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초」는 「늙은 여우는 무덤을 뒤로하지 않는다」는 한 줄로 시작한다. 짐승조차 은혜를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그리고 하물며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 부모 · 스승 · 나라의 은혜를 잊어서야 되겠느냐는 물음이다. 이어서 대성인은 그 은혜를 참으로 갚으려면 반드시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智者)가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 스승 · 국주의 뜻에 따르지 않는 길도 있다고 단언하신다. 그런데 막상 불법을 배우려 하니 일대 성교를 비추는 거울이 열 개나 있고, 그 가운데 대승의 일곱 종은 저마다 「우리 종이야말로 일대의 마음을 얻었다」고 다툰다. 나라에 왕이 일곱 열이면 백성이 편할 수 없듯, 거울이 서로 다투면 무엇을 비추어 보아야 하는가. 대성인은 팔종 · 십종 어디에도 따르지 않겠다는 원을 세우고, 열반경의 유계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에 따라 법화경 한 경을 밝은 거울로 삼으신다. 여덟 편 가운데 첫 편인 이 네 장은, 보은이라는 개인의 윤리가 어떻게 불교 전체의 승렬을 묻는 일로 넓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보은초」의 문이다.
「보은초」 여덟 편은 네 갈래로 이어진다. 보은의 도리와 불법을 배우는 길을 세우는 제1편, 정법 · 상법 시대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을 더듬는 제2~4편, 대성인 자신의 간효와 진언 파절을 다루는 제5 · 6편, 그리고 대성인의 지은보은과 본문의 삼대비법을 밝히는 제7 · 8편이다. 이 편은 그 첫 갈래 전체이며, 뒤의 서른세 장이 모두 이 네 장이 세운 물음 — 「무엇으로 은혜를 갚는가, 그리고 무엇을 거울로 삼아 그 길을 아는가」 — 에 대한 대답으로 읽힌다.
네 장의 논리는 단단하게 이어져 있다. 제1장은 짐승과 사람의 보은을 들어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도리를 세운다. 제2장은 그 도리를 실천하는 방법, 곧 보은의 요술(要術)을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는 것」으로 정하고, 그 때문에 세간의 효와 충을 넘어서는 출가의 길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드는 이가 참으로 은혜를 갚는 이다」라는 경문이 여기서 인용된다. 제3장은 막상 배우려는 사람 앞에 놓인 현실, 곧 열 개의 거울이 서로 다투는 미란(迷乱)을 그린다. 제4장은 그 미란을 넘어서는 기준을 열반경의 유계에서 찾아,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아 일체경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결론이 제2편 「법화경 제일과 재세 · 정법의 난」의 첫머리 「이 법화경은 모든 경 가운데서 가장 그 위에 있다」로 곧바로 이어진다.
보은이라는 말은 오늘날 흔히 봉건적 주종 관계의 덕목처럼 들리지만, 이 네 장이 말하는 보은은 그런 것이 아니다. 스승의 뜻을 거스르고 집을 떠나야 비로소 스승과 부모의 은혜를 참으로 갚을 수 있다는 역설, 그리고 은혜를 갚는 길이 결국 「어떤 법을 따를 것인가」라는 물음과 하나라는 통찰이 이 편의 중심이다. 대성인이 이 글을 쓰신 계기는 옛 스승 도젠보(道善房)의 부음이었다. 그 스승은 염불을 버리지 못하고 지두를 두려워해 제자를 지켜 주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대성인은 바로 그 스승을 위해 이 대작을 지으셨다. 첫 네 장은 그 추선의 마음이 어떻게 일체중생을 향한 법의 판정으로 넓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이 편의 장
본문
報恩抄 日蓮之を撰す 夫れ老狐は塚をあとにせず白亀は毛宝が恩をほうず畜生すらかくのごとしいわうや人倫をや、 されば古への賢者予譲といゐし者は剣をのみて智伯が恩にあてこう演と申せし 臣下は腹をさひて衛の懿公が肝を入れたり、 いかにいわうや仏教をならはん者父母・師匠・国恩をわするべしや、
보은초 — 니치렌이 이를 찬술한다. 무릇 늙은 여우는 제가 난 무덤을 뒤로하지 않고, 흰 거북은 모보(毛宝)의 은혜를 갚았느니라. 짐승조차 이와 같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그러므로 옛 현자 예양(予譲)이라 하는 이는 칼을 삼켜 지백(智伯)의 은혜에 보답하였고, 홍연(弘演)이라 하는 신하는 제 배를 갈라 위(衛)나라 의공(懿公)의 간을 넣었느니라. 하물며 불교를 배우는 자가 어찌 부모 · 스승 · 나라의 은혜를 잊어서야 되겠느냐.
어구 풀이
- 報恩抄 日蓮之を撰す보은초 — 니치렌이 이를 찬술한다
- 제호와 찬술자의 표기다. 건치 2년(1276) 7월 21일, 미노부에서 쓰시어 아와 세이초사의 조켄보 · 기조보에게 보내신 글로, 옛 스승 도젠보의 추선을 위한 것이다. 정필은 미노부에 전해졌으나 메이지 8년(1875)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 老狐は塚をあとにせず늙은 여우는 무덤을 뒤로하지 않는다
- 여우는 제가 태어난 옛 무덤(언덕 굴)을 잊지 않아, 늙어 죽을 때에는 반드시 머리를 그 언덕 쪽으로 둔다는 옛말이다. 니치칸 상인의 「보은초 문단(報恩抄文段)」은 『회남자(淮南子)』 · 『초사(楚辭)』와 주자(朱子) · 정현(鄭玄)의 주를 들어 그 출전을 밝힌다.
- 白亀は毛宝が恩をほうず흰 거북은 모보의 은혜를 갚았다
- 『사문유취(事文類聚)』에 실린 진(晋)나라 모보의 고사. 어부에게 잡힌 흰 거북을 제 옷을 주고 구해 놓아 주었는데, 훗날 성이 함락되어 강가로 쫓겨 왔을 때 그 거북이 나타나 등에 태워 건네주었다고 전한다.
- 畜生すらかくのごとし・いわうや人倫をや짐승조차 이와 같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 「인륜(人倫)」은 사람의 무리, 곧 인간을 말한다. 아래에서 위로 견주어 올라가는 논법으로, 짐승 → 세간의 사람 → 불교를 배우는 사람의 세 단계로 보은의 도리를 무겁게 쌓아 간다.
- 予譲といゐし者は剣をのみて智伯が恩にあて예양이라 하는 이는 칼을 삼켜 지백의 은혜에 보답하였다
- 『사기(史記)』 권86 자객열전의 예양 이야기. 진(晉)나라의 예양은 자신을 알아준 주군 지백의 원수 조양자(趙襄子)를 노렸으나 이루지 못하자, 양자의 옷을 받아 칼로 찌른 뒤 스스로 칼에 엎어져 죽었다. 「칼을 삼켰다」는 자결을 뜻한다. 기원전 450년 무렵의 일이다.
- こう演と申せし臣下は腹をさひて衛の懿公が肝を入れたり홍연이라 하는 신하는 배를 갈라 위나라 의공의 간을 넣었다
- 춘추 시대 위나라 의공의 신하 홍연의 고사로, 『사기』와 『위지(魏志)』 진교전(陳矯傳)에 보인다. 홍연이 사신으로 나간 사이 북방의 적이 위나라를 쳐 의공을 죽이고 그 간만 남겨 두었다. 돌아온 홍연은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고 제 배를 갈라 주군의 간을 넣고 죽었다. 기원전 660년 무렵의 일이다.
- 仏教をならはん者불교를 배우는 자
- 세간의 보은에서 출세간의 보은으로 넘어가는 말이다. 니치칸 상인은 본초의 대의가 출가한 사문(沙門)의 보은, 그 가운데서도 대성인 자신의 보은에 있다고 풀었다.
- 父母・師匠・国恩부모 · 스승 · 나라의 은혜
- 본초가 드는 사은 가운데 셋이다. 본초 전체로 보면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국왕의 은혜의 넷을 든다. 「사은초」의 사은과 달리 일체중생의 은혜를 따로 세우지 않고 스승의 은혜를 세운 데에 본초의 특색이 있다.
- 四恩사은
- 사람이 입은 네 가지 큰 은혜. 경론과 어서마다 헤아리는 법이 조금씩 다르다. 『심지관경』은 부모 · 중생 · 국왕 · 삼보, 『정법념처경』은 어머니 · 아버지 · 여래 · 설법하는 법사의 은혜를 든다.
이 장의 자리 — 보은의 도리를 세우다
제1장은 「보은초」 전체의 서론이며, 불제자가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 하는 도리를 밝히는 장이다. 본초가 말하는 보은에는 넓은 뜻과 좁은 뜻이 겹쳐 있다. 넓게 말하면(總) 부모 · 스승 · 삼보 · 국왕의 사은(四恩)을 모두 갚아야 한다는 것이고, 좁혀 말하면(別) 스승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이 옛 스승 도젠보의 부음을 듣고 그 추선을 위해 쓰였다는 사정이 「별(別)」의 뜻을 받쳐 준다.
짧은 첫 장은 세 겹의 비교로 짜여 있다. 맨 아래에 짐승이 있다. 늙은 여우와 흰 거북은 말도 글도 모르지만 제가 난 곳과 저를 살려 준 이를 잊지 않았다. 그 위에 세간의 사람이 있다. 예양과 홍연은 목숨을 바쳐 주군의 은혜에 보답했다. 그리고 맨 위에 「불교를 배우는 자」가 있다. 짐승조차, 세간의 사람조차 이렇게 은혜를 갚는데 하물며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 부모 · 스승 · 나라의 은혜를 잊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문장은 짧지만 물음은 무겁다. 이 물음이 제2장에서 「그러면 어떻게 갚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지고, 그 대답이 결국 불교 전체의 승렬을 가리는 일로 번져 간다.
-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국왕의 은혜
- 일체중생의 은혜
- 부모의 은혜
- 국왕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부모
- 중생
- 국왕
- 삼보
- 어머니
- 아버지
- 여래
- 설법하는 법사
두 가지 사은 — 왜 스승의 은혜를 세웠는가
대성인의 어서에서 사은은 두 가지 방식으로 헤아려진다. 이즈 유배 중에 쓰신 「사은초」는 『심지관경(心地観経)』을 따라 일체중생의 은혜 · 부모의 은혜 · 국왕의 은혜 · 삼보의 은혜를 든다. 반면 「보은초」는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국왕의 은혜를 든다. 같은 넷이지만 하나가 다르다. 「사은초」의 「중생의 은혜」 자리에 「보은초」는 「스승의 은혜」를 놓았다.
왜 그런가. 니치칸 상인은 이를 본초가 특별히 스승의 은혜를 열어 드러내어(開出) 그 은혜를 갚고자 하신 것이라고 풀었다. 이 글은 처음부터 옛 스승 도젠보의 은혜를 갚기 위해 쓰인 글이므로, 사은 가운데 스승의 은혜를 한 자리로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생의 은혜는 버려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중생의 은혜는 부모의 은혜 속에 합쳐져 있다. 대성인은 「호렌초」에서 육도 사생의 중생은 모두 지난 생의 부모라고 하셨다.
六道四生の衆生に男女あり此の男女は皆我等が先生の父母なり
육도 사생의 중생에게는 남녀가 있다. 이 남녀는 모두 우리가 지난 생에 만난 부모이니라.
생사를 거듭하는 긴 시간 속에서 모든 중생은 한 번쯤 나의 부모였다. 그러므로 부모의 은혜를 갚는 일은 곧 일체중생의 은혜를 갚는 일이 된다. 「보은초」는 넷 가운데 하나를 빼고 다른 하나를 넣은 것이 아니라, 중생의 은혜를 부모의 은혜 안에 거두고 비어 있는 자리에 스승의 은혜를 세운 것이다.
네 고사가 말하는 것 — 짐승의 보은과 사람의 보은
첫머리의 네 고사는 모두 중국의 고전에서 온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에서 「늙은 여우」의 출전으로 여러 설을 모아 보였다. 『회남자』는 「토끼는 죽으면 굴로 돌아가고, 여우는 죽을 때 언덕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고, 『초사』는 「새는 날아서 옛 고향으로 돌아가고, 여우는 죽을 때 반드시 언덕으로 머리를 둔다」고 한다. 주자는 이를 주석하여 「새가 날아 옛 고향으로 돌아감은 옛 둥지를 그리워하는 것이요, 여우가 죽을 때 반드시 언덕으로 머리를 둠은 제가 난 곳을 잊지 않는 것」이라 하였고, 정현은 「여우는 굴이 있는 언덕에서 태어나므로, 언덕을 등지고 죽는 것을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은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라 풀었다. 여우의 이야기가 「제가 난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라면, 흰 거북의 이야기는 「저를 살려 준 이의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다. 진나라 모보가 어부에게 옷을 주고 구해 준 흰 거북은, 훗날 모보가 예주자사(豫州刺史)로 주성(邾城)을 지키다 대군에게 성을 잃고 배도 없이 강가에 몰렸을 때 나타나 그를 등에 태워 강을 건네주었다고 『사문유취』는 전한다. 하나는 근본에 대한 은혜, 하나는 구원에 대한 은혜다.
사람의 두 고사는 더 처절하다. 예양은 전국 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처음 범씨(范氏)를 섬기고 다음에 중항씨(中行氏)를 섬겼으나 어느 쪽에서도 쓰이지 못했다. 지백이 범씨 · 중항씨를 멸하자 그를 섬겨 크게 중용되었다. 훗날 지백이 조나라 양자에게 멸망하자 예양은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 하고 원수를 갚으려 했으나 붙잡혔다. 양자는 그 충절에 감동해 놓아주었다. 예양은 몸에 옻을 칠해 나병 환자의 모습을 하고 숯을 삼켜 목을 망가뜨려 벙어리가 된 뒤, 다리 밑에 숨어 양자를 기다리다 다시 붙잡혔다. 그러자 양자의 옷을 청해 받아 그것을 칼로 찔러 지백의 원수를 갚는다는 뜻을 보이고 스스로 칼에 엎어져 죽었다. 본문의 「칼을 삼켰다」는 이 자결을 가리킨다.

홍연은 춘추 시대 위나라 의공의 신하였다. 명을 받아 먼 곳에 사신으로 간 사이 북방의 적이 위나라를 쳐서 의공을 죽였는데, 적은 그 간만 버려 두고 떠났다. 돌아온 홍연은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고, 주군의 몸이 들판에 버려지는 수치를 막기 위해 제 배를 갈라 주군의 간을 넣고 죽었다고 한다.
대성인은 이 넷을 「세간의 보은」으로 드셨다. 짐승의 보은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고, 예양 · 홍연의 보은은 한 주군 한 사람에 대한 충절이다. 그것만으로도 귀하지만, 대성인이 말하려는 것은 그다음이다. 「하물며 불교를 배우는 자가」라는 한 구절이 이 네 고사 전체를 디딤돌로 삼아 출세간의 보은으로 올라선다.
세간의 보은인가, 사문의 보은인가 — 『계몽』에 대한 니치칸 상인의 비판
이 첫 장을 어떻게 나누어 읽을 것인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니치코(日講)의 『녹내계몽(録内啓蒙)』, 곧 『계몽(啓蒙)』은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을 밝히면서, 처음 네 고사까지는 「세간 유위(世間有為)의 보은」을, 「하물며 불교를 배우는 자」 이하는 「출세 무위(出世無為)의 보은」을 밝힌 것이라고 나누었다. 겉으로 보면 그럴듯한 나눔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를 파하여 이렇게 말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본초의 대의는 출세 무위, 곧 불법 위에서 오로지 사문(沙門)의 보은을 말하는 것이지 무지한 남녀의 보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문의 보은 가운데서도 그 뜻은 니치렌 대성인 자신의 보은에 있다. 그런데 어찌 「세간 유위의 보은을 밝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비판은 단순한 문단 나누기의 문제가 아니다. 『계몽』처럼 읽으면 「보은초」는 세간의 덕목과 불법의 덕목을 나란히 늘어놓은 교훈서가 된다. 니치칸 상인처럼 읽으면,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이 글은 한 사문, 곧 대성인이 스승의 은혜를 어떻게 갚으셨는가를 말하는 글이 된다. 네 고사는 그 주제를 돋보이게 하는 견줌일 뿐이다. 실제로 「보은초」는 마지막에 「이 공덕은 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다」로 끝난다. 처음과 끝이 모두 대성인 자신의 보은을 향해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스승에게 바친 보은 — 도젠보와 「대사 중의 대사」
대성인의 스승 도젠보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대성인 스스로의 말씀이 남아 있다. 「선무외삼장초」에서는 그 스승을 두고 이렇게 쓰셨다.
此の人愚癡におはする上念仏者なり三悪道を免るべしとも見えず
이 사람은 어리석은 데다 염불자이니라. 삼악도를 면할 수 있으리라고도 보이지 않느니라.
「본존문답초」에서는 이렇게 회고하셨다.
故道善御房は師匠にておはしまししかども法華経の故に地頭におそれ給いて心中には不便とおぼしつらめども外にはかたきのやうににくみ給いぬ
고 도젠 어방은 스승이셨지만 법화경 때문에 지두를 두려워하시어, 마음속으로는 가엾게 여기셨을지라도 겉으로는 원수처럼 미워하셨느니라.
어리석고 겁 많은 스승이었다. 대성인이 지두 도조 가게노부(東條景信)의 박해를 받아 기요스미를 떠나실 때 지켜 준 것은 스승이 아니라 사형 조켄보와 기조보였다. 그런데도 대성인은 그 스승의 부음을 듣자 이 대작을 쓰시어, 도젠보의 무덤 앞에서 한 번, 다카가모리(嵩が森)의 산마루에서 두세 번 읽게 하셨다. 이런 스승에게조차 이만큼의 보은을 다하셨다는 사실이, 「보은초」가 말하는 보은이 상대의 덕에 따라 셈하는 거래가 아님을 보여 준다.
그리고 대성인은 송문에서 이 글에 「대사 중의 대사」를 적었다고 하셨다. 니치칸 상인은 오대부 가운데에서도 본초에 이르러 처음으로 삼대비법의 명목이 들어졌기 때문에 「대사 중의 대사」라고 하신 것이라 풀었다. 그렇다면 참된 보은은 무엇인가. 이 삼대비법을 믿고, 그 법을 넓히는 실천에 있다. 한 스승을 위한 추선의 글이 말법 만년의 법을 세우는 글이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뜻은 보은초 제8편 「본문의 삼대비법과 보은의 맺음」에서 다시 만난다.
보은은 인류의 영원한 윤리 — 동서의 우화와 격언
보은이라는 덕목은 봉건 시대나 특정한 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여러 뜻과 형태를 띠어 왔지만, 사람으로서 언제까지나 지켜야 할 중요한 윤리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뒤로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고 보은의 덕은 인간성 깊숙이 뿌리내려 민중 속에 녹아 있었다. 그 흔적은 세계 곳곳에 교훈과 우화로 남아 있다.
기원전 620년 무렵 그리스의 아이소포스(Aesop)가 지었다고 전하는 이솝 이야기는,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담은 『파이돈』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등에 자주 인용된다. 동물 세계에서 소재를 얻어 도덕과 처세의 상식을 가르치는 짧은 우화인데, 그 가운데 은혜를 느끼고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교훈이 많다. 이 우화들은 고대 그리스의 일상 도덕이었고, 이를 「범례에 의한 철학」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이 이야기들은 당시 동방의 여러 민족과 게르만 민족에게도 널리 전해졌으리라 여겨진다.
로마의 속담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구멍 많은 통과 같다」고 하고, 아라비아의 속담은 「너에게 그늘을 준 나무는 베지 말라」고 한다. 시대가 내려와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세상에 은혜를 모르는 사람보다 나쁜 것은 없다」고 하였다. 유럽의 민중에게도 「은혜를 잊은 자는 짐승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뚜렷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도 예부터 지은보은의 감정이 강했다는 것은, 대성인이 본초에 인용하신 늙은 여우와 흰 거북, 예양과 홍연의 고사만 보아도 분명하다. 일본에서도 가장 오래된 문헌인 『고사기(古事記)』와 『만엽집(萬葉集)』에는 옛사람들의 보은관이 이야기와 노래에 담겨 있고, 예부터 전해 오는 옛이야기 가운데에도 보은을 중심 윤리로 삼은 것이 매우 많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일은 사람 본래의 뛰어난 미덕으로 기려져 온 것이다.
경전이 설하는 보은 — 소승에서 법화경까지
보은의 덕은 서양보다 동양에서 싹트고 자랐다고 볼 수 있으며, 불법은 그것을 한층 높고 넓게, 한 겹 더 깊이 들어가 설했다. 석존의 불법에서 방등부의 『보은경(報恩經)』은 지은보은의 인연과 갖가지 법문을 설한다. 보은을 설하는 여러 경론의 한 끝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잡아함경』은 「은혜를 알아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작은 은혜가 있어도 갚아서 끝내 잊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큰 은혜랴」라고 한다. 『대집경』은 「보살마하살은 옛 친구를 버리지 않고, 은혜를 알아 은혜를 갚으며, 일체를 가엾이 여긴다」고 하고, 『대보적경』은 「지은보은은 보살의 행이니, 불종을 끊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대방광부사의경계경』은 「은혜를 아는 이는 생사에 있어도 선근을 무너뜨리지 않고, 은혜를 모르는 이는 선근이 끊어져 없어진다」고 하며, 『반야경』은 「일체 세간의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데 부처보다 나은 이는 없다」고 한다. 『대지도론』은 「은혜를 아는 것은 대비의 근본이요, 선업을 여는 첫 문이다」라고 한다.
사은을 헤아리는 법도 경마다 있다. 『정법념처경』은 어머니의 은혜 · 아버지의 은혜 · 여래의 은혜 · 설법하는 법사의 은혜의 넷을 들고, 『심지관경』은 부모 · 중생 · 국왕 · 삼보의 넷을 든다. 특히 『심지관경』의 사은은 널리 쓰여 대성인의 「사은초」에도 인용되었다.
이처럼 석존의 불법은 소승 · 권대승 · 실대승을 가리지 않고 보은을 강하게 설해 사람의 윤리로 세웠다. 그러나 적은 사람을 짧은 동안만 건지는 소승보다 많은 사람을 오래도록 건지는 대승이 보은 사상에서도 뛰어나고, 권대승보다 실대승인 법화경이 뛰어남은 말할 것도 없다. 대성인은 석존의 불법 가운데 오직 법화경만이 참된 보은의 경이라고 하셨다.
但法華経計りこそ女人成仏・悲母の恩を報ずる実の報恩経にて候へ
다만 법화경만이 여인성불, 곧 어머니의 은혜를 갚는 참된 보은경이니라.
또 법화경의 공덕을 기리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の経は内典の孝経なり
이 경은 내전(불경)의 효경이니라.
정법 시대의 용수보살 · 천친보살, 상법 시대의 천태대사 · 전교대사 등 불법을 바르게 이은 이들도 석존 멸후 인도 · 중국 · 일본에서 참된 보은 사상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보은을 근원에서 설하신 분이 말법의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이시다.
유교의 보은관과 그 굴절
한편 중국의 유교는 은혜를 설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설한 「은(恩)」도 실은 인(仁) · 애(愛)를 뜻하는 것이었다. 유교는 오히려 은혜를 갚는 보은보다 은혜를 베푸는 시은(施恩)을 설했다고 볼 수 있다. 에도 시대 초기 일본에 유교 사상이 들어왔을 때에도 은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도 시대 중기 · 후기에 이르러 나카에 도주(中江藤樹) · 가이바라 엣켄(貝原益軒) 등의 유학자가 불교의 보은 사상에 맞서 감은(感恩) · 보은을 강조한 것이 유교 보은 사상의 시작이다. 그것이 유교식으로 굽어져 무사 계급에 들어갔고, 이른바 봉건적 주종 관계를 감은의 사상으로 묶어 두는 데 쓰였다. 이 유교식 감은 사상이 화근이 되어, 보은이라 하면 무언가 봉건적인 사상으로 여겨 참된 보은 사상마저 밀어내는 경향이 생겼다. 봉건적 보은관은 에도 시대 말기에 유교 등에 의해 한쪽으로 과장되어 쓰인 데서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해와 그릇된 인식 때문에 참된 보은을 업신여기고 은혜를 잊는 풍조가 커지는 것은 깊이 탄식할 일이다.
불법의 보은은 결코 그런 갑갑하고 강제적인 봉건적 유교식 보은이 아니다. 특히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이 설하는 보은 사상은 석존의 불법이 설하는 보은보다 한 겹 더 들어간 가장 높은 보은 사상이며,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장 높은 윤리의 하나로 우러러야 할 덕이다. 그 보은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밝히는 것이 다음 제2장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본초의 보은은 사은을 모두 갚는 것(총)이면서 스승의 은혜를 갚는 것(별)이고, 그 뜻은 대성인 자신의 보은에 있다. 그 보은의 실질은 삼대비법을 믿고 넓히는 데 있다.
본문
此の大恩をほうぜんには必ず仏法をならひきはめ智者とならで叶うべきか、譬へば衆盲をみちびかんには生盲の身にては橋河をわたしがたし方風を弁えざらん大舟は諸商を導きて宝山にいたるべしや、 仏法を習い極めんとをもはばいとまあらずば叶うべからずいとまあらんとをもはば父母・師匠・国主等に随いては叶うべからず是非につけて出離の道をわきまへざらんほどは父母・師匠等の心に随うべからず、 この義は諸人をもはく顕にもはづれ冥にも叶うまじとをもう、しかれども外典の孝経にも父母主君に随はずして忠臣・孝人なるやうもみえたり、内典の仏経に云く「恩を棄て無為に入るは真実報恩の者なり」等云云、 比干が王に随わずして賢人のなをとり悉達太子の浄飯大王に背きて三界第一の孝となりしこれなり。
이 큰 은혜를 갚으려면 반드시 불법을 끝까지 배워 익혀 지자(智者)가 되지 않고서야 될 수 있겠느냐. 비유하자면, 여러 맹인을 이끌려 할 때 날 때부터 눈먼 몸으로는 다리와 강을 건네주기 어렵고, 방향과 바람을 분별하지 못하는 큰 배가 여러 상인을 이끌어 보배 산에 이를 수 있겠느냐. 불법을 끝까지 배우고자 한다면 틈(겨를)이 없어서는 될 수 없고, 틈을 얻고자 한다면 부모 · 스승 · 국주 등을 따라서는 될 수 없느니라. 옳든 그르든 생사를 벗어나는 길을 분별하기 전까지는 부모 · 스승 등의 마음을 따라서는 안 되느니라. 이 뜻을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세간의 도리에도 어긋나고 속에 감추어진 불법의 뜻에도 맞지 않으리라고 여길 것이니라. 그러나 외전의 효경에도 부모 · 주군을 따르지 않고서 충신 · 효자가 되는 길이 보이고, 내전의 불경에는 「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드는 이가 참으로 은혜를 갚는 이다」라고 하였느니라. 비간(比干)이 왕을 따르지 않고 현인의 이름을 얻고, 실달태자(悉達太子)가 정반대왕(淨飯大王)을 등지고 삼계 제일의 효자가 된 것이 이것이니라.
어구 풀이
- 此の大恩이 큰 은혜
- 제1장의 부모 · 스승 · 나라의 은혜를 받는다. 니치칸 상인은 「이 큰 은혜」를 갚는 방법이 곧 이 장이 밝히는 보은의 요술이라고 풀었다.
- 仏法をならひきはめ智者とならで叶うべきか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지 않고서야 될 수 있겠느냐
- 반어로 단정하는 문장이다. 보은은 마음만으로 되지 않고 「아는 것」을 거쳐야 한다. 지자란 법의 승렬 · 천심을 가려 바른 법을 아는 사람이다.
- 衆盲をみちびかんには生盲の身にては橋河をわたしがたし여러 맹인을 이끌려 할 때 날 때부터 눈먼 몸으로는 다리와 강을 건네주기 어렵다
- 스스로 길을 보지 못하는 이는 남을 이끌 수 없다는 비유. 스승이 어리석으면 제자도 함께 빠진다는 제3장의 논지로 이어진다.
- 方風방향과 바람
- 배를 부리는 이가 분별해야 할 방위와 바람의 방향. 법의 승렬을 분별하는 지혜에 비유한다.
- 大舟は諸商を導きて宝山にいたるべしや큰 배가 여러 상인을 이끌어 보배 산에 이를 수 있겠느냐
- 대승을 큰 배에 견주는 경론의 비유를 받는다. 배가 아무리 커도 방향을 모르면 상인들을 보배 산(성불)으로 데려갈 수 없다.
- いとま틈 · 겨를
- 세간의 일에 매이지 않고 불도 수행에 오롯이 쓸 수 있는 시간과 몸. 출가를 가리킨다.
- 出離の道생사를 벗어나는 길
- 삼계 육도의 미혹한 세간을 벗어나는 길. 불도 수행을 말한다.
- 顕にもはづれ冥にも叶うまじ드러난 것에도 어긋나고 감추어진 것에도 맞지 않는다
- 「현(顕)」은 겉으로 드러난 세간의 도덕, 「명(冥)」은 안에 감추어진 불교의 정신이다. 부모 · 스승을 따르지 말라는 말은 세간의 도리에도 불법의 뜻에도 어긋난다고 사람들이 여기리라는 것이다.
- 外典の孝経외전의 효경
- 유교의 『효경(孝經)』. 「아버지의 뜻이 의롭지 않으면 간해야 한다」는 간쟁(諫爭)의 가르침을 가리킨다. 따를 수 없는 명에는 따르지 않고 오히려 간하는 것이 참된 충신 · 효자라는 것이다.
- 恩を棄て無為に入るは真実報恩の者なり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드는 이가 참으로 은혜를 갚는 이다
- 『청신사도인경(淸信士度人經)』의 게송으로 전한다. 「삼계 가운데 유전하여 은애를 끊지 못하더라도, 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들면 참으로 은혜를 갚는 이다.」 은애의 정에 묶인 채로는 참된 보은을 할 수 없으므로, 그 정을 버리고 출가하여 불도를 닦고 남도 건지는 것이 참된 보은이라는 뜻이다. 다만 이 경의 이름이 일체경에 보이지 않는다는 설도 있다.
- 比干が王に随わずして賢人のなをとり비간이 왕을 따르지 않고 현인의 이름을 얻었다
- 『사기』 은본기(殷本紀)의 고사. 은나라 주왕(紂王)이 달기(妲己)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숙부 비간은 「신하 된 자는 죽음으로써 간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강하게 간했다. 달기가 왕에게 「상성(上聖)의 심장에는 아홉 구멍, 중성(中聖)은 일곱 구멍이 있다 하니, 중성인 비간의 심장을 갈라 보소서」라고 하자 왕은 비간의 가슴을 갈랐다고 전한다. 은나라는 더욱 어지러워져 끝내 주나라 무왕에게 멸망했다.
- 悉達太子の浄飯大王に背きて실달태자가 정반대왕을 등지고
- 실달다(悉達多)는 석존이 출가하기 전의 이름이다. 아버지 정반왕의 뜻을 등지고 왕궁을 떠나 불도 수행에 들어갔다. 출가한 나이는 19세 · 29세 등 여러 설이 전한다.
- 三界第一の孝삼계 제일의 효
- 부왕의 뜻을 어기고 출가한 석존이 성도한 뒤 부모와 일족을 건졌으므로, 삼계에서 으뜸가는 효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보은의 요술 — 왜 「지자」가 되어야 하는가
제2장부터는 보은의 요술(要術), 곧 은혜를 갚는 요긴한 방법을 밝히는 단락에 들어간다. 제1장이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당위를 세웠다면, 제2장은 「어떻게 갚는가」를 묻는다. 대성인의 대답은 단호하다. 반드시 불법을 끝까지 배워 익혀 지자가 되어야 한다.
왜 지자여야 하는가. 두 비유가 그 까닭을 말한다. 맹인 여럿을 이끌고 다리와 강을 건너려는데 이끄는 사람 자신이 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면 모두가 물에 빠진다. 큰 배에 상인들을 싣고 보배 산으로 가려는데 선장이 방향과 바람을 모른다면 배가 클수록 피해도 크다. 은혜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아무리 깊어도, 무엇이 참으로 사람을 건지는 법인지를 모르면 그 마음은 도리어 은인을 그릇된 길로 이끌 수 있다. 보은은 감정의 문제이기 전에 앎의 문제이고, 앎은 결국 법의 바르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다.

세간에서도 은혜를 알고 갚는 일은 중요하지만, 보은에는 크고 작음, 얕고 깊음이 있어서 가치의 눈으로 판단해야 할 일이 많다. 이 점을 먼저 짚어 둘 필요가 있다.
가치로 보는 보은 — 미 · 이 · 선과 큰 선 · 작은 선
먼저 「선(善)」이란 무엇인가. 예부터 선의 관념을 두고 많은 논의가 오갔고 지금도 윤리학의 중심 문제이지만,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정의는 나오지 않았다.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를 논하면서도 선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피했고, 칸트는 「도덕률을 따르는 것이 선」이라고 했다. 철학 사전들은 넓은 뜻에서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 귀한 것, 이로운 것, 또는 의지 · 요구 · 목적에 맞아 구해야 할 것을 선이라 정의한다.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초대 회장은 칸트 철학을 비판하고, 가치의 개념으로 미(美) · 이(利) · 선(善)의 계열을 세웠다. 그리고 선을 「공익(公益)」이라고 정의했다. 선에도 작은 선 · 중간 선 · 큰 선이 있어서, 「작은 선에 안주하여 큰 선을 등지면 큰 악이 되고, 작은 악이라도 큰 악에 반대하면 큰 선이 된다」는 가치 판정의 기준을 제시했다.
- 가치의 계열미(美) · 이(利) · 선(善)선 = 공익
- 판정의 기준작은 선에 안주하여 큰 선을 등지면 큰 악작은 악이라도 큰 악에 반대하면 큰 선
- 보은의 단계크고 작음 · 얕고 깊음 · 당분(當分)과 과절(跨節)한 사람의 은혜를 갚아도 사회에 해가 되면 당분의 보은두루 타당하고 영원한 가치를 지닌 보은이 과절 · 진실의 보은
보은도 이와 같이 가치의 눈으로 따져야 한다. 보은에는 크고 작음과 얕고 깊음이 있고, 당분(當分)과 과절(跨節)의 차이가 있다. 예컨대 『주신구라(忠臣蔵)』는 에도 시대 중기에 주군의 원수를 갚아 주군의 은혜에 보답했다는 이야기로 이름난 연극이 되었다. 주군의 은혜를 갚기 위해 목숨을 버린 예는 역사에 많다. 그러나 주군의 은혜를 갚았더라도 그것이 나라와 사회에 해가 되는 경우라면 그것은 당분의 보은일 뿐, 과절 진실의 보은이라 할 수 없다. 작은 은의나 의리에 매여 사회 전체를 해치는 일이 오히려 사회에 대한 은혜를 잊는 일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결국 보은이라 해도 두루 타당하고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이어야 하며, 널리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것이 인류에 대한 보은이라 할 것이다.
대성인은 「사도어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世間の法にも重恩をば命を捨て報ずるなるべし又主君の為に命を捨る人はすくなきやうなれども其数多し男子ははぢに命をすて女人は男の為に命をすつ
세간의 법에서도 무거운 은혜는 목숨을 버려 갚는 법이니라. 또 주군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적은 듯하지만 그 수가 많으니라. 남자는 수치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여인은 남자를 위해 목숨을 버리느니라.
世間の浅き事には身命を失へども大事の仏法なんどには捨る事難し故に仏になる人もなかるべし
세간의 얕은 일에는 몸과 목숨을 잃으면서도 큰일인 불법 같은 데에는 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부처가 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니라.
여기서 「주군의 은혜」는 넓게 보면 사회의 은혜로 읽을 수 있다. 세간의 사람들은 얕은 일에는 목숨까지 버리면서 정작 가장 큰일인 불법에는 몸을 아낀다. 큰일인 불법을 받들어 자기 자신의 생명을 바꾸고, 널리 사회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 불도 수행을 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스승의 은혜와 사은에 대한 가장 높은 보은이다.
출가는 왜 최고의 보은인가
예로부터 석존이 출가한 것도 부모 · 친족을 비롯한 사회 사람들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고,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이 출가하신 모습도 일체중생을 건지기 위한 것이었다. 둘 다 가장 높은 보은이다. 「틈이 없어서는 될 수 없다」는 본문의 말은 출가의 필요를 말한다. 세간의 일에 매여서는 일대 성교를 끝까지 배울 수 없고, 그러려면 부모 · 스승 · 국주를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뜻을 받아 보면, 출가라는 형식보다 그 정신이 중요하다. 세간의 정에 묶이지 않고 바른 법을 배워 넓히는 데 몸을 바치는 것이 곧 출가의 정신이다. 오늘날 대성인의 법을 지니고 넓히는 사람들이 광선유포를 위해 실천하는 것이, 나라와 사회에 대해서도 가장 높은 보은이 된다는 확신이 여기서 나온다.
말대의 범부는 어떻게 「불법을 끝까지 배우는가」 — 니치칸 상인의 문답
본문은 은혜를 갚으려면 반드시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려면 일대 성교를 배우고 팔종의 장소(章疏)를 끝까지 익혀야 할 것이다. 말대의 하근(下根) 중생이 어찌 그런 학문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그것을 하지 못하면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지 않는가.
이 의문에 니치칸 상인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다른 종 · 다른 문류의 사람들은 설령 일대 성교를 가슴에 다 품었다 해도 결코 불법을 끝까지 배웠다고 할 수 없다. 삼중비전(三重祕傳)을 알지 못하고 권실 · 본적 · 종탈에 미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성인의 문류에서 배우는 이는 앞서 길을 여신 대성인의 자취를 따르므로 처음부터 이것을 알고 있어, 그 뜻에서 불법을 끝까지 배운 것이 된다. 다만 삼중비전의 깊은 뜻을 안다 해도, 바른 법을 전하여 사람들을 건지는 절복을 하지 않으면 끝내 은혜를 갚은 것이 되지 않는다. 부처가 설하기를 「오직 교화를 통하고 법을 전하는 것(通化傳法)을 보은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니치칸 상인은 이어서 물음을 하나 더 세운다. 「대성인의 문류라 해도 배움이 없는 재가의 남녀 가운데에는 삼중비전을 모르는 이가 있다. 이런 사람은 은혜를 갚을 수 없는가.」 답은 이렇다. 「배움이 없는 남녀는 다만 본문의 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는 것이 참으로 이 큰 은혜를 갚는 일이 된다.」
이 문답이 보여 주는 것은, 「불법을 끝까지 배운다」는 말의 무게가 학문의 양에 있지 않고 법의 근본을 아는 데 있다는 점이다. 권실 · 본적 · 종탈의 근본을 알고, 그 근본의 법을 믿고 행하고 전하는 것이 곧 불법을 끝까지 배운 지자의 보은이다. 참된 보은은 삼대비법의 불법을 믿고 제목을 부르며 그 법을 넓히는 데 있다.
「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든다」 — 따르지 않음이 효가 되는 까닭
「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드는 이가 참으로 은혜를 갚는 이다」라는 경문은 가치관의 문제다. 같은 은혜라도 그 가치에는 크고 작음과 높고 낮음이 있다. 부모의 은애는 귀하지만, 그 은애에 묶여 생사를 벗어나는 길을 모른 채 머무르면 부모도 자신도 건지지 못한다. 은애를 「버린다」는 것은 은혜를 잊는다는 뜻이 아니라, 더 큰 은혜를 갚기 위해 작은 정을 넘어선다는 뜻이다. 이 경문의 원래 게송은 「삼계 가운데 유전하여 은애를 끊지 못하더라도, 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들면 참으로 은혜를 갚는 이다(流轉三界中 恩愛不能斷 棄恩入無爲 眞實報恩者)」로 전한다.
- 큰 은혜를 갚으려면
-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맹인의 길잡이 · 방향을 아는 배)
- 그러려면 틈(출가)이 있어야 한다
- 생사를 벗어나는 길을 알기까지 부모 · 스승 · 국주를 따르지 않는다
본문이 「부모 · 스승 · 국주 등을 따라서는 될 수 없다」고 하신 것도, 바른 법을 배우고 그 법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부모에게도 스승에게도 국주에게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대성인은 「형제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一切は・をやに随うべきにてこそ候へども・仏になる道は随わぬが孝養の本にて候か
모든 일은 부모를 따라야 하겠지만, 부처가 되는 길에서는 따르지 않는 것이 효양의 근본이 아니겠느냐.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국주의 은혜를 갚으라고 하면 봉건적 도덕관이나 주종 관계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대성인이 설하시는 지은보은은 삼대비법의 불법을 근본으로 한 지은보은이다. 부모의 은혜와 주군의 은혜를 갚아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불법의 정수인 삼대비법을 근본으로 하면 그 모든 은혜가 거기에 다 담긴다.
외전에도 같은 이치가 있다. 『효경』은 부모 · 주군의 뜻에 따를 수 없을 때에는 따르지 않고 오히려 간하는 것이 참된 충신 · 효자라고 가르친다. 비간의 고사가 그 극단이다. 은나라 주왕이 달기에 빠져 나라를 돌보지 않자 비간은 죽음으로써 간했고, 주왕은 그의 가슴을 갈랐다. 왕의 명을 따르지 않은 비간은 오히려 현인의 이름을 얻었고, 그를 죽인 은나라는 끝내 망했다. 내전의 예는 석존이다. 실달태자는 부왕 정반왕의 뜻을 등지고 출가했으나 성도한 뒤 부왕과 일족을 건져 삼계 제일의 효자가 되었다. 부모의 뜻을 거슬러 불도에 들어갔기에 도리어 충과 효를 꿰뚫고 참된 보은을 이룬 것이다.
상 · 중 · 하품의 효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은 효도라는 덕이지만, 불법은 효에 하품 · 중품 · 상품의 세 단계를 설한다.
孝養に三種あり、衣食を施すを下品とし、父母の意に違はざるを中品とし、功徳を回向するを上品とす
효양에 세 가지가 있다. 옷과 음식을 베푸는 것을 하품으로 하고,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는 것을 중품으로 하며, 공덕을 회향하는 것을 상품으로 한다.
- 상품공덕을 회향한다功徳を回向する
- 중품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는다父母の意に違はざる
- 하품옷과 음식을 베푼다衣食を施す
삼대비법의 큰 불법을 지니고, 나아가 부모를 바른 법으로 이끌어 귀의하게 하며, 돌아가신 부모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바른 법으로써 회향하는 것이 가장 높은 효도다. 부모가 반대하거나 집안에 신앙을 반대하는 이가 있더라도, 먼저 믿게 된 사람이 꿋꿋이 신심과 수행에 힘써 제 생활 위에 그 공덕을 증명해 가면, 끝내 반대하던 가족과 부모도 함께 믿게 되어 이 세상에서 성불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효도이며, 한 집안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길이다.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世を安じ国を安ずるを忠と為し孝と為す
세상을 편안케 하고 나라를 편안케 하는 것을 충이라 하고 효라 하느니라.
부모에 대한 보은에만 그치지 않고, 모든 보은에 상품 · 중품 · 하품의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옷과 밥을 드리는 효가 하품이듯, 한 사람의 뜻을 따르는 보은은 중품에 머문다. 생사를 벗어나는 법으로 은인을 이끄는 보은만이 상품이다. 그렇다면 그 「법」은 어디에 있는가. 이 물음을 안고 대성인은 제3장에서 일대 성교를 비추는 열 개의 거울 앞에 서신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보은의 요술은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는 데 있고, 그 실질은 삼대비법을 믿고 제목을 부르며 그 법을 넓히는 데 있다. 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드는 것은 은혜를 잊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보은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본문
かくのごとく存して父母・師匠等に随わずして仏法をうかがひし程に一代聖教をさとるべき明鏡十あり、所謂る倶舎・成実・律宗・法相・三論・真言・華厳・浄土・禅宗・天台法華宗なり此の十宗を明師として一切経の心をしるべし世間の学者等おもえり此の十の鏡はみな正直に仏道の道を照せりと小乗の三宗はしばらく・これををく民の消息の是非につけて他国へわたるに用なきがごとし、 大乗の七鏡こそ生死の大海をわたりて浄土の岸につく大船なれば此を習いほどひて我がみも助け人をも・みちびかんとおもひて習ひみるほどに大乗の七宗いづれも・いづれも自讃あり我が宗こそ一代の心はえたれ・えたれ等云云、 所謂華厳宗の杜順・智儼・法蔵・澄観等、法相宗の玄奘・慈恩・智周.智昭等、三論宗の興皇・嘉祥等、真言宗の善無畏.金剛智・不空・弘法.慈覚・智証等、 禅宗の達磨.慧可・慧能等、浄土宗の道綽・善導・懐感・源空等、此等の宗宗みな本経・本論によりて我も我も一切経をさとれり仏意をきはめたりと云云、 彼の人人云く一切経の中には華厳経第一なり法華経大日経等は臣下のごとし、真言宗の云く一切経の中には大日経第一なり余経は衆星のごとし、禅宗が云く一切経の中には楞伽経第一なり乃至余宗かくのごとし、 而も上に挙ぐる諸師は世間の人人・各各おもえり諸天の帝釈をうやまひ衆星の日月に随うがごとし
이와 같이 생각하여 부모 · 스승 등을 따르지 않고 불법을 살펴 나아가는 동안, 일대 성교를 깨칠 수 있는 밝은 거울이 열이 있었느니라. 이른바 구사(倶舎) · 성실(成実) · 율종(律宗) · 법상(法相) · 삼론(三論) · 진언(真言) · 화엄(華厳) · 정토(浄土) · 선종(禅宗) · 천태법화종(天台法華宗)이니라. 이 열 종을 밝은 스승으로 삼아 일체경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고 세간의 학자들은 생각하며, 이 열 개의 거울은 모두 바르고 곧게 불도의 길을 비추고 있다고 여기느니라. 소승의 세 종은 잠시 이를 두느니라. 백성의 편지가 옳든 그르든 다른 나라로 건너가는 데에는 쓸모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대승의 일곱 거울이야말로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 정토의 언덕에 닿게 하는 큰 배이므로, 이것을 배워 풀어서 내 몸도 건지고 남도 이끌고자 생각하여 배워 보았더니, 대승의 일곱 종은 어느 것이나 저마다 자찬(自讃)이 있어 「우리 종이야말로 일대의 마음을 얻었다, 얻었다」고 하느니라. 이른바 화엄종의 두순(杜順) · 지엄(智儼) · 법장(法蔵) · 징관(澄観) 등, 법상종의 현장(玄奘) · 자은(慈恩) · 지주(智周) · 지소(智昭) 등, 삼론종의 흥황(興皇) · 가상(嘉祥) 등, 진언종의 선무외(善無畏) · 금강지(金剛智) · 불공(不空) · 홍법(弘法) · 자각(慈覚) · 지증(智証) 등, 선종의 달마(達磨) · 혜가(慧可) · 혜능(慧能) 등, 정토종의 도작(道綽) · 선도(善導) · 회감(懐感) · 원공(源空) 등이니라. 이들 종종은 모두 본경 · 본론에 의거하여 「나도 나도 일체경을 깨쳤다, 부처의 뜻을 끝까지 알았다」고 하느니라. 그 사람들(화엄종)은 「일체경 가운데 화엄경이 제일이다. 법화경 · 대일경 등은 신하와 같다」고 하고, 진언종은 「일체경 가운데 대일경이 제일이다. 나머지 경은 뭇별과 같다」고 하며, 선종은 「일체경 가운데 능가경이 제일이다」라고 하고, 나머지 종도 이와 같으니라. 더구나 위에 든 여러 스승들을 세간 사람들은 저마다, 제천이 제석을 공경하고 뭇별이 해와 달을 따르는 것과 같이 우러르고 있느니라.
어구 풀이
- 一代聖教일대 성교
- 석존이 성도한 뒤 열반에 들기까지 설한 모든 가르침. 천태대사는 설법의 차례에 따라 이를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 법화열반의 오시(五時)로 나누었다.
- 明鏡十あり밝은 거울이 열이 있다
- 일대 성교의 마음을 비추어 볼 수 있다고 여겨지던 열 개의 종. 세간의 학자들이 그렇게 여긴다는 것이지, 대성인이 그 열을 모두 바른 거울로 인정하신 것은 아니다.
- 十宗십종
- 나라 시대의 구사 · 성실 · 율 · 법상 · 삼론 · 화엄의 육종에 헤이안 초기의 천태 · 진언을 더한 것이 팔종이고, 헤이안 말에서 가마쿠라 시대에 일어난 선종을 더해 구종, 다시 정토종을 더해 십종이라 한다.
- 明師밝은 스승
- 길을 바르게 이끄는 스승. 거울과 스승은 같은 비유다. 스승이 밝지 않으면 제자도 길을 잃는다.
- 小乗の三宗소승의 세 종
- 구사종 · 성실종 · 율종.
- 民の消息の是非につけて他国へわたるに用なきがごとし백성의 편지가 옳든 그르든 다른 나라로 건너가는 데에는 쓸모가 없는 것과 같다
- 한 개인의 편지는 내용이 옳든 그르든 다른 나라에서 통행증 구실을 하지 못한다. 소승의 가르침이 생사를 건너 성불의 언덕에 이르는 데 힘이 없음을 비유한다. 대승은 국주의 판(判)이 찍힌 통지장에 견주어진다.
- 大乗の七鏡대승의 일곱 거울
- 법상종 · 삼론종 · 진언종 · 화엄종 · 정토종 · 선종 · 천태법화종.
- 生死の大海をわたりて浄土の岸につく大船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 정토의 언덕에 닿게 하는 큰 배
- 대승을 큰 배에 견준 말. 「정토」는 깨끗한 국토, 곧 부처가 머무는 나라다. 대성인은 「일생성불초」에서 「예토라 해도 국토에 두 가지 간격이 없고, 다만 우리 마음의 선악에 달려 있다」고 하셨다(384쪽).
- 自讃자찬
- 제 종을 스스로 기림. 일곱 종이 저마다 「우리 종만이 일대의 마음을 얻었다」고 내세우는 것을 말한다.
- 本経・本論본경 · 본론
- 각 종이 의지하는 근본 경과 논. 화엄종의 화엄경, 진언종의 대일경, 법상종의 『해심밀경』 · 『성유식론』, 삼론종의 『중론』 · 『백론』 · 『십이문론』 등.
- 智昭지소
- 법상종의 계보에 든 이름이나, 지봉(智鳳) 또는 도소(道昭)를 옮겨 쓰다 잘못 적은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지봉은 703년 당에 들어가 지주에게서 법상종을 전해 받은 신라승이고, 도소는 653년 당에 들어가 현장에게서 직접 법상을 배운 이다.
- 華厳経第一なり法華経大日経等は臣下のごとし화엄경이 제일이요 법화경 · 대일경 등은 신하와 같다
- 화엄종의 주장. 화엄경을 근본 법륜, 다른 경을 거기서 흘러나온 지말로 본다.
- 大日経第一なり余経は衆星のごとし대일경이 제일이요 나머지 경은 뭇별과 같다
- 진언종의 주장. 대일경을 달(또는 해)에, 다른 경을 그 빛을 받는 뭇별에 견준다.
- 楞伽経능가경
- 부처가 능가산 꼭대기에서 대혜보살의 물음에 답한 갖가지 법문을 담은 경. 『능가아발다라보경』 · 『입능가경』 · 『대승입능가경』의 세 한역이 전한다. 달마가 이 경을 여래의 궁극 설로 여겨 혜가에게 주었다고 전하여 선종이 의지하는 경의 하나가 되었다.
- 諸天の帝釈をうやまひ衆星の日月に随うがごとし제천이 제석을 공경하고 뭇별이 해와 달을 따르는 것과 같다
- 세간 사람들이 각 종의 조사들을 우러르는 모습. 비판의 대상이 세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들이라는 점이 뒤에 이어지는 논쟁의 어려움을 예고한다.
보은의 요술 가운데 여러 종의 미란을 드는 까닭
이 장은 보은의 요술을 밝히는 단락 안에서 여러 종의 미란(迷乱)을 든다. 왜 보은을 말하다가 여러 종의 다툼으로 넘어가는가.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에서 「보은의 요술이란 무슨 뜻인가」라는 물음을 세우고 이렇게 답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答う、不惜身命を名づけて要術と為す。謂く身命を惜しまずして邪法を退治し、正法を弘通する則ち一切の恩として報ぜざるなき故なり
답한다. 불석신명(不惜身命)을 이름하여 요술이라 한다.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법을 물리치고 정법을 넓히면 곧 갚지 못할 은혜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제2장에서 보았듯 사법을 물리치고 정법을 넓히는 것이 곧 보은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법이고 무엇이 정법인지를 가리는 것이 가장 긴요한 일이 된다. 그런데 본문이 「세간의 학자들은 생각한다」고 하신 것처럼, 세상의 학자들은 어느 종이든 어느 경이든 모두 저마다 공덕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철학 · 윤리 · 종교에는 반드시 뛰어나고 못함, 얕고 깊음, 바르고 그름이 있다. 그러므로 뛰어나고 깊고 바른 것을 찾아야 한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느냐,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되어 악도에 떨어지느냐는, 무엇보다 먼저 그 가르침이 정법인지 사법인지를 알고 수행하는 데 달려 있다.
철학 · 윤리 · 종교 — 「종(宗)」은 근본이다
그 판별의 원리를 살피기 전에, 철학 · 윤리 · 종교란 무엇인지를 간단히 짚어 둔다. 철학(philosophy)은 그리스에서 앎을 사랑하고 교양을 구하는 일로, 넓게는 학문 일반을 뜻했다. 학문이 여러 갈래로 나뉘면서 자연과학 · 심리학 · 미학 · 윤리학 등이 철학에서 독립했고, 오늘날 철학이라 하면 형이상학 · 인식론, 나아가 논리학 · 역사철학 등을 포함하는 학문을 말하게 되었다. 윤리는 사람의 의지 행위에 대한 당위의 규범으로, 흔히 말하는 도덕이나 수신보다 넓은 범위를 갖는다. 도덕 · 수신이라는 말에는 아직 좁고 봉건적인 요소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종교의 「종(宗)」은 근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종교란 생명 활동의 본원, 우주 현상의 근본 뜻을 설해 밝힌 것이며, 그 근본 이론을 생활의 법으로 삼아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에는 반드시 본존이 있고, 본존과 사람의 관계에서 감응과 이익이 있어야 한다. 철학 · 윤리 · 종교가 못하고 얕고 그릇된 것이라면 사람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불교 안에서 보면, 일대 불교의 판석은 오시팔교(五時八教)다. 오시는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 법화의 다섯 시기로, 그 가르침은 의의(擬宜) · 유인(誘引) · 탄가(彈訶) · 도태(淘汰) · 개회(開會) 등 모두 부처의 교묘한 방편에 따라 차례로 설해 나간 것이다. 팔교는 화의(化儀)의 돈 · 점 · 비밀 · 부정과 화법(化法)의 장 · 통 · 별 · 원으로, 이 또한 때에 응하고 근기에 응해 설한 것이다. 불교의 각 종은 이처럼 대승과 소승, 권교와 실교, 현교와 밀교 등 여러 가지 경을 저마다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는 무엇이든 좋다거나, 같은 석존의 가르침이니 어느 종이든 같다고 할 수 없다. 법 자체에 차별이 있고, 철리에 위아래 구름과 진흙만큼의 차이가 있다.
열 개의 거울 — 일본 십종의 성립
본문의 「밝은 거울 열」은 대성인 당시 일본에 있던 십종이다. 이 열은 한꺼번에 생긴 것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차례로 들어오고 일어났다. 나라 시대에는 구사 · 성실 · 율 · 법상 · 삼론 · 화엄의 이른바 남도 육종이 있었다. 헤이안 시대 초기에 전교대사(사이초)가 천태종을, 홍법(구카이(空海))이 진언종을 열어 팔종이 되었다. 헤이안 말에서 가마쿠라 초기에 걸쳐 선종이 일어나 구종이 되고, 여기에 정토종을 더해 십종이 된다.
- 6남도 육종나라 시대구사성실율법상삼론화엄
- 8팔종헤이안 초기천태(전교대사)진언(홍법)
- 9구종헤이안 말~가마쿠라선종(대일능인 · 에이사이 · 도겐)
- 10십종가마쿠라 초정토종(법연, 1175년 개종)
본문은 이 열 가운데 먼저 소승의 세 종을 잠시 놓아두고(「소승의 세 종은 잠시 이를 두느니라」), 대승의 일곱 거울로 나아간다. 아래에서는 어구 풀이의 짧은 설명을 넘어, 열 종이 각각 무엇에 의지해 무엇을 주장했는지를 차례로 살펴본다.
소승의 세 종 — 구사 · 성실 · 율
구사종
구사종은 「아비달마구사(阿毘達磨倶舎)」의 줄임말로, 살바다종(薩婆多宗)이라고도 한다. 「아비달마구사」는 「대법장(對法藏)」이라 옮긴다. 세친(천친)보살의 『구사론』을 의지하는 소승의 종으로, 설일체유부의 교의를 연구하는 학파다. 일본에서는 법상종에 딸린 종(寓宗)으로 전해져 도다이사를 중심으로 『구사론』이 연구되었다. 『구사론』의 체계와 그것이 천태 · 대성인의 판정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구사론』 연구의 여러 편이 자세히 다룬다.
성실종
성실종은 4세기 무렵 인도의 학승 하리발마(訶梨跋摩)의 『성실론(成實論)』을 의지하는 종이다. 나도 법도 공하다는 인법이공(人法二空)을 설하고, 이 공관에 따라 수행의 단계를 스물일곱으로 나누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친다. 소승 가운데 가장 나아간 교의로 여겨졌다. 5세기 초 구마라집이 『성실론』을 한역하자 그 문하에서 크게 연구되었으나, 천태대사와 길장이 이를 소승이라 판정한 뒤로 쇠퇴했다.
율종
율종은 계율을 닦는 종으로 남도 육종의 하나다. 중국에서는 『사분율』에 따라 열린 학파와 그 계통을 말하며, 당나라 초 도선(道宣) 율사가 연 남산율종(南山律宗)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남산종을 배운 감진(鑑眞)이 건너와 천평승보 6년(754) 나라 도다이사에 계단원을 세웠고, 천평보자 3년(759)에 도쇼다이사를 열어 율 연구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율종이 성립했다. 이어 시모쓰케의 야쿠시사, 쓰쿠시의 간제온사에도 계단원이 세워져, 일본 전국의 승니가 이 세 곳 가운데 하나에서 계를 받게 되었다. 율종은 한때 일본 불교의 근본 종으로 크게 번성했으나 헤이안 시대에 걸쳐 점차 쇠하였고, 가마쿠라 시대에 잠시 다시 일어났다가 다시 쇠미해졌다.
대승의 일곱 거울
법상종
법상종은 『해심밀경』 · 『유가사지론』 · 『성유식론』 등 육경 십일론(六經十一論)을 의지하는 종이다. 당나라 때 현장이 인도에서 유가유식의 학문을 전해 오고 규기(窺基)가 이를 대성했다. 오위백법(五位百法)을 세워 모든 법의 성품과 모양을 나누어 체계화하고, 일체법은 중생의 마음속 근본식인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가 변해 나타난 것이라는 유심의 교의를 설한다. 또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유(有) · 공(空) · 중도(中道)의 삼시교로 나누고 법상종을 셋째 중도교라 했다. 나아가 오성각별(五性各別)을 설하여 삼승이 진실이고 일승이 방편이라는 주장을 세웠다. 법상종의 일본 전래는 흔히 네 차례로 헤아린다. 첫째는 653년 당에 들어가 660년 무렵 돌아온 도소, 둘째는 658년 당에 들어간 지쓰(智通) · 지다쓰(智達), 셋째는 703년 당에 들어간 지봉 · 지웅(智雄) 등이 돌아온 뒤 의연(義淵)이 간고사에서 넓힌 것, 넷째는 의연의 문인 겐보(玄昉)가 당에 들어갔다가 735년에 돌아와 전한 것이다.
삼론종
삼론종은 용수의 『중론』 · 『십이문론』과 제바의 『백론』, 세 논을 의지하는 종이다. 구마라집이 삼론을 한역한 뒤 그 제자들에게 이어졌고, 수나라 때 가상사의 길장이 대성했다. 일본에는 추고 천황 33년(625) 길장의 제자인 고구려 승 혜관(慧灌)이 전한 것을 첫 전래로 본다. 나라 시대에는 남도 육종의 하나로 융성했으나 이후 점차 쇠하여, 쇼보(聖宝)가 도다이사에 도난인류(東南院流)를 일으켜 명맥을 이은 것 외에는 법상종에 흡수되었다. 대승의 공의 이치로 자아를 실재로 보는 외도와 법을 실재로 보는 소승을 파하고, 성실의 치우친 공도 파한다. 궁극의 가르침으로는 팔불(八不)로 여러 종의 치우친 견해를 깨뜨리는 것이 중도의 진리를 드러내는 길이라는 팔불중도를 내세운다.
화엄종
화엄종은 화엄경을 의지하는 종으로, 원명구덕종(圓明具德宗) · 법계종(法界宗)이라고도 하며 대성자의 이름을 따서 현수종(賢首宗)이라고도 한다. 동진 때 화엄경이 한역되고, 두순 · 지엄을 거쳐 현수(법장)에 이르러 교의가 대성되었다. 일체 만법은 서로 걸림 없이 통하여, 일체가 하나에 거두어지고 하나가 일체에 두루 한다는 법계연기를 세우고, 이를 깨치면 빠르게 불과를 이룬다고 설한다. 또 오교십종(五教十宗)의 교판을 세워 화엄경을 가장 높은 가르침으로 삼았다. 일본에는 천평 8년(736) 당나라 승 도선(道璿)이 화엄의 장소를 전하고, 천평 12년(740) 신라의 심상(審祥)이 도다이사에서 화엄경을 강하여 일본 화엄종의 조사가 되었다. 제2조 로벤(良弁)이 도다이사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삼는 등, 화엄종은 쇼무 천황의 치세에 크게 일어났다.
진언종
진언종은 삼마지종(三摩地宗) · 다라니종 · 비밀종 · 만다라종 · 유가종 · 진언다라니종이라고도 한다. 대일여래를 교주로 하여 금강살타 · 용맹 · 용지 · 금강지 · 불공 · 혜과 · 홍법(구카이)으로 이어지는 상승을 부법(付法)의 팔조라 하고, 대일 · 금강살타를 빼고 선무외 · 일행을 더한 것을 전지(傳持)의 팔조라 한다.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의지하는 경으로 삼아 양부대경(兩部大經)이라 부르며, 그 밖에도 많은 경궤와 논석이 있다. 중국에서는 선무외 삼장이 당 개원 4년(716) 인도에서 건너와 대일경을 번역해 넓힌 데서 시작되며, 금강지 · 불공을 더한 세 삼장이 중국 진언종의 조사로 일컬어진다. 일본에서는 홍법이 당에 들어가 진언 밀교를 가져와 종을 열었다.
진언종은 현밀이교(顯密二教)의 교판을 세운다. 제 종은 법신 대일여래가 스스로 법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안으로 깨친 비밀의 경계를 설해 보인 진실의 비법, 곧 밀교이고, 다른 종은 응신 석가가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드러내어 설한 현교라고 낮춘다. 홍법은 『십주심론』에서 진언종이 가장 뛰어나며 법화경은 그에 비해 세 겹 못하다고 했다. 홍법의 진언종을 동밀(東密, 동사의 밀교)이라 하고, 자각(엔닌(円仁)) · 지증(엔친(円珍))이 천태종에 받아들인 밀교를 태밀(台密)이라 한다.
정토종 · 선종 · 천태법화종
정토종은 중국의 도작 · 선도 등이 세운 정토 교의를 받아, 일본에서 원공(법연)이 열었다. 법연은 15세에 히에이산에 올라 천태의 교관을 익히고 에이쿠(叡空)를 따라 일체경과 여러 종의 장소를 배웠는데, 선도의 『관경소』를 보고 안원 5년(1175) 봄, 43세에 정토종을 열었다고 전한다. 『선택집』을 지어 일대 불교를 「버려라, 닫아라, 내려놓아라, 던져 버려라(捨閉閣抛)」고 주장했다.
선종은 선정 관법으로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이다. 보리달마를 초조로 하므로 달마종이라고도 한다. 불법의 정수는 교리를 따지는 데 있지 않고 좌선 입정의 수행으로 스스로 체득하는 데 있다 하여,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 · 직지인심(直指人心) ·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내세운다. 이 법은 석존이 가섭 한 사람에게 부촉하여 아난 · 상나화수를 거쳐 달마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일본에서는 대일능인(大日能忍)이 처음 열었고, 가마쿠라 초기 에이사이(栄西)가 송에 들어가 중국 선종 오가 가운데 임제종을 전했으며, 이어 도겐(道元)이 조동종을 전했다.
천태법화종은 천태대사가 세운 법화종, 곧 천태종이다. 일본에서는 전교대사가 열었다. 열 개의 거울 가운데 마지막에 놓였지만, 제4장에 이르러 대성인이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결론하실 때 그 거울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천태대사가 경문만을 스승으로 삼아 일대의 승렬을 헤아린 길이다.
본문이 이름을 든 조사들
본문은 대승 여섯 종의 대표 조사를 하나하나 이름으로 든다. 이들은 모두 각 종의 개조로 우러름을 받고, 대학자로 존경받으며, 한 시대의 지도자로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다. 「제천이 제석을 공경하고 뭇별이 해와 달을 따르는 것과 같다」는 본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대성인이 맞서신 상대가 어떤 인물들이었는지를 알면, 「나도 나도 일체경을 깨쳤다」는 다툼의 무게가 보인다.
화엄종의 네 조사 — 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
두순(557~640)은 수 · 당 시대의 화엄종 초조로, 승명은 법순(法順)이고 속성이 두(杜)씨여서 두순이라 불린다. 옹주 만년(지금의 시안 일대) 사람으로, 18세에 출가하여 승진(僧珍) 선사를 따라 선과 화엄을 궁구했다. 수나라 문제와 당나라 태종의 존숭을 받았고, 『화엄법계관문』 1권을 지어 오로지 화엄을 넓혀 제자 지엄에게 전했다. 지엄(602~668)은 화엄종 제2조로 지상대사(至相大師) · 운화존자(雲華尊者)라고도 한다. 14세에 두순을 따라 출가해 『사분율』 · 열반경 등을 배웠으나 뒤에 화엄경 연구에 전념했으며, 『화엄경수현기』 5권 · 『화엄공목장』 4권 등을 지었다.
법장(643~712)은 지엄의 제자로 화엄종 제3조다. 화엄화상 · 현수대사 · 향상대사(香象大師)라는 이름이 있다. 실차난타의 화엄경 신역에도 참여했다. 측천무후의 칙명으로 궁에 들어갔을 때 곁에 있던 금사자상을 비유로 들어 화엄경을 설했고, 무후가 세운 태원사에 머물며 널리 넓혔다. 법화경에 의지한 천태대사에 맞서 화엄경을 근거로 한 석가 일대 불교의 교판, 곧 오교십종판을 세웠다. 『화엄경탐현기』 20권 · 『화엄오교장』 3권 · 『망진환원관』 1권 · 『화엄경전기』 5권 등 많은 저술이 있다. 징관(738~839)은 화엄종 제4조로, 저장성 회계 사람이며 청량국사라 불렸다. 11세에 보림사에서 출가해 법화경을 비롯한 여러 경론을 배웠고, 대력 10년(775)에는 쑤저우에서 묘락대사에게 천태의 지관과 법화 · 유마 등을 배우기도 했다. 그 뒤 오대산 대화엄사에서 청을 받아 화엄경을 강했다. 『화엄경소』 60권 · 『화엄경강요』 1권 등을 지었다.
법상종 — 현장 · 자은 · 지주 · 지소
현장(602~664)은 당나라의 승려로 중국 법상종의 개조다. 13세에 출가해 율 · 『성실론』 · 『구사론』 등을 배웠고, 뒤에 인도 각지를 돌아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돌아왔다. 『대반야경』 600권을 비롯해 75부 1,335권의 경전을 번역했다고 전하며, 태종의 칙명을 받아 17년에 걸친 여행을 적은 것이 『대당서역기』다. 자은(632~682)은 휘가 규기로, 중국 법상종의 실질적인 개조다. 현장이 인도에서 돌아왔을 때 17세로 그 제자가 되어 대소승의 번역에 종사했고, 장안의 자은사에서 법상종을 넓혀 자은대사라 불렸다. 『법화현찬』 10권 · 『성유식론술기』 20권 등을 지었다. 자은은 『법화현찬』을 지어 법화경을 기렸으나, 일본의 전교대사는 이를 「법화경을 기린다 하더라도 도리어 법화의 마음을 죽인다」고 파했다. 법화경을 화엄경 등과 같은 자리에서 기렸을 뿐이니, 그것은 오히려 법화경을 가볍게 여긴 것이 된다는 뜻이다. 지주(668~723)는 법상종이 현장 · 자은 · 혜소(慧沼)로 이어진 뒤의 제4조로, 『성유식론연비』 14권 등을 지었다. 지소는 어구 풀이에서 보았듯 지봉 또는 도소를 잘못 옮겨 적은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도소는 현장에게서 직접 법상을 배워 이를 교키(行基)에게 전했다고 한다.
삼론종 — 흥황 · 가상
흥황은 삼론종 조사의 한 사람인 법랑(法朗)의 다른 이름이다. 흥황사에 머물렀으므로 그렇게 불린다. 가상의 스승이다. 21세에 출가하여 섭산(攝山)의 승랑(僧朗)을 사모하여 그 후계인 지관사의 승전(僧詮)을 따라 『중론』 · 『백론』 · 『십이문론』 · 화엄경 · 반야경 등을 배웠으며, 진나라 태건 13년(581)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가상(549~623)은 길장의 다른 이름으로, 수 · 당 시대 삼론종의 대성자다. 조부 또는 아버지가 안식국 사람이어서 호길장(胡吉藏)이라 불렸고, 금릉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진제(眞諦)를 만나 길장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2세에 법랑을 스승으로 삼아 삼론을 배웠고, 수나라 초 개황 연간에 회계의 가상사에서 8년가량 강하며 삼론 · 유마 등의 장소를 지어 가상대사라 불렸다. 『법화현론』 10권을 지어 법화경을 기렸으나, 뒤에 묘락대사에게 「법화경을 기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헐뜯음이 드러나 있으니 어찌 넓혀 기린다고 하겠는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가상은 뒤에 천태대사에게 몸과 마음으로 귀복하여 7년 동안 섬겼다고 전한다. 이 일은 보은초 제5편 「대성인의 국가 간효와 재난의 근원」의 「가상의 참회와 방죄」에서 다시 다룬다.
진언종 — 세 삼장과 홍법 · 자각 · 지증
선무외(637~735)는 동인도 오다국(烏荼國)의 왕자로 태어나 13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형의 시기를 사서 자리를 물려주고 출가했다고 전한다. 마가다국 나란다사에서 달마국다(達摩掬多)를 따라 밀교를 배웠고, 당 개원 4년(716) 중국에 건너와 현종에게 국사로 맞아들여졌다. 대일경 · 『소바호동자경』 · 『소실지갈라경』 등을 번역하고 『대일경소』를 엮어 중국에 처음으로 밀교를 전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선무외는 『대일경소』에서 천태대사의 일념삼천의 뜻을 몰래 끌어들여 이동사승(理同事勝)의 그릇된 뜻을 세운 사람이다. 금강지(671~741)는 인도의 왕족 또는 바라문 출신이라 전하며, 10세에 나란다사에서 출가해 적정지(寂靜智)를 스승으로 삼았다. 31세에 용수의 제자 용지에게 가서 7년 동안 섬기며 밀교를 배운 뒤 당으로 향해 개원 8년(720) 뤄양에 들어왔다. 불공(705~774)은 북인도 바라문 출신으로 15세에 금강지를 스승으로 삼았다. 개원 8년 스승과 함께 뤄양에 왔고, 개원 29년(741) 귀국길에 사자국(스리랑카)에 이르러 밀장과 경론 500여 부를 얻어 6년 뒤 다시 당에 돌아왔다. 현종을 위해 관정을 베풀어 존숭을 받았으며 774년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문하의 혜과가 홍법의 스승이다. 구마라집 · 현장 · 진제와 함께 중국 사대 번역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の人の訳せる経論は信ぜられず
이 사람이 번역한 경론은 믿을 수 없느니라.
홍법(774~835)은 일본 진언종의 개조로 휘는 구카이다. 사누키에서 태어나 15세에 교토에 올라가 20세에 근조(勤操)를 따라 출가했고, 연력 23년(804) 당에 건너가 장안 청룡사의 혜과에게서 태장 · 금강 양부를 전해 받았다. 돌아온 뒤 홍인 7년(816)부터 고야산에 곤고부지(金剛峯寺)를 짓기 시작했고, 홍인 14년(823) 동사(東寺)를 받아 진언종의 근본 도량으로 삼았다. 불교를 현교와 밀교로 나누어 밀교인 대일경을 제일, 화엄경을 제이, 법화경을 제삼으로 놓았다. 『삼교지귀』 · 『변현밀이교론』 · 『십주심론』 등을 지었다.
자각(794~864)은 히에이산 엔랴쿠사의 제3대 좌주로 휘는 엔닌이다. 시모쓰케 쓰가군에서 태어나 15세에 히에이산에 올라 전교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칙명을 받아 승화 5년(838) 당에 들어가 범서와 천태 · 진언 · 선 등을 배우고 승화 14년(847)에 돌아왔으며, 인수 4년(854) 엔초(円澄)의 뒤를 이어 제3대 좌주가 되었다. 천태종에 진언 밀교를 들여와, 진언종이 의지하는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은 법화경과 설하는 이치는 같지만 사상(事相)인 인(印)과 진언에서 뛰어나다고 했다. 『금강정경소』 7권 · 『소실지경약소』 7권 등을 지었다. 지증(814~891)은 엔랴쿠사 제5대 좌주로 휘는 엔친이다. 사누키에서 태어나 15세에 히에이산에 올라 의진(義眞)을 스승으로 삼아 현밀 두 교를 배웠다. 칙명을 받아 인수 3년(853) 당에 들어가 천태와 진언을 여러 스승에게서 배우고 경소 1,000권을 가지고 돌아왔으며, 정관 10년(868) 엔랴쿠사의 좌주가 되었다. 『수결집』 2권 · 『대일경지귀』 1권 · 『법화론기』 10권 등을 지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지증은 자각보다 더 진언을 중시하여 불교계를 흐리게 한 근원이 되었다. 홍법 · 자각 · 지증의 행적과 그 비판은 보은초 제4편 「진언으로 기운 예산」에서 자세히 다룬다.
선종 — 달마 · 혜가 · 혜능
달마는 중국 선종의 초조로, 본명은 보리다라(菩提多羅)라 전한다. 반야다라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그의 멸후 67년에 중국에 법을 넓히라는 명을 받았다고 하며, 양나라 보통 원년(520) 중국에 들어가 무제에게 선을 설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위나라로 건너가 숭산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벽을 마주하고 좌선했다고 한다. 그래서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불렸다. 혜가는 달마에게서 법을 받은 선종 제2조다. 달마를 찾아가 밤새 눈 속에 서 있다가 스스로 팔을 끊어 믿음을 보이고서야 입문을 허락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6년을 따라 배운 뒤 달마의 부촉을 받았다. 혜능(638~713)은 시호가 대감선사(大鑑禪師)로, 중국 선종 남종의 제6조다.
정토종 — 도작 · 선도 · 회감 · 원공
도작(562~645)은 수 · 당 시대 정토교의 조사 한 사람으로, 병주 문수(지금의 산시성 타이위안 일대) 사람이다. 14세에 출가해 열반경을 배웠으나 현중사에서 담란의 비문을 보고 감동하여 정토교에 귀의했다. 담란의 교설을 이어 석존의 일대 성교를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으로 나누고, 법화경을 포함한 성도문을 「아직 한 사람도 얻은 이가 없다(未有一人得者)」는 가르침이라 하여 물리치고 정토문에 돌아가야 한다고 설했다. 『안락집』 2권을 지었고 제자로 선도 등이 있다. 선도(613~681)는 초당 시대 정토교 선도류의 대성자다. 어려서 출가해 경장을 뒤지다 『관무량수경』을 보고 서방정토 왕생을 뜻했으며, 정관 연간에 도작을 찾아가 『관무량수경』을 배웠다. 스승이 죽은 뒤 광명사에서 칭명염불을 넓혔다. 『왕생예찬』에서 「천 가운데 하나도 없다(千中無一)」고 하여, 염불 외의 잡행을 닦는 이는 천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성불하지 못한다고 했다. 『관경소』 4권 · 『왕생예찬』 1권 등을 지었으며, 일본의 법연은 『관경소』를 보고 오로지 정토 한 문에 귀의했다고 한다.
회감은 당나라 정토종의 승려다. 장안의 천복사에서 정진하며 도를 구했으나 만족하지 못하다가, 선도를 만나 오로지 염불만 부르면 반드시 증험이 있다는 말을 믿고 3주 동안 도량에 들어앉았다. 그러나 아무 영험이 없자 다시 3년을 수행하여 마침내 염불삼매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석정토군의론』의 저자이며, 법연은 그를 정토 오조(담란 · 도작 · 선도 · 회감 · 소강)의 한 사람으로 꼽았다. 원공(1133~1212)은 일본 정토종의 개조 법연이다. 어릴 적 이름은 세이시마루(勢至丸)라 전한다. 앞서 본 대로 1175년 정토종을 열었고, 승원 원년(1207) 2월 고토바 상황에 의해 염불 정지의 처분이 내려져 환속당하고 도사로 유배되었으며, 제자 주렌(住蓮) · 안라쿠(安楽)는 처형되었다. 이듬해 사면되어 교토로 돌아왔고 건력 2년(1212)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일체경 가운데 ○○경이 제일」 — 세 종의 자찬과 그 경
본문은 일곱 종의 자찬 가운데 셋을 대표로 든다. 화엄종은 「화엄경이 제일, 법화경 · 대일경 등은 신하」, 진언종은 「대일경이 제일, 나머지 경은 뭇별」, 선종은 「능가경이 제일」이라 한다. 저마다 근거로 삼는 경이 다르니, 다툼은 결국 「어느 경이 일체경의 왕인가」라는 물음으로 모인다.
화엄경은 정식으로 『대방광불화엄경』이라 한다. 한역은 셋으로, 동진의 불타발타라가 옮긴 60권(구역), 당의 실차난타가 옮긴 80권(신역), 당의 반야가 옮긴 40권(화엄경 끝의 입법계품 별역)이다. 천태대사의 오시 교판에 따르면 석존이 적멸도량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룬 직후 3·7일 동안 특히 근기가 날카로운 대보살을 위해 설한 가르침이다. 구역의 내용은 노사나불이 근기 날카로운 보살을 위해, 일체 만유가 서로 연이 되고 작용하여 나타나 일어난다는 법계무진연기와, 만법이 자기 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유심법계의 이치를 설하고, 보살의 수행 단계인 52위와 그 공덕을 보인다.
대일경은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으로, 당나라 선무외 삼장이 옮긴 7권이다. 일체지를 체득해 성불을 이루기 위한 보리심 · 대비 · 갖가지 행법을 설하고 태장계 만다라를 보인다. 금강정경 · 소실지경과 함께 대일 삼부경 · 삼부비경이라 불리며 진언종이 의지하는 경이다. 능가경은 어구 풀이에서 보았듯 선종이 의지하는 경의 하나다.
이들과 견주어 법화경은 어떤 경인가. 석존 일대 50년의 설법 가운데 처음 42년 동안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의 방편 경들을 설하고, 『무량의경』에서 「사십여 년 동안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四十余年未顕真実)」고 이전의 경들을 깨뜨린 뒤, 「세존은 법이 오랜 뒤에 반드시 진실을 설하리라(世尊法久後 要當說真實)」고 하여 마지막 8년 동안 설한 진실의 경이다. 한역은 여섯 번 이루어지고 셋이 남아 있다(六譯三存).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위나라 정무외 역 『법화삼매경』 6권(256년), 서진 축법호 역 『살담분다리경』 6권(265년), 동진 지도근 역 『방등법화경』 5권(335년)이고, 남아 있는 것은 서진 축법호 역 『정법화경』 10권(286년), 요진 구마라집 역 『묘법연화경』 8권(406년), 수나라 사나굴다 · 달마급다 공역 『첨품법화경』 7권(601년)이다. 이 가운데 구마라집 역 『묘법연화경』이 부처의 참뜻을 바르게 전한 명역이라 일컬어지며, 대성인도 이것을 쓰셨다.
법화경은 중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 동북쪽 기사굴산, 곧 영취산에서 앞뒤가 설해지고, 가운데 견보탑품 제11의 후반부터 촉루품 제22까지는 허공회에서 설해졌으므로 이처삼회(二處三會)의 의식이라 한다. 앞의 14품인 적문에서는 사리불 등 이승의 작불과 여인 · 악인의 성불을 설해 재세의 중생을 득탈하게 하고, 견보탑품 · 제바달다품에서 멸후의 홍경을 권하며, 권지품 · 안락행품에서 적화 · 타방의 보살들이 홍경을 맹세한다. 본문에 들어가 종지용출품에서 본화 지용의 보살이 나타나고, 여래수량품에서 영원한 생명이 밝혀져 「내가 본래 보살의 도를 행하여(我本行菩薩道)」라고 오백진점겁의 성도를 보이며, 문저에 삼대비법을 감추어 두었다. 이어 여래신력품 · 촉루품에서 부촉의 의식이 있고, 그 뒤의 품에서 한없는 공덕이 설해진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법화경의 참뜻은 재세와 정법 · 상법의 중생보다 말법 만년의 일체중생을 건지기 위해 설해진 데 있다. 그래서 석존의 법화경 28품, 천태대사의 『마하지관』, 대성인의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시대에 따라 구분한다.
백성의 편지와 국주의 판 — 소승을 두고 대승을 취하다
「소승의 세 종은 잠시 이를 둔다」는 말은 작은 것을 가려 내고 큰 것을 취하는 것(簡小取大), 곧 대소상대(大小相對)다. 비유로 말하면, 소승은 백성 한 사람이 쓴 편지와 같고 대승은 국주의 판이 찍힌 통지장과 같다. 다른 나라로 건너갈 때 백성의 편지는 내용이 옳든 그르든 아무 쓸모가 없다. 또 소승은 작은 배이고 대승은 큰 배이니, 큰 바다를 건너 저 언덕에 닿으려면 탈것을 가려야 한다.
그런데 큰 배인 대승에 오르려 하자 이번에는 일곱 척의 배가 저마다 「이 배만이 저 언덕에 닿는다」고 외친다. 본문의 「대승의 일곱 종은 어느 것이나 …」 이하가 일곱 종의 미란을 밝힌 대목이다. 요컨대 스승이 사법을 믿고 사법을 넓히면 그 제자와 단나도 모두 그 사법을 따르게 되고, 스승이 악도에 떨어지면 제자와 단나도 모두 함께 떨어진다. 제2장의 「날 때부터 눈먼 길잡이」의 비유가 여기서 현실의 모습을 얻는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본초에 든 십종은 그 의지하는 경전을 그대로 쓴다 해도 말법에는 이익이 없는 경이며, 말법의 중생은 석존의 불법과 인연이 엷다. 게다가 각 종의 개조들은 석존 출세의 본회인 법화경을 낮추고 제 종을 세웠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느냐 은혜를 잊는 사람이 되느냐는,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그 가르침의 바르고 그름을 아는 데 달려 있다.
종교를 가리는 원리 — 문증 · 이증 · 현증
그렇다면 가르침의 바르고 그름은 무엇으로 가리는가. 대성인은 「삼삼장기우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仏法をこころみるに道理と証文とにはすぎず、又道理証文よりも現証にはすぎず
니치렌이 불법을 시험해 보건대 도리와 증문보다 나은 것이 없고, 또 도리와 증문보다도 현증보다 나은 것이 없느니라.
바른 종교에는 먼저 경전 위에 정확한 근거가 있고, 그 가르침이 도리에 맞으며, 수행하면 그대로의 현증이 나타난다. 반대로 그릇된 종교는 도리도 증문도 현증도 갖추지 못한다.
도다 조세이 제2대 회장은 「입정안국론」을 풀이하면서 이 세 증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문증(文證)은 문서의 증거를 구하는 것이다. 어떤 종교가 있다면 먼저 그 종교가 의지하는 경전이 무엇인지를 끝까지 따져야 한다. 불교 밖의 종교라면 불교 경전과 그 경전을 견주어 연구해야 하며, 교의가 없는 종교는 종교라 할 수 없다. 불교 안의 가르침이라면 오중상대(五重相對) 등으로 그 경문의 높고 낮음, 얕고 깊음, 가치의 바르고 그름을 판정한다.
둘째 이증(理證)은, 문증이 있다고 할 때 그 문증이 철학적으로 연구해 보아 합리적이고 이성 있는 사람이 납득하고 긍정할 수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경문이 아무리 훌륭해도 철학적 가치가 없으면 버려야 한다. 철학은 사유하는 것이지만, 아무리 훌륭하게 사유된 것이라도 과학적이어야 한다. 곧 두루 타당해야 하고, 같은 원인이 때와 곳에 상관없이 같은 결과를 드러내야 한다. 또 그것이 가장 높은 가치를 가져오는 결론을 지녀야 하니, 곧 행복을 증명하는 이론이어야 한다. 그 행복도 만대에 변치 않는 행복이어서 여러 사건에 부서지는 행복이어서는 안 된다.
셋째 현증(現證)은 실제 생활 위에 증명되는 것이다. 가장 높은 종교는 사람의 생명을 근본에서 바꾸고 숙명을 깨뜨리는 데 있으므로, 이 이치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어야 가장 높은 종교라 할 수 있다. 현증이란 그 종교를 실천할 때 어떤 실제의 증거가 생활에 나타나는가 하는 실증이며, 가장 중요하다. 다만 문증대로, 이증대로 현실 생활에서 경험되는 것이 바른 현증론이다.
이러한 비판의 원리에 비추어 여러 종교를 살펴보면 그 참과 거짓, 바름과 그름이 분명해진다. 열 개의 거울이 저마다 「내가 제일」이라고 할 때, 대성인은 그 가운데 어느 거울에도 기대지 않고 이 원리, 특히 문증의 원리로 돌아가신다. 그 결단이 제4장에서 「팔종 · 십종에 따르지 않겠다」는 원으로 나타난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열 개의 거울이 서로 다투는 것은 거울 자체에 높고 낮음이 있기 때문이다. 보은의 요술은 불석신명으로 사법을 물리치고 정법을 넓히는 데 있으므로, 법의 바르고 그름을 문증 · 이증 · 현증으로 가리는 일이 보은의 첫걸음이 된다.
본문
我等凡夫はいづれの師師なりとも信ずるならば不足あるべからず仰いでこそ信ずべけれども日蓮が愚案はれがたし、世間をみるに各各・我も我もといへども国主は但一人なり二人となれば国土おだやかならず家に二の主あれば其の家必ずやぶる一切経も又かくのごとくや有るらん何の経にても・をはせ一経こそ一切経の大王にてはをはすらめ、 而るに十宗七宗まで各各・諍論して随はず国に七人・十人の大王ありて万民をだやかならじいかんがせんと疑うところに一の願を立つ我れ八宗十宗に随はじ天台大師の専ら経文を師として一代の勝劣をかんがへしがごとく一切経を開きみるに涅槃経と申す経に云く「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等云云依法と申すは一切経・不依人と申すは仏を除き奉りて外の普賢菩薩・文殊師利菩薩乃至上にあぐるところの諸の人師なり、 此の経に又云く「了義経に依つて不了義経に依らざれ」等云云、此の経に指すところ了義経と申すは 法華経・不了義経と申すは華厳経・大日経・涅槃経等の已今当の一切経なり、 されば仏の遺言を信ずるならば専ら法華経を明鏡として一切経の心をばしるべきか。
우리 범부는 어느 스승이라도 믿기만 한다면 부족함이 없으리라 여겨, 우러러 믿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니치렌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의심이 풀리기 어려우니라. 세간을 보건대 저마다 「나야말로, 나야말로」라고 하지만 국주는 오직 한 사람이니라. 둘이 되면 국토가 평온하지 못하고, 집에 주인이 둘이면 그 집은 반드시 무너지느니라. 일체경도 또한 이와 같지 않겠느냐. 어느 경이 되었든 한 경이야말로 일체경의 대왕이실 것이니라. 그런데 십종 · 칠종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다투며 서로 따르지 않으니, 나라에 일곱 명 · 열 명의 대왕이 있어서는 만민이 평온하지 못할 것이라. 어찌하면 좋은가 하고 의심하던 차에 하나의 원을 세웠느니라. 「나는 팔종 · 십종을 따르지 않으리라.」 천태대사가 오로지 경문을 스승으로 삼아 일대의 승렬을 헤아린 것과 같이 일체경을 펼쳐 보니, 열반경이라는 경에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법에 의지한다(依法)」는 것은 일체경이요,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不依人)」는 것은 부처를 제외하고 그 밖의 보현보살 · 문수사리보살 내지 위에 든 여러 인사(人師)이니라. 이 경에 또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이 경이 가리키는 요의경이란 법화경이요, 불요의경이란 화엄경 · 대일경 · 열반경 등 이금당(已今当)의 일체경이니라. 그러므로 부처의 유언을 믿는다면 오로지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아 일체경의 마음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어구 풀이
- 我等凡夫はいづれの師師なりとも信ずるならば不足あるべからず우리 범부는 어느 스승이라도 믿기만 한다면 부족함이 없으리라
- 세간 사람들의 생각을 대신 말한 것이다. 처음 인연이 닿은 스승과 가르침을 우러러 믿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를 가리킨다.
- 日蓮が愚案はれがたし니치렌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의심이 풀리기 어렵다
- 「우안(愚案)」은 자기 생각을 낮추어 이르는 말. 세간의 상식에 안주하지 않고 의심을 끝까지 밀고 나가시는 구도의 태도가 드러난다.
- 国主は但一人なり국주는 오직 한 사람이다
- 나라에 왕이 둘이면 다툼이 일듯, 일체경에도 대왕인 경은 하나뿐이어야 한다는 비유의 전제.
- 家に二の主あれば其の家必ずやぶる집에 주인이 둘이면 그 집은 반드시 무너진다
- 나라의 비유를 집으로 좁혀 거듭한 것이다.
- 一経こそ一切経の大王한 경이야말로 일체경의 대왕
- 모든 경 가운데 왕이 되는 경은 하나뿐이라는 뜻. 그 경이 무엇인지는 다음 장에서 법화경의 경문으로 밝혀진다.
- 一の願を立つ我れ八宗十宗に随はじ하나의 원을 세웠다 — 나는 팔종 · 십종을 따르지 않으리라
- 어떤 종의 권위에도 기대지 않고 오로지 경문으로 판단하겠다는 결의다. 『구사론』 연구 제7편 「「나」의 논파와 『구사론』의 자리」도 이 대목과 앞 장의 「열 개의 거울」을 인용한다.
- 天台大師の専ら経文を師として一代の勝劣をかんがへし천태대사가 오로지 경문을 스승으로 삼아 일대의 승렬을 헤아렸다
- 천태대사가 남삼북칠(南三北七)의 여러 스승의 설에 따르지 않고 경문을 근거로 오시팔교의 교판을 세운 일을 가리킨다.
- 涅槃経열반경
- 석존이 발제하 강가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들기 전 하루 낮 하룻밤 동안 설했다는 경. 소승의 동진 법현 역 『대반열반경』 2권, 대승의 북량 담무참 역 「북본」 40권, 송의 혜엄 · 혜관 등이 법현 역을 대조해 북본을 고친 「남본」 36권이 있다. 스스로를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여 다시 할 일이 없는 것」에 견주어, 법화경이 진실임을 거듭 밝힌 경이다.
- 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 열반경이 설하는 법의 사의(四依) 가운데 첫째. 부처가 설한 법을 기준으로 삼고, 보살 · 인사의 말을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 普賢菩薩보현보살
- 동방 보위덕상왕불의 제자. 법화경 설법이 끝나 갈 때 사바세계에 와서 멸후에 이 경을 어떻게 지닐지를 묻고, 말법에 정법을 지키고 넓히며 법화경을 지니는 행자를 수호하겠다고 맹세했다(법화경 보현보살권발품 제28). 보현은 이(理) · 정(定) · 행(行)의 덕을 나타낸다.
-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
- 보살 가운데 지혜 제일로 일컬어진다. 법화경 서품에서는 과거 일월등명불 때 묘광보살로 나타났다고 설해진다. 적화 보살의 상수로 보현과 짝을 이루어 석존을 모신다. 문수는 지(智) · 혜(慧) · 증(証)의 덕을 나타낸다.
- 了義経に依つて不了義経に依らざれ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
- 법의 사의 가운데 넷째. 「요의」는 뜻을 남김없이 다 밝혔다는 것, 「불요의」는 아직 다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본문은 요의경을 법화경, 불요의경을 이금당의 일체경으로 정하신다.
- 已今当이금당
-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내가 설한 경전은 무량 천만억이니, 이미 설했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할 것이다」에서 나온 말.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8 상에서 「이(已)」를 사십여 년의 이전 경들, 「금(今)」을 『무량의경』, 「당(当)」을 열반경으로 풀었다.
- 仏の遺言부처의 유언
- 열반경은 부처의 마지막 설법이므로 그 가르침은 유언, 곧 유계(遺誡)에 해당한다.
대성인의 정판이 시작되다 — 의심과 원
제3장까지가 여러 종의 미란을 「드는」 단락이었다면, 제4장부터는 대성인 자신의 바른 판정(正判)이 시작된다. 먼저 불교가 칠종 · 십종으로 갈라져 있는 데에 의심을 일으키고, 경문을 스승으로 삼아 일대의 승렬을 판정하겠다는 원을 세우신다. 이어 열반경의 유계인 사의(四依)에 따라 판정하면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아야만 일체경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결론하신다.
첫 문장은 세간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옮긴다. 우리 범부는 어느 스승이든 믿기만 하면 부족함이 없다고 여기고, 처음 믿게 된 가르침을 우러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대성인은 「니치렌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의심이 풀리기 어렵다」고 하신다.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세간의 상식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구도의 태도다.
의심의 근거는 간단한 이치다. 세간을 보면 저마다 「나야말로」라고 하지만, 국주는 한 나라에 한 사람이다. 둘이 되면 나라가 어지럽고, 한 집에 주인이 둘이면 그 집은 반드시 무너진다. 일체경도 이와 같아야 한다. 어느 경이든 한 경만이 일체경의 대왕일 것이다. 그런데 십종 · 칠종이 서로 제일이라고 다투니, 이는 나라에 일곱 · 열 명의 대왕이 있어 서로 세력을 다투고 만민이 편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실정을 알고서 어느 한 종의 말을 제멋대로 따를 수는 없다.
「팔종 · 십종에 따르지 않으리라」 — 경문을 스승으로
고민 끝에 대성인은 하나의 원을 세우신다. 「나는 팔종 · 십종을 따르지 않으리라.」 이것은 어떤 종도 믿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종의 권위에도 기대지 않고 부처의 경문 그 자체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그 본보기가 천태대사다. 천태대사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이른바 남삼북칠(南三北七), 곧 강남의 세 학파와 강북의 일곱 학파가 저마다 교판을 세워 다투던 가운데, 오로지 경문을 스승으로 삼아 석존 일대의 경들의 승렬을 헤아렸다. 대성인도 그와 같이 마음을 비우고 부처의 본뜻을 끝까지 알고자 일체경을 펼쳐 보셨다.
이 결단은 앞 장에서 본 판별의 원리, 특히 문증의 원리를 몸소 실천하신 것이다. 각 종의 조사들은 「제천이 제석을 공경하듯」 세간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 권위 앞에서 「따르지 않겠다」고 원을 세우는 일은 세간 전체를 상대로 한 결단이었다. 그리고 그 결단의 근거를 대성인은 바로 부처 자신의 유언에서 찾으셨다.
열반경 — 부처의 유언이라는 무게
열반경은 석존이 발제하 강가,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들기 전 하루 낮 하룻밤 동안 설한 가르침으로, 『대반열반경』이라고도 한다. 소승의 열반경으로는 동진 법현 역 『대반열반경』 2권이 있고, 대승의 열반경으로는 북량 담무참 삼장 역의 「북본」 40권과, 송나라의 혜엄 · 혜관 등이 법현 역을 대조해 북본을 고친 「남본」 36권이 있다. 열반경은 스스로의 자리를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여 다시 할 일이 없는 것과 같다」고 보이며, 법화경이 진실임을 거듭 밝힌 경이다. 법화경에서 거둘 것을 다 거두었고, 열반경은 그 뒤에 남은 이삭을 줍는 경이라는 것이다.
열반경이 무거운 까닭은 그것이 부처의 마지막 설법, 곧 유언이라는 데 있다. 사람의 유언이 그 사람이 남긴 말 가운데 가장 무겁듯, 부처가 열반에 들기 직전에 「멸후에는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가」를 직접 가르친 말은 멸후의 모든 불제자가 지켜야 할 유계(遺誡)다. 대성인이 이 유계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신 것은 그 때문이다. 그 유계가 사의(四依)다.
사람의 사의 — 멸후의 의지처가 되는 네 부류
사의에는 「사람의 사의」와 「법의 사의」가 있다. 사람의 사의는 부처의 멸후에 일체중생을 이끌고 그 의지처가 되는 네 부류의 사람이다. 곧 그 시대의 사상 · 철학 · 교육 등의 근원이 되는 종교계의 지도자다. 열반경은 사람의 사의를 다음과 같이 설한다. 첫째는 번뇌의 장애를 갖춘 사람, 둘째는 수다원 · 사다함의 사람, 셋째는 아나함의 사람, 넷째는 아라한의 사람이다.
열반경의 경문은 소승의 현성의 지위를 든 것이지만, 장안대사의 소(疏)는 그 뜻이 대승에도 통한다고 보아 별교 · 원교의 보살 지위에 맞추었다. 묘락대사도 별교 · 원교의 보살 지위에 사의가 있음을 판정했다.
- 초의사위(似位)소승 성문삼현별교 보살십주 · 십행 · 십회향원교 보살십신
- 제2의진위(眞位)소승 성문초과 · 이과별교 보살초지~육지원교 보살초주~육주
- 제3의진위(眞位)소승 성문삼과별교 보살칠지~구지원교 보살칠주~구주
- 제4의진위(眞位)소승 성문사과별교 보살십지 · 등각원교 보살십주 이상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이 사의를 네 종류로 나누어 시대에 배당하셨다.
四依に四類有り、小乗の四依は多分は正法の前の五百年に出現す、大乗の四依は多分は正法の後の五百年に出現す、三に迹門の四依は多分は像法一千年・少分は末法の初なり、四に本門の四依は地涌千界末法の始に必ず出現す可し
사의에 네 종류가 있다. 소승의 사의는 대부분 정법의 앞 오백 년에 나타나고, 대승의 사의는 대부분 정법의 뒤 오백 년에 나타난다. 셋째, 적문의 사의는 대부분 상법 일천 년, 일부는 말법의 처음이다. 넷째, 본문의 사의는 지용천계로서 말법의 처음에 반드시 나타날 것이니라.
정법의 앞 오백 년에는 가섭 · 아난이, 뒤 오백 년에는 마명 · 용수 · 천친 등이, 상법 일천 년에는 남악 · 천태 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말법의 처음에는 본문의 사의, 곧 지용의 보살이 반드시 나타난다. 이 시대 배당은 보은초 제8편에서 정법 · 상법 · 말법 홍통의 차제로 다시 펼쳐진다.
법의 사의 — 지도자가 지켜야 할 네 가지 법
법의 사의는 사의의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네 가지 법이다. 곧 그 시대의 지도자가 지켜야 할 지도 원리 · 지도 정신이다. 그 내용은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고 식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의 넷이다. 이 사의는 불도 수행에서도, 법을 넓히는 데에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지도 원리다.
첫째, 「법에 의지한다」는 부처가 설해 보인 일체경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모든 보살 · 모든 인사를 근본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본문은 「사람」에 보현보살 · 문수사리보살까지 넣으셨다. 법화경의 회좌에 있던 대보살이라 해도 부처의 경문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앞 장에 든 여러 종의 인사들이랴.
이것을 말법에 비추어 보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어본불 대성인은 사람과 법이 하나(人法一箇)이시며, 대성인 출세의 본회인 삼대비법의 본존이 법이다. 이 근본의 법을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그 밖의 본존이나 가르침은 기준이 되지 못한다. 하물며 신앙하는 사람의 생활이나 모습을 기준으로 종교를 판단해서는 결코 안 된다.
둘째,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글에 드러난 말에만 집착하지 말고, 그 말이 무엇을 나타내려 하는지 그 뜻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지혜에 의지하고 식에 의지하지 말라」는 부처의 지혜에 의지해야 하며, 보살 이하의 지식을 근본으로 삼아서는 안 되고 사람의 지식 또한 의지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넷째,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에서 요의경은 석존 출세의 본회인 법화경이고, 불요의경은 법화경 이전에 설한 모든 방편 권교다. 그러므로 본문에 보이신 대로,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아 일체경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요의경은 법화경 — 이금당의 경문
본문은 열반경이 가리키는 요의경을 법화경으로, 불요의경을 「화엄경 · 대일경 · 열반경 등 이금당의 일체경」으로 정하신다. 주목할 것은 불요의경 안에 열반경 자신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열반경은 스스로 「법에 의지하라」 「요의경에 의지하라」고 설하면서, 그 요의경이 자기가 아니라 법화경임을 보이는 경이 된다.
이금당이라는 말은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경문에서 나왔다.
我が説く所の経典は無量千万億にして、已に説き、今説き、当に説くべし
내가 설한 경전은 무량 천만억이니, 이미 설했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할 것이다.
천태대사는 이 경문을 『법화문구』 권8 상에서 이렇게 풀었다.
今初めに已と言うは、大品已上は漸頓の諸説なり。今とは同一の座席にして無量義経を謂うなり。当とは涅槃を謂うなり
이제 처음에 「이미(已)」라고 한 것은 『대품반야경』 이전의 점 · 돈의 여러 설이다. 「지금(今)」은 같은 자리에서 설한 『무량의경』을 말한다. 「앞으로(当)」는 열반경을 말한다.
- 이미 설한 경(已説)사십여 년의 이전 경들(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 지금 설하는 경(今説)『무량의경』
- 앞으로 설할 경(当説)열반경
법사품의 이 경문은 이어서 그 모든 경 가운데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고 맺는다. 이미 설한 경, 지금 설하는 경, 앞으로 설할 경 그 어느 것보다 법화경이 높다는 것이다. 열반경의 「요의경에 의지하라」는 유계와 법화경 법사품의 「이금당」은 서로를 비춘다. 부처의 유언을 믿는다면 오로지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아 일체경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본문의 결론은 여기서 나온다.
「사의의 대사가 아닌 어두운 스승」
이 사의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앞 장에 든 여러 종의 조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대성인은 「소야입도전허어서」에서 이렇게 꾸짖어 깨뜨리셨다.
三論宗の吉蔵大師並びに一百余人・法相宗の慈恩大師・華厳宗の法蔵・澄観、真言宗の善無畏・金剛智・不空・慧果・日本の弘法・慈覚等の三蔵の諸師は四依の大士に非ざる暗師なり愚人なり
삼론종의 길장대사와 백여 명, 법상종의 자은대사, 화엄종의 법장 · 징관, 진언종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혜과, 일본의 홍법 · 자각 등 삼장의 여러 스승은 사의의 대사가 아닌 어두운 스승이요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여기에 든 사람들은 모두 각 종의 개조로 우러름을 받고, 대학자로 존경받으며, 한 시대의 지도자로 일생을 보낸 이들이다. 그러나 그 실상은 「사의의 대사가 아닌 어두운 스승이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따르면 그 사람이 아무리 높이 받들어져도 그와 함께 길을 잃는다. 제2장의 「날 때부터 눈먼 길잡이」, 제3장의 「스승이 떨어지면 제자도 떨어진다」는 경고가 여기서 경문의 판정으로 맺어진다.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 제1편을 맺는 결론
이리하여 첫 네 장의 흐름이 하나로 모인다. 은혜를 갚으려면 지자가 되어야 하고(제2장), 지자가 되려면 일대 성교를 비추는 거울을 골라야 하는데, 그 거울들이 서로 다툰다(제3장). 그 다툼을 넘어서는 길은 어느 종의 사람에게도 기대지 않고 부처의 유언인 법의 사의에 따르는 것이며, 그 유언이 가리키는 요의경은 법화경이다(제4장). 「열 개의 거울」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법화경이라는 경 자체를 거울로 삼아 다른 모든 거울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본문의 끝이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しるべきか)」라는 부드러운 물음으로 맺어진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결론은 아직 하나의 방향으로 제시된 것이고, 그 근거는 다음 장에서 법화경의 경문으로 직접 보여진다. 보은초 제2편 「법화경 제일과 재세 · 정법의 난」은 「이 법화경은 모든 경 가운데서 가장 그 위에 있다」는 경문을 펼쳐 이 물음에 답하는 데서 시작한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열반경의 유계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경에 의지하라」에 따르면 법화경만이 일체경의 대왕이며 밝은 거울이다. 말법에서 그 「법」은 인법일개의 어본불이 세우신 삼대비법이다.
이 편을 맺으며
「보은초」의 첫 네 장은 하나의 물음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보여 준다. 늙은 여우와 흰 거북, 예양과 홍연의 고사로 시작한 물음은 처음에는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소박한 윤리였다. 그러나 대성인은 곧바로 「그러면 어떻게 갚는가」를 물으시고, 은혜를 참으로 갚으려면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고 답하셨다. 눈먼 길잡이는 맹인들을 건네줄 수 없고, 방향을 모르는 배는 상인들을 보배 산으로 데려갈 수 없다.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은 바른 법을 아는 지혜를 거쳐야만 은인을 참으로 건지는 힘이 된다.
그 지혜를 얻기 위해 대성인은 부모 · 스승 · 국주의 뜻을 넘어서는 길을 택하셨다. 「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드는 이가 참으로 은혜를 갚는 이다」라는 경문, 비간과 실달태자의 고사, 그리고 하품 · 중품 · 상품의 효는, 따르지 않음이 도리어 가장 깊은 보은이 될 수 있음을 보인다. 그러나 막상 불법을 배우려 하자 일대 성교를 비추는 거울이 열이나 있고, 대승의 일곱 종은 저마다 「우리 종이야말로」라고 다투었다. 그 조사들은 세간에서 제석처럼, 해와 달처럼 우러름을 받는 이들이었다.
대성인은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셨다. 「나는 팔종 · 십종을 따르지 않으리라」는 원을 세우고, 천태대사가 그랬듯 오로지 경문을 스승으로 삼아 일체경을 펼치셨다. 그리고 부처의 유언인 열반경에서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는 유계를 찾아,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아 일체경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셨다. 보은이라는 개인의 윤리가 불교 전체의 승렬을 묻는 일로 넓어지고, 그 물음이 다시 「어떤 법을 따를 것인가」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모인 것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네 장에서 세워진 기준은 「보은초」 전체를 꿰는 실이다. 보은의 요술은 불석신명으로 사법을 물리치고 정법을 넓히는 데 있고, 그 정법은 마지막에 본문의 삼대비법으로 밝혀진다. 다음 보은초 제2편 「법화경 제일과 재세 · 정법의 난」에서 대성인은 「이 법화경은 모든 경 가운데서 가장 그 위에 있다」는 경문을 펼쳐 법화경이 일체경의 정상임을 증명하시고, 그 법화경을 넓히는 이가 반드시 큰 난을 만난다는 「유다원질 황멸도후」의 경문을 재세와 정법 시대의 역사 속에서 확인해 나가신다.
더 읽기
- 보은초 — 서강 「보은초를 펼치며」 — 저술의 유래 · 대의 · 원의와 여덟 편의 구성
- 보은초 제2편 「법화경 제일과 재세 · 정법의 난」 — 이 편의 결론을 이어받아 법화경이 가장 제일임을 경문으로 밝힌다
- 『구사론』 연구 제7편 「「나」의 논파와 『구사론』의 자리」 — 「열 개의 거울」과 「팔종 · 십종에 따르지 않겠다」는 이 편의 대목을 인용하여 구사종의 자리를 짚는다
- 오시팔교 — 천태대사가 경문을 스승으로 삼아 세운 일대 성교의 교판
- 관심의 본존초 — 사의의 네 종류(소승 · 대승 · 적문 · 본문의 사의)를 시대에 배당한 대목
- 선시초 — 여러 종의 미란과 진언 비판을 「때」의 관점에서 다룬 어서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보은초」 · 「보은초 송문」,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일본어판) 293–330쪽 — 인용한 다른 어서의 쪽은 본문 각 인용에 적었다
- 『묘법연화경』 법사품 제10, T9 no.262
- 『대반열반경』, T12 no.374
- 천태대사, 『법화문구』 권8 상, T34 no.1718
- 사마천, 『사기』 — 자객열전(예양) · 은본기(비간)
- 니치칸 상인, 「보은초 문단(報恩抄文段)」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 니치코(日講), 『녹내계몽(録内啓蒙)』 (니치칸 상인의 비판을 통한 재인용)
연구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On Repaying Debts of Gratitude」 수록)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 Ryūichi Abé, The Weaving of Mantra: Kūkai and the Construction of Esoteric Buddhist Discours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