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긴 꼬리의 혜성과 그 아래 가마쿠라의 지붕들 · 해안선 원경

대성인의 국가 간효와 재난의 근원

보은초 · 제5편 · 제20~24장

報恩抄 — 日蓮大聖人の国家諌暁と災難の根源어서 311–317쪽
장
제20~24장
쪽수
어서 311:17–317:02
저술
건치 2년(1276) 7월 · 미노부
받는 이
아와 세이초사의 조켄보 · 기조보

여덟 편 · 보은초 37장 구성도

37장 + 송문 → 여덟 편
  1. 序講293 앞저술의 유래 · 대의 · 원의
  2. 보은의 도리와 불법을 배우는 길
  3.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4.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5.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6.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
  7.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
  8. 지은보은과 삼대비법
  9. 지은보은과 삼대비법

제4편까지 「보은초」는 인도 · 중국 · 일본 삼국의 불교사를 법화경이라는 한 자루 잣대로 재어, 마침내 「일본국은 자각 · 지증 · 홍법의 흐름이니 한 사람도 방법 아닌 이가 없다」는 판정에 이르렀다. 제5편은 그 판정이 대성인 한 몸에 무엇을 불러왔는지를 묻는다. 선신이 떠난 나라에 홀로 남아 그 까닭을 말씀하신 대가는 매리 · 악구 · 장목 · 도검, 두 번의 유죄, 그리고 다쓰노구치의 칼이었고, 대성인은 그 칼 앞에서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재난은 왜 일어나며 왜 지금 가장 크게 일어나는가, 경문이 말한 「손톱 위의 흙」 같은 소수의 정법자는 누구인가, 법화경을 찬탄하면서도 법화경의 마음을 죽이는 방법이란 무엇인가를 차례로 밝히고, 마지막으로 중국 진언의 세 조사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의 행적을 현증으로 따진다. 여덟 편 가운데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 갈래의 첫 편으로, 보은초가 역사의 판정에서 현재의 대결로 넘어가는 문턱이다.

「보은초」의 여덟 편은 네 갈래로 이어진다. 보은의 도리와 불법을 배우는 길을 세우는 제1편, 정법 · 상법 시대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을 더듬는 제2~4편,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을 다루는 제5 · 6편, 대성인의 지은보은과 삼대비법을 밝히는 제7 · 8편이다. 이 편은 셋째 갈래의 앞쪽에 서서, 제4편까지 쌓아 온 「일본 일국 방법」의 판정을 대성인의 실천과 법난, 그리고 나라가 겪는 재난과 하나로 묶는다. 제2편 「법화경 제일과 재세 · 정법의 난」에서 「유다원질 황멸도후(猶多怨嫉況滅度後)」로 예고되었던 법화경 행자의 난이 여기서 대성인 자신의 일로 증명되는 것이다.

다섯 장의 흐름은 이렇다. 제20장은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떠났다는 진단에서 출발해 대성인의 간효와 국주의 원질, 그리고 경문이 예고한 자계반역난 · 타국침핍난이 현실이 된 사실을 든다. 제21장은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전횡이나 승구의 난 때에는 다른 나라의 침공이 없었는데 왜 지금은 있는가를 「잠든 사자」와 「급류의 노」 같은 비유로 풀며, 재난의 원리를 세운다. 제22장은 『법멸진경』 · 열반경의 경문과 세간의 말을 맞세워 일본에서 정법자는 누구인가를 묻고, 열반경이 스스로 법화경을 「극(極)」으로 가리킨다는 도리를 밝힌다. 제23장은 가상대사(길장)와 자은대사(규기)의 예로 「법화경을 읽으면서도 법화경을 깨뜨리는」 방법을 해부하고, 참회한 가상조차 죄가 사라지기 어려웠다면 참회도 없는 진언의 조사들은 어떠하겠느냐고 묻는다. 제24장은 그 진언의 조사들 가운데 중국의 세 삼장을 기우의 큰바람과 임종의 상이라는 현증으로 파한다.

이 편은 「선시초」의 후반과 거울처럼 마주 본다. 「선시초」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가 대성인의 세 번의 고명과 예언의 적중을 「때」의 관점에서 밝혔다면, 「보은초」는 같은 사건을 「은혜를 갚는 길」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다. 나라의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나라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나라를 무너뜨리는 근원을 말해 주는 일이다.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에서 시작하신 그 간효가 이 편의 중심에 있다.

이 편의 장

第二十章日蓮大聖人の国家諌暁제20장 니치렌 대성인의 국가 간효 — 선신이 떠난 방법의 나라에 홀로 남아 간효하신 대성인과 국주의 원질,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 경문대로 일어난 자계반역 · 몽골 내습
第二十一章災難の所以を明かす제21장 재난의 까닭을 밝히다 — 다이라노 기요모리 · 승구의 난과 지금의 차이, 네 가지 비유, 재난의 중중(重重)한 유래와 「인국의 현왕」
第二十二章国中の謗法を明かす제22장 나라 안의 방법을 밝히다 — 『법멸진경』의 「선한 이는 하나 또는 둘」과 열반경의 「손톱 위의 흙」, 경문과 세간은 물과 불
第二十三章嘉祥の懺悔謗罪제23장 가상의 참회와 방죄 — 방법의 네 갈래, 가상 · 자은의 「법화경을 찬탄하면서 법화의 마음을 죽임」, 세친 · 마명 · 가상의 참회
第二十四章中国の真言三祖を破る제24장 중국 진언의 세 조사를 파하다 —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의 기우와 큰바람, 선무외의 임종의 상, 문영 11년 4월의 큰바람
제20장 니치렌 대성인의 국가 간효
어서 311쪽 17행 ~ 312쪽 15행 · 第二十章 日蓮大聖人の国家諌暁

본문

원문 대조어서 311쪽 17행 ~ 312쪽 15행
本文 · 어서 원문

日本国は慈覚・智証・弘法の流なり一人として謗法ならざる人はなし。 但し事の心を案ずるに大荘厳仏の末・一切明王仏の末法のごとし、 威音王仏の末法には改悔ありしすら猶・千劫・阿鼻地獄に堕つ、いかにいわうや日本国の真言師・禅宗・念仏者等は一分の廻心なし如是展転至無数劫疑なきものか、かかる謗法の国なれば天もすてぬ天すつればふるき守護の善神もほこらをやひて寂光の都へかへり給いぬ、 但日蓮計り留り居て告げ示せば国主これをあだみ数百人の民に或は罵詈・或は悪口・或は杖木・或は刀剣・或は宅宅ごとにせき・或は家家ごとにをう、それにかなはねば我と手をくだして二度まで流罪あり、去ぬる文永八年九月の十二日に頚を切らんとす、 最勝王経に云く「悪人を愛敬し善人を治罰するに由るが故に他方の怨賊来つて国人喪乱に遭う」等云云、大集経に云く「若しは復諸の刹利国王有つて諸の非法を作して世尊の声聞の弟子を悩乱し、若しは以て毀罵し刀杖をもつて打斫し及び衣鉢種種の資具を奪い、若しは他の給施せんに留難を作さば我等彼れをして自然に他方の怨敵を卒起せしめん及び自らの国土も亦兵起り病疫飢饉し非時の風雨・闘諍言訟せしめん、又其の王をして久しからずして復当に己が国を亡失せしめん」等云云、 此等の経文のごときは日蓮この国になくば仏は大妄語の人・阿鼻地獄はいかで脱給うべき、去ぬる文永八年九月十二日に平の左衛門並びに数百人に向て云く日蓮は日本国のはしらなり日蓮を失うほどならば日本国のはしらを・たをすになりぬ等云云、此の経文に智人を国主等・若は悪僧等がざんげんにより若は諸人の悪口によつて失にあつるならば、にはかに・いくさをこり又大風吹き他国よりせめらるべし等云云、去ぬる文永九年二月のどしいくさ同じき十一年の四月の大風同じき十月に大蒙古の来りしは偏に日蓮が・ゆへにあらずや、いわうや前よりこれを・かんがへたり誰の人か疑うべき、

풀이

일본국은 자각(慈覺) · 지증(智證) · 홍법(弘法)의 흐름이니라. 한 사람도 방법(謗法)이 아닌 사람이 없느니라. 다만 일의 마음을 헤아려 보건대, 대장엄불(大莊嚴佛)의 말 · 일체명왕불(一切明王佛)의 말법과 같으니라. 위음왕불(威音王佛)의 말법에는 잘못을 뉘우친 자조차 오히려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 떨어졌느니라. 하물며 일본국의 진언사 · 선종 · 염불자 등은 한 푼의 회심(廻心)도 없으니, 「이와 같이 전전하여 무수겁에 이른다(如是展轉至無數劫)」는 것이 의심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방법의 나라이므로 하늘도 버렸느니라. 하늘이 버리니 옛날부터 지켜 오던 수호의 선신도 사당을 불사르고 적광(寂光)의 도읍으로 돌아가셨느니라. 다만 니치렌 홀로 머물러 남아 이를 알리고 보이니, 국주는 이를 원망하여 수백 인의 백성으로 하여금 혹은 매리(罵詈)하고 혹은 악구하고 혹은 장목(杖木)으로 치고 혹은 칼로 베려 하며, 혹은 집집마다 막고 혹은 집집마다 쫓아내게 하였느니라. 그것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스스로 손을 써서 두 번이나 유죄에 처하였고, 지난 문영(文永) 8년 9월 12일에는 목을 베려 하였느니라. 최승왕경에 이르되 「악인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선인을 다스려 벌하는 까닭에 타방의 원적(怨賊)이 와서 나라 사람이 상란(喪亂)을 만난다」 운운. 대집경에 이르되 「만약 또 여러 찰리(刹利) 국왕이 있어 여러 비법(非法)을 짓고 세존의 성문 제자를 뇌란(惱亂)하며, 혹은 헐뜯고 꾸짖으며 칼과 막대기로 치고 베며, 가사와 발우와 갖가지 살림 도구를 빼앗으며, 혹은 다른 이가 보시하는 것을 가로막는다면, 우리들은 그로 하여금 저절로 타방의 원적을 갑자기 일으키게 하고, 또 자기 국토에도 병란이 일어나고 역병과 기근이 들며 때 아닌 바람과 비, 다툼과 송사가 일어나게 하리라. 또 그 왕으로 하여금 오래지 않아 반드시 자기 나라를 잃게 하리라」 운운. 이러한 경문들은, 니치렌이 이 나라에 없었다면 부처는 대망어(大妄語)를 한 사람이 되리니, 어찌 아비지옥을 벗어나실 수 있겠는가. 지난 문영 8년 9월 12일에 헤이노사에몬노조와 수백 인을 향해 말하기를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이니라. 니치렌을 잃게 하는 것은 일본국의 기둥을 쓰러뜨리는 것이 되느니라」 운운. 이 경문에는 지인(智人)을 국주 등이 혹은 악승들의 참언에 따라, 혹은 여러 사람의 악구에 따라 죄에 빠뜨린다면,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고 또 큰바람이 불며 다른 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으리라고 하였느니라. 지난 문영 9년 2월의 동사(同士) 싸움, 같은 11년 4월의 큰바람, 같은 해 10월에 대몽골이 쳐들어온 것은 오로지 니치렌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미리부터 이를 헤아려 말해 두었으니, 누가 의심하겠는가.

어구 풀이

慈覚・智証・弘法の流자각 · 지증 · 홍법의 흐름
자각(엔닌(円仁)) · 지증(엔친(円珍))은 천태좌주이면서 진언을 법화경 위에 둔 사람들이고, 홍법(구카이(空海))은 일본 진언종을 연 사람이다. 「보은초」 제4편까지 이 세 사람의 그릇된 뜻이 히에이산과 동사(東寺)를 통해 일본 전체에 퍼졌음을 밝혔으므로, 여기서 「일본국은 그 흐름」이라고 총괄하신다.
大荘厳仏の末대장엄불의 말
『불장경(佛藏經)』 왕고품(往古品)에 나오는 과거불. 그 멸후에 다섯 비구가 있었는데 보사비구(普事比丘)만이 정법을 지켰고, 나머지 네 비구가 그를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졌으며 그를 따르던 대중도 함께 떨어졌다. 팔대지옥과 시방의 대지옥을 거쳐 사람으로 났으나 오백 생 동안 눈먼 과보를 받았다고 한다.
一切明王仏の末法일체명왕불의 말법
대장엄불 때 방법한 이들이 뒤에 일체명왕불을 만나 출가 수도했으나, 지난 정법 비방의 죄로 열반을 얻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불장경』은 전한다. 니치칸 상인은 이 대목이 본래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의 사자음왕불(師子音王佛) 말법의 예를 드신 것이라고 보았다(뒤의 해설).
威音王仏の末法위음왕불의 말법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에 설한,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 이전의 부처. 겁의 이름은 이쇠(離衰), 나라 이름은 대성(大成). 성문에게 사제, 벽지불에게 십이인연, 보살에게 육바라밀을 설했으며 수명은 사십만억 나유타 항하사겁이다. 같은 이름의 부처가 이만억 차례로 나왔고, 그 첫 위음왕불의 상법 가운데 상불경보살이 나타났다.
阿鼻地獄아비지옥
범어 아비치(Avīci)의 음사로 「무간(無間)」이라 번역한다. 괴로움이 끊임없기 때문이다. 팔대지옥 가운데 가장 아래, 대초열지옥 밑에 있어 사방 팔만 유순이고 일곱 겹 쇠성에 둘러싸였다고 한다. 그 고통이 너무 커서 이곳 죄인은 대초열지옥의 죄인을 보면 타화자재천의 즐거움처럼 여긴다고 하며, 부처가 그 고통을 자세히 설하면 듣는 이가 피를 토하고 죽는다고까지 전한다. 오역죄를 지은 자가 일 중겁 동안 떨어지는 곳이며, 정법을 비방한 자는 뉘우쳐도 천 겁을 받는다.
廻心회심
마음을 돌이킴. 그릇된 가르침에서 돌아서서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
如是展転至無数劫이와 같이 전전하여 무수겁에 이른다
법화경 비유품의 게송. 「그 사람은 목숨을 마치고 아비지옥에 들어가 일 겁을 다 채우고, 겁이 다하면 다시 태어나, 이와 같이 전전하여 무수겁에 이른다」. 전전(展轉)은 구르고 돌아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니, 정법을 비방한 자가 무간지옥을 끝없이 오가는 모습이다.
最勝王経최승왕경
당나라 의정(義淨)이 번역한 『금광명최승왕경』 10권 31품. 『금광명경』 한역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로 방등부에 속한다. 이 경을 지키는 이는 사천왕을 비롯한 모든 제천선신의 가호를 받지만, 국왕이 정법을 지키지 않으면 선신이 나라를 버려 삼재칠난이 일어난다고 설한다.
大集経대집경
방등부의 대승경. 욕계와 색계 사이의 대보방(大寶坊)에 시방의 부처 · 보살을 모아 설했다고 한다. 한역은 여섯 가지가 전하며(담무참 역 『대방등대집경』 30권, 나련제야사 역 『일장경』 · 『월장경』 등), 여기 인용은 『대방등대집월장경』이다. 그 법멸진품에 불멸 후 2,500년을 다섯 오백 년으로 나눈 예언(해탈견고 · 선정견고 · 독송다문견고 · 다조탑사견고 · 투쟁언송 백법은몰)이 있다.
刹利国王찰리 국왕
찰제리(刹帝利), 곧 크샤트리야(kṣatriya)의 음사로 「왕종(王種)」이라 번역한다. 인도 네 성(바라문 · 찰제리 · 비사 · 수타) 가운데 국왕 · 대신 · 무인이 나오는 계급이다.
非法・衣鉢・給施・留難비법 · 의발 · 급시 · 유난
비법은 부처의 정법과 사회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와 제도. 의발은 법의와 발우로 승려의 생활을 받치는 도구. 급시는 보시하여 공급하는 것. 유난(留難)은 붙잡아 가두고(留) 박해하여(難) 몸과 목숨을 해치고 정법 유포를 가로막는 것이다.
平の左衛門헤이노사에몬노조
다이라노 요리쓰나(平賴綱). 호조 씨의 가령(家令)으로서 무사소(侍所)의 소사(所司)를 겸했다. 막부의 정무는 평정(評定) 제도였으나 최종 결정은 집권이 쥐었고, 요리쓰나는 집권 집안의 집사였으므로 실제 권력은 정소(政所)의 집사 니카이도 씨나 문주소(問注所)의 집사 오타 씨보다 컸으며, 무사소의 실권까지 쥐어 정치와 병권을 함께 휘둘렀다.
どしいくさ동사 싸움
같은 편끼리의 싸움. 문영 9년(1272) 2월의 호조 도키스케(北條時輔)의 난, 이른바 2월 소동을 가리킨다. 『입정안국론』이 예고한 자계반역난(自界叛逆難)에 해당한다.
同じき十月に大蒙古の来りしは같은 해 10월 대몽골이 온 것
문영 11년(1274) 10월의 몽골 · 고려 연합군의 내습, 곧 「문영의 역(役)」이다. 쓰시마 · 이키가 무너지고 하카타만에 상륙했으나 하룻밤 사이에 배로 물러났다.
前よりこれを・かんがへたり미리부터 이를 헤아렸다
문응 원년(1260)의 「입정안국론」 이래 자계반역 · 타국침핍의 두 난을 예고하셨고, 문영 8년(1271) 다쓰노구치 법난 직전에도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대성인을 박해하면 반드시 이 두 난이 있으리라고 단언하신 일을 말한다.

대장엄불 · 위음왕불의 말법 — 일본 일국 방법의 진단

이 장은 말법의 지금 오직 니치렌 대성인만이 법화경의 행자이며, 일본의 일체중생과 일본이라는 나라를 구할 분이 대성인이라는 까닭을 밝힌다. 그 첫머리에서 대성인은 먼저 일본의 상태를 과거 부처의 말법에 견주신다. 제4편까지의 긴 논증이 「일본국은 자각 · 지증 · 홍법의 흐름이니 한 사람도 방법 아닌 이가 없다」라는 한 문장으로 모이고, 그 나라의 모습이 대장엄불 · 일체명왕불 · 위음왕불의 말법과 같다는 진단으로 이어진다.

『불장경』 제3 왕고품은 대장엄불의 멸후를 이렇게 전한다. 다섯 비구 가운데 보사비구만이 정법을 지녔고, 고안(苦岸) 등 네 비구는 그를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졌다. 오랜 세월 지옥의 고통을 받은 뒤 일체명왕불의 법 가운데 태어나 출가 수도했으나 끝내 도를 얻지 못하고, 지난 방법 때문에 다시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정법을 지키는 한 사람을 많은 이가 비방하는 구도, 그리고 그 비방이 몇 생을 넘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고사의 요점이다.

그런데 이 대목의 「일체명왕불의 말법」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따로 살펴야 할 점이 있다. 『불장경』에서 일체명왕불은 대장엄불 때의 방법자들이 뒤에 태어난 시대의 부처로서 나올 뿐, 일체명왕불 자신의 말법을 설한 것은 아니다. 니치칸 상인은 이 문장이 본래 『제법무행경』에 나오는 사자음왕불의 말법, 곧 승의비구(勝意比丘)의 예를 드신 것이라 보았고, 이렇게 적힌 것은 대성인이 범부와 같은 모습을 보이신 것(示同凡夫)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풀었다. 대장엄불과 사자음왕불의 두 예는 실제로 다른 어서에서 나란히 쓰였다.

大荘厳仏の末の六百八十億の檀那等は苦岸等の四比丘に・たぼらかされて普事比丘を怨みてこそ大地微塵劫が間無間地獄を経しぞかし

대장엄불의 말의 육백팔십억 단나들은 고안 등 네 비구에게 속아 보사비구를 원망했기에 대지미진겁 동안 무간지옥을 겪었느니라.

「형제초」, 1081–1082쪽

같은 대목에서 「형제초」는 이어 사자음왕불의 말법의 남녀가 승의비구라는 계율을 지키는 승려를 따라 희근비구(喜根比丘)를 비웃었기에 무량겁 동안 지옥에 떨어졌다고 하신다. 「간효팔번초」에도 대장엄불의 말법의 네 비구가 육백만억 나유타의 사람을 모두 무간지옥에 떨어뜨렸고, 사자음왕불의 말법의 승의비구가 무량무변의 계를 지키는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를 모두 아비대성으로 이끌었다는 취지의 말씀이 있다. 두 예 모두 「계를 지키는 듯 보이는 스승이 사람들을 무간으로 이끈다」는 구도를 보여 준다. 이것이 「보은초」가 일본의 진언사 · 선종 · 염불자에게 겨누는 비판의 원형이다.

다음은 위음왕불의 말법이다. 상불경보살품에 따르면 첫 위음왕불이 멸도한 뒤 정법이 다하고 상법 가운데 증상만의 비구들이 큰 세력을 가졌을 때 상불경보살이 나타나 「나는 깊이 그대들을 공경한다」는 이십사 자를 외며 사중을 예배했다. 사중은 그를 욕하고 막대기와 기왓돌로 쳤으나, 뒤에 그가 큰 신통력과 변재력을 얻은 것을 보고 신복수종(信伏隨從)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 떨어졌다. 뉘우친 사람조차 그러했다면 「한 푼의 회심도 없는」 일본의 진언사 · 선종 · 염불자는 비유품의 「이와 같이 전전하여 무수겁에 이른다」는 경문대로 되리라는 것이 대성인의 논리다.

위음왕불의 말법에서 불경보살을 박해한 사중이 뒤에 신복했으나 천 겁 아비에 떨어졌다는 예는 제23장에서 다시 나온다. 거기서는 가상대사가 천태대사에게 귀의하고도 이전의 방법죄가 사라지기 어려웠다는 근거로 쓰인다.

대장엄불의 말
정법자보사비구 한 사람만 정법
비방자네 비구와 그를 따른 대중이 비방
결과지옥, 일체명왕불 때에도 득도 못 함
출전『불장경』 왕고품
사자음왕불의 말
비방자승의비구를 따라 희근비구를 비웃은 남녀
결과무량겁 지옥
출전『제법무행경』
위음왕불의 말법
비방자불경보살을 박해한 사중
결과뒤에 신복수종했으나 천 겁 아비
출전상불경보살품
지금의 일본
비방자진언사 · 선종 · 염불자
결과「한 푼의 회심도 없다」 → 「이와 같이 전전하여 무수겁에 이른다」
출전비유품
「한 푼의 회심도 없으니 이와 같이 전전하여 무수겁에 이른다」一分の廻心なし如是展転至無数劫疑なきものか311–312쪽
도표 1 · 과거 부처의 말법과 일본

선신은 왜 나라를 떠나는가 — 신의 세 종류와 세 까닭

「이러한 방법의 나라이므로 하늘도 버렸다」는 문장부터는 방법을 꾸짖는 단락이다. 그 처음은 국주에 대한 간효를 밝히며, 이는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제천선신이 방법의 나라를 버리고 떠났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만 니치렌 홀로」 이하에서 바로 간효를 밝히는 것이다.

「수호의 선신」이라는 말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報恩抄文段)」에서 신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밝혔다. 첫째는 법성신(法性神)이다. 만법의 정령으로서 저절로 그러하여 헤아릴 수 없는 이치이니, 선악으로 나눌 수도 없고 오고 감으로 나눌 수도 없다. 둘째는 사횡신(邪橫神)이니, 실제로 미혹한 악령신이다. 셋째는 유각신(有覺神)이니, 불보살이 본지를 감추고 자취를 드리워 빛을 누그러뜨린 신명(神明)이다. 불보살이 내증의 삼신의 빛을 누그러뜨려 범성동거토의 티끌에 섞여 이 세상에서 작용하는 것을 선신이라 하며, 지금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것은 이 셋째 유각신이다. 그러므로 「수호의 선신」이라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선신은 왜 방법의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가. 니치칸 상인은 그 까닭을 여럿 들었는데, 그 가운데 요점은 세 가지다.

첫째, 부처 앞에서 한 서원 때문이다

선신들은 부처 앞에서 정법을 지키는 이를 수호하겠다고 서원했다. 그러므로 정법을 버린 나라에는 머물 수 없다. 「입정안국론」은 여러 경문을 들어 이를 자세히 논증하는데, 그 가운데 『금광명경』의 문은 이렇다.

其の国土に於て此の経有りと雖も未だ甞て流布せしめず捨離の心を生じて聴聞せん事を楽わず亦供養し尊重し讃歎せず四部の衆・持経の人を見て亦復た尊重し乃至供養すること能わず、遂に我れ等及び余の眷属無量の諸天をして此の甚深の妙法を聞くことを得ざらしめ甘露の味に背き正法の流を失い威光及以び勢力有ること無からしむ

그 국토에 이 경이 있더라도 일찍이 유포하게 하지 않고, 버리고 떠날 마음을 내어 듣기를 즐기지 않으며, 또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지 않고, 사부의 대중과 경을 지닌 사람을 보고도 존중하거나 공양하지 못한다면, 마침내 우리들과 다른 권속인 무량한 제천으로 하여금 이 매우 깊은 묘법을 듣지 못하게 하여, 감로의 맛을 등지고 정법의 흐름을 잃어 위광과 세력이 없게 하리라.

「입정안국론」, 18쪽

『금광명경』은 이어서 「악취를 늘리고 인간 · 천상을 줄여 생사의 강에 떨어져 열반의 길을 어기리라. 세존이시여, 우리 사왕과 권속과 야차들은 이런 일을 보면 그 국토를 버리고 옹호할 마음이 없으리라. 우리만 이 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무량한 국토를 수호하는 여러 대선신도 모두 버리고 떠나리라」고 설한다. 대성인은 「니이케어서」에서 이 서원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霊山の起請のおそろしさに社を焼き払いて天に上らせ給いぬ……天照太神・八幡大菩薩・天に上らせ給はば其の余の諸神争か社に留るべき

영산에서 한 서약이 두려워 사당을 불사르고 하늘로 올라가셨느니라. …… 천조태신 · 팔번대보살이 하늘로 올라가셨다면 그 밖의 여러 신이 어찌 사당에 머물겠는가.

「니이케어서」, 1442쪽

둘째, 법미를 맛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신은 법의 맛, 곧 법미(法味)를 먹고 위력을 얻는다. 니치칸 상인은 「방법의 법미는 마구간의 똥과 같고, 묘법의 법미는 하늘의 감로와 같다」고 비유했다. 정법이 행해지지 않는 나라에서 선신은 굶주리고, 그 결과 위광을 잃는다.

守護の善神は法味をなめざる故に威光を失ひ利生を止此の国をすて他方に去り給い

수호의 선신은 법미를 맛보지 못하는 까닭에 위광을 잃고 이익을 그치며, 이 나라를 버리고 타방으로 떠나시어

「창법화제목초」, 8쪽

이 밖에도 같은 뜻의 말씀은 많은 어서에 보인다.

셋째, 머물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선신이 깃드는 곳은 정직한 사람의 정수리다. 니치칸 상인은 「방법자의 정수리는 구리가 녹아 타는 맹화와 같고, 정법자의 정수리는 칠보의 궁전과 같다」고 했다. 깃들 정수리가 없으니 떠날 수밖에 없다.

八幡大菩薩の御誓いは月氏にては法華経を説いて正直捨方便となのらせ給い、日本国にしては正直の頂に・やどらんと誓い給ふ、而るに去ぬる十一月十四日の子の時に御宝殿をやいて天にのぼらせ給いぬる故をかんがへ候に・此の神は正直の人の頂に・やどらんと誓へるに・正直の人の頂の候はねば居処なき故に栖なくして天にのぼり給いけるなり

팔번대보살의 서원은, 월지에서는 법화경을 설하여 「정직하게 방편을 버린다」고 이름하시고, 일본국에서는 정직한 이의 정수리에 깃들겠다고 서원하신 것이니라. 그런데 지난 11월 14일 자시(子時)에 보전(寶殿)을 불사르고 하늘로 오르신 까닭을 헤아려 보니, 이 신은 정직한 사람의 정수리에 깃들겠다고 서원했는데 정직한 사람의 정수리가 없으므로 머물 곳이 없어 깃들 데 없이 하늘로 오르신 것이니라.

「시조깅고허어문」, 1196쪽

팔번이 이러하다면 다른 선신도 같다는 것은 앞의 「니이케어서」의 말씀 그대로다.

신의 세 종류
  • 법성신만법의 정령, 선악 · 거래를 나눌 수 없음
  • 사횡신실제로 미혹한 악령신
  • 유각신나라를 떠나는 것은 이 신불보살이 빛을 누그러뜨려 드리운 신명
떠나는 까닭
  1. ①부처 앞의 서원「영산의 서약이 두려워 사당을 불사르고 하늘로 올라가셨다」「니이케어서」 1442쪽
  2. ②법미를 맛보지 못함「법미를 맛보지 못하는 까닭에 위광을 잃고」「창법화제목초」 8쪽
  3. ③머물 곳이 없음「정직한 사람의 정수리가 없으므로 머물 곳이 없어」「시조깅고허어문」 1196쪽

니치칸 상인 「보은초 문단」(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도표 2 · 신의 세 종류와 선신이 떠나는 세 까닭

「떠났다」와 「머물러도 지키지 못한다」 — 신천상의 뜻

그런데 여러 어서에서 대성인은 선신이 나라를 떠났다고도 하시고, 떠나지는 않았으나 머물러도 지킬 힘이 없다고도 하신다.

天照太神・正八幡・山王等・諸の守護の諸大善神も法味を・なめざるか国中を去り給うかの故に悪鬼・便を得て国すでに破れなんとす

천조태신 · 정팔번 · 산왕 등 여러 수호의 대선신도 법미를 맛보지 못하는가, 나라 안을 떠나셨는가, 그 까닭에 악귀가 틈을 얻어 나라가 이미 무너지려 하느니라.

「개목초」, 190쪽

閻浮守護の天神・地祇も或は他方に去り或は此の土に住すれども悪国を守護せず或は法味を嘗めざれば守護の力無し

염부제를 수호하는 천신 · 지기도 혹은 타방으로 떠나고, 혹은 이 땅에 머물러도 악한 나라를 수호하지 않으며, 혹은 법미를 맛보지 못하므로 수호할 힘이 없느니라.

「소야입도전허어서」, 1032쪽

머문다고도 하시고 머물지 않는다고도 하셨는데, 왜 한편에서는 「신천상(神天上)」이라고 단정하시는가. 니치칸 상인은 이렇게 풀었다. 머무는 면이 있다 해도 악한 나라를 지키지 않고, 지키고자 해도 법미를 맛보지 못하므로 위력이 없다. 그러므로 머물러도 머물지 않는 것과 같고, 떠나지 않아도 떠난 것과 같다. 그래서 통틀어 여러 신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신이 하늘로 올라가 일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왜 큰바람이 불어 나라가 구해졌는가. 대성인은 사도 유배 중에도 이미, 니치렌이 일본에 있기에 일본은 제천의 보호를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日蓮は幼若の者なれども法華経を弘むれば釈迦仏の御使ぞかし……教主釈尊の御使なれば天照太神・正八幡宮も頭をかたぶけ手を合せて地に伏し給うべき事なり……かかる日蓮を用いぬるともあしくうやまはば国亡ぶべし、何に況や数百人ににくませ二度まで流しぬ、此の国の亡びん事疑いなかるべけれども且く禁をなして国をたすけ給へと日蓮がひかうればこそ今までは安穏にありつれども・はうに過ぐれば罰あたりぬるなり

니치렌은 어리고 미숙한 자이지만 법화경을 넓히니 석가불의 사자이니라. …… 교주 석존의 사자이므로 천조태신 · 정팔번궁도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아 땅에 엎드리셔야 할 일이니라. …… 이러한 니치렌을 쓴다 해도 그릇되게 공경하면 나라가 망하리니, 하물며 수백 인에게 미움받게 하고 두 번이나 유배하였느니라. 이 나라가 망할 것은 의심 없겠으나 「잠시 금하여 나라를 도우소서」 하고 니치렌이 붙들고 있기에 지금까지는 안온하였거니와, 법도를 넘으면 벌이 내리느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9쪽

더욱이 홍안 4년(1281)의 두 번째 내습 때에는 막부가 이미 사도 유배를 뉘우쳐 대성인을 사면한 뒤였으므로 나라가 보호받을 수 있었다고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푼다. 대성인이 계시는 나라를 선신이 지킨다는 것은 법화경 안락행품의 「제천이 밤낮으로 늘 법을 위하는 까닭에 그를 호위한다」는 경문 그대로다.

사당을 불사른 때 — 문영 11년 11월 14일

본문에 「사당을 불사르고」라고 하셨는데, 수호의 선신이 사당을 불사르고 하늘로 오른 것은 언제인가. 니치칸 상인은 이를 문영 11년(1274) 11월 14일로 보았다. 근거는 다음 두 어서다.

去ぬる文永十一年に大蒙古よりよせて日本国の兵を多くほろぼすのみならず八幡の宮殿すでにやかれぬ

지난 문영 11년에 대몽골로부터 쳐들어와 일본국의 병사를 많이 멸할 뿐 아니라 팔번의 궁전이 이미 불탔느니라.

「간효팔번초」, 583쪽

「시조깅고허어문」의 「지난 11월 14일 자시에 보전을 불사르고 하늘로 오르시어」(1196쪽)와 아울러 보면, 문영 11년 10월 몽골이 쳐들어온 전란 가운데 11월 14일에 사당을 불사르고 하늘로 올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영 8년(1271) 9월 12일, 다쓰노구치로 끌려가시던 길에 대성인이 쓰루가오카 팔번궁 앞에서 팔번대보살을 간효하신 일에도 참으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적광의 도읍」 — 천상의 세 뜻

본문은 선신이 「적광의 도읍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다른 어서에서는 혹은 타방으로 떠났다 하고 혹은 천상에 올랐다 하시는데, 여기서는 「적광의 도읍」이라 하신다.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에서 「천상(天上)의 뜻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밝혔다. 첫째, 땅의 신(地祇)이 떠나 하늘의 신(天神)에게 돌아가므로 천상이라 한다. 둘째, 도솔천으로 돌아가므로 천상이라 한다. 셋째, 법성진여의 제일의천(第一義天)으로 돌아가므로 천상이라 한다. 본초에서 말하는 「적광의 도읍」은 이 셋째, 법성진여의 제일의천을 가리킨다.

본적(本迹)에 맞추어 말하면, 다른 어서들의 뜻은 적문의 뜻이고 본초는 본문의 뜻이다. 그러므로 본지인 자수용신(自受用身)의 수적으로서의 제천선신이 본지의 적광의 도읍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諸の権化の人人の本地は法華経の一実相なれども垂迹の門は無量なり

여러 권화(權化)의 사람들의 본지는 법화경의 일실상이지만 수적의 문은 한량없느니라.

「간효팔번초」, 588쪽

일실상(一實相)이란 일념삼천이며, 일념삼천이란 자수용신이다. 곧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의 수적이라는 뜻이다. 「니치겐뇨조립석가불공양사」는 동방의 선덕불 · 중앙의 대일여래 · 시방의 제불 · 과거칠불 · 삼세의 제불 · 상행보살 · 문수사리 · 사리불, 대범천왕 · 제육천의 마왕 · 석제환인 · 일천 · 월천 · 명성천 · 북두칠성 · 이십팔수 · 오성 · 칠성 · 팔만사천의 무량한 별들 · 아수라왕 · 천신 · 지신 · 산신 · 해신 · 택신 · 이신, 일체 세간의 나라들의 주인 되는 사람을 열거한 뒤 이렇게 맺으신다.

何れか教主釈尊ならざる・天照太神・八幡大菩薩も其の本地は教主釈尊なり、例せば釈尊は天の一月・諸仏・菩薩等は万水に浮べる影なり

어느 것이 교주 석존 아닌 것이 있겠는가. 천조태신 · 팔번대보살도 그 본지는 교주 석존이니라. 비유하면 석존은 하늘의 한 달이요, 제불 · 보살 등은 만 갈래 물에 뜬 그림자니라.

「니치겐뇨조립석가불공양사」, 1187쪽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이 교주 석존은 구원원초의 자수용신, 본인묘(本因妙)의 교주 석존이다. 그러므로 시방삼세의 제불, 나아가 범천 · 제석 · 일월 · 천신 · 지기가 모두 본지인 자수용 일불의 내증으로 돌아가는 것을 「적광의 도읍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구원은 지금에 있고, 지금이 곧 구원이다」라는 말처럼,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 곧 니치렌 대성인이시며, 대성인이 곧 구원원초의 일불이시라고 본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선신이 「적광의 도읍」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선신이 소멸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본지로 거두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지인 일불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면 시방삼세의 제불과 범천 · 제석 · 일월 · 천신을 모두 믿는 것이 되고, 선신은 다시 그 사람과 나라를 지키는 작용으로 나타난다.

  1. ①지기가 떠나 천신에게 돌아감
  2. ②도솔천으로 돌아감
  3. ③법성진여의 제일의천으로 돌아감본초의 「적광의 도읍」
본적에 맞추면
적문의 뜻다른 어서의 「타방으로 떠남 · 천상」
본문의 뜻본초의 「적광의 도읍으로 돌아감」본지 자수용신의 수적이 본지로 돌아감
근거
「본지는 법화경의 일실상이지만 수적의 문은 한량없다」本地は法華経の一実相なれども垂迹の門は無量なり「간효팔번초」 588쪽
「석존은 하늘의 한 달이요, 제불 · 보살 등은 만 갈래 물에 뜬 그림자」釈尊は天の一月・諸仏・菩薩等は万水に浮べる影なり1187쪽

니치칸 상인 「보은초 문단」(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도표 3 · 「천상」의 세 뜻과 적광의 도읍

「다만 니치렌 홀로」 — 첫 번째 간효와 국주의 원질

「다만 니치렌 홀로 머물러 남아 알리고 보이니」 이하는 바로 간효를 밝히는 단락이며, 다시 둘로 나뉜다. 처음은 첫 번째 간효와 국주의 원질(怨嫉)이고, 다음 「최승왕경에 이르되」부터는 두 번째 간효와 국토의 재난을 밝힌다.

「다만 니치렌 홀로 머물러」라는 말은 법화경 비유품의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능히 구호할 수 있다」의 그 한 사람이며, 대성인이 「개목초」에서 말씀하신 「일본국에 이를 아는 자는 다만 니치렌 한 사람이니라(日本国に此れをしれる者は但日蓮一人なり)」(200쪽)의 그 한 사람이다. 선신마저 떠나 버린 나라에 남아 있는 것은 대성인뿐이다. 이 「홀로 머문다」는 표현은 고립의 탄식이 아니라, 버려진 나라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 이의 자리를 말한다.

또 「한 미혹한 이가 먼저 도달하여 나머지 미혹한 이들에게 가르친다(一迷先達して余迷に教ゆ)」는 말이 있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그 최초의 도사가 곧 대성인이시며, 그러므로 오직 대성인 한 분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면 시방삼세의 제불, 나아가 범천 · 제석 · 일월 · 천신 등을 모두 믿는 것이 된다고 본다. 앞 절의 「적광의 도읍」과 이어지는 논리다.

본문의 「머물러 알리고 보이니」는 문응(文應) 원년(1260) 7월 16일, 「입정안국론」을 최명사 입도(最明寺入道) 호조 도키요리에게 올려 처음 간효하신 일을 가리킨다. 그 결과는 본문이 열거하는 그대로였다. 국주가 원망하자 수백 인의 백성이 매리하고, 악구하고, 장목으로 치고, 칼로 베려 하고, 집집마다 문을 닫고, 집집마다 쫓아냈다. 그것으로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국주는 스스로 손을 써서 두 번 유죄에 처했다. 홍장(弘長) 원년(1261)의 이즈 유배와 문영 8년(1271)의 사도 유배다. 그리고 문영 8년 9월 12일 밤, 다쓰노구치에서 목을 베려 했다.

이 열거는 법화경 권지품의 이십행 게가 말하는 「악구매리 · 도장(刀杖)을 가함 · 자주자주 쫓겨남(數數見擯出)」을 그대로 밟는다. 「개목초」 제8편 「삼류의 강적과 법화경의 행자」가 이 경문을 몸으로 읽은 사람은 대성인뿐임을 밝혔는데, 「보은초」는 같은 사실을 「간효의 대가」라는 측면에서 다시 보여 준다.

최승왕경 · 대집경 — 당분과 과절의 두 뜻

두 번째 간효를 밝히는 대목에서 대성인은 『최승왕경』과 『대집경』을 인용하신다. 둘 다 법화경 이전의 경(이전경)이다. 이전경을 인용하는 데는 「당분(當分)」과 「과절(跨節)」의 두 뜻이 있다.

당분에 맞추어 말하면, 『최승왕경』이나 『대집경』의 행자를 가리켜 「선인」 및 「세존의 성문 제자」라 한 것이다. 이 선인을 다스려 벌하고 이 성문을 뇌란하면 갑자기 자계반역 · 타국침핍 등의 난이 일어난다. 이처럼 권대승의 행자를 벌하고 괴롭혀도 자국과 타국의 원적이 일어나는데, 하물며 실대승인 법화경의 행자를 벌하고 괴롭히는 경우야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당분의 뜻이다.

과절에 맞추어 말하면, 저 경문의 「선인」과 「세존의 성문 제자」는 바로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 곧 니치렌 대성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니치렌이 이 나라에 없었다면」이라 하시고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이라 하신 것이다. 경문 자체가 대성인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니치렌이 이 나라에 없었다면 부처는 대망어를 한 사람이 되리니」라는 강한 말씀이 나온다. 경문이 거짓이 되지 않으려면 그 경문대로 박해받는 지인이 있어야 하고, 그 지인이 곧 대성인이라는 것이다.

『대집경』의 박해 목록 — 헐뜯고 꾸짖음(毀罵), 칼과 막대기로 치고 벰(刀杖打斫), 의발과 살림 도구를 빼앗음, 보시하는 이를 가로막음(留難) — 은 앞 절에서 본 대성인의 법난, 그리고 대성인을 따르던 문하가 영지를 빼앗기고 옥에 갇힌 일들과 그대로 겹친다. 그리고 그 결과로 경문이 드는 것은 타방 원적의 내습, 자국 안의 병란, 역병 · 기근, 때 아닌 풍우, 다툼과 송사, 마지막으로 나라를 잃는 일이다.

당분(當分)
경문의 「선인 · 세존의 성문 제자」= 최승왕경 · 대집경의 행자(권대승)
권대승의 행자를 벌해도 자타의 원적이 일어남하물며 실대승인 법화경의 행자이랴
과절(跨節)
경문의 「선인 · 성문 제자」= 바로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 니치렌 대성인
「니치렌이 이 나라에 없었다면 부처는 대망어의 사람」 ·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
「니치렌이 이 나라에 없었다면 부처는 대망어의 사람」日蓮この国になくば仏は大妄語の人312쪽
도표 4 · 이전경 인용의 두 뜻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 —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하신 두 번째 고명

문영 8년(1271) 9월 12일, 대성인은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와 수백 인을 향해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이다. 니치렌을 잃게 하는 것은 일본국의 기둥을 쓰러뜨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대성인이 생애에 세 번 하신 국가 간효, 이른바 「세 번의 고명(高名)」 가운데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입정안국론」을 올리신 일이고, 세 번째는 사도에서 돌아오신 직후인 문영 11년(1274) 4월 8일 헤이노사에몬노조와 대면하여 몽골이 올해 안에 쳐들어오리라고 말씀하신 일이다. 「선시초」는 이 세 번을 「세 번의 고명」으로 묶어, 그것이 모두 적중했음을 밝힌다(「선시초」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 참조).

헤이노사에몬노조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면 이 말씀의 무게가 드러난다. 그는 호조 씨의 가령, 곧 집권 집안의 집사로서 무사소의 소사를 겸했다. 막부의 정무는 평정 제도로 운영되었으나 최종 결정은 집권이 쥐었고, 요리쓰나는 그 집권의 집사였으므로 실제로는 정소의 집사 니카이도 씨나 문주소의 집사 오타 씨보다 큰 권력을 가졌다. 게다가 무사소의 실권까지 쥐어 정치와 병권을 함께 움직였다. 대성인은 바로 그 사람과 수백의 무사 앞에서, 체포되는 그 자리에서 이 말씀을 하셨다.

「기둥」이라는 비유는 나라를 떠받치는 것이 무력이나 권력이 아니라 정법을 지니고 나라의 근원을 바로 보는 지인이라는 뜻이다. 지인을 잃게 하면 기둥을 뽑는 것과 같아 집 전체가 무너진다. 이는 「개목초」의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눈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큰 배가 되리라」라는 삼대서원과 같은 마음에서 나온 말씀이다. 대성인은 헤이노사에몬노조 등 수백 인에게 엄연히 외쳐 국가를 간효하셨으니,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 말씀을 대성인이야말로 인류를 구하는 어본불이시라는 대선언으로 받든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은 자기 높임의 말이 아니라 경문의 논리다. 『최승왕경』 · 『대집경』이 「선인을 벌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으니, 그 경문의 「선인」에 해당하는 사람을 잃게 하는 것은 나라의 기둥을 쓰러뜨리는 일이 된다. 간효는 나라를 위협하는 말이 아니라 나라의 은혜를 갚는 일, 곧 「보은」의 실천이다.

경문대로 일어난 자계반역과 타국침핍

본문은 이어 「이 경문에, 지인을 국주 등이 악승의 참언이나 여러 사람의 악구에 따라 죄에 빠뜨리면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고 큰바람이 불며 다른 나라로부터 공격받으리라고 하였다」고 하시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드신다.

첫째는 「문영 9년 2월의 동사 싸움」이다. 집권 호조 도키무네의 배다른 형 호조 도키스케는, 제7대 집권 호조 마사무라 뒤에 동생 도키무네가 옹립된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몽골과 고려의 사신이 잇따라 와서 교토 · 가마쿠라와 교섭이 거듭되는 사이에 도키무네와 대립하게 되었다. 도키무네는 문영 9년(1272) 2월 11일, 도키스케에게 딴마음이 있다 하여 오쿠라 요리스에를 보내 도키스케 편에 선 나고에 노리토키 등을 가마쿠라에서 죽이고, 15일에는 호조 요시무네에게 교토 로쿠하라에서 도키스케를 죽이게 했다. 이를 2월 소동이라 하며, 호조 득종가(得宗家) 안의 내란이었으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입정안국론」이 예고한 자계반역난이 이것이다. 안국론으로부터 12년, 다쓰노구치 법난으로부터 150일째 되는 날이었다.

둘째는 「같은 11년 4월의 큰바람」이다. 이 큰바람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제24장 끝에서 대성인이 직접 밝히신다. 가마쿠라 아미타당의 가가 법인이 기우를 하자 불어닥친 역풍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같은 해 10월의 대몽골의 내습」이다. 문영 11년(1274) 10월, 몽골군은 5일(6일이라고도 한다)에 쓰시마를 공격하여 수호대 소 스케쿠니 이하가 전멸했고, 14일에는 이키를 공격하여 수호대 다이라노 가게타카 이하가 전멸했으며, 20일에는 규슈 하카타만에 상륙하여 하카타 · 하코자키를 침략했다. 그러나 다자이후 점령을 이튿날로 미루고 배로 물러났다가 겨울 계절풍을 만나, 원정군은 고려의 합포로 돌아갔다. 이것이 문영의 역이다. 타국침핍의 난은 안국론으로부터 8년 뒤인 문영 5년(1268) 첫 국서가 도착하여 현실의 문제가 되었고, 안국론으로부터 14년 뒤에 대군의 내습으로 나타났다.

대성인은 이 셋을 들어 「오로지 니치렌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물며 미리부터 이를 헤아려 말해 두었으니 누가 의심하겠는가」라고 맺으신다. 일이 일어난 뒤에 끌어다 붙인 해석이 아니라 일어나기 전에 문서와 말로 남긴 예고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대성인 자신도 「입정안국론오서」에서 이렇게 적으셨다.

既に勘文之に叶う、之に準じて之を思うに未来亦然る可きか、此の書は徴有る文なり

이미 감문(勘文)이 이에 맞았으니, 이에 준하여 생각하건대 미래도 또한 그러하리라. 이 글은 징험이 있는 글이니라.

「입정안국론오서」, 33쪽

몽골이 쳐들어온 것을 대성인은 「이체동심사」에서 「니치렌은 법화경의 사자요, 일본국 사람들은 대족왕이 일염부제의 불법을 잃게 한 것과 같으며, 몽골국은 설산하왕과 같다」(日蓮は法華経の御使い日本国の人人は大族王の一閻浮提の仏法を失いしがごとし、蒙古国は雪山の下王のごとし, 1464쪽)고도 하셨다. 이 비유의 대족왕 · 설산하왕은 제21장 본문에 다시 나온다. 다만 이것은 대성인 당시 일본의 방법을 경계하신 말씀이며, 그 뒤의 어떤 전쟁이나 국가를 이 예언의 실현으로 단정하는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

  1. 고명첫 번째문응 원년(1260) 7.16「입정안국론」을 호조 도키요리에게 올림→ 마쓰바가야쓰 습격 · 홍장 원년(1261) 이즈 유배
  2. 적중문영 5년(1268)몽골 첫 국서
  3. 고명두 번째문영 8년(1271) 9.12헤이노사에몬노조와 수백 인에게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이다」→ 다쓰노구치 · 사도 유배
  4. 적중문영 9년(1272) 2월소동(호조 도키스케의 난) = 자계반역난
  5. 고명세 번째문영 11년(1274) 4.8헤이노사에몬노조와 대면, 몽골 내습 예고→ 5월 미노부 입산
  6. 적중문영 11년 4월큰바람
  7. 적중문영 11년 10월몽골 내습(문영의 역) = 타국침핍난
「지난 문영 9년 2월의 동사(同士) 싸움, 같은 11년 4월의 큰바람, 같은 해 10월에 대몽골이 쳐들어온 것은 오로지 니치렌 때문이 아니겠는가」去ぬる文永九年二月のどしいくさ同じき十一年の四月の大風同じき十月に大蒙古の来りしは偏に日蓮が・ゆへにあらずや312쪽
도표 5 · 세 번의 고명과 경문의 적중

이렇게 보면 제20장은 「보은초」의 논리 안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제1편 「보은의 도리와 여러 종의 미란」에서 대성인은 은혜를 갚으려면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제20장은 그 지자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당하는지를 보여 준다. 나라의 은혜를 갚는 지자는 나라가 듣기 싫어하는 진실을 말하고, 그 때문에 나라에게 박해받는다. 그 박해가 다시 경문의 증명이 된다. 이 역설은 제7편 「지은보은과 제목의 간심」에서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나라의 은혜를 갚기 위해 몸을 깨뜨리고 목숨을 버린다」(父母の恩・師匠の恩・三宝の恩・国恩をほうぜんがために身をやぶり命をすつ)는 말씀으로 완성된다.

제21장 재난의 까닭을 밝히다
어서 312쪽 15행 ~ 313쪽 14행 · 第二十一章 災難の所以を明か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312쪽 15행 ~ 313쪽 14행
本文 · 어서 원문

弘法・慈覚・智証の悞国に年久し其の上禅宗と念仏宗とのわざわいあいをこりて逆風に大波をこり大地震のかさなれるがごとし、さればやふやく国をとろう太政入道が国をおさへ承久に王位つきはてて世東にうつりしかども但国中のみだれにて他国のせめはなかりき、彼は謗法の者はあれども又天台の正法もすこし有り、其の上ささへ顕わす智人なし・かるがゆへに・なのめなりき、 譬へば師子のねぶれるは手をつけざれば・ほへず迅流は櫓をささへざれば波たかからず盗人はとめざれば・いからず火は薪を加えざれば・さかんならず、謗法はあれども・あらわす人なければ王法もしばらくはたえず国も・をだやかなるに・にたり、例せば日本国に仏法わたりはじめて候いしに始は・なに事もなかりしかども守屋・仏をやき僧をいましめ堂塔をやきしかば天より火の雨ふり国にはうさうをこり兵乱つづきしがごとし、 此れはそれには・にるべくもなし、謗法の人人も国に充満せり、日蓮が大義も強くせめかかる修羅と帝釈と仏と魔王との合戦にも・をとるべからず、金光明経に云く「時に鄰国の怨敵是くの如き念を興さん当に四兵を具して彼の国土を壊るべし」等云云、又云く「時に王見已つて即四兵を厳いて彼の国に発向し討罰を為んと欲す我等爾の時に当に眷属無量無辺の薬叉諸神と各形を隠して為に護助を作し彼の怨敵をして自然に降伏せしむべし」等云云、最勝王経の文又かくのごとし、大集経云云仁王経云云、 此等の経文のごときんば正法を行ずるものを国主あだみ邪法を行ずる者のかたうどせば大梵天王・帝釈・日月・四天等・隣国の賢王の身に入りかわりて其の国をせむべしとみゆ、例せば訖利多王を雪山下王のせめ大族王を幻日王の失いしがごとし、訖利多王と大族王とは月氏の仏法を失いし王ぞかし、漢土にも仏法をほろぼしし王みな賢王にせめられぬ、これは彼には・にるべくもなし仏法の・かたうど・なるようにて仏法を失なう法師を扶くと見えて正法の行者を失うゆへに愚者はすべてしらず智者なんども常の智人はしりがたし、天も下劣の天人は知らずもやあるらん、されば漢土・月氏のいにしへのみだれよりも大きなるべし。

풀이

홍법 · 자각 · 지증의 그릇됨이 나라에 오래되었고, 그 위에 선종과 염불종의 재앙이 함께 일어나, 역풍에 큰 파도가 일고 거기에 큰 지진이 겹친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차츰 나라가 쇠하여, 태정입도(太政入道)가 나라를 억누르고 승구(承久) 때에 왕위가 다하여 세상이 동쪽으로 옮겨 갔으나, 다만 나라 안의 어지러움일 뿐 다른 나라의 공격은 없었느니라. 그때는 방법의 무리가 있었으나 또 천태의 정법도 조금 있었고, 그 위에 이를 가로막아 드러내는 지인이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그럭저럭 무난하였느니라. 비유하면 잠든 사자는 손을 대지 않으면 포효하지 않고, 빠른 물살은 노를 버티지 않으면 파도가 높지 않으며, 도둑은 막지 않으면 성내지 않고, 불은 땔나무를 더하지 않으면 거세지지 않느니라. 방법이 있어도 드러내는 사람이 없으면 왕법도 한동안은 끊어지지 않고 나라도 평온한 듯하니라. 예컨대 일본국에 불법이 처음 건너왔을 때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으나, 모리야(守屋)가 불상을 불사르고 승려를 붙잡고 당탑을 불사르자 하늘에서 불의 비가 내리고 나라에는 포창(疱瘡)이 돌고 병란이 이어진 것과 같으니라. 이번 일은 그것과는 견줄 수도 없느니라. 방법의 사람들도 나라에 가득하고, 니치렌의 대의(大義)도 강하게 공격해 들어가니, 수라와 제석, 부처와 마왕의 싸움에도 뒤지지 않으리라. 금광명경에 이르되 「그때 이웃 나라의 원적이 이러한 생각을 일으키리라. 마땅히 사병(四兵)을 갖추어 저 국토를 무너뜨리리라」 운운. 또 이르되 「그때 왕이 이를 보고 곧 사병을 정돈하여 저 나라로 나아가 토벌하고자 하면, 우리들이 그때 마땅히 권속인 무량무변의 야차 · 제신과 함께 각자 모습을 감추고 그를 위해 도와서, 저 원적으로 하여금 저절로 항복하게 하리라」 운운. 최승왕경의 문도 이와 같고, 대집경 운운, 인왕경 운운. 이러한 경문대로라면, 정법을 행하는 자를 국주가 원망하고 사법을 행하는 자의 편을 들면, 대범천왕 · 제석 · 일월 · 사천 등이 이웃 나라 현왕(賢王)의 몸에 들어가 그 나라를 치리라고 보이느니라. 예컨대 흘리다왕(訖利多王)을 설산하왕(雪山下王)이 치고, 대족왕(大族王)을 환일왕(幻日王)이 멸한 것과 같으니라. 흘리다왕과 대족왕은 월지의 불법을 잃게 한 왕이니라. 한토에서도 불법을 멸한 왕은 모두 현왕에게 공격받았느니라. 이번 일은 저것과는 견줄 수도 없느니라. 불법의 편인 듯하면서 불법을 잃게 하는 법사를 돕는 것처럼 보이고 정법의 행자를 잃게 하므로, 어리석은 자는 전혀 알지 못하고, 지자라 하는 이들도 보통의 지인은 알기 어려우며, 하늘도 하열한 천인은 알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느니라. 그러므로 한토 · 월지의 옛 어지러움보다도 크리라.

어구 풀이

弘法・慈覚・智証の悞홍법 · 자각 · 지증의 그릇됨
「悞」는 「誤」와 같다. 「보은초」 제4편에서 밝힌 세 사람의 진언 그릇된 뜻 — 홍법의 「제일 진언 · 제이 화엄 · 제삼 법화」, 자각 · 지증의 「이동사승」 — 이 일본에 오래 쌓였다는 뜻이다.
太政入道태정입도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 1118~1181). 태정대신에 올랐다가 출가(入道)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법호는 조카이(淨海), 태정대신의 당나라식 이름을 따 대상국(大相國)이라고도 불렸다. 호겐 · 헤이지의 난을 거쳐 권세를 쥐고, 인안(仁安) 2년(1167) 태정대신이 되었다. 딸 도쿠코(德子)를 다카쿠라 천황의 중궁으로 들여 황실의 외척이 되었고, 전국 절반이 넘는 지행국과 오백여 장원, 송나라와의 무역 이익을 기반으로 로쿠하라 정권을 세워 전횡했다.
国をおさへ나라를 억누르고
치승(治承) 3년(1179) 고시라카와 법황을 유폐하고 독재 정치를 행한 일을 가리킨다. 그 전 치승 원년(1177) 시시가타니의 헤이케 타도 계획이 드러나자 반대 세력을 쓸어 냈다. 그러나 이것이 도리어 각지의 반감을 키워 미나모토노 요리마사 · 요리토모의 거병을 불렀고, 기요모리는 치승 5년(1181) 겐지 군의 기세 속에 헤이시의 앞날을 걱정하며 열병으로 고통 속에 죽었다.
承久に王位つきはてて승구 때 왕위가 다하여
승구의 난.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죽은 뒤 호조 요시토키가 집권으로서 막부 체제를 굳히자, 고토바 상황은 정권을 조정으로 되찾고자 준토쿠 상황 · 근신들과 의논하여 승구 3년(1221) 5월 15일 요시토키 추토령을 여러 지방에 내리고, 히에이산 · 동사 · 닌나사 · 온조사(미이데라) 등에 막부 조복의 기도를 시켰다. 그러나 효험이 없어 조정 쪽이 패하고, 제85대 주쿄 천황은 폐위되었으며 고토바 · 준토쿠 · 쓰치미카도 세 상황은 섬으로 유배되었다.
世東にうつり세상이 동쪽으로 옮겨 감
승구의 난 이후 교토 조정의 명령이 미치지 않게 되고 정치의 중심이 동국의 가마쿠라로 옮겨 간 것.
なのめ그럭저럭 무난함
「나노메(斜め)」는 보통 · 평범함, 그럭저럭 지낼 만함의 뜻.
守屋・仏をやき모리야가 불상을 불사르고
제30대 비다쓰 천황 때 대신 소가노 우마코가 불법을 믿었다. 그때 역병이 돌자 모노노베노 모리야는 소가 씨가 불법을 숭배하기 때문이라 하여 당탑을 부수고 불상을 불살랐다.
はうさう포창
천연두. 모리야의 파불 뒤 포창이 돌았다는 전승을 가리킨다.
修羅と帝釈수라와 제석
아수라왕과 도리천의 제석천은 끊임없이 싸운다는 불전의 이야기. 부처와 마왕의 싸움은 석존이 성도할 때 제육천의 마왕이 군대를 이끌고 방해한 일을 가리킨다. 대성인과 방법의 싸움이 그만큼 크다는 비유다.
四兵사병
보병 · 기병 · 차병 · 상병(象兵). 고대 인도 군대의 네 병종이다.
仁王経인왕경
『인왕반야바라밀경』. 국왕이 정법을 지키면 칠난이 사라지고, 불법을 깨뜨리면 칠난이 일어난다고 설하는 호국경전으로, 「입정안국론」이 즐겨 인용한다.
訖利多王を雪山下王のせめ흘리다왕을 설산하왕이 침
『대당서역기』 권3. 흘리다왕은 불멸 600년 무렵 북인도 가습미라국(카슈미르)의 왕으로, 흘리다는 종족 이름이다. 본래 아난의 제자 말전지가(末田底迦) 아라한이 그 나라에 오백 가람을 세울 때 다른 나라에서 데려온 노예였으나 뒤에 세력을 얻어 자립했다. 건타라국 가니색가왕의 지배를 받다가 왕이 죽은 뒤 다시 왕위에 올라 승도를 쫓아내고 불법을 깨뜨렸다. 도화라국의 설산하왕은 불법에 깊이 귀의한 왕으로, 용사 오백 명과 함께 칼을 소매에 감추고 진귀한 보물을 바치는 척하여 흘리다왕을 찔렀다. 그 뒤 당탑을 세우고 승니를 공양하여 그 나라에 불법이 다시 번성했다.
大族王を幻日王の失いし대족왕을 환일왕이 멸함
『대당서역기』 권4. 대족왕은 북인도 책가국(磔迦國)의 왕으로 사견에 빠져 불법을 깨뜨렸다. 불법을 숭경한 마갈타국의 환일왕이 그와 싸워 이겼고, 대족왕은 환일왕의 어머니의 주선으로 풀려났으나 가습미라국에 몸을 의탁했다가 그 나라를 빼앗아 자립하고, 건타라국을 쳐서 불교도를 죽였다. 대족왕은 나라로 돌아가려다 도중에 죽었고, 환일왕은 뒤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
月氏월지
중국 · 일본에서 쓴 인도의 호칭. 기원전 3세기 후반까지 둔황과 기련산맥 사이에 있던 월지족이 흉노에 쫓겨 중앙아시아로 옮겨 가 인도 일부까지 차지했는데, 이 땅을 거쳐 불교가 중국에 전해졌으므로 중국에서는 월지를 인도 자체로 여겼다. 현장의 『대당서역기』 권2는 인도라는 이름을 「무명의 긴 밤을 비추는 달 같은 존재」라는 뜻으로 풀었으나, 현장 자신은 음사하여 「인도(印度)」라 불렀다.

역풍 · 큰 파도 · 큰 지진 — 세 겹의 재앙

이 장부터는 재난이 지난날보다 훨씬 크다는 것, 곧 재난의 초과(超過)를 따진다. 대성인은 먼저 일본의 상태를 「역풍에 큰 파도가 일고 거기에 큰 지진이 겹친 것과 같다」고 하신다.

이 비유를 어떻게 배당할지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여러 설이 있었다. 한 설은 역풍을 진언에, 큰 지진을 선 · 염불에 배당한다. 한 설은 역풍과 큰 파도가 이는 것을 진언에, 큰 지진이 겹치는 것을 선 · 염불에 견준다. 또 한 설은 역풍을 방법에, 큰 파도가 이는 것을 재난에 견준다.

니치칸 상인은 「역풍을 진언의 그릇됨에 견주고, 큰 파도가 이는 것을 선 · 염불의 재앙에 견준다」고 했다. 또 「큰 지진을 진언의 그릇됨에 견주고, 겹치는 면을 선 · 염불의 재앙에 견준다」고도 했다. 어느 쪽이든 요점은 같다. 진언의 그릇된 법 때문에 이미 나라가 기울어 가는 처지인데, 그 위에 선종 · 염불종의 그릇된 법까지 번성하여 삼재칠난이 다투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람만 불어도 배는 위태롭고, 파도가 일면 더 위태로우며, 땅까지 흔들리면 피할 곳이 없다. 「보은초」 제4편에서 밝힌 진언의 미란이 뿌리이고, 그 위에 법연 이후의 염불과 달마 계통의 선이 겹쳤다는 진단이다.

다이라노 기요모리와 승구의 난 — 그때는 왜 「그럭저럭」이었는가

대성인은 이어 지난 시대를 돌아보신다.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나라를 억누르던 때가 있었고, 승구의 난으로 왕위가 다하여 세상의 중심이 동쪽 가마쿠라로 옮겨 간 때도 있었다. 기요모리는 태정대신에 올라 황실의 외척이 되고 법황까지 유폐했으며, 승구 3년(1221)에는 고토바 상황이 히에이산 · 동사 · 닌나사 · 온조사에 막부 조복의 기도를 시켰다가 패하여 세 상황이 섬으로 유배되었다. 천황가의 권위가 무너진 일본사의 큰 변동이었다. 그러나 대성인은 이것들을 「다만 나라 안의 어지러움」이라 하시고, 「다른 나라의 공격은 없었다」고 대비하신다.

그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그때는 방법의 무리가 있었으나 천태의 정법도 조금은 남아 있었다. 둘째, 방법을 가로막아 드러내는 지인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럭저럭 무난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까닭이 중요하다. 방법이 있어도 그것을 드러내어 꾸짖는 지인이 없으면, 지인을 박해하는 대방법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경문이 말하는 「지인을 박해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조건도 아직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왕법도 한동안은 끊어지지 않고 나라도 평온한 듯 보인다.

잠든 사자 · 급류 · 도둑 · 불 — 네 가지 비유

대성인은 이 도리를 네 가지 비유로 보이신다. 잠든 사자는 손을 대지 않으면 포효하지 않는다. 아무리 빠른 물살이라도 노를 버티지 않으면 파도가 높이 일지 않는다. 도둑도 막지 않으면 성내지 않는다. 불도 땔나무를 더하지 않으면 거세지지 않는다.

네 비유는 모두 같은 구조다. 본래 거기에 있던 힘(사자의 사나움 · 물살의 세기 · 도둑의 악의 · 불의 열)이, 그것을 건드리는 무엇(손 · 노 · 막음 · 땔나무)을 만나 비로소 겉으로 드러난다. 방법도 그렇다. 방법은 이미 나라에 가득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동안에는 겉으로 크게 터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법의 지인이 나와 방법을 꾸짖으면, 방법의 무리는 지인을 박해하고, 그 박해가 경문이 말하는 대방법이 되어 나라 전체의 재난으로 터져 나온다.

이 비유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대성인이 꾸짖지 않으셨다면 나라가 편안했으리라는 뜻이 아니다. 숨어 있던 병이 드러나는 것이다. 제20장에서 대성인이 「잠시 금하여 나라를 도우소서」 하고 붙들고 계셨다고 하신 말씀과 함께 보면, 대성인의 간효는 병을 드러내 고치려는 의사의 일이다. 「이체동심사」에서 「뜸으로 병을 고치고 침으로 사람을 고치는 것과 같으니, 지금은 탄식해도 뒤에는 기쁨이리라」라고 하신 것과 같은 마음이다.

그렇다면 모리야의 예는 어떻게 되는가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본문은 「옛날에는 방법을 꾸짖는 이가 없어서 평온했고, 지금은 대성인이 일국의 방법을 꾸짖으시기에 삼재칠난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바로 뒤에 드는 모노노베노 모리야의 예는 그 틀에 맞지 않는 듯하다. 모리야가 불상을 불사르고 승려를 붙잡았을 때 하늘에서 불의 비가 내리고 포창이 돌고 병란이 이어졌다. 그때 「방법을 꾸짖는 지인」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물음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재난이 일어나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널리 재난의 일어남을 궁구하면 겹겹의 유래가 있다. 곧 방법자가 가득하므로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선신이 나라를 버리므로 악귀가 들어오고, 악귀가 들어오므로 국토에 재난이 일어나고, 재난이 일어나므로 니치렌 대성인이 이를 간효하시고, 대성인이 간효하시므로 국주가 원질하고, 국주가 원질하므로 지금 세상의 재난이 거세게 일어난다.

지금 간략히 논하면 일단 두 가지 유래가 된다. 곧 니치렌 대성인의 간효는 먼 유래(遠由)이고, 국주의 원질은 가까운 유래(近由)이다. 대성인의 간효로 말미암아 국주가 원질하고, 국주의 원질로 말미암아 지금 세상의 재난이 거세게 일어나, 마침내 타국침핍의 난에 이른다.

니치칸 상인 「보은초 문단」의 취의,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곧 재난에는 겹겹의 원인이 있다. 방법 → 선신의 떠남 → 악귀의 침입 → 재난이라는 기본 사슬은 언제나 작동한다. 모리야의 파불 때의 재난은 이 기본 사슬로 설명된다. 그러나 지금의 재난이 그때보다 비할 수 없이 크고, 마침내 다른 나라의 공격까지 이르는 것은, 그 위에 대성인의 간효 → 국주의 원질이라는 두 고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먼 유래」와 「가까운 유래」다. 대성인의 간효가 재난의 원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간효를 받고도 원질한 국주의 대방법이 재난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는 뜻이다.

  1. 방법자가 가득함
  2. 선신이 나라를 버림
  3. 악귀가 들어옴
  4. 국토에 재난
  5. 니치렌 대성인의 간효먼 유래 · 遠由
  6. 국주의 원질가까운 유래 · 近由
  7. 지금 세상의 재난이 거세게 일어남
  8. 타국침핍의 난
비유
  • 잠든 사자에 손을 댐
  • 급류에 노를 버팀
  • 도둑을 막음
  • 불에 땔나무를 더함
「잠든 사자는 손을 대지 않으면 포효하지 않고, 빠른 물살은 노를 버티지 않으면 파도가 높지 않으며, 도둑은 막지 않으면 성내지 않고, 불은 땔나무를 더하지 않으면 거세지지 않느니라」師子のねぶれるは手をつけざれば・ほへず迅流は櫓をささへざれば波たかからず盗人はとめざれば・いからず火は薪を加えざれば・さかんならず313쪽

출처: 니치칸 상인 「보은초 문단」(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도표 6 · 재난의 겹겹 유래

「이번 일은 그것과 견줄 수도 없다」 — 겉으로 불법의 편, 속으로 불법의 적

본문의 「이번 일은 그것과는 견줄 수도 없다」는 바로 지금 세상의 재난이 거센 까닭을 밝히는 문장이고, 그 뒤 「이번 일은 저것과는 견줄 수도 없다」부터는 이를 풀어 이루는(釋成) 문장이다. 두 번 되풀이되는 「견줄 수도 없다」가 이 장의 골격이다.

첫 번째 「견줄 수도 없다」는 양의 비교다. 방법의 사람들이 나라에 가득하고, 니치렌의 대의도 강하게 공격해 들어가니, 그 싸움은 수라와 제석, 부처와 마왕의 싸움에도 뒤지지 않는다. 방법의 세력이 크고 그것을 꾸짖는 힘도 크니 충돌도 클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견줄 수도 없다」는 질의 비교다. 모리야의 경우는 불법의 적이 되어 절과 탑, 승니를 박해했으므로 극악함이 분명하여 어리석은 사람도 알았다. 지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불법의 편이 되어 불법을 깨뜨린다. 불법의 편인 듯하면서 불법을 잃게 하는 법사를 돕고, 그러면서 정법의 행자를 잃게 한다.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고, 지자라 하는 이들도 보통의 지인은 알지 못하며, 하늘도 하열한 천인은 알지 못할 정도다. 그러므로 나라를 들어 정법을 원질하게 되고, 그만큼 재난도 거세다.

대성인은 「묘호비구니답서」에서 같은 비교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彼は王一人の悪心大臣以下は心より起る事なし、又権仏と権経との敵なり僧も法華経の行者にはあらず、是は一向に法華経の敵・王・一人のみならず一国の智人並びに万民等の心より起れる大悪心なり

그것은 왕 한 사람의 악심이요 대신 이하는 마음에서 일으킨 일이 아니었느니라. 또 권불과 권경의 적이었고, 승려도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었느니라. 이것은 오로지 법화경의 적이요, 왕 한 사람만이 아니라 일국의 지인과 만민 등의 마음에서 일어난 대악심이니라.

「묘호비구니답서」, 1416쪽

같은 어서는 그 앞에서 대족왕이 오천축의 절을 불사르고 십육 대국의 승려의 목을 벤 일, 무종 황제가 한토의 절을 없애고 불상을 부순 일, 일본의 모리야가 석가불의 금동상을 숯불로 태우고 승니를 쳐서 환속시킨 일을 들고, 그때에도 지금만큼의 혜성과 대지진은 없었다고 하신다. 옛 파불은 왕 한 사람의 악심이었고 그 대상도 권불 · 권경이었으나, 지금은 일국의 지인과 만민이 한마음으로 법화경과 그 행자를 원수로 삼는다. 그러니 재난도 「백천만 배」라는 것이다.

태도
옛(모리야 · 대족왕 · 무종)불법의 적이 되어 절 · 탑 · 승니를 박해
지금의 일본불법의 편인 듯하면서 불법을 잃게 하는 법사를 도움
알아차림
옛(모리야 · 대족왕 · 무종)극악이 분명하여 어리석은 이도 앎
지금의 일본보통의 지인도, 하열한 천인도 알기 어려움
주체
옛(모리야 · 대족왕 · 무종)왕 한 사람의 악심, 대신 이하는 마음에서 일으키지 않음
지금의 일본일국의 지인과 만민의 마음에서 일어난 대악심
대상
옛(모리야 · 대족왕 · 무종)권불 · 권경의 적, 승려도 법화경의 행자가 아님
지금의 일본오로지 법화경의 적
결과
옛(모리야 · 대족왕 · 무종)나라 안의 재난
지금의 일본타국침핍
「한토 · 월지의 옛 어지러움보다도 크리라」漢土・月氏のいにしへのみだれよりも大きなるべし313쪽

출처: 「보은초」 본문, 「묘호비구니답서」 1416쪽

도표 7 · 옛 파불과 지금의 방법

인국의 현왕 — 금광명경 · 최승왕경 · 대집경 · 인왕경의 원리

불법은 현증을 중시한다. 대성인이 인용하신 『금광명경』 · 『최승왕경』 · 『대집경』 · 『인왕경』은 한결같이, 국주가 정법을 행하는 이를 원망하고 사법을 행하는 이의 편을 들면 반드시 대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 등의 제천선신이 이웃 나라 현왕의 몸에 들어가 방법의 나라를 친다고 설한다. 『금광명경』의 두 문은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이웃 나라의 원적이 「사병을 갖추어 저 국토를 무너뜨리리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그 왕이 실제로 사병을 정돈하여 나아가면, 제천이 권속인 야차 · 제신과 함께 모습을 감추고 그를 도와 방법의 나라가 저절로 항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인왕경』은 불법과 나라를 깨뜨리는 인연 때문에 칠난이 일어난다고 설한다.

이 경문이 말하는 것은 「다른 나라가 강해서 이긴다」는 정치의 이야기가 아니다. 방법의 나라를 치는 힘의 실체는 제천선신이며, 이웃 나라의 왕은 그 힘이 들어가는 몸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웃 나라 현왕의 몸에 들어가」라고 하신다.

대성인은 그 실례로 인도의 두 사건을 드신다. 하나는 흘리다왕과 설산하왕이다. 정법 시대의 인도에서 가니색가왕이 죽은 뒤 가습미라국의 왕위에 오른 흘리다왕이 불법을 깨뜨리자, 정법을 받드는 도화라국의 설산하왕이 용사 오백 명과 함께 보물을 바치는 척하며 흘리다왕을 찔렀고, 그 뒤 가습미라국에 불법이 다시 번성했다. 또 하나는 대족왕과 환일왕이다. 불법을 깨뜨린 대족왕은 불법을 숭경한 마갈타국의 환일왕과 싸워 패했다. 대성인은 「흘리다왕과 대족왕은 월지의 불법을 잃게 한 왕」이라고 거듭 강조하신다.

상법 시대의 중국에서는, 당나라 무종이 도교를 받들고 회창(會昌) 연간에 대대적으로 불교를 깨뜨렸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무종이 그릇된 염불을 나라에 넓히다가 회골(回鶻, 위구르)의 공격을 받았고, 불법을 깨뜨렸기에 난을 다스리지 못하고 멸했다고 본다. 대성인은 그 밖에도 한토에서 불법을 멸한 왕은 모두 현왕에게 공격받아 쇠망했다고 하신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는 「한토 · 월지의 옛 어지러움보다도 크리라」고 하신다. 일본에서는 고토바인 때 법연이 염불을 넓혀 고토바 상황에게 난이 있었고, 승구의 난에서는 세 상황이 진언의 법으로 막부 조복을 빌었으나 싸움에 패하여 섬으로 유배되는 비극이 거듭되었다. 이 승구의 난의 조복이 도리어 자신에게 돌아왔다는 「환착어본인(還著於本人)」의 논리는 「보은초」 제6편 「진언의 악한 현증과 홍법의 광혹」에서 자세히 다룬다.

인도(정법 시대)
  • 흘리다왕(가습미라국, 승도를 쫓고 불법을 깨뜨림)설산하왕(도화라국)이 찔러 멸함, 불법 재흥『대당서역기』 권3
  • 대족왕(책가국, 사견으로 불법을 깨뜨리고 건타라국의 불교도를 죽임)환일왕(마갈타국)에게 패함『대당서역기』 권4
중국(상법 시대)
  • 당 무종(회창의 파불)회골의 공격, 난을 다스리지 못하고 멸함
일본
  • 모리야(파불)불의 비 · 포창 · 병란
  • 다이라노 기요모리 · 승구의 난(1221)나라 안의 어지러움뿐
  • 문영 연간(지금)자계반역 · 타국침핍
원리
「대범천왕 · 제석 · 일월 · 사천 등이 이웃 나라 현왕의 몸에 들어가 그 나라를 치리라」大梵天王・帝釈・日月・四天等・隣国の賢王の身に入りかわりて其の国をせむべし313쪽
도표 8 · 불법을 멸한 왕과 그 응보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이 장의 재난론은 어떤 나라나 전쟁을 「벌」로 지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난의 근원이 사람의 마음과 그 마음이 의지하는 법에 있다는 「입정안국」의 원리를 보이는 것이다. 정법을 세우면 나라가 편안해지고(立正安國), 정법을 지닌 이를 원망하면 나라가 스스로 무너진다. 그러므로 재난을 막는 길도 무기나 기도가 아니라 정법을 세우는 데 있다.

이 장은 「입정안국론」의 논리를 「보은초」 안에서 다시 세운 것이다. 「입정안국론」은 문응 원년에 염불을 주로 파하며 「일흉(一凶)」을 금하라고 간했다. 「보은초」는 그로부터 16년 뒤, 그 사이에 실제로 일어난 자계반역과 타국침핍을 겪은 뒤에 쓰였다. 그리고 그 재앙의 뿌리를 염불보다 더 깊은 곳, 곧 진언의 그릇됨에서 찾는다. 「역풍」이 진언이고 「큰 파도」가 선 · 염불이라는 니치칸 상인의 배당은 바로 이 점을 짚은 것이다. 「선시초」 제4편 「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가 세 종을 차례로 파하면서 진언을 가장 무거운 「대벽견」으로 둔 것과 같은 판단이다.

제22장 나라 안의 방법을 밝히다
어서 313쪽 15행 ~ 314쪽 9행 · 第二十二章 国中の謗法を明か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313쪽 15행 ~ 314쪽 9행
本文 · 어서 원문

法滅尽経に云く「吾般泥洹の後五逆濁世に魔道興盛し魔沙門と作つて吾が道を壊乱せん、乃至悪人転多く海中の沙の如く善者甚だ少して若しは一若しは二」云云、涅槃経に云く「是くの如き等の涅槃経典を信ずるものは爪上の土の如く乃至是の経を信ぜざるものは十方界の所有の地土の如し」等云云、此の経文は時に当りて貴とく予が肝に染みぬ、当世日本国には我も法華経を信じたり信じたり、諸人の語のごときんば一人も謗法の者なし、此の経文には末法に謗法の者・十方の地土・正法の者爪上の土等云云、経文と世間とは水火なり、世間の人云く日本国には日蓮一人計り謗法の者等云云、又経文には大地より多からんと云云、法滅尽経には善者一二人、涅槃経には信者爪上土等云云、経文のごとくならば日本国は但日蓮一人こそ爪上土一二人にては候へ、されば心あらん人人は経文をか用ゆべき世間をか用ゆべき。 問て云く涅槃経の文には涅槃経の行者は爪上の土等云云、汝が義には法華経等云云如何、答えて云く涅槃経に云く「法華の中の如し」等云云、妙楽大師云く「大経自ら法華を指して極と為す」等云云、大経と申すは涅槃経なり涅槃経には法華経を極と指て候なり、而るを涅槃宗の人の涅槃経を法華経に勝ると申せしは主を所従といゐ下郎を上郎といゐし人なり、涅槃経をよむと申すは法華経をよむを申すなり、譬へば賢人は国主を重んずる者をば我を・さぐれども悦ぶなり、涅槃経は法華経を下て我をほむる人をば・あながちに敵と・にくませ給う、

풀이

법멸진경(法滅盡經)에 이르되 「내가 반니원(般泥洹)한 뒤 오역(五逆)의 탁한 세상에 마도(魔道)가 크게 일어나 마(魔)가 사문이 되어 나의 도를 무너뜨리고 어지럽히리라. 내지 악인은 더욱 많아 바닷속 모래와 같고, 선한 이는 매우 적어 혹은 하나, 혹은 둘이리라」 운운. 열반경에 이르되 「이와 같은 열반경전을 믿는 자는 손톱 위의 흙과 같고, 내지 이 경을 믿지 않는 자는 시방세계에 있는 땅의 흙과 같다」 운운. 이 경문은 때에 맞아 귀하여 나의 간에 사무쳤느니라. 지금 일본국에서는 나도 법화경을 믿었다, 나도 믿었다 하니, 여러 사람의 말대로라면 한 사람도 방법의 자가 없느니라. 이 경문에는 말법에 방법의 자는 시방의 땅의 흙, 정법의 자는 손톱 위의 흙이라 하였느니라. 경문과 세간은 물과 불이니라. 세간 사람은 일본국에는 니치렌 한 사람만이 방법의 자라고 하고, 또 경문에는 대지보다 많으리라고 하였느니라. 법멸진경에는 선한 이 한둘, 열반경에는 믿는 이 손톱 위의 흙이라 하였느니라. 경문대로라면 일본국에서는 다만 니치렌 한 사람이야말로 손톱 위의 흙, 한둘이니라. 그러므로 마음 있는 사람들은 경문을 쓸 것인가, 세간을 쓸 것인가. 묻노라. 열반경의 문에는 열반경의 행자가 손톱 위의 흙이라 하였는데, 그대의 뜻으로는 법화경이라 하니 어떠한가. 답하노라. 열반경에 이르되 「법화의 가운데와 같다」 운운. 묘락대사가 이르되 「대경은 스스로 법화를 가리켜 극(極)으로 삼는다」 운운. 대경이라 함은 열반경이니라. 열반경에서는 법화경을 극이라 가리켰느니라. 그런데 열반종 사람이 열반경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말한 것은, 주인을 종이라 하고 하인을 귀인이라 한 사람이니라. 열반경을 읽는다 함은 법화경을 읽는 것을 말하느니라. 비유하면 현인은 국주를 중히 여기는 자를, 자기를 낮추더라도 기뻐하느니라. 열반경은 법화경을 낮추고 자기를 칭찬하는 사람을 굳이 적으로 미워하시느니라.

어구 풀이

法滅尽経법멸진경
『불설법멸진경』 1권, 역자 미상. 부처가 열반에 가까워 설법하지 않고 광명도 나타내지 않자, 아난이 세 번 여쭈었고, 부처는 법이 멸하려 할 때 마(魔)가 비구가 되어 나타나리라고 설했다. 경 첫머리에 「한때 부처가 구이나갈국(拘夷那竭國)에 계셨다. 여래는 석 달 뒤에 반열반하리라」고 하므로, 보현경과 열반경 사이에 설해진 경으로 본다.
般泥洹반니원
반열반 · 열반 · 입멸과 같은 말. 니원(泥洹)은 열반의 옛 음사다.
五逆濁世오역탁세
오역죄(아버지를 죽임 · 어머니를 죽임 · 아라한을 죽임 · 부처의 몸에서 피를 냄 · 화합승을 깨뜨림)를 짓는 자가 가득한 탁하고 악한 세상.
魔道마도
정법을 등지고 사람을 사법 · 사견으로 이끄는 길.
魔沙門と作つて마가 사문이 되어
마가 출가 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는 뜻. 겉모습은 승려이나 하는 일은 불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爪上の土손톱 위의 흙
열반경에서 부처가 땅의 흙을 손톱 위에 올려놓고, 손톱 위의 흙과 시방세계의 흙 가운데 어느 쪽이 많은가를 물은 비유. 사람 몸을 얻는 이, 정법을 믿는 이가 극히 적음을 나타낸다.
十方界の所有の地土시방세계에 있는 땅의 흙
손톱 위의 흙과 대비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 정법을 믿지 않는 이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肝に染みぬ간에 사무쳤다
마음 깊이 새겨짐. 경문이 자신의 처지와 꼭 맞아 몸으로 느껴진다는 대성인의 실감이다.
水火물과 불
서로 정반대여서 함께할 수 없는 것.
妙楽大師묘락대사
담연(湛然, 711~782). 당나라 사람으로 천태종 제9조(천태대사로부터 여섯 번째 법손)이며 천태 중흥의 조사다. 상주 진릉현 형계 출신으로 성은 척(戚) 씨, 대대로 유학의 집안이었다. 처음 난릉의 묘락사에 머물러 묘락대사라 불리고, 출신지 이름으로 형계존자라고도 한다. 개원 18년(730) 좌계현랑에게 천태 교학을 배우고, 천보 7년(748) 38세에 의흥 정락사(淨樂寺)에서 출가했다. 선 · 화엄 · 진언 · 법상 등이 성하고 천태종이 쇠퇴하던 때에 법화일승 진실의 입장에서 여러 종을 논파하고 천태 삼대부의 주석서를 지었다. 현종 · 숙종 · 대종의 부름에도 병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고, 만년에 천태산 국청사에 들어가 불롱도량에서 입적했다. 저서로 『법화현의석첨』 10권, 『법화문구기』 10권, 『지관보행전홍결』 10권, 『오백문론』 3권 등이 있다.
大経대경
『대반열반경』을 가리킨다.
涅槃宗열반종
열반경을 근본으로 삼아 연구한 중국 남북조 시대의 학파. 남삼북칠의 많은 학자가 「화엄 제일 · 열반 제이 · 법화 제삼」처럼 열반경을 법화경 위에 두었다.
所従・下郎・上郎종 · 하인 · 귀인
소종(所從)은 주인을 따르는 종자, 하랑(下郎)은 신분이 낮은 사람, 상랑(上郎)은 신분이 높은 사람. 당시의 신분 질서를 빌린 비유다.

『법멸진경』의 「선한 이는 하나 또는 둘」 — 상법의 끝인가, 말법의 처음인가

이 장부터 진언을 파하는 단락이 시작되며, 이 장은 그 머리로서 앞을 받고 뒤를 일으키는(承前起後) 자리다. 제21장에서 「불법의 편인 듯하면서 불법을 잃게 하는 법사」를 말씀하셨으니, 이제 그 법사들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기 위해, 먼저 경문과 세간의 판단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확인하신다.

『법멸진경』은 보현경과 열반경 사이에 설해진 경이다. 경문에 「한때 부처가 구이나갈국에 계셨다. 여래는 석 달 뒤 반열반하리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 경은 부처의 멸후, 오역의 탁한 세상에 마도가 크게 일어나 마가 사문의 모습으로 불도를 무너뜨리고, 악인은 바닷속 모래처럼 많고 선한 이는 하나 또는 둘뿐이리라고 예고한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법멸진경』에는 「내가 열반한 뒤 법이 멸하려 할 때」라는 말이 있는데, 이 「법이 멸하려 할 때(法欲滅時)」는 상법의 끝을 가리키는 말이지 말법의 처음이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전교대사는 『현계론(顯戒論)』에서 이 경문을 상법의 끝에 산에 들어가 머무는 근거로 인용했다.

時を知りて山に住する明拠を開示す。法滅尽経に云く仏賢者阿難に告げ給わく吾が般泥洹の後五逆の濁世魔道興盛にして、乃至悪人転多きこと海中の沙の如し、乃至善者甚だ少くして若しは一、若しは二、乃至三乗山に入り福徳之地に淡泊自ら守り以て欣快と為さんと已上経文今已に時を知る、誰か山に登らざらんや

때를 알아 산에 머무는 분명한 근거를 열어 보인다. 법멸진경에 이르되, 부처가 현자 아난에게 고하시기를 「내가 반니원한 뒤 오역의 탁한 세상에 마도가 크게 일어나, 내지 악인이 더욱 많아 바닷속 모래와 같고, 내지 선한 이는 매우 적어 혹은 하나 혹은 둘이며, 내지 삼승은 산에 들어가 복덕의 땅에서 담박하게 스스로 지키며 이를 기쁨으로 삼으리라」 하셨다. 이상 경문. 지금 이미 때를 알았으니 누가 산에 오르지 않겠는가.

전교대사 『현계론』

그렇다면 「선한 이는 혹은 하나 혹은 둘」이란 바로 상법의 끝, 전교대사나 의진(義眞)을 가리키는 것이지, 어찌 말법의 니치렌 대성인을 가리킨다고 하겠는가. 니치칸 상인은 이 의문에 대해 「참으로 그러하다」고 먼저 인정한다.

그 위에서 니치칸 상인이 드는 예가 안락행품이다. 안락행품에는 「뒤의 말세에 법이 멸하려 할 때」라는 문이 세 곳 있는데, 전교대사는 『수호국계장』에서 이를 이렇게 인용했다.

正像稍過ぎ已っ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法華一乗の機今正しく是れ其の時なり、何を以て知ることを得る、安楽行品に云く末法法滅の時なり

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으니, 법화일승의 근기가 지금 바로 그때이다. 무엇으로써 알 수 있는가. 안락행품에 「말법에 법이 멸할 때」라고 하였다.

전교대사 『수호국계장』

곧 같은 「법이 멸하려 할 때」라는 말을 전교대사 자신이 「말법」과 이어 읽은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대성인이 『법멸진경』을 들어 말법을 나타내시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상법의 끝과 말법의 처음은 같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둘째, 상법의 끝에서조차 선한 이는 하나 또는 둘이었으니, 하물며 말법의 처음이야 말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의 「당분 · 과절」과 같은 구조의 읽기다. 경문이 일차로 가리키는 시대가 있고, 그 경문의 마음이 가장 깊이 드러나는 시대가 따로 있다.

전교대사 『현계론』『법멸진경』의 「선한 이는 하나 또는 둘」상법의 끝, 때를 알아 산(히에이산)에 머무는 근거
전교대사 『수호국계장』안락행품의 「법이 멸하려 할 때」「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
「보은초」상법의 끝과 말법의 처음은 같은 상태+ 상법의 끝조차 한둘이니 하물며 말법이랴
「일본국에서는 다만 니치렌 한 사람이야말로 손톱 위의 흙, 한둘이니라」日本国は但日蓮一人こそ爪上土一二人にては候へ314쪽

출처: 니치칸 상인 「보은초 문단」(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도표 9 · 「법이 멸하려 할 때」를 읽는 두 시선

열반경의 「손톱 위의 흙」 — 경문과 세간은 물과 불

이어 대성인은 열반경의 「손톱 위의 흙」을 드신다. 이 경을 믿는 이는 손톱 위의 흙처럼 적고, 믿지 않는 이는 시방세계의 흙처럼 많다. 대성인은 이 경문이 「때에 맞아 귀하여 나의 간에 사무쳤다」고 하신다. 경문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현실이 경문과 꼭 맞아떨어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셨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경문과 세간을 맞세우신다. 지금 일본에서는 누구나 「나도 법화경을 믿는다, 나도 믿는다」고 한다. 진언사도, 선승도, 염불자도 법화경을 버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말대로라면 일본에는 방법의 자가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경문은 말법에 방법의 자는 시방의 흙처럼 많고, 정법의 자는 손톱 위의 흙처럼 적다고 한다. 세간의 판단과 경문의 판단은 물과 불처럼 정반대다.

더 날카로운 대비가 뒤따른다. 세간 사람들은 「일본국에는 니치렌 한 사람만이 방법의 자」라고 한다. 경문은 방법의 자가 「대지보다 많으리라」고 한다. 세간에서 방법자가 한 사람이라면, 경문에서는 정법자가 한둘이다. 세간의 셈과 경문의 셈이 정확히 뒤집혀 있다. 그렇다면 경문대로라면, 일본에서 손톱 위의 흙, 한둘에 해당하는 사람은 다만 니치렌 한 사람이다. 대성인은 「마음 있는 사람들은 경문을 쓸 것인가, 세간을 쓸 것인가」라고 물으신다. 이 물음은 제1편 「보은의 도리와 여러 종의 미란」에서 본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열반경의 유계와 곧바로 이어진다. 다수의 말이 아니라 경문을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손톱 위의 흙」은 정법자가 적다는 한탄이 아니라, 정법인가 아닌가를 사람 수로 가리지 말라는 기준이다. 세간이 한목소리로 한 사람을 방법자라 할 때, 경문은 바로 그 한 사람이 정법자일 수 있다고 말한다. 대성인은 이 기준에 따라, 일본 전체가 비방하는 자신이야말로 경문이 말한 「한둘」이라고 하셨다.

열반경은 스스로 법화경을 「극」으로 가리킨다

여기서 가상의 질문자가 반문한다. 열반경의 문에는 「열반경의 행자」가 손톱 위의 흙이라 했는데, 그대는 왜 법화경의 행자를 정법자로 삼는가. 이 물음은 본문 속 질문자의 말이며, 대성인이 미리 예상되는 반론을 세우고 답하시는 형식이다.

대성인의 답은 열반경 자신의 말이다. 열반경에 「법화의 가운데와 같다」고 하고, 묘락대사는 「대경은 스스로 법화를 가리켜 극(極)으로 삼는다」고 했다. 대경은 열반경이다. 곧 열반경은 스스로 법화경을 궁극으로 가리킨다. 그러니 열반경을 믿는다는 것은 열반경이 가리키는 법화경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도 열반종 사람들이 열반경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한 것은 「주인을 종이라 하고 하인을 귀인이라 한」 것과 같다. 상랑 · 하랑의 비유는 오늘의 감각으로는 맞지 않는 비유이지만, 대성인은 당시의 세태를 빌려 법화경 제일을 보이셨다. 「현방법초」는 그 신분의 상대성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例せば上郎・下郎・不定なり田舎にしては百姓・郎従等は侍を上郎といふ、洛陽にして源平等已下を下郎といふ三家を上郎といふ

예컨대 상랑 · 하랑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시골에서는 백성 · 낭종 등이 무사를 상랑이라 하고, 낙양(교토)에서는 겐지 · 헤이시 이하를 하랑이라 하고 삼가(三家)를 상랑이라 하느니라.

「현방법초」, 457쪽

곧 높고 낮음은 무엇과 견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열반경은 이전의 여러 경과 견주면 높지만, 법화경과 견주면 종이다. 열반경은 종과 같고 하인과 같으며, 법화경은 주군과 같고 귀인과 같으므로 「극」이라 한다.

「열반경을 읽는다 함은 법화경을 읽는 것」이라는 말은 강독과 찬탄의 뜻이다. 그렇다면 열반경은 읽지 않고 법화경만 읽어도 열반경을 읽는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열반경을 읽을 때 법화경을 찬탄하면, 법화경이 곧 열반경의 뜻에 맞으므로 그것이 참으로 열반경을 읽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 경의 마음을 읽는 것이며, 열반경의 마음은 법화경을 가리키는 데 있다.

대성인은 이를 현인의 비유로 맺으신다. 현인은 자기를 낮추더라도 국주를 중히 여기는 자를 기뻐한다. 열반경도 법화경을 낮추고 자기를 칭찬하는 사람을 오히려 적으로 미워한다. 섬기는 이를 높인다고 섬김을 받는 이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이가 진정으로 높이는 것을 함께 높여야 기뻐한다는 것이다.

천태 교학에서는 법화경과 열반경의 관계를 여러 비유로 나타낸다. 법화경은 큰 진(大陣)을 깨뜨리는 것과 같고 열반경은 남은 무리(殘黨)를 소탕하는 것과 같다. 법화경은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저장하는 것(秋收冬藏)과 같고, 열반경은 거둔 뒤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捃拾)과 같다. 법화경은 주군과 같고 열반경은 신하와 같다. 모두 열반경이 법화경의 뒤를 잇는 보충의 경이라는 뜻이다.

법화큰 진을 깨뜨림
열반남은 무리를 소탕
법화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저장(秋收冬藏)
열반떨어진 이삭을 주움(捃拾)
법화주군 · 귀인(上郎)
열반신하 · 종(所從 · 下郎)
열반경 자신의 말「법화의 가운데와 같다」
묘락대사
「대경은 스스로 법화를 가리켜 극으로 삼는다」大経自ら法華を指して極と為す314쪽
그러므로
「열반경을 읽는다 함은 법화경을 읽는 것을 말하느니라」涅槃経をよむと申すは法華経をよむを申すなり314쪽
도표 10 · 법화경과 열반경

제23장으로 — 「이 예로써 알라」

이 장의 결론, 곧 「열반경을 읽는다는 것은 법화경을 읽는 것이며, 열반경은 법화경을 낮추고 자기를 칭찬하는 사람을 적으로 미워한다」는 도리는 다음 장의 첫 문장 「이 예로써 알라」로 곧바로 넘어간다. 열반경에 해당하는 이 도리는 화엄경 · 관경 · 대일경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그 경들을 읽으면서 법화경을 그 아래에 두는 사람은 바로 그 경들의 마음을 거스른다. 그리고 거꾸로 법화경을 읽는 사람이라도, 다른 경으로도 득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법화경을 읽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제22장은 두 개의 판단을 세운다. 하나는 사람 수로 정법을 가리지 말라는 것, 곧 경문과 세간은 물과 불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 경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두 판단이 제23장에서 가상 · 자은을 거쳐 진언의 조사들에게로 향하는 칼날이 된다.

「선시초」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는 대성인을 「일염부제 제일의 법화경 행자」라고 밝혔다. 그 근거의 하나가 바로 이 장의 논리, 곧 세간 전체가 비방하는 한 사람이야말로 경문이 말한 정법자라는 논리다.

제23장 가상의 참회와 방죄
어서 314쪽 9행 ~ 315쪽 12행 · 第二十三章 嘉祥の懺悔謗罪

본문

本文 · 一어서 314쪽 9행 ~ 315쪽 2행
本文 · 어서 원문

此の例をもつて知るべし華厳経・観経・大日経等をよむ人も法華経を劣とよむは彼れ彼れの経経の心にはそむくべし、此れをもつて知るべし法華経をよむ人の此の経をば信ずるよう・なれども諸経にても得道なるとおもうは此の経をよまぬ人なり、 例せば嘉祥大師は法華玄と申す文・十巻造りて法華経をほめしかども・妙楽かれをせめて云く「毀其の中に在り何んぞ弘讃と成さん」等云云、法華経をやぶる人なりされば嘉祥は落ちて天台につかひて法華経をよまず我れ経をよむならば悪道まぬかれがたしとて七年まで身を橋とし給いき、慈恩大師は玄賛と申して法華経をほむる文・十巻あり伝教大師せめて云く「法華経を讃むると雖も還て法華の心を死す」等云云、 此等をもつておもうに法華経をよみ讃歎する人人の中に無間地獄は多く有るなり、嘉祥・慈恩すでに一乗誹謗の人ぞかし、弘法・慈覚・智証あに法華経蔑如の人にあらずや、嘉祥大師のごとく講を廃し衆を散じて身を橋となせしも猶已前の法華経・誹謗の罪や・きへざるらん、例せば不軽軽毀の衆は不軽菩薩に信伏随従せしかども重罪いまだ・のこりて千劫阿鼻に堕ちぬ、されば弘法・慈覚・智証等は設いひるがへす心ありとも尚法華経をよむならば重罪きへがたしいわうや・ひるがへる心なし、又法華経を失い真言教を昼夜に行い朝暮に伝法せしをや、

풀이

이 예로써 알지어다. 화엄경 · 관경 · 대일경 등을 읽는 사람도 법화경을 못하다고 읽는 것은 저 각각의 경들의 마음을 거스르는 것이니라. 이로써 알지어다. 법화경을 읽는 사람이 이 경을 믿는 듯하나 여러 경으로도 득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경을 읽지 않는 사람이니라. 예컨대 가상대사(嘉祥大師)는 「법화현(法華玄)」이라는 글 열 권을 지어 법화경을 칭찬하였으나, 묘락이 그를 꾸짖어 이르되 「헐뜯음이 그 가운데 있으니 어찌 홍찬(弘讚)이라 하겠는가」 운운. 법화경을 깨뜨리는 사람이니라. 그러므로 가상은 꺾이어 천태를 섬기고, 법화경을 강하지 않으며 「내가 경을 강한다면 악도를 면하기 어렵다」 하여 칠 년 동안 몸을 다리로 삼으셨느니라. 자은대사(慈恩大師)는 「현찬(玄贊)」이라 하여 법화경을 칭찬하는 글 열 권이 있는데, 전교대사가 꾸짖어 이르되 「법화경을 찬탄한다 하더라도 도리어 법화의 마음을 죽인다」 운운. 이것들로 생각하건대, 법화경을 읽고 찬탄하는 사람들 가운데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이가 많으니라. 가상 · 자은은 이미 일승을 비방한 사람이니라. 홍법 · 자각 · 지증이 어찌 법화경을 업신여긴 사람이 아니겠는가. 가상대사처럼 강설을 그만두고 대중을 흩고 몸을 다리로 삼았어도 오히려 이전의 법화경 비방의 죄가 사라지지 않았으리라. 예컨대 불경(不輕)을 업신여기고 헐뜯은 무리는 불경보살에게 신복수종(信伏隨從)하였으나 무거운 죄가 아직 남아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 떨어졌느니라. 그러므로 홍법 · 자각 · 지증 등은 설령 마음을 돌이킨다 해도 법화경을 읽는다면 무거운 죄가 사라지기 어려우니, 하물며 돌이키는 마음이 없음에랴. 또 법화경을 잃게 하고 진언교를 밤낮으로 행하며 아침저녁으로 법을 전함에랴.

本文 · 二어서 315쪽 2~12행
本文 · 어서 원문

世親菩薩・馬鳴菩薩は小をもつて大を破せる罪をば舌を切らんとこそせさせ給いしか、世親菩薩は仏説なれども阿含経をば・たわふれにも舌の上にをかじとちかひ、馬鳴菩薩は懺悔のために起信論をつくりて小乗をやぶり給き、 嘉祥大師は天台大師を請じ奉りて百余人の智者の前にして五体を地になげ遍身にあせをながし紅の・なんだをながして今よりは弟子を見じ法華経をかうぜじ弟子の面を・まほり法華経をよみたてまつれば我力の此の経を知るににたりとて・天台よりも高僧老僧にて.おはせしが・わざと人のみるとき・をひまいらせて河をこへ・かうざに.ちかづきて・せなかにのせまいらせて高座にのぼせたてまつり結句・御臨終の後には隋の皇帝にまいらせて小児が母にをくれたるがごとくに足ずりをしてなき給いしなり、 嘉祥大師の法華玄を見るにいたう法華経を謗じたる疏にはあらず但法華経と諸大乗経とは門は浅深あれども心は一とかきてこそ候へ此れが謗法の根本にて候か。 華厳の澄観も真言の善無畏も大日経と法華経とは理は一とこそ・かかれて候へ、嘉祥大師・とがあらば善無畏三蔵も脱がたし

풀이

세친보살 · 마명보살은 소승으로 대승을 깨뜨린 죄 때문에 혀를 자르려고까지 하셨느니라. 세친보살은 부처의 설법이라 해도 아함경은 장난으로라도 혀 위에 두지 않겠다고 맹세하였고, 마명보살은 참회하기 위해 기신론(起信論)을 지어 소승을 깨뜨리셨느니라. 가상대사는 천태대사를 청하여 모시고 백여 명의 지자 앞에서 오체를 땅에 던지고 온몸에 땀을 흘리며 붉은 눈물을 흘려, 「이제부터는 제자를 돌보지 않겠다. 법화경을 강하지 않겠다. 제자의 얼굴을 지켜보며 법화경을 읽어 드린다면 내 힘으로 이 경을 아는 것처럼 보이리라」 하고는, 천태보다 고승이요 노승이셨으나 일부러 사람들이 보는 때에 업어 드리고 강을 건너며, 고좌(高座)에 다가가 등에 태워 드려 고좌에 올려 드렸고, 마침내 천태대사가 임종하신 뒤에는 수나라 황제에게 나아가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여읜 것처럼 발을 구르며 우셨느니라. 가상대사의 「법화현」을 보니, 몹시 법화경을 비방한 주석은 아니니라. 다만 「법화경과 여러 대승경은 문(門)에는 얕고 깊음이 있으나 마음은 하나」라고 썼느니라. 이것이 방법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화엄의 징관(澄觀)도 진언의 선무외(善無畏)도 대일경과 법화경은 이(理)는 하나라고 썼느니라. 가상대사에게 허물이 있다면 선무외삼장도 벗어나기 어려우리라.

어구 풀이

観経관경
『관무량수경』. 정토 삼부경의 하나로 아미타불과 극락정토를 관상하는 법을 설한다. 정토종의 의지 경전이다.
嘉祥大師가상대사
길장(吉藏, 549~623). 수 · 당 대의 사람으로 삼론종의 대성자다.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가 안식국(파르티아) 사람이었으므로 「호길장(胡吉藏)」이라 불렸고 성은 안(安) 씨다. 금릉(남경)에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진제(眞諦)를 만나 길장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2세에 법랑(法朗)에게 『중론』 · 『백론』 · 『십이문론』의 삼론을 배웠다. 수나라 개황 연간에 회계(지금의 저장성 사오싱)의 가상사(嘉祥寺)에 머물며 강설하고 삼론 · 유마 등의 주석을 지었으므로 가상대사라 불린다.
法華玄법화현
길장의 『법화현론(法華玄論)』 10권. 그 가운데 화엄경을 순일한 일승, 법화경을 「삼승을 모아 일승으로 돌아가게 한(會三歸一)」 가르침이라 설한다.
毀其の中に在り何んぞ弘讃と成さん헐뜯음이 그 가운데 있으니 어찌 홍찬이라 하겠는가
묘락대사가 길장의 법화 주석을 평한 말. 법화경을 찬탄하는 듯 보여도 그 찬탄의 말 가운데 법화경을 헐뜯는 뜻이 있으니, 법화경을 널리 찬탄한 것이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身を橋とし몸을 다리로 삼다
길장이 천태대사를 업고 강을 건너고, 등에 태워 고좌에 올려 드린 일. 자신을 낮추어 스승을 섬긴 극진한 모습을 나타낸다.
慈恩大師자은대사
규기(窺基, 632~682). 당나라 승려로 중국 법상종의 사실상의 개조. 정관 6년 장안에서 태어나, 현장삼장이 인도에서 돌아오자 17세에 그 제자가 되어 대소승 경론의 번역에 종사했다. 장안의 자은사에서 법상종을 넓혔으므로 자은대사라 부른다. 영순 원년에 입적했다. 저서로 『법화현찬』 10권, 『성유식론술기』 20권, 『성유식론추요』 4권 등이 있다.
玄賛현찬
자은의 『묘법연화경현찬』 10권. 법화경을 주석했으나 오성각별(五性各別), 곧 중생의 근기는 다섯 부류로 정해져 있어 성불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는 법상종의 교의를 세운다.
法華経を讃むると雖も還て法華の心を死す법화경을 찬탄한다 하더라도 도리어 법화의 마음을 죽인다
전교대사가 『법화수구(法華秀句)』에서 자은을 꾸짖은 말. 법화경을 화엄경 등과 같은 자리에서 칭찬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도리어 법화경을 가볍게 여긴 것이 되어 방법이라는 뜻이다.
不軽軽毀の衆불경을 업신여기고 헐뜯은 무리
상불경보살을 업신여기고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진 증상만의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의 사중.
世親菩薩세친보살
4~5세기 무렵 인도의 논사. 범어 이름은 바수반두(Vasubandhu). 세친은 신역 이름이고 구역 이름은 천친(天親)이다. 『대당서역기』 권5 등에 따르면 북인도 건타라국 출신으로 무착(無著)의 아우다. 처음 아유사국에서 설일체유부의 소승을 배워 『대비바사론』을 강설하고 『구사론』을 지었다. 뒤에 형 무착의 인도로 소승을 버리고 대승을 배웠는데, 그때 소승에 집착한 잘못을 뉘우쳐 혀를 자르려 했다. 형이 「혀로 대승을 비방했다면 이제 혀로 대승을 찬탄하여 죄를 갚으라」고 타일러, 대승의 논을 많이 지어 대승을 선양했다. 『구사론』 30권, 『십지경론』 12권, 『법화론』 2권, 『섭대승론석』 15권, 『불성론』 6권 등 저서가 많아 천부(千部)의 논사라 불린다.
馬鳴菩薩마명보살
부법장의 제12. 불멸 600년 무렵에 나타나 대승을 크게 넓혔다. 범어 이름은 아슈바고샤(Aśvaghoṣa). 처음 바라문 학자로 이름을 떨치며 논쟁을 즐겨 불교를 비난하고 「지면 혀를 잘라 사죄하겠다」고 자부했으나, 부나사(富那奢)에게 논파되어 불교에 귀의하고 홍교에 힘썼다. 마명이라는 이름은 과거세에 흰 새를 모아 흰 말을 울게 하여 윤타왕에게 힘을 주고 불법을 지켰기 때문이라 한다. 저서로 『불소행찬』 5권, 『건치범찬』 1권, 『대장엄론』 15권 등이 있다.
起信論기신론
『대승기신론』. 마명이 참회를 위해 지었다고 전하는 대승의 논서. 한역은 실차난타 역 2권과 진제 역 1권이 있다.
隋の皇帝수나라 황제
천태대사(538~597)가 입적했을 때의 수나라 황제. 천태대사는 진왕 광(뒤의 양제)에게 「지자(智者)」의 호를 받았다.
澄観징관
청량국사(淸涼國師, 738~839). 당나라 화엄종의 제4조. 『화엄경소』를 지어 화엄을 선양했으며, 천태의 교학을 끌어들여 화엄과 법화를 같은 원교로 보았다.

방법의 네 갈래 — 「이 예로써 알라」

이 장부터 바로 진언을 파한다. 진언을 파하는 단락 가운데 이 장은 총괄하여 파하는 총파(總破)다. 그 내용은 넷으로 나뉜다. 첫째는 의지하는 경을 거스르는 방법(依經違背), 둘째는 믿지 않고 헐뜯는 방법(不信毀謗), 셋째는 참회하지 않는 방법(不懺悔), 넷째는 방법의 근본을 꾸짖는 것이다.

첫째, 의지하는 경을 거스르는 허물

화엄경 · 관경 · 대일경 등을 읽는 사람이 법화경을 그 경들보다 못하다고 읽으면, 그것은 각각의 경의 마음을 거스르는 것이다. 제22장에서 열반경이 스스로 법화경을 「극」으로 가리킨다고 밝혔듯이, 이전의 여러 경도 모두 법화경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이므로, 그 경을 읽으면서 법화경을 낮추는 것은 그 경 자신을 배반하는 일이다. 「현방법초」는 방법의 정의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謗法とは法に背くという事なり法に背くと申すは小乗は小乗経に背き大乗は大乗経に背く法に背かばあに謗法とならざらん

방법이란 법을 등진다는 것이니라. 법을 등진다 함은 소승은 소승경을 등지고 대승은 대승경을 등지는 것이니, 법을 등지면 어찌 방법이 되지 않겠는가.

「현방법초」, 455쪽

이것은 이전경을 믿으면서도 이전경의 뜻에 어긋나므로,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 방법이 된다.

둘째, 믿지 않고 헐뜯는 방법

이전경을 믿어도 이전경의 뜻을 거스르면 믿지 않는 것이 되듯이, 법화경을 믿어도 법화경의 뜻을 거스르면 믿지 않는 것이 된다. 법화경의 뜻이란, 이전경은 득도가 없고 지옥에 떨어지는 근원이며, 법화경만이 이미 설했고(已) 지금 설하며(今) 앞으로 설할(當) 모든 경보다 뛰어나고, 법화경 밖에는 성불의 길이 없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화경을 읽어도 「다른 경으로도 득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법화경을 읽지 않는 사람이다.

一切衆生悉有仏性の説を聞きて之を信ずと雖も又心を爾前の経に寄する一類の衆生をば無仏性の者と云うなり此れ信而不信の者なり

「일체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는 설을 듣고 이를 믿는다 해도 또 마음을 이전의 경에 기대는 한 부류의 중생을 무불성의 자라 하느니라. 이는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 자(信而不信)이니라.

「현방법초」, 459쪽
  1. ①의지하는 경을 거스름(依經違背)화엄경 · 관경 · 대일경을 읽으며 법화경을 못하다고 읽음 → 그 경들의 마음을 거스름「방법이란 법을 등진다는 것」「현방법초」 455쪽
  2. ②믿지 않고 헐뜯음(不信毀謗)법화경을 읽어도 다른 경으로도 득도한다고 생각함「믿으면서도 믿지 않는 자」「현방법초」 459쪽예가상의 「법화현론」, 자은의 「법화현찬」
  3. ③참회하지 않음(不懺悔)참회한 가상도 죄가 사라지기 어려웠는데 홍법 · 자각 · 지증은 참회도 없음
  4. ④방법의 근본
    「법화경과 여러 대승경은 문에는 얕고 깊음이 있으나 마음은 하나」門は浅深あれども心は一315쪽
    「이(理)는 하나」
도표 11 · 방법의 네 갈래(제23장의 총파)

「헐뜯음이 그 가운데 있다」 — 가상의 『법화현론』

본문의 「예컨대 가상대사는」부터는 실례로서 가상과 자은을 드신다.

가상대사 길장은 삼론종의 대성자다. 금릉에서 태어나 어릴 때 진제삼장에게 이름을 받고, 12세에 법랑에게 삼론을 배웠으며, 수나라 개황 연간에 회계의 가상사에서 강설하여 가상대사라 불렸다. 그는 『법화현론』 10권을 지어 법화경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화엄경을 순일한 일승, 법화경을 「삼승을 모아 일승으로 돌아가게 한」 가르침이라 하여, 법화경을 화엄경과 나란히 두거나 그 아래에 두었다.

묘락대사는 이를 「헐뜯음이 그 가운데 있으니 어찌 홍찬이라 하겠는가」라고 꾸짖었다. 이 말을 어떻게 읽을지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있으나, 니치칸 상인은 「가상이 주석을 지어 법화경을 찬탄했으나 그 찬탄하는 말 가운데 헐뜯는 뜻이 있으므로 『그 가운데 있다』고 한 것」이라고 풀었다. 찬탄의 형식 안에 비방의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가상을 「법화경을 깨뜨리는 사람」이라 단정하신다. 그리고 가상은 마침내 꺾이어 천태대사를 섬기게 되었다.

「법화경을 찬탄하나 법화의 마음을 죽인다」 — 자은의 『법화현찬』

두 번째 예는 자은대사 규기다. 그는 현장삼장이 인도에서 돌아오자 17세에 그 제자가 되어 번역에 종사했고, 장안의 자은사에서 법상종을 넓혔다. 「보은초」 제3편 「천태 · 전교의 홍통」에서 대성인이 「현장 · 자은이야말로 그때의 생신의 부처였다」고 꼬집으신 그 자은이다. 그는 『묘법연화경현찬』 10권을 지어 법화경을 칭찬했으나, 그 안에서 오성각별의 교의를 세워 성불하지 못하는 중생이 있다고 했다. 이는 일체중생의 성불을 밝힌 법화경의 핵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전교대사는 『법화수구』에서 이를 「법화경을 찬탄한다 하더라도 도리어 법화의 마음을 죽인다」고 꾸짖었다. 법화경을 화엄경 등과 같은 격으로 칭찬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그것은 도리어 법화경을 가볍게 여긴 것이 되어 방법이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 두 예로부터 놀라운 결론을 끌어내신다. 「법화경을 읽고 찬탄하는 사람들 가운데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이가 많다.」 법화경을 버린 사람만 방법이 아니라, 법화경을 칭찬하는 사람 가운데에도 방법이 있다. 아니, 오히려 칭찬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더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것이 제21장의 「불법의 편인 듯하면서 불법을 잃게 하는」 방법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가상 · 자은이 이미 일승을 비방한 사람이라면, 법화경을 대일경 아래에 둔 홍법 · 자각 · 지증이 어찌 법화경을 업신여긴 사람이 아니겠는가.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법화경을 찬탄하면서 법화의 마음을 죽인다」는 경계는 어느 시대에나 해당한다. 법화경의 마음은 일체중생이 성불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성불의 길이 법화경에만 있다는 것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말법에 법화경의 마음을 살리는 길은 경권을 칭찬하는 데 있지 않고, 대성인이 「니치렌의 혼을 먹물에 물들여 흘려 썼느니라(日蓮がたましひをすみにそめながして・かきて候ぞ)」(「교오전답서」, 1124쪽)라고 하신 본존을 믿는 데 있다고 본다.

안개 낀 남중국의 넓고 얕은 강, 멀리 한 사람을 업고 강을 건너는 아주 작은 뒷모습
그림 · 안개 낀 남중국의 넓고 얕은 강, 멀리 한 사람을 업고 강을 건너는 아주 작은 뒷모습

참회한 가상도 죄가 남았다 — 불참회의 방법

셋째, 참회하지 않는 방법을 꾸짖는다. 가상처럼 참회해도 방법의 죄는 사라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홍법 · 자각처럼 참회조차 하지 않는 자의 죄는 얼마나 클지 헤아릴 수 없다.

대성인은 가상의 참회를 매우 구체적으로 그리신다. 가상은 천태대사를 청하여 백여 명의 지자 앞에서 오체를 땅에 던지고, 온몸에 땀을 흘리며 붉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제자를 돌보지 않겠다. 법화경을 강하지 않겠다. 제자의 얼굴을 지켜보며 법화경을 강한다면, 내가 내 힘으로 이 경을 아는 것처럼 보이리라」고 맹세했다. 그는 천태보다 나이가 많은 고승 · 노승이었으나, 일부러 옛 제자와 지인들이 보는 앞에서 천태대사를 업고 강을 건너고, 고좌 곁에서는 등에 태워 고좌에 올려 드렸다. 이렇게 칠 년 동안 몸을 다리로 삼아 섬겼다. 마침내 천태대사가 입적한 뒤에는 수나라 황제 앞에 나아가,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여읜 것처럼 발을 구르며 울었다고 한다.

가상 길장(549~623)은 천태대사 지의(538~597)보다 열한 살 아래이므로, 본문의 「천태보다 고승이요 노승」이라는 표현은 연령보다는 당시 학승으로서의 명성과 지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 해석이 있다. 길장이 지의에게 『법화경』 강설을 청한 서간은 『국청백록(國淸百錄)』에 전한다.

그런데도 대성인은 「오히려 이전의 법화경 비방의 죄가 사라지지 않았으리라」고 하신다. 그 근거가 제20장에서도 나온 불경보살의 예다. 위음왕불의 상법 때 불경보살을 업신여기고 박해한 사중은 뒤에 불경보살에게 신복수종했으나, 무거운 죄가 아직 남아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 떨어졌다. 방법의 죄는 그만큼 무겁다.

그렇다면 홍법 · 자각 · 지증은 어떠한가. 설령 마음을 돌이킨다 해도 법화경을 읽는 것만으로는 무거운 죄가 사라지기 어렵다. 하물며 그들에게는 돌이키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 그 위에 법화경을 잃게 하고, 진언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행하며 아침저녁으로 법을 전했으니, 그 죄는 말할 것도 없다.

혀를 자르려 한 세친 · 마명

대성인은 대비로 인도의 두 보살을 드신다. 세친보살과 마명보살은 소승으로 대승을 깨뜨린 죄를 뉘우쳐 혀를 자르려고까지 했다.

세친(천친)은 북인도 건타라국 사람으로 무착의 아우다. 처음 설일체유부의 소승을 배워 『대비바사론』을 강설하고 『구사론』을 지었다. 뒤에 형 무착의 인도로 대승에 들어갔는데, 그때 소승에 집착하여 대승을 비방한 잘못을 뉘우쳐 혀를 자르려 했다. 무착은 「혀로 대승을 비방했다면, 이제부터는 그 혀로 대승을 찬탄하여 죄를 갚으라」고 타일렀다. 세친은 「부처의 설법이라 해도 아함경은 장난으로라도 혀 위에 두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십지경론』 · 『법화론』 · 『섭대승론석』 · 『불성론』 등 대승의 논을 많이 지어 천부의 논사라 불렸다.

마명은 부법장의 제12조로, 처음에는 바라문 학자로서 불교를 비난하며 「지면 혀를 잘라 사죄하겠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부나사에게 논파되어 혀를 자르려 하자, 부나사가 이를 말리고 출가하게 했다. 그는 뒤에 참회를 위해 『대승기신론』을 지어 소승을 깨뜨렸다고 전한다.

세친 · 마명 · 가상은 모두 소승을 버리고 대승을 넓히거나, 자신의 작은 법을 버리고 천태대사를 스승으로 섬긴, 부끄러움을 알고 참회한 이들이다. 그들조차 죄가 무거웠다면, 참회 없이 법화경을 대일경 아래에 둔 이들은 어떠하겠는가.

참회한 이들
  • 세친(천친)
    죄소승으로 대승을 비방
    참회혀를 자르려 함, 「아함경은 장난으로라도 혀 위에 두지 않겠다」
    결과대승 논서를 지음
  • 마명
    죄불교를 비난
    참회부나사에게 논파, 혀를 자르려 함
    결과『대승기신론』을 지어 소승을 깨뜨림
  • 가상(길장)
    죄『법화현론』으로 법화경을 헐뜯음
    참회천태대사에게 귀의, 강을 그만두고 대중을 흩어 칠 년 동안 몸을 다리로 삼음
    결과「오히려 이전의 죄가 사라지지 않았으리라」
  • 불경을 헐뜯은 사중
    참회신복수종
    결과그래도 천 겁 아비
참회 없는 이들
홍법 · 자각 · 지증「돌이키는 마음이 없음」 · 진언을 밤낮으로 행하고 전함
「돌이키는 마음이 없음」いわうや・ひるがへる心なし314–315쪽
도표 12 · 참회한 이들과 참회 없는 이들

「문은 얕고 깊음이 있으나 마음은 하나」 — 방법의 근본

넷째, 방법의 근본을 꾸짖는다. 대성인은 가상의 『법화현론』을 직접 보시고 이렇게 평하신다. 몹시 법화경을 비방한 주석은 아니다. 다만 「법화경과 여러 대승경은 문에는 얕고 깊음이 있으나 마음은 하나」라고 썼다. 이것이 방법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얼핏 보면 온건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마음은 하나」라는 한마디가 방법의 근본이 된다. 여러 대승경의 이(理)와 법화경의 이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諸大乗経の中の理は未開会の理いまだ記小久成これなし法華経の理は開会の理・記小久成これあり

여러 대승경 가운데의 이는 아직 개회(開會)하지 않은 이이니, 아직 이승에게 수기함(記小)과 구원실성(久成)이 없느니라. 법화경의 이는 개회한 이이니, 이승 수기와 구원실성이 있느니라.

「현방법초」, 458쪽

이전의 여러 대승경은 이승의 성불을 허락하지 않고, 부처의 구원실성을 밝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이는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으며(有名無實),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게 된 것(本無今有)이다. 법화경의 이는 이름과 실체가 함께 참되고(名體俱實), 본래 있어 늘 머무는 것(本有常住)이다. 어찌 이가 하나라고 할 수 있겠는가.

「법화초심성불초」도 이전경과 법화경의 차이를 분명히 하신다.

いかさまにも法華経ならぬ得道は当分の得道にて真実の得道にあらず、故に無量義経には『是の故に衆生の得道差別せり』と云い又『終に無上菩提を成ずることを得じ』と云へり、文の心は爾前の経経には得道の差別を説くと云へども終に無上菩提の法華経の得道はなしとこそ仏は説き給いて候へ

어떻게 보아도 법화경이 아닌 득도는 당분(當分)의 득도이지 진실의 득도가 아니니라. 그러므로 무량의경에 「이런 까닭에 중생의 득도에 차별이 있다」 하고, 또 「끝내 무상보리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느니라. 글의 마음은, 이전의 경들에는 득도의 차별을 설한다 하더라도 끝내 무상보리인 법화경의 득도는 없다고 부처가 설하신 것이니라.

「법화초심성불초」, 548쪽

징관 · 선무외의 「이는 하나」 — 진언 파절로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이 다음 장으로 가는 다리다. 「화엄의 징관도 진언의 선무외도 대일경과 법화경은 이는 하나라고 썼다. 가상대사에게 허물이 있다면 선무외삼장도 벗어나기 어려우리라.」

이처럼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데도, 화엄종의 징관은 화엄경과 법화경을, 진언의 선무외는 대일경과 법화경을 이가 하나라고 했다. 선무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는 같으나 사(事), 곧 인(印)과 진언에서는 대일경이 뛰어나다는 「이동사승(理同事勝)」을 세웠다. 가상의 「마음은 하나」가 방법의 근본이라면, 「이는 같고 사는 대일경이 뛰어나다」는 선무외는 가상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방법이다.

가상의 허물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선무외의 허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대성인은 가상이라는, 누구나 그 참회를 아는 인물을 지렛대로 삼아 진언의 조사에게로 논의를 옮기신다. 다음 장에서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이 하나씩 파해진다. 「이동사승」의 문제는 「보은초」 제4편 「진언으로 기운 예산 — 홍법 · 자각 · 지증」에서 자각 · 지증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다.

제24장 중국 진언의 세 조사를 파하다
어서 315쪽 12행 ~ 317쪽 2행 · 第二十四章 中国の真言三祖を破る

본문

本文 · 一어서 315쪽 12행 ~ 316쪽 7행
本文 · 어서 원문

されば善無畏三蔵は中天の国主なり位をすてて他国にいたり殊勝・招提の二人にあひて法華経をうけ百千の石の塔を立てしかば法華経の行者とこそみへしか、しかれども大日経を習いしよりこのかた法華経を大日経に劣るとや・おもひけん、始はいたう其の義もなかりけるが漢土にわたりて玄宗皇帝の師となりぬ、天台宗をそねみ思う心つき給いけるかのゆへに、忽に頓死して二人の獄卒に鉄の縄七すぢつけられて閻魔王宮にいたりぬ、命いまだ・つきずと・いゐてかへされしに法華経を謗ずるとや・おもひけん真言の観念・印・真言等をば・なげすてて法華経の今此三界の文を唱えて縄も切れかへされ給いぬ、又雨のいのりを・おほせつけられたりしに忽に雨は下たりしかども大風吹きて国をやぶる、結句死し給いてありしには弟子等集りて臨終いみじきやうを・ほめしかども無間大城に堕ちにき、 問うて云く何をもつてか・これをしる、答えて云く彼の伝を見るに云く「今畏の遺形を観るに漸く加縮小し黒皮隠隠として骨其露なり」等云云、彼の弟子等は 死後に地獄の相の顕われたるをしらずして徳をあぐなど・をもへども・かきあらはせる筆は畏が失をかけり、死してありければ身やふやく・つづまり・ちひさく皮はくろし骨あらはなり等云云、人死して後・色の黒きは地獄の業と定むる事は仏陀の金言ぞかし、善無畏三蔵の地獄の業はなに事ぞ幼少にして位をすてぬ第一の道心なり、月氏・五十余箇国を修行せり慈悲の余りに漢土にわたれり、天竺・震旦・日本一閻浮提の内に真言を伝へ鈴をふる此の人の徳にあらずや、いかにして地獄に堕ちけると後生をおもはん人人は御尋ねあるべし。

풀이

그러므로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은 중천축의 국주였느니라. 왕위를 버리고 다른 나라에 가서 수승(殊勝) · 초제(招提) 두 사람을 만나 법화경을 받고 백천의 돌탑을 세웠으니, 법화경의 행자로 보였느니라. 그러나 대일경을 배운 뒤로는 법화경을 대일경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인가. 처음에는 그다지 그런 뜻도 없었으나 한토에 건너가 현종 황제의 스승이 되었느니라. 천태종을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셨던 까닭인지, 갑자기 급사하여 두 옥졸에게 쇠사슬 일곱 줄로 묶여 염마왕궁에 이르렀느니라. 「목숨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 하여 돌려보내질 때, 법화경을 비방한 탓이라고 생각하였던가, 진언의 관념 · 인(印) · 진언 등을 내던지고 법화경의 「지금 이 삼계는」의 문을 외니 사슬도 끊어지고 돌려보내지셨느니라. 또 비를 비는 기도를 명받았을 때 곧 비는 내렸으나 큰바람이 불어 나라를 깨뜨렸느니라. 마침내 돌아가셨을 때에는 제자들이 모여 임종이 훌륭했다고 칭찬하였으나 무간대성에 떨어졌느니라. 묻노라. 무엇으로 이를 아는가. 답하노라. 그의 전기를 보니 이르되 「지금 무외의 유해를 보니 차츰 더 줄어들고 검은 살갗이 거무스름하며 뼈가 드러났다」 운운. 그 제자들은 죽은 뒤에 지옥의 상이 나타난 것을 알지 못하고 덕을 드러낸다고 생각하였으나, 써서 드러낸 붓은 무외의 허물을 적었느니라. 죽고 나니 몸이 점점 오그라들어 작아지고 살갗은 검으며 뼈가 드러났다는 것이니라. 사람이 죽은 뒤 빛이 검은 것은 지옥의 업이라고 정한 것은 부처님의 금언이니라. 선무외삼장의 지옥의 업은 무엇인가. 어려서 왕위를 버렸으니 제일의 도심(道心)이니라. 월지 오십여 나라를 다니며 수행하였고, 자비가 넘쳐 한토에 건너왔느니라. 천축 · 진단 · 일본, 일염부제 안에서 진언을 전하고 방울을 흔드는 것은 이 사람의 덕이 아니겠는가. 어찌하여 지옥에 떨어졌는가를, 후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어보아야 하리라.

本文 · 二어서 316쪽 7~18행
本文 · 어서 원문

又金剛智三蔵は南天竺の大王の太子なり、金剛頂経を漢土にわたす其の徳善無畏のごとし、又互いに師となれり、而るに金剛智三蔵・勅宣によて雨の祈りありしかば七日が中に雨下る・天子大に悦ばせ給うほどに忽に大風吹き来る、王臣等けうさめ給いき使をつけて追はせ給いしかども・とかうのべて留りしなり、結句は姫宮の御死去ありしに、いのりをなすべしとて御身の代に殿上の二女七歳になりしを 薪に・つみこめて焼き殺せし事こそ無慚にはおぼゆれ、而れども・姫宮も・いきかへり給はず不空三蔵は金剛智と月支より御ともせり、 此等の事を不審とやおもひけん畏と智と入滅の後・月氏に還りて竜智に値い奉り真言を習いなをし天台宗に帰伏してありしが心計りは帰えれども身はかへる事なし、雨の御いのり・うけ給わりたりしが三日と申すに雨下る、天子悦ばせ給いて我れと御布施ひかせ給う、須臾ありしかば大風落ち下りて内裏をも吹きやぶり雲閣・月卿の宿所・一所もあるべしとも・みへざりしかば天子大に驚きて宣旨なりて風をとどめよと仰せ下さる・且らくありては又吹き又吹きせしほどに数日が間やむことなし、結句は使をつけて追うてこそ風も・やみてありしか、此の三人の悪風は漢土日本の一切の真言師の大風なり。

풀이

또 금강지삼장(金剛智三藏)은 남천축 대왕의 태자이니라. 금강정경을 한토에 전하니 그 덕은 선무외와 같으며, 또 서로 스승이 되었느니라. 그런데 금강지삼장이 칙선(勅宣)에 따라 비를 비는 기도를 하니 이레 안에 비가 내려 천자가 크게 기뻐하시던 차에, 갑자기 큰바람이 불어왔느니라. 왕과 신하들이 흥이 깨져 사자를 붙여 쫓아내게 하셨으나,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머물렀느니라. 마침내 공주가 돌아가셨을 때, 기도를 하겠다 하여 그 몸을 대신하여 궁중의 일곱 살 된 두 소녀를 땔나무에 쌓아 넣어 태워 죽인 일이야말로 참혹하게 여겨지느니라. 그러나 공주도 되살아나지 않으셨느니라. 불공삼장(不空三藏)은 금강지와 함께 월지에서 따라왔느니라. 이러한 일들을 의아하게 여겼던 것인가, 무외와 지가 입멸한 뒤 월지로 돌아가 용지(龍智)를 만나 진언을 다시 배우고 천태종에 귀복하였으나, 마음만 돌아왔을 뿐 몸은 돌아오지 않았느니라. 비를 비는 기도를 명받았는데 사흘째에 비가 내리니, 천자가 기뻐하시어 몸소 보시를 내리셨느니라. 잠시 뒤 큰바람이 내리쳐 내리(內裏)까지 불어 부수고, 운각(雲閣) · 월경(月卿)의 거처가 한 곳도 남을 것 같지 않았으므로, 천자가 크게 놀라 선지(宣旨)를 내려 바람을 멈추라고 명하셨느니라. 잠시 그쳤다가는 또 불고 또 불어 여러 날 동안 그치지 않았느니라. 마침내 사자를 붙여 쫓아내고서야 바람도 그쳤느니라. 이 세 사람의 악풍은 한토와 일본의 일체 진언사의 큰바람이니라.

本文 · 三어서 316쪽 18행 ~ 317쪽 2행
本文 · 어서 원문

さにてあるやらん去ぬる文永十一年四月十二日の大風は阿弥陀堂の加賀法印・東寺第一の智者の雨のいのりに吹きたりし逆風なり、善無畏・金剛智・不空の悪法をすこしもたがへず伝えたりけるか心にくし心にくし。

풀이

그래서인가, 지난 문영 11년 4월 12일의 큰바람은 아미타당의 가가 법인(加賀法印), 동사 제일의 지자가 비를 빈 기도에 불어닥친 역풍이니라.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의 악법을 조금도 어긋남 없이 전하였던가. 참으로 그럴듯하구나, 그럴듯하구나.

어구 풀이

善無畏三蔵선무외삼장
637~735. 범어 이름 슈바카라싱하(Śubhakarasiṃha), 음사하여 수바가라(輸波迦羅), 선무외는 그 의역이다. 중국 당대 진언 밀교의 개조. 인도 오다국(烏荼國)의 왕자로 태어나 13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형의 시기를 받아 왕위를 물려주고 출가했다. 마갈타국의 나란타사에서 달마국다(達摩掬多)에게 밀교를 배우고, 당 개원 4년(716) 중국에 건너와 현종에게 국사로 맞아들여졌다. 『대일경』 · 『소바호동자경』 · 『소실지갈라경』 등을 번역하고 『대일경소』를 엮어 중국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밀교를 전했다. 금강지 · 불공과 함께 「삼삼장(三三藏)」이라 불린다.
中天の国主중천축의 국주
『송고승전』 선무외전은 그의 선조가 중천축에서 나와 오다국(烏荼國)의 왕이 되었고, 그는 불수왕(佛手王)의 아들로 13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전한다. 本文의 「중천축의 국주」는 이 계보를 따른 말로 볼 수 있으며, 출신국의 이름은 자료마다 다르게 전한다.
殊勝・招提수승 · 초제
『송고승전』 선무외전에, 선무외가 나라를 떠나 남쪽 바닷가에 이르러 수승 · 초제 두 사람을 만나 법화삼매를 얻었고, 모래를 모아 탑을 만든 것이 만 곳에 이르렀으며, 그 덕으로 검은 뱀에게 손가락을 물려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玄宗皇帝현종 황제
685~762. 당나라 제6대 황제(재위 712~756). 26세에 즉위하여 대외 원정을 억제하고 정치의 어지러움을 바로잡아 당의 번영을 이끌었다(개원의 치). 그러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을 맞아들여 진언 밀교를 숭상했고, 만년에 신하 안녹산의 반란으로 도읍을 쫓겨나 황위를 잃었다.
真言の観念・印・真言진언의 관념 · 인 · 진언
관념은 진언 밀교에서 설하는 옴자관(唵字觀) · 아자관(阿字觀) · 오륜관(五輪觀) 등의 관법. 인(印)은 만다라의 여러 존격이 각각 내증의 본서(本誓)를 나타내는 형식으로, 넓게는 칼 · 윤보 · 보주 · 금강저 · 연꽃 등의 지물, 좁게는 본존과 수행자의 손 모양(수인)을 말한다. 진언은 진언다라니라고도 하며 부처의 진실한 말이라 하는 주문과 같은 것이다.
今此三界の文「지금 이 삼계는」의 문
법화경 비유품 제3의 「지금 이 삼계는 다 나의 소유이며, 그 가운데의 중생은 모두 나의 아들이다(今此三界皆是我有 其中衆生悉是吾子)」. 석존이 이 세계의 주(主) · 사(師) · 친(親)임을 밝힌 경문이다.
無間大城무간대성
아비지옥. 일곱 겹의 쇠성에 둘러싸였다 하여 「대성」이라 한다.
彼の伝그의 전기
북송 찬녕(贊寧)의 『송고승전』 권2 선무외전을 가리킨다.
隠隠은은
근심하고 슬퍼하는 모양. 여기서는 빛이 거무스름하게 된 모양을 말한다.
金剛智三蔵금강지삼장
671~741. 범어 이름 바즈라보디(Vajrabodhi), 음사하여 발일라보리(跋日羅菩提). 인도의 왕족이라고도 바라문 출신이라고도 한다. 10세에 나란타사로 출가하여 적정지(寂靜智)를 스승으로 삼았고, 31세에 용수의 제자라 전하는 용지(龍智)에게 가서 7년 동안 섬기며 밀교를 배웠다. 뒤에 당나라로 향해 개원 8년(720) 낙양에 들어갔다. 제자로 불공 등이 있다.
姫宮공주
『송고승전』에는 현종이 총애한 공주라고 한다.
不空三蔵불공삼장
705~774. 범어 이름 아모가바즈라(Amoghavajra), 음사하여 아목거발절라(阿目佉跋折羅), 의역하여 불공금강(不空金剛), 줄여서 불공. 당대 진언 삼삼장의 한 사람으로 중국 밀교를 완성했다. 15세에 장안에 들어가 금강지를 따라 출가했다. 개원 29년(741) 금강지가 죽은 뒤 남천축으로 가서 사자국(스리랑카)에 이르러 용지를 만나 밀장과 여러 경론을 얻고, 몇 해 뒤 당나라로 돌아왔다고 전한다. 현종의 귀의를 받았고, 구마라집 · 현장 · 진제와 함께 중국 사대 번역가로 꼽히며 『금강정경』 등 많은 밀교 경전을 번역했다.
竜智용지
용수의 제자라고 전하는 남인도의 밀교 아사리. 금강지 · 불공이 그에게 밀교를 받았다고 한다.
雲閣・月卿운각 · 월경
운각은 4위 · 5위 · 6위로서 궁전에 오르는 것이 허락된 사람, 곧 전상인(殿上人). 월경은 천황을 해에 견주는 데 대하여 3위 이상의 공경을 달에 견준 말이다.
阿弥陀堂の加賀法印아미타당의 가가 법인
가마쿠라 오쿠라의 아미타당 별당이던 가가 법인 조세이(定淸). 진언종 오노류 조세이방(定淸方)의 개조다.
東寺第一の智者동사 제일의 지자
홍법(구카이)이 하사받은 교토 동사(東寺, 교왕호국사)를 근본으로 하는 진언종에서 으뜸가는 학승이라는 뜻.
心にくし그럴듯하다
본래 「그윽하여 마음이 끌린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앞의 일과 너무도 잘 들어맞음을 반어적으로 이른 말이다.

별파의 시작 — 진언 세 조사와 현증

진언을 파하는 가운데 앞 장은 총괄하여 파한 것이고, 이 장은 따로따로 파하는 별파(別破)다. 별파 가운데 이 장은 한토의 세 조사를 파하고, 다음 장은 일본의 홍법 · 자각을 파한다. 한토의 세 조사란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이른바 삼삼장이다. 그들의 그릇된 뜻을 파하는 데 이 장은 교리의 논증이 아니라 현증(現證), 곧 기우의 실패와 임종의 나쁜 상을 근거로 삼는다.

현증이 왜 중요한가. 대성인은 「삼삼장기우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仏法をこころみるに道理と証文とにはすぎず、又道理証文よりも現証にはすぎず

니치렌이 불법을 시험해 보건대, 도리와 증문보다 나은 것이 없고, 또 도리와 증문보다도 현증보다 나은 것이 없느니라.

「삼삼장기우사」, 1468쪽

도리(이증)와 증문(문증)은 말로 다툴 수 있으나, 현증은 눈앞의 사실이다. 제22 · 23장에서 경문과 도리로 진언의 근본을 파하신 대성인은, 이 장에서 그 결과로 나타난 사실을 들어 쐐기를 박으신다.

그리고 바로 그 「삼삼장기우사」가 이 장과 같은 내용을 다룬다. 선무외는 당 현종 때 큰비를 내리게 했으나 큰바람이 나와 국토를 불어 부쉈다. 금강지도 이레 안에 큰비가 내렸으나 전대미문의 큰바람이 불어 나라 밖으로 쫓아내라는 명령까지 나왔다. 불공은 사흘 안에 큰비를 내리게 했으나 큰바람이 불어 수십 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대성인 당시 문영 11년(1274)의 큰바람은 동사 제일의 지자라는 아미타당 가가 법인의 기우에 따른 역풍이었다. 또 고쿠라쿠사의 료칸이 대성인에게 기우의 실패를 추궁받자 원한을 품고 막부에 호소하여 탄압의 실마리를 만든 일도 널리 알려져 있다.

선무외 — 국주의 자리를 버린 도심, 그러나

대성인은 선무외를 깎아내리는 데서 시작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의 덕을 하나하나 드신다. 그는 중천축의 국주였으나 왕위를 버렸다. 다른 나라에 가서 수승 · 초제 두 사람을 만나 법화경을 받고, 백천의 돌탑을 세웠다. 그러니 처음에는 법화경의 행자로 보였다. 『송고승전』 선무외전에 따르면, 그는 나라를 떠나 남쪽 바닷가에 이르러 두 사람을 만나 법화삼매를 얻었고, 모래를 모아 탑을 만든 것이 만 곳에 이르렀으며, 그 덕으로 검은 뱀에게 손가락을 물려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일경을 배운 뒤로 그는 법화경을 대일경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런 뜻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으나, 한토에 건너가 현종 황제의 스승이 된 뒤에 마음이 바뀌었다. 한토에는 이미 법화경을 근본으로 한 천태종이 있었다. 선무외는 그 천태종을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 진언을 넓혔던 것인가.

『대일경소』와 일행 — 「이동사승」의 성립

선무외가 천태종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선시초」가 자세히 말씀하신다. 「보은초」 제3편 「천태 · 전교의 홍통」에서도 대성인은, 이 세 사람이 월지의 사람으로 가문도 고귀하고 사람됨도 한토의 승려와 달랐으며, 「후한부터 지금까지 없던 인과 진언이라는 것을 덧붙여 대단해 보였으므로 천자는 고개를 숙이고 만민은 손을 모았다(後漢より今にいたるまで・なかりし印と真言という事をあひそいて・ゆゆしかりしかば天子かうべをかたぶけ万民掌をあわす)」(301쪽)고 하셨다.

「선시초」에 따르면, 선무외가 가져온 대일경 등의 실제 내용은 「회이파이(會二破二)의 일승」에 인과 진언을 더한 것에 지나지 않아 화엄 · 반야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를 그대로 드러내면 화엄 · 법상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천태종에게 비웃음을 살 것이었다. 그래서 선무외는 「천태종 가운데 일행선사라는 비뚤어진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이를 꾀어 한토의 법문을 이야기하게 했다(天台宗の中に一行禅師という僻人一人ありこれをかたらひて漢土の法門をかたらせけり)」(「선시초」, 275–276쪽). 일행에게서 천태종의 교의를 들은 선무외는 그것이 인도에서 들은 것보다 뛰어남을 알고, 일행에게 『대일경』의 주석을 쓰게 하면서 「대일경과 법화경을 물과 젖처럼 한맛으로 만들라(大日経と法華経とをば水と乳とのやうに一味となすべし)」고 지시했다. 그리고 인과 진언을 심법의 일념삼천에 장엄하면 삼밀상응의 비법이 된다고 하여, 천태대사의 일념삼천을 대일경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 『대일경소』이며, 여기서 「이는 법화경과 같고 사(인 · 진언)에서는 대일경이 뛰어나다」는 이동사승의 뜻이 세워졌다. 제23장 끝의 「진언의 선무외도 대일경과 법화경은 이는 하나라고 썼다」는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대일경소(大日經疏)』 20권은 선무외의 강설을 제자 일행(一行, 683~727)이 받아 적어 엮은 것으로 전한다. 일행은 천문 · 역법에도 뛰어나 『대연력(大衍曆)』을 만든 인물이다. 『대일경소』가 천태 교학의 용어와 틀을 많이 쓴다는 점은 연구에서도 지적된다. 이를 다시 손본 것이 『대일경의석(大日經義釋)』이며, 일본에서는 동밀(東密)이 『대일경소』를, 태밀(台密)이 『대일경의석』을 주로 썼다.

염마왕궁의 일 — 「지금 이 삼계는」

그러자 선무외는 갑자기 급사하여 두 옥졸에게 쇠사슬 일곱 줄로 묶여 염마왕궁으로 끌려갔다. 「목숨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 하여 돌려보내질 때, 그는 이것이 법화경을 비방한 탓이라고 깨달았던 것인지, 진언의 관념 · 인 · 진언을 내던지고 법화경 비유품의 「지금 이 삼계는 다 나의 소유이며, 그 가운데 중생은 모두 나의 아들이다」를 외었다. 그러자 사슬이 끊어져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일화는 의미심장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를 구한 것은 자신이 넓힌 진언이 아니라 법화경의 한 구절이었다. 그리고 그 구절은 석존이 이 세계의 주인이요 스승이요 어버이임을 밝힌 문이다. 대일여래를 받들어 석존을 낮춘 진언의 조사가, 정작 위급할 때에는 석존의 주사친 삼덕을 밝힌 문을 외어 살아났다는 것이다.

기우와 큰바람, 그리고 현종

선무외는 조정에서 기우를 명받았다. 그의 기도로 비는 곧 내렸으나, 큰바람이 함께 불어 국토를 어지럽혔다. 비를 바라고 기도한 결과가 나라를 깨뜨리는 바람이었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악상(惡相)이다.

그가 스승으로 섬긴 현종의 운명도 대성인은 같은 맥락에서 보신다. 현종은 개원의 치로 당의 번영을 이끈 황제였으나, 진언을 믿고 선무외를 스승으로 섬긴 뒤 천보 14년(755) 신하 안녹산의 반란(안사의 난)으로 도읍 장안을 쫓겨나 촉으로 피했고, 이듬해 황위를 아들 숙종에게 물려주었다. 대성인은 이를 「한토에 이 법이 건너가 현종 황제가 망하셨다(漢土にこの法わたりて玄宗皇帝ほろびさせ給う)」(「우에노전답서」, 1509쪽)고 하셨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를 「진언 망국」의 현증으로 본다.

임종의 상 — 『송고승전』이 적은 것

선무외가 죽었을 때 제자들은 모여서 임종이 훌륭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가 무간대성에 떨어졌다고 하신다. 여기서 질문자가 묻는다. 무엇으로 그것을 아는가.

대성인의 답은 그의 전기 자체다. 『송고승전』 선무외전은 「지금 무외의 유해를 보니 차츰 더 줄어들고 검은 살갗이 거무스름하며 뼈가 드러났다」고 적는다. 제자들은 이것이 지옥의 상인 줄 모르고 스승의 덕을 드러내는 일로 여겼으나, 그 모습을 써서 드러낸 붓은 오히려 스승의 허물을 적은 것이다. 죽은 뒤에 몸이 점점 오그라들어 작아지고, 살갗은 검고, 뼈가 드러났다.

사람이 죽은 뒤 빛이 검은 것을 지옥의 업이라고 정한 것은 부처의 금언이다. 임종의 상에 대해서는 대성인의 어서에 많은 문증이 있다.

人は臨終の時、地獄に堕つる者は黒色となる上、其の身重き事千引の石の如し。善人は設ひ七尺八尺の女人なれども色黒き者なれども、臨終に色変じて白色となる。又軽き事鵞毛の如し、輭なる事兜羅緜の如し

사람은 임종 때 지옥에 떨어지는 자는 빛이 검어지는 데다 그 몸이 무겁기가 천 사람이 끄는 돌과 같으며, 선인은 설령 일곱 자 여덟 자의 여인이라도, 빛이 검은 자라도 임종에 빛이 변하여 희어지고, 또 가볍기가 거위 털과 같고 부드럽기가 도라면(兜羅緜)과 같으니라.

「센니치니부인답서」, 1316쪽

大論に云く「臨終の時色黒き者は地獄に堕つ」等云云、守護経に云く「地獄に堕つるに十五の相・餓鬼に八種の相・畜生に五種の相」等云云、天台大師の摩訶止観に云く「身の黒色は地獄の陰に譬う」等云云

『대지도론』에 이르되 「임종 때 빛이 검은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운운. 『수호경』에 이르되 「지옥에 떨어지는 데 열다섯 가지 상, 아귀에 여덟 가지 상, 축생에 다섯 가지 상」 운운. 천태대사의 『마하지관』에 이르되 「몸의 검은빛은 지옥의 음(陰)에 견준다」 운운.

「묘호니부인답서」, 1404쪽

같은 「묘호니부인답서」는 이어서 대성인 자신이 어려서부터 불법을 배우며 「먼저 임종의 일을 배우고 뒤에 다른 일을 배우리라」고 생각하셨다고 하시고, 『대지도론』의 「붉고 희며 단정한 자는 천상에 난다」, 그리고 천태대사의 임종 기록과 현장삼장의 임종 기록에 모두 「빛이 희다」고 적혀 있음을 드신다.

문증
  • 『대지도론』「임종 때 빛이 검은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 「붉고 희며 단정한 자는 천상에 난다」
  • 『수호경』지옥 15상 · 아귀 8상 · 축생 5상
  • 『마하지관』「몸의 검은빛은 지옥의 음에 견준다」
  • 「센니치니부인답서」지옥에 떨어지는 자는 검고 천 사람이 끄는 돌처럼 무거움, 선인은 희고 거위 털처럼 가벼움(1316쪽)
기록
  • 천태대사 임종빛이 희다
  • 현장삼장 임종빛이 희다
  • 선무외 임종「차츰 더 줄어들고 검은 살갗이 거무스름하며 뼈가 드러났다」(『송고승전』)漸く加縮小し黒皮隠隠として骨其露なり316쪽
도표 13 · 임종의 상

「어찌하여 지옥에 떨어졌는가」

그리고 대성인은 이 단락을 하나의 물음으로 맺으신다. 선무외삼장의 지옥의 업은 무엇인가. 어려서 왕위를 버렸으니 제일의 도심이다. 월지 오십여 나라를 다니며 수행했고, 자비가 넘쳐 한토까지 건너왔다. 천축 · 진단 · 일본, 일염부제 안에서 진언을 전하고 방울을 흔드는 이가 많은 것은 모두 이 사람의 덕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하여 지옥에 떨어졌는가. 후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어보아야 한다.

이 물음의 답은 이미 앞 장들에 있다. 도심도, 수행도, 자비도 그의 지옥행을 막지 못했다. 그를 떨어뜨린 것은 오직 하나, 법화경을 대일경 아래에 둔 방법이다. 개인의 덕행이 아무리 크더라도 의지한 법이 그릇되면 그 결과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보은초」가 거듭 말하는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의 가장 날카로운 적용이다. 오히려 덕이 크기 때문에 따르는 이가 많고, 따르는 이가 많기 때문에 그 방법이 일염부제에 퍼진다.

불법은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마주하는 것(師弟相對)이다. 스승이 지옥에 떨어지면 제자도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진언 · 염불 · 선의 중국 · 일본의 원조들이 모두 지옥에 떨어지는 상을 나타냈다고 본다. 중국 진언의 세 삼장은 지금 본 것처럼 모두 나쁜 현증을 나타냈고, 일본 진언의 조사인 홍법 · 자각도 그 죽음의 모습이 같았다고 대성인은 다음 장에서 밝히신다. 염불에서도 중국의 선도는 절 앞의 버드나무에 목을 매어 죽으려다 괴로워하며 죽었다고 전하며(보은초 제6편 「진언의 악한 현증과 홍법의 광혹」), 일본의 법연은 죽은 뒤 무덤이 파헤쳐져 유골이 가모강에 버려졌다고 전한다.

금강지 — 기우의 큰바람과 두 소녀

다음은 금강지삼장이다. 그는 남천축 대왕의 태자로서 금강정경을 한토에 전했으니, 그 덕은 선무외와 같다. 또 선무외와 서로 스승이 되어 모자란 데를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금강지가 칙선에 따라 비를 빌자 이레 안에 비가 내렸다. 천자가 크게 기뻐하던 차에 갑자기 큰바람이 불어왔다. 왕과 신하들은 흥이 깨져 사자를 붙여 그를 쫓아내게 했으나, 금강지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한토에 머물렀다.

마침내 현종이 총애하던 공주가 죽을 때가 되자 금강지는 기도를 명받았다. 그는 공주의 몸을 대신하게 한다며 궁중의 일곱 살 된 두 소녀를 땔나무에 쌓아 넣어 태워 죽였다. 대성인은 이를 「참혹하게 여겨진다」고 하신다. 그러나 공주도 끝내 되살아나지 않았다. 기도의 이름으로 무고한 어린 생명을 희생시키고도 아무 효험이 없었으니, 이것은 진언의 기도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어두운 현증이다.

큰바람이 몰아치는 당나라 장안 궁성의 지붕들 원경, 비 갠 뜰과 휘어진 버드나무
그림 · 큰바람이 몰아치는 당나라 장안 궁성의 지붕들 원경, 비 갠 뜰과 휘어진 버드나무

불공 — 마음만 돌아오고 몸은 돌아오지 않았다

불공삼장은 금강지를 따라 월지에서 한토로 왔다. 그는 스승 금강지와 선무외의 이런 일들을 보고 의아하게 여겼던 것인지, 두 사람이 입멸한 뒤 다시 월지로 돌아가 용지보살을 만나 진언을 다시 배웠다. 그리고 천태종에 귀복했다. 그러나 대성인은 「마음만 돌아왔을 뿐 몸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신다. 속으로는 천태의 법화경이 뛰어남을 알았으나, 겉으로는 끝내 진언사의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23장의 가상이 몸과 마음을 함께 돌이켜 천태를 섬긴 것과 대조된다. 이 점은 「보은초」 제3편 「천태 · 전교의 홍통」에서 본 불공의 『보리심론』 전래와도 이어진다.

불공도 기우를 명받았다. 사흘째에 비가 내리자 천자는 기뻐하여 몸소 보시를 내렸다. 그러나 잠시 뒤 큰바람이 내리쳐 내리까지 불어 부수고, 전상인과 공경들의 거처가 한 곳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천자가 크게 놀라 선지를 내려 바람을 멈추라 명했으나, 잠시 그쳤다가는 또 불고 또 불어 여러 날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사자를 붙여 불공을 쫓아내고서야 바람이 그쳤다.

대성인은 이 세 사람의 일을 「이 세 사람의 악풍은 한토와 일본의 일체 진언사의 큰바람」이라고 총괄하신다. 세 사람만의 우연이 아니라, 그들의 법을 이은 모든 진언사에게 공통된 현증이라는 것이다.

선무외
생몰637~735
출신중천축의 국주, 왕위를 버림
전한 경대일경 · 소실지경, 『대일경소』(일행) → 이동사승
입당현종의 스승(716 입당)
기우의 결과비는 내렸으나 큰바람이 나라를 깨뜨림
기타염마왕궁에서 「지금 이 삼계는」을 외어 돌아옴임종 — 몸이 줄고 검고 뼈가 드러남
금강지
생몰671~741
출신남천축 대왕의 태자
전한 경금강정경
입당720 낙양
기우의 결과이레 만에 비, 큰바람, 추방령
기타공주를 위한 기도에 두 소녀를 태움
불공
생몰705~774
출신—
전한 경—
입당금강지를 따라 입당
기우의 결과사흘 만에 비, 큰바람이 내리를 부숨, 추방해야 그침
기타월지로 돌아가 용지에게 다시 배움, 천태종에 귀복 — 「마음만 돌아오고 몸은 돌아오지 않음」
맺음
「이 세 사람의 악풍은 한토와 일본의 일체 진언사의 큰바람이니라」此の三人の悪風は漢土日本の一切の真言師の大風なり316쪽
도표 14 · 중국 진언의 세 조사

문영 11년 4월 12일의 큰바람 — 「참으로 그럴듯하구나」

장의 마지막에서 대성인은 한토의 이야기를 단숨에 대성인 당시의 가마쿠라로 끌어오신다. 지난 문영 11년(1274) 4월 12일의 큰바람은 아미타당의 가가 법인, 곧 동사 제일의 지자라는 이가 비를 빈 기도에 불어닥친 역풍이다. 가가 법인 조세이는 가마쿠라 오쿠라 아미타당의 별당으로, 진언종 오노류 조세이방의 개조였다. 동사는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의 악법을 전한 곳이니, 같은 법에 같은 큰바람이 분 것이다. 대성인은 이를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의 악법을 조금도 어긋남 없이 전하였던가. 참으로 그럴듯하구나, 그럴듯하구나」라고 반어로 맺으신다.

이 날짜에는 각별한 뜻이 있다. 4월 12일은 대성인이 사도에서 돌아와 4월 8일 헤이노사에몬노조와 대면하여 세 번째 고명을 하신 지 나흘 뒤다. 그 대면에서 대성인은 진언사에게 몽골 조복의 기도를 시키지 말라고 간하셨다. 그리고 제20장에서 대성인이 경문의 적중으로 드신 「같은 11년 4월의 큰바람」이 바로 이것이다. 제20장에서 예고한 큰바람의 정체가 제24장 끝에서 밝혀지는 구조다.

또한 대성인 자신도 기우를 둘러싼 대결을 겪으셨다. 문영 8년(1271) 큰 가뭄 때 고쿠라쿠사의 료칸이 막부의 명으로 기우를 하자, 대성인은 이레 안에 비가 내리면 료칸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一丈のほりを・こへぬもの十丈・二十丈のほりを・こうべきか……いかに二百五十戒の人人・百千人あつまりて七日二七日せめさせ給うに雨の下らざる上に大風は吹き候ぞ、これをもつて存ぜさせ給へ各各の往生は叶うまじきぞ

한 길의 해자를 넘지 못하는 자가 열 길 · 스무 길의 해자를 넘겠는가. …… 어찌하여 이백오십계를 지키는 사람들이 백천 명 모여 이레, 두 이레를 기도했는데 비가 내리지 않는 데다 큰바람이 부는가. 이것으로 아시라. 각자의 왕생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종종어진무어서」, 912쪽

비 한 번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성불이라는 더 큰 일을 이루겠느냐는 것이다. 이 일로 원한을 품은 료칸이 막부에 호소한 것이 다쓰노구치 법난의 실마리가 되었다.

현증을 중시하는 까닭 — 「가까운 현증으로 먼 믿음을」

대성인이 이처럼 현증을 중시하시는 까닭은 무엇인가. 대성인은 예언이 적중하는 것을 보고 불법의 정사도 판정하고, 영원한 행복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단정하셨다.

設い日蓮富楼那の弁を得て目連の通を現ずとも勘うる所当らずんば誰か之を信ぜん

설령 니치렌이 부루나의 변재를 얻고 목련의 신통을 나타낸다 해도, 헤아린 바가 맞지 않는다면 누가 이를 믿겠는가.

「현입정의초」, 537쪽

近き現証を引いて遠き信を取るべし

가까운 현증을 끌어 먼 믿음을 취해야 하느니라.

「호렌초」, 1045쪽

그리고 대성인은 자신의 「입정안국론」의 예언에 대해 「이미 감문이 이에 맞았으니 …… 이 글은 징험이 있는 글이니라」(「입정안국론오서」, 33쪽)라고 적으셨다.

국가의 위급을 구하고 일체중생에게 즉신성불의 큰 곧은길을 주시는 대성인의 법과 견주면, 비를 비는 기도조차 이루지 못하는 법이 얼마나 덧없는지 드러난다. 애초에 나라에 정법이 없고 그릇된 법이 성하기 때문에 큰 가뭄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릇된 법으로 기우를 하면 비도 내리지 않고, 국토도 편안해질 리 없다. 도리어 나라를 멸하고 백성을 멸하며 지옥의 업인을 거듭 쌓을 뿐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가뭄에 시달린 뒤 비를 빌어 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뭄이나 큰비, 큰바람의 피해가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다. 이것이 「입정안국」의 뜻이며, 제21장의 재난론이 이 장의 현증론과 만나는 자리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진언의 세 조사가 기우에서 큰바람을 부른 것은 우연한 기상 현상의 기록이 아니라, 그릇된 법에 의지한 기도가 바라는 것과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현증으로 읽힌다. 문증 · 이증 · 현증의 삼증 가운데 현증이 가장 무겁다는 것은, 불법이 관념이 아니라 삶과 사회 위에 나타나는 실제의 힘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제24장으로 「보은초」의 진언 파절은 중국의 조사를 마쳤다. 다음 장부터는 일본의 홍법과 자각에게 같은 현증의 잣대가 겨누어진다. 홍법의 기우와 「야반의 해」, 자각의 「해를 쏘는 꿈」, 그리고 선도의 꿈의 예가 「보은초」 제6편 「진언의 악한 현증과 홍법의 광혹」에서 이어진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제5편의 다섯 장은 하나의 물음을 여러 방향에서 비춘다. 정법을 말하는 한 사람과 그를 박해하는 나라 사이에서, 무엇이 나라를 지키고 무엇이 나라를 무너뜨리는가.

제20장은 그 물음의 현장이다. 일본은 자각 · 지증 · 홍법의 흐름에 물들어 한 사람도 방법 아닌 이가 없고, 선신은 부처 앞의 서원과 법미의 굶주림과 머물 곳 없음 때문에 사당을 불사르고 적광의 도읍으로 돌아갔다. 그 빈 나라에 대성인 홀로 남아 「입정안국론」으로 처음 간하셨고, 그 대가로 매리 · 악구 · 장목 · 도검과 두 번의 유죄, 다쓰노구치의 칼을 받으셨다. 그 칼 앞에서 하신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이다」라는 말씀은 『최승왕경』 · 『대집경』의 경문을 과절(跨節)의 뜻으로 읽은 결론이었으며, 문영 9년의 2월 소동과 문영 11년의 큰바람 · 몽골 내습은 그 경문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다.

제21장은 그 재난의 원리를 세운다. 방법 → 선신의 떠남 → 악귀의 침입 → 재난이라는 기본 사슬 위에, 대성인의 간효(먼 유래)와 국주의 원질(가까운 유래)이 더해져 재난이 극한에 이른다. 다이라노 기요모리나 승구의 난 때에는 방법을 드러내는 지인이 없어 「나라 안의 어지러움」에 그쳤으나, 지금은 잠든 사자에 손을 댄 것처럼 방법이 드러났다. 그리고 지금의 방법은 모리야처럼 불법의 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불법의 편인 척하며 불법을 잃게 하는 것이어서, 보통의 지인도 하열한 천인도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래서 「한토 · 월지의 옛 어지러움보다도 크다」.

제22장은 그 알아차리기 어려운 방법을 가려낼 기준을 세운다. 『법멸진경』은 선한 이가 하나 또는 둘이라 하고, 열반경은 정법을 믿는 이가 손톱 위의 흙처럼 적다고 한다. 세간은 모두 법화경을 믿는다 하고 니치렌 한 사람만 방법자라 하니, 경문과 세간은 물과 불이다. 경문을 쓸 것인가, 세간을 쓸 것인가. 그리고 열반경이 스스로 법화경을 「극」으로 가리키듯, 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 경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제23장은 그 기준으로 「법화경을 찬탄하면서 법화경의 마음을 죽이는」 방법을 해부한다. 가상의 『법화현론』과 자은의 『법화현찬』은 법화경을 칭찬했으나 그 가운데 헐뜯음이 있었다. 가상은 몸을 다리로 삼아 천태대사를 섬기며 참회했으나 그래도 죄가 사라지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문은 얕고 깊음이 있으나 마음은 하나」라는 가상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는 같고 사에서는 대일경이 뛰어나다」고 한 선무외, 그리고 참회도 없이 진언을 밤낮으로 행한 홍법 · 자각 · 지증은 어떠한가.

제24장은 그 물음에 현증으로 답한다. 왕위를 버린 도심과 오십여 나라의 수행과 한토까지 건너온 자비를 지닌 선무외도, 기우에서 큰바람을 부르고 임종에 검게 오그라든 몸을 남겼다. 금강지와 불공의 기우도 큰바람으로 끝났고, 그 악풍은 문영 11년 4월 12일 가마쿠라의 하늘에서 되풀이되었다. 「도리와 증문보다도 현증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이 편을 관통하는 것은 「보은」의 역설이다. 나라의 은혜를 갚는 이는 나라의 비위를 맞추는 이가 아니라 나라를 무너뜨리는 근원을 말하는 이이고, 그 때문에 나라에게 박해받는다. 그 박해가 다시 경문을 증명하고, 경문의 증명이 다시 그 사람이 바로 경문이 기다린 「선인」이요 「기둥」임을 밝힌다. 제1편에서 「은혜를 갚으려면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신 그 지자의 실제 모습이 여기에 있다.

다음 제6편 「진언의 악한 현증과 홍법의 광혹」에서는 같은 현증의 잣대가 일본의 진언 조사에게 겨누어진다. 홍법의 신센엔 기우와 「한밤의 해」, 자각의 「해를 쏘는 꿈」, 선도의 꿈의 예, 홍법에게 돌려지는 영험들을 차례로 따지고, 승구의 난에서 진언의 조복이 도리어 자신에게 돌아온 일로 진언 파절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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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원전

  • 「보은초」(報恩抄), 일본어판 어서전집 293–329쪽 · 「보은초 송문」 330쪽
  • 「입정안국론」 · 「입정안국론오서」 · 「개목초」 · 「선시초」 · 「현방법초」 · 「현입정의초」 · 「법화초심성불초」 · 「간효팔번초」 · 「종종어진무어서」 · 「형제초」 · 「묘호비구니답서」 · 「묘호니부인답서」 · 「센니치니부인답서」 · 「삼삼장기우사」 · 「호렌초」 · 「니이케어서」 · 「이체동심사」 · 「우에노전답서」 등(일본어판 어서전집)
  • 『묘법연화경』 비유품 · 상불경보살품 · 안락행품, T9 no.262
  • 『금광명경』 · 『금광명최승왕경』(의정 역) · 『대방등대집경』 월장분 · 『인왕반야바라밀경』
  • 『대반열반경』, T12 no.374 · 『불설법멸진경』 · 『불장경』
  • 『대일경』, T18 no.848 · 『대일경소』(선무외 · 일행), T39 no.1796
  • 전교대사 『현계론』 · 『수호국계장』 · 『법화수구』 / 길장 『법화현론』 / 규기 『묘법연화경현찬』
  • 현장 『대당서역기』 · 찬녕 『송고승전』

연구

  • Ryūichi Abé, The Weaving of Mantra: Kūkai and the Construction of Esoteric Buddhist Discours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On Repaying Debts of Gratitude」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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