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 11년(1274) 5월 17일, 사도 유배에서 풀려나 가마쿠라에서 세 번째 간효를 마치신 니치렌 대성인은 가이 지방 하키리 마을의 깊은 산중에 드셨다. 초암이 채 지어지기도 전, 입산한 지 이레 만인 5월 24일에 대성인은 한 편의 한문 논서를 완성해 시모사의 도키조닌에게 보내셨다. 그것이 「법화취요초(法華取要抄)」다. 사도에서 「개목초」로 사람의 본존을, 「관심의 본존초」로 법의 본존을 밝히신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처음 붓을 드신 이 글은, 말법에 넓혀야 할 법이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 곧 삼대비법임을 처음으로 이름까지 갖추어 밝힌 글이다. 제호의 「법화」는 석존 일대의 가르침 가운데 법화경만을 고르고, 「취요」는 그 법화경에서도 광 · 략을 버리고 요만을 고른다는 뜻이다. 이 두 번의 취사가 세 대단 · 15단의 짜임 전체를 꿰뚫는다. 이 서강은 법화취요초가 어떻게 쓰이고 누구에게 주어졌으며, 제호와 짜임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살펴, 이어지는 다섯 편을 읽을 지도를 마련한다.
법화취요초는 대성인의 십대부(十大部) 가운데 가장 짧은 축에 든다. 어서전집으로 331쪽에서 338쪽까지 여덟 쪽, 진적으로는 24장 321행이다. 그러나 그 짧은 글 안에 일대성교의 교판(이금당), 각 종파의 「자기 경이 제일」 주장에 대한 파절, 교주 석존의 인위 · 과위(삼오의 이법), 법화경 적문 · 본문이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 하는 물음, 수량품의 「양약」, 삼대비법의 명시, 광 · 략 · 요의 취사, 천변지이와 광선유포의 선상(先相)이 한 줄기의 논리로 엮여 있다. 강의는 이 글을 「미노부 입산 뒤 처음으로 저술된 중요한 글」이자 「사도기에서 미노부기로 넘어가는 교화의 흐름을 상징하는 글」로 자리매김한다.
사도기의 대성인은 발적현본(發迹顯本)하신 입장에서 말법 본불로서의 경지와 가슴속 법문을 밝히는 데 교화의 중심을 두셨다. 「개목초」와 「관심의 본존초」가 그 정점이다. 그에 비해 미노부 입산 뒤에는 법화취요초를 비롯해 「선시초」 · 「보은초」로 이어지는 저술에서, 문하에게 말법 유포의 사명을 가르치고 그 법체를 세우는 일로 중심이 옮겨 갔다고 강의는 본다. 법화취요초는 그 전환점에 서서, 대성인의 내증인 법화경 문저의 묘법을 「삼대비법」이라는 형태로 열어 보인 글이다.
이 허브 페이지는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一에서는 미노부 입산의 정황과 진적 · 초안, 저술 연대의 세 설을 문헌학적으로 짚는다. 二에서는 대고중 도키조닌을 「법화취요초를 받은 사람」이라는 눈으로 다시 본다. 三에서는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을 따라 제호 「법화취요」와 찬호 「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의 뜻을 읽는다. 四에서는 세 대단 · 15단의 분과와 각 단의 요지, 대단끼리의 관련을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다섯 편의 안내를 둔다.
이 서강의 큰 절:
- 一 미노부 입산과 법화취요초의 저술 — 사면에서 입산까지, 진적과 두 초안, 저술 연대의 세 설
- 二 대고중 도키조닌 — 단월의 요(要)가 법화취요초를 받기까지
- 三 제호 — 「법화」 · 「취요」 · 「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
- 四 구성과 요지 — 세 대단과 15단
- 다섯 편 안내 — 15장을 다섯 편으로 읽는다
사도 사면에서 미노부 입산까지
문영 11년(1274) 3월 8일, 막부의 사면장이 사도에 닿았다. 대성인은 3월 13일 사도를 떠나 같은 달 26일 가마쿠라에 들어가셨다. 그 여정은 뒷날 「고니치보어서」에 날짜까지 또렷하게 적혀 있다. 13일에 나라를 떠나 마우라 나루에 내려 14일은 그곳에 머물고, 15일 에치고의 데라도마리 나루에 닿으려 했으나 큰 바람에 밀려 이틀 길을 지나 가시와자키에 닿았으며, 이튿날 고(國府)에 이르러 열이틀을 지난 뒤 26일 가마쿠라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同十三日に国を立ちてまうらというつにをりて十四日は・かのつにとどまり、同じき十五日に越後の寺どまりのつに・つくべきが大風にはなたれ・さいわひにふつかぢをすぎてかしはざきにつきて、次の日はこうにつき・中十二日をへて三月二十六日に鎌倉へ入りぬ
같은 달 13일에 나라를 떠나 마우라라는 나루에 내려 14일은 그 나루에 머물고, 15일에는 에치고의 데라도마리 나루에 닿아야 했으나 큰 바람에 밀려 다행히 이틀 길을 지나 가시와자키에 닿았고, 이튿날은 고에 닿아 열이틀을 지나 3월 26일에 가마쿠라에 들어갔느니라.
4월 8일 대성인은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平左衛門尉頼綱)와 대면하셨다. 요리쓰나의 물음에 답해 그해 안에 몽골의 내습이 있을 것을 예언하시고, 진언이 나라를 망치는 법이니 결코 진언으로 몽골 조복을 빌어서는 안 된다고 간하셨다. 이것이 이른바 세 번째 국가 간효다. 그러나 막부는 이번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성인은 그 결심을 같은 「고니치보어서」에 이렇게 남기셨다.
本より・ごせし事なれば日本国のほろびんを助けんがために三度いさめんに御用いなくば山林に・まじわるべきよし存ぜしゆへに同五月十二日に鎌倉をいでぬ
본디 마음에 정한 일이었으므로, 일본국이 망하려는 것을 돕고자 세 번 간하여도 쓰지 않는다면 산림에 들어가리라 생각하였기에 같은 해 5월 12일에 가마쿠라를 떠났느니라.
「세 번 간하여 쓰이지 않으면 산림에 든다」는 이 말씀에서 보듯, 대성인의 미노부 입산은 패퇴나 은둔이 아니라, 간효의 도리를 다한 끝에 미리 정해 두신 길을 걸으신 것이라는 점을 이 말은 분명히 한다.
5월 12일 가마쿠라를 떠난 대성인은 17일 하키리 마을에 닿으셨다. 그날 바로 도키조닌에게 쓰신 편지가 「도키전어서」다. 거기에 날마다 묵은 곳이 짧게 적혀 있고, 이 산중이 마음에 맞는다는 입산의 심경이 이어진다.
十二日さかわ十三日たけのした十四日くるまがへし十五日ををみや十六日なんぶ、十七日このところ・いまださだまらずといえども、たいしはこの山中・心中に叶いて候へば・しばらくは候はんずらむ
12일 사카와, 13일 다케노시타, 14일 구루마가에시, 15일 오미야, 16일 난부, 17일 이곳에 왔느니라. 아직 정하지는 못하였으나 대체로 이 산중이 마음에 맞으니 얼마 동안은 머물게 될 것이니라.
초암이 지어질 때까지 대성인은 미노부의 지두 하키리 사네나가(波木井実長)의 저택에 잠시 머무셨다. 그리고 곧바로 법화취요초의 집필에 들어가 입산 이레 뒤인 5월 24일에 완성하셨다고 강의는 본다.
- 3월 8일사면장이 사도에 닿음
- 3월 13일사도 출발
- 3월 26일가마쿠라 도착
- 4월 8일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와 대면그해 안의 몽골 내습 예언, 진언으로 조복을 빌지 말라고 간함(세 번째 간효)
- 5월 12일가마쿠라 출발사카와 · 다케노시타 · 구루마가에시 · 오미야 · 난부
- 5월 17일하키리 마을 도착「도키전어서」
- 5월 24일법화취요초 완성입산 이레 뒤
- 이어서문영 11년 10월 몽골 내습 · 건치 원년(1275) 「선시초」 · 건치 2년(1276) 「보은초」
입산 첫 소리로서의 법화취요초
강의는 이 경과와 법화취요초의 내용을 함께 놓고 보면 미노부 입산의 목적이 분명해진다고 말한다. 오래도록 가슴속에 간직해 오신 비요(祕要)의 법문, 곧 삼대비법을 드러내어 설하고(현설), 말법 유포의 법체를 세우시는 데에 입산의 뜻이 있었다는 것이다. 입산 이레 만에, 아직 거처도 정하지 못한 채 쓰신 첫 중요 저술이 삼대비법의 명시였다는 사실이 그 증거가 된다. 강의는 이 흐름이 5년 뒤인 홍안 2년(1279) 10월 12일, 아쓰하라 법난을 계기로 한 일염부제 총여(一閻浮提總與)의 대어본존 건립과 출세의 본회로 이어진다고 본다.
강의는 법화취요초를 사도기(개목초 · 관심의 본존초 — 말법 본불의 경지와 가슴속 법문의 개현)와 미노부기(선시초 · 보은초 — 말법 유포의 사명과 법체의 건립)를 잇는 「상징적인 글」로 읽는다. 「관심의 본존초」에서 법의 본존을 열어 보이고, 법화취요초에서 그 법이 본존 · 계단 · 제목의 셋으로 말법에 펼쳐질 것을 명시했다는 흐름이다.
나카야마의 진적과 정본
법화취요초의 진적은 지금 지바현 나카야마의 법화경사(法華經寺)에 남아 있다. 원문은 한문이며 24장 321행으로 되어 있다. 다만 진적 자체에는 저술 연월일도, 받는 이(대고중)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 진적이 도키조닌에게 주어진 정본임은 두 갈래의 기록으로 확인된다.
첫째는 도키조닌 자신이 남긴 목록이다. 조닌은 대성인 입멸 뒤 자기가 소장하던 어서 · 사본 따위의 목록 「조슈인 본존성교사(常修院本尊聖教事)」를 만들었는데, 그 「어자필 피롱(御自筆皮篭)」 항목에 「관심의 본존초」와 나란히 「법화취요초」의 이름이 올라 있다. 대성인 친필을 담은 가죽 상자에 두 글이 함께 들어 있었다는 뜻이다.
둘째는 닛코 상인의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富士一跡門徒存知の事)」다. 닛코 상인은 이 글에서 대성인의 중요 저술 십대부를 정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열거하셨다.
一、観心本尊抄一巻。
一、取要抄一巻。
一、四信五品抄一巻。
그리고 이어서 「이상의 세 권은 이나바국 도키 장원의 본주로서 지금은 시모사국에 상주하는 고로 입도 니치조에게 주신 것이며, 정본은 그의 처소에 있다(已上の三巻は因幡国富城荘の本主・今は常住下総国五郎入道日常に賜わる、正本は彼の在所に在り)」고 적으셨다. 「니치조(日常)」는 도키조닌이 출가한 뒤의 법명이다. 이로써 지금 나카야마에 남은 진적이 바로 조닌이 소장했던 정본임이 분명해진다.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는 닛코 상인과 니치모쿠 상인의 사본이 전한다. 특히 닛코 상인의 사본에는 「문영 11년」이라는 저술 연대가 적혀 있다. 진적에 없는 연대를 가장 이른 시기의 문하가 기록해 둔 것으로, 뒤에 볼 연대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관심의 본존초」 · 법화취요초 · 「사신오품초」 세 편이 모두 도키조닌에게 주어지고 그 집에 정본이 남았다는 것은, 대성인의 중요 교의서가 어떤 경로로 보존되어 왔는가를 보여 준다. 조닌이 최만년에 쓴 「치문(置文)」은 어서를 절 밖으로 내가지 말라고 엄하게 당부하고 있다(二의 「어서를 지킨 사람」 참조).
미노부에 있던 두 초안
나카야마의 진적 말고도, 법화취요초의 초안으로 보이는 대성인 친필 두 종이 한때 미노부에 있었다는 것이 미노부 계통의 여러 어서 목록으로 확인된다.
미노부에서 가장 오래된 목록인 「대성인 어자필 목록」에는 「법화취요초 — 처음 석 장째부터 두 장쯤 부족(法花取要抄 初ノ三枚メヨリ二枚計不足)」, 「이일찰만초의 일 — 한 첩(以一察万抄ノ事也 一帖)」이 보인다. 「어영보기록(御霊宝記録)」에는 「법화취요초 — 13장, 중간 부족, 끝에 이르기를 일국 불법 운운(法華取要抄 十三紙 中間不足 奥伝曰一国仏法等)」, 「상일찰만초 — 19장(上一察万抄 十九紙)」이 있다. 이 밖에 「원록」 · 「전록」 · 「연록」 · 「서토장 보물록」 등의 목록에도 「상일찰만초」와 「법화취요초」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 있다.
이 목록들의 기록을 모으면 다음의 사실이 드러난다고 강의는 정리한다.
- 나카야마의 법화취요초와 닮았으나 세부가 다른 두 종의 친필이 미노부에 있었는데, 메이지 8년(1875) 미노부 대화재로 불탔다. 하나는 「법화취요초」라는 제목이, 다른 하나는 「상일찰만초(上一察万抄)」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 「대성인 어자필 목록」과 「어영보기록」에 따르면 미노부의 「법화취요초」는 중간에 빠진 곳이 있었다.
- 「어영보기록」에 따르면 이 「법화취요초」는 13장이었고, 「어자필 목록」에 따르면 셋째 장부터 두 장쯤이 빠져 있었으니, 빠진 곳까지 합하면 대략 15장이었을 것이다. 나카야마의 24장과 견주면 글자 배열의 차이를 감안해도 분량이 상당히 적다.
- 「어영보기록」에 따르면 이 「법화취요초」는 「일국 불법」이라는 말로 끝나 있었다.
두 친필은 지금 나카야마 진적의 초안으로 추정되지만, 불타 버렸기 때문에 내용을 알 실마리는 많지 않다. 다만 「연산록외목록(延山録外目録)」이 두 친필의 첫머리와 끝부분을 조금 옮겨 두었다. 강의가 인용하는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夫以印渡西天且置真丹日本所渡経論…我門弟敬之深信法華経
무릇 생각건대 인도 서천은 잠시 두고 진단 · 일본에 건너온 경론 …… 나의 문제는 이를 공경하여 깊이 법화경을 믿으라.
取要抄 釈扶 支西天漢土日本所渡来経論…又最勝王経云由愛敬悪人○皆不以時行有三種過
취요초 · 석 부 …… 지 서천 · 한토 · 일본에 건너온 경론 …… 또 최승왕경에 이르기를, 악인을 아끼고 공경함으로 말미암아 …… 모두 때를 따라 행해지지 않아 세 가지 허물이 생기니 ……
日本悪王 人者…一切衆生心滅失日一国仏法之事始之歟故
일본의 악왕 …… 인이란 …… 일체중생의 마음을 멸실하는 …… 일국 불법의 일이 여기서 시작되는가, 그러므로 ……
- 「이일찰만초(以一察萬抄)」메이지 8년(1875) 소실
- 소재
- 미노부(메이지 8년(1875) 대화재로 소실)
- 목록 기록
- 「以一察万抄ノ事也 一帖」이일찰만초의 일 — 한 첩어자필 목록「上一察万抄 十九紙」상일찰만초 — 19장어영보기록
- 첫머리
- 「夫以印渡西天且置真丹日本所渡経論」무릇 생각건대 인도 서천은 잠시 두고 진단 · 일본에 건너온 경론
- 끝
- 「我門弟敬之深信法華経」나의 문제는 이를 공경하여 깊이 법화경을 믿으라
- 찬호
- 없음
- 비고
- —
- 「법화취요초 초안」 + 「악비구파불사(惡比丘破佛事)」메이지 8년(1875) 소실
- 소재
- 미노부(같은 대화재로 소실)
- 목록 기록
- 「法花取要抄 初ノ三枚メヨリ二枚計不足」법화취요초 — 처음 석 장째부터 두 장쯤 부족「法華取要抄 十三紙 中間不足 奥伝曰一国仏法等」법화취요초 — 13장, 중간 부족, 끝에 이르기를 「일국 불법」 운운
- 첫머리
- 「取要抄 釈扶 支西天漢土日本所渡来経論」취요초 · 석 부 …… 지 서천 · 한토 · 일본에 건너온 경론
- 끝
- 「一国仏法之事始之歟」일국 불법의 일이 여기서 시작되는가
- 찬호
- 「釈扶」 = 「부상사문」 찬호의 흔적
- 비고
- 약 15장 추정
- 법화취요초 정본
- 소재
- 나카야마 법화경사(현존)
- 목록 기록
- —
- 첫머리
- 「夫れ以れば月支西天より漢土日本に渡来する所の経論」무릇 생각건대 월지 서천으로부터 한토 · 일본에 건너온 경론
- 끝
- 「一四天・四海一同に妙法蓮華経の広宣流布疑い無からん者か」일사천하 · 사해가 하나같이 묘법연화경이 광선유포될 것은 의심 없으리라
- 찬호
- 「扶桑沙門日蓮之を述ぶ」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
- 비고
- 한문 24장 321행연월일 · 대고중 이름 없음
목록의 글이 말해 주는 것
이 짧은 기록을 나카야마 진적과 맞대어 보면 몇 가지가 읽힌다고 강의는 말한다.
첫째, 「이일찰만초」의 첫머리 「무릇 생각건대 인도 서천은 잠시 두고 진단 · 일본에 건너온 경론」은 지금의 법화취요초 첫머리와 거의 같다.
夫れ以れば月支西天より漢土日本に渡来する所の経論
무릇 생각건대 월지 서천으로부터 한토 · 일본에 건너온 경론
또 그 끝 「나의 문제는 이를 공경하여 깊이 법화경을 믿으라」는 지금 본의 「나의 문제는 이것을 보고 법화경을 신용하라(我が門弟之を見て法華経を信用せよ)」와 닮았다. 그렇다면 「이일찰만초」에는 이 말 뒤의 부분, 곧 광선유포를 선언하는 결문이 없었다는 셈이 된다.
둘째, 「법화취요초 초안」에는 첫머리에 「취요초 · 석 부(取要抄 釈扶)」라는 말이 있고 「이일찰만초」에는 그것이 없다. 이 「석 부」는 지금 본 첫머리의 「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扶桑沙門日蓮之を述ぶ)」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며, 아마 「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해석하노라(扶桑沙門日蓮釈す)」 같은 표현이었을 것이라고 강의는 추정한다.
셋째, 「법화취요초 초안」은 처음부터 최승왕경 인용의 「정법(正法)」의 「정(正)」 자까지가 남아 있었다. 최승왕경의 이 경문은 강의에 따르면 「악인을 아끼고 공경하고 선인을 다스려 벌함으로 말미암아 별자리와 바람 · 비가 모두 때를 따라 행해지지 않고, 세 가지 허물이 생겨 정법이 마땅히 숨어 사라지리라(悪人を愛敬し、善人を治罰するに由るが故に星宿及び風雨、皆時を以て行はれず、三種の過生ずる在り、正法当に穏没すべし)」는 것이다. 이 경문은 지금 본 제14장(336:12–337:18)의 재난 원인론에서 인용된다.
넷째, 「악비구파불사」는 독립된 어서로 다루어져 왔지만, 그 끝 「일국 불법의 일이 여기서 시작되는가, 그러므로(一国仏法之事始之歟故)」는 「어영보기록」이 전하는 미노부 「법화취요초」의 끝과 분명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악비구파불사」를 독립된 어서로 보는 것은 적당하지 않고, 「법화취요초 초안」의 뒤에 이어지는 조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의는 판단한다.
다섯째, 그렇게 보면 「악비구파불사」의 첫머리 「일본의 악왕 …… 일체중생의 마음을 멸실하는」은 지금 본 제14장 끝의 다음 구절에 해당한다.
今当世の悪王・悪比丘の仏法を滅失するは小を以て大を打ち権を以て実を失う人心を削て身を失わず寺塔を焼き尽さずして自然に之を喪す
지금 당세의 악왕 · 악비구가 불법을 멸실하는 것은, 소로써 대를 치고 권으로써 실을 잃게 하며, 사람의 마음을 깎되 몸은 잃게 하지 않고, 절과 탑을 태워 없애지 않고도 저절로 이것을 잃게 하느니라.
그리고 끝의 「일국 불법의 일이 여기서 시작되는가」는 지금 본의 결문에 해당한다.
是くの如く国土乱れて後に上行等の聖人出現し本門の三つの法門之を建立し一四天・四海一同に妙法蓮華経の広宣流布疑い無からん者か
이와 같이 국토가 어지러워진 뒤에 상행 등의 성인이 출현하여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고, 일사천하 · 사해가 하나같이 묘법연화경이 광선유포될 것은 의심 없으리라.
이렇게 맞대어 보면, 미노부에 있던 「법화취요초」에서 지금의 법화취요초로 다듬어지는 동안 손질이 가해진 곳은 부분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의는 결론짓는다. 첫머리의 경론 개관, 최승왕경을 비롯한 재난 경문, 당세의 악왕 · 악비구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일국 불법」의 시작을 말하는 끝맺음이라는 큰 뼈대는 초안 단계에서 이미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악비구파불사(惡比丘破佛事)」는 유문(遺文) 목록에서 독립된 단간(斷簡)으로 취급되어 왔다. 이것을 「법화취요초 초안」의 뒷부분으로 보는 것은 강의의 판단이며, 목록의 첫머리 · 끝 기록에 근거한 추정이다. 원본이 불타 없어진 지금, 초안들의 내용은 목록이 옮겨 둔 몇 줄로만 알 수 있다.
저술 연대의 세 설
법화취요초의 진적에는 저술 연대가 없다. 그러나 닛코 상인의 사본에는 「문영 11년」이 분명히 적혀 있다. 오늘날 「문영 11년(1274) 5월 24일」 설이 가장 유력한 설로 자리 잡았지만, 지난날의 목록과 주석서들에는 세 가지 설이 있었다.
- 문영 11년(1274) 5월 24일 설 — 『어서초(御書抄)』(1506년, 니치켄(日健) 지음)
- 문영 11년(1274) 정월 24일 설
- 문영 9년(1272) 5월 24일 설 — 『조서목차(祖書目次)』(1779년, 니치타이(日諦) 지음) · 『조서강요(祖書綱要)』(1785년, 니치도(日導) 지음) · 『신찬교정조서목차(新撰校正祖書目次)』(1814년, 니치메이(日明) 지음)
이 밖에도 구조 니치소(久成日相)의 『어서화어식(御書和語式)』(1679)처럼, 「교합한 본에 이르기를, 정본에는 연호 · 월일과 수결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연호 · 월일은 뒷사람이 덧붙인 것이 틀림없다. 도키 님의 교합본에 이르기를, 정본에는 이 세 글자가 없다」고 하여, 연대도 받은 사람의 이름도 확정할 수 없다고 본 것도 있다.
- 설1문영 11년(1274) 5월 24일문헌『어서초』(1506, 니치켄)근거닛코 상인 사본의 「문영 11년」, 本文 제14장의 문영 11년 정월 · 2월 천변 기사, 사면에서 입산까지 소식이 한 편도 없음판정오늘날 정설
- 설2문영 11년(1274) 정월 24일문헌니치칸 상인 당시 이미 있던 설판정本文이 2월 5일의 천변을 적고 있으므로 성립하지 않음
- 설3문영 9년(1272) 5월 24일문헌『조서목차』(1779, 니치타이)『조서강요』(1785, 니치도)『신찬교정조서목차』(1814, 니치메이)모두 니치칸 상인 이후배경「관심의 본존초」와 겹치는 내용, 사도에서 쓴 초안의 존재판정「부상사문」 찬호와 삼대비법 현설로 보아 성립하지 않음
니치칸 상인의 판단 — 「13장을 가서 보라」
앞의 두 설, 곧 문영 11년의 「5월」 설과 「정월」 설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사기(法華取要抄私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さて年号・月日の事は二説あり。一は文永十一年甲戌五月二十四日、二に同じき正月二十四日と云云。中に於て五月という事文明なり。十三丁、往いて見よ
그런데 연호와 월일에 대해서는 두 설이 있다. 하나는 문영 11년 갑술 5월 24일이요, 둘은 같은 해 정월 24일이라 한다. 그 가운데 5월이라는 것은 글이 분명하다. 13장을 가서 보라.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하나는 니치칸 상인의 시대에는 「문영 11년」의 「정월」인가 「5월」인가 하는 두 설만 있었고 「문영 9년」 설은 아직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영 9년 설을 세운 목록 · 주석서는 모두 니치칸 상인보다 뒤의 것이다.
다른 하나는 「5월」 설의 근거다. 「13장을 가서 보라」는 니치칸 상인의 말씀은 본초 제14장의 다음 대목을 가리킨다.
今年正月廿三日の申の時西の方に二の日出現す或は云く三の日出現す等云云、二月五日には東方に明星二つ並び出ず
올해 정월 23일 신시에 서쪽에 두 개의 해가 나타났다 하고, 혹은 세 개의 해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2월 5일에는 동쪽에 샛별 둘이 나란히 떴다고 하느니라.
문영 11년 정월과 2월에 사도에서 일어난 천변을 「올해(今年)」의 일로 적고 있으므로, 본초는 문영 11년 2월 이후에 쓰인 것이 된다. 「정월 24일」 설은 2월 5일의 일을 적은 글과 맞지 않으므로 성립할 수 없다.
강의는 여기에 한 가지 정황을 더한다. 사면 뒤 3월 13일부터 미노부 입산까지, 곧 사도에서 가마쿠라로, 가마쿠라에서 미노부로 가는 여정 동안에는 소식 한 편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 사이에 법화취요초 같은 중요한 글을 쓰셨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도 「5월」 설의 타당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영 9년」 설은 어디서 나왔나
그렇다면 니치칸 상인 이후에 「문영 9년 5월 24일」 설은 왜 나왔을까. 강의는 그 배경에 「사도 저술인가, 미노부 저술인가」 하는 물음이 깔려 있다고 본다. 본초에는 「관심의 본존초」와 겹치는 대목이 많다. 그래서 본초가 「관심의 본존초」 저술 앞뒤, 곧 사도기에 성립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고, 이 「사도 저술」 설과 「5월 24일」이라는 날짜가 합쳐져 문영 9년 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또 강의는 앞에서 본 두 초안의 존재가 이 설의 성립에 깊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사면에서 입산까지 사이에는 초안이라 해도 이런 중요 법문을 쓰실 틈이 없었을 것이므로, 두 초안은 사도에서 쓰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초안이 사도에서 쓰였다는 사실이 본초 자체를 사도 저술로 보게 만드는 실마리가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초안의 앞뒤와 「부상사문」
강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초안의 성립 순서를 따진다.
「연산록외목록」에 따르면 「이일찰만초」에는 「부상사문」이라는 찬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끝이 「나의 문제는 이를 공경하여 깊이 법화경을 믿으라」로 되어 있어, 지금 본의 결문이 빠진 모습으로 끝난다. 반면 미노부의 「법화취요초」는 첫머리가 「취요초 …… 석 부 …… 지 서천」으로 되어 있어, 글자가 빠져 있기는 하나 「부상」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끝이 「일국 불법의 일이 여기서 시작되는가」로 되어 있어, 지금 본의 결문 「상행 등의 성인이 출현하여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고 …… 광선유포될 것은 의심 없으리라」와 뜻이 통한다.
「본조사문」에서 「부상사문」으로
강의는 이 「부상」이라는 말에 주목한다(자세한 것은 三의 「부상사문」에서 다룬다). 「부상」에는 「해 뜨는 곳」이라는 뜻이 있어, 말법에 넓혀질 불법이 일본에서 나온다는 것을 상징한다. 대성인이 자신을 「본조사문(本朝沙門)」이라 적으신 어서는 홍장 2년(1262)의 「교기시국초」 · 「현방법초」, 문영 9년(1272)의 「기도초」, 그리고 문영 10년(1273) 4월의 「관심의 본존초」 네 편인데, 「관심의 본존초」 뒤로는 보이지 않는다. 「본조」라는 표현에 비해 본초의 「부상」이라는 표현에는 본초 결문의 삼대비법 광선유포의 뜻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고 강의는 본다.
「관심의 본존초」에서 대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此の時地涌千界出現して本門の釈尊を脇士と為す一閻浮提第一の本尊此の国に立つ可し
이때 지용천계가 출현하여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삼는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서리라.
그러나 거기서는 아직 삼대비법이 드러내어 설해지지는 않았으므로 「본조」라는 표현에 머무셨다는 것이 강의의 해석이다. 이에 비해 법화취요초는 「관심의 본존초」의 내용을 전제로 하여 삼대비법의 현설을 주지로 쓰인 글이며, 그 뜻을 뚜렷이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부상사문」으로 표현하셨다. 그러므로 법화취요초는 내용으로 보아 「관심의 본존초」 이후의 저술이어야 하고, 그 초안의 저술도 사도기이기는 하나 「관심의 본존초」 이후, 곧 문영 10년(1273) 4월 이후라고 강의는 본다. 삼대비법의 밀시(密示)인가 현설(顯說)인가 하는 관점에서 보면, 본초의 「문영 9년 저술」 설은 성립할 수 없다.
성립의 경위
두 초안이 모두 본초의 초안이라고 할 때 그 앞뒤는 어떻게 되는가. 「부상사문」이라 적혀 있었다고 보이는 미노부의 「법화취요초」 쪽이, 그것이 없는 「이일찰만초」보다 뒤에 쓰였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미노부의 「법화취요초」가 지금 본의 직접 초안이며, 사면에 비교적 가까운 사도기에 쓰인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이를 정리하면 본초의 성립 경위는 다음과 같다.
- 문영 10년(1273) 4월 25일 — 「관심의 본존초」(찬호 「본조사문 니치렌 지음」)
- 사도기, 「관심의 본존초」 이후 — 「이일찰만초」(찬호 없음 · 결문 없이 「나의 문제는 이를 공경하여 깊이 법화경을 믿으라」로 끝남)
- 사도기, 사면에 가까운 무렵 — 「법화취요초 초안」과 그 뒷조각 「악비구파불사」(「석 부」 = 부상사문의 흔적 · 「일국 불법의 일이 여기서 시작되는가」로 끝남)
- 문영 11년(1274) 5월 24일, 미노부 — 법화취요초 완성(「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 · 결문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고」)
곧 사도기에 「관심의 본존초」를 저술하신 뒤 「이일찰만초」라는 제목의 초안을 쓰시고, 얼마간 사이를 두어 그것을 다듬어(미노부의 「법화취요초」), 문영 11년(1274) 5월 24일 미노부에서 지금의 법화취요초를 완성하셨다는 것이다.
강의가 저술 연대를 따지는 기준은 단순한 날짜 고증이 아니다. 「본조사문」에서 「부상사문」으로의 찬호 변화, 그리고 삼대비법을 밀시하던 단계에서 현설하는 단계로의 이행을 하나의 줄기로 본다. 그 줄기 위에 「관심의 본존초 → 이일찰만초 → 법화취요초 초안 → 법화취요초」라는 순서를 놓는다.
관심의 본존초와 법화취요초
연대 논의에서 보았듯이, 법화취요초는 내용상 「관심의 본존초」와 겹치는 곳이 많다. 실제로 두 글은 같은 사람(도키조닌)에게 주어졌고, 같은 가죽 상자에 담겨 보존되었으며, 닛코 상인의 십대부 목록에서도 나란히 놓였다. 두 글의 관계는 다섯 편 전체를 읽는 열쇠이기도 하다.
「관심의 본존초」는 말법의 주사친이신 대성인이 말법의 중생을 위해 세우고 넓히실 「법」에 초점을 맞추어 법본존을 열어 보인 글이다. 강의가 정리한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말대 범부의 「관심」은 석존을 비롯한 일체 부처의 인행 · 과덕의 두 법을 갖춘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수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그 「묘법연화경의 오자」는 법화경 수량품의 「간심」이며 참된 불종이다. 셋째, 이 하종의 요법은 말법을 위해 본화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되었다. 넷째, 그러므로 이것은 정법 · 상법 시대에 넓혀지지 않은 비법이며, 말법에 지용의 보살이 출현하여 처음으로 넓히는 본문의 본존으로서 일본국에 세워진다.
법화취요초는 이 「본문의 본존」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것이 본존 · 계단 · 제목이라는 세 가지 법으로 말법에 펼쳐질 것을 명시한다. 그리고 그 법이 「정상(正像)에 넓히지 않은 비법」인 까닭(제12장),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는」 까닭(제13장), 그 유포에 앞서는 「선상(先相)」(제14장), 광선유포의 확신(제15장)을 차례로 밝힌다. 「관심의 본존초」가 법의 근원을 「관심」의 입장에서 밝혔다면, 법화취요초는 그 법이 말법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밝혔다고 할 수 있다.
「관심의 본존초」의 법본존 개현과 오중삼단 · 문저하종삼단에 대해서는 이 사이트의 관심의 본존초 각 편이 자세히 다룬다. 이 서강에서는 법화취요초와 겹치는 지점만 짚는다.
법화취요초를 받은 사람
법화취요초의 진적에는 받는 이의 이름이 없다. 그러나 앞에서 본 닛코 상인의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의 기록, 조닌 자신의 목록 「조슈인 본존성교사」의 기록으로 보아, 대고중이 도키조닌(富木常忍)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도키조닌은 입종(立宗) 이듬해인 건장 6년(1254) 무렵에 입신했다고 전하며, 대성인의 가장 오래된 단월(檀越)이다. 「관심의 본존초」를 비롯해 중요 법문을 담은 어서를 대성인께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고, 학식에서도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강의는 대성인이 자신의 가슴속 법문이나 중요 법문을 밝히실 때에는 먼저 조닌에게 어서를 써서 가르치시는 일이 많았고, 필요하면 조닌을 통해 문하 전체에 철저하게 하셨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조닌의 신앙과 학식을 신뢰하셨기 때문이며, 그런 의미에서 대성인이 법화취요초를 도키조닌에게 주셨다는 사실 자체에 이 글이 지니는 뜻의 무게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절에서는 조닌의 생애 전체를 되풀이하지 않고, 법화취요초라는 글을 받기에 이른 사람으로서의 조닌, 곧 그가 대성인의 교화에서 맡은 역할과 당시 단월들 사이에서 차지한 자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조닌의 생애와 신앙 전반은 인물탐구 도키조닌이 자세히 다룬다.
생몰 · 이름 · 출신
생몰년
『본화별두불조통기(本化別頭佛祖統紀)』에 따르면 도키조닌은 정안 원년(1299) 3월 26일 84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한다. 여기서 거꾸로 셈하면 출생은 건보 4년(1216)이 된다. 승구 2년(1220) 출생설도 있으나, 조닌의 생몰에 대해 말하는 문헌으로는 『본화별두불조통기』 말고는 믿을 만한 것이 없으므로 강의는 건보 4년(1216) 출생설을 따른다. 그렇다면 대성인(정응 원년(1222) 탄생)보다 여섯 살 손위가 된다.
이름의 표기
조닌의 이름은 정확히는 「도키 고로 조닌(富木五郎常忍)」이며, 입도한 뒤에는 「도키 고로 입도 조닌」이라 했다. 「도키」의 표기는 뒤에 볼 출신지와의 관계로 보아 「富城」가 본디의 것으로 보이지만, 조닌 자신은 공문서에 「富木」라고 적었다. 어서에는 이 밖에도 「土木」 같은 표기가 보인다. 실제로 어서전집에는 「도키전답서」라는 같은 이름 아래 「富木殿御返事」 · 「土木殿御返事」 · 「富城殿御返事」가 섞여 있다.
거주지와 출신지
조닌은 시모사국 가쓰시카군 야와타 장원 와카미야(下總國葛飾郡八幡莊若宮)에 살았다. 그러나 본디 시모사 사람은 아니었다. 닛코 상인의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에 「이나바국 도키 장원의 본주로서 지금은 시모사국에 상주하는 고로 입도 니치조」라고 한 대로, 지금의 돗토리현 출신이다.
因幡国富城荘の本主・今は常住下総国五郎入道日常
이나바국 도키 장원의 본주로서 지금은 시모사국에 상주하는 고로 입도 니치조
사료로 보아 조닌의 아버지가 건장 2년(1250) 무렵 간토로 옮겨 온 데 따라 조닌도 시모사의 와카미야에 살게 된 것으로 짐작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성교지배문서가 보여 주는 사회적 지위
「성교지배문서」란
쇼와 42년(1967)에 발견된 이른바 「성교지배문서(聖教紙背文書)」에 의해, 도키조닌이 시모사국 수호 지바노스케(千葉介)의 유력한 피관(被官)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주로 수호직에 관련된 사법 · 행정 사무를 맡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성교지배문서」란 대성인이 베껴 쓰신 불전 요문집의 뒷면에 남아 있는 도키조닌의 업무 문서다. 종이를 구하기 어렵던 시대에, 조닌이 쓸모가 다한 업무 서류를 대성인께 공양했고, 대성인이 그 뒷면을 비망록으로 쓰신 것이다. 그래서 조각난 것이 많고 판독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그 조각은 129통에 이르며, 시기로는 보치 연간(1247~1249)에서 문영 초년에 이르는 약 20년에 걸친다. 내용은 당시 시모사국 수호이던 지바노스케 요리타네(千葉介頼胤)와 그 피관 및 주변 지두들 사이에 오간 문서가 대부분이며, 주로 사법 · 행정에 관한 일이 적혀 있어, 조닌의 사회적 지위와 그를 둘러싼 인간관계를 밝히는 유력한 실마리가 된다.
강의는 이 문서에서 조닌에 대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 유능한 사무 관료 — 조닌은 지바노스케의 피관 가운데서도 유능한 사무 관료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것은 그가 당시의 지식 계층에 속했음을 알려 주며, 대성인께 중요한 어서를 많이 받고 그것을 문하에 전달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의 뒷받침이 된다.
- 막부와의 연결 — 같은 지바노스케의 피관으로 요직에 있던 조센(長専)이라는 인물이 가마쿠라에 살았는데, 조닌은 이 조센을 통해 간접적이기는 하나 늘 막부의 사무에 관여했다. 그래서 일로 가마쿠라와 시모사를 오갈 기회가 적지 않았다. 조닌이 시모사만이 아니라 단월 전체의 요(要)가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런 사회적 위치가 있었을 것이다.
- 재지 영주들과의 교류 — 한편으로 막부와 닿는 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수호직의 유력 피관으로서 시모사의 많은 재지 영주들과 교류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것이 조닌이 시모사 단월 무리의 형성과 발전에 중심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이유다. 문서에는 뒷날 대성인의 단월이 된 오타 조묘(大田乗明) · 가네하라 홋쿄(金原法橋) · 야기 시키부노타이후(矢木式部大夫) 등과 일로 교류한 흔적이 보인다.
- 염불과의 관계 — 주군 지바노스케 요리타네로부터 당시 유행하던 정토강(淨土講)의 준비를 요청받은 기록이 있어, 입신 전에는 염불을 믿었던 것으로도 생각된다. 호조 씨의 득종 전제 아래 교토의 문화가 빠르게 들어오면서, 교토에서 유행하던 염불도 동국 무사층에 받아들여졌다. 조닌의 주군 요리타네도 건장 연간에 정토종의 료추(良忠)에게 귀의했다. 조닌도 아마 염불의 영향을 받다가 대성인의 교화를 만나 귀의한 것으로 보인다.
- 입도의 시기 — 조닌이 입도한 것은 건장 3 · 4년(1251 · 1252) 무렵으로, 대성인의 문하가 되었을 때는 이미 입도해 있었다.
반승반속의 생활
「망지경사」에서 대성인은 조닌의 생활 형태를 다음과 같이 그리셨다.
身は俗に非ず道に非ず
몸은 속인도 아니요 출가자도 아니니라.
朝に出で主君に詣で夕に入て私宅に返り
아침에 나가 주군께 나아가고, 저녁에 들어와 사택으로 돌아오느니라.
조닌은 입도하여 머리를 깎았으나 출가하지는 않은, 반승반속의 생활을 했다. 날마다 주군의 저택에 출사하는 관료였다. 이 「몸은 속인도 아니요 출가자도 아닌」 자리가 뒤에 볼 조닌의 신앙상의 고민과 이어진다.
가족
아버지와 어머니
어서에 조닌의 아버지에 관한 기술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 일찍 세상을 떠나 대성인과는 면식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닌이 고향 이나바국의 자기 영지에 사는 종자의 소속을 둘러싸고 일으킨 소송의 소장에 「지난 건장 2년 무렵 도키 주타 입도의 손에서 조닌이 이를 물려받은 바이니, 양도장이 분명하다. 렌닌이 간토에 살게 된 뒤 그 종자들이 저절로 모토토미 근방을 지나게 되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 보이는 도키 주타 입도 렌닌(富木中太入道蓮忍)이 조닌의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한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대성인이 「망지경사」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然りと雖も一人の悲母堂に有り朝に出で主君に詣で夕に入て私宅に返り営む所は悲母の為め存する所は孝心のみ、而るに去月下旬の比・生死の理を示さんが為に
그렇지만 한 분 자비로운 어머니가 집에 계시어, 아침에 나가 주군께 나아가고 저녁에 들어와 사택으로 돌아와서는, 하는 일은 어머니를 위함이요 지니는 것은 효심뿐이었느니라. 그런데 지난달 하순 무렵, 생사의 이치를 보이기 위해
黄泉の道に趣く此に貴辺と歎いて言く齢既に九旬に及び子を留めて親の去ること次第たりと雖も
황천의 길로 떠나셨느니라. 이에 그대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나이 이미 아흔에 이르러 자식을 남기고 어버이가 떠나는 것은 순서라고는 하나
이 글에서 조닌이 자기 집 지불당(持佛堂)에 살던 노모를 날마다 정성껏 봉양했다는 것, 그 어머니가 건치 2년(1276)에 아흔이 넘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닌은 어머니와의 이별을 견디기 어려워 유골을 모시고 미노부의 대성인께 찾아가 깊이 어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그 전해에는 어머니가 지은 홑옷을 대성인께 공양하기도 했다. 「망지경사」라는 이름은 이때 조닌이 경전을 잊고 돌아간 일에서 왔다.
부인과 자녀
조닌은 처음에 오타 조묘의 누이와 혼인했으나 일찍 사별했고, 어서에서 「도키 아마고젠(富木尼御前)」으로 불리는 부인과는 재혼이었다. 도키 아마고젠은 스루가국 오모스(重須)에서 태어나 이요의 다치바나 사다토키(橘定時)에게 시집갔다가, 사별 뒤 다시 조닌에게 온 것이었다. 뒷날 육노승의 한 사람이 된 이요보 닛초(伊予房日頂)는 도키 아마고젠과 다치바나 사다토키 사이의 아들로, 어머니의 재혼에 따라 조닌의 의붓아들이 되었다. 조닌과 부인 사이에는 두 자녀가 있었는데, 하나는 뒷날 오모스의 학두(學頭)가 된 자쿠센보 닛초(寂仙房日澄)이고, 다른 하나는 오토고젠(乙御前)이라 불린 딸이다.
도키 아마고젠은 대성인께 다음과 같은 칭찬을 받았다.
尼ごぜん又法華経の行者なり
아마고젠 또한 법화경의 행자이니라.
홍안 2년(1279)에는 어본존을 수여받았다. 그만큼 순수한 신심을 관철한 사람이었다.
1세대 - 도키 주타 입도 렌닌富木中太入道蓮忍아버지 · 건장 2년(1250) 무렵 간토로 옮김
- 조닌의 어머니건치 2년(1276) 아흔 넘어 별세 · 「망지경사」
2세대 - 도키조닌富木常忍1216~1299
- 첫 부인일찍 사별오타 조묘의 누이
- 둘째 부인 도키 아마고젠富木尼御前스루가 오모스 출신「아마고젠 또한 법화경의 행자이니라」홍안 2년 어본존 수여
- 아마고젠의 전 남편 다치바나 사다토키사별橘定時
3세대 - 이요보 닛초伊予房日頂아마고젠과 사다토키의 아들 · 조닌의 의붓아들육노승의 한 사람
- 자쿠센보 닛초寂仙房日澄조닌과 아마고젠의 아들뒷날 오모스 학두
- 오토고젠乙御前딸
강의의 가족도에는 아들의 법명이 「자쿠니치보 닛초(寂日房日澄)」로 적힌 곳과 본문의 「자쿠센보 닛초(寂仙房日澄)」가 섞여 있다. 이 페이지는 강의 본문의 「자쿠센보」를 따른다.
입신과 홍교 — 시모사 단월 무리의 중심
입신의 시기
조닌이 대성인의 단월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입신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정확한 해는 정하기 어렵다. 건장 7년(1255)에 「일생성불초」를 받았으므로, 입신은 건장 5년(1253)의 입종에서 건장 7년 사이였음이 틀림없다. 건장 5년 또는 6년에 대성인께 받은 편지가 있으나, 그 글로는 대성인과 조닌이 교류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어도 그때 이미 입신했는지는 정할 수 없다. 조닌이 대성인의 교토 유학을 도왔다는 설도 있지만, 「성교지배문서」나 조닌이 받은 어서로 보아 그가 가마쿠라와 시모사를 자주 오갔으므로, 입종 뒤 가마쿠라에서 대성인을 만나 입신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모사 단월 무리의 형성
입신한 조닌은 사는 곳 시모사를 중심으로 홍교를 시작했다. 특히 문응 원년(1260) 8월 27일 마쓰바가야쓰 법난을 겪으신 대성인을 자기 집에 맞아들였을 때, 오타 조묘와 소야 교신(曾谷教信)을 비롯한 시모사의 유력한 단월들이 입신하여 시모사 단월 무리의 기초가 다져졌다고 본다.
오타 · 소야 · 가네하라 등 시모사의 단월들이 직접이든 간접이든 도키 씨를 거쳐 입신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 가운데 조닌을 직접 거쳐 입신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가네하라 홋쿄다. 「성교지배문서」에 따르면 건장 5년(1253) 12월 이전에 가네하라 홋쿄가 공사(公事)를 부담하면서 조닌에게 의논한 일이 있어,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오타 조묘는 한 설에 따르면 엣추 오타 보(保)의 지두직이었다가 지바 씨에게 불려 와 피관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처지가 도키 씨와 비슷하여, 두 사람이 직무로 가까워져 마침내 인척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을 것이다(조닌의 첫 부인이 조묘의 누이였다).
소야 교신은 시모사 야와타 장원 소야 마을의 재지 영주이므로 도키 씨 · 오타 씨와 처지가 다르지만, 오타 씨와 같은 엣추에 영지가 있었고, 오타 씨는 소야 마을에 「오타 저택」이라 불리는 떨어진 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조닌은 아마 오타 조묘를 통해 소야 교신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연결로 조닌을 중심으로 한 시모사 단월 무리가 이루어졌고, 조닌의 자리는 더욱 무거워졌다.
문영 6년의 문주소 소환
문영 6년(1269) 5월, 조닌을 비롯한 세 단월이 막부의 문주소(問注所)에 불려 가 조사를 받았다. 이때 대성인은 「문주득의초」를 써 보내셨다.
三千年に一度花さき菓なる優曇華に値えるの身か、西王母の薗の桃・九千年に三度之を得たる東方朔が心か一期の幸何事か之に如かん
삼천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우담화를 만난 몸인가, 서왕모의 동산의 복숭아를 구천 년에 세 번 얻은 동방삭의 마음인가. 일생의 행운이 무엇이 이에 미치겠는가.
법화경 때문에 난을 받는 것은 드문 행운이라고 가르치신 글로, 조닌 등의 소환이 신앙상의 이유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같은 글에서 대성인은 문주소에서의 문답 요령을 꼼꼼히 일러 주셨고, 그 뒤 조닌 등의 신변에 변화가 생긴 흔적이 없으므로 가르치신 대로 대처하여 무사히 넘긴 것으로 보인다. 이 소환은 당시 문하가 활발하게 활동했고 특히 조닌이 그 중심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같은 해 6월의 「도키전어소식」에 따르면, 그달에 예정된 「대사강(大師講)」의 모임 장소에 문제가 생겨 조닌이 대성인께 대신할 장소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대사강」이란 대성인의 문하가 천태대사의 기일인 매달 24일에 열던 강으로, 문영 3 · 4년(1266 · 1267) 무렵부터 열렸다. 문하뿐 아니라 다른 종파의 승속도 모여 법의를 배우고 신앙을 이야기한 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법화취요초가 완성된 날이 5월 「24일」이라는 것도 이 대사강의 날과 겹친다.
마마 문답
조닌의 홍교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마마 문답(眞間問答)」이다. 홍안 원년(1278) 9월, 조닌은 천태종 시모사 마마 홋코지(弘法寺)의 학두 료쇼보(了性房)와 법론하여 그를 논파했다. 료쇼보의 주장은 다음 세 가지였다.
- 이전의 권교는 득도가 없다는 해석은 천태 · 묘락의 60권에는 없다.
- 불신(不信)은 방법이 아니다. 또 불신이라 해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 지관의 행자는 계를 지켜야 한다.
이것을 논파했다는 데서 조닌의 교학적 조예의 깊이를 알 수 있다. 대성인은 조닌의 경과 보고를 받고 10월 1일 「조닌초」를 쓰셔서, 이 세 가지에 대해 대성인 자신의 더 깊은 견해를 보이셨다. 그러면서 1 · 2는 대성인의 근본 법문에 관계된 일이고 장마가 다투어 일어날 수 있으니 앞으로 이 문제로 료쇼보가 법론을 청해 와도 받지 말 것, 또 료쇼보를 논파한 이상 다른 사람과 함부로 법론하는 것은 도리어 얕아진다는 것 등을 경계하셨다.
신앙의 자세 — 「불심장」과 「사신오품초」
문하 쪽에서 대성인께 보낸 편지로 지금 남은 것은 거의 없지만, 조닌에 대해서는 대성인께 보낸 것으로 보이는 편지 세 통이 전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불심장(不審状)」이다.
건치 2년 전후의 변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건치 2년(1276) 앞뒤는 조닌의 신변에 공사(公私)에 걸친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하나는 주군 지바노스케 요리타네가 문영 11년(1274) 몽골 내습 때 입은 상처로 이듬해 규슈 히젠에서 세상을 떠난 일이다. 이로써 요리타네의 측근 유력 피관으로 활약해 온 조닌의 처지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또 건치 원년(1275)부터 부인이 병을 앓아 한동안 나아졌다 나빠졌다를 되풀이하다가, 홍안 2년(1279) 무렵 재발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해에 자신도 환갑을 맞은 조닌은 인생의 무상을 절감했는지, 이 무렵부터 반승반속의 생활을 접고 출가하여 미노부의 대성인 곁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되었다.
「불심장」의 고백
「불심장」에서 조닌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적었다.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 명사(明師)이신 대성인을 만나 법문을 들어 왔으나, 자신의 근성이 어둡고 둔하여 얻은 법문을 금세 잊어버릴 뿐이다. 이것은 방법의 전업(前業) 때문인가. 나이 이미 예순에 이르러 남은 목숨이 얼마 없는데, 생각생각의 짓이 모두 삼도(三途)의 업이다. 우러러 불법을 믿는다 해도 죄업을 다 없애지 못하면 삼악도는 의심 없다. 불경을 경멸한 무리가 나중에 믿고 따랐어도 방법의 죄를 없애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경계가 있지 않은가. 스승의 얼굴을 가까이 뵙고 늘 귀로 법문을 들으면, 다 깨닫지는 못해도 죄업은 없앨 수 있지 않겠는가. 바라건대 서둘러 세상일을 버리고 난실(蘭室)에 들어가 스승을 가까이 모시며 시중들고 싶다. 살펴 주시기를 우러러 바란다.
이어서 불도 수행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그 취지는 두 가지로 모인다.
- 관념(觀念)도 이루지 못하고, 독송에 전념하려 해도 일념을 모을 수 없다. 어떻게 수행하면 이(理)를 얻을 수 있는가.
- 오신(五辛) · 육식 등 부정(不淨)할 때의 수행은 허용되는가.
모두 재가자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불도 수행을 관철하려 할 때 생기는 문제로, 조닌이 신앙을 더욱 엄격하게 자신에게 부과함으로써 불법을 체득하려 했음을 보여 준다. 강의는 조닌의 결벽과 성실함이 드러난 질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조닌은 재가자로서의 생활을 버림으로써 이 문제들을 넘어서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 불법의 존재 방식에 얽매인 생각이었다고 강의는 말한다.
「사신오품초」의 답
이 「불심장」에 답하신 것이 건치 3년(1277)의 「사신오품초」다. 강의가 정리한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 말법 법화경 행자의 간요는 「신(信)」에 있다.
- 말대 범부의 수행은 관념관법의 지계가 아니라,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것이 근본이다.
- 비록 이해가 조금도 없어도 다만 제목을 부름으로써 저절로 부처의 뜻에 맞고 몸을 이익되게 할 수 있다.
- 그러므로 대성인 문제의 위(位)는 과거 제종의 원조보다 높다.
이 가르침은 은둔하여 행하는 지계나 관법으로는 말대 범부의 성불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보이신 것으로, 조닌의 망설임을 법문의 차원에서 바로잡으신 것이다. 「사신오품초」의 진적에는 조닌의 필적으로 「말대 법화 행자의 위 및 마음가짐의 일(末代法華行者位並用心事)」이라는 머리 글이 적혀 있다. 조닌이 이 가르침을 깊이 받아들여, 은둔으로 앞의 의문을 풀려 했던 것을 반성했으리라고 강의는 본다.
법화취요초는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한다」고 선언한 글이다. 그 글을 받은 조닌이 몇 해 뒤 관념 · 독송 · 지계라는 「광」 · 「략」의 수행 앞에서 길을 잃고, 대성인이 「사신오품초」로 「다만 제목을 부르는」 요의 수행으로 그를 되돌리셨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법화취요초의 「취요」는 교판의 문제이자, 재가 신앙인의 수행 방식의 문제이기도 했다.
법난과 조닌 — 뒤에서 떠받친 사람
조닌이 문영 6년(1269) 5월 문주소에 불려 갔을 때도 화를 입지 않았으므로, 조닌 자신에게 직접 닥친 난은 특별히 없었다고 해도 좋다. 지바 씨의 유력한 피관이라는 사회적 위치, 시모사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법난을 받지 않을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대성인이 겪으신 큰 난들과 아쓰하라 법난에 조닌은 어떻게 관계했을까.
마쓰바가야쓰 · 이즈 · 고마쓰바라
문응 원년(1260) 마쓰바가야쓰 법난 때에는, 한 설에 따르면 대성인이 시모사의 도키 저택으로 잠시 피하셔서 그곳을 거점으로 홍교를 펼치셨다고 한다. 이른바 「백일 설법」이다. 이어진 홍장 원년(1261)의 이즈 유배에 대해서는 조닌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문헌이 없다. 문영 원년(1264)의 고마쓰바라 법난에 대해서도 한 설에 따르면, 난을 겪으신 뒤 대성인이 아와에서 곧장 가마쿠라로 돌아가지 않고 잠시 도키 저택에 머무셨다고 한다. 어쨌든 이 세 법난에 대해서는 문하와의 관계를 보여 주는 어서가 적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이 시기에 조닌이나 시조 깅고 같은 중심 문하에게 준 어서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직접 만나 지도 · 격려하셨기 때문일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다쓰노쿠치 법난과 사도 유배
그러나 문영 8년(1271) 9월 12일의 다쓰노쿠치 법난과 이어진 사도 유배 시기에는 조닌에게 준 어서가 많아져, 법난에 대한 조닌의 관계가 뚜렷이 드러난다.
다쓰노쿠치 법난 직후 조닌은 곧바로 에치의 혼마 저택에 계신 대성인께 편지를 보냈고, 그 답으로 9월 14일자 「도키전답서(土木殿御返事)」를 받았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법난의 경위를 간결하게 보이신 뒤 법난 직후의 심경을 밝히셨다.
これには一定と本よりごして候へば・なげかず候、いままで頚の切れぬこそ本意なく候へ
이렇게 될 것을 본디부터 각오하였으니 한탄하지 않느니라. 지금까지 목이 잘리지 않은 것이야말로 본의가 아니니라.
유배가 정해져 사도로 떠나신 대성인의 안부를 걱정한 조닌은 자기 종자를 수행원으로 딸려 보냈다. 대성인은 에치고의 데라도마리에서 그 수행원을 조닌에게 돌려보내시면서 자신의 내증을 적은 「데라도마리어서」를 지어 조닌에게 보내셨다. 또 사도에 닿아 쓰신 첫 어서 「도키입도전답서」를 주셨고, 그 한 대목에서 본불의 경지를 토로하셨다.
一大事の秘法を此国に初めて之を弘む日蓮豈其の人に非ずや
일대사의 비법을 이 나라에 처음으로 넓히느니라. 니치렌이 어찌 그 사람이 아니겠는가.
사도 유배 동안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를 비롯해 지금 남은 것만 12편에 이르는 어서를 조닌에게 쓰셨다. 덧붙이면 사이렌보에게 8편, 시조 깅고와 그 부인에게 6편이 그 뒤를 잇는다.
대성인의 사도 유배 기간은 일문에게 그야말로 위급존망의 때였다. 문하의 대부분이 동요하거나 퇴전했고, 대성인은 「개목초」와 「사도어서」를 써서 법난의 뜻을 밝히고 문하를 격려 · 지도하셨다.
사면 운동에 대한 경계
한편 문하 가운데에는 대성인의 사면을 막부에 청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조닌도 여러 가지로 손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성인은 문영 9년(1272) 5월의 「진언제종위목」에서 그런 방책으로 치닫는 문하의 자세를 엄하게 경계하셨다.
日蓮が御免を蒙らんと欲するの事を色に出す弟子は不孝の者なり
니치렌이 사면을 받고자 하는 일을 겉으로 드러내는 제자는 불효한 자이니라.
미노부 입산과 법화취요초
문영 11년(1274) 사면 뒤 미노부에 드신 5월 17일, 대성인은 「도키전어서」를 써서 조닌에게 보내셨고, 이어 입산 여드레째인 5월 24일자로 미노부에서의 첫 중요 법문인 법화취요초를 써서 조닌에게 주셨다.
이처럼 대성인은 다쓰노쿠치 법난 · 사도 유배 · 미노부 입산이라는 생애에서 가장 큰 격동의 시기에, 조닌 앞으로 많은 어서를 쓰셨고 그것도 마디마디마다 반드시 쓰셨다. 이것은 조닌에 대한 대성인의 깊은 신뢰를 말해 준다.
아쓰하라 법난
마지막으로 아쓰하라 법난은 닛코 상인 · 난조 도키미쓰를 중심으로 한 후지 방면의 제자 · 신도들이 겪은 법난이었고, 대성인 자신에 대한 법난도 아니었으므로, 조닌은 직접 관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성인의 지시로 에치고보 닛벤(越後房日弁)과 시모쓰케보 닛슈(下野房日秀)를 도키 저택에 맡아 두었다는 것이 「도키전니부인어서」에서 확인되므로, 곁에서 지원했음을 알 수 있다.
강의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조닌은 거의 모든 법난에서 전선이라기보다 후위의 자리에 있으면서, 이른바 뒤에서 대성인의 일문을 떠받쳤다. 그것은 시모사라는 지리적 조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유력한 계층에 속했다는 것, 막부와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 등 때문이다.
공양과 입멸 뒤의 조닌
미노부의 대성인을 공양하다
けかち申すばかりなし米一合もうらずがししぬべし
기근이 말할 수 없이 심하여 쌀 한 홉도 팔지 않으니 굶어 죽을 지경이니라.
미노부에 드신 그날 조닌에게 보내신 편지의 첫머리다. 미노부에 드신 대성인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양하는 일은 단월들에게 특히 중요한 역할이었다.
미노부 시기의 공양자와 횟수를 보면, 난조 도키미쓰가 32회로 다른 이들을 압도하고, 그다음이 도키조닌 12회, 시조 깅고 11회, 이케가미 형제 8회다(하키리 일족은 알 수 없다). 눈여겨볼 것은 도키미쓰의 공양이 주로 식량인 데 비해 조닌의 공양은 대부분 「아목(鵞目)」 또는 「청부(青鳧)」, 곧 돈이었다는 점이다. 도키 · 시조 · 난조 집안 같은 큰 단나들이 서로 연락하여 미노부에서 대성인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나누어 맡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조닌은 사도 시기에도 6회의 공양 기록이 있고, 그 밖에 홑옷 · 옷감 · 흰 소매옷 같은 의류도 공양했다.
입멸 뒤
조닌은 홍안 5년(1282) 10월 13일 대성인 입멸 때 이케가미로 달려갔고, 장례 때에는 향로를 받들고 참렬했다. 입종 직후부터 입멸까지 약 30년 동안 한결같이 외호의 정성을 다한 것이다.
그 뒤 조닌은 출가하여 조슈인 니치조(常修院日常)라 하고, 자기 집 지불당을 고쳐 법화사(法華寺)로 삼아 법등을 지키려 했다. 강의는 아쉽게도 만년에 아들 닛초(日頂) · 닛초(日澄)와 갈라서고, 대성인 법문의 진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법화사 등의 관리를 맡긴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어서 진적을 굳게 지키라고 유언하여 오늘날까지 그것이 전해진 것은 오로지 조닌의 공적이라고 해도 좋다.
어서를 지킨 사람
조닌은 최만년인 영인 7년(1299) 3월 4일, 목록 「조슈인 본존성교사」의 「치문(置文)」을 썼다. 그 첫머리에서 그는 어서를 지킬 것을 후세에 강하게 당부했다. 「하나, 성인의 어서와 60권 이하의 성교 등은 절 안에서 내가서는 안 된다. 오른쪽과 같다. 성교를 아끼는 것은 법을 인색하게 하는 것과 닮았다 하더라도, 빌려 주어 잃게 되는 것은 그보다 더 심하다. 그러므로 어떤 큰일이 있어도 이 절의 경계 밖으로 내가는 일은 한결같이 그쳐야 한다. 다만 지극히 중요한 때에 도량에서 펼쳐 보는 일은 금하는 바가 아니다.」 조닌이 세상을 떠난 것은 그 직후인 3월 20일이었다.
조닌이 어서의 보관 · 관리에 이토록 강한 사명감을 가졌던 것은 아마 대성인께 그런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리라고 강의는 본다. 문영 8년(1271) 11월 사도에 닿아 처음 쓰신 「도키입도전답서」의 다음 말씀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貴辺に申付し一切経の要文智論の要文五帖一処に取り集め被る可く候、其外論釈の要文散在あるべからず候
그대에게 일러 둔 일체경의 요문, 지도론의 요문 다섯 첩을 한곳에 모아 두시오. 그 밖의 논석의 요문도 흩어지게 해서는 안 되느니라.
조닌 앞의 어서는 지금 알려진 것만 45편이며, 그 가운데 36편의 진적이 남아 있다. 법화취요초의 진적이 오늘 나카야마에 있는 것도 이 사람의 손을 거쳤기 때문이다.
강의 본문에는 조닌의 별세일이 「정안 원년(1299) 3월 26일」(『본화별두불조통기』)과 「치문 직후인 3월 20일」 두 가지로 나온다. 영인 7년과 정안 원년은 같은 해(1299, 4월 개원)다.
단월의 요(要) — 문하를 잇는 자리
대성인의 문하는 출가 승려인 「제자」와 재가 신도인 「단월」로 크게 나뉜다. 입도 · 비구니처럼 반출가 · 반속의 문하도 있었으나 이들은 단월로 볼 수 있다. 강의는 단월에 초점을 맞추어 그 교류와 연대를 살피고, 그 안에서 조닌이 중심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밝힌다.
지역별 단월
단월을 지역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 시모사 — 도키조닌과 부인 · 오타 조묘와 부인 · 소야 교신 · 가네하라 홋쿄 · 아키모토 다로
- 아와 — 나고에 니이아마 · 오아마 · 고니치보 · 구도 요시타카
- 가마쿠라 — 시조 깅고와 부인 니치겐뇨 · 히키 다이가쿠 사부로 · 호조 야겐타 · 오쿠라토노쓰지 주로 입도 · 니치묘 · 오토고젠 · 사지키 비구니 · 묘이치 비구니 · 묘미쓰 상인 부인 · 이자와 입도 · 사카베 입도 · 고노베 입도
- 이즈 — 후나모리 야사부로
- 후지 — 난조 도키미쓰 일족 · 마쓰노 로쿠로 일족 · 이시카와 입도와 부인(오모스 부인) · 다카하시 입도와 부인 · 니시야마 입도 · 가와이 입도 · 우쓰부사 부인 비구니 · 시지 시로 · 아쓰하라의 농민들
- 가이 — 오이 장원 관리 · 하키리 사네나가 일족
- 무사시 — 이케가미 무네나카 일족
- 사도 — 아부쓰보 · 센니치니 · 고우 입도
사는 곳이 같은 단월끼리는 혈연이나 직업을 공통의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어서에 교류의 기록이 없어도 서로 알고 지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수도 적지 않으니 대성인을 중심으로 서로 교류했을 것이다. 강의는 어서에서 단월 사이의 교류를 보여 주는 대목을 든다.
此文は富木殿のかた三郎左衛門殿大蔵たうのつじ十郎入道殿等さじきの尼御前一一に見させ給べき
이 글은 도키 님 쪽, 사부로자에몬 님, 오쿠라토노쓰지 주로 입도 님 등, 사지키의 아마고젠께 하나하나 보여 드리시오.
ずしいぢの四郎が事は承り候い畢んぬ
시지 시로의 일은 잘 들었느니라.
이 밖에 「가연정업서」(985쪽)는 시조 깅고를 좋은 의사이자 법화경의 행자로 소개하며 도키 집안과 시조 깅고를 잇고, 「치병대소권실위목」(995쪽)은 오타 · 도키 · 시조 깅고를, 「시조깅고전답서」(1151쪽)는 다이가쿠 사부로 · 시조 깅고 · 이케가미 집안을, 「성인어난사」(1190쪽)는 아쓰하라의 농민들과 시조 깅고를, 「시지시로전어서」(1449쪽)는 시조 깅고와 시지 시로를 잇는다. 아와 · 사도는 멀어서 교류가 보이지 않지만, 지역을 넘는 교류가 출가 문하를 통해 꽤 자주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모여서 읽으라」는 지시
나아가 어서에는 특정 단나에게만이 아니라 문하에 널리 보이라는 지시가 담긴 것이 있다. 그 지시가 어디까지 철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월들이 서로 모이는 분위기가 있었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좁은 지역만이 아니라 문하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지시도 있으므로, 이것도 지역을 넘는 단월 사이의 교류의 한 증거가 된다. 강의가 어서전집 쪽 순서로 든 대목은 다음과 같다.
心ざしあらん諸人は一処にあつまりて御聴聞あるべし
뜻 있는 여러 사람은 한곳에 모여 들으시오.
此文を心ざしあらん人人は寄合て御覧じ料簡候て心なぐさませ給へ
이 글을 뜻 있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보고 헤아려서 마음을 위로하시오.
志有らん諸人は一処に聚集して御聴聞有るべきか
뜻 있는 여러 사람은 한곳에 모여 들어야 할 것이니라.
이 밖에 「여설수행초」 끝의 「사람들 앞으로(人々御中へ)」(505쪽), 「사도어서」 첫머리의 「사람들 앞으로」(956쪽), 「법화행자봉난사」의 「일체의 여러 사람이 이것을 보고 들어, 뜻 있는 사람들은 서로 이것을 이야기하라」(967쪽), 「효에사칸전어서」의 「이 글은 특히 효에노사칸 님께, 총괄해서는 우리 일문의 사람들이 보시오.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지 마시오」(1096쪽), 「성인어난사」의 「사람들 앞」(1191쪽)이 있다.
이 일곱 편 여덟 곳의 글은 일부 지역의 단월만이 아니라 문하 전체에 전하고 철저히 하라고 지시하신 것인데, 그 대고중은 도키조닌과 시조 깅고에게 모여 있다. 이 두 사람이 문하 안에서 어서 전달의 중심이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당시는 가마쿠라가 중심이었으므로 가마쿠라에 사는 시조 깅고가 단월 교류의 요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조닌의 경우는 가마쿠라를 자주 오갔고 문하의 중진이었기 때문에 늘 요의 자리에 있었다.
강의의 결론은 분명하다. 삼대비법이야말로 말법에 유포할 요법임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밝힌 법화취요초를 조닌에게 주신 것은, 조닌의 높은 학식에 더하여 그가 이처럼 「단월의 요」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요를 취하는」 글이 「요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셈이다.

조닌에게 주신 사도기의 어서와 법화취요초
조닌 앞의 어서 가운데 내용으로 보아 법화취요초의 성립과 깊이 관련된 것은 사도기의 어서들이다. 강의는 다쓰노쿠치 법난에서 법화취요초에 이르는 길을 조닌 앞 어서를 따라 더듬는다. 이것은 법화취요초가 어떤 사색의 끝에 나온 글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좋은 길잡이다.
문영 8년 9월 14일 「도키전답서」 — 「삭삭견빈출」
문영 8년(1271) 9월 12일의 다쓰노쿠치 법난은 대성인의 발적현본의 계기가 된 법난으로, 대성인의 교화에서 중대한 뜻을 지닌다. 대성인은 법난 직후부터 주로 도키 님 앞의 편지에서 가슴속을 밝히셨다. 9월 14일 사가미 에치의 혼마 로쿠로자에몬 저택에서 쓰신 「도키전답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数数見擯出ととかれて度度失にあたりて重罪をけしてこそ仏にもなり候はんずれば我と苦行をいたす事は心ゆへなり
「자주자주 쫓겨나리라(數數見擯出)」고 설해져 있어 거듭 죄를 입어 무거운 죄를 없애야 부처도 될 것이므로, 스스로 고행을 하는 것은 마음 때문이니라.
법화경 권지품 제13의 「삭삭견빈출」의 경문으로 법난의 뜻을 보이신 첫 글로, 사도기 교화의 선구라고 강의는 본다.
10월 22일 「데라도마리어서」 — 「약 가운데의 요」
10월 10일 에치를 떠나신 대성인은 21일 에치고 데라도마리 나루에 닿으셨다. 이튿날 쓰신 「데라도마리어서」는 대략 네 가지를 가르친다. ① 법화경의 간요성 ② 팔종 · 십종에 대한 총체적 파절 ③ 대성인이 법화경을 신독(身讀)하고 계신다는 것 ④ 불경보살의 실천과의 비교. 이 가르침들은 법난의 뜻을 밝히는 것으로서 서로 깊이 관련되며, 사도기 · 미노부기를 통해 각각 자세히 펼쳐진다.
첫째, 법화경의 간요성에 대해서는 열반경의 「속명중보(贖命重寶)」의 글에 따라 법화경과 일체경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法華経の先後の諸経は法華経の為の重宝なり
법화경 앞뒤의 여러 경은 법화경을 위한 무거운 보배이니라.
곧 법화경이야말로 일체경의 간요이므로 「목숨」에 비유되고, 열반경 · 화엄경 같은 여러 대승경은 그 목숨을 대신 사는 「무거운 보배」에 비유된다는 것이다. 이어서 대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一部八巻・二十八品・天竺の御経は一由旬に布くと承わる定めて数品有る可し、今漢土日本は略の中の要なり
일부 팔권 이십팔품, 천축의 경은 일 유순에 펼친다고 들었으니 틀림없이 여러 품이 있으리라. 지금 한토 · 일본의 것은 약 가운데의 요이니라.
이 「약 가운데의 요」인 이십팔품에 대해 「요 가운데의 요」가 대성인이 넓히시는 말법의 대법이다. 그 「요법」은 뒷날 「개목초」의 「본문 수량품의 문저(本門・寿量品の文の底)」(189쪽), 「관심의 본존초」의 「본문의 간심 남묘호렌게쿄의 오자(本門の肝心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247쪽) · 「나의 내증의 수량품(我が内証の寿量品)」(250쪽) · 「수량품의 간요인 명체종용교의 남묘호렌게쿄(寿量品の肝要たる名体宗用教の南無妙法蓮華経)」(251쪽) · 「사행의 남묘호렌게쿄의 오자 및 본문의 본존(事行の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 並びに本門の本尊)」(253쪽), 그리고 법화취요초의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 · 「상행보살이 전한 묘법연화경의 오자」로 차례차례 밝혀져 간다고 강의는 정리한다. 법화취요초의 「취요」가 이미 데라도마리에서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데라도마리어서」는 이 간요성에 관련하여 팔종 · 십종을 파절하신다.
八宗十宗等は皆仏滅後より之を起し論師人師之を立つ滅後の宗を以て現在の経を計る可からず
팔종 · 십종 등은 모두 부처 멸후에 일으킨 것으로 논사 · 인사가 세운 것이니, 멸후의 종으로 현재의 경을 헤아려서는 안 되느니라.
이어서 천태의 판석은 일체경에 맞으므로 한 종에 속한다 하여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제종의 학자들이 자기 스승의 그릇됨에 집착하여 일을 근기에 핑계 대거나 앞의 스승에게 미루거나 현왕을 끌어들이다가 끝내 악심이 치성하여 다툼을 일으키고 허물 없는 이를 해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특히 대일경의 「인과 진언」을 「불교의 최요」라 하는 진언종이야말로 「벽안(僻案)」 · 「벽견(僻見)」이라고 파절하셨다. 법화취요초 제1~3장의 제종 파절이 여기서 먼저 보인다.
셋째, 대성인에 대한 네 가지 비난을 든 뒤 대성인이 법난을 겪으시는 것은 권지품 이십행 게와 맞아떨어지는 법화경의 신독이라고 밝히셨다. 넷째, 그것이 불경보살의 실천과 같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보이셨다.
法華経は三世の説法の儀式なり、過去の不軽品は今の勧持品今の勧持品は過去の不軽品なり
법화경은 삼세의 설법의 의식이니라. 과거의 불경품은 지금의 권지품이요, 지금의 권지품은 과거의 불경품이니라.
그리고 권지품 이십행 게를 신독하신 입장을 「니치렌은 팔십만억 나유타의 여러 보살의 대관으로서 이것을 말하느니라」라고 밝히셨다.
日蓮は八十万億那由他の諸の菩薩の代官として之を申す彼の諸の菩薩の加被を請う者なり
니치렌은 팔십만억 나유타의 여러 보살의 대관으로서 이것을 말하느니라. 저 여러 보살의 가피를 청하는 자이니라.
「팔십만억 나유타의 여러 보살」은 권지품에서 이십행 게를 읊어 멸후의 홍교를 서원한 적화의 보살이다. 대성인이 지금 그들 대신 삼류 강적의 난을 받고 계시므로 「대관」이라 하신 것이다. 법화취요초 제7장이 적문 유통분을 「역차로 읽어」 니치렌을 바로 삼는 것은 이 신독의 자각과 이어진다.
11월 23일 「도키입도전답서」 — 「일대사의 비법」
사도 쓰카하라에 닿아 쓰신 첫 편지라 할 「도키입도전답서」는 「데라도마리어서」의 가르침의 뜻을 더욱 분명히 한다. 강의는 그 요지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① 정법 · 상법 시대에 넓혀지지 않은 「일대사의 비법」을 대성인이 처음으로 넓히신다 ② 말법 유포의 서상 ③ 대성인이 상행보살의 재탄이라는 밀시.
天台・伝教は粗釈し給へども之を弘め残せる一大事の秘法を此国に初めて之を弘む日蓮豈其の人に非ずや
천태 · 전교는 대강 해석하셨으나 이것을 넓히지 않고 남겨 둔 일대사의 비법을 이 나라에 처음으로 넓히느니라. 니치렌이 어찌 그 사람이 아니겠는가.
前相已に顕れぬ去正嘉の大地震前代未聞の大瑞なり
앞선 상(相)이 이미 나타났느니라. 지난 정가의 대지진은 전대미문의 큰 서상이니라.
法已に顕れぬ、前相先代に超過せり日蓮粗之を勘うるに是時の然らしむる故なり
법이 이미 나타났느니라. 앞선 상이 앞 시대를 넘어섰느니라. 니치렌이 대강 이것을 헤아려 보건대 이는 때가 그렇게 하는 까닭이니라.
곧 대성인은 법난을 겪어 법화경을 신독하심으로써, 정상에 넓혀지지 않은 요법인 「일대사의 비법」을 드러내셨다. 정가의 대지진 등은 이 비법이 말법에 유포될 서상으로서 참뜻이 밝혀진다. 그리고 말법 법화경의 행자인 대성인이야말로 법화경 본문에서 요법을 부촉받은 상행보살이라는 것이다.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남겨 둔 비법」(제12장), 「정가의 대지진」을 비롯한 선상(제14장), 「상행 등의 성인 출현」(제15장) — 법화취요초 대단 제3의 골격이 사도 도착 첫 편지에 이미 담겨 있었던 것이다.
문영 9년 「사도어서」 · 「도키전답서」 · 「진언제종위목」
문영 9년(1272) 2월, 쓰카하라 삼매당의 혹한 속에서 사색을 깊이 하신 대성인은 「개목초」를 써서 자신이 말법의 본불임을 밝히셨다. 「개목초」는 시조 깅고를 통해 문하 전체에 주어졌는데, 같은 2월 조닌에게 주신 「팔종위목초」는 「개목초」에서 논한 참된 일념삼천에 관한 경석을 모은 글로, 「개목초」의 준비 저술로 여겨진다.
같은 달 가마쿠라와 교토에서 호조 씨의 내분인 호조 도키스케의 난이 일어났다. 3월에 쓰여 조닌을 통해 모든 제자 · 단나에게 주어진 「사도어서」는 이 사건을 대성인이 예언하신 자계반역난의 적중으로 보시면서, 섭수 · 절복은 때에 따르는 것이며 악왕과 사법의 승려가 손잡고 정법을 멸하려 할 때에는 사자왕의 용기로 싸우는 것이야말로 말법의 때에 맞는 성불의 길이라고 강조하셨다.
摂受・折伏時によるべし譬ば世間の文・武二道の如し
섭수 · 절복은 때에 따라야 하느니라. 비유하면 세간의 문 · 무 두 길과 같으니라.
悪王の正法を破るに邪法の僧等が方人をなして智者を失はん時は師子王の如くなる心をもてる者必ず仏になるべし例せば日蓮が如し
악왕이 정법을 깨뜨리는 데 사법의 승려들이 편을 들어 지자를 없애려 할 때, 사자왕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는 반드시 부처가 되리라. 예컨대 니치렌과 같으니라.
正法は一字・一句なれども時機に叶いぬれば必ず得道なるべし千経・万論を習学すれども時機に相違すれば叶う可らず
정법은 한 글자 한 구절이라도 시기에 맞으면 반드시 득도하리라. 천 경 만 논을 배워도 시기에 어긋나면 이루지 못하느니라.
「한 글자 한 구절이라도 시기에 맞으면」이라는 말씀은 법화취요초가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는」 까닭(제13장), 「말법에는 대소 · 권실 · 현밀이 모두 교만 있고 득도가 없다」(제12장)는 판단과 곧바로 이어진다. 또 「사도어서」는 불경품의 「그 죄가 다 끝나고(其罪畢已)」를 들어, 절복을 행하고 이 세상에서 난을 만남으로써 자기 생명에 갖추어진 과거 「방법」의 무거운 죄를 없앨 수 있다고 밝히셨다.
当世の王臣なくば日蓮が過去謗法の重罪消し難し日蓮は過去の不軽の如く当世の人人は彼の軽毀の四衆の如し人は替れども因は是一なり
당세의 왕과 신하가 없었다면 니치렌의 과거 방법의 무거운 죄는 없애기 어려우리라. 니치렌은 과거의 불경과 같고 당세의 사람들은 저 경멸하고 헐뜯던 사중과 같으니, 사람은 바뀌어도 인(因)은 하나이니라.
쓰카하라에서 이치노사와로 옮기신 뒤 처음 쓰신 4월 10일의 「도키전답서」에서는 대성인이 말법 법화경의 행자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보이신 뒤 맑게 갠 심경을 토로하셨다.
但生涯本より思い切て候今に飜返ること無く其の上又違恨無し諸の悪人は又善知識なり、摂受・折伏の二義仏説に依る、敢て私曲に非ず
다만 생애는 본디 단념하였으니 지금에 와서 뒤집는 일도 없고, 그 위에 또 원망도 없느니라. 여러 악인은 또한 선지식이니라. 섭수 · 절복의 두 뜻은 부처의 설에 의한 것이요, 결코 사사로운 왜곡이 아니니라.
대성인을 박해한 모든 악인이 오히려 선지식이라는 말씀에서, 법화경을 계기로 말법 유포의 대법을 드러내려 하시는 본불의 깊은 경지를 볼 수 있다고 강의는 말한다. 5월 5일의 「진언제종위목」에서는 지옥에 떨어지는 근원인 제종을 파절하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을 무간지옥에서 구하는 대자비라고 말씀하셨다.
日蓮は日本国の人の為には賢父なり聖親なり導師なり
니치렌은 일본국 사람들에게는 어진 아버지요, 거룩한 어버이요, 도사이니라.
문영 10년 「관심의 본존초」 · 「도키전답서」
문영 8년에서 9년에 걸친 어서들은, 「도키입도전답서」에서 정상에 넓혀지지 않은 말법 유포의 대법을 시사하셨지만, 전체로 보면 오히려 그 대법을 드러내시는 대성인 자신의 경지를 밝히는 데 중심이 있었다. 그런데 문영 10년(1273) 4월의 「관심의 본존초」에서는 말법의 주사친이신 대성인이 말법 중생을 위해 세우고 넓히실 「법」에 초점을 맞추어 법본존을 열어 보이셨다(一의 「관심의 본존초와 법화취요초」 참조).
「관심의 본존초」 직후 5월 28일의 「기조보어서」에서는 「수량품의 사(事)의 일념삼천의 삼대비법」이라고 하여 「삼대비법」이라는 이름을 밝히셨고, 윤5월 11일의 「현불미래기」에서는 일염부제 광선유포를 보이셨다.
寿量品の事の一念三千の三大秘法
수량품의 사의 일념삼천의 삼대비법
本門の本尊・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堤に広宣流布せしめんか
본문의 본존, 묘법연화경의 오자로써 염부제에 광선유포하게 하리라.
그러나 아직 삼대비법의 내용은 보이지 않으셨다. 그런데 7월 6일의 「도키전답서(土木殿御返事)」에서는 「정(定)」과 「혜(慧)」는 생전에 넓히고 「계(戒)」는 사후에 맡긴다고 하시어, 말법에 유포할 법체에는 본존 · 제목과 함께 계단이 갖추어진다는 것을 시사하셨다.
設い日蓮死生不定為りと雖も妙法蓮華経の五字の流布は疑い無き者か伝教大師は御本意の円宗を日本に弘めんとす、但し定慧は存生に之を弘め円戒は死後に之を顕す事法為る故に一重大難之れ有るか
설령 니치렌의 생사가 정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묘법연화경 오자의 유포는 의심 없으리라. 전교대사는 본의인 원종을 일본에 넓히려 하셨으나, 정 · 혜는 생전에 넓히고 원계는 사후에 드러내셨으니, 사(事)의 법이기에 한층 큰 난이 있었던 것인가.
仏滅後二千二百二十余年今に寿量品の仏と肝要の五字とは流布せず
부처 멸후 2220여 년, 지금까지 수량품의 부처와 간요의 오자는 유포되지 않았느니라.
이 계단의 뜻은 같은 해 8월 「하키리사부로전답서」의 「본문의 교주의 사탑(本門の教主の寺塔)」(1372쪽)이라는 말씀에서도 볼 수 있다고 강의는 말한다.
문영 11년 정월 「법화행자봉난사」 — 삼대비법의 내용
그리고 이듬해 문영 11년(1274) 정월, 조닌을 통해 모든 문하에 주신 「법화행자봉난사」의 추신에서 대성인은 삼대비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셨다.
竜樹・天親は共に千部の論師なり、但権大乗を申べて法華経をば心に存して口に吐きたまわず此に口伝有り、天台伝教は之を宣べて本門の本尊と四菩薩と戒壇と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と之を残したもう
용수 · 천친은 모두 천 부의 논사이니라. 다만 권대승을 펴고 법화경은 마음에 두고 입으로 토하지 않으셨으니, 여기에 구전이 있느니라. 천태 · 전교는 이것을 펴셨으나 본문의 본존과 사보살과 계단과 남묘호렌게쿄의 오자는 남겨 두셨느니라.
所詮一には仏・授与したまわざるが故に、二には時機未熟の故なり、今既に時来れり四菩薩出現したまわんか日蓮此の事先ず之を知りぬ
결국 첫째는 부처께서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요, 둘째는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이제 이미 때가 왔으니 사보살이 출현하시리라. 니치렌이 이 일을 먼저 알았느니라.
법화취요초 제12장의 물음 「여래 멸후 2천여 년,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남겨 두신 비법은 무엇인가」와 답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이니라」는, 넉 달 전 조닌을 거쳐 문하에 주신 이 추신을 논서의 형식으로 정식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①문영 8년(1271) 9월 14일「도키전답서」(951쪽)「数数見擯出」자주자주 쫓겨나리라법난의 뜻
- ②10월 22일「데라도마리어서」(952–954쪽)법화경의 간요성「今漢土日本は略の中の要なり」지금 한토 · 일본의 것은 약 가운데의 요이니라팔종 · 십종 파절 · 신독 · 불경보살
- ③11월 23일「도키입도전답서」(955쪽)「一大事の秘法を此国に初めて之を弘む」일대사의 비법을 이 나라에 처음으로 넓히느니라정가 대지진은 서상 · 상행보살 밀시
- ④문영 9년(1272) 2~5월「팔종위목초」 · 「사도어서」 · 「도키전답서」 · 「진언제종위목」경지의 개현, 시기에 맞는 한 구절
- ⑤문영 10년(1273) 4월「관심의 본존초」법본존 개현5월 「기조보어서」 「三大秘法」(삼대비법)의 이름윤5월 「현불미래기」 염부제 광선유포7월 6일 「도키전답서」(963쪽) 계단의 시사
- ⑥문영 11년(1274) 정월「법화행자봉난사」(965쪽)「本門の本尊と四菩薩と戒壇と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본문의 본존과 사보살과 계단과 남묘호렌게쿄의 오자
- ⑦문영 11년 5월 24일법화취요초「本門の本尊と戒壇と題目の五字」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현설 · 일염부제 광선유포
- 경지의 개현(①~④)
- 법의 개현(⑤)
- 법체의 명시(⑥~⑦)
이렇게 해서 사도기의 교화를 거쳐, 같은 해 5월 24일 미노부 입산 직후에 법화취요초가 쓰여, 법화경의 간요는 정상에 넓혀지지 않은 삼대비법이며 그것이 대성인에 의해 세워지고 일염부제에 광선유포된다는 것이 드러내어 설해졌다.
강의는 이 흐름을 보면 조닌 앞의 어서가 중요한 뜻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맺는다. 대성인은 자신의 내증을 설하실 때에는 거의 반드시 먼저 조닌에게 내시(內示)하셨고, 또 조닌을 통해 문하에 전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조닌은 대성인이 겪으신 법난의 뜻에서 시작해 삼대비법의 유포를 밝히시기에 이르는 사도기 교화의 전체를 한결같이 받들어 읽어 온 사람이었다.
두 번의 취사 — 「법화」와 「취요」
이 절에서는 제호 「법화취요초」의 뜻과, 제호 바로 아래 적힌 찬호 「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扶桑沙門日蓮之を述ぶ)」의 뜻을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의 가르침에 따라 살핀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제호의 뜻을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法華取要抄とは『法華』の二字は一代経の中に爾前を簡び『取要』の両字は法華経の中に広略を簡ぶ。謂く、一代経の中には但法華経、法華経の中には但肝要を取る、故に『法華取要抄』と名づくるなり
법화취요초란, 「법화」 두 글자는 일대경 가운데서 이전(爾前)을 가려내고, 「취요」 두 글자는 법화경 가운데서 광략을 가려낸다. 이르자면 일대경 가운데서는 다만 법화경을, 법화경 가운데서는 다만 간요를 취한다. 그러므로 「법화취요초」라 이름하느니라.
여기서 「가려낸다(簡ぶ)」는 「골라 버린다」는 뜻이고, 이에 대해 「취한다(取る)」는 「골라 가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니치칸 상인의 가르침은 이 제호에 두 단계의 「취사(取捨)」가 담겨 있음을 밝힌 것이다.
곧 제호의 「법화」 두 글자에는 「석존 일대성교 가운데서 방편 권교인 이전경을 버리고 오직 법화경을 취한다」는 뜻이, 「취요」 두 글자에는 「법화경의 광 · 략을 버리고 오직 간요를 취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전을 버리고 법화를 취하다
먼저 「법화」 두 글자에 담긴 「이전을 버리고 법화를 취한다」는 뜻은 본초 앞부분의 가르침이 그것에 해당한다. 본초는 일대성교 가운데 법화경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다음 네 가지로 보인다고 강의는 정리한다.
-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이금당(已今當)」의 글로, 법화경이 일체경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부처 자신이 판정하셨다는 것(제3장).
- 게다가 석존 한 부처의 판정만이 아니라 다보여래와 분신의 여러 부처의 증명이 있다는 것(제3장).
- 또 법화경은 여래 멸후를 위해 설해졌다는 것(제7~11장).
- 법화경의 삼오의 이법(三五の二法)에 의해 석존의 인위 · 과위가 밝혀짐으로써, 법화경의 교주 석존이야말로 사바세계 중생에게 유연(有緣)의 부처였음이 분명해졌다는 것(제4~6장).
이렇게 하여 말법 중생을 위해서는 석존 일대성교 가운데 가장 뛰어난 법화경을 골라 취해야 한다는 것이 보여진다.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취하다 — 「취요」의 두 뜻
다음으로 「취요」 두 글자에 담긴 「법화경의 광략을 버리고 법화경의 간요를 취한다」는 뜻이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취요」에는 「여래가 요를 취하여 부촉하신 뜻을 서술한다(如来要を取って付嘱したまう旨を述ぶる)」와 「연조가 요를 취하여 홍통하시는 모습을 서술한다(蓮祖要を取って弘通したまう相を述ぶる)」의 두 뜻이 있는데, 앞의 것은 곁뜻(傍意)이고 바른 뜻(正意)은 뒤의 것에 있다고 하셨다.
바른 뜻인 「연조가 요를 취하여 홍통하시는 모습을 서술한다」는 본초 제13장의 다음 말씀을 가리킨다고 강의는 본다.
日蓮は広略を捨てて肝要を好む所謂上行菩薩所伝の妙法蓮華経の五字なり
니치렌은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좋아하느니라. 이른바 상행보살이 전한 묘법연화경의 오자이니라.
이 말씀은 말법 유포의 대법인 삼대비법을 밝히신 직후의 말씀으로, 말법에 대성인이 처음으로 넓히시는 삼대비법이 법화경의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취한 것임을 보인다. 대성인 자신이 법화경의 간요를 취하시므로 「연조가 요를 취하여」이며, 그 간요의 법이 삼대비법으로 열려 말법에 넓혀진다는 것을 밝히셨으므로 「홍통하시는 모습을 서술한다」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것을 제호 「취요」의 정의(正意)로 삼으셨다.
이에 대해 곁뜻인 「여래가 요를 취하여 부촉하신 뜻을 서술한다」는 같은 제13장의 다음 말씀을 가리킨다고 강의는 본다.
仏既に宝塔に入つて二仏座を並べ分身来集し地涌を召し出し肝要を取つて末代に当てて五字を授与せんこと当世異義有る可からず
부처께서 이미 보탑에 드시어 두 부처가 자리를 나란히 하시고, 분신이 모여 오고, 지용을 불러내시어, 간요를 취해 말대에 맞추어 오자를 주신 것은 당세에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느니라.
이 말씀에는 법화경 허공회의 의식에서 석존이 법화경의 간요를 취해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한 것, 곧 결요부촉(結要付囑)이 서술되어 있어 분명히 「취요」의 한 뜻이 보인다. 그것은 경문에도 뚜렷하므로 「당세에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부촉을 받은 지용의 상수 상행보살이 바로 대성인이며, 대성인이 넓히시는 삼대비법이 그 「요법」이라는 것은 경문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밝히는 데에 본초의 바른 뜻이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강의는 말한다. 여래의 「취요」는 경문 위의 사실이고, 연조의 「취요」는 그 사실을 말법에서 몸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요」란 무엇인가
이 「취요」를 더 분명히 하기 위해 『법화취요초 문단』은 「요」의 뜻을 논한다.
일체를 총괄하는 것
「요」의 자의는 일반적으로는 「사물의 중요한 곳, 사북」이라는 뜻이다. 『법화취요초 문단』은 「일체를 총괄하는 것, 이를 이름하여 요라 한다(一切を総括する、之を名づけて要と為す)」는 천태대사의 말을 인용하여 「요」의 자의를 설명한다.
또 『효경대의(孝經大義)』의 「어버이를 공경하면 자식이 기뻐하고, 군주를 공경하면 신하가 기뻐한다. 공경하는 대상은 적어도 기뻐하는 이는 많다. 이것을 요도(要道)라 한다」는 말을 인용한다. 이것은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감싸는 것」이라는 「요」의 뜻을 보인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나아가 「요」의 비유로 「추병(樞柄)」 · 「강유(綱維)」 · 「후금(喉襟)」 · 「목혜(目蹊)」 같은 말을 든다. 이것은 아마 『법화현의』 권9하 「명종(明宗)」 장의 글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고 강의는 본다.
宗とは修行の喉衿、顕体の要蹊なり、梁柱の屋を持ち網を結ぶ網維の如し。維を堤ぐるときは則ち目動き、梁安んずるときは則ち桷存す
종(宗)이란 수행의 목과 옷깃이요, 체를 드러내는 요긴한 길이니라. 들보와 기둥이 집을 지탱하고, 그물을 맺는 벼리와 같으니라. 벼리를 들면 그물코가 움직이고, 들보가 편안하면 서까래가 남아 있느니라.
문짝의 지도리와 자루, 그물의 벼리, 사람의 목과 옷깃, 그물코와 지름길 — 모두 그것 하나를 잡으면 전체가 따라 움직이는 자리다. 니치칸 상인의 이 가르침들은 「일체를 떠받치고, 다스리고, 움직이는 유일한 근본의 것」을 「요」의 뜻으로 보이신 것이라고 강의는 정리한다.
니치칸 상인은 이 가르침들의 끝에 법화경 견보탑품 제11의 「이 경은 지니기 어렵나니, 만약 잠시라도 지니는 자가 있으면 나는 곧 환희하며 여러 부처도 또한 그러하리라(此の経は持ち難し 若し暫くも持つ者は、我即ち歓喜す 諸仏も亦然なり)」라는 경문을 인용하셨다. 이것은 앞의 『효경대의』의 취지, 곧 「공경하는 대상은 적어도 기뻐하는 이는 많다」와 관련된 인용이다. 석존과 삼세시방의 여러 부처가 법화경을 수지하는 이에게 환희한다는 것은, 법화경이야말로 일체 부처가 성불한 근원의 최요(最要)의 법이라는 뜻이다. 「법화취요」의 「요」는 바로 그 최요의 법을 뜻한다.
광 · 략과 견주어 본 「요」
다음으로 「일체를 총괄한다」는 「요」의 뜻을 「광」 · 「략」의 자의와 대조해 본다.
어원으로 보면 「광(廣)」은 「바깥 테두리가 넓게 퍼져 텅 빈 공간」을, 「략(略)」은 「길을 내는 것」을 뜻한다고 강의는 말한다. 보통 「광」의 반대말은 「협(狹)」이고 「략」의 반대말은 「상(詳)」이다. 그러나 「광」 · 「략」을 서로 마주 보는 짝말로 쓸 때에는, 「광」이 사물을 그 넓이에서 붙잡는 것이라면, 「략」은 길을 세워 가지와 잎을 덜어 내고 그것으로 본질적인 내용을 밝히는 것이다.
이렇게 「략」이 자세한 「광」의 내용에 마디를 지어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 내어 밝힌 사물의 줄기라면, 「요」는 어떤 일의 일체를 총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 그 일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처다. 바꾸어 말하면 「략」은 자세한 「광」에 근거하여 세워진 것인 데 비해, 「요」는 「광」을 성립시키는 근원, 「광」의 모든 뜻이 있게 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략」이 「광」에서 귀납되는 방향을 가진다면, 「요」는 거기서 「광」이 열려 나오는 방향을 품고 있다.
간요의 법체 — 제호의 묘법과 수량의 묘법
『법화취요초 문단』은 「요」의 자의에 이어 그 「체(體)」를 논한다. 「일체를 총괄한다」는 「요」의 자의에 해당하는 실체가 구체적으로 법화경의 어떤 법을 가리키는가, 곧 법화경의 간요의 법체에 관한 가르침이다. 니치칸 상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諸抄の中に且く両文あり。一には一部の題号に約す、報恩抄等の如し。二には寿量の妙法に約す、本尊抄等の如し
여러 초 가운데 잠시 두 가지 글이 있다. 하나는 일부의 제호에 약하니 「보은초」 등과 같다. 둘은 수량의 묘법에 약하니 「본존초」 등과 같다.
곧 간요의 법체에 대한 어서의 가르침에는 두 뜻이 있다. 첫째 「일부의 제호에 약한다」는 법화경의 제호인 「묘법연화경」을 간요의 법체로 삼는 경우이고, 둘째 「수량의 묘법에 약한다」는 수량품 문저의 남묘호렌게쿄를 간요의 법체로 삼는 경우다.
일부의 제호에 약하다 — 「보은초」
첫째의 예가 「보은초」의 다음 가르침이다.
問うて云く法華経・一部・八巻・二十八品の中に何物か肝心なるや、答えて云く華厳経の肝心は大方広仏華厳経・阿含経の肝心は仏説中阿含経・大集経の肝心は大方等大集経・般若経の肝心は摩訶般若波羅蜜経
묻기를, 법화경 일부 팔권 이십팔품 가운데 무엇이 간심인가. 답하기를, 화엄경의 간심은 대방광불화엄경, 아함경의 간심은 불설중아함경, 대집경의 간심은 대방등대집경, 반야경의 간심은 마하반야바라밀경이니라.
かくのごとくの一切経は皆如是我聞の上の題目・其の経の肝心なり、大は大につけ小は小につけて題目をもつて肝心とす
이와 같은 일체경은 모두 여시아문 위의 제목이 그 경의 간심이니라.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제목으로써 간심을 삼느니라.
如是我聞の上の妙法蓮華経の五字は即一部八巻の肝心、亦復.一切経の肝心・一切の諸仏・菩薩・二乗・天人.修羅・竜神等の頂上の正法なり
여시아문 위의 묘법연화경 오자는 곧 일부 팔권의 간심이요, 또한 일체경의 간심이며, 일체의 제불 · 보살 · 이승 · 천인 · 수라 · 용신 등의 정상의 정법이니라.
법화경 서품 제1은 첫머리의 「여시아문(如是我聞)」에서 시작하는데, 그 들은 바의 법체는 이 「여시아문」 위에 있는 제호, 곧 「묘법연화경의 오자」이며, 이것이 「법화경의 간심」이고 나아가 「일체경의 간심」이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같은 대목에서 쌍관경 · 관경 · 아미타경 · 열반경,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도 다 그러하며, 대일여래 · 일월등명불 · 연등불 · 대통불 · 운뢰음왕불 같은 부처도 그 이름 안에 갖가지 덕을 갖추었다고 하신다.
수량의 묘법에 약하다 — 「관심의 본존초」
둘째의 예가 「관심의 본존초」의 「본문의 간심 남묘호렌게쿄의 오자」(247쪽), 「수량품의 간심인 묘법연화경의 오자(寿量品の肝心たる妙法蓮華経の五字)」(250쪽), 「수량품의 간요인 명체종용교의 남묘호렌게쿄」(251쪽) 같은 가르침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 두 뜻에 대해 「일부의 제호에 약하는 것은 일왕의 곁뜻이요, 수량의 묘법에 약하는 것은 재왕의 바른 뜻이다(一部の題号に約するは、これ一往傍義なり。寿量の妙法に約するは、再往の正義なり)」라고 하시어, 「수량의 묘법」을 바른 뜻으로 삼으셨다.
제호의 묘법은 적문의 묘법
『법화취요초 문단』은 이어서 「제호의 묘법」과 「수량의 묘법」의 차이를 논하고, 「수량의 묘법」을 바른 뜻으로 삼는 까닭을 밝힌다. 먼저 「제호의 묘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題号の妙法は仍これ迹門の妙法なり。何となれば、今日一代は皆これ迹中の所説なり、既に迹中所説の法華の題号なり。豈迹門の妙法に非ずや
제호의 묘법은 역시 적문의 묘법이다. 왜냐하면 금일 일대는 모두 적중(迹中)의 소설이며, 이미 적중 소설의 법화의 제호이니 어찌 적문의 묘법이 아니겠는가.
곧 대성인이 「보은초」 등에서 「제호의 묘법」을 법화경의 간심으로 삼으신 것은, 일왕 「적중 소설의 법화」의 글에 따라 간심의 법체를 보이신 것이다. 「적중 소설」이란 수적화타(垂迹化他)의 부처가 설한 법이라는 뜻이다. 인도에 응탄한 석존은 문저 본지의 부처와 상대하면 수적화타의 부처이므로, 석존 일대의 성교는 모두 「적중 소설」이 된다. 그러므로 법화경의 제호도 적중 소설이며, 그런 의미에서 「적문의 묘법」이 된다.
공능은 수량 문저의 대법에 돌아간다
다음으로 「수량의 묘법」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実にその功を論ぜは、悉く本門寿量文底秘沈の大法、久遠本地名字の所証の妙法に帰するなり
실로 그 공을 논하면 모두 본문 수량 문저에 비침된 대법, 구원 본지 명자의 소증의 묘법으로 돌아가느니라.
여기서 「그 공」이란 석존의 「적중 소설」의 법화경의 공덕을 말한다. 석존의 법화경에 서술된 공덕은 모두 수량 문저의 대법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일왕 「적중 소설」의 법에 따르면 법화경의 간요는 「제호의 묘법」이라 할 수 있지만, 재왕 「공」이 돌아가는 곳을 논하면 「수량 문저의 묘법」이다.
구원 명자의 묘법
위에 인용한 문단의 말씀에서는 「수량 문저의 묘법」을 다시 「구원 본지 명자의 소증의 묘법」이라고 바꾸어 말했다. 이 점을 살펴본다.
「후목서」 — 제호는 밑그림
니치칸 상인은 수량 문저의 묘법과 적중 소설의 법화경 제호의 관계에 대해 「제호는 다만 구원 명자의 묘법의 후목서(朽木書)다」라고 말씀하시고, 이어 「본인묘초」의 다음 글을 인용하셨다.
迹門の妙法蓮華経の題号は本門に似ると雖も義理・天地を隔つ成仏亦水火の不同なり、久遠名字の妙法蓮華経の朽木書なる
적문의 묘법연화경의 제호는 본문과 닮았다 하더라도 그 뜻은 하늘과 땅만큼 떨어져 있고, 성불도 또한 물과 불처럼 같지 않으니, 구원 명자의 묘법연화경의 밑그림이니라.
「후목서」란 숯이나 태운 붓으로 밑그림을 그리는 것, 또는 그 밑그림이다. 곧 적중 소설의 「제호의 묘법연화경」은 대성인이 넓히시는 수량품 문저의 「구원 명자의 묘법」을 위해 석존이 남긴 밑그림이라는 것이다.
구원 명자의 묘법이란
「구원 명자의 묘법」이란 구원원초의 본지에서 부처가 명자범부의 위(位)에 있을 때 깨달은 묘법이며, 이것이 성불의 본인(本因)이다. 이 묘법은 수량품의 「나는 본디 보살도를 행하여(我本行菩薩道)」의 문저에 비침(秘沈)되어 있으므로 「수량품의 문저」라 하고, 또 법화경과 일체경의 간요의 법체이므로 「수량품의 간심」이라고도 한다. 어서에서는 같은 뜻을 지닌 말로 「간요(肝要)」 · 「총요(惣要)」 · 「최요(最要)」 · 「요법(要法)」 · 「요진(要津)」 · 「비요(秘要)」 등이 쓰인다. 이 수량 문저의 묘법을 말법 유포의 법체로서 열어 드러낸 것이 「삼대비법」이다.
그러므로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여러 어서의 「수량의 문저」 · 「수량의 간심」 · 「삼개의 비법」 등은 모두 「구원 명자의 묘법」이라고 하신 뒤 다음과 같이 결론지으셨다.
これ則ち正中の正、妙中の妙、要中の要なり。故に当流の意は、久遠名字の妙法を肝要と名づくるなり
이는 곧 정(正) 가운데의 정이요, 묘(妙) 가운데의 묘요, 요(要) 가운데의 요이다. 그러므로 당류의 뜻은 구원 명자의 묘법을 간요라 이름하느니라.
「데라도마리어서」에서 이십팔품을 「약 가운데의 요」라 하신 것과 견주면, 「요 가운데의 요」라는 이 결론이 법화취요초의 「요」가 무엇인지를 마지막으로 못 박는다.
구원원초 · 명자묘각 · 본인묘에 대해서는 이 사이트의 구원실성과 남묘호렌게쿄 페이지가 교학의 바탕을 다룬다.
법화경의 광 · 략 · 요
이상 니치칸 상인의 가르침으로 보면, 법화경의 「광 · 략 · 요」에는 두 가지 파악 방식이 있다. 일왕 법화경의 제호를 「요」로 하는 경우의 「광 · 략 · 요」와, 재왕 구원 명자의 묘법을 「요」로 하는 경우의 「광 · 략 · 요」다. 앞의 것은 「적중 소설」이라는 같은 차원에서의 파악인 데 비해, 뒤의 것은 한 겹 깊이 「구원 명자의 묘법」을 「요」로 하고 「적중 소설」 전체를 「광」 · 「략」에 배치하는 것이다.
요가 정해지면 광 · 략은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요」에 두 파악 방식이 있는데, 각 경우의 「광」 · 「략」 · 「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되는지는 그리 엄밀하게 보이지 않는다. 강의는 그 까닭을 이렇게 본다. 말법 중생에게 중요한 것은 「요」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며, 오히려 「요」가 정해지면 「광」 · 「략」에 해당하는 것은 상대하는 것(所對)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바뀌어도 좋기 때문이 아닐까. 「요」는 「일체를 총괄하는」 것이므로 「광」의 범위는 일체로 넓어질 수 있고, 「광」이 넓어짐에 따라 「략」에 해당하는 것도 바뀐다.
세 가지 배치
예컨대 「성우문답초」는 제불의 득도에 약하여 「요」의 뜻을 말하면서 「광」 · 「략」에 해당하는 것을 시사한다.
所謂諸仏の誠諦得道の最要は只是れ妙法蓮華経の五字なり、檀王の宝位を退き竜女が蛇身を改めしも只此の五字の致す所なり
이른바 제불의 성제 득도의 최요는 다만 이 묘법연화경의 오자이니라. 단왕이 보위에서 물러나고 용녀가 뱀의 몸을 고친 것도 다만 이 오자가 이룬 바이니라.
夫れ以れば今の経は受持の多少をば一偈一句と宣べ修行の時刻をば一念随喜と定めたり、凡そ八万法蔵の広きも一部八巻の多きも只是の五字を説かんためなり
무릇 생각건대 지금의 경은 수지의 많고 적음을 한 게 한 구라 펴고, 수행의 시각을 한 생각의 수희로 정하였느니라. 무릇 팔만 법장의 넓음도 일부 팔권의 많음도 다만 이 오자를 설하기 위함이니라.
여기서는 「묘법연화경의 오자」라는 「요」에 대해 「팔만 법장」이 「광」에 해당한다. 분명히 정하지는 않으셨지만 법화경 팔권이 「략」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또 「관심의 본존초」는 오중삼단 가운데 문저하종삼단을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過去大通仏の法華経より乃至現在の華厳経乃至迹門十四品涅槃経等の一代五十余年の諸経・十方三世諸仏の微塵の経経は皆寿量の序分なり
과거 대통불의 법화경으로부터 현재의 화엄경, 적문 십사품, 열반경 등 일대 오십여 년의 여러 경, 시방삼세 제불의 미진의 경들은 모두 수량의 서분이니라.
이 가르침에 따르면 석존 일대성교만이 아니라 대통지승불의 법화경도, 삼세시방의 제불이 설한 미진의 경들도 모두 수량 문저 묘법이라는 「요」에 대한 「광」이 된다. 니치칸 상인도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마땅히 알라, 삼세시방의 미진의 경들과 무량한 공덕은 모두 다 이 요법으로 돌아간다(当に知るべし、三世十方の微塵の経々、無量の功徳は、皆悉くこの要法に帰するなり)」고 하셨다. 삼세시방의 제불은 묘법연화경 오자의 요법으로 득도했으므로, 그 설한 것이 모두 묘법연화경 오자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미진의 경들까지를 「광」으로 하면, 그와 상대하여 법화경 이십팔품은 「략」이 된다. 「데라도마리어서」가 「지금 한토 · 일본의 이십팔품은 약 가운데의 요이니라」라고 하신 것이 그 예다.
한편 같은 법화경 이십팔품을 「광」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법화경제목초」의 다음 말씀은 수행에 약하여 분명히 「광」 = 법화경 이십팔품, 「략」 = 방편품 · 수량품, 「요」 = 제목으로 배치하고 있다.
一部・八巻・二十八品を受持読誦し随喜護持等するは広なり、方便品寿量品等を受持し乃至護持するは略なり、但一四句偈乃至題目計りを唱えとなうる者を護持するは要なり、広略要の中には題目は要の内なり
일부 팔권 이십팔품을 수지 · 독송하고 수희 · 호지하는 것은 광이니라. 방편품 · 수량품 등을 수지하고 호지하는 것은 략이니라. 다만 한 사구게 내지 제목만을 부르는 자를 호지하는 것은 요이니라. 광 · 략 · 요 가운데 제목은 요 안에 드느니라.
이 경우는 수지 · 독송 등의 수행에 약한 말씀이므로 일체경이나 미진의 경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그때는 법화경 이십팔품이 「광」에, 요품인 방편품 · 수량품이 「략」에 배치된다. 그리고 이 광 · 략의 법은 모두 법화경 수량 문저의 구원 명자의 묘법연화경으로 돌아간다.
법화취요초의 광 · 략 · 요
대성인이 본초에서 「니치렌은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좋아하느니라」라고 하신 것은, 말법 중생의 성불을 위해 실천적인 의미에서 말법 유포의 법체를 골라 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본초의 경우의 「광」 · 「략」 · 「요」를 굳이 나누어 세운다면, 위 「법화경제목초」의 수행상의 배치에 해당하리라고 강의는 본다. 곧 골라 버릴 「광」 · 「략」은 법화경 이십팔품의 문의(文義)이며, 그로써 수량 문저의 묘법 즉 삼대비법을 말법 유포의 법체로 골라 취하셨다는 것이다.
제13장은 이 취사에 앞선 예로 현장 삼장(약을 버리고 광을 좋아하여 사십 권 대품경을 육백 권으로 만듦)과 구마라집 삼장(광을 버리고 약을 좋아하여 천 권 대론을 백 권으로 만듦)을 든다. 대성인의 「취요」는 이 두 번역가의 취사를 넘어서는 제3의 취사이며, 그 주체가 대성인 자신이라는 점은 四의 「대단 제3의 전개」에서 다시 본다.
부상사문 — 대성인이 쓰신 찬호들
본초에는 제호 바로 아래 「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라고 적혀 있다. 먼저 「부상사문」의 뜻을 살핀다. 어서를 쓰신 대성인의 입장을 보여 주는 표기는 여러 어서에 보이는데, 강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늘어놓는다.
- ①홍장 2년(1262)「교기시국초」「本朝沙門日蓮之を註す」본조사문 니치렌이 이를 주하노라438쪽
- ②홍장 2년(1262)「현방법초」「本朝沙門 日蓮撰」본조사문 니치렌 지음443쪽
- ③문영 3년(1266)「법화경제목초」「根本大師門人 日蓮 撰」근본대사 문인 니치렌 지음940쪽
- ④문영 9년(1272)「기도초」「本朝沙門 日蓮撰」본조사문 니치렌 지음1344쪽
- ⑤문영 10년(1273)「관심의 본존초」「本朝沙門日蓮撰」본조사문 니치렌 지음238쪽
- 본조 → 부상본조사문은 ⑤까지, ⑦부터 부상사문
- ⑥문영 10년(1273)「현불미래기」「沙門 日蓮 之を勘う」사문 니치렌이 이를 헤아리노라505쪽「桑門日蓮之を記す」상문 니치렌이 이를 적노라509쪽505쪽 · 509쪽
- ⑦문영 11년(1274)「법화취요초」「扶桑沙門日蓮之を述ぶ」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331쪽
- ⑧건치 원년(1275)「선시초」「釈子 日蓮 述ぶ」석자 니치렌 서술하노라256쪽
- ⑨홍안 5년(1282)「법화증명초」「法華経の行者 日蓮花押」법화경의 행자 니치렌 화압1586쪽
근본대사 문인 · 석자 · 법화경의 행자
이 가운데 ③ 「법화경제목초」의 「근본대사」는 전교대사를 가리키며, 대성인은 발적현본 이전의 입장에서 자신을 그 「문인」이라 하셨다. 이것은 석존 — 천태 — 전교라는 법화경 유포의 역사를 따른 계보에 근거하여 자신의 위치를 보이신 것이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⑧ 「선시초」의 「석자(釋子)」다. 이것은 발적현본 이후에 강조되는 석존 — 상행보살의 계보, 곧 자신의 행동이 석존으로부터의 직접 부촉에 근거한다는 것을 밝히신 것으로, 말법 본불로서의 내증을 외용(外用)의 측면에서 보이신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또 병상의 난조 도키미쓰를 격려하신 ⑨ 「법화증명초」의 「법화경의 행자 니치렌」이라는 표기는, 이 글이 도키미쓰를 괴롭히는 병마를 쳐부수기 위해 쓰신 혼신의 한 편임을 보여 준다.
사문 · 상문
이 세 편을 빼면 나머지 어서에는 공통으로 「사문(沙門)」이라는 말이 쓰였다. 「사문」이란 출가자 또는 불도 수행자를 뜻하며, 말법에 참된 불법을 행하는 이는 대성인 한 분뿐임을 증명하신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현불미래기」 끝의 「상문(桑門)」도 같은 뜻이다.
본조사문 — 나라에 오직 하나인 사문
그 가운데서도 특히 대성인이 자신의 입장을 보이기 위해 많이 쓰신 것이 「본조사문」이라는 표현이다. 「본조」란 외국의 조정에 대한 자기 나라의 조정이라는 뜻이고, 바뀌어 「우리나라」, 곧 「일본국」을 뜻한다. 그러므로 「본조사문」이라는 표현에는 「나라에서 오직 하나인 사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강의는 본다.
이 표현을 처음 쓰신 ① 「교기시국초」와 ② 「현방법초」는 이즈 유배 때 처음으로 오강(五綱)을 밝히고, 말법에 바르게 불법을 넓히기 위한 기준을 보이신 어서다. 특히 「교기시국초」에서는 이 다섯 가지를 알고 신명을 아끼지 않고 법화경을 넓히는 자신이야말로 「일본국의 국사」임을 선언하셨다. 또 「기도초」는 법화경에 의한 기도만이 바른 기도임을 밝히고, 당시 몽골 내습이라는 국난에 대비해 행해지던 제종의 기도를 파절하신 어서다. 그리고 ⑤ 「관심의 본존초」에서는 말대 범부의 참된 「관심」의 모습과, 그것을 위해 말법에 처음으로 넓혀질 「본존」이 밝혀졌다. 이 어서들은 모두 말법의 일본국에서 참된 불법을 행하는 이는 대성인 한 분뿐이라는 입장에서 중요 법문을 지어 내신 것이다.
이처럼 「관심의 본존초」까지는 「본조사문」이라는 표현이 쓰였는데, 법화취요초에서는 왜 「부상사문」으로 바꾸어 말씀하셨을까. 「부상」은 그저 「본조」를 바꾸어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본조」와 다른 독자적인 뜻이 담긴 말인가. 강의는 이 물음을 더 깊이 판다.
「부상」의 뜻 — 해 뜨는 나라
일본의 여러 이름
「부상」은 예로부터 쓰여 온 일본의 다른 이름이다.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에는 일본의 국호에 대해 14가지 이름이 들려 있다.
- 『법화취요초 문단』의 열네 이름 — 도요아시하라노치이호아키노미즈호노쿠니(豊葦原千五百秋瑞穂国) · 도요아키쓰시마(豊秋津島) · 우라야스노쿠니(浦安国) · 호소호코치타루쿠니(細戈千足国) · 시와카미호쓰마노쿠니(磯輪上秀真国) · 다마가키우치쿠니(玉垣内国) · 왜국(倭国) · 왜면국(倭面国) · 왜인국(倭人国) · 야마대국(耶馬台国) · 희씨국(姫氏国) · 부상국(扶桑国) · 군자국(君子国) · 일본국(日本国)
이 밖에 대표적인 것으로 「일역(日域)」 · 「야시마노쿠니」 · 「신국」 · 「스메라미쿠니」 등이 있고, 대성인은 이 밖에 다른 이름은 아니지만 「본조」를 많이 쓰셨다. 어서전집 안에서의 쓰임 횟수는 본조 27회, 부상 17회, 일역 14회, 아키쓰시마 5회, 왜국 3회, 야마대 2회, 미즈호 2회다.
또 다음의 글에서는 특별히 일본의 다른 이름을 언급하셨다.
日本国と申すは十の名あり・扶桑・野馬台・水穂・秋津洲等なり
일본국이라 하는 것에는 열 가지 이름이 있으니, 부상 · 야마대 · 미즈호 · 아키쓰시마 등이니라.
日本国を亦水穂の国と云い亦野馬台又秋津島又扶桑等云云
일본국을 또 미즈호의 나라라 하고, 또 야마대, 또 아키쓰시마, 또 부상 등이라 하느니라.
「야마대」나 「미즈호」는 그저 열거되었을 뿐이지만, 「부상」은 「일본」 · 「본조」 다음으로 많이 쓰였다. 이렇게 「부상」이 많이 쓰인 데에는 까닭이 있다고 강의는 본다.
해 뜨는 곳의 큰 뽕나무
그 까닭을 살필 때 주목되는 것은 「부상」이라는 말에 동쪽에서 떠올라 세계를 두루 비추는 해의 이미지가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부상」은 「부목(扶木)」이라고도 하며, 「크게 퍼진 뽕나무」라는 뜻이 있다. 중국의 옛 책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동쪽 바다 위 해가 떠오르는 곳에 부상이 무성하다는 전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해 뜨는 곳이라는 뜻의 「일본」이 국호로 일반화된 뒤로 주로 문학적 표현으로 「부상」이라는 이름이 많이 쓰였다.
불법이 동에서 서로
그런데 어서를 보면, 대성인은 바로 말법에 넓혀질 대법이 해 뜨듯 출현하는 국토의 이름으로 「부상」을 쓰셨고, 게다가 그때에는 반드시 그 대법이 동에서 서로, 그리고 염부제로 퍼져 나간다는 것을 시사하셨다고 강의는 본다.
天竺をば月氏という我国をば日本と申す一閻浮提・八万の国の中に大なる国は天竺・小なる国は日本なり、名のめでたきは印度第二・扶桑第一なり、仏法は月の国より始めて日の国にとどまるべし、月は西より出で東に向ひ日は東より西へ行く事天然のことはり
천축을 월지라 하고 우리나라를 일본이라 하느니라. 일염부제 팔만 나라 가운데 큰 나라는 천축이요, 작은 나라는 일본이니라. 이름의 경사로움은 인도가 둘째요 부상이 첫째이니라. 불법은 달의 나라에서 시작하여 해의 나라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달은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향하고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것은 천연의 이치이니라.
彼の大集経の文を以て此の法華経の文を惟うに後五百歳中広宣流布・於閻浮提の鳳詔・豈扶桑国に非ずや
저 대집경의 글로써 이 법화경의 글을 생각하건대, 「후오백세 중 광선유포 · 염부제에서」라는 봉조(鳳詔)는 어찌 부상국이 아니겠는가.
天竺国をば月氏国と申すは 仏の出現し給うべき名なり、扶桑国をば日本国と申すあに聖人出で給わざらむ、月は西より東に向へり月氏の仏法の東へ流るべき相なり、日は東より出づ日本の仏法の月氏へかへるべき瑞相なり
천축국을 월지국이라 하는 것은 부처가 출현하실 이름이니라. 부상국을 일본국이라 하니 어찌 성인이 나오지 않으시겠는가. 달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니 월지의 불법이 동쪽으로 흘러올 상이요, 해는 동쪽에서 나오니 일본의 불법이 월지로 돌아갈 서상이니라.
이 글들에서 분명하듯이 「부상」이라는 이름에는 말법 대법의 출현과 그 일염부제 광선유포의 뜻이 맡겨져 있다.

결문과 맞물리는 찬호
이것은 본초의 「부상사문」의 뜻을 새기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초는 말법 유포의 법체가 삼대비법임을 처음으로 밝힌 어서이기 때문이다. 특히 본초의 결문은 「이와 같이 국토가 어지러워진 뒤에 상행 등의 성인이 출현하여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고, 일사천하 · 사해가 하나같이 묘법연화경이 광선유포될 것은 의심 없으리라」이다. 본초 첫머리의 「부상사문 니치렌」이라는 말씀은 바로 이 결문과 맞물린다.
곧 말법에 광선유포할 삼대비법을 건립하는 「상행 등의 성인」이란 다름 아닌 대성인이라는 것을 표명하신 것이 「부상사문 니치렌」이라는 말씀이라고 강의는 본다. 「간효팔번초」의 「부상국을 일본국이라 하니 어찌 성인이 나오지 않으시겠는가」와, 본초 결문의 「상행 등의 성인 출현」이 한 줄로 이어진다.
「이를 서술하노라」 — 「술」은 「전함」
기 · 주 · 찬 · 감 · 술
중요 법문을 쓰신 어서에는 「니치렌 지음(日蓮撰)」 · 「니치렌이 이를 헤아리노라(日蓮之を勘う)」처럼, 제호 아래나 글 끝의 「니치렌」 서명 바로 뒤에 「기(記)」 · 「주(註)」 · 「찬(撰)」 · 「감(勘)」 · 「술(述)」 같은 글자를 적은 것이 많다. 강의는 이 글자들의 뜻의 차이를 그것이 쓰인 주요 어서와 함께 정리한다.
- 기(記) — 기억하다 · 적어 두다 · 기록하다: 「생사일대사혈맥초」 · 「제법실상초」 · 「십팔원만초」
- 주(註) — 풀어 밝히다 · 해설을 붙이다: 「교기시국초」 · 「당세염불자무간지옥사」
- 찬(撰) — 가려 나누다 · 갖추어 모아 글을 짓다: 「관심의 본존초」 · 「입정관초」 · 「법화경제목초」 · 「일대성교대의」 ·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
- 감(勘) — 잘 생각하여 정하다: 「현불미래기」 · 「당체의초」
- 술(述) — 말하여 전하다 · 말로 나타내다: 「법화취요초」 · 「선시초」
이 가운데 「찬」이 가장 많이 쓰였고 나머지는 적다. 글자에 따라 뜻에 다소의 뉘앙스 차이가 있지만, 어느 것이든 대성인이 자신의 고찰을 밝히기 위해 손수 쓰신 글임을 보인다. 본초처럼 「술」을 쓰신 것은 그 밖에 「선시초」뿐이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이 「술」의 뜻을 가르치셨다.
「술이부작」 — 공자와 주자
『법화취요초 문단』에는 「「이를 서술하노라」에서 「술」이란 전함이다(『之を述ぶ』とは、『述』とは伝なり)」라고 되어 있다. 곧 「술」은 「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논어』와 『예기』의 글을 인용하여 「술」의 뜻을 설명한다. 『예기』의 글은 『논어』의 글을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강의는 『논어』의 인용을 중심으로 살핀다.
『논어』 술이편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서술하되 짓지 않으며, 믿고 옛것을 좋아한다(子曰く、述べて作らず、信じて古を好む)」는 말이 있다. 이것은 유교의 시조 공자가 자신의 사상에 대해 한 말이다. 자기는 제멋대로 새 사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요 · 순을 비롯한 옛 선왕의 도를 바르게 사람들에게 펴서 전하려 할 뿐이라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나아가 이 공자의 말에 대한 주자의 주석을 인용하셨다.
述は旧を伝うるのみ。作は則ち創始なり、故に作は聖人に非ずんば能わず。而れども述は則ち賢者も及ぶべし、孔子は皆先王の古を伝う、未だ嘗て作る所有らざるなり
술은 옛것을 전할 뿐이다. 작은 곧 처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은 성인이 아니면 할 수 없다. 그러나 술은 현자도 미칠 수 있다. 공자는 모두 선왕의 옛것을 전했으며 일찍이 지은 바가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어지는 다음 인용이라고 강의는 말한다.
其の事は述と雖も、而も功は則ち作に倍せり、知らずんばある可からず
그 일은 술이라 하더라도 공은 작의 배가 된다.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옛 도를 지금 사람들에게 전한다 해도, 그러려면 옛 도의 본질을 속속들이 알고, 나아가 거기에 현실적인 의미를 주어 시대 속에 살려 낼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해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주자는 「공」에서는 「술」이 「작」보다 뛰어나다고 본 것이리라고 강의는 해석한다.
「연조도 또한 그러하다」
니치칸 상인은 이 인용들 뒤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蓮祖もまた爾なり。皆久遠名字の妙法、搭中付嘱の要法を伝う。豈先王の古を伝うるに非ずや。故に「『日蓮之を述ぶ』というなり
연조도 또한 그러하다. 모두 구원 명자의 묘법, 탑중 부촉의 요법을 전하신다. 어찌 선왕의 옛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상 『법화취요초 문단』의 가르침에서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의 뜻으로 다음 세 가지를 읽을 수 있다고 강의는 정리한다.
-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란 법화경에서 교주 석존이 상행보살에게 부촉한 요법을, 대성인이 상행보살의 재탄으로서 말법 중생에게 전한다는 뜻이다.
- 그 전해지는 요법은 구원 명자의 묘법이며, 가장 근원적인 성불의 법이므로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것이다.
- 이 요법을 전하여 미래의 중생을 구제해 간다는 의미에서, 그 공은 그저 창작하는 것보다 뛰어나다.
곧 대성인은 가장 근원적인 법체인 구원 명자의 묘법을 골라 취해, 말법의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것을 서술하고 유포해 가신다는 깊은 뜻이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라는 말씀에 담겨 있다.
제호의 「취요」는 무엇을 고르는가를, 찬호의 「부상사문」은 누가 어디서 고르는가를, 「이를 서술하노라」는 그 고른 것을 어떻게 내놓는가를 말한다. 강의는 이 셋을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에 따라 한 줄로 꿴다 — 해 뜨는 나라의 사문이, 탑중에서 부촉된 구원 명자의 요법을, 새로 짓지 않고 말법에 전한다.
니치칸 상인의 분과 — 세 대단 · 15단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에 따르면 본초는 세 개의 대단(大段)으로 나뉘고, 다시 15단(段)으로 잘게 나뉜다. 이 사이트의 법화취요초 연구는 이 15단을 그대로 15장으로 삼는다. 강의가 『법화취요초 문단』에 근거해 정리한 분단과 각 단의 표제는 다음과 같다. 표제의 표현은 문단 그대로가 아닌 곳도 있으나 취지는 일치한다.
대단 제1 일대 제경의 대의를 밝히다(一代諸経の大意を明かす) — 첫머리~333:15
- 제1장 일대성교의 승렬을 밝히다(一代聖教の勝劣を明かす) — 331:01–331:02
- 제2장 제종의 그릇된 해석을 보이다(諸宗の謬解を示す) — 331:02–331:10
- 제3장 법화경 최제일의 정판을 밝히다(法華経最第一の正判を明かす) — 331:10–332:10
- 제4장 삼오의 이법을 표하다(三五の二法を標す) — 332:10–332:11
- 제5장 교주의 인위에 의거해 승렬을 판정하다(教主の因位に寄せて勝劣を判ず) — 332:11–333:02
- 제6장 교주의 과위에 의거해 승렬을 판정하다(教主の果位に寄せて勝劣を判ず) — 333:02–333:15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를 밝히다(今教所被の時期を明かす) — 333:16–336:01
- 제7장 적문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迹門の末法正意を明かす) — 333:16–334:03
- 제8장 본문의 두 뜻을 간략히 보이다(本門の二意を略示す) — 334:03–334:06
- 제9장 약개근현원에 의한 재세 중생의 득탈을 밝히다(略開近顕遠による在世衆生の得脱を明かす) — 334:06–334:14
- 제10장 광개근현원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広開近顕遠の末法正意を明かす) — 334:15–335:10
- 제11장 조증 · 조현 등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助証・助顕等の末法正意を明かす) — 335:11–336:01
대단 제3 말법 유포의 대법을 밝히다(末法流布の大法を明かす) — 336:02~끝
- 제12장 삼대비법을 밝히다(三大秘法を明かす) — 336:02–336:06
- 제13장 오직 요를 취하는 까닭을 밝히다(ただ要を取るの所以を明かす) — 336:06–336:11
- 제14장 광선유포의 선상을 밝히다(広宣流布の先相を明かす) — 336:12–337:18
- 제15장 말법 광선유포를 결권하다(末法広宣流布を結勧す) — 337:18–338:04
대단 제1331:01–333:15一代諸経の大意を明かす일대 제경의 대의를 밝히다
- 제1편이금당의 교판 — 일대성교의 승렬과 제종의 그릇된 해석
- 제1장 일대성교의 승렬을 밝히다
- 제2장 제종의 그릇된 해석을 보이다
- 제3장 법화경 최제일의 정판을 밝히다
- 제2편삼오의 이법 — 교주 석존의 인위 · 과위와 주사친
- 제4장 삼오의 이법을 표하다
- 제5장 교주의 인위에 의거해 승렬을 판정하다
- 제6장 교주의 과위에 의거해 승렬을 판정하다
대단 제2333:16–336:01今教所被の時期を明かす금교소피의 시기를 밝히다
- 제3편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 — 적문 · 본문의 말법 정의
- 제7장 적문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 제8장 본문의 두 뜻을 간략히 보이다
- 제9장 약개근현원에 의한 재세 중생의 득탈을 밝히다
- 제4편광개근현원과 제일의 양약 — 수량품은 말법을 위해
- 제10장 광개근현원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 제11장 조증 · 조현 등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대단 제3336:02–338:04末法流布の大法を明かす말법 유포의 대법을 밝히다
- 제5편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다 — 삼대비법과 광선유포
- 제12장 삼대비법을 밝히다
- 제13장 오직 요를 취하는 까닭을 밝히다
- 제14장 광선유포의 선상을 밝히다
- 제15장 말법 광선유포를 결권하다
서술 형식의 전환
세 대단은 서술 형식에서도 갈린다. 대단 제1은 첫머리 「무릇 생각건대(夫れ以れば)」로 시작하는 논서체로, 제종의 교판을 하나하나 들어 파절하면서 법화경 최제일을 논증한다. 그런데 대단 제2는 첫머리에 「묻기를, 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이것을 설했는가(問うて曰く法華経は誰人の為に之を説くや)」라는 물음을 세우고, 그 뒤로는 끝의 제15장을 빼고 모두 문답 형식으로 논의를 펼친다. 강의는 대단 제2에 이르러 문답 형식을 취한 것은, 대단 제1에서 석존 일대성교 안에서의 법화경의 최승을 보였다면 대단 제2 이후에서는 그 법화경의 뜻을 대성인 자신의 입장에서 밝혀 가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제15장은 문답을 거두고 「나의 문제는 이것을 보고 법화경을 신용하라」는 권유의 말로 끝맺는다.
각 단의 요지
강의가 정리한 각 단의 요지를 따라 본초 전체의 줄거리를 짚는다. 장마다의 상세한 해설은 다섯 편에서 다룬다.
대단 제1 — 교법과 교주의 측면에서
대단 제1은 교법과 교주의 관점에서 석존의 일대 제경을 판정하여 법화경이 최고임을 보인다.
- 제1장 인도에서 중국 · 일본으로 건너온 경전 · 논서의 승렬 · 천심 · 난이 · 선후에 대해서는 인사(人師)와 종파마다 제각각이다.
- 제2장 각 종파가 자기 종의 소의 경전을 부처 설법 가운데 제일이라 하고, 그것을 주창한 제종의 원조들은 위아래 모든 사람에게 숭앙받고 있다. 화엄종 「일체경 가운데 이 경이 제일」, 법상종 「일체경 가운데 심밀경이 제일」, 삼론종 「일체경 가운데 반야경이 제일」, 진언종 「일체경 가운데 대일의 삼부경이 제일」 등이다.
- 제3장 이제 만인의 비방을 돌아보지 않고 제종의 설의 옳고 그름을 판정한다. 제종 인사 · 논사의 사의(邪義)를 버리고 본경 · 본론에 따르면, 석존 일대 오십 년의 제경 가운데 제경의 승렬을 판정하는 가장 뛰어난 글은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이금당」 세 글자다. 「이금당」의 글이야말로 모든 경을 대상으로 하여 법화경 제일을 판정한 글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여러 경에도 자기 경을 제일이라 하는 비슷한 글(相似の経文)이 있어 이것으로 제종의 설이 세워졌으나, 그것들은 일체경보다 뛰어남을 말한 글이 아니다. 게다가 「이금당」의 글은 석존 한 부처만의 판정이 아니라 다보불과 시방 분신의 증명이 있다. 또 여러 경의 글은 이승이나 적화의 보살을 향해 설해졌을 뿐, 지용천계의 상행 등에게 설해진 것이 전혀 아니다.
- 제4장 법화경과 여러 경을 견주면 20가지 점에서 법화경이 뛰어나다. 그 가운데 가장 요긴한 것이 둘, 곧 삼천진점겁과 오백진점겁의 법문이다.
- 제5장 법화경 화성유품 제7은 삼천진점겁이라는 아득한 과거의 석존의 인위를 설하여, 사바세계 일체중생에게 유연한 보살은 삼천진점겁 과거의 석존밖에 없음을 밝힌다. 이에 대해 여러 경에서는 석존의 아득한 인위의 수행 기간을 갖가지로 설하지만, 모두 석존과 사바세계 일체중생의 연을 밝힌 것이 아니다.
- 제6장 부처의 과위를 논하면,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16에서는 석존이 오백진점겁의 구원에 성도했다고 설한다. 이로써 여러 경에서 설하는 일체의 부처가 교주 석존의 소종(所從)임이 분명해지고, 사바세계 일체중생이 오백진점겁의 구원 이래 오직 교주 석존에게만 유연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대단 제2 — 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
대단 제2는 법화경이 본문이든 적문이든 멸후 말법을 위해, 그 가운데서도 대성인을 위해 설해졌음을 밝힌다.
- 제7장 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 적문 정종분 팔품에는 두 뜻이 있다. 방편품 제2에서 수학무학인기품 제9까지 차례로 읽으면 석존 재세의 보살 · 이승 · 범부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유통분부터 거꾸로(逆次) 읽으면 석존 멸후의 중생을 위해 설해진 것이다. 멸후 가운데서도 정법 · 상법의 두 때는 곁뜻이고 말법이 바른 뜻이며, 말법 가운데서도 니치렌이야말로 바른 뜻이다. 말법을 바른 뜻으로 삼는 문증은 「하물며 멸도 후에랴(況滅度後)」의 글이고, 니치렌을 바른 뜻으로 삼는 문증은 권지품 이십행 게다.
- 제8장 본문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종지용출품 제15의 약개근현원은 이전 · 적문으로 교화되어 온 재세 중생을 득탈시키기 위해 설해졌다. 둘째, 일품이반의 광개근현원은 한결같이 석존 멸후를 위해 설해졌다.
- 제9장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의 뜻은 무엇인가. 적화의 대보살과 천인 등은 이전에서는 석존의 제자조차 아니었으나, 법화경 적문의 미문(未聞)의 법을 듣고 석존의 제자가 되었다. 또 사리불 등의 이승은 석존이 처음 성도한 이래의 제자였으나 법화경에서 처음으로 실교를 받았다. 이 중생들이 모두 약개근현원에 이르러 묘각의 위에 들었다.
- 제10장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멸후 중생을 위해 설해졌으며, 그 가운데서도 멸후 가운데 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을 위해 설해졌다. 그 증문으로 용출품 약개근현원 · 동집생의 대목의 글, 수량품의 「이 좋은 양약을 지금 여기에 남겨 두노라(是好良薬今留在此)」를 비롯해 분별공덕품 제17, 여래신력품 제21, 약왕보살본사품 제23, 열반경 등의 글이 있다. 이 경문들에 있는 중생의 제일의 중병은 법화경 비방이며, 그것을 고치는 제일의 양약이야말로 남묘호렌게쿄다. 이 대법을 말법에 광선유포하지 않으면 석존의 말씀은 큰 거짓이 되고, 다보불 · 시방 분신불의 증명은 헛것이 된다.
- 제11장 다보여래의 증명, 시방 분신의 광장설상, 지용보살의 용출은 「하물며 멸도 후에랴」 · 「법으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리라(令法久住)」 등의 경문에 따르면 모두 말법의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태대사 · 전교대사는 자기 시대에는 유포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말법 유포의 때를 원하고 즐겼던 것이다.
대단 제3 — 말법에 넓힐 대법
대단 제3은 말법에 광선유포할 대법이 법화경의 간요인 삼대비법임을 명시한다.
- 제12장 석존 멸후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넓히지 않고 남겨 둔 비법은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 곧 삼대비법이다. 삼대비법이 정법 · 상법 시대에 넓혀지지 않은 것은, 넓히면 이전 · 적문의 법문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법에는 이전 · 적문의 법은 가르침만 있고 득도가 없어진 데다가, 일염부제의 중생이 모두 이미 방법에 빠져 있다. 그 역연의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는 오직 묘법연화경의 오자뿐이다.
- 제13장 어찌하여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는가. 현장은 약을 버리고 광을 좋아했고, 구마라집은 광을 버리고 약을 좋아했듯이, 취사의 예는 과거에도 있다. 니치렌은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좋아하므로, 상행보살이 석존에게서 전해 받은 요법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취한다.
- 제14장 이 대법이 넓혀질 때에는 반드시 서상이 있다는 것은 경 · 석에 비추어 틀림없다. 그 서상이란 정가의 대지진과 문영의 대혜성을 비롯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갖가지 천변지요다. 올해도 사도 지방에 두 개의 해 · 세 개의 해가 나타났다고 들었으며, 인왕경 · 금광명경 · 대집경 · 약사경 등에 설해진 갖가지 재난은 모두 이미 나타났다. 이 재난이 일어나는 것은 법을 멸하는 악비구를 숭앙하고 성인을 없애려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또 정상 이천 년의 악왕 · 악비구는 외도 · 도사 등을 써서 불법을 멸하려 했으나, 당세는 불법으로 불법을 깨뜨리고 사람들 마음 안쪽에서 정법을 잃게 하려 하므로, 견줄 수 없을 만큼 죄가 무겁고 재난도 크다.
- 제15장 나의 문제는 이것을 똑똑히 보고 법화경을 믿어 가라. 국토가 어지러워진 뒤에 상행보살 등의 성인이 출현하여 삼대비법을 건립하고, 온 세계에 묘법연화경이 광선유포되어 갈 것은 의심 없다.
분단의 쪽 · 행 경계는 강의가 『법화취요초 문단』에 근거해 든 것이다. 제2장 其の一은 331:02–331:07, 其の二는 331:07–331:10이며, 제6장 둘째 절(333:06–333:08)의 本文에 대해서는 제2편에서 다룬다.
세 대단의 관련 — 일왕에서 재왕으로
강의는 앞의 분단을 바탕으로 내용에 더 들어가 본초의 전개를 살핀다.
「법화」에서 「취요」로
세 대단 가운데 대단 제1은 교법과 교주의 양면에서 법화경이 가장 뛰어남을 보이고, 대단 제2는 법화경이 본문 · 적문 모두 말법을 위해 설해졌음을 밝힌다. 그러므로 대단 제1에서 대단 제2로의 전개는 「말법에는 석존 일대 제경 가운데 가장 뛰어난 법화경이 넓혀져야 한다」는 것을 보이는 셈이다. 이것은 三에서 본 제호 「법화」의 뜻, 곧 「이전을 버리고 법화를 취한다」에 해당한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대단 제2는 법화경이 「말법」을 위해 설해졌음을 밝히는 동시에, 「말법 가운데서는 니치렌을 바로 삼느니라(末法の中には日蓮を以て正と為すなり)」(제7장), 「멸후 가운데서는 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을 위함이니라(滅後の中には末法今時の日蓮等が為なり)」(제10장)라고 하여, 말법 가운데서도 특히 대성인을 위해 설해졌다고 한다는 점이다. 곧 대단 제2는 법화경이 말법 중생을 위해 설해졌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말법 중생을 위해 법화경을 넓히는 사람이 대성인이라는 것, 곧 능홍(能弘)의 사람을 밝히고 있다.
또 대단 제2는 능홍의 사람이 밝혀지는 데 따라 소홍(所弘)의 법에 대해서도 대단 제1보다 한층 깊이 논한다. 곧 「수량품의 일품이반」에서 설해진 「광개근현원」의 뜻을 밝히는데,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의 가르침에 따르면 거기서 「내증의 수량품」, 곧 수량 문저의 묘법이 보여진다.
이것을 받아 대단 제3에서는 말법에 유포할 가장 뛰어난 법이 법화경의 간요인 수량 문저의 묘법이며 「삼대비법」임이 밝혀진다. 이것은 제호의 「취요」의 뜻, 곧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취한다」에 해당한다. 그리고 대단 제3은 나아가 삼대비법이 말법의 일염부제에 광선유포될 것은 틀림없다는 확신을 보이며, 여기에 대성인이야말로 말법 · 일염부제의 교주이심을 시사한다.
능설 · 소설 · 소피 — 일왕과 재왕
이것을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이렇다고 강의는 말한다. 대단 제1에서 대단 제2로의 전개에서는, 일왕(一往) 능설(能說)의 교주는 「구원실성의 석존」, 소설(所說)의 경법은 「법화경」, 소피(所被)의 시기는 「말법의 중생, 특히 니치렌 대성인」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대단 제2에서 대단 제3으로의 전개에서는, 재왕(再往) 능설의 교주는 「말법의 본불 니치렌 대성인」, 소설의 경법은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 소피의 시기는 「말법 만년의 순역(順逆)의 중생」으로 밝혀진다.
- 대단 제1 일대 제경의 대의일왕능설의 교주(능홍의 사람)구원실성의 석존소설의 교법법화경소피의 시기(중생)사바세계의 일체중생
-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일왕능설의 교주(능홍의 사람)구원실성의 석존소설의 교법수량품소피의 시기(중생)니치렌 대성인 및 말법의 중생
- 대단 제2재왕능설의 교주(능홍의 사람)니치렌 대성인(능홍의 사람)소설의 교법내증의 수량품소피의 시기(중생)말법의 일체중생
- 대단 제3 말법 유포의 대법재왕능설의 교주(능홍의 사람)말법의 본불 니치렌 대성인소설의 교법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소피의 시기(중생)말법 만년의 순역의 일체중생
대단 제1의 전개 — 이금당과 삼오의 이법
법화경 최제일 — 이금당
대단 제1의 앞부분은 법화경 아닌 여러 경을 제일로 삼는 제종의 교판을 파절하면서,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이금당」 세 글자야말로 석존이 세운 참된 교판임을 서술한다. 「이금당」은 법사품의 다음 경문을 줄인 것이다.
我が所説の経典、無量千万億にして、已に説き、今説き、当に説かん。而も其の中に於いて、此の法華経、最も難信難解なり
내가 설한 경전은 무량 천만억이니, 이미 설하였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하리라. 그런데 그 가운데서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우니라.
이 글은 그 바로 앞에서 석존 멸후에 법화경을 수지하는 이에게 공덕이 있다고 설한 것을 받아, 「법화 제일」인 까닭은 법화경이 석존 일대 제경 가운데 가장 「난신난해」하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8상에서 「이미 설한 것」은 이전경, 「지금 설하는 것」은 법화경과 같은 회좌의 무량의경, 「앞으로 설할 것」은 법화경 뒤에 설해지는 열반경이라 하고, 이 경들보다 법화경이 「난신난해」한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전의 여러 경은 모두 방편을 띠고 있어 믿음을 얻기 쉽다. 무량의경은 한 법에서 열리는 무량한 뜻을 설하지만 무량한 뜻이 돌아가는 한 법을 밝히지 않으므로 이것도 믿기 쉽다. 법화경은 법을 논하면 일체의 차별이 원융하는 한 법을 설하고, 사람을 논하면 스승과 제자가 함께 구원임을 밝혀, 모두 이전의 경들과 어긋나므로 난신난해하다. 열반경은 이 법화경 뒤에 설해졌으므로 믿기 쉽다.
그리고 일체법이 돌아가는 「한 법」에 대해 법사품은 「이금당」의 글 바로 뒤에 「이 경은 제불의 비요의 장(此の経は是れ、諸仏の秘要の蔵なり)」이라고 설한다. 이로 보아 법화경이 가장 「난신난해」하다는 것은 곧 법화경이 「최승」의 법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법사품은 이 때문에 법화경을 멸후에 잘 수지하는 이에게 난이 일어남을 「이 경은 여래가 계신 때에도 오히려 원질(怨嫉)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뒤에랴(而も此の経は、如来の現在すら、猶怨嫉多し、況んや滅度の後をや)」라고 설한다. 곧 법화경이 가장 뛰어나기에 「하물며 멸도 후에랴」의 난이 일어나며, 또 가장 뛰어난 법이기에 수지하는 이에게 공덕이 있다.
그러므로 「이금당」의 글은 「① 석존이 스스로 ② 일대 제경 가운데 법화경이 최제일임을 밝히고 ③ 그것으로 멸후의 법화경 수지를 권한 글」, 곧 「석존이 멸후를 향해 스스로 세운 교판」이라고 강의는 자리매김한다.
그런데 제종의 원조들은 여러 경에서 자기 경을 제일이라 하는 비슷한 글이 있는 데 미혹되어 그것을 근거로 종을 세웠다. 그러나 대성인은 자기 경을 제일이라 하는 여러 경의 글이 혹은 외도에 대해, 혹은 소승교에 대해, 혹은 일부 대승경전에 대해 상대적인 「제일」을 말한 것이지, 일체경에 대한 참된 「제일」을 말한 것이 아니라고 파절하신다.
全く五十余年の大小・権実・顕密の諸経に相対して是れ諸経の王の大王なるに非ず所詮所対を見て経経の勝劣を弁うべきなり
결코 오십여 년의 대소 · 권실 · 현밀의 여러 경에 상대하여 이것이 여러 경의 왕 가운데 대왕이라는 것이 아니니라. 결국 상대하는 바를 보고 경들의 승렬을 분별해야 하느니라.
이에 더해 본초 제3장은, 여러 경에서 세우는 교법의 승렬은 석존 한 부처의 설인 데 비해 법화경에서 세우는 법화경 제일에는 다보여래와 시방 분신 제불의 증명이 있다고 하신다. 법화경이 일체 부처의 설에 대해 제일임을 보인 것이다. 나아가 법화경과 여러 경의 대고중의 차이를 들어, 법화경은 지용보살의 상수 상행보살에게 설해졌다고 하신다. 말법 홍통의 부촉을 받은 것이 상행보살을 비롯한 지용의 보살이므로, 「이금당」에 의한 법화경 최제일의 교판은 말법을 위한 것이고 여러 경의 교판은 말법에는 쓸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법화경의 교주 석존 — 삼오의 이법
대단 제1의 뒷부분에서는 「삼오의 이법」을 들어 논을 펴시며, 법화경의 교주 석존과 사바세계 중생의 관계를 서술하신다.
제5장에서는 「삼오의 이법」 가운데 「삼」, 곧 적문 화성유품 제7에서 설하는 「삼천진점겁」을 들어, 법화경에서 설하는 석존의 인위의 뜻을 여러 경에서 설하는 석존과 제불의 인위와 견주신다.
「삼천진점겁」이란 사람의 지혜로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과거에 대통지승불이 출현하여 법화경을 설한 때를 말한다. 이때 석존은 보살로서 대통지승불이 설한 법화경을 넓혔고, 그 결연의 중생이 지금 법화경 회좌에서 석존의 교화를 받는 사바세계의 중생이라고 한다. 이처럼 삼천진점겁 이래 교화의 처음과 끝을 서술하여 석존과 중생의 인연을 밝힘으로써, 그 사이 갖가지 교법에 의한 교화가 모두 법화경을 위한 방편이었다고 하여 그때까지 설해 온 적문 · 개삼현일의 취지를 더욱 철저하게 한 데 화성유품의 뜻이 있다. 천태대사는 이것을 법화경의 세 가지 교상(三種の教相)의 둘째로 들어, 「여래가 교화를 베푼 뜻(如来施化の意)」, 곧 석존이 갖가지 교법을 설한 까닭이 보여진다는 점에서 다른 경에 없는 교상이라고 했다.
본초는 이 삼천진점겁 과거의 석존의 인위와 견주어 여러 경에서 설하는 부처의 인위가 뒤떨어짐을 두 가지로 보이신다. ① 여러 경도 석존 과거 인위의 수행을 갖가지로 설하지만, 모두 사바세계 중생과의 인연을 밝힌 것이 아니다. ② 여러 경에서 설하는 석존 아닌 제불의 인위도 아득한 과거부터 사바세계 중생과의 인연을 밝힌 것이 아니다. 곧 법화경의 교주 석존은 「삼천진점겁」이라는 아득한 과거의 보살 때부터 사바세계 일체중생과 유연하다고 밝혀졌으므로, 인위의 관점에서도 여러 경의 석존 및 다른 제불보다 뛰어나다. 본초가 이렇게 부처의 인위를 들어 승렬을 밝힌 것은, 제종 가운데서도 특히 아미타불의 보살 시절 본원을 강조하는 염불종과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제5장의 말씀에 분명하다고 강의는 말한다.
다음으로 제6장에서는 「삼오의 이법」의 또 하나 「오백진점겁」을 들어, 법화경 본문 수량품 제16에서 설하는 교주 석존의 과위가 다른 경에서 설하는 석존과 제불의 과위보다 훨씬 뛰어남을 보이신다. 수량품의 「오백진점겁」이란 미륵 등의 대보살도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과거에 석존이 성도했다는 것으로, 석존이 인도에서 비로소 정각을 이루었다고 하는 이전 · 적문을 뿌리부터 깨뜨린 법문이다.
본초는 이 구원실성의 뜻을, 첫째 구원실성의 교주 석존과 이전 · 적문의 제불의 관계에 약하여, 둘째 구원실성의 석존과 사바세계 중생의 관계에 약하여 밝히신다.
教主釈尊は既に五百塵点劫より已来妙覚果満の仏なり大日如来・阿弥陀如来・薬師如来等の尽十方の諸仏は我等が本師教主釈尊の所従等なり、天月の万水に浮ぶ是なり
교주 석존은 이미 오백진점겁 이래 묘각과만의 부처이시니라. 대일여래 · 아미타여래 · 약사여래 등 온 시방의 제불은 우리의 본사 교주 석존의 소종들이니라. 하늘의 달이 만 갈래 물에 뜨는 것이 이것이니라.
곧 이전경에서 설하는 대일 · 아미타 · 약사 등의 제불은 모두 구원실성 석존의 소종이며, 구원실성의 석존이 본불이고 제불은 그 수적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어 법화경 적문의 다보여래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화엄경의 비로자나불이나 대일경 · 금강정경의 대일여래는 다보여래의 좌우 협사이며 「이 다보불도 수량품의 교주 석존의 소종이니라(此の多宝仏も寿量品の教主釈尊の所従なり)」라고 하신다. 주종 관계로 보면 대일여래 등은 두 겹으로 뒤떨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구원실성의 석존은 이전 · 적문의 일체 부처가 돌아가 하나 되는 근원의 부처다.
둘째, 구원실성의 석존과 사바세계 중생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 땅의 우리 중생은 오백진점겁 이래 교주 석존의 사랑하는 아들이니라(此の土の我等衆生は五百塵点劫より已来教主釈尊の愛子なり)」라고 하신다. 앞에서는 사바세계 중생에게 유연한 「보살」은 삼천진점겁 과거의 석존뿐이라 했는데, 여기서는 사바세계 중생에게 유연한 「부처」는 오백진점겁의 구원에 성도한 본문의 교주 석존뿐이라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이 가르침은 석존을 잊고 대일여래나 아미타불 등 다른 부처를 숭배하는 진언종 · 염불종 사람들을 파절하는 뜻이 있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같은 석존이라도 「소승의 석존」 · 「화엄경의 석존」 · 「법화경 적문의 석존」 등, 곧 시성정각의 석존에 사로잡혀 가장 근원적인 부처인 본문의 교주 석존을 모르는 일체 제종을 통틀어 파절하신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대단 제1의 정리
이렇게 대단 제1은 ① 먼저 「이금당」의 글로 「법화 최제일」이야말로 석존 자신과 일체 부처가 세운 바른 판정임을 보이고 ② 다음으로 「삼오의 이법」을 논하여 법화경의 교주 석존이 인위 · 과위 모두 일체 부처보다 뛰어남을 밝힌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석존 일대 제경 가운데 사바세계 일체중생에게 유연한 부처는 법화경 본문의 구원실성의 교주 석존뿐임을 보인다. 이로써 사바세계 중생은 석존 일대성교 가운데서 오로지 법화경을 골라 취해 믿고 받아야 한다는 것이 시사된다.
강의는 대단 제1의 내용을 「능설의 교주 = 구원실성의 석존, 소설의 교법 = 법화경, 소피의 중생 = 사바세계의 일체중생」으로 요약한다(도표 10의 첫 행). 대단 제1은 제종 파절을 근본으로 하며, 석존 일대성교의 범위 안에서 여러 경의 승렬을 밝히는 것이므로 일왕의 뜻이다. 이를 받은 대단 제2 이후에서는 문답 형식으로 논이 진행되며, 그로써 대성인 독자의 입장에서 재왕의 실의가 밝혀져 간다.
대단 제2의 전개 — 역차로 읽기와 내증의 수량품
첫머리의 물음
대단 제2는 첫머리에 「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이것을 설했는가」라는 물음을 세운다. 이것은 대단 제2 전체의 주제를 나타내며, 이 뒤로 법화경의 ① 적문 ② 본문 ③ 조증 · 조현의 세 측면에서, 바로 말법의 우리 중생을 위한 것임이 밝혀져 간다.
적문의 말법 정의 — 「역차로 읽는다」
먼저 대성인은 법화경 적문의 정종분이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를 논하신다. 적문 정종분인 방편품 제2에서 수학무학인기품 제9까지를 차례대로 읽으면 재세 중생을 위해 설해진 것이 되지만, 유통분을 안락행품 제14에서 권지품 제13 · 제바달다품 제12 · 견보탑품 제11 · 법사품 제10으로 「역차(逆次)」로 읽으면 멸후의 중생이 바른 뜻이고 재세의 중생은 곁뜻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 멸후에 대해서도 정상 이천 년은 곁뜻이고 말법이 바른 뜻이며, 말법 가운데서도 대성인이야말로 바른 뜻이라고 밝혀, 법화경 적문의 정종분도 결국 대성인을 위해 설해졌다고 하신다.
대성인이 여기서 적문을 「역차」로 읽는 법을 보이신 뜻은, 하나는 적문 유통분을 강조하는 데 있고, 더 깊게는 본문 쪽에서 거슬러 올라가 적문을 읽는 입장, 곧 본문의 뜻으로 적문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보이신 데 있다고 강의는 본다.
이 가운데 적문 유통분의 강조는 대성인의 법화경 신독과 관계된다. 삼류의 강적을 설하는 권지품을 비롯해,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 후에랴(猶多怨嫉況滅度後)」의 글이 나오는 법사품, 육난구이 · 영법구주를 설하는 견보탑품, 악인성불 · 여인성불을 설하는 제바달다품, 「일체 세간이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렵다(一切世間多怨難信)」의 글이 나오는 안락행품은 모두 적문 유통분에 속한다. 이 글들은 일왕은 적문 정종분에서 설한 개삼현일의 정법의 유통을 권하는 것이지만, 재왕은 모두 말법의 법화경 홍통의 모습을 설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통분부터 역차로 읽으면 적문 정종분도 말법 중생을 위해 설해진 것이며, 말법 가운데서도 유통분의 이 경문들을 신독한 대성인을 위해 설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단의 가르침은 예컨대 「개목초」의 다음 말씀에 해당한다고 강의는 본다.
法華経の第五の巻・勧持品の二十行の偈は日蓮だにも此の国に生れずば・ほとをど世尊は大妄語の人・八十万億那由佗の菩薩は提婆が虚誑罪にも堕ちぬべし
법화경 제5권 권지품의 이십행 게는 니치렌만이라도 이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자칫 세존은 큰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고,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은 제바의 허광죄에도 떨어졌으리라.
日蓮・法華経のゆへに度度ながされずば数数の二字いかんがせん、此の二字は天台・伝教もいまだ・よみ給はず況や余人をや、末法の始のしるし恐怖悪世中の金言の・あふゆへに但日蓮一人これをよめり
니치렌이 법화경 때문에 거듭 유배되지 않았다면 「삭삭(數數)」 두 글자를 어찌하겠는가. 이 두 글자는 천태 · 전교도 아직 읽지 못하셨으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랴. 말법이 시작된다는 표시인 「공포악세중(恐怖惡世中)」의 금언이 맞기 때문에 오직 니치렌 한 사람이 이것을 읽었느니라.
나아가 본문에 이르러 상행보살 등 본화 지용의 보살이 말법 법화경 홍통의 부촉을 받는데, 여기서 거슬러 보면 적문 유통분의 멸후 홍통의 모습은 모두 상행보살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적문을 「역차」로 읽는다는 것은, 멸후 홍통을 위해 요법의 부촉을 받은 상행보살의 입장에서 읽는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법화경을 신독하신 말법 본불의 경지에서 비로소 밝혀진 법문이라고 강의는 말한다.
본문의 말법 정의 — 대성인의 일품이반
본초 제8~10장에서는 법화경 「본문」에 대해 대성인의 입장에서 그 뜻을 밝히신다. 그것은 본문 정종분 일품이반의 배치 문제이며, 같은 말이지만 광개근현원의 의미 부여의 문제다.
천태대사에 따르면 종지용출품 제15의 앞부분, 지용보살이 출현하는 모습을 그린 대목을 본문의 「서분」으로 하고, 같은 품에서 석존이 「약개근현원」을 설하고 회좌의 중생이 「동집생의(動執生疑)」를 일으키는 뒷부분의 반 품과, 「광개근현원」이 설해지는 여래수량품 제16의 한 품, 분별공덕품 제17의 앞 반까지를 본문의 「정종분」으로 하여, 이것을 「일품이반」이라 부른다. 분별공덕품의 뒤 반 이후가 본문의 「유통분」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일품이반에 대해 본초 제8장은 천태대사의 소립과는 다른 대성인 독자의 배치를 하신다. 천태대사 소립의 경우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이 일품이반에 포함되지만, 대성인의 배치에서는 이것을 포함하지 않고 「동집생의」 이후를 일품이반으로 하신다. 그리고 「약개근현원」은 지금까지 교화되어 온 재세 중생의 득탈을 위한 설법이고, 「동집생의」 이후의 일품이반은 오로지 멸후 중생을 위한 설법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약개근현원」이란, 용출품에서 땅에서 출현한 무수한 지용보살을 석존이 언제 어디서 교화했느냐는 미륵 등의 질문에 대해 「나는 구원으로부터 이들 무리를 교화하였느니라(我久遠より来、是れ等の衆を教化せり)」라고 답한 것으로, 구원의 성도를 간략히 밝힌 것이다. 이로써 회좌의 중생은 석존이 성도한 지 40여 년이라는 시성정각에 대한 집착이 흔들리면서도 지금의 설은 믿기 어렵다는 의심을 일으켰는데, 이것을 「동집생의」라 한다. 그리고 이 의심에 답해 수량품에서 석존이 시성정각을 분명히 깨뜨리고 구원의 성도를 자세히 설한 것을 「광개근현원」이라 한다.
천태대사는 수량품 「광개근현원」의 설법으로 재세 중생이 「단의생신(斷疑生信)」하여 득탈했다고 보지만, 대성인은 재세 중생은 이미 「약개근현원」 때 득탈했으며 「광개근현원」은 오로지 멸후 중생을 위한 설법이라고 하신다. 대성인이 천태대사와 다른 해석을 보이신 것은, 수량품의 「광개근현원」에 대해 천태대사가 아직 밝히지 않은 깊은 뜻을 밝히시기 위해서라고 강의는 본다. 곧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에 따르면, 천태대사는 구원에서 석존의 본과(本果) 성도의 본지를 드러낸 「문상의 수량품」을 「광개근현원」으로 하여 이로써 재세 중생이 단의생신하여 득탈했다고 하는 데 비해, 대성인은 구원원초의 명자묘각의 본지를 드러내는 「내증의 수량품」을 「광개근현원」으로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초 제9장은 재세 중생의 득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다.
法華経本門の略開近顕遠に来至して華厳よりの大菩薩・二乗・大梵天・帝釈・日月・四天・竜王等は位妙覚に隣り又妙覚の位に入るなり
법화경 본문의 약개근현원에 이르러, 화엄 이래의 대보살 · 이승 · 대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 · 용왕 등은 위(位)가 묘각에 이웃하고 또 묘각의 위에 드느니라.
또 제10장은 「광개근현원의 수량품」 또는 「수량품의 일품이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하신다. 여기 가르치신 멸후 말법을 위한 수량품이야말로 「내증의 수량품」에 다름 아니다.
寿量品の一品二半は始より終に至るまで正く滅後衆生の為なり滅後の中には末法今時の日蓮等が為なり
수량품의 일품이반은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바로 멸후 중생을 위함이요, 멸후 가운데서는 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을 위함이니라.
제10장은 나아가 용출품 동집생의 대목의 「그러나 여러 새로 발심한 보살이 부처 멸후에 만약 이 말을 들으면 혹 믿고 받지 않아 법을 깨뜨리는 죄업의 인연을 일으키리라(然も諸の新発意の菩薩・仏の滅後に於て若し是の語を聞かば或は信受せずして法を破する罪業の因縁を起さん)」라는 경문과, 수량품의 「이 좋은 양약을 지금 여기에 남겨 두노라(是の好き良薬を今留めて此に在く)」라는 경문을 들어, 이것이 정종분의 일품이반이 멸후를 위해 있음을 보이는 명문이라고 하신다. 다시 본문 유통분의 여러 품과 열반경의 여러 글을 인용하여, 수량품의 글에서 남겨 두었다는 「양약」이 바로 말법에 광선유포될 법체임을 보이신 뒤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諸病の中には法華経を謗ずるが第一の重病なり、諸薬の中には南無妙法蓮華経は第一の良薬なり
여러 병 가운데서는 법화경을 비방하는 것이 제일의 중병이요, 여러 약 가운데서는 남묘호렌게쿄가 제일의 양약이니라.
곧 대성인이 넓히시는 남묘호렌게쿄야말로 수량품에 남겨 둔 「양약」이며 말법에 유포할 법체임을 보이신 것이다. 이상 법화경 본문의 정종분과 유통분의 문증으로,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이 「말법 지금의 니치렌을 위해」 설해진 것임이 분명하다고 하신다.
조증 · 조현의 말법 정의
제11장에서는 「다보의 증명」 · 「시방의 조설」 · 「지용의 용출」이 누구를 위해 이루어졌는가라는 물음이 세워진다. 이것은 직접적으로는 앞 장 끝에서, 방법의 병을 고치는 제일의 양약 남묘호렌게쿄를 넓히는 대성인이 없다면 석존은 큰 거짓말쟁이가 되고 다보불의 증명과 시방 분신의 광장설은 헛것이 된다고 하신 것을 받은 것이다. 또 대단 제1과의 관련으로 말하면, 제3장 끝에서 이금당의 교판은 다보 · 분신도 증명한 것이며 법화경은 지용의 보살에게 설해졌으므로 다른 경의 교판보다 뛰어나다고 하신 대목에 대응한다.
법화경의 교상상의 간요는 적문 정종분의 개삼현일과 본문 정종분의 개근현원인데, 이것이 다른 경에 없는 미문의 법이므로 법화경 허공회의 의식은 이것들을 여러 가지로 조증 또는 조현한다. 그것이 「다보의 증명」 · 「시방의 조설」 · 「지용의 용출」이며, 모두 허공회 의식 가운데서도 중요한 의식이다. 곧 견보탑품의 「다보의 출현」은 적문 정종분 개삼현일의 설법이 진실함을 증명하는 동시에 이후 설법이 이루어져 가는 계기가 된다. 용출품의 「지용의 용출」은 본문 정종분 개근현원의 설법의 계기이며, 신력품의 「시방의 조설」은 멸후 홍통의 대법이 위대함을 조증한다.
이 물음에 대해 먼저 사리불 · 목련 등의 이승, 문수 · 미륵 등의 대보살,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 등의 천인의 이름을 들어, 이들 석존 재세의 중생에게는 무지한 이가 한 사람도 없으므로 조증 · 조현이 필요 없다고 하신다. 이어서 법사품의 「하물며 멸도 후에랴」와 견보탑품의 「법으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리라」의 글을 인용하여, 조증 · 조현이 이루어진 것은 「오로지 우리를 위함(偏に我等が為)」이라고 결론지으신다. 「하물며 멸도 후에랴」의 글을 인용하신 것은 말법의 대성인이야말로 거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며, 「법으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리라」의 글은 석존 · 다보불 · 분신 제불의 세 부처가 모여 허공회 의식이 이루어진 까닭이 멸후에 법화경 유포에 매진하시는 대성인 한 분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를 위함」이라 하신 것이다.
이상으로 법화경은 설해진 경법도, 이루어진 불사도 모두 묘법을 바른 뜻으로 하며, 특히 대성인을 위한 것임이 밝혀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대단 제2의 맺음으로 천태대사의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わん)」와 전교대사의 「정상이 거의 지나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正像稍過ぎ已っ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를 인용하여, 두 대사가 법화경의 대법이 넓혀질 말법을 원했음을 밝히는 동시에, 이로써 그 말법 유포의 대법이 삼대비법임을 밝히는 대단 제3으로 다리를 놓으신다.
대단 제2의 정리
대단 제2는 대단 제1에서 밝혀진 가장 뛰어난 교법인 법화경에 대해, 그 소피의 시기가 총체적으로 말법의 중생임을 밝힌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적문 정종분과 본문 정종분의 뜻을 다시 묻고 있다는 점이다. 말법 유포는 법화경의 전개로 말하면 유통분에 속하는 일이며, 그런 의미에서 대성인도 본적 이문의 유통분을 중시하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대단 제2에서 묻는 것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본적 이문의 정종분에서 드러난 교법의 뜻이며, 또 그것을 조증 · 조현하는 여러 불사의 뜻이다. 곧 법화경에서 설해진 법체야말로 대단 제2의 주제이며, 수량품의 뜻을 중심으로 논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고 강의는 본다.
그러므로 대단 제2는 대단 제1의 흐름을 따라 보면 법화경의 소피의 시기를 논하는 것이지만, 거꾸로 말법 유포의 관점에서 법화경이 설한 교법의 뜻을 다시 봄으로써 대성인의 입장, 곧 문저의 입장이 표명되고 있다. 이상에서 강의는 대단 제2의 내용을, 석존이 설한 법화경의 소피의 시기를 논한다는 점에 따라 일왕 「능설의 교주 = 구원실성의 석존, 소설의 교법 = 수량품, 소피의 시기 = 대성인 및 말법의 중생」으로, 대단 제2에서 보인 본문 정종분 수량품의 일품이반이 천태대사가 해석한 「문상의 수량품」이 아니라 「내증의 수량품」이라는 관점에 따라 재왕 「능홍의 사람 = 대성인, 소홍의 교법 = 내증의 수량품, 소피의 시기 = 말법의 일체중생」으로 요약한다(도표 10의 둘째 · 셋째 행). 이로써 다음 대단 제3의 삼대비법 개현의 전제가 갖추어진다.
대단 제3의 전개 — 삼대비법과 광선유포
삼대비법의 개현
법화경이 말법 중생을 위해, 그 가운데서도 대성인을 위해 설해졌음을 밝힌 대단 제2를 받아, 대단 제3에서는 대성인이 말법 중생을 위해 세우시는 삼대비법을 드러내신다. 또 대단 제2에서는 석존이 설한 법화경의 「소피의 기」로서 말법 중생과 대성인이 나란히 놓였으나, 이 대단 제3에 이르러 대성인이 말법 중생을 위해 드러내시는 법체가 명시됨으로써 대성인이야말로 말법의 교주임이 분명해진다.
제12장 첫머리에서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세우신다.
如来滅後二千余年・竜樹・天親・天台・伝教の残したまえる所の秘法は何物ぞや
여래 멸후 2천여 년,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남겨 두신 비법은 무엇인가.
이것은 직접적으로는 앞 장 끝에서 천태대사 · 전교대사의 말을 인용하여 정상에 넓혀지지 않았음을 밝힌 것을 받아 이런 표현을 취하신 것이지만, 그 뜻은 대단 제2 전체를 받아 「석존이 수량품에 남겨 두었는데도 여래 멸후 정상 이천 년 동안 넓혀지지 않은 비법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법」인 까닭은 그저 정상에 넓혀지지 않았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석존 일대성교의 최요라 할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저에 비침된 대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물음에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이니라」라고 답하시어, 여기서 수량품 문저의 묘법이 삼대비법임이 열려 드러난다.
本門の本尊と戒壇と題目の五字となり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이니라.
이 말씀은 글 전체에서는 짧지만, 법화경의 뜻에 대해 논한 대단 제1 · 제2의 말씀 일체가 이 한 문장에 집약되어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본초의 요(要)라고 강의는 본다. 이 한 절에서 지금까지의 말씀을 돌아보면, 대단 제1에서 밝혔듯이 법화경이 최제일인 까닭은 이 삼대비법이 문저에 비침되어 있다는 데 있고, 또 법화경의 교주 석존의 뜻을 논하신 것은 석존의 구원실성의 밑바닥에 본인의 삼대비법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단 제2에서 법화경 본적 이문의 정종분이 말법을 위해 설해졌음을 밝히신 것은, 그 정종분에서 설한 교법의 실체가 삼대비법이며 이 삼대비법으로 말법의 일체중생이 구제됨을 보이신 것이다.
왜 정상에는 넓히지 않았는가
다음으로 그 삼대비법이 정상 두 때에 넓혀지지 않은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보이신다.
正像に之を弘通せば小乗・権大乗・迹門の法門・一時に滅尽す可きなり
정상에 이것을 넓혔다면 소승 · 권대승 · 적문의 법문이 한꺼번에 사라져 없어졌으리라.
재세에 결연한 중생을 득탈시키기 위해 「소승 · 권대승 · 적문의 법문」의 여러 법이 시기에 따라 넓혀졌던 것이므로, 그때 삼대비법이 넓혀졌다면 그 여러 법이 한꺼번에 소멸했으리라는 것이다. 또 이를 받아 문답에서는 말법에 수량 문저의 묘법을 넓히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보이신다.
末法に於ては大小・権実・顕密共に教のみ有つて得道無し一閻浮提皆謗法と為り畢んぬ、逆縁の為には但妙法蓮華経の五字に限る、例せば不軽品の如し我が門弟は順縁なり日本国は逆縁なり
말법에 이르러서는 대소 · 권실 · 현밀이 모두 가르침만 있고 득도가 없으며, 일염부제가 모두 방법이 되어 버렸느니라. 역연을 위해서는 다만 묘법연화경의 오자에 한하느니라. 예컨대 불경품과 같으니라. 나의 문제는 순연이요, 일본국은 역연이니라.
곧 이전 · 적문의 여러 법은 정상 두 때의 시기에 따라 가르침으로서의 역할을 마쳤고, 말법에 이르러서는 재세에 결연한 중생이 없어졌으므로 가르침만 있고 득도의 힘이 없어진다. 말법에는 본미유선(本未有善)의 중생만 남으므로 하종의 법체인 수량 문저의 묘법이 드러나야 한다. 게다가 말법 중생은 정상 두 때에 넓혀진 이전 · 적문의 여러 경에 집착하여 바른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역연의 중생이 되어 버린다. 이런 방법의 병을 고치는 제일의 양약은 묘법연화경의 오자밖에 없다고 하시며, 이런 역연의 중생에 대한 교화의 예로 불경보살의 실천을 드신다.
또 말법은 총체적으로 역연의 중생이지만, 「나의 문제는 순연이요, 일본국은 역연이니라」라고 하시듯 그 안에도 순연 · 역연의 구별이 있음을 보이신다. 순역을 함께 구하는 묘법이므로 역연의 사람도 머지않아 본심을 되찾아 정법에 귀의하여 순연이 되어 간다. 그러므로 본초의 결문에서는 장래 「일사천하 · 사해」에 삼대비법이 광선유포된다는 순연 광포가 밝혀지며, 삼대비법은 말법 만년에 걸쳐 일염부제의 일체중생을 소피의 시기로 하는 교법임이 보여진다.
오직 요를 취하는 까닭
다음으로 제13장에서는 말법에 대성인은 법화경의 광략을 버리고 간요의 묘법을 취해 넓히신다는 것이 보여진다. 과거의 취사의 예로, 약을 버리고 광을 좋아한 현장 삼장과 광을 버리고 약을 좋아한 구마라집 삼장을 든 뒤 「니치렌은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좋아하느니라. 이른바 상행보살이 전한 묘법연화경의 오자이니라」라고 「취요」의 까닭을 밝히신다.
곧 요를 취해 넓히는 것은 대성인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여기에 「취요」의 주체가 대성인 자신임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대성인이 「좋아하는」 것이 이유라 해도 그것은 그저 주관에 이유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고 강의는 강조한다. 간요의 법이란 「상행보살이 전한 묘법연화경의 오자」이기 때문이다. 곧 석존 · 다보불 · 분신 제불이 한결같이 말법에 유포해야 한다고 권하고 상행보살에게 부촉한 것이 요법이기에, 대성인은 그 상행보살의 재탄으로서 요법을 골라 취하신 것이다. 그래서 제13장은 「부처께서 이미 보탑에 드시어 두 부처가 자리를 나란히 하시고 …… 간요를 취해 말대에 맞추어 오자를 주신 것은 당세에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으로 맺어진다.
광선유포의 선상
광선유포의 선상을 밝히는 제14장은 네 개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 첫째 문답에서는 경 · 석을 인용하여, 삼대비법의 광선유포에는 반드시 선상이 있다는 도리를 보이신다.
- 둘째 문답에서는 정가 연간의 대지진, 문영 원년의 대혜성을 비롯해 지금까지의 모든 천변지요가 그 선상에 해당한다고 하시며, 특히 본초를 쓰신 문영 11년(1274) 정월과 2월에 사도에 나타난 「두 개의 해」 · 「세 개의 해」를 언급하신다.
- 셋째 문답에서는 이 천변지요가 일어나는 까닭이, 악비구와 악왕이 성인을 박해하여 불법을 깨뜨리려 하기 때문임을 경문으로 보이신다.
- 넷째 문답에서는 당세의 악비구 · 악왕에 의한 박해는 불법을 멸실하는 것이며 그 허물이 앞 시대를 넘어서므로 앞 시대에 보이지 않던 큰 재앙이 일어났다고 하신다.
이렇게 제14장은 앞 시대에 보이지 않던 큰 서상이 당세에 나타나고 있음을 보이시고, 그것으로 정상에 넓혀지지 않은 대법인 삼대비법이 유포될 전조라고 하신다.
결권 — 광선유포의 확신
그리고 제15장에서는 「나의 문제는 이것을 보고 법화경을 신용하라(我が門弟之を見て法華経を信用せよ)」라고 하시어 문하의 믿음을 재촉하시고, 나아가 「두 개의 해」가 나타나는 것은 다툼으로 국토가 어지러워질 앞선 상이라고 서술하신 뒤, 「이와 같이 국토가 어지러워진 뒤에 상행 등의 성인이 출현하여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고, 일사천하 · 사해가 하나같이 묘법연화경이 광선유포될 것은 의심 없으리라」라고 삼대비법의 일염부제 광선유포에 대한 확신을 말씀하시며 본초를 맺으신다.
강의는 이 결문을, 말법 만년 진미래제까지의 중생을 위해 대성인 자신이 광선유포의 근원인 삼대비법의 어본존을 건립하시겠다는 선언인 동시에, 삼대비법 광선유포를 위해 일어서야 함을 문하에게 권하신 것이라고 본다.
대단 제3의 정리
대단 제3에서는 말법 유포의 대법인 삼대비법이 역연의 중생을 구제하는 요법임이 보여지는 동시에, 이 법체야말로 말법에 광선유포된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런 의미에서 이 대단에서는 말법 구제의 대법은 삼대비법이며, 그것을 건립하시는 대성인이야말로 말법의 교주임이 밝혀지고 있다. 강의는 대단 제3의 내용을 「능설의 교주 = 말법의 본불 니치렌 대성인, 소설의 교법 =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 소피의 시기 = 말법 만년의 순역의 일체중생」으로 요약한다(도표 10의 넷째 행).
세 대단을 꿰는 축은 「능설 · 소설 · 소피」의 세 항이 일왕에서 재왕으로 옮겨 가는 움직임이다. 교주는 구원실성의 석존에서 말법의 본불로, 교법은 법화경에서 수량품, 내증의 수량품을 거쳐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로, 중생은 사바세계의 일체중생에서 말법 만년의 순역의 중생으로 좁혀지고 또 넓혀진다. 제호의 「법화」가 앞의 움직임을, 「취요」가 뒤의 움직임을 이름 붙인다.
15장을 다섯 편으로 읽는다
이 사이트의 법화취요초 연구는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의 15단을 15장으로 삼고, 그것을 다섯 편으로 묶었다. 대단 제1(일대 제경의 대의)은 제1 · 2편, 대단 제2(금교소피의 시기)는 제3 · 4편, 대단 제3(말법 유포의 대법)은 제5편이다. 앞의 네 편이 제호의 「법화」를, 마지막 한 편이 「취요」를 맡는다고 해도 좋다. 각 편은 장마다 本文 · 풀이 · 어구 풀이와 해설로 되어 있다.
제1편 이금당의 교판
이금당의 교판 — 일대성교의 승렬과 제종의 그릇된 해석 · 제1~3장 · 어서 331:01–332:10 · 대단 제1
- 第一 | 一代聖教の勝劣を明かす | 제1장 일대성교의 승렬을 밝히다
- 第二 | 諸宗の謬解を示す | 제2장 제종의 그릇된 해석을 보이다
- 第三 | 法華経最第一の正判を明かす | 제3장 법화경 최제일의 정판을 밝히다
「무릇 생각건대 월지 서천으로부터 한토 · 일본에 건너온 경론 오천 칠천여 권」 — 본초는 경론의 바다 앞에서 승렬을 가리는 기준을 묻는 데서 시작한다. 화엄 · 법상 · 삼론 · 진언 · 선 · 정토 · 구사 · 성실 · 율의 각 종이 내세우는 「일체경 가운데 이 경이 제일」의 주장과 그 원조들을 차례로 들고, 「보배 산에 올라 기왓장을 줍는」 어리석음을 경계한 뒤, 본경 · 본론에 따라 법사품의 「이금당」 세 글자를 최제일의 교판으로 세운다. 금광명경 · 밀엄경 · 육바라밀경 · 대일경 · 화엄경 · 반야경 · 대지도론 · 열반론의 「상사의 경문」을 「상대하는 바를 보라」는 원칙으로 가려내고, 다보 · 분신의 증명과 지용의 대고중이라는 두 근거를 더한다. 각 종의 성립사와 교판, 신역 · 구역의 문제를 함께 다룬다.
제2편 삼오의 이법
삼오의 이법 — 교주 석존의 인위 · 과위와 주사친 · 제4~6장 · 어서 332:10–333:15 · 대단 제1
- 第四 | 三五の二法を標す | 제4장 삼오의 이법을 표하다
- 第五 | 教主の因位に寄せて勝劣を判ず | 제5장 교주의 인위에 의거해 승렬을 판정하다
- 第六 | 教主の果位に寄せて勝劣を判ず | 제6장 교주의 과위에 의거해 승렬을 판정하다
법화경이 여러 경을 넘어서는 스무 가지 가운데 가장 요긴한 둘, 삼천진점겁과 오백진점겁의 「삼오의 이법」을 다룬다. 인위에서는 삼천진점겁 이래 사바세계 중생과 결연한 보살은 석존뿐이며, 「서방은 부처가 따로이니 연이 다르다」는 천태 · 묘락의 석으로 아미타 내영을 기다리는 염불을 「소의 새끼에게 말의 젖」이라 파절한다. 과위에서는 오백진점겁 이래의 본불 석존에게 대일 · 아미타 · 약사가 모두 소종이요 「하늘의 달이 만 갈래 물에 뜬」 그림자임을 밝히고, 「이 땅의 우리 중생은 교주 석존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주사친의 관계 위에서, 석존의 기일을 다른 부처의 날로 바꾼 불효를 묻는다.
제3편 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
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 — 적문 · 본문의 말법 정의 · 제7~9장 · 어서 333:16–334:14 · 대단 제2
- 第七 | 迹門の末法正意を明かす | 제7장 적문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 第八 | 本門の二意を略示す | 제8장 본문의 두 뜻을 간략히 보이다
- 第九 | 略開近顕遠による在世衆生の得脱を明かす | 제9장 약개근현원에 의한 재세 중생의 득탈을 밝히다
「묻기를, 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이것을 설했는가」 — 본초가 문답으로 바뀌는 자리다. 적문 팔품을 유통분부터 「역차로」 읽어 멸후, 말법, 그리고 「말법 가운데서는 니치렌을 바로 삼느니라」에 이르는 논리, 「자찬은 어찌된 일인가」라는 물음에 「기쁨이 몸에 넘쳐」라고 답하시는 대목을 읽는다. 이어 본문의 두 뜻 — 재세를 위한 약개근현원과 멸후를 위한 일품이반 — 을 천태대사의 일품이반과 견주고, 이전에서 제자가 아니던 대보살 · 천인과 이승이 적문 · 약개근현원에서 묘각의 위에 드는 재세 득탈의 모습을 살핀다.
제4편 광개근현원과 제일의 양약
광개근현원과 제일의 양약 — 수량품은 말법을 위해 · 제10~11장 · 어서 334:15–336:01 · 대단 제2
- 第十 | 広開近顕遠の末法正意を明かす | 제10장 광개근현원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 第十一 | 助証・助顕等の末法正意を明かす | 제11장 조증 · 조현 등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수량품의 일품이반은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바로 멸후 중생을 위함이요, 멸후 가운데서는 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을 위함이니라.」 변화의 울음과 오자서의 슬픔을 빌려 「앞 시대에 듣지 못한 법문」을 내놓는 대성인의 각오, 용출품 · 수량품 · 분별공덕품 · 신력품 · 약왕품 · 열반경의 증문, 칠자의 비유와 「제일의 중병 · 제일의 양약」을 문상의 수량품과 내증의 수량품이라는 틀로 읽는다. 이어 다보의 증명 · 시방의 조설 · 지용의 용출이 「오로지 우리를 위함」임을 밝히고, 천태 · 전교가 말법을 그리워한 글로 대단 제3에 다리를 놓는다.
제5편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다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다 — 삼대비법과 광선유포 · 제12~15장 · 어서 336:02–338:04 · 대단 제3
- 第十二 | 三大秘法を明かす | 제12장 삼대비법을 밝히다
- 第十三 | ただ要を取るの所以を明かす | 제13장 오직 요를 취하는 까닭을 밝히다
- 第十四 | 広宣流布の先相を明かす | 제14장 광선유포의 선상을 밝히다
- 第十五 | 末法広宣流布を結勧す | 제15장 말법 광선유포를 결권하다
본초의 요가 드러나는 편이다.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남긴 비법이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임을 밝히고, 정상에 넓히지 않은 까닭과 말법의 역연 · 순연을 불경보살의 예로 읽는다. 현장과 구마라집의 취사, 구포연(九包淵)의 상마법과 지도림의 강경을 지나 「니치렌은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좋아하느니라」에 이른다. 정가의 대지진 · 문영의 대혜성 · 사도의 두 해라는 선상을 최승왕경 · 인왕경 · 대집경 등의 경문으로 비추고, 「소로써 대를 치고 권으로써 실을 잃게 하는」 당세의 허물을 앞 시대와 견준 뒤, 「일사천하 · 사해가 하나같이 묘법연화경이 광선유포될 것은 의심 없으리라」는 결권으로 본초를 맺는다.
이 서강을 맺으며
법화취요초는 미노부 깊은 산중, 거처조차 정하지 못한 입산 이레째에 완성되었다. 사도에서 「관심의 본존초」를 쓰신 뒤 「이일찰만초」라는 초안을 쓰시고, 다시 다듬은 초안에 「부상」이라는 말을 넣으시고, 마침내 미노부에서 「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로 시작해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고 …… 광선유포될 것은 의심 없으리라」로 끝나는 글을 완성하셨다. 강의는 이 성립 과정을 삼대비법의 밀시에서 현설로 가는 길로 읽는다.
이 글을 받은 도키조닌은 시모사 수호의 유능한 사무 관료였고, 가마쿠라와 시모사를 오가며 문하를 잇는 「단월의 요」였다. 다쓰노쿠치에서 사도를 거쳐 미노부에 이르는 격동의 마디마다 대성인은 조닌에게 먼저 편지를 쓰셨고, 「약 가운데의 요」(데라도마리), 「일대사의 비법」(사도 도착), 「본문의 본존과 사보살과 계단과 남묘호렌게쿄의 오자」(법화행자봉난사)라는 말씀이 조닌을 거쳐 문하에 전해졌다. 법화취요초는 그 흐름의 끝에서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를 논서의 형식으로 내놓은 글이다.
제호 「법화취요」는 두 번의 취사를 말한다. 일대성교에서 이전을 버리고 법화를 취하는 것이 대단 제1 · 제2이고, 법화경에서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는 것이 대단 제3이다.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은 그 「요」를 「일체를 총괄하는 것」으로 풀고, 그 법체를 일왕 제호의 묘법이 아니라 재왕 수량 문저의 「구원 명자의 묘법」으로 정하며, 이것을 「요 가운데의 요」라 결론짓는다. 찬호의 「부상」은 그 요법이 해처럼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일염부제로 퍼져 갈 국토의 이름이고, 「서술하노라」는 그 요법을 새로 짓지 않고 「전한다」는 뜻이다.
세 대단은 「능설의 교주 · 소설의 교법 · 소피의 시기」가 일왕에서 재왕으로 옮겨 가는 길이다. 구원실성의 석존이 설한 법화경이 사바세계의 일체중생에게 — 이것이 대단 제1의 일왕이다. 그 법화경은 말법의 니치렌을 위해 설해졌다 — 이것이 대단 제2다. 그리고 말법의 본불이 내증의 수량품, 곧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말법 만년의 순역의 일체중생에게 — 이것이 대단 제3의 재왕이다.
이어지는 제1편은 본초의 첫 세 장, 곧 경론 오천 칠천여 권의 승렬을 무엇으로 가릴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각 종파의 「제일」 주장과 그 원조들, 「상사의 경문」과 「상대하는 바를 보라」는 원칙, 그리고 법사품 「이금당」 세 글자의 무게를 따라간다.
더 읽기
- 이금당의 교판 — 법화취요초 제1편 — 이 서강에 이어 제1~3장을 읽는다.
-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다 — 법화취요초 제5편 — 삼대비법과 광 · 략 · 요의 本文.
- 인물탐구 도키조닌 — 법화취요초를 받은 사람의 생애 전체.
- 관심의 본존초 — 법화취요초가 전제로 삼는 법본존 개현의 글.
- 개목초 — 사도기의 다른 정점, 사람의 본존 개현.
- 남묘호렌게쿄 — 「요」의 법체에 관한 교학의 바탕.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법화취요초(法華取要抄)」,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331–338쪽. 진적 — 나카야마 법화경사 소장.
- 니치렌 대성인의 다른 어서 — 「고니치보어서」 · 「도키전어서」 · 「망지경사」 · 「문주득의초」 · 「데라도마리어서」 · 「도키입도전답서」 · 「사도어서」 · 「진언제종위목」 · 「기조보어서」 · 「현불미래기」 · 「법화행자봉난사」 · 「개목초」 · 「관심의 본존초」 · 「보은초」 · 「본인묘초」 · 「성우문답초」 · 「법화경제목초」 · 「아키모토어서」 · 「신국왕어서」 · 「시조깅고전답서」 · 「소야입도전허어서」 · 「간효팔번초」 등,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 닛코 상인,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富士一跡門徒存知の事)」,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1604쪽 이하.
- 니치칸 상인, 『법화취요초 문단(法華取要抄文段)』 · 『법화취요초 사기(法華取要抄私記)』.
- 도키조닌, 「조슈인 본존성교사(常修院本尊聖教事)」 및 치문.
- 『묘법연화경』 T9 no.262 · 천태대사 『법화현의』 T33 no.1716 · 『법화문구』 T34 no.1718.
- 『논어』 술이편 · 주자 『논어집주』(『법화취요초 문단』 인용에 따름).
연구
- 창가학회 교학 강의 「법화취요초 서강」 1~3.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 법화취요초 영역 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