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둘째 문답에서 주인은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 · 약사경의 네 경문을 들어, 세상 사람들이 바른 법을 버렸기 때문에 선신과 성인이 나라를 떠나고 재난이 일어난다고 맺었다. 객은 이 말에 얼굴빛을 바꾼다. 후한의 명제 이래 불법은 중국에 전해졌고, 쇼토쿠 태자가 모리야를 친 뒤로 이 나라에는 위로 천황부터 아래로 만민까지 불상을 숭상하고 경권을 받들어 왔다. 히에이잔과 남도, 온조사와 도지를 비롯해 나라 안에 절과 탑이 별처럼 구름처럼 늘어서 있는데, 누가 불법을 버렸다는 말인가. 주인은 그 겉모습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법사는 첨곡하고 왕신은 사정을 가리지 못한다」고 하여, 문제는 절의 수가 아니라 법의 바르고 그름에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인왕경 · 열반경 · 법화경 권지품 · 다시 열반경의 네 경문으로, 말세에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은 바깥의 적이 아니라 권력 가까이에서 명리를 구하는 악한 승려라는 것을 증명한다. 아홉 편 가운데 셋째인 이 편은 재난의 원인을 밝힌 앞의 두 편에서 「방법(謗法)의 정체」를 파고드는 셋째~다섯째 편으로 넘어가는 문이다.
입정안국론 아홉 편은 네 갈래로 이어진다. 재난의 근본 원인과 그 경증을 밝히는 제1 · 2편, 방법의 정체를 악한 승려와 법연의 『선택집』으로 좁혀 가는 제3~5편, 방법을 대치하는 방법을 묻고 답하는 제6~8편, 그리고 정법에 귀의하라는 결론과 객의 맹세를 담은 제9편이다. 이 편은 그 둘째 갈래의 첫머리다. 제2편이 「무엇이 재난을 부르는가」에 대해 「정법을 버림」이라고 답했다면, 이 편은 「그렇다면 누가 정법을 버리게 하는가」로 물음을 옮긴다. 그 대답은 「악한 승려」이며, 그 악한 승려가 누구인가 — 법연과 그의 『선택집』 — 는 다음 제4편에서 밝혀진다.
다섯 장은 하나의 논쟁으로 짜여 있다. 제1장은 객의 반론이다. 객은 불법 동점의 역사와 나라 안의 큰 절들, 관(觀)을 닦는 이들과 교(教)를 전하는 이들을 들어 「불법은 흥륭하고 있다」고 따진다. 제2장은 주인의 첫 대답이다. 절과 승려가 많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승려는 첨곡하고 위정자는 법의 사정을 모른다고 하여 형식과 실질을 가른다. 제3장부터 제5장까지는 그 대답을 경문으로 증명한다. 인왕경은 악비구가 국왕 앞에서 파불 · 파국의 인연을 설한다고 하고, 열반경은 악상보다 악지식을 두려워하라고 한다. 법화경 권지품은 말법에 나타날 세 부류의 강적을 예언하고, 다시 열반경은 계율을 지키는 척하며 사냥꾼처럼 고양이처럼 신도를 노리는 승려를 그린다. 주인은 그 경문들을 모두 든 뒤 「글에 비추어 세상을 보니 참으로 그러하다. 악한 승려를 경계하지 않고서 어찌 선한 일을 이루겠는가」라고 맺는다.
이 편이 특별한 것은 경문이 그저 옛 예언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입정안국론을 올린 뒤 대성인이 겪으신 일 — 마쓰바가야쓰의 습격과 이즈 유배, 몽골 국서와 십일통어서, 고쿠라쿠사 료칸과의 기우 대결,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의 체포와 다쓰노구치 · 사도 — 이 이 다섯 장의 경문을 하나하나 몸으로 읽은 역사였다. 그러므로 이 편의 해설은 경문과 함께 그 역사를 따라간다. 겉으로 번성하는 불교와 속으로 무너진 불법, 권력과 손잡은 명승과 그 앞에서 홀로 간한 대성인의 대비가 이 편의 중심이다.
이 편의 장
- 객의 반론(제1장)후한 명제 · 쇼토쿠 태자 이래 불법은 흥륭하고 있다
- 주인의 답(제2장)절과 승려는 많으나 법사는 첨곡하고 왕신은 사정을 가리지 못한다
- 경증 ①(제3장)인왕경 — 악비구가 국왕 앞에서 파불 · 파국의 인연을 설한다열반경 — 악상보다 악지식을 두려워하라
- 경증 ②(제4장)법화경 권지품 — 삼류의 강적
- 경증 ③(제5장)열반경 — 율을 지니는 듯한 비구가 정법을 비방한다
- 맺음글에 비추어 세상을 보니 참으로 그러하다文に就いて世を見るに、誠に以て然なり
본문
客色を作して曰く、後漢の明帝は金人の夢を悟つて白馬の教を得、上宮太子は守屋の逆を誅して寺塔の構を成す。 爾しより来、上一人より下万民に至るまで、仏像を崇め経巻を専らにす。 然れば則ち叡山・南都・園城・東寺、四海・一州・五畿・七道、仏経は星の如く羅り、堂宇雲の如く布けり。 鶖子の族は則ち鷲頭の月を観じ、鶴勒の流は亦鶏足の風を伝う。 誰か一代の教を褊し、三宝の跡を廃すと謂んや。若し其の証有らば、委しく其の故を聞かん。
객이 얼굴빛을 바꾸어 말하기를, 후한(後漢)의 명제(明帝)는 금인(金人)의 꿈을 깨닫고 백마(白馬)에 실려 온 가르침을 얻었고, 쇼토쿠 태자(上宮太子)는 모리야(守屋)의 역란을 쳐서 절과 탑을 세웠느니라. 그로부터 위로는 한 사람(천황)에서 아래로는 만민에 이르기까지 불상을 숭상하고 경권을 오로지 받들어 왔느니라. 그러므로 히에이잔(叡山) · 남도(南都) · 온조사(園城寺) · 도지(東寺)를 비롯하여 사해(四海) · 일주(一州) · 오기(五畿) · 칠도(七道)에 이르기까지, 불상과 경권은 별처럼 늘어서 있고 당우(堂宇)는 구름처럼 펼쳐져 있느니라. 추자(鶖子, 사리불)의 무리는 취두(鷲頭)의 달을 관하고, 학륵(鶴勒)의 흐름은 또한 계족(鷄足)의 바람을 전하고 있느니라. 그런데 누가 일대(一代)의 가르침을 업신여기고 삼보(三寶)의 자취를 폐하였다고 하겠느냐. 만약 그 증거가 있다면 그 까닭을 자세히 듣고자 하노라.
어구 풀이
- 客色を作して曰く객이 얼굴빛을 바꾸어 말하기를
- 앞 단의 끝에서 주인이 「천하 세상이 모든 부처와 여러 경에 대해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내었다」고 맺은 데 대한 반응이다. 객은 「그럴 리가 없다」며 정색을 하고 따져 묻는다. 입정안국론에서 객의 감정은 단마다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 장은 처음으로 객이 노기를 띠는 대목이다.
- 後漢の明帝후한의 명제
- 후한의 제2대 효명황제(孝明皇帝).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이 황제 때라고 전한다. 『불조통기(佛祖統紀)』 권35는 명제 7년의 일로 이렇게 적는다. 황제가 키 1장 6척의 금인(金人)이 목덜미에 햇빛을 두르고 뜰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고 신하들에게 물었더니, 태사(太史) 부의(傅毅)가 나서서 「주나라 소왕(昭王) 때 서방에 성인이 나타났는데 그 이름을 불(佛)이라 한다고 들었다」고 아뢰었다. 황제는 사신을 서역에 보내 불도를 구하게 했다.
- 白馬の教を得백마에 실려 온 가르침을 얻다
- 명제의 사신 일행은 대월지국에서 가섭마등(迦葉摩騰, 摩騰迦)과 축법란(竺法蘭)을 만나 불상과 범어 경전 60만 언을 얻어 흰 말에 싣고, 영평(永平) 10년(67) 두 승려와 함께 낙양으로 돌아왔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여 마등을 먼저 홍려시(鴻臚寺)에 맞이하고, 이듬해(68) 칙령으로 낙양 서쪽에 백마사(白馬寺)를 세워 불교를 펴게 했다고 전한다. 일본의 기년으로는 스이닌 천황 96년에 해당한다.
- 上宮太子쇼토쿠 태자(상궁태자)
- 아스카 시대의 정치가. 우마야도 황자(厩戸皇子) · 도요토미미 황자 · 상궁왕(上宮王)이라고도 한다. 요메이 천황의 둘째 황자로, 고모인 스이코 천황의 황태자 · 섭정이 되어 관위 12계와 17조 헌법을 정하고, 오노노 이모코를 수나라에 보내 국교를 열었다. 시텐노사(四天王寺)를 비롯한 일곱 절을 세우고, 법화경 · 승만경 · 유마경의 주석인 『삼경의소(三經義疏)』를 지었다고 전한다.
- 守屋の逆を誅して모리야의 역란을 쳐서
- 모노노베노 모리야(物部守屋)는 아스카 시대의 중앙 귀족으로, 비다쓰 · 요메이 천황 때 오무라지(大連)가 되어 아버지 오코시(尾輿)의 배불론을 이었다. 불교를 받드는 대신 소가노 우마코와 맞섰고, 역병이 돌자 그것이 불법을 숭상한 탓이라 하여 당탑을 부수고 불상을 불태웠다. 요메이 천황이 죽은 뒤 아나호베 황자의 즉위를 꾀했으나 황자가 우마코에게 죽임을 당해 실패하고, 우마코와 여러 호족에게 공격받아 패사했다.
- 上一人より下万民に至るまで위로는 한 사람에서 아래로는 만민에 이르기까지
- 「상일인(上一人)」은 천황을 가리킨다. 나라의 꼭대기부터 맨 아래까지 온 나라가 불교를 받들어 왔다는 뜻이다.
- 叡山히에이잔
- 히에이잔 엔랴쿠사(比叡山延曆寺). 시가현 오쓰시에 있는 일본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산문(山門) · 북령(北嶺)이라고도 불린다. 연력(延曆) 4년(785) 7월 전교대사 사이초가 산에 들어가 초암을 엮은 것이 시작이다. 연력 7년(788) 일승지관원(一乘止觀院), 곧 근본중당(根本中堂)을 세워 약사여래를 본존으로 삼았다. 당에서 돌아온 전교대사는 연력 25년(806) 연분도자(年分度者) 두 사람을 하사받아 천태종이 공인되었고, 전교대사가 입적한 지 이레 뒤인 홍인(弘仁) 13년(822) 대승계단 건립의 칙허가 내렸다. 이듬해 엔랴쿠사라는 절 이름이 하사되고 대승계에 의한 수계가 행해졌다.
- 南都남도
- 도읍이 헤이조쿄 · 나가오카쿄 · 헤이안쿄로 옮겨 간 뒤, 나라는 헤이안쿄의 남쪽에 있으므로 오래도록 남도라 불렸다. 여기서는 나라의 칠대사(七大寺) — 도다이사 · 고후쿠사 · 간고사 · 다이안사 · 야쿠시사 · 사이다이사 · 호류사 — 를 가리킨다.
- 園城온조사
- 시가현 오쓰시의 온조사(園城寺). 산호는 나가라산, 미이데라(三井寺)라고도 하며, 산문에 대하여 사문(寺門)이라 부른다. 고분 천황의 황자 요타왕(与多王)이 7세기 후반에 세웠다고 전하고, 덴지 · 덴무 · 지토 세 천황의 탄생수(誕生水)가 있어 「미이(御井)」라 불렸다. 히에이잔의 엔친(지증)이 정관(貞觀) 원년(859)에 다시 일으켜 정관 6년(864) 엔랴쿠사의 별원으로 삼았다. 그러나 엔닌 문도와 엔친 문도 사이에 다툼이 생겨, 정력(正曆) 4년(993) 엔친 문도 천여 명이 히에이잔에서 온조사로 옮겨 간 뒤로 산문과 사문의 항쟁이 이어졌다.
- 東寺도지
- 교토시 미나미구에 있는 진언종의 절. 정식 이름은 금광명사천왕교왕호국사비밀전법원(金光明四天王教王護國寺秘密傳法院)으로, 줄여서 교왕호국사라 한다. 연력 15년(796) 간무 천황이 헤이안쿄를 지키기 위해 나성문(羅城門) 좌우에 좌대사 · 우대사를 세웠는데, 그 좌대사가 도지다. 홍인 14년(823) 사가 천황이 구카이(홍법)에게 하사했다.
- 四海・一州・五畿・七道사해 · 일주 · 오기 · 칠도
- 온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기는 야마시로 · 야마토 · 가와치 · 이즈미 · 셋쓰의 기내 다섯 지역, 칠도는 도카이 · 도산 · 호쿠리쿠 · 산인 · 산요 · 난카이 · 사이카이의 일곱 도로, 오기칠도는 고대 일본의 지방 구분 전체를 말한다.
- 鶖子の族は則ち鷲頭の月を観じ추자의 무리는 취두의 달을 관하고
- 추자(鶖子)는 산스크리트어 샤리푸트라(Śāriputra)의 번역으로, 음사하면 사리불(舍利弗) · 사리자, 의역하면 신자(身子) · 추로자(鶖鷺子)다. 석존의 십대제자의 한 사람이다. 「추자의 무리」는 관법(觀法)을 중히 여기는 흐름을 통틀어 말한다. 취두(鷲頭)는 왕사성 동북쪽 영취산의 봉우리이며, 「취두의 달을 관한다」는 관념관법으로 법화경의 이치를 얻으려 한다는 뜻이다.
- 鶴勒の流は亦鶏足の風を伝う학륵의 흐름은 또한 계족의 바람을 전한다
- 학륵(鶴勒)은 학륵야나(鶴勒夜那, Haklena-yaśa)의 줄임으로, 부법장(付法藏)의 한 사람이다. 추자 · 취두 · 학륵 · 계족으로 새의 이름을 맞추어 대구를 이루기 위해 부법장 이십사 인의 대표로 든 것으로 보인다. 「학륵의 흐름」은 관법에 대하여 교법을 중히 여기는 흐름이다. 계족(鷄足)은 인도 가야성 동남쪽의 계족산으로, 부법장의 첫째 마하가섭이 이 산의 굴에 들어가 여래의 유법과 옷을 받들어 미륵불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계족의 바람을 전한다」는 가섭 이래 스물네 사람이 교법을 바르게 전하여 그 전통이 지금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 一代の教を褊し일대의 가르침을 업신여기다
- 「편(褊)」은 좁게 여기고 깎아내린다는 뜻이다.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낮추어 보고 버렸다는 주인의 말을 객이 그대로 되받은 것이다.
- 三宝の跡を廃す삼보의 자취를 폐하다
- 불 · 법 · 승의 삼보가 남긴 자취, 곧 절과 탑과 경권과 승려를 없앴다는 뜻이다. 객의 눈에 보이는 삼보는 바로 그 자취들이었다.
객의 반론 — 「누가 불법을 버렸다는 말인가」
제3단은, 절이 아무리 많고 승려가 헤아릴 수 없이 많더라도 그 모두가 정법을 비방하는 그릇된 가르침이라면 결코 평화로운 사회, 행복한 국토를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재난이 앞다투어 일어난다는 것을 밝히는 단이다. 그 첫 장은 객의 반론으로 시작한다.
「객이 얼굴빛을 바꾸어 말하기를」이라는 첫 구절에는 까닭이 있다. 바로 앞에서 주인은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 · 약사경의 네 경문을 모두 인용한 뒤, 「그러므로 천하 세상이 모든 부처와 여러 경에 대하여 버리고 떠나는 마음을 내어 옹호할 뜻이 없다」고 맺었다. 객이 보기에 이것은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눈앞에 이렇게 많은 절과 승려가 있는데 「불법을 버렸다」니,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객은 얼굴빛을 바꾸고 따져 묻는다.
객의 반론은 네 겹으로 쌓여 있다. 첫째, 후한 명제의 고사로 불법이 중국에 들어온 일을, 쇼토쿠 태자의 고사로 일본에 불법이 퍼진 일을 든다. 곧 불법 동점(東漸)의 역사다. 둘째, 「그로부터」 이하에서 위로 천황부터 아래로 만민까지 불상을 숭상하고 경권을 받들어 왔다고 하여, 불교가 온 나라에 퍼진 상황을 말한다. 셋째, 「그러므로」 이하에서 히에이잔 · 남도 · 온조사 · 도지를 비롯해 나라 구석구석에 절과 불상과 경권이 가득하다고 하여, 나라 안에 절이 있고 불교를 믿는 이가 많다는 것을 보인다. 넷째, 「추자의 무리」와 「학륵의 흐름」으로 관(觀)을 닦는 이들과 교(教)를 전하는 이들이 모두 건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론으로 「누가 일대의 가르침을 업신여기고 삼보의 자취를 폐하였다고 하겠느냐」고 반문한 뒤 「증거가 있다면 그 까닭을 자세히 듣고 싶다」고 요구한다.
객의 이 물음은 당시 일반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 대성인께서 「불법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고 외치셨을 때, 승려는 존경받고 큰 가람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런 시대에 대성인의 말씀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객은 그 시대의 상식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후한 명제와 백마사 — 불법이 중국에 들어오다
후한 명제의 고사는 중국 불교 전래의 이야기로 오래도록 전해졌다. 금인의 꿈, 부의의 진언, 서역으로 간 사신, 흰 말에 실려 온 경전과 불상, 그리고 낙양 서쪽의 백마사. 오늘날의 연구에서는 이보다 앞서 이미 서역과의 교류를 통해 불교가 조금씩 중국에 들어와 있었다고 보지만, 명제의 고사는 「국가가 공식으로 불법을 맞아들였다」는 상징으로서 중국과 일본 불교에서 오래 이야기되었다.
이 고사에는 그 앞의 이야기가 붙어 있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부처가 태어나던 날 밤의 상서로운 징조와, 그것을 점친 주나라 태사 소유(蘇由)의 예언이 천 년 뒤 명제 때 들어맞았다는 이야기를 드셨다.
昭王問て云く「此の国いかん」答えて云く「事なし一千年の後に彼の聖言・此の国にわたつて衆生を利すべし」彼のわづかの外典の一毫未断見思の者・しかれども一千年のことをしる、はたして仏教・一千一十五年と申せし後漢の第二・明帝の永平十年丁卯の年・仏法・漢土にわたる
소왕이 묻기를 「이 나라는 어떠하냐」. 답하기를 「아무 일도 없습니다. 천 년 뒤에 그 성인의 말씀이 이 나라에 건너와 중생을 이롭게 할 것입니다」. 저 하찮은 외전을 배운, 견사의 번뇌를 털끝만큼도 끊지 못한 자조차 천 년 뒤의 일을 알았느니라. 과연 불교가 일어난 지 1015년 되는 후한의 제2대 명제 영평 10년 정묘의 해에 불법이 중국에 건너왔느니라.
대성인께서 이 이야기를 드신 뜻은 「외전의 점술가조차 천 년 뒤를 맞혔는데, 하물며 부처 앞에서 여러 보살이 맹세한 미래기가 어긋나겠느냐」는 데 있다. 그 미래기가 곧 이 편 제4장의 법화경 권지품 이십행의 게, 말법에 삼류의 강적이 나타난다는 예언이다. 객이 불법 흥륭의 증거로 든 명제의 고사를,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부처의 예언은 반드시 맞는다」는 증거로 쓰셨다. 같은 역사를 놓고 객은 겉모습의 번영을 보고, 대성인은 예언의 적중을 보신 것이다.
- 인도석존의 설법
- 중국후한 명제 영평 10년(67) 가섭마등 · 축법란이 경전과 불상을 흰 말에 싣고 낙양에 오다이듬해(68) 백마사
- 한반도백제에서 불교가 성하다성명왕이 장륙 불상을 짓고 일본의 태평을 빌다(545)
- 일본백제 성명왕이 금동 석가불과 경론을 보내오다(538년설 · 552년설)
- 쇼토쿠 태자모리야를 치고 시텐노사 · 호류사 등을 세우다
불교 공전의 연대 — 552년설과 538년설
불교가 일본에 공식으로 전해진 것은 6세기 중엽의 일이다.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가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이르렀다. 그 연대에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일본서기』에 따른 긴메이 천황 13년(552) 설이다. 『일본서기』는 그해 겨울 10월, 백제의 성명왕(聖明王)이 서부(西部) 희씨(姬氏) 달솔(達率) 노리사치계(怒唎斯致契) 등을 보내 석가불 금동상 한 구와 번개(幡蓋) 약간, 경론 약간 권을 바쳤다고 적는다. 긴메이 천황은 크게 기뻐하며 사신에게 「짐은 예로부터 이처럼 미묘한 법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짐 스스로 이를 정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신하들을 모아 불교를 받들 것인지를 물었다. 대신 소가노 이나메(蘇我稲目)는 믿어야 한다고 답하고, 오무라지 모노노베노 오코시(物部尾輿)와 나카토미노 가마코(中臣鎌子)는 받들어서는 안 된다고 아뢰었다. 천황은 불상을 이나메에게 내려 시험 삼아 예배하게 했다. 이것이 『일본서기』가 전하는 불법 전래의 기록이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는 538년설이 있다. 그 첫째 근거는 나라 시대에 지어진 『상궁성덕법왕제설(上宮聖德法王帝說)』이다. 이 책은 긴메이 천황 치세의 무오(戊午)년(538) 10월 12일에 백제 국주 성명왕이 처음으로 불상과 경교와 승려 등을 보냈다고 적는다. 『일본서기』의 552년과는 14년의 차이가 있다. 다만 무오년은 『일본서기』의 기년으로는 센카 천황 3년이지 긴메이 천황의 치세가 아니다. 둘째 근거는 교넨(凝然)의 『삼국불법전통연기(三國佛法傳通緣起)』로, 센카 천황 즉위 3년 무오년 12월 13일에 백제에서 불법이 전래되었다고 한다.
셋째 근거는 전교대사의 논쟁 속에 남아 있다. 홍인 연간에 전교대사가 히에이잔에 대승계단을 세우기를 주청하자, 나라의 고묘(護命) 승정이 상주하여 반대했는데, 그 글에 「긴메이 천황 무오년에 백제 왕이 불법을 전해 왔다」는 말이 있다. 전교대사는 『현계론(顯戒論)』에서 이를 반박하여, 천황의 즉위 원년은 경신년이고 치세 33년 동안의 간지를 살펴보아도 무오년은 없으니 『원흥사연기』가 무오년을 취한 것은 실록과 어긋난다고 했다. 전교대사가 지적한 『원흥사연기』는 정확히는 『원흥사가람연기병유기자재장(元興寺伽藍緣起幷流記資材帳)』으로, 스이코 천황 21년에 칙명으로 기록된 것을 바탕으로 한 문헌이다. 그 첫머리에는 시키시마노미야에서 천하를 다스린 천황(긴메이) 치세, 소가노 이나메가 섬기던 때, 즉위 7년 무오년 12월에 백제 성명왕 때의 태자상과 관불(灌佛)의 기구 한 벌, 부처의 기원을 설한 책 한 상자가 건너왔다고 적혀 있다.
이 문헌들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무오년의 전래를 전한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역사가는 538년설을 취한다. 어느 쪽이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라가 공식으로 받아들인 해이며, 그보다 앞서 대륙과 교류가 열린 뒤로 도래인 등을 통해 민간에서 차츰 불교 신앙이 전해지고 있었다. 『부상략기(扶桑略記)』 등은 게이타이 천황 16년 봄 2월에 도래인 시바 닷토(司馬達等)가 야마토국 사카타하라에 초당을 짓고 불상을 모셔 귀의 예배했다고 적는다.
- 『일본서기』 긴메이 천황 13년 임신 10월, 백제 성명왕이 금동 석가불 · 번개 · 경론을 보내다
- 『상궁성덕법왕제설』 무오년 10월 12일
- 『삼국불법전통연기』(교넨) 센카 천황 3년 무오 12월 13일
- 고묘 승정의 상주 「긴메이 천황 무오년」과 전교대사 『현계론』의 반박
- 『원흥사가람연기병유기자재장』 즉위 7년 무오 12월(태자상 · 관불 기구 · 설불기서)
- 『부상략기』 게이타이 천황 16년 시바 닷토가 사카타하라에 초당을 짓다
숭불과 배불 — 소가씨와 모노노베씨의 반세기
그 무렵 한반도에서는 백제 · 고구려 · 신라 세 나라가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백제는 일본과 손잡고 북쪽의 고구려, 동쪽의 신라에 맞섰다. 불교는 특히 백제에서 성하여 중국 고전의 학술과 불서 연구, 절과 탑의 건립이 활발했다. 긴메이 천황 6년(545) 9월에는 성명왕의 발원으로 장륙(丈六)의 불상을 짓고 원문을 지어, 동맹국 일본의 태평과 천황의 복을 빌었다고 한다. 불상과 경론의 공전은 이런 국제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신하들의 논쟁에서 소가노 이나메는 서방의 여러 나라가 모두 불교를 예배하고 있음을 들어 일본도 받들어야 한다고 아뢰었다. 반면 모노노베노 오코시와 나카토미노 가마코는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신도가 있어 천하의 왕으로서 절해야 할 것은 백팔십 신이라고 주장하며 불교를 배척했다. 다케우치노스쿠네의 후손인 소가씨는 오토모씨와 함께 백제와 교류하며 새 문화를 받아들이려 했고, 모노노베씨와 나카토미씨는 새 문화를 막으려 했다.
천황은 어쩔 수 없이 불상을 이나메에게 내려 시험 삼아 예배하게 했다. 이나메는 오하리다(小墾田)에 불상을 모시고, 다시 무쿠하라(向原)의 저택을 절로 삼았다. 이것이 뒤의 무쿠하라사(向原寺)다. 그런데 이듬해 역병이 돌았다. 신도를 받드는 모노노베씨와 나카토미씨는 「다른 나라의 신을 예배한 죄」라 하여 압박을 가했고, 처음에는 신도 쪽이 우세했다. 이것이 불법에 대한 첫 번째 박해다.
그 뒤 20여 년 동안 불교를 믿어 온 소가노 이나메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불법을 버리지 말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이나메가 죽자 그 이듬해 모노노베씨 등은 불교의 당사와 불상을 불태워 나니와의 호리에(堀江)에 흘려보냈다. 두 번째 박해다. 비다쓰 천황 11년(582)에는 무쿠하라사가 사쿠라이로 옮겨져 사쿠라이 도량이 되었고, 불법 전래에 공이 있었던 시바 닷토의 딸 시마메(嶋女) 등 세 사람이 출가하여 일본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다. 그러나 비다쓰 천황은 불법을 꺼려 다시 압박하고, 대신 소가노 우마코 등 불교를 믿는 이들의 불상과 당탑을 부수고 세 비구니도 내쫓았다. 세 번째 박해다.
요메이 천황이 즉위하자 불법은 겨우 밝음을 되찾았다. 소가노 우마코는 우마야도 황자와 꾀하여 칙허를 얻어 세 비구니를 다시 불러 사쿠라이 도량을 되살리고 도유라사(豊浦寺)를 지었다. 이것이 뒤의 간고사(元興寺)가 된다. 요메이 천황이 죽은 뒤 우마코는 우마야도 황자 · 하쓰세베 황자 · 다케다 황자 등과 함께 모노노베노 모리야를 쳐서 멸했다. 하쓰세베 황자는 즉위하여 스슌 천황이 되고, 우마코는 대신의 지위를 굳혀 우마야도 황자와 함께 새 문화를 쌓아 갔다.
특히 쇼토쿠 태자는 스이코 천황의 섭정으로서 불교를 크게 일으켰다. 스스로 법화경을 강하고 법화경 등의 의소를 지었으며, 불교 정신을 근본으로 한 17조 헌법을 정해 나라를 하나로 묶는 지도 원리로 삼았다. 태자가 세운 절은 시텐노사 · 호류사를 비롯한 일곱 절이라 하고, 오노노 이모코 등 견수사를 중국에 보내 불법과 함께 많은 대륙 문화를 들여왔다. 이리하여 쇼토쿠 태자 때에 이르러 불교와 신도의 다툼은 불교의 승리로 끝나고, 소가씨와 모노노베씨의 다툼을 거쳐 불법은 흥륭하고 확립되었다. 공전에서 백 년이 채 안 되는 사이의 일이다.
- 공전긴메이 천황이 불상을 소가노 이나메에게 내려 시험 삼아 예배하게 하다(무쿠하라사)
- 첫 번째 박해역병이 돌자 모노노베씨 · 나카토미씨가 「다른 나라의 신을 예배한 죄」라 하다
- 두 번째 박해이나메가 죽은 이듬해 당사와 불상을 불태워 나니와의 호리에에 흘려보내다
- 세 번째 박해비다쓰 천황 때(582년 사쿠라이 도량 · 첫 비구니 세 사람) 불상과 당탑을 부수고 비구니를 내쫓다
- 회복요메이 천황이 불법을 믿고 사쿠라이 도량 · 도유라사(뒤의 간고사)를 되살리다
- 결전요메이 천황이 죽은 뒤 우마코 · 우마야도 황자 등이 모노노베노 모리야를 치다
- 흥륭쇼토쿠 태자의 섭정 — 17조 헌법 · 시텐노사 · 호류사 · 견수사
대성인이 그리신 불법 전래 — 「시조깅고전답서」
대성인은 이 경위를 「시조깅고전답서」에서 자세히 말씀하셨다. 긴메이 천황 때의 공전과 신하들의 논쟁은 이렇게 그려진다.
第十三年壬申十月十三日辛酉に、此の国より西に百済国と申す州あり。日本国の大王の御知行の国なり。其の国の大王聖明王と申せし国王あり。年貢を日本国にまいらせしついでに、金銅の釈迦仏並びに一切経・法師・尼等をわたしたりしかば、天皇大に喜びて群臣に仰せて、西蕃の仏をあがめ奉るべしやいなや。
(긴메이 천황 치세) 제13년 임신 10월 13일 신유에, 이 나라에서 서쪽에 백제국이라는 땅이 있었느니라. 그 나라의 대왕 성명왕이라는 국왕이 연공을 일본국에 바치는 김에 금동의 석가불과 일체경 · 법사 · 비구니 등을 보냈더니, 천황이 크게 기뻐하여 신하들에게 「서번(西蕃)의 부처를 받들어야 하겠느냐 아니냐」고 물으셨느니라.
이어서 대성인은 이나메와 오코시 · 가마코의 논쟁, 이나메 혼자 불상을 모신 일, 큰 역병과 모노노베 오무라지의 파불을 차례로 그리신다. 그리고 파불의 결과를 이렇게 적으셨다.
物部の大連御使として仏をば取りて炭をもってをこし、つちをもって打ちくだき、仏殿をば火をかけてやきはらひ、僧尼をばむちをくわう。其の時天に雲なくして大風ふき、雨ふり、内裏天火にやけあがって、大王並びに物部の大連・蘇我の臣、三人共に疫病あり。
모노노베 오무라지가 칙사가 되어 부처를 빼앗아 숯불을 피워 태우고 망치로 부수었으며, 불전에는 불을 질러 태워 버리고 승니에게는 매질을 하였느니라. 그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데 큰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궁궐은 하늘의 불에 타오르고, 대왕과 모노노베 오무라지와 소가 대신 세 사람이 함께 역병에 걸렸느니라.
비다쓰 천황 때에는 쇼토쿠 태자의 탄생과 어린 태자의 말이 나온다. 두 살 되던 해 2월에 동쪽을 향해 「나무불」을 부르자 손바닥에 사리가 있었다고 하고, 여덟 살 때 「서국의 성인 석가모니불의 유상을 말세에 받들면 화를 없애고 복을 받으며, 업신여기면 재앙을 부르고 수명을 줄인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모리야 등은 「소가가 칙명을 어기고 다른 나라의 신을 예배한다」고 분노했고, 역병이 그치지 않자 다시 절과 탑을 베어 넘어뜨리고 불상을 태우고 승니의 가사를 벗겨 매질했다. 그리고 다시 천황과 모리야와 우마코가 역병에 걸렸다.
결전의 장면은 요메이 천황이 죽은 뒤다. 모리야는 일족을 모아 시부카와의 집에 웅거했고, 태자와 우마코가 공격했으나 세 번을 졌다. 네 번째 싸움에서 태자는 「석가여래의 사리탑을 세우고 시텐노사를 건립하겠다」고 서원했다.
弓削なのって云く『此れは我が放つ矢にはあらず。我が先祖崇重の府都の大明神の放ち給ふ矢なり』と。此の矢はるかに飛んで太子の鎧に中る。太子なのる、『此れは我が放つ矢にはあらず、四天王の放ち給う矢なり』とて、迹見の赤梼と申す舎人にいさせ給へば、矢はるかに飛んで守屋が胸に中りぬ。
유게(모리야)가 이름을 대며 말하기를 「이것은 내가 쏘는 화살이 아니다. 내 선조가 받들어 온 후쓰 대명신이 쏘시는 화살이다」 하였느니라. 이 화살은 멀리 날아 태자의 갑옷에 맞았느니라. 태자가 이름을 대며 「이것은 내가 쏘는 화살이 아니다. 사천왕이 쏘시는 화살이다」 하고 도미노 이치이라는 사인(舍人)에게 쏘게 하시니, 화살은 멀리 날아 모리야의 가슴에 맞았느니라.
그 뒤 태자는 시텐노사를 세우고, 우마코는 간고사를 세워 백제에서 건너온 교주 석존을 받들었다. 대성인은 이 긴 이야기를 이렇게 맺으셨다.
又釈迦仏にあだをなせしゆへに、三代の天皇並びに物部の一族むなしくなりしなり。
또 석가불에게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 세 대의 천황과 모노노베 일족이 덧없이 사라졌느니라.
대성인께서 이 역사를 드신 것은 단순한 옛이야기를 위해서가 아니다. 부처를 업신여기면 재앙을 부르고 받들면 복을 얻는다는 어린 태자의 말, 그리고 불법을 박해한 이들이 역병과 전란 속에 사라졌다는 결말은 그대로 입정안국론의 원리, 곧 법의 바르고 그름이 나라의 안위를 정한다는 원리를 역사 속에서 보여 준다. 다만 같은 어서에서 대성인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큰 불가사의는 젠코사(善光寺)의 아미타여래라는 속임수」라고도 덧붙이셨다. 같은 불교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무엇을 받드는가가 다시 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물음이 바로 이 편과 다음 편의 주제다.
대성인은 쇼토쿠 태자와 모리야를 서로 맞서는 두 세력의 비유로 자주 쓰셨다. 태자의 업적 가운데 무엇이 실제로 태자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으나, 아내 다치바나노 오이라쓰메에게 했다는 「세간은 헛되고 거짓이며 오직 부처만이 참이다(世間虚仮唯仏是真)」라는 말이 남아 있어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다.
큰 절들의 이름 — 객이 든 불법의 성채
객이 이름을 든 네 곳은 당시 일본 불교의 기둥이었다. 히에이잔 엔랴쿠사는 전교대사가 세운 천태법화종의 근본 도량이자 대승계단의 땅이었다. 남도의 칠대사는 나라 시대 이래 국가 불교의 중심이었다. 온조사는 지증대사 엔친이 다시 일으킨 천태의 별원으로, 엔닌 문도와 엔친 문도가 갈라선 뒤로는 산문(엔랴쿠사)과 사문(온조사)이 무력까지 동원해 다투었다. 도지는 사가 천황이 구카이(홍법)에게 내린 진언의 근본 도량이었다.
객은 이 네 곳에 「사해 · 일주 · 오기 · 칠도」를 덧붙인다. 도읍의 큰 절만이 아니라 온 나라 구석구석까지 불상과 경권이 별처럼 늘어서 있고 당우가 구름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객의 눈에 이것은 불법 흥륭의 확실한 증거였다.
그러나 이 목록에는 이미 주인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전교대사가 세운 히에이잔은 자각(엔닌) · 지증(엔친) 이래 진언의 밀교를 받아들여 법화경의 근본 도량이라는 본래의 모습을 잃어 가고 있었고, 산문과 사문은 서로 무기를 들고 싸웠다. 도지는 진언의 근본 도량이었다. 겉으로는 「흥륭」이지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 흥륭의 내실이 무엇인가가 바로 문제였다. 객이 든 이름들 자체가 다음 장 이후 주인의 비판이 향할 곳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교와 관 — 니치칸 상인의 풀이
「추자의 무리는 취두의 달을 관하고, 학륵의 흐름은 또한 계족의 바람을 전한다」는 대구는 화려한 수사이지만 그 속에 분명한 뜻이 있다. 니치칸 상인은 「입정안국론 문단」에서 「추자의 무리」 등은 여러 종의 이름난 학승들을 통틀어 든 것이라 하고, 추자의 무리는 관(觀)을 밝히고 학륵의 흐름은 교(教)를 밝힌 것, 곧 교관(教觀) 이문을 밝힌 것이라고 풀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사리불은 지혜제일의 제자로 관법의 대표이고, 학륵야나는 부법장의 조사로서 교법 전승의 대표다. 그러므로 이 대구는 「마음을 관하는 수행도, 가르침을 전하는 학문도 모두 이 나라에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객의 주장이다. 객은 「일본에는 불교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데, 각 종파가 이렇게 번성하고 있지 않으냐」고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어서, 이것이 여러 종을 통틀어 든 것이므로 다음 제2장의 「법사는 첨곡하여」라는 주인의 말도 통틀어 여러 종을 가리킨다고 풀었다. 객이 관을 닦는 이와 교를 전하는 이를 모두 들어 변호했으니, 주인의 비판도 그 모두를 향한다. 특정한 한 종이 아니라 당시의 모든 종이 정법을 잃었다는 것, 그 가운데 근본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는 제4편에서 법연의 『선택집』으로 좁혀진다.
동쪽으로 온 불법, 서쪽으로 돌아갈 불법
객이 말한 불법 동점의 역사는 대성인의 불법에서 또 하나의 뜻을 갖는다. 대성인은 「현불미래기」에서 인도와 중국에는 이미 불법이 없다고 하시고, 정법 · 상법 시대에는 불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지만 말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고 하셨다.
月は西より出でて東を照し、日は東より出でて西を照す。仏法も又以て是くの如し。正像には西より東に向い、末法には東より西に往く。
달은 서쪽에서 나와 동쪽을 비추고,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을 비추느니라. 불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정법 · 상법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말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느니라.
같은 어서에서 대성인은 묘락대사의 「어찌 중국에서 법을 잃고 이를 사방의 변두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말을 인도에 불법이 없다는 증문으로 드시고, 중국에서는 북방의 이민족이 도읍을 차지한 지 150여 년에 불법과 왕법이 함께 다했으며, 중국의 대장경 가운데 소승경은 아예 없고 대승경도 많이 잃었다고 하셨다. 일본에서 자쿠쇼(寂照) 등이 조금 건너가 전했으나 전하여 지닐 사람이 없으니 나무와 돌이 가사와 발우를 걸친 것과 같다고 하시고, 준식(遵式)의 말을 인용하셨다.
始め西より伝う、猶月の生ずるが如し。今復東より返る、猶日の昇るが如し
처음에 서쪽에서 전해진 것은 달이 돋는 것과 같고, 이제 다시 동쪽에서 돌아가는 것은 해가 떠오르는 것과 같다.
인도에서 일어나 중국 · 한반도 · 일본으로 동점한 북전 불법은 건너간 나라마다 꽃을 피웠으나, 차츰 앞의 나라들에서는 그 정신을 잃고 마지막 일본에서 나라 시대와 헤이안 초기의 빛나는 불교문화로 피어났다. 그러나 그 일본에서도 헤이안 말기부터 불법은 형해만 남게 되었다. 대집경이 「백법은몰(白法隱沒)」이라 한 대로, 석존의 불법은 말법에 들어 그 힘을 잃었다. 그런데도 당시 사람들은 석존의 불법에 힘이 없음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받들며 헛된 기도를 올렸다. 각 종파는 다투어 큰 가람을 짓고, 승려는 세상의 봄을 누렸다.
그 내실은 비어 있었다. 불법 자체의 힘은 없고, 다만 세속의 권위와 손잡고 민중 위에 군림하고 있을 뿐이었다. 겐초사 · 고쿠라쿠사 · 주후쿠사 · 조코묘사 · 다호사 · 조라쿠사 등, 대성인이 「십일통어서」에서 이름을 드신 가마쿠라의 큰 절들은 바로 그 시대에 해가 떠오르듯 번성하던 곳이었다. 대성인의 「불법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는 외침은 바로 그 번성의 한가운데에서 나왔기에 이해받기 어려웠고, 객의 「누가 불법을 버렸다는 말인가」라는 물음은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석존의 불법이 말법에 이르러 은몰했다는 것은 경문에 비추어도, 불법의 법도에 비추어도, 그리고 말법에 들어선 뒤의 사실에 비추어도 분명하다. 다음 제2장에서 주인은 객의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고, 그 겉모습을 그대로 인정한 위에서 실질을 묻기 시작한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불법의 흥망은 절과 승려의 수가 아니라 법의 바르고 그름으로 가려진다. 정법 · 상법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불법은 말법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아가며, 그 불법은 석존의 불법이 아니라 말법의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이 세우신 남묘호렌게쿄다.
본문
主人喩して曰く、仏閣甍を連ね、経蔵軒を並べ、僧は竹葦の如く、侶は稲麻に似たり。崇重年旧り、尊貴日に新たなり。 但し法師は諂曲にして、人倫に迷惑し、王臣は不覚にして、邪正を弁ずること無し。
주인이 깨우쳐 말하기를, 불각(佛閣)은 용마루를 잇대고 경장(經藏)은 처마를 나란히 하며, 승(僧)은 대와 갈대처럼 많고 려(侶)는 벼와 삼처럼 많으니라. 이를 숭상하고 중히 여긴 지 해가 오래되었고, 존귀하게 받드는 마음은 날로 새로우니라. 다만 법사는 첨곡(諂曲)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왕과 신하는 깨닫지 못하여 삿됨과 바름을 가리지 못하느니라.
어구 풀이
- 主人喩して曰く주인이 깨우쳐 말하기를
- 「유(喩)」는 타일러 깨우친다는 뜻이다. 앞 장에서 객이 얼굴빛을 바꾸고 따져 물었으므로, 주인은 맞서 다투지 않고 차근차근 이치를 들어 깨우친다. 첫 문답의 「주인이 말하기를」과 달리 여기서는 성난 객을 달래며 가르치는 어조가 드러난다.
- 仏閣甍を連ね、経蔵軒を並べ불각은 용마루를 잇대고 경장은 처마를 나란히 하다
- 불당과 경을 모신 건물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는 뜻이다. 앞 장 객의 「당우는 구름처럼 펼쳐져 있다」를 주인이 그대로 받아들인 말이다.
- 僧は竹葦の如く、侶は稲麻に似たり승은 대와 갈대처럼, 려는 벼와 삼처럼 많다
- 「승(僧)」은 아사리(阿闍梨), 곧 수행과 학문을 갖춘 출가자를 말하고, 「려(侶)」는 반려(伴侶), 곧 도사(導師)를 따르는 반승(伴僧)을 말한다. 대 · 갈대 · 벼 · 삼은 빽빽하게 무리 지어 자라므로 수가 많음을 비유한다. 법화경 방편품의 「벼 · 삼 · 대 · 갈대(稻麻竹葦)」의 비유를 받은 표현이다.
- 崇重年旧り、尊貴日に新たなり숭상하고 중히 여긴 지 해가 오래되고, 존귀하게 받드는 마음은 날로 새롭다
- 사람들이 절과 승려를 받들어 온 세월이 길고, 그 신심의 정성은 지금도 날마다 새롭다는 뜻이다. 주인은 객이 말한 사실을 하나도 부정하지 않는다.
- 但し다만
- 이 한 글자로 논지가 뒤집힌다. 앞의 네 구절은 겉모습의 인정이고, 뒤의 네 구절은 실질의 판정이다.
- 法師법사
- 법을 설하는 스승, 곧 승려. 니치칸 상인은 앞 장에서 객이 관을 닦는 이와 교를 전하는 이를 모두 들었으므로, 여기의 「법사」도 통틀어 여러 종의 승려를 가리킨다고 풀었다.
- 諂曲첨곡
- 남에게 아첨하여 자기 마음을 굽혀 영합하는 것. 「첨(諂)」은 아첨하고 속인다는 뜻, 「곡(曲)」은 도리를 굽혀 따른다는 뜻이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첨곡한 것은 수라」라 하시어, 첨곡을 수라계가 나타난 모습으로 보셨다.
- 人倫に迷惑し사람들을 미혹시키다
- 「인륜(人倫)」은 사람들, 곧 세상의 대중이다. 승려가 바른 법을 설하지 않고 권력과 시주에게 아첨하여 대중이 걸어야 할 길을 잃게 한다는 뜻이다.
- 王臣は不覚にして왕과 신하는 깨닫지 못하여
- 「불각(不覺)」은 깨닫지 못함, 곧 무지다. 국왕을 비롯한 위정자가 법의 이치에 어두움을 말한다. 대성인 당시로 말하면 가마쿠라 막부의 위정자들이다.
- 邪正を弁ずること無し삿됨과 바름을 가리지 못한다
- 어느 법이 바르고 어느 법이 삿된지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셋째 문답 전체의 열쇠가 되는 말이며, 이것이 넷째 문답 이후 「그러면 누가 악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인정한 뒤에 뒤집다 — 주인의 첫마디
이 장은 짧지만 셋째 문답의 축이다. 「그때의 일본에 불법이 있는가 없는가」 — 이 한 점에서 주인과 객의 견해가 갈린다.
객은 불교가 전래된 뒤 수백 년 동안 이름난 승려가 많이 나왔고 수많은 절이 세워졌으며, 천황과 장군을 비롯한 만민이 이를 믿고 있는데 어찌 이 나라에 불법이 없다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주인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객보다 더 구체적으로 그 번성을 그린다. 불각은 용마루를 잇대고, 경장은 처마를 나란히 하고, 승려는 대와 갈대, 벼와 삼처럼 많다. 사람들이 이를 받든 지 오래이고 그 정성은 날로 새롭다. 객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다만」이라는 한 마디에서 판정이 뒤집힌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종파들이 모두 그릇된 가르침이며, 말법의 때에 맞고 말법 중생의 근기에 맞는 정법은 완전히 버려져 있다. 게다가 왕과 신하가 모두 어리석어 불법의 사정을 가리지 못하니, 그릇된 가르침이 더욱 번성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대답의 방식에는 깊은 배려가 있다. 성난 상대에게 그 말이 틀렸다고 맞서면 대화는 끊어진다. 주인은 먼저 상대가 본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위에서 상대가 보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 입정안국론 전체가 객과 주인의 대화로 짜인 것은, 이 글이 막부의 최고 권력자에게 올리는 간언이면서 동시에 그 권력자를 설득하여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글이기 때문이다. 이 장의 「깨우쳐 말하기를」은 그 정신을 압축해 보여 준다.
형식과 실질 — 객과 주인의 근본적 차이
객과 주인의 생각이 근본에서 다른 까닭은, 객이 형식에 사로잡혀 있는 데 비해 주인은 실질을 논한다는 데 있다. 객에게 불법의 흥륭이란 절과 탑과 승려의 수, 그리고 그것을 받드는 사람들의 정성이다. 주인에게 불법의 흥륭이란 그 절에서 설해지는 법이 바른가, 그 승려가 바른 법을 지니고 있는가다. 주인은 권위와 형식을 물리치고 불법의 사정(邪正) · 고저(高低) · 천심(淺深)이라는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이 종교를 논할 때 너무 형식에 사로잡히고, 종교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는 모두 선지식이라고 단정해 버리며, 가르침의 사정 · 고저 · 천심에는 무관심하다 — 이것은 대성인 당시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오래된 권위 속에 갇혀 그에 동조하고 휩쓸려 가는 무기력과 무지, 자기 보신에 급급하여 큰 것에 기대고 보는 사대주의(事大主義)가 민중의 생명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을 때, 종교계에서는 정치권력과 이해로 맺어진 그릇된 가르침이 활개를 치게 되고, 그로써 민중의 생명은 뿌리부터 좀먹는다. 가마쿠라 시대에 율승과 염불승과 선승이 막부의 권력자 곁에서 번성한 모습은 바로 그 전형이었다. 그 실례는 다음 제3장에서 자세히 본다.
주인이 「숭상한 지 해가 오래되고 존귀하게 받드는 마음은 날로 새롭다」고 한 구절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주인은 사람들의 신심 자체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성이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문제는 그 진실한 정성이 향하는 곳이다. 둘째 문답의 끝에서 주인은 「눈먼 무리, 미혹한 사람들이 망령되이 삿된 설을 믿고 바른 가르침을 가리지 못한다」고 했다. 정성이 깊을수록, 그것이 그릇된 법에 바쳐질 때의 해도 깊다. 선한 마음이 악한 스승을 만나 도리어 정법을 버리는 힘이 되는 것 — 이것이 첨곡한 법사와 불각한 왕신이 함께 빚어내는 비극이다.
대성인은 이런 아집과 편견(我慢偏執)을 버리고 참으로 종교의 사정과 선악을 따져 보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그 실질을 따져 보면 참된 불법은 완전히 은몰하고 불법의 형해만 남아 있음이 분명해진다고 논하신 것이다.
- 불각은 용마루를 잇대고
- 경장은 처마를 나란히 하고
- 승려는 대와 갈대, 벼와 삼처럼 많고
- 숭상한 지 오래이며 정성은 날로 새롭다
- 법사는 첨곡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 왕신은 깨닫지 못하여 사정을 가리지 못한다
「법사는 첨곡하여」 — 수라의 마음을 지닌 승려
주인은 승려의 허물을 「첨곡」이라는 한 마디로 짚었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십계의 모습을 이렇게 풀이하셨다.
瞋るは地獄・貪るは餓鬼・癡は畜生・諂曲なるは修羅・喜ぶは天・平かなるは人
성내는 것은 지옥, 탐내는 것은 아귀, 어리석은 것은 축생, 첨곡한 것은 수라, 기뻐하는 것은 천상, 평온한 것은 인간이니라.
수라는 늘 남과 견주어 자기가 낫기를 바라고, 겉으로는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는 남을 깔본다. 그 마음이 겉으로 나올 때 첨곡, 곧 아첨하고 굽은 모습이 된다. 첨곡한 승려는 바른 법을 바르게 설하지 않는다. 권력자에게는 그가 듣고 싶은 말을, 시주에게는 그가 바라는 말을 한다. 도리를 굽혀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다. 그런 승려가 존경받으면 사람들은 그 승려의 말을 법으로 알고 따르게 되고, 결국 사람으로서 걸어야 할 길을 잃는다. 이것이 「사람들을 미혹시킨다」의 뜻이다.
이 「법사는 첨곡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키고」라는 구절은 당시의 평범한 승려들만이 아니라, 이름난 고승으로 칭송받던 고쿠라쿠사 료칸 · 겐초사 도류 등의 본성을 도려낸 말이다. 세간이 「살아 있는 부처」처럼 받들던 이들의 속을 첨곡이라 단정한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권력자 앞에서 어떻게 처신했는가는 제3장에서 경문과 함께 본다.
「왕신은 깨닫지 못하여」 — 위정자를 향한 간언
「왕과 신하는 깨닫지 못하여 삿됨과 바름을 가리지 못한다」는 구절은 가마쿠라 막부의 위정자들에게 정면으로 파고들어 그 어리석음을 간한 말이다. 이 글을 받을 사람은 전 집권 호조 도키요리였다. 사이묘지 입도로서 선종에 깊이 귀의하고 겐초사를 세운 바로 그 사람에게 「왕신은 불각하다」고 쓴 것이다.
권력자 앞에서 권력자의 무지를 말하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다. 실제로 이 글을 올린 지 한 달 남짓 뒤에 마쓰바가야쓰의 초암이 습격당했고, 이듬해에는 이즈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대성인은 처음부터 그것을 알고 계셨다. 이 한 구절 속에서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민중을 위하는 마음으로 홀로 결연히 간하신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인이 승려의 허물과 위정자의 허물을 나란히 든 데에도 뜻이 있다. 승려가 첨곡하여 그릇된 법을 설하더라도 위정자가 법의 사정을 가릴 줄 안다면 나라는 기울지 않는다. 반대로 위정자가 어리석더라도 승려가 바른 법을 설한다면 나라는 바로잡힐 수 있다. 둘이 함께 어긋날 때 — 아첨하는 승려와 그 말을 믿는 위정자가 손잡을 때 — 그 결합이 나라를 무너뜨린다. 바로 다음 장에 인용되는 인왕경의 「여러 악비구가 국왕 · 태자 · 왕자 앞에서 파불 · 파국의 인연을 설하고, 그 왕은 분별하지 못하고 이 말을 믿고 듣는다」는 경문이 이 두 구절을 그대로 경증으로 받는다.
다음 세 장으로 — 경문으로 증명하다
객은 앞 장 끝에서 「증거가 있다면 그 까닭을 자세히 듣고 싶다」고 요구했다. 주인은 이 장에서 결론을 먼저 말한 뒤, 다음 제3장부터 제5장까지 네 경문을 들어 그 증거를 보인다. 인왕경은 「악비구와 권력의 결탁」을, 열반경의 첫 인용은 「악지식이 악상보다 무섭다는 것」을, 법화경 권지품은 「말법에 나타날 세 부류의 강적」을, 열반경의 둘째 인용은 「계율을 지키는 척하는 비구의 실상」을 보인다. 그리고 「글에 비추어 세상을 보니 참으로 그러하다」고 맺는다.
주인이 자기 판단만으로 「승려가 악하다」고 하지 않고 반드시 경문을 드는 것은 입정안국론 전체를 꿰는 방법이다. 둘째 문답에서 재난의 원인을 네 경으로 증명했듯이, 셋째 문답에서는 그 원인을 만든 사람을 다시 네 경문으로 증명한다. 대성인 자신의 말로는 「불법의 사정은 경문의 밝은 거울에 의한다」이다. 그 말은 제3장에서 다시 만난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불법의 흥망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 곧 법의 사정 · 고저 · 천심으로 가려진다. 첨곡한 승려와 법을 가리지 못하는 위정자가 손잡을 때 정법은 버려지고 나라가 기운다.
본문
仁王経に云く「諸の悪比丘多く名利を求め、国王・太子・王子の前に於て、自ら破仏法の因縁・破国の因縁を説かん。其の王別えずして此の語を信聴し、横に法制を作つて仏戒に依らず。是を破仏・破国の因縁と為す」已上。 涅槃経に云く「菩薩、悪象等に於ては、心に恐怖すること無かれ。悪知識に於ては、怖畏の心を生ぜよ。悪象の為に殺されては、三趣に至らず。悪友の為に殺されては、必ず三趣に至る」已上。
인왕경에 이르기를 「여러 악비구(惡比丘)가 흔히 명리(名利)를 구하여, 국왕 · 태자 · 왕자 앞에서 스스로 불법을 깨뜨리는 인연, 나라를 깨뜨리는 인연을 설하리라. 그 왕은 분별하지 못하고 이 말을 믿고 들어, 멋대로 법제를 만들어 불계(佛戒)에 의하지 않느니라. 이것을 파불(破佛) · 파국(破國)의 인연이라 하느니라」 이상. 열반경에 이르기를 「보살이여, 악한 코끼리 따위에 대해서는 마음에 두려워하지 말라. 악지식(惡知識)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으켜라. 악한 코끼리에게 죽임을 당해서는 삼취(三趣)에 이르지 않으나, 악우(惡友)에게 죽임을 당해서는 반드시 삼취에 이르느니라」 이상.
어구 풀이
- 仁王経인왕경
- 후진(後秦)의 구마라집이 번역했다는 『인왕반야바라밀경』 2권과, 당나라 불공이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 2권이 있다. 산스크리트 원전도 티베트어 번역도 전하지 않아 중국에서 지어진 경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정법이 멸하여 사상이 어지러울 때 악업 때문에 받는 칠난을 보이고, 이 재난을 벗어나려면 반야를 받아 지녀야 한다고 하여 보살의 행법을 설한다. 법화경 · 금광명경과 함께 호국 삼부경으로 불렸다. 본초에 인용된 것은 구마라집 번역의 촉루품(囑累品)의 글이다.
- 諸の悪比丘多く名利を求め여러 악비구가 흔히 명리를 구하다
- 「명리(名利)」는 명예와 이익이다. 출가자의 본분인 법을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세속의 이름과 재물을 구하는 승려를 말한다.
- 国王・太子・王子の前に於て국왕 · 태자 · 왕자 앞에서
- 권력을 가진 사람들 앞이라는 뜻이다. 악비구는 민중 속이 아니라 권력의 곁에서 활동한다.
- 破仏法の因縁・破国の因縁を説かん불법을 깨뜨리는 인연, 나라를 깨뜨리는 인연을 설하리라
- 악비구 자신은 불법을 설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설법이 실은 불법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스스로(自ら)」라는 말에 그 자각 없음이 담겨 있다.
- 其の王別えずして此の語を信聴し그 왕은 분별하지 못하고 이 말을 믿고 듣는다
- 앞 장의 「왕신은 깨닫지 못하여 삿됨과 바름을 가리지 못한다」에 그대로 대응하는 경문이다.
- 横に法制を作つて仏戒に依らず멋대로 법제를 만들어 불계에 의하지 않는다
- 「횡(橫)」은 도리에 어긋나게, 제멋대로라는 뜻이다. 부처가 정한 계율과 도리를 따르지 않고 자기 편의대로 법령을 만드는 것이다.
- 是を破仏・破国の因縁と為す이것을 파불 · 파국의 인연이라 한다
- 악비구의 말과 그 말을 믿는 왕의 결합이 불법과 나라를 함께 무너뜨리는 원인이라는 결론이다.
- 涅槃経열반경
- 석존이 열반에 드실 때의 모습과 그때 설하신 가르침을 기록한 경으로, 대승 · 소승 여러 종류가 있다. 대승에서는 북량(北涼)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 40권(북본), 이를 유송(劉宋)의 혜관 · 혜엄 · 사령운이 고친 36권(남본), 동진의 법현이 번역한 『대반니원경』 6권이 있고, 소승에서는 법현이 번역한 『대반열반경』 3권 등이 있다. 대승 열반경은 불신의 상주, 상락아정의 열반 사덕, 일체중생 실유불성을 설하고, 선근을 끊은 일천제도 성불한다고 한다. 본초에 인용된 것은 북본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의 글이다.
- 悪象악상
- 사나운 코끼리. 석존 당시 인도에서 가장 두려운 것의 대표로 사나운 코끼리를 든 것으로 보인다. 데바닷타가 술 취한 코끼리를 풀어 석존을 해치려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 悪知識악지식
- 그릇된 가르침을 설하여 사람을 미혹시키고, 불도 수행을 방해하거나 불행에 빠뜨리는 악한 승려 · 악한 사람. 선지식(善知識)의 반대말이며 악우(惡友)라고도 한다. 한어의 「지식(知識)」은 산스크리트어 미트라(mitra)의 번역으로 「벗」이라고도 옮기며, 친구 · 동료를 뜻한다.
- 悪友악우
- 악지식과 같다. 경문은 앞에서 「악지식」이라 하고 뒤에서 「악우」라 하여 같은 것을 두 말로 가리킨다.
- 三趣삼취
- 삼악도. 악업 때문에 받는 세 가지 고통의 세계, 곧 지옥 · 아귀 · 축생이다.
두 경문의 자리 — 개인에서 나라까지
개인이든 가정이든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정법에 등진 그릇된 가르침에 대한 신앙이다. 나아가 한 나라를 멸망으로 이끄는 것도 다름 아닌 사람들의 그릇된 법에 대한 신앙이다. 이 장의 두 경문은 바로 그것을 보이며, 대성인 재세 당시의 일과 꼭 들어맞는다.
인왕경의 글은 악비구와 권력의 결탁을 그린다. 악비구는 명리를 구하여 국왕 앞에 나아가고, 왕은 그 말을 분별없이 믿어 부처의 계율에 어긋나는 법을 만든다. 그 결과가 파불과 파국이다. 열반경의 글은 시선을 개인에게로 옮긴다. 사나운 코끼리에게 죽는 것은 몸이 죽는 것이지만, 악지식에게 죽는 것은 법신(法身), 곧 바른 법을 믿는 마음이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사나운 코끼리보다 악지식을 두려워해야 한다.
두 경문은 앞 장 주인의 두 구절에 그대로 대응한다. 「법사는 첨곡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키고」는 인왕경의 「여러 악비구가 명리를 구하여」와 열반경의 「악지식」에, 「왕신은 깨닫지 못하여 사정을 가리지 못한다」는 인왕경의 「그 왕은 분별하지 못하고 이 말을 믿고 듣는다」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경문이 대성인 당시 얼마나 그대로 들어맞았는지는, 대성인을 드러나게 또 숨어서 박해한 이들의 행적이 보여 준다.
고쿠라쿠사 료칸 — 율승의 출신과 간토 진출
대성인 시대에 대성인을 드러나게 또 숨어서 계속 박해한 원흉은 고쿠라쿠사 료칸(極樂寺良觀)이라는 인물이었다. 법명은 닌쇼(忍性)다.
그의 스승은 나라 사이다이사의 에이존(叡尊)이었다. 에이존은 본래 진언승이었으나 율종의 부흥에 몰두했고, 다리를 놓고 가난한 이와 병자를 돕는 등의 자선 사업으로 교키(行基) 보살의 재래라 우러름을 받았다. 그 제자 닌쇼는 간토로 와서 율종을 펴기 시작했다. 그는 교묘하게 막부의 요직에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서서히 기반을 굳혀 갔다.
호조 시게토키와 염불 — 권력 곁의 정토교
그 무렵 호조 시게토키(北條重時)라는 인물이 있었다. 시게토키는 전 연서(連署)로 집권 나가토키의 아버지였는데, 법연 문하 쇼쿠(證空)의 제자 슈칸(修觀)에게 귀의하여 입도했다. 그는 가마쿠라 후카사와에 있던 고쿠라쿠사라는 절에 별장을 두고 고쿠라쿠사 입도라 불렸다. 그의 존재는 염불자들이 막부의 권력과 손잡는 데 더없이 좋은 발판이었다.
또 입정안국론이 지어질 무렵 호조 사네토키(北條實時)가 무사시국 가나자와에 쇼묘사(稱名寺)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처럼 염불은 막부의 주변에서 강대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대성인께서 입정안국론에서 염불을 「이 한 가지 흉한 것(此の一凶)」이라 단정하신 것도, 바로 염불과 권력자가 긴밀히 결탁하여 나라를 망치는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키요리는 입정안국론을 완전히 묵살하고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다. 도키요리가 안국론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안 염불자들은 한 달 남짓 뒤 어둠을 틈타 떼를 지어 마쓰바가야쓰의 초암을 습격하고 대성인을 해치려 했다. 대성인은 난을 피해 한때 시모우사의 도키조닌(富木常忍) 집에 몸을 의탁하셨다. 그러나 방법(謗法)의 여러 종에 대한 대성인의 파절은 더욱 강하고 엄하게 이어졌다. 더욱 분노한 염불자들의 책동으로 대성인은 마침내 이즈로 유배되셨다.
이 마쓰바가야쓰 습격과 이즈 유배의 배후에서 일을 꾸민 장본인은 고쿠라쿠사 입도 시게토키였다고 전한다. 자신이 존경하던 법연의 실상이 밝혀지고 『선택집』의 그릇된 뜻이 파절되자, 대성인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다는 것이다.
자선의 이면 — 「성우문답초」가 꾸짖은 율승
닌쇼가 가장 공들여 가까이한 사람이 바로 이 시게토키였다. 대성인께서 입정안국론을 쓰시기 전해에 시게토키가 고쿠라쿠사를 다시 지을 때 닌쇼는 절터 선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 이태 뒤 시게토키가 죽자 장례의 도사가 되었고, 마침내 가마쿠라로 거처를 옮겨 더욱 권력자에게 다가가는 일에 전념하면서 그 간판으로 자선 사업을 내걸었다.
그는 먼저 나라에서 당시 이름이 높던 스승 에이존을 불러오는 운동을 일으켜 마침내 성공했다. 그 덕에 닌쇼는 시게토키의 아들 나리토키는 물론 도키요리의 초청까지 받게 되었다. 이것은 대성인께서 이즈에 유배되어 계시던 동안의 일이었다. 문영(文永) 4년(1267), 닌쇼는 마침내 가마쿠라의 고쿠라쿠사에 들어가 살게 되어 고쿠라쿠사 료칸이라 불리게 되었다. 가나자와의 쇼묘사에도 료칸의 입김이 닿은 신카이(審海)가 들어갔다. 이 무렵을 전후하여 닌쇼는 다호사의 장로를 비롯해 여러 절의 별당을 맡았다.
그의 자선 사업은 자기가 250계를 굳게 지키는 성자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이름 팔기였고, 막부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명성욕과 권세욕에서 나온 것이었다. 게다가 그 자선 사업의 뒤에는 수많은 민중의 탄식이 있었다. 대성인은 「성우문답초」에서 이렇게 꾸짖으셨다.
我伝え聞く、上古の持律の聖者の振舞は殺を言い収を言うには知浄の語有り、行雲廻雪には死屍の想を作す。而るに今の律僧の振舞を見るに、布絹・財宝をたくはへ利銭・借請を業とす。教行既に相違せり、誰か是を信受せん。次に道を作り橋を渡す事、還つて人の歎きなり。飯嶋の津にて六浦の関米を取る、諸人の歎き是れ多し、諸国七道の木戸、是も旅人のわづらい只此の事に在り眼前の事なり。汝見ざるや否や
내가 전해 듣기로, 옛 계율을 지닌 성자의 행동은 살생을 말하고 거둠을 말할 때에도 정(淨)을 아는 말을 썼고, 흐르는 구름과 날리는 눈을 보아도 시체라는 상념을 지었다 하느니라. 그런데 지금의 율승의 행동을 보니 베와 비단과 재보를 쌓고, 이자 놀이와 빚 주기를 업으로 삼고 있느니라. 가르침과 행동이 이미 어긋나 있으니 누가 이를 믿겠느냐. 다음으로 길을 내고 다리를 놓는 일도 도리어 사람들의 탄식이 되었느니라. 이이지마 나루에서 무쓰라 관문의 통행세를 거두니 사람들의 탄식이 많고, 여러 나라 칠도의 목책도 나그네의 괴로움이 오로지 이 일에 있으니, 눈앞의 일이니라. 그대는 보지 못하였느냐.
이이지마 나루(飯嶋の津)는 가마쿠라 동남쪽 끝, 자이모쿠자 해안의 동남쪽으로 미우라 반도의 뿌리에 툭 튀어나온 이이지마곶의 안쪽 해안이다. 료칸은 이곳에서 관미(關米), 곧 통행세를 거두고 그 돈으로 자선 사업을 하거나 다리를 놓았는데,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괴로움을 겪었다. 료칸은 통행세를 거둘 권한을 막부에서 받았다고 하며, 많은 사람의 희생 위에서 이름을 팔기 위한 자선이 행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선 사업이 다른 많은 사람의 희생을 수반했다는 것은 살생 금단(殺生禁斷)의 경우에도 드러난다. 관원(寬元) 2년(1244) 야마토의 한 장관(莊官) 유이자키 주로 입도가 에이존에게 설법을 청하기 위해 자기 영지 네 고을의 살생 금단을 맹세하자, 그 때문에 장원 백성들의 생활이 얼마나 압박을 받았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문영 10년(1273) 호조 사네토키가 가나자와 고을 무쓰라 장원의 세토 둑 안쪽 포구에서 살생을 금하자, 이것 역시 무쓰라 일대 어민의 생업을 빼앗아 도탄에 빠뜨렸다. 홍안(弘安) 4년(1281) 다다인(多田院) 공양에 앞서 별당 료칸의 주선으로 막부의 명을 내려 본당 사방 열 정(町)의 살생을 금하자, 다다 장원 주민의 생업을 빼앗아 큰 고통을 주었다. 견디다 못해 어기는 이가 많자 그 뒤 거듭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다다인의 가람은 차츰 고쳐 지어져 장엄을 더했지만, 그 때문에 해마다 무거워지는 장원의 부역에 사람들은 몹시 괴로워했다. 게다가 자선 사업 자체도 굶주림의 경계에 있던 민중을 근본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늘 다툼의 씨앗이 되었다. 시주에게 베풂을 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고, 끝내는 구호소들끼리의 경쟁이 심해져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자선 사업은 작은 선에 지나지 않는다. 민중을 근본에서 행복하게 하는 길을 거스르면서 자기의 이름을 팔기 위해 작은 선을 행하면, 그것은 도리어 큰 악이 된다. 민중의 탐욕을 부추기고, 삼악 · 사악의 세계를 빚어내어 끝내는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하물며 그 자금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데 이르러서는, 자선이 아니라 위선일 뿐이다. 작은 선이 큰 선을 거스르면 큰 악이 된다는 이 원리는 제5장 끝의 「선한 일」에서 다시 만난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료칸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명성은 날로 높아지고 막부의 권력자들은 료칸을 중히 여겼다. 대성인은 이 료칸이야말로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권력과 결탁하여 민중을 탄식의 밑바닥으로 몰아넣는 원흉임을 꿰뚫어 보시고, 살아 있는 부처처럼, 여섯 신통을 갖춘 아라한처럼 받들어지던 료칸에게 단호히 파절을 가하셨다.
- 정가 3년(1259)정가 3년(1259)
- 호조 시게토키가 고쿠라쿠사를 다시 지을 때 닌쇼가 절터 선정에 참여
- 호조 시게토키가 고쿠라쿠사를 다시 지을 때 닌쇼가 절터 선정에 참여
- 문응 원년(1260)
- 7월 16일 입정안국론 상주
- 호조 사네토키가 가나자와에 쇼묘사를 세움
- 한 달 남짓 뒤 마쓰바가야쓰 습격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입정안국론 상주
- 한 달 남짓 뒤 마쓰바가야쓰 습격
- 호조 사네토키가 가나자와에 쇼묘사를 세움
- 홍장 원년(1261)
- 이즈 유배
- 시게토키 죽음(닌쇼가 장례 도사)
홍장 원년(1261)- 이즈 유배
- 시게토키 죽음(닌쇼가 장례 도사)
- 이즈 유배 중이즈 유배 중
- 에이존을 나라에서 불러옴, 나리토키 · 도키요리의 초청
- 에이존을 나라에서 불러옴, 나리토키 · 도키요리의 초청
- 문영 4년(1267)문영 4년(1267)
- 닌쇼가 고쿠라쿠사에 들어감(고쿠라쿠사 료칸)
- 다호사 장로 등 여러 절의 별당
- 닌쇼가 고쿠라쿠사에 들어감(고쿠라쿠사 료칸)
- 다호사 장로 등 여러 절의 별당
- 문영 5년(1268)
- 몽골 국서, 십일통어서
문영 5년(1268)- 몽골 국서, 십일통어서
- 문영 8년(1271)
- 기우 대결 · 교빈의 도전장 · 9월 10일 취조 · 9월 12일 다쓰노구치 · 사도 유배
문영 8년(1271)- 기우 대결 · 교빈의 도전장 · 9월 10일 취조 · 9월 12일 다쓰노구치 · 사도 유배
몽골 국서와 십일통어서 — 공장 대결을 요구하다
문영 5년(1268) 윤정월 18일, 몽골에서 「속히 통호의 사신을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군사를 쓰겠다」는 국서가 막부에 이르렀다. 입정안국론을 올린 지 9년째, 대성인이 예언하신 타국침핍난이 마침내 사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막부는 대성인의 가르침을 조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대성인은 4월 5일 호칸보(法鑒房)에게 「안국론어감유래」를, 8월 21일 야도야 입도 미쓰노리에게 서장을 주시어 안국론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들고, 여러 종에 대한 귀의를 멈추고 법화의 정법을 쓰라고 강하게 외치셨다. 그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대성인은 그해 10월 11일 열한 곳에 엄한 간언과 파절의 서장을 보내 공장(公場)에서의 대결을 요구하셨다. 이것이 이른바 「십일통어서」다.
당시의 집권 호조 도키무네에게는 입정안국론의 예언이 적중한 것을 들고 이렇게 확신을 밝히셨다.
日蓮は聖人の一分に当れり。未萠を知るが故なり
니치렌은 성인의 일부에 해당하느니라. 아직 싹트지 않은 일을 알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정성을 다해 간하셨다.
諫臣国に在れば則ち其の国正しく、争子家に在れば則ち其の家直し。国家の安危は政道の直否に在り、仏法の邪正は経文の明鏡に依る
간하는 신하가 나라에 있으면 그 나라는 바르고, 다투어 간하는 자식이 집에 있으면 그 집은 곧으니라. 국가의 안위는 정도(政道)가 곧은가 아닌가에 달려 있고, 불법의 사정은 경문의 밝은 거울에 의하느니라.
所詮は万祈を抛つて諸宗を御前に召し合せ、仏法の邪正を決し給え。澗底の長松未だ知らざるは良匠の誤り、闇中の錦衣を未だ見ざるは愚人の失なり
요컨대 온갖 기도를 내던지고 여러 종을 어전에 불러 맞세워 불법의 사정을 결판내소서. 골짜기 밑의 큰 소나무를 아직 알지 못함은 훌륭한 목수의 잘못이요, 어둠 속의 비단옷을 아직 보지 못함은 어리석은 사람의 허물이니라.
「불법의 사정은 경문의 밝은 거울에 의한다」 — 앞 장에서 주인이 결론을 말한 뒤 반드시 경문을 들어 증명한 까닭이 이 한 구절에 있다.
실제로 나라의 실권을 쥐고 있던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에게도 입정안국론의 예언 적중을 들어 간하셨다.
然る間重ねて訴状を以て愁欝を発かんと欲す。爰を以て諫旗を公前に飛ばし争戟を私後に立つ。併ながら貴殿は一天の屋梁為り、万民の手足為り。争でか此の国滅亡の事を歎かざらんや慎まざらんや、早く須く退治を加えて謗法の咎を制すべし
그러므로 거듭 소장으로써 근심과 답답함을 털어놓고자 하노라. 이에 간언의 깃발을 공(公) 앞에 날리고 다툼의 창을 사(私) 뒤에 세우노라. 귀하는 온 천하의 대들보요 만민의 손발이니, 어찌 이 나라가 멸망하는 일을 탄식하지 않고 삼가지 않겠느냐. 속히 마땅히 퇴치를 가하여 방법의 허물을 막아야 하느니라.
御式目を見るに非拠を制止すること分明なり。争でか日蓮が愁訴に於ては御叙い無らん。豈御起請の文を破るに非ずや
어식목(御式目)을 보건대 근거 없는 일을 막는 것이 분명하니라. 어찌 니치렌의 호소만은 받아들이지 않으시느냐. 어찌 기청문(起請文)의 글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막부의 성문법인 「어식목」을 들어 막부의 이치에 맞지 않는 태도를 지적하고, 공장에서 종교의 사정을 가리라고 거듭 외치신 것이다.
이처럼 막부의 요인들에게 지성의 간언을 하시는 한편, 당시의 종교계에 군림하던 고쿠라쿠사 료칸 · 겐초사 도류 등에게는 철저한 파절을 가하고 정정당당하게 공장 대결을 신청하셨다. 료칸에게 보낸 서장은 이렇다.
長老忍性速かに嘲哢の心を翻えし、早く日蓮房に帰せしめ給え。若し然らずんば人間を軽賤する者、白衣の与に法を説くの失脱れ難きか。依法不依人とは如来の金言なり。
장로 닌쇼는 속히 비웃는 마음을 돌이켜 어서 니치렌보에게 귀의하소서.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 「백의를 위해 법을 설하는」 허물을 벗어나기 어려우리라.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여래의 금언이니라.
良観聖人の住処を法華経に説て云く『或は阿練若に有り、納衣にして空閑に在り』と。阿練若は無事と翻ず。争か日蓮を讒奏するの条住処と相違せり。併ながら三学に似たる矯賊の聖人なり。僣聖増上慢にして今生は国賊、来世は那落に堕在せんこと必定なり。
료칸 성인의 거처를 법화경에 설하여 「혹은 아련야에 있어 누더기 옷을 입고 한적한 곳에 있다」고 하였느니라. 아련야는 「일이 없음(無事)」이라 번역한다. 어찌 니치렌을 참소하는 일이 그 거처와 어긋나지 않겠느냐. 그러니 계 · 정 · 혜 삼학을 닦는 듯한 사기꾼 성인이니라. 참성증상만이므로 금생에는 나라의 도적이요, 내세에는 나락에 떨어질 것이 틀림없느니라.
所詮本意を遂げんと欲せば対決に如かず。
요컨대 본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대결만 한 것이 없느니라.
이 서장 속에 이미 다음 제4장에서 인용될 법화경 권지품의 경문 — 「아련야」 「사람들을 업신여긴다」 「백의를 위해 법을 설한다」 — 이 료칸에게 그대로 들이대어져 있다. 「장로 닌쇼는 속히 비웃는 마음을 돌이켜」라고 조롱하실 만큼 유유한 경지였고, 「계 · 정 · 혜 삼학을 닦는 듯한 사기꾼 성인」 「참성증상만으로서 금생에는 나라의 도적」이라는 파절은 매우 통렬하다. 본래 고쿠라쿠사 료칸은 불법 자체를 깊이 연찬하여 그 지혜와 덕으로 이름을 얻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선 사업으로 인심을 움직이고 막부에 교묘히 다가가 그 지위를 쌓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대성인에게서 정면 대결의 서장을 받았을 때의 놀라움은 매우 컸을 것이다.
이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를 구하려 하신 대성인의 결의는 「제자단나중에의 어장」에 생생하다.
大蒙古国の簡牒到来に就いて十一通の書状を以て方方へ申せしめ候。定めて日蓮が弟子檀那・流罪・死罪一定ならん。少しも之を驚くこと莫れ。方方への強言申すに及ばず是併ながら而強毒之の故なり。日蓮庶幾せしむる所に候。各各用心有る可し。少しも妻子眷属を憶うこと莫れ。権威を恐るること莫れ。今度生死の縛を切つて仏果を遂げしめ給え。
대몽골국의 국서가 온 것에 대하여 열한 통의 서장으로 여러 곳에 말씀드렸느니라. 반드시 니치렌의 제자 단나는 유죄 · 사죄가 정해졌으리라. 조금도 이를 놀라지 말라. 여러 곳에 강한 말을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모두 「억지로 독을 주는(而強毒之)」 까닭이니라. 니치렌이 바라는 바이니라. 각자 마음을 단단히 하라. 조금도 처자 권속을 생각하지 말라. 권위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번에 생사의 속박을 끊고 불과를 이루라.
이어서 열한 곳 — 가마쿠라도노(도키무네) · 야도야 입도 · 헤이노사에몬노조 · 야겐타 · 겐초사 · 주후쿠사 · 고쿠라쿠사 · 다호사 · 조코묘사 · 대불전 · 조라쿠사 — 을 열거하셨다. 그때는 아무런 반응도, 아무런 파란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었고, 그 뒤에서는 고쿠라쿠사 료칸 · 겐초사 도류를 앞세운 여러 큰 절의 승려들이 당황하고 허둥대며 어떻게든 대성인을 박해하고 없애려는 대책에 광분하고 있었다.
기우의 대결 — 문영 8년의 가뭄
문영 6년, 7년은 별일 없이 저물고 문영 8년(1271)이 되었다. 그해 2월 하순부터 6월까지 전국에 큰 가뭄이 계속되어 민중은 기근의 밑바닥으로 내몰렸다. 집권 호조 도키무네는 간토 여러 나라의 지두들로부터 가뭄이 계속되어 벼농사가 걱정된다는 보고를 받고 고쿠라쿠사 료칸에게 기우(祈雨)를 명했다. 료칸은 망설임 없이 자신만만하게 이를 맡았고, 가마쿠라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부처 료칸 님이 비를 빌어 주신다」며 기뻐했다.
이를 재빨리 아신 대성인은 지금이야말로 파절의 철퇴를 내릴 때라 보시고 고쿠라쿠사에 사람을 보내셨다. 고쿠라쿠사에서 스오보(周防房)와 이리사와 입도(入澤入道)라는 두 염불자가 왔고, 대성인은 이 두 사람을 통해 료칸에게 이렇게 제안하셨다.
七日の内にふらし給はば、日蓮が念仏無間と申す法門すてて、良観上人の弟子と成りて二百五十戒持つべし。雨ふらぬほどならば、彼の御房の持戒げなるが大誑惑なるは顕然なるべし。上代も祈雨に付いて勝負を決したる例これ多し。所謂護命と伝教大師と、守敏と弘法なり
이레 안에 비를 내리신다면 니치렌은 「염불은 무간지옥」이라는 법문을 버리고 료칸 상인의 제자가 되어 250계를 지니겠노라.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그 스님의 계를 지키는 듯한 모습이 큰 속임수임이 드러날 것이니라. 옛날에도 기우로 승부를 가른 예가 많으니, 이른바 고묘와 전교대사, 슈빈과 홍법이 그것이니라.
이를 들은 료칸은 몹시 기뻐했다. 그동안 쓴맛을 보아 온 대성인에게 본때를 보일 좋은 기회라 여겼을 것이고, 이레 안에 반드시 비를 내릴 자신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일을 가마쿠라 안에 떠들썩하게 알리고 성대한 수법을 시작했다.
弟子百二十余人頭より煙を出し、声を天にひびかし、或は念仏、或は請雨経、或は法華経、或は八斎戒を説きて種種に祈請
제자 120여 명이 머리에서 연기를 내고 소리를 하늘에 울리며, 혹은 염불, 혹은 청우경, 혹은 법화경, 혹은 팔재계를 설하여 갖가지로 빌었느니라.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 나흘이 지나도 비는 내리지 않았고, 료칸은 「땀을 흘리고 눈물만 흘릴」(「종종어진무어서」, 912쪽) 뿐이었다. 다시 수백 명의 승려를 더해 필사적으로 빌었지만 결과는 이러했다.
四五日まで雨の気無ければ、たましゐを失いて、多宝寺の弟子等数百人呼び集めて力を尽し祈りたるに、七日の内に露ばかりも雨降らず
나흘 닷새가 되도록 비 올 기미가 없자 넋을 잃고 다호사의 제자 등 수백 명을 불러 모아 힘을 다해 빌었으나, 이레 안에 이슬만큼도 비가 내리지 않았느니라.
대성인은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 재촉하셨고, 마침 이레째 신시(申時)에 대성인의 사자는 대성인의 말씀 그대로 이렇게 외쳤다.
一丈の堀を越えざる者二丈三丈の堀を越えてんややすき雨をだに・ふらし給はず況やかたき往生成仏をや、然れば今よりは日蓮・怨み給う邪見をば是を以て翻えし給へ後生をそろしく・をぼし給はば約束のままに・いそぎ来り給へ、雨ふらす法と仏になる道をしへ奉らむ
한 길(一丈)의 해자도 넘지 못하는 자가 두 길 세 길의 해자를 넘을 수 있겠느냐. 쉬운 비조차 내리지 못하시거늘 하물며 어려운 왕생 성불이랴. 그러니 이제부터는 니치렌을 원망하시는 사견을 이로써 돌이키소서. 후생을 두렵게 여기신다면 약속대로 어서 오소서. 비를 내리는 법과 부처가 되는 길을 가르쳐 드리리라.
그 앞에서 사자는, 음녀라 불린 이즈미 시키부와 파계승이라 불린 노인 법사조차 서른한 자의 와카로 비를 내렸다는데, 계율을 지닌다는 료칸이 수백 명을 거느리고도 어찌 이레 동안 비를 내리지 못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가뭄은 더욱 심해지고 팔풍(八風)은 더욱 거세져 민중의 탄식이 깊어지니 어서 그 기도를 그치라고 했다.
료칸은 눈물을 흘리며 분해했고, 제자들도 이를 갈았다. 궁여지책으로 다시 이레의 말미를 청했으나, 그 결과도 「시모야마어소식」에 「이번 기우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두 이레 동안 전보다 훨씬 심한 큰 가뭄과 큰 악풍이 하루 종일 그치지 않았다」(今の祈雨は都て一雨も下らざる上二七日が間前よりはるかに超過せる大旱魃・大悪風・十二時に止む事なし, 350쪽)고 하신 대로 료칸의 참패로 끝났다.
이로써 료칸은 대성인에게 귀복하기는커녕 온갖 책략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가 250계를 지닌다는 것도, 이 패배 뒤 약속을 어긴 일로 완전한 거짓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기우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7월 8일, 료칸은 휘하의 조코묘사 교빈(行敏)을 시켜 도전장을 보내왔다. 대성인은 그 배후의 음모를 꿰뚫어 보시고 잠시 동정을 살피신 뒤 이렇게 답하시어, 어디까지나 공장 대결을 요구하셨다.
条条御不審の事・私の問答は事行き難く候か。然れば上奏を経られ仰せ下さるるの趣に随つて是非を糾明せらる可く候か。此の如く仰せを蒙り候条尤も庶幾する所に候
여러 조목의 의심에 대해서는 사사로운 문답으로는 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니라. 그러니 상주를 거쳐 내려오는 분부에 따라 시비를 가려 밝히는 것이 마땅하리라. 그렇게 분부를 받는 일이야말로 가장 바라는 바이니라.
료칸은 하는 수 없이 교빈을 시켜 대성인을 문주소(問注所)에 고소하게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대성인께서 소장의 조목을 하나하나 파절하시자 다시 반박하는 글을 내지 못하고 그대로 흐지부지되었다.
- 2월 하순~6월전국의 큰 가뭄, 도키무네가 료칸에게 기우를 명하다
- 대성인의 제안이레 안에 비가 내리면 료칸의 제자가 되겠다, 내리지 않으면 지계의 겉모습이 큰 속임수임이 드러난다
- 첫 이레제자 120여 명, 이어 다호사의 제자 수백 명 — 이슬만큼도 비가 내리지 않다
- 둘째 이레전보다 심한 큰 가뭄과 큰 악풍
- 7월 8일조코묘사 교빈의 도전장, 대성인은 공장 대결을 요구(「교빈답서」)
- 교빈의 고소조목마다 파절되어 흐지부지
- 9월권력자를 움직인 박해로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 — 권력과 손잡은 명승
료칸은 수단을 바꾸고 방법을 바꾸어, 뒤에서 막부의 권력자를 움직여 대성인을 박해하려 했다. 그때의 모습을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 남기셨다.
さりし程に念仏者・持斎・真言師等、自身の智は及ばず、訴状も叶わざれば、上郎・尼ごぜんたちにとりつきて、種種にかまへ申す
그러는 동안 염불자 · 지재(持齋) · 진언사 등은 자신의 지혜로는 미치지 못하고 소장으로도 이루지 못하자, 상류의 부인들과 비구니 부인들에게 매달려 갖가지로 꾸며 말하였느니라.
禅僧数百人、念仏者数千人、真言師百千人、或は奉行につき、或はきり人につき、或はきり女房につき、或は後家尼御前等について無尽のざんげんをなせし程に
선승 수백 명, 염불자 수천 명, 진언사 백천 명이 혹은 봉행에게 붙고, 혹은 권세 있는 사람에게 붙고, 혹은 권세 있는 여인에게 붙고, 혹은 과부 비구니 부인들에게 붙어 끝없는 참언을 하였느니라.
極楽寺の生仏の良観聖人、折紙をささげて上へ訴へ、建長寺の道隆聖人は輿に乗りて奉行人にひざまづく
고쿠라쿠사의 살아 있는 부처 료칸 성인은 소장을 받들어 위에 호소하고, 겐초사의 도류 성인은 가마를 타고 가서 봉행인에게 무릎을 꿇었느니라.
그 광경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보은초」에 따르면 참언은 「천하 제일의 큰일이니 일본국을 잃게 하려고 저주하는 법사요, 돌아가신 사이묘지도노(도키요리)와 고쿠라쿠사도노(시게토키)가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말하는 법사이니, 물을 것도 없이 당장 목을 베라」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료칸은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를 움직였다. 헤이노사에몬노조라고 하면 당시 집권의 가사(家司)와 사무라이도코로(侍所)의 쇼시(所司)를 겸한, 막부 요인 가운데 첫째가는 인물이다. 호조 막부의 정무는 평정(評定)으로 이루어졌지만 최종 결정권은 집권이 쥐고 있었으므로, 집권의 집사인 가사의 정치적 권력은 막대했다. 그뿐 아니라 사무라이도코로의 쇼시로서 군사 · 경찰권도 쥐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정치와 군사의 대권을 자기 손에 넣고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조부 이래 대대로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요리쓰나의 권위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맞수는 아키타 조노스케라고도 불린 아다치 야스모리(安達泰盛)였다. 대성인도 어서에서 헤이노사에몬노조를 「헤이 등(平等)」, 아키타 조노스케를 「조 등(城等)」이라 하여 나란히 일컬으셨다. 이 두 사람이 당시 가마쿠라 막부를 실질적으로 쥐고 흔들었으며, 집권 도키무네는 두 세력의 균형 위에 서 있었다고 보는 역사가도 있다. 아다치씨는 대대로 호조씨와 혼인 관계를 맺으며 세력을 키운 유력 고케닌(御家人)이었고, 요리쓰나는 본래 고케닌보다 신분이 낮은 호조씨의 가신이었으나 호조씨의 권력이 커지면서 발언력을 키워 정계의 실력자가 되었다. 두 사람의 다툼은 끝내 홍안 8년(1285) 요리쓰나가 야스모리 일족을 멸한 시모쓰키 소동(霜月騷動)으로 귀결된다.
이리하여 종교계에서 명성과 지위와 존숭을 한 몸에 모은 고쿠라쿠사 료칸과, 막대한 권세와 군사력과 경찰권을 한 손에 쥔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가 이해를 위해 결탁하여 대성인을 박해하는 데 나선 것이다. 이미 료칸의 기우를 뒷받침한 것도 헤이노사에몬노조였다. 이윽고 료칸의 책략으로 대성인은 여러 종을 비방하고 무기를 감추고 있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었다.
문영 8년 9월 10일, 대성인은 봉행소에 불려 나가셨다. 헤이노사에몬노조가 직접 하는 취조였다. 그러나 오히려 재판하는 자가 재판받듯이, 헤이노사에몬노조는 대성인께 철저히 파절당했다. 「종종어진무어서」는 그 자리를 이렇게 전한다.
詮ずるところ、上件の事どもは此の国ををもひて申す事なれば世を安穏にたもたんと・をぼさば彼の法師ばらを召し合せて・きこしめせ、さなくして彼等にかわりて理不尽に失に行わるるほどならば国に後悔あるべし、日蓮・御勘気をかほらば仏の御使を用いぬになるべし、梵天・帝釈・日月・四天の御とがめありて遠流・死罪の後・百日・一年・三年・七年が内に自界叛逆難とて此の御一門どしうちはじまるべし、其の後は他国侵逼難とて四方より・ことには西方よりせめられさせ給うべし
요컨대 앞의 일들은 이 나라를 생각하여 말한 것이니, 세상을 안온하게 지키고자 하신다면 저 법사들을 불러 맞세워 들어 보소서.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을 대신하여 이치에 맞지 않게 죄를 주신다면 나라에 후회가 있으리라. 니치렌이 견책을 받는다면 부처의 사자를 쓰지 않는 것이 되리니,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왕의 꾸짖음이 있어 원류 · 사죄 뒤 백 일 · 1년 · 3년 · 7년 안에 자계반역난이라 하여 이 일문에 동족상잔이 시작될 것이요, 그 뒤에는 타국침핍난이라 하여 사방에서, 특히 서쪽에서 공격을 받게 되리라.
대성인은 이에 앞서 고발의 내용 — 사이묘지도노와 고쿠라쿠사도노가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했다, 여러 큰 절을 불태우라고 했다, 도류 · 료칸의 목을 베라고 했다 — 을 하나하나 확인하시고, 그것을 한 마디도 어김없이 말했다고 인정하시되 「사이묘지도노 · 고쿠라쿠사도노가 지옥에 떨어졌다」고 했다는 것만은 거짓이라고 바로잡으셨다. 그 법문은 두 사람이 살아 있을 때부터 말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나라를 생각하여 한 말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요리쓰나는 「다이조 입도(다이라노 기요모리)가 미쳐 날뛰듯이 조금도 거리낌 없이」 광란했다.
이틀 뒤인 9월 12일, 격분한 헤이노사에몬노조는 모반인을 잡는 것 이상으로 삼엄하게 몸소 갑옷을 입고 무장한 수백 명의 무사를 거느리고 마쓰바가야쓰의 암자에 들이닥쳐 난폭한 짓을 다했다. 헤이노사에몬노조의 가신 쇼보(少輔房)라는 자가 대성인께 다가가 법화경 제5권으로 대성인의 얼굴을 세 번 때렸다. 이때 대성인은 큰 소리로 헤이노사에몬노조를 꾸짖으셨다.
去し文永八年九月十二日申の時に、平左衛門尉に向つて云く、日蓮は日本国の棟梁なり、予を失なうは日本国の柱橦を倒すなり。只今に自界反逆難とてどしうちして、他国侵逼難とて此の国の人人・他国に打ち殺さるのみならず、多くいけどりにせらるべし。
지난 문영 8년 9월 12일 신시에 헤이노사에몬노조를 향하여 말하기를, 「니치렌은 일본국의 동량이니라. 나를 잃는 것은 일본국의 기둥을 쓰러뜨리는 것이니라. 머지않아 자계반역난이라 하여 동족끼리 싸우고, 타국침핍난이라 하여 이 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죽임을 당할 뿐 아니라 많이 사로잡혀 가리라」.
그로부터 대성인은 다쓰노구치의 형장으로 끌려가셨다. 그러나 그날 밤의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끝내 처형하지 못하고, 한동안 사가미국 에치에 머무신 뒤 사도 유배가 결정되었다. 이때에도 가마쿠라에서는 방화와 살인 강도가 잇달았는데, 이것을 대성인 제자의 짓이라 소문냈다. 이 또한 염불자들의 모략이었고, 그 배후에 료칸이 있었다.
이러한 료칸의 처사에 대해 대성인은 다음과 같이 통렬히 파절하시어 료칸의 위선의 가면을 벗기셨다.
法華本門の行者、五五百歳の大導師にて御座し候聖人を、頚をはねらるべき由の申状を書きて、殺罪に申し行はれ候しが、いかが候けむ、死罪を止めて佐渡の島まで遠流せられ候しは、良観上人の所行に候はずや。其の訴状は別紙に之れ有り。抑生草をだに伐るべからずと、六斎日夜の説法に給われながら、法華正法を弘むる僧を断罪に行わるべき旨申し立てらるるは、自語相違に候はずや如何。此の僧豈天魔の入れる僧に候はずや
법화 본문의 행자이시며 오오백세의 대도사이신 성인을, 목을 베어야 한다는 신장(申狀)을 써서 사죄에 처하게 하셨으나, 어찌 된 일인지 사죄를 멈추고 사도 섬까지 원류하게 된 것은 료칸 상인의 소행이 아니겠느냐. 그 소장은 따로 있느니라. 대저 산 풀조차 베어서는 안 된다고 육재일 밤낮의 설법에서 말씀하시면서, 법화의 정법을 넓히는 승려를 사죄에 처해야 한다고 아뢰는 것은 자기 말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 승려는 어찌 천마가 들어간 승려가 아니겠느냐.
산 풀 한 포기도 베지 말라고 설하는 지계의 성자가, 법화경을 넓히는 승려의 목을 베라고 상소한다. 대성인께서 「자기 말과 어긋남(自語相違)」이라 하신 이 모순 속에 경문이 말하는 악비구의 정체가 드러나 있다.
경문은 그대로 맞았다 — 인왕경 구절의 풀이
이상 료칸의 행동을 중심으로, 당시 여러 종의 악한 승려들이 얼마나 권력에 다가가 권력자와 긴밀히 이어져 있었는지, 그리고 정법의 행자를 어떻게 박해했는지를 보았다. 이것이야말로 인왕경의 「여러 악비구가 흔히 명리를 구하여 국왕 · 태자 · 왕자 앞에서 스스로 파불법의 인연 · 파국의 인연을 설하리라. 그 왕은 분별하지 못하고 이 말을 믿고 들어, 멋대로 법제를 만들어 불계에 의하지 않느니라. 이것을 파불 · 파국의 인연이라 하느니라」는 경문 그대로가 아니겠는가.
「여러 악비구」란 당시의 염불자 · 진언사들이며, 따로 말하면 료칸이다. 「명리를 구하여」란 바로 당시 승려들의 실태이며 료칸의 참모습이다. 「국왕 · 태자 · 왕자」란 당시의 지도자 계층이며, 그 앞에서 「파불법의 인연 · 파국의 인연을 설한다」는 것은 권력자에게 다가가 큰 방법의 가르침을 설하고, 그것도 모자라 대성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한 료칸의 행동 그 자체다. 이것이 나라를 망치고 불법을 어지럽히는 원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왕은 분별하지 못하고 이 말을 믿고 들어」는 당시 막부의 권력자들이 모두 그들의 감언에 속아, 특히 헤이노사에몬노조가 아무 사려 분별도 없이 대성인의 박해에 광분한 일이 그 전형이다.
「멋대로 법제를 만들어 불계에 의하지 않는다」는 무엇인가. 죄 없는 대성인을 빠뜨리려고 갖가지 죄목을 꾸며 내고, 가짜 어교서(御教書)를 만들기까지 했다. 또 훗날 아쓰하라(熱原)의 법난 때에는 죄 없는 많은 농민을 있지도 않은 죄목으로 고발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재판으로 끝내 진시로(神四郎) 등 아쓰하라의 세 사람의 목을 베었다. 이 일도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의 손으로 행해졌다.
「이것을 파불 · 파국의 인연이라 한다」는 그 뒤 가마쿠라 막부의 운명이 그대로 말해 준다. 대성인이 9월 12일에 예언하신 자계반역난은 이듬해 니가쓰 소동으로, 타국침핍난은 문영 · 홍안 두 차례의 몽골 내습으로 나타났다. 정법을 박해한 막부는 그 뒤 내분과 외환에 시달린 끝에 멸망의 길을 걸었다. 참으로 두려운 것은 정법을 등진 삿된 가르침이며, 가장 꺼려야 할 것은 그런 법의 승려와 권력자의 결탁이다.
악상보다 악지식을 두려워하라 — 열반경의 경계
다음 열반경의 「보살이여, 악한 코끼리 따위에 대해서는…」의 글은 그릇된 가르침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밝힌 것이다. 악상, 곧 사나운 코끼리는 석존 시대의 인도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었으므로 두려운 것의 대표로 든 것이리라. 악상에게 죽는다는 것은 뜻밖의 재해나 사고로 목숨을 잃는 횡사를 뜻한다. 그런 원인의 죽음은 반드시 지옥 · 아귀 · 축생의 삼취에 떨어진다고 정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악우, 곧 악지식 때문에 죽임을 당하면 반드시 삼악도에 떨어진다고 한다.
악지식도 악우도 모두 삿된 지혜를 지닌 방법의 사람을 가리킨다. 곧 방법의 삿된 신앙으로 생명이 파괴되면 삼악도에 떨어져 오래도록 고뇌에 잠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악상은 몸을 해치지만 악지식은 바른 법을 믿는 마음을 해친다. 몸의 죽음은 한 생으로 끝나지만, 마음의 죽음은 생을 넘어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원리에 따르면 어떤 사나운 짐승보다, 어떤 천재지변보다 삿된 가르침이 두렵다.
이 경문은 수행자가 사나운 코끼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 같은 바깥의 해보다, 정법을 믿는 마음을 무너뜨리고 불도 수행을 방해하여 삼악도에 빠뜨리는 악지식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대성인은 악지식을 따르지 말라고 경계하시는 한편, 악지식조차 자신의 성불의 계기로 삼아 가는 강성한 신심에 서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나아가 자신을 박해한 권력자와 고승들을 오히려 자신의 참된 가치를 드러내도록 도운 선지식으로 자리매김하셨다. 헤이노사에몬노조와 료칸은 경문의 악비구 · 악지식이면서, 대성인에게는 법화경을 몸으로 읽게 한 이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인왕경이 나라의 차원에서 「파국」을 말한다면, 열반경의 이 글은 한 사람의 차원에서 「삼취」를 말한다. 악한 승려는 나라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그를 따르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주인은 다음 장에서 그 악한 승려의 모습을 법화경으로 더 자세히 그려 보인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은 바깥의 적보다 권력 곁에서 명리를 구하는 악비구와, 그 말을 가리지 못하고 믿는 위정자의 결탁이다. 고쿠라쿠사 료칸과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의 행적은 인왕경의 경문 그대로였으며, 그 끝에 자계반역 · 타국침핍의 두 난이 나타났다.
본문
法華経に云く「悪世の中の比丘は邪智にして心諂曲に、未だ得ざるを為れ得たりと謂い、我慢の心充満せん。 或は阿練若に、納衣にして空閑に在り、自ら真の道を行ずと謂いて、人間を軽賤する者有らん。利養に貪著するが故に、白衣の与に法を説いて、世に恭敬せらるること、六通の羅漢の如くならん。 乃至常に大衆の中に在って、我等を毀らんと欲するが故に、国王・大臣・婆羅門・居士及び余の比丘衆に向つて、誹謗して我が悪を説いて、是れ邪見の人、外道の論議を説くと謂わん。 濁劫悪世の中には、多く諸の恐怖有らん。悪鬼其の身に入つて、我を罵詈し毀辱せん。濁世の悪比丘は、仏の方便・随宜所説の法を知らず、悪口して嚬蹙し、数数擯出せられん」已上。
법화경에 이르기를 「악세 가운데의 비구는 삿된 지혜(邪智)를 지니고 마음이 첨곡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여기며 아만(我慢)의 마음이 가득하리라. 혹은 아련야(阿練若)에서 누더기 옷(納衣)을 입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스스로 참된 도를 행한다고 여겨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가 있으리라. 이양(利養)에 탐착하는 까닭에 백의(白衣)를 위해 법을 설하여, 세상에서 공경받기를 육통(六通)의 아라한과 같이 하리라. 내지 늘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우리를 헐뜯고자 하는 까닭에,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 및 그 밖의 비구들을 향하여 비방하여 우리의 허물을 말하되 『이는 사견(邪見)의 사람이니 외도의 논의를 설한다』고 하리라. 탁겁(濁劫)의 악세 가운데에는 여러 두려운 일이 많으리라. 악귀가 그 몸에 들어가 우리를 꾸짖고 욕하며 헐뜯고 욕되게 하리라. 탁세의 악비구는 부처가 방편으로 근기에 따라 설한 법(隨宜所說)임을 알지 못하고, 악한 말로 얼굴을 찡그리며, (우리는) 자주자주 쫓겨나리라」 이상.
어구 풀이
- 法華経법화경
- 대승 경전의 극설이다. 산스크리트 이름은 삿다르마푼다리카 수트라(Saddharmapuṇḍarīka-sūtra)로 「흰 연꽃과 같은 바른 가르침」을 뜻한다. 경전으로 엮인 것은 1세기 무렵으로 보며, 인도에서 이미 여러 본이 있었다고 한다. 한역은 「육역삼존(六譯三存)」이라 하여 여섯 번 번역되었고 지금 셋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후진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 8권이 예부터 명역으로 가장 널리 쓰였다. 앞 14품에는 이승작불 · 악인성불 · 여인성불 등이, 뒤 14품에는 석존의 본지를 밝힌 구원실성을 중심으로 본인묘 · 본과묘 · 본국토묘의 삼묘합론에 의한 부처의 행업과, 말법에 묘법연화경을 넓힐 상행보살 등 지용보살에게 결요부촉한 일 등이 설해진다.
- 勧持品권지품
- 법화경 제13품. 부처의 멸후에 이 경을 넓히겠다고 여러 보살이 맹세하는 품이다. 본초에 인용된 글은 그 가운데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이 한목소리로 읊은 스무 줄의 게송, 곧 「이십행의 게(二十行の偈)」의 일부다.
- 邪智にして心諂曲삿된 지혜를 지니고 마음이 첨곡하다
- 바른 법을 알지 못하면서 그릇된 지혜로 자기를 꾸미고, 마음이 굽어 아첨하는 모습이다. 제2장의 「법사는 첨곡하여」가 여기서 경문으로 뒷받침된다.
- 未だ得ざるを為れ得たりと謂い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여기다
-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증상만(增上慢)이다.
- 我慢아만
- 자기를 높이고 남을 낮추는 교만한 마음.
- 阿練若に、納衣にして空閑に在り아련야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한적한 곳에 있다
- 권지품의 「혹유아란야 · 납의재공한(或有阿蘭若・納衣在空閑)」이다. 참성증상만의 무리가 조용한 산사 등에 들어앉아 사람들에게 삿된 법을 설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아련야(阿練若)는 번역하면 「일이 없는 고요한 곳(無事閑靜處)」, 납의(納衣)는 승려의 옷, 공한(空閑)은 인가에서 떨어진 곳이다.
- 人間を軽賤する사람들을 업신여기다
- 세상일에 바쁜 사람들을 「속된 자」라 하여 가볍게 보고 천하게 여기는 것이다.
- 利養に貪著する이양에 탐착하다
- 「이양(利養)」은 공양으로 받는 재물과 이익이다. 재물을 탐내어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 白衣の与に法を説いて백의를 위해 법을 설하다
- 「백의(白衣)」는 재가자를 말한다. 인도에서 출가자는 물들인 옷을, 재가자는 흰옷을 입었다. 재물을 얻기 위해 재가의 시주에게 영합하는 설법을 한다는 뜻이다.
- 世に恭敬せらるること、六通の羅漢の如くならん세상에서 공경받기를 육통의 아라한과 같이 하리라
- 권지품 이십행의 게의 「위세소공경 · 여육통나한(為世所恭敬如六通羅漢)」이다. 참성증상만이 대중에게 공경받는 모습이 마치 여섯 신통을 갖춘 아라한과 같다는 것이다. 육신통은 신족통 · 천안통 · 천이통 · 타심통 · 숙명통 · 누진통이다. 아라한은 소승의 과위로, 성문 사과의 가장 높은 자리이며 삼계의 견혹 · 사혹을 다 끊고 열반의 이치를 증득한 자리라 한다. 육신통 가운데 숙명통까지의 다섯은 외도의 선인도 이룰 수 있지만, 여섯째 누진통은 아라한의 자리가 아니면 이룰 수 없다고 한다.
- 国王・大臣・婆羅門・居士及び余の比丘衆に向つて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 및 그 밖의 비구들을 향하여
- 권력자와 지식층과 다른 승려들을 상대로 정법의 행자를 참소한다는 것이다. 바라문은 인도의 사제 계급, 거사는 재가의 유력자다.
- 悪鬼其の身に入つて악귀가 그 몸에 들어가
- 삿된 가르침의 악귀가 국왕 · 대신 등의 몸에 들어가 정법의 행자를 꾸짖고 헐뜯고 욕보인다는 것이다.
- 仏の方便・随宜所説の法を知らず부처가 방편으로 근기에 따라 설한 법임을 알지 못한다
- 방편 · 권교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한 법임을 알지 못하고 거기에 집착한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도리어 정법인 법화경의 행자를 욕하게 된다.
- 数数擯出せられん자주자주 쫓겨나리라
- 권지품의 「삭삭견빈출(數數見擯出)」. 정법의 행자가 한 번이 아니라 거듭 사는 곳에서 쫓겨난다는 예언이다. 대성인은 이 「삭삭(數數)」 두 글자를 이즈와 사도의 두 번의 유배로 읽으셨다.
권지품 이십행의 게 — 부처의 미래기
이 장에 인용된 경문은 이름 높은 권지품의 이십행의 게로, 삼류의 강적을 설한 부처의 미래기다. 권지품에서 부처의 멸후에 법화경을 넓히겠다고 맹세한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들은, 악세에 이 경을 넓히면 어떤 박해가 닥쳐올 것인가를 스무 줄의 게송으로 읊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참으리라」고 맹세했다. 이 경문과 대성인의 행업을 맞대어 보면 그 너무나 꼭 들어맞음에 놀라게 되고, 불법의 위대함을 마음 깊이 실감하게 된다.
주인이 이 장에서 인용한 것은 이십행의 게 가운데 둘째 부류와 셋째 부류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첫째 부류, 곧 「여러 무지한 사람이 악구 · 매리하고 칼과 몽둥이를 가한다」는 대목은 빠져 있다. 이 셋째 문답의 주제가 「악한 승려」를 증명하는 것이므로, 출가자의 모습을 그린 둘째 · 셋째 부류의 경문만을 든 것이다.
삼류의 강적 — 속중 · 도문 · 참성의 증상만
이십행의 게를 세 부류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속중증상만(俗衆增上慢)이다. 「여러 무지한 사람이 있어 악구 · 매리 등을 하고 칼과 몽둥이를 가하는 자가 있으리라. 우리는 모두 참으리라」는 대목이 이것이다. 불법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세속의 사람들이 정법의 행자를 욕하고 해친다.
둘째는 도문증상만(道門增上慢)이다. 「악세 가운데의 비구는 삿된 지혜를 지니고 마음이 첨곡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여기며 아만의 마음이 가득하리라」는 대목이다. 불도에 들어선 출가자이면서 교만하여 정법의 행자를 업신여긴다.
셋째는 참성증상만(僭聖增上慢)이다. 「혹은 아련야에서」부터 「자주자주 쫓겨나리라」까지가 이것이다. 성자인 척 세간의 존경을 받으면서, 그 존경을 이용해 국왕 · 대신 앞에서 정법의 행자를 참소하고 박해하게 한다.
이 셋의 구분은 묘락대사의 『법화문구기』에서 비롯된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그 글을 인용하셨다.
記の八に云く「文に三初に一行は通じて邪人を明す即ち俗衆なり、次に一行は道門増上慢の者を明す、三に七行は僣聖増上慢の者を明す、此の三の中に初は忍ぶ可し次の者は前に過ぎたり第三最も甚だし後後の者は転識り難きを以ての故に」
『법화문구기』 권8에 이르기를 「글에 셋이 있다. 처음 한 줄은 통틀어 삿된 사람을 밝히니 곧 속중이다. 다음 한 줄은 도문증상만의 사람을 밝힌다. 셋째 일곱 줄은 참성증상만의 사람을 밝힌다. 이 셋 가운데 처음은 참을 수 있고, 다음은 앞보다 더하며, 셋째가 가장 심하다. 뒤로 갈수록 더욱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뒤로 갈수록 알아보기 어렵다 — 여기에 셋째 부류가 가장 두려운 까닭이 있다. 속중의 악구는 누구나 악으로 알아본다. 도문의 교만도 조금만 살피면 드러난다. 그러나 참성증상만은 계율을 지키고 산사에 머물며 세간에서 성자로 받들어진다. 그 존경 자체가 가면이 되어 정체를 가린다. 제3장에서 본 고쿠라쿠사 료칸이 바로 그러했다. 250계를 지니는 율승으로서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던 그가 뒤에서는 권력자를 움직여 법화경의 행자를 사죄에 처하게 하려 했다. 대성인께서 「고쿠라쿠사료칸에의 어장」에서 그를 「참성증상만」이라 부르신 것은 이 경문의 판정이었다.
- 첫째 속중증상만불법을 모르는 세속의 사람들이 악구 · 매리하고 칼과 몽둥이를 가한다(이십행의 게 첫 한 줄 · 이 장에는 인용되지 않음)
- 둘째 도문증상만삿된 지혜와 첨곡한 마음,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여기는 교만한 출가자悪世の中の比丘は邪智にして心諂曲に
- 셋째 참성증상만아련야에 머물며 성자로 공경받으면서 국왕 · 대신에게 정법의 행자를 참소하는 자世に恭敬せらるること、六通の羅漢の如くならん
경문의 구절에 비추어 본 참성증상만
셋째 부류의 경문은 구절 하나하나가 참성증상만의 모습을 정밀하게 그린다.
먼저 거처다. 「아련야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한적한 곳에 있다」. 세속을 떠나 고요한 곳에서 수행하는 성자의 모습이다. 다음은 마음이다. 「스스로 참된 도를 행한다고 여겨 사람들을 업신여긴다」. 고요한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자부심이 되어 세간의 사람들을 낮추어 본다. 그런데 그 실상은 「이양에 탐착하는 까닭에 백의를 위해 법을 설한다」. 겉으로는 세간을 떠났으면서 속으로는 재가 시주의 재물을 탐하여 그들이 좋아할 법을 설한다. 그 결과 「세상에서 공경받기를 육통의 아라한과 같이」 된다.
이 존경이 갖추어지면 참성증상만은 행동에 나선다. 「늘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우리를 헐뜯고자 하는 까닭에,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 및 그 밖의 비구들을 향하여 비방하여 우리의 허물을 말하되 『이는 사견의 사람이니 외도의 논의를 설한다』고 하리라」. 정법의 행자를 직접 해치지 않고, 권력자와 지식층에게 참소하여 그들의 손으로 박해하게 한다. 「악귀가 그 몸에 들어가 우리를 꾸짖고 욕한다」는 그 참소를 믿은 권력자들이 행자를 박해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부처가 방편으로 근기에 따라 설한 법임을 알지 못하고」 권교에 집착하여 법화경의 행자에게 악한 말을 퍼붓고 얼굴을 찡그리며, 마침내 행자는 「자주자주 쫓겨난다」.
제3장에서 본 대성인 당시의 일은 이 경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과 같다. 율승 료칸은 계율을 지니는 성자로 공경받았고, 상류의 부인들과 비구니 부인들과 봉행에게 참언하여 헤이노사에몬노조를 움직였다. 「사이묘지도노 · 고쿠라쿠사도노가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말하는 법사」라는 참소는 경문의 「우리의 허물을 말하되」 그대로였다. 「악귀가 그 몸에 들어가」 대성인을 체포한 것은 헤이노사에몬노조였고, 법화경 제5권으로 대성인의 얼굴을 때린 것은 그 가신 쇼보였다.
이십행의 게를 몸으로 읽다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권지품 이십행의 게를 몸으로 읽은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단언하셨다. 그리고 그 사실로써, 자신이야말로 법화경에 예언된, 말법의 모든 민중을 구제하는 어본불이라는 확신에 서셨다. 「개목초」에는 이렇게 쓰셨다.
法華経の第五の巻・勧持品の二十行の偈は日蓮だにも此の国に生れずば・ほとをど世尊は大妄語の人・八十万億那由佗の菩薩は提婆が虚誑罪にも堕ちぬべし、経に云く「諸の無智の人あつて・悪口罵詈等し・刀杖瓦石を加う」等云云、今の世を見るに日蓮より外の諸僧たれの人か法華経につけて諸人に悪口罵詈せられ刀杖等を加えらるる者ある、日蓮なくば此の一偈の未来記は 妄語となりぬ
법화경 제5권 권지품의 이십행의 게는, 니치렌만이라도 이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존은 거의 큰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고,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은 제바달다의 허광죄(虛誑罪)에도 떨어질 것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여러 무지한 사람이 있어 악구 · 매리하고 칼과 몽둥이와 기와와 돌을 가한다」고 하였느니라. 지금 세상을 보건대 니치렌 말고 다른 승려들 가운데 누가 법화경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악구 · 매리를 당하고 칼과 몽둥이를 맞은 자가 있느냐. 니치렌이 없다면 이 한 게송의 미래기는 거짓말이 되었으리라.
「悪世の中の比丘は・邪智にして心諂曲」又云く「白衣の与に法を説いて世に恭敬せらるること六通の羅漢の如し」此等の経文は今の世の念仏者・禅宗・律宗等の法師なくば世尊は又大妄語の人、常在大衆中・乃至向国王大臣婆羅門居士等、今の世の僧等・日蓮を讒奏して流罪せずば此の経文むなし
「악세 가운데의 비구는 삿된 지혜를 지니고 마음이 첨곡하다」, 또 이르기를 「백의를 위해 법을 설하여 세상에서 공경받기를 육통의 아라한과 같이 한다」. 이러한 경문은 지금 세상의 염불자 · 선종 · 율종 등의 법사가 없었다면 세존은 또 큰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늘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 등을 향하여」라는 경문도, 지금 세상의 승려들이 니치렌을 참소하여 유죄에 처하게 하지 않았다면 헛된 경문이 되었으리라.
又云く「数数見擯出」等云云、日蓮・法華経のゆへに度度ながされずば数数の二字いかんがせん、此の二字は天台・伝教もいまだ・よみ給はず況や余人をや、末法の始のしるし恐怖悪世中の金言の・あふゆへに但日蓮一人これをよめり
또 이르기를 「자주자주 쫓겨나리라」. 니치렌이 법화경 때문에 여러 번 유배되지 않았다면 「삭삭」 두 글자를 어찌하겠느냐. 이 두 글자는 천태 · 전교도 아직 읽지 못하셨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랴. 말법의 처음이라는 표시인 「두려운 악세 가운데」라는 금언이 맞았기 때문에 다만 니치렌 한 사람이 이를 읽었느니라.
경문은 행자가 겪을 박해를 예언했고, 그 박해를 가할 자들의 모습도 예언했다. 박해를 받는 행자가 없으면 경문은 거짓이 되고, 박해를 가하는 악비구가 없어도 경문은 거짓이 된다. 대성인은 그 둘이 모두 지금 이 나라에 나타났다고 보셨다. 입정안국론에서 이 경문을 「악한 승려」의 증거로 드신 것은, 그 경문의 다른 한쪽 — 그 박해를 받는 행자 — 가 바로 이 글을 쓰는 사람 자신이라는 것을 안에 품은 일이었다.
「우에노전답서」에서는 이십행의 게를 읽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勧持品に八十万億那由佗の菩薩の異口同音の二十行の偈は日蓮一人よめり、誰か出でて日本国・唐土・天竺・三国にして仏の滅後によみたる人やある
권지품에서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이 한목소리로 읊은 이십행의 게는 니치렌 한 사람이 읽었느니라. 누가 나와서 일본국 · 중국 · 인도의 삼국에서 부처의 멸후에 읽은 사람이 있느냐.
及加刀杖の刀杖の二字の中に・もし杖の字にあう人はあるべし・刀の字にあひたる人をきかず、不軽菩薩は杖木・瓦石と見えたれば杖の字にあひぬ刀の難はきかず、天台・妙楽・伝教等は刀杖不加と見えたれば是又かけたり、日蓮は刀杖の二字ともに・あひぬ、剰へ刀の難は前に申すがごとく東条の松原と竜口となり、一度も・あう人なきなり日蓮は二度あひぬ、杖の難にはすでにせうばうにつらをうたれしかども第五の巻をもつてうつ
「및가도장(及加刀杖)」의 「도장」 두 글자 가운데 혹 「장(杖)」 자를 만난 사람은 있겠으나 「도(刀)」 자를 만난 사람은 듣지 못하였느니라. 불경보살은 「장목 · 와석」이라 하였으니 「장」 자는 만났으나 칼의 난은 듣지 못하였느니라. 천태 · 묘락 · 전교 등은 「도장불가(刀杖不加)」라 하였으니 이 또한 빠져 있느니라. 니치렌은 「도장」 두 글자를 모두 만났느니라. 게다가 칼의 난은 앞에 말한 것처럼 도조의 마쓰바라와 다쓰노구치이니, 한 번도 만난 사람이 없는 것을 니치렌은 두 번 만났느니라. 몽둥이의 난으로는 이미 쇼보에게 얼굴을 맞았는데, 그것도 제5권으로 때렸느니라.
이어서 대성인은 「때린 몽둥이도 제5권이요, 맞으리라 한 경문도 제5권이니, 불가사의한 미래기의 경문」이라고 하셨다. 권지품은 법화경 제5권에 들어 있다. 다쓰노구치의 체포 때 쇼보가 대성인의 얼굴을 때린 것이 바로 그 제5권의 두루마리였다. 경문이 예언한 박해가, 그 경문이 적힌 경권으로 가해진 것이다.
왜 이 경문이 입정안국론에 있는가
입정안국론이 쓰인 문응 원년(1260)은 다쓰노구치와 사도 유배보다 11년 앞이다. 그때는 아직 마쓰바가야쓰 습격도 이즈 유배도 일어나기 전이었다. 그런데 대성인은 이미 이 글에서 권지품의 삼류의 강적, 특히 참성증상만의 경문을 들어 당시의 승려들을 가리키셨다. 이것은 두 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대성인께서 처음부터 이 간언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법화경을 바르게 넓히면 반드시 삼류의 강적이 나타난다는 것이 경문의 예언이다. 그러므로 입정안국론을 올리는 일은 스스로 그 예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실제로 이 글을 올린 뒤 대성인의 생애는 이 경문을 하나하나 몸으로 읽어 가는 역사가 되었다.
또 하나는, 재난의 원인을 밝히는 이 글에서 「악한 승려」가 단지 종교계 안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문제로 다루어진다는 것이다. 참성증상만은 국왕 · 대신에게 다가가 그들의 손으로 정법을 박해하게 한다. 그 결과 정법이 버려지고, 제2편에서 본 네 경의 경문대로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재난이 일어난다. 악한 승려와 권력의 결탁이 나라를 무너뜨린다는 제3장 인왕경의 논리가, 법화경에서는 「삼류의 강적」이라는 말법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권지품 이십행의 게가 예언한 삼류의 강적 가운데 셋째 참성증상만이 가장 심하다. 그 박해를 모두 몸으로 받아 「삭삭견빈출」까지 읽으신 분은 니치렌 대성인뿐이며, 그 사실이 대성인께서 법화경에 예언된 말법의 법화경 행자, 곧 어본불이심을 보인다.
본문
涅槃経に云く「我れ涅槃の後、無量百歳に四道の聖人、悉く復た涅槃せん。正法滅して後、像法の中に於て、当に比丘有るべし。 像は律を持つに似て、少かに経を読誦し、飲食を貪嗜して其の身を長養し、袈裟を著すと雖も、猶猟師の細めに視て徐に行くが如く、猫の鼠を伺うが如し。 常に是の言を唱えん、我羅漢を得たりと。外には賢善を現し、内には貪嫉を懐く。唖法を受けたる婆羅門等の如し。実には沙門に非ずして、沙門の像を現じ、邪見熾盛にして正法を誹謗せん」已上。 文に就いて世を見るに、誠に以て然なり。悪侶を誡めずんば、豈善事を成さんや。
열반경에 이르기를 「내가 열반한 뒤 무량 백 년이 지나면 사도(四道)의 성인도 모두 다시 열반하리라. 정법이 멸한 뒤 상법 가운데에 반드시 이러한 비구가 있으리라. 겉모습은 율을 지니는 듯하나 조금 경을 독송하고, 음식을 탐하고 즐겨 그 몸을 기르며, 가사를 입었으나 마치 사냥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과 같고, 고양이가 쥐를 엿보는 것과 같으리라. 늘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아라한을 얻었다』고. 겉으로는 어질고 착함을 드러내나 안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품으리라. 아법(唖法)을 받은 바라문들과 같으리라. 실로는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드러내고, 사견이 치성하여 정법을 비방하리라」 이상. 이 경문에 비추어 세상을 보니 참으로 그러하니라. 악한 승려를 경계하지 않고서 어찌 선한 일을 이룰 수 있겠느냐.
어구 풀이
- 無量百歳무량 백 년
- 셀 수 없이 많은 백 년, 곧 아주 오랜 세월. 대성인은 「시모야마어소식」에서 이를 「불멸 후 이천 년 이후」로 읽으셨다.
- 四道の聖人사도의 성인
- 사도(四道)란 한 뜻으로는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의 성문 사과를 말하고, 다른 뜻으로는 초의 · 이의 · 삼의 · 사의의 성인을 말한다. 「성(聖)」은 본래 귀의 구멍이 잘 통하여 소리를 잘 듣는다는 뜻으로, 성인이란 보통 사람이 들을 수 없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유교에서는 만인이 우러러 본보기로 삼을 이상적인 인물을 말하여 요 · 순 · 공자 등을 들고, 불교에서는 산스크리트어 아리야(ārya)의 번역으로 고귀하다는 뜻이며 바른 스승, 곧 부처를 말한다. 대성인은 「시모야마어소식」에서 이를 「부법장의 이십사 인을 가리키는가」라고 하셨다.
- 正法滅して後、像法の中に於て정법이 멸한 뒤 상법 가운데에
- 정법 천 년이 지나 상법 시대가 되고, 특히 상법 끝에서 말법에 걸친 때를 말한다. 니치칸 상인은 「상법에서도 오히려 그러하니 하물며 말법이랴. 그러므로 상말(像末)이라 한다」고 풀었다.
- 像は律を持つに似て겉모습은 율을 지니는 듯하다
- 겉으로는 계율을 굳게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상(像)」은 모습 · 겉모양이다.
- 少かに経を読誦し조금 경을 독송하다
- 경을 깊이 배우지 않고 형식으로 조금 읽을 뿐이라는 뜻이다.
- 飲食を貪嗜して其の身を長養し음식을 탐하고 즐겨 그 몸을 기르다
- 신도의 공양으로 제 몸만 살찌운다는 뜻이다.
- 猟師の細めに視て徐に行くが如く、猫の鼠を伺うが如し사냥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과 같고, 고양이가 쥐를 엿보는 것과 같다
- 신도의 보시를 노리는 모습을, 사냥감을 노리며 소리 없이 다가가는 사냥꾼과 쥐를 노리는 고양이에 비유한다.
- 我羅漢を得たり나는 아라한을 얻었다
-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떠드는 증상만이다. 권지품의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여긴다」와 같은 모습이다.
- 外には賢善を現し、内には貪嫉を懐く겉으로는 어질고 착함을 드러내나 안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품는다
- 겉으로는 현인 · 성인처럼 꾸미지만 속으로는 탐욕과 질투가 강하다는 뜻이다.
- 唖法を受けたる婆羅門아법을 받은 바라문
- 아법(唖法)은 말을 하지 않는 수행으로, 인도 바라문의 수행 가운데 하나다. 겉으로는 위엄 있는 얼굴을 하지만 설법도 못하고 신도를 이끌지도 못하며, 법문을 물어도 답하지 못하는 모습이 마치 아법을 받아 입을 다문 바라문 같다는 비유다.
- 実には沙門に非ずして、沙門の像を現じ실로는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드러낸다
- 사문(沙門)은 출가 수행자다. 참된 승려가 아니면서 승려의 모습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 邪見熾盛にして正法を誹謗せん사견이 치성하여 정법을 비방하리라
- 그릇된 견해가 불길처럼 세차게 타올라 정법을 비방한다는 것이다. 열반경의 이 예언이 끝내 「정법 비방」으로 맺어지는 데 셋째 문답 전체의 결론이 있다.
- 文に就いて世を見るに、誠に以て然なり이 경문에 비추어 세상을 보니 참으로 그러하다
- 인왕경 · 열반경 · 법화경의 경문과 대성인 당시의 세상이 꼭 들어맞는다는 판정이다.
- 悪侶を誡めずんば、豈善事を成さんや악한 승려를 경계하지 않고서 어찌 선한 일을 이룰 수 있겠느냐
- 셋째 문답의 결론이다. 「선한 일」은 나라를 편안히 하고 민중을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일이다.
열반경의 예언은 언제를 가리키는가
이 열반경의 경문이 석존 멸후 이천 년 이후의 말법 시대를 가리킨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성인은 「시모야마어소식」에서 이 열반경의 같은 글을 들어 이렇게 풀이하셨다.
此の経文に世尊未来を記し置き給う。……一身に三徳を備へ給へる仏の仏眼を以て未来悪世を鑑み給いて記し置き給う記文に云く『我涅槃の後無量百歳』云云。仏滅後二千年已後と見へぬ。又『四道の聖人悉く復涅槃せん』云云。付法蔵の二十四人を指すか。『正法滅後』等云云。像末の世と聞えたり。
이 경문에서 세존은 미래를 기록해 두셨느니라. …… 한 몸에 삼덕을 갖추신 부처께서 불안(佛眼)으로 미래의 악세를 비추어 보시고 기록해 두신 기문에 이르기를 「내가 열반한 뒤 무량 백 년」이라 하셨느니라. 불멸 후 이천 년 이후로 보이느니라. 또 「사도의 성인도 모두 다시 열반하리라」 하셨느니라. 부법장의 이십사 인을 가리키는가. 「정법이 멸한 뒤」라 하셨느니라. 상말의 세상으로 들리느니라.
경문은 「정법이 멸한 뒤 상법 가운데」라고 했다. 그런데 대성인은 이를 「상말(像末)의 세상」, 곧 상법의 끝에서 말법에 걸친 시대로 읽으셨다. 니치칸 상인은 「입정안국론 문단」에서 「상법에서도 오히려 그러하니 하물며 말법이랴. 그러므로 상말이라 한다」고 풀었다(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상법 때에 이미 이런 비구가 나타난다면, 말법에는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율을 지니는 듯한 비구 — 대성인이 지목하신 사람
「시모야마어소식」은 이어서 경문의 구절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그 비구가 누구인지를 좁혀 들어가신다.
今末法の代に比丘の似像を撰び出さば、日本国には誰の人をか引き出して大覚世尊をば不妄語の人とし奉るべき。俗男・俗女・比丘尼をば此の経文に載たる事なし。但比丘計なり。比丘は日本国に数を知らず、然るに其の中に三衣一鉢を身に帯せねば似像と定めがたし。唯持斎の法師計相似たり。一切の持斎の中には次下の文に持律ととけり。律宗より外は又脱ぬ。次下の文に『少に経を読誦す』云云。相州鎌倉の極楽寺の良観房にあらずば、誰を指し出だし経文をたすけ奉るべき。
지금 말법의 세상에서 비구의 겉모습만 닮은 자를 골라낸다면, 일본국에서는 누구를 끌어내어 대각세존을 거짓말하지 않는 분으로 모실 수 있겠느냐. 속남 · 속녀 · 비구니는 이 경문에 실려 있지 않고 다만 비구뿐이니라. 비구는 일본국에 수를 모를 만큼 많으나, 그 가운데 삼의일발(三衣一鉢)을 몸에 지니지 않으면 겉모습이 닮았다고 정하기 어려우니, 오직 지재(持齋)의 법사만이 닮았느니라. 모든 지재 가운데에서도 다음 글에 「율을 지닌다」고 설하였으니 율종 말고는 또 빠지느니라. 다음 글에 「조금 경을 독송한다」 하였으니, 사가미국 가마쿠라 고쿠라쿠사의 료칸보가 아니라면 누구를 가리켜 내세워 경문을 도울 수 있겠느냐.
경문의 대상은 비구다. 비구 가운데 겉모습이 승려다운 것은 삼의일발을 갖추고 재계를 지키는 지재의 법사다. 그 가운데 「율을 지니는 듯하다」고 했으니 율종이다. 그 가운데 「조금 경을 독송한다」고 했으니 — 이리하여 경문은 가마쿠라 고쿠라쿠사의 료칸보 한 사람에게 이른다. 제3장의 인왕경, 제4장의 법화경이 모두 료칸의 행적과 맞았듯, 열반경의 이 예언도 대성인께서는 같은 사람에게서 그 적중을 보셨다.
次下の文に『猶猟師の細視徐行するが如く、猫の鼠を伺うが如し。外には賢善を現し、内には貪嫉を懐く』等云云。両火房にあらずば誰をか三衣一鉢の猟師伺猫として仏説を信ず可し。
다음 글에 「마치 사냥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과 같고, 고양이가 쥐를 엿보는 것과 같다. 겉으로는 어질고 착함을 드러내나 안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품는다」고 하였느니라. 료카보(兩火房)가 아니라면 누구를 삼의일발의 사냥꾼 · 엿보는 고양이로 삼아 부처의 말씀을 믿을 수 있겠느냐.
「료카보(兩火房)」는 대성인께서 료칸(良觀)을 그 음을 빌려 부르신 이름이다. 료칸이 머물던 고쿠라쿠사와 가마쿠라의 어소(御所)가 잇따라 불탄 일에 빗대어 이렇게 부르셨다고 전한다.
대성인은 이 글을 다음과 같이 맺으신다. 슬프게도 당시의 속남 · 속녀 · 비구니 등 단나들이 산의 사슴이 되고 집의 쥐가 되어, 사냥꾼과 고양이를 닮은 료카보에게 노림을 당하고 속아서, 금생에는 나라를 지키는 천조태신 · 정팔번 등에게 버림받고 다른 나라의 군대에 패하여, 고양이가 쥐를 잡듯 사냥꾼이 사슴을 쏘아 죽이듯 무사들은 쏘아 쓰러지고 베어 쓰러질 것이며, 여인들은 붙잡혀 다른 나라로 끌려가 왕소군 · 양귀비와 같이 되고, 후생에는 무간대성에 떨어지리라고. 사냥꾼과 고양이의 비유가 노리는 쪽이 아니라 노림을 당하는 쪽 — 그를 따르는 민중 — 의 운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악한 승려를 믿는 것은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타국침핍의 난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입정안국론의 논리가 이 한 단락에 응축되어 있다.
- 무량 백 년無量百歳불멸 후 이천 년 이후
- 사도의 성인四道の聖人부법장의 이십사 인을 가리키는가
- 정법이 멸한 뒤 상법 가운데正法滅して後、像法の中상말의 세상(니치칸 상인: 상법에서도 그러하니 하물며 말법이랴)
- 반드시 비구가 있으리라속남 · 속녀 · 비구니가 아니라 비구 → 삼의일발의 지재 법사
- 율을 지니는 듯하다律を持つに似て율종
- 조금 경을 독송한다少かに経を読誦し가마쿠라 고쿠라쿠사의 료칸보
- 사냥꾼 · 고양이 · 겉은 어질고 속은 탐욕과 질투료카보
사냥꾼과 고양이 — 경문이 그린 악한 승려의 모습
열반경의 이 경문은 악한 승려의 겉과 속을 정밀하게 대비한다. 겉으로는 계율을 지니는 모습이고, 경을 읽고, 가사를 입고, 「나는 아라한을 얻었다」고 말하며 어질고 착한 얼굴을 한다. 속으로는 음식을 탐하여 제 몸을 기르고, 신도의 보시를 사냥감처럼 노리며, 탐욕과 질투를 품는다. 법문을 물으면 아법을 받은 바라문처럼 입을 다문다. 실로는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에 「사견이 치성하여 정법을 비방하리라」가 온다.
이 대비는 제4장 권지품의 참성증상만과 같은 구조다. 권지품은 「아련야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육통의 아라한과 같이 공경받는다」는 겉과 「이양에 탐착한다」는 속을 대비했다. 열반경은 「율을 지니는 듯하다」 「나는 아라한을 얻었다」는 겉과 「사냥꾼 · 고양이」 「탐욕과 질투」라는 속을 대비한다. 두 경이 말법의 악한 승려를 같은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성자의 겉모습이 완벽할수록 그 속은 보이지 않는다. 묘락대사가 「뒤로 갈수록 더욱 알아보기 어렵다」고 한 까닭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또 열반경의 이 비구는 「사견이 치성하여 정법을 비방」한다. 제3장 인왕경의 악비구가 「스스로 파불법의 인연을 설」했듯이, 이들은 자기가 정법을 비방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다. 오히려 자기가 바른 법을 지닌 성자라고 믿고, 정법의 행자를 「사견의 사람」이라 참소한다. 비방하는 쪽이 비방받는 쪽을 비방자로 몬다. 이 뒤집힘이 말법의 악한 승려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글에 비추어 세상을 보니」 — 세 경의 결론
이상으로 대성인은 인왕경 · 열반경 · 법화경의 글을 들어, 겉으로는 불법이 성한 것처럼 보여도 실질은 완전히 땅에 떨어졌음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경문들이 대성인 당시의 세상과 꼭 들어맞기 때문에 「이 경문에 비추어 세상을 보니 참으로 그러하다」고 하신 것이다. 이 경문들은 세상을 비추는 밝은 거울이며,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불법의 원리임을 보여 준다.
「글에 비추어 세상을 본다」는 말은 대성인께서 법을 판단하시는 방법 자체를 보여 준다. 세상을 먼저 보고 그에 맞는 글을 찾는 것이 아니라, 경문을 거울로 삼아 세상을 비춘다. 제3장에서 본 「불법의 사정은 경문의 밝은 거울에 의한다」(「호조도키무네에의 어장」)와 같은 정신이다. 객은 절과 승려의 수라는 「세상」을 보고 불법이 흥륭한다고 했다. 주인은 경문이라는 「거울」로 그 세상을 비추어, 그 승려들이 경문에 예언된 악비구 · 악지식 · 참성증상만임을 보였다. 같은 세상을 보면서 결론이 정반대가 된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보는가가 달랐기 때문이다.
소선 · 중선 · 대선 — 「선한 일」의 뜻
마지막 구절 「악한 승려를 경계하지 않고서 어찌 선한 일을 이룰 수 있겠느냐」의 「선한 일(善事)」이란, 민중을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일이다. 선이란 사회에 아름다움의 가치와 이로움의 가치를 주는 것인데, 여기에도 작은 선 · 중간의 선 · 큰 선을 나누어야 한다.
작은 사회, 예컨대 어느 한 지역에 이익이 되는 일은 그 지역의 선이다. 그러나 그것이 더 넓은 지역 전체에 손해가 된다면, 그 넓은 지역 사회에서 보면 작은 사회의 선은 악이 된다. 다시 그 넓은 지역 사회의 이익은 그 사회의 선이지만, 그것이 나라 전체에 불이익이 된다면 악이 된다. 요약하면, 작은 선이 중간의 선에 맞서면 악이 되고, 중간의 선이 큰 선에 맞서면 큰 악이 된다.
이 원리는 제3장에서 본 료칸의 자선 사업에 그대로 비추어진다. 다리를 놓고 길을 내고 가난한 이를 돕는 일은 그 자체로는 작은 선이다. 그러나 그 자금을 얻으려고 관문에서 통행세를 거두어 나그네를 괴롭히고, 살생 금단으로 어민과 농민의 생업을 빼앗고, 무엇보다 그 명성으로 권력에 다가가 정법의 행자를 사죄에 처하게 하려 했다. 작은 선이 큰 선에 맞섰으니 그것은 큰 악이 되었다. 대성인이 「성우문답초」에서 「길을 내고 다리를 놓는 일도 도리어 사람들의 탄식이 되었다」고 하신 뜻이 여기에 있다.
크고 가장 높은 선은 인류 사회 전체에 행복과 평화를 주는 것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그 행복을 근본에서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불법의 근본이자 말법 어본불의 진의인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믿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큰 악의 근원인 그릇된 가르침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참된 행복을 위한 선한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악한 승려를 경계하지 않고서 어찌 선한 일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 소선한 지역의 이익더 넓은 지역에 손해가 되면 악
- 중선넓은 지역 사회의 이익나라 전체에 불이익이 되면 악
- 대선(지고선)인류 사회 전체에 행복과 평화를 주는 것작은 선이 중간의 선에 맞서면 악, 중간의 선이 큰 선에 맞서면 큰 악
이리하여 셋째 문답은 끝난다. 객은 「불법은 흥륭하고 있다」고 했고, 주인은 「그 승려들이 바로 경문의 악비구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객은 아직 납득하지 않는다. 넷째 문답에서 객은 다시 성을 내며, 명왕과 성인이 받드는 승려를 어찌 악비구라 하느냐, 도대체 누구를 악비구라 하느냐고 묻는다. 그 대답으로 주인은 마침내 법연과 그의 『선택집』의 이름을 든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열반경이 예언한 「율을 지니는 듯한 비구」는 말법에 나타나며, 대성인은 그 적중을 가마쿠라의 율승에게서 보셨다. 그런 악한 승려를 경계하는 것이 선한 일의 출발이며, 가장 큰 선은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로 민중을 근본에서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 편을 맺으며
셋째 문답은 하나의 오해를 바로잡는 데서 시작했다. 객은 절과 탑과 승려가 넘쳐 나는 나라를 보고 「누가 불법을 버렸다는 말인가」라고 물었다. 후한 명제의 백마사에서 쇼토쿠 태자의 시텐노사까지, 히에이잔과 남도와 온조사와 도지까지, 관을 닦는 이들과 교를 전하는 이들까지 — 객이 든 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불교가 백제에서 건너와 소가씨와 모노노베씨의 반세기에 걸친 다툼을 거쳐 이 나라에 뿌리내린 역사도, 그 뒤 수백 년 동안 온 나라에 절이 세워진 역사도 거짓이 아니었다.
주인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법사는 첨곡하고 왕신은 사정을 가리지 못한다」는 한 마디로 물음의 기준을 바꾸었다. 불법이 있는가 없는가는 절의 수가 아니라 법의 바르고 그름으로 가려진다. 그리고 그 기준은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경문이다. 주인은 인왕경으로 악비구와 권력의 결탁을, 열반경으로 악상보다 무서운 악지식을, 법화경 권지품으로 말법에 나타날 삼류의 강적을, 다시 열반경으로 율을 지니는 듯한 비구의 겉과 속을 보였다. 그리고 「글에 비추어 세상을 보니 참으로 그러하다」고 맺었다.
이 경문들이 그저 옛 예언이 아니었다는 것은 입정안국론을 올린 뒤의 역사가 보여 주었다. 법연 문하의 염불에 귀의한 호조 시게토키는 마쓰바가야쓰 습격과 이즈 유배의 배후였다고 전한다. 자선을 간판으로 권력에 다가간 율승 고쿠라쿠사 료칸은 기우 대결에 지자 약속을 어기고, 막부의 실력자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와 손잡아 대성인을 다쓰노구치의 형장으로 보냈다. 「여러 악비구가 국왕 앞에서 파불 · 파국의 인연을 설하고, 그 왕은 분별하지 못하고 믿는다」는 인왕경의 글과, 「성자로 공경받으며 국왕 · 대신에게 행자를 참소한다」는 권지품의 글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리고 그 박해를 모두 몸으로 받아 「자주자주 쫓겨나리라」의 두 글자까지 읽으신 분이 대성인이셨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편이 밝힌 것은 재난의 원인이 「사람」을 거쳐 온다는 것이다. 정법을 버리게 하는 것은 정법을 설해야 할 승려이며, 그 승려가 권력과 손잡을 때 나라가 기운다. 그러나 객은 아직 납득하지 않는다. 다음 입정안국론 제4편 「정법 비방의 원흉 — 법연의 『선택집』」에서 객은 다시 성을 내며 「명왕과 성인이 받드는 승려를 어찌 악비구라 하느냐,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가」라고 묻는다. 주인은 그 물음에 답하여 마침내 법연의 이름을 들고, 『선택집』의 「사(捨) · 폐(閉) · 각(閣) · 포(抛)」를 펼쳐 방법의 근원을 밝힌다.
더 읽기
- 입정안국론 제2편 「재난 유래의 경증 — 네 경의 명문」 — 이 편의 객이 반문한 「천하 세상이 여러 경을 버리고 떠났다」는 결론을 네 경으로 세운 편
- 입정안국론 제4편 「정법 비방의 원흉 — 법연의 『선택집』」 — 「누가 악비구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법연과 『선택집』을 밝힌다
- 개목초 — 권지품 이십행의 게와 삼류의 강적, 「삭삭견빈출」을 몸으로 읽으신 법화경 행자의 자각
- 선시초 — 문영 8년 9월 12일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하신 두 번째 고명과 자계반역 · 타국침핍의 예언
- 보은초 제5편 「대성인의 국가 간효와 재난의 근원」 — 십일통어서와 다쓰노구치에 이르는 간효의 역사, 세 번의 고명
- 니치렌 대성인 — 입정안국론 상주에서 다쓰노구치 · 사도에 이르는 생애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입정안국론」,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일본어판) 17–33쪽 — 인용한 다른 어서의 쪽은 본문 각 인용에 적었다
- 『인왕반야바라밀경』(구마라집 역) 촉루품, T8 no.245
- 『대반열반경』(북본, 담무참 역)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등, T12 no.374
- 『묘법연화경』 권지품 제13, T9 no.262
- 묘락대사, 『법화문구기』 권8 (「개목초」의 인용을 통해)
- 니치칸 상인, 「입정안국론 문단(立正安国論文段)」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 『일본서기』 긴메이기 · 비다쓰기 · 요메이기 · 스슌기, 『상궁성덕법왕제설』, 『원흥사가람연기병유기자재장』, 교넨 『삼국불법전통연기』, 전교대사 『현계론』, 『부상략기』, 『불조통기』 권35 — 불교 전래의 연대와 경위
연구
- 立正大学日蓮教学研究所 編, 『昭和定本日蓮聖人遺文』, 身延山久遠寺, 1952–1959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On Establishing the Correct Teaching for the Peace of the Land」 수록)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