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은 인도 불교가 수백 년에 걸쳐 쌓아 온 「법(dharma)의 분석」을 한 권의 체계로 묶은 논서다. 저자 천친(天親, 세친 世親 Vasubandhu)은 설일체유부의 정설을 600송의 게송으로 압축하고, 다시 그 게송에 장행(長行)의 해설을 붙였다. 그런데 이 해설은 유부의 교과서이면서 동시에 유부에 대한 비판서였다. 천친은 카슈미르 비바사사의 학설을 차례로 서술하면서, 이치가 맞지 않는다고 본 곳마다 경량부의 입장에서 반문을 던졌다. 그래서 『구사론』은 나오자마자 유부 정통의 중현(衆賢)에게서 장대한 반박을 받았고, 그 논쟁까지 함께 동아시아로 건너왔다. 서강은 이 책이 무엇을 「대법」이라 부르는지, 어떻게 성립했다고 전하는지, 아홉 품이 어떤 질서로 놓였는지, 저자가 마지막에 스스로 어디에 서 있다고 말했는지를 원문으로 확인한다.
『구사론』은 오래도록 「아비달마를 배우는 사람이 먼저 읽는 책」이었다. 현장(玄奘)의 제자 보광(普光)은 『구사론기』 첫머리에서 이 논서를 두고 「인도의 학도들은 이를 총명론이라 부른다(印度學徒,號為聰明論也)」고 적었고, 이보다 앞서 진제(眞諦) 역의 서문도 「천축에서는 모두 총명론이라 일컫는다(天竺咸稱為聰明論)」고 썼다. 대승의 유식학도, 천태의 교판도, 동아시아에서 아비달마를 말할 때는 대개 이 책의 술어와 분류를 바탕으로 삼았다. 오위(五位)의 법 분류, 육인 · 사연 · 오과의 인과론, 98수면의 번뇌론, 사향사과의 수행 계위 — 오늘 불교 교학에서 당연하게 쓰는 틀의 상당 부분이 『구사론』을 거쳐 정착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요약서가 아니다. 천친은 본송(本頌)에서 유부의 학설을 「전한다(傳說)」는 말로 거리를 두어 적었고, 장행에서는 「경량부의 말이 옳다」는 평을 여러 번 남겼다. 그러면서도 결론 게송에서는 「카슈미르 비바사사의 논의가 이치를 잘 세웠으니, 나는 대부분 그것에 의지해 대법을 풀었다」고 말한다.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고쳤는가 — 이 물음이 『구사론』을 읽는 내내 따라다닌다. 후대 주석가들이 이 책을 「겉으로는 유부, 속으로는 경량부」라 평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페이지는 연재 「『아비달마구사론』 읽기」의 허브다. 아래 여섯 장에서 『구사론』의 바탕(아비달마와 논장), 성립 전승, 구조, 입장, 번역과 전승을 차례로 보고, 마지막 장에서 일곱 편의 연재가 각각 무엇을 다루는지 안내한다. 각 품의 논의는 해당 편에서 원문 순서대로 깊이 읽는다.
- 제1장 대법이란 무엇인가 — 『구사론』 권1이 풀이한 「아비달마」와 「구사」의 뜻, 『발지론』 · 육족론과 『대비바사론』
- 제2장 천친과 『구사론』의 성립 — 『바수반두법사전』과 보광 · 법보가 전하는 성립 이야기를 나란히 읽는다
- 제3장 아홉 품의 질서 — 보광이 풀이한 품의 차례, 600송과 30권의 배분, 게송과 장행의 관계
- 제4장 「카슈미르의 논의」와 「나의 허물」 — 권29 결론 게송으로 본 『구사론』의 입장, 그리고 중현의 반박
- 제5장 두 번역과 구사학의 전승 — 진제 역과 현장 역, 현장 문하의 주석, 일본의 구사종, 근현대의 범본과 번역
- 제6장 이 연재를 읽는 법 — 서강과 일곱 편의 구성, 기존 페이지와의 관계
- 붓다의 설법
- 『발지론』과 육족론(설일체유부의 근본 논서 일곱)
- 『대비바사론』(『발지론』의 주석, 카슈미르 비바사사의 집성)
- 『아비달마구사론』(천친 — 600송과 장행)
- 『순정리론』 · 『현종론』(중현의 반박과 요약)
- 진제 역(陳, 563~567) ·현장 역(唐, 영휘 연간)
- 보광 『구사론기』 ·법보 『구사론소』 ·원휘 『구사론송소』
서강과 일곱 편 · 구사론 62장 구성도
아홉 품 → 서강 + 일곱 편- 서강『구사론』을 펼치며지금 읽는 편전체 아홉 품권1 서두 · 권29 결론 게송 · 권30 끝성립 · 구조 · 전승
- 제1편법의 분류 — 분별계품분별계품권1~2 · T29, 1a~13b
- 분별세품권8~12 · T29, 40c~67b
- 제4편업의 체계 — 분별업품분별업품권13~18 · T29, 67b~98b
- 분별수면품권19~21 · T29, 98b~113b
- 파집아품권29 끝~30 · T29, 152b~159b
- 一제1편分別界品 · 권1~2
『구사론』의 첫 품은 모든 법을 유루와 무루, 유위와 무위로 가르고, 그것을 오온 · 십이처 · 십팔계에 배치한 뒤 스물두 가지 물음으로 십팔계를 다시 잰다. 그 과정에서 「색이란 무엇인가」 「온은 실재인가」 「눈이 보는가 식이 보는가」라는 아비달마의 근본 논쟁이 원문 그대로 펼쳐진다.
- 제1장법의 두 갈래 — 유루와 무루, 세 가지 무위
- 제2장색온 — 열한 가지 색과 「색이란 무엇인가」
- 제3장마음의 네 온과 처 · 계의 성립
- 제4장쌓임 · 문 · 종족 — 온 · 처 · 계라는 이름의 뜻
- 제5장십팔계를 재는 스물두 개의 자
- 제6장눈이 보는가, 식이 보는가
- 제7장의지와 경계 — 근이 식의 이름이 되는 까닭
- 제8장분류의 정리 — 오위칠십오법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 二제2편分別根品 · 권3~7
계품이 법을 「무엇인가」로 나누었다면, 근품은 법이 「무엇을 하는가」를 묻는다. 스물두 근의 증상력에서 시작해, 마음과 마음작용이 함께 일어나는 규칙, 득 · 동분 · 명근 같은 보이지 않는 힘, 그리고 여섯 원인 · 네 조건 · 다섯 결과의 인과 체계까지를 원문의 문답으로 읽는다.
- 제1장스물두 가지 근 — 「증상」이라는 힘의 지도
- 제2장함께 일어나는 법 — 극미의 구생과 마음작용의 여섯 무리
- 제3장마음의 품과 마음작용의 수 — 선심 스물둘에서 심 · 의 · 식까지
- 제4장득과 비득 — 「가짐」은 실재하는가
- 제5장나머지 불상응행 — 동분 · 무심의 두 정 · 명근 · 사상 · 명신
- 제6장여섯 가지 원인 — 능작인에서 이숙인까지
- 제7장다섯 가지 결과와 네 가지 조건 — 인과 체계의 완성
- 제8장마음이 마음을 잇는 길 — 열두 마음과 스무 마음
- 三제3편分別世品 · 권8~12
분별세품은 생명이 사는 자리(유정세간)와 그 생명을 담는 그릇(기세간)을 한 품에 그린다. 죽음과 태어남 사이의 중유, 연기를 읽는 네 가지 방식, 수미산 세계의 치수와 겁의 흐름까지, 유부의 우주론을 원문의 논증과 숫자 그대로 읽는다.
- 제1장삼계와 다섯 갈래 — 유정이 사는 자리
- 제2장죽음과 태어남 사이 — 중유의 논증
- 제3장중유의 몸과 입태 — 사유의 순환
- 제4장연기를 어떻게 읽는가 — 네 가지 연기와 해석의 대론
- 제5장무명은 무엇인가 — 지분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
- 제6장유정은 무엇으로 머무는가 — 사식과 죽음
- 제7장그릇 세간 — 삼륜에서 하늘까지
- 제8장세계를 재는 단위와 겁 — 성주괴공과 부처의 출현
- 四제4편分別業品 · 권13~18
「세간의 차별은 업에서 생긴다」로 시작하는 분별업품은, 몸짓과 말이 무엇을 체(體)로 하여 업이 되는가를 묻는 데서 출발해 율의 · 십업도 · 오무간업 · 보살의 업까지 업의 체계 전체를 세운다. 그 모든 자리에서 유부의 「무표색」과 경량부의 「상속전변차별」이 맞선다.
- 제1장몸짓은 무엇으로 업이 되는가 — 표업의 정체
- 제2장보이지 않는 업 — 무표색의 실재 논쟁
- 제3장계를 받는다는 것 — 율의 · 불율의 · 처중
- 제4장업을 나누는 여러 잣대 — 네 가지 선에서 네 가지 업까지
- 제5장열 가지 업의 길 — 십업도의 성립과 과보
- 제6장가장 무거운 업 — 오무간업 · 파승 · 삼장
- 제7장부처가 되는 업 — 보살의 묘상업과 세 가지 복업사
- 제8장업은 무엇으로 이어지는가 — 업품 안의 유부 · 경량부 대론
- 五제5편分別隨眠品 · 권19~21
업이 다음 생을 부르는 힘은 수면(번뇌)에서 나온다. 여섯 수면이 아흔여덟으로 나뉘는 체계와, 그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과거와 미래는 실재하는가」라는 유부와 경량부의 대론을 원문으로 읽는다.
- 제1장업을 자라게 하는 것 — 수면과 일곱 수면
- 제2장잠든 번뇌 — 수면의 체를 둘러싼 대론
- 제3장아흔여덟 수면 — 견해의 번뇌와 교만
- 제4장수면이 자라는 자리 — 편행 · 소연 · 상응
- 제5장「삼세가 있다고 말하는 자」 — 유부의 논증과 네 논사
- 제6장작용은 어디서 오는가 — 천친의 비판과 중현의 응답
- 제7장번뇌가 일어나고 흐르는 방식 — 누에서 개까지
- 제8장끊는다는 것 — 네 가지 원인과 아홉 편지
- 六제6편分別賢聖品 · 分別智品 · 分別定品 · 권22~29
『구사론』의 뒤쪽 세 품은 번뇌를 끊는 길과 그 길의 지혜, 그리고 그 지혜가 기대는 선정을 차례로 분석한다. 몸과 마음을 고르는 준비에서 네 선근, 열여섯 마음의 견도, 아홉 품을 끊어 가는 수도, 아라한의 여섯 종성, 열 가지 지혜와 부처의 공덕, 사정려 · 사무색정과 팔해탈까지를 원문의 논증으로 읽는다.
- 제1장수행의 그릇과 들어가는 두 문
- 제2장순결택분의 네 선근
- 제3장열여섯 찰나의 현관
- 제4장아홉 품을 끊어 가는 길
- 제5장아라한의 종성과 칠성자
- 제6장열 가지 지혜와 부처의 공덕
- 제7장정려와 무색정
- 제8장정에서 일어나는 공덕
- 七제7편破執我品 · 권29 끝~30
『구사론』의 마지막 품은 기억하고 알고 행위하고 과보를 받는 「나」 없이 그 모든 일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묻고, 「상속의 전변과 차별」로 답하며 끝난다. 천태는 이 논서를 장교(삼장교)의 자리에 두었고, 니치렌 대성인은 구사종을 「열 개의 거울」 가운데 소승의 하나로 판정하시면서도 그 어휘로 법화경의 법문을 펼치셨다.
- 제1장「이 가르침을 떠나 해탈은 없다」 — 파집아품의 자리와 첫 논증
- 제2장경전을 둘러싼 대론 — 짐꾼, 용군의 망고나무, 어미 범의 이빨
- 제3장누가 기억하고 누가 아는가 — 주체 없는 기억과 인식
- 제4장아트만의 논파와 업의 상속 — 『구사론』의 끝맺음
- 제5장『구사론』 이후 — 중현의 반박, 천친의 전향, 동아시아의 구사학
- 제6장삼장교라는 자리 — 천태의 판정
- 제7장두 계위의 대조 — 현성품과 장교의 칠현 · 칠성
- 제8장니치렌 대성인과 『구사론』 — 「열 개의 거울」과 방편의 자리
본송
淨慧隨行名對法,及能得此諸慧論。 攝彼勝義依彼故,此立對法俱舍名。 若離擇法定無餘,能滅諸惑勝方便, 由惑世間漂有海,因此傳佛說對法。
맑은 지혜와 그것을 따르는 것을 대법이라 하고, 이 지혜를 얻게 하는 여러 지혜와 논도 그러하다. 저 대법의 뛰어난 뜻을 거두어들이고, 또 저것에 의지하므로, 이 논을 「대법의 구사(藏)」라 이름한다. 법을 가려내는 일을 떠나서는 번뇌를 멸하는 뛰어난 방편이 결코 따로 없다. 번뇌 때문에 세간이 존재의 바다에 떠다니니, 그래서 부처님이 대법을 설하셨다고 전한다.
술어 풀이
- 阿毘達磨아비달마 · 대법
- 범어 abhidharma의 음역이고, 현장은 「대법(對法)」으로 옮겼다. abhi-는 「~을 향하여, ~에 마주하여」, dharma는 「법」이다. 『구사론』은 「마주함(對)」을 지혜가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일(對向), 그리고 사성제를 마주해 관찰하는 일(對觀)로 풀이한다.
- 淨慧정혜 · 맑은 지혜
- 「慧謂擇法,淨謂無漏」 — 지혜는 법을 가려내는 작용(擇法 dharma-pravicaya)이고, 맑음은 번뇌가 스며들지 않는 무루(無漏 anāsrava)를 말한다. 견도 이후 성자의 마음에 일어나는 무루혜가 대법의 본체다.
- 隨行수행(隨行) · 따라 일어나는 것
- 무루혜와 함께 일어나 그것을 돕는 심 · 심소와 색 등. 논은 「淨慧眷屬名曰隨行」이라 하여 이를 지혜의 권속으로 본다. 그래서 대법의 본체는 「무루의 오온」이 된다.
- 勝義阿毘達磨 · 世俗阿毘達磨승의 아비달마 · 세속 아비달마
- 무루혜와 그 권속이 승의(paramārtha)의 아비달마이고, 그것을 얻게 하는 유루의 지혜(수혜 · 사혜 · 문혜 · 생득혜)와 그 지혜를 길러 주는 논서가 세속(saṃvṛti)의 아비달마다. 논서로서의 아비달마는 이 둘째 층에 놓인다.
- 俱舍구사 · 장(藏)
- 범어 kośa의 음역. 칼집처럼 무엇을 담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구사론』은 「대법의 뛰어난 뜻을 이 논에 거두어들인다」는 뜻과 「이 논이 대법에 의지해 생겨났다」는 두 뜻으로 이 이름을 풀이한다.
- 擇法택법 · 법을 가려냄
- 지혜의 기본 작용. 여러 법을 하나하나 그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으로 가려 보는 것이다. 『구사론』은 택법을 떠나서는 번뇌를 끊는 방편이 없다고 하여, 아비달마가 필요한 이유를 여기에 둔다.
- 毘婆沙師비바사사
- 『대비바사론(Mahāvibhāṣā)』에 의거하는 카슈미르의 설일체유부 논사들(Vaibhāṣika). 『구사론』은 이들의 학설을 정설로 서술하면서도 자주 「비바사사는 이렇게 전한다(毘婆沙師傳說如此)」는 말로 거리를 둔다.
- 發智論 · 六足論『발지론』 · 육족론
- 설일체유부의 근본 논서 일곱. 『발지론(Jñānaprasthāna)』을 몸(身)에, 나머지 여섯 논서를 다리(足)에 견준다. 『대비바사론』은 이 가운데 『발지론』의 주석이다.
대법의 두 층 — 무루혜와 그것을 얻게 하는 논
『구사론』은 첫 게송에서 부처님께 귀경한 뒤 곧바로 「대법장론(對法藏論)을 내가 설하겠다」고 말하고, 「무엇을 대법이라 하는가(何謂對法)」라고 스스로 묻는다. 그 대답이 위의 첫 게송이다. 장행은 이 게송을 한 구절씩 풀어 간다.
慧謂擇法,淨謂無漏,淨慧眷屬名曰隨行。如是總說無漏五蘊名為對法,此則勝義阿毘達磨。
지혜란 법을 가려내는 것이고, 맑음이란 번뇌가 스며들지 않는 것이며, 맑은 지혜의 권속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 한다. 이렇게 통틀어 무루의 오온을 대법이라 하니, 이것이 승의의 아비달마다.
이 정의는 놀랍도록 엄격하다. 대법의 본체는 책이 아니라 성자의 마음에 일어나는 무루혜다. 논서는 그 지혜에 이르는 수단이므로 「세속의 아비달마」로 이름을 빌려 얻을 뿐이다. 장행은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若說世俗阿毘達磨,即能得此諸慧及論。慧謂得此有漏修慧、思聞生得慧及隨行。論謂傳生無漏慧教。此諸慧論是彼資糧,故亦得名阿毘達磨。
세속의 아비달마를 말한다면, 이것을 얻게 하는 여러 지혜와 논이다. 지혜란 이것을 얻게 하는 유루의 수혜, 사혜 · 문혜 · 생득혜와 그 권속이다. 논이란 무루혜를 차례로 낳게 하는 가르침이다. 이 여러 지혜와 논은 저 무루혜의 자량이므로 또한 아비달마라는 이름을 얻는다.
지혜의 층위가 아래에서 위로 쌓인다. 날 때부터 지닌 생득혜(生得慧), 가르침을 들어서 얻는 문혜(聞慧), 스스로 사유해서 얻는 사혜(思慧), 선정 속에서 닦는 수혜(修慧) — 이 유루의 지혜들이 차례로 무루혜를 향해 간다. 논서는 그 맨 바깥에 있다. 보광은 이 「논」을 「六足、《發智》」, 곧 유부의 근본 논서 일곱으로 풀이했다(『구사론기』 권1, T41, 8b). 그러니까 『구사론』이 스스로를 「아비달마」라 부를 때, 그것은 「무루혜에 이르는 사다리의 한 칸」이라는 겸손한 자기 규정이다.
이 정의는 『대비바사론』을 그대로 잇는다. 『대비바사론』은 권1에서 「아비달마의 자성은 무엇인가」를 묻고 「무루의 혜근을 자성으로 한다(答無漏慧根。以為自性)」고 답한 뒤, 경전에서 부처님이 「매우 깊은 아비달마」라 부른 것들 — 공 · 무아, 연기, 열반 — 을 하나씩 들어, 그 모두가 결국 무루혜와 그 경계를 가리킨다고 정리한다(『대비바사론』 권1, T27, 2c~3b). 『구사론』의 두 줄짜리 게송은 이 긴 논의를 압축한 것이다.
「마주함」과 「법」 — 이름의 풀이
이어서 장행은 이름 자체를 푼다.
釋此名者,能持自相故名為法。若勝義法唯是涅槃,若法相法通四聖諦,此能對向或能對觀,故稱對法。
이 이름을 풀이하면, 스스로의 특징(自相)을 지니므로 「법」이라 한다. 승의의 법이라면 오직 열반이고, 법상(法相)의 법이라면 사성제에 두루 통한다. 이 지혜가 그것을 마주해 향하거나 마주해 관찰하므로 「대법」이라 한다.
「법」의 정의 「能持自相」은 아비달마 전체의 출발점이다. 법은 스스로의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의 최소 단위다. 색은 「걸림(變礙)」을, 수는 「받아들임(領納)」을 제 특징으로 지닌다. 아비달마는 세계를 이런 법들의 목록으로 다시 쓰는 작업이다. 보광은 법에 두 뜻 — 스스로의 성품을 지님(能持自性)과, 사람에게 이해를 일으키는 규범이 됨(軌生勝解) — 이 있는데, 여기서는 앞의 뜻만 들었다고 덧붙였다(『구사론기』 권1, T41, 8c).
「마주함(對 abhi)」에는 두 방향이 있다. 하나는 「대향(對向)」, 곧 지혜가 열반이라는 승의의 법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관(對觀)」, 곧 지혜가 사성제라는 법상의 법을 마주해 관찰하는 것이다. 앞의 것은 목적지를 향한 운동이고 뒤의 것은 대상을 꿰뚫어 보는 인식이다. 아비달마라는 말에는 이 두 방향 — 해탈을 향함과 법을 분석함 — 이 함께 들어 있다.
abhidharma의 abhi-를 「대(對)」로 옮긴 것은 현장의 신역이다. 진제 역은 같은 대목을 「此智對諸法,於法現前故,稱阿毘達磨」(이 지혜가 여러 법을 마주하여 법에 앞에 드러나므로 아비달마라 한다)로 옮겨, 「대향 · 대관」의 두 갈래 구분 없이 「마주해 드러남」 하나로 풀었다(『아비달마구사석론』 권1, T29, 162a). 초기 경전에서 abhidhamma가 「법에 관한 (논의)」 또는 「뛰어난 법」의 뜻으로도 쓰였다는 해석이 근현대 연구에 있으나, 『구사론』 자신의 풀이는 위의 두 가지다.
「구사」 — 무엇을 담은 칼집인가
대법을 정의한 뒤 논은 「이 논을 왜 대법장이라 부르는가(何故此論名對法藏)」를 묻는다. 대답은 둘째 게송 「攝彼勝義依彼故,此立對法俱舍名」이고, 장행은 이렇게 푼다.
由彼對法論中勝義入此攝故,此得藏名。或此依彼、從彼引生,是彼所藏,故亦名藏。是故此論名對法藏。
저 대법의 논들 가운데 뛰어난 뜻이 이 논에 거두어져 들어오므로, 이 논이 「장」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또는 이 논이 저것에 의지하고 저것에서 이끌려 나왔으니 저것이 담고 있던 것이므로, 또한 「장」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논을 대법장이라 한다.
두 풀이는 방향이 반대다. 첫째 풀이에서 『구사론』은 그릇이고, 『발지론』 · 육족론 · 『대비바사론』의 핵심이 그 안에 담긴다. 둘째 풀이에서는 거꾸로 저 논서들이 그릇(칼집)이고, 『구사론』은 거기서 뽑혀 나온 칼이다. 중현은 『순정리론』에서 둘째 뜻을 「藏或所依,猶如刀藏」(장은 의지처라는 뜻도 되니, 칼집과 같다)으로 풀었다(『순정리론』 권1, T29, 329c). 원휘는 이 두 풀이를 산스크리트 복합어 해석법에 따라 따져, 앞의 것을 의주석(依主釋), 뒤의 것을 유재석(有財釋)으로 구분하고, 「세친 논주가 스스로 공을 취하려 하지 않고 근본 논서에 공을 돌렸기 때문(世親論主不欲自取其功,推能於本故也)」에 지업석으로 풀지 않았다고 해석했다(『구사론송소』 권1, T41, 815c~816a).
어느 쪽이든 『구사론』은 자신을 독립된 창작이 아니라 앞선 아비달마 전통의 「정수를 담은 것」으로 내세운다. 이 자기 이해가 결론 게송의 「대부분 카슈미르의 논의에 의지했다」는 말과 맞물린다.
「부처님이 설하셨다고 전한다」 — 아비달마는 불설인가
셋째 게송은 왜 대법이 필요한지를 말한다. 법을 가려내는 지혜 말고는 번뇌를 멸할 방편이 없고, 번뇌 때문에 세간이 생사의 바다에 떠다니므로, 부처님이 대법을 설하셨다. 그런데 게송의 마지막 구절은 「因此傳佛說對法」 — 「그래서 부처님이 대법을 설하셨다고 전한다」이다. 장행은 그 「전한다」의 내용을 이렇게 밝힌다.
然佛世尊處處散說阿毘達磨,大德迦多衍尼子等諸大聲聞結集安置。猶如大德法救所集無常品等鄔拕南頌,毘婆沙師傳說如此。
부처님 세존께서 곳곳에서 아비달마를 흩어 설하셨고, 대덕 가다연니자 등 여러 대성문이 그것을 결집해 안치했다. 마치 대덕 법구가 무상품 등의 우다나 게송을 모은 것과 같다 — 비바사사는 이렇게 전한다.
부처님은 아비달마를 흩어서 설했고, 제자들이 그것을 모아 논서로 정리했다 — 이것이 유부의 공식 입장이다. 『대비바사론』도 서두에서 「이 논은 누가 지었는가」를 묻고 「부처님 세존이시다(答佛世尊)」라고 답한 뒤, 가다연니자가 지었다고 하는 것은 「그 존자가 받아 지니고 펴서 널리 유포했기 때문에 이 논의 이름이 그에게 돌아간 것이며, 실은 부처님의 설법이다(由彼尊者受持演說廣令流布。是故此論名稱歸彼。然是佛說)」라고 했다(『대비바사론』 권1, T27, 1a).
천친은 이 입장을 서술하되 「비바사사는 이렇게 전한다(毘婆沙師傳說如此)」로 맺었다. 자기 말이 아니라 전해 들은 말이라는 표시다. 이 작은 말이 큰 논쟁을 불렀다. 중현은 『순정리론』 첫 권에서 바로 이 대목을 짚었다.
經主稱傳,顯已不信阿毘達磨是佛所說。
경주(經主)가 「전한다」고 일컬은 것은, 아비달마가 부처님의 설법임을 자신은 믿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경주(經主)」는 『순정리론』이 처음부터 끝까지 천친을 가리켜 쓰는 호칭이다. 중현은 이어서 천친이 아비달마를 불설로 믿지 않는 이유를 둘로 짐작한다 — 가다연니자 등이 지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고,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 대법을 의지처로 삼으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둘을 모두 반박한다. 경량부(Sautrāntika)라는 이름 자체가 「경(sūtra)을 기준(量)으로 삼는 이들」이라는 뜻이고, 이들은 논장의 권위를 경장과 같이 보지 않았다. 『이부종륜론』은 경량부가 「스스로 경희(아난)를 스승으로 삼는다고 일컬었다(自稱我以慶喜為師)」고 전한다(『이부종륜론』, T49, 15b). 『구사론』 첫 권의 「전한다」 한마디에 이미 유부와 경량부 사이의 근본 쟁점 — 논장은 부처님의 말씀인가 — 이 걸려 있는 셈이다.
『구사론』은 아비달마를 「무루혜와 그 권속(승의)」과 「그것을 얻게 하는 지혜와 논(세속)」의 두 층으로 정의하고, 자신을 세속 아비달마의 정수를 담은 「장(kośa)」이라 부른다. 그러나 「부처님이 대법을 설했다」는 유부의 전승은 「전한다」는 말로 거리를 두어 적었고, 중현은 그 거리를 놓치지 않았다.
논장의 형성 — 『발지론』과 육족론
『구사론』이 「저 대법의 논들」이라 부른 것은 무엇인가. 설일체유부는 자기 부파의 논장을 일곱 논서로 꼽았다. 보광은 『구사론기』에서 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前之六論義門稍少,《發智》一論法門最廣,故後代論師說六為足、《發智》為身。此上七論,是說一切有部根本論也。
앞의 여섯 논은 뜻의 문이 다소 적고, 『발지론』 한 논은 법문이 가장 넓다. 그래서 후대 논사들이 여섯을 다리로, 『발지론』을 몸으로 말했다. 이 일곱 논이 설일체유부의 근본 논서다.
보광이 전하는 일곱 논의 저자와 시기는 다음과 같다. 『집이문족론』은 사리자, 『법온족론』은 대목건련, 『시설족론』은 대가다연나가 지었고 이 셋은 부처님 재세 때 지어졌다. 불멸 후 100년 무렵 제바설마가 『식신족론』을, 300년 초에 벌소밀다라(세우)가 『품류족론』과 『계신족론』을, 300년 말에 가다연니자가 『발지론』을 지었다. 보광은 또 스승 현장이 이 가운데 『시설족론』만 옮기지 못했다고 적었다(「和上唯《施設足論》未翻」, 같은 곳).
육족론의 저자와 순서는 한역 전승과 티베트 전승 사이에 차이가 있고, 근현대 연구는 저자 귀속보다 각 논서의 내용 층위로 성립 순서를 추정한다. 일곱 논이 모두 한 시기의 것이 아니라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점, 『발지론』이 유부 교학의 체계를 세운 중심 논서라는 점은 대체로 일치한다. 연대는 보광의 기술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발지론』은 여덟 「온(蘊, 범어 grantha)」으로 짜여 있다. 『대비바사론』 서두는 가다연니자가 부처님의 여러 논의를 모아 「잡온 · 결온 · 지온 · 업온 · 대종온 · 근온 · 정온 · 견온」의 여덟 온을 세웠다고 설명한다(「集種種異相論道。制為雜蘊。集結論道制為結蘊」, 『대비바사론』 권1, T27, 1b). 『바수반두법사전』도 같은 전승을 「팔건도(八乾度)」라는 이름으로 전하며, 이 책을 「발혜론(發慧論)」이라고도 불렀다(T50, 189a). 보광이 『구사론』을 두고 「육족의 강요를 남김없이 채록하고, 여덟 온의 묘문을 손바닥 보듯 드러냈다(採《六足》之綱要備盡無遺,顯八蘊之妙門如觀掌內)」고 한 것은 바로 이 일곱 논서 전체를 압축했다는 평가다(『구사론기』 권1, T41, 1a).
『대비바사론』 — 카슈미르 비바사사의 집성
『발지론』에 대한 방대한 주석이 『아비달마대비바사론』 200권(T27 no.1545)이다. 「비바사(vibhāṣā)」는 「자세한 해설」이라는 뜻이고, 보광은 이를 「넓게 설함 · 뛰어나게 설함 · 달리 설함」의 세 뜻으로 풀었다. 그중 「달리 설함」은 「오백 아라한이 저마다 다른 뜻으로 『발지론』을 해석했다(五百阿羅漢各以異義解釋《發智》)」는 뜻이다(『구사론기』 권1, T41, 11a).
이 풀이가 『대비바사론』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체계적 저술이 아니라 수많은 논사의 견해를 모은 토론집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有說)」, 「다른 논사는 말한다(有餘師說)」가 끝없이 이어지고, 법구 · 묘음 · 세우 · 각천, 「대덕(大德)」, 「협존자(脇尊者)」 같은 유부 내부의 논사들이 이름을 걸고 등장하며, 비유자(譬喻者) · 분별론자(分別論者) 같은 다른 부파의 견해도 반론의 대상으로 거듭 인용된다. 여러 설을 늘어놓은 뒤 편찬자가 정설을 고르는 「평하여 말한다(評曰)」가 붙는 곳이 많다. 전산 대정장에서 「評曰」은 200권 전체에 걸쳐 수백 차례 나온다.
편찬 경위는 전승으로만 전한다. 현장은 『대비바사론』 번역을 마친 뒤 두 게송을 지어 붙였는데, 거기서 이 논을 쿠샨의 카니슈카왕 시대 카슈미르의 결집과 연결했다.
佛涅槃後四百年迦膩色迦王贍部 召集五百應真士迦濕彌羅釋三藏
부처님 열반 후 사백 년, 섬부주의 가니색가왕이 오백 아라한을 불러 모아 가습미라에서 삼장을 해석했다.
『바수반두법사전』은 다른 전승을 전한다. 가다연니자가 계빈국(카슈미르)에서 오백 아라한 · 오백 보살과 함께 『발지론』을 짓고, 이어 마명(馬鳴)을 불러 문장을 맡겨 12년 만에 『비바사』를 완성했으며, 그 분량이 「모두 백만 게(凡百萬偈)」였다고 한다(T50, 189a). 그리고 완성되자 이 논을 나라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게 돌에 새겨 금했다는 이야기, 아유타국의 한 법사가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며 12년 동안 카슈미르에서 그 내용을 외워 나왔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두 전승은 편찬의 주체도 시기도 다르다. 분명한 것은 『대비바사론』이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한 설일체유부, 곧 「비바사사」의 학설을 집대성한 책이며, 『구사론』이 「카슈미르의 논의」라 부른 것이 바로 이 전통이라는 점이다.
『대비바사론』의 편찬 시기를 카니슈카왕(대략 2세기)의 결집에 연결하는 것은 현장의 역후 게송과 『대당서역기』 계열의 전승이다. 근현대 연구는 『대비바사론』이 2세기 무렵 카슈미르에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경향이 있으나, 왕의 결집 이야기 자체는 전승으로 다룬다. 한역에는 현장 역 200권 외에 이보다 앞선 부분 역 『아비담비바사론』(부타발마 · 도태 역)이 남아 있다.
현장 역 『대비바사론』은 권1 끝의 역장 기록에 「현경 원년(656) 7월 27일 장안 대자은사 번경원에서」 이 권을 번역했다고 적혀 있다(T27, 4c). 같은 기록의 증의(證義) 명단에 「대자은사 사문 신태(大慈恩寺沙門神泰證義)」가 보인다. 뒤에서 볼 현장 문하의 『구사론』 주석가 신태가 이 번역에도 참여했다는 기록이다.
『구사론』의 바탕은 설일체유부의 일곱 근본 논서와 그 주석 『대비바사론』이다. 『대비바사론』이 수많은 이설을 모은 토론집이라면, 『구사론』은 그 토론을 600송의 체계로 다시 짠 교과서다 — 다만 그 교과서의 저자는 토론의 결론에 늘 동의하지는 않았다.
본송
諸一切種諸冥滅,拔眾生出生死泥, 敬禮如是如理師,對法藏論我當說。
모든 것에 대해 온갖 방식으로 모든 어둠을 멸하시고, 중생을 생사의 진흙에서 건져 내시는 그러한 이치대로 가르치는 스승께 머리 숙여 예경하고, 대법장론을 내가 설하리라.
술어 풀이
- 天親 · 世親천친 · 세친
- 범어 Vasubandhu. vasu는 신(神) 또는 재물, bandhu는 친족이다. 진제는 「婆藪譯為天。槃豆譯為親」이라 하여 「천친」으로 옮겼고, 현장 계통은 「세친」으로 옮겼다. 보광은 「옛 번역에서 천(天)이라 한 것은 잘못(舊譯為天,此翻謬矣)」이라 했다. 이 사이트는 인물탐구의 표기를 따라 「천친」으로 쓴다.
- 婆藪槃豆法師傳『바수반두법사전』
- 진제(499~569) 역으로 전하는 천친의 전기(T50 no.2049). 형제 셋의 이야기, 『비바사』의 성립, 『칠십진실론』, 『구사론』 저술, 대승으로의 전향을 담는다. 천친의 연대와 『구사론』 성립을 말하는 가장 이른 한역 자료다.
- 薩婆多部살바다부
- 설일체유부(Sarvāstivāda)의 음역. 『바수반두법사전』은 천친 삼형제가 모두 이 부파에서 출가했다고 전한다.
- 罽賓 · 迦濕彌羅계빈 · 가습미라
- 카슈미르. 진제 계통의 번역은 「계빈」, 현장 계통은 「가습미라」로 쓴다. 비바사사의 본거지다.
- 阿緰闍國아유사국
- 아요디야(Ayodhyā). 『바수반두법사전』에서 천친이 주로 활동하고 생을 마친 곳이다. 현장 계통의 기록에는 「아유타(阿踰陀)」로 나온다.
- 經部 · 經量部경부 · 경량부
- Sautrāntika. 논장보다 경장을 기준으로 삼은 부파 또는 학파. 『구사론』 장행에서 천친이 자주 그 입장에 선다.
- 眾賢중현
- Saṅghabhadra. 카슈미르의 유부 논사. 『구사론』을 반박해 『순정리론』 80권을 짓고, 다시 그것을 줄여 『현종론』 40권을 지었다.
- 長行장행
- 게송이 아닌 산문의 해설. 『구사론』은 게송(本頌)과 그 게송을 풀이하는 장행(論曰 이하)으로 이루어진다. 범어로는 bhāṣya(주석)라 불린다.
첫 게송 — 「이치대로 가르치는 스승」
『구사론』은 부처님께 대한 귀경으로 시작한다. 장행은 이 게송이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는 순서를 정확히 풀어 준다. 「모든 것에 대해 온갖 방식으로 모든 어둠을 멸했다」는 앞 구절은 부처님 자신의 완성(自利德), 「중생을 생사의 진흙에서 건져 낸다」는 뒷 구절은 남을 이롭게 하는 완성(利他德)이다. 그런데 그 이타의 방식이 특이하게 규정된다.
如理師言顯利他德,能方便說如理正教,從生死泥拔眾生出,不由威力與願神通。
「이치대로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말은 이타의 덕을 드러낸다. 방편으로 이치에 맞는 바른 가르침을 설하여 생사의 진흙에서 중생을 건져 내는 것이지, 위력이나 원력이나 신통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이 중생을 건지는 수단은 위력도 신통도 아닌 「이치에 맞는 가르침」이다. 이 한 구절에 아비달마의 정신이 들어 있다. 구원은 법을 바르게 가려 아는 데서 온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정밀하게 정리하는 것이 논서의 일이다. 첫 게송의 「여리사(如理師)」는 마지막 결론 게송의 「판단하는 바른 이치는 부처님께 있다(判法正理在牟尼)」와 서로 맞물려, 『구사론』 전체를 「이치(理)」라는 말로 감싼다.
보광은 첫 구절이 「모든 부처님(諸)」이라 하여 석가모니 한 분으로 좁히지 않은 까닭을, 다른 종교인들이 저마다 자기 스승을 일체지자라 부르므로 불필요한 시비를 피한 것으로 풀이했다(『구사론기』 권1, T41, 2c). 그러나 장행은 「諸言所表謂佛世尊」, 곧 「모든」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부처님이라고 바로 못박는다. 천친이 서두에서 「자신의 스승(自師)」의 높음을 드러내려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뜻이다.
『바수반두법사전』이 전하는 천친
『구사론』 성립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진제 역 『바수반두법사전』이다. 이 전기는 천친의 생애 전체를 다루지만, 여기서는 『구사론』의 성립에 닿는 줄거리만 따라간다. 생애 전반은 인물탐구 「천친보살」 페이지에 맡긴다.
전기에 따르면 북천축 부루사부라국(富婁沙富羅國, 간다라의 푸루샤푸라)의 국사인 교시가(憍尸迦) 성의 바라문에게 세 아들이 있었고, 셋 모두 이름이 「바수반두」였다. 맏아들은 설일체유부로 출가했다가 미륵에게 대승의 공관을 배워 무착(無著, Asaṅga)이 되었고, 막내는 유부에서 출가해 아라한이 되었다. 둘째가 이 전기의 주인공으로, 형제를 구분하기 위해 그만 「바수반두」로 불렸다고 한다. 그 역시 「살바다부에서 출가했고,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여러 전적에 두루 통했다(亦於薩婆多部出家。博學多聞遍通墳籍)」(T50, 188c).
이어서 전기는 이야기를 잠시 돌려, 『발지론』과 『비바사』가 카슈미르에서 성립하고 나라 밖 반출이 금지되었다가 아유사국의 법사 바사수발타라에 의해 바깥으로 전해진 경위를 길게 서술한다. 그다음 불멸 후 900년 무렵의 사건으로 넘어간다. 빈사하바사(頻闍訶婆娑)라는 외도가 상키야(僧佉論)를 익혀 아유사국에서 불교와 논쟁을 벌였는데, 천친을 비롯한 대논사들이 모두 다른 나라에 가 있어 천친의 스승 불타밀다라가 대신 나섰다가 패했다. 돌아온 천친은 분해하며 『칠십진실론』을 지어 상키야를 논파했고, 왕은 그 공으로 금을 내렸다.
그리고 『구사론』의 성립이 나온다.
法師爾後更成立正法先學毘婆沙義已通。後為眾人講毘婆沙義。一日講即造一偈攝一日所說義。刻赤銅葉以書此偈。摽置醉象頭下擊鼓宣令。誰人能破此偈義能破者當出。如此次第造六百餘偈攝毘婆沙義。盡一一皆爾。遂無人能破即是俱舍論偈也。
법사는 그 뒤 다시 정법을 세웠다. 먼저 비바사의 뜻을 배워 이미 통달했으므로, 뒤에 대중을 위해 비바사의 뜻을 강설했다. 하루 강설하면 곧 한 게송을 지어 그날 설한 뜻을 거두었다. 붉은 구리판에 이 게송을 새겨 술 취한 코끼리의 머리 아래 내걸고 북을 쳐 알리기를, 「누구든 이 게송의 뜻을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은 나오라」 하였다. 이렇게 차례로 600여 게송을 지어 비바사의 뜻을 거두었는데, 하나하나 모두 그러했으나 끝내 깨뜨린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 곧 『구사론』의 게송이다.
게송이 완성되자 천친은 금 오십 근과 함께 이 게송을 카슈미르의 비바사사들에게 보냈다.
偈訖後以五十斤金并此偈寄與罽賓諸毘婆沙師。彼見聞大歡喜謂我正法已廣弘宣。但偈語玄深不能盡解。又以五十斤金足前五十為百斤金餉法師。乞法師為作長行解此偈義。法師即作長行解偈。立薩婆多義隨有僻處以經部義破之。名為阿毘達磨俱舍論。論成後寄與罽賓諸師。彼見其所執義壞各生憂苦。
게송이 끝난 뒤 금 오십 근과 함께 이 게송을 계빈의 비바사사들에게 보냈다. 그들은 보고 듣고 크게 기뻐하며 「우리의 정법이 이미 널리 펴졌다」고 하였다. 다만 게송의 말이 그윽하고 깊어 다 풀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금 오십 근을 앞의 오십 근에 보태 백 근의 금을 법사에게 보내며, 장행을 지어 이 게송의 뜻을 풀어 달라고 청했다. 법사는 곧 장행을 지어 게송을 풀었는데, 살바다부의 뜻을 세우되 치우친 곳이 있으면 그때마다 경부의 뜻으로 깨뜨렸다. 이것을 『아비달마구사론』이라 이름한다. 논이 완성된 뒤 계빈의 논사들에게 보내니, 그들은 자기들이 지닌 뜻이 무너진 것을 보고 저마다 근심하고 괴로워했다.
「살바다부의 뜻을 세우되 치우친 곳이 있으면 경부의 뜻으로 깨뜨렸다(立薩婆多義隨有僻處以經部義破之)」 — 이 한 문장이 『구사론』의 성격에 대한 가장 오래된 규정이다. 게송은 유부의 학설을 압축했고, 장행은 그것을 해설하면서 동시에 비판했다. 카슈미르의 비바사사들은 게송을 받고 기뻐했다가, 장행을 받고 괴로워했다.
반박과 대결 — 중현과 「수실론」
전기는 이어서 『구사론』이 불러온 반발을 두 갈래로 전한다. 하나는 문법학자의 반박이다. 새로 왕위에 오른 신일왕(新日王)의 매부인 바라문 바수라다(婆修羅多)가 『구사론』의 문구가 문법서(毘伽羅論)에 어긋난다고 공격했고, 천친은 오히려 그 문법서를 논파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가 유부 논사의 반박이다.
此外道慚忿欲伏法師。遣人往天竺請僧伽紱陀羅法師。來阿緰闍國造論破俱舍論。此法師至即造兩論。一光三摩耶論有一萬偈。止述毘婆沙義。三摩耶譯為義類。二隨實論有十二萬偈。救毘婆沙義破俱舍論。論成後呼天親更共面論決之。天親知其雖破不能壞俱舍義。不復將彼面共論決。
이 외도가 부끄럽고 분하여 법사를 꺾으려고, 사람을 천축으로 보내 승가발타라 법사를 청해 아유사국에 와서 논을 지어 『구사론』을 깨뜨리게 했다. 이 법사가 와서 곧 두 논을 지었다. 하나는 『광삼마야론』으로 1만 게인데, 비바사의 뜻만을 서술했다. 삼마야는 의류(義類)로 옮긴다. 둘째는 『수실론』으로 12만 게인데, 비바사의 뜻을 구하고 『구사론』을 깨뜨렸다. 논이 완성된 뒤 천친을 불러 다시 마주하여 결판을 내자고 하였다. 천친은 그가 비록 깨뜨렸으나 구사의 뜻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음을 알았으므로, 다시 그와 마주하여 결판을 내지 않았다.
「승가발타라(僧伽紱陀羅)」는 Saṅghabhadra의 음역으로, 현장 계통의 「중현(眾賢)」과 같은 이름이다. 『수실론(隨實論)』은 「실(實)에 따르는 논」이라는 뜻이고, 현장 역의 제목 『순정리론(順正理論)』 — 「바른 이치에 따르는 논」 — 과 뜻이 통한다. 『광삼마야론』은 비바사의 뜻만을 서술했다고 하니, 중현이 『순정리론』을 줄여 유부의 뜻을 드러낸 『현종론(顯宗論)』과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전기가 전하는 분량(1만 게, 12만 게)은 현존 한역의 권수와 그대로 맞대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친은 대면 논쟁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나는 이제 늙었으니 그대 뜻대로 하라. 나는 예전에 논을 지어 비바사의 뜻을 깨뜨렸으나, 그대들과 마주하여 결판을 내지는 않았다. 그대가 이제 논을 지었는데 어찌 나를 부를 필요가 있는가.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그 옳고 그름을 알 것이다.」(「有智之人。自當知其是非」, 같은 곳)
현장 계통의 기록은 같은 사건을 조금 다르게 전한다. 법보의 『구사론소』는 중현이 『순정리론』을 지어 처음에는 『구사박론(俱舍雹論)』 — 「구사를 우박처럼 때리는 논」 — 이라 이름했는데, 천친이 이를 보고 이치가 있다고 여겨 『순정리론』으로 이름을 고쳐 주었다고 전한다.
又正理破此名《俱舍雹》,眾賢論師欲定宗趣,菩薩能仁避而不對。眾賢寄盡謝過,并附《俱舍雹》屈菩薩,評定云:若其無理,請便火焚。若有行當,願為流傳。論主披檢將為有理,改《俱舍雹》名《順正理》。准此,菩薩豈有偏執?故知此中理長為是,非定一宗。
또 『정리론』은 이것을 깨뜨려 이름을 『구사박』이라 했다. 중현 논사가 종지를 확정하려 했으나 보살은 너그러이 피하고 마주하지 않았다. 중현은 죽음에 임해 허물을 사과하고 『구사박』을 붙여 보살에게 굽히며 평정을 청하기를, 「만약 이치가 없다면 불태워 주시고, 마땅한 데가 있다면 널리 전해 주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논주는 펼쳐 살펴보고 이치가 있다고 여겨 『구사박』을 『순정리』로 이름을 고쳤다. 이로 보건대 보살에게 어찌 치우친 집착이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여기서는 이치가 뛰어난 것을 옳다고 했을 뿐 한 종(宗)으로 정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자은사삼장법사전』도 현장이 인도에서 들은 이야기로, 중현이 12년 동안 깊이 생각해 『구사박론』 2만 5천 송을 짓고 천친과 대면해 옳고 그름을 가리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며, 천친이 뒤에 그 논을 보고 「그 사유의 힘이 비바사의 대중에 못지않다」고 감탄하며 「내 뜻에 크게 따랐으니 『순정리론』이라 이름함이 마땅하다」고 했다고 전한다(『대자은사삼장법사전』 권2, T50, 232c~233a). 두 전승은 결말이 다르다. 『바수반두법사전』에서 천친은 끝내 맞서지 않고 판단을 「지혜 있는 사람」에게 맡겼고, 현장 계통의 전승에서 천친은 적수의 논에 새 이름을 주어 그 가치를 인정했다.
보광 · 법보가 전하는 또 하나의 성립 이야기
현장 문하의 주석가들은 『바수반두법사전』과는 다른 성립 이야기를 전한다. 보광의 『구사론기』 권1이 가장 자세하다.
世親論主,健馱羅國人也。本於說一切有部出家,因即受持彼部三藏。後學經部,情謂為真,於本所學時懷取捨。然更欲往迦濕彌羅國研覈有部考定是非,恐彼諸師情懷忌憚,遂改本名潛往尋究。時經四載,數以經部異義難破說一切有部宗。
세친 논주는 건타라국 사람이다. 본래 설일체유부에서 출가하여 그 부파의 삼장을 받아 지녔다. 뒤에 경부를 배워 마음으로 참되다고 여기고, 본래 배운 것에 대해 때때로 취하고 버리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가습미라국에 가서 유부를 깊이 따져 옳고 그름을 정하고자 했는데, 그곳 논사들이 꺼릴까 염려하여 본래 이름을 바꾸고 몰래 가서 탐구했다. 4년이 지나는 동안 여러 번 경부의 다른 뜻으로 설일체유부의 종지를 논란하여 깨뜨렸다.
그때 중현의 스승인 아라한 「새건지라(塞建地羅)」, 곧 「오입(悟入)」가 그 비범함을 이상히 여겨 선정에 들어 살펴보고 그가 세친임을 알았다. 오입은 몰래 「대중 가운데 아직 욕망을 떠나지 못한 이가 있어 그대를 해칠까 두려우니 서둘러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일렀고, 세친은 돌아가 곧 『구사론』 600행의 게송을 지어 카슈미르로 보냈다. 왕과 승려들은 크게 기뻐해 깃발과 꽃과 음악으로 국경까지 나와 맞이하고, 게송을 향상(香象)에 실어 모셔 갔다. 그러자 오입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此非專弘汝義,何事須歡?頌有傳說之言,似相調耳。如其不信,請釋即知。
이것은 오로지 그대들의 뜻을 펴는 것이 아닌데 무슨 일로 기뻐하는가. 게송에 「전한다」는 말이 있으니, 놀리는 것 같을 뿐이다. 믿지 못하겠거든 해석을 청해 보면 곧 알 것이다.
왕과 승려들이 사신을 보내 해석을 청하자 세친은 「무릇 8천 송(凡八千頌)」의 해석을 지어 보냈고, 과연 오입의 말대로였다. 보광은 이야기를 이렇게 맺는다.
論主意朋經部,於本處學心生疑惑。所以於此《俱舍論》頌文往往置斯傳說之語,顯非親聞也。
논주의 뜻은 경부와 한편이었고, 본래 배운 곳의 학설에 마음으로 의혹이 일었다. 그래서 이 『구사론』의 게송 글에 왕왕 「전한다」는 말을 둔 것이니, 직접 들은 것(=자기 견해)이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
법보의 『구사론소』 권1도 거의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T41, 457c~458a). 다만 맺음은 다르다. 보광이 「논주의 뜻은 경부와 한편」이라 한 자리에서, 법보는 「세친 논주의 뜻에는 편을 드는 집착이 없다(世親論主意無朋執)」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 역 본송을 보면 「傳說」이라는 말이 게송 안에 몇 군데 들어 있다. 계품의 「空界謂竅隙,傳說是明闇」(공계는 구멍과 틈이니, 밝음과 어둠이라고 전한다, 권1, T29, 6c), 「傳說不能觀,彼障諸色故」(가려진 색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권2, T29, 10c), 근품 첫 게송의 「傳說五於四」(다섯 근은 네 가지 일에 대해 — 라고 전한다, 권3, T29, 13b)가 그것이다. 이 표현들이 정확히 어떤 학설에 거리를 두는지는 해당 편에서 원문과 함께 다시 읽는다.
- 아유사국에서 비바사를 강의하며 하루 한 게송씩 600여 게송을 지어 구리판에 새겨 내걸음
- 금 50근과 함께 계빈의 비바사사에게 보냄
- 비바사사들이 기뻐하고 금 100근으로 장행을 청함
- 「立薩婆多義隨有僻處以經部義破之」
- 승가발타라(중현)가 『광삼마야론』 · 『수실론』을 지어 대면을 청하나 천친은 응하지 않음
- 이름을 바꾸고 카슈미르에 4년 머물며 경부의 뜻으로 유부를 논란
- 오입(중현의 스승)이 알아보고 귀국을 권함
- 본국에서 600행 게송을 지어 카슈미르로 보냄
- 왕과 승려들이 환영, 오입이 「頌有傳說之言」을 지적
- 해석 8천 송을 지어 보냄
- 중현이 『구사박』을 짓고, 천친이 『순정리』로 이름을 고쳐 줌
- 게송이 먼저, 장행이 나중
- 카슈미르의 요청으로 장행이 지어짐
- 장행에서 유부를 경부의 뜻으로 비판함
천친의 연대
천친이 언제 살았는가는 인도 불교사의 오랜 난제다. 한역 자료 안에서도 단서가 엇갈린다. 『바수반두법사전』은 『구사론』 이야기의 앞부분 사건을 「불멸 후 900년 중(佛滅後九百年中)」에 두고(T50, 189b), 진제 역 『구사석론』의 서문은 「불멸 후 1100여 년(佛滅度後千一百餘年)」에 출가 보살 바수반두가 있었다고 적는다(T29, 161a). 법보는 결론 게송을 풀이하면서 「논주가 논을 지을 때는 불멸 후 900년 중(論主造論之時,佛涅槃後九百年中)」이라 했다(T41, 803a). 불멸 연대를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이 숫자들은 서력으로 크게 달라진다.
전기에는 왕의 이름도 나온다. 아유사국의 왕 「정근일(正勤日)」과 그 태자 「신일(新日)」이다. 범어로 Vikramāditya와 Bālāditya에 해당하는 이 이름들을 굽타 왕조의 어느 왕에게 맞추느냐가 근현대 연대 논쟁의 한 축이었다. 오늘날 학계는 대체로 천친의 활동기를 4~5세기로 본다. 서강도 이 범위로만 적는다.
천친의 연대에 관해서는 4세기설과 5세기설이 오래 맞서 왔고, 『구사론』의 저자와 유식 논서들의 저자가 같은 사람인가를 두고 두 사람의 천친을 상정하는 학설(이른바 「두 세친」설)도 제기된 바 있다. 『바수반두법사전』 자체는 한 사람의 천친이 『구사론』을 지은 뒤 형 무착의 권유로 대승으로 돌아섰다고 전한다. 이 논쟁의 상세는 인물탐구 「천친보살」 페이지의 몫으로 남긴다.
전기의 마지막 대목은 『구사론』 이후의 천친을 짧게 전한다. 그는 대승을 믿지 않고 비방했으나, 형 무착이 병을 핑계로 불러 대승의 요의를 설해 주자 깨닫고 크게 뉘우쳤다. 혀를 잘라 죄를 씻겠다고 하자 무착은 「그 혀로 대승을 잘 해설하는 것이 죄를 없애는 방편」이라 일렀다. 무착이 세상을 떠난 뒤 천친은 『유식』을 비롯한 대승 논서를 지었고, 아유사국에서 여든 살에 생을 마쳤다고 한다(「於阿緰闍國捨命年終八十」, T50, 191a). 『구사론』은 그러니까 유부에서 출가한 학승이 유부의 학설을 가장 철저하게 정리하고, 그 정리 속에서 이미 유부를 넘어서고 있던 시점의 작품이다.
『구사론』의 성립 전승은 두 갈래다 — 아유사국의 강의에서 나온 게송(『바수반두법사전』)과, 카슈미르 잠입 뒤 본국에서 지은 게송(보광 · 법보). 두 전승은 세부가 다르지만, 게송이 먼저 지어져 카슈미르로 보내졌고 그곳의 요청으로 장행이 지어졌으며, 장행이 유부를 경량부의 입장에서 비판했다는 골격은 같다.
본송
有漏無漏法,除道餘有為, 於彼漏隨增,故說名有漏。 無漏謂道諦,及三種無為, 謂虛空二滅,此中空無礙。
법에는 유루와 무루가 있다. 도제를 제외한 나머지 유위법은 그 안에서 번뇌(漏)가 따라 늘어나므로 유루라 한다. 무루는 도제와 세 가지 무위를 말하니, 허공과 두 가지 멸이다. 이 가운데 허공은 걸림이 없는 것이다.
술어 풀이
- 有漏 · 無漏유루 · 무루
- sāsrava · anāsrava. 루(漏 āsrava)는 번뇌다. 『구사론』은 유루를 「번뇌가 그 안에서 따라 늘어나는(隨增) 법」으로 정의한다. 멸제와 도제를 대상으로 번뇌가 일어나도 그 대상 안에서 번뇌가 자라나지는 않으므로 그것들은 무루다.
- 有為 · 無為유위 · 무위
- saṃskṛta · asaṃskṛta. 여러 인연이 모여 지어진 법이 유위, 지어지지 않은 법이 무위다. 『구사론』의 무위는 허공 · 택멸 · 비택멸의 셋이다.
- 品품
- 범어 kośasthāna(장의 자리)에 해당하는 큰 단원. 『구사론』은 아홉 품으로 되어 있고, 그 가운데 앞의 여덟 품에만 본송이 있다.
- 本頌본송
- 『구사론』의 게송 부분(kārikā). 현장은 따로 『아비달마구사론본송』 1권(T29 no.1560)으로도 옮겼다.
- 三分삼분 · 서분 · 정종분 · 유통분
- 경론을 셋으로 나누어 읽는 동아시아 주석의 방법. 보광은 『구사론』의 삼분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본 설을 함께 소개한다.
- 三法印삼법인
- 제행무상 · 제법무아 · 열반적정. 보광은 인도의 논서가 모두 법인을 풀이한다고 하고, 『구사론』은 그 가운데 「제법무아」를 풀이하여 셋을 함께 밝힌 논이라 했다.
- 事 · 理사 · 이
- 보광의 품 차례 풀이에서 쓰는 짝. 앞 여덟 품은 법의 「사(事)」, 곧 개별 법들의 모습과 작용을 밝히고, 마지막 파집아품은 「이(理)」, 곧 무아의 도리를 밝힌다.
앞 여덟 품의 목차가 된 세 게송
위의 본송은 계품의 본론이 시작되는 첫 게송이지만, 보광은 이 세 게송(위의 둘과 이어지는 「擇滅謂離繫…」 한 게송)을 『구사론』 앞 여덟 품 전체의 목차로 읽었다.
此三行頌,標前八品名,總標綱要分。初一句,總明有漏、無漏法,標〈界〉、〈根〉二品;次三句,別明有漏法,標〈世〉、〈業〉、〈隨眠〉三;後兩行頌,別明無漏法,標〈賢聖〉、〈智〉、〈定〉三品。
이 세 행의 게송은 앞 여덟 품의 이름을 내건 것으로, 「강요를 총괄해 내건 부분」이다. 첫 한 구절은 유루법 · 무루법을 총괄해 밝히니 계품 · 근품 두 품을 내건 것이고, 다음 세 구절은 유루법을 따로 밝히니 세품 · 업품 · 수면품 셋을 내건 것이며, 뒤의 두 행은 무루법을 따로 밝히니 현성품 · 지품 · 정품 세 품을 내건 것이다.
「유루와 무루」라는 첫 구절이 전체를 아우르고, 「도제를 뺀 나머지 유위」로 시작하는 유루의 정의가 세간 · 업 · 번뇌의 세 품으로, 「도제와 세 가지 무위」로 시작하는 무루의 정의가 성자 · 지혜 · 선정의 세 품으로 펼쳐진다는 읽기다. 보광은 곧이어 이 세 게송은 계 · 근 두 품만 가리킨다는 설, 계품만 가리킨다는 설도 함께 들어 두었다. 어느 쪽이든 『구사론』이 첫머리의 법 분류에서 이미 전체의 골격을 내보인다는 점은 분명하다.
보광이 풀이한 품의 차례
보광은 『구사론기』 첫머리에서 「품의 앞뒤를 밝힌다(明品之前後)」는 항목을 따로 세워, 아홉 품이 왜 이 순서로 놓였는지를 설명했다. 『구사론』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나은 안내는 없다. 원문을 차례로 읽는다.
먼저 전체를 둘로 나눈다.
此論一部總有九品,釋佛經中諸法無我。前八品明諸法事,雖亦明理,從多分說,或非正明。後一品釋無我理,雖亦明事,從多分說,或非正明。事麁先說,理細後明。
이 논 한 부는 모두 아홉 품으로, 부처님 경전 가운데 「제법무아」를 풀이한 것이다. 앞의 여덟 품은 여러 법의 「사(事)」를 밝힌다 — 이(理)도 밝히기는 하지만 많은 쪽을 따라 말한 것이고, 정면으로 밝힌 것은 아니다. 뒤의 한 품은 무아의 「이(理)」를 풀이한다 — 사도 밝히기는 하지만 많은 쪽을 따라 말한 것이고, 정면으로 밝힌 것은 아니다. 사는 거칠므로 먼저 설하고, 이는 미세하므로 뒤에 밝힌다.
다음으로 앞 여덟 품을 「총」과 「별」로 나눈다.
就前八品中,初二品總明有漏、無漏,後六品別明有漏、無漏。總是其本所以先明,依總釋別所以後說。……就總明中,〈界品〉明諸法體,雖亦明用,從多分說,或非正明。〈根品〉明諸法用,雖亦明體,從多分說,或非正明。體是其本故先明界,依體起用故次明根。
앞 여덟 품 가운데 처음 두 품은 유루와 무루를 총괄해 밝히고, 뒤 여섯 품은 유루와 무루를 따로 밝힌다. 총괄이 근본이므로 먼저 밝히고, 총괄에 의지해 따로 풀이하므로 뒤에 설한다. …… 총괄해 밝히는 가운데, 계품은 여러 법의 본체(體)를 밝히고, 근품은 여러 법의 작용(用)을 밝힌다. 본체가 근본이므로 계품을 먼저 밝히고, 본체에 의지해 작용이 일어나므로 다음에 근품을 밝힌다.
그리고 뒤 여섯 품을 유루의 세 품과 무루의 세 품으로 나누고, 각각을 「과 · 인 · 연」의 순서로 정돈한다.
就別明有漏中有其三品,謂世、業、隨眠,約果、因、緣三以明前後。〈世品〉明有漏果,相麁易厭,所以先明。……〈業品〉明感果之因,果必由因而起,必其力勝,所以次說。……〈隨眠品〉明業之緣,業自不能感果,必藉其緣。隨眠生果稍劣,所以後辨。
유루를 따로 밝히는 데 세 품이 있으니 세품 · 업품 · 수면품이다. 과(果) · 인(因) · 연(緣)의 셋으로 앞뒤를 밝힌다. 세품은 유루의 과보를 밝히는데, 그 모습이 거칠어 싫어하기 쉬우므로 먼저 밝힌다. …… 업품은 과보를 부르는 원인을 밝힌다. 과보는 반드시 원인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니 그 힘이 뛰어나므로 다음에 설한다. …… 수면품은 업의 조건(緣)을 밝힌다. 업은 스스로 과보를 부를 수 없고 반드시 그 조건을 빌린다. 수면이 과보를 낳는 힘은 다소 약하므로 뒤에 가린다.
就別明無漏法中,有其三品,謂賢聖、智、定,亦約果、因、緣三以辨前後。〈賢聖品〉明無漏果,相顯易欣故,所以先說。……〈智品〉明證果因,果必藉因,又證果強,所以次說。……〈定品〉明智之緣,智獨不能證果,必依定緣,定望彼果其力稍劣,所以後說。
무루법을 따로 밝히는 데 세 품이 있으니 현성품 · 지품 · 정품이다. 이 역시 과 · 인 · 연의 셋으로 앞뒤를 가린다. 현성품은 무루의 과보를 밝히는데, 그 모습이 드러나 기뻐하기 쉬우므로 먼저 설한다. …… 지품은 과를 증득하는 원인을 밝힌다. 과는 반드시 원인을 빌리고, 또 과를 증득하는 힘이 강하므로 다음에 설한다. …… 정품은 지혜의 조건을 밝힌다. 지혜 홀로는 과를 증득할 수 없고 반드시 선정이라는 조건에 의지한다. 선정은 저 과에 대해 그 힘이 다소 약하므로 뒤에 설한다.
유루를 먼저, 무루를 뒤에 두는 이유로 보광은 세 가지 풀이를 함께 든다. 유루는 거칠고 무루는 미세하므로 — 사성제에서 고 · 집을 먼저, 멸 · 도를 뒤에 말하는 것과 같다. 유루는 싫어할 것이므로 먼저 밝히고, 싫어하고 나면 기뻐하게 하려고 무루를 뒤에 설한다. 유루는 시작 없는 옛날부터 일어났으므로 먼저, 무루는 새로 생기므로 뒤에 둔다(T41, 1c~2a).
이 구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유루와 무루의 두 계열이 모두 「결과를 먼저, 원인을 다음, 조건을 마지막」으로 놓였다는 점이다. 수행자가 먼저 보는 것은 결과다. 윤회하는 세계(세품)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다음 그것을 만든 업(업품), 그 업을 움직이는 번뇌(수면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자의 길도 그렇다. 성자의 계위(현성품)를 먼저 보고, 그 계위를 증득하는 지혜(지품), 그 지혜를 받쳐 주는 선정(정품)으로 내려간다. 고 · 집 · 멸 · 도의 사성제 순서 — 결과(고)를 먼저 보고 원인(집)을 찾는 순서 — 가 『구사론』 전체의 배열 원리로 확장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보광 자신도 유루를 먼저 두는 까닭을 「고 · 집을 먼저, 멸 · 도를 뒤에 밝히는 것과 같다」고 견주었다.
「제법무아」를 풀이한 논
보광의 품 차례 풀이는 『구사론』 전체를 「제법무아를 풀이한 논」으로 규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 근거는 『구사론기』가 본문 풀이에 들어가며 맨 먼저 세운 「경에 의거해 논을 지음(依經造論)」 항목이다. 보광에 따르면 인도에서 지은 논은 모두 부처님의 경을 풀이하는 것이고, 경의 기준은 삼법인이다 — 「이 법인에 따르면 곧 부처님의 경이고, 이 법인에 어긋나면 곧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若順此印即是佛經,若違此印即非佛說)」(T41, 1b). 그리고 논마다 풀이하는 법인이 다른데, 『오온론』은 제행무상만을, 『열반론』은 열반적정만을 풀이하는 반면, 『구사론』은 제법무아를 풀이하여 셋을 함께 밝힌다. 「제행무상은 유위만을, 열반적정은 무위만을 밝히지만, 제법무아는 유위와 무위에 두루 통하므로(諸法無我通明有為無為)」, 이 논이 다루지 않는 것이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앞 여덟 품의 방대한 법 분석은 모두 마지막 파집아품의 결론 — 「나」라는 실체는 없고 오온의 상속이 있을 뿐 — 을 위한 준비가 된다. 『대비바사론』도 가다연니자가 『발지론』을 지은 세 가지 인연 가운데 하나로 「나에 대한 헤아림을 막기 위해서(遮計我故)」를 들고, 그가 지은 아비달마는 「일찍이 보특가라가 있다고 말한 적이 없고, 늘 모든 행이 공하여 나가 없음을 드러낸다」고 했다(『대비바사론』 권1, T27, 2c). 아비달마의 법 분석은 처음부터 무아의 논증이었다.
서분 · 정종분 · 유통분 — 파집아품은 어디에 속하는가
보광은 동아시아 주석의 관례에 따라 『구사론』을 서분 · 정종분 · 유통분으로 나누는데, 그 나누는 방법에 세 가지 설이 있다고 소개한다(T41, 2a~2b).
첫째 설: 첫머리의 세 게송(귀경, 대법과 대법장의 뜻, 대법을 설한 까닭)이 서분이고, 「何法名為」 이하 파집아품까지가 정종분이며, 파집아품 끝의 「已善說此」 이하가 유통분이다. 이 논은 경의 제법무아를 풀이한 것이므로 파집아품도 정종분에 속한다.
둘째 설: 서분은 같고, 정종분은 정품까지다. 정품 끝 「前來分別」 이하 — 곧 결론 게송과 정법의 쇠퇴를 슬퍼하는 게송 — 부터가 유통분이고, 파집아품은 유통분에서 일어난 물음을 이어받아 덧붙인 것이므로 역시 유통분에 넣는다.
셋째 설: 앞 여덟 품과 파집아품이 각각 따로 서분 · 정종분 · 유통분을 갖춘다. 앞 여덟 품은 법이 실재함을 밝혀 「덜어내는 집착(損減執)」을 없애고, 파집아품은 무아를 밝혀 「보태는 집착(增益執)」을 없앤다. 파집아품에서는 첫 두 구절 「越此依餘,豈無解脫」(이것을 넘어 다른 데 의지해서는 해탈이 없겠는가)가 서분, 「理必無有」 이하가 정종분, 「已善說此」 이하가 유통분이다.
이 세 설은 결국 하나의 물음 — 파집아품은 『구사론』의 본론인가, 덧붙인 글인가 — 을 둘러싼 것이다. 이 물음은 형식에서도 드러난다. 현장 역 본송 1권(T29 no.1560)에는 정품까지의 여덟 품만 실려 있고, 원휘는 「파아 한 품은 따로 바른 게송이 없으므로 여기서 논하지 않는다(〈破我〉一品,無別正頌,故此不論)」고 적었다(『구사론송소』 권1, T41, 816a). 파집아품은 장행만으로 된 독립 논문에 가깝다. 정품은 결론 게송과 정법의 쇠퇴를 슬퍼하는 세 게송으로 끝나고, 파집아품은 그 마지막 게송 「應求解脫勿放逸」(해탈을 구하고 게으르지 말라)을 이어받아 「이것을 넘어 다른 데서 해탈이 있겠는가」라고 묻는 데서 시작한다. 파집아품의 내용은 제七편 「「나」의 논파와 『구사론』의 자리」에서 읽는다.
파집아품이 본래 『구사론』의 일부로 지어졌는지, 뒤에 덧붙여진 독립 저작인지는 근현대 연구에서도 논의되어 왔다. 범본 『구사론석(Abhidharmakośabhāṣya)』에서도 이 품은 게송 없이 산문으로만 되어 있다. 현장 역 · 진제 역은 모두 이 품을 아홉째 품으로 포함한다(현장 역 「破執我品第九」, 진제 역 「破說我品第九」).
600송과 30권 — 품별 분량
『구사론』 본송의 게송 수를 흔히 「600송」이라 한다. 이 숫자는 전승과 판본 양쪽에서 확인된다. 『바수반두법사전』은 「600여 게송(六百餘偈)」(T50, 190b), 보광은 「600행의 게송(六百行頌)」(T41, 11b)이라 전한다. 현장 역 본송(T29 no.1560)에는 품마다 게송 수가 적혀 있는데, 계품 44송 · 근품 74송 · 세품 99송 · 업품 131송 · 수면품 69송 · 현성품 83송 · 지품 61송 · 정품 39송으로, 합하면 정확히 600송이다. 본송 정품의 맨 끝에는 결론 게송 「迦濕彌羅議理成」과 그 뒤의 세 게송이 실려 있다. 이 밖에 파집아품 장행 안에 인용 · 요약의 게송이 들어 있고, 논 전체의 맨 끝(권30)에 맺음 게송이 있다.
이 품별 게송 수에는 『구사론』의 무게 중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가장 긴 품은 업품(131송)이고, 다음이 세품(99송)이다. 윤회하는 세계와 그 원인인 업 — 이 둘이 본송의 3분의 1을 넘는다.
현장 역 장행 30권의 권 배분도 품의 무게를 보여 준다. 근품(권3~7)과 업품(권13~18)이 각각 5권 · 6권을 차지하고, 파집아품은 권29 후반에서 권30까지다. 진제 역 22권은 같은 아홉 품을 더 압축해 배분한다.
본송의 게송 수 600은 현장 역 본송의 품별 표기를 합한 것이다. 전산 본문에서 구절 단위로 세어 보면 계품 · 세품 · 정품에서 표기와 몇 송의 차이가 나는데, 이는 게송의 행 나눔 방식(4구 1송과 그 밖의 형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범본의 게송 수와 번호 체계는 교정본마다 조금씩 다르다.
게송과 장행 — 두 겹의 책
『구사론』은 두 겹으로 된 책이다. 게송(kārikā)은 압축된 기억용 정형문이고, 장행(bhāṣya)은 그 게송을 풀어 논증하는 산문이다. 현장 역에서는 「頌曰」 뒤에 게송이, 「論曰」 뒤에 장행이 온다. 장행은 대개 「~은 무엇인가(何謂~)」라는 물음으로 게송을 불러내고, 게송을 구절마다 풀이한 뒤, 이설을 소개하고 반론과 재반론을 거쳐 결론으로 간다. 이 문답이 『구사론』의 진짜 몸통이다.
두 겹 사이에는 미묘한 간격이 있다. 게송은 대체로 유부의 정설을 그대로 압축한다. 그러나 장행은 그 정설을 해설하면서 「비바사사는 이렇게 말한다」와 「경부는 이렇게 말한다」를 나란히 놓고, 어느 쪽이 더 이치에 맞는지를 따진다. 그래서 같은 대목에서 게송은 유부를 말하고 장행은 경량부 편을 드는 일이 생긴다. 앞에서 본 「전한다(傳說)」라는 말은 게송 안에서 그 간격을 미리 표시한 장치였다.
장행에서 천친이 경량부의 손을 들어 주는 대목은 여러 곳이다. 몇 가지를 원문으로 본다.
근품에서 「득(得 prāpti)」과 「비득(非得)」이 실재하는 법인가를 논할 때, 천친은 경량부의 입장 — 득은 실체가 아니라 상속 속의 종자(種子)가 손상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가명일 뿐 — 을 길게 서술한 뒤, 「비바사사는 이 둘이 모두 따로 실물로 있어 거짓이 아니라고 한다」고 대비시키고 이렇게 맺는다.
如是二途皆為善說。所以者何?不違理故、我所宗故。
이와 같이 두 길이 모두 잘 설한 것이다. 왜 그런가. 이치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고, 내가 종지로 삼는 바이기 때문이다.
보광은 이 짧은 평을 이렇게 읽었다. 「경부가 거짓이라고 설한 것은 이치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고, 설일체유부가 실재라고 설한 것은 내가 종지로 삼는 바이기 때문이다. 논주의 뜻이 경부와 한편이므로 이렇게 풀이한 것이다(經部說假,不違理故:亦說一切有部說實,我所宗故。論主意朋經部,故作斯解)」(『구사론기』 권4, T41, 87b). 「이치」는 경량부에, 「종지」는 유부에 — 이 짝이 『구사론』의 입장을 압축한다.
바로 이어지는 이생성(異生性)의 논의에서는 더 분명하다. 유부는 이생성(범부임)을 「성스러운 법을 얻지 못함(不獲聖法)」, 곧 비득이라는 실재하는 법으로 설명했다. 천친은 그 설명의 난점을 따진 뒤 「경부의 스승들이 말한 것이 좋다(如經部師,所說為善)」고 하고, 경부의 설 — 성스러운 법이 아직 생긴 적이 없는 상속의 특정한 상태를 이생성이라 한다 — 을 소개한다(『구사론』 권4, T29, 23c).
수면품에서 「수면(隨眠 anuśaya)」이 마음과 상응하는 법인가를 논할 때도 같다. 유부는 수면이 곧 번뇌 그 자체이고 마음과 상응하는 법이라 했다. 천친은 그 논거들을 하나씩 깨뜨리고 「그러나 경부의 스승들이 설한 것이 가장 좋다(然經部師所說最善)」고 하여, 수면은 번뇌가 잠든 상태, 곧 「현행하지 않는 종자가 따라붙어 있는 것」이라는 경부의 설을 택한다(『구사론』 권19, T29, 99a).
그리고 유부의 이름이 걸린 삼세실유(三世實有)의 논쟁에서 천친은 유부의 논거를 모두 반박한 뒤 이렇게까지 말한다.
是故此說一切有部,若說實有過去未來,於聖教中非為善說。
그러므로 이 설일체유부가 만약 과거와 미래가 실재한다고 말한다면, 성스러운 가르침 가운데서 잘 설한 것이 아니다.
「설일체유부」라는 이름 자체가 「일체가 있다고 설하는 부파」, 곧 과거 · 현재 · 미래의 법이 모두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부파라는 뜻이다. 천친은 장행에서 바로 그 이름의 근거를 「잘 설한 것이 아니다」라고 평한 것이다. 이 논쟁의 전모는 제五편 「번뇌와 삼세실유」에서 원문 순서대로 읽는다.
『구사론』의 아홉 품은 「법의 사(事) 여덟 품 + 무아의 이(理) 한 품」으로 나뉘고, 앞 여덟 품은 「총괄 두 품(체 · 용) + 유루 세 품(과 · 인 · 연) + 무루 세 품(과 · 인 · 연)」으로 짜여 있다. 이 질서 위에서 게송은 유부의 정설을 압축하고, 장행은 그 정설을 경량부의 눈으로 다시 따진다.
본송
迦濕彌羅議理成,我多依彼釋對法, 少有貶量為我失,判法正理在牟尼。
가습미라(카슈미르)의 논의는 이치를 잘 이루었으니, 나는 대부분 그것에 의지해 대법을 풀었다. 조금이라도 깎아내려 헤아린 데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허물이다. 법을 판단하는 바른 이치는 모니(牟尼)께 있다.
술어 풀이
- 迦濕彌羅가습미라
- 카슈미르(Kaśmīra). 『대비바사론』을 편찬했다고 전하는 설일체유부의 중심지. 『구사론』 장행은 「가습미라국 비바사사(迦濕彌羅國毘婆沙師)」라는 말로 이곳의 정통 유부를 가리킨다.
- 議理成의리성 · 논의가 이치를 이룸
- 장행은 「아비달마의 이치를 논의하여 잘 성립시켰다(議阿毘達磨理善成立)」로 푼다. 진제 역은 「罽賓毘婆沙理成」으로 옮겼다.
- 貶量폄량 · 깎아내려 헤아림
- 비바사사의 학설을 낮추어 평가하거나 고쳐 헤아린 것. 진제 역은 이 자리를 「正法偏執是我失」(정법을 치우치게 집착한 것이 있다면 나의 허물이다)로 옮겼다.
- 牟尼모니
- 범어 muni, 성자 · 침묵하는 이. 석가모니(Śākyamuni)의 모니다. 장행은 「세존과 여러 여래의 대성제자」로 풀이한다.
- 正法 · 教 · 證정법 · 교 · 증
- 결론 게송 바로 앞에서 『구사론』은 정법의 본체를 교(가르침 — 경 · 율 · 논)와 증(깨달음 — 삼승의 보리분법)의 둘로 정의한다. 교를 지니고 설하는 이가 있으면 교법이, 수행하는 이가 있으면 증법이 세간에 머문다.
- 顯宗 · 密宗현종 · 밀종
- 원휘가 『구사론』의 종지를 두 겹으로 정리한 말. 드러난 종지는 설일체유부, 숨은 종지는 경량부라는 것이다. 여기의 「밀종」은 밀교와 관계없는 말이다.
- 理長為宗이장위종 · 이치가 뛰어난 것을 종지로 삼음
- 주석가들이 『구사론』의 입장을 평한 말의 취지. 보광은 「論師據理為宗」(이치에 의거해 종지로 삼았다), 법보는 「唯以理勝為宗」 「理長為是,非定一宗」이라 했다.
결론 게송의 자리 — 정법은 얼마나 머무는가
이 게송은 정품 끝, 곧 본송 600송이 끝나 가는 자리에 있다. 바로 앞에서 논은 지금까지의 모든 분별이 「세존의 정법을 널리 지니기 위한 것(皆為弘持世尊正法)」이었다고 돌아보고, 「무엇을 정법이라 하며, 얼마나 머무는가」를 묻는다.
世尊正法體有二種,一教、二證。教謂契經、調伏、對法,證謂三乘菩提分法。有能受持及正說者,佛正教法便住世間。有能依教正修行者,佛正證法便住世間。
세존의 정법은 그 본체가 두 가지니, 하나는 교(教)이고 둘은 증(證)이다. 교란 계경 · 조복 · 대법이고, 증이란 삼승의 보리분법이다. 받아 지니고 바르게 설하는 이가 있으면 부처님의 바른 교법이 세간에 머물고, 가르침에 의지해 바르게 수행하는 이가 있으면 부처님의 바른 증법이 세간에 머문다.
정법이 머무는 시간은 책의 운명이 아니라 사람의 운명이다. 지니는 이, 설하는 이, 행하는 이 — 이 세 사람이 있는 동안 정법이 머문다. 그리고 이 정법의 교(教) 가운데 「대법」, 곧 아비달마가 들어 있다. 그래서 논은 곧바로 묻는다. 「이 논은 아비달마에 의지하고 아비달마를 거두어들인 것인데, 어떤 이치에 의거해 대법을 풀었는가(此論依攝阿毘達磨,為依何理釋對法耶)」. 결론 게송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구사론』은 첫머리에서 대법을 정의하고 스스로를 대법의 「장」이라 했는데, 마지막에 이르러 그 대법을 어떤 해석 전통에 따라 풀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처음과 끝이 이렇게 맞물린다.
「대부분」과 「조금」 — 장행의 풀이
장행은 게송을 짧게 푼다.
迦濕彌羅國毘婆沙師議阿毘達磨理善成立,我多依彼釋對法宗,少有貶量為我過失。判法正理唯在世尊,及諸如來大聖弟子。
가습미라국 비바사사들은 아비달마의 이치를 논의하여 잘 성립시켰다. 나는 대부분 그들에 의지해 대법의 종지를 풀었으니, 조금이라도 깎아내려 헤아린 데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허물이다. 법을 판단하는 바른 이치는 오직 세존과 여러 여래의 대성제자에게 있다.
세 마디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첫째, 「대부분 그것에 의지했다(多依彼)」. 『구사론』의 해석 기준은 카슈미르 비바사사의 학설, 곧 『대비바사론』의 정통 유부다. 이것은 『구사론』 전체의 형식과 일치한다. 아홉 품의 체계, 오위의 법 분류, 육인 · 사연 · 오과, 98수면, 사향사과 — 『구사론』이 세운 틀은 거의 모두 유부의 것이다.
둘째, 「조금 깎아내려 헤아린 데가 있다면 나의 허물(少有貶量為我失)」. 「대부분」이라는 말은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이기도 하다. 천친은 자신이 비바사사의 설을 고친 곳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책임을 스스로 진다. 법보는 이 「대부분(多)」이라는 말에 대해 「조금 다른 길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니, 형색 · 상색, 과거 · 미래, 있음 · 없음 등이다(多言,顯示少有異途,謂形色、像色,過去、未來,有、非有等)」라고 그 구체적인 대목을 들었다(『구사론소』 권29, T41, 802c). 형색(形色)이 실재하는가, 거울 속의 영상(像色)이 무엇인가, 과거와 미래가 실재하는가 — 모두 장행에서 천친이 유부와 다른 입장을 낸 쟁점들이다. 법보는 또 「허물」이라는 말을 「세존과 대성제자가 아니면서 함부로 깎아내려 헤아렸으므로 허물이 된다는 것이니, 논주의 겸손이다(論主謙也)」라고 풀이했다(T41, 802c~803a).
셋째, 「법을 판단하는 바른 이치는 모니께(判法正理在牟尼)」. 무엇이 옳은지를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권위는 비바사사에게도 천친 자신에게도 없고, 부처님과 그 대성제자에게 있다. 이 말은 겸손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입장 표명이다. 비바사사는 「대성제자」가 아니다. 법보는 이 대목에서 날카로운 지적을 남겼다.
准此中意,商略《婆沙》,存其《六足》及本論也。毘婆沙師,非是世尊及大聖弟子故。《六足》、《發智》是大弟子之所造,故不商略。
이 대목의 뜻에 따르면, 『비바사』는 따져 헤아리되 『육족론』과 본론(『발지론』)은 그대로 둔 것이다. 비바사사는 세존이나 대성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육족론』 · 『발지론』은 대제자가 지은 것이므로 따져 헤아리지 않았다.
법보의 읽기에 따르면, 천친이 「깎아내려 헤아린」 대상은 『대비바사론』의 해석이지, 사리자 · 목건련 · 가다연니자 같은 대제자가 지었다고 전하는 근본 논서가 아니다. 판정의 권위가 「부처님과 대성제자」에게 있다는 말은, 곧 「비바사사의 해석은 판정의 최종 권위가 아니다」라는 말이 된다.
보광은 같은 대목을 「그 가운데 때때로 경부의 종의로써 조금 깎아내려 헤아린 것이 있으니 나의 허물이다(於中時以經部義宗少有貶量,為我過失)」라고 풀어, 「깎아내림」의 근거가 경량부의 입장이었음을 분명히 했다(『구사론기』 권29, T41, 438b). 법보는 같은 「깎아내림」의 대상을 『비바사』로 한정하고 『육족론』 · 『발지론』은 제외했다고 보았다.
진제 역은 무엇을 물었는가
같은 대목을 진제 역으로 읽으면 하나가 더 보인다. 진제 역은 결론 게송을 불러내는 물음을 이렇게 옮겼다.
此論中,佛世尊阿毘達磨,是我所說。為如經部中所顯、為如毘婆沙中所顯?
이 논에서 부처님 세존의 아비달마를 내가 설했는데, 경부에서 드러낸 것과 같은가, 비바사에서 드러낸 것과 같은가?
현장 역의 물음이 「어떤 이치에 의거해 대법을 풀었는가」였다면, 진제 역의 물음은 처음부터 「경부를 따랐는가, 비바사를 따랐는가」라는 양자택일이다. 그리고 게송은 「罽賓毘婆沙理成,我多隨彼說此論」 — 카슈미르 비바사의 이치가 이루어졌으니 나는 대부분 그것을 따라 이 논을 설했다 — 으로 답한다. 진제 역은 「깎아내림(貶量)」 대신 「정법을 치우치게 집착함(正法偏執)」이라 옮겨, 비바사를 따르는 가운데 생길 수 있는 치우침을 허물로 삼았다. 장행도 「카슈미르국 비바사사가 두 증명으로 성취한 것(罽賓國毘婆沙師二證所成就)」이라고 했다. 「두 증명」이 무엇인지는 따로 풀지 않았으나, 바로 뒤에서 대성제자라도 「아함과 도리를 떠나서(離阿含及道理)」 정법을 판정할 수는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가르침과 이치의 두 근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역은 같은 범본을 옮긴 것이지만, 이 대목에서 경량부와 비바사사의 대립을 얼마나 드러내느냐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겉은 유부, 속은 경량부」 — 주석가들의 판정
천친 자신은 「대부분 비바사사를 따랐다」고 했지만, 장행 곳곳에서 경량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렇다면 『구사론』의 진짜 입장은 무엇인가. 동아시아의 주석가들은 이 물음에 대해 몇 가지 정식을 남겼다.
진제 역의 서문은 가장 이른 정식이다.
故此論本宗是薩婆多部,其中取捨以經部為正。
그러므로 이 논의 본래 종지는 살바다부(설일체유부)이고, 그 가운데 취하고 버림은 경부를 바른 것으로 삼았다.
보광은 『구사론기』 첫머리에서 이렇게 썼다.
雖述一切有義,時以經部正之。論師據理為宗,非存朋執,遂使九十六道同翫斯文,十八異部俱欣祕典。
비록 설일체유부의 뜻을 서술했으나 때때로 경부로써 바로잡았다. 논사는 이치에 의거해 종지로 삼았지 편을 드는 집착을 두지 않았으니, 마침내 아흔여섯 갈래의 외도가 함께 이 글을 즐기고, 열여덟 부파가 모두 이 비전(祕典)을 기뻐하게 되었다.
법보는 같은 판정을 더 분명히 했다.
此論多據《婆沙》以制頌,長行中唯以理勝為宗,非偏一部,然於中間多以經量為正義也。
이 논은 대부분 『바사』에 의거해 게송을 지었고, 장행에서는 오직 이치가 뛰어난 것을 종지로 삼아 한 부파에 치우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경량부를 바른 뜻으로 삼은 곳이 많다.
법보는 세품의 한 대목 — 십이연기의 무명이 무엇인가를 다루는 논쟁에서 천친이 이번에는 경부의 반론을 물리치고 유부의 설을 취한 곳 — 을 풀이하면서도 「이로 보건대 논주는 한 종에 정해 집착하지 않고, 이치가 뛰어나면 곧 취했다(准此,論主不定執一宗,理長即取)」고 썼다(『구사론소』 권10, T41, 605c). 천친이 늘 경량부 편에 선 것은 아니라는 증거다.
원휘의 『구사론송소』는 이 판정을 「현종(顯宗)」과 「밀종(密宗)」이라는 두 겹의 정식으로 다듬었다.
今詳世親著論宗旨,有其兩種:一者顯宗,即一切有,故下文云:「迦濕彌羅議理成,我多依彼釋對法。」既言依彼釋對法藏,故知此論有部為宗。二者密宗,所謂經部,故下文云:「經部所說,不違理故。」此一部論,多將經部破薩婆多,故知世親密意所許,經部為宗。
이제 세친이 논을 지은 종지를 자세히 보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드러난 종지(顯宗)로 곧 설일체유부이니, 그래서 아래 글에 「가습미라의 논의는 이치를 이루었으니, 나는 대부분 그것에 의지해 대법을 풀었다」고 했다. 이미 그것에 의지해 대법장을 풀었다고 했으므로 이 논은 유부를 종지로 삼았음을 안다. 둘은 숨은 종지(密宗)로 이른바 경부이니, 그래서 아래 글에 「경부가 설한 것은 이치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이 한 부의 논은 대부분 경부를 가지고 살바다를 깨뜨렸으므로, 세친이 속뜻으로 인정한 것은 경부를 종지로 삼은 것임을 안다.
원휘가 「밀종」의 근거로 든 「經部所說,不違理故」는 앞에서 본 근품의 「不違理故、我所宗故」 대목을 자기 말로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이치에 어긋나지 않음」이 경부에, 「내가 종지로 삼음」이 유부에 붙는다는 보광의 풀이를, 원휘는 「드러난 종지」와 「숨은 종지」라는 구도로 옮겨 놓았다.
이 정식들은 모두 같은 사실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본 것이다. 『구사론』의 「형식」은 유부의 것이다. 체계, 분류, 술어, 그리고 게송의 대부분이 그렇다. 그러나 『구사론』의 「판단」은 이치를 기준으로 하고, 그 판단은 자주 경량부 쪽으로 기운다. 보광의 「據理為宗」과 법보의 「理長即取」가 가장 정확한 요약일 것이다. 천친이 결론 게송에서 판정의 권위를 「부처님의 바른 이치(正理)」에 돌린 것도 그와 같은 뜻으로 읽힌다.
「경량부」의 실체에 대해서는 근현대 연구에서 많은 논의가 있다. 『구사론』의 「경부」가 독립된 부파였는지, 유부 안의 비판적 논사들(譬喻者 등)의 계보였는지, 혹은 천친이 자기 견해를 그 이름으로 대변한 것인지가 쟁점이다. 『구사론』 장행에는 「경부의 스승들(經部諸師)」 외에도 「대덕 구마라다(大德鳩摩邏多)」 「비유자(譬喩者)」 같은 이름이 나오고, 중현은 『순정리론』에서 상좌 슈리라타(Śrīlāta)의 설을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이 문제는 加藤純章, 『経量部の研究』(春秋社, 1989) 등의 연구에서 다루어졌다.
중현의 대답 — 『순정리론』과 『현종론』
카슈미르 정통 유부의 대답은 중현의 두 논서였다.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80권(T29 no.1562)은 『구사론』의 게송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품마다 장행을 새로 쓰면서, 천친(「경주」)의 장행을 한 대목씩 인용해 반박한다. 품의 이름은 「변본사품 · 변차별품 · 변연기품 · 변업품 · 변수면품 · 변현성품 · 변지품 · 변정품」의 여덟으로, 『구사론』의 계품 · 근품 · 세품 · 업품 · 수면품 · 현성품 · 지품 · 정품에 대응한다. 파집아품에 해당하는 품은 없다. 그리고 그 마지막 권 끝머리에는 『구사론』과 똑같은 결론 게송 「迦濕彌羅議理成,我多依彼釋對法」이 그대로 실려 있다.
그런데 같은 게송에 붙인 중현의 장행은 천친과 결이 다르다. 중현은 「대부분(多)」이라는 말을 「조금 다른 길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니, 형색 · 상색 · 과거 · 미래 등을 말한다(多言顯示少有異途。謂形像色去來世等)」고 짚어, 천친이 어디서 비바사사를 벗어났는지를 분명히 해 둔다. 그리고 「깎아내림」의 허물을 겸손의 말로 받아들이면서, 판정의 권위가 부처님께 있다는 구절을 이렇게 맺는다.
由此決判諸法正理,唯在真實大牟尼尊。是故定知阿毘達磨,真是佛說,應隨信受,無倒修行,勤求解脫。
그러므로 여러 법의 바른 이치를 결판하는 것은 오직 참된 대모니존에게 있다. 그러므로 아비달마는 참으로 부처님의 설법임을 확정적으로 알아, 믿어 받아들이고 뒤바뀜 없이 수행하여 부지런히 해탈을 구해야 한다.
천친에게 「판정은 부처님께 있다」는 말이 비바사사의 해석을 상대화하는 말이었다면, 중현에게 같은 말은 「그러므로 아비달마는 부처님의 설법이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순정리론』은 첫 권에서 「경주가 『전한다』고 한 것은 아비달마가 불설임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시작했고, 마지막 권에서 「아비달마는 참으로 불설」이라고 선언하며 끝난다. 같은 게송을 두고 두 논사가 정반대의 무게를 실은 것이다.
중현은 이어서 『순정리론』을 줄여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 40권(T29 no.1563)을 지었다. 그 서품의 게송은 두 논서의 관계를 스스로 밝힌다.
我以順理廣博言,對破餘宗顯本義,若經主言順理教,則隨印述不求非。
나는 이치에 따르는 넓고 넓은 말로써 다른 종지를 마주해 깨뜨리고 본래의 뜻을 드러낸다. 만약 경주의 말이 이치와 가르침에 따른다면, 곧 그대로 인정해 서술하고 허물을 찾지 않으리라.
文句派演隔難尋,非少劬勞所能解,為撮廣文令易了,故造略論名顯宗。
문구가 갈래지어 퍼져 서로 떨어져 있어 찾기 어렵고, 적은 수고로는 풀 수가 없으니, 넓은 글을 추려 쉽게 알게 하려고 간략한 논을 지어 『현종』이라 이름한다.
『순정리론』이 천친의 장행을 정면으로 논파하는 책이라면, 『현종론』은 그 논파의 결론만을 추려 유부의 「본래 종지를 드러내는(顯宗)」 책이다. 『구사론』 · 『순정리론』 · 『현종론』 — 이 세 책은 같은 게송을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장행을 붙인, 하나의 논쟁 묶음이다. 동아시아의 구사학이 『구사론』을 읽을 때 늘 『순정리론』을 함께 펼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보광의 『구사론기』가 곳곳에서 『정리』를 인용해 천친의 장행과 대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제一~六편에서 각 품을 읽을 때도, 천친의 장행과 중현의 반론을 나란히 놓는다.
결론 게송은 『구사론』의 입장을 스스로 밝힌다 — 대부분은 카슈미르 비바사사를 따랐고, 고친 곳은 자기 책임이며, 판정의 권위는 부처님께 있다. 주석가들은 이를 「유부를 서술하되 이치에 따라 경부로 바로잡았다」고 읽었고, 중현은 같은 게송으로 「아비달마는 불설」이라는 정반대의 결론을 끌어냈다.
본송
已善說此淨因道,謂佛至言真法性, 應捨闇盲諸外執,惡見所為求慧眼。 於此方隅已略說,為開智者慧毒門, 庶各隨己力堪能,遍悟所知成勝業。
이 청정한 원인의 길을 잘 설했으니, 곧 부처님의 지극한 말씀이요 참된 법성이다. 어둡고 눈먼 바깥의 집착들, 그릇된 견해가 지어낸 것을 버리고 지혜의 눈을 구하라. 이 한 방향의 실마리를 간략히 설하였으니, 지혜로운 이에게 상처에 든 독이 온몸에 퍼지듯 지혜가 두루 번져 갈 문을 열어 주려 함이다. 바라건대 저마다 자기 힘이 감당하는 대로, 알아야 할 것을 두루 깨달아 뛰어난 업을 이루기를.
술어 풀이
- 真諦진제
- Paramārtha(499~569). 서인도 출신의 역경승. 양 말기에 중국에 와서 전란 속에 남방을 떠돌며 『섭대승론』 · 『구사석론』 등을 옮겼다. 『바수반두법사전』도 그의 번역으로 전한다.
- 玄奘현장
- 당의 역경승(602~664). 인도에서 돌아와 대자은사 등에서 『대비바사론』 · 『구사론』 · 『순정리론』 · 『현종론』을 비롯한 유부 논서를 대거 옮겼다. 그의 번역을 「신역」, 그 이전을 「구역」이라 부른다.
- 俱舍釋論『구사석론』
- 진제 역 『아비달마구사석론』 22권(T29 no.1559). 게송을 「偈曰」, 해설을 「釋曰」로 나누어 옮겼다.
- 俱舍論記 · 俱舍論疏『구사론기』 · 『구사론소』
- 현장의 제자 보광(普光)의 『구사론기』 30권(T41 no.1821)과 법보(法寶)의 『구사론소』 30권(T41 no.1822). 이른바 「광기(光記)」와 「보소(寶疏)」로, 동아시아 구사학의 기본 주석이다.
- 俱舍論頌疏『구사론송소』
- 원휘(圓暉)의 『구사론송소』(T41 no.1823). 게송을 중심으로 간략히 풀이한 주석으로, 뒤 시대에 입문서로 널리 읽혔다.
- 俱舍宗구사종
- 『구사론』을 연구하는 학파. 일본 나라 시대의 이른바 남도육종(南都六宗)의 하나로 꼽히나, 독립된 교단이라기보다 법상종에 딸려 연구된 학파였다.
- 梵本범본
- 『구사론』의 산스크리트 원본. 오랫동안 게송과 주석서 인용으로만 알려져 있다가 20세기에 사본이 발견되었다.
진제 역 — 광주에서의 강의와 번역
『구사론』은 두 번 한역되었다. 첫 번역은 진제(眞諦)의 『아비달마구사석론』 22권이다. 진제 역에는 제자 혜개(慧愷)가 쓴 서문이 붙어 있고, 그 안에 번역의 경위가 날짜까지 적혀 있다.
혜개에 따르면 진제는 「양나라 왕실이 기울어 시국이 어지러울 때(值梁室將傾時事紛梗)」 중국에 와서 20년 가까이 동서로 피란하다가, 천축으로 돌아가려고 번우(番禺, 광주)에 이르렀다. 혜개는 그를 청해 먼저 『섭대승론』 등을 옮겼고, 진제가 다시 귀국하려 하자 광주 자사 구양흘(歐陽紇)이 머물기를 청했다. 혜개와 승인(僧忍) 등이 다시 『구사론』의 번역과 강의를 청했다.
以陳天嘉四年歲次閼逢龍集涒灘正月二十五日,於制旨寺始就開闡惑品未畢,仍事徙居於南海郡內,續更敷說。
진(陳) 천가 4년 정월 25일에 제지사에서 처음 강설을 시작했는데, 혹품을 다 마치지 못한 채 남해군 안으로 옮겨 살게 되어, 이어서 다시 펴 설했다.
그해 윤10월 10일에 글과 뜻이 끝나, 「논문 22권, 논게 1권, 의소 53권(論文二十二卷,論偈一卷,義疏五十三卷)」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혜개는 번역에 잘못이 있을까 염려하여, 천가 5년(564) 2월에 다시 법사에게 논문을 거듭 옮기고 뜻을 다시 풀어 달라고 청했고, 「광대 원년(567) 12월 25일에 앞의 본을 고쳐 정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마쳤다(至光大元年歲次強圉十二月二十五日,治定前本始末究竟)」(같은 곳). 천가 4년은 563년이다. 진제 역은 563년에 처음 옮기고 567년에 고쳐 정한 것이다.
서문은 진제가 「이 땅의 음과 뜻을 깊이 알아 번역할 때 통역을 거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범음이 가리키는 뜻을 바꾸어 옮기면 말과 이치가 갑자기 맞아떨어지기 어려워, 한 구절 안에서 돌고 돌며 풀이하고 거듭 뒤집어 비로소 서로 맞게 했다」고 그 고충을 전한다. 함께 지었다는 의소 53권은 전하지 않는다.
진제 역의 체제는 현장 역과 조금 다르다. 게송을 「偈曰」, 해설을 「釋曰」로 나누어 한 구절씩 끊어 옮겼고, 품 이름도 「분별세간품 · 분별혹품 · 분별성도과인품 · 분별혜품 · 분별삼마발제품 · 파설아품」처럼 현장 역과 다르다. 결론 게송의 물음을 「경부인가 비바사인가」로 옮긴 것도 앞에서 보았다.

현장 역 — 대자은사의 신역
두 번째 번역이 현장의 『아비달마구사론』 30권이다. 보광은 『구사론기』 서두에서 이 번역의 의의를 이렇게 적었다.
往有三藏真諦法師,已於嶺表譯茲論訖,但為方言未融,時有舛錯。至如現法非得,先哲同疑;常非果因,前賢莫辨。
지난날 삼장 진제 법사가 이미 영남에서 이 논을 번역해 마쳤으나, 다만 이 땅의 말에 아직 무르익지 못해 때때로 어긋남이 있었다. 이를테면 현재법의 비득은 앞의 철인들이 함께 의심했고, 상주하는 것이 과도 인도 아니라는 것은 앞의 현인들이 가려내지 못했다.
旋軔上京奉詔翻譯。此論,以永徽年中於大慈恩寺譯,文義周備,妙理無虧。
수레를 돌려 서울로 돌아와 조칙을 받들어 번역했다. 이 논은 영휘 연간에 대자은사에서 번역했으니, 글과 뜻이 두루 갖추어지고 묘한 이치에 이지러짐이 없다.
원휘의 『구사론송소』도 「진제 삼장은 영남에서 22권으로 번역했고, 대당의 삼장은 영휘 연간에 자은사에서 30권으로 번역했다(陳朝三藏真諦法師,有於嶺南譯成二十二卷。大唐三藏永徽年中,於慈恩寺譯成三十卷)」고 하며, 앞 번역의 문제를 같은 두 예로 든다 — 「무위가 인과인가 하는 것을 앞 번역은 아니라 했고, 현재법에 비득이 없다는 것을 옛 번역은 있다고 했다(無為是因果,前譯言非;現法無非得,昔翻云有)」(T41, 815c). 영휘는 당 고종의 연호로 650~655년이다. 『대자은사삼장법사전』에는 현장이 귀국 뒤 인도로 보낸 편지에서 「『구사』 · 『순정리』는 번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올해 반드시 마칠 것」이라 쓴 대목이 있다(권7, T50, 261c).
현장 문하의 주석가들이 진제 역의 「잘못」을 강조한 데는 신역의 정당성을 세우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든 예 — 비득과 현재법의 관계, 무위와 인과의 관계 — 는 『구사론』 교리의 미묘한 쟁점과 닿아 있어, 실제로 두 번역을 대조할 때 의미가 갈리는 대목들이다.
현장의 『구사론』 번역은 유부 논서 번역 사업의 일부였다. 현장은 『구사론』과 함께 그 본송 1권, 『순정리론』 80권, 『현종론』 40권, 그리고 『대비바사론』 200권과 『발지론』 · 육족론 대부분을 옮겼다. 보광의 말대로 일곱 근본 논서 가운데 『시설족론』만 빠졌다. 『구사론』을 둘러싼 논쟁 전체가 한 사람의 손에 의해 한문으로 옮겨진 셈이다. 『대자은사삼장법사전』은 현장이 카슈미르에서 노승 승칭(僧稱)에게 「오전에는 『구사론』을, 오후에는 『순정리론』을 강의받았다」고 전한다(권2, T50, 231b).
현장 문하의 주석 — 보광 · 법보 · 원휘
현장의 번역과 함께 그 문하에서 『구사론』 주석이 쏟아졌다. 대정장 제41책에 실린 것은 세 가지다.
보광(普光)의 『구사론기(俱舍論記)』 30권(T41 no.1821)은 현장의 강의를 가장 가까이에서 받아 적은 주석으로 평가된다. 원휘 『구사론송소』 첫머리에 붙은 가증(賈曾)의 「약석기(略釋記)」가 「그 제자 대승광 법사가 은밀한 가르침을 직접 이어받아 처음 바른 해석을 전했다(其徒大乘光法師,親承密誨、初傳正釋)」고 쓴 것이 보광이다(T41, 813a). 이 서강에서 여러 번 인용한 대로, 『구사론기』는 품의 차례, 성립 전승, 육족론의 저자, 진제 역의 문제 등 『구사론』의 바깥 테두리를 가장 자세히 전한다. 본문 해석에서는 거의 모든 대목마다 『대비바사론』과 『순정리론』을 인용해, 천친의 장행이 유부의 어느 설과 다르고 중현이 어떻게 반박했는지를 대조한다.
법보(法寶)의 『구사론소(俱舍論疏)』 30권(T41 no.1822)은 보광과 나란히 「광기 · 보소」로 불리는 주석이다. 서두에 다섯 문(門) — 첫 법륜의 시기, 학행의 차례, 가르침이 일어난 인연, 부파의 선후, 본문 해석 — 을 세워 『구사론』을 불교사 전체 속에 놓는다. 앞에서 본 「理長為是,非定一宗」과 『구사박』의 개명 이야기가 이 서두에 있다. 법보는 또 천친이 『구사론』 외에 『반야론』 · 『섭대승론석』 · 『법화론』 · 『불성론』 · 『열반론』 등을 경의 뜻에 따라 지었으니 「편을 드는 집착이 없었다(無朋執)」고 하여, 『구사론』을 천친 저작 전체 속에 자리매김했다(T41, 458a).
원휘(圓暉)의 『구사론송소(俱舍論頌疏)』(T41 no.1823)는 장행을 줄이고 게송 중심으로 풀이한 간략본이다. 원휘 자신의 서문과 가증의 「약석기」에 따르면, 정의대부 진주자사 가증(賈曾)이 번잡한 주석 대신 간략한 풀이를 청해서 지었다고 한다. 앞에서 본 「현종 · 밀종」의 정식, 그리고 「유부의 네 논사가 세운 삼세실유의 네 설」과 「번역의 두 시기」를 간결하게 정리한 서두가 있다. 분량이 짧아 입문용으로 읽기 좋은 주석이다.
현장 문하에는 이 밖에도 『구사론』 주석을 남긴 이들이 있었다. 신태(神泰)는 『대비바사론』 번역의 증의(證義)로 참여한 대자은사의 승려로, 『구사론소』를 지었다고 전하지만 대정장에는 실려 있지 않다.
보광 · 법보 · 원휘의 생몰년과 주석의 저술 연대는 대정장 본문에서 직접 확인되지 않는다. 보광의 『구사론기』가 현장 생전의 강의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법보가 보광의 해석을 자주 비판한다는 점(예컨대 「칼집(刀藏)」의 풀이에서 법보가 다른 해석들을 「모두 잘못(皆是誤耳)」이라 한 대목 — 『구사론소』 권1, T41, 468a — 을 원휘는 보광에 대한 비판으로 소개한다, T41, 816a)은 본문으로 확인된다.
동아시아의 구사학
현장 이전의 중국에서도 진제 역 『구사석론』을 연구하는 흐름이 있었다. 『대자은사삼장법사전』은 현장 자신이 출국 전에 장안 대각사에서 「악(岳) 법사에게 『구사론』을 배웠다」고 전한다(권1, T50, 222b). 진제 역에 의한 구사 연구가 이미 장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뜻이다.
현장의 신역 이후 구사학은 법상종(유식학)과 함께 연구되었다. 『구사론』이 세운 법의 분류와 인과론은 유식학의 오위백법, 종자설, 수행 계위를 이해하는 기초였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대로 천친 자신이 『구사론』 뒤에 유식 논서를 지었다고 전하므로, 『구사론』은 유식으로 가는 길목으로 읽혔다.
이 흐름은 그대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나라 시대의 일본에서 구사종은 이른바 남도육종 가운데 하나로 꼽혔으나, 독자적인 교단을 이루지 못하고 법상종에 딸려 연구되는 학파(寓宗)였다. 일본의 구사학은 보광 · 법보 · 원휘의 주석을 바탕으로 정밀한 연구 전통을 이어 갔고, 그 전통 속에서 「유식 3년 구사 8년」(唯識三年俱舍八年)이라는 말이 생겼다. 『구사론』을 익히는 데 8년, 유식을 익히는 데 3년이 걸린다는 뜻으로, 『구사론』이 그만큼 어렵고, 또 그만큼 모든 교학의 기초가 된다는 말로 전해진다.
「유식 3년 구사 8년」의 정확한 출전과 성립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복숭아와 밤은 3년, 감은 8년」이라는 일본 속담을 본뜬 말로 이해된다.
근현대 — 범본의 발견과 번역
근대 서구 불교학이 『구사론』을 만났을 때, 산스크리트 원본은 없었다. 학자들이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역 두 가지, 티베트어 역, 그리고 범어로 남아 있던 야쇼미트라(Yaśomitra, 稱友)의 주석 『스푸타르타(Sphuṭārthā)』였다. 벨기에의 루이 드 라 발레 푸생(Louis de La Vallée Poussin)은 현장 역을 기본으로 진제 역 · 티베트어 역 · 야쇼미트라의 주석을 대조해 프랑스어로 옮겼고, 이것이 1923~1931년에 6책으로 간행된 L'Abhidharmakośa de Vasubandhu 다. 범본 없이 이루어진 이 번역은 20세기 아비달마 연구의 표준이 되었다.
그 뒤 『구사론』 장행(Abhidharmakośabhāṣya)의 범어 사본이 발견되었고, 프라단(P. Pradhan)이 이를 교정해 1967년 파트나에서 출판했다(Abhidharmakośabhāṣyam of Vasubandhu, K. P. Jayaswal Research Institute). 이로써 『구사론』을 원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서강을 포함한 연재의 범어 술어 병기는 이 교정본의 술어를 따른다. 라 발레 푸생의 프랑스어 역은 다시 프루든(Leo M. Pruden)에 의해 영어로 옮겨졌다(1988~1990).
일본에서는 한역 · 티베트역, 그리고 범본이 나온 뒤에는 범본까지 대조한 품별 역주가 이어졌다. 櫻部建의 계품 · 근품 연구(1969), 舟橋一哉의 업품 역주(1987), 山口益 · 舟橋一哉의 세간품 역주(1955), 櫻部建 · 小谷信千代의 현성품 역주(1999), 小谷信千代 · 本庄良文의 수면품 연구(2007) 등이 그것이다.
한국에서는 권오민이 현장 역 『아비달마구사론』 전체를 우리말로 옮겨 동국역경원에서 네 책으로 펴냈다(2002). 이 완역은 한국어로 『구사론』 전체를 읽을 수 있게 한 첫 번역으로, 이 연재의 한국어 풀이는 그와 별도로 원문에서 새로 옮겼다.
- 4~5세기천친, 『구사론』 본송과 장행(인도)
- 같은 시기 이후중현, 『순정리론』 · 『현종론』
- 563~567진제, 광주에서 『구사석론』 22권 번역(혜개 서문)
- 650~655현장, 장안 대자은사에서 『구사론』 30권 번역(영휘 연간)
- 당(唐)현장 문하의 보광 『구사론기』 · 법보 『구사론소』, 이어 원휘 『구사론송소』
- 나라 시대일본 남도육종의 구사종(법상종에 딸린 학파)
- 1923~1931라 발레 푸생, 프랑스어 역 6책
- 1967프라단, 범본 장행 교정본 출판
- 1988~1990프루든, 영어 역
- 2002권오민, 한국어 완역(동국역경원)
『구사론』은 진제(563~567)와 현장(영휘 연간)의 두 번역으로 동아시아에 들어왔고, 보광 · 법보 · 원휘의 주석과 함께 법상종 곁에서 연구되었다. 근대 이후에는 라 발레 푸생의 프랑스어 역과 프라단의 범본 교정본(1967)이 새 출발점이 되었다.
본송
此涅槃宮一廣道,千聖所遊無我性, 諸佛日言光所照,雖開殊眼不能覩。
이것이 열반의 궁전으로 가는 하나의 넓은 길이니, 천 명의 성자가 걸어간 무아의 본성이다. 모든 부처님의 해 같은 말씀의 빛이 비추건만, 눈을 뜨고도 다른 데를 보는 이는 보지 못한다.
술어 풀이
- 篇편
- 이 연재의 단위. 서강(허브)과 일곱 편으로 이루어진다. 제一~六편은 『구사론』의 품을 차례대로 읽고, 제七편은 파집아품과 함께 『구사론』이 천태와 니치렌 대성인의 교학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살핀다.
- 本頌 · 長行 · 正理본송 · 장행 · 『정리』
- 각 편은 장마다 그 장을 대표하는 본송을 먼저 보이고, 장행의 논증을 재구성하며, 필요한 곳에서 중현 『순정리론』의 반론을 함께 읽는다.
- 五位오위
- 색 · 심 · 심소 · 심불상응행 · 무위의 다섯 부류. 『구사론』 근품에 「一切法略有五品」으로 나온다. 다섯 부류 일흔다섯 법으로 셈하는 「오위칠십오법」은 후대 주석가들의 정리다.
- 無我무아
- 『구사론』 전체가 풀이하는 법인. 보광의 풀이로는 앞 여덟 품이 법의 사(事)를, 파집아품이 무아의 이(理)를 밝힌다.
서강과 일곱 편
이 연재는 『구사론』 아홉 품을 일곱 편으로 나누어 읽는다. 앞에서 본 보광의 품 차례 풀이 — 총괄 두 품, 유루 세 품, 무루 세 품, 그리고 무아의 한 품 — 를 그대로 따르되, 무루의 세 품(현성품 · 지품 · 정품)은 수행 계위 · 지혜 · 선정이 하나의 「성자의 길」을 이루므로 한 편으로 묶었다. 파집아품은 『구사론』의 결론이자 다른 교학과 만나는 자리이므로 마지막 편에 두었다.
각 편의 안내
제一편 「법의 분류 — 분별계품」 — 『구사론』이 세계를 법들의 목록으로 다시 쓰는 첫 단계다. 유루 · 무루, 유위 · 무위의 구분에서 출발해, 오온 · 십이처 · 십팔계라는 세 가지 분류가 왜 필요한지, 색법이 어떻게 정의되고 무표색이라는 독특한 법이 왜 세워지는지를 읽는다. 품의 후반부는 십팔계를 스물두 가지 관점(有見 · 有對 · 善不善 · 繫 · 見所斷 등)으로 하나하나 가르는 아비달마 특유의 분별이다.
제二편 「마음과 인과의 체계」 — 계품이 법의 본체를 밝혔다면 근품은 그 작용을 밝힌다. 이십이근의 증상(增上) 작용, 법들이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방식(색의 극미 집합, 심 · 심소의 상응), 심불상응행 — 특히 득 · 비득을 둘러싼 유부와 경량부의 논쟁 — 을 거쳐, 『구사론』 인과론의 뼈대인 육인 · 사연 · 오과에 이른다.
제三편 「세계와 윤회」 — 유루의 「결과」, 곧 윤회하는 세계를 다룬다. 삼계 · 오취 · 사생, 죽음과 다시 태어남 사이의 중유(中有), 십이연기의 분위적 해석, 사식(四食), 그리고 수미산과 네 대륙으로 이루어진 기세간과 겁의 성 · 주 · 괴 · 공을 읽는다.
제四편 「업의 체계」 — 「세간의 차별은 업에서 생긴다」는 업품의 첫 선언에서 출발해, 몸짓이 무엇으로 업이 되는가(표업의 정체), 보이지 않는 업(무표색)의 실재 논쟁, 율의 · 불율의 · 처중, 업을 나누는 여러 잣대, 십업도의 성립 조건, 오무간업과 파승, 보살의 묘상업을 읽는다. 표업과 무표업을 둘러싼 유부와 경량부의 대론이 이 편의 축이다.
제五편 「번뇌와 삼세실유」 — 업을 움직이는 조건인 번뇌(수면)를 6 · 10 · 98로 나누어 세는 체계, 편행과 비편행, 견소단과 수소단을 읽는다. 그리고 『구사론』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논쟁 — 과거와 미래의 법은 실재하는가, 유부 네 논사의 삼세설과 천친의 비판 — 을 원문 순서대로 따라간다.
제六편 「성자의 길」 — 무루의 세 품을 함께 읽는다. 현성품에서는 범부가 오정심관 · 사념처 · 사선근을 거쳐 견도의 십육심에 들고, 수도와 무학도로 나아가는 사향사과의 길을, 지품에서는 그 길을 이루는 열 가지 지혜와 부처님만의 공덕을, 정품에서는 사정려 · 사무색정과 거기서 일어나는 공덕들, 그리고 이 서강에서 읽은 결론 게송에 이르는 대목을 읽는다.
제七편 「「나」의 논파와 『구사론』의 자리」 — 파집아품을 읽고, 천태가 『구사론』을 어떻게 판정했는지,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구사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살핀다.
기존 페이지와 함께 읽기
이 사이트에는 이미 『구사론』의 일부를 다룬 페이지들이 있다. 연재는 그 내용을 되풀이하지 않고 더 깊게, 다른 각도에서 읽는다. 함께 읽으면 좋은 페이지는 다음과 같다.
- 핵심 개념 「업」은 업품의 첫 게송, 사업 · 사이업, 정업과 부정업의 네 경우, 순현 · 순차 · 순후의 과보를 이미 소개했다. 제四편은 그 체계를 이루는 논증 — 무표업의 실재, 율의의 획득과 상실 — 을 원문 순서대로 읽는다.
- 핵심 개념 「무상」은 근품의 유위사상과 업품의 찰나멸 논증을 다루었다. 제二편과 제四편은 그 논쟁의 앞뒤 맥락과 중현의 반론을 함께 읽는다.
- 핵심 개념 「무아 · 오온」은 삼과(三科)의 이유, 오위의 법 분류 개요, 그리고 파집아품의 독자부 논파를 깊이 다루었다. 제一편은 오온 · 십이처 · 십팔계의 정의와 분별을, 제七편은 파집아품의 남은 논의를 읽는다.
- 핵심 개념 「구식」은 멸진정 · 무상정과 심소의 수를 짧게 다루었다. 제二편과 제六편이 그 원문을 읽는다.
- 핵심 개념 「삼신」과 「오시팔교」는 유부의 불신론과 장교(藏敎)의 판정을 다루었다. 제七편이 그 자리에서 이어진다.
- 계보 一 「십이연기」는 『구사론』의 열두 마디 표, 혹 · 업 · 고, 삼세양중인과를 이미 정리했다. 제三편은 그 해석이 나오는 세품의 원문 — 찰나 · 연박 · 분위 · 원속의 네 가지 연기 — 을 읽는다.
- 인물탐구 「천친보살」은 천친의 생애 전체와 유식 논서를 다룬다. 이 서강은 그 가운데 『구사론』의 성립에만 집중했다.
이 연재는 보광이 풀이한 아홉 품의 질서를 따라, 법의 분류(一)와 작용(二)에서 출발해 세계(三) · 업(四) · 번뇌(五)를 거쳐 성자의 길(六)에 이르고, 마지막에 「나」의 논파와 『구사론』의 자리(七)를 읽는다. 각 편은 본송을 먼저 보이고 장행의 문답과 중현의 반론을 재구성한다.
이 편을 맺으며
『구사론』은 첫머리에서 아비달마를 「맑은 지혜와 그 권속」으로 정의하고, 자신을 그 지혜에 이르게 하는 앞선 논서들의 정수를 담은 「장(藏)」이라 불렀다. 그리고 정품의 끝에서 「대부분은 카슈미르의 논의에 의지했으나, 조금 고친 데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허물이며, 판정의 바른 이치는 부처님께 있다」고 맺었다. 처음과 끝 사이에 놓인 600송과 그 장행은, 설일체유부가 수백 년에 걸쳐 쌓은 법의 분석을 가장 정연하게 정리하면서, 동시에 그 분석의 전제들 — 아비달마는 불설인가, 득은 실재하는가, 과거와 미래는 있는가 — 을 하나씩 다시 묻는 책이다.
성립 전승은 이 이중성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전한다. 카슈미르의 비바사사들은 게송을 받고 기뻐했다가 장행을 받고 근심했다. 오입은 게송 속의 「전한다」라는 말에서 이미 그 장행을 읽었다. 중현은 『순정리론』으로 맞섰고, 그 반박은 다시 『구사론』과 한 묶음이 되어 동아시아로 건너왔다. 보광과 법보는 이 모든 것을 「이치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이 논서를 읽는 일은 그러므로 하나의 체계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논쟁에 들어가는 일이다. 다음 편 「법의 분류 — 분별계품」에서는 그 논쟁의 첫 무대, 유루와 무루를 가르고 오온 · 십이처 · 십팔계로 세계를 다시 쓰는 계품의 본문으로 들어간다.
더 읽기
- 천친보살 — 인물탐구
- 핵심 개념 · 무아 · 오온 — 삼과와 파아품
- 핵심 개념 · 업 — 『구사론』 업품의 정업과 부정업
- 一 십이연기 — 혹 · 업 · 고와 삼세양중인과
- 핵심 개념 · 오시팔교 — 장교의 판정
참고 문헌
원전
- 世親 造, 玄奘 譯, 『阿毘達磨俱舍論』 30권, 大正藏 T29 no.1558
- 世親 造, 真諦 譯, 『阿毘達磨俱舍釋論』 22권, 大正藏 T29 no.1559 (慧愷 序)
- 世親 造, 玄奘 譯, 『阿毘達磨俱舍論本頌』 1권, 大正藏 T29 no.1560
- 眾賢 造, 玄奘 譯, 『阿毘達磨順正理論』 80권, 大正藏 T29 no.1562
- 眾賢 造, 玄奘 譯, 『阿毘達磨藏顯宗論』 40권, 大正藏 T29 no.1563
- 五百大阿羅漢等 造, 玄奘 譯, 『阿毘達磨大毘婆沙論』 200권, 大正藏 T27 no.1545
- 普光 述, 『俱舍論記』 30권, 大正藏 T41 no.1821
- 法寶 撰, 『俱舍論疏』 30권, 大正藏 T41 no.1822
- 圓暉 述, 『俱舍論頌疏』, 大正藏 T41 no.1823
- 真諦 譯, 『婆藪槃豆法師傳』 1권, 大正藏 T50 no.2049
- 世友 造, 玄奘 譯, 『異部宗輪論』 1권, 大正藏 T49 no.2031
- 慧立 本 · 彥悰 箋, 『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 10권, 大正藏 T50 no.2053
연구 · 번역
- P. Pradhan (ed.), Abhidharmakośabhāṣyam of Vasubandhu, Patna: K. P. Jayaswal Research Institute, 1967
- Louis de La Vallée Poussin (tr.), L'Abhidharmakośa de Vasubandhu, 6 vols., Paris: Paul Geuthner, 1923–1931
- Leo M. Pruden (tr.), Abhidharmakośabhāṣyam, 4 vols., Berkeley: Asian Humanities Press, 1988–1990
- Collett Cox, Disputed Dharmas: Early Buddhist Theories on Existence, Tokyo: International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1995
- 櫻部建, 『俱舎論の研究 界・根品』, 法藏館, 1969
- 櫻部建 · 上山春平, 『存在の分析〈アビダルマ〉』(仏教の思想 2), 角川書店, 1969
- 山口益 · 舟橋一哉, 『俱舎論の原典解明 世間品』, 法藏館, 1955
- 舟橋一哉, 『俱舎論の原典解明 業品』, 法藏館, 1987
- 櫻部建 · 小谷信千代, 『俱舎論の原典解明 賢聖品』, 法藏館,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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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加藤純章, 『経量部の研究』, 春秋社, 1989
- 平川彰, 『インド仏教史』 上, 春秋社, 1974
- 권오민 역, 『아비달마구사론』 1~4, 동국역경원, 2002
- 권오민, 『아비달마불교』, 민족사, 2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