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고원의 바위산 영취산 원경과 저녁 구름 — 법화경 설법의 산, 사람 없음

법화경 제일과 재세 · 정법의 난

보은초 · 제2편 · 제5~7장

報恩抄 — 一代諸経の勝劣・法華最第一・在世及び正法時代の値難어서 294–298쪽
장
제5~7장
쪽수
어서 294쪽 16행 ~ 298쪽 2행
저술
건치 2년(1276) 7월 21일 · 미노부
받는 이
아와 세이초사의 조켄보 · 기조보

여덟 편 · 보은초 37장 구성도

37장 + 송문 → 여덟 편
  1. 序講293 앞저술의 유래 · 대의 · 원의
  2. 보은의 도리와 불법을 배우는 길
  3.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제2편법화경 제일과 재세 · 정법의 난지금 읽는 편
    5~7장0294:16~0298:02
  4.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5.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6.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
  7.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
  8. 지은보은과 삼대비법
  9. 지은보은과 삼대비법

제1편에서 대성인은 은혜를 갚으려면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고, 저마다 「우리 종이야말로 일대의 마음을 얻었다」고 다투는 열 개의 거울 앞에서 열반경의 유계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를 붙잡아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으셨다. 제2편은 그 거울로 실제 일대 제경을 비추어 보는 자리다. 약왕품의 「이 법화경은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 법사품의 「이미 설하였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할 것이다 … 그 가운데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는 글이 판정의 근거가 되고, 다보여래와 시방 제불의 증명이 그 판정에 도장을 찍는다. 그러나 경문대로 말하면 화엄의 징관, 삼론의 가상, 법상의 자은, 진언의 선무외에서 홍법 · 자각 · 지증까지 이름 높은 조사들이 모두 부처의 적이 된다. 말하면 세간이 두렵고 말하지 않으면 부처의 간효를 피할 수 없는 그 진퇴유곡에서, 대성인은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에랴」라는 경문을 꺼내신다. 법화경 제일의 판정과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겪는 대난은 하나의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것 — 이 편은 그것을 묻는다.

보은초 여덟 편 가운데 제2편은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을 다루는 둘째 갈래(제2~4편)의 첫머리에 놓인다. 제3편이 상법 시대 천태대사와 전교대사의 홍통을, 제4편이 진언으로 기운 홍법 · 자각 · 지증을 다룬다면, 이 편은 그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법화경 제일」을 경문으로 세우고, 그 기준을 말하는 사람에게 닥치는 법난의 계보를 석존 재세와 정법 시대에서부터 더듬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편의 세 장은 앞으로 이어질 삼국 불교사 비판의 저울과 각오를 함께 준비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제5장은 약왕품의 명문을 수미산 · 윤왕 · 뭇 나무 · 육계의 네 비유로 풀고, 다른 경에도 「뛰어나다」는 글이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무엇에 상대해서 하는 말인가」라는 기준으로 답한다. 이전(爾前)의 경들이 말하는 「뛰어남」은 외도에 대한 불교, 소승에 대한 대승, 속제에 대한 진제, 공 · 가에 대한 중도의 뛰어남일 뿐이고, 오직 열반경만이 법화경과 비슷한 글을 가지지만 그 열반경조차 스스로 「법화경에서 이미 큰 열매를 거두었으니 나는 이삭을 줍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제6장은 「보지 못한 천상과 용궁에는 더 뛰어난 경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가난을 들어 「하나로 만을 살핀다」는 지혜로 물리치고, 다보 · 시방 제불이 판형을 찍은 이금당의 경문 앞에서 그런 의심은 일월천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일이라 꾸짖는다. 제7장은 이름 높은 개조들을 부처의 적이라 하느냐는 문난에서 시작해,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는 열반경의 간효와 「유다원질 황멸도후」의 경문으로 법화경 행자의 길을 열고, 석존이 겪은 마의 방해와 구횡의 대난, 정법 천 년 동안 부법장의 사의 보살들이 겪은 법난을 차례로 든다.

이 편의 논증은 대성인 자신의 삶과 떼어 읽을 수 없다. 「작은 허물이 없어도 대난을 자주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멸후의 법화경 행자임을 알 것이다」라는 말씀은, 이즈 · 사도 두 번의 유죄와 다쓰노구치의 참수 위기를 겪고 미노부에 들어가신 대성인이 옛 스승의 영전에 바치는 증언이기도 하다. 보은의 길이 왜 대난의 길이 되는가 — 그 물음은 제7편 「지은보은과 제목의 간심」에서 다시 대성인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이 편의 장

第5章一代諸経の勝劣제5장 일대 제경의 승렬 — 약왕품의 「최재기상」과 네 비유, 「소대」로 이전의 상사문을 회통하고 열반경의 오미 · 추수동장의 글로 법화 · 열반의 승렬과 시방 일체경의 승렬을 판정한다.
第6章法華最第一を明かす제6장 법화경이 가장 제일임을 밝히다 — 보지 못한 세계의 경을 묻는 가난을 「하나로 만을 살핀다」로 물리치고, 법사품 이금당의 삼설초과와 다보 · 시방 제불의 증명으로 법화경 최제일을 밝히며, 이를 거스른 조사들을 「제불의 대원적」이라 꾸짖는다.
第7章在世及び正法時代の値難제7장 재세와 정법 시대의 난 — 개조들을 불적이라 하느냐는 문난에 진퇴유곡의 결단으로 답하고, 「유다원질 황멸도후」에 따라 석존 재세의 일곱 난과 정법 천 년 부법장 논사들의 법난을 든다.
  1. 판정제5장 일대 제경의 승렬약왕품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此の法華経は諸経の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열반경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여 다시 할 일이 없는 것과 같다」秋収冬蔵して更に所作無きが如し
  2. 증명제6장 법화경이 가장 제일임을 밝히다법사품 이금당 「이미 설하였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할 것이다」已に説き今説き当に説ん다보와 시방 제불의 판형
  3. 대가제7장 재세와 정법 시대의 난「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에랴」如来の現在にすら猶怨嫉多し況んや滅度の後をや재세의 일곱 난 · 정법 천 년의 법난
도표 1 · 이 편의 논증 흐름
제5장 일대 제경의 승렬
어서 294쪽 16행 ~ 295쪽 12행 · 第5章 一代諸経の勝劣

본문

本文 · 一어서 294쪽 16행 ~ 295쪽 2행
本文 · 어서 원문

随つて法華経の文を開き奉れば「此の法華経は諸経の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等云云此の経文のごとくば須弥山の頂に帝釈の居がごとく輪王の頂に如意宝珠のあるがごとく衆木の頂に月のやどるがごとく諸仏の頂に肉髻の住せるがごとく此の法華経は華厳経・大日経・涅槃経等の一切経の頂上の如意宝珠なり。

풀이

이리하여 법화경의 글을 펼쳐 받들어 보니 「이 법화경은 제경(諸經)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 등이라 하셨느니라. 이 경문대로라면,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제석(帝釋)이 거처하는 것과 같이, 전륜성왕의 정수리에 여의보주(如意寶珠)가 있는 것과 같이, 뭇 나무의 꼭대기에 달이 깃드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정수리에 육계(肉髻)가 자리한 것과 같이, 이 법화경은 화엄경 · 대일경 · 열반경 등 일체경의 정상에 있는 여의보주이니라.

本文 · 二어서 295쪽 2~12행
本文 · 어서 원문

されば専ら論師人師をすてて経文に依るならば大日経・華厳経等に法華経の勝れ給えることは日輪の青天に出現せる時眼あきらかなる者の天地を見るがごとく高下宛然なり、又大日経・華厳経等の一切経をみるに此の経文に相似の経文・一字・一点もなし、或は小乗経に対して勝劣をとかれ或は俗諦に対して真諦をとき或は諸の空仮に対して中道をほめたり、譬へば小国の王が我が国の臣下に対して大王というがごとし、法華経は諸王に対して大王等と云云、 但涅槃経計こそ法華経に相似の経文は候へ、されば天台已前の南北の諸師は迷惑して法華経は涅槃経に劣と云云、されども専ら経文を開き見るには無量義経のごとく華厳・阿含・方等・般若等の四十余年の経経をあげて涅槃経に対して我がみ勝ると・とひて又法華経に対する時は是の経の出世は乃至法華の中の八千の声聞に記莂を授くることを得て大菓実を成ずるが如き秋収冬蔵して更に所作無きが如し等と云云、我れと涅槃経は法華経には劣るととける経文なり、かう経文は分明なれども南北の大智の諸人の迷うて有りし経文なれば末代の学者能く能く眼をとどむべし、此の経文は但法華経・涅槃経の勝劣のみならず十方世界の一切経の勝劣をもしりぬべし、而るを経文にこそ迷うとも天台・妙楽・伝教大師の御れうけんの後は眼あらん人人はしりぬべき事ぞかし、然れども天台宗の人たる慈覚・智証すら猶此の経文にくらし・いわうや余宗の人人をや。

풀이

그러므로 오로지 논사 · 인사(論師人師)를 버리고 경문에 의지한다면, 법화경이 대일경 · 화엄경 등보다 뛰어나심은 해가 푸른 하늘에 나타났을 때 눈 밝은 이가 하늘과 땅을 보는 것과 같이 높고 낮음이 뚜렷하니라. 또 대일경 · 화엄경 등 일체경을 보건대 이 경문에 비슷한 경문은 한 글자 한 점도 없느니라. 혹은 소승경에 상대하여 승렬을 설하고, 혹은 속제(俗諦)에 상대하여 진제(眞諦)를 설하며, 혹은 여러 공(空) · 가(假)에 상대하여 중도(中道)를 칭찬하였을 뿐이니, 비유하자면 작은 나라의 왕이 제 나라의 신하에게 대하여 대왕이라 하는 것과 같으니라. 법화경은 여러 왕에 대하여 대왕이라 하는 것이니라. 다만 열반경만이 법화경과 비슷한 경문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천태 이전 남북의 여러 스승은 미혹하여 법화경은 열반경보다 못하다고 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로지 경문을 펼쳐 보면, 무량의경과 같이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등 사십여 년의 경경을 들어 열반경에 상대하여 내가 뛰어나다고 설하고, 또 법화경에 상대할 때는 「이 경이 세상에 나온 것은 … 법화 가운데 팔천의 성문이 기별(記莂)을 받아 큰 열매를 이룬 것과 같아서,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여 다시 할 일이 없는 것과 같다」 등이라 하니, 열반경 스스로 법화경보다 못하다고 설한 경문이니라. 이렇게 경문은 분명하건만 남북의 큰 지자들조차 미혹하였던 경문이니 말대의 학자는 잘 잘 눈을 멈추어야 하느니라. 이 경문은 다만 법화경 · 열반경의 승렬뿐만 아니라 시방세계 일체경의 승렬도 알 수 있는 것이니라. 그런데 경문에는 미혹할지라도 천태 · 묘락 · 전교대사의 요간(料簡)이 있은 뒤로는 눈 있는 사람들은 알아야 할 일이니라. 그러나 천태종 사람인 자각 · 지증조차 오히려 이 경문에 어두웠으니, 하물며 다른 종의 사람들이랴.

어구 풀이

此の法華経は諸経の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이 법화경은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
『묘법연화경』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글. 약왕품은 이 경이 제경의 왕임을 큰 바다 · 수미산 · 달 · 해 · 전륜성왕 · 제석 · 대범천왕 등 열 가지 비유로 찬탄하는데, 이 구절은 그 비유들을 모아 맺는 판정의 말이다. 「제경」은 석존 일대 오십 년의 경만이 아니라 시방삼세 제불의 경 전체를 가리킨다.
須弥山수미산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서 세계 한가운데 솟아 있다는 산. 범어 수메루(Sumeru)의 음사로 수미루 · 소미로라고도 쓰고 묘고(妙高) · 안명(安明)으로 번역한다. 세계 아래에 풍륜 · 수륜 · 금륜의 삼륜이 있고 맨 위 금륜 위에 아홉 산과 여덟 바다(구산팔해)가 있어 이를 일소세계라 하는데, 수미산은 그 중심으로 물밑에서 높이 십육만팔천 유순이라 한다.
帝釈제석
범어 샤크로 데바남 인드라(śakro devānām indraḥ)의 번역으로 석제환인 · 천제석이라고도 한다. 본래 인도 신화의 최고신이자 뇌신(雷神)이었으나 불법에서는 정법을 지키는 제천선신의 하나가 되었다. 욕계 제2 도리천의 주인으로 수미산 꼭대기 희견성에 살며 삼십삼천을 거느린다. 법화경 서품에서는 권속 이만의 천자와 함께 법화경의 회좌에 참여하였다.
輪王윤왕(전륜성왕)
불교가 설하는 이상의 군주. 무력을 쓰지 않고 정법으로 온 세계를 다스리며 칠보(윤 · 상 · 마 · 주 · 여 · 주장신 · 주병신)와 삼십이상을 갖춘다고 한다. 윤보(輪寶)가 굴러가며 모든 것을 감복시키고 국토의 높낮이를 고르게 하는 덕이 있다. 금 · 은 · 동 · 철의 네 윤왕이 있다.
如意宝珠여의보주
뜻대로 갖가지 한량없는 보배를 내는 구슬. 부처님의 사리가 변하여 되었다고도, 용왕이나 마갈어의 머릿속에서 나온다고도 하였다. 『마하지관』 권5상에는 여의주가 천상의 뛰어난 보배로 모양은 겨자씨만 하나 큰 공능이 있다고 한다.
肉髻육계
부처의 삼십이상의 하나. 정수리의 살이 상투처럼 높이 솟은 모습으로, 무견정상(無見頂相)이라고도 한다. 부처의 몸에서 가장 높은 자리이므로 「일체경의 정상」을 비유하는 데 쓰였다.
論師人師논사 · 인사
논사(아비담사)는 본래 삼장 가운데 논장에 통달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뒤에는 논의에 능하거나 논을 지어 불법을 선양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인사는 논사에 상대하는 말로, 부처 · 보살이 아니면서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이다. 용수 · 천친 등을 논사라 하고, 천태 · 묘락을 비롯해 법장 · 가상 · 현장 · 자은 등을 인사라 통칭하였다.
俗諦・真諦속제 · 진제
속제는 세간 일반에서 인정되는 진실, 곧 세간의 도리다. 진제는 절대 불변의 진리, 궁극의 진실로 제일의제 · 승의제라고도 한다. 이전의 경이 「속제에 상대하여 진제를 설한다」는 것은 세간법에 견주어 불법의 진리가 뛰어나다고 말하는 수준의 「뛰어남」이라는 뜻이다.
諸の空仮に対して中道をほめたり여러 공 · 가에 상대하여 중도를 칭찬하였다
공에 치우친 견해, 가(假)에 치우친 견해에 견주어 중도가 뛰어나다고 찬탄한 것. 이 역시 한쪽에 대한 상대적 우월일 뿐, 제경 전체를 놓고 「가장 그 위」라고 선언한 것은 아니다.
小国の王が我が国の臣下に対して大王という작은 나라의 왕이 제 나라 신하에게 대왕이라 함
이전 경들의 「뛰어나다」는 말을 견준 비유. 제 나라 안에서 신하에게 대왕이라 불리는 것과, 여러 나라의 왕들을 거느리는 대왕은 같은 「대왕」이라도 무게가 전혀 다르다.
天台已前の南北の諸師천태 이전 남북의 여러 스승
중국 남북조 시대 강남의 세 스승과 강북의 일곱 스승, 이른바 남삼북칠(南三北七). 이들은 열반경을 최고로 놓는 교판을 세웠고, 그 대표인 광택사 법운은 「화엄 제일 · 열반 제이 · 법화 제삼」이라 하였다. 그 전말은 보은초 제3편에서 다룬다.
無量義経무량의경
한 권. 남제(蕭齊) 시대 담마가타야사 번역. 법화경의 개경(開經)이다. 무량의가 「한 법에서 생긴다」 등을 설하고 이 무량의의 법문을 닦으면 무상정각을 이룬다고 밝힌다. 「사십여 년에는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글로 이전 사십여 년의 경을 한데 묶어 견준 경이다.
秋収冬蔵して更に所作無きが如し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여 다시 할 일이 없는 것과 같다
열반경 여래성품의 글. 법화경으로 모든 이가 득도한 것은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겨울에 창고에 갈무리를 마친 것과 같고, 열반경은 그 뒤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八千の声聞に記莂を授くる팔천의 성문에게 기별을 주다
법화경의 회좌에서 성문들이 미래 성불의 기별을 받은 일을 열반경이 돌아보며 가리킨 말. 열반경 스스로 법화경에서 「큰 열매」가 이미 맺혔다고 인정한 대목이다.
天台・妙楽・伝教大師の御れうけん천태 · 묘락 · 전교대사의 요간
「れうけん(料簡)」은 경문의 뜻을 헤아려 가려 정함. 천태대사(지의)가 오시팔교로 일대 성교를 판정하고, 묘락대사(담연)가 이를 주석으로 굳히며, 전교대사(사이초)가 일본에서 이를 펼친 일을 가리킨다.
慈覚・智証자각 · 지증
자각(엔닌(円仁))과 지증(엔친(円珍)). 모두 히에이산 천태종의 좌주였으나 대일경을 법화경과 「이(理)는 같고 사(事)는 뛰어나다」고 하여 진언으로 기울었다. 보은초 제4편에서 자세히 파한다.

약왕품의 명문 —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

제4장에서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는 열반경의 유계를 받아든 대성인은, 이제 그 원칙대로 사람의 말을 내려놓고 경문을 직접 펼치신다. 첫머리의 「이리하여(随つて)」는 바로 그 유계를 따른다는 뜻이다. 여기서부터 법화경의 명문으로 일대 제경의 승렬을 판정하는 단락이 시작된다.

처음 끌어오신 경문은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이 법화경은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이다. 이 「제경 가운데」는 석존 일대 오십 년의 여러 경은 물론, 시방삼세 제불이 설한 모든 경까지 포함한다. 법화경이 그 모든 경 가운데 가장 제일이기 때문에 「가장 그 위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다른 경과 한두 가지 점을 견주어 하는 말이 아니라, 제경 전체를 하나로 놓고 내리는 판정이라는 점이 이 경문의 무게다.

대성인은 이 경문을 곧바로 네 가지 비유로 풀어 보이신다. 수미산 꼭대기의 제석, 전륜성왕 정수리의 여의보주, 뭇 나무 위에 깃든 달, 모든 부처의 정수리에 솟은 육계가 그것이다. 수미산은 고대 인도 세계관에서 일소세계의 중심에 솟은 산이고, 그 꼭대기 희견성에는 삼십삼천을 거느리는 제석이 산다. 전륜성왕은 무력이 아니라 정법으로 사천하를 다스리는 이상의 군주인데, 그 정수리에 뜻대로 보배를 내는 여의보주가 있다. 뭇 나무가 아무리 높아도 그 위에는 달이 떠 있고, 부처의 삼십이상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가 정수리의 육계다. 네 비유는 모두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가장 귀한 것」이라는 한 가지 뜻을 겹겹이 보인다. 그리고 대성인은 그것을 「화엄경 · 대일경 · 열반경 등 일체경의 정상에 있는 여의보주」라는 한 구절로 맺으신다. 여기서 화엄경 · 대일경 · 열반경을 굳이 이름으로 드신 것은, 화엄종 · 진언종이 저마다 자기 소의경을 제일이라 하고 남북의 스승들이 열반경을 법화경 위에 두었던 사정을 겨냥하신 것이다.

  • 수미산의 꼭대기 → 제석須弥山の頂に帝釈の居がごとく
  • 전륜성왕의 정수리 → 여의보주輪王の頂に如意宝珠のあるがごとく
  • 뭇 나무의 꼭대기 → 달衆木の頂に月のやどるがごとく
  • 모든 부처의 정수리 → 육계諸仏の頂に肉髻の住せるがごとく
「이 법화경은 화엄경 · 대일경 · 열반경 등 일체경의 정상에 있는 여의보주이니라」此の法華経は華厳経・大日経・涅槃経等の一切経の頂上の如意宝珠なり
근거: 약왕품 제23 「이 법화경은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
도표 2 · 약왕품의 판정과 네 비유

여의보주의 비유가 가리키는 것

네 비유 가운데 대성인이 맺음에서 다시 붙잡으신 것은 여의보주다. 여의보주는 뜻대로 갖가지 한량없는 보배를 내는 구슬로, 『마하지관』 권5상은 그 모양이 겨자씨만 하지만 큰 공능이 있다고 한다. 작은 구슬 하나에서 한량없는 보배가 나온다는 이 성질은, 대성인의 다른 어서에서 묘법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형제초」에서는 천태대사가 묘법연화경 다섯 자의 곳간에서 일념삼천의 여의보주를 꺼내어 삼국의 일체중생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妙法蓮華経の五字の蔵の中より一念三千の如意宝珠を取り出して三国の一切衆生に普く与へ給へり

묘법연화경 다섯 자의 곳간 속에서 일념삼천의 여의보주를 꺼내어 삼국의 일체중생에게 널리 주셨느니라

「형제초」, 1087쪽

또 『어의구전』은 제바달다품의 「한 보주가 있다(有一宝珠)」를 풀어 그 한 글자 한 글자를 묘법에 맞추어 읽는다.

一とは妙法蓮華経なり宝とは妙法の用なり珠とは妙法の体なり

「하나」란 묘법연화경이니라. 「보(寶)」란 묘법의 작용이요, 「주(珠)」란 묘법의 체니라

『어의구전』, 747쪽

이처럼 대성인의 불법에서 여의보주는 묘법의 체와 용을 함께 갖춘 것이며, 말법에서 그것은 묘법을 그대로 나타낸 본존을 가리킨다고 받든다. 「일체경의 정상에 있는 여의보주」라는 이 장의 맺음말은, 겉으로는 법화경이 제경 가운데 최고라는 판정이지만, 그 밑바닥에서는 법화경이 품고 있는 묘법 그 자체가 일체경이 끝내 이르러야 할 보배라는 뜻을 함께 품고 있다.

법화경에도 셋이 있다 — 재세 · 상법 · 말법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는 판정을 읽을 때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같은 「법화경」이라는 이름 아래에도 시대에 따른 구별이 있다는 점이다. 석존 재세의 법화경, 상법 시대 천태대사의 법화경, 말법 니치렌 대성인의 법화경이 그것이다.

석존이 세상에 나오신 본회(本懷)는 이십팔품의 법화경이었다. 천태대사는 상법 시대에 나타나 『마하지관』을 넓혔고, 이것이 상법 시대의 법화경이었다. 그리고 대성인이 세상에 나오신 본회는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다. 대성인은 「교오전답서」에서 부처님의 마음과 당신의 혼을 나란히 놓아 이 구별을 분명히 하셨다.

仏の御意は法華経なり日蓮が・たましひは南無妙法蓮華経に・すぎたるはなし

부처님의 마음은 법화경이니라. 니치렌의 혼은 남묘호렌게쿄보다 더한 것이 없느니라

「교오전답서」, 1124쪽

그러므로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약왕품의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는 경문은 결국 말법의 법화경인 대성인의 불법, 곧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가 일체의 경 · 가르침 가운데 가장 높은 법임을 보인 글로 받들어야 한다. 이 장에서 대성인이 「일체경의 정상의 여의보주」라는 말로 맺으신 것도, 앞에서 본 것처럼 그 묘법을 향한 말씀으로 읽을 수 있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라는 판정은 재세의 이십팔품, 상법의 『마하지관』, 말법의 남묘호렌게쿄로 시대마다 그 자리가 깊어진다. 말법에서 「가장 그 위」에 있는 것은 대성인이 세우신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다.

높고 낮음이 뚜렷하다 — 논사 · 인사를 버리고 경문에 의지하다

「그러므로 오로지 논사 · 인사를 버리고 경문에 의지한다면」이라는 말은 제4장의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를 그대로 되받은 것이다. 논사는 본래 삼장 가운데 논장에 통달한 사람을 가리키다가, 뒤에는 논을 지어 불법을 선양하는 사람을 일컫게 되었다. 인도의 용수 · 천친이 대표적이다. 인사는 그에 상대하는 말로, 부처도 보살도 아니면서 사람들을 이끈 스승이다. 중국의 천태 · 묘락은 물론 법장 · 가상 · 현장 · 자은도 모두 인사에 든다. 대성인은 여기서 천태 · 묘락까지 포함하여 일단 모든 논사 · 인사의 말을 내려놓고 경문 자체를 보자고 하신다. 이것은 천태대사가 「오로지 경문을 스승으로 삼아」 일대의 승렬을 헤아렸던 방법(제4장)을 대성인 자신이 그대로 밟아 가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렇게 경문을 펼치면 법화경이 대일경 · 화엄경 등보다 뛰어남은 「해가 푸른 하늘에 떠올랐을 때 눈 밝은 사람이 하늘과 땅을 보는 것과 같이」 뚜렷하다. 비유의 요점은 둘이다. 하나는 해가 이미 떠 있다는 것, 곧 경문의 증거가 이미 분명하게 나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눈 밝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곧 보는 쪽이 종파의 선입견으로 눈을 가리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 끝에서 「눈 있는 사람들은 알아야 할 일」이라고 다시 말씀하신 것과 짝을 이룬다.

「무엇에 상대하여」 — 이전 경의 상사문을 가리다

그렇다면 다른 경에도 「이 경이 뛰어나다」는 글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대일경 · 화엄경에도 스스로를 높이는 말은 적지 않다. 대성인은 이 물음을 예상하시고, 먼저 이전(爾前)의 경들에 있는 비슷한 글(相似の文)을 회통하신다. 대일경 · 화엄경을 특별히 들어 말씀하신 것은 진언종 · 화엄종을 파하시려는 뜻이다.

「이 경문에 비슷한 경문은 한 글자 한 점도 없다」는 말씀을 바르게 읽으려면 「소대(所對)」, 곧 그 경이 무엇에 상대하여 뛰어나다고 하는지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이전의 경에서도 외도에 상대하면 불교가 뛰어나다고 설하고, 소승에 상대하면 대승이 뛰어나다고 설한다. 본문이 드는 예도 그렇다. 혹은 소승경에 상대하여 승렬을 설하고, 혹은 세간의 도리인 속제에 상대하여 궁극의 진리인 진제를 설하며, 혹은 공 · 가에 치우친 견해에 상대하여 중도를 칭찬한다. 모두 어떤 한 상대보다 뛰어나다는 말일 뿐이다. 법화경처럼 「제경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여러 왕 가운데 대왕이다」라고 일체경을 하나로 놓고 견준 글은 한 글자 한 점도 없다.

대성인은 이것을 작은 나라의 왕에 견주신다. 작은 나라의 왕도 제 나라의 신하들 앞에서는 「대왕」이라 불린다. 그러나 법화경이 「대왕」이라 할 때 그 상대는 신하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왕들이다. 같은 「대왕」이라는 말이라도 무엇을 상대로 하는 말인지에 따라 그 무게가 전혀 다르다. 이렇게 이전 경의 상사문을 물리치는 것을 「빼앗아(奪って)」 회통한다고 한다. 이어지는 「다만 열반경만이」부터는 열반경에 비슷한 글이 있음을 일단 「주어(與えて)」 인정한 뒤 회통한다. 여(與) · 탈(奪)의 두 단계로 다른 경의 글을 차례로 다루는 것이 이 장의 짜임새다.

상대(所對)외도에 상대하여
뛰어나다고 하는 것불교가 뛰어나다(이전경)
상대(所對)소승경에 상대하여
뛰어나다고 하는 것대승의 승렬을 설함小乗経に対して勝劣をとかれ
상대(所對)속제에 상대하여
뛰어나다고 하는 것진제를 설함俗諦に対して真諦をとき
상대(所對)여러 공 · 가에 상대하여
뛰어나다고 하는 것중도를 칭찬함諸の空仮に対して中道をほめたり
상대(所對)여러 왕에 상대하여
뛰어나다고 하는 것대왕(법화경)法華経は諸王に対して大王
「작은 나라의 왕이 제 나라 신하에게 대왕이라 함」小国の王が我が国の臣下に対して大王という「법화경은 여러 왕에 대하여 대왕」
여(與) · 탈(奪)이전경의 상사문은 빼앗아 회통 · 열반경의 상사문은 주어 회통
도표 3 · 「무엇에 상대하여」 — 상사문의 소대

열반경만이 비슷하다 — 오미의 글

「다만 열반경만이 법화경과 비슷한 경문이 있다」는 말씀이 가리키는 것은 열반경의 오미(五味) 글이다. 열반경 성행품은 여러 대승 방등 경전도 한량없는 공덕을 이루었지만 이 경에 견주면 비유조차 할 수 없다고 한 뒤, 소에서 우유가 나오고 우유에서 낙이 나와 마침내 제호에 이르는 비유를 든다.

是の諸の大乗方等経典は復無量の功徳を成就すと雖も、是の経に比せんと欲せば、喩を為すことを得ず

이 모든 대승 방등 경전은 또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다 하더라도, 이 경에 견주려 하면 비유로 삼을 수조차 없다

『대반열반경』 성행품, T12 no.374

譬えば牛より乳を出し、乳より酪を出し、酪より生酥を出し、生酥より熟酥を出し、熟酥より醍醐を出す。醍醐は最上なり。若し服する者有らば衆病皆除く。有らゆる諸薬の悉く其の中に入るが如く、善男子、仏も亦是くの如し。仏より十二部経を出し、十二部経より修多羅を出し、修多羅より方等経を出し、方等経より般若波羅蜜を出し、般若波羅蜜より大涅槃を出す。なお醍醐の如し。醍醐と云うは仏性に喩う

비유하면 소에서 우유를 내고, 우유에서 낙(酪)을 내고, 낙에서 생소(生酥)를 내고, 생소에서 숙소(熟酥)를 내고, 숙소에서 제호(醍醐)를 내는 것과 같다. 제호는 가장 으뜸이니 먹는 이가 있으면 온갖 병이 다 없어진다. 모든 약이 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부처도 또한 이와 같다. 부처에게서 십이부경이 나오고, 십이부경에서 수다라가 나오고, 수다라에서 방등경이 나오고, 방등경에서 반야바라밀이 나오고, 반야바라밀에서 대열반이 나온다. 마치 제호와 같다. 제호라 함은 불성에 비유한 것이다

『대반열반경』 성행품, T12 no.374

천태대사는 이 글을 오시(五時)의 증거로 세웠다. 우유 · 낙 · 생소 · 숙소 · 제호의 다섯 맛이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 법화열반의 다섯 시기에 대응하며, 「대열반이 제호」라는 것은 법화 · 열반의 시기를 나타낸다. 열반경이 스스로를 제호에 견주었기 때문에, 이 글만 떼어 보면 열반경이 일대 가운데 가장 높은 경처럼 보인다. 남북의 스승들이 바로 여기에 걸려 넘어졌다.

맛 — 경 — 오시
  1. 우유(乳)십이부경화엄시
  2. 낙(酪)수다라아함시
  3. 생소(生酥)방등경방등시
  4. 숙소(熟酥)반야바라밀반야시
  5. 제호(醍醐)대열반법화열반시
「소에서 우유를 내고 … 숙소에서 제호를 낸다. 제호는 가장 으뜸이니라」牛より乳を出し…熟酥より醍醐を出す。醍醐は最上なり
천태대사는 이 글을 오시의 증거로 세웠다
도표 4 · 열반경 오미의 글과 오시

명(命)과 중보(重宝) — 「데라도마리어서」의 풀이

그렇다면 같은 제호의 자리에 있는 법화경과 열반경은 어떤 관계인가. 대성인은 사도로 가시는 길에 쓰신 「데라도마리어서」에서 열반경 제18권의 「속명중보(贖命重宝)」의 법문과 천태대사의 해석을 들어 이를 밝히셨다.

涅槃経の第十八に贖命重宝と申す法門あり、天台大師の料簡に云く命とは法華経なり重宝とは涅槃経に説く所の前三教なり、但し涅槃経に説く所の円教は如何、此の法華経に説く所の仏性常住を重ねて之を説いて帰本せしめ涅槃経の円常を以て法華経に摂す、涅槃経の得分は但・前三教に限る

열반경 제18권에 「속명중보(목숨을 대속하는 귀중한 보배)」라는 법문이 있다. 천태대사의 요간에 이르기를, 「명(목숨)」이란 법화경이요 「중보」란 열반경에 설한 앞의 세 가르침(장 · 통 · 별)이다. 그렇다면 열반경에 설한 원교는 어떠한가. 이것은 법화경에 설한 불성상주를 거듭 설하여 근본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니, 열반경의 원상(圓常)은 법화경에 거두어진다. 열반경의 몫은 다만 앞의 세 가르침에 한정된다

「데라도마리어서」, 952쪽

목숨을 대신하여 내놓는 보배는 귀하지만, 그 보배가 지키려는 목숨보다 귀할 수는 없다. 열반경이 설하는 원교의 내용은 이미 법화경에서 설한 불성상주를 되풀이한 것일 뿐이므로 법화경에 거두어지고, 열반경이 새로 보탠 것은 장 · 통 · 별의 앞 세 가르침에 그친다. 이어서 「데라도마리어서」는 묘락대사의 『법화문구기』 권9말을 끌어 법화와 열반의 관계를 전쟁과 수확의 비유로 다시 보인다.

法華は大陣を破る如し、涅槃経は残党の如し、難からず、故に法華は大収の如し、涅槃は捃拾の如し

법화는 큰 진을 깨뜨리는 것과 같고 열반경은 남은 무리를 소탕하는 것과 같아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법화는 큰 수확과 같고 열반은 이삭 줍기와 같다

『법화문구기』 권9말, 「데라도마리어서」에서 재인용, 952쪽
추수를 마친 늦가을 들판 — 볏단을 다 거두어 들인 곡식 창고와 그루터기만 남은 논
그림 · 추수를 마친 늦가을 들판 — 볏단을 다 거두어 들인 곡식 창고와 그루터기만 남은 논

큰 진을 깨뜨린 장수와 흩어진 패잔병을 거두는 장수, 들판의 곡식을 한꺼번에 거두는 수확과 떨어진 이삭을 줍는 일 — 어느 쪽이 큰일인지는 물을 필요도 없다.

열반경 스스로 「법화경보다 못하다」고 설하다

이제 대성인은 열반경을 일단 인정한 뒤(與) 그 열반경 자신의 글로 승렬을 가리신다. 「오로지 경문을 펼쳐 보면」 열반경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첫째, 무량의경이 그러했듯이 열반경도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등 사십여 년의 경경을 한데 들어 자신과 견주고 「내가 뛰어나다」고 말한다. 무량의경은 법화경의 개경으로, 이전 사십여 년의 가르침을 묶어 그것보다 뛰어남을 밝힌 경이다. 열반경도 이전의 경들에 상대해서는 같은 자리에 선다.

둘째, 그러나 열반경이 법화경에 상대할 때는 전혀 다르게 말한다. 열반경 여래성품 제9는 이 경이 세상에 나온 까닭을 이렇게 말한다. 법화경 가운데 팔천의 성문이 기별을 받아 큰 열매를 이룬 것은 가을에 거두어들이고 겨울에 갈무리하여 다시 할 일이 없는 것과 같다고. 법화경에서 이미 수확과 갈무리가 끝났으니, 열반경에 남은 일은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뿐이라는 뜻이다. 「데라도마리어서」의 「대수(大収)」와 「군습(捃拾)」은 바로 이 글과 맞물려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이 글을 「열반경 스스로 법화경보다 못하다고 설한 경문」이라 하셨다.

법화경
  • 큰 수확(大収)
  • 큰 진을 깨뜨림
  • 명(命)
  • 팔천 성문의 기별, 큰 열매를 이룸
열반경
  • 이삭 줍기(捃拾)
  • 남은 무리
  • 중보(앞의 세 가르침)
  •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한 뒤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여 다시 할 일이 없는 것과 같다」秋収冬蔵して更に所作無きが如し「법화는 큰 수확과 같고 열반은 이삭 줍기와 같다」法華は大収の如し、涅槃は捃拾の如し
출처: 열반경 여래성품 · 『법화문구기』 권9말(「데라도마리어서」 952쪽)
도표 5 · 법화와 열반

그런데도 천태 이전 남북의 스승들은 이 경문에 미혹하여 「법화경은 열반경보다 못하다」고 하였다. 그들은 열반경이 사십여 년의 경을 넘어선다는 앞의 얼굴만 보고, 법화경 앞에서 스스로 낮추는 뒤의 얼굴은 보지 못한 것이다. 대성인이 「이렇게 경문은 분명하건만 남북의 큰 지자들조차 미혹하였던 경문이니, 말대의 학자는 잘 잘 눈을 멈추어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남삼북칠의 여러 스승은 당대 최고의 학장들이었다. 그런 이들조차 미혹했다면, 말대의 학자가 종파의 전승만 믿고 경문을 건너뛰는 위험은 더욱 크다. 남삼북칠과 천태대사의 대결은 보은초 제3편 「천태 · 전교의 홍통」에서 이어진다.

한 경으로 시방 일체경의 승렬을 안다

「이 경문은 다만 법화경 · 열반경의 승렬뿐만 아니라 시방세계 일체경의 승렬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견주어 미루어 아는 비지(比知)의 논리다. 이전 사십여 년의 경을 모두 넘어선다고 스스로 말하는 열반경조차 법화경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열반경 아래에 놓이는 시방세계의 일체 제경이 법화경에 미치지 못함은 저절로 분명해진다. 가장 높은 도전자를 이긴 자가 나머지 모두보다 높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비지의 논리는 다음 제6장의 가난, 곧 「보지 못한 세계에 더 뛰어난 경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를 확실히 알면 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 제6장의 「하나로 만을 살핀다」는 이 자리에서 이미 싹트고 있다.

요간 뒤에도 어두웠던 사람들 — 자각 · 지증

장의 끝에서 대성인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문제로 돌아오신다. 경문 자체에 미혹하는 것은 그나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천태 · 묘락 · 전교대사가 경문의 뜻을 헤아려 일대 제경의 승렬을 분명히 판정한 뒤로는, 「눈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천태대사는 오시팔교로 일대 성교를 정리하였고, 묘락대사는 그 해석을 주석으로 굳혔으며, 전교대사는 일본에서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는 천태법화종을 세웠다. 해는 이미 떠올랐고 그 해를 가리키는 손가락까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천태종 사람인 자각 · 지증조차 오히려 이 경문에 어두웠다」. 이 한 문장이 보은초 전체의 가장 무거운 비판의 첫 예고다. 자각(엔닌)과 지증(엔친)은 바로 전교대사가 세운 히에이산의 천태좌주였다. 천태 · 묘락 · 전교의 판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이어받아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대일경을 법화경과 「이는 같고 사는 뛰어나다」고 하여 진언으로 기울었다. 집 안의 사람이 길을 잃었으니 「하물며 다른 종의 사람들이랴」. 이 비판은 보은초 제4편 「진언으로 기운 예산 — 홍법 · 자각 · 지증」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천태대사 이래 대성인 당시까지 법화경 제일의 판정이 내려진 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미란이 그치지 않았다는 탄식은, 이 장의 「眼あらん人人はしりぬべき事ぞかし(눈 있는 사람들은 알아야 할 일이니라)」에 담겨 있다. 미란의 원인이 경문의 불분명함이 아니라 사람의 집착에 있다는 것이 이 장의 결론이다.

제6장 법화경이 가장 제일임을 밝히다
어서 295쪽 13행 ~ 296쪽 15행 · 第6章 法華最第一を明かす

본문

本文 · 一어서 295쪽 13~17행
本文 · 어서 원문

或る人疑つて云く漢土・日本にわたりたる経経にこそ法華経に勝たる経はをはせずとも月氏・竜宮・四王・日月・忉利天・都率天なんどには恒河沙の経経ましますなれば其中に法華経に勝れさせ給う御経やましますらん、答て云く一をもつて万を察せよ庭戸を出でずして天下をしるとはこれなり、癡人が疑つて云く我等は南天を見て東西北の三空を見ず彼の三方の空に此の日輪より別の日やましますらん、山を隔て煙の立つを見て火を見ざれば煙は一定なれども火にてやなかるらんかくのごとくいはん者は一闡提の人としるべし生盲にことならず、

풀이

어떤 사람이 의심하여 말하기를, 「한토 · 일본에 건너온 경경 가운데에는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은 계시지 않을지라도, 월지(月氏) · 용궁 · 사왕천 · 일천 · 월천 · 도리천 · 도솔천 등에는 항하사(恒河沙)만큼의 경경이 계시다 하니, 그 가운데에는 법화경보다 뛰어나신 경이 계시지 않겠는가.」 답하여 말하되, 하나로써 만을 살피라. 뜰 문을 나서지 않고 천하를 안다는 것이 이것이니라. 어리석은 사람이 의심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남쪽 하늘을 보고 동 · 서 · 북 세 하늘을 보지 못하였으니, 저 세 방향의 하늘에는 이 해와는 다른 해가 계시지 않겠는가.」 산 너머로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불을 보지 못하였으니 연기는 틀림없으나 불은 아니지 않겠는가 — 이와 같이 말하는 자는 일천제(一闡提)의 사람이라 알아야 하나니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이와 다르지 않으니라.

本文 · 二어서 295쪽 17행 ~ 296쪽 5행
本文 · 어서 원문

法華経の法師品に釈迦如来金口の誠言をもつて五十余年の一切経の勝劣を定めて云く「我所説の経典は無量千万億にして已に説き今説き当に説ん而も其の中に於て此法華経は最も為難信難解なり」等云云、此の経文は但釈迦如来・一仏の説なりとも等覚已下は仰いで信ずべき上多宝仏・東方より来りて真実なりと証明し十方の諸仏集りて釈迦仏と同く広長舌を梵天に付け給て後・各各・国国へ還らせ給いぬ、已今当の三字は五十年並びに十方三世の諸仏えの御経、一字一点ものこさず引き載せて法華経に対して説せ給いて候を十方の諸仏・此座にして御判形を加えさせ給い各各・又自国に還らせ給いて我弟子等に向わせ給いて法華経に勝れたる御経ありと説せ給はば其の所化の弟子等信用すべしや、

풀이

법화경 법사품에 석가여래께서 금구(金口)의 진실한 말씀으로 오십여 년 일체경의 승렬을 정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설한 경전은 한량없는 천만억이라, 이미 설하였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할 것이나, 그 가운데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니라」 등이라 하셨느니라. 이 경문은 비록 석가여래 한 부처님의 말씀일지라도 등각(等覺) 이하는 우러러 믿어야 할 것인데, 더하여 다보불께서 동방에서 오시어 진실이라고 증명하시고, 시방의 제불께서 모이시어 석가불과 같이 광장설(廣長舌)을 범천에 닿게 하신 뒤에 저마다 제 나라로 돌아가셨느니라. 이금당(已今當)의 세 글자는 오십 년과 아울러 시방삼세 제불의 경을 한 글자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끌어 실어 법화경에 상대하여 설하신 것인데, 시방의 제불이 이 자리에서 판형(判形)을 찍으시고 저마다 또 자기 나라에 돌아가시어 제 제자들에게 향하여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다」고 설하신다면 그 교화를 받는 제자들이 믿겠느냐.

本文 · 三어서 296쪽 5~15행
本文 · 어서 원문

又我は見ざれば月氏・竜宮・四天・日月等の宮殿の中に法華経に勝れさせ給いたる経や・おはしますらんと疑いをなすはされば梵釈・日月・四天・竜王は法華経の御座にはなかりけるか、若し日月等の諸天・法華経に勝れたる御経まします汝はしらずと仰せあるならば大誑惑の日月なるべし、日蓮せめて云く日月は虚空に住し給へども我等が大地に処するがごとくして堕落し給はざる事は上品の不妄語戒の力ぞかし、法華経に勝れたる御経ありと仰せある大妄語あるならば恐らくはいまだ壊劫にいたらざるに大地の上にどうとおち候はんか無間大城の最下の堅鉄にあらずばとどまりがたからんか、大妄語の人は須臾も空に処して四天下を廻り給うべからずとせめたてまつるべし、而るを華厳宗の澄観等・真言宗の善無畏・金剛智・不空・弘法・慈覚・智証等の大智の三蔵大師等の華厳経・大日経等は法華経に勝れたりと立て給わば我等が分斉には及ばぬ事なれども大道理のをすところは豈諸仏の大怨敵にあらずや、提婆・瞿伽梨もものならず大天・大慢・外にもとむべからず・かの人人を信ずる輩はをそろし・をそろし。

풀이

또 「나는 보지 못하였으니 월지 · 용궁 · 사천 · 일월 등의 궁전 안에 법화경보다 뛰어나신 경이 계시지 않겠는가」 하고 의심하는 것은, 그렇다면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 · 용왕은 법화경의 자리에 없었더란 말인가. 만일 일월 등의 제천이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으나 너는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면 크게 속이는 일월이 될 것이니라. 니치렌이 따져 말하리라. 「일월은 허공에 머무시되 우리가 대지에 있는 것과 같이 떨어지지 않으시는 것은 상품(上品)의 불망어계의 힘이니라.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대망어가 있다면 아마도 아직 괴겁(壞劫)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대지 위로 쿵 하고 떨어지시지 않겠는가. 무간대성 맨 밑바닥의 굳은 쇠가 아니면 멈추기 어렵지 않겠는가. 대망어의 사람은 잠깐이라도 하늘에 머물러 사천하를 도실 수 없을 것이다」라고 따져 드리리라. 그런데 화엄종의 징관 등, 진언종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홍법 · 자각 · 지증 등 큰 지혜의 삼장 · 대사들이 「화엄경 · 대일경 등은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세우셨으니, 우리 분수로는 미칠 바가 아니나 큰 도리가 미는 바로는 어찌 제불의 대원적(大怨敵)이 아니겠는가. 제바 · 구가리도 견줄 바가 아니요 대천 · 대만도 밖에서 찾을 것이 없느니라. 저 사람들을 믿는 무리는 두렵고 두렵도다.

어구 풀이

月氏월지
중국 · 일본에서 쓰인 인도의 이름. 기원전 3세기 후반까지 돈황과 기련산맥 사이에 살던 월지족이 흉노에게 쫓겨 중앙아시아로 옮겨 가 인도 일부까지 영토로 삼았고, 이 땅을 거쳐 불교가 중국에 전해졌으므로 중국에서는 월지를 곧 인도로 여겼다. 현장의 『대당서역기』 권2는 무명의 긴 밤을 비추는 달과 같다는 뜻에서 월지라 한다고 전하나, 현장 자신은 「인도(印度)」라고 음사하였다.
竜宮용궁
용왕이 사는 궁전. 물밑이나 물 위에 있다고 한다. 『장아함경』 권19는 큰 바다 밑에 사갈용왕의 궁이 있어 가로세로 팔만 유순이며, 일곱 겹의 담 · 난간 · 그물 · 가로수가 모두 칠보로 장엄되어 있다고 한다.
四王사왕(사대천왕)
제석천의 바깥 장수. 수미산 중턱 유건다라산의 네 봉우리를 욕계 육천 가운데 가장 아래인 사왕천이라 하고 그 왕을 사천왕이라 한다. 동쪽 지국천, 남쪽 증장천, 서쪽 광목천, 북쪽 다문천이다.
忉利天도리천
범어 트라야스트링샤(Trāyastriṃśa)의 음사로 삼십삼천이라 번역한다. 욕계 육천의 둘째로 수미산 꼭대기에 있다. 가운데 제석이 사는 희견성이 있고 사방 봉우리마다 여덟 하늘이 있어 모두 삼십삼천이다. 『구사론』 권11에 따르면 인간의 백 년이 이 하늘의 하루 낮밤이며 수명은 천 년이니, 인간의 햇수로 환산하면 삼천육백만 년에 해당한다.
都率天도솔천
범어 투시타(Tuṣita)의 음사로 욕계 육천의 넷째. 지족(知足) · 묘족 · 희족 · 희락이라 번역하니, 즐거움이 넘쳐 스스로 만족을 안다는 뜻이다. 내원과 외원으로 나뉘어 내원에서는 석존보다 먼저 입멸한 미륵보살이 천인들에게 설법하고 있다고 하며, 외원은 천계 중생이 욕락을 누리는 곳이다.
恒河沙항하사
갠지스 강가의 모래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를 나타내는 비유다.
一をもつて万を察せよ庭戸を出でずして天下をしる하나로써 만을 살피라, 뜰 문을 나서지 않고 천하를 안다
하나를 확실히 알면 그로써 만 가지를 미루어 알 수 있다는 지혜를 가리킨다. 지혜로운 이는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의 형세를 안다는 옛말을 빌려, 보지 못한 세계를 핑계로 판정을 미루는 태도를 물리친 것이다.
癡人치인
어리석은 사람.
一闡提일천제
범어 잇찬티카(Icchantika)의 음사로 일천저가라고도 쓰며, 단선근(斷善根) · 신불구족(信不具足)이라 번역한다. 부처의 정법을 믿지 않아 성불할 기연을 가지지 못한 중생을 가리킨다.
等覚등각
보살이 수행하여 이르는 오십이위 가운데 아래에서 쉰한째, 보살의 가장 높은 자리. 그 지혜와 덕이 묘각의 부처와 거의 같아졌다는 뜻에서 등각이라 한다. 삼아승기 백 겁의 수행을 채우고 바야흐로 묘각의 열매를 얻으려는 자리로, 일생보처 · 유상사 · 금강심의 자리라고도 한다.
多宝仏다보불
동방 보정세계에 사는 부처. 법화경 허공회에서 보탑 안에 앉아 나타나 석가불이 설하는 법화경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보탑 안에서 석존과 나란히 앉아 허공회 의식의 중심이 되었다. 스스로 법을 설하지는 않으며, 법화경이 설해질 때마다 반드시 시방 국토에 나타나 진실이라고 증명한다고 한다.
広長舌광장설
신력품에 설한 열 가지 신력의 첫째인 광장설상. 부처의 삼십이상의 하나이기도 하다. 고대 인도에는 말한 바가 진실임을 증명하려고 혀를 내미는 풍습이 있어, 혀가 길수록 그 말이 진실하다는 확실한 증명으로 여겼다. 그래서 광장설상은 거짓이 없음을 나타낸다.
已今当이금당
법사품의 「이미 설하였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할 것이다」.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8상에서 「이(已)」는 대품반야 이전의 점 · 돈 여러 가르침, 「금(今)」은 같은 자리에서 설한 무량의경, 「당(當)」은 열반경이라 풀었다. 곧 이설은 사십여 년의 이전경, 금설은 무량의경, 당설은 열반경이다.
誑惑광혹
남을 속여 홀림.
上品の不妄語戒상품의 불망어계
오계를 상 · 중 · 하의 세 품으로 나누었을 때 가장 높은 품. 불망어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계다.
壊劫・四天下괴겁 · 사천하
괴겁은 성 · 주 · 괴 · 공의 사겁 가운데 하나로 생명과 세계가 무너져 가는 시기다. 사천하는 수미산 바깥 짠물 바다에 떠 있는 네 대주로, 동쪽 불바제, 서쪽 구야니, 남쪽 염부제, 북쪽 울단월이다.
提婆・瞿伽梨제바 · 구가리
제바는 제바달다(Devadatta). 석존의 사촌으로 출가했으나 악심을 일으켜 교단을 분열시키고 석존을 해치려다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구가리(Kokālika)는 석가족 출신으로 제바달다의 제자이며, 석존의 만류도 듣지 않고 사리불 · 목련을 악한 욕심이 있다고 비난한 과보로 몸에 악창이 나서 대연화지옥에 떨어졌다고 『잡아함경』 권48 등에 전한다.
大天・大慢대천 · 대만
대천(마하제바)은 불멸 후 백 년 무렵 말토라국 상인의 집에 태어나 부모와 아라한을 죽이고 그 죄를 덮으려 출가했으며, 언변이 뛰어나 왕의 존경을 받자 스스로 아라한을 얻었다고 교만하여 그릇된 견해를 세우고 대중부를 만들어 불법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고 『대비바사론』은 전한다. 대만은 대만바라문으로, 외도의 세 신과 석존의 상을 높은 자리의 네 다리로 삼아 자기 덕이 네 성인보다 뛰어나다고 일컫다가 현애논사에게 논파되었고, 논사가 그의 죄를 덜어 주기를 왕에게 청하였는데도 삼보를 비방하여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가난(假難)을 세우다 — 보지 못한 세계의 경

제5장에서 법화경의 명문으로 일대 제경의 승렬을 판정하신 대성인은, 이 장에서 「법화경 최제일」을 한 걸음 더 굳히신다. 그 짜임새는 둘이다. 먼저 가상의 문난, 곧 가난(假難)을 세워 이를 회통하고, 다음으로 법사품의 삼설초과(三說超過)의 글을 들어 석존 일대는 물론 시방삼세 제불의 모든 경 가운데 법화경이 가장 제일임을 밝히신다.

가난의 내용은 이렇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경전 가운데에서는 법화경이 가장 뛰어나다 하더라도, 우리가 아직 모르는 세계 어딘가에는 더 뛰어난 경이 있을지 모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문난자가 드는 장소는 월지 · 용궁 · 사왕천 · 일천 · 월천 · 도리천 · 도솔천이다. 월지는 중국 · 일본에서 인도를 부르던 이름으로, 실제로는 한토에 전해지지 않은 범본이 그곳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용궁은 『장아함경』이 큰 바다 밑 사갈용왕의 궁전이 가로세로 팔만 유순이며 칠보로 장엄되었다고 묘사하는 곳이다. 사왕천은 수미산 중턱 사천왕의 하늘, 도리천은 수미산 꼭대기 제석의 하늘로서 인간의 백 년이 그곳의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도솔천은 내원에서 미륵보살이 천인을 위해 설법하고 있다는 하늘이다. 이렇게 인간의 눈이 닿지 않는 곳, 그것도 불교적 세계관에서 나름의 설법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진 곳들을 들며, 거기에 항하사만큼의 경이 있다고 하니 그 가운데에는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도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 물음은 겉으로는 겸손해 보인다. 다 보지 못했으니 단정하지 말자는 신중함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실질은 법화경 제일의 판정을 끝없이 유보하여 결국 아무것도 믿지 않으려는 태도다. 대성인이 이것을 정면의 논적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의심으로 세우신 것은, 이런 유보의 태도가 특정 종파의 교의라기보다 사람의 마음에 늘 깃드는 의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1. 염부제(한토 · 일본에 전해진 경)사람이 보는 곳
  2. 월지인도 땅의 범본
  3. 용궁큰 바다 밑 사갈용왕의 궁전
  4. 사왕천수미산 중턱, 욕계 첫째 하늘
  5. 일천 · 월천허공
  6. 도리천수미산 꼭대기, 제석의 희견성
  7. 도솔천욕계 넷째 하늘, 내원의 미륵
문난「그 가운데에는 법화경보다 뛰어나신 경이 계시지 않겠는가」其中に法華経に勝れさせ給う御経やましますらん
답「하나로써 만을 살피라」一をもつて万を察せよ
도표 6 · 가난이 드는 「보지 못한 세계」

「하나로써 만을 살피라」 — 남쪽 하늘의 해와 산 너머의 연기

이 가난에 대한 대성인의 첫 대답은 짧다. 「하나로써 만을 살피라. 뜰 문을 나서지 않고 천하를 안다는 것이 이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의 형세를 안다. 하나를 확실히 알면 그로써 만 가지를 미루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제5장에서 본 것처럼, 이전 사십여 년의 경을 넘어선다고 스스로 말하는 열반경조차 법화경 앞에서는 스스로를 낮추었다. 그 하나를 확실히 알면 시방세계 일체경의 승렬도 알 수 있다. 법화경이 가장 뛰어난 까닭은 바로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밝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어서 대성인은 어리석은 사람(癡人)의 의심을 두 가지 비유로 그려 보이신다. 하나는 남쪽 하늘의 해를 보면서, 내가 동 · 서 · 북의 하늘을 보지 못했으니 그 세 방향 하늘에는 이 해와 다른 해가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사람이다. 하늘의 해는 하나뿐이며, 남쪽에서 보는 그 해가 곧 온 하늘을 비추는 해다. 다른 하나는 산 너머로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면서, 연기는 분명하지만 불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불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사람이다. 연기가 있으면 불이 있다는 것은 직접 보지 않고도 아는 일이다. 두 비유 모두, 이미 확실한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도 「직접 다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결론을 미루는 태도를 겨냥한다.

대성인은 이런 사람을 「일천제의 사람이라 알아야 하니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이와 다르지 않다」고 하신다. 일천제는 단선근 · 신불구족이라 번역되는 말로, 부처의 정법을 믿지 않아 성불의 기연을 갖지 못한 중생이다. 의심 그 자체가 일천제인 것은 아니다. 경문이라는 해가 떠올라 있고 연기라는 증거가 피어오르는데도 끝내 믿으려 하지 않는 불신의 마음이 일천제의 마음이며, 그것은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생맹(生盲)과 같다는 것이다.

법사품의 삼설초과 — 이금당

가난을 물리치신 대성인은 이제 법화경 최제일의 결정적 증문을 드신다. 법사품 제10에서 석가여래가 금구의 진실한 말씀으로 오십여 년 일체경의 승렬을 정하신 글이다.

我が説く所の経典は無量千万億にして、已に説き、今説き、当に説くべし。而も其の中に於いて、此の法華経は最も為れ難信難解なり

내가 설한 경전은 한량없는 천만억이라, 이미 설하였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

『묘법연화경』 법사품 제10, T9 no.262

이것을 삼설초과(三說超過)의 글이라 한다.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8상에서 이 세 글자를 이렇게 풀었다.

今初めに已と言うは、大品已上は漸頓の諸説なり。今とは同一の座席にして無量義経を謂うなり。当とは涅槃を謂うなり

이제 처음에 「이(已)」라 한 것은 대품반야 이전의 점 · 돈의 여러 설이다. 「금(今)」이란 같은 자리에서 설한 무량의경을 말한다. 「당(當)」이란 열반경을 말한다

『법화문구』 권8상, T34 no.1718

곧 이미 설한 이설(已說)은 사십여 년의 이전 제경, 지금 설하는 금설(今說)은 법화경의 개경인 무량의경, 앞으로 설할 당설(當說)은 열반경이다. 석존 일대의 모든 경을 과거 · 현재 · 미래의 세 묶음으로 남김없이 거두어 놓고, 그 모두를 넘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고 하신 것이다. 법화경이 가장 난신난해한 것은 그것이 최고 제일의 경전이기 때문이다. 쉽게 믿고 쉽게 아는 가르침은 듣는 이의 근기에 맞추어 설한 수타의(隨他意)의 가르침이고,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가르침은 부처가 깨달은 그대로를 설한 수자의(隨自意)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이 판정은 석존 한 부처의 일대에 그치지 않는다. 방편품에 「삼세 제불의 설법의 의식과 같이 나도 이제 또한 이와 같이」라고 하신 대로, 석존의 설법 의식은 삼세 제불의 설법 의식과 같다. 그러므로 이금당의 세 글자는 시방삼세 제불의 모든 경을 끌어들여 법화경과 견준 것이 되고, 법화경은 시방삼세 제불의 제경 가운데 제일이 된다.

三世の諸仏の 説法の儀式の如く 我れも今亦た是の如く

삼세 제불의 설법의 의식과 같이, 나도 이제 또한 이와 같이

『묘법연화경』 방편품 제2, T9 no.262
  • 이설(已說)이미 설함사십여 년의 이전 제경(대품반야 이전의 점 · 돈의 여러 설)
  • 금설(今說)지금 설함같은 자리의 무량의경
  • 당설(當說)앞으로 설함열반경
「그 가운데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其の中に於て此法華経は最も為難信難解なり
근거: 법사품 제10 · 『법화문구』 권8상
「삼세 제불의 설법의 의식과 같이」(방편품) — 석존 일대를 넘어 시방삼세 제불의 경 전체
도표 7 · 법사품의 삼설초과 — 이금당

다보의 증명과 시방 제불의 판형

법사품의 이 경문은 설령 석가여래 한 부처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등각 이하의 모든 보살은 오직 우러러 믿어야 한다. 등각은 오십이위 가운데 쉰한째, 삼아승기 백 겁의 수행을 마치고 바야흐로 부처의 과위를 얻으려는 보살의 극위다. 그런 등각의 보살조차 부처의 금구의 말씀 앞에서는 우러러 믿을 뿐이다.

그런데 법화경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석가불 외에 다보여래가 동방 보정세계에서 와서 「이 법화경은 모두 진실이다」라고 증명하였다. 다보불은 스스로 법을 설하지 않고, 법화경이 설해지는 곳마다 반드시 나타나 그 진실을 증명하는 부처다. 더하여 시방세계의 제불까지 한량없이 모여 와 석가여래와 같이 광장설을 범천에 대어 진실을 증명하였다. 고대 인도에서는 말이 진실함을 증명할 때 혀를 내미는 풍습이 있었고, 혀가 길수록 그 증명이 확실하다고 여겼다. 신력품에 설해진 광장설상은 그 극치로서 거짓이 전혀 없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증명을 마친 뒤 다보불도 시방의 분신불도 저마다 본국으로 돌아갔다.

대성인은 바로 이 「돌아간 뒤」에 주목하신다. 이금당의 세 글자는 석존 오십 년의 설법은 물론 삼세 시방 제불의 모든 경을 한 글자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끌어 실어 법화경과 견준 판정이다. 시방의 제불은 그 판정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인정하고 판형(判形), 곧 도장을 찍었다. 그런 제불이 제 나라에 돌아가 자기 제자들에게 「실은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었다」고 설한다면, 그 제자들이 믿겠는가. 도장을 찍은 증인이 뒤에 가서 증언을 뒤집는다면 그 증인의 말은 어느 쪽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시방 제불의 판형은 법화경 제일의 판정을 시방세계 어디에서도 뒤집을 수 없게 만드는 봉인이다. 보지 못한 세계에 더 뛰어난 경이 있으리라는 가난은 이로써 근거를 잃는다.

  1. ① 석가여래의 금구법사품 이금당: 「등각 이하는 우러러 믿어야 할 것」等覚已下は仰いで信ずべき
  2. ② 다보불의 증명동방에서 와서 「진실이다」多宝仏・東方より来りて真実なりと証明し
  3. ③ 시방 제불의 광장설범천에 혀를 대어 판형을 찍음十方の諸仏・此座にして御判形を加えさせ給い
「그 제자들이 믿겠느냐」其の所化の弟子等信用すべしや판정은 시방세계 어디에서도 뒤집을 수 없다
도표 8 · 세 겹의 증명

난신난해의 세 겹 — 이전 · 적문 · 본문 · 문저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는 말에도 깊이의 차이가 있다. 법화경 안에도 적문 · 본문 · 문저의 구별이 있기 때문이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이 난신난해의 글을 여러 겹으로 읽어 보이셨다.

먼저 이전경과 법화경을 상대하고, 또 이전경과 적문을 상대하여 법화경 적문이 난신난해하며 뛰어남을 보이신 글이다.

『已今当説最為難信難解』と次下の六難九易是なり

「이금당의 설 가운데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는 글과 그 다음의 육난구이가 이것이다

「관심의 본존초」, 244쪽

伝教大師云く『此の法華経は最も為れ難信難解なり随自意の故に』

전교대사가 이르기를, 「이 법화경은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 수자의이기 때문이다」

「관심의 본존초」, 245쪽

始成正覚の仏・本無今有の百界千如を説いて已今当に超過せる随自意・難信難解の正法なり

시성정각의 부처가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백계천여를 설하여 이금당을 넘어선 수자의 · 난신난해의 정법이니라

「관심의 본존초」, 248쪽

다음은 이전과 적문을 함께 파하고 법화경 본문을 세우는 글이다. 여기서는 적문조차 이전 · 무량의경 · 열반경과 같은 수타의 · 이신이해의 자리로 내려가고, 본문만이 삼설의 밖에 있는 난신난해 · 수자의가 된다.

迹門並びに前四味・無量義経・涅槃経等の三説は悉く随他意の易信易解・本門は三説の外の難信難解・随自意なり

적문과 아울러 앞의 사미 · 무량의경 · 열반경 등 삼설은 모두 수타의의 이신이해요, 본문은 삼설 밖의 난신난해 · 수자의니라

「관심의 본존초」, 249쪽

그리고 말법에서는 대성인의 법화경 본문 수량품 문저에 비밀히 잠긴 삼대비법이야말로 가장 난신난해하고 최고 제일이며, 석존이 설하신 이십팔품의 법화경은 본 · 적 두 문이 모두 수타의의 이신이해가 된다. 대성인은 「개목초」와 「관심의 본존초」에서 이를 이렇게 판정하셨다.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글 밑바닥에 잠겨 있느니라

「개목초」, 189쪽

彼は脱此れは種なり、彼は一品二半此れは但題目の五字なり

저것은 탈(脫)이요 이것은 종(種)이니라. 저것은 일품이반이요 이것은 다만 제목의 다섯 자니라

「관심의 본존초」, 249쪽
  1. 이전 대 법화(적문)법화경이 난신난해 · 수자의「관심의 본존초」 244 · 245 · 248쪽
  2. 적문 대 본문적문은 삼설과 함께 수타의 · 이신이해, 본문은 삼설 밖의 난신난해 · 수자의本門は三説の外の難信難解・随自意なり
  3. 본문 대 문저저것은 탈 · 일품이반, 이것은 종 · 다만 제목의 다섯 자彼は脱此れは種なり
말법에서 가장 난신난해한 것은 수량품 문저의 삼대비법
도표 9 · 난신난해의 세 겹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법사품의 「가장 난신난해」는 이전 대 법화, 적문 대 본문, 본문 대 문저로 세 번 깊어진다. 말법에서 최고 제일의 법은 수량품의 글 밑바닥에 잠긴 남묘호렌게쿄, 곧 삼대비법이다.

일월천을 꾸짖다 — 상품의 불망어계

대성인은 가난을 한 번 더 몰아붙이신다. 「나는 보지 못했으니 월지 · 용궁 · 사천 · 일월 등의 궁전 안에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지 않겠는가」 하고 의심한다면, 그렇다면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 · 용왕은 법화경의 자리에 없었다는 말인가. 실은 이 제천선신은 모두 엄연히 법화경의 회좌에 참여하였다. 서품에서 제석은 권속 이만의 천자와 함께, 그 밖의 천왕 · 용왕들도 저마다 권속을 거느리고 그 자리에 있었다. 보지 못한 세계라던 그 하늘과 용궁의 주인들이 바로 법화경 제일의 판정을 현장에서 들은 증인인 것이다.

그런데도 만일 일천 · 월천 등의 제천이 「실은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는데 너는 그것을 모른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크게 속이는(大誑惑) 일월이 된다. 대성인은 여기서 문난자가 아니라 일월천 자신을 향해 따져 물으신다. 일천 · 월천이 허공에 머물면서도 우리가 대지에 있듯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상품의 불망어계의 힘 때문이다. 그런데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다는 대망어를 한다면, 아직 세계가 무너지는 괴겁의 때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대지 위로 쿵 하고 떨어질 것이며, 대지를 뚫고 무간대성 맨 밑바닥의 굳은 쇠에 이르지 않으면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런 대망어의 일월이라면 잠깐이라도 하늘에 걸려 사천하를 돌며 비출 수 없을 것이다 — 이렇게 엄연히 따지겠다고 하신다.

오계의 세 품과 십선계

오계(불살생 · 불투도 · 불사음 · 불망어 · 불음주)에는 상 · 중 · 하의 세 품이 있다. 상품은 가장 높은 품이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불망어계의 힘」이라 하신 것은 일단 한 계를 들어 말씀하신 것이고, 하늘에 태어나는 것은 본래 십선계의 공덕에 의한 것이다. 십선계란 살생 · 투도 · 사음 · 망어 · 양설 · 기어 · 악구 · 탐욕 · 진에 · 우치의 열 가지를 굳게 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 가운데 굳이 불망어를 드신 것은, 이 장의 쟁점이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다」는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정직과 제천선신 — 「간효팔번초」

불망어란 곧 정직이다. 제천선신은 정직의 인(因)으로 신이 되었고, 신은 또 정직한 사람의 정수리에 깃든다. 대성인은 「간효팔번초」에서 하치만 대보살의 서원을 이렇게 드셨다.

八幡の御誓願に云く『正直の人の頂を以て栖と為し、諂曲の人の心を以て亭ず』

하치만의 서원에 이르기를, 「정직한 사람의 정수리를 거처로 삼고, 아첨하고 굽은 사람의 마음에는 머물지 않는다」

「간효팔번초」, 587쪽

같은 어서에서 대성인은 하치만의 본지가 석가여래로서, 월지국에 나와서는 「정직하게 방편을 버린다」는 법화경을 설하고, 수적으로 일본국에 태어나서는 정직한 사람의 정수리에 머문다고 하시고, 그 까닭을 이렇게 밝히셨다.

凡夫にて有りし時の初発得道の始を成仏の後・化他門に出で給う時我が得道の門を示すなり

범부였을 때 처음 발심하여 도를 얻은 그 시작을, 성불한 뒤 화타의 문에 나오실 때 자신이 도를 얻은 문으로 보이시는 것이니라

「간효팔번초」, 588쪽

제천선신이 정직의 인으로 신이 되고 정직한 사람의 정수리에 깃든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일월천이 법화경 제일을 부정하는 대망어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하늘에 머무는 근거인 정직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 된다. 「대지 위로 쿵 하고 떨어진다」는 말씀은 과장이 아니라, 정직과 신의 관계를 끝까지 따른 논리의 귀결이다.

「큰 도리가 미는 바」 — 제불의 대원적

법화경 최제일은 이처럼 경문으로도 증명으로도 분명한 도리다. 그런데도 화엄종의 징관 등, 진언종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홍법 · 자각 · 지증 등 큰 지혜의 삼장 · 대사로 불리는 이들이 「화엄경 · 대일경 등은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세웠다. 대성인은 「우리 분수로는 미칠 바가 아니나」라고 일단 겸양하시면서도, 「큰 도리가 미는 바로는 어찌 제불의 대원적이 아니겠는가」라고 단언하신다. 불법은 도리다. 개인의 분수나 상대의 명성이 아니라, 부처의 경문이 미는 큰 도리에 비추어 보면 그들은 다보 · 시방 제불이 판형을 찍은 판정을 뒤집은 사람들이 된다.

그 죄의 무게를 대성인은 인도의 대악인들과 견주신다. 석존을 해치려 한 제바달다, 그 제자로서 사리불 · 목련을 비방한 구가리도 그들에 견줄 바가 아니다. 부모와 아라한을 죽이고 출가하여 스스로 아라한을 얻었다고 교만하며 불법 분열의 원인을 만든 대천, 외도의 세 신과 석존의 상을 자리의 네 다리로 삼아 스스로를 네 성인보다 높다고 하다가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진 대만바라문도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제바와 구가리, 대천과 대만은 몸으로 부처와 교단을 해치거나 교만으로 법을 짓밟은 자들이다. 그러나 법화경보다 다른 경이 뛰어나다고 세워 수많은 사람을 그 가르침으로 이끈 조사들의 죄는, 법 그 자체를 뒤집어 후대의 사람들까지 그르친다는 점에서 그보다 더 깊다는 것이다.

인도의 대악인
  • 제바(석존을 해치려 함)
  • 구가리(사리불 · 목련을 비방)
  • 대천(부모와 아라한을 죽이고 교단을 분열)
  • 대만(삼보를 비방하여 산 채로 지옥에)
법화경 위에 다른 경을 세운 삼장 · 대사
  • 화엄의 징관
  • 진언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홍법
  • 자각
  • 지증
「큰 도리가 미는 바로는 어찌 제불의 대원적이 아니겠는가」大道理のをすところは豈諸仏の大怨敵にあらずや「제바 · 구가리도 견줄 바가 아니다」提婆・瞿伽梨もものならず
도표 10 · 「제불의 대원적」

「저 사람들을 믿는 무리는 두렵다」 — 스승이 떨어지면 제자도

장의 마지막 한 마디, 「저 사람들을 믿는 무리는 두렵고 두렵도다」는 보은초의 주제와 곧바로 이어진다. 바른 법을 바른 스승에게서 배워 삼대비법을 행하면 그 몸 그대로 성불할 뿐 아니라 그것이 참된 보은이 된다. 그러나 그릇된 법과 그릇된 스승을 따르면 지옥에 떨어진다. 스승이 떨어지면 제자도 떨어지고, 제자가 떨어지면 단나도 떨어진다.

경전에는 그런 예가 있다. 대장엄불의 말법에 네 비구가 육백만억 나유타의 사람을 모두 무간지옥에 떨어뜨렸다. 사자음왕불의 말법에 승의비구는 한량없는 계를 지닌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를 모두 아비지옥에 떨어뜨렸다. 한 사람의 스승이 그릇되면 그를 믿고 따르는 한량없는 사람이 함께 무너진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일본에서는 홍법 · 자각 · 지증의 세 대사로 말미암아 일체중생이 다 무간지옥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보은초의 첫머리와 맞물리는 지점이다. 제1편에서 대성인은 은혜를 갚으려면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스승을 고르는 일이 곧 자신과 자신이 이끌 사람들의 운명을 고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옛 스승 도젠보가 끝내 염불을 버리지 못한 것을 대성인이 그토록 아파하신 까닭도 여기에 있다.

법화경 수용의 역사와 백법은몰

일본에 전래된 뒤 법화경이 걸어온 길도 이 장의 판정에 비추어 돌아볼 수 있다. 처음 법화경은 민중과 떨어진 귀족 불교로서, 하루에 베껴 쓰는 일일경(一日經)이나 법식대로 베껴 묻는 여법경(如法經)처럼 사경의 대상이 되거나, 관세음보살보문품 등 일부가 따로 쓰이는 정도였다. 이윽고 전교대사에 의해 적문의 법화경이 상법에 맞는 불법으로 빛을 발하였고, 법화경 적문의 계단 건립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산의 자각이 진언의 그릇된 뜻을 받아들인 뒤로 법화경은 다시 어둠에 싸였고, 염불 · 진언 · 선 등과 함께 그때의 권력에 기대는 불교가 되어 바르게 쓰이지 못하였다. 바로 석존이 예언한 백법은몰(白法隱沒)의 모습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앞서 길을 여는 사람은 박해와 탄압의 폭풍을 맞는다. 더욱이 불법은 마와의 싸움이며, 원품의 법성(元品の法性)과 원품의 무명(元品の無明)의 다툼이다. 바른 법과 바른 뜻으로 그릇된 가르침과 그 스승을 깨뜨려야 비로소 민중을 구한다는 목적이 이루어진다. 「제불의 대원적」이라는 이 장의 엄한 말씀은 바로 그 싸움의 선언이며, 다음 제7장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닥치는 대난의 문제로 곧장 나아간다.

제7장 재세와 정법 시대의 난
어서 296쪽 16행 ~ 298쪽 2행 · 第7章 在世及び正法時代の値難

본문

本文 · 一어서 296쪽 16행 ~ 297쪽 5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て云く華厳の澄観.三論の嘉祥.法相の慈恩.真言の善無畏・乃至弘法・慈覚.智証等を仏の敵との給うか、答えて云く此大なる難なり仏法に入りて第一の大事なり愚眼をもつて経文を見るには 法華経に勝れたる経ありといはん人は設いいかなる人なりとも謗法は免れじと見えて候、而るを経文のごとく申すならば・いかでか此の諸人仏敵たらざるべき、若し又恐をなして指し申さずは一切経の勝劣むなしかるべし、又此人人を恐れて末の人人を仏敵といはんとすれば彼の宗宗の末の人人の云く法華経に大日経をまさりたりと申すは我れ私の計にはあらず祖師の御義なり・戒行の持破・智慧の勝劣・身の上下はありとも所学の法門はたがふ事なしと申せば彼人人にとがなし、又日蓮此れを知りながら人人を恐れて申さずは寧喪身命・不匿教者の仏陀の諌暁を用いぬ者となりぬ、いかんがせん・いはんとすれば世間をそろし止とすれば仏の諌暁のがれがたし進退此に谷り、

풀이

묻되, 화엄의 징관(澄觀), 삼론의 가상(嘉祥), 법상의 자은(慈恩), 진언의 선무외(善無畏) 내지 홍법 · 자각 · 지증 등을 부처님의 적이라 하시는가. 답하되, 이것은 큰 난문이니 불법에 들어 제일의 대사(大事)이니라. 어리석은 눈으로 경문을 보건대,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설령 어떤 사람일지라도 방법(謗法)을 면하지 못한다고 보이느니라. 그런데 경문대로 말한다면 어찌 이 여러 사람이 불적이 아니겠는가. 만일 또 두려워하여 가리켜 말하지 않는다면 일체경의 승렬은 헛된 것이 될 것이니라. 또 이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말류의 사람들을 불적이라 하려 하면, 저 종들의 말류 사람들이 말하기를, 「법화경보다 대일경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내 사사로운 생각이 아니라 조사의 뜻이다. 계행(戒行)을 지키고 깨뜨림, 지혜의 뛰어나고 못함, 신분의 높고 낮음은 있을지라도 배운 법문은 다름이 없다」고 하니, 그렇다면 저 사람들에게는 허물이 없느니라. 또 니치렌이 이것을 알면서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말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는 부처님의 간효를 쓰지 않는 자가 되느니라. 어찌할 것인가. 말하려 하면 세간이 두렵고, 그치려 하면 부처님의 간효를 벗어나기 어려우니, 나아가고 물러섬이 여기에 막혔느니라.

本文 · 二어서 297쪽 5~11행
本文 · 어서 원문

むべなるかなや、法華経の文に云く「而かも此経は如来の現在にすら猶怨嫉多し況んや滅度の後をや」又云く一切世間怨多くして信じ難し等云云、釈迦仏を摩耶夫人はらませ給いたりければ第六天の魔王・摩耶夫人の御腹をとをし見て我等が大怨敵・法華経と申す利剣をはらみたり事の成ぜぬ先に・いかにしてか失うべき、第六天の魔王大医と変じて浄飯王宮に入り御産安穏の良薬を持候大医ありとののしりて毒を后にまいらせつ、初生の時は石をふらし乳に毒をまじへ城を出でさせ給いしには黒き毒蛇と変じて道にふさがり乃至提婆・瞿伽利・波瑠璃王・阿闍世王等の悪人の身に入りて或は大石をなげて仏の御身より血をいだし或は釈子をころし或は御弟子等を殺す、此等の大難は皆遠くは法華経を仏世尊に説かせまいらせじとたばかりし如来現在・猶多怨嫉の大難ぞかし、

풀이

마땅하도다. 법화경의 글에 이르기를 「그런데 이 경은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怨嫉)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 또 이르기를 「일체 세간에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렵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석가불을 마야부인이 잉태하셨을 때, 제육천의 마왕이 마야부인의 배 속을 꿰뚫어 보고 「우리의 큰 원수, 법화경이라는 날카로운 칼을 잉태하였다.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없애야 한다」 하고, 제육천의 마왕이 큰 의사로 변하여 정반왕의 궁에 들어가 「순산을 돕는 좋은 약을 가진 큰 의사가 있다」고 떠들며 왕비에게 독을 올렸느니라. 처음 태어나셨을 때는 돌을 비 오듯 내리고 젖에 독을 섞으며, 성을 나서실 때는 검은 독사로 변하여 길을 막고, 나아가 제바 · 구가리 · 유리왕 · 아사세왕 등 악인의 몸에 들어가 혹은 큰 돌을 던져 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내고, 혹은 석가족을 죽이고, 혹은 제자들을 죽였느니라. 이러한 대난은 모두 멀리는 법화경을 부처님 세존께서 설하지 못하시게 하려고 꾀한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다」는 대난이니라.

本文 · 三어서 297쪽 11~16행
本文 · 어서 원문

此等は遠き難なり近き難には舎利弗・目連・諸大菩薩等も四十余年が間は法華経の大怨敵の内ぞかし、況滅度後と申して未来の世には又此の大難よりも・すぐれてをそろしき大難あるべしと・とかれて候、仏だにも忍びがたかりける大難をば 凡夫はいかでか忍ぶべきいわうや在世より大なる大難にて・あるべかんなり、いかなる大難か提婆が長三丈広一丈六尺の大石阿闍世王の酔象にはすぐべきとはおもへども彼にもすぐるべく候なれば小失なくとも大難に度度値う人をこそ滅後の法華経の行者とはしり候はめ、

풀이

이것들은 먼 난이니라. 가까운 난으로는 사리불 · 목련과 여러 대보살 등도 사십여 년 동안은 법화경의 큰 원수 가운데 있었느니라.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라 하여 미래의 세상에는 또 이 대난보다도 더욱 두려운 대난이 있으리라고 설하셨느니라. 부처님조차 참기 어려우셨던 대난을 범부가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재세보다 큰 대난일 것이니라. 어떤 대난이 길이 세 길, 너비 한 길 여섯 자인 제바의 큰 돌과 아사세왕의 술 취한 코끼리를 넘어서겠는가 하고 생각하지만, 그것들마저 넘어설 것이라 하니, 작은 허물이 없어도 대난을 자주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멸후의 법화경 행자임을 알 것이니라.

本文 · 四어서 297쪽 16행 ~ 298쪽 2행
本文 · 어서 원문

付法蔵の人人は四依の菩薩・仏の御使なり提婆菩薩は外道に殺され師子尊者は檀弥羅王に頭を刎ねられ仏陀密多・竜樹菩薩等は赤幡を七年十二年さしとをす馬鳴菩薩は金銭三億がかわりとなり如意論師はおもひじにに死す。此れ等は正法・一千年の内なり、

풀이

부법장(付法藏)의 사람들은 사의(四依)의 보살이요 부처님의 사자이니라. 제바보살은 외도에게 죽임을 당하고, 사자존자는 단미라왕에게 목이 베이고, 불타밀다 · 용수보살 등은 붉은 깃발을 십이 년 · 칠 년 동안 들고 다녔으며, 마명보살은 금전 삼억의 대가가 되고, 여의논사는 원통함에 죽었느니라. 이것들은 정법 일천 년 안의 일이니라.

어구 풀이

華厳の澄観.三論の嘉祥.法相の慈恩.真言の善無畏화엄의 징관 · 삼론의 가상 · 법상의 자은 · 진언의 선무외
중국에서 각 종을 대성하거나 세운 조사들. 징관은 화엄종 제4조로 청량국사라 불렸고, 가상대사 길장은 삼론종을 대성하였으며, 자은대사 규기는 현장의 제자로 법상종을 세웠고, 선무외는 대일경을 한역하여 중국에 진언을 전한 삼장이다. 제3장에서 「대승 칠종의 여러 스승」으로 이름을 든 사람들이다.
戒行の持破계행의 지파
계는 부처가 정한 계법, 계의 체인 계체, 받아 지녀 수행하는 계행, 오계 · 십계 · 구족계 등의 계상의 넷으로 나뉜다. 부처가 정한 계상대로 행하는 것이 계행이며, 「지파」는 그 계를 지키느냐 깨뜨리느냐이다. 이는 석존 불법의 범위에서 논하는 것이고, 말법에서는 본존을 받아 지니는 것이 유일한 계로서 이를 금강보기계(金剛寶器戒)라 한다.
寧喪身命・不匿教者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
열반경 보살품 제16의 글을 장안대사가 요약한 말.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않는다」고 읽는다. 왕의 사자가 목숨을 잃더라도 왕의 말을 숨기지 않듯이, 지자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대승의 비장을 설해야 한다는 뜻이다.
進退此に谷り나아가고 물러섬이 여기에 막혔다
진퇴유곡(進退維谷). 말하면 세간의 비난과 박해를 받고, 말하지 않으면 부처의 간효를 어기게 되는 궁지를 말한다.
一切世間怨多くして信じ難し일체 세간에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렵다
『묘법연화경』 안락행품 제14의 글. 법사품의 「유다원질」과 짝을 이루어, 법화경을 넓히는 사람에게 세간의 원망과 불신이 따른다는 것을 보인다.
摩耶夫人마야부인
선각장자의 맏딸로 정반왕의 왕비가 되었다. 석존을 낳고 이레 뒤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第六天の魔王제육천의 마왕
타화자재천왕. 욕계의 하늘은 여섯 겹인데 타화자재천은 그 꼭대기 여섯째에 있으므로 제육천이라 하고, 그곳에 머물며 불도를 가로막는 마왕을 제육천의 마왕이라 한다. 『대지도론』 권9는 「이 하늘은 남이 변화하여 만든 것을 빼앗아 스스로 즐기므로 타화자재라 한다」고 한다. 삼장사마(三障四魔) 가운데 천자마에 해당한다.
波瑠璃王유리왕
범명 비루다카(Virūḍhaka)의 음사로 비유리왕 · 유리왕이라고도 쓰며 악생왕 등으로 번역한다. 석존 재세 때 중인도 코살라국(사위국)의 왕. 석가족에게 받은 모욕을 갚겠다며 왕위에 오른 뒤 석가족을 멸망시켰으나, 그 뒤 이레째에 석존의 예언대로 불에 타 죽어 지옥에 떨어졌다고 전한다.
阿闍世王아사세왕
범명 아자타샤트루(Ajātaśatru)의 음사로 미생원(未生怨)이라 번역한다. 석존 재세부터 멸후에 이르기까지 중인도 마가다국의 왕. 아버지는 빈바사라왕, 어머니는 위제희부인이다. 제바달다의 꼬임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며 술 취한 코끼리를 풀어 석존을 해치려 하였으나, 뒤에 기바 대신의 권유로 석존에게 귀복하여 멸후 경전 결집에 힘을 다하였다.
如来現在・猶多怨嫉 況滅度後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
법사품의 글. 「여래의 현재」는 석존 재세이고 「멸도한 후」는 정 · 상 · 말에 통하지만 그 정의(正意)는 말법이다. 니치렌 대성인은 말법의 어본불로서 네 차례의 대난 등을 만나셨다.
提婆が長三丈広一丈六尺の大石길이 세 길 너비 한 길 여섯 자인 제바의 큰 돌
구횡(九橫)의 대난 가운데 하나. 제바달다가 기사굴산에서 석존을 향해 큰 돌을 떨어뜨렸는데, 벼랑에 부딪힌 돌 조각이 석존의 발에 맞아 엄지발가락을 다쳐 피가 났다는 일이다.
阿闍世王の酔象아사세왕의 취상
구횡의 대난 가운데 하나. 아사세왕이 제바달다의 꼬임에 넘어가 사나운 코끼리에게 술을 먹이고 코에 칼을 묶어 석존에게 풀어 놓았으나, 석존의 다섯 손가락에서 나온 다섯 사자왕 앞에 코끼리가 무릎을 꿇었다는 일이다. 여래는 금강신이어서 어떤 원적도 부처의 몸을 해칠 수 없음을 보인 고사로 열반경에 나온다.
付法蔵の人人は四依の菩薩부법장의 사람들은 사의의 보살
부법장은 석존이 맡긴 법장을 차례로 이어받아 정법 시대에 넓힌 스물네 사람(가섭에서 사자존자까지). 『부법장인연전』에 전한다. 사의의 보살은 부처의 멸후 중생이 의지할 만한 네 단계의 보살로, 곧 부처의 사자다.
提婆菩薩제바보살
부법장의 제15. 불멸 후 칠백오십 년 무렵 남인도 바라문 출신. 가나제바라고도 하며, 「가나」는 외눈의 뜻이다. 한쪽 눈을 천신에게 공양하였다고도, 한 여인에게 주어 부정함을 깨닫게 하였다고도 전한다. 용수에게서 출가하여 불법을 배웠다.
師子尊者사자존자
부법장의 제24, 곧 마지막 전등자. 사자 또는 사자비구라고도 한다. 불멸 후 천이백 년 무렵 중인도에서 태어나 학륵야나에게서 법을 받고 계빈국에서 불법을 크게 넓혔다.
仏陀密多불타밀다
부법장의 제9(語釈의 표기는 仏駄密多). 불타난제의 제자로 지혜와 이해가 뛰어나 부법을 받아 정법을 넓혔다. 안으로는 대승을 지니고 밖으로는 소승으로 중생을 이끌었다고 한다.
竜樹菩薩용수보살
부법장의 제14. 불멸 후 칠백 년 무렵 남인도에 나와 대승의 교의를 크게 넓힌 대논사. 범명 나가르주나(Nāgārjuna). 뒤에 나온 천친보살과 함께 정법 시대 후반의 정법 호지자로 이름 높다. 『십이문론』 1권, 『십주비바사론』 17권, 『중관론』 4권 등을 지었다.
馬鳴菩薩は金銭三億がかわりとなり마명보살은 금전 삼억의 대가가 되다
마명은 부법장의 제12. 불멸 후 육백 년 무렵 나와 대승을 크게 넓혔다. 범명 아슈바고샤(Aśvaghoṣa). 『불소행찬』 5권, 『건치범찬』 1권, 『대장엄론』 15권 등을 지었다. 화씨성의 왕이 전쟁에 지고 구억의 금을 요구받자 마명과 불발(佛鉢)과 자심계(慈心鷄)를 각각 삼억으로 쳐서 바쳤다는 『부법장인연전』의 고사를 가리킨다.
如意論師はおもひじにに死す여의논사는 원통함에 죽다
여의논사는 세친(천친)보살의 스승. 사위국 왕의 사사로운 원한으로 다른 학파의 학자 백 명과 논쟁하여 아흔아홉을 굴복시켰으나, 마지막 한 사람과 왕이 함께 억지로 그를 욕보이자 스스로 혀를 깨물고 죽었다고 『대당서역기』에 전한다. 「おもひじに」는 원통한 마음을 품고 죽는 것이다.

「불법에 들어 제일의 대사」 — 개조들을 불적이라 하는가

이 장부터 대성인은 널리 여러 종의 방법을 꾸짖기 시작하신다. 그 첫머리는 문난이다. 화엄의 징관, 삼론의 가상, 법상의 자은, 진언의 선무외에서 홍법 · 자각 · 지증까지, 각 종의 개조와 조사들을 모두 부처의 적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제6장 끝에서 「제불의 대원적」이라 하신 말씀을 받아, 그것이 정말로 이 이름 높은 사람들 모두를 가리키느냐고 되묻는 물음이다. 여기서 질문하는 사람은 가상의 논적이며, 그 물음에는 당시 사람들이 품었을 놀라움과 반발이 그대로 담겨 있다.

대성인은 먼저 「이것은 큰 난문이니 불법에 들어 제일의 대사」라고 받으신다. 어리석은 눈으로 경문을 보아도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방법을 면할 수 없다. 경문대로 말하면 이 여러 사람이 불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두려워 이름을 가리켜 말하지 않으면, 석존이 일대에 걸쳐 밝힌 일체경의 승렬 천심은 헛것이 되고 만다.

말류만 꾸짖을 수 없는 까닭 — 「계행의 지파 · 지혜의 승렬 · 몸의 상하」

그러면 조사들은 놓아두고 지금의 말류만 불적이라 하면 어떤가. 대성인은 그것이 통하지 않는 까닭을 말류의 입을 빌려 보이신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법화경보다 대일경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내 사사로운 생각이 아니라 조사의 뜻이다. 조사와 우리 사이에 계행을 지키고 깨뜨림, 지혜의 뛰어나고 못함, 신분의 높고 낮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배운 법문에는 다름이 없다.」 그렇게 말하면 말류에게는 근본의 죄가 없는 셈이 된다.

「계행의 지파 · 지혜의 승렬 · 몸의 상하」는 한 종의 개조와 그 뒤를 이은 지금의 인사를 견준 말이다. 계행이란 부처가 정한 계상대로 행하는 것이다. 계는 계법 · 계체 · 계행 · 계상의 넷으로 나누어 살피는데, 이는 석존 불법의 범위에서 논하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있더라도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본존을 믿는다면, 개조의 잘못은 곧 지금 인사의 잘못이며 개조의 방법은 그대로 지금도 방법을 이어 가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릇된 가르침을 깨뜨리려면 먼저 그 본원인 개조의 그릇된 뜻을 꾸짖어 불적인 까닭을 밝혀야 한다. 강물이 흐린 것을 하류에서만 탓해서는 안 되고 그 근원을 짚어야 하는 것과 같다.

말법의 계에 대해서는 대성인이 「교행증어서」에서 밝히신 금강보기계가 있다. 본존을 받아 지니는 것이 말법의 유일한 계라는 것이다.

此の法華経の本門の肝心・妙法蓮華経は三世の諸仏の万行万善の功徳を集めて五字と為せり、此の五字の内に豈万戒の功徳を納めざらんや、但し此の具足の妙戒は一度持つて後・行者破らんとすれど破れず是を金剛宝器戒とや申しけんなんど立つ可し

이 법화경 본문의 간심인 묘법연화경은 삼세 제불의 만행 만선의 공덕을 모아 다섯 자로 삼은 것이니, 이 다섯 자 안에 어찌 만 가지 계의 공덕을 거두지 않았겠는가. 다만 이 구족한 묘한 계는 한 번 지닌 뒤에는 행자가 깨뜨리려 하여도 깨지지 않으니, 이것을 금강보기계라 하는가 하고 세워야 하느니라

「교행증어서」, 1282쪽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 진퇴유곡의 결단

이렇게 근본의 죄가 각 종의 원조에게 있음을 알았는데도, 대성인이 그 원조들의 권위와 세간의 비판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방법을 밝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는 부처의 간효를 쓰지 않는 자가 된다. 이 말은 장안대사가 열반경 보살품 제16의 다음 글을 풀어 요약한 것이다.

譬えば王の使、善能く談論し、方便に巧みにして命を他国に奉ず。寧ろ身命を喪うとも、終に王の所説の言教を匿さざるが如し。智者も亦爾なり、凡夫の中に於て身命を惜しまず。要必ず大乗方等如来の祕蔵、一切衆生皆仏性有るを宣説す

비유하면 왕의 사자가 담론에 능하고 방편에 뛰어나 다른 나라에 왕명을 받들어 가서는, 차라리 목숨을 잃을지언정 끝내 왕이 말한 가르침을 숨기지 않는 것과 같다. 지자도 또한 그러하여 범부 가운데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반드시 대승 방등 여래의 비장, 곧 일체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을 널리 설한다

『대반열반경』 보살품 제16, T12 no.374

왕의 사자는 왕의 말을 전하러 간 사람이다. 상대국에서 그 말이 아무리 환영받지 못해도 사자가 그것을 숨긴다면 더 이상 사자가 아니다. 불법의 지자도 부처의 사자로서, 듣는 이의 반발을 이유로 부처의 가르침을 숨겨서는 안 된다.

여기서 대성인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탄식하신다. 「어찌할 것인가. 말하려 하면 세간이 두렵고, 그치려 하면 부처님의 간효를 벗어나기 어려우니, 나아가고 물러섬이 여기에 막혔다.」 이것은 수사적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대성인은 건장 5년(1253) 입종 이래 이 진퇴유곡에서 「말하는 쪽」을 고르셨고, 그 결과로 마쓰바가야쓰의 습격, 이즈 유죄, 고마쓰바라의 법난, 다쓰노구치의 참수 위기와 사도 유죄를 겪으셨다. 보은초를 쓰시는 미노부의 대성인에게 이 대목은 이미 살아 낸 결단의 회고이기도 하다.

유다원질 황멸도후 — 법화경 행자를 드러내다

「마땅하도다(むべなるかなや)」부터 대성인은 널리 난을 만나는 것으로 법화경의 행자를 드러내신다. 이런 난이 닥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 근거가 법사품 제10의 예언이다.

如来の現在すら猶怨嫉多し、況んや滅度の後をや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

『묘법연화경』 법사품 제10, T9 no.262

또 안락행품 제14에도 「일체 세간에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렵다」는 글이 있다. 이 예언대로라면 부처의 멸후에 부처의 말씀대로 법화경을 넓히면 반드시 대난이 다투어 일어난다. 어떤 대난이 다투어 일어나도 신명을 아끼지 않고 방법을 꾸짖으며 능히 대난을 참아 법화경의 행자로 나타나는 것 — 그것으로 부모 · 스승 등의 큰 은혜를 갚을 수 있다. 보은초의 주제인 「보은」이 여기서 「대난」과 하나로 이어진다. 은혜를 갚으려면 지자가 되어야 하고, 지자가 되어 경문대로 말하면 대난이 오며, 그 대난을 견디는 것이 곧 법화경 행자의 증명이자 보은의 실천이다.

「황멸도후(況滅度後)」의 글에는 통(通)과 별(別)의 두 뜻이 있다. 통틀어 말하면 정법 · 상법 · 말법 세 시기 모두에 대난이 있다. 그러나 따로 말하면 그 정의는 말법에 한정된다. 이 장 뒤쪽에서 정법 시대 논사들의 법난을 드시면서도 「이것들은 정법 일천 년 안의 일」이라고 굳이 시기를 밝혀 두신 것도, 이 통 · 별의 구별과 맞물려 읽을 수 있다.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如来の現在にすら猶怨嫉多し況んや滅度の後をや
  1. 여래의 현재(재세)제육천 마왕의 방해와 일곱 난, 사리불 · 목련 등의 원질
  2. 정법 일천 년제바보살 · 사자존자 · 불타밀다 · 용수 · 마명 · 여의논사
  3. 상법 일천 년천태 · 전교(보은초 제3편)
  4. 말법「하물며 멸도한 후이랴」의 정의
통 — 정 · 상 · 말 세 시기에 통함
별 — 말법에 한정
도표 11 · 「유다원질 황멸도후」의 통과 별

재세의 일곱 난 — 제육천 마왕의 방해

「석가불을 마야부인이 잉태하셨을 때」부터는 석존 재세의 난을 밝히신다. 마야부인은 선각장자의 맏딸로 정반왕의 왕비가 되었고, 석존을 낳은 지 이레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한다. 그 마야부인이 석존을 잉태했을 때 이미 난이 시작되었다.

제육천의 마왕은 욕계 여섯 하늘의 꼭대기 타화자재천에 머무는 왕이다. 『대지도론』 권9가 「남이 변화하여 만든 것을 빼앗아 스스로 즐긴다」고 풀었듯이, 그는 다른 이의 것을 제 것으로 삼아 누리는 존재이며, 그래서 중생이 자기 지배를 벗어나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무엇보다 꺼린다. 삼장사마 가운데 천자마가 바로 그다. 그 마왕이 마야부인의 배 속을 꿰뚫어 보고 「우리의 큰 원수, 법화경이라는 날카로운 칼을 잉태하였다」며 두려워하였다. 마왕에게 석존은 한 사람의 왕자가 아니라 장차 법화경을 설할 이였고, 그 법화경이야말로 일체중생을 마의 지배에서 끊어 내는 칼이었기 때문이다.

마왕은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없애려고 스스로 큰 의사로 모습을 바꾸어 정반왕의 궁에 들어가 「순산을 돕는 좋은 약을 가진 큰 의사」라 하며 왕비에게 독을 올렸다. 태어나신 뒤에는 돌을 비 오듯 내려 해치려 했고, 젖에 독을 섞었다. 출가하려 성을 나서실 때는 검은 독사가 되어 길을 막았다. 나아가 제바달다 · 구가리 · 유리왕 · 아사세왕 등 악인의 몸에 들어가 큰 돌을 던져 부처의 몸에서 피를 내고, 석가족을 죽이고, 부처의 제자들을 죽였다. 이를 정리하면 재세의 일곱 난이 된다.

  1. ①모태에 독을 권함 — 마왕이 큰 의사로 변하여
  2. ②처음 태어났을 때 돌을 내림
  3. ③젖에 독을 섞음
  4. ④성을 나설 때 독사가 길을 막음
  5. ⑤제바가 큰 돌을 던짐 — 길이 세 길 너비 한 길 여섯 자
  6. ⑥유리왕이 한량없는 석가족을 죽임
  7. ⑦아사세왕의 취상으로 한량없는 제자가 죽음
「멀리는 법화경을 부처님 세존께서 설하지 못하시게 하려고 꾀한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다」는 대난」遠くは法華経を仏世尊に説かせまいらせじとたばかりし如来現在・猶多怨嫉の大難ぞかし
도표 12 · 석존 재세의 일곱 난

대성인은 이 모든 대난을 하나의 뜻으로 묶으신다. 「이러한 대난은 모두 멀리는 법화경을 부처님 세존께서 설하지 못하시게 하려고 꾀한,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다」는 대난이다.」 석존이 겪은 박해는 우연히 겹친 불운이 아니라 법화경의 설법을 막으려는 마의 계획적인 방해였다는 것이다. 마의 표적은 처음부터 법화경이었다.

유리왕 · 아사세왕 · 제바 — 구횡의 대난

일곱 난 가운데 뒤의 셋은 이른바 구횡(九橫)의 대난, 곧 석존이 겪은 아홉 가지 큰 박해에 드는 사건들이다. 그 배경을 조금 더 살펴본다.

유리왕과 석가족의 멸망

유리왕은 석존 재세 때 중인도 코살라국, 곧 사위국의 왕이다. 『대당서역기』 권6 등은 그 사연을 이렇게 전한다. 아버지 바사닉왕이 즉위했을 때 석가족의 혈통이 존귀하므로 가비라위성에 왕비를 구하였다. 사위국은 대국이고 바사닉왕은 사나웠으므로 석가족은 거절할 수 없어, 석가족 집안의 아름다운 하녀의 딸을 골라 혼인시켰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유리가 어느 날 가비라위성에 갔을 때, 석존을 맞으려고 지어 아무도 밟지 못하게 한 큰 강당에 들어섰다. 석가족 사람들은 노하여 그가 천한 하녀의 소생임을 말하며 모욕하였다. 유리는 즉위하면 반드시 석가족을 멸하겠다고 하였고, 뒤에 아버지를 내쫓고 왕이 되자 곧바로 석가족을 쳐서 멸하였다. 그러나 그 뒤 이레째에 석존의 예언대로 불에 타 죽어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아사세왕과 술 취한 코끼리

아사세왕은 마가다국의 왕으로, 아버지는 빈바사라왕, 어머니는 위제희부인이다. 그 이름 미생원(未生怨)에는 사연이 있다. 『관무량수경소』에 따르면, 대를 이을 아들이 없던 빈바사라왕이 점술가에게 묻자 산속의 선인이 죽은 뒤 태자로 태어날 것이라 하였다. 아들을 서두른 왕은 선인이 변한 토끼를 죽였고, 곧 왕비가 잉태하자 다시 점을 치니 「아들이 태어나지만 왕의 원수가 될 것」이라 하였다. 태어나기 전부터 왕에게 원한을 품었다 하여 미생원이라 불린 것이다. 장성한 아사세는 제바달다의 제자가 되어 그의 꼬임에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며 어머니를 가두었다.

아사세왕은 다시 제바를 새 부처로 세우려고 석존을 해치려 했다. 석존이 오백 제자를 거느리고 성안에서 걸식할 때, 왕은 사나운 코끼리에게 술을 먹이고 코에 날카로운 칼을 묶어 풀어 놓았다. 취한 코끼리가 멀리서 석존을 보고 귀를 떨고 코를 울리며 달려오자 아난을 빼고 제자들은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아난도 어서 피하시기를 바랐으나 석존은 「여래를 믿지 않느냐」고 나무랐다. 석존은 자심삼매에 들어 다섯 손가락에서 다섯 사자왕을 나투어 좌우에서 코끼리에게 덤벼들게 하고, 코끼리 뒤에는 큰 불이 타오르는 구덩이를 만들었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게 된 코끼리는 땅에 무릎을 꿇었고, 「그대여, 용을 해치지 말라. 용이 나타나기는 매우 어렵다. 용을 해치지 않음으로써 그대는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라는 부처의 게를 듣고 스스로 칼을 풀어 석존 앞에 엎드려 코를 부처의 발에 대었다고 열반경은 전한다. 여래는 금강신이어서 어떤 원적도 부처의 몸을 해칠 수 없음을 보인 이야기다. 그 뒤 제바는 방법의 죄로 지옥에 떨어졌고, 아사세는 온몸에 큰 악창이 나 죽음에 가까웠으나 기바 대신의 권유로 석존에게 귀복하여 악창이 낫고 수명을 늘렸으며, 부처의 멸후 경전 결집에 힘을 다하였다.

제바의 큰 돌

제바달다는 기사굴산 위에서 석존을 겨냥해 큰 돌을 떨어뜨렸다. 본문은 그 크기를 길이 세 길, 너비 한 길 여섯 자라 한다. 돌은 벼랑에 부딪혀 부서졌고 그 파편이 석존의 발에 맞아 엄지발가락이 깨져 피가 났다. 이것이 출불신혈(出佛身血)의 역죄다. 제바는 이와 함께 교단을 분열시키는 파화합승, 연화색비구니를 때려 죽인 살아라한의 세 역죄를 범하여 대지가 갈라져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전한다. 다만 법화경 제바달다품에서는 그가 과거세에 석존의 스승인 아사선인이었다는 인연이 밝혀지고 미래에 천왕여래가 되리라는 기별을 받는다. 법화경의 자비가 극악인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을 보이는 대목이다.

먼 난과 가까운 난 — 사리불 · 목련의 원질

대성인은 이 일곱 난을 「먼 난」이라 하시고, 이어서 「가까운 난으로는 사리불 · 목련과 여러 대보살 등도 사십여 년 동안은 법화경의 큰 원수 가운데 있었다」고 하신다. 석존의 가장 뛰어난 제자로 꼽히는 사리불 · 목련, 그리고 여러 대보살이 어째서 법화경의 원수가 되는가.

그들은 이전 사십여 년의 가르침에 머물러 그것을 최고로 여겼다. 그러므로 법화경이 설해져 그 가르침이 방편이었다고 밝혀질 때,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원질이 된다.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에서 『법화문구기』 권8의 뜻을 들어 이를 이렇게 풀었다.

記八の意に云く迹門は二乗鈍根菩薩を以て怨嫉となす。本門の中には菩薩の中に近成を楽う者を以て怨嫉となす

『법화문구기』 권8의 뜻에 이르기를, 적문에서는 이승과 근기가 둔한 보살을 원질로 삼고, 본문에서는 보살 가운데 가까이 성불하였다는 것(근성)을 즐기는 자를 원질로 삼는다

니치칸 상인 「보은초 문단」,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적문에서는 이승이 성불할 수 없다고 배워 온 이승과 둔근의 보살이, 본문에서는 석존이 금생에 처음 성불했다고 믿어 온 보살들이 원질의 자리에 선다. 원질은 밖의 적만이 아니라 안의 제자들 마음에도 깃든다는 것 — 이것이 「가까운 난」의 뜻이다.

「작은 허물이 없어도 대난을 자주 만나는 사람」

석존이 그토록 큰 난을 겪었지만, 석존 자신은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라고 예언하여, 재세의 난보다 멸후에 더 큰 난이 있으리라 하셨다. 대성인은 이 예언 앞에서 깊이 생각하신다. 부처조차 참기 어려웠던 대난을 범부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것이 재세보다 큰 대난이라면 어떤 것이겠는가. 길이 세 길 너비 한 길 여섯 자의 큰 돌, 아사세왕의 술 취한 코끼리를 넘어서는 대난이 있을까 싶지만, 경문은 그것마저 넘어선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작은 허물이 없어도 대난을 자주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멸후의 법화경 행자임을 알 것이다.」 세간의 허물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은 법난이 아니다. 아무 허물도 없는데 법화경 때문에 거듭 대난을 만나는 사람, 그 사람의 존재가 곧 「황멸도후」의 경문을 증명한다. 경문은 그 사람을 찾는 표지가 된다.

그렇다면 정법 · 상법 이천 년 동안 석존을 넘어서는 대난을 받은 사람이 있었는가. 실은 한 사람도 없었다. 대성인은 「성인어난사」에서 이를 분명히 하셨다.

仏の大難には及ぶか勝れたるか其は知らず、竜樹・天親・天台・伝教は余に肩を並べがたし、日蓮末法に出でずば仏は大妄語の人・多宝・十方の諸仏は大虚妄の証明なり、仏滅後二千二百三十余年が間・一閻浮提の内に仏の御言を助けたる人・但日蓮一人なり

부처님의 대난에 미치는지 뛰어넘는지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어렵다. 니치렌이 말법에 나오지 않았다면 부처님은 대망어의 사람이요 다보 · 시방의 제불은 큰 거짓의 증명이 되리라. 불멸 후 이천이백삼십여 년 동안 일염부제 안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도운 사람은 오직 니치렌 한 사람뿐이니라

「성인어난사」, 1189쪽

제6장에서 다보 · 시방 제불의 판형을 말씀하신 것이 여기서 다시 이어진다.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의 예언을 몸으로 증명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예언을 증명한 다보 · 시방 제불까지 거짓의 증인이 되고 만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대성인이 석존 이상의 대난을 받아 오직 한 사람 「황멸도후」의 예언이 바르다는 것을 증명하셨다는 사실은, 대성인이 말법의 어본불이심을 현증으로 보이신 모습이다. 「개목초」에서도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されば日蓮が法華経の智解は天台・伝教には千万が一分も及ぶ事なけれども難を忍び慈悲のすぐれたる事は・をそれをも・いだきぬべし

그러므로 니치렌의 법화경에 대한 지해는 천태 · 전교에게 천만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지만, 난을 참고 자비가 뛰어난 것은 두려움마저 품을 만하니라

「개목초」, 202쪽

대성인 불법의 관점 — 「황멸도후」의 정의는 말법이며, 그 경문을 몸으로 증명한 이는 대성인 한 분이다. 법난은 법화경 행자의 표지이자, 대성인이 주사친 삼덕을 갖춘 말법의 어본불이심을 보이는 현증이다.

정법 천 년의 사의 보살 — 제바보살과 사자존자

본문의 마지막 단락은 정법 시대의 법난이다. 부법장의 사람들은 부처의 멸후 중생이 의지할 사의의 보살이요, 부처의 사자로서 일체중생을 구한 이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같이 큰 난을 만났다.

제바보살 — 외도에게 죽임을 당하다

제바보살은 부법장의 제15로, 불멸 후 칠백오십 년 무렵 남인도 바라문 출신이다. 가나제바라고도 하는데, 「제바」는 범어로 하늘이라는 뜻이고 「가나」는 외눈이라는 뜻이다. 한쪽 눈이 없었기 때문인데, 한쪽 눈을 천신에게 공양했다고도, 한 여인에게 주어 몸의 부정함을 깨닫게 했다고도 전한다. 용수 아래에서 출가하여 불법을 배우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널리 중생을 구하였다. 어느 때 남인도의 왕이 외도에 귀의한 것을 구하려고 왕 앞에서 모든 외도를 논파하였다. 그때 한 외도의 무지하고 흉악한 제자가 스승이 굴복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제바가 홀로 돌아가는 길을 덮쳐 해쳤다. 제바는 그를 용서하고, 제자들이 원수를 갚으려는 것을 말리며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사자존자 — 목이 베여 흰 젖이 솟다

사자존자는 부법장의 제24, 곧 부법장의 마지막 전등자다. 불멸 후 천이백 년 무렵 중인도에 태어나 학륵야나에게서 법을 받고, 뒤에 계빈국에 가서 중생을 교화하며 불법을 크게 선양하였다. 이 나라의 두 외도가 이를 시기하여 서로 꾀하고 난을 일으켜, 불제자의 모습으로 왕궁에 숨어들어 재앙을 일으키고 달아났다. 단미라왕은 이를 오해하고 노하여 사자존자의 목을 베었다. 그런데 피가 나지 않고 흰 젖이 솟구치듯 나왔으며, 동시에 단미라왕의 오른팔이 칼을 쥔 채로 땅에 떨어져 이레 뒤에 목숨이 다하였다고 한다. 사자존자는 몸을 버려 법을 넓힌 사신홍법(死身弘法)의 행자, 부법장 최후의 전등자로 그 이름을 남겼다.

  • 불타밀다부법장 제9
    • 붉은 깃발 십이 년
    • 왕을 논파하여 귀의시킴
  • 마명부법장 제12불멸 후 600년 무렵
    • 금전 삼억의 대가가 됨
  • 용수부법장 제14불멸 후 700년 무렵
    • 붉은 깃발 칠 년
    • 남인도 왕을 교화
  • 제바보살부법장 제15불멸 후 750년 무렵
    • 외도에게 죽임을 당함
  • 사자존자부법장 제24(최후)불멸 후 1200년 무렵
    • 단미라왕에게 목이 베임
  • 여의논사세친의 스승
    • 원통함에 죽음
「이것들은 정법 일천 년 안의 일이니라」此れ等は正法・一千年の内なり
도표 13 · 정법 일천 년 부법장 논사들의 법난

붉은 깃발을 든 불타밀다와 용수

본문은 「불타밀다 · 용수보살 등은 붉은 깃발을 십이 년 · 칠 년 동안 들고 다녔다」고 한다. 불타밀다는 십이 년, 용수보살은 칠 년, 모두 붉은 깃발을 들고 왕궁 앞에 서서 정법을 외치고 그릇된 가르침을 깨뜨렸다. 부법장 제9의 불타밀다와 제14의 용수보살은 함께 붉은 깃발을 세워 각기 그 나라의 대왕을 간효하고, 마침내 바른 법과 바른 뜻의 주장을 관철하였다. 붉은 깃발의 참뜻은 불교에서 절복의 기치라는 데 있다. 두 고사를 『부법장인연전』에 따라 차례로 살펴본다.

인도 왕궁으로 이어지는 긴 돌길과 멀리 나부끼는 붉은 깃발 하나 — 아침 안개
그림 · 인도 왕궁으로 이어지는 긴 돌길과 멀리 나부끼는 붉은 깃발 하나 — 아침 안개

불타밀다의 붉은 깃발 — 십이 년

불타밀다는 부법장의 제9로, 불타난제에게서 법을 이어받았다. 지혜와 이해가 뛰어나 부법을 받아 정법을 넓혔으며, 안으로는 대승을 지니고 밖으로는 소승으로 중생을 이끌었다고 한다. 그때의 국왕은 재능이 높고 용맹하며 널리 배운 사람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다른 학문을 배우고 바라문의 사견을 믿어 늘 불 · 법 · 승을 업신여겼다.

불타밀다는 어떻게든 그 나라의 민중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나라의 현실을 보니 국왕이 매우 큰 사견에 빠져 있었다. 왕에게 주권이 있는 나라이므로, 먼저 국왕을 절복하면 나무의 줄기가 기울 때 비로소 가지와 잎과 꽃줄기가 따라 쓰러지듯 일반 민중도 정법을 따르게 되리라고 결의하였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일이 나아가지 않음을 안 불타밀다는 마침내 십이 년 동안 스스로 붉은 깃발을 들고 국왕 앞을 오갔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국왕은 묻지 않았다. 그러나 십이 년째가 되자 국왕이 이상히 여겨 「이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불타밀다를 불러 물었다. 불타밀다는 「대왕이시여,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니 바른 법을 잘 논합니다. 왕 앞에서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라고 답하였다.

대왕은 나라 안에 명을 내려, 모든 바라문 학자 · 장자 · 거사 가운데 총명하고 박식하여 논의에 능한 이는 모두 정승전(正勝殿) 위에 모여 한 사람의 불법 승려와 논의하라고 하였다. 이에 사견의 외도 가운데 변설에 능하고 지혜가 뛰어나며 천문지리에 통한 이들이 마음에 분노를 품고 구름처럼 다투어 모였다. 정전 위에 엄숙히 공양구를 갖추고 향을 사르고 꽃을 뿌려 장엄을 맑게 한 뒤, 불타밀다가 법좌에 올라 수많은 외도와 법론을 시작하였다.

얕은 지혜의 사람은 한마디에 굴복하였고, 총명하고 변재 있는 사람조차 두 마디째에 말이 막혔다. 외도들이 모두 이치가 다한 것을 본 국왕은 스스로 불타밀다와 논의하였다. 그러나 왕도 처음 한마디를 했을 뿐 곧 논파되었다. 불타밀다는 왕을 상대로 크게 이긴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이 뜻은 깊고 멀지만, 왕께서는 총명하시니 능히 이해하실 것입니다」라고 왕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 왕은 스스로 미치지 못함을 알았고 또 불타밀다의 배려를 느껴, 곧 사심을 고치고 정법을 공경하여 믿어 불제자가 되었으며, 자기 나라에 널리 불교를 넓히게 되었다고 한다.

용수의 붉은 깃발 — 칠 년

용수보살은 부법장의 제14로, 불멸 후 칠백 년 무렵 남인도에 나와 대승의 교의를 크게 넓힌 대논사다. 처음에는 소승을 배웠으나 뒤에 히말라야 지방에서 한 늙은 비구에게서 대승 경전을 받고 그 뒤로 대승 불법의 선양에 힘을 다하였다. 『십이문론』 · 『십주비바사론』 · 『중관론』 등을 지었고, 뒤에 나온 천친보살과 함께 정법 시대 후반의 정법 호지자로 이름 높다.

그때 남천축의 왕은 매우 사견이 깊어 외도를 스승으로 섬기고 정법을 헐뜯었다. 용수보살은 그 왕을 교화하려고 스스로 큰 붉은 깃발을 메고 왕 앞을 칠 년 동안 오갔다고 한다. 왕이 비로소 이상히 여겨 「너는 어떤 사람이냐. 어찌하여 붉은 깃발을 들고 내 앞을 지나가느냐」고 물었다. 용수는 「나는 일체지인(一切智人)이다. 이를 알고자 하신다면 무엇이든 물어보시라」고 답하였다.

왕은 한동안 망설인 뒤 「제천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물었다. 용수는 「제천은 지금 바로 아수라와 싸우고 있다」고 답하고, 공중에서 칼과 창, 아수라의 귀와 코가 떨어지는 기이한 상서를 나타내 보였다. 왕은 놀라 깨닫고 용수를 공경하고 존중하여 불법에 귀의하였다. 전각 위의 많은 바라문들도 왕을 따라 발심하여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그때 많은 외도가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와서 구름처럼 모여, 노여움과 질투를 품고 용수와의 법론을 청하였다. 용수는 한두 마디로 모든 외도를 논파하였다. 마침내 외도는 모두 항복하여 용수의 제자가 되었고, 이렇게 용수보살은 나라 안에 널리 대승 불법을 유포하여 민중을 구하였다고 한다.

「붉은 깃발을 칠 년 · 십이 년 들고 다녔다」赤幡を七年十二年さしとをす절복의 기치
불타밀다(부법장 제9)
상대
바라문의 사견을 믿는 국왕
기간
십이 년
계기
왕이 「이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부름
법론
정승전에서 외도들을 논파, 왕의 체면을 세워 줌
결과
왕이 불제자가 되어 나라에 불교를 넓힘
용수(부법장 제14)
상대
외도를 스승으로 섬기는 남천축 왕
기간
칠 년
계기
「나는 일체지인이다」
법론
「제천은 지금 아수라와 싸우고 있다」는 답과 기이한 상서, 외도를 한두 마디로 논파
결과
왕과 바라문이 귀의, 대승을 유포
도표 14 · 붉은 깃발의 두 고사

두 고사에서 눈여겨볼 것은 그들의 인내다. 불타밀다는 십이 년, 용수는 칠 년, 왕이 물어 줄 때까지 날마다 같은 길을 붉은 깃발을 들고 오갔다. 바른 법을 말하는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은 그 기회를 오랜 세월에 걸쳐 스스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일단 법론의 자리가 열리자 단번에 사견을 깨뜨렸다. 왕을 향한 간효라는 점에서, 이는 뒤에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을 올려 국주를 간효하신 일과 같은 길 위에 있다.

마명의 「금전 삼억」과 여의논사의 죽음

마명보살 — 금전 삼억의 대가가 되다

마명보살은 부법장의 제12로, 불멸 후 육백 년 무렵 나와 대승을 크게 넓혔다. 범명은 아슈바고샤다. 처음에는 바라문의 학자로 한 세상을 풍미하며 논의를 즐겨 불교를 거세게 비난하였고, 지면 혀를 잘라 사죄하겠다고 교만하였으나, 부나사에게 논파되어 불교에 귀의한 뒤 홍교에 힘썼다. 「마명」이라는 이름은 과거세에 흰 새들을 모아 흰 말을 울게 하여 윤타왕에게 힘을 주고 불법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소행찬』 · 『건치범찬』 · 『대장엄론』 등을 지었다.

「금전 삼억의 대가가 되었다」는 것은 『부법장인연전』 권5의 고사다. 마명보살이 중인도 마가다국의 화씨성에서 교화하고 있을 때, 전단계니타왕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왔다. 그 왕은 기세가 드높고 용명이 천하에 떨쳤는데, 싸움 끝에 화씨성의 왕이 패하여 구억의 금을 요구받았다. 그러자 왕은 마명과 부처의 발우와 한 마리의 자심계(慈心鷄)를 각각 삼억으로 쳐서 계니타왕에게 바쳤고, 왕은 기뻐하며 받아 본국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한 사람의 고승이 전쟁 배상의 값으로 적국에 넘겨진 것이다. 그러나 마명은 그 왕의 보호 아래에서 크게 불법을 넓혀 민중의 존경을 받았다고 전한다. 몸이 물건처럼 팔려 가는 굴욕 속에서도 법을 넓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데 이 고사의 뜻이 있다.

여의논사 — 원통함에 죽다

여의논사는 세친(천친)보살의 스승이다. 『대당서역기』는 그 최후를 이렇게 전한다. 실라벌실저국(사위국)의 왕이 사사로운 원한을 품고 논사를 욕보이려고, 다른 학파의 학자 백 명을 모아 논사와 토론하게 하였다. 아흔아홉 명이 굴복하였으나 마지막 한 사람은 왕과 함께 억지로 논사를 욕보였다. 논사는 「무리 지어 편드는 이들과 대의를 다투지 말라. 미혹한 무리 가운데에서 바른 논을 가리려 하지 말라」고 세친에게 유계를 남기고 스스로 혀를 깨물고 죽었다. 세친은 그 유계를 지키다가, 새 왕이 섰을 때 여의논사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다시 그 외도들과 논의하여 그들을 깨뜨렸다고 한다. 법론에서 이기고도 권력과 결탁한 무리에게 욕을 당해 원통하게 죽은 것이다.

정법 시대에도 신명을 버렸다 — 대성인 문하의 순교

「이것들은 정법 일천 년 안의 일이다.」 대성인은 이 단락을 이렇게 맺으신다.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의 대난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난이 적었던 정법 시대에조차, 정법을 넓히기 위해 여의논사를 비롯해 마명보살 · 사자존자가 몸과 목숨을 버렸다. 하물며 말법에서는 어떠하겠는가. 이 물음이 이 장을 다음으로 넘기는 다리가 된다. 제3편에서는 상법 시대의 천태 · 전교가 겪은 원질이, 제5편에서는 대성인 자신이 겪으신 대난이 이어서 밝혀진다.

이 사신홍법의 길은 대성인의 재세 중에도 문하의 사람들에게 이어졌다. 고마쓰바라 법난에서 목숨을 잃은 구도 요시타카(工藤吉隆)와 교닌보(鏡忍房), 그리고 아쓰하라 법난에서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고 순교한 아쓰하라의 세 사람(熱原の三烈士)이 그들이다. 부법장의 논사들이 정법 시대에 보인 모습을, 말법의 대성인 문하가 몸으로 이어 보인 것이다. 법화경 행자의 길이 대난의 길이라는 것, 그리고 그 대난을 견디는 것이 곧 부모 · 스승 · 삼보 · 국가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는 것 — 이것이 이 장이 보은초 전체 안에서 맡은 몫이다. 이 주제는 「개목초」 제8편 「삼류의 강적과 법화경의 행자」에서 권지품 이십행의 게와 삼류의 강적으로 더 깊이 전개된다.

아쓰하라 법난은 「보은초」 저술(건치 2년, 1276) 뒤인 홍안 2년(1279)의 일이다. 정법 시대 논사들의 사신홍법이 대성인 문하에서도 이어졌다는 뜻으로 함께 든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제2편의 세 장은 하나의 논리로 이어져 있다. 제5장은 약왕품의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를 네 비유로 풀고, 이전 경들의 「뛰어나다」는 말이 모두 어떤 한 상대에 견준 말일 뿐임을 「소대」의 기준으로 가려냈다. 법화경과 가장 닮은 열반경조차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한 뒤의 이삭 줍기」라고 스스로 낮추었으니, 한 경으로 시방 일체경의 승렬을 알 수 있다. 제6장은 보지 못한 세계에 더 뛰어난 경이 있으리라는 가난을 「하나로써 만을 살피라」로 물리치고, 법사품 이금당의 삼설초과와 다보 · 시방 제불의 판형으로 법화경 최제일을 봉인하였다. 일월천조차 그 판정을 뒤집으면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라는 꾸짖음, 그리고 그 판정을 뒤집은 삼장 · 대사들은 「제불의 대원적」이라는 단언이 뒤따른다. 이 판정에는 이전 대 법화, 적문 대 본문, 본문 대 문저의 세 겹이 겹쳐 있어, 말법에서 「가장 그 위」에 있는 것은 수량품 문저의 삼대비법임이 함께 드러난다.

그리고 제7장은 그 판정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의 운명을 묻는다. 말하면 세간이 두렵고 말하지 않으면 부처의 간효를 어긴다 — 그 진퇴유곡 앞에서 대성인은 「유다원질 황멸도후」의 경문을 드셨다. 석존조차 제육천 마왕의 방해와 구횡의 대난을 겪었고, 정법 천 년의 부법장 논사들도 외도의 칼, 왕의 칼, 굴욕과 원통한 죽음을 겪었다. 「작은 허물이 없어도 대난을 자주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멸후의 법화경 행자」라는 말씀은, 법화경 제일의 판정과 법난이 떨어질 수 없는 한 쌍임을 보인다. 은혜를 갚으려면 지자가 되어야 하고, 지자가 되면 경문대로 말해야 하며, 경문대로 말하면 대난이 온다. 그 대난을 견디는 것이 보은의 실천이라는 보은초의 근본 논리가 이 편에서 처음으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다음 제3편 「천태 · 전교의 홍통」에서는 무대가 상법 시대로 옮겨 간다. 불멸 후 천오백 년, 남삼북칠의 열 갈래가 「화엄 제일 · 열반 제이 · 법화 제삼」으로 기울어 있던 중국에 천태대사가 나타나, 진(陳)나라 황제 앞의 공장 대결에서 그 미란을 깨뜨린다. 제5장에서 「남북의 큰 지자들조차 미혹하였다」고 하신 그 미혹이 어떻게 깨졌는지, 그리고 천태 멸후와 일본에서 그 판정이 어떻게 이어지고 또 흔들렸는지가 펼쳐진다.

더 읽기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보은초」 · 「교오전답서」 · 「데라도마리어서」 · 「형제초」 · 「관심의 본존초」 · 「개목초」 · 「간효팔번초」 · 「교행증어서」 · 「성인어난사」, 『어의구전』 — 일본어판 어서전집
  • 『묘법연화경』(약왕보살본사품 · 법사품 · 방편품 · 안락행품 · 신력품 · 제바달다품), T9 no.262
  • 『무량의경』, T9 no.276
  • 『대반열반경』(성행품 · 여래성품 · 보살품), T12 no.374
  • 천태대사 지의, 『법화문구』, T34 no.1718 · 『마하지관』, T46 no.1911
  • 묘락대사 담연, 『법화문구기』
  • 『부법장인연전』 · 현장, 『대당서역기』 · 『대지도론』 · 『대비바사론』 · 『구사론』 · 『장아함경』 · 『잡아함경』
  • 니치칸 상인, 「보은초 문단」

연구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On Repaying Debts of Gratitude」 수록)
더 읽기

이 편에 인용된 어서

어서 연구 전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