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초」는 건치 2년(1276) 7월 21일, 미노부에 들어가신 지 3년째 되던 해에 니치렌 대성인이 옛 스승 도젠보(道善房)의 부음을 듣고 지으시어, 어린 시절의 사형인 아와 세이초사의 조켄보(淨顯房) · 기조보(義淨房)에게 보내신 글이다. 늙은 여우와 흰 거북의 고사로 시작해 「은혜를 갚으려면 반드시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세우고, 그 명제를 따라 인도 · 중국 · 일본 삼국의 불교사를 법화경 한 경의 잣대로 꿰뚫어 간다. 그 가운데 가장 무거운 비판은 진언, 특히 천태좌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진언으로 기운 자각(엔닌) · 지증(엔친)에게 향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법 · 상법의 어떤 논사 · 대사도 넓히지 않은 「셋」, 곧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 · 본문의 제목을 밝히신다. 오대부 가운데 삼대비법의 명목이 처음으로 나란히 드러나는 어서이며, 송문에서 대성인은 이 글을 「대사 중의 대사」를 적은 것이라 하셨다. 한 사람의 옛 스승을 위한 추선의 글이 어찌하여 말법 만년의 법을 세우는 글이 되었는가 — 이 물음이 「보은초」 전체를 여는 열쇠다.
「보은초」는 어서전집 293쪽부터 329쪽까지 이어지는 긴 글에 330쪽의 송문(送文)이 붙어 있다. 대성인의 저술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대작으로, 닛코 상인이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에서 후대의 귀감으로 삼을 십대부(十大部)를 들 때 그 하나로 꼽혔고, 오늘날에는 「입정안국론」 · 「개목초」 · 「관심의 본존초」 · 「선시초」와 함께 오대부(五大部)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사이트에서는 본문을 37장과 송문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여덟 편으로 묶어 차례로 읽는다.
이 글은 겉으로 보면 추선(追善)의 글이다. 첫머리는 은혜를 잊지 않는 짐승과 옛 충신의 이야기로 열리고, 끝은 「이 공덕은 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다」라는 말로 닫힌다. 그러나 그 사이에 놓인 서른 몇 장은 보은의 방법을 묻는 데서 시작해 불교 전체의 승렬을 판정하고, 대성인 자신이 겪으신 법난의 의미를 밝히며, 마침내 말법에 넓혀야 할 정법을 세우는 데까지 이른다. 겉의 뜻(한 스승에 대한 보은)과 속의 뜻(어본불이 삼대비법을 세워 일체중생을 구하는 것)이 한 글 안에서 겹쳐 있는 것이다. 서강에서는 먼저 이 글이 쓰인 사정을 살피고, 다음으로 제호와 대의를 통해 37장의 흐름을 개관하며, 마지막으로 그 원의, 곧 대성인의 내증을 짚는다.
여덟 편은 네 갈래로 이어진다. 보은의 도리와 불법을 배우는 길을 세우는 제1편, 정법 · 상법 시대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을 더듬는 제2~4편,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을 다루는 제5 · 6편, 그리고 대성인의 지은보은과 삼대비법을 밝히는 제7 · 8편이다.
여덟 편
- 제1편 보은의 도리와 여러 종의 미란 · 제1~4장 · 어서 293–294쪽 — 늙은 여우 · 흰 거북 · 예양 · 홍연의 고사로 보은의 도리를 열고, 은혜를 갚으려면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하며 그 때문에 부모 · 스승의 뜻을 거스르는 출가도 참된 보은이 된다고 밝힌다. 일대 성교를 비추는 열 개의 거울(十宗)이 저마다 제일을 다투는 미란을 들고, 열반경의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유계에 따라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는다. 장: 제1장 보은의 도리를 밝히다 · 제2장 보은의 요술을 밝히다 · 제3장 여러 종의 미란을 들다 · 제4장 열반경의 유계
- 제2편 법화경 제일과 재세 · 정법의 난 · 제5~7장 · 어서 294–298쪽 — 법사품의 이금당(已今當)과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는 경문으로 법화경 제일을 논증하고, 월지 · 용궁에 더 뛰어난 경이 있으리라는 의심을 물리친다. 법화경 제일을 말하는 사람에게 큰 난이 따른다는 「유다원질 황멸도후」를 들어 석존 재세의 마의 방해와 정법 시대 논사들의 법난을 살핀다. 장: 제5장 일대 제경의 승렬 · 제6장 법화경이 가장 제일임을 밝히다 · 제7장 재세와 정법 시대의 난
- 제3편 천태 · 전교의 홍통 · 제8~12장 · 어서 298–305쪽 — 상법 시대 중국의 천태대사가 남삼북칠, 특히 광택사 법운의 「화엄 제일 · 열반 제이 · 법화 제삼」을 진(陳)나라 황제 앞의 공장 대결에서 깨뜨린 일, 천태 멸후 법상 · 화엄 · 진언 세 종이 들어와 다시 미란이 일어난 일, 일본의 전교대사가 남도 육종을 굴복시키고 진언을 법화천태종 아래에 둔 일을 밝힌다. 장: 제8장 한토 천태대사의 홍통 · 제9장 천태대사의 공장 대결 · 제10장 천태 멸후 세 종의 미란 · 제11장 일본 전교대사의 홍통 · 제12장 전교대사의 진언 파절
- 제4편 진언으로 기운 예산 — 홍법 · 자각 · 지증 · 제13~19장 · 어서 305–311쪽 — 홍법(구카이)의 「제일 진언 · 제이 화엄 · 제삼 법화」와 「희론」의 판정, 천태좌주이면서 「이동사승(理同事勝)」으로 진언에 기운 자각(엔닌) · 지증(엔친)을 파하고, 경문과 전교대사의 글로 석존 · 천태 · 전교의 삼국 삼사를 세운 뒤 일본 전체가 방법(謗法)에 떨어졌음을 밝힌다. 장: 제13장 홍법의 진언 전홍 · 제14장 자각의 진언 전락 · 제15장 지증의 진언 전락 · 제16장 자각 · 지증을 파책하다 · 제17장 법화 최승의 경과 석 · 제18장 법화경의 삼국 삼사 · 제19장 일본에 비방자만 있음을 밝히다
- 제5편 대성인의 국가 간효와 재난의 근원 · 제20~24장 · 어서 311–317쪽 — 홀로 방법의 근원을 말해 두 번의 유죄와 다쓰노구치의 참수 위기를 겪으신 대성인의 국가 간효,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이다」라는 경고와 그 뒤의 자계반역 · 몽골 내습, 재난의 까닭과 나라 안의 방법, 가상대사의 참회, 중국 진언 세 조사(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의 행적을 다룬다. 장: 제20장 니치렌 대성인의 국가 간효 · 제21장 재난의 까닭을 밝히다 · 제22장 나라 안의 방법을 밝히다 · 제23장 가상의 참회와 방죄 · 제24장 중국의 진언 세 조사를 파하다
- 제6편 진언의 악한 현증과 홍법의 광혹 · 제25~29장 · 어서 317–321쪽 — 홍법의 기우와 자각의 「해를 쏘는 꿈」이라는 악한 현증, 선도의 꿈의 예, 홍법에게 돌려지는 영험(『반야심경비건』 · 『공작경음의』 · 삼고 전설)을 하나하나 따져 그 광혹을 꾸짖고, 승구의 난의 조복이 도리어 「환착어본인(還著於本人)」이 된 일로 진언 파절을 맺는다. 장: 제25장 홍법 · 자각의 악한 현증 · 제26장 선도의 악몽을 예로 들다 · 제27장 홍법의 영험을 파하다 · 제28장 홍법의 광혹을 꾸짖다 · 제29장 진언 파절을 맺다
- 제7편 지은보은과 제목의 간심 · 제30~33장 · 어서 321–326쪽 — 대성인이 그 모든 대난을 부모 · 스승 · 삼보 · 국가의 은혜를 갚기 위해 견디셨음을 밝히고, 옛 스승 도젠보의 신심을 아파하며 두 사형의 공을 기리신 뒤, 법화경 한 부의 간심이 묘법연화경의 제목이며 남묘호렌게쿄 앞에서는 모든 경 · 부처의 작용이 이에 거두어진다고 밝힌다. 장: 제30장 니치렌 대성인의 지은보은 · 제31장 도젠보에 대한 보은 · 제32장 간략히 제목의 간심을 보이다 · 제33장 널리 제목의 간심을 밝히다
- 제8편 본문의 삼대비법과 보은의 맺음 · 제34~37장 + 송문 · 어서 326–330쪽 — 정법 · 상법의 논사 · 대사들이 넓히지 않은 「셋」 —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 · 본문의 제목을 밝히고, 「니치렌이 자비 광대하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 밖 미래까지도 흐를 것이다」라고 선언한 다음, 그 공덕을 도젠보에게 돌려 맺는다. 송문은 다카가모리와 묘 앞에서 읽게 하라는 지시를 전한다. 장: 제34장 마명 · 용수 등의 대승 홍통 · 제35장 천태 · 전교의 적문 홍통 · 제36장 본문의 삼대비법을 밝히다 · 제37장 바로 보은을 맺다 · 보은초 송문
- 보은의 도리와 불법을 배우는 길제1편
-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제2편제3편제4편
- 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제5편제6편
- 지은보은과 삼대비법제7편제8편
제1편보은의 도리와 여러 종의 미란제1~4장 · 어서 293–294쪽
- 제1장보은의 도리를 밝히다
- 제2장보은의 요술을 밝히다
- 제3장여러 종의 미란을 들다
- 제4장열반경의 유계
제2편법화경 제일과 재세 · 정법의 난제5~7장 · 어서 294–298쪽
- 제5장일대 제경의 승렬
- 제6장법화경이 가장 제일임을 밝히다
- 제7장재세와 정법 시대의 난
제3편천태 · 전교의 홍통제8~12장 · 어서 298–305쪽
- 제8장한토 천태대사의 홍통
- 제9장천태대사의 공장 대결
- 제10장천태 멸후 세 종의 미란
- 제11장일본 전교대사의 홍통
- 제12장전교대사의 진언 파절
제4편진언으로 기운 예산 — 홍법 · 자각 · 지증제13~19장 · 어서 305–311쪽
- 제13장홍법의 진언 전홍
- 제14장자각의 진언 전락
- 제15장지증의 진언 전락
- 제16장자각 · 지증을 파책하다
- 제17장법화 최승의 경과 석
- 제18장법화경의 삼국 삼사
- 제19장일본에 비방자만 있음을 밝히다
제5편대성인의 국가 간효와 재난의 근원제20~24장 · 어서 311–317쪽
- 제20장니치렌 대성인의 국가 간효
- 제21장재난의 까닭을 밝히다
- 제22장나라 안의 방법을 밝히다
- 제23장가상의 참회와 방죄
- 제24장중국 진언의 세 조사를 파하다
제6편진언의 악한 현증과 홍법의 광혹제25~29장 · 어서 317–321쪽
- 제25장홍법 · 자각의 악한 현증
- 제26장선도의 악몽을 예로 들다
- 제27장홍법의 영험을 파하다
- 제28장홍법의 광혹을 꾸짖다
- 제29장진언 파절을 맺다
제7편지은보은과 제목의 간심제30~33장 · 어서 321–326쪽
- 제30장니치렌 대성인의 지은보은
- 제31장도젠보에 대한 보은
- 제32장간략히 제목의 간심을 보이다
- 제33장널리 제목의 간심을 밝히다
제8편본문의 삼대비법과 보은의 맺음제34~37장 + 송문 · 어서 326–330쪽
- 제34장마명 · 용수 등의 대승 홍통
- 제35장천태 · 전교의 적문 홍통
- 제36장본문의 삼대비법을 밝히다
- 제37장바로 보은을 맺다
- 보은초 송문
건치 2년 7월, 미노부에서 기요스미로
「보은초」는 건치 2년(1276) 7월 21일, 니치렌 대성인이 가이국 하키리 고을의 미노부산에서 지으시어, 아와국 세이초사(清澄寺)에서 고 도젠보의 추선을 위해 조켄보와 기조보에게 보내신 글이다. 본문 끝의 날짜와 수신 줄이 이를 그대로 전한다. 날짜 줄은 「건치 2년 병자년 7월 21일 이를 적는다」이고, 이어서 「가이주 하키리 고을 미노부산에서 아와국 도조 군 기요스미산의 조켄보 · 기조보 처소에 받들어 보낸다」라고 적혀 있다. 5일 뒤인 7월 26일에는 짧은 송문이 함께 쓰였다.
이때는 대성인이 문영 11년(1274) 5월에 미노부로 들어가신 지 3년째 되던 해로, 연세 55세였다. 사도 유배에서 풀려나 가마쿠라로 돌아오신 뒤 4월 8일 헤이노사에몬노조를 만나 「올해 몽골은 반드시 쳐들어온다」고 말씀하셨고, 그 말대로 같은 해 10월 몽골군이 쓰시마 · 이키를 거쳐 규슈에 상륙하였다. 「보은초」는 그로부터 두 해 가까이 지나, 다음 내습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쓰였다. 본문 제30장에서 대성인은 미노부 입산에 이르기까지의 행로를 스스로 되짚으시는데, 그 끝에서 이 모든 일을 「오로지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나라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하신 것이라고 맺으신다.
これは・ひとへに父母の恩・師匠の恩・三宝の恩・国恩をほうぜんがために身をやぶり命をすつれども破れざれば・さでこそ候へ
이것은 오로지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나라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몸을 깨뜨리고 목숨을 버리려 하였으나 깨지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니라.
정필은 미노부에 전해졌으나 메이지 8년(1875)의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오늘날의 본문은 사본에 의해 전해진다.
십대부의 하나 —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의 기록
닛코 상인은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에서 대성인의 저술 가운데 후대의 귀감으로 삼을 열 편, 이른바 십대부를 들었다. 그 가운데 「보은초」 항목은 다음과 같다.
一、報恩抄一巻、今開して上下と為す。身延山に於て本師道善房聖霊の為に作り清澄寺に送る日向が許に在りと聞く、日興所持の本は第二転なり、未だ正本を以て之を校えず。
하나, 보은초 1권. 지금 펼쳐서 상 · 하로 나누었다. 미노부산에서 본사(本師) 도젠보의 성령을 위해 지어 세이초사에 보내셨다. (정본은) 니코의 처소에 있다고 듣는다. 닛코가 지닌 본은 두 번째로 옮겨 쓴 것이며, 아직 정본과 대조하지 못하였다.
짧은 기록이지만 담긴 사실이 많다. 첫째, 본래 한 권이던 글을 닛코 상인이 분량을 보아 상 · 하 두 권으로 나누었다. 둘째, 저술의 동기가 「본사 도젠보의 성령을 위해서」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셋째, 글은 세이초사로 보내졌는데, 정본은 그 뒤 기요스미에 가서 글을 읽은 민부 니코의 처소에 있다고 전해졌다. 넷째, 닛코 상인이 지닌 본은 정본에서 두 번 건너 옮겨 쓴 사본이었으며 아직 정본과 맞추어 보지 못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문헌을 다루는 태도가 매우 엄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록과 송문, 그리고 본문 제31장의 말씀을 아울러 보면, 「보은초」가 도젠보의 서거 소식을 듣고 보은사덕(報恩謝德)을 위해 지어져 조켄보 · 기조보에게 보내졌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십대부는 흔히 「입정안국론」 · 「개목초」 · 「관심의 본존초」 · 「선시초」 · 「보은초」의 오대부에 「창법화제목초」 · 「법화취요초」 · 「사신오품초」 · 「시모야마어소식」 · 「본존문답초」를 더한 열 편으로 헤아린다.
옛 스승 도젠보와 두 사형
대성인은 12세에 아와국 세이초사에 올라 배움을 시작하셨다. 그때의 스승이 도젠보(道善房)이고, 형뻘 되는 사형이 조켄보(淨顯房)와 기조보(義淨房)였다. 이 세 사람이 「보은초」를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대성인은 뒤에 도젠보를 스승으로 하여 출가하셨다고 전한다.

건장 5년(1253) 4월 28일, 대성인은 바로 이 세이초사의 쇼부쓰보(諸佛坊) 지부쓰도(持佛堂) 남쪽 마루에서 처음으로 남묘호렌게쿄를 부르시어 삼대비법의 가르침을 펴셨다. 이른바 입종선언이다. 그러나 그 땅의 지두(地頭) 도조 사에몬 가게노부(東條左衛門景信)는 열렬한 염불 신자였기에 크게 노하여 대성인을 박해하였다. 세이초사 안의 대중도 대부분 대성인의 정의에 반대하였고, 대성인은 조켄보와 기조보 두 사람이 숨겨 주어 겨우 산을 빠져나가실 수 있었다. 「보은초」 본문은 두 사람의 이 공을 이렇게 기리신다.
但し各各・二人は日蓮が幼少の師匠にて・おはします、勤操僧正・行表僧正の伝教大師の御師たりしが・かへりて御弟子とならせ給いしがごとし、日蓮が景信にあだまれて清澄山を出でしにかくしおきてしのび出でられたりしは天下第一の法華経の奉公なり後生は疑いおぼすべからず
다만 그대들 두 사람은 니치렌의 어린 시절의 스승이시니, 근조 승정 · 행표 승정이 전교대사의 스승이었으나 도리어 그 제자가 되신 것과 같으니라. 니치렌이 가게노부에게 원수로 여겨져 기요스미산을 나올 때 숨겨 두었다가 몰래 빠져나가게 하신 것은 천하 제일의 법화경에 대한 봉공이니, 후생은 의심하지 마시라.
근조(勤操)와 행표(行表)는 전교대사가 젊은 날 배운 남도의 스승들이다. 전교대사가 법화천태종을 세우자 그 옛 스승들이 도리어 대사에게 귀의하였듯이, 대성인의 어린 날의 스승 격인 두 사형이 이제 대성인의 법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는 비유다. 그리고 그들이 위기의 순간에 대성인을 숨겨 탈출시킨 일을 「천하 제일의 법화경 봉공」이라고까지 높이시며 「후생은 의심하지 말라」고 보증하신다. 같은 뜻은 몇 해 뒤 조켄보에게 보내신 「본존문답초」에도 되풀이된다.
貴辺は地頭のいかりし時・義城房とともに清澄寺を出でておはせし人なれば何となくともこれを法華経の御奉公とおぼしめして生死をはなれさせ給うべし
귀하는 지두가 노하였을 때 기조보와 함께 세이초사를 나오신 분이므로, 다른 무엇이 없더라도 이것을 법화경에 대한 봉공으로 여기시어 생사를 떠나시게 될 것이니라.
겁 많은 스승 — 도젠보의 신앙
두 사형과 달리 스승 도젠보는 겁이 많고 마음이 좁아 지두의 권세를 두려워하였고, 세이초사 주지로서 제 몸을 지키는 데 급급하였다. 대성인의 가르침이 옳다고 여기기도 했고 특히 만년에는 마음이 끌리는 데도 있었으나, 제 몸을 지키려면 염불을 떠날 수 없었고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생각에 머물렀다. 「보은초」 제31장에서 대성인은 스승의 이 모습을 숨기지 않고 적으신다.
故道善房はいたう弟子なれば日蓮をば・にくしとは・をぼせざりけるらめども・きわめて臆病なりし上・清澄を・はなれじと執せし人なり、地頭景信がをそろしさといゐ・提婆・瞿伽利に・ことならぬ円智・実成が上と下とに居てをどせしをあながちにをそれて・いとをしと・をもうとしごろの弟子等をだにも・すてられし人なれば後生はいかんがと疑わし、但一の冥加には景信と円智・実成とが・さきにゆきしこそ一のたすかりとは・をもへども彼等は法華経十羅刹のせめを・かほりて・はやく失ぬ、後にすこし信ぜられてありしは・いさかひの後のちぎりきなり、ひるのともしびなにかせん其の上いかなる事あれども子弟子なんどいう者は不便なる者ぞかし、力なき人にも・あらざりしがさどの国までゆきしに一度もとぶらはれざりし事は法華経を信じたるにはあらぬぞかし
고 도젠보는 (니치렌이) 각별한 제자였으므로 니치렌을 밉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겠지만, 매우 겁이 많았던 데다 기요스미를 떠나지 않으려고 집착한 사람이었다. 지두 가게노부가 두렵기도 하였고, 제바 · 구가리와 다르지 않은 엔치 · 지쓰조가 위아래에 버티고 앉아 위협하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여, 사랑스럽다고 여기던 여러 해의 제자들마저 버리신 사람이었으니 후생이 어떠할지 의심스럽다. 다만 하나의 명가(冥加)로는 가게노부와 엔치 · 지쓰조가 먼저 간 것을 하나의 구원으로 생각하지만, 그들은 법화경과 십나찰의 책망을 받아 일찍 죽은 것이다. 뒤에 조금 믿으셨던 것은 싸움이 끝난 뒤의 몽둥이와 같으니, 대낮의 등불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게다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식이나 제자라는 것은 가엾은 존재인 것이다. 힘없는 사람도 아니었건만, (니치렌이) 사도국까지 갔는데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으셨던 것은 법화경을 믿은 것이 아니니라.
여기에 등장하는 엔치보(円智房)와 지쓰조보(実成房)는 세이초사에서 대성인에게 적대한 승려들로, 대성인은 이들을 석존을 해친 제바달다와 구가리에 견주신다. 도젠보의 위아래 자리에서 그를 위협했다는 표현으로 보아, 세이초사 안에는 대성인에게 맞서는 세력이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과 가게노부가 도젠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을 대성인은 법화경과 십나찰의 책망으로 보시면서도, 그것이 도젠보에게 「하나의 구원」이 되었을 것이라고 헤아리신다. 그러나 뒤늦은 신심은 「대낮의 등불」과 같다고 하시고, 사도 유배 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일을 들어 그것이 법화경을 믿은 것은 아니었다고 엄하게 판정하신다. 스승에 대한 애틋함과 법에 대한 엄정함이 한 문단 안에 함께 있다.
「본존문답초」에서도 같은 평가가 보인다.
故道善御房は師匠にておはしまししかども法華経の故に地頭におそれ給いて心中には不便とおぼしつらめども外にはかたきのやうににくみ給いぬ、後にはすこし信じ給いたるやうにきこへしかども臨終にはいかにやおはしけむおぼつかなし
고 도젠 어방은 스승이셨지만, 법화경 때문에 지두를 두려워하시어 마음속으로는 가엾게 여기셨겠지만 겉으로는 원수처럼 미워하셨다. 뒤에는 조금 믿으신 듯이 들렸으나 임종 때 어떠하셨을지 걱정스럽다.
- 도젠보옛 스승 · 세이초사의 승려, 겁이 많아 염불을 떠나지 못함 · 만년에 조금 믿음
- 조켄보 · 기조보어린 시절의 사형, 1253년 대성인의 탈출을 도움 → 「천하 제일의 법화경 봉공」 · 본초의 수신인
- 민부 니코본초를 지니고 가서 낭독한 제자
- 도조 사에몬 가게노부지두 · 열렬한 염불 신자, 대성인을 박해 · 기요스미의 사슴을 사냥
- 엔치보 · 지쓰조보세이초사 안에서 대성인에게 적대, 「제바 · 구가리와 다르지 않다」
- 영가(領家)장원의 영주 · 소송에서 대성인이 편을 듦
문영 원년 11월 14일 — 니시조 하나부사의 대면
도젠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선무외삼장초」에 적힌 한 장면에서 가장 생생하게 드러난다. 문영 원년(1264) 11월 14일, 대성인은 아와국 니시조 하나부사(西條華房)의 승방에서 십여 년 만에 옛 스승을 만나셨다.
此の恩を報ぜんが為に清澄山に於て仏法を弘め道善御房を導き奉らんと欲す、而るに此の人愚癡におはする上念仏者なり三悪道を免るべしとも見えず、而も又日蓮が教訓を用ふべき人にあらず、れども文永元年十一月十四日・西条華房の僧坊にして見参に入りし時 彼の人の云く我智慧なければ請用の望もなし、年老いていらへなければ念仏の名僧をも立てず世間に弘まる事なれば唯南無阿弥陀仏と申す計りなり、又我が心より起らざれども事の縁有つて阿弥陀仏を五体まで作り奉る是れ又過去の宿習なるべし、此の科に依つて地獄に堕つべきや等云云、爾時に日蓮意に念はく別して中違ひまいらする事無けれども東条左衛門入道蓮智が事に依つて此の十余年の間は見奉らず但し中不和なるが如し、穏便の義を存じおだやかに申す事こそ礼儀なれとは思いしかども生死界の習ひ老少不定なり又二度見参の事・難かるべし、此の人の兄道義房義尚此の人に向つて無間地獄に堕つべき人と申して有りしが臨終思う様にも・ましまさざりけるやらん、此の人も又しかるべしと哀れに思いし故に思い切つて強強に申したりき、阿弥陀仏を五体作り給へるは五度無間地獄に堕ち給ふべし
이 은혜를 갚기 위하여 기요스미산에서 불법을 넓혀 도젠 어방을 인도해 드리려 하였다. 그런데 이분은 어리석은 데다 염불자이니 삼악도를 면하리라고도 보이지 않고, 또 니치렌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문영 원년 11월 14일 니시조 하나부사의 승방에서 뵈었을 때 그분이 말하기를 「나는 지혜가 없으니 (법회에) 초청받을 바람도 없고, 늙어서 응대할 힘도 없으니 염불의 명승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세간에 널리 퍼진 일이므로 그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부를 뿐이다. 또 내 마음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일의 인연이 있어 아미타불을 다섯 체나 만들어 드렸다. 이 또한 과거의 숙습일 것이다. 이 죄로 지옥에 떨어지겠는가」 하였다. 그때 니치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따로 사이가 틀어진 일은 없으나 도조 사에몬 입도 렌치의 일 때문에 이 십여 년 동안 뵙지 못하여 사이가 좋지 않은 것처럼 되어 있다. 온당한 뜻을 지니고 부드럽게 말씀드리는 것이 예의라고는 생각하였으나, 생사 세계의 관습은 늙은이와 젊은이 가운데 누가 먼저 갈지 정해져 있지 않고, 또 두 번 뵙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분의 형 도기보 기쇼(道義房義尚)는 이분을 향해 무간지옥에 떨어질 사람이라고 말했었는데, 임종이 바라던 대로 되지 못하였던 것일까. 이분도 또한 그렇게 되리라고 가엾게 여겼기 때문에 마음먹고 강하게 말씀드렸다. 아미타불을 다섯 체 만드신 것은 다섯 번 무간지옥에 떨어지실 일이라고.
이 장면에는 도젠보의 인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스스로 지혜가 없다고 말하고, 세상이 다 하니 자신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를 뿐이라고 변명하며, 인연이 있어 아미타불 상을 다섯 체나 만들었으니 그 죄로 지옥에 떨어지겠느냐고 묻는다. 대성인은 「온당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늙고 젊음의 차례가 없는 생사의 세계에서 다시 뵐 기약이 없음을 생각하고, 형 도기보의 불행한 임종을 떠올려 마음을 굳게 먹고 「아미타불을 다섯 체 만드셨으니 다섯 번 무간지옥에 떨어지실 것」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듣기 좋은 말로 위로하는 것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스승을 참으로 구하는 길이라는 판단이다. 「이 은혜를 갚기 위하여 기요스미산에서 불법을 넓히려 하였다」는 첫 구절은, 대성인의 입종 그 자체가 스승의 은혜를 갚는 일과 하나로 묶여 있었음을 보여 준다. 「보은초」의 주제는 이미 이 무렵부터 대성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 대면의 사흘 전인 문영 원년 11월 11일, 대성인은 아와 도조 고을의 고마쓰바라에서 도조 가게노부 일당의 습격을 받으셨다(고마쓰바라 법난)고 전한다. 「도조 사에몬 입도 렌치의 일」은 대성인과 도조 쪽 사이에 있었던 일로 보이나, 그 내용은 본문에서 자세히 알 수 없다.
세이초사를 지킨 소송 — 「세이초사대중중」
이처럼 대성인의 가르침에 거스르는 일이 많았던 도젠보와 세이초사였지만, 실은 기요스미의 대중은 마땅히 대성인의 은덕에 감복해야 할 까닭이 있었다. 「세이초사대중중」은 그 일을 이렇게 전한다.
就中清澄山の大衆は日蓮を父母にも三宝にも・をもひをとさせ給はば今生には貧窮の乞者とならせ給ひ後生には無間地獄に堕ちさせ給うべし・故いかんとなれば東条左衛門景信が悪人として清澄のかいしし等をかりとり房房の法師等を念仏者の所従にし・なんとせしに日蓮敵をなして領家のかたうどとなり清澄・二間の二箇の寺・東条が方につくならば日蓮法華経をすてんと、せいじやうの起請をかいて日蓮が御本尊の手にゆいつけていのりて一年が内に両寺は東条が手をはなれ候いしなり
그 가운데서도 기요스미산의 대중이 니치렌을 부모보다도 삼보보다도 낮추어 여기신다면, 금생에는 가난한 걸인이 되시고 후생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실 것이다.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도조 사에몬 가게노부가 악인으로서 기요스미에서 기르던 사슴들을 사냥해 잡고 여러 승방의 법사들을 염불자의 종자로 삼으려 하였을 때, 니치렌이 그에 맞서 영가(領家)의 편이 되어, 기요스미 · 후타마 두 절이 도조 쪽에 붙게 된다면 니치렌은 법화경을 버리겠다는 서약의 기청문을 써서 니치렌이 모시던 본존의 손에 매어 기원하였더니, 한 해 안에 두 절은 도조의 손을 떠났던 것이다.
당시 지두 도조 가게노부는 고쿠라쿠사(極樂寺) 등 염불 쪽의 뒷받침을 얻어, 본래 천태종이던 기요스미 한 산을 염불로 바꾸려 하였다. 게다가 후타마사(二間寺)까지 영가의 관할에서 떼어 내려 하였다. 기요스미에서 기르던 사슴을 사냥해 간 일은 기요스미에 대한 일종의 위세 과시로 볼 수 있다. 영가란 장원의 본래 영주로, 지두는 막부가 임명해 현지를 관리하는 무사였으니, 이 다툼은 영가와 지두 사이의 이권 다툼이자 세이초사의 종지를 둘러싼 다툼이기도 했다. 대성인은 영가와 기요스미 쪽의 편에 서셨고, 도조 쪽도 소송을 걸었으나 한 해 안에 영가 쪽의 승소로 끝났다. 영가는 대성인의 부모도 신세를 진 관계였다고 한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대성인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셨던 것이다. 세이초사가 염불의 절이 되지 않고 남은 데에는 대성인의 공이 있었다. 이 일을 아는 대중이라면 대성인을 「부모보다도, 삼보보다도」 낮추어 볼 수 없다는 것이 「세이초사대중중」의 논지다.
이 소송이 있었던 정확한 연도는 본문에서 알 수 없다. 「세이초사대중중」은 건치 2년(1276) 무렵의 글로 전하며, 「보은초」와 거의 같은 시기에 기요스미의 대중에게 보내진 것이다.
부음을 듣고 — 「불 속에라도 들고 물에라도 잠겨」
도젠보가 세상을 떠난 날짜는 분명하지 않다. 송문에 따르면 대성인은 「지난달」, 곧 건치 2년 6월에 그 소식을 대략 들으셨다. 그토록 대성인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한 스승이었지만, 부음을 들으신 대성인의 심정은 이러하였다.
それにつけても・あさましければ彼の人の御死去ときくには火にも入り水にも沈み・はしりたちても・ゆひて御はかをも・たたいて経をも一巻読誦せんとこそ・おもへども賢人のならひ心には遁世とは・おもはねども人は遁世とこそ・おもうらんに・ゆへもなくはしり出ずるならば末へも・とをらずと人おもひぬべし、さればいかにおもひたてまつれども・まいるべきにあらず
그러한 일을 생각해도 한탄스러우니,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들으니 불 속에라도 들고 물에라도 잠기어, 달려가서라도 묘를 두드리고 경을 한 권이라도 독송해 드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현인의 관습으로서 (나는) 마음으로는 둔세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둔세라고 여길 터인데, 까닭 없이 뛰어나간다면 끝까지 뜻을 지키지 못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리워하여도 찾아갈 수는 없는 것이니라.
道善御房の御死去の由・去る月粗承わり候、自身早早と参上し此の御房をも・やがてつかはすべきにて候しが自身は内心は存ぜずといへども人目には遁世のやうに見えて候へばなにとなく此の山を出でず候
도젠 어방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지난달 대략 들었습니다. 나 자신이 서둘러 찾아뵙고 이 어방도 곧 보내야 했으나, 나 자신은 속으로는 그렇게 여기지 않더라도 남의 눈에는 둔세한 것처럼 보이므로 어쩐지 이 산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성인이 미노부에 드신 것은 본문 제30장의 말씀대로 「현인의 관습으로 세 번 나라를 간하여 쓰이지 않으면 산림에 숨는다」는 옛 법도를 따르신 것이었다. 세상은 이를 둔세(遁世)로 보았다. 그런 대성인이 까닭 없이 산을 나서면 「끝까지 뜻을 관철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고, 그것은 국가 간효의 무게 자체를 흐리게 한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직접 가지 않으시고 이 글을 지어 보내셨다. 「불 속에라도 들고 물에라도 잠기어」라는 말에 담긴 그리움과, 그럼에도 산을 나서지 않는 절제가 「보은초」 저술의 직접적인 배경이다.
다카가모리에서 읽게 하시다
대성인 자신은 이런 사정으로 미노부를 나서실 수 없었으므로, 제자 가운데 보소(房總) 지방 출신인 민부 니코(民部日向)가 사자로 뽑혀 「보은초」를 지니고 기요스미로 갔다. 그리고 다카가모리(嵩が森)의 산마루와 고 도젠보의 묘 앞에서 이를 읽었다. 송문의 지시는 매우 구체적이다.
御まへと義成房と二人・此の御房をよみてとして嵩がもりの頂にて二三遍・又故道善御房の御はかにて一遍よませさせ給いて
그대와 기조보 두 사람이 이 어방을 읽는 사람으로 삼아 다카가모리 산마루에서 두세 번, 또 고 도젠 어방의 묘에서 한 번 읽게 하시고서
송문은 이어서, 읽은 뒤에는 이 글을 사자에게 맡겨 두고 늘 청문하라고 이르신다. 여러 번 듣다 보면 마음에 깨닫는 바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또 이 사자는 근래 종론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 있어 여러 나라의 절에 사람을 보내 경론을 찾게 할 때 스루가국에 보냈다가 막 돌아온 참이라는 사정도 적혀 있다. 송문의 첫머리에는 「법문이란 친하든 소원하든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 것」이라는 당부가 있고, 「소용없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경계도 덧붙어 있다. 이 글이 아무에게나 보일 글이 아니라는 뜻이다.
대성인의 지시는 그대로 실행되었다. 몇 해 뒤 조켄보 · 기조보에게 보내신 「화과성취어서」에 그 소식이 보인다.
さては建治の比・故道善房聖人のために二札かきつかはし奉り候を嵩が森にてよませ給いて候よし悦び入つて候
그런데 건치 무렵 고 도젠보 성인을 위하여 두 통의 글을 써서 보내 드렸던 것을 다카가모리에서 읽게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같은 글에서 대성인은 벼의 비유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말씀하신다.
さればいねは華果成就すれども必ず米の精・大地にをさまる、故にひつぢおひいでて二度華果成就するなり、日蓮が法華経を弘むる功徳は必ず道善房の身に帰すべし
그러므로 벼는 꽃과 열매를 이루어도 반드시 쌀의 정기가 대지에 거두어진다. 그러므로 그루터기에서 움이 돋아 두 번 꽃과 열매를 이루는 것이다. 니치렌이 법화경을 넓히는 공덕은 반드시 도젠보의 몸에 돌아갈 것이다.
벼가 열매를 맺어도 그 정기는 대지로 돌아간다. 대성인이 법화경을 넓혀 이룬 공덕도 반드시 그 뿌리인 옛 스승에게 돌아간다. 이는 「보은초」 맺음의 「꽃은 뿌리로 돌아가고 참맛은 흙에 머문다」와 같은 마음이며, 글의 이름도 이 「화과성취(華果成就)」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嵩が森」를 읽는 법
송문의 「嵩がもりの頂」(다카가모리 산마루)에 대해서는 덧붙여 둘 것이 있다. 예로부터 여러 어서 판본은 이 구절을 「山の高み森」(산의 높은 숲) 또는 「山高き森」(산 높은 숲)처럼 읽어, 막연히 「산 위 높은 곳의 숲」이라는 보통명사로 풀었다. 그러나 이는 심한 오독이다. 「다카가모리」는 기요스미 가까이에 있는 산의 이름으로 전하며, 「화과성취어서」가 「嵩が森にて」(다카가모리에서)라고 같은 이름을 다시 쓰신 것도 이것이 특정한 장소였음을 보여 준다. 대성인은 이름 있는 산마루에서 두세 번, 스승의 묘 앞에서 한 번이라고 장소와 횟수를 나누어 지시하셨다. 다카가모리에서 거듭 읽게 하신 것은 도젠보 한 사람만이 아니라 기요스미의 산과 그곳 사람들 모두에게 이 법을 들려주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 1222아와 고미나토 탄생
- 123312세, 세이초사에 올라 도젠보에게 배움
- 1253.4.28입종선언, 도조 가게노부의 박해 · 조켄보 · 기조보의 도움으로 탈출
- 1260.7.16「입정안국론」
- 1261.5.12이즈 유배(1263.2.22 사면)
- 1264.11.14니시조 하나부사에서 도젠보와 대면
- 1271.9.12다쓰노구치 법난 → 사도 유배
- 1274
- 2.14 사면
- 4.8 헤이노사에몬노조 대면
- 5월 미노부 입산
- 10월 몽골 내습
- 1275「선시초」
- 1276
- 도젠보 서거(6월에 소식)
- 7.21 「보은초」
- 7.26 송문
- 민부 니코가 다카가모리와 묘 앞에서 낭독
- 1278「본존문답초」 · 「화과성취어서」
「보은초」를 보낸 산과 받은 산
「보은초」의 무대는 두 산이다. 하나는 쓰는 곳인 가이국의 미노부산, 하나는 받는 곳인 아와국의 기요스미산이다. 기요스미는 대성인이 배움을 시작하신 곳이며 처음 남묘호렌게쿄를 부르신 곳이고, 동시에 지두와 대중의 적의 때문에 쫓기듯 떠나신 곳이다. 그곳에 남은 옛 스승은 끝내 염불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대성인은 스승의 후생을 염려하는 말을 감추지 않으시면서도, 그 스승을 위해 자신이 평생 쌓은 공덕을 돌리는 긴 글을 쓰셨다. 「보은초」를 읽는 사람은 이 글 전체가 한 사람의 죽은 스승 앞에서 읽힐 것을 전제로 쓰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언 파절의 날카로운 논증도, 법난의 회고도, 삼대비법의 선언도 모두 다카가모리와 묘 앞에서 소리 내어 읽혔던 것이다.
제호 — 통과 별 두 뜻
「보은초(報恩抄)」라는 제호에는 통(通)과 별(別)의 두 뜻이 담겨 있다. 통하여 말하면 사은(四恩)을 갚는 것이고, 별하여 말하면 스승의 은혜를 갚는 것이다.
통의 뜻은 첫머리에서 바로 드러난다. 늙은 여우는 제가 태어난 언덕을 뒤로하지 않고, 흰 거북은 자신을 살려 준 모보(毛寶)의 은혜를 갚았다. 옛 진(晉)나라의 예양(豫讓)은 주군 지백(智伯)의 원수를 갚으려 숯을 삼키며 몸을 바꾸었고, 위(衛)나라의 신하 홍연(弘演)은 제 배를 갈라 죽은 주군 의공(懿公)의 간을 거두었다. 짐승도 옛 신하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 「부모 · 스승 · 나라의 은혜를 잊을 수 있겠는가」(父母・師匠・国恩をわするべしや, 293쪽). 제30장에서 대성인은 자신이 겪으신 모든 법난을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나라의 은혜」를 갚기 위한 것이었다고 맺으신다. 첫머리와 제30장이 사은이라는 한 줄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별의 뜻은 저술의 유래에서 본 그대로다. 옛 스승 도젠보의 서거를 애도하며 그 보은사덕을 위해 이 글을 지으셨고, 다카가모리와 묘 앞에서 읽게 하셨다. 그리고 본초를 총결하는 글은 이렇다.
されば花は根にかへり真味は土にとどまる、此の功徳は故道善房の聖霊の御身にあつまるべし
그러므로 꽃은 뿌리로 돌아가고 참맛은 흙에 머무느니라. 이 공덕은 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니라.
스승을 그리는 대성인의 이 심정은 범부의 눈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스승은 대성인을 지켜 주지도 못했고 끝내 염불을 떠나지도 못했다. 그런 스승에게 대성인은 평생의 법난과 홍통으로 쌓은 공덕 전부를 돌리신다.
본초의 사은과 「사은초」의 사은
사은이라고 해도 「보은초」의 사은과 「사은초」의 사은은 내용이 다르다. 대성인은 이즈 유배 중에 쓰신 「사은초」에서 『심지관경』을 인용하여 사은을 이렇게 드신다.
仏法を習う身には必ず四恩を報ずべきに候か、四恩とは心地観経に云く一には一切衆生の恩
불법을 배우는 몸은 반드시 사은을 갚아야 할 것이니라. 사은이란 『심지관경』에 이르기를, 첫째는 일체중생의 은혜이니
「사은초」는 이어서 둘째로 부모의 은혜, 셋째로 국왕의 은혜, 넷째로 삼보의 은혜를 든다. 『심지관경』 보은품의 사은도 부모 · 중생 · 국왕 · 삼보의 넷이다. 그런데 「보은초」는 부모 · 스승 · 삼보 · 나라(국왕)의 넷을 들어, 「사은초」의 일체중생의 은혜 자리에 스승의 은혜를 넣는다.
「보은초」는 어찌하여 스승의 은혜를 내세우고 일체중생의 은혜를 드러내지 않는가. 그것은 이 글이 별하여 스승의 은혜를 갚기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승의 은혜를 따로 열어 내신 것이다. 그렇다면 일체중생의 은혜는 버려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중생의 은혜는 부모의 은혜 속에 들어 있다. 「호렌초」에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六道四生の一切衆生は皆父母なり
육도 사생의 일체중생은 모두 부모이니라.
생사를 거듭하는 동안 일체중생은 모두 한 번은 나의 부모였다. 그러므로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이 곧 일체중생의 은혜를 갚는 것이 된다. 「보은초」의 사은은 「사은초」의 사은을 버린 것이 아니라, 스승의 은혜를 밝히기 위해 그 짜임을 바꾼 것이다.
보은의 요술 —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본초의 대의는 저술의 유래로 보아도 분명하다. 통하여 사은을 갚고, 별하여 스승의 은혜, 곧 옛 스승 도젠보의 은혜를 갚아야 함을 밝히는 데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큰 은혜를 갚을 수 있는가. 제2장은 이렇게 답한다.
此の大恩をほうぜんには必ず仏法をならひきはめ智者とならで叶うべきか
이 큰 은혜를 갚으려면 반드시 불법을 배우고 깊이 익혀 지자가 되지 않고서 될 수 있겠는가.
눈먼 사람이 눈먼 무리를 이끌고 다리와 강을 건널 수 없듯이, 바람의 방향을 모르는 큰 배가 상인들을 보배 산으로 데려갈 수 없듯이, 스스로 지자가 되지 못하면 부모도 스승도 구할 수 없다. 그리고 「불법을 끝까지 배우려면」(仏法を習い極めんとをもはば, 293쪽) 여가가 있어야 하고, 여가를 얻으려면 부모 · 스승 · 국주의 뜻에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 출가하여 일대 성교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드러난 도리에도 어긋나고 숨은 도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여기겠지만, 외전의 『효경』에도 부모와 주군을 거스르고서 충신 · 효자가 된 예가 있고, 내전의 불경에도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다.
恩を棄て無為に入るは真実報恩の者なり
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드는 것은 참으로 은혜를 갚는 사람이니라.
은나라 주왕을 따르지 않고 간하다 죽은 비간(比干)이 현인의 이름을 얻었고, 아버지 정반왕을 거스르고 출가한 싯다르타 태자가 삼계 제일의 효자가 되었다. 눈앞의 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생사를 벗어나는 길을 얻어 부모와 스승을 그 길로 이끄는 것이 참된 보은이라는 것이다. 이 명제가 37장 전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열 개의 거울과 경문의 판정
그런데 막상 출가하여 일대 성교를 배우려 하니, 그것을 비추는 밝은 거울이 열 개나 있었다. 구사 · 성실 · 율 · 법상 · 삼론 · 진언 · 화엄 · 정토 · 선 · 천태법화의 십종(十宗)이다. 소승의 세 종은 잠시 두더라도, 대승의 일곱 종이 저마다 「우리 종이야말로 일대의 마음을 얻었다」고 자찬하며 서로 제일을 다툰다. 나라에 왕이 일곱이나 열이 있으면 만민이 편안할 수 없듯이, 일체경에도 반드시 한 경의 대왕이 있을 터인데 어느 것이 부처의 본의인지 알 수 없다.
여기서 대성인은 하나의 원을 세우신다. 팔종 · 십종 어디에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천태대사가 오로지 경문을 스승으로 삼아 일대의 승렬을 헤아린 것처럼 일체경을 펼쳐 보겠다는 것이다. 그때 열반경의 유계가 길잡이가 된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 294쪽),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了義経に依つて不了義経に依らざれ, 294쪽). 사람은 보현 · 문수와 같은 보살이라도, 위에서 든 여러 종의 조사라도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요의경은 법화경이고, 불요의경은 화엄경 · 대일경 · 열반경 등 이금당(已今當)의 일체경이다. 그러므로 「부처의 유언을 믿는다면 오로지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아 일체경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제1편의 결론이다.
이렇게 일대 성교를 경문에 비추어 판정해 가면 대승과 소승, 권교와 실교, 본문과 적문, 그리고 종(種)과 탈(脫)의 승렬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 판정의 끝에서, 말법의 대자대비한 어본불이 니치렌 대성인이시고, 대성인이 세우시는 대백법이 삼대비법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37장은 이 하나의 결론을 향해 단계를 밟아 올라간다.
- ①은혜를 갚아야 한다제1장
- ②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 · 출가제2장
- ③열 개의 거울이 서로 제일을 다툰다제3장
- ④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 법화경이 밝은 거울제4장
- ⑤법화경 제일과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난제5~7장
- ⑥삼국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제8~19장
- ⑦대성인의 간효와 진언 파절제20~29장
- ⑧지은보은과 제목의 간심제30~33장
- ⑨본문의 삼대비법과 보은의 맺음제34~37장 · 송문
법화경 제일과 「유다원질 황멸도후」
제2편에서는 경문의 판정이 구체적으로 행해진다. 법화경 안락행품의 「이 법화경은 제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此の法華経は諸経の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 294쪽)는 경문대로라면 법화경은 수미산 꼭대기의 제석, 전륜왕 머리 위의 여의보주처럼 일체경의 정상에 있다. 또 법사품은 이미 설한 경 · 지금 설하는 경 · 앞으로 설할 경(이금당) 가운데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고 하여 석존 일대의 모든 경과 견주어 판정하였다. 화엄경 · 대일경에는 이와 비슷한 경문이 한 글자도 없다. 열반경만은 비슷한 경문이 있으나, 열반경 스스로 법화경을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는」 대과실의 자리에 두고 자신은 이삭줍기의 자리에 두었다. 월지나 용궁에 더 뛰어난 경이 있으리라는 의심에는, 다보불이 증명하고 시방의 부처들이 광장설을 범천에 붙여 법화경을 진실이라 증명한 이상 그런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답하신다.
그러면 화엄의 징관, 삼론의 가상, 법상의 자은, 진언의 선무외 내지 홍법 · 자각 · 지증을 모두 부처의 적이라고 하는 것인가. 질문자의 이 물음에 대성인은 「이는 큰 난문이며 불법에 들어 첫째가는 대사」라고 받으신다. 말하면 세상이 두렵고, 말하지 않으면 부처의 간효를 피할 수 없다. 진퇴양난의 자리에서 대성인이 붙드신 것이 법사품의 경문이다.
而かも此経は如来の現在にすら猶怨嫉多し況んや滅度の後をや
더구나 이 경은 여래가 계실 때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
석존이 어머니 마야 부인의 태에 드셨을 때부터 제6천의 마왕은 법화경이라는 날카로운 칼을 품은 이를 없애려 하였고, 제바달다 · 구가리 · 유리왕 · 아사세왕의 몸에 들어가 석존을 해쳤다. 정법 시대에는 제바보살이 외도에게 살해되고 사자존자가 단미라왕에게 목이 베였으며, 불타밀다 · 용수보살은 붉은 깃발을 일곱 해, 열두 해 세우고 외도와 대론하였고, 마명보살은 금전 3억의 대가로 넘겨졌으며, 여의논사는 분을 품고 죽었다. 이것이 재세와 정법 시대의 난이다. 그리고 멸도한 뒤에는 이보다 더 큰 난이 있으리라고 설해져 있다. 그러므로 「작은 허물이 없어도 큰 난을 거듭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멸후의 법화경의 행자」라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제7장의 결론이며, 이는 제20장 이하에서 대성인 자신의 법난으로 이어진다.
정법 · 상법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제3편과 제4편은 상법 시대 중국과 일본의 불교사를 법화경이라는 잣대로 다시 쓴다. 불멸 후 1500년, 진(陳) · 수(隋)의 시대에 천태대사 지의가 나타났을 때 중국 불교는 남삼북칠(南三北七)의 열 갈래로 나뉘어 있었고, 그 으뜸이던 광택사 법운은 「화엄 제일 · 열반 제이 · 법화 제삼」을 세웠다. 비를 내리게 하고 꽃을 피운 영험으로 이름 높던 법운의 설을 젊은 천태가 깨뜨리자 남북의 승려들이 벌떼처럼 일어났고, 진나라 황제 앞의 공장 대결에서 천태는 무량의경의 「미현진실」과 열반경의 「추수동장」의 경문으로 그들을 굴복시켰다.
천태 멸후 당나라 시대에는 현장이 법상종을, 법장이 화엄종을 세웠고, 현종 때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이 인도에서 와서 진언종을 전하였다. 진언의 삼장들은 인계와 진언이라는 전에 없던 의례를 갖추고 이렇게 주장하였다.
彼の経経は民の万言此経は天子の一言なり
저 경들은 백성의 만 마디 말이요, 이 경(대일경)은 천자의 한 마디 말이니라.
법화경과 대일경은 말은 비슷해도 설한 이의 격이 구름과 진흙만큼 다르며, 탁한 물에 비친 달과 맑은 물에 비친 달 같다는 것이다. 이를 따져 밝히는 사람이 없어 여러 종이 모두 진언에 기울었다. 묘락대사가 30권의 주석으로 이 세 종을 한꺼번에 꺾었으나, 일본에서는 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
일본에는 긴메이 천황 때 불교가 들어온 뒤 남도 육종이 자리 잡았다. 간무 천황 때 전교대사 사이초는 천태의 주석을 보고 육종의 그릇됨을 깨달아, 연력 21년(802) 다카오사에서 남도의 석학 14인을 대론으로 굴복시켰다. 입당하여 천태와 진언을 함께 전해 왔으나 진언을 독립된 종으로 세우지 않고 법화천태종 안에 넣어 대일경을 방의경(傍依經)으로 삼았고, 『의빙천태집』에서 진언종은 천태의 정의를 훔쳐 대일경에 넣어 「이동(理同)」이라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교대사 이후 일본 불교는 진언으로 기울어 간다. 홍법(구카이, 弘法)은 「제일 진언 대일경 · 제이 화엄 · 제삼 법화 · 열반」(第一真言大日経・第二華厳・第三は法華涅槃等, 305쪽)이라 판정하고 법화경을 「희론(戲論)」, 석존을 「무명의 변역」이라 하였다. 자각(엔닌, 慈覺)은 당나라에서 「이동사승」을 배워 와 『금강정경소』 · 『소실지경소』를 짓고, 그 뜻을 부처에게 묻는 기청에서 「화살로 해를 쏘아 해가 떨어지려는 꿈」을 꾸고는 이를 길몽이라 하여 선지를 받아 냈다. 지증(엔친, 智證)도 「법화도 오히려 미치지 못한다」는 주석을 남기고 천태와 진언을 함께 익힌 자를 엔랴쿠사 좌주로 삼으라는 선지를 받았다. 그 결과 「이름과 영지는 천태산이나 그 주인은 진언사」(名と所領とは天台山其の主は真言師なり, 308쪽)가 되었다. 대성인은 법화경과 전교대사의 『법화수구』 · 『의빙집』을 들어, 월지의 석존 · 한토의 천태 · 일본의 전교 세 사람만이 「일체중생 가운데 또한 제일」인 법화경의 행자라고 하신다(삼국 삼사). 그리고 그 뒤 일본에는 법화경의 행자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고 판정하신다.
진언 파책이 중심인 까닭
「보은초」에서는 진언의 그릇된 뜻이 특히 엄하게 파절된다. 건치 연간의 본초에서 대성인은 중국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세 삼장과 일본의 홍법 · 자각 · 지증의 그릇된 뜻을 들고, 그들에게 돌려지는 광혹(誑惑) · 영험(靈驗) · 악몽(惡夢)을 철저히 따지신다. 통하여 말하면 선종과 염불의 그릇된 뜻을 파하는 것이지만, 별하여 말하면 진언의 그릇된 뜻, 그 가운데서도 몸은 천태좌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진언으로 떨어진 자각 · 지증을 파책하는 데 중심이 있다.
왜 홍법보다 자각 · 지증이 더 무거운가. 대성인은 「홍법대사야말로 제일의 방법인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그것과 견줄 수도 없는 잘못」(弘法大師こそ第一の謗法の人とおもうに、これは・それには・にるべくもなき僻事なり, 308쪽)이라고 하신다. 홍법의 설은 너무나 터무니없어 그 제자들조차 교상으로는 쓰지 않는다. 그러나 자각 · 지증이 「진언과 천태는 이치가 같다」고 하면 모두가 그럴듯하게 여긴다. 승려와 비구니, 검정과 파랑처럼 비슷한 것은 눈 밝은 사람도 혼동하기 쉽다. 그래서 「이 4백여 년 동안 예산 · 온조사 · 동사 · 나라 · 오기칠도 · 일본 일주가 모두 방법의 무리가 되었다」고 하신다. 법화경의 본산인 히에이산이 안에서부터 진언으로 바뀐 것, 이것이 일본 불교의 근본적인 전도라는 것이 대성인의 진단이다.
제5편 끝의 제24장은 중국 진언의 세 조사를 다룬다. 선무외는 갑자기 죽어 염라왕 앞에 끌려갔다가 법화경 비유품의 「금차삼계(今此三界)」의 경문을 외워 돌아왔고, 세 삼장의 기우는 모두 큰바람을 불러왔다. 이어 제6편은 일본 진언의 「악한 현증」을 다룬다. 홍법이 신센엔에서 비를 빌었다는 일, 「홍인 9년 봄 밤중에 해가 떠올랐다」는 『반야심경비건』의 기록, 입을 열어 비로자나가 되었다는 『공작경음의』의 기록, 당나라에서 던진 삼고가 고야산에 떨어졌다는 전설을 대성인은 하나하나 연월일과 증거를 물어 따지신다. 그리고 승구의 난(1221)에서 진언의 조복을 맡은 오무로의 아끼던 동자가 목이 베인 일을 「환착어본인」, 곧 저주가 도리어 본인에게 돌아간 증거로 들고, 앞으로 일본이 타국의 침략을 받으리라고 경고하며 진언 파절을 맺으신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진언 파책의 핵심은 의례나 인물의 공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다」는 교판 자체가 법사품의 이금당과 석존 · 다보 · 시방제불의 증명을 깨뜨린다는 데 있다. 그 판단의 기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열반경의 유계다.
- 선무외
- 대일경 · 소실지경을 전함
- 「이동사승」의 근원
- 기우의 큰바람
- 죽은 뒤의 모습
- 금강지
- 금강정경을 전함
- 기우의 큰바람
- 불공
- 『보리심론』을 전함
- 기우의 큰바람
- 홍법구카이
- 「제일 진언 · 제이 화엄 · 제삼 법화」
- 법화경을 「희론」이라 함
- 영험 · 광혹
- 자각엔닌천태좌주
- 「이동사승」
- 해를 쏘는 꿈
- 지증엔친천태좌주
- 「법화도 오히려 미치지 못한다」
- 천태 · 진언 겸학의 선지
대성인의 간효와 법난 — 「일본국의 기둥」
제5편은 이 모든 판정을 대성인 자신의 행동으로 잇는다. 일본국은 자각 · 지증 · 홍법의 흐름이라 한 사람도 방법이 아닌 사람이 없다. 하늘도 이 나라를 버리고 수호의 선신도 사당을 태우고 적광의 도읍으로 돌아갔다. 오직 대성인 홀로 남아 이를 알리시니, 국주는 대성인을 원수로 여겨 백성에게 욕하고 때리게 하고 마침내 두 번이나 유죄에 처하였으며 문영 8년(1271) 9월 12일에는 목을 베려 하였다. 그날 대성인은 헤이노사에몬노조와 수백 명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は日本国のはしらなり日蓮を失うほどならば日本国のはしらを・たをすになりぬ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이니라. 니치렌을 잃는 일이 있다면 일본국의 기둥을 쓰러뜨리는 것이 되느니라.
그리고 문영 9년(1272) 2월의 자계반역(이른바 2월 소동), 문영 11년(1274) 4월의 큰바람, 같은 해 10월의 몽골 내습은 「오로지 니치렌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신다. 『최승왕경』 · 『대집경』이 설한 대로 성인을 박해하는 나라에는 타국의 침략과 내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대성인 당시의 일에 대한 경문의 원리로서 말씀하신 것이며, 그 원리는 「정법을 행하는 사람을 국주가 원수로 여기고 그릇된 법을 행하는 자의 편을 들면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이 이웃 나라 현왕의 몸에 들어가 그 나라를 친다」는 것이다. 제21장은 이것이 수라와 제석, 부처와 마왕의 싸움에도 못지않은 큰 싸움이라고 하며, 정법을 넓히는 이가 나타났기 때문에 숨어 있던 방법이 드러나 큰 재난이 된다고 밝힌다. 「잠자는 사자는 손대지 않으면 울부짖지 않는다」는 비유가 그것이다.
제30장에서 대성인은 이 법난의 길을 스스로 되짚으신다. 이즈 유배(1261), 거듭되는 박해, 다쓰노구치와 사도 유배, 사면과 헤이노사에몬노조 대면, 그리고 「현인의 관습으로 세 번 나라를 간하여 쓰이지 않으면 산림에 숨는다」는 미노부 입산까지. 이 모든 것이 「오로지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나라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지은보은의 고백이다. 보은을 위해 불법을 배워야 한다는 제2장의 명제는 여기서 대성인 자신의 삶으로 증명된다.
제목의 간심
그렇다면 법화경의 무엇을 넓혀야 하는가. 제32장에서 대성인은 모든 경의 간심은 그 경의 제목에 있다고 하신다. 화엄경의 간심은 「대방광불화엄경」, 아함경의 간심은 「불설중아함경」이듯이, 「여시아문」 위에 놓인 제목이 그 경 전체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법화경도 그러하다.
如是我聞の上の妙法蓮華経の五字は即一部八巻の肝心、亦復・一切経の肝心
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는 곧 한 부 여덟 권의 간심이며, 또한 일체경의 간심이니라.
뜻을 모르는 사람이 부르는 남묘호렌게쿄와 남무대방광불화엄경의 공덕에는 깊고 얕음이 있다. 작은 강은 이슬과 시냇물을 거두지만 큰 강을 거두지 못하고, 큰 강은 작은 강을 거두지만 큰 바다를 거두지 못한다. 법화경은 모든 물을 한 방울도 새지 않게 거두는 큰 바다다. 제33장에서는 법화경 28품 가운데 무엇이 간심인가 하는 여러 설(방편품 · 수량품 · 개시오입 · 실상)을 들고 나서, 「남묘호렌게쿄가 간심이다」(南無妙法蓮華経肝心なり, 325쪽)라고 단언하신다. 아난과 문수가 결집할 때 먼저 「묘법연화경」이라 쓰고 「여시아문」이라 부른 것이 그 증거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두 글자 안에 66국의 사람과 보배가 다 들어 있듯이, 제목 안에 일체가 갖추어져 있다.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면 나무아미타불의 작용도, 대일 진언의 작용도 모두 묘법연화경의 작용에 거두어진다.
본문의 삼대비법
마지막 제8편에서 질문자는 묻는다. 그렇게 뛰어난 법이라면 어찌하여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 · 천태 · 전교는 이를 권하지 않았는가. 대성인은 먼저 정법 시대의 마명 · 용수가 대승을 넓힐 때 소승의 무리에게 박해받은 일, 상법 시대의 천태가 「여래의 성교에는 대 · 소, 현 · 밀, 권 · 실이 있다」고 하여 남삼북칠의 비웃음을 산 일, 전교대사가 육종을 꺾고 원돈의 대계단을 세우려다 「법사를 닮은 큰 메뚜기」라는 욕을 들은 일을 차례로 드신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하신다.
されば内証は同じけれども法の流布は迦葉・阿難よりも馬鳴・竜樹等はすぐれ馬鳴等よりも天台はすぐれ天台よりも伝教は超えさせ給いたり
그러므로 내증은 같으나 법의 유포는 가섭 · 아난보다 마명 · 용수 등이 뛰어나고, 마명 등보다 천태가 뛰어나며, 천태보다 전교가 뛰어나셨느니라.
「세상이 말세가 되면 사람의 지혜는 얕아지고 불교는 깊어진다」(世末になれば人の智はあさく仏教はふかくなる事なり, 328쪽). 가벼운 병에는 보통 약을, 무거운 병에는 선약을 쓰는 이치다. 그러면 천태 · 전교가 넓히지 않은 정법이 있는가. 「있다. 셋이 있다.」 이것이 제36장의 답이다.
一には日本・乃至一閻浮提・一同に本門の教主釈尊を本尊とすべし
첫째는 일본 내지 일염부제가 한결같이 본문의 교주 석존을 본존으로 해야 하느니라.
둘째는 본문의 계단, 셋째는 일본 내지 한토 · 월지 · 일염부제의 사람마다 지혜가 있고 없음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다른 일을 버리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 · 본문의 제목, 곧 삼대비법이다. 이 일은 불멸 후 2225년 동안 한 사람도 부르지 않았고, 오직 대성인 한 분이 소리를 아끼지 않고 부르고 계신다. 그리고 대성인은 이렇게 선언하신다.
日蓮が慈悲曠大ならば南無妙法蓮華経は万年の外・未来までもながるべし
니치렌의 자비가 광대하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 밖 미래까지도 흐를 것이니라.
極楽百年の修行は穢土の一日の功徳に及ばず、正像二千年の弘通は末法の一時に劣るか
극락에서 백 년 수행하는 것은 예토에서 하루 수행하는 공덕에 미치지 못하고,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통은 말법의 한때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것은 대성인의 지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때가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신다.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가 맺는 것과 같다. 그리고 법화경 약왕품의 「후오백세 광선유포」 경문이 헛되지 않다면 일본국은 한결같이 남묘호렌게쿄가 될 것이라고 맺으신다. 삼대비법을 밝히셨기에 송문에서는 「참으로 대사 중의 대사들을 적었다」고 하신 것이다.
- 정법 전반가섭 · 아난소승
- 정법 후반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권대승, 실대승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 상법천태법화경 적문의 홍통, 남삼북칠을 꺾음전교원돈의 대계단 건립
- 말법니치렌 대성인
-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
- 본문의 제목
오대부 가운데 「보은초」의 자리
「보은초」의 무게는 오대부 전체 안에 놓고 볼 때 더 분명해진다. 다섯 편은 저마다 맡은 자리가 다르다.
「입정안국론」은 문응 원년(1260), 사도 유배 이전에 쓰신 글로, 오로지 법연의 염불을 파절하는 데 힘을 모은다. 교판으로 말하면 권교와 실교를 견주는 권실상대(權實相對)가 주안이다. 「개목초」는 사도 쓰카하라에서 쓰신 글로, 다섯 단계로 법을 견주는 오중상대(五重相對)를 거쳐 말법의 주사친 삼덕을 갖춘 이가 누구인지를 밝힌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를 사람의 본존(人本尊)을 연 글로 본다. 「관심의 본존초」는 사도 이치노사와에서 쓰신 글로, 말법에 유포할 본존을 밝힌 글이다. 그러나 이 세 편 어디에도 아직 「삼대비법」의 명목은 나오지 않는다.
미노부에 드신 이듬해인 건치 원년(1275)의 「선시초」는 여러 종의 그릇된 뜻을 깨뜨리고, 말법에 넓힐 법을 이렇게 판정하신다.
天台・伝教のいまだ弘通しましまさぬ最大の深密の正法経文の面に現前なり
천태 · 전교가 아직 홍통하지 않으신 최대의 깊고 은밀한 정법이 경문의 겉에 뚜렷이 나타나 있느니라.
「선시초」는 이처럼 천태 · 전교가 넓히지 않은 「최대의 심밀의 정법」이 있다고 단언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그 모습까지는 아직 밝히지 않는다. 그 이듬해 건치 2년의 「보은초」에 이르러, 「천태 · 전교가 홍통하지 않으신 정법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있다. 셋이 있다」고 답하시며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 · 본문의 제목을 하나하나 이름 붙여 드신다. 오대부 가운데 삼대비법의 명목이 처음으로 나란히 나오는 곳이 바로 「보은초」 제36장이다. 「선시초」가 「때」를 가려 말법에 넓힐 법이 있음을 밝힌 글이라면, 「보은초」는 그 법의 이름을 처음 드러낸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진언 파책이라는 점에서도 두 글은 이어져 있다. 「선시초」가 정토 · 선 · 진언을 아울러 파하면서 진언을 무겁게 다룬다면, 「보은초」는 진언, 그 가운데서도 천태좌주로서 진언으로 기운 자각 · 지증을 중심에 둔다. 「입정안국론」의 염불 파절에서 출발한 대성인의 비판은 이렇게 하여 일본 불교의 가장 깊은 뿌리, 곧 법화경의 본산 안에서 일어난 전도에까지 이른다.
오대부라는 묶음은 닛코 상인이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에서 든 십대부 가운데 특히 중요한 다섯 편을 후대에 가려 부른 이름이다. 저술 연대는 「입정안국론」이 문응 원년(1260) 7월, 「개목초」가 문영 9년(1272) 2월, 「관심의 본존초」가 문영 10년(1273) 4월, 「선시초」가 건치 원년(1275), 「보은초」가 건치 2년(1276) 7월로 전한다.
송문의 「대사 중의 대사」
본문 끝의 날짜보다 닷새 뒤인 7월 26일에 쓰신 송문은 짧지만, 「보은초」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대성인 스스로 알려 주시는 글이다. 송문은 먼저 이렇게 시작한다.
親疎と無く法門と申すは心に入れぬ人にはいはぬ事にて候ぞ御心得候へ
친하든 소원하든 가리지 않고, 법문이라는 것은 마음에 새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 것이니 그리 알아 두시라.
이어서 본존을 그려 보낸다는 말씀이 있고, 법화경은 부처의 재세보다 멸후, 정법보다 상법, 상법보다 말법의 처음에 차례로 원적이 강해진다는 것만 알면, 일본국에 니치렌 말고는 법화경의 행자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으리라고 하신다. 도젠보의 부음과 미노부를 나서지 못한 사정, 사자로 보내는 제자의 근황을 적으신 뒤, 이 글이 어떤 글인지를 이렇게 밝히신다.
又此の文は随分大事の大事どもをかきて候ぞ詮なからん人人にきかせなば・あしかりぬべく候
또 이 글은 참으로 대사 중의 대사들을 적은 것이니, 소용없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지 않을 것입니다.
「대사 중의 대사」란 무엇인가. 37장 전체를 돌아보면 그것은 무엇보다 제36장에서 처음으로 이름이 드러난 본문의 삼대비법이다. 삼대비법을 밝히셨기에 「대사 중의 대사」라 하셨고, 그 때문에 아무에게나 들려주지 말고 다카가모리와 묘 앞에서 읽은 뒤에는 사자에게 맡겨 두고 거듭 들으라고 하신 것이다. 송문은 이어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면 「그대들을 위해서도, 이쪽을 위해서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하신다. 미노부에 계시는 대성인과 기요스미에 남은 두 사형이 여전히 적의 속에 있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 ①법문은 마음에 새기지 않는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 ②본존을 그려 보낸다 · 말법의 처음에 원적이 차례로 강해진다 → 일본국에 니치렌 말고는 법화경의 행자가 없다
- ③도젠보의 부음(지난달) · 미노부를 나서지 않은 까닭(둔세처럼 보이므로)
- ④사자로 보내는 제자 — 스루가국에서 막 돌아옴
- ⑤「이 글은 참으로 대사 중의 대사들을 적은 것」此の文は随分大事の大事どもをかきて候ぞ330쪽
- ⑥다카가모리 산마루에서 두세 번 · 묘 앞에서 한 번 읽고, 사자에게 맡겨 늘 청문하라
대의를 맺으며 — 공덕은 옛 스승에게
이렇게 보면 「보은초」의 대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통하여 사은을 갚고 별하여 옛 스승 도젠보의 은혜를 갚는 것이 이 글의 겉의 목적이다. 은혜를 갚으려면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하고, 그 배움은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기준에 따라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는 데서 시작된다. 그 거울로 비추면 대 · 소, 권 · 실, 본 · 적, 종 · 탈의 승렬이 분명해지고, 정법 · 상법의 홍통을 넘어서는 말법의 대백법, 곧 본문의 삼대비법이 드러난다. 그리고 본초를 총결하는 글에서 대성인은 이렇게 맺으신다.
此の功徳は故道善房の聖霊の御身にあつまるべし
이 공덕은 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니라.
「이 공덕」이란 삼대비법을 세우고 넓혀 일체중생을 구하는 공덕이다. 삼대비법을 유포하여 일체중생을 구하는 것, 그것만이 옛 스승의 큰 은혜를 갚는 길이라는 것이 여기서 밝혀진다. 한 사람의 스승을 위한 보은과 일체중생을 위한 홍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홍통의 공덕이 그대로 스승에게 돌아가는 것이 보은이다. 꽃이 아무리 높이 피어도 그 힘은 뿌리에서 왔고, 열매의 참맛은 흙으로 돌아간다. 대성인의 평생의 홍통은 그 뿌리인 기요스미와 옛 스승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참된 지은보은 — 보은의 요술은 삼대비법에 있다
지금까지 살핀 대로 「보은초」는 「은혜를 갚으려면 반드시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하여, 일대 성교의 승렬을 판정하고, 정법 · 상법의 논사 · 대사들이 넓히지 않은 본문의 삼대비법을 밝히는 데서 끝난다. 그렇다면 처음에 물었던 「보은의 요술」, 곧 은혜를 갚는 가장 요긴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삼대비법을 믿고 삼대비법을 유포하는 데 있다.
제2장이 말하는 「지자」는 단지 경론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열 개의 거울이 저마다 제일을 다투는 가운데 경문에 따라 바른 법을 가려내고, 그 법으로 자신과 부모와 스승을 생사의 바다에서 건지는 사람이다. 생사를 벗어나는 길을 모르는 채 부모 · 스승의 뜻에 따르는 것은 눈먼 사람이 눈먼 무리를 이끄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드는 것은 참으로 은혜를 갚는 사람」이라는 말씀은 은혜를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라, 은혜를 참으로 갚을 힘을 얻기 위해 눈앞의 정을 넘어서라는 뜻이다. 그리고 말법에 그 힘이 되는 법이 남묘호렌게쿄, 곧 본문의 삼대비법이다. 보은초의 처음과 끝은 이렇게 하나로 이어진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보은의 요체는 삼대비법을 믿고 넓히는 데 있다. 제2장의 「불법을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제36장의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 · 본문의 제목」에서 그 답을 얻는다.
겉의 뜻과 속의 뜻 — 일왕과 원의
그러므로 「보은초」는 일왕(一往), 곧 우선 겉으로 보면 옛 스승 도젠보에 대한 보은을 밝힌 글이다. 그러나 그 원의(元意), 곧 대성인의 내증(內證)에서 보면, 니치렌 대성인이 말법의 어본불로서 삼대비법을 건립하고 광선유포하시는 것을 밝힌 글이다.
두 뜻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스승을 참으로 구하는 길이 일체중생을 구하는 법을 세우는 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대성인은 스승이 끝내 염불을 떠나지 못한 것을 감추지 않으셨다. 그러면서도 「이 공덕은 고 도젠보의 성령의 몸에 모일 것이다」라고 하셨다. 스승을 구하는 힘은 스승의 신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세운 법의 공덕에서 온다는 것이다. 「화과성취어서」의 벼의 비유도 같은 뜻이다. 열매는 줄기 끝에 맺히지만 그 정기는 대지로 돌아가 다시 싹을 틔운다. 제자의 홍통이 스승의 성불의 인이 된다는 이 사제의 도리 위에서, 한 스승을 위한 추선의 글이 그대로 말법 만년의 법을 세우는 글이 된 것이다.
대성인 불법의 관점 — 「보은초」의 겉은 옛 스승에 대한 보은이요, 원의는 말법의 어본불이 본문의 삼대비법을 세워 일체중생을 구하시는 데 있다. 홍통의 공덕이 그대로 스승에게 돌아가는 것이 대성인이 보이신 참된 지은보은이다.
「이번에 목숨을 아낀다면」 — 보은과 법난
원의의 자리에서 보면 제20장 이하에 이어지는 대성인의 법난 회고도 새로운 빛을 띤다. 제30장에서 대성인은 방법의 근원을 말하면 은나라 주왕이 비간의 가슴을 가르고 하나라 걸왕이 용봉의 목을 벤 것처럼 될 줄 미리 아셨다고 하신다. 그럼에도 말씀하신 까닭을 이렇게 밝히신다.
今度命をおしむならば・いつの世にか仏になるべき、又何なる世にか父母・師匠をも・すくひ奉るべきと・ひとへに・をもひ切りて申し始めしかば
이번에 목숨을 아낀다면 어느 세상에서 부처가 될 것이며, 또 어느 세상에서 부모와 스승도 구해 드릴 수 있겠는가 하고 오로지 마음을 굳게 먹고 말하기 시작하였더니
법화경 권지품의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낀다」, 열반경의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가르침을 숨기지 말라」는 경문이 그 근거다. 부처가 되는 일과 부모 · 스승을 구하는 일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 대성인에게 성불과 보은은 둘이 아니었다. 이즈 유배, 다쓰노구치, 사도 유배라는 대난은 모두 이 결단에서 비롯되었고, 대성인은 그 모든 것을 「오로지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나라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견디셨다고 하신다. 지은보은은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목숨을 건 홍통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일본국 일체중생의 눈을 연 공덕
제36장에서 대성인은 삼대비법을 밝히신 뒤, 남묘호렌게쿄를 부르기 시작하신 공덕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日本国の一切衆生の盲目をひらける功徳あり、無間地獄の道をふさぎぬ、此の功徳は伝教・天台にも超へ竜樹・迦葉にもすぐれたり
일본국의 일체중생의 먼 눈을 연 공덕이 있고, 무간지옥의 길을 막았느니라. 이 공덕은 전교 · 천태보다 뛰어나고 용수 · 가섭보다도 뛰어나니라.
제2장에서 「눈먼 몸으로는 눈먼 무리를 이끌어 다리와 강을 건너게 할 수 없다」고 하셨던 비유가 여기서 완결된다. 스스로 눈을 뜬 사람만이 다른 이의 눈을 열 수 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일체중생의 눈을 열고 지옥의 길을 막는 이는 중생을 이끄는 스승이요, 중생을 지키는 주인이요, 중생을 자애하는 어버이다. 「보은초」는 대성인이 이 주사친(主師親)의 삼덕을 갖추신 말법의 어본불이심을, 옛 스승에 대한 보은이라는 가장 사사로운 자리에서 드러낸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덕이 정법 · 상법의 어느 논사 · 대사보다 뛰어난 까닭을 대성인은 자신의 지혜에 돌리지 않으시고 「때가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신다. 「후오백세 광선유포」의 경문이 헛되지 않다면 이 법은 반드시 넓혀진다는 것이 제36장의 맺음이다.
오늘의 독자에게 — 통하여 사은, 별하여 스승의 은혜
「보은초」는 대성인 당시의 아와와 미노부에서 쓰였지만, 그 물음은 오늘의 독자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날 대성인의 법을 지니고 넓히는 사람들도 통하여는 부모의 은혜 · 스승의 은혜 · 삼보의 은혜 · 나라의 은혜를 갚아야 하고, 별하여는 스승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리고 그 보은의 요체는 이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 주듯이, 바른 법을 배워 지자가 되고, 그 법을 믿고 넓히는 데 있다.
대성인이 기요스미를 그리면서도 산을 나서지 않으셨던 절제, 스승의 허물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평생의 공덕을 그 스승에게 돌리신 마음, 그리고 그 사사로운 추선의 글 안에 만년의 법을 담으신 일 — 이 세 가지를 마음에 두고 37장을 읽어 나갈 때, 「보은초」는 한 편의 교판론이나 진언 비판서를 넘어 사제의 길을 묻는 글로 읽힐 것이다.
이 편을 맺으며
서강에서는 「보은초」의 저술 유래와 대의, 그리고 원의를 차례로 살폈다. 건치 2년(1276) 7월, 미노부의 대성인은 옛 스승 도젠보의 부음을 듣고, 산을 나서지 못하는 사정 속에서 이 긴 글을 지어 두 사형 조켄보 · 기조보에게 보내셨다. 그 글은 민부 니코에 의해 다카가모리의 산마루와 스승의 묘 앞에서 소리 내어 읽혔다.
제호에는 통과 별의 두 뜻이 있다. 통하여는 부모 · 스승 · 삼보 · 나라의 사은을 갚는 것이고, 별하여는 옛 스승의 은혜를 갚는 것이다. 「사은초」의 사은과 견주면 일체중생의 은혜 자리에 스승의 은혜가 놓였고, 중생의 은혜는 부모의 은혜 안에 거두어졌다. 은혜를 갚으려면 불법을 끝까지 배워 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열 개의 거울의 미란, 법화경 제일의 논증, 삼국의 홍통과 진언의 미란, 대성인의 간효와 법난, 제목의 간심을 거쳐 본문의 삼대비법에 이른다. 오대부 가운데 삼대비법의 명목이 처음 나오는 글이 「보은초」이며, 대성인은 송문에서 이를 「대사 중의 대사」라 하셨다. 그리고 원의에서 보면, 이 글은 말법의 어본불이 삼대비법을 세워 광선유포하시는 것을 밝힌 글이다.
다음 제1편 「보은의 도리와 여러 종의 미란」에서는 첫머리의 늙은 여우와 흰 거북, 예양과 홍연의 고사부터 차례로 읽는다. 은혜를 갚는 일이 어찌하여 출가와 불법의 배움으로 이어지는지, 열 개의 거울이 다투는 가운데 무엇을 밝은 거울로 삼아야 하는지를 본문에 따라 자세히 살핀다.
더 읽기
- 보은초 제1편 「보은의 도리와 여러 종의 미란」 — 보은의 도리와 요술, 십종의 미란, 열반경의 유계
- 보은초 제8편 「본문의 삼대비법과 보은의 맺음」 — 본문의 본존 · 계단 · 제목과 「꽃은 뿌리로 돌아가고」
- 선시초 — 「천태 · 전교가 아직 홍통하지 않으신 최대의 심밀의 정법」과 진언 비판
- 본존문답초 — 조켄보에게 보내신 글, 도젠보와 두 사형에 관한 말씀
- 개목초 — 오대부의 하나, 주사친 삼덕과 법화경의 행자
- 남묘호렌게쿄 — 제목의 간심과 삼대비법의 교학적 배경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보은초」 · 「보은초 송문」(어서전집 293–330쪽)
- 니치렌 대성인, 「선무외삼장초」(881–890쪽) · 「세이초사대중중」(893–895쪽) · 「화과성취어서」(900–901쪽) · 「본존문답초」(365–374쪽) · 「사은초」(935–939쪽) · 「호렌초」(1040–1054쪽) · 「선시초」(256–292쪽)
- 닛코 상인,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1601–1609쪽)
- 『대승본생심지관경』 보은품
연구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On Repaying Debts of Gratitude」 수록)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 Ryūichi Abé, The Weaving of Mantra: Kūkai and the Construction of Esoteric Buddhist Discours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