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가 자라는 산 언덕과 약 달이는 연기 피어오르는 외딴 집 — 양의병자의 비유

광개근현원과 제일의 양약 — 수량품은 말법을 위해

법화취요초 · 제4편 · 제10~11장

法華取要抄 — 広開近顕遠の末法正意 · 助証助顕の末法正意어서 334–336쪽
저술
문영 11년(1274) 5월 · 미노부
대고중
도키조닌
장
제10~11장 (니치칸 상인 『법화취요초 문단』의 제10 · 11단)
쪽수
어서 334:15–336:01
계보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를 밝히다」의 끝

다섯 편 · 법화취요초 15장 구성도

15장 → 다섯 편
  1. 序講331 앞유래 · 제호 · 세 대단
  2. 대단 제1 일대 제경의 대의
  3. 대단 제1 일대 제경의 대의
  4.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
  5.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
    제4편광개근현원과 제일의 양약 — 수량품은 말법을 위해지금 읽는 편
    10~11장0334:15~0336:01
  6. 대단 제3 말법 유포의 대법

법화취요초의 둘째 큰 갈래인 대단 제2는 「지금의 가르침, 곧 법화경은 어느 시대의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를 묻는다. 앞의 제3편에서 대성인은 적문의 팔품을 거꾸로 읽어 「말법 중에서는 니치렌을 바로 삼느니라」라고 밝히시고, 본문에 두 뜻이 있음을 보이신 뒤 약개근현원이 재세 중생의 득탈을 위한 것이었음을 정리하셨다. 이 제4편은 그 나머지 반, 곧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다룬다. 대답은 짧고 단호하다 —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멸후 중생을 위함이요, 멸후 중에서는 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을 위함이니라」. 대성인은 이를 일곱 경문으로 증명하신 뒤, 법화경 비방을 「제일의 중병」, 남묘호렌게쿄를 「제일의 양약」이라 이름하신다. 이어 제11장에서는 다보여래의 증명, 시방분신 제불의 혀, 지용보살의 용출까지 법화경의 모든 불사(佛事)가 「오로지 우리를 위함」이라 결론짓고, 천태 · 전교의 말을 끌어 대단 제2를 맺으신다. 이 편은 「누구를 위해」라는 물음이 「무엇을」이라는 물음, 곧 대단 제3의 삼대비법으로 넘어가는 문턱이다.

다섯 편으로 나눈 이 연구에서 제4편은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를 밝히다(今教所被の時期を明かす)」의 뒷부분이다. 대단 제1(제1 · 2편)이 일대성교 가운데 법화경이 가장 뛰어나고 교주 석존이 우리의 주사친임을 밝혔다면, 대단 제2(제3 · 4편)는 그 법화경이 정작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대단 제3(제5편)은 그렇게 말법에 남겨진 법이 무엇인가 —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 — 를 밝힌다. 이 편은 그 둘째 갈래를 닫고 셋째 갈래를 여는 자리에 있다.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은 제10단을 「광개근현원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제11단을 「조증 · 조현 등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로 나눈다. 앞의 단은 수량품을 중심으로 한 본문 정종분의 일품이반이 말법을 위한 것임을, 뒤의 단은 그 설법을 돕고(조증) 드러낸(조현) 다보 · 분신 · 지용의 불사까지 말법을 위한 것임을 밝힌다. 이렇게 하여 적문(제7장) · 본문 약개근현원(제9장) · 본문 광개근현원(제10장) · 조증 · 조현(제11장)이 차례로 검토되고, 법화경 한 부 전체가 「말법을 위해」 설해졌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편에서 특히 무게가 실리는 곳은 제10장의 마지막 절이다. 本文은 석 줄 남짓이지만, 창가학회의 강의는 여기에 가장 긴 고찰을 붙인다. 「제일의 중병」인 방법(謗法)이 무엇이며 왜 가장 무거운가, 「제일의 양약」인 남묘호렌게쿄가 어떻게 그 병을 다스리는가 — 열반경의 일천제론, 대성인의 여러 어서에 나타난 방법의 형태와 죄보, 천태의 상대종 개회, 명 · 체 · 종 · 용 · 교의 오중현, 역연의 공덕까지가 그 재료다. 이 편의 해설은 이 고찰을 빠짐없이 따라가며 정리한다.

이 편의 장

第十広開近顕遠の末法正意を明かす제10장 광개근현원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 수량품의 일품이반은 멸후, 그 가운데 말법의 니치렌 등을 위함이며, 일곱 경문이 이를 증명하고, 제일의 중병(방법)을 고치는 제일의 양약은 남묘호렌게쿄다.
第十一助証・助顕等の末法正意を明かす제11장 조증 · 조현 등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 다보의 증명 · 시방의 조설 · 지용의 용출도 재세가 아니라 오로지 말법의 우리를 위함이며, 천태 · 전교도 말법을 바랐다.
  1. 대단 제1일대 제경의 대의를 밝히다一代諸経の大意を明かす제1편 · 제2편 (제1~6장)
  2. 대단 제2금교소피의 시기를 밝히다今教所被の時期を明かす제3편 (제7~9장)제4편 (제10~11장)
  3. 대단 제3말법 유포의 대법을 밝히다末法流布の大法を明かす제5편 (제12~15장)
  1. 제10장 광개근현원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2. 제11장 조증 · 조현 등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3. (제12장 삼대비법을 밝히다)
도표 1 · 이 편의 자리 — 세 대단과 제4편
제10장 광개근현원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어서 334쪽 15행~335쪽 10행 · 第十 広開近顕遠の末法正意を明かす

본문

本文 · 其の一어서 334쪽 15~16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曰く誰人の為に広開近顕遠の寿量品を演説するや、 答えて曰く寿量品の一品二半は始より終に至るまで正く滅後衆生の為なり滅後の中には末法今時の日蓮等が為なり、

풀이

묻되, 누구를 위하여 광개근현원(広開近顕遠)의 수량품을 연설하셨는고. 답하되, 수량품의 일품이반(一品二半)은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바로 멸후 중생을 위함이요, 멸후 가운데서는 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을 위함이니라.

本文 · 其の二어서 334쪽 16행 ~ 335쪽 7행
本文 · 어서 원문

疑つて云く此の法門前代に未だ之を聞かず経文に之れ有りや、 答えて曰く予が智前賢に超えず設い経文を引くと雖も誰人か之を信ぜん卞和が啼泣・伍子胥が悲傷是なり、 然りと雖も略開近顕遠・動執生疑の文に云く「然も諸の新発意の菩薩・仏の滅後に於て若し是の語を聞かば或は信受せずして法を破する罪業の因縁を起さん」等云云、 文の心は寿量品を説かずんば末代の凡夫皆悪道に堕せん等なり、 寿量品に云く「是の好き良薬を今留めて此に在く」等云云、 文の心は上は過去の事を説くに似たる様なれども此の文を以て之れを案ずるに滅後を以て本と為す先ず先例を引くなり、 分別功徳品に云く「悪世末法の時」等云云、 神力品に云く「仏滅度の後に能く是の経を持たんを以つての故に諸仏皆歓喜して無量の神力を現じ給う」等云云、 薬王品に云く「我が滅度の後・後の五百歳の中に広宣流布して閻浮提に於て断絶せしむること無けん」等云云、 又云く「此の経は則ち為れ閻浮提の人の病の良薬なり」等云云、 涅槃経に云く「譬えば七子の如し父母平等ならざるに非ざれども然も病者に於て心則ち偏に重し」等云云、

풀이

의심하여 이르되, 이 법문은 앞 시대에 아직 듣지 못하였노라. 경문에 이것이 있는고. 답하되, 나의 지혜는 앞의 현인을 넘지 못하니 설령 경문을 끌어온다 해도 누가 이를 믿겠는가. 변화(卞和)의 울부짖음과 오자서(伍子胥)의 슬픔이 바로 이것이니라. 그렇지만 약개근현원 · 동집생의(動執生疑)의 문에 이르되 「그런데도 모든 새로 발심한 보살이 부처님 멸후에 만약 이 말을 들으면 혹은 믿고 받지 아니하여 법을 깨뜨리는 죄업의 인연을 일으키리라」 운운. 문의 마음은, 수량품을 설하지 않으면 말대의 범부가 모두 악도에 떨어지리라는 것이니라. 수량품에 이르되 「이 좋은 양약을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 운운. 문의 마음은, 위는 과거의 일을 설한 듯하지만 이 문으로써 이를 생각하건대 멸후를 근본으로 삼은 것이니, 먼저 선례(先例)를 끌어온 것이니라. 분별공덕품에 이르되 「악세 말법의 때」 운운. 신력품에 이르되 「부처님 멸도 후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까닭으로 모든 부처님이 다 환희하시어 무량한 신력을 나투시느니라」 운운. 약왕품에 이르되 「나의 멸도 후 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하여 염부제에서 단절시키는 일이 없게 하리라」 운운. 또 이르되 「이 경은 곧 염부제 사람의 병의 양약이니라」 운운. 열반경에 이르되 「비유컨대 일곱 자식과 같으니라. 부모가 평등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병든 자식에게는 마음이 곧 치우쳐 무거우니라」 운운.

本文 · 其の三어서 335쪽 7~10행
本文 · 어서 원문

七子の中の第一第二は一闡提謗法の衆生なり諸病の中には法華経を謗ずるが第一の重病なり、 諸薬の中には南無妙法蓮華経は第一の良薬なり、 此の一閻浮提は縦広七千由善那八万の国之れ有り正像二千年の間未だ広宣流布せざるに法華経当世に当つて流布せしめずんば釈尊は大妄語の仏・多宝仏の証明は泡沫に同じく十方分身の仏の助舌も芭蕉の如くならん。

풀이

일곱 자식 가운데 첫째와 둘째는 일천제(一闡提) · 방법(謗法)의 중생이니라. 모든 병 가운데서는 법화경을 비방하는 것이 제일의 중병이요, 모든 약 가운데서는 남묘호렌게쿄가 제일의 양약이니라. 이 일염부제는 세로와 너비가 각각 칠천 유선나요 팔만의 나라가 있느니라. 정법 · 상법 이천 년 동안 아직 광선유포되지 않았는데, 법화경을 지금 세상에 이르러 유포시키지 못한다면 석존은 큰 거짓말을 한 부처님이 되고, 다보불의 증명은 물거품과 같아지며, 시방분신의 부처님들이 거든 혀도 파초와 같이 덧없어지리라.

어구 풀이

広開近顕遠광개근현원
「가까운 성불(시성정각)을 열어 먼 본지(구원)를 드러냄」을 자세히 설한 부분. 대성인은 제8장에서 종지용출품의 동집생의 이후 반 품과 여래수량품 한 품, 분별공덕품의 앞 반 품을 합한 「일품이반」을 광개근현원이라 이름하셨다. 그 가운데 정면으로 구원의 본지를 밝힌 것은 수량품이다.
一品二半일품이반
본문 정종분의 범위. 천태대사는 용출품 후반 · 수량품 · 분별공덕품 전반 「반 품 + 한 품 + 반 품」을 본문의 정종분으로 보았다. 이 장에서 대성인은 이를 「수량품의 일품이반」이라 부르시어 수량품이 그 중심임을 드러내신다.
末法今時の日蓮等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
멸후 가운데서도 말법, 그 가운데서도 지금 법화경을 홍통하며 경문대로 난을 만나고 있는 대성인과 그 문하. 제7장의 「말법 중에서는 니치렌을 바로 삼느니라」를 본문에 대해 다시 확인하는 말이다.
卞和が啼泣・伍子胥が悲傷변화의 울부짖음 · 오자서의 슬픔
참된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중국 고사 두 가지. 변화는 옥돌을 바쳤다가 두 발을 잘린 사람(『한비자』 화씨편), 오자서는 오왕 부차에게 간하다가 자결을 명받은 사람(『춘추좌씨전』 등). 경문으로 증명해도 믿지 않을 말법 사람들에 대한 대성인의 탄식을 담는다.
新発意の菩薩신발의 보살
새로 발심한 보살. 용출품에서 미륵이 대중을 대표해 의심을 아뢴 말 가운데 나온다. 천태는 『법화문구』에서 이를 「미래의 얕은 수행자」로 풀었다. 대성인은 이를 멸후의 범부, 특히 말대의 범부로 읽으신다.
動執生疑동집생의
집착을 흔들어 의심을 일으킴. 석존이 「나는 구원 이래로 이들을 교화하였노라」라고 약개근현원을 설하자, 석존이 금생에 성불했다고 믿던 대중의 집착이 흔들려 의심이 일어났다. 이 의심을 풀기 위해 수량품의 광개근현원이 설해진다.
是好良薬今留在此이 좋은 양약을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
수량품 양의병자(良医病子) 비유에서 아버지 양의가 다른 나라로 떠나기 전에 본심을 잃은 자식들에게 남긴 말. 관심의 본존초는 이 「좋은 양약」을 「수량품의 간요인 명체종용교의 남묘호렌게쿄」라고 밝히신다.
先例선례
앞선 예. 니치칸 상인은 수량품이 설한 석존의 구원 본인묘 수행과 본과 성도를, 말법 중생이 같은 길로 성도할 「앞선 예」로 풀었다.
悪世末法の時악세 말법의 때
분별공덕품 후반, 멸후의 오품(五品)을 노래한 게송 가운데 독송품의 공덕을 밝힌 구절. 본문 유통분이 말법을 겨냥하고 있음을 보이는 문이다.
十神力열 가지 신력
신력품에서 석존과 시방의 부처님들이 나툰 열 가지 불가사의한 모습. 출광장설 · 통신방광 · 경해 · 탄지 · 지육종진동 · 보견대회 · 공중창성 · 함개귀명 · 요산제물 · 시방통동. 상행 등 지용보살에게 결요부촉을 하기 위해 나투어졌다.
後の五百歳후오백세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 가운데 마지막 오백 년, 곧 말법의 처음. 약왕품은 이 시기에 법화경이 염부제에 광선유포되어야 한다고 설한다.
閻浮提염부제
수미산 남쪽 대륙. 인간이 사는 세계 전체를 가리킨다. 本文은 「일염부제는 세로와 너비가 칠천 유선나(由善那, 유순)」라 하여 그 넓이를 든다. 유선나는 인도의 거리 단위다.
七子일곱 자식
열반경 범행품에서 기바가 아사세왕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설명한 비유. 부모는 일곱 자식을 똑같이 사랑하지만 병든 자식에게 마음이 더 쏠린다. 대성인은 「첫째 · 둘째」를 열반경 「항하의 칠종 중생」의 첫째 · 둘째, 곧 일천제와 방법의 중생으로 읽으신다.
一闡提일천제
범어 잇찬티카의 음역. 선근을 끊어 믿음을 일으키지 못하는 자. 열반경은 이를 「믿음 없는 자」, 「고칠 수 없는 병」이라 하면서도, 뒤에서는 불성은 끊어지지 않으므로 성불의 길이 열려 있다고도 설한다.
謗法방법
정법을 비방함. 대성인은 현방법초에서 천태의 「방은 등지는 것」을 끌어 「법에 등지는 것이 방법」이라 정의하셨다. 이 장에서는 법화경 비방이 「제일의 중병」이다.
泡沫・芭蕉물거품 · 파초
둘 다 실체 없이 덧없음을 비유하는 불교의 상투어. 파초는 줄기를 벗겨도 속이 없다. 말법에 법화경이 유포되지 않으면 다보의 증명과 시방분신의 조설(助舌)이 모두 공허해진다는 뜻.
十方分身の仏の助舌시방분신 부처님들의 조설
신력품에서 석존이 광장설(廣長舌)을 내어 범천까지 이르게 하자 보수 아래 사자좌의 분신 부처님들도 함께 광장설을 낸 일. 석존의 말을 「혀로 거든」 증명이다. 제11장에서 다시 다룬다.

두 문답이 밝히는 것

이 장은 문답 둘로 이루어진다. 첫째 문답은 짧다. 「누구를 위하여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을 연설하셨는가」라는 물음에 대성인은 두 겹으로 답하신다. 하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멸후 중생을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멸후 가운데서는 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을 위함」이다.

둘째 문답은 이 대답에 대한 반문 — 「앞 시대에 들어 보지 못한 법문인데 경문에 있는가」 — 에서 시작한다. 대성인은 경문을 끌어도 믿지 않으리라는 탄식을 먼저 말씀하신 뒤, 법화경에서 여섯 문, 열반경에서 한 문, 모두 일곱 문을 증거로 드신다. 법화경의 여섯 문 가운데 앞의 둘은 본문 정종분(용출품 · 수량품)에서, 뒤의 넷은 본문 유통분(분별공덕품 · 신력품 · 약왕품 두 문)에서 나왔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이 일곱 문을 하나로 꿰는 축을 「중병과 양약」으로 읽는다. 일곱 문을 거치면서 본문 정종분의 일품이반, 특히 광개근현원을 바로 설한 수량품이 말법 중생을 「중병」에서 건지는 「양약」을 설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양약이 바로 말법에 유통되어야 할 법체(法體)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래서 장의 끝에서 대성인은 말법 중생의 「제일의 중병」은 법화경 비방이요, 그것을 고치는 「제일의 양약」은 남묘호렌게쿄라고 결론지으신다.

  1. ① 첫째 문답(334:15–16)寿量品の一品二半は始より終に至るまで正く滅後衆生の為なり수량품의 일품이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멸후 중생을 위함滅後の中には末法今時の日蓮等が為なり멸후 가운데서는 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을 위함
  2. ② 둘째 문답(334:16–335:07)경문 일곱본문 정종분 2문용출품 · 수량품본문 유통분 4문분별공덕품 · 신력품 · 약왕품 2문열반경 1문
  3. ③ 결론(335:07–10)諸病の中には法華経を謗ずるが第一の重病なり모든 병 가운데 법화경 비방이 제일의 중병諸薬の中には南無妙法蓮華経は第一の良薬なり모든 약 가운데 남묘호렌게쿄가 제일의 양약法華経当世に当つて流布せしめずんば釈尊は大妄語の仏지금 세상에 유포시키지 못하면 석존은 큰 거짓말의 부처
도표 2 · 제10장의 짜임 — 두 문답과 결론

이 장은 대단 제2 안에서 앞 장들과 정확히 짝을 이룬다. 제7장은 적문의 팔품을 거꾸로 읽어 「말법을 바로 삼고, 말법 중에서는 니치렌을 바로 삼는다」고 했다. 제8장은 본문에 두 뜻이 있어,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은 재세의 대중을 득탈시키기 위함이고, 동집생의 이후의 일품이반 광개근현원은 「한결같이 멸후를 위함」이라 했다. 제9장은 그 앞의 뜻, 곧 약개근현원으로 재세 중생이 어떻게 득탈했는지를 풀었다. 이제 제10장이 뒤의 뜻, 곧 광개근현원이 「한결같이 멸후를 위함」이라는 것을 경문으로 증명하고, 그 멸후의 중심이 말법이며 그 말법에 유통될 법이 남묘호렌게쿄임을 밝힌다.

「광개근현원의 수량품」과 「수량품의 일품이반」

첫째 문답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물음과 대답의 말이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물음은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이라 하고, 대답은 「수량품의 일품이반」이라 한다. 강의는 이 차이에 이 장의 주제가 담겨 있다고 본다.

물음의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은 제8장의 「본문에 두 마음이 있으니 … 둘째는 용출품의 동집생의로부터 반 품과 수량품 · 분별공덕품의 반 품, 이상 일품이반을 광개근현원이라 이름하느니라」를 이어받은 말이다. 그런데 대성인이 세우신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 가운데, 정면으로 개근현원을 밝힌 것은 수량품뿐이다. 용출품 후반은 수량품을 설하게 되는 계기이고, 분별공덕품 전반은 광개근현원을 듣고 재세 중생이 얻은 이익을 밝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굳이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이라 하신 데에는 수량품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려는 뜻이 있다.

강의는 이 장의 주제를 「남묘호렌게쿄가 말법에 유통될 법체임을 밝히는 것」으로 보고, 그 남묘호렌게쿄는 수량품의 문저(文底)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물음의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은 말법 유통의 법체인 남묘호렌게쿄를 「드러내는 쪽(能詮)」에서 가리킨 말이며, 제8장을 풀면서 강의가 말한 「내증의 수량품(內證の壽量品)」과 같은 뜻이 된다.

대답의 「수량품의 일품이반」도 물음을 바꿔 말한 것이므로 역시 「내증의 수량품」을 뜻한다. 그런데도 굳이 「일품이반」이라 하신 까닭을 강의는 이렇게 읽는다.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은 재세 중생의 득탈을 위해 설해졌지만, 동집생의부터의 일품이반은 오로지 멸후 중생을 위해 설해진 수량품을 중심으로 한다. 그 뜻을 담아 「수량품의 일품이반」이라 하셨고, 그래서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량품 앞뒤의 두 반 품도 「내증의 수량품」에 들어가는가. 강의는 그렇다고 본다. 용출품 후반의 동집생의 부분에서는 이어질 수량품이 멸후 중생을 위해 설해질 것임이 보여진다(뒤에 볼 「신발의 보살」의 문이 그것이다). 분별공덕품 전반에 설해진 재세 중생의 득탈도, 제9장에서 본 것처럼 문저의 뜻으로 보면 구원 명자(名字)의 묘법인 남묘호렌게쿄를 깨달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두 반 품도 문저의 뜻에서는 「내증의 수량품」에 포함되고,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 전체가 말법 유통의 법체인 남묘호렌게쿄를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품이반」이라는 범위 설정은 천태대사의 『법화문구』가 본문의 정종분을 용출품 후반부터 분별공덕품 전반까지로 나눈 데서 나온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도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은 한결같이 순원이니라. 다만 저것은 탈(脫), 이것은 종(種)이니라. 저것은 일품이반, 이것은 다만 제목의 오자니라」(249쪽)라고 하여, 일품이반과 제목의 오자를 탈익과 하종으로 맞세우셨다. 이 장의 「수량품의 일품이반」은 그 둘을 잇는 자리, 곧 일품이반의 문저에 오자가 숨어 있다는 관점에서 읽힌다.

멸후 중생을 위함, 말법의 니치렌 등을 위함

「수량품의 일품이반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두 겹의 대답 —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멸후 중생을 위함」과 「멸후 가운데서는 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을 위함」 — 은 모두 석존이 누구를 위해 그것을 설했는지를 밝힌다. 그러나 강의는 두 대답의 성격이 다르다고 본다.

앞의 대답은 법화경의 문(文) 위에서 엿볼 수 있는 석존의 불의(佛意)를 밝힌 것이다. 동집생의의 문, 양약을 남겨 둔다는 비유, 유통분의 여러 문이 모두 「멸후」를 가리키고 있으므로, 이것은 경문을 읽는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는 차원이다.

뒤의 대답은 문 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법화경이 설하는 모습과 그것에 들어맞는 사실, 곧 법화경의 예언과 그대로 겪은 난(難)의 사실에 서서, 대성인 자신이 석존에게서 부촉을 받은 상행보살의 재탄이라는 확신을 보이신 것이다. 「니치렌 등을 위함」이라는 말은 경문의 해석이 아니라 경문을 몸으로 읽은 이의 증언이다.

그리고 이 확신 위에서 둘째 문답이 펼쳐진다. 강의는 둘째 문답의 귀결을 이렇게 요약한다 — 중병의 말법 중생을 구하는 큰 양약이 남묘호렌게쿄이며, 그것을 펴는 대성인 자신이 그 내증에서는 말법의 부처라는 것이 보여진다. 본문 쪽에서 보면 「멸후를 위해 설해진 수량품」이, 말법 쪽에서 보면 「그 수량품을 이 시대에 받아 펴는 사람」과 짝을 이루는 것이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첫째 문답의 두 대답을 「경문 위의 불의」와 「경문을 몸으로 읽은 대성인의 확신」으로 나누어 읽는다. 앞의 것은 수량품이 멸후를 위한 것임을, 뒤의 것은 그 멸후의 중심이 말법이며 말법에서 그 법을 받아 펴는 이가 상행보살의 재탄인 대성인임을 보인다. 이 두 겹이 둘째 문답의 일곱 경문으로 증명되고, 셋째 절의 「제일의 양약 남묘호렌게쿄」로 결론지어진다.

변화의 울부짖음, 오자서의 슬픔

둘째 문답은 「이 법문은 앞 시대에 들어 보지 못했다. 경문에 있는가」라는 의심에서 시작한다. 수량품이 말법의 니치렌 등을 위해 설해졌다는 주장은 천태도 전교도 명언하지 않은 것이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 것은 자연스럽다.

대성인은 경문을 들기 전에 먼저 탄식하신다 — 「나의 지혜는 앞의 현인을 넘지 못하니, 설령 경문을 끌어온다 해도 누가 이를 믿겠는가. 변화의 울부짖음과 오자서의 슬픔이 바로 이것이니라.」 두 고사는 모두 참된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중국의 이야기다. 강의가 소개하는 줄거리는 이렇다.

변화(卞和)는 주(周)나라 때 하읍(下邑) 사람 화씨(和氏)다. 『한비자』 화씨편에 따르면, 그는 형산(荊山)에서 옥박(玉璞, 갈지 않은 옥돌)을 얻어 여왕(厲王)에게 바쳤으나 감정인이 「그냥 돌」이라 하여 왕을 속인 죄로 왼발을 잘렸다.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다시 바쳤으나 또 돌이라 하여 오른발을 잘렸다.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그는 초산(楚山) 기슭에서 사흘 밤낮을 울었고, 눈물이 마르자 피를 흘리며 울었다. 왕이 까닭을 묻자 그는 「두 발을 잘려서 슬픈 것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쟁이로 몰린 것이 슬프다」고 답했다. 왕이 옥돌을 갈게 하니 훌륭한 보옥이 되었다.

오자서(伍子胥)는 춘추시대 말기 오(吳)나라의 책사다. 『춘추좌씨전』 등에 따르면, 오나라가 제(齊)나라를 치려 할 때 월왕 구천(句踐)이 선물을 들고 인사하러 왔다. 오나라 사람들은 기뻐했지만 오자서만은 오왕 부차(夫差)에게 「월나라가 고분고분 섬기는 것은 우리를 멸하려는 야망 때문이다. 제나라를 치기보다 지금 월나라를 치지 않으면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간했다. 부차가 듣지 않자 오자서는 자기 아들만이라도 살리려고 제나라의 지인에게 맡겨 성을 바꾸게 했다. 이를 들은 부차는 간신의 참언까지 더해 오자서에게 칼을 내려 자결케 했다. 오자서는 죽으면서 「내 무덤에 가래나무를 심어라. 오나라가 망할 때 왕의 관을 짤 재목이 되리라」고 했다 한다. 11년 뒤 오나라는 월나라에 멸망하고 부차는 자결했다.

두 고사는 같은 것을 말한다 — 진실을 말해도 들어 주지 않는 슬픔이다. 대성인은 법화경이 말법을 위해 설해졌다는 것을 경문으로 증명해도 말법 중생이 쉽게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셨기에, 그 슬픔을 이 고사들로 나타내셨다. 동시에 두 고사에는 공통된 결말이 있다. 변화의 옥돌은 결국 보옥으로 드러났고, 오자서의 경고는 결국 사실이 되었다. 믿어 주지 않는 탄식은 동시에 진실이 끝내 드러나리라는 확신이기도 하다.

일곱 경문 ① — 신발의 보살과 동집생의

  1. ①종지용출품 제15본문 정종분동집생의然も諸の新発意の菩薩・仏の滅後に於て若し是の語を聞かば或は信受せずして法を破する罪業の因縁を起さん그런데도 새로 발심한 보살이 부처님 멸후에 이 말을 들으면 믿지 않고 법을 깨뜨리는 죄업의 인연을 일으키리라→ 뜻수량품을 설하지 않으면 말대 범부가 악도에 떨어진다
  2. ②여래수량품 제16본문 정종분양의병자 비유是の好き良薬を今留めて此に在く이 좋은 양약을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 뜻멸후를 근본으로 삼고 먼저 선례를 끌었다
  3. ③분별공덕품 제17본문 유통분멸후 오품의 게송悪世末法の時악세 말법의 때
  4. ④여래신력품 제21본문 유통분십신력의 게송仏滅度の後に能く是の経を持たんを以つての故に諸仏皆歓喜して無量の神力を現じ給う부처님 멸도 후에 이 경을 지니는 까닭으로 제불이 환희하여 신력을 나툰다
  5. ⑤약왕보살본사품 제23본문 유통분我が滅度の後・後の五百歳の中に広宣流布して閻浮提に於て断絶せしむること無けん멸도 후 후오백세에 광선유포하여 염부제에서 단절시키지 않으리라
  6. ⑥같은 품본문 유통분此の経は則ち為れ閻浮提の人の病の良薬なり이 경은 염부제 사람의 병의 양약이다
  7. ⑦열반경 범행품열반경譬えば七子の如し父母平等ならざるに非ざれども然も病者に於て心則ち偏に重し일곱 자식 가운데 병든 자식에게 마음이 쏠린다
결론 · 제일의 중병 · 제일의 양약
도표 3 · 일곱 경문과 그 자리

첫째로 인용된 것은 종지용출품 제15의 문이다.

然も諸の新発意の菩薩・仏の滅後に於て若し是の語を聞かば或は信受せずして法を破する罪業の因縁を起さん

그런데도 모든 새로 발심한 보살이 부처님 멸후에 만약 이 말을 들으면 혹은 믿고 받지 아니하여 법을 깨뜨리는 죄업의 인연을 일으키리라

『묘법연화경』 종지용출품 제15, T9 no.262

원래 맥락은 이렇다. 땅에서 무수한 지용보살이 솟아오르자 대중은 이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석존은 「나는 구원 이래로 이들을 교화하였노라」라고 짧게 답한다 — 이것이 약개근현원이다. 그러나 석존이 가야성 가까이에서 성도한 지 사십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던 대중은 이 말에 집착이 흔들려 의심을 품게 된다(동집생의). 미륵보살이 대중을 대표해 그 의심을 아뢰고 자세한 설법을 청하는데, 그 「미륵의 의청(疑請)」 가운데 이 문이 있다. 「이 말」이란 바로 석존의 약개근현원, 「나는 구원 이래로 이들을 교화하였노라」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청에 응해 석존이 수량품에서 광개근현원을 설한다.

대성인이 미륵의 의청 가운데서도 특히 이 문을 드신 까닭을 강의는 이렇게 본다. 이 문에는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이 멸후의 「신발의 보살」을 위해 설해진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 신발의 보살은 약개근현원만 듣고서는 도리어 의심에 사로잡혀 「법을 깨뜨리는」 가장 무거운 죄업을 지을지도 모르는 중생이다. 그러므로 대성인이 「문의 마음은 수량품을 설하지 않으면 말대의 범부가 모두 악도에 떨어지리라는 것」이라 풀이하셨듯이, 이 경문은 수량품이 석존 멸후의 중생, 그 가운데서도 특히 방법으로 악도에 떨어져 가는 말법 중생을 구하기 위해 설해졌음을 보여 준다.

천태대사도 『법화문구』에서 이 문을 이렇게 풀었다.

然諸菩薩の下は、第二に未来の浅行は喜んで誹謗を生ずるが為なり。新発意の者は、謗って悪道に堕す。不退の者は信じて謗らずと雖も、道すること能わず。若し為に分別せば、謗る者は則ち信を生じ、信ずる者は則ち道を増さん

「然諸菩薩」 이하는 둘째로, 미래의 얕은 수행자가 즐겨 비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새로 발심한 자는 비방하여 악도에 떨어진다. 물러서지 않는 자는 믿고 비방하지는 않더라도 도를 이룰 수 없다. 만약 그들을 위해 분별해 설한다면 비방하는 자는 믿음을 일으키고 믿는 자는 도를 더하리라

천태대사 『법화문구』, T34 no.1718

천태는 여기서 미래의 얕은 수행자를 셋으로 나눈다 — 비방해 악도에 떨어지는 자, 비방하지 않지만 도를 이루지 못하는 자, 그리고 분별해 설해 주면 믿음을 일으키고 도를 더하는 자. 수량품이 설해지는 것은 바로 이 「미래의 비방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천태도 시사하고 있다. 대성인은 천태가 「미래」라고만 한 것을 「말대의 범부」로 분명히 하신 것이다.

일곱 경문 ② — 남겨 둔 양약과 「선례」

둘째로 인용된 것은 여래수량품 제16 양의병자 비유 가운데의 문이다.

是の好き良薬を今留めて此に在く

이 좋은 양약을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

『묘법연화경』 여래수량품 제16, T9 no.262

양의병자 비유는 석존이 실은 상주불멸의 부처이면서도 중생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열반을 나툰다는 것, 곧 「방편현열반(方便現涅槃)」을 비유로 설명한 것이다. 줄거리를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뛰어난 의사인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자식들이 독약을 먹고 괴로워한다. 돌아온 아버지가 좋은 약을 지어 주자, 본심을 잃지 않은 자식들은 곧 먹고 낫는다. 그러나 독기가 깊이 들어 본심을 잃은 자식들은 아버지가 권해도 약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다른 나라로 떠나면서 약을 남겨 두고, 사람을 보내 자기가 죽었다고 알리게 한다. 의지할 아버지를 잃었다고 슬퍼하던 자식들은 그 슬픔 끝에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남겨진 약을 먹고 병이 낫는다. 아버지는 죽음을 방편으로 삼아 본심을 잃은 자식들을 구한 것이다.

이 어서에 인용된 「이 좋은 양약을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는 아버지가 떠나기 전에 본심을 잃은 자식들에게 남긴 말이다. 부처님이 멸후 중생을 구할 양약을 수량품에 남겨 두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대성인은 「문의 마음은, 위는 과거의 일을 설한 듯하지만 이 문으로써 이를 생각하건대 멸후를 근본으로 삼은 것이니, 먼저 선례를 끌어온 것이니라」고 하신다.

강의에 따르면 여기서 「위」란 양의병자 비유 앞에 설해진 수량품의 내용, 곧 석존이 시성정각의 자취를 열고 오백진점겁 구원 이래의 본지를 밝힌 광개근현원을 가리킨다. 광개근현원은 오백진점겁이라는 아득한 과거의 일을 설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호양약 금류재차(是好良薬今留在此)」의 문으로 그 뜻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바로 멸후 중생을 구하기 위해 설해졌음이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먼저 선례를 끌어온 것」이란 무엇인가. 「선례」는 「과거의 예」라는 뜻으로, 수량품은 미래 중생의 성불을 위해 먼저 오백진점겁 과거에 있었던 석존의 성도를 예로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석존의 구원실성이 미래 중생 성불의 「선례」가 되는가.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過去の事』とは、釈尊久遠五百塵点の昔、本因妙の修行に由って本果の成道を唱うるという事なり。『滅後を以て本と為す先ず先例を引くなり』とは、滅後末法の衆生、本因妙の修行に由って本覚無作の成道を唱えんこと、例せば釈尊の如し等云云

「과거의 일」이란 석존이 구원 오백진점의 옛날 본인묘(本因妙)의 수행으로 말미암아 본과(本果)의 성도를 이루었다는 일이다. 「멸후를 근본으로 삼고 먼저 선례를 끌어온 것」이란, 멸후 말법의 중생이 본인묘의 수행으로 말미암아 본각무작(本覺無作)의 성도를 이루는 것이 마치 석존과 같다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 『법화취요초 문단』

오백진점겁 구원에서 석존이 행한 본인묘의 수행은 수량품에 「나는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我本行菩薩道)」라고 설해져 있다. 강의는 이 문의 문저에 모든 인행(因行)과 과덕(果德)을 갖춘 근본의 법체, 곧 묘법연화경의 오자가 숨겨져 있다고 본다. 구원의 본과 성도도 이 오자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오자가 본심을 잃은 자식인 말법 중생을 위해 남겨진 「양약」이며, 말법 중생은 이 양약으로 성도할 수 있기에 구원의 석존 성도가 말법 중생의 「선례」가 된다. 그래서 관심의 본존초는 이렇게 밝히신다.

是好良薬とは寿量品の肝要たる名体宗用教の南無妙法蓮華経是なり

「이 좋은 양약」이란 수량품의 간요인 명 · 체 · 종 · 용 · 교의 남묘호렌게쿄가 이것이니라

「관심의 본존초」, 251쪽
비유아버지 양의
뜻구원의 부처
비유독을 먹은 자식들
뜻삼독 · 방법에 빠진 중생
비유본심을 잃지 않은 자식 — 곧 약을 먹고 낫는다
뜻재세에 법을 듣고 득탈한 중생
비유본심을 잃은 자식 — 약을 먹지 않는다
뜻멸후 · 말법의 중생
비유是の好き良薬を今留めて此に在く이 좋은 양약을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
뜻수량품 문저에 남겨진 법
비유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
뜻방편현열반 — 부처님의 입멸
비유남겨진 약을 먹고 낫는다
뜻是好良薬とは寿量品の肝要たる名体宗用教の南無妙法蓮華経是なり「이 좋은 양약」이란 수량품의 간요인 명 · 체 · 종 · 용 · 교의 남묘호렌게쿄가 이것이니라관심의 본존초 251쪽
도표 4 · 양의병자의 비유와 말법

일곱 경문 ③ — 「악세 말법의 때」

셋째로 인용된 것은 분별공덕품 제17의 「악세 말법의 때(悪世末法の時)」다. 이 문은 본문 유통분에 해당하는 분별공덕품 후반 가운데, 멸후의 오품(五品)을 노래한 게송에 있다.

멸후의 오품이란 석존 멸후에 법화경을 받아 지니는 모습을 다섯으로 나눈 것이다 — 수희품(隨喜品) · 독송품(讀誦品) · 설법품(說法品) · 겸행육도품(兼行六度品) · 정행육도품(正行六度品). 이 다섯은 따라 기뻐하는 마음(수희)을 뿌리로 하여 법화경을 받아 지니는 일이 얼마나 깊어지는가를 분별한 것으로, 통틀어 법화경 수지의 수행이다.

「악세 말법의 때」는 그 가운데 둘째인 독송품의 공덕을 밝히는 게송에 나온다. 이 문에서, 분별공덕품이 설한 오품의 공덕은 그 본뜻이 멸후 가운데서도 특히 「악세 말법」에 법화경을 받아 지니는 공덕을 설한 것임이 분명해진다.

또 하나 짚을 것이 있다. 본문 유통분에서 말하는 법화경 수지는 수량품에서 광개근현원이 설해진 뒤의 법화경을 받아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별공덕품에 「악세 말법의 때」라고 있는 것은, 곧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이 「말법」을 위해 설해졌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라고 강의는 말한다.

분별공덕품은 앞 반(정종분의 끝)에서 수량품을 들은 재세 대중의 이익을 밝히고, 뒤 반(유통분의 처음)에서 멸후의 사신(四信) · 오품(五品)을 설한다. 대성인은 이 멸후의 사신 · 오품을 말법 초심 행자의 수행과 결부시켜 사신오품초(338~343쪽)에서 자세히 논하셨다. 사신오품초 역시 도키조닌에게 보내진 글로 전한다.

일곱 경문 ④ — 신력품의 십신력

넷째로 인용된 것은 여래신력품 제21의 문이다.

仏滅度の後に能く是の経を持たんを以つての故に諸仏皆歓喜して無量の神力を現じ給う

부처님 멸도 후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까닭으로 모든 부처님이 다 환희하시어 무량한 신력을 나투시느니라

『묘법연화경』 여래신력품 제21, T9 no.262

이 문은 신력품에서 석존과 시방의 제불이 나툰 열 가지 신력을 노래한 게송 가운데 있으며, 십신력이 석존 멸후의 법화경 수지를 위해 나투어졌음을 밝힌다. 십신력은 다음과 같다.

  1. ①出広長舌출광장설석존 · 제불이 범천에 닿는 넓고 긴 혀를 내다
  2. ②通身放光통신방광석존 · 제불이 털구멍에서 빛을 내다
  3. ③謦欬경해석존 · 제불이 일제히 헛기침을 하다
  4. ④弾指탄지석존 · 제불이 일제히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다
  5. ⑤地六種震動지육종진동헛기침 · 손가락 소리에 시방의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다
  6. ⑥普見大会보견대회회좌의 중생이 시방의 제불을 두루 보다
  7. ⑦空中唱声공중창성제천이 소리 높여 찬탄의 말을 외치다
  8. ⑧咸皆帰命함개귀명시방의 중생이 일제히 「나무석가모니불」을 부르며 귀명하다
  9. ⑨遙散諸物요산제물시방세계에서 갖가지 보물이 사바세계로 흩어져 오다
  10. ⑩十方通同시방통동시방세계의 경계가 모두 걷혀 하나의 불국토가 되다
천태「앞의 다섯은 주로 재세, 뒤의 다섯은 미래」관심의 본존초前の五神力は在世の為後の五神力は滅後の為なり、爾りと雖も再往之を論ずれば一向に滅後の為なり앞의 다섯 신력은 재세를 위함이요 뒤의 다섯은 멸후를 위함이니라. 그렇지만 재왕 이를 논하면 한결같이 멸후를 위함이니라, 252쪽
도표 5 · 신력품의 십신력

천태대사는 『법화문구』에서 십신력을 「현재를 나타내고 미래를 나타낸다」고 하고, 하나하나의 뜻을 풀면서 앞의 다섯 신력은 주로 재세 중생을 위한 것으로, 뒤의 다섯 신력은 법화경을 부촉받은 보살들의 교화로 미래에 실현될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았다. 더욱이 천태는 그 미래의 보살 교화에, 신력품에서 결요부촉을 받은 본화 지용보살만이 아니라 촉루품에서 마정부촉(摩頂付囑)을 받은 적화 · 타방의 보살들의 교화까지 포함시켰다.

그러나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の十神力は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上行・安立行・浄行・無辺行等の四大菩薩に授与し給うなり前の五神力は在世の為後の五神力は滅後の為なり、爾りと雖も再往之を論ずれば一向に滅後の為なり

이 십신력은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상행 · 안립행 · 정행 · 무변행 등 네 대보살에게 수여하시기 위함이니라. 앞의 다섯 신력은 재세를 위함이요, 뒤의 다섯 신력은 멸후를 위함이니라. 그렇지만 재왕(再往) 이를 논하면 한결같이 멸후를 위함이니라

「관심의 본존초」, 252쪽

곧 십신력은 수량품 문저의 법체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상행 등 네 보살에게 결요부촉하기 위해 나투어진 것이므로, 십신력을 재세와 멸후의 두 뜻에 나누는 것은 일왕(一往)의 해석이고, 재왕에는 모두 멸후를 위한 것이다. 그것도 본화의 보살이 출현하는 말법을 위한 것이다. 관심의 본존초는 이 재왕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문증으로 바로 이 신력품의 「부처님 멸도 후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까닭으로」를 드셨다.

그러므로 이 어서에서 이 문을 인용하신 뜻은, 십신력이 오로지 결요부촉을 받은 상행 등 지용보살의 멸후 교화를 위해 나투어졌음을 보이시는 데 있다고 강의는 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면, 「말법」의 범부를 구하기 위해 수량품에 남겨 둔 「양약」이란 상행보살이 지닌 묘법연화경의 오자, 곧 남묘호렌게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넌지시 보이신 것이다. 둘째 경문의 「남겨 둔 양약」이 넷째 경문의 「부촉」으로 이어져, 약을 남긴 이(석존)와 약을 받은 이(상행)와 약을 먹을 이(말법 중생)가 한 줄에 놓이게 된다.

일곱 경문 ⑤⑥ — 후오백세의 광선유포와 염부제의 양약

다섯째와 여섯째는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두 문이다.

我が滅度の後・後の五百歳の中に広宣流布して閻浮提に於て断絶せしむること無けん

나의 멸도 후 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하여 염부제에서 단절시키는 일이 없게 하리라

『묘법연화경』 약왕보살본사품 제23, T9 no.262

此の経は則ち為れ閻浮提の人の病の良薬なり

이 경은 곧 염부제 사람의 병의 양약이니라

같은 품

앞의 문은 석존 멸후 가운데서도 특히 「후오백세」, 곧 「말법」에 「염부제」로 법화경이 「광선유포」될 것을 예언한 부처님의 미래기(未來記)다. 뒤의 문은 앞 문의 「단절시키는 일이 없게 하리라」의 이유를 보인 것으로, 그 까닭은 법화경이야말로 염부제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양약」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성인은 이 문을 드심으로써, 말법을 위해 수량품에 남겨 둔 「양약」, 곧 수량 문저의 법체인 남묘호렌게쿄야말로 말법의 일염부제 중생을 구하기 위해 광선유포해야 할 법체임을 시사하셨다고 강의는 본다. 둘째 경문(양약을 남겨 둠)과 여섯째 경문(이 경은 양약)이 「양약」이라는 한 말로 이어진다.

대성인은 현불미래기 첫머리에서 앞의 문을 석존의 미래기로 인용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亦一たびは喜んで云く何なる幸あつて後五百歳に生れて此の真文を拝見することぞや

또 한편으로는 기뻐하여 이르되, 어떤 다행이 있어 후오백세에 태어나 이 참된 문을 배견하게 되었는가

「현불미래기」, 505쪽

如来の未来記汝に相当れり

여래의 미래기가 그대에게 들어맞았느니라

「현불미래기」, 508쪽

약왕품의 이 문에 들어맞는 사람이 다름 아닌 대성인 자신이라는 것이다. 또 『어강문서』에서는 「단절시키는 일이 없게 하리라」의 뜻을 「취차(取次)」라는 말로 풀이하신다.

地涌千界の出現・末代の当世の別付属の妙法蓮華経の五字を一閻浮提の一切衆生に取次ぎ給うべき仏勅使の上行菩薩なり云云、取次とは取るとは釈尊より上行菩薩の手へ取り給うさて上行菩薩又末法当今の衆生に取次ぎ給えり是を取次ぐとは云うなり、広くは末法万年までの取次なり、是を無令断絶とは説かれたり、又結要の五字とも申すなり云云、上行菩薩取次の秘法は所謂南無妙法蓮華経なり云云

지용천계의 출현은 말대 지금 세상의 별부촉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일염부제의 일체중생에게 전하실 불칙사(佛勅使) 상행보살이니라. 취차(取次)란, 「취(取)한다」는 것은 석존으로부터 상행보살의 손으로 받으시는 것이요, 그리고 상행보살이 또 말법 지금의 중생에게 「차(次)」, 곧 넘겨주시는 것이니 이를 취차라 하느니라. 넓게는 말법 만년까지의 취차이니, 이를 「무령단절(無令斷絶)」이라 설하셨느니라. 또 결요의 오자라고도 하느니라. 상행보살 취차의 비법은 이른바 남묘호렌게쿄니라

『어강문서』, 840쪽

곧 상행보살인 대성인이 석존에게서 수량 문저의 남묘호렌게쿄를 부촉받아 그것을 말법 만년의 일체중생에게 「받아서 넘겨주는」 것, 그것이 「단절시키는 일이 없게 하리라」의 뜻이라는 것이다. 광선유포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끊어지지 않는 「전함」이다. 이 「일염부제」와 「광선유포」라는 말은 이 장의 마지막 절과 제5편(제12~15장)의 주제로 그대로 이어진다.

일곱 경문 ⑦ — 열반경의 일곱 자식과 항하의 칠종 중생

마지막으로 열반경에서 한 문을 드신다.

譬えば七子の如し父母平等ならざるに非ざれども然も病者に於て心則ち偏に重し

비유컨대 일곱 자식과 같으니라. 부모가 평등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병든 자식에게는 마음이 곧 치우쳐 무거우니라

『대반열반경』 범행품, T12 no.374

강의에 따르면 이 문은 『대반열반경』 권20 범행품 제8에 있는, 아사세왕과 기바(耆婆)의 대화 가운데 기바가 한 말의 취지다. 그 장면은 이렇다. 아버지를 죽인 과거의 죄로 괴로워하던 아사세왕은 허공에서 들려오는 아버지 빈바사라왕의 목소리 — 「너는 이제 기바의 말을 따르라. 삿된 견해의 여섯 신하 말을 따르지 말라」 — 를 듣고 악창(惡瘡)이 더욱 심해져 혼절해 땅에 쓰러진다. 이를 내다본 석존은 「나는 이제 이 왕을 위해 세상에 머물러 무량겁이 되어도 열반에 들지 않으리라」 하고, 아사세왕을 위해 월애삼매(月愛三昧)에 들어 큰 광명을 놓아 그 악창을 고친다. 몸의 종기가 나은 아사세왕이 기바에게 이 광명의 뜻을 묻자, 기바는 「먼저 왕의 몸을 고치고, 그 뒤에 마음을 고치는 것」이라 답하고,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例えば一人に七子有り。是の七子の中の一子、病に遇わんに、父母の心平等ならざるに非ざれども、然も病子に於いて心則ち偏に重きが如し。大王、如来も亦爾なり

예컨대 한 사람에게 일곱 자식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자식이 병에 걸리면 부모의 마음이 평등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병든 자식에게는 마음이 치우쳐 무거운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여래도 또한 그러하십니다

『대반열반경』 범행품, T12 no.374

그리고 기바는 이어서 「여래는 오히려 일천제 등을 위해서도 법요를 연설하신다」고 말하여, 여래가 구하시는 병든 자식 가운데 「일천제」를 포함시킨다.

대성인은 이 문을 인용하신 바로 뒤(其の三)에서 「일곱 자식 가운데 첫째와 둘째는 일천제 · 방법의 중생이니라」고 풀이하신다. 이 「첫째 · 둘째」는 무엇인가. 현방법초에 이렇게 있다.

恒河の七種の衆生の第一は一闡提・謗法常没の者なり、第二は五逆謗法・常没等の者なり

항하의 칠종 중생 가운데 첫째는 일천제 · 방법으로 늘 빠져 있는 자요, 둘째는 오역 · 방법으로 늘 빠져 있는 자 등이니라

「현방법초」, 455쪽

곧 열반경의 「항하(恒河)의 칠종 중생」 비유에서 첫째와 둘째의 중생이다. 이 비유는 열반경 두 곳에 설해진다. 하나는 권32 사자후보살품 제11의 「항하 가에 일곱 종류의 사람이 있다」로, 여기서 항하는 「생사의 큰 강」이다. 다른 하나는 권36 가섭보살품 제12의 「항하 가운데 일곱 중생이 있는 것과 같다」로, 여기서 항하는 「대열반의 강」이다. 같은 비유인데 강의 뜻이 다른 것은, 중생 쪽에서 보면 「생사의 큰 강」이고 부처님 쪽에서 보면 「대열반의 강」이기 때문이라고 강의는 푼다.

그러면 「첫째 · 둘째」 중생은 어떤 자인가. 조렌보어서에 이렇게 있다.

彼の経には七種の衆生を列ねたり、第一は入水則没の一闡提人なり生死の水に入りしより已来いまに出でず・譬へば大石を大海に投入たるがごとし、身重くして浮ぶことを習はず常に海底に有り此れを常没と名く

저 경에는 일곱 종류의 중생을 늘어놓았느니라. 첫째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가라앉는 일천제인이니, 생사의 물에 들어간 이래 지금까지 나오지 못하느니라. 비유하면 큰 돌을 큰 바다에 던져 넣은 것과 같아, 몸이 무거워 떠오르는 법을 모르고 늘 바다 밑에 있으니 이를 상몰(常沒)이라 이름하느니라

「조렌보어서」, 1431쪽

첫째는 「입수즉몰(入水則沒)」의 사람, 둘째는 「출이부몰(出已復沒)」 —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 의 사람이다. 앞의 사람은 선근을 끊었기에 신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일천제이며, 생사에 빠져 나오지 못하므로 「상몰」이다. 뒤의 사람은 좋은 벗을 가까이해 신심을 일으키므로 일천제는 아니지만, 악연 때문에 물러나 생사에 빠지므로 역시 「상몰」이다. 또 앞의 사람은 선근을 끊었기에 정법을 비방하고, 뒤의 사람은 악연에 흔들려 정법을 비방한다. 그러므로 둘 다 정법 비방자다.

이렇게 대성인은 열반경 「항하의 칠종 중생」 비유를 바탕으로, 같은 열반경의 「일곱 자식 가운데 병든 자식」을 「일천제 · 방법의 중생」으로 읽으셨다. 이것이 其の三의 첫머리로 곧장 이어진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일곱 경문을 「중병 → 양약 → 시기 → 법체 → 유포 → 양약 → 병자」의 순서로 꿰어 읽는다. 동집생의의 문은 멸후의 비방자를, 수량품의 문은 남겨 둔 양약을, 분별공덕품은 그 시기가 말법임을, 신력품은 그 양약이 상행에게 부촉된 오자임을, 약왕품의 두 문은 그것이 말법의 염부제에 광선유포될 양약임을, 열반경은 부처님의 자비가 병든 자식 곧 일천제 · 방법의 중생에게 쏠린다는 것을 보인다. 이 일곱이 모여 「제일의 중병」과 「제일의 양약」이라는 결론을 떠받친다.

일곱 경문을 꿰는 결론 — 제일의 중병과 제일의 양약

其の三의 석 줄은 앞의 일곱 경문을 풀이하는 형식을 취한다. 직접적으로는 뒤쪽에 나열된 분별공덕품 · 신력품 · 약왕품 · 열반경의 다섯 문의 뜻을 풀면서, 처음의 용출품 · 수량품 두 문까지 포함한 일곱 문 전체를 관통하는 본뜻을 밝힌다. 그 본뜻이란, 말법 중생의 병은 법화경 비방이라는 극중병(極重病)이며, 그것을 고치는 양약인 수량 문저의 남묘호렌게쿄를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해 말법 중생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로써, 「말법」을 위해 설해진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이란 수량품 문저에 숨겨진 「남묘호렌게쿄」에 다름 아님이 밝혀진다.

강의는 먼저 인용된 경문에 맞추어 이 흐름을 확인한다.

첫째, 마지막 열반경 문의 「일곱 자식」 가운데 「병든 자」를 풀어 「일곱 자식 가운데 첫째와 둘째는 일천제 · 방법의 중생이니라」고 하셨다. 이 첫째 · 둘째는 앞에서 본 항하 칠종 중생의 첫째 · 둘째이며 이것이 곧 「일천제 · 방법의 중생」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일곱 자식 가운데 「병든 자」의 「병」이 「일천제 · 방법」이라고 밝혀진 셈이다.

둘째, 이를 받아 「법화경 비방」이야말로 「제일의 중병」이라 하신다. 열반경에서 말하는 「방법」이란 여래상주(如來常住) ·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의 뜻을 비방하는 것이며, 그 비방자를 「일천제」라 한다. 그런데 여래상주의 뜻은 법화경 본문의 구원실성에서 귀결되는 것이고, 일체중생실유불성은 법화경 적문의 뜻이다. 그러므로 열반경에서 말하는 「일천제 · 방법」이란 결국 「법화경 비방」을 뜻한다. 대성인이 열반경의 문을 인용하신 뜻은 「법화경 비방」이라는 「제일의 중병」에 걸린 중생을 구하는 부처님의 자비를 밝히는 데 있다.

셋째, 그 「제일의 중병」에 걸린 중생이 「말법」의 중생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분별공덕품의 「악세 말법의 때」와 「후오백세」 · 「염부제 사람의 병」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약왕품의 문으로 보이셨다.

넷째, 그러면 부처님은 무엇으로 말법 중생의 중병을 구하려 하셨는가. 그것을 밝힌 것이 수량품의 「이 좋은 양약을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다. 석존의 법화경을 믿고 받으려 하지 않는 「독기심입(毒氣深入)」의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이 양약을 여기 남겨 둔다는 것이다. 이 「양약」은 수량 문저의 법체이며, 말법의 역연(逆緣) 중생을 구하기 위해 신력품에서 상행보살에게 부촉된 하종의 남묘호렌게쿄다. 그래서 대성인은 「모든 약 가운데서는 남묘호렌게쿄가 제일의 양약이니라」고 하신다.

다섯째, 그러므로 대성인은 말법에 「염부제 사람의 병의 양약」인 법화경을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해야 한다고 설한 약왕품의 문을 드시어, 「남묘호렌게쿄」의 말법 유포에 석존 · 다보불 · 시방제불의 본뜻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本文의 끝 — 정상 이천 년 동안 아직 광선유포되지 않은 법화경을 지금 유포시키지 못하면 석존은 큰 거짓말쟁이가 되고 다보의 증명은 물거품, 분신 제불의 혀는 파초와 같아진다 — 은 이 결론을 뒤집어서 못 박은 것이다.

병七子の中の第一第二は一闡提謗法の衆生なり일곱 자식 가운데 첫째 · 둘째는 일천제 · 방법의 중생諸病の中には法華経を謗ずるが第一の重病なり모든 병 가운데 법화경 비방이 제일의 중병근거 경문
  • · 열반경 「일곱 자식」
  • · 분별공덕품 「악세 말법의 때」
  • · 약왕품 「염부제 사람의 병」
약諸薬の中には南無妙法蓮華経は第一の良薬なり모든 약 가운데 남묘호렌게쿄가 제일의 양약근거 경문
  • · 수량품 「이 좋은 양약을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
  • · 신력품 「부처님 멸도 후에 이 경을 지니는 까닭으로」
  • · 약왕품 「이 경은 염부제 사람의 병의 양약」
正像二千年の間未だ広宣流布せざるに法華経当世に当つて流布せしめずんば釈尊は大妄語の仏정상 이천 년에 유포되지 않았으니 지금 유포시키지 못하면 석존은 큰 거짓말의 부처
도표 6 · 제일의 중병과 제일의 양약

이 결론 위에서 강의는 두 물음을 차례로 파고든다. 하나는 「왜 방법이 제일의 중병인가」, 다른 하나는 「왜 남묘호렌게쿄가 그 중병을 고치는 제일의 양약인가」이다. 앞의 물음을 위해 강의는 열반경의 일천제론, 대성인 어서에 나타난 방법의 여러 형태, 방법의 죄보를 차례로 살핀다. 뒤의 물음을 위해서는 마음의 병인 삼독, 천태의 상대종 개회, 양약의 두 조건, 오중현을 갖춘 법체와 역연의 공덕을 살핀다.

열반경의 일천제론

방법이 왜 제일의 중병인가를 생각하기 위해 강의는 먼저 「일천제」에 관한 열반경의 설을 살핀다. 일천제는 열반경 전체를 꿰뚫는 주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강의가 정리한 열반경 각 권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권5에서는 「믿음 없는(無信)」 자를 일천제라 이름하고 「고칠 수 없는(不可治)」 병이라고 강조한다.

권9에서는, 보리심이 없더라도 대열반의 광명에 닿는 인연으로 보리의 인(因)을 얻을 수 있다고 부처님이 설한 데 대해 가섭보살이 묻는다 — 사중금(四重禁) · 오역죄 · 일천제 같은 불신 · 악역의 자들까지 보리를 얻는다면 계를 지키고 선을 닦는 수행에 무슨 뜻이 있는가. 부처님은 사중금 · 오역죄를 범한 자는 열반경을 만나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일천제만은 예외라고 답한다. 일천제는 설령 대열반을 들어도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는 「타 버린 씨앗(焦種)」이며, 구제할 수 없는 「반드시 죽을 사람(必死の人)」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일체중생이 성불해도 일천제만은 성불하지 못한다 하여 「일천제의 불성불」이 명언된다.

이처럼 일천제가 미움받는 까닭은 일천제가 열반경의 근본인 여래상주 · 일체중생실유불성의 뜻을 부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체중생실유불성의 뜻에서 보면 일천제도 불성을 갖추고 있지만, 무량한 죄의 괴로움에 덮여 있어 불성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권10에서는 일천제의 길에 빠지는 자로 세 종류를 든다.

그리고 만약 일천제가 선한 마음을 일으키면 더는 일천제라 하지 않는다고 하여, 일천제의 경지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설한다.

권11에서는 병자를 셋으로 나눈다 — 반드시 죽어 고치기 어려운 자(必死難治), 고칠 수 있을지 없을지 정해지지 않은 자, 반드시 고칠 수 있는 자. 그리고 첫째 「필사난치」의 자로 「대승을 비방하는 자」 · 「오역죄를 범한 자」 · 「일천제」를 든다.

권16에서는 보살의 일자지(一子地) 경지를 설한다. 일체중생을 외아들처럼 평등하게 사랑하는 이 경지에서는, 설령 일천제라도 한순간이라도 뉘우치는 마음이 있으면 선근을 일으키게 해 구하려 한다는 것이 보여진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설에서는 일천제가 구제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반드시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권22에서 물음이 제기된다 — 일천제는 선근을 끊은 사람이라 하는데, 이는 불성을 끊는다는 뜻인가. 만약 불성을 끊지 않는다면 왜 일천제라 하는가. 답은 이렇다. 불성은 본래 갖춘 것이므로 일천제가 선근을 끊어도 결코 불성을 끊지는 않는다. 그리고 일천제라 해도 정해진 성품이 아니라 결정되지 않은 것(不決定)이므로 성불의 가능성이 있다. 권24에서도 일천제는 불성이 있으므로 일천제의 마음을 버리면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권26에서는 이 「선근을 끊음(斷善根)」과 「불성은 끊지 않음(不斷佛性)」의 관계가 더 논해진다. 일천제는 선근을 끊었기에 제불 · 보살을 만나든 만나지 않든 일천제의 마음을 떠날 수 없지만, 보리심을 일으키면 이미 일천제가 아니므로 성불할 수 있다. 곧 일천제의 「단선근」이란 타고난 선(生得の善)을 끊었다는 것이지 본래 있는 불성을 끊었다는 것이 아니다. 불성은 선도 불선도 아니어서 일천제라 해도 끊을 수 없다. 오히려 일천제는 자기의 불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성불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자후보살품에서는 불성의 뜻을 강조하는데, 특히 수행과 불성의 관계를 논하면서 앞에서 본 「항하의 칠종 중생」이 밝혀진다. 설령 불성을 본래 갖추고 있어도 수행이 없으면 그것을 알 수 없으므로, 수행의 깊고 얕음에 따라 중생에 차별이 생기며, 그것이 항하를 건너는 일곱 중생의 비유로 보여진다.

강을 건너는 일곱 단계
  1. ①일천제일천제 · 방법의 중생강에 들어가 가라앉는 자 (入水則没)
  2. ②둔근 퇴전일천제 · 방법의 중생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자 (出已復没)
  3. ③이근 무퇴전떠올라 가라앉지 않는 자
  4. ④사사문과나와서 사방을 보는 자
  5. ⑤벽지불사방을 다 보고 나아가는 자
  6. ⑥보살나아가 얕은 곳에 이르는 자
  7. ⑦여래저 언덕에 이른 자
사자후보살품恒河の辺に七種の人有り항하 가에 일곱 종류의 사람이 있다항하 = 생사의 큰 강 — 중생 쪽에서 봄가섭보살품恒河の中に七衆生有るが如し항하 가운데 일곱 중생이 있는 것과 같다항하 = 대열반의 강 — 부처님 쪽에서 봄七子の中の第一第二は一闡提謗法の衆生なり일곱 자식 가운데 첫째 · 둘째는 일천제 · 방법의 중생
도표 7 · 항하의 칠종 중생
안개 낀 큰 강과 멀리 보이는 건너편 기슭 — 항하의 칠종 중생
그림 · 안개 낀 큰 강과 멀리 보이는 건너편 기슭 — 항하의 칠종 중생

가섭보살품에서는 불성론을 더 밀고 나간다. 특히 권36에서는 수자의어(隨自意語) · 수타의어(隨他意語) · 수자타의어(隨自他意語) 세 가지 설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일체중생실유불성」은 수자의어, 곧 부처님 자신의 뜻 그대로의 말이고, 「일천제는 성불하지 못한다」는 수타의어, 곧 상대의 근기에 맞춘 말이며, 「일체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으나 번뇌가 덮고 있어 볼 수 없다」고 회통하는 것이 수자타의어다. 열반경에서 일천제가 성불할 수 있다고도, 없다고도 설해진 까닭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또 같은 권에서는 수자의의 입장에서, 항하의 일곱 중생에 차별이 있지만 모두 불성의 물을 떠나지 않는 존재라 하고, 이 입장에서 「혹은 한 사람이 일곱을 다 갖추기도 하고, 혹은 일곱 사람이 각각 하나씩이기도 하다」고 설한다.

그러므로 일천제는 결코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도, 실유불성이므로 성불한다고 하는 것도, 한쪽만 보는 한 옳지 않다. 열반경의 일천제론은 불성론과 깊이 얽혀 있다. 일천제는 「불신」과 「단선근」으로 정의되지만, 일천제가 불성불이라 하는 이유는 「단선근」 때문에 「실유불성」의 뜻에 「불신」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결국 정법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일천제 불성불의 근본 이유다.

열반경의 일천제 성불 문제는 중국 불교사에서도 큰 논쟁거리였다. 법현(法顯)이 가져와 번역한 6권본 『대반니원경』은 일천제의 불성불을 설했는데, 축도생(竺道生)은 경문에 없는 「일천제 성불」을 주장하다가 배척당했고, 뒤에 담무참(曇無讖) 역 40권본(북본, T12 no.374)이 전해져 일천제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설이 확인되었다고 전한다. 이 장의 강의가 권수를 들어 정리한 「불성불」과 「불성 부단」의 두 갈래는 바로 이 40권본 안에서 논의가 진전되는 모습이다.

방법의 형태 — 등지는 것과 두 종류의 비방자

이제 대성인이 여러 어서에서 밝히신 「방법」의 뜻을 살펴, 그것이 「제일의 중병」인 까닭을 생각해 보자.

이 어서는 열반경 항하 칠종 중생의 「첫째 · 둘째」를 「일천제 · 방법의 중생」이라 하셨다. 「첫째」는 선근을 끊었기에 법화경에 신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일천제이고, 「둘째」는 일단 신심을 일으켰지만 악연 등으로 신심을 잃는 자다. 둘째는 잠시라도 신심을 일으키므로 일천제는 아니지만, 신심을 잃고 정법을 비방하므로 일천제와 같은 자로 다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두 종류의 중생은 모두 불신 · 방법으로 특징지어지고, 그래서 이 어서는 두 중생을 하나로 묶어 「일천제 · 방법의 중생」이라 하셨다.

이 점을 현방법초의 가르침으로 더 자세히 살펴보자. 현방법초는 열반경 권36의 다음 문을 들어 두 종류 중생의 관계를 보이신다.

我契経の中に於て説く二種の人有り仏法僧を謗ずと、一には不信にして瞋恚の心あるが故に二には信ずと雖も義を解せざるが故に善男子若し人信心あつて智慧有ること無き是の人は則ち能く無明を増長す若し智慧有つて信心あること無き是の人は則ち能く邪見を増長

나는 계경 가운데서 두 종류의 사람이 불 · 법 · 승을 비방한다고 설하노라. 첫째는 믿지 않고 성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요, 둘째는 믿는다고 하더라도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신심은 있으나 지혜가 없으면 이 사람은 능히 무명을 더 자라게 하고, 만약 지혜는 있으나 신심이 없으면 이 사람은 능히 사견을 더 자라게 하느니라

「현방법초」, 459쪽

여기서 밝혀지는 두 종류의 비방자 가운데, 첫째 — 정법을 믿지 않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비방하는 사람 — 는 항하의 첫째 중생, 곧 일천제다. 대성인은 같은 어서에서 이 첫째 중생을 다시 「알지만 믿지 않는(解而不信)」 자라고 하신다. 곧 일천제란 설령 지혜가 있어 법화경 · 열반경의 일체중생실유불성의 뜻을 이해하더라도 그것을 믿지 못하는 자이며, 오히려 그 불신 때문에 정법을 등지는 사견을 더욱 키워 나아가 다른 해석을 주장하는 자다.

이에 대해 둘째 사람은 정법을 믿더라도 뜻을 알지 못하는 자, 곧 「믿지만 알지 못하는(信而不解)」 자이며, 그 때문에 무명에 빠져 정법을 등질 우려가 있는 자다. 대성인은 이 문의 둘째 사람이 항하의 둘째 중생에 해당한다고 하시고, 다시 이렇게 말씀하신다.

口には涅槃を信ずと雖も心に爾前の義を存する者なり

입으로는 열반경을 믿는다 하나 마음에는 이전(爾前)의 뜻을 지니고 있는 자이니라

「현방법초」, 459쪽

설령 법화경 · 열반경을 듣고 신심을 일으켰다 해도 마음에 여전히 이전 경의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결국 법화경 등의 뜻을 바르게 믿고 있지 않은 자다. 그런 뜻에서 같은 어서는 둘째 중생을 「믿되 믿지 않는(信而不信)」 자라 하신다. 둘째 중생은 일천제처럼 정면으로 믿지 않는 자는 아니지만, 정법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믿음을 일으켰다고 여겨도 참된 신심이 아니다.

이렇게 대성인이 「알지 못하는 자」까지 「일천제 · 방법의 중생」으로 삼으신 것은, 자각하지 못한 정법에 대한 불신이 「방법」에 해당함을 밝혀, 일천제의 길에 빠질 수 있는 말법 중생을 구하기 위함이라고 강의는 본다.

현방법초는 「방법」을 이렇게 정의하신다.

天台智者大師の梵網経の疏に云く謗とは背なり等と云云、法に背くが謗法にてはあるか天親の仏性論に云く若し憎は背くなり等と云云、この文の心は正法を人に捨てさせるが謗法にてあるなり

천태지자대사의 『범망경소』에 이르되 「방(謗)이란 등지는 것이니라」 운운. 법에 등지는 것이 방법이 아니겠는가. 천친의 『불성론』에 이르되 「만약 미워하면 등지는 것이니라」 운운. 이 문의 마음은 정법을 사람에게 버리게 하는 것이 방법이라는 것이니라

「현방법초」, 448쪽

천태의 『범망경소』는 『범망보살계경의소』인데, 그 권하에 이렇게 있다.

謗は是れ乖背の名なり。絓は是れ解は理に称わず、真実に当たらず。異解して説く者を名づけて謗と為すなり。已が宗に乖くが故に罪を得

방(謗)은 어긋나 등지는 것의 이름이다. 무릇 이해가 이치에 맞지 않고 진실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다르게 이해해 설하는 자를 이름하여 방이라 한다. 자기 종지에 어긋나므로 죄를 얻는다

천태대사 『범망보살계경의소』

이것은 말로 정법을 헐뜯지 않더라도, 정법에 어긋나는 다른 이해를 품고 그것을 설하는 것이 방법의 죄에 해당함을 밝힌다.

또 천친보살의 『불성론』은 권1에 자세히 「만약 대승을 미워하고 등진다면 이 법은 일천제의 인(因)이다. 중생으로 하여금 이 법을 버리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있다. 이 문은 정법을 미워하고 등지는 일천제의 방법이, 자기가 등질 뿐 아니라 다른 중생에게 정법을 버리게 하는 큰 중죄가 된다는 것을 보인다.

앞의 『범망경소』의 문이 정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愚癡)」의 자의 다른 이해가 방법에 해당함을 보인 것이라면, 『불성론』의 문은 정법에 「성냄(瞋恚)」의 마음을 일으키는 자가 다른 중생에게 미치는 영향을 밝힌 것이다. 대성인이 이 문을 「미워하면 등지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인용하신 것은 「미워함」이라는 진에의 마음을 강조하시기 위함이라고 강의는 본다. 앞의 열반경 문에서도 첫째 일천제는 믿지 않고 「성내는」 마음이 있는 자, 둘째는 지혜가 없어 뜻을 알지 못하는, 곧 「어리석은」 마음을 지닌 자였다. 이렇게 「방법」이란 정법에 대해 일으키는 진에 · 우치 같은 삼독의 마음 작용으로 정법에 「등지는」 것이 근본이며, 거기서 실제의 비방하는 말이나 정법에 어긋나는 다른 해석이 생긴다.

그러므로 「방법」이란 정법에 「등지는」 것이지만, 그 등지는 방식에 진에에 의한 것인지 우치에 의한 것인지, 드러난 것인지 숨은 것인지의 차이가 있어, 여기서 방법의 여러 형태가 생긴다.

방법의 형태 — 인사의 방법과 사람들의 방법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방법에 많은 형태가 있음을 밝히셨다. 그 가운데 사람들에게 불법을 가르치는 인사(人師)의 방법에 대해서는 십법계명인과초에 이렇게 있다.

謗法は多種なり大小流布の国に生れて一向に小乗の法を学して身を治め大乗に遷らざるは是れ謗法なり、亦華厳・方等・般若等の諸大乗経を習える人も諸経と法華経と等同の思を作し人をして等同の義を学ばしめ法華経に遷らざるは是れ謗法なり、亦偶円機有る人の法華経を学ぶをも我が法に付けて世利を貪るが為に汝が機は法華経に当らざる由を称して此の経を捨て権経に遷らしむるは是れ大謗法なり

방법은 여러 가지니라. 대승 · 소승이 함께 유포된 나라에 태어나 오로지 소승의 법을 배워 몸을 다스리고 대승으로 옮기지 않는 것은 방법이니라. 또 화엄 · 방등 · 반야 등의 모든 대승경을 익힌 사람도 제경과 법화경이 같다는 생각을 하여 남에게도 같다는 뜻을 배우게 하고 법화경으로 옮기지 않는 것은 방법이니라. 또 마침 원교의 근기가 있는 사람이 법화경을 배우는 것을, 자기 법에 붙여 세상의 이익을 탐하기 위해 「그대의 근기는 법화경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이 경을 버리고 권경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대방법이니라

「십법계명인과초」, 428쪽

곧 다음 세 종류의 인사를 「방법」이라 단정하신다.

첫째가 자기 수행에 머무는 예라면, 둘째와 셋째는 남에게 작용하는 이른바 조사들을 염두에 두고 보이신 것이다. 특히 셋째는 당시의 진언종 · 염불종을 가리켜 「대방법」이라 하셨다. 『어강문서』에는 이렇게 있다.

此の経を謗ずるは十界の仏種を断ずるなり、されば、誹謗の二字を大論に云く、口に謗るを誹と云い、心に背くを謗と云うと、仍つて色心三業に経て、法華経を謗じ奉る人は入阿鼻獄疑い無きなり、所謂弘法・慈覚・智証・善導・法然・達磨等の大謗法の者なり

이 경을 비방하는 것은 십계의 불종(佛種)을 끊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비방」 두 글자를 『대지도론』에 이르되 「입으로 헐뜯는 것을 비(誹)라 하고 마음으로 등지는 것을 방(謗)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색심의 삼업에 걸쳐 법화경을 비방하는 사람은 아비지옥에 들어감이 의심 없느니라. 이른바 홍법 · 자각 · 지증 · 선도 · 법연 · 달마 등의 대방법의 자이니라

『어강문서』, 823쪽

법화경을 비방하는 것은 십계 중생의 「불종」을 끊는 것이며, 진언 · 염불의 조사들은 입으로 법화경을 헐뜯고 마음으로 등지므로 「대방법」이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또 각 종의 가르침에 맞추어 대방법인 까닭을 밝히셨다. 강의는 이를 종마다 정리한다.

먼저 염불종은 앞의 십법계명인과초의 문에서 분명하듯, 법화경은 말법의 열등한 근기에 맞지 않는 가르침이라며 사람들을 법화경에서 염불로 물러나게 하므로 불종을 끊는 「대방법」이다. 같은 취지가 다음 어서에도 보인다.

夫れ一切衆生皆成仏道の法華経、一たび法華経を聞かば決定して菩提を成ぜんの妙典善導が一言に破れて千中無一虚妄の法と成り、無得道教と云はれ平等大慧の巨益は虚妄と成り多宝如来の皆是真実の証明の御言妄語と成るか十方諸仏の上至梵天の広長舌も破られ給ぬ、三世諸仏の大怨敵と為り十方如来成仏の種子を失う大謗法の科甚重し大罪報の至り無間大城の業因なり

무릇 일체중생이 모두 불도를 이루는 법화경, 한 번 법화경을 들으면 반드시 보리를 이루리라는 묘전이 선도의 한마디에 깨져 「천 가운데 하나도 없다(千中無一)」는 허망한 법이 되고 득도가 없는 가르침이라 불리며, 평등대혜의 큰 이익은 허망해지고, 다보여래의 「모두 진실이니라」는 증명의 말씀은 거짓말이 되는가. 시방제불이 범천에 이르게 내미신 광장설도 깨져 버렸느니라. 삼세제불의 큰 원수가 되고 시방여래 성불의 종자를 잃게 하는 대방법의 허물이 매우 무거우니, 큰 죄보의 극치요 무간대성의 업인이니라

「염불무간지옥초」, 99쪽

선도의 「천중무일(千中無一)」이 법화경을 허망한 법으로 만들고, 다보의 증명과 시방제불의 광장설을 거짓으로 만든다는 이 어서의 말은, 이 장 끝의 「다보불의 증명은 물거품과 같고 시방분신 부처님들의 조설도 파초와 같아지리라」와 정확히 겹친다. 법화경이 말법에 유포되지 않으면 다보와 분신의 증명이 공허해진다는 本文의 논리는, 뒤집어 보면 염불의 방법이 그 증명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는 고발이기도 하다.

다음 진언종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此等の経論釈は分明に法華経を諸仏は最第一と説き秘密教と定め給へるを経論に文証も無き妄語を吐き法華を顕教と名づけて之を下し之を謗ず豈大謗法に非ずや

이러한 경 · 논 · 석은 분명히 법화경을 제불이 가장 제일이라 설하고 비밀교라 정하셨는데, 경론에 문증도 없는 거짓말을 토하여 법화를 현교라 이름하여 이를 낮추고 비방하니 어찌 대방법이 아니겠는가

「진언견문」, 145쪽

또 고닌장답서에서는 홍법과 자각이 법화경과 대일경의 승렬에 미혹하여 전교대사의 정의를 숨긴 이래 사백여 년, 나라가 점점 쇠하고 왕법도 다하려 한다고 하시고, 인도의 불사밀다라왕이 팔만사천의 사탑을 불태우고 무수한 불자의 목을 베었으며 중국의 회창천자가 사원 사천육백여 곳을 없애고 승니를 환속시켰지만, 「이들이 큰 악인이라 해도 우리나라의 대방법에는 미치지 못한다」(185쪽)고까지 하셨다. 곧 현밀이교판(顯密二敎判)이나 이동사승(理同事勝)의 설로 법화경이 밀교 경전보다 못하다며 법화경을 낮추기 때문에 「대방법」이라는 것이다.

선종은 「교외별전 · 불립문자」를 내세워 이끌어 들일 경을 본래 세우지 않지만, 법화경을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므로 역시 「대방법」이다. 입정관초에 이렇게 있다.

修多羅の教主は松の如く其の教法は藤の如し各各に諍論すと雖も仏も入滅して教法の威徳も無し爰に知んぬ修多羅の仏教は月を指す指なり禅の一法のみ独妙なり之を観ずれば見性得達するなりと云う大謗法の天魔の所為を信ずる故なり

「경전의 교주는 소나무와 같고 그 교법은 등나무와 같다. 저마다 다투어 논하지만 부처님도 입멸하여 교법의 위덕도 없다. 이로써 알지니, 경전의 불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선의 한 법만이 홀로 묘하니 이를 관하면 견성득달한다」고 하는 대방법의 천마의 소행을 믿기 때문이니라

「입정관초」, 533쪽

선종은 정법이 경전 밖에 따로 전해졌다며 경전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상주불멸의 법을 설하고 세간상의 상주를 밝힌 법화경을 낮추므로, 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는 대방법에 해당한다. 같은 어서는 이어서, 법화경의 부처님은 수명이 무량한 상주불멸의 부처인데 선종은 멸도한 부처로 보니 외도의 무견(無見)이고 「시법주법위 세간상상주(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의 금언에 어긋나며, 법화경에서 방편으로 득도가 없다고 한 선을 진실 상주의 법이라 하니 외도의 상견(常見)이라고 하신다.

또 당시 천태종의 학승들에 대해서는 「슬프도다, 지금 세상의 천태종 학자는 염불 · 진언 · 선종 등에 동의하므로 천태의 교석을 잃어버리고 법화경을 등져 대방법의 죄를 얻느니라」(529쪽)고 하신다. 이름은 천태승이라도 마음은 법화경을 등지고 방법의 제종에 동의하므로 「대방법」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천태승이 선종에 동의하는 예를, 「지금 세상의 학자는 이 뜻을 얻지 못하므로 천태가 스스로 깨친 묘법을 잃어버리고, 지관은 법화경보다 뛰어나고 선종은 지관보다 뛰어나다 여겨 법화경을 버리고 지관에 붙고 지관을 버리고 선종에 붙느니라」(533쪽)고 밝히셨다. 천태대사의 지관행은 어디까지나 법화경의 묘법을 깨닫기 위한 수행이었는데, 그것을 잊고 법화경보다 지관이 낫다 하였으므로 결국 방법의 선종과 같아졌다. 그래서 그들을 「법화경을 버리고 다만 관(觀)만을 바른 것으로 삼는 무리는 대방법 · 대사견 · 천마의 소행」(527쪽)이라고 파절하셨다.

여기까지가 제종 인사의 방법이다. 대성인은 나아가 일반 사람들이 제종 사사(邪師)의 악연에 흔들려 빠지는 「방법」에도 여러 형태가 있음을 밝히셨다. 난조효에시치로전어서에 이렇게 있다.

我等衆生は根の鈍なる事すりはんどくにもすぎ 物のいろかたちをわきまへざる事羊目のごとし、貪瞋癡きわめてあつく十悪は日日にをかし五逆をば・おかさざれども五逆に似たる罪・又日日におかす、又十悪・五逆にすぎたる謗法は人毎にこれあり、させる語を以て法華経を謗ずる人はすくなけれども・人ごとに法華経をばもちゐず、又もちゐたるやうなれども念仏等のやうには信心ふかからず、信心ふかきものも法華経のかたきをばせめず、いかなる大善をつくり法華経を千万部読み書写し一念三千の観道を得たる人なりとも 法華経の敵をだにも・ せめざれば得道ありがたし

우리 중생은 근기가 둔하기가 주리반특보다 더하고, 사물의 빛과 모양을 분간하지 못하기가 양의 눈과 같으니라. 탐 · 진 · 치가 지극히 두터워 십악은 날마다 범하고, 오역은 범하지 않더라도 오역에 비슷한 죄를 또 날마다 범하느니라. 또 십악 · 오역보다 더한 방법은 사람마다 있느니라. 분명한 말로 법화경을 비방하는 사람은 적지만 사람마다 법화경을 쓰지 않으며, 또 쓰는 듯해도 염불 등처럼 신심이 깊지 않고, 신심이 깊은 자도 법화경의 적을 꾸짖지 않느니라. 어떠한 큰 선을 짓고 법화경을 천만 부 읽고 서사하여 일념삼천의 관도를 얻은 사람이라도 법화경의 적을 꾸짖지 않으면 득도하기 어려우니라

「난조효에시치로전어서」, 1494쪽

말법 중생은 탐 · 진 · 치의 삼독이 지극히 두터워 십악의 죄나 오역에 비슷한 죄를 날마다 범하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은 십악 · 오역보다 무거운 「방법」의 죄를 사람마다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의 형태로 세 가지가 밝혀진다.

이것은 사람들이 일천제의 길에 떨어진 제종 인사를 맹종해, 결과적으로 그 법화경 비방을 용인하는 여동죄(與同罪)로서의 「방법」을 밝히신 것이다. 대성인이 사도어서에서 「저들이 낳아 퍼뜨려 지금 세상의 일본국 일체중생이 되었느니라」(959쪽)고 하신 것도, 일본국의 일체중생이 위와 같은 갖가지 형태로 「방법」을 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의는 본다.

謗とは背なり방이란 등지는 것천태 『범망경소』正法を人に捨てさせるが謗法にてあるなり정법을 사람에게 버리게 하는 것이 방법현방법초 448쪽
첫째不信にして瞋恚の心あるが故に믿지 않고 성냄일천제해이불신
둘째信ずと雖も義を解せざるが故に믿되 뜻을 알지 못함신이불해
인사의 방법십법계명인과초 428쪽
  1. ①소승만 배워 대승으로 옮기지 않음
  2. ②제대승경과 법화경이 같다 하여 남도 법화경으로 옮기지 않게 함
  3. ③근기가 맞지 않는다며 법화경을 버리고 권교로 옮기게 함 — 「大謗法」(큰 방법(謗法))
제종의 대방법
  • 염불「千中無一」(천 가운데 하나도 없음)로 법화경을 허망한 법이라 함
  • 진언법화를 현교라 이름해 낮춤
  • 선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 함
  • 당시의 천태 학승제종에 동의해 법화경을 등짐
사람들의 방법여동죄난조효에시치로전어서 1494쪽
  1. ①말로 비방하지 않아도 법화경을 쓰지 않음
  2. ②쓰는 듯해도 신심이 깊지 않음
  3. ③깊이 믿어도 법화경의 적을 꾸짖지 않음
도표 8 · 방법의 정의와 여러 형태

이렇게 대성인은 「방법」의 여러 형태를 자세히 밝히셨는데,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방법」이라는 「제일의 중병」에 걸려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일깨우시기 위함이었다. 묘호비구니답서에 「방법이라는 죄는 나도 모르고 남도 허물로 여기지 않으며, 다만 불법을 배우면 귀하다고만 생각하는 사이에, 이 사람도 또 이 사람을 따르는 제자 · 단나들도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있느니라」(1408쪽)고 하시고, 묘신니부인답서에서는 「지금 일본국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극대중병이 있으니 이른바 대방법의 중병이니라. 지금의 선종 · 염불종 · 율종 · 진언사이니라. 이들은 병이 너무 무거워 자기 몸에도 느끼지 못하고 남도 모르는 병이니라」(1480쪽)고 하셨다. 이 「극대중병」에서 사람들을 낫게 하려면 먼저 깨닫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대성인은 방법의 여러 형태를 자세히 분석하셨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방법을 「정법에 등지는 것」으로 정의하고, 그 뿌리를 진에(성냄)와 우치(어리석음)라는 마음의 작용에서 찾는다. 그래서 정면으로 헐뜯는 것만이 아니라, 뜻을 바로 알지 못한 채 믿는 것, 쓰지 않는 것, 적을 꾸짖지 않는 것까지 방법의 형태로 본다. 병이 무거울수록 병자는 병을 느끼지 못한다 — 대성인이 방법을 세밀하게 분석하신 것은 먼저 그 병을 자각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방법의 죄보 — 왜 오역보다 무거운가

「방법」이 「제일의 중병」인 까닭은 무엇보다 그 죄보의 무게에 있다. 대성인은 법화경 · 열반경 등 여러 경을 근거로 방법 죄의 무게를 밝히셨는데, 그 근본으로 삼으신 경문은 법화경 비유품 제3의 다음 문이다.

若し人信ぜずして、此の経を毀謗せば、則ち一切、世間の仏種を断ぜん…其の人命終して、阿鼻獄に入らん、一劫を具足して、劫尽きなば更に生まれん、是の如く展転して、無数劫に至らん

만약 사람이 믿지 않고 이 경을 헐뜯어 비방하면 곧 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으리라 … 그 사람은 목숨이 다하면 아비지옥에 들어가 한 겁을 다 채우고, 겁이 다하면 다시 태어나 이와 같이 거듭 굴러 무수한 겁에 이르리라

『묘법연화경』 비유품 제3, T9 no.262

이 경문에서는 두 가지가 밝혀진다. 하나는 법화경 비방이 「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는」 죄업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무간지옥에 떨어져 무수한 겁을 지나는 것이 법화경 비방의 죄보라는 것이다. 또 이 경문의 생략된 부분에는 「경을 독송하고 서지하는 자가 있음을 보고 가볍게 여기고 천대하며 미워하고 시기하여 원한을 품으면」이라고 있어, 법화경을 비방하는 것만이 아니라 법화경을 수지하는 사람에게 비방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도 똑같이 무간지옥의 업임이 분명하다.

대성인은 이 비유품의 문을 받아, 방법의 죄보가 오역죄의 죄보보다 훨씬 무겁다는 것을 여러 어서에서 밝히셨다.

凡そ法華経の如くんば大乗経典を謗ずる者は無量の五逆に勝れたり、故に阿鼻大城に堕して永く出る期無けん

무릇 법화경대로라면 대승경전을 비방하는 자는 무량한 오역보다 더하니라. 그러므로 아비대성에 떨어져 영원히 나올 기약이 없으리라

「입정안국론」, 29쪽

阿鼻の業因は経論の掟は五逆・七逆・因果撥無・正法誹謗の者なり、但し五逆の中に一逆を犯す者は無間に堕つと雖も一中劫を経て罪を尽して浮ぶ、一戒をも犯さず道心堅固にして後世を願うと雖も法華に背きぬれば無間に堕ちて展転無数劫と見えたり、然れば則ち謗法は無量の五逆に過ぎたり

아비지옥의 업인은 경론의 규정으로는 오역 · 칠역 · 인과를 부정하는 자 · 정법을 비방하는 자이니라. 다만 오역 가운데 한 가지를 범한 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일중겁을 지나면 죄를 다해 떠오르지만, 한 계도 범하지 않고 도심이 굳어 후세를 원하더라도 법화경을 등지면 무간지옥에 떨어져 무수겁을 거듭 구른다고 보이느니라. 그러므로 방법은 무량한 오역보다 더하니라

「진언제종위목」, 142쪽

此等は皆一業引一生なり故に一度悪道に堕すれば還つて二度悪道に堕せず、謗法は一業引多生なれば一度三宝を破すれば度度悪道に堕する是なり

이것들은 모두 한 업이 한 생을 이끄느니라. 그러므로 한 번 악도에 떨어지면 다시 두 번 악도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방법은 한 업이 여러 생을 이끄니, 한 번 삼보를 깨뜨리면 몇 번이고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 이것이니라

「일대오시도」, 617쪽

오역죄도 무간지옥의 업인이 되는 죄업이지만, 무간지옥에 떨어져 일중겁을 지나면 죄보를 다해 나올 수 있다. 반면 법화경 비방의 죄는 무수겁 동안 무간지옥을 거듭 굴러야 한다.

또 대성인은 방법의 죄보를 밝히실 때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제20의 다음 문에 의거하기도 하신다.

彼の時の四衆の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は瞋恚の意を以って我を軽賤せんが故に、千劫阿鼻地獄に於いて、大苦悩を受く

그때의 사중인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는 성내는 마음으로 나를 가볍게 여기고 천대하였기 때문에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서 큰 고뇌를 받았느니라

『묘법연화경』 상불경보살품 제20, T9 no.262

불경보살을 박해한 증상만의 사중은 결국 불경보살에게 신복수종(信伏隨從)했는데도, 성내는 마음으로 불경보살을 가볍게 여긴 죄, 곧 법화경의 행자를 미워하고 등진 방법의 중죄가 남았기 때문에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 떨어져 큰 고뇌를 받았다. 대성인은 이 문을 받아 이렇게 말씀하신다.

此の経文の心は 法華経の行者を悪口し及び杖を以て打擲せるもの其の後に懺悔せりといえども罪いまだ滅せずして千劫・阿鼻地獄に堕ちたりと見えぬ、懺悔せる謗法の罪すら五逆罪に千倍せり況や懺悔せざらん謗法にをいては阿鼻地獄を出ずる期かたかるべし

이 경문의 마음은, 법화경의 행자를 욕하고 지팡이로 때린 자는 그 뒤에 참회했다 하더라도 죄가 아직 멸하지 않아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 떨어졌다고 보이느니라. 참회한 방법의 죄조차 오역죄의 천 배이니, 하물며 참회하지 않는 방법은 아비지옥을 나올 기약이 어려우리라

「현방법초」, 448쪽

彼軽毀の衆は始は謗ぜしかども後には信伏随従せりき罪多分は滅して少分有しが父母千人殺したる程の大苦をうく当世の諸人は翻す心なし譬喩品の如く無数劫をや経んずらん三五の塵点をやおくらんずらん

저 가볍게 헐뜯은 무리는 처음에는 비방했으나 뒤에는 신복수종하였느니라. 죄의 대부분은 멸하고 조금 남았는데도 부모를 천 명 죽인 만큼의 큰 고통을 받았느니라.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뉘우치는 마음이 없으니 비유품대로 무수겁을 지나겠는가, 삼천 · 오백 진점겁을 보내겠는가

「사도어서」, 960쪽

뉘우치는 마음을 일으켜 죄의 대부분을 멸해도, 여전히 오역죄의 천 배 고뇌를 받을 만큼의 중죄가 방법의 죄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방법죄와 오역죄의 경중을 더 분명히 하시기 위해 위의 법화경 문을 바탕으로 『대품반야경』과 열반경의 문도 쓰셨다. 현방법초에서는 『대품반야경』의 다음 문을 인용하신다.

舎利弗仏に白して言く世尊五逆罪と破法罪と相似するや、仏舎利弗に告わく相似と言うべからず所以は何ん若し般若波羅蜜を破れば 則ち十方諸仏の一切智一切種智を破るに為んぬ、仏宝を破るが故に法宝を破るが故に僧宝を破るが故に三宝を破るが故に則ち世間の正見を破す世間の正見を破れば○則ち無量無辺阿僧祇の罪を得るなり無量無辺阿僧祇の罪を得已つて則ち無量無辺阿僧祇の憂苦を受るなり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역죄와 파법죄는 비슷합니까.」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이르셨다. 「비슷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만약 반야바라밀을 깨뜨리면 곧 시방제불의 일체지 · 일체종지를 깨뜨리는 것이 된다. 불보를 깨뜨리기 때문이요, 법보를 깨뜨리기 때문이요, 승보를 깨뜨리기 때문이니, 삼보를 깨뜨리므로 곧 세간의 정견을 깨뜨린다. 세간의 정견을 깨뜨리면 … 곧 무량무변 아승기의 죄를 얻고, 그 죄를 얻고 나면 무량무변 아승기의 근심과 괴로움을 받는다」

「현방법초」, 448쪽

파법죄는 삼보를 깨뜨리고 세간의 정견을 깨뜨리므로 무량무변 아승기의 죄를 얻는다. 이는 방법이 중죄인 까닭을 「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는다」고 밝힌 비유품의 문과 통한다.

또 열반경은 앞에서 본 대로, 사중금이나 오역죄 같은 대죄를 범한 자도 열반경으로 보리의 인을 얻을 수 있지만, 정법을 비방하는 일천제만은 결코 보리의 인을 얻지 못하는 필사의 중병인이라고 강조한다. 권9에서는 「타 버린 씨앗은 단비를 만나도 싹이 트지 않는다」, 「밝은 구슬은 탁한 물속에 있으면 물을 맑게 하지만 진흙 속에서는 맑게 하지 못한다」 같은 비유로 이를 설한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 비유들을 인용하신 뒤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等多くの譬あり、詮ずるところ上品の一闡提人になりぬれば順次生に必ず無間獄に堕つべきゆへに現罰なし

이러한 많은 비유가 있느니라. 요컨대 상품의 일천제인이 되면 다음 생에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지므로 현세의 벌이 없느니라

「개목초」, 231쪽

이렇게 법화경을 비롯한 여러 경의 문으로, 방법의 죄보가 오역죄의 죄보보다 훨씬 깊고 무겁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스스로 정법을 등질 뿐 아니라 정법을 비방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정법에 대한 믿음까지 깨뜨리기 때문이다. 이 점은 반야경의 「세간의 정견을 깨뜨린다」에서도 엿보이지만, 가장 분명히 설한 것은 비유품의 「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는다」일 것이다.

이 「불종」에 대해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6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今の経には小善の成仏を明かす、此れ縁因を取りて仏種と為す、若し小善の成仏を信ぜざれば、即ち世間の仏種を断ずるなり

지금의 경(법화경)은 작은 선의 성불을 밝힌다. 이는 연인(緣因)을 취해 불종으로 삼은 것이다. 만약 작은 선의 성불을 믿지 않으면 곧 세간의 불종을 끊는 것이다

천태대사 『법화문구』, T34 no.1718

법화경 방편품에는 소선성불(小善成佛)이 설해져 있어, 육도 중생이 정법을 믿고 짓는 작은 선은 묘법의 힘으로 모두 성불의 원인이 된다. 이 작은 선은 정인 · 요인 · 연인의 삼인불성 가운데 연인에 해당하므로 「불종」이다. 법화경을 비방하는 것은 육도 중생의 신심을 깨뜨리고 인연이 될 선근을 쌓는 마음을 잃게 하므로 「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는」 것이 된다.

오역죄무간지옥의 업인
방법죄則ち一切、世間の仏種を断ぜん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는다 — 비유품懺悔せる謗法の罪すら五逆罪に千倍せり참회한 방법의 죄조차 오역의 천 배 — 현방법초
지옥에 머무는 기간
오역죄一中劫を経て罪を尽して浮ぶ일중겁을 지나 죄를 다해 떠오른다
방법죄展転して、無数劫に至らん거듭 굴러 무수겁에 이른다
업의 성질
오역죄一業引一生한 업이 한 생을 이끈다
방법죄一業引多生한 업이 여러 생을 이끈다
열반경의 판정
오역죄열반경을 만나면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다
방법죄타 버린 씨앗, 필사의 병
이유 — 자기가 등질 뿐 아니라 남의 믿음(불종 · 세간의 정견)까지 깨뜨린다
도표 9 · 방법과 오역 — 죄보의 대비

그렇다면 왜 남묘호렌게쿄가 이처럼 「제일의 중병」인 방법까지 고치는 「제일의 양약」이라 하는가. 강의는 이제 이 물음으로 넘어간다.

마음의 병 — 삼독과 방법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사람의 병을 몸의 병과 마음의 병 두 가지로 크게 나누시고, 마음의 병이란 팔만사천의 번뇌이며 그 가운데서도 탐욕 · 진에 · 우치의 삼독이라고 지적하신다.

번뇌란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갖가지 마음의 작용이다. 불교는 많은 번뇌 가운데서도 탐 · 진 · 치 셋이야말로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라 보고, 중생의 선한 마음을 깨뜨리는 독성 때문에 삼독이라 부른다. 법화경 비유품은 이를 「삼독의 불」이라 하여 불에 비유한다.

용수의 『대지도론』 권34는 보통의 삼독과 「삿된 삼독(邪三毒)」을 나누고, 삿된 삼독은 건지기 어렵다고 한다. 천태대사는 이를 받아 『마하지관』 권6상에서 삼독을 정삼독(正三毒)과 사삼독(邪三毒)으로 나누었다. 정삼독은 사혹(思惑)으로서의 보통의 탐 · 진 · 치이고, 사삼독은 견혹(見惑) 위에 일으키는 탐 · 진 · 치다. 곧 사삼독이란 변견 · 사견 같은 사상적 미혹인 견혹과 얽혀 복합된 삼독이다.

대성인은 소야전답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今日本国の人人四十九億九万四千八百二十八人の男女人人ことなれども同じく一の三毒なり、所謂南無妙法蓮華経を境としてをこれる三毒なれば人ごとに釈迦・多宝・十方の諸仏を一時にのりせめ流しうしなうなり

지금 일본국 사람들 사십구억 구만 사천팔백이십팔 명의 남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똑같이 하나의 삼독이니라. 이른바 남묘호렌게쿄를 대상으로 일어난 삼독이므로, 사람마다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을 한꺼번에 욕하고 꾸짖으며 유배 보내고 없애느니라

「소야전답서」, 1064쪽

사람들이 법화경의 행자인 대성인의 홍통을 계기로 정법에 대한 진에를 일으켰기 때문에, 한 나라가 깊이 삼독의 병에 침범당해 있음을 밝히신 것이다. 이것은 바로 견혹 위에 일어난 사삼독, 곧 교법에 대한 미혹 위에 일어난 삼독이다.

이 교법의 미혹 위에 일어난 삼독의 병을 고치는 길에 대해, 치병대소권실위목은 첫머리에서 이렇게 밝히신다.

夫れ人に二の病あり一には身の病・所謂地大百一・水大百一・火大百一風大百一・已上四百四病なり、此の病は設い仏に有らざれども・之を治す所謂治水・流水・耆婆・扁鵲等が方薬・此れを治するにゆいて愈えずという事なし、二には心の病・所謂三毒乃至八万四千の病なり、此の病は二天・三仙・六師等も治し難し何に況や神農・黄帝等の方薬及ぶべしや、又心の病・重重に浅深・勝劣分れたり、六道の凡夫の三毒・八万四千の心病は小仏.小乗阿含経・倶舎・成実・律宗の論師.人師此れを治するにゆいて愈えぬべし、但し此の小乗の者等・小乗を本として或は大乗を背き或は心には背かざれども大乗の国に肩を並べなんどする其の国其の人に諸病起る、小乗等をもつて此れを治すれば諸病は増すとも治せらるる事なし、諸大乗経の行者をもつて此れを治すれば則ち平愈す、又華厳経・深密経・般若経・大日経等の権大乗の人人・各各劣謂勝見を起して我が宗は或は法華経と斉等或は勝れたりなんど申す人多く出来し或は国主等此れを用いぬれば此れによつて三毒・八万四千の病起る、返つて自の依経をもつて治すれども・いよいよ倍増す、 設い法華経をもつて行うとも験なし経は勝れたれども行者・僻見の者なる故なり

무릇 사람에게 두 가지 병이 있으니, 첫째는 몸의 병이니라. 이른바 지대 백일 · 수대 백일 · 화대 백일 · 풍대 백일, 이상 사백사 병이니라. 이 병은 설령 부처님이 아니더라도 이를 고치니, 이른바 지수 · 유수 · 기바 · 편작 등의 처방과 약이 이를 다스리므로 낫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 둘째는 마음의 병이니, 이른바 삼독 내지 팔만사천의 병이니라. 이 병은 이천 · 삼선 · 육사 등도 고치기 어려우니, 하물며 신농 · 황제 등의 처방과 약이 미치겠는가. 또 마음의 병은 겹겹이 깊고 얕음과 낫고 못함이 나뉘느니라. 육도 범부의 삼독 · 팔만사천의 마음 병은 작은 부처 · 소승 아함경 · 구사 · 성실 · 율종의 논사 · 인사가 이를 다스리면 나을 것이니라. 다만 이 소승의 무리가 소승을 근본으로 하여 혹은 대승을 등지고, 혹은 마음으로는 등지지 않더라도 대승의 나라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하면 그 나라 그 사람에게 여러 병이 일어나느니라. 소승 등으로 이를 다스리면 여러 병은 더할지언정 낫지 않으며, 제대승경의 행자로 다스리면 곧 낫느니라. 또 화엄경 · 심밀경 · 반야경 · 대일경 등 권대승의 사람들이 저마다 「못한 것을 낫다고 여기는 견해」를 일으켜 「우리 종은 법화경과 같다, 혹은 더 낫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고, 혹은 국주 등이 이를 쓰면 이로 말미암아 삼독 · 팔만사천의 병이 일어나느니라. 도리어 자기가 의지하는 경으로 다스려도 더욱 배로 늘어나느니라. 설령 법화경으로 행해도 효험이 없으니, 경은 뛰어나지만 행자가 치우친 견해를 지닌 자이기 때문이니라

「치병대소권실위목」, 995쪽

이처럼 삼독의 병은 집착하는 가르침이 높아질수록 무거워지며, 그것을 고치려면 더 높은 가르침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법화경 비방이라는 제일의 중병은 법화경 본문으로만 고칠 수 있다. 치병대소권실위목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日本.一同に日蓮をあだみて国国・郡郡・郷郷・村村・人ごとに上一人より下万民にいたるまで前代未聞の大瞋恚を起せり、見思未断の凡夫の元品の無明を起す事此れ始めなり、神と仏と法華経にいのり奉らばいよいよ増長すべし、但し法華経の本門をば法華経の行者につけて除き奉る

일본이 한결같이 니치렌을 원수로 여겨, 나라마다 · 군마다 · 향마다 · 마을마다 · 사람마다, 위로 한 사람에서 아래로 만민에 이르기까지 전대미문의 큰 진에를 일으켰느니라. 견사혹을 끊지 못한 범부가 원품의 무명을 일으키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니라. 신과 부처와 법화경에 기도하면 더욱 자라날 것이니라. 다만 법화경의 본문은 법화경의 행자에게 붙여 제외하느니라

「치병대소권실위목」, 998쪽

말법 중생의 법화경 비방은 가장 무거운 원품(元品)의 무명이 드러난 것이며, 이 중병은 신불이나 법화경에 기도해서는 자랄 뿐이지만, 법화경의 행자인 대성인이 홍통하시는 법화경 본문으로만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른바 법화경과 대성인이 홍통하시는 법화경 본문을 분명히 구별하시어, 뒤의 것만이 말법의 중병을 고치는 양약이라 하셨다고 강의는 본다.

그렇다면 남묘호렌게쿄가 이처럼 원품의 무명까지 일으키게 하는데, 어째서 이 묘법을 홍통하는 것이 그 중병을 고치는 것이 되는가. 그것은 역연(逆緣)의 공덕 때문인데, 이를 이해하려면 번뇌 · 업 · 고의 삼도가 그대로 불종이 된다는 것을 밝힌 법화경의 상대종 개회를 알아야 한다.

독을 바꾸어 약으로 — 상대종 개회

법화경 약초유품에는 부처님이 중생의 「종(種) · 상(相) · 체(體) · 성(性)」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아 법을 설한다고 한다. 이 「종」에 대해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7에서 취류종(就類種)과 상대종(相對種) 두 가지가 있음을 밝힌다.

취류종이란 같은 부류에 나아가 밝히는 불종이고, 상대종이란 반대의 것에 나아가 밝히는 불종이다. 취류종은 해탈의 종자가 되는 머리 숙이고 손 드는 따위의 일체의 선업, 반야의 종자가 되는 일체의 세간 지혜와 이해하는 마음, 법신의 종자가 되는 마음의 존재 등이다. 이것들은 부처님 삼덕의 종자가 되는 선한 것이므로 같은 부류의 선으로서의 불종이라는 뜻에서 취류종이라 한다.

이에 대해 상대종이란 번뇌 · 업 · 고의 삼도가 바뀌어 법신 · 반야 · 해탈 삼덕의 종자가 되는 것이다. 대성인은 시문불승의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其の相対種とは煩悩と業と苦との三道・ 其の当体を押えて法身と般若と解脱と称する是なり

그 상대종이란 번뇌와 업과 고의 삼도를, 그 당체를 붙잡아 법신과 반야와 해탈이라 일컫는 것이 이것이니라

「시문불승의」, 983쪽

이전의 권대승경에서도 「번뇌즉보리」라 하여 상대종 개회와 비슷한 법문을 설하지만, 이승의 성불을 밝히지 않고 중생에 차별을 두므로 일체중생의 번뇌 등의 당체를 불종으로 삼는 상대종 개회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오타전부인답서에 이렇게 있다.

さればとて煩悩・業・苦が三身の種とはなり候はず、今法華経にして有余・無余の二乗が無き煩悩・業・苦をとり出して即身成仏と説き給う時 二乗の即身成仏するのみならず凡夫も即身成仏するなり

그렇다고 해서 번뇌 · 업 · 고가 삼신의 종자가 되지는 않느니라. 지금 법화경에서 유여 · 무여의 이승이 「없다」고 한 번뇌 · 업 · 고를 꺼내어 즉신성불이라 설하실 때, 이승이 즉신성불할 뿐 아니라 범부도 즉신성불하느니라

「오타전부인답서」, 1005쪽

이전 경에서는 번뇌 · 업 · 고의 삼도가 그대로 부처님 삼신의 종자가 된다고 하지 않았다. 반면 법화경은 이승도 십계호구의 당체임을 밝히고, 그 십계호구의 원리 위에서 일체중생의 성불을 설한다. 「이승이 없다고 한 번뇌 · 업 · 고」란, 이승도 실은 번뇌를 끊은 것이 아니지만 일단 허용해 주는 입장에서 이승은 번뇌를 끊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화경에서는 이 이승도 십계를 서로 갖추고 있어 참된 뜻에서는 번뇌 · 업 · 고를 끊지 않았음을 밝히고, 그것을 법신 · 반야 · 해탈의 삼덕으로 바꾸어 즉신성불하는 것을 설했다.

이것을 용수는 『대지도론』에서 「비유하면 큰 약사가 능히 독으로 약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하고, 또 「다른 경은 비밀이 아니고 법화는 비밀이다」라고 설했다. 천태대사는 이를 받아 『법화현의』 권6하에서 이렇게 풀었다.

譬えば良医の能く毒を変じて薬と為すが如く二乗の根敗反服すること能わず、これを名づけて毒と為す。今経に記を得るは即ち是れ毒を変じて薬と為す

비유하면 훌륭한 의사가 능히 독을 바꾸어 약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이승은 근이 썩어 되살릴 수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독이라 한다. 지금의 경에서 수기를 얻는 것은 곧 독을 바꾸어 약으로 만드는 것이다

천태대사 『법화현의』, T33 no.1716

또 대성인은 시문불승의에서 「우리 중생은 끝없는 아득한 겁 이래 이 삼도를 갖추고 있다가, 지금 법화경을 만나 삼도가 곧 삼덕이 되느니라」(983쪽)고 하셨다. 곧 묘법을 드러낸 법화경으로만 중생은 삼도즉삼덕을 깨달아, 번뇌 등의 독을 바꾸어 약으로 만들 수 있다. 대성인은 이를 여러 곳에서 밝히셨다.

毒と申すは苦集の二諦・生死の因果は毒の中の毒にて候ぞかし、此の毒を生死即涅槃・煩悩即菩提となし候を妙の極とは申しけるなり、良薬と申すは毒の変じて薬となりけるを良薬とは申し候いけり

독이란 고 · 집의 이제, 생사의 인과가 독 가운데의 독이니라. 이 독을 생사즉열반 · 번뇌즉보리로 만드는 것을 묘의 극치라 하였느니라. 양약이란 독이 바뀌어 약이 된 것을 양약이라 하였느니라

「오타전부인답서」, 1006쪽

権教の心は毒草なり法華に値いぬれば三毒の煩悩の心地を三身果満の種なりと開覚するを薬とは云うなり

권교의 마음은 독초니라. 법화경을 만나 삼독 번뇌의 마음 바탕을 삼신 과만(果滿)의 종자라고 깨닫는 것을 약이라 하느니라

『어의구전』, 728쪽

妙法の薬草なれば十界三千の毒草・蓮華の薬草なれば本来清浄なり

묘법의 약초이므로 십계 삼천의 독초가, 연화의 약초이므로 본래 청정하니라

『어의구전』, 795쪽

正直に方便を捨て但法華経を信じ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る人は煩悩業・苦の三道・法身.般若・解脱の三徳と転じて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다만 법화경을 믿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사람은 번뇌 · 업 · 고의 삼도가 법신 · 반야 · 해탈의 삼덕으로 바뀌어

「당체의초」, 512쪽
취류종就類種같은 부류에 나아간 불종
  • 머리 숙이고 손 드는 일체의 선업해탈의 종자
  • 일체의 세간 지혜 · 이해하는 마음반야의 종자
  • 마음의 존재법신의 종자
상대종相対種반대의 것에 나아간 불종
  • 번뇌반야
  • 업해탈
  • 고법신
其の相対種とは煩悩と業と苦との三道・其の当体を押えて法身と般若と解脱と称する是なり그 상대종이란 번뇌와 업과 고의 삼도를, 그 당체를 붙잡아 법신과 반야와 해탈이라 일컫는 것이 이것이니라시문불승의 983쪽
譬えば良医の能く毒を変じて薬と為すが如く훌륭한 의사가 독을 바꾸어 약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법화현의』良薬と申すは毒の変じて薬となりけるを良薬とは申し候いけり독이 바뀌어 약이 된 것을 양약이라 한다오타전부인답서 1006쪽
도표 10 · 취류종과 상대종

상대종에서 삼도와 삼덕의 짝은 번뇌–반야, 업–해탈, 고–법신으로 맞추는 것이 천태 교학의 일반적인 배대다. 시문불승의의 문은 「번뇌와 업과 고」를 「법신과 반야와 해탈」로 늘어놓아 순서가 그대로 맞지는 않지만, 뜻은 삼도의 당체가 그대로 삼덕이라는 데 있다.

양약의 두 조건 — 약효와 먹을 수 있음

앞 절에서 법화경이 밝힌 십계호구의 묘법으로만 번뇌 · 업 · 고의 삼도를 불종으로 삼는 상대종 개회가 성립한다는 것, 그러므로 삼독의 병을 고치는 양약은 법화경의 묘법밖에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법화경의 묘법을 말대 범부가 받아 지닐 수 있는 구체적인 법으로 구현한 것이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이기에, 대성인은 이 어서를 비롯한 여러 어서에서 남묘호렌게쿄를 「양약」에 비유하셨다고 강의는 본다.

강의는 「양약」의 조건으로 둘을 든다. 첫째는 중생의 삼독의 병을 고치는 힘을 갖추고 있다는 것, 말하자면 「약효」의 면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둘째로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중생이 받아 지닐 수 있는 묘법이어야 한다. 묘법이 아무리 위대한 힘을 지녀도 중생이 수행할 수 없다면 먹을 수 없는 약과 같다. 중생이 현실에서 수행할 수 있어야 참된 양약이다.

이 두 조건을 채우는 것이 법화경의 제목이다. 본래 어떤 경이든 그 경 한 부의 내용을 집약해 나타내는 것이 제호(題號)이며, 그런 뜻에서 제호는 한 경의 간요다. 천태대사는 『법화현의』에서 명 · 체 · 종 · 용 · 교의 다섯 관점으로, 법화경의 제목인 묘법연화경에 한 경의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음을 밝혔다. 그러므로 묘법 그 자체는 범부의 눈에 보이지 않고 사의하기 어려운 법이지만, 제목인 묘법연화경은 범부가 묘법을 수행하는 유력한 실마리가 된다.

보은초는 이전 권경의 제목과 법화경의 제목을 비교해, 일천제 · 방법의 중병을 고치는 양약은 법화경의 제목에 한한다고 보이신다.

五逆・謗法の大きなる一闡提人・阿含・華厳.観経・大日経等の小水の辺にては大罪の大熱さんじがたし、法華経の大雪山の上に臥ぬれば五逆・誹謗・一闡提等の大熱忽に散ずべし・されば愚者は必ず法華経を信ずべし、各各経経の題目は易き事・同じといへども愚者と智者との唱うる功徳は天地雲泥なり

오역 · 방법의 큰 일천제인은 아함 · 화엄 · 관경 · 대일경 등 작은 물가에서는 큰 죄의 큰 열이 식기 어려우니라. 법화경의 큰 설산 위에 누우면 오역 · 비방 · 일천제 등의 큰 열이 홀연히 흩어지리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는 반드시 법화경을 믿어야 하느니라. 각각 여러 경의 제목은 쉬운 일인 것은 같지만,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가 부르는 공덕은 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만큼 다르니라

「보은초」, 324쪽

같은 제목을 부르는 쉬운 수행이라도, 제경의 제목은 묘법의 힘을 갖추지 못했기에 그 공덕은 어리석은 자가 행하는 것과 지혜로운 자가 행하는 것이 천지운니의 차이가 난다. 요컨대 제경의 공덕은 근기의 높낮이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해 법화경의 제목은 묘법의 힘을 갖추었으므로 이를 부르면 어리석은 자라도 중병을 고칠 수 있다. 보은초는 이 묘법의 힘을 여러 비유로 설명하신다.

譬へば大綱は大力も切りがたし小力なれども小刀をもつて・たやすく・これをきる、譬へば堅石をば鈍刀をもてば大力も破がたし、利剣をもてば小力も破りぬべし、譬へば薬はしらねども服すれば病やみぬ食は服すれども病やまず、譬へば仙薬は命をのべ凡薬は病をいやせども命をのべず

비유하면 굵은 밧줄은 큰 힘으로도 끊기 어렵지만 작은 힘이라도 작은 칼로 쉽게 끊느니라. 비유하면 단단한 돌은 무딘 칼을 쓰면 큰 힘으로도 깨기 어렵지만 날카로운 칼을 쓰면 작은 힘으로도 깰 것이니라. 비유하면 약은 알지 못해도 먹으면 병이 낫고, 음식은 먹어도 병이 낫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선약은 목숨을 늘리고 보통 약은 병을 낫게 하되 목숨을 늘리지 못하느니라

「보은초」, 325쪽

또 보은초는 제경의 공덕이 법화경보다 못할 뿐 아니라, 남묘호렌게쿄가 홍통되면 그것들이 본래 지닌 힘까지 잃는다고 하신다.

彼の経経にしては大王・須弥山・日月・良薬・如意珠・利剣等のやうなれども法華経の題目に対すれば雲泥の勝劣なるのみならず皆各各・当体の自用を失ふ、 例せば衆星の光の一の日輪にうばはれ諸の鉄の一の磁石に値うて利性のつき大剣の小火に値て用を失ない牛乳・驢乳等の師子王の乳に値うて水となり衆狐が術・一犬に値うて失い、狗犬が小虎に値うて色を変ずるがごとし、南無妙法蓮華経と申せば南無阿弥陀仏の用も南無大日真言の用も観世音菩薩の用も一切の諸仏・諸経・諸菩薩の用皆悉く妙法蓮華経の用に失なはる

저 여러 경에서는 대왕 · 수미산 · 해와 달 · 양약 · 여의주 · 예리한 칼 등과 같지만, 법화경의 제목에 맞대면 구름과 진흙만큼 낫고 못할 뿐 아니라 모두 각각 당체의 제 작용을 잃느니라. 예컨대 뭇 별의 빛이 하나의 해에 빼앗기고, 여러 쇠가 하나의 자석을 만나 날카로움을 잃고, 큰 칼이 작은 불을 만나 쓸모를 잃고, 소젖 · 나귀젖 등이 사자왕의 젖을 만나 물이 되고, 여우 무리의 술수가 개 한 마리를 만나 사라지고, 개가 작은 호랑이를 만나 낯빛이 변하는 것과 같으니라. 남묘호렌게쿄라고 하면 나무아미타불의 작용도, 나무대일진언의 작용도, 관세음보살의 작용도, 일체의 제불 · 제경 · 제보살의 작용이 모두 다 묘법연화경의 작용에 의해 사라지느니라

「보은초」, 326쪽

이처럼 제경의 제목은 일단 먹을 수 있는 법의 약이며 저마다 분수에 맞는 약효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법화경 제목의 힘 앞에서는 뜻을 잃는다. 더구나 위의 문에 이어 「저 여러 경은 묘법연화경의 작용을 빌리지 않으면 모두 헛된 것이 되리라」(326쪽)고 하셨듯이, 제경이 지닌 각각의 힘도 원래 묘법연화경의 힘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경에 집착하여 법화경을 비방하는 말법 방법의 중생에게는, 제경이 오히려 묘법의 힘을 방해하는 독으로 작용한다.

일왕 취법 · 재왕 공귀 — 본문의 법화경과 제목의 오자

니치칸 상인은 『문저비침초』 · 『보은초 문단』 등에서 이 묘법연화경 제목의 뜻을 「일왕 취법(一往就法)」 · 「재왕 공귀(再往功歸)」 두 관점에서 밝히셨다.

「취법」이란 「법에 나아간다」는 뜻으로, 문상의 법화경에 즉해서 묘법연화경의 뜻을 보이는 것이다. 법화경 한 부를 통틀어 묘법연화경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뜻을 찾아보면 적문의 묘법연화경은 개삼현일(開三顯一)의 묘법을, 본문의 묘법연화경은 개적현본(開迹顯本)의 묘법을 보인다. 그러므로 본적 두 문에서 묘법연화경의 뜻은 다르다.

대성인은 이 취법의 관점, 다시 말해 본적상대(本迹相對)의 관점에서, 재세 중생의 탈익은 어디까지나 본문에 있고 적문은 숙익(熟益)에 지나지 않음을 보이셨다. 관심의 본존초에 이렇게 있다.

本門を以て之を論ずれば一向に末法の初を以て正機と為す 所謂一往之を見る時は久種を以て下種と為し大通前四味迹門を熟と為して本門に至つて等妙に登らしむ

본문으로써 이를 논하면 한결같이 말법의 처음을 바른 근기로 삼느니라. 이른바 일왕 이를 볼 때는 구원의 종자를 하종으로 삼고, 대통 · 전사미 · 적문을 숙으로 삼아 본문에 이르러 등각 · 묘각에 오르게 하느니라

「관심의 본존초」, 249쪽

그러나 법화경 문상의 본문의 이익은 어디까지나 본이유선(本已有善)의 재세 및 정상의 중생에 대한 것이며, 본미유선(本未有善)의 말법 중생에게는 이익이 없다.

天台大師は玄・文・止観に秘せんと思召ししかども末代の為にや止観・十章・第七正観の章に至りて粗書かせ給いたりしかども薄葉に釈を設けてさて止み給いぬ、但理観の一分を示して事の三千をば斟酌し給う。彼の天台大師は迹化の衆なり

천태대사는 『법화현의』 · 『법화문구』 · 『마하지관』에 감추려 생각하셨으나 말대를 위해서인지 『마하지관』 십장의 제칠 정관장에 이르러 대략 쓰셨지만, 엷게 해석을 붙이고 그만두셨느니라. 다만 이관(理觀)의 일부를 보이시고 사(事)의 삼천은 헤아려 삼가셨느니라. 저 천태대사는 적화의 무리이니라

「오타사에몬노조답서」, 1016쪽

一念三千の観法に二つあり一には理・二には事なり天台・伝教等の御時には理なり今は事なり観念すでに勝る故に大難又色まさる、彼は迹門の一念三千・此れは本門の一念三千なり

일념삼천의 관법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이(理)요 둘째는 사(事)니라. 천태 · 전교 등의 때에는 이이고 지금은 사이니라. 관념이 이미 뛰어나므로 대난 또한 더하느니라. 저것은 적문의 일념삼천이요 이것은 본문의 일념삼천이니라

「치병대소권실위목」, 998쪽

여기서 말하는 「사의 삼천」 · 「본문의 일념삼천」은 당연히 재세 득탈을 위한 문상의 법문이 아니다. 니치칸 상인은 이 점을 밝히시기 위해 「재왕 공귀」의 관점을 세우셨다.

「공귀」란 「공덕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 관점에서, 성불의 공덕을 가져오는 힘이 귀착하는 근원의 한 법, 다시 말해 일체의 공덕을 갖춘 종자의 법으로서의 묘법연화경을 밝힌다. 문상 본적 두 문의 묘법연화경은 숙 · 탈의 법이며 일체의 공덕이 돌아가는 종자의 법이라 할 수 없는 데 비해, 문저의 남묘호렌게쿄만이 참된 종자의 법이요 일체 공덕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관심의 본존초는 앞의 문 바로 뒤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再往之を見れば迹門には似ず本門は序正流通倶に末法の始を以て詮と為す、在世の本門と末法の始は一同に純円なり但し彼は脱此れは種なり彼は一品二半此れは但題目の五字なり

재왕 이를 보면 적문과 같지 않아, 본문은 서분 · 정종분 · 유통분이 모두 말법의 처음을 요체로 삼느니라.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은 한결같이 순원이니라. 다만 저것은 탈이고 이것은 종이니라. 저것은 일품이반이고 이것은 다만 제목의 오자니라

「관심의 본존초」, 249쪽

대성인은 이 종탈상대(種脫相對)의 관점에서 문상의 본문과 문저의 남묘호렌게쿄를 맞세워, 남묘호렌게쿄야말로 참으로 민중을 구제하는 힘을 지닌 법체임을 밝히셨다. 시조깅고전답서에 이렇게 있다.

法華経本迹相対して論ずるに迹門は尚始成正覚の旨を明す故にいまだ留難かかれり、本門はかかる留難を去りたり然りと雖も 題目の五字に相対する時は末法の機にかなはざる法なり、真実一切衆生・色心の留難を止むる秘術は唯南無妙法蓮華経なり

법화경을 본적상대하여 논하면, 적문은 아직 시성정각의 뜻을 밝히므로 여전히 장애가 걸려 있느니라. 본문은 이러한 장애를 벗어났느니라. 그렇지만 제목의 오자에 맞대면 말법의 근기에 맞지 않는 법이니라. 진실로 일체중생의 색심의 장애를 그치게 하는 비술은 오직 남묘호렌게쿄니라

「시조깅고전답서」, 1170쪽

또 다음 어서들에서는, 문상의 법화경은 말법 중생의 중병을 고치는 양약이 아니고, 대성인이 홍통하시는 묘법연화경의 오자만이 말법의 일체중생을 구하는 양약임을 분명히 보이신다.

末法に入りなば迦葉・阿難等・文殊・弥勒菩薩等・薬王・観音等のゆづられしところの小乗経・大乗経・並びに法華経は文字はありとも衆生の病の薬とはなるべからず、所謂病は重し薬はあさし、其の時上行菩薩出現して妙法蓮華経の五字を一閻浮提の一切衆生にさづくべし

말법에 들어가면 가섭 · 아난 등, 문수 · 미륵보살 등, 약왕 · 관음 등이 부촉받은 소승경 · 대승경 및 법화경은 문자는 있어도 중생의 병의 약이 되지 못하느니라. 이른바 병은 무겁고 약은 얕으니라. 그때 상행보살이 출현하여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일염부제의 일체중생에게 주리라

「다카하시입도전답서」, 1458쪽

今末法に入りぬれば余経も法華経もせんなし、但南無妙法蓮華経なるべし、かう申し出だして候も・わたくしの計にはあらず、釈迦・多宝・十方の諸仏・地涌千界の御計なり、此の南無妙法蓮華経に余事をまじへば・ゆゆしきひが事なり、日出でぬれば・とほしびせんなし・雨のふるに露なにのせんかあるべき、嬰児に乳より外のものをやしなうべきか、良薬に又薬を加えぬる事なし

지금 말법에 들어왔으니 다른 경도 법화경도 소용없느니라. 다만 남묘호렌게쿄일 것이니라. 이렇게 말하는 것도 나의 사사로운 헤아림이 아니라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 · 지용천계의 헤아림이니라. 이 남묘호렌게쿄에 다른 일을 섞으면 큰 잘못이니라. 해가 뜨면 등불은 소용없고, 비가 오는데 이슬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갓난아이에게 젖 외의 것을 먹이겠는가. 양약에 또 약을 더하는 일은 없느니라

「우에노전답서」, 1546쪽

「병은 무겁고 약은 얕다」는 말은 이 장의 「제일의 중병」과 정확히 짝을 이룬다. 소승 · 대승은 물론 문상의 법화경까지도 말법의 중병에는 「얕은 약」이며, 그 무거운 병에 맞는 약은 상행보살이 일염부제에 주는 오자뿐이다. 「양약에 또 약을 더하는 일은 없다」는 말은 제일의 양약이 다른 약과 섞여서는 안 된다는, 이 장의 결론의 실천적 귀결이다.

이 남묘호렌게쿄의 힘은 법화경을 믿고 받으려 하지 않는 방법의 중생에게도 발휘된다. 그것이 문법하종(聞法下種)에 의한 역연의 공덕이다.

오중현을 갖춘 법체와 역연의 공덕

강의는 마지막으로 남묘호렌게쿄가 명 · 체 · 종 · 용 · 교를 갖춘 법체라는 점에 주목해, 그 문법(聞法)이 불신 · 방법의 중생에게도 역연의 공덕을 가져오는 이유를 생각한다. 대성인은 남묘호렌게쿄가 명 · 체 · 종 · 용 · 교의 오중현을 갖춘 법체임을 이렇게 밝히신다.

是好良薬とは寿量品の肝要たる名体宗用教の南無妙法蓮華経是なり

「이 좋은 양약」이란 수량품의 간요인 명 · 체 · 종 · 용 · 교의 남묘호렌게쿄가 이것이니라

「관심의 본존초」, 251쪽

末法に入て今日蓮が唱る所の題目は前代に異り自行化他に亘りて南無妙法蓮華経なり名体宗用教の五重玄の五字なり

말법에 들어 지금 니치렌이 부르는 제목은 앞 시대와 달라 자행 · 화타에 걸친 남묘호렌게쿄니라. 명 · 체 · 종 · 용 · 교 오중현의 오자니라

「삼대비법품승사」, 1022쪽

大覚世尊仏眼を以つて末法を鑒知し此の逆・ 謗の二罪を対治せしめんが為に一大秘法を留め置きたもう…爾の時に大覚世尊寿量品を演説し然して後に十神力を示現して四大菩薩に付属したもう、其の所属の法は何物ぞや、法華経の中にも広を捨て略を取り略を捨てて要を取る所謂妙法蓮華経の五字・名・体・宗・用・教の五重玄なり

대각세존은 불안으로 말법을 내다보시고 이 역죄 · 방법의 두 죄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 하나의 대비법을 남겨 두셨느니라 … 그때 대각세존은 수량품을 연설하시고 그 뒤에 십신력을 나투어 네 대보살에게 부촉하셨느니라. 그 부촉하신 법은 무엇인가. 법화경 가운데서도 광을 버리고 략을 취하고, 략을 버리고 요를 취한, 이른바 묘법연화경의 오자, 명 · 체 · 종 · 용 · 교의 오중현이니라

「소야입도전허어서」, 1030쪽

마지막 문에 이 장의 모든 요소가 모여 있다는 점에 주의할 만하다. 「역죄 · 방법의 두 죄」는 제일의 중병, 「대비법을 남겨 두셨다」는 수량품의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 「십신력을 나투어 네 대보살에게 부촉」은 신력품의 문, 「광을 버리고 략을 취하고 략을 버리고 요를 취한」은 다음 편 제13장의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한다」를 미리 보인다.

명 · 체 · 종 · 용 · 교란 천태대사가 『법화현의』에서 법화경의 대강을 밝히기 위해 쓴 다섯 관점이다. 명은 법화경의 제명인 묘법연화경, 체는 법화경이 드러내는 이치인 제법실상, 종은 법화경의 종요인 본인 · 본과, 용은 법화경이 중생에게 가져오는 의심을 끊고 믿음을 내는(斷疑生信) 힘, 교는 법화경의 교상이다. 위의 어서들은 남묘호렌게쿄가 이 다섯을 모두 갖춘 법체임을 밝히신 것이다. 강의는 다른 어서로 이를 하나씩 확인한다.

오중현명(名)
천태의 뜻법화경의 제명 묘법연화경
남묘호렌게쿄에서無作の三身の宝号を南無妙法蓮華経と云うなり무작의 삼신의 보호를 남묘호렌게쿄라 하느니라자기 마음의 불성을 불러 드러내는 「唯一音」(오직 한 소리)
오중현체(体)
천태의 뜻제법실상
남묘호렌게쿄에서妙法蓮華経とは我等衆生の仏性と…一体不二なる理を妙法蓮華経と名けたるなり묘법연화경이란 우리 중생의 불성과 … 하나여서 둘이 아닌 이치를 묘법연화경이라 이름한 것이니라법화초심성불초 557쪽
오중현종(宗)
천태의 뜻본인 · 본과
남묘호렌게쿄에서釈尊の因行果徳の二法は妙法蓮華経の五字に具足す석존의 인행과 과덕의 두 법은 묘법연화경의 오자에 갖추어져 있느니라관심의 본존초 246쪽仏因・仏果・同時に之を得るなり불인 · 불과를 동시에 얻느니라당체의초 513쪽
오중현용(用)
천태의 뜻단의생신의 힘
남묘호렌게쿄에서小児乳を含むに其の味を知らざれども自然に身を益す어린아이가 젖을 물 때 그 맛을 알지 못해도 자연히 몸을 이롭게 하느니라사신오품초 341쪽자연히 몸을 이롭게 함
오중현교(教)
천태의 뜻법화경의 교상
남묘호렌게쿄에서체 · 종 · 용이 상즉한 법체가 남묘호렌게쿄라는 이름으로 드러난 것 자체석존 탈익의 법화경과 구별
도표 11 · 오중현과 남묘호렌게쿄

먼저 「체」의 뜻은 일생성불초(383쪽)의 가르침에 맞추어 볼 수 있다고 강의는 말한다. 곧 중생이 본래 갖춘 묘한 이치가 묘법연화경으로 구현되어 있으므로, 묘법연화경이라고 부르는 것이 곧 그 묘한 이치를 관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또 법화초심성불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凡そ妙法蓮華経とは我等衆生の仏性と梵王・帝釈等の仏性と舎利弗・目連等の仏性と文殊・弥勒等の仏性と三世の諸仏の解の妙法と一体不二なる理を妙法蓮華経と名けたるなり

무릇 묘법연화경이란 우리 중생의 불성과 범왕 · 제석 등의 불성과 사리불 · 목련 등의 불성과 문수 · 미륵 등의 불성과 삼세 제불이 깨달은 묘법이 하나여서 둘이 아닌 이치를 묘법연화경이라 이름한 것이니라

「법화초심성불초」, 557쪽

곧 묘법연화경이란 일체중생에게 평등하게 갖추어진 이치이며, 그 이치가 곧 불성이요 제불이 깨달은 묘법이다.

다음 「종」의 뜻은 관심의 본존초의 「석존의 인행과 과덕의 두 법은 묘법연화경의 오자에 갖추어져 있느니라. 우리가 이 오자를 수지하면 자연히 저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시느니라」(246쪽)와, 당체의초의 다음 문에서 볼 수 있다.

至理は名無し聖人理を観じて万物に名を付くる時・因果倶時・不思議の一法之れ有り之を名けて妙法蓮華と為す此の妙法蓮華の一法に十界三千の諸法を具足して 闕減無し之を修行する者は仏因・仏果・同時に之を得るなり

지극한 이치에는 이름이 없느니라. 성인이 이치를 관하여 만물에 이름을 붙일 때, 인과구시(因果俱時)의 불가사의한 한 법이 있으니 이를 이름하여 묘법연화라 하느니라. 이 묘법연화의 한 법에 십계 삼천의 제법을 갖추어 빠짐이 없느니라. 이를 수행하는 자는 불인 · 불과를 동시에 얻느니라

「당체의초」, 513쪽

법화경의 종요인 본인 · 본과는 본래 있는 묘한 이치에 즉한 부처님 자행의 인과이며, 법화경에서는 수량품에서 오백진점겁 구원의 석존 성도의 인과로 밝혀진다. 천태대사는 이 본인 · 본과가 제경의 부분적인 인과와 달리 그 많은 인과를 포섭하는 근본의 인과이며 성불의 요체라고 했다. 이 인과를 근본으로 삼기에 여러 수행이 성불의 수행으로 성립하며, 반대로 이 인과를 근본으로 하지 않으면 제경의 수행은 허망해진다. 그리고 이 인과를 설해 밝히는 것이 법화경의 종요라는 것이다.

위의 관심의 본존초 문은 석존의 인행 · 과덕을 갖춘 오자를 수지함으로써 우리 중생이 저절로 부처님 인과의 공덕을 받을 수 있음을 보이고, 당체의초 문은 「인과구시 · 불가사의의 한 법」인 묘법연화를 수행해 불인 · 불과를 동시에 증득할 수 있다고 한다. 곧 묘법연화경은 법화경의 종요인 본인 · 본과 그 자체이며, 더구나 묘법연화경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짐으로써 우리 중생이 수지하고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용」의 뜻은 사신오품초와 법화경제목초에서 볼 수 있다.

問う其の義を知らざる人唯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るに解義の功徳を具するや否や、答う小児乳を含むに其の味を知らざれども自然に身を益す耆婆が妙薬誰か弁えて之を服せん水心無けれども火を消し火物を焼く豈覚有らんや

묻되, 그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다만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데 뜻을 아는 공덕이 갖추어지는가. 답하되, 어린아이가 젖을 물 때 그 맛을 알지 못해도 자연히 몸을 이롭게 하느니라. 기바의 묘약을 누가 분별하고서 먹겠는가. 물은 마음이 없지만 불을 끄고, 불은 사물을 태우니 어찌 깨달음이 있겠는가

「사신오품초」, 341쪽

問うて云く火火といへども手にとらざればやけず水水といへども口にのまざれば水のほしさもやまず、只南無妙法蓮華経と題目計りを唱うとも義趣をさとらずば悪趣をまぬかれん事いかがあるべかるらん、答えて云く師子の筋を琴の絃として一度奏すれば余の絃悉くきれ梅子のすき声をきけば口につたまりうるをう世間の不思議すら是くの如し況や法華経の不思議をや

묻되, 불이라 불이라 해도 손에 잡지 않으면 데지 않고, 물이라 물이라 해도 입으로 마시지 않으면 목마름도 그치지 않느니라. 다만 남묘호렌게쿄라고 제목만 불러도 뜻을 깨닫지 못하면 악취를 면하는 일이 어찌 되겠는가. 답하되, 사자의 힘줄을 거문고 줄로 하여 한 번 타면 다른 줄이 모두 끊어지고, 매실의 신 소리를 들으면 입에 침이 고이느니라. 세간의 불가사의조차 이와 같으니 하물며 법화경의 불가사의이겠는가

「법화경제목초」, 940쪽

곧 남묘호렌게쿄는 중생의 몸을 자연히 이롭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천태대사가 말하는 법화경의 「용」이란 적문의 개삼현일이나 본문의 개적현본의 설법에 의한 단의생신의 작용이다. 천태는 이전의 방편경은 화타(化他)의 권실이지(權實二智)에 말미암기 때문에 단의생신의 힘이 미약하지만, 법화경의 개삼현일 · 개적현본은 제법실상의 이치를 깊고 넓게 비추는 부처님 자행의 권실이지에 의한 교묘한 설법이므로 단의생신의 힘도 크다고 했다. 또 그 법화경의 힘의 밑바탕에는 부처님 자행의 인과에서 일어나는 자비가 있다고 하여, 단의생신의 힘을 「용의 용」, 더 근본적인 자비를 「용의 종」이라 부르며 나누었다.

이에 대해 남묘호렌게쿄의 힘은 교묘한 설법의 힘에 의한 단의생신의 작용이라기보다, 본래 있는 묘한 이치에 즉한 부처님 자행의 인과에서 일어나는 더 직접적인 작용이며, 그래서 중생을 자연히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또 「체에 즉한 종」의 직접적인 작용이라는 점에 남묘호렌게쿄가 하종의 이익을 지니는 까닭이 있다고 한다.

강의는 이 점을 니치칸 상인의 가르침으로 더 자세히 살핀다. 니치칸 상인은 『당류행사초』에서 부처님 자행의 인과란 경지명합(境智冥合)의 처음과 끝이라는 것을 밝히셨다.

天台釈して云く『境地和合する則は因果有り、境を照らすこと未だ窮らざるを因と名づけ、源を尽くすを果と為す』云云。当に知るべし、境地和合の始めを名づけて因と為す、故に照境末窮と云い、境智和合の終わりを名づけて果と為す。故に尽源為果と云うなり。是れ則ち刹那始終一念の因果なり

천태가 풀어 이르되 「경과 지가 화합하면 인과가 있다. 경을 비춤이 아직 다하지 않은 것을 인이라 이름하고 근원을 다한 것을 과라 한다」 운운. 마땅히 알지니, 경지화합의 처음을 이름하여 인이라 하니 그러므로 「경을 비춤이 아직 다하지 않음」이라 하고, 경지화합의 끝을 이름하여 과라 하니 그러므로 「근원을 다함을 과로 삼는다」고 하느니라. 이는 곧 찰나의 처음과 끝, 한 생각의 인과니라

니치칸 상인 『당류행사초』

그리고 이 부처님 자행의 경지명합의 인과를 무작삼신(無作三身)에 배대하여, 지(智)는 무작의 보신, 경(境)은 무작의 법신, 경과 지가 합해 일으키는 자비의 작용은 무작의 응신이라고 보이신 뒤, 다시 그것을 「체」 · 「종」 · 「용」의 삼장(三章)에 배대하신다.

此の三身、即ち三徳三章なり。謂く、無作の法身は即ち法身の徳此れ妙体なり。無作の報身は即ち般若の徳是れ妙宗なり、無作の応身は即ち解脱の徳是れ妙用成り、無作三身の宝号を南無妙法蓮華経と云うなり、是好良薬、結要付嘱之を思いあわすべし

이 삼신은 곧 삼덕이요 삼장이니라. 이르자면 무작의 법신은 곧 법신의 덕이니 이것이 묘체요, 무작의 보신은 곧 반야의 덕이니 이것이 묘종이요, 무작의 응신은 곧 해탈의 덕이니 이것이 묘용이니라. 무작삼신의 보호(寶號)를 남묘호렌게쿄라 하느니라. 「시호양약」과 「결요부촉」을 이와 아울러 생각할지니라

니치칸 상인 『당류행사초』

두 가르침을 합쳐 생각하면, 경지명합한 부처님 자행의 생명에 체 · 종 · 용이 갖추어져 있고, 그것이 곧 무작삼신이며, 그 보호를 남묘호렌게쿄라 한다. 그러므로 남묘호렌게쿄의 힘은 체인 경, 그리고 종인 지와 상즉하고 있으며, 그런 뜻에서 부처님 내증에서 일어나는 직접적인 작용이다. 또 이 남묘호렌게쿄의 용은 천태가 말한 「용의 종」, 곧 경과 지가 합한 데서 일어나는 자비의 작용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니치칸 상인이 이 대목 끝에 「시호양약 · 결요부촉을 아울러 생각하라」고 덧붙이신 것은, 이 장의 둘째 경문(수량품)과 넷째 경문(신력품)이 바로 이 무작삼신의 보호를 가리킨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렇게 남묘호렌게쿄는 체 · 종 · 용이 상즉하는 법체이므로, 그 「명」의 뜻도 경전의 제호와 같은 줄에 놓아서는 안 된다. 앞에 인용한 『당류행사초』의 「무작삼신의 보호」는 『어의구전』의 「무작의 삼신의 보호를 남묘호렌게쿄라 하느니라」(752쪽)를 바탕으로 하신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남묘호렌게쿄는 「무작삼신의 보호」이며, 체 · 종 · 용이 상즉하는 부처님 자행의 묘법에 즉해 이름 붙여진 「명」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부르는 데 무량한 공덕이 갖추어진다. 법화초심성불초에 이렇게 있다.

故に一度妙法蓮華経と唱うれば一切の仏・一切の法.一切の菩薩・一切の声聞・一切の梵王・帝釈・閻魔・法王・日月・衆星・天神・地神・乃至地獄・餓鬼・畜生・修羅・人天・一切衆生の心中の仏性を唯一音に喚び顕し奉る功徳・無量無辺なり、我が己心の妙法蓮華経を本尊とあがめ奉りて我が己心中の仏性・南無妙法蓮華経とよびよばれて顕れ給う処を仏とは云うなり

그러므로 한 번 묘법연화경이라고 부르면 일체의 부처 · 일체의 법 · 일체의 보살 · 일체의 성문 · 일체의 범왕 · 제석 · 염마법왕 · 해와 달 · 뭇 별 · 천신 · 지신, 내지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 · 천, 일체중생의 마음속 불성을 오직 한 소리로 불러 드러내는 공덕이 무량무변하니라. 나의 기심(己心)의 묘법연화경을 본존으로 우러르고, 나의 기심 속의 불성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리고 불러져 나타나시는 곳을 부처라 하느니라

「법화초심성불초」, 557쪽

곧 남묘호렌게쿄라는 「명」은 자기 마음의 불성을 불러 드러내는 「오직 한 소리(唯一音)」이며, 일체중생은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러 불성을 불러 드러냄으로써 부처가 된다.

그리고 남묘호렌게쿄가 체 · 종 · 용에 즉한 이름이기에, 불신 · 방법의 중생도 이 이름을 들음으로써 하종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일념삼천법문은 남묘호렌게쿄에 의한 「문법하종」의 이익을 이렇게 밝히신다.

妙法蓮華経と唱うる時・心性の如来顕る耳にふれし類は無量阿僧祇劫の罪を滅す一念も随喜する時 即身成仏す縦ひ信ぜざれども種と成り熟と成り必ず之に依て成仏す、妙楽大師の云く『若は取若は捨・耳に経て縁と成る、或いは順或いは違終いに斯れに因つて脱す』と云云、日蓮云く若取若捨或順或違の文肝に銘ずる詞なり法華経に若有聞法者等と説れたるは是か

묘법연화경이라고 부를 때 심성의 여래가 나타나느니라. 귀에 닿은 무리는 무량아승기겁의 죄를 멸하고, 한 생각이라도 따라 기뻐할 때 즉신성불하느니라. 설령 믿지 않더라도 종자가 되고 숙이 되어 반드시 이로써 성불하느니라. 묘락대사가 이르되 「취하든 버리든 귀를 거쳐 인연이 되고, 따르든 어기든 마침내 이로 인해 해탈한다」 운운. 니치렌이 이르되, 「약취약사 · 혹순혹위」의 문은 간에 새길 말이니라. 법화경에 「만약 법을 듣는 자가 있으면」 등이라 설하신 것이 이것인가

「일념삼천법문」, 415쪽

묘법연화경을 믿고 받아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순연(順緣)의 중생은 즉신성불하고, 믿지 않고 어기는 중생도 남묘호렌게쿄의 이름이 귀에 닿는 것만으로 성불의 종자를 이룬다. 이것이 「역연의 공덕」이다.

『어의구전』에 이렇게 있다.

本心を失うとは謗法なり本心とは下種なり不失とは法華経の行者なり失とは本有る物を失う事なり、今日蓮等の類い南無妙法蓮華経と唱え奉るは本心を失わざるなり

본심을 잃는다는 것은 방법이니라. 본심이란 하종이니라. 잃지 않는다는 것은 법화경의 행자니라. 잃는다는 것은 본래 있는 것을 잃는 일이니라. 지금 니치렌 등의 무리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것은 본심을 잃지 않는 것이니라

『어의구전』, 755쪽

이 문은 수량품 양의병자 비유의 「혹은 본심을 잃고 혹은 잃지 않은 자」를 풀이한 것으로, 이 장 둘째 경문의 「본심을 잃은 자식」이 누구인지를 정면으로 밝힌다. 법화경에 등지는 방법의 중생도 본래는 묘법의 당체이지만, 생사를 떠도는 과정에서 불신 · 방법을 거듭했기 때문에 본래 있는 묘법과의 근원적인 결연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런 중생에게 실상의 이치를 추상적인 말로 설해 봐야 불신 · 방법을 거듭할 뿐일 것이다. 그러나 궁극의 묘법이 부처님 내증의 체 · 종 · 용을 갖추고, 더욱이 분명한 이름으로 드러남으로써 귀를 거치는 결연, 곧 문법하종이 가능해지고, 잊어버린 묘법과의 결연을 되찾을 수 있다.

이 문법하종이야말로 성불의 근본 조건이므로 하종의 이익은 다른 어떤 공덕보다 뛰어나다. 그래서 현방법초는 「법을 듣고 비방을 일으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항하사의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聞法生謗 堕於地獄 勝於供養 恒沙仏者)」는 경문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此の文の心は法華経をはうじて地獄に堕ちたるは釈迦仏・阿弥陀仏等の恒河沙の仏を供養し帰依渇仰する功徳には百千万倍すぎたりととかれたり

이 문의 마음은, 법화경을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진 것은 석가불 · 아미타불 등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부처님을 공양하고 귀의하여 갈앙하는 공덕보다 백천만 배 더하다고 설하신 것이니라

「현방법초」, 451쪽

설령 역연이라도 문법하종의 공덕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이신 것이다. 남묘호렌게쿄가 일천제 · 방법의 극중대병을 고치는 「제일의 양약」이라 하는 까닭은, 이처럼 하종 결연의 공덕으로 병을 근원에서 고치기 때문이라고 강의는 결론짓는다.

마지막으로 오중현의 「교」의 관점에서 남묘호렌게쿄의 뜻을 말하면, 부처님 내증의 체 · 종 · 용이 상즉하는 법체가 남묘호렌게쿄라는 이름으로 드러난 것 자체가 「교」이며, 이로써 석존의 탈익의 법화경과 분명히 구별되었다고 강의는 본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제일의 양약」의 근거를 두 겹으로 세운다. 하나는 상대종 개회 — 법화경의 묘법만이 번뇌 · 업 · 고를 그대로 삼덕으로 바꾸는 「변독위약」의 힘을 지닌다는 것. 다른 하나는 오중현 — 남묘호렌게쿄가 부처님 자행의 체 · 종 · 용을 갖춘 이름(무작삼신의 보호)이기에, 믿는 이는 즉신성불하고 비방하는 이도 귀로 들어 하종을 받는다는 것. 그래서 말법의 「본심을 잃은 자식」, 곧 방법의 중생에게는 남겨진 이 약을 「들려주는」 것 자체가 치료의 시작이 된다.

일염부제와 정상 이천 년 — 지금 유포하지 않으면

其の三의 끝 문장은 이 장 전체를 한 번 더 시간과 공간 위에 놓는다. 「이 일염부제는 세로와 너비가 칠천 유선나요 팔만의 나라가 있느니라. 정상 이천 년 동안 아직 광선유포되지 않았는데, 법화경을 지금 세상에 이르러 유포시키지 못한다면 석존은 큰 거짓말을 한 부처님이 되고, 다보불의 증명은 물거품과 같아지며, 시방분신의 부처님들이 거든 혀도 파초와 같아지리라.」

공간으로는 「일염부제」, 곧 인간이 사는 온 세계다. 「팔만의 나라」라는 말은 일본 한 나라를 넘어선 범위를 가리키며, 약왕품의 「염부제에 광선유포하여」를 이어받는다. 시간으로는 「정상 이천 년」, 곧 정법 천 년 · 상법 천 년 동안 법화경은 아직 광선유포되지 않았다. 강의가 앞에서 정리했듯, 문상의 법화경은 정상의 본이유선 중생에게 탈익을 주었지만, 수량 문저의 오자는 그 시대에 드러나지 않았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정상에 지용보살이 나타나지 않은 까닭을 「요컨대 원교의 근기는 있으나 원교의 때가 없기 때문」(253쪽)이라 하셨다. 그 「원교의 때」가 바로 지금, 말법이다.

그러므로 지금 유포되지 않으면 석존의 약왕품 예언 「후오백세에 광선유포하여 단절시키지 않으리라」는 거짓말이 된다. 그 법화경을 「모두 진실이니라」라고 증명한 다보불의 말은 물거품처럼 꺼지고, 신력품에서 범천까지 내민 시방분신 제불의 광장설은 속이 빈 파초 줄기처럼 된다. 대성인의 어조는 단정이 아니라 가정이다 — 「유포시키지 못한다면」. 이 가정은 거꾸로, 지금 유포되어야 하고 반드시 유포된다는 확신을 말한다. 일곱 경문이 「누구를 위해」를 증명했다면, 이 마지막 문장은 「언제, 어디서」를 못 박는다 — 지금, 온 세계에서.

그리고 이 문장에 나온 「다보불의 증명」과 「시방분신 부처님의 조설」이 그대로 다음 제11장 물음의 소재가 된다. 제11장은 「다보의 증명 · 시방의 조설 · 지용의 용출, 이것들은 누구를 위함인가」로 시작한다.

제11장 조증 · 조현 등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어서 335쪽 11행~336쪽 1행 · 第十一 助証・助顕等の末法正意を明か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335쪽 11행 ~ 336쪽 1행
本文 · 어서 원문

疑つて云く多宝の証明・十方の助舌・地涌の涌出此等は誰人の為ぞや、 答えて曰く世間の情に云く在世の為と、 日蓮云く舎利弗・目犍等は現在を以て之を論ずれば智慧第一・神通第一の大聖なり、 過去を以て之を論ずれば金竜陀仏・青竜陀仏なり、 未来を以て之を論ずれば華光如来、 霊山を以て之を論ずれば三惑頓尽の大菩薩、 本を以て之を論ずれば内秘外現の古菩薩なり、 文殊・弥勒等の大菩薩は過去の古仏・現在の応生なり、 梵帝・日月・四天等は初成已前の大聖なり、 其の上前四味・四教・一言に之を覚りぬ・仏の在世には一人に於ても無智の者之れ無し 誰人の疑を晴さんが為に多宝仏の証明を借り諸仏舌を出し地涌の菩薩を召さんや方方以て謂れ無き事なり、 経文に随つて「況滅度後・令法久住」等云云、 此等の経文を以て之を案ずるに偏に我等が為なり、 随つて天台大師当世を指して云く「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わん」 伝教大師当世を記して云く「正像稍過ぎ已つ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等云云、 「末法太有近」の五字は我が世は法華経流布の世に非ずと云う釈なり。

풀이

의심하여 이르되, 다보(多宝)의 증명, 시방(十方)의 조설(助舌), 지용(地涌)의 용출, 이것들은 누구를 위함인고. 답하되, 세간의 생각으로는 재세를 위함이라 하리라. 니치렌이 이르되, 사리불 · 목건련 등은 현재로써 이를 논하면 지혜제일 · 신통제일의 대성(大聖)이니라. 과거로써 이를 논하면 금룡타불 · 청룡타불이니라. 미래로써 이를 논하면 화광여래요, 영산으로써 이를 논하면 삼혹을 단번에 다한 대보살이요, 본지로써 이를 논하면 안으로 감추고 밖으로 나툰(內秘外現) 옛 보살이니라. 문수 · 미륵 등의 대보살은 과거의 옛 부처요 현재의 응생(應生)이니라. 범천 · 제석 · 해와 달 · 사천왕 등은 처음 성도하시기 이전부터의 대성이니라. 그 위에 전사미(前四味) · 사교(四教)를 한마디에 이를 깨달았느니라. 부처님 재세에는 한 사람도 지혜 없는 자가 없었느니라. 누구의 의심을 풀기 위하여 다보불의 증명을 빌리고 제불이 혀를 내밀고 지용의 보살을 부르시겠는가. 어느 쪽으로 보아도 까닭 없는 일이니라. 경문에 따르면 「하물며 멸도 후이랴」 · 「법으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리라」 운운. 이러한 경문으로써 이를 생각하건대 오로지 우리를 위함이니라. 따라서 천태대사는 지금 세상을 가리켜 이르되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적시리라」 하고, 전교대사는 지금 세상을 적어 이르되 「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도다」 운운. 「말법태유근(末法太有近)」의 다섯 자는 내 시대는 법화경이 유포될 시대가 아니라는 해석이니라.

어구 풀이

多宝の証明다보의 증명
견보탑품 제11에서 땅에서 솟은 보탑 속의 다보여래가 「석가모니세존이여, 설하신 바는 모두 진실이니라」라고 큰 소리로 증명한 일. 다보여래는 어디서든 법화경을 설하는 부처가 있으면 그 진실을 증명하려고 나타난다는 서원을 세운 부처다.
十方の助舌시방의 조설
신력품 제21에서 석존이 광장설을 내어 범천에 이르게 하자, 보수 아래 사자좌의 시방분신 제불도 똑같이 광장설을 낸 일. 석존을 「혀로 도와」 법의 진실을 증명했으므로 조설이라 한다.
地涌の涌出지용의 용출
종지용출품 제15에서 사바세계의 대지가 갈라지며 무량천만억의 보살이 동시에 솟아오른 일. 이 지용보살은 신력품에서 결요부촉을 받는 말법 홍통의 주체다.
助証・助顕조증 · 조현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이 이 단에 붙인 이름. 석존의 설법을 돕는 증명(다보의 증명 · 시방의 조설)과 도와서 드러냄(지용의 용출)을 아울러 가리킨다.
世間の情세간의 생각
세상 사람들의 통속적인 견해. 강의는 이를 「법화경은 말법의 열등한 근기를 위한 가르침이 아니다」라는 염불종의 「이심해미(理深解微)」 같은 사의에 미혹된 세간의 미정(迷情)으로 본다.
舎利弗・目犍사리불 · 목건련
석존의 십대제자 가운데 지혜제일 · 신통제일. 성문의 대표다.
金竜陀仏・青竜陀仏금룡타불 · 청룡타불
사리불 · 수보리 등 성문 제자의 과거세 본지가 부처였다는 전승. 『법화문구』 권1상에 「만약 신자(사리불)의 교화를 보면 곧 용타의 본을 본다」고 하고, 『법화문구기』는 사리불이 금룡타불이라는 것은 『대보적경』의 설이라는 전승과, 「수보리는 동방 청룡타불」이라는 진제(眞諦)의 설을 소개한다.
華光如来화광여래
비유품 제3에서 사리불이 받은 미래 성불의 수기 이름. 적문에서 성문 제자들이 차례로 수기를 받는 첫머리다.
三惑頓尽삼혹돈진
견사혹 · 진사혹 · 무명혹의 세 미혹을 단번에 다함. 강의는 성문들이 적문의 개삼현일로 무명 일부를 끊어 초주(初住)에 오르고, 본문의 개근현원을 듣고 등각(等覺)에 올랐다고 본다.
内秘外現내비외현
오백제자수기품 제8의 「안으로 보살의 행을 감추고 밖으로 성문임을 나툰다」. 재세의 성문 제자는 겉으로는 성문이지만 본지는 중생을 구하는 보살이라는 뜻.
過去の古仏・現在の応生과거의 옛 부처 · 현재의 응생
문수 · 미륵 등 대보살은 과거세에 이미 성불한 부처였으나, 석존의 설법을 돕기 위해 보살의 모습으로 응해 태어났다는 뜻.
初成已前の大聖초성 이전의 대성
범천 · 제석 · 일천 · 월천 · 사천왕 등은 석존이 처음 성도하기 이전부터의 대성이라는 뜻. 제9장의 「초성도 때 부처님이 아직 설법하시기 전에 불가사의해탈에 머물러 스스로 별 · 원 이교를 연설하였다」를 이어받는다.
前四味・四教전사미 · 사교
법화경 이전의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의 네 시기(오미 가운데 앞의 넷)와 장 · 통 · 별 · 원의 화법사교. 이 모든 가르침을 「한마디에」 깨달았다는 것은 재세 대중의 근기가 높았음을 말한다.
況滅度後황멸도후
법사품 제10의 「이 경은 여래 재세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 후이랴」. 법화경을 멸후에 홍통하는 이는 재세보다 큰 난을 받는다는 뜻.
令法久住영법구주
견보탑품 제11의 「법으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리라」. 석가 · 다보 · 시방제불이 한자리에 모인 까닭이 멸후에 법화경을 오래 머물게 하는 데 있음을 보인다.
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わん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적시리라
천태대사 『법화문구』 권1상에서 법화경 유통분의 뜻을 밝힌 문.
正像稍過ぎ已つ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정상이 거의 지나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도다
전교대사 『수호국계장』 권상의 하의 문. 대성인은 이를 「말법의 처음을 원하고 바라는 말」로 읽으신다.

다보의 증명 · 시방의 조설 · 지용의 용출

대단 제2는 여기까지 법화경 본적 두 문에서 석존이 한 설법이 모두 말법을 위한 것이었음을 밝혀 왔다 — 제7장은 적문을, 제9 · 10장은 본문을. 이 장에서는 마지막으로 석존의 설법만이 아니라, 견보탑품 제11의 다보여래의 증명, 여래신력품 제21의 시방분신 제불의 조설, 종지용출품 제15의 지용보살의 출현 같은 불사(佛事)도 재세 중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멸후 말법을 위해 이루어졌음을 밝히신다. 이로써 법화경 한 부가 통틀어 말법을 위해 설해진 경임이 보여진다.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이 이 단을 「조증 · 조현 등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라 이름한 것은, 석존 설법의 「본체」를 다룬 앞 장들에 대해 이 장이 그것을 「돕고 드러낸」 사건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다보의 증명. 견보탑품에서 다보여래는 어느 국토든 법화경을 설하는 부처가 있으면 그 진실을 증명하려고 나타나는 부처라고 한다. 같은 품 첫머리에서 다보여래는 솟아오른 보탑 안에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해, 적문에서 석존이 한 설법이 진실임을 증명했다.

善い哉善い哉釈迦牟尼世尊、能く平等大慧、教菩薩法、仏所護念の妙法華経を以って、大衆の為に説きたもう、是の如し、是の如し、釈迦牟尼世尊、所説の如きは、皆是れ真実なり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석가모니세존이여. 능히 평등대혜 · 교보살법 · 불소호념의 묘법화경을 대중을 위해 설하셨도다. 그러하도다, 그러하도다. 석가모니세존이여, 설하신 바는 모두 진실이니라

『묘법연화경』 견보탑품 제11, T9 no.262

그런데 석존은 적문의 정종분에서 개삼현일을 설해 밝혔고, 그 정종팔품의 설상에서 분명하듯 보살 · 이승 · 인천 등 재세 중생은 그 설법의 뜻을 영해(領解)했다. 그러므로 재세 중생의 영해를 위해서는 석존의 설법만으로 충분했고, 다보여래의 증명을 더할 필요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문 유통분의 첫 품인 법사품 제10에서는 석존 멸후의 중생에게 법화경이 가장 난신난해임을 설하고, 그 가운데 법화경을 설하는 법사의 공덕이 큼을 밝혀 멸후 홍통을 권한다. 견보탑품의 다보 증명은 그것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므로, 재세 중생을 위해서라기보다 멸후를 위한 증명이었음이 분명하다.

시방의 조설. 신력품에 이렇게 설해져 있다.

爾の時に世尊一切の衆の前に於いて、大神力を現じたもう。広長舌を出して、上梵世に至らしめ、一切の毛孔より、無量無数色の光を放って皆悉く徧く十方世界を照らしたもう。諸の宝樹下の、師子座上の諸仏も、亦復是の如く、広長舌を出し無量の光を放ちたもう

그때 세존은 일체 대중 앞에서 대신력을 나투셨다. 광장설을 내어 위로 범천에 이르게 하시고, 일체의 털구멍에서 무량무수한 빛을 놓아 모두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셨다. 모든 보수 아래 사자좌 위의 제불도 또한 이와 같이 광장설을 내고 무량한 빛을 놓으셨다

『묘법연화경』 여래신력품 제21, T9 no.262

석존이 대신력을 나투어 광장설상과 통신방광의 상을 보이자, 이어 시방분신 제불도 광장설상과 통신방광의 상을 보였다. 신력품에서는 이 상들을 시작으로 십신력이 보여지는데, 앞 장에서 보았듯 이 십신력은 석존이 멸후를 위해 상행을 비롯한 본화 지용보살에게 부촉하는 법의 공덕을 보이는 것이다. 곧 십신력은 지용보살에 의한 말법 법화경 홍통을 위한 서상(瑞相)이다. 시방제불은 이 서상을 석존을 도와 함께 나툰 것이며, 이를 첫째인 광장설상에 초점을 맞추어 「조설」이라 하신 것이다.

더구나 광장설상은 말의 진실을 증명하는 상이다. 석존을 비롯한 시방제불이 광장설상을 보였다는 것은, 일체의 부처가 지용보살에 의해 말법에 홍통될 법화경, 곧 대성인의 남묘호렌게쿄가 진실임을 증명했다는 뜻이라고 강의는 본다.

이 다보의 증명과 시방제불의 조설에 대해 보은초에도 이렇게 있다.

すでに教主釈尊かく定め給いぬれば疑うべきにあらねども我が滅後はいかんかと疑いおぼして東方・宝浄世界の多宝仏を証人に立て給いしかば多宝仏・大地よりをどり出でて妙法華経・皆是真実と証し十方分身の諸仏重ねてあつまらせ給い広長舌を大梵天に付け又教主釈尊も付け給う

이미 교주 석존이 이렇게 정하셨으니 의심할 일이 아니지만, 「나의 멸후에는 어떠할까」 하고 염려하시어 동방 보정세계의 다보불을 증인으로 세우셨더니, 다보불이 대지에서 솟아 나와 「묘법화경은 모두 진실이니라」라고 증명하시고, 시방분신의 제불이 거듭 모이시어 광장설을 대범천에 붙이시고 또 교주 석존도 붙이셨느니라

「보은초」, 300쪽

여기서 「나의 멸후에는 어떠할까」라는 석존의 진의가 보여진다. 석존은 어디까지나 멸후를 위해 다보여래와 시방분신 제불을 증인으로 법화경 회좌에 부르셨다는 것이다.

또 석존이 다른 부처를 증인으로 삼는 것은 방편품의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능히 제법실상을 다 구명하신다(唯仏与仏。乃能究尽。諸法実相)」와 깊이 관련된다고 강의는 본다. 법화경에서 처음 밝혀진 제법실상은 「유불여불」의 지극한 이치이며, 이 지극한 이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부처뿐이다. 일체중생의 성불이라는 부처의 본회는 이 지극한 이치에 근거하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법화경이 설해졌다. 그런 뜻에서 법화경의 멸후 홍통은 일체 부처의 깊은 요청이며, 바로 거기에 다보불과 시방제불이 모두 법화경의 진실을 증명한 까닭이 있다.

지용의 용출. 용출품에 「부처님이 이를 설하실 때 사바세계 삼천대천 국토의 땅이 모두 진동하며 갈라지고, 그 가운데서 무량천만억의 보살마하살이 동시에 솟아 나왔다」고 있다. 이미 자세히 보았듯, 이 지용보살의 출현에 의심을 품은 대중을 대표해 미륵보살이 석존에게 묻고, 이에 대해 「나는 구원 이래로 이들을 교화하였노라」라고 약개근현원이 설해지며, 다시 수량품의 광개근현원으로 펼쳐진다.

또 지용보살은 신력품에서 석존에게 부촉을 받아 법화경의 요법을 지닌 말법 홍통의 주체다. 그러므로 지용보살이야말로 「나의 멸도 후 후오백세 가운데 염부제에 광선유포하여 단절시키는 일이 없게 하라」는 부처님의 미래기를 실현하는 보살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지용보살의 출현이 석존 멸후, 특히 말법을 위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 다보의 증명견보탑품 제11皆是れ真実なり모두 진실이니라법사품의 멸후 홍통 권유를 받아 이루어진 증명→멸후를 위함
  2. 시방의 조설여래신력품 제21広長舌を出して、上梵世に至らしめ광장설을 내어 범천에 이르게 함십신력의 첫째 · 말의 진실을 증명하는 상→지용보살이 말법에 펼 법의 진실을 증명
  3. 지용의 용출종지용출품 제15地皆震裂して、其の中より無量千万億の菩薩摩訶薩有って、同時に湧出せり땅이 갈라져 무량천만억의 보살이 동시에 솟아 나옴신력품에서 결요부촉을 받는 말법 홍통의 주체→말법을 위함
보은초我が滅後はいかんかと疑いおぼして나의 멸후에는 어떠할까 염려하시어300쪽
도표 12 · 세 가지 불사와 말법

재세의 대중에게는 필요 없었다

本文은 「세간의 생각으로는 재세를 위함이라 하리라」라고 하여, 세간의 통속적인 생각으로는 다보의 증명 등이 석존 재세 중생을 위해 이루어진 것처럼 여겨지기 쉬웠음을 말씀하신다. 강의는 이것이 「법화경은 말법의 열등한 근기를 위한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하는 염불종의 「이심해미(理深解微)」 같은 사의에 미혹된 세간 사람들의 미정 · 무지를 가리킨 말이라고 본다.

그래서 대성인은 이 잘못된 견해를 깨뜨리기 위해 석존 재세 중생의 경위(境位)를 여러 관점에서 늘어놓아, 다보의 증명 등이 재세 중생에게는 필요 없었음을 보이신 뒤, 경문을 들어 말법 중생을 위해서야말로 필요했음을 증명하신다. 강의는 사리불 · 목건련 등 성문에 대한 다섯 관점을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현재 — 석존 재세에 성문의 성위(聖位)에 올라 각각 지혜제일 · 신통제일이라 불렸다.

둘째, 과거 — 금룡타불 · 청룡타불이라는 부처였다. 금룡타불에 대해서는 『법화문구』 권1상에 「만약 신자의 교화를 보면 곧 용타의 본을 본다」고 한다. 『법화문구기』 권1은 사리불이 금룡타불이라는 것은 『대보적경』의 설이라는 전승을 소개하고, 아울러 「수보리는 동방 청룡타불이다」라는 진제의 설도 소개한다. 어느 쪽이든 사리불이나 수보리 같은 불제자의 본지가 부처였다는 전승이 있었던 듯하다.

셋째, 미래 — 법화경 적문에서 사리불은 화광여래 등, 성문 제자들이 미래 성불의 수기를 받았다.

넷째, 영산 — 영취산의 법화경 회좌에서 성취한 경위는 견사 · 진사 · 무명의 삼혹을 끊어 다한 대보살이다. 곧 사리불 등의 성문들은 적문의 개삼현일 설법으로 무명의 일부를 끊어 초주위에 오르고, 다시 본문의 개근현원 설법을 듣고 보살의 가장 높은 지위인 등각위에 올랐다.

다섯째, 본지 — 「안으로 감추고 밖으로 나툰 옛 보살」이다. 오백제자수기품 제8에서 부루나에 대해 이렇게 설하듯, 재세의 불제자는 밖으로는 성문이라는 방편의 모습을 나타내지만 안에 감춘 본지는 중생을 구하는 보살이라는 것이다.

内には菩薩の行を秘し、外には是れ声聞なりと現ず…我が弟子是の如く、方便して衆生を度す

안으로는 보살의 행을 감추고 밖으로는 성문임을 나툰다 … 나의 제자는 이와 같이 방편으로 중생을 건진다

『묘법연화경』 오백제자수기품 제8, T9 no.262

다음으로 문수 · 미륵 같은 대보살은 이미 과거세에 깨달음을 연 부처였지만, 석존의 설법을 돕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보살의 모습으로 응해 태어났다고 한다.

나아가 법화경 설법의 회좌에 모인 범천 · 제석 · 일천 · 월천 · 사대천왕 같은 천인은 석존이 성도하기 이전부터의 대성이며, 법화경 이전의 사미 · 사교 같은 제경도 한마디 듣기만 하면 그 진의를 깨달아 버리는 대성이었다고 한다. 이는 제9장에서 대성인이 「문수 · 미륵 등의 제대보살과 범천 · 제석 · 해와 달 · 뭇 별 · 용왕 등은 초성도 때부터 반야경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석존의 제자가 아니었으며 … 별 · 원 이교를 이미 알았으니 장 · 통도 알았다」고 하신 것을 이어받는다.

사리불 · 목건련 등 성문
  1. 현재智慧第一・神通第一の大聖지혜제일 · 신통제일의 대성
  2. 과거金竜陀仏・青竜陀仏금룡타불 · 청룡타불
  3. 미래華光如来화광여래
  4. 영산三惑頓尽の大菩薩삼혹을 단번에 다한 대보살 — 초주에서 등각으로
  5. 본지内秘外現の古菩薩안으로 감추고 밖으로 나툰 옛 보살
문수 · 미륵 등 대보살過去の古仏・現在の応生과거의 옛 부처 · 현재의 응생
범천 · 제석 · 해와 달 · 사천왕初成已前の大聖초성 이전의 대성前四味・四教・一言に之を覚りぬ전사미 · 사교를 한마디에 깨달음
仏の在世には一人に於ても無智の者之れ無し부처님 재세에는 한 사람도 지혜 없는 자가 없었다方方以て謂れ無き事なり어느 쪽으로 보아도 까닭 없는 일
도표 13 · 재세 대중의 경위 — 다섯 관점과 그 밖의 대중

이렇게 법화경 회좌에 늘어선 재세 중생은 저마다 법화경 설법을 듣고 믿어 이해할 수 있는 높은 경위에 있었고, 사리불 · 목건련 같은 성문이나 문수 · 미륵 같은 보살은 오히려 석존의 설법을 돕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각각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 재세에는 한 사람도 지혜 없는 자가 없었다」고 하셨듯이, 석존의 설법에 더해 다보의 증명 · 시방의 조설 · 지용의 용출 같은 것을 재세 중생을 위해 보일 필요는 없었다. 「누구의 의심을 풀기 위하여 … 어느 쪽으로 보아도 까닭 없는 일이니라」라는 本文의 말은 이 결론을 반문의 형식으로 맺은 것이다.

이 장의 논법은 제7장과 짝을 이룬다. 제7장은 적문 팔품을 「위에서 아래로」 읽으면 보살 · 이승 · 범부의 순으로 재세 중생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거꾸로(逆次)」 읽으면 멸후, 그 가운데 말법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했다. 이 장도 마찬가지로, 세간의 생각처럼 보면 다보 · 분신 · 지용이 재세 대중을 위한 것 같지만, 재세 대중의 경위를 따져 보면 그들에게는 필요 없었으므로 그 불사의 상대는 멸후의 범부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하물며 멸도 후이랴」와 「법으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리라」

本文은 이렇게 말씀하신 뒤, 법사품의 「황멸도후」와 보탑품의 「영법구주」를 들어 다보의 증명 등은 오로지 말법을 위해 이루어졌다고 결론지으신다.

법사품의 「황멸도후」는, 난신난해의 법화경을 석존 멸후에 홍통하는 이는 석존 재세보다 더 큰 난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 멸후 홍통을 권한 문이다. 석존이 법화경을 설한 본뜻이 재세 중생을 위해서라기보다 오히려 멸후를 위한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또 본문 유통분에 이르는 법화경의 전개에서 보면, 신력품에서 부촉을 받는 지용보살의 말법 홍통을 미리 증명하는 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법화경을 몸으로 읽으신 경지에서, 이 문을 상행보살의 재탄으로서 자신의 행동을 미리 증명하는 문으로 삼으셨다. 제7장에서 「니치렌을 바로 삼는 증거」로 맨 먼저 든 것이 바로 이 「황멸도후의 문」이었다.

보탑품의 「영법구주」는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이 법화경 회좌에 모인 까닭이 석존 멸후에 법화경을 오래 머물게 하는 데 있음을 단적으로 보인 문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이 두 문으로 다보의 증명 등의 불사도 「오로지 우리를 위함」이라고 결론지으셨다고 강의는 본다. 「우리」라는 말에 주의할 만하다. 제7장은 「말법 중에서는 니치렌을 바로 삼느니라」, 제10장은 「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을 위함이니라」, 그리고 이 장은 「오로지 우리를 위함이니라」. 「니치렌」에서 「니치렌 등」으로, 다시 「우리」로 — 대단 제2의 결론은 점점 넓어져 말법의 모든 중생을 품는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이 장의 핵심을 「법화경 한 부 전체가 말법을 위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읽는다. 석존의 설법뿐 아니라 다보의 증명, 분신 제불의 광장설, 지용보살의 출현이라는 장대한 불사까지도, 재세의 높은 근기에게는 필요 없었고 말법의 범부를 위해서야말로 필요했다. 그 근거로 드는 「황멸도후」와 「영법구주」는 멸후 홍통의 난과 법의 지속을 말하는 문이며, 대성인은 이를 상행보살로서의 자신의 실천에 비추어 읽으셨다.

천태 · 전교의 말법 원락

대성인은 천태대사와 전교대사의 해석을 들어, 법화경이 말법을 바른 뜻으로 삼는다는 것을 밝힌 한 단(대단 제2 전체)을 맺으신다.

천태의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적시리라」. 인용된 천태대사의 말은 『법화문구』 권1상에서 법화경 유통분의 뜻을 밝힌 문이며, 자세히는 이렇게 있다.

但当時に大利益を獲るのみに非ず、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う故に流通分あるなり

다만 그때 큰 이익을 얻을 뿐 아니라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적시기 때문에 유통분이 있는 것이다

천태대사 『법화문구』, T34 no.1718

이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적신다」는 말은 분명히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나의 멸도 후 후오백세 가운데 염부제에 광선유포하여」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그러므로 법화경이 말법 광선유포의 때를 위해 설해졌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대성인은 현불미래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天台大師云く『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おわん』等云云広宣流布の時を指すか

천태대사가 이르되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적시리라」 운운. 광선유포의 때를 가리킨 것인가

「현불미래기」, 505쪽

앞 장 其の二의 다섯째 경문(약왕품)이 여기서 천태의 해석을 통해 다시 울린다. 천태 자신은 상법 시대의 사람이었지만, 법화경의 유통분이 있는 까닭을 「후오백세」에서 찾음으로써 법화경의 참된 상대가 자기 시대 너머에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전교의 「정상이 거의 지나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도다」. 인용된 전교대사의 말은 『수호국계장』 권상의 하의 문이며, 자세히는 이렇게 있다.

当今の人、機皆転変し、都て小乗の機無し。正像稍過ぎ已っ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法華一乗の機、今正しく是れ其の時なり

지금 사람들은 근기가 모두 바뀌어 소승의 근기가 전혀 없다. 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 법화일승의 근기,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전교대사 『수호국계장』

이 문은 법상종의 덕일(德一)이 소승 · 권대승 제경의 관행을 주장한 것을 전교대사가 파한 대목에 있다. 전교대사는 여기서, 덕일의 관행은 소승의 우회도(迂回道), 권대승의 역겁도(歷劫道), 법화일승의 직도(直道)의 구별을 모르고 세운 것이며, 지금 사람들은 소승의 우회도나 권대승의 역겁도를 행할 근기가 아니라고 파했다.

이 취지에서 보면 위의 문은 어디까지나 전교대사 당시 중생의 「근기」를 논하고 있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고 강의는 말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란 「지금 바로 법화일승의 근기를 가진 중생만이 있는 때이다」라는 뜻이며, 결코 당시를 말법이라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당시가 어떤 때인가에 대한 전교의 뜻은 오히려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도다」라는 말에 나타나 있다. 이 말이, 本文에서 대성인이 말씀하신 대로 「당시는 아직 말법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대성인은 「『말법태유근』의 다섯 자는 내 시대는 법화경이 유포될 시대가 아니라는 해석이니라」고 하셨다.

곧 전교대사는 당시를, 중생의 근기는 법화일승의 근기이지만 아직 법화경 광선유포의 원시(圓時)인 말법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파악한 것이다. 이는 대성인이 관심의 본존초에서 상법 시대에 지용보살이 출현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신 것과 들어맞는다.

所詮円機有つて円時無き故なり

요컨대 원교의 근기는 있으나 원교의 때가 없기 때문이니라

「관심의 본존초」, 253쪽

또 전교대사가 「지금 중생은 법화일승의 근기이다」라고 논하는 대목에서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도다」라고 말법의 때를 언급한 것은, 「중생은 법화일승의 근기인데 법화경 광선유포의 때인 말법은 아직 오지 않았다, 말법이여 어서 오라」는, 말법 광선유포의 때를 기다리는 전교대사의 속뜻이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불미래기의 다음 말씀이 바로 그 뜻일 것이다.

伝教大師云く『正像稍過ぎ已つ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等云云 末法の始を願楽するの言なり

전교대사가 이르되 「정상이 거의 지나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도다」 운운. 말법의 처음을 원하고 바라는 말이니라

「현불미래기」, 505쪽

이 말법 원락의 마음은 전교대사의 말만이 아니라, 말법이 법화경 광선유포의 때임을 말한 앞의 천태대사의 문, 그리고 그 천태의 문을 풀이한 묘락대사의 「말법의 처음에 명리(冥利)가 없지 않다」는 문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法華経の流布の時・二度あるべし所謂在世の八年・滅後には末法の始の五百年なり、而に天台・妙楽・伝教等は進んでは在世法華経の時にも・もれさせ給いぬ、退いては滅後・末法の時にも生れさせ給はず中間なる事をなげかせ給いて末法の始をこひさせ給う御筆なり

법화경이 유포될 때는 두 번 있으리라. 이른바 재세의 팔 년과 멸후에는 말법 처음의 오백 년이니라. 그런데 천태 · 묘락 · 전교 등은 나아가서는 재세 법화경의 때에도 빠지셨고, 물러나서는 멸후 말법의 때에도 태어나지 못하시어, 그 중간인 것을 한탄하시며 말법의 처음을 그리워하신 글이니라

「선시초」, 260쪽
천태대사 『법화문구』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わん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적시리라원문但当時に大利益を獲るのみに非ず、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う故に流通分あるなり다만 그때 큰 이익을 얻을 뿐 아니라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적시기 때문에 유통분이 있는 것이다바탕약왕품 「후오백세 … 광선유포」현불미래기広宣流布の時を指すか광선유포의 때를 가리킨 것인가505쪽
전교대사 『수호국계장』正像稍過ぎ已つ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정상이 거의 지나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도다바탕근기는 법화일승, 때는 아직 아님所詮円機有つて円時無き故なり요컨대 원교의 근기는 있으나 원교의 때가 없기 때문이니라관심의 본존초 253쪽현불미래기末法の始を願楽するの言なり말법의 처음을 원하고 바라는 말505쪽
선시초法華経の流布の時・二度あるべし所謂在世の八年・滅後には末法の始の五百年なり법화경 유포의 때는 두 번 — 재세의 팔 년과 말법 처음의 오백 년260쪽
도표 14 · 천태 · 전교의 말법 원락
정법 · 상법의 산을 넘어 멀리 동트는 말법의 하늘을 바라보는 길 — 원락의 풍경
그림 · 정법 · 상법의 산을 넘어 멀리 동트는 말법의 하늘을 바라보는 길 — 원락의 풍경

대단 제3으로 건너는 다리

이 장의 끝 두 인용은 대단 제2를 맺는 결어이자 대단 제3으로 건너는 다리다.

천태 · 전교는 법화경을 누구보다 깊이 안 사람들이었다. 천태는 『법화현의』 · 『법화문구』 · 『마하지관』으로 일념삼천의 법문을 세웠고, 전교는 일본에 법화일승을 펴고 대승 계단의 건립을 추진했다. 그런데 그들 자신이 「후오백세」를 바라보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은, 그들의 홍통이 법화경 광선유포의 완성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원교의 근기는 있으나 원교의 때가 없었다」 — 그들은 「때」를 기다린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기다린 「때」에 펼쳐질 법은 무엇인가. 제10장은 그것을 「제일의 양약 남묘호렌게쿄」라 했고, 이 장은 다보 · 분신 · 지용의 모든 불사가 그 말법을 위한 것이라 했다. 그러나 아직 묻지 않은 것이 있다 —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알면서도 펴지 않고 남겨 둔 비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다음 장, 대단 제3의 첫머리인 제12장은 바로 이 물음으로 시작한다. 「여래 멸후 이천여 년,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남기신 비법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대답이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다.

이렇게 보면 대단 제2의 다섯 장은 하나의 긴 논증이다. 법화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적문도, 본문의 광개근현원도, 그것을 돕고 드러낸 불사도 모두 말법을 위한 것이다. 말법의 중생은 어떤 병을 앓는가 — 법화경 비방이라는 제일의 중병이다. 그 병에 맞는 약은 무엇인가 — 수량 문저에 남겨진 제일의 양약 남묘호렌게쿄다. 정상의 대사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때가 아니었기에 바라기만 했다. 그러므로 지금, 그 약을 일염부제에 펴야 한다. 이 결론이 제5편의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한다」와 「삼대비법」, 그리고 「일염부제 광선유포」로 이어진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제4편은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를 밝히다」의 끝 두 장을 읽었다. 이 대단은 「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라는 하나의 물음을, 적문(제7장) · 본문의 두 뜻(제8장) · 약개근현원(제9장) · 광개근현원(제10장) · 조증 · 조현(제11장)의 차례로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리고 이 편의 두 장에서 그 대답이 완성된다 — 법화경 한 부는 그 설법도, 그것을 증명하고 드러낸 불사도, 모두 「오로지 우리를 위함」이다.

제10장의 첫 문답은 수량품의 일품이반이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멸후 중생을 위함이요, 멸후 가운데서는 말법 지금의 니치렌 등을 위함」이라고 답했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이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을 「내증의 수량품」, 곧 수량 문저에 숨겨진 남묘호렌게쿄를 드러내는 쪽에서 가리킨 말로 읽었다. 둘째 문답의 일곱 경문 — 동집생의의 「신발의 보살」, 남겨 둔 「좋은 양약」, 「악세 말법의 때」, 십신력과 결요부촉, 「후오백세의 광선유포」와 「염부제 사람의 병의 양약」, 열반경의 「일곱 자식 가운데 병든 자식」 — 은 모두 「병」과 「약」이라는 한 줄로 꿰어졌다.

其の三은 그 결론이다. 법화경 비방은 「제일의 중병」이다 — 열반경이 「타 버린 씨앗」이라 한 일천제의 불신이 그 뿌리이며, 정면의 비방만이 아니라 뜻을 모른 채 믿는 것, 쓰지 않는 것, 적을 꾸짖지 않는 것까지 그 형태이고, 그 죄보는 일체 세간의 불종을 끊으므로 오역보다 무겁다. 남묘호렌게쿄는 「제일의 양약」이다 — 법화경의 묘법만이 번뇌 · 업 · 고를 삼덕으로 바꾸는 「변독위약」의 힘을 지니며, 그 묘법을 범부가 받아 지닐 수 있게 한 것이 제목이고, 남묘호렌게쿄는 부처님 자행의 체 · 종 · 용을 갖춘 이름이기에 믿는 이에게는 즉신성불을, 비방하는 이에게도 귀를 거친 하종을 준다. 그러므로 정상 이천 년에 유포되지 않은 이 법을 지금 일염부제에 펴지 않으면 석존 · 다보 · 분신의 말이 모두 공허해진다.

제11장은 다보의 증명 · 시방의 조설 · 지용의 용출이 지혜 없는 이 하나 없던 재세 대중에게는 필요 없었고, 「황멸도후」 · 「영법구주」의 경문대로 말법의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천태의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적시리라」, 전교의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도다」를 들어, 정상의 대사들이 「원교의 근기는 있으나 원교의 때가 없어」 말법을 바랐음을 보였다.

다음 제5편은 대단 제3 「말법 유포의 대법을 밝히다」다. 용수 · 천친 · 천태 · 전교가 남긴 비법은 무엇인가 —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의 오자」. 왜 정상에 펴지 않았는가, 왜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하는가, 그 법이 유포될 때 어떤 선상(先相)이 있는가. 이 편에서 「무엇을 위해」와 「누구를 위해」가 밝혀졌으니, 이제 「무엇을」이 밝혀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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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법화취요초」,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331~338쪽
  • 니치렌 대성인, 「관심의 본존초」 · 「보은초」 · 「선시초」 · 「현방법초」 · 「현불미래기」 · 「치병대소권실위목」 · 「소야입도전허어서」 · 「법화초심성불초」 · 「사신오품초」 · 「입정관초」 등,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 『묘법연화경』(구마라집 역), T9 no.262 — 종지용출품 · 여래수량품 · 분별공덕품 · 여래신력품 · 약왕보살본사품 · 견보탑품 · 법사품 · 비유품 · 상불경보살품 · 오백제자수기품 · 방편품
  • 『대반열반경』(담무참 역), T12 no.374 — 범행품 · 사자후보살품 · 가섭보살품
  • 천태대사 『법화문구』 T34 no.1718 · 『법화현의』 T33 no.1716 · 『마하지관』 T46 no.1911 · 『범망보살계경의소』
  • 묘락대사 『법화문구기』 T34 no.1719
  • 전교대사 『수호국계장』
  • 용수 『대지도론』 T25 no.1509 · 천친 『불성론』
  • 니치칸 상인 『법화취요초 문단』 · 『당류행사초』 · 『문저비침초』 · 『보은초 문단』

연구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법화취요초 영역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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