론에 이르는지가 처음부터 보인다.

이 편의 여섯 장은 문답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 제1장이 「시를 익혀라」는 표제를 내걸면(標), 제2장은 그 근거로 부처의 설법이 시에 따른다는 것을 밝히고(明), 제3장은 「기에 맞지 않는 대법을 주면 설한 자의 죄가 아닌가」라는 힐난을 풀며(會), 제4장은 정상말의 시대 구분에 맞추어 멸후의 홍교를 밝히고, 제5장과 제6장은 그것을 경문과 석문으로 증명한다(證). 표(標) · 석(釋) · 회(會) · 증(證)의 정연한 구성이다.

이 편의 장

第一章時の要なるを標す제1장 시의 요긴함을 표하다 — 대통지승불 · 석존 · 노자 · 미륵과 두견새 · 닭을 들어, 불법을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시를 익혀야 함을 내건다.
第二章仏法は時によるを明かす제2장 불법은 시에 의함을 밝히다 — 화엄의 적멸도량과 법화의 영산회상을 견주어, 설법은 기의 숙 · 불숙보다 시의 이르고 이르지 않음에 따름을 밝힌다.
第三章機教相違の難を会す제3장 기와 교가 어긋난다는 힐난을 풀다 — 길을 만든 자와 좋은 의사의 비유, 섭수 · 절복의 두 갈래 경문과 천태 「시에 맞을 뿐」 · 장안 「취사를 마땅히 하라」의 석.
第四章正像末に約して滅後の弘教を明かす제4장 정상말에 맞추어 멸후의 홍교를 밝히다 —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 도작 · 법연의 그릇된 해석, 백법은몰 뒤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팔만 나라에 광선유포함.
第五章経文を引いて証す제5장 경문을 들어 증명하다 — 약왕품 「후오백세 광선유포」를 비롯한 열 경문과, 지인 한 사람의 출현에서 일동 창제에 이르는 광선유포의 차제.
第六章釈の文を引いて証す제6장 석의 글을 들어 증명하다 — 천태 · 묘락 · 전교가 말법을 그리워한 글, 법화경 유포의 두 번, 「정상 이천 년의 대왕보다 말법 지금의 백성」.
제1장 시의 요긴함을 표하다
어서 256쪽 1~5행 · 第一章 時の要なるを標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56쪽 1~5행
本文 · 어서 원문

撰時抄   建治元年  五十四歳御作 釈子日蓮述ぶ 夫れ仏法を学せん法は必ず先づ時をならうべし、過去の大通智勝仏は出世し給いて十小劫が間一経も説き給はず経に云く一坐十小劫又云く「仏時の未だ至らざるを知り請を受けて黙然として坐す」等云云、今の教主釈尊は四十余年の程法華経を説き給はず経に云く「説く時未だ至らざるが故」と云云、老子は母の胎に処して八十年、弥勒菩薩は兜率の内院に籠らせ給いて五十六億七千万歳をまち給うべし、彼の時鳥は春ををくり鶏鳥は暁をまつ畜生すらなをかくのごとし何に況や仏法を修行せんに時を糾ざるべしや、

풀이

선시초(撰時抄) — 건치 원년(1275), 쉰네 살 때 지음. 석자(釋子) 니치렌이 서술하느니라. 무릇 불법을 배우는 길은 반드시 먼저 시(時)를 익혀야 하느니라. 과거의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은 세상에 나오시어 십 소겁 동안 경 하나도 설하지 않으셨으니, 경에 이르되 「한 번 앉아 십 소겁(一坐十小劫)」이라 하고, 또 이르되 「부처는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아시고 청을 받고도 묵연히 앉아 계셨느니라」 등이라 하였느니라. 지금의 교주 석존은 사십여 년 동안 법화경을 설하지 않으셨으니, 경에 이르되 「설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니라」라고 하였느니라. 노자(老子)는 어머니의 태 속에 여든 해를 머물렀고, 미륵보살은 도솔천의 내원에 들어앉으시어 오십육억 칠천만 년을 기다리실 것이니라. 저 두견새는 봄을 보내고서야 울고, 닭은 새벽을 기다려 우느니라. 축생조차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불법을 수행하면서 시를 가리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어구 풀이

撰時抄 · 釈子日蓮선시초 · 석자 니치렌
「찬시(撰時)」는 「때를 가린다」는 뜻이다. 본문 첫머리의 「건치 원년, 쉰네 살 때 지음」은 저술 연도와 연세를, 「석자 니치렌이 서술한다」는 서명을 적은 것이다. 「석자(釋子)」는 석존의 제자라는 뜻으로, 대성인이 이 글을 석존 불법의 정통을 잇는 자의 입장에서 쓰신다는 것을 드러낸다. 미노부에 들어가신 문영 11년(1274) 5월의 이듬해에 쓰셨다.
時시(때)
여기서 말하는 「시」는 시계로 재는 시간이 아니다. 경전 첫머리의 「일시(一時), 부처는 왕사성 기사굴산 가운데 머무시며……」라고 할 때의 「때」, 곧 중생의 기(機)와 부처의 응(應)이 서로 맞아떨어지는 때를 말한다. 선시초는 이 「때」를 정법 · 상법 · 말법의 삼시와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이라는 역사의 척도로 확장해 논한다.
大通智勝仏대통지승불
법화경 화성유품 제7에 설해지는, 삼천진점겁의 옛날에 출현해 법화경을 설한 부처. 대상(大相)이라는 겁, 호성(好成)이라는 나라에 나왔고, 출가 전에 열여섯 왕자를 두었다. 도량에 앉아 마군을 깨뜨린 뒤에도 십 소겁 동안 가만히 앉아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고, 성도 뒤에는 열여섯 왕자와 범천왕들의 청으로 사제 · 십이인연을 설했으며, 다시 이만 겁이 지나 열여섯 왕자의 청으로 팔천 겁 동안 법화경을 설했다. 이때 법화경을 믿고 받아들인 것은 열여섯 왕자와 소수의 성문뿐이었다. 부처가 고요한 방에 들어 팔만사천 겁 동안 선정에 머무는 사이, 열여섯 왕자는 저마다 법화경을 다시 강설해(대통복강) 육백만억 나유타 항하사의 중생을 교화했고, 이들을 대통결연의 무리라 한다. 열여섯째 왕자가 석존이다.
三千塵点劫삼천진점겁
화성유품에서 석존이 중생과의 맺은 인연의 오래됨을 밝히며 든 비유의 시간. 삼천대천세계의 국토를 갈아 티끌로 만들고, 천 개의 국토를 지날 때마다 한 티끌씩 떨어뜨려 다 떨어뜨린 뒤, 떨어뜨린 국토와 떨어뜨리지 않은 국토를 모두 다시 갈아 티끌로 만들어 그 한 티끌을 한 겁으로 셈한다. 그 수를 넘는 한량없는 시간을 말한다.
一坐十小劫 · 仏時の未だ至らざるを知り일좌십소겁 · 「부처는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아시고」
모두 화성유품의 글이다. 대통지승불이 도량에 앉아 십 소겁을 지냈고, 법을 청해도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알아 묵연히 앉아 있었다는 대목으로, 대성인은 이것을 「때를 기다린 부처」의 첫 예로 드신다.
説く時未だ至らざるが故「설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법화경 방편품 제2의 글. 석존이 성도 뒤 사십여 년 동안 출세의 본회인 법화경을 설하지 않은 까닭을 스스로 밝힌 말이다. 같은 방편품의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와 짝을 이루어, 제2장의 논지 전체를 받친다.
老子は母の胎に処して八十年노자는 어머니의 태 속에 여든 해
중국 육조 시대 도교 문헌인 『현묘내편(玄妙内篇)』에 「이씨 어머니가 아이를 밴 지 여든한 해, 오얏나무 아래를 거닐다가 왼쪽 겨드랑이를 가르고 낳으니,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희어 이를 노자라 한다」는 취지의 글이 있다. 외도의 성현조차 때를 기다렸다는 예로 드셨다.
弥勒菩薩 · 兜率の内院미륵보살 · 도솔천 내원
석존 다음에 성불할 것으로 수기된 미래불. 욕계 제4천인 도솔천의 내원에 머물며, 오십육억 칠천만 년 뒤 이 세계에 내려와 성불한다고 설해진다. 미래의 부처조차 출세의 때를 기다린다는 예이다.
時鳥두견새
여름에 일본에 날아오는 철새.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새로 여겨 「시조(時鳥)」라고 쓰기도 했고, 그해 처음 우는 소리(初音, 忍音)를 듣기를 고대했다. 뻐꾸기와 혼동되어 「곽공(郭公)」이라 적기도 한다. 「봄을 보낸다」는 봄이 끝나 가는 초여름을 기다려 운다는 뜻이다.
鶏鳥닭
「구타카케도리」라고도 읽는다. 닭의 옛 이름이 「가케」 「구타카케」 「구다카케」이며 우는 소리에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새벽을 기다려 울어 때를 아는 새로 여겨졌다.
時を糾す시를 가린다
「규(糾)」는 따지고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막연히 때를 아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이 어떤 때인지를 경문에 비추어 분명히 밝혀 낸다는 뜻으로, 제목의 「찬(撰)」과 통한다.

「반드시 먼저」 — 삼세의 부처와 축생까지 때를 기다린다

이 장은 선시초 전체의 표제에 해당한다. 「무릇 불법을 배우는 길은 반드시 먼저 시를 익혀야 한다」 — 이 한 문장이 서른여섯 장의 주제이며, 뒤의 모든 장은 이 문장을 풀고 증명하는 데 바쳐진다. 대성인은 그 근거를 세 겹으로 쌓으신다. 첫째는 부처들이다. 과거의 대통지승불은 출세해서 십 소겁 동안 경 하나 설하지 않았고, 지금의 교주 석존은 사십여 년 동안 법화경을 설하지 않았으며, 미래의 미륵보살은 도솔천 내원에서 오십육억 칠천만 년을 기다린다. 과거 · 현재 · 미래 삼세의 부처가 하나같이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둘째는 외도의 성현이다. 노자는 어머니의 태 속에서 여든 해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셋째는 축생이다. 두견새는 봄이 다 가기를 기다려 울고, 닭은 새벽을 기다려 운다.

이 장의 구성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과거의 대통불, 현재의 석가불, 미래의 미륵보살을 들어 불법의 이치를 밝히고, 외도의 성현인 노자와 축생인 두견새 · 닭을 들어 예증으로 삼았다. 부처에서 외도로, 외도에서 축생으로 내려가는 이 차례는 그대로 논증의 힘이 된다. 위로는 부처로부터 아래로는 새에 이르기까지 때를 어기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불법을 수행하는 사람이 때를 가리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 「하물며(何に況や)」의 논법이다. 축생조차 때를 아는데 사람이, 그것도 불법을 닦는 사람이 때를 모른다면 축생만도 못하다는 날카로운 경책이 이 문장 속에 들어 있다.

삼세의 부처 · 외도 · 축생
삼세의 부처
과거의 부처대통지승불출세하여 십 소겁 동안 경 하나 설하지 않음「한 번 앉아 십 소겁」一坐十小劫「부처는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아시고 청을 받고도 묵연히 앉아 계셨다」仏時の未だ至らざるを知り請を受けて黙然として坐す화성유품
현재의 부처교주 석존사십여 년 동안 법화경을 설하지 않음「설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説く時未だ至らざるが故방편품
미래의 부처미륵보살도솔천 내원에서 오십육억 칠천만 년을 기다림
외도의 성현노자어머니의 태 속에서 여든 해
축생두견새는 봄을 보내고, 닭은 새벽을 기다림時鳥は春ををくり鶏鳥は暁をまつ
결론「하물며 불법을 수행하면서 시를 가리지 않아서야 되겠느냐」何に況や仏法を修行せんに時を糾ざるべしや
도표 1 · 때를 기다린 이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대성인이 「때」를 기다림의 문제로 제시하신다는 점이다. 대통지승불은 마군을 깨뜨린 뒤에도 십 소겁을 앉아 있었고, 법을 청하는 이들이 있었는데도 묵연히 앉아 있었다. 설할 능력이 없어서도, 들을 사람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석존의 사십여 년도 마찬가지다. 성도한 순간 이미 법화경의 진리를 깨달았지만, 그것을 그대로 설할 때가 아니었기에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를 차례로 설하며 때를 기다렸다. 이렇게 보면 「시」는 바깥에서 주어지는 조건이 아니라 부처의 지혜가 읽어 내는 것이다. 부처는 때를 알기에 기다리고, 때가 이르면 망설임 없이 설한다. 때를 아는 것 자체가 부처의 지혜의 한 모습이다.

왜 「반드시 먼저」인가 — 다섯 강령이 모두 시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대성인은 왜 「반드시 먼저」라고까지 시를 무겁게 다루시는가. 그 까닭은 「종교의 오강(五綱)」 — 교(教) · 기(機) · 시(時) · 국(國) · 교법 유포의 선후(序) — 가 모두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성인이 「교기시국초」에서 세우신 이 다섯 가지 척도는 흔히 「오의(五義)」라 불리는데, 그 다섯은 하나도 빠짐없이 시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 교(教)로 말하면, 정법 시대에는 소승교와 권대승교가, 상법 시대에는 법화경의 적문이, 말법에는 독일(獨一)한 본문이 유포해야 할 때이다. 둘째, 기(機)로 말하면, 정법 · 상법의 중생은 과거에 이미 선근을 심은 「본이유선(本已有善)」의 기이고, 말법의 중생은 아직 선근이 없는 「본미유선(本未有善)」의 기이다. 셋째, 시(時)는 바로 지금 이 글의 논점이다. 넷째, 국(國)으로 말하면, 정법 · 상법에는 인도의 석가 불법이 동쪽으로 흘렀고, 말법에 들어서는 일본의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이 서쪽으로 흐른다. 다섯째, 교법 유포의 선후로 말하면, 말법에 이르러서는 정상(正像)에 유포한 대승 · 소승 · 권교 · 실교가 모두 무익해지고, 오직 수량품 문저 하종의 대백법만이 유포해야 할 때이다. 이처럼 시에 의해 모든 것이 정해지기에 「반드시 먼저 시를 익혀라」라고 하신 것이다.

이 뜻은 「여설수행초」의 한 대목이 뒷받침한다. 사계절이 저마다 달라 여름은 덥고 겨울은 차며, 봄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열매를 거둔다. 극한의 겨울에는 두꺼운 옷이 쓸모 있지만 한여름에는 쓸 데가 없고, 시원한 바람은 여름에는 쓸모 있지만 겨울에는 쓸 데가 없다. 불법도 그와 같아서, 소승이 유포해 이익을 얻을 때가 있고, 권대승이 유포해 이익을 얻을 때가 있으며, 실교가 유포해 불과(佛果)를 얻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仏法も亦復是くの如し小乗の流布して得益あるべき時もあり、権大乗の流布して得益あるべき時もあり、実教の流布して仏果を得べき時もあり、然るに正像二千年は小乗権大乗の流布の時なり、末法の始めの五百年には純円・一実の法華経のみ広宣流布の時なり

불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소승이 유포하여 이익을 얻을 때도 있고, 권대승이 유포하여 이익을 얻을 때도 있으며, 실교가 유포하여 불과를 얻을 때도 있느니라. 그런데 정법 · 상법 이천 년은 소승 · 권대승이 유포하는 때요, 말법의 처음 오백 년에는 순원 · 일실의 법화경만이 광선유포하는 때이니라.

「여설수행초」, 503쪽

같은 글은 국중의 학자들이 불법을 대강 배웠다 해도 「시각상응(時刻相應)의 도」를 알지 못한다고 꾸짖는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이 몸을 지키지 못하듯, 때에 맞지 않는 법은 아무리 훌륭해도 중생을 구하지 못한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순원 · 일실의 법화경」은 다름 아닌 본문 수량품 문저에 비침된 대법이다.

정법 · 상법과 말법
교(教)
정법 · 상법정법 = 소승교 · 권대승교상법 = 법화경 적문
말법독일한 본문(수량품 문저의 대법)
기(機)
정법 · 상법본이유선(과거에 선근을 심은 중생)
말법본미유선(아직 선근이 없는 중생)
시(時)
이 글의 논점 — 정법 천 년 · 상법 천 년 · 말법
국(國)
정법 · 상법인도의 불법이 동쪽으로(월지 · 진단에서 시작)
말법일본의 불법이 서쪽으로(일본에서 시작)
서(序, 교법 유포의 선후)
정상에 유포한 대소 · 권실이 말법에는 무익해지고, 수량품 문저 하종의 대백법만이 유포함
판교의 차제
  1. 내외상대(불교와 외도)정법 처음 오백 년
  2. 대소상대(대승과 소승)정법 뒤 오백 년
  3. 권실상대(권교와 실교)상법 천 년
  4. 본적상대(본문과 적문)말법
도표 2 · 다섯 강령과 판교의 차제

시를 떠나서는 판교도 기근도 국토도 논할 수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시라는 한 가지를 떠나서는 다섯 강령을 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판교(判敎)의 얕고 깊음도 논할 수 없다. 불교 역사에서 가르침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 자체가 시대마다 달랐다는 것이다. 정법의 처음 오백 년에는 오로지 불교와 외도를 견주는 내외상대(内外相對)를 썼고, 다음 오백 년에는 대승과 소승을 견주는 대소상대(大小相對)를 썼으며, 상법 천 년에는 권교와 실교를 견주는 권실상대(權實相對)를 썼다. 그렇다면 말법에는 오로지 본문과 적문을 견주는 본적상대(本迹相對)를 쓰는 것이 마땅하다. 판교의 단계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 한 겹씩 깊어진다는 이 견해는, 대성인의 오중상대(내외 · 대소 · 권실 · 본적 · 종탈)를 역사의 차례에 겹쳐 읽은 것이다.

기근도 마찬가지다. 정상 이시(二時)의 기는 본이유선이고 말법은 본미유선이다. 국토도 마찬가지다. 정상에 홍통된 권교 · 적문은 월지(인도)와 진단(중국)에서 시작했고, 말법에 유포할 본문은 일본에서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함께 볼 것이 「간효팔번초」의 이름난 글이다.

月は西より東に向へり月氏の仏法の東へ流るべき相なり、日は東より出づ日本の仏法の月氏へかへるべき瑞相なり

달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니 월지의 불법이 동쪽으로 흐를 상(相)이요, 해는 동쪽에서 나오니 일본의 불법이 월지로 돌아갈 서상(瑞相)이니라.

「간효팔번초」, 589쪽

달과 해의 비유는 정상의 불법과 말법의 불법을 대비한 것이다. 달은 저녁에 서쪽 하늘에 처음 보이고 날마다 동쪽으로 옮겨 가며, 해는 동쪽에서 떠올라 온 세상을 비춘다. 석존의 불법이 인도에서 중국 · 한국을 거쳐 일본에 이른 것이 달의 길이라면, 말법의 불법은 해처럼 일본에서 일어나 서쪽으로, 마침내 인도에까지 돌아간다. 모든 것은 시를 근본으로 삼아 논해야 한다. 시를 알지 못하고서 무엇을 논할 수 있겠는가.

「시」는 교 · 기 · 국 · 서를 모두 결정하는 근본 척도다. 판교의 단계(내외 → 대소 → 권실 → 본적)도, 기근(본이유선 → 본미유선)도, 불법이 흐르는 방향(동류 → 서환)도 시에 따라 정해진다.

역연의 광포와 순연의 광포 — 법체의 절복과 화의의 절복

시의 문제를 대성인 멸후의 광선유포에도 적용하면, 광선유포에는 「역연(逆緣)의 광선유포」와 「순연(順緣)의 광선유포」의 두 양상이 있다. 대성인 재세에는 탄압과 박해가 거듭되어, 법을 비방함으로써 오히려 인연을 맺는 역연의 중생이 나라 안에 가득했고 나라 전체가 정법의 유포를 막아섰다. 역연이란 법을 거스르고 비방하는 것이 도리어 성불의 인연이 되는 관계이고, 순연이란 법을 따르고 믿음으로써 인연을 맺는 관계이다. 이 구분은 뒤의 제5장에서 「전대미문의 대투쟁」과 「일동 창제」의 관계를 풀 때 다시 등장한다.

이 역연 · 순연의 구분과 짝을 이루는 것이 니치칸 상인의 「법체(法體)의 절복」과 「화의(化儀)의 절복」이라는 판별이다. 「관심의 본존초」에는 지용의 네 보살이 말법에 출현하는 모습을 이렇게 밝힌 대목이 있다.

当に知るべし此の四菩薩折伏を現ずる時は賢王と成つて愚王を誡責し摂受を行ずる時は僧と成つて正法を弘持す

마땅히 알지니라. 이 네 보살이 절복을 나타낼 때는 현왕(賢王)이 되어 어리석은 왕을 꾸짖어 경계하고, 섭수를 행할 때는 승(僧)이 되어 정법을 넓히고 지니느니라.

「관심의 본존초」, 254쪽

니치칸 상인은 이 글을 법체의 절복과 화의의 절복으로 나누어 판별했다. 대성인이 몸소 행하신 절복은 법 그 자체를 세우는 「법체의 절복」이며, 이것을 「화의의 절복」과 견주면 오히려 섭수라고 할 수 있다 — 승이 되어 정법을 넓히고 지니는 것이 이것이다. 「화의의 절복」은 현왕이 되어 어리석은 왕을 꾸짖는 것, 곧 사회의 권력과 맞서 법을 펼쳐 나가는 일이다. 경전에서는 이것이 「입정안국론」이 인용한 열반경의 글처럼 무력을 갖추어 정법을 지키는 형태로 설해지기도 했다.

威儀を修せず応に刀剣・弓箭・鉾槊を持すべし

위의를 닦지 않고 마땅히 칼 · 활과 화살 · 창을 지녀야 하느니라.

「입정안국론」에 인용된 열반경의 글, 28쪽

법을 세우는 단계와 그 법을 사회 전체에 펼치는 단계를 나누는 이 구분은, 제5장에서 「광선유포에 두 뜻이 있다 — 법체의 광선유포와 화의의 광선유포」라는 논의로 이어진다. 「시를 익혀라」는 가르침은 이처럼 과거의 역사를 판단하는 기준일 뿐 아니라, 대성인 멸후 수행자가 자신이 서 있는 때를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역연 · 순연의 구분은 특정 시기의 사건을 가리키는 연대 구분이 아니라, 광선유포가 전개되는 두 양상 — 법을 거슬러 맺는 인연과 법을 따라 맺는 인연 — 을 가리키는 교학의 틀이다. 대성인 재세의 광포를 역연의 광포로 보는 해석은 제5장에서 다시 다룬다.

불법이 말하는 「시간」 — 생명 활동으로서의 때

이 장의 끝에 「시간」에 대해 조금 길게 생각해 두자. 불법이 「시」를 말할 때, 그것은 중생의 기근과 부처가 서로 응하는 때, 정상말의 삼시, 오시팔교의 「시」 등 여러 층을 가진다. 그 밖에도 생명은 영원하며 시작도 끝도 없다는 철리, 법화경 종지용출품의 「오십 소겁을 반나절과 같이 여겼다」는 이야기처럼, 불법은 시간에 관해 실로 다양하게 설해 왔다. 이것을 근대 과학의 시간관과 견주어 보면, 불법이 말하는 시간의 본질이 드러난다.

먼저 일상의 시간이다. 우리가 쓰는 시간에는 「아침 여덟 시 십 분에 출근했다」 같은 한순간의 시각과 「시험 시간은 세 시간」 같은 지속하는 시간이 있는데, 어느 쪽이든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기준으로 약속해 정한 것이다. 하루를 스물네 시간으로 나눈 고대 이집트의 태양력, 바빌로니아의 시간 구분, 동아시아의 십이지에 따른 시각법을 거쳐, 평균태양일 · 평균태양시, 그리니치 표준시와 각국의 표준시, 시차의 문제까지 차례로 짚어 보면 이렇다. 지구 자전 속도에 원인 모를 변동이 있어 공전 주기에 바탕한 정의로 바꾸었고, 다시 원자의 진동을 이용한 원자시계가 연구되어 왔다. 그 결론은 이렇다 — 어느 것이든 지구의 공전 · 자전이나 원자의 진동 같은 운동을 이용해 우리가 정한 시간이므로, 절대적 · 객관적 시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음은 물리학의 시간이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절대적이고 참된 수학적 시간은 그 자체로, 바깥의 어떤 것과도 관계없이 한결같이 흐른다」고 하여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세웠고, 오랫동안 아무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특수 · 일반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 떨어져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밀접히 얽혀 있으며, 우리가 시간을 넷째 차원으로 하는 사차원의 세계에 산다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았다. 달리는 특급열차 안에서 동시에 일어난 두 사건이 땅 위에 선 사람에게는 동시가 아니라는 예, 속도가 빛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늦어진다는 예, 가모프가 소개한 우주 여행자의 이야기 — 광속에 가까운 우주선으로 먼 별을 다녀온 사람이 지구에 남은 사람보다 덜 늙는다는 — 가 그 예다. 이러한 시간 · 공간의 상대성은 철학과 사상에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동양 불법의 진수는 상대성 이론 이상의 시공론을 이미 설해 왔다.

그렇다면 불법이 말하는 시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 답은 「시간은 생명 활동에 갖추어진 특성이며, 우주 생명의 활동과 변화를 통해 느끼는 것」이라는 것이다. 불법은 객관적 시간보다 생명 활동을 중심으로 한 주관적 시간을 설한다. 아주 즐거운 경애, 곧 십계 가운데 천계의 경애에 있을 때는 세 시간 네 시간이 삼 분 사 분처럼 지나간다. 반대로 괴로움이 많은 나날에는 하루가 한없이 길게 느껴지니, 지옥계에서는 시간이 더디 흐르는 만큼 고통이 크다. 이처럼 생명 활동의 과보로 얻어지는 시간은 시계로 재는 시간과 달라서, 그 길고 짧음이 그때그때의 십계 삼천의 과보로 결정된다. 깊은 잠에 들었을 때는 의식이 사라져 시간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죽은 뒤 생명이 우주 생명에 명복(冥伏)해 있을 때도 그러하다. 또 인과의 두 법으로 이루어진 현상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일은 없으므로 시간의 가역성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생명의 시간은 『어의구전』의 글이 뒷받침한다. 수량품의 「아실성불이래 무량무변(我實成佛已來無量無邊)」을 풀이한 대목이다.

已とは過去なり来とは未来なり已来の言の中に現在は有るなり、我実と成けたる仏にして已も来も無量なり無辺なり

이(已)란 과거요 래(來)란 미래이니, 이래(已來)라는 말 가운데 현재가 있느니라. 「내가 참으로」 이룬 부처로서 이(已)도 래(來)도 무량하고 무변하니라.

『어의구전』, 753쪽

같은 『어의구전』은 「구원(久遠)」을 이렇게 풀이한다.

久遠とははたらかさず.つくろわず.もとの儘と云う義なり、無作の三身なれば初めて成ぜず是れ働かざるなり、卅二相八十種好を具足せず是れ繕わざるなり本有常住の仏なれば本の侭なり是を久遠と云うなり

구원이란 움직이지 않고, 꾸미지 않고, 본래 그대로라는 뜻이니라. 무작의 삼신이므로 처음 이룬 것이 아니니 이것이 움직이지 않음이요,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갖추지 않으니 이것이 꾸미지 않음이며, 본유상주의 부처이므로 본래 그대로이니 이것을 구원이라 하느니라.

『어의구전』, 759쪽

「이래(已來)라는 말 가운데 현재가 있다」는 구절은, 현재의 한 생각 · 한순간 속에 과거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는 중대한 가르침으로 읽힌다.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도 「과거와 미래와 현재는 셋이라 하더라도 한 생각 마음 가운데의 이치이므로 분별이 없느니라」(562쪽)라고 하여, 겉으로는 삼세를 나눌 수 있지만 생명의 본원에서 보면 나눌 수 없음을 밝힌다. 과거는 무엇인가를 연으로 하여 떠올림으로써 비로소 알려지고, 떠올림은 한순간의 생명 활동이다. 미래를 그리고 확신하는 것도 현재 한 생각의 작용이다. 현재라고 생각한 찰나는 곧 과거가 되고 미래는 곧 현재가 되니, 바로 이 순간의 생명에 과거 · 현재 · 미래가 있다. 또 한순간의 생명에는 인과가 갖추어져 있어 과거의 모든 인(因)이 현재의 과(果)가 되고 현재의 인이 미래의 과를 낳는다. 이 인과구시(因果俱時)의 불가사의한 한 법을 남묘호렌게쿄라 이름한다. 그 근거로 『어의구전』의 「원초의 한 생각 한 법계 밖에 다시 육도 사성이 있을 수 없느니라. 이른바 남묘호렌게쿄는 삼세 일념이니라」(788쪽), 「백육개초」의 「구원 일념 원초의 묘법」(867쪽), 「본인묘초」의 「구원 일념의 남묘호렌게쿄」(871쪽)를 들 수 있다.

이렇게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한순간에 담기고, 한순간 한순간의 생명 활동이 변화하면서 이어지는 것이 영원이다. 구원의 생명도 한 생각의 생명에 거두어진다. 「구원이란 움직이지 않고, 꾸미지 않고, 본래 그대로」라는 글에 비추어 생명 활동의 본질을 따라가 보면 그 궁극은 한순간이며, 그것을 가리켜 구원원초(久遠元初)라고도 하고 말법이라고도 한다. 구원원초와 말법은 모두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만이 펼쳐지는 때이므로, 곧 구원즉말법(久遠即末法) · 구말일동(久末一同)이다. 「반드시 먼저 시를 익혀라」는 첫 문장은 이렇게, 역사의 어느 시점을 아는 일인 동시에 지금 이 한순간의 생명에 구원의 법이 펼쳐지는 때를 아는 일로까지 깊어진다.

이 시간론에 나오는 원자시계 · 우주 여행의 수치 같은 과학 설명은 이 해설이 쓰인 무렵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예시이다. 그 요지는 시계의 시간은 운동을 이용해 약속한 것이고, 불법은 생명 활동을 중심으로 시간을 본다는 데 있다.

제2장 불법은 시에 의함을 밝히다
어서 256쪽 5~13행 · 第二章 仏法は時によるを明か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56쪽 5~13행
本文 · 어서 원문

寂滅道場の砌には十方の諸仏示現し一切の大菩薩集会し給い梵帝・四天は衣をひるがへし竜神八部は掌を合せ凡夫・大根性の者は耳をそばだて生身得忍の諸菩薩・解脱月等請をなし給いしかども世尊は二乗作仏・久遠実成をば名字をかくし即身成仏・一念三千の肝心、其義を宣べ給はず、此等は偏にこれ機は有りしかども時の来らざればのべさせ給はず経に云く「説く時未だ至らざるが故」等云云、霊山会上の砌には閻浮第一の不孝の人たりし阿闍世大王座につらなり、一代謗法の提婆達多には天王如来と名をさづけ五障の竜女は蛇身をあらためずして仏になる、決定性の成仏は燋種の花さき果なり久遠実成は百歳の叟・二十五の子となれるかとうたがふ、一念三千は九界即仏界・仏界即九界と談ず、されば此の経の一字は如意宝珠なり一句は諸仏の種子となる此等は機の熟不熟はさてをきぬ時の至れるゆへなり、経に云く「今正しく是れ其の時なり決定して大乗を説かん」等云云。

풀이

적멸도량(寂滅道場)의 자리에는 시방의 제불이 나타나시고 일체의 대보살이 모여드시며, 범천 · 제석 · 사천왕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오고 용신 팔부는 합장하며, 범부 가운데 대근성(大根性)의 자들은 귀를 기울이고, 생신득인(生身得忍)의 여러 보살과 해탈월(解脫月) 등이 법을 청하셨으나, 세존은 이승작불(二乘作佛) · 구원실성(久遠實成)은 그 이름조차 감추시고 즉신성불(即身成佛) ·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간심은 그 뜻을 펴지 않으셨느니라. 이것은 오로지 기(機)는 있었으되 때가 오지 않았으므로 펴지 않으신 것이니, 경에 이르되 「설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등이라 하였느니라.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자리에는 염부제 제일의 불효자였던 아사세 대왕이 자리에 이어 앉았고, 일대에 걸쳐 법을 비방한 제바달다에게는 천왕여래(天王如來)라는 이름을 주셨으며, 오장(五障)의 용녀는 뱀의 몸을 고치지 않은 채 부처가 되었느니라. 결정성(決定性)의 성불은 볶은 씨앗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 것이요, 구원실성은 백 살 노인이 스물다섯 살 젊은이의 아들이 되었는가 하고 의심하게 하였으며, 일념삼천은 구계즉불계 · 불계즉구계라고 말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경의 한 글자는 여의보주(如意寶珠)요 한 구절은 제불의 종자가 되느니라. 이것들은 기의 익고 익지 않음은 제쳐 두고,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니, 경에 이르되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결정코 대승을 설하리라」 등이라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寂滅道場적멸도량
적멸은 깨달음의 경지, 도량은 깨달음을 얻는 자리를 뜻한다. 석존이 금생에 처음 깨달음을 연 가야성(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를 말하며, 화엄경이 설해진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梵帝・四天 · 竜神八部범천 · 제석 · 사천왕 · 용신 팔부
범천왕과 제석천, 그리고 수미산 중턱의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천신들이다. 용신 팔부는 천 · 용 · 야차 · 건달바 · 아수라 · 가루라 · 긴나라 · 마후라가의 여덟 무리로, 불법을 지키는 신들의 총칭이다. 화엄의 자리에 이들이 모두 모였다는 것은 청중이 더할 나위 없이 갖추어졌음을 보인다.
生身得忍생신득인
지금의 몸(생신) 그대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 무생법인은 일체의 것이 공하여 고정된 실체가 없고 생멸 변화를 넘어서 있다는 도리를 받아들이는 경지이다. 『대지도론』 등에서는 이 생신득인을 불퇴의 보살 단계에서 얻는다고 한다. 화엄의 청중 가운데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른 보살들이 있었음을 말한다.
解脱月해탈월
화엄경의 자리에 모인 보살의 하나. 금강장보살이 보살 수행의 계위인 십지의 이름만 말하고 자세히 설하지 않자, 해탈월보살이 청중을 대표해 그 뜻을 설해 주기를 청했고, 그 요청으로 십지품이 설해졌다고 한다.
二乗作仏・久遠実成이승작불 · 구원실성
이승작불은 성문 · 연각의 이승이 성불한다는 법화경 적문의 법문이고, 구원실성은 석존이 금생에 처음 성불한 것이 아니라 오백진점겁의 옛날에 이미 성불했다는 본문 수량품의 법문이다. 법화경을 이전의 경들과 가르는 두 가지 큰 법문으로,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것을 법화경의 두 가지 큰 일로 드신다.
即身成仏・一念三千즉신성불 · 일념삼천
즉신성불은 이 몸 그대로 성불하는 것, 일념삼천은 범부의 한 생각에 삼천의 제법이 갖추어져 있다는 천태의 법문이다. 본문은 이 둘을 「간심(肝心)」이라 부른다.
阿闍世大王아사세 대왕
범어 아자타샤트루의 음사로, 「미생원(未生怨)」이라 옮긴다. 석존 재세 때 중인도 마가다국의 왕으로, 아버지는 빈바사라왕, 어머니는 위제희 부인이다. 제바달다와 손잡고 불교의 외호자였던 부왕을 가두어 옥사하게 하고 왕위에 올랐다. 즉위 뒤 마가다를 인도 제일의 강국으로 만들었으나, 석존에게 적대해 술 취한 코끼리를 풀어 석존을 해치려 하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뒤에 온몸에 악창이 나자 참회하고 불교에 귀의해 수명을 늘렸으며, 불멸 뒤에는 제1회 불전 결집을 외호했다.
提婆達多제바달다
범어 데바닷타의 음사. 조달(調達)이라고도 쓰며 천수(天授) · 천열(天熱)이라 옮긴다. 『대지도론』 권3에 따르면 곡반왕의 아들로 아난의 형이며 석존의 사촌 아우라 하나 다른 설도 있다. 태자 시절부터 석존에게 적대했고, 출가해 불제자가 되었다가 악념을 일으켜 물러나 아사세 태자를 부추겨 부왕을 죽이게 했다. 오백여 비구를 이끌고 교단을 분열시켰고(파화합승), 기사굴산 위에서 큰 돌을 굴려 석존의 발가락에 피를 냈으며(출불신혈), 연화색 비구니를 때려 죽여(살아라한) 삼역죄를 지었다. 끝내 왕사성에서 땅이 갈라져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법화경 제바달다품 제12에서, 석존이 과거세에 국왕이었을 때 왕위를 버리고 아사선인을 천 년 동안 섬겨 법화경을 배웠는데 그 아사선인이 제바달다의 과거 모습이었다는 인연이 설해지고, 미래세에 천왕여래가 되리라는 수기가 주어져 악인성불이 밝혀졌다.
竜女용녀
바닷속 용궁에 사는 사갈라 용왕의 딸로, 여덟 살 된 뱀 몸의 축생. 제바달다품에 따르면 문수사리보살이 법화경을 설하는 것을 듣고 발심해 불퇴전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지적보살과 사리불 등이 그 성불을 믿지 않자, 「나는 대승의 가르침을 펴서 괴로움의 중생을 건지리라」라고 말하고 석존에게 보주를 바친 뒤 그 몸 그대로 홀연히 성불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체 여인성불의 본보기이자 즉신성불의 표현이다. 「오장(五障)」은 여인은 범천왕 · 제석 · 마왕 · 전륜성왕 ·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다섯 장애를 말한다.
決定性の成仏결정성의 성불
법상종은 중생이 본래 갖춘 자질을 다섯 가지로 나누는 오성(五性)을 세웠고, 그 가운데 성문 · 연각 · 보살의 경지가 정해져 있는 셋을 결정성이라 했다. 결정성의 이승은 법화경 이외의 대승경에서 자기 깨달음에만 힘써 이타행이 없으므로 불종(佛種)이 끊겨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영불성불)고 했다. 이에 대해 법화경 적문은 이승에게도 본래 불지견이 갖추어져 있어 미래에 성불함을 구체적인 시대 · 국토 · 여래의 이름까지 들어 보장했다(이승작불). 「볶은 씨앗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는 비유는 이것이다.
百歳の叟・二十五の子백 살 노인 · 스물다섯 살의 아들
종지용출품에서 대지로부터 솟아난 지용의 대보살들을 석존이 성도 뒤 사십여 년 동안 교화했다고 하자, 미륵이 「스물다섯 살 젊은이가 백 살 노인을 가리켜 내 아들이라 하는 것과 같다」며 의심한 대목에서 나온 말. 이 의심이 수량품의 구원실성 개현을 이끈다.
如意宝珠여의보주
뜻대로 보물 · 옷 · 음식 등을 꺼낼 수 있다는 구슬. 여의주 · 여의보라고도 한다. 『대지도론』은 불사리가 변한 것이라거나 용왕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 하고, 『잡보장경』은 마갈어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 하며, 제석천의 금강저가 부서져 떨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마하지관』 권5상에는 「여의주와 같은 것은 천상의 뛰어난 보배이니, 모양은 겨자씨나 좁쌀 같으나 큰 공능이 있다」는 취지의 글이 있다. 대성인은 「형제초」에서 「묘법연화경 다섯 자의 곳간 가운데서 일념삼천의 여의보주를 꺼내어 삼국의 일체중생에게 널리 주셨다」는 뜻을 말씀하시고, 『어의구전』에서는 제바달다품의 「한 보주가 있으니」를 풀어 「일(一)이란 묘법연화경이요, 보(寶)란 묘법의 용(用)이요, 주(珠)란 묘법의 체(體)」라고 하셨다.
一句は諸仏の種子한 구절은 제불의 종자
법화경의 한 자 한 구절은 일념삼천의 보주이므로 삼세 제불을 낳는 씨앗이 된다. 『관보현보살행법경』의 「이 대승경전은 제불의 보장(寶藏)이며 시방 삼세 제불의 눈이며 삼세의 모든 여래를 낳는 씨앗이니라」라는 글이 이 뜻이다. 다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말법에는 수량품 문저 하종의 일념삼천만이 유일한 즉신성불의 불종이다.
今正しく是れ其の時なり「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방편품의 글. 석존이 사십여 년의 침묵을 깨고 법화경을 설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결정코 대승을 설하리라」라고 선언한 대목이다. 제1장의 「설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과 짝을 이룬다.

같은 부처, 다른 설법 — 적멸도량과 영산회상

이 장의 주제는 한 가지다. 부처가 어떤 법문을 설하는가는 중생의 기근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때가 왔는가 오지 않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석존 일대의 처음과 끝, 곧 화엄경을 설한 적멸도량과 법화경을 설한 영산회상을 나란히 놓으신다.

새벽녘 가야의 보리수 — 강가의 넓은 들판에 홀로 선 큰 나무와 옅은 안개
그림 · 새벽녘 가야의 보리수 — 강가의 넓은 들판에 홀로 선 큰 나무와 옅은 안개

적멸도량의 광경은 더할 나위 없이 장엄하다. 시방의 제불이 나타나고, 일체의 대보살이 모여들고, 범천 · 제석 · 사천왕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오고, 용신 팔부가 합장했다. 범부 가운데서도 근기가 큰 이들이 귀를 기울였고, 이미 이 몸으로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들과 해탈월보살이 간절히 법을 청했다. 청중으로 보나 청법의 간절함으로 보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세존은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을 그 이름조차 감추었고, 즉신성불과 일념삼천이라는 일대 불교의 간심은 그 뜻을 펴지 않았다. 대성인은 그 까닭을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 「기는 있었으되 때가 오지 않았으므로」.

영산회상의 청중은 정반대이다. 아버지 빈바사라왕을 죽여 염부제 제일의 불효자가 된 아사세왕이 자리에 이어 앉았다. 일생에 걸쳐 부처를 비방하고 삼역죄를 지은 제바달다에게는 천왕여래라는 수기가 주어졌다. 여인으로서 오장을 지닌 데다 축생인 용녀가 뱀의 몸을 고치지 않은 채 성불했다.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단정되었던 결정성의 이승이 성불한다고 설해졌으니, 볶아서 싹이 날 수 없는 씨앗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 것과 같다. 본문에 들어 구원실성이 설해질 때는, 노인으로 보이는 지용의 대보살들을 석존이 교화해 왔다고 하니 백 살 노인이 스물다섯 살 젊은이의 아들이 된 것이냐는 의심이 일었다. 그리고 일념삼천은 구계즉불계 · 불계즉구계라는 본유상주의 십계호구로 설해졌다.

적멸도량(화엄경)
청중시방의 제불, 일체의 대보살, 범천 · 제석 · 사천왕, 용신 팔부, 대근성의 범부, 생신득인의 보살과 해탈월
설한 것이승작불 · 구원실성은 이름조차 감추고, 즉신성불 · 일념삼천은 뜻을 펴지 않음
까닭「기는 있었으되 때가 오지 않았으므로」機は有りしかども時の来らざれば「설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説く時未だ至らざるが故
기보다 시
영산회상(법화경)
청중염부제 제일의 불효자 아사세왕, 일대 비방의 제바달다(천왕여래의 수기), 오장의 용녀(뱀의 몸 그대로 성불)
설한 것결정성 이승의 성불, 구원실성, 일념삼천(구계즉불계 · 불계즉구계)
까닭「기의 익고 익지 않음은 제쳐 두고, 때가 이르렀기 때문」機の熟不熟はさてをきぬ時の至れるゆへなり「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결정코 대승을 설하리라」今正しく是れ其の時なり決定して大乗を説かん
도표 3 · 적멸도량과 영산회상

두 광경을 견주면 결론은 분명하다. 기근만으로 말하면 적멸도량의 청중이 영산회상의 청중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런데도 최고의 법은 오히려 불효자 · 대악인 · 축생의 여인이 앉은 자리에서 설해졌다. 이것을 요약하면 「부처는 선인을 위해서는 대법을 설하지 않고 악인을 위해 대법을 설한다. 그러므로 불법은 기에 의하지 않고 오로지 시에 의한다고 하는 것이다」가 된다. 화엄의 때에는 「설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설하지 않았고, 법화의 때에는 「지금이 바로 그때」이므로 일념삼천 즉신성불이라는 석존 출세의 본회, 일대 성교의 간요를 설해 밝힌 것이다.

악인 · 여인 · 이승의 성불 — 영산회상이 보여 준 것

영산회상의 세 인물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때가 이르렀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아사세왕은 부왕을 가두어 죽게 하고, 제바달다와 손잡아 술 취한 코끼리를 풀어 석존을 해치려 한 왕이었다. 그러나 뒤에 온몸에 악창이 나자 참회하고 귀의했으며, 불멸 뒤에는 제1회 결집을 외호해 불법을 위해 힘썼다. 그 아사세왕이 법화경의 자리에 이어 앉았다는 것은, 오역죄를 지은 자조차 법화경의 청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바달다는 파화합승 · 출불신혈 · 살아라한의 삼역죄를 지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런데 제바달다품은 석존이 과거세에 왕위를 버리고 아사선인을 천 년 동안 섬겨 법화경을 배웠는데, 그 아사선인이 제바달다의 전신이었다는 인연을 밝히고, 그에게 천왕여래의 수기를 준다. 이것이 악인성불이다. 같은 품에서 여덟 살 용녀는 「나는 대승의 가르침을 펴서 괴로움의 중생을 건지리라」라고 말하고 보주를 바친 뒤 그 몸 그대로 성불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인으로서 오장을 지니고 축생의 몸인 용녀의 성불은 일체 여인성불의 본보기이자, 몸을 바꾸지 않고 성불하는 즉신성불의 현증이다.

여기에 결정성 이승의 성불이 더해진다. 이전의 대승경은 성문 · 연각이 자기 깨달음에만 힘써 이타행이 없으므로 불종이 끊어져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했다. 법화경은 그들에게도 본래 불지견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며, 미래에 성불할 때의 겁 · 국토 · 여래의 이름까지 들어 보장했다. 대성인이 「볶은 씨앗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고 표현하신 것이 이것이다. 악인 · 여인 · 이승 — 이전의 경들이 성불의 가능성에서 배제했던 이들이 모두 성불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 본문에서 구원실성과 일념삼천이 밝혀진다는 것, 이것이 영산회상의 내용이다. 앞에서 「부처는 악인을 위해 대법을 설한다」고 한 것은 이 뜻이다. 대법은 가장 구하기 어려운 이를 구할 수 있는 법이며, 그런 법이 설해지는 것은 청중의 근기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법을 설할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다.

시대에 맞는 가르침을 구하라

부처가 때에 상응하는 경법을 설했다면, 그 경법을 닦는 사람 또한 자기 시대에 상응하는 가르침을 구하고 시대에 상응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이전 사십여 년 동안에 법화경을 수행하거나, 뒤의 팔 년 동안에 이전의 경을 수행한다면 득도할 리가 없다. 석존 재세에도 그러했으니 불멸 뒤에도 시대에 따라 기와 법이 서로 맞는 양상이 다르다. 그 근거가 「삼대비법품승사」의 글이다.

正法一千年の機の前には唯小乗・権大乗相叶へり、像法一千年には法華経の迹門・機感相応せり、末法の始の五百年には法華経の本門・前後十三品を置きて只寿量品の一品を弘通すべき時なり機法相応せり

정법 천 년의 기 앞에는 오직 소승 · 권대승이 서로 맞았고, 상법 천 년에는 법화경의 적문이 기와 감응이 서로 맞았으며, 말법의 처음 오백 년에는 법화경의 본문 가운데 앞뒤의 열세 품을 두고 다만 수량품 한 품을 홍통해야 할 때이니, 기와 법이 서로 맞느니라.

「삼대비법품승사」, 1021쪽

교법의 유포는 이처럼 때를 알고 시대에 응해야 한다. 정법에는 소승 · 권대승, 상법에는 적문, 말법에는 본문 그 가운데서도 수량품 한 품 — 시대가 내려갈수록 펼쳐지는 법은 더 깊고 더 좁혀진다. 「앞뒤의 열세 품을 두고」라는 말은 본문 열네 품 가운데서도 수량품 하나로 초점을 모은다는 것이다. 이 장이 화엄과 법화를 견준 것은 그 첫 단계, 권실상대의 차원에서 이 원리를 보인 것이다.

한 글자는 여의보주, 한 구절은 제불의 종자

본문은 법화경이 설해진 의의를 「이 경의 한 글자는 여의보주요 한 구절은 제불의 종자가 된다」고 찬탄한다. 그 이유는 법화경에 일념삼천이 설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경에는 일념삼천이 없으므로 아무리 훌륭한 것이 설해져 있어도 성불의 종자가 되지 못한다. 법화경의 한 글자 한 구절이 성불의 씨앗이 되는 것은 그 안에 일념삼천이라는 보주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화경 한 부 여덟 권이 그대로 말법의 하종 본문이 되는가.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말법 하종의 정체는 구원 명자(名字)의 묘법, 곧 사(事)의 일념삼천이며, 이것이 문저 깊이 감추어진 대사(大事)로서 니치렌 대성인 출세의 본회다. 그 근거가 「개목초」의 이름난 글이다.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의 본문 수량품의 문(文)의 밑바닥에 잠기어 있느니라.

「개목초 상」, 189쪽

권실상대 · 본적상대 · 종탈상대

이 장의 글은 화엄과 법화를 견주어 우열과 깊고 얕음을 가린 권실상대의 글이다. 그리고 같은 형식의 글이 차원을 달리해 「관심의 본존초」에 거듭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이전 경과 적문의 원교도 오히려 성불의 인(因)이 아니니라」(249쪽)라고 판별한 것은 본적상대이다. 다시 같은 글의 다음 대목은 종탈상대이다.

彼は脱此れは種なり彼は一品二半此れは但題目の五字なり

저것은 탈(脫)이요 이것은 종(種)이니라. 저것은 일품이반이요 이것은 다만 제목의 다섯 자이니라.

「관심의 본존초」, 249쪽

「아키모토어서」는 「종숙탈의 법문은 법화경의 간심이니라. 삼세 시방의 부처는 반드시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를 씨앗으로 하여 부처가 되셨느니라」(1072쪽)라고 하고, 「소야입도전허어서」는 지금의 학자들이 시와 기에 미혹해 「제목의 다섯 자로써 하종으로 삼아야 하는 유래를 알지 못하는가」(1027쪽)라고 꾸짖는다.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관심의 본존초」가 「다만(但)」이라 판별하고 「아키모토어서」가 「반드시(必ず)」라고 판별한 것은, 모두 대성인의 내증의 수량품에 의해서만 성불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1. 권실상대화엄과 법화를 견줌「이 경의 한 글자는 여의보주요 한 구절은 제불의 종자」此の経の一字は如意宝珠なり一句は諸仏の種子となる「선시초」, 256쪽
  2. 본적상대「이전 경과 적문의 원교도 오히려 성불의 인이 아니니라」爾前迹門の円教尚仏因に非ず「관심의 본존초」, 249쪽
  3. 종탈상대「저것은 탈이요 이것은 종이니라. 저것은 일품이반이요 이것은 다만 제목의 다섯 자이니라」彼は脱此れは種なり彼は一品二半此れは但題目の五字なり「관심의 본존초」, 249쪽
도표 4 · 같은 형식, 세 겹의 상대

이 해석을 마무리하는 것이 「관심의 본존초」의 또 한 대목이다.

所詮迹化他方の大菩薩等に我が内証の寿量品を以て授与すべからず

결국 적화(迹化) · 타방의 대보살들에게는 나의 내증의 수량품을 주지 않을 것이니라.

「관심의 본존초」, 250쪽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것을 곧 말법 하종 본문의 일로 보며, 말법의 묘법 홍통이 지용의 보살에게만 맡겨졌다는 것을 밝힌 글로 읽는다. 이 장에서 「때가 이르렀기 때문」에 설해졌다는 법화경은, 말법이라는 또 하나의 「때」에 이르러 다시 문저의 법으로, 지용의 보살의 손으로 펼쳐지게 된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라는 방편품의 선언은 석존 재세의 법화경 설법에만 그치지 않고, 말법이라는 때에 그대로 다시 울린다는 것이 이 장이 품은 뜻이다.

이 장은 권실상대의 글이며, 같은 논법이 「관심의 본존초」에서 본적상대 — 「이전 경과 적문의 원교도 오히려 성불의 인이 아니니라(爾前迹門の円教尚仏因に非ず)」 — 와 종탈상대 — 「저것은 탈이요 이것은 종이니라(彼は脱此れは種なり)」 — 로 깊어진다. 기가 아니라 시가 설법을 결정한다는 원리는 말법에 이르러 수량품 문저의 남묘호렌게쿄를 가리킨다.

제3장 기와 교가 어긋난다는 힐난을 풀다
어서 256쪽 14행~257쪽 16행 · 第三章 機教相違の難を会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56쪽 14행 ~ 257쪽 16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云く機にあらざるに大法を授けられば愚人は定めて誹謗をなして悪道に堕るならば豈説く者の罪にあらずや、答えて云く人路をつくる路に迷う者あり作る者の罪となるべしや良医・薬を病人にあたう病人嫌いて服せずして死せば良医の失となるか、尋ねて云く法華経の第二に云く「無智の人の中に此の経を説くこと莫れ」同第四に云く「分布して妄りに人に授与すべからず」同第五に云く「此の法華経は諸仏如来の秘密の蔵なり、諸経の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長夜に守護して妄りに宣説せざれ」等云云、此等の経文は機にあらずば説かざれというか、今反詰して云く不軽品に云く「而も是の言を作さく我深く汝等を敬う等云云四衆の中に瞋恚を生じ心不浄なる者有り、悪口罵詈して言く是の無智の比丘○又云く衆人或は杖木瓦石を以て之を打擲す」等云云、勧持品に云く「諸の無智の人の悪口罵詈等し及び刀杖を加うる者有らん」等云云、此等の経文は悪口・罵詈・乃至打擲すれどもととかれて候は説く人の失となりけるか、求めて云く此の両説は水火なりいかんが心うべき答えて云く天台云く「時に適うのみ」章安云く「取捨宜きを得て一向にすべからず」等云云、釈の心は或る時は謗じぬべきにはしばらくとかず或る時は謗ずとも強て説くべし或る時は一機は信ずべくとも万機謗べくばとくべからず或る時は万機一同に謗ずとも強て説くべし、初成道の時は法慧・功徳林・金剛幢・金剛蔵・文殊・普賢・弥勒・解脱月等の大菩薩、梵帝・四天等の凡夫・大根性の者かずをしらず、鹿野苑の苑には倶鄰等の五人・迦葉等の二百五十人・舎利弗等の二百五十人・八万の諸天、方等大会の儀式には世尊の慈父の浄飯大王ねんごろに恋せさせ給いしかば仏・宮に入らせ給いて観仏三昧経をとかせ給い、悲母の御ために忉利天に九十日が間籠らせ給いしには摩耶経をとかせ給う、慈父・悲母なんどにはいかなる秘法か惜ませ給うべきなれども法華経をば説かせ給はずせんずるところ機にはよらず時いたらざれば・いかにもとかせ給はぬにや。

풀이

묻되, 기(機)가 아닌 이에게 대법을 주신다면 어리석은 사람은 반드시 비방하여 악도에 떨어질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 설한 자의 죄가 아니겠느냐. 답하되, 사람이 길을 만들었는데 그 길에서 헤매는 자가 있다면 만든 자의 죄가 되겠느냐. 좋은 의사가 약을 병자에게 주었는데 병자가 싫어하여 먹지 않고 죽었다면 좋은 의사의 허물이 되겠느냐. 캐묻되, 법화경 제2권에 이르되 「지혜 없는 사람 가운데서 이 경을 설하지 말라」, 같은 제4권에 이르되 「나누어 펴서 함부로 사람에게 주지 말라」, 같은 제5권에 이르되 「이 법화경은 제불여래의 비밀의 곳간이니라.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느니라. 긴 밤 동안 수호하여 함부로 펴서 설하지 말라」 등이라 하였으니, 이 경문들은 기가 아니면 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냐. 이제 되물어 이르되, 불경품에 이르되 「그리하여 이 말을 하되 ‘나는 깊이 그대들을 공경하노라’ 등이라 하니, 사중 가운데 성내는 마음을 내고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자가 있어 악구로 꾸짖어 말하되 ‘이 지혜 없는 비구’……, 또 이르되 ‘뭇사람이 혹은 막대기 · 몽둥이 · 기와 · 돌로 그를 때렸다’」 등이라 하였고, 권지품에 이르되 「여러 지혜 없는 사람이 악구로 꾸짖는 등을 하고 칼과 몽둥이를 가하는 자가 있으리라」 등이라 하였으니, 이 경문들이 악구로 꾸짖고 나아가 때리더라도 설하라고 설해진 것은 설하는 사람의 허물이 되겠느냐. 구하여 이르되, 이 두 설은 물과 불이니 어떻게 마음에 새겨야 하느냐. 답하되, 천태는 이르되 「때에 맞을 뿐이니라」, 장안은 이르되 「취하고 버림을 마땅히 하여 한쪽으로만 해서는 안 되느니라」 등이라 하였느니라. 석의 마음은, 어떤 때는 비방할 듯하면 잠시 설하지 않고, 어떤 때는 비방하더라도 굳이 설해야 하며, 어떤 때는 한 기가 믿을 만하더라도 만 기가 비방할 듯하면 설해서는 안 되고, 어떤 때는 만 기가 한결같이 비방하더라도 굳이 설해야 한다는 것이니라. 처음 성도하신 때에는 법혜 · 공덕림 · 금강당 · 금강장 · 문수 · 보현 · 미륵 · 해탈월 등의 대보살, 범천 · 제석 · 사천왕 등과 범부 가운데 대근성의 자가 그 수를 알 수 없었고, 녹야원에는 구린 등 다섯 사람, 가섭 등 이백오십 인, 사리불 등 이백오십 인, 팔만의 제천이 있었으며, 방등 대회의 의식에서는 세존의 자부(慈父)이신 정반대왕이 간절히 그리워하셨으므로 부처가 궁에 드시어 관불삼매경을 설하셨고, 비모(悲母)를 위하여 도리천에 아흔 날 동안 머무르셨을 때는 마야경을 설하셨느니라. 자부 · 비모에게 어떤 비법인들 아끼시겠느냐마는 법화경은 설하지 않으셨느니라. 결국 기에 의하지 않고,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 어떻게 해도 설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겠느냐.

어구 풀이

無智の人の中に此の経を説くこと莫れ「지혜 없는 사람 가운데서 이 경을 설하지 말라」
법화경 제2권 비유품 제3의 글. 법화경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설하지 말라는 경계로, 섭수의 측면을 보이는 경문의 하나이다.
分布して妄りに人に授与すべからず「나누어 펴서 함부로 사람에게 주지 말라」
법화경 제4권 법사품 제10의 글.
諸仏如来の秘密の蔵「제불여래의 비밀의 곳간」
법화경 제5권 안락행품 제14의 글. 법화경은 모든 경 가운데 가장 위에 있으므로 긴 밤 동안 지켜 함부로 설하지 말라는 대목이다. 안락행품은 섭수의 수행을 설한 품으로 꼽힌다.
不軽品불경품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제20. 위음왕불의 상법 시대에 불경보살이 만나는 사람마다 「나는 깊이 그대들을 공경하노라」라고 예배하자, 사중이 성내어 악구로 꾸짖고 막대기 · 몽둥이 · 기와 · 돌로 때렸는데도 예배를 그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설해진다. 절복의 본보기로 꼽힌다.
勧持品권지품
법화경 권지품 제13. 불멸 뒤 이 경을 넓히는 자에게 지혜 없는 사람들이 악구로 꾸짖고 칼과 몽둥이를 가할 것이라는 박해의 예언이 설해진다. 대성인은 이 품의 스무 줄 게송을 몸으로 읽었다고 하셨다.
時に適うのみ「때에 맞을 뿐이니라」
천태대사의 말. 섭수를 행할지 절복을 행할지는 때에 따라 다르다는 뜻이다.
取捨宜きを得て一向にすべからず「취하고 버림을 마땅히 하여 한쪽으로만 해서는 안 되느니라」
장안대사(章安大師, 관정)의 말. 장안은 천태대사의 제자로, 천태의 강설을 받아 적어 법화삼대부 등으로 정리한 사람이다. 섭수와 절복 가운데 하나만을 고집하지 말고 때에 맞게 가려 쓰라는 뜻이다.
法慧・功徳林・金剛幢・金剛蔵법혜 · 공덕림 · 금강당 · 금강장
화엄경의 자리에 모인 보살들. 화엄경에서는 성도한 지 얼마 안 된 석존 앞에 이 네 보살을 우두머리로 하는 예순여 보살이 시방의 불국토에서 모여, 현수보살 · 해탈월보살 등의 요청에 따라 보살 수행의 단계인 오십이위의 법문을 설했다. 법혜는 십주를, 공덕림은 십행을, 금강당은 십회향을, 금강장은 십지를 설했다. 화엄경에서는 석존 자신은 아무 법도 설하지 않고 보살들이 부처의 신력을 받아 설했다고 한다. 부처의 깨달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으므로, 보살의 수행 단계와 그 공덕을 보임으로써 그보다 뛰어난 부처의 경지를 간접으로 밝힌 것이다.
鹿野苑녹야원
범어 므리가다바의 번역. 고대 인도 바라나국(바라나시)에 있던 동산으로, 오늘날 바라나시 북쪽의 사르나트이다. 석존이 고행을 버리고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 깨달은 뒤, 이곳에서 아야교진여 등 다섯 비구에게 처음 법을 설했으므로 초전법륜의 땅이라 한다. 일찍부터 순례가 행해져 불탑과 승원이 세워졌고, 인도 조각사의 걸작이라는 아소카 석주의 사자 주두가 이 근처에서 출토되었다.
倶鄰等の五人구린 등 다섯 사람
석존에게 처음 교화된 다섯 비구. 구린은 아즈냐타 카운딘냐의 음사인 아야구린의 줄임말로, 아야교진여라고도 쓴다. 석존이 출가할 때 왕명으로 따라가 고행을 함께했으나, 석존이 고행을 버리자 떠나 녹야원으로 갔고, 석존이 성도한 뒤 녹야원에서 다시 만나 최초의 제자가 되었다.
観仏三昧経관불삼매경
『불설관불삼매해경』의 약칭. 동진의 불타발타라가 옮겼으며 열 권이다. 부처가 가비라위성의 니구루타 정사에서 아버지 정반왕과 이모 마하파사파제 등을 위해, 부처를 마음에 관하는 명상(관불삼매)으로 해탈을 얻는 법을 가르친다.
忉利天도리천
범어 트라야스트링샤의 음사로, 삼십삼천이라 옮긴다. 욕계 육천의 둘째 하늘로, 수미산 꼭대기에 있으며 제석천이 사는 희견성이 중앙에 있다. 성의 사방에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마다 여덟 하늘이 있어 서른두 하늘에 희견성을 더해 삼십삼천이라 한다. 『구사론』 권11은 인간의 백 년이 이 하늘의 하루 밤낮이며 그 수명은 천 년이라 하니, 인간의 햇수로 환산하면 삼천육백만 년에 해당한다.
摩耶経마야경
『마하마야경』, 또는 『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이라고도 한다. 남제의 담경이 옮겼으며 두 권이다. 부처가 어머니 마야부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4월 15일 도리천에 올라 7월 15일 돌아오기까지 아흔 날 동안 설법해 초과(初果)의 이익을 얻게 했다. 이 경에는 「가난한 이의 등불 하나」의 가르침이 있으니, 많은 재물을 보시해도 신심이 약하면 성불할 수 없지만 가난해도 신심이 강하고 뜻이 깊으면 성불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또 부처의 입멸을 들은 마야부인이 도리천에서 내려와 부처의 발우와 석장을 안고 울자, 부처가 신통력으로 금관의 뚜껑을 열고 몸을 일으켜 어머니를 만나 세상의 무상을 설했다고 한다. 경의 뒷부분에는 석존 멸후 천오백 년까지 법을 넓힐 사람들의 출세 연대와 사적이 적혀 있다.

문답의 짜임 — 힐난을 풀고 뜻을 맺다

이 장은 「불교는 기에 의하지 않고 오로지 시에 의한다」는 것을 밝히는 가운데, 첫머리의 「묻되, 기가 아닌 이에게……」부터가 요간(料簡, 의문을 들어 헤아려 풂)이고, 「처음 성도하신 때에는……」부터가 결문(結文)이다. 요간 부분은 다시 두 겹이다. 처음에는 「기교상위(機教相違)의 힐난」을 푼다 — 대법을 들을 기근이 아닌 중생에게 왜 굳이 대법을 설해 들려주는가, 그렇게 해서 비방이 일어나도 그것이 결코 설한 자의 죄가 아님을 밝힌다. 다음에 「캐묻되, 법화경 제2권……」부터는 「경설상위(經說相違)의 힐난」을 푼다 — 같은 법화경 안에 「설하지 말라」는 경문과 「때려도 설하라」는 경문이 함께 있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그 답이 섭수와 절복은 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법 · 상법 이천 년은 섭수, 말법은 한결같이 절복이다.

길을 만든 자와 좋은 의사 — 설한 자에게 죄는 없다

첫 힐난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되풀이되는 물음이다. 법을 권했는데 상대가 믿기는커녕 도리어 비방하고, 그 때문에 더 큰 괴로움에 떨어진다면, 처음부터 권하지 않는 편이 그 사람을 위해 나았던 것이 아닌가. 대성인은 두 비유로 단호하게 답하신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길을 만들었는데 그 길에서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길을 만든 사람의 죄가 되겠는가. 좋은 의사가 병자에게 좋은 약을 주었는데 병자가 싫다며 먹지 않고 죽었다고 해서 의사의 허물이 되겠는가. 대성인은 이 비유로 절복하는 자에게 죄가 없다고 단정하셨으니, 바른 신앙을 가진 이는 확신을 가지고 절복을 행해야 한다.

나아가 여기에는 비방한 자조차 결국은 구제된다는 법리가 있다. 절복을 행하면 나라 전체의 박해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고, 박해하는 자가 그 비방의 현벌을 받는 것도 정해진 일이다. 그러나 땅에 넘어진 자가 땅을 짚고 일어서듯, 정법을 비방해 악도에 떨어진 자도 다시 그 법의 공덕으로 구제된다. 이것을 역연(逆緣)의 공덕, 또는 독고(毒鼓)의 연이라 한다. 독고란 독을 바른 북으로, 그 소리를 들은 자는 듣고 싶지 않아도 반드시 죽는다는 열반경의 비유이다 — 법을 듣는 것이 좋든 싫든 성불의 인연이 된다는 뜻이다.

謗法の者に向つては一向に法華経を説くべし毒鼓の縁と成さんが為なり、例せば不軽菩薩の如し

법을 비방하는 자를 향해서는 한결같이 법화경을 설해야 하느니라. 독고의 연으로 삼기 위해서이니, 예컨대 불경보살과 같으니라.

「교기시국초」, 438쪽

「우에노전답서」에는 역연의 공덕을 보여 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인도에 질투심 많은 여인이 있어 남편을 미워한 나머지, 남편이 여러 해 읽어 온 법화경 제5권을 빼앗아 두 발로 마구 짓밟았다. 그 여인은 목숨이 다해 지옥에 떨어졌는데, 두 발만은 지옥에 들어가지 않아 옥졸이 쇠몽둥이로 쳐도 들어가지 않았다. 법화경을 밟은 역연의 공덕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어 「지금 니치렌을 미워하는 까닭에 쇼보(少輔房)가 제5권을 빼앗아 나의 얼굴을 친 것도 역연이 될 것인가」(1555쪽)라고 덧붙이신다. 법화경으로 얼굴을 맞으신 자신의 법난조차 박해자에게는 역연의 인연이 된다는 것이다.

또 일단 벌을 받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공덕으로 바뀌는 법리가 있으니, 이것을 변독위약(變毒爲藥)이라 한다. 「오타입도전답서」는 용수보살의 『대지도론』의 「비유하면 큰 약사가 능히 독을 바꾸어 약으로 삼는 것과 같다」는 글과, 이를 이어받은 천태의 「이 경의 수기는 곧 독을 바꾸어 약으로 삼는 것이니라」라는 글을 든다(1009쪽). 「시문불승의」는 이를 더 깊이 풀어, 독이란 우리의 번뇌 · 업 · 고의 삼도요 약이란 법신 · 반야 · 해탈이니, 능히 독으로 약을 삼는다는 것은 삼도를 바꾸어 삼덕으로 삼는 것이라고 밝힌다.

毒と云うは何物ぞ我等が煩悩・業・苦の三道なり薬とは何物ぞ法身・般若・解脱なり、能く毒を以て薬と為すとは何物ぞ三道を変じて三徳と為すのみ

독이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번뇌 · 업 · 고의 삼도이니라. 약이란 무엇인가. 법신 · 반야 · 해탈이니라. 능히 독으로써 약을 삼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삼도를 바꾸어 삼덕으로 삼을 뿐이니라.

「시문불승의」, 984쪽

「니이케전어소식」도 「독약이 변하여 약이 되고 중생이 변하여 부처가 되는 까닭에 묘법이라 하느니라」(1437쪽)라고 하신다. 길을 만든 자에게 죄가 없다는 것은 소극적인 면책이 아니다. 비방하는 자에게조차 법은 결국 약이 되고 성불의 씨앗이 된다는 적극적인 자비의 법리가 그 밑바닥에 있다.

물과 불 같은 두 경문 — 「때에 맞을 뿐」

둘째 힐난은 경문 자체의 모순을 찌른다. 법화경은 한편으로 비유품에서 「지혜 없는 사람 가운데서 이 경을 설하지 말라」, 법사품에서 「함부로 사람에게 주지 말라」, 안락행품에서 「긴 밤 동안 수호하여 함부로 펴서 설하지 말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불경품에서는 불경보살이 사중에게 악구로 꾸짖음을 당하고 막대기와 기와 · 돌로 맞으면서도 예배를 그치지 않았다고 하고, 권지품에서는 지혜 없는 사람들이 악구로 꾸짖고 칼과 몽둥이를 가하리라고 예언한다. 앞의 것은 상대를 가려 설하라는 것이고, 뒤의 것은 박해를 받더라도 설하라는 것이니, 질문자의 말대로 「물과 불」처럼 서로 용납하지 않는다.

대성인은 천태와 장안의 석으로 이 모순을 푸신다. 천태는 「때에 맞을 뿐이니라」라고 했고, 장안은 「취하고 버림을 마땅히 하여 한쪽으로만 해서는 안 되느니라」라고 했다. 대성인은 그 석의 마음을 네 가지 「어떤 때(或る時)」로 풀어 보이신다. 어떤 때는 비방할 듯하면 잠시 설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비방하더라도 굳이 설한다. 어떤 때는 한 사람이 믿을 만하더라도 만 사람이 비방할 듯하면 설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만 사람이 한결같이 비방하더라도 굳이 설한다.

이 네 가지 「어떤 때」는 두 갈래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처음의 갈래는 아직 비방하지 않은 기(未謗)와 이미 비방한 기(已謗)에 배당된다. 아직 비방하지 않은 자에게는 섭수를, 이미 비방한 자에게는 절복을 행하니, 이것이 「때에 맞는다」는 것이다. 다음의 갈래는 『법화문구』의 이름난 글과 이어진다. 석존은 과거에 선근을 심은 본이유선의 중생에게 작은 법으로 보호하며 이끌었고(將護), 불경보살은 아직 선근이 없는 본미유선의 중생에게 큰 법으로 굳이 독을 바르듯 들려주었다(強毒)는 것이다.

천태와 장안
두 갈래 경문
섭수 쪽
  • 「지혜 없는 사람 가운데서 이 경을 설하지 말라」無智の人の中に此の経を説くこと莫れ비유품
  • 「함부로 사람에게 주지 말라」妄りに人に授与すべからず법사품
  • 「함부로 펴서 설하지 말라」妄りに宣説せざれ안락행품
절복 쪽
  • 불경보살이 악구와 막대기 · 기와 · 돌을 받으면서도 예배함불경품
  • 「칼과 몽둥이를 가하는 자가 있으리라」及び刀杖を加うる者有らん권지품
풀이의 기준
천태「때에 맞을 뿐이니라」時に適うのみ
장안「취하고 버림을 마땅히 하여 한쪽으로만 해서는 안 되느니라」取捨宜きを得て一向にすべからず
네 가지 「어떤 때」
  1. ① 비방할 듯하면 잠시 설하지 않는다
  2. ② 비방하더라도 굳이 설한다
  3. ③ 한 기가 믿을 만해도 만 기가 비방할 듯하면 설하지 않는다
  4. ④ 만 기가 한결같이 비방해도 굳이 설한다
기에 따른 배당
  • 아직 비방하지 않은 기섭수
  • 이미 비방한 기절복
  • 본이유선작은 법으로 보호하여 이끔(석존)
  • 본미유선큰 법으로 굳이 들려줌(불경보살)
도표 5 · 섭수와 절복의 판단 기준

섭수와 절복은 때에 따른다 — 어서의 증언

섭수와 절복에 관한 대성인의 여러 글은 말법에는 절복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보인다. 「사도어서」는 섭절을 세간의 문무(文武) 두 길에 견준다.

仏法は摂受・折伏時によるべし譬ば世間の文・武二道の如し

불법은 섭수 · 절복을 때에 따라야 하느니라. 비유하면 세간의 문무 두 길과 같으니라.

「사도어서」, 957쪽

같은 글은 이어서, 옛날의 대성(大聖)은 때에 따라 법을 행했다고 말한다. 설산동자와 살타왕자는 몸을 보시하면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에 몸을 버렸지만, 고기를 원하지 않는 때에 몸을 버릴 것인가. 종이가 없는 세상에는 몸의 가죽을 종이로 삼고, 붓이 없는 때에는 뼈를 붓으로 삼아야 한다 — 수행의 형태는 그 때가 요구하는 것에 따라 정해진다는 뜻이다.

「개목초」는 섭절을 더위와 추위의 비유로 말한다.

無智・悪人の国土に充満の時は摂受を前とす安楽行品のごとし、邪智・謗法の者の多き時は折伏を前とす常不軽品のごとし、譬へば熱き時に寒水を用い寒き時に火をこのむがごとし

지혜 없는 이와 악인이 국토에 가득할 때는 섭수를 앞세우니 안락행품과 같고, 삿된 지혜와 법을 비방하는 자가 많을 때는 절복을 앞세우니 상불경품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더울 때 찬물을 쓰고 추울 때 불을 좋아하는 것과 같으니라.

「개목초 하」, 235쪽

「여설수행초」는 말법의 처음 오백 년을 「투쟁견고 · 백법은몰의 때」이자 「권실이 뒤섞여 어지러운 때」로 규정하고, 적이 있을 때는 칼과 활을 지녀야 하고 적이 없을 때는 무기가 무슨 소용이냐고 하면서, 일승이 유포할 때에 권교가 적이 되어 혼란스럽게 하면 실교에서 그것을 꾸짖어야 하니, 이것을 섭절 이문 가운데 「법화경의 절복」이라 한다고 밝힌다. 그리고 천태의 「법화는 절복이니, 권문의 이치를 깨뜨린다(法華折伏・破権門理)」를 들어 「참으로 까닭이 있구나」라고 맺는다(503쪽).

나라에 따라 섭수를 앞세울 때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를 짚어 두자. 말법에 절복을 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나라에 따라서는 절복을 앞세울 나라와 섭수를 앞세울 나라가 있다. 근거는 「개목초」의 같은 대목이 이어서 하는 말이다.

末法に摂受・折伏あるべし所謂悪国・破法の両国あるべきゆへなり、日本国の当世は悪国か破法の国かと・しるべし

말법에 섭수 · 절복이 있으리라. 이른바 악국(惡國)과 파법(破法)의 두 나라가 있기 때문이니라. 일본국의 지금 세상은 악국인가 파법의 나라인가를 알아야 하느니라.

「개목초 하」, 235쪽

풀어 말하면 이렇다. 일본처럼 삿된 지혜와 법 비방이 많아, 진언 · 염불 · 선 같은 권교로써 실교인 법화경을 깨뜨리고, 법화경 가운데서도 본적상대 · 종탈상대가 있음을 알지 못하며, 말법의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이 삼대비법을 세우셨는데도 오히려 정법을 깨뜨리고 절복을 행하는 사람을 원망하고 시기하는 나라 — 이런 「파법의 나라」에서는 절복을 행해야 한다. 그러나 비방을 정리해야 할 대상이 될 만한 신이나 불상이 거의 없고, 관습적인 종교 행사가 조금 있더라도 그 교의로써 권실 · 본적 · 종탈을 어지럽힐 교의도 신앙도 없는 곳이라면, 그것은 「지혜 없는 이와 악인」의 나라로서 「삿된 지혜와 비방」의 나라와 구별된다. 그런 곳에서는 깨뜨려야 할 대상이 없으므로 「절복 위의 섭수」를 앞세워야 한다. 절복의 정신을 근본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차츰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때에 맞을 뿐」이라는 천태의 말은 이렇게 시대만이 아니라 나라에도 적용된다.

니치칸 상인의 섭절 다섯 뜻

니치칸 상인은 「개목초 문단」에서 섭수 · 절복을 종교의 오의(五義)에 맞추어 판별했다. 이 판별은 「시에 맞을 뿐」이라는 한마디를 교 · 기 · 시 · 국 · 서의 다섯 측면에서 펼쳐 보인 것이다.

첫째는 교법(教法)에 맞춘 것이다. 법화경은 바로 절복의 교법이다. 법화경의 개현은 이전 경의 방편의 이치를 깨뜨리고 법화의 진실의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니, 『법화현의』 제9권이 「법화는 절복이니, 권문의 이치를 깨뜨린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같은 이치로 본적에서도 종탈에서도 본(本)과 종(種)으로써 적(迹)과 탈(脫)을 깨뜨린다.

둘째는 기연(機緣)에 맞춘 것이다. 본이유선의 중생을 위해서는 섭수문으로 보호하며 이끌고, 본미유선의 중생을 위해서는 절복문으로 굳이 들려준다. 『법화문구』 권10이 「본래 이미 선이 있으면 석가는 작은 법으로 이를 보호하여 이끌고, 본래 아직 선이 없으면 불경은 큰 법으로 이를 굳이 들려준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셋째는 시절(時節)에 맞춘 것이다. 「현불미래기」는 말법의 상황을 이렇게 그린다 — 말법에는 대승 · 소승의 이익이 함께 없으니, 소승에는 교만 있고 행과 증이 없으며 대승에는 교와 행만 있고 명익 · 현익의 증이 없다. 작은 법으로 큰 법을 치고 권교로 실교를 깨뜨려 국토에 대체로 법을 비방하는 자가 가득하다. 불교에 의해 악도에 떨어지는 자는 대지의 티끌보다 많고, 정법을 행해 불도를 얻는 자는 손톱 위의 흙보다 적다. 이때를 맞아 본문의 본존 ·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를 염부제에 광선유포하게 할 것이니, 예컨대 위음왕불의 상법 때에 불경보살이 「아심경」 등 스물네 자로 그 나라에 광선유포하여 온 나라의 막대기 등의 대난을 부른 것과 같다는 것이다.

彼の像法の末と是の末法の初と全く同じ

저 상법의 끝과 이 말법의 처음은 완전히 같으니라.

「현불미래기」, 506쪽

「개목초」도 「설령 산림에 섞여 일념삼천의 관을 닦더라도, 한적한 곳에서 삼밀의 기름을 흘리지 않더라도, 시와 기를 알지 못하고 섭절의 이문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어찌 생사를 떠날 수 있겠느냐」(236쪽)라고 한다. 아무리 깊은 관법을 닦고 계행을 지켜도 시와 기를 모르고 섭절을 가리지 못하면 생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 섭절의 판단 자체가 성불의 요건이라는 것이다. 말법에 절복을 행해야 한다는 어문은 한이 없으니, 말법에 태어난 우리가 절복을 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넷째는 국토(國土)에 맞춘 것이다. 「개목초」의 「말법에 섭수 · 절복이 있으리라」는 글이 국토에 맞춘 글이다. 말법은 절복의 시대라고 하지만, 옆으로 다른 나라를 찾아보면 악국도 있을 것이고, 그 악국에서는 섭수를 앞세운다. 일본은 파법의 나라이므로 절복을 행해야 한다. 니치칸 상인이 오늘날과 같은 지리 지식이 없던 시대에 「옆으로 다른 나라를 찾는다」고 하여, 이미 일본 밖의 여러 나라를 섭절 판단의 시야에 넣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다섯째는 교법 유포의 선후에 맞춘 것이다.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 등은 이미 앞 시대에 유포한 교법을 깨뜨리고 그 시대의 기에 맞아 중생을 이롭게 하는 교법을 넓혔다. 지금 니치렌 대성인도 앞 시대에 유포한 이전의 경과 적문을 깨뜨리고, 말법에 맞는 법화 본문의 대법, 본문 수량품의 간심을 넓히신다.

  1. ①교법에 맞춤법화는 절복의 교법「법화는 절복이니, 권문의 이치를 깨뜨린다」法華折伏・破権門理『법화현의』 제9본으로 적을, 종으로 탈을 깨뜨림
  2. ②기연에 맞춤본이유선 → 섭수(석가는 작은 법으로 보호하며 이끔)본미유선 → 절복(불경은 큰 법으로 굳이 들려줌)『법화문구』 권10
  3. ③시절에 맞춤말법은 대소의 이익이 함께 없고 비방하는 자가 가득한 때「저 상법의 끝과 이 말법의 처음은 완전히 같으니라」彼の像法の末と是の末法の初と全く同じ「현불미래기」
  4. ④국토에 맞춤「말법에 섭수 · 절복이 있으리라. 이른바 악국과 파법의 두 나라가 있기 때문이니라」末法に摂受・折伏あるべし所謂悪国・破法の両国あるべきゆへなり「개목초」파법의 나라는 절복, 악국은 섭수를 앞세움
  5. ⑤교법 유포의 선후에 맞춤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앞 시대의 교법을 깨뜨리고 그 시대의 법을 넓혔듯, 대성인은 이전 경과 적문을 깨뜨리고 본문 수량품의 간심을 넓힘
도표 6 · 니치칸 상인의 섭절 다섯 뜻(「개목초 문단」)

섭수와 절복은 「때에 맞을 뿐」이라는 원칙으로 가려지며, 그 판단은 시대뿐 아니라 기연 · 국토 · 교법 유포의 선후에까지 넓혀 볼 수 있다. 말법은 원칙적으로 절복의 때이지만, 권실 · 본적 · 종탈을 어지럽히는 교의가 없는 나라에서는 절복의 정신을 근본으로 한 섭수를 앞세운다.

부모에게조차 설하지 않은 법화경 — 결문

장의 마지막 대목은 제2장의 「적멸도량……」부터 이어 온 뜻을 맺는 결문이다. 대성인은 석존 일대의 이전 경의 자리들을 차례로 떠올리신다. 처음 성도한 화엄의 자리에는 법혜 · 공덕림 · 금강당 · 금강장 · 문수 · 보현 · 미륵 · 해탈월 같은 대보살과 범천 · 제석 · 사천왕, 그리고 수를 알 수 없는 근기 큰 범부들이 있었다. 아함경을 설한 녹야원에는 처음 교화된 구린 등 다섯 비구와 가섭 등 이백오십 인, 사리불 등 이백오십 인, 팔만의 제천이 모였다. 방등 대회의 의식에서는 석존의 아버지 정반대왕이 간절히 아들을 그리워했으므로 부처가 왕궁에 들어가 관불삼매경을 설했고,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서는 도리천에 아흔 날 동안 머물며 마야경을 설했다.

대성인은 여기서 인정의 극치를 짚으신다. 자애로운 아버지와 슬픔 많은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부처가 어떤 비법인들 아꼈겠는가. 그런데도 법화경만은 설하지 않았다. 대보살에게도, 성문에게도, 제천에게도, 심지어 부모에게도 설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부처의 설법이 중생의 기근에 따라 차별되는 것이 아니라, 법화경을 설할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결국 기에 의하지 않고,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 어떻게 해도 설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겠느냐」 — 제3장은 이렇게 제2장의 결론으로 되돌아와, 「불법은 시에 의한다」는 원리를 한 번 더 확정한다. 부모의 정으로도 앞당길 수 없는 것이 「때」라는 이 대목은, 시라는 것이 인정이나 기근보다 앞서는 부처의 법칙임을 가장 절실하게 보여 준다.

제4장 정상말에 맞추어 멸후의 홍교를 밝히다
어서 257쪽 16행~258쪽 18행 · 第四章 正像末に約して滅後の弘教を明か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57쪽 16행 ~ 258쪽 18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云くいかなる時にか小乗・権経をときいかなる時にか法華経を説くべきや、答えて云く十信の菩薩より等覚の大士にいたるまで時と機とをば相知りがたき事なり何に況や我等は凡夫なりいかでか時機をしるべき、求めて云くすこしも知る事あるべからざるか、答えて云く仏眼をかつて時機をかんがへよ仏日を用て国土をてらせ、問うて云く其の心如何、答えて云く大集経に大覚世尊・月蔵菩薩に対して未来の時を定め給えり所謂我が滅度の後の五百歳の中には解脱堅固・次の五百年には禅定堅固已千上年一 次の五百年には読誦多聞堅固・次の五百年には多造塔寺堅固已千上年二 次の五百年には我法の中に於て闘諍言訟して白法隠没せん等云云、此の五の五百歳・二千五百余年に人人の料簡さまざまなり、漢土の道綽禅師が云く正像二千・四箇の五百歳には小乗と大乗との白法盛なるべし末法に入つては彼等の白法皆消滅して浄土の法門・念仏の白法を修行せん人計り生死をはなるべし、日本国の法然が料簡して云く今日本国に流布する法華経・華厳経並びに大日経・諸の小乗経・天台・真言・律等の諸宗は大集経の記文の正像二千年の白法なり末法に入つては彼等の白法は皆滅尽すべし設い行ずる人ありとも一人も生死をはなるべからず、十住毘婆沙論と曇鸞法師の難行道・道綽の未有一人得者・善導の千中無一これなり、彼等の白法隠没の次には浄土三部経・弥陀称名の一行ばかり大白法として出現すべし、此を行ぜん人人はいかなる悪人・愚人なりとも十即十生・百即百生・唯浄土の一門のみ有つて路に通入すべしとはこれなり、されば後世を願はん人人は叡山・東寺・園城・七大寺等の日本一州の諸寺・諸山の御帰依をとどめて彼の寺山によせをける田畠郡郷をうばいとつて念仏堂につけば決定往生・南無阿弥陀仏とすすめければ我が朝一同に其の義になりて今に五十余年なり、日蓮此等の悪義を難じやぶる事はことふり候いぬ、彼の大集経の白法隠没の時は第五の五百歳当世なる事は疑ひなし、但し彼の白法隠没の次には法華経の肝心たる南無妙法蓮華経の大白法の一閻浮提の内・八万の国あり其の国国に八万の王あり王王ごとに臣下並びに万民までも今日本国に弥陀称名を四衆の口口に唱うるがごとく広宣流布せさせ給うべきなり。

풀이

묻되, 어떤 때에 소승 · 권경을 설하고 어떤 때에 법화경을 설해야 하느냐. 답하되, 십신(十信)의 보살로부터 등각(等覺)의 대사에 이르기까지 시와 기는 서로 알기 어려운 일이니라. 하물며 우리는 범부이니 어찌 시와 기를 알 수 있겠느냐. 구하여 이르되, 조금도 알 수 없다는 것이냐. 답하되, 불안(佛眼)을 빌려 시와 기를 헤아리고, 불일(佛日)을 써서 국토를 비추어 보라. 묻되, 그 마음은 무엇이냐. 답하되, 대집경에서 대각세존께서 월장보살을 향하여 미래의 때를 정하셨으니, 이른바 「나의 멸도 뒤 오백 년 가운데는 해탈견고(解脫堅固), 다음 오백 년에는 선정견고(禪定堅固) — 이상 천 년 — , 다음 오백 년에는 독송다문견고(讀誦多聞堅固), 다음 오백 년에는 다조탑사견고(多造塔寺堅固) — 이상 이천 년 — , 다음 오백 년에는 나의 법 가운데서 다투고 소송하여 백법(白法)이 숨어 사라지리라」 등이라 하였느니라. 이 다섯 오백 년, 이천오백여 년에 대해 사람들의 해석이 갖가지이니라. 한토의 도작(道綽) 선사는 이르되, 정법 · 상법 이천 년, 네 개의 오백 년에는 소승과 대승의 백법이 성하겠지만, 말법에 들어서는 그 백법이 모두 소멸하여 정토의 법문인 염불의 백법을 수행하는 사람만이 생사를 떠나리라고 하였느니라. 일본국의 법연(法然)은 해석하여 이르되, 지금 일본국에 유포하는 법화경 · 화엄경 및 대일경 · 여러 소승경, 천태 · 진언 · 율 등의 여러 종은 대집경에 기록된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백법이니, 말법에 들어서는 그 백법이 모두 멸해 다할 것이요, 설령 행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한 사람도 생사를 떠나지 못하리라. 십주비바사론과 담란(曇鸞) 법사의 「난행도(難行道)」, 도작의 「아직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다(未有一人得者)」, 선도(善導)의 「천 사람 가운데 하나도 없다(千中無一)」가 이것이니라. 그 백법이 숨어 사라진 다음에는 정토 삼부경과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한 가지 수행만이 대백법으로 나타나리니, 이것을 행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악인 · 우인이라도 열이면 열 모두 태어나고 백이면 백 모두 태어나니(十即十生・百即百生), 「오직 정토의 한 문만이 길로 통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이것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후세를 원하는 사람들은 히에이산 · 동사 · 온조사 · 칠대사 등 일본 한 나라의 여러 절과 여러 산에 대한 귀의를 그치고, 그 절과 산에 기진해 둔 논밭과 군 · 향을 빼앗아 염불당에 붙이면 결정코 왕생하리니 나무아미타불이라 하라고 권하였으므로, 우리 나라가 한결같이 그 뜻을 따르게 된 지 지금 오십여 년이니라. 니치렌이 이 그릇된 뜻들을 힐난하여 깨뜨린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니라. 저 대집경의 백법은몰의 때가 제5의 오백 년, 곧 지금 세상이라는 것은 의심이 없느니라. 다만 그 백법은몰의 다음에는 법화경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일염부제 안에 팔만의 나라가 있고 그 나라마다 팔만의 왕이 있는데, 왕마다 신하와 만민에 이르기까지, 지금 일본국에서 아미타의 이름을 사중의 입마다 부르듯이 광선유포하게 되시리라.

어구 풀이

十信の菩薩より等覚の大士십신의 보살로부터 등각의 대사까지
보살 수행의 오십이위 가운데 맨 처음 단계인 십신에서, 부처의 바로 아래 단계인 등각까지를 말한다. 보살의 모든 계위를 통틀어도 시와 기를 알기 어렵다는 뜻이다.
仏眼をかつて · 仏日を用て불안을 빌려 · 불일을 써서
범부는 스스로 시와 기를 알 수 없으므로, 부처의 눈인 경문을 빌려 헤아리고, 중생의 어둠을 비추는 부처의 해로 국토를 비추어 보라는 것이다. 여기서 「불안」은 경문을 뜻한다.
大集経 · 月蔵菩薩대집경 · 월장보살
『대방등대집경』. 그 월장분에서 석존이 월장보살에게 불멸 뒤의 미래를 다섯 오백 년으로 나누어 예언한다. 대성인은 대집경 권55의 이 다섯 오백 년을 정법 · 상법 · 말법의 삼시에 배당하셨다.
解脱堅固・禅定堅固・読誦多聞堅固・多造塔寺堅固・闘諍言訟白法隠没해탈견고 · 선정견고 · 독송다문견고 · 다조탑사견고 · 투쟁언송 백법은몰
「견고」는 그 시대에 그 일이 굳건히 성하다는 뜻이다. 첫 오백 년에는 불교를 수행해 모두 해탈을 얻고, 둘째 오백 년에는 선정에 드는 이가 많으며, 셋째 오백 년에는 경을 읽고 외우고 많이 듣는 것이 성하고, 넷째 오백 년에는 탑과 절을 많이 짓는 것이 성하며, 다섯째 오백 년에는 불법 안에서 다툼과 소송이 그치지 않아 백법, 곧 선법(善法)이 숨어 사라진다.
正像정상
정법과 상법. 불멸 뒤를 정법 · 상법 · 말법의 세 때로 나눈다. 정법은 불교가 바르게 믿어지고 수행되어 증과를 얻는 때이고, 상법의 「상(像)」은 「닮았다」는 뜻으로 형식으로 흘러 정신은 없어지지만 아직 정법과 닮은 때이며, 말법은 교법이 쇠퇴해 증과가 없는 때이다. 햇수에 대해서는 경전마다 이설이 있으나, 대성인은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 가운데 첫째(해탈견고)와 둘째(선정견고)의 천 년을 정법, 셋째(독송다문견고)와 넷째(다조탑사견고)의 천 년을 상법으로 하셨다.
道綽禅師도작 선사
(562~645). 중국 수 · 당의 승려로 중국 정토교의 조사 가운데 한 사람. 병주 문수(산서성 태원) 사람으로 성은 위씨. 열네 살에 출가해 열반경을 배웠으나, 현중사에서 담란의 비문을 보고 감동해 정토교에 귀의했다. 담란의 설을 이어 석존의 일대 성교를 성도문 · 정토문으로 나누고, 법화경을 포함한 성도문을 「아직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는」 가르침이라 하여 물리치고 정토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제자로 선도가 있으며, 저서로 『안락집』 두 권이 있다.
法然법연
(1133~1212). 헤이안 말기의 승려로 일본 정토종의 개조. 휘는 원공(源空). 미마사카(오카야마현 북부) 사람. 열다섯 살에 히에이산에 올라 배우고, 마흔세 살 때인 승안 5년(1175) 선도의 『관경산선의』와 원신(源信)의 『왕생요집』을 보고 전수염불에 귀의해 정토종을 열었다. 건영 2년(1207) 문하 승려가 궁녀를 출가시킨 일이 발단이 되어 칙명으로 염불이 금지되고 도사(실제로는 사누키)로 유배되었다. 같은 해 사면되어 셋쓰의 가쓰오사에 머물다가 건력 원년(1211) 교토로 돌아와 이듬해 여든 살로 죽었다. 저서로 『선택집』 두 권 등이 있다.
十住毘婆沙論십주비바사론
열일곱 권 서른다섯 품. 용수의 저술로 전하며 구마라집이 옮겼다. 화엄경 십지품에 설한 보살의 십지 가운데 초지와 이지를 주석한 것이다. 그 가운데 이행품 제9에서, 보살이 불퇴의 초지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애써 정진하는 육로의 걸음에 비유해 「난행도」라 하고, 오직 부처의 힘을 믿는 길을 물길의 배에 비유해 「이행도」라 한다. 그러므로 정토종에서 특히 중시한다.
曇鸞法師담란 법사
(476~542). 북위의 승려로 정토교의 조사 가운데 한 사람. 처음 용수 계통의 교리를 배우고 뒤에 신선의 책을 배우던 중 낙양에서 역경승 보리유지를 만나 관무량수경을 받고 정토교에 귀의했다. 『십주비바사론』의 난행도 · 이행도의 뜻을 굽혀 해석해, 염불을 이행도로 하고 그 밖의 수행을 난행도로 하여 물리쳤다. 저서로 『정토론주』 등이 있다.
未有一人得者미유일인득자
도작의 『안락집』 상권의 글. 「아직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다」. 악세 말법에 참으로 이익이 있는 가르침은 성도문 · 정토문 가운데 정토문뿐이고, 다른 가르침으로는 아직 한 사람도 득도한 자가 없다는 주장이다.
善導선도
(613~681). 당 초기의 승려로 중국 정토교 선도류의 대성자. 처음 삼론종을 배우고 법화경 · 유마경을 외웠으나 관무량수경을 보고 서방정토에 뜻을 두었다. 현중사에 가서 도작에게 정토교를 배우고, 스승이 죽은 뒤 장안의 광명사 등에서 칭명염불을 넓혔다. 정행 · 잡행을 세워 잡행을 닦는 자는 「천 가운데 하나도 없다」고 깎아내리고, 정행을 닦는 자는 「열이면 열 모두 태어난다」고 했다. 일본의 법연은 그의 『관경소』를 보고 오로지 정토의 한 문에 귀의했다고 한다.
千中無一 · 十即十生・百即百生천중무일 · 십즉십생 · 백즉백생
모두 선도의 『왕생예찬게』의 글. 다섯 가지 정행 이외의 가르침을 닦으면 왕생하는 자가 천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없고(천중무일), 염불 이외의 잡행을 버리고 염불하면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모두 극락에 왕생한다(십즉십생 · 백즉백생)는 것이다.
七大寺칠대사
남도(나라)의 일곱 큰 절. 도다이사 · 고후쿠사 · 간고사 · 다이안사 · 야쿠시사 · 사이다이사 · 호류사를 말한다.
八万の国・八万の王팔만의 나라 · 팔만의 왕
일염부제, 곧 온 세계에 있는 수많은 나라와 그 왕을 말한다. 이것은 일본 한 나라에 그치지 않는 온 세계 광선유포의 예언으로 읽힌다.

시와 기는 등각도 알기 어렵다 — 경문이라는 부처의 눈

제2장과 제3장이 「불법은 기가 아니라 시에 의한다」는 원리를 세웠다면, 제4장부터는 그 원리를 불멸 뒤의 역사, 곧 정법 · 상법 · 말법의 삼시에 맞추어 펼친다. 이 장은 정상말에 맞추어 멸후의 홍교를 밝히는 가운데 「말법은 삼대비법이 광선유포할 때」임을 간략히 밝힌 장이다. 그리고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첫 질문 「어떤 때에 법화경을 설해야 하느냐」의 「법화경」은 원의(元意)의 법화경, 곧 하종의 법화경인 삼대비법에 맞추어 읽어야 한다.

대성인의 첫 답은 겸허하다. 십신의 보살로부터 등각의 대사에 이르기까지, 곧 보살의 모든 계위를 통틀어도 시와 기는 알기 어렵다. 하물며 범부가 어찌 알겠는가. 그렇다면 전혀 알 수 없는가 하고 묻자, 대성인은 「불안을 빌려 시와 기를 헤아리고, 불일을 써서 국토를 비추어 보라」고 답하신다. 범부의 지혜로는 시를 알 수 없지만, 부처의 눈인 경문을 빌리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답은 선시초 전체의 방법론을 보여 준다. 대성인은 「지금이 어떤 때인가」를 자신의 직관이나 시대 감각으로 판정하지 않으신다. 어디까지나 경문에 비추어 판정하신다. 뒤의 제5장과 제6장이 경문과 석문을 들어 증명하는 것도 이 방법의 연장이다.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

대성인이 빌리시는 「부처의 눈」은 대집경의 예언이다. 석존은 월장보살을 향해 자신의 멸도 뒤를 다섯 오백 년으로 나누어 예언했다. 첫 오백 년은 해탈견고, 다음 오백 년은 선정견고 — 여기까지 천 년. 다음 오백 년은 독송다문견고, 다음 오백 년은 다조탑사견고 — 여기까지 이천 년. 그리고 다음 오백 년에는 「나의 법 가운데서 다투고 소송하여 백법이 숨어 사라지리라」.

대성인은 이 다섯 오백 년을 정법 · 상법 · 말법의 삼시에 배당하셨다. 해탈견고와 선정견고의 천 년이 정법, 독송다문견고와 다조탑사견고의 천 년이 상법, 그리고 투쟁견고 · 백법은몰의 다섯째 오백 년이 말법의 처음이다. 「견고」란 그 시대에 그 일이 굳건히 성하다는 뜻이니, 해탈을 얻는 이가 많은 시대에서 선정에 드는 시대로, 경을 읽고 외우는 시대로, 탑과 절을 짓는 시대로, 그리고 마침내 불법 안에서 다툼만 성한 시대로 — 불법의 생명력이 내면의 깨달음에서 점점 바깥의 형식으로 옮겨 가다가 끝내 다툼에 이른다는 하강의 그림이다.

정법 천 년
첫째 오백 년해탈견고解脫堅固수행하여 모두 해탈을 얻음
둘째 오백 년선정견고禪定堅固선정에 드는 이가 많음
상법 천 년
셋째 오백 년독송다문견고讀誦多聞堅固경을 읽고 외우고 많이 들음
넷째 오백 년다조탑사견고多造塔寺堅固탑과 절을 많이 지음
말법의 처음
다섯째 오백 년투쟁언송 · 백법은몰
「나의 법 가운데서 다투고 소송하여 백법이 숨어 사라지리라」我法の中に於て闘諍言訟して白法隠没せん
이 편의 결론「백법은몰의 다음에는 법화경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 광선유포하게 되시리라」白法隠没の次には法華経の肝心たる南無妙法蓮華経の大白法の……広宣流布せさせ給うべきなり
도표 7 ·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과 정상말

여기서 연대의 문제를 짚어 두자. 대집경에 따르면 불멸 뒤 이천 년이 지나 백법은몰의 말법이 되는데, 대성인의 시대는 불멸 뒤 이천이백 년 무렵이므로 말법의 처음이다. 그런데 서양의 불교 연구나 남방 불교의 전승에 따르면 불멸 연대가 약 오백 년 차이가 나서, 대성인의 시대는 아직 불멸 뒤 천팔백 년 무렵으로 말법에 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정상말의 이설은 서강에서 다루었거니와,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삼천 년에 걸친 역사를 통해 다섯 오백 년의 각각의 「견고」가 부처의 예언대로였다는 것을 보면 의문의 여지가 없다.

불멸 연대에 대해서는 동아시아 불교가 오래 따른 주의 소왕 연간설(기원전 10세기 무렵), 남방 불교의 전승, 근대 학계의 여러 추정이 서로 크게 다르다. 대성인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통용되던 연대에 따라 「불멸 뒤 이천이백여 년」을 말씀하셨고, 선시초의 논증은 그 연대 위에서 대집경의 오오백세를 지금 세상에 대는 것이다.

다섯 오백 년을 둘러싼 갖가지 해석 — 도작과 법연

이 다섯 오백 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해석이 갖가지였다. 대성인은 그 가운데 정토교의 해석을 들어 보이신다. 염불 쪽도 「시」를 많이 논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도작 선사는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네 오백 년에는 소승과 대승의 백법이 성하지만, 말법에 들면 그 백법이 모두 소멸하고 정토의 법문인 염불의 백법을 닦는 사람만이 생사를 떠난다고 했다. 일본의 법연은 이것을 더 밀어붙였다. 지금 일본에 유포하는 법화경 · 화엄경 · 대일경 · 여러 소승경, 천태 · 진언 · 율 등의 여러 종은 모두 대집경이 말하는 정상 이천 년의 백법이니, 말법에 들면 모두 멸해 다하고, 설령 행하는 사람이 있어도 한 사람도 생사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든 것이 『십주비바사론』과 담란의 「난행도」, 도작의 「아직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다」, 선도의 「천 사람 가운데 하나도 없다」였다. 그리고 그 백법이 사라진 뒤에는 정토 삼부경과 아미타의 이름을 부르는 수행만이 대백법으로 나타나, 어떤 악인 · 우인이라도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왕생한다고 했다.

이 해석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 후세를 원하는 사람은 히에이산 · 동사 · 온조사 · 남도 칠대사 등 일본의 모든 절과 산에 대한 귀의를 그치고, 그 절들에 기진한 논밭과 영지를 빼앗아 염불당에 붙이면 반드시 왕생한다고 권했다. 그 결과 나라 전체가 그 뜻을 따르게 된 지 오십여 년이 지났다고 대성인은 말씀하신다. 그리고 「니치렌이 이 그릇된 뜻들을 힐난하여 깨뜨린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라고 덧붙이신다 — 입종 이래 염불을 파해 온 세월을 가리킨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염불의 해석은 권교로써 실교를 깨뜨리는 것이다. 법화경을 난행도라 하고, 성도문이라 하고, 잡행이라 하고, 「천 가운데 하나도 없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수호국가론」의 한 대목은, 도작 자신은 법화경을 파하지 않았는데 법연이 법화경까지 한데 묶어 성도문으로 몰았다는 것을 보인다.

道綽禅師の安楽集の意は法華已前の大小乗経に於て聖道浄土の二門を分つと雖も 我私に法華・真言等の実大・密大を以て四十余年の権大乗に同じて聖道門と称す『準之思之』の四字是なり

도작 선사의 『안락집』의 뜻은 법화 이전의 대승 · 소승경에서 성도 · 정토의 두 문을 나누었으나, (법연은) 내가 사사로이 법화 · 진언 등의 실대승 · 밀대승을 사십여 년의 권대승과 같이 보아 성도문이라 칭한다고 하니, 「이에 준하여 이를 생각하라(準之思之)」의 네 글자가 이것이니라.

「수호국가론」, 52쪽

곧 도작은 법화경 이전의 경들 사이에서 성도문 · 정토문을 나누었을 뿐인데, 법연의 『선택집』은 「이에 준하여 생각하라」는 네 글자로 법화경까지 이전의 권경과 한데 묶어 성도문이라 하고 물리쳤다는 것이다.

또 정토교의 「말법 만 년에 염불이 유포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의거하는 경과 맞지 않는다. 『쌍관경』(무량수경) 하권에는 「앞으로 오는 세상에 경도(經道)가 멸해 다하면 내가 자비로써 불쌍히 여겨 특히 이 경을 머물게 하여 백 년 동안 머물게 하리라」고 되어 있다. 「일대오시계도」는 이 글과 함께 『왕생예찬』의 「만 년에 삼보가 멸하고 이 경이 머무는 것이 백 년」, 자은대사의 『서방요결』의 「말법 만 년에 다른 경은 모두 멸하고 아미타의 한 가르침만」이라는 글을 나란히 적어 두셨다(687쪽). 「법화초심성불초」는 이를 이렇게 꼬집는다.

本経には『当来の世・経道滅尽し特り此の経を留めて止住する事百歳ならん』と説けり、末法一万年の百歳とは全く見えず

본경에는 「앞으로 오는 세상에 경도가 멸해 다하면 특히 이 경을 머물게 하여 머무는 것이 백 년이리라」고 설하였으니, 말법 일만 년의 백 년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느니라.

「법화초심성불초」, 549쪽
도작(『안락집』)해석정상 이천 년에는 대소승의 백법이 성하나 말법에는 모두 소멸 → 염불의 백법만 생사를 떠남근거로 든 말「아직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다」未有一人得者
법연(『선택집』)해석법화 · 화엄 · 대일경 · 천태 · 진언 · 율 모두 정상 이천 년의 백법 → 말법에는 한 사람도 생사를 떠나지 못함 · 정토 삼부경과 칭명만이 대백법근거로 든 말「열이면 열, 백이면 백 태어난다」十即十生・百即百生
대성인해석백법은몰의 때가 제5의 오백 년, 곧 지금 세상임은 의심 없음 → 그 다음에는 법화경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팔만의 나라에 광선유포
대성인 불법의 관점정토교가 의거하는 『쌍관경』조차 「이 경을 머물게 하여 백 년」이라 했을 뿐,「말법 일만 년의 백 년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느니라」末法一万年の百歳とは全く見えず「법화초심성불초」
도표 8 · 다섯 오백 년을 읽는 두 갈래

왜 여기서 특히 염불을 드시는가 — 니치칸 상인의 총별

그릇된 가르침이 염불만이 아닌데, 왜 이 장에서 특히 염불을 파하시는가. 니치칸 상인은 이에 총(總)과 별(別)이 있다고 했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당시 염불이 가장 성했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말하면 세 뜻이 있다. 첫째는 「파할 대상(所破)」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둘째는 「일분(一分)은 받아들임」이다 — 대집경의 백법은몰, 제5의 오백 년이 지금 세상이라는 점에서는 정토교의 시대 인식에도 일분의 타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예로 삼음(所例)」이다 — 지금 일본 전체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있듯이, 장차 남묘호렌게쿄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예로 삼는다는 것이다. 본문이 「지금 일본국에서 아미타의 이름을 사중의 입마다 부르듯이」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 세 번째 뜻이다. 염불이 온 나라에 퍼진 모습이 그대로 남묘호렌게쿄가 퍼질 모습의 본보기가 된다. 덧붙이면, 대성인의 불법은 「보은초」에 보이신 대로 만 년 밖, 미래 영원까지 유포해 갈 것이다.

정토교와 대성인은 같은 대집경, 같은 「백법은몰」을 읽으면서 정반대의 결론에 이른다. 정토교는 백법은몰을 「모든 수행이 무력해지는 때」로 읽고 타력의 칭명으로 물러섰다. 대성인은 백법은몰을 「그 다음의 대백법이 나타날 때」로 읽으신다. 말법이 어둡다는 인식은 같지만, 그 어둠이 무엇을 위한 때인가에 대한 읽음이 다르다. 이 차이가 바로 「시를 익힌다」는 것의 내용이다.

법화경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

본문은 백법은몰 뒤에 유포할 것을 「법화경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라 하신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다른 문류에서 이것을 「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이라 하거나 「본지심심(本地甚深)의 남묘호렌게쿄」라 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며, 바른 뜻은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간심, 구원 명자(名字)의 남묘호렌게쿄다. 그리고 그것이 곧 본문의 본존의 중앙에 쓰인 남묘호렌게쿄다. 「현불미래기」의 글이 이것을 뒷받침한다.

此の人は守護の力を得て本門の本尊・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堤に広宣流布せしめんか

이 사람은 수호의 힘을 얻어 본문의 본존 ·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로써 염부제에 광선유포하게 할 것인가.

「현불미래기」, 507쪽

팔만의 나라, 팔만의 왕 — 온 세계 광선유포의 예언

장의 마지막 문장은 선시초에서 가장 웅대한 선언의 하나이다. 일염부제 안에 팔만의 나라가 있고, 나라마다 팔만의 왕이 있으며, 왕마다 신하와 만민에 이르기까지, 지금 일본에서 아미타의 이름을 부르듯이 남묘호렌게쿄가 광선유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온 세계 광선유포의 예언」이다. 일본 한 나라만을 말씀하신 것이라면 「팔만의 나라」라고 하실 까닭이 없다.

여기서 선시초를 읽는 자세에 대해 중요한 점을 짚어 두자. 선시초를 배운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에서 기와 감응이 서로 맞는 불법에 의해 민중의 평화와 행복이 실현되어 왔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원의와 내증은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이 미래에 「때」가 오면 온 세계에 광선유포한다는 예언서로서 받들어야 한다. 선시초의 수많은 역사 서술 — 정법 · 상법의 홍교, 여러 종파의 전래와 그릇됨 — 은 모두 이 한 가지 선언, 말법의 대백법이 온 세계에 펼쳐진다는 선언을 받치기 위해 놓여 있다. 제4장은 그 선언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밝힌 장이며, 이어지는 제5장과 제6장은 그 증거를 경과 석에서 찾는다.

제4장은 「말법은 삼대비법이 광선유포할 때」임을 밝힌 장이며, 「팔만의 나라 · 팔만의 왕」은 온 세계 광선유포의 예언이다. 정토교와 같은 대집경을 읽으면서도, 백법은몰을 대백법이 나타날 때의 전조로 읽는 데에 대성인의 「시」의 판단이 있다.

제5장 경문을 들어 증명하다
어서 258쪽 18행~259쪽 14행 · 第五章 経文を引いて証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58쪽 18행 ~ 259쪽 14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云く其の証文如何、答えて云く法華経の第七に云く「我が滅度の後後の五百歳の中に広宣流布して閻浮提に於て断絶せしむること無けん」等云云、経文は大集経の白法隠没の次の時をとかせ給うに広宣流布と云云、同第六の巻に云く「悪世末法の時能く是の経を持つ者」等云云又第五の巻に云く「後の末世の法滅せんとする時」等・又第四の巻に云く「而も此経は如来現在にすら猶怨嫉多し況や滅度の後をや」又第五の巻に云く「一切世間怨多くして信じ難し」又第七の巻に第五の五百歳闘諍堅固の時を説いて云く「悪魔魔民諸の天・竜・夜叉・鳩槃荼等其の便を得ん」大集経に云く「我が法の中に於て闘諍言訟せん」等云云、法華経の第五に云く「悪世の中の比丘」又云く「或は阿蘭若に有り」等云云又云く「悪鬼其身に入る」等云云、文の心は第五の五百歳の時・悪鬼の身に入る大僧等・国中に充満せん其時に智人一人出現せん彼の悪鬼の入る大僧等・時の王臣・万民等を語て悪口罵詈・杖木瓦礫・流罪死罪に行はん時釈迦・多宝・十方の諸仏・地涌の大菩薩らに仰せつけ大菩薩は梵帝・日月・四天等に申しくだされ其の時天変・地夭・盛なるべし、国主等・其のいさめを用いずば鄰国にをほせつけて彼彼の国国の悪王・悪比丘等をせめらるるならば前代未聞の大闘諍・一閻浮提に起るべし其の時・日月所照の四天下の一切衆生、或は国ををしみ或は身ををしむゆへに一切の仏菩薩にいのりをかくともしるしなくば彼のにくみつる一の小僧を信じて無量の大僧等八万の大王等、一切の万民・皆頭を地につけ掌を合せて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となうべし、例せば神力品の十神力の時・十方世界の一切衆生一人もなく娑婆世界に向つて大音声をはなちて南無釈迦牟尼仏・南無釈迦牟尼仏・南無妙法蓮華経・南無妙法蓮華経と一同にさけびしがごとし。

풀이

묻되, 그 증문은 무엇이냐. 답하되, 법화경 제7권에 이르되 「내가 멸도한 뒤 후오백세(後五百歲) 가운데 광선유포하여 염부제에서 끊어지게 함이 없으리라」 등이라 하였느니라. 경문은 대집경의 백법은몰 다음의 때를 설하시어 「광선유포」라 하셨느니라. 같은 제6권에 이르되 「악세 말법의 때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 등이라 하고, 또 제5권에 이르되 「뒤의 말세에 법이 멸하려 할 때」 등이라 하고, 또 제4권에 이르되 「더구나 이 경은 여래가 계신 지금에도 오히려 원망과 시기가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 또 제5권에 이르되 「일체 세간이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려우니라」, 또 제7권에 제5의 오백 년 투쟁견고의 때를 설하여 이르되 「악마 · 마민 · 여러 천 · 용 · 야차 · 구반다 등이 그 틈을 얻으리라」, 대집경에 이르되 「나의 법 가운데서 다투고 소송하리라」 등이라 하였느니라. 법화경 제5권에 이르되 「악세 가운데의 비구」, 또 이르되 「혹은 아란야에 있으며」 등이라 하고, 또 이르되 「악귀가 그 몸에 들어」 등이라 하였느니라. 글의 마음은, 제5의 오백 년의 때에 악귀가 몸에 들어간 대승(大僧)들이 나라 안에 가득하리라. 그때에 지인(智人) 한 사람이 출현하리라. 저 악귀가 들어간 대승들이 그때의 왕과 신하와 만민들을 꾀어, 악구로 꾸짖고, 막대기 · 몽둥이 · 기와 · 돌로 치고, 유배 · 사형에 처할 때,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께서 지용의 대보살들에게 분부하시고, 대보살은 범천 · 제석 · 일천 · 월천 · 사천왕 등에게 분부를 내리시어, 그때 천변과 지요가 성하리라. 국주들이 그 간언을 쓰지 않으면, 이웃 나라에 분부하여 저 나라 나라의 악왕 · 악비구들을 치게 하시니, 그리되면 전대미문의 대투쟁이 일염부제에 일어나리라. 그때 해와 달이 비추는 사천하의 일체중생이 혹은 나라를 아끼고 혹은 몸을 아끼므로 일체의 불보살에게 기도를 걸어도 효험이 없다면, 저 미워하던 한 소승(小僧)을 믿어, 한량없는 대승들과 팔만의 대왕들과 일체의 만민이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손바닥을 모아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게 되리라. 예컨대 신력품의 열 가지 신력의 때에 시방세계의 일체중생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바세계를 향하여 큰 소리를 내어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남묘호렌게쿄, 남묘호렌게쿄」라고 한결같이 외친 것과 같으니라.

어구 풀이

後の五百歳の中に広宣流布して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하여
법화경 제7권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글. 「내가 멸도한 뒤 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하여 염부제에서 끊어지게 함이 없으리라」. 대성인은 이 「후오백세」를 대집경의 제5의 오백 년, 곧 백법은몰의 다음 때로 읽으신다.
悪世末法の時能く是の経を持つ者「악세 말법의 때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
법화경 제6권 분별공덕품 제17의 글. 말법의 처음에 지용의 보살이 출현할 것을 보인 글로 읽을 수 있다.
後の末世の法滅せんとする時「뒤의 말세에 법이 멸하려 할 때」
법화경 제5권 안락행품 제14의 글.
猶怨嫉多し況や滅度の後をや「오히려 원망과 시기가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
법화경 제4권 법사품 제10의 글. 「유다원질 황멸도후(猶多怨嫉況滅度後)」. 여래가 계신 때에도 원질이 많으니 멸도 뒤에는 더욱 많으리라는 예언으로, 대성인이 자신의 법난을 경문의 증명으로 읽으실 때 거듭 드시는 글이다.
一切世間怨多くして信じ難し「일체 세간이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려우니라」
법화경 제5권 안락행품의 글.
悪魔魔民諸の天・竜・夜叉・鳩槃荼等其の便を得ん「악마 · 마민 · 여러 천 · 용 · 야차 · 구반다 등이 그 틈을 얻으리라」
법화경 제7권 약왕품의 글. 「후오백세 광선유포」 바로 뒤에 이어지는 대목으로, 대성인은 이것을 제5의 오백 년 투쟁견고의 세상 모습을 설한 글로 보신다.
夜叉야차
범어 야크샤의 음사로, 약차라고도 쓰고 「포악」 등으로 옮긴다. 숲에 사는 귀신으로, 지야차 · 허공야차 · 천야차의 세 부류가 있어 천 · 허공의 야차는 날아다니지만 지야차는 날지 못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호법신이 되어 북방 다문천왕(비사문천)의 권속이 된다.
鳩槃荼구반다
범어 쿰반다의 음사. 「음낭」 「옹형」 「동과」 등으로 옮긴다.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말 머리에 사람 몸을 한 귀신으로, 불교에서는 호법신이 되어 남방 증장천왕의 휘하에 있다.
悪世の中の比丘 · 阿蘭若 · 悪鬼其身に入る「악세 가운데의 비구」 · 아란야 · 「악귀가 그 몸에 들어」
모두 법화경 제5권 권지품 제13의 이십행 게송의 글로, 말법에 법화경의 행자를 박해할 삼류의 강적을 설한 대목이다. 아란야는 범어 아란냐의 음사로 아련야 · 아란나라고도 쓰며 「한적한 곳」이라는 뜻이니, 인가를 떠난 산사 같은 곳을 말한다. 권지품의 뜻은 참성증상만의 무리가 조용한 산사에 들어앉아 사람들에게 그릇된 법을 설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智人一人지인 한 사람
제5의 오백 년, 악귀가 몸에 들어간 대승들이 나라에 가득할 때 출현하는 한 사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 사람이 분별공덕품의 「악세 말법의 때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에 해당하며, 지용의 보살, 나아가 대성인 자신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 「지인」은 선시초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에서 「염부제일의 지인」으로 다시 밝혀진다.
地涌の大菩薩지용의 대보살
법화경 종지용출품 제15에서 석존의 부름에 응해 사바세계의 대지를 깨고 아래쪽 허공에서 솟아나온 무수한 보살들. 상행 · 무변행 · 정행 · 안립행의 네 보살을 우두머리로 하며, 저마다 무수한 권속을 거느린다. 여래신력품 제21에서 석존으로부터 멸후 법화경 홍통의 주체로 부촉받았다. 구원실성의 석존(본불)에게 구원의 옛날부터 교화를 받았으므로 본화의 보살이라 한다.
梵帝・日月・四天 · 天変・地夭범천 · 제석 · 일천 · 월천 · 사천왕 · 천변 · 지요
범천 · 제석 · 해와 달의 신 · 사천왕은 법화경의 행자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제천선신이다. 천변은 하늘의 이변(혜성 · 일식 등), 지요는 땅의 재앙(지진 등)을 말한다. 대성인은 정가의 대지진(1257)과 문영의 대혜성(1264) 같은 재이를 정법을 쓰지 않는 데 대한 경고로 보셨다.
前代未聞の大闘諍전대미문의 대투쟁
이전 시대에 들어 본 적이 없는 큰 싸움. 대집경의 「투쟁언송」, 곧 제5의 오백 년 투쟁견고의 예언에 해당한다. 대성인 당시로 말하면 문영 · 홍안의 몽골 내습이 이에 해당한다.
日月所照の四天下해와 달이 비추는 사천하
수미산의 사방에 있는 네 대륙(동승신주 · 남섬부주 · 서우화주 · 북구로주)으로, 해와 달이 비추는 온 세계를 말한다.
神力品の十神力신력품의 열 가지 신력
법화경 여래신력품 제21에서 석존이 지용의 보살에게 법을 부촉하기 앞서 나타낸 열 가지 신통력. 그 가운데 시방세계의 중생이 모두 사바세계를 향해 「나무석가모니불」이라 외쳤다는 대목이 있다.

열 경문과 그 다섯 뜻

제4장이 「백법은몰 다음에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광선유포한다」고 선언했다면, 제5장은 「그 증문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해 경문을 차례로 든다. 이 장은 열 개의 경문을 들어 그 뜻을 풀었으며, 그 증문의 뜻은 크게 다섯으로 정리된다.

첫째, 대집경의 백법은몰의 때가 곧 법화경 광선유포의 때가 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것이 약왕품의 「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의 글이다. 대성인이 「경문은 대집경의 백법은몰 다음의 때를 설하시어 광선유포라 하셨다」고 덧붙이신 데에 이 장의 핵심이 있다. 대집경이 「백법은몰」로 끝맺은 바로 그 시점을, 법화경은 「광선유포」로 이어받는다. 둘째, 후오백세, 곧 말법의 처음에 지용의 보살이 출현할 것을 드러낸다. 이것이 분별공덕품의 「악세 말법의 때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의 글이다. 셋째, 말법의 처음에 지용의 보살이 홍경할 때 원망과 시기가 많을 것을 드러낸다. 이것이 제5권 · 제4권 · 제7권에서 잇달아 든 글 — 「뒤의 말세에 법이 멸하려 할 때」,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 「일체 세간이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렵다」, 「악마 · 마민……이 그 틈을 얻으리라」 — 이다. 넷째, 그 원질 때문에 투쟁이 일어날 것을 밝힌다. 이것이 대집경의 「나의 법 가운데서 다투고 소송하리라」의 글이다. 다섯째, 그 원질하는 사람이 「악귀가 그 몸에 들어간」 대악승임을 밝힌다. 이것이 권지품의 세 글 — 「악세 가운데의 비구」, 「혹은 아란야에 있으며」, 「악귀가 그 몸에 들어」 — 이다.

  1. ①백법은몰의 때가 곧 광선유포의 때경문 1
    • 「내가 멸도한 뒤 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하여 염부제에서 끊어지게 함이 없으리라」我が滅度の後後の五百歳の中に広宣流布して閻浮提に於て断絶せしむること無けん약왕품
  2. ②말법의 처음에 지용의 보살이 출현경문 1
    • 「악세 말법의 때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悪世末法の時能く是の経を持つ者분별공덕품
  3. ③홍경에 원질이 많음경문 4
    • 「뒤의 말세에 법이 멸하려 할 때」後の末世の法滅せんとする時안락행품
    • 「오히려 원망과 시기가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猶怨嫉多し況や滅度の後をや법사품
    • 「일체 세간이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려우니라」一切世間怨多くして信じ難し안락행품
    • 「악마 · 마민 · 여러 천 · 용 · 야차 · 구반다 등이 그 틈을 얻으리라」悪魔魔民諸の天・竜・夜叉・鳩槃荼等其の便を得ん약왕품
  4. ④원질로 투쟁이 일어남경문 1
    • 「나의 법 가운데서 다투고 소송하리라」我が法の中に於て闘諍言訟せん대집경
  5. ⑤원질하는 자는 악귀가 든 대승경문 3
    • 「악세 가운데의 비구」悪世の中の比丘
    • 「혹은 아란야에 있으며」或は阿蘭若に有り
    • 「악귀가 그 몸에 들어」悪鬼其身に入る
    권지품
1 · 1 · 4 · 1 · 3 = 10
도표 9 · 제5장의 열 경문과 다섯 뜻

「글의 마음」 — 광선유포에 이르는 차제

열 경문을 든 뒤 대성인은 「글의 마음은」이라 하시며 그것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신다. 낱낱의 경문이 이어져 말법 광선유포의 전 과정을 그려 내는 것이다. 그 차례는 다섯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제5의 오백 년, 백법은몰의 때에 악귀가 몸에 들어간 고승 · 명승들이 나라 안에 가득하다. 권지품이 보인 그대로이다. 둘째, 그때에 지인 한 사람이 출현한다. 「악세 말법의 때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 곧 지용의 보살이다. 셋째, 악귀가 든 대승들이 그때의 왕과 신하와 만민을 꾀어 그 한 사람의 지인을 악구로 꾸짖고 막대기 · 기와 · 돌을 가하며 유배 · 사형에 처한다. 이것이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에 해당한다. 넷째, 그때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이 지용의 대보살에게 분부하고, 대보살은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왕에게 분부를 내려 그 비방을 꾸짖으니 천변 · 지요가 성하게 일어난다. 그래도 국주가 간언을 쓰지 않고 비방을 계속하면 이웃 나라에 분부해 그 나라 나라의 악왕 · 악비구를 치게 하니, 전대미문의 대투쟁이 일염부제에 일어난다. 이것이 대집경의 「투쟁견고」에 해당한다. 다섯째, 그때 해와 달이 비추는 사천하의 일체중생이 대투쟁에 휩쓸려, 나라를 아끼고 몸을 아끼는 마음으로 일체의 불보살에게 기도를 걸지만 아무 효험이 없으니, 마침내 그토록 미워하던 한 사람의 소승을 믿어, 한량없는 대승과 팔만의 대왕과 일체의 만민이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합장하며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게 된다. 이것이 「후오백세 광선유포」의 글의 뜻이다.

  1. ① 제5의 오백 년, 악귀가 몸에 든 대승들이 나라에 가득함(권지품)
  2. ② 지인 한 사람의 출현(「악세 말법의 때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
  3. ③ 대승들이 왕 · 신하 · 만민을 꾀어 지인을 악구 · 막대기 · 기와 · 돌 · 유배 · 사형으로 박해(「하물며 멸도한 뒤이랴」)
  4. ④ 제불 → 지용의 대보살 →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왕으로 분부가 내려 천변 · 지요가 성함국주가 간언을 쓰지 않으면 이웃 나라에 분부하여「전대미문의 대투쟁이 일염부제에 일어나리라」前代未聞の大闘諍・一閻浮提に起るべし대집경의 투쟁견고
  5. ⑤ 기도의 효험이 없자「저 미워하던 한 소승을 믿어」彼のにくみつる一の小僧を信じて팔만의 대왕과 만민이「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게 되리라」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となうべし「후오백세 광선유포」
도표 10 · 말법 광선유포의 차제

이 그림에서 눈여겨볼 것은 박해와 재난과 광선유포가 한 줄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정법을 비방하는 대승들이 지인을 박해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 제천의 꾸짖음이 천변 · 지요로, 나아가 이웃 나라의 침공으로 나타나고, 그 극한의 고난 속에서 모든 기도가 무력해졌을 때 사람들은 마침내 「미워하던 한 소승」에게로 돌아선다. 광선유포는 평온한 확산이 아니라, 원질과 투쟁을 거쳐 비로소 열리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것을 「불법의 한 큰 원리」라 부를 수 있다.

전대미문의 대투쟁 — 대성인 당시의 몽골 내습

「전대미문의 대투쟁」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먼저 대성인 당시의 사실부터 보자. 대성인 재세 때에도 몽골 내습이라는 대투쟁이 있었다. 「국주들이 그 간언을 쓰지 않으면 이웃 나라에 분부하여 저 나라 나라의 악왕 · 악비구들을 치게 하시니」라는 대목은 바로 법체의 광선유포에서의 이웃 나라 몽골의 내습이다. 문영 5년(1268)에 몽골의 국서가 도착하자 대성인은 그것을 「입정안국론」에서 예언하신 타국침핍난의 현실화로 보시고 막부와 여러 큰 절에 경고하셨으며, 문영 11년(1274) 몽골군은 쓰시마 · 이키를 거쳐 하카타에 상륙했다. 선시초는 그 이듬해에 쓰인 글이다. 「관심의 본존초」의 다음 글이 이것을 확인해 준다.

此の釈に闘諍の時と云云、今の自界叛逆・西海侵逼の二難を指すなり、此の時地涌千界出現して本門の釈尊を脇士と為す一閻浮提第一の本尊此の国に立つ可し

이 석에 「투쟁의 때」라 한 것은 지금의 자계반역 · 서해침핍의 두 난을 가리키느니라. 이때 지용천계가 출현하여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삼는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서리라.

「관심의 본존초」, 254쪽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글은 법체의 광선유포의 때의 투쟁, 곧 호조 막부의 내란(이월소동)과 대몽골국의 내습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몽골이 어떤 나라였는지 살펴보자. 몽골은 뒤에 원(元)이라 칭했으며, 유사 이래 최대의 국가라 할 만큼 강대했다. 이미 무력으로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유럽 쪽으로는 빈과 모스크바에 이르기까지 판도를 넓혔고, 중앙아시아 · 만주 · 인도 북부 · 동남아시아까지 손에 넣은 뒤, 마지막으로 온 나라를 들어 일본을 석권하려 덮쳐 왔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대투쟁이었으며, 일염부제를 뒤덮는 투쟁이라 할 만했다.

새벽 해가 떠오르는 아득한 대륙 — 겹겹의 산맥과 강, 서로 멀리 떨어진 수많은 작은 마을들(「一閻浮提の内・八万の国」)
그림 · 새벽 해가 떠오르는 아득한 대륙 — 겹겹의 산맥과 강, 서로 멀리 떨어진 수많은 작은 마을들(「一閻浮提の内・八万の国」)

문영 11년(1274)의 내습과 홍안 4년(1281)의 내습은 선시초 집필(1275) 앞뒤에 걸쳐 있다. 선시초를 쓰실 때에는 첫 번째 내습만 있었고, 두 번째 내습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때였다. 위의 몽골 제국 판도에 관한 서술은 몽골 제국 전체(여러 한국을 포함)를 아울러 말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몽골 내습 때에는 「일체의 만민이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합장하여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광선유포의 예언은 허망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니치칸 상인은 역연의 광포와 순연의 광포를 설했다. 대성인 재세의 시대는 역연의 광포로서, 일본 전체가 대성인에 대해 원질을 품고 비방을 저질렀다. 비방이라는 형태로라도 온 나라가 대성인과 인연을 맺었다는 것, 그것이 역연의 광포이다. 그리고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순연의 광포는 경문이 약속한 미래의 일로 남겨졌다.

이어 앞 장의 글을 다시 보자. 「저 대집경의 백법은몰의 때는 제5의 오백 년, 지금 세상이라는 것은 의심이 없느니라. 다만 그 백법은몰의 다음에는 법화경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 광선유포하게 되시리라」(258쪽). 그리고 이 장에 들어 법화경의 많은 문증을 든 뒤 「글의 마음은 제5의 오백 년의 때」라 하시고,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가 광선유포할 때에는 「전대미문의 대투쟁이 일염부제에 일어나리라」고 하신 것은,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불법의 한 큰 철리를 보이신 것이다. 백법은몰과 투쟁견고는 대백법 출현의 전조이며, 그 큰 고난이 오히려 대법이 펼쳐지는 계기가 된다는 원리이다. 이 원리는 한 번은 대성인 재세 당시에 들어맞았다.

「저 미워하던 한 소승을 믿어」

「한 소승을 믿어」의 「한 소승」은 누구인가.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말할 것도 없이 말법의 어본불, 본문 수량의 당체연화불, 본인묘의 교주 니치렌 대성인이다. 대성인을 미워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대성인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작은 중(小僧)」이라 낮추어 말씀하셨지만, 그 한 사람이 「한량없는 대승」과 「팔만의 대왕」을 머리 숙이게 한다는 대비 속에 대성인의 확신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대성인이 입멸하신 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의 사람들은 어떻게 「한 소승」을 믿을 수 있는가. 「교오전답서」의 글이 그 답이다.

日蓮がたましひをすみにそめながして・かきて候ぞ

니치렌의 혼을 먹물에 물들여 흘려 써 두었느니라.

「교오전답서」, 1124쪽

대성인은 자신의 혼을 본존으로 남기셨으니, 그 본존을 믿는 것이 곧 「한 소승을 믿는」 것이다. 이렇게 대성인은 미래 영원의 중생을 구하신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대성인의 불법은 이미 다해 새로운 불법이 일어난다거나 대성인 멸후 몇백 년이 지나면 대성인이 다시 태어난다는 다른 문류의 주장은 모두 그릇된 설이다. 그리고 본존을 믿고 부처의 뜻대로 절복을 행하는 자가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권속으로서 즉신성불을 이룬다.

신력품의 비유 — 「나무석가모니불」과 「남묘호렌게쿄」

본문의 마지막 대목, 「예컨대 신력품의……」 이하는 석존 재세의 일로써 말법의 일을 예로 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문제가 있다. 신력품의 경문에는 시방세계의 중생이 한결같이 「나무석가모니불」이라 외쳤다고만 되어 있고, 「남묘호렌게쿄」라 외쳤다는 글은 없다. 그런데 대성인은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남묘호렌게쿄, 남묘호렌게쿄」라고 쓰셨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니치칸 상인은 여러 문류의 다섯 가지 해석을 먼저 든다. 첫째, 비유하는 쪽(能例)과 비유되는 쪽(所例)을 합쳐서 든 것이다. 둘째, 사람과 법은 본체가 하나이므로 부처의 이름이 곧 경의 이름이다. 셋째, 법의 아들인 부처조차 공경하는데 하물며 부처의 어머니인 경이랴. 넷째, 허공에서 권한 말에 이미 사람과 법이 있으니 귀명의 글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다섯째, 이미 설하는 교주를 믿어 그 이름을 불렀으니 어찌 설해진 법체를 믿어 그 이름을 부르지 않겠는가. 니치칸 상인은 이 해석들이 모두 인정(人情)에서 나온 것으로 대성인의 바른 뜻과는 관계가 없다고 물리친다.

니치칸 상인이 보인 바른 뜻은 이렇다. 석가모니불에는 대승 · 소승 · 권교 · 실교 · 적문 · 본문의 차이가 있으니, 신력품의 글은 바로 수량품의 뜻으로 읽어야 한다. 그런데 수량품의 개현(顯本)에는 간략히 두 뜻이 있다. 하나는 문상(文上)의 뜻으로, 구원 본과(本果)의 삼신을 드러낸 것이다. 이 부처는 색상이 장엄한 존용(尊容)으로 재세 탈익의 교주이며, 그 이름을 「나무석가모니불」이라 한다. 시방세계의 중생은 문상의 본과 삼신을 믿었기에 「나무석가모니불」이라 외쳤다. 다른 하나는 문저(文底)의 뜻으로, 본지의 무작삼신(無作三身)을 드러낸 것이다. 이 부처는 범부의 당체 그대로 본유(本有)이니, 곧 본인묘(本因妙)의 교주이며, 그 이름을 「남묘호렌게쿄」라 한다. 시방세계의 중생은 문저의 무작삼신을 믿어 「남묘호렌게쿄」라고 외쳤다. 지금 대성인은 이 둘째 뜻으로 말법을 예로 드신 것이니, 말법 하종의 부처인 교주 니치렌 대성인은 곧 본지 무작삼신의 남묘호렌게쿄불이며, 그러므로 「한 소승을 믿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게 되리라」고 판별하셨다는 것이다.

이 해석의 근거로 『어의구전』의 두 글을 들 수 있다.

されば無作の三身とは末法の法華経の行者なり無作の三身の宝号を南無妙法蓮華経と云うなり

그러므로 무작의 삼신이란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니라. 무작의 삼신의 보호(寶號)를 남묘호렌게쿄라 하느니라.

『어의구전』, 752쪽

無作の三身の当体の蓮華の仏とは日蓮が弟子檀那等なり南無妙法蓮華経の宝号を持ち奉る故なり

무작의 삼신의 당체의 연화불이란 니치렌의 제자 · 단나들이니라. 남묘호렌게쿄의 보호를 지니어 받드는 까닭이니라.

『어의구전』, 754쪽

곧 남묘호렌게쿄를 지니는 사람은 모두 무작삼신의 부처라는 것이다. 또 수량품 개현에 두 뜻이 있다는 증거를 묻는 물음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천태의 『법화문구』의 글을 든다. 천태가 「이 품의 헤아림은 통틀어 삼신이라 이름한다」고 한 것은 구원 본과의 삼신으로 문상의 뜻이고, 「만일 별의(別意)를 따르면 바로 보신(報身)에 있다」고 한 것은 본지 무작의 보신, 곧 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으로 문저의 뜻이라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것이 천태가 속으로는 분명히 알면서 겉으로는 때에 맞추어 드러내지 않은 「내감냉연(內鑑冷然)」의 뜻이라고 했다.

문상의 뜻
드러낸 것
구원 본과의 삼신을 드러냄
부처의 모습
색상이 장엄한 존용, 재세 탈익의 교주
그 이름
「나무석가모니불」
시방 중생의 외침
시방의 중생이 문상 본과의 삼신을 믿어 외침
문저의 뜻
드러낸 것
본지 무작삼신을 드러냄
부처의 모습
범부의 당체 그대로 본유, 본인묘의 교주
그 이름
「남묘호렌게쿄」
시방 중생의 외침
시방의 중생이 문저의 무작삼신을 믿어 외침
말법에의 예「무작의 삼신이란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니라」無作の三身とは末法の法華経の行者なり『어의구전』「한 소승을 믿어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게 되리라」
도표 11 · 수량품 개현의 두 뜻과 신력품의 두 외침

광선유포의 두 뜻 — 법체의 광선유포와 화의의 광선유포

이 장의 광선유포 예언을 읽는 열쇠는 「광선유포에 두 뜻이 있다」는 구분이다. 법체(法體)의 광선유포와 화의(化儀)의 광선유포이다. 제1장에서 보았듯이 니치칸 상인은 「관심의 본존초」의 「이 네 보살이 절복을 나타낼 때는 현왕이 되어 어리석은 왕을 꾸짖어 경계하고, 섭수를 행할 때는 승이 되어 정법을 넓히고 지니느니라」(254쪽)라는 글에서, 성승이 되어 정법을 넓히고 지니는 것은 법체의 절복이자 절복가(折伏家)의 섭수이고, 현왕이 되어 어리석은 왕을 꾸짖는 것은 화의의 절복이라고 판별했다. 이에 따르면 법체의 광선유포는 대성인이 말법에 펼쳐야 할 법 그 자체, 곧 삼대비법을 세우신 것이며, 화의의 광선유포는 그 삼대비법의 본존을 널리 유포하고 온 세계의 민중을 구제해 가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이 구분에 서면 몽골 내습과 광선유포의 관계가 분명해진다. 대성인 당시, 법체의 광선유포 때의 대투쟁은 말할 것도 없이 문영 · 홍안 두 차례의 몽골 내습이었다. 그러나 그 무렵 팔만의 나라, 온 세계의 나라들에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넓히는 것은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 사정으로 보아도 결국 무리였다. 법체의 광선유포였기에 대성인은 「만 리의 파도를 건너지 않더라도」라고 말씀하시며, 엄연히 일본에 머무시면서 온 세계를 가슴에 품으시고 본존을 건립하셨다. 그리고 온 세계에 이르는 광선유포는 화의의 광선유포로서 미래에 맡겨졌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전대미문의 대투쟁」을 불법의 한 큰 철리를 보이신 말씀으로 읽는다. 대성인 자신이 이 글에서 그리신 것은 어디까지나 경문의 원리 — 제5의 오백 년의 투쟁견고 · 백법은몰을 지나 「후오백세 광선유포」에 이른다는 — 와, 그것이 몽골 내습과 자계반역난으로 대성인 당시에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원리가 내다보는 「팔만의 나라」의 광선유포는 말법 만 년, 나아가 미래 영원에 걸친 일로 열려 있다.

법체의 광선유포「승이 되어 정법을 넓히고 지님」僧と成つて正法を弘持す법체의 절복 · 절복가의 섭수대성인이 삼대비법을 세우심, 일본에 머무시며 본존을 건립하심그 때의 투쟁자계반역 · 서해침핍의 두 난(이월소동과 몽골 내습)「지금의 자계반역 · 서해침핍의 두 난을 가리키느니라」今の自界叛逆・西海侵逼の二難を指すなり「관심의 본존초」대성인 재세 = 역연의 광포
화의의 광선유포「현왕이 되어 어리석은 왕을 꾸짖어 경계함」賢王と成つて愚王を誡責し화의의 절복삼대비법의 본존을 널리 유포하고 온 세계의 민중을 구제함「팔만의 나라」 「팔만의 왕」에 이르는 온 세계의 광선유포순연의 광포
공통의 원리투쟁견고 · 백법은몰을 지나 「후오백세 광선유포」에 이른다
도표 12 · 광선유포의 두 뜻

이 장은 「후오백세 광선유포」의 예언이며, 광선유포는 법체의 광선유포(대성인의 삼대비법 건립, 그 때의 대투쟁은 몽골 내습)와 화의의 광선유포(삼대비법의 온 세계 유포)의 두 뜻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성인 재세는 역연의 광포, 한결같은 창제는 순연의 광포로 미래에 맡겨졌다.

제6장 석의 글을 들어 증명하다
어서 259쪽 15행~260쪽 11행 · 第六章 釈の文を引いて証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59쪽 15행 ~ 260쪽 11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曰く経文は分明に候・天台・妙楽・伝教等の未来記の言はありや、答えて曰く汝が不審逆なり釈を引かん時こそ経論はいかにとは不審せられたれ経文に分明ならば釈を尋ぬべからず、さて釈の文が経に相違せば経をすてて釈につくべきか如何、彼云く道理至極せり、しかれども凡夫の習経は遠し釈は近し近き釈分明ならばいますこし信心をますべし、今云く汝が不審ねんごろなれば少少釈をいだすべし天台大師云く「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わん」妙楽大師云く「末法の初め冥利無きにあらず」伝教大師云く「正像稍過ぎ已つ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法華一乗の機今正しく是れ其の時なり、何を以て知ることを得る、安楽行品に云く末世法滅の時なり」又云く「代を語れば則ち像の終り末の初め地を尋ぬれば唐の東・羯の西・人を原ぬれば五濁の生・闘諍の時なり、経に云く猶多怨嫉況滅度後と此の言良に以有るなり」云云、夫れ釈尊の出世は住劫第九の減・人寿百歳の時なり百歳と十歳との中間・在世五十年・滅後二千年と一万年となり、其の中間に法華経の流布の時・二度あるべし所謂在世の八年・滅後には末法の始の五百年なり、而に天台・妙楽・伝教等は進んでは在世法華経の時にも・もれさせ給いぬ、退いては滅後・末法の時にも生れさせ給はず中間なる事をなげかせ給いて末法の始をこひさせ給う御筆なり、例せば阿私陀仙人が悉達太子の生れさせ給いしを見て悲んで云く現生には九十にあまれり太子の成道を見るべからず後生には無色界に生れて五十年の説法の坐にもつらなるべからず正像末にも生るべからずとなげきしがごとし、道心あらん人人は此を見ききて悦ばせ給え正像二千年の大王よりも後世ををもはん人人は末法の今の民にてこそあるべけれ此を信ぜざらんや、彼の天台の座主よりも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る癩人とはなるべし、梁の武帝の願に云く「寧ろ提婆達多となて無間地獄には沈むとも欝頭羅弗とはならじ」と云云。

풀이

묻되, 경문은 분명하옵니다. 천태 · 묘락 · 전교 등의 미래를 기록한 말은 있사옵니까. 답하되, 그대의 의심은 거꾸로이니라. 석을 인용할 때에야 「경론에는 어떠한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거니와, 경문에 분명하다면 석을 찾을 것이 없느니라. 그런데 석의 글이 경과 어긋난다면 경을 버리고 석을 따르겠느냐, 어떠하냐. 그가 이르되, 도리가 지극하옵니다. 그러나 범부의 습성으로 경은 멀고 석은 가까우니, 가까운 석이 분명하다면 조금 더 신심을 더할 수 있겠사옵니다. 이제 이르되, 그대의 의심이 간절하니 조금 석을 내어 보이리라. 천태대사는 이르되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妙道)에 젖으리라」, 묘락대사는 이르되 「말법의 처음에 명리(冥利)가 없지 않으리라」, 전교대사는 이르되 「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으니, 법화 일승의 기는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무엇으로써 알 수 있는가. 안락행품에 이르되 ‘말세 법멸의 때’라 하였느니라」, 또 이르되 「시대를 말하면 상법의 끝 말법의 처음이요, 땅을 찾으면 당(唐)의 동쪽 갈(羯)의 서쪽이요, 사람을 살피면 오탁(五濁)에 태어난 이요 투쟁의 때이니라. 경에 이르되 ‘오히려 원망과 시기가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 하였으니, 이 말은 참으로 까닭이 있느니라」 하였느니라. 무릇 석존의 출세는 주겁(住劫) 제9의 감겁, 사람의 수명이 백 세일 때이니라. 백 세와 십 세의 중간이 재세 오십 년, 멸후 이천 년과 일만 년이니라. 그 중간에 법화경이 유포하는 때가 두 번 있으니, 이른바 재세의 팔 년과 멸후로는 말법의 처음 오백 년이니라. 그런데 천태 · 묘락 · 전교 등은 앞으로는 재세 법화경의 때에도 빠지셨고, 뒤로는 멸후 말법의 때에도 태어나지 못하셨으니, 그 중간인 것을 한탄하시어 말법의 처음을 그리워하신 글이니라. 예컨대 아사타(阿私陀) 선인이 실달태자가 태어나신 것을 보고 슬퍼하여 이르기를, 「현생에는 아흔이 넘었으니 태자의 성도를 보지 못하리라. 후생에는 무색계에 태어나 오십 년 설법의 자리에도 이어 앉지 못하리라. 정법 · 상법 · 말법에도 태어나지 못하리라」 하고 탄식한 것과 같으니라. 도심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듣고 기뻐하시라.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대왕보다도, 후세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법 지금의 백성이야말로 되어야 하리니, 이를 믿지 않겠느냐. 저 천태의 좌주보다도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병든 천민이 되어야 하리라. 양(梁)의 무제(武帝)의 발원에 이르되 「차라리 제바달다가 되어 무간지옥에 잠길지언정 울두람불(欝頭羅弗)은 되지 않으리라」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天台천태대사
(538~597). 중국 남북조에서 수에 걸친 사람으로 천태종의 개조. 혜문 · 혜사에 이은 제3조(용수를 개조로 하면 제4조)이기도 하다. 천태산에 살았으므로 천태대사라 하고 지자대사라 존칭한다. 성은 진씨, 휘는 지의(智顗), 자는 덕안. 형주 화용현 사람이다. 열여덟 살에 출가해 대현산에서 법화삼부경을 닦았고, 진의 천가 원년(560) 광주 대소산으로 남악대사 혜사를 찾아갔다. 남악은 처음 만났을 때 「옛날 영산에서 함께 법화를 들었다. 숙세의 인연이 따라 지금 다시 왔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대소산의 혹독한 수행 끝에 약왕품의 「그 가운데 제불이 동시에 찬탄하여 말씀하시되, 착하도다 착하도다, 선남자여, 이것이 참된 정진이며 이것을 참된 법으로 여래께 공양함이라 이름하느니라」의 구절에 이르러 몸과 마음이 활연히 열려 법화삼매를 감득했으니, 이를 대소개오라 하며 뒤에 약왕보살의 후신이라 일컬어진 까닭이 되었다. 진의 도읍 금릉의 와관사에서 여덟 해 동안 법화경 등을 강의해 명성을 얻었으나, 깨닫는 이가 해마다 줄어드는 것을 한탄해 태건 7년(575) 천태산에 들어갔고, 화정봉에서 마를 항복받고 개오했다(화정항마). 개황 11년(591) 진왕 양광(뒤의 수 양제)에게 보살계를 주고 지자대사의 호를 받았으며, 고향 형주의 옥천사에서 『법화현의』 · 『마하지관』을 강의했다. 개황 17년(597) 진왕의 청으로 산을 내려가다 병이 깊어 석성사에서 입적했다. 그 강설은 제자 장안 관정이 받아 적어 법화삼대부 등으로 정리했다. 대성인 당시 일본에서는 약왕보살이 천태대사로 나타나고 다시 천태의 후신으로 전교대사 사이초가 나타났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었고, 대성인도 이 설을 바탕으로 하셨다.
妙楽묘락대사
(711~782). 당의 사람으로 천태종 제9조. 천태대사로부터 여섯째 법손으로, 중흥의 조사로서 천태의 교의를 크게 선양했다. 상주 진릉현 형계 사람으로 휘는 담연(湛然), 성은 척씨이며, 집안은 대대로 유학을 업으로 삼았다. 처음 난릉의 묘락사에 머물렀으므로 묘락대사라 불리고, 출신지에 따라 형계존자라고도 한다. 개원 18년(730) 좌계현랑에게 천태 교학을 배우고, 천보 7년(748) 서른여덟 살에 출가했다. 당시 선 · 화엄 · 진언 · 법상 등이 성하고 천태종은 쇠퇴해 있었으나, 법화 일승 진실의 입장에서 여러 종을 논파하고 천태 삼대부의 주석서를 지어 천태학을 크게 선양했다. 현종 · 숙종 · 대종이 궁정으로 불렀으나 병을 이유로 응하지 않았고, 만년에는 천태산 국청사에 들어 불롱도량에서 죽었다. 저서로 『법화현의석첨』 · 『법화문구기』 · 『지관보행전홍결』 각 열 권, 『오백문론』 등이 있다. 직제자로 전교대사가 사사한 도수 · 행만이 있다.
伝教전교대사
(767~822). 일본 천태종의 개조. 휘는 최징(最澄, 사이초). 전교는 시호이며, 근본대사 · 산가대사라고도 한다. 오미(시가현) 시가군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오미 국분사의 행표 아래 출가하고, 연력 4년(785) 도다이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 곧 히에이산에 초암을 맺고 여러 경론을 궁구했다. 연력 23년(804) 천태법화종 환학생으로 의진을 데리고 당에 들어가 도수 · 행만 등에게 천태의 오의를 배우고, 이듬해 돌아와 연력 25년(806) 일본 천태종을 열었다. 구불교계의 반대 속에서 새로운 대승계의 설립에 힘썼고, 사후에 대승계단이 세워져 결실을 맺었다. 저서로 『법화수구』 · 『현계론』 · 『수호국계장』 · 『산가학생식』 등이 있다.
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わん「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
천태대사의 『법화문구』의 글.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말법의 처음부터 만 년 밖, 멀리 미래 끝까지 삼대비법의 묘도가 유포한다는 뜻이다.
末法の初め冥利無きにあらず「말법의 처음에 명리가 없지 않으리라」
묘락대사의 『법화문구기』의 글. 「명리(冥利)」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이익으로, 하종익(下種益)으로 풀이된다.
唐の東・羯の西당의 동쪽 · 갈의 서쪽
일본의 위치를 가리킨다. 당은 중국, 갈은 말갈(靺鞨)로, 6세기 중엽부터 약 한 세기 동안 중국 동북부 송화강 유역에 살던 퉁구스계 종족을 수 · 당 시대에 이렇게 불렀다. 당시의 지리 지식으로는 중국 대륙이 일본의 서쪽에서 북쪽, 동쪽까지 펼쳐져 있다고 여겼다.
五濁오탁
겁탁 · 번뇌탁 · 중생탁 · 견탁 · 명탁의 다섯 가지 흐림. 시대가 흐려지고, 번뇌가 성하며, 중생의 자질이 떨어지고, 그릇된 견해가 퍼지며, 수명이 짧아지는 악세의 모습을 말한다. 「오탁에 태어난 이」는 그런 악세에 태어난 중생이다.
住劫주겁
한 세계가 성립하고 유전 · 파괴를 거쳐 다음 성립에 이르기까지를 넷으로 나눈 사겁(성겁 · 주겁 · 괴겁 · 공겁)의 하나. 허공에 국토(기세간)가 성립하고 거기에 중생이 태어나 중생세간을 이루어 가는 기간을 성겁이라 하고, 이 두 세간이 안정되어 있는 기간을 주겁이라 한다.
住劫第九の減주겁 제9의 감
주겁의 제9 소겁의 감겁. 『구사론』 권12 등에 따르면 주겁은 스무 소겁으로 나뉜다. 처음에 사람의 수명이 한량없는 햇수에서 백 년에 한 살씩 줄어 열 살이 되기까지가 제1 소겁(제1 감겁)이고, 다음에 열 살에서 백 년에 한 살씩 늘어 팔만 세가 되었다가 다시 줄어 열 살이 되기까지가 제2 소겁(제2의 증겁과 감겁)이다. 이렇게 늘고 줄기를 되풀이하며, 마지막 제20 소겁은 열 살에서 한량없는 햇수에 이르는 증겁만 있다. 「주겁 제9의 감」은 이 가운데 아홉 번째 감겁으로, 석존은 이 기간의 사람 수명 백 세일 때 출현했다고 한다.
阿私陀仙人아사타 선인
범어 아시타의 음사. 중인도 가비라위국의 바라문 장로로, 다섯 신통을 얻은 선인이다. 갓 태어난 석존을 보고 세속에 머물면 전륜성왕이 되고 출가하면 부처가 되리라 예언했으나, 자신은 그 설법을 들을 수 없음을 한탄했다고 한다.
無色界무색계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삼계 가운데 가장 위의 세계. 물질(색)을 떠나 정신만으로 존재한다는 하늘로, 선정을 닦은 과보로 태어난다. 몸이 없으므로 부처의 설법을 들을 수도 없다고 여겨졌다.
天台の座主천태의 좌주
히에이산 엔랴쿠사의 우두머리인 천태좌주. 상법 시대 이래 일본 불교의 최고 권위의 하나였다.
癩人병든 천민
본문의 「뢰인(癩人)」은 당시 가장 천대받던 병자를 가리키는 시대어이다. 대성인은 사회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이가 최고의 권위자보다 존귀하다는 뜻으로 쓰셨다.
梁の武帝양의 무제
(464~549). 중국 남조 양나라의 초대 황제. 불교를 깊이 믿어 스스로 경을 강의하고 사신(捨身)하기까지 했다고 전한다. 본문의 발원문은 무제의 것으로 전하는 글이다.
欝頭羅弗울두람불
범어 웃다카 라마풋타의 음사. 마가다국의 왕사성 근교에 살던 출가 수행자로, 석존은 성도 전에 그에게 배웠으나 아직 불충분하다고 여겨 떠났다. 석존이 깨달음을 열기 전에 죽었다고 한다. 불전에 따르면 다섯 신통을 얻으려 숲에서 수행하는데 새가 나무 위에서 울어 마음을 어지럽히자 물가로 옮겼고, 이번에는 물고기가 물을 흔들자 「새와 물고기를 모두 죽여 버리리라」는 생각을 품었다. 오랜 뒤 선정을 얻어 무색계의 맨 위인 비상비비상천에 태어났으나, 팔만 겁의 수명을 마치고 내려와 날다람쥐가 되어 많은 새와 물고기를 죽이고 한량없는 죄를 지어 삼악도에 떨어졌다고 한다.

경이 근본이요 석은 그 다음 — 질문자의 「거꾸로 된 의심」

이 장은 석의 글을 들어 말법에 삼대비법이 광선유포한다는 것을 밝힌 장이다. 처음에 천태 · 묘락 · 전교의 글을 들고, 「무릇 석존의 출세는……」부터 석의 글의 뜻을 말하며, 「예컨대 아사타 선인이……」부터는 예를 들고, 「도심 있는 사람들은……」부터는 결론으로 권한다.

장의 첫머리에서 대성인은 질문자를 한 번 나무라신다. 경문이 분명하다는 것은 알았으니 천태 · 묘락 · 전교 같은 이들의 미래를 기록한 말도 있느냐는 물음에, 「그대의 의심은 거꾸로」라고 하신다. 석을 인용해 논할 때야말로 「경론에는 어떠한가」 하고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이지, 경문에 분명하다면 석을 찾을 필요가 없다. 석은 경을 풀이한 것이니, 만일 석의 글이 경과 어긋난다면 경을 버리고 석을 따를 것인가. 불법은 어디까지나 경문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질문자는 그 도리를 인정하면서도, 범부의 습성으로는 경은 그윽하고 깊어 멀게 느껴지고 석은 그 경을 풀이한 것이라 가깝게 느껴지니, 가까운 석이 분명하면 신심을 더할 수 있겠다고 간청한다. 대성인은 그 간절함을 받아들여 「조금」 석을 내어 보이신다.

이 짧은 문답은 선시초의 논증 태도를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제4장에서 「불안을 빌려」라고 하셨듯이, 시를 판정하는 근거는 어디까지나 경문이다. 석은 경문에 대한 보조이며, 신심을 북돋우는 방편으로 인용된다. 그렇지만 인용되는 석이 천태 · 묘락 · 전교라는, 상법 시대 법화경 홍통의 정점에 선 이들의 글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시대를 넘어 말법을 바라보았다는 것이, 곧 말법이 법화경 유포의 참된 때라는 것의 증언이 되기 때문이다.

말법을 그리워한 세 대사의 글

대성인이 드시는 석은 넷이다. 천태대사는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라고 했다. 묘락대사는 「말법의 처음에 명리가 없지 않으리라」라고 했다. 전교대사는 「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으니, 법화 일승의 기는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라고 하며 그 근거로 안락행품의 「말세 법멸의 때」를 들었고, 또 「시대를 말하면 상법의 끝 말법의 처음이요, 땅을 찾으면 당의 동쪽 갈의 서쪽이요, 사람을 살피면 오탁에 태어난 이요 투쟁의 때이니라」라고 하며 법사품의 「오히려 원망과 시기가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를 들어 「이 말은 참으로 까닭이 있다」고 했다.

전교대사의 둘째 글은 특히 정밀하다. 시대(代)는 상법의 끝 말법의 처음, 땅(地)은 당의 동쪽 말갈의 서쪽 곧 일본, 사람(人)은 오탁의 악세에 태어난 투쟁의 때의 중생이라는 것이다. 시 · 국 · 기를 하나하나 짚어 법화경이 참으로 유포할 때와 곳과 사람을 지목한 이 글은, 제1장에서 본 오강의 틀을 전교대사가 이미 자기 방식으로 쓰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근거가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라는 박해의 예언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법화경이 참으로 유포할 때는 원질이 가장 많은 때라는 것을 전교대사도 알고 있었다.

천태대사『법화문구』「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わん
묘락대사『법화문구기』「말법의 처음에 명리가 없지 않으리라」末法の初め冥利無きにあらず
전교대사「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으니, 법화 일승의 기는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正像稍過ぎ已つ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法華一乗の機今正しく是れ其の時なり시대 · 땅 · 사람
시대「시대를 말하면 상법의 끝 말법의 처음이요,代を語れば則ち像の終り末の初め
땅땅을 찾으면 당의 동쪽 갈의 서쪽이요,地を尋ぬれば唐の東・羯の西
사람사람을 살피면 오탁에 태어난 이요 투쟁의 때이니라」人を原ぬれば五濁の生・闘諍の時なり
대성인의 풀이「그 중간인 것을 한탄하시어 말법의 처음을 그리워하신 글이니라」中間なる事をなげかせ給いて末法の始をこひさせ給う御筆なり
도표 13 · 말법을 그리워한 세 대사의 글

묘도는 곧 삼대비법 — 니치칸 상인의 「도」의 세 뜻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천태의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를 인용하신 뜻은 말법의 처음부터 만 년 밖 멀리 미래 끝까지 삼대비법이 유포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묘도(妙道)」가 왜 삼대비법인가. 니치칸 상인은 이것을 「내감냉연의 깊은 뜻이요 당류 심비의 법문」이라 하며 다음과 같이 보였다. 「도(道)」에는 세 가지 뜻이 있으니, 그것이 곧 삼대비법이라는 것이다.

첫째는 허통(虛通)의 뜻으로, 곧 본문의 본존이다. 『법화문구』 권2에 「중리(中理)가 허통함을 도라 이름한다」고 했다. 「중」은 중도이니 곧 묘법연화경이고, 「리」는 실상이니 곧 일념삼천이다. 묘법의 삼천은 법계에 두루 퍼져 막히는 데가 없으므로 「허통」이라 한다. 이것이 곧 본문의 본존, 사(事)의 일념삼천의 남묘호렌게쿄라는 것이다. 여기서 함께 볼 글이 「니치뇨부인답서」다. 이 본존은 대성인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다보탑 가운데의 석존과 분신의 제불이 찍어 낸 본존이며, 그 안에 석가 · 다보 · 본화의 네 보살과 서품에 늘어앉은 대중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머물러 묘법 다섯 자의 광명에 비추어져 본유의 존형이 된다고 하신 글이다.

是全く日蓮が自作にあらず、多宝塔中の大牟尼世尊・分身の諸仏すりかたぎ(摺形木)たる本尊なり

이것은 전혀 니치렌이 스스로 지은 것이 아니니라. 다보탑 가운데의 대모니세존과 분신의 제불을 찍어 낸 판목과 같은 본존이니라.

「니치뇨부인답서」, 1243쪽

같은 글은 이어서 「경에 이르되 ‘제법실상’이 이것이니라」 하고, 묘락의 「실상은 반드시 제법, 제법은 반드시 십여, 내지 십계는 반드시 신토」와 전교의 「일념삼천이 곧 자수용신」이라는 글을 들어, 그러므로 「미증유의 대만다라」라 이름한다고 맺는다.

둘째는 소천(所踐)의 뜻으로, 곧 본문의 계단이다. 『보정기』 권4에 「도는 지(智)이니, 밟는 곳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믿음으로 지혜를 대신하므로(以信代慧) 지는 곧 신이다. 계단이란 믿는 이가 밟는 곳이니, 「밟는 곳」이라는 뜻이 곧 본문의 계단이다. 「삼대비법품승사」의 글을 보자.

王臣一同に本門の三秘密の法を持ちて有徳王・覚徳比丘の其の乃往を末法濁悪の未来に移さん時勅宣並に御教書を申し下して霊山浄土に似たらん最勝の地を尋ねて戒壇を建立す可き者か時を待つ可きのみ

왕과 신하가 한결같이 본문의 삼비밀의 법을 지니어, 유덕왕 · 각덕비구의 그 옛일을 말법 탁악의 미래에 옮길 때, 칙선과 어교서를 받아 내려 영산정토와 같은 가장 뛰어난 땅을 찾아 계단을 건립해야 할 것인가. 때를 기다려야 할 뿐이니라.

「삼대비법품승사」, 1022쪽

같은 글은 이 계단이 삼국과 일염부제 사람들의 참회멸죄의 계법일 뿐 아니라 「대범천왕 · 제석 등도 내려와 밟으실 계단」이라 하니, 이 「밟는다(蹋)」가 곧 「밟는 곳(踐)」이다. 여기에도 「때를 기다려야 할 뿐」이라는, 이 글의 주제인 「시」가 나타난다.

셋째는 능통(能通)의 뜻으로, 곧 본문의 제목이다. 『법계차제』에 「도로써 능통의 뜻으로 삼는다」고 했다. 본문의 제목에는 두 뜻이 갖추어져 있으니, 하나는 신(信)이고 하나는 행(行)이다. 이 둘이 서로 도와 능히 통해서 적광(寂光)에 이른다. 천태가 말한 「지혜의 눈과 수행의 발로 청량지에 이른다(智目行足・清涼地に至る)」가 이것이다. 「당체의초」는 이 뜻을 이렇게 밝힌다.

日蓮が一門は正直に権教の邪法・邪師の邪義を捨てて正直に正法・正師の正義を信ずる故に当体蓮華を証得して常寂光の当体の妙理を顕す事は本門寿量の教主の金言を信じて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るが故なり

니치렌의 일문은 정직하게 권교의 그릇된 법과 그릇된 스승의 그릇된 뜻을 버리고 정직하게 정법 · 정사의 바른 뜻을 믿는 까닭에 당체연화를 증득하여 상적광의 당체의 묘리를 드러내니, 이는 본문 수량의 교주의 금언을 믿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까닭이니라.

「당체의초」, 518쪽

니치칸 상인은 여기에 신과 행의 관계를 비유로 덧붙였다. 신심이 있어도 창제의 행이 없으면 눈은 멀지 않았으나 다리를 저는 것과 같고, 창제가 있어도 신심이 없으면 다리는 성하나 눈이 먼 것과 같다. 신과 행이 함께 갖추어져야 둘 다 온전하니, 『백론』의 맹인과 절름발이의 비유를 생각하라. 그러므로 신심의 눈을 뜨고 창제 수행의 발을 옮기면 능히 통하여 적광의 청량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능통 · 소천 · 허통의 세 뜻은 곧 삼대비법이며, 「묘도」는 문저에 비침된 대법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에 「보은초」의 삼대비법을 밝힌 글 — 일본 나아가 일염부제가 한결같이 본문의 교주 석존을 본존으로 삼을 것, 본문의 계단, 그리고 유지 · 무지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다른 일을 버리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를 것 — 과 그 끝의 「니치렌의 자비가 넓고 크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 년 밖 미래까지도 흐르리라」(328쪽)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허통 · 소천 · 능통」을 본존 · 계단 · 제목에 배당하는 것은 니치칸 상인의 해석으로, 상인은 이것을 「내감냉연의 깊은 뜻」이라 불렀다. 천태대사 자신은 「묘도」를 삼대비법이라는 이름으로 말하지 않았으니, 이 해석은 천태가 속으로 알면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을 문저의 입장에서 읽어 낸 것이다.

「명리가 없지 않다」 — 말법의 이익은 하종의 명익

묘락대사의 「말법의 처음에 명리가 없지 않으리라」는 『법화문구기』의 글이다. 이 「명리(冥利)」는 하종익(下種益)을 말한다. 석존 재세처럼 숙익(熟益) · 탈익(脫益)이 드러나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 「교행증어서」가 이 뜻을 밝힌다.

正像に益を得し人人は顕益なるべし在世結縁の熟せる故に、今末法には初めて下種す冥益なるべし

정법 · 상법에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현익(顯益)이리라. 재세에 맺은 인연이 익었기 때문이니라. 지금 말법에는 처음으로 하종하니 명익(冥益)이리라.

「교행증어서」, 1277쪽

같은 글은 이어서 묘락의 석대로라면 명익이므로 사람이 이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고 한다. 또 『법화문구기』는 불경품에 대해 「혹은 명(冥), 혹은 현(顯)」이라 했고, 『보정기』는 「혹은 명이라 함은 헐뜯는 자는 다만 명익을 얻을 뿐이요, 혹은 현이라 함은 믿는 자는 육근청정의 과보를 얻는다」고 했다. 여기서 헐뜯는 자가 명리를 얻는다는 것은 하종익을 얻기 때문이다. 「교행증어서」는 이렇게 말한다 — 과거 위음왕불의 상법에 불경보살의 스물네 자를 들은 이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시 불경대사를 만나 이익을 얻었으니, 이것은 앞서 법을 들은 것을 하종으로 삼았기 때문이다(1276쪽). 불경보살 자신은 현실에 육근청정을 얻었으므로 현익이라 한다.

이와 관련해 니치칸 상인의 지적이 있다. 어떤 주석서(「조초(朝抄)」)는 순연 · 역연의 두 인연을 명익 · 현익에 배당했는데, 니치칸 상인은 이것이 매우 잘못이라고 했다. 말법은 순연 · 역연이 모두 하종익이니, 순 · 역 모두 명익이다. 어찌 순연을 현익이라 할 수 있겠는가. 불경품의 뜻은 교화하는 쪽인 불경보살을 믿는 이로 이름하여 현실에 육근청정을 얻었으므로 현익이라 한 것이니, 교화받는 쪽의 순연을 여기에 섞어서는 안 된다. 지금 순연의 제자라 해도 육근청정을 얻지 못한 것을 보아도 현익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말법의 이익은 눈에 보이는 즉시의 과보가 아니라, 생명 깊이 심어진 성불의 씨앗이라는 것 — 이것이 「명리가 없지 않다」는 글의 뜻이다.

법화경이 유포하는 때는 두 번 — 왜 상법은 아닌가

석의 글을 든 뒤 대성인은 그 뜻을 우주적 시간의 틀에서 풀어 보이신다. 석존의 출세는 주겁 제9의 감겁, 사람의 수명이 백 세일 때였다. 사람의 수명이 백 세에서 백 년에 한 살씩 줄어 열 살에 이르기까지의 사이가 재세 오십 년, 멸후의 정법 · 상법 이천 년과 말법 일만 년으로 나뉜다. 그 사이에 법화경이 유포하는 때가 두 번 있으니, 석존 재세에 법화경을 설한 팔 년과, 멸후로는 말법의 처음 오백 년이다. 그런데 천태 · 묘락 · 전교 등은 앞으로는 재세 법화경 설법의 때에 태어나지 못했고, 뒤로는 말법의 때에도 태어나지 못했다. 그 중간에 태어난 것을 한탄해 말법의 처음을 그리워하며 이렇게 쓴 것이라고 대성인은 말씀하신다.

주겁 제9의 감겁, 사람의 수명 백 세에서 십 세까지
  1. 석존 재세 오십 년그 가운데 법화경 설법의 팔 년첫째 유포의 때
  2. 정법 천 년 · 상법 천 년천태 · 묘락 · 전교가 태어난 「중간」
  3. 말법 일만 년그 처음 오백 년둘째 유포의 때
본문「그 중간에 법화경이 유포하는 때가 두 번 있으니, 이른바 재세의 팔 년과 멸후로는 말법의 처음 오백 년이니라」其の中間に法華経の流布の時・二度あるべし所謂在世の八年・滅後には末法の始の五百年なり
니치칸 상인이 든 상법이 참된 광포의 때가 아닌 다섯 까닭
  1. ① 이 경의 이익이 아직 성하지 않음
  2. ② 여러 대승경의 이익이 있어 법화경만이 즉신성불의 법임이 드러나지 않음
  3. ③ 정직한 묘법을 넓히지 않음
  4. ④ 사행의 일념삼천을 드러내지 않음
  5. ⑤ 깊이 감추어진 대법을 넓히지 않음
도표 14 · 법화경이 유포하는 때는 두 번

그런데 천태대사와 전교대사의 시대에도 법화경은 널리 펼쳐졌는데, 왜 대성인은 「두 번」이라 하셨는가. 니치칸 상인은 상법 시대는 참된 광선유포의 때가 아니라며 다섯 가지 까닭을 보였다.

첫째, 상법에는 이 경의 이익이 아직 성하지 않다. 약왕품은 「뭇 별 가운데 월천자가 가장 으뜸이니라」라고 하는데, 「약왕품득의초」는 이 달의 비유를 이렇게 풀이한다.

又月はよいよりも暁は光まさり・春夏よりも秋冬は光あり、法華経は正像二千年よりも末法には殊に利生有る可きなり

또 달은 초저녁보다 새벽에 빛이 더하고, 봄 · 여름보다 가을 · 겨울에 빛이 있으니, 법화경은 정법 · 상법 이천 년보다 말법에 특히 이익이 있으리라.

「약왕품득의초」, 1501쪽

같은 글은 이 경문에 「이천 년 뒤 남염부제에 광선유포하리라」고 설한 것이 셋째 달의 비유의 뜻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상법에는 법화경의 이익이 성하지 않았음을 안다.

둘째, 상법에는 여러 대승경의 이익이 있으므로, 오직 법화경만이 유일무이한 즉신성불의 대법이라는 묘한 공능이 분명하지 않다. 「현불미래기」는 소승경으로 헤아리면 정법 천 년에는 교 · 행 · 증이 갖추어져 있고, 상법 천 년에는 교와 행만 있고 증이 없으며, 말법에는 교만 있고 행 · 증이 없다고 한다. 법화경으로 살피면, 정법 천 년에 세 가지를 갖춘 것은 재세에 법화경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 정법에 태어나 소승의 교행을 연으로 소승의 증을 얻은 것이고, 상법에는 재세의 결연이 엷어 소승으로는 증을 얻지 못하고 권대승을 연으로 시방의 정토에 태어났으며, 말법에는 대소의 이익이 함께 없다(506쪽).

셋째, 상법에는 정직한 묘법을 넓히지 않았다. 「입정관초」는 이렇게 말한다.

天台大師は霊山の聴衆として如来出世の本懐を宣べたもうと雖も時至らざるが故に妙法の名字を替えて止観と号す

천태대사는 영산의 청중으로서 여래 출세의 본회를 펴셨으나,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 묘법의 이름을 바꾸어 지관(止觀)이라 이름하셨느니라.

「입정관초」, 529쪽

같은 글은 천태가 적화의 무리였으므로 본화의 부촉을 넓히지 않았고, 정직한 묘법을 지관으로 설해 흐렸으니 있는 그대로의 묘법이 아니어서 방편을 띤 법과 비슷하다고 하며, 본화가 홍통할 때 교화받는 기는 법화 본문의 바로 그 기라고 밝힌다. 여기서도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라는 말이 열쇠이다.

넷째, 상법에는 사행(事行)의 일념삼천을 드러내지 않았다. 「관심의 본존초」의 글이다.

像法の中末に観音・薬王・南岳・天台等と示現し出現して迹門を以て面と為し本門を以て裏と為して百界千如・一念三千其の義を尽せり、但理具を論じて事行の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並びに本門の本尊未だ広く之を行ぜず所詮円機有つて円時無き故なり

상법의 중엽과 말엽에 관음 · 약왕이 남악 · 천태 등으로 나타나 출현하여, 적문을 겉으로 삼고 본문을 속으로 삼아 백계천여 · 일념삼천의 그 뜻을 다하였으나, 다만 이구(理具)를 논하였을 뿐 사행의 남묘호렌게쿄의 다섯 자와 본문의 본존은 아직 널리 행하지 않았으니, 결국 원기(圓機)는 있으되 원시(圓時)가 없었기 때문이니라.

「관심의 본존초」, 253쪽

「원기는 있으되 원시가 없었다」 — 원교를 받아들일 기는 있었지만 원교가 펼쳐질 때가 아니었다는 이 말은, 제2장의 「기는 있었으되 때가 오지 않았으므로」와 정확히 겹친다. 화엄의 자리에서 석존이 법화경을 설하지 않은 까닭과, 상법의 천태가 사행의 남묘호렌게쿄를 펼치지 않은 까닭이 같다는 것이다.

다섯째, 상법에는 아직 깊이 감추어진 대법을 넓히지 않았다. 선시초 자신의 뒤쪽 글이 이를 보여 준다.

天台・伝教のいまだ弘通しましまさぬ最大の深密の正法経文の面に現前なり、此の深法・今末法の始五五百歳に一閻浮提に広宣流布すべきや

천태 · 전교가 아직 홍통하지 않으신 가장 큰 깊고 비밀한 정법이 경문의 겉에 뚜렷이 드러나 있느니라. 이 깊은 법이 지금 말법의 처음, 제5의 오백 년에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하리라.

「선시초」, 272쪽

이 다섯 까닭이 모두 가리키는 것은 하나다. 상법의 법화경 홍통은 적문을 겉으로 한 이구의 일념삼천이었고, 본문 문저의 사행의 남묘호렌게쿄는 말법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태 · 묘락 · 전교가 말법을 그리워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사타 선인의 탄식

대성인은 세 대사의 그리움을 아사타 선인의 탄식에 견주신다. 아사타 선인은 실달태자가 태어나자 그 상을 보고 슬퍼하며 말했다. 현생에는 이미 아흔이 넘었으니 태자가 성도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후생에는 무색계에 태어날 것이니 몸이 없어 오십 년 설법의 자리에도 이어 앉지 못한다. 정법 · 상법 · 말법에도 이 세계에 태어나지 못하리라 — 부처의 설법과 전혀 인연을 맺지 못한다는 것을 한탄한 것이다. 다섯 신통을 얻은 선인이 높은 선정의 과보로 무색계에 태어나는 것이 오히려 부처를 만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 이야기는, 높은 경지나 권위가 그대로 성불의 인연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천태 · 묘락 · 전교도 그와 같다. 상법 시대 최고의 지혜를 지녔지만, 태어난 때가 「중간」이었기에 법화경이 참으로 유포하는 때를 만나지 못했다.

정법 · 상법의 대왕보다 말법 지금의 백성 — 「법이 묘하므로 사람이 존귀하다」

장의 결론은 뜻밖의 역전이다. 도심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듣고 기뻐하라. 후세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대왕이 되기보다 말법 지금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저 천태의 좌주가 되기보다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병든 천민이 되어야 한다.

이 대목은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을 견주어 법의 존비를 결정하는 단이다. 곧 「법이 묘하므로 사람이 존귀하다」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정법 · 상법 두 때의 대왕은 설령 경대로 수행한다 해도 여전히 권교 · 적문의 행자이므로 낮고, 말법 지금의 백성은 경대로 수행하면 곧 본화의 보살이므로 훨씬 위이다. 그 차이는 원숭이와 제석만큼이나 크다. 같이 불법을 믿고 수행해도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은 때에 따라 홍통되는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저 천태의 좌주」 이하는, 설령 천태좌주가 말법에 있다 해도 이전 경과 적문을 행하는 비방의 행인이라면 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는 죄인이므로 오히려 비천하다는 것이다. 본문 수량의 정법을 행하는 이는 바로 신력품이 「이 사람은 불도에 있어서 결정코 의심이 없으리라」고 한 선인이니, 저 천태 · 진언의 가장 존귀한 지인 · 석덕보다 존귀하다.

본문의 「뢰인(癩人)」은 당시 가장 천대받던 병자를 가리키는 시대어이다. 대성인은 신분과 처지가 가장 낮은 사람이라도 말법의 정법을 부르면 최고의 권위자보다 존귀하다는 뜻으로 이 말을 쓰셨다.

여기서 절복을 행하는 사람의 자세를 생각해 보자. 일반 대중과 괴로움과 고뇌를 함께하며 불도 수행에 힘쓰고, 그 가운데서 법의 공덕을 몸으로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대중은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화경 법사품은 이 사람이 스스로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 묘법화경을 널리 펴며, 스스로 청정한 업보를 버리고 내가 멸도한 뒤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악세에 태어나 널리 이 경을 편다고 설한다.

대성인이 왕후나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고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나오신 까닭도 일체중생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니치칸 상인은 「잡기(雜記)」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만일 제왕이나 장군의 집안에 태어났다면 업신여김과 미움과 시기를 받을 일이 없었을 것이니, 그렇다면 인연을 맺을 기회가 적다. 그러므로 미천한 집에 태어나 귀양과 처형 같은 고난을 참으며 경문 그대로 몸으로 이를 행하여 널리 독고의 연을 맺으셨다는 것이다. 대성인 자신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は安房の国・東条片海の石中の賤民が子なり威徳なく有徳のものにあらず

니치렌은 아와국 도조 가타우미의 이시나카의 천민의 아들이니라. 위덕도 없고 덕이 있는 자도 아니니라.

「선무외삼장초」, 883쪽

日蓮は日本国・東夷・東条・安房の国・海辺の旃陀羅が子なり

니치렌은 일본국 동이 도조 아와국 바닷가의 전다라의 아들이니라.

「사도어감죄초」, 891쪽

제1장이 축생까지 때를 안다는 데서 시작했다면, 제6장은 말법의 가장 낮은 백성이 상법의 대왕보다 존귀하다는 데서 끝난다. 때를 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어떤 때에 태어났는가를 아는 것이며, 그것을 알면 말법이라는 어두운 시대에 태어난 것이 오히려 다시없는 행운이 된다. 대성인의 일생에 걸친 대난을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지닌 고민은 작은 어려움이니,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신심을 굳게 할 일이다.

양 무제의 발원 — 제바달다가 될지언정 울두람불은 되지 않으리라

장의 마지막에 대성인은 양 무제의 발원을 드신다. 「차라리 제바달다가 되어 무간지옥에 잠길지언정 울두람불은 되지 않으리라.」 제바달다는 삼역죄를 지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지만, 법화경 제바달다품에서 천왕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울두람불은 높은 선정을 얻어 삼계의 꼭대기인 비상비비상천에 태어났지만, 그 수명을 마치자 날다람쥐로 태어나 새와 물고기를 죽이고 삼악도에 떨어졌다. 겉으로 보면 지옥에 떨어진 제바달다가 가장 낮고 하늘 꼭대기에 오른 울두람불이 가장 높지만, 법화경과 인연을 맺었느냐 맺지 못했느냐에서 보면 정반대가 된다.

이 발원은, 설령 천계에 태어나더라도 울두람불처럼 성불하지 못하기보다는 차라리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법화경을 만나 성불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상의 대왕보다 말법의 백성, 천태의 좌주보다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천민 — 대성인은 이 발원으로 결론을 굳히신다. 이 글은 말법에 태어나 남묘호렌게쿄를 수행할 수 있는 몸의 행복에 대한 환희와 감격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제1편의 여섯 장은 이렇게, 「시를 익혀라」는 첫 문장에서 출발해 「지금 이때에 태어난 것을 기뻐하라」는 권고로 끝난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선시초의 첫 여섯 장은 하나의 물음 — 지금은 어떤 때이며, 그때에 맞는 법은 무엇인가 — 을 세우고, 그 답의 뼈대를 모두 제시한다. 제1장은 삼세의 부처와 외도와 축생까지 때를 기다린다는 것을 들어 「반드시 먼저 시를 익혀라」는 표제를 내걸었다. 이것은 교 · 기 · 시 · 국 · 서의 다섯 강령이 모두 시에 따라 정해진다는 원리로, 나아가 판교의 차제(내외 → 대소 → 권실 → 본적)와 불법이 흐르는 방향(동류 → 서환)으로 펼쳐 읽혔고, 생명 활동을 중심으로 한 불법의 시간론, 구원즉말법의 법리로까지 깊어졌다.

제2장은 적멸도량과 영산회상을 견주어, 최고의 청중 앞에서는 법화경이 설해지지 않고 불효자와 대악인과 축생의 여인이 앉은 자리에서 설해졌다는 사실로 「불법은 기가 아니라 시에 의한다」를 증명했다. 제3장은 「기가 아닌 이에게 대법을 주면 설한 자의 죄가 아닌가」라는 힐난을 길과 의사의 비유로 풀고, 섭수와 절복의 두 갈래 경문을 천태의 「때에 맞을 뿐」과 장안의 「취사를 마땅히 하라」로 회통했다. 니치칸 상인의 섭절 오의는 이 원칙을 교법 · 기연 · 시절 · 국토 · 교법 유포의 선후에 걸쳐 펼쳐 보였다.

제4장은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을 펼쳐, 정토교가 백법은몰을 「모든 수행이 무력해지는 때」로 읽은 데 맞서 그것을 「대백법이 나타날 때의 전조」로 읽고,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팔만의 나라에 광선유포하리라 선언했다. 제5장은 약왕품의 「후오백세 광선유포」를 비롯한 열 경문을 엮어, 악귀가 든 대승의 충만 → 지인 한 사람의 출현 → 박해 → 천변지요와 이웃 나라의 침공 → 일동 창제라는 광선유포의 차제를 그렸다. 그 「전대미문의 대투쟁」은 대성인 당시에는 몽골 내습과 자계반역난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법체의 광선유포 · 역연의 광포로, 일동 창제는 화의의 광선유포 · 순연의 광포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제6장은 천태 · 묘락 · 전교가 스스로 「중간」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말법을 그리워한 글을 들어, 법화경이 유포하는 때는 재세의 팔 년과 말법의 처음 오백 년, 두 번뿐이라는 것을 밝혔고, 「법이 묘하므로 사람이 존귀하다」는 원리로 말법의 백성이 상법의 대왕보다 존귀하다는 역전으로 끝맺었다.

이 편이 세운 척도는 이제 역사로 향한다. 정법 · 상법 이천 년 동안 가섭 · 아난에서 용수 · 천친, 천태 · 전교에 이르는 이들은 각자의 때에 무엇을 넓혔고, 무엇을 넓히지 않았는가. 다음 편인 선시초 제2편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교와 묘법 유포의 필연」은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을 실제 홍교의 역사에 대어 보며, 그 모든 것이 결국 말법의 묘법 유포로 향하는 필연이었음을 밝힌다.

더 읽기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선시초(撰時抄)」, 건치 원년(1275) —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256–292쪽
  • 같은 어서전집 수록: 「입정안국론」 · 「수호국가론」 · 「개목초」 · 「관심의 본존초」 · 「보은초」 · 「교기시국초」 · 「여설수행초」 · 「현불미래기」 · 「당체의초」 · 「입정관초」 · 「법화초심성불초」 · 「간효팔번초」 · 「사도어서」 · 「삼대비법품승사」 · 「교행증어서」 · 「약왕품득의초」 · 『어의구전』 등
  • 『묘법연화경』, T9 no.262 (방편품 · 비유품 · 화성유품 · 법사품 · 권지품 · 안락행품 · 종지용출품 · 분별공덕품 · 상불경보살품 · 여래신력품 · 약왕보살본사품)
  • 『대방등대집경』, T13 no.397
  • 천태대사 지의, 『법화문구』, T34 no.1718 · 『법화현의』, T33 no.1716 · 『마하지관』, T46 no.1911
  • 묘락대사 담연, 『법화문구기』
  • 전교대사 사이초, 『수호국계장』 · 『법화수구』
  • 도작, 『안락집』 · 선도, 『왕생예찬게』 · 법연, 『선택집』
  • 니치칸 상인, 「선시초 문단(撰時抄文段)」 · 「개목초 문단」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연구

  • 『선시초 강의』 (「0256~0293 撰時抄」 장별 게시)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The Selection of the Time」 수록)
  • Jan Nattier, Once Upon a Future Time: Studies in a Buddhist Prophecy of Decline, Asian Humanities Press, 1991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더 읽기

이 편에 인용된 어서

어서 연구 전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