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게 갠 아침의 국토 — 논과 마을, 바다로 이어지는 강, 먼 산들 위의 엷은 금빛 하늘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

입정안국론 · 제9편 · 제9단 제1~5장 · 제10단

立正安国論 — 実乗の一善に帰せよ어서 31–33쪽
저술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 가마쿠라
단 · 장
제9단 제1~5장 · 제10단
쪽수
어서 31:01–33:04
올린 이
야도야 입도를 거쳐 사이묘지 입도 호조 도키요리에게

아홉 편 · 입정안국론 10단 구성도

10단 46장 → 아홉 편
  1. 序講17 앞 · 33–35저술의 유래 · 대의 · 예언의 적중 · 오서 · 어감유래 · 별장
  2. 재난의 원인과 경증
  3. 재난의 원인과 경증
  4. 방법의 정체 — 악한 승려와 법연
  5. 방법의 정체 — 악한 승려와 법연
  6. 방법의 정체 — 악한 승려와 법연
  7. 방법 대치의 방법
  8. 방법 대치의 방법
  9. 방법 대치의 방법
  10. 정법 귀의와 맹세

열 번의 문답 끝에 객은 마침내 자리를 피하고 옷깃을 여민다. 「불교가 이렇게 갈래져 있어 그 뜻을 다 알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은 객은, 『선택집』의 「버려라 · 닫아라 · 내버려 두라 · 내던져라」가 성인을 떠나게 하고 선신을 물러가게 했다는 주인의 논증을 받아들여 일천제에 대한 보시를 멈추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주인은 기뻐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은 때에 따라 옮긴다」며 그 결심이 식을 것을 경계하고, 네 경이 설한 재난 가운데 아직 나타나지 않은 두 난 —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 — 이 반드시 닥칠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리고 「한 몸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먼저 사표의 정밀을 기원하라」, 「속히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 그러면 삼계는 모두 불국이요 시방은 모두 보토이다」라는 말로 입정안국의 결론을 내린다. 마지막 제10단에서 객은 「오직 나만 믿을 뿐 아니라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다」고 맹세하고, 주인의 대답 없이 글이 끝난다. 아홉 편 가운데 마지막인 이 편은, 재난의 원인을 묻는 탄식으로 시작된 대화가 어떻게 한 사람의 귀의와 사회를 향한 실천의 맹세로 닫히는지를 보여 준다.

「입정안국론」 아홉 편은 네 갈래로 이어진다. 재난의 원인과 경증을 밝히는 제1 · 2편, 방법의 정체 — 악한 승려와 법연 — 를 드러내는 제3~5편, 방법 대치의 방법을 논하는 제6~8편, 그리고 정법 귀의와 맹세의 이 제9편이다. 앞의 여덟 편이 「왜 재난이 일어나는가」, 「누가 무엇을 비방하는가」, 「어떻게 대치하는가」를 차례로 물어 왔다면, 이 편은 그 모든 물음에 대한 결론이다. 제9단의 다섯 장과 제10단이 한 편을 이룬다.

여섯 장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제1장에서 객은 주인의 논증에 승복하여 방법에 대한 보시를 멈추고, 그 뒤에 법의 천심을 따져 불가의 동량을 받들겠다고 약속한다. 제2장에서 주인은 그 귀의를 기뻐하되, 마음이 환경에 따라 바뀌는 것을 경계하고 서둘러 대치를 더하라고 거듭 재촉한다. 약사경 · 대집경 · 금광명경 · 인왕경이 설한 재난 가운데 남은 두 난을 들어, 나라를 잃으면 어디로도 피할 곳이 없다고 말한다. 그 예고는 7년 반 뒤의 몽골 국서, 12년 뒤의 니가쓰 소동, 14년 · 21년 뒤의 몽골 내습으로 현실이 되었다. 제3장과 제4장은 시선을 나라에서 한 사람에게로 옮겨, 방법이 한 집안과 한 생명에 무엇을 가져오는가를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의 문으로 보인다. 제5장은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는 한 구절로 입정을, 「삼계는 모두 불국」이라는 한 구절로 안국을 맺는다. 제10단은 객의 영해(領解)와 맹세다.

이 편에서 가장 무게가 실리는 말은 「실승의 일선(実乗の一善)」이다. 본문은 그것이 무엇인지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앞의 아홉 단이 줄곧 염불의 방법을 다스리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법화경으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법화경 본문 문저의 남묘호렌게쿄, 곧 삼대비법을 가리킨다. 제5장은 그 까닭을 「입정안국론」 첫머리의 객의 탄식과 「관심의 본존득의초」 · 「삼대비법품승사」로 풀어 간다. 그리고 객의 마지막 맹세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다」는, 입정안국이 한 사람의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를 향한 실천으로 이어진다는 이 글 전체의 결론이다.

이 편의 장

第一章正法正師に帰すを期す제9단 제1장 정법 · 정사에 귀의하기를 기약하다 — 객이 자리를 피하고 옷깃을 여미어 망집이 뒤집혔음을 고백하고, 일천제의 보시를 멈추어 희농의 세 · 당우의 나라를 이룬 뒤 법수의 천심을 짐작하여 불가의 동량을 받들겠다고 약속한다.
第二章重ねて謗法対治を促す제9단 제2장 거듭 방법 대치를 재촉하다 — 주인은 객의 변화를 기뻐하되 「사람의 마음은 때에 따라 옮긴다」고 경계하고, 네 경의 재난 가운데 남은 두 난(타국침핍 · 자계반역)을 예고하며 「한 몸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먼저 사표의 정밀을 기원하라」고 재촉한다.
第三章仁王経をもって謗法の果報を示す제9단 제3장 인왕경으로 방법의 과보를 보이다 — 불교를 무너뜨리는 사람에게 효자가 없고 육친이 화목하지 못하며, 죽어서 삼악도에 들고 다시 사람이 되어도 병노의 과보를 받는다는 인왕경의 문으로 한 사람과 한 집안의 과보를 보인다.
第四章念仏無間地獄の経文を挙ぐ제9단 제4장 염불 무간지옥의 경문을 들다 — 법화경 비유품 · 상불경보살품과 열반경의 세 문으로, 정법을 비방하고 악법에 머무는 사람이 아비지옥에 떨어짐을 밝힌다.
第五章結して立正安国を論ず제9단 제5장 맺어서 입정안국을 논하다 — 「속히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로 입정을, 「삼계는 모두 불국 · 시방은 모두 보토」로 안국을 맺고, 국토가 편안하면 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선정이라고 결론짓는다.
第十段領解して謗法対治を誓う제10단 깨닫고 방법 대치를 맹세하다 — 객은 방법의 죄가 무거움을 깨닫고, 속히 대치하여 태평을 이루고 「오직 나만 믿을 뿐 아니라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다」고 맹세한다. 주인의 대답 없이 이 객의 말로 전편이 끝난다.
제9단 제1장 정법 · 정사에 귀의하기를 기약하다
어서 31쪽 1~6행 · 第九段 第一章 正法正師に帰すを期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31쪽 1~6행
本文 · 어서 원문

客則ち席を避け襟を刷いて曰く、仏教斯く区にして旨趣窮め難く不審多端にして理非明ならず、但し法然聖人の選択現在なり諸仏・諸経・諸菩薩・諸天等を以て捨閉閣抛と載す、 其の文顕然なり、茲れに因つて聖人国を去り善神所を捨てて天下飢渇し世上疫病すと、今主人広く経文を引いて明かに理非を示す、 故に妄執既に飜えり耳目数朗かなり、所詮国土泰平・天下安穏は一人より万民に至るまで好む所なり楽う所なり、 早く一闡提の施を止め永く衆僧尼の供を致し・仏海の白浪を収め法山の緑林を截らば世は羲農の世と成り国は唐虞の国と為らん、 然して後法水の浅深を斟酌し仏家の棟梁を崇重せん。

풀이

객이 곧 자리를 피하고 옷깃을 여미어 말하기를, 「불교가 이렇게 여러 갈래로 나뉘어 그 취지를 다 알기 어렵고, 의심스러운 것이 많아 이치의 옳고 그름이 밝지 않았느니라. 다만 법연 성인의 『선택집』이 지금 엄연히 있어, 모든 부처 · 모든 경 · 모든 보살 · 모든 하늘 등을 가리켜 버려라 · 닫아라 · 내버려 두라 · 내던져라(捨閉閣抛) 하고 실었으니, 그 글은 분명하느니라. 이 때문에 성인이 나라를 떠나고 선신이 제 자리를 버려, 천하가 굶주리고 세상에 역병이 돈다는 것을, 이제 주인이 널리 경문을 끌어 밝게 이치의 옳고 그름을 보였느니라. 그러므로 망령된 집착은 이미 뒤집히고 귀와 눈이 자못 밝아졌느니라. 필경 국토가 태평하고 천하가 안온한 것은 위로 한 사람(국주)에서 아래로 만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좋아하는 바요 바라는 바이니라. 속히 일천제(一闡提)에 대한 보시를 멈추고 길이 여러 승니에게 공양을 올려, 불법의 바다에 이는 흰 물결(도적)을 거두고 법의 산에 숨은 녹림(도적)을 베어 버린다면, 세상은 복희 · 신농의 세상이 되고 나라는 요 · 순의 나라가 될 것이니라. 그런 뒤에 법수(法水)의 얕고 깊음을 헤아려 불가(佛家)의 동량(棟梁)을 높이 받들겠느니라.」

어구 풀이

席を避け襟を刷いて자리를 피하고 옷깃을 여미어
앉아 있던 자리에서 물러나 옷차림을 바로 하는 것으로, 상대를 스승으로 받드는 예를 갖추는 몸짓이다. 제1단에서 탄식하며 찾아왔고 제2단에서는 낯빛을 붉히며 화를 냈던 객이, 이제 주인을 스승으로 대하는 자리로 옮겨 앉는다.
仏教斯く区にして旨趣窮め難く불교가 이렇게 여러 갈래로 나뉘어 그 취지를 다 알기 어렵다
「구(区)」는 갈래가 많아 가지런하지 않은 모양이다. 종파마다 의지하는 경 · 받드는 부처 · 개조 · 수행법이 다르고 저마다 제일을 다투니, 어느 것이 부처의 참뜻인지 알기 어렵다는 객의 고백이다.
不審多端にして理非明ならず의심스러운 것이 많아 옳고 그름이 밝지 않았다
「다단(多端)」은 일의 갈래가 많음. 지금까지는 의문이 갈래갈래 많아 어느 법이 옳은지 판단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래의 「이제 주인이 … 밝게 이치의 옳고 그름을 보였다」와 짝을 이룬다.
捨閉閣抛사 · 폐 · 각 · 포
법연이 『선택집』에서 정토 삼부경 이외의 모든 경 · 부처 · 보살 · 하늘을 「버려라(捨) · 닫아라(閉) · 내버려 두라(閣) · 내던져라(抛)」라고 한 네 글자. 대성인은 이것을 일국 방법의 「일흉(一凶)」으로 지목하셨다(입정안국론 제4편 「정법 비방의 원흉」).
聖人国を去り善神所を捨てて성인이 나라를 떠나고 선신이 제 자리를 버린다
제1단 제2장에서 주인이 밝힌 재난의 근본 원인을 객이 그대로 되풀이하는 말이다. 세상이 정법을 등지면 나라를 지키는 선신이 떠나고 성인도 떠나며, 그 빈자리에 마와 귀신이 들어와 재난이 일어난다.
妄執既に飜えり耳目数朗かなり망령된 집착은 이미 뒤집히고 귀와 눈이 자못 밝아졌다
「망집」은 법연의 염불을 옳다고 고집해 온 마음. 「이목이 밝아졌다」는 법의 정사를 듣고 가리며 사람의 정사를 보고 가리는 눈과 귀가 열렸다는 뜻이다.
一人より万民に至るまで위로 한 사람에서 아래로 만민에 이르기까지
「일인(一人)」은 나라의 주인, 곧 천자를 가리킨다. 위아래 가릴 것 없이 나라 사람 모두를 말한다.
一闡提の施を止め일천제에 대한 보시를 멈추고
「일천제」는 범어 이찬티카(icchantika)의 음사로, 불법을 믿지 않고 정법을 비방하여 성불할 인연을 끊은 자. 여기서는 정법을 비방하는 승려를 가리킨다. 제7 · 8단에서 주인이 밝힌 「그 보시를 멈춘다」는 대치법을 객이 받아들인 말이다.
永く衆僧尼の供を致し길이 여러 승니에게 공양을 올려
방법의 승려에 대한 보시를 멈추는 대신, 정법을 지니는 승니를 길이 공양하겠다는 것이다. 멈추는 일과 받드는 일이 짝을 이룬다.
仏海の白浪불법 바다의 흰 물결
「불해(仏海)」는 석존 일대의 불교를 넓고 크기 때문에 바다에 견준 말. 「백랑(白浪)」은 후한 말 황건적 장각(張角)의 잔당이 하서(河西)의 백파곡(白波谷)에 웅거하여 약탈하던 것을 「백파적」이라 부른 데서, 도적, 특히 물길에 출몰하는 도적을 뜻하게 되었다. 불법의 바다에 숨어든 도적, 곧 법연과 정토종의 승려 등 정법을 해치는 무리를 가리킨다.
法山の緑林법의 산의 녹림
「법산(法山)」은 일대 불교를 높고 크기 때문에 산에 견준 말. 「녹림(緑林)」은 전한 말 왕망(王莽)이 즉위한 뒤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왕광(王匡) · 왕봉(王鳳) 등이 궁핍한 백성을 모아 호북 당양현의 녹림산에 웅거하여 토벌군에 끈질기게 맞선 데서, 도적, 특히 산적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이것도 법의 산에 숨은 방법의 무리를 가리킨다.
羲農の世복희 · 신농의 세상
중국 고대 전설의 제왕 복희(伏羲)와 신농(神農)의 시대. 황제(黃帝)와 함께 삼황(三皇)으로 받들어진다. 천하가 태평하고 백성이 번영한 이상의 세상으로, 어서에서도 이상 세계의 비유로 쓰인다.
唐虞の国요 · 순의 나라
중국 고대 전설의 제왕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의 나라. 요는 덕으로 천하를 다스려 제왕의 본보기로 받들어졌고, 순은 요의 신임을 받아 섭정이 된 뒤 왕위에 올라 열여섯 인재(팔원팔개)를 써서 선정을 펼쳤다고 한다. 둘 다 『사기』의 오제(五帝)에 든다.
法水の浅深を斟酌し법수의 얕고 깊음을 헤아려
「법수(法水)」는 불법이 중생의 번뇌의 때를 씻는 것을 물에 견준 말. 여러 경의 얕고 깊음, 낫고 못함을 견주어 살피겠다는 뜻이다.
仏家の棟梁を崇重せん불가의 동량을 높이 받들겠다
「동량(棟梁)」은 집의 마룻대와 들보로, 무리의 중심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불법의 근본이 되는 법과 그 법을 바르게 지니는 스승을 받들겠다는 결의다. 장 제목의 「정법 · 정사에 귀의하기를 기약하다」가 이 구절에서 나온다.

객이 옷깃을 여미다 — 열 번의 문답이 꺾이는 자리

제9단 제1장은 「입정안국론」 열 번의 문답 가운데 가장 큰 전환점이다. 경문을 끌어오고 도리를 다하고 현증을 보인 주인의 정연한 논리 앞에서 객은 마침내 납득한다. 그리고 자리를 피하고 옷깃을 여미어 스승을 대하는 예를 갖춘 뒤, 방법에 대한 보시를 모두 멈추고 정법의 승려를 받들어 이상의 세상을 이루겠다고 맹세한다.

객의 걸음을 되짚어 보면 이 장면의 무게가 드러난다. 제1단에서 객은 잇따른 천변지요와 기근 · 역병을 탄식하며 찾아왔고, 제2단에서는 「이제 난실(蘭室)에 들어와 처음으로 향기로운 말씀을 듣는다」며 그 경증을 물었다. 그러나 「성인이 떠나고 선신이 나라를 버렸다」는 주인의 말이 불법의 현실에 미치자, 제3단에서는 낯빛을 붉히며(色を作して) 「불법이 이토록 흥륭한데 무엇이 방법이냐」고 따졌고, 제4단에서는 더욱 분해하며(猶憤りて) 그 악한 승려가 누구냐고 물었다. 법연의 이름이 나오자 제5단에서는 한층 낯빛을 붉히며(殊に色を作して) 정토의 조사들을 변호했다. 제6단에 이르러서야 조금 누그러져(聊か和いで) 「도읍에서 막부에 이르기까지 불가에는 동량이 있는데 어째서 아무도 상주하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제7단에서는 누그러진 얼굴로(則ち和ぎて) 재난을 다스리는 방책을 물었으며, 제8단에서는 「경문대로라면 방법의 무리를 참죄에 처해야 하느냐」고 캐물었다. 열 번의 문답은 이렇게 반론과 분노에서 누그러짐으로 이어져 왔다. 그 객이 이제 자리를 피하고 옷깃을 여미며 「망령된 집착은 이미 뒤집혔다」고 말한다.

제6단에서 객이 말한 「불가의 동량」은 당시 세상이 우러르던 고승들이었다. 그 객이 제9단에서는 「불가의 동량을 높이 받들겠다」고 말한다. 같은 말이 이제는 법수의 얕고 깊음을 따져 찾아낸 참된 스승을 가리키게 되었다. 한 단어의 뜻이 바뀐 자리에 객의 변화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승복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입정안국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법연의 정토종을 중심으로 방법의 실체를 밝혔고, 그 방법과 삼재칠난의 관계를 보였다. 수많은 불교 종파 하나하나의 정사가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다. 객 자신도 「법수의 얕고 깊음은 그 뒤에 헤아리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인과 논한 범위 안에서는 더 이상 티끌만 한 의심도 없다. 그러므로 주인의 말대로 방법에 대한 보시를 멈추고 정법을 받들겠다는 것이다. 객의 귀의는 아직 「무엇이 정법인가」를 다 아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무엇이 방법인가」를 안 데서 나온 것이다. 이 순서가 제5장의 「실승의 일선」으로 이어진다.

  1. ①
    불교가 이렇게 갈래져 뜻을 알기 어려웠다仏教斯く区にして旨趣窮め難く
  2. ②
    『선택집』의 「버려라 · 닫아라 · 내버려 두라 · 내던져라」가 분명히 있다捨閉閣抛
  3. ③
    그래서 성인이 떠나고 선신이 자리를 버려 기근과 역병이 일어났다
  4. ④
    망령된 집착이 뒤집히고 귀와 눈이 밝아졌다妄執既に飜えり耳目数朗かなり
  5. ⑤
    일천제의 보시를 멈추고 승니를 공양한다一闡提の施を止め永く衆僧尼の供を致し
  6. ⑥
    복희 · 신농의 세상, 요 · 순의 나라
  7. ⑦
    그 뒤에 법수의 얕고 깊음을 헤아려 불가의 동량을 받든다法水の浅深を斟酌し仏家の棟梁を崇重せん

→ 제5장 「실승의 일선」으로

도표 1 · 객의 마음이 돌아서기까지

「불교가 이렇게 갈래져」 — 객의 고백과 법을 가리는 기준

객의 첫마디 「불교가 이렇게 여러 갈래로 나뉘어 그 취지를 다 알기 어렵다」는 대성인 당시 사람들의 솔직한 실감이었다. 일본의 불교는 나라 시대의 육종에 헤이안 시대의 천태 · 진언이 더해지고, 다시 정토와 선이 일어나 여러 종이 서로 제일을 다투고 있었다. 받드는 부처도, 의지하는 경도, 개조로 우러르는 승려도, 수행의 세세한 법식까지도 저마다 다르면서, 모두가 제 종이 가장 바르다고 주장했다.

이런 형편에서 사람들은 흔히 비판 없는 체념에 이른다. 어느 종에 물어도 제 종이 옳다고 하니 결국 다 같은 것이리라고 여기는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은 넓고 크니 산에 오르는 것과 같아, 오르는 길은 달라도 꼭대기에 이르는 것은 같다」고 말하는 승려가 오히려 깨달음이 높은 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법의 정사를 따지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종파 하나하나의 정사를 모두 검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하나라도 좋으니, 개조의 행적을 알고, 교의가 부처의 경전과 맞는지, 또 그 경전이 의지할 만한 경인지를 차분히 따져 보면 그 교의가 얼마나 엉터리인지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째서 이제껏 그런 잘못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 불교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 형식으로 따르는 것이라고 정해 두고, 늘 밖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 그 안에 뛰어들어 비판하려 하지 않았던 데에 있다. 어떤 이는 「일본인은 본질적으로 무종교적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많은 종파가 있고 불교가 성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상한 말 같지만, 위에서 말한 모습을 보면 참으로 정곡을 찌른 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의 정사를 가리는 원리는 여럿이다. 문증(文証) · 이증(理証) · 현증(現証)의 삼증, 오중의 상대(五重相対), 종교의 오강(五綱)이 그것이다. 경문에 근거가 있는가, 도리에 맞는가, 실제 생활에 증거가 나타나는가를 묻는 것이 삼증이고, 내도와 외도 · 대승과 소승 · 권교와 실교 · 본문과 적문 · 종탈(種脫)을 차례로 견주는 것이 오중의 상대이며, 교(教) · 기(機) · 시(時) · 국(国) · 교법유포의 선후(序)를 살피는 것이 오강이다. 「입정안국론」에서 주인이 객을 설복한 방법도 이와 같았다. 네 경의 경문을 들어 재난의 근원을 밝혔고(문증), 의정불이의 도리로 방법과 재난의 관계를 풀었으며(이증), 정가 · 정원의 재해와 중국 · 일본의 망국의 예를 들었다(현증). 객의 「이제 주인이 널리 경문을 끌어 밝게 이치의 옳고 그름을 보였다」는 고백은 이 세 증거가 모두 갖추어졌다는 말이다.

「일천제의 보시를 멈추고」 — 제7 · 8단에서 이어지는 결의

객의 결의의 중심은 「속히 일천제의 보시를 멈추고 길이 여러 승니에게 공양을 올리겠다」는 말이다. 이것은 제7단과 제8단에서 주인이 밝힌 방법 대치의 방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제7단에서 주인은 열반경의 선예국왕 · 유덕왕의 예를 들어 방법을 끊어야 한다고 했고, 제8단에서 객이 「그러면 경문대로 승려를 죽여야 하느냐」고 묻자, 석존 이후의 경에서는 「그 보시를 멈춘다」고 답했다. 무력이 아니라 보시를 멈추는 것이 말법의 방법 대치라는 것이다(입정안국론 제8편 「방법에 보시를 멈추는 뜻」).

객은 이제 그 대치를 스스로의 일로 받아들인다. 방법의 승려에게 보시하는 것은 방법을 길러 주는 일이고, 정법의 승니를 공양하는 것은 정법을 지키는 일이다. 「불법의 바다에 이는 흰 물결을 거두고 법의 산에 숨은 녹림을 벤다」는 말은 바다와 산의 도적이라는 강한 비유를 쓰지만, 그 실천은 어디까지나 방법에 대한 공양을 거두는 데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방법에 공양하기를 멈추면 방법은 스스로 힘을 잃는다. 객은 그렇게 해서 나라에서 방법이 사라진 뒤에 법의 얕고 깊음을 따지겠다고 순서를 정한다.

희농의 세 · 당우의 나라 — 동아시아가 그린 이상향

객이 그리는 이상은 「복희 · 신농의 세상」과 「요 · 순의 나라」다. 둘 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회를 뜻하는 말로, 공자 · 맹자 등 유가의 사상가들이 이상향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널리 쓰이게 된 중국의 유토피아다.

정치를 하는 사람도, 정치사상을 설하는 사람도, 좋은 사회를 바라는 민중도 저마다 하나의 이상을 그리고, 그것을 동경하며, 그 실현을 향해 애쓴다. 이것은 사람 마음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희농의 세상과 당우의 나라가 역사에 정말 있었는지, 『사기』 등이 전하는 대로의 이상 사회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국 민중은 예로부터 그런 시대가 있었다고 믿었고, 유교를 근본으로 삼는 정치사상가들도 그런 사회의 실현을 정치의 궁극 목표로 세웠다.

이에 맞서 노자 · 장자의 흐름을 잇는 사람들이 이상으로 삼은 것은 신선의 나라, 봉래산(蓬萊山)이었다. 이상 세계를 이 사바세계에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동쪽 바다 가운데 낙토가 있다고 설하고, 신선의 수행으로 바다를 건너는 술법을 얻어 그곳에 가면 행복해진다고 가르쳤다. 중국에서는 이 두 사상이 서로 맞서고 세력을 다투면서 한족의 역사를 엮어 왔다.

불교가 중국 민족의 역사에 나타난 기간은 이 둘에 견주면 훨씬 짧다. 유가와 도가의 흐름이 이천수백 년에 이르는 데 비해, 불교는 후한 명제(明帝) 영평(永平) 10년, 서기 67년에 처음 전해졌다고 한다. 당나라 무종(武宗)의 회창(會昌) 연간에 큰 탄압을 받았고, 그 뒤 조금 되살아났으나 원나라 때에는 라마교가 세력을 잡았으며, 청나라 때에는 태평천국의 난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실질적으로는 무종의 탄압으로 그 시대가 끝났다고 보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중국에서 불교가 널리 퍼진 시대는 참으로 짧다. 오히려 중국 불교는 천태대사를 정점으로 하여 일본에 불교를 전하고, 말법의 어본불이 출현할 바탕을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불법동점(仏法東漸)이며, 말법의 대백법은 이번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전해져 중국과 인도의 민중까지 건지게 된다.

대성인은 「여설수행초」에서 이 「희농의 세상」이라는 말을 써서, 묘법이 널리 퍼진 국토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셨다.

天下万民・諸乗一仏乗と成つて妙法独り繁昌せん時、万民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唱え奉らば、吹く風枝をならさず、雨壤を砕かず、代は羲農の世となりて、今生には不祥の災難を払ひ長生の術を得

천하 만민이 모든 승(乘)을 일불승으로 삼고 묘법만이 홀로 번창할 때, 만민이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한다면, 부는 바람은 가지를 울리지 않고 내리는 비는 흙덩이를 부수지 않으며, 세상은 복희 · 신농의 세상이 되어, 금생에는 상서롭지 못한 재난을 물리치고 장생의 술(術)을 얻으리라.

「여설수행초」, 502쪽

객이 「입정안국론」에서 입에 올린 희농의 세상은 아직 막연한 동경이었다. 대성인은 뒷날 그 동경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를 이렇게 분명히 하셨다.

불교가 말하는 이상향 — 사바세계가 곧 적광토

불교가 이상향으로 삼는 곳은 어디인가. 권대승에서는 동방의 정유리세계(浄瑠璃世界)나 서방의 극락세계처럼 이 사바세계에서 아득히 떨어진 먼 곳에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실대승경인 법화경에서는 먼 곳에 있다는 것이 잘못이라고 부정하고, 이 사바세계가 곧 적광토(寂光土)라고 설한다.

곧 적광토란 다른 데서 구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계에 이루어야 할 목표다. 그 방법은 묘법의 광선유포에 있다. 이상 세계라 하든 더러운 세계라 하든, 결국은 사람으로 정해진다. 민중에게 복운이 없고 지혜도 없어 가난 · 병 · 불화에 휘둘리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이며 예토(穢土)라고밖에 할 수 없다. 거꾸로 민중에게 복운이 있고 지혜가 있으면 가난도 병도 몰아내고 불평과 폭력도 없앨 수 있다.

이것이 「법이 묘하기 때문에 사람이 귀하다」는 원리이며, 이상 세계를 이루는 원리다.

法妙なるが故に人貴し・人貴きが故に所尊し

법이 묘하기 때문에 사람이 귀하고,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그 처소가 존귀하니라.

「난조전답서」, 1578쪽

어디까지나 법이 근본이다. 법이 없는 사회는 뼈 없는 동물, 혼 없는 사람과 같다. 가장 높고 바른 법과, 그 법으로 새로워진 사람들의 지혜가 모이는 데에 이상 사회의 참된 알맹이가 있다. 객이 「희농의 세상, 당우의 나라」를 말할 때 그 이상은 아직 정치의 교화가 잘 이루어진 세상이라는 유가의 그림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주인은 제5장에서 그것을 「삼계는 모두 불국이요 시방은 모두 보토」라는 말로 바꾸어 놓는다. 먼 곳의 정토도, 옛날의 성왕 시대도 아닌, 지금 이 국토가 불국토가 되는 길이다.

먼 시대 · 먼 바다 · 먼 국토
  • 유가복희 · 신농의 세상, 요 · 순의 나라옛 성왕의 시대를 이 세상에 되살린다
  • 노장(신선 사상)동쪽 바다의 봉래산수행으로 바다를 건너 그곳에 간다
  • 권대승동방 정유리세계 · 서방 극락세계이 사바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지금 이 국토
법화경사바세계가 곧 적광토이 국토가 묘법으로 불국토가 된다삼계는 모두 불국이니라三界は皆仏国なり
도표 2 · 이상향의 네 그림

「법수의 천심을 헤아리고 불가의 동량을 받들겠다」 — 남겨 둔 물음

객의 마지막 말은 「그런 뒤에 법수의 얕고 깊음을 헤아려 불가의 동량을 높이 받들겠다」이다. 먼저 방법에 대한 보시를 멈추어 나라를 평안하게 하고, 그 뒤에 여러 경의 얕고 깊음 · 낫고 못함을 견주어 불법의 참된 알맹이인 가장 높은 가르침에 귀의하고 정법의 근본이 되는 스승을 받들겠다는 것이다. 장 제목의 「정법 · 정사에 귀의하기를 기약하다」는 바로 이 결의를 가리킨다.

이 순서에는 객의 성실함과 함께 한계가 드러난다. 객은 방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무엇에 귀의해야 하는지는 아직 「뒤에 헤아릴 일」로 미루어 두었다. 버리는 일과 세우는 일이 나뉘어 있다. 주인은 바로 이 틈을 놓치지 않는다. 제2장에서 「사람의 마음은 때에 따라 옮긴다」고 경계하고 「서둘러 대치를 더하라」고 재촉하는 것도, 제5장에서 「속히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고 단언하는 것도 객이 미루어 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방법을 끊는 파사(破邪)와 정법을 세우는 입정(立正)은 둘이 아니다. 입정안국의 「입정」은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객의 귀의는 「무엇이 방법인가」를 아는 데서 시작했다. 「무엇에 귀의하는가」라는 남은 물음에 주인은 제5장에서 「실승의 일선」으로 답한다. 방법에 대한 보시를 멈추는 일과 정법에 귀의하는 일이 하나로 이루어질 때 입정안국이 된다.

제9단 제2장 거듭 방법 대치를 재촉하다
어서 31쪽 7행~32쪽 6행 · 第九段 第二章 重ねて謗法対治を促す

본문

本文 · 一어서 31쪽 7~10행
本文 · 어서 원문

主人悦んで曰く、鳩化して鷹と為り雀変じて蛤と為る、悦しきかな汝蘭室の友に交りて麻畝の性と成る、 誠に其の難を顧みて専ら此の言を信ぜば風和らぎ浪静かにして不日に豊年ならん、但し人の心は時に随つて移り物の性は境に依つて改まる、 譬えば猶水中の月の波に動き陳前の軍の剣に靡くがごとし、汝当座に信ずと雖も後定めて永く忘れん、 若し先ず国土を安んじて現当を祈らんと欲せば速に情慮を回らし急いで対治を加えよ、

풀이

주인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비둘기가 변하여 매가 되고 참새가 변하여 대합이 된다고 하였느니라. 기쁘도다, 그대가 난초 향기 가득한 방(蘭室)의 벗과 사귀어 삼밭의 쑥처럼 곧은 성품이 되었으니. 참으로 그 재난을 돌아보아 오로지 이 말을 믿는다면, 바람은 잦아들고 물결은 고요해져 머지않아 풍년이 들 것이니라. 다만 사람의 마음은 때에 따라 옮기고, 물건의 성질은 경계(境)에 따라 바뀌느니라. 비유하자면 물속의 달이 물결에 따라 흔들리고, 진 앞에 선 군사가 적의 칼에 따라 쓰러지는 것과 같으니라. 그대가 이 자리에서는 믿는다고 하나, 뒤에는 반드시 길이 잊어버릴 것이니라. 만약 먼저 국토를 편안히 하여 현세와 내세(現当)를 기원하고자 한다면, 속히 생각을 돌려 서둘러 대치를 더하라.

本文 · 二어서 31쪽 10~18행
本文 · 어서 원문

所以は何ん、薬師経の七難の内五難忽に起り二難猶残れり、所以他国侵逼の難・自界叛逆の難なり、 大集経の三災の内二災早く顕れ一災未だ起らず所以兵革の災なり、金光明経の内の種種の災過一一起ると雖も他方の怨賊国内を侵掠する此の災未だ露れず此の難未だ来らず、 仁王経の七難の内六難今盛にして一難未だ現ぜず所以四方の賊来つて国を侵すの難なり加之国土乱れん時は先ず鬼神乱る鬼神乱るるが故に万民乱ると、 今此の文に就いて具さに事の情を案ずるに百鬼早く乱れ万民多く亡ぶ先難是れ明かなり後災何ぞ疑わん・若し残る所の難悪法の科に依つて並び起り競い来らば其の時何んが為んや、 帝王は国家を基として天下を治め人臣は田園を領して世上を保つ、而るに他方の賊来つて其の国を侵逼し自界叛逆して其の地を掠領せば豈驚かざらんや豈騒がざらんや、 国を失い家を滅せば何れの所にか世を遁れん汝須く一身の安堵を思わば先ず四表の静謐を祷らん者か、

풀이

왜 그러한가. 약사경의 칠난 가운데 다섯 난은 이미 일어났고 두 난이 아직 남아 있으니, 이른바 타국침핍의 난과 자계반역의 난이니라. 대집경의 삼재 가운데 두 재앙은 이미 나타났고 한 재앙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른바 병혁(兵革)의 재앙이니라. 금광명경에 설한 갖가지 재앙과 허물이 하나하나 일어났으나, 다른 나라의 원적이 나라 안을 침략한다는 이 재앙만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이 난만은 아직 오지 않았느니라. 인왕경의 칠난 가운데 여섯 난은 지금 한창이나 한 난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른바 사방의 적이 와서 나라를 침범하는 난이니라. 그뿐 아니라 「국토가 어지러워질 때는 먼저 귀신이 어지러워지고, 귀신이 어지러워지므로 만민이 어지러워진다」고 하였느니라. 이제 이 경문에 비추어 일의 사정을 자세히 살펴보니, 온갖 귀신은 일찍이 어지러워졌고 만민은 많이 죽었느니라. 앞의 난이 이처럼 분명하니 뒤의 재앙을 어찌 의심하겠는가. 만약 남은 난이 악법의 죄로 말미암아 나란히 일어나고 다투어 닥쳐온다면, 그때에는 어찌하겠느냐. 제왕은 국가를 기틀로 삼아 천하를 다스리고, 신하와 백성은 논밭을 거느려 세상을 지탱하느니라. 그런데 다른 나라의 적이 와서 그 나라를 침핍하고, 나라 안에서 반역이 일어나 그 땅을 빼앗는다면 어찌 놀라지 않겠으며 어찌 소란스럽지 않겠느냐. 나라를 잃고 집안이 멸망한다면 어느 곳으로 세상을 피해 달아나겠느냐. 그대가 모름지기 한 몸의 안도(安堵)를 생각한다면, 먼저 사방(四表)의 정밀(静謐)을 기원해야 하지 않겠느냐.

本文 · 三어서 31쪽 18행 ~ 32쪽 6행
本文 · 어서 원문

就中人の世に在るや各後生を恐る、是を以て或は邪教を信じ或は謗法を貴ぶ各是非に迷うことを悪むと雖も而も猶仏法に帰することを哀しむ、 何ぞ同じく信心の力を以て妄りに邪義の詞を宗めんや、若し執心飜らず亦曲意猶存せば早く有為の郷を辞して必ず無間の獄に堕ちなん、 所以は何ん、大集経に云く「若し国王有つて無量世に於て施戒慧を修すとも我が法の滅せんを見て捨てて擁護せずんば是くの如く種ゆる所の無量の善根悉く皆滅失し、 乃至其の王久しからずして当に重病に遇い寿終の後大地獄に生ずべし・王の如く夫人・太子・大臣・城主・柱師・郡主・宰官も亦復是くの如くならん」と。

풀이

그 가운데서도 사람은 세상에 있는 동안 저마다 후생(後生)을 두려워하느니라. 그래서 혹은 사교(邪教)를 믿고 혹은 방법을 귀히 여기느니라. 저마다 옳고 그름에 헤매는 것은 밉게 여기지만, 그래도 그들 역시 불법에 귀의하고자 하는 것이니 그것을 가엾게 여기느니라. 어찌하여 같은 신심의 힘을 가지고 함부로 그릇된 뜻의 말을 받드는가. 만약 집착하는 마음이 뒤집히지 않고 또 굽은 뜻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일찍 유위(有爲)의 고향을 하직하고 반드시 무간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라. 왜 그러한가. 대집경에 이르기를, 「만약 국왕이 있어 한량없는 세상 동안 보시 · 지계 · 지혜를 닦았을지라도, 나의 법이 멸하려는 것을 보고도 버려 두고 옹호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이 심은 한량없는 선근이 모두 다 없어지며, (乃至) 그 왕은 오래지 않아 중병에 걸리고 목숨이 다한 뒤에 대지옥에 태어날 것이니라. 왕과 같이 부인 · 태자 · 대신 · 성주 · 주사(柱師) · 군주(郡主) · 재관(宰官)도 또한 이와 같으리라」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鳩化して鷹と為り雀変じて蛤と為る비둘기가 변하여 매가 되고 참새가 변하여 대합이 된다
사물이 크게 변하는 것을 나타낸 말. 출전은 『예기(禮記)』 월령과 『국어(國語)』 등이다. 봄의 따뜻한 기운에 매가 비둘기로 변하고, 늦가을 바닷가에서 시끄럽게 우는 참새가 대합이 된다는 중국의 옛 속신이다. 본문에서는 비둘기와 매의 자리가 거꾸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낫고 못함의 뜻을 취한 것이 아니라 오직 「변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객이 방법의 집착을 버리고 주인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게 된 변화를 가리킨다.
蘭室の友に交りて麻畝の性と成る난실의 벗과 사귀어 삼밭의 성품이 된다
「난실(蘭室)」은 난초 향기 가득한 방으로, 덕 높은 사람이 있는 곳. 향기로운 난초가 있는 방에 오래 있으면 그 향기가 몸에 배듯 덕 높은 사람과 사귀면 저절로 감화된다는 뜻이다. 「마무(麻畝)」는 삼밭. 곧게 자라지 못하는 쑥도 삼밭에 나면 둘레의 삼에 기대어 곧게 자란다. 주인의 가르침을 듣고 객이 사견과 방법을 고쳐 정법에 귀의하게 된 것을 비유한다. 제2단 첫머리에서 객 스스로 「이제 난실에 들어와 처음으로 향기로운 말씀을 듣는다」고 했던 말이 여기서 주인의 입으로 되돌아온다.
不日に豊年ならん머지않아 풍년이 들 것이다
「불일(不日)」은 날을 넘기지 않고, 곧 이윽고라는 뜻. 『시경』의 주에 「날을 지나지 않음이다」라고 한다. 「풍년」에 대해서는 『예기』에 아홉 해 · 여섯 해 · 세 해의 비축을 말한 대목이 있다.
人の心は時に随つて移り物の性は境に依つて改まる사람의 마음은 때에 따라 옮기고 물건의 성질은 경계에 따라 바뀐다
「경(境)」은 둘러싼 환경. 들은 그 자리에서는 감격해도 시간이 지나면 엷어지고, 나쁜 벗들 곁으로 돌아가면 옳다고 알았던 것도 그르게 여기게 된다는 경계의 말이다.
水中の月の波に動き陳前の軍の剣に靡く물속의 달이 물결에 흔들리고 진 앞의 군사가 칼에 쓰러진다
물에 비친 달은 물결이 움직이는 대로 흔들리고, 싸움에 나선 군사는 적이 공격해 오는 대로 쓰러진다. 마음이 바깥 경계에 휘둘리는 모습의 두 비유다. 「진전(陳前)」은 진(陣)의 앞.
現当を祈らん현세와 내세를 기원한다
「현당(現当)」은 현세와 당래세(내세). 현당 이세에 걸친 자신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情慮を回らし생각을 돌려
「정려(情慮)」는 마음의 생각. 지금까지의 생각을 바꾸어 새로 궁리하는 것이다.
薬師経の七難약사경의 칠난
약사경이 설한 일곱 가지 난. 인중질역(人衆疾疫)의 난 · 타국침핍의 난 · 자계반역의 난 · 성수변괴(星宿變怪)의 난 · 일월박식(日月薄蝕)의 난 · 비시풍우(非時風雨)의 난 · 과시불우(過時不雨)의 난이다(입정안국론 제2편 「재난 유래의 경증」).
大集経の三災대집경의 삼재
대집경이 설한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 곡귀(穀貴, 곡식이 귀해짐 · 기근) · 병혁(兵革, 전란) · 역병(疫病)이다.
金光明経の内の種種の災過금광명경 가운데의 갖가지 재앙과 허물
금광명경 사천왕품이 설한 재난. 역병의 유행 · 혜성의 출현 · 두 해가 함께 나타남 · 일식과 월식 · 흑백의 무지개 · 별의 흐름과 지진 · 때 아닌 폭우와 악풍 · 기근 등을 들고, 그 끝에 「다른 나라의 원적이 많아 나라 안을 침략한다」를 든다.
仁王経の七難인왕경의 칠난
인왕경 수지품이 설한 일곱 가지 두려운 난. 해와 달이 법도를 잃음 · 별들이 법도를 잃음 · 큰불 · 큰물 · 큰바람 · 가뭄(亢陽), 그리고 일곱째가 「사방의 적이 와서 나라를 침범하고 안팎의 적이 일어나는」 난이다.
国土乱れん時は先ず鬼神乱る국토가 어지러워질 때는 먼저 귀신이 어지러워진다
인왕경 호국품의 문. 제2단 제4장에 인용된 바로 그 구절이다. 국토의 어지러움은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의 어지러움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만민의 어지러움을 부른다.
他方の賊来つて其の国を侵逼し自界叛逆して其の地を掠領せば다른 나라의 적이 와서 그 나라를 침핍하고 나라 안에서 반역하여 그 땅을 빼앗는다면
남은 두 난, 곧 타국침핍난과 자계반역난이 나라에 무엇을 가져오는가를 구체적으로 그린 말이다.
国を失い家を滅せば何れの所にか世を遁れん나라를 잃고 집안이 멸망한다면 어느 곳으로 세상을 피하겠는가
니치칸 상인의 「입정안국론 문단」은 이 구절에 도후쿠사(東福寺)의 쇼게쓰(招月)가 읊은 노래 「遁れても世を安かれと祈るかな 静かならねば隠れがもなし」(세상을 등져 숨더라도 세상이 편안하기를 비노라, 세상이 고요하지 않으면 숨을 곳도 없으니)를 들어 함께 생각하라고 하였다.
一身の安堵を思わば先ず四表の静謐を祷らん者か한 몸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먼저 사방의 정밀을 기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도(安堵)」는 편안히 머무는 것. 「사표(四表)」는 사방의 바깥, 곧 온 나라와 세상. 「정밀(静謐)」은 고요하고 평온함. 한 사람의 구제가 세상 전체의 평화를 빼고는 있을 수 없음을 밝힌 말이다.
後生を恐る후생을 두려워한다
「후생」은 죽은 뒤의 내세. 사람이 신앙에 기대는 것은 무엇보다 죽음과 죽은 뒤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曲意굽은 뜻
① 뜻이나 주장을 굽히는 것, ② 아견(我見)과 사곡(私曲)의 마음.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바르게 들으려 하지 않고 제멋대로의 생각을 품는 것이다.
有為の郷유위의 고향
「유위(有爲)」는 범어 상스크리타(saṃskṛta)의 번역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뜻. 인연으로 생겨나는 갖가지 법을 말한다. 유위의 법은 반드시 생 · 주 · 이 · 멸이 있어 상주하지 않으므로 「유위무상」이라 한다. 「유위의 고향」은 이 사바세계, 곧 이 세상을 말한다.
無間の獄무간의 지옥
팔대지옥 가운데 가장 괴로운 아비지옥. 괴로움이 끊일 틈이 없으므로 무간이라 한다. 제4장에서 그 경문이 다시 나온다.
夫人・太子・大臣・城主・柱師・郡主・宰官부인 · 태자 · 대신 · 성주 · 주사 · 군주 · 재관
국왕을 둘러싼 왕실과 관료들. 제2단 제7장에 인용된 대집경의 같은 문에서는 「군수(郡守)」로 되어 있다. 정법이 멸하는 것을 보고도 지키지 않는 죄가 왕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나라를 다스리는 모든 이에게 미친다는 것이다.

객의 변화를 기뻐하다 — 난실의 벗과 삼밭의 쑥

제2장은 객이 태도를 고쳐 주인의 말대로 방법에 대한 보시를 멈추고 정법을 믿어 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기약하겠다고 맹세한 것을 기뻐하고, 거듭 그 결의의 실천을 재촉하는 장이다. 특히 삼재칠난 가운데 자계반역 · 타국침핍의 두 난이 남아 있으며, 대성인의 간효를 받아들여 방법을 대치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 두 난이 다투어 일어나리라고 예언하신 것이 중요하다.

주인의 첫마디는 기쁨이다. 「비둘기가 변하여 매가 되고 참새가 변하여 대합이 된다」는 옛말처럼 객이 크게 변했다. 「난실의 벗과 사귀어 삼밭의 성품이 되었다」는 말은 객이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리석음이 깨우쳐져, 그저 재난을 탄식하던 사람에서 대치의 법을 들고 일어서는 사람으로 바뀐 것을 기뻐하는 말이다.

사람은 환경을 지배하고 둘레를 움직여 가지만, 거꾸로 환경에 지배되고 남에게 움직여지는 면도 적지 않다. 자기에게 확고한 지침과 신념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움직여지고 지배되는 쪽이 많다. 환경과 사귀는 벗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확고한 지침과 신념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것을 가진 사람과 만나고 부딪치는 가운데 저절로 자기를 세워 갈 수 있다. 쑥은 쑥대로는 곧게 자라지 못하지만 삼밭에 나면 곧게 자란다. 객이 「망령된 집착이 뒤집혔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객 혼자의 힘이 아니라, 주인이라는 난실의 벗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의 삼밭 — 곧게 자란 삼 줄기들 사이에 섞여 함께 곧게 선 쑥 몇 포기
그림 · 이른 아침의 삼밭 — 곧게 자란 삼 줄기들 사이에 섞여 함께 곧게 선 쑥 몇 포기

「사람의 마음은 때에 따라 옮긴다」 — 결심이 식기 전에

그런데 주인은 기뻐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경계의 말을 덧붙인다. 「사람의 마음은 때에 따라 옮기고, 물건의 성질은 경계에 따라 바뀐다.」 이야기를 들은 그 자리에서는 감격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감격은 엷어진다. 또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옳다고 알았던 것도, 나쁜 무리 곁으로 돌아가면 옳지 않은 듯 여겨지고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생각을 고쳐먹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물속에 비친 달이 물결 따라 흔들리고, 진 앞에 선 군사가 적의 칼끝 따라 쓰러지는 것과 같다. 「그대가 이 자리에서는 믿는다고 하나 뒤에는 반드시 길이 잊어버릴 것이다」라는 말은 차갑게 들리지만, 객을 끝까지 지키려는 주인의 자비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도, 사회와 국가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정신의 기둥을 세워야 한다. 낮은 철학 · 낮은 사상은 반드시 언젠가 힘을 잃고 무너진다. 좁은 사상으로는 넓은 시야에서 서로 어울려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없다. 가장 높고 가장 원만한 철학에 의지해야 하며, 그것은 니치렌 대성인의 색심불이(色心不二)의 생명철학, 곧 삼대비법의 불법이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막는 길은 마음을 다잡는 결심만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법에 마음을 묶어 두는 데 있다.

기쁨
  • 변함비둘기가 매가 되고 참새가 대합이 된다鳩化して鷹と為り雀変じて蛤と為る객이 방법을 버리고 정법에 따름
  • 감화난실의 벗과 사귀어 삼밭의 성품이 된다蘭室の友に交りて麻畝の性と成る덕 있는 이와 사귀어 곧아짐
경계
  • 흔들림 ①물속의 달이 물결에 흔들린다水中の月の波に動き
  • 흔들림 ②진 앞의 군사가 칼에 쓰러진다陳前の軍の剣に靡く
사람의 마음은 때에 따라 옮기고 물건의 성질은 경계에 따라 바뀐다人の心は時に随つて移り物の性は境に依つて改まる
도표 3 · 마음의 변화를 말하는 네 비유

「먼저 국토를 편안히 하여 현당을 기원하려면」 — 서둘러 대치를 더하라

그래서 주인은 「만약 먼저 국토를 편안히 하여 현세와 내세를 기원하고자 한다면, 속히 생각을 돌려 서둘러 대치를 더하라」고 재촉한다. 약사경 ·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의 네 경문에 비추어 보면 자계반역 · 타국침핍의 두 난은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 근원은 한 나라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방법을 대치하는 것이 국토를 지키는 데 첫째로 긴요하며, 그런 뒤에 현재와 미래, 나아가 내세에 걸친 행복과 번영을 기원하라는 말씀이다.

한 나라의 방법을 걷어 내는 것은 방법의 승려를 금하고 부처의 정법에 맞서는 종교를 대치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지도자도 민중도 저마다의 일념 속에 있는 방법을 끊어 내는 데로 돌아간다. 한 집안의 경우에도 방법을 걷어 내는 일을 통해 일념의 방법을 끊게 된다. 나라의 방법과 한 사람의 방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방법을 금하여 자계반역 · 타국침핍의 근원을 막고, 국토를 편안히 한 뒤에 저마다 행복한 경애를 세워 가야 한다는 것이 이 구절의 뜻이다.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국토를 편안히 하여」가 앞에 있고 「현당을 기원한다」가 뒤에 있다. 이 말에는 자계반역 · 타국침핍의 두 난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대성인의 확신이 담겨 있으며, 그 예언이 적중했다는 것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다.

네 경의 재난 가운데 남은 것 — 다섯 난과 두 난

주인이 「서둘러 대치를 더하라」고 하는 까닭은 네 경의 재난 목록에 아직 비어 있는 칸이 있기 때문이다. 약사경의 칠난 가운데 다섯, 곧 인중질역 · 성수변괴 · 일월박식 · 비시풍우 · 과시불우의 난은 이미 일어났다. 정가 · 정원 연간에 잇따른 역병과 천변, 때 아닌 큰바람과 가뭄이 그것이다. 남은 것은 타국침핍과 자계반역의 두 난이다. 대집경의 삼재 가운데 곡귀와 역병은 이미 나타났고 병혁만이 남았다. 금광명경의 갖가지 재앙도 하나하나 일어났지만 「다른 나라의 원적이 나라 안을 침략한다」는 재앙만 아직 오지 않았다. 인왕경의 칠난 가운데 여섯은 지금 한창이고 「사방의 적이 와서 나라를 침범하는」 난만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네 경을 나란히 놓으면 비어 있는 칸은 모두 같은 것을 가리킨다. 밖에서 쳐들어오는 적과 안에서 일어나는 반역, 곧 전란이다. 주인은 여기서 인왕경의 「국토가 어지러워질 때는 먼저 귀신이 어지러워지고, 귀신이 어지러워지므로 만민이 어지러워진다」를 끌어온다. 온갖 귀신은 이미 어지러워졌고 만민은 이미 많이 죽었다. 앞의 난, 곧 귀신의 어지러움과 만민의 어지러움은 이처럼 분명하다. 그렇다면 뒤의 재앙, 곧 국토의 어지러움을 어찌 의심하겠는가. 이미 일어난 재난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재난의 증거가 된다. 「앞의 난이 이처럼 분명하니 뒤의 재앙을 어찌 의심하겠는가」라는 한 줄은 「입정안국론」의 예언이 막연한 경고가 아니라 경문의 논리 위에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경약사경 칠난
이미 일어남5/7일곱 가운데 다섯은 이미 일어남
남은 것남은 둘 = 타국침핍의 난 · 자계반역의 난
경대집경 삼재
이미 일어남2/3셋 가운데 둘(곡귀 · 역병)은 이미 나타남
남은 것남은 하나 = 병혁의 재앙
경금광명경
이미 일어남하나하나갖가지 재앙이 하나하나 일어남
남은 것남은 하나 = 다른 나라의 원적이 나라 안을 침략함
경인왕경 칠난
이미 일어남6/7일곱 가운데 여섯은 지금 한창
남은 것남은 하나 = 사방의 적이 와서 나라를 침범함
밖의 적 · 안의 반역 = 전란
앞의 난이 이처럼 분명하니 뒤의 재앙을 어찌 의심하겠는가先難是れ明かなり後災何ぞ疑わん
도표 4 · 네 경의 재난 — 이미 일어난 것과 남은 것

자계반역난의 적중 — 문영 9년의 니가쓰 소동

「입정안국론」이 예고한 두 난 가운데 자계반역난은 문영 9년(1272) 2월의 호조 도키스케(北條時輔)의 난으로 나타났다.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되어 계시던 때의 일이다.

도키스케는 호조 도키요리의 아들로, 집권 호조 도키무네와는 배다른 형제이며 도키무네의 형이었다. 도키요리의 정실 소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독(家督)을 동생 도키무네에게 넘겨주게 된 것을 원망하여 모반을 꾀했다고 전한다. 이를 미리 알아챈 도키무네는 한패로 지목된 나고에 노리토키(名越教時) · 센바 모리나오(仙波盛直) 등을 2월 11일 가마쿠라에서 죽이고, 이어 15일에는 교토 로쿠하라(六波羅)의 남방 탐제(探題)로 있던 도키스케를 로쿠하라 북방의 호조 요시무네(北條義宗) 등에게 치게 했다. 세상은 이를 「니가쓰 소동(二月騒動)」이라 불렀다. 집권 일문의 형제가 서로 칼을 겨눈 이 사건은, 대성인이 「종종어진무어서」에서 「이 어일문이 동사(同士)싸움을 시작할 것이다」라고 하신 그대로였다.

타국침핍난의 적중 — 몽골의 국서에서 두 번의 내습까지

타국침핍난은 문영 5년(1268) 정월, 몽골과 고려의 국서를 지닌 사신 반부(潘阜)가 다자이후에 이르고, 문응 원년(1260)의 예언으로부터 만 7년 7개월(윤달을 넣어 셈)이 지난 그해 윤정월에 그 국서가 가마쿠라에 전해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몇 차례 사신이 오간 뒤 만 14년이 지난 문영 11년(1274) 10월에 문영의 역(文永の役)이, 문응 원년에서 헤아려 21년 뒤인 홍안 4년(1281) 5월에 홍안의 역(弘安の役)이 일어났다.

이 난에 대해 대성인은 대집경의 삼재, 약사경과 인왕경의 칠난, 금광명경의 갖가지 난을 들어, 사법을 멈추고 정법을 세우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 공격당해 망국의 쓰라림을 겪으리라고 강하게 경고하셨다. 이 장의 본문 「만약 먼저 국토를 편안히 하여 … 먼저 사방의 정밀을 기원해야 하지 않겠느냐」(31쪽)는 바로 그 경고의 글이다. 그러나 당시의 가마쿠라 막부도, 세상의 지도자들도, 민중도 모두 나라와 민중을 간하는 대성인의 이 글을 한낱 웃음거리로 넘겨 버렸다.

과연 「입정안국론」을 사이묘지 입도 호조 도키요리에게 올린 문응 원년으로부터 만 7년 7개월이 지난 문영 5년 윤정월 18일, 서쪽의 대몽골국으로부터 일본을 치겠다는 뜻의 첩장(牒状)이 도래했다. 이듬해 문영 6년(1269)에도 다시 몽골의 첩장이 전해졌다. 대성인은 문영 6년 12월 8일, 「입정안국론」을 다시 옮겨 쓰시고 그 끝에 이 일을 적으신 뒤 이렇게 덧붙이셨다.

既に勘文之に叶う、之に準じて之を思うに未来亦然る可きか、此の書は徴有る文なり是れ偏に日蓮が力に非ず法華経の真文の感応の至す所か

이미 감문(勘文)이 이에 들어맞았느니라. 이에 견주어 생각하건대 미래도 또한 그러할 것이니라. 이 글은 징험이 있는 글이니라. 이는 오로지 니치렌의 힘이 아니라 법화경의 진문(眞文)이 감응한 바일 것이니라.

「입정안국론오서」, 33쪽

또 국서가 온 문영 5년 4월 5일에 쓰신 「안국론어감유래」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正嘉の大地震同じく大風同じく飢饉・正元元年の大疫等を見て記して云く他国より此の国を破る可き先相なりと、自讃に似たりと雖も若し此の国土を毀壊せば復た仏法の破滅疑い無き者なり

니치렌은 정가의 대지진, 같은 때의 큰바람, 같은 때의 기근, 정원 원년의 큰 역병 등을 보고 기록하여 「다른 나라로부터 이 나라를 깨뜨릴 전조(先相)이다」라고 하였느니라. 스스로를 기리는 듯하나, 만약 이 국토가 무너진다면 불법도 또한 파멸할 것이 의심 없느니라.

「안국론어감유래」, 35쪽

이어서 대성인은 당세의 고승들이 방법의 무리와 뜻을 같이하므로, 칙선과 교서를 받아 이 흉악을 기도한다면 부처와 신이 더욱 성을 내어 국토를 깨뜨릴 것이라 하시고, 그것을 대치하는 방법을 아는 이는 히에이잔을 빼고는 일본국에 오직 한 사람뿐이라 하셨다.

日蓮復之を対治するの方之を知る叡山を除いて日本国には但一人なり、譬えば日月の二つ無きが如く聖人肩を並べざるが故なり、若し此の事妄言ならば日蓮が持つ所の法華経守護の十羅刹の治罰之を蒙らん、但偏に国の為法の為人の為にして身の為に之を申さず

니치렌은 또 이것을 대치하는 방법을 아느니라. 히에이잔을 빼고는 일본국에 오직 한 사람이니라. 비유하자면 해와 달이 둘이 없듯 성인은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만약 이 일이 거짓말이라면 니치렌이 지니는 법화경을 수호하는 십나찰의 벌을 받으리라. 다만 오로지 나라를 위하고 법을 위하고 사람을 위해서이지 내 몸을 위해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안국론어감유래」, 35쪽

세 번의 고명 — 「삼세를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

대성인은 일본국이 방법을 계속한다면 몽골이 쳐들어올 위험이 있음을 세 번에 걸친 국가 간효에서 경고하셨다. 이것을 「선시초」에서 「세 번의 고명(高名)」으로 말씀하셨다.

外典に曰く未萠をしるを聖人という内典に云く三世を知るを聖人という余に三度のかうみようあり一には去し文応元年太歳庚申七月十六日に立正安国論を最明寺殿に奏したてまつりし時宿谷の入道に向つて云く禅宗と念仏宗とを失い給うべしと申させ給へ此の事を御用いなきならば此の一門より事をこりて他国にせめられさせ給うべし

외전에 이르기를 「아직 싹트지 않은 것을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 하고, 내전에 이르기를 「삼세를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 하였느니라. 나에게는 세 번의 고명이 있느니라. 첫째는 지난 문응 원년 경신 7월 16일에 「입정안국론」을 사이묘지 전에게 올렸을 때 야도야 입도에게 「선종과 염불종을 없애시도록 말씀드려 주시오. 이 일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이 일문으로부터 일이 일어나 다른 나라에게 공격당하실 것이오」라고 하였느니라.

「선시초」, 287쪽

二には去し文永八年九月十二日申の時に平左衛門尉に向つて云く日蓮は日本国の棟梁なり予を失なうは日本国の柱橦を倒すなり、只今に自界反逆難とてどしうちして他国侵逼難とて此の国の人人・他国に打ち殺さるのみならず多くいけどりにせらるべし

둘째는 지난 문영 8년 9월 12일 신시(申時)에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니치렌은 일본국의 동량이니라. 나를 잃는 것은 일본국의 기둥을 넘어뜨리는 것이니라. 머지않아 자계반역난이라 하여 동사(同士)싸움이 일어나고, 타국침핍난이라 하여 이 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게 쳐 죽임을 당할 뿐 아니라 많이 사로잡혀 갈 것이니라」라고 하였느니라.

「선시초」, 287쪽

第三には去年文永十一年四月八日左衛門尉に語つて云く、王地に生れたれば身をば随えられたてまつるやうなりとも 心をば随えられたてまつるべからず

셋째는 지난해 문영 11년 4월 8일 사에몬노조에게 「왕의 땅에 태어났으니 몸은 따르는 듯하더라도 마음까지 따를 수는 없느니라」라고 말하였느니라.

「선시초」, 287쪽

세 번째 고명에서 대성인은 이어서 염불은 무간지옥의 업, 선은 천마의 소행이며 특히 진언종이 이 나라의 큰 재앙이므로 몽골 조복을 진언사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요리쓰나가 「언제쯤 쳐들어오겠소」라고 묻자 대성인은 이렇게 답하셨다.

頼綱問うて云くいつごろよせ候べき、予言く経文にはいつとはみへ候はねども天の御気色いかりすくなからず・きうに見へて候よも今年はすごし候はじと語りたりき

요리쓰나가 「언제쯤 쳐들어오겠소」라고 물었느니라. 내가 말하기를 「경문에는 언제라고는 보이지 않으나, 하늘의 기색이 노여움이 적지 않고 급하게 보이니 설마 올해를 넘기지는 않을 것이오」라고 하였느니라.

「선시초」, 287쪽

그리고 대성인은 이 세 가지 큰일을 니치렌 자신의 말이 아니라고 하셨다.

此の三つの大事は日蓮が申したるにはあらず只偏に釈迦如来の御神・我身に入りかわせ給いけるにや我が身ながらも悦び身にあまる法華経の一念三千と申す大事の法門はこれなり

이 세 가지 큰일은 니치렌이 말한 것이 아니니라. 다만 오로지 석가여래의 혼이 내 몸에 들어와 대신하신 것일까. 내 몸이면서도 기쁨이 몸에 넘치느니라. 법화경의 일념삼천이라는 큰 법문이 바로 이것이니라.

「선시초」, 287쪽

「종종어진무어서」에서도 문영 8년(1271) 9월 10일, 다쓰노구치 법난 이틀 전 평정소에 불려 나가셨을 때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하신 말씀을 이렇게 회고하셨다.

日蓮・御勘気をかほらば仏の御使を用いぬになるべし、梵天・帝釈.日月.四天の御とがめありて遠流.死罪の後.百日・一年・三年・七年が内に自界叛逆難とて此の御一門どしうちはじまるべし、 其の後は他国侵逼難とて四方より・ことには西方よりせめられさせ給うべし

니치렌이 어감기(御勘氣)를 입는다면 부처의 사자를 쓰지 않는 것이 되느니라.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왕의 꾸짖음이 있어, 원류 · 사죄 뒤 백 일 · 일 년 · 삼 년 · 칠 년 안에 자계반역난이라 하여 이 어일문의 동사싸움이 시작될 것이니라. 그 뒤에는 타국침핍난이라 하여 사방에서, 특히 서쪽에서 공격당하실 것이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1쪽

대성인의 예언대로, 문영 8년(1271) 10월 사도 유배로부터 백 일 남짓 지난 문영 9년 2월에 집권 도키무네의 배다른 형인 로쿠하라 탐제 호조 도키스케의 모반이 있어, 가마쿠라와 교토에서 집권 일문이 서로 칼을 겨누는 내란이 일어났다. 다시 2년 남짓 뒤인 문영 11년 10월에 첫 번째 몽골 내습인 문영의 역이, 다시 6년 반 남짓 뒤인 홍안 4년 5월에 두 번째 내습인 홍안의 역이 있었다. 대성인의 예언은 놀라울 만큼 적중했다.

이 적중을 대성인은 「성인지삼세사」에서 성인의 뜻과 함께 이렇게 밝히셨다.

聖人と申すは委細に三世を知るを聖人と云う

성인이라 함은 삼세를 자세히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하느니라.

「성인지삼세사」, 974쪽

正嘉の大地震・文永の長星は誰が故ぞ日蓮は一閻浮提第一の聖人なり、上一人より下万民に至るまで之を軽毀して刀杖を加え流罪に処するが故に梵と釈と日月・四天と隣国に仰せ付けて之を逼責するなり

정가의 대지진과 문영의 긴 꼬리별은 누구 때문인가. 니치렌은 일염부제 제일의 성인이니라. 위로 한 사람에서 아래로 만민에 이르기까지 이를 업신여기고 칼과 몽둥이를 더하며 유죄에 처하므로, 범천과 제석과 일월 · 사천왕이 이웃 나라에 명하여 이를 핍박하여 꾸짖게 하는 것이니라.

「성인지삼세사」, 974쪽

세 번의 고명과 그 적중은 「보은초」 제5편 「대성인의 국가 간효와 재난의 근원」과 「선시초」에서도 다룬다. 이 편에서는 「입정안국론」 본문이 예고한 「남은 두 난」이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가에 초점을 둔다.

◇ 고명● 적중

  1. 문응 원년(1260) 7월 16일「입정안국론」을 야도야 입도를 거쳐 사이묘지 입도 호조 도키요리에게 올림첫 번째 고명 — 남은 두 난(타국침핍 · 자계반역)을 예고
    ↕ 예언으로부터 만 7년 7개월
  2. 문영 5년(1268) 정월 · 윤정월몽골 · 고려의 국서가 다자이후에 이르고 윤정월 18일 가마쿠라에 전해짐
  3. 문영 5년 4월 5일「안국론어감유래」
  4. 문영 6년(1269) 12월 8일「입정안국론」을 다시 옮겨 쓰고 오서를 적음「이미 감문이 이에 들어맞았다」既に勘文之に叶う
  5. 문영 8년(1271) 9월 12일다쓰노구치 법난 · 두 번째 고명
  6. 문영 9년(1272) 2월니가쓰 소동 — 자계반역난
  7. 문영 11년(1274) 4월 8일세 번째 고명 — 「설마 올해를 넘기지 않을 것」
  8. 문영 11년 10월문영의 역 — 타국침핍난
  9. 홍안 4년(1281) 5월~윤7월홍안의 역
도표 5 · 예언과 적중의 연표
  • 첫째문응 원년(1260) 7월 16일야도야 입도에게「선종과 염불종을 없애지 않으면 이 일문에서 일이 일어나 다른 나라에 공격당할 것」
  • 둘째문영 8년(1271) 9월 12일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나를 잃는 것은 일본국의 기둥을 넘어뜨리는 것.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이 일어날 것」자계반역난타국침핍난
  • 셋째문영 11년(1274) 4월 8일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몽골 조복을 진언사에게 맡기지 말라. 설마 올해를 넘기지 않을 것」
「선시초」, 287쪽
삼세를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三世を知るを聖人という
도표 6 · 세 번의 고명

몽골의 사신과 두 번의 내습 — 쿠빌라이의 제국과 고려

몽골 내습 무렵의 대원 제국은 세조 쿠빌라이(忽必烈)의 시대였다. 아시아의 대부분과 중앙아시아 · 동유럽에 걸친 넓은 영역을 다스려, 서유럽 · 인도 · 일본을 빼고는 당시 알려진 세계의 대부분이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뒤 전에 없던 대제국이었다. 지금의 미얀마 땅에 있던 면국(緬國)도 원의 출병으로 굴복했고, 캄보디아도 조공을 바쳤으며, 자와 · 수마트라 등 남쪽 바다의 나라들도 원의 압력으로 잇달아 입공했다. 뒤에 자와가 맞서자 쿠빌라이는 3만의 군대를 보내 왕성을 쳤다고 한다.

가장 참혹한 일을 겪은 것은 고려였다. 1219년(일본의 승구 원년) 무렵부터 몽골과 고려 사이에 외교 관계가 생겨, 몽골의 사신이 자주 고려에 와서 막대한 공물을 요구했다. 1225년, 몽골의 사신이 돌아가는 길에 압록강 가에서 도적에게 살해되는 일이 일어나자 몽골은 이를 고려 정부의 책임으로 돌려 국교를 끊었다. 1231년, 몽골은 사신 살해를 구실로 고려에 쳐들어왔고, 그 뒤 약 30년 동안 고려는 몽골의 침략을 거듭 받았다. 고려군은 싸움마다 크게 맞섰으나 중과부적이었고, 거듭된 침략으로 고려가 입은 참상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1259년(정원 원년) 고려 태자가 몽골에 들어가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새 국면에 들어섰고, 고려 왕조는 끝내 몽골 진영의 한 날개로 편입되었다.

1260년, 세조 쿠빌라이가 즉위하면서 몽골은 고려 침략을 멈추었다. 그러나 고려에 새롭고 무거운 임무를 지우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본을 치라는 명령이었다. 바로 그해에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을 지어 타국침핍난을 경고하셨다. 한 나라 안에서 재해를 바라보며 쓰신 글이, 바다 건너에서 막 움직이기 시작한 거대한 힘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사신은 여섯 차례에 걸쳐 왔다. 1266년(문영 3년) 11월, 병부시랑 흑적(黒的)과 예부시랑 은홍(殷弘)이 일본을 부르는 쿠빌라이의 조서를 지니고 고려에 왔다. 조서 한 통은 고려 왕에게, 한 통은 일본 국왕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첫 번째 몽골 사신이다. 고려 왕에게 보낸 글은 몽골의 사신을 일본까지 안내하라고 엄명하는 것으로, 바다의 험함을 핑계 삼지 말고 일찍이 통교한 적이 없다는 것을 구실 삼지도 말라는 내용이었다. 일본 국왕에게 보낸 글은 「하늘의 돌봄을 받은 대몽골국 황제」가 고려를 동쪽의 번국으로 삼았음을 말하고 통교를 요구한 뒤,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이 어찌 한 집안의 도리이겠는가. 군사를 쓰기에 이르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라는 말로 맺은, 위협을 담은 무례한 글이었다.

고려의 군신은 일본이 이를 거부하면 자신들이 몽골의 선봉으로 일본을 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일본으로 건너가는 바다의 풍랑이 사납다는 것, 일본에 사신을 보내는 것이 해롭고 이익이 없다는 것 등을 들어 조서를 전하는 일을 단념시켰다. 사신 일행은 이듬해 정월 거제도까지 왔다가 헛되이 돌아갔다.

그러나 문영 4년(1267) 8월, 쿠빌라이는 노하여 다시 흑적 · 은홍에게 일본에 사신으로 가라고 엄명했다. 이것이 두 번째 사신이다. 고려는 하는 수 없이 반부(潘阜)를 사신으로 삼아 8월에 일본으로 출발시켰다. 반부는 지난해의 몽골 황제 조서와 고려의 국서를 지니고 11월에 쓰시마를 거쳐 문영 5년(1268) 정월 다자이후에 이르렀다. 몽골과 고려의 국서는 가마쿠라로 보내졌다가 교토로 넘겨졌으나, 평의 끝에 국서를 받지 않고 답서도 주지 않기로 결정되어 반부 일행은 헛되이 물러갔다.

쿠빌라이는 일본을 치기 위해 고려에 군사 4만의 징발과 병선 1천 척의 건조를 명하는 한편, 세 번째 사신을 보냈다. 문영 5년 11월, 흑적 · 은홍이 고려를 거쳐 직접 일본으로 향했으나 쓰시마에서 일본인을 붙잡아 돌아갔다. 네 번째 사신은 문영 6년(1269), 그 일본인 포로를 데리고 고려를 거쳐 9월에 쓰시마에 이르렀다. 다자이후는 사신 일행을 쓰시마에 머물게 하고 첩장을 가마쿠라로 보냈으나, 막부는 아무 답도 하지 않고 사신을 돌려보냈다. 그 뒤 고려에 반란이 일어났으나 몽골은 문영 7년(1270)에 다섯 번째, 문영 9년에 여섯 번째 사신을 보냈다. 이때는 원의 조양필(趙良弼)이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다자이후에 와서 국왕 · 장군을 직접 만나 국서를 건네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조양필은 문영 10년(1273) 5월 몽골로 돌아가 쿠빌라이에게 복명했다.

쿠빌라이는 마침내 일본 정벌을 결의하여, 문영 11년(1274) 정월 고려에 크고 작은 전함 900척의 건조를 명했고, 6월에 건조가 끝났다. 몽골군 3만과 고려군 1만 3천의 연합군은 그해 10월 6일 쓰시마를 쳐서 슈고다이 소 스케쿠니(宗助国) 이하를 전멸시키고, 10월 14일에는 이키를 습격하여 슈고다이 다이라노 가게타카(平景高) 이하를 전멸시켰으며, 다시 하카타 만에 상륙하여 하카타 · 하코자키를 공략했다. 그러나 다자이후의 점령을 이튿날로 미루고 배로 물러났다가, 겨울 계절풍을 두려워하여 돌아가는 길에 바람을 만나 1만 3천여 명의 미귀환자를 남기고 고려의 합포(合浦)로 되돌아갔다고 전한다.

하카타 만의 저녁 — 잔잔한 바다와 긴 모래 해안, 해안을 따라 낮게 이어진 옛 돌 방루, 먼 섬들 — 배도 사람도 없음
그림 · 하카타 만의 저녁 — 잔잔한 바다와 긴 모래 해안, 해안을 따라 낮게 이어진 옛 돌 방루, 먼 섬들 — 배도 사람도 없음

그 뒤에도 고려에 대한 압박은 이어졌다. 충렬왕은 다시는 일본 원정을 하지 않게 해 달라고 몽골에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건치 원년(1275) 4월 원의 사신 두세충(杜世忠) 등이 나가토에 왔으나, 9월에 도키무네는 이들을 베어 몽골의 노여움을 더욱 샀다. 몽골은 홍안 2년(1279) 고려에 일본 원정용 전함 600척, 이어 900척의 건조를 명했다. 홍안 4년(1281), 쿠빌라이의 명으로 범문호(范文虎)가 이끄는 강남군 10만 · 3,500척과, 몽골 · 고려 연합의 동로군 4만 · 900척, 합하여 14만 · 4,400척의 대군이 하카타 만으로 향했다. 동로군은 5월 26일부터 쓰시마 · 이키 · 시카노시마 · 노코노시마 등을 쳤고, 7월 초 늦게 온 강남군과 합류한 14만 대군은 7월 27일 다카시마(鷹島)를 점령하여 하카타 만으로 밀려들려 했다. 그러나 7월 30일부터 이튿날 윤7월 1일에 걸쳐 태풍이 불어닥쳐 원의 병선은 대부분 가라앉았고, 14만 대군은 일본 상륙을 눈앞에 두고 무너졌다. 살아 돌아간 이는 3만 수천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쿠빌라이는 그래도 일본 원정을 단념하지 않았다. 홍안 6년(1283)에는 일본 원정을 위한 정동행성(征東行省)을 다시 두고, 홍안 7년 가을부터 출병 준비와 병선 건조를 시작했으며, 홍안 8년(1285) 11월에는 일본 원정의 대계획을 발표하여 고려에도 전함 650척과 군사의 징발을 명했다. 다시 십수만의 대군이 고려의 합포에 모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홍안 6년 9월 광둥에서 봉기가 일어나고 10월에는 푸젠에서 10만의 큰 반란이 일어나 일본 원정을 위해 편성된 군대를 나라 안의 반란 진압에 써야 했고, 광시 · 광둥 · 후난 · 장시 등지에서도 잇따라 반란이 일어났다. 홍안 9년(1286), 쿠빌라이는 「일본은 외딴 섬의 오랑캐이다. 거듭 백성의 힘을 괴롭히는 까닭에 일본을 치는 것을 그만둔다」고 하여 마침내 원정을 단념했다. 『원사(元史)』는 이 소식에 강남 · 절강 지역의 군민이 기뻐하여 「환호성이 우레와 같았다」고 전한다.

  1. 1260쿠빌라이 즉위고려 침략을 멈추고 일본 초유로 방향을 돌림(같은 해 「입정안국론」)
  2. 1차 1266.11흑적 · 은홍거제도에서 되돌아감
  3. 2차 1267.8반부1268 정월 다자이후 도착, 국서를 받지 않음
  4. 3차 1268.11흑적 · 은홍쓰시마에서 일본인을 붙잡아 돌아감
  5. 4차 1269.9쓰시마에서 돌려보냄
  6. 5차 1270 · 6차 1272조양필국서 전달을 거절당함, 1273.5 복명
  7. 1274.10문영의 역몽골 3만 · 고려 1만 3천, 쓰시마 · 이키 · 하카타
  8. 1275.9원 사신 두세충을 벰
  9. 1281.5~윤7.1홍안의 역14만 · 4,400척, 태풍으로 무너짐
  10. 1286쿠빌라이, 일본 원정을 단념
도표 7 · 몽골의 사신과 두 번의 내습

나라는 왜 망하지 않았는가 — 니치칸 상인의 두 가지 답

이처럼 엄연한 사실이 있는데도, 몽골군은 두 번 모두 비바람을 만나 물러갔으니 「나라가 망한다」는 대성인의 예언은 빗나간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입정안국론 문단」에서 다음과 같이 풀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첫째, 그것은 대자비로 충심을 다해 간하신 뜻이다. 아버지가 아들의 잘못을 꾸짖으며 「고치지 않으면 몸을 망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아들의 몸을 망치지 않게 하려는 부모의 마음이다. 그와 같이 대성인의 예언도 나라를 편안히 하려는 대자비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예언은 맞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둘째, 세상 사람들이 「신의 힘으로 지켜졌다」고 말하는 것과 관련된다. 하나는 가마쿠라 막부가 뉘우쳐 고쳤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막부는 대성인의 사도 유배를 사면하고 그 뒤로는 대성인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게 되었다. 또 하나는 무엇보다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이 일본국에 계시면서 지켜 주셨기 때문이다. 「종종어진무어서」의 말씀 그대로다.

かかる日蓮を用いぬるともあしくうやまはば国亡ぶべし、何に況や数百人ににくませ二度まで流しぬ、此の国の亡びん事疑いなかるべけれども且く禁をなして国をたすけ給へと日蓮がひかうればこそ今までは安穏にありつれども・はうに過ぐれば罰あたりぬるなり、又此の度も用ひずば大蒙古国より打手を向けて日本国ほろぼさるべし

이러한 니치렌을 쓰더라도 잘못 공경하면 나라가 망할 것이니라. 하물며 수백 명에게 미움받게 하고 두 번이나 유배를 보냈느니라. 이 나라가 망할 일은 의심할 바 없으나, 「잠시 벌을 멈추시어 나라를 도와주소서」 하고 니치렌이 붙잡고 있기에 지금까지는 안온했던 것이지만, 법도를 넘으면 벌이 내리는 것이니라. 또 이번에도 쓰지 않는다면 대몽골국에서 군사를 보내 일본국이 멸망당할 것이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9쪽

두 번째 몽골 내습도 니치렌 대성인이 엄연히 일본국에 계셨기에 망국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대한 전비를 쓴 호조 막부는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져, 머지않아 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성인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 슬픔 너머를 보셨다. 「이체동심사」의 말씀이다.

我が国のほろびん事はあさましけれども、これだにもそら事になるならば・日本国の人人いよいよ法華経を謗して万人無間地獄に堕つべし、かれだにもつよるならば国はほろぶとも謗法はうすくなりなん、譬へば灸治をしてやまいをいやし針治にて人をなをすがごとし、 当時はなげくとも後は悦びなり

우리나라가 망하는 일은 한심스럽지만, 이것마저 거짓말이 된다면 일본국 사람들은 더욱 법화경을 비방하여 만인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니라. 그것(몽골)이 강해진다면 나라는 망하더라도 방법은 엷어질 것이니라. 비유하자면 뜸으로 병을 고치고 침으로 사람을 낫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때는 탄식하더라도 뒤에는 기쁨이 되리라.

「이체동심사」, 1463쪽

나라의 존망보다 더 무거운 것은 사람들이 방법으로 무간에 떨어지는 일이다. 예언이 거짓이 되어 사람들이 더욱 방법에 빠지는 것보다, 쓰라린 현증을 통해 방법이 엷어지는 편이 뜸과 침처럼 끝내 사람을 살린다. 이 말씀은 「입정안국론」의 예언이 나라에 대한 저주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을 향한 자비에서 나왔음을 보여 준다.

첫째대자비로 충심을 다해 간하신 뜻아버지가 「고치지 않으면 몸을 망친다」고 꾸짖는 것은 망치지 않게 하려는 마음
둘째 ①막부가 뉘우쳐 고침사도 유배를 사면하고 그 뒤 방해하지 않음
둘째 ②어본불이 계시어 지키심「니치렌이 붙잡고 있기에 지금까지는 안온했다」日蓮がひかうればこそ今までは安穏にありつれども
그러나 전비로 궁핍해진 막부는 머지않아 망함
도표 8 · 「나라는 왜 망하지 않았는가」 — 니치칸 상인의 두 가지 답

「제왕은 국가를 기틀로」 — 정치의 사명과 민중의 생활

「제왕은 국가를 기틀로 삼아 천하를 다스리고, 신하와 백성은 논밭을 거느려 세상을 지탱한다.」 제왕은 정치를 맡은 지도자이고 인신(人臣)은 민중이다. 국가는 작게 말하면 한 지방이고 보통은 한 나라라는 사회이다. 「전원(田園)」은 농업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계를 꾸리는 모든 생업을 아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문은, 정치의 사명이 나라라는 사회의 운영을 통해 민중의 생활을 지키는 데 있고, 민중은 저마다의 생업에 힘써 행복한 생활을 꾸려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 침략당해 나라가 짓밟히거나, 나라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생업을 방해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행복한 생활은 꾸릴 수 없게 된다. 이 짧은 한 문장에서 대성인은 사회의 틀과 사람의 삶, 다스림과 생업의 관계를 참으로 명쾌하게 붙잡고 계신다. 타국침핍과 자계반역은 그 두 기둥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난이다. 「어찌 놀라지 않겠으며 어찌 소란스럽지 않겠느냐」는 반어는 그 두려움을 객 자신의 일로 느끼게 하려는 말이다.

「한 몸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먼저 사표의 정밀을」 — 한 사람과 세상

「나라를 잃고 집안이 멸망한다면 어느 곳으로 세상을 피하겠는가.」 이 물음에 이어 주인은 이 장의 가장 유명한 한 구절을 말한다. 「그대가 모름지기 한 몸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먼저 사방의 정밀을 기원해야 하지 않겠느냐.」

한 몸의 안도란 한 사람의 행복, 한 집안의 화락이다. 사표의 정밀이란 사회의 번영, 세상의 평화다. 참된 종교는 사회 · 국가 · 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세우는 힘 있는 기원이며 실천이어야 한다. 종교는 한 사람의 내면을 구원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흔히 있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힘을 보이지 못하는 가르침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말에 넘어간 생각이다. 현실의 생활에서 행복해졌다고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어떻게 내면에서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종교는 종교를 위한 종교여서는 안 된다. 또 한 사람의 내면적 구제만을 내세우는 관념적인 종교도 참된 종교가 아니다. 그 종교의 기원과 실천 자체가 한 사람도, 사회도, 세계도 바꾸어 가는 힘을 가져야 한다. 니치칸 상인이 이 구절에 덧붙인 쇼게쓰의 노래 「세상을 등져 숨더라도 세상이 편안하기를 비노라, 세상이 고요하지 않으면 숨을 곳도 없으니」도 같은 뜻이다. 산속에 숨어 자기 한 몸만 지키려 해도, 세상이 어지러우면 숨을 곳조차 없다.

이 구절은 순서를 말한다. 한 몸의 안도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한 몸의 안도를 참으로 바란다면 「먼저」 사표의 정밀을 기원하라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평화를 둘로 나누지 않고, 사회의 평화를 개인의 행복의 조건으로 놓는 것 — 이것이 「입정안국」이라는 말 자체의 구조이기도 하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한 몸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먼저 사표의 정밀을 기원하라」는 개인의 구제와 국토의 안온이 떨어질 수 없다는 의정불이의 실천이다. 대성인의 예언은 나라를 저주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사람을 건지려는 대자비의 간효였다.

「사람은 세상에 있으면서 저마다 후생을 두려워한다」 — 임종을 먼저 배우라

본문은 이어서 시선을 나라에서 한 사람의 생사로 옮긴다. 「그 가운데서도 사람은 세상에 있는 동안 저마다 후생을 두려워한다.」 사람이 신앙에 기대는 것은 무엇보다 죽음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죽음이나 죽은 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온 생애가 죽음을 위한 준비여야 한다. 사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첫걸음부터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성인도 「먼저 임종의 일을 배우고 뒤에 다른 일을 배워야 한다(先臨終の事を習うて後に他事を習うべし)」(1404쪽)고 하셨다.

죽음을 그저 삶의 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죽음으로 모든 것이 없어져 버린다면, 이 세상에서 좋을 대로 살다가 막히면 죽어 버리면 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무책임과 부도덕에 끝까지 철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생명의 깊은 곳에는 반드시 후생, 곧 내세라 할 만한 것에 대한 예감이 있고 두려움이 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종교를 구하고, 비판 없이 방법의 가르침에 매달리는 것이다.

본문은 이 마음을 차갑게 내치지 않는다. 「저마다 옳고 그름에 헤매는 것은 밉게 여기지만, 그래도 그들 역시 불법에 귀의하고자 하는 것이니 그것을 가엾게 여긴다.」 사교를 믿고 방법을 귀히 여기는 사람들도 실은 후생을 두려워하여 바른 법을 구하는 마음에서 불법에 귀의한 것이다. 그런데 사법을 사법인 줄 모르고 믿고 있으니 가엾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같은 신심의 힘을 가지고 함부로 그릇된 뜻의 말을 받드는가」라는 말은 꾸짖음이면서 안타까움이다. 같은 신심의 힘이라면 바른 법에 써야 한다.

후생의 두려움에 참으로 답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깨닫고 십계호구 · 일념삼천의 실상을 터득한 부처의 가르침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일염부제에 두루 주어져 모든 민중을 건지는 이 대불법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자비의 절복으로 다가가는 가르침이다. 이 세상에서 큰 복운을 쌓고 생명력을 얻으며, 삼세에 걸친 생명의 실상에 확신을 쥐고 죽어 갈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대성인의 「먼저 임종의 일을 배우고」라는 말씀도 그것을 위한 불도 수행의 실천, 복운을 쌓아 인생을 살아가는 일을 강조하신 것이다.

대집경을 들다 — 정법을 지키지 않는 왕의 선근이 사라진다

「만약 집착하는 마음이 뒤집히지 않고 또 굽은 뜻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일찍 유위의 고향을 하직하고 반드시 무간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 단언의 증거로 주인은 대집경을 든다. 한량없는 세상 동안 보시 · 지계 · 지혜를 닦은 국왕이라도, 법이 멸하려는 것을 보고도 버려 두고 옹호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심은 한량없는 선근이 모두 사라지고, 오래지 않아 중병에 걸려 죽은 뒤 대지옥에 태어난다. 왕만이 아니라 부인 · 태자 · 대신 · 성주 · 주사 · 군주 · 재관도 그러하다.

이 문은 제2단 제7장에서 이미 인용된 것이다. 그때는 「그 나라에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 곧 곡귀 · 병혁 · 역병이 있으리라」는 나라의 재난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같은 문에서 「그 왕은 오래지 않아 중병에 걸리고 목숨이 다한 뒤 대지옥에 태어난다」는 한 사람의 과보를 끌어낸다. 정법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지키지 않는 것은 그저 방관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은 선근을 모두 잃게 하는 무거운 죄라는 것이다. 이 대집경의 문이 왕의 복운이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어지는 제3장의 인왕경은 한 집안과 한 사람의 생애에 방법이 무엇을 가져오는가를 보인다.

제9단 제3장 인왕경으로 방법의 과보를 보이다
어서 32쪽 7~9행 · 第九段 第三章 仁王経をもって謗法の果報を示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32쪽 7~9행
本文 · 어서 원문

仁王経に云く「人仏教を壊らば復た孝子無く六親不和にして天竜も祐けず疾疫悪鬼日に来つて侵害し災怪首尾し連禍縦横し死して地獄・餓鬼・畜生に入らん、 若し出て人と為らば兵奴の果報ならん、響の如く影の如く人の夜書くに火は滅すれども字は存するが如く、 三界の果報も亦復是くの如し」と。

풀이

인왕경에 이르기를, 「사람이 불교를 무너뜨리면 다시는 효자가 없고, 육친이 화목하지 못하며, 천룡도 돕지 않고, 질병과 역병과 악귀가 날마다 와서 침해하며, 재앙과 괴이가 머리와 꼬리를 잇고, 잇단 화가 가로세로 얽히며, 죽어서는 지옥 · 아귀 · 축생에 들 것이니라. 만약 그곳에서 나와 사람이 된다면 병노(兵奴)의 과보를 받을 것이니라.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사람이 밤에 글씨를 쓰면 불은 꺼져도 글씨는 남아 있는 것과 같이, 삼계의 과보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仁王経인왕경
『인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 역으로 전하는 2권본이다. 국왕이 정법을 지키면 나라가 편안하고, 정법이 무너지면 칠난이 일어난다고 설하여 호국경의 하나로 받들어졌다. 「입정안국론」에서는 제2단의 칠난과 「국토가 어지러워질 때는 먼저 귀신이 어지러워진다」, 제3단의 악한 비구, 제7단의 국왕 부촉에 이어 여기서 다시 인용된다.
人仏教を壊らば사람이 불교를 무너뜨리면
알고 모르고를 가리지 않고, 방법을 믿는 것이 곧 불교를 무너뜨리는 것이 된다. 앞 장의 대집경이 국왕의 경우를 말했다면 이 문은 「사람」, 곧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과보를 말한다.
孝子無く효자가 없다
자식이 일찍 죽거나 바르지 못하게 자라 부모를 모시는 자식이 없는 것이다.
六親不和육친이 화목하지 못함
「육친」은 부 · 모 · 형 · 제 · 처 · 자, 곧 가까운 친족 모두. 한 집안 안의 불화를 말한다.
天竜も祐けず천룡도 돕지 않는다
「천룡」은 제천과 용신으로, 비와 바람과 날씨를 다스리는 힘을 상징한다. 기상이 순조롭지 않아 농사를 망치는 것이며, 넓게는 생업 전체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다.
疾疫悪鬼日に来つて侵害し질병과 역병과 악귀가 날마다 와서 침해한다
몸의 병과, 마음과 생각을 어지럽히는 악귀가 끊임없이 덮친다는 것이다.
災怪首尾し재앙과 괴이가 머리와 꼬리를 잇는다
재난과 괴이한 일이 앞뒤로 이어져 끊이지 않는 것. 화재 같은 재앙을 든다.
連禍縦横し잇단 화가 가로세로 얽힌다
한 화가 다른 화를 부르며 사방으로 번져 가는 것.
地獄・餓鬼・畜生지옥 · 아귀 · 축생
십계 가운데 가장 괴로운 세 세계로 삼악도(三悪道)라 한다. 이 세상에서의 불행이 죽은 뒤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兵奴の果報병노의 과보
「병노」는 군사와 노비. 남의 명령에 따라 싸움터에 내몰리고 남에게 부림을 받으며, 제 목숨의 생사여탈조차 남의 손에 쥐어진 불행한 경애를 말한다.
響の如く影の如く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이
소리가 나면 반드시 메아리가 따르고, 물체가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따른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인과의 비유다.
人の夜書くに火は滅すれども字は存するが如く사람이 밤에 글씨를 쓰면 불은 꺼져도 글씨는 남아 있는 것과 같이
등불 아래서 쓴 글씨는 불을 끄면 보이지 않지만, 날이 밝으면 그대로 남아 있다. 지은 업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생명에 새겨져 사라지지 않는다는 비유다.
三界の果報も亦復是くの如し삼계의 과보도 또한 이와 같다
「삼계」는 욕계 · 색계 · 무색계로, 중생이 나고 죽기를 거듭하는 미혹의 세계 전체. 그 안에서 받는 모든 과보가 지은 업의 원인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다.

나라에서 한 사람으로 — 이 장의 자리

지금까지 대성인은 방법을 버리고 정법에 귀의해야 한다는 것을 「방법이 망국의 근원이다」라는 관점에서 설해 오셨다. 제1단에서 제8단까지, 그리고 앞 장의 「남은 두 난」의 예고까지가 모두 나라의 문제였다. 이 장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사람에게도 방법이 지옥에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는 것, 방법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설하신다.

앞 장 끝의 대집경은 정법이 멸하는 것을 보고도 지키지 않는 왕이 그 복운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장의 인왕경은 그것을 「사람」 일반으로 넓혀, 이 세상에서는 집안의 생활이 무너지고, 죽어서는 삼악도에 떨어지며,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도 병노의 과보를 받는다고 설한다. 현세 · 사후 · 내생의 세 단계로 과보가 이어진다.

원인사람이 불교를 무너뜨리면人仏教を壊らば
현세
  • ①효자가 없다
  • ②육친이 화목하지 못하다
  • ③천룡도 돕지 않는다
  • ④질병 · 역병 · 악귀가 날마다 와서 침해한다
  • ⑤재앙과 괴이가 머리와 꼬리를 잇는다
  • ⑥잇단 화가 가로세로 얽힌다
사후지옥 · 아귀 · 축생에 든다
내생사람이 되어도 병노의 과보
도표 9 · 인왕경이 설하는 방법의 과보

「불교를 무너뜨린다」는 것 — 벌인가, 인과인가

「불교를 무너뜨린다」는 것은 알고 모르고를 가리지 않고 방법을 믿는 것이 곧 불교를 파괴하는 일이 된다는 뜻이다. 방법을 믿으면 불행해진다고 하면 흔히 「그러면 부처가 벌을 내린다는 말이냐」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벌을 내린다」는 생각은 신을 사람처럼 여기는 소박한 원시 종교에서 온 것으로, 불법의 생각과는 다르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저마다 생명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지은 선업 · 악업을 원인으로 하여 그 결과로 생기는 현상이다. 이 인과의 현상은 우주의 변하지 않는 법칙이며, 행복해지는 것도 불행해지는 것도 자기 책임이다. 시작 없는 과거로부터의 원인에 따라 지금의 내가 있다. 이것을 숙명이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과거로 정해져 있고 지금으로 미래가 정해져 갈 뿐이라면 사람은 너무도 무력하다. 우주의 근본 법을 깨달은 부처가, 그 무력한 사람에게도 같은 법을 깨닫게 하여 과거에 어떤 죄장이 있든 그것을 소멸하고 미래에 선업을 쌓아 갈 수 있는 법을 가르친 것이 불교다. 곧 불교는 숙명을 타개하고 숙명을 전환하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이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방법을 하는 것은 우주의 근본 법을 거스르는 것이 되어, 생활의 리듬이 흐트러지고 불행해진다. 교통 법규를 어기면 경찰에게 꾸중을 듣는 것보다 사고를 일으켜 목숨을 잃게 될 수 있는 것과 같다.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다 치인 뒤에 몰랐다고 해도 상처가 원래대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벌은 밖에서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법을 거스른 데서 저절로 생긴다.

인생을 사고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근본은 무엇보다 먼저 불법을 알고 불교를 따르는 것이다. 불법을 모르는 인생은 교통 법규를 모른 채 큰 도시를 걷고, 등불 없이 험한 산길을 밤에 걷고, 해도도 나침반도 없이 큰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이것을 보고도 모른 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사람의 도리를 저버린 이일 것이다.

오탁 — 생명의 탁함이 시대의 탁함이 되기까지

인왕경이 그리는 한 집안의 무너짐을 불법은 오탁악세(五濁悪世)라는 말로 설명한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탐 · 진 · 치 · 만 · 의의 본능이 어지러워진 번뇌탁(煩悩濁)과, 사상이 어지러워진 견탁(見濁)이 뿌리가 되어, 명탁(命濁), 곧 생명력이 약해지고 생활이 흐트러지는 현상을 낳는다. 이 명탁에서 사람 자체가 탁해지는 중생탁(衆生濁)이 되고, 중생탁은 다시 넓어져 시대 자체가 어지러워지는 겁탁(劫濁)이 된다.

이 오탁의 뿌리를 끊고 생명을 맑게 하여 사회를 건강하게 해 가는 방법은 묘법을 믿고 묘법을 광선유포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불법의 가르침이다.

예로부터 도덕의 가르침을 가장 빈틈없이 설한 것은 유교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유교의 성현들이 현재만 알 뿐 과거와 미래를 모른다고 하여 이렇게 파하셨다.

此等の賢聖の人人は聖人なりといえども過去を・しらざること凡夫の背を見ず・未来を・かがみざること盲人の前をみざるがごとし

이러한 현성들은 성인이라 하더라도 과거를 모르는 것이 범부가 제 등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맹인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개목초」, 186쪽

而りといえども過去未来をしらざれば父母・主君・師匠の後世をもたすけず不知恩の者なり・まことの賢聖にあらず

그렇지만 과거와 미래를 모르므로 부모 · 주군 · 스승의 후세도 돕지 못하니, 은혜를 모르는 자이며 참된 현성이 아니니라.

「개목초」, 186쪽

같은 대목에서 대성인은 묘락대사의 「불교가 퍼져 교화함은 실로 여기에 힘입었으니, 예악이 앞서 달리고 참된 도가 뒤에 열린다」는 말을 인용하셨다. 예악(禮樂)은 도덕과 예술이고, 참된 도는 불법이다. 도덕 등이 모든 민중에게 스며드는 것은 불법이 퍼지기 쉽게 하는 전제가 된다는 뜻이다. 거꾸로 말하면 도덕만으로는 숙명을 바꿀 수도 없고 생명을 맑게 할 수도 없다. 불법으로 비로소 숙명을 바꾸고 생명을 맑게 하여 도덕도 살아난다.

나아가 불법의 눈으로 보면, 바르지 못한 자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 그러한 권속을 두어야 하는 본인의 숙명이 문제다. 이것은 삼세의 인과에 비추지 않고는 풀 수 없다. 인왕경이 「사람이 불교를 무너뜨리면」이라고 한 것도 결국 본인의 복운이야말로 근본임을 보인 것이다.

한 집안을 무너뜨리는 여섯 가지 — 뒤집어 보면 행복의 조건

여기서 인용된 경문은 방법이 한 집안의 화락을 무너뜨리는 근원임을 밝힌다. 한 집안의 화락, 가정의 평화는 어느 시대에나, 또 어떤 사람에게나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는 늘 민중의 가정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로부터 영웅이라 불린 정복자들은 한 집안의 기둥인 젊은 남자들을 싸움에 내몰아 민중의 가정을 무너뜨렸고, 원정한 땅의 가정도 파멸시켰다. 한때의 영광은 있었으나 결국 민중은 불행했고 영화는 곧 시들었다. 정법에 선 다스림이라야 비로소 한 사람의 행복, 한 집안의 화락을 바탕으로 한 참된 나라의 번영을 이룰 수 있다.

경문은 집안의 갖가지 불행한 모습을 보인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이런 나쁜 조건에 침범당하지 않는 것이 행복한 가정생활의 요소라고도 할 수 있다.

첫째는 「효자가 없다」이다. 자식이 일찍 죽거나 바르지 못하게 자라는 것은 집안의 큰 불행이다. 자식이 건강하고 마음도 곧으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의 첫째 조건이다.

둘째의 「육친이 화목하지 못하다」는 부모 · 형제 · 처자 사이가 화목하지 못한 것으로, 이것도 가정을 차갑고 메마르게 만드는 나쁜 조건이다. 서로 사이좋게 아끼며 살아가는 한 집안의 단란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라 하겠다.

셋째의 「천룡도 돕지 않는다」는, 우선은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집이 가뭄이나 비 · 눈 같은 날씨에 따라 수확이 좌우되는 것을 말한다. 그 날씨를 천룡이라 표현한 것으로, 날씨가 고르지 않아 흉작이 되는 것이 「천룡도 돕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하면 장사든 광업 · 공업 · 어업이든 생업의 모든 일이 순조롭지 않아 괴로움을 겪는 것이라 보아도 좋다. 이것도 가정의 행복에 큰 문제여서, 살림이 궁해져 가족 사이가 틀어지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묘법을 수지하면 어떤 재액도 무거운 업을 가볍게 받고(전중경수), 독을 바꾸어 약으로 만들 수 있다(변독위약).

넷째는 「질병과 역병과 악귀가 날마다 와서 침해한다」이다. 아무리 사이좋고 살림이 넉넉한 집이라도 병자가 있으면 쓸쓸하다. 즐거운 일이 있어도 모두가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응어리가 남는다. 희로애락을 저도 모르게 억누르게 되어 집안 전체가 어두워진다. 하물며 살림이 넉넉지 않은 집에서는 치료비와 약값이 짐이 되어 끝내 빚을 지기도 한다. 가족이 건강한 것은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다. 또 악귀는 사상이 흐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부모의 낡은 생각과 자식의 급한 생각이 부딪쳐 불화를 부르는 집도 많다. 이것도 악귀가 침해하는 한 예라 하겠다.

다섯째의 「재앙과 괴이가 머리와 꼬리를 잇는다」는 화재가 일어나는 것 따위이고, 여섯째의 「잇단 화가 가로세로 얽힌다」는 가족이 뜻밖의 사고를 당하는 것 따위다. 화는 반드시 다른 화를 부르는 법이어서, 하나의 걸림돌이 큰 비극으로 번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한 번 넘어지더라도 그것을 변독위약하는 것이 묘법의 공덕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러한 불행의 연속을 이 세상에서 마치고 죽으면 지옥 · 아귀 · 축생의 삼악도에 떨어져 괴로워해야 한다. 죽음은 생명의 끝이 아니라, 지금의 생애에 받고 있는 경애가 그대로 이어져 가는 것이다. 지옥의 괴로움이 이어진 채 죽어 간 사람의 생명은 몸은 죽어도 우주의 십계의 리듬 가운데 지옥계로 들어가 같은 지옥의 괴로움을 이어 간다. 거꾸로 묘법에 비추어져 제목을 부르고 불계의 생명을 솟아나게 하며 죽어 간 경우에는, 우주의 불계의 리듬으로 들어가 행복한 경애를 이어 갈 수 있다. 여기에 신심을 생애 동안 다해야 하는 까닭이 있다.

「다시 사람이 되어도 병노의 과보」 — 남에게 목숨을 쥐인 삶

「만약 그곳에서 나와 사람이 된다면 병노의 과보를 받을 것이다」는, 방법의 사람은 죽어서 삼악도에 들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병노의 과보를 얻는다는 뜻이다.

병노의 과보란 군사로서 싸움터에 내몰려 행동의 자유도 생각의 자유도 없이 싸움의 목적을 위해 부려지고, 제 목숨의 생사여탈의 권리마저 남에게 쥐인 불행한 경애다. 예로부터 종족과 민족과 나라의 흥망성쇠는 무력의 우열로 정해져 왔기 때문에, 자연히 전사와 군사를 아름답게 그리고 강한 이를 영웅으로 우러르는 관습이 있어 왔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 백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모순은 동서를 가리지 않고 있었다.

먼저, 군사는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무기 앞이든 싫든 좋든 목숨을 빼앗기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그곳에서는 사람의 생명의 존엄이 금기의 말이 되는 일조차 드물지 않다. 다음으로, 그 삶에는 제 뜻대로 움직이고 제 생각을 말할 자유가 없고, 윗사람의 명령에 따를 뿐이다. 게다가 적을 죽여야 한다는 것도 큰 불행이다. 죽이려는 적의 군사도 같은 사람이다.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각이 마비되어 있어도,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평시의 살인이든 전시의 살인이든 다르지 않다. 그것을 굳이 저질러야 하는 숙업은 슬픈 일이다.

인왕경이 말하는 병노의 과보는 앞 장의 「남은 두 난」과도 이어진다. 자계반역과 타국침핍은 나라 전체가 병노의 처지로 떨어지는 난이다. 나라의 방법이 나라를 전란으로 몰아넣듯, 한 사람의 방법은 그 사람을 다시 태어난 생에서조차 남의 칼끝에 목숨을 쥐인 삶으로 몰아넣는다.

메아리 · 그림자 · 밤에 쓴 글씨 — 생명의 인과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사람이 밤에 글씨를 쓰면 불은 꺼져도 글씨는 남아 있는 것과 같이, 삼계의 과보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은 생명의 인과론이다. 어느 곳에서 종을 울리고, 가령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소리가 되울렸다고 하자. 소리가 전해 가는 것을 아무도 볼 수 없지만, 소리를 따라 메아리가 있다. 물체와 거기 비친 그림자의 관계도 같다. 물체를 따라 그림자는 모양을 바꾸고 자리를 바꾼다. 또 밤에 글씨를 쓰고 등불을 끄면, 어둠이 되어 더는 글씨가 보이지 않지만 날이 밝으면 글씨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이 생명의 인과도, 과거세에 어떤 원인을 지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결과는 지금, 지은 원인 그대로 받고 있다. 또 한 생애 안에서도 저지른 죄가 그 직후에 곧바로 벌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얼마의 시간이 지나 연(緣)을 만나 나타난다. 이 인과의 흐름이 생명의 실상이다.

그리고 이 인과에는 통도(通途)의 인과와 정법 비방의 인과가 있다. 앞의 것은 정법과 인연이 없는 중생이 업인 · 업과를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뒤의 것은 정법을 비방함으로써 저마다의 인과를 느끼는 것으로, 훨씬 무거운 업이지만 역연(逆縁)이 되어 마지막에는 구제된다. 대성인은 「사도어서」에서 경문의 여덟 구절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一には或被軽易二には或形状醜陋三には衣服不足四には飲食粗疎五には求財不利六には生貧賎家七には及邪見家八には或遭王難等云云、此八句は只日蓮一人が身に感ぜり

첫째는 혹은 업신여김을 당하고, 둘째는 혹은 생김새가 추하며, 셋째는 의복이 부족하고, 넷째는 음식이 거칠며, 다섯째는 재물을 구해도 이롭지 못하고, 여섯째는 빈천한 집에 태어나며, 일곱째는 사견의 집에 태어나고, 여덟째는 혹은 왕난을 만난다고 하였느니라. 이 여덟 구절은 오직 니치렌 한 사람의 몸에 느꼈느니라.

「사도어서」, 960쪽

高山に登る者は必ず下り我人を軽しめば還て我身人に軽易せられん形状端厳をそしれば醜陋の報いを得人の衣服飲食をうばへば必ず餓鬼となる持戒尊貴を笑へば貧賎の家に生ず正法の家をそしれば邪見の家に生ず善戒を笑へば国土の民となり王難に遇ふ是は常の因果の定れる法なり

높은 산에 오르는 자는 반드시 내려오고, 내가 남을 업신여기면 도리어 내 몸이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리라. 단정한 생김새를 헐뜯으면 추한 과보를 얻고, 남의 의복과 음식을 빼앗으면 반드시 아귀가 되느니라. 계를 지니는 존귀한 이를 비웃으면 빈천한 집에 태어나고, 정법의 집을 헐뜯으면 사견의 집에 태어나며, 선한 계를 비웃으면 국토의 백성이 되어 왕난을 만나느니라. 이것은 보통의 인과로 정해진 법이니라.

「사도어서」, 960쪽

日蓮は此因果にはあらず法華経の行者を過去に軽易せし故に法華経は月と月とを並べ星と星とをつらね華山に華山をかさね玉と玉とをつらねたるが如くなる御経を或は上げ或は下て嘲弄せし故に此八種の大難に値るなり、此八種は尽未来際が間一づつこそ現ずべかりしを日蓮つよく法華経の敵を責るによて一時に聚り起せるなり

니치렌은 이 인과가 아니니라. 법화경의 행자를 과거에 업신여겼기 때문에, 그리고 달과 달을 나란히 하고 별과 별을 잇고 화산에 화산을 겹치고 구슬과 구슬을 꿴 것과 같은 법화경을 혹은 올리고 혹은 내리며 조롱했기 때문에 이 여덟 가지 대난을 만나는 것이니라. 이 여덟 가지는 미래가 다할 때까지 하나씩 나타나야 할 것이었으나, 니치렌이 강하게 법화경의 적을 꾸짖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모여 일어난 것이니라.

「사도어서」, 960쪽

이처럼 우선은 통도의 인과와 정법 비방의 인과로 구별되지만, 다시 생각하면 어느 것이든 결국 정법으로 죄장을 소멸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다. 곧 니치렌 대성인의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에 귀의함으로써, 온 세상의 어떤 중생도 모두 죄업을 지우고 행복해질 수 있다. 밤에 쓴 글씨는 불을 꺼도 남는다. 그러나 그 글씨를 고쳐 쓸 수 있는 법이 있다는 것 — 인왕경의 엄한 경고 뒤에 대성인이 보이신 것은 그 길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방법의 과보는 밖에서 내려지는 벌이 아니라 생명의 인과다. 그러나 그 인과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며,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에 귀의하는 것으로 숙명을 바꿀 수 있다.

제9단 제4장 염불 무간지옥의 경문을 들다
어서 32쪽 10~12행 · 第九段 第四章 念仏無間地獄の経文を挙ぐ

본문

원문 대조어서 32쪽 10~12행
本文 · 어서 원문

法華経の第二に云く「若し人信ぜずして、此の経を毀謗せば、乃至其の人命終して、阿鼻獄に入らん」と。 又同第七の巻不軽品に云く「千劫、阿鼻地獄に於て、大苦悩を受く」と。 涅槃経に云く「善友を遠離し、正法を聞かずして悪法に住せば、是の因縁の故に、沈没して阿鼻地獄に在つて、 受くる所の身形、縦横八万四千由延ならん」と。

풀이

법화경 제2권(비유품)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이 믿지 않고 이 경을 헐뜯고 비방한다면, (乃至) 그 사람은 목숨을 마친 뒤 아비지옥에 들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또 같은 경 제7권 상불경보살품에 이르기를,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서 큰 고뇌를 받느니라」 하였느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선한 벗을 멀리하고 정법을 듣지 않으며 악법에 머문다면, 이 인연 때문에 가라앉아 아비지옥에 있으면서 받는 몸의 크기가 가로세로 팔만사천 유연(由延)이 되리라」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法華経の第二법화경 제2권
『묘법연화경』 8권 가운데 제2권의 비유품 제3. 화택(火宅)의 비유를 설한 품이며, 그 끝의 게송에서 법화경을 믿지 않고 비방하는 죄보를 길게 설한다.
若し人信ぜずして此の経を毀謗せば만약 사람이 믿지 않고 이 경을 헐뜯고 비방한다면
「훼방(毀謗)」은 헐뜯고 비방하는 것. 「입정안국론」 제7단 제8장에서 이미 같은 문이 인용되었고, 그때는 「곧 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으리라」는 구절이 함께 실렸다. 여기서는 「乃至」로 그 사이를 줄이고 과보만 들었다.
阿鼻獄아비지옥
「아비」는 범어 아비치(avīci)의 음사로 「틈이 없음」이라는 뜻. 괴로움이 끊일 틈이 없으므로 무간지옥이라 번역한다. 팔대지옥 가운데 가장 아래에 있는 가장 괴로운 지옥이다.
第七の巻不軽品제7권 상불경보살품
『묘법연화경』 제7권의 상불경보살품 제20. 「나는 그대들을 깊이 공경하며 감히 업신여기지 않는다」고 하며 사람들에게 예배한 상불경보살과, 그를 욕하고 막대기와 돌로 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한다.
千劫、阿鼻地獄に於て、大苦悩を受く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서 큰 고뇌를 받는다
상불경보살을 박해한 사람들이 뒤에 참회했음에도 그 죄가 다 없어지지 않아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서 괴로움을 받았다는 경문이다. 이 「천 겁」은 천 중겁을 말한다.
劫겁
범어 칼파(kalpa)의 음사 「겁파」의 줄임말로,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구사론』의 설에 따르면 사람의 수명이 백 년마다 한 살씩 줄어 열 살에 이르는 동안을 일감(一減), 다시 백 년마다 한 살씩 늘어 팔만 살에 이르는 동안을 일증(一増)이라 하며, 이 일증일감을 일소겁(一小劫), 이십 소겁을 일중겁(一中劫)이라 한다. 무간지옥의 수명은 일중겁이라 한다.
涅槃経열반경
『대반열반경』. 여기 인용된 문은 가섭보살품에 있는 것으로 전한다. 석존이 입멸에 앞서 설한 경으로, 법화경과 함께 「입정안국론」에서 방법의 죄를 밝히는 근거로 거듭 인용되었다.
善友を遠離し선한 벗을 멀리하고
「선우(善友)」는 바른 법으로 이끌어 주는 스승과 벗. 선지식이라고도 한다. 정법을 듣는 인연 자체를 스스로 끊는 것이 첫째 원인으로 들어진다.
正法を聞かずして悪法に住せば정법을 듣지 않고 악법에 머문다면
정법을 듣지 않는 것과 악법에 머무는 것이 짝을 이룬다. 단지 몰랐던 것이 아니라 들을 기회를 멀리하고 악법에 안주하는 것이다.
沈没して가라앉아
무거운 죄업 때문에 생명이 아래로 가라앉는 것. 지옥이 땅 아래 가장 깊은 곳에 있다는 설에 따른 표현이다.
縦横八万四千由延가로세로 팔만사천 유연
「유연(由延)」은 범어 요자나(yojana)의 음사로 유순(由旬) · 유선나(由善那)라고도 쓰는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 제왕의 군대가 하루에 행군하는 거리로, 10킬로미터 안팎으로 본다. 「현방법초」는 무간지옥의 크기를 「가로세로 팔만 유순」이라 하고, 이 문은 그 지옥에 떨어진 사람이 받는 몸이 팔만사천 유연에 이른다고 한다.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괴로움을 온몸으로 받는다는 뜻이다.

세 경문 — 듣고도 버리지 않는 사람의 과보

제4장은 법화경 비유품과 상불경보살품, 그리고 열반경 가섭보살품의 세 경문을 끌어, 정법을 듣고도 사법에 대한 집착을 끊지 않고 여전히 방법을 믿는다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보이는 장이다. 앞 장의 인왕경이 삼악도와 병노의 과보를 말했다면, 이 장은 그 가운데 가장 깊은 아비지옥을 말한다.

니치렌 대성인은 「염불은 무간지옥의 업, 선은 천마의 소행, 진언은 나라를 망치는 법, 율은 나라의 도적」이라는 이른바 사개(四箇)의 격언으로 당시를 대표하는 여러 종의 교의를 엄하게 파절하셨다. 그 가운데 「입정안국론」에서는 염불을 중심으로 다루셨음은 지금까지 보아 온 대로다. 이 장의 제목이 「염불 무간지옥의 경문을 들다」인 것도 그 때문이다. 경문 자체는 염불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 경을 믿지 않고 비방하는 사람」, 「정법을 듣지 않고 악법에 머무는 사람」을 말할 뿐이다. 그러나 법화경을 「버려라 · 닫아라 · 내버려 두라 · 내던져라」라고 가르친 법연의 염불이 바로 그 「비방」에 해당한다는 것이 「입정안국론」 제4편 「정법 비방의 원흉」 이래의 논증이었다.

세 경문은 저마다 다른 각도에서 같은 결론에 이른다. 비유품은 믿지 않고 비방하는 것, 곧 비방의 행위 자체를 원인으로 든다. 상불경보살품은 법화경의 행자를 박해한 사람들이 참회한 뒤에도 천 겁의 과보를 받았다는 것으로 그 죄의 무게를 보인다. 열반경은 선한 벗을 멀리하고 정법을 듣지 않으며 악법에 머무는 것, 곧 비방에 이르는 태도와 환경을 원인으로 든다.

열반경의 「선한 벗을 멀리하고」는 제2장의 「난실의 벗과 사귀어 삼밭의 성품이 된다」와 마주 놓고 읽을 수 있다. 객은 주인이라는 난실의 벗을 만나 곧게 섰다. 그러나 선한 벗을 멀리하고 악한 벗 곁으로 돌아간다면, 주인이 경계한 대로 「사람의 마음은 때에 따라 옮겨」 다시 악법에 머물게 된다. 이 장의 열반경 인용은 제2장의 경계를 경문으로 못 박는 것이기도 하다.

  • 법화경 비유품(제2권)믿지 않고 이 경을 헐뜯고 비방한다면→ 목숨을 마친 뒤 아비지옥에 든다若し人信ぜずして此の経を毀謗せば…其の人命終して阿鼻獄に入らん
  •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제7권)행자를 박해한 이들→ 참회한 뒤에도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서 큰 고뇌千劫、阿鼻地獄に於て、大苦悩を受く
  • 열반경선한 벗을 멀리하고 정법을 듣지 않으며 악법에 머문다면→ 아비지옥에 가라앉아 몸이 가로세로 팔만사천 유연縦横八万四千由延
겁의 셈
  1. 일증일감 = 일소겁
  2. 이십 소겁 = 일중겁
  3. 무간지옥의 수명 = 일중겁
  4. 「천 겁」 = 천 중겁
도표 10 · 무간지옥을 설하는 세 경문

천 겁과 팔만사천 유연 — 무간의 시간과 크기

겁이라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구사론』에 설한 바에 따르면, 사람의 수명이 백 년마다 한 살씩 줄어 열 살에 이르는 기간을 일감, 다시 열 살에서 백 년마다 한 살씩 늘어 팔만 살에 이르는 기간을 일증이라 하고, 이 일증일감을 일소겁이라 한다. 이것을 햇수로 고치면 천몇백만 년에 이른다. 이십 소겁을 일중겁이라 하는데, 아비지옥, 곧 무간지옥의 수명은 일중겁이라 하며 햇수로 고치면 삼억 년을 넘는다.

그러나 이것은 보통의 오역죄를 지어 떨어진 경우다. 정법을 비방한 무거운 죄는 무수한 겁 동안 괴로워해야 한다. 법화경 비유품은 이렇게 설한다.

経を読誦し書持すること 有らん者を見て 軽賤憎嫉して 結恨を懐かん 此の人の罪報を 汝今復た聴け 其の人は命終して 阿鼻獄に入らん 一劫を具足して 劫尽きなば更に生まれん 是の如く展転して 無数劫に至らん

경을 읽고 외우며 쓰고 지니는 이를 보고, 업신여기고 미워하고 시기하여 원한을 품는다면, 이 사람의 죄보를 그대는 이제 다시 들으라. 그 사람은 목숨을 마친 뒤 아비지옥에 들어 한 겁을 다 채우고, 겁이 다하면 다시 태어나 이와 같이 돌고 돌아 무수한 겁에 이르리라.

『묘법연화경』 비유품, T9 no.262

이에 견주어 상불경보살품에서 「천 겁」이라 한 것은, 상불경보살을 박해한 방법의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참회하여 가볍게 받았기 때문에 천 겁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성인은 「현방법초」에서 이 경문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の経文の心は法華経の行者を悪口し及び杖を以て打擲せるもの其の後に懺悔せりといえども罪いまだ滅せずして千劫・阿鼻地獄に堕ちたりと見えぬ、懺悔せる謗法の罪すら五逆罪に千倍せり

이 경문의 마음은, 법화경의 행자를 욕하고 막대기로 때린 자가 그 뒤에 참회하였어도 죄가 아직 없어지지 않아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 떨어졌다고 보이는 것이니라. 참회한 방법의 죄조차 오역죄의 천 배이니라.

「현방법초」, 448쪽

참회한 방법의 죄조차 오역죄의 천 배라면, 하물며 참회하지 않는 방법이 아비지옥을 벗어날 때는 기약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천 겁은 천 중겁이다.

무간지옥의 크기도 경론마다 말한다. 「현방법초」에는 「이 지옥은 가로세로 팔만 유순이다(此の地獄は縦広八万由旬なり)」(447쪽)라고 하고, 이 문에서는 「가로세로 팔만사천 유연」이라 한다. 한 유연이 하루 행군의 거리라면 그 크기는 상상을 넘는다. 「받는 몸의 크기가 가로세로 팔만사천 유연」이라는 것은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괴로움을 온몸 구석구석으로 받는다는 뜻이다.

지옥이란 무엇인가 — 경애로서의 지옥

그러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무간지옥은 팔대지옥 가운데 가장 무거운 지옥으로, 부처가 그 괴로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설하면 듣는 사람이 그것만으로 피를 토하고 죽는다고 할 만큼의 괴로움의 경애를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지옥을 실감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처라는 말을 죽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듯, 지옥도 죽은 뒤의 세계쯤으로만 여긴다. 죽은 뒤의 세계를 다룬 문학으로 가장 이름난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연 단테의 『신곡』일 것이다. 단테는 죽은 뒤의 세계가 지옥 · 연옥 · 천국의 셋으로 나뉜다고 했다. 불교의 십계론에 견주면 이를테면 삼계론을 세운 셈이다. 일본의 신화에서는 죽은 이의 세계를 「황천(黄泉)의 나라」라 부르며, 이자나기노미코토가 아내 이자나미노미코토를 데려오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데스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것들은 모두 살아 있을 때의 죄업이나 선업이 죽은 뒤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시 종교에서 한 걸음 나아간 뒤에야 비로소 죽은 뒤의 세계에 차별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것은 인생에서 선업과 악업을 가르는 뚜렷한 판단을 지니느냐 아니냐는 문제와 이어져 있다. 곧 현실 생활에서 선악의 문제, 도덕성이 논의되는 정신적 발전을 이룬 때에, 그 윤리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죽은 뒤의 공과라는 개념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지옥관은 옛날부터 우화처럼 이야기되어 온 것도 아니고, 단지 윤리를 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나타난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지옥은 지금 생활하고 있는 우리 생명의 한 가지 상태다. 곧 괴로워하고 번민하는 경애 그 자체를 지옥이라 한다. 그리고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 죽음과 함께 인과의 이법에 따라 우주의 생명의 리듬에 합치해 가는 가운데, 우주의 지옥의 생명에 명합(冥合)했을 때를 말한다.

임종의 상 — 「먼저 임종의 일을 배우라」

그 증거로 임종 때 다음과 같은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다. 「센니치니부인답서」의 말씀이다.

譬えば黒漆に白物を入れぬれば白色となる、女人の御罪は漆の如し南無妙法蓮華経の文字は白物の如し人は臨終の時地獄に堕つる者は黒色となる上其の身重き事千引の石の如し善人は設ひ七尺八尺の女人なれども色黒き者なれども臨終に色変じて白色となる又軽き事鵞毛の如しヤワラカなる事兜羅緜の如し

비유하자면 검은 옻에 흰 것을 넣으면 흰빛이 되느니라. 여인의 죄는 옻과 같고 남묘호렌게쿄의 문자는 흰 것과 같으니라. 사람은 임종 때 지옥에 떨어지는 자는 검은빛이 될 뿐 아니라 그 몸의 무겁기가 천 사람이 끄는 돌과 같으니라. 선인은 설령 일곱 자 여덟 자의 여인이라도, 빛이 검은 사람이라도, 임종에 빛이 변하여 흰빛이 되고, 또 가볍기가 거위 털과 같고 부드럽기가 도라면(兜羅緜)과 같으니라.

「센니치니부인답서」, 1316쪽

또 「묘호니부인답서」에서도 『대지도론』의 「임종 때 빛이 검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 천태대사의 『마하지관』의 「몸의 검은빛은 지옥의 그늘에 비유한다」 등의 문증을 들어, 임종 때 검게 변하는 것은 지옥에 떨어지는 상이라고 말씀하셨다. 같은 어서에서 대성인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불법을 배운 마음가짐을 이렇게 밝히셨다.

日蓮幼少の時より仏法を学び候しが念願すらく人の寿命は無常なり、出る気は入る気を待つ事なし・風の前の露尚譬えにあらず、かしこきもはかなきも老いたるも若きも定め無き習いなり、されば先臨終の事を習うて後に他事を習うべしと思いて、一代聖教の論師・人師の書釈あらあらかんがへあつめて此を明鏡として、一切の諸人の死する時と並に臨終の後とに引き向えてみ候へばすこしもくもりなし

니치렌은 어린 시절부터 불법을 배워 왔는데 이렇게 염원하였느니라. 사람의 수명은 무상하니라. 나가는 숨은 들어오는 숨을 기다리지 않으며, 바람 앞의 이슬도 오히려 비유가 되지 못하느니라. 슬기로운 이도 어리석은 이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정함이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니라. 그러므로 먼저 임종의 일을 배우고 뒤에 다른 일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여, 일대 성교의 논사 · 인사의 글과 해석을 대강 생각하여 모아 이것을 밝은 거울로 삼아, 모든 사람이 죽을 때와 임종 뒤에 견주어 보니 조금도 흐림이 없었느니라.

「묘호니부인답서」, 1404쪽

그리고 묘법을 끝까지 지닌 사람은 살아 있을 때 검었던 사람도 희어지고, 몸도 가볍고 부드러우며, 생시와 같은 혈색으로 죽음의 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대성인은 같은 어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須弥山に近づく衆色は皆金色なり、法華経の名号を持つ人は一生乃至過去遠遠劫の黒業の漆変じて白業の大善となる、いわうや無始の善根皆変じて金色となり候なり

수미산에 가까이 가는 온갖 빛은 모두 금빛이 되느니라. 법화경의 명호를 지니는 사람은 일생, 나아가 과거 아득한 겁의 검은 업의 옻이 변하여 흰 업의 큰 선이 되느니라. 하물며 시작 없는 선근은 모두 변하여 금빛이 되느니라.

「묘호니부인답서」, 1405쪽

신심을 강성하게 하여 한 생애를 꿰뚫고 훌륭한 임종의 상을 나타내는 것은 그대로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지므로, 인생의 마지막이자 가장 긴요한 승리라 할 수 있다.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
  • ·빛이 검어진다
  • ·몸이 천 사람이 끄는 돌처럼 무겁다
臨終の時地獄に堕つる者は黒色となる上其の身重き事千引の石の如し
묘법을 지닌 사람
  • ·빛이 변하여 희어진다
  • ·거위 털처럼 가볍다
  • ·도라면처럼 부드럽다
臨終に色変じて白色となる又軽き事鵞毛の如し
검은 업의 옻이 변하여 흰 업의 큰 선이 된다黒業の漆変じて白業の大善となる
도표 11 · 임종의 두 모습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무간지옥은 죽은 뒤의 먼 세계가 아니라 지금의 생명의 경애가 이어지는 곳이다. 그러므로 「먼저 임종의 일을 배우라」는 말씀은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정법을 지녀 생명의 업을 바꾸라는 것이다.

제9단 제5장 맺어서 입정안국을 논하다
어서 32쪽 13~17행 · 第九段 第五章 結して立正安国を論ず

본문

本文 · 一어서 32쪽 13~15행
本文 · 어서 원문

広く衆経を披きたるに、専ら謗法を重んず。 悲しいかな、皆正法の門を出でて深く邪法の獄に入る。 愚かなるかな、各悪教の綱に懸って、鎮に謗教の網に纒る。 此の朦霧の迷、彼の盛焔の底に沈む。 豈愁えざらんや、豈苦しまざらんや。

풀이

널리 여러 경을 펼쳐 보니 오로지 방법을 무겁게 여기느니라. 슬프도다, 모두 정법의 문을 나와 깊이 사법의 감옥에 들어갔느니라. 어리석도다, 저마다 악한 가르침의 밧줄에 걸려 길이 방법의 그물에 얽혀 있느니라. 이승에서는 이 짙은 안개 같은 미혹에 헤매고, 저승에서는 저 활활 타는 불꽃의 밑바닥에 가라앉느니라. 어찌 근심하지 않겠으며 어찌 괴로워하지 않겠느냐.

本文 · 二어서 32쪽 15~17행
本文 · 어서 원문

汝早く信仰の寸心を改めて、速かに実乗の一善に帰せよ。 然れば則ち三界は皆仏国なり。 仏国其れ衰えんや。 十方は悉く宝土なり。 宝土何ぞ壊れんや。 国に衰微無く土に破壊無くんば、身は是れ安全にして、心は是れ禅定ならん。 此の詞、此の言信ず可く崇む可し。

풀이

그대는 어서 신앙의 작은 마음(寸心)을 고쳐 속히 실승(實乘)의 일선(一善)에 귀의하라. 그러면 곧 삼계는 모두 불국이니라. 불국이 어찌 쇠하겠느냐. 시방은 모두 보토(寶土)이니라. 보토가 어찌 무너지겠느냐. 나라에 쇠미함이 없고 국토에 파괴가 없다면 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선정(禪定)일 것이니라. 이 말, 이 말씀을 믿어야 하며 받들어야 하느니라.

어구 풀이

広く衆経を披きたるに専ら謗法を重んず널리 여러 경을 펼쳐 보니 오로지 방법을 무겁게 여긴다
제2단 이래 인용해 온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 · 약사경 · 법화경 · 열반경이 한결같이 방법을 가장 무거운 죄로 경계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증 전체를 한 줄로 맺는 말이다.
正法の門を出でて深く邪法の獄に入る정법의 문을 나와 깊이 사법의 감옥에 들어간다
본래 불법에 들어온 사람들이 바른 문을 스스로 나서서 사법이라는 감옥에 갇힌 모습. 사람들이 처음부터 불법을 등진 것이 아니라 불법을 구하다가 잘못 들어섰음을 슬퍼하는 말이다.
悪教の綱に懸って鎮に謗教の網に纒る악한 가르침의 밧줄에 걸려 길이 방법의 그물에 얽힌다
「강(綱)」은 그물의 벼릿줄, 「망(網)」은 그물. 법연 등의 악한 가르침에 걸려들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새에 견준다. 「진(鎮)」은 오래도록, 늘.
此の朦霧の迷彼の盛焔の底に沈む이 짙은 안개의 미혹, 저 활활 타는 불꽃의 밑바닥에 가라앉는다
「이(此)」는 이승, 「저(彼)」는 저승. 이승에서는 사교의 짙은 안개에 눈앞이 보이지 않아 헤매고, 죽은 뒤에는 아비지옥의 불꽃 밑바닥에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信仰の寸心を改めて신앙의 작은 마음을 고쳐
「촌심(寸心)」은 한 치의 마음, 곧 작은 마음, 마음속. 사법을 믿어 온 마음을 고치는 것이다.
実乗の一善실승의 일선
「실승」은 방편의 가르침(권승)에 대한 진실의 가르침. 「일선」은 오직 하나의 선.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법화경 본문 문저의 남묘호렌게쿄, 곧 삼대비법을 가리킨다. 아래 해설에서 자세히 본다.
三界は皆仏国なり삼계는 모두 불국이다
「삼계」는 욕계 · 색계 · 무색계로, 중생이 나고 죽는 미혹의 세계 전체. 그 삼계가 그대로 부처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十方は悉く宝土なり시방은 모두 보토이다
「시방」은 동서남북 · 사유(四維) · 상하, 곧 모든 곳. 「보토」는 보배로운 국토, 부처의 국토. 앞 구절과 짝을 이루어 시간과 공간 모두에 걸친 국토의 성불을 말한다.
国に衰微無く土に破壊無くんば나라에 쇠미함이 없고 국토에 파괴가 없다면
삼재칠난이 그쳐 나라가 쇠퇴하지 않고 국토가 무너지지 않는 것. 제1단에서 객이 탄식한 「이 세상이 일찍 쇠하고 그 법이 어찌 폐하였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身は是れ安全にして心は是れ禅定ならん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선정일 것이다
「선정」은 마음이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는 것. 국토가 편안하면 그 위에 사는 사람의 몸과 마음도 편안하다는 의정불이의 결론이다.
此の詞此の言信ず可く崇む可し이 말, 이 말씀을 믿어야 하며 받들어야 한다
주인의 마지막 말이다. 「이 말」은 주인의 말이자 그 근거인 경문의 말이다. 「입정안국론」에서 주인의 발언은 여기서 끝난다.

주인의 마지막 말 — 근심과 괴로움에서 나온 결론

제5장은 주인의 마지막 결론이다. 나라 안의 민중이 방법에 미혹되어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슬퍼하시고, 사법을 깨뜨리고 정법을 세워 나라를 편안히 하는 길을 보이신다.

결론의 첫머리는 논증이 아니라 탄식이다. 「슬프도다」, 「어리석도다」, 「어찌 근심하지 않겠으며 어찌 괴로워하지 않겠느냐.」 아홉 단에 걸쳐 경문을 들고 도리를 다한 끝에 주인이 내놓는 것은, 사람들이 정법의 문을 나와 사법의 감옥에 들어간 것에 대한 근심과 괴로움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확신과 대자비는 어본불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니치렌 대성인이 상행보살의 재탄이라는 적(迹)을 벗고 말법의 어본불,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라는 본(本)을 나타내신 것은 문영 8년(1271) 9월 12일 다쓰노구치의 목 베는 자리에서였다. 그러나 그보다 11년 앞선 문응 원년(1260) 7월에 지으신 「입정안국론」에도 그 깊은 곳에는 어본불로서의 대자비가 맥맥이 흐르고 있다. 「어찌 근심하지 않겠으며 어찌 괴로워하지 않겠느냐」는 한 줄은 그 자비가 겉으로 드러난 자리다.

「실승의 일선」이란 무엇인가 — 법화경인가, 문저의 삼대비법인가

「그대는 어서 신앙의 작은 마음을 고쳐 속히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 어서 방법의 신앙을 버리고 속히 참된 불법에 귀의하라고 재촉하시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실승의 일선」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아홉 단은 오로지 염불 등의 방법을 대치하는 것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실승의 일선이 무엇인지는 본문에 설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이것을 법화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었다.

그러나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대성인이 천태종과 같은 것을 정법으로 삼지 않으셨다는 것은 이 「입정안국론」 첫머리의 객의 탄식에서도 분명하다. 제1단에서 객은 재난을 물리치려는 당시의 갖가지 기도를 늘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或は「病即消滅・不老不死」の詞を仰いで法華真実の妙文を崇め

혹은 「병이 곧 소멸하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말을 우러러 법화 진실의 묘문을 받들기도 한다.

「입정안국론」, 17쪽

그런데도 아무 효험이 없다고 객은 탄식했다. 만약 실승의 일선이 법화경 이십팔품이나 천태종을 말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효험이 없다고 탄식하게 할 리가 있겠는가. 실제로 헤이안 말기부터 교토의 공가와 겐지 · 헤이케의 무가 사이에서는 법화경을 베껴 쓰고 읽고 외우고 공양하는 일이 성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공가와 무가들은 쇠망과 몰락의 운명을 걸었다. 그 법으로는 더 이상 효력이 없음이 뚜렷했다. 그것을 대성인이 새삼 내세우실 리가 없다.

천태종을 파하신 말씀이 「관심의 본존득의초」에 있다.

所詮・在在・処処に迹門を捨てよと書きて候事は今我等が読む所の迹門にては候はず、叡山天台宗の過時の迹を破し候なり、設い天台伝教の如く法のままありとも今末法に至ては去年の暦の如し何に況や慈覚自り已来大小権実に迷いて大謗法に同じきをや、然る間・像法の時の利益も之無し増して末法に於けるをや

결국 곳곳에 「적문을 버려라」라고 쓴 것은 지금 우리가 읽는 적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히에이잔 천태종의 때 지난 적문을 깨뜨린 것이니라. 설령 천태 · 전교가 세운 법 그대로 있다 하더라도 이제 말법에 이르러서는 지난해의 달력과 같으니라. 하물며 자각 이래로 대승 · 소승 · 권교 · 실교에 미혹하여 큰 방법과 같아졌음에랴. 그러니 상법 때의 이익도 없거늘 하물며 말법에서랴.

「관심의 본존득의초」, 972쪽

또 「삼대비법품승사」에서는 본문의 계단을 논하신 뒤 히에이잔의 계단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の戒法立ちて後・延暦寺の戒壇は迹門の理戒なれば益あるまじき処に、叡山に座主始まつて第三・第四の慈覚・智証・存の外に本師伝教・義真に背きて理同事勝の狂言を本として我が山の戒法をあなづり戯論とわらいし故に、存の外に延暦寺の戒・清浄無染の中道の妙戒なりしが徒に土泥となりぬる事云うても余りあり歎きても何かはせん

이 계법이 선 뒤에는 엔랴쿠사의 계단은 적문의 이계(理戒)이므로 이익이 없을 터인데, 히에이잔에 좌주가 생긴 뒤 제3 · 제4대인 자각 · 지증이 뜻밖에도 본사 전교 · 의진을 등지고 「이(理)는 같고 사(事)는 낫다」는 미친 말을 근본으로 삼아 제 산의 계법을 업신여기고 희론이라 비웃었기 때문에, 뜻밖에도 엔랴쿠사의 계, 곧 청정무염의 중도의 묘계였던 것이 헛되이 흙탕이 되어 버린 일은 말해도 다함이 없고 탄식해도 어찌할 수 없느니라.

「삼대비법품승사」, 1022쪽

夫れ一代聖教の邪正偏円を弁えたらん学者の人をして今の延暦寺の戒壇を踏ましむべきや

무릇 일대 성교의 사정(邪正) · 편원(偏圓)을 분별하는 학자에게 지금의 엔랴쿠사의 계단을 밟게 해야 하겠느냐.

「삼대비법품승사」, 1022쪽

위의 말씀에서 분명하듯,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천태 · 전교의 법문보다 한 겹 더 들어간 법화경 본문 문저의 사행(事行)의 일념삼천이다. 대성인의 입장에서 보면 천태종과 같은 것은 지난해의 달력이며, 게다가 방법에 물든 흙탕과 같다. 그리고 이 사행의 일념삼천, 곧 삼대비법이 불법의 궁극 가운데 궁극이며, 지극한 설 가운데 지극한 설이다.

문저의 남묘호렌게쿄 — 출세의 본회

『어의구전』은 이렇게 설한다.

如来とは釈尊・惣じては十方三世の諸仏なり別しては本地無作の三身なり、今日蓮等の類いの意は惣じては如来とは一切衆生なり別しては日蓮の弟子檀那なり、されば無作の三身とは末法の法華経の行者なり無作の三身の宝号を南無妙法蓮華経と云うなり、寿量品の事の三大事とは是なり

여래란 석존이며, 총괄하여 말하면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이고, 따로 말하면 본지 무작의 삼신이니라. 지금 니치렌 등의 부류의 뜻은, 총괄하여 말하면 여래란 일체중생이고, 따로 말하면 니치렌의 제자 · 단나이니라. 그러므로 무작의 삼신이란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이니라. 무작의 삼신의 보호(寶號)를 남묘호렌게쿄라 하느니라. 수량품의 사(事)의 삼대사란 이것이니라.

『어의구전』, 752쪽

이 문저 하종, 구원원초의 대불법을 대성인은 건장 5년(1253) 4월 28일에 처음 설해 내셨고, 27년 뒤인 홍안 2년(1279) 10월 12일 일염부제에 두루 주신 대어본존을 건립하심으로써 출세의 본회를 이루셨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어본존이야말로 말법의 모든 민중이 귀명해야 할 「실승의 일선」이다. 「성인어난사」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去ぬる建長五年太歳癸丑四月二十八日に安房の国長狭郡の内東条の郷今は郡なり、天照太神の御くりや右大将家の立て始め給いし日本第二のみくりや今は日本第一なり、此の郡の内清澄寺と申す寺の諸仏坊の持仏堂の南面にして午の時に此の法門申しはじめて今に二十七年・弘安二年太歳己卯なり、仏は四十余年・天台大師は三十余年・伝教大師は二十余年に出世の本懐を遂げ給う

지난 건장 5년 계축 4월 28일에 아와국 나가사군의 도조 고을 — 지금은 군이 되었느니라. 덴쇼다이진의 미쿠리야(御廚)로서 우대장가(右大將家)가 처음 세우신 일본 제2의 미쿠리야이며 지금은 일본 제일이니라 — 이 군 안의 세이초사라는 절의 쇼부쓰보(諸佛坊)의 지불당 남쪽 면에서 오시(午時)에 이 법문을 말하기 시작하여 지금 27년, 홍안 2년 기묘이니라. 부처는 40여 년, 천태대사는 30여 년, 전교대사는 20여 년에 출세의 본회를 이루셨느니라.

「성인어난사」, 1189쪽

그러므로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는 것은 삼대비법의 광선유포를 말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본문의 구절을 셋으로 나누어 보면, 「신앙의 작은 마음을 고쳐」는 사법을 버리는 것,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는 정법을 세우는 것(입정), 「그러면 곧 삼계는 …」은 나라가 편안해지는 것(안국)이다.

일반적 해석법화경(이십팔품) 또는 천태종본문에 따로 설명이 없으므로 법화경으로 봄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본 해석법화경 본문 문저의 남묘호렌게쿄, 곧 삼대비법근거
  1. ①제1단의 객이 「법화 진실의 묘문을 받들어도」 효험이 없다고 탄식함病即消滅・不老不死の詞を仰いで法華真実の妙文を崇め
  2. ②「관심의 본존득의초」: 천태 · 전교의 법도 말법에는 지난해의 달력去年の暦の如し
  3. ③「삼대비법품승사」: 엔랴쿠사의 계단은 흙탕이 됨徒に土泥となりぬる
  4. ④건장 5년의 입종 → 홍안 2년의 출세 본회
도표 12 · 「실승의 일선」을 읽는 두 시각
  1. ①
    신앙의 작은 마음을 고쳐信仰の寸心を改めて사법을 버림
    파사
  2. ②
    속히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速かに実乗の一善に帰せよ
    입정
  3. ③
    삼계는 모두 불국三界は皆仏国なり시방은 모두 보토十方は悉く宝土なり
    안국
  4. ④
    나라에 쇠미함이 없고 국토에 파괴가 없음
  5. ⑤
    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선정身は是れ安全にして、心は是れ禅定ならん몸안전마음선정
도표 13 · 입정에서 안국으로

「삼계는 모두 불국이다」 — 국토의 성불

「그러면 곧 삼계는 모두 불국이다.」 이것은 광선유포가 이루어진 모습을 말씀하신 것이다. 광선유포의 달성은 국토의 성불을 뜻한다. 그러므로 국토세간의 지옥계 · 아귀계 · 축생계 · 수라계의 생명은 가라앉아 숨고, 천변지변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의정불이이며 「법이 묘하기 때문에 사람이 귀하고,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그 처소가 존귀하다」(1578쪽)는 원리다. 한번 광선유포가 되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형식에 흘러 신심의 혈맥을 잃고 방법을 범하게 된다면 다시 나쁜 국토가 된다. 국토의 성불은 한 번 이루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의 신심으로 늘 지켜 가야 하는 것이다.

「불국이 어찌 쇠하겠느냐」는 묘법이 퍼진 국토에는 쇠미함이 없다는 말씀이다. 국토의 쇠미라는 것은 짧은 시간의 단위로 생각해서는 알기 어렵다. 넓게 역사를 보면 그것이 나라의 운명을 정하는 중대한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큰 문명이 번영하던 땅이 기후의 변화로 메마른 땅이 되어 버린 예는 역사에 적지 않다. 사람의 힘이 자연을 크게 바꿀 수 있게 되었다 해도, 사람의 힘이 자연을 전면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위대한 자연을 움직이는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이야말로 남묘호렌게쿄의 대불법이라고 대성인은 설하셨다. 이 묘법을 모든 민중이 믿는다면 자연의 힘은 민중의 행복한 생활을 늘리는 쪽으로 작용하게 된다. 거꾸로 방법의 때에는 불행을 더하는 쪽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것이 불법의 대원리이며, 「입정안국론」에서 천변지요를 가라앉히는 요법을 설하신 것도 이 원리를 큰 전제로 하신 것이다.

삼계와 시방 — 사바세계가 곧 적광토

「삼계는 모두 불국이니라. 불국이 어찌 쇠하겠느냐. 시방은 모두 보토이니라. 보토가 어찌 무너지겠느냐.」 이 말씀대로 불교는 한 나라, 한 민족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온 세계, 온 우주를 대상으로 하여 영원한 평화와 번영을 설한다.

「삼계」란 육도를 나누어 본 것으로 욕계 · 색계 · 무색계다. 욕계는 아래로 지옥계에서 위로 천상계의 육욕천까지, 욕망의 세계 전부를 말한다. 색계는 욕계 위에 맑고 묘한 물질만이 있는 천상계, 무색계는 물질이 없는 정신만의 가장 높은 하늘을 가리킨다. 또 이 삼계 밖에는 이승이 머무는 방편토, 보살이 머무는 실보토, 부처가 머무는 적광토가 있다고 설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이전 경과 적문에서 설한 것이다. 법화경 본문 수량품에서는 본국토묘(本國土妙)를 밝혀, 본불은 영원한 옛날부터 이 사바세계에서 설법하고 교화해 왔다고 설한다. 그러므로 「삼계는 모두 불국」, 「시방은 모두 보토」란 사바세계가 곧 적광토이며,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영원히 멸하지 않는 불국토임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관심의 본존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十界久遠の上に国土世間既に顕われ

십계가 구원(久遠)한 위에 국토세간이 이미 나타나

「관심의 본존초」, 249쪽

이상의 삼계론과 불국토로 생각해 보아도, 불교가 특정한 나라나 특정한 민족에 한정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니치렌 대성인은 늘 일염부제를 대상으로 삼대비법을 세우고 넓히셨다.

此の時地涌千界出現して本門の釈尊を脇士と為す一閻浮提第一の本尊此の国に立つ可し

이때 지용천계가 출현하여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삼는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서리라.

「관심의 본존초」, 254쪽

前代未聞の大闘諍・一閻浮提に起るべし其の時・日月所照の四天下の一切衆生、或は国ををしみ或は身ををしむゆへに一切の仏菩薩にいのりをかくともしるしなくば彼のにくみつる一の小僧を信じて無量の大僧等八万の大王等、一切の万民・皆頭を地につけ掌を合せて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となうべし

전대미문의 큰 싸움이 일염부제에 일어나리라. 그때 해와 달이 비추는 사천하의 모든 중생이 혹은 나라를 아끼고 혹은 몸을 아끼는 까닭에 모든 부처와 보살에게 기원해도 효험이 없으면, 저 미워하던 한 소승(小僧)을 믿어 한량없는 큰 승려들, 팔만의 대왕들, 모든 만민이 다 머리를 땅에 대고 합장하여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리라.

「선시초」, 259쪽

三には日本・乃至漢土・月氏・一閻浮提に人ごとに有智無智をきらはず一同に他事をすてて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べし

셋째는 일본, 나아가 중국 · 인도 · 일염부제에 사람마다 지혜가 있고 없음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다른 일을 버리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러야 하느니라.

「보은초」, 328쪽

불교 전래의 역사로 보아도 그렇다. 인도의 불교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서 조선 · 일본으로 넓혀졌다. 중국에서는 이미 퍼져 있던 유교 · 도교의 거센 저항을 받았으나 숱한 논쟁 끝에 불교가 이겨 온 땅에 퍼지고 존숭받기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도 처음 불교가 전해졌을 때 서쪽 나라의 부처를 받들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다툼이 있었고, 이것이 당시 씨족 사이의 대립과 황위 계승 문제 등과 얽혀 수십 년에 걸친 논쟁과 암투가 되풀이되었다. 그 결과는 숭불파의 승리였고, 불교는 온 나라에 넓혀졌다. 곧 불교는 나라와 겨레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일체중생이 모두 불도를 이룬다」는 큰 바다로 이끌어 왔다.

「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선정」 — 국토의 안온과 신심의 안온

「나라에 쇠미함이 없고 국토에 파괴가 없다면 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선정일 것이다.」 나라와 민족이 번영하고 국토가 평화로울 때 비로소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의 물심양면의 행복이 세워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요체는 「입정안국론」의 실천이다. 이 실천을 잊고 제 몸 하나의 행복과 평온만을 바라는 것은 니치렌 대성인의 제자가 아니다. 결국 관념론이 되고 이기주의가 되어 버린다. 바른 불도 수행은 모든 사람의 평화와 한 나라의 번영을 바라는 기원이며 정신이며 실천이어야 한다.

여기서 의정불이의 원리에 비추어, 이 글대로라면 의보(依報)가 근본이고 정보(正報)는 그것에 좌우되는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의보에 따라 정보가 지배되어 가는 모습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뿐이라면 사람은 바깥의 힘에 움직여지는 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실상을 바르게 확인한 위에서, 근본적으로는 불법으로 국토세간을 바꾸어 가는 것 — 이것이 의정불이다. 그리고 그 신심의 일념이 정보가 되고, 정보에 따라 의보가 정해진다. 「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선정」은 국토가 편안해서 사람이 편안해지는 길과, 사람이 정법으로 바뀌어 국토가 편안해지는 길이 하나로 맞물려 있음을 보여 준다.

또 「삼계는 모두 불국이니라 … 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선정일 것이니라」의 글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입정안국론 문단」에서 이렇게 풀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文は唯日本及び現在にあり、意は閻浮及び未来に通ずべし

글은 오직 일본과 현재에 있으나, 뜻은 일염부제와 미래에 통한다.

니치칸 상인 「입정안국론 문단」

곧 「삼계는 모두 불국이다」, 「시방은 모두 보토이다」라는 글은 우선은 일본을, 그리고 그때의 현재만을 보이는 듯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 뜻은 온 세계의 말법 만년, 미래가 다할 때까지에 걸친 영원한 평화와 이상 사회의 출현을 말한다. 「입정안국론」은 한 나라, 한 민족의 안태와 행복에 그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세계의 평화와 사람들의 행복을 향한 큰 그림을 설한 글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실승의 일선」은 법화경 본문 문저의 남묘호렌게쿄, 곧 삼대비법이다. 이 법에 귀의하는 입정이 「삼계는 모두 불국」이라는 안국으로 이어지며, 그 뜻은 일본과 그때에 그치지 않고 일염부제와 미래에 통한다.

「이 말을 믿고 받들라」 — 주인의 말이 끝나는 자리

「이 말, 이 말씀을 믿어야 하며 받들어야 한다.」 이것이 「입정안국론」에서 주인이 하는 마지막 말이다. 제1단 제2장에서 「홀로 이 일을 근심하여 가슴속에 분을 품고 있었다」며 말문을 연 주인은, 아홉 번의 대답 끝에 이 한마디로 입을 닫는다.

「이 말」은 주인 한 사람의 말이 아니다. 「널리 여러 경을 펼쳐 보니」로 시작한 이 장의 첫 줄이 보여 주듯, 그것은 경문의 말이며 부처의 말이다. 주인은 처음부터 「다만 경문에 따라 조금 소견을 말하겠다」(제7단)는 자세를 지켜 왔다. 그러므로 「믿어야 하며 받들어야 한다」는 것은 주인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경문이 가리키는 법을 믿고 받들라는 것이다. 객이 이 말에 어떻게 답하는가가 제10단이다.

제10단 깨닫고 방법 대치를 맹세하다
어서 32쪽 18행~33쪽 4행 · 第十段 領解して謗法対治を誓う

본문

원문 대조어서 32쪽 18행 ~ 33쪽 4행
本文 · 어서 원문

客の曰く、今生後生誰か慎まざらん誰か和わざらん、此の経文を披いて具に仏語を承るに誹謗の科至つて重く毀法の罪誠に深し我一仏を信じて諸仏を抛ち三部経を仰いで諸経を閣きしは、 是れ私曲の思に非ず則ち先達の詞に随いしなり、十方の諸人も亦復是くの如くなるべし、今の世には性心を労し来生には阿鼻に堕せんこと文明かに理詳かなり疑う可からず、 弥よ貴公の慈誨を仰ぎ益愚客の癡心を開けり、速に対治を回して早く泰平を致し先ず生前を安じて更に没後を扶けん、 唯我が信ずるのみに非ず又他の誤りをも誡めんのみ。

풀이

객이 말하기를, 「금생과 후생을 두고 누가 삼가지 않겠으며 누가 따르지 않겠느냐. 이 경문을 펼쳐 부처의 말씀을 자세히 받들어 보니, 정법을 비방하는 허물은 지극히 무겁고 법을 헐뜯는 죄는 참으로 깊으니라. 내가 한 부처(아미타)를 믿어 모든 부처를 내던지고, 삼부경을 우러러 모든 경을 내버려 둔 것은 나의 사사로운 생각이 아니라 곧 선달(先達)의 말을 따른 것이니라. 시방의 모든 사람도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니라. 이승에서는 성심(性心)을 괴롭히고 내생에서는 아비지옥에 떨어지리라는 것은, 글이 분명하고 이치가 자세하니 의심할 수 없느니라. 더욱 귀공(貴公)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우러르니, 어리석은 객의 어두운 마음이 한층 열렸느니라. 속히 대치를 행하여 일찍 태평을 이루고, 먼저 생전을 편안히 하고 다시 사후를 돕겠느니라. 오직 나만 믿을 뿐 아니라, 또한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느니라.」

어구 풀이

今生後生誰か慎まざらん誰か和わざらん금생과 후생을 두고 누가 삼가지 않겠으며 누가 따르지 않겠느냐
방법이 이 세상에서 미래 영겁에 걸친 불행의 원인임을 안다면, 누구든 방법을 삼가고 두려워하며 정법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誹謗の科至つて重く毀法の罪誠に深し비방의 허물은 지극히 무겁고 법을 헐뜯는 죄는 참으로 깊다
제3 · 4장의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의 문을 받아, 객이 방법의 죄의 무게를 스스로 인정하는 말이다.
一仏を信じて諸仏を抛ち三部経を仰いで諸経を閣き한 부처를 믿어 모든 부처를 내던지고 삼부경을 우러러 모든 경을 내버려 두었다
「일불」은 아미타불, 「삼부경」은 정토 삼부경(『무량수경』 · 『관무량수경』 · 『아미타경』). 「포(抛)」 · 「각(閣)」은 『선택집』의 「사 · 폐 · 각 · 포」의 글자를 그대로 쓴 것으로, 객이 바로 그 가르침을 따라왔음을 고백하는 말이다.
私曲の思に非ず則ち先達の詞に随いしなり사사로운 생각이 아니라 곧 선달의 말을 따른 것이다
「사곡(私曲)」은 제멋대로의 굽은 생각. 「선달(先達)」은 앞서 그 길을 간 사람, 곧 정토종의 조사들이다. 제5단에서 객이 담란 · 도작 · 선도 · 법연을 들어 변호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十方の諸人も亦復是くの如くなるべし시방의 모든 사람도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나라 안의 많은 사람이 같은 길을 걸어왔으리라는 것. 객 한 사람의 고백이 나라 전체의 문제로 넓어진다.
性心を労し성심을 괴롭히고
「성심」은 타고난 성품과 마음. 이 세상에서 몸과 마음이 시달리고 생명력이 깎이는 것이다.
文明かに理詳かなり글이 분명하고 이치가 자세하다
경문의 증거(문증)도 분명하고 도리(이증)도 자세하다는 것. 주인의 논증이 문증과 이증을 모두 갖추었음을 객이 인정하는 말이다.
貴公の慈誨귀공의 자비로운 가르침
「귀공」은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 「자회(慈誨)」는 자비에서 나온 가르침과 훈계. 제2단에서 「난실」이라 했던 주인을 이제 「귀공」이라 부른다.
愚客の癡心を開けり어리석은 객의 어두운 마음이 열렸다
객이 스스로를 「어리석은 객」이라 낮추어 부르며, 미혹한 마음이 열렸음을 말한다.
速に対治を回して早く泰平を致し속히 대치를 행하여 일찍 태평을 이루고
「회(回)」는 돌리다 · 베풀다. 방법을 대치하는 방책을 세워 천하의 태평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先ず生前を安じて更に没後を扶けん먼저 생전을 편안히 하고 다시 사후를 돕겠다
현세의 안온과 내세의 안락, 곧 현당 이세의 행복이다. 제2장의 「먼저 국토를 편안히 하여 현당을 기원하라」에 대한 객의 대답이다.
唯我が信ずるのみに非ず又他の誤りをも誡めんのみ오직 나만 믿을 뿐 아니라 또한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다
자행(自行)에 그치지 않고 화타(化他)에 나서겠다는 맹세. 「입정안국론」 전편의 마지막 구절이다.

주인의 말이 없는 마지막 단

제10단은 객이 주인의 가르침을 완전히 깨달아 스스로 정법에 귀의하고, 주인의 말대로 방법 대치를 해 나가겠다고 맹세하는 단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주인의 말은 없고, 이 객의 말로 전편의 결론을 삼고 있다.

열 번의 문답이라 하지만 실은 객이 열 번 말하고 주인이 아홉 번 답한 구성이다(십문구답). 제1단의 「객이 와서 탄식하여 말하기를」로 시작한 대화가 제10단의 「객이 말하기를」로 끝난다. 처음의 객은 재난을 탄식하는 사람이었고, 끝의 객은 대치를 맹세하는 사람이다.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와 끝마디 사이의 거리가 곧 「입정안국론」이 걸어온 길이다.

주인의 대답이 없다는 것은 대화가 끝났다는 것이 아니다. 주인이 제5장에서 「이 말을 믿고 받들라」고 한 것에 객이 「믿겠다, 그리고 남에게도 훈계하겠다」고 답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글은 여기서 닫히지만, 객의 맹세는 글 밖으로 이어진다.

「금생과 후생을 두고 누가 삼가지 않겠는가」 — 불행의 근본 원인

「금생과 후생을 두고 누가 삼가지 않겠으며 누가 따르지 않겠느냐.」 방법이 지금 세상에서 미래 영겁에 걸친 불행의 원인임을 안다면, 누구라도 방법을 삼가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권력이 있든, 학자이든, 이름난 사람이든, 부자이든, 몸이 튼튼한 사람이든, 불법을 그르치면 그 복운은 곧 다해 버린다. 세상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근본을 더듬어 가면 그릇된 종교를 믿어 가는 데로 돌아간다. 물론 가까운 원인이나 돕는 인연은 여러 가지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은 불법을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밝힐 수 없다.

경문에도 앞에서 든 것처럼 분명히 설해져 있다. 또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와 「제경과 법화경과 난이의 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天晴れぬれば地明かなり法華を識る者は世法を得可きか

하늘이 개면 땅이 밝아지느니라. 법화를 아는 이는 세법을 얻을 것이니라.

「관심의 본존초」, 254쪽

仏法やうやく顛倒しければ 世間も又濁乱せり、仏法は体のごとし世間はかげのごとし体曲れば影ななめなり

불법이 점점 뒤집히니 세간도 또한 흐리고 어지러워졌느니라. 불법은 몸과 같고 세간은 그림자와 같으니라. 몸이 굽으면 그림자도 비뚤어지느니라.

「제경과 법화경과 난이의 사」, 992쪽

이러한 경문과 어서의 증거에 비추고, 다시 이것을 생명의 도리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일로 이해할 수 있다. 객의 「글이 분명하고 이치가 자세하니 의심할 수 없다」는 말은 바로 이 문증과 이증을 받아들인 것이다.

「사사로운 생각이 아니라 선달의 말을 따랐다」 — 객의 고백

객은 자신의 지난 신앙을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한 부처를 믿어 모든 부처를 내던지고, 삼부경을 우러러 모든 경을 내버려 둔 것은 나의 사사로운 생각이 아니라 곧 선달의 말을 따른 것이다.」 「포(抛)」와 「각(閣)」은 『선택집』의 「사 · 폐 · 각 · 포」에서 온 글자다. 객은 법연이 가르친 대로 아미타 한 부처만 믿고 정토 삼부경만 우러러, 그 밖의 모든 부처와 경을 내던지고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이 고백에는 두 겹의 뜻이 있다. 하나는 변명처럼 들리는 정직함이다. 객은 스스로 생각해서 그 길을 고른 것이 아니라 앞서 간 조사들의 말을 믿고 따랐을 뿐이다. 제5단에서 객이 「우리 본사 석가문이 정토 삼부경을 설하신 뒤로 담란 법사는 사론의 강설을 버리고 오로지 정토에 귀의했고, 도작 선사는 열반의 넓은 업을 내버려 두었다」며 정토의 조사들을 변호했던 바로 그 「선달」이다. 또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시방의 모든 사람도 또한 이와 같을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방법은 한 사람의 악의에서가 아니라 그릇된 스승을 바르다고 믿는 데서 퍼진다. 스승을 따른 것이 죄를 가볍게 해 주지는 않지만, 그것이 나라 전체가 같은 길을 걷게 된 까닭을 설명해 준다. 제3단에서 주인이 「세상 사람은 법의 정사를 알지 못한다」고 깨우친 것도, 제4 · 5단에서 법연 한 사람의 『선택집』을 일국 방법의 원흉으로 지목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 고백은 그릇된 법을 알지 못하고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가를 보여 주기도 한다. 알지 못한 채 바른 법을 헐뜯는 것은 제 부끄러움을 드러낼 뿐 아니라, 정법을 비방하는 두려운 악업의 원인을 짓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승에서는 성심을 괴롭히고」 — 깎여 가는 생명력

「이승에서는 성심을 괴롭히고 내생에서는 아비지옥에 떨어진다.」 방법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명력을 좀먹혀 지 · 정 · 의가 모두 쇠약해진다. 끊임없는 불행 때문에 지력은 쇠하고 감정도 가라앉으며, 의지의 힘도 잃어 무기력해져 간다. 어릴 때는 활기에 넘치던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소극적이고 무기력해지는 예는 우리 둘레에서 늘 볼 수 있다.

일본의 역사에서도 그런 예를 볼 수 있다. 에도 시대의 막부는 모든 농민과 상인을 전국 곳곳의 사찰의 단가(檀家)로 묶고, 그 종문인별장(宗門人別帳)을 호적으로 삼았다. 민중은 종교를 비판할 수 없는 채 사찰에 매였고, 그 가르침은 민중의 기력을 북돋우지 못했다. 특히 이 세상을 살기 어려운 예토로 여기고 오로지 염불을 불러 아미타를 믿으면 내세에는 반드시 극락에 왕생한다는 가르침은, 다스리는 쪽에게 더없이 편리한 것이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성심을 괴롭힌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의 문제이면서, 사회 전체의 기력이 꺾여 가는 문제이기도 하다.

「먼저 생전을 편안히 하고 다시 사후를 돕겠다」 — 현당 이세

「속히 대치를 행하여 일찍 태평을 이루고, 먼저 생전을 편안히 하고 다시 사후를 돕겠다.」 객의 이 말은 제2장에서 주인이 「만약 먼저 국토를 편안히 하여 현당을 기원하고자 한다면 속히 생각을 돌려 서둘러 대치를 더하라」고 한 것에 대한 그대로의 대답이다. 「먼저 국토를 편안히」가 「일찍 태평을 이루고」로, 「현당을 기원한다」가 「먼저 생전을 편안히 하고 다시 사후를 돕는다」로 바뀌었다. 주인의 말이 객의 말이 된 것이다.

종교란 이 세상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세의 행복을 비는 것이라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 그것은 민중을 현실에서 행복하게 할 힘을 보이지 못하는 가르침이 스스로를 변명하는 말이다. 현실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증거 없이 어떻게 내세에도 행복해진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삼세에 걸친 생명관은, 줄여 말하면 어제 · 오늘 · 내일로 이어지는 생활에 비유할 수 있다. 불행을 그대로 두고 하룻밤 자고 나면 행복으로 바뀌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좋은 내일을 맞으려면 오늘의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 안에 좋아지게 해 두어야 내일의 행복이 있다. 이것은 일상생활의 원칙이다. 이 세상과 내세의 관계도 이와 똑같다. 「먼저 생전을 편안히 하고」가 앞에 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다」 — 입정안국은 절복으로 맺어진다

「오직 나만 믿을 뿐 아니라 또한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다.」 이것은 절복을 맹세하는 말이며, 「입정안국론」의 마지막 한 구절이 절복론으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에는 중대한 뜻이 있다. 곧 방법에 빠진 민중을 절복하여 건져 가는 것이야말로 「입정안국론」 실천의 요체라고 받들 수 있다.

대성인은 「소야전답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涅槃経に云く「若し善比丘あつて法を壊る者を見て置いて呵責し駈遣し挙処せずんば当に知るべし是の人は仏法の中の怨なり、若し能く駈遣し呵責し挙処せんは是れ我が弟子真の声聞なり」云云、此の文の中に見壊法者の見と置不呵責の置とを能く能く心腑に染む可きなり、法華経の敵を見ながら置いてせめずんば師檀ともに無間地獄は疑いなかるべし

열반경에 이르기를 「만약 선한 비구가 있어 법을 무너뜨리는 자를 보고도 내버려 두어 꾸짖고 쫓아내고 그 죄를 들추어 처리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불법 가운데의 원수이니라. 만약 능히 쫓아내고 꾸짖고 들추어 처리한다면 이는 나의 제자이며 참된 성문이니라」 하였느니라. 이 글 가운데 「법을 무너뜨리는 자를 본다」의 「본다(見)」와 「내버려 두어 꾸짖지 않는다」의 「내버려 둔다(置)」를 잘 잘 마음 깊이 새겨야 하느니라. 법화경의 적을 보면서도 내버려 두고 꾸짖지 않는다면 스승과 단나가 함께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은 의심할 바 없느니라.

「소야전답서」, 1056쪽

謗法を責めずして成仏を願はば火の中に水を求め水の中に火を尋ぬるが如くなるべしはかなし・はかなし

방법을 꾸짖지 않고 성불을 바란다면 불 속에서 물을 구하고 물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같으니라. 덧없도다, 덧없도다.

「소야전답서」, 1056쪽

이 열반경의 문은 「입정안국론」 제6단 제3장에서 주인이 「방법을 꾸짖는 정신」을 설할 때 이미 인용한 것이다. 그때 주인은 이 문을 들어 자신이 왜 고승들을 비방하는지를 밝혔다. 이제 제10단에서 객은 그 정신을 자기 것으로 삼아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다」고 맹세한다. 주인의 실천이 객의 맹세로 옮겨 간 것이다. 니치칸 상인도 「입정안국론 문단」에서 이 구절을 풀어 「이것은 불법 가운데의 원수라는 꾸짖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これ仏法中怨の責めを恐るるゆえなり)」라고 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또 닛코 상인의 「닛코유계치문」에는 이렇게 있다.

未だ広宣流布せざる間は身命を捨て随力弘通を致す可き事

아직 광선유포되지 않은 동안에는 신명을 버리고 힘닿는 대로 홍통해야 할 일.

「닛코유계치문」, 1618쪽

제 몸의 행복을 바라 자기만 신심하면 된다는 것은 이기주의이며 부처의 제자가 걸을 길이 아니다. 오히려 방법을 보면서도 그것을 훈계하지 않고 꾸짖지 않는 사람은 불법 가운데의 원수가 되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제2장에서 주인이 「한 몸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먼저 사표의 정밀을 기원하라」고 한 것과, 객이 마지막에 「오직 나만 믿을 뿐 아니라」라고 한 것은 같은 원리의 앞뒤다.

남을 훈계하는 길은 쉽지 않다. 대성인은 「성인어난사」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各各師子王の心を取り出して・いかに人をどすともをづる事なかれ、師子王は百獣にをぢず・師子の子・又かくのごとし、彼等は野干のほうるなり日蓮が一門は師子の吼るなり

저마다 사자왕의 마음을 꺼내어, 사람들이 아무리 위협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사자왕은 온갖 짐승을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사자의 새끼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그들은 여우가 울부짖는 것이요, 니치렌의 일문은 사자가 포효하는 것이니라.

「성인어난사」, 1190쪽

月月・日日につより給へ・すこしもたゆむ心あらば魔たよりをうべし

달마다 날마다 강해지시라. 조금이라도 게으른 마음이 있으면 마가 틈을 얻으리라.

「성인어난사」, 1190쪽

제2장에서 주인이 「사람의 마음은 때에 따라 옮긴다」고 경계했던 그 마음을 지켜 내는 길이 여기에 있다. 「달마다 날마다 강해지라」는 것은 결심을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하는 것이다.

  1. ①
    금생과 후생을 두고 누가 삼가지 않겠느냐今生後生誰か慎まざらん
    두려움을 앎
  2. ②
    비방의 허물은 무겁고 법을 헐뜯는 죄는 깊다誹謗の科至つて重く毀法の罪誠に深し
    죄를 인정함
  3. ③
    사사로운 생각이 아니라 선달의 말을 따랐다私曲の思に非ず則ち先達の詞に随いしなり
    미혹의 근원을 고백함
  4. ④
    속히 대치를 행하여 일찍 태평을 이룸
    안국
  5. ⑤
    먼저 생전을 편안히 하고 다시 사후를 도움
    현당 이세
  6. ⑥
    오직 나만 믿을 뿐 아니라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다唯我が信ずるのみに非ず又他の誤りをも誡めんのみ입정안국론 전편의 마지막 구절
    자행과 화타
도표 14 · 객의 영해와 맹세

열 번의 문답을 닫으며 — 탄식에서 맹세로

「입정안국론」은 「근년부터 근일에 이르기까지 천변 · 지요 · 기근 · 역병이 두루 천하에 가득하다」는 객의 탄식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오직 나만 믿을 뿐 아니라 또한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다」는 객의 맹세로 끝난다. 탄식은 재난을 밖에서 바라보는 자리이고, 맹세는 재난의 근원을 안에서 끊으러 나서는 자리다.

그 사이에서 객은 세 번 성을 내고 두 번 누그러졌으며, 마침내 자리를 피하고 옷깃을 여몄다. 주인은 경문을 들고, 도리를 다하고, 현증을 보였다. 그러나 주인이 끝내 객에게 바란 것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한 몸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먼저 사표의 정밀을 기원하라」, 「속히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 — 객이 한 사람의 행복과 나라의 평안을 하나로 보고, 바른 법에 귀의하여, 스스로 남에게 그 법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객의 마지막 말은 바로 그 바람에 대한 대답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입정안국론」은 객의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다」는 맹세로 끝난다. 입정안국은 한 사람의 귀의에서 시작하여, 그 사람이 다른 이의 잘못을 훈계하는 자행화타의 실천으로 완성된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제9편은 「입정안국론」 열 번의 문답이 닫히는 자리다. 제1장에서 객은 자리를 피하고 옷깃을 여미어, 불교가 갈래져 뜻을 알기 어려웠다는 고백과 함께 망집이 뒤집혔음을 밝히고, 일천제의 보시를 멈추어 희농의 세 · 당우의 나라를 이룬 뒤 법수의 천심을 헤아려 불가의 동량을 받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객은 「무엇에 귀의하는가」를 아직 뒤로 미루어 두었다.

제2장에서 주인은 그 변화를 「난실의 벗과 사귀어 삼밭의 성품이 되었다」고 기뻐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은 때에 따라 옮긴다」고 경계했다. 그리고 네 경의 재난 가운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 난, 곧 타국침핍난과 자계반역난을 들어 「먼저 국토를 편안히 하여 현당을 기원하려면 속히 생각을 돌려 서둘러 대치를 더하라」고 재촉했다. 그 예고는 문영 5년의 몽골 국서, 문영 9년의 니가쓰 소동, 문영 11년과 홍안 4년의 몽골 내습으로 현실이 되었고, 대성인은 「이 글은 징험이 있는 글이다」라고 적으셨다. 나라가 끝내 망하지 않은 까닭을 니치칸 상인은 대자비의 충간과 어본불의 수호로 풀었다. 「한 몸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먼저 사표의 정밀을 기원하라」는 한 구절은 한 사람의 행복과 세상의 평화가 떨어질 수 없음을 말한다.

제3 · 4장은 인왕경 · 법화경 · 열반경으로 방법의 과보가 한 집안과 한 생명에 무엇을 가져오는가를 보였다. 효자가 없고 육친이 화목하지 못하며, 죽어서는 삼악도에, 다시 사람이 되어도 병노의 과보를 받는다. 정법을 비방하는 사람은 아비지옥에 떨어지며, 참회한 방법조차 천 겁의 괴로움을 받는다. 그러나 그 인과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며, 정법에 귀의하여 숙명을 바꾸는 길이 있다. 그래서 대성인은 「먼저 임종의 일을 배우라」고 하셨다.

제5장에서 주인은 「속히 실승의 일선에 귀의하라. 그러면 삼계는 모두 불국이요 시방은 모두 보토이다」라는 말로 입정안국의 결론을 내렸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실승의 일선」은 법화경 본문 문저의 남묘호렌게쿄, 곧 삼대비법이다. 그 법에 귀의하는 입정이 국토의 성불이라는 안국으로 이어지고, 국토가 편안하면 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선정이다. 그 뜻은 「글은 일본과 현재에 있으나 뜻은 일염부제와 미래에 통한다」. 제10단에서 객은 방법의 죄가 무거움을 깨닫고 「오직 나만 믿을 뿐 아니라 또한 남의 잘못도 훈계하겠다」고 맹세했고, 주인의 대답 없이 글이 끝났다.

이로써 「입정안국론」 아홉 편이 모두 끝난다. 재난의 원인과 경증을 밝힌 제1 · 2편, 방법의 정체를 드러낸 제3~5편, 방법 대치의 방법을 논한 제6~8편, 그리고 정법 귀의와 맹세의 이 편까지, 열 번의 문답은 한 사람의 탄식에서 시작하여 한 사람의 맹세로 맺어졌다. 이 글을 올린 뒤 대성인이 겪으신 마쓰바가야쓰 법난과 이즈 유배, 그리고 문영 연간에 이르기까지의 저술의 유래와 오서 · 어감유래 · 별장의 경위는 서강 「입정안국론을 펼치며」로 돌아가 함께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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