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단에서 주인은 중국과 일본의 망국의 예를 들어 염불이 나라를 망친다는 것을 현증으로 보였다. 객은 그 말에 조금 누그러지지만, 아직 법연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한다. 「교토에서 가마쿠라까지 불교계에는 기둥 같은 고승이 많은데, 아무도 법연을 문제 삼아 상주한 일이 없다. 그런데 그대는 천한 몸으로 함부로 나쁜 말을 하는가.」 사람의 신분과 세상의 권위로 법의 옳고 그름을 재려는 이 물음에, 주인은 세 겹으로 답한다. 사람의 귀함은 그가 지닌 법에서 오며, 불법의 쇠미를 보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방법을 보고도 꾸짖지 않으면 「불법 중의 원수」가 된다는 열반경의 경문. 그리고 엔랴쿠사 · 고후쿠사의 거듭된 상주로 법연 일문이 이미 유죄에 처해졌다는 역사의 사실이다. 아홉 편 가운데 이 편은 「방법 대치의 방법」을 다루는 세 편(제6~8편)의 첫머리로, 방법을 꾸짖는 정신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묻는다.
입정안국론 아홉 편은 네 갈래로 이어진다. 재난의 원인과 그 경증을 밝히는 제1 · 2편, 방법의 정체를 악한 승려와 법연의 『선택집(選択集)』에서 찾아내는 제3~5편, 그 방법을 어떻게 대치할 것인가를 다루는 제6~8편, 그리고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는 결론과 객의 맹세를 담은 제9편이다. 이 편은 셋째 갈래의 문을 연다. 앞의 다섯 단에서 주인은 재난의 원인이 정법을 등진 데 있고, 그 원흉이 법연의 『선택집』이라는 데까지 논증했다. 이제 객이 묻는 것은 법의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자격이다. 「그대가 무엇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가.」 그리고 주인의 대답은, 말하는 사람의 자격이 바로 법을 지키려는 마음과 방법을 꾸짖는 실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 편의 네 장은 짧다. 어서 26쪽 한 쪽 안에 객의 물음 한 단락과 주인의 대답 세 단락이 들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입정안국론 전체를 꿰는 두 개의 축이 겹쳐 있다. 하나는 「방법을 보고도 내버려 두는 것이 곧 불법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그 원리가 대성인 이전의 일본에서도 이미 엔랴쿠사 · 고후쿠사의 상주와 조정 · 막부의 명령이라는 형태로 드러나 있었다는 역사다. 원리와 역사가 함께 놓임으로써, 주인의 말은 「한 사람의 치우친 주장」이 아니라 경문과 나라의 선례가 함께 증명하는 것이 된다.
객의 태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제3단에서 「얼굴빛을 바꾸며(色を作して)」 따지고, 제4단에서 「여전히 성내며(猶憤りて)」 묻고, 제5단에서 「더욱 얼굴빛을 바꾸며(殊に色を作して)」 법연을 감쌌던 객이, 이 단에서 처음으로 「조금 누그러져(聊か和いで)」 말한다. 다음 제7단에서는 「곧 누그러져(則ち和ぎて)」 재난을 다스릴 방책을 묻게 된다. 열 번의 문답이 객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여 가는 과정에서, 이 단은 반발이 처음으로 누그러지는 고비다.
- 제1단「탄식하며 말하기를」嘆いて曰く
- 제2단「객이 말하기를」客の曰く
- 제3단「얼굴빛을 바꾸며」色を作して
- 제4단「여전히 성내며」猶憤りて
- 제5단「더욱 얼굴빛을 바꾸며」殊に色を作して
- 제6단「조금 누그러져」聊か和いで
- 제7단「곧 누그러져」則ち和ぎて
- 제8단「객이 말하기를」客の曰く
- 제9단「자리를 물러나 옷깃을 여미며」席を避け襟を刷いて
- 제10단「객이 말하기를」客の曰く
이 편의 장
본문
客聊か和いで曰く、未だ淵底を究めざれども、数其の趣を知る。 但し華洛より柳営に至るまで、釈門に枢楗在り、仏家に棟梁在り。 然るに未だ勘状を進らせず、上奏に及ばず。 汝賎しき身を以て輙く莠言を吐く。其の義余有り、其の理謂無し。
객이 조금 누그러져 말하기를, 아직 그 깊은 밑바닥까지 다 헤아리지는 못하였으나 자못 그 뜻은 알았느니라. 다만 꽃의 도읍 교토(華洛)에서 장군의 진영 가마쿠라(柳営)에 이르기까지, 불문(釈門)에는 문의 지도리와 빗장 같은 중추(枢楗)가 있고 불가(仏家)에는 기둥과 대들보 같은 동량(棟梁)이 있느니라. 그런데도 아직 누구 하나 감장(勘状)을 올리지 아니하였고 상주(上奏)에 이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그대는 천한 몸으로 함부로 나쁜 말(莠言)을 토하는구나. 그 뜻에는 아직 따질 것이 남아 있고, 그 이치에는 까닭이 없느니라.
어구 풀이
- 聊か和いで조금 누그러져
- 제5단에서 「더욱 얼굴빛을 바꾸며(殊に色を作して)」 법연을 감쌌던 객이, 주인이 중국과 일본의 망국의 현증을 들어 보이자 조금 마음이 풀렸음을 나타낸다. 다만 「조금」이다. 이치에는 밀렸으나 법연에 대한 집착은 아직 끊지 못한 상태다.
- 未だ淵底を究めざれども아직 깊은 밑바닥까지 헤아리지 못하였으나
- 「연저(淵底)」는 깊은 못의 바닥, 곧 사물의 가장 깊은 곳이다. 주인의 논증을 다 받아들인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먼저 달아 두는 말이다.
- 数其の趣を知る자못 그 뜻은 알았다
- 주인이 말한 뜻의 대략은 이해했다는 것이다. 객이 처음으로 주인의 말에 일부나마 수긍하는 대목이다.
- 華洛화락
- 중국 주(周)나라의 도읍을 낙읍(洛邑), 후한의 도읍을 낙양(洛陽)이라 한 데서 「낙(洛)」이 도읍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화락은 「꽃의 도읍」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조정이 있는 교토를 가리킨다.
- 柳営유영
- 장군의 진영, 여기서는 막부가 있는 가마쿠라를 가리킨다. 『한서(漢書)』 주발전(周勃傳)에 따르면, 전한의 장군 주아부(周亞夫)가 흉노를 치기 위해 세류(細柳)라는 곳에 진을 쳤는데 군율이 너무도 엄정하여 문제(文帝)가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장군의 진영을 「유영」이라 부르게 되었다.
- 釈門・仏家석문 · 불가
- 모두 불교계, 불문을 가리킨다. 같은 뜻을 두 말로 겹쳐 쓴 대구(對句)다.
- 枢楗추건
- 「추(枢)」는 여닫이문을 돌리는 축이 되는 지도리, 「건(楗)」은 문의 빗장이다. 모두 사물을 움직이는 요긴한 장치로, 여기서는 불교계의 중심인물을 뜻한다.
- 棟梁동량
- 집의 마룻대와 들보. 한 집단을 떠받치는 중심인물을 말한다. 「추건」과 짝을 이루어 교토 · 가마쿠라 불교계의 이름난 고승들을 가리킨다.
- 勘状감장
- 사물의 옳고 그름을 헤아려(勘) 적은 글. 여기서는 법연의 방법을 조사해 그 처벌을 청하는 문서를 말한다.
- 上奏상주
- 천황이나 조정에 글을 올려 아뢰는 것. 「감장을 올린다」가 막부를 향한 것이라면 「상주」는 조정을 향한 것이다.
- 賎しき身천한 몸
- 대성인은 아와 지방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객은 주인의 신분을 들어 그 말의 무게를 깎아내리려 한다.
- 莠言유언
- 「유(莠)」는 강아지풀(はぐさ)로, 벼와 비슷하나 잎만 자라고 열매를 맺지 않는 잡초다. 선과 비슷하나 속은 악한 것, 겉만 그럴듯한 것의 비유이며, 유언은 추악한 말을 뜻한다.
- 其の義余有り、其の理謂無し그 뜻에는 남는 것이 있고, 그 이치에는 까닭이 없다
- 주인의 주장에는 아직 논의할 여지가 많고, 그 이치에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앞의 「자못 그 뜻은 알았다」와 맞서는 말로, 객의 마음이 아직 둘로 갈라져 있음을 보인다.
이 장의 자리 — 누그러졌으나 버리지 못한 집착
제6단은 십문구답 가운데 여섯째 문답이다. 앞의 제5단에서 주인은 객의 격한 반론, 곧 「담란 · 도작 · 선도 이래 법연에 이르기까지 정토의 가르침은 고승들이 이어 온 것인데 어찌 그것을 재난의 근원이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쇠망, 일본에서는 법연이 활동한 고토바 상황의 시대와 승구의 난이라는 현증을 들어 염불이 나라를 망친다는 것을 보였다. 제5단의 끝에서 주인은 「법연은 고토바 상황의 치세, 건인(建仁) 연간의 사람이다」라고 하시고 이렇게 맺으셨다.
唯須く凶を捨てて善に帰し、源を塞ぎ根を截つべし。
오직 모름지기 흉(凶)을 버리고 선(善)에 돌아가, 근원을 막고 뿌리를 끊어야 하느니라.
이 단호한 결론 앞에서, 그토록 성을 내던 객도 마음이 조금 풀렸다. 이치 정연한 파절을 듣고 보니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객이 조금 누그러져 말하기를」로 시작한다. 그러나 객은 「아직 깊은 밑바닥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다」는 단서를 먼저 달고, 이어서 화제를 바꾼다. 이번에 객이 문제 삼는 것은 법연의 가르침 그 자체가 아니다. 그 가르침을 비판하는 「사람」이다.
객의 말은 세 겹으로 되어 있다. 첫째, 교토에서 가마쿠라까지 불교계에는 이름난 고승들이 즐비한데, 그들 가운데 누구도 법연을 문제 삼아 막부에 감장을 올리거나 조정에 상주한 일이 없다. 둘째, 그런데 그대는 천한 몸으로 함부로 염불을 헐뜯는다. 셋째, 그러므로 그대의 주장에는 아직 따질 것이 많고 그 이치에는 근거가 없다. 첫째는 권위에 기대는 논법이고, 둘째는 신분에 기대는 논법이며, 셋째는 이 둘에서 끌어낸 결론이다. 어디에도 법의 내용을 두고 다투는 말은 없다.
- 객①「교토에서 가마쿠라까지 고승이 많은데 아무도 감장을 올리지 않고 상주하지 않았다」然るに未だ勘状を進らせず、上奏に及ばず주인제4장「엔랴쿠사 · 고후쿠사가 거듭 상주하여 칙선과 미교서가 내려졌다」延暦・興福の両寺より度度奏聞を経て
- 객②「그대는 천한 몸으로 함부로 나쁜 말을 한다」汝賎しき身を以て輙く莠言を吐く주인제2장「작은 그릇이지만 황송하게도 대승을 배웠다」予少量為りと雖も、忝くも大乗を学す
- 객③「그 뜻에는 남는 것이 있고 그 이치에는 까닭이 없다」其の義余有り、其の理謂無し주인제3장「불법 중의 원수라는 책망을 면하기 위해 대강을 보였다」「仏法中怨」の責を遁れんが為に
권위와 신분으로 법을 재는 물음
객의 첫째 논거는 권위다. 「석문의 추건, 불가의 동량」이라는 말은 대구를 이루며 당시 불교계의 이름난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교토의 조정에도, 가마쿠라의 막부에도 귀의를 받는 고승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이름도 없는 한 승려가 법연을 나라의 재난의 근원이라 하니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논법은 언뜻 그럴듯하지만, 판단의 근거를 자기 안에 두지 않고 남에게 맡겨 버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법의 옳고 그름은 경문과 도리와 현증으로 가려야 하는데, 객은 「누가 무엇을 말했는가」, 아니 「누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가」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이것은 스스로의 이성과 관찰과 판단력을 내려놓고, 남의 눈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며 남이 붙여 준 꼬리표에 따라서만 판단하려는 모습이다. 제3단에서 객이 후한 명제 이래 불법이 흥륭해 온 역사와 당시의 성대한 불사를 들어 주인의 말을 반박했던 것과 같은 뿌리를 가진 물음이다. 그때 주인은 「절이 용마루를 잇고 승려가 대숲처럼 많은」 겉모습 아래에서 세상 사람들이 법의 바르고 그름을 알지 못한다고 깨우쳤다.
객의 둘째 논거는 신분이다. 「그대는 천한 몸으로」라는 말은, 말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그 말도 들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가난하다고 업신여기고, 지위가 낮다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의 전형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재가 헛되이 묻히고, 얼마나 많은 민중의 귀한 목소리가 부당하게 막혀 왔는지 헤아릴 수 없다. 참으로 뛰어난 지도자는 신분의 귀천 · 상하와 관계없이 유능한 사람을 찾아내어 그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둔다. 객의 말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대성인 스스로도 자신의 출신을 감추지 않으셨다. 아와 지방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신 대성인은 오히려 그 출신을 분명히 밝히시고, 그렇기에 이 몸을 법화경을 위해 버리는 것은 돌을 금과 바꾸는 일이라고 하셨다.
日蓮は日本国・東夷・東条・安房の国・海辺の旃陀羅が子なり
니치렌은 일본국 동쪽 변방, 도조 · 아와 지방 바닷가의 전다라(旃陀羅)의 아들이니라.
객이 「천한 몸」이라 깎아내린 바로 그 자리에서, 주인은 다음 장에서 사람의 귀함이 무엇으로 정해지는가를 정면으로 밝히신다.
「유언」 — 벼를 닮았으나 열매 맺지 않는 풀
객은 주인의 말을 「유언(莠言)」이라 불렀다. 「유(莠)」는 벼와 아주 닮았지만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 잡초다. 선을 닮았으나 속은 악한 것, 겉은 그럴듯하나 알맹이가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객은 주인의 파절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근거 없는 악담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는 거꾸로 돌려 볼 수 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겉으로는 경문을 인용하고 부처의 이름을 부르며 가장 쉬운 왕생의 길을 말하지만, 실은 법화경을 비롯한 일체의 경과 부처와 보살을 「버리고 · 닫고 · 제쳐 두고 · 내던지라(捨 · 閉 · 閣 · 抛)」고 가르친 『선택집』이야말로 벼를 닮은 잡초에 가깝다. 제4단에서 주인이 밝힌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객이 주인에게 던진 「유언」이라는 말은, 그 말이 겨누어야 할 과녁을 잘못 찾은 셈이다.
「그 뜻에는 남는 것이 있고, 그 이치에는 까닭이 없다」는 맺음말도 앞의 말과 서로 어긋난다. 객은 한 문장 앞에서 「자못 그 뜻은 알았다」고 했다. 뜻을 알았다면서 그 뜻에는 따질 것이 남았다 하고, 이치에는 까닭이 없다고 한다. 이치로는 이미 밀렸으나 감정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곧 누그러짐과 집착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는 모습이다. 이 흔들림이 다음 제7단에서 「곧 누그러져」 재난을 다스릴 방책을 묻는 데로 이어진다.
객이 몰랐던 사실 — 상주는 이미 있었다
객은 「아직 감장을 올리지 않았고 상주에 이르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객이 그렇게 말한 것은 오직 몰랐기 때문이다. 이 단의 제4장에서 주인이 밝히듯이, 엔랴쿠사(延暦寺)와 고후쿠사(興福寺)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법연의 염불을 금지해 달라는 상주가 있었고, 그 결과 조정의 칙선과 막부의 미교서가 내려져 법연 일문이 처벌되었다.
상주만이 아니다. 법연의 『선택집』에 대해서는 교리의 면에서 그것을 파한 저술도 잇따라 나왔다. 도가노오(栂尾)의 화엄종 승려 묘에(明慧)는 『최사륜(摧邪輪)』을, 미이데라(三井寺)의 짓인(実胤) 대승정은 『정토결의집(浄土決疑集)』을, 천태종의 류신(隆真) 법교는 『탄선택(弾選択)』을 지어 각자의 입장에서 이론적으로 『선택집』을 파절했다. 대성인은 「염불무간지옥초」에서 이 세 사람을 「천하에 둘도 없는 지자」 「희대의 학자」 「천하에 둘도 없는 학장」이라 부르시며 그 저술들을 차례로 드셨다.
그런데도 객이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은, 정토종의 승려들이 이를 굳이 감추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종에 불리한 상주와 처벌과 파절서를 신자들에게 알릴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객의 첫째 논거는 이렇게 사실의 차원에서 무너진다. 그리고 주인은 그 사실을 들기에 앞서, 먼저 사람의 귀함과 법을 지키는 마음을 말씀하신다. 사실의 반박은 제4장으로 미루고, 제2 · 3장에서는 「왜 말하지 않을 수 없는가」를 먼저 밝히시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은 역사학 · 사상사의 연구만으로는 다 알 수 없고, 그 가르침의 정신을 실천해 보아야 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객이 고승들의 침묵을 근거로 삼은 것은, 법을 실천하는 자리에서가 아니라 바깥의 평판에서 법을 재려 한 것이다.
「감장」이라는 말의 무게 — 입정안국론 자체가 감장이다
객이 「아직 아무도 감장을 올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장면에는 깊은 아이러니가 있다. 입정안국론이라는 글 자체가 바로 대성인이 올리신 감장이기 때문이다. 대성인은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야도야 입도를 통해 전 집권 호조 도키요리에게 이 글을 올리셨다. 정가 · 정원 연간에 잇따른 대지진 · 대풍 · 기근 · 역병의 원인을 경문에 비추어 헤아리고(勘), 그 원인이 정법을 등지고 법연의 『선택집』에 귀의한 데 있음을 밝혀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게 아뢴 것이다. 뒤에 대성인이 이 글을 올리신 경위를 적으신 어서의 이름이 「안국론어감유래(安国論御勘由来)」, 곧 「안국론을 헤아려 올린 유래」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단의 문답은 이중의 구조를 지닌다. 글 안에서 객은 「이름난 고승들도 감장을 올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주인은 「아니다, 엔랴쿠사 · 고후쿠사가 거듭 상주했다」고 답한다. 그리고 글 바깥에서는, 그 대화를 담은 글 전체가 한 승려의 감장으로서 막부에 올려지고 있다. 객이 「천한 몸으로 함부로」라고 비난한 그 일을, 대성인은 실제로 하고 계셨던 것이다. 이 감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리어 마쓰바가야쓰의 초암 습격과 이즈 유배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제3장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객은 권위와 신분으로 법의 옳고 그름을 재려 했다. 주인은 그 물음을 피하지 않고, 사람의 귀함은 지닌 법에서 오며(제2장), 방법을 꾸짖지 않는 것이 도리어 불법의 원수가 되고(제3장), 상주와 처벌은 이미 역사 속에 있었다(제4장)는 세 겹의 답으로 물리친다.
본문
主人の曰く、予少量為りと雖も、忝くも大乗を学す。 蒼蝿驥尾に附して万里を渡り、碧蘿松頭に懸って千尋を延ぶ。 弟子、一仏の子と生れて、諸経の王に事う。 何ぞ仏法の衰微を見て、心情の哀惜を起さざらんや。
주인이 말하기를, 나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나 황송하게도 대승을 배웠느니라. 쉬파리(蒼蝿)는 천리마(驥)의 꼬리에 붙어 만 리를 건너고, 푸른 덩굴(碧蘿)은 소나무 끝에 걸려 천 길을 뻗어 오르느니라. 제자(弟子)는 한 부처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경의 왕을 섬기고 있느니라. 어찌 불법이 쇠미해 가는 것을 보고 마음속에 슬퍼하고 아까워하는 정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구 풀이
- 予少量為りと雖も나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나
- 「소량(少量)」은 도량 · 기량이 작다는 뜻이다. 객이 「천한 몸」이라 깎아내린 데 대해 먼저 스스로를 낮추어 받는 말이다.
- 忝くも大乗を学す황송하게도 대승을 배웠다
- 몸은 작아도 배운 법은 크다는 확신이 이 한 구절에 담겨 있다. 겸손과 확신이 한 문장 안에 함께 있다.
- 蒼蝿驥尾に附して万里を渡り쉬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만 리를 건넌다
- 「기(驥)」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준마다. 『사기』 백이전(伯夷傳)의 색은(索隱)에 「안연은 학문에 독실하였으나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그 행실이 더욱 드러났다」고 한다. 공자가 가장 믿은 제자 안연(顔淵)이 스승의 명성을 따라 그 훌륭한 행실이 세상에 알려졌다는 뜻이다. 흔히 「쉬파리가 천리마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간다」고 하며, 뛰어난 사람을 따르면 제 능력 이상의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비유로, 남과 함께할 때 겸손하게 쓰는 말이다.
- 万里만 리
- 니치칸 상인은 「입정안국론 문단」에서 「마땅히 천 리라 해야 할 것이나 글을 꾸며 만 리라 한 것이다」라고 풀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대구의 「천 길(千尋)」과 짝을 맞춘 수사다.
- 碧蘿松頭に懸って千尋を延ぶ푸른 덩굴이 소나무 끝에 걸려 천 길을 뻗는다
- 「벽라(碧蘿)」는 푸른 덩굴풀이다. 혼자서는 땅을 기는 덩굴도 큰 소나무에 기대면 높이 뻗어 오른다. 앞 구절과 함께, 작은 몸이라도 위대한 법에 의지하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나타낸다.
- 千尋천 길
- 「심(尋)」은 두 팔을 벌린 길이를 단위로 하는 옛 길이의 이름이다. 천 길은 아주 높음을 말한다.
- 弟子제자
- 여기서는 대성인이 스스로를 낮추어 부르신 말로, 부처의 제자라는 뜻이다.
- 一仏の子と生れて한 부처의 아들로 태어나
- 석존의 제자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법화경 비유품의 「지금 이 삼계는 모두 나의 것이요, 그 가운데 중생은 모두 나의 아들이다」라는 뜻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 諸経の王に事う모든 경의 왕을 섬긴다
- 「제경의 왕」은 법화경이다. 법화경 스스로 모든 경 가운데 왕이라고 밝힌다. 법화경을 믿고 받들어 행한다는 뜻이다.
- 仏法の衰微불법의 쇠미
- 정법이 가려지고 사법이 성하여 불법이 쇠해 가는 모습. 제3단에서 객이 내세운 불법 흥륭의 주장과 맞서는 말이다. 주인은 그때 이미 절과 승려가 많은 겉모습 아래에서 정법이 가려지고 있음을 깨우쳤다.
- 心情の哀惜마음속의 슬퍼하고 아까워하는 정
- 불법이 무너져 가는 것을 슬퍼하고, 그것을 아까워하여 지키려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다음 장의 방법 가책으로 이어진다.
이 장의 자리 — 겸손과 확신
객의 「그대는 천한 몸으로 함부로 나쁜 말을 한다」는 말은, 자기도 모르게 드러난 증상만의 말이다. 이에 대해 주인은 자신은 그릇이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어디까지나 겸손하게 받으면서도, 그러나 황송하게도 대승의 불법을 배웠고 부처의 제자로서 모든 경의 왕인 법화경을 믿게 되었다고 답한다. 그리고 그 눈으로 불교계를 찬찬히 보니 그릇된 가르침만 번성하고 정법은 쇠미해 가고 있다. 이것을 보고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주인은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이 장의 대답은 객의 신분론을 정면에서 뒤집는다. 객은 「누가 말하는가」를 물었다. 주인은 그 물음을 피하지 않고, 사람의 가치가 무엇으로 정해지는가를 밝힘으로써 답한다. 몸이 천하든 귀하든, 그 사람이 지닌 법이 크면 그 사람은 귀하다. 쉬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만 리를 가고, 덩굴이 소나무에 기대어 천 길을 오르듯이, 작은 몸도 위대한 법에 의지하면 큰일을 이룬다. 이 두 비유는 겸손의 말인 동시에, 의지하는 법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람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확신의 말이다.

사람의 가치는 무엇으로 정해지는가
사람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빈부 · 학력 · 혈통 · 신분 · 지위 같은 것으로 사람의 값을 매기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어느 것도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근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 「돈이 많으니 훌륭하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반발할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돈만 아는 아주 이상한 부류로 여겨질 뿐이다. 학력도 그렇고 혈통 · 신분 · 지위도 그렇다.
그러나 이치로는 이것들을 부정하면서도, 막상 그런 장면에 부딪히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를, 배움이 짧은 사람보다 많이 배운 사람을, 평범한 집안보다 이름난 집안의 자식을, 아래 직분의 사람보다 윗자리의 사람을, 오직 그 이유만으로 높인다. 여기에는 분명한 모순이 있다. 이 모순은 어디에서 오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람의 가치를 정하는 분명한 판단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한 가지가 어리석고 성품이 나쁜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혀 그 조직을 멈추게 하고, 그 안의 사람들을 괴롭히며, 나아가 사람 사는 사회 전체의 발전과 행복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어떤 법을 지니고 있느냐로 정해진다. 그러므로 대승을 배우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높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저마다 알맞은 자리에 두느냐 하는 지도자의 학문도, 이 판단 기준을 몸에 익힌 사람에게서 비로소 나타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생각 · 말 · 행동 · 태도의 기준이 있다. 아무 기준도 규칙도 없이 제멋대로라는 것은 극도로 정신이 어지러운 경우가 아니면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본능적인 충동을 따르고,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의 가르침을 따르며, 어떤 사람은 스스로 쌓아 온 인생관 · 사회관에 따라 행동한다. 그 행동이 의식의 어느 깊이에서 나오든, 거기에는 그것들을 꿰뚫는 하나의 공통된 양식과 경향이 있다. 그것은 의식의 가장 깊은 층으로 이어지며, 불법에서는 이것을 「법」이라 한다.
갖가지 의견과 행동을 일으키면서도 그 안에 그 사람다움이 배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기적인 생각이 생명 깊숙이 물든 사람은, 그 말과 행동과 모습 속에 그 본질적인 경향이 저절로 배어 나온다.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얼마만한 힘이 있는가는 이 법의 승렬과 천심에 따라 정해진다. 본문에서 「대승을 배웠다」고 하신 것도, 대승이라는 가장 높은 법을 지니고 있기에 가장 귀하다는 확신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여기서 말하는 대승은 오중상대(五重相對)의 원리에 비추어 법화경 문저 독일본문의 대법, 곧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다.
- 법이 묘하다法妙なるが故に
- 사람이 귀하다人貴し
- 사람이 귀하기에 머무는 곳이 존귀하다人貴きが故に所尊し
「법이 묘하기에 사람이 귀하다」 — 보경법중의 원리
이 도리를 보이신 어문은 어서 곳곳에 있어 일일이 헤아릴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다음 구절이다.
法妙なるが故に人貴し・人貴きが故に所尊し
법이 묘하기 때문에 사람이 귀하고,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그곳이 존귀하니라.
또 「보경법중사(宝軽法重事)」에서 대성인은 석존 · 천태 · 묘락의 말씀을 차례로 인용하신다. 먼저 법화경의 경문이다.
若し復人有つて七宝を以て三千大千世界に満てて仏及び大菩薩・辟支仏・阿羅漢に供養せん、是の人の所得の功徳も此の法華経の乃至一四句偈を受持する其の福の最も多きには如かじ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칠보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채워 부처와 대보살 · 벽지불 · 아라한에게 공양한다 할지라도, 이 사람이 얻는 공덕은 이 법화경의 사구게 하나를 수지하는 그 복이 가장 많은 것에 미치지 못하느니라.
금 · 은 · 유리 같은 칠보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채워 부처 · 보살 · 벽지불 · 아라한에게 공양하는 공덕보다, 법화경을 수지하는 공덕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부자라 일컬어지는 사람도 묘법을 수지하는 사람에 견주면 비할 바가 못 된다.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10에서 이 경문을 이렇게 풀었다.
七宝を四聖に奉るは一偈を持つに如かずと云うは法は是れ聖の師なり能生能養能成能栄法に過ぎたるは莫し故に人は軽く法は重きなり
칠보를 네 성인에게 바치는 것이 게송 하나를 지니는 것만 못하다고 한 것은, 법이 성인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능히 낳고 · 능히 기르고 · 능히 이루고 · 능히 영화롭게 하는 데 법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가볍고 법은 무거우니라.
묘법을 지니는 공덕이 왜 이토록 큰가. 그 법이 삼세시방의 부처 · 보살 · 벽지불 · 아라한, 곧 네 성인의 스승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묘락대사는 『법화문구기』 권10에서 천태의 글을 다시 풀었다.
父母必ず四の護を以て子を護るが如し、今発心は法に由るを生と為し始終随逐するを養と為し極果を満ぜしむるを成と為し能く法界に応ずるを栄と為す、四つ同じからずと雖も法を以て本と為す
부모가 반드시 네 가지 보호로 자식을 지키는 것과 같다. 이제 발심이 법에 말미암는 것을 「낳음」이라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다니는 것을 「기름」이라 하며, 궁극의 과를 채우게 하는 것을 「이룸」이라 하고, 능히 법계에 응하는 것을 「영화」라 한다. 넷이 같지 않으나 법을 근본으로 삼느니라.
- 능생能生낳음처음 발심이 법에 말미암는다
- 능양能養기름처음부터 끝까지 법이 따라다닌다
- 능성能成이룸법이 궁극의 과를 채우게 한다
- 능영能栄영화법이 법계에 응하게 한다
부처 · 보살 등 네 성인이 처음 발심한 것도 법을 근본으로 해서이고, 도중에 수행한 것도 법에 의해서이며, 깨달음을 얻은 것도 법의 힘에 의해서이고, 깨달은 뒤에 그 경지를 누리며 중생을 교화하는 것도 같은 법을 근본으로 해서다. 그러므로 이 법을 지닌 사람이 가장 귀하다. 대성인은 같은 「보경법중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法華経の最下の行者と華厳・真言の最上の僧とくらぶれば帝釈と援猴と師子と兎との勝劣なり、而るをたみが王とののしればかならず命となる、諸経の行者が法華経の行者に勝れたりと申せば必ず国もほろび地獄へ入り候なり
법화경의 가장 낮은 행자와 화엄 · 진언의 가장 높은 승려를 견주면, 제석과 원숭이, 사자와 토끼만큼의 승렬이 있느니라. 그런데 백성이 왕을 욕하면 반드시 목숨을 잃게 되듯이, 제경의 행자가 법화경의 행자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면 반드시 나라도 망하고 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사신오품초(四信五品抄)」는 같은 도리를 말법의 제자에게까지 넓혀 밝히신다.
問う汝が弟子一分の解無くして但一口に南無妙法蓮華経と称する其の位如何、答う此の人は但四味三教の極位並びに爾前の円人に超過するのみに非ず将た又真言等の諸宗の元祖・畏・厳・恩・蔵・宣・摩・導等に勝出すること百千万億倍なり、請う国中の諸人我が末弟等を軽ずる事勿れ
묻는다. 그대의 제자가 한 푼의 이해도 없이 다만 한 입으로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른다면 그 지위는 어떠한가. 답한다. 이 사람은 다만 사미삼교의 극위와 이전 경의 원교의 사람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또한 진언 등 여러 종의 원조인 선무외 · 화엄의 조사 · 자은 · 가상 · 도선 · 달마 · 선도 등보다 백천만억 배나 뛰어나니라. 청하노니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은 나의 말제자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거슬러 과거를 찾으면 그들은 팔십만억 겁 동안 부처를 공양한 대보살이며, 물러나 미래를 논하면 팔십 년 동안 베푼 보시를 넘어 오십 번째 사람의 공덕을 갖출 것이니, 천자가 강보에 싸여 있는 것과 같고 큰 용이 처음 태어난 것과 같다. 업신여기지 말라, 업신여기지 말라. 객이 「천한 몸」이라 한 말은, 바로 이 어문이 경계한 「가볍게 여김」이다.
그러므로 이 묘법을 수지하는 사람은 삼세시방의 부처 · 보살의 가호를 받는다. 거꾸로 이 사람을 박해하고 괴롭히거나 헐뜯는 사람은 큰 벌을 받는다. 법화경은 「만약 또 이 경전을 수지하는 사람을 보고 그 허물을 드러내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이 사람은 현세에 무거운 병을 얻으리라」고 하여, 법을 지닌 사람을 헐뜯는 죄가 무거움을 설한다. 묘법을 지닌 사람은 이 위대한 법의 은혜를 느끼고 그 은혜를 갚는 정성을 다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한 부처의 아들」 — 외용의 겸양과 내증의 깊이
「제자는 한 부처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경의 왕을 섬긴다. 어찌 불법의 쇠미를 보고 마음속에 슬퍼하고 아까워하는 정을 일으키지 않겠느냐.」 이 말씀에 나타난 대성인의 심정이야말로, 참으로 불법을 배우고 불도 수행에 뜻을 둔 사람의 본보기이자 거울이다.
여기서 대성인이 「한 부처의 아들로 태어나」라고 하신 것은 외용(外用)의 입장, 곧 겉으로 드러난 행자의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며, 불도를 닦는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나 대성인의 내증(內證)을 우러러보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대성인은 인법일개(人法一箇)의 어본불이시다. 『어의구전』은 이렇게 설한다.
如来とは釈尊・惣じては十方三世の諸仏なり別しては本地無作の三身なり、今日蓮等の類いの意は惣じては如来とは一切衆生なり別しては日蓮の弟子檀那なり、されば無作の三身とは末法の法華経の行者なり無作の三身の宝号を南無妙法蓮華経と云うなり
여래란 석존이요, 총괄하여 말하면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이며, 따로 말하면 본지무작(本地無作)의 삼신이니라. 지금 니치렌 등의 부류의 뜻으로는, 총괄하여 말하면 여래란 일체중생이요, 따로 말하면 니치렌의 제자 · 단나이니라. 그러므로 무작의 삼신이란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며, 무작의 삼신의 보배로운 이름을 남묘호렌게쿄라 하느니라.
남묘호렌게쿄는 일체의 「능생 · 능양 · 능성 · 능영」의 스승이며, 그것은 또한 말법의 법화경 행자인 대성인의 보배로운 이름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제법실상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されば釈迦・多宝の二仏と云うも用の仏なり、妙法蓮華経こそ本仏にては御座候へ
그러므로 석가 · 다보의 두 부처라 하는 것도 작용의 부처이니라. 묘법연화경이야말로 본불이시니라.
그리고 『어의구전』은 「자수용신(自受用身)이란 일념삼천이다」(自受用身とは一念三千なり, 759쪽)라고 설한다. 불법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부처라 하면 32상 80종호의 장엄한 모습을 갖춘 존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색상의 장엄은 부처 생명의 훌륭함을 중생에게 알리고 우러러 구하게 하려고 보인 도식일 뿐이다. 참된 부처는 십계호구 · 일념삼천의 당체이며 범부의 모습 그대로다.
따로 말하면 니치렌 대성인이 말법의 부처이시고, 총괄하여 말하면 법을 수지하는 사람은 모두 부처의 생명을 지닌다. 그 불성이 솟아나는 것은 오로지 부처의 제자로서 법을 지키기 위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실천에 달려 있다. 「불법의 쇠미를 보고 마음속에 슬퍼하고 아까워하는 정을 일으키는」 사람이야말로 부처의 제자로서 참된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객이 물은 「자격」에 대한 주인의 대답이 여기에 있다.
몸은 가볍고 법은 무겁다 — 불석신명과 사신홍법
불법의 쇠미를 슬퍼하는 마음은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몸을 아끼지 않고 법을 넓히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는 장안대사의 글을 들어 이렇게 가르친다.
汝実に後世を恐れば身を軽しめ法を重んぜよ是を以て章安大師云く『寧ろ身命を喪ふとも教を匿さざれとは身は軽く法は重し身を死して法を弘めよ』と、此の文の意は身命をば・ほろぼすとも正法をかくさざれ、其の故は身はかろく法はおもし身をばころすとも法をば弘めよとなり
그대가 참으로 후세를 두려워한다면 몸을 가벼이 하고 법을 무겁게 여겨라. 그러므로 장안대사는 「차라리 목숨을 잃을지라도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는 것은, 몸은 가볍고 법은 무거우니 몸을 죽여서라도 법을 넓히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글의 뜻은, 몸과 목숨은 잃을지라도 정법을 숨기지 말라는 것이다. 그 까닭은 몸은 가볍고 법은 무거우니, 몸은 죽일지라도 법은 넓히라는 것이니라.
신심의 궁극의 모습은 사신홍법(死身弘法)이다. 대성인 당시 아쓰하라(熱原)의 법난에서 목숨을 바친 세 사람의 농민 신도가 그 본보기로 전한다. 박해를 당하지 않는 때라 할지라도, 법을 넓히고 사람들을 건지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것이 불석신명 · 사신홍법의 모습이다. 「작은 그릇이지만 대승을 배웠다」는 겸손은 이 불석신명의 결의와 하나다. 그리고 그 결의가 경문의 근거를 얻어 「방법을 꾸짖는 정신」으로 드러나는 것이 다음 제3장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사람의 귀함은 신분이 아니라 지닌 법에서 온다(法妙なるが故に人貴し). 「한 부처의 아들」은 외용의 겸양이며, 내증에서 대성인은 인법일개의 어본불이시다. 불법의 쇠미를 슬퍼하는 마음이 곧 부처 제자의 자격이다.
본문
其の上、涅槃経に云く「若し善比丘あって、法を壊ぶる者を見て、置いて呵責し駈遣し挙処せずんば、当に知るべし、是の人は仏法の中の怨なり。 若し能く駈遣し呵責し挙処せば、是れ我が弟子、真の声聞なり」と。 余、善比丘の身為らずと雖も「仏法中怨」の責を遁れんが為に、唯大綱を撮つて粗一端を示す。
그뿐 아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만약 선비구(善比丘)가 있어 법을 무너뜨리는 자를 보고도 내버려 두어, 꾸짖지(呵責) 않고 쫓아내지(駈遣) 않고 그 죄를 들추어 다스리지(挙処) 않는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불법 가운데의 원수이니라. 만약 능히 쫓아내고 꾸짖고 그 죄를 들추어 다스린다면, 이는 나의 제자요 참된 성문(声聞)이니라」 하였느니라. 나는 선비구의 몸은 아니지만, 「불법 가운데의 원수」라는 책망을 벗어나기 위하여 오직 그 대강을 추려 대략 그 한 끝을 보인 것이니라.
어구 풀이
- 其の上그뿐 아니라
- 앞 장의 「불법의 쇠미를 보고 어찌 슬퍼하지 않겠느냐」는 심정에 더하여, 경문의 근거를 덧붙인다는 말이다. 다음 제4장도 같은 「그뿐 아니라」로 시작하여 역사의 사실을 덧붙인다.
- 涅槃経열반경
- 『대반열반경(大般涅槃経)』, T12 no.374. 석존이 입멸하기 직전에 설하였다는 경으로, 법화경을 이어 불성의 상주와 정법 수호를 설한다. 본문의 경문은 그 가운데 정법을 지키는 비구의 자세를 밝힌 대목이다.
- 善比丘선비구
- 계를 지키고 법을 바르게 행하는 훌륭한 비구. 경문은 「선비구조차」 방법을 보고 내버려 두면 불법의 원수가 된다고 경계한다.
- 法を壊ぶる者법을 무너뜨리는 자
- 불법의 이름을 빌려 그릇된 가르침을 세우고 정법을 허무는 자, 곧 방법(謗法)의 사람이다.
- 置いて내버려 두고
- 보고도 그대로 두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대성인은 「소야전답서」에서 이 「치(置)」 한 글자를 깊이 마음에 새기라고 하셨다.
- 呵責가책
- 꾸짖어 그 잘못을 책망하는 것. 말로써 그릇됨을 밝혀 꾸짖는 것이다.
- 駈遣구견
- 쫓아내는 것. 방법의 사람을 교단에서 물리치는 것이다.
- 挙処거처
- 죄를 들추어 그에 맞게 처분하는 것. 그 죄를 드러내어 다스리는 것이다.
- 仏法の中の怨불법 가운데의 원수
- 불법을 해치는 원수가 밖에 있지 않고 불법 안에 있다는 뜻이다. 방법을 보고도 내버려 두는 사람은, 비록 스스로 선비구라 할지라도 불법의 원수와 다름없다.
- 真の声聞참된 성문
- 성문은 범어 슈라바카(śrāvaka)의 번역으로 「부처의 소리를 듣는 이」라는 뜻이다.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출가 제자로, 교단에 속해 수행한다. 교단에 속하지 않고 홀로 열반을 구하는 이는 범어 프라티예카붓다(pratyeka-buddha)로, 벽지불이라 음사하고 연각이라 번역한다. 성문과 연각을 합해 이승이라 하며, 대승에서는 자기 해탈만 구하고 남을 건지지 않는다고 비판받았다. 법화경에 이르러 사리불 · 가섭 등 성문의 십대 제자가 득도하고, 기뻐한 네 대성문은 「우리는 이제 참으로 성문이다. 부처님 도의 소리로써 일체에게 듣게 하리라」고 영해하였다. 참된 성문이란 부처의 제자로서 부처의 정법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후세에 일으켜 가는 사람이다.
- 余、善比丘の身為らずと雖も나는 선비구의 몸은 아니지만
- 앞 장의 「작은 그릇이지만」과 같은 겸양의 말이다. 그러나 선비구가 아니라 해서 책망을 면하는 것은 아니므로, 더욱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 唯大綱を撮つて粗一端を示す오직 대강을 추려 대략 그 한 끝을 보인다
- 이제까지 제2단에서 제5단까지 밝힌 법연 비판은 그 요점만 추린 것이라는 뜻이다. 할 말을 다한 것이 아니라 「불법 중의 원수」의 책망을 면할 만큼만 보였다는 겸양이며, 동시에 방법 가책이 의무임을 밝힌 말이다.
이 장의 자리 — 슬픔에서 가책으로
이 장은 앞 장에서 「불법의 쇠미를 보고 어찌 마음속에 슬퍼하는 정을 일으키지 않겠느냐」고 하신 데 더하여, 다시 열반경의 경문을 들어 법연을 비롯한 그릇된 가르침을 반드시 파절해야 하는 까닭을 밝힌다. 객은 「그대는 천한 몸으로 함부로 나쁜 말을 한다」고 했다. 주인의 대답은, 말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죄가 된다는 것이다. 방법을 보고도 침묵하는 사람은 불법의 원수가 되고, 꾸짖는 사람이 참된 부처의 제자가 된다. 그러므로 주인이 법연을 파한 것은 함부로 한 말이 아니라, 경문이 명한 의무를 다한 것이다.
이 경문은 입정안국론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제7단에서 주인은 다시 열반경을 길게 인용하여 선예국왕(仙予国王)과 유덕왕(有徳王) · 각덕비구(覚徳比丘)의 예를 들며 정법 호지의 법도를 밝히게 되는데, 이 장의 경문은 그 첫머리에서 방법 가책의 원리를 짧고 분명하게 세워 둔다. 제6단이 「방법 대치의 방법」을 다루는 세 편의 문을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열반경의 두 방정식
경문 「만약 선비구가 있어 법을 무너뜨리는 자를 보고도 내버려 두어, 꾸짖지 않고 쫓아내지 않고 그 죄를 들추어 다스리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불법 가운데의 원수이니라. 만약 능히 쫓아내고 꾸짖고 그 죄를 들추어 다스린다면, 이는 나의 제자요 참된 성문이니라」는, 불법이 멸하고 사람들이 불행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두 개의 방정식을 가르친다.
첫째, 불법을 깨뜨리는 그릇된 설을 세운 사람을 내버려 두는 것은 불법 가운데의 원수다. 둘째, 불법을 깨뜨리는 그릇된 설의 사람을 꾸짖는 이는 참된 부처의 제자다.
이 경문에서 주목할 것은 「선비구」라는 말이다. 경문은 악한 비구를 꾸짖는 것이 아니다. 계를 지키고 바르게 수행하는 선비구조차, 방법을 보고도 내버려 두면 불법의 원수가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법을 어기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침묵하는 것 자체가 법을 무너뜨리는 일에 가담하는 것이 된다.
불법을 멸하는 것은 밖에서 권력 등으로 절이나 탑을 부수는 일보다, 안에 있으면서 불법의 이름을 빌려 그릇된 설을 세우는 사람이다. 「사자 몸속의 벌레」가 이것이다. 사자는 다른 짐승에게 먹히지 않지만, 제 몸속에서 생긴 벌레에게 먹힌다. 그러므로 부처가 가장 엄하게 경계한 것은 불법 안에서 불법을 어지럽히는 사람, 곧 방법이었다. 이 원리는 불법 바깥의 집단 · 사회, 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에도 들어맞는다. 밖에서 해를 입어 죽는 사람보다 자기 안의 무절제 · 부주의 · 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도 이 원리의 한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법을 깨뜨리는 사람을 보고 내버려 두면, 내버려 둔 사람도 무거운 죄를 지은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
방법을 꾸짖지 않으면 — 「치(置)」 한 글자의 무게
니치렌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방법의 사람과 방법의 행위 자체를 굳게 경계하시고, 방법을 꾸짖지 않으면 성불은커녕 큰 벌을 받는다고 가르치셨다.
少しも謗法不信のとが候はば無間大城疑いなかるべし
조금이라도 방법 · 불신의 허물이 있다면 무간대성에 떨어짐은 의심할 바 없느니라.
이것은 저마다의 마음에 깃든 방법 · 불신을 경계하신 글이다. 나아가 「소야전답서」에서는 바로 이 열반경의 경문을 인용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の文の中に見壊法者の見と置不呵責の置とを能く能く心腑に染む可きなり、法華経の敵を見ながら置いてせめずんば師檀ともに無間地獄は疑いなかるべし、南岳大師の云く『諸の悪人と倶に地獄に堕ちん』云云、謗法を責めずして成仏を願はば火の中に水を求め水の中に火を尋ぬるが如くなるべしはかなし・はかなし
이 글 가운데 「법을 무너뜨리는 자를 보고(見壊法者)」의 「견(見)」 자와 「내버려 두어 꾸짖지 않으면(置不呵責)」의 「치(置)」 자를 잘 마음에 새겨야 하느니라. 법화경의 적을 보면서 내버려 두고 꾸짖지 않으면, 스승과 단나가 함께 무간지옥에 떨어짐은 의심할 바 없느니라. 남악대사는 「모든 악인과 함께 지옥에 떨어지리라」고 하였느니라. 방법을 꾸짖지 않고 성불을 바란다면, 불 속에서 물을 구하고 물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같으니, 덧없고 덧없는 일이니라.
방법을 보면서 꾸짖지 않으면, 비록 스스로는 바른 법을 믿고 있다 할지라도 방법의 사람과 함께 무간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견(見)」은 보는 것, 곧 방법이 눈앞에 있음을 아는 것이고, 「치(置)」는 그것을 알고도 그대로 두는 것이다. 몰라서 꾸짖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 내버려 두는 것, 바로 그것이 「불법 가운데의 원수」의 실체다.
그렇다고 해서 방법 가책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거칠게 몰아붙이는 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를 다해 차근차근 이야기하여 그릇된 가르침의 잘못을 납득시켜 가는 것이 그 본뜻이며, 입정안국론 자체가 그 본보기다. 주인은 객을 맞아 함께 탄식하는 데서 시작하여, 경문과 도리와 현증을 차례로 들며 열 번의 문답으로 객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여 간다.
절복은 자비의 행위
방법을 꾸짖는 것을 불교에서는 절복(折伏)이라 한다. 절복은 자비의 행위다. 「개목초」는 장안대사의 글을 들어 이렇게 가르친다.
慈無くして詐り親しむは是れ彼が怨なり
자비 없이 거짓으로 친한 척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원수이니라.
「그를 위해 악을 없앤다(彼が為に悪を除く)」는 글처럼, 절복은 상대의 마음에 깃든 악을 끊고 그 사람을 근본에서 끝까지 건지는, 엄한 사랑의 행위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면서도 말만 부드럽게 하여 듣기 좋은 말로 상대의 마음을 사려 하고, 속으로는 탐욕에 가득 차 남의 행복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자비 없이 거짓으로 친한 척하는」 모습이다. 그와 달리 자비에 서서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실을 말하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 불법의 방정식에 맞는 가장 높은 선의 행위다.
삼가 니치렌 대성인의 행적을 보면, 거기에서 사자왕과 같은 용맹한 모습과 함께 일체중생을 건지려는 대자비를 우러를 수 있다. 대성인은 온갖 삼류의 강적과 싸워 그릇된 종의 그릇된 뜻을 파하고 정법 정의를 세우셨다. 고마쓰바라(小松原)의 법난, 마쓰바가야쓰의 초암 습격, 이즈와 사도의 유배, 다쓰노구치의 법난 등 크고 작은 난이 수없이 일어났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 박해 속에서도 일체중생의 행복을 바라며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셨고, 더욱더 어본불의 대확신에 서셨다. 그리고 박해한 사람들을 원망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을 선지식이라 부르셨다.
日蓮が仏にならん第一のかたうどは景信・法師には良観・道隆・道阿弥陀仏と平左衛門尉・守殿ましまさずんば争か法華経の行者とはなるべきと悦ぶ
니치렌이 부처가 되는 데 첫째가는 편은 가게노부요, 법사로는 료칸 · 도류 · 도아미다불이며, 헤이노사에몬노조와 고노토노(守殿)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찌 법화경의 행자가 될 수 있었겠느냐고 기뻐하느니라.
나아가 대성인을 박해한 호조 집권에 대해서조차 「바라건대 나를 해치는 국주 등을 맨 먼저 인도하리라」(願くは我を損ずる国主等をば最初に之を導かん, 「현불미래기」, 509쪽)고까지 말씀하셨다. 이것이야말로 어본불의 대자비다. 방법을 꾸짖는 일은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그 미혹에서 건지려는 일이다.
말하면 난이 오고, 말하지 않으면 무자비 — 「개목초」의 결단
그러나 탐 · 진 · 치의 삼독이 가득하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는, 남을 위해 힘쓰고 사람들을 위해 싸우려는 순수한 행위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방법을 꾸짖으면 반드시 삼장사마(三障四魔)와 삼류의 강적이 다투어 일어난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입종에 앞서 하신 결단을 이렇게 회고하셨다.
日本国に此れをしれる者は但日蓮一人なり。これを一言も申し出すならば父母・兄弟・師匠に国主の王難必ず来るべし、いはずば・慈悲なきに・にたりと思惟するに法華経・涅槃経等に此の二辺を合せ見るに・いはずば今生は事なくとも後生は必ず無間地獄に堕べし、いうならば三障四魔必ず競い起るべしと・しりぬ、二辺の中には・いうべし、王難等・出来の時は退転すべくは一度に思ひ止るべしと且くやすらいし程に宝塔品の六難九易これなり
일본국에서 이것을 아는 자는 다만 니치렌 한 사람뿐이니라. 이것을 한 마디라도 입 밖에 낸다면 부모 · 형제 · 스승의 난과 국주의 왕난이 반드시 오리라. 말하지 않는다면 자비가 없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여, 법화경 · 열반경 등에 이 두 갈래를 맞추어 보니, 말하지 않으면 금생에는 무사하더라도 후생에는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요, 말한다면 삼장사마가 반드시 다투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느니라. 두 갈래 가운데에서는 말해야 하리라. 왕난 등이 일어났을 때 물러설 것이라면 처음부터 그만두어야 하리라고 잠시 망설이던 차에, 보탑품의 육난구이가 바로 이것이었느니라.
이 어문의 뜻은 이렇다. 모든 불행의 근본 원인은 그릇된 가르침에 있다. 이것을 아는 이는 대성인 한 분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말하지 않으면 무자비가 되고 스스로도 무간지옥의 큰 벌을 받을 것이다. 말하면 반드시 마가 다투어 일어나 박해가 닥칠 것이다. 이 두 갈래 사이에서 대성인은 마침내, 어떤 난이 있더라도 말해야 한다고 결단하셨다. 이 장의 「불법 중의 원수」라는 책망을 면하기 위해 대강을 보였다는 말씀은, 바로 이 결단이 입정안국론이라는 한 편의 간효로 나타난 것이다.
절복의 참된 뜻은 상대가 그릇된 가르침에 집착하는 마음을 깨뜨려 바른 법에 따르게 하는 데 있다. 무엇인가를 억지로 떠맡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성인의 문하로서 가장 귀하고 고결한 행위다.
보탑품의 육난구이 — 왜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되었는가
절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특히 말법에서는 어려운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여러 어서는 가르친다. 「개목초」의 어문 끝에 나온 보탑품의 육난구이(六難九易)는, 부처가 멸도한 뒤 악세에서 법화경을 지니고 넓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한 것이다. 보탑품에서 석존은 대중에게 「모든 선남자여, 저마다 자세히 생각하라. 이것은 어려운 일이니 마땅히 큰 서원을 일으켜라」고 하시고, 수미산을 집어 다른 국토에 던지는 일, 발가락으로 대천세계를 움직여 멀리 던지는 일, 겁화 속에 마른 풀을 지고 들어가 타지 않는 일 등 아홉 가지 일을 들어 「아직 어렵다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리고 부처가 멸도한 뒤에 이 경을 설하고 · 쓰고 · 읽고 · 한 사람을 위해 설하고 · 듣고 묻고 · 받들어 지니는 여섯 가지 일을 「이것이 곧 어렵다」고 하신다.
若し仏の滅後に、悪世の中に於いて、能く此の経を説かば、是は則ち難しと為す
만약 부처가 멸도한 뒤 악세 가운데에서 능히 이 경을 설한다면, 이것이 곧 어려운 일이니라.
- 이 경을 널리 설함広説此経難
- 이 경을 쓰고 지님書持此経難
- 잠시라도 이 경을 읽음暫読此経難
- 한 사람에게라도 설함少説此経難
- 이 경을 듣고 그 뜻을 물음聴聞此経難
- 이 경을 받들어 지님受持此経難
- 다른 경을 설함余経説法易
- 수미산을 던짐須弥擲置易
- 발로 세계를 던짐世界足投易
- 유정천에서 설법함有頂説法易
- 허공을 쥐고 다님把空遊行易
- 대지를 발등에 얹고 범천에 오름足地昇天易
- 겁화에 타지 않음大火不焼易
- 설법하여 신통을 얻게 함広説得通易
- 대중을 아라한이 되게 함大衆羅漢易
아홉 가지 쉬운 일은 그 어느 하나도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멸후 악세에서 법화경을 넓히는 일은 그보다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수행이기에, 석존은 약왕 · 미륵 · 관음 등 적화(迹化)의 보살들에게는 말법의 교화를 부촉하지 않으시고, 대지에서 지용(地涌)의 본화 보살을 불러내어 부촉하셨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 상수(上首)인 상행보살의 재탄이 니치렌 대성인이시다. 「불법 중의 원수」의 책망을 면하고자 방법을 꾸짖으신 이 장의 결의는, 육난구이의 어려움을 몸으로 짊어진 지용 상수의 결의이기도 하다.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 — 그래도 「아직 질리지 않았다」
방법을 꾸짖으면 반드시 욕을 듣고 미움받고 꺼림을 당한다. 그토록 소중한 일인데도, 꾸짖음을 받고서 기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성인은 「소야전답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法門を日蓮申す故に忠言耳に逆う道理なるが故に流罪せられ命にも及びしなり、然どもいまだこりず候
이 법문을 니치렌이 말하기 때문에,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도리로 유죄를 당하고 목숨까지 위태로웠느니라. 그러나 아직 질리지 않았느니라.
꾸짖는 쪽은 상대의 미혹을 열어 부처의 과를 얻게 하려고 애쓰지만, 꾸짖음을 받는 쪽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것이다. 입정안국론을 올린 뒤 대성인에게 닥친 마쓰바가야쓰의 습격과 이즈 유배가 바로 그 「거슬림」이었다. 그러나 대성인은 「아직 질리지 않았다」고 하신다. 객이 「천한 몸으로 함부로」라고 한 비난은, 대성인의 생애 전체에 걸쳐 되풀이된 「거슬림」의 첫 모습이기도 하다.
숙명을 바꾸는 길 — 호법의 공덕력
방법을 꾸짖는 것은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사자로서 여래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본불의 보이지 않는 가호가 일상의 생활에 나타나는 동시에, 그 공덕으로 강한 생명력이 넘쳐 나와 세상일을 처리하는 데 용기가 생긴다. 또 믿음으로 지혜를 대신한다는 이신대혜(以信代慧)의 원리에 따라 신심이 지혜로 바뀐다. 이것이 경문의 「현세안온 · 후생선처(現世安穏・後生善処)」의 모습이다.
신앙하지 않더라도 몸이 튼튼하거나 돈에 쪼들리지 않는 등 부분적인 행복의 조건을 갖춘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행복이어서 절대적인 행복이라 할 수 없고, 그 반면에는 반드시 불행한 조건을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행 · 불행의 현상은 근원을 더듬으면 과거세부터의 숙명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이 낮은 상대적 행복의 경지를 벗어나 가장 높은 절대적 행복의 경지로 바꾸는 불법이다. 방법을 꾸짖으면 과거의 숙습이 한꺼번에 나타나므로 갖가지 난이 다투어 일어난다. 이 난으로 숙명을 깨뜨려 가는 것이므로, 그 길에서 만나는 난은 오히려 기쁨으로 삼아야 한다. 「사도어서」는 이 도리를 이렇게 밝힌다.
此八種は尽未来際が間一づつこそ現ずべかりしを日蓮つよく法華経の敵を責るによて一時に聚り起せるなり
이 여덟 가지는 미래가 다하도록 하나씩 나타나야 할 것이었는데, 니치렌이 강하게 법화경의 적을 꾸짖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모여 일어난 것이니라.
어서는 이어서 비유를 든다. 고을에 사는 백성이 지두에게 아무리 큰 빚을 지고 있어도 지두는 크게 독촉하지 않고 해마다 미루어 가지만, 그 고을을 떠날 때에는 한꺼번에 다투어 받아 내려 한다. 이것이 「호법의 공덕력에 말미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옥졸이 죄인을 꾸짖지 않으면 지옥을 벗어나기 어렵듯이, 당세의 왕과 신하가 없었다면 니치렌의 과거 방법의 무거운 죄는 사라지기 어려웠으리라고 하시며, 니치렌은 과거의 불경보살과 같고 당세의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긴 사중과 같다, 사람은 바뀌어도 인(因)은 하나라고 맺으신다. 대성인 스스로 강한 절복으로 과거의 무거운 죄를 소멸하는 모습을 보이신 것이다.
불석신명의 신심
그러므로 방법을 꾸짖을 때 다투어 일어나는 크고 작은 난에 대해서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강한 신심으로 그것을 이겨 내야 절대적인 행복의 경지를 얻는다.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법화경 제8권의 두 경문 「또한 현세에서 그 복의 보답을 얻으리라」 「마땅히 금세에서 현재의 과보를 얻으리라」를 드시고, 이 열여섯 글자가 헛되어 니치렌이 금생에 큰 과보를 받지 못한다면 여래의 금언도 다보여래의 증명도 거짓이 되리라고 하신 뒤 이렇게 맺으셨다.
されば我が弟子等心みに法華経のごとく身命もおしまず修行して此の度仏法を心みよ
그러므로 나의 제자들은 시험 삼아 법화경대로 몸과 목숨도 아끼지 말고 수행하여 이번에 불법을 시험해 보아라.
또 「사도어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強敵を伏して始て力士をしる、悪王の正法を破るに邪法の僧等が方人をなして智者を失はん時は師子王の如くなる心をもてる者必ず仏になるべし例せば日蓮が如し、これおごれるにはあらず正法を惜む心の強盛なるべし
강적을 굴복시켜야 비로소 역사(力士)임을 안다. 악한 왕이 정법을 깨뜨리는 데 사법의 승려들이 편을 들어 지자를 없애려 할 때, 사자왕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는 반드시 부처가 되리라. 예컨대 니치렌과 같으니라. 이것은 교만한 것이 아니라 정법을 아끼는 마음이 강성하기 때문이니라.
『어의구전』은 불석신명을 사(事)와 이(理)로 나누어 설한다.
身とは色法・命とは心法なり事理の不惜身命之れ有り、法華の行者田畠等を奪わるは理の不惜身命なり命根を断たるを事の不惜身命と云うなり
몸이란 색법이요, 목숨이란 심법이니라. 사(事)와 이(理)의 불석신명이 있으니, 법화의 행자가 논밭 등을 빼앗기는 것은 이의 불석신명이요, 목숨의 뿌리를 끊기는 것을 사의 불석신명이라 하느니라.
이 어문들은 모두 불석신명의 신심이야말로 참된 행복에 이르는 곧은 길임을 가르친다. 신앙에 한하지 않고, 어떤 목표를 향해 모든 난관과 싸우며 몸과 목숨을 쏟는 사람의 생명에는 약동이 있고 리듬이 있으며, 그 모습은 아름답고 맑다. 발명가가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도, 의사가 병자를 고치려고 애쓰는 모습도, 학자가 진리를 탐구하는 데 몸을 던지는 모습도 모두 불석신명에 통한다. 그러나 얕은 것, 낮은 것, 그릇된 것에 몸과 목숨을 던지는 것만큼 가엾은 일은 없다. 가장 높은 법에 귀명하는 삶이야말로 참된 불석신명이다. 「선비구의 몸은 아니지만 「불법 중의 원수」의 책망을 면하기 위해」라는 이 장의 짧은 말씀은, 그 귀명의 결의를 겸양의 말로 감싼 것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방법을 보고도 내버려 두면 선비구라도 「불법 중의 원수」가 되고, 꾸짖으면 「참된 성문」이 된다. 방법 가책은 미움이 아니라 「그를 위해 악을 없애는」 자비이며, 그 길에서 만나는 난은 숙명을 바꾸는 호법의 공덕력이다.
본문
其の上、去ぬる元仁年中に延暦・興福の両寺より度度奏聞を経て、勅宣・御教書を申し下して、法然の選択の印板を大講堂に取り上げ、三世の仏恩を報ぜんが為に、之を焼失せしむ。 法然の墓所に於ては、感神院の犬神人に仰せ付けて破却せしむ。 其の門弟、隆観・聖光・成覚・薩生等は遠国に配流せられ、其の後未だ御勘気を許されず。 豈、未だ勘状を進らせずと云わんや。
그뿐 아니라, 지난 원인(元仁) 연간에 엔랴쿠(延暦) · 고후쿠(興福) 두 절에서 여러 차례 상주하여 칙선(勅宣)과 미교서(御教書)를 받아 내려, 법연의 『선택집』 판목(印板)을 대강당에 거두어 올려, 삼세의 불은에 보답하기 위하여 이를 불살라 없앴느니라. 법연의 묘소는 간진인(感神院)의 이누지닌(犬神人)에게 명하여 헐어 버리게 하였느니라. 그 문하의 제자 류칸(隆観) · 쇼코(聖光) · 조카쿠(成覚) · 삿쇼(薩生) 등은 먼 지방으로 유배되었고, 그 뒤 아직까지 칙감(勅勘)이 풀리지 않았느니라. 어찌 아직 감장을 올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어구 풀이
- 去ぬる元仁年中に지난 원인 연간에
- 원인(元仁) 원년은 1224년이다. 그해 8월에 전수염불을 금지하는 명이 내려졌고, 판목 소각 · 묘소 파각 · 제자들의 유죄는 이어지는 가록(嘉禄) 3년(1227)의 일로 어서에 적혀 있다. 제5단 끝의 「건인(建仁) 연간」은 법연이 활동한 고토바 상황 때의 다른 연호(1201~1203)이니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 延暦・興福の両寺엔랴쿠 · 고후쿠 두 절
- 엔랴쿠사(延暦寺)는 히에이잔에 있는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전교대사가 세운 절이다. 고후쿠사(興福寺)는 나라(奈良)에 있는 법상종의 큰 절이다.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는 두 절, 이른바 남도(南都)와 북령(北嶺)이 함께 염불 금지를 청했다는 데 무게가 있다.
- 度度奏聞を経て여러 차례 상주하여
- 「주문(奏聞)」은 천황에게 아뢰는 것이다. 한 번이 아니라 거듭된 상주였음을 밝혀, 객의 「아직 상주에 이르지 않았다」는 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 勅宣칙선
- 천황의 명령을 적은 문서. 선지(宣旨)라고도 한다.
- 御教書미교서
- 헤이안 시대에 삼위 이상의 공경이 내던 문서 형식이다. 뒤에 막부 · 장군의 문서도 집권 · 관령이 이 형식으로 내게 되었다. 칙선이 조정의 명령이라면 미교서는 그것을 받아 집행하게 하는 문서로, 조정과 막부가 함께 움직였음을 보여 준다.
- 選択の印板『선택집』의 판목
- 『선택집』을 찍어 내던 목판. 판목을 불태운 것은 그 책이 더 이상 세상에 퍼지지 못하게 한 조처다.
- 大講堂대강당
- 히에이잔 엔랴쿠사의 대강당. 산문(山門)의 대중이 모여 의논하는 중심 건물이다.
- 三世の仏恩を報ぜんが為に삼세의 불은에 보답하기 위하여
- 과거 · 현재 · 미래 삼세의 부처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일체의 경과 부처를 버리라고 한 『선택집』을 태우는 것이 곧 불은에 보답하는 일이라는 산문의 명분이다.
- 感神院간진인
- 교토 히가시야마 기온(祇園)에 있던 사사(社寺)로, 오늘날 야사카 신사(八坂神社)의 옛 이름이다. 본디 제신인 우두천왕(牛頭天王)이 기원정사의 수호신이라 하여 기온샤(祇園社)라고도 했다. 처음에는 고후쿠사의 관할 아래 있었으나 뒤에 엔랴쿠사의 별원이 되었다.
- 犬神人이누지닌
- 신사의 사가(社家)에 딸려 신사의 잡역을 맡던 사람들이다. 강소(強訴) 때에는 신목(神木) · 신여(神輿)를 받들고 그 주력이 되었으며, 절의 승병에 가까운 존재였다. 경내 청소와 부정한 것을 치우는 일을 맡았다. 간진인이 엔랴쿠사의 별원이었으므로 산문의 명을 받아 법연의 묘를 헌 것이다.
- 隆観류칸
- 흔히 류칸(隆寛)으로 적는다. 가마쿠라 초기 정토종의 승려로 조라쿠지류(長楽寺流)의 조사다. 어려서 히에이잔에 올라 백부 고엔(皇円)에게 천태의 교의를 배우고 천태좌주 지엔(慈円)을 섬겼다. 정토의 가르침에 끌려 법연의 문하에 들어가 『선택집』의 서사를 허락받았다. 교토 조라쿠지에 머물며 다념의(多念義)를 주장했다. 조쇼(定照)의 『탄선택(弾選択)』에 맞서 『현선택(顕選択)』을 지은 것이 계기가 되어 칙명으로 오슈(奥州)에 유배되었으나, 도중 사가미 지방 이이야마(飯山)에 머물다 그곳에서 죽었다고 전한다.
- 聖光쇼코
- 정토종 진제이파(鎮西派)의 조사. 휘는 벤초(弁長), 자는 벤아(弁阿). 처음 히에이잔에서 배웠으나 법연을 만나 그 문하가 되었고, 쓰쿠시(筑紫)로 내려가 지쿠고 지방에 젠도지(善導寺)를 세워 염불을 넓혔다. 『철선택집(徹選択集)』 등을 지었다.
- 成覚조카쿠
- 조카쿠보 고사이(成覚房幸西). 처음 히에이잔에서 천태학을 배웠으나 36세에 법연에게 귀복했다. 칭명염불의 횟수에 의하지 않고 한 번의 염불로 왕생한다는 일념의(一念義)를 주장하여 교단 안에서도 비난을 받았다. 법연과 함께 박해를 받아 아와(阿波) 지방으로의 유배가 정해졌으나 면하였고, 뒤에 이키(壱岐)로 유배가 정해졌으나 이때도 배소에 가지 않았던 듯하다고 전한다.
- 薩生삿쇼
- 생몰년 미상. 조카쿠보 고사이에게 일념의를 배우고, 뒤에 서산파(西山派)의 젠에보 쇼쿠(善慧房証空)를 섬겼으나 사견을 끊지 못해 삼매의(三昧義)를 세워 가마쿠라에서 넓혔다고 전한다. 검비위사청(検非違使庁)에 불려 나간 뒤 먼 곳으로 유배되었으리라 여겨진다.
- 御勘気칙감
- 천황이나 주군의 꾸짖음을 받아 벌을 입는 것. 여기서는 유배의 벌을 말한다.
- 豈、未だ勘状を進らせずと云わんや어찌 아직 감장을 올리지 않았다고 하겠느냐
- 제1장의 객의 말 「아직 감장을 올리지 않았고 상주에 이르지 않았다」를 그대로 받아 되묻는 말이다. 이 한 마디로 제6단의 문답이 닫힌다.
이 장의 자리 — 사실로 답하다
이 장은 이 단의 객의 물음 가운데 「아직 감장을 올리지 않았고 상주에 이르지 않았다」는 말에 대해, 엔랴쿠사 · 고후쿠사에서 여러 차례에 걸친 상주가 있었고 마침내 칙선과 미교서가 내려져 법연 일문이 처벌된 사실까지 있음을 들어 반박한 대목이다. 제2장이 「누가 말하는가」라는 물음에 법을 지닌 사람의 귀함으로 답하고, 제3장이 「왜 말하는가」에 열반경의 경문으로 답했다면, 제4장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는 객의 전제 자체를 역사의 사실로 무너뜨린다.
법연의 생애와 그 그릇된 뜻이 성립한 경위는 제4단 · 제5단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여기서는 법연 생전에 그 일문과 기성 불교 사이에 있었던 다툼, 법연 사후 일문에 가해진 탄핵과 박해, 그리고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을 쓰신 문응 원년(1260)에 이르기까지의 상주의 흐름을 차례로 더듬어 본다.
법연 일문과 기성 불교의 다툼
건구(建久) 9년(1198) 3월, 법연은 『선택집』을 완성했다. 그 무렵 법연의 일문은 날로 세력을 더해, 히에이잔 · 고후쿠사 등 기성 불교에게 점차 큰 위협이 되어 가고 있었다. 번거로운 교리는 일절 없이 오직 아미타불의 염불만 닦아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약하라는 단순한 가르침은, 그때까지 불교의 어려운 교리에 견주면 훨씬 들어가기 쉬웠다. 무사 계급을 비롯해 서민들 사이로 급속히 퍼져 갔다.
원구(元久) 원년(1204), 마침내 엔랴쿠사의 대중이 들고일어나 천태좌주에게 전수염불의 금지를 요구했다. 법연은 그 탄압을 피하려고 제자들을 모아, 스스로 경계해야 할 일곱 조목을 내걸고 제자들의 동의를 구했다. 그리고 그 일곱 조목 뒤에 스스로 서명하고, 이어 190명의 제자가 연서하여 스스로 경계할 것을 맹세한 문서로서 천태좌주에게 바쳤다. 이 칠개조 문서는 지금도 전한다.
법연은 그 칠개조에서 「여러 해 동안 염불을 닦아 왔으나 성교를 따르고 굳이 사람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았으며,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도 없이 이 삼십 년 동안 무사히 지내 왔다. 그런데 이 십 년 이래 무지하고 선하지 못한 무리가 잇따라 나타나 아미타불의 가르침을 등질 뿐 아니라 석존의 유법까지 더럽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아미타불 이외의 부처와 보살을 헐뜯는 것을 비롯한 일곱 가지를 「무지하고 선하지 못한 무리」의 행위로 들어 경계했다. 일곱 조목의 내용과 그것이 『선택집』 자신의 가르침과 어떻게 어긋나는지는 입정안국론 제4편 「정법 비방의 원흉 — 법연의 『선택집』」의 「칠개조 제계 — 금지 앞에서 물러선 법연」에서 보았다.
원구 원년의 이 일은 히에이잔 출신인 법연을 억눌러 달라고 산의 대중이 좌주에게 요구하고, 법연이 스스로 경계를 맹세한 문서를 좌주에게 냄으로써 가라앉았다. 그러므로 이것은 굳이 말하자면 천태종 내부의 일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원구 2년(1205), 사태는 법연의 예상을 훨씬 넘어 심각해졌다. 법상종의 고후쿠사가 염불 금지를 원(院)에 호소한 것이다. 그 주장(奏状)은 아홉 조목에 걸친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 법연과 그 교단을 비판했다. 첫째, 새 종을 세운 잘못. 둘째, 새 형상을 그린 잘못. 셋째, 석존을 가벼이 여긴 잘못. 넷째, 만선(萬善)을 방해한 잘못. 다섯째, 영신(靈神)을 등진 잘못. 여섯째, 정토에 어두운 잘못. 일곱째, 염불을 그르친 잘못. 여덟째, 석존을 해친 잘못. 아홉째, 국토를 어지럽힌 잘못.
- ①아미타불 이외의 부처 · 보살을 헐뜯음
- ②다른 가르침의 사람과 즐겨 논쟁함
- ③다른 가르침을 버리게 하려 함
- ④계율이 없다며 음주 · 육식을 권함
- ⑤제멋대로 교의를 세워 다툼
- ⑥창도로 무지한 이를 교화함
- ⑦그릇된 가르침을 스승의 뜻이라 함
- ①새 종을 세운 잘못新宗を建つる失
- ②새 형상을 그린 잘못新像を図する失
- ③석존을 가벼이 여긴 잘못釈尊を軽んずる失
- ④만선을 방해한 잘못万善を妨ぐるの失
- ⑤영신을 등진 잘못霊神に背くの失
- ⑥정토에 어두운 잘못浄土に暗きの失
- ⑦염불을 그르친 잘못念仏を誤るの失
- ⑧석존을 해친 잘못釈尊を損ずるの失
- ⑨국토를 어지럽힌 잘못国土を乱すの失
이번에는 법연도 그 칼끝을 쉽게 비켜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원의 귀족들 가운데에도 열심한 염불 신자가 있어 법연의 염불을 금하는 데 망설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결정적인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고, 고후쿠사를 중심으로 한 옛 불교의 세력은 더욱 강하게 탄압을 요구했다.
그러던 차에, 고토바 상황이 구마노(熊野)에 참예하러 간 사이 원의 뇨보(女房) 몇 사람이 마침 열린 염불 모임에 나갔다가 승려 안라쿠(安楽) · 주렌(住蓮)과 밀통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고토바 상황은 크게 노하여 겐에이(建永) 2년(1207) 새해 들어 곧 안라쿠 · 주렌 두 사람을 참죄에 처하고, 이어 법연 일문의 주요한 사람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대성인은 「염불무간지옥초」에서 이 일과 그에 앞선 파절서들을 함께 이렇게 적으셨다.
然る間斗賀尾の明慧房は天下無雙の智人・広学多聞の明匠なり、摧邪輪三巻を造つて選択の邪義を破し、三井寺の長吏・実胤大僧正は希代の学者・名誉の才人なり浄土決疑集三巻を作つて専修の悪行を難じ、比叡山の住侶・仏頂房・隆真法橋は天下無雙の学匠・山門探題の棟梁なり弾選択上下を造つて法然房が邪義を責む
그러는 사이에 도가노오(斗賀尾)의 묘에보(明慧房)는 천하에 둘도 없는 지인이요 널리 배우고 많이 들은 명장이니라. 『최사륜』 세 권을 지어 『선택집』의 그릇된 뜻을 파하였고, 미이데라의 장리(長吏) 짓인 대승정은 희대의 학자요 이름난 재인이니라. 『정토결의집』 세 권을 지어 전수의 악행을 힐난하였으며, 히에이잔에 머무는 붓초보(仏頂房) 류신 법교는 천하에 둘도 없는 학장이요 산문 탐제(探題)의 동량이니라. 『탄선택』 상 · 하를 지어 법연보의 그릇된 뜻을 꾸짖었느니라.
しかのみならず南都・山門・三井より度度奏聞を経て法然が選択の邪義亡国の基為るの旨訴え申すに依つて人王八十三代・土御門院の御宇・承元元年二月上旬に専修念仏の張本たる安楽・住蓮等を捕縛え忽ちに頭を刎ねられ畢んぬ、法然房源空は遠流の重科に沈み畢んぬ
그뿐 아니라 남도(南都) · 산문(山門) · 미이데라에서 여러 차례 상주하여 법연의 『선택집』의 그릇된 뜻이 나라를 망치는 근본이라는 취지를 호소하였으므로, 인왕 제83대 쓰치미카도 천황의 치세 승원(承元) 원년 2월 상순에 전수염불의 장본인인 안라쿠 · 주렌 등을 붙잡아 곧바로 목을 베었고, 법연보 겐쿠(源空)는 원류(遠流)의 무거운 벌에 처해졌느니라.
여기서 「남도 · 산문 · 미이데라에서 여러 차례 상주하였다」는 대성인의 말씀은, 이 장 본문의 「엔랴쿠 · 고후쿠 두 절에서 여러 차례 상주하여」와 그대로 겹친다. 객이 「석문의 추건, 불가의 동량」이라 부른 바로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택집』을 파한 이들이 나왔고, 그 절들에서 상주가 거듭되었던 것이다.
안라쿠 · 주렌의 처형과 법연의 유죄는 겐에이(建永) 2년(1207)의 일로 적히며, 「염불무간지옥초」는 같은 일을 「승원(承元) 원년 2월 상순」으로 적는다. 니치칸 상인이 인용한 법연 전기는 법연의 도사 유배를 겐에이 2년 2월 28일로 적는다.
법연은 유배지(도사(土佐)로 정해졌으나 실제로는 사누키(讃岐)에 머물렀다고 전한다)에서 1년이 채 못 되어 사면되어 돌아왔으나, 교토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아 셋쓰(摂津)에 머물러야 했다. 건력(建暦) 원년(1211)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입경이 허락되었으나, 이미 고령으로 몸이 쇠약했고, 이듬해 건력 2년(1212) 교토 히가시야마 오타니(大谷)에서 죽었다.

법연 사후 일문에 가해진 처분
법연의 유죄와 이어진 죽음으로 염불의 교세는 한때 멈춘 듯 보였다. 그러나 법연 사후에 다시 차츰 세력을 키워 갔고, 히에이잔과 고후쿠사에서는 염불 금지의 주장이 거듭 제출되었다. 한편으로는 교리의 면에서 파절을 가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법연 사후의 경과를 보면, 죽은 지 5년째인 건보(建保) 5년(1217) 3월에 산의 대중이 들고일어나 염불 금지를 호소했고, 원인(元仁) 원년(1224) 8월에는 전수염불 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가록(嘉禄) 3년(1227)에는, 입정안국론 본문에 적힌 대로 법연 사후의 탄압과 금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처분이 이루어졌다. 법연의 묘가 헐리고 제자들이 유배된 것이다. 이해 6월 22일, 엔랴쿠사의 대중이 전수염불의 그릇된 뜻을 호소하며 봉기하여 칙허를 얻어 법연의 묘를 헐었고, 이어 7월 6일에는 염불승 류칸 · 쇼코 등을 유배하여 염불 금지를 강하게 밀고 나갔다. 대성인은 「염불무간지옥초」에 이 일을 이렇게 적으셨다.
法然房死去の後も又重ねて山門より訴え申すに依つて人皇八十五代・後堀河院の御宇嘉禄三年京都六箇所の本所より法然房が選択集・並に印版を責め出して大講堂の庭に取り上げて三千の大衆会合し三世の仏恩を報じ奉るなりとて之れを焼失せしめ法然房が墓所をば犬神人に仰せ付けて之れを掘り出して鴨河に流され畢んぬ
법연보가 죽은 뒤에도 또 거듭 산문에서 호소하였으므로, 인황 제85대 고호리카와 천황의 치세 가록 3년에 교토 여섯 곳의 본소(本所)에서 법연보의 『선택집』과 그 판목을 찾아내어 대강당의 뜰에 거두어 올리고, 삼천의 대중이 모여 「삼세의 불은에 보답하는 것이다」 하며 이를 불살랐고, 법연보의 묘소는 이누지닌에게 명하여 파헤쳐 가모가와(鴨河)에 흘려보냈느니라.
이 일련의 사건에는 그때마다 원에서 선지가 내려졌다. 가록 3년(1227) 산문에 내려진 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専修念仏の行は諸宗衰微の基なり、茲に因つて代代の御門・頻に厳旨を降され殊に禁遏を加うる所なり
전수염불의 행은 여러 종이 쇠미하는 근본이니라. 이 때문에 대대의 천황께서 자주 엄한 뜻을 내리시어 특히 금지를 더하신 바이니라.
선지는 이어서, 근년에 다시 염불이 일어나 산문이 호소하므로 앞의 명령대로 거듭 내린다 하고, 불법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대중의 호소를 받아들여 그 근본이라 할 류칸 · 조카쿠 · 구아미다불(空阿弥陀仏) 등을 원류에 처하며, 나머지 무리는 그 있는 곳을 찾아 나라 밖으로 쫓아내라고 명한다. 「전수염불의 행은 여러 종이 쇠미하는 근본」이라는 선지의 첫 구절은, 이 단 제2장의 「불법의 쇠미를 보고 어찌 슬퍼하지 않겠느냐」는 주인의 탄식과 그대로 이어진다.
같은 해 10월 10일, 관백이 무사시노카미(武蔵守) 호조 야스토키(北条泰時)에게 내린 미교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専修念仏の事、五畿七道に仰せて永く停止せらる可きの由・先日宣下せられ候い畢んぬ、而るを諸国に尚其の聞え有り云云、宣旨の状を守つて沙汰致す可きの由・地頭守護所等に仰せ付けらる可きの旨・山門訴え申し候
전수염불에 관한 일은, 오기칠도(五畿七道)에 명하여 영원히 금지해야 한다는 뜻을 지난날 선하(宣下)하셨느니라. 그런데 여러 지방에서 아직도 그 소문이 있다고 하니, 선지의 문서를 지켜 처리하도록 지두 · 수호소 등에 명하여야 한다는 뜻을 산문이 호소하였느니라.
조정의 선지가 막부의 미교서로 이어져 지두 · 수호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객이 말한 「교토에서 가마쿠라까지」의 두 권력이 모두 이 일에 관여했다. 또 「염불자추방선지사(念仏者追放宣旨事)」에 실린 에이손 수기(永尊竪者)의 글은 그해의 경과를 산문의 쪽에서 전한다.
法然上人の墓所は感神院の犬神人に仰付て之を破郤せしめ畢んぬ其の後奏聞に及んで裁許を蒙り畢んぬ
법연 상인의 묘소는 간진인의 이누지닌에게 명하여 헐게 하였고, 그 뒤 상주에 이르러 재가를 받았느니라.
글은 이어서, 기요미즈데라 · 기온 언저리처럼 남도 · 산문의 말사인 곳에서 전수의 무리가 몸을 둔 초암은 모두 헐었고, 그 몸은 검비위사청에 명하여 붙잡게 하니 예찬의 소리와 검은 옷의 빛깔이 교토 안에서 모두 그쳤으며, 장본인 세 사람은 유죄가 정해졌으나 달아나 아직 배소로 가지 않아 산문이 지금도 호소하고 있다고 적는다. 그리고 11일의 회의에서 「법연보가 지은 『선택집』은 방법의 책이니 천하에 남겨 둘 수 없다. 곳곳에서 지닌 것과 그 판목을 대강당에 거두어 올려 삼세의 불은에 보답하기 위해 불살라야 한다」는 뜻을 상주했다고 하며, 끝에 「가록 3년 10월 15일(嘉禄三年十月十五日)」이라는 날짜를 적는다. 본문의 「판목을 대강당에 거두어 올려 삼세의 불은에 보답하기 위하여 불살랐다」는 구절이 이 기록과 그대로 맞는다.
본문은 이 일을 「지난 원인(元仁) 연간」의 일로 적고, 「염불무간지옥초」와 「염불자추방선지사」는 판목 소각 · 묘소 파각을 가록(嘉禄) 3년(1227)의 일로 적는다. 원인 원년(1224) 8월의 전수염불 금지령에서 가록 3년의 처분까지가 하나로 이어진 흐름이다.
상주 · 금지 · 유죄의 연표
본문 끝의 「그 뒤 아직까지 칙감이 풀리지 않았다」는 말씀은,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을 지으신 문응 원년(1260)에 이르러서도 염불 금지의 명이 풀리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류칸 · 쇼코 등이 유배된 가록 3년에서 33년이 지났다. 그동안에도 덴푸쿠(天福) 2년(1234)과 엔오(延応) 2년(1240)에 각각 염불 금지의 상주가 있었다.
- 건구(建久) 9년(1198) 3월
- 법연, 『선택집』 완성
- 건인(建仁) 연간(1201~1203)
- 「법연은 고토바 상황의 치세, 건인 연간의 사람」(제5단)
- 원구(元久) 원년(1204)
- 엔랴쿠사 대중 봉기, 천태좌주에게 전수염불 금지 요구
- → 법연의 칠개조 제계(190명 연서)
- 원구 2년(1205)
- 고후쿠사, 구개조의 주장으로 원에 염불 금지 호소
- 겐에이(建永) 2년(1207)
- 안라쿠 · 주렌 참죄, 법연 도사 유배
- 건력(建暦) 원년(1211)
- 법연 입경 허락
- → 건력 2년(1212) 법연 몰
- 건보(建保) 5년(1217) 3월
- 산의 대중 봉기, 염불 금지 호소
- 원인(元仁) 원년(1224) 8월
- 전수염불 금지령
- 가록(嘉禄) 3년(1227)
- 6월 22일 법연 묘소 파각
- → 7월 6일 류칸 · 쇼코 등 유배
- → 산문에 선지
- → 10월 10일 호조 야스토키에게 미교서
- → 10월 15일 에이손 수기의 글(판목 소각 상주)
- 덴푸쿠(天福) 2년(1234) · 엔오(延応) 2년(1240)
- 염불 금지 상주
- 문응(文応) 원년(1260) 7월 16일
- 입정안국론
이처럼 법연의 일문은 불법의 면에서 그릇된 뜻일 뿐 아니라, 세간에서도 풍기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여겨져 칙선과 미교서가 거듭 내려졌다. 그 무렵에도 분별 있는 사람들은 염불을 몹시 꺼렸던 듯하다. 대성인은 「그러나 공경하고 공양하는 이는 어리석고 미혹한 재가의 사람이요, 귀의하고 우러르는 이는 지혜 없고 방일한 무리이다. 권자(權者)는 이를 쓰지 않고 현철(賢哲)도 이를 따르지 않는다」(然りと雖も恭敬供養する者は愚癡迷惑の在俗の人、帰依渇仰する人は無智放逸の輩なり、権者に於ては之を用いず賢哲又之に随うこと無し)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염불무간지옥초」의 끝에서 이렇게 맺으셨다.
鳴呼世法の方を云えば違勅の者と成り帝王の勅勘を蒙り今に御赦免の天気之れ無し心有る臣下万民・誰人か彼の宗に於て布施供養を展ぶ可きや、仏法の方を云えば正法誹謗の罪人為り無間地獄の業類なり何れの輩か念仏門に於て恭敬礼拝を致す可きや
아아, 세법(世法)의 쪽에서 말하면 칙명을 어긴 자가 되어 제왕의 칙감을 입고 지금까지 사면의 뜻이 없느니라. 마음 있는 신하와 만민 가운데 누가 그 종에 보시 · 공양을 베풀겠느냐. 불법의 쪽에서 말하면 정법을 비방한 죄인이요 무간지옥의 업을 지은 무리이니라. 어느 누가 염불문에 공경 · 예배를 하겠느냐.
세법으로 보아도 칙명을 어긴 자이고, 불법으로 보아도 정법을 비방한 죄인이니, 누가 그 종에 보시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말씀은 다음 제7단에서 주인이 밝히는 「방법에 보시를 멈춘다」는 대치의 방법을 미리 비추고 있다.
니치칸 상인이 본 두 가지 치욕
니치칸 상인은 「입정안국론 문단」에서 이 장을 이렇게 풀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법연 전기 제7에 따르면, 법연은 살아 있을 때 후지이노 모토히코(藤井元彦)라는 속명을 붙여 받고 고토바 상황의 치세 겐에이 2년(1207) 2월 28일에 도사 지방으로 유배되었다. 무릇 유죄는 현성(賢聖)에게 늘 있는 일이다. 축도생(竺道生)은 소산(蘇山)으로 유배되었고, 법도(法道)는 강남(江南)으로 쫓겨났으며, 일행선사(一行禪師)는 과라국(菓羅国)으로 내쳐졌다. 그러나 아직 속명을 붙였다는 일은 듣지 못했다. 법연의 속명이야말로 영원히 바뀌지 않는 치욕이 아니겠는가. 또 죽은 뒤 지금은 묘소를 헐렸으니 이것이 첫째가는 치욕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어서 대성인의 두 어서를 인용한다. 먼저 「지카쿠대사사(慈覚大師事)」다.
生の難は仏法の定例・聖賢の御繁盛の花なり死の後の恥辱は悪人・愚人・誹謗正法の人招くわざわいなり
살아서 받는 난은 불법의 정해진 예이며 성현이 번성하는 꽃이니라. 죽은 뒤의 치욕은 악인 · 어리석은 사람 · 정법을 비방한 사람이 불러들이는 재앙이니라.
그리고 「오타전허어서(大田殿許御書)」다.
或は閻魔王の責を蒙り或は墓墳無く或は事を入定に寄せ或は度度・大火・大兵に値えり権者は辱を死骸に与えざる処の本文に違するか
혹은 염마왕의 꾸짖음을 받고, 혹은 무덤이 없어지고, 혹은 입정(入定)에 핑계를 대고, 혹은 여러 번 큰불과 큰 병란을 만났느니라. 권자(權者)는 주검에 치욕을 주지 않는다는 본문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느냐.
니치칸 상인은 「이에 견주어 알아야 한다」고 맺는다. 대성인의 어서를 인용하면서, 법연이 받은 법의 벌의 모습을 날카롭게 밝힌 것이다. 첫째, 살아서는 속명을 붙여 받고 유배되었다. 둘째, 죽은 뒤에는 묘소가 헐렸다. 이 둘은 불법 위에서 영원히 바뀌지 않는 첫째가는 치욕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성인 자신의 삶과의 뚜렷한 대비가 있다. 대성인도 입정안국론을 올린 뒤 이즈로, 다시 사도로 유배되셨다. 그러나 「살아서 받는 난은 불법의 정해진 예요 성현이 번성하는 꽃」이다. 같은 유죄라도, 정법을 넓히다 받는 난은 꽃이 되고, 정법을 비방한 사람이 죽은 뒤 받는 치욕은 재앙이 된다. 난을 받았다는 겉모습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받았느냐가 그 뜻을 가른다.
지자는 알았으나 민중은 몰랐다
이처럼 법연의 가르침이 불법을 무너뜨리는 그릇된 설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지자와 학장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미 법연 생전부터 『선택집』에 대한 파절이 있었고, 위정자도 그것을 금했다. 그러나 민중은 『선택집』을 파한 글을 읽지 못했기에, 결국 「악귀가 그 몸에 들어간다(悪鬼入其身)」는 방정식대로 그릇된 뜻이 퍼져 갔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미 때가 지난 상법의 천태의 법문으로는 마의 뿌리를 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엔랴쿠사가 판목을 태우고 묘를 헐어도 염불이 그치지 않았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법연의 처신에도 물을 것이 있었다. 『선택집』에서 「버리고 · 닫고 · 제쳐 두고 · 내던지라」고 가르친 것을, 막상 탄압이 닥치자 「무지하고 선하지 못한 무리의 짓」으로 돌렸다는 것은 앞에서 본 그대로다. 그러면서 구조 가네자네(九条兼実) 같은 공경의 귀의를 받아 권력 가까이에서 교세를 넓혀 갔다.
그런 법연을 마치 세지보살의 재탄이니 선도의 후신이니 하고 선전하여, 그릇된 뜻이 눈 깜짝할 사이에 퍼진 것은 오로지 민중의 무지 때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객의 물음에서 보듯이, 법연 일문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조차 당시 민중은 거의 알지 못했다. 소식을 널리 알릴 수단이 없던 시대에, 불리한 사실은 쉽게 감추어졌다. 주인이 이 장에서 상주와 처분의 사실을 하나하나 들어 보인 것은, 바로 그 감추어진 사실을 객 앞에 드러내는 일이었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객이 「아무도 상주하지 않았다」고 한 그 일은, 실은 엔랴쿠사 · 고후쿠사의 거듭된 상주와 조정의 선지 · 막부의 미교서로 이미 역사 속에 있었다. 세법으로도 칙명을 어긴 자, 불법으로도 정법을 비방한 죄인이라는 이 이중의 판정이, 다음 단의 「방법에 보시를 멈춘다」로 이어진다.
이 편을 맺으며
제6단은 입정안국론에서 가장 짧은 단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네 장은 객의 물음이 「법의 내용」에서 「말하는 사람의 자격」으로 옮겨 가는 고비에 서 있다. 조금 누그러진 객은 이치로는 밀렸으나 아직 법연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권위와 신분을 방패로 삼았다. 「이름난 고승들도 아무도 상주하지 않았는데, 그대는 천한 몸으로 함부로 나쁜 말을 하는가.」
주인은 이 물음에 세 겹으로 답하셨다. 먼저 사람의 귀함은 신분이 아니라 지닌 법에서 온다는 것. 쉬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만 리를 가고 덩굴이 소나무에 기대어 천 길을 오르듯, 작은 몸이라도 대승을 배우고 모든 경의 왕을 섬기면 그 사람은 귀하며, 그렇기에 불법의 쇠미를 보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방법을 보고도 꾸짖지 않으면 선비구라도 「불법 가운데의 원수」가 되고, 꾸짖는 이가 「참된 성문」이라는 열반경의 경문. 말하면 난이 오고 말하지 않으면 무자비가 되는 두 갈래 사이에서 「말해야 하리라」고 결단하신 대성인의 정신이 이 경문 위에 서 있다. 마지막으로, 객이 「아무도 하지 않았다」고 한 상주는 실은 엔랴쿠사 · 고후쿠사에서 거듭 있었고, 조정의 선지와 막부의 미교서로 『선택집』의 판목이 불타고 법연의 묘가 헐리고 제자들이 유배되었다는 역사의 사실이다.
원리와 역사가 함께 놓임으로써, 방법을 꾸짖는 일은 한 사람의 치우친 주장이 아니라 경문이 명한 의무이자 나라가 이미 걸어온 선례가 된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 방법 가책의 정신은 지용 상수의 보살로서 육난구이의 어려움을 몸으로 짊어지신 대성인의 결의이며, 법을 지닌 사람의 귀함은 결국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지닌 사람의 귀함으로 귀결한다.
객은 이 대답을 듣고 다음 제7단에서 「곧 누그러져」 묻는다. 「경을 낮추고 승려를 헐뜯는 일은 한 사람만으로는 논하기 어렵다. … 먼저 국가를 기원하여 모름지기 불법을 세워야 한다(先ず国家を祈りて須く仏法を立つべし). 만약 재난을 없애고 난을 그치게 할 방책이 있다면 듣고 싶다.」 다음 입정안국론 제7편 「보시를 멈추어 방법을 끊다」에서 주인은 열반경의 선예국왕 · 유덕왕 · 각덕비구의 예를 들어 정법 호지의 법도를 밝히시고, 석존 이후에는 무력이 아니라 「그 보시를 멈추는 것」이 방법을 끊는 길임을 보이신다. 이 단의 끝에서 대성인이 「염불무간지옥초」를 통해 「누가 그 종에 보시 · 공양을 베풀겠느냐」고 물으신 그 물음이, 거기에서 대치의 방법으로 펼쳐진다.
더 읽기
- 입정안국론 제5편 「화한의 예로 보인 염불 망국」 — 객이 누그러지기 직전, 중국과 일본의 망국의 현증으로 염불을 파한 단
- 입정안국론 제7편 「보시를 멈추어 방법을 끊다」 — 열반경을 길게 인용하여 방법 대치의 방법을 밝히는 다음 단
- 입정안국론 제4편 「정법 비방의 원흉 — 법연의 『선택집』」 — 법연의 생애와 『선택집』의 「사 · 폐 · 각 · 포」
- 개목초 — 「말할 것인가, 말하지 않을 것인가」의 두 갈래와 육난구이의 결단
- 선시초 — 「법화경대로 몸과 목숨도 아끼지 말고 수행하라」는 불석신명의 권유
- 남묘호렌게쿄 — 「법이 묘하기에 사람이 귀하다」의 법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입정안국론」,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일본어판) 17–33쪽 — 인용한 다른 어서의 쪽은 본문 각 인용에 적었다
- 『대반열반경』, T12 no.374
- 『묘법연화경』 견보탑품 · 약왕보살본사품, T9 no.262
- 천태대사, 『법화문구』 권10 / 묘락대사, 『법화문구기』 권10 (「보경법중사」 인용을 통해)
- 니치칸 상인, 「입정안국론 문단(立正安国論文段)」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 사마천, 『사기』 백이전(색은) / 반고, 『한서』 주발전
연구
- 立正大学日蓮教学研究所 編, 『昭和定本日蓮聖人遺文』, 身延山久遠寺, 1952–1959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On Establishing the Correct Teaching for the Peace of the Land」 수록)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