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깔린 먹구름 아래 동중국해를 건너는 아주 작은 견당선 한 척

진언으로 기운 예산 — 홍법 · 자각 · 지증

보은초 · 제4편 · 제13~19장

報恩抄 — 真言に傾く叡山・弘法・慈覚・智証어서 305–311쪽
저술
건치 2년(1276) 7월 21일 · 미노부
장
제13~19장 (일곱 장)
쪽수
어서 305–311쪽
받는 이
아와 세이초사의 조켄보 · 기조보

여덟 편 · 보은초 37장 구성도

37장 + 송문 → 여덟 편
  1. 序講293 앞저술의 유래 · 대의 · 원의
  2. 보은의 도리와 불법을 배우는 길
  3.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4.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5.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6.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
  7.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
  8. 지은보은과 삼대비법
  9. 지은보은과 삼대비법

「보은초」의 여덟 편 가운데 제2편부터 제4편까지는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을 차례로 짚는 갈래이며, 이 제4편은 그 마지막 자리다. 제3편에서 천태대사와 전교대사가 법화경을 「제경 가운데 제일」로 세운 뒤, 일본에서 그 법화경의 산이 어떻게 진언의 산으로 바뀌었는가를 이 편이 묻는다. 홍법(구카이, 空海)은 바깥에서 「제1 대일경 · 제2 화엄 · 제3 법화」를 세웠고, 자각(엔닌, 圓仁)과 지증(엔친, 圓珍)은 전교대사의 문하이면서 안에서 「이동사승」을 들여왔다. 대성인은 세 사람 가운데 오히려 안에서 기울게 한 두 사람의 죄가 더 무겁다고 판정하신다. 이어 법화경의 경문과 천태 · 전교의 해석으로 법화 최승을 다시 세우고, 그 법화경을 몸으로 넓힌 사람은 석존 · 천태 · 전교 세 사람뿐이라고 밝히신다. 편의 끝은 「법왕이 이미 나라에서 자리를 잃었으니 인왕이 어찌 안온하겠는가」라는 한 구절로, 제5편의 국가 간효와 재난론으로 이어진다.

「예산(叡山)」은 교토 북동쪽의 히에이산(比叡山), 곧 전교대사가 연력 7년(788) 근본중당을 세우고 뒷날 일본 천태법화종의 근본 도량이 된 산을 가리킨다. 本文은 이 산을 「법화경의 행자가 계셨던 곳」으로 기억하면서, 동시에 「이름과 영지는 천태산이나 그 주인은 진언사」가 된 곳으로 그린다. 이 편의 일곱 장은 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사람의 순서대로 따라간다.

제13장은 홍법의 진언 전홍이다. 근조 승정의 제자 구카이는 입당하여 혜과에게서 양계를 받고 돌아와 동사(東寺)를 받아 진언종을 세웠다. 그의 교판은 법화경을 「희론의 법」, 석존을 「무명의 변역」, 천태대사를 「도둑」이라 불렀다. 제14 · 15장은 자각과 지증의 전락이다. 두 사람은 히에이산의 제3대 · 제5대 좌주이면서 당에서 진언을 배워 와 「이치는 같고 사상은 진언이 낫다(이동사승)」는 뜻을 히에이산에 들였다. 자각은 자기 소(疏)가 불의에 맞는지 기청하다가 해를 쏘는 꿈을 꾸고 그것을 길몽이라 기뻐했고, 지증은 저술마다 진언이 낫다, 법화가 낫다, 둘이 같다고 말을 바꾸었다.

제16장에서 대성인은 두 사람을 정면으로 꾸짖으신다. 근거는 전교대사 자신의 『의빙집』이다. 진언 · 화엄 · 삼론 · 법상 네 종을 파한 이 책을 두고, 두 사람은 이름으로만 전교의 제자일 뿐 마음은 제자가 아니라고 하신다. 제17장은 법화경 안락행품 · 약왕품과 전교대사의 『법화수구』 · 『의빙집』으로 「소지(所持)의 법이 제일이므로 능지(能持)의 사람도 제일」이라는 원리를 세우고, 제18장은 그 원리에 비추어 인도 · 중국 · 일본에서 「일체중생 가운데 제일」인 사람은 석존 · 천태 · 전교 세 사람뿐이라고 밝힌다. 제19장은 거꾸로, 오늘의 일본에는 법화경을 비방하는 사람만 있다는 것을 히에이산 · 온조사(미이데라) · 동사 · 고야산의 사적과 다툼, 그리고 외도 · 찬탈의 옛 예로 드러낸다.

이 편의 장

第13章弘法の真言伝弘제13장 홍법의 진언 전홍 — 구카이의 입당과 진언종 개립, 「제1 대일경 · 제2 화엄 · 제3 법화」의 교판과 그 비방
第14章慈覚の真言転落제14장 자각의 진언 전락 — 엔닌의 이동사승, 해를 쏘는 꿈, 기청과 선지가 서로 어긋나다
第15章智証の真言転落제15장 지증의 진언 전락 — 엔친의 입당과 『대일경지귀』 · 『수결집』 · 칙선의 세 가지 말
第16章慈覚智証を破責す제16장 자각 · 지증을 파책하다 — 자어상위, 『의빙집』의 증거, 이름만 제자인 사람들
第17章法華最勝の経釈제17장 법화 최승의 경과 석 —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와 「일체중생 가운데 또한 제일」
第18章法華経の三国三師제18장 법화경의 삼국 삼사 — 석존 · 천태 · 전교, 성인은 천 년에 한 번 나온다
第19章日本に謗者のみあるを明かす제19장 일본에 비방자만 있음을 밝히다 — 박쥐 같은 제자, 산문 · 사문의 싸움, 홍법 문하의 광혹, 법왕을 잃은 나라
제13장 홍법의 진언 전홍
어서 305쪽 5~17행 · 第13章 弘法の真言伝弘

본문

원문 대조어서 305쪽 5~17행
本文 · 어서 원문

又石淵の勤操僧正の御弟子に空海と云う人あり後には弘法大師とがうす、去ぬる延暦二十三年五月十二日に御入唐、 漢土にわたりては金剛智・善無畏の両三蔵の第三の御弟子慧果和尚といゐし人に両界を伝受し大同二年十月二十二日に御帰朝平城天王の御宇なり、 桓武天王は御ほうぎよ平城天王に見参し御用いありて御帰依・他にことなりしかども平城ほどもなく嵯峨に世をとられさせ給いしかば弘法ひき入れてありし程に伝教大師は嵯峨天王の弘仁十三年六月四日御入滅、 同じき弘仁十四年より弘法大師・王の御師となり真言宗を立てて東寺を給真言和尚とがうし此より八宗始る、 一代の勝劣を判じて云く第一真言大日経・第二華厳・第三は法華涅槃等云云、 法華経は阿含・方等・般若等に対すれば真実の経なれども華厳経・大日経に望むれば戯論の法なり、 教主釈尊は仏なれども大日如来に向うれば無明の辺域と申して皇帝と俘囚との如し、 天台大師は盗人なり真言の醍醐を盗んで法華経を醍醐というなんどかかれしかば法華経はいみじとをもへども弘法大師にあひぬれば物のかずにもあらず、 天竺の外道はさて置きぬ漢土の南北が法華経は涅槃経に対すれば邪見の経といゐしにもすぐれ華厳宗が法華経は華厳経に対すれば枝末教と申せしにもこへたり、 例ば彼の月氏の大慢婆羅門が大自在天・那羅延天・婆籔天・教主釈尊の四人を高座の足につくりて其の上にのぼつて邪法を弘めしがごとし、 伝教大師・御存生ならば一言は出されべかりける事なり、又義真・円澄・慈覚・智証等もいかに御不審はなかりけるやらん天下第一の大凶なり、

풀이

또 이와부치의 근조 승정의 제자에 구카이(空海)라는 사람이 있으니, 뒤에는 홍법대사(弘法大師)라 칭하였느니라. 지난 연력 23년 5월 12일에 입당하여, 한토에 건너가서는 금강지 · 선무외 두 삼장의 제3대 제자인 혜과(慧果) 화상이라는 사람에게서 양계(兩界)를 전수받고, 대동 2년 10월 22일에 귀조하니 헤이제이 천황의 치세이니라. 간무 천황은 이미 붕어하셨으므로 헤이제이 천황을 뵙고 쓰임을 받아 귀의함이 남다르셨으나, 헤이제이 천황은 오래지 않아 사가 천황에게 세상을 넘기셨으므로 홍법은 물러나 있었느니라. 그러는 동안 전교대사는 사가 천황의 홍인 13년 6월 4일에 입멸하시고, 같은 홍인 14년부터 홍법대사가 왕의 스승이 되어 진언종을 세우고 동사(東寺)를 받아 진언 화상이라 칭하니, 이로부터 팔종이 비롯되었느니라. 홍법은 일대의 승렬을 판하여 이르기를 「제1은 진언 대일경, 제2는 화엄, 제3은 법화 · 열반 등」이라 하였느니라. 「법화경은 아함 · 방등 · 반야 등에 대하면 진실의 경이지만, 화엄경 · 대일경에 견주면 희론(戲論)의 법이다. 교주 석존은 부처이지만 대일여래에 대하면 무명의 변역(無明の辺域)이라 하여 황제와 포로와 같다. 천태대사는 도둑이니 진언의 제호(醍醐)를 훔쳐 법화경을 제호라 하였다」는 등으로 썼으므로, 법화경은 훌륭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홍법대사를 만나면 법화경은 셈에도 들지 못하게 되었느니라. 천축의 외도는 제쳐 두더라도, 한토의 남북이 「법화경은 열반경에 대하면 사견의 경이다」라고 한 것보다도 더하고, 화엄종이 「법화경은 화엄경에 대하면 지말교(枝末教)이다」라고 한 것보다도 지나치느니라. 비유하면 저 월지의 대만 바라문이 대자재천 · 나라연천 · 바수천 · 교주 석존 네 분을 고좌의 다리로 만들고 그 위에 올라 사법을 넓힌 것과 같으니라. 전교대사께서 살아 계셨다면 한마디 말씀이 반드시 나왔을 일이니라. 또 의진 · 원징 · 자각 · 지증 등도 어찌 아무 의심이 없었던가. 천하 제일의 대흉(大凶)이니라.

어구 풀이

石淵の勤操僧正이와부치의 근조 승정
근조(勤操)(758~827)는 야마토국 이와부치사(石淵寺)의 삼론종 승려로, 선의(善議) 법사에게서 삼론을 받았다. 전교대사에게서 밀교의 관정을 받았고 구카이에게는 삼론을 전했다. 남도 육종 칠대사의 석덕 열네 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교대사와 논의하여 졌다고 전한다.
空海구카이
홍법대사(774~835)의 휘. 사누키국 다도군 출신으로 성은 사에키(佐伯) 씨, 어릴 적 이름은 마오(真魚). 연력 12년(793) 근조 아래서 득도하고, 연력 23년(804) 유학생으로 입당하여 청룡사의 혜과에게 관정을 받고 「변조금강(遍照金剛)」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홍인 7년(816) 고야산을, 홍인 14년(823) 동사를 하사받았다. 저술에 『삼교지귀』 3권 · 『변현밀이교론』 2권 · 『십주심론』 10권 · 『비장보약』 3권 등이 있다.
慧果和尚혜과 화상
당나라 진언의 승려. 불공의 제자로, 대종 · 덕종 · 순종 세 조정에서 국사로 존경받았다. 영정 원년(805) 구카이에게 법을 전했다. 동사 계통에서는 대일여래로부터 법을 이은 제7조로 센다. 本文이 「금강지 · 선무외 두 삼장의 제3대 제자」라 한 것은 금강지 → 불공 → 혜과로 이어지는 계보를 가리킨다.
両界양계
진언종이 의지하는 두 만다라. 『대일경』에 근거한 태장계와 『금강정경』에 근거한 금강계를 말한다.
東寺동사
간무 천황의 칙으로 연력 15년(796) 헤이안경 라조몬 좌우에 세운 두 절 가운데 동쪽 절(좌대사). 홍인 14년(823) 사가 천황이 구카이에게 하사하여 진언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다.
戯論の法희론의 법
쓸데없는 말장난과 같은 법이라는 뜻. 구카이가 『십주심론』 · 『비장보약』에서 법화경을 대일경 · 화엄경 아래 셋째에 두면서 붙인 말이다.
無明の辺域무명의 변역
구카이가 『비장보약』에서 한 말. 현교에서 말하는 법신 진여의 이치는 진언문에 대하면 겨우 불도의 첫 문(初門)이며, 그 첫 문은 밝음의 자리(明の分位)에 대하면 「무명의 언저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천태대사가 이 문에 의해 지관을 닦아 법화삼매를 얻었다는 대목까지 들어, 법화경의 부처와 천태의 깨달음을 함께 낮추었다.
皇帝と俘囚황제와 포로
대일여래를 황제에, 법화경의 교주 석존을 사로잡힌 포로에 견준 비유. 本文은 홍법의 이 판정을 그대로 들어 그 지나침을 드러내신다.
醍醐제호
우유를 정제한 다섯 맛(오미) 가운데 마지막 맛. 천태대사는 오시의 교판에서 법화 · 열반을 제호미에 두었는데, 구카이는 「진언의 제호를 천태가 훔쳐 법화경을 제호라 했다」고 주장했다.
大慢婆羅門대만 바라문
인도의 바라문. 외전에 밝아 민중의 존경을 받다가 교만해져, 외도의 세 신과 석존의 상을 고좌의 네 다리로 만들고 그 위에 앉아 자기 덕이 네 성인보다 뛰어나다며 설법했다. 현애(賢愛) 논사가 논파하자, 처형을 막아 준 논사를 오히려 욕하고 삼보를 헐뜯다가 땅이 갈라져 지옥에 떨어졌다고 현장의 『대당서역기』가 전한다.
大自在天대자재천
범어 마헤슈바라(Maheśvara). 본래 바라문교의 신 시바(Śiva)이며, 파괴와 구제의 두 얼굴을 지닌 신으로 여겨졌다. 『지관보행전홍결』 권10에 따르면 색계의 꼭대기에 있고 눈이 셋, 팔이 여덟이며 흰 소를 타고 삼차극을 든다.
那羅延天나라연천
범어 나라야나(Nārāyaṇa). 큰 힘을 지닌 신으로 견고역사 · 금강역사라고도 한다. 『대일경』에서는 비뉴천(비슈누)의 다른 이름으로 가루라 새를 타고 하늘을 다닌다고 한다.
婆籔天바수천
범어 바스데바(Vasu-deva). 세천(世天)이라 옮기며, 비뉴천의 아들로 여겨진다.
天下第一の大凶천하 제일의 대흉
홍법의 그릇된 판정을 바로잡아야 할 전교대사의 제자들이 아무 의심도 내지 않은 일을, 나라 전체에 미친 가장 큰 불길함으로 판정하신 말씀.

근조의 제자 구카이 — 입당과 진언종의 개립

제13장부터 本文은 일본 진언의 전래를 사람의 차례대로 밝힌다. 이 장은 홍법이고, 제14장은 자각, 제15장은 지증이다. 첫머리의 「또(又)」는 앞 장, 곧 전교대사가 선무외의 잘못을 알고 대일경을 법화천태종의 「방의경(傍依經)」으로 두어 진언종의 이름을 깎았다는 제12장의 서술을 받는다. 전교대사가 이미 진언의 자리를 정해 놓았는데, 그 바로 곁에서 다른 흐름이 자라났다는 것이다.

구카이의 스승으로 이름이 오른 근조 승정은 이 「보은초」 안에서 세 번 나온다. 제11장에서는 연력 21년(802) 간무 천황이 다카오사(高雄寺)에 불러 모은 남도 칠대사의 석덕 열네 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 장에서는 구카이의 스승으로, 또 한 번은 제31장에서 대성인이 조켄보 · 기조보에게 「각각 두 분은 니치렌의 어릴 적 스승이시니, 근조 승정 · 행표 승정이 전교대사의 스승이었다가 도리어 제자가 되신 것과 같다」(勤操僧正・行表僧正の伝教大師の御師たりしが・かへりて御弟子とならせ給いしがごとし, 323쪽)고 하실 때다. 같은 근조가 한쪽으로는 전교대사에게 법을 물은 사람이 되고, 다른 쪽으로는 구카이를 길러 낸 사람이 되었다. 本文이 구카이를 「근조 승정의 제자」로 소개하는 데에는, 전교대사에게 꺾인 남도 삼론의 학승 아래서 법화경을 셋째로 내리는 종이 자라났다는 아이러니가 함께 담겨 있다.

구카이는 연력 23년(804) 5월 12일, 전교대사와 같은 해의 견당사 일행으로 바다를 건넜다. 전교대사가 천태산에 올라 행만 좌주 · 도수 화상에게서 천태의 교관을 받는 동안, 구카이는 장안 청룡사의 혜과에게서 태장계 · 금강계 두 부의 관정을 받았다. 本文은 혜과를 「금강지 · 선무외 두 삼장의 제3대 제자」라 부르신다. 혜과는 불공의 제자이므로 금강지로부터는 3대째이고, 선무외의 태장계 법도 이어받았으므로 두 삼장의 법을 함께 지닌 사람으로 그렇게 일컫는 것이다.

귀조는 헤이제이 천황 때다. 간무 천황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헤이제이 천황은 구카이를 깊이 신임했으나 오래지 않아 사가 천황에게 자리를 넘겼다. 本文은 이 사이 구카이가 「물러나 있었다(ひき入れてありし)」고 하신다. 그리고 결정적인 일이 일어난다. 홍인 13년(822) 6월 4일 전교대사가 입멸한 것이다. 이듬해 홍인 14년(823)부터 구카이는 사가 천황의 스승이 되어 동사를 받고 진언종을 세운다. 本文은 이것을 「이로부터 팔종이 비롯되었다」고 하신다. 남도 육종에 전교대사의 천태법화종이 더해져 칠종이었던 것에, 전교대사의 입멸 직후 진언종이 독립한 종으로 끼어들어 팔종이 된 것이다. 제12장에서 전교대사가 「팔종으로 하지 않으시고 진언종의 이름을 깎아 칠종으로 하셨다」는 것과 정확히 맞서는 대목이다.

本文은 구카이의 귀조를 「대동 2년 10월 22일」, 헤이제이 천황 때로 적으신다. 일반 연보는 구카이가 대동 원년(806) 규슈에 돌아오고, 대동 4년(809) 무렵 교토에 들어간 것으로 적는다. 本文의 날짜는 그대로 옮겼다.

진언종이 세우는 상승 — 남천의 철탑에서 혜과까지

진언종이 스스로 세우는 법의 전래는 다음과 같다. 대일여래가 색구경천의 법계궁에서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설하고, 금강살타가 이를 결집하여 남천축의 철탑 속에 넣어 두었다. 석존 멸후에 용수보살이 그 철탑의 문을 열고 금강살타에게서 두 경을 받아 용지보살에게 전했다. 용지는 다시 『대일경』 등을 선무외에게, 『금강정경』을 금강지에게 주었다. 금강지의 법은 불공에게, 불공의 법은 혜과에게 이어졌다.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혜과는 모두 중국에서 밀교를 넓혔으나, 아직 「진언종」이라는 하나의 종파를 이루지는 않았다. 그것을 일본에서 하나의 종으로 세운 사람이 구카이다.

  1. 대일여래색구경천 법계궁에서 『대일경』 · 『금강정경』을 설함
  2. 금강살타결집하여 남천의 철탑에 둠
  3. 용수보살철탑을 열고 두 경을 받음
  4. 용지보살
  5. 갈래
    선무외『대일경』 — 태장계
    금강지『금강정경』 — 금강계
  6. 불공
  7. 혜과청룡사, 두 부를 함께 지님
  8. 구카이동밀일본 진언종 개립 · 동사
자각(엔닌) · 지증(엔친)태밀천태 좌주이면서 진언을 들임

진언종 스스로의 전승을 정리한 것 —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 상승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도표 1 · 진언종이 세우는 법의 전래

남천철탑의 상승은 진언종이 스스로 내세우는 전승이다. 용수가 철탑을 연 시기도 전승마다 달리 말해진다.

이 전래의 흐름은 일본에서 두 갈래가 된다. 구카이가 세운 동사를 중심으로 넓혀진 흐름을 「동밀(東密)」이라 하고, 자각 · 지증처럼 천태종의 좌주이면서 천태 · 법화를 밀어내고 진언을 제일로 세운 흐름을 「태밀(台密)」이라 한다. 이 편의 일곱 장은 이 두 갈래를 차례로 다룬다. 동밀은 바깥에서 법화경을 셋째로 내렸고, 태밀은 법화경의 산 안에서 법화경을 둘째로 내렸다. 대성인이 제16장에서 「홍법대사야말로 제일의 방법인이라 생각했는데, 이것은 그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 잘못」이라 하시는 까닭이 이 차이에 있다.

「제1 진언 · 제2 화엄 · 제3 법화」 — 홍법의 교판

本文은 홍법의 교판을 세 마디로 요약하신다. 「제1 진언 대일경, 제2 화엄, 제3 법화 · 열반 등」(第一真言大日経・第二華厳・第三は法華涅槃等, 305쪽). 구카이는 『십주심론』과 그 요약인 『비장보약』에서 사람의 마음이 열 단계로 깊어진다고 보고, 그 단계마다 여러 가르침을 배당했다. 그 끝에서 아홉째 자리에 화엄, 열째 자리에 진언을 두고, 법화경 곧 천태는 그 아래 여덟째에 두었다. 本文의 「제3」은 이 순위를 위에서부터 센 것이다.

이 교판에 붙은 말은 셋이다. 첫째, 법화경은 아함 · 방등 · 반야에 대하면 진실의 경이지만 화엄경 · 대일경에 견주면 「희론의 법」이라는 것. 둘째, 교주 석존은 부처이지만 대일여래에 대하면 「무명의 변역」이며 황제와 포로처럼 차이가 난다는 것. 셋째, 천태대사는 「도둑」이니 진언의 제호를 훔쳐 법화경을 제호라 했다는 것이다.

둘째의 「무명의 변역」은 『비장보약』의 다음 대목에서 나왔다.

法身真如一道無為の真理を明かす乃至諸の顕教においてはこれ究竟の理智法身なり、真言門に望むれば是れ即ち初門なり

법신 진여 일도무위의 진리를 밝힌다. (중략) 모든 현교에서는 이것이 구경의 이지(理智) 법신이지만, 진언문에 견주면 곧 첫 문이다.

『비장보약』,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此の理を証する仏をまた、常寂光土毘盧遮那と名づく、大隋天台山国清寺智者禅師、此の門によって止観を修し法華三昧を得

이 이치를 증득한 부처를 또한 상적광토의 비로자나라 이름한다. 대수 천태산 국청사의 지자 선사는 이 문에 의해 지관을 닦아 법화삼매를 얻었다.

같은 곳

かくの如き一心は無明の辺域にして、明の分位にあらず

이와 같은 일심은 무명의 변역이며 밝음의 자리가 아니다.

같은 곳

곧 현교의 여러 가르침이 말하는 법신 진여의 이치는 진언문에서 보면 불도의 입구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입구는 결과의 자리인 「밝음」에 대하면 아직 무명의 언저리라는 것이다. 이 논리는 천태대사가 법화삼매를 얻은 것까지 「첫 문」에 묶어 버린다. 법화경의 부처도, 법화경을 깨달은 천태도 대일여래와 진언 앞에서는 무명의 언저리에 서 있다는 주장이다.

셋째의 「제호를 훔쳤다」는 말은 천태대사의 오미 교판을 뒤집은 것이다. 천태대사는 『열반경』의 우유 · 락 · 생소 · 숙소 · 제호의 비유로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 법화열반의 오시를 짚고, 법화경을 제호미에 두었다. 구카이는 이 제호가 본래 진언의 것이었는데 천태가 가져다 법화경에 붙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천태대사는 수나라 사람이고, 진언의 경이 중국에 들어온 것은 당나라 선무외 · 금강지 때다. 앞서 세상을 떠난 사람이 뒤에 들어온 것을 훔쳤다는 말이 되니, 이 주장은 시간의 앞뒤부터 맞지 않는다.

本文은 그 결과를 이렇게 그리신다. 「법화경은 훌륭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홍법대사를 만나면 법화경은 셈에도 들지 못하게 되었다」(法華経はいみじとをもへども弘法大師にあひぬれば物のかずにもあらず, 305쪽). 한 사람의 권위 있는 교판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법화경의 자리를 한꺼번에 지워 버린 것이다.

남북 · 화엄종보다 더한 비방 — 대만 바라문의 고좌

本文은 홍법의 비방을 앞선 역사 속의 법화경 폄하들과 나란히 놓고 그 무게를 재신다. 인도의 외도는 처음부터 불법 밖의 사람이니 제쳐 둔다. 중국의 남삼북칠은 「법화경은 열반경에 대하면 사견의 경」이라 했고, 화엄종은 「법화경은 화엄경에 대하면 지말교」라 했다. 이 둘은 제3편에서 천태대사와 묘락대사가 파한 것이다. 홍법의 「희론」은 이 둘보다 더하고 지나치다고 대성인은 판정하신다.

한토의 남북「법화경은 열반경에 대하면 사견의 경」法華経は涅槃経に対すれば邪見の経천태대사가 공장 대결에서 파함
화엄종「법화경은 화엄경에 대하면 지말교」法華経は華厳経に対すれば枝末教묘락 · 전교가 파함
홍법「화엄경 · 대일경에 견주면 희론의 법」華厳経・大日経に望むれば戯論の法「석존은 무명의 변역」 · 「천태는 도둑」
대성인의 판정 — 남북보다 더하고(すぐれ) 화엄종보다 지나치다(こへたり)비유: 월지의 대만 바라문이 대자재천 · 나라연천 · 바수천 · 교주 석존 네 분을 고좌의 다리로 삼다
도표 2 · 법화경을 깎아내린 세 판정

남북의 설은 법화경을 열반경 아래에 두었으나 둘 다 석존의 경이라는 데는 다툼이 없었다. 화엄종도 법화경을 화엄경의 가지와 끝으로 보았으나 역시 같은 석존의 설법 안에서의 차례였다. 홍법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석존 바깥에 대일여래라는 다른 부처를 세우고, 그 부처 앞에서 석존을 포로로, 법화경을 말장난으로 만들었다. 법을 낮춘 데서 그치지 않고 교주 자체를 낮춘 것이다.

이 모습을 本文은 월지의 대만 바라문에 비유하신다. 대만은 대자재천 · 나라연천 · 바수천이라는 바라문의 세 신과 석존의 상을 고좌의 네 다리로 깎아 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자기가 네 성인보다 뛰어나다며 설법했다. 현애 논사가 법론으로 그 사견을 꺾었고, 국왕이 민중을 속인 죄로 대만을 처형하려 하자 현애가 말려 죄를 덜어 주었다. 그러나 대만은 오히려 논사를 욕하고 삼보를 헐뜯다가 땅이 갈라져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대당서역기』는 전한다. 교주 석존을 자기 자리의 받침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대일여래를 높여 석존을 그 아래 두는 홍법의 교판은 이 고좌와 같은 구조라는 것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홍법의 교판은 법의 순위를 바꾼 데서 그치지 않고 석존을 「무명의 변역」에, 천태를 「도둑」에 두어 교주와 정통의 스승을 함께 깎았다. 그래서 本文은 이것을 남북 · 화엄종의 폄하보다 무거운 비방으로 판정하신다.

왜 진언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가 — 주사친을 버린 종

대성인은 진언을 일러 나라를 망하게 하는 법이라 하셨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진언은 자기의 주군인 석존을 버리고 법신의 대일여래를 세우기 때문이다.

대일여래는 법신불이다. 『대일경』의 대일은 역사 속에 태어나 중생을 교화한 부처가 아니라 법 그 자체를 몸으로 하는 부처로 설해진다. 그러므로 대일여래는 사람들의 삶과 직접 맞닿아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부처는 일신즉삼신(一身卽三身)의 부처, 곧 법신 · 보신 · 응신을 한 몸에 갖추고 자비와 지혜로 중생을 이끄는 부처다. 이런 부처만이 중생을 지키는 주(主)의 덕, 이끄는 사(師)의 덕, 기르는 친(親)의 덕, 곧 주사친 삼덕을 갖춘다. 정법 · 상법 시대에는 석존이, 말법에는 니치렌 대성인이 이 주사친 삼덕의 부처라는 것이 대성인 불법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주사친을 갖춘 석존을 버리고 법신의 대일을 받드는 것은, 한 나라로 말하면 자기 임금을 버리고 이름뿐인 다른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다. 보은초 전체가 묻는 사은 — 부모 · 스승 · 삼보 · 국왕의 은혜 — 의 눈으로 보아도, 진언은 삼보의 은혜와 스승의 은혜를 뒤집는 가르침이 된다. 주군을 버린 백성이 나라를 지킬 수 없듯이, 주사친의 부처를 버린 나라는 그 나라를 지킬 근본을 잃는다. 이것이 「진언 망국」의 뜻이다.

잘못된 종교가 왜 나라를 망하게 하는가 — 이것은 종교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들린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本国に此れをしれる者は但日蓮一人なり

일본국에 이것을 아는 자는 다만 니치렌 한 사람뿐이니라.

「개목초」, 200쪽

아무리 불도 수행에 힘쓰고 노력을 쌓아도, 나라에 나라를 망하게 하는 법이 퍼져 있으면 민중의 행복은 있을 수 없다. 특히 한 나라의 지도자, 정치의 권력을 쥔 사람이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 이것이다. 제5편에서 대성인이 국가를 간효하시고, 제6편에서 진언의 악한 현증을 낱낱이 드시는 것은 모두 이 원리에서 나온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진언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것은 주문의 효험을 다투는 말이 아니라, 주사친 삼덕의 부처를 버리고 삶과 동떨어진 법신을 받드는 「근본의 전도」를 가리킨다.

본지신설과 가지신설 — 뒷날 진언 교학의 갈래

홍법의 흐름은 뒷날 교리 해석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그 분기점은 『대일경』을 설한 대일여래가 어떤 몸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한쪽은 법신 대일여래가 스스로 깨달은 극의의 절대적인 자리(自證極位)에서 그대로 설한 것이 『대일경』이라고 본다. 이것을 「본지신 설법(本地身說法)」이라 한다. 다른 쪽은 법신이 중생을 가호하기 위해 가지신(加持身)을 나타내어 설한 것이 『대일경』이라고 본다. 이것을 「가지신 설법(加持身說法)」이라 한다. 앞의 것을 고의(古義), 뒤의 것을 신의(新義)라 부르는데, 신의의 흐름은 제19장에서 본문이 드는 쇼카쿠보 각반(覺鑁)의 전법원에서 비롯된다.

본지신설 · 가지신설의 구분은 진언 교학 안의 해석 차이이며, 어느 쪽에 속하는가에 따라 고의 · 신의로 일컫는다. 여기서는 교리의 갈래만 소개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다. 석존 출세의 본회인 법화경을 「제3」의 열등한 경, 「희론」으로 내리고, 석가불을 「무명의 변역」에 두는 홍법의 교판은 두 갈래가 함께 이어받았다. 대일여래의 몸을 어떻게 보느냐로 갈라졌을 뿐, 법화경과 석존을 대일 아래에 둔다는 근본은 갈라지지 않은 것이다. 대성인이 진언을 문제 삼으실 때 겨누시는 것은 바로 이 공통의 근본이다.

「천하 제일의 대흉」 — 의진 · 원징 · 자각 · 지증의 침묵

장의 끝에서 대성인은 두 가지를 말씀하신다. 하나는 「전교대사께서 살아 계셨다면 한마디 말씀이 반드시 나왔을 일」이라는 것이다. 홍법이 진언종을 세운 것은 전교대사의 입멸 바로 다음 해였다. 전교대사는 남도 육종의 석덕들을 다카오사에서 꺾고, 『수호국계장』 · 『법화수구』 · 『의빙집』으로 법상 · 화엄 · 삼론 · 진언을 파한 분이다. 그런 분이 살아 계셨다면 「법화경은 희론」이라는 말을 그냥 두셨을 리 없다.

다른 하나는 의진 · 원징 · 자각 · 지증에 대한 물음이다. 이들은 전교대사의 뒤를 이어 히에이산을 지킨 사람들이다. 의진은 제1대 좌주, 원징은 제2대 좌주, 자각은 제3대, 지증은 제5대 좌주다. 이들이야말로 스승의 법화경이 「희론」으로 불리는 것을 보고 일어나 논파해야 할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어찌 아무 의심이 없었던가」(いかに御不審はなかりけるやらん, 305쪽). 대성인은 이 침묵을 「천하 제일의 대흉」이라 하신다.

이 물음은 다음 장들의 문을 연다. 제14 · 15장에서 보듯이 자각과 지증은 의심을 내기는커녕 스스로 당에 가서 진언을 배워 와 「이동사승」을 히에이산에 들였다. 제16장의 결론처럼, 이 두 사람이 홍법의 사의를 꾸짖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제19장에서는 의진만이 전교대사를 닮았고, 원징은 반은 전교의 제자 반은 홍법의 제자였다고 한 사람씩 판정하신다. 이 장 끝의 「천하 제일의 대흉」은 그 모든 판정을 미리 한마디로 묶은 말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사법을 세운 사람보다 그것을 보고도 꾸짖지 않은 정법의 계승자들의 침묵을 「천하 제일의 대흉」이라 하신 것은, 스승의 법을 지키는 일이 제자의 보은이라는 보은초 전체의 논지와 이어진다.

제14장 자각의 진언 전락
어서 305쪽 17행~306쪽 12행 · 第14章 慈覚の真言転落

본문

원문 대조어서 305쪽 17행 ~ 306쪽 12행
本文 · 어서 원문

慈覚大師は去ぬる承和五年に御入唐・漢土にして十年が間・天台・真言の二宗をならう、 法華・大日経の勝劣を習いしに法全・元政等の八人の真言師には法華経と大日経は理同事勝等云云、 天台宗の志遠・広修・維蠲等に習いしには大日経は方等部の摂等云云、同じき承和十三年九月十日に御帰朝・嘉祥元年六月十四日に宣旨下、 法華・大日経等の勝劣は漢土にしてしりがたかりけるかのゆへに金剛頂経の疏七巻・蘇悉地経の疏七巻・已上十四巻此疏の心は大日経・金剛頂経・蘇悉地経の義と法華経の義は其の所詮の理は一同なれども事相の印と真言とは真言の三部経すぐれたりと云云、 此れは偏に善無畏・金剛智・不空の造りたる大日経の疏の心のごとし、 然れども我が心に猶不審やのこりけん又心にはとけてんけれども人の不審をはらさんとや・おぼしけん、 此の十四巻の疏を御本尊の御前にさしをきて御祈請ありき・かくは造りて候へども仏意計りがたし大日の三部やすぐれたる法華経の三部やまされると御祈念有りしかば五日と申す五更に忽に夢想あり、 青天に大日輪かかり給へり矢をもてこれを射ければ矢飛んで天にのぼり日輪の中に立ちぬ日輪動転してすでに地に落んとすと・をもひて・うちさめぬ、 悦んで云く我吉夢あり法華経に真言勝れたりと造りつるふみは仏意に叶いけりと悦ばせ給いて宣旨を申し下して日本国に弘通あり、 而も宣旨の心に云く「遂に知んぬ天台の止観と真言の法義とは理冥に符えり」等と云云、祈請のごときんば大日経に法華経は劣なるやうなり、 宣旨を申し下すには法華経と大日経とは同じ等云云。

풀이

자각대사(慈覺大師)는 지난 승화 5년에 입당하여 한토에서 십 년 동안 천태 · 진언 두 종을 배웠느니라. 법화경과 대일경의 승렬을 배울 때, 법전(法全) · 원정(元政) 등 여덟 명의 진언사에게서는 「법화경과 대일경은 이동사승(理同事勝)」 등이라 배우고, 천태종의 지원(志遠) · 광수(廣修) · 유견(維蠲) 등에게서는 「대일경은 방등부에 속한다」 등이라 배웠느니라. 같은 승화 13년 9월 10일에 귀조하고, 가상(嘉祥) 원년 6월 14일에 선지가 내렸느니라. 법화경 · 대일경 등의 승렬은 한토에서도 알기 어려웠던 까닭인지, 『금강정경소』 7권 · 『소실지경소』 7권, 합하여 14권을 지었느니라. 이 소의 마음은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의 뜻과 법화경의 뜻은 그 소전(所詮)의 이치는 하나이지만, 사상(事相)인 인(印)과 진언에서는 진언의 삼부경이 뛰어나다」는 것이니라. 이것은 오로지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이 지은 『대일경소』의 마음과 같으니라. 그러나 제 마음에 아직 의심이 남았던 것인지, 또는 마음으로는 풀렸으나 남의 의심을 씻고자 생각했던 것인지, 이 14권의 소를 본존 앞에 놓고 기청(祈請)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지었으나 불의(佛意)는 헤아리기 어렵다. 대일의 삼부가 뛰어난가, 법화경의 삼부가 나은가」 하고 기념하니, 닷새째 되는 날 오경(五更)에 홀연히 꿈을 꾸었느니라. 푸른 하늘에 큰 해가 걸려 있는데, 화살로 이것을 쏘니 화살이 날아 하늘에 올라 해 가운데 꽂혔고, 해가 흔들려 금방이라도 땅에 떨어지려 한다고 생각하다가 깨었느니라. 기뻐하여 말하기를 「나에게 길몽이 있다. 법화경보다 진언이 뛰어나다고 지은 글은 불의에 맞았다」 하고 기뻐하시어, 선지를 받아 내려 일본국에 홍통하였느니라. 그런데 그 선지의 마음에는 「마침내 알았노라, 천태의 지관과 진언의 법의는 이치가 그윽이 부합한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기청한 바대로라면 대일경에 비해 법화경은 열등한 듯하고, 선지를 받아 내린 데서는 법화경과 대일경은 같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慈覚大師자각대사
엔닌(圓仁)(794~864). 히에이산 엔랴쿠사 제3대 좌주. 자각은 시호. 열다섯 살에 히에이산에 올라 전교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칙을 받들어 승화 5년(838) 입당하여 범서와 천태 · 진언 · 선 등을 배우고 돌아와, 인수 4년(854) 원징의 뒤를 이어 좌주가 되었다. 천태종에 진언 밀교를 들여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은 법화경과 소전의 이치는 같지만 사상의 인과 진언에서 뛰어나다」고 세웠다.
法全법전
생몰년 미상. 당나라 진언의 승려로 혜과의 법손. 장안 청룡사에서 의조(義操)에게 태장계를 배우고 현법사를 거쳐 청룡사로 옮겼다. 자각 · 지증을 비롯한 일본의 유학승 다수가 법전에게서 태장계를 배우고 두 절의 의궤를 가지고 돌아왔다.
元政원정
당나라 진언의 승려. 혜과의 제자 혜칙(惠則)을 따라 밀교를 닦고 장안 대흥선사 번경원에 머물렀다. 자각은 그에게서 금강계의 가르침을 받았다.
志遠지원
(768~844). 당나라 천태종 승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어머니가 늘 법화경을 염하여 그 뜻을 깨쳤다고 한다. 여러 곳의 명덕을 찾아 오대산 화엄사에서 천태종을 배우고, 입당한 자각에게 지관을 전했다.
広修광수
(771~843). 당나라 천태종 승려. 광수(廣脩)라고도 쓰며 지행존자라 불린다. 도수 화상의 제자로 천태산 선림사에서 천태의 교관을 배웠고, 법화경 · 유마경 · 금광명경을 날마다 독송했다고 한다. 원징이 보낸 「엔랴쿠사 미결 삼십조」에 개성 5년(840) 제자 유견과 함께 답했다.
維蠲유견
당나라 천태종 승려. 천태산 광수 좌주의 고제로, 묘락대사의 법증손에 해당한다.
理同事勝이동사승
법화경과 진언의 경은 설해 밝히는 이치(理)는 같으나, 손으로 맺는 인(印)과 입으로 외는 진언이라는 사상(事)에서는 진언의 경이 뛰어나다는 주장. 『대일경소』의 입장을 이어받아 자각이 히에이산에 들였다.
方等部の摂방등부에 속함
천태대사의 오시 교판에서 셋째인 방등시(方等時)의 경에 들어간다는 뜻. 당의 천태 학승들은 대일경을 법화경보다 훨씬 아래인 방등부의 경으로 보았다.
疏소
막힘없이 통하게 한다는 뜻에서, 경전의 글과 뜻의 갈피를 밝혀 알기 쉽게 풀어 나누는 일, 또는 그런 글을 말한다.
金剛頂経の疏七巻『금강정경소』 7권
자각이 지은 『금강정경』의 주석서. 인수 원년(851)에 지었다고 전한다.
蘇悉地経の疏七巻『소실지경소』 7권
자각이 지은 『소실지경』의 주석서. 『금강정경소』와 함께 태밀 교학의 기초가 되었다. 제형 2년(855)에 지었다고 전한다.
五更오경
밤을 다섯으로 나눈 마지막 때. 새벽 네 시 전후, 날이 밝기 직전이다.
忽に夢想あり홀연히 꿈을 꾸다
자각은 두 소를 불상 앞에 두고 이레 동안 기도했는데, 닷새째 밤 맑은 하늘의 해를 쏘아 흔들리게 하는 꿈을 꾸고 이것이 불의에 맞은 길몽이라 하여 후세에 전했다. 그러나 이 꿈은 길몽이 아니라 악몽이다.
理冥に符えり이치가 그윽이 부합한다
선지의 말. 천태의 지관과 진언의 법의가 이치에서는 보이지 않게 서로 들어맞는다는 뜻이다. 기청의 결론(진언이 낫다)과 달리 「같다」를 말하고 있다.

당에서의 십 년 — 두 갈래의 스승이 준 두 갈래의 답

이 장은 자각의 전홍을 밝히고 그 방법을 파한다. 자각, 곧 엔닌은 승화 5년(838) 견당사를 따라 바다를 건넜다. 本文은 「한토에서 십 년 동안 천태 · 진언 두 종을 배웠다」고 하신다. 그가 배운 스승은 두 갈래였다.

한 갈래는 진언사들이다. 本文은 「법전 · 원정 등 여덟 명」이라 하신다. 법전은 혜과의 법손으로 장안 청룡사에서 태장계를 전한 사람이고, 원정은 대흥선사 번경원에서 금강계를 전한 사람이다. 이들은 자각에게 「법화경과 대일경은 이동사승」이라고 가르쳤다. 다른 한 갈래는 천태종의 스승들이다. 지원은 오대산에서 천태를 배워 자각에게 지관을 전했고, 광수와 그 제자 유견은 천태산의 학승으로 묘락대사의 법을 이은 사람들이다. 광수와 유견은 일찍이 히에이산 제2대 좌주 원징이 보낸 「미결 삼십조」에 답한 일도 있다. 이 천태의 스승들은 「대일경은 방등부에 속한다」고 가르쳤다. 곧 대일경은 천태 오시의 셋째, 법화경보다 훨씬 아래의 경이라는 것이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시기에, 진언의 스승은 「이치는 같다」고 하고 천태의 스승은 「방등부의 경」이라고 했다. 자각은 천태의 산에서 온 사람이다. 천태의 스승이 준 답을 따르는 것이 자기 스승 전교대사의 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진언의 스승이 준 답을 골랐다. 本文이 「법화 · 대일경 등의 승렬은 한토에서도 알기 어려웠던 까닭인지」(漢土にしてしりがたかりけるかのゆへに, 306쪽)라고 하시는 데에는 깊은 꾸짖음이 들어 있다. 십 년을 배우고도 가장 중요한 승렬을 가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本文은 자각의 귀조를 「승화 13년 9월 10일」로 적으신다. 일반 연보는 승화 14년(847) 귀국으로 적는다. 입당 기간을 本文은 「십 년」이라 하시는데, 838년부터 847년까지 햇수로 십 년이다. 本文의 날짜는 그대로 옮겼다.

이동사승이란 무엇인가 — 『금강정경소』 · 『소실지경소』

자각은 돌아와 가상 원년(848) 6월 14일 선지를 받고, 『금강정경소』 7권과 『소실지경소』 7권, 모두 14권의 소를 지었다. 本文은 이 소의 마음을 이렇게 요약하신다.

大日経・金剛頂経・蘇悉地経の義と法華経の義は其の所詮の理は一同なれども事相の印と真言とは真言の三部経すぐれたり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의 뜻과 법화경의 뜻은 그 소전의 이치는 하나이지만, 사상인 인과 진언에서는 진언의 삼부경이 뛰어나다.

「보은초」, 306쪽

이것이 이동사승이다. 「이(理)」는 경이 설해 밝히려는 궁극의 이치, 곧 소전의 이치를 말한다. 「사(事)」는 그 이치를 수행하는 구체적인 모습, 진언종에서는 손으로 맺는 인계(印契)와 입으로 외는 진언(眞言)을 말한다. 자각은 이치에서는 법화경과 진언의 삼부경이 같다고 하여 천태의 체면을 세우는 듯하면서, 실제 수행의 모습에서는 진언이 뛰어나다고 하여 결국 진언을 위에 두었다.

本文은 이것이 「오로지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이 지은 『대일경소』의 마음과 같다」고 하신다. 『대일경소』는 선무외가 설하고 일행이 받아 적은 대일경의 주석이다. 제12장에서 전교대사가 「선무외 삼장의 잘못」이라 하신 것이 바로 이 이동사승의 뿌리다. 일행은 천태의 교의에 밝은 사람이었으므로 『대일경소』는 천태의 교학을 빌려 대일경을 풀었고, 그 결과 「이치는 법화경과 같다」는 말이 나왔다. 이 이치마저 사실은 천태의 일념삼천을 빌려 온 것이라는 점은 제12장의 「진언종은 법화천태종의 정의를 훔쳐 대일경에 넣어 이동이라 했다」는 말씀이 이미 밝혔다.

이(理) · 소전의 이치법화경진언 삼부경「그 소전의 이치는 하나」其の所詮の理は一同
사(事) · 인과 진언진언 삼부경법화경「사상의 인과 진언은 진언의 삼부경이 뛰어나다」事相の印と真言とは真言の三部経すぐれたり
뿌리선무외 · 일행의 『대일경소』
결과이름은 천태, 실은 진언이 위
대성인의 판정이치는 천태에게서 빌린 것이고, 법화경에 없는 「사」란 없다
도표 3 · 이동사승의 구조

그렇다면 법화경에는 「사」가 없는가.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법화경 본문의 여래수량품은 구원의 부처가 실제로 성불하여 지금까지 교화해 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 위에서 일념삼천은 이치에 그치지 않고 사(事)의 일념삼천이 된다. 손가락의 모양과 입의 주문만을 「사」라 부르는 것은 사의 이름을 좁게 빌린 것이다.

본존 앞의 기청과 해를 쏘는 꿈

소를 지었으나 자각에게는 의심이 남았다. 本文은 그 속을 두 갈래로 헤아리신다. 「제 마음에 아직 의심이 남았던 것인지, 또는 마음으로는 풀렸으나 남의 의심을 씻고자 생각했던 것인지」. 어느 쪽이든 자각은 14권의 소를 본존 앞에 놓고 기청했다. 「이와 같이 지었으나 불의는 헤아리기 어렵다. 대일의 삼부가 뛰어난가, 법화경의 삼부가 나은가.」

닷새째 새벽, 오경에 꿈이 왔다. 푸른 하늘에 큰 해가 걸려 있었다. 자각이 화살로 그 해를 쏘았다. 화살은 하늘로 날아올라 해 한가운데 꽂혔고, 해는 흔들려 금방이라도 땅에 떨어질 듯했다. 거기서 깨었다. 자각은 기뻐하며 말했다. 「나에게 길몽이 있다. 법화경보다 진언이 뛰어나다고 지은 글이 불의에 맞았다.」 그리고 선지를 받아 일본 전국에 이 뜻을 넓혔다.

이 꿈을 길몽이라 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해는 예로부터 가장 높은 것, 밝음의 근원을 상징한다. 그 해를 쏘아 떨어뜨리려 한 꿈이 어떻게 길몽이겠는가. 어린아이라도 해를 쏘아 떨어뜨리는 꿈을 좋은 꿈이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큰 흉몽을 두고 불의에 맞았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말이 끊어진 일(言語道斷)이며, 이치로 따져도 합리적이지 않다. 제19장에서 대성인은 이 꿈의 뜻을 정면으로 풀어 주신다. 「법화경의 아버지를 잡아먹고 지니는 이의 어머니를 물어뜯은 것이니, 해를 쏘는 꿈을 꾼 것이 이것이다」(法華経の父を食らい持者の母をかめるなり日をいるとゆめに・みしこれなり, 310쪽). 자각이 쏜 해는 법화경이었던 것이다.

자각이 두 소를 지은 해는 『금강정경소』가 인수 원년(851), 『소실지경소』가 제형 2년(855)이라 전하며, 두 소를 불상 앞에 두고 이레 동안 기도하던 중 닷새째 밤에 꿈을 꾸었다고 한다.

기청과 선지가 서로 어긋나다

이 장의 끝에서 대성인은 또 하나의 모순을 짚으신다. 기청의 결론과 선지의 문구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각이 기청한 물음은 「대일이 뛰어난가, 법화가 나은가」였고, 꿈을 받고 내린 결론은 「진언이 뛰어나다」였다. 그런데 이 결론을 근거로 받아 낸 선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遂に知んぬ天台の止観と真言の法義とは理冥に符えり

마침내 알았노라, 천태의 지관과 진언의 법의는 이치가 그윽이 부합한다.

「보은초」, 306쪽에 인용된 선지

곧 선지는 「같다」고 말한다. 本文의 결말은 짧고 날카롭다. 「기청한 바대로라면 대일경에 비해 법화경은 열등한 듯하고, 선지를 받아 내린 데서는 법화경과 대일경은 같다 등이라 하였다」. 꿈으로는 「진언이 낫다」를 확인하고, 나라의 공식 문서로는 「둘이 같다」를 세운 것이다. 안으로는 진언을 위에 두면서 밖으로는 천태의 산을 거스르지 않는 말을 내건 셈이다. 이 이중의 말은 제15장의 지증에게서 더 심해지고, 제16장에서 「자어상위」로 판정된다.

천태 좌주의 전락 — 「백천만억 배 믿기 어려운 최대의 악사」

자각의 죄가 무거운 까닭은 그가 선 자리에 있다.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홍법의 비방을 든 뒤 이렇게 말씀하셨다.

これよりも百千万億倍・信じがたき最大の悪事はんべり、慈覚大師は伝教大師の第三の御弟子なりしかれども上一人より下万民にいたるまで伝教大師には勝れてをはします人なりとをもえり、此の人真言宗と法華宗の実義を極めさせ給いて候が真言は法華経には勝れたりとかかせ給へり、而るを叡山三千人の大衆・日本一州の学者等・一同の帰伏の義なり

이보다도 백천만억 배 믿기 어려운 최대의 악사가 있느니라. 자각대사는 전교대사의 셋째 제자이시나, 위로 한 사람에서 아래로 만민에 이르기까지 전교대사보다 뛰어나신 분이라고 생각하였느니라. 이 사람이 진언종과 법화종의 실의를 다 궁구하시고는 진언은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쓰셨으니, 히에이산 삼천 명의 대중과 일본 한 나라의 학자들이 한결같이 귀복하는 뜻이 되었느니라.

「선시초」, 279쪽

日本国にして真言宗を法華経に勝るると立つるをば叡山こそ強がたきなりぬべかりつるに慈覚をもつて三千人の口をふさぎなば真言宗はをもうごとし、されば東寺第一のかたうど慈覚大師にはすぐべからず

일본국에서 진언종을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세우는 데에는 히에이산이야말로 강적이 되었을 터인데, 자각으로써 삼천 명의 입을 막았으니 진언종은 생각대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동사의 첫째가는 편은 자각대사보다 더한 이가 없느니라.

같은 곳

자각과 지증은 본래 천태종 사람이다. 자각은 전교대사의 직제자이고 지증은 손제자다. 그렇다면 그들은 스승의 바른 뜻을 받들어 크게 드러내고, 스승이 떠난 뒤 삿된 지혜와 견해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不自惜身命) 싸움을 해야 할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진언 연구에 빠져, 끝내 법화가 열등하고 진언이 뛰어나다는 홍법의 사의 쪽으로 굴러떨어졌다.

본래 홍법의 제자로서 스승의 뜻을 이어받았다면, 같은 길로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천태 좌주라는 불교계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사견에 빠진 것은 다르다. 히에이산이 진언에 맞서야 할 마지막 성벽이었는데, 그 성벽을 지키는 사람이 문을 열어 준 것이다. 「백천만억 배 믿기 어려운 최대의 악사」라는 꾸짖음은 이 때문이다. 대성인은 「조승문답」에서도 「자각대사를 무간이라 하는 것이다」(慈覚大師を無間と申すなり)라고까지 하셨다. 이 원리는 선시초 제4편 「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에서 자각 · 안연을 다루는 대목과 이어진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같은 사의라도 바깥의 적이 세운 것보다, 정법을 지켜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안으로 들인 것이 더 무겁다. 자각의 죄는 「천태 좌주」라는 자리 때문에 백천만억 배가 된다.

문증 · 이증 · 현증으로 본 해를 쏘는 꿈

종교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기준에 문증 · 이증 · 현증이 있다. 문증은 경문의 증거, 이증은 도리의 증거, 현증은 실제로 나타난 결과의 증거다. 자각의 꿈은 이 세 가지 어디에서도 서지 못한다.

문증으로 보면, 자각은 「법화경보다 진언이 낫다」는 것을 경문으로 증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꿈에 기댔다. 경문 대신 꿈을 증거로 세운 것 자체가 문증이 없다는 고백이다. 이증으로 보면, 해를 쏘아 떨어뜨리는 꿈을 길몽이라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현증으로 보면, 제19장에서 보듯이 자각 이후의 히에이산은 온조사와 끝없이 싸웠고, 자각의 본존과 대강당은 불탔으며, 자각 자신은 「죽은 뒤에 무덤도 없이 끝났다」.

문증경문의 증거가 없어 꿈으로 대신함자각「법화경보다 진언이 낫다고 지은 글은 불의에 맞았다」法華経に真言勝れたりと造りつるふみは仏意に叶いけり
이증해를 쏘아 떨어뜨리는 꿈은 길몽일 수 없음대성인「법화경의 아버지를 잡아먹고 … 해를 쏘는 꿈을 꾼 것이 이것이다」日をいるとゆめに・みしこれなり310쪽
현증산문 · 사문의 싸움, 본존 · 대강당의 소실「죽은 뒤에 무덤도 없이 끝났다」死去の後は墓なくてやみぬ310쪽
도표 4 · 해를 쏘는 꿈을 세 증거로 가리다

엔닌의 생애와 임종의 모습

자각의 휘는 엔닌이며 시모쓰케국 쓰가군 사람이다. 열다섯 살에 전교대사의 제자가 되었고, 뒤에 지관원에서 원돈계를 받았다. 승화 5년(838) 칙을 받들어 당에 건너가 구법의 수행과 연찬에 힘썼다. 그 사이의 일을 적은 일기 『입당구법순례행기』는 당시 당나라의 모습을 세밀하게 전하는 귀한 문헌으로 이름이 높다. 그러나 그는 돌아와 엔랴쿠사의 좌주가 된 뒤 진언으로 굴러떨어졌다. 세상이 아무리 존경하고 아무리 훌륭한 기록을 남겼더라도, 불법에서 큰 잘못, 큰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불법의 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홍법 · 지증을 비롯한 모든 사의의 스승에게 통하는 문제다.

『입당구법순례행기』 4권은 엔닌이 838년부터 847년까지 당에서 보고 들은 일을 적은 일기로, 회창 연간의 폐불 등 당대 사회를 전하는 사료로 널리 연구되어 왔다. 영어 번역으로 E. O. 라이샤워의 『Ennin's Diary』(1955)가 있다.

과연 홍법 · 자각 등의 마지막은 매우 좋지 않았다. 대성인은 「교행증어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一切は現証には如かず善無畏・一行が横難横死・弘法・慈覚が死去の有様・実に正法の行者是くの如くに有るべく候や、……是くの如き人人の所見は権経権宗の虚妄の仏法の習いにてや候らん、それほどに浦山敷もなき死去にて候ぞや

모든 것은 현증만 같지 못하니라. 선무외 · 일행의 횡난 횡사, 홍법 · 자각의 죽음의 모습이 참으로 정법의 행자라면 이와 같아야 하겠는가. (중략) 이와 같은 사람들의 소견은 권경 · 권종의 허망한 불법의 버릇이리라. 그토록 부러울 것도 없는 죽음이었느니라.

「교행증어서」, 1279쪽

자각의 유해는 데와국의 야마데라, 곧 입석사(立石寺)에 있다고 하는데, 머리와 몸이 따로 떨어져 있다고 전한다. 죽음의 모습이 매우 좋지 않았던 듯하다. 이 이야기는 제19장의 「죽은 뒤에 무덤도 없이 끝났다」는 本文과 이어진다. 홍법도 죽기 전에 몸에 악창이 나서 괴로워했고, 죽을 때에도 입정(入定)이라 하여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고 전한다. 대성인의 시대에는 이런 일들에 분명한 기록이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된다.

「먼저 임종의 일을 배우고 그 뒤에 다른 일을 배워야 한다」(臨終のことを習うて後に他事をならうべし, 「묘호니부인답서」, 1404쪽)는 말씀은 바로 이 대목에 맞닿는다. 한 사람이 평생 무엇을 믿었는가는 그 마지막 모습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제15장 지증의 진언 전락
어서 306쪽 13행~307쪽 6행 · 第15章 智証の真言転落

본문

원문 대조어서 306쪽 13행 ~ 307쪽 6행
本文 · 어서 원문

智証大師は本朝にしては義真和尚・円澄大師別当・慈覚等の弟子なり、 顕密の二道は大体・此の国にして学し給いけり天台・真言の二宗の勝劣の御不審に漢土へは渡り給けるか、 去仁寿二年に御入唐・漢土にしては真言宗は法全・元政等にならはせ給い大体・大日経と法華経とは理同事勝・慈覚の義のごとし、 天台宗は良諝和尚にならひ給い・真言・天台の勝劣・大日経は華厳・法華等には及ばず等云云、七年が間・漢土に経て去る貞観元年五月十七日に御帰朝、 大日経の旨帰に云く「法華尚及ばず況や自余の教をや」等云云、此釈は法華経は大日経には劣る等云云、 又授決集に云く「真言禅門乃至若し華厳法華涅槃等の経に望むれば是れ摂引門」等云云、普賢経の記・論の記に云く同じ等云云、 貞観八年丙戌四月廿九日壬申・勅宣を申し下して云く「聞くならく真言・止観・両教の宗同じく醍醐と号し倶に深秘と称す」等云云、 又六月三日の勅宣に云く「先師既に両業を開いて以て我が道と為す代代の座主相承して兼ね伝えざること莫し在後の輩豈旧迹に乖かんや、 聞くならく山上の僧等専ら先師の義に違いて偏執の心を成ず殆んど余風を扇揚し旧業を興隆するを顧みざるに似たり、 凡そ厥の師資の道・一を闕きても不可なり伝弘の勤め寧ろ兼備せざらんや、 今より以後宜く両教に通達するの人を以て 延暦寺の座主と為し立てて恒例と為すべし」云云。

풀이

지증대사(智證大師)는 본조에서는 의진 화상 · 원징대사 · 별당 · 자각 등의 제자이니라. 현밀(顯密)의 두 길은 대체로 이 나라에서 배우셨느니라. 천태 · 진언 두 종의 승렬에 대한 의심 때문에 한토에 건너가신 것인가. 지난 인수 2년에 입당하여, 한토에서는 진언종을 법전 · 원정 등에게 배우셨는데, 대체로 대일경과 법화경은 이동사승이라 하여 자각의 뜻과 같았느니라. 천태종은 양서(良諝) 화상에게 배우셨는데, 진언 · 천태의 승렬에 대해 「대일경은 화엄 · 법화 등에는 미치지 못한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칠 년 동안 한토에 머물다가 지난 정관 원년 5월 17일에 귀조하셨느니라. 『대일경지귀(大日經旨歸)』에 이르기를 「법화도 오히려 미치지 못한다. 하물며 그 밖의 가르침이랴」 등이라 하니, 이 해석은 법화경이 대일경보다 열등하다는 것이니라. 또 『수결집(授決集)』에 이르기를 「진언 · 선문은 (중략) 만약 화엄 · 법화 · 열반 등의 경에 견주면 이것은 섭인문(攝引門)이다」 등이라 하고, 『보현경기』 · 『논기』에도 같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정관 8년 병술 4월 29일 임신에 칙선(勅宣)을 받아 내려 이르기를 「들으니 진언 · 지관 두 가르침의 종은 다 같이 제호라 이름하고 함께 심비(深秘)라 일컫는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또 6월 3일의 칙선에 이르기를 「선사(先師)께서 이미 양업(兩業)을 열어 이로써 우리 길로 삼으셨으니, 대대의 좌주가 이를 상승하여 겸하여 전하지 않은 이가 없다. 뒤에 있는 무리가 어찌 옛 자취를 거스르겠는가. 들으니 산 위의 승려들이 오로지 선사의 뜻을 어기고 편집(偏執)의 마음을 이룬다 하니, 거의 남은 가풍을 떨쳐 일으키고 옛 업을 흥륭하는 일을 돌아보지 않는 것 같다. 무릇 그 사자(師資)의 도는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되니, 전홍의 힘씀을 어찌 겸비하지 않겠는가. 이제부터 이후로는 마땅히 두 가르침에 통달한 사람으로써 엔랴쿠사의 좌주로 삼아 세워 상례로 하라」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智証大師지증대사
엔친(圓珍)(814~891). 히에이산 엔랴쿠사 제5대 좌주. 지증은 시호. 사누키국 출신으로 속성은 와케(和氣) 씨. 열다섯 살에 히에이산에 올라 의진에게 사사하여 현밀 두 교를 배웠다. 칙을 받아 입당하여 천태와 진언을 여러 스승에게 배우고 경소 천 권을 가지고 돌아왔다. 정관 10년(868) 좌주가 되었다. 저술에 『수결집』 2권 · 『대일경지귀』 1권 · 『법화론기』 10권 등이 있다. 자각보다도 진언을 더 중시하여 불교계 혼탁의 근원이 되었다.
義真和尚의진 화상
(781~833). 헤이안 초기의 천태종 승려로 히에이산 엔랴쿠사 제1대 좌주. 수선대사라 일컫는다. 사가미 출신. 처음 나라의 고후쿠사에서 법상을 배우고 감진의 제자에게서 계를 받았으며 중국어에 능했다. 전교대사가 연력 23년(804) 입당할 때 통역승(역어승)으로 따라갔다. 전교대사가 입멸한 뒤 대승계단 설립의 칙허를 받아 계화상이 되었다. 저술에 『천태법화종의집』 1권이 있다. 대성인은 「의진 · 원징은 제1 · 제2의 좌주이니 제1의 의진만이 전교대사를 닮았다」(310쪽)고 하셨다.
円澄大師원징대사
(771~836). 히에이산 엔랴쿠사 제2대 좌주. 시호는 적광대사. 무사시 출신으로 처음 도추(道忠) 아래서 배우다가 전교대사에게 사사하여 원교 삼신 · 지관 삼덕의 뜻을 받았다고 한다. 대성인은 「제2의 원징은 반은 전교의 제자, 반은 홍법의 제자」(310쪽)라 하시고, 또 「원징은 천태 제2의 좌주, 전교대사의 제자이지만 또 홍법대사의 제자이다」(320쪽)라고 하셨다.
別当별당
고조(光定)(779~858). 엔랴쿠사의 별당이 되었으므로 별당대사라 불렸다. 이요 출신으로 서른 살에 전교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종의를 잘 논하였고 대승계단 설립에 힘을 다했다. 저술에 『일심계문』이 있다.
顕密の二道현밀의 두 길
현교와 밀교. 진언종에서는 대일경처럼 부처의 참뜻을 비밀히 설한 경을 밀교, 법화경처럼 드러내어 설한 경을 현교라 한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것을 거꾸로 본다(해설 「무엇이 참된 비밀인가」 참조).
良諝和尚양서 화상
생몰년 미상. 당나라 천태종 승려. 양서(良湑)라고도 쓴다. 천태대사로부터 제9대의 전법 제자로, 개원사에 머물며 이 절을 찾은 지증에게 천태의 종지를 강술했다. 「화상」은 제자가 스승을 부르는 말로, 선종에서는 「오쇼」, 천태에서는 「가쇼」, 진언 · 율종에서는 「와조」로 읽는다.
大日経の旨帰『대일경지귀』
지증의 저술. 「법화도 오히려 미치지 못한다」는 말로 대일경을 법화경 위에 두었다.
授決集『수결집』
지증의 저술. 2권. 진언 · 선문을 법화 · 화엄 · 열반에 대한 「섭인문」으로 두었다.
摂引門섭인문
진실의 가르침으로 거두어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의 문. 진언 · 선 등은 법화경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普賢経の記『보현경기』
지증의 저술 『관보현보살행법경기』 2권.
論の記『논기』
지증의 저술. 천친(세친)의 『법화론』을 주석한 『법화론기』 10권의 약칭.
醍醐제호
오미의 마지막 맛. 천태대사는 오시 교판에서 법화 · 열반을 제호미로 세웠는데, 진언종에서는 자기 종을 제호라 하는 뜻을 세운다.
両業양업
천태종의 학생이 배워야 할 두 가지 업. 지관업(止觀業)과 차나업(遮那業, 대일경 계통)을 말한다.
相承상승
「상」은 서로 마주한다는 뜻, 「승」은 이어 전한다는 뜻. 스승과 제자가 마주하여 스승에게서 제자에게 법을 이어 전하는 것.
旧迹옛 자취
전교대사가 열어 세운 천태종의 행업.
山上の僧산 위의 승려
히에이산 엔랴쿠사의 승려들.
扇揚선양
부채질하여 일으키듯 성하게 하는 것.
師資の道사자의 도
교법을 주고받는 도. 「자(資)」는 받는다는 뜻으로 제자를 말한다.

엔친의 출신과 일본에서의 수학

이 장은 지증의 전홍이다. 지증, 곧 엔친은 뒷날 온조사(園城寺)를 다시 일으킨 사람이다. 그는 자각과 같이 이동사승의 사의를 넓혔는데, 자각을 조사로 하는 히에이산 엔랴쿠사와 지증을 조사로 하는 온조사는 뒷날 서로 원수처럼 다투어, 일본의 역사와 불교사에 큰 얼룩을 남기게 된다. 그 다툼은 제19장에서 本文이 자세히 그리신다.

本文은 먼저 지증이 일본에서 누구에게 배웠는가를 밝히신다. 「의진 화상 · 원징대사 · 별당 · 자각 등의 제자」. 의진은 제1대 좌주로 전교대사의 입당에 통역승으로 따라간 사람이며, 원징은 제2대 좌주, 별당은 대승계단 설립에 힘을 다한 고조다. 자각은 앞 장의 엔닌이다. 지증은 전교대사의 직제자들에게 두루 배운 손제자인 셈이다. 그래서 本文은 「현밀의 두 길은 대체로 이 나라에서 배우셨다」고 하신다. 배울 것은 일본에서 이미 다 배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바다를 건넜는가. 本文은 「천태 · 진언 두 종의 승렬에 대한 의심 때문에 한토에 건너가신 것인가」 하고 물음의 형식으로 그 동기를 짚으신다. 승렬을 가리려고 갔다면, 그 답은 마땅히 스승 전교대사의 뜻과 같아야 했다.

입당 구법이라는 자격 — 불법동점에서 불법서환으로

지증은 전교대사 · 자각과 마찬가지로 당에 건너가 불법의 정사를 밝히려 했다. 불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오던 상법 시대에, 당시의 불도 수행자들은 한 번은 대륙에 건너가 일체경을 배우고 그 깊은 곳을 궁구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세간에서도, 또 관에 몸담은 처지에서도 하나의 자격처럼 여겨졌다. 입당하여 스승의 인가를 받아 경론을 가지고 돌아오는 일은 학승으로서의 권위가 되었다. 지증이 경소 천 권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도 그 권위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 이동의 방향은 말법에 이르러 뒤바뀐다. 상법까지의 불법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오는 「불법동점(佛法東漸)」이었다. 말법의 어본불은 이 일본국에 출현하시어 삼대비법을 세우셨고, 이로써 일체중생의 즉신성불도 이루어진다. 대성인은 「현불미래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仏記に順じて之を勘うるに既に後五百歳の始に相当れり仏法必ず東土の日本より出づべきなり

불기에 따라서 이를 생각하건대 이미 후오백세의 처음에 해당하느니라. 불법은 반드시 동토의 일본에서 나올 것이니라.

「현불미래기」, 508쪽

말법의 불법은 일본에서 서쪽으로 돌아간다. 이것을 「불법서환(佛法西還)」이라 한다. 지증이 진언을 구하러 서쪽으로 건너간 일은, 말법의 큰 흐름에 비추어 보면 거꾸로 선 발걸음이었다.

법전 · 원정과 양서 — 다시 이동사승

本文에 따르면 지증은 인수 2년에 입당하여 칠 년을 머물렀다. 진언은 자각과 같은 법전 · 원정 등에게 배웠고, 그 결론도 「대체로 대일경과 법화경은 이동사승이라 하여 자각의 뜻과 같았다」. 천태는 양서 화상에게 배웠는데, 양서는 「대일경은 화엄 · 법화 등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가르쳤다.

앞 장의 자각과 똑같은 구도다. 진언의 스승은 「이치는 같다」, 천태의 스승은 「대일경은 미치지 못한다」. 두 사람은 같은 갈림길에서 같은 쪽을 골랐다. 천태대사로부터 제9대의 전법 제자인 양서가 분명히 대일경을 법화경 아래에 두었는데도, 지증은 그 답을 자기 저술의 근본으로 삼지 않았다.

本文은 지증의 입당을 「인수 2년」, 귀조를 「정관 원년 5월 17일」, 체류를 「칠 년」이라 하신다. 일반 연보는 인수 3년(853) 입당, 천안 2년(858) 귀국으로 적는다. 本文의 날짜는 그대로 옮겼다.

지증의 세 가지 말 — 진언이 낫다, 법화가 낫다, 둘이 같다

이 장의 중심은 지증의 모순이다. 本文은 그의 저술과 그가 받아 낸 칙선을 차례로 드신다.

첫째, 『대일경지귀』는 「법화도 오히려 미치지 못한다. 하물며 그 밖의 가르침이랴」(法華尚及ばず況や自余の教をや, 307쪽)라고 한다. 진언이 뛰어나서 법화경조차 진언에 미치지 못하니, 다른 경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本文은 「이 해석은 법화경이 대일경보다 열등하다는 것」이라 짚으신다.

둘째, 『수결집』은 「진언 · 선문은 (중략) 만약 화엄 · 법화 · 열반 등의 경에 견주면 이것은 섭인문이다」(真言禅門乃至若し華厳法華涅槃等の経に望むれば是れ摂引門, 307쪽)라고 한다. 법화경이 뛰어나고 진언 등은 법화로 이끌어 들이는 방편의 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현경기』와 『법화론기』에도 같은 뜻이 실려 있다. 이것만 보면 지증은 전교대사의 뜻을 지킨 사람이다.

셋째, 정관 8년(866) 4월 29일의 칙선은 「진언 · 지관 두 가르침의 종은 다 같이 제호라 이름하고 함께 심비라 일컫는다」(真言・止観・両教の宗同じく醍醐と号し倶に深秘と称す, 307쪽)라고 한다. 진언과 법화는 같다는 것이다.

진언이 낫다『대일경지귀』「법화도 오히려 미치지 못한다. 하물며 그 밖의 가르침이랴」法華尚及ばず況や自余の教をや
법화가 낫다『수결집』 · 『보현경기』 · 『법화론기』「화엄 · 법화 · 열반 등의 경에 견주면 이것은 섭인문」若し華厳法華涅槃等の経に望むれば是れ摂引門
둘이 같다정관 8년 4월 29일 칙선「진언 · 지관 두 가르침의 종은 다 같이 제호라 이름하고 함께 심비라 일컫는다」真言・止観・両教の宗同じく醍醐と号し倶に深秘と称す
제16장의 판정「이것들은 모두 자어상위라 할 것이다」此れ等は皆自語相違といゐぬべし
도표 5 · 지증의 세 가지 말

이처럼 지증의 말은 진언이 낫다, 법화가 낫다, 둘이 같다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으로 일관한다. 한 사람이 세 가지 결론을 함께 내놓은 것이다. 이것이 다음 장에서 「자어상위(自語相違)」, 곧 자기 말이 자기 말과 어긋난다는 판정을 받는다.

그런데 왜 대성인은 지증의 저술과 나란히 칙선을 인용하셨는가. 칙선은 천황의 명령이지만, 그 문구는 지증이 아뢴 뜻을 그대로 받아 선포된 것이기 때문이다. 칙선은 지증이 스스로 「받아 내린(申し下して)」 것이다. 그러므로 칙선의 문구는 곧 지증의 주장이며, 그의 세 번째 말로 셈해진다.

6월 3일의 칙선 — 「양업」과 좌주의 조건

本文은 이어서 같은 해 6월 3일의 칙선을 길게 인용하신다. 그 요지는 이렇다. 선사 전교대사는 지관업과 차나업, 곧 「양업」을 열어 천태종의 수행으로 삼았다. 대대의 좌주도 이것을 이어받아 겸하여 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뒷사람이 이 옛 자취를 어겨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요즘 산 위의 승려들이 오로지 선사의 뜻을 어기고 편집의 마음을 내어, 옛 가풍을 떨치고 옛 업을 일으키는 일을 돌아보지 않는다. 무릇 사자의 도는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되니, 전홍의 힘씀은 선사처럼 겸비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현밀 두 가르침에 통달한 사람을 엔랴쿠사의 좌주로 세우는 것을 상례로 한다.

이 칙선은 겉으로는 전교대사를 높인다. 「선사가 이미 양업을 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교대사는 천태종의 연분도자(年分度者)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지관업, 한 명은 차나업으로 배우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진언을 천태와 대등하게 세운 것이 아니라, 제16장에서 보듯이 일산에서 양업을 닦아 장애를 없애는 방편으로 둔 것이다. 지증은 이 사실을 「두 가르침을 겸하는 것이 선사의 뜻」으로 바꾸어, 진언에 통달하지 않은 사람은 좌주가 될 수 없게 하였다. 진언을 배척하고 법화 제일을 지키려는 히에이산의 승려들을 「편집의 마음」을 가진 자들로 몰아세운 것이다.

이 칙선에는 대성인이 다음 장에서 그대로 되돌려 쓰시는 두 구절이 있다. 「오로지 선사의 뜻을 어기고 편집의 마음을 이룬다」(専ら先師の義に違いて偏執の心を成ず)와 「무릇 그 사자의 도는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凡そ厥の師資の道・一を闕きても不可なり)이다. 지증이 반대파를 꾸짖으려고 받아 낸 이 말이, 제16장에서 오히려 지증 자신을 꾸짖는 증거가 된다.

무엇이 참된 비밀인가 — 현교와 밀교의 뒤바뀜

지증의 칙선은 진언과 지관을 「함께 심비(深秘)라 일컫는다」고 했다. 진언종은 대일경처럼 부처의 참뜻을 비밀히 설한 경을 밀교, 법화경처럼 드러내어 설한 경을 현교라 하여, 밀교를 위에 둔다. 그러나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근본과 끝을 뒤집은 생각이다. 진실로는 대일경 같은 이전(爾前)의 경들이야말로 겉으로 드러난 얕은 가르침, 곧 현교이며, 일찍이 없던 생명의 깊은 이치를 밝힌 법화경이야말로 밀교다.

그 근거는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여래의 비밀 신통의 힘(如來秘密神通之力)」이다.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9에서 이 「비밀」을 이렇게 풀었다. 일신즉삼신인 것을 「비」라 하고, 삼신즉일신인 것을 「밀」이라 하며, 또 예로부터 설하지 않은 것을 「비」라 하고, 오직 부처만이 아는 것을 「밀」이라 한다.

三身即一身なるを名けて密と為す又昔より説かざる所を名けて秘と為し唯仏のみ知るを名けて密と為す仏三世に於て等しく三身有り諸教の中に於て之を秘して伝えず

(일신즉삼신인 것을 이름하여 비라 하고) 삼신즉일신인 것을 이름하여 밀이라 한다. 또 예로부터 설하지 않은 바를 이름하여 비라 하고, 오직 부처만이 아는 것을 이름하여 밀이라 한다. 부처는 삼세에 걸쳐 똑같이 삼신을 지니지만, 여러 가르침 가운데서는 이를 감추어 전하지 않았다.

『법화문구』 권9, T34 no.1718,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곧 참된 비밀이란 손가락의 인이나 입의 주문이 아니라, 여러 가르침이 감추고 전하지 않았던 부처의 삼신 상즉, 구원의 본지다. 여러 경이 「감추어 전하지 않은」 것을 비로소 밝힌 경이 법화경이므로, 법화경이야말로 「여래의 비밀의 곳간」이다. 제17장에서 대성인이 안락행품의 「이 법화경은 제불여래의 비밀의 장이다」를 가장 먼저 인용하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진언이 내세우는 「비밀」은 숨겨 둔 의식의 비밀이고, 법화경의 「비밀」은 부처의 본지가 비로소 드러난 비밀이다. 이름은 같아도 가리키는 곳이 정반대다.

홍법 · 자각 · 지증 — 세 사람의 걸음을 나란히 놓다

제13~15장에서 本文은 세 사람의 입당과 귀조, 그리고 각자가 세운 교판을 차례로 그리셨다. 나란히 놓으면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홍법은 진언종의 개조로서 바깥에서 법화경을 셋째로 내렸다. 자각은 전교대사의 직제자이자 제3대 좌주로서 이동사승을 세우고 꿈으로 그것을 확인했다. 지증은 손제자이자 제5대 좌주로서 저술마다 결론을 바꾸고, 칙선으로 진언을 좌주의 조건으로 만들었다.

홍법(구카이)
스승 · 자리
근조의 제자 · 홍인 14년(823) 동사
입당
연력 23년(804)
당의 스승
혜과에게 양계
귀조
本文 「대동 2년」
저술
—
판정
「제1 진언 · 제2 화엄 · 제3 법화」 — 법화경은 「희론」
자각(엔닌)
스승 · 자리
전교대사의 제자 · 제3대 좌주
입당
승화 5년(838)
당의 스승
법전 · 원정 / 지원 · 광수 · 유견
귀조
本文 「승화 13년」
저술
『금강정경소』 · 『소실지경소』
판정
「이동사승」 + 해를 쏘는 꿈
지증(엔친)
스승 · 자리
의진 · 원징 · 별당 · 자각의 제자 · 제5대 좌주
입당
本文 「인수 2년」
당의 스승
법전 · 원정 / 양서
귀조
本文 「정관 원년」
저술
『대일경지귀』 · 『수결집』 · 칙선
판정
「진언이 낫다 · 법화가 낫다 · 같다」
제16장의 판정 — 홍법보다 자각 · 지증의 잘못이 더 무겁다
도표 6 · 홍법 · 자각 · 지증의 걸음

세 사람 가운데 누구의 죄가 가장 무거운가. 상식으로는 법화경을 셋째로 내린 홍법이다. 그러나 대성인은 다음 장에서 이 상식을 뒤집으신다. 물과 불, 하늘과 땅처럼 분명한 잘못은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므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검정과 파랑처럼 헷갈리는 잘못은 지혜로운 사람마저 속인다. 「이치는 같다」는 자각 · 지증의 말이 바로 그 헷갈리는 잘못이었다.

제16장 자각 · 지증을 파책하다
어서 307쪽 7행~309쪽 7행 · 第16章 慈覚智証を破責す

본문

本文 · 一어서 307쪽 7~17행
本文 · 어서 원문

されば慈覚・智証の二人は伝教・義真の御弟子、 漢土にわたりては又天台・真言の明師に値いて有りしかども二宗の勝劣は思い定めざりけるか或は真言すぐれ或は法華すぐれ或は理同事勝等云云、 宣旨を申し下すには二宗の勝劣を論ぜん人は違勅の者といましめられたり、此れ等は皆自語相違といゐぬべし他宗の人はよも用いじとみえて候、 但二宗斉等とは先師伝教大師の御義と宣旨に引き載せられたり、抑も伝教大師いづれの書にかかれて候ぞや此の事よくよく尋ぬべし、 慈覚・智証と日蓮とが伝教大師の御事を不審申すは親に値うての年あらそひ日天に値い奉りての目くらべにては候へども慈覚・智証の御かたふどを・せさせ給はん人人は分明なる証文をかまへさせ給うべし、 詮ずるところは信をとらんがためなり、玄奘三蔵は月氏の婆沙論を見たりし人ぞかし天竺にわたらざりし宝法師にせめられにき、 法護三蔵は印度の法華経をば見たれども嘱累の先後をば漢土の人みねどもあやまりといひしぞかし、 設い慈覚・伝教大師に値い奉りて習い伝えたりとも智証・義真和尚に口決せりといふとも伝教・義真の正文に相違せばあに不審を加えざらん、

풀이

그러므로 자각 · 지증 두 사람은 전교 · 의진의 제자이고, 한토에 건너가서는 또 천태 · 진언의 명사(明師)를 만났으나, 두 종의 승렬은 마음에 정하지 못한 것인가. 혹은 진언이 뛰어나다 하고, 혹은 법화가 뛰어나다 하고, 혹은 이동사승 등이라 하였느니라. 선지를 받아 내릴 때에는 「두 종의 승렬을 논하는 사람은 칙명을 어기는 자」라고 금하였느니라. 이것들은 모두 자어상위(自語相違)라 할 것이니, 다른 종의 사람은 설마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느니라. 다만 「두 종이 가지런히 같다」는 것은 선사 전교대사의 뜻이라고 선지에 끌어 실었느니라. 대체 전교대사께서 어느 책에 쓰셨는가. 이 일은 잘 물어보아야 하느니라. 자각 · 지증과 니치렌이 전교대사의 일을 두고 의심을 말씀드리는 것은, 부모를 만나 나이를 다투고 해님을 뵙고 눈 밝기를 겨루는 것과 같지마는, 자각 · 지증의 편을 드시려는 사람들은 분명한 증문(證文)을 마련하셔야 하느니라. 요컨대 믿음을 얻기 위함이니라. 현장 삼장은 월지의 『바사론』을 본 사람이지만 천축에 건너가지 않은 보(寶) 법사에게 공격당했느니라. 법호 삼장은 인도의 법화경을 보았으나, 촉루품의 앞뒤에 대해서는 한토의 사람이 보지 않았는데도 잘못이라 하였느니라. 설령 자각이 전교대사를 만나 배워 전했고 지증이 의진 화상에게 구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전교 · 의진의 바른 글(正文)과 어긋난다면 어찌 의심을 더하지 않겠는가.

本文 · 二어서 307쪽 17행 ~ 308쪽 12행
本文 · 어서 원문

伝教大師の依憑集と申す文は大師第一の秘書なり、彼の書の序に云く「新来の真言家は則ち筆授の相承を泯し旧到の華厳家は則ち影響の軌範を隠し、 沈空の三論宗は弾訶の屈恥を忘れて称心の酔を覆う、著有の法相は撲揚の帰依を非し青竜の判経を撥う等、 乃至謹んで依憑集の一巻を著わして同我の後哲に贈る某の時興ること日本第五十二葉・弘仁の七丙申の歳なり」云云、 次ぎ下の正宗に云く「天竺の名僧大唐天台の教迹最も邪正を簡ぶに堪えたりと聞いて渇仰して訪問す」云云、 次ぎ下に云く「豈中国に法を失つて之を四維に求むるに非ずや而かも此の方に識ること有る者少し魯人の如きのみ」等云云、 此の書は法相・三論・華厳・真言の四宗をせめて候文なり、天台・真言の二宗・同一味ならばいかでかせめ候べき、 而も不空三蔵等をば魯人のごとしなんどかかれて候、善無畏・金剛智・不空の真言宗いみじくば・いかでか魯人と悪口あるべき、 又天竺の真言が天台宗に同じきも又勝れたるならば 天竺の名僧いかでか不空にあつらへ中国に正法なしとはいうべき、 それは・いかにもあれ慈覚・智証の二人は言は伝教大師の御弟子とは・なのらせ給ども心は御弟子にあらず、 其の故は此の書に云く「謹で依憑集一巻を著わして 同我の後哲に贈る」等云云、 同我の二字は真言宗は天台宗に劣るとならひてこそ同我にてはあるべけれ我と申し下さるる宣旨に云く「専ら先師の義に違い偏執の心を成す」等云云、 又云く「凡そ厥師資の道一を闕いても不可なり」等云云、此の宣旨のごとくならば慈覚・智証こそ専ら先師にそむく人にては候へ、 かうせめ候もをそれにては候へども此れをせめずば大日経・法華経の勝劣やぶれなんと存じていのちをまとに・かけてせめ候なり、

풀이

전교대사의 『의빙집(依憑集)』이라는 글은 대사 제일의 비서(祕書)이니라. 그 책의 서문에 이르기를 「새로 온 진언가는 필수(筆授)의 상승을 없애고, 예전에 온 화엄가는 영향의 궤범을 숨기며, 공에 잠긴 삼론종은 탄가(彈訶)의 굴욕을 잊고 칭심(稱心)의 취함을 덮으며, 유에 집착하는 법상은 복양(撲揚)의 귀의를 그르다 하고 청룡의 판경을 물리친다. (중략) 삼가 『의빙집』 한 권을 지어 나와 뜻을 같이하는 뒤의 현철에게 보낸다. 그때는 일본 제52대, 홍인 7년 병신의 해이다」 하였느니라. 다음 아래의 정종(正宗)에 이르기를 「천축의 명승이 대당 천태의 교적이 가장 사정(邪正)을 가리기에 족하다고 듣고 갈앙하여 찾아왔다」 하고, 그다음에 이르기를 「어찌 중국에서 법을 잃고 이를 사방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이쪽에서 아는 이가 적으니 노(魯)나라 사람과 같을 뿐이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이 책은 법상 · 삼론 · 화엄 · 진언의 네 종을 꾸짖은 글이니라. 천태 · 진언 두 종이 같은 한 맛이라면 어찌 꾸짖겠는가. 게다가 불공 삼장 등을 노나라 사람과 같다고까지 쓰셨느니라.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의 진언종이 훌륭하다면 어찌 노나라 사람이라는 험담이 있겠는가. 또 천축의 진언이 천태종과 같거나 또 뛰어나다면, 천축의 명승이 어찌 불공에게 부탁하여 중국에 정법이 없다고 말하겠는가. 그것은 어떻든 간에, 자각 · 지증 두 사람은 말로는 전교대사의 제자라고 이름하시지만 마음은 제자가 아니니라. 그 까닭은 이 책에 「삼가 『의빙집』 한 권을 지어 나와 뜻을 같이하는 뒤의 현철에게 보낸다」 하였으니, 「동아(同我)」 두 글자는 진언종이 천태종보다 열등하다고 배워야 비로소 「나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니라. 스스로 받아 내린 선지에 이르기를 「오로지 선사의 뜻을 어기고 편집의 마음을 이룬다」 하고, 또 「무릇 그 사자의 도는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하였으니, 이 선지대로라면 자각 · 지증이야말로 오로지 선사를 등진 사람이니라. 이렇게 꾸짖는 것도 두려운 일이기는 하나, 이것을 꾸짖지 않으면 대일경 · 법화경의 승렬이 무너지리라 생각하여 목숨을 과녁에 걸고 꾸짖는 것이니라.

本文 · 三어서 308쪽 12행 ~ 309쪽 7행
本文 · 어서 원문

此の二人の人人の弘法大師の邪義をせめ候はざりけるは最も道理にて候いけるなり、 されば粮米をつくし人をわづらはして漢土へわたらせ給はんよりは本師・伝教大師の御義を・よくよく・つくさせ給うべかりけるにや、 されば叡山の仏法は但だ伝教大師・義真和尚・円澄大師の三代計りにてやありけん、 天台座主すでに真言の座主にうつりぬ名と所領とは天台山其の主は真言師なり、されば慈覚大師・智証大師は已今当の経文をやぶらせ給う人なり、 已今当の経文をやぶらせ給うは・あに釈迦・多宝・十方の諸仏の怨敵にあらずや、弘法大師こそ第一の謗法の人とおもうに、 これは・それには・にるべくもなき僻事なり、其の故は水火・天地なる事は僻事なれども人用ゆる事なければ其の僻事成ずる事なし、 弘法大師の御義はあまり僻事なれば弟子等も用ゆる事なし事相計りは其の門家なれども其の教相の法門は弘法の義いゐにくきゆへに善無畏・金剛智・不空・慈覚・智証の義にてあるなり、 慈覚・智証の義こそ真言と天台とは理同なりなんど申せば皆人さもやと・をもう、 かう・をもうゆへに事勝の印と真言とにつひて天台宗の人人・画像・木像の開眼の仏事を・ねらはんがために日本・一同に真言宗におちて天台宗は一人もなきなり、 例せば法師と尼と黒と青とは・まがひぬべければ眼くらき人はあやまつぞかし、僧と男と白と赤とは目くらき人も迷わず、いわうや眼あきらかなる者をや、 慈覚・智証の義は法師と尼と黒と青とが・ごとくなる・ゆへに智人も迷い愚人もあやまり候て此の四百余年が間は叡山・園城・東寺・奈良・五畿・七道・日本一州・皆謗法の者となりぬ。

풀이

이 두 사람이 홍법대사의 사의를 꾸짖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었느니라. 그러니 양식을 다하고 사람을 괴롭혀 한토에 건너가시기보다는 본사 전교대사의 뜻을 잘 궁구하셨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히에이산의 불법은 다만 전교대사 · 의진 화상 · 원징대사의 삼대뿐이었던가. 천태 좌주는 이미 진언의 좌주로 옮겨 갔으니, 이름과 영지는 천태산이나 그 주인은 진언사이니라. 그러므로 자각대사 · 지증대사는 이금당(已今當)의 경문을 깨뜨리신 사람이니라. 이금당의 경문을 깨뜨리신 것은 어찌 석가 · 다보 · 시방 제불의 원적(怨敵)이 아니겠는가. 홍법대사야말로 제일의 방법인(謗法人)이라 생각했는데, 이것은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잘못이니라. 그 까닭은, 물과 불, 하늘과 땅처럼 다른 일은 잘못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쓰지 않으므로 그 잘못이 이루어지지 않느니라. 홍법대사의 뜻은 너무 잘못이므로 제자들도 쓰지 않느니라. 사상만은 그 문가이지만 그 교상의 법문은 홍법의 뜻으로는 말하기 어려우므로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자각 · 지증의 뜻을 따르느니라. 자각 · 지증의 뜻이야말로 「진언과 천태는 이치가 같다」 등이라 하니 모든 사람이 그럴까 하고 생각하느니라. 이렇게 생각하므로, 사(事)에서 뛰어나다는 인과 진언을 두고 천태종의 사람들이 화상 · 목상의 개안 불사를 노리려고 일본이 한결같이 진언종에 떨어져, 천태종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느니라. 예컨대 법사와 비구니, 검정과 파랑은 헷갈리기 쉬우므로 눈이 어두운 사람은 잘못 보느니라. 승려와 사내, 흰 것과 붉은 것은 눈이 어두운 사람도 헤매지 않느니라. 하물며 눈이 밝은 사람이랴. 자각 · 지증의 뜻은 법사와 비구니, 검정과 파랑과 같으므로 지혜로운 사람도 헤매고 어리석은 사람도 잘못하여, 이 사백여 년 동안 히에이산 · 온조사 · 동사 · 나라 · 오기 칠도 · 일본 한 나라가 모두 방법의 사람이 되었느니라.

어구 풀이

自語相違자어상위
자기의 말이 앞뒤로 서로 어긋나는 것. 자각 · 지증이 진언이 낫다, 법화가 낫다, 이동사승이라 하면서, 선지로는 승렬을 논하는 것 자체를 금한 일을 가리킨다.
玄奘三蔵현장 삼장
(602~664). 당나라 승려로 중국 법상종의 개조. 낙주 구씨현 사람으로 성은 진(陳) 씨. 열세 살에 출가하여 율 · 성실 · 구사를 배우고, 인도 각지를 돌아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돌아왔다. 『대반야경』 600권을 비롯하여 75부 1,335권을 번역했다고 한다. 태종의 칙을 받들어 17년에 걸친 여행을 적은 책이 『대당서역기』다.
婆沙論『바사론』
설일체유부 교설의 주석서. 구역은 북량의 부타발마 · 도태가 함께 옮긴 『아비담비바사론』 60권, 신역은 현장 역 『아비달마대비바사론』 200권이다.
宝法師보 법사
당나라의 고승 법보(法寶). 처음에는 현장의 고제였으나, 현장이 『바사론』을 다 옮겼을 때 비상처의 견혹에 관해 의문을 냈다. 현장이 스스로 열여섯 글자를 논 가운데 넣어 답하자, 보 법사는 부처의 말씀 속에 범본에 없는 말을 넣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현장의 문하를 떠났다. 뒤에 구사종을 넓혔다.
法護三蔵법호 삼장
축법호(竺法護). 서진 시대의 역경승. 여덟 살에 출가하였고, 대승 경전이 중국에 많이 전해지지 않음을 한탄하여 스스로 서역을 다니며 여러 언어를 배우고 번역에 일생을 바쳤다. 현존하는 세 법화경 번역 가운데 『정법화경』의 역자다.
嘱累の先後촉루품의 앞뒤
구마라집 역 『묘법연화경』에서는 촉루품이 제22품에 있으나 축법호 역 『정법화경』에서는 경의 끝에 있다. 묘락대사는 『법화문구기』 촉루품 해석에서 구마라집 역이 바르다고 했다.
依憑集『의빙집』
전교대사의 저술 『의빙천태집(依憑天台集)』 1권. 서문은 「천태의 전법은 제종의 밝은 거울이다」로 시작하며, 여러 종파가 사실은 천태에 의지하여 종과 뜻을 세웠음을 밝힌다. 홍인 7년(816)에 지었다.
筆授の相承を泯し필수의 상승을 없앰
「필수의 상승」은 당나라 일행 아사리가 선무외 삼장에게서 붓으로 받아 적은 진언의 상승을 말한다. 일행은 숭산의 보적에게 선을 배우고 율과 여러 경론을 연찬하며 천태의 교의에도 통했다고 한다. 선무외가 설하고 일행이 기록한 『대일경소』는 천태의 입장에서 대일경을 풀었는데, 홍법의 동밀은 이것을 절대의 권위로 삼으면서도 천태 법화를 대일 삼부 아래에 두었다. 이것이 선무외 · 일행의 상승을 깨뜨린 것이라는 뜻이다. 「민(泯)」은 멸하다, 쇠하게 하다의 뜻.
影響の軌範を隠し영향의 궤범을 숨김
화엄종이 천태의 영향을 받아 천태를 본보기로 삼은 사실을 숨긴다는 뜻. 화엄의 법장이 세운 오교(소승교 · 대승시교 · 대승종교 · 대승돈교 · 대승원교)는 천태의 오시(화엄시 · 아함시 · 방등시 · 반야시 · 법화열반시)를 본뜬 것이다.
弾訶の屈恥を忘れて탄가의 굴욕을 잊음
삼론종의 가상(길장)이 강설하던 중 천태의 학도인 열일곱 살의 법성(法盛)에게 논난을 당해 말문이 막혔던 일을 가리킨다고 전한다.
称心の酔を覆う칭심의 취함을 덮음
칭심은 장안대사(관정)가 머물던 곳. 가상이 장안대사의 강설를 듣고 몸과 마음이 취한 듯했다는 일을 숨긴다는 뜻.
撲揚の帰依を非し복양의 귀의를 그르다 함
복양은 중국 법상종 제3조 지주(智周)가 머문 곳. 지주는 처음 천태에 귀의하여 『보살계경』의 소를 지었는데, 일본의 법상종은 천태의 뜻을 따르지 않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青竜の判経を撥う청룡의 판경을 물리침
당나라 청룡사의 양분(良賁)이 『인왕경』을 주석할 때, 종래 법상종 스승들의 분과를 따르지 않고 천태대사의 『인왕경소』에 따라 분과한 사실을 잊었다는 뜻.
同我の後哲나와 같은 뒤의 현철
나와 뜻을 같이하는 뒤의 학자. 전교대사가 『의빙집』을 넘겨준 대상이다.
中国중국
여기서 「중국」은 인도를 말한다. 불교의 중심지라는 뜻으로 이렇게 부른다.
魯人노나라 사람
노나라 사람이 자기 나라에서 난 공자의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데서, 자기 곁에 있는 큰 법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전교대사는 천태의 법이 자기 나라에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한 당나라 사람들, 특히 불공 삼장 등을 이렇게 불렀다.
已今当이금당
법화경 법사품의 「이미 설했고(已說) 지금 설하며(今說) 앞으로 설할(當說) 모든 경 가운데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경문. 법화경이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경 위에 있음을 밝힌다.
五畿七道오기 칠도
「기」는 도읍에 가까운 제왕 직할의 땅. 교토를 중심으로 한 야마시로 · 야마토 · 가와치 · 이즈미 · 셋쓰의 다섯 나라와, 도카이도 · 도산도 · 호쿠리쿠도 · 산요도 · 산인도 · 난카이도 · 사이카이도의 일곱 길. 곧 일본 전국을 말한다.

「자어상위」 —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세 가지 결론

이 장은 자각 · 지증이 본사 전교대사를 등진 허물을 드러내고 그 방법의 죄를 파하신다. 첫머리는 앞의 두 장을 묶는다. 두 사람은 전교 · 의진의 제자이고 당에 가서는 천태 · 진언의 명사를 만났는데, 결국 승렬을 정하지 못한 것인가. 혹은 진언이 뛰어나다, 혹은 법화가 뛰어나다, 혹은 이동사승이라 했다. 그리고 선지로는 「두 종의 승렬을 논하는 사람은 칙명을 어기는 자」라고 금했다.

이처럼 진언과 법화의 승렬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제각각이므로 대성인은 「자어상위」라고 판정하신다. 엄밀히 말하면 자각은 「법화가 뛰어나다」고 말한 적이 없다. 법화가 뛰어나다고 쓴 것은 지증의 『수결집』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相從) 양쪽에 걸어 말씀하신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이동사승의 흐름을 이루었고, 그 흐름 안에서 이 세 가지 말이 모두 나왔다.

여기에 선지의 금령이 더해진다. 진언이 낫다고도 하고, 법화가 낫다고도 하고, 같다고도 한 사람들이, 정작 남이 승렬을 논하는 것은 칙명으로 금했다. 스스로는 결론을 정하지 못하면서 남이 결론을 내는 것은 막은 것이다. 「다른 종의 사람은 설마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처럼, 이런 말은 진언 쪽 밖의 사람에게는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등해초』가 정리한 진언 · 천태 승렬의 네 견해

진언과 천태의 승렬을 두고 히에이산 안에서도 여러 견해가 갈라져 있었다. 천태의 구전을 모은 『등해초(等海抄)』는 이것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尋ねて云く真言天台、勝劣同異に幾不同有りや。心賀御義に云く爾なり。四義不同なり。

묻는다. 진언과 천태의 승렬 · 동이에 몇 가지 다름이 있는가. 심하(心賀)의 뜻에 이르기를, 그렇다. 네 가지 뜻이 같지 않다.

『등해초』,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첫째는 진언이 사(事)와 이(理) 모두에서 한결같이 천태보다 뛰어나다는 뜻으로, 『등해초』는 이것을 홍법과 지증의 뜻이라 한다. 지증의 해석에 「남악대사의 삼관과 일심의 이치는 근원이 아자본공(阿字本空)의 이치에서 나왔다. 선무외 · 불공의 삼밀동체의 가르침은 그윽이 원돈일실을 돕는다」고 했으니, 이것은 낳는 법(能生)은 진언, 낳아진 법(所生)은 천태라고 해석한 것이므로 낳아진 법은 사 · 리 모두 열등하다는 뜻이 된다.

一には真言は事理倶に一向天台に勝る是れ弘法智証の御義なり。

첫째는 진언이 사와 이 모두에서 한결같이 천태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니, 이것은 홍법 · 지증의 뜻이다.

같은 곳

둘째는 사와 이를 함께 갖춘 비밀(事理俱密)에서는 진언이 뛰어나고, 이치만의 비밀(唯理秘密)에서는 두 종이 같다는 뜻이다. 『등해초』는 이것을 자각 · 오대원(안연) · 도솔 등의 뜻이라 한다.

二には事理倶密は真言勝れたり。唯理秘密は両宗同じ。慈覚、五大院、兜率等の御義なり。

둘째는 사리구밀에서는 진언이 뛰어나고 유리비밀에서는 두 종이 같다는 것이니, 자각 · 오대원 · 도솔 등의 뜻이다.

같은 곳

셋째는 진언과 천태가 사 · 리 모두 한결같이 완전히 같다는 뜻으로, 『등해초』는 이것을 전교의 뜻이라 하며 산가(전교대사)의 해석에 「진언과 지관은 그 취지가 하나다. 그러므로 한 산에서 두 종을 넓힌다」고 했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三には真言、天台は事理倶に一向全同なりと。是れ伝教の御義なり。

셋째는 진언과 천태가 사 · 리 모두 한결같이 완전히 같다는 것이니, 이것은 전교의 뜻이다.

같은 곳

넷째는 천태가 뛰어나고 진언은 열등하다는 뜻이다. 『등해초』는 이것에 대해서는 「사중비석(四重祕釋)으로 구전하는 자세한 사정이 있다」고만 하고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다.

四には天台は勝れ真言は劣るとは、四重秘釈を以て口伝する子細これ有り

넷째, 천태가 뛰어나고 진언은 열등하다는 것은 사중비석으로써 구전하는 자세한 사정이 있다.

같은 곳
첫째진언이 사 · 리 모두 천태보다 뛰어나다홍법 · 지증의 뜻「真言は事理倶に一向天台に勝る」
둘째사리구밀은 진언이 낫고 유리비밀은 같다(이동사승)자각 · 오대원 · 도솔의 뜻「事理倶密は真言勝れたり。唯理秘密は両宗同じ」
셋째사 · 리 모두 완전히 같다『등해초』가 전교의 뜻이라 함「事理倶に一向全同なり」
넷째구전천태가 낫고 진언은 열등하다「사중비석으로 구전」이라 하여 드러내지 않음
本文「대체 전교대사께서 어느 책에 쓰셨는가」抑も伝教大師いづれの書にかかれて候ぞや전교대사의 본의는 넷째
도표 7 · 『등해초』의 진언 · 천태 승렬 네 견해

이 정리는 대성인 시대의 히에이산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잘 보여 준다. 네 견해 가운데 셋은 진언을 천태와 같거나 위에 두고, 천태가 낫다는 넷째 견해는 「구전」의 비밀 속에 숨겨져 있다. 게다가 「두 종이 같다」는 셋째 견해를 전교대사의 뜻으로 돌려 놓았다. 대성인은 바로 이 마지막 점을 문제 삼으신다.

「전교대사께서 어느 책에 쓰셨는가」 — 증문을 내라

선지는 「두 종이 가지런히 같다(二宗斉等)」는 것이 선사 전교대사의 뜻이라고 끌어 실었다. 대성인은 이렇게 되물으신다. 「대체 전교대사께서 어느 책에 쓰셨는가. 이 일은 잘 물어보아야 한다.」 전교대사의 글 가운데 법화와 진언이 같다고 쓴 것은 없다는 말씀이다.

이어 대성인은 스스로를 낮추신다. 자각 · 지증은 전교대사를 직접 섬긴 사람이고 대성인은 사백여 년 뒤의 사람이다. 그런 대성인이 전교대사의 뜻을 두고 그들과 다투는 것은 「부모를 만나 나이를 다투고 해님을 뵙고 눈 밝기를 겨루는 것」과 같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각 · 지증의 편을 드시려는 사람들은 분명한 증문을 마련하셔야 한다」. 직제자라는 자리가 증거를 대신할 수는 없다. 「요컨대 믿음을 얻기 위함이다」라는 말씀처럼, 사람들이 바른 확신을 얻으려면 글로 남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 원리를 대성인은 두 가지 옛 예로 받치신다. 하나는 현장과 보 법사다. 현장은 인도에 가서 『바사론』의 원본을 직접 본 사람이다. 그런데 인도에 가 보지도 않은 제자 보 법사에게 공격당했다. 현장이 번역하면서 원문에 없는 열여섯 글자를 넣었기 때문이다. 인도에 다녀왔다는 경력이 원문에 없는 말을 덮어 주지 못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법호 삼장이다. 법호는 인도의 법화경을 보고 『정법화경』을 옮겼지만, 촉루품을 경의 맨 끝에 두었다. 인도의 원본을 보지 못한 한토 사람들이 그것을 잘못이라 했고, 묘락대사도 『법화문구기』에서 촉루품을 제22품에 둔 구마라집 역이 바르다고 판정했다. 원본을 본 사람이라도 경의 구조를 잘못 읽으면 원본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 바로잡힌다.

두 예가 가리키는 결론은 하나다. 「설령 자각이 전교대사를 만나 배워 전했고 지증이 의진 화상에게 구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전교 · 의진의 바른 글과 어긋난다면 어찌 의심을 더하지 않겠는가」. 스승이 입으로 직접 전해 주었다는 구결(口決)보다 글로 남은 정문(正文)이 앞선다. 이것은 제17장에서 다시 다룰 「문증을 근본으로 한다」는 원리의 첫 적용이다.

전교대사의 본의 — 일왕의 방의와 재왕의 정의

그런데 전교대사의 글 가운데에도 두 종이 같다고 읽힐 만한 대목이 실제로 남아 있다. 하나는 『우두결(牛頭決)』의 「천태가 세운 십계호구의 글과 비밀 최대의 삼십칠존이 심성에 머문다는 글은, 큰 길은 다르나 부사의함은 하나다」라는 말이다.

天台所立の十界互具の文と、秘密最大三十七尊住心城の文と、大道異なりと雖も不思議一なり

천태가 세운 십계호구의 글과 비밀 최대 삼십칠존이 심성에 머문다는 글은 큰 길은 다르나 부사의함은 하나다.

『우두결』,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또 하나는 『학생식(學生式)』의 「지관과 진언은 두 날개 두 바퀴(止觀眞言 二羽兩輪)」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本文은 전교대사에게 「두 종이 같다」는 글이 없다고 하시는가.

그것은 이런 대목들이 「약교(約敎) 일왕(一往)의 방의(傍義)」이고 「약부(約部) 재왕(再往)의 정의(正意)」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르침의 내용(敎)만 놓고 한 번 보면(一往) 비슷한 데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경이 놓인 자리(部)까지 따져 다시 보면(再往) 승렬은 분명하다. 천태대사가 『법화현의』에서 「이 묘와 저 묘가 묘의 뜻은 다르지 않으나 다만 방편을 띠었는가 띠지 않았는가로 다름을 삼을 뿐이다」라고 한 것과 같은 뜻이다.

此の妙彼の妙、妙の義異なることなしと雖も、但、方便を帯せるか、方便を帯せざるかを以て異と為すのみ

이 묘와 저 묘가 묘의 뜻은 다르지 않으나, 다만 방편을 띠었는가 띠지 않았는가로써 다름을 삼을 뿐이다.

『법화현의』, T33 no.1716,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큰 길은 다르나 부사의함은 하나」라거나 「두 날개 두 바퀴」라는 말은 이처럼 한 번 본 방의다. 다시 보아 드러나는 전교대사의 정의(正義)는 다섯 가지 근거로 분명하다.

첫째, 전교대사는 진언에 종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자기 종을 「천태법화종」이라 일컬으셨다. 둘째, 『수호국계장』에서 대일경을 방의(傍依)의 경으로 두셨다. 셋째, 『의빙집』에서 진언을 파하셨다. 넷째, 묘락대사의 『법화문구기』 권10을 끌어 진언의 원조를 「노나라 사람」이라 하셨다. 다섯째, 불공의 제자 함광(含光)이 묘락대사에게 전한 이야기 — 인도의 용지보살이 불공에게 「천축에는 불의를 밝힌 논석이 없으니 한토의 천태의 해석을 천축에 전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는 이야기 — 를 실으셨다. 이 다섯 가지 글과 뜻에 비추면, 전교대사의 마음이 두 종의 승렬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수호국계장』 상권에는 「우리 산가는 교부(敎部)이므로 팔교를 거두지 않는다」(我が山家は教部にして、八教を摂ぜず)는 말이 있다. 전교대사가 자기 종을 「부(部)」의 자리, 곧 경이 놓인 자리로 승렬을 따지는 자리에 세우셨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일왕 · 약교의 방의『우두결』「큰 길은 다르나 부사의함은 하나」大道異なりと雖も不思議一なり『학생식』「지관 · 진언 두 날개 두 바퀴」止観真言、二羽両輪
재왕 · 약부의 정의다섯 근거
  1. ①진언에 종명을 붙이지 않고 「천태법화종」이라 함
  2. ②『수호국계장』에서 대일경을 방의경으로 둠
  3. ③『의빙집』에서 진언을 파함
  4. ④『법화문구기』 권10을 끌어 진언의 원조를 「노나라 사람」이라 함
  5. ⑤함광이 전한 용지 · 불공의 이야기를 실음
왜 일왕 「같다」고도 하셨는가 — 한 산에서 양업을 닦아 장애를 없애는 방편(除障方便)으로 두셨기 때문
도표 8 · 전교대사의 본의 — 일왕의 방의와 재왕의 정의

그렇다면 전교대사는 왜 한 번은 두 종이 같다는 듯한 해석을 하셨는가. 한 산에서 양업을 닦게 하여 장애를 없애는 방편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에서 그 증거로 『등해초』가 도솔의 『삼밀초』를 인용한 대목을 줄여 끌어오셨다.

大日経の疏の始終一向に文義を以て釈成す。此の経の理と三観の妙理全く天台に同じ。問う若し爾らば何ぞ秘密教は障を除き顕教は爾らざるや。答う円頓の理は法華経に過ぎず。除障の方便は三密の加持に如かず。

『대일경소』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글과 뜻으로 해석을 이룬다. 이 경의 이치와 삼관의 묘리는 완전히 천태와 같다. 묻는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비밀교는 장애를 없애고 현교는 그렇지 않은가. 답한다. 원돈의 이치는 법화경을 넘는 것이 없다. 장애를 없애는 방편은 삼밀의 가지만 한 것이 없다.

『등해초』에 인용된 『삼밀초』,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正宗の妙理、勝ると雖も更に咒を用い難を除く故に、知ぬ三密の教門は除障の術なり。此の教門多く悪世を利する為に、学者我山は真言止観を兼学す。良に以有るなり

정종의 묘리가 뛰어나기는 하지만 다시 주문을 써서 난을 없애므로, 삼밀의 교문은 장애를 없애는 기술임을 알 수 있다. 이 교문은 대체로 악세를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학자들이 우리 산에서 진언과 지관을 겸하여 배운다. 참으로 까닭이 있는 것이다.

같은 곳

이 인용은 천태대사의 『법화문구』 다라니품의 해석, 곧 「악세에 가르침을 넓히면 대체로 괴롭힘이 많으므로 주문으로 이를 지키면 유통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는 뜻을 받는다. 법화경 자신도 다라니품에서 주문으로 법사를 지키는 것을 설한다. 그러나 다라니품의 주문은 법화경을 넓히는 사람을 지키는 방편이지, 법화경보다 뛰어난 법이 아니다. 진언을 겸하여 배운 것도 같은 자리다. 「원돈의 이치는 법화경을 넘는 것이 없다」 — 이것이 전교대사가 진언을 양업의 하나로 두면서도 지키신 선이었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전교대사가 진언을 겸학하게 하신 것은 장애를 없애는 방편으로서였고, 법의 근본에서는 「원돈의 이치는 법화경을 넘는 것이 없다」는 것이 정의다. 방편으로 둔 것을 본의로 바꾸어 읽은 것이 자각 · 지증의 잘못이다.

『의빙집』 — 전교대사 제일의 비서

本文은 이제 정문(正文)의 증거를 내놓으신다. 전교대사의 『의빙집』이다. 대성인은 이 책을 「대사 제일의 비서」라 하신다. 『의빙집』은 『의빙천태집』이라고도 하며, 서문은 「천태의 전법은 제종의 밝은 거울이다」로 시작하여, 불교의 여러 종파가 사실은 천태에 의지하여(依憑) 종을 세우고 뜻을 세웠음을 밝힌다. 本文이 인용하신 서문은 네 종을 하나씩 짚는다.

新来の真言家は則ち筆授の相承を泯し旧到の華厳家は則ち影響の軌範を隠し、沈空の三論宗は弾訶の屈恥を忘れて称心の酔を覆う、著有の法相は撲揚の帰依を非し青竜の判経を撥う

새로 온 진언가는 필수의 상승을 없애고, 예전에 온 화엄가는 영향의 궤범을 숨기며, 공에 잠긴 삼론종은 탄가의 굴욕을 잊고 칭심의 취함을 덮으며, 유에 집착하는 법상은 복양의 귀의를 그르다 하고 청룡의 판경을 물리친다.

『의빙천태집』 서, 「보은초」 307쪽에 인용

새로 온 진언가는 일행이 선무외에게서 받아 적은 『대일경소』가 천태의 입장에서 대일경을 풀었다는 사실 — 필수의 상승 — 을 없애 버렸다. 예전에 온 화엄가는 법장의 오교가 천태의 오시를 본보기로 삼았다는 사실을 숨긴다. 공에 잠긴 삼론종은 가상이 열일곱 살의 천태 학도 법성에게 꺾인 굴욕을 잊고, 칭심에서 장안대사의 강설에 취했던 일을 덮는다. 유에 집착하는 법상종은 제3조 지주가 천태에 귀의했던 일을 부정하고, 청룡사의 양분이 천태의 『인왕경소』에 따라 분과한 일을 물리친다. 그리고 서문은 「삼가 『의빙집』 한 권을 지어 나와 뜻을 같이하는 뒤의 현철에게 보낸다. 그때는 일본 제52대, 홍인 7년 병신의 해이다」로 맺는다. 제52대는 사가 천황이니, 홍인 7년은 816년이다.

새로 온 진언가「필수의 상승을 없앰」筆授の相承を泯し일행이 선무외에게 받아 적은 『대일경소』가 천태의 입장으로 대일경을 풀었다는 사실을 지움
예전에 온 화엄가「영향의 궤범을 숨김」影響の軌範を隠し법장의 오교가 천태의 오시를 본뜬 사실을 숨김
공에 잠긴 삼론종「탄가의 굴욕을 잊고 칭심의 취함을 덮음」弾訶の屈恥を忘れて称心の酔を覆う가상이 법성에게 꺾이고 장안대사의 강설에 취한 일
유에 집착하는 법상「복양의 귀의를 그르다 하고 청룡의 판경을 물리침」撲揚の帰依を非し青竜の判経を撥う지주의 천태 귀의, 양분의 『인왕경소』 분과
「삼가 『의빙집』 한 권을 지어 나와 뜻을 같이하는 뒤의 현철에게 보낸다」謹んで依憑集の一巻を著わして同我の後哲に贈る홍인 7년(816)
도표 9 · 『의빙집』 서문이 짚은 네 종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에서 이 서문의 뜻을 두 겹으로 푸셨다.

此の序文の意、或は二意有り。謂く且く文相に准ずるに、但元祖の依憑を挙げて、以て末弟の偏執を破するなり。往て義意に准ずるに、彼の元祖の依憑は即ち盗台に当るなり。其の故は天台法華の義に依憑して、宗々の依経を誇耀する故なり

이 서문의 뜻에 혹은 두 뜻이 있다. 말하자면 우선 글의 겉모습에 따르면, 다만 원조들이 천태에 의지한 일을 들어 그 말제자들의 편집을 파한 것이다. 나아가 뜻에 따르면, 저 원조들이 천태에 의지한 것은 곧 천태를 훔친 것에 해당한다. 그 까닭은 천태 법화의 뜻에 의지하여 저마다의 종이 의지하는 경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보은초 문단」,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곧 글의 겉으로는 「너희 원조도 천태에 의지했는데 말제자인 너희가 왜 천태를 등지느냐」는 꾸짖음이고, 뜻의 속으로는 「너희 원조가 천태에 의지했다는 것 자체가 천태의 법을 훔쳐 자기 경을 꾸민 것」이라는 꾸짖음이다. 『의빙집』이 파한 진언 · 화엄 · 삼론 · 법상은 모두 그 시대의 사상계와 종교계를 이끌거나 정치 권력과 손잡고 동양 각지에 널리 퍼진 종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교묘하게 내세워도, 석존이 스스로 「사십여 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깨뜨린 이전의 권경을 세우는 한, 천태법화종과는 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만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종분의 증거 — 천축의 명승과 「노나라 사람」

本文은 『의빙집』의 서문에 이어 정종분의 두 구절을 끌어오신다. 하나는 「천축의 명승이 대당 천태의 교적이 가장 사정을 가리기에 족하다고 듣고 갈앙하여 찾아왔다」이고, 다른 하나는 「어찌 중국에서 법을 잃고 이를 사방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이쪽에서 아는 이가 적으니 노나라 사람과 같을 뿐이다」이다.

여기서 「중국」은 오늘의 중국이 아니라 불교의 중심지인 인도를 말한다. 불법의 본고장 인도에서 정법을 잃어 사방의 나라에서 그것을 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12장에서 本文이 이미 소개하신 이야기와 이어진다. 불공 삼장이 인도에 들어가 용지보살을 만났을 때, 용지는 「천축에는 불의를 밝힌 논석이 없다. 한토의 천태라는 사람의 해석이야말로 사정을 가리고 편원을 밝힌 글이라 한다. 부디 천축에 전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이 이야기를 불공의 제자 함광이 묘락대사에게 전했고, 묘락대사가 『법화문구기』 권10 끝에 실었으며, 전교대사가 그것을 『의빙집』에 다시 실었다.

그런데 천태의 나라 당나라 사람들은 이만한 대법이 자기 나라에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노나라 사람이 자기 나라의 공자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 것과 같다. 전교대사가 「노나라 사람」이라 부른 데에는 불공 삼장 등이 포함된다. 용지에게서 천태의 이름을 듣고 돌아와서도 진언을 넓힌 사람이기 때문이다.

本文은 여기서 두 가지를 이끌어 내신다. 첫째, 『의빙집』은 법상 · 삼론 · 화엄 · 진언의 네 종을 꾸짖은 책이다. 천태와 진언이 같은 한 맛이라면 어찌 진언을 꾸짖었겠는가. 둘째,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의 진언이 훌륭하다면 어찌 불공을 「노나라 사람」이라 험담하셨겠는가. 또 천축의 진언이 천태와 같거나 더 뛰어나다면, 천축의 명승이 어찌 불공에게 부탁하여 「천축에는 정법이 없다」고 했겠는가. 진언의 본고장이라는 인도의 명승이 천태를 구했다는 사실 자체가 천태가 진언보다 위라는 증거다.

「동아」의 두 글자 — 이름은 제자, 마음은 제자가 아니다

이로부터 대성인은 결론을 내리신다. 「자각 · 지증 두 사람은 말로는 전교대사의 제자라고 이름하시지만 마음은 제자가 아니다.」 근거는 『의빙집』 서문의 끝 구절, 「나와 뜻을 같이하는 뒤의 현철에게 보낸다」의 「동아(同我)」 두 글자다. 전교대사가 이 책을 넘겨준 사람은 「나와 같은」 사람이다. 진언종이 천태종보다 열등하다고 배워야 비로소 「나와 같은」 사람이 된다. 진언이 낫다거나 같다고 하는 사람은 이 책을 받을 자격이 없다.

여기서 대성인은 앞 장의 칙선을 되돌려 쓰신다. 자각 · 지증이 스스로 받아 내린 선지에는 「오로지 선사의 뜻을 어기고 편집의 마음을 이룬다」, 「무릇 그 사자의 도는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다. 이 말은 본래 진언 겸학에 반대하는 히에이산의 승려들을 꾸짖으려고 받아 낸 것이었다. 그러나 『의빙집』의 정문에 비추면 선사의 뜻을 어긴 것은 바로 진언을 끌어들인 자각 · 지증이다. 「이 선지대로라면 자각 · 지증이야말로 오로지 선사를 등진 사람이다.」 그들이 남을 치려고 든 칼이 그들 자신을 향하게 된 것이다.

대성인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렇게 꾸짖는 것도 두려운 일이기는 하나, 이것을 꾸짖지 않으면 대일경 · 법화경의 승렬이 무너지리라 생각하여 목숨을 과녁에 걸고 꾸짖는 것이다」(此れをせめずば大日経・法華経の勝劣やぶれなんと存じていのちをまとに・かけてせめ候なり, 308쪽). 자각 · 지증은 천황이 시호를 내린 대사이며 히에이산의 조사다. 그들을 꾸짖는 것은 국가의 권위와 일본 불교의 중심을 함께 적으로 돌리는 일이었다. 대성인은 그것을 알고 목숨을 거신다고 하셨다. 제5편에서 그 대가가 두 번의 유배와 다쓰노구치의 법난으로 나타난다.

사자의 도 —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무릇 그 사자의 도는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는 칙선의 말은 지증의 뜻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불법의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다. 「사(師)」는 스승이고 「자(資)」는 받는다는 뜻으로 제자를 말한다. 불법에서 사제의 도는 하나라도 빠지면 성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법이 얼마나 사제상대(師弟相對)를 중히 여기는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바른 법과 바른 뜻을 가려 신심에 힘써야 즉신성불이 이루어지고, 그릇된 법과 그릇된 뜻을 믿는 사람은 무간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깊이 경계해야 한다. 자각 · 지증은 사자의 도를 칙선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자신들은 스승의 정문을 버렸다. 사자의 도는 스승의 이름을 잇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법을 잇는 데 있다. 보은초 전체가 「사은」 가운데 스승의 은혜를 따로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승의 법을 지키고 넓히는 것이 스승에게 보은하는 길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사자의 도는 스승의 자리를 물려받는 데 있지 않고 스승의 바른 뜻을 잇는 데 있다. 자각 · 지증은 사자의 도를 내세운 칙선으로 오히려 자신이 스승을 등졌음을 증명했다.

이름과 영지는 천태산, 주인은 진언사

本文 셋째 단락은 결론을 맺으신다. 첫째, 두 사람이 홍법의 사의를 꾸짖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제13장 끝의 「어찌 아무 의심이 없었던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그들 자신이 이동사승을 세웠으니 홍법을 꾸짖을 수 없었던 것이다.

둘째, 양식을 다하고 사람을 괴롭혀 한토에 건너가기보다 본사 전교대사의 뜻을 잘 궁구했어야 했다. 막대한 비용과 사람들의 수고를 들여 바다를 건넜지만,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이미 자기 스승의 책 속에 있었다.

셋째, 그러므로 히에이산의 불법은 전교대사 · 의진 · 원징의 삼대뿐이었다. 그 뒤의 천태 좌주는 진언의 좌주로 옮겨 갔다. 「이름과 영지는 천태산이나 그 주인은 진언사」(名と所領とは天台山其の主は真言師なり, 308쪽). 겉의 간판과 재산은 그대로 법화경의 산이지만, 그 산을 다스리는 사람의 마음은 진언에 있다는 것이다. 제19장에서 원징마저 「반은 홍법의 제자」라고 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온전히 전교대사의 법을 지킨 것은 의진 한 사람이었다.

넷째, 자각 · 지증은 이금당의 경문을 깨뜨렸다. 법화경 법사품은 「이미 설했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할」 모든 경 가운데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 경문은 석가 · 다보 · 시방 제불이 함께 증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깨뜨린 사람은 석가 · 다보 · 시방 제불의 원적이 된다.

홍법보다 무거운 잘못 — 검정과 파랑

그리고 대성인은 이 편 전체에서 가장 놀라운 판정을 내리신다. 「홍법대사야말로 제일의 방법인이라 생각했는데, 이것은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잘못이다.」 법화경을 셋째로 내리고 석존을 포로라 부른 홍법보다, 법화경을 둘째로 두고 「이치는 같다」고 한 자각 · 지증의 잘못이 더 무겁다는 것이다.

그 까닭을 대성인은 이렇게 설명하신다. 물과 불, 하늘과 땅처럼 분명히 다른 잘못은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홍법의 뜻은 너무 잘못이어서 그의 제자들조차 쓰지 않았다. 홍법 문하는 사상(事相) — 인과 진언의 의식 — 만은 홍법의 흐름을 잇지만, 교상(敎相) — 교리의 판정 — 에서는 홍법의 뜻을 말하기 어려우므로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자각 · 지증의 뜻을 따른다. 그런데 자각 · 지증의 「진언과 천태는 이치가 같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생각한 결과가 개안 불사다. 사(事)에서 뛰어나다는 인과 진언을 두고, 천태종의 사람들도 화상 · 목상의 불상에 눈을 넣는 개안 공양은 진언의 사상으로 해야 한다고 여겼다. 개안은 절과 귀족의 신앙에서 큰 불사였다. 그것을 맡으려고 일본이 한결같이 진언종으로 떨어졌고, 참된 천태종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대성인은 「목회이상개안지사」에서 목상 · 화상의 개안은 법화경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따로 밝히셨다.

이것을 本文은 하나의 비유로 그리신다. 법사와 비구니, 검정과 파랑은 헷갈리기 쉬우므로 눈이 어두운 사람은 잘못 본다. 승려와 사내, 흰 것과 붉은 것은 눈이 어두운 사람도 헤매지 않는다. 하물며 눈이 밝은 사람이랴. 홍법의 「희론」은 흰 것과 붉은 것처럼 누구나 다름을 안다. 자각 · 지증의 「이동」은 검정과 파랑처럼 비슷하여 지혜로운 사람도 헤매고 어리석은 사람도 잘못한다. 천태의 말제자들이 잘못을 범한 원인은 그들이 흑백을 가리지 못한 데도 있지만, 그만큼 둘이 닮아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홍법「제3 법화」 · 「희론」 · 물과 불, 하늘과 땅처럼 분명히 다름「사람이 쓰지 않으므로 그 잘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人用ゆる事なければ其の僻事成ずる事なし제자들도 교상에서는 쓰지 않음
자각 · 지증「이동사승」 · 「진언과 천태는 이치가 같다」 · 법사와 비구니, 검정과 파랑처럼 헷갈림「지혜로운 사람도 헤매고 어리석은 사람도 잘못한다」智人も迷い愚人もあやまり候て
결과 — 개안 불사가 진언으로 · 「사백여 년 동안 히에이산 · 온조사 · 동사 · 나라 · 오기 칠도 · 일본 한 나라가 모두 방법의 사람이 되었다」
도표 10 · 홍법의 잘못과 자각 · 지증의 잘못

그 결과 「이 사백여 년 동안 히에이산 · 온조사 · 동사 · 나라 · 오기 칠도 · 일본 한 나라가 모두 방법의 사람이 되었다」. 자각 · 지증의 시대부터 대성인의 시대까지 사백 년 남짓, 히에이산과 온조사는 물론 동사와 나라의 여러 큰 절, 그리고 전국이 모두 진언의 흐름에 들어갔다. 이것이 제18장의 「지금 일본국에는 법화경의 행자가 한 사람도 없다」와 제19장의 「일본국은 자각 · 지증 · 홍법의 흐름이니 한 사람도 방법이 아닌 사람이 없다」로 이어진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정면으로 법을 깎는 사의보다, 정법과 닮은 모습으로 섞어 들이는 사의가 더 많은 사람을 그르친다. 대성인이 자각 · 지증을 홍법보다 무겁게 꾸짖으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제17장 법화 최승의 경과 석
어서 309쪽 8행~310쪽 2행 · 第17章 法華最勝の経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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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대조어서 309쪽 8행 ~ 310쪽 2행
本文 · 어서 원문

抑も法華経の第五に「文殊師利此の法華経は諸仏如来の秘密の蔵なり諸経の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云云、 此の経文のごとくならば法華経は大日経等の衆経の頂上に住し給う正法なり、 さるにては善無畏・金剛智・不空・弘法・慈覚・智証等は此の経文をばいかんが会通せさせ給うべき、 法華経の第七に云く「能く是の経典を受持すること有らん者も亦復是くの如し一切衆生の中に於て亦為第一なり」等云云、 この経文のごとくならば法華経の行者は川流・江河の中の大海・衆山の中の須弥山・衆星の中の月天・衆明の中の大日天、 転輪王・帝釈・諸王の中の大梵王なり、 伝教大師の秀句と申す書に云く「此の経も亦復是くの如し乃至諸の経法の中に最も為第一なり能く是の経典を受持すること有らん者も亦復是くの如し一切衆生の中に於て亦為第一なり」已上経文なりと引き入れさせ給いて次下に云く「天台法華玄に云く」等云云、 已上玄文と・かかせ給いて上の心を釈して云く「当に知るべし他宗所依の経は未だ最も為れ第一ならず其の能く経を持つ者も亦未だ第一ならず、 天台法華宗所持の法華経は最も為れ第一なる故に能く法華を持つ者も亦衆生の中の第一なり已に仏説に拠る豈自歎ならん哉」等云云、 次下に譲る釈に云く「委曲の依憑具さに別巻に有るなり」等云云、 依憑集に云く「今吾が天台大師法華経を説き法華経を釈すること群に特秀し唐に独歩す明に知んぬ如来の使なり讃る者は福を安明に積み謗る者は罪を無間に開く」等云云、

풀이

대체 법화경 제5권에 「문수사리여, 이 법화경은 제불여래의 비밀의 장(藏)이니라.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이 경문대로라면 법화경은 대일경 등 뭇 경의 꼭대기에 머무시는 정법이니라. 그렇다면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홍법 · 자각 · 지증 등은 이 경문을 어떻게 회통(會通)하시려는가. 법화경 제7권에 이르기를 「능히 이 경전을 수지하는 자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중생 가운데서 또한 제일이니라」 등이라 하셨느니라. 이 경문대로라면 법화경의 행자는 냇물 · 강물 가운데의 대해, 뭇 산 가운데의 수미산, 뭇 별 가운데의 달, 뭇 밝음 가운데의 큰 해, 전륜왕 · 제석 · 여러 왕 가운데의 대범왕이니라. 전교대사의 『수구(秀句)』라는 책에 이르기를 「이 경도 또한 이와 같아서 (중략) 모든 경법 가운데 가장 제일이니라. 능히 이 경전을 수지하는 자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중생 가운데서 또한 제일이니라」, 이상은 경문이라고 끌어넣으시고, 그 아래에 「천태의 『법화현의』에 이르기를」 등이라 하여 이상은 『현의』의 글이라 쓰시고, 위의 마음을 풀어 이르기를 「마땅히 알라, 다른 종이 의지하는 경은 아직 가장 제일이 아니며, 그 경을 능히 지니는 자도 또한 아직 제일이 아니다. 천태법화종이 지니는 법화경은 가장 제일인 까닭에 능히 법화를 지니는 자도 또한 중생 가운데 제일이다. 이미 부처의 말씀에 의거하였으니 어찌 스스로 찬탄하는 것이겠는가」 등이라 하셨느니라. 그 아래에 미루는 해석에 이르기를 「자세한 의빙은 별권에 갖추어 있다」 등이라 하셨느니라. 『의빙집』에 이르기를 「이제 우리 천태대사가 법화경을 설하고 법화경을 해석하심이 무리에서 특히 빼어나고 당나라에서 홀로 걸으셨으니, 분명히 알라, 여래의 사자이니라. 찬탄하는 자는 복을 안명(安明)에 쌓고, 비방하는 자는 죄를 무간에 연다」 등이라 하셨느니라.

어구 풀이

法華経の第五법화경 제5권
구마라집 역 『묘법연화경』 8권 가운데 제5권. 인용된 경문은 안락행품 제14의 글이다.
文殊師利문수사리
범어 만주슈리(Mañjuśrī). 묘덕 · 묘수 · 묘길상이라 옮긴다. 적화 보살의 상수로서 사자를 타고 석존의 왼쪽에 모시며 지혜를 맡는다. 법화경 서품에서 여섯 가지 상서가 법화경을 설할 징조임을 보이고, 제바달다품에서 사갈라 용궁에 가서 여인 성불의 본보기를 보인 용녀를 교화했다.
秘密の蔵비밀의 장
부처가 오래 감추어 두었다가 비로소 드러낸 법의 곳간. 법화경 자신을 가리킨다.
会通회통
「화회소통(和會疏通)」의 준말. 화회 · 융회 · 회석이라고도 한다. 서로 다른 경론의 설을 맞추어 보고(화회) 그 갈피가 통하게 하여(소통) 하나의 뜻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
法華経の第七법화경 제7권
『묘법연화경』 제7권. 인용된 경문은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열 가지 비유 가운데 여덟째, 범부 가운데 사과 · 벽지불이 제일인 것에 견준 비유의 글이다.
須弥山수미산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산. 범어 수메루(Sumeru)의 음사로 수미루 · 소미로라고도 쓰고 묘고 · 안명이라 옮긴다. 이 세계의 아래에는 풍륜 · 수륜 · 금륜의 삼륜이 있고, 맨 위의 금륜 위에 아홉 산과 여덟 바다가 있어 이것을 한 소세계로 삼는다. 수미산은 그 한가운데에 있으며 물밑에서부터 높이가 16만 8천 유순이라 한다. 둘레를 일곱 겹의 향수 바다와 금산이 번갈아 두르고, 그 바깥 짠물 바다에 염부제 등 사대주가 떠 있다.
転輪王전륜왕
바퀴(輪寶)를 굴려 사방을 다스린다는 이상의 왕. 열 가지 비유에서 여러 작은 왕 가운데 제일로 든다.
帝釈제석
도리천(삼십삼천)의 주인. 열 가지 비유에서 삼십삼천 가운데 제일로 든다.
大梵王대범왕
색계 초선천의 주인 대범천왕. 열 가지 비유에서 모든 왕 가운데 제일로 든다.
秀句『수구』
전교대사의 『법화수구(法華秀句)』 3권. 홍인 12년(821)에 지었으며, 「십승(十勝)」이라고도 부른다.
天台法華玄『법화현의』
천태대사의 『묘법연화경현의』. 법화경의 제목 「묘법연화경」 다섯 자의 뜻을 풀었다.
委曲の依憑具さに別巻に有るなり자세한 의빙은 별권에 갖추어 있다
전교대사가 『수구』 끝에 적은 말. 여러 종 · 여러 스승이 천태에 의지한 자세한 사정은 별권, 곧 『의빙집』에 적었다는 뜻이다.
群に特秀し唐に独歩す무리에서 특히 빼어나고 당나라에서 홀로 걷다
천태대사가 남삼북칠의 여러 스승들보다 빼어나고 중국 전체에서 견줄 이가 없었다는 찬탄.
如来の使여래의 사자
부처의 심부름꾼. 법화경 법사품의 「여래의 사자로서 여래에게 보내져 여래의 일을 행한다」는 경문에 근거한다.
安明안명
수미산의 다른 이름 안명산. 물에 깊이 들어가 움직이지 않음을 「안」, 여러 산 위로 높이 솟아 밝음을 「명」이라 한다.

「제불여래의 비밀의 장」 — 안락행품의 경문

이 장부터 本文은 바로 대성인의 홍통을 밝히는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앞의 네 장이 진언에 기운 사람들을 드러냈다면, 이 장은 법화경이 모든 경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경문과 천태 · 전교의 해석을 먼저 세운다. 다음 장에서 그 경문의 뜻에 맞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밝히기 위해서다.

첫 경문은 법화경 제5권, 곧 안락행품 제14의 글이다. 「문수사리여, 이 법화경은 제불여래의 비밀의 장이니라.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느니라」(文殊師利此の法華経は諸仏如来の秘密の蔵なり諸経の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 309쪽). 이 경문대로라면 법화경은 대일경 등 뭇 경의 꼭대기에 있는 정법이다. 그렇다면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홍법 · 자각 · 지증은 이 경문을 어떻게 회통하겠는가. 회통이란 서로 다른 경문을 맞추어 하나의 뜻으로 통하게 하는 것이다. 「대일경이 제일」이라는 그들의 주장과 「법화경이 모든 경 위에 있다」는 이 경문은 어떻게 해도 맞출 수 없다.

그런데 전교대사의 『법화수구』는 법화 최승의 근거로 약왕품의 경문을 주로 들었다. 그런데도 대성인은 왜 여기서 안락행품의 경문을 먼저, 따로 끌어오셨는가.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에서 이렇게 답하셨다.

然るに元意を推するに恐らくは真言宗を破せんが為、別して此の文を引くなり。此に二意有り。一には彼宗は大日経を以て即秘密と名く。釈尊は法華経を以て別して秘密と名く故に経に〝秘密の蔵〟と云うなり。

그러나 본뜻을 헤아려 보면 아마도 진언종을 파하기 위해 특별히 이 글을 끌어오신 것이리라. 여기에 두 뜻이 있다. 첫째, 저 종은 대일경을 곧 비밀이라 이름한다. 석존은 법화경을 특별히 비밀이라 이름하셨으므로 경에 「비밀의 장」이라 하신 것이다.

「보은초 문단」,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問う若し爾らば彼は秘密にあらざるや。答う彼は是れ隠密にして微密に非るなり。二には彼の宗は金剛頂経を以て衆経の頂上と為す。釈尊は正しく法華経を以て衆経の頂上と為す。故に〝諸経の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というなり

묻는다. 그렇다면 저것은 비밀이 아닌가. 답한다. 저것은 감추어진 비밀(隱密)이지 미묘한 비밀(微密)이 아니다. 둘째, 저 종은 금강정경을 뭇 경의 꼭대기로 삼는다. 석존은 바로 법화경을 뭇 경의 꼭대기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고 하신 것이다.

같은 곳

곧 안락행품의 경문은 진언종이 내세우는 두 간판 — 「비밀」과 「꼭대기(頂)」 — 을 정면에서 맞받는다. 진언종은 대일경을 「비밀」의 경이라 하지만, 석존이 스스로 「비밀의 장」이라 부르신 경은 법화경이다. 진언종은 『금강정경』이라는 이름에서 보듯 그 경을 뭇 경의 「꼭대기」라 하지만, 석존이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라 하신 경은 법화경이다. 대일경의 비밀은 감추어 두었을 뿐인 은밀(隱密)이고, 법화경의 비밀은 부처의 본지라는 미묘한 미밀(微密)이다. 제15장에서 본 『법화문구』의 「비밀」 해석과 이어지는 대목이다.

약왕품의 열 가지 비유 — 법화경의 행자는 대해이고 수미산이다

둘째 경문은 법화경 제7권,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글이다. 「능히 이 경전을 수지하는 자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중생 가운데서 또한 제일이니라」(能く是の経典を受持すること有らん者も亦復是くの如し一切衆生の中に於て亦為第一なり, 309쪽). 약왕품은 열 가지 비유로 법화경이 모든 경 가운데 제일임을 밝히는데, 이 경문은 그 여덟째, 범부 가운데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 · 벽지불이 제일인 것처럼 이 경도 제일이라는 비유의 끝에 나온다.

本文은 이 열 가지 비유를 「법화경의 행자」에게 그대로 옮기신다. 이 경문대로라면 법화경의 행자는 냇물 · 강물 가운데의 대해이고, 뭇 산 가운데의 수미산이며, 뭇 별 가운데의 달이고, 뭇 밝음 가운데의 큰 해이며, 전륜왕 · 제석 · 여러 왕 가운데의 대범왕이다. 약왕품에서 이 비유들은 본래 「법」인 법화경이 다른 경보다 뛰어남을 견준 것이었다. 그 끝에 「수지하는 자도 또한 이와 같다」는 경문이 붙음으로써, 법의 제일이 그대로 사람의 제일이 된다.

여기서 하나의 원리가 나온다. 「소지(所持)」, 곧 지니는 대상인 법이 제일이므로 「능지(能持)」, 곧 그것을 지니는 사람도 제일이다. 「모든 경법 가운데 가장 제일」은 소지 제일의 글이고, 「능히 이 경전을 수지하는 자」부터는 능지의 행자 제일의 글이다. 「법이 묘하기 때문에 사람이 귀하다」는 것이며, 이 법을 헐뜯고 이 사람을 헐뜯는 자는 무간지옥의 죄업을 짓게 된다.

『법화수구』의 해석 — 소지 제일이므로 능지 제일

本文은 이 원리를 전교대사의 『법화수구』로 받치신다. 『수구』는 약왕품의 여덟째 비유를 다음과 같이 길게 인용한다.

一切凡夫人の中、須陀洹、斯陀含、阿那含、阿羅漢、辟支仏、第一なるが如く、此の経も亦復是の如し。一切如来の所説、若しは菩薩の所説、若しは声聞の所説、諸の経法の中に最も為れ第一なり。能く是の経典を受持すること有らん者も亦復是の如し、一切衆生の中に於て亦第一なりと。

모든 범부 가운데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 · 벽지불이 제일인 것과 같이, 이 경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여래가 설한 것, 혹은 보살이 설한 것, 혹은 성문이 설한 것, 모든 경법 가운데 가장 제일이다. 능히 이 경전을 수지하는 자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중생 가운데서 또한 제일이다.

『법화수구』에 인용된 약왕품,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이어 『수구』는 천태대사의 『법화현의』를 끌어온다.

天台の法華玄に云く五仏子の如き、凡夫の中に於て第一なり。或は衆生を抜きて涅槃に出だす。菩薩の無学の上に居するが如し。今の経は衆生を抜きて方便教の菩薩の上に過ぐ。即ち法王と成る最も第一なりと。

천태의 『법화현의』에 이르기를, 다섯 불자(사과와 벽지불)와 같은 이는 범부 가운데 제일이다. 혹은 중생을 건져 열반에 내보낸다. 보살이 무학의 위에 있는 것과 같다. 지금의 경은 중생을 건져 방편교의 보살 위로 넘어서게 하니, 곧 법왕이 되어 가장 제일이다.

같은 곳

그리고 전교대사 자신의 해석이 이어진다. 本文이 인용하신 바로 그 대목이다.

当に知るべし他宗所依の経は未だ最も為れ第一ならず其の能く経を持つ者も亦未だ第一ならず、天台法華宗所持の法華経は最も為れ第一なる故に能く法華を持つ者も亦衆生の中の第一なり已に仏説に拠る豈自歎ならん哉

마땅히 알라, 다른 종이 의지하는 경은 아직 가장 제일이 아니며, 그 경을 능히 지니는 자도 또한 아직 제일이 아니다. 천태법화종이 지니는 법화경은 가장 제일인 까닭에 능히 법화를 지니는 자도 또한 중생 가운데 제일이다. 이미 부처의 말씀에 의거하였으니 어찌 스스로 찬탄하는 것이겠는가.

『법화수구』, 「보은초」 309쪽에 인용

마지막의 「이미 부처의 말씀에 의거하였으니 어찌 스스로 찬탄하는 것이겠는가」가 중요하다. 「법화경을 지니는 우리가 일체중생 가운데 제일」이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 자기 자랑이 된다. 전교대사는 그것이 자기 생각이 아니라 경문 그대로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소지의 법이 제일이라는 것은 부처가 정한 것이고, 능지의 사람이 제일이라는 것도 부처가 경문에 붙인 것이다.

  1. 소지 제일안락행품 제14「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諸経の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약왕품 제23「모든 경법 가운데 가장 제일」諸の経法の中に最も為れ第一なり
  2. 능지 제일약왕품 제23「능히 이 경전을 수지하는 자도 … 일체중생 가운데서 또한 제일」一切衆生の中に於て亦為第一なり
  3. 석『법화수구』「소지의 법화경이 가장 제일인 까닭에 능지의 사람도 중생 가운데 제일 · 이미 부처의 말씀에 의거하니 어찌 스스로 찬탄하랴」『의빙집』천태대사는 「여래의 사자」 · 「찬탄하는 자는 복을 안명에 쌓고 비방하는 자는 죄를 무간에 연다」
열 가지 비유의 행자
  • 대해
  • 수미산
  • 달
  • 해
  • 대범왕
도표 11 · 법화 최승의 경과 석

『법화수구』는 무엇을 위해 쓰였는가 — 서문과 십승

『법화수구』는 상 · 중 · 하 세 권으로, 홍인 12년(821)에 지어졌다. 「십승(十勝)」이라고도 불린다. 대성인도 이 책을 깊이 연구하셨으며, 『수구』를 초록한 「수구십승초(秀句十勝抄)」가 대성인의 진필로 전한다. 다만 이것은 천태 법문을 초록한 글로 보아 어서전집에는 넣지 않았다.

전교대사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서문에 나타나 있다.

法華秀句は髻珠を琢磨するの砥礪なり。乃ち霊山の明珠は遠く西秦に伝わり、天台の珠嚢は遥かに東海に流るるあり。

『법화수구』는 상투 속의 구슬을 닦는 숫돌이다. 영산의 밝은 구슬은 멀리 서진(西秦)에 전해지고, 천태의 구슬 주머니는 아득히 동해에 흘러왔다.

『법화수구』 서,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珠を施すの客、各是非を諍い、珠を求むるの主、所帰を知るなし。是れを以て麤食の見林を剪除して天台の円城を建立す。

구슬을 베푸는 손님들은 저마다 옳고 그름을 다투고, 구슬을 구하는 주인은 돌아갈 곳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거친 먹이의 견해의 숲을 베어 내고 천태의 원만한 성을 세운다.

같은 곳

서문은 이어서 한 모략가가 「천태가 세운 사거(四車)의 뜻은 화엄종이 빼앗아 갔고, 천태가 세운 성불의 뜻은 삼론종이 빼앗아 갔으니, 천태법화종은 무엇을 자기 종의 뜻으로 삼겠는가. 자기 종의 뜻이 없다면 별개의 종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세상 사람들을 속이려 한다고 쓴다. 전교대사는 그 속임이 매우 심하다고 하여 『법화수구』 세 권을 지었다고 밝히고, 「바라건대 묘법의 수승한 깃발이 천대에 기울지 않고, 일승의 요의가 뭇 마음을 깨우치기를」이라는 염원으로 맺는다.

庶わくば妙法の勝幢千代に傾かず、一乗の了義、群心を開悟せんことを。

바라건대 묘법의 수승한 깃발이 천대에 기울지 않고, 일승의 요의가 뭇 마음을 열어 깨우치기를.

같은 곳

이 서문으로 보아 『법화수구』의 목적은 법화가 가장 뛰어남을 주장하고, 다른 종의 모략가를 꺾어 천태 법화의 빛을 더욱 더하는 데 있었다. 그 본론인 현승문(顯勝門)의 「십승」은 다음과 같다.

  1. 1불설이현진실승佛說已顯眞實勝부처가 이미 진실을 드러냈다고 설하신 뛰어남
  2. 2불설경명시의승佛說經名示義勝경의 이름으로 뜻을 보이신 뛰어남
  3. 3무문자설과분승無問自說果分勝묻지 않았는데 스스로 과분을 설하신 뛰어남
  4. 4오불동도귀일승五佛同道歸一勝다섯 부처가 같은 길로 하나에 돌아가는 뛰어남
  5. 5불설제경교량승佛說諸經校量勝여러 경과 견주어 헤아리신 뛰어남
  6. 6불설십유교량승佛說十喩校量勝열 가지 비유로 견주어 헤아리신 뛰어남
  7. 7즉신육근호용승卽身六根互用勝이 몸으로 육근을 서로 쓰는 뛰어남
  8. 8즉신성불화도승卽身成佛化導勝즉신성불로 교화하는 뛰어남
  9. 9다보분신부속승多寶分身付囑勝다보 · 분신이 모여 부촉하는 뛰어남
  10. 10보현보살권발승普賢菩薩勸發勝보현보살이 권하여 일으키는 뛰어남

이 장의 약왕품 경문은 여섯째 「십유교량승」의 근거

도표 12 · 『법화수구』 현승문의 십승

특히 첫째 「불설이현진실승」에서는 법상종의 득일(德一)이 『혜일우족(慧日羽足)』에서 세운 십교이리 · 사교이리 등을 철저히 파했다. 이것이 상 · 중 두 권이 되고, 둘째 「불설경명시의승」 이하가 하권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교대사는 많은 저술을 남겨 여러 종의 그릇된 뜻을 홀로 꺾어 나가셨다.

「여래의 사자」 — 『의빙집』의 천태 찬탄

本文은 『수구』 끝의 「자세한 의빙은 별권에 갖추어 있다」는 말을 실마리로 『의빙집』으로 넘어간다. 『수구』에서 다 말하지 못한, 여러 종이 천태에 의지한 사정은 별권, 곧 『의빙집』에 적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의빙집』의 한 구절을 인용하신다.

今吾が天台大師法華経を説き法華経を釈すること群に特秀し唐に独歩す明に知んぬ如来の使なり讃る者は福を安明に積み謗る者は罪を無間に開く

이제 우리 천태대사가 법화경을 설하고 법화경을 해석하심이 무리에서 특히 빼어나고 당나라에서 홀로 걸으셨으니, 분명히 알라, 여래의 사자이다. 찬탄하는 자는 복을 안명에 쌓고, 비방하는 자는 죄를 무간에 연다.

『의빙천태집』, 「보은초」 309쪽에 인용

천태대사가 법화경을 설하고 해석한 것은 남삼북칠의 여러 성인 무리 가운데서 특히 빼어나고 중국 전체에서 홀로 걸었으니, 이분은 분명히 여래의 사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의 사자인 천태대사를 찬탄하는 사람은 수미산보다 높이 복을 쌓고, 비방하는 사람은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큰 죄를 받는다. 『의빙집』에서 전교대사가 천태대사를 「여래의 사자」라고 단정하고 이렇게 말한 것은, 석존의 경전에 비추어 천태의 자리가 흔들림 없다는 확신에 서 계셨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여래의 사자」라는 말은 법화경 법사품에서 나온다. 법사품은 법화경의 한 구절이라도 받아 지니고 남에게 설하는 사람을 「여래의 사자로서 여래에게 보내져 여래의 일을 행하는 자」라 한다. 앞의 약왕품이 법화경을 지니는 사람을 「일체중생 가운데 제일」이라 했다면, 법사품은 그 사람을 「여래의 사자」라 한다. 전교대사는 이 두 경문을 천태대사에게 겹쳐 놓은 것이다.

문증을 근본으로 — 불교 연구의 첫걸음

어떤 학문이나 연구에서도, 또 어느 시대에서도 문증 · 경문 · 원전을 근본으로 하여 밝혀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종교 · 철학 · 사상에서는 엄격함이 크게 요구된다. 인과의 이법을 설하고 최고의 철학 체계를 자랑하는 불법에서는 더욱 정확하고 세밀해야 한다.

그런데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홍법 · 자각 · 지증 등이 법화경과 대일경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 모두 자기 견해(我見)와 사사로운 견해(私見)를 바탕으로 하고 경문과 원전을 돌아보지 않는다. 참으로 가볍고 성실하지 못하다. 이것은 철학을 밝히는 첫걸음에서 이미 잘못 굴러떨어진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장의 첫머리에서 대성인이 「이 경문을 어떻게 회통하시려는가」 하고 물으신 것도 바로 이 점을 겨눈 것이다. 그들은 「제일」을 주장하면서 「제일」의 경문을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이런 경향은 진언 · 염불 등에 공통으로 보인다. 염불의 법연 등의 논석을 보아도, 먼저 도작 · 선도 같은 인사(人師)의 해석을 끌어와 풀고, 다음에 논사의 논을 끌어오며, 마지막에 겨우 체면치레로 법화경이나 정토 삼부경을 덧붙이는 식으로 쓴다. 이것은 논증의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다. 더욱이 이것은 한 사람의 학업의 잘못에 그치지 않는다. 불법의 잘못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중을 불행으로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

니치렌 대성인, 그리고 천태대사 · 전교대사는 먼저 경문을 끌어오고 다음에 논석을 덧붙여, 훌륭한 논설을 펼쳐 바른 법과 바른 뜻을 드러내셨다. 이 장의 차례 자체가 그렇다. 안락행품 · 약왕품의 경문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법화현의』 · 『법화수구』 · 『의빙집』의 해석이 따른다. 그들과 견주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놀랄 따름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경문이 먼저이고 해석은 그 뒤에 온다. 「제일」을 주장하는 사람은 「제일」의 경문을 내놓아야 한다. 제16장의 「분명한 증문을 마련하라」와 이 장의 경문 차례는 같은 원리의 두 얼굴이다.

「제2」의 죄 — 홍법보다 무거운 자각 · 지증

석존과 천태와 전교는 법화경을 「모든 경법 가운데 제일」로 삼았는데, 자각은 진언을 모든 경법 가운데 제일로 삼았다. 이것은 부처의 적이며 큰 죄인이다.

홍법은 법화경을 셋째로 두었는데, 홍법 쪽이 오히려 죄가 가볍다. 법화를 둘째로 두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 자각 · 지증 쪽이 죄가 더 무겁다. 제16장의 「검정과 파랑」의 비유가 여기서 다시 확인된다. 셋째로 내린 것은 누구나 그 잘못을 알아보지만, 둘째로 두고 「이치는 같다」고 한 것은 법화경을 아끼는 사람들까지 속인다. 법화경의 「최위제일(最爲第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보다, 「제일」의 자리를 슬며시 빼앗는 것이 더 깊이 법을 해친다.

말법의 여래의 사자

그러면 지금은 어떠한가. 말법에 이르면 천태도 전교도 여래의 사자로서의 작용이 없다. 석존의 불법 자체가 이미 백법은몰(白法隱沒)하여 그 힘을 잃었으므로, 그 사자의 공능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말법의 대백법은 니치렌 대성인의 삼대비법이다. 이 삼대비법을 부처의 말씀대로 믿고 행하며 넓히는 사람들이 말법의 여래의 사자다. 그러므로 『의빙집』의 말을 오늘에 옮기면, 그 사람들을 찬탄하는 자는 복을 안명에 쌓고 비방하는 자는 죄를 무간에 열게 된다.

「법이 묘하기 때문에 사람이 귀하다」. 아무리 낮은 신분이라 불리는 사람이라도, 지니는 법이 귀하므로 그 사람 또한 존귀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대성인은 「사신오품초」에서 말법에 법화경을 지니는 제자들의 존귀함을 밝히신 뒤 이렇게 말씀하셨다.

請う国中の諸人我が末弟等を軽ずる事勿れ

청하노니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여, 나의 말제자들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사신오품초」, 342쪽

약왕품의 「일체중생 가운데서 또한 제일」, 『수구』의 「능히 법화를 지니는 자도 또한 중생 가운데 제일」, 『의빙집』의 「여래의 사자」는 모두 이 한 구절로 모인다. 다음 장에서 대성인은 이 「제일」의 경문에 맞는 사람이 삼국에 몇 사람이었는가를 세어 보신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소지의 법이 제일이므로 능지의 사람이 제일이다. 말법에 그 법은 삼대비법이며, 이 법을 지니고 넓히는 사람은 신분과 상관없이 존귀하다.

제18장 법화경의 삼국 삼사
어서 310쪽 2~13행 · 第18章 法華経の三国三師

본문

원문 대조어서 310쪽 2~13행
本文 · 어서 원문

法華経・天台・妙楽・伝教の経釈の心の如くならば今日本国には法華経の行者は一人も・なきぞかし、 月氏には教主釈尊・宝塔品にして一切の仏を・あつめさせ給て大地の上に居せしめ大日如来計り宝塔の中の南の下座にすへ奉りて教主釈尊は北の上座につかせ給う、 此の大日如来は 大日経の胎蔵界の大日・金剛頂経の金剛界の大日の主君なり、 両部の大日如来を郎従等と定めたる多宝仏の上座に教主釈尊居せさせ給う此れ即ち法華経の行者なり天竺かくのごとし、 漢土には陳帝の時・天台大師・南北にせめかちて現身に大師となる「群に特秀し唐に独歩す」という・これなり、 日本国には伝教大師・六宗にせめかちて日本の始第一の根本大師となり給う・月氏・漢土・日本に但三人計りこそ於一切衆生中亦為第一にては候へ、 されば秀句に云く「浅きは易く深きは難しとは釈迦の所判なり浅きを去つて深きに就くは丈夫の心なり天台大師は釈迦に信順して法華宗を助けて震旦に敷揚し叡山の一家は天台に相承して法華宗を助けて日本に弘通す」等云云、 仏滅後・一千八百余年が間に法華経の行者・漢土に一人・日本に一人・已上二人釈尊を加へ奉りて已上三人なり。 外典に云く聖人は一千年に一出で賢人は五百年に一出づ、黄河は涇渭ながれを・わけて五百年には半河すみ千年には共に清むと申すは一定にて候けり、

풀이

법화경 · 천태 · 묘락 · 전교의 경과 해석의 마음대로라면 지금 일본국에는 법화경의 행자가 한 사람도 없느니라. 월지에서는 교주 석존이 보탑품에서 일체의 부처를 모으시어 대지 위에 앉게 하시고, 대일여래만을 보탑 안의 남쪽 아랫자리에 앉히시고 교주 석존은 북쪽 윗자리에 앉으셨느니라. 이 대일여래는 대일경의 태장계의 대일, 금강정경의 금강계의 대일의 주군이니라. 양부의 대일여래를 낭종(郎從)으로 정한 다보불의 윗자리에 교주 석존이 앉으셨으니, 이것이 곧 법화경의 행자이니라. 천축은 이와 같으니라. 한토에서는 진나라 황제 때 천태대사가 남북을 꾸짖어 이기어 현신(現身)에 대사가 되셨으니, 「무리에서 특히 빼어나고 당나라에서 홀로 걸었다」는 것이 이것이니라. 일본국에서는 전교대사가 육종을 꾸짖어 이기어 일본의 처음이자 제일인 근본대사가 되셨느니라. 월지 · 한토 · 일본에 다만 세 사람만이 「일체중생 가운데서 또한 제일」이니라. 그러므로 『수구』에 이르기를 「얕은 것은 쉽고 깊은 것은 어렵다는 것은 석가의 판정이다. 얕은 것을 버리고 깊은 것에 나아가는 것은 장부의 마음이다. 천태대사는 석가에게 신순하여 법화종을 도와 진단에 펴 드날리고, 예산의 일가는 천태에게 상승하여 법화종을 도와 일본에 홍통한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불멸 후 일천팔백여 년 동안 법화경의 행자는 한토에 한 사람, 일본에 한 사람, 이상 두 사람이요, 석존을 더하여 이상 세 사람이니라. 외전에 이르기를 「성인은 일천 년에 한 번 나고 현인은 오백 년에 한 번 난다」 하고, 황하는 경수(涇水) · 위수(渭水)가 흐름을 나누어 오백 년에는 강물의 반이 맑고 천 년에는 함께 맑는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말이었느니라.

어구 풀이

宝塔品보탑품
법화경 견보탑품 제11. 땅에서 칠보탑이 솟아 다보여래가 법화경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석존이 시방의 분신 제불을 모은 뒤 탑 안에서 다보여래와 자리를 나누어 앉는다(이불병좌).
大日経の胎蔵界대일경의 태장계
진언 밀교의 가르침에서 「태장」은 함장(含藏)과 섭지(攝持)를 나타낸다. 함장은 어머니의 태 안에 전륜왕이 될 아기를 품듯 범부의 번뇌의 마음속에 제불의 자비 공덕을 품고 있다는 것, 섭지는 그 태 안의 아기가 사천하를 다스릴 덕을 지니듯 범부의 마음속에 불계가 연을 따라 일어나 모든 것을 거두어 지닌다는 것이다. 금강계의 지(智)에 대하여 이(理)를 나타내며, 근본 경전은 『대일경』이다.
金剛頂経の金剛界금강정경의 금강계
「금강」은 단단함, 부서지지 않음을 본뜻으로 한다. 근본 경전은 『금강정경』이다.
郎従낭종
주군을 섬기는 가신 · 종자. 양부의 대일여래가 다보불의 신하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陳帝진나라 황제
남조 진(陳)의 황제. 천태대사가 금릉에서 남삼북칠의 스승들과 대론한 것은 진나라 때의 일이다(제3편 참조).
現身に大師となる현신에 대사가 되다
「대사」는 부처의 존호 가운데 하나였다가 뒤에 승려의 존칭으로도 쓰였다. 일본에서는 고승에게 칙명으로 내렸으나 살아 있는 동안 받은 예는 없다. 중국에서는 천태대사 등 그 예가 있다. 「종종어진무어서」에 「현신에 대사호도 있을 것이다」(909쪽)라고 하셨다.
六宗육종
나라 시대의 남도 육종. 구사 · 성실 · 율 · 법상 · 삼론 · 화엄.
根本大師근본대사
전교대사 사이초(767~822). 일본 천태종의 개조. 오미국 시가군 출신으로 열두 살에 출가하고 스무 살에 구족계를 받았다. 연력 7년(788) 히에이산에 근본중당을 세우고 일체경을 배워 법화경이 유일한 정법임을 알았다. 서른여섯 살에 다카오사에서 간무 천황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도 육종의 석덕 열네 명을 꺾었다. 연력 23년(804) 입당하여 행만 좌주 · 도수 화상에게서 천태의 교관을 이어받고 이듬해 돌아왔다. 홍인 13년(822) 6월 4일 쉰여섯 살로 입적했으며, 대승계단의 칙허는 입적 이레 뒤인 6월 11일에 내렸다. 정관 8년(866) 세이와 천황이 「전교대사」의 시호를 내렸다. 근본대사 · 예산대사 · 산가대사라고도 한다. 저술에 『법화수구』 3권 · 『현계론』 3권 · 『주법화경』 12권 · 『수호국계장』 9권 등이 있다.
浅きは易く深きは難しとは釈迦の所判얕은 것은 쉽고 깊은 것은 어렵다는 것은 석가의 판정
얕은 가르침, 곧 중생의 뜻을 따라 설한 방편의 권교(수타의)는 믿기 쉽고 이해하기 쉬우나, 깊은 가르침, 곧 부처의 뜻대로 설한 정법(수자의)은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 보탑품에는 육난구이, 법사품에는 난신난해를 설한다.
震旦진단
중국을 가리키는 인도의 이름. 한 설에는 진나라의 위세가 외국에 떨쳐 그 이름이 인도에 전해져 치나스타나(Cīnasthāna, 진의 땅)라 부른 데서 왔다고 한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는 「해가 동쪽에서 뜨고 그 빛이 붉으므로 진단(震丹)이라 한다」고 했다. 인도에서 보면 중국은 「해 뜨는 곳」이다.
叡山の一家예산의 일가
히에이산의 일문, 곧 전교대사와 그 문하.
涇渭경위
경수(涇水)와 위수(渭水). 둘 다 중국 산시성을 흐르며 합류하는데, 경수는 흐리고 위수는 맑다.
外典외전
불교 밖의 서적. 여기서는 중국의 고전을 말한다.

「지금 일본국에는 법화경의 행자가 한 사람도 없다」

이 장은 앞 장에서 인용한 경문의 뜻을 푼다. 먼저 일본국에는 법화경의 행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밝히고, 이어 삼국에 걸쳐 법화경의 행자는 세 사람뿐이었다는 것을 밝힌다. 그리고 그 뒤에 숨은 뜻은, 말법에는 니치렌 대성인만이 법화경의 행자라는 것이다. 「일체중생 가운데서 또한 제일」이라는 경문은 바로 대성인의 일을 가리킨다. 이것을 드러내려고 먼저 일본국에 법화경의 행자가 없다는 것을 밝히시는 것이다.

왜 일본국에는 법화경의 행자가 없는가. 법화경에서도, 천태 · 묘락 · 전교의 해석에서도, 「법화경이야말로 모든 경법 가운데 가장 제일이며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고 행하는 사람을 법화경의 행자라 이름한다. 그런데 일본국은 한결같이, 혹은 「모든 경법 가운데 제3」이라 하여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아래에 있다」고 하고, 혹은 「모든 경법 가운데 제2」라 하여 「모든 경 가운데 그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앞의 것은 홍법의 흐름이고 뒤의 것은 자각 · 지증의 흐름이다.

이것은 일본국 전체가 홍법 · 자각 · 지증에게 미혹되어 진언의 사의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법화경의 행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일본국에는 법화경의 행자가 한 사람도 없다. 제16장 끝의 「일본 한 나라가 모두 방법의 사람이 되었다」를 법화경의 행자라는 쪽에서 다시 말한 것이다.

삼국 삼사 — 석존 · 천태 · 전교

이어 本文은 인도 · 중국 · 일본을 통틀어 법화경의 행자가 세 사람뿐이었다고 하신다. 이것은 상대(上代)에서도 법화경의 행자가 매우 드물었음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장의 「그런데 일본국은 ……」부터는 일본국에 법화경의 행자는 없고 다만 비방하는 사람만 있음을 밝힌다.

인도에서는 석존이다. 석존은 보탑품에서 다보불의 윗자리에 앉으셨다. 중국에서는 천태대사다. 진나라 황제 때 남북의 스승들을 꾸짖어 이기고 살아 있는 동안 대사가 되었다. 『법화수구』가 「무리에서 특히 빼어나고 당나라에서 홀로 걸었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일본에서는 전교대사다. 남도 육종을 꾸짖어 이기고 일본의 처음이자 제일인 근본대사가 되셨다.

本文은 이 세 사람을 『법화수구』의 한 구절로 묶으신다. 「얕은 것은 쉽고 깊은 것은 어렵다는 것은 석가의 판정이다. 얕은 것을 버리고 깊은 것에 나아가는 것은 장부의 마음이다. 천태대사는 석가에게 신순하여 법화종을 도와 진단에 펴 드날리고, 예산의 일가는 천태에게 상승하여 법화종을 도와 일본에 홍통한다.」 석가가 판정하고, 천태가 그 판정을 따라 중국에 넓히고, 히에이산의 일문이 천태를 이어 일본에 넓혔다. 하나의 법이 세 나라에서 세 사람을 거쳐 이어진 것이다. 「불멸 후 일천팔백여 년 동안 법화경의 행자는 한토에 한 사람, 일본에 한 사람, 이상 두 사람이요, 석존을 더하여 이상 세 사람이다.」

월지교주 석존보탑품에서 다보불의 윗자리, 북쪽 상좌에 앉으심 · 양부의 대일은 다보의 낭종
한토천태대사진나라 때 남북을 꾸짖어 이기고 현신에 대사가 됨「무리에서 특히 빼어나고 당나라에서 홀로 걸었다」群に特秀し唐に独歩す
일본전교대사육종을 꾸짖어 이기고 일본의 처음이자 제일인 근본대사가 됨
이어 주는 글 · 『법화수구』「얕은 것을 버리고 깊은 것에 나아가는 것은 장부의 마음이다」浅きを去つて深きに就くは丈夫の心なり
「월지 · 한토 · 일본에 다만 세 사람만이 일체중생 가운데서 또한 제일」月氏・漢土・日本に但三人計りこそ於一切衆生中亦為第一にては候へ
주종의 차례
  1. 양부의 대일
  2. 다보여래(적문 보탑품)
  3. 교주 석존(본문 수량품)
도표 13 · 법화경의 삼국 삼사

삼국 삼사에 대성인 자신을 더하여 「삼국 사사」라 일컫는 해석도 있다. 「현불미래기」 등에서 대성인은 석존 · 천태 · 전교의 뒤를 이어 스스로를 법화경의 행자로 세우신다.

의식으로 보는 제일 — 보탑 안의 남쪽 아랫자리와 북쪽 윗자리

석존이 왜 「일체중생 가운데 제일」인가를 本文은 두 방향에서 보이신다. 「교주 석존이 보탑품에서 일체의 부처를 모으시어 ……」까지는 의식(儀式)으로 제일을 보이신 것이고, 「이 대일여래는 ……」부터는 설법의 내용(所說)으로 제일을 보이신 것이다.

의식으로 보면 이렇다. 분신의 제불은 대지 위에 있으니 낮다. 다보여래는 탑 안에 있으니 분신보다 높다. 그리고 탑 안에서도 대일여래는 남쪽 아랫자리에 앉고 교주 석존은 북쪽 윗자리에 앉으셨으니 석존이 제일이다.

그런데 「법화취요초」에서 대성인은 「양계의 대일여래는 보탑품의 다보여래의 좌우의 협사」라고 하셨다.

大日経・金剛頂経・両界の大日如来は宝塔品の多宝如来の左右の脇士なり、例せば世の王の両臣の如し此の多宝仏も寿量品の教主釈尊の所従なり

대일경 · 금강정경의 양계의 대일여래는 보탑품의 다보여래의 좌우의 협사이니, 예컨대 세상의 왕의 두 신하와 같다. 이 다보불도 수량품의 교주 석존의 소종(所從)이니라.

「법화취요초」, 333쪽

곧 양계 대일의 주군은 다보여래다. 그런데 이 장에서는 왜 「대일여래만을 보탑 안의 남쪽 아랫자리」라 하시고 「다보」라 하지 않으셨는가.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에서 두 가지 뜻으로 답하셨다. 첫째는 다른 스승의 설을 따르셨기 때문이다. 『계몽』 권18이 인용한 『현기(賢記)』에 따르면, 불공의 『법화의궤』는 양부의 대일을 협사로 두고 법화경의 다보를 「불이(不二)의 대일」이라 이름하여 가운데에 둔다. 그렇다면 불공의 의궤에 따라 보아도 두 대일의 주종은 분명하다. 둘째는 나타내는 바를 따르셨기 때문이다. 『조초(朝抄)』에 따르면 다보를 대일이라 하는 것은 다보가 법신불을 나타낸다는 해석의 뜻이다. 그러므로 다만 법신을 말한 것이며, 대일경이 말하는 권교의 법신은 법화경 실교가 설하는 법신의 소종이라는 뜻이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또 「남쪽이 아랫자리, 북쪽이 윗자리」라는 것은 인도의 풍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니치칸 상인은 풀었다. 인도에서는 오른쪽을 높이고 왼쪽을 낮춘다(右尊左卑). 보탑은 서쪽을 향해 있으므로, 서쪽을 바라보면 북쪽이 오른쪽이 되어 높고 남쪽이 왼쪽이 되어 낮다.

설법으로 보는 제일 — 양부의 대일, 다보, 석존

다음으로 설법의 내용으로 보면 이렇다. 권교의 삼신은 「아직 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未免無常)」. 그러므로 대일경 · 금강정경의 두 가지 대일여래는 소종(所從), 곧 따르는 자리에 있다. 실교의 삼신은 체(體)와 용(用)을 함께 갖추므로(俱體俱用), 법화경의 다보여래는 주군이다.

그러나 이 다보여래도 적문 보탑품의 부처이므로 다시 소종이 된다. 본문 수량품의 교주 석존은 구원의 본불이므로 주군이다. 그렇다면 양부 대일의 주군은 다보이고, 다보의 주군은 석존이니, 석존이야말로 제일이 된다. 「법화취요초」의 「이 다보불도 수량품의 교주 석존의 소종이다」라는 말씀이 이것이다.

이 차례는 진언의 교판을 정확히 거꾸로 세운다. 홍법은 석존을 대일여래 앞의 포로라 했다. 그러나 법화경의 의식과 설법에 비추면, 대일여래는 다보의 신하이고 다보는 석존의 소종이다. 대일은 석존의 신하의 신하다. 제13장의 「황제와 포로」라는 비유는 법화경의 자리에서 보면 주종이 뒤바뀐 말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양부의 대일은 다보의 협사이고, 다보는 수량품 교주 석존의 소종이다. 진언이 내세우는 대일여래는 법화경 안에서는 석존의 가신의 가신에 지나지 않는다.

왜 「행자」라 하고 「교주」라 하지 않는가

本文은 의식과 설법으로 석존의 제일을 보이신 뒤 「이것이 곧 법화경의 행자이니라」(此れ即ち法華経の行者なり, 310쪽)라고 맺으신다. 석존은 법화경을 설한 교주인데, 왜 「교주」라 하지 않고 「행자」라 하셨는가.

니치칸 상인은 행자에는 「자행(自行)이 있고 화타(化他)가 있다」고 풀었다. 스스로 법을 닦는 것만이 행자가 아니라 남을 교화하는 것도 행자의 일이다. 여기서는 화타에 맞추어 「행자」라 하신 것이다. 석존이 법화경을 설하여 일체중생을 이끄신 것은 법화경을 넓힌 행(行)이다. 그러므로 석존은 법화경의 교주이면서 동시에 제일의 법화경의 행자다. 이 말은 천태 · 전교와 석존을 「행자」라는 같은 이름으로 묶어 삼국 삼사를 이루게 한다.

현신에 대사가 되다 — 천태의 「제일」과 전교의 「처음이자 제일」

「남북을 꾸짖어 이기어 현신에 대사가 되셨다」는 것은 천태대사의 제일의 뜻을 드러낸다. 대사(大師)는 본래 부처의 존호 가운데 하나였고 뒤에 고승의 존칭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고승에게 칙명으로 내렸으나 살아 있는 동안 받은 예는 없다. 그런데 천태대사는 진나라에서 살아 있는 동안 그 이름을 받았다. 법론으로 이겨 나라가 인정한 것이다.

「육종을 꾸짖어 이기어 일본의 처음이자 제일인 근본대사가 되셨다」는 것도 전교대사의 제일을 드러낸다. 이 「일본의 처음이자 제일(日本の始第一)」을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에서 이렇게 푸셨다.

第一の言に就いて二義有り。一には最勝の極を第一と名づく、即最為第一の如し。二には衆次の首を第一と名づく、即序品第一の如し。今第一とは是れ衆次の首の義なり。

「제일」이라는 말에 두 뜻이 있다. 첫째는 가장 뛰어난 끝을 제일이라 이름하니, 곧 「최위제일」과 같다. 둘째는 여럿의 차례의 머리를 제일이라 이름하니, 곧 「서품 제일」과 같다. 지금의 「제일」은 여럿의 차례의 머리라는 뜻이다.

「보은초 문단」,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当に知るべし、始第一とは是れ根本の二字の意を顕わすなり。謂く前に望むるに、日本元始の大師なり、故に根本大師と云う。後に望むるに第一の大師なり、故に根本大師と云う。故に前後に望みて其の意を顕わすなり

마땅히 알라, 「처음이자 제일」이란 「근본」 두 글자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 앞을 바라보면 일본에서 맨 처음의 대사이므로 근본대사라 하고, 뒤를 바라보면 첫째의 대사이므로 근본대사라 한다. 그러므로 앞과 뒤를 바라보아 그 뜻을 드러낸 것이다.

같은 곳

곧 전교대사 이전에는 일본에 대사가 없었으니 「처음」이고, 그 뒤의 모든 대사 가운데 맨 앞이니 「제일」이다. 이 두 뜻이 「근본」이라는 두 글자에 담겨 있다. 니치칸 상인은 『계몽』이 이것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법화 최제일의 법화 행자이므로 제일이라 했다」고 푼 것을 「온당하지 않다」고 파하셨다. 「제일」을 「최위제일」의 뜻으로만 읽으면 「처음」과 「제일」이 따로 놀게 되고, 「근본」이라는 이름의 뜻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전교대사의 생애는 이 「근본」에 어울린다. 열두 살에 출가하여 스무 살에 구족계를 받고, 연력 7년(788) 히에이산에 근본중당을 세웠다. 서른여섯 살에 다카오사에서 간무 천황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도 육종의 석덕 열네 명의 그릇된 뜻을 꺾었다. 연력 23년(804) 의진을 데리고 입당하여 천태대사로부터 6대인 묘락대사의 제자 행만 좌주와 도수 화상에게서 교적 · 사자 상전의 뜻 · 일심삼관 · 일념삼천의 깊은 뜻을 이어받았다. 돌아와서는 간무 · 헤이제이 · 사가 세 천황의 두터운 귀의를 받아 상법 시대의 법화경 광선유포를 이루었다. 마지막 염원이던 대승계단의 칙허는 홍인 13년(822) 6월 4일 입적한 지 이레 뒤에 내렸다. 그러나 그 정법은 의진 · 원징에게까지만 전해졌을 뿐, 자각 · 지증부터는 완전히 진언에 물들어 버렸다.

니치렌 대성인 — 말법의 제일의 법화경 행자

그렇다면 니치렌 대성인은 어떠한가. 대성인은 이미 여러 종의 그릇된 뜻을 꾸짖어 이기고 전대미문의 묘법을 홍통하고 계시므로, 제일의 법화경 행자이심은 당연하다. 「선시초」에서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は日本第一の法華経の行者なる事あえて疑ひなし、これをもつてすいせよ漢土月支にも一閻浮提の内にも肩をならぶる者は有るべからず

니치렌은 일본 제일의 법화경의 행자인 것은 결코 의심이 없느니라. 이로써 미루어 보라, 한토 · 월지에도, 일염부제 안에도 어깨를 나란히 할 자는 있을 수 없느니라.

「선시초」, 284쪽

그런데 이런 물음이 있을 수 있다. 대성인은 여러 종의 그릇된 뜻을 이기셨다고 하지만 아직 대사가 되지 않으셨으니 「제일」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이에 대해서는 「종종어진무어서」의 말씀이 답이 된다.

賢王・聖主の御世ならば日本第一の権状にもをこなわれ現身に大師号もあるべし

현왕 · 성주의 치세라면 일본 제일의 권장(權狀)도 받고 현신에 대사호도 있을 것이다.

「종종어진무어서」, 909쪽

설령 대사의 덕이 있어도 현명한 왕, 성스러운 군주의 치세가 아니면 대사호를 받을 수 없다. 천태대사에게는 진나라 황제가, 전교대사에게는 간무 천황이 있었다. 대성인의 시대에는 그런 군주가 없었을 뿐이다. 제5편에서 보듯이 나라는 대성인을 대사로 삼기는커녕 두 번이나 유배하고 목을 베려 했다. 대사호가 없다는 것은 대성인의 결함이 아니라 시대의 결함이다.

성인은 천 년에 한 번 — 경수와 위수의 비유

本文은 중국의 외전을 끌어 장을 맺으신다. 「성인은 일천 년에 한 번 나고 현인은 오백 년에 한 번 난다.」 그리고 황하로 흘러드는 경수와 위수는 흐름을 나누어 흐리고 맑은데, 오백 년에는 강물의 반이 맑고 천 년에는 함께 맑는다고 한다. 대성인은 이 말이 「틀림없는 말이었다」고 하신다. 불멸 후 일천팔백여 년 동안 석존 · 천태 · 전교 세 사람만이 나온 것이 이 말에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흐린 경수와 맑은 위수가 한 강으로 만나 두 빛깔로 나란히 흐르는 황토 고원의 합류점
그림 · 흐린 경수와 맑은 위수가 한 강으로 만나 두 빛깔로 나란히 흐르는 황토 고원의 합류점

불멸 후 일천팔백여 년 동안 석존 · 천태 · 전교 세 사람이 법화경을 설하여 민중을 구해 왔다. 재세와 상법 시대의 법화경이 일천팔백여 년 동안 동양의 사람들의 철학으로 받들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성인이란 스스로 깨닫는 사람, 현인은 가르침을 받아 깨닫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또 「삼세를 아는 것을 성인이라 한다」고 한다. 진실한 성인이란 삼세를 알고 스스로 불승을 깨달으시어(自解佛乘) 「니치렌은 일염부제 제일의 성인이니라」(日蓮は一閻浮提第一の聖人なり, 「성인지삼세사」, 974쪽)라고 말씀하신 니치렌 대성인이시다. 그래서 「대성인」이라 부르는 것이며, 이것은 어본불의 다른 이름이다. 이 장에서 석존 · 천태 · 전교를 「천 년에 한 번 나는 성인」으로 세우신 것은, 그 뒤를 잇는 말법의 성인이 누구인가를 묻는 데로 이어진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삼국 삼사의 계보는 「소지의 법이 제일이므로 능지의 사람이 제일」이라는 원리의 역사이며, 그 계보의 말법의 자리에 일염부제 제일의 성인인 니치렌 대성인이 서신다.

제19장 일본에 비방자만 있음을 밝히다
어서 310쪽 13행~311쪽 17행 · 第19章 日本に謗者のみあるを明かす

본문

本文 · 一어서 310쪽 13행 ~ 311쪽 4행
本文 · 어서 원문

然るに日本国は叡山計りに伝教大師の御時・法華経の行者ましましけり、義真・円澄は第一第二の座主なり第一の義真計り伝教大師ににたり、 第二の円澄は半は伝教の御弟子・半は弘法の弟子なり、第三の慈覚大師は始めは伝教大師の御弟子に・にたり、 御年四十にて漢土に・わたりてより名は伝教の御弟子・其の跡をば・つがせ給えども法門は全く御弟子にはあらず、 而れども円頓の戒計りは又御弟子ににたり蝙蝠鳥のごとし鳥にもあらず・ねずみにもあらず梟鳥禽・破鏡獣のごとし、 法華経の父を食らい持者の母をかめるなり日をいるとゆめに・みしこれなり、されば死去の後は墓なくてやみぬ、 智証の門家・園城寺と慈覚の門家・叡山と修羅と悪竜と合戦ひまなし園城寺をやき叡山をやく、 智証大師の本尊の慈氏菩薩もやけぬ慈覚大師の本尊・大講堂もやけぬ現身に無間地獄をかんぜり、但中堂計りのこれり、

풀이

그런데 일본국은 히에이산에만 전교대사의 시대에 법화경의 행자가 계셨느니라. 의진 · 원징은 제1 · 제2의 좌주이니, 제1의 의진만이 전교대사를 닮았고, 제2의 원징은 반은 전교의 제자, 반은 홍법의 제자이니라. 제3의 자각대사는 처음에는 전교대사의 제자를 닮았으나, 나이 마흔에 한토에 건너가고부터는 이름은 전교의 제자로서 그 뒤를 이으셨으나 법문은 전혀 제자가 아니니라. 그러나 원돈(圓頓)의 계만은 또 제자를 닮았으니, 박쥐와 같으니라.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니니라. 효조금(梟鳥禽) · 파경수(破鏡獸)와 같으니라. 법화경의 아버지를 잡아먹고 지니는 이의 어머니를 물어뜯은 것이니, 해를 쏘는 꿈을 꾼 것이 이것이니라. 그러므로 죽은 뒤에는 무덤도 없이 끝났느니라. 지증의 문가인 온조사와 자각의 문가인 히에이산은 수라와 악룡처럼 싸움이 그칠 새가 없어, 온조사를 불태우고 히에이산을 불태웠느니라. 지증대사의 본존인 자씨보살도 불탔고, 자각대사의 본존과 대강당도 불탔으니, 현신에 무간지옥을 느낀 것이니라. 다만 중당(中堂)만이 남았느니라.

本文 · 二어서 311쪽 4~17행
本文 · 어서 원문

弘法大師も又跡なし弘法大師の云く東大寺の受戒せざらん者をば東寺の長者とすべからず等御いましめの状あり、 しかれども寛平法王は仁和寺を建立して東寺の法師をうつして我寺には叡山の円頓戒を持ざらん者をば住せしむべからずと宣旨分明なり、 されば今の東寺の法師は鑒真が弟子にもあらず弘法の弟子にもあらず戒は伝教の御弟子なり又伝教の御弟子にもあらず伝教の法華経を破失す、 去る承和二年三月二十一日に死去ありしかば・公家より遺体をば・ほうぶらせ給う、其の後誑惑の弟子等集りて御入定と云云、 或はかみをそりて・まいらするぞと・いゐ或は三鈷をかんどより・なげたりといゐ或は日輪・夜中に出でたりといゐ或は現身に大日如来となりたりといひ或は伝教大師に十八道を・をしへまいらせ給うといゐて、 師の徳をあげて智慧にかへ我が師の邪義を扶けて王臣を誑惑するなり、 又高野山に本寺・伝法院といいし二の寺あり本寺は弘法のたてたる大塔・大日如来なり、伝法院と申すは正覚房の立てし金剛界の大日なり、 此の本末の二寺・昼夜に合戦あり例せば叡山・園城のごとし、誑惑のつもりて日本に二の禍の出現せるか、 糞を集めて栴檀となせども焼く時は但糞の香なり大妄語を集めて仏と・がうすとも但無間大城なり、 尼犍が塔は数年が間・利生広大なりしかども馬鳴菩薩の礼をうけて忽にくづれぬ、 鬼弁婆羅門がとばりは多年人を・たぼらかせしかども阿涇縛寠沙菩薩にせめられて・やぶれぬ、 拘留外道は石となつて八百年・陳那菩薩にせめられて水となりぬ、道士は漢土をたぼらかすこと数百年・摩騰・竺蘭にせめられて仙経もやけぬ、 趙高が国をとりし王莽が位をうばいしが・ごとく法華経の位をとて大日経の所領とせり、法王すでに国に失せぬ人王あに安穏ならんや、

풀이

홍법대사도 또한 자취가 없느니라. 홍법대사가 이르기를 「도다이사에서 수계하지 않은 자를 동사의 장자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등 경계의 글이 있느니라. 그러나 관평 법왕은 닌나사를 세우고 동사의 법사를 옮겨 와 「우리 절에는 히에이산의 원돈계를 지니지 않은 자를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고 선지가 분명하니라. 그러므로 지금의 동사의 법사는 감진의 제자도 아니고 홍법의 제자도 아니니라. 계는 전교의 제자이니라. 그런데 또 전교의 제자도 아니니, 전교의 법화경을 깨뜨려 잃었느니라. 지난 승화 2년 3월 21일에 죽으니, 공가(公家)에서 유해를 장사 지내셨느니라. 그 뒤 광혹(誑惑)의 제자들이 모여 「입정(入定)하셨다」고 하였느니라. 혹은 머리카락을 깎아 드린다 하고, 혹은 삼고(三鈷)를 한토에서 던졌다 하고, 혹은 해가 한밤중에 떴다 하고, 혹은 현신에 대일여래가 되었다 하고, 혹은 전교대사에게 십팔도(十八道)를 가르쳐 드렸다 하여, 스승의 덕을 들어 지혜로 바꾸고 제 스승의 사의를 도와 왕과 신하를 속이느니라. 또 고야산에 본사(本寺)와 전법원(傳法院)이라는 두 절이 있느니라. 본사는 홍법이 세운 대탑의 대일여래이고, 전법원이라는 것은 쇼카쿠보(正覺房)이 세운 금강계의 대일이니라. 이 본말의 두 절이 밤낮으로 싸우니, 예컨대 히에이산 · 온조사와 같으니라. 속임이 쌓여 일본에 두 재앙이 나타난 것인가. 똥을 모아 전단(栴檀)이라 하여도 태울 때는 다만 똥의 냄새뿐이니라. 큰 망어를 모아 부처라 칭하여도 다만 무간대성이니라. 니건(尼犍)의 탑은 여러 해 동안 이익이 크더니 마명보살의 절을 받고 홀연히 무너졌느니라. 귀변(鬼辯) 바라문의 장막은 여러 해 사람을 속였으나 아습박구사보살에게 꾸짖음을 당해 깨졌느니라. 구류(拘留) 외도는 돌이 되어 팔백 년을 지냈으나 진나보살에게 꾸짖음을 당해 물이 되었느니라. 도사(道士)는 한토를 속이기를 수백 년이었으나 마등 · 축란에게 꾸짖음을 당해 선경(仙經)도 불탔느니라. 조고(趙高)가 나라를 빼앗고 왕망(王莽)이 자리를 빼앗은 것과 같이, 법화경의 자리를 빼앗아 대일경의 영지로 삼았느니라. 법왕이 이미 나라에서 자리를 잃었으니 인왕이 어찌 안온하겠는가.

어구 풀이

蝙蝠鳥박쥐
새처럼 날지만 새가 아니고 쥐처럼 생겼지만 쥐가 아닌 짐승. 자각이 이름과 원돈계로는 전교의 제자이면서 법문으로는 진언인 것을 견주었다.
梟鳥禽효조금
올빼미. 속설에 자라면 어미를 잡아먹는다 하여 모식조(母食鳥) · 불효조(不孝鳥)라고도 한다. 「센니치니답서」에 「올빼미라는 새는 태어나서는 반드시 어미를 잡아먹는다」(1320쪽)고 하셨다.
破鏡獣파경수
파경(破獍)이라고도 쓴다. 아비를 잡아먹는, 범을 닮은 사나운 짐승이라 한다. 일설에는 너구리의 한 종류라고도 한다. 『사기』 「봉선서」 등에 나온다.
墓なくてやみぬ무덤도 없이 끝났다
「하카나시(はかなし)」에는 덧없다 · 한심하다는 뜻이 함께 있어, 자각이 죽은 뒤의 한심한 세력 다툼과 방법의 현증을 아울러 가리킨다. 실제로 자각의 무덤도 분명하지 않다.
智証の門家・園城寺と慈覚の門家・叡山지증의 문가 온조사와 자각의 문가 히에이산
산문파(山門派)와 사문파(寺門派)의 항쟁. 히에이산 제19대 좌주 진젠(尋禪)이 물러나고 제20대 요케이(餘慶)가 임명된 무렵부터 표면화되었다.
東大寺の受戒せざらん者をば東寺の長者とすべからず도다이사에서 수계하지 않은 자를 동사의 장자로 삼아서는 안 된다
동사의 장자(長者)는 홍법 때부터 매우 중요한 자리였으며, 홍법의 첫째 제자 지쓰에(實慧)가 그 자리에 앉았다. 홍법은 제자들을 도다이사 계단에서 수계하게 했는데, 소승률인 도다이사 계단에서 진언 밀교의 사람이 계를 받으면 진언의 율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寛平法王관평 법왕
제59대 우다(宇多) 천황. 관평 9년(897) 제60대 다이고 천황에게 양위하고, 그 이태 뒤 진언종의 야쿠신(益信)에게 출가하여 공리(空理)라 이름하고 관정을 받아 진언의 열조에 들었다. 법황이 된 뒤 닌나사에 머물러 그곳을 오무로(御室)라 했다.
三鈷삼고
진언 밀교의 기도에 쓰는 도구로, 끝이 셋으로 갈라진 금강저. 홍법이 귀국할 때 중국 명주의 바닷가에서 바다를 향해 삼고를 던졌는데,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가 뒷날 고야산에서 발견되었으므로 고야산이 감응의 땅이라 하여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現身に大日如来となりたり현신에 대일여래가 되었다
홍법의 제자 신제(眞濟, 800~860)가 전한 이야기로, 홍법이 귀국하여 조정에서 여러 종의 고승과 대론할 때 손으로 인을 맺어 대일여래의 모습을 나타내 보였다는 것.
本寺・伝法院본사 · 전법원
본사는 홍법이 세운 고야산 곤고부사로, 홍인 7년(816) 터를 받아 뒤에 금당 · 근본대탑을 세웠다. 전법원은 쇼카쿠보 각반이 세운 절. 두 절은 세력을 다투어 뒷날 진언종의 고의 · 신의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正覚房쇼카쿠보
각반(覺鑁)(1095~1144). 신의 진언의 조사로 일컬어진다.
尼犍が塔니건의 탑
『부법장인연전』 권5에 나오는 이야기. 외도 니건이 탑 위에 진흙덩이를 두고 「내세의 천불 가운데서 성불할 수 있다면 이 진흙덩이를 불상으로 바꾸어 달라」고 맹세했는데 그대로 되어 크게 기뻐했다. 마침 이 탑 곁을 지나던 국왕이 칠보로 꾸민 탑을 여래의 탑으로 알고 꽃과 향을 올리고 게송으로 찬탄하자 탑이 갈라져 무너졌다. 왕의 덕이 깊고 두터워 사된 탑을 예배하자 무너졌다고 사람들이 말했다. 本文에서는 왕이 아니라 마명보살로 되어 있는데, 그 왕이 마명에게 귀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馬鳴菩薩마명보살
범어 아슈바고샤(Aśvaghoṣa). 음사하여 아습박구사(阿濕縛窶沙). 부법장의 제12. 1~2세기 중인도 출신의 대승 논사. 처음에는 외도를 믿어 지면 혀를 잘라 사죄하겠다고 교만했으나 부나사에게 논파되어 불교에 귀의했다. 저술에 『불소행찬』 5권 등이 있으며, 『대승기신론』도 마명의 작이라 한다.
鬼弁婆羅門귀변 바라문
2세기 무렵 인도의 바라문.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마가다국 계원사 종탑의 북쪽에 살며 역설의 이론을 희롱하고, 숲에 숨어 귀신을 모시며 세상의 존경을 받았다. 늘 장막을 드리운 채 문답하여 아무도 그 정체를 몰랐는데, 아습박구사보살(마명)이 국왕과 함께 가서 문답하자 귀변이 입을 다물었고, 마명이 장막을 걷어 그 요사한 모습을 드러냈다.
拘留外道구류 외도
「구류」는 휴류(鵂鶹)의 빌린 글자로, 우루승가(漚樓僧佉), 곧 석존 출현 8백 년 전 인도 승론학파의 조사를 말한다. 『지관사기』 권10에 진제의 말로 「휴류 선인이 성겁의 끝에 나와 장생의 약을 먹고 변하여 돌이 되니 모양이 누운 소와 같았다」고 하고, 『보행』 권10에는 몸이 죽을까 두려워 숲속에서 돌이 되었는데, 그 돌에 게를 써서 빌면 무엇이든 이루어졌으나 뒤에 진나보살이 그 돌에 게를 쓰자 돌이 갈라져 물이 되었다고 한다.
摩騰・竺蘭마등 · 축란
가섭마등(摩騰迦)과 축법란(竺法蘭). 둘 다 중인도 사람으로 후한 명제의 명으로 중국에 불전을 가져왔다.
趙高조고
(?~기원전 207). 진(秦)나라의 환관. 『사기』 등에 따르면 시황제를 섬기다가 황제가 죽은 뒤 승상 이사와 짜고 조서를 위조하여 맏아들 부소를 죽이고 막내 호해를 즉위시켜 권력을 쥐었다. 옛 신하를 물리치고 가혹한 정치를 하여 나라에 난리를 불렀고, 이사마저 죽이게 한 뒤 형세가 불리해지자 이세 황제를 죽였다. 이어 즉위한 자영에게 죽임을 당했다.
王莽왕망
(기원전 45~기원후 23). 『한서』 「왕망전」에 따르면 전한 말의 정치가로 신(新)나라를 세웠다. 애제가 죽은 뒤 아홉 살의 평제를 세워 권세를 쥐고, 평제가 자라자 독살하고 두 살의 유영을 세워 스스로 섭정이 되었다. 부명설(符命說)로 한 왕조의 천명이 다했다고 퍼뜨려 제위를 물려받아 신을 세웠으나, 복고 정책이 실패하고 내란이 이어져 신은 멸망했다.

세 단으로 읽는 장 — 현벌, 광혹의 전례, 망국의 까닭

이 장은 일본에 법화경의 행자는 없고 다만 방법만이 있다는 것을 밝힌다. 다시 세 단으로 나뉜다. 첫째 단은 자각 · 지증 · 홍법의 현벌과 죽은 뒤의 치욕을 밝힌다. 둘째 단은 「니건의 탑」 이하로, 세간을 속여도 그것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전례를 보인다. 셋째 단은 「조고」부터로, 나라가 망하는 까닭을 밝힌다.

앞 장이 「일체중생 가운데 제일」인 사람을 위로 세었다면, 이 장은 아래로 센다. 법화경의 행자가 히에이산에 있었던 것은 전교대사의 시대뿐이었다. 그 뒤의 히에이산, 온조사, 동사, 고야산은 모두 다툼과 속임의 무대가 되었다. 本文은 그것을 하나하나 들어 「일본에는 비방하는 사람만 있다」는 결론에 이르신다.

히에이산 좌주들에 대한 판정 — 의진만이 전교를 닮았다

本文은 먼저 히에이산의 역대 좌주를 한 사람씩 판정하신다.

제16장에서 「히에이산의 불법은 다만 전교대사 · 의진 화상 · 원징대사의 삼대뿐이었던가」라고 하신 것을 여기서 더 엄밀히 하신 것이다. 삼대 가운데서도 온전한 것은 의진 한 사람이었다.

박쥐 · 올빼미 · 파경 — 법화경의 아버지를 잡아먹다

자각을 두고 本文은 세 짐승을 드신다. 첫째는 박쥐다. 박쥐는 새처럼 날지만 새가 아니고 쥐처럼 생겼지만 쥐가 아니다. 자각은 원돈계로는 전교의 제자이고 좌주의 이름으로는 전교의 뒤를 이었으나, 법문으로는 진언이다.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다.

둘째와 셋째는 효조금과 파경수다. 효조, 곧 올빼미는 자라면 어미를 잡아먹는다 하여 불효조라 불렸다. 대성인은 「센니치니답서」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梟鳥と申すとりは生れては必ず母をくらう

올빼미라는 새는 태어나서는 반드시 어미를 잡아먹느니라.

「센니치니답서」, 1320쪽

파경은 아비를 잡아먹는 범 같은 짐승이라 한다. 本文은 이 두 짐승을 자각에게 겹치신다. 「법화경의 아버지를 잡아먹고 지니는 이의 어머니를 물어뜯은 것이니, 해를 쏘는 꿈을 꾼 것이 이것이다.」 법화경은 일체중생을 낳은 아버지이고, 그 법화경을 지니는 사람은 어머니다. 자각은 법화경에서 태어난 사람이면서 법화경을 진언 아래에 두어 아버지를 잡아먹었고, 법화경을 지니는 히에이산의 대중을 진언으로 끌어가 어머니를 물어뜯었다. 제14장에서 자각이 길몽이라 기뻐한 해를 쏘는 꿈은 바로 이 부모 살해의 모습이었다고 대성인은 풀어 주신다.

「죽은 뒤에는 무덤도 없이」 — 법화경의 머리를 자르다

「그러므로 죽은 뒤에는 무덤도 없이 끝났다(死去の後は墓なくてやみぬ)」. 일본어의 「하카나시」는 「덧없다 · 한심하다」는 뜻이기도 하므로, 이 말은 자각이 죽은 뒤의 한심한 세력 다툼과 방법의 현증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자각의 무덤도 분명하지 않다. 산문의 기록에는 자각이 히에이산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다른 설에는 데와국 입석사에서 죽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머리는 입석사에 있다고도 하고, 어떤 제자가 자각의 유골은 히에이산에 있어야 한다며 머리를 잘라 히에이산으로 가져왔다고도 전한다.

이에 대해 대성인은 「지카쿠대사사」에서, 「최재기상(最在其上)」 —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 — 는 법화경의 머리를 잘라 금강정경에 붙인 허물로 이런 악보를 받은 것이라고 꾸짖으셨다.

法華最第一の経文を奪い取りて金剛頂経に付くるのみならず、……法華経の頭を切りて真言経の頂とせり、此れ即ち鶴の頚を切って蝦の頚に付けけるか真言の蟆も死にぬ法華経の鶴の御頚も切れぬと見え候、此れこそ人身うけたる眼の不思議にては候へ

법화 최제일의 경문을 빼앗아 금강정경에 붙였을 뿐 아니라 (중략) 법화경의 머리를 잘라 진언경의 꼭대기로 삼았다. 이것은 곧 학의 목을 잘라 두꺼비의 목에 붙인 것인가. 진언의 두꺼비도 죽고 법화경의 학의 목도 잘린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몸을 받은 눈으로 본 불가사의이다.

「지카쿠대사사」, 1019쪽

제17장의 안락행품 경문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와, 제17장에서 니치칸 상인이 짚은 「저 종은 금강정경을 뭇 경의 꼭대기로 삼는다」가 여기서 만난다. 「꼭대기」를 빼앗아 『금강정경』의 이름에 붙인 사람이 머리와 몸이 갈라진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다.

수라와 악룡의 싸움 — 산문과 사문

本文은 이어 지증의 문가 온조사와 자각의 문가 히에이산의 싸움을 드신다. 「수라와 악룡처럼 싸움이 그칠 새가 없어, 온조사를 불태우고 히에이산을 불태웠다.」 온조사는 오늘의 시가현 오쓰시 서북쪽에 있으며, 지명이 미이(三井)이므로 미이데라라고도 한다. 지증이 이 절 출신이었으므로 그 뒤 히에이산과 오랫동안 세력을 다투어 여러 차례 전투와 방화를 되풀이했다. 히에이산 쪽을 산문(山門), 온조사 쪽을 사문(寺門)이라 부른다.

비와호 너머 저녁 안개 속에 겹쳐 선 히에이산의 능선과 호숫가 온조사의 지붕들 원경
그림 · 비와호 너머 저녁 안개 속에 겹쳐 선 히에이산의 능선과 호숫가 온조사의 지붕들 원경

그 다툼은 니치코(日講)의 『계몽』에 자세히 적혀 있다. 그에 따르면 제64대 엔유인의 천원 4년(981), 지증의 문인 요케이가 좌주에 임명되자 자각의 문도들이 이에 노하여 참소한 것이 시작이다. 이로부터 장력 연간(1037~1040)까지 네 차례 병란이 일어났고, 산문이 온조사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 뒤에도 산문의 온조사 방화는 이어졌다.

  1. 천원 4년(981) · 제64대 엔유인산문 →
    지증의 문인 요케이의 임명에 자각 문도가 노하여 참소 · 다툼의 시작
  2. ~장력 연간(1037~1040)산문 →→ 사문
    네 차례의 병란, 산문이 온조사를 불태움
  3. 영보 원년(1081) · 제72대 시라카와인산문 →→ 사문
    산문의 온조사 방화
  4. 치승 연간→ 사문
    다카쿠라노미야의 모반 때 기요모리의 명으로 온조사가 불탐
  5. 건보 2년(1214) · 제84대 준토쿠인산문 →→ 사문
    산문의 온조사 방화
  6. 문영 원년(1264)산문 →
    덴노사 별당을 온조사에 맡긴 데 노하여 산승이 스스로 엔랴쿠사에 불을 놓음
  7. 같은 해 5월산문 →→ 사문
    산문이 온조사를 모두 불태움
  8. 문영 5년(1268)산문 →
    산승이 스스로 불을 놓아 히에이산이 불탐
本文「지증대사의 본존인 자씨보살도 불탔고, 자각대사의 본존과 대강당도 불탔다 … 다만 중당만이 남았다」

『계몽』의 기록에 따른 연표

도표 14 · 산문과 사문의 싸움 — 『계몽』이 전하는 연표

이 연표는 『계몽』의 기록에 따른 것이며, 각 사건의 연월과 경위는 전하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치승 4년(1180) 다카쿠라노미야(모치히토 왕)의 거병에 온조사가 가담하여 다이라 씨에게 불탄 일은 일반 사서에도 보인다.

참으로 本文의 말씀대로 「수라와 악룡의 싸움」이다. 지증의 본존인 자씨보살(미륵)도 불타고, 자각의 본존도, 대강당도 불타 없어졌다. 「현신에 무간지옥을 느낀 것이다」라는 말씀 그대로가 아닌가. 그런데 그 가운데 다만 하나, 전교대사가 세운 근본중당만이 남았다. 本文의 「다만 중당만이 남았다」는 한 구절은, 자각 · 지증이 세운 것은 모두 불탔으나 전교대사의 법화경의 자리만은 남았다는 대비를 조용히 드러낸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같은 산에서 같은 스승을 조사로 삼는 두 문파가 서로의 절을 불태운 것은, 스승의 법을 버린 사람들의 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현증이다. 법이 하나가 아니면 사람도 하나가 될 수 없다.

「홍법대사도 또한 자취가 없다」 — 도다이사의 계와 닌나사의 선지

다음은 홍법이다. 「홍법대사도 또한 자취가 없다.」 「자취가 없다」는 것은 홍법이 죽은 뒤 그가 남긴 경계도 지켜지지 않고 그 유적도 끊어졌다는 뜻이다. 그 경계의 하나가 本文이 드신 「도다이사에서 수계하지 않은 자를 동사의 장자로 삼아서는 안 된다」이다. 홍법은 감진이 세운 도다이사의 소승 계단을 밟지 않은 사람은 동사의 장자가 될 수 없다고 유언했다. 동사의 장자는 홍법 때부터 매우 중요한 자리여서 첫째 제자 지쓰에가 그 자리에 앉았다. 홍법의 생각으로는 소승률인 도다이사 계단에서 진언 밀교의 사람이 계를 받으면 그것이 진언의 율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관평 법왕, 곧 우다 천황은 닌나사를 세우고 동사 진언의 승려를 머물게 하면서, 닌나사에는 히에이산의 원돈계 — 법화경 적문의 원돈계단에서 주는 대승계 — 를 받아 지니지 않은 사람은 머물 수 없다고 선포했다. 이처럼 홍법의 흐름은 곧바로 어지러워졌다.

本文은 그 결과를 이렇게 정리하신다. 「지금의 동사의 법사는 감진의 제자도 아니고 홍법의 제자도 아니다. 계는 전교의 제자이다. 그런데 또 전교의 제자도 아니니, 전교의 법화경을 깨뜨려 잃었다.」 도다이사의 계를 받지 않았으니 감진의 제자가 아니고, 홍법의 유언을 어겼으니 홍법의 제자도 아니다. 계만 보면 히에이산의 원돈계를 받았으니 전교의 제자인데, 법으로는 전교의 법화경을 깨뜨리고 있으니 전교의 제자도 아니다. 자각이 「박쥐」였듯이 동사의 승려들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스승의 덕을 꾸며 왕과 신하를 속이다 — 홍법 사후의 전설들

本文은 이어 홍법이 죽은 뒤의 일을 드신다. 홍법은 승화 2년(835) 3월 21일에 죽었고, 공가에서 유해를 장사 지냈다. 그런데 그 뒤 광혹의 제자들이 모여 갖가지 이야기를 지어냈다.

本文은 이것들을 한마디로 판정하신다. 「스승의 덕을 들어 지혜로 바꾸고 제 스승의 사의를 도와 왕과 신하를 속인다」(師の徳をあげて智慧にかへ我が師の邪義を扶けて王臣を誑惑するなり, 311쪽). 그 뜻은 이렇다. 홍법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법화경을 「제3의 희론」이라 한 이상 분명한 경문을 내어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증문은 전혀 없다. 그래서 말제자들은 다른 종의 논란을 막으려고 여러 거짓 덕을 내세워 퍼뜨리기 시작했다. 지혜의 증거, 곧 경문이 없는 자리를 영험의 이야기로 메운 것이다. 제17장의 「문증을 근본으로 한다」는 원리를 정반대로 뒤집은 모습이다. 홍법의 영험에 대해서는 제6편에서 대성인이 다시 낱낱이 따지신다.

본사와 전법원 — 고야산의 두 절

고야산에는 본사와 전법원이라는 두 절이 있다. 본사는 홍법이 세운 곤고부사로, 대탑의 대일여래를 본존으로 한다. 전법원은 쇼카쿠보 각반이 세운 절로, 금강계의 대일을 본존으로 한다. 本文은 「이 본말의 두 절이 밤낮으로 싸우니, 예컨대 히에이산 · 온조사와 같다」고 하신다. 히에이산과 온조사가 그랬듯이 고야산의 두 절도 싸움을 그치지 않았다.

이 두 절의 다툼은 뒷날 진언종이 고의와 신의로 갈라지는 실마리가 된다. 제13장에서 본 본지신설 · 가지신설의 교리적 분기도 이 흐름과 이어진다. 本文은 이것을 「속임이 쌓여 일본에 두 재앙이 나타난 것인가」라고 하신다. 오랜 속임이 쌓여 히에이산과 온조사, 고야산과 전법원이라는 두 재앙이 일본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똥을 모아 전단이라 해도 — 광혹은 오래가지 못한다

둘째 단은 비유로 시작한다. 「똥을 모아 전단(향기 좋은 향나무)이라 하여도 태울 때는 다만 똥의 냄새뿐이다. 큰 망어를 모아 부처라 칭하여도 다만 무간대성이다.」 이름을 아무리 꾸며도 태워 보면 본래의 냄새가 난다. 거짓 영험을 아무리 모아 「대일여래가 되었다」고 해도, 그 결과는 무간지옥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어 本文은 세간을 속인 것이 오래가지 못한 네 가지 전례를 드신다.

첫째, 니건의 탑이다. 외도 니건이 세운 탑은 여러 해 동안 사람들에게 이익이 크다고 숭배되었으나, 마명보살의 절을 받자 홀연히 무너졌다. 『부법장인연전』의 이야기에서는 왕이 그 탑을 여래의 탑으로 알고 예배하자 갈라져 무너졌는데, 本文에서 마명보살로 되어 있는 것은 그 왕이 마명에게 귀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둘째, 귀변 바라문이다. 귀변은 장막을 드리운 채 문답하여 여러 해 사람들을 속였는데, 아습박구사보살, 곧 마명이 국왕과 함께 가서 문답하자 입을 다물었고, 마명이 장막을 걷어 그 정체를 드러냈다.

셋째, 구류 외도다. 승론학파의 조사 우루승가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돌이 되어 팔백 년을 지냈고, 그 돌에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숭배되었으나, 진나보살이 게를 쓰자 돌이 갈라져 물이 되었다.

넷째, 중국의 도사다. 도교의 도사들은 수백 년 동안 한토를 속였으나, 후한 명제 때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불전을 가져오자 이를 시기하여 시합을 청했다. 『불조통기』에 따르면, 도사들은 예로부터 하던 대로 선경 · 삼분 · 오전 등의 책을 장작과 함께 쌓아 불태웠는데, 불법이 오기 전에는 타지 않던 책이 이번에는 모두 재가 되었고, 물에 뜨던 것이 가라앉았으며, 귀신을 불러도 오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저선신 · 비숙재 등의 도사는 괴로워하다 죽었다. 한편 두 성인이 설법하자 불사리가 하늘에 올라 빛을 놓았고, 석가불의 화상은 미간에서 빛을 놓았다. 여혜통 등 6백여 명의 도사가 그 자리에서 불법에 귀복하여 출가했고, 30일 동안 열 곳의 절이 세워졌다고 한다.

니건의 탑과 구류 외도의 이야기는 각각 『부법장인연전』 권5와 『지관사기』 권10 · 『지관보행전홍결』 권10에, 귀변 바라문의 이야기는 『대당서역기』에, 도사와 마등 · 축란의 시합은 『불조통기』에 보인다. 대성인은 「시조깅고전답서」 등에서도 이 시합을 자세히 말씀하셨다.

네 전례는 모두 같은 구조다. 거짓은 오래 숭배될 수 있다. 그러나 바른 법을 지닌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하면 한순간에 무너진다. 홍법 · 자각 · 지증의 영험과 권위도 법화경과 정면으로 마주하면 이와 같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제5편의 대성인의 간효와 이어진다.

조고와 왕망 — 법왕을 잃은 나라

셋째 단은 짧다. 「조고가 나라를 빼앗고 왕망이 자리를 빼앗은 것과 같이, 법화경의 자리를 빼앗아 대일경의 영지로 삼았다.」 조고는 진나라 시황제가 죽은 뒤 조서를 위조하여 맏아들 부소를 죽이고 막내 호해를 세워 권력을 쥐었고, 끝내 그 이세 황제마저 죽였다. 왕망은 전한 말에 어린 평제를 세워 권세를 쥐고, 그 평제를 독살한 뒤 어린 유영을 세워 섭정이 되었다가 마침내 스스로 제위에 올라 신나라를 세웠다. 둘 다 정당한 군주를 받드는 척하며 그 자리를 빼앗은 신하다.

진언이 한 일이 이와 같다. 처음에는 법화경과 대일경이 「이치는 같다」며 법화경을 받드는 척했다. 그러나 결국 법화경의 자리 — 「모든 경 가운데 가장 그 위」 — 를 빼앗아 대일경의 것으로 만들었다. 「법왕이 이미 나라에서 자리를 잃었으니 인왕이 어찌 안온하겠는가」(法王すでに国に失せぬ人王あに安穏ならんや, 311쪽). 법의 왕인 법화경이 그 자리를 빼앗겼는데, 사람의 왕인 국주가 어떻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이 한 구절이 제5편의 문을 연다. 다음 장(제20장)은 「일본국은 자각 · 지증 · 홍법의 흐름이니 한 사람도 방법이 아닌 사람이 없다」로 시작하여, 그런 나라를 하늘도 버리고 선신도 떠났으며, 오직 니치렌 한 사람이 남아 알렸으나 국주가 이를 원수로 여겼다는 대성인의 국가 간효로 이어진다. 홍법 · 자각 등 그릇된 스승의 말류의 소란과 비참한 최후를 보면, 천하 소란의 근원은 그릇된 종과 그릇된 뜻과 그릇된 스승에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중국에서도 그러했다고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본다. 현장 · 선무외 등이 법상 · 진언 등의 뜻을 넓힌 뒤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당나라도 현종 때의 난리를 거쳐 기울었고, 선 · 염불이 퍼졌을 때에도 소란이 그치지 않았다. 일본의 일은 어서에 자세히 밝혀 두신 그대로다. 제5편과 제6편은 이 원리를 대성인 당시의 일본 — 몽골의 내습과 자계반역의 난 — 에 비추어 펼쳐 간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법왕이 자리를 잃으면 인왕도 안온할 수 없다」는 것은 「입정안국」의 원리를 뒤집어 말한 것이다. 바른 법이 바로 서야 나라가 편안하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이 편의 일곱 장은 하나의 산이 어떻게 그 주인을 바꾸었는가를 따라왔다. 전교대사는 남도 육종을 꺾고 법화경을 히에이산에 세웠으며, 대일경은 법화천태종의 방의경으로 두어 진언종의 이름을 깎으셨다. 그러나 그 입멸 이듬해 홍법이 동사를 받아 「제1 진언 · 제2 화엄 · 제3 법화」를 세웠고(제13장), 전교대사의 제자 자각은 당에서 이동사승을 배워 와 해를 쏘는 꿈으로 그것을 확인했으며(제14장), 손제자 지증은 진언이 낫다 · 법화가 낫다 · 둘이 같다는 세 가지 말을 남기고 칙선으로 진언을 좌주의 조건으로 만들었다(제15장).

대성인은 전교대사의 정문인 『의빙집』으로 두 사람을 꾸짖으셨다. 「동아」의 두 글자에 비추면 그들은 이름만 제자이고 마음은 제자가 아니며, 그들이 받아 낸 선지의 「사자의 도」라는 말이 오히려 그들 자신을 꾸짖는다. 그리고 물과 불처럼 분명한 홍법의 잘못보다, 검정과 파랑처럼 헷갈리는 자각 · 지증의 잘못이 더 많은 사람을 그르쳤다고 판정하셨다(제16장). 이어 안락행품 · 약왕품의 경문과 『법화수구』 · 『의빙집』의 해석으로 「소지의 법이 제일이므로 능지의 사람이 제일」이라는 원리를 세우고(제17장), 그 원리에 맞는 사람은 삼국을 통틀어 석존 · 천태 · 전교 세 사람뿐이었다고 밝히셨다(제18장). 마지막으로 히에이산 · 온조사 · 동사 · 고야산의 다툼과 속임을 들어 일본에는 비방자만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법왕이 이미 나라에서 자리를 잃었으니 인왕이 어찌 안온하겠는가」로 맺으셨다(제19장).

이 편이 보은초 전체에서 갖는 뜻은 둘이다. 하나는 스승에 대한 보은이 무엇인가를 거꾸로 보여 준다는 것이다. 자각 · 지증은 전교대사의 자리와 이름을 이었지만 법을 잇지 않았다. 그래서 대성인은 그들을 「제자가 아니다」라고 하셨다. 스승의 은혜를 갚는 길은 스승의 바른 법을 지키고 넓히는 데 있다는 보은초의 논지가 여기서 반면의 모습으로 확인된다. 다른 하나는 삼국 삼사의 계보 끝에 말법의 법화경 행자가 서야 한다는 것이다. 법화경의 행자가 한 사람도 없는 나라에서, 그 경문을 몸으로 읽을 사람은 누구인가.

다음 제5편 「대성인의 국가 간효와 재난의 근원」은 이 물음에 답한다. 「일본국은 자각 · 지증 · 홍법의 흐름이니 한 사람도 방법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한 구절로 시작하여, 하늘과 선신이 버린 나라에 니치렌 대성인 한 사람이 남아 세 번 간효하고 두 번 유배되며 다쓰노구치에서 목을 베일 뻔한 일, 그리고 나라에 닥친 재난의 까닭과 진언 세 조사의 잘못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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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보은초」(어서 293–329쪽) · 「선시초」 · 「개목초」 · 「법화취요초」 · 「사신오품초」 · 「종종어진무어서」 · 「성인지삼세사」 · 「지카쿠대사사」 · 「교행증어서」 · 「센니치니답서」 · 「현불미래기」, 일본어판 어서전집
  • 『묘법연화경』 안락행품 · 약왕보살본사품 · 견보탑품 · 여래수량품 · 법사품, T9 no.262
  • 『대일경』 T18 no.848 / 『대일경소』(선무외 설 · 일행 기) T39 no.1796
  • 천태대사, 『법화현의』 T33 no.1716 · 『법화문구』 T34 no.1718
  • 전교대사, 『의빙천태집』 · 『법화수구』 · 『수호국계장』
  • 구카이, 『십주심론』 · 『비장보약』 / 엔닌, 『금강정경소』 · 『소실지경소』 · 『입당구법순례행기』 / 엔친, 『대일경지귀』 · 『수결집』
  • 현장, 『대당서역기』 / 『부법장인연전』 / 『불조통기』 / 『사기』 · 『한서』

연구

  • Ryūichi Abé, The Weaving of Mantra: Kūkai and the Construction of Esoteric Buddhist Discours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 Paul Groner, Ryōgen and Mount Hiei: Japanese Tendai in the Tenth Century,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2
  • Edwin O. Reischauer (tr.), Ennin's Diary: The Record of a Pilgrimage to China in Search of the Law, Ronald Press, 1955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On Repaying Debts of Gratitude」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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