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 일식 — 검은 원반이 반쯤 가린 해 아래 펼쳐진 넓은 들판과 강

재난 유래의 경증 — 네 경의 명문

입정안국론 · 제2편 · 제2단 제1~8장

立正安国論 — 災難由来の経証を引く어서 17–20쪽
저술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 가마쿠라
단
제2단 제1~8장
쪽수
어서 17:15–20:13
올린 이
호조 도키요리(야도야 입도를 통해)

아홉 편 · 입정안국론 10단 구성도

10단 46장 → 아홉 편
  1. 序講17 앞 · 33–35저술의 유래 · 대의 · 예언의 적중 · 오서 · 어감유래 · 별장
  2. 재난의 원인과 경증
  3. 재난의 원인과 경증
  4. 방법의 정체 — 악한 승려와 법연
  5. 방법의 정체 — 악한 승려와 법연
  6. 방법의 정체 — 악한 승려와 법연
  7. 방법 대치의 방법
  8. 방법 대치의 방법
  9. 방법 대치의 방법
  10. 정법 귀의와 맹세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났고 성인은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가 오고 귀가 와서 재난이 일어난다.」 입정안국론 제1편 「재난 유래의 근본 원인」에서 주인이 내놓은 이 대답은 객에게 놀라운 말이었다. 객은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청한다. 「그것은 어느 경에 나오는가. 그 증거를 듣고 싶다.」 주인은 「그 글은 매우 많고 그 증거는 넓다」 하고,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 · 『약사경』의 네 경을 차례로 펼친다. 정법이 버려지면 사천왕과 선신이 나라를 떠나고, 그 뒤에 역병과 혜성과 두 해와 일식과 지진과 가뭄과 외적이 잇따른다는 경문들이다. 그리고 주인은 다시 『인왕경』의 칠난과 『대집경』의 삼재를 들어 증거를 겹으로 쌓은 뒤, 「네 경의 글이 밝으니 누가 의심하겠는가」라는 말로 맺는다. 아홉 편 가운데 둘째인 이 여덟 장은 그 진단을 경문으로 증명하는 자리이며, 입정안국론이 뒤에서 예언하는 자계반역난 · 타국침핍난의 근거가 모두 여기에 놓여 있다.

입정안국론 아홉 편은 네 갈래로 이어진다. 재난의 원인과 그 경증을 밝히는 제1 · 2편, 방법(謗法)의 정체를 악한 승려와 법연(法然)의 『선택집(選択集)』에서 찾아내는 제3~5편, 방법을 다스리는 길을 논하는 제6~8편, 그리고 정법에 귀의하여 객이 맹세하는 제9편이다. 이 편은 첫 갈래의 둘째 자리로, 앞 편이 세운 명제 「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간다 →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성인이 떠난다 → 마 · 귀가 와서 재난이 일어난다」를 경문의 증거로 받쳐 준다. 객이 경증을 청하고 주인이 경문으로 답하는 이 형식 자체가, 대성인의 불법이 처음부터 끝까지 「문증(文證)」에 서 있음을 보여 준다.

여덟 장의 짜임은 단순하면서도 치밀하다. 제1장은 객의 짧은 물음이다. 제2장의 『금광명경』은 국왕이 정법을 버리면 사천왕과 무량한 선신이 그 나라를 떠나고, 그 결과 갖가지 재화가 일어난다는 인과를 가장 또렷이 말한다. 제3장의 『대집경』은 「불법이 참으로 은몰하면」으로 시작하여, 사람의 모습과 마음, 땅과 물과 산, 하늘의 해와 달, 중생의 수명까지 모두 무너지는 광경을 그리고, 그 끝에 선신이 이 탁한 나라를 버린다고 한다. 제4장의 『인왕경』은 「국토가 어지러울 때는 먼저 귀신이 어지럽다」는 재난의 순서와, 국왕의 복이 다하면 성인이 떠나고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원리를 든다. 제5장의 『약사경』은 국주에게 닥치는 일곱 난을 든다 — 그 가운데 둘이 바로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이다. 제6장은 『인왕경』의 칠난을 하나하나 자세히 펼치고, 제7장은 『대집경』의 삼재(곡귀 · 병혁 · 역병)와 정법을 지키지 않은 왕의 과보를 든다. 제8장은 이 모두를 「네 경의 글이 밝다」로 묶어, 재난의 유래를 다시 한 번 맺는다.

이 편은 입정안국론 전체에서 가장 많은 경문을 담은 편이다. 그 경문들은 먼 나라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가 원년(1257)의 정가 대지진, 정가 · 정원의 기근과 역병, 그리고 이 글을 올린 뒤에 일어난 문영 원년(1264)의 대혜성, 문영 5년(1268)의 몽골 국서, 문영 9년(1272)의 니가쓰 소동, 문영 11년(1274)과 홍안 4년(1281)의 몽골 내습까지, 경문의 글자 하나하나가 대성인 당시의 일본에 그대로 나타났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경문이 이천 년 뒤를 정확히 내다본 예언이었고, 그 경문을 몸으로 읽어 국가에 간한 대성인이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심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이 편은 경문과 역사를 나란히 놓고 읽어 가면서, 그 밑에 흐르는 의정불이(依正不二)의 원리를 함께 묻는다.

이 편의 장

第一章災難由来の経証を問う제2단 제1장 재난 유래의 경증을 묻다 — 객이 「선신과 성인이 떠나 재난이 잇따른다는 말은 어느 경에 나오는가」라며 경문의 증거를 청한다.
第二章経証の一 金光明経제2단 제2장 경증의 첫째 — 금광명경 — 국왕이 정법을 버리면 사천왕과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역병 · 혜성 · 두 해 · 일식 · 외적 등 갖가지 재화가 일어난다.
第三章経証の二 大集経제2단 제3장 경증의 둘째 — 대집경 — 불법이 참으로 은몰하면 사람과 국토와 하늘이 모두 무너지고, 선신이 이 탁한 나라를 버리고 떠난다.
第四章経証の三 仁王経제2단 제4장 경증의 셋째 — 인왕경 — 국토가 어지러울 때는 먼저 귀신이 어지럽고, 국왕의 복이 다하면 성인이 떠나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
第五章経証の四 薬師経제2단 제5장 경증의 넷째 — 약사경 — 국주에게 닥치는 일곱 난 — 인중질역 · 타국침핍 · 자계반역 · 성수변괴 · 일월박식 · 비시풍우 · 과시불우.
第六章再び仁王経を挙ぐ제2단 제6장 다시 인왕경을 들다 — 백억 수미의 세계와 남염부제의 나라들을 말하고, 일월실도에서 사방적래까지 칠난을 하나하나 펼친다.
第七章再び大集経を挙ぐ제2단 제7장 다시 대집경을 들다 — 정법이 멸하는 것을 보고도 지키지 않는 왕은 쌓은 선근을 모두 잃고, 나라에 곡귀 · 병혁 · 역병의 삼재가 일어난다.
第八章四経の明文により災由を結す제2단 제8장 네 경의 명문으로 재난의 유래를 맺다 — 네 경의 글은 밝다. 사람들이 사설을 믿어 정교에 등졌기 때문에 선신과 성인이 떠나고 악귀와 외도가 재난을 일으킨다.
제2단 제1장 재난 유래의 경증을 묻다
어서 17쪽 15행~18쪽 1행 · 第二段 第一章 災難由来の経証を問う

본문

원문 대조어서 17쪽 15행 ~ 18쪽 1행
本文 · 어서 원문

客の曰く、天下の災・国中の難、余独り嘆くのみに非ず、衆皆悲しむ。今蘭室に入つて、初めて芳詞を承るに、神聖去り辞し、災難並び起るとは、何れの経に出でたるや、其の証拠を聞かん。

풀이

객이 말하기를, 천하의 재앙과 나라 안의 난은 나 혼자만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뭇사람이 모두 슬퍼하는 바이니라. 이제 난초 향기 그윽한 방(蘭室)에 들어와 처음으로 향기로운 말씀을 받드니, 선신과 성인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 재난이 나란히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어느 경에 나오는 것이냐. 그 증거를 듣고자 하노라.

어구 풀이

天下の災・国中の難천하의 재앙 · 나라 안의 난
입정안국론 제1편에서 객이 늘어놓은 천변 · 지요 · 기근 · 역려(疫癘)를 한데 받는 말이다. 「천하」와 「국중」은 같은 뜻을 말을 바꾸어 거듭한 것으로, 재난이 한 지방 한 집안의 일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덮고 있음을 드러낸다.
余独り嘆くのみに非ず衆皆悲しむ나 혼자만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뭇사람이 모두 슬퍼한다
입정안국론 제1편 「재난 유래의 근본 원인」에서 주인이 「홀로 이 일을 근심하여 가슴속에 분비(憤悱)하던 차에」라고 한 말을 받는다. 주인 혼자의 근심이 아니라 온 나라 사람의 근심이라는 뜻이며, 객이 주인과 마음을 같이하고 있음을 보인다.
蘭室난실 · 난초 향기 그윽한 방
덕이 높은 사람이 머무는 곳. 향기로운 난초가 있는 방에 오래 있으면 그 향이 몸에 배듯, 덕 있는 사람과 사귀면 저절로 그 감화를 입는다는 비유로 쓰인다. 여기서는 주인의 처소, 곧 주인의 인격을 높여 부른 말이다.
麻畝の性삼밭의 성품
「난실」과 짝을 이루는 비유. 구부러지기 쉬운 쑥도 곧게 자라는 삼(麻)의 밭에 나면 곧게 자라듯, 환경에 따라 굽은 것이 바로잡힌다는 뜻이다. 입정안국론 제9편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에서 주인은 객의 마음이 바뀐 것을 기뻐하며 「난실의 벗과 사귀어 삼밭의 성품이 되었다」고 이 두 비유를 함께 쓴다.
芳詞향기로운 말씀
상대의 말을 높여 이르는 말. 주인의 첫 대답(입정안국론 제1편)을 가리킨다.
神聖去り辞し선신과 성인이 떠나간다
「신(神)」은 국토를 지키는 제천선신, 「성(聖)」은 정법을 지니고 넓히는 성인이다. 입정안국론 제1편에서 주인이 한 말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났고 성인은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를 한 구절로 줄였다.
災難並び起る재난이 나란히 일어난다
「마가 오고 귀가 와서 재앙이 일어나고 난이 일어난다」를 받는다. 재난이 하나씩 차례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겹쳐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何れの経に出でたるや其の証拠を聞かん어느 경에 나오는 것이냐, 그 증거를 듣고자 한다
경문의 증거, 곧 경증(經證)을 청하는 말이다. 이 물음에 답하여 주인은 제2장부터 네 경의 경문을 든다. 불법에서 교리의 바르고 그름을 가리는 세 가지 증거(문증 · 이증 · 현증) 가운데 문증을 먼저 세우는 대목이다.
文証문증 · 문헌의 증거
경문에 근거가 있다는 증거. 이증(도리의 증거) · 현증(현실에 나타난 증거)과 함께 삼증이라 한다. 대성인은 어느 주장이든 반드시 경문의 증거를 들어 세우셨다.

한 사람의 근심에서 온 나라의 근심으로

「천하의 재앙과 나라 안의 난은 나 혼자만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뭇사람이 모두 슬퍼하는 바다.」 객의 이 한마디는 짧지만 입정안국론 전체를 꿰는 마음가짐을 담고 있다. 자기 한 몸, 한 집안의 손익만 따지는 계산을 버리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백성의 고통을 제 고통으로 삼아 그 해결에 온 마음을 기울이는 것 — 그것이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이가 갖추어야 할 요체다. 객의 이 말은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이의 외침으로 읽힌다. 「나 혼자만이 아니다」라는 그 말은 한 나라 백성 전체가 괴로움 속에 잠겨 있는 현실을 어떻게든 타개해야 한다는 절실한 외침으로 들린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법의 이상은 백성이 저마다 제자리를 얻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제 일을 즐기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성인 당시의 현실은 그 이상과 너무도 멀었다. 정가 원년(1257)의 정가 대지진 이래 몇 해 동안 굶주림과 역병이 잇따랐고, 사람들은 길가에 쓰러졌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쪽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 민중이 희생되는 일이 되풀이되어 왔고, 그 밑바닥에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마음이 흘렀다. 입정안국론은 바로 그 현실 앞에서 쓰인 글이다.

이 지점에서 불법이 말하는 자비(慈悲)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불법은 누구 한 사람도 괴롭히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참된 기쁨과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것을 근본 정신으로 삼는다. 이것을 자비라 한다. 불법의 자비는 세상 사람들이 「사랑」과 섞어 생각하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 것으로 사람을 구할 수도 없고, 부처가 한평생을 들여 설할 까닭도 없다. 자비란 사실 위에서 중생의 괴로움을 덜고 즐거움을 주는 일이며, 사람의 마음에 둥지를 튼 악을 끊어 뿌리부터 구해 내는 엄한 사랑의 행위다. 대성인은 「간효팔번초」에서 열반경의 글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涅槃経に云く『一切衆生異の苦を受くるは悉く是如来一人の苦なり』等云云、日蓮云く一切衆生の同一苦は悉く是日蓮一人の苦と申すべし

열반경에 이르기를 「일체중생이 저마다 다른 괴로움을 받는 것은 모두 여래 한 사람의 괴로움이다」라고 하였느니라. 니치렌은 말하노니, 일체중생이 똑같이 받는 괴로움은 모두 니치렌 한 사람의 괴로움이라고 말해야 하느니라.

「간효팔번초」, 578쪽

부처의 자비가 얼마나 넓은지를 엿볼 수 있는 글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의 요체도 결국 이 한마디에 다한다. 객이 「나 혼자만이 아니다」라고 할 때 그 말에는 이미 이 자비의 싹이 들어 있고, 주인은 그 싹을 경문의 증거로 북돋워 간다.

입정안국론 제1편의 결론
  1. 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간다世皆正に背き人悉く悪に帰す
  2.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성인은 떠난다
  3. 마가 오고 귀가 와서 재난이 일어난다
제1장 객의 물음「선신과 성인이 떠나 재난이 나란히 일어난다는 것은 어느 경에 나오는가, 그 증거를 듣고 싶다」何れの経に出でたるや其の証拠を聞かん
주인의 대답
  • 금광명경(제2장)
  • 대집경(제3장)
  • 인왕경(제4장)
  • 약사경(제5장)
  • 다시 인왕경(제6장)
  • 다시 대집경(제7장)
맺음「네 경의 글이 밝으니 누가 의심하겠는가」(제8장)
도표 1 · 객의 물음과 주인의 대답

재난을 멈추는 근본의 이치 — 놀라운 대답

객은 주인에게 천하의 재앙과 나라 안의 재난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선신과 성인이 나라를 버리고 떠났기 때문에 나라 안에 재난이 나란히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불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 대답은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재해를 하늘의 운수나 정치의 잘잘못으로만 보았지, 그 근원에 「어떤 법을 믿는가」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라 안이 그릇된 법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제천선신과 성인이 나라를 버리고 자리를 떠나며, 그 대신 마왕과 악귀가 와서 나라 안에 재앙이 일어난다 — 이것은 대성인의 흔들림 없는 확신이셨다. 그러므로 이 확신을 대성인 한 사람의 사상쯤으로 다루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이것을 대성인 한 개인의 독특한 생각으로 여기는 것은 대성인의 참뜻도, 일념삼천의 법리도 모르고 얕은 지혜로 대성인의 불법을 헤아리는 것이다. 대성인이 민중을 구제하시는 근본 원리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대성인은 문증과 현증을 들어 이것을 강하게 말씀하셨고, 객으로 하여금 「어느 경에 나오는가, 그 증거를 듣고 싶다」고 묻게 하신 것도 까닭이 있는 일이다.

대성인이 세우신 이 원리는 일념삼천의 생명 철리에 근거한 사회관이며 국토관이다. 신(神)이라 하고 마(魔)라 하고 귀(鬼)라 하면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이해되기 어려운데, 그것은 이 말들이 너무 미신처럼 다루어져 불법 본래의 생명 철리가 비뚤어졌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제천선신이란 정법을 지니는 사람과 국토를 지키는 작용이고, 마와 귀란 생명과 복을 빼앗는 작용이다. 이 뜻을 바르게 알면 「선신이 떠나고 마가 온다」는 말은 결코 허황한 말이 아니다.

겸허하게 증거를 묻는 객의 태도

뜻밖의 대답을 들은 객은 화를 내지도, 비웃지도 않았다. 겸허하게 그 근거를 물었다. 이 물음의 태도야말로 사람으로서, 특히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이로서 갖추어야 할 모습이다.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묶여 처음 듣는 말을 한마디로 물리치는 것은 편협한 감정론에 지나지 않는다. 참으로 큰 사람, 마음 있는 사람이라면 아직 모르는 세계 앞에서 늘 겸허해야 한다. 덮어놓고 부정하기 전에 편견을 버리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혀 그것이 참인지 아인치를 따져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객은 막연한 설명이 아니라 「경문 위의 증거」를 청했다. 이에 대한 주인의 대답에서도, 또 이 뒤로 이어지는 객과 주인의 문답에서도, 대성인은 언제나 경문의 증거, 곧 증문(證文)을 보이며 답하신다. 이것이 입정안국론의 문답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법연의 『선택집』은 경문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논의를 세웠고,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은 스승이 한 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믿었다. 바르고 그름의 갈림이 여기서 이미 뚜렷하다.

니치칸 상인은 「의의판문초(依義判文抄)」에서 이렇게 말했다.

文証無きは悉く是れ邪義なりと、縦い等覚の大士法を説くと雖も経を手に把らざるは之を用ゆべからざるなり

문증이 없는 것은 모두 그릇된 뜻이다. 비록 등각의 대사가 법을 설한다 하더라도, 경을 손에 쥐지 않은 것은 써서는 안 된다.

니치칸 상인, 「의의판문초」 —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삼증(三證) · 오중상대(五重相對) · 사중흥폐(四重興廢) · 삼중비전(三重秘傳) 등, 불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증거를 따지는 가르침이다. 문증조차 없는 종교를 어떻게 바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종교는 바르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이미 종교로서의 자격을 잃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염불 · 진언 · 선 등 세상에서 오랜 전통을 지녔다고 여기는 종파들도 그 교의의 핵심은 경문에 의거하지 않고 뒤에 만들어 낸 것이며, 대성인만이 엄격하게 경문에 따라 뜻을 세우셨다. 입정안국론 제4편 「정법 비방의 원흉 — 법연의 『선택집』」에서 이 비판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입정안국의 이상 — 법을 바르게 세워 나라를 편안히 하다

입정안국이란 근본이 되는 사상 · 철학 · 종교를 바로 세움으로써 나라와 사회를 편안하게 하고, 나아가 사람들 모두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려는 이념이다. 위대한 종교는 한 사람에게도, 한 집안에도, 한 나라에도, 그리고 온 인류에게도 반드시 큰 발전과 번영과 평화를 약속한다. 한 사람의 생명에 미치는 바른 법의 힘은 그대로 나라와 사회에도 미친다. 이것이 바로 입정안국의 정신이다.

입정안국론에는, 석존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그릇된 법이 한 나라에 퍼지면 반드시 그 나라에 삼재칠난이 일어나 민중이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설해져 있다. 그리고 위대한 불국토, 곧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와 사회를 이루려면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법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끝까지 설한다. 그 결론이 입정안국론의 맺음 가까이(입정안국론 제9편)에 나오는 이 글이다.

汝早く信仰の寸心を改めて速に実乗の一善に帰せよ、然れば則ち三界は皆仏国なり仏国其れ衰んや十方は悉く宝土なり宝土何ぞ壊れんや、国に衰微無く土に破壊無んば身は是れ安全・心は是れ禅定ならん

그대는 어서 신앙의 작은 마음을 고쳐 속히 실승(實乘)의 일선(一善)에 귀의하라. 그리하면 삼계는 모두 불국이니라. 불국이 어찌 쇠하겠느냐. 시방은 모두 보토(寶土)이니라. 보토가 어찌 무너지겠느냐. 나라에 쇠미함이 없고 국토에 파괴가 없으면 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선정에 들 것이니라.

「입정안국론」, 32쪽

사람으로서 행복과 평화를 바라지 않는 이는 없다. 그러나 제 한 몸의 행복과 번영만 바라는 것은 이기주의일 뿐이다. 참으로 큰 불법을 받드는 사람은 나라와 사회, 나아가 모든 사람과 온 세상의 행복과 평화를 간절히 바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아간다. 대성인은 「여설수행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天下万民・諸乗一仏乗と成つて妙法独り繁昌せん時、万民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唱え奉らば吹く風枝をならさず雨壤を砕かず、代は羲農の世となりて今生には不祥の災難を払ひ長生の術を得、人法共に不老不死の理顕れん時を 各各御覧ぜよ 現世安穏の証文疑い有る可からざる者なり

천하 만민이 여러 승(乘)을 버리고 일불승이 되어 묘법만이 홀로 번창할 때, 만민이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한다면, 부는 바람은 가지를 울리지 않고 비는 흙덩이를 부수지 않으며, 세상은 복희 · 신농의 시대처럼 되어 이생에서는 상서롭지 못한 재난을 물리치고 오래 사는 법을 얻어, 사람과 법이 함께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이치가 나타날 때를 각자 보시라. 현세 안온의 증문이 의심할 여지가 없느니라.

「여설수행초」, 502쪽

이것도 입정안국의 이념을 말씀하신 것으로 받들어야 한다. 아울러 한 나라와 사회를 이끄는 이들이 어떤 법을 지니느냐에 따라 민중의 행복과 불행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은,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에 인용하신 경문에 「국왕」 「현왕」이라는 말이 유난히 많이 나오는 데서도 분명하다. 이 편에서 읽어 갈 네 경도 모두 「왕」이 정법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재난의 갈림길로 삼는다.

다만 종교의 바르고 그름에 따라 삼재칠난과 천변지요가 일어나고 멎는다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복운의 문제, 제천선신의 문제, 의정불이의 문제, 곧 생명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로 귀착한다. 한 사람에게 복운의 있고 없음과 제천선신의 가호와 치벌이 논해지듯, 한 국토와 한 세계에도 똑같이 복운과 제천선신의 문제가 논해져야 한다. 그래서 그릇된 법과 삼재칠난의 관계는 의정불이의 원리에서 근본적으로 따져 보아야 한다.

삼재칠난과 의정불이

입정안국론은 정법이 숨고 그릇된 가르침이 퍼지면 반드시 삼재칠난이 일어난다는 것을 『금광명경』 등 네 경의 글을 들어 말한다. 그릇된 가르침 때문에 사람의 생명이 악에 물들면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나아가 국토에도 하늘의 현상에도 이변이 생겨 사람들을 나락으로 몰아넣는다. 반대로 제호(題號) 그대로 정법을 세우면 삼재칠난이 멎고 한 나라가 번영하여, 결코 무너지지 않는 불국토가 나타난다.

이 가르침 전체를 꿰는 것은, 선이든 악이든 사회와 환경에 영향을 주고 환경을 바꾸어 가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불법의 근본이며, 이 원리를 의정불이(依正不二)라 한다.

의정(依正)이란 의보(依報)와 정보(正報)다. 정보란 과보를 받는 주체, 쉽게 말해 자기 자신의 생명이다. 의보란 정보가 의지하는 곳, 곧 자기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다. 이 둘이 둘이면서 둘이 아닌(而二不二) 관계에 있다는 것이 의정불이다. 환경이 먼저냐 사람의 마음이 먼저냐를 두고 여러 사상이 맞서 왔지만, 의정불이의 처지에서 보면 그것들은 모두 어느 한 면만을 강조한 부분적인 견해이며, 의정불이라는 생명관 안에 모두 거두어진다. 대성인은 「서상어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夫十方は依報なり.衆生は正報なり譬へば依報は影のごとし正報は体のごとし・身なくば影なし正報なくば依報なし・又正報をば依報をもつて此れをつくる

무릇 시방은 의보이고 중생은 정보이니라. 비유하면 의보는 그림자와 같고 정보는 몸과 같으니, 몸이 없으면 그림자가 없듯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느니라. 또 정보는 의보로써 이것을 만드느니라.

「서상어서」, 1140쪽
정보(正報)과보를 받는 주체, 곧 자기 자신의 생명 · 중생
두 방향
①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다」 — 생명이 환경을 만든다
② 「정보는 의보로써 이것을 만든다」 — 환경이 생명을 이룬다
의보(依報)정보가 의지하는 곳, 곧 자기를 둘러싼 모든 환경 · 국토
의보는 그림자, 정보는 몸依報は影のごとし正報は体のごとし(「서상어서」, 1140쪽)그러므로 세상이 정에 등지면 국토에 재난이 나타난다
도표 2 · 의정불이

여기에는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다」와 「정보는 의보로써 이것을 만든다」는 두 처지에서 의보와 정보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말해져 있다. 우리는 공기 · 물 · 먹을거리 · 햇빛 · 기온 같은 환경과 끊임없이 조화를 이루며 살고, 아주 작은 환경의 변화도 생명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어떠하냐에 따라 우리가 받는 영향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니 환경은 중요하며, 그것을 무시하고 한 사람의 행복을 생각할 수는 없다. 더 좋은 환경을 고르고 환경을 더 좋게 만들려는 것은 사람의 당연한 마음이고 행동이다.

자기의 일념이 환경을 바꾼다 — 십계와 국토

그러나 이것은 「정보는 의보로써 이것을 만든다」는 처지, 곧 환경이 자기를 형성한다는 면에 눈을 둔 생각이다. 과연 환경이 우리를 꽁꽁 묶어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나쁜 환경에 태어난 사람은 그것을 숙명으로 여겨 그저 체념할 수밖에 없다. 환경을 바꾸려는 모든 노력도 무의미해진다. 사람의 내면 세계를 묻지 않고서 어떻게 참된 행복을 세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불법은 환경이 자기를 형성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또한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다」고 설하여 생명의 깊은 곳을 밝히고, 거기서 어떻게 강한 자기를 세우며 환경을 바꾸고 환경을 이끄는 자기를 이룰 것인가를 설한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면이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이다. 자기 생명의 변혁 없이 환경만 정비하는 것은 모래 위의 누각이며, 사람의 생명 안에 있는 기쁨과 슬픔을 빼고서 행복을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법은 이 사람의 내면 세계를 십계론(十界論)으로 밝힌다.

이 열 가지 생명의 작용은 환경과 떨어질 수 없으며, 환경에 미묘하게 그 영향을 미친다. 먼저 그 사람 자신에게, 이를테면 지옥의 괴로움에 잠겨 있을 때에는 어디에 가든 모든 세계가 지옥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쳐져도 생명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그 세계는 어둡다. 수라의 경애에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세계가 짜증스럽고, 「수라는 몸의 키가 팔만 유순」이라 하듯 남이 작고 하찮게 보인다. 존엄한 사람의 생명조차 태연히 해칠 수 있는 것이다. 천계의 사람에게는 어디를 가든 즐겁고 기쁜 경애다. 이 모두는 생명 자체의 변화이며, 의식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생명 속에 불계를 솟아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식하여 바꾸려는 수행으로 안 된다면 무엇으로 나타낼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다.

또 자기 자신이 십계의 생명 활동을 하는 당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십계를 갖추고 시시각각 연을 만나 저마다의 경애를 나타내며 살아가는 당체다. 그러므로 자기 생명의 작용이 미묘하게 다른 사람에게 퍼져 간다. 한 집안에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온 집안이 어딘지 어둡고, 자기의 수라계는 다른 사람의 수라계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기뻐하는 사람의 기쁨은 얼굴에 나타나고 온몸과 행동에 생기를 주어 주위 사람에게 갖가지 영향을 준다.

불법은 자기의 생명과 중생 전체의 생명이 십계호구(十界互具)의 당체라고 설할 뿐 아니라, 우주의 삼라만상, 아니 우주 그 자체가 십계호구의 당체라고 밝힌다. 그러므로 자기 생명의 변화가 미묘하게 국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국토에도 십계가 있다고 밝힌 데에 불법의 위대함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국토 자체에 불계의 작용이 있고, 그것이 나타나면 멸하지 않는 낙토가 된다는 것은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것 가운데에서도 더욱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것이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이 뜻을 이렇게 문답하셨다.

問うて曰く百界千如と一念三千と差別如何、答えて曰く百界千如は有情界に限り一念三千は情非情に亘る、不審して云く非情に十如是亘るならば草木に心有つて有情の如く成仏を為す可きや如何、答えて曰く此の事難信難解なり

묻기를, 백계천여와 일념삼천은 어떻게 다른가. 답하기를, 백계천여는 유정계에 한정되고, 일념삼천은 유정과 비정에 걸치느니라. 의심하여 이르기를, 비정에도 십여시가 걸친다면 초목에도 마음이 있어 유정처럼 성불한다는 말인가. 답하기를, 이 일은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니라.

「관심의 본존초」, 239쪽

이어서 대성인은 천태대사의 『마하지관』 제5를 인용하여 국토에도 십여시가 갖추어져 있음을 증명하셨다.

止観第五に云く「国土世間亦十種の法を具す所以に悪国土・相・性・体・力」等と云云

『마하지관』 제5에 이르기를 「국토세간도 또한 열 가지 법을 갖추니, 그러므로 악한 국토의 상 · 성 · 체 · 력」이라 하였느니라.

「관심의 본존초」, 239쪽

참으로 집 한 채도 거기 사는 사람에 따라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한다. 한 나라도 거기 사는 민중의 마음이 거칠어지고 지쳐 있으면 국토도 황폐해진다. 국토 또한 사람 마음의 반영이다. 니치칸 상인은 「삼중비전초」에서 십계와 그 사는 곳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지옥은 붉은 쇠에 의지하여 살고, 아귀는 염부제 아래 오백 유순에 살며, 축생은 물과 뭍과 하늘에 살고, 수라는 바닷가와 바다 밑에 살며, 사람은 대지에 의지하여 살고, 하늘은 궁전에 의지하여 살며, 이승은 방편토에, 보살은 실보토에 의지하여 살고, 부처는 상적광토에 머문다. 이것도 정보와 의보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회에 탐 · 진 · 치의 삼독이 가득 차고 사람들의 마음이 삼악도 · 사악취의 경애에 떨어져 있으면, 그 환경도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져 사람들을 불행으로 떠미는 작용이 가득해진다. 역병이 일어나고, 굶주림이 사람들을 짓누르고, 폭풍이 맹위를 떨치고, 땅이 흔들리고, 홍수가 난다. 그야말로 국토 또한 삼악 · 사악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지난 역사를 보아도 사람의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 큰 재해가 잇따랐다는 것은 이 원리의 바름을 뒷받침한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선신이 떠나고 마가 와서 재난이 일어난다」는 말은 의정불이 · 일념삼천의 원리 위에 선 국토관이다. 사람의 생명이 그릇된 법에 물들면 그 탁함이 국토와 하늘에까지 미치고, 바른 법에 서면 국토가 그대로 불국이 된다.

묘법을 근본으로 한 낙토 건설

불법은 어떻게 한 사람의 숙명을 바꾸어 거기에 불계를 솟아나게 하는가, 나아가 어떻게 하면 한 나라 전체의 숙명을 바꾸어 무너지지 않는 불국토를 쌓을 수 있는가, 그 길을 밝힌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말법에는 대성인이 건립하신 본존을 향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것밖에 그 길이 없다. 남묘호렌게쿄는 범부가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우주의 근원적인 힘이며 모든 것을 변화시켜 가는 근본이다. 본존을 향해 창제할 때 우리는 일념 속에 우주 크기의 자기를 발견할 수 있고, 막힘없는 강한 생명력이 나타나 이 일생을 행복하게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신심이 강한 이들의 일념은 한 나라를 일으키고 낙토를 이루는 힘이 된다. 이것은 이론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결국 체험하고 실증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이 그릇된 종교 때문에 삼재칠난이 일어나고 정법으로 국토가 안온해진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이 그 사람의 그때까지의 상식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상식이라는 것은 흔히 그릇된 인식인 경우가 많다. 한번 머릿속에 특정한 견해가 굳어지면 새로운 사실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가 어려워진다.

다쓰노구치 법난에 나타난 불가사의

불법의 눈을 뜨고 보면, 우리의 일념으로 사회를 바꾸고 한 나라를 바꾸고 국토까지 바꾸어 간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묘법을 믿으면 제천의 가호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 제천선신에 대해서는 입정안국론 제1편 「재난 유래의 근본 원인」에서 자세히 살폈거니와, 그 본질은 우주 그 자체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종종어진무어서」에는 문영 8년(1271) 9월 12일 밤, 대성인이 다쓰노구치(竜の口)로 끌려가시는 길에 와카미야 대로에서 하치만 대보살을 꾸짖으시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다쓰노구치 형장의 모습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いかに・やくそくをば・たがへらるるぞと申せし時、江のしまのかたより月のごとく・ひかりたる物まりのやうにて辰巳のかたより戌亥のかたへ・ひかりわたる、十二日の夜のあけぐれ人の面も・みへざりしが物のひかり月よのやうにて人人の面もみなみゆ、太刀取目くらみ・たふれ臥し兵共おぢ怖れ・けうさめて一町計りはせのき

「어찌 약속을 어기시는가」 하고 말하였을 때, 에노시마 쪽에서 달처럼 빛나는 것이 공 같은 모양으로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빛나며 건너갔다. 12일 밤의 새벽녘이라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의 빛이 달밤처럼 밝아 사람들의 얼굴이 다 보였다. 칼잡이는 눈이 어두워져 쓰러지고, 병사들은 겁에 질려 흥이 깨어 한 정(町)쯤 달아나 물러났느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4쪽

이 현상을 두고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자연 현상으로 설명하려 할지 모른다. 설령 그렇게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대성인이 제천선신을 향해 가호하라고 꾸짖으신 뒤, 그것도 목이 베이기 바로 직전에 이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 그리고 막부의 관리들이 끝내 대성인의 목을 베지 못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그런 설명으로 다 풀리지 않는다. 그것은 불법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결코 밝혀지지 않는 일이다.

나아가 사형을 면하신 대성인이 에치(依智)의 혼마 로쿠로자에몬의 저택에서 다시 제천선신을 꾸짖으셨을 때에도 곧바로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어났다. 같은 「종종어진무어서」에 이렇게 쓰셨다.

いかに月天いかに月天とせめしかば、其のしるしにや天より明星の如くなる大星下りて前の梅の木の枝に・かかりてありしかば・もののふども皆えんより・とびをり或は大庭にひれふし或は家のうしろへにげぬ

「어찌 된 일인가 월천이여, 어찌 된 일인가 월천이여」 하고 꾸짖었더니, 그 징표였는지 하늘에서 샛별 같은 큰 별이 내려와 앞뜰 매화나무 가지에 걸렸으므로, 무사들은 모두 툇마루에서 뛰어내리고, 혹은 뜰에 엎드리고, 혹은 집 뒤로 달아났느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5쪽

대성인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 그것도 제천을 꾸짖으신 뒤에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다쓰노구치의 일과 아울러 생각하면, 이런 현상이 잇달아 두 번 일어난다는 것을 단지 우연이라고 넘길 수 있겠는가. 이 사실을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의정불이의 원리밖에 없다.

의정불이의 원리를 밝히고, 거기서 세상의 불행의 근원을 보이고, 그 해결을 뚜렷이 제시한 입정안국론이야말로 한 나라는 물론 온 세상에 행복을 불러올 힘 있는 글이다. 도다 조세이 제2대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식자 가운데에는 입정안국론을 단지 니치렌 대성인의 치우친 생각으로 보는 이가 있으나, 이것은 참으로 얕은 편견이다. 이 글이야말로 엄격한 이치와 현상이 일치함을 보인, 앞사람이 걸어 보지 못한 글이며, 우주관 · 사회관으로 보아 조금도 어긋남 없는 바른 철리다. 또 안국론을 한낱 관념적인 철학론으로 여기는 이도 있으나 이것 역시 진실을 알지 못한 편견이다. 입정안국론이야말로 국가 안온 · 천하 태평의 한 나라를 다스리는 큰 법칙이다.」 객이 청한 「경문의 증거」가 다음 장부터 차례로 펼쳐진다.

제2단 제2장 경증의 첫째 — 금광명경
어서 18쪽 2~12행 · 第二段 第二章 経証の一 金光明経

본문

원문 대조어서 18쪽 2~12행
本文 · 어서 원문

主人の曰く、其の文繁多にして其の証弘博なり。 金光明経に云く。 「其の国土に於て此の経有りと雖も、未だ甞て流布せしめず、捨離の心を生じて聴聞せん事を楽わず、亦供養し尊重し讃歎せず、四部の衆、持経の人を見て、亦復尊重し乃至供養すること能わず。遂に我れ等及び余の眷属無量の諸天をして、此の甚深の妙法を聞くことを得ざらしめ、甘露の味に背き、正法の流を失い、威光及以び勢力有ること無からしむ。悪趣を増長し、人天を損減し、生死の河に墜ちて涅槃の路に乖かん。 世尊、我等四王並びに諸の眷属及び薬叉等、斯くの如き事を見て、其の国土を捨てて擁護の心無けん。但だ我等のみ是の王を捨棄するに非ず、必ず無量の国土を守護する諸大善神有らんも、皆悉く捨去せん。 既に捨離し已りなば、其の国当に種種の災禍有つて、国位を喪失すべし。一切の人衆、皆善心無く、唯繋縛・殺害・瞋諍のみ有つて、互に相讒諂し、枉げて辜無きに及ばん。疫病流行し、彗星数ば出で、両の日並び現じ、薄蝕恒無く、黒白の二虹不祥の相を表わし、星流れ地動き、井の内に声を発し、暴雨・悪風時節に依らず、常に飢饉に遭つて苗実成らず、多く他方の怨賊有つて国内を侵掠し、人民諸の苦悩を受け、土地に所楽の処有ること無けん」已上。

풀이

주인이 말하기를, 그 글은 매우 많고 그 증거는 넓으니라. 금광명경에 이르기를, 「그 국토에 이 경이 있을지라도 아직 한 번도 유포하게 하지 않고, 버리고 떠나려는 마음을 내어 들으려 하지 않으며, 또 공양하지도 존중하지도 찬탄하지도 않고, 사부의 대중과 경을 지니는 사람을 보고도 또한 존중하지도 공양하지도 못하리라. 마침내 우리들과 그 밖의 권속인 한량없는 제천으로 하여금 이 매우 깊은 묘법을 듣지 못하게 하여, 감로의 맛을 등지고 정법의 흐름을 잃어 위광과 세력이 없게 하리라. 악취(惡趣)를 늘리고 인계 · 천계를 덜어, 생사의 강에 떨어져 열반의 길에 어긋나리라. 세존이시여, 우리 사천왕과 여러 권속과 약차 등은 이와 같은 일을 보고 그 국토를 버려 옹호할 마음이 없어지리이다. 다만 우리만이 이 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량없는 국토를 수호하는 여러 대선신이 반드시 있을지라도 모두 다 버리고 떠나리이다. 이미 버리고 떠나고 나면, 그 나라에는 마땅히 갖가지 재화가 있어 국위(國位)를 잃으리이다. 모든 사람들은 다 선한 마음이 없고 오직 묶고 죽이고 성내어 다툴 뿐이며, 서로 헐뜯고 아첨하여 법을 굽혀 죄 없는 사람에게까지 미치리이다. 역병이 유행하고, 혜성이 자주 나타나며, 두 해가 나란히 나타나고, 해와 달의 박식(薄蝕)이 일정함이 없으며, 검고 흰 두 무지개가 상서롭지 못한 모습을 드러내고, 별이 흐르고 땅이 움직이며, 우물 속에서 소리가 나고, 폭우와 사나운 바람이 절기를 따르지 않으며, 늘 기근을 만나 싹과 열매가 여물지 않고, 다른 나라의 원적이 많이 와서 나라 안을 침략하여, 백성은 갖가지 고뇌를 받고 국토에는 즐거이 살 곳이 없으리이다」 이상.

어구 풀이

其の文繁多にして其の証弘博なり그 글은 매우 많고 그 증거는 넓다
선신과 성인이 떠나 재난이 일어난다는 경문은 일체경 가운데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서 간추려 네 경의 분명한 글을 든다.
金光明経금광명경
이 경이 유포되는 곳은 사천왕을 비롯한 제천선신이 그 나라를 지키고 이롭게 하여 재액이 없고 사람들이 행복해진다고 설하는 경이다. 한역은 다섯 번 번역되어 셋이 남았다(五種三存). 북량(北涼) 담무참(曇無讖) 역 『금광명경』 4권과 당(唐) 의정(義淨) 역 『금광명최승왕경』 10권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담무참 역이 널리 쓰였고 길장(吉藏)의 소가 있으며 천태대사도 이 경을 소석했다. 일본에서는 법화경 · 인왕경과 함께 호국삼부경의 하나로 꼽혔고, 쇼무(聖武) 천황은 『금광명최승왕경』을 사경하여 전국에 나누어 주고 각 지방에 국분사(國分寺)를 세워 「금광명사천왕호국지사(金光明四天王護國之寺)」라 불렀다. 본문의 인용은 사천왕품의 글이다.
四部の衆사부의 대중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 불법을 지니는 출가 · 재가의 남녀 모두다.
持経の人경을 지니는 사람
정법을 받아 지니는 사람. 문저에서 읽으면 말법에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받아 지니는 사람이다.
甚深の妙法매우 깊은 묘법
니치칸 상인은 적문의 뜻으로는 제법실상의 묘법, 본문의 뜻으로는 본인본과의 묘법, 문저의 뜻으로는 삼대비법을 머금은 묘법이라고 풀었다.
甘露の味감로의 맛
감로는 하늘 사람이 먹는다는 불사(不死)의 약. 제천은 정법의 법미를 먹고 위광과 세력을 얻는다고 한다. 정법이 끊기면 제천이 이 맛을 얻지 못한다.
威光及以び勢力有ること無からしむ위광과 세력이 없게 한다
법미에 굶주린 제천이 나라를 지킬 힘을 잃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 구절의 주어를 모두 제천선신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悪趣を増長し人天を損減し악취를 늘리고 인 · 천을 던다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의 사악취가 늘고, 인계 · 천계의 평온함과 기쁨이 줄어드는 것이다.
生死の河に墜ちて涅槃の路に乖かん생사의 강에 떨어져 열반의 길에 어긋난다
번뇌와 무명의 괴로움이 가득한 미혹의 세계에 빠져 성불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四王사천왕
수미산 중턱에서 사방을 지키는 지국천(동) · 증장천(남) · 광목천(서) · 다문천(북). 제석천을 섬기며 불법과 그 행자를 수호하는 제천이다.
薬叉약차
범어 야크샤(yakṣa)의 음사. 야차(夜叉)라고도 쓰며 용건(勇健) · 포악 등으로 옮긴다. 숲에 사는 귀신으로, 땅 · 허공 · 하늘의 세 무리가 있어 허공 · 하늘의 야차는 날고 땅의 야차는 날지 못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팔부중의 하나로, 비사문천(다문천)의 권속이 되어 북방을 지킨다.
国位を喪失すべし국위를 잃으리라
국왕이 그 자리를 잃는 것. 나라의 주권이 무너지는 것까지 포함한다.
互に相讒諂し枉げて辜無きに及ばん서로 헐뜯고 아첨하여 법을 굽혀 죄 없는 이에게 미친다
「참(讒)」은 남을 모함하는 것, 「첨(諂)」은 윗사람에게 아첨하는 것이다. 법을 굽혀 죄 없는 사람을 죄에 빠뜨리는 정치의 타락을 말한다.
両の日並び現じ두 해가 나란히 나타난다
해가 둘 나란히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현상. 하늘에 떠 있는 얼음 결정에 햇빛이 꺾이고 반사되어 생기는 환일(幻日) 등으로, 실제 해 곁에 또 하나의 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음양도에서는 두 왕이 나란히 서서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흉조로 여겼다.
薄蝕恒無く박식이 일정함이 없다
「박(薄)」은 안개나 먼지 때문에 해와 달의 빛이 엷어지는 것, 「식(蝕)」은 일식 · 월식이다. 「항무(恒無)」는 규칙이 없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예부터 해와 달의 박식이 어지러운 것은 제왕의 권위가 쇠하거나 다른 나라에 침략당할 흉조로 여겼다.
黒白の二虹검고 흰 두 무지개
검은 무지개는 급격한 기상 변화로 생기는 사나운 기류 같은 것으로, 흰 무지개는 환일환(幻日環) 때 나타나는 빛의 띠로 짐작된다. 중국에서는 흰 무지개를 변란과 전쟁의 전조로 두려워했다.
井の内に声を発し우물 속에서 소리가 난다
지진 때 짧은 주기의 진동이 공기를 울려 먼 우레나 큰 포 소리 같은 소리를 내는 일이 있는데, 그런 땅속 변동과 관계된 소리로 보인다.
他方の怨賊다른 나라의 원적
외적. 『약사경』의 타국침핍난, 『인왕경』의 사방적래난에 해당한다. 입정안국론을 올린 문응 원년(1260)에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난이었다.

네 경을 경증으로 들다 — 왜 이전경을 인용하는가

정법을 버리고 그릇된 법에 귀의하면 제천과 성인이 그 나라를 버리고 떠나 재난이 일어난다 — 이 말의 증문으로 대성인은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 · 『약사경』의 네 경을 드셨다.

그런데 이 네 경은 모두 법화경보다 앞서 설해진, 이른바 「이전경(爾前經)」이다.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무량의경의 「사십여 년 동안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방편품의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다만 무상도를 설한다」 같은 경문을 들어 이전경을 파하셨다. 그렇다면 이전경을 파하면서 왜 여기서는 이전경을 인용하셨는가. 이 물음은 대성인 재세 때에도 실제로 제기되었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득의초」에서 이 물음에 분명히 답하셨다.

一北方の能化難じて云く爾前の経をば未顕真実と捨て乍ら安国論には爾前の経を引き文証とする事自語相違と不審の事・前前申せし如し、総じて一代聖教を大に分つて二と為す一には大綱二には網目なり、初の大綱とは成仏得道の教なり、成仏の教とは法華経なり、次に網目とは法華已前の諸経なり、彼の諸経等は不成仏の教なり

하나, 북방의 능화(能化)가 따져 말하기를, 이전의 경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여 버리면서도 안국론에서는 이전의 경을 끌어다 문증으로 삼는 것은 스스로 한 말에 어긋난다고 의심하는 일은 앞서 말한 바와 같으니라. 대저 일대 성교를 크게 나누어 둘로 하니, 첫째는 대강(大綱), 둘째는 망목(網目)이니라. 처음의 대강이란 성불득도의 가르침이니, 성불의 가르침이란 법화경이니라. 다음의 망목이란 법화 이전의 여러 경이니, 저 여러 경 등은 성불하지 못하는 가르침이니라.

「관심의 본존득의초」, 972쪽

所詮成仏の大綱を法華に之を説き其の余の網目は衆典に之を明す、法華の為の網目なるが故に法華の証文に之を引き用ゆ可きなり、其の上法華経にて実義有る可きを爾前の経にして名字計りののしる事全く法華の為なり、然る間尤も法華の証文となるべし

결국 성불의 대강은 법화경에 설하고, 그 밖의 망목은 여러 경전에 밝혔느니라. 법화경을 위한 망목이므로 법화경의 증문으로 끌어다 써야 하느니라. 게다가 법화경에서 참뜻이 있어야 할 것을 이전의 경에서 이름만 떠들썩하게 한 것은 오로지 법화경을 위한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법화경의 증문이 되느니라.

「관심의 본존득의초」, 973쪽

성불득도의 경은 법화경에 한정되지만, 그 밖의 일은 다른 경문에 밝혀져 있다. 그 실체가 법화경임을 알고 쓰면 모든 경이 다 살아난다는 말씀이다. 그물에 비유하면, 법화경은 그물을 끌어올리는 굵은 벼리(大綱)이고 이전의 여러 경은 그 벼리에 매달린 그물코(網目)다. 벼리 없는 그물코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지만, 벼리를 쥐고 나면 그물코 하나하나가 제 몫을 한다.

니치칸 상인은 「입정안국론 문단」에서 대성인이 이전의 경을 끌어다 증거로 삼으신 까닭을 간추려 넷으로 들었다.

대강(법화경)
망목(이전경)
  • ①이전경은 법화경의 망목이므로대강(법화경)을 위해 망목(이전경)을 쓴다「관심의 본존득의초」 973쪽
  • ②글은 이전경에 있으나 뜻은 법화경에 있으므로이전경은 이름만 있고 실체는 법화경에 있다
  • ③이전경의 열등함으로 법화경의 뛰어남을 견주므로열등한 경조차 이러하니 하물며 법화경이랴「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 1146쪽 · 「선시초」 265쪽
  • ④이전경의 글을 빌려 법화경의 뜻을 드러내므로개회(開會)한 뒤에 글을 빌리고 뜻을 드러낸다「십장초」 1273쪽
니치칸 상인 「입정안국론 문단」
도표 3 · 이전경을 경증으로 쓰는 네 가지 까닭

첫째, 이전경은 법화경의 망목이므로 대강을 위해 망목을 쓴다. 앞의 「관심의 본존득의초」의 글이 그 증거이며, 묘락대사도 『석첨』 제10에서 「다만 대강만 두고 망목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고, 『문구기』 제9 말에서 「원교의 행과 이치의 뼈대는 스스로 이루어지고, 살갗과 털과 빛깔은 여러 경전에 나와 있다」고 했다. 법화경은 뼈대를 세우고, 그 뼈대를 덮는 살갗과 털은 여러 경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둘째, 글은 이전경에 있으나 뜻은 법화경에 있기 때문이다. 「법화경에서 참뜻이 있어야 할 것을 이전의 경에서 이름만 떠들썩하게 한 것은 오로지 법화경을 위한 것」이라는 득의초의 글이 그것이다. 법화경 방편품에도 「갖가지 길을 보인다 하나 그것은 실로 불승을 위한 것이다」라는 뜻이 설해져 있다. 묘락대사는 『문구기』 제3 상에서 「외도 · 소승 · 권교 · 적문을 내도 · 대승 · 실교 · 본문에 견주면 모두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부처는 가섭을 꾸짖어 『너는 옛날 다만 열반의 이름만 들었고 아직 그 뜻을 듣지 못했다』고 하셨다」고 했다.

셋째, 이전경의 열등함으로 법화경의 뛰어남을 견주기 때문이다. 대성인은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当に知るべし日月天の四天下をめぐり給うは仏法の力なり・彼の金光明経・最勝王経は法華経の方便なり勝劣を論ずれば乳と醍醐と金と宝珠との如し、劣なる経を食しましまして尚四天下をめぐり給う、何に況や法華経の醍醐の甘味を甞させ給はんをや

마땅히 알라, 일천 · 월천이 사천하를 도시는 것은 불법의 힘이니라. 저 금광명경 · 최승왕경은 법화경의 방편이니, 승렬을 논하면 젖과 제호, 금과 보주와 같으니라. 열등한 경을 드시고서도 오히려 사천하를 도시거늘, 하물며 법화경의 제호의 단맛을 맛보신다면 어떠하겠느냐.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 1146쪽

「선시초」에서도 대집경을 두고 같은 논법을 쓰셨다.

彼の大集経は仏説の中の権大乗ぞかし、生死をはなるる道には法華経の結縁なき者のためには未顕真実なれども六道・四生・三世の事を記し給いけるは寸分もたがはざりけるにや、何に況や法華経は釈尊・要当説真実となのらせ給い多宝仏は真実なりと御判をそへ十方の諸仏は広長舌を梵天につけて誠諦と指し示し

저 대집경은 부처가 설한 것 가운데 권대승이니라. 생사를 벗어나는 길로서는 법화경과 인연을 맺지 못한 이를 위한 것이라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육도 · 사생 · 삼세의 일을 기록하신 것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느니라. 하물며 법화경은 석존이 「반드시 진실을 설하리라」고 이름하시고, 다보불은 「진실이다」라고 증명의 판을 찍으시고, 시방의 제불은 넓고 긴 혀를 범천에 대어 참되다고 가리켜 보이셨느니라.

「선시초」, 265쪽

이전경의 예언조차 이처럼 조금도 틀리지 않는데, 하물며 석존 · 다보 · 시방제불이 모두 진실이라고 증명한 법화경의 경문이 어찌 틀리겠는가. 네 경의 재난 예언이 대성인 당시에 그대로 들어맞았다는 사실은, 그 너머에 있는 법화경의 예언 — 말법에 법화경의 행자가 나타나 삼류의 강적을 만난다는 예언 — 이 반드시 실현된다는 증거가 된다.

넷째, 이전경의 글을 빌려 법화경의 뜻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법화경의 처지에서 이전경을 열어 하나로 거두는 것(개회) 위에서 모든 경문을 쓰는 것이다. 대성인은 「십장초」에서 천태대사의 『마하지관』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止観一部は法華経の開会の上に建立せる文なり、爾前の経経をひき乃至外典を用いて候も爾前・外典の心にはあらず、文をばかれども義をばけづりすてたるなり

『마하지관』 한 부는 법화경의 개회 위에 세운 글이니라. 이전의 경들을 끌어오고 나아가 외전을 쓴 것도 이전 · 외전의 마음이 아니니, 글은 빌렸으나 뜻은 깎아 버린 것이니라.

「십장초」, 1273쪽

『성실론』의 두 여래, 『아함경』의 네 곳에 탑을 세우는 일 등도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 개회한 뒤에는 글을 빌려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죽은 법문과 살아 있는 법문

같은 원리가 니치칸 상인의 「삼중비전초」에도 설해져 있다. 천태대사는 일념삼천을 증명하기 위해 화엄경의 「마음은 솜씨 좋은 화가가 갖가지 오음을 그려 내는 것과 같아서, 일체 세계 가운데 법으로서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는 글을 인용했다. 이전의 경에 일념삼천이 밝혀져 있지 않다면, 천태대사는 왜 화엄경의 이 「심조(心造)」의 글로 일념삼천을 증명했는가. 니치칸 상인은 이렇게 답했다. 화엄경은 이승의 수기도, 구원실성도 밝히지 않았는데 어찌 일념삼천을 밝혔겠는가. 천태대사가 인용한 뜻은, 정각(淨覺)이 「지금의 인용은 회입(會入)한 뒤를 따른다」고 한 바와 같다. 또 옛 학자는 「화엄은 죽은 법문이고 법화는 살아 있는 법문이다」라고 했다. 저 경은 제 처지에서는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으므로 죽은 법문이라 한다. 백낙천이 「용문의 언덕 위에 흙은 뼈를 묻되 이름은 묻지 않는다」고 읊고, 이즈미 시키부가 「이끼 아래에 함께 썩지 않고 묻혀 있는 이름을 보는 것이 슬프다」고 노래한 것과 같다. 그러나 개회한 뒤에는 오히려 되살아나는 것과 같으므로 살아 있는 법문이라 한다.

곧 화엄경 자체로는 「사십여 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은」 가르침으로서 「죽은 법문」이지만, 한번 법화경의 처지에서 쓰면 십계호구 · 일념삼천의 설명으로 살아나 「살아 있는 법문」이 된다. 대집경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경 자체로는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어 민중의 행복을 쌓을 힘이 있는 경문이 아니지만, 법화경의 처지에서 쓰면 곧바로 생명을 되찾아 「살아 있는 법문」이 된다.

말법에는 법화경도 남묘호렌게쿄로 산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대성인은 말법에는 석존의 법화경에 이미 힘이 없다고 하시면서도 그 법화경의 경문을 쓰셨다. 법화경에 힘이 없음을 보이신 글은 이루 다 셀 수 없다.

今末法に入りぬれば余経も法華経もせんなし、但南無妙法蓮華経なるべし

지금 말법에 들어서는 다른 경도 법화경도 소용이 없고, 다만 남묘호렌게쿄여야 하느니라.

「우에노전답서」, 1546쪽

末法に入りなば迦葉・阿難等・文殊・弥勒菩薩等・薬王・観音等のゆづられしところの小乗経・大乗経・並びに法華経は文字はありとも衆生の病の薬とはなるべからず、所謂病は重し薬はあさし

말법에 들면 가섭 · 아난 등, 문수 · 미륵보살 등, 약왕 · 관음 등이 부촉받은 소승경 · 대승경 및 법화경은 문자는 있을지라도 중생의 병의 약은 되지 못하느니라. 이른바 병은 무겁고 약은 얕기 때문이니라.

「다카하시입도전답서」, 1458쪽

이것 또한 같은 원리다. 성불득도의 가르침으로서는 말법에는 법화경조차 힘을 잃었다. 그러나 법화경의 실체를 수량품 문저의 하종(下種)의 남묘호렌게쿄로 삼을 때 모든 경문이 다 살아난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돌이켜 보면, 법화경 이십팔품은 모두 남묘호렌게쿄를 밝히려고 설해진 것이며, 남묘호렌게쿄야말로 일체경의 근본이요 법화경의 간요다.

南無妙法蓮華経と申すは一代の肝心たるのみならず法華経の心なり体なり所詮なり

남묘호렌게쿄라 하는 것은 일대의 간심일 뿐 아니라 법화경의 마음이요 체요 귀결이니라.

「소야입도전답서」, 1058쪽

法華経を諸仏出世の一大事と説かせ給いて候は此の三大秘法を含めたる経にて渡らせ給えばなり

법화경을 제불 출세의 일대사라고 설하신 것은 이 삼대비법을 머금은 경이기 때문이니라.

「삼대비법품승사」, 1023쪽

그러므로 법화경이 석존 일대 오십 년 가운데 가장 높은 경이라 하더라도, 남묘호렌게쿄를 근본으로 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죽은 법문」에 지나지 않는다. 법화경이 일대 가운데 가장 높다는 것은 부처의 금언에 분명하고 불법을 조금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왜 가장 높은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글자와 구절에만 집착하여 법화경을 다 안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此の法華経は知らずして習い談ずる者は但爾前の経の利益なり

이 법화경은 알지 못하고 배우고 말하는 자는 다만 이전의 경의 이익일 뿐이니라.

「일대성교대의」, 404쪽

当世も法華経をば皆信じたるやうなれども法華経にては・なきなり

지금 세상도 법화경을 모두 믿는 것 같으나 법화경이 아니니라.

「개목초」, 195쪽

법화경이든 석존 일대의 경들이든, 모두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에 의해 비로소 살아나 「살아 있는 법문」이 되고 뜻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문저에서 읽는 금광명경

그러므로 「그 국토에 이 경이 있을지라도」라는 글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어떤 국토에 금광명경이 있는데 그 금광명경을 유포하지 않고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내면 …이라고 읽힌다. 그러나 이렇게만 읽어서는 대성인이 이 글을 드신 참뜻에 이르지 못한다. 그것은 경문에 드러난 모양(經相) 그대로의 독법일 뿐, 대성인의 독법, 곧 관심(觀心)의 독법이 아니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경문을 문자에 나타난 그대로 읽고 이해하는 것을 경상의 문상(文上)이라 하고, 대성인의 참뜻을 관심 또는 문저(文底)라 한다. 입정안국론은 대성인의 큰 확신이요 법화경의 진수이므로, 비록 금광명경이라 하더라도 관심 · 문저에서 받들어 읽어야 한다.

니치칸 상인의 「입정안국론 문단」에 따라 이 글을 관심 · 문저에서 읽으면 다음과 같다. 「그 국토에」의 국토는 일본국이다. 「이 경이 있을지라도」의 경은 본문의 본존, 묘법연화경의 오자, 곧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다. 삼대비법이란 본문의 제목 ·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의 셋이며,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홍안 2년(1279) 10월 12일에 도현하신 일염부제 총여(總與)의 대만다라라고 받든다.

「아직 한 번도 유포하게 하지 않고」란 아직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하지 않은 것이다. 「현불미래기」의 다음 글을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

本門の本尊・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堤に広宣流布せしめんか

본문의 본존 · 묘법연화경의 오자로써 염부제에 광선유포하게 하리라.

「현불미래기」, 507쪽
경문 구절「그 국토에」其の国土に於て
문상어떤 국토
문저일본국
경문 구절「이 경이 있을지라도」此の経有りと雖も
문상금광명경
문저본문의 본존, 묘법연화경의 오자,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
경문 구절「아직 한 번도 유포하게 하지 않고」未だ甞て流布せしめず
문상국왕이 경을 펴지 않음
문저아직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하지 않음
경문 구절「경을 지니는 사람」持経の人
문상금광명경을 지니는 사람
문저삼대비법을 받아 지니는 사람
경문 구절「매우 깊은 묘법」甚深の妙法「감로의 맛」甘露の味「정법」
문상
문저모두 삼대비법을 머금는다
글만으로 나타내며 본존의 모습은 그리지 않음니치칸 상인 「입정안국론 문단」
도표 4 · 문상과 문저로 읽는 금광명경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이 이 법을 아직 한 번도 나라에 유포하지 않고, 받아 지니지 않을 뿐 아니라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내어 그 법을 구하려 하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몸으로 공양하지 않고, 마음으로 존중하지 않고, 입으로 찬탄하지 않는다. 그 법을 지니는 사람을 존중하고 공양하고 찬탄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들과 그 밖의 권속인 한량없는 제천으로 하여금」이라 하여, 범천 · 제석 · 사천왕과 모든 제천선신이 이 깊고 비밀한 묘법을 듣지 못한다고 탄식하게 되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문단」에서 이렇게 말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그러므로 세 가지 묘법의 법미에 굶주리고 세 가지 비법의 물줄기에 목마르다. 그러므로 『위광과 세력이 없다』고 한 것이다. 학자는 마땅히 알라. 일본국 안이 이미 모두 독약 같은 그릇된 법의 음식이니, 제천이 어찌 이것을 받겠는가. 오직 문저의 매우 비밀한 큰 법만이 위없는 감로의 정법인데, 이것을 공양하지 않으면 제천의 위광이 어떠하겠는가. 모름지기 이 뜻을 깨달아 게을리하지 말라.」

「아직 한 번도 유포하게 하지 않고」 — 대성인의 일생

니치렌 대성인은 건장 5년(1253) 4월 28일 입종을 선언하신 뒤로 매도와 박해의 연속이셨다. 특히 문응 원년(1260) 7월 이 입정안국론을 지어 막부에 간하시자, 박해는 그야말로 성난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입정안국론의 근본 정신은, 삼재칠난이라는 불행의 근원은 그릇된 종교에 있으며, 만일 그것에 계속 귀의한다면 타국침핍 · 자계반역의 두 난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저 만 가지 기도를 닦기보다는 이 일흉(一凶)을 금하는 것이 낫다」, 「방법하는 사람을 금하고 정도(正道)의 승려를 중히 여긴다면 나라 안이 안온하고 천하가 태평하리라」는, 모든 민중을 구하려는 이 피 끓는 외침에 대해, 그릇된 법의 술에 취한 막부의 권력자들은 마쓰바가야쓰 초암의 습격과 이즈 이토(伊東)로의 유배로 갚았다.

과연 문응 원년으로부터 만 7년 남짓, 문영 5년(1268) 윤정월에 몽골의 국서가 가마쿠라에 이르러, 입정안국론의 예언이 들어맞은 것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러나 막부는 여전히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여러 절과 신사에 몽골 항복의 가지기도를 시키는 등 방법을 거듭했다. 이 국가 존망의 위급한 때에 대성인은 열한 통의 어장(「십일통어서」)을 써서 막부의 미망을 깨우치고, 당시의 여러 종파에는 공적인 자리에서의 대결을 엄하게 요구하셨다.

그러나 막부는 이 지성 어린 간언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막부 상층의 여인들에게 파고든 고쿠라쿠사 료칸 · 겐초사 도류 같은 승려들의 말에 미혹되어, 대성인과 그 문하에 더욱 혹독한 탄압과 박해를 가했다. 그리하여 문영 8년(1271) 9월 12일, 막부의 군사 · 경찰권을 한 손에 쥐고 권력을 휘두르던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는 대성인을 다쓰노구치 형장에서 참수하려 했다. 그러나 어떤 큰 난도 본불의 경애를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그날 밤의 불가사의한 현상에 형리들은 두려워 떨며 끝내 처형을 단념했다. 그래도 대성인은 염불자 등의 음모로 사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부자유한 세 해를 보내셨다. 그사이 도키무네의 이복형 도키스케의 모반 등이 일어나 자계반역의 양상은 더욱 깊어졌다. 문영 11년(1274) 사도에서 가마쿠라로 돌아오신 대성인은 막부에 간하여 「올해는 반드시 몽골이 쳐들어온다」고 단언하셨고, 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세 번 간하여 쓰지 않으면 나라를 떠난다」는 옛 법도에 따라 미노부 산에 드셨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곳에서 다음 글 그대로, 말법 만년 미래 영겁에 걸쳐 이익을 줄 법의 건립을 준비해 가셨다.

日蓮が慈悲曠大ならば南無妙法蓮華経は万年の外・未来までもながるべし、日本国の一切衆生の盲目をひらける功徳あり、無間地獄の道をふさぎぬ

니치렌의 자비가 넓고 크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 밖의 미래까지도 흐를 것이니라. 일본국 일체중생의 눈먼 것을 연 공덕이 있으며, 무간지옥의 길을 막았느니라.

「보은초」, 329쪽

그리고 아쓰하라 법난을 계기로, 입종으로부터 27년째인 홍안 2년(1279) 10월 12일, 「나는 27년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출세의 본회인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을 도현하셨다고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받든다. 대성인 멸후에도 닛코 상인은 신장(申狀)을 올려 가마쿠라 막부에 간했고, 닛모쿠 상인도 거듭 천주(天奏)를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큰 법은 위정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일본국의 실정은 그야말로 「아직 한 번도 유포하게 하지 않고 · 버리고 떠나려는 마음을 내어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경문 그대로였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릇된 종교이고 그릇된 사상이다. 그릇된 종교가 근저가 되고 그것이 정치 권력과 손을 잡을 때 나라가 망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대성인은 그 근본 원인을 경문의 분명한 증거로 갈파하셨다. 「신국왕어서」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王法の曲るは小波・小風のごとし・大国と大人をば失いがたし、仏法の失あるは大風・大波の小船をやぶるがごとし国のやぶるる事疑いなし

왕법이 굽는 것은 작은 물결 · 작은 바람과 같아서 큰 나라와 큰 사람을 잃게 하기는 어렵다. 불법에 허물이 있는 것은 큰 바람 · 큰 물결이 작은 배를 부수는 것과 같아서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느니라.

「신국왕어서」, 1521쪽

사람들은 나라가 망하는 원인을 논할 때 정치의 잘못과 사회 체제를 입에 올린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사람에게서 출발하고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문제다. 온갖 정치의 악과 사회의 악을 가져오는 것은 결국 사람 생명의 탁함이다. 탐 · 진 · 치의 삼독이 강성한 생명이야말로 언제나 변함없는 모든 부패와 악의 근원이다. 그러면 그 중생 생명의 탁함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그릇된 지혜, 그릇된 종교, 악한 사상을 연(緣)으로 하기 때문이다. 대성인이 「저 만 가지 기도를 닦기보다는 이 일흉을 금하라」고 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법미에 굶주린 제천 — 「감로의 맛을 등지고」

「마침내 우리들과 그 밖의 권속인 한량없는 제천으로 하여금 이 매우 깊은 묘법을 듣지 못하게 하여, 감로의 맛을 등지고 정법의 흐름을 잃어 위광과 세력이 없게 하리라.」 이 금광명경의 글은 제천선신에 맞추어 읽어야 한다. 니치칸 상인은 「문단」에서 「곧 이것은 제천이 감로의 식미를 향하지 못하고 정법의 물줄기를 얻지 못하여 이미 음식에 굶주리고 목마른 것이다. 그러므로 위광과 세력이 없는 것이다. 향함과 등짐, 얻음과 잃음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이 구절을 읽는 법에는 다른 설도 있었다. 한 설은 「악한 왕과 악한 비구가 감로의 맛을 등지고 정법의 흐름을 잃어 위광과 세력이 없게 한다」고 읽는다. 또 한 설은 「감로의 맛을 등지고 흐름을 잃는다」까지는 악한 왕 · 악한 비구에 맞추고, 「위광과 세력이 없게 한다」는 제천선신에 맞추어 읽는다. 니치칸 상인은 두 설이 모두 마땅하지 않으며 모두 제천선신에 맞추어 읽는 것이 바르다고 했다. 그 까닭으로, 금광명경의 바로 앞 글에 「감로의 맛으로 나를 채워 주므로 우리가 이 왕을 옹호한다」는 뜻이 있고, 뒤의 글에 「위없는 감로의 법미를 먹어 큰 위덕과 세력과 광명을 얻는다」는 뜻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인용된 글의 모양으로 보아도 제천선신에 맞추어 풀이하는 것이 가장 온당하다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또 「매우 깊은 묘법」도 「감로의 맛」도 「정법」도 모두 삼대비법을 가리킨다고 「문단」에서 밝혔다. 그 요지는 이렇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먼저 「매우 깊은 묘법」이다. 적문의 뜻으로는 제법실상의 묘법이다. 방편품에 「매우 깊고 미묘한 법을 나는 이제 이미 모두 얻었다」 하고, 천태대사가 「실상을 매우 깊다고 이름한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본문의 뜻으로는 본인본과의 묘법이다. 수량품 앞의 「여래의 모든 매우 깊은 일」, 천태대사의 「인과가 곧 깊은 일이다」가 그것이며, 대성인도 「묘법연화경의 오자는 적문에서조차 허락되지 않았거늘 하물며 이전에는 분(分)이 끊어진 일이다. 수량품에 이르러 본인본과의 연화 두 글자를 설해 드러내어 상행보살에게 부촉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문저의 뜻으로는 곧 세 가지 비법을 머금는다. 천태대사는 「이 묘법연화경이란 본지(本地)의 매우 깊은 오의(奧義)다」라고 했다. 「본지」 두 글자는 계단을 나타내니, 본존이 머무시는 땅이므로 본지라 한다. 「매우 깊다」 두 글자는 본존을 나타내니, 「실상을 매우 깊다고 이름한다」 하고 묘락대사가 「실상은 반드시 제법이요, 제법은 반드시 십여요, 십여는 반드시 십계」라고 한 것은 일념삼천의 본존이 아니겠는가. 「오의」 두 글자는 제목을 나타내니, 천태대사가 「감싸 쌓는 것을 장(藏)이라 한다」고 한 것처럼, 제목의 일행에 만행이 감싸여 있어 일행이 곧 일체행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감로」다. 묘락대사는 「감로문이란 실상이 상주함이요, 하늘의 감로와 같아 이것은 불사의 약이다」라고 했다. 앞의 「실상이 상주함」은 적문의 제법실상을 감로라 한 것이고, 뒤의 「하늘의 감로와 같아 불사의 약」은 본문 수량품의 「이 좋은 양약(是好良藥)」을 감로라 한 것이다. 약왕품에서 「만일 사람에게 병이 있어 이 경을 들으면 병이 곧 소멸하여 늙지 않고 죽지 않으리라」고 설하기 때문이다. 문저의 뜻으로 보면 이것도 세 가지 비법을 머금는다. 열반경 북본 제8권 첫머리에 「혹은 감로를 먹어 수명이 길이 존속함을 얻는 이가 있다」고 했다. 「감로」 두 글자는 본존을, 「먹는다(服)」 한 글자는 제목을, 「수명이 길이 존속함을 얻는다」는 계를 지니는 공덕, 곧 계단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 대목에서 『공자가어』의 「선한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지란(芝蘭)의 방에 드는 것과 같아, 오래 있으면 그 향을 맡지 못해도 곧 그와 하나가 된다」는 글과, 「산마을에 살면 저절로 계를 지니게 된다 — 참으로 그러하구나, 몸에 의지하기보다 머무는 곳에 의지함이」라는 노래를 들어, 계단의 땅에 머물면 저절로 본존을 믿고 제목을 부르게 된다는 뜻을 보였다. 제1장의 「난실」과 이어지는 비유다.

셋째는 「정법」이다. 니치칸 상인은 「정(正)」 한 글자에 세 가지 비법이 들어 있다고 했다. 정은 곧 묘(妙)이고, 묘는 곧 묘법연화경이며, 묘법연화경은 곧 본문의 본존이다. 본존이 묘하므로 믿음도 묘하고, 믿음이 묘하므로 수행도 묘하다. 묘는 곧 정이므로 「정」 자는 곧 제목이다. 또 「정」이라는 글자는 「일(一)」과 「지(止)」로 이루어져 있다. 「일」은 본문의 본존이고 「지」는 머무는 것이니, 본존이 머무시는 곳이 곧 계단이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풀이는 금광명경의 한 구절을 문저에서 읽으면, 제천이 굶주리고 목마른 것은 결국 말법의 정법인 삼대비법의 법미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나라 안이 그릇된 법의 음식으로 가득하면 제천은 그것을 받지 않고, 위광과 세력을 잃은 제천은 나라를 지킬 수 없다.

불로불사 — 묘법은 불사의 약

여기서 감로를 불사의 약이라 하고, 묘법을 불사의 약이라 했는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 제1장에서 본 「여설수행초」의 「사람과 법이 함께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이치가 나타날 때」라는 글을 니치칸 상인은 이렇게 풀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수량품의 설법 모습을 생각하라. 『늘 여기 머물러 멸하지 않는다』 『늘 여기 머물러 법을 설한다』고 했다. 어서에 이르기를 『니치렌의 자비가 넓고 크다면』은 사람이요, 『남묘호렌게쿄는 만년 밖의 미래까지도』는 법이다. 삼세에 상주하는 이익이므로 불로불사이다.」

곧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이야말로 말법 만년 미래 영겁에 이르기까지 중생을 구하므로 불로불사라고 하신 것이다. 이전의 경은 무량의경에서 「사십여 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파했으므로 늙음이요 죽음이다. 법화경이 일대 성교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해도 말법에는 힘을 잃으므로 이것도 늙음이요 죽음이다. 오직 문저 하종 사(事)의 일념삼천인 남묘호렌게쿄만이 불로불사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대어본존이야말로 불로불사라고 받든다.

그리고 이 본존을 믿고 창제하는 사람은 불사의 약을 먹고 있으므로 또한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 그 생명 속에 불계가 나타나고 제천의 작용이 가득 차 오는 것이다. 늙지 않는다는 것은 늘 젊디젊은 생명의 약동이 넘치고 한평생 향상해 가는 인생이다. 청년이란 끝없는 발전, 끝없는 미래, 씩씩한 건설을 품은 왕성한 생명 활동이다.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으며 큰 목적을 향해 온 생명에서 솟구치는 피를 끓이며 나아가는 맑고 힘찬 생명 활동이다. 묘법을 지닌 사람은 언제까지나 청년이며, 멸하지 않는 젊음을 지닌다. 이것이 불로다.

죽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깨닫는 것이다. 미래 영겁에 걸친 절대의 행복경을 지금 이 한순간에 여는 것, 곧 성불의 경애를 얻는 것이다. 도다 조세이 제2대 회장은 성불의 경애를 이렇게 말했다. 「언제나 언제나 태어나서는 힘찬 생명력에 넘치고, 태어난 사명 위에서 생각대로 활동하여 그 뜻한 목적을 이루고,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복운을 지니고 온다. 이런 생활이 몇십 번, 몇백 번, 몇천 번, 몇억만 번 즐겁게 되풀이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겠는가.」 이 행복경은 다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으므로 불로이며, 생사의 괴로움에 묶이지 않고 영원한 행복을 사는 것이므로 불사다.

국토도 마찬가지다. 묘법을 근저로 하면 국토도 상적광토가 되어, 오곡은 풍성히 여물고 초목은 무성하며 아름다운 경치가 이루어지고, 비와 바람과 기온도 바른 리듬을 따라 그곳에 사는 중생에게 힘과 젊음과 윤택함을 주는 국토가 된다. 입정안국론의 「불국이 어찌 쇠하겠느냐」는 불로이고, 「보토가 어찌 무너지겠느냐」는 불사다. 묘법이 널리 퍼진 낙토야말로 참으로 불로불사인 것이다. 반대로 그릇된 법이 성하여 묘법을 덮어 가리면, 우리 생명 속의 제천의 작용도, 중생과 사회의 생명 속의 제천의 작용도, 국토를 지키는 제천의 작용도 모두 사라지고, 남는 것은 잔혹하고 어두운 세계뿐이다.

「악취를 늘리고 인 · 천을 덜어」 — 생명의 본거지

「악취를 늘리고 인 · 천을 덜어, 생사의 강에 떨어져 열반의 길에 어긋나리라.」 악취란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의 불행한 생명 활동이다. 이 사악취만 커지고, 인계와 천계의 평온하고 기쁜 생명 활동은 민중 속에서 점점 줄어든다. 민중은 생사, 곧 괴로움과 번민으로 가득한 육도의 생활에 떨어지고, 열반의 길, 곧 성문 · 연각 · 보살 · 불의 사성(四聖)의 참된 행복에서 점점 멀어진다.

누구에게나 십계의 생명 활동이 들어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다. 그것은 신심을 하든 하지 않든 변하지 않는 원리다. 그러나 그릇된 가르침에 헤매는 사람은 삼악도 · 사악취의 생명 활동만 왕성해져, 스스로 자기를 어찌할 수 없게 된다. 부자유하고 속박된 세계다. 어쩌다 기쁨이 있어도 그것은 다음의 좌절과 파멸로 괴로움을 더할 뿐이다. 마치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이나 수라가 그 사람 생명의 본질 전부가 된 것처럼, 인 · 천 · 성문 · 연각 같은 다른 생명 활동도 모두 삼악도 · 사악취로 돌아간다. 그 세계가 그 사람의 본거지, 사는 곳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반대로 신심하는 사람은 본존의 불계에 비추어 자기 생명 속에 맑고 물들지 않은 힘찬 불계의 큰 생명이 나타나므로, 그것이 본거지가 되어 구계의 모든 생명 활동이 그리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어떤 괴로움이 있어도 그것은 모두 다음의 기쁨, 다음의 발전, 다음의 빛나는 승리의 원천이 된다. 신심 없는 사람의 괴로움은 괴로움을 위한 괴로움이지만, 신심하는 사람의 괴로움은 번뇌즉보리 · 생사즉열반의 번뇌이고 생사이므로 행복을 위한 괴로움이다. 그래서 늘 환희와 희망과 확신의 깊은 행복감을 맛보며, 태어난 목적을 향해 충분한 가치 활동을 하고 남도 이롭게 하며 자재무애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참된 자유이고 참된 해방이다.

이런 생명의 변화는 생명 자체의 변화이며 의식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극기 같은 도덕이나 정신 수양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무리 화내지 않으려고 애써 평정을 지키려 해도, 아무리 질투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거기에는 저절로 한계가 있다. 괴로움 · 노여움 · 질투는 사람 본연의 생명 활동이어서 없앨 수 없고, 억눌러도 다 억누를 수 없다. 순식간에 그것들이 불끈 일어나 백 년의 수행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극기는 괴롭고 사람다움을 억누르며, 모든 사람의 행복의 원천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의 경애에 빠지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찌할 수 없다. 이것을 끝까지 구할 수 있는 것은 생사를 그대로 열반으로 바꾸는 힘 있는 큰 종교여야 한다.

「오직 묶고 죽이고 성내어 다툴 뿐」 — 대성인 시대의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선한 마음이 없고 오직 묶고 죽이고 성내어 다툴 뿐이며, 서로 헐뜯고 아첨하여 법을 굽혀 죄 없는 사람에게까지 미치리라.」 모든 민중이 선한 마음을 잃고 저마다 이기주의에 빠져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으며, 죄인은 늘어 그들을 묶기에 바쁘고, 거리에는 사사로운 형벌과 잔인한 살해가 있고, 격노와 격노가 부딪쳐 수라의 다툼을 일삼으며, 서로 아첨하고 죄 없는 사람을 죄에 빠뜨리게 된다는 뜻이다. 참으로 어둡고 두려운 세계다.

그런데 이 경문은 대성인 시대의 세상과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승구의 난(1221)에서 조정 쪽을 쳐부수어 막부 권력을 반석에 올린 것처럼 보였던 호조 막부도 안으로는 깊은 파란을 숨기고 있었다. 1224년 호조 요시토키가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래도 요시토키 · 야스토키 시대는 아직 평온한 편이었다. 야스토키가 죽은 뒤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불온한 기운이 감돌았다. 야스토키의 뒤를 이은 쓰네토키는 관원 4년(1246) 스물셋의 나이로 일찍 죽었는데, 그 죽음을 두고도 갖가지 소문이 돌았다.

쓰네토키의 죽음과 함께 사태는 급변하여, 그 뒤 두 달 동안 가마쿠라는 격렬한 정쟁과 실력 행사로 날을 지새웠다. 마침내 쓰네토키의 아우, 스무 살의 도키요리가 권력을 잡았다. 그는 막부의 실권을 빼앗으려던 숙부 미쓰토키 등 나고에(名越) 일족과 평정중 · 문주소 집사 등 중신들의 음모를 깨뜨리고, 미쓰토키를 출가시켜 이즈로 보냈으며, 그 아우 도키유키를 자결하게 하는 등 많은 관계자를 처분했다. 이듬해 보지 원년(1247)에는 호조 씨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호족 미우라 씨를 온갖 도발과 모략으로 싸움에 끌어들여, 미우라 야스무라 이하 일족 오백여 명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묘소인 법화당에서 모두 자결하게 했다. 이른바 「보지 합전」이다. 이어 가즈사의 지바 히데타네도 공격받아 죽었다. 이렇게 호조 씨는 잇달아 호족들을 쓰러뜨리고 비교적 안정된 시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런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사이 민중은 괴로운 생활에 빠졌고, 걸식하는 무리가 떼를 지어 각지의 강변과 언덕과 역참에 모여들었다. 게다가 입정안국론을 올린 뒤에도 재해는 극도로 민중을 지치게 하여, 막부는 마침내 인신매매의 금령을 풀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다. 몰락한 농민들은 잇달아 걸식의 무리로 몸을 던졌다. 그 뒤에도 천변지요가 잇따라 농민의 불안과 동요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거듭되는 큰 기근과 큰 역병은 민중을 비참의 밑바닥으로 몰아넣었다. 나아가 호조 씨 내부에서는 문영 9년(1272) 2월의 소동이 있었고, 두 차례에 걸친 몽골 내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흔들리고 어지러워졌다. 그야말로 사람들의 생활은 수라계 · 축생계 · 아귀계 · 지옥계의 거리를 헤맬 뿐이었다. 있는 것은 오직 결박이요 살해요 다툼이었다.

헤이노사에몬노조의 공포 정치

게다가 막부 지도자들의 횡포는 심하여 죄 없는 사람을 죄에 빠뜨렸다. 참으로 민중을 구하기 위해 일어서신 대성인을 마쓰바가야쓰에서 불태워 죽이려 하고, 이즈의 이토로 유배하고, 고마쓰바라에서 죽이려 하고, 다쓰노구치에서 목을 베려 하다가 사도로 유배했으며, 대성인의 제자들을 혹은 옥에 가두고, 혹은 영지를 빼앗고, 혹은 유배하거나 죽였다. 마침내 아쓰하라 법난에서는 헤이노사에몬노조가 여러 종의 악한 승려들과 꾀하여 있지도 않은 죄를 꾸며 농민 스무 명 남짓을 붙잡고, 진시로 · 야고로 · 야로쿠로 세 사람의 목을 베었다. 「법을 굽혀 죄 없는 이에게까지 미친다」는 경문 그대로였다.

대성인 멸후에 헤이노사에몬노조는 더욱 큰 권력으로 전횡을 일삼아, 홍안 8년(1285) 11월 정적 아다치 야스모리를 쳐서 없앴다(시모쓰키 소동). 그때 야스모리와 그 적자 무네카게가 죽고, 이어 고즈케 · 무사시 일대의 유력한 고케닌 오백여 명이 야스모리의 무리로 몰려 죽었다. 이 싸움에서는 야스모리 편이 아닌 이들까지 죽었다. 싸움은 지방으로까지 번져 전국적인 소동이 되었고, 특히 규슈에서는 격렬한 합전이 벌어졌다. 야스모리의 아들 모리무네는 하카타에서 죽고, 쇼니 가게스케도 지쿠젠의 이와토성에서 형 쓰네스케에게 공격받아, 같은 집안끼리 서로 잡아먹는 싸움 끝에 많은 고케닌과 함께 멸망했다.

그 요리쓰나도 이윽고 멸망했고, 그의 시대의 불공정한 재판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 고리대금업자가 위세를 떨치는 반면 고케닌의 빈궁은 심해져 소송이 구름처럼 일어났고, 마침내 피로 피를 씻는 싸움까지 벌어졌다. 『사석집(沙石集)』은 홍안 무렵의 세상을 두고 「옛날에는 임금도 신하도 인의가 있고 너그러운 마음이 있었으나, 말대에는 부자 · 형제 · 친척 · 골육이 원수를 맺고 방패를 맞대며, 소송하여 대결하고 경계를 다투고 재산 분배를 다투는 일이 해마다 세상에 많이 들린다」고 적었다. 대관(代官)들은 악랄한 지배와 횡포를 거듭하고, 악당이 횡행하고, 해적 · 산적이 가득하며, 강도와 살인이 예사가 되었다.

건원 원년(1302) 12월 가마쿠라에 큰 지진이 나서 죽은 이가 오백 명에 이르렀고, 가원 3년(1305)에는 교토에 큰 지진이 났고, 그해 4월 사다토키의 저택이 불타고 이튿날 연서(連署) 호조 도키무라가 갑자기 습격을 받아 살해되었다. 이렇게 왕의 복운이 다한 모습이 뚜렷이 나타났고, 호조 다카토키 같은 범용한 집권이 서고, 나가사키 다카쓰나 같은 횡포한 인물이 뇌물을 공공연히 주고받으며 전횡을 다하는 악정을 거듭했다. 마침내 쇼추의 변, 겐코의 난을 거쳐 원홍 3년(1333) 가마쿠라 막부는 백오십 년의 막을 내렸다.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로쿠하라 단다이를 멸하고, 닛타 요시사다가 가마쿠라를 공격하여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그 최후의 모습은 너무도 비참했다.

이 모습들을 보면 그야말로 「묶고 죽이고 성내어 다툴 뿐」인 어두운 세계였고, 「서로 헐뜯고 아첨하여 법을 굽혀 죄 없는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폭정의 연속이었다. 일찍이 헤이안 시대에 천태의 불법이 번성하고 그 정신이 퍼져 사형이 한동안 폐지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그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높은 생명 존엄의 사상에 선 큰 철리다. 그러나 그 큰 법은 끝내 위정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문의 재난과 대성인 시대의 기록

「별이 흐르고 땅이 움직이며 우물 속에서 소리가 나고, 폭우와 사나운 바람이 절기를 따르지 않으며, 늘 기근을 만나 싹과 열매가 여물지 않고, 다른 나라의 원적이 많이 와서 나라 안을 침략하여, 백성은 갖가지 고뇌를 받고 국토에는 즐거이 살 곳이 없으리라.」 이 경문도 니치렌 대성인 시대의 세상과 놀랍도록 맞아떨어진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경문 구절역병이 유행하고疫病流行し
대성인 시대의 기록건장 5년(1253) · 정원 원년(1259) · 문응 원년(1260) · 건치 3년(1277) · 홍안 원년(1278) 등 대역병
경문 구절혜성이 자주 나타나고彗星数ば出で
대성인 시대의 기록문영 원년(1264) 7월 5일의 대혜성, 문영 10년 정월 · 9월에도 출현
경문 구절두 해가 나란히 나타나고両の日並び現じ
대성인 시대의 기록문영 5년 5월 8일, 문영 8년 8월 11일 · 13일, 문영 11년 1월 23일(사도 — 「법화취요초」)
경문 구절박식이 일정함이 없고薄蝕恒無く
대성인 시대의 기록일식 — 정가 원년(1257) 5월 1일, 문응 원년(1260) 3월 1일, 문영 연간 열 차례 남짓월식 — 정가 원년 4월 16일 · 10월 16일, 정원 원년 4월 15일 등
경문 구절검고 흰 두 무지개黒白の二虹
대성인 시대의 기록백홍 — 보지 2년 · 건장 3년 · 건장 6년 · 홍장 3년 · 홍안 7년 · 홍안 9년
경문 구절땅이 움직이고地動き
대성인 시대의 기록정가 원년(1257) 8월 23일 정가 대지진
경문 구절다른 나라의 원적他方の怨賊
대성인 시대의 기록문영 11년(1274) · 홍안 4년(1281) 몽골 내습
도표 5 · 금광명경의 재난과 대성인 시대의 기록

역병과 혜성

먼저 「역병이 유행하고」는, 건장 5년(1253) · 정원 원년(1259) · 문응 원년(1260) · 건치 3년(1277) · 홍안 원년(1278) 등에 저마다 큰 역병이 돌아 기근과 함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 그대로다.

「혜성이 자주 나타나고」도 그대로다. 대성인 시대에는 혜성이 많이 나타났고 특히 문영 연간 초에 많았다. 그 가운데 문영 원년(1264) 7월 5일의 대혜성은 전에 없이 큰 것이었다. 대성인은 「안국론어감유래」에 이렇게 쓰셨다.

又其の後文永元年甲子七月五日彗星東方に出で余光大体一国土に及ぶ、此れ又世始まりてより已来無き所の凶瑞なり内外典の学者も其の凶瑞の根源を知らず、予弥よ悲歎を増長す

또 그 뒤 문영 원년 갑자 7월 5일, 혜성이 동방에 나와 그 남은 빛이 대체로 온 국토에 미쳤느니라. 이것 또한 세상이 시작된 이래 없던 흉서이니라. 내전 · 외전의 학자들도 그 흉서의 근원을 알지 못하니, 나는 더욱 비탄을 더하였느니라.

「안국론어감유래」, 34쪽

또 「선시초」에서는 정가 대지진과 문영의 대혜성이 어떤 뜻을 갖는지를 문답으로 밝히셨다. 대성인은 먼저 천태대사의 「지혜로운 사람은 일어남을 알고, 뱀은 스스로 뱀을 안다」는 글을 들어, 상행보살이 대지에서 솟아 나온 뜻 — 수량품의 남묘호렌게쿄가 말법에 유포될 것이기 때문에 이 보살을 불러내셨다는 것 — 을 미륵 · 문수 · 관음 · 약왕 같은 대보살조차 알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병이 일어난 까닭을 모르는 사람이 병자를 고치면 사람이 반드시 죽듯, 재난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들이 기도하면 나라가 망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신 뒤 이렇게 결론지으셨다.

今の大地震・大長星等は国王・日蓮をにくみて亡国の法たる禅宗と念仏者と真言師をかたふどせらるれば天いからせ給いていださせ給うところの災難なり

지금의 대지진 · 대장성(大長星) 등은 국왕이 니치렌을 미워하여 나라를 망치는 법인 선종과 염불자와 진언사의 편을 드시므로, 하늘이 노하시어 내리시는 재난이니라.

「선시초」, 284쪽

이 글 앞에서 대성인은 주나라 평왕 때 머리를 풀어 헤친 벌거숭이가 나타나자 신유(辛有)가 점쳐 「백 년 안에 세상이 망하리라」 하였고, 유왕 때 산천이 무너지고 대지가 흔들리자 백양(白陽)이 「십이 년 안에 대왕이 변을 당하리라」고 헤아렸다는 고사를 드셨다. 대성인은 문영의 대혜성이야말로 타국침핍난 · 자계반역난의 전조라고 확신하신 것이다. 과연 문영 9년(1272) 2월에는 호조 도키무네와 그 이복형 도키스케의 싸움이 있었고, 문영 11년(1274)과 홍안 4년(1281)에는 몽골이 쳐들어왔다. 그사이 문영 10년 정월 16일과 9월 5일에도 혜성이 나타났다. 가마쿠라 막부가 기울고 나라 안에 수라의 다툼이 소용돌이칠 무렵에도 혜성은 자주 나타났다.

두 해의 출현

「두 해가 나란히 나타나고」도 엄연한 사실이다. 대성인 시대에는 문영 연간에만 문영 5년(1268) 5월 8일, 문영 8년(1271) 8월 11일과 13일, 문영 11년(1274) 1월 23일 등 여러 차례 나타났다. 문영 11년 1월 23일은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되어 계실 때로, 그때의 모습을 「법화취요초」에 이렇게 기록하셨다.

去ぬる正嘉年中の大地震・文永の大彗星・其より已後今に種種の大なる天変・地夭此等は此先相なり、仁王経の七難.二十九難.無量の難、金光明経.大集経・守護経.薬師経等の諸経に挙ぐる所の諸難皆之有り但し無き所は二三四五の日出る大難なり、而るを今年佐渡の国の土民は口口に云う今年正月廿三日の申の時西の方に二の日出現す或は云く三の日出現す等云云

지난 정가 연중의 대지진, 문영의 대혜성, 그 뒤로 지금까지의 갖가지 큰 천변 · 지요, 이것들은 그 앞선 모습이니라. 인왕경의 칠난 · 이십구난 · 무량한 난, 금광명경 · 대집경 · 수호경 · 약사경 등 여러 경에 든 여러 난이 모두 있었느니라. 다만 없었던 것은 둘 · 셋 · 넷 · 다섯의 해가 나오는 큰 난이었는데, 올해 사도국의 백성들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올해 정월 23일 신시(申時)에 서쪽에 두 해가 나타났다, 혹은 세 해가 나타났다고 하느니라.

「법화취요초」, 336쪽

대성인은 이어서 『최승왕경』 · 『수능엄경』 · 『약사경』 ·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의 해와 달의 난을 들고, 이 해와 달의 난이 칠난 · 이십구난 · 무량한 난 가운데 첫째가는 큰 악난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크고 작은 난이 무엇 때문에 일어나느냐는 물음에, 『최승왕경』의 「그릇된 법을 행하는 자를 보고 사랑하고 공경하며, 선한 법을 행하는 사람을 괴롭혀 다스린다」, 『금광명경』의 「악인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선인을 다스려 벌하기 때문에 별자리와 바람과 비가 모두 제때 행해지지 않는다」는 글 등을 들어 답하셨다. 그 끝은 이렇다.

天瞋るは人に失有ればなり、二の日並び出るは一国に二の国王並ぶ相なり、王と王との闘諍なり、星の日月を犯すは臣・王を犯す相なり、日と日と競い出るは四天下一同の諍論なり、明星並び出るは太子と太子との諍論なり、是くの如く国土乱れて後に上行等の聖人出現し本門の三つの法門之を建立し一四天・四海一同に妙法蓮華経の広宣流布疑い無からん者か

하늘이 노하는 것은 사람에게 허물이 있기 때문이니라. 두 해가 나란히 나오는 것은 한 나라에 두 국왕이 나란히 서는 모습이니, 왕과 왕의 싸움이니라. 별이 해와 달을 범하는 것은 신하가 왕을 범하는 모습이니라. 해와 해가 다투어 나오는 것은 사천하가 한꺼번에 다투는 것이니라. 샛별이 나란히 나오는 것은 태자와 태자의 다툼이니라. 이와 같이 국토가 어지러워진 뒤에 상행 등의 성인이 출현하여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고, 일사천하 · 사해가 한결같이 묘법연화경으로 광선유포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리라.

「법화취요초」, 336쪽

역사상 해가 둘 나타났다는 기록은 적지 않다. 둘뿐 아니라 셋 · 다섯, 드물게는 일곱이 나타났다는 기록도 있고, 해만이 아니라 달도 둘 셋 나타난다. 물론 그 가운데 하나만 진짜이고 나머지는 환일 · 환월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불법은 이런 하늘의 현상을 단지 고립된 현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과 사람의 생명의 관계를 설하고, 나아가 우주의 십계와 우리 생명의 십계의 미묘한 관계를 남김없이 설한다. 여기에 불법의 위대함이 있고, 온 우주에까지 통하는 사람 생명의 존귀함과 크기와 힘이 설해져 있다. 이 점은 제1장에서 의정불이로 살핀 대로이며, 여기서는 경문의 원리가 허구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임을 보이는 데 그친다.

박식 · 무지개 · 유성 · 지동

「박식이 일정함이 없고」란 해와 달이 자주 빛을 잃고 일식과 월식이 잇달아 일어나는 것이다. 해와 달이 빛을 잃는 것은 안개가 끼거나 먼지가 빛을 가리거나 화산재가 높은 하늘에 엷은 층을 이루어 빛을 막는 경우다. 일식은 해와 지구 사이에 달이 들어 해가 이지러지는 것이다. 정가 원년(1257)부터 문응 원년(1260)까지 사이에 일식이 있었다고 기록된 것은 정가 원년 5월 1일과 문응 원년 3월 1일의 두 번이다. 한정된 문헌에서 찾아낸 것이니 이 밖에도 더 있었을 것이다. 문영 연간에는 원년 7월 1일, 2년 1월 1일, 3년 5월 1일, 3년 11월 1일, 4년 5월 1일, 5년 10월 1일, 7년 3월 1일, 8년 8월 1일, 9년 8월, 10년 1월 1일로 매우 많다. 「일정함이 없다」는 경문대로 이상할 만큼 잦았다. 문영 연간은 앞서 본 대로 해가 둘 셋 나타났다는 기록이 잦고, 대혜성이 나타나고, 기근과 역병이 유행한 시기였다. 아소산도 문영 연간에 거듭 분화했다고 전하니, 이것이 이상한 날씨를 가져왔을 것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월식은 해와 달 사이에 지구가 들어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리는 것으로, 정가 원년 4월 16일 · 같은 해 10월 16일, 이듬해 10월 16일, 정원 원년 4월 15일 등이 기록되어 있다.

「검고 흰 두 무지개가 상서롭지 못한 모습을 드러내고」에서, 검은 무지개는 보통 무지개가 아니라 급격한 기후 변화로 생기는 사나운 기류 같은 것으로 짐작되나 실례는 분명하지 않다. 일본의 기상 사료에 자주 나오는 「흑기(黑氣)」가 이것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흰 무지개(白虹)는 보지 2년 윤12월 16일(교토), 건장 3년 10월 16일(교토), 건장 6년 8월 10일(가마쿠라), 홍장 3년 1월 2일(교토), 홍안 7년 4월 4일(가마쿠라), 홍안 9년 1월 30일(가마쿠라) 등의 기록이 있다. 교토와 가마쿠라의 기록일 뿐이어서 나라 전체의 수는 알 수 없다. 기록에 「해를 꿰뚫는다」 「무리(暈)와 함께 나온다」는 표현이 보이는 것을 보면, 이 흰 무지개는 가는 빗방울에 햇빛이 반사되는 이른바 흰 무지개라기보다 앞서 말한 환일환일 가능성이 크다. 천덕 3년(959) 12월 9일 교토에 흰 무지개가 나타났다는 기록에 해가 셋 나왔다는 기록이 함께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여러 문헌의 「백기(白氣)」도 이것을 가리키는지 모른다. 결국 흰 무지개 · 환일환 · 백기는 그다지 구분 없이 쓰였다고 생각된다.

「별이 흐르고」는 말할 것도 없이 유성이다. 건장 연간부터 문영 연간에 이르는 사이에 이 기록은 아주 많다. 「땅이 움직이고」는 지진과 산사태이며, 정가 대지진 등 이미 여러 번 말한 바다. 「우물 속에서 소리가 나고」는 땅속 변동과 관계된 현상으로 보인다. 지진이 일어나면 우물물이나 온천의 물이 갑자기 늘거나 줄고, 흐려지고, 물의 온도가 바뀌고, 먼 우레나 큰 포 소리 같은 소리가 나기도 한다. 「폭우와 사나운 바람이 절기를 따르지 않으며, 늘 기근을 만나 싹과 열매가 여물지 않고, 다른 나라의 원적이 많이 와서 나라 안을 침략하여, 백성은 갖가지 고뇌를 받고 국토에는 즐거이 살 곳이 없으리라」는 입정안국론 제1편에서 살핀 바와 같다. 이 금광명경의 글은 조금도 어긋남 없이 대성인 시대에 나타났다. 한 번의 유성, 한 번의 혜성이 아니다. 경문에 설한 온갖 악한 모습이 모두 나란히 일어난 것이다. 경문은 결코 먼 세계의 일을 말한 것이 아니다.

불법의 예언 — 대집경의 오오백세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석존과 니치렌 대성인 사이에는 이천 년의 거리가 있다. 그런데 그 경문과 대성인 사이에는 조금의 거리도 없다. 경문의 글자 하나 구절 하나가 모두 대성인의 몸에, 그리고 대성인 시대의 세상에 엄연히 나타났다. 부처가 아니고서 누가 이천 년 뒤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것을 조금도 틀림없이 맞힐 수 있겠는가. 이것은 불법이야말로 생명의 깊은 곳의 진실을 끝까지 설하고 우주의 철칙을 남김없이 설해 다한 증거다.

석존은 석 달 뒤의 열반을 알았고, 부법장(付法藏)에 대해 예언한 것도 모두 들어맞았다.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도, 입정안국론에 인용된 네 경의 분명한 글에 설해진 예언도, 나아가 법화경 권지품과 열반경 등에 설해진, 본불이 출현할 때의 말법의 세상도 조금도 어긋남 없이 사실로 나타났다. 먼저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 곧 오오백세(五五百歲)를 보자. 석존은 자신의 멸후를 오백 년씩 다섯으로 나누었다.

정법 천 년
  1. 첫째 오백 년해탈견고(解脱堅固)정법 전반가섭 · 아난 등 부법장의 앞 사람들이 주로 소승을 넓힘, 아사세왕 · 아육왕 · 가니색가왕의 수호와 네 번의 결집
  2. 둘째 오백 년선정견고(禅定堅固)정법 후반마명 · 용수 · 제바 · 무착 · 천친이 권대승을 넓힘
상법 천 년
  1. 셋째 오백 년독송다문견고(読誦多聞堅固)상법 전반후한 영평 10년(67) 중국에 불법 전래, 구마라집의 번역, 천태대사의 『법화문구』 · 『법화현의』 · 『마하지관』
  2. 넷째 오백 년다조탑사견고(多造塔寺堅固)상법 후반당대의 여러 종과 사탑, 552년 무렵 일본 불교 전래, 쇼토쿠 태자 · 국분사 · 도다이사, 전교대사의 적문 계단
말법
  1. 다섯째 오백 년투쟁견고(闘諍堅固)말법의 처음백법은몰 — 대성인의 출현
도표 6 · 대집경의 오오백세와 삼국의 불법

첫째 오백 년은 해탈견고, 곧 석존 멸후 오백 년 동안 중생이 소승경을 닦고 계율을 지켜 해탈을 구한 시대다. 멸후 정법 천 년에는 부법장 이십사 인이 정법을 넓혔는데, 마하가섭부터 제10 부나사까지는 소승경을 넓혔다. 가섭 20년, 아난 20년, 상나화수 20년, 우바국다 20년, 제다가 20년의 첫 백 년은 오로지 소승경만 넓혔고, 미차가 · 불타밀다 · 협비구 · 부나사 등은 대승의 법문을 조금 섞었으나 대부분 소승경을 앞세워 넓혔다. 이 해탈견고의 때에 네 번의 불전 결집이 있었고, 아사세왕 · 아육왕 · 가니색가왕의 수호 아래 불법이 흥륭했다.

둘째 오백 년은 선정견고로, 권대승이 넓혀지고 중생이 대승을 닦아 깊이 삼매에 들어 마음을 고요히 하는 사유의 행을 하던 시대다. 부법장 제11 마명부터 제24 사자존자까지 대승을 넓혔는데, 특히 여러 소승을 파하고 대승을 드날린 논사로 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 등이 있다. 마명은 불멸 후 600년 무렵에 나와 『대승기신론』을 지었고, 700년 무렵에 나온 용수는 『대지도론』 100권, 『중론』 4권, 『십이문론』 1권 등을 지었으며, 그 제자 제바도 『백론』 2권을 지었다. 900년 무렵에 나온 무착 · 천친 형제 가운데 무착은 『섭대승론』 3권 · 『유가사지론』 100권 등을, 천친은 천부(千部)의 논사로서 『섭대승론석』 · 『유식삼십론송』 등 소승 오백 부 · 대승 오백 부를 지어 대승의 가르침을 크게 드날렸다.

셋째 오백 년은 독송다문견고다. 이 시대에 먼저 특기할 것은 후한 명제 영평 10년(67)에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일이다. 이를 계기로 그 이름대로 경전의 번역과 강설과 해석이 성하게 이루어졌다. 파르티아의 태자였던 안세고, 월지국의 지루가참, 지겸 등 번역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었고, 돈황 출신의 축법호는 뛰어난 조력자들과 함께 『정법화경』 등 154부 309권의 경전을 번역했다. 이렇게 성해진 번역 사업은 구마라집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렀다. 구마라집은 그때까지의 오역 · 초역과 견줄 수 없는 완전한 번역을 많이 했는데, 그 가운데 구슬 같은 명역으로 꼽히는 것이 『묘법연화경』이다. 구마라집 뒤로 법현 · 불타발타라 · 담무참 · 진제 · 현장 등이 나왔다. 이 시대 끝 무렵인 538년 형주에서 태어난 천태대사는 남악대사에게 사사하여 법화의 오의를 깨닫고, 와관사에 여덟 해 머물며 『대지도론』 등을 강설했으며, 그 뒤 『법화문구』 · 『법화현의』 · 『마하지관』을 강술하여 이(理)의 일념삼천의 법문을 세웠다. 독송다문견고는 이처럼 많은 번역과 천태대사의 출현으로 대표되며, 그 밖에 불도징 · 도안 · 구마라집 등에 의해 불교 강설이 크게 행해졌다.

넷째 오백 년은 다조탑사견고다. 당대에 들어 현장이 인도에서 경전을 가지고 돌아와 한역했다. 그 뒤 법상종 · 삼론종 · 화엄종 · 진언종이 중국 전역에 퍼지고 많은 절과 탑이 세워졌다. 그래서 이 상법 시대는 겉모양은 정법 시대와 비슷했으나 내용으로는 불법이 타락해 갔고, 이윽고 당 왕조도 쇠망했다. 북송 시대에 들어 태종은 조칙을 내려 폐사를 고치고 불상의 조성을 허락했으며, 아육대왕의 조탑을 본떠 팔만 사천의 탑을 세웠다. 그러나 불법의 중심은 일본으로 옮겨 가, 이 시대의 특징은 오히려 일본에서 두드러졌다. 552년, 곧 불멸 후 1500년 무렵 긴메이 천황 때 백제 성명왕의 사신이 경론과 석가상 등을 바쳤다. 불교가 본격적으로 신봉된 것은 쇼토쿠 태자 때부터다. 태자는 『승만경』 · 『유마경』 · 『법화경』의 의소를 짓고 이 세 경을 진호국가의 법으로 정했으며, 삼보를 독실히 공경하는 것을 근저로 한 십칠조 헌법을 제정했다. 이 무렵부터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드는 일이 성해져, 아스카사와 시텐노사 · 호류사 · 주구사 등이 세워졌다. 나라 시대에 들어 쇼무 천황은 불교를 중히 여겨 여러 지방에 국분사 · 국분니사를 세워 진호국가의 도량으로 삼고, 총국분사로 도다이사를 세웠다. 또 이 시대에 고생 끝에 일본에 온 감진은 소승의 계단을 세웠다. 헤이안의 간무 천황 때에는 전교대사가 남도 육종을 공적인 자리의 대결로 파하고, 히에이잔에 적문의 계단을 세울 길을 열었다.

다섯째 오백 년, 곧 말법 처음의 오백 년은 투쟁견고다. 종교계의 어지러움, 민중의 무지에 파고드는 미신의 횡행, 극도로 흔들리는 인심, 피비린내 나는 살육에 살육이 이어지는 역사, 마침내 부모 형제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는 삼악도 · 사악도의 거리, 삼장사마(三障四魔)와 칠난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민중 — 이것이 말법 처음 오백 년의 세상이었다. 이 대집경의 예언과 인도 · 중국 · 일본 삼국의 불법 유포의 역사를 맞추어 보면 꼭 들어맞는다.

말법의 어본불 출현

그러나 이렇게 어지러운 시대에야말로 그 중생의 어둠을 걷어 내기 위해 말법의 어본불이 출현하고 해 같은 큰 정법이 유포된다는 것도 법화경의 엄연한 미래기(未來記)다. 권지품의 삼류의 강적, 신력품의 별부촉, 약왕품의 광선유포의 금언에는 모두 대성인의 출현과 큰 정법의 유포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다. 그래서 상법에 나온 천태 · 묘락 · 전교도 말법을 그리워하며 그 큰 정법을 만나기를 마음으로 바랐다. 만일 대성인의 출현이 없었다면 석존의 미래기는 모두 거짓이 되고, 천태 · 전교의 말도 헛된 것이 되었을 것이다.

대성인은 부처의 금언을 증명한 이는 자기밖에 없음을 여러 어서에서 경문을 들고 해석을 보이고 논을 들어 선언하셨다.

疑つて云く何を以て之を知る汝を末法の初の法華経の行者なりと為すと云うことを、答えて云く法華経に云く「況んや滅度の後をや」又云く「諸の無智の人有つて悪口罵詈等し及び刀杖を加うる者あらん」又云く「数数擯出せられん」又云く「一切世間怨多くして信じ難し」又云く「杖木瓦石をもつて 之を打擲す」又云く「悪魔・魔民・諸天竜・夜叉・鳩槃荼等其の便りを得ん」等云云、此の明鏡に付いて仏語を信ぜしめんが為に、日本国中の王臣・四衆の面目に引き向えたるに予よりの外には一人も之無し、時を論ずれば末法の初め一定なり、然る間若し日蓮無くんば仏語は虚妄と成らん

의심하여 이르기를, 무엇으로써 그대를 말법의 처음의 법화경의 행자라고 아는가. 답하여 이르기를, 법화경에 「하물며 멸도한 뒤에랴」, 또 「여러 무지한 사람이 있어 악구하고 매리하며 칼과 막대기를 더하는 자가 있으리라」, 또 「자주자주 쫓겨나리라」, 또 「일체 세간에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렵다」, 또 「막대기와 기와와 돌로 이를 때린다」, 또 「악마 · 마민 · 제천 · 용 · 야차 · 구반다 등이 그 틈을 얻으리라」고 하였느니라. 이 밝은 거울에 비추어 부처의 말씀을 믿게 하기 위해 일본국 안의 왕과 신하와 사부대중의 얼굴에 견주어 보니, 나 말고는 한 사람도 없느니라. 때를 논하면 말법의 처음이 틀림없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니치렌이 없다면 부처의 말씀은 거짓이 되리라.

「현불미래기」, 507쪽

而るに日蓮二十七年が間.弘長元年辛酉五月十二日には伊豆の国へ流罪、文永元年甲子十一月十一日頭にきずをかほり左の手を打ちをらる、同文永八年辛未九月十二日佐渡の国へ配流又頭の座に望む、其の外に弟子を殺され切られ追出・くわれう等かずをしらず、仏の大難には及ぶか勝れたるか其は知らず、竜樹・天親・天台・伝教は余に肩を並べがたし、日蓮末法に出でずば仏は大妄語の人・多宝・十方の諸仏は大虚妄の証明なり

그런데 니치렌은 이십칠 년 동안, 홍장 원년 신유 5월 12일에는 이즈국으로 유배되고, 문영 원년 갑자 11월 11일에는 머리에 상처를 입고 왼손을 맞아 부러졌으며, 같은 문영 8년 신미 9월 12일에는 사도국으로 유배되고 또 참수의 자리에 앉았느니라. 그 밖에 제자를 죽이고 베고 쫓아내고 벌금을 물린 것 등은 그 수를 알 수 없느니라. 부처의 큰 난에 미치는지 넘어서는지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어려우니라. 니치렌이 말법에 나오지 않았다면 부처는 큰 거짓말을 한 사람이요, 다보와 시방의 제불은 큰 거짓을 증명한 것이 되느니라.

「성인어난사」, 1189쪽

이것은 니치렌 대성인이야말로 경문대로 출현한 말법의 어본불이심을 단언하신 분명한 글이라고,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받든다. 대성인은 곳곳에서 스스로를 「일염부제 제일의 성인」이라 하셨고, 「시모야마어소식」에서는 「교주 석존보다 소중한 행자 니치렌」이라 하셨다. 또 법화경 등의 경문에 따라, 석존을 한 겁 동안 몸과 입과 뜻으로 공양하는 것보다 말법의 법화경 행자를 한마디라도 찬탄하고 공양하는 공덕이 백천만억 배 뛰어나다고까지 하셨다.

대성인 재세 중의 예언 적중 — 세 번의 고명

그러므로 니치렌 대성인의 예언은 재세 중에도 멸후에도 모두 들어맞았다. 「선시초」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外典に曰く未萠をしるを聖人という内典に云く三世を知るを聖人という余に三度のかうみようあり

외전에 이르기를 아직 싹트지 않은 것을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하고, 내전에 이르기를 삼세를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하느니라. 나에게는 세 번의 고명(高名)이 있느니라.

「선시초」, 287쪽

성인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아는 이이며, 과거 · 현재 · 미래의 삼세에 통달하여 그르침이 없이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이다. 대성인은 이어서 「나에게 세 번의 고명이 있다」고 하시어, 막부에 세 번에 걸쳐 국가를 간하시고 자계반역 · 타국침핍 두 난의 예언이 들어맞은 것을 드셨다. 니치렌 대성인이야말로 아직 싹트지 않은 일을 알고 삼세를 아신 성인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이 세 번의 고명은 보은초 제5편 「대성인의 국가 간효와 재난의 근원」과 선시초에서도 다루었거니와, 여기서는 입정안국론의 경증과 이어지는 면에서 살핀다.

첫째 고명문응 원년(1260) 7월 16일야도야 입도를 통해 호조 도키요리에게 입정안국론을 올려 자계반역 · 타국침핍의 두 난을 예언
적중문영 5년(1268) 윤정월 몽골 국서 도착
둘째 고명문영 8년(1271)9월 10일 평정소 심문 때 「백일 · 일 년 · 삼 년 · 칠 년 안에 자계반역난, 그 뒤 타국침핍난」9월 12일 다쓰노구치 법난 때 「니치렌을 버리고 떠나게 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경고
적중문영 9년(1272) 2월 니가쓰 소동(호조 도키스케 주살)문영 11년(1274) 10월 몽골 내습홍안 4년(1281) 몽골 내습
셋째 고명문영 11년(1274) 4월 8일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올해를 넘기지 않으리라」
적중같은 해 10월 몽골 내습
「나에게는 세 번의 고명이 있느니라」余に三度のかうみようあり(「선시초」, 287쪽)
도표 7 · 세 번의 고명과 예언의 적중

첫째 고명은 문응 원년 7월 16일 입정안국론을 호조 도키요리에게 올리실 때, 야도야 입도에게 자계반역 · 타국침핍의 두 난을 분명히 말씀하신 일이다. 「종종어진무어서」에 이렇게 쓰셨다.

去ぬる文永五年後の正月十八日・西戎・大蒙古国より日本国ををそうべきよし牒状をわたす、日蓮が去ぬる文応元年庚太申歳に勘えたりし立正安国論今すこしもたがわず符合しぬ、此の書は白楽天が楽府にも越へ仏の未来記にもをとらず末代の不思議なに事かこれにすぎん

지난 문영 5년 윤정월 18일, 서쪽 오랑캐 대몽골국에서 일본국을 치겠다는 국서를 보내왔느니라. 니치렌이 지난 문응 원년 경신의 해에 헤아려 쓴 입정안국론이 이제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들어맞았느니라. 이 글은 백낙천의 악부보다도 뛰어나고 부처의 미래기에도 뒤지지 않으니, 말대의 불가사의가 무엇이 이보다 더하겠느냐.

「종종어진무어서」, 909쪽

부처의 미래기란 말할 것도 없이 정법 · 상법 · 말법의 삼시에 걸친 예언이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이 「부처의 미래기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확언하셨다. 또 「입정안국론오서」에는 「이 글은 징험이 있는 글이니라」(此の書は徴有る文なり, 33쪽)라고 적으셨다.

둘째 고명은 문영 8년 9월 12일 다쓰노구치 법난 때, 헤이노사에몬노조를 향해 자계반역 · 타국침핍의 두 난이 있으리라고 단언하신 일이다. 그 이틀 전인 9월 10일, 평정소에 불려 나가 요리쓰나의 심문을 받으셨을 때에도 대성인은 이렇게 경고하셨다.

遠流・死罪の後・百日・一年・三年・七年が内に自界叛逆難とて此の御一門どしうちはじまるべし、其の後は他国侵逼難とて四方より・ことには西方よりせめられさせ給うべし

원류 · 사죄 뒤 백 일 · 일 년 · 삼 년 · 칠 년 안에 자계반역난이라 하여 이 일문끼리 싸움이 시작될 것이니라. 그 뒤에는 타국침핍난이라 하여 사방에서, 특히 서쪽에서 공격당하실 것이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1쪽

그 예언대로 다쓰노구치 법난으로부터 백오십 일쯤 뒤인 문영 9년(1272) 2월 11일, 가마쿠라와 교토에서 호조 일문끼리 싸우는 내란이 일어나 도키스케가 주살되었고, 이어 문영 11년(1274) 10월과 홍안 4년(1281)에는 원나라의 대군이 쳐들어와 큰 전란이 되었다. 특히 자계반역에 대해 「사도어서」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宝治の合戦すでに二十六年今年二月十一日十七日又合戦あり外道・悪人は如来の正法を破りがたし仏弟子等・必ず仏法を破るべし師子身中の虫の師子を食等云云、大果報の人をば他の敵やぶりがたし親しみより破るべし、薬師経に云く「自界叛逆難」と是なり

보지 합전이 있은 지 이미 이십육 년, 올해 2월 11일과 17일에 또 합전이 있었느니라. 외도와 악인은 여래의 정법을 깨뜨리기 어렵고, 불제자들이 반드시 불법을 깨뜨리리라. 「사자 몸속의 벌레가 사자를 먹는다」고 함이 이것이니라. 큰 과보를 지닌 사람은 다른 적이 깨뜨리기 어렵고 가까운 데서 깨뜨리느니라. 약사경에 「자계반역난」이라 한 것이 이것이니라.

「사도어서」, 957쪽

日蓮は此関東の御一門の棟梁なり・日月なり・亀鏡なり・眼目なり・日蓮捨て去る時・七難必ず起るべしと去年九月十二日御勘気を蒙りし時大音声を放てよばはりし事これなるべし纔に六十日乃至百五十日に此事起るか是は華報なるべし 実果の成ぜん時いかがなげかはしからんずらん

니치렌은 이 관동 일문의 동량이요 해와 달이요 귀감이요 눈이니라. 니치렌을 버리고 떠나게 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지난해 9월 12일 노여움을 입었을 때 큰 소리로 외친 것이 이것이니라. 겨우 육십 일 내지 백오십 일 만에 이 일이 일어났으니, 이것은 꽃의 과보(華報)이니라. 참 열매가 맺힐 때는 얼마나 한탄스러울 것이냐.

「사도어서」, 957쪽

「올해」란 문영 9년이며, 이른바 니가쓰 소동이다. 「니치묘성인어서」의 「지금 세상은 어지러워 지난해부터 모반하는 자가 나라에 가득하고, 올해 2월 11일 합전이 있었으며, 그로부터 지금 5월 말까지 아직 세상이 안온하지 않다」(当世は世乱れ去年より謀叛の者・国に充満し今年二月十一日合戦, 1217쪽)는 글도 같은 사건을 말씀하신 것이다. 「사도어서」의 이 대목에는 이 편이 읽어 가는 경문이 그대로 인용되어 있다 — 약사경의 「자계반역난」, 그리고 제4장에서 볼 인왕경의 「성인이 떠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

셋째 고명은 문영 11년(1274) 4월 8일, 사도에서 돌아오신 대성인이 헤이노사에몬노조와 대면하셨을 때 요리쓰나가 몽골이 언제쯤 쳐들어오겠느냐고 묻자, 올해를 넘기지 않으리라고 단언하신 일이다. 과연 그해 10월 몽골군이 밀려왔다.

去年文永十一年四月八日左衛門尉に語つて云く、王地に生れたれば身をば随えられたてまつるやうなりとも心をば随えられたてまつるべからず

지난해 문영 11년 4월 8일 사에몬노조에게 말하기를, 왕의 땅에 태어났으므로 몸은 따르게 되었을지라도 마음은 따르게 할 수 없느니라.

「선시초」, 287쪽

대성인은 이어서 염불의 무간지옥 · 선의 천마의 소위는 의심할 여지가 없고, 특히 진언종이 이 국토의 큰 재앙이므로 몽골 조복을 진언사에게 맡겨서는 안 되며, 만일 큰일을 진언사가 조복하면 나라는 더욱 서둘러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요리쓰나가 「언제쯤 쳐들어오겠습니까」 하고 물었고, 대성인은 「경문에는 언제라고는 보이지 않으나 하늘의 기색이 노여움이 적지 않아 급하게 보이니, 설마 올해를 넘기지는 않으리라」고 답하셨다고 「선시초」는 전한다.

멸후의 예언 적중과 본불의 미래기

대성인 멸후에도 그 예언은 모두 들어맞았다. 입정안국론 뒤의 편에서 다시 다루겠거니와, 대성인을 혹독하게 박해한 헤이노사에몬노조는 대성인 멸후 열두 해째(1293)에 일족이 멸망했다. 그토록 영화를 누리던 그의 말로는 너무도 비참했다. 니치칸 상인은, 헤이노사에몬노조가 목이 베인 것은 대성인의 얼굴을 친 까닭이고, 가장 사랑하던 둘째 아들이 목이 베인 것은 대성인의 목을 베려 한 까닭이며, 맏아들이 사도로 유배된 것은 대성인을 사도로 유배한 까닭이라고 풀었다고 전한다. 대성인은 이미 건치 3년(1277)의 「시모야마어소식」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教主釈尊より大事なる行者を法華経の第五の巻を以て日蓮が頭を打ち十巻共に引き散して散散に蹋たりし大禍は現当二世にのがれがたくこそ候はんずらめ

교주 석존보다 소중한 행자를, 법화경 제5권으로 니치렌의 머리를 치고 열 권을 모두 끌어내 흩뜨려 마구 짓밟은 큰 화는 현세와 내세 두 세상에 벗어나기 어려우리라.

「시모야마어소식」, 363쪽

그 무렵 헤이노사에몬노조의 겉모습은 권력이 절대적이고 화려했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때 이미 그의 본질이 오직 멸망을 향하는 생명임을 꿰뚫어 보고 계셨다. 또 문영 9년(1272) 2월 가마쿠라에서 호조 일문끼리 싸웠을 때, 대성인은 이것을 「꽃의 과보」라 하시고 「참 열매가 맺힐 때는 얼마나 한탄스러울 것이냐」고 걱정하셨다. 그리고 대성인 멸후 쉰두 해째인 원홍 3년(1333) 5월 22일, 호조 일문은 모두 멸망하고 가마쿠라 막부는 무너졌다.

나아가 대성인은 말법의 어본불로서 광선유포의 미래기를 엄연히 말씀하셨다. 그 미래기는 어떠한가. 사도에서 쓰신 「현불미래기」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問うて曰く仏記既に此くの如し汝が未来記如何、答えて曰く仏記に順じて之を勘うるに既に後五百歳の始に相当れり仏法必ず東土の日本より出づべきなり

묻기를, 부처의 미래기는 이미 이와 같다. 그대의 미래기는 어떠한가. 답하기를, 부처의 미래기에 따라 이것을 헤아려 보면 이미 후오백세의 처음에 해당하느니라. 불법은 반드시 동쪽 땅 일본에서 나올 것이니라.

「현불미래기」, 508쪽

「간효팔번초」에도 「해는 동쪽에서 나온다」(日は東より出づ, 589쪽)고 하셨다. 대성인의 불법은 일본에 광선유포되고, 그뿐 아니라 일본에서 일어난 이 불법이 반드시 서쪽으로 서쪽으로 도도히 흘러가리라는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금광명경의 한 구절에서 시작된 이 장의 이야기는, 경문의 예언 → 대성인 시대의 적중 → 대성인 자신의 예언과 그 적중 → 본불의 미래기로 이어진다. 경문이 맞았기에 그 경문을 몸으로 읽은 이의 예언도 맞았고, 그 이의 미래기 또한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네 경의 경문은 이전경이지만, 법화경의 망목으로서 그 글을 빌려 법화경의 뜻을 드러낸다. 문저에서 읽으면 금광명경의 「이 경」은 말법의 삼대비법이며, 그 법을 유포하지 않고 버리는 나라에서 제천이 법미에 굶주려 떠나고 재난이 잇따른다. 그 경문이 대성인 시대에 그대로 들어맞은 것은 대성인이 경문을 몸으로 읽은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심의 증거다.

제2단 제3장 경증의 둘째 — 대집경
어서 18쪽 13행~19쪽 3행 · 第二段 第三章 経証の二 大集経

본문

원문 대조어서 18쪽 13행 ~ 19쪽 3행
本文 · 어서 원문

大集経に云く「仏法実に隠没せば、鬚髪爪皆長く、諸法も亦忘失せん。当の時、虚空の中に大なる声あつて地を震い、一切皆遍く動ぜんこと、猶水上輪の如くならん。城壁破れ落ち下り、屋宇悉く圮れ圻け、樹林の根・枝・葉・華葉・菓、薬尽きん。唯浄居天を除いて、欲界の一切処、七味・三精気損減して余有ること無く、解脱の諸の善論、当の時一切尽きん。所生の華菓、味希少にして亦美からず。諸有の井泉池、一切尽く枯涸し、土地悉く鹹鹵し、歒裂して丘澗と成らん。諸山皆嫶燃して、天竜雨を降らさず、苗稼皆枯れ死し、生いたる者皆死れ尽きて余草更に生ぜず。土を雨らし、皆昏闇にして、日月明を現ぜず。四方皆亢旱して、数諸の悪瑞を現じ、十不善業の道、貪・瞋・癡倍増して、衆生の父母に於ける、之を観ること獐鹿の如くならん。衆生及び寿命、色力・威楽減じ、人天の楽を遠離し、皆悉く悪道に堕せん。是くの如き不善業の悪王・悪比丘、我が正法を毀壊し、天人の道を損減し、諸天善神・王の衆生を悲愍する者、此の濁悪の国を棄てて皆悉く余方に向わん」已上。

풀이

대집경에 이르기를, 「불법이 참으로 은몰하면, 수염과 머리털과 손발톱이 모두 길어지고 여러 법도 또한 잊혀 없어지리라. 그때 허공 가운데 큰 소리가 있어 땅을 진동하고, 일체가 모두 두루 흔들리기를 마치 물 위의 물레바퀴와 같으리라. 성벽은 무너져 떨어지고 집들은 모두 허물어지고 갈라지며, 숲의 뿌리 · 가지 · 잎 · 꽃잎 · 열매의 약이 다하리라. 오직 정거천(淨居天)을 제외하고 욕계의 모든 곳에서 일곱 가지 맛과 세 가지 정기가 덜어져 남는 것이 없고, 해탈로 이끄는 여러 선한 논(論)도 그때 모두 다하리라. 나는 꽃과 열매는 맛이 드물고 또 좋지 않으리라. 모든 우물과 샘과 못이 남김없이 말라 버리고, 토지는 모두 소금기 많은 메마른 땅이 되며 갈라 터져 언덕과 골짜기가 되리라. 여러 산이 모두 타오르고 천룡은 비를 내리지 않아 곡식의 싹이 모두 말라 죽고, 자란 것도 모두 시들어 다하여 다른 풀도 다시 나지 않으리라. 흙이 비처럼 내려 모두 어둡고, 해와 달도 밝음을 나타내지 않으리라. 사방이 모두 가물어 자주 여러 악한 상서를 나타내고, 십불선업의 길과 탐 · 진 · 치가 갑절로 늘어, 중생이 부모를 보기를 노루와 사슴처럼 하리라. 중생과 그 수명과 몸의 힘과 위세와 즐거움이 줄고 인 · 천의 즐거움을 멀리 떠나 모두 다 악도에 떨어지리라. 이와 같은 불선업의 악한 왕과 악한 비구가 나의 정법을 헐어 무너뜨리고 하늘과 사람의 길을 덜어 내니, 제천선신과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왕들이 이 탁하고 악한 나라를 버리고 모두 다른 곳으로 향하리라」 이상.

어구 풀이

大集経대집경
『대방등대집경』의 약칭. 북량(北涼)의 담무참 등이 번역한 60권. 욕계와 색계 사이에 있다는 대보방(大寶坊) 등에 시방의 불보살을 널리 모아 설한 대승의 여러 경을 한 부로 엮은 것이다. 국왕이 불법을 수호하지 않으면 삼재가 일어난다고 설하고, 또 석존 멸후 정법이 쇠퇴해 가는 모습을 오백 년씩 다섯으로 나눈 「오오백세」를 설한다. 이것이 대성인 당시의 일본에서 석존 멸후 이천 년 이후를 말법으로 보는 근거가 되었다.
仏法実に隠没せば불법이 참으로 은몰하면
정법이 숨어 사라지는 것. 절과 승려가 남아 있어도 사람을 구하는 법의 힘이 없어진 상태까지 포함한다.
鬚髪爪皆長く수염과 머리털과 손발톱이 모두 길어진다
풍속이 어지러워지고 예의가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니치칸 상인은 머리털은 탐(貪), 손발톱은 진(瞋), 수염은 치(癡)를 나타낸다고 하여 삼독이 늘어나는 모습으로 풀었다.
諸法も亦忘失せん여러 법도 또한 잊혀 없어진다
세간의 여러 법, 곧 도리와 예법과 나라의 법이 잊히고 무너지는 것이다.
水上輪물 위의 물레바퀴
물을 퍼 올리는 수차(水車). 땅 위의 모든 것이 물레바퀴가 돌듯 흔들려 뒤집히는 큰 지진의 모습이다.
樹林の根・枝・葉・華葉・菓、薬尽きん숲의 뿌리 · 가지 · 잎 · 꽃잎 · 열매의 약이 다한다
뿌리 · 가지 · 잎 · 꽃잎 · 열매에서 얻는 약효가 모두 없어지는 것. 약초가 병을 고치는 거의 유일한 방도였던 시대에 그것은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었다. 불법이 은몰하면 이 약미마저 다한다.
浄居天정거천
색계의 맨 위, 제4선천에 있는 다섯 하늘. 성자만이 태어나는 맑은 곳이라 하여 재난이 미치지 않는다.
七味일곱 가지 맛
단맛 · 매운맛 · 신맛 · 쓴맛 · 짠맛 · 떫은맛 · 담백한 맛.
三精気세 가지 정기
대지정기(땅이 초목을 기르는 힘) · 중생정기(자타를 이롭게 하고 기르는 힘) · 정법정기(사람들을 득도하게 하는 힘). 이 세 정기를 성하게 하는 근원은 묘법에 있다.
解脱の諸の善論해탈로 이끄는 여러 선한 논
괴로움의 속박을 벗어나는 깨달음으로 사람을 이끄는 가르침과 논설. 넓게는 민중을 행복으로 이끄는 모든 지도 원리를 가리킨다.
土地悉く鹹鹵し、歒裂して丘澗と成らん토지가 모두 소금기 많은 땅이 되고 갈라져 언덕과 골짜기가 된다
「함(鹹)」은 짠 것, 「노(鹵)」는 소금기를 머금은 불모의 땅이다. 「적렬(歒裂)」은 찢어져 갈라지는 것인데, 경문에는 「부(剖)」로 되어 있으나 대성인의 정필에는 「적(歒)」으로 되어 있다. 「구간(丘澗)」은 대지에 높낮이가 생기는 것으로, 「구」는 작은 언덕, 「간」은 골짜기 · 골짜기의 시내다.
諸山皆嫶燃して여러 산이 모두 타오른다
가뭄으로 산들이 바싹 말라 불타오르는 것이다.
土を雨らし흙이 비처럼 내린다
땅이 메말라 흙이 바람에 날려 올라갔다가 비처럼 쏟아지는 것이다.
十不善業십불선업
몸 · 입 · 뜻의 세 업에 걸친 가장 심한 열 가지 악행. 『구사론』 권16 등에 설해진다. 몸의 셋은 살생 · 투도 · 사음, 입의 넷은 망어 · 기어 · 악구 · 양설, 뜻의 셋은 탐욕 · 진에 · 우치(또는 사견)다. 십악이라고도 한다.
獐鹿노루와 사슴
사슴의 한 종류로, 쫓겨 위험이 닥치면 저만 살려고 부모와 동료를 조금도 돌보지 않고 달아난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를 돌보지 않는 불효자에 비유했다.
悪王・悪比丘악한 왕 · 악한 비구
불선업을 지어 정법을 헐어 무너뜨리는 국주와 승려. 정법을 막는 두 주체로서 이 편과 다음 편에 거듭 나온다.

「불법이 참으로 은몰하면」 — 모든 어지러움의 근원

대집경은 불법이 은몰하면 어떤 허물이 일어나는가를 설한다. 불법의 어지러움이야말로 모든 어지러움과 불행의 근원이므로, 경문은 맨 먼저 「불법이 참으로 은몰하면」이라는 말을 둔다. 제2장의 금광명경이 「국왕이 정법을 버리면」이라는 사람의 행위에서 시작했다면, 대집경은 「정법이 숨어 사라지면」이라는 법의 상태에서 시작한다. 같은 사태를 두 쪽에서 본 것이다.

불법의 은몰이란 절이 없어지고 승려가 사라지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절이 많고 승려가 많아 겉으로는 불법이 아직 성한 것처럼 보여도, 사람을 이끌고 구하는 힘을 잃었다면 그것은 불법의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입정안국론 제3편에서 객은 「위로는 임금 한 사람부터 아래로는 만민에 이르기까지 불상을 숭상하고 경권을 받들며, 불경은 별처럼 늘어서고 당우는 구름처럼 퍼져 있는데, 누가 일대의 가르침을 업신여기고 삼보의 자취를 폐했다 하겠는가」라고 반문하게 되는데, 이 물음의 답이 이미 여기에 놓여 있다.

석존 시대에는 걸식의 행이 위엄 있는 수행이었다. 걸식은 민중에게 보시의 뜻을 일으키게 하여 선근을 심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걸식할 때에는 옷을 바르게 갖추고 위풍당당하게 사자왕의 걸음으로 집집을 찾아가, 굳이 예를 갖추지 않고 발우 하나를 내밀었다. 찾아간 집에서는 그 발우에 음식을 넣었다. 집안사람이 돌아보지 않으면 석장을 울려 알렸다. 보시를 받아도 인사하지 않고 발길을 돌려 위풍당당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냇가에 이르러 손을 씻고 입을 헹군 뒤 나무 아래로 돌아가, 굶주린 때에 제 자식의 살을 먹는 듯한 마음으로, 양이 많고 적음이나 맛의 좋고 나쁨을 결코 따지지 않고 감사하며 먹었다. 이것은 석존 시대의 수행으로 말법의 수행은 아니지만, 법을 지닌 이가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 섰는가를 보여 준다. 제 이익만 탐하고 제 몸 지키기에 급급하여 형식으로 경을 읽고 절이 있고 승려가 있다는 것뿐이라면, 그것이 바로 「불법의 은몰」이다.

수염 · 머리털 · 손발톱이 길어진다 — 풍속과 마음의 어지러움

「수염과 머리털과 손발톱이 모두 길어진다」는 풍속이 극도로 어지러워지는 것을 뜻한다. 물질(色法)과 마음(心法)은 둘이 아니다(色心不二). 풍속의 어지러움은 곧 사람 마음의 어지러움이다. 사람이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마음이 아수라처럼, 아귀처럼, 또 지옥의 괴로움에 잠길 때 그에 맞는 모습이 된다. 「수염과 머리털과 손발톱이 모두 길어진다」는 모습을 예부터 법이 멸하는 모습으로 삼아 온 까닭이다.

니치칸 상인은 「문단」에서 이것을 삼독이 늘어나는 비유라고 하여 이렇게 문답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묻기를, 이 수염 · 머리털 · 손발톱 셋을 든 것은 어떤 뜻인가. 답하기를, 한 뜻으로는 삼혹(三惑)이 늘어나는 것을 나타낸다. 머리털은 견사혹(見思惑), 수염은 진사혹(塵沙惑), 손발톱은 무명혹(無明惑)이다. 진언에서는 이것을 삼망집(三妄執), 곧 거친 망집 · 가는 망집 · 아주 미세한 망집이라 한다. 지금 생각건대, 이 경 자체의 뜻으로는 아마 삼독이 늘어나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머리털은 탐(貪)을 나타내니 보고서 애착을 내기 때문이고, 손발톱은 진(瞋)을 나타내니 단단하고 날카롭기 때문이며, 수염은 치(癡)를 나타낸다. 『석씨요람』 상권에 「그 좋은 모습을 허물어 수염과 머리털을 깎는다. 과거의 제불은 발원하여 말하기를, 지금 머리털을 깎는 까닭에 원컨대 일체중생의 번뇌를 끊으리라 하였다」고 했으니, 이 수염과 머리털을 저 번뇌에 비유한 것이다. 아래의 경문에 「탐 · 진 · 치가 갑절로 늘어」라 한 것을 생각해 보라.

한 뜻(삼혹)
  • 머리털견사혹
  • 수염진사혹
  • 손발톱무명혹
니치칸 상인의 풀이(삼독)
  • 머리털탐(보고서 애착을 내므로)
  • 손발톱진(단단하고 날카로우므로)
  • 수염치
근거: 아래 경문「탐 · 진 · 치가 갑절로 늘어」貪・瞋・癡倍増して

「수염과 머리털과 손발톱이 모두 길어지고」鬚髪爪皆長く

니치칸 상인 「입정안국론 문단」
도표 8 · 수염 · 머리털 · 손발톱의 두 풀이

이처럼 한 뜻으로는 머리털은 견사, 수염은 진사, 손발톱은 무명의 삼혹을 나타낸다 하고, 또 한 뜻으로는 머리털은 탐, 손발톱은 진, 수염은 치의 삼독을 나타낸다고도 한다. 본래 머리털과 수염과 손발톱은 몸을 꾸미는 자리여서, 이것을 도에 넘치게 꾸미는 것은 불제자답지 않은 망집이다. 반대로 이것을 아무렇게나 길게 버려두는 것도 풍속의 어지러움이요 마음의 어지러움이다. 그래서 수염 · 머리털 · 손발톱으로 삼혹과 삼독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이 만드는 모든 것은 사람 마음의 소산이다. 한 시대의 노래와 소리에도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비친다. 대성인은 이렇게 쓰셨다.

音の哀楽を以て国の盛衰を知る詩の序に云く治世の音は安んじて以て楽しむ其の政和げばなり乱世の音は怨んで以て怒る其の政乖けばなり亡国の音は哀んで以て思う其の民困めばなりと

소리의 슬픔과 즐거움으로써 나라의 성쇠를 안다. 『시경』의 서(序)에 이르기를, 잘 다스려지는 세상의 소리는 편안하여 즐거우니 그 정치가 화평하기 때문이요, 어지러운 세상의 소리는 원망하여 성내니 그 정치가 어그러졌기 때문이요, 망하는 나라의 소리는 슬퍼하여 생각에 잠기니 그 백성이 곤궁하기 때문이라 하였느니라.

「염불자추방선지사」, 88쪽

「여러 법도 또한 잊혀 없어진다」는 이 마음의 어지러움이 세간의 법으로 번진 것이다. 민중의 마음을 이끌 굳건한 사상이 없고, 도의는 땅에 떨어지며, 나라의 법은 무너지거나 함부로 쓰인다. 세간의 법과 국법이 어지러운 밑바닥에는, 그것을 바르게 이끌어야 할 불법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허공의 큰 소리와 물레바퀴처럼 흔들리는 땅

「그때 허공 가운데 큰 소리가 있어 땅을 진동하고, 일체가 모두 두루 흔들리기를 마치 물 위의 물레바퀴와 같으리라. 성벽은 무너져 떨어지고 집들은 모두 허물어지고 갈라지며, 숲의 뿌리 · 가지 · 잎 · 꽃잎 · 열매의 약이 다하리라.」 이 글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이렇게 말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주(註)에 이르기를 『하늘의 우레가 땅에 사무쳐 그 바퀴가 도는 것이 마치 물풀과 같다』고 했고, 건(健)은 『옛날 천구유성(天狗流星)이라는 것이 울려 퍼진 일이 있었다』고 했다. 『홍결』 제5 중에 『천구가 유행하고 땅이 자주 진동한다』고 했으니, 건의 뜻은 이 글에 의한 것인가. 이 뜻이 대체로 맞는다.」

여기에 「천구유성」 「천구유행」이라는 말이 보이는데, 이것은 하늘에서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운석이나 불덩이를 옛사람들이 그렇게 부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늘의 우레가 땅에 사무친다」는 그것이 떨어진 일을, 「허공 가운데 큰 소리가 있다」는 그때의 폭음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은 오히려 지진을 말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 「허공 가운데 큰 소리가 있다」는 먼 우레 같은 땅울림이 자주 들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입정안국론을 짓게 된 큰 계기의 하나였던 정가 원년(1257) 8월 23일의 정가 대지진도 소리를 동반했다고 전한다. 「땅을 진동하고 일체가 모두 두루 흔들리기를 물 위의 물레바퀴와 같다」는 것은 매우 큰 지진이다. 지진이 일어나면 눈앞에 처참한 광경이 펼쳐진다. 돌무더기로 변한 집, 무너진 산, 흙모래에 메워진 강바닥, 대지의 깊은 균열, 모든 것을 재로 만드는 불, 그리고 희생된 이들의 주검. 「성벽은 무너져 떨어지고 집들은 모두 허물어지고 갈라진다」는 경문 그대로다. 정가 대지진 때 가마쿠라에서는 신사와 절이 무너지고 산이 무너져 집들이 깔리고 땅이 갈라져 물이 솟았다고 『아즈마카가미(吾妻鏡)』는 전한다.

정거천과 세 가지 정기

「오직 정거천을 제외하고 욕계의 모든 곳에서 일곱 가지 맛과 세 가지 정기가 덜어져 남는 것이 없다.」 이것은 모든 민중이 누려야 할 즐거운 생활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오직 정거천을 제외하고」의 정거천은 대집경에서는 색계 맨 위의 맑은 하늘이지만, 법화경의 처지에서 말하면 「큰 불에 탈 때에도 나의 이 땅은 안온하다(大火所焼時 我此土安穏)」는 수량품의 불국토로 보아야 한다. 아무리 큰 재난이 세계를 덮어도 무너지지 않는 국토가 있다는 것이다.

세 가지 정기는 중생정기 · 지정기 · 법정기다.

먼저 중생정기는 사람과 사회 그 자체의 생명력이며, 한 나라의 흥망과 민중의 성쇠를 가르는 근본 생명력이다. 그 생명력이 극도로 쇠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방편품에 설한 오탁(五濁) 가운데 중생탁(衆生濁)에 해당한다. 중생 사회 전체의 생명력이 닳아 없어지는 것은 실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의 탁함에서 비롯된다.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에 빠지고 아집에 사로잡히면 저절로 추한 다툼이 벌어지고, 정치는 어지러워지며, 생활은 무너지고, 사회 전체는 멈추어 서고, 나라는 일어날 기운을 잃어 끝내 망국의 처지에 이른다.

지정기는 국토 그 자체의 생명력이다. 국토 자체의 생명력이 참으로 왕성하고 바른 리듬을 따른다면, 오곡은 풍성히 여물고, 나무들의 푸름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와 희망과 윤택함을 주며, 물은 맑고 아름답고, 풀꽃은 향기를 풍겨 그곳은 그대로 낙원이 된다.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春の時来りて風雨の縁に値いぬれば無心の草木も皆悉く萠え出生して華敷き栄えて世に値う気色なり秋の時に至りて月光の縁に値いぬれば草木皆悉く実成熟して一切の有情を養育し寿命を続き長養し終に成仏の徳用を顕す

봄이 와서 바람과 비의 연을 만나면 마음 없는 초목도 모두 다 싹터 나와 꽃이 피고 번성하여 세상을 만난 기색이니라. 가을이 되어 달빛의 연을 만나면 초목이 모두 다 열매를 맺고 무르익어 일체의 유정을 기르고 수명을 잇게 하여 길이 기르고, 마침내 성불의 덕용을 나타내느니라.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 574쪽

참된 불국토라면 국토 자체가 자비의 모습을 나타낸다. 국토 또한 십계의 당체다. 천태대사가 「국토세간도 또한 열 가지 법을 갖추니, 그러므로 악한 국토의 상 · 성 · 체 · 력」이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 국토 자체의 생명력을 참으로 씩씩하고 맑게, 또 바른 리듬을 따르게 하는 근원은 묘법밖에 없다. 그러므로 「불법이 참으로 은몰하면」 국토 자체의 생명력은 쇠하여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의 「상 · 성 · 체 · 력 · 작」 등을 나타내고, 리듬은 깨지고 지쳐, 대지는 크게 흔들리고, 강은 넘치고, 바다는 성나 날뛰며, 바람과 비는 일정함이 없어 때로는 큰 폭풍우를, 때로는 큰 가뭄을 가져온다.

법정기는 세간의 법과 나라의 법, 더 근원적으로는 불법의 힘이다. 사상의 혼란, 도의의 퇴폐, 국법의 약화나 남용은 결국 사람 생명에 둥지를 튼 편견과 사견의 산물이며 사람 생명의 탁함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그것을 바르게 이끌어야 할 불법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있다. 불법에 민중을 구할 힘이 없으면 국법은 어지러워지고 세간의 법도 문란해진다. 이것이 법정기를 빼앗긴 모습이며, 결국 참된 불법이 은몰한 결과다.

「해탈로 이끄는 선한 논도 다한다」

「해탈로 이끄는 여러 선한 논도 그때 모두 다하리라」는 민중을 이끄는 좋은 지도 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해탈이란 괴로움의 속박을 벗어난 깨달음의 경애인데, 이것은 결코 소승경이 말하는 것처럼 몸을 재로 만들고 지혜를 없애(灰身滅智) 번뇌를 떠난 무여열반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번뇌즉보리, 곧 현실의 생활 속에 쌓는 참된 행복의 경애다. 그러므로 「해탈의 선론」이란 따로 말하면(別) 묘법밖에 없음이 분명하지만, 여기서는 넓게 말하여(總) 민중을 행복으로 이끄는 모든 지도 원리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법이 은몰하면 세간의 좋은 가르침도 함께 힘을 잃는다.

가뭄 · 흙비 · 빛을 잃은 해와 달

「나는 꽃과 열매는 맛이 드물고 또 좋지 않으리라. 모든 우물과 샘과 못이 남김없이 말라 버리고, 토지는 모두 소금기 많은 메마른 땅이 되며 갈라 터져 언덕과 골짜기가 되리라. 여러 산이 모두 타오르고 천룡은 비를 내리지 않아 곡식의 싹이 모두 말라 죽고, 자란 것도 모두 시들어 다하여 다른 풀도 다시 나지 않으리라.」 이것은 큰 가뭄이다. 옛날에는 이 피해가 민중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대지가 찢어져 갈라지고 높낮이가 생길 만큼의 가뭄이 오래 이어지면 초목이 모두 말라 죽고 큰 기근이 일어난다. 더구나 악정 때문에 나라 안의 다스림이 소홀해지고 전란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가뭄은 그 틈을 타 더욱 맹위를 떨친다. 정가 · 정원 연간에 일본을 덮친 기근도 가뭄과 냉해와 홍수가 번갈아 들이닥친 결과였다.

메마른 들판 — 갈라 터진 논바닥과 말라붙은 냇물, 시든 풀, 먼 산들 위의 흐린 하늘
그림 · 메마른 들판 — 갈라 터진 논바닥과 말라붙은 냇물, 시든 풀, 먼 산들 위의 흐린 하늘

「흙이 비처럼 내려 모두 어둡고, 해와 달도 밝음을 나타내지 않으리라. 사방이 모두 가물어 자주 여러 악한 상서를 나타낸다.」 「흙이 비처럼 내린다」는 것은 대지가 바싹 말라 흙이 바람에 날려 올라갔다가 쏟아지는 것이다. 사막의 모래바람이나 중국 대륙의 황사가 잘 알려진 예이며, 화산이 터져 높이 뿜어 올려진 재가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 흙이나 재가 내리고 진흙 비가 내렸다는 기록은 많다. 공중에 떠오른 흙이나 화산재는 한편으로 「흙비」를 일으키고, 다른 한편으로 아주 가볍고 고운 알갱이는 오래 공중에 머물러 햇빛을 가려 냉해를 일으키는 일이 적지 않다. 이때 해가 붉게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해와 달도 밝음을 나타내지 않는다」이다.

흙이 내리고 해와 달이 빛을 잃는 것이 「악한 상서」라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도리다. 아무 까닭 없이 흙이 내리거나 해와 달이 빛을 잃지는 않는다. 그 현상은 빙산의 일각이며, 그 뒤에는 화산의 큰 분화나 이상한 건조가 있다. 다시 그 깊은 곳을 생각하면 국토의 리듬에 이상이 생긴 증거이며, 재해가 재해를 부르고 한꺼번에 여러 악한 현상이 나란히 일어날 전조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국토의 변화는 사람의 생명 상태의 변화에 미묘하고도 크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전쟁 같은 사람의 파괴적인 행위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 불법에서 이것들을 「여러 악한 상서(諸惡瑞)」라고 한 데에는 참으로 까닭이 있다.

십불선업과 탐 · 진 · 치 — 부모를 노루와 사슴처럼 본다

「십불선업의 길과 탐 · 진 · 치가 갑절로 늘어, 중생이 부모를 보기를 노루와 사슴처럼 하리라.」 참으로 살벌한 사회다. 사람들은 몸으로는 살생과 도둑질과 삿된 음행에 빠지고, 입으로는 서로 거짓말을 하고, 꾸민 거짓을 늘어놓고, 미움을 담아 욕하고, 두 말로 사람을 속인다.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 차고 노여움과 미움이 넘치며, 무기력과 무지와 게으름이 가득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1. 사람의 모습수염 · 머리털 · 손발톱이 길어짐(삼독의 증장), 여러 법이 잊힘
  2. 땅허공의 큰 소리와 지진, 성벽과 집이 무너짐, 숲의 약이 다함
  3. 세 가지 정기중생정기(사람과 사회의 생명력) · 지정기(국토의 생명력) · 법정기(세간의 법 · 국법 · 불법의 힘)가 덜어짐정거천만은 제외
  4. 물과 흙우물 · 샘 · 못이 마르고, 땅이 짜게 되어 갈라짐, 산이 타고 비가 오지 않음
  5. 하늘흙비, 해와 달이 빛을 잃음, 여러 악한 상서
  6. 마음십불선업과 탐 · 진 · 치가 갑절로 늘어 부모를 노루와 사슴처럼 봄
  7. 목숨수명 · 몸의 힘 · 위세 · 즐거움이 줄어 악도에 떨어짐
  8. 결과불선업의 악한 왕과 악한 비구가 정법을 무너뜨려, 제천선신과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왕들이 이 탁한 나라를 버림「이 탁하고 악한 나라를 버리고 모두 다른 곳으로 향하리라」此の濁悪の国を棄てて皆悉く余方に向わん
도표 9 · 대집경 — 불법이 은몰하면 무너지는 것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몸과 입과 마음이 거칠어지고 썩어 버리면, 그것이 깊어져 상식으로는 뜻밖이라고 여길 일이 마치 당연한 일인 듯 태연히 행해진다. 마침내 피를 나눈 사이끼리 남처럼 서로 버리고 돌보지 않게 된다. 때로는 남보다 더 심한 미움과 질투와 노여움으로 추한 다툼에 몸을 던지기도 한다. 「노루와 사슴처럼」이란 바로 이것이다. 제 몸에 위험이 닥치면 부모도 동료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달아나는 짐승처럼, 사람이 부모를 저버리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삼세에 걸쳐 바르고 참된 불법이 은몰한 결과다.

세상의 퇴폐를 한탄하기는 쉽다. 그러나 누가 이것을 타개할 것인가. 불법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그 깊은 곳에서 변혁한다. 그것은 도리도 아니고 수양도 아니다. 탐 · 진 · 치에 좀먹힌 생명의 깊은 곳에 잠겨 있는, 가장 힘차고 맑고 때 묻지 않은 큰 생명력을 샘물처럼 솟아나게 하는 것이다. 이 큰 정법이 세워지지 않는 한 사회의 탁함을 바로잡을 길은 없다.

줄어드는 목숨과 떠나는 선신

「중생과 그 수명과 몸의 힘과 위세와 즐거움이 줄고 인 · 천의 즐거움을 멀리 떠나 모두 다 악도에 떨어지리라.」 사람의 수가 줄고, 모든 중생의 수명이 줄며, 생명력이 약해지고, 몸도 쇠하고, 즐거움도 희망도 용기도 없어져 건전한 생활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삼악도 · 사악도에 떨어져 오래도록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어둠에서 어둠으로 떠돌게 된다. 생명력의 감퇴는 한 사람에게도 한 나라에게도 두려운 일이다.

「이와 같은 불선업의 악한 왕과 악한 비구가 나의 정법을 헐어 무너뜨리고 하늘과 사람의 길을 덜어 내니, 제천선신과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왕들이 이 탁하고 악한 나라를 버리고 모두 다른 곳으로 향하리라.」 정법을 헐뜯는 죄로 불선의 업을 쌓아 생명이 약해진 악한 왕과 악한 승려가 정법을 비방하고 그 유포를 막으므로, 제천선신도,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선한 왕도 그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대집경의 긴 경문은 이렇게 해서 입정안국론 제1편의 명제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난다」로 돌아온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악한 왕」과 「악한 비구」가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이다. 금광명경이 정법을 버리는 국왕을 말했다면, 대집경은 정법을 무너뜨리는 주체로 국왕과 승려를 함께 든다. 나라의 권력과 그릇된 종교가 손을 잡을 때 정법이 무너지고 선신이 떠난다. 그 「악한 비구」가 누구인가 — 이것이 입정안국론 제3편 「정법 비방의 유래와 망국의 증거」에서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을 들어 밝혀지고, 입정안국론 제4편에서 법연과 『선택집』으로 좁혀진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대집경은 불법의 은몰을 모든 재난의 첫머리에 둔다. 법이 무너지면 사람의 마음(삼독)이 무너지고,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면 국토의 정기와 하늘의 운행까지 무너진다. 그 끝에 선신이 탁한 나라를 버린다. 의정불이의 원리가 경문의 차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제2단 제4장 경증의 셋째 — 인왕경
어서 19쪽 4~8행 · 第二段 第四章 経証の三 仁王経

본문

원문 대조어서 19쪽 4~8행
本文 · 어서 원문

仁王経に云く「国土乱れん時は先ず鬼神乱る。鬼神乱るるが故に万民乱る。賊来つて国を劫かし、百姓亡喪し、臣・君・太子・王子・百官、共に是非を生ぜん。天地怪異し、二十八宿・星道・日月、時を失い、度を失い、多く賊の起ること有らん」と。亦云く「我今五眼をもつて明らかに三世を見るに、一切の国王は皆過去の世に五百の仏に侍えしに由つて、帝王主と為ることを得たり。是を為て一切の聖人・羅漢、而も為に彼の国土の中に来生して、大利益を作さん。若し王の福尽きん時は、一切の聖人皆為れ捨去せん。若し一切の聖人去らん時は、七難必ず起らん」已上。

풀이

인왕경에 이르기를, 「국토가 어지러울 때에는 먼저 귀신이 어지럽다. 귀신이 어지럽기 때문에 만민이 어지럽다. 적이 와서 나라를 겁략하고 백성이 죽어 없어지며, 신하 · 임금 · 태자 · 왕자 · 백관이 함께 시비를 일으키리라. 하늘과 땅에 괴이한 일이 생기고, 이십팔수 · 별의 길 · 해와 달이 때를 잃고 도수를 잃으며, 많은 적이 일어나리라」 하였느니라. 또 이르기를, 「내가 이제 오안(五眼)으로 삼세를 밝게 보건대, 일체의 국왕은 모두 과거세에 오백의 부처를 섬긴 까닭으로 제왕의 주인이 될 수 있었느니라. 이 때문에 일체의 성인과 나한이 그를 위하여 그 국토 가운데 와서 태어나 큰 이익을 짓느니라. 만일 왕의 복이 다할 때에는 일체의 성인이 모두 버리고 떠나리라. 만일 일체의 성인이 떠날 때에는 칠난이 반드시 일어나리라」 이상.

어구 풀이

仁王経인왕경
후진(後秦) 구마라집 역 『인왕반야바라밀경』 2권과 당(唐) 불공 역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 2권이 있다. 범어 원전도 티베트어 번역도 전하지 않아 중국에서 지어진 경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정법이 멸하여 사상이 어지러울 때 악업으로 받는 칠난을 보이고, 이 재난을 피하려면 반야를 받아 지녀야 한다고 하여 보살의 행법을 설한다. 법화경 · 금광명경과 함께 호국삼부경으로 꼽힌다. 본문의 인용은 호국품 · 수지품 등의 글이다.
国土乱れん時は先ず鬼神乱る국토가 어지러울 때에는 먼저 귀신이 어지럽다
재난이 일어나는 순서를 말한 글. 국토의 혼란에 앞서 먼저 생명과 복을 빼앗는 작용이 어지러워진다. 입정안국론 제9편에서 주인은 이 글을 다시 들어 「백귀가 일찍 어지럽고 만민이 많이 죽었다」고 당시를 진단한다.
鬼神귀신
불법에서 귀(鬼)는 생명 자체를 무너뜨리고 복을 빼앗는 작용이다. 『어의구전』은 「귀란 목숨을 빼앗는 자이니 탈공덕자라 한다」고 한다.
賊来つて国を劫かし적이 와서 나라를 겁략한다
다른 나라의 적이 쳐들어와 나라를 위협하고 빼앗는 것. 타국침핍난에 해당한다.
百姓亡喪し백성이 죽어 없어진다
「백성」은 만민. 전란으로 백성이 죽거나 흩어져 없어지는 것이다.
臣・君・太子・王子・百官、共に是非を生ぜん신하 · 임금 · 태자 · 왕자 · 백관이 함께 시비를 일으킨다
나라를 이끄는 이들이 서로 옳으니 그르니 다투어 갈라지는 것. 자계반역난의 모습이다.
二十八宿이십팔수
인도와 중국에서 예부터 쓰인 천문설에서 정한 스물여덟 별자리. 달이 하늘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서쪽에서 동쪽으로 하루에 하나씩 황도 부근의 성수에 머문다고 하여 정해졌다. 『이십팔수경』 · 『마등가경』 · 『숙요경』 등에 설한다. 「수(宿)」는 별의 머무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기』에도 「이십팔사(舍)는 곧 이십팔수가 머무는 곳」이라 했다. 『숙요경』 권하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우수(牛宿)를 뺀 이십칠수였다고 한다.
時を失い度を失い때를 잃고 도수를 잃는다
천체가 정해진 때와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는 것. 하늘의 운행이 어그러지는 것이다.
五眼오안
물질과 마음에 걸쳐 사물을 꿰뚫어 보는 다섯 가지 눈. 육안(肉眼) · 천안(天眼) · 혜안(慧眼) · 법안(法眼) · 불안(佛眼)이다. 부처는 오안을 모두 갖추어 삼세를 밝게 본다.
五百の仏に侍えし오백의 부처를 섬겼다
과거세에 많은 부처를 섬기고 공양한 선근. 국왕의 자리는 이 과거의 선근이 맺은 과보라는 것이다.
聖人・羅漢성인 · 나한
정법을 지니고 넓혀 일체중생을 구하는 사람. 나한(아라한)은 소승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이나, 여기서는 넓게 정법으로 나라를 이롭게 하는 이를 가리킨다.
七難必ず起らん칠난이 반드시 일어나리라
인왕경이 설하는 일곱 가지 큰 재난. 그 내용은 제6장에서 하나하나 펼쳐진다.

재난의 순서 — 먼저 귀신이 어지럽다

인왕경은 모든 혼란의 시작이 귀신의 어지러움에서 온다고 한다. 「국토가 어지러울 때에는 먼저 귀신이 어지럽다. 귀신이 어지럽기 때문에 만민이 어지럽다.」 짧은 글이지만, 재난이 어떤 순서로 번져 가는가를 이만큼 또렷이 말한 글은 드물다.

불법에서 말하는 「귀신」이란, 『어의구전』에 이렇게 있는 바와 같이 생명 자체를 무너뜨리고 복운을 빼앗는 작용이다.

鬼とは命を奪う者にして奪功徳者と云うなり

귀란 목숨을 빼앗는 자이니, 공덕을 빼앗는 자라 하느니라.

『어의구전』, 749쪽

마(魔)가 생명 안에 있는 것이라면, 귀(鬼)는 자연계와 사회에서 생기는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사회 전체를 덮고 있는 그릇된 사상도 「귀신」이라 할 수 있다. 또 여기서 말하는 「국토」는 물론 자연의 국토라는 뜻도 들어 있지만,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라는 말에 가까운 뜻을 갖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사회와 자연을 아울러 하나로 본 「국토」가 어지러울 때에는, 먼저 사상의 어지러움이 근원이 되고, 그 결과 「만민」, 곧 모든 사람이 미쳐 날뛰는 거리로 나아가며, 이윽고 그 국토는 파멸의 길로 내달린다. 따라서 이 「귀신이 어지럽다」는 사상의 혼란을 해결하지 않는 한 국토의 어지러움을 뿌리부터 고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된다.

대성인 재세의 시대는 그야말로 이 귀신이 마구 날뛰던 때였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정법을 등진 가르침들이 위정자와 손을 잡고 나라 안을 덮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자기의 일념을 바로잡는 것이 그때만큼 급한 때는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반성이나 의식 개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사상을 지배하는 것이 생명의 작용인 이상, 더 근원적인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불법의 진수인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이다.

입정안국론 제9편에서 주인은 이 글을 다시 꺼내어 이렇게 말한다.

国土乱れん時は先ず鬼神乱る鬼神乱るるが故に万民乱ると、今此の文に就いて具さに事の情を案ずるに百鬼早く乱れ万民多く亡ぶ先難是れ明かなり後災何ぞ疑わん

「국토가 어지러울 때에는 먼저 귀신이 어지럽다. 귀신이 어지럽기 때문에 만민이 어지럽다」고 하였느니라. 이제 이 글에 따라 자세히 일의 사정을 헤아려 보건대, 백귀가 일찍 어지럽고 만민이 많이 죽었느니라. 앞의 난이 이미 분명하니 뒤의 재앙을 어찌 의심하겠느냐.

「입정안국론」, 31쪽

「앞의 난」은 이미 일어난 천변지요 · 기근 · 역병이고, 「뒤의 재앙」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타국침핍과 자계반역이다. 인왕경이 말한 순서대로라면, 귀신이 어지럽고 만민이 어지러운 단계가 이미 지났으니 다음에는 반드시 「적이 와서 나라를 겁략하는」 단계가 온다는 것이다. 이 장의 경문은 입정안국론의 예언의 뼈대가 된다.

첫째 글(재난의 순서)
  1. 국토가 어지러울 때
  2. 먼저 귀신이 어지럽다(사상 · 생명을 빼앗는 작용)
  3. 만민이 어지럽다
  4. 적이 와서 나라를 겁략하고 백성이 죽는다타국침핍
  5. 신하 · 임금 · 태자 · 왕자 · 백관이 시비를 일으킨다자계반역
  6. 하늘과 땅의 괴이 · 이십팔수와 해와 달이 도수를 잃는다
  7. 많은 적이 일어난다
둘째 글(국왕의 복과 성인)
  1. 과거에 오백 불을 섬긴 복
  2. 제왕이 됨
  3. 성인 · 나한이 와서 태어나 큰 이익
  4. 왕의 복이 다함
  5. 성인이 모두 떠남
  6.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
「성인이 떠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聖人去らん時は、七難必ず起らん
도표 10 · 인왕경 두 글의 구조

「적이 와서 나라를 겁략하고」 — 몽골 내습의 참상

「적이 와서 나라를 겁략하고 백성이 죽어 없어지며」라는 경문은 입정안국론을 올리신 지 열네 해 뒤에 그대로 나타났다. 문영 11년(1274) 10월 몽골의 군대가 쓰시마 · 이키를 거쳐 규슈 북부에 밀려왔다. 그 이듬해 대성인은 「이치노사와입도어서」에서 그때의 참상을 이렇게 쓰셨다.

去る文永十一年太歳甲戌十月に蒙古国より筑紫によせて有りしに、対馬の者かためて有りしに宗惣馬尉逃ければ、百姓等は男をば或は殺し、或は生取にし、女をば或は取り集めて手をとをして船に結い付け、或は生け取りにす。一人も助かる者なし。壹岐によせても又是くの如し

지난 문영 11년 갑술 10월에 몽골국이 쓰쿠시로 쳐들어왔을 때, 쓰시마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으나 소 소마노조(宗惣馬尉)가 달아났으므로, 백성들 가운데 남자는 혹은 죽이고 혹은 사로잡았으며, 여자는 혹은 모아서 손에 구멍을 뚫어 배에 묶어 매고 혹은 사로잡았느니라. 한 사람도 살아난 자가 없었느니라. 이키에 쳐들어와서도 또 이와 같았느니라.

「이치노사와입도어서」, 1329쪽

이어서 대성인은 배가 밀려왔을 때 봉행 입도와 부젠 전사(前司)는 달아나 떨어져 나갔고, 마쓰라당은 수백 명이 죽거나 사로잡혔으며, 밀려든 포구마다 백성들이 이키 · 쓰시마와 같은 꼴을 당했다고 기록하셨다. 「백성이 죽어 없어진다」는 경문 그대로의 모습이다. 경문이 말한 재난은 결코 막연한 위협이 아니라, 이름 없는 백성의 목숨을 하나하나 앗아 가는 구체적인 참상이었다.

「신하 · 임금 · 태자 · 왕자 · 백관이 함께 시비를 일으키리라」

이것은 나라 안의 실정이다. 신하 · 임금 · 태자 · 왕자 · 백관은 나라를 이끄는 모든 이들이다. 크게는 한 나라로 볼 수 있고, 작게는 한 집안이나 한 마을로 볼 수도 있다. 「시비를 일으킨다」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집을 드러내고 제 몸 지키기에 급급하여 서로 다투는 것이다. 서로 의견을 나누어 함께 세워 가기 위한 토론이 아니라, 완전히 맞서 미워하고 격노에 불타 싸우는 것을 말한다. 대성인 당시로 말하면, 호조 일문 안에서 형과 아우가 칼을 겨눈 니가쓰 소동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 또한 사람들의 생명에 숨은 탁함이며, 귀신이 어지러운 결과다.

「하늘과 땅에 괴이한 일이 생기고」 — 하늘의 이변과 많은 적

「하늘과 땅에 괴이한 일이 생기고, 이십팔수 · 별의 길 · 해와 달이 때를 잃고 도수를 잃는다」는 천변이다. 하늘의 작은 변화라도 땅 위에는 큰 피해가 생길 수 있다. 하물며 경문처럼 「이십팔수 · 별의 길 · 해와 달이 때를 잃고 도수를 잃는」 현상이 거세게 일어난다면, 그것이 사람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이 천변의 갖가지 모습은 제6장의 칠난에서 자세히 펼쳐진다.

「많은 적이 일어나리라」는, 하늘의 리듬에 이상이 있으면 사람의 사회가 어지러워져 한 나라 안에 늘 다툼이 있고, 특히 나라를 멸망으로 이끄는 사람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국토의 생명력과 중생 사회의 생명력이 약해지는 곳에서는 반드시 안이 갈라지고, 그 틈을 타 인심을 더욱 흔들며 제 이익만 좇는 이가 나온다. 사람의 생명력이 약해진 곳에 병균이 퍼지는 것과 같다. 금광명경의 「다른 나라의 원적」이 밖에서 오는 적이라면, 인왕경의 「많은 적」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일어나는 적이다.

국왕의 복운 — 오백의 부처를 섬긴 까닭

이어서 인용된 인왕경의 글은 이끄는 이의 복운에 대한 가르침이다. 「일체의 국왕은 모두 과거세에 오백의 부처를 섬긴 까닭으로 제왕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국왕의 자리는 우연히 얻은 것이 아니라 과거세에 쌓은 큰 선근의 과보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시조깅고전답서」에 이렇게 쓰셨다.

夫れ運きはまりぬれば兵法もいらず。果報つきぬれば所従もしたがはず

무릇 운이 다하면 병법도 소용없고, 과보가 다하면 부하도 따르지 않느니라.

「시조깅고전답서」, 1192쪽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아무리 재능 있는 사람도, 아무리 권력을 가진 사람도 한번 복운을 잃으면 패배의 인생을 걷는 수밖에 없다. 흔히 사람들은 「저 사람은 운이 좋다」 「운이 나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운 · 불운은 우연에 지배되는 것으로, 떠다니는 부평초와 같다. 불법의 복운론은 삼세의 생명관에 선 엄한 인과이며, 생명의 깊은 곳에 눈을 두고 설해 다한 것이다. 경문에 「내가 이제 오안으로 삼세를 밝게 보건대」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만일 삼세의 생명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운 · 불운, 행 · 불행의 근본 원인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어떤 이는 운 · 불운은 문제가 아니며 사람은 노력하기에 따라 행 · 불행이 정해진다고 한다. 물론 노력은 소중하다. 노력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행복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지금을 타개하고 나아가려고 애쓰고 있지 않은가. 그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에 비극이 있다. 불행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또 어떤 이는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큰 잘못이다. 환경의 영향을 무시하거나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때로는 전혀 다른 운명을 걷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나아가 환경이 영향을 준다 하더라도, 왜 그런 환경에 살아야 하는가. 왜 가난한 집에 태어나거나 어두운 집안에서 자라야 하는가. 왜 날 때부터 몸이 약한 사람이 있는가. 어떤 이는 부모에게 그 책임을 지울지 모른다. 그러면 왜 그런 부모에게 태어나야 했는가. 왜 부모의 책임을 자기가 짊어져야 하는가. 결국 삼세의 생명관과 그에 선 복운론이라야 비로소 이런 물음에 답을 줄 수 있다.

석존은 십불선업의 업보를 이렇게 설했다. 이 세상에서 병이 많고 수명이 짧은 것은 「살생」의 과보다. 가난하고 재물을 잃는 것은 「도둑질」의 과보, 권속이 어질지 못하고 아내가 정숙하지 못한 것은 「삿된 음행」의 과보, 몸에 비방을 받고 남에게 속는 것은 「거짓말」의 과보, 친척에게서 멀어지고 벗에게도 버림받는 것은 「두 말」의 과보, 나쁜 소리를 듣고 소송을 겪는 것은 「욕설」의 과보, 남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고 말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꾸민 말」의 과보, 욕심이 많아 만족을 모르고 늘 모자람을 한탄하는 것은 「탐욕」의 과보, 남에게 틈을 노림당하고 혹은 죽임을 당하는 것은 「성냄」의 과보, 사견의 집에 태어나 마음이 비뚤어진 것은 「어리석음」의 과보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사도어서」에서 『반니원경』의 글을 이렇게 인용하셨다.

我人を軽しめば、還って我が身人に軽易せられん。形状端厳をそしれば醜陋の報いを得。人の衣服飲食をうばへば必ず餓鬼となる。持戒尊貴を笑へば、貧賎の家に生ず。正法の家をそしれば、邪見の家に生ず。善戒を笑へば、国土の民となり王難に遇ふ

내가 남을 업신여기면 도리어 내 몸이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으리라. 모습이 단정한 이를 헐뜯으면 추한 과보를 얻는다. 남의 옷과 음식을 빼앗으면 반드시 아귀가 된다. 계를 지니는 존귀한 이를 비웃으면 가난하고 천한 집에 태어난다. 정법의 집을 헐뜯으면 사견의 집에 태어난다. 선한 계를 비웃으면 국토의 백성이 되어 왕난을 만난다.

「사도어서」, 960쪽

반대로 이 세상에 복운 있는 몸으로 태어난 것도 과거의 행업에 의한 것이며, 국왕으로서의 복운을 얻는 것도 과거세에 오백의 부처를 섬겼기 때문이라고 경은 설하는 것이다.

보통의 인과를 넘어서 — 묘법이 여는 큰 복운

그러나 니치렌 대성인은 이런 인과의 이법을 「이것은 보통의 인과로 정해진 법이니라(是は常の因果の定まれる法なり, 960쪽)」라고 하시어 지극히 당연한 일로 삼으셨다. 인과의 이법은 그릇된 것이 아니라 틀림없는 사실이며, 석존의 불법에서 이 생각을 빼면 뜻이 없다. 그러나 이 낮은 인과의 이법을 전부로 삼는다면, 운명은 이미 꼼짝할 수 없게 정해져 있으니 이 세상에서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나머지는 내세의 행복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는 체념과 소극적인 태도를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는 세상의 불행한 사람을 보고 그를 끝까지 구할 수 없다. 나쁜 사회, 나쁜 나라를 바꿀 수도 없다. 대성인은 이 보통의 인과의 이법의 더 깊은 곳에 눈을 두시고, 어떤 권력자보다도, 어떤 큰 지혜를 가진 이보다도, 어떤 부자보다도 백천만억 배 뛰어난 큰 복운을 이 순간에 여는 길을 가르치셨다. 「관심의 본존초」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釈尊の因行果徳の二法は妙法蓮華経の五字に具足す。我等此の五字を受持すれば、自然に彼の因果の功徳を譲り与え給う

석존의 인행과 과덕의 두 법은 묘법연화경의 오자에 갖추어져 있느니라. 우리가 이 오자를 받아 지니면 저절로 저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시느니라.

「관심의 본존초」, 246쪽

곧 석존처럼 과거에 능시태자 · 유동보살로, 혹은 시비왕 · 살타왕자 등으로 태어나 삼대아승기겁 · 백대겁 · 동유진겁 · 무량아승기겁, 혹은 삼천진점겁 같은 긴 세월에 걸쳐 수행을 쌓지 않더라도, 묘법을 받아 지니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름으로써 모든 복운이 갖추어진다. 행복은 어딘가 멀리 있는 특별한 세계가 아니다. 현재라는 것이 과거의 원인에 꽁꽁 묶여 꼼짝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생명의 깊은 곳에 있는 「인과구시(因果俱時) 불가사의의 일법」인 묘법은 모든 것의 근원이며, 참으로 자유자재하게 모든 것을 바꾸어 갈 수 있다. 「선시초」에 이렇게 있다.

伝教大師云く『讃むる者は福を安明に積み、謗る者は罪を無間に開く』等云云

전교대사가 이르기를, 「찬탄하는 자는 복을 안명(安明)에 쌓고, 비방하는 자는 죄를 무간에 연다」고 하였느니라.

「선시초」, 291쪽

안명이란 수미산이다. 법을 믿는 일념 속에 수미산 같은 큰 복운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신심의 생활은 모든 것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이 되고, 독을 바꾸어 약으로 삼는(變毒爲藥) 일이 되며, 무거운 업을 가볍게 받는(轉重輕受) 일이 된다.

신심과 관계없이 복운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옛날로 말하면 국왕이 되는 것이 복운이다. 사회에서 재능과 힘을 인정받아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서는 것도 그 근원은 복운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복운이며, 그것을 뽐내어 정법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나아가면 이끄는 이로서의 복운을 잃을 뿐 아니라 모든 복운을 뿌리째 끊어 버린다. 그 복운이 다할 때에는 누구보다도 비참하다. 그때는 좋아 보여도 그것은 그때까지 쌓은 복운의 여운일 뿐이며 신기루처럼 덧없다. 이윽고 「비방하는 자는 죄를 무간에 연다」는 글대로 좌절하고 파멸한다.

묘법으로 열린 복운이야말로 가장 높은 복운이며 내 생명의 보배다. 어떤 재산도 지위도 명예도 모두 화성(化城)과 같아 언젠가는 무너진다. 그러므로 신심하는 사람이야말로 세계를 한 손에 쥔 대왕보다 존귀하고, 해 같은 지자보다 위대하다.

今又法華経を信ずる人は・さいわいを万里の外よりあつむべし

지금 또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행복을 만 리 밖에서도 모을 것이니라.

「십자어서」, 1492쪽

法華経を持つ人は男ならば何なる田夫にても候へ。三界の主たる大梵天王・釈提桓因・四大天王・転輪聖王乃至漢土・日本の国主等にも勝れたり

법화경을 지니는 사람은, 남자라면 어떤 농부일지라도 삼계의 주인인 대범천왕 · 석제환인 · 사대천왕 · 전륜성왕, 나아가 중국 · 일본의 국주 등보다도 뛰어나니라.

「마쓰노전어소식」, 1378쪽

성인이 떠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

「이 때문에 일체의 성인과 나한이 그를 위하여 그 국토 가운데 와서 태어나 큰 이익을 짓는다.」 이것은 정법을 근저로 한 이끄는 이의 복운이다. 이 경우 「국왕」이란 한 나라를 이끄는 이이고, 「성인 · 나한」이란 정법으로 일체중생을 구하는 사람이며, 불법을 근본으로 하여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국왕의 복운이 있는 동안에는 성인이 그 나라에 태어나 나라를 돕는다.

그러나 「만일 왕의 복이 다할 때에는 일체의 성인이 모두 버리고 떠나리라. 만일 일체의 성인이 떠날 때에는 칠난이 반드시 일어나리라.」 국왕의 복이 다하는 것은 과거의 선근을 다 써 버리고 새로 정법을 받들지 않을 때다. 그때 성인은 나라를 버리고, 성인이 떠나면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 입정안국론 제1편에서 주인이 말한 「성인은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의 경증이 바로 이 글이다.

대성인은 이 경문을 자기 자신의 일로 읽으셨다. 앞서 본 「사도어서」에서 대성인은 인왕경의 「성인이 떠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를 인용하시고, 「니치렌은 이 관동 일문의 동량이요 해와 달이요 귀감이요 눈이니라. 니치렌을 버리고 떠나게 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다쓰노구치에서 외치셨다고 쓰셨다. 정법을 지니고 넓히는 이를 박해하여 나라에서 떠나게 하는 것, 그것이 곧 「성인이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니가쓰 소동이 일어났다. 인왕경의 이 한 구절은 대성인의 몸에서 그대로 증명된 것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인왕경은 재난의 순서(귀신 → 만민 → 외적과 내란 → 천변)와 그 원인(왕의 복이 다함 → 성인이 떠남 → 칠난)을 함께 보인다. 대성인은 「성인」을 정법을 지니고 넓히는 이로 읽으시고, 그 성인을 박해하여 떠나게 하는 나라에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간하셨다. 국왕의 복운도 결국 정법을 받드느냐에 달려 있다.

제2단 제5장 경증의 넷째 — 약사경
어서 19쪽 9~10행 · 第二段 第五章 経証の四 薬師経

본문

원문 대조어서 19쪽 9~10행
本文 · 어서 원문

薬師経に云く「若し刹帝利・潅頂王等の災難起らん時、所謂、人衆疾疫の難、他国侵逼の難、自界叛逆の難、星宿変怪の難、日月薄蝕の難、非時風雨の難、過時不雨の難あらん」已上。

풀이

약사경에 이르기를, 「만일 찰제리(刹帝利) · 관정왕(灌頂王) 등에게 재난이 일어날 때, 이른바 사람들이 역병에 시달리는 난,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는 난, 나라 안에서 반역이 일어나는 난, 별자리가 이변을 일으키는 난, 해와 달이 박식하는 난, 때 아닌 비바람의 난, 때가 지나도 비가 오지 않는 난이 있으리라」 이상.

어구 풀이

薬師経약사경
한역은 네 가지가 남아 있다. 보통 당(唐) 현장 역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1권을 가리키며, 대성인도 이것을 쓰셨다. 부처가 문수보살에게 약사여래의 공덕을 설하는 경으로, 약사여래에게 공양하면 칠난을 면하고 나라가 안온해진다고 설한다. 그 내용 때문에 일본에서는 호국 경전으로 존중되었다.
刹帝利찰제리
범어 크샤트리야(kṣatriya)의 음사. 고대 인도의 신분 제도에서 왕족 · 무사 계급이다. 사종성(四種姓)의 맨 위는 제사를 맡는 브라만(바라문), 둘째가 왕후 ·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야(찰제리), 셋째가 농업 · 목축 · 상업에 종사하는 서민 바이샤(폐사), 넷째가 위의 신분에 봉사하는 슈드라(수다라)였다. 여기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이를 가리킨다.
潅頂王관정왕
큰 나라의 왕. 고대 인도에서 큰 나라의 왕이 즉위할 때 작은 나라의 왕과 신하들이 사대해의 물을 길어 와 그 정수리에 부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刹帝利・潅頂王等の災難찰제리 · 관정왕 등의 재난
약사경이 설하는 일곱 가지 재난. 칠난은 인왕경 · 약사경 · 금광명경 등에 설해지며 경마다 내용이 다르다. 약사경의 칠난은 ① 인중질역난 ② 타국침핍난 ③ 자계반역난 ④ 성수변괴난 ⑤ 일월박식난 ⑥ 비시풍우난 ⑦ 과시불우난이다.
人衆疾疫の難인중질역의 난
사람들이 전염병 같은 역병에 시달리는 난.
他国侵逼の難타국침핍의 난
다른 나라가 쳐들어와 핍박하는 난. 입정안국론이 예언한 두 난의 하나로, 문영 11년(1274)과 홍안 4년(1281)의 몽골 내습으로 나타났다.
自界叛逆の難자계반역의 난
나라 안에서 반역과 같은 편끼리의 싸움이 일어나는 난. 입정안국론이 예언한 또 하나의 난으로, 문영 9년(1272)의 니가쓰 소동으로 나타났다.
星宿変怪の難성수변괴의 난
별자리에 괴이한 변화가 일어나는 난. 혜성의 출현 등이다.
日月薄蝕の難일월박식의 난
해와 달이 빛을 잃고 일식 · 월식이 일어나는 난.
非時風雨の難비시풍우의 난
때 아닌 때에 사나운 비바람이 이는 난.
過時不雨の難과시불우의 난
비가 와야 할 때가 지나도 오지 않는 난. 가뭄이다.

「찰제리 · 관정왕에게 재난이 일어날 때」 — 이끄는 이와 불법

여기서 「찰제리 · 관정왕」은 세상을 이끄는 이를 뜻한다. 이끄는 이에게 방법이 있을 때 이른바 칠난이 일어난다는 경문이다. 세상에 이끄는 이의 잘못, 특히 종교에 관한 잘못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이끄는 이의 잘못은 나라 안을 어지럽히고 민중을 불행의 밑바닥에 빠뜨린다.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고, 그 뒤 몇백 년 몇천 년 동안 한 민족을 비극의 길로 걷게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행복을 설하는 불법이 단지 한 사람에 머물지 않고 이끄는 이와 불법의 관계를 특히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불교가 마치 한 사람의 구제만을 문제 삼고, 그것도 현세와는 먼 미래의 일만 설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또 그렇게 여기게 만드는 승려도 많지만, 그것은 불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사회의 행복, 한 나라의 행복 없이 어떻게 한 사람의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의 행복만 설하고 사회의 번영을 설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모순이다. 입정안국론에 보인 네 경의 글은 모두 이끄는 이야말로 정법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금광명경은 「국왕이 정법을 유포하지 않고 버리면」, 대집경은 「불선업의 악한 왕과 악한 비구가 정법을 무너뜨리면」, 인왕경은 「왕의 복이 다하면」, 약사경은 「찰제리 · 관정왕에게 재난이 일어날 때」라고 한다. 네 경이 모두 재난의 갈림길에 「왕」을 세운다. 입정안국론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이에게 올려진 글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외던 경이 말하는 것

이 약사경의 인용에는 하나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입정안국론 첫머리에서 객은 재난을 막으려고 사람들이 기울인 갖가지 기도를 늘어놓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약사경이었다.

或は「衆病悉除」の願を持って東方如来の経を誦し

혹은 「뭇 병을 모두 없앤다」는 원을 지니고 동방여래의 경을 외우며

「입정안국론」, 17쪽

「동방여래」는 동방 정유리세계의 약사여래이고, 「뭇 병을 모두 없앤다(衆病悉除)」는 약사여래의 열두 대원 가운데 제7원이다. 사람들은 역병을 멎게 하려고 약사경을 외웠다. 그런데 바로 그 약사경이, 나라를 다스리는 이에게 재난이 닥치는 까닭과 그 일곱 가지 모습을 이미 말하고 있었다. 경을 외우면서 그 경이 말하는 재난의 원인은 읽지 않은 것이다. 주인이 네 경 가운데 약사경을 든 것은, 객이 기대던 경을 그대로 거울로 삼아 현실을 비추어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입정안국론 제1편에서 객이 든 기도의 목록 — 염불의 「이검즉시」, 약사경의 「중병실제」, 법화경의 「병즉소멸 불로불사」, 인왕경의 「칠난즉멸 칠복즉생」 — 은 모두 경문의 한 구절을 떼어 내어 주문처럼 외운 것이었다. 경을 손에 쥐었으나 경의 마음은 잃은 것이다.

약사경을 인용한 데에는 또 하나의 뜻이 있다. 약사여래는 이름 그대로 중생의 병을 고치는 「약의 스승」이다. 나라의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이 이 부처에게 기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약사경 스스로가 말하듯, 재난은 「찰제리 · 관정왕에게 재난이 일어날 때」, 곧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바른 길을 잃었을 때 일어난다. 병의 원인을 모르고 약만 구하는 것은, 「선시초」에서 대성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병이 일어난 까닭을 모르는 의사가 병자를 고치려 드는 것과 같다. 주인이 네 경을 드는 것은 새로운 약을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병의 원인을 경문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다. 그 진단이 끝난 뒤에야 입정안국론 제7편 「보시를 멈추어 방법을 끊다」와 입정안국론 제9편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에서 참된 약이 제시된다.

일곱 난과 남은 두 난

약사경의 칠난은 인중질역 · 타국침핍 · 자계반역 · 성수변괴 · 일월박식 · 비시풍우 · 과시불우다. 이 가운데 다섯은 정가 · 정원 연간에 이미 일어났다. 역병은 해마다 돌았고, 정가 원년(1257)의 정가 대지진 뒤로 하늘과 땅의 이변이 잇따랐으며, 때 아닌 비바람과 가뭄이 번갈아 들어 기근을 불렀다. 그러나 둘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는 난과 나라 안에서 반역이 일어나는 난이다.

  1. ①인중질역난人衆疾疫の難문응 원년(1260)에 이미 일어남
  2. ②타국침핍난他国侵逼の難남은 두 난적중: 문영 11년(1274) · 홍안 4년(1281) 몽골 내습
  3. ③자계반역난自界叛逆の難남은 두 난적중: 문영 9년(1272) 니가쓰 소동
  4. ④성수변괴난星宿変怪の難문응 원년(1260)에 이미 일어남
  5. ⑤일월박식난日月薄蝕の難문응 원년(1260)에 이미 일어남
  6. ⑥비시풍우난非時風雨の難문응 원년(1260)에 이미 일어남
  7. ⑦과시불우난過時不雨の難문응 원년(1260)에 이미 일어남
문응 원년(1260)에 이미 일어난 다섯① ④ ⑤ ⑥ ⑦
아직 남은 둘② 타국침핍 ③ 자계반역
「약사경의 칠난 가운데 오난은 홀연히 일어나고 이난은 아직 남아 있다」薬師経の七難の内五難忽に起り二難猶残れり(「입정안국론」 31쪽)
도표 11 · 약사경의 칠난과 입정안국론의 예언

입정안국론 제9편에서 주인은 이 약사경의 칠난을 다시 들어 이렇게 말한다.

薬師経の七難の内五難忽に起り二難猶残れり、所以他国侵逼の難・自界叛逆の難なり

약사경의 칠난 가운데 다섯 난은 홀연히 일어났고 두 난은 아직 남아 있느니라. 이른바 타국침핍의 난과 자계반역의 난이니라.

「입정안국론」, 31쪽

입정안국론의 그 유명한 예언은 바로 이 장의 약사경에 근거한다. 다섯이 이미 일어났으니 나머지 둘도 반드시 일어난다 — 이것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경문의 논리다. 그리고 앞 장에서 본 대로 문영 9년(1272) 2월에 자계반역난이, 문영 11년(1274) 10월과 홍안 4년(1281)에 타국침핍난이 그대로 나타났다. 대성인은 「사도어서」에서 니가쓰 소동을 두고 「약사경에 『자계반역난』이라 한 것이 이것이니라」(薬師経に云く「自界叛逆難」と是なり, 957쪽)라고 말씀하셨다. 「자계반역」 「타국침핍」이라는 말 자체가 약사경의 용어인 것이다.

어진 이는 편안한 데서 위태로움을 탄식한다

이 단락에서 이끄는 이의 책무와 사명이 얼마나 무거운지가 설해져 있다. 이끄는 이가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 위대한 사상과 철학과 종교를 지니고 굳건한 지도 이념을 세워야 한다. 어떤 이끄는 이도 그 이념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끄는 이로서의 자격이 정해진다. 약사경이 「찰제리 · 관정왕에게 재난이 일어날 때」라고 한 것은, 왕의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라가 지켜지지 않으며 그 왕이 어떤 법을 받드느냐가 재난과 안온을 가른다는 뜻이다.

둘째, 어디까지나 민중의 참된 편이 되어 민중에게 참된 행복을 주는 이여야 한다. 그릇된 이끄는 이가 얼마나 민중을 불행하게 하고 사회를 망치는지는 고금의 역사가 잘 말해 준다. 중국 고대에 진나라 말기 항우와 유방이라는 두 영걸이 나타나 패권을 다투었다. 힘으로는 항우가 훨씬 뛰어나 백전백승의 기세였으나, 마지막에 유방이 해하의 싸움에서 크게 이겨 천하는 유방의 것이 되었다. 유방이 중국에 평화와 질서를 가져올 수 있었던 까닭은 민중의 신망과 지지였다. 참된 이끄는 이는 민중 속에 살고 민중을 위해 다하여 민중 속에서 죽어 가겠다는 결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중이 마음으로 믿고 따를 수 있다.

셋째, 모든 사람이 충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화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혼자서 독단으로 일을 처리하는 이는 참된 이끄는 이가 아니다. 사람다움이 넉넉하고 포용력 있는 이로서 늘 뒤따르는 이들 가운데서 인재를 찾고, 자기보다 뛰어난 인재로 길러 내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 이끄는 이는 반드시 뛰어난 후계자를 길러 내지만, 독재자는 뒤따르는 이를 희생시킬 뿐 후계자를 기를 아량이 없다.

넷째,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거나 영달만을 좇아서는 안 된다. 칭찬과 비방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성장과 함께 민중을 끝까지 구해 가는 자각과 책임을 지닌 이가 참된 이끄는 이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과 이끄는 이를 혼동해서도 안 된다.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夫れ賢人は安きに居て危きを歎き佞人は危きに居て安きを歎く

무릇 어진 이는 편안한 데 있으면서 위태로움을 탄식하고, 아첨하는 이는 위태로운 데 있으면서 편안함을 탄식하느니라.

「도키전어서」, 969쪽

언뜻 안태한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도 늘 그 앞날을 생각하여 사회에 싹트는 붕괴의 위험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이가 어진 이라는 말씀이다. 반대로 그 자리에서만 생각하는 말뿐인 아첨꾼은 사회가 무너지는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겉보기의 안녕에 몸을 맡긴다. 입정안국론은 바로 이 「편안한 데서 위태로움을 탄식한」 글이다. 문응 원년(1260)에 막부는 아직 굳건해 보였고 바다 건너의 위협은 아무도 몰랐다. 그때 대성인은 약사경의 남은 두 난을 들어 「위태로움」을 탄식하셨다. 사회에 책임을 지는 이끄는 이는 결코 아첨꾼의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약사경의 칠난 가운데 다섯은 입정안국론을 올린 문응 원년에 이미 일어났고, 남은 둘이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이었다. 대성인은 경문의 논리로 이 두 난을 예언하셨고, 그 예언이 적중함으로써 네 경의 경문과 입정안국론의 진단이 함께 증명되었다.

제2단 제6장 다시 인왕경을 들다
어서 19쪽 11행~20쪽 4행 · 第二段 第六章 再び仁王経を挙ぐ

본문

원문 대조어서 19쪽 11행 ~ 20쪽 4행
本文 · 어서 원문

仁王経に云く「大王、吾が今化する所の百億の須弥、百億の日月、一一の須弥に四天下有り。其の南閻浮提に十六の大国、五百の中国、十千の小国有り。其の国土の中に七つの畏る可き難有り。一切の国王是を難と為すが故に。云何なるを難と為す。日月度を失い、時節返逆し、或は赤日出で、黒日出で、二三四五の日出で、或は日蝕して光無く、或は日輪一重・二三四五重輪現ずるを一の難と為すなり。二十八宿度を失い、金星・彗星・輪星・鬼星・火星・水星・風星・刁星・南斗・北斗・五鎮の大星・一切の国主星・三公星・百宦星、是くの如き諸星、各各変現するを二の難と為すなり。大火・国を焼き、万姓焼尽し、或は鬼火・竜火・天火・山神火・人火・樹木火・賊火あらん。是くの如く変怪するを三の難と為すなり。大水・百姓を漂没し、時節反逆して冬雨ふり、夏雪ふり、冬、時に雷電霹靂し、六月に冰・霜・雹を雨らし、赤水・黒水・青水を雨らし、土山・石山を雨らし、沙・礫・石を雨らす。江河逆に流れて山を浮かべ石を流す。是くの如く変ずる時を四の難と為すなり。大風、万姓を吹き殺し、国土・山河・樹木、一時に滅没し、非時の大風・黒風・赤風・青風・天風・地風・火風・水風あらん。是くの如く変ずる時を五の難と為すなり。天地・国土亢陽し、炎火洞然として百草亢旱し、五穀登らず、土地赫然して万姓滅尽せん。是くの如く変ずる時を六の難と為すなり。四方の賊来って国を侵し、内外の賊起り、火賊・水賊・風賊・鬼賊あつて、百姓荒乱し、刀兵劫起らん。是くの如く怪する時を七の難と為すなり」。

풀이

인왕경에 이르기를, 「대왕이여, 내가 지금 교화하는 곳에 백억의 수미산과 백억의 해와 달이 있고, 하나하나의 수미산에 사천하가 있느니라. 그 남염부제에 열여섯의 큰 나라, 오백의 중간 나라, 일만의 작은 나라가 있느니라. 그 국토 가운데 일곱 가지 두려워할 난이 있으니, 일체의 국왕이 이것을 난으로 삼기 때문이니라. 무엇을 난이라 하는가. 해와 달이 도수를 잃고, 절기가 거꾸로 되며, 혹은 붉은 해가 나오고 검은 해가 나오며, 둘 · 셋 · 넷 · 다섯의 해가 나오고, 혹은 일식으로 빛이 없어지며, 혹은 해의 둘레에 한 겹 · 두 겹 · 세 겹 · 네 겹 · 다섯 겹의 무리가 나타나는 것을 첫째 난이라 하느니라. 이십팔수가 도수를 잃고, 금성 · 혜성 · 윤성 · 귀성 · 화성 · 수성 · 풍성 · 조성 · 남두 · 북두 · 오진의 대성 · 일체의 국주성 · 삼공성 · 백관성, 이와 같은 여러 별이 저마다 변하여 나타나는 것을 둘째 난이라 하느니라. 큰불이 나라를 태우고 만백성이 다 타 죽으며, 혹은 귀화 · 용화 · 천화 · 산신화 · 인화 · 수목화 · 적화가 있으리라. 이와 같이 괴이하게 변하는 것을 셋째 난이라 하느니라. 큰물이 백성을 떠내려 보내고, 절기가 거꾸로 되어 겨울에 비가 오고 여름에 눈이 오며, 겨울에 때로 천둥과 벼락이 치고, 유월에 얼음 · 서리 · 우박이 내리며, 붉은 물 · 검은 물 · 푸른 물이 비로 내리고, 흙산 · 돌산이 비처럼 쏟아지며, 모래 · 자갈 · 돌이 비처럼 내리느니라. 강물이 거꾸로 흘러 산을 띄우고 돌을 떠내려 보내느니라. 이와 같이 변할 때를 넷째 난이라 하느니라. 큰 바람이 만백성을 불어 죽이고, 국토 · 산하 · 수목이 한꺼번에 없어지며, 때 아닌 큰 바람 · 검은 바람 · 붉은 바람 · 푸른 바람 · 하늘 바람 · 땅 바람 · 불 바람 · 물 바람이 있으리라. 이와 같이 변할 때를 다섯째 난이라 하느니라. 하늘과 땅과 국토가 몹시 가물고 불꽃이 활활 타올라 온갖 풀이 말라 버리고, 오곡이 여물지 않으며, 땅이 붉게 달아 만백성이 다 죽으리라. 이와 같이 변할 때를 여섯째 난이라 하느니라. 사방의 적이 와서 나라를 침략하고, 안팎의 적이 일어나며, 화적 · 수적 · 풍적 · 귀적이 있어 백성이 어지러워지고 칼과 병기의 겁(劫)이 일어나리라. 이와 같이 괴이할 때를 일곱째 난이라 하느니라」.

어구 풀이

大王대왕
파사닉왕(波斯匿王). 범어 프라세나지트(Prasenajit)의 음사로, 석존 당시 코살라국의 왕이다. 처음에는 불교에 반대했으나 뒤에 석존에게 귀의하여 불교를 보호했다. 인왕경은 이 왕의 물음에 석존이 답하는 형식으로 설해진다. 그 아들 비유리왕(波瑠璃王)은 아버지를 몰아내고 석가족을 멸하였으며, 그 뒤 이레 만에 강 위에서 불에 싸여 죽었다고 전한다. 석가족의 멸망은 석존의 구횡(九橫)의 대난의 하나로 꼽힌다.
百億の須弥、百億の日月백억의 수미산 · 백억의 해와 달
수미산을 중심으로 해와 달과 사주(四洲)를 갖춘 한 세계가 백억 있다는 것. 석존이 교화하는 세계의 넓이를 말한다.
四天下사천하
수미산 사방의 바다에 있는 네 대륙. 동의 불바제 · 서의 구야니 · 남의 염부제 · 북의 울단월이다.
南閻浮提남염부제
수미산 남쪽의 대륙으로 사람이 사는 세계. 『법화경』의 「염부제에 광선유포」의 염부제가 이것이다.
十六の大国、五百の中国、十千の小国열여섯의 큰 나라 · 오백의 중간 나라 · 일만의 작은 나라
염부제에 있는 나라들의 수. 석존 당시 인도의 열여섯 큰 나라를 비롯해 온 세상의 나라를 아울러 말한다.
日月度を失い時節反逆し……해와 달이 도수를 잃고 절기가 거꾸로 되며……
인왕경 칠난의 첫째인 일월난 안에 다시 다섯 난이 있다. ① 「해와 달이 도수를 잃고 절기가 거꾸로 되며」(일월실도난) ② 「붉은 해가 나오고 검은 해가 나오며」(안색개변난) ③ 「둘 · 셋 · 넷 · 다섯의 해가 나오고」(일체증다난) ④ 「일식으로 빛이 없어지며」(일월박식난) ⑤ 「한 겹 · 두 · 세 · 네 · 다섯 겹의 무리가 나타나는 것」(중륜난)이다.
輪星윤성
고리 모양으로 이어진 별로 짐작되나 어느 별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鬼星귀성
게자리 가운데에 있는 프레세페 성단. 푸르스름하게 뿌옇게 빛나 보여 도깨비불에 견주어 귀성이라 불렀다고 여겨진다. 이십팔수의 하나인 귀수(鬼宿) 안에 있다.
風星풍성
이십팔수의 하나인 기수(箕宿)로 본다. 궁수자리에 있는 네모꼴 별자리다. 「기(箕)」는 곡식을 까불러 티끌과 겨를 바람에 날려 보내는 키이므로 기수는 바람을 맡는다고 했다.
刁星조성
「조(刁)」 모양의 별자리로 짐작되나 어느 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는 옛 중국에서 밥 짓는 솥과 경계할 때 치는 징을 겸해 군에서 쓰던 구리 그릇이다. 구마라집 역 『인왕반야바라밀경』에는 「도성(刀星)」으로 되어 있다.
南斗남두
이십팔수의 하나인 두수(斗宿). 궁수자리 가운데에 있는 말(斗) 모양의 별자리로, 남쪽 하늘에 나오고 여섯 별로 이루어져 남두육성이라고도 한다.
北斗북두
큰곰자리의 일곱 별이 말 모양으로 늘어선 별자리. 북두칠성.
五鎮の大星오진의 대성
세성(목성) · 형혹성(화성) · 진성(토성) · 태백성(금성) · 진성(辰星, 수성)의 「오성」이라는 설과, 오성의 가운데에 있다고 여긴 「진성(鎭星)」이라는 설이 있다.
国主星국주성
옛 중국 성도(星圖)에서 「제(帝)」라고 이름 붙인 별로 여겨진다. 하늘에 자미원(북극 둘레) · 태미원 · 천시원의 세 구역을 두고 각 구역에 「제」라는 별을 정했다.
三公星삼공성
옛 중국 성도에서 「삼공」이라 이름 붙인 별. 삼공은 중국에서 천자를 보좌하는 벼슬이며, 자미원과 태미원에 「삼공」이라는 별이 정해져 있다.
百宦星백관성
본문에는 「百宦星」으로 되어 있으나 대성인의 정필에는 「百官星」으로 되어 있고 『인왕반야바라밀경』도 「百官星」이다. 여러 벼슬 이름을 붙인 별들이다.
鬼火・竜火・天火・山神火・人火・樹木火・賊火귀화 · 용화 · 천화 · 산신화 · 인화 · 수목화 · 적화
귀화는 중생의 어지러움에 귀신이 성내어 일으킨다고 여긴 까닭 모를 불, 용화는 용의 노여움으로 일어나는 불, 천화는 하늘의 노여움으로 일어난다고 여긴 불, 산신화는 산신의 노여움으로 일어난다고 여긴 불, 인화는 사람의 실수로 나는 불, 수목화는 가뭄으로 공기가 마를 때 나무에서 저절로 불이 나 산불이 되는 것, 적화는 도적의 방화 등으로 나는 불이다.
刀兵劫起らん칼과 병기의 겁이 일어난다
「도병」은 병혁(兵革), 곧 전쟁의 재앙이다. 「겁」은 겁략(劫掠)의 줄임말로 위협하여 빼앗는 것이다. 민중이 목숨과 재물을 빼앗기고 위협당하는 전란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또 겁말(劫末)의 소삼재 가운데 병혁의 재앙이 성한 때를 「도병겁」이라 부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인왕경의 칠난과 약사경의 칠난

해와 달과 별의 변동이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의정불이의 원리, 일념삼천의 철리가 분명해지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앞 장의 약사경에 이어 주인은 다시 인왕경을 들어 칠난을 하나하나 자세히 펼친다. 두 경의 칠난을 견주어 보면 다음과 같다.

「일체의 국왕이 이것을 난으로 삼기 때문이다」一切の国王是を難と為すが故に
인왕경제1난 일월실도난(해와 달이 도수를 잃음 · 붉은 해 · 검은 해 · 여러 해 · 일식 · 겹무리)
약사경제5 일월박식난
인왕경제2난 성수실도난(이십팔수와 여러 별의 변괴)
약사경제4 성수변괴난
인왕경제3난 제화분소난(큰불 · 귀화 · 용화 · 천화 · 산신화 · 인화 · 수목화 · 적화)
약사경약사경에 해당 없음
인왕경제4난 시절반역난(큰물 · 겨울비 · 여름눈 · 겨울 천둥 · 유월 우박 · 색 있는 비 · 흙비 · 돌비 · 거꾸로 흐르는 강)제5난 대풍삭기난(큰 바람과 여러 바람)
약사경제6 비시풍우난
인왕경제6난 천지항양난(큰 가뭄)
약사경제7 과시불우난
인왕경제7난 사방적래난(사방의 적 · 안팎의 적 · 도병겁)
약사경제2 타국침핍난제3 자계반역난
인왕경인왕경 칠난에 따로 없음
약사경제1 인중질역난
도표 12 · 인왕경의 칠난과 약사경의 칠난

인왕경의 일곱째 사방적래난이 약사경에서는 타국침핍난과 자계반역난의 둘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방의 적이 와서 나라를 침략하고」가 타국침핍이고, 「안팎의 적이 일어나며」가 자계반역이다. 입정안국론 제9편에서 주인은 「인왕경의 칠난 가운데 여섯 난은 지금 성하고 한 난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른바 사방의 적이 와서 나라를 침략하는 난이다」(仁王経の七難の内六難今盛にして一難未だ現ぜず所以四方の賊来つて国を侵すの難なり, 31쪽)라고 말한다. 약사경으로 보면 「남은 두 난」, 인왕경으로 보면 「남은 한 난」 — 가리키는 것은 같다.

제1난 일월실도난 — 해와 달이 도수를 잃다

「해와 달이 도수를 잃고, 절기가 거꾸로 되며, 혹은 붉은 해가 나오고 검은 해가 나오며, 둘 · 셋 · 넷 · 다섯의 해가 나오고, 혹은 일식으로 빛이 없어지며, 혹은 해의 둘레에 한 겹 · 두 겹 · 세 겹 · 네 겹 · 다섯 겹의 무리가 나타나는 것을 첫째 난이라 한다.」 이 가운데 두 해의 출현과 일식은 제2장에서 대성인 당시의 기록과 「법화취요초」의 글로 이미 살폈다. 대성인은 그 글에서 인왕경의 바로 이 글을 인용하시고, 「이 해와 달 등의 난은 칠난 · 이십구난 · 무량한 여러 난 가운데 첫째가는 큰 악난이니라」라고 하셨다.

해와 달의 변화가 땅 위의 생활에 갖가지 영향을 준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붉은 해, 둘 · 셋 · 넷 · 다섯의 해, 해에 두 겹 · 세 겹 · 네 겹 · 다섯 겹의 무리가 나타나는 것도 결코 우리 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현상은 대기 속에 먼지나 얼음 결정 같은 미세한 알갱이가 많을 때 일어난다. 이를테면 메마른 대지를 큰 바람이 휩쓸어 날려 올린 먼지나, 화산이 거듭 분화하여 높이 올라간 화산재가 햇빛을 가리면 붉은 해가 나타나고, 그로 인해 냉해가 일어난다. 하나의 현상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차례로 다른 현상으로 번져 간다. 하물며 한꺼번에 많은 이상한 기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국토와 하늘의 리듬 자체에 이상이 있다는 증거이며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사람도 이 국토와 우주의 한 부분인 이상, 해와 달의 변화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도 사람의 생활에 영향을 준다.

제2난 성수실도난 — 여러 별의 변괴

「이십팔수가 도수를 잃고, 금성 · 혜성 · 윤성 · 귀성 · 화성 · 수성 · 풍성 · 조성 · 남두 · 북두 · 오진의 대성 · 일체의 국주성 · 삼공성 · 백관성, 이와 같은 여러 별이 저마다 변하여 나타나는 것을 둘째 난이라 한다.」 여기에 든 별 가운데에는 오늘날 어느 별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은 것도 많다. 옛날 사람이 그린 별자리와 지금의 것이 꼭 일치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별 이름이 어떻게 바뀌고 별자리의 자리가 어떠하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낱낱의 별보다 여러 별의 변화가 사람의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이치다.

눈여겨볼 것은 별 이름 가운데 「국주성」 · 「삼공성」 · 「백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옛 중국의 성도는 하늘에 땅의 조정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임금의 별, 재상의 별, 백관의 별이 하늘에 있고, 그 별들이 변괴를 일으키는 것은 땅 위의 임금과 신하에게 변고가 있을 징조로 여겨졌다. 「법화취요초」에서 대성인이 「별이 해와 달을 범하는 것은 신하가 왕을 범하는 모습이니라」라고 하신 것도 이런 하늘과 땅의 대응을 바탕에 둔 것이다. 혜성과 유성의 출현은 예부터 전란 같은 불길한 일의 전조로 여겨졌다. 대성인이 문영 원년(1264)의 대혜성을 「세상이 시작된 이래 없던 흉서」라 하시고 타국침핍 · 자계반역의 전조로 보신 것은 앞에서 살핀 대로다.

제3난 제화분소난 — 나라를 태우는 큰불

「큰불이 나라를 태우고 만백성이 다 타 죽으며, 혹은 귀화 · 용화 · 천화 · 산신화 · 인화 · 수목화 · 적화가 있으리라.」 여기서 보듯 불의 난에는 귀화 · 용화 · 산신화 · 수목화처럼 자연 현상에 의한 것과, 인화 · 적화처럼 사람의 고의나 실수에 의한 것이 있다. 국토의 리듬에 갖가지 이상이 생기면 이상한 건조나 낙뢰가 잦아지고, 화산의 큰 분화로 뜨거운 용암이 흘러나오고 재가 쏟아져 도시 전체가 묻힌 예도 있다.

또 인심이 흔들릴 때에는 불이 많이 난다. 미친 듯이 불을 지르는 사람이 늘고, 질투와 미움이 소용돌이치는 사회라면 일은 더욱 심각하다. 악정 때문에 물이 모자라 불이 크게 번지기도 한다. 불의 난은 자연의 일이기에 앞서 사람의 문제로 돌아가는 바가 크다.

제4난 시절반역난 — 거꾸로 된 절기와 큰물

「큰물이 백성을 떠내려 보내고」는 말할 것도 없이 큰 홍수다. 「겨울에 비가 오고 여름에 눈이 오며」는 겨울에 눈이 전혀 오지 않고 여름에 눈이 오는 것이다. 겨울에 눈이 전혀 오지 않은 예는 적지 않다.

겨울에 천둥이 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이것 또한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대성인 시대에는 문영 2년(1265) 1월 20일에 뇌우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뇌우와 번개가 하늘을 비추고, 우박이 내려 땅을 울렸다(雷雨雷光燿天、降雹動地也)」는 것이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도 교토와 오사카와 에도 등에서 한겨울의 낙뢰로 집과 절과 성의 천수각이 탔다는 기록이 이어진다. 「유월에 얼음 · 서리 · 우박이 내리며」라는 이상한 현상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붉은 물 · 검은 물 · 푸른 물이 비로 내린다」는 것은 빛깔 있는 비가 내리는 것이다. 피처럼 붉은 비가 내려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는 기록은 동서에 두루 있다. 이런 비는 폭풍이 먼 사막이나 메마른 땅에서 엄청난 양의 붉은 흙을 하늘로 날려 올려 실어 오거나, 화산의 분화로 화산재가 높이 뿜어 올려졌을 때, 그 먼지나 재가 비와 섞여 내리는 것이다. 여름에 못이나 늪의 고인 물이 갖가지 빛깔을 띠다가 회오리바람에 말려 올라가 먼 곳에 빛깔 있는 비로 내리기도 한다. 빛깔 있는 비처럼 빛깔 있는 눈이 내리기도 하며, 일본의 역사에도 몇몇 기록이 있다.

「흙산 · 돌산이 비처럼 쏟아지며 모래 · 자갈 · 돌이 비처럼 내린다」는 흙이나 돌이 많이 쏟아져 산처럼 쌓이는 것인지, 산사태를 말하는지, 어느 쪽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흙이 쏟아지는 예는 앞의 대집경에서 말한 대로이고, 돌이 쏟아지는 것은 화산의 큰 분화나 회오리바람, 혹은 운석일 것이다.

「강물이 거꾸로 흘러 산을 띄우고 돌을 떠내려 보낸다」는 무엇인가. 이것은 큰 홍수이며 하천의 큰 범람이다. 특히 「산을 띄운다」는 큰 홍수로 평야 전체가 물에 잠겨 산만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엄청난 홍수다. 이를테면 엔포 2년(1674) 6월 13일 주고쿠 · 긴키 일대가 큰 홍수에 잠겼을 때, 가와치의 둑이 곳곳에서 터져 요도가와와 야마토가와의 물이 합쳐지고, 북으로는 히라카타에서 남으로는 사카이까지, 동으로는 이코마산 기슭에서 서로는 오사카까지 온통 진흙 바다가 되었으며, 이튿날에는 흙탕물이 거꾸로 흘러 덴마로 들어가 초목도 보이지 않을 만큼 흰 물결이 넘실거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야말로 「강물이 거꾸로 흘러 산을 띄운다」는 참상이다.

큰물에 잠긴 평야 — 온 들판을 덮은 잔잔한 물 위로 섬처럼 떠 있는 낮은 산들과 물에 잠긴 마을 지붕들, 흐린 하늘
그림 · 큰물에 잠긴 평야 — 온 들판을 덮은 잔잔한 물 위로 섬처럼 떠 있는 낮은 산들과 물에 잠긴 마을 지붕들, 흐린 하늘

제5난 대풍삭기난 · 제6난 천지항양난

「큰 바람이 만백성을 불어 죽이고, 국토 · 산하 · 수목이 한꺼번에 없어진다」는 예사로운 큰 바람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역사상 몇 번이나 맹렬한 폭풍에 휩쓸렸고, 흔히 큰비를 동반해 산사태와 홍수를 일으켜 한 지방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버린 예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게이초 9년(1604) 7월 13일 도사를 덮친 큰 비바람은 홍수를 동반해 그 지방에 철저한 피해를 주었다. 그 기록은 「때 아니게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오고 홍수가 솟아, 산의 대숲을 쓰러뜨리고 모든 작물의 뿌리와 잎을 말리며 집을 산산이 날려 버리고, 산은 강이 되고 못과 강은 산으로 묻혔으며, 사람의 목도 잘라 갈 만큼의 큰 바람이었으므로 깊은 산골의 백성들은 흙과 나무에 깔려 죽기도 하고 반쯤 죽은 채 살아남기도 했다」고 전한다. 다소 과장이 있다 해도 엄청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문대로라면 이보다 더 가혹한 큰 바람이 휘몰아칠 수 있다. 「검은 바람 · 붉은 바람 · 푸른 바람」은 날려 올라간 검은 흙과 붉은 흙의 모래먼지를 머금은 바람, 혹은 푸른 바닷말을 머금은 바람일 것이다. 이것이 검고 붉고 푸른 비와 눈을 내리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다.

「하늘과 땅과 국토가 몹시 가물고 불꽃이 활활 타올라 온갖 풀이 말라 버리고, 오곡이 여물지 않으며, 땅이 붉게 달아 만백성이 다 죽으리라.」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가뭄이다. 가뭄의 피해는 대집경에서 이미 살폈다. 「만백성이 다 죽는다」는 표현은 가뭄이 기근을 부르고 기근이 역병을 부르는 연쇄를 한마디로 줄인 것이다. 정가 · 정원의 기근에서 길가에 주검이 쌓였던 것을 객이 이미 탄식하지 않았던가.

제7난 사방적래난 — 칼과 병기의 겁

「사방의 적이 와서 나라를 침략하고, 안팎의 적이 일어나며, 화적 · 수적 · 풍적 · 귀적이 있어 백성이 어지러워지고 칼과 병기의 겁이 일어나리라.」 이것은 약사경 칠난 가운데 타국침핍과 자계반역의 두 난에 해당하는 난이다. 이 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논했고 이 장 뒤에서도 몇 번이고 다루게 되므로, 여기서는 마지막 「칼과 병기의 겁이 일어난다」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겁」은 일단 겁략, 곧 위협하여 빼앗는다는 뜻으로 볼 수 있으나, 겁말(劫末)의 삼재, 특히 병혁의 재앙이 성한 때를 「도병겁」이라 부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 성(成) · 주(住) · 괴(壞) · 공(空)의 사겁을 논해 두자.

성 · 주 · 괴 · 공의 사겁

우주에 있는 것 가운데 영원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무엇이든 반드시 생겨나고, 이어지고, 무너지고, 사라지기를 되풀이하며 끊임없이 변해 간다. 불법은 이것을 성 · 주 · 괴 · 공이라 한다. 성이란 하나의 생명이 생겨나 자라는 상태, 주란 자람이 끝나 무르익은 시기에 들어 그것이 이어지는 상태, 괴란 무르익은 시기를 지나 늙어 가는 상태, 공이란 한 생명 활동이 끝나 우주 속에 녹아든 상태다.

이것을 사람의 한평생에 맞추어 보면, 어머니 태에 깃들어 태어나 자라는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은 「성」, 인생이 무르익은 장년 시절은 「주」, 노년기는 「괴」, 죽어서 생명이 우주 속에 녹아든 상태는 「공」이라 할 수 있다. 사람에 한하지 않고 우주의 만물은 모두 이 네 단계를 돈다고 설한다. 세계에 대해 말하면, 세계가 이루어지는 때가 「성」, 거기에 생물이 살며 활동하는 기간이 「주」, 세계가 차츰 늙어 무너져 가는 단계가 「괴」, 마침내 다 무너진 상태가 「공」이다.

그리고 우주 또는 한 세계의 성 · 주 · 괴 · 공과 그 시간의 길이를 설하는 데 불법은 「겁(劫)」이라는 단위를 쓴다. 겁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크게 소겁 · 중겁 · 대겁의 세 가지로 나뉜다. 대성인은 「현방법초」에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人寿・無量歳なりしが百年に一寿を減じ、又百年に一寿を減ずるほどに、人寿十歳の時に減ずるを一減と申す。又十歳より百年に一寿を増し、又百年に一寿を増する程に、八万歳に増するを一増と申す。此の一増・一減の程を小劫として、二十の増減を一中劫とは申すなり

사람의 수명이 한량없는 해였는데 백 년에 한 살씩 줄고 또 백 년에 한 살씩 줄어 사람의 수명이 열 살에 이르기까지 줄어드는 것을 일감(一減)이라 하느니라. 또 열 살에서 백 년에 한 살씩 늘고 또 백 년에 한 살씩 늘어 팔만 살에 이르기까지 늘어나는 것을 일증(一增)이라 하느니라. 이 일증 · 일감의 동안을 소겁이라 하고, 스무 번의 증감을 일중겁이라 하느니라.

「현방법초」, 447쪽

이 셈에 따르면 한 소겁은 1,600만 년에서 2,000년을 뺀 길이에 해당하고, 한 중겁은 그 스무 배다. 그리고 이 중겁 넷을 합친 것을 한 대겁이라 하여 한 세계가 생겼다 사라지는 처음과 끝의 길이로 삼는다. 네 중겁이란 처음이 성겁, 다음이 주겁, 이어서 괴겁, 마지막이 공겁이다. 『구사론』에 따르면 지금 이 세계는 「주겁 제9의 감(減)」에 해당한다고 한다.

대삼재와 소삼재

여기서 「도병겁」이란, 큰 괴겁에는 화재 · 수재 · 풍재의 「대삼재」가 일어나 세계가 무너져 가는데, 각 소겁의 끝에도 「소삼재」가 일어난다. 이것이 곡귀(기근) · 역병 · 병혁의 삼재이며, 도병이란 병혁의 재앙이다. 대성인은 「소야전답서」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三毒がうじやうなる一国いかでか安穏なるべき。壊劫の時は大の三災をこる、いはゆる火災・水災・風災なり。又減劫の時は小の三災をこる。ゆはゆる飢渇・疫病・合戦なり

삼독이 강성한 한 나라가 어찌 안온할 수 있겠느냐. 괴겁의 때에는 대삼재가 일어나니, 이른바 화재 · 수재 · 풍재이니라. 또 감겁의 때에는 소삼재가 일어나니, 이른바 기갈 · 역병 · 합전이니라.

「소야전답서」, 1064쪽

이 글은 다음 장의 대집경 삼재로 곧바로 이어진다.

「백억의 수미산」 — 경문이 그리는 세계

이 경문은 「대왕이여, 내가 지금 교화하는 곳에 백억의 수미산과 백억의 해와 달이 있고, 하나하나의 수미산에 사천하가 있느니라. 그 남염부제에 열여섯의 큰 나라, 오백의 중간 나라, 일만의 작은 나라가 있느니라」로 시작한다. 참으로 웅대한 세계관이다. 해와 달과 사천하를 아우른 세계가 하나가 아니라 백억이나 있다고 설하고, 그 하나하나에 사람이 사는 남염부제가 있으며 거기에 나라들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석존이 출현할 무렵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미산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이 믿어졌다. 석존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일단 쓰셨지만,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중생의 근기에 따른 것으로 쓰셨을 것이다. 수미산 중심의 세계관이 가장 낮은 소승경에 많이 설해진 데서도 그것을 엿볼 수 있다. 석존은 생명의 실상을 설하기 위해 당시 인도 사람들의 생활 감정을 헤아려 그것을 살려 쓰셨을 것이다.

수미산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동쪽 면은 백은, 서쪽 면은 파리, 남쪽 면은 유리, 북쪽 면은 황금이고, 위와 아래가 넓고 허리가 가는 절굿공이 모양으로, 그 높이는 물 위로 팔만 사천 유순이라고 한다. 그 꼭대기에는 제석천을 비롯한 삼십삼천이 산다. 이런 표현으로 보면 수미산은 고대 인도 사람들이 그린 하나의 이상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법 이전의 인도에서는 천상계에 태어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그 모습을 이렇게 쓰셨다.

所謂善き外道は五戒・十善戒等を持つて有漏の禅定を修し、上、色・無色をきわめ、上界を涅槃と立て、屈歩虫のごとく・せめのぼれども、非想天より返つて三悪道に堕つ。一人として天に留るものなし

이른바 좋은 외도는 오계 · 십선계 등을 지니고 유루의 선정을 닦아 위로 색계 · 무색계를 다하고, 위의 세계를 열반이라 세워 자벌레처럼 기어오르지만, 비상천에서 도리어 삼악도에 떨어지느니라. 한 사람도 하늘에 머무는 자가 없느니라.

「개목초」, 187쪽

수미산 둘레에는 향수해가 있고, 그 바깥을 일곱 금산과 같은 이름의 일곱 공덕해가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강을 신성하게 여겨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고 기도했으니, 「개목초」의 「혹은 겨울 추위에 하루에 세 번 항하에서 목욕하고」라는 글이 그것을 말한다. 향수해 · 공덕해라는 생각에도 그런 사상이 비쳐 있을 것이다. 가장 바깥의 바다는 짠물을 담은 큰 바다이고, 그 바깥을 철륜위산이 둘러싸고 있다. 그 바깥 세계의 사방에 네 대륙이 있어 동쪽을 불바제, 서쪽을 구야니, 남쪽을 염부제, 북쪽을 울단월이라 한다. 남염부제 한가운데에 아뇩달지라는 못이 있고, 그 남쪽에 대설산이 있으며, 다시 그 남쪽에 천축, 동북에 진단(중국), 서북에 파사국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짜인 당시의 세계 지도다. 해와 달도 이 수미산을 중심으로 돈다고 하며, 이 아홉 산 여덟 바다와 해와 달까지 아울러 한 세계의 가장 작은 단위로 삼아 이것을 소세계라 했다.

삼천대천세계

그런데 인왕경 등 대승경에 오면 이 수미산 중심의 세계관이 거대한 규모로 설해진다. 「백억의 수미산과 백억의 해와 달」, 곧 이런 세계가 백억이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삼천대천세계라는 참으로 방대한 세계상이 제시된다. 삼천대천세계란 해와 달과 사주와 육욕천 · 범천 등을 포함한 것을 한 세계로 하여, 그것을 천 개 합친 것을 소천세계, 소천세계가 천 개 모인 것을 중천세계, 중천세계가 천 개 모인 것을 대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라 한다. 또 한 설에는 삼천대천세계의 첫 소천세계가 한 세계를 백억 모은 것이라고도 한다. 대성인도 어서에서 동서남북과 한 수미산과 육욕천 · 범천을 한 사천하라 하고, 백억의 수미산 · 사주 등을 소천이라 하며, 소천의 천을 중천, 중천의 천을 대천이라 한다고 풀이하셨다(1104쪽). 이에 따르면 인왕경에 설한 「백억의 수미산과 백억의 해와 달」도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한 소천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법화경 수량품에는 「오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의 삼천대천세계」라는 말이 나온다. 다섯 × 백 × 천 × 만 × 억 × 나유타 × 아승기의 삼천대천세계라는 것이다. 억 · 나유타 · 아승기에는 저마다 여러 설이 있어 정설이 없으나, 『구사론』에 따르면 아승기는 쉰 개의 영이 붙는 수라고 한다. 수량품이 이렇게 셀 수 없는 세계를 들어 설한 것은 부처가 성불한 이래의 시간이 얼마나 아득한가를 보이기 위해서였다.

이 삼천대천세계라는 생각의 특색은 세계를 질서 없는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하나의 세계가 더 큰 세계의 한 부분이 되고, 그것이 다시 더 큰 세계를 이루어 가는 겹겹의 짜임을 보인다. 그리고 그 모든 세계가 부처가 교화하는 국토다. 인왕경의 부처가 「내가 지금 교화하는 곳」이라는 말로 칠난의 설법을 시작한 데에는 깊은 뜻이 있다. 칠난은 이 넓은 국토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부처가 교화하는 국토 전체에 통하는 법칙이며, 「일체의 국왕이 이것을 난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열여섯의 큰 나라든 일만의 작은 나라든, 어느 나라의 왕이든 정법을 등지면 이 칠난을 피할 수 없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인왕경의 칠난은 해와 달과 별, 불과 물과 바람과 가뭄, 그리고 외적과 내란에 이르기까지 국토의 모든 차원에 걸친다. 그 마지막 사방적래난이 약사경의 타국침핍 · 자계반역에 해당하며, 입정안국론은 이 「남은 난」을 들어 국가에 간한다. 성주괴공과 대 · 소 삼재의 가르침은 삼독이 강성한 나라가 안온할 수 없다는 원리를 우주의 시간 속에서 보인다.

제2단 제7장 다시 대집경을 들다
어서 20쪽 5~10행 · 第二段 第七章 再び大集経を挙ぐ

본문

원문 대조어서 20쪽 5~10행
本文 · 어서 원문

大集経に云く「若し国王有つて、無量世に於て施・戒・慧を修すとも、我が法の滅せんを見て、捨てて擁護せずんば、是くの如く種ゆる所の無量の善根、悉く皆滅失して、其の国に当に三の不祥の事有るべし。一には穀貴、二には兵革、三には疫病なり。 一切の善神悉く之を捨離せば、其の王教令すとも、人随従せずして、常に隣国の侵嬈する所と為らん。暴火横に起り、悪風雨多く、暴水増長して人民を吹き漂し、内外の親戚其れ共に謀叛せん。其の王久しからずして、当に重病に遇い、寿終の後、大地獄の中に生ずべし。乃至王の如く、夫人・太子・大臣・城主・柱師・郡守・宰官も亦復是くの如くならん」已上。

풀이

대집경에 이르기를, 「만일 국왕이 있어 한량없는 세상에 보시 · 지계 · 지혜를 닦을지라도, 나의 법이 멸하려는 것을 보고 버려두어 옹호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이 심은 한량없는 선근이 모두 다 없어지고, 그 나라에 마땅히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으리라. 첫째는 곡귀(穀貴), 둘째는 병혁(兵革), 셋째는 역병이니라. 일체의 선신이 모두 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면, 그 왕이 명령을 내려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고 늘 이웃 나라의 침략과 괴롭힘을 받으리라. 사나운 불이 도리에 어긋나게 일어나고, 사나운 바람과 비가 많으며, 사나운 물이 불어나 백성을 불어 날리고 떠내려 보내며, 안팎의 친척이 함께 모반하리라. 그 왕은 오래지 않아 중병을 만나고, 목숨을 마친 뒤 대지옥 가운데 태어나리라. 내지 왕과 같이 부인 · 태자 · 대신 · 성주 · 주사(柱師) · 군수 · 재관(宰官)도 또한 이와 같으리라」 이상.

어구 풀이

無量世に於て施・戒・慧を修すとも한량없는 세상에 보시 · 지계 · 지혜를 닦을지라도
보시 · 지계 · 지혜는 육바라밀 가운데 셋으로, 국왕의 자리를 얻게 한 과거의 선행이다. 제4장의 인왕경이 말한 「과거세에 오백의 부처를 섬긴」 복과 같은 뜻이다.
我が法の滅せんを見て捨てて擁護せずんば나의 법이 멸하려는 것을 보고 버려두어 옹호하지 않는다면
정법이 무너져 가는 것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것. 정법을 직접 헐뜯지 않더라도 지키지 않는 것만으로 큰 죄가 된다는 경문이다.
三の不祥の事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
정법을 등지고 정법을 지니는 이를 박해함으로써 일어나는 세 가지 재해. 대집경은 ① 곡귀(기근 등으로 곡식 값이 치솟는 것) ② 병혁(전란) ③ 역병(전염병의 유행)을 든다. 소삼재다.
其の王教令すとも人随従せず그 왕이 명령을 내려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
선신이 떠나면 왕의 위엄이 서지 않아 나라의 명령이 행해지지 않는다. 앞 장의 인왕경 「왕의 복이 다할 때」와 같은 모습이다.
侵嬈침요
침략. 「침(侵)」은 쳐들어오는 것, 「요(嬈)」는 희롱하고 괴롭히는 것이다.
暴火横に起り사나운 불이 도리에 어긋나게 일어난다
「폭화」는 큰불, 「횡(横)」은 도리에서 벗어난 것, 바르지 않은 것이다.
内外の親戚其れ共に謀叛せん안팎의 친척이 함께 모반한다
왕의 친족(안)과 외척(밖)이 모두 반역하는 것. 자계반역난이다.
柱師주사
촌주와 장수. 대집경 원문에는 「촌주장사(村主將帥)」로 되어 있어 마을의 우두머리와 장군을 뜻한다.
宰官재관
「재(宰)」는 맡아 다스리는 것, 「관(官)」은 섬기고 일하는 것이다. 앞은 관청의 장관 등을, 뒤는 일반 관리를 가리켜, 합하여 관리 전반을 이른다.

대집경의 삼재 — 곡귀 · 병혁 · 역병

이것은 삼재를 밝힌 경문이다. 앞 장에서 보았듯 삼재에는 대삼재와 소삼재가 있다. 대삼재는 괴겁 때에 일어나는 화재 · 수재 · 풍재이고, 소삼재는 소겁의 끝에 일어나는 기갈 · 역병 · 합전이다. 지금 대집경은 기갈을 곡귀라 하고 합전을 병혁이라 하여, 첫째 곡귀, 둘째 병혁, 셋째 역병으로 들었다. 이름은 달라도 뜻은 같다.

제3장의 대집경은 「불법이 참으로 은몰하면」이라는 법의 상태에서 시작했지만, 여기서 다시 든 대집경은 「만일 국왕이 있어」라는 사람의 행위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국왕은 결코 악한 왕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한량없는 세상에 보시와 지계와 지혜를 닦은, 이를테면 선근 많은 왕이다. 그런데도 「나의 법이 멸하려는 것을 보고 버려두어 옹호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선근이 없어진다. 정법을 직접 헐뜯는 것만이 죄가 아니다. 정법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지키지 않는 것, 방법을 보고도 꾸짖지 않는 것 또한 쌓은 선근을 모두 잃게 하는 죄라는 것이다. 이 뜻은 입정안국론 제7편 「보시를 멈추어 방법을 끊다」에서 열반경의 「법을 무너뜨리는 자를 보고도 버려두어 꾸짖지 않으면 불법 가운데의 원수다」라는 글로 다시 이어진다.

대삼재(괴겁의 때)화재 · 수재 · 풍재
소삼재(감겁 · 소겁의 끝)기갈(곡귀) · 역병 · 합전(병혁 · 도병)
소삼재의 근원탐욕이 심해지면 기아가 일어나고貪欲増劇にして飢餓起り성냄이 심해지면 도병이 일어나며瞋恚増劇にして刀兵起り어리석음이 심해지면 질역이 일어난다愚癡増劇にして疾疫起り『어의구전』 718쪽 · 「소야전답서」 1064쪽
악순환
  1. 삼독
  2. 삼재
  3. 번뇌 · 사견 증장
  4. 삼독
삼재가 일어나므로 번뇌가 더욱 성하고 그릇된 견해가 더욱 치성하다三災起るが故に煩悩倍隆んに、諸見転た熾んなり
도표 13 · 대삼재와 소삼재, 그리고 삼독

삼재는 삼독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이 삼재는 무엇에서 일어나는가. 『어의구전』은 『법화문구』를 인용하여, 오탁 가운데 겁탁(劫濁)의 모습을 들어 삼재가 일어나는 원인을 이렇게 설한다.

相とは四濁増劇にして此の時に聚在せり。瞋恚増劇にして刀兵起り、貪欲増劇にして飢餓起り、愚癡増劇にして疾疫起り、三災起るが故に煩悩倍隆んに、諸見転た熾んなり

겁탁의 모습이란, 네 가지 탁함이 더욱 심해져 이때에 모여 있는 것이다. 성냄이 더욱 심해져 도병이 일어나고, 탐욕이 더욱 심해져 기아가 일어나며, 어리석음이 더욱 심해져 질역이 일어나고, 삼재가 일어나므로 번뇌가 갑절로 성하고 여러 견해가 더욱 치성하다.

『어의구전』, 718쪽

겁탁의 모습이란, 번뇌탁 · 견탁 · 중생탁 · 명탁의 네 탁함이 매우 심해져 한 시대에 모여 있는 것이다. 성냄이 심해지면 그 국토에 전쟁이 일어나고, 탐욕이 성하면 기아가 일어나며, 어리석음이 많으면 역병이 퍼진다. 이렇게 삼재가 일어나면 사람들의 번뇌는 더욱 성해지고, 갖가지 그릇된 사상과 종교가 퍼지게 된다. 같은 뜻의 글이 「소야전답서」에도 있다.

飢渇は大貪よりをこり、やくびやうは・ぐちよりをこり、合戦は瞋恚よりをこる

기갈은 큰 탐욕에서 일어나고, 역병은 어리석음에서 일어나며, 합전은 성냄에서 일어나느니라.

「소야전답서」, 1064쪽

삼재를 일으키는 근원인 탐 · 진 · 치의 삼독은 생명에 본래 갖추어진 성질이며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그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용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작용에 지배될 때 거기서 생기는 결과는 비참하다.

먼저 「성냄이 심해져 도병이 일어난다」는 전쟁의 본질을 찌른 말이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데도 왜 싸움이 일어나는가. 이것은 이성으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오로지 사람의 생명에 본래 갖추어진 성냄의 생명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평화를 바라던 사람이 한번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살육에 미쳐 날뛰는 것도, 이끄는 이의 머리가 무엇에 씐 것처럼 사람들을 싸움으로 몰아가는 것도 모두 성냄에서 오는 것이다.

다음으로 「탐욕이 심해져 기아가 일어난다」는, 사람들이 저마다 제 이익만 좇느라 허덕일 때 어쩌다 닥친 가뭄이 민중에게 철저한 타격을 주어 기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가 그릇되면 물가가 치솟아 사람들의 생활을 괴로움의 밑바닥으로 몰아넣는다. 사람들은 남을 밀어내면서까지 제 몸을 지키려고 기를 쓰고, 그것이 기아를 더욱 키운다. 특히 이끄는 이가 탐욕에 사로잡혀 제 한 몸의 이익만 좇고 민중을 잊으면, 민중은 도탄의 괴로움을 맛보아야 한다. 기근이 극심해지자 막부가 인신매매의 금령까지 풀어야 했던 일이 그것을 말해 준다.

또 「어리석음이 심해져 질역이 일어난다」는, 어리석기 때문에 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모든 병은 바른 리듬에서 벗어났을 때 일어난다. 곧 병이란 생명의 부조화다. 그것은 일시적 · 부분적인 부조화일 때도 있고, 오래가고 전체적이며 근본적인 부조화일 때도 있다. 그에 따라 병의 가볍고 무거움, 고치기 쉽고 어려움이 갈린다. 또 밖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생명의 안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떻든 결국 생명력의 감퇴가 병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력에 넘치는 몸이라면 밖에서 들어오는 병에도 휘둘리지 않고 웬만한 병은 넉넉히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리석고 어두워 눈앞의 일에만 눈을 빼앗기고, 바른 일에 적극적이지 않고, 무기력해져 생명력이 쇠하면 거기에 역병이 퍼진다.

「삼재가 일어나므로 번뇌가 갑절로 성하고 여러 견해가 더욱 치성하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명의 탁함이 원인이 되어 도병 · 기아 · 질역의 삼재가 일어나는데, 이 삼재가 다시 원인이 되어 번뇌와 사견을 더욱 키우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재난이 사람의 마음을 거칠게 하고, 거칠어진 마음이 다시 재난을 부른다.

「남묘호렌게쿄를 경계로 하여 일어난 삼독」

그러면 이 탐 · 진 · 치의 삼독은 왜 그토록 성해졌는가.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것은 그릇된 종교와 그릇된 지혜로 인해 성해진 것이며, 정법이 은몰함과 함께 내 몸 안에 있는 묘한 생명도 덮여 생명 자체가 삼악도 · 사악취만 활발해진 것이다. 이 삼독이 시대와 함께 민중의 생명을 지배하고 한 나라를 지배하여 늘 삼재가 일어나는 바탕이 되었다. 그래서 「소야전답서」는 앞의 글에 이어 이렇게 말한다.

今日本国の人人四十九億九万四千八百二十八人の男女、人人ことなれども同じく一の三毒なり。所謂南無妙法蓮華経を境としてをこれる三毒なれば、人ごとに釈迦・多宝・十方の諸仏を一時にのり、せめ、流し、うしなうなり。是れ即ち小の三災の序なり

지금 일본국의 사람들 사십구억 구만 사천팔백이십팔 명의 남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똑같이 하나의 삼독이니라. 이른바 남묘호렌게쿄를 경계로 하여 일어난 삼독이므로, 사람마다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을 한꺼번에 욕하고, 꾸짖고, 유배하고, 없애느니라. 이것이 곧 소삼재의 서막이니라.

「소야전답서」, 1064쪽

이 글은 매우 깊다. 삼독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대성인 당시 일본 사람들의 삼독은 「남묘호렌게쿄를 경계로 하여」 일어난 삼독이었다. 곧 정법을 대상으로 일어난 탐 · 진 · 치이며, 정법을 넓히는 이를 미워하고 꾸짖고 유배하는 삼독이다. 그것은 그대로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을 욕하고 유배하는 것과 같으므로, 소삼재의 서막이 된다는 것이다. 대집경의 「나의 법이 멸하려는 것을 보고 버려두어 옹호하지 않는다면」은 대성인 당시에는 이렇게 더 적극적인 비방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삼재를 끝내는 길은 그 원인인 사람 생명 안의 탐 · 진 · 치의 삼독을 다스리고 이겨 낼 수 있는 굳센 이념과 정신의 기둥을 세우는 것밖에 없다. 그것은 눈앞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휘둘리는 낮은 신앙으로는 할 수 없고, 그것을 덮어놓고 물리치는 관념적인 신앙으로도 할 수 없다. 사람 생명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거기에 숭고한 이념과 사명감을 세워 승화시켜 가는 종교라야 한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번뇌즉보리를 설하는 묘법이야말로 그 종교다.

선신이 떠난 나라의 왕 — 정법을 지키지 않은 과보

경문은 이어서 선신이 떠난 나라의 모습을 그린다. 「일체의 선신이 모두 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면, 그 왕이 명령을 내려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고 늘 이웃 나라의 침략과 괴롭힘을 받으리라.」 선신의 수호를 잃은 왕은 위엄을 잃어 나라의 명령이 서지 않고, 밖으로는 이웃 나라에 시달린다. 「사나운 불이 도리에 어긋나게 일어나고, 사나운 바람과 비가 많으며, 사나운 물이 불어나 백성을 불어 날리고 떠내려 보낸다」는 앞 장 인왕경의 불 · 바람 · 물의 난과 겹친다. 그리고 「안팎의 친척이 함께 모반한다」는 자계반역난이다. 「늘 이웃 나라의 침략과 괴롭힘을 받는다」는 타국침핍난이다. 대집경 또한 그 끝에 남은 두 난을 가리키고 있다.

입정안국론 제9편에서 주인은 이 대집경의 삼재를 다시 들어 이렇게 말한다.

大集経の三災の内二災早く顕れ一災未だ起らず所以兵革の災なり

대집경의 삼재 가운데 두 재앙은 일찍 나타났고 한 재앙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느니라. 이른바 병혁의 재앙이니라.

「입정안국론」, 31쪽

곡귀와 역병은 정가 · 정원의 기근과 역병으로 이미 나타났다. 남은 것은 병혁, 곧 전란의 재앙이다. 약사경의 남은 두 난, 인왕경의 남은 한 난, 대집경의 남은 한 재앙이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킨다. 네 경을 겹쳐 놓고 보면 입정안국론의 예언이 결코 한 경의 한 구절에 기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경문은 마지막으로 왕 자신의 과보를 말한다. 「그 왕은 오래지 않아 중병을 만나고, 목숨을 마친 뒤 대지옥 가운데 태어나리라.」 그리고 「왕과 같이 부인 · 태자 · 대신 · 성주 · 주사 · 군수 · 재관도 또한 이와 같으리라」고 하여, 왕 한 사람만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모든 이가 같은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 정법을 지키지 않은 책임은 왕좌에 앉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나라를 맡은 모든 이의 것이다. 입정안국론 제9편에서 주인은 이 대집경의 글을 거듭 인용하여, 그릇된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일찍 유위의 고장을 떠나 반드시 무간의 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객에게 경고한다. 이 장의 경문은 나라의 재난과 함께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후생을 묻는 글이기도 하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대집경의 삼재(곡귀 · 병혁 · 역병)는 탐 · 진 · 치의 삼독에서 일어나고, 대성인 당시의 삼독은 「남묘호렌게쿄를 경계로 하여 일어난」 삼독, 곧 정법과 그 행자를 미워하는 삼독이었다. 선근 많은 왕이라도 정법이 멸하는 것을 보고 지키지 않으면 그 선근을 잃는다. 삼재 가운데 남은 병혁의 재앙이 입정안국론의 예언으로 이어진다.

제2단 제8장 네 경의 명문으로 재난의 유래를 맺다
어서 20쪽 11~13행 · 第二段 第八章 四経の明文により災由を結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0쪽 11~13행
本文 · 어서 원문

夫れ四経の文朗らかなり。万人誰か疑わん。而るに盲瞽の輩、迷惑の人、妄に邪説を信じて、正教を弁えず。故に天下世上、諸仏・衆経に於て、捨離の心を生じて、擁護の志無し。仍って善神聖人、国を捨て所を去る。是を以て悪鬼外道、災を成し難を致す。

풀이

무릇 네 경의 글이 밝으니, 만인 가운데 누가 의심하겠느냐. 그런데 눈먼 무리와 미혹한 사람들이 함부로 삿된 설을 믿어 바른 가르침을 분별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천하와 세상 사람들이 모든 부처와 뭇 경에 대하여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내어 옹호할 뜻이 없느니라. 그래서 선신과 성인이 나라를 버리고 자리를 떠나느니라. 이 때문에 악귀와 외도가 재앙을 이루고 난을 일으키느니라.

어구 풀이

四経の文朗らかなり네 경의 글이 밝다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 · 약사경의 경문이 분명하여 다른 풀이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万人誰か疑わん만인 가운데 누가 의심하겠느냐
경문이 이토록 밝으니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는 반어다. 제1장에서 객이 청한 「경문의 증거」에 대한 맺음이다.
盲瞽の輩눈먼 무리
「맹(盲)」은 태어난 뒤에 시력을 잃은 이, 「고(瞽)」는 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이를 말했다. 여기서는 불법의 바르고 그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한 시대의 말이다.
迷惑の人미혹한 사람
바르고 그름에 헤매는 사람.
妄に邪説を信じて正教を弁えず함부로 삿된 설을 믿어 바른 가르침을 분별하지 못한다
「삿된 설」은 경문에 근거하지 않은 그릇된 가르침, 「바른 가르침」은 부처의 본뜻을 담은 경이다. 입정안국론 제4편에서 이 「삿된 설」이 법연의 『선택집』으로 밝혀진다.
天下世上천하와 세상
온 나라의 사람들.
諸仏・衆経に於て捨離の心を生じて모든 부처와 뭇 경에 대하여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내어
금광명경의 「버리고 떠나려는 마음을 내어 들으려 하지 않는다」를 받는다. 니치칸 상인은 이것을 법연이 「버리라 · 닫으라 · 내려놓으라 · 던지라(捨閉閣抛)」의 네 글자로 사람들이 여러 부처와 경을 버리게 한 것으로 풀었다.
擁護の志無し옹호할 뜻이 없다
대집경의 「버려두어 옹호하지 않는다면」을 받는다.
善神聖人、国を捨て所を去る선신과 성인이 나라를 버리고 자리를 떠난다
입정안국론 제1편의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났고 성인은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를 다시 말한 것이다.
悪鬼外道、災を成し難を致す악귀와 외도가 재앙을 이루고 난을 일으킨다
입정안국론 제1편의 「마가 오고 귀가 와서 재앙이 일어나고 난이 일어난다」를 받는다. 「외도」는 불법 밖의 그릇된 가르침, 넓게는 불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면서 부처의 본뜻을 등진 가르침이다.

재난이 일어나는 세 단계

제2단은 이 짧은 장으로 끝난다. 주인은 네 경의 경문을 다 펼친 뒤 「무릇 네 경의 글이 밝으니 만인 가운데 누가 의심하겠느냐」라고 맺는다. 객이 제1장에서 청한 「경문의 증거」는 이로써 다 보였다. 그리고 주인은 그 경문들이 말하는 재난의 유래를 세 단계로 다시 정리한다.

재난이 일어나는 까닭은 첫째, 사람들이 모두 그릇된 가르침을 믿는 것이다. 「눈먼 무리와 미혹한 사람들이 함부로 삿된 설을 믿어 바른 가르침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하와 세상 사람들이 모든 부처와 뭇 경에 대하여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내어 옹호할 뜻이 없다.」 둘째, 그 때문에 제천선신과 성인이 그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선신과 성인이 나라를 버리고 자리를 떠난다.」 셋째, 악귀가 어지러이 들어와 재난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악귀와 외도가 재앙을 이루고 난을 일으킨다.」

경금광명경(제2장)
원인국왕이 정법을 유포하지 않고 버림
떠나는 이사천왕과 선신이 나라를 버림
재난역병 · 혜성 · 두 해 · 박식 · 지동 · 기근 · 외적
경대집경(제3장)
원인불법이 은몰하고 악한 왕 · 악한 비구가 정법을 무너뜨림
떠나는 이선신과 왕들이 탁한 나라를 버림
재난지진 · 가뭄 · 흙비 · 삼독 증장 · 수명 감소
경인왕경(제4 · 6장)
원인귀신이 어지럽고 왕의 복이 다함
떠나는 이성인이 떠남
재난칠난(일월실도에서 사방적래까지)
경약사경(제5장)
원인국주에게 재난이 닥침
떠나는 이
재난칠난(인중질역에서 과시불우까지, 타국침핍 · 자계반역 포함)
경대집경(제7장)
원인국왕이 정법이 멸하는 것을 보고도 지키지 않음
떠나는 이선신이 버림
재난곡귀 · 병혁 · 역병
맺음(제8장)
  1. ① 삿된 설을 믿어 모든 부처와 뭇 경을 버림
  2. ② 선신과 성인이 나라를 버림
  3. ③ 악귀와 외도가 재난을 일으킴
「무릇 네 경의 글이 밝으니 만인 가운데 누가 의심하겠느냐」夫れ四経の文朗らかなり。万人誰か疑わん
도표 14 · 네 경의 명문과 재난의 세 단계

이 세 단계는 입정안국론 제1편에서 주인이 처음 내놓은 대답 「세상이 모두 정에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간다. 그러므로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났고 성인은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가 오고 귀가 와서 재앙이 일어나고 난이 일어난다」와 정확히 겹친다. 입정안국론 제1편이 명제를 세웠다면 이 편은 그 명제를 네 경의 경문으로 증명하고, 증명을 마친 뒤 같은 명제를 다시 맺어 보인 것이다. 다만 입정안국론 제1편에서는 「정(正)에 등지고 악(惡)에 돌아간다」고 했던 것이 여기서는 「삿된 설을 믿어 바른 가르침을 분별하지 못한다」 「모든 부처와 뭇 경에 대하여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낸다」로 한 걸음 구체화되었다.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삿된 설」인지가 다음 단계의 물음이 된다.

경문을 첫째로 삼는 까닭

이상의 도리를 주인은 경문으로 밝게 보였다. 객이 경문의 증거를 청하자 주인은 네 경의 글로 답했고, 그 뒤의 문답에서도 늘 경문을 앞세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이 뒤에 비판하게 될 법연의 『선택집』과 날카롭게 대비된다. 『선택집』은 오로지 염불의 세 조사인 담란 · 도작 · 선도의 해석에 기대어 자기의 견해를 말한 것이지만, 대성인은 어디까지나 경문을 첫째로 삼으시고, 석존의 불교는 먼저 석존을 근본으로 세워 판단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경문에 따라 판단하면, 법화경이 불법의 진수요 최고봉임을 알게 된다. 나아가 법화경의 글에 따라, 말법에는 상행보살의 재탄인 니치렌 대성인이 삼대비법으로 말법 만년 이후의 일체중생을 구하신다는 것이 경문 그대로이며 불법의 정해진 이치임이 분명해진다고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본다. 대성인이 경문을 첫째로 인용하신 깊은 뜻을 알아야 한다.

「눈먼 무리와 미혹한 사람」이라는 말은 거칠게 들리지만, 이것은 사람을 깎아내리려는 말이 아니라 「바른 가르침을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 비유다. 눈이 있어도 법의 바르고 그름을 보지 못하면 눈먼 것과 같다. 입정안국론 제1편에서 객이 늘어놓은 기도의 목록이 그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정성을 다해 경을 외우고 부처를 불렀지만, 무엇이 바른 법인지를 가리는 눈이 없었기에 그 정성이 도리어 재난을 키웠다. 「함부로 삿된 설을 믿는다」의 「함부로(妄)」는 근거 없이, 곧 경문의 증거 없이 믿는다는 뜻이다. 제1장에서 객이 「어느 경에 나오는가」를 물은 그 자세가 바로 이 「함부로」의 반대편에 있다.

마지막 구절 「악귀와 외도가 재앙을 이루고 난을 일으킨다」도 눈여겨볼 만하다. 입정안국론 제1편에서는 「마가 오고 귀가 온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악귀와 외도」라고 했다. 「귀」가 생명과 복을 빼앗는 작용이라면, 「외도」는 불법 밖의 그릇된 가르침이다. 재난을 일으키는 것이 하늘의 이변이나 땅의 흔들림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제4장의 인왕경이 「국토가 어지러울 때에는 먼저 귀신이 어지럽다」고 하여 재난의 첫머리에 사상의 어지러움을 둔 것과 같은 뜻이다. 선신이 떠난 빈자리에 악귀가 들어오고, 정법이 버려진 빈자리에 그릇된 가르침이 들어온다. 국토의 재난과 사람 마음의 어지러움은 이렇게 한 뿌리에서 자란다. 이것이 네 경을 꿰뚫는 의정불이의 원리이며, 입정안국론이 「만 가지 기도를 닦기보다는 이 일흉을 금하라」고 결론짓게 되는 까닭이다.

「모든 부처와 뭇 경을 버린다」 — 니치칸 상인의 풀이

그런데 본문은 「모든 부처와 뭇 경에 대하여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낸다」고 했다. 어떤 한 부처, 어떤 한 경이 아니라 「모든 부처와 뭇 경」이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니치칸 상인은 「입정안국론 문단」에서 이렇게 풀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이 논은 바로 법연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와 뭇 경에 대하여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내어 선신과 성인이 버리고 떠난다고 한 것이다. 만일 그 원의(元意)로 말하면 석존과 법화경에 대하여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내므로 선신과 성인이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곧 본문의 겉뜻으로는, 제천선신이 나라를 버리는 것은 법연이 「버리라 · 닫으라 · 내려놓으라 · 던지라(捨 · 閉 · 閣 · 抛)」의 네 글자로 일체중생이 아미타불과 정토 삼부경 밖의 「모든 부처와 뭇 경」을 버리고 떠나게 했기 때문이다. 법연은 『선택집』에서 성도문의 모든 경과 아미타불 밖의 모든 부처를 버리라고 가르쳤으니, 그 결과 나라 사람들이 석존과 약사여래와 법화경과 금광명경과 인왕경을 모두 버리고 떠났다. 객이 든 기도들이 효험이 없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경을 외우면서도 마음은 그 경을 이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의는, 석존과 법화경, 더 깊이는 본인묘의 교주와 하종의 법화경에 대하여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내게 했기 때문이라고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받든다. 「모든 부처와 뭇 경」이라는 넓은 말 속에 가장 근본이 되는 한 부처와 한 경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 법연의 「사 · 폐 · 각 · 포」는 입정안국론 제4편 「정법 비방의 원흉 — 법연의 『선택집』」에서 『선택집』의 글을 직접 인용하여 낱낱이 밝혀진다.

다음 물음으로

네 경의 글은 밝았다. 그러나 객은 아직 다 수긍하지 않는다. 후한의 명제가 금인의 꿈을 깨달아 불법을 받아들이고 쇼토쿠 태자가 모리야의 반역을 쳐서 절과 탑을 세운 이래, 위로는 임금 한 사람부터 아래로는 만민에 이르기까지 불상을 숭상하고 경권을 받들어 왔다. 히에이잔 · 남도 · 온조사 · 도지를 비롯해 온 나라에 불경은 별처럼 늘어서고 당우는 구름처럼 퍼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부처와 뭇 경을 버렸다」고 할 수 있는가. 불법이 이토록 흥성한데 어떻게 「불법이 은몰했다」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입정안국론 제3편 첫머리의 객의 반문이다.

이 반문은 이 편이 남긴 물음이기도 하다. 경문이 말하는 「정법을 버린다」 「불법이 은몰한다」는 겉으로 드러난 불교의 번성과 어떻게 양립하는가. 대집경이 「악한 비구」를 말하고 인왕경이 「성인이 떠난다」고 말한 그 뜻은 무엇인가. 주인은 다음 편에서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을 들어, 겉으로 번성하는 불교 안에 정법을 무너뜨리는 「악한 승려」가 있음을 밝혀 간다. 입정안국론 제3편 「정법 비방의 유래와 망국의 증거」가 그 대답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네 경의 경문은 한결같이 「정법을 버리는 것 → 선신과 성인이 떠나는 것 → 재난」의 인과를 말한다. 본문의 「모든 부처와 뭇 경을 버린다」는 겉으로는 법연의 사 · 폐 · 각 · 포를 가리키고, 그 원의는 석존과 법화경, 나아가 말법의 하종의 법을 버리는 데에 있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그것은 어느 경에 나오는가.」 객의 이 한마디 물음에 주인은 네 경을 펼쳐 답했다. 금광명경은 국왕이 정법을 유포하지 않고 버리면 사천왕과 한량없는 선신이 법미에 굶주려 나라를 떠나고, 그 뒤에 역병과 혜성과 두 해와 박식과 지진과 기근과 외적이 잇따른다고 했다. 대집경은 불법이 참으로 은몰하면 사람의 모습과 마음, 땅과 물과 산, 하늘의 해와 달, 중생의 수명이 모두 무너지고, 마침내 선신이 이 탁한 나라를 버린다고 했다. 인왕경은 국토가 어지러울 때 먼저 귀신이 어지럽고, 왕의 복이 다하면 성인이 떠나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다. 약사경은 국주에게 닥치는 일곱 난을 들었다. 주인은 다시 인왕경의 칠난을 하나하나 펼치고, 대집경의 삼재와 정법을 지키지 않은 왕의 과보를 들었다. 그리고 「네 경의 글이 밝으니 누가 의심하겠는가」라고 맺었다.

이 경문들은 이전경이다. 그러나 대성인은 이 경들을 법화경의 망목으로서, 이전경의 글을 빌려 법화경의 뜻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인용하셨다. 니치칸 상인의 풀이를 따라 문저에서 읽으면, 금광명경의 「이 경」은 말법의 삼대비법이며, 제천이 굶주리는 「감로의 맛」 또한 그 법의 법미다. 그리고 그 경문들은 대성인 당시의 일본에 글자 그대로 나타났다. 정가 대지진, 문영의 대혜성, 사도에서 본 두 해, 잦은 일식과 역병, 니가쓰 소동과 두 번의 몽골 내습. 경문이 맞았기에 그 경문을 몸으로 읽고 국가에 간한 대성인의 예언도 맞았다. 약사경의 「남은 두 난」, 인왕경의 「남은 한 난」, 대집경의 「남은 한 재앙」이 모두 자계반역과 타국침핍을 가리켰고, 대성인은 그것을 세 번의 고명으로 증명하셨다.

이 모든 경문의 밑바닥에는 의정불이의 원리가 흐른다. 사람의 생명이 그릇된 법에 물들어 삼독이 강성해지면 그 탁함이 국토의 정기와 하늘의 운행에까지 미치고, 바른 법에 서면 국토가 그대로 불국이 된다. 「모든 부처와 뭇 경을 버렸기 때문에 선신과 성인이 떠나고 악귀와 외도가 재난을 일으킨다」는 제8장의 맺음은, 제1편의 명제를 네 경으로 증명한 결론이다.

그러나 객은 아직 의문을 품고 있다.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로는 만민까지 불상을 숭상하고 경권을 받들며, 온 나라에 불경이 별처럼 늘어서고 당우가 구름처럼 퍼져 있는데, 어떻게 「불법을 버렸다」고 할 수 있는가. 다음 입정안국론 제3편 「정법 비방의 유래와 망국의 증거」에서 주인은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을 들어, 겉으로 번성하는 불교 안에 정법을 무너뜨리는 악한 승려가 있음을 밝힌다. 재난의 원인을 찾는 여정은 이제 「누가, 어떤 법이 정법을 무너뜨리는가」라는 물음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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