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초」는 건치 원년(1275), 미노부에 드신 이듬해에 니치렌 대성인이 쓰신 글로, 십대부 어서 가운데 하나다. 「무릇 불법을 배우려는 법은 반드시 먼저 시를 익혀야 한다」는 첫 문장이 보여 주듯, 이 글은 불법을 「시(時)」라는 관점에서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석존 재세의 사십여 년과 법화경 8년, 멸후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인도 · 중국 · 일본 홍교사를 대집경의 오오백세에 맞추어 검토하고, 지금 말법의 처음이 어떤 시인가를 묻는다. 그 답은 천태 · 전교도 펴지 않은 가장 깊은 법, 곧 남묘호렌게쿄가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할 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을 넓히는 이가 박해를 받으면서도 염부제 제일의 법화경 행자 · 지인 · 성인 · 대인임을 선언한다. 서강은 이 서른여섯 장 전체를 펼치기 전에, 이 글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쓰였는가, 그 대의는 무엇인가, 그 원의는 어디에 있는가를 차례로 살핀다.
선시초가 쓰인 건치 원년은 대성인의 생애에서도, 일본의 역사에서도 긴장이 가장 높았던 해의 하나다. 그 전해 문영 11년 4월 대성인은 사도에서 돌아와 막부에 세 번째 간효를 하셨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5월에 미노부로 드셨다. 그리고 그해 10월 몽골군이 쓰시마 · 이키를 거쳐 규슈에 상륙했다. 대성인이 「설마 올해를 넘기지는 않으리라」고 예고하신 일이 그대로 일어난 것이다. 다시 올 침공을 온 나라가 두려워하고 조정과 막부가 진언사들에게 조복의 기도를 맡기던 그때, 대성인은 미노부의 초암에서 「시를 가린다」는 제목의 긴 글을 쓰셨다.
이 글에서 시란 흘러가는 시각이 아니라 중생의 기근과 부처의 가르침이 서로 응하는 때다. 같은 법화경이라도 설할 때가 오지 않았으면 설하지 않고, 때가 왔으면 비방을 받더라도 설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때인가. 선시초는 이 물음을 정법 · 상법의 논사와 인사들의 공과를 하나하나 따지는 방식으로 풀어 가며, 말법에 퍼져야 할 법과 그 법을 넓히는 사람을 밝힌다. 니치칸 상인은 「선시초 문단」에서 이를 「별하여 말법의 시를 가려 취함」이라 요약하며, 그 원의는 말법 광선유포, 나아가 세계 광포의 예언에서 찾을 수 있다.
서강은 네 절로 이루어진다. 첫째 절은 저술의 연대와 장소, 정필과 사본의 전승, 대고중, 그리고 대성인 일대의 화도 속에서 선시초가 차지하는 자리를 살핀다. 둘째 절은 「선시초」라는 제호와 「석자 니치렌」이라는 서명에 담긴 뜻, 선시초 전체의 대의, 그리고 불멸 연대 · 결집 · 정상말 · 오오백세라는 불교사의 여러 문제를 다룬다. 셋째 절은 선시초의 원의인 말법 광선유포의 예언을 다른 어서들과 함께 읽고, 「전대미문의 대투쟁」을 대성인 당시의 사실과 경문의 원리로 풀이한다. 넷째 절은 서른여섯 장을 여섯 편으로 나누어 그 흐름을 개관한다.
서강의 절
첫머리의 글과 저술 연대
선시초는 다음과 같은 머리글로 시작한다. 제목과 저술 연도, 그리고 서명이 붙은 뒤 곧바로 「불법을 배우려면 먼저 시를 익혀라」라는 이 글 전체의 주제가 선언된다.
撰時抄 建治元年 五十四歳御作
釈子日蓮述ぶ
夫れ仏法を学せん法は必ず先づ時をならうべし、過去の大通智勝仏は出世し給いて十小劫が間一経も説き給はず経に云く一坐十小劫又云く「仏時の未だ至らざるを知り請を受けて黙然として坐す」等云云、今の教主釈尊は四十余年の程法華経を説き給はず経に云く「説く時未だ至らざるが故」と云云、老子は母の胎に処して八十年、弥勒菩薩は兜率の内院に籠らせ給いて五十六億七千万歳をまち給うべし、彼の時鳥は春ををくり鶏鳥は暁をまつ畜生すらなをかくのごとし何に況や仏法を修行せんに時を糾ざるべしや、선시초 — 건치 원년(1275), 54세 때 저술. 석자(釈子) 니치렌이 서술하느니라. 무릇 불법을 배우려는 법은 반드시 먼저 시(時)를 익혀야 하느니라. 과거의 대통지승불(大通智勝仏)은 세상에 나오시어 십 소겁 동안 한 경도 설하지 않으셨으니, 경에 「한 번 앉으시기를 십 소겁」이라 하고 또 「부처님은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아시고 청을 받으시고도 묵연히 앉아 계셨다」고 하였느니라. 지금의 교주 석존께서는 사십여 년 동안 법화경을 설하지 않으셨으니, 경에 「설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였느니라. 노자(老子)는 어머니의 태중에 팔십 년을 머물렀고, 미륵보살은 도솔천 내원에 머무르시며 오십육억 칠천만 년을 기다리실 것이니라. 저 두견새는 봄을 보내고 닭은 새벽을 기다리나니, 축생조차 이와 같으니라. 하물며 불법을 수행하면서 시를 바로 살피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이 글의 저술 연대는 本文 안에서 확정할 수 있다. 선시초 제32장에서 대성인은 헤이노사에몬노조(平左衛門尉)에게 행하신 세 번째 간효를 회고하시며 「셋째로는 지난해 문영 11년 4월 8일 사에몬노조에게 말하기를, 왕의 땅에 태어났으니…」(第三には去年文永十一年四月八日左衛門尉に語つて云く、王地に生れたれば, 287쪽)라고 쓰셨다. 문영 11년(1274)을 「지난해」라고 하셨으니 붓을 드신 해는 그 이듬해인 문영 12년(1275)이 된다. 문영 12년은 4월에 연호가 바뀌어 건치(建治) 원년이 되었으므로, 선시초는 건치 원년, 대성인의 세수 54세 때의 저술이다. 첫머리에 붙은 「建治元年 五十四歳御作」라는 표기도 이 계산과 맞는다.
대성인이 미노부산(身延山)에 드신 것은 문영 11년 5월이다. 따라서 선시초는 미노부 입산 이듬해, 미노부의 초암에서 쓰신 글이다. 사도 유배에서 풀려나 가마쿠라로 돌아오시고, 막부에 세 번째 간효를 하시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산으로 드신 지 꼭 한 해 남짓한 때였다. 그 사이 문영 11년 10월에는 몽골군이 쓰시마 · 이키를 거쳐 규슈 북부에 상륙하였으니, 대성인이 「설마 올해를 넘기지는 않으리라」(よも今年はすごし候はじ, 288쪽)라고 예고하신 타국침핍난이 그해 안에 현실이 되었다. 선시초는 이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가운데, 다시 올 침공을 온 나라가 두려워하던 시기에 쓰였다.
저술 월일은 本文에 적혀 있지 않다. 여기서는 연도(건치 원년)만 확정하며, 뒤에 보듯 「건치 3년 6월 10일」로 적힌 오서(奥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 건장 5년(1253) 4월 28일32세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세우심(입종)
- 문응 원년(1260) 7월 16일「입정안국론」으로 첫 번째 국주간효 — 8월 27일 마쓰바가야쓰 법난간효 1
- 홍장 원년(1261) 5월 12일이즈 이토 유배
- 문영 원년(1264) 11월고마쓰바라 법난
- 문영 5년(1268)몽골 국서 도래, 「십일통어서」로 막부 요인 · 여러 큰 절에 경고하고 공개 대론을 요구하심몽골
- 문영 8년(1271) 9월 12일다쓰노구치 법난, 두 번째 국주간효 — 이어 사도 유배간효 2
- 문영 9년(1272)「개목초」(인본존 개현), 2월 자계반역난(이월소동)
- 문영 10년(1273)「관심의 본존초」(법본존 개현)
- 문영 11년(1274) 4월 8일사도에서 돌아와 세 번째 국주간효 — 5월 미노부 입산 — 10월 몽골 내습(타국침핍난)간효 3몽골
- 건치 원년(1275)54세「선시초」
- 건치 2년(1276)스승 도젠보의 부음 — 「보은초」를 지어 세이초사로 보내심(본존 · 계단 · 제목의 이름을 밝히심)
- 홍안 2년(1279) 10월 12일본문 계단의 대어본존 건립
- 홍안 4년(1281)두 번째 몽골 내습몽골
- 홍안 5년(1282) 10월 13일61세입멸
「천태 사문」이 아니라 「석자 니치렌」 — 오서의 문제
예전에 유포된 판본 가운데에는 끝에 「건치 3년 6월 10일, 갑주 하키리 미노부산에서 말대의 후학과 불법 흥륭을 위하여 지어 마쳤다. 천태 사문(天台沙門) 니치렌이 이를 찬한다」는 오서가 붙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오서는 두 가지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
첫째는 연대다. 앞에서 보았듯 本文 스스로 문영 11년을 「지난해」라 부르므로 저술은 건치 원년이며 건치 3년(1277)일 수 없다. 둘째는 서명이다. 입종 초기, 사도 이전의 글이라면 「천태 사문」이라는 서명도 있을 수 있겠으나, 사도에서 발적현본(発迹顕本)하시고 미노부에 드신 뒤의 이 글에 대성인이 스스로를 천태종의 사문이라 일컬으실 까닭이 없다. 실제로 첫머리의 서명은 「석자 니치렌이 서술하느니라」(釈子日蓮述ぶ)이며, 이 「석자 니치렌」이라는 말 속에는 겹겹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그 뜻은 「이 · 선시초의 대의」에서 니치칸 상인의 「선시초 문단(撰時抄文段)」에 따라 자세히 살핀다.
어정필의 소재와 사본의 전승
선시초의 어정필(御正筆)은 다마자와 묘호케사(玉沢 妙法華寺)에 다섯 축(軸)으로 나뉘어 보존되어 있다. 몇 장의 결락이 있으나 거의 완전에 가까운 상태라고 한다. 다마자와 묘호케사는 육노승의 한 사람인 닛쇼(日昭)의 계통에 속하는 절이다. 닛쇼는 가마쿠라의 하마도(浜土)에 머물며 그곳을 문류의 본거로 삼았는데, 뒤에 병란 등의 재난을 만나 이즈의 다마자와로 옮겨 갔다고 한다.
한편 대성인 입멸 뒤 제2조 닛코 상인은 스승의 어서를 모아 그 목록과 소재를 기록하였는데, 그 내용이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에 실려 있다. 선시초 항목은 다음과 같다.
一、撰時抄一巻、今開して上中下と為す。
駿河国西山由井某に賜る正本日興に上中二巻之れ在り此中に面目俄に開く事下巻に於いては日昭が許に之れ在り하나, 선시초 한 권. 지금 펼쳐 상 · 중 · 하로 나누었다. 스루가국 니시야마의 유이 아무개에게 주신 것이다. 정본은 닛코에게 상 · 중 두 권이 있고, 그 가운데 면목이 문득 열리는 일이 있다. 하권은 닛쇼의 처소에 있다.
이 기록대로라면 닛코 상인 곁에는 상권과 중권이, 닛쇼 곁에는 하권만이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 다마자와에 전하는 정필은 거의 전체가 갖추어져 있고, 닛코 상인 곁에 있던 상 · 중 두 권은 그 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이 밖에 나카야마(中山)의 기록에는 상 · 하 두 권으로 된 선시초가 있었다고 하고, 미노부의 기록에는 상 · 하 두 권 가운데 상권만 미노부에 있었다고 전하는데, 이 미노부의 상권은 메이지 8년(1875)의 큰 화재로 불탔다고 한다.
전승이 이처럼 엇갈리는 까닭에 대해서는, 선시초에 초고(御草案)와 정본(御正本)의 두 가지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다. 한쪽은 대성인이 곁에 두신 초고, 다른 한쪽은 대고중에게 보내신 정서본이라면, 세 곳의 기록이 서로 다른 것도 설명이 된다.
- 다마자와 묘호케사(玉沢 妙法華寺)정필 다섯 축, 약간의 결락이 있으나 거의 완전닛쇼 계통(가마쿠라 하마도 → 이즈 다마자와)
- 닛코 상인(「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상 · 중 · 하로 나눔」, 정본의 상 · 중 두 권은 닛코 곁 · 하권은 닛쇼 곁상 · 중 두 권은 그 뒤 행방을 알 수 없음
- 나카야마의 기록상 · 하 두 권본이 있었다고 함
- 미노부의 기록상 · 하 가운데 상권만 있었다고 함메이지 8년(1875)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전함
한 가지 추측: 초고와 정본의 두 가지가 있었을 가능성
대고중 — 스루가 니시야마의 유이 씨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는 선시초를 「스루가국 니시야마의 유이 아무개(駿河国西山由井某)」에게 주신 글이라고 적는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유이 씨는 시바강(芝川)이 후지강(富士川)에 합류하는 가와이(河合)에 살던 사람으로, 닛코 상인의 외척에 해당한다. 닛코 상인의 어머니 쪽 집안이 이 일대에 있었으니, 스루가 지방의 문하가 닛코 상인을 매개로 대성인과 이어져 있던 사정을 생각하면, 기록의 「유이 아무개」는 이 사람 말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학자 가운데에는 선시초처럼 중요한 어서라면 도키조닌이나 시조깅고처럼 유력한 단나에게 주셨어야 하며, 니시야마의 유이 아무개 같은 인물이 대고중일 리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일부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한 편견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홍안 3년(1280)의 「간효팔번초」는 길고도 중요한 어서이지만 받는 이가 분명하지 않은 채 다이세키사(大石寺)에 전해 온다. 어서의 무게가 곧 대고중의 지위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고중에 대해서는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의 기록을 따라 스루가 니시야마의 유이 씨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유이 씨가 정확히 누구인지, 그리고 이 글이 처음부터 한 사람에게 보낸 글인지 문하 전체를 염두에 둔 글인지를 두고는 연구자 사이에 다른 견해가 있다.
대성인 일대의 화도와 삼대비법
어떤 어서든 그것을 바르게 배례하려면 먼저 대성인 출세의 본회(本懐)가 삼대비법의 건립에 있었고, 일대의 화도가 모두 이 삼대비법 건립을 중심으로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삼대비법이란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 · 본문의 제목이다. 대성인은 건장 5년(1253) 4월 28일, 32세에 남묘호렌게쿄라는 본문의 제목을 세우셨고, 홍안 2년(1279) 10월 12일에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을 건립하셨으며, 홍안 5년(1282) 10월 13일에 61세로 입멸하셨다. 제목에서 시작하여 본존으로 완성되는 이 순서가 대성인 일대의 뼈대다.
삼대비법을 설해 보이신 순서가 이러하므로, 어서에도 사도 이전과 사도 이후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 흐름을 연대를 따라 짚어 보자.
문응 원년(1260) 7월,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으로 막부를 간효하셨다. 그러나 8월 27일 마쓰바가야쓰(松葉ヶ谷) 법난을 만나시고, 이듬해 홍장 원년(1261) 5월 12일에는 이즈의 이토(伊東)로 유배되셨다. 「입정안국론」의 요지는 그릇된 법을 금하고 바른 법을 세워 나라를 편안히 하라는 것이지만, 아직 삼대비법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겉으로는 법연의 염불을 논파하는 데 무게가 있으며, 권실상대(権実相対)가 중심을 이룬다.
홍장 2년(1262)에 풀려나 가마쿠라로 돌아오신 대성인은 문영 원년(1264) 11월 아와(安房)에서 고마쓰바라(小松原) 법난을 당하셨다. 제자가 맞아 죽고 대성인 자신도 상처를 입으셨다. 문영 5년(1268)에는 몽골의 내습이 가까웠음을 보시고 열한 통의 서장으로 막부의 요인과 일곱 큰 절 등에 경고하시는 한편 공개 석상에서의 대론을 촉구하셨다.
문영 8년(1271) 9월 12일, 대성인은 붙잡혀 다쓰노구치(龍口)로 끌려가 참수될 뻔하셨으나 그 위기를 벗어나 사도로 유배되셨다. 문영 11년 사면될 때까지 섬에 계신 2년 5개월 동안 「개목초」를 지어 인본존(人本尊)을 개현하시고, 「관심의 본존초」에서 법본존(法本尊)을 개현하셨다. 사도에서 돌아오신 대성인은 문영 11년 4월 가마쿠라에서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세 번째 국주간효를 하셨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자, 5월 12일 가마쿠라를 떠나 미노부로 드셨다. 그리고 입산 2년 뒤인 건치 2년(1276)에는 옛 스승 도젠보(道善房)의 죽음을 들으시고 「보은초」를 지어 세이초사(清澄寺)로 보내셨다. 선시초는 바로 이 두 해 사이, 국주간효의 세 번째가 끝나고 몽골의 첫 침공이 지나간 직후에 놓인다.
사도 이전과 사도 이후
사도 유배를 경계로 대성인의 법문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은 대성인 자신의 말씀으로 확인할 수 있다. 「미사와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法門の事はさどの国へながされ候いし已前の法門は・ただ仏の爾前の経とをぼしめせ
법문의 일은, 사도국으로 유배되기 이전의 법문은 다만 부처님의 이전(爾前)의 경이라고 생각하시라.
「개목초」에서는 다쓰노구치의 일을 이렇게 회고하셨다.
日蓮といゐし者は去年九月十二日子丑の時に頚はねられぬ、此れは魂魄・佐土の国にいたりて返年の二月・雪中にしるして
니치렌이라 하던 자는 지난해 9월 12일 자시 · 축시에 목이 베였느니라. 이는 혼백이 사도국에 이르러 이듬해 2월 눈 속에서 적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두 글은 사도 이후에 대성인이야말로 말법의 어본불로서 삼대비법의 대어본존을 세우시고 말법 만년, 나아가 미래 영겁에 걸쳐 민중을 구하실 것을 밝히셨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오중상대(五重相対)와 오중삼단(五重三段)을 세워 「개목초」에서는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189쪽), 곧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文)의 밑바닥에 잠겨 있다고 판하시고, 「관심의 본존초」에서는 「彼は脱此れは種なり」(249쪽), 곧 저것은 탈(脱)이고 이것은 종(種)이라고 판하셨다. 문상(文上)의 법화경과 문저(文底)의 남묘호렌게쿄, 석존의 탈익(脱益)과 대성인의 하종(下種)이 이렇게 구별된다.
진언 비판의 심화 — 선시초와 보은초
권실상대의 단계에서는 이전 권경(爾前権経)에 의거한 염불과 선의 논파가 중심이 된다. 그런데 진언종은 사정이 달랐다.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당시의 진언은 히에이산의 천태법화종과 한 몸이 된 듯한 모습이었고, 겉으로는 천태종을 표방하면서 속으로는 진언의 그릇된 법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 이후의 대성인은 특히 진언을 논파하시고, 나아가 진언으로 기울어 버린 천태종의 그릇된 뜻을 파하셨다. 선시초와 보은초는 이 문제를 철저히 규명한 두 편이다.
선시초는 진언을 두고 염불 · 선이라는 앞의 두 재앙과는 견줄 수도 없는 큰 그릇된 견해라고 말한다.
真言宗と申すは上の二のわざはひにはにるべくもなき大僻見なり
진언종이라 하는 것은 위의 두 재앙과는 견줄 수도 없는 큰 그릇된 견해이니라.
그리고 제30장에서는 전교대사가 남도의 학장들을 「육충(六虫)」이라 부른 예를 들어, 진언 · 선 · 정토의 원조를 「삼충(三虫)」이라 이름 짓고, 천태종 안에서 법화경과 전교대사를 무너뜨린 자각 · 안연 · 혜심을 「사자 몸속의 세 벌레」라고 단언하신다.
伝教大師は三論・法相・華厳等の日本の碩徳等を六虫とかかせ給へり、日蓮は真言・禅宗・浄土等の元祖を三虫となづく、又天台宗の慈覚・安然・慧心等は法華経・伝教大師の師子の身の中の三虫なり
전교대사는 삼론 · 법상 · 화엄 등 일본의 큰 학승들을 육충이라 쓰셨느니라. 니치렌은 진언 · 선종 · 정토 등의 원조를 삼충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천태종의 자각 · 안연 · 혜심 등은 법화경과 전교대사라는 사자의 몸속에 있는 세 벌레이니라.
「사자 몸속의 벌레」는 『연화면경』의 비유로, 사자는 다른 짐승에게 먹히지 않고 제 몸에서 생긴 벌레에게 먹힌다는 뜻이다. 불법을 무너뜨리는 것은 밖의 박해자가 아니라 안의 그릇된 스승이라는 이 통찰이 선시초 진언 비판의 축을 이룬다. 그 자세한 논의는 선시초 제4편 「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에서 다룬다.
말법의 시를 가려 취하신 뜻
이러한 논파를 거친 위에서 선시초는 「별하여(別して) 말법의 시를 가려 취함」을 밝힌다. 니치칸 상인은 그 까닭이 두 가지라고 말한다. 하나는 말법에 반드시 문저에 잠긴 대법(文底秘沈の大法)이 광선유포해야 함을 밝히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말법에는 니치렌 대성인을 하종의 본존으로 삼아야 함을 밝히기 위해서다. 이 두 뜻은 「이 · 선시초의 대의」에서 자세히 논한다.
선시초 제18장에는 이 글의 핵심이 되는 물음이 놓여 있다.
天台・伝教のいまだ弘通しましまさぬ最大の深密の正法経文の面に現前なり、此の深法・今末法の始五五百歳に一閻浮提に広宣流布すべきやの
천태 · 전교께서도 아직 홍통하지 않으신 가장 크고 깊고 은밀한 정법이 경문의 표면에 뚜렷이 드러나 있느니라. 이 깊은 법이 지금 말법의 처음 오오백세에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할 것인지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여기의 「가장 크고 깊고 은밀한 정법(最大の深密の正法)」을 바로 삼대비법으로 본다. 선시초에서는 아직 그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셨으나, 이듬해의 「보은초」에서는 본존 · 계단 · 제목이라는 삼대비법의 이름을 분명히 밝히셨다. 선시초는 그 직전, 「이 깊은 법」이 말법에 일염부제로 퍼져 나갈 필연을 정상말 삼시의 불교사 전체를 통해 논증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선시초가 정 · 상 · 말 삼시에 걸친 인도 · 중국 · 일본 삼국의 불교 유포를 논하면서도, 그 원의 곧 대성인의 내증(内証)은 말법의 광선유포에 있고, 나아가 미래의 세계 광포를 예언하신 데 있다. 그 대표적인 本文이 제5장의 다음 구절이다.
前代未聞の大闘諍・一閻浮提に起るべし其の時・日月所照の四天下の一切衆生、或は国ををしみ或は身ををしむゆへに一切の仏菩薩にいのりをかくともしるしなくば彼のにくみつる一の小僧を信じて無量の大僧等八万の大王等、一切の万民・皆頭を地につけ掌を合せて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となうべし
전대미문의 대투쟁이 일염부제에 일어나리라. 그때 해와 달이 비추는 사천하의 일체중생이 혹은 나라를 아끼고 혹은 몸을 아끼는 까닭에 일체의 불보살에게 기도를 걸어도 효험이 없으면, 저 미워하던 한 소승(小僧)을 믿고 무수한 대승(大僧)들과 팔만의 대왕들과 일체의 만민이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합장하여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게 되리라.
이 구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삼 · 선시초의 원의」에서 대성인 당시의 몽골 내습 · 자계반역난이라는 역사와, 투쟁견고 · 백법은몰 · 「후오백세 광선유포」라는 경문의 원리에 비추어 살핀다.
「시를 가리는 글」 — 제호의 뜻
「선시초(撰時抄)」는 글자 그대로 「시(時)를 가리는 글」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시」는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물리적 시간, 곧 흘러가는 시각이나 연대가 아니다. 이 「시」는 중생의 기근(機根)과 부처가 서로 응하는 때, 곧 「기감상응(機感相応)의 시」다.
중생의 기근이란 그 시대 중생 전체가 어떤 가르침으로 득도할 수 있는가 하는 성분을 말한다. 불교와 인연이 있는가 없는가, 대승과 인연이 깊은가 소승과 인연이 깊은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중생에게 이러한 기(機)가 있어 부처의 출현을 느끼고(感), 부처는 그 기를 받아 응한다(応). 그래서 이를 감응(感応)이라 한다. 『어의구전』은 이 관계를 인(因)과 연(縁)으로 풀이한다.
衆生に此の機有つて仏を感ず故に名けて因と為す、仏機を承けて而も応ず故に名けて縁となす
중생에게 이 기가 있어 부처를 느끼므로 이름하여 인이라 하고, 부처가 기를 받아 응하므로 이름하여 연이라 하느니라.
경전이 시작될 때 반드시 「때」가 먼저 언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화경 서품 제1은 「一時、仏、王舎城耆闍崛山の中に住したまい」, 곧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 머무르시어」로 시작하는데, 모든 경전의 첫머리가 이와 같다. 방편품 제2는 「未だ曾て説かざる所以は、説時未だ至らざる故なり、今正しく是れ其の時なり、決定して大乗を説く」라고 하여, 지금까지 설하지 않은 까닭은 설할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제 바로 그때가 되었으므로 결정코 대승을 설한다고 선언한다. 법화경을 설할 「때」가 왔는가 오지 않았는가를 보인 말씀이다.
『어의구전』은 또 「霊山一会儼然未散の文なり、時とは感応末法の時なり」(757쪽)라고 하여, 영산의 한 모임이 엄연히 아직 흩어지지 않았다는 경문의 「시」를 감응하는 말법의 시로 읽으신다. 「삼대비법품승사」의 「時を待つ可きのみ」(1022쪽), 곧 「때를 기다려야 할 뿐」이라는 말씀도 모두 기감상응의 시를 가리킨다.
여기서 이전경(爾前経)과 법화경의 차이는 기와 시의 관계로 정리할 수 있다. 이전경은 기에 응하여 갖가지로 설법하므로 기가 주체가 된다. 이에 비해 법화경은 설해야 할 때가 오면 상대가 믿든 믿지 않든 굳이 설하므로 시가 주체가 된다. 선시초는 정법 · 상법 · 말법 각 시대를 통해 기감상응의 정법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이고, 결론으로 말법에는 반드시 수량품 문저에 잠긴 삼대비법이 광선유포해야 하며 그 삼대비법의 교주인 말법의 어본불이 니치렌 대성인이심을 밝힌다.
선시초의 「시」는 시각이 아니라 기감상응의 시다. 이전경은 기가 주체, 법화경은 시가 주체이며, 말법이라는 시는 문저의 삼대비법이 유포할 때다.
니치칸 상인의 「선시초 문단」 — 제호의 통별 세 뜻
제호의 해석은 니치칸 상인의 「선시초 문단(撰時抄文段)」을 따른다. 니치칸 상인은 먼저 이 제호에 통(通)과 별(別)이 있고, 그 통별에 다시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첫째, 「선시(撰時)」 두 글자는 별이요 「초(抄)」 한 글자는 통이다. 「선시」는 특별히 이 글에만 붙인 이름이고, 「초」는 모든 어서에 두루 통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둘째, 「선(撰)」 한 글자는 통이요 「시(時)」 한 글자는 별이다. 「가린다」는 일은 종교의 오개(五箇), 곧 오의(五義) 모두에 통하기 때문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를 다섯으로 나누어 보인다. 권교와 적문을 가려 버리고 본문을 가려 취하는 것은 교(教)를 아는 일이다. 권적의 기를 가려 버리고 본문의 직기(直機)를 가려 취하는 것은 기(機)를 아는 일이다. 권적의 시를 가려 버리고 본문의 시를 가려 취하는 것은 시(時)를 아는 일이다. 권적이 유포하는 나라를 가려 버리고 본문이 유포할 나라를 가려 취하는 것은 국(国)을 아는 일이다. 앞 시대에 유포한 권적을 가려 버리고 말법에 맞는 본문을 가려 취하는 것은 교법 유포의 선후, 곧 서(序)를 아는 일이다. 「선」 한 글자는 이처럼 다섯에 두루 통하므로 통이라 하고, 「시」 한 글자는 그 가운데 특별히 셋째에 해당하므로 별이라 한다.
셋째, 문(文)으로는 통하고 뜻(意)으로는 별이라는 구분이다. 글자로 보면 「선」은 가려 버림(撰捨)과 가려 취함(撰取)에 두루 통하고 「시」는 정 · 상 · 말에 두루 통하므로 문통(文通)이라 한다. 그러나 뜻으로 보면 「선」은 오직 가려 취함이요 「시」는 오직 말법이다. 그러므로 이 글의 본의는 별하여 말법의 시를 가려 취하는 데 있으며, 그래서 「선시초」라 이름한다.
별하여 말법의 시를 가려 취하는 두 뜻
그러면 「별하여 말법의 시를 가려 취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니치칸 상인은 여기에 다시 두 뜻이 있다고 답한다. 하나는 말법에는 반드시 문저에 잠긴 대법이 광선유포한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지금 말법에는 마땅히 니치렌 대성인을 하종의 본존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뜻 — 문저 비침의 대법이 광선유포한다
선시초에는 말법 광선유포를 말하는 글이 많지만, 니치칸 상인은 그 가운데 세 글을 들어 증명한다. 첫째는 제4장의 결론이다.
彼の大集経の白法隠没の時は第五の五百歳当世なる事は疑ひなし、但し彼の白法隠没の次には法華経の肝心たる南無妙法蓮華経の大白法の一閻浮提の内・八万の国あり其の国国に八万の王あり王王ごとに臣下並びに万民までも今日本国に弥陀称名を四衆の口口に唱うるがごとく広宣流布せさせ給うべきなり
저 대집경의 백법은몰의 때가 제5의 오백세인 지금 세상임은 의심할 바 없느니라. 다만 저 백법은몰의 다음에는 법화경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라는 대백법이, 일염부제 안에 팔만의 나라가 있고 그 나라마다 팔만의 왕이 있는데, 왕마다 신하와 만민에 이르기까지, 지금 일본국에서 아미타불의 이름을 사중(四衆)이 입마다 부르듯이 광선유포하게 되리라.
니치칸 상인은 이 글이 겉의 글(附文)로 보면 권실상대여서 다만 「법화경」이라고만 했으나, 원의(元意)로 보면 문저 깊이 숨은 대법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뜻은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라는 대백법」의 광선유포이며, 여기서 「간심(肝心)」이란 곧 문저의 뜻이다.
둘째는 제29장의 글이다.
上行菩薩の大地より出現し給いたりしをば弥勒菩薩・文殊師利菩薩・観世音菩薩・薬王菩薩等の四十一品の無明を断ぜし人人も元品の無明を断ぜざれば愚人といはれて寿量品の南無妙法蓮華経の末法に流布せんずるゆへに、此の菩薩を召し出されたるとはしらざりしという事なり
상행보살이 대지에서 출현하신 것을, 미륵보살 · 문수사리보살 · 관세음보살 · 약왕보살 등 사십일품의 무명을 끊은 사람들도 원품(元品)의 무명을 끊지 못했으므로 어리석은 사람이라 불리어, 수량품의 남묘호렌게쿄가 말법에 유포할 것이기에 이 보살을 불러내셨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일이니라.
이 글은 겉의 글로 보면 본적상대(本迹相対)여서 다만 「수량품」이라 했다. 그러나 원의로 보면 역시 문저 깊이 숨은 대법이니, 실은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가 말법에 유포한다」는 뜻이다.
셋째는 「저술」에서도 본 제18장의 글이다. 「불멸 후에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 내지 천태 · 전교가 아직 홍통하지 않으신 최대의 심밀(深密)의 정법이 경문의 표면에 현전(現前)하느니라. 이 깊은 법이 지금 말법의 처음 다섯째 오백 년에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할 것인가…」(仏滅後に迦葉・阿難・馬鳴・竜樹・無著・天親・乃至天台・伝教のいまだ弘通しましまさぬ最大の深密の正法経文の面に現前なり、此の深法・今末法の始五五百歳に一閻浮提に広宣流布すべき, 272쪽). 니치칸 상인은 이 글을 종탈상대(種脱相対)로 본다. 천태가 아직 펴지 않은 가장 깊은 대법이란 수량품 문저의 대법이다. 이 글 역시 말이 줄어 있으니, 그 뜻은 「본문 수량품의 문저에 있는 가장 크고 깊은 대법」이다.
이처럼 세 글은 각각 권실 · 본적 · 종탈의 단계에서 말하고 있으나, 원의로 보면 모두 한 곳을 가리킨다. 니치칸 상인은 묘락대사의 「もし文に随って解を生せば、すなわち前後雑乱す。もし文の大旨を得れば、すなわち元由に暗からず」, 곧 「글을 따라 풀이하면 앞뒤가 뒤섞이고, 글의 큰 뜻을 얻으면 근원에 어둡지 않다」는 말을 들어, 이 큰 뜻을 얻고 보면 세 글은 「법화경 본문 수량품 문저의 가장 크고 깊은 대법이 후오백세에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한다」는 한 뜻이라고 결론짓는다.
- 제4장(258쪽)「법화경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 광선유포하리라」(法華経の肝心たる南無妙法蓮華経の大白法)겉의 글:권실상대, 다만 「법화경」원의:본문 수량품의 간심(=문저)인 남묘호렌게쿄
- 제29장(284쪽)「수량품의 남묘호렌게쿄가 말법에 유포할 것이기에」(寿量品の南無妙法蓮華経の末法に流布せんずるゆへに)겉의 글:본적상대, 다만 「수량품」원의:본문 수량품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
- 제18장(272쪽)「천태 · 전교도 아직 홍통하지 않으신 가장 크고 깊고 은밀한 정법」(最大の深密の正法)겉의 글:종탈상대원의:수량품 문저의 가장 깊은 대법
그러면 문저 깊이 숨은 이 대법의 체(体)는 무엇인가. 니치칸 상인은 그것이 천태가 아직 펴지 않은 대법이며, 삼대비법 가운데 으뜸인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이라고 답한다. 「현불미래기」의 「本門の本尊・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堤に広宣流布せしめんか」(507쪽), 곧 「본문의 본존인 묘법연화경의 다섯 글자로 염부제에 광선유포하게 하리라」는 말씀처럼, 이 본존이 광선유포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뜻 — 니치렌 대성인을 하종의 본존으로 삼는다
둘째 뜻을 보이는 글로 니치칸 상인은 제14장의 다음 구절을 든다.
法華経をひろむる者は日本国の一切衆生の父母なり章安大師云く「彼が為に悪を除くは即ち是れ彼が親なり」等云云、されば日蓮は当帝の父母、念仏者・禅衆・真言師等が師範なり又主君なり
법화경을 넓히는 자는 일본국 일체중생의 부모이니라. 장안대사가 「그를 위하여 악을 없애는 것은 곧 그의 어버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니치렌은 지금 천자의 부모이며, 염불자 · 선승 · 진언사들의 사범이요 또 주군이니라.
여기의 「법화경」은 글의 법화경이 아니라 뜻의 법화경, 곧 본문의 본존인 묘법연화경의 다섯 글자이며, 이것이 성불의 종자다. 대성인은 이 종자인 묘법 오자를 넓혀 일본국 일체중생의 마음 밭에 씨앗을 심으신다. 그러므로 「부모」라 하신 것이고, 그래서 니치렌 대성인을 하종의 본존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것이 이 글의 원의이며 「개목초」 처음과 끝의 뜻과 같다고 말한다. 「개목초」가 주사친(主師親) 삼덕으로 시작하여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諸人)에게 주사부모」라는 선언으로 맺어지는 것처럼, 선시초 역시 시를 논하는 형식을 빌려 말법의 주사친을 밝힌다는 것이다.
「석자 니치렌 술함」 — 서명에 담긴 뜻
선시초 첫머리의 서명은 「釈子日蓮述ぶ」, 곧 「석자 니치렌이 서술한다」이다. 니치칸 상인은 「선시초 문단」에서 이 서명의 뜻을 풀이한다.
먼저 석자(釈子), 곧 석존의 아들이라는 말에는 네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는 몸은 석자를 닮았으나 마음은 석자가 아닌 경우로, 선 · 염불 · 진언 등의 출가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몸도 마음도 석자가 아닌 경우로, 그들 종파의 재가 신자를 든다. 셋째는 몸과 마음이 모두 석자인 경우로, 니치렌 대성인과 닛코 상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넷째는 몸은 출가한 석자가 아니지만 마음은 석자인 경우로, 오늘날 대성인의 법을 지니고 넓히는 재가의 사람들을 여기에 둘 수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몸과 마음이 모두 석자이신 분이 대성인이므로 「석자 니치렌 술함」이라 서명하셨다. 그 뜻은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첫째, 대성인은 본화(本化)의 재탄이시기 때문이다. 법화경 종지용출품 제15에 지용의 보살을 두고 「此等は是れ我が子なり是の世界に依止せり」, 곧 「이들은 나의 아들이며 이 세계에 의지해 머문다」고 하였고, 묘락대사는 「子、父の法を弘む。世界の益あり」, 곧 「아들이 아버지의 법을 넓히니 세계에 이익이 있다」고 풀이하였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문자 그대로 참된 석자이시다. 대성인과 닛코 상인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어 오로지 본문 수량품의 간심을 수행하는 이들도 모두 본화이며, 「이들은 나의 아들이다」라는 경문에 해당하여 참된 석자가 된다.
둘째, 대성인은 법의 사정(邪正)을 바로잡으시기 때문이다. 장안대사의 『열반경소』 권3에 「仏法を壊乱するは仏法中の怨なり、能く糺治する者は是れ護法の声聞、真の我が弟子なり」, 곧 「불법을 어지럽히는 자는 불법 가운데의 원수요, 이를 잘 바로잡아 다스리는 자는 법을 지키는 성문이며 참된 나의 제자다」라고 하였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선종의 교외별전(教外別伝), 염불종의 사폐각포(捨閉閣抛), 진언종의 「제삼 희론(第三戯論)」은 모두 불법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불법 가운데의 원수」라는 꾸짖음을 면할 수 없으니 석자라 이름할 수 없다. 이에 비해 대성인은 가로로는 권실의 깊은 뜻을 다하시고 세로로는 본적의 밑바닥을 다하셨으니 바로 「잘 바로잡아 다스리는 자」이며, 따라서 「참된 나의 제자」, 참된 석자이시다. 대성인과 닛코 상인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어 조금의 사견(己義)도 섞지 않는 행자 역시 참된 제자이자 석자다. 또 소(疏)에서 말하는 「성문」은 소승의 성문이 아니라 「불도의 소리를 일체에게 들려준다」는 뜻의 대승의 성문, 곧 대보살이다.
셋째, 대성인은 비방하는 자를 꾸짖으시기 때문이다. 『열반경』 권3에 「若し善比丘あつて法を壊らん者を見て置いて呵責し駈遣し挙処せずんば当に知るべし是の人は仏法の中の怨なり、若し能く駈遣し呵責し挙処せば是れ我が弟子真の声聞なり」, 곧 「만일 선한 비구가 법을 무너뜨리는 자를 보고도 내버려 두어 꾸짖고 쫓아내고 그 죄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불법 가운데의 원수임을 알라. 만일 능히 쫓아내고 꾸짖고 드러낸다면 이는 나의 제자요 참된 성문이다」라고 하였다. 법을 무너뜨리는 자를 보고도 꾸짖지 않으면 스스로 불법 가운데의 원수가 된다. 반역하는 자를 보고도 책하지 않으면 자신도 반역자가 되는 것과 같다. 오직 대성인만이 여래의 칙명을 받들어 신명을 아끼지 않고 날마다 밤마다 비방을 꾸짖으시고 달마다 해마다 이를 물리치셨으니, 이것이 참된 성문이요 참된 석자다. 대성인의 문류에 속한 행자라 해도 비방을 꾸짖지 않으면 「불법 가운데의 원수」라는 꾸짖음을 면할 수 없다. 신명을 아끼고 무상도를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경계가 여기에 담겨 있다.
넷째, 대성인은 이 경을 능히 독송하시기 때문이다. 법화경 견보탑품 제11에 「能く来世に於いて、此の経を読み持たんは、是れ真の仏子、淳善の地に住するなり」, 곧 「내세에 이 경을 능히 읽고 지니는 이는 참된 불자이며 순선(淳善)의 땅에 머문다」고 하였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내세」를 말법으로, 「읽고 지님」을 본문의 제목으로 읽는다. 「읽음(読)」은 수행이요 「지님(持)」은 신심이니, 믿기에 지니고 믿지 않으면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이란 말법에서는 곧 본문의 본존인 묘법연화경의 다섯 글자이며, 이는 광 · 약 · 요(広略要) 가운데 요의 법화경, 문 · 의 · 의(文義意) 가운데 뜻의 법화경, 종 · 숙 · 탈 가운데 하종의 법화경이다. 그러므로 말법에 본문의 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사람이 참된 석자이며 「참된 불자」다. 「순선의 땅에 머문다」는 본문의 계단을 가리킨다. 계(戒)란 그릇됨을 막고 악을 그치게 한다는 뜻인데, 「순(淳)」은 소박함이니 그릇됨을 막으므로 순이요, 악을 그치게 하므로 선(善)이다. 그래서 계단의 땅을 가리켜 순선의 땅이라 한다. 본문의 본존을 스스로 믿고 행하며 남에게도 믿고 행하게 하는 이는 참된 석자로서 본문 계단의 땅에 머무는 것이며, 대성인의 참된 제자 · 단나가 참된 불자이자 석자다.
다섯째, 대성인은 본인묘(本因妙)의 석자이시기 때문이다. 이는 대성인 내증의 깊은 뜻이다. 「석(釈)」은 석존이고 「자(子)」는 인(因)의 뜻이니, 「석자」는 석존의 본인(本因), 곧 구원 명자(名字)의 석존이 수행하신 본인의 자리를 가리키며, 그것이 니치렌 대성인이시다. 구원 명자의 석존께서 몸소 하신 수행을 말법의 지금 대성인의 몸에 옮기므로 믿음과 수행이 완전히 같아진다. 그래서 「석자 니치렌」이라 하신다는 것이다.
「니치렌」이라는 이름
이어 「니치렌(日蓮)」의 「日」 자에도 깊은 뜻이 있다. 석존의 어릴 적 이름은 일종태자(日種太子)이고, 대성인의 어릴 적 이름은 젠니치마로(善日麿)였다. 석존이 부처의 과위에서 불린 이름은 혜일대성존(慧日大聖尊)이고, 대성인의 이름은 니치렌 대성인이다. 나라는 일본국이다. 이처럼 저절로 붙은 이름들이 불가사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선시초 제27장에서도 대성인은 마야부인이 해를 품는 꿈을 꾸고 실달태자를 낳았으므로 「仏のわらわなをば日種という」, 곧 「부처의 어릴 적 이름을 일종이라 한다」고 하시고, 「일본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천조태신의 해에서 왔음을 들어 자각대사의 「해를 쏘는 꿈」을 파하셨다. 「日」은 선시초 안에서도 부처와 나라를 잇는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면 누가 「니치렌」이라는 이름을 세웠는가. 대성인 재세의 일로 말하면 스스로 니치렌이라 부르셨으나, 그 근본을 찾으면 석존의 칙호(勅号)라 할 만하며, 경문에도 그 근거가 있다고 풀이된다.
선시초의 대의 — 시를 그르치면 모든 것이 헛되다
선시초는 먼저 시(時)가 무엇보다 요긴함을 밝힌다. 종교의 오개는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시를 그르치면 나머지 넷을 아무리 논해도 소용이 없다. 니치칸 상인이 「若し時の一字を離れては、これを論ずること能わらざる故なり」, 곧 「만일 시라는 한 글자를 떠나서는 이것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 그대로다.
석존 재세의 경우를 보면, 이전(爾前) 42년 동안은 중생의 기근에 응하여 돈(頓) · 점(漸) · 비밀(秘密) · 부정(不定)의 화의(化儀), 장(蔵) · 통(通) · 별(別) · 원(円)의 화법(化法)으로 갖가지 설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마지막 8년의 법화경에서는 「지금이 바로 그때」(今正しく是れ其の時)라 하여 부처의 뜻을 그대로 설하는 수자의(随自意)의 법화경을 설하셨다. 만일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법화경을 설했다면 중생은 오히려 비방하여 악도에 떨어졌을 것이다. 반대로 법화경을 설할 때가 왔는데도 여전히 아함이나 방등을 설하고 있었다면 출세의 본회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선시초는 이 원리를 부처 멸후로 넓혀, 정 · 상 · 말에 걸쳐 인도 · 중국 · 일본 삼국의 홍교를 밝히고 각 시대 각 나라에서 기감상응한 정법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인다. 선시초가 그려 보이는 삼시 · 삼국 불교의 모습은, 그 시대에 맞는 정법이 퍼졌을 때에는 나라가 평화롭고 민중이 행복을 누렸으나, 불교를 믿더라도 시대에 맞지 않는 가르침이었을 때에는 나라가 쇠망하고 민중이 고뇌의 밑바닥에 가라앉았다는 사실의 모습이며, 이는 석존이 예언하고 경전에 분명히 보인 그대로다.
인도에서는 정법의 처음 오백 년에 가섭 · 아난 등이 소승교를 유포했고, 정법의 뒤 오백 년에는 용수 · 천친 등이 나와 권대승경을 넓혔다. 불멸 1015년에 불교는 중국에 전해졌고, 상법의 중기에는 천태대사가 중국에서 법화경의 적문을 광선유포했으며, 상법의 끝에는 전교대사가 같은 법화경 적문을 일본에 광선유포했다. 이것은 모두 부처의 예언이자 역사의 사실이 보여 주는 바다.
그런데 부처의 예언에 따르면 멸후 이천 년이 지나면 말법이 되어 백법은몰의 시대가 된다. 이때 상행보살이 세상에 나와 삼대비법을 광선유포하여 일체중생을 구한다는 것이다. 대성인이 출현하신 것은 불멸 2200여 년이었는데, 당시의 세상에는 염불종 · 선종이 퍼져 있었고 특히 진언종이 해독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서 대성인은 먼저 「입정안국론」 등에서 주로 염불을 파하시고, 이어 선 · 진언을 파하시며, 천태종마저 시가 지난 가르침으로 물리치시고, 천태의 적문에 대하여 독일본문(独一本門)의 삼대비법을 세우셨다.
선시초는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진언을 파한다. 중국에서는 선무외가 일행 아사리와 함께 이동사승(理同事勝)이라는 그릇된 뜻을 꾸민 일, 일본에서는 홍법이 「희론」이니 「무명의 변역」이니 하며 석존과 법화경을 비방한 일, 쇼카쿠보가 법화경의 부처들을 진언사에 견주면 「牛飼・履物取者にもたらぬ」, 곧 소몰이꾼이나 신발 시중꾼만도 못하다고 한 일, 그리고 무엇보다 히에이산 천태종 제3대 좌주인 자각이 몸은 천태 좌주로서 전교대사의 뒤를 이었으면서 마음은 진언의 그릇된 뜻에 떨어져 한 나라 비방의 원흉이 된 일을 들어 파하신다. 선시초 제25장의 「これよりも百千万億倍・信じがたき最大の悪事はんべり」(279쪽), 곧 「이보다도 백천만억 배나 믿기 어려운 가장 큰 악사가 있다」는 말씀이 그것이며, 「보은초」에서는 자각을 두고 이렇게 꾸짖으셨다.
蝙蝠鳥のごとし 鳥にもあらず・ねずみにもあらず梟鳥禽・破鏡獣のごとし、法華経の父を食らい持者の母をかめるなり日をいるとゆめに・みしこれなり
박쥐와 같으니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니며, 올빼미나 파경수(破鏡獣)와 같으니라. 법화경이라는 아버지를 잡아먹고 지니는 이라는 어머니를 문 것이니, 해를 쏘는 꿈을 꾼 것이 바로 이것이니라.
그리고 결론으로 선시초는, 말법에는 수량품 문저에 잠긴 삼대비법이 광선유포해야 하며 그 삼대비법의 본존이 곧 니치렌 대성인이심을 밝힌다. 이 결론을 담은 本文으로 다음 구절들을 들 수 있다.
- 「日蓮は当帝の父母・念仏者・禅衆・真言師等が師範なり又主君なり」(265쪽) — 니치렌은 지금 천황의 부모요, 염불자 · 선중(禅衆) · 진언사 등의 사범(師範)이요, 또한 주군이니라.
- 「日蓮は閻浮提第一の者としるべし」(283쪽) — 니치렌은 염부제 제일의 사람임을 알라.
- 「日蓮は日本第一の法華経の行者なる事あえて疑ひなし、これをもつてすいせよ漢土月支にも一閻浮提の内にも肩をならぶる者は有るべからず」(284쪽) — 니치렌이 일본 제일의 법화경 행자임은 결코 의심할 바 없다. 이로써 헤아려 보라, 한토 · 월지에도 일염부제 안에도 어깨를 나란히 할 자는 없으리라.
- 「此の国に智人あり国主此れをにくみてあだす」(285쪽) — 이 나라에 지인(智人)이 있는데 국주가 그를 미워하여 원수로 대한다.
- 「南無日蓮聖人ととなえんとすとも南無計りにてやあらん」(287쪽) — 「나무 니치렌 성인」이라 부르려 해도 「나무」뿐이 되지 않겠는가.
- 「日本第一の大人なり」(289쪽) — 일본 제일의 대인이다.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이 글들은 모두 삼대비법의 불법이 온 세계에 광선유포할 것과, 니치렌 대성인이 하종의 주사친이신 어본불이요 세계의 구세주이심을 선언한 것이다. 염부제 제일의 법화경 행자 · 지인 · 성인 · 대인이라는 이 계열의 선언은 선시초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 — 지인 · 성인 · 대인」에서 장마다 자세히 다룬다.
불교사의 여러 문제 — 역사 사실과 교의
선시초는 인도 · 중국 · 일본 삼국과 정 · 상 · 말 삼시에 걸쳐 불교사를 꿰뚫어 보면서, 말법에 삼대비법이 광선유포하고 대성인이 하종의 주사친으로서 이를 홍통하신다는 결론을 이끈다. 그런데 불교사를 다루다 보면 교의의 문제와는 별도로, 역사 사실로서 예부터 여러 설이 엇갈려 온 문제들이 있다. 선시초를 읽기 위한 준비로 이 문제들을 차례로 검토해 둔다. 불멸의 연대, 경전의 결집, 정상말 삼시의 기준과 연수, 그리고 대집경의 오오백세가 그것이다.
불멸의 연대
석존은 언제 태어나 언제 입멸하였는가. 그 연대에 대해서는 수십 가지 설이 있으며, 기원전 400~500년 무렵이라는 설부터 기원전 2400년이라는 설까지 그 차이가 이천 년 가까이 된다. 그 원인은 몇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석존 당시의 연대를 일일이 기록하는 습관이 없었고, 경전도 석존이 직접 붓을 든 것이 아니라 후세의 제자들이 입으로 전해 온 것을 결집한 것이어서 그 사이에 연대가 흐려졌다. 또 불교가 중앙아시아와 티베트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개조 석존이 먼 옛날의 존재라는 것이 불교에 권위를 더해 주었기 때문에 연대를 멀리 잡는 경향이 생겼을 것이다.
그 결과 인도 · 미얀마 · 스리랑카 · 티베트 등지에서 수십 가지 이설이 생겼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뒤에는 중국의 승려들이 경전을 구하러 인도로 여행하고 번역에 힘쓰면서 불멸 연대에 대해서도 각자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법현 · 법림 · 비장방 · 구마라집 · 현장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수 · 당의 불교 흥륭기 이후에는 천태대사도, 묘락대사도, 전교대사도, 니치렌 대성인도, 정토종의 개조들도 모두 법림이 『주서이기(周書異記)』를 근거로 정한 기원전 949년 입멸설을 따랐다. 그 뒤 서양인이 동양에 진출하고 특히 영국인이 인도 통치의 필요에서 고대 인도와 불교를 활발히 연구하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원정 시기나 아소카 대왕의 유적에서 역산한 연대가 발표되었다.
대표적인 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법현전』의 기원전 1087년설. 법현이 장안을 떠나 15년에 걸쳐 인도를 여행할 때 스리랑카섬에서 들은 이야기로, 1497년 전에 석존이 입멸했다고 적은 데서 나온다. 둘째, 『주서이기』의 기원전 949년설. 주나라 소왕 24년(기원전 1070) 4월 8일 탄생, 목왕 52년(기원전 949) 2월 15일 입멸이라 하며, 대성인이 인용하신 설이고 천태 · 전교, 정토종 등 중국 · 일본의 많은 종파가 따랐다. 셋째, 비장방이 『역대삼보기』에서 말한 기원전 609년설. 넷째, 『중성점기(衆聖点記)』의 기원전 485년설. 석존 멸후 해마다 우기의 안거를 마칠 때 점 하나씩을 더해 온 기록에서 나온 것으로, 중국의 옛 기록이지만 스리랑카의 전승에 근거한다. 『법현전』과 차이가 큰 까닭에 대해, 한 해에 우기가 두 번 있는 지방에서 안거를 두 번 하여 한 해를 두 해로 센 데서 생긴 차이일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다섯째, 서양 학자의 기원전 477~478년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침입 연대에서 아소카왕 즉위 연대를 추정하고, 스리랑카 전승의 「불멸 218년에 아소카왕 즉위」를 적용하여 기원전 480년 전후로 본 것이다. 여섯째, 서양 학자의 기원전 385~386년설. 인도 각지에서 발견된 아소카왕의 석주 · 마애 법칙(法勅)에 나오는 다섯 왕의 재위 연대에서 아소카왕 즉위를 기원전 270~271년으로 추정하고, 불멸에서 아소카왕 즉위까지를 인도 전승에 따라 116년으로 잡으면 기원전 385~386년이 된다.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는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되 그 뒤 연구로 아소카왕 즉위 연대가 조금 움직인 것을 반영하여 기원전 383년으로 보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서양 학자들 다수는 기원전 400~500년을 취하며, 소승 경전의 전기에도 기원전 500년 무렵으로 보는 것이 많다. 이렇게 세면 석존 입멸은 지금부터 약 2500년 전이 된다. 그러나 대성인이 쓰신 연대로 보면 석존 멸후는 이미 3000년이 된다. 현대 학자들은 『주서이기』의 설을 과학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대승불교 흥륭기에 각 종파가 모두 이를 썼으니 전혀 근거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석존의 탄생에 대해서도 차이가 있다. 「개목초」는 『주서이기』에 근거하여 「周の第四昭王の御宇二十四年甲寅・四月八日の夜中に天に五色の光気・南北に亘りて昼のごとし」(225쪽), 곧 주나라 제4대 소왕 24년 갑인년 4월 8일 밤중에 하늘에 오색의 빛이 남북으로 걸쳐 낮과 같았고,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했으며,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강과 우물물이 불어나고 모든 초목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으며, 놀란 소왕에게 태사 소유(蘇由)가 「서방에 성인이 태어났다」고 점쳐 아뢰었다고 적는다. 그런데 『불조통기』는 소왕 24년이 아니라 소왕 26년이 갑인년이라고 하며, 『어서초』 · 『어서주』 · 『계몽』 등 에도 시대의 어서 주석서도 간지로 미루어 26년이 옳다고 한다. 26년이라면 기원전 1027년 탄생, 기원전 947년 입멸이 된다. 출가와 성도에 대해서도 서양 학자 다수는 29세 출가, 35세 성도로 보지만, 이렇게 되면 『무량의경』의 「사십여 년 미현진실(四十余年未顕真実)」과 연수가 맞지 않는다. 대성인은 19세 출가, 30세 성도, 80세 입멸로 보셨다.
경전의 결집
석존 멸후의 큰 사업으로 경전의 결집이 있다. 이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엇갈리지만, 네 번의 결집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결집은 석존 입멸 직후, 마가다국 왕사성 남쪽의 필바라굴(畢婆羅窟)에서 아사세왕의 외호 아래 마하가섭이 주재하여 열렸다. 아난이 경장을, 우바리가 율장을, 가섭이 논장을 결집했다고 하며 이를 굴내결집(窟内結集)이라 한다.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은 굴 밖 서쪽에서 바사가(婆師迦)를 중심으로 경 · 율 · 논 · 잡집 · 범주의 오장을 결집했다고 하며 이를 굴외결집이라 한다. 『대지도론』은 제1결집에 천 명이 모였다고 하고 소승의 전승은 오백 명이라 한다. 「시조깅고전답서」는 아사세왕이 제바달다를 버리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몸의 병이 낫고 수명이 사십 년 늘어난 뒤 「千人の阿羅漢をあつめて一切経・ことには法華経を・かきをかせ給いき、今我等がたのむところの法華経は阿闍世王のあたへさせ給う御恩なり」(1149쪽), 곧 천 명의 아라한을 모아 일체경, 특히 법화경을 적어 두게 하셨으니 지금 우리가 의지하는 법화경은 아사세왕이 베풀어 준 은혜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왕사성 결집이라고도 한다.
제2결집은 불멸 100년 무렵 야사(耶舎陀) 아라한 등 700명이 비사리성 대림정사에서 행한 것으로, 율을 어기는 자들이 나타났기에 율장을 검토하고 그 잘못을 바로잡았다고 한다. 제3결집은 불멸 200년 무렵 아소카왕의 외호 아래 화자성(華子城)에서 목건련제수가 주재하고 천 명의 비구가 참여하여 행해졌다고 한다. 의식(衣食)을 위해 불문에 드는 외도가 생겨 가르침이 바르게 지켜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다만 마명 · 용수 등 대승 계통은 아소카왕이 불멸 100년에 나왔다고 한다. 제4결집은 불멸 400년 무렵 북인도까지 세력을 넓힌 카니시카왕의 외호로 가습미라(迦湿弥羅)에서 협존자가 주재하고 세우 · 마명 등을 포함한 소승 학자 오백, 대승 학자 오백, 거사 오백이 모여 12년에 걸쳐 삼장을 결집한 것으로, 이때부터 대승 경전이 더해졌다고 한다. 연대를 500년 무렵, 700년 무렵으로 보는 설도 있다.
결집의 연대 역시 불멸 연대처럼 확정되지 않은 것이 많지만, 불전의 결집이 많은 성승(聖僧)과 현왕(賢王)의 외호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 결집 과정에서 보수적인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가 갈라진 데서 대승이 생겨났다는 이른바 근본불교의 관점과 달리, 선시초에서 대성인이 말씀하시는 바에 따르면 소승과 대승은 어디까지나 해탈견고 · 선정견고라는 시에 따라 넓혀진 것이다.
불멸 연대와 결집의 횟수 · 장소 · 연대는 오늘날 불교학에서도 정설이 없다. 근대 학계의 불멸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5세기 전후와 기원전 4세기 전후의 두 계열로 나뉜다.
정상말 삼시
부처 멸후의 세 시기를 정법(正法) · 상법(像法) · 말법(末法)이라 한다. 정법은 가르침이 바르게 행해져 증과(証果)를 얻는 때다. 상법의 「상(像)」은 닮았다는 뜻으로, 시대가 점점 흐려져 정법에는 못 미치지만 아직 정법을 닮은 때다. 말법의 「말(末)」은 줄어들고 사라진다는 뜻으로, 부처의 가르침은 세상에 있어도 그 수행과 증과가 없는 때다.
정상말을 가르는 기준에는 이(理) · 교(教) · 행(行) · 과(果)로 나누는 방식과 교(教) · 행(行) · 증(証)으로 나누는 방식이 있다. 앞의 방식으로는 이 · 교 · 행 · 과를 모두 갖춘 때가 정법, 이 · 교 · 행만 있고 과가 없는 때가 상법, 이 · 교만 있고 행 · 과가 없는 때가 말법이다. 뒤의 방식으로는 교 · 행 · 증을 모두 갖춘 때가 정법, 교 · 행만 있고 증이 없는 때가 상법, 교만 있고 행 · 증이 없는 때가 말법이다. 「교행증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正法には教行証の三つ倶に兼備せり、像法には教行のみ有つて証無し、今末法に入りては教のみ有つて行証無く
정법에는 교 · 행 · 증 셋을 함께 갖추었고, 상법에는 교 · 행만 있고 증이 없으며, 지금 말법에 들어와서는 교만 있고 행 · 증이 없고
정상말의 연수에도 여러 설이 있다. 에도 시대의 학승 니치코(日好)의 『녹내부로(緑内扶老)』가 이를 매우 자세히 연구했는데, 대체로 다섯 설로 정리된다. 정법 천 년 · 상법 천 년, 정법 천 년 · 상법 오백 년, 정법 오백 년 · 상법 오백 년, 정법 오백 년 · 상법 천 년, 정법 사백 년 · 상법 천 년이 그것이다.
천태종에서는 남악대사의 「서원문」에 「正法世に住すること五百、像法世に住すること一千載、末法世に住すること一万年」, 곧 정법이 세상에 머물기 오백 년, 상법이 세상에 머물기 천 년, 말법이 세상에 머물기 만 년이라 하였다. 천태대사는 『법화문구』에서 「但当時大利益を獲るのみにあらず。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おわん」, 곧 다만 당시에 큰 이익을 얻을 뿐 아니라 후오백세에 멀리 묘한 도에 젖을 것이라 하였고, 묘락대사는 이를 받아 「しかるに五五百、且く一往に従う、末法の初め冥利なきにあらず、且く大教の流行すべき時に拠る、ゆえに五百という」, 곧 오오백세라 한 것은 잠시 일왕(一往)을 따른 것이며 말법의 처음에 명리(冥利)가 없는 것이 아니니, 잠시 대교가 유행할 때에 의거하여 오백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 두 글은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하여…」(後の五百歳中。広宣流布)와 마찬가지로 석존 멸후 이천 년이 지나 말법에 들어선 때의 광선유포를 예언한 것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이 경우 정법 · 상법은 각 천 년이 된다.
전교대사는 『수호국계장』에서 「正像稍過ぎおわって末法太だ近きにあり」, 곧 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고 하였고, 『말법등명기』에서는 자기 시대를 「像法最末の時なり」, 곧 상법의 맨 끝이라 하였다. 전교대사는 불멸 1800년에 해당하므로 상법의 끝이 된다. 이 글들도 모두 불멸 이천 년이 지나 말법에 든다는 것을 보인다.
『말법등명기』를 전교대사의 저술로 보는 것은 전통적인 견해이며, 근대 학계에는 후대의 가탁으로 보는 설이 있다.
대성인은 정법 천 년 · 상법 천 년 · 말법 만 년으로 세우셨다. 대성인의 출세는 불멸 2200년에 해당하므로 말법의 처음 오백 년에 출현하신 것이 된다. 「교기시국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仏の滅後の次の日より正法一千年は持戒の者は多く破戒の者は少し正法一千年の次の日より像法一千年は破戒の者は多く無戒の者は少し、像法一千年の次の日より末法一万年は破戒の者は少く無戒の者は多し
부처 멸후 다음 날부터 정법 천 년은 계를 지니는 자가 많고 계를 깨는 자는 적으며, 정법 천 년의 다음 날부터 상법 천 년은 계를 깨는 자가 많고 계가 없는 자는 적으며, 상법 천 년의 다음 날부터 말법 만 년은 계를 깨는 자는 적고 계가 없는 자가 많으니라.
같은 글에서 「当世は末法に入つて二百一十余年なり」(439쪽), 곧 지금 세상은 말법에 들어 이백십여 년이라 하셨다. 또 「소야입도전허어서」에서는 정상 이천여 년에는 아직 하종을 받은 자가 있어 재세 사십여 년과 같으므로 기근을 모르고서는 함부로 실경을 줄 수 없었으나, 「今は既に末法に入つて在世の結縁の者は漸漸に衰微して 権実の二機皆悉く尽きぬ彼の不軽菩薩末世に出現して毒鼓を撃たしむるの時なり」(1027쪽), 곧 지금은 이미 말법에 들어 재세에 인연을 맺은 자들이 점점 쇠하여 권 · 실의 두 기가 모두 다했으니, 저 불경보살이 말세에 출현하여 독고(毒鼓)를 치게 할 때라고 하셨다. 말법 만 년에 대해서는 「보은초」에 「日蓮が慈悲曠大ならば南無妙法蓮華経は万年の外・未来までもながるべし」(329쪽), 곧 니치렌의 자비가 넓고 크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 년 너머 미래까지도 흐를 것이라 하셨다. 일왕(一往)은 말법 만 년으로 구분하지만, 대성인의 내증으로는 미래 영원이라고 배례해야 한다.
- 『법현전』기원전 1087년
- 『주서이기』(법림)기원전 949년천태 · 묘락 · 전교 · 니치렌 대성인 · 정토종이 따름
- 비장방 『역대삼보기』기원전 609년
- 『중성점기』기원전 485년
- 서양 학자(1)기원전 477~478년알렉산드로스 원정과 스리랑카 전승
- 서양 학자(2)기원전 385~386년아소카왕 법칙과 인도 전승(116년), 나카무라 하지메는 기원전 383년
- 정 천 · 상 천
- 정 천 · 상 오백
- 정 오백 · 상 오백
- 정 오백 · 상 천
- 정 사백 · 상 천
대집경의 오오백세와 삼국 불교사
석존은 『대방등대집경』에서 멸후를 예언하여 오백 년씩 다섯으로 나누셨다. 첫째 오백 년은 해탈견고(解脱堅固), 둘째 오백 년은 선정견고(禅定堅固)로 정법 천 년에 해당한다. 셋째 오백 년은 독송다문견고(読誦多聞堅固), 넷째 오백 년은 다조탑사견고(多造塔寺堅固)로 상법 천 년에 해당한다. 다섯째 오백 년은 투쟁견고(闘諍堅固)로 말법의 처음이다. 선시초 제4장은 이 대목을 「나의 멸도 뒤 오백 년 가운데는 해탈견고, 다음 오백 년에는 선정견고」(我が滅度の後の五百歳の中には解脱堅固・次の五百年には禅定堅固)로 시작하여 「다음 오백 년에는 나의 법 가운데서 다투고 소송하여 백법이 숨어 사라지리라」(次の五百年には我法の中に於て闘諍言訟して白法隠没せん)로 끝맺어 인용하신다. 이 대집경의 예언과 인도 · 중국 · 일본 삼국의 불법 유포의 역사를 맞추어 보면 꼭 부합한다. 다섯 시기의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 보자.
정법 처음 오백 년, 해탈견고의 시대는 중생이 소승경을 닦고 계율을 지켜 해탈을 구한 때다. 정법 천 년 동안 부법장(付法蔵)의 24인이 법을 홍통했는데, 마하가섭에서 제10 부나사(富那奢)까지는 소승경을 넓혔다. 가섭 20년 · 아난 20년 · 상나화수 20년 · 우바국다 20년 · 제다가 20년, 처음 100년은 오로지 소승경만을 넓혔고, 그다음의 미차가 · 불타난제 · 불타밀다 · 협비구 · 부나사 등은 대승의 법문을 조금 섞었으나 대부분 소승을 겉으로 하여 홍통했다. 이 시기에 네 번의 결집이 있었고, 아사세왕 · 아소카왕 · 카니시카왕 등의 수호 아래 불법이 흥륭했다.
정법 뒤 오백 년, 선정견고의 시대는 권대승경이 넓혀져 중생이 대승을 닦으며 깊은 삼매에 들어 마음을 고요히 하고 사유하던 때다. 부법장 제11 마명에서 제24 사자존자에 이르기까지 대승을 넓혔는데, 특히 여러 소승을 파하고 대승을 선양한 논사로 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 등이 있다. 마명은 불멸 600년 무렵에 나와 『대승기신론』을 지었고, 불멸 700년 무렵의 용수는 『대지도론』 100권, 『중론』 4권, 『십이문론』 1권 등을 지었으며, 그 제자 제바도 『백론』 2권을 지었다. 불멸 900년 무렵에 나온 무착 · 천친 형제 가운데 무착은 『섭대승론』 3권, 『유가사지론』 100권 등을, 천친은 「천부(千部)의 논사」로 불리며 『섭대승론석』 · 『유식삼십론송』 등 소승 오백 부, 대승 오백 부를 지어 대승을 크게 선양했다.
상법 처음 오백 년, 독송다문견고의 시대에 먼저 특기할 것은 후한 명제 영평 10년(67)에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일이다. 이를 계기로 그 이름처럼 경전의 번역 · 강설 · 해석이 활발해졌다. 파르티아의 태자였던 안세고, 월지의 지루가참, 강승개 · 지겸 등이 번역에 종사했고, 돈황 출신의 축법호는 『정법화경』 등 154부 309권을 번역했다. 이렇게 일어난 번역 사업은 구마라집에 이르러 정점에 달하니, 구마라집은 그때까지의 오역 · 초역과는 견줄 수 없는 완전한 번역을 많이 남겼고 그 가운데 주옥 같은 명역이 『묘법연화경』이다. 구마라집 뒤에도 법현 · 불타발타라 · 담무참 · 현장 등이 나왔다. 이 시대의 끝 무렵 538년 형주에서 태어난 천태대사는 남악대사를 스승으로 삼아 법화의 깊은 뜻을 깨치고, 와관사에 8년 동안 머물며 『대지도론』 등을 강의했으며, 그 뒤 『법화문구』 · 『법화현의』 · 『마하지관』을 강술하여 이(理)의 일념삼천 법문을 세웠다. 독송다문견고는 이처럼 수많은 경전 번역과 천태대사의 출현으로 대표되며, 그 밖에 불도징 · 도안 · 구마라집 등에 의해 불교 강의가 크게 행해졌다.
상법 뒤 오백 년, 다조탑사견고의 시대에는 당나라에 들어 현장이 인도에서 경전을 가져와 한역했고, 이후 법상종 · 삼론종 · 화엄종 · 진언종이 중국 전역에 퍼지고 많은 절과 탑이 세워졌다. 이 시대는 겉모습은 정법 시대를 닮았으나 내용으로는 불법의 타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윽고 당나라가 쇠망하고 북송 시대에 들어서는 태종이 조칙을 내려 폐사를 수리하고 불상 조립을 허락하며 아소카 대왕의 조탑을 본떠 팔만사천 탑을 세웠다. 그러나 불법의 중심은 일본으로 옮겨 가, 이 시대의 특징은 오히려 일본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흠명 천황 13년(552), 곧 불멸 1500년 무렵 백제 성명왕의 사신이 경론 · 석가상 · 승니 등을 일본 조정에 바쳤다. 불교가 본격적으로 신봉된 것은 쇼토쿠 태자 때부터로, 태자는 『승만경』 · 『유마경』 · 『법화경』의 의소를 짓고 이 세 경을 나라를 지키는 법으로 정했으며, 삼보를 공경하는 것을 근본으로 한 17조 헌법을 제정했다. 이때부터 절과 불상을 짓는 일이 성해져 아스카데라와 태자가 세운 일곱 절, 곧 시텐노사 · 호류사 · 주구사 등이 이름났다. 나라 시대에 들어 쇼무 천황은 여러 지방에 국분사 · 국분니사를 세워 나라를 지키는 도량으로 삼고, 그 총본산으로 도다이사를 건립했다. 이 시대에 고생 끝에 일본에 온 감진은 소승의 계단을 세웠다. 헤이안의 간무 천황 대에는 전교대사가 남도 육종을 공개 대론에서 파하고, 그 사후 히에이산에 적문의 계단이 세워졌다(827).
히에이산 대승계단은 전교대사 입멸 직후인 홍인 13년(822)에 칙허되었고, 계단원은 몇 해 뒤 의진(義真) 때 세워졌다.
말법, 투쟁견고의 시대는 영승 7년(1052)에 시작된다고 여겨졌다. 석존 멸후 해가 갈수록 내용을 잃고 점점 형해화한 석존의 불법은 이 무렵부터 「闘諍言訟・白法隠没」, 곧 다투고 송사하며 백법이 숨어 사라지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섭관 정치가 쇠하고 무사가 대두하던 시대로, 불교도 퇴폐하여 천태종마저 자각 · 지증 때문에 비방의 산이 되었고, 히에이산의 승려는 승병이 되어 도다이사 · 고후쿠사의 승병과 서로 싸웠다. 귀족의 일기 『중우기(中右記)』는 장치 원년(1104) 조에서, 근래 히에이산의 승도가 서로 어지러워 동탑과 서탑의 승려가 전투를 벌이고 혹은 불을 놓아 승방을 태우고 혹은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으니, 「修学の砌、かえって合戦の庭となる」, 곧 배움의 자리가 오히려 싸움터가 되었다고 한탄했다.
이어 말법 처음 오백 년의 세상을 연표처럼 짚어 보면 이렇다. 강평 2년(1059)에는 방화가 잦아 여러 문을 경비했고, 영보 3년(1083)에는 동란의 세상을 상징하듯 후지산이 분화했으며, 보원 원년(1156)의 보원의 난, 평치 원년(1159)의 평치의 난은 천황가 안에서 같은 집안끼리 싸우는 모습이었다. 불교의 자비 정신으로 약 340년 동안 폐지되었던 사형도 부활했다. 이런 시대의 민중은 체념과 퇴폐의 기분에 차 있었고, 그 틈을 타 정토의 가르침이 퍼져 내세를 기약하며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이들까지 나왔다. 『영화물어』 · 『소우기』 · 『방장기』 등 당시의 문헌은 그 시대의 무상관을 전하는데, 『방장기』에는 교토의 3분의 1을 태운 치승 원년(1177)의 큰불, 치승 4년(1180)의 회오리바람, 양화 연간(1181~1182)의 전국적인 대기근과 홍수 등의 참상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영화를 누리던 헤이케는 서쪽 바다 끝에 가라앉았고, 승구 3년(1221) 승구의 난으로 세 상황이 유배되었으며, 그 뒤 반석 같던 호조 막부도 원홍 3년(1333)에 무너졌다. 이어 남북조의 대립, 응인 원년~문명 9년(1467~1477)의 응인의 난, 그리고 전국 시대로 이어지니, 말법 처음 오백 년은 대립과 반목, 노호와 살육이 가득한 시대였다. 특히 대성인이 출현하신 시대에는 천변지요가 잇따랐고, 세계적으로도 몽골의 침입으로 대륙의 여러 나라가 크게 무너졌다. 대성인의 불법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삼대비법이라는 대정법이 흥륭할 상서(瑞相)였다.
- 제1 오백세 해탈견고(解脱堅固)소승 · 가섭 · 아난 · 상나화수 · 우바국다 · 제다가 … 부나사, 네 번의 결집선시초 제7장
- 제2 오백세 선정견고(禅定堅固)권대승 · 마명 · 용수 · 제바 · 무착 · 천친 … 사자존자선시초 제8장
- 제3 오백세 독송다문견고(読誦多聞堅固)중국 전래(67) · 구마라집 · 남삼북칠 · 천태대사(법화경 적문)선시초 제9장
- 제4 오백세 다조탑사견고(多造塔寺堅固)현장 · 법상 · 화엄 · 진언, 일본 전래(552) · 육종 · 전교대사(적문의 계단)선시초 제10~12장
- 제5 오백세 투쟁견고(闘諍堅固) · 백법은몰(白法隠没)상행보살 · 문저의 남묘호렌게쿄, 몽골 내습선시초 제13장 이하
이상이 오오백세의 대요이며, 각 시대에 나타나 정법을 홍통한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선시초 本文이 자세히 논한다. 여기에 「관심의 본존초」의 사의(四依) 사류(四類)의 글을 아울러 참조하면 좋다.
四依に四類有り、小乗の四依は多分は正法の前の五百年に出現す、大乗の四依は多分は正法の後の五百年に出現す、三に迹門の四依は多分は像法一千年・少分は末法の初なり、四に本門の四依は地涌千界末法の始に必ず出現す可し今の遣使還告は地涌なり
사의에 네 부류가 있느니라. 소승의 사의는 대부분 정법의 앞 오백 년에 출현하고, 대승의 사의는 대부분 정법의 뒤 오백 년에 출현하며, 셋째로 적문의 사의는 대부분 상법 천 년, 적은 부분은 말법의 처음이니라. 넷째로 본문의 사의는 지용천계(地涌千界)이니 말법의 처음에 반드시 출현하리라. 지금의 「사자를 보내어 돌아와 알린다(遣使還告)」는 지용이니라.
소승의 사의는 해탈견고에, 대승의 사의는 선정견고에, 적문의 사의는 상법 천 년에, 본문의 사의인 지용의 보살은 말법의 처음에 나온다. 선시초가 그려 보이는 정상말 홍교의 역사는 이 사의 사류의 차례를 역사 속에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원의는 말법 광선유포의 예언에 있다
선시초는 불법이 시를 요체로 삼음을 밝히고, 석존 재세와 멸후 정 · 상 · 말 삼시를 차례로 논하지만, 별하여서는 말법의 시를 가려 취하는 데 뜻이 있다. 그리고 말법의 시를 가려 취하는 데에는 두 뜻이 있으니, 하나는 문저 비침의 대법이 광선유포함을 밝히는 것이요, 또 하나는 니치렌 대성인이 하종의 주사친이심을 밝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대의」에서 본 내용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선시초의 원의(元意), 곧 대성인의 내증은 말법 광선유포의 예언에 있다. 그러므로 선시초는 「세계 광포의 예언서」라 할 수 있다. 시를 논하는 글이 왜 예언서가 되는가. 선시초가 다루는 시는 과거의 정법 · 상법만이 아니라, 대성인이 지금 서 계신 말법의 처음과 그 뒤로 펼쳐질 말법 만 년, 나아가 미래 영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정상말 이천 년의 홍교사가 부처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는 논증은, 그다음 차례인 「후오백세 광선유포」 역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선시초 제13장의 「大地は反覆すとも高山は頽落すとも春の後に夏は来らずとも日は東へかへるとも月は地に落つるとも此の事は一定なるべし」(265쪽), 곧 「대지가 뒤집히고 높은 산이 무너지고 봄 뒤에 여름이 오지 않고 해가 동쪽으로 돌아가고 달이 땅에 떨어진다 해도 이 일은 반드시 그러하리라」는 말씀은 이 확신을 가장 강하게 표현한 대목이다.
이 예언이 내다보는 시간은 대성인 재세에 그치지 않는다. 「보은초」의 「남묘호렌게쿄는 만 년 너머 미래까지도 흐를 것이니라」(南無妙法蓮華経は万年の外・未来までもながるべし, 329쪽)가 보여 주듯, 말법 광선유포는 말법 만 년, 나아가 미래 영원에 걸친 일이다. 선시초를 예언서로 읽는다는 것은, 대성인이 정상말 이천 년의 홍교사를 근거로 그 미래를 확신하셨음을 읽는 일이다.
「말법의 지금의 백성」 — 시를 만난 복
선시초 제6장은 천태 · 묘락 · 전교가 말법을 그리워한 글들을 인용한 뒤, 말법에 태어난 사람의 복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正像二千年の大王よりも後世ををもはん人人は末法の今の民にてこそあるべけれ此を信ぜざらんや、彼の天台の座主よりも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る癩人とはなるべし、梁の武帝の願に云く「寧ろ提婆達多となて無間地獄には沈むとも欝頭羅弗とはならじ」と云云
후세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상 이천 년의 대왕이 되기보다 말법의 지금 백성이 되어야 하리니, 이를 믿지 않겠는가. 저 천태의 좌주가 되기보다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병든 몸이 되어야 하리라. 양나라 무제의 발원에 「차라리 제바달다가 되어 무간지옥에 잠길지언정 울두람불(欝頭羅弗)은 되지 않겠다」고 하였느니라.
천태 · 묘락 · 전교는 법화경이 유포하는 두 때, 곧 석존 재세의 8년과 말법의 처음 오백 년 사이에 태어나 어느 쪽에도 함께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말법의 처음을 그리워했다. 아사타 선인이 실달태자의 탄생을 보고 자신은 이미 늙어 태자의 성도를 보지 못하리라고 울었던 것과 같다. 그렇다면 그 말법의 처음에 태어난 사람은 정법 · 상법의 대왕보다, 천태종의 최고위인 좌주보다 더 큰 복을 가진 셈이다. 이 복은 신분이나 지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시에 맞는 법, 곧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데서 온다. 양 무제의 발원은, 정법을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진 제바달다라도 끝내 법화경에서 천왕여래의 수기를 받았으나, 외도의 선정에 머문 울두람불은 그 길조차 없다는 뜻이다. 바른 법과의 인연이 그릇된 법 안의 높은 경지보다 낫다는 것이다.
풀이의 「병든 몸」은 本文의 「癩人」을 옮긴 것이다. 本文의 말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던 병자를 가리키는 시대어로, 여기서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처지라도 말법에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몸이 낫다는 대비를 위해 쓰였다.
이 말씀에서는 말법에 광선유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받는 큰 복운을 읽을 수 있다. 시를 만난다는 것은 시대에 맞는 법을 만나는 것이며, 그 법을 넓히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인어난사」 — 부처의 말씀을 도운 단 한 사람
선시초의 예언이 대성인 자신의 확신 위에 서 있음은 「성인어난사」의 다음 말씀에서 볼 수 있다.
仏の大難には及ぶか勝れたるか其は知らず、竜樹・天親・天台・伝教は余に肩を並べがたし、日蓮末法に出でずば仏は大妄語の人・多宝・十方の諸仏は大虚妄の証明なり、仏滅後二千二百三十余年が間・一閻浮提の内に仏の御言を助けたる人・但日蓮一人なり、過去現在の末法の法華経の行者を軽賎する王臣万民始めは事なきやうにて終にほろびざるは候はず、日蓮又かくのごとし
부처님의 대난에 미치는지 넘어서는지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어려우니라. 니치렌이 말법에 나오지 않았다면 부처님은 큰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고, 다보 · 시방의 제불은 큰 허망을 증명한 것이 되느니라. 불멸 후 이천이백삼십여 년 동안 일염부제 안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도운 사람은 오직 니치렌 한 사람이니라. 과거와 현재에 말법의 법화경 행자를 업신여긴 왕 · 신하 · 만민은 처음에는 아무 일 없는 듯하나 끝내 망하지 않은 자가 없느니라. 니치렌 또한 이와 같으니라.
법화경은 말법에 이 경을 넓히는 자가 대난을 당할 것을 예언했다. 「猶多怨嫉況滅度後」, 곧 여래 재세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은데 하물며 멸도 후이겠는가라는 법사품의 말씀, 권지품의 삼류 강적, 상불경보살품의 장목와석이 그것이다. 이 예언대로 대난을 몸으로 받은 사람이 없다면 부처님의 말씀은 거짓이 되고, 다보불과 시방 분신의 제불이 「모두 진실이다」라고 증명한 것도 허망이 된다. 그러므로 대난을 받으신 대성인 한 사람의 존재가 부처의 말씀 전체를 참되게 한다. 선시초가 정상말 이천 년의 홍교를 낱낱이 검토한 끝에 「천태 · 전교도 아직 넓히지 않은 대법」과 그것을 넓히는 「염부제 제일의 법화경 행자」를 밝히는 것은, 바로 이 「부처의 말씀을 도운 단 한 사람」의 자각에서 나온 것이다.
「제법실상초」 — 지용의 뜻과 대지를 과녁으로
광선유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제법실상초」의 말씀이 그 길을 보인다.
日蓮一人はじめは南無妙法蓮華経と唱へしが、二人・三人・百人と次第に唱へつたふるなり、未来も又しかるべし、是あに地涌の義に非ずや、剰へ広宣流布の時は日本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唱へん事は大地を的とするなるべし
니치렌 한 사람이 처음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렀으나, 두 사람 · 세 사람 · 백 사람으로 차례로 불러 전하느니라. 미래도 또 그러하리니, 이것이 어찌 지용의 뜻이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광선유포의 때에는 일본이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를 것은 대지를 과녁으로 삼는 것과 같으니라.
한 사람에서 시작하여 두 사람, 세 사람, 백 사람으로 퍼져 가는 것, 이것이 대지에서 솟아 나온 보살, 곧 지용의 뜻이다. 광선유포는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지에서 솟아나듯 민중 하나하나가 차례로 법을 불러 전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지를 과녁으로 삼는 것」처럼 빗나갈 수 없는 확실한 일이라고 하신다. 선시초 제32장의 「衆流あつまりて大海となる微塵つもりて須弥山となれり」(288쪽), 곧 「뭇 물줄기가 모여 대해가 되고 작은 티끌이 쌓여 수미산이 되었다」는 말씀, 그리고 「法華経を二人・三人・十人・百千万億人・唱え伝うるほどならば妙覚の須弥山ともなり大涅槃の大海ともなるべし」(288쪽), 곧 「법화경을 두 사람 · 세 사람 · 열 사람 · 백천만억 사람이 불러 전한다면 묘각의 수미산도 되고 대열반의 대해도 되리라」는 말씀은 「제법실상초」의 이 글과 그대로 겹친다.
「우에노전답서」 — 범천 · 제석의 계획
그런데 광선유포는 민중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우에노전답서」에는 다음 말씀이 있다.
梵天・帝釈等の御計として日本国・一時に信ずる事あるべし、爾時我も本より信じたり信じたりと申す人こそおほくをはせずらんめとおぼえ候
범천 · 제석 등의 계획으로 일본국이 한꺼번에 믿는 일이 있으리라. 그때에는 「나도 본래부터 믿었다, 믿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생각되느니라.
이 두 글을 아울러 보면, 광선유포의 실현은 「대지를 과녁으로 삼는 것」처럼 확실하며, 또한 그것은 범천 · 제석의 계획이다. 범천 · 제석은 법화경 회좌에서 정법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제천(諸天)이며, 대성인의 법문에서 이들은 우주와 사회 속에서 정법을 지키는 작용을 상징한다. 선시초 제5장은 지인이 박해받을 때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이 지용의 대보살에게 명하시고, 대보살은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에게 명을 내리니, 그때 천변지요가 성해지리라고 말씀한다. 광선유포는 지용의 보살이 솟아나 법을 불러 전하는 인간의 일과, 제천이 그 법을 지키고 시대를 움직이는 법계의 작용이 함께 맞물려 이루어진다. 한꺼번에 믿는 때가 오면 「나도 본래부터 믿었다」는 사람이 많으리라는 말씀은, 박해 속에서 법을 지킨 사람과 시세를 따라 모여드는 사람을 대비하신 말씀으로도 읽힌다.
「관심의 본존초」 — 지용의 보살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다
광선유포를 짊어질 지용의 보살의 출현에 대해서는 「관심의 본존초」의 두 글을 들 수 있다. 하나는 지용의 보살이 출현할 시의 모습을 말한 글이다.
今末法の初小を以て大を打ち権を以て実を破し東西共に之を失し天地顛倒せり迹化の四依は隠れて現前せず諸天其の国を棄て之を守護せず、此の時地涌の菩薩始めて世に出現し但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幼稚に服せしむ
지금 말법의 처음에는 소로써 대를 치고 권으로써 실을 파하여 동서를 함께 잃고 천지가 뒤집혔느니라. 적화의 사의는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제천은 그 나라를 버려 지키지 않느니라. 이때 지용의 보살이 처음으로 세상에 출현하여 다만 묘법연화경의 다섯 글자로써 어린아이에게 먹이느니라.
또 하나는 지용의 보살이 법을 넓히는 두 방식을 말한 글이다.
当に知るべし此の四菩薩折伏を現ずる時は賢王と成つて愚王を誡責し摂受を行ずる時は僧と成つて正法を弘持す
마땅히 알라, 이 네 보살이 절복을 나타낼 때에는 현왕이 되어 어리석은 왕을 꾸짖고, 섭수를 행할 때에는 승려가 되어 정법을 넓히고 지니느니라.
앞의 글은 선시초가 말하는 말법의 모습, 곧 백법이 숨고 투쟁이 일어나는 시를 다른 각도에서 그린 것이다. 소승이 대승을 치고 권교가 실교를 파하여 불법의 동서남북을 모두 잃은 때, 적화의 보살들은 숨고 제천은 나라를 떠난다. 바로 그때 지용의 보살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다. 선시초 제29장에서 미륵 · 문수 등 사십일품의 무명을 끊은 대보살들조차 상행보살이 왜 불려 나왔는지 알지 못했다고 하신 것도 같은 뜻이다. 말법의 법은 적화의 보살이 아니라 본화의 보살만이 넓힐 수 있다.
뒤의 글은 지용의 보살이 법을 넓히는 데 현왕이 되어 어리석은 왕을 꾸짖는 절복의 길과, 승려가 되어 정법을 넓히는 섭수의 길이 있음을 보인다. 시에 따라 절복과 섭수를 가려 쓴다는 이 말씀은, 선시초 제3장이 천태의 「때에 맞을 뿐이니라」(時に適うのみ)와 장안의 「취하고 버림을 마땅히 하여 한쪽으로만 해서는 안 되느니라」(取捨宜きを得て一向にすべからず)로 풀어 보이는 원리와 같은 자리에 있다.
「일염부제의 안 · 팔만의 나라」 — 온 세계 광포의 예언
다시 선시초 本文으로 돌아와 보자. 제4장의 결론은 말법의 대백법이 「一閻浮提の内・八万の国あり其の国国に八万の王あり」(258쪽), 곧 일염부제 안에 팔만의 나라가 있고 그 나라마다 팔만의 왕이 있는데, 왕마다 신하와 만민에 이르기까지 남묘호렌게쿄를 부르게 되리라고 말씀한다. 일염부제란 수미산 남쪽의 대륙, 곧 인간이 사는 세계 전체를 가리키며, 「팔만의 나라」는 그 세계에 있는 모든 나라를 뜻한다. 이것이야말로 온 세계 광선유포의 분명한 예언이 아니겠는가.
이 대목에서 주목할 것은 비유의 방향이다. 대성인은 장래의 광선유포를 「今日本国に弥陀称名を四衆の口口に唱うるがごとく」, 곧 지금 일본국에서 아미타불의 이름을 사중이 입마다 부르는 것처럼이라고 비유하신다. 법연 이후 오십여 년 동안 염불이 온 나라를 덮은 것은 대성인이 눈앞에서 보신 사실이었다. 선시초 제28장은 이를 「権経流布せば実経流布すべし権経の題目流布せば実経の題目も又流布すべし」(284쪽), 곧 권경이 유포하면 실경도 유포할 것이요, 권경의 제목이 유포하면 실경의 제목도 유포하리라고 논리화한다. 권대승경의 제목인 「나무아미타불」이 한 나라를 덮었다면, 그것은 실대승경의 제목인 남묘호렌게쿄가 유포할 서곡이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눈앞의 사실을 근거로 미래의 필연을 논증하신다.
「전대미문의 대투쟁」 — 대성인 당시와 경문의 원리

선시초 제5장의 다음 구절은 선시초 전체에서 가장 장엄한 예언이다.
国主等・其のいさめを用いずば鄰国にをほせつけて彼彼の国国の悪王・悪比丘等をせめらるるならば前代未聞の大闘諍・一閻浮提に起るべし其の時・日月所照の四天下の一切衆生、或は国ををしみ或は身ををしむゆへに一切の仏菩薩にいのりをかくともしるしなくば彼のにくみつる一の小僧を信じて無量の大僧等八万の大王等、一切の万民・皆頭を地につけ掌を合せて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となうべし
국주들이 그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웃 나라에 명하시어 여러 나라의 악왕 · 악비구들을 치게 하시리니, 그리되면 전대미문의 대투쟁이 일염부제에 일어나리라. 그때 해와 달이 비추는 사천하의 일체중생이 혹은 나라를 아끼고 혹은 몸을 아끼는 까닭에 일체의 불보살에게 기도를 걸어도 효험이 없으면, 저 미워하던 한 소승을 믿고 무수한 대승들과 팔만의 대왕들과 일체의 만민이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합장하여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게 되리라.
이 구절은 단독으로 놓인 것이 아니라, 앞뒤로 이어지는 하나의 인과의 흐름 속에 있다. 제5장은 먼저 법화경과 대집경을 인용하여, 제5의 오백세에 악귀가 몸에 든 대승(大僧)들이 나라에 가득할 때 지인 한 사람이 출현하고, 그들이 왕 · 신하 · 만민을 부추겨 그 지인을 욕하고 때리고 유배하고 죽이려 할 때,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이 지용의 대보살에게 명하시고 대보살은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에게 명을 내려 천변지요가 성하리라고 말씀한다. 그래도 국주가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웃 나라가 그 나라를 치게 되고, 그것이 일염부제의 대투쟁으로 번지며, 나라와 몸을 지키려 온갖 기도를 다해도 효험이 없을 때 마침내 미워하던 그 한 소승을 믿고 일체가 남묘호렌게쿄를 부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성인은 이를 신력품의 십신력에서 시방세계의 일체중생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바세계를 향해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남묘호렌게쿄, 남묘호렌게쿄」(南無釈迦牟尼仏・南無釈迦牟尼仏・南無妙法蓮華経・南無妙法蓮華経)라고 한목소리로 외친 것에 견주신다.
- ①제5의 오백세: 악귀가 몸에 든 대승들이 나라에 가득함
- ②지인 한 사람이 출현함
- ③대승들이 왕 · 신하 · 만민을 부추겨 지인을 욕하고 때리고 유배 · 사형에 처하려 함
- ④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 → 지용의 대보살 →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 천변지요가 성함
- ⑤국주가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음 → 이웃 나라가 악왕 · 악비구를 침
- ⑥전대미문의 대투쟁이 일염부제에 일어남(前代未聞の大闘諍・一閻浮提に起るべし)
- ⑦나라와 몸을 아껴 온갖 기도를 해도 효험이 없음
- ⑧미워하던 한 소승을 믿고 대승 · 대왕 · 만민이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를 부름신력품 십신력의 「한목소리」와 같음
대성인 당시의 사실로 읽다
이 「전대미문의 대투쟁」은 불법의 한 큰 원리를 설한 것이며, 일왕(一往)은 대성인 재세 당시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실제로 선시초의 本文은 이 원리를 대성인 당시의 사실로 하나하나 확인한다.
먼저 「이웃 나라」는 몽골이다. 선시초 제13장은 「今末法に入つて二百余歳・大集経の於我法中・闘諍言訟・白法隠没の時にあたれり仏語まことならば定んで一閻浮提に闘諍起るべき時節なり」(264쪽), 곧 지금 말법에 들어 이백여 년, 대집경의 투쟁언송 · 백법은몰의 때에 해당하니, 부처님 말씀이 참이라면 반드시 일염부제에 투쟁이 일어날 시절이라고 하신 뒤, 이미 한토의 많은 나라가 몽골에게 무너졌고 송나라의 휘종 · 흠종 두 황제가 북방에 사로잡혀 그곳에서 죽었으며, 고려와 신라 · 백제의 땅도 모두 몽골 황제에게 공격당했다고 적으신다. 그리고 「今の日本国の壱岐・対馬並びに九国のごとし闘諍堅固の仏語地に堕ちず」(265쪽), 곧 지금 일본국의 이키 · 쓰시마와 규슈가 당한 것과 같으니, 투쟁견고라는 부처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대륙 전체를 휩쓴 몽골의 정복 전쟁과 문영 11년의 일본 침공은 그 자체로 대성인 당시의 사람들에게 「전대미문」의 투쟁이었다.
다음으로 「국주가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은 대성인의 세 번의 국주간효다. 선시초 제32장은 이를 「三度のかうみよう」, 곧 세 번의 큰 공(高名)으로 정리한다. 「외전에 이르기를 아직 싹트지 않은 것을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하고, 내전에 이르기를 삼세를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고 하신 뒤 세 번의 예언을 드신다. 첫째는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입정안국론」을 최명사전(最明寺殿, 호조 도키요리)에게 올릴 때 야도야 입도에게 「선종과 염불종을 없애시도록 아뢰라. 이 일을 쓰지 않으시면 이 일문에서 일이 일어나 타국에게 공격당하시리라」고 하신 것이다. 둘째는 문영 8년(1271) 9월 12일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只今に自界反逆難とてどしうちして他国侵逼難とて此の国の人人・他国に打ち殺さるのみならず多くいけどりにせらるべし」(287쪽), 곧 머지않아 자계반역난이라 하여 같은 편끼리 싸우고, 타국침핍난이라 하여 이 나라 사람들이 타국에게 죽임을 당할 뿐 아니라 많이 사로잡히리라고 하신 것이다. 셋째는 문영 11년(1274) 4월 8일, 다시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몽골 조복을 진언사에게 맡기지 말라고 하시며, 언제쯤 쳐들어오겠느냐는 물음에 「よも今年はすごし候はじ」(288쪽), 곧 설마 올해를 넘기지는 않으리라고 답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언은 이루어졌다. 두 번째 간효 이듬해인 문영 9년(1272) 2월, 막부 안에서 호조 일문끼리 싸우는 이월소동이 일어났으니, 선시초 제33장은 이를 「忽に出来せる自界反逆難なり」(289쪽), 곧 홀연히 일어난 자계반역난이라 하신다. 세 번째 간효의 그해 10월에는 몽골군이 쓰시마 · 이키를 거쳐 규슈에 상륙했다. 선시초 제31장은 다시 올 침공을 두고 「いまにしもみよ大蒙古国・数万艘の兵船をうかべて日本をせめば」(286쪽), 곧 두고 보라, 대몽골국이 수만 척의 병선을 띄워 일본을 친다면 위로 한 사람부터 아래로 만민까지 모든 절과 신사를 버리고 한목소리로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며 「니치렌 어방, 니치렌 어방」 하고 외치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다. 제5장의 「일체가 한결같이 부르리라」는 예언이 대성인 당시에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는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 첫째문응 원년(1260) 7월 16일「입정안국론」을 최명사전에게 올림 · 야도야 입도에게「이 일을 쓰지 않으시면 이 일문에서 일이 일어나 타국에게 공격당하시리라」실현문영 9년(1272) 2월 이월소동(자계반역난)문영 11년(1274) 10월 몽골 내습(타국침핍난)
- 둘째문영 8년(1271) 9월 12일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머지않아 자계반역난이라 하여 같은 편끼리 싸우고, 타국침핍난이라 하여 … 많이 사로잡히리라」(自界反逆難とてどしうちして)실현이듬해 2월 이월소동「홀연히 일어난 자계반역난」(忽に出来せる自界反逆難なり, 289쪽)
- 셋째문영 11년(1274) 4월 8일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몽골 조복을 진언사에게 맡기지 말라」「설마 올해를 넘기지는 않으리라」(よも今年はすごし候はじ)실현그해 10월 몽골 내습
몽골의 두 번째 내습은 선시초 저술 6년 뒤인 홍안 4년(1281)이다. 선시초 제31장의 「수만 척의 병선」은 저술 당시에는 아직 오지 않은 침공을 내다본 말씀이다.
경문의 원리로 읽다 — 투쟁견고 · 백법은몰 · 후오백세 광선유포
이 예언의 근거는 대성인 개인의 예감이 아니라 경문이다. 대집경은 제5의 오백세를 「於我法中・闘諍言訟・白法隠没」, 곧 「나의 법 가운데에서 다투고 송사하여 백법이 숨어 사라지리라」고 설한다. 여기의 투쟁은 먼저 불법 안의 다툼이다. 정법 · 상법의 백법, 곧 소승 · 권대승 · 법화경 적문의 가르침이 서로 다투며 힘을 잃고 사라지는 것이 「백법은몰」이다. 그리고 불법 안의 혼란은 나라와 세계의 혼란으로 나타난다. 선시초 제33장이 인용하는 대집경 권50의 글은, 국왕이 정법을 행하는 부처의 제자를 괴롭히면 제천이 자연히 타방의 원적을 일으키고 자국에도 병란 · 역병 · 기근 · 때아닌 비바람 · 투쟁언송이 일어나게 하며, 그 왕은 오래지 않아 나라를 잃으리라고 설한다. 대성인은 「此の経文は身にあたり時にのぞんで殊に尊くをぼうるゆへにこれをせんじいだす」(288쪽), 곧 이 경문은 내 몸에 닿고 이 시에 임하여 특히 존귀하게 여겨지므로 가려 뽑았다고 말씀하신다. 선시초가 「시를 가린다」는 것은 이처럼 경문을 시에 비추어 가려 뽑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문은 백법은몰로 끝나지 않는다. 선시초 제4장은 「彼の白法隠没の次には法華経の肝心たる南無妙法蓮華経の大白法」, 곧 백법은몰의 다음에는 법화경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광선유포한다고 하시고, 제5장은 그 증문으로 약왕보살본사품의 「我が滅度の後後の五百歳の中に広宣流布して閻浮提に於て断絶せしむること無けん」(258쪽), 곧 「내가 멸도한 뒤 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하여 염부제에서 끊어지게 하지 말라」를 드신다. 대집경이 말하는 「다섯째 오백 년」과 법화경이 말하는 「후오백세」는 같은 시를 가리키며, 대집경은 그때 옛 백법이 사라짐을, 법화경은 그때 대백법이 퍼짐을 설한다. 하나의 시에 소멸과 탄생이 겹쳐 있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대투쟁」은 이 겹침의 한가운데에 놓인다. 옛 백법이 힘을 잃고 세상이 가장 깊은 혼란에 빠졌을 때, 그 혼란을 넘어설 대백법이 일체중생의 입에서 불리게 된다는 것이 선시초의 논리다.
이것을 「불법의 한 큰 원리」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원리는 어느 한 시대의 사건에 갇히지 않는다. 대성인 당시에는 몽골의 정복 전쟁과 이월소동이 그 원리를 눈앞에 보였고, 대성인은 그것을 투쟁견고라는 부처님 말씀이 땅에 떨어지지 않은 증거로 삼으셨다. 동시에 선시초의 예언은 「일염부제」와 「팔만의 나라」, 「해와 달이 비추는 사천하」를 무대로 하여, 말법 만 년, 나아가 미래 영원에 걸친 광선유포를 내다본다. 정법을 비방하고 지인을 박해하는 데서 혼란이 오고, 그 혼란의 끝에서 사람들이 마침내 바른 법을 구하게 된다는 인과는, 대성인이 「입정안국론」 이래 일관되게 설하신 입정안국의 원리이기도 하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전대미문의 대투쟁」을 불법의 한 큰 원리로 보며, 일왕은 대성인 재세의 몽골 내습 · 자계반역난에 들어맞는다. 그 근거는 대집경의 투쟁견고 · 백법은몰과 약왕품의 「후오백세 광선유포」이며, 선시초의 원의는 이 원리에 선 일염부제 광선유포의 예언에 있다.
원의를 맺으며 — 시를 아는 이
선시초 제29장에서 대성인은 천태의 「智人は起を知り蛇は自ら蛇を識る」(284쪽), 곧 「지인은 일어남을 알고 뱀은 스스로 뱀을 안다」는 말을 인용하신다. 정가의 대지진과 문영의 대혜성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를 아는 이가 지인이며, 그 지인은 상행보살이 왜 대지에서 불려 나왔는가, 곧 수량품의 남묘호렌게쿄가 말법에 유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선시초 제32장은 세 번의 고명을 두고 「法華経の一念三千と申す大事の法門はこれなり」(287쪽), 곧 법화경의 일념삼천이라는 큰 법문이 바로 이것이라고 하시며, 십여시의 처음인 「상여시(相如是)」, 곧 일이 일어나기 전에 드러나는 모습을 아는 것이 부처가 세상에 나오시는 첫째 대사라고 말씀하신다.
시를 가린다는 것은 결국 이 「일어남을 아는」 지혜다. 정상말의 차례를 알고, 지금이 어떤 시인가를 알고, 이 시에 무엇이 퍼져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선시초의 원의가 말법 광선유포의 예언에 있다는 것은, 대성인이 그 시를 아시고 그 법을 세우시고 그 법이 퍼질 미래를 확신하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예언은 「니치렌 한 사람이 처음 불렀으나 두 사람 · 세 사람 · 백 사람으로」 이어지는 지용의 뜻 속에서 이루어져 간다.
문답으로 짜인 한 편의 논증
선시초는 「問うて云く(묻노라)」 · 「答えて云く(답하노라)」 · 「疑つて云く(의심하여 이르노라)」 · 「求めて云く(구하여 이르노라)」로 이어지는 문답의 글이다. 묻는 이는 때로는 상식을 대변하고, 때로는 경론을 들어 반론하며, 때로는 「경문은 분명하지만 천태 · 묘락 · 전교의 미래기는 없느냐」고 더 많은 증거를 구한다. 대성인은 이 물음에 하나하나 답하시면서 논의를 「시란 무엇인가」에서 「정상말 이천 년 동안 무엇이 퍼졌는가」로, 다시 「지금 이 나라에서 무엇이 그릇되었는가」로, 마지막으로 「지금 누가 무엇을 넓히는가」로 옮겨 가신다. 사이트는 이 흐름을 따라 서른여섯 장을 여섯 편으로 나누었다. 크게 보면 시를 밝히는 총론과 경석의 증거(제1편), 정상말 홍교의 역사(제2 · 3편), 여러 종파의 그릇됨(제4편), 말법의 법화경 행자(제5 · 6편)의 네 갈래다.
제1편「불법을 배우려면 먼저 시를 익혀라 — 시의 요긴함과 경석의 증거」(256~260쪽)
- 제1장시의 요긴함을 표하다時の要なるを標す256:01–256:05
- 제2장불법은 시에 의함을 밝히다仏法は時によるを明かす256:05–256:13
- 제3장기와 교가 어긋난다는 힐난을 풀다機教相違の難を会す256:14–257:16
- 제4장정상말에 맞추어 멸후의 홍교를 밝히다正像末に約して滅後の弘教を明かす257:16–258:18
- 제5장경문을 들어 증명하다経文を引いて証す258:18–259:14
- 제6장석의 글을 들어 증명하다釈の文を引いて証す259:15–260:11
제2편「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교와 묘법 유포의 필연」(260~267쪽)
- 제7장논사의 불설과 정법 처음 오백 년260:12–261:02
- 제8장정법 뒤 오백 년의 홍교正法の後の五百年の弘教261:02–261:08
- 제9장상법 처음 오백 년의 홍교像法の初めの五百年の弘教261:08–262:04
- 제10장상법 뒤 오백 년의 홍교像法の後の五百年の弘教262:04–263:02
- 제11장일본에 여섯 종파가 전래되다日本に六宗の伝来263:03–263:11
- 제12장천태종의 홍통天台宗の弘通263:11–264:13
- 제13장묘법 유포의 필연을 밝히다妙法流布の必然を明かす264:14–265:08
- 제14장능홍의 사덕을 드러내다能弘の師徳を顕わす265:08–266:14
- 제15장총괄하여 문답으로 요간하다総じて問答料簡す266:15–267:08
제3편「용수 · 천태 · 전교의 홍통과 말법의 비법」(267~273쪽)
- 제16장용수보살의 홍통竜樹菩薩の弘通267:09–269:12
- 제17장천태대사의 홍통天台大師の弘通269:13–271:01
- 제18장전교대사의 홍통伝教大師の弘通271:02–272:18
- 제19장말법에 대하여 요간하다末法について料簡す273:01–273:17
제4편「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 — 홍법 · 자각의 그릇됨」(273~283쪽)
- 제20장정토종을 파하다浄土宗を破す273:18–274:17
- 제21장선종을 파하다禅宗を破す274:17–275:04
- 제22장진언의 선무외를 파하다真言の善無畏を破す275:04–276:18
- 제23장진언의 홍법을 파하다真言の弘法を破す276:18–278:10
- 제24장쇼카쿠보를 파하다聖覚房を破す278:11–279:12
- 제25장자각을 파하다慈覚を破す279:12–280:05
- 제26장자각이 본사를 어긴 허물慈覚の本師違背の失280:06–281:15
- 제27장문답으로 귀결하여 자각을 파하다問答帰釈して慈覚を破す281:16–283:06
제5편「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 — 지인 · 성인 · 대인」(283~290쪽)
- 제28장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閻浮第一の法華経の行者283:06–284:09
- 제29장염부제일의 지인閻浮第一の智人284:10–285:05
- 제30장지인임을 보이는 증문智人たるの証文285:06–286:17
- 제31장염부제일의 성인閻浮第一の聖人286:18–287:07
- 제32장성인임을 널리 풀다聖人たるを広く釈す287:08–288:07
- 제33장일본 제일의 대인日本第一の大人288:08–289:07
- 제34장대만이라는 힐난을 풀다289:07–290:15
제6편「현증의 글과 어신의 부합 —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290~292쪽)
- 제35장현증의 글을 들다現証の文を引く290:15–291:11
- 제36장어신의 부합을 밝히다御身の符合を明かす291:12–292:17
제1편 — 시의 요긴함과 경석의 증거 (제1~6장)
제1편은 선시초 전체의 총론이다. 제1장은 「무릇 불법을 배우는 길은 반드시 먼저 시(時)를 익혀야 하느니라」(夫れ仏法を学せん法は必ず先づ時をならうべし, 256쪽)로 주제를 내걸고, 대통지승불의 십 소겁 묵연, 석존의 사십여 년 법화경 불설, 노자의 팔십 년 태중, 미륵의 오십육억 칠천만 년, 두견새와 닭의 비유로 「시」의 요긴함을 보인다. 제2장은 적멸도량에서 시방의 제불과 대보살, 범천 · 제석이 모두 모였는데도 세존이 이승작불 · 구원실성 · 즉신성불 · 일념삼천을 설하지 않으신 것은 「機は有りしかども時の来らざれば」(256쪽), 곧 기는 있었으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며, 영산회상에서 아사세왕 · 제바달다 · 용녀가 성불의 길에 든 것은 「機の熟不熟はさてをきぬ時の至れるゆへなり」(256쪽), 곧 기의 익고 안 익음은 제쳐 두고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제3장은 「기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대법을 주면 비방하여 악도에 떨어지니 설한 자의 죄가 아니냐」는 힐난에 답한다. 법화경 안에도 「무지한 사람 가운데 이 경을 설하지 말라」는 글과, 불경보살 · 권지품처럼 욕하고 때려도 설한다는 글이 함께 있다. 대성인은 이 둘이 물과 불처럼 보이지만 천태의 「때에 맞을 뿐이니라」(時に適うのみ, 257쪽), 장안의 「취하고 버림을 마땅히 하여 한쪽으로만 해서는 안 되느니라」(取捨宜きを得て一向にすべからず, 257쪽)로 풀린다고 하시고, 부모인 정반왕과 마야부인에게도 법화경을 설하지 않으신 예를 들어 「機にはよらず時いたらざれば」(257쪽), 곧 기에 의하지 않고 때가 이르지 않으면 설하지 않으신다고 결론지으신다.
제4장은 「어느 때에 소승 · 권경을, 어느 때에 법화경을 설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대집경의 오오백세로 답한다. 도작과 법연이 말법에는 정토의 염불만이 살 길이라고 풀이한 것을 물리치고, 백법은몰 다음에는 남묘호렌게쿄의 대백법이 일염부제 팔만의 나라에 광선유포하리라고 선언한다. 제5장은 그 증문으로 약왕품의 「후오백세 광선유포」, 권지품 · 안락행품 · 법사품의 말법 박해의 글을 들고, 지인의 출현과 박해, 천변지요, 이웃 나라의 공격, 「전대미문의 대투쟁」, 일체의 창제로 이어지는 예언을 펼친다. 제6장은 천태의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妙道)에 젖으리라」(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わん, 259쪽), 묘락의 「말법의 처음에 명리(冥利)가 없지 않으리라」(末法の初め冥利無きにあらず, 259쪽), 전교의 「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으니…」(正像稍過ぎ已つ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 259쪽) 등 석(釈)의 증거를 들고, 법화경 유포의 때는 재세의 8년과 멸후 말법의 처음 오백 년, 두 번이라고 하신 뒤 「말법의 지금 백성」의 복을 말씀한다.
제2편 —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교와 묘법 유포의 필연 (제7~15장)
제2편은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교사를 오오백세의 순서대로 서술한다. 제7장은 용수 · 천친이 속으로는 알았으나 말로 펴지 않은 까닭을 「一には彼の時には機なし・二には時なし・三には迹化なれば付嘱せられ給はず」(260쪽), 곧 기가 없고 시가 없으며 적화이기에 부촉받지 못했다는 세 가지로 들고, 가섭 · 아난 · 상나화수 · 우바국다 · 제다가의 백 년과 미차가 · 불타난제 · 불타밀다 · 협비구 · 부나사의 시대를 해탈견고로 정리한다. 제8장은 마명 · 비라 · 용수 · 제바 등 십여 인이 대승으로 소승을 파했으나 대승과 법화경의 승렬, 곧 본적의 십묘 · 이승작불 · 구원실성 · 일념삼천은 분명히 하지 않았다며 이를 선정견고에 배당한다.
제9장은 상법에 들어 불법이 중국에 전해진 뒤, 가섭마등 · 축법란이 대소 · 권실을 가리지 않은 일, 남삼북칠의 십사가 「화엄 제일 · 열반 제이 · 법화 제삼」으로 정한 일, 진 · 수의 천태지자대사가 이를 깨고 「법화 제일 · 열반 제이 · 화엄 제삼」을 세운 일을 독송다문견고로 서술한다. 제10장은 당 태종 대의 현장과 법상종, 측천무후 대의 법장과 화엄종, 현종 대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과 진언종이 모두 천태법화종을 깨뜨렸으나 공개 석상의 대론이 없어 「법화경의 실의가 한 나라에 숨었다」는 상법 뒤 오백 년의 모습을 그린다. 제11장은 백제에서의 불교 전래, 쇼토쿠 태자, 삼론 · 성실 · 법상 · 구사 · 화엄 · 율의 전래와 감진의 소승 계단을 서술하고, 제12장은 전교대사가 간무 천황 앞에서 육종을 파하고 「엔랴쿠의 원돈 별수계」(延暦円頓の別受戒)를 히에이산에 세운 공을 기리면서도, 그것이 다조탑사견고의 때이며 아직 투쟁언송 · 백법은몰의 때가 아니었다고 맺는다.
제13장에서 논의는 말법으로 넘어온다. 지금은 말법에 들어 이백여 년, 대집경의 투쟁언송 · 백법은몰의 때이며 몽골이 대륙을 휩쓸고 이키 · 쓰시마에 이른 것이 「투쟁견고의 부처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니…」(闘諍堅固の仏語地に堕ちず, 265쪽)의 증거이니, 대백법의 광선유포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14장은 이 법을 넓히는 이를 박해하는 자는 안온할 수 없다고 하시며 「니치렌은 지금 천황의 부모요, 염불자 · 선중(禅衆) · 진언사 등의 사범이요, 또한 주군이니라」(日蓮は当帝の父母、念仏者・禅衆・真言師等が師範なり又主君なり, 265쪽)라고 능홍(能弘)의 사덕(師徳)을 드러내고, 정가의 대지진과 문영의 대혜성을 「염부제 제일의 대난」의 표시로 보신다. 제15장은 「정법의 사람은 상근이 아니냐, 천태 · 전교의 시대는 광선유포가 아니냐」는 총괄적 힐난에 「機に随つて法を説くと申すは大なる僻見なり」(267쪽), 곧 기에 따라 법을 설한다는 것은 큰 그릇된 견해라고 답한다.
제3편 — 용수 · 천태 · 전교의 홍통과 말법의 비법 (제16~19장)
제3편은 정법 · 상법을 대표하는 세 사람의 홍통을 차례로 검토하여 그 공과 한계를 밝힌다. 제16장은 용수의 『중론』 이십칠품의 간심인 사구게가 화엄 · 반야 등의 삼제이며 아직 법화 개회의 삼제가 아니라고 하고, 구마라집이 혀가 타지 않은 일로 그 번역의 바름을 보인다. 제17장은 천태대사가 『법화현의』 · 『법화문구』 · 『마하지관』 삼십 권으로 법화경의 깊은 뜻을 다하여 길장 · 도선 · 법장의 찬탄을 받고 그 이름이 인도에까지 들렸으나, 아직 원돈의 계단을 세우지 못했고 독송다문견고의 때여서 광선유포의 때가 아니었다고 한다. 제18장은 전교대사가 육종 · 칠대사를 굴복시키고 원돈의 대계를 세운 것을 「일염부제 제일의 기이한 일」(一閻浮提第一の奇事, 271쪽)이라 기리면서도, 마지막에 「천태 · 전교가 아직 홍통하지 않으신 최대의 심밀(深密)의 정법」(天台・伝教のいまだ弘通しましまさぬ最大の深密の正法, 272쪽)이 말법에 광선유포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제19장은 그 비법의 이름과 뜻을 묻는 이에게 먼저 세 가지 큰 재앙, 곧 염불종 · 선종 · 진언종을 들어 답한다. 바다는 넓어도 시체를 머물게 하지 않고 대지는 두터워도 불효자를 싣지 않으니, 불법은 오역도 구하지만 비방하는 일천제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진언은 천태의 남북 논파 때에도, 전교의 육종 논파 때에도 빠져나가 오히려 대법을 가렸고, 자각대사가 히에이산을 진언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제4편 — 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 (제20~27장)
제4편은 세 가지 재앙의 그릇됨을 차례로 파한다. 제20장은 담란의 난행도 · 이행도, 도작의 성도 · 정토 이문, 선도의 정행 · 잡행, 법연의 『선택집』으로 이어지는 정토종의 계보와, 혜심의 『왕생요집』이 그 길을 연 일을 밝힌다. 제21장은 교외별전을 내세우는 선종을 파하고, 제22장은 선무외가 일행을 끌어들여 『대일경소』에서 「理同事勝」, 곧 이치는 같고 사(事)는 낫다는 뜻을 꾸민 경위를 그린다. 제23장은 홍법이 『십주심론』 · 『비장보약』 · 『변현밀이교론』에서 법화경을 「戯論」, 「무명의 변역(辺域)」(無明の辺域)이라 하고 중국의 인사들을 「諍つて醍醐を盗んで各自宗に名く」(277쪽), 곧 다투어 제호를 훔쳐 저마다 자기 종파에 이름 붙였다고 한 것을 연대의 모순으로 논파한다. 제24장은 쇼카쿠보의 『사리강식』, 대만바라문과 현애논사, 삼계선사의 예를 든다.
제25장부터 제27장까지는 자각대사를 집중적으로 파한다. 「이보다도 백천만억 배나 믿기 어려운 가장 큰 악사가 있느니라」(これよりも百千万億倍・信じがたき最大の悪事はんべり, 279쪽)로 시작하는 제25장은, 자각이 진언이 법화경보다 낫다고 쓴 것이 히에이산 삼천의 입을 막아 진언을 일본에 퍼뜨린 결정적 원인이 되었고, 안연 · 혜심을 거쳐 선과 염불이 퍼진 것도 같은 뿌리라고 한다. 제26장은 자각이 스승 전교대사의 뜻을 어기고 총지원을 세워 『금강정경소』 · 『소실지경소』를 짓고 「해를 쏘는 꿈」을 꾼 일을, 제27장은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 281쪽) 등 경론석을 들어 그 꿈이 길몽일 수 없음을 논증하고, 승구의 난에서 진언의 조복이 오히려 조정을 무너뜨린 예를 들어 몽골 조복을 진언사에게 맡기면 나라가 망하리라고 경고한다.
제5편 —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 · 지인 · 성인 · 대인 (제28~34장)
제5편은 이러한 시대에 대성인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밝힌다. 제28장은 나라와 몸이 망하는 슬픔에 신명을 버려 이를 밝힌다고 하시며, 권경의 제목인 염불이 퍼진 것은 실경의 제목이 퍼질 서곡이라 하고 「니치렌이 일본 제일의 법화경 행자인 것은 결코 의심이 없느니라」(日蓮は日本第一の法華経の行者なる事あえて疑ひなし, 284쪽)라고 선언한다. 제29장은 정가의 대지진과 문영의 대혜성의 원인을 아는 「지인」을 말하고, 제30장은 『금광명최승왕경』 · 『인왕경』 · 『수호경』 · 『연화면경』을 들어 그 증문으로 삼으며 삼충과 「사자 몸속의 벌레」를 말한다. 제31장은 대몽골국의 침공 때 일체가 「니치렌 어방」을 부르게 되리라 하고, 제32장은 세 번의 고명으로 성인임을 보이며, 제33장은 대집경 권50을 들어 다쓰노구치의 박해가 자계반역난을 부른 이치를 밝히고 「일본 제일의 대인이니라」(日本第一の大人なり, 289쪽)라고 하신다. 제34장은 이를 두고 「큰 교만」이라 힐난하는 이에게, 석존의 「삼계 제일」과 전교대사의 「자찬훼타가 아니다」(自讃毀他ならず, 289쪽), 약왕품의 「일체중생 가운데 또한 제일이다」(一切衆生の中に於て亦これ第一なり, 290쪽)를 들어 답하고 「당세 일본국의 지인들은 뭇별과 같고 니치렌은 보름달과 같으니라」(当世日本国の智人等は衆星のごとし日蓮は満月のごとし, 290쪽)로 맺는다.
제6편 — 현증의 글과 어신의 부합 (제35~36장)
제6편은 선시초의 결론이다. 제35장은 전교대사의 「이미 불설에 의거하였으니 어찌 스스로 찬탄함이겠느냐」(已に仏説に拠る豈自歎ならんや, 290쪽)를 들어 법화경을 경대로 지니는 이가 일체중생 가운데 제일임을 보이고, 법화경 권8의 「또한 현세에 그 복보를 얻으리라」(亦於現世・得其福報) · 「반드시 금세에 현재의 과보를 얻으리라」(当於今世・得現果報) 열여섯 글자가 헛되지 않다면 대성인에게 반드시 과보가 있으리라 하시며, 「그러므로 나의 제자들은 시험 삼아 법화경대로 신명도 아끼지 말고 수행하여 이번에 불법을 시험해 보라」(されば我が弟子等心みに法華経のごとく身命もおしまず修行して此の度仏法を心みよ, 291쪽)라고 제자들에게 촉구한다. 제36장은 「我不愛身命但惜無上道」의 참뜻이 입당구법이나 소신공양이 아니라, 국왕에게 존중받는 「계를 지니고 지혜 있는 대승(大僧)」(持戒有智の大僧) 가운데 있는 대비방자와 맞서 법화경이 일체경의 정상임을 말하는 데 있음을 밝히고, 그것이 「지금의 니치렌의 몸에 들어맞았느니라」(今の日蓮が身にあたれり, 292쪽)라고 하신다. 그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큰 불에 들어가는 것은 쉽고, 수미산을 손에 들어 던지는 것도 쉽고, 큰 돌을 지고 큰 바다를 건너는 것도 쉬우나, 일본국에서 이 법문을 세우는 것은 큰일이니라」(裸形にて大火に入るはやすし須弥山を手にとてなげんはやすし大石を負うて大海をわたらんはやすし日本国にして此の法門を立てんは大事なるべし, 292쪽)라는 결의와,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 · 지용의 보살 · 제천이 「그윽이 더하고 드러나게 도와」(冥に加し顕に助け, 292쪽) 주시지 않는다면 한때도 안온할 수 없으리라는 말씀으로 글 전체를 맺는다.
시의 요긴함에서 시작한 글이 「이 법문을 세우는 것이 큰일」이라는 결의로 끝난다. 선시초가 가려 취한 시는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신명을 걸고 법을 세우는 실천의 장이었다.
이 편을 맺으며
서강에서 살핀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시초는 건치 원년(1275), 미노부 입산 이듬해에 쓰인 글이다. 本文 스스로 문영 11년을 「지난해」라 부르는 데서 연대가 확정되며, 「건치 3년」 · 「천태 사문」이라는 오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정필은 다마자와 묘호케사에 다섯 축으로 전하고,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는 이 글을 스루가 니시야마의 유이 씨에게 주신 것이라 적는다. 사도 이후 대성인은 말법의 어본불로서 삼대비법을 세우셨고, 선시초와 보은초에서 진언과 진언화한 천태종의 그릇됨을 철저히 규명하셨다.
「선시초」라는 제호의 「시」는 기감상응의 시이며, 니치칸 상인은 그 본의를 「별하여 말법의 시를 가려 취함」에 두고, 다시 문저 비침의 대법이 광선유포한다는 뜻과 니치렌 대성인을 하종의 본존으로 삼는다는 뜻의 두 가지로 풀었다. 「석자 니치렌」이라는 서명에는 본화의 재탄, 사정을 바로잡음, 비방을 꾸짖음, 경을 독송함, 본인묘의 석자라는 다섯 뜻이 담겨 있다. 선시초는 대집경의 오오백세에 비추어 정상말 삼국의 홍교사를 검토하고, 말법에는 수량품 문저의 삼대비법이 광선유포하며 그 교주가 대성인이심을 밝힌다. 그리고 그 원의는 「일염부제의 안 · 팔만의 나라」에 이르는 광선유포의 예언에 있다. 「전대미문의 대투쟁」은 대성인 당시의 몽골 내습과 자계반역난에서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낸 불법의 원리이며, 투쟁견고 · 백법은몰의 시가 곧 후오백세 광선유포의 시라는 경문의 겹침 위에 서 있다.
이제 本文으로 들어간다. 제1편 「불법을 배우려면 먼저 시를 익혀라 — 시의 요긴함과 경석의 증거」는 선시초의 첫 여섯 장을 다룬다. 대통지승불과 두견새의 비유로 시의 요긴함을 내건 첫 장에서부터, 기와 교가 어긋난다는 힐난, 대집경의 오오백세와 「팔만의 나라」의 예언, 법화경과 천태 · 묘락 · 전교의 증거를 거쳐 「말법의 지금 백성」의 복에 이르는 총론을 한 장씩 읽는다.
더 읽기
- 선시초 제1편 「불법을 배우려면 먼저 시를 익혀라 — 시의 요긴함과 경석의 증거」 — 서강에 이어지는 선시초의 총론
- 선시초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 — 지인 · 성인 · 대인」 — 세 번의 고명과 「일본 제일의 대인」
- 개목초 — 인본존 개현의 글, 「니치렌은 주사친」의 선언
- 관심의 본존초 — 법본존 개현과 지용의 보살의 출현
- 핵심 개념 · 오시팔교 — 남삼북칠과 천태의 교판
- 니치렌 대성인 — 인물탐구
참고 문헌
원전
- 「선시초」 · 「보은초」 · 「개목초」 · 「관심의 본존초」 · 「성인어난사」 · 「제법실상초」 · 「우에노전답서」 · 「삼대비법품승사」 · 「현불미래기」 · 「교기시국초」 · 「교행증어서」 · 「소야입도전허어서」 · 「시조깅고전답서」 · 「미사와초」 ·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 · 『어의구전』 —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 『묘법연화경』 T9 no.262 (서품 · 방편품 · 법사품 · 견보탑품 · 권지품 · 종지용출품 · 여래신력품 · 약왕보살본사품)
- 『대방등대집경』 T13 no.397
- 『대반열반경』 T12 no.374
- 『법화문구』 T34 no.1718
- 니치칸 상인, 「선시초 문단(撰時抄文段)」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연구
- 「0256~0293 撰時抄」 序講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The Selection of the Time」 수록)
- Jan Nattier, Once Upon a Future Time: Studies in a Buddhist Prophecy of Decline, Asian Humanities Press, 1991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