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단에서 주인은 열반경을 거듭 인용하여 「천하의 정밀을 생각한다면 모름지기 나라 안의 방법을 끊어야 한다」고 맺었다. 그러나 그 경문 가운데에는 선예국왕이 방법의 바라문을 죽였고 유덕왕이 칼을 들고 싸웠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객은 바로 그 대목에 걸린다. 경문대로라면 방법자를 참죄에 처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살해의 죄를 어찌하겠는가. 더구나 대집경은 계를 지닌 승려든 깨뜨린 승려든 머리 깎고 가사 입은 이는 모두 부처의 아들이니 공양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주인의 대답은 세 줄로 짧지만 입정안국론 전체의 성격을 정한다. 「석가 이전의 불교는 그 죄를 베었으나, 능인 이후의 경설은 곧 그 보시를 멈춘다」. 아홉 편 가운데 방법 대치의 방법을 다루는 세 편(六 · 七 · 八편)의 마지막인 이 편은, 방법을 끊는 길이 칼이 아니라 보시를 멈추는 데 있음을 밝혀 다음 편의 정법 귀의로 문을 연다.
입정안국론의 열 번의 문답은 크게 네 갈래로 이어진다. 재난의 원인과 경증을 밝히는 제1 · 2편, 방법의 정체를 악한 승려와 법연에게서 찾아내는 제3~5편, 방법을 어떻게 대치할 것인가를 묻는 제6~8편, 그리고 정법에 귀의하여 입정안국을 맺는 제9편이다. 제8편은 셋째 갈래의 끝에 서 있다. 제6편에서 주인은 법연 일문이 상주로 유죄된 선례를 들었고, 제7편에서는 열반경 · 인왕경의 경문을 열 장에 걸쳐 쌓아 「나라 안의 방법을 끊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 결론을 들은 객은 이제 「끊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묻는다. 이 물음이 풀려야 객은 제9편에서 「일천제의 보시를 멈추고 길이 여러 승니에게 공양하겠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된다.
세 장의 짜임은 단순하다. 제1장에서 객은 열반경의 문을 그대로 따르면 참죄에 이르게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제2장에서 객은 대집경의 「이는 나의 아들이다」라는 문과, 목련존자를 해친 죽장외도와 연화비구니를 죽인 제바달다의 선례를 들어 승니를 꾸짖고 벌하는 일이 부처의 금언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냐고 따진다. 제3장에서 주인은 두 물음에 한꺼번에 답한다. 불자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방법을 미워하는 것이며, 석가 이전과 능인 이후는 방법을 대하는 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편에서 눈여겨볼 것은 「능인(能忍)」이라는 석존의 이름이다. 능인은 「능히 참는다」는 뜻으로, 일체중생의 비방과 박해를 탓하지 않고 참으며 끝내 구하려는 부처의 대자비를 가리킨다. 석존 이후의 경설이 방법자의 목숨이 아니라 방법에 대한 보시를 문제 삼는 것은 이 이름과 떼어 놓을 수 없다. 방법을 미워하되 사람은 버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방법을 떠받치는 보시의 흐름을 끊고 그 흐름을 정법으로 돌리는 것이 말법에 방법을 대치하는 바른 방법이라는 것이 이 짧은 세 장의 결론이다.
이 편의 장
본문
客の曰く、若し謗法の輩を断じ若し仏禁の違を絶せんには彼の経文の如く斬罪に行う可きか、若し然らば殺害相加つて罪業何んが為んや。
객이 말하기를, 만일 방법(謗法)의 무리를 끊고 만일 부처의 금계(禁戒)를 어기는 자를 없애려 한다면, 저 경문과 같이 참죄(斬罪)에 처해야 하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살해의 죄가 서로 더해지리니, 그 죄업을 어찌하겠는가.
어구 풀이
- 謗法の輩を断じ방법의 무리를 끊고
- 「방법(謗法)」은 정법을 비방하는 것, 곧 부처의 참뜻에 어긋나는 법을 세우고 정법을 낮추는 것이다. 제7단 제10장에서 주인이 「모름지기 나라 안의 방법을 끊어야 한다」고 맺은 그 「끊는다」를 객이 그대로 받아 묻는 말이다.
- 仏禁の違を絶せん부처의 금계를 어기는 자를 없애려
- 「불금(仏禁)」은 부처가 금한 것, 곧 경문에 밝혀진 부처의 경계다. 「위(違)」는 그것을 어기는 일, 또는 어기는 사람이다. 제7단 제10장 本文의 「여래의 성제(誠諦)의 금언(禁言)을 등진다」를 받은 말이다.
- 彼の経文저 경문
- 제7단에서 주인이 인용한 열반경의 여러 문을 가리킨다. 선예국왕이 대승을 비방한 바라문의 목숨을 끊었다는 문(제7단 제4장), 정법을 지키는 이는 칼과 활을 지니라는 문(제7단 제6장), 유덕왕이 각덕비구를 지키려고 파계의 악비구들과 싸웠다는 문(제7단 제7장)이 그것이다.
- 斬罪に行う참죄에 처하다
- 「참죄」는 목을 베는 형벌이다. 대성인 당시 가마쿠라 막부의 사형은 참수가 원칙이었다. 문영 8년(1271) 9월, 대성인 자신이 다쓰노구치에서 이 참죄에 처해질 뻔하셨다.
- 殺害相加つて살해의 죄가 서로 더해져
- 방법을 끊으려다 도리어 살생이라는 또 하나의 죄를 짓게 된다는 뜻이다. 방법의 죄 위에 살해의 죄가 겹친다는 객의 걱정이다.
- 罪業何んが為んや그 죄업을 어찌하겠는가
- 「죄업」은 죄가 되는 행위와 그 과보다. 살생은 오계 · 십선의 첫째 계를 어기는 것이므로, 방법을 벌한 사람 자신이 그 과보를 면할 수 없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 客の曰く객이 말하기를
- 십문구답 가운데 여덟째 물음의 첫머리다. 제7단의 물음(「재난을 다스리는 방책」)에 대한 주인의 긴 대답을 듣고, 객이 그 결론의 실행 방법에 의문을 품고 다시 묻는다.
제7단의 결론에서 생긴 물음
삼재칠난을 그치게 하고 천하태평 · 국토안온의 세상을 이루려면 방법을 대치해야 한다는 것은 제7단에서 이미 분명해졌다. 남은 것은 「어떤 방법으로 대치하는가」다. 제8단은 바로 이 물음을 다루는 단이며, 제1장은 그 물음을 객의 입으로 세운다.
객이 이런 물음을 품게 된 까닭은 제7단의 경증 자체에 있다. 주인은 제7단 제3장에서 열반경을 들어 「오직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 밖의 모든 이에게 보시하면 모두 찬탄할 만하다」고 하고, 그 「한 사람」이 일천제(一闡提), 곧 정법을 비방하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는 이라고 밝혔다. 여기까지는 보시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제4장에서는 석존이 과거세에 선예국왕(仙予国王)이었을 때 대승을 비방하는 바라문의 말을 듣고 「즉시 그 목숨의 뿌리를 끊었다」는 문을 들었고, 제6장에서는 정법을 지키는 이는 오계를 받지 않더라도 칼과 활과 창을 지녀야 한다는 문을, 제7장에서는 유덕왕(有徳王)이 각덕비구를 지키려고 파계의 악비구들과 싸워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는 문을 들었다. 경문의 표면만 따라가면, 방법을 끊는다는 것은 방법자의 목숨을 끊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
- ①제7단 제1장객재난을 다스리는 방책을 묻다
- ②제7단 제2~9장주인열반경 · 인왕경으로 방법 가책과 정법 호지를 증명하다
- ③제7단 제10장주인「속히 천하의 정밀을 생각한다면 모름지기 나라 안의 방법을 끊어야 한다」早く天下の静謐を思わば須く国中の謗法を断つべし
- ④제8단 제1장객경문대로 참죄에 처해야 하는가
- ⑤제8단 제2장객승니를 해치는 죄를 어찌하는가
- ⑥제8단 제3장주인석가 이전은 그 죄를 베었으나 능인 이후는 그 보시를 멈춘다
- ⑦제9단 제1장객「일천제의 보시를 멈추고 길이 여러 승니에게 공양하리라」一闡提の施を止め永く衆僧尼の供を致し
그러므로 객의 물음은 트집이 아니라, 경문을 성실하게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물음이다. 객은 제7단 제10장에서 주인이 맺은 말 — 「아아 슬프도다, 여래의 성제의 금언을 등지는 것이여. 가엾도다, 어리석은 승려의 미혹한 거친 말을 따르는 것이여. 속히 천하의 정밀을 생각한다면 모름지기 나라 안의 방법을 끊어야 한다」 — 을 받아, 그 「끊는다」가 참죄를 뜻하느냐고 되묻는다. 여기서부터 대화는 「무엇을 끊는가」에서 「어떻게 끊는가」로 옮겨 간다.
객이 가리킨 「저 경문」
객이 「저 경문과 같이」라고 할 때 떠올린 열반경의 문은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대승을 비방한 바라문의 「목숨의 뿌리를 즉시 끊었다」는 선예국왕의 문(27쪽), 둘째는 살생을 하 · 중 · 상으로 나누고 일천제를 죽이는 것은 그 셋에 들지 않는다고 한 「삼종의 살」의 문(28쪽), 셋째는 호법을 위해 파계의 악비구들과 싸워 각덕비구를 지켜 낸 유덕왕의 문(28~29쪽)이다. 세 문의 원문과 풀이는 입정안국론 제7편 「보시를 멈추어 방법을 끊다」의 제4장 · 제7장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넷째는 유덕왕의 이야기 끝에 놓인 문으로, 객의 물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是の故に我今持戒の人・諸の白衣の刀杖を持つ者に依つて以て伴侶と為すことを聴す、刀杖を持すと雖も我是等を説いて名けて持戒と曰わん、刀杖を持すと雖も命を断ずべからず
그러므로 나는 이제 계를 지닌 사람이 여러 재가자 가운데 칼과 몽둥이를 지닌 이를 의지하여 벗으로 삼는 것을 허락하느니라. 칼과 몽둥이를 지닐지라도 나는 이들을 일컬어 계를 지닌 이라 하리라. 칼과 몽둥이를 지닐지라도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되느니라.
열반경 자신이 이미 「칼과 몽둥이를 지닐지라도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고 있다. 칼과 몽둥이는 정법을 지니는 이를 지키기 위한 것이지 방법자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객은 앞의 세 문에 마음이 걸려 이 넷째 문을 놓쳤다고 할 수 있다. 주인이 제3장에서 「객은 분명히 경문을 보고서도 오히려 이런 말을 하는가」라고 꾸짖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 선예국왕대승을 비방한 바라문의 목숨을 끊다「즉시 그 목숨의 뿌리를 끊었느니라」即時に其の命根を断ず제7단 제4장, 27쪽
- 삼종의 살하살 · 중살 · 상살, 일천제를 죽이는 것은 이 셋에 들지 않는다제7단 제4장, 28쪽
- 유덕왕 · 각덕비구호법을 위해 파계의 악비구와 싸우다제7단 제7장, 28~29쪽
- 경문 스스로 그은 선「칼과 몽둥이를 지닐지라도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되느니라」刀杖を持すと雖も命を断ずべからず29쪽
살해의 죄와 방법의 죄
객은 「살해의 죄가 더해진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불법의 눈으로 보면 방법의 죄는 살해의 죄와 견줄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제7단 제9장에서 주인은 법화경에 따라 「대승 경전을 비방하는 자는 무량한 오역보다 더하다」고 하고, 열반경에 따라 「설령 오역의 공양은 허락하더라도 방법의 보시는 허락하지 않는다」고 맺었다(29쪽).
오역(五逆)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죽이고, 아라한을 죽이고, 부처의 몸에서 피를 내고, 화합한 승가를 깨뜨리는 다섯 가지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가장 무거운 업이다. 오역의 셋까지가 살해의 죄다. 그 오역을 셀 수 없이 지은 것보다 정법을 비방하는 죄가 더 무겁다는 것이 법화경의 판정이다. 그러니 죄의 무게만으로 따지면 객의 걱정은 앞뒤가 바뀌어 있다.
- 하살개미에서 모든 축생까지→ 하의 고통
- 중살범부에서 아나함까지→ 중의 고통
- 상살부모 · 아라한 · 벽지불 · 필정의 보살→ 아비대지옥
- 오역살부 · 살모 · 살아라한 · 출불신혈 · 파화합승→ 무간지옥
- 방법「대승 경전을 비방하는 자는 무량한 오역보다 더하느니라」大乗経典を謗ずる者は無量の五逆に勝れたり→ 아비대성에 떨어져 길이 나올 기약이 없다
그러나 이 경중의 판정에서 「그러므로 방법자는 죽여도 된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불법은 자비의 가르침이며, 아무리 무거운 죄를 지은 악인이라도 끝내 구제되는 길을 연 가르침이다. 묘법을 지님으로써 숙명을 바꾸고 어떠한 죄장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 법화경의 근본이다. 열반경이 방법자의 목숨을 끊으라고 설한 것은, 세간에서 가장 무거운 죄에 내려지는 벌이 사형이라는 생각을 빌려, 방법이야말로 무엇보다 미워해야 할 것임을 가르친 것이라고 읽어야 한다. 곧 방법의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방법의 마음을 죽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읽을 때 대성인 자신의 엄한 말씀도 바르게 이해된다. 문영 8년(1271) 9월 12일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를 마주하여 하신 엄한 간효(「선시초」, 287쪽)도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이 아니라, 나라를 망하게 하는 방법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위정자에게 깨우치려는 말이다. 그 말씀과 니치칸 상인의 대치실단 · 위인실단 풀이는 입정안국론 제7편 제4장 「간효의 엄한 말과 그 본뜻」에서 다루었다. 어느 쪽이든 끊어야 할 것은 방법의 마음과 방법의 행위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다쓰노구치에서 목이 베일 뻔한 것은 방법을 꾸짖은 대성인 쪽이었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방법의 죄는 무량한 오역보다 무겁다. 그러나 경문이 「목숨을 끊으라」고 한 뜻은 방법의 사람이 아니라 방법의 마음을 끊으라는 데 있으며, 그 구체적인 방법이 제3장의 「그 보시를 멈춘다」로 밝혀진다.
생명의 존엄 — 누가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가
애초에 누구에게 사람의 목숨을 마음대로 빼앗을 자격이 있는가. 부처는 「일체중생은 모두 나의 아들이다」라고 하였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중생이 부처의 자식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생명이든 그것을 살리고 죽이는 권한은 어버이인 부처에게 있을지언정 범부에게 있지 않다.
또 일념삼천의 법리에 비추어 보면, 악인이라 불리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선한 마음이 있다.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의 마음과 함께 보살과 부처의 생명도 갖추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십계호구 · 일념삼천의 당체이며, 그 생명은 그대로 법을 담는 그릇이다. 대성인은 「치병대소권실위목」에서 「선과 악은 시작 없는 옛날부터의 좌우의 법」이며 법화종의 마음은 성악 · 성선이 묘각의 자리에도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라고 하셨다(997쪽 — 원문과 풀이는 입정안국론 제7편 제4장 「생명의 존엄」).
선과 악은 한 생명 안에 처음부터 함께 갖추어져 있다. 부처의 경지에도 성악(性悪)이 갖추어져 있고, 악인의 생명에도 불계가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한 사람을 없애는 것으로 악이 없어지지 않는다. 악을 드러나게 한 인연을 바꾸고 그 생명에 갖추어진 선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불법이 악을 대하는 길이다.
생명은 수정 구슬에 비길 수 있다. 붉은 빛을 비추면 붉게 빛나고 푸른 빛을 비추면 푸르게 빛난다. 빛나는 결과만 보고 추한 빛이 비치고 있는 원인을 생각하지 않은 채 아까운 구슬을 깨뜨려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목숨을 끊는 벌은 이 어리석음을 저지르기 쉽다. 그렇다면 생명을 아름답게 비추는 빛과 추하게 비추는 빛은 무엇인가. 시대와 사회의 조건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 영향을 훨씬 넘어서 사람의 생명이 빛나는 방향을 좌우하는 것이 있으니, 부처의 정법과 부처에 맞서는 방법이 그것이다. 방법을 미워하되 사람은 버리지 않는다는 제3장의 대답은 이 생명관 위에 서 있다.
오역의 헤아림은 경론마다 다르다. 여기서는 삼승에 공통된 오역(살부 · 살모 · 살아라한 · 출불신혈 · 파화합승)을 들었다.
정법이 흥하던 시대와 형벌
일본의 역사에도 이 문제와 관련해 눈여겨볼 사실이 있다. 홍인 원년(810) 후지와라노 나카나리가 처형된 뒤로부터 보원 원년(1156) 보원의 난이 끝나고 미나모토노 다메요시가 참수되기까지 약 350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법률로는 이 시대에도 율령의 형벌이 이어져 참(斬) · 교(絞)의 두 가지 사형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특히 무거운 죄로 사형이 선고되어도 따로 칙을 내려 한 등급을 낮추어 먼 곳으로 유배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 시대는 전교대사가 사가 천황의 귀의를 받고 남도 육종의 고승들과 궁중에서 법론을 벌여 법화경이 가장 뛰어나다는 뜻을 드높인 무렵에서 시작된다. 법화 적문의 계단이 세워진 것은 전교대사가 입멸한 뒤였지만, 히에이잔은 불교계 전체의 중심이 되어 헤이안 문화를 꽃피웠다. 정법이 흥하던 시대와 사형이 멈춘 시대가 겹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사형이 다시 시작된 보원 원년 무렵은 조정과 귀족 중심의 율령 체제가 무사의 등장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때였다. 헤이안의 번영과 평화는 지나간 일이 되고, 전란과 천재지변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것이 말법 사상이었으며, 정토의 가르침이 일본 불교의 정통인 천태 불교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다. 다메요시가 처형될 무렵 법연은 스물세 살로, 구로다니의 에이쿠(叡空) 밑에서 법연방 겐쿠(源空)라 이름하고 겐신(혜심승도)의 『왕생요집』을 처음 읽었다고 전한다. 법연이 전수염불을 넓히기 시작한 것은 마흔세 살 때라고 하니 시기는 조금 뒤지만, 큰 흐름으로 보면 이미 겐신 등의 정토 사상이 상당히 퍼져 있었다. 대성인 당시의 가마쿠라 시대에 사형은 참수가 원칙이었고, 모반인 등에게는 드물게 목을 내거는 효수가 행해졌다. 객이 「참죄」라고 말할 때 떠올린 것은 이러한 형벌이었다.
- 홍인 원년(810)후지와라노 나카나리 처형, 이후 사형 집행이 멈추었다고 전한다
- 9세기 초전교대사, 사가 천황의 귀의 · 남도와의 법론 · 법화 적문 계단(입멸 뒤 건립)
- 약 350년사형 선고는 칙으로 한 등급을 낮추어 유배
- 보원 원년(1156)보원의 난 뒤 미나모토노 다메요시 참수 — 사형의 재개
- 같은 무렵법연 23세, 『왕생요집』을 읽다
- 법연 43세전수염불을 넓히기 시작
- 가마쿠라 시대사형은 참수가 원칙
객의 물음은 이렇게 하여 단순한 교리 문제를 넘어선다. 정법이 흥할 때 사람의 생명이 존중되고, 방법이 퍼질 때 세상이 거칠어진다는 것은 입정안국론 전체가 말하는 의정불이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방법을 끊는 일이 다시 생명을 해치는 일이 된다면 그것은 입정안국의 뜻에 어긋난다. 주인은 제3장에서 이 매듭을 「그 보시를 멈춘다」는 한마디로 푼다.
본문
則ち大集経に云く「頭を剃り袈裟を著せば持戒及び毀戒をも、天人彼を供養す可し、則ち我を供養するに為りぬ、是れ我が子なり若し彼を撾打する事有れば則ち我が子を打つに為りぬ、若し彼を罵辱せば則ち我を毀辱するに為りぬ」 料り知んぬ善悪を論ぜず是非を択ぶこと無く僧侶為らんに於ては供養を展ぶ可し、何ぞ其の子を打辱して忝くも其の父を悲哀せしめん、彼の竹杖の目連尊者を害せしや永く無間の底に沈み、提婆達多の蓮華比丘尼を殺せしや久しく阿鼻の焔に咽ぶ、先証斯れ明かなり後昆最も恐あり、謗法を誡むるには似たれども既に禁言を破る此の事信じ難し如何が意得んや。
곧 대집경에 이르기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다면 계를 지닌 이든 계를 깨뜨린 이든 하늘과 사람은 그를 공양해야 하느니라. 그것이 곧 나를 공양하는 것이 되느니라. 이는 나의 아들이니, 만일 그를 때리는 일이 있으면 곧 나의 아들을 때리는 것이 되며, 만일 그를 꾸짖어 욕보이면 곧 나를 헐뜯어 욕보이는 것이 되느니라」고 하였느니라. 이로써 헤아려 알겠도다. 선악을 논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말며, 승려인 이에게는 공양을 펴야 하느니라. 어찌 그 아들을 때리고 욕보여 황송하게도 그 아버지를 슬프게 하겠는가. 저 죽장(竹杖)외도가 목련존자를 해친 것은 길이 무간의 밑바닥에 잠기고, 제바달다가 연화비구니를 죽인 것은 오래도록 아비의 불꽃에 목메었느니라. 앞선 증거가 이처럼 분명하니 뒷사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바이니라. 방법을 경계하는 것 같으나 이미 부처의 금언(禁言)을 깨뜨리는 것이니, 이 일은 믿기 어렵도다.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는가.
어구 풀이
- 大集経대집경
- 『대방등대집경』. 제2단 제3장 · 제7장에서 이미 재난 유래의 경증으로 인용된 경이다. 객은 같은 경을 이번에는 승려를 감싸는 근거로 끌어온다.
- 頭を剃り袈裟を著せば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다면
- 출가한 승니의 겉모습을 말한다. 「가사(袈裟)」는 출가자가 입는 법의로, 본래 「탁한 색」이라는 뜻의 말이다.
- 持戒及び毀戒をも계를 지닌 이든 계를 깨뜨린 이든
- 「지계(持戒)」는 계율을 지키는 것, 「훼계(毀戒)」는 계율을 깨뜨리는 것이다. 계를 지키든 깨뜨리든 겉모습이 출가자라면 공양하라는 것이 객이 내세운 경문의 요점이다.
- 撾打때리다
- 「과(撾)」도 「타(打)」도 치다 · 때리다의 뜻이다.
- 罵辱・毀辱꾸짖어 욕보임 · 헐뜯어 욕보임
- 승려를 욕하는 것이 곧 부처를 욕하는 것이 된다는 문맥이다.
- 料り知んぬ헤아려 알겠도다
- 경문을 근거로 하여 자기의 결론을 끌어내는 말이다. 여기서부터 객 자신의 추론이 시작된다.
- 供養を展ぶ可し공양을 펴야 한다
- 「펴다(展ぶ)」는 공양을 올린다는 뜻이다.
- 其の子を打辱して忝くも其の父を悲哀せしめん그 아들을 때리고 욕보여 황송하게도 그 아버지를 슬프게 하리오
- 승니를 부처의 아들, 부처를 그 아버지에 비긴 말이다. 승니를 꾸짖는 것은 아버지인 석존을 슬프게 하는 일이라는 객의 주장이다.
- 竹杖の目連尊者を害せし죽장외도가 목련존자를 해친 일
- 「죽장(竹杖)」은 죽장외도, 곧 고대 인도의 불교 밖 수행자의 한 무리다. 목련은 마하목건련의 준말로 석존의 십대 성문 제자 가운데 신통제일이다. 석존이 입멸하기 전 목련이 나열성(羅閲城)에서 탁발하던 중 죽장외도에게 둘러싸였다. 한 번은 몸을 피했으나, 이것이 과거세의 숙업임을 알고 스스로 외도에게 죽임을 당해 그 업을 멸했다고 전한다.
- 無間の底・阿鼻の焔무간의 밑바닥 · 아비의 불꽃
- 무간지옥 · 아비지옥은 같은 지옥이다. 「아비」는 범어 아비치(Avīci)의 음사로 「무간」이라 번역하며, 고통이 끊일 사이가 없다는 뜻이다. 팔대지옥 가운데 가장 깊다.
- 提婆達多の蓮華比丘尼を殺せし제바달다가 연화비구니를 죽인 일
- 연화비구니는 화색비구니 · 연화녀라고도 하며 석존 재세의 제자다. 『대지도론』 권14에 따르면, 석존을 깔아 죽이려고 산에서 바위를 굴린 제바달다를 마주하여 그 그릇됨을 꾸짖었기 때문에 제바달다의 주먹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 先証앞선 증거
-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일로 드러난 증거, 곧 현증이다. 객은 대집경의 문증에 두 가지 현증을 더해 자기 주장을 굳힌다.
- 後昆뒷사람
- 「후(後)」도 「곤(昆)」도 「뒤」라는 뜻이다. 후세의 사람.
- 禁言금언
- 부처가 금하여 경계한 말. 여기서는 대집경의 「승니를 때리거나 욕보이지 말라」는 경계를 가리킨다. 제7단 제10장에서 주인이 「여래의 성제의 금언을 등진다」고 한 말을 객이 거꾸로 주인에게 돌려준 것이다.
객이 세운 두 번째 근거
제1장의 물음이 「살생의 죄」에 관한 것이었다면, 제2장의 물음은 「승려를 해치는 죄」에 관한 것이다. 객은 대집경을 들어,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이는 계를 지키든 깨뜨리든 부처의 아들이므로 공양해야 하며, 그를 때리거나 욕하는 것은 곧 부처를 때리고 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방법을 꾸짖는다는 명분으로 승니를 벌하는 것은 부처를 슬프게 하는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객의 말은 논리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먼저 경문이라는 문증을 들고, 그 경문에서 「선악을 논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말고 승려라면 공양해야 한다」는 일반 원칙을 끌어낸다. 이어서 죽장외도와 제바달다가 성자를 해치고 무간지옥에 떨어졌다는 두 가지 현증을 더한다. 그리고 「방법을 경계하는 듯하나 이미 부처의 금언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결론 짓는다. 문증과 현증을 갖추었으니 얼핏 보면 바른 말 같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은, 이 장의 本文은 처음부터 끝까지 객의 말이라는 점이다. 「승려라면 선악을 논하지 말고 공양하라」는 것은 대성인의 주장이 아니라 객의 추론이며, 주인은 다음 장에서 이 추론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그 잘못은 어디에 있는가.
- 문증대집경「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다면 계를 지닌 이든 계를 깨뜨린 이든 … 이는 나의 아들이니라」頭を剃り袈裟を著せば持戒及び毀戒をも … 是れ我が子なり
- 일반화「선악을 논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말며 승려인 이에게는 공양을 펴야 하느니라」善悪を論ぜず是非を択ぶこと無く僧侶為らんに於ては供養を展ぶ可し
- 현증 둘죽장외도가 목련존자를 해쳐 무간에 잠기다제바달다가 연화비구니를 죽여 아비의 불꽃에 목메다
- 결론「방법을 경계하는 것 같으나 이미 금언을 깨뜨리는 것」謗法を誡むるには似たれども既に禁言を破る
같은 대집경이 말하는 「악비구」
객의 첫 번째 잘못은 같은 대집경의 다른 문을 잊은 데 있다. 제2단 제3장에서 주인은 대집경을 들어 정법이 숨어 사라질 때의 재난을 길게 보였는데, 그 문은 이렇게 맺어졌다.
是くの如き不善業の悪王・悪比丘、我が正法を毀壊し、天人の道を損減し、諸天善神・王の衆生を悲愍する者、此の濁悪の国を棄てて皆悉く余方に向わん
이와 같은 불선업의 악왕과 악비구가 나의 정법을 허물어뜨리고 하늘과 사람의 길을 덜어 줄이면, 제천 선신과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왕들이 이 탁하고 악한 나라를 버리고 모두 다른 곳으로 가리라.
「비구」는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가사를 입은 남자, 곧 승려다. 그런데 바로 그 대집경이 정법을 허물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비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다는 것만으로 모두 공양받을 부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한」 이들
다른 경들은 이 점을 더욱 분명히 한다. 제3단에서 주인은 악한 승려를 증명하는 경문으로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을 차례로 들었다. 인왕경은 이렇게 설한다.
諸の悪比丘多く名利を求め、国王・太子・王子の前に於て、自ら破仏法の因縁・破国の因縁を説かん
여러 악비구가 명리를 많이 구하여 국왕 · 태자 · 왕자 앞에서 스스로 불법을 깨뜨리는 인연과 나라를 깨뜨리는 인연을 설하리라.
법화경 권지품은 「악세 가운데의 비구는 사악한 지혜로 마음이 굽어 있다」고 하고, 이어서 「혹은 아련야에서 누더기를 입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스스로 참된 길을 행한다고 여기며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이가 있으리라고 설한다. 그리고 열반경은 이렇게 설한다.
袈裟を著すと雖も、猶猟師の細めに視て徐に行くが如く、猫の鼠を伺うが如し。常に是の言を唱えん、我羅漢を得たりと。外には賢善を現し、内には貪嫉を懐く。唖法を受けたる婆羅門等の如し。実には沙門に非ずして、沙門の像を現じ、邪見熾盛にして正法を誹謗せん
가사를 입었을지라도 마치 사냥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걷는 것과 같고, 고양이가 쥐를 엿보는 것과 같으리라. 늘 「나는 아라한을 얻었다」고 말하리라. 겉으로는 어질고 착함을 드러내나 안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품으리라. 벙어리 법을 받은 바라문과 같으리라. 실로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드러내고, 사견이 치성하여 정법을 비방하리라.
- 대집경「이와 같은 불선업의 악왕과 악비구가 나의 정법을 허물어뜨리고」是くの如き不善業の悪王・悪比丘、我が正法を毀壊し19쪽
- 인왕경「여러 악비구가 명리를 많이 구하여 … 불법을 깨뜨리는 인연과 나라를 깨뜨리는 인연을 설하리라」諸の悪比丘多く名利を求め … 破仏法の因縁・破国の因縁を説かん21쪽
- 법화경「악세 가운데의 비구는 사악한 지혜로 마음이 굽어」悪世の中の比丘は邪智にして心諂曲に21쪽
- 열반경「실로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드러내고」実には沙門に非ずして、沙門の像を現じ21쪽
이 경문들을 아울러 보면, 객이 든 대집경의 문은 정법을 지니는 승려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법연을 비롯한 정토종의 승려들과 대성인 당시의 율승 등은 열반경이 말하는 「실로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드러낸」 이들에 해당하며, 대집경의 「이는 나의 아들이다」라는 경계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정법을 비방하고 나라를 깨뜨리는 인연을 설하는 쪽에 서 있으므로, 부처는 오히려 그러한 악비구를 엄히 꾸짖으라고 명했다. 제3단 제5장 本文의 끝에서 주인은 이 열반경을 받아 「악한 승려를 경계하지 않고서 어찌 선한 일을 이루겠는가」라고 맺은 바 있다.
두 가지 「앞선 증거」의 실상
객의 두 번째 잘못은 현증을 거꾸로 적용한 데 있다. 목련존자는 석존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바른 불법을 닦은 성승이다. 그를 해친 것은 불교 밖의 외도였다. 연화비구니 역시 불제자로서, 석존을 해치려고 바위를 굴린 제바달다의 악역을 바른 뜻으로 엄하게 꾸짖었기 때문에 그의 주먹에 맞아 죽었다. 두 사건 모두에서 해를 입은 쪽은 정법을 지닌 이였고, 해를 가한 쪽은 정법에 맞선 이였다.
그렇다면 부처의 정법을 등지고 법화경을 비방하는 말법의 악한 승려들은 죽장외도나 제바달다에게 견줄 수는 있어도 목련이나 연화비구니에게 견줄 수는 없다. 객의 비유는 방향이 반대로 놓여 있다. 정법을 지니는 이를 해친 자가 무간에 떨어진다는 선증은, 방법의 승려를 꾸짖는 일을 막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정법을 지니는 이를 박해하는 일을 경계하는 근거다.
두 선증에는 덧붙여 읽을 점이 있다. 목련존자는 한 번 외도의 포위를 벗어났으나, 그것이 과거세의 숙업임을 알고 스스로 그 해를 받아 업을 멸했다고 전한다. 성자의 죽음조차 삼세에 걸친 인과 속에서 설해지는 것이다. 또 연화비구니를 죽인 제바달다는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전하지만, 법화경 제바달다품에서 석존은 그 제바달다가 과거세에 자신에게 법화경을 가르친 스승이었다고 밝히고, 미래에 천왕여래(天王如来)가 되리라는 수기를 주었다. 가장 무거운 죄를 지은 이에게도 성불의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 법화경의 가르침이다. 정법을 해친 죄는 그만큼 무겁지만, 그 죄를 지은 사람마저 끝내 버리지 않는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다는 것이 제3장의 「오직 방법을 미워한다」는 대답의 바탕이 된다.
- 죽장외도 → 목련존자
- 해친 쪽
- 불교 밖의 외도
- 해를 입은 쪽
- 신통제일의 성승(숙업을 알고 스스로 받다)
- 결과
- 길이 무간의 밑바닥에 잠기다
- 제바달다 → 연화비구니
- 해친 쪽
- 석존을 해치려 한 악역의 비구
- 해를 입은 쪽
- 그 그릇됨을 꾸짖은 비구니
- 결과
- 오래도록 아비의 불꽃에 목메다
「선악을 논하지 않는다」는 태도의 위험
객의 추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선악을 논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말라」는 일반화다. 입정안국론은 처음부터 바로 이 태도를 재난의 뿌리로 지목해 왔다. 제3단 제2장에서 주인은, 불각이 용마루를 잇고 승려가 대숲과 갈대처럼 많아 불법이 흥하는 듯 보이지만 법사는 아첨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왕과 신하는 깨닫지 못해 사정(邪正)을 분별하지 못한다고 깨우쳤다(20~21쪽).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으면 누구든 공양하라는 객의 말은, 겉모습만 보고 법의 정사를 묻지 않는 그 태도를 경문의 이름으로 굳히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정법을 지니는 이는 방법의 승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제6단 제3장에서 대성인은 열반경을 들어 그 정신을 이렇게 보이셨다.
若し善比丘あって、法を壊ぶる者を見て、置いて呵責し駈遣し挙処せずんば、当に知るべし、是の人は仏法の中の怨なり。若し能く駈遣し呵責し挙処せば、是れ我が弟子、真の声聞なり
만일 선한 비구가 있어 법을 깨뜨리는 자를 보고도 내버려 두어 꾸짖고 쫓아내고 그 죄를 들추어 다스리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불법 가운데의 원수이니라. 만일 능히 쫓아내고 꾸짖고 그 죄를 들추어 다스린다면, 이는 나의 제자요 참된 성문이니라.
여기서 부처가 명한 것은 꾸짖고(呵責) 쫓아내고(駈遣) 죄를 들추어 다스리는(挙処) 일이다. 어느 것도 목숨을 해치는 일이 아니다. 방법을 보고 잠자코 있는 것이 도리어 「불법 가운데의 원수」가 된다. 대성인이 방법을 꾸짖으신 것은 승니를 때리고 욕보이려 한 것이 아니라, 이 경문대로 「불법 가운데의 원수」라는 꾸짖음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객은 꾸짖음과 해침을 하나로 섞어 버렸고, 주인은 다음 장에서 그 둘을 갈라 「불자를 금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방법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계를 지닌 이든 깨뜨린 이든」에 대한 대성인의 판정
객이 내세운 「계를 지닌 이든 깨뜨린 이든 공양하라」는 원칙에 대해,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정반대의 판정을 분명히 내리셨다.
法華経を謗ぜん者をば正像末の三時に亘りて持戒の者をも無戒の者をも破戒の者をも共に供養すべからず、供養せば必ず国に三災七難起り供養せし者も必ず無間大城に堕すべきなり
법화경을 비방하는 자는 정법 · 상법 · 말법의 세 때에 걸쳐 계를 지닌 자든 계가 없는 자든 계를 깨뜨린 자든 함께 공양해서는 안 되느니라. 공양하면 반드시 나라에 삼재칠난이 일어나고, 공양한 자도 반드시 무간대성에 떨어지리라.
공양의 기준은 계를 지키느냐 깨뜨리느냐에 있지 않고, 정법을 비방하느냐 아니냐에 있다. 대집경이 「계를 지닌 이든 깨뜨린 이든」이라 한 것은 정법을 지니는 승려에 대해 겉으로 드러난 계행의 허물을 따지지 말라는 뜻이며, 정법을 비방하는 이에게까지 공양하라는 뜻이 아니다. 제7단 제9장의 「설령 오역의 공양은 허락하더라도 방법의 보시는 허락하지 않는다」(29쪽)와 「교기시국초」의 이 판정은 하나로 이어진다. 「주군이입차법문면여동죄사」에도 「다만 법화경의 원수는 대자대비의 보살도 공양하면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진다」(1133쪽)는 말씀이 있다.
말법의 승니와 「위로부터의」 타락
그렇다면 왜 정법을 지니는 승려와 방법의 승려를 가려야 하는가.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말법에 불법이 얼마나 어지러워지는지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世間の浅き事すら猶あやまりやすし何に況や出世の深法誤なかるべしや、犢子・方広が聡敏なりし猶を大小乗経にあやまてり、無垢・摩沓が利根なりし権実・二教を弁えず、正法一千年の内、在世も近く月氏の内なりし・すでにかくのごとし、況や尸那・日本等は国もへだて音もかはれり人の根も鈍なり寿命も日あさし貪瞋癡も倍増せり、仏世を去つてとし久し仏経みなあやまれり誰れの智解か直かるべき
세간의 얕은 일조차 오히려 그르치기 쉬우니, 하물며 출세간의 깊은 법이 어찌 그르침이 없겠는가. 독자 · 방광은 총명하였으나 오히려 대승 · 소승의 경을 그르쳤고, 무구 · 마답은 근기가 날카로웠으나 권교와 실교의 두 가르침을 분별하지 못하였느니라. 정법 일천 년 동안, 부처의 재세도 가깝고 월지 안이었는데도 이미 이와 같았느니라. 하물며 중국 · 일본 등은 나라도 떨어져 있고 말소리도 다르며, 사람의 근기도 둔하고 수명도 짧으며 탐 · 진 · 치도 배로 늘었느니라. 부처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어 불경이 모두 잘못 전해졌으니 누구의 지혜와 이해가 바르겠는가.
이어서 대성인은 열반경의 「말법에는 정법의 자는 손톱 위의 흙, 방법의 자는 시방의 흙」, 법멸진경의 「방법의 자는 항하의 모래, 정법의 자는 한두 개의 작은 돌」을 들고, 「세간의 죄로 악도에 떨어지는 자는 손톱 위의 흙, 불법으로 말미암아 악도에 떨어지는 자는 시방의 흙이니, 속인보다 승려가, 여자보다 비구니가 더 많이 악도에 떨어지리라」고 맺으셨다(「개목초」, 199쪽).
말법에 방법은 세간의 악보다 불법의 이름 아래에서 더 많이 일어나며, 속인보다 출가자에게서 더 많이 일어난다. 가사를 입었다는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부처의 아들로 받드는 것은 바로 이 시대의 실상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주인이 승니를 해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인이 다음 장에서 내놓는 길은 「때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아닌, 「보시를 멈추는 것」이다.

본문
主人の云く、客明に経文を見て猶斯の言を成す心の及ばざるか理の通ぜざるか、全く仏子を禁むるには非ず唯偏に謗法を悪むなり、夫れ釈迦の以前仏教は其の罪を斬ると雖も能忍の以後経説は則ち其の施を止む、然れば則ち四海万邦一切の四衆其の悪に施さず皆此の善に帰せば何なる難か並び起り何なる災か競い来らん。
주인이 말하기를, 객은 분명히 경문을 보고서도 오히려 이런 말을 하니, 마음이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 이치가 통하지 않는 것인가. 결코 불자(仏子)를 금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한결같이 방법을 미워하는 것이니라. 무릇 석가 이전의 불교는 그 죄를 베었으나, 능인(能忍) 이후의 경설은 곧 그 보시를 멈추느니라. 그러한즉 사해만방(四海万邦)의 일체의 사중(四衆)이 그 악에 보시하지 않고 모두 이 선에 돌아온다면, 어떠한 난이 아울러 일어나며 어떠한 재앙이 다투어 오겠는가.
어구 풀이
- 客明に経文を見て猶斯の言を成す객은 분명히 경문을 보고서도 오히려 이런 말을 한다
- 제7단에서 열반경 · 인왕경 등의 경문을 낱낱이 들어 보였는데도 같은 의문을 되풀이하느냐는 꾸짖음이다. 열반경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했고, 같은 대집경이 「악비구」를 말했음을 가리킨다.
- 心の及ばざるか理の通ぜざるか마음이 미치지 못하는가, 이치가 통하지 않는가
- 경문의 뜻을 헤아리는 마음이 모자라는가, 아니면 경문의 도리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가라는 뜻이다. 객이 경문의 겉에 머물러 그 근본 뜻에 이르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 仏子を禁むる불자를 금하다
- 「불자」는 부처의 아들, 곧 정법을 지니는 출가 · 재가의 제자다. 「금하다(禁むる)」는 경계하여 막는다는 뜻이다. 제2장에서 객이 대집경의 「이는 나의 아들이다」를 든 데 대한 대답이다.
- 唯偏に謗法を悪むなり오직 한결같이 방법을 미워한다
- 미워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방법이라는 뜻이다. 이 한 구절이 제8단 전체의 축이다.
- 釈迦の以前仏教は其の罪を斬る석가 이전의 불교는 그 죄를 베었다
- 석존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법을 설하기 훨씬 이전의 불교에서는 방법의 사람을 베었다는 뜻이다. 열반경에 설해진 선예국왕 · 유덕왕의 이야기를 가리키며, 이것들은 모두 석존의 인위(因位)의 수행으로 설해졌다.
- 能忍능인
- 「能仁」이라고도 쓰며 석존을 말한다. 「능히 난을 참는다」는 뜻으로, 부처가 비방과 박해를 참으면서도 일체중생을 구하려는 대자비의 정신을 나타낸다. 「선무외삼장초」에 「석가여래의 이름을 능인이라 하여 이 국토에 드시니, 일체중생의 비방을 탓하지 않고 잘 참으시기 때문이니라」(888쪽)라고 했다.
- 経説は則ち其の施を止む경설은 곧 그 보시를 멈춘다
- 석존 이후에 설해진 경은 방법자를 베는 것이 아니라 방법자에게 보시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는 뜻이다. 제7단 제3장의 「오직 한 사람(일천제)을 제외하고 그 밖의 모든 이에게 보시하라」는 열반경의 문이 그 근거다.
- 施보시
- 재물이나 음식 · 의복 · 토지 등을 베풀어 올리는 것. 대성인 당시에는 절과 승려에 대한 시주 · 기진 · 장원의 기부를 포함했다.
- 四海万邦사해만방
- 「사해」는 사방의 바다로 둘러싸인 천하, 「만방」은 모든 나라다. 일본 한 나라에 그치지 않는 넓은 세계를 가리킨다.
- 一切の四衆일체의 사중
- 「사중」은 불교 교단을 이루는 네 무리, 곧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다. 출가와 재가, 남녀를 모두 아우른다. 제7단 제6장에서 열반경이 정법을 「여러 왕 · 대신 · 재상 및 사부의 중」에게 부촉했다고 한 그 「사부의 중」이다.
- 其の悪に施さず그 악에 보시하지 않다
- 「그 악」은 방법, 또는 방법의 사람이다.
- 此の善に帰せば이 선에 돌아온다면
- 「이 선」은 정법이다. 보시를 멈추는 것과 정법에 돌아오는 것이 한 쌍으로 말해져 있다.
- 何なる難か並び起り何なる災か競い来らん어떠한 난이 아울러 일어나며 어떠한 재앙이 다투어 오겠는가
- 방법이 그치고 정법에 돌아온다면 삼재칠난은 일어날 까닭이 없다는 뜻이다. 제1단에서 객이 탄식한 천변지요 · 기근 · 역병에 대한 최종 대답이 여기서 예고된다.
두 물음에 대한 한 번의 대답
이 장은 앞 두 장의 객의 물음에 대한 주인의 대답이다. 대답은 세 줄로 짧지만, 두 물음에 하나하나 맞추어져 있다.
먼저 제2장의 물음, 곧 방법을 금한다며 승니를 꾸짖는 것은 불자를 꾸짖는 것이며 그 아버지인 부처를 슬프게 하는 일이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결코 불자를 금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한결같이 방법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꾸짖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방법이다. 정법을 지니는 승려라면 계행에 허물이 있더라도 꾸짖을 일이 아니며, 오히려 공양해야 한다. 그러나 방법의 승려는 가사를 입었더라도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한」 이들이므로 대집경이 말하는 「나의 아들」에 들지 않는다.
이어서 제1장의 물음, 곧 경문대로 참죄에 처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석가 이전의 불교는 그 죄를 베었으나, 능인 이후의 경설은 곧 그 보시를 멈춘다」고 답한다. 석존 이전에는 유덕왕 · 선예국왕처럼 방법자를 벤 예가 있었지만, 석존 이후에는 보시를 멈추는 것을 방법 대치의 요체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주인은 방법을 끊는 방법을 분명히 정한다.
「석가 이전의 불교」 — 인위의 수행으로 설해진 이야기
「석가 이전의 불교는 그 죄를 베었다」는 것은, 석존이 인도에 출현하여 법을 설한 것보다 훨씬 오래전의 불교에서는 방법의 사람을 베었다는 뜻이다. 선예국왕도 유덕왕도 그러한 예이며, 둘 다 석존이 부처가 되기 전에 닦은 인위의 수행으로 설해져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생길 수 있다. 석존 이전에 불교가 있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불법은 이 지구 위의 일, 한 시대의 일만을 설하는 가르침이 아니다. 불법은 대우주 그 자체를 묘법의 당체라고 설하며, 삼세에 걸쳐 또 시방에 걸쳐 불국토를 설한다. 석존이 이 세상에서 처음 불법을 설한 것이 아니라, 무수한 과거에 무수한 부처가 출현하여 같은 법을 설했다는 것이 경의 세계관이다. 대성인은 「센니치니부인답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法華経は十方三世の諸仏の御師なり、十方の仏と申すは東方善徳仏・東南方無憂徳仏.南方栴檀徳仏・西南方宝施仏・西方無量明仏・西北方華徳仏・北方相徳仏.東北方三乗行仏・上方広衆徳仏.下方明徳仏なり、三世の仏と申すは過去・荘厳劫の千仏・現在・賢劫の千仏.未来・星宿劫の千仏・乃至華厳経・法華経.涅槃経等の大小・権実・顕密の諸経に列り給へる一切の諸仏.尽十方世界の微塵数の菩薩等も・皆悉く法華経の妙の一字より出生し給へり
법화경은 시방 삼세 제불의 스승이니라. 시방의 부처라 함은 동방의 선덕불, 동남방의 무우덕불, 남방의 전단덕불, 서남방의 보시불, 서방의 무량명불, 서북방의 화덕불, 북방의 상덕불, 동북방의 삼승행불, 상방의 광중덕불, 하방의 명덕불이니라. 삼세의 부처라 함은 과거 장엄겁의 천불, 현재 현겁의 천불, 미래 성수겁의 천불, 나아가 화엄경 · 법화경 · 열반경 등 대소 · 권실 · 현밀의 여러 경에 나란히 계신 일체의 제불, 온 시방세계의 미진수 보살들도 모두 다 법화경의 묘(妙)라는 한 글자에서 나오셨느니라.
이것은 부처의 꿰뚫는 눈으로 본 세계이며, 범부가 지식으로 다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법은 영원한 생명에 서서 과거 · 현재 · 미래에 걸친 생명의 이어짐을 엄밀하게 설한다. 이것 또한 사람이 자기 생명으로 체험하여 깨달을 수밖에 없는 문제다.
삼세에 걸친 생명관
이렇게 생각하면, 석존의 전생 이야기를 터무니없는 옛이야기라고 비웃을 수만은 없다. 석존이 미래에 관해 설한 것, 곧 오오백세의 예언, 말법 세상의 모습에 대한 예언, 부법장의 스승들에 관한 예언 등이 모두 들어맞았다는 사실로 보아, 과거에 관해 설한 것도 사실로 믿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인도에서 삼세의 생명관은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생각이었다. 석존이 과거에 선예국왕이었고 유덕왕으로 출현하기도 했다고 설해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불교 밖의 가르침조차 삼세를 말했음을 이렇게 밝히셨다.
月氏の外道・三目八臂の摩醯首羅天・毘紐天・此の二天をば一切衆生の慈父・悲母・又天尊・主君と号す、迦毘羅・漚楼僧佉・勒娑婆・此の三人をば三仙となづく、此等は仏前八百年・已前已後の仙人なり、此の三仙の所説を四韋陀と号す六万蔵あり
월지의 외도는 눈이 셋이고 팔이 여덟인 마혜수라천과 비뉴천, 이 두 하늘을 일체중생의 자애로운 아버지 · 어머니, 또 천존 · 주군이라 부르느니라. 가비라 · 구루승거 · 늑사바, 이 세 사람을 삼선(三仙)이라 이름하니, 이들은 부처보다 팔백 년 앞뒤의 선인이니라. 이 삼선이 설한 것을 사위타(四韋陀)라 하니 육만 장(蔵)이 있느니라.
이어서 대성인은 그 외도들이 혹은 과거의 두 생 · 세 생 내지 일곱 생, 팔만 겁을 비추어 보고, 또 미래의 팔만 겁을 안다고 했다고 적으셨다. 외도조차 이러했으니, 불교가 삼세에 걸친 생명관을 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과거세를 꿰뚫어 보는 힘은 소승의 성자인 아라한이 얻는다는 육신통 가운데 숙명통에 해당한다. 대성인의 불법은 그러한 신통으로 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法門をもて邪正をただすべし利根と通力とにはよるべからず
법문으로써 사정(邪正)을 바로잡아야 하며, 날카로운 근기와 신통력에 의지해서는 안 되느니라.
신통을 내세워 사람을 이끄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마(魔)의 권속으로 판정된다. 바른 불법의 삼세관은 「개목초」에 인용된 다음 경문에 담겨 있다.
過去の因を知らんと欲せば其の現在の果を見よ未来の果を知らんと欲せば其の現在の因を見よ
과거의 인을 알고자 한다면 그 현재의 과를 보라. 미래의 과를 알고자 한다면 그 현재의 인을 보라.
삼세에 걸친 생명의 인과는 엄연한 사실이다. 현재의 생명에는 과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고, 그것이 동시에 미래의 인이 된다. 그러므로 과거의 인으로 말미암아 과로 나타난 현재의 처지를 어떻게 마주하고, 그것을 바꾸어 미래에 행복해질 인으로 삼아 가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에 생명의 본질과 우주의 실상을 끝까지 밝히고 그것을 실천의 길로 만든 불법이 요구된다. 불법을 모르면 인생은 숙명대로 떠밀려 다니는 나뭇잎과 같다. 불법은 그 숙명을 바꾸는 법이며, 비유하면 파도를 가르고 나아가는 배와 같다.
삼세의 생명관은 사이트의 핵심 개념 「업」에서 업과 과보의 연속이라는 관점으로 더 자세히 다룬다.
인위의 수행과 구원의 부처
석존의 인위를 선예국왕이라 하고 유덕왕이라 하는 것은 모두 시성정각(始成正覚)의 부처의 경지에서 설한 것이며, 수적화타(垂迹化他), 곧 중생을 이끌기 위해 자취를 드리운 것이다. 불법을 넓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이러한 인위의 수행이 설해졌다. 「관심의 본존초」는 본문의 탈익 삼단을 설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밝힌다.
又本門十四品の一経に序正流通有り涌出品の半品を序分と為し寿量品と前後の二半と此れを正宗と為す其の余は流通分なり、其の教主を論ずれば始成正覚の釈尊に非ず所説の法門も亦天地の如し十界久遠の上に国土世間既に顕われ一念三千殆んど竹膜を隔つ、又迹門並びに前四味・無量義経・涅槃経等の三説は悉く随他意の易信易解・本門は三説の外の難信難解・随自意なり
또 본문 십사품의 한 경에 서분 · 정종분 · 유통분이 있으니, 용출품의 반 품을 서분으로 하고 수량품과 그 앞뒤의 두 반 품을 정종분으로 하며 그 나머지는 유통분이니라. 그 교주를 논하면 시성정각의 석존이 아니요, 설하신 법문도 하늘과 땅만큼 다르니라. 십계가 구원한 위에 국토세간이 이미 나타나 일념삼천이 거의 대나무 속껍질 한 겹을 사이에 둘 뿐이니라. 또 적문과 앞의 사미 · 무량의경 · 열반경 등 삼설은 모두 수타의의 믿기 쉽고 알기 쉬운 가르침이요, 본문은 삼설 밖의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수자의의 가르침이니라.
부처는 구원의 옛날에 성도한 이래 늘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법을 설해 왔다(「상주차설법(常住此説法)」). 다만 석존의 불법은 구원 오백진점겁의 성도까지만 설하고 화타의 측면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대성인의 불법에 이르러 비로소 시작도 끝도 없는 부처의 생명이 밝혀지고, 참된 십계호구 · 일념삼천의 법문이 세워진다.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은 이렇게 설한다.
釈迦如来・五百塵点劫の当初・凡夫にて御坐せし時 我が身は地水火風空なりと知しめして即座に悟を開き給いき、後に化他の為に世世・番番に出世・成道し在在・処処に八相作仏し王宮に誕生し樹下に成道して始めて仏に成る様を衆生に見知らしめ四十余年に方便教を儲け衆生を誘引す
석가여래는 오백진점겁의 당초에 범부로 계셨을 때, 내 몸이 지 · 수 · 화 · 풍 · 공임을 아시고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여셨느니라. 뒤에 화타를 위해 세세 · 번번이 세상에 나와 성도하고, 곳곳에서 팔상으로 부처를 이루어, 왕궁에 태어나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여 비로소 부처가 되는 모습을 중생에게 보여 알게 하고, 사십여 년 동안 방편의 가르침을 마련하여 중생을 이끌었느니라.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여기의 「오백진점겁의 당초」를 구원원초의 뜻으로, 「석가여래」를 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여래로 읽는다. 불교는 결코 지금부터 약 삼천 년 전 인도에 출현한 석존이 처음 설한 것이 아니라, 이 우주와 함께 시작 없는 영원한 옛날부터 늘 있어 왔다. 「석가 이전의 불교」라는 말은 이 넓은 시간 위에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오랜 불교의 역사 속에서, 석존 이전에는 방법자를 베었다는 이야기가 인위의 수행으로 설해졌을 뿐, 석존 이후의 경설은 다른 길을 정했다는 것이 이 장의 요점이다.
「능인 이후의 경설은 그 보시를 멈춘다」
이 장의 중심은 「능인 이후의 경설은 곧 그 보시를 멈춘다」는 한 구절이다. 석존 이후에는 방법을 금하는 가장 곧은 길로서 방법에 대한 보시를 멈춘다. 이것이 불법을 깨뜨리고 나라를 깨뜨리는 근원을 끊는 요체다.
먼저 「능인」이라는 이름에 주목해야 한다. 능인은 「능히 참는다」는 뜻이다. 「선무외삼장초」에 「석가여래의 이름을 능인이라 하여 이 국토에 드시니, 일체중생의 비방을 탓하지 않고 잘 참으시기 때문이니라」(888쪽)라고 했다. 일체중생의 비방과 박해를 참으면서 끝내 구하려는 부처, 그 부처 이후의 경설이 방법자의 목숨을 문제 삼지 않고 방법을 떠받치는 보시를 문제 삼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 세상에 출현한 부처의 이름 자체가 이 장의 대답을 담고 있다.
다음으로, 이 대답은 제7단의 경문에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제7단 제3장에서 주인이 처음 인용한 열반경의 문은 바로 보시에 관한 것이었다.
唯此くの如き一闡提の輩を除いて其の余に施さば一切讃歎せん
오직 이와 같은 일천제의 무리를 제외하고 그 밖의 이에게 보시하면 모두가 찬탄하리라.
열반경의 이 문은 보시를 권하는 데 본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천제, 곧 방법을 가려내어 배제하는 것을 가르치는 데 본뜻이 있다. 그리고 제7단 제9장에서 주인은 「설령 오역의 공양은 허락하더라도 방법의 보시는 허락하지 않는다」(29쪽)고 맺었다. 제7단 제6장의 「정법을 헐뜯는 자는 대신과 사부의 중이 마땅히 괴롭혀 다스려야 한다」는 열반경의 문도, 제7단 제7장 끝의 「칼과 몽둥이를 지닐지라도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문과 아울러 읽으면, 그 「괴롭혀 다스림(苦治)」의 구체적인 내용이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라 보시를 멈추는 것임을 읽어 낼 수 있다. 제8단 제3장은 제7단 열 장에 흩어져 있던 이 문들을 한 줄로 모아 결론으로 내놓은 것이다.
- ·「오직 일천제의 무리를 제외하고 그 밖의 이에게 보시하라」제7단 제3장, 27쪽
- ·「설령 오역의 공양은 허락하더라도 방법의 보시는 허락하지 않는다」제7단 제9장, 29쪽
- ·「칼과 몽둥이를 지닐지라도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제7단 제7장, 29쪽
보시를 멈춘다는 것은 방법자를 해치는 것이 아니다. 방법의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고, 다만 그 방법이 살아남는 바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방법의 절과 승려는 신자의 보시로 유지된다. 보시가 그치면 방법은 스스로 설 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보시를 거둔 사람은 그 보시를 정법으로 돌린다. 本文이 「그 악에 보시하지 않고」와 「모두 이 선에 돌아온다면」을 한 문장에 묶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보시를 멈추는 것은 끊는 일이면서 동시에 돌아오는 일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말법에 방법을 대치하는 길은 무력이 아니라 보시를 멈추는 것이다. 미워하는 것은 방법이지 사람이 아니며, 능인 이후의 경설은 방법을 떠받치는 보시를 거두어 그것을 정법으로 돌리는 데서 입정안국의 길을 연다.
가마쿠라의 시주 구조와 국가 간효
대성인 당시에 절의 가장 큰 시주는 가마쿠라에서는 막부의 요인들이었고, 교토에서는 천황가와 공경이었다. 호조 도키요리는 송나라에서 건너온 선승 란케이 도류를 위해 겐초사를 세워 기진했고, 집권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사이묘지에 머물러 사이묘지 입도라 불렸다. 도키요리의 대숙부뻘인 호조 시게토키도 료칸을 위해 고쿠라쿠사를 세워 기진했으며, 화재를 입은 뒤의 재건도 모두 떠맡았다고 전한다. 교토와 나라의 큰 절들은 천황가와 공경에게서 많은 장원을 기진받아, 거기서 거두는 조세로 경영을 유지했다.
그러므로 방법의 절을 끊고 그곳에서 방법을 넓히는 승려들의 근거를 거두려면, 막부의 요인과 천황 · 공경을 간하여 기진과 보시를 멈추게 하는 길밖에 없었다. 민중의 시주도 있었지만, 그것은 대개 높은 이들이 귀의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뒤를 따른 것이었고, 액수도 크지 않았다. 높은 이들이 멈추면 민중도 그를 따라 보시를 멈출 것은 분명했다. 입정안국론이 야도야 입도를 통해 최고 실력자 호조 도키요리에게 올려진 까닭, 그리고 「보시를 멈춘다」는 결론이 위정자를 향한 간효의 형식으로 말해진 까닭이 여기에 있다.
- 가마쿠라호조 도키요리겐초사 기진(란케이 도류)
- 호조 시게토키고쿠라쿠사 기진 · 재건(료칸)
- 교토 · 나라천황가 · 공경큰 절들에 장원 기진→ 조세로 경영 유지
- 민중높은 이들의 귀의를 따라 시주(액수는 크지 않음)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러나 대성인의 홍교는 위정자를 간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대성인과 닛코 상인은 절복의 맨 앞에 서서, 무사든 상인이든 농민이든 가리지 않고 민중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생명에 정법의 신심을 심으셨다. 보시를 멈추는 것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엇에 귀의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권세 · 명예 · 지위에 매인 사람은 지키는 쪽에 서기 쉽다. 총명하다고 일컬어진 호조 도키요리도 끝내 대성인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했다. 그와 반대로, 대성인이 막부에게 박해받고 악승이라 불리는 가운데서도 그 가르침에 귀의하는 사람은 해마다 늘어 갔다. 그 가운데 많은 이가 사회의 중견층이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었다. 법연의 염불이 일찍부터 구조 가네자네 같은 귀족과 손을 잡는 한편 아래로는 민중 사이에 무분별하게 퍼져, 마침내 법연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어지러워진 것과는 뚜렷이 대조된다.
홍안 연간에 들어 닛코 상인이 이끈 스루가 방면의 홍교에서는 많은 농민이 잇따라 입신했고, 이것이 삼류의 강적의 폭풍을 불러일으켰다. 홍안 2년(1279)의 아쓰하라 법난이다. 이때 스무 명 남짓의 농민이 붙잡혀 고문을 받았지만 꿋꿋이 그 고통을 견뎠다. 고문 끝에 진시로 · 야고로 · 야로쿠로 세 사람이 마침내 참수되었다. 이들은 일찍부터 아쓰하라 농민들의 중심이 된 지도자로서, 법난의 폭풍 속에서 다른 농민들을 끝까지 지켰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대성인의 정의를 외치며 헤이노사에몬노조 일당의 권력에 굴하지 않았다. 대성인은 제자들의 신심이 여기까지 확립된 것을 보시고, 출세의 본회인 일염부제총여의 대어본존을 도현하셨다.
이 역사는 제8단의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기도 하다. 「참죄」의 칼은 실제로 누구를 향했는가. 다쓰노구치에서 대성인을, 아쓰하라에서 세 농민을 향한 것은 방법을 꾸짖은 쪽이 아니라 방법을 비호한 권력의 칼이었다. 정법을 지니는 이들은 칼을 들지 않고, 보시를 멈추고 정법에 돌아오는 것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며 넓혔다.
아쓰하라 법난에서 참수된 세 사람의 이름 표기와 처형 날짜는 전승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한다.
「사해만방의 일체의 사중」 — 세계를 향한 법
本文은 「사해만방의 일체의 사중」이라고 한다. 이는 대성인의 불법이 일본 한 나라의 것이 아니라 온 세계에 유포되어야 할 대백법임을 밝힌 말이다. 보시를 멈추고 정법에 돌아오는 것은 일본의 위정자와 승속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의 바다 안 모든 나라의 출가 · 재가 남녀 모두에게 열린 길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대성인 출세의 본회인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은 「일염부제총여」의 어본존이다. 일염부제는 온 세계라는 뜻이다. 한 나라 한 민족에 그치지 않고 일체중생에게 주어진 어본존이라는 뜻이다. 「삼대비법품승사」에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事の戒法と申すは是なり、三国並に一閻浮提の人・懺悔滅罪の戒法のみならず大梵天王・帝釈等も来下して蹋給うべき戒壇なり
사(事)의 계법이라 함은 이것이니라. 삼국과 일염부제의 사람이 참회하여 죄를 멸하는 계법일 뿐 아니라, 대범천왕 · 제석 등도 내려와 밟으실 계단이니라.
「삼국과 일염부제」는 일본 · 중국 · 인도처럼 과거에 대승 불법이 유포된 인연 있는 나라는 물론 온 세계의 민중을 가리킨다. 그 모든 사람이 이 계단에 나아가 참회하면 시작 없는 옛날부터의 모든 죄장을 소멸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현불미래기」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の人は守護の力を得て本門の本尊・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堤に広宣流布せしめんか
이 사람은 수호의 힘을 얻어 본문의 본존, 묘법연화경의 다섯 글자로써 염부제에 광선유포하게 하리라.
같은 「현불미래기」에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月は西より出でて東を照し日は東より出でて西を照す仏法も又以て是くの如し正像には西より東に向い末法には東より西に往く
달은 서쪽에서 나와 동쪽을 비추고,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을 비추느니라. 불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 정법 · 상법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말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느니라.
「간효팔번초」도 같은 뜻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天竺国をば月氏国と申すは仏の出現し給うべき名なり、扶桑国をば日本国と申すあに聖人出で給わざらむ、月は西より東に向へり月氏の仏法の東へ流るべき相なり、日は東より出づ日本の仏法の月氏へかへるべき瑞相なり、月は光あきらかならず在世は但八年なり、日は光明・月に勝れり五五百歳の長き闇を照すべき瑞相なり
천축국을 월지국이라 하는 것은 부처가 출현하실 이름이니라. 부상국을 일본국이라 하니 어찌 성인이 나오지 않으시겠는가. 달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니 월지의 불법이 동쪽으로 흘러갈 모습이니라. 해는 동쪽에서 나오니 일본의 불법이 월지로 돌아갈 상서로운 모습이니라. 달은 빛이 밝지 않으니 재세는 다만 팔 년이니라. 해는 광명이 달보다 뛰어나니 오오백세의 긴 어둠을 비출 상서로운 모습이니라.

이 밖에도 대성인의 불법이 일염부제에 유포될 대법임을 가르친 어문은 이루 다 들 수 없다.
불법은 우주와 생명의 근원의 법을 끝까지 밝힌 가르침이다. 부처란 이 법을 체득하여 우주가 곧 나요 내가 곧 우주인 경지에 선 이를 말한다. 그리고 불교란 모든 민중이 똑같이 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도록 부처가 자비로써 그 법을 설한 가르침이다. 『어의구전』에는 이렇게 설해져 있다.
されば此の如我等無異の文肝要なり、如我昔所願は本因妙如我等無異は本果妙なり妙覚の釈尊は我等が血肉なり因果の功徳骨髄に非ずや、釈には挙因勧信と挙因は即ち本果なり、今日蓮が唱うる所の南無妙法蓮華経は末法一万年の衆生まで成仏せしむるなり豈今者已満足に非ずや、已とは建長五年四月廿八日に初めて唱え出す処の題目を指して已と意得可きなり、妙法の大良薬を以て一切衆生の無明の大病を治せん事疑い無きなり此れを思い遣る時んば満足なり満足とは成仏と云う事なり
그러므로 이 「나와 같이 다름이 없게 하리라」는 문이 가장 요긴하니라. 「내가 옛날 원한 바와 같이」는 본인묘이고, 「나와 같이 다름이 없게」는 본과묘이니라. 묘각의 석존은 우리의 피와 살이니, 인과의 공덕이 골수가 아니겠는가. 석(釈)에 「인을 들어 믿음을 권한다」고 하였으니, 인을 든 것이 곧 본과이니라. 지금 니치렌이 부르는 남묘호렌게쿄는 말법 일만 년의 중생까지 성불하게 하느니라. 어찌 「지금은 이미 만족하였도다」가 아니겠는가. 「이미」란 건장 5년 4월 28일에 처음으로 부르기 시작한 제목을 가리켜 「이미」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묘법의 큰 양약으로 일체중생의 무명의 큰 병을 다스릴 것은 의심이 없느니라. 이것을 생각할 때 만족이니, 만족이란 성불이라는 것이니라.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마음은 말법 만 년의 모든 민중을 자신과 같이 성불하게 하려는 대자비다. 「사해만방의 일체의 사중」이라는 말은 이 대자비가 미치는 범위를 나타낸다. 방법에 보시를 멈추라는 가르침도 이 대자비에서 나온 것이며, 그 목적은 방법의 사람을 없애는 데 있지 않고 모든 사람을 「이 선」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있다.
「어떠한 난이 아울러 일어나랴」 — 제9단으로
本文은 「그 악에 보시하지 않고 모두 이 선에 돌아온다면, 어떠한 난이 아울러 일어나며 어떠한 재앙이 다투어 오겠는가」로 맺는다. 제1단에서 객이 탄식한 천변지요 · 기근 · 역병의 원인은 세상이 정법을 등지고 사람이 악에 돌아간 데 있었다. 그렇다면 그 반대, 곧 사람들이 악에 보시하지 않고 선에 돌아오면 재난은 일어날 까닭이 없다. 입정안국론 전체의 인과가 여기서 한 바퀴를 돈다.
이 대답을 들은 객은 마침내 마음을 돌린다. 제9단 첫머리에서 객은 자리를 비켜 옷깃을 여미고, 법연의 『선택집』이 제불 · 제경 · 제보살 · 제천을 「사(捨) · 폐(閉) · 각(閣) · 포(抛)」한 것이 재난의 원인임을 깨달았다고 말한 뒤 이렇게 맹세한다.
早く一闡提の施を止め永く衆僧尼の供を致し・仏海の白浪を収め法山の緑林を截らば世は羲農の世と成り国は唐虞の国と為らん
속히 일천제의 보시를 멈추고 길이 여러 승니에게 공양을 올려, 불법의 바다의 도적떼를 거두고 법의 산의 도적 무리를 끊는다면, 세상은 복희 · 신농의 세상이 되고 나라는 요 · 순의 나라가 되리라.
「일천제의 보시를 멈추는 것」과 「여러 승니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한 쌍으로 맹세된다. 이것은 제8단 제3장의 「그 악에 보시하지 않고 모두 이 선에 돌아온다면」을 객이 제 말로 받아들인 것이다. 제2장에서 「승려라면 선악을 논하지 말고 공양하라」고 했던 객이, 이제는 방법에 대한 보시를 멈추고 정법의 승니에게 공양하겠다고 말한다. 보시를 멈추는 것은 미움의 행위가 아니라 보시의 방향을 바로잡는 일이라는 것을 객이 알아들은 것이다. 주인은 이 객의 맹세를 기뻐하면서도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고 거듭 재촉하는데, 그것이 입정안국론 제9편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의 내용이다.
이 편을 맺으며
제8단의 세 장은 입정안국론에서 가장 짧은 문답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어서 전체가 어떤 성격의 글인지를 정하는 자리다. 제7단에서 주인은 열반경을 거듭 들어 방법을 끊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그 경문에는 방법의 바라문을 죽인 선예국왕, 칼을 들고 싸운 유덕왕의 이야기가 섞여 있었다. 객은 경문을 성실하게 들었기에 바로 거기에 걸렸다. 방법을 끊으려면 참죄에 처해야 하는가, 그러면 살해의 죄는 어찌하는가. 머리 깎고 가사 입은 이는 부처의 아들이라고 대집경이 말하지 않았는가.
주인의 대답은 두 겹이었다. 하나는 「결코 불자를 금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한결같이 방법을 미워한다」는 것이다. 같은 대집경이 정법을 허무는 악비구를 말하고,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이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한」 이들을 말한다. 객이 든 목련존자와 연화비구니의 선례는 오히려 정법을 지닌 이를 해친 죄를 보여 준다. 공양의 기준은 계를 지키느냐가 아니라 정법을 비방하느냐에 있다.
다른 하나는 「석가 이전의 불교는 그 죄를 베었으나, 능인 이후의 경설은 곧 그 보시를 멈춘다」는 것이다. 선예국왕 · 유덕왕의 이야기는 석존의 인위의 수행으로 설해진 것이며, 석존 이후의 경설은 방법자의 목숨이 아니라 방법을 떠받치는 보시를 문제 삼는다. 그 근거는 제7단에 이미 흩어져 있었다. 일천제를 제외하고 보시하라는 문, 오역의 공양은 허락해도 방법의 보시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문, 그리고 칼과 몽둥이를 지닐지라도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문이다. 일체중생의 비방을 탓하지 않고 참는 부처, 곧 「능인」의 이름이 이 결론을 뒷받침한다.
일념삼천의 법리에서 보면 악인에게도 불계가 갖추어져 있고, 삼세의 생명관에서 보면 생명은 인과를 따라 이어지며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방법을 미워하되 사람은 버리지 않는다. 방법에 보시하지 않고 그 보시를 정법으로 돌리는 것, 위정자로부터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사해만방의 일체의 사중」이 그렇게 하는 것이 말법에 방법을 대치하는 바른 길이다. 다음 입정안국론 제9편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에서 객은 「일천제의 보시를 멈추고 길이 여러 승니에게 공양하겠다」고 스스로 말하고, 주인은 자계반역 · 타국침핍의 두 난이 아직 남아 있음을 경고하면서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고 거듭 재촉하여 입정안국론의 결론으로 나아간다.
더 읽기
- 입정안국론 제7편 「보시를 멈추어 방법을 끊다」 — 객이 「저 경문」이라 부른 열반경의 선예국왕 · 유덕왕 · 일천제의 문을 차례로 다룬다
- 입정안국론 제9편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 — 객이 보시를 멈추고 정법에 귀의하기를 맹세하고, 주인이 입정안국을 맺는다
- 입정안국론 제3편 「정법 비방의 유래와 망국의 증거」 —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으로 「사문의 모습을 한」 악한 승려를 증명한 대목
- 일념삼천 — 악인에게도 불계가 갖추어져 있다는 십계호구 · 일념삼천의 법리
- 업 — 삼세에 걸친 인과와 숙명의 전환
- 보은초 제5편 「대성인의 국가 간효와 재난의 근원」 — 위정자를 향한 대성인의 간효와 세 번의 고명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입정안국론」,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일본어판) 17–33쪽 — 인용한 다른 어서의 쪽은 본문 각 인용에 적었다
- 『대반열반경』, T12 no.374
- 『대방등대집경』
- 『인왕반야바라밀경』
- 『묘법연화경』 권지품, T9 no.262
- 『대지도론』 권14 (연화비구니의 고사)
- 니치칸 상인, 「입정안국론 문단(立正安国論文段)」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연구
- 立正大学日蓮教学研究所 編, 『昭和定本日蓮聖人遺文』, 身延山久遠寺, 1952–1959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On Establishing the Correct Teaching for the Peace of the Land」 수록)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