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취요초의 세 대단 가운데 마지막 대단 「말법 유포의 대법을 밝히다」가 이 편이다. 대단 제1이 법화경이 일대 제경 가운데 최제일임을, 대단 제2가 그 법화경이 적문도 본문도 말법을 위해 설해졌음을 밝혔다면, 이제 남은 물음은 「그렇다면 말법에 흐를 법 자체는 무엇인가」이다. 니치렌 대성인은 정상 이천 년의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남겨 둔 비법을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라고 처음으로 드러내어 이름하신다. 이어 법화경 이십팔품의 광 · 약을 버리고 상행보살이 부촉받은 간요의 오자만을 취하는 까닭을 밝히시니, 제호의 「취요」 두 글자가 바로 여기서 완결된다. 그 대법이 유포될 때의 선상으로 정가 대지진 · 문영 대혜성과 사도에서 보고된 「두 개의 해」를 드시고, 재난의 원인을 성인 박해에서 찾으신다. 그리고 국토가 어지러워진 뒤에 상행 등의 성인이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여 일사천하에 광선유포하리라는 확신으로 붓을 놓으신다. 이 편은 결국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는 것이 왜 말법의 길인가」를 묻는다.
이 편의 네 장은 하나의 물음과 그 답의 전개다. 제12장은 「무엇을」에 답한다. 정상에 홍통되지 않았던 까닭은 그것을 펴면 숙익의 법들이 일시에 멸진하기 때문이고, 말법에 홍통하는 까닭은 일체의 경이 「교만 있고 득도는 없으며」 일염부제가 모두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13장은 「왜 요인가」에 답한다. 현장의 광, 나집의 약을 넘어 대성인은 간요를 좋아하시며, 그 간요는 허공회에서 석가 · 다보 · 분신의 증명 아래 상행보살에게 수여된 결요부촉의 요법이다. 니치칸 상인의 『의의판문초』는 신력품의 부촉 문을 본존 · 제목 · 계단의 의문으로 읽어, 부촉된 요법과 삼대비법을 하나로 잇는다.
제14장은 그 유포의 「징조」를 다룬다. 방편품의 「여시상」과 천태의 거미 · 까치의 비유로 큰일에는 반드시 서상이 있다는 도리를 세우고, 정가 대지진 이래의 천변지요와 문영 11년 정월 사도의 「두 개의 해」를 그 서상으로 드신다. 최승왕경 왕법정론품 · 인왕경 · 대집경의 거울에 일본을 비추면, 재난의 원인은 악비구가 권력과 손잡고 성인을 없애려는 데 있다. 정상의 파불보다 말법의 파불이 무거운 까닭은 니치칸 상인의 세 뜻 — 내외 · 권실 · 다소 — 으로 풀린다. 제15장은 그 천변을 네 가지 국난의 상으로 해독하고, 그 혼란 「뒤에」 오는 광선유포를 선언한다.
이 편은 또한 법화취요초 전체의 결론이다. 첫머리의 「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와 첫 문장의 「월지 서천으로부터 한토 · 일본에」는, 끝 문장의 「일사천하 · 사해 일동의 광선유포」와 고리를 이룬다. 달의 길(불법동점)로 시작한 글이 해의 길(불법서점)로 끝나는 것이다. 다섯 편 가운데 이 편이 마지막이므로, 맺음에서는 세 대단을 짧게 되짚는다.
이 편의 장
본문
問うて云く如来滅後二千余年・竜樹・天親・天台・伝教の残したまえる所の秘法は何物ぞや、 答えて云く本門の本尊と戒壇と題目の五字となり、 問うて曰く正像等に何ぞ弘通せざるや、 答えて曰く正像に之を弘通せば小乗・権大乗・迹門の法門・一時に滅尽す可きなり、 問うて曰く仏法を滅尽するの法何ぞ之を弘通せんや、 答えて曰く末法に於ては大小・権実・顕密共に教のみ有つて得道無し一閻浮提皆謗法と為り畢んぬ、 逆縁の為には但妙法蓮華経の五字に限る、例せば不軽品の如し我が門弟は順縁なり日本国は逆縁なり、
묻되, 여래 멸후 이천여 년 동안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남겨 두신 비법(秘法)이란 무엇이뇨. 답하되,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五字)이니라. 묻되, 정법 · 상법 등의 때에는 어찌하여 이를 홍통하지 아니하였느뇨. 답하되, 정법 · 상법에 이를 홍통하면 소승 · 권대승 · 적문의 법문이 일시에 멸진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니라. 묻되, 불법을 멸진시키는 법을 어찌하여 홍통하려 하느뇨. 답하되, 말법에 있어서는 대승 · 소승, 권교 · 실교, 현교 · 밀교가 함께 교(敎)만 있고 득도는 없으며, 일염부제가 모두 방법(謗法)이 되어 버렸느니라. 역연(逆緣)의 자를 위해서는 다만 묘법연화경의 오자에 한하느니라. 비유하면 불경품(不輕品)과 같으니라. 나의 문하는 순연(順緣)이요 일본국은 역연이니라.
어구 풀이
- 大段第三대단 제3
-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이 나눈 세 대단 가운데 마지막, 「말법 유포의 대법을 밝히다(末法流布の大法を明かす)」. 336쪽 2행부터 끝까지로, 말법에 홍통될 대법이 삼대비법임을 밝히고(제12장), 그것이 광략을 버리고 취한 요법임을 보이며(제13장), 그 유포의 선상을 들고(제14장), 광선유포를 결론으로 권하는(제15장) 네 단으로 이루어진다.
- 如来滅後二千余年여래 멸후 이천여 년
- 정법 천 년 · 상법 천 년을 합친 정상 이천 년. 용수 · 천친은 정법 시대, 천태 · 전교는 상법 시대의 정사(正師)다. 그 이천여 년 동안 누구도 홍통하지 않았다는 데서 「비법」의 뜻이 선다.
- 秘法비법
- 숨겨져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법. 여래수량품의 문저에 감추어져 정상 이천 년 동안 홍통되지 않고 말법을 위해 남겨진 법을 가리킨다. 다른 어서에서는 「일대사의 비법」 · 「최대의 심밀의 정법」 등으로도 부르신다.
- 本門の本尊と戒壇と題目の五字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
- 삼대비법(三大秘法)의 세 이름. 본문의 본존 · 본문의 계단 · 본문의 제목. 「본문의」라는 수식은 셋 모두에 걸린다. 이 어서는 삼대비법의 이름을 처음으로 드러내어 밝히신(顯說) 글로 평가된다.
- 正像未弘정상 미홍
- 정법 · 상법 이천 년 동안 홍통되지 않았다는 뜻. 그 까닭을 이 장은 「일시에 멸진」으로, 「관심의 본존초」는 「기근과 시가 함께 없음」 · 「원기는 있으나 원시가 없음」으로 설명한다.
- 小乗・権大乗・迹門の法門소승 · 권대승 · 적문의 법문
- 정상 이천 년에 홍통된 숙익(熟益)의 법들. 니치칸 상인은 여기의 「적문의 법문」을 법화경 적문 십사품만이 아니라 「천태 홍통의 법화 일이문」, 곧 문상의 본적 이문 전체로 본다.
- 大小・権実・顕密대소 · 권실 · 현밀
- 니치칸 상인의 풀이로는 대 = 권대승, 소 = 소승, 권 = 이전(爾前), 실 = 적문의 법문, 현 = 다른 경, 밀 = 금교(법화경). 결국 석존 일대의 모든 경을 가리킨다.
- 教のみ有つて得道無し교만 있고 득도는 없다
- 가르침은 남아 있으나 그것으로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없다는 뜻. 「현불미래기」 · 「교행증어서」의 「교 · 행 · 증」 틀로 말하면, 말법에는 교만 있고 행 · 증이 없다.
- 一閻浮提일염부제
- 수미산 남쪽의 대륙 염부제 전체, 곧 인간 세계 전체. 「일염부제가 모두 방법」이라 하심은 말법의 중생 전체가 정법을 비방하는 상태에 놓였다는 진단이다.
- 逆縁・順縁역연 · 순연
- 정법을 듣고 반발 · 비방함으로써 오히려 맺게 되는 인연이 역연, 듣고 그대로 믿어 받아들이는 인연이 순연. 묘법은 역연의 중생에게도 하종의 이익을 준다(독고의 연).
- 不軽品불경품
-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제20. 위음왕불의 상법 시대에 상불경보살이 「我深敬汝等…」의 이십사 자를 사부대중에게 외워 들려 장목와석의 박해를 받았으나, 그를 비방한 이들도 뒤에 그 인연으로 득익했다고 설한다.
- 有数無益유수무익
- 니치칸 상인이 말법 홍통의 첫째 이유를 요약한 말. 가르침의 수효는 있으나 이익이 없다는 뜻.
- 本未有善・本已有善본미유선 · 본이유선
- 본래 선근을 아직 심지 않은 중생과 이미 심은 중생. 재세에 법화경과 결연한 정상의 중생은 본이유선, 그 결연이 없는 말법의 중생은 본미유선이다.
- 円定・円慧・円戒원정 · 원혜 · 원계
- 법화경 원교에 의거한 선정 · 지혜 · 계율. 천태대사는 원정 · 원혜를, 전교대사는 히에이산에 원돈계단을 세워 원계를 갖추었다고 「선시초」는 평한다.
- 下種・熟益・脱益하종 · 숙익 · 탈익
- 성불의 씨앗을 심는 단계, 그것을 기르는 단계, 열매를 거두어 해탈시키는 단계. 정상의 법은 숙익 · 탈익의 법, 말법의 묘법은 하종의 법이다.
대단 제3 — 말법에 흐를 대법은 무엇인가
- 대단 제1
- 대단 제2
- 대단 제3
- 제12장 삼대비법을 밝히다무엇을
- 제13장 오직 요를 취하는 까닭을 밝히다왜 요인가
- 제14장 광선유포의 선상을 밝히다그 징조
- 제15장 말법 광선유포를 결권하다결론과 권유
법화취요초의 앞 두 대단은 줄곧 「누가 설하였는가」와 「누구를 위해 설하였는가」를 물어 왔다. 대단 제1은 교법의 승렬(이금당)과 교주의 인위 · 과위(삼오의 이법)로 법화경이 일대 제경 가운데 최제일임을 확정하였고, 대단 제2는 그 법화경이 적문도 본문도 멸후 말법을 위해, 그 가운데서도 니치렌을 위해 설해졌음을 밝혔다. 이제 남은 물음은 하나다. 「그렇다면 그 말법에 홍통될 법 자체는 무엇인가.」 대단 제3은 바로 이 물음에 답한다. 강의는 이 대단의 요지를 「말법에 홍통되어야 할 대법으로서 삼대비법을 밝히고, 그 삼대비법이 정상 이시에 유포되지 않았던 까닭을 보인다」라고 정리한다.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은 이 대단을 네 단으로 나눈다. 제12단(이 장)은 삼대비법의 이름을 드러내 밝히고, 제13단은 그것이 법화경의 광 · 략을 버리고 취한 「요」임을 밝히며, 제14단은 그 대법이 유포될 때의 선상(先相)을 들고, 제15단은 문하에게 신심을 권하며 광선유포를 결론짓는다. 제호의 「취요(取要)」 두 글자가 실제로 무엇을 취하는지가 비로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이 대단이다.
이 장은 세 차례의 문답으로 짜여 있다. 첫 문답은 정상 이천 년의 네 정사가 남긴 비법이 무엇인가를 묻고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라고 답한다. 둘째 문답은 그것이 왜 정상에 홍통되지 않았는가를 묻고, 셋째 문답은 그렇게 다른 법을 멸진시킬 법을 왜 말법에는 홍통하는가를 묻는다. 셋째 답의 끝에서 대성인은 불경보살을 예로 들고, 「나의 문하는 순연이요 일본국은 역연」이라 하여 이 대단 전체가 나아갈 방향 — 역연에서 순연으로, 그리고 일사천하의 광선유포로 — 을 미리 깔아 두신다.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남긴 것
첫 물음에 이름이 오른 네 사람은 모두 법화경을 칭탄하고 그 뜻을 밝힌 정상 이시의 정사(正師)다. 강의는 먼저 그들이 무엇을 밝혔고 무엇을 밝히지 않았는지를 차례로 짚는다.
정법 시대의 용수는 『대지도론』에서 이승작불을 설하는 법화경만이 비밀교이고, 이승작불을 설하지 않는 반야경은 비밀교가 아니라고 하여 법화경의 뜻 일부를 드러냈다. 천친은 『법화론』을 지어 다른 경에서 볼 수 없는 법화경의 교상상 특질을 밝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법화경관은 적문을 중심으로 하고, 그나마 교상에 치우쳐 있어서, 법화경 관심의 법문인 일념삼천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대성인은 이를 여러 곳에서 말씀하신다.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竜樹・天親・知つてしかも・いまだ・ひろいいださず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저(文底)에 잠겨 있느니라. 용수 · 천친은 알면서도 아직 건져 내지 아니하였느니라.
問うて曰く竜樹天親等は如何、答えて曰く此等の聖人は知つて之を言わざる仁なり、或は迹門の一分之を宣べて本門と観心とを云わず
묻되, 용수 · 천친 등은 어떠한가. 답하되, 이들 성인은 알면서도 이를 말하지 않은 사람이니라. 혹은 적문의 일부를 펴되 본문과 관심은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시초」는 용수의 『중론』이 펼친 삼제가 「華厳・般若等の四教・三諦の法門なりいまだ法華開会の三諦をば宣べ給はず」(267쪽) — 화엄 · 반야 등의 사교 · 삼제의 법문이며 아직 법화 개회의 삼제는 펴지 않았다 — 라고 평한다. 요컨대 용수 · 천친은 법화경의 일념삼천을 알았으나, 밖으로는 권대승을 홍통하고 법화경에 대해서는 적문의 일부만을 말했을 뿐이라는 것이 강의의 정리다.
상법 시대에 들어 중국의 천태대사는 『마하지관』 · 『법화현의』 · 『법화문구』의 천태 삼대부를 지어 법화경의 일념삼천을 밝히고, 그것을 증득하기 위한 수행으로 지관행을 세웠다. 일본의 전교대사는 천태의 소설에 기대어 법화경이 근본의 경임을 밝히고 적문의 원돈계단을 세웠다. 「선시초」는 천태가 홍통한 법문을 이렇게 평가한다.
正法一千年・像法の前四百年・已上仏滅後・一千四百余年にいまだ論師の弘通し給はざる一代超過の円定・円慧を漢土に弘通し給うのみならず其の声月氏までもきこえぬ、法華経の広宣流布にはにたれどもいまだ円頓の戒壇を立てられず小乗の威儀をもつて円の慧定に切りつけるはすこし便なきににたり、例せば日輪の蝕するがごとし月輪のかけたるに似たり
정법 일천 년과 상법의 앞 사백 년, 합하여 불멸후 일천사백여 년 동안 어떤 논사도 홍통하지 않았던 일대를 넘어서는 원정 · 원혜를 한토에 홍통하셨을 뿐 아니라 그 명성이 월지에까지 들렸느니라. 법화경의 광선유포와 닮기는 하였으나 아직 원돈의 계단을 세우지 못하여, 소승의 위의(계율)를 원교의 혜 · 정에 이어 붙인 것은 조금 형편에 맞지 않는 듯하니, 비유하면 해가 일식을 당한 것과 같고 달이 이지러진 것과 닮았느니라.
원정 · 원혜란 법화경에 기댄 원교의 선정과 지혜, 곧 일념삼천을 증득하기 위한 관심의 수행이다. 천태는 이것을 홍통하였으나 법화경에 기댄 원계를 세우지 못해 이지러진 데가 있었다. 그 원계를 세운 사람이 전교대사다. 같은 「선시초」는 전교가 흠명 천황 이래 이백여 년의 그릇된 뜻을 논파하고, 감진 화상이 홍통한 일본 소승의 세 계단을 논파하여 히에이산에 원돈의 대승별수계를 건립한 일을 「불멸후 일천팔백 년 동안 신독(인도) · 시나(중국) · 부상(일본) 내지 일염부제 제일의 기사(奇事)」(271쪽)라 칭하고, 내증은 용수 · 천태에 혹 못하거나 같을지라도 불법의 사람을 모두 한 법으로 귀일시킨 점에서는 용수 · 천친을 넘고 남악 · 천태보다도 뛰어나 보인다고 하신다.
이렇게 전교에 이르러 법화경에 기댄 계 · 정 · 혜가 갖추어졌다. 「보은초」는 이 흐름을 총괄한다.
されば内証は同じけれども法の流布は迦葉・阿難よりも馬鳴・竜樹等はすぐれ馬鳴等よりも天台はすぐれ天台よりも伝教は超えさせ給いたり、世末になれば人の智はあさく仏教はふかくなる事なり、例せば軽病は凡薬・重病には仙薬・弱人には強きかたうど有りて扶くるこれなり
그러므로 내증은 같을지라도 법의 유포로 말하면 가섭 · 아난보다 마명 · 용수 등이 뛰어나고, 마명 등보다 천태가 뛰어나며, 천태보다 전교가 넘어서셨느니라. 세상이 말세로 갈수록 사람의 지혜는 얕아지고 불교는 깊어지는 법이니, 비유하면 가벼운 병에는 보통 약, 무거운 병에는 선약(仙藥)을 쓰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한 편이 있어 돕는 것과 같으니라.
「세상이 말세로 갈수록 사람의 지혜는 얕아지고 불교는 깊어진다」는 이 한 줄이 이 장 전체의 원리다. 정상 이시의 정사들은 저마다 시에 맞추어 법화경의 뜻을 선양했지만, 수량품 문저에 잠긴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만은 아직 펴지 않았다. 그 「남겨 두신 것」을 대성인이 처음으로 이름 붙여 드러내신 것이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다.
삼대비법의 이름은 이 어서에 앞서 문영 11년 정월의 「법화행자봉난사」 추신에 「天台伝教は之を宣べて本門の本尊と四菩薩と戒壇と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と之を残したもう」(965쪽)로 이미 나타나며, 그 까닭으로 「하나는 부처가 수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둘은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을 드신다. 뒤의 「보은초」는 「其の形貌如何」라는 물음에 본존 · 계단 · 제목을 차례로 풀어 보이신다. 법화취요초는 그 사이에서 세 이름을 문답의 정면에 세운 글이다.
왜 정상에는 홍통하지 않았는가 — 「일시에 멸진」
둘째 문답의 답은 짧다. 「정상에 이를 홍통하면 소승 · 권대승 · 적문의 법문이 일시에 멸진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니라.」 강의는 여기서 두 물음을 끌어낸다. 삼대비법을 홍통하면 왜 숙익의 법들이 일시에 멸진하는가. 그리고 정상 이시에는 왜 그 법들이 멸진해서는 안 되었는가.
후자부터 보자. 「관심의 본존초」는 먼저 정법 시대에 지용의 보살이 출현하여 삼대비법을 설하지 않은 까닭을 이렇게 밝히신다.
正法一千年の間は小乗権大乗なり機時共に之れ無く四依の大士小権を以て縁と為して在世の下種之を脱せしむ 謗多くして熟益を破る可き故に之を説かず例せば在世の前四味の機根の如し
정법 일천 년 동안은 소승 · 권대승의 시대이니라. 기근도 시도 함께 없으므로, 사의(四依)의 대사(大士)가 소승 · 권교를 연으로 삼아 재세에 심은 씨앗을 해탈시키느니라. 비방이 많아 숙익을 깨뜨릴 것이므로 이를 설하지 아니하였으니, 비유하면 재세의 전사미(前四味)의 기근과 같으니라.
정법 시대는 사의의 사람들이 소승 · 권대승을 홍통하는 때이고, 중생은 그 가르침을 연으로 삼아 석존 재세에 받은 하종을 숙성시킨 뒤 해탈해 간다. 정법의 중생은 소승 · 권대승으로 재세의 법화경 하종을 기른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때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설하면 그들은 그것을 비방하여 해탈에 이르는 숙익을 스스로 깨뜨리고 만다.
상법 시대에 대해서도 같은 어서는 말씀하신다.
像法の中末に観音・薬王・南岳・天台等と示現し出現して迹門を以て面と為し本門を以て裏と為して百界千如・一念三千其の義を尽せり、但理具を論じて事行の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並びに本門の本尊未だ広く之を行ぜず所詮円機有つて円時無き故なり
상법의 중 · 말에 관음 · 약왕이 남악 · 천태 등으로 시현 · 출현하여 적문을 겉으로 삼고 본문을 속으로 삼아 백계천여 · 일념삼천의 뜻을 다하였느니라. 다만 이구(理具)만을 논하고 사행(事行)의 남묘호렌게쿄의 오자와 본문의 본존은 아직 널리 행하지 아니하였으니, 요컨대 원기(圓機)는 있으나 원시(圓時)가 없기 때문이니라.
상법의 중생은 정법보다 지혜가 얕아져 소승 · 권대승보다 깊은 법화경이 홍통되어야 했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재세 법화경과 맺은 결연의 씨앗을 길러 해탈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천태는 이 시대의 정사였으므로 시에 맞는 법인 적문의 이(理)의 일념삼천을 설하고 그 위에 지관행을 세웠으며, 「사행의 남묘호렌게쿄의 오자와 본문의 본존」, 곧 삼대비법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설할 수 없었다. 강의는 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정상 이시는 이미 재세 법화경과 결연한 본이유선의 중생이 나오는 시대이고, 그 결연의 씨앗을 기르는 연으로서 소승 · 권대승 · 법화경 적문의 가르침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그 가르침들은 정상 이시에 멸진해서는 안 되었다.
그렇다면 왜 삼대비법을 설하면 그 법들이 멸진하는가. 강의는 두 갈래로 답한다. 하나는 이미 말한 대로, 숙익의 단계에 있는 정상의 중생이 남묘호렌게쿄를 비방하여 선근을 잃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법 자체에 즉한 이유로, 남묘호렌게쿄의 역용(力用)이 일체 가르침의 근본이므로 그것이 드러나면 다른 가르침은 모두 제 몫의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보은초」는 이를 여러 비유로 그려 보이신다.
大日の真言・薬師の真言・阿弥陀の真言・観音の真言等又かくのごとし、彼の経経にしては大王・須弥山・日月・良薬・如意珠・利剣等のやうなれども法華経の題目に対すれば雲泥の勝劣なるのみならず皆各各・当体の自用を失ふ、例せば衆星の光の一の日輪にうばはれ諸の鉄の一の磁石に値うて利性のつき大剣の小火に値て用を失ない牛乳・驢乳等の師子王の乳に値うて水となり衆狐が術・一犬に値うて失い、狗犬が小虎に値うて色を変ずるがごとし、南無妙法蓮華経と申せば南無阿弥陀仏の用も南無大日真言の用も観世音菩薩の用も一切の諸仏・諸経・諸菩薩の用皆悉く妙法蓮華経の用に失なはる、彼の経経は妙法蓮華経の用を借ずば皆いたづらのものなるべし当時眼前のことはりなり
대일의 진언 · 약사의 진언 · 아미타의 진언 · 관음의 진언 등도 또한 이와 같으니, 저 경들 안에서는 대왕 · 수미산 · 일월 · 양약 · 여의주 · 날카로운 칼 같지만, 법화경의 제목에 대면 운니(雲泥)의 승렬일 뿐 아니라 모두 저마다 당체의 자용(自用)을 잃느니라. 비유하면 뭇별의 빛이 하나의 해에 빼앗기고, 온갖 쇠가 하나의 자석을 만나 날이 다하고, 큰 칼이 작은 불을 만나 쓰임을 잃고, 소젖 · 나귀젖이 사자왕의 젖을 만나 물이 되고, 뭇 여우의 술법이 개 한 마리를 만나 없어지고, 개가 작은 호랑이를 만나 낯빛이 변하는 것과 같으니라. 남묘호렌게쿄라고 하면 남무아미타불의 쓰임도, 남무대일진언의 쓰임도, 관세음보살의 쓰임도, 일체의 제불 · 제경 · 제보살의 쓰임이 모두 묘법연화경의 쓰임에 빼앗기느니라. 저 경들은 묘법연화경의 쓰임을 빌리지 않으면 모두 헛된 것이 되리니, 지금 눈앞의 이치이니라.
해가 뜨면 별빛이 사라지듯, 근본의 법이 드러나면 지엽의 법은 그 자리에서 독자의 힘을 잃는다. 정상 이시에는 그 지엽의 법들이 아직 중생을 기르는 몫을 다하고 있었으므로, 근본의 해를 띄워서는 안 되었다.
「적문의 법문」은 무엇까지인가 — 니치칸 상인의 풀이
이 대목에서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 중요한 주의를 남긴다. 정상에 삼대비법을 홍통하면 일시에 멸진한다는 「소승 · 권대승 · 적문의 법문」 가운데 「적문의 법문」은, 이 어서의 대의로 보면 단지 법화경 적문 십사품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천태 홍통의 법화 일이문(法華一二門)」, 곧 본적 이문 전체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어서에서 상법 홍통의 법으로 적문만이 거명되었다고 해서 문상의 본문이 말법 홍통의 법이라는 뜻은 아님을 분명히 하려는 풀이다.
앞에 인용한 「관심의 본존초」가 천태 홍통의 법문을 「적문을 겉으로 삼고 본문을 속으로 삼아」라고 하셨듯이, 천태는 이의 일념삼천을 밝힐 때 적문을 겉에 세우되 속으로는 문상의 본문을 쓰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천태 홍통의 본적 이문, 곧 문상의 법화경 일부 전체가 이 어서 뒤에서 말하는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한다」의 「광략의 법문」에 해당하며, 따라서 문상의 본문도 멸진해야 할 상법의 교법 안에 들어간다고 강의는 본다. 이 점은 제13장의 광 · 략 · 요의 구별과 그대로 이어진다.
대성인은 「우에노전답서」에서 이 구별을 날카롭게 말씀하신다.
南無妙法蓮華経と申すは法華経の中の肝心・人の中の神のごとし、此れにものを・ならぶれば・きさきのならべて二王をおとことし、乃至きさきの大臣已下になひなひとつぐがごとし、わざはひのみなもとなり、正法・像法には此の法門をひろめず余経を失わじがためなり、今末法に入りぬれば余経も法華経もせんなし、但南無妙法蓮華経なるべし、かう申し出だして候も・わたくしの計にはあらず、釈迦・多宝・十方の諸仏・地涌千界の御計なり、此の南無妙法蓮華経に余事をまじへば・ゆゆしきひが事なり
남묘호렌게쿄라 함은 법화경 가운데의 간심이요, 사람에게 있어 혼과 같으니라. 이것에 다른 것을 나란히 두면, 왕비가 두 왕을 남편으로 삼는 것과 같고, (중략) 왕비가 대신 이하에게 몰래 몸을 맡기는 것과 같아서 재앙의 근원이니라. 정법 · 상법에 이 법문을 펴지 않은 것은 다른 경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느니라. 이제 말법에 들어서면 다른 경도 법화경도 소용이 없고 다만 남묘호렌게쿄일 뿐이니라.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나의 사사로운 헤아림이 아니라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 · 지용천계의 헤아림이니라. 이 남묘호렌게쿄에 다른 일을 섞으면 큰 잘못이니라.
「정법 · 상법에 이 법문을 펴지 않은 것은 다른 경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구절은 이 장의 「일시에 멸진」과 정확히 같은 뜻이다. 그리고 「다른 경도 법화경도 소용이 없다」는 말씀은, 다른 경뿐 아니라 문상의 법화경도 말법 홍통의 법이 아니며 오직 문저의 요법인 남묘호렌게쿄만이 말법 홍통의 법이라는 엄격한 구별이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정상 미홍의 까닭을 중생의 기근(본이유선의 숙익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과 법의 힘(근본의 법이 드러나면 지엽의 법은 자용을 잃는다)의 두 면에서 풀고, 니치칸 상인을 따라 멸진할 「적문의 법문」에 문상의 본문까지 포함시켜, 말법 홍통의 법은 오직 문저의 남묘호렌게쿄임을 분명히 한다.
말법에 홍통하는 두 까닭 — 「유수무익」과 「불경의 예」
셋째 물음은 반문이다. 그렇게 불법을 멸진시킬 법을 왜 굳이 홍통하는가. 대성인의 답은 「말법에 있어서는 대소 · 권실 · 현밀이 함께 교만 있고 득도는 없으며, 일염부제가 모두 방법이 되어 버렸다. 역연을 위해서는 다만 묘법연화경의 오자에 한한다. 비유하면 불경품과 같다」이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이를 두 이유로 요약한다.
- 첫째 「유수무익의 까닭(有数無益の故)」 — 「설령 법대로 홍교가 있을지라도 말법에 이르러서는 대소 · 권실 · 현밀이 함께 교는 있으나 득도가 없다. 그러므로 삼대비법을 홍통하는 것이다.」
- 둘째 「불경의 예에 의한 까닭(不軽の例による故)」 — 「하물며 홍법 · 자각 · 법연 이래 일염부제가 모두 방법이 되어 버렸다. 역연을 위해서는 다만 묘법 오자에 한한다. 불경에 비기는 까닭에 삼대비법을 홍통하는 것이다.」
교만 있고 득도는 없다
「대소 · 권실 · 현밀」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대는 곧 권대승, 소는 곧 소승, 권은 곧 이전, 실은 곧 적문의 법문이 됨을. 현은 곧 다른 경, 밀은 곧 금교이다」라고 풀이한다. 말법에 득도가 없다는 「대소 · 권실 · 현밀」은 결국 석존 일대의 모든 경을 가리킨다.
말법에 제경의 득도가 없어지는 까닭은 「현불미래기」에 자세하다.
法華経を以て之を探るに正法千年に三事を具するは在世に於て法華経に結縁する者か、其の後正法に生れて小乗の教行を以て縁と為し小乗の証を得るなり、像法に於ては在世の結縁微薄の故に小乗に於て証すること無く此の人・権大乗を以て縁と為して十方の浄土に生ず、末法に於ては大小の益共に之無し、小乗には教のみ有つて行証無し大乗には教行のみ有つて冥顕の証之無し
법화경으로써 이를 살피건대, 정법 천 년에 세 가지(교 · 행 · 증)를 갖춘 것은 재세에 법화경과 결연한 자일 것이니라. 그 뒤 정법에 태어나 소승의 교 · 행을 연으로 삼아 소승의 증을 얻었느니라. 상법에는 재세의 결연이 미박하므로 소승으로는 증을 얻지 못하고, 이 사람들은 권대승을 연으로 삼아 시방의 정토에 태어났느니라. 말법에는 대승 · 소승의 이익이 함께 없으니, 소승에는 교만 있고 행 · 증이 없으며 대승에는 교 · 행만 있고 명(冥) · 현(顯)의 증이 없느니라.
이 어서는 정상 이시에 제경으로 「증」을 얻느냐 못 얻느냐가 재세 법화경과의 결연이 두터우냐 엷으냐에 달려 있음을 밝힌다. 결연이 깊은 중생은 정법에 태어나 소승의 교 · 행을 연으로 소승 당분의 증을 얻었고, 결연이 더 엷은 중생은 상법에 태어나 권대승의 교 · 행으로 당분의 증을 얻었다. 다만 강의가 강조하듯 이 증은 어디까지나 소승 · 권대승 당분의 증이며 숙익에 머무는 것이지 성불의 과보가 아니다. 더구나 그 숙익마저 재세 법화경과의 결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소승 · 권대승의 교 · 행 자체는 숙익의 연으로서만 기능할 뿐 독자의 이익은 없다. 「교행증어서」는 이를 분명히 하신다.
夫れ正像二千年に小乗権大乗を持依して其の功を入れて修行せしかば大体其の益有り、然りと雖も彼れ彼れの経経を修行せし人人は自依の経経にして益を得ると思へども法華経を以て其の意を探れば一分の益なし、所以は何ん仏の在世にして法華経に結縁せしが其の機の熟否に依り円機純熟の者は在世にして仏に成れり、根機微劣の者は正法に退転して権大乗経の浄名・思益・観経・仁王・般若経等にして其の証果を取れること在世の如し、されば正法には教行証の三つ倶に兼備せり、像法には教行のみ有つて証無し
무릇 정상 이천 년에 소승 · 권대승을 지니고 의지하여 공을 들여 수행하였으므로 대체로 그 이익이 있었느니라. 그러나 저마다의 경을 수행한 사람들은 스스로 의지한 경에서 이익을 얻었다고 생각하나, 법화경으로써 그 뜻을 살피면 일분의 이익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부처의 재세에 법화경과 결연하였는데 그 기근의 익고 덜 익음에 따라 원기가 순숙한 자는 재세에서 성불하였고, 근기가 미열한 자는 정법에 물러나 권대승경인 정명 · 사익 · 관경 · 인왕 · 반야경 등에서 그 증과를 얻은 것이 재세와 같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정법에는 교 · 행 · 증의 셋이 함께 갖추어졌고, 상법에는 교 · 행만 있고 증이 없느니라.
그렇다면 정상의 중생이 소승 · 권대승으로 숙익을 얻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관심의 본존초」에 「正像末等に小権等を以て縁と為して法華に入る例せば在世の前四味の者の如し」(248쪽) — 정상말 등에 소승 · 권교를 연으로 하여 법화경에 들어가니 비유하면 재세의 전사미의 자와 같다 — 라고 하셨듯이, 소승 · 권대승의 숙익을 거쳐 법화경에 들어가고 그 법화경에서 비로소 해탈한다.
이 문에는 정상뿐 아니라 「말」, 곧 말법에도 소승 · 권대승을 연으로 법화경에 드는 중생이 있다고 되어 있다. 강의는 이것을 말법 초에도 재세 법화경과 결연한 사람이 극히 소수 남아 있다는 뜻으로 읽는다. 그러나 말법에 들어 법화경의 행자가 출현하기까지의 이백 년 사이에 그런 사람들은 이미 해탈하였고, 조금 남았더라도 방법의 무리가 가득하여 그 결연의 선근조차 탁세 속에 사라져 버린다. 「소승대승분별초」의 말씀이다.
今は又末法に入つて二百余歳・過去現在に法華経の種を殖えたりし人人も・やうやくつきはてぬ、又種をうへたる人人は少少あるらめども世間の大悪人・出生の謗法の者数をしらず国に充満せり、譬えば大火の中の小水・大水の中の小火・大海の中の水・大地の中の金なんどの如く悪業とのみなりぬ
지금은 또 말법에 들어 이백여 년, 과거 · 현재에 법화경의 씨앗을 심었던 사람들도 점점 다하여 없어졌느니라. 또 씨앗을 심은 사람이 조금은 있겠지만, 세간의 대악인과 출세간의 방법의 자가 수를 알 수 없이 나라에 가득하니, 비유하면 큰불 속의 작은 물, 큰물 속의 작은 불, 큰 바다 속의 물 한 방울, 대지 속의 금 한 알과 같아서 오직 악업만이 되어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말법의 중생은 총체적으로 법화경과 결연이 없는 본미유선의 중생이다. 재세 결연이 없으니 소승 · 권대승의 교 · 행으로 증을 얻을 수 없고, 권소의 숙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곧 법화경에 들어갈 수도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화경은 숙익을 거친 본이유선의 중생을 해탈시키는 교법, 곧 문상 탈익의 법화경이다. 이 문상의 법화경도 말법에는 무익하다. 「교행증어서」는 다시 말씀하신다.
今末法に入りては教のみ有つて行証無く在世結縁の者一人も無し権実の二機悉く失せり、此の時は濁悪たる当世の逆謗の二人に初めて本門の肝心寿量品の南無妙法蓮華経を以て下種と為す
지금 말법에 들어서는 교만 있고 행 · 증이 없으며 재세에 결연한 자는 한 사람도 없으니, 권실 두 기근이 모두 없어졌느니라. 이때는 탁악한 당세의 역(逆) · 방(謗)의 두 사람에게 처음으로 본문의 간심인 수량품의 남묘호렌게쿄로써 하종을 하느니라.
말법의 중생은 재세 결연이 없어 권실 이교로 이익을 얻는 기근이 아니며, 수량품 문저의 남묘호렌게쿄만이 하종익의 요법이다. 이것이 「유수무익」의 뜻이다.
역연을 위해서는 오자에 한한다
둘째 이유는 말법에 방법의 중생이 가득하므로, 홍통되어야 할 법은 역연의 중생을 구할 수 있는 「묘법연화경의 오자」에 한한다는 것이다. 「현불미래기」는 정상에 세워진 권소의 종들이 말법에 들어 집착을 더욱 굳혀 「소로써 대를 치고 권으로써 실을 깨뜨려」 국토에 방법의 자가 가득해지고, 불교에 의해 악도에 떨어지는 자는 대지의 미진보다 많고 정법을 행하여 불도를 얻는 자는 손톱 위의 흙보다 적으며, 제천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사천 · 사귀가 왕신 · 비구 · 비구니의 몸에 들어 법화경의 행자를 매리 · 훼욕하게 하는 때라고 진단하신 뒤, 이렇게 이어 가신다.
爾りと雖も仏の滅後に於て四味・三教等の邪執を捨て実大乗の法華経に帰せば諸天善神並びに地涌千界等の菩薩・法華の行者を守護せん此の人は守護の力を得て本門の本尊・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堤に広宣流布せしめんか、例せば威音王仏の像法の時・不軽菩薩・我深敬等の二十四字を以て彼の土に広宣流布し一国の杖木等の大難を招きしが如し
그렇기는 하나 부처의 멸후에 사미 · 삼교 등의 그릇된 집착을 버리고 실대승인 법화경에 귀의하면, 제천선신과 지용천계 등의 보살이 법화의 행자를 수호하리라. 이 사람은 수호의 힘을 얻어 본문의 본존 · 묘법연화경의 오자로써 염부제에 광선유포하게 하리라. 비유하면 위음왕불의 상법 때에 불경보살이 「我深敬」 등의 이십사 자로써 그 국토에 광선유포하고 온 나라의 장목 등의 대난을 부른 것과 같으니라.
「관심의 본존초」도 「今末法の初小を以て大を打ち権を以て実を破し 東西共に之を失し天地顛倒せり迹化の四依は隠れて現前せず諸天其の国を棄て之を守護せず、此の時地涌の菩薩始めて世に出現し但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 幼稚に服せしむ」(253쪽) — 지금 말법의 처음에 소로써 대를 치고 권으로써 실을 깨뜨려 동서가 함께 이를 잃고 천지가 전도되었으며, 적화의 사의는 숨어 나타나지 않고 제천은 그 나라를 버려 수호하지 않는다. 이때 지용의 보살이 비로소 세상에 출현하여 다만 묘법연화경의 오자로써 어린 중생에게 먹이신다 — 라 하시고, 이어 「此の時地涌千界出現して本門の釈尊を脇士と為す一閻浮提第一の本尊此の国に立つ可し」(254쪽)라고 말씀하신다.
이 문들에서 보듯 「묘법연화경의 오자」는 곧 「본문의 본존」이며, 이 본문의 본존에 삼대비법이 총재(總在)한다는 것이 강의의 이해다. 강의는 둘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한다. 「묘법연화경의 오자」가 수량품 문저에 감추어진 구원원초의 유밀(唯密)의 정법의 이름을 가리킨다면, 「삼대비법」은 그 구원원초의 정법이 말법의 중생에게 홍통될 때의 「형모(形貌)」다. 곧 삼대비법은 구원원초의 정법에서 열려 나온 말법 유포의 법체다.
불경보살의 홍통과 대성인의 홍통
대성인은 상불경보살품에 설해진 불경보살의 홍통을 역연의 중생에 대한 홍통의 「예」로 드신다. 두 홍통의 대비는 다른 어서에도 나타난다.
例せば威音王仏の像法の時・不軽菩薩・我深敬等の二十四字を以て彼の土に広宣流布し一国の杖木等の大難を招きしが如し、彼の二十四字と此の五字と其の語殊なりと雖も其の意是れ同じ彼の像法の末と是の末法の初と全く同じ彼の不軽菩薩は初随喜の人・日蓮は名字の凡夫なり
비유하면 위음왕불의 상법 때에 불경보살이 「我深敬」 등의 이십사 자로써 그 국토에 광선유포하고 온 나라의 장목 등의 대난을 부른 것과 같으니라. 저 이십사 자와 이 오자는 그 말은 다르지만 그 뜻은 같고, 저 상법의 끝과 이 말법의 처음은 완전히 같으며, 저 불경보살은 초수희(初隨喜)의 사람이요 니치렌은 명자(名字)의 범부이니라.
往過去の威音王仏の像法に三宝を知る者一人も無かりしに・不軽菩薩出現して教主説き置き給いし二十四字を一切衆生に向つて唱えしめしがごとし、彼の二十四字を聞きし者は一人も無く亦不軽大士に値つて益を得たり、是れ則ち前の聞法を下種とせし故なり、今も亦是くの如し、彼は像法・此れは濁悪の末法・彼は初随喜の行者・此れは名字の凡夫・彼は二十四字の下種・此れは唯五字なり
지난 과거 위음왕불의 상법에 삼보를 아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는데, 불경보살이 출현하여 교주가 설해 두신 이십사 자를 일체중생을 향해 외우게 한 것과 같으니라. 저 이십사 자를 들은 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또 불경대사를 만나 이익을 얻었으니, 이는 곧 앞서의 문법(聞法)을 하종으로 삼은 까닭이니라. 지금도 또한 이와 같으니, 저것은 상법이요 이것은 탁악의 말법이며, 저것은 초수희의 행자요 이것은 명자의 범부이며, 저것은 이십사 자의 하종이요 이것은 오직 오자이니라.
강의는 이 문들에 나타난 불경보살의 홍통과 대성인의 홍통의 공통점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 ①부처 입멸 후의 탁세에 출현하여 범부로서 법화경을 홍통
- ②요법을 편다
- ③중생의 기근을 조숙시키지 않고 곧바로 법화경으로써 강하게 독을 바른다(而強毒之) — 순연 · 역연을 함께 구함
- ④난을 참고 받는다
불경보살의 실천은 부처 멸후 법화경 홍통의 방궤(方軌)를 보인 것이며, 대성인도 이 방궤에 따라 법화경을 홍통하시므로 불경품을 자신의 홍통의 「예」로 삼으셨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이 연결은 앞서 「데라도마리어서」에 「過去の不軽品は今の勧持品今の勧持品は過去の不軽品なり」(953쪽) — 과거의 불경품은 지금의 권지품이요 지금의 권지품은 과거의 불경품이다 — 라고 하신 말씀과 이어져 있다. 권지품의 삼류 강적을 몸으로 읽은 대성인에게 불경보살은 이미 자신의 거울이었다.
「나의 문하는 순연, 일본국은 역연」 — 대단 제3의 방향
이 장은 「나의 문하는 순연이요 일본국은 역연이니라」로 끝난다. 강의는 이것을 말법의 역연 중생을 위해서는 다만 묘법연화경의 오자에 한한다는 말씀을 받아, 말법의 중생은 총체적으로 본미유선이지만 그 가운데에도 순연과 역연의 구별이 있음을 보이신 것으로 읽는다.
묘법연화경의 오자는 그것을 듣고 반발하는 역연의 중생에게도 하종의 이익을 베푸는 대법이지만, 듣고 순순히 믿어 받는 중생은 순연의 사람이다. 혹은 처음에는 반발하여 역연을 맺었다가 뒤에 마음을 고쳐 믿는다면 그 사람은 순연의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법화초심성불초」의 한 구절이 그 원리다.
とてもかくても法華経を強いて説き聞かすべし、信ぜん人は仏になるべし謗ぜん者は毒鼓の縁となつて仏になるべきなり
어떻게 해서든 법화경을 굳이 설해 들려주어야 하느니라. 믿는 사람은 부처가 될 것이요, 비방하는 자는 독고(毒鼓)의 연이 되어 부처가 되리라.
대성인이 홍통하시는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는 순 · 역 어느 쪽 중생이든 소피(所被)의 기근으로 삼는다.
니치칸 상인은 「나의 문하는 순연이요 일본국은 역연」에 대해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이렇게 말한다. 「마땅히 알라. 홍통의 처음에는 일국이 모두 역연이다. 그러나 묘법이 점점 퍼져 순연이 점점 늘어난다. 그런 뒤 마침내 역연이 모두 다하고 일국이 모두 순연이 된다.」 강의는 이 풀이가 삼대비법을 밝힌 이 장에서 시작되는 대단 제3 전체의 취지를 꿰뚫은 것이라고 본다. 곧 이 장에서 삼대비법을 밝히신 뒤,
- 먼저 「一閻浮提皆謗法と為り畢んぬ」로 대성인 홍통의 처음에는 역연의 중생이 가득했음을 보이시고,
- 「我が門弟は順縁なり日本国は逆縁なり」로 순연의 제자가 점점 늘어 왔음을 보이시며,
- 이 어서 맨 끝의 「上行等の聖人出現し本門の三つの法門之を建立し一四天・四海一同に妙法蓮華経の広宣流布疑い無からん者か」로 미래의 순연 광포를 내다보신다.
- ① 제12장 · 홍통의 처음, 역연이 가득一閻浮提皆謗法と為り畢んぬ일염부제가 모두 방법이 되었다
- ② 제12장 · 순연의 제자가 늘어남我が門弟は順縁なり日本国は逆縁なり나의 문하는 순연, 일본국은 역연
- ③ 제15장 · 미래의 순연 광포一四天・四海一同に妙法蓮華経の広宣流布疑い無からん者か일사천하 · 사해가 한가지로 묘법연화경이 광선유포할 것은 의심 없으리라
이렇게 읽으면 이 장의 마지막 한 줄은 단순한 현상 진단이 아니다. 「일본국은 역연」이라는 냉엄한 현실과 「나의 문하는 순연」이라는 작은 씨앗이 나란히 놓이고, 그 씨앗이 자라 「일사천하 · 사해 일동」의 광선유포에 이르리라는 전망이 이 대단의 끝에서 완결된다. 제13장 이하는 그 사이를 잇는다. 왜 하필 「요」인가(제13장), 그 유포의 징조는 무엇인가(제14장), 그리고 문하는 무엇을 보고 믿어야 하는가(제15장).
강의는 이 장을 대단 제3의 서론으로 읽는다. 삼대비법의 이름을 드러내고, 정상 미홍과 말법 홍통의 까닭을 기근과 법의 두 면에서 밝히며, 「역연에서 순연으로」라는 광포의 도정을 처음과 끝의 문으로 짝지어 보인다.
본문
疑つて云く何ぞ広略を捨て要を取るや、 答えて曰く玄弉三蔵は略を捨てて広を好み四十巻の大品経を六百巻と成す羅什三蔵は広を捨て略を好む千巻の大論を百巻と成せり、 日蓮は広略を捨てて肝要を好む所謂上行菩薩所伝の妙法蓮華経の五字なり、 九包淵が馬を相するの法は玄黄を略して駿逸を取る支道林が経を講ずるには細科を捨てて元意を取る等云云、 仏既に宝塔に入つて二仏座を並べ分身来集し地涌を召し出し肝要を取つて末代に当てて五字を授与せんこと当世異義有る可からず。
의심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광(廣) · 약(略)을 버리고 요(要)를 취하느뇨. 답하되, 현장삼장은 약을 버리고 광을 좋아하여 사십 권의 대품경을 육백 권으로 만들었고, 나집삼장은 광을 버리고 약을 좋아하여 천 권의 대론을 백 권으로 만들었느니라. 니치렌은 광 · 약을 버리고 간요(肝要)를 좋아하나니, 이른바 상행보살이 전한 묘법연화경의 오자이니라. 구포연(九包淵)이 말을 감정하는 법은 검고 누른 털빛을 생략하고 준마인가를 취하였고, 지도림(支道林)이 경을 강설할 때는 잘게 나눈 과문(科文)을 버리고 근본의 뜻을 취하였다 운운. 부처가 이미 보탑에 들어 두 부처가 자리를 나란히 하고, 분신이 모여 오고, 지용을 불러내어 간요를 취해 말대에 맞추어 오자를 수여하신 일에는 지금 세상에도 다른 뜻이 있을 수 없느니라.
어구 풀이
- 広・略・要광 · 약 · 요
- 법을 전하는 세 방식. 광은 모든 것을 망라해 넓게 전함, 약은 불필요한 것을 덜어 내 줄기와 본질을 드러냄, 요는 그 가운데 가장 핵심인 간요만을 취함. 이 어서에서 버려지는 광 · 약은 법화경 이십팔품의 문의(文義), 취해지는 요는 수량품 문저의 묘법 곧 삼대비법이다.
- 玄弉三蔵현장삼장
- 당나라의 역경승(602~664). 인도에 가서 범본을 가져와 『대반야경』 육백 권 등 칠십오 부 일천삼백삼십오 권을 번역했다. 그의 번역을 신역(新譯)이라 하고, 직역을 중시하는 역풍으로 알려진다.
- 大品経대품경
- 구마라집이 번역한 『마하반야바라밀경』(대품반야경) 사십 권(또는 이십칠 권본으로도 전한다). 현장 역 『대반야경』 십육회 가운데 제2회에 해당한다.
- 羅什三蔵나집삼장
- 구마라집(鳩摩羅什). 구자국 출신으로 후진의 장안에서 『묘법연화경』 · 『대지도론』 등을 번역했다. 그의 번역을 구역(舊譯)의 대표로 친다. 대성인은 역경가 가운데 그 한 사람만이 경의 뜻을 바르게 전했다고 평하신다.
- 大論대론
- 용수의 『대지도론』. 대품반야경의 주석서로, 나집이 첫 품의 주석만 온전히 옮기고 나머지는 요점만 초역하여 백 권으로 만들었다. 다 옮겼으면 천 권에 이르렀으리라고 한다.
- 九包淵구포연
- 중국 춘추 시대 진(秦)나라 때의 말 감정가로 전하는 인물. 『회남자』 · 『열자』 등에 백락의 소개로 진 목공에게 명마를 구해 준 이야기가 실려 있다(문헌에 따라 「구방고(九方皐)」 · 「구방인」 등으로도 적힌다).
- 玄黄を略して駿逸を取る현황을 생략하고 준일을 취하다
- 검은빛 · 누른빛 같은 털빛(겉모습)을 따지지 않고 그 말이 준마인가(본질)만을 보았다는 뜻.
- 支道林지도림
- 동진의 학승 지둔(支遁, 314~366). 자는 도림. 반야경 · 유마경의 강설로 이름을 떨쳤고, 장구에 매이지 않고 요지를 얻는다는 평을 들었다고 『고승전』 권4에 전한다.
- 細科・元意세과 · 원의
- 경문을 잘게 나눈 분과(分科)와, 경의 근본 뜻.
- 上行菩薩所伝상행보살 소전
- 상행보살이 부처에게서 부촉받아 전하는 것. 상행은 종지용출품에서 용출한 지용 보살의 상수(上首) 사도사 가운데 첫째다.
- 二仏並座・分身来集이불병좌 · 분신래집
- 견보탑품에서 다보탑이 열리고 석가 · 다보 두 부처가 탑 안에 나란히 앉고, 시방의 분신 제불이 모여드는 장면. 허공회 의식의 시작이다.
- 結要付嘱결요부촉
- 여래신력품에서 석존이 상행 등 지용의 보살에게 법화경의 요점을 네 구절로 맺어 부촉한 일. 「要を以って之を言わば」로 시작하므로 결요(結要), 상행 등에게만 하였으므로 별부촉이라 한다.
- 四句の要法사구의 요법
- 결요부촉의 문 「如来の一切の所有の法、如来の一切の自在の神力、如来の一切の秘要の蔵、如来の一切の甚深の事」의 네 구절. 천태는 이를 오중현의의 명 · 용 · 체 · 종에 배당한다.
- 枢柄추병
- 지도리와 자루, 곧 사물의 가장 중요한 손잡이. 『법화문구』의 「其の枢柄を撮って而して之を授与す」의 말로, 『어의구전』은 이를 「제목의 오자」라 푼다.
- 依義判文抄의의판문초
- 니치칸 상인의 육권초 가운데 하나. 경문을 삼대비법의 뜻에 의거하여 판별한 글로, 신력품의 문을 삼대비법의 의문(依文)으로 배당한다.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한다 — 제호 「취요」의 자리
강의는 이 장의 총론에서, 이 장이 대성인께서 광략의 법화경을 버리고 법화경의 간요인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취하는 까닭을 밝힌 곳이며, 제호 「법화취요」의 의의와 연유를 보이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니치칸 상인은 제호를 이렇게 풀었다. 「『법화』 두 글자는 일대경 가운데서 이전을 가려 내고, 『취요』 두 글자는 법화경 가운데서 광략을 가려 낸다. 일대경 가운데서는 오직 법화경, 법화경 가운데서는 오직 간요를 취하므로 『법화취요초』라 이름한다.」 앞의 두 대단이 「법화」 두 글자, 곧 일대경 가운데 법화경을 고르는 일이었다면, 이 장은 「취요」 두 글자, 곧 법화경 안에서 다시 요를 고르는 일이다.
물음은 「어찌하여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느냐」이다. 앞 장에서 정상 미홍의 삼대비법이 「묘법연화경의 오자」로 총괄되었으니, 법화경 팔 권 이십팔품이 엄연히 있는데 왜 그 오자만을 취하는가 하는 의심은 자연스럽다. 대성인은 세 단계로 답하신다. 먼저 역경사의 선례(현장의 광, 나집의 약)를 들고, 이어 간요를 취하는 선례(구포연과 지도림)를 들며, 마지막으로 그 간요가 허공회에서 상행보살에게 부촉된 법임을 경문으로 확정하신다.
- 광廣현장삼장略を捨てて広を好み四十巻の大品経を六百巻と成す약을 버리고 광을 좋아해 사십 권의 대품경을 육백 권으로 만들었다모든 것을 망라 · 직역
- 약略나집삼장広を捨て略を好む千巻の大論を百巻と成せり광을 버리고 약을 좋아해 천 권의 대론을 백 권으로 만들었다줄기와 본질을 드러냄
- 요要니치렌広略を捨てて肝要を好む所謂上行菩薩所伝の妙法蓮華経の五字なり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좋아하니 이른바 상행보살 소전의 묘법연화경의 오자이다부촉된 요법만을 취함
현장의 광과 나집의 약 — 두 역경가
먼저 대성인은 약을 버리고 광을 취한 현장, 거꾸로 광을 버리고 약을 취한 구마라집의 예를 드신다. 이렇게 광 · 약을 취사한 선례를 듦으로써,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취하는 대성인 자신의 취사도 불법 홍통의 방궤에서 보아 결코 기이한 일이 아님을 보이신다는 것이 강의의 이해다.
구마라집과 현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역경가다. 제1장에서 보았듯 중국의 경전 한역은 나집을 대표로 하는 구역과 현장을 대표로 하는 신역으로 나뉜다.
대품경 사십 권과 대반야경 육백 권
현장이 약을 버리고 광을 좋아한 예로 대성인은 「사십 권의 대품경」을 「육백 권」으로 만든 일을 드신다. 「사십 권의 대품경」은 나집 역 대품반야경이고, 「육백 권」은 현장 역 『대반야경』의 권수다. 『대반야경』은 열여섯 회(會)로 이루어지는데, 그 제2회가 나집 역 대품반야경에 해당한다. 대품반야경에 한하지 않고 현장 이전에 이미 번역된 반야부 경전의 상당수가 『대반야경』 십육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대품반야경 등이 『대반야경』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고 강의는 짚는다. 대품반야경이나 도행반야경을 원형으로 하여 나집 시대보다 뒤에 인도에서 형성된 반야계 경전들을 십육회의 형식으로 묶은 것이 『대반야경』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대반야경』 육백 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제5회까지의 오백육십오 권은 거의 같은 내용의 반복이다. 그러므로 『대반야경』과 대품반야경은 단지 광 · 약의 관계에 있을 뿐이며, 내용으로는 대품반야경에 이미 다 담겨 있다.
이처럼 약을 버리고 광을 취하는 경향은 현장의 번역 전반에서 볼 수 있다. 『출삼장기집』에 따르면 나집이 번역한 경전은 칠십사 부 삼백팔십사 권이다. 현장은 번역한 불전의 종류는 나집과 거의 같은 칠십오 부지만 권수는 나집의 약 세 배 반인 일천삼백삼십오 권에 이른다. 강의는 현장의 번역에 「광을 좋아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를 둘로 든다. 하나는 그가 직역을 중시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인도에서 시대가 내려가며 증광(增廣)되어 온 경전을 그대로 옮기려 했기 때문이다.
대지도론 천 권과 백 권
다음으로 나집이 광을 버리고 약을 좋아한 예로, 본래 천 권에 이르렀을 용수의 『대지도론』을 백 권으로 줄여 번역한 일을 드신다. 나집 역 『대지도론』 끝에 붙은 승예(僧叡)의 기록은 이렇다.
初品を論ずるに三十四巻、一品を解釈す、是れは全く具本を論じ、二品已下は法師之を略し、其の要足を取って、以て文の意を開釈するのみ、復、其の広釈を備えずして此の百巻を得、若し悉く之を出さば将に此れに十倍すべし
초품을 논하는 데 서른네 권으로 한 품을 해석하였으니, 이것은 원본을 온전히 논한 것이다. 제2품 이하는 법사가 이를 줄여 그 요점만 취하여 글의 뜻을 풀었을 뿐이며, 다시 그 넓은 해석을 갖추지 않고서 이 백 권을 얻었다. 만일 모두 내었다면 이것의 열 배가 되었으리라.
곧 나집 역 『대지도론』 백 권 가운데 약 3분의 1인 서른네 권은 대품반야경 초품 한 품의 주석이고, 나머지 예순여섯 권이 제2품부터 촉루품 제90까지 여든아홉 품의 주석이다. 나집이 초품의 주석만 전역하고 나머지 여든아홉 품은 요점만 초역했기 때문이며, 만일 그것까지 다 옮겼다면 『대지도론』은 열 배, 곧 천 권에 이르렀으리라는 것이다.
「약」은 생략이 아니라 본질을 세우는 일
이 일 하나가 상징하듯 나집의 역풍은 「약을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강의는 이것이 단지 생략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나집의 번역은 대부분 해당 경론의 전역이지 요점만의 초역이 아니다. 서강에서 보았듯 「약」이란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 내어 사물의 줄기를 드러내는 것, 바꿔 말하면 줄기를 세워 사물의 본질적 내용을 밝혀 가는 것이다. 나집의 역풍을 「약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도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경론의 본질적 내용을 바르게 전했기 때문이다.
나집 이전의 한역은 문체의 아름다움에 치우쳐 내용의 정확성을 잃거나, 반대로 정확성을 좇다가 난삽하고 생경한 문체에 빠져, 경론의 본질을 바르게 전한다고 하기 어려웠다. 나집에 이르러 처음으로 문체의 아름다움과 내용의 정확성을 겸비한 번역이 이루어졌고, 나집 이후에도 그만큼 경의 뜻을 붙잡아 옮긴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고 강의는 평가한다. 현장은 자신의 직역적 역풍을 신역이라 일컬으며 자랑했지만, 인도에서 범본 경전 자체가 증광 · 변개되어 간 사정도 있어, 그것을 망라적 · 직역적으로 옮기는 일 자체가 오히려 부처의 뜻을 흐리게 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중국의 모든 불전 번역 가운데 나집을 가장 바르게 경의 참뜻을 전한 번역가로 보신다.
総じて月支より漢土に経論をわたす人・旧訳・新訳に一百八十六人なり羅什三蔵一人を除いてはいづれの人人も誤らざるはなし、其の中に不空三蔵は殊に誤多き上誑惑の心顕なり
무릇 월지에서 한토로 경론을 건네준 사람이 구역 · 신역을 합해 일백팔십육 인이니, 나집삼장 한 사람을 빼고는 어느 누구도 그르치지 않은 이가 없느니라. 그 가운데 불공삼장은 특히 그르침이 많은 데다 속이려는 마음이 드러나 있느니라.
然るに月氏より漢土に経を渡せる訳人は一百八十七人なり其の中に羅什三蔵一人を除きて前後の一百八十六人は純乳に水を加へ薬に毒を入たる人人なり
그런데 월지에서 한토로 경을 건네준 역인은 일백팔십칠 인이니, 그 가운데 나집삼장 한 사람을 빼고 앞뒤의 일백팔십육 인은 순수한 젖에 물을 타고 약에 독을 넣은 사람들이니라.
광보다 약, 약보다 요
이렇게 보면 대성인이 「광」을 좋아한 현장과 「약」을 좋아한 나집을 드신 것은 단순한 병렬이 아니라 가치의 순서에 따른 배열이라고 강의는 읽는다. 불전 번역에서는 일체를 망라해 전하는 「광」보다 본질을 바르게 전하는 「약」이 가치가 높다. 그리고 두 예를 든 뒤에 대성인 자신에 대해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좋아한다」고 하셨으니, 이 「광 → 약 → 요」의 기술 순서는 「법을 전한다」는 일에 관한 가치의 우열을 보이신 것이다. 광보다 약이 뛰어나고, 약보다 요가 뛰어나다.
물론 대성인이 여기서 「광」의 가치를 부정하시는 것은 아니다. 문물을 널리 전하는 일은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으며, 그런 일반적 의미에서는 대성인도 현장 등의 사적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말씀하신다. 다만 법의 전지(傳持)를 매개하는 불전 번역의 예를 드신 것은 어디까지나 「법을 전한다」는 일을 문제 삼으셨기 때문이다. 「어떤 법을, 어떻게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게 전할 것인가」는 중생 구제의 가부에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물음이다. 그러므로 여래신력품에서 석존은 말법 중생을 위해 상행보살에게 결요부촉을 하였고, 대성인은 그 상행보살의 재탄으로서 거기서 부촉된 요법, 법화경의 간요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홍통하신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간요를 좋아한다」 — 구포연과 지도림
본문은 현장과 나집을 든 뒤 「니치렌은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좋아한다. 이른바 상행보살 소전의 묘법연화경의 오자이다」라고 하신다. 강의는 「좋아한다(好む)」는 말에 주목한다. 현장 · 나집의 경우 「좋아한다」는 각자의 번역에 일정한 경향, 곧 역풍이 있음을 보인다. 그런 역풍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번역가의 경지가 비친 것이다. 그러므로 「좋아한다」는 그 사람의 경지를 시사하는 말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대성인이 말법에 홍통할 법으로 법화경의 간요를 골라 취하시는 일을 「간요를 좋아한다」고 표현하신 것도 대성인 독자의 경지를 시사한다. 그리고 그 「간요」를 「상행보살 소전의 묘법연화경의 오자」라 하셨으니, 그 독자의 경지란 상행보살의 재탄으로서의 경지이며, 재왕(再往)은 구원원초 자수용보신의 재탄, 말법의 본불로서의 경지라는 것이 강의의 해석이다.
이어 대성인은 구포연과 지도림의 고사를 드신다.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취한 선례이면서, 동시에 간요를 취하는 것이 광 · 약을 취하는 것보다 뛰어남을 시사하는 예다.
구포연은 춘추 시대의 말 감정가다. 『회남자』 · 『열자』 등에 따르면, 구포연은 당대 제일의 감정가 백락(伯樂)의 소개로 진 목공에게서 명마를 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석 달 뒤 누런 암말 좋은 것을 얻었다고 보고했는데, 실제로는 검은 수말이었다. 목공이 털빛도 암수도 가리지 못하는 자를 어찌 믿겠느냐고 백락에게 따지자, 백락은 구포연이 말의 천성을 본 것이며 그릇 보고한 것은 안에 있는 본질을 보고 겉모습을 잊은 결과라고 답했다. 뒷날 구포연이 고른 말은 천하의 명마가 되었다고 한다.

지도림은 동진 시대 진류(陳留)의 학승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스물다섯에 출가하여 반야경 · 유마경의 해설자로 이름을 떨쳤다. 『고승전』 권4에 따르면 지도림은 경을 강할 때 장구에 매이지 않고 요점을 얻었는데, 글자를 지키는 무리에게서는 경문을 소홀히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를 들은 지도림의 벗은 오히려 기뻐하며, 지도림이 세과를 생략하고 원의를 취하는 것은 구포연이 말의 현황을 생략하고 준마를 골라 취한 것과 같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강의는 이렇게 구포연과 지도림의 고사가 간요를 취하는 것이 뛰어남을 보이는 예로 쓰였다고 정리한다. 겉의 털빛을 버리고 말의 천성을 보듯, 경문의 세세한 과단을 버리고 경의 원의를 취하는 것 — 그 극치가 법화경 이십팔품의 광략을 버리고 그 간요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취하는 일이다.
허공회의 결요부촉 — 「二仏座を並べ分身来集し地涌を召し出し」
본문의 마지막 문장은 「상행보살 소전의 묘법연화경」의 근거를 경문으로 뒷받침한다. 석존이 허공회 의식에서 다보여래 · 분신래집 아래, 말대를 위해 상행보살을 비롯한 지용의 보살에게 수여한 것이 법화경의 간요였다는 것이다.
「부처가 이미 보탑에 들어 두 부처가 자리를 나란히 하고 분신이 모여 오고」는 견보탑품 제11의 허공회 의식의 시작을 가리킨다. 보탑품 첫머리에서 보탑이 대지에서 솟아오르고, 탑 안에서 다보불의 큰 음성이 울려 법화경의 설한 바가 모두 진실이라 증명한다. 이어 삼변토전(三變土田)으로 국토가 청정해진 곳에 시방의 분신 제불이 모여들고, 탑이 열려 탑 안에 석가 · 다보 두 부처가 나란히 앉아 허공회 의식이 시작된다. 그리고 석존에게서 「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서 널리 묘법화경을 설하겠는가.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 부처는 이 법화경을 부촉하여 있게 하고자 한다」라고, 멸후 유통을 위해 법화경을 부촉하겠다는 불의가 드러난다.
이어 적화 · 타방의 보살들의 청을 물리치고 「지용을 불러내어 간요를 취해 말대에 맞추어 오자를 수여」하셨다고 하듯, 종지용출품 제15에서 지용의 보살이 불려 나오고, 여래수량품 제16에서 개근현원이 설해지며, 여래신력품 제21에서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촉루품 제22에서 허공회 의식이 끝난다. 그러므로 허공회 의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촉을 위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대성인은 이를 「宝塔品より事をこりて寿量品に説き顕し神力品・属累に事極りて候」(「신니부인답서」, 905쪽) — 보탑품에서 일이 일어나 수량품에서 설해 드러내고 신력품 · 촉루품에서 일이 끝났다 — 라고 말씀하신다.
- 견보탑품 제11보탑 용출 · 다보의 증명 · 삼변토전 · 분신래집 · 이불병좌誰か能く此の娑婆国土に於いて、広く妙法華経を説かん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서 널리 묘법화경을 설하겠는가부촉을 구하는 삼개의 칙선
- 종지용출품 제15지용의 보살을 불러냄
- 여래수량품 제16개근현원
- 여래신력품 제21십신력 · 결요부촉(상행 등에게)
- 촉루품 제22총부촉 · 허공회의 끝
사구의 요법과 오중현
멸후를 위해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된 법은 신력품의 이른바 결요부촉의 문에 밝혀져 있다.
要を以って之を言わば、如来の一切の所有の法、如来の一切の自在の神力、如来の一切の秘要の蔵、如来の一切の甚深の事、皆此の経に於いて宣示顕説す
요점으로써 이를 말하면, 여래의 일체의 소유의 법, 여래의 일체의 자재한 신력, 여래의 일체의 비요의 장(藏), 여래의 일체의 심심(甚深)한 일을 모두 이 경에서 펴 보이고 드러내 설하였느니라.
이 문은 법화경의 설한 바를 네 구절로 요약하므로 「사구의 요법」이라 한다. 천태대사는 『법화문구』에서 이렇게 풀었다.
要を結するに四句有り一切法とは一切は皆仏法なり此れ一切皆妙名を結するなり、一切力とは通達無礙にして八自在を具す、此れ妙用を結するなり、一切秘蔵とは、一切処に遍して皆是れ実相なり、是れ妙体を結するなり、一切深事とは因果は是れ深事なり、此れ妙宗を結するなり
요를 맺는 데 네 구가 있다. 일체법이란 일체가 모두 불법이라는 것이니, 이는 일체가 모두 묘명(妙名)임을 맺은 것이다. 일체력이란 통달무애하여 팔자재를 갖춘 것이니, 이는 묘용(妙用)을 맺은 것이다. 일체비장이란 일체처에 두루하여 모두 실상이라는 것이니, 이는 묘체(妙體)를 맺은 것이다. 일체심사란 인과가 곧 깊은 일이라는 것이니, 이는 묘종(妙宗)을 맺은 것이다.
곧 사구는 오중현의 가운데 명 · 용 · 체 · 종에 배당된다.
- 皆此の経に於いて宣示顕説す모두 이 경에서 펴 보이고 드러내 설하였느니라
- 其の枢柄を撮って之を授与す그 추병을 집어 이를 수여한다
- 추병 = 제목의 오자『어의구전』
강의는 네 구를 하나씩 풀어 간다.
「여래의 일체 소유의 법」은 부처가 소유한 일체의 법을 총칭하므로 「명」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결요부촉 바로 앞에 「촉루를 위한 까닭에 이 경의 공덕을 설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다」고 하였고, 다시 그 앞에 이 「이 경」의 이름이 「지금 여러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대승경인 묘법화경, 교보살법, 불소호념이라 이름하는 것을 설하신다」로 밝혀져 있으므로, 여래 소유의 일체 법을 총칭하는 「명」은 「묘법연화경」임이 분명하다.
「여래의 일체 자재의 신력」은, 용출품에서 석존이 무량한 지용의 보살을 교화해 온 힘을 「제불의 자재신통의 힘」이라 하고, 수량품에서 구원실성의 석존이 사바세계와 다른 무수한 국토에서 늘 설법하며 중생을 교화해 온 힘을 「여래의 비밀신통의 힘」이라 하듯, 부처가 중생 교화를 위해 자재하게 응화하는 힘과 자재하게 법을 설하는 지혜의 힘을 뜻한다. 총괄하면 중생 교화를 위한 부처의 역용이므로 「용」이다.
「여래의 일체 비요의 장」은 신력품에 「제불이 도량에 앉아 얻으신 비요의 법」이라 하듯 여래 안에 감추어진 내증의 법이다. 이는 방편품에서 유불여불(唯佛與佛)의 비법이요 제일 희유 난해의 법이라 한 「제법실상」을 가리키며, 법사품도 이금당의 제경 가운데 가장 난신난해한 법화경을 「제불의 비요의 장」이라 하였다. 이 난신난해의 비법인 제법실상이야말로 일체법이 돌아가는 근본의 이(理)이므로 「체」에 해당한다.
「여래의 일체 심심의 일」은 중생에게 제법실상의 이를 증득시키기 위한 깊은 「사(事)」, 곧 부처가 여러 가르침을 설하는 일이 이에 해당한다. 신력품은 부처의 사자로서 멸후의 법화경 행자가 행할 깊은 일에 대해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는 제법의 뜻과 명자와 언사에 즐겨 설함이 다함이 없어, 바람이 공중에서 일체 장애가 없는 것과 같으리라. 여래의 멸후에 부처가 설한 경의 인연과 차제를 알아 뜻에 따라 진실대로 설하리라」 등이라 설한다. 「종」은 법의 특질을 뜻하며, 법화경에서는 수량품에 설한 부처의 자행의 인과, 곧 본인본과가 「종」이다.
「추병」은 제목의 오자 — 『어의구전』의 결정
결요부촉의 문 「모두 이 경에서 펴 보이고 드러내 설하였다」에 대해 천태대사는 『법화문구』에서 「총괄하여 일경을 맺음에 오직 넷뿐이니, 그 추병을 집어 이를 수여한다」고 풀었다. 「모두 이 경에서 펴 보이고 드러내 설하였다」는 사구의 요법에 법화경 일경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뜻이고, 석존은 그 「추병」을 취하여 지용의 보살에게 수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추병」이 무엇을 뜻하는가는 『법화문구』의 표현만으로는 ① 사구의 요법 전부, ② 사구의 요법 가운데 어느 하나, 두 가지로 다 읽힐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대성인은 『어의구전』에서 결정적인 풀이를 남기셨다.
一経とは本迹二十八品なり唯四とは名用体宗の四なり枢柄とは唯題目の五字なり授与とは上行菩薩に授与するなり之とは妙法蓮華経なり
일경이란 본적 이십팔품이요, 유사(唯四)란 명 · 용 · 체 · 종의 넷이요, 추병이란 오직 제목의 오자요, 수여란 상행보살에게 수여함이요, 지(之)란 묘법연화경이니라.
곧 「추병」은 「제목의 오자」이고, 「이를 수여한다」는 「상행보살에게 묘법을 수여한다」는 뜻이다. 천태가 말한 「그 추병을 집어 이를 수여한다」는, 부처가 사구의 요법의 추병인 제목의 오자를 골라 취하여 이를 상행보살에게 부촉하고, 그로써 수량 문저의 묘법을 수여했다는 뜻이 된다.
강의는 이것이 묘명에 해당하는 「여래의 일체 소유의 법」 한 구가 다른 세 구를 묶는 총명(總名)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묘락대사도 「명은 이 셋 위에 씌워져 셋을 거느린다. 일부의 요가 이를 넘겠는가. 그러므로 총괄하여 이를 쥐고 유통을 이룬다」라고 하였다. 상행보살이 부촉받은 묘법연화경의 오자는 다른 세 구에 보인 법화경의 체 · 종 · 용을 스스로 갖춘 총명이다.
이 가르침에 따라 신력품을 다시 읽으면 바로 그대로 설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의는 말한다. 같은 품의 게송은 멸후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 곧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지니는 지용의 보살이 ① 석가 · 다보 · 분신의 제불을 환희하게 하고, ② 제불이 도량에서 얻은 비법을 얻으며, ③ 제법의 뜻에 통달하고 부처가 설한 경의 인연 · 차제를 알아 자재하게 법을 설하며 능히 중생의 어둠을 걷어 낸다고 설한다. 천태는 이것들이 차례로 「자재의 신력」 · 「비요의 장」 · 「심심의 일」에 해당한다고 풀었다. ①은 부처의 멸후에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지니는 자가 여래의 신력을 함께 누리는 것이요, ②는 여래의 비요의 장을 얻는 것이며, ③은 여래의 심심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 상행보살은 법화경의 체 · 종 · 용을 갖춘 총명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부촉받았고, 이것이 곧 법화경의 「간요」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다.
강의는 「광 → 약 → 요」를 법을 전하는 일의 가치 순서로 읽고, 그 「요」가 허공회의 결요부촉에서 상행보살에게 수여된 사구의 요법의 추병, 곧 명 · 용 · 체 · 종을 총괄하는 총명 「묘법연화경의 오자」임을 『어의구전』의 풀이로 확정한다.
부촉의 요법과 삼대비법 — 니치칸 상인 『의의판문초』
다음으로 강의는 이 장에서 보인 상행 소전의 요법 「묘법연화경의 오자」와 앞 장에서 드러낸 「삼대비법」의 관계를 살핀다. 니치칸 상인은 『의의판문초』에서 여래신력품 제21의 결요부촉의 문을 앞뒤의 문과 함께 들어, 그것이 삼대비법의 의문(依文)임을 밝혔다.
먼저 결요부촉 바로 앞의 「그때 부처가 상행 등의 보살대중에게 이르시되, 제불의 신력은 이와 같이 무량무변 불가사의하다. 만일 내가 이 신력으로써 무량무변 불가사의 아승기겁 동안 촉루를 위한 까닭에 이 경의 공덕을 설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다」는 이른바 칭탄부촉의 문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먼저 부촉하는 법체, 본문의 본존의 공덕을 찬탄한다」고 하였다. 곧 「이 경」은 「본문의 본존」이라는 것이다.
이어 사구의 요법인 결요부촉의 문은 「본존 부촉」의 문이라 하였다. 석존이 상행 등 지용의 보살에게 여래의 일체 체 · 종 · 용을 구족한 총명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부촉했다는 것은 「본문의 본존」을 부촉했다는 뜻이다. 니치칸 상인은 그 근거로 「관심의 본존초」의 다음 문을 든다.
本門の肝心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に於ては仏猶文殊薬王等にも之を付属し給わず何に況や其の已外をや但地涌千界を召して八品を説いて之を付属し給う
본문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오자는 부처가 오히려 문수 · 약왕 등에게도 이를 부촉하지 않으셨거늘 하물며 그 밖의 이들에게랴. 다만 지용천계를 불러 팔품을 설하여 이를 부촉하셨느니라.
이 문 바로 다음에 대성인은 「그 본존의 모습(其の本尊の為体)」이라고 이어 가신다.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된 「본문의 간심 남묘호렌게쿄의 오자」를 받아서 곧바로 「그 본존」이라 하신 것이다.
또 니치칸 상인은 결요부촉 다음의 「그러므로 너희들은 여래의 멸후에 마땅히 일심으로 수지 · 독 · 송 · 해설 · 서사하고 설한 대로 수행해야 한다」는 문을 「제목 권장」의 문이라 하였다. 「일심」은 「신(信)」을, 「수지」 등은 「행(行)」을 뜻하니 신행을 구족한 본문의 제목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신력품의 문을 니치칸 상인은 「계단 권장」의 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所在の国土に、若しは受持・読・誦・解説・書写し、説の如く修行すること有らん。若しは経巻所住の処、若しは園中に於いても、若しは林中に於いても…若しは山谷礦野にても、是の中に、皆応に塔を起てて供養すべし。所以は何ん。当に知るべし。是の処は即ち是れ道場なり。諸仏此に於いて阿耨多羅三藐三菩提を得、諸仏此に於いて法輪を転じ諸仏此に於いて般涅槃したもう
있는 곳의 국토에서 혹은 수지 · 독 · 송 · 해설 · 서사하고 설한 대로 수행하는 이가 있거나, 혹은 경권이 머무는 곳이라면, 동산 가운데든 숲 가운데든 (중략) 산골짜기 · 광야든, 그 가운데에 모두 마땅히 탑을 세워 공양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도량이니라. 제불이 여기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제불이 여기서 법륜을 굴리며, 제불이 여기서 반열반하시느니라.
니치칸 상인은 처음에 설한 수지 등 여설수행자가 있는 국토는 「본문의 제목을 수행하는 곳」을, 다음에 설한 경권이 머무는 동산 · 숲 내지 산골짜기 · 광야 등은 「본문의 본존이 있는 곳」을 밝힌 것이며, 이것들은 「의(義)의 계단」을 보인다고 하였다. 또 「모두 마땅히 탑을 세워 공양해야 한다」는 「사(事)의 계단」의 건립을 권한 문이라 하였다.
이렇게 신력품은 「본문의 계단」의 의의를 「본문의 제목을 수행하는 곳」이자 「본문의 본존이 있는 곳」으로 보이는데, 이것을 다시 풀이한 것이 「왜냐하면」 이하의 문이다. 이 문은 이른바 「법신의 사처(四處)」를 보인다. 「이곳은 곧 도량이다」는 본존이 있는 곳이 제불의 도량, 곧 제불이 수행하여 법신을 낳은 곳임을, 「제불이 여기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본존이 있는 곳이야말로 제불이 정각을 이룬 곳임을, 「제불이 여기서 법륜을 굴린다」는 제불이 본존이 있는 곳에서 법을 굴려 중생에게 설함을, 「제불이 여기서 반열반한다」는 제불이 본존이 있는 곳에서 열반에 듦을 보인다. 본문의 본존이 머무는 본문의 계단이야말로 법신 사처의 근거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자신의 한 몸이 바로 이 법신의 사처임을 이렇게 보이셨다.
教主釈尊の一大事の秘法を霊鷲山にして相伝し・ 日蓮が肉団の胸中に秘して隠し持てり、されば日蓮が胸の間は諸仏入定の処なり、舌の上は転法輪の所・喉は誕生の処・口中は正覚の砌なるべし、かかる不思議なる法華経の行者の住処なれば・いかでか霊山浄土に劣るべき、法妙なるが故に人貴し・人貴きが故に所尊しと申すは是なり
교주 석존의 일대사의 비법을 영취산에서 상전하여 니치렌의 육단(肉團)의 가슴속에 감추어 지니고 있느니라. 그러므로 니치렌의 가슴 사이는 제불이 입정하는 곳이요, 혀 위는 법륜을 굴리는 곳이요, 목구멍은 탄생하는 곳이요, 입 안은 정각을 이루는 자리이니라. 이렇듯 불가사의한 법화경 행자의 주처이니 어찌 영산정토에 못하리오. 법이 묘하므로 사람이 귀하고, 사람이 귀하므로 그곳이 존귀하다고 함이 이것이니라.
니치칸 상인은 『의의판문초』에서 이 문의 「교주 석존의 일대사의 비법」은 「본문의 본존」에, 그 본존이 머무는 「니치렌의 육단의 가슴속」은 「본문의 계단」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또 「이렇듯 불가사의한 법화경 행자의 주처」에 대해서는, 법화경 행자가 닦는 것은 「본문의 제목」이요 그 제목을 수행하는 곳은 「본문의 계단」이라 하였다. 곧 삼대비법은 말법의 법화경 행자인 니치렌 대성인의 한 몸에 구족되어 있다.
이상을 강의는 이렇게 정리한다. 석존이 상행보살 등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한 법화경의 간요 「묘법연화경의 오자」는 「본문의 본존」이며, 그것을 지닌 상행보살은 말법에 신력품이 권한 대로 「본문의 제목」과 「본문의 계단」을 한 몸에 갖추어 법화경의 행자로서 행동한다. 바꿔 말하면 신력품의 부촉 문은, 상행보살의 재탄으로 말법에 출현하시는 니치렌 대성인이 「본문의 본존」의 당체이며, 그 한 몸에 「본문의 제목」을 행하고 「본문의 계단」의 뜻을 지니신다는 것을 미리 증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결요부촉의 사구는 모두 본문의 본존의 당체인 대성인의 일을 보인다고 강의는 읽는다. 「여래의 일체 소유의 법」은 대성인의 당체에 즉한 「묘법연화경의 오자」 곧 「본문의 본존」이고, 「여래의 일체 자재의 신력」은 본존의 당체인 대성인의 역용이며, 「여래의 일체 비요의 장」은 대성인의 내증이고, 「여래의 일체 심심의 일」은 대성인의 행동(振る舞い)이다. 대성인은 한 몸에 갖추신 이 내증 · 역용 · 행동을 「삼대비법」으로 말법의 일체중생을 위해 여신 것이다.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 — 심심의 일과 삼대비법의 홍통
특히 「심심의 일」에 해당하는 대성인의 말법 홍통의 행동은 신력품에 이렇게 예언되어 있다.
能く是の経を持たん者は、諸法の義、名字及び言辞において、楽説窮尽無きこと、風の空中に於いて、一切障礙無きがごとくならん、如来の滅後に於いて、仏の所説の経の、因縁及び次第を知って、義に随って如実に説かん、日月の光明の、能く諸の幽冥を除くが如く、斯の人世間に行じて、能く衆生の闇を滅し、無量の菩薩をして、畢竟して一乗に住せしめん、是の故に智有らん者、此の功徳の利を聞いて、我が滅度の後に於いて、応に斯の経を受持すべし、是の人仏道に於いて、決定して疑い有ること無けん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는 제법의 뜻과 명자와 언사에 즐겨 설함이 다함이 없어, 바람이 공중에서 일체 장애가 없는 것과 같으리라. 여래의 멸후에 부처가 설한 경의 인연과 차제를 알아 뜻에 따라 진실대로 설하리라. 해와 달의 광명이 능히 온갖 어둠을 없애듯, 이 사람은 세간에 행하여 능히 중생의 어둠을 멸하고, 무량한 보살로 하여금 마침내 일승에 머물게 하리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자는 이 공덕의 이익을 듣고 나의 멸도 후에 마땅히 이 경을 수지해야 하리니, 이 사람은 불도에 있어 결정코 의심이 없으리라.
이 문에 대해 『상행소전 삼대비법 구결』은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고 강의는 전한다.
- 처음의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의 「이 경」은 「삼대비법 가운데 본문의 묘법연화경」이다. 강의는 이것이 대성인의 한 몸에 즉한 삼대비법 총재의 「본문의 본존」에 해당한다고 본다.
- 「제법의 뜻과 명자와 언사에 즐겨 설함이 다함이 없다」의 「명자」는 「주제의 오자」라고 풀이된다. 강의는 이것을 「본문의 제목」으로 읽는다. 이 문은 상행보살이 말법에 출현하여 부처의 내증의 법인 제법실상의 뜻을 명자 · 언사로 분명하고 자재하게 설함을 보이는데, 특히 「명자」를 즐겨 설한다는 것은 내증의 법체인 남묘호렌게쿄를 밝혀 말법 중생을 위해 「본문의 제목」의 수행을 세운다는 뜻이다.
- 「여래의 멸후에」는 「말법의 처음 오백 년」을, 「부처가 설한 경의 인연과 차제를 안다」는 「석존 오십 년」을 뜻한다고 한다. 석존 일대의 교법이 어떤 기근의 중생에게 어떤 차례로 설해졌는가를 안다는 것이다.
- 「해와 달의 광명이 능히 온갖 어둠을 없앤다」는 묘법이 생사의 긴 밤을 비추는 큰 등불임을, 「이 사람은 세간에 행하여 능히 중생의 어둠을 멸한다」는 대성인이 인간 세계에 출현하시어 중생의 원품(元品)의 무명을 끊으심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일승」에 대해서는 「삼대비법 가운데 본문의 본존」이라 한다. 강의는 앞의 「이 경」이 대성인의 한 몸에 즉한 삼대비법 총재의 본문의 본존을 뜻했다면, 이 「일승」은 대성인이 말법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건립하고 홍통하시는 「본문의 본존」, 곧 본문 계단의 대어본존을 뜻한다고 읽는다. 또 「일승에 머물게 한다」는 중생의 즉신성불을 뜻한다고도 한다.
- 마지막의 「나의 멸도 후에 마땅히 이 경을 수지해야 하리니, 이 사람은 불도에 있어 결정코 의심이 없으리라」는 묘법을 수지하는 중생의 성불이 필정임을 보인 것인데, 닛코 상인은 「이 경을 수지해야 한다」를 「삼대비법 가운데 본문의 계」, 곧 「본문의 계단」이라 하였다고 강의는 전한다. 말법의 계는 본문의 본존을 수지하는 것 말고는 없으며, 그 수지하는 곳이 곧 본문의 계단이다.
이렇게 「심심의 일」을 칭탄하는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는 제법의 뜻」 이하의 게송은 니치렌 대성인에 의한 삼대비법의 홍통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강의의 세 가지 정리
강의는 지금까지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
- 첫째, 신력품 결요부촉의 문에서 상행보살에게 부촉된 요법은 삼대비법 총재의 「본문의 본존」이며, 그 이름은 「묘법연화경의 오자」다.
- 둘째, 말법에 상행보살의 재탄으로 출현하신 니치렌 대성인이 자신의 당체인 삼대비법 총재의 「본문의 본존」을 「삼대비법」으로 열어 말법에 홍통하신다.
- 셋째, 신력품의 부촉 문은 총체적으로 말법에 대성인이 삼대비법을 홍통하실 것을 미리 증명한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삼대비법품승사」 첫머리에서 신력품 결요부촉의 문을 든 뒤 이렇게 말씀하신다.
問う所説の要言の法とは何物ぞや、答て云く夫れ釈尊初成道より四味三教乃至法華経の広開三顕一の席を立ちて略開近顕遠を説かせ給いし涌出品まで秘せさせ給いし実相証得の当初修行し給いし処の寿量品の本尊と戒壇と題目の五字なり
묻되, 설한 바 요언(要言)의 법이란 무엇이뇨. 답하되, 무릇 석존이 처음 성도한 때부터 사미 · 삼교, 내지 법화경의 광개삼현일의 자리를 떠나 약개근현원을 설하신 용출품까지 감추어 두시고, 실상을 증득하신 당초에 수행하신 바의 수량품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이니라.
결요부촉의 요법은 석존이 초성도부터 이전 · 적문을 거쳐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에 이르기까지 감추어 두었다가 수량품에 이르러 비로소 밝힌 것이며, 그것은 석존이 「실상을 증득한 당초」에 수행한 삼대비법 바로 그것이라는 말씀이다. 이 장의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좋아한다」와 앞 장의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가 여기서 하나로 맞물린다.
「당세 다른 뜻이 있을 수 없다」 — 대성인의 확신
이 장은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이 미래를 위해 지용의 보살에게 간요의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부촉한 일에 대해 「당세 다른 뜻이 있을 수 없다」는 말로 끝난다. 강의는 이를 두 겹으로 읽는다. 직접으로는 세 부처의 총의로 지용의 보살에게 간요의 법이 부촉되었다는 것이 경문의 설상(說相)에 분명하여 다른 뜻을 세울 여지가 없다는 말씀이다. 한 겹 들어가면, 삼대비법을 말법에 홍통하는 일이야말로 세 부처의 본의이며, 또 그 광선유포가 대성인의 깊은 확신이라는 것을 보이신 말씀이다.
이 확신은 다음 장의 물음으로 곧장 이어진다. 그렇게 확실한 법이라면 그것이 유포될 때 어떤 징조가 있는가. 대성인은 법화경의 「여시상」과 천태의 「작은 일에도 징조가 있거늘 하물며 큰일이랴」로 답하기 시작하신다.
제목의 「취요」와 이 장의 「광 · 약 · 요」에 대해서는 두 겹의 이해가 있다. 일왕(一往)은 법화경 안에서 제목을 「요」로 하는 광약요(이십팔품 = 광, 방편품 · 수량품 = 약, 제목 = 요 — 「법화경제목초」 942쪽의 수행에 즉한 배립)이고, 재왕(再往)은 구원명자의 묘법을 「요」로 하여 문상의 법화경 전체를 광 · 약에 배당하는 광약요다. 이 장에서 버려지는 「광략」은 법화경 이십팔품의 문의이며, 취해지는 「요」는 수량 문저의 묘법 곧 삼대비법이다.
본문
疑つて云く今世に此の法を流布せば先相之れ有りや、 答えて曰く法華経に「如是相乃至本末究竟等」云云、 天台云く「蜘虫掛りて喜び事来たり干鵲鳴いて客人来る小事猶以て是くの如し何に況や大事をや」取意、
의심하여 이르되, 지금 세상에 이 법을 유포한다면 선상(先相)이 있느뇨. 답하되, 법화경에 「여시상(如是相) 내지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이라 하였고, 천태는 「거미가 줄을 치면 기쁜 일이 오고,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 작은 일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큰일이랴」라고 하였느니라(뜻을 취함).
問うて曰く若し爾れば其の相之れ有りや、 答えて曰く去ぬる正嘉年中の大地震・文永の大彗星・其より已後今に種種の大なる天変・地夭此等は此先相なり、 仁王経の七難・二十九難・無量の難、金光明経・大集経・守護経・薬師経等の諸経に挙ぐる所の諸難皆之有り但し無き所は二三四五の日出る大難なり、 而るを今年佐渡の国の土民は口口に云う今年正月廿三日の申の時西の方に二の日出現す或は云く三の日出現す等云云、 二月五日には東方に明星二つ並び出ず其の中間は三寸計り等云云、 此の大難は日本国先代にも未だ之有らざるか、
묻되, 만일 그렇다면 그 상(相)이 실제로 있었느뇨. 답하되, 지난 정가(正嘉) 연간의 대지진, 문영(文永)의 대혜성, 그 뒤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갖가지 큰 천변 · 지요, 이것들이 바로 그 선상이니라. 인왕경의 칠난 · 이십구난 · 무량한 난과 금광명경 · 대집경 · 수호경 · 약사경 등 여러 경에 든 온갖 난이 모두 일어났느니라. 다만 없었던 것은 두 · 세 · 네 · 다섯 개의 해가 뜨는 대난이었느니라. 그런데 올해 사도 지방의 백성들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올해 정월 이십삼일 신시(申時)에 서쪽에 두 개의 해가 나타났다, 혹은 세 개의 해가 나타났다 운운. 이월 오일에는 동쪽에 명성(明星) 두 개가 나란히 떴으며 그 사이는 세 치쯤이었다 운운. 이 대난은 일본국 앞 시대에도 아직 없었던 일이 아니겠느뇨.
最勝王経の王法正論品に云く「変化の流星堕ち二の日倶時に出で他方の怨賊来つて国人喪乱に遭う」等云云、 首楞厳経に云く「或は二の日を見し或は両つの月を見す」等、 薬師経に云く「日月薄蝕の難」等云云、 金光明経に云く「彗星数ば出で両つの日並び現じ薄蝕恒無し」 大集経に云く「仏法実に隠没せば乃至日月明を現ぜず」 仁王経に云く「日月度を失い時節返逆し或は赤日出で黒日出で二三四五の日出ず或は日蝕して光無く或は日輪一重二三四五重輪現ぜん」等云云、 此の日月等の難は七難二十九難無量の諸難の中に第一の大悪難なり、
최승왕경 왕법정론품에 이르되 「괴이한 유성이 떨어지고 두 개의 해가 한꺼번에 나오며, 다른 지방의 원적(怨賊)이 쳐들어와 나라 사람들이 상란(喪亂)을 만나리라」 운운. 수능엄경에 이르되 「혹은 두 개의 해를 보이고 혹은 두 개의 달을 보이리라」 등. 약사경에 이르되 「일월이 엷어지고 이지러지는 난」 운운. 금광명경에 이르되 「혜성이 자주 나오고 두 해가 나란히 나타나며 엷어지고 이지러짐이 일정하지 않으리라」. 대집경에 이르되 「불법이 참으로 은몰하면 (중략) 해와 달이 밝음을 드러내지 않으리라」. 인왕경에 이르되 「해와 달이 도수를 잃고 시절이 거꾸로 되며, 혹은 붉은 해가 나오고 검은 해가 나오며 두 · 세 · 네 · 다섯의 해가 나오고, 혹은 일식하여 빛이 없고, 혹은 해에 한 겹 · 두 · 세 · 네 · 다섯 겹의 둥근 테가 나타나리라」 운운. 이 해와 달 등의 난은 칠난 · 이십구난 · 무량한 여러 난 가운데 제일의 대악난이니라.
問うて曰く此等の大中小の諸難は何に因つて之を起すや、 答えて曰く「最勝王経に曰く非法を行ずる者を見て当に愛敬を生じ善法を行ずる人に於て苦楚して治罰す」等云云、 法華経に云く・涅槃経に云く・金光明経に云く「悪人を愛敬し善人を治罰するに由るが故に星宿及び風雨皆時を以て行われず」等云云、 大集経に云く「仏法実に隠没し乃至是くの如き不善業の悪王悪比丘我が正法を毀壊す」等、 仁王経に云く「聖人去る時七難必ず起る」等、 又云く「法に非ず律に非ず比丘を繫縛すること獄囚の法の如くす爾の時に当つて法滅せんこと久しからず」等、 又云く「諸の悪比丘多く名利を求め国王太子王子の前に於て自ら破仏法の因縁破国の因縁を説かん其の王別まえずして此の語を信聴せん」等云云、 此等の明鏡を齎て当時の日本国を引き向うるに天地を浮ぶること宛も符契の如し眼有らん我が門弟は之を見よ、 当に知るべし此の国に悪比丘等有つて天子・王子・将軍等に向つて讒訴を企て聖人を失う世なり、
묻되, 이러한 대 · 중 · 소의 여러 난은 무엇으로 인하여 일어나느뇨. 답하되, 「최승왕경에 이르되, 비법을 행하는 자를 보고 도리어 애경(愛敬)을 내고, 선법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괴롭혀 다스려 벌하느니라」 운운. 법화경에 이르고 · 열반경에 이르고 · 금광명경에 이르되 「악인을 애경하고 선인을 다스려 벌하는 까닭에 성수(星宿)와 바람 · 비가 모두 제때에 행하여지지 않느니라」 운운. 대집경에 이르되 「불법이 참으로 은몰하여 (중략) 이와 같은 불선업의 악왕 · 악비구가 나의 정법을 훼괴하리라」 등. 인왕경에 이르되 「성인이 떠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나느니라」 등. 또 이르되 「법도 아니고 율도 아닌 방식으로 비구를 묶기를 옥에 갇힌 죄수를 다루듯 하리니, 그때를 당하여 법이 멸하는 것이 오래지 않으리라」 등. 또 이르되 「여러 악비구가 많이 명리를 구하여 국왕 · 태자 · 왕자 앞에서 스스로 불법을 깨뜨리는 인연과 나라를 깨뜨리는 인연을 설하리니, 그 왕은 분별하지 못하고 이 말을 믿고 들으리라」 운운. 이러한 밝은 거울을 가져다 지금의 일본국에 비추어 보면, 하늘과 땅의 모습이 그 거울에 떠오름이 마치 부절(符節)을 맞춘 것과 같으니라. 눈 있는 나의 문하는 이를 보라. 마땅히 알라, 이 나라에 악비구 등이 있어 천자 · 왕자 · 장군 등을 향해 참소를 꾀하여 성인을 없애려는 세상이니라.
問うて曰く弗舎密多羅王・会昌天子・守屋等は月支・真旦・日本の仏法を滅失し提婆菩薩・師子尊者等を殺害す其の時何ぞ此の大難を出さざるや、 答えて曰く災難は人に随つて大小有る可し正像二千年の間悪王悪比丘等は或は外道を用い或は道士を語らい或は邪神を信ず仏法を滅失すること大なるに似たれども其の科尚浅きか、 今当世の悪王・悪比丘の仏法を滅失するは小を以て大を打ち権を以て実を失う人心を削て身を失わず寺塔を焼き尽さずして自然に之を喪す其の失前代に超過せるなり、
묻되, 불사밀다라왕(弗舎密多羅王) · 회창천자(會昌天子) · 모리야(守屋) 등은 월지 · 진단 · 일본의 불법을 멸실하였고, 제바보살 · 사자존자 등은 살해당하였느니라. 그때에는 어찌하여 이러한 대난이 나지 아니하였느뇨. 답하되, 재난은 사람에 따라 크고 작음이 있느니라. 정상 이천 년 동안의 악왕 · 악비구 등은 혹은 외도를 쓰고, 혹은 도사(道士)와 어울리고, 혹은 사신(邪神)을 믿었느니라. 불법을 멸실함이 크게 보이기는 하나 그 죄는 오히려 얕다고 하겠느니라. 지금 당세의 악왕 · 악비구가 불법을 멸실함은 소로써 대를 치고 권으로써 실을 잃게 하며, 사람의 마음을 깎되 몸은 잃게 하지 않고, 절과 탑을 태워 없애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불법을 잃게 하나니, 그 허물이 앞 시대를 넘어서느니라.
어구 풀이
- 先相선상
- 일이 일어나기 앞서 나타나는 모습, 곧 전조 · 서상(瑞相). 이 장에서는 삼대비법이 말법에 유포되기에 앞서 나타나는 천변지이를 가리킨다. 좋은 징조(길서)와 나쁜 징조(흉서)를 다 포함한다.
- 如是相乃至本末究竟等여시상 내지 본말구경등
- 방편품의 십여시(十如是). 상(相) · 성(性) · 체(體) · 역(力) · 작(作) · 인(因) · 연(緣) · 과(果) · 보(報)의 아홉 여시가 끝내 실상으로 돌아가 같다는 것이 본말구경등이다. 선상은 이 가운데 「여시상」에 해당한다.
- 蜘虫・干鵲지충 · 간작
- 거미와 까치. 거미가 줄을 치면 기쁜 일이 오고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세속의 속신. 천태가 『법화현의』 권6상 신통묘(神通妙)를 논하는 곳에서 인용한다.
- 正嘉の大地震정가 대지진
- 정가 원년(1257) 8월 23일 술해시(밤 9시 무렵)에 가마쿠라를 덮친 대지진. 이어 대풍 · 대기근 · 대역병이 잇따랐고, 대성인은 이를 보고 「입정안국론」의 감문을 시작하셨다.
- 文永の大彗星문영 대혜성
- 문영 원년(1264) 7월 5일 동쪽 하늘에 나타난 큰 혜성. 「안국론어감유래」는 그 빛이 거의 온 나라에 미쳤고 세상이 시작된 뒤로 없던 흉서라고 기록한다.
- 七難・二十九難칠난 · 이십구난
- 칠난은 인왕경이 설하는 일곱 재난(일월난 · 성수난 · 화난 · 수난 · 풍난 · 항양난 · 악적난), 이십구난은 같은 경에서 그것을 다시 세분해 든 재난으로 전한다.
- 二三四五の日두 · 세 · 네 · 다섯의 해
- 인왕경 칠난 가운데 첫째 일월난의 한 항목. 강의는 사도에서 보고된 「두 개의 해 · 세 개의 해」를 오늘날 말하는 환일(幻日) 현상으로 설명한다.
- 明星二つ並び出ず명성 둘이 나란히 뜨다
- 문영 11년(1274) 2월 5일 동쪽에 밝은 별 둘이 세 치 남짓 사이를 두고 나란히 보였다는 보고. 강의는 당시 금성과 목성이 접근해 있었음이 계산으로 밝혀져 있다고 한다.
- 王法正論品왕법정론품
- 『금광명최승왕경』(의정 역)의 한 품. 국왕이 정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악인을 아끼며 선인을 벌하면 천변과 외적의 침입이 일어난다고 설한다.
- 首楞厳経・薬師経・守護経수능엄경 · 약사경 · 수호경
- 모두 국토의 재난을 설하는 경. 약사경은 자계반역난 · 타국침핍난 등 칠난을, 수호경(수호국계주다라니경)은 악사문이 불법을 훼멸함을 설한다.
- 符契부계
- 부절(符節). 둘로 나눈 패를 맞추어 보아 꼭 맞는지 확인하는 것. 경문(明鏡)과 일본의 현실이 꼭 들어맞는다는 비유다.
- 讒訴참소
- 남을 해치려고 사실을 꾸며 윗사람에게 고자질함. 「천자 · 왕자 · 장군」은 각각 조정과 막부의 권력자를 가리킨다.
- 弗舎密多羅王불사밀다라왕
- 인도 아육대왕의 후손으로 전하는 왕. 이름을 떨치려고 악신의 말을 받아들여 아육왕이 세운 팔만사천 탑을 부수고 승려를 죽였다고 한다.
- 会昌天子회창천자
- 당의 제15대 황제 무종(재위 840~846). 회창 연간에 대규모 폐불(회창 폐불)을 단행했다.
- 守屋모리야
- 모노노베노 모리야(物部守屋). 고대 일본의 호족으로 불교 수용에 반대하여 숭불파 소가씨와 다투었다.
- 提婆菩薩・師子尊者제바보살 · 사자존자
- 제바는 남인도 출신으로 정법 시대 부법장 제14조, 외도를 논파하다 원한을 사 살해되었다. 사자존자는 부법장 제24조로, 계빈국에서 국왕 단미라왕에게 목이 베였다고 전한다.
네 문답의 짜임
앞 장까지 대성인은 정상에 미홍이었고 말법에 유포될 법이 삼대비법임을 드러내셨다. 이 장은 그것을 받아 정가 대지진 · 문영 대혜성을 비롯한 갖가지 천변지요야말로 삼대비법 광선유포의 선상이라고 단언하신다. 본문의 다섯 절은 내용으로 보면 네 차례의 문답이다. 강의는 그 개요를 이렇게 정리한다.
- 원리제1문답(其の一)今世に此の法を流布せば先相之れ有りや지금 세상에 이 법을 유포한다면 선상이 있느뇨불법의 큰일에는 반드시 서상이 있다는 도리(방편품 십여시 · 천태 『법화현의』)
- 사실제2문답(其の二 · 其の三)若し爾れば其の相之れ有りや만일 그렇다면 그 상이 실제로 있었느뇨정가 대지진 · 문영 대혜성 이래의 천변지요가 그 선상 · 문영 11년 사도의 「두 개의 해 · 세 개의 해」 · 「명성 병출」 · 제경의 일월난은 「第一の大悪難」
- 원인제3문답(其の四)此等の大中小の諸難は何に因つて之を起すや이러한 대 · 중 · 소의 여러 난은 무엇으로 인하여 일어나느뇨악비구가 권력자와 결탁해 성인을 없애려 하기 때문(최승왕경 · 법화경 · 열반경 ·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
- 비교제4문답(其の五)其の時何ぞ此の大難を出さざるや그때에는 어찌하여 이러한 대난이 나지 아니하였느뇨정상의 박해는 외도 · 도사 · 사신에 의한 것이라 죄가 얕고, 말법은 불법으로 불법을 깨뜨리니 허물이 앞 시대를 넘는다
네 문답은 하나의 논리로 이어진다. 큰일에는 반드시 징조가 있다는 원리(제1) → 그 징조가 지금 실제로 나타났다는 사실(제2) → 그 징조를 부른 원인은 성인 박해라는 진단(제3) → 왜 하필 지금이 앞 시대보다 큰가라는 반론에 대한 해명(제4). 원리 · 사실 · 원인 · 비교의 순서다.
서상이 나타나는 도리 — 「여시상」과 천태의 거미 · 까치
첫 문답은 불법의 큰일에는 반드시 선상이 있다는 도리를 방편품의 십여실상의 문과 천태대사의 『법화현의』의 문으로 답하신다.
먼저 방편품의 「여시상 … 본말구경등」을 인용하신다. 「본말구경등」이란 여시상을 본(本)으로 하고 여시보를 말(末)로 하는 아홉 여시가 궁극에는 모두 실상으로 귀결하므로 같다는 뜻이다. 아홉 여시 가운데 특히 「여시상」을 드신 것은 선상이 여시상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강의는 본다.
여기서 논하는 선상은 말법의 삼대비법 유포라는 불법상의 큰일의 전조가 되는 서상이다. 서상은 당연히 눈에 보이는 것, 곧 상(相)으로 나타난 면이다. 그런데 서상으로 지목된 천변지요라는 사상(事象)이 불법상의 일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다. 그러나 제법실상에 통달한 부처의 눈에는 서상이 되는 사상과 불법상의 일의 관계가 분명히 비친다. 이것을 보이기 위해 십여실상의 문을 인용하셨다는 것이 강의의 해석이다. 겉으로 드러난 「상」은 본말구경하여 그 안의 성 · 체 · 역 · 작 · 인 · 연 · 과 · 보와 하나로 이어져 있으므로, 상을 보면 그 뒤에 오는 과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천태대사의 말을 인용하시는데, 이는 뜻을 취한 것이며 원문은 『법화현의』 권6상에 다음과 같이 있다고 강의는 전한다.
世人、以えらく、蜘蛛挂るときは則ち喜事来り、鵲鳴く時は則ち行人至ると以う。小、尚、微あり、大、焉んぞ瑞無けん
세상 사람들은 거미가 줄을 치면 기쁜 일이 오고, 까치가 울면 길손이 이른다고 여긴다. 작은 일에도 오히려 조짐이 있거늘, 큰일에 어찌 서상이 없겠는가.
세간의 작은 일에도 전조가 있으니 불법의 큰일에 서상이 없을 리 없다. 삼대비법의 유포라는 불법 최대의 일에 서상이 없을 수 없다는 도리를 보이려고 이 문을 끌어오셨다.
이 『법화현의』의 문은 「신통묘(神通妙)」를 논한 대목에 나온다. 신통력이란 자재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힘으로, 부처가 중생을 위해 묘리를 드러내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힘이 부처의 「신통력」이다. 부처의 설법 앞에 서상이 나타나는 것도, 설법 그 자체도 이 불가사의한 신통력에 의한 것이다. 강의는 이 출처를 짚음으로써, 천변지요를 단순한 자연현상의 길흉 점이 아니라 부처의 교화의 힘이 드러나는 자리로 읽어야 함을 시사한다.
「서상어서」 — 서상의 크기는 법의 크기
법화경에는 갖가지 서상이 설해져 있다. 대성인은 「서상어서」에서 법화경의 서상으로 서품의 육서(六瑞) 등 적문의 서상, 보탑품의 보탑 출현과 용출품의 지용 보살 용출 등 본문의 서상, 말법 유포를 위한 부촉이 이루어진 신력품의 십신력의 서상을 들고, 그 크기를 이렇게 비교하신다.
夫一代四十余年が間なかりし大瑞を現じて法華経の迹門を・とかせ給いぬ、其の上本門と申すは又爾前の経経の瑞に迹門を対するよりも大なる大瑞なり、大宝塔の地より・をどりいでし地涌千界・大地よりならび出でし大震動は大風の大海を吹けば大山のごとくなる大波のあしのはのごとくなる小船のをひほにつくが・ごとくなりしなり、されば序品の瑞をば弥勒は文殊に問い涌出品の大瑞をば慈氏は仏に問いたてまつる・これを妙楽釈して云く『迹事は浅近・文殊に寄すべし久本は裁り難し故に唯仏に託す』云云・迹門のことは仏説き給はざりしかども文殊ほぼこれをしれり、本門の事は妙徳すこしもはからず、此の大瑞は在世の事にて候、仏・神力品にいたつて十神力を現ず此れは又さきの二瑞には・にるべくもなき神力なり、序品の放光は東方・万八千土、神力品の大放光は十方世界、序品の地動は但三千界・神力品の大地動は諸仏の世界地・皆六種に震動す、此の瑞も又又かくのごとし、此の神力品の大瑞は仏の滅後正像二千年すぎて 末法に入つて法華経の肝要のひろまらせ給うべき大瑞なり
무릇 일대 사십여 년 동안 없었던 대서를 나타내어 법화경 적문을 설하셨느니라. 그 위에 본문이라 함은 또 이전 경들의 서상에 적문을 견주는 것보다도 더 큰 대서이니라. 대보탑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지용천계가 대지에서 나란히 나온 대진동은, 큰바람이 큰 바다를 불면 큰 산 같은 큰 물결이 갈대 잎 같은 작은 배의 뒤를 쫓는 것과 같았느니라. 그러므로 서품의 서상은 미륵이 문수에게 물었고, 용출품의 대서는 자씨(미륵)가 부처에게 여쭈었느니라. 이를 묘락이 풀이하되 「적의 일은 얕고 가까우니 문수에게 맡길 만하지만, 구원의 근본은 헤아리기 어려우므로 오직 부처에게 맡긴다」 운운. 적문의 일은 부처가 설하지 않으셨어도 문수가 대강 알았지만, 본문의 일은 묘덕(문수)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였느니라. 이 대서는 재세의 일이니라. 부처가 신력품에 이르러 십신력을 나타내셨으니, 이는 또 앞의 두 서상과는 견줄 수도 없는 신력이니라. 서품의 방광은 동방 만팔천 토였으나 신력품의 대방광은 시방세계요, 서품의 지동은 다만 삼천계였으나 신력품의 대지동은 제불의 세계의 땅이 모두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느니라. 이 서상도 또한 이와 같으니, 이 신력품의 대서는 부처의 멸후 정상 이천 년이 지나 말법에 들어 법화경의 간요가 널리 퍼질 대서이니라.
이전보다 적문의 서상이, 적문보다 본문의 서상이, 본문의 서상보다 말법 유포의 서상이 더 크다. 그리고 왜 법화경의 서상이 크고 말법 유포를 위한 서상이 더 큰가에 대해 같은 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今法華経は元品の無明をやぶるゆへに大動あり、末代は又在世よりも悪人多多なり、かるがゆへに在世の瑞にも・すぐれて・あるべきよしを示現し給う
지금 법화경은 원품의 무명을 깨뜨리므로 큰 움직임이 있느니라. 말대는 또 재세보다 악인이 많고 많으니라. 그러므로 재세의 서상보다도 뛰어날 것임을 나타내 보이셨느니라.
이 「서상어서」의 논리가 법화취요초의 이 장을 뒷받침한다. 신력품의 대서가 「말법에 들어 법화경의 간요가 널리 퍼질 대서」라면, 그 간요가 실제로 퍼지기 시작하는 지금 그에 걸맞은 큰 천변지요가 나타나는 것은 도리에 맞는다. 그리고 말대는 재세보다 악인이 많으므로 그 서상은 재세의 서상보다 더 크고 더 무섭게 나타난다.
정가 대지진에서 사도의 「두 개의 해」까지
둘째 문답은 무엇이 실제로 삼대비법 유포의 서상인가를 밝힌다. 정가 연간의 대지진에서 시작해 이 어서를 쓰실 때까지 일어난 큰 천변지요가 모두 삼대비법의 서상이며, 그 사이에 인왕경을 비롯해 금광명경 · 대집경 · 수호경 · 약사경 등 여러 경에 설해진 갖가지 재난이 모두 나타났다고 하신다.
정가 대지진과 문영 대혜성
정가 대지진과 문영 대혜성은 대성인 생애의 큰 분기점이었다. 「안국론어감유래」는 그 참상을 이렇게 기록하신다.
正嘉元年太歳丁巳八月廿三日戌亥の時前代に超え大に地振す.同二年戊午八月一日大風.同三年己未大飢饉.正元元年己未大疫病同二年庚申 四季に亘つて大疫已まず万民既に大半に超えて死を招き了んぬ
정가 원년 정사년 8월 23일 술해시에 앞 시대를 넘어서는 큰 지진이 일어났느니라. 이듬해 무오년 8월 1일에 대풍, 그 이듬해 기미년에 대기근, 정원 원년 기미년에 대역병, 이듬해 경신년에는 사계절에 걸쳐 큰 역병이 그치지 않아 만민이 이미 태반이 넘게 죽음을 맞았느니라.
대성인은 이 대지진을 보고 일체경을 열람해 재난의 근원을 생각하기 시작하셨고,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입정안국론」을 최명사 입도 호조 도키요리에게 올리셨다. 「입정안국론오서」는 그 경위를 이렇게 적는다.
去ぬる正嘉元年太歳丁巳八月二十三日戌亥の尅の大地震を見て之を勘う、其の後文応元年太歳庚申七月十六日を以て宿屋禅門に付して故最明寺入道殿に奉れり、其の後文永元年太歳甲子七月五日大明星の時弥此の災の根源を知る
지난 정가 원년 정사년 8월 23일 술해시의 대지진을 보고 이를 생각하였느니라. 그 뒤 문응 원년 경신년 7월 16일 야도야 선문을 통해 고 최명사 입도전에게 올렸느니라. 그 뒤 문영 원년 갑자년 7월 5일 대명성(大明星)의 때에 이 재앙의 근원을 더욱 알았느니라.
문영 원년의 혜성에 대해서는 「안국론어감유래」에 「又其の後文永元年甲子七月五日彗星東方に出で余光大体一国土に及ぶ、此れ又世始まりてより已来無き所の凶瑞なり内外典の学者も其の凶瑞の根源を知らず、予弥よ悲歎を増長す」(34쪽) — 또 그 뒤 문영 원년 갑자 7월 5일 혜성이 동방에 나와 남은 빛이 거의 온 국토에 미쳤다. 이 또한 세상이 시작된 뒤로 없던 흉서이다. 내전 · 외전의 학자도 그 흉서의 근원을 알지 못하니 나는 더욱 비탄을 더하였다 — 라고 하신다.
이 두 천변을 대성인은 처음에는 정법을 버리고 방법에 귀의한 나라에 대한 경고, 곧 자계반역난 · 타국침핍난의 전조로 감하셨다. 그러나 다쓰노쿠치 법난과 사도 유배를 거치면서 같은 천변이 또 하나의 의미를 드러낸다. 사도에 도착하신 직후 도키조닌에게 보내신 「도키입도전답서」에 이미 그 전환이 나타난다.
前相已に顕れぬ去正嘉の大地震前代未聞の大瑞なり神世十二・人王九十代と仏滅後二千二百余年未曾有の大瑞なり神力品に云く「仏滅度の後に於て能く是の経を持つが故に諸仏皆歓喜して無量の神力を現ず」等云云、「如来一切所有之法」云云、但此の大法弘まり給ならば爾前迹門の経教は一分も益なかるべし
전상(前相)은 이미 나타났느니라. 지난 정가의 대지진은 전대미문의 대서이니, 신대(神代) 십이 대 · 인왕 구십 대와 불멸후 이천이백여 년 동안 일찍이 없던 대서이니라. 신력품에 이르되 「부처의 멸도 후에 능히 이 경을 지니므로 제불이 모두 환희하여 무량한 신력을 나타내신다」 운운, 「여래의 일체 소유의 법」 운운. 다만 이 대법이 널리 퍼지게 되면 이전 · 적문의 경교는 일분의 이익도 없으리라.
정가 대지진은 이제 「흉서」일 뿐 아니라 신력품의 결요부촉, 곧 「여래의 일체 소유의 법」이 퍼질 「대서」로 읽힌다. 같은 도키조닌에게 보내신 이 법화취요초가 제13장에서 결요부촉을 논하고 이 장에서 정가 대지진을 선상으로 드는 것은, 사도 이래 도키조닌에게 내보이신 그 법문을 체계로 완결하신 것이다.
「현불미래기」도 같은 관점에서 정가 이래의 천변을 「대법 흥폐의 대서」로 단정하신다.
其の前相必ず正像に超過せる天変地夭之れ有るか、所謂仏生の時・転法輪の時・入涅槃の時吉瑞・凶瑞共に前後に絶えたる大瑞なり、仏は此れ聖人の本なり経経の文を見るに仏の御誕生の時は五色の光気・四方に遍くして夜も昼の如し仏御入滅の時には十二の白虹・南北に亘り大日輪光り無くして闇夜の如くなりし、其の後正像二千年の間・内外の聖人・生滅有れども此の大瑞には如かず、而るに去ぬる正嘉年中より今年に至るまで或は大地震・或は大天変・宛かも仏陀の生滅の時の如し、当に知るべし仏の如き聖人生れたまわんか、大虚に亘つて大彗星出づ誰の王臣を以て之に対せん、当瑞大地を傾動して三たび振裂す何れの聖賢を以て之に課せん、当に知るべし通途世間の吉凶の大瑞には非ざるべし惟れ偏に此の大法興廃の大瑞なり
그 전상으로 반드시 정상을 넘어서는 천변지요가 있으리라. 이른바 부처가 태어날 때 · 법륜을 굴릴 때 · 열반에 들 때에는 길서 · 흉서가 함께 앞뒤에 없던 대서였느니라. 부처는 성인의 근본이니, 경들의 글을 보건대 부처가 탄생하실 때는 오색의 광기가 사방에 두루하여 밤도 낮과 같았고, 부처가 입멸하실 때는 열두 줄기 흰 무지개가 남북에 걸치고 큰 해가 빛을 잃어 캄캄한 밤과 같았느니라. 그 뒤 정상 이천 년 동안 내외의 성인이 나고 죽었으나 이 대서에는 미치지 못하였느니라. 그런데 지난 정가 연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혹은 대지진, 혹은 대천변이 마치 부처가 나고 죽던 때와 같으니, 마땅히 알라, 부처와 같은 성인이 태어나신 것이리라. 큰 허공에 걸쳐 대혜성이 나왔으니 어느 왕신을 이에 맞추겠으며, 이 서상은 대지를 기울여 세 번이나 흔들어 찢었으니 어느 성현을 이에 맞추겠느뇨. 마땅히 알라, 세간 보통의 길흉의 대서가 아니라 오직 이 대법 흥폐의 대서이니라.
「흥」은 대성인의 불법이 일어남이요 「폐」는 석가 불법이 효력을 잃음이다. 제12장의 「일시에 멸진」과 같은 구도가 천변의 해석에도 그대로 겹쳐진다.
문영 11년 사도의 「두 개의 해」와 「명성 병출」
그러나 지난해까지는 여러 경에 설해진 재난 가운데 인왕경의 「두 · 세 · 네 · 다섯의 해가 나온다」는 대난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문영 11년(1274) 정월 23일 사도에 두 개의 해, 세 개의 해가 나타났고, 2월 5일에는 명성 둘이 나란히 나타났다는 증언이 대성인께 전해졌다. 이 천변으로 경전에 설해진 모든 재난이 나타난 셈이 된다. 대성인이 사도에서 사면되어 가마쿠라로 돌아오신 것이 그해 3월이니, 이 보고는 사도에 계실 때 혹은 그 직후 사도의 백성들에게서 들으신 것이다.
강의는 여기에 언급된 「두 개의 해 · 세 개의 해」를 이른바 환일(幻日) 현상으로 설명한다. 환일은 태양의 양쪽에 강하게 빛나는 점이 나타나 마치 해가 둘, 셋 나란히 뜬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태양의 무리(暈)가 공중에 뜬 얼음 결정에 굴절되어 지평선과 거의 나란한 새로운 무리가 생기고, 그것이 본래의 무리와 만나는 곳이 강하게 빛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양과 두 환일 셋이 나란한 「세 개의 해」가 보통이겠지만, 보는 방향이나 그때의 기상 조건에 따라 「두 개의 해」로 보이기도 하고, 무리가 두 겹 · 세 겹이 되면 「네 개의 해」 · 「다섯 개의 해」로 보이기도 한다. 달에도 같은 현상이 있어 환월(幻月)이라 부른다.

함께 언급된 「명성 둘이 나란히 떴다」는 현상에 대해서는, 당시 모두 밝게 빛나는 금성과 목성이 접근해 있었음이 계산으로 밝혀져 있다고 강의는 전한다. 어느 쪽이든 이 천변은 당시 사람들에게 흉조로 여겨져 사람들을 불안에 빠뜨렸다.
강의가 환일 · 행성 접근으로 천변을 설명하는 것은 현상의 정체를 밝히려는 것이지 그 의미를 지우려는 것이 아니다. 이 장의 도리는 처음부터 「여시상」, 곧 드러난 모습과 그 안의 인과를 함께 보는 데 있었다. 현상이 자연의 이치로 설명된다는 것과 그것이 시대의 불법상 큰일의 서상이라는 것은, 십여시의 「상」과 「인 · 과 · 보」처럼 다른 층위의 일이다.
일월의 난은 왜 「제일의 대악난」인가
셋째 절에서 대성인은 해와 달의 이변을 든 최승왕경 · 수능엄경 · 약사경 · 금광명경 · 대집경 · 인왕경의 경문을 차례로 인용하시고, 해와 달의 난이 「칠난 · 이십구난 · 무량한 여러 난 가운데 제일의 대악난」이라 하신다.
인용된 경문의 원 맥락
이 경문들은 대부분 「입정안국론」 이래 대성인이 거듭 인용해 오신 것들이다. 특히 인왕경의 문은 「입정안국론」에서 칠난 전체를 든 긴 인용의 첫머리로 나온다.
日月度を失い、時節返逆し、或は赤日出で、黒日出で、二三四五の日出で、或は日蝕して光無く、或は日輪一重・二三四五重輪現ずるを一の難と為すなり
해와 달이 도수를 잃고 시절이 거꾸로 되며, 혹은 붉은 해가 나오고 검은 해가 나오며, 두 · 세 · 네 · 다섯의 해가 나오고, 혹은 일식하여 빛이 없고, 혹은 해에 한 겹 · 두 · 세 · 네 · 다섯 겹의 테가 나타나는 것을 첫째 난으로 삼느니라.
인왕경은 이 일월의 난을 칠난의 「첫째」로 세우고, 이어 이십팔수가 도수를 잃고 갖가지 별이 변하는 성수의 난을 둘째로, 대화 · 대수 · 대풍 · 항양(가뭄) · 악적의 난을 차례로 든다. 법화취요초가 일월의 난을 「제일의 대악난」이라 하심은 이 배열과도 맞는다. 「입정안국론」의 강의는 이 첫째 난을 다시 일월실도난(해와 달이 도수를 잃고 시절이 거꾸로 됨) · 안색개변난(붉은 해 · 검은 해) · 일체증다난(두 · 세 · 네 · 다섯의 해) · 일월박식난(일식으로 빛을 잃음) · 중륜난(겹친 둥근 테)의 다섯으로 나눈다. 사도에서 보고된 「두 개의 해 · 세 개의 해」는 그 셋째, 일체증다난에 해당한다.
최승왕경 왕법정론품의 문은 「선시초」에서도 더 길게 인용된다. 「又云く『三十三天の衆咸忿怒の心を生じ変怪流星堕ち二の日倶時に出で他方の怨賊来りて国人喪乱に遭わん』等云云、すでに此の国に天変あり地夭あり他国より此れをせむ三十三天の御いかり有こと又疑いなきか」(「선시초」, 285쪽) — 또 이르되 「삼십삼천의 대중이 모두 분노의 마음을 내어 괴이한 유성이 떨어지고 두 해가 한꺼번에 나오며 다른 지방의 원적이 쳐들어와 나라 사람들이 상란을 만나리라」 운운. 이미 이 나라에 천변이 있고 지요가 있으며 타국이 이를 공격하니 삼십삼천의 노여움이 있음 또한 의심 없지 않겠는가. 법화취요초가 인용한 구절의 앞에는 「삼십삼천의 대중이 모두 분노의 마음을 낸다」는 말이 있었던 것이다. 두 해가 나란히 뜨는 것은 단지 하늘의 이상이 아니라 하늘의 노여움이며, 그 결과는 「다른 지방의 원적이 쳐들어와 나라 사람들이 상란을 만나는」 타국침핍난이다.
대집경의 「불법이 참으로 은몰하면」도 「입정안국론」에 긴 문으로 인용된 것이다. 그 경문은 불법이 은몰하면 수염 · 머리털 · 손톱이 모두 길게 자라고 세간의 법도 잊히며, 허공에서 큰 소리가 나 땅이 진동하고, 성벽이 무너지고, 샘과 못이 말라붙고, 흙비가 내려 모두 어두워지며, 이어 「해와 달이 밝음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설한 뒤, 「이와 같은 불선업의 악왕 · 악비구가 나의 정법을 훼괴한다」로 이어진다. 법화취요초는 其の三에서 그 가운데 「해와 달이 밝음을 드러내지 않는다」만, 其の四에서 「불선업의 악왕 · 악비구가 나의 정법을 훼괴한다」만을 「내지」로 줄여 인용하셨다. 강의가 말하듯 정법 멸진으로 갖가지 재화가 닥친다는 내용은 「입정안국론」의 인용에 자세하고, 이 어서는 그 가운데 필요한 대목만 집어 보이신 것이다.
일월의 난이 두려운 까닭
그런데 「두 개의 해 · 세 개의 해」라 해도 그 자체가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왜 「제일의 대악난」인가. 강의는 그 답이 이 어서의 끝, 제15장에 이르러 밝혀진다고 말한다. 곧 그것은 「일국에 두 국왕이 나란히 서는 상」 · 「신하가 왕을 범하는 상」 · 「사천하 일동의 쟁론」 · 「태자와 태자의 쟁론」이라는, 한 나라 안의 내란의 흉조다. 해는 왕의 상징이므로 해의 이변은 왕권의 분열과 찬탈을 예고한다. 최승왕경이 「두 해가 한꺼번에 나오면 원적이 쳐들어온다」고 하였듯, 그것은 다시 외적의 침입과도 맞물린다.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 — 「입정안국론」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 난으로 예언했던 바로 그것의 하늘의 표지가 일월의 난인 것이다.
재난의 원인 — 악비구와 성인 박해
셋째 문답은 천변지요 등의 재난이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가를 경문을 들어 밝힌다. 그 원인은 결론의 문 「마땅히 알라, 이 나라에 악비구 등이 있어 천자 · 왕자 · 장군 등을 향해 참소를 꾀하여 성인을 없애려는 세상이니라」가 말하듯, 악비구가 권력자와 결탁하여 성인을 없애려 하는 데 있다.
인용된 경문을 하나씩 보자.
- 처음의 금광명최승왕경의 문 「비법을 행하는 자를 보고 도리어 애경을 내고 선법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괴롭혀 다스려 벌한다」는 권력자가 비법을 행하는 악비구를 공경하고 선법을 행하는 성인을 괴롭히고 벌하는 것을 보인다.
- 다음의 「법화경에 이르고 · 열반경에 이르고」는 최승왕경의 문과 취지가 같으므로 줄이신 것이다. 강의는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법화경은 권지품 제13의 삼류 강적의 문을, 열반경은 여래성품에서 악왕 · 악비구가 정법을 비방하여 은몰시키는 모습을 설한 대목을 든다.
- 이어 다시 금광명경의 문 「악인을 애경하고 선인을 다스려 벌하는 까닭에 성수와 바람 · 비가 모두 제때에 행하여지지 않는다」가 인용된다. 이 문이야말로 성인 박해가 재난의 원인임을 보인다. 앞의 최승왕경 · 법화경 · 열반경의 문은 정법 은몰에 대한 문증이고, 그것이 이 금광명경의 「악인을 애경하고 선인을 다스려 벌한다」로 이어지며, 이 문의 뒷부분은 그것이 인이 되어 그 결과로 「성수와 바람 · 비가 모두 제때에 행하여지지 않는」 재난이 일어남을 나타낸다고 강의는 본다.
- 대집경의 인용은 악왕 · 악비구가 불법을 멸함을 보인다.
- 인왕경에서 인용된 세 문 가운데 첫 문은 성인 박해의 결과로 「칠난」이 일어남을, 뒤의 두 문은 악왕에 의한 성인에 대한 부당한 박해가 「법멸」의 원인이 되고, 명리를 구하며 권력자와 결탁하는 악비구가 「파불법」 · 「파국」의 인연이 됨을 보인다.
「선시초」 · 「하키리사부로전답서」의 같은 논리
같은 경문을 같은 순서로 쓰는 논리는 다른 어서에서 더 구체적으로 풀린다. 「선시초」는 최승왕경의 「악인을 애경하고 선인을 다스려 벌하는 까닭에」를 인용한 뒤 「此の経文のごときんば此国に悪人のあるを王臣此れを帰依すという事疑いなし、又此の国に智人あり国主此れをにくみてあだすという事も又疑いなし」(285쪽) — 이 경문대로라면 이 나라에 악인이 있어 왕신이 이에 귀의한다는 것은 의심 없고, 또 이 나라에 지인(智人)이 있어 국주가 이를 미워하여 원수로 대한다는 것도 의심 없다 — 라고 경문의 「악인」과 「선인」을 당시 일본의 현실에 대입하신다. 이어 인왕경의 「여러 악비구가 많이 명리를 구하여」를 인용하신 뒤, 그 문의 뜻을 이렇게 풀어 가신다.
文の心は悪比丘等・国に充満して国王・太子・王子等をたぼらかして破仏法・破国の因縁をとかば其の国の王等此の人にたぼらかされてをぼすやう、此の法こそ持仏法の因縁・持国の因縁とをもひ此の言ををさめてをこなうならば日月に変あり大風と大雨と大火等出来し次には内賊と申して親類より大兵乱おこり我がかたうどしぬべき者をば皆打ち失いて後には他国にせめられて或は自殺し或はいけどりにせられて或は降人となるべし是れ偏に仏法をほろぼし国をほろぼす故なり
경문의 뜻은 이러하니라. 악비구들이 나라에 가득하여 국왕 · 태자 · 왕자들을 속여 파불법 · 파국의 인연을 설하면, 그 나라의 왕들은 이 사람들에게 속아서, 이 법이야말로 불법을 지키는 인연이요 나라를 지키는 인연이라 생각하여 그 말을 받아들여 행하리니, 그러면 해와 달에 변이 생기고 대풍과 대우와 대화 등이 일어나며, 다음에는 내적이라 하여 친족 사이에서 큰 병란이 일어나 자기 편이 될 만한 자들을 모두 쳐 없애고, 뒤에는 타국의 공격을 받아 혹은 자살하고 혹은 사로잡히고 혹은 항복한 자가 되리라. 이는 오로지 불법을 멸하고 나라를 멸하는 까닭이니라.
악비구가 「파불법의 인연」을 「지불법의 인연」으로 꾸며 권력자를 속이는 것 — 이것이 말법의 재난의 근원이라는 것이 대성인의 일관된 진단이다. 그 결과는 일월의 변(천변)에서 내란(자계반역)으로, 다시 외침(타국침핍)으로 이어진다. 법화취요초 其の三에서 일월의 난을 「제일의 대악난」이라 하신 까닭이 이 인과의 사슬에서 분명해진다.
사도 유배 중에 쓰신 「하키리사부로전답서」는 같은 경문에 등장인물을 대입하신다.
仁王経に云く「聖人去る時・七難必ず起る」等云云、七難とは所謂大旱魃・大兵乱等是なり、最勝王経に云く「悪人を愛敬し善人を治罰するに由るが故に星宿及び風雨皆時を以て行われず」等云云、愛悪人とは誰人ぞや上に挙ぐる所の諸人なり治罰善人とは誰人ぞや上に挙ぐる所の数数見擯出の者なり、星宿とは此の二十余年の天変・地夭等是なり、経文の如くならば日蓮を流罪するは国土滅亡の先兆なり
인왕경에 이르되 「성인이 떠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 운운. 칠난이란 이른바 대한발 · 대병란 등이 이것이니라. 최승왕경에 이르되 「악인을 애경하고 선인을 다스려 벌하는 까닭에 성수와 바람 · 비가 모두 제때에 행하여지지 않는다」 운운. 「애악인」이란 누구인가. 위에 든 여러 사람이니라. 「치벌선인」이란 누구인가. 위에 든 「자주 쫓겨나는(數數見擯出)」 자이니라. 「성수」란 이 이십여 년의 천변 · 지요 등이 이것이니라. 경문대로라면 니치렌을 유죄에 처하는 것은 국토 멸망의 선조(先兆)이니라.
「성인이 떠날 때」란 곧 대성인을 유배 보낸 때이며, 「악인을 애경」하는 것은 막부가 제종의 승려들을 귀의 · 숭경하는 것이다. 이 장의 결론 「천자 · 왕자 · 장군 등을 향해 참소를 꾀하여 성인을 없애려는 세상」은 다쓰노쿠치 법난과 사도 유배를 직접 겪으신 대성인의 체험 그대로다. 「눈 있는 나의 문하는 이를 보라」는 말씀은, 그 박해를 함께 견딘 문하에게 경문이라는 밝은 거울과 일본의 현실이 부절처럼 맞아떨어지는 것을 스스로의 눈으로 확인하라는 권유다.
정상의 파불과 말법의 파불 — 「其の失前代に超過せる」
넷째 문답은 말법의 재난이 앞 시대를 넘어서는 까닭을 밝힌다. 물음에는 인도의 불사밀다라왕, 중국의 회창천자, 일본의 모노노베노 모리야 등 정상 이시의 불교 탄압자의 이름이 오르고, 또 이들과 직접 짝을 이루지는 않지만 박해를 받아 살해된 정법 호지자로 인도의 제바보살과 사자존자의 이름이 오른다.
세 나라의 파불자
불사밀다라왕은 아육대왕의 후손에 해당하는 인도의 왕으로, 자기 이름을 떨치려고 악신의 말을 받아들여 아육왕이 세운 팔만사천의 불탑을 부수고 승려를 죽였다. 「교빈소장회통」에는 「弗沙弥多羅王は四兵を興して五天を回らし僧侶を殺し寺塔を焼く」(182쪽) — 불사밀다라왕은 네 가지 군대를 일으켜 오천축을 돌며 승려를 죽이고 절과 탑을 불태웠다 — 라고 말씀하신다.
회창천자는 중국 당의 제15대 황제 무종이다. 처음에는 염불을 믿었으나 도교를 중시하게 되어 대규모 불교 탄압을 단행했다. 「고닌장답서」에는 「此の漢土の会昌天子の寺院四千六百余所を滅失し九国の僧尼還俗せしめたる此等大悪人為り」(185쪽) — 이 한토의 회창천자가 사원 사천육백여 곳을 멸실하고 아홉 나라의 승니를 환속시킨 것, 이들이 대악인이다 — 라고 말씀하신다.
모노노베노 모리야는 고대 일본의 호족으로, 불교 수용을 둘러싸고 배불을 주장해 숭불파 소가씨와 다투었다. 당시의 역병 유행이 숭불 때문이라 하여 불교를 탄압했다. 대성인은 모리야에 대해 「守屋中臣の臣勝海大連等両臣と、寺に向つて堂塔を切たうし仏像を・やきやぶり、寺には火をはなち僧尼の袈裟をはぎ笞をもつてせむ」(「시조깅고전답서」, 1166쪽) — 모리야는 나카토미노 가쓰미 대련 등 두 신하와 절로 쳐들어가 당탑을 베어 넘어뜨리고 불상을 불태워 부수며, 절에는 불을 지르고 승니의 가사를 벗겨 매로 쳤다 — 라고 말씀하신다.
또 제바보살은 남인도 사람으로 정법 시대 부법장의 제14조다. 많은 외도와 법론을 하여 굴복시켰으나 원한을 사 살해되었다. 사자존자는 중인도 사람으로 부법장의 제24조인데, 계빈국에서 포교하던 중 그 나라 왕 단미라왕에게 목이 베여 정법 시대 마지막 전법자가 되었다.
이처럼 정상 시대에도 불법을 박해하는 큰 사건이 있었는데 왜 그때는 큰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하고 물음을 세우신 뒤, 대성인은 정상 이시의 불교 탄압은 박해자가 외도 · 도교 · 사신을 믿고 그 입장에서 불법을 깨뜨리려 한 것이므로 「그 죄는 오히려 얕다」고 하신다. 이에 비해 말법의 경우는 소승 · 권대승으로써 법화경을 멸하려는 것이므로 앞 시대보다 죄가 무겁다.
니치칸 상인의 세 뜻
이 점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세 가지 뜻을 보인다.
- 「첫째는 내외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르자면 저 악왕은 외적이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불법을 멸실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죄는 오히려 얕다. 지금 말법의 악왕 등은 내적이다. … 능히 불법을 멸하므로 그 죄가 무겁다.」
- 「둘째는 권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르자면 저 악왕 등은 권교 · 권불을 적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그 죄가 얕다. 지금 말법은 모두 실교 · 실불을 적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그 죄가 무겁다.」
- 「셋째는 많고 적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르자면 저 악왕 등은 다만 그 왕 한 사람의 악행이었다. 지금 말법은 위아래가 한결같은 악심이다.」
- ①내외외적(외도 · 도사 · 사신의 입장) → 실제로는 불법을 멸할 수 없음 · 죄가 얕다내적(악비구와 결탁, 소승 · 권대승으로 법화경을 침) → 능히 불법을 멸함 · 죄가 무겁다
- ②권실권교 · 권불을 적으로 삼음실교 · 실불(법화경)을 적으로 삼음
- ③다소왕 한 사람의 악행위아래가 한결같은 악심
강의는 이를 이렇게 풀이한다. 첫째는 박해하는 악왕 등이 믿는 법의 차이다. 정상 이시의 악왕 등은 외도 등의 입장에서 불교를 박해했으며, 외도로써는 불교를 멸할 수 없으므로 아직 죄가 얕다. 이에 비해 말법의 악왕은 이 어서에 말씀하신 대로 악비구와 결탁하여 소승 · 권대승 등의 불교로써 법화경의 정법을 멸하려 하며, 이로써 불법을 멸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그 죄가 앞 시대보다 무겁다. 둘째는 박해받는 불교 쪽의 권실의 차이다. 정상 이시의 악왕은 권교를 적으로 삼았으므로 아직 죄가 얕고, 말법에는 실경인 법화경을 적으로 삼으므로 죄가 무겁다. 셋째는 박해자의 많고 적음이다. 정상 이시는 왕 한 사람의 악행에 의한 박해이므로 죄가 얕은 데 비해, 말법에는 나라의 모든 사람이 악심을 일으켜 박해하므로 죄가 무겁다.
마음을 깎는 파불
本文의 한 구절은 특히 깊다. 「사람의 마음을 깎되 몸은 잃게 하지 않고, 절과 탑을 태워 없애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불법을 잃게 한다.」 정상의 파불은 절을 불태우고 승려를 죽이는, 눈에 보이는 파괴였다. 그것은 크게 보이지만 불법의 생명을 끊지는 못했다. 말법의 파불은 겉으로는 절과 탑이 번성하고 승려도 많으며 국가가 불교를 보호하는 가운데 일어난다. 소로써 대를 치고 권으로써 실을 잃게 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에서 정법을 믿는 마음을 깎아 내는 것이다. 몸도 절도 그대로 있으니 아무도 불법이 멸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저절로」 불법은 사라진다.
「입정안국론」 첫머리의 정경 — 사람들이 저마다 아미타의 이름을 부르고 약사의 경을 외우며, 「칠난즉멸 · 칠복즉생」의 구절을 믿고 백좌백강의 의식을 갖추고, 진언의 오병의 물을 뿌리고 좌선으로 공관의 달을 맑히는데도 재난은 그치지 않는 — 이 바로 그런 파불의 모습이다. 겉의 신앙이 성할수록 정법은 저절로 상실되는 역설, 이것을 대성인은 「그 허물이 앞 시대를 넘어선다」고 하셨고, 그러므로 그 재난도 앞 시대를 넘어선다.
이것이 제1문답의 「서상어서」와도 이어진다. 「말대는 또 재세보다 악인이 많고 많으니라. 그러므로 재세의 서상보다도 뛰어날 것임을 나타내 보이셨다.」 악이 깊을수록 그것을 깨뜨리는 법의 서상도 크다. 말법의 파불이 정상의 파불을 넘어선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것을 깨뜨리고 일어설 삼대비법의 유포가 정상의 어떤 홍통보다도 큰일이라는 뜻이다.
강의는 이 장의 네 문답을 원리(여시상 · 대사에는 반드시 서상) → 사실(정가 대지진 · 문영 대혜성 · 사도의 두 해와 명성 병출) → 원인(악비구와 권력의 결탁에 의한 성인 박해) → 비교(내적 · 실교의 적 · 상하 일동의 악심이므로 앞 시대를 넘는다)의 순서로 읽고, 천변지요를 삼대비법 광선유포의 선상으로 확정한다.
본문
我が門弟之を見て法華経を信用せよ目を瞋らして鏡に向え、天瞋るは人に失有ればなり、 二の日並び出るは一国に二の国王並ぶ相なり、王と王との闘諍なり、 星の日月を犯すは臣・王を犯す相なり、 日と日と競い出るは四天下一同の諍論なり、 明星並び出るは太子と太子との諍論なり、 是くの如く国土乱れて後に上行等の聖人出現し本門の三つの法門之を建立し一四天・四海一同に妙法蓮華経の広宣流布疑い無からん者か。 文永十一年五月 在御判
나의 문하는 이를 보고 법화경을 믿고 따르라. 눈을 부릅뜨고 거울을 향해 보라. 하늘이 노하는 것은 사람에게 허물이 있기 때문이니라. 두 개의 해가 나란히 뜨는 것은 한 나라에 두 국왕이 나란히 서는 상(相)이니, 왕과 왕의 투쟁이니라. 별이 해와 달을 범하는 것은 신하가 왕을 범하는 상이니라. 해와 해가 다투어 뜨는 것은 사천하(四天下)가 한가지로 다투는 쟁론이니라. 명성이 나란히 뜨는 것은 태자와 태자의 쟁론이니라. 이와 같이 국토가 어지러워진 뒤에 상행 등의 성인이 출현하여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고, 일사천하(一四天) · 사해(四海)가 한가지로 묘법연화경이 광선유포할 것은 의심 없으리라. 문영 11년 5월 재어판(在御判)
어구 풀이
- 結勧결권
- 글을 맺으며 권함. 이 장은 이 어서 전체의 결문으로, 문하에게 천변지요를 보고 신심을 굳히라고 권하고 삼대비법의 광선유포를 확신으로 맺는다.
- 目を瞋らして鏡に向え눈을 부릅뜨고 거울을 향하라
- 눈을 부릅뜨고 거울을 보면 거울 속 얼굴도 노려본다. 하늘의 노여움(천변)은 사람의 허물이 비친 것이라는 비유.
- 天瞋る하늘이 노하다
- 제천선신이 노하여 천변지요를 일으킴. 니치칸 상인은 제천이 밤낮으로 행자의 정수리에 있으므로 행자에게 성을 내는 것이 곧 하늘을 향해 눈을 부릅뜨는 것이라고 푼다.
- 二の日並び出る두 해가 나란히 뜨다
- 문영 11년 정월 사도에서 보고된 환일 현상. 해는 왕의 상징이므로 한 나라에 왕이 둘 서는 상이라 하신다.
- 星の日月を犯す별이 해와 달을 범하다
- 밝은 별이 달에 가까이 붙어 보이는 현상 등을 말한다. 신하가 왕을 범하는 하극상의 상이라 하신다.
- 四天下사천하
- 수미산 사방의 네 대륙(동승신주 · 남섬부주 · 서우화주 · 북구로주). 온 세계를 뜻하며, 문맥에 따라 한 나라 전체로도 읽힌다.
- 明星명성
- 밝게 빛나는 별, 흔히 금성. 문영 11년 2월 5일의 「명성 병출」은 금성과 목성의 접근으로 설명된다. 태자와 태자의 쟁론, 곧 후계 다툼의 상이라 하신다.
- 上行等の聖人상행 등의 성인
- 지용의 보살 상수 상행보살과 그 권속. 강의는 여기의 「성인」을 대성인 자신으로 본다.
- 本門の三つの法門본문의 세 가지 법문
- 제12장의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 곧 삼대비법.
- 一四天・四海일사천 · 사해
- 일사천하와 사방의 바다. 수미산 세계 하나의 전체, 곧 온 세계. 「일염부제」와 같은 뜻으로 세계 광선유포를 가리킨다.
- 文永十一年五月문영 11년 5월
- 서기 1274년. 5월 12일 가마쿠라를 떠나 17일 미노부에 드셨고, 이 어서는 5월 24일에 쓰셨다고 전한다.
- 在御判재어판
- 「여기에 서명(화압)이 있음」이라는 필사 · 판각상의 표기. 원본에 대성인의 서명 · 화압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이 어서의 결문 — 확신과 권유
이 장은 법화취요초의 결문이다. 강의는 그 요지를 두 가지로 잡는다. 하나는 대성인의 문하에게 말법 유포의 서상인 천변지요가 일어나고 있음을 근거로 신심을 더욱 깊이 하라고 권하신 것이고, 또 하나는 상행보살이 출현하여 삼대비법을 건립하고 묘법연화경이 세계에 광선유포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확신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은 두 개의 결로 짜여 있다. 앞의 결은 천변의 「해독」이다. 제14장에서 경문의 거울에 비추어 본 천변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국난의 상인지를 하나씩 풀어 주신다. 뒤의 결은 그 국난 「뒤」에 오는 것, 곧 상행 등의 성인의 출현과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의 건립과 일사천하의 광선유포다. 혼란은 끝이 아니라 대법이 일어서기 위한 앞 단계라는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거울을 향하라」 — 하늘의 노여움은 사람의 허물
「눈을 부릅뜨고 거울을 향하라. 하늘이 노하는 것은 사람에게 허물이 있기 때문이다.」 눈을 부릅뜨고 거울을 향하면 거울 속 얼굴이 자신에게 노려본다. 그처럼 사람에게 죄가 있으므로 하늘이 노하여 재난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 죄란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박해하고 정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그 성내는 마음 때문에 제천이 분노하여 재난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씀이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이 대목을 이렇게 풀이한다. 「눈을 부릅뜨고 거울을 향하면 도리어 비친 상의 성냄은 사람에게 있다. 마땅히 알라. 제천은 밤낮으로 행자의 정수리에 있다. 그러므로 성을 내어 행자를 향하면 곧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향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도리어 하늘의 성냄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법화경의 행자에게 성을 내면 하늘이 노하는 까닭은 법화경 행자의 머리 위에 제천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행자를 노려보는 눈은 곧 하늘을 노려보는 눈이고, 하늘이 되돌려 보내는 노여움은 거울의 상처럼 그 사람 자신의 노여움이다.
이 비유는 제14장의 결론과 정확히 맞물린다. 제14장은 재난의 원인을 「악비구 등이 천자 · 왕자 · 장군 등을 향해 참소를 꾀하여 성인을 없애려는 세상」이라 하였다. 천변은 하늘 저편의 우연한 일이 아니라 땅 위의 사람들이 성인에게 던진 성냄이 하늘이라는 거울에 비친 모습이다. 그러므로 「나의 문하는 이를 보고 법화경을 믿고 따르라」는 권유가 성립한다. 천변을 보고 두려워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경문 그대로 나타난 것을 보고 경문이 진실임을 — 그러므로 그 경문이 예언한 광선유포도 진실임을 — 믿으라는 것이다.
네 가지 천변과 네 가지 국난의 상
이어 대성인은 「두 해가 나란히 뜬다」 · 「별이 해와 달을 범한다」 · 「해와 해가 다투어 뜬다」 · 「명성이 나란히 뜬다」의 천변을 드신다. 강의는 먼저 현상으로서 이것들을 설명한다. 「별이 해와 달을 범한다」 가운데 별이 달을 범한다는 것은 밝은 별이 달에 가까이 붙어 보이는 현상이다. 별이 해를 범한다는 것은 태양에 흑점이 나타난 것이거나, 낮에 별이 빛나 보이는 현상이거나, 혹은 해가 너무 밝아 가까이 붙은 별은 보이지 않으므로 「일월」이라 한 것은 말의 수사라고도 생각된다고 한다. 또 「해와 해가 다투어 뜬다」는 해가 둘, 셋 보이는 환일 현상을 가리킨다.
대성인은 여기서 이 천변들이 갖가지 국난의 서상이라 하신다.
- 천변二の日並び出る두 해가 나란히 뜬다국난의 상一国に二の国王並ぶ相なり、王と王との闘諍なり한 나라에 두 국왕이 나란히 서는 상 · 왕과 왕의 투쟁
- 천변星の日月を犯す별이 해와 달을 범한다국난의 상臣・王を犯す相なり신하가 왕을 범하는 상
- 천변日と日と競い出る해와 해가 다투어 뜬다국난의 상四天下一同の諍論なり사천하 일동의 쟁론
- 천변明星並び出る명성이 나란히 뜬다국난의 상太子と太子との諍論なり태자와 태자의 쟁론
두 해 — 왕과 왕의 투쟁
먼저 「두 해가 나란히 뜬다」는 현상이 「한 나라에 두 국왕이 나란히 서는 상」이며 「왕과 왕의 투쟁」이 일어날 서상이라 하신다. 강의는 막부와 조정이 나란히 선 가마쿠라 시대의 공무(公武) 이원 정치, 또 막부 안에서도 쇼군이 허수아비가 되고 집권 호조씨가 실권을 쥔 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본다.
또 대성인 입멸 후 반세기 남짓 지나 남북조가 나란히 서게 되는데, 강의는 이것을 예언하신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은 대성인 재세 시대가 남북조 분열의 원인이 된 시대였다. 문영 9년(1272) 2월 17일 고사가 상황이 세상을 떠난 뒤 그 후계 문제로 고후카쿠사 상황의 계통과 가메야마 천황의 계통으로 황통이 갈라졌고, 이후 두 계통에서 번갈아 천황을 내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왕과 왕의 투쟁」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하고 강의는 묻는다. 문영 9년 2월은 대성인이 사도로 유배되신 직후이며, 막부에서는 이른바 2월 소동(호조 도키스케의 난)의 와중이었다. 「성인이 떠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인왕경의 문 그대로, 대성인이 사도로 유배되신 것과 때를 같이하여 막부와 조정 양쪽 내부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별이 해와 달을 범함 — 신하가 왕을 범함
다음으로 「별이 해와 달을 범한다」는 것은 「신하가 왕을 범하는 상」이라 하신다. 강의는 가마쿠라 막부가 조정을 무찌른 조큐의 난(1221)이 이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하고, 또 대성인 입멸 후에는 이윽고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고 남북조 시대와 무로마치 막부를 거쳐 오닌의 난 이후 전국 시대에 하극상의 풍조가 본격화하는데, 그 도래를 예언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해와 해의 다툼 — 사천하 일동의 쟁론
다시 「해와 해가 다투어 뜬다」는 것은 「사천하 일동의 쟁론」의 서상이라 하신다. 이 「사천하」를 「나라 전체」로 볼지 「세계 전체」로 볼지는 어느 쪽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고 강의는 말한다. 앞 문에서 「두 해가 나란히 뜨는 것은 한 나라에 두 국왕이 나란히 서는 상」이라 하셨으므로, 그 맥락으로 말하면 「한 나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몽골의 위협이 온 세계를 압도하던 당시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면 「세계 전체」로도 풀 수 있다.
후자의 읽기는 「선시초」의 예언과 겹친다. 「선시초」는 말법 광선유포에 이르는 과정을 이렇게 그리신다.
前代未聞の大闘諍・一閻浮提に起るべし其の時・日月所照の四天下の一切衆生、或は国ををしみ或は身ををしむゆへに一切の仏菩薩にいのりをかくともしるしなくば彼のにくみつる一の小僧を信じて無量の大僧等八万の大王等、一切の万民・皆頭を地につけ掌を合せて一同に南無妙法蓮華経ととなうべし
전대미문의 대투쟁이 일염부제에 일어나리라. 그때 해와 달이 비추는 사천하의 일체중생이 혹은 나라를 아끼고 혹은 몸을 아끼므로 일체의 불보살에게 기도를 드려도 효험이 없으면, 저 미워하던 한 소승(小僧)을 믿어 무량한 대승(大僧)들과 팔만의 대왕들과 일체의 만민이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합장하여 한가지로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리라.
「사천하」의 「쟁론」 뒤에 「사천하의 일체중생」이 「한가지로」 남묘호렌게쿄를 부른다는 이 구도는, 법화취요초 결문의 「이와 같이 국토가 어지러워진 뒤에 … 일사천하 · 사해가 한가지로 묘법연화경이 광선유포」와 같은 형태다. 어지러움 「뒤에」 광포가 온다.
명성 병출 — 태자와 태자의 쟁론
마지막으로 「명성이 나란히 뜬다」는 「태자와 태자의 쟁론」, 곧 후계를 둘러싼 다툼의 상이라 하신다. 앞서 본 황통의 분열과 막부 안 호조 일문의 내분은 모두 이 상과도 겹친다.
강의는 이렇게 정리한다. 여기서 대성인이 보이신, 갖가지 천변을 서상으로 하는 갖가지 국난의 상은 이미 당시에 일어나고 있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국난의 상이 대성인 입멸 후에 더욱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의 말씀이 일본의 미래의 혼란을 예언하신 것처럼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강의가 국난의 상에 대응시킨 사건들 — 공무 이원 정치, 호조씨의 집권, 고사가 상황 사후의 황통 분열, 2월 소동, 조큐의 난, 남북조 · 무로마치 · 전국 시대의 하극상 — 은 모두 가마쿠라 시대와 그 뒤 중세 일본의 역사 사실이다. 강의는 이것들을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 「예언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말로 대응시키며, 천변 하나하나를 특정 사건 하나에 못 박아 단정하지는 않는다.
「상행 등의 성인 출현하여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고」
그러므로 「이와 같이 국토가 어지러워진 뒤에 상행 등의 성인이 출현하여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고」라는 말씀은, 일왕(一往) 장래에 나라가 혼란해진 뒤에 상행 등이 출현하는 듯한 표현이지만, 여기서 말씀하신 「성인」은 분명히 대성인 자신이며, 가까운 장래에 대성인이 삼대비법 총재의 대어본존을 건립하실 것을 선언하신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이 해석은 이 어서 전체의 흐름에서 자연스럽다. 제13장에서 대성인은 「니치렌은 광략을 버리고 간요를 좋아한다. 이른바 상행보살 소전의 묘법연화경의 오자이다」라고 하셔서, 상행보살이 전한 요법을 취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이미 밝히셨다. 서강에서 보았듯 이 어서 첫머리의 「부상사문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扶桑沙門日蓮之を述ぶ)」도 이 결문과 호응한다. 「부상」은 해 뜨는 곳의 이름이며, 대성인은 이 이름을 쓰실 때 반드시 그 대법이 동에서 서로, 그리고 염부제로 퍼져 갈 것을 시사하셨다. 강의는 「부상사문 니치렌」이라는 서명이야말로 말법에 광선유포할 삼대비법을 건립하는 「상행 등의 성인」이 니치렌 대성인 자신임을 표명하신 것이라고 본다. 첫머리의 서명과 끝머리의 결문이 하나의 고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 「서술하노라(述ぶ)」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술(述)은 전(傳)이다」라고 풀었다. 대성인은 스스로 새 법을 지어낸 것이 아니라, 구원명자의 묘법, 탑중에서 부촉된 요법을 전하신다는 뜻이다. 결문의 「상행 등의 성인이 출현하여」가 이것과 겹친다. 상행은 바로 그 부촉을 받은 보살이고, 그 부촉받은 요법을 말법에 「건립」하는 것이 성인의 일이다.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은 제12장 첫 문답의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다. 이 어서는 첫 대단에서 일대 제경의 대의를, 둘째 대단에서 그 경의 소피의 시기를 밝힌 뒤, 셋째 대단 첫머리에서 그 법의 이름을 드러내고, 마지막 문장에서 그 법을 「건립」하는 사람과 그 법이 「광선유포」하는 범위를 선언하여 끝난다.
「일사천하 · 사해 일동의 광선유포」 — 불법서점
「일사천하 · 사해가 한가지로 묘법연화경이 광선유포할 것은 의심 없으리라」는 장래의 세계 광선유포를 예언하신 것이라고 강의는 읽는다.
이 「일사천하」의 광포는 대성인이 사도 말기부터 밝혀 오신 「불법서점(佛法西漸)」의 사상과 이어진다. 이 어서를 쓰시기 한 해 전인 문영 10년(1273)의 「현불미래기」는 해와 달의 대비로 그것을 말씀하신다.
月は西より出でて東を照し日は東より出でて西を照す仏法も又以て是くの如し正像には西より東に向い末法には東より西に往く
달은 서쪽에서 나와 동쪽을 비추고,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을 비추느니라. 불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정상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말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느니라.
같은 어서는 이어 「仏法必ず東土の日本より出づべきなり」(508쪽) — 불법은 반드시 동토 일본에서 나오리라 — 라고 하신다. 뒤의 「간효팔번초」는 이를 국토의 이름에 붙여 다시 말씀하신다.
天竺国をば月氏国と申すは 仏の出現し給うべき名なり、扶桑国をば日本国と申すあに聖人出で給わざらむ、月は西より東に向へり月氏の仏法の東へ流るべき相なり、日は東より出づ日本の仏法の月氏へかへるべき瑞相なり
천축국을 월지국이라 함은 부처가 출현하실 이름이니라. 부상국을 일본국이라 하니 어찌 성인이 나오시지 않겠느뇨. 달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니 월지의 불법이 동쪽으로 흐를 상이요, 해는 동쪽에서 나오니 일본의 불법이 월지로 돌아갈 서상이니라.
이 어서 맨 첫 문장 「무릇 월지 서천으로부터 한토 · 일본에 건너온 경론」도 이 구도 위에 놓여 있다. 첫 문장의 「월지 서천에서 한토 · 일본으로」는 정상의 불법동점이고, 마지막 문장의 「일사천하 · 사해 일동」은 말법의 불법서점이다. 법화취요초는 달의 길로 시작하여 해의 길로 끝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부상」이라는 해 뜨는 곳의 이름을 서명에 쓰신 것도, 결문에서 「일사천하」를 말씀하신 것도 이 한 줄기 위에 있다.
또 「보은초」는 대성인의 자비가 넓고 크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 너머 미래까지 흐르리라고 하신다.
日蓮が慈悲曠大ならば南無妙法蓮華経は万年の外・未来までもながるべし、日本国の一切衆生の盲目をひらける功徳あり、無間地獄の道をふさぎぬ
니치렌의 자비가 넓고 크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 너머 미래까지도 흐르리라. 일본국 일체중생의 눈먼 눈을 뜨게 하는 공덕이 있고, 무간지옥의 길을 막았느니라.
일사천하라는 공간의 넓이와 만년이라는 시간의 길이 — 이 둘이 대성인이 내다보신 광선유포의 범위다.
유명(遺命)에 닮은 맺음
강의는 이 어서가 삼대비법을 펴 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유통을 확인하시며, 광선유포라는 유명(遺命)에도 닮은 표현으로 붓을 놓으셨다고 결론짓는다.
제12장 끝에서 보았듯 니치칸 상인은 이 결문을 대단 제3 전체의 흐름 안에서 읽었다. 「홍통의 처음에는 일국이 모두 역연이다. 그러나 묘법이 점점 퍼져 순연이 점점 늘어난다. 그런 뒤 마침내 역연이 모두 다하고 일국이 모두 순연이 된다.」 제12장의 「일염부제가 모두 방법이 되어 버렸다」는 역연의 충만, 「나의 문하는 순연이요 일본국은 역연」은 순연의 싹, 그리고 이 장의 「일사천하 · 사해 일동의 광선유포」는 순연의 완성이다. 그 사이에 놓인 제13장은 왜 「요」여야 하는지를, 제14장은 그 유포에 앞선 징조를, 이 장은 그 징조를 보고 믿으라는 권유와 광포의 확신을 보인다.
결문의 「의심 없으리라(疑い無からん者か)」는 끝의 「か」로 단정을 부드럽게 감싸지만, 그 앞의 「의심 없다」는 말은 제13장의 「당세 다른 뜻이 있을 수 없다」와 같은 무게를 지닌다. 세 부처가 지용에게 요법을 부촉한 일에 다른 뜻이 없듯, 그 요법이 말법에 일사천하로 퍼지는 일에도 의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 어서의 날짜는 문영 11년 5월이다. 5월 12일 가마쿠라를 떠나 17일 미노부에 드신 대성인은, 입산하신 지 여드레째에 이 글을 써서 시모우사의 도키조닌에게 보내셨다고 전한다. 「세 번 간하여도 쓰지 않으면 산림에 들어간다」는 뜻대로 세상에서 물러나신 그 자리에서, 대성인은 오히려 일사천하의 광선유포를 선언하신 것이다. 강의가 서강에서 말했듯, 이 어서를 기점으로 미노부의 교화는 문하에게 말법 유포의 사명을 가르치고 그 법체를 건립하는 데로 중심이 옮아간다. 미노부 산중에서 쓰신 첫 중요 법문이 「광선유포」로 끝나는 것은, 입산이 은둔이 아니라 건립의 준비였음을 보여 준다.
강의는 이 결문을 천변의 해독(네 가지 국난의 상)과 광포의 선언(상행 등의 성인 = 대성인이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고 일사천하에 광선유포함)의 두 결로 읽고, 첫머리의 「부상사문」과 호응하여 삼대비법의 유통을 확인하는 유명에 닮은 맺음으로 본다.
이 편을 맺으며
이 편의 네 장은 「말법에 흐를 대법은 무엇인가」라는 한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제12장에서 대성인은 정상 이천 년의 네 정사가 남겨 둔 비법을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라고 처음으로 드러내어 이름하시고, 그것이 정상에 홍통되지 않은 까닭(숙익의 법이 일시에 멸진하므로)과 말법에 홍통되는 까닭(교만 있고 득도가 없으며 일염부제가 모두 방법이 되었으므로)을 밝히셨다. 제13장은 그 법이 법화경 이십팔품의 광 · 약을 버리고 취한 「요」이며, 허공회에서 상행보살에게 부촉된 결요의 요법, 명 · 용 · 체 · 종을 총괄하는 총명 「묘법연화경의 오자」임을 밝혔다. 니치칸 상인의 『의의판문초』를 따르면 신력품의 부촉 문 자체가 본존 · 제목 · 계단의 의문이다. 제14장은 그 법이 유포될 선상으로 정가 대지진 이래의 천변지요를 들고, 그 원인을 권력과 결탁한 악비구의 성인 박해에서, 그 크기를 「불법으로 불법을 깨뜨리는」 말법 파불의 무거움에서 찾았다. 제15장은 그 천변을 네 가지 국난의 상으로 해독한 뒤, 국토가 어지러워진 뒤에 상행 등의 성인이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건립하여 일사천하에 광선유포하리라는 확신으로 맺었다.
이 편을 꿰뚫는 줄기는 니치칸 상인이 짚은 「역연에서 순연으로」의 흐름이다. 「일염부제가 모두 방법이 되었다」에서 시작해 「나의 문하는 순연이요 일본국은 역연」을 거쳐 「일사천하 · 사해 일동의 광선유포」에 이른다. 처음과 끝 사이에 놓인 것이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는 결단이고, 천변지요를 경문의 거울로 읽어 내는 눈이다.
이 편으로 법화취요초의 세 대단을 모두 읽었다. 대단 제1 「일대 제경의 대의를 밝히다」(제1~6장)는 교법의 관점(이금당의 세 글자)과 교주의 관점(삼오의 이법)에서 법화경이 일대 제경 가운데 최제일임을 밝혔다. 이것이 제호의 「법화」 두 글자다.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를 밝히다」(제7~11장)는 그 법화경이 적문도 본문도, 그 가운데서도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이 멸후 말법을 위해, 말법 가운데서도 니치렌을 위해 설해졌음을 밝혔다. 「제병 가운데서는 법화경을 비방함이 제일의 중병이요, 제약 가운데서는 남묘호렌게쿄가 제일의 양약」이라는 말씀이 그 결론이었다. 그리고 대단 제3 「말법 유포의 대법을 밝히다」(제12~15장)는 그 양약의 이름을 삼대비법으로 드러내고, 그것이 「취요」, 곧 광략을 버리고 취한 요임을 밝히며, 그 광선유포를 확신하여 맺었다. 능설의 교주, 소설의 교법, 소피의 시기, 그리고 유포의 대법 — 어서 여덟 쪽 남짓의 짧은 글이 이 네 가지를 하나의 논리로 엮어, 미노부 입산 직후 대성인이 문하에게 남기신 첫 중요 법문이 되었다.
첫머리에서 대성인은 스스로를 「부상사문」이라 서명하시고, 첫 문장을 「월지 서천으로부터 한토 · 일본에」로 시작하셨다. 끝 문장은 「일사천하 · 사해 일동의 광선유포」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달의 불법이, 해 뜨는 나라에서 다시 서쪽으로, 온 세계로 흘러간다. 법화취요초를 다 읽은 지금, 다섯 편의 흐름을 한눈에 다시 보려면 허브 페이지로 돌아가 서강의 세 대단 구성도에서 각 편의 자리를 짚어 보기를 권한다.
더 읽기
- 법화취요초 — 서강 · 유래 · 제호 · 세 대단
- 법화취요초 · 제4편 광개근현원과 제일의 양약
- 불교 교학 六 남묘호렌게쿄
- 관심의 본존초
- 개목초 · 제6편 지용출현과 개근현원
- 인물탐구 도키조닌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법화취요초」(문영 11년, 1274), 어서전집 331~338쪽
- 니치렌 대성인, 「관심의 본존초」 · 「선시초」 · 「보은초」 · 「현불미래기」 · 「교행증어서」 · 「서상어서」 · 「입정안국론」 · 「안국론어감유래」 · 「삼대비법품승사」 · 「도키입도전답서」 · 「하키리사부로전답서」 · 「간효팔번초」 등, 어서전집
- 『어의구전』, 어서전집 708~803쪽
- 『묘법연화경』(구마라집 역), T9 no.262 — 방편품 · 견보탑품 · 종지용출품 · 여래수량품 · 상불경보살품 · 여래신력품
- 『금광명최승왕경』(의정 역), T16 no.665 — 왕법정론품
- 『인왕경』 · 『대집경』 · 『대반열반경』(T12 no.374) · 『약사경』 · 『수능엄경』 · 『수호국계주다라니경』
- 천태대사, 『법화현의』 T33 no.1716 · 『법화문구』 T34 no.1718
- 용수, 『대지도론』(구마라집 역), T25 no.1509
- 니치칸 상인, 『법화취요초 문단』 · 『의의판문초』(창가학회의 강의를 통해)
연구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법화취요초 영역 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