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하늘의 달과 동쪽의 해 — 서역에서 대륙을 건너 동쪽 바다의 섬나라로 이어지는 경전 전래의 길

이금당의 교판 — 일대성교의 승렬과 제종의 그릇된 해석

법화취요초 · 제1편 · 제1~3장

法華取要抄 — 一代聖教の勝劣・諸宗の謬解・法華経最第一の正判어서 331–332쪽
저술
문영 11년(1274) 5월 · 53세 · 미노부
대고중
도키조닌(富木常忍)
장
제1~3장 (대단 제1의 앞부분)
쪽수
어서 331쪽 1행 ~ 332쪽 10행

다섯 편 · 법화취요초 15장 구성도

15장 → 다섯 편
  1. 序講331 앞유래 · 제호 · 세 대단
  2. 대단 제1 일대 제경의 대의
    제1편이금당의 교판 — 일대성교의 승렬과 제종의 그릇된 해석지금 읽는 편
    1~3장0331:01~0332:10
  3. 대단 제1 일대 제경의 대의
  4.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
  5.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
  6. 대단 제3 말법 유포의 대법

법화취요초는 「일대 제경의 대의를 밝히다」 · 「금교소피의 시기를 밝히다」 · 「말법 유포의 대법을 밝히다」의 세 대단으로 짜여 있다. 이 편이 다루는 제1~3장은 그 첫째 대단의 앞부분으로, 니치렌 대성인은 여기서 「교법」 그 자체의 관점에서 일대성교의 승렬을 가리신다. 인도에서 중국 · 일본으로 건너온 오천 · 칠천여 권의 경론을 앞에 두고, 자기 소견으로도, 사람과 종파에 기대어서도 그 승렬을 바르게 알 수 없다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어 화엄 · 법상 · 삼론 · 진언 · 선 · 정토 · 구사 · 성실 · 율의 아홉 종이 저마다 「우리 경이 제일」이라 주장하는 모습을 늘어놓고, 그 교판을 세운 열여덟 조사가 지혜와 덕으로 존숭받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신다. 그런 다음 만인의 비방을 무릅쓰고 「본경본론」에 직접 기대어, 법화경 법사품의 「이금당(已今當)」 세 글자를 일대성교의 승렬을 가르는 최제일의 기준으로 세우신다. 다른 경론에도 「제일」이라는 글귀는 있으나 그 비교 대상(所對)이 다르고, 다보 · 분신의 증명이 없으며, 지용의 상행보살을 향해 설한 것이 아니라는 세 가지가 그 결론의 근거다. 이 편은 결국 「무엇을 기준으로 가장 뛰어난 법을 고를 것인가」라는 교판의 근본 물음을 묻는다.

법화취요초는 문영 11년(1274) 5월, 대성인이 사도 유배에서 풀려나 가마쿠라에서 세 번째 국가 간효를 하신 뒤 미노부 산에 들어가신 바로 그달에 지어 시모우사의 도키조닌(富木常忍)에게 보내신 글이다. 제호 그대로 「법화경의 요(要)를 취하는」 글이며, 끝에 가서 상행보살이 세우는 「본문의 본존과 계단과 제목」, 곧 삼대비법을 「광략을 버리고 요를 취한다」는 말로 밝히신다. 그러나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대성인은 먼저 땅을 고르신다. 일대성교 가운데서 법화경이 최제일임을 확정하지 않고는, 법화경 안에서 다시 요를 고르는 일도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편의 세 장은 바로 그 첫 터 닦기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대단 제1을 다시 「능설의 교주」와 「소설의 교법」 두 관점으로 나누어 읽는다. 이 편은 그 가운데 교법의 관점에 해당하고, 다음 제2편(제4~6장)은 교주 석존의 인위 · 과위, 곧 「삼오의 이법」을 기준으로 같은 승렬을 다시 판정한다. 그러므로 이 편에서 확정되는 「이금당 최제일」은 제2편의 「삼오의 이법」과 짝을 이루어, 법화경이 경(經)으로서도 불(佛)로서도 일대에 뛰어남을 밝히는 두 기둥의 하나가 된다.

이 편의 해설은 분량이 크다. 제2장에서 대성인이 한 줄씩 열거하신 각 종의 「제일」 주장 뒤에는 수백 년에 걸친 중국 · 일본 불교의 교판사가 있고, 창가학회의 강의는 그것을 종마다 자세히 풀어 비판한다. 화엄의 오교십종과 동별이교, 법상의 삼시교와 오성각별, 삼론의 이장 · 삼전법륜, 진언의 현밀이교와 십주심, 선종의 능가 · 수능엄 · 교외별전, 정토의 담란 · 도작 · 선도 · 법연, 소승 삼종의 대승비불설, 그리고 本文의 「혹은 말하되 혹은 말하되」에 숨은 자각 · 지증의 태밀 교판까지 — 이것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아야 비로소 「이금당 세 글자」가 왜 그토록 무거운지가 드러난다.

대단 제1일대 제경의 대의를 밝히다
제1편 = 제1~3장이 편교법의 관점
제2편 = 제4~6장교주의 관점
대단 제2금교소피의 시기를 밝히다
대단 제3말법 유포의 대법을 밝히다
도표 1 · 이 편의 자리

이 편의 장

第一一代聖教の勝劣を明かす제1장 일대성교의 승렬을 밝히다 — 오천 · 칠천여 권의 경론, 자견으로도 사람과 종파로도 승렬 · 천심 · 난이 · 선후를 가릴 수 없다
第二諸宗の謬解を示す제2장 제종의 그릇된 해석을 보이다 — 아홉 종의 「제일」 주장과 그것을 세운 일곱 종 열여덟 조사
第三法華経最第一の正判を明かす제3장 법화경 최제일의 정판을 밝히다 — 이금당의 세 글자, 상사의 경문과 소대, 다보 · 분신의 증명과 지용의 상행
제1장 일대성교의 승렬을 밝히다
어서 331쪽 1~2행 · 第一 一代聖教の勝劣を明か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331쪽 1~2행
本文 · 어서 원문

法華取要抄  文永十一年五月  五十三歳御作  与富木常忍  於身延  扶桑沙門日蓮之を述ぶ 夫れ以れば月支西天より漢土日本に渡来する所の経論五千七千余巻なり、 其中の諸経論の勝劣・浅深・難易・先後・自見に任せて之を弁うことは其の分に及ばず、 人に随い宗に依つて之を知る者は其の義紛紕す、

풀이

법화취요초 — 문영 11년(1274) 5월, 53세에 지으심. 도키조닌에게 주심. 미노부에서. 부상사문(扶桑沙門) 니치렌이 이를 서술하노라. 무릇 생각하건대, 월지(月支)와 서천(西天)으로부터 한토(漢土)와 일본에 건너온 경론은 오천 혹은 칠천여 권이니라. 그 가운데 여러 경론의 승렬(勝劣) · 천심(淺深) · 난이(難易) · 선후(先後)를 자기 소견에 맡겨 가리는 일은 그 분수에 미치지 못하며, 사람을 따르고 종(宗)에 기대어 이를 알려 하는 자는 그 뜻이 어지러이 엉클어지느니라.

어구 풀이

扶桑沙門부상사문
「부상(扶桑)」은 동쪽 바다 끝 해 뜨는 곳에 있다는 신목(神木)에서 온 말로 일본을 가리킨다. 「사문」은 출가 수행자. 대성인이 스스로 「일본의 한 사문」이라 서명하신 것으로, 뒤에 나오는 월지(인도)와 짝을 이루어 「달의 나라」와 「해의 나라」의 대비가 이미 서명에 깃들어 있다.
月支西天월지 서천
「월지(月氏 · 月支)」는 인도를 가리키는 옛 이름, 「서천」은 서방의 세계라는 뜻으로 서역과 인도를 아우르는 넓은 범위다. 불교가 처음 일어나 경론이 만들어진 땅을 한데 일컫는다.
漢土日本한토 일본
「한토」는 중국. 조선과 일본은 한자 문화권으로 한역 경론을 그대로 썼으므로, 본문은 중국과 일본을 「한토 일본」으로 한데 묶는다. 경전이 번역되고 종파가 세워진 땅이다.
五千七千余巻오천 · 칠천여 권
「오천」은 당 개원 18년(730)에 엮은 대장경 목록 『개원석교록』의 입장록(入藏錄)이 든 1,076부 5,048권, 「칠천여 권」은 정원 16년(800)의 『정원석교록』이 든 2,417부 7,388권에 근거한 숫자로 보인다. 한역 대장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勝劣・浅深・難易・先後승렬 · 천심 · 난이 · 선후
교판의 네 관점. 니치칸 상인은 「승렬은 능전(能詮)의 교(敎)에, 천심은 소전(所詮)의 이(理)에, 난이는 법체(法體)에, 선후는 차제(次第)에 약(約)한다」고 나누었다. 경의 우열, 그 경이 밝힌 이치의 깊이, 믿고 이해하기의 어려움, 설하고 넓히는 순서를 가리킨다.
自見に任せて자견에 맡겨
자기 지견만으로 판단함. 경론이 너무 방대해 한 사람의 힘으로 그 전부를 비교해 가릴 수 없다는 뜻이다.
其の分に及ばず그 분수에 미치지 못함
능력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말. 자견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첫째 길의 막힘을 나타낸다.
人に随い宗に依つて사람을 따르고 종에 기대어
인사(人師)의 설과 종파의 교판에 의지해 경의 승렬을 알려 함. 중국에서 이미 이루어진 교판을 그대로 받아들인 일본 불교의 기본 자세를 가리킨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依法不依人)」의 반대편이다.
紛紕분비
실이 어지러이 엉클어져 풀리지 않는 모양. 종파마다 다른 교판이 맞서 결론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南三北七남삼북칠
천태대사 이전 남북조 시대의 교판 열 가(家). 강남의 셋, 하북의 일곱을 천태종이 이렇게 묶어 불렀다. 대개 화엄경이나 열반경을 제일로 하고 법화경을 그 아래에 두었다.
教相判釈교상판석
줄여서 교판. 갖가지 경전을 설한 내용에 따라 분류 · 정리하고 그 천심을 판정하는 일. 한역 경론이 쏟아져 들어온 중국 불교에서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旧訳・新訳구역 · 신역
불교 초전(1세기 중엽)부터 당 초까지의 번역이 구역, 당의 현장 이후의 번역이 신역이다. 구역의 정점은 5세기 초 구마라집이다.
依法不依人의법불의인
『열반경』의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천태대사의 교판이 이 원칙 위에 섰고, 본문의 「사람을 따르고 종에 기대어」는 이 원칙을 저버린 자세다.

첫 구절과 맺음 구절의 호응 — 월지와 일본

법화취요초의 첫 구절은 경론이 「월지 서천으로부터 한토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얼핏 보면 평범한 사실 서술이다. 그러나 창가학회의 강의는 이 한 구절을 어서 전체의 큰 뜻에서 다시 읽는다. 이 어서의 맺음(제14 · 15장)에서 대성인은 일본으로부터 일염부제로 삼대비법이 광선유포해 간다는 확신을 밝히시는데, 첫머리의 「월지 서천으로부터 한토 일본으로」가 바로 그 맺음과 짝을 이룬다는 것이다.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월지」와 「일본」, 곧 달과 해의 대비다. 다른 하나는 「서천」이라는 말을 쓰심으로써, 정법 · 상법의 두 시기에는 불법이 「서에서 동으로」 옮겨 왔다는 것을 넌지시 보이신 점이다. 이 어서를 쓰시기 한 해 전, 문영 10년(1273) 5월 사도에서 지으신 「현불미래기」에서 대성인은 달과 해를 비유로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月は西より出でて東を照し日は東より出でて西を照す仏法も又以て是くの如し正像には西より東に向い末法には東より西に往く

달은 서쪽에서 나와 동쪽을 비추고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을 비추느니라. 불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정법 · 상법 시대에는 서에서 동으로 향하고 말법에는 동에서 서로 가느니라.

「현불미래기」, 508쪽

같은 어서에서는 「仏法必ず東土の日本より出づべきなり(불법은 반드시 동토의 일본에서 나오리라)」(508쪽)라고도 하셨다. 정법 · 상법의 「불법동점(佛法東漸)」에 대해 말법의 「불법서점(佛法西漸)」을 세우는 사상은 사도 시기 끝 무렵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법화취요초 첫머리의 「월지 서천으로부터 한토 일본으로」는 이 생각을 전제로 한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첫 구절의 표현 속에 이미 「삼대비법의 말법 유포를 밝힌다」는 이 어서의 근본 뜻이 비치고 있으며, 그만큼 이 어서는 처음과 끝이 하나로 꿰인 구성으로 쓰였다. 첫 구절에서 경론은 서에서 동으로 「건너오고(渡来)」, 맺음에서 요법(要法)은 동에서 서로 「흘러간다」. 법화취요초는 이 두 흐름 사이에 놓인 한 편의 교판론이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첫머리 「월지 서천으로부터 한토 일본으로」를 「현불미래기」의 불법서점 사상과 겹쳐 읽는다. 첫 구절의 「서에서 동으로」와 맺음의 「일본에서 일염부제로」가 서로 호응한다는 것이 이 어서의 처음과 끝을 꿰는 구조라고 본다.

정법 · 상법月支西天漢土日本월지 서천 → 한토 · 일본경론의 전래, 불법동점
말법一閻浮提日本일본 → 일염부제삼대비법의 유포, 불법서점
月は西より出でて東を照し日は東より出でて西を照す달은 서쪽에서 나와 동쪽을 비추고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을 비추느니라(현불미래기, 508쪽)
도표 2 · 서에서 동으로, 동에서 서로

북전 불교와 한역 — 「월지 서천」과 「한토 일본」을 나누는 까닭

본문이 「월지 서천」과 「한토 일본」을 따로 세운 데에도 뜻이 있다. 불교가 인도에서 아시아로 퍼진 길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첫째는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들어가고 다시 한반도 · 일본으로 이어진 「북전(北傳)」, 둘째는 인도에서 스리랑카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간 「남전(南傳)」, 셋째는 인도 · 네팔과 중국 두 방향에서 티베트로 들어간 길이다.

북전의 가장 큰 특색은 경전이 중국에 들어가면서 「한역(漢譯)」되었다는 데 있다. 불전이 처음으로 전혀 다른 언어 체계로 옮겨진 것이며, 이는 이미 고도로 발달한 중국 문화라는 이질적 문명 속에 불교가 들어갔음을 뜻한다. 같은 북전이라도 서역 각지에서는 산스크리트를 중심으로 한 인도 언어의 경전이 그대로 쓰였고, 남전에서도 인도 마가다 지방 등의 언어로 형성된 성전어(聖典語)가 그대로 쓰였다. 이것들은 인도 문화 자체가 퍼져 나가면서 경전이 함께 옮겨 간 경우다.

그러므로 중국 전래는 서역이나 동남아시아로의 전파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건이었다. 인도 문화권에서 태어난 불교가 다른 고도의 문화권에도 통하는 보편성을 지니는가 하는 물음이 여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은 한자 문화권으로서 중국 문화의 강한 영향 아래 한역 경론을 그대로 받아 썼다. 이 의미에서 本文처럼 「한토」와 「일본」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것이다. 「월지 서천」은 경이 「태어난」 땅이고, 「한토 일본」은 경이 「번역되고 판석된」 땅이다. 교판의 문제는 바로 이 후자의 땅에서 생겨났다.

한역 대장경 — 오천 · 칠천여 권과 구역 · 신역

「오천 · 칠천여 권」이라는 숫자에도 근거가 있다. 「오천」은 당 개원 18년(730)에 엮은 대장경 목록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에 따른 것으로, 그 「현정입장록(現定入藏錄)」에 1,076부 5,048권이 실려 있다. 그 뒤 정원 16년(800)의 『정원석교록(貞元釋敎錄)』은 2,417부 7,388권을 목록에 올렸다. 「칠천여 권」은 이 후자의 숫자에 의하신 것으로 보인다.

한역 경론은 크게 구역과 신역으로 나뉜다. 구역은 1세기 중엽 불교 초전에서 7세기 당 초까지, 주로 서역에서 건너온 역경승들이 이룬 번역이다. 시대 순으로 안세고 · 지루가참 · 지겸 · 축법호 · 석도안 · 구마라집 · 불타발타라 · 담무참 · 구나발타라 · 보리유지 · 늑나마제 · 진제 등이 있는데, 그 정점이 5세기 초의 구마라집(鳩摩羅什)이다. 문체의 아름다움에서도 내용의 정확함에서도 다른 이들을 넘어선다는 평을 받는다.

경전으로는 2~4세기에 법화경과 아미타경 · 유마경 · 반야부 경전이 번역되었고, 5세기에는 구마라집이 법화경 · 유마경 · 대품반야경 · 소품반야경 등을 옮겼으며, 화엄경 · 열반경 · 능가경 · 승만경 같은 대표적 대승경전도 잇달아 번역되었다. 소승 경전도 함께 옮겨졌다. 논서로는 구마라집의 『대지도론』 · 『중론』 · 『백론』 · 『성실론』에 이어, 6세기에 『십지경론』 · 『유식론』 · 『섭대승론』 · 『보성론』 · 『대승기신론』 등이 번역되었다. 이 논서들에 기대어 지론종 · 섭론종 · 성실종 · 삼론종이 성립했다.

신역은 당 초의 현장(玄奘) 이후의 번역이다. 다만 주요 경론은 구역에서 거의 다 나와 있었으므로 신역은 기본적으로 보충의 의미를 지닌다. 실차난타의 화엄경 재역처럼 구역을 다시 옮긴 것, 현장의 유식 관계 번역, 의정의 율 소개,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에 의한 대일경 · 금강정경 같은 밀교 경전의 번역이 그것이며, 이들은 법상종 · 화엄종 · 남산율종 · 진언종의 성립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덧붙여, 이 한역 경론은 중국 · 한국 · 일본의 대장경 속에 번역 당시의 모습 그대로 전해지는 데 비해, 오늘 남아 있는 산스크리트 원전은 대부분 10세기 이후의 사본이다. 메이지 이후 일본 불교학계에는 산스크리트 원전을 중시하고 한역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었으나, 지금은 한역 경전의 자료적 가치가 다시 평가되고 있다고 강의는 덧붙인다.

『개원석교록』은 당 지승(智昇)이 730년에 엮은 목록으로, 그 입장록은 이후 동아시아 대장경 편성의 표준이 되었다. 『정원석교록』은 원조(圓照)가 800년에 엮은 것이다. 本文의 「오천 · 칠천」은 이 두 목록을 겹쳐 일컬은 것으로 이해된다.

교상판석의 시대 — 남삼북칠에서 천태의 오시로

수많은 경론이 들어와 번역될수록 중국 불교계에서는 「교상판석」이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경전들을 설한 내용에 따라 분류하고 그 천심을 판정하는 일인데, 분류와 판정의 기준이 학자마다 달라 숱한 이설과 종파가 생겨났다.

구역 경론에 기대어 남북조 시대에 성립한 학파들을 천태종은 「남삼북칠(南三北七)」이라 불렀다. 모두 법화경 · 열반경 · 화엄경을 대표 경전으로 인정하는 점은 거의 같았으나, 그 주류는 화엄경이나 열반경을 제일로 하는 교판이었다. 그 대표가 광택사 법운(法雲)의 오시설(五時說)이다. 경전을 먼저 돈교 · 점교 · 부정교로 나누고, 화엄경을 부처가 성도 직후 깨달음을 그대로 설한 돈교로 따로 높인 뒤, 나머지를 중생의 근기에 맞춰 설한 점교로 하여 삼시 또는 오시로 가르고, 그 가운데 열반경을 맨 마지막에 여래상주 · 실유불성의 진실을 밝힌 경으로 둔다. 곧 법화경을 점교의 한 부분으로 보아 화엄경 · 열반경 아래에 둔 것이다.

남삼북칠에 들지는 않지만 천태대사와 같은 시대에 삼론종을 대성한 길장(吉藏)도 「삼전법륜(三轉法輪)」의 교판을 세웠다. 화엄경을 부처의 깨달음을 설한 근본법륜으로, 여러 경을 지말법륜으로 하고, 법화경을 지말의 경들을 근본으로 되돌리는 경으로 자리매김한다. 법화경의 위치는 남삼북칠과 조금 다르지만, 결국 법화경을 방편의 가르침과 같이 본다는 점은 같다.

이들에 맞서 처음으로 법화경을 일체경 가운데 최제일로 세운 이가 천태대사(天台大師)다. 그 이전의 교판이 주로 인도의 논서에 기대어 세워진 데 비해, 천태대사는 법화경의 개삼현일 · 개근현원의 법문 자체에 근거해 법화경 최제일을 주장했다. 곧 「의법불의인」을 원칙으로 하여 불설을 바탕으로 세운 교판이었다.

천태대사는 먼저 법화경에서만 여래의 깊은 뜻이 밝혀졌다고 보고, 그것을 세 가지 교상(三種の敎相)으로 밝혔다. 방편품 제2 · 비유품 제3에 의거한 제1 교상에서는, 여래가 중생 근기의 익고 익지 않음에 따라 갖가지 경을 설했다고 하여 오시(五時)의 차례를 밝혔다. 종래의 교판도 설시의 차례를 세웠으나, 그것은 돈교인 화엄경을 따로 높이고 점교 안에서만 차례를 둔 것이었다. 천태대사는 돈 · 점 · 부정의 구별을 경전 하나하나에 고정해 붙이지 않고, 그것을 여래의 보편적 설법 형식으로 파악했다. 부처의 내증을 곧바로 보이는 돈교의 모습은 화엄경에 한정되지 않고 여러 대승경에 공통하며, 부처는 법을 설할 때 반드시 먼저 돈교의 모습을 보인 뒤에 근기에 맞는 가르침을 설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종래의 돈 · 점 중심 분류와 독선적 가치 부여를 물리친 위에서, 천태대사는 법화경 적문 개삼현일의 설법 — 과거 · 현재 · 미래 일체 부처의 설법은 본래 일불승을 설하기 위한 것이지만 근기가 익지 않은 중생에게는 먼저 일불승을 나누어 삼승으로 설한다는 것 — 에 근거해, 중생의 근기를 길러 마침내 일불승에 돌아가게 하는 여래의 일관된 설법 과정으로서 오시교판을 세웠다. 그러므로 오시교판은 석존 한 부처의 설법 경과에 그치지 않고, 삼세 일체 부처의 설법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으로 펼쳐지는 과정이다. 여기가 종래 교판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화성유품 제7에 의거한 제2 교상에서는 석존의 화도가 금세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아득한 과거에 이미 하종(下種)한 것이며, 금세의 화도는 그 장원한 화도의 한 고리임을 밝혔다. 수량품 제16에 의거한 제3 교상에서는 석존의 깨달음인 실지(實智)도, 중생의 근기에 응해 갖가지로 설하는 권지(權智)도 구원의 과거에 성취된 것이며, 중생 또한 이 구원의 부처와 구원의 사제 관계에 있음을 밝혔다. 이 제3 교상은 생명의 궁극 차원에서 부처와 중생이 영원한 사제 관계에 있음을 밝힌 것이며, 이로써 부처의 화도와 중생의 득익이 성립하는 근거가 드러났다.

이렇게 천태대사는 법화경에서만 여래 화도의 의도와 중생 득익의 까닭이 밝혀졌고, 따라서 법화경에 이르러 갖가지 교법이 일불승으로 통합되었다고 보았다. 일체의 교법은 법화경으로 흘러들며, 법화경은 여러 경과 나란히 선 한 경전이 아니라 일체를 포섭하는 부처의 근본 교법이라는 것이다.

교상제1 교상근성의 융부융(融不融)
근거 품방편품 · 비유품
내용오시의 차례, 삼세 제불 설법의 보편 과정
교상제2 교상화도의 시종 불시종
근거 품화성유품
내용석존의 화도는 장원한 과거의 하종에서 시작
교상제3 교상사제의 원근
근거 품수량품
내용실지 · 권지 모두 구원에 성취, 부처와 중생은 구원의 사제
도표 3 · 천태대사의 삼종교상

천태대사 이후 7~8세기에 잇달아 성립한 법상종 · 화엄종 · 진언종도 각기 독자적 교판을 세웠다. 이들은 천태 교판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인도에서 새로 들어온 경론에 기대어 거기에 맞서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종의 의경을 높이려는 생각에 매여 번쇄한 이론이나 신비주의적 사법(事法)의 강조로 권위를 세우려 했으므로, 경전에 설해진 법리를 깊이 추구해 세운 천태 교판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강의는 본다. 또 남북조 말에서 당 초는 중국 불교의 대성기로서, 천태 · 법상 · 화엄 외에도 구역 소승 『사분율』에 기대어 계법 · 교의를 정비한 남산율종, 민간의 정토 신앙을 배경으로 타력 이행을 강조한 담란 · 도작 · 선도 계통의 정토종, 그리고 달마선의 흐름을 이어 돈오를 강조한 선종 등, 뒤에 일본에 전해진 여러 종이 잇달아 성립했다. 이 여러 종의 교판이 바로 다음 제2장의 재료다.

일본 전래와 「사람을 따르고 종에 기대는」 불교

중국 불교가 경전 한역과 제종 성립으로 특색 지어진다면, 그것을 본보기로 삼은 일본 불교는 그 특색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일본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것은 6세기 중엽으로 알려지는데, 7~9세기는 중국에서 교판이 형성되고 제종이 성립하던 바로 그 시기였다. 그래서 유학승과 도래승들은 한역 경전과 함께 중국에서 이미 이루어진 여러 종의 교의를 함께 들여왔다.

나라 시대 이전에 먼저 삼론종, 이어 법상종 · 성실종 · 구사종이, 나라 시대에 들어 화엄종 · 율종이 전해져 이른바 남도 육종이 번성했다. 헤이안 시대에는 사이초(전교대사)가 천태종을, 구카이(홍법)가 진언종을 들여왔고, 이후 이 두 종을 축으로 여덟 종이 국가의 비호 아래 공존하는 이른바 현밀 체제가 굳어졌다.

일본 불교는 이처럼 중국에서 이루어진 종파의 형태를 그대로 옮긴 데 특색이 있다. 교판의 문제로 말하면, 일본에서는 교판을 새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이미 이루어진 교판 가운데 어느 것을 쓰느냐가 문제의 중심이었다. 그 판정에서는 중국 제종 원조 · 대성자의 권위가 무엇보다 존중되었다. 일본 불교의 교판에 대한 자세는 바로 本文의 「사람을 따르고 종에 기대어 이를 안다」를 기본으로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전교대사를 빼고는 「의법불의인」의 원리로 세워진 천태 교판의 뜻을 참으로 알아본 이가 없었고, 本文의 「그 뜻이 어지러이 엉클어진다」는 말씀처럼 다툼만 있을 뿐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이 여덟 종에 더해, 헤이안 말기부터 말법 사상을 배경으로 염불과 선의 두 종이 성립 · 유포되어 모두 열 종이 나란히 서게 되었다. 게다가 천태종은 본래의 법화경 최제일의 정의를 잃고 밀교화해 있었다. 이 어서는 다음 제2장에서 천태종을 뺀 아홉 종의 교판을 늘어놓고 제3장에서 그것들을 모두 파절하시는데, 이는 인사에 의지하고 불설에 의지하지 않는 그릇됨을 깨뜨리시는 것이므로, 당시의 천태종도 이 비판에서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성인은 이렇게 제종의 교판을 전면적으로 검토하심으로써, 법화경 최제일이라는 천태 교판의 정신을 잊어버린 천태종에 엄한 비판을 가하셨다고 강의는 읽는다.

강의는 일본 불교의 교판 자세를 本文의 「사람을 따르고 종에 기대어」로 요약한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교판 가운데 하나를 조사의 권위로 골라 쓰는 불교였기에 「의법불의인」의 천태 교판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 결과가 「분비」였다는 것이다.

승렬 · 천심 · 난이 · 선후 — 교판의 네 관점

本文은 경론을 가리는 기준으로 「승렬 · 천심 · 난이 · 선후」 넷을 든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이를 「승렬은 능전의 교에 약하고, 천심은 소전의 이에 약하며, 난이는 법체에 약하고, 선후는 차제에 약한다」(『勝劣』は能詮の教に約し、『浅深』所詮の理に約し、『難易』は法体に約し、『先後』は次第に約するなり)고 나누고, 각각에 어서를 들어 풀었다.

승렬 — 교의 우열

「승렬」을 가린다는 것은 「교(敎)」에 대해 법화경이 가장 뛰어남을 아는 일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를 보이려고 「지묘법화문답초」의 다음 구절을 든다.

抑も希に人身をうけ適ま仏法をきけり、然るに法に浅深あり人に高下ありと云へり何なる法を修行してか速に仏になり候べき願くは其の道を聞かんと思ふ、答えて云く家家に尊勝あり国国に高貴あり皆其の君を貴み其の親を崇むといへども豈国王にまさるべきや、爰に知んぬ大小・権実は家家の諍ひなれども一代聖教の中には法華独り勝れたり

무릇 드물게 사람 몸을 받고 어쩌다 불법을 들었도다. 그런데 법에는 천심이 있고 사람에게는 고하가 있다고 하니, 어떤 법을 수행해야 속히 부처가 되겠습니까, 바라건대 그 길을 듣고자 하나이다. 답하되, 집집마다 존귀한 이가 있고 나라마다 고귀한 이가 있어 저마다 그 임금을 귀히 여기고 그 어버이를 숭상하지만 어찌 국왕보다 낫겠는가. 이로써 알지니라, 대소 · 권실은 집집의 다툼이나 일대성교 가운데서는 법화가 홀로 뛰어나니라.

「지묘법화문답초」, 461쪽

교의 승렬을 아는 것은 바른 수행의 대전제다. 그래서 이 어서도 이후 교의 승렬을 중심으로 논을 펴 가신다. 그러나 첫머리에서 굳이 네 관점을 함께 세우신 것은, 경의 선택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뜻을 보인다. 이 어서는 법화경이 밝힌 「이」의 당체인 본문 수량품 문저의 삼대비법을 밝히고, 이 가장 난신난해한 본문의 삼대비법을 말법 유통의 「법체」로 삼으시며, 「선후」에 대해서도 석존 설법의 차례를 잘 가리면 본문 정종분의 일품이반이 오로지 말법을 위해 설해졌음이 드러난다고 밝혀 가시기 때문이다.

천심 — 이의 깊고 얕음

「이의 천심」을 아는 데 대해 니치칸 상인은 「개목초」의 한 구절을 든다.

黒白のごとく.あきらかに須弥・芥子のごとくなる勝劣なを.まどへり・いはんや 虚空のごとくなる理に迷わざるべしや、 教の浅深をしらざれば理の浅深を弁うものなし

흑백처럼 분명하고 수미산과 겨자씨처럼 뚜렷한 승렬에도 오히려 미혹하니, 하물며 허공 같은 이치에 미혹하지 않겠는가. 교의 천심을 알지 못하면 이의 천심을 가리는 자가 없느니라.

「개목초」, 222쪽

이는 교에 의해 밝혀지므로 교를 능전(能詮), 이를 소전(所詮)이라 한다. 능전의 교에 승렬이 있으면 소전의 이에도 천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천태대사는 여러 경의 소전의 이를 「격력(隔歷)의 삼제」, 법화경의 소전의 이를 「원융(圓融)의 삼제」라 하여 그 천심을 분명히 했다. 니치칸 상인은 이의 천심을 아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전교대사 『법화수구』 권하의 「얕은 것은 쉽고 깊은 것은 어렵다는 것은 석가의 판정이요, 얕은 것을 버리고 깊은 것에 나아가는 것은 장부의 마음이다」라는 말을 든다. 이의 천심을 알면 얕은 경의 쉬움에 흘러가지 않고 깊은 법화경을 구해 가는 강한 구도심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난이 — 법체의 믿기 어려움

셋째 「법체의 난이」를 아는 데 대해 니치칸 상인은 「제경과 법화경과 난이의 사」의 다음 구절을 든다.

外道の経は易信易解・小乗経は難信難解・小乗経は易信易解.大日経等は難信難解・大日経等は易信易解・般若経は難信難解なり.般若と華厳と・華厳と涅槃と・涅槃と法華と・迹門と本門と・重重の難易あり。問うて云く此の義を知つて何の詮か有る答えて云く生死の長夜を照す大燈・元品の無明を切る利剣は此の法門に過ぎざるか

외도의 경은 이신이해, 소승경은 난신난해. 소승경은 이신이해, 대일경 등은 난신난해. 대일경 등은 이신이해, 반야경은 난신난해니라. 반야와 화엄, 화엄과 열반, 열반과 법화, 적문과 본문에 겹겹의 난이가 있느니라. 묻되, 이 뜻을 알아서 무슨 보람이 있는가. 답하되, 생사의 긴 밤을 비추는 큰 등불, 원품의 무명을 끊는 날카로운 칼은 이 법문에 지나지 않으리라.

「제경과 법화경과 난이의 사」, 991쪽

이 구절은 외도에서 법화경 본문에 이르는 「칠중(七重)의 난이」를 보여, 참된 난신난해의 법체가 법화경 본문에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법화경 본문의 법체를 믿을 때에만 생사의 미혹을 걷고 원품의 무명을 끊을 수 있다고 하여, 법체의 난이를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이신다. 같은 어서에서 대성인은 전교대사의 「이설의 사시의 경 · 금설의 무량의경 · 당설의 열반경은 이신이해니 수타의(隨他意)이기 때문이요, 이 법화경은 가장 난신난해니 수자의(隨自意)이기 때문이다」라는 글을 인용해 난신난해의 이유를 밝히신다. 법화경은 부처의 뜻에 따라 설한 수자의의 가르침이기에 가장 믿기 어렵지만, 바로 수자의의 가르침이기에 법화경을 믿는 것이 생사를 벗어나는 길이 된다. 이 「칠중의 난이」는 제3장에서 「난신난해」를 다룰 때 다시 자세히 본다.

선후 — 설법과 홍법의 차례

마지막 「선후」는 설법의 차례이며, 멸후로 말하면 「홍법의 차례」라고도 할 수 있다. 교법에 승렬 · 천심 · 난이가 있으므로, 그것을 바른 순서로 때에 맞게 설해 넓히지 않으면 중생을 구할 수 없다. 니치칸 상인은 이에 대해 「신국왕어서」의 구절을 든다.

法華経の第七の巻を見候へば『如来の滅後において仏の所説の経の因縁及び次第を知り義に随つて実の如く説かん日月の光明の能く諸の幽冥を除くが如く斯の人世間に行じて能く衆生の闇を滅す』等云云

법화경 제7권을 보니 「여래의 멸후에 부처가 설한 경의 인연 및 차례를 알아 뜻에 따라 진실대로 설하리니, 해와 달의 광명이 능히 모든 어둠을 없애듯이 이 사람은 세간에서 행하여 능히 중생의 어둠을 멸하리라」 하셨느니라.

「신국왕어서」, 1521쪽

여기 인용된 법화경 신력품 제21의 경문은 두 가지를 보인다. 첫째, 부처가 설한 경에는 차례가 있다. 둘째, 그 차례를 가려 멸후에 법을 넓히는 사람이 중생을 구하는 사람이다. 같은 어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文の心は此の法華経を一字も一句も説く人は必ず一代聖教の浅深と・次第とを能く能く弁えたらむ人の説くべき事に候、譬へば暦の三百六十日をかんがうるに一日も相違せば万日倶に反逆すべし、三十一字を連ねたる一句・一字も相違せば三十一字共に歌にて有るべからず、謂る一経を読誦すとも始め寂滅道場より終り雙林最後にいたるまで次第と浅深とに迷惑せば・其の人は我が身に五逆を作らずして無間地獄に入り・此れを帰依せん檀那も阿鼻大城に堕つべし

경문의 마음은, 이 법화경을 한 글자 한 구절이라도 설하는 사람은 반드시 일대성교의 천심과 차례를 잘 가린 사람이 설해야 한다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달력의 삼백육십 일을 헤아리는데 하루라도 어긋나면 만 날이 모두 어그러지고, 서른한 자를 이은 노래에서 한 구 한 자라도 어긋나면 서른한 자가 모두 노래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른바 한 경을 독송하더라도 처음 적멸도량에서 끝 쌍림 최후에 이르기까지 차례와 천심에 미혹하면, 그 사람은 제 몸에 오역죄를 짓지 않고도 무간지옥에 들어가고 이를 귀의하는 단나도 아비대성에 떨어지리라.

「신국왕어서」, 1522쪽

일대 불교의 차례와 천심에 미혹하면 법을 넓히는 스승도, 그것을 믿는 단나도 함께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차례와 천심을 모르면 부처의 참뜻을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천심을 모르고 뛰어난 교법이 넓혀진 뒤에 못한 교법을 넓히면, 못한 법으로 뛰어난 법을 가로막는 것이 되어 그 의미에서도 방법(謗法)에 통한다. 그래서 니치칸 상인은 선후를 아는 뜻에 대해 「법문을 말씀하시는 방법지사」의 「불설이 이미 크게 나뉘어 두 길이 되었느니라. 비유하면 세간 부모의 유언에 앞의 판정과 뒤의 판정이 있는 것과 같으니, 세간의 전판 · 후판은 여래의 금언을 배운 것인가. 효 · 불효의 근본은 전판 · 후판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에서 생기느니라」(1265쪽)는 말씀을 든다. 부모의 유언에 앞뒤 둘이 있으면 뒤의 것을 따르는 것이 효이듯, 부처의 설법에도 앞의 방편과 뒤의 진실이 있어 뒤의 것을 따르는 것이 참된 효순이라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의 분류
勝劣능전의 교(敎)에 약함지묘법화문답초一代聖教の中には法華独り勝れたり일대성교 가운데서는 법화가 홀로 뛰어나니라(461쪽)
浅深소전의 이(理)에 약함개목초教の浅深をしらざれば理の浅深を弁うものなし교의 천심을 알지 못하면 이의 천심을 가리는 자가 없느니라(222쪽)
難易법체(法體)에 약함제경과 법화경과 난이의 사生死の長夜を照す大燈생사의 긴 밤을 비추는 큰 등불(991쪽)
先後차제(次第)에 약함신국왕어서一代聖教の浅深と・次第とを能く能く弁えたらむ人の説くべき事일대성교의 천심과 차례를 잘 가린 사람이 설해야 하느니라(1522쪽)
니치칸 상인然れば則ち爾前・迹門・本門・文底の勝劣・浅深・難易・先後、能くこれを弁ずべし이전 · 적문 · 본문 · 문저의 승렬 · 천심 · 난이 · 선후를 잘 가려야 한다
도표 4 · 승렬 · 천심 · 난이 · 선후

네 관점이 가리키는 곳 — 문저의 묘법

이렇게 보면, 첫머리의 「승렬 · 천심 · 난이 · 선후」라는 표시는 교 · 이 · 법체 · 설법의 차례라는 모든 각도에서 판정해 가장 뛰어난 법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장 뛰어난 법이 법화경 수량품의 문저에 감추어진 삼대비법이다. 교판의 이 겹겹의 각도를 보이신 것은 문저의 묘법을 골라 취하기 위함이며, 그래서 니치칸 상인은 결론으로 「그러므로 이전 · 적문 · 본문 · 문저의 승렬 · 천심 · 난이 · 선후를 잘 가려야 한다(然れば則ち爾前・迹門・本門・文底の勝劣・浅深・難易・先後、能くこれを弁ずべし)」고 말한다.

이 편이 다루는 제1~3장은 그 가운데 주로 「승렬」, 곧 이전 대 법화의 교의 우열을 판정하는 단계다. 「천심」과 「난이」는 제3장의 난신난해론에서 법화경 안의 적문 · 본문의 난이로 이어지고, 「선후」는 대단 제2(제7~11장)에서 「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라는 물음으로 펼쳐진다. 첫 구절의 네 낱말은 이 어서 전체의 설계도인 셈이다.

제2장 제종의 그릇된 해석을 보이다
어서 331쪽 2~10행 · 第二 諸宗の謬解を示す

본문

本文 · 其の一어서 331쪽 2~7행
本文 · 어서 원문

所謂華厳宗の云く「一切経の中に此の経第一」と、 法相宗の云く「一切経の中に深密経第一」と、 三論宗の云く「一切経の中に般若経第一」と、 真言宗の云く「一切経の中に大日の三部経第一」と、 禅宗の云く或は云く「教内には楞伽経第一」と、或は云く「首楞厳経第一」と或は云く「教外別伝の宗なり」と、 浄土宗の云く「一切経の中に浄土の三部経末法に入りては機教相応して第一なり」と、 倶舎宗・成実宗・律宗云く「四阿含・並に律論は仏説なり華厳経・法華経等は仏説に非ず外道の経なり」或は云く或は云く、

풀이

이른바 화엄종은 「일체경 가운데 이 경(화엄경)이 제일」이라 하고, 법상종은 「일체경 가운데 심밀경이 제일」이라 하며, 삼론종은 「일체경 가운데 반야경이 제일」이라 하고, 진언종은 「일체경 가운데 대일의 삼부경이 제일」이라 하느니라. 선종은 혹은 말하되 「교내(敎內)에서는 능가경이 제일」이라 하고, 혹은 말하되 「수능엄경이 제일」이라 하며, 혹은 말하되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종이라」 하느니라. 정토종은 「일체경 가운데 정토의 삼부경이 말법에 들어서는 기(機)와 교(敎)가 상응하여 제일이라」 하고, 구사종 · 성실종 · 율종은 「사아함과 아울러 율 · 논은 불설이요, 화엄경 · 법화경 등은 불설이 아니라 외도의 경이라」 하며, 혹은 말하되 혹은 말하되 하느니라.

本文 · 其の二어서 331쪽 7~10행
本文 · 어서 원문

而に彼れ彼れ宗宗の元祖等・杜順・智儼・法蔵・澄観・玄弉・慈恩・嘉祥・道朗・善無畏・金剛智・不空・道宣・鑒真・曇鸞・道綽・善導・達磨・慧可等なり、 此等の三蔵大師等は皆聖人なり賢人なり智は日月に斉く徳は四海に弥れり、 其の上各各に経律論に依り更互に証拠有り随つて王臣国を傾け土民之を仰ぐ 末世の偏学設い是非を加うとも人信用を致さじ、

풀이

그런데 저 종 이 종의 원조들은 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 · 현장 · 자은 · 가상 · 도랑 ·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도선 · 감진 · 담란 · 도작 · 선도 · 달마 · 혜가 등이니라. 이들 삼장 · 대사들은 모두 성인이요 현인이라, 지혜는 해와 달과 같고 덕은 사해에 두루 미쳤느니라. 게다가 저마다 경 · 율 · 논에 의지하여 서로 증거가 있으니, 따라서 왕과 신하는 나라를 기울여 귀의하고 백성은 이를 우러르느니라. 말세의 치우친 학승이 설령 시비를 가한들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으리라.

어구 풀이

大日の三部経대일의 삼부경
대일여래를 능설의 교주로 하는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 앞의 둘은 중국 밀교와 일본 동밀(東密)이, 소실지경은 일본 태밀(台密)이 특히 중시했다.
深密経심밀경
『해심밀경』. 법상종의 정의(正依) 경전으로 삼시교판과 유식설을 설한다.
教内・教外別伝교내 · 교외별전
선종에서 경전으로 전해지는 가르침을 「교내」, 경전 밖에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따로 전해졌다는 진리를 「교외별전」이라 한다. 엄밀히는 교판이라기보다 교판을 부정하는 사고지만, 「교내」의 경전을 모두 방편으로 돌리므로 선종 성립의 규범 노릇을 한다.
楞伽経・首楞厳経능가경 · 수능엄경
능가경은 초기 선종이 중시한 유식계 경전(구나발타라 역). 수능엄경은 반랄밀제 역으로 전하나 오늘날 연구에서는 8세기 초 중국에서 찬술된 위경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機教相応기교상응
중생의 근기(機)와 가르침(敎)이 서로 맞음. 정토종은 말법의 열등한 근기에는 쉬운 염불이 맞는다고 하여, 법리의 천심보다 시기(時機)에 맞는지를 교판의 기준으로 삼았다.
四阿含사아함
북전으로 중국에 번역된 소승 경장 네 가지 — 장아함경 · 중아함경 · 잡아함경 · 증일아함경. 「아함」은 범어 아가마의 음사로 「전승된 가르침」의 뜻이다.
或は云く或は云く혹은 말하되 혹은 말하되
아홉 종 외에도 갖가지 교판이 있음을 보이는 말. 니치칸 상인은 이를 「자각 · 지증의 뜻」, 곧 천태 밀교의 교판까지 가리킨다고 풀었다.
五教十宗오교십종
화엄종 법장의 교판. 소승교 · 대승시교 · 대승종교 · 대승돈교 · 대승원교의 다섯 교와, 소승을 여섯 종으로 나누어 대승 넷과 합친 열 종.
同教一乗・別教一乗동교일승 · 별교일승
법장이 세운 구별. 삼승과 마주하거나 나란히 서는 일승이 동교(법화경), 삼승을 넘어서 부처의 절대 경지를 밝히는 일승이 별교(화엄경)라 하여 화엄을 높였다.
五性各別오성각별
법상종의 교의. 중생을 정성성문 · 정성독각 · 정성보살 · 삼승부정 · 무성유정의 다섯 종성으로 나누고, 그 가운데 셋은 성불의 종자가 없다고 한다.
三転法輪삼전법륜
삼론종 길장의 교판. 근본법륜(화엄경) · 지말법륜(대소승의 여러 경) · 섭말귀본법륜(법화경).
十住心십주심
홍법(구카이)이 대일경 주심품과 『보리심론』에 기대어 세운 교판. 마음이 머무는 곳을 열 단계로 나누어 외도부터 진언밀교까지 배열하고, 천태(법화)를 여덟째에 두었다.
理同事勝이동사승
선무외 · 일행이 세우고 자각 · 지증이 따른 태밀의 교판. 법화경과 대일경은 이(理)에서는 같으나 인(印) · 진언(眞言)의 사(事)에서는 대일경이 뛰어나다는 주장.
捨閉閣抛사폐각포
법연의 『선택집』이 성도문 · 잡행을 「버리고(捨) · 닫고(閉) · 놓아두고(閣) · 던지라(抛)」고 한 것을 대성인이 네 글자로 요약하신 말.
偏学편학
한쪽으로 치우친 학문을 하는 이. 대성인이 당시 세상의 눈으로 스스로를 낮추어 일컬으신 말이다.
王臣国を傾け왕신 나라를 기울여
국왕과 신하가 나라를 들어 귀의함. 조사들이 왕실의 귀의를 받아 한 시대를 풍미한 사실을 가리킨다.

아홉 종의 「제일」 — 니치칸 상인의 개관에서

제1장에서 「사람을 따르고 종에 기대어 아는 자는 그 뜻이 어지러이 엉클어진다」고 하신 것을 받아, 이 장에서 대성인은 교판에 관한 각 종의 이설을 한 줄씩 늘어놓으신다. 화엄의 「이 경 제일」, 법상의 「심밀경 제일」, 삼론의 「반야경 제일」, 진언의 「대일의 삼부경 제일」, 선의 「능가경 제일 · 수능엄경 제일 · 교외별전」, 정토의 「정토 삼부경이 말법에 기교상응하여 제일」, 구사 · 성실 · 율의 「사아함과 율 · 논만 불설, 화엄 · 법화는 외도의 경」. 모두가 「일체경 가운데」라는 같은 머리말로 서로 다른 경을 「제일」이라 부른다. 이것이 本文이 말하는 「분비」의 실상이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각 종의 의경과 교판의 개략을 보였고, 창가학회의 강의는 그에 기대어 각 종의 교판을 하나하나 풀어 비판한다. 아래에서는 그 순서를 따라 종마다 성립사 · 교판의 구조 · 소의 경론 · 파절의 요점을 차례로 본다. 이 교판사를 짚어 두어야 다음 제3장에서 대성인이 세우시는 「이금당 세 글자」가 어떤 혼란을 꿰뚫는 기준인지가 분명해진다.

本文 그대로
종華厳宗화엄종
本文一切経の中に此の経第一일체경 가운데 이 경이 제일
종法相宗법상종
本文一切経の中に深密経第一심밀경 제일
종三論宗삼론종
本文一切経の中に般若経第一반야경 제일
종真言宗진언종
本文一切経の中に大日の三部経第一대일의 삼부경 제일
종禅宗선종
本文教内には楞伽経第一교내에서는 능가경 제일首楞厳経第一수능엄경 제일教外別伝の宗なり교외별전의 종
종浄土宗정토종
本文一切経の中に浄土の三部経末法に入りては機教相応して第一なり정토 삼부경이 말법에 기교상응하여 제일
종倶舎宗・成実宗・律宗구사 · 성실 · 율
本文四阿含・並に律論は仏説なり華厳経・法華経等は仏説に非ず外道の経なり사아함과 율 · 논만 불설, 화엄 · 법화는 외도의 경
종자각 · 지증의 태밀 교판(니치칸 상인)
本文或は云く或は云く혹은 말하되 혹은 말하되
도표 5 · 아홉 종의 「제일」

화엄종 — 오교십종과 동별이교

성립

화엄종은 중국 남북조 시대에 세친(천친)의 『십지경론』에 기대어 성립한 지론종의 흐름을 이어, 7세기에 초조 두순(杜順)과 제2조 지엄(智儼)이 화엄 교학을 형성하고 제3조 법장(法藏)이 교학적으로 대성한 종이다. 8세기에는 제4조 징관(澄觀)에 의해 교단 활동이 활발해졌으나, 머지않아 선종에 흡수되었다.

오교십종

이 종의 대표 교판은 법장이 세운 「오교십종(五敎十宗)」이다. 다섯 교는 소승교 · 대승시교 · 대승종교 · 대승돈교 · 대승원교다. 대승시교에는 일체개공을 설하는 해심밀경 · 반야경과 유식 · 삼론 관계의 논서를, 대승종교에는 여래장을 설하는 승만경 · 여래장경과 『대승기신론』 등을, 대승돈교에는 유마경 같은 경에 설해진 속질돈성(速疾頓成)의 가르침을 배당하고, 마지막 대승원교를 가장 뛰어난 것으로 하여 여기에 화엄경을 둔다. 「십종」은 다섯 교 가운데 소승교를 여섯 종으로 나누어 대승의 네 교와 합친 것이다.

이 교판에는 현실적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장 · 자은 이래 당 왕조의 비호를 받아 세력을 떨치던 법상종을 「대승시교」라는 낮은 자리에 두고, 원교인 화엄경을 그 위에 세우는 것이다.

동교일승 · 별교일승

오교십종 안에는 법화경의 위치가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법장은 다른 각도에서 화엄경이 법화경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일승을 「동교일승」과 「별교일승」으로 나누고 별교일승이 뛰어나다고 한 것이다.

화엄종이 말하는 별교일승은 부처의 절대적 경지를 밝힌 가르침이다. 다만 부처의 경지 그 자체는 설할 수 없으므로(果分不可說), 설할 수 있는 인분(因分)에서 그 경지를 밝힌 것이 화엄경이라 한다. 그 경지는 중중무진(重重無盡) · 상즉상입(相卽相入) · 주반구족(主伴具足) 같은 말로 표현된다. 일체 제법이 끝없이 서로 관계하고 서로를 포섭하여, 하나가 나타나면 다른 일체가 거기 함께한다는 이 일대 법계야말로 부처의 경지이며, 이를 설하는 것은 화엄경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중중무진의 연기를 십현(十玄) · 육상(六相)의 법문으로 설명했다.

화엄종에 따르면 이 별교일승이야말로 방편인 삼승과의 대립을 넘어서면서 삼승을 포섭하는 참으로 절대적인 일승이다. 반면 동교일승은 삼승과 마주하거나 나란히 세워지는 일승이다. 간단히 말해 별교일승은 삼승과 구별되는 면, 동교일승은 삼승에 응해 같이하는 면이다. 그리고 법화경은 삼승과의 관계 위에서 일승을 밝히는 데 그치고 부처의 절대 경지 자체는 밝히지 않은 동교일승이라고 한다. 이렇게 화엄종은 법화경과 화엄경을 똑같이 일승의 가르침이라 하면서도, 동별이교판으로 법화경을 화엄경에 딸린 자리로 낮추고, 오교판에서 원교의 우위를 오로지 화엄경에 돌렸다.

천태의 판정 — 겸별대권의 원

그러나 천태대사는 화엄경을 별교와 원교를 함께 설한 경(兼別)으로 본다. 화엄경은 특별히 큰 근기의 보살에게 설했다는 의미에서 별교이며, 법리로는 공 · 가의 두 극단을 넘어선 중도를 설해 삼제가 갖추어지므로 이전경의 범위 안에서는 원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도는 공 · 가 두 극단과 단절된 초월적 진리로 설해져 있어, 그 의미에서 화엄경의 삼제는 원융하지 않다. 그래서 중도를 깨닫는 수행은 공관 · 가관 · 중관의 차례 수행(次第行)을 밟을 수밖에 없고, 화엄경에 설해진 보살행은 역겁수행이 된다. 여기에 화엄경이 별교인 까닭이 있으며, 화엄의 원교는 권교인 별교를 달고 있는 원, 곧 대권(帶權)의 원이다.

또 화엄경의 초월적 중도는 모든 상대를 끊은 절대묘(絶待妙)라고 할 수 없다. 공 · 가 두 극단과 서로 마주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법화경은 여러 경에서 장 · 통 · 별의 거친 법(麤法)을 달고 설한 까닭을 밝히고 여러 승(乘)을 일불승으로 개회한다. 이 개회에 의해서만 참된 절대의 묘법이 드러나므로, 법화경만이 순수한 원교다. 화엄 별교일승의 「절대」가 불가사의한 부처의 경계를 초월적 일대 법계로 추상화해 사변적으로 논한 것이라면, 법화경의 절대묘는 여래의 화도와 중생의 득익이라는 실제의 장(場)에서 묘법이 드러난 그 자리를 가리킨다.

화엄종은 별교일승의 경증으로 흔히 화엄경 현수품의 「일체 세계의 모든 중생은 성문도를 구하고자 하는 이가 적고, 연각을 구하는 이는 더욱 적으며, 대승을 구하는 이는 매우 드물다. 대승을 구하는 것은 오히려 쉬우나 이 법을 능히 믿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물며 능히 수지하고 바르게 억념하며 설한 대로 수행하여 진실을 이해함이랴」라는 경문을 든다. 이 글이 성문승 · 연각승 · 대승의 삼승을 넘어서는 일승으로 화엄경을 자리매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은 법화경의 「이금당」처럼 일체경과 마주 세워 화엄경의 난신을 밝힌 것이 아니다. 더구나 법장 등이 화엄경 = 별교일승을 논하면서 도리어 법화경 비유품 제3의 삼거화택(三車火宅) 비유를 전면적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은, 법화경 없이는 별교일승의 논리조차 세울 수 없었음을 보여 준다고 강의는 지적한다. 이 현수품의 글은 제3장에서 「상사의 경문」의 하나로 다시 나온다.

강의는 화엄종의 교판을 「동별이교로 법화를 화엄 아래에 두고, 오교판으로 원교의 우위를 화엄에만 돌린」 이중 구조로 정리하고, 천태의 「겸별대권」 판정과 법화경의 「개회에 의한 절대묘」로 이를 깨뜨린다.

오교
  1. 소승교
  2. 대승시교해심밀경 · 반야경 · 유식 · 삼론
  3. 대승종교승만경 · 여래장경 · 대승기신론
  4. 대승돈교유마경 등
  5. 대승원교화엄경
동별이교
동교일승삼승에 응해 같이하는 일승법화경
별교일승삼승을 넘는 절대의 일승화엄경
천태의 판정
화엄 = 겸별대권의 원(帶權の圓)삼제가 원융하지 않아 차제 · 역겁의 수행법화 = 개회에 의한 순원(純圓)절대묘
도표 6 · 화엄종의 교판

법상종 — 삼시교와 오성각별

성립과 소의

법상종은 당 태종 대에 현장(玄奘)이 들여온 유식 관계 경론을 바탕으로 성립하고, 현장의 제자 규기(窺基, 자은대사)에 의해 대성된 종이다. 당 왕조의 비호 아래 세력을 떨쳤다. 해심밀경을 정의의 경전으로 하고 그 유식설을 종지로 삼는다. 이 유식설은 미륵보살의 『유가사지론』, 무착의 『섭대승론』, 세친의 『유식론』으로 전개 · 정리되었으므로 이 논서들도 소의로 쓴다.

그러나 유식설은 무착 · 세친 이후 몇 계통으로 갈라졌고, 법상종이 종지로 삼은 것은 무착 · 세친의 정통을 이은 것이 아니다. 법상종은 세친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인도 열 논사의 주석을 모은 『성유식론』을 소의로 하는데, 이 책은 열 논사 가운데 오로지 호법(護法)의 설을 정설로 삼는다. 따라서 법상종은 실질적으로 호법의 유식설에 기대고 있다.

삼시교판

법상종은 먼저 해심밀경에 설해진 삼시의 교판에 따라 석존 일대의 경을 초시유교(初時有敎) · 제2시공교(空敎) · 제3시중도교(中道敎)로 나누고, 앞의 두 시는 방편의 미완성 가르침, 제3시 중도교가 진실을 보인 가르침이라 한다. 해심밀경의 삼시판은 첫째, 성문에게 사제의 상(相)을 설한 소승교, 둘째, 일체법의 무자성 · 공을 「은밀(隱密)의 상」으로 보인 가르침, 셋째, 일체법의 무자성 · 공을 「현료(顯了)의 상」으로 보인 해심밀경의 유식설 — 이 셋을 세워 셋째의 우위를 설하는 데 주안이 있다. 「현료의 상」이란 팔식이나 삼성 같은 법상을 분명히 설하고 그 무자성 · 공을 밝히는 것이고, 반야경 등은 그런 법상을 밝히지 않고 무자성 · 공을 논하므로 「은밀의 상」이라 한다. 해심밀경 무자성상품은 제3시에 대해 「현료의 상으로 정법륜을 굴리시니, 제일로 매우 기이하고 가장 희유하다. 지금 세존이 굴리시는 법륜은 위없고 받아들일 여지가 없으니(無容) 이것이 참된 요의(了義)다」라고 한다.

이 삼시판은 본래 법화 · 열반을 포함하지 않는, 부분적 상대 관계 위에 세운 교판이다. 그런데 법상종은 이를 보편적 교판으로 만들기 위해 법화경 등을 일부러 제3시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또 이것은 중국 불교계에서 이미 권위가 있던 법화경 · 화엄경 · 열반경과 같은 중도교로 해심밀경을 자리매김함으로써 자종의 의경에 권위를 입히려 한 것이기도 하다.

오성각별 · 삼승진실

다른 한편 법상종은 호법의 유식설에 기대어 오성각별 · 삼승진실 · 일승방편을 설한다. 오성각별이란 중생을 정성성문종성 · 정성독각종성 · 정성보살종성 · 삼승부정종성 · 무성유정종성의 다섯으로 나누고, 그 가운데 정성성문 · 정성독각 · 무성유정은 성불의 종자가 없으므로 성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삼승진실 · 일승방편이란, 일체중생을 똑같이 성불시키는 가르침으로서의 일승은 삼승부정종성의 중생을 이끌기 위한 방편이고, 중생의 차이에 따라 나누어 설한 삼승(또는 사승)의 가르침이 진실이라는 설이다. 이로써 법상종은 법화경 등으로 일승을 내세우는 천태종 · 삼론종을 부정하고 자종의 독자성과 우위를 강조했다.

강의는 이 오성각별 · 일승방편의 설을 호법 계통 유식론에 사로잡힌 데서 나온 잘못된 설로 본다. 본래의 정통 유식설은 일체가 오직 식(識)일 뿐이라 하여 대상(境)의 공을 논하는 동시에, 대상을 분별하는 식도 공이라 한다. 그리고 미혹의 제법이 팔식의 상호 관계로 나타남을 보이는 동시에, 식의 존재 방식을 전환함으로써(轉識) 중생의 성불이 있다고 한 것이 본래의 유식론이었다. 이에 비해 호법 및 법상종의 유식론은 일체는 식을 떠난 존재가 아니라 하여 대상은 공으로 보되 식은 실체로 본다. 그래서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까지 실체화하고, 위에서 본 것처럼 중생의 다섯 종성을 고정하는 사고가 생겨났다. 이렇게 보면 법상종의 교의는 그들이 의경으로 삼는 해심밀경 교판의 제3시에조차 맞지 않는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삼론종 — 이장과 삼전법륜

성립

삼론종은 용수의 『중론』 · 『십이문론』과 제바의 『백론』을 소의로 하는 종이다. 이 세 논서를 한데 묶어 중시하는 생각은 이미 인도의 중관파에 있었다고 하며, 구마라집의 번역과 함께 그 생각도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삼론종은 구마라집을 시조로 삼는다. 세 논이 구마라집 문하에서 활발히 연구된 것은 확실하지만, 이 종의 기본 교의인 「이제중도(二諦中道)」설이 형성된 것은 북량의 승랑(僧朗) 이후로, 승전(僧詮) · 법랑(法朗)으로 전해지고, 수에서 당 초에 걸쳐 길장(吉藏, 가상대사)에 의해 교의가 대성되었다.

이장 — 성실의 공과 삼론의 공

삼론종의 교판은 길장이 세운 「이장(二藏)」과 「삼전법륜」이다. 이장은 성문장과 보살장, 곧 대승과 소승에 관한 교판이다. 이것은 주로 성실종이 설하는 공과 삼론종이 설하는 공의 차이를 밝히는 데 주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실종에서는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의 이제가 모두 중도에 근거해 세워진 두 진리라 하여, 속제의 유(有)도 중도에 근거하므로 비유(非有)이며 진제의 공(空)도 무이면서 비무(非無)라 한다.

이에 대해 길장은 진 · 속 이제는 실재하는 진리가 아니라 부처가 중도를 가르치려고 쓴 방편이며, 진제를 설해 속제에 대한 집착을 깨고 속제를 설해 진제에 대한 집착을 깨는 것이라 한다. 이렇게 한쪽의 집착을 깨뜨림으로써 말로는 설할 수 없는 중도의 진리를 가르치려 한 것이다. 따라서 대승 공의 참뜻은 불가득(不可得)의 공이며, 성실종이 말하는 것처럼 속제의 유와 상대해 세운 진제의 공은 소승의 석공(析空)과 다름없다고 단정한다. 삼론종은 이런 공관에서 선악을 가리지 않고 일체에 대한 집착을 깨며, 그 파사(破邪)를 통해서만 중도를 드러낼 수 있다고 한다(破邪卽顯正). 용수의 두 논에 더해 모든 설을 논파하는 제바의 『백론』을 중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만 강의는 이 종이 설하는 유 · 공을 넘어선 진리로서의 중도가 천태대사가 말하는 「격력의 삼제」에 해당한다고 본다.

삼전법륜과 「반야경 제일」

「삼전법륜」은 앞 장에서 본 것처럼 석존 일대의 경을 근본법륜(화엄경) · 지말법륜(대소승의 여러 경) · 섭말귀본법륜(법화경)의 차례로 보는 것이다. 화엄경과 열반경을 중시한 남삼북칠에 비하면 법화경을 중시한 점에서 한 걸음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화경의 역할을 어디까지나 근본법륜인 화엄경으로 지말의 경들을 돌려보내는 가르침으로 한정했으니, 화엄경을 따로 높인 종래 교판을 법화경의 글로 뒷받침한 셈이 되어 결과적으로 오히려 법화경의 참뜻을 비튼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本文이 삼론종의 교판을 「반야경 제일」로 드신 것은, 삼론종이 소의로 하는 세 논서가 반야경을 규범으로 삼으므로 전통적으로 반야경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이다. 전교대사의 『법화수구』 권하에도 「대당의 전(傳)에 이르되 『마하반야는 삼론종 소의의 경이다』」라는 말이 있다.

길장 자신은 평생 법화경을 삼백 번 넘게 강의했다고 하며 법화경 주석서도 많이 지었다. 그럼에도 법화경의 뜻을 붙잡지 못한 것은, 여러 대승경은 모두 같은 길을 설한다는 반야경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야경에는 이를테면 「들은 바를 따라 모두 능히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회입(會入)한다. 짓는 바 세간의 사업도 또한 반야바라밀다의 방편선교에 의해 법성에 회입한다. 한 가지 일도 법성을 벗어나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취지의 글이 있어, 반야경이 설하는 반야바라밀이 세간 · 출세간 모든 경의 귀착점이고 다른 경은 그 방편이라 한다. 이런 사고에서 길장은 『법화현론』 권8에서 법화경의 소전은 반야경과 같다고 했다.

法華は但開権の義を明かさ波若と異なるのみ。若し顕実の義は終に波若に帰す。波若の外に別に法華あるにはあらざるなり。法華と波若は同じく一大乗蔵是れなり。亦同じく一原と為すことを得

법화는 다만 개권(開權)의 뜻을 밝히는 점에서 반야와 다를 뿐이다. 현실(顯實)의 뜻이라면 마침내 반야로 돌아간다. 반야 밖에 따로 법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법화와 반야는 똑같이 하나의 대승장이며, 또한 똑같이 한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길장, 『법화현론』 권8

이 길장의 설에 대해 대성인은 「보은초」에서 「가상대사의 법화현을 보니 크게 법화경을 비방한 소(疏)는 아니로되, 다만 법화경과 여러 대승경은 문(門)은 천심이 있으나 마음은 하나라고 썼으니, 이것이 방법의 근본이리라(嘉祥大師の法華玄を見るにいたう法華経を謗じたる疏にはあらず但法華経と諸大乗経とは門は浅深あれども心は一とかきてこそ候へ此れが謗法の根本にて候か)」(315쪽)라고 파절하셨다. 법화경을 크게 헐뜯지 않았으면서도, 「마음은 하나」라고 하여 법화경의 독자성을 지운 그 한마디가 방법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진언종 — 현밀이교와 십주심

성립 — 중국 밀교와 일본의 동밀 · 태밀

중국 진언종은 당 현종 개원 연간에 인도에서 온 선무외(善無畏)와 금강지(金剛智)가 연 종이다. 둘은 7세기 인도에서 성행한 밀교를 중국에 전했다. 선무외는 대일경을, 금강지는 금강정경을 번역했고, 이 두 경의 번역이 진언종의 기반이 되었다. 또 선무외의 영향을 받은 천태승 일행(一行)의 『대일경소』와, 금강지의 제자 불공(不空)의 수많은 밀교 경전 번역으로 진언종의 교의와 의궤가 정비되었다. 특히 불공은 적군 조복 같은 호국 밀교를 강조해, 안사의 난에 따른 정세 불안을 타고 당 왕조의 귀의를 얻어 성당에서 만당까지 번영했다. 그러나 무종의 불교 탄압(회창의 폐불) 이후 급속히 쇠퇴했고, 당 멸망 뒤에는 도교 같은 민간 신앙과 섞였다.

일본에는 불공의 제자 혜과(惠果)에게서 대일 · 금강정 양부의 관정을 받은 구카이(홍법)가 전해 종을 열었다. 조금 뒤에는 천태종의 엔닌(자각) · 엔친(지증)이 당에 들어가 천태종에 밀교를 들였다. 이후 일본 밀교는 구카이 계통의 동밀(東密)과 천태 계통의 태밀(台密) 두 계통이 나란히 서게 되었다.

「대일의 삼부경 제일」이 가리키는 범위

중국 진언종은 뚜렷한 교판을 세우지 않았으나, 일본 진언종은 구카이에 의해 「현밀이교」와 「십주심」의 교판을 세웠다. 本文이 진언종의 교판을 「대일의 삼부경 제일」로 드신 것은, 대일여래를 능설의 교주로 하는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 세 경을 가리킨다. 대일 · 금강정 두 경은 중국 밀교와 동밀이, 소실지경은 태밀이 중시했다. 또 동밀은 대일경 제일 · 화엄경 제이 · 법화경 제삼으로, 중국 밀교와 태밀은 대일경 제일 · 법화경 제이로 세우는 차이가 있지만, 어느 쪽이든 대일경을 제일로 하므로 本文이 말하는 진언종에는 동밀뿐 아니라 태밀도 들어간다고 강의는 읽는다. 태밀의 「이동사승」은 아홉 종의 교판을 다 본 뒤 덧붙여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동밀의 교판을 본다.

현밀이교 — 네 관점의 현렬밀승

구카이는 『변현밀이교론』에서 「현밀이교」를, 『비장보약』 · 『십주심론』에서 「십주심」을 펼쳤다. 현밀이교판은 ① 능설의 불신, ② 소설의 교법, ③ 소화(所化)의 근기, ④ 성불의 지속(遲速)의 네 관점에서 밀교가 뛰어나고 현교가 못하다(顯劣密勝)고 한다. 여기서 밀교는 대일경 · 금강정경의 가르침, 현교는 그 밖의 대소승 여러 경의 가르침이다.

첫째, 능설의 불신으로 보면 밀교는 법신의 설법이고, 현교 가운데 삼승교는 응신, 일승교는 보신의 설법이므로 밀교가 뛰어나다. 둘째, 소설의 교법으로 보면 현교는 인분가설 · 과분불가설이라 하여 부처의 자내증인 과분을 언어도단 · 심행소멸이라 하지만, 밀교는 법신 대일여래가 자수법락(自受法樂)하는 삼밀의 대비 위에서 밝힌 가르침이므로 뛰어나다. 셋째, 소화의 근기로 보면 현교는 하근하지, 밀교는 상근상지를 위한 가르침이므로 뛰어나다. 넷째, 성불의 지속으로 보면 현교의 수행은 삼대무수겁의 긴 시간을 거쳐 성불하는 역겁수행이지만, 밀교는 삼밀가지(三密加持) ·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으로 부모에게서 받은 육신 그대로 즉신성불하므로 뛰어나다. 그리고 천태 · 화엄 두 종도 즉신성불을 설하지만 이론뿐이고 실현의 방법이 없다고 한다.

십주심 — 경증 없는 여덟째 · 아홉째

「십주심」은 대일경 주심품 제1과 『보리심론』의 승의단(勝義段)으로 세운 교판이다. 주심(住心)은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으로, 여기에 열 단계를 두어 불교 여러 파와 불교 밖의 여러 사상을 배열해 그 천심을 판별한다. ① 이생저양심(異生羝羊心) — 바라문 외도, ② 우동지재심(愚童持齋心) — 불교 속의 인승(人乘)과 중국의 유교, ③ 영동무외심(嬰童無畏心) — 불교 속의 천승(天乘)과 중국의 노장, ④ 유온무아심(唯蘊無我心) — 성문교, ⑤ 발업인종심(拔業因種心) — 연각교, ⑥ 타연대승심(他緣大乘心) — 유식 법상종, ⑦ 각심불생심(覺心不生心) — 삼론종, ⑧ 일도무위심(一道無爲心) — 천태종, ⑨ 극무자성심(極無自性心) — 화엄종, ⑩ 비밀장엄심(祕密莊嚴心) — 진언밀교.

구카이는 대일경 입진언문주심품의 「무엇이 보리인가. 이르되 실답게 자심을 아는 것이다(云何が菩提。謂く、如実に自心を知るなる)」를 근거로, 자심의 궁극 실상을 드러낸 것이 대일경 · 금강정경에 설해진 태장계 · 금강계 만다라라 한다. 그리고 여러 경이 설하는 바는 자심의 실상을 부분부분 드러낸 것이며, 여러 경은 궁극의 진언밀교에 이르는 단계적 과정이라고 자리매김한다.

열 주심 가운데 ①~③은 세간의 마음으로, 인과응보를 아느냐로 단계가 나뉜다. ④~⑦은 대승 · 소승의 차이나 삼승의 차이를 기본으로 단계가 매겨져 있다. 마지막 ⑧~⑩은 일승인 궁극의 진리를 설하는 가르침을 나눈 것이라 하는데, 강의는 바로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구카이는 십주심의 근거가 대일경에 있다고 하지만, 대일경 어디에도 이런 구분에 해당하는 경증이 없기 때문이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입진언문주심품의 네 글을 늘어놓으셨다.

大日経第一に云く『秘密主大乗行あり無縁乗の心を発す法に我性無し何を以ての故に彼往昔是くの如く修行せし者の如く 蘊の阿頼耶を観察して自性幻の如しと知る』等云云、又云く『秘密主彼是くの如く無我を捨て心主自在にして自心の本不生を覚す』等云云、又云く『所謂空性は根境を離れ無相にして境界無く諸の戯論に越えて虚空に等同なり乃至極無自性』等云云、又云く『大日尊秘密主に告げて言く秘密主云何なるか菩提・謂く実の如く自心を知る』等云云

대일경 제1에 이르되 「비밀주여, 대승의 행이 있어 무연승(無緣乘)의 마음을 일으키니 법에 아성(我性)이 없느니라. 어째서인가, 저 옛적에 이와 같이 수행한 자처럼 온(蘊)의 아뢰야를 관찰하여 자성이 환(幻)과 같음을 아느니라」, 또 이르되 「비밀주여, 저는 이와 같이 무아를 버리고 심주(心主)가 자재하여 자심의 본불생(本不生)을 깨닫느니라」, 또 이르되 「이른바 공성은 근(根)과 경(境)을 떠나 무상(無相)하여 경계가 없고 모든 희론을 넘어 허공과 같으니라 …… 극무자성(極無自性)」, 또 이르되 「대일존이 비밀주에게 고하여 말씀하시되, 비밀주여 무엇이 보리인가, 이르되 실답게 자심을 아는 것이니라」 하셨느니라.

「개목초」, 221쪽

이 넷을 Ⅰ · Ⅱ · Ⅲ · Ⅳ라 하면, Ⅰ은 ⑥ 타연대승심(법상종), Ⅱ는 ⑦ 각심불생심(삼론종)의 경증이 될 수 있다. Ⅳ도 구카이의 말을 일단 인정하면 ⑩ 비밀장엄심의 경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카이가 ⑧ 일도무위심(천태종)과 ⑨ 극무자성심(화엄종)의 경증으로 드는 것은 Ⅲ 하나뿐이다. Ⅲ은 공성무경(空性無境) · 극무자성을 설하는데, 이는 공 · 가 이제를 넘어선 중도, 곧 격력의 삼제를 설하는 화엄경(화엄종)이나 반야경(삼론종)의 가르침에 해당할 뿐, 천태대사의 삼제원융, 따라서 법화경의 법문을 나타낸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

구카이도 이를 알아챘는지, 비밀장엄심의 경증으로 삼은 「여실지자심」을 ⑧ 일도무위심의 다른 이름으로 대기도 한다. 다만 천태종의 삼제원융의 이치는 여러 현교 가운데서는 궁극의 이지법신(理智法身)을 드러내지만 진언문에서 보면 「여실지자심」의 초문(初門)이라고 자리매김한다. 그 증거로 대일경의 「초법명도(初法明道)」라는 글과 『대지도론』의 글로서 「입불도의 초문이라 한다」를 들지만, 어느 것도 법화경을 지목한 것이 아니므로 적절한 문증이 되지 못한다. 나아가 구카이는 ⑧ 일도무위심이 궁극이 아님을 보이는 데 매달려, 그것을 진언 만다라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관음보살의 삼마지문으로 자리매김하거나 『석마하연론』을 끌어와 아직 지극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다가, 끝내 「중이 아니다. 이와 같은 일심은 무명의 변역(邊域)이요 명(明)의 분위가 아니다(中に非ず是くの如くの一心は無明の辺域にして明の分位に非ず)」라고 하여 천태의 법문, 곧 법화경을 깎아내렸다.

이렇게 ⑧ 천태종은 「무명의 변역」이라 낮춘 데 비해, 구카이는 ⑨ 극무자성심(화엄종)은 진언행이 시작되는 단계로 적극적으로 자리매김한다. 화엄종이 궁극으로 삼는 과분불가설의 경지를 출발점으로, 법신 대일여래의 작용과 진언 행자가 상응해 가는 수행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 자리매김이 화엄경과 밀교 경전의 친연성, 곧 대일경 등이 화엄경의 연장선 위에서 성립했음을 말해 주는 동시에, 화엄경 · 대일경 등이 법화경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본다. 법화경이 어디까지나 이승작불 · 구원실성을 설해 중생에게 구체적이고 엄밀하게 성불의 법을 드러낸 데 비해, 화엄경이나 대일경은 불가설의 경계나 본유의 법신을 이(理)로 설할 뿐이다. 강의는 인 · 진언이라는 신비적 사법(事法)으로 대일 법신과 합일할 수 있다는 진언종의 주장을, 성불의 길을 신비라는 상자 속에 가두고 그 위에 즉신성불을 꾸며 낸 것이라고 비판한다.

어쨌든 대일경의 설은 반야경이나 열반경에 통하는 데가 있다고 할 수는 있어도 법화경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며, 따라서 대일경에 설령 「대일경 제일」이라는 말이 있더라도 그것은 반야경이나 화엄경에 대해서일 뿐이다. 대일경에 기댄다는 구카이의 십주심판, 특히 ⑧ 일도무위심 = 천태종의 자리매김은 경론에 근거하지 않은 아견(我見)의 설이라고 강의는 단정한다. 덧붙여 구카이가 대일경의 「여실지자심」을 법화경의 제법실상과 억지로 잇는 것은, 일행이 『대일경소』에서 천태 교학을 써서 대일경을 해석한 것을 본뜬 것이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이전 · 적문의 원교도 오히려 불인(佛因)이 아니거늘 하물며 대일경 등의 여러 소승경이랴(爾前迹門の円教尚仏因に非ず何に況や大日経等の諸小乗経をや)」(249쪽), 「속질돈성을 설하기는 하나 삼오의 원화(遠化)를 잃고 화도의 시종이 자취를 감추어 보이지 않는다. 화엄경 · 대일경 등은 일단 보면 별 · 원 · 사장(四藏) 등과 비슷하나, 재차 생각하면 장 · 통 이교와 같아 아직 별 ·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速疾頓成之を説けども三五の遠化を亡失し化導の始終跡を削りて見えず、華厳経・大日経等は一往之を見るに別円四蔵等に似たれども再往之を勘うれば蔵通二教に同じて未だ別円にも及ばず)」(246쪽)라고 하셨고, 니치칸 상인은 이에 근거해 『삼중비전초』에서 대일경이 설하는 「마음의 실상」은 「소승 편진(偏眞)의 실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파절했다. 화엄경 · 대일경이 설하는 실상은 화도의 시종이나 종 · 숙 · 탈을 밟지 않은 것이어서, 중생을 이끄는 실제에서는 소승교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1. ①이생저양심= 바라문 외도
  2. ②우동지재심= 인승 · 유교
  3. ③영동무외심= 천승 · 노장
  4. ④유온무아심= 성문
  5. ⑤발업인종심= 연각
  6. ⑥타연대승심= 법상주심품 Ⅰ
  7. ⑦각심불생심= 삼론주심품 Ⅱ
  8. ⑧일도무위심= 천태경증 없음(Ⅲ을 끌어옴)
  9. ⑨극무자성심= 화엄주심품 Ⅲ所謂空性は根境を離れ無相にして境界無く……極無自性이른바 공성은 근(根)과 경(境)을 떠나 무상(無相)하여 경계가 없고 …… 극무자성(極無自性)
  10. ⑩비밀장엄심= 진언주심품 Ⅳ云何なるか菩提・謂く実の如く自心を知る무엇이 보리인가, 실답게 자심을 아는 것
대성인의 판정再往之を勘うれば蔵通二教に同じて未だ別円にも及ばず재차 생각하면 장 · 통 이교와 같아 아직 별 ·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관심의 본존초, 246쪽)
도표 7 · 홍법의 십주심과 경증

강의는 십주심의 약점을 ⑧과 ⑨의 경증 부재에서 찾는다. 대일경 주심품의 네 글 가운데 천태 · 화엄에 댈 수 있는 것은 Ⅲ의 「극무자성」 하나뿐이고, 그것은 격력의 삼제일 뿐 법화의 원융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선종 — 능가경 제일 · 수능엄경 제일 · 교외별전

本文은 선종의 교판으로 「능가경 제일」 · 「수능엄경 제일」 · 「교외별전」의 셋을 드신다. 이 셋은 중국 선종의 변천과 관계가 있으므로, 강의는 먼저 중국 선종사를 개관한다.

서천 이십팔조 · 동토 육조라는 계보

선종은 6세기 초 남인도에서 중국에 왔다는 보리달마(菩提達磨)를 개조로 한다. 선종 자신의 말에 따르면 달마는 마하가섭을 제1조로 하는 인도 부법장의 제28조이며, 중국에서는 달마를 초조로 하여 제2조 혜가(慧可) · 제3조 승찬 · 제4조 도신 · 제5조 홍인 · 제6조 혜능으로 법등이 전해졌다고 하여, 이를 「서천 이십팔조 · 동토 육조」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8세기 이후 남종선이 성립하면서, 그 종풍의 이상적 체현자로 우러르는 혜능을 석존 이래의 정통 계승자로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설이며, 역사적 사실과는 맞지 않는다. 선종은 「이심전심」을 전법의 기초로 하므로 한 종을 세우는 기반으로 이런 계보의 정통화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개조 달마에 대해서도 소림사의 면벽 구년 같은 갖가지 사적이 전해지지만, 그 대부분은 남종선의 종풍에 맞춰 후대에 지어진 이야기라고 강의는 본다.

실제의 세 단계 — 능가종 · 동산법문 · 남종선

남종선이 말하는 동토 육조의 계보도 본래 한 줄로 이어진 것이 아니며, 사실로는 세 단계로 나뉜다.

첫째, 능가종. 달마는 당시 화북에서 활동하던 많은 수선자의 한 사람이었는데, 강경(講經) 중심의 불교계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이 차츰 그에게 모여들어 수선자의 사적 집단이 싹텄다. 『속고승전』에 따르면 달마 · 혜가의 법손들이 삼론종의 영향 아래 능가경 연구를 중시하는 무리를 이루어 「남천축 일승종」이라 불렀다. 말하자면 「능가종」이라 할 종파가 달마 · 혜가 문하에서 형성된 것이다.

둘째, 동산법문. 7세기 초, 능가종과는 별도로 천태 법문의 영향을 받은 수선 집단이 도신 · 홍인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스스로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 불렀다. 이들은 천태대사가 상좌삼매의 근거로 삼은 『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를 근본으로 하여, 「수심(守心)」, 곧 본래 청정한 한마음을 지켜 본래의 자기에 눈뜨는 것이 선의 뜻이라 했다. 번뇌를 깨기 위한 수선과 달리 오로지 자심을 관하라는 이 선이야말로 정당한 선이라 하여, 이들은 달마 이래의 이심전심의 상승(相承)을 말하게 되었다. 홍인의 제자 신수(神秀)는 7세기 말 당 왕조의 귀의를 받아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머지않아 새로 들어온 진언종에 자리를 내주었고, 남종 쪽에서 달마선의 정통이 아니라 하여 「북종」이라 낮추어 부르면서 남종의 융성과 함께 법등이 끊겼다.

셋째, 남종선. 8세기 초 하택사의 신회(神會)가, 오조 홍인을 이은 육조는 북종의 신수가 아니라 혜능이라고 주장한 것을 계기로, 「즉심시불(卽心是佛)」을 강조하는 혜능 문하의 남종선이 세력을 넓혔다. 『육조단경』 등 혜능을 정통으로 내세우는 여러 전기의 작성, 『보림전』에 의한 「서천 이십팔조 · 동토 육조」 계보의 확정, 『백장청규』에 의한 교단 규정과 수행 생활 규칙의 성문화 등으로 한 종의 모습을 갖추어 중국 선종의 주류가 되었다. 특히 회창의 폐불 이후 다른 불교 여러 파가 쇠퇴해 가는 가운데 선종만은 발전을 이어 송대에는 불교계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남종은 혜능 문하에서 남악계와 청원계 두 계통으로 갈라지고, 당 말에서 오대에 걸쳐 앞의 계통에서 임제종 · 위앙종이, 뒤의 계통에서 조동종 · 운문종 · 법안종이 성립했으며, 북송 초에 임제종에서 황룡파 · 양기파가 나와 「오가칠종」이 되었다. 이 가운데 임제종만이 남송의 오산십찰 제도 아래 번영했고 조동종이 겨우 명맥을 이었다. 가마쿠라 시대 이후 일본에 전해진 선종은 이 임제 · 조동 두 종을 중심으로 한 남종선 계통이다.

  1. ①능가종달마 · 혜가 문하, 「남천축 일승종」능가경 중시 · 벽관
  2. ②동산법문도신 · 홍인, 7세기 초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 · 수심(守心) · 천태 법문의 영향북종(신수)대승기신론 · 방편
  3. ③남종선신회 · 혜능 문하, 8세기~즉심시불 · 돈오 · 교외별전오가칠종 → 일본에는 임제 · 조동
本文의 세 교판
  1. 教内には楞伽経第一교내에서는 능가경 제일
  2. 首楞厳経第一수능엄경 제일
  3. 教外別伝の宗なり교외별전의 종
도표 8 · 중국 선종의 세 단계

「능가경 제일」 — 교외별전의 선구

선종 교판의 근본은 남종선이 강조한 「교외별전」이지만, 「능가경 제일」은 능가경을 중시한 초기 선종의 동향을 보이는 동시에 실은 교외별전 사상의 선구를 이룬다.

『속고승전』 권16에 따르면 보리달마는 혜가에게 구나발타라 역 능가경을 주며 「내가 한지(漢地)를 보니 오직 이 경만 있다. 그대가 이에 의지해 행하면 스스로 건널 수 있으리라」고 했다고 한다. 달마가 보기에 중국에 있는 경전 가운데 능가경만이 긴요하니 이 경에 따라 수행하라는 뜻이다. 혜가도 이를 받아 제자들에게 이 경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므로 혜가 문하는 모두 능가경을 선양했다고 한다.

달마는 도에 드는 방법으로 이입(理入)과 행입(行入) 둘을 설하는데, 이입에서는 여러 경전에 설해진 가르침의 진수를 붙잡는 것이 요구된다고 한다. 그 진수란 일체중생의 본성은 평등하다는 이치이며, 이를 믿고 벽을 마주하듯 오로지 자기 마음을 관하면 그 평등의 본원에 합일해 깨달음에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오로지 자심을 관하는 선법을 달마의 「벽관(壁觀)」이라 한다. 면벽 구년의 전설은 아마 이 선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곧 달마는 일체경의 진수가 일체중생의 평등한 본성을 설하는 데 있다고 한 위에, 그 「평등한 본성」을 깨닫는 데는 오로지 자심을 관하면 된다고 한 것이다.

여러 경전 가운데 능가경이 특히 중시된 까닭은, 능가경이 유식론을 기조로 하는 경전이면서 경 전체의 종지를 「일체불어심(一切佛語心)」이라 적은 데 있다. 「일체 부처의 말씀의 진수」라는 뜻이니, 말로 드러나지 않은 부처의 밀의(密意)를 가리킨다. 이 부처의 밀의를 밝히는 것이 능가경의 주지라는 것이다. 뒤에 남종선의 기초를 다진 마조도일이 달마의 가르침을 「불어심을 종으로 삼고 무문(無門)을 법문으로 삼는다」고 요약했듯이, 달마는 능가경의 「불어심」을, 오로지 자심을 관해 평등한 본성에 합일하려는 벽관 수행을 정당화하는 의지처로 삼았다. 또 능가경에는 「성도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여래는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는 이른바 「여래일자불설(如來一字不說)」이 설해져 있고, 진실은 문자를 떠난 곳에 있으며 법은 자기 마음에 나타나고 교설은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라는 말이 거듭 강조된다. 이것들도 달마가 능가경을 중시한 이유였을 것이다. 달마의 선법은 오로지 자심을 관하는 것을 요체로 하고 경전의 설을 모두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전 경시의 경향이 후대 선종에서 더 커지면서, 능가경의 이 설들이 「교외별전」 · 「불립문자」의 근거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분명 능가경에 대한 오해 내지 곡해다. 대성인은 「연성초」에서 「본법 · 자법(本法自法)의 두 뜻을 모르는가. 배우지 않았다면 배워야 한다(本法自法の二義を知らざるか学ばずんば習うべし)」(154쪽)라고 하셨다. 능가경의 「여래일자불설」 등은 어디까지나 부처의 자내증의 법, 혹은 본원적인 상주의 법은 말로는 설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그로써 교법의 말에 사로잡혀 참된 법을 놓치는 것을 경계한 것이지, 오로지 자심을 관하면 깨달음에 든다거나 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고 설한 것이 결코 아니다.

「수능엄경 제일」 — 위경과 교선일치

수능엄경은 인도승 반랄밀제(般剌蜜帝)가 한역했다고 전해지나, 최근 연구에서는 인도에서 들어온 경전이 아니라 8세기 초 중국에서 찬술된 위경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경이 성립한 뒤 한 세기 가까이, 천태종의 묘락대사나 화엄종 제4조 징관 같은 학자들이 활약했는데도 이 경에 주목한 이는 보이지 않는다. 수능엄경을 언급한 최초의 자료는 8세기 말의 『역대법보기』로, 선종 사조 도신의 흐름을 이은 보당파 무주(無住)의 정통을 주장하는 책인데, 거기 기록된 무주의 말에 수능엄경의 글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9세기에 들어 교선일치를 주창한 종밀(宗密)이 원각경 주석서에 수능엄경의 글을 많이 쓴 것을 계기로, 수능엄경 · 원각경은 당 말 · 오대의 선종에서 널리 읽히게 되었고, 송대에서 명대에 걸쳐서는 선종뿐 아니라 지식 계층에까지 널리 애호되었다.

종밀은 앞서 본 하택 신회에서 비롯된 하택종의 제5세인 동시에 화엄종에서도 징관을 이은 제5조로 꼽히는 독특한 위치의 인물이다. 남종선의 주류인 마조 등이 「교외별전」을 외치는 가운데, 그가 「교선일치」를 주장하려고 원각경 · 수능엄경을 쓴 것은 이 두 위경의 성격과 선종 안에서의 위치, 나아가 선종의 본질을 보여 주는 일이었다고 강의는 본다.

이 무렵은 북종에서 남종으로 선종의 주류가 옮겨 가던 시기였다. 그 이행의 교학적 배경에는 수 · 당 불교, 특히 천태 법문에서 벗어나려는 과제가 있었다. 천태대사의 지관행은 선종처럼 선정에만 치우치지 않고 경전에 설해진 모든 법리와 수행을 종합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며, 그 체계화의 근본 원리가 법화경으로 세운 제법실상 · 삼제원융의 법리였다. 그러므로 천태대사의 지관행은 교상을 철저히 추구한 위에 선 것이며 「교관상자(敎觀相資)」를 기본 성격으로 한다. 선종은 이 천태 법문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 종의 독립을 꾀했는데, 그때 잡은 방향이 교상의 부정이었고, 북종에서 남종으로의 이행은 이 방향의 철저화를 뜻한다.

동산법문에서는 부처의 마음과 한 몸인 본래 청정한 본심을 지키는 것이 깨달음에 드는 길이라 하고, 그를 위해 마음을 고요히 하는 일행삼매를 강조했다. 북종의 신수는 지켜야 할 본래심을 『대승기신론』으로 설명하거나, 그것을 알기 위한 수행으로 화엄경 등 다섯 경론을 「방편」으로 쓰는 선법을 설했다. 이렇게 남종 성립 이전에는 달마선의 본래심을 설하면서도 마음을 고요히 하는 수행이나 마음을 알기 위한 방편행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남종은 이런 점수(漸修)를 부정하고 돈오돈수를 강조했는데, 이런 경향은 남종뿐 아니라 당시 선종의 여러 파에서 두루 보인다. 보당파는 계율과 화의를 철저히 배척했고, 우두파는 무수무증(無修無證)을 강조해 깨달음이나 수행에 대한 집착을 부정했다. 이것들은 모두 교상판석을 기조로 한 수 · 당 불교의 틀을 걷어 내려는 움직임이었다.

종밀은 이런 흐름 속에서 교상의 중요성을 다시 지적하며 「돈오점수」를 세웠다. 이(理)에서는 돈오이나 사(事)에서는 점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심즉불」이란 마음이 본질에서 부처와 같다는 것이며 이를 돈오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돈오를 위해서는 끝없는 점수가 필요하다고 종밀은 설했고, 이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원각경 · 수능엄경을 썼다. 그러나 종밀의 교선일치는 화엄종의 오교판을 전제로 한 것으로, 그는 갖가지 선법을 오교의 천심에 맞추어 외도선 · 범부선 · 소승선 · 대승선 · 최상승선의 다섯으로 나누고, 마음이 곧 부처임을 돈오하고 그 자리에서 수행하는 최상승선이 달마선이라 했다. 강의는 이것이 본유의 이치를 설하되 중생의 현실 위에 열지 못하는 비실천적 화엄경과, 실천적이지만 교상이 없는 달마선을 손쉽게 이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교상의 철저한 추구 위에 이루어진 천태의 교관상자 법문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본다.

종밀이 교선일치를 설하려고 위경인 원각경 · 수능엄경을 앞세운 것도 그 교상관의 취약함을 보여 준다. 이 두 경은 제종의 교상판석이 거의 다 나온 단계에서 찬술되어 그 성과를 바탕으로 여러 경론의 설을 절충해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 계몽적 · 문학적 의의는 있어도 불법을 바르게 밝힌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성격의 경이기에 어떤 입장에서도 쓸 수 있었고, 실제로 교선일치를 말하는 종밀뿐 아니라 교외별전을 말하는 남종의 조사들도 이 두 경을 선문답의 소재로 많이 썼다.

나아가 강의는 이런 경전을 쓰는 데서 선종 교외별전 사상의 근본적 한계가 드러난다고 본다. 인사의 주관적 깨달음에만 한 종의 기초를 두면서 그것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려는 근본 모순이다. 뒤에 선종은 이 모순을 메우려고 조사들의 「어록」이나, 과거 조사들의 대오 체험의 계기가 된 의문을 모은 「공안」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교외별전의 선종도 「교」를 필요로 했음을 보여 주며, 이심전심의 교외별전이라는 선종의 기반을 뒤흔드는 사태다. 종밀은 남종 교외별전 사상의 한계를 알아챈 사람이었지만 그 자신의 교상관이 취약해 선종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교선일치 사상은 뒤에 법안종의 영명연수에게 이어졌고, 연수는 천태 교학에 기대어 『종경록』 백 권을 지어 선교일치 사상을 대성했다. 이것은 보편적인 마음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선이라는 데 근거한 일종의 종합주의였고, 이로써 송대 이후에는 선과 정토교를 절충한 염불선이나 유 · 불 · 도의 삼교일치 사상이 나오게 된다.

「교외별전」 — 교외에 길을 세우는 논리

「능가경 제일」 · 「수능엄경 제일」 두 교판은 모두 교외별전을 본질로 한다. 그러면 교외별전 자체는 어떠한가.

앞서 본 것처럼 달마는 중생의 평등한 본성을 설하는 것이 여러 경전의 진수이며, 자기 마음을 오로지 관하는 벽관이 그 진수에 맞는 길이라 했다. 이것은 여러 경에 설해진 교법을 일단 「진수」인 「평등한 본성」으로 환원하고, 그 위에서 교법을 떠나 「자심」을 관하는 「벽관」을 여러 경의 귀결로 삼는 구조다. 그러므로 여러 경을 밟는 듯하면서도 결국 여러 경을 떠나 세우는 것이며, 분명히 「교외」에 길을 세우는 논리를 안고 있다. 강의는 이 결함을 두 가지로 짚는다.

첫째, 과연 모든 경의 「진수」가 「평등한 본성」을 설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이는 법화경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법화경 외의 여러 대승경은 얼핏 중생의 평등한 본성을 설하는 듯하지만, 이승이나 여인 · 악인을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므로 참된 「평등한 본성」을 설한다고 할 수 없다.

둘째, 한 걸음 양보해 중생의 「평등한 본성」을 설하는 것이 여러 경의 진수임을 인정한다 해도, 그렇다고 오로지 「자심」을 관하는 것만으로 마음의 본성 · 본원을 깨칠 수 있다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법화경은 그런 이치를 설할 뿐 아니라 중생에게 묘법을 열어 보이려고 설한 경이다. 그리고 실제로 법화경을 듣는 재세의 중생뿐 아니라 멸후에 법화경을 수지하는 중생에게도 묘법이 열린다고 설한다. 곧 경을 듣고 수지하는 것을 중생 성불을 위해 거듭 강조하는 것이 법화경이다. 이는 법화경을 듣고 수지하는 것이 중생에게 묘법이 열리는 불가결의 계기임을 보인 것이며, 법은 경에 의해 전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천태대사는 이런 법화경을 석존 출세의 본회로 보아 일대성교의 진수로 삼았다.

달마는 마음의 본성이 만인에 공통하는 보편적인 것이므로 자심을 관하면 된다는 논리를 세웠지만, 그렇다면 굳이 불법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된다. 중생의 평등한 본성을 설하는 것이 불법의 진수라고 못 박고 그 이상의 교상 추구를 배제하는 달마의 방식은 불법을 외도와 같게 만드는 계기를 안고 있다. 선종의 역사는 이 결함이 드러나 가는 역사였다고 강의는 본다.

교외별전설은 선종이 한 종으로 독립하려고 스스로 세운 설이므로 경증이 있을 리 없다. 후대 선종은 경증으로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의 「나에게 정법안장 · 열반묘심 · 실상무상 · 미묘한 법문이 있다. 문자를 세우지 않고 교외에 따로 전하여 …… 마하가섭에게 부촉할 뿐이다」라는 글을 들지만, 이 경이 위경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대성인은 「연성초」에서 이 경이 번역의 유래도 분명하지 않고 선종의 근원에 관련되면서도 옛 기록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들어 「위문(僞文)이라」고 단정하셨다.

교외별전은 엄밀히는 교판이 아니라 오히려 교판을 부정하는 사고다. 그러나 불법을 「교외」와 「교내」로 나누고 「교내」인 경전을 모두 방편으로 부정하므로 선종 성립의 규범이 되는 교판 노릇을 한다. 그래서 남종이 선종을 확립하던 시기에는 앞서 본 「서천 이십팔조 · 동토 육조」설이나 부법 때의 「전법게」 작성, 석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칠불」의 강조 같은, 교외별전의 계보 만들기에 힘이 들어갔다. 어느 것이나 경전을 가볍게 보는 데서 나온 헛된 노력이라고 강의는 본다.

교외별전의 바탕에 있는 것은 선종이 말하는 「반본환원(返本還源)」, 곧 근원으로 돌아가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사고다. 사람의 마음은 미혹에 더럽혀져 있지만 그 본성인 청정한 마음은 부처의 마음과 같으며, 여러 경은 이 본래의 청정심을 가리키지만 그 청정심 자체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에서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는 「돈오돈수」,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시불」이 강조되었다. 남종의 종풍을 확립한 마조는 「평상심이 곧 도」라 하여 일상생활이 모두 선이며 부처의 나타남이라 했다. 따라서 근원의 마음을 덮는 쓸데없는 헤아림이야말로 배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임제종의 조사 의현은 인위에 근거한 일체의 미혹을 철저히 배척하여, 좌선이나 불조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며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을 남겼다.

강의는 이 「즉심시불」의 사고가, 너그럽게 말하면 일체를 공이라 하는 삼론종의 사고에 통하지만, 엄하게 말하면 결국 사람의 마음이나 일상생활을 매개 없이 부처와 같다고 하는 것이어서, 무위자연을 말하는 인도의 자연외도나 중국의 노장 사상과 다름없는 데로 떨어진다고 본다. 이 「시심시불」의 사의(邪義)에 대해 대성인은 「연성초」에서 이렇게 파절하셨다.

愚癡無懺の心を以て即心即仏と立つ豈未得謂得・未証謂証の人に非ずや

우치하고 참회 없는 마음으로 즉심즉불을 세우니, 어찌 얻지 못하고 얻었다 하며 증득하지 못하고 증득했다 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연성초」, 152쪽

禅宗は理性の仏を尊んで己れ仏に均しと思ひ 増上慢に堕つ定めて是れ阿鼻の罪人なり

선종은 이성(理性)의 부처를 존중하여 자기가 부처와 같다고 생각해 증상만에 떨어지니, 틀림없이 아비지옥의 죄인이니라.

「연성초」, 152쪽

송대에 들어 이렇게 외도로 떨어지는 경향이 교단 안에 실제로 나타나자 수행 방법이 다시 검토되었다. 당대에는 좌선의 형태조차 고집하지 않았다는 데 비해, 조동종은 좌선 중시를 취해 참된 수행은 일체의 작위가 없는 좌선이라 했다. 임제종은 현실의 마음이 곧 본래심이라는 사고를 비판하는 한편 조동종의 좌선 중시도 비판하여 공안선을 고안했다. 이는 미혹의 자각을 수행의 출발점으로 삼아 공안에 의한 대의(大疑)를 계기로 미혹을 깨고 대오를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수단상의 고안일 뿐이다. 결국 본원의 심성을 깨달아 아는 견성 체험으로 부처의 심성과 같아질 수 있다는 「견성성불」을 설하는 이상, 외도로 떨어지는 경향은 씻어 낼 수 없다. 그것은 마침내 유교와 선의 일치를 설하기에 이르는 선종의 역사 자체가 증명한다고 강의는 본다. 그 근본 원인은 「교외」에 법을 세우고 「교내」의 경전을 부정하는 데 있으며, 선종이 말하는 「교외」는 「진수」가 아니라 불법 밖의 외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불교에서는 경론을 떠난 것을 외도라 한다. 열반경에 이르되 『만약 부처의 설한 바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마의 권속이다』(仏教には経論にはなれたるをば外道と云う、涅槃経に云く『若し仏の所説に順わざる者有らば当に知るべし是の人は是れ魔の眷属なり』)」(152쪽)라고 선종의 본질을 꿰뚫으셨다.

강의는 선종의 세 교판 — 능가 · 수능엄 · 교외별전 — 을 하나의 흐름으로 읽는다. 능가경의 「불어심」 · 「일자불설」을 곡해한 데서 교외별전이 싹텄고, 위경 수능엄경은 교선일치의 도구가 되었으며, 끝내 「교」를 부정한 선은 어록과 공안이라는 「교」를 다시 필요로 하는 모순에 빠졌다는 것이다.

정토종 — 말법 기교상응이라는 교판

本文은 정토종의 교판을 「일체경 가운데 정토의 삼부경이 말법에 들어서는 기교상응하여 제일」이라 보이신다. 여기서 분명하듯 정토종의 교판은 앞의 여러 종과 달리 법리의 천심보다 중생의 시기(時機)에 맞느냐를 기준으로 한다.

무량수경 · 관무량수경 · 아미타경 세 경을 「정토 삼부경」이라 이름해 정토종의 의경으로 삼은 이는 일본 정토종의 개조 법연(法然)이다. 그러나 이 세 경에 설해진 아미타불 본원력에 의한 왕생정토를 강조하는 사고는 이미 중국의 담란 · 도작 · 선도에게서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강의는 담란 · 도작 · 선도의 설을 차례로 개관하고, 마지막으로 그것들을 종합해 정토 삼부경을 골라 취하는 교판을 세운 법연의 설을 검토한다.

중국 정토 신앙의 두 갈래와 혜원

중국의 정토 신앙에는 본래 미륵 신앙과 아미타 신앙의 두 계통이 있어, 남북조 이전에는 두 계통이 맞서 있었다. 미륵보살의 정토를 설하는 경전과 아미타불의 정토를 설하는 경전이 많이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 · 당 시대에는 아미타 신앙이 주류를 차지했다.

중국 정토종의 시조로는 흔히 여산 혜원(慧遠)을 든다. 그러나 혜원의 정토교는 이른바 정토 삼부경이 아니라 반야경 계통의 『반주삼매경』에 기댄 것이며, 왕생정토를 제일의로 삼은 것도 아니었다. 반야 수도를 위한 지관행의 한 고리로서 염불삼매를 닦고, 현세 수행에서 아미타불을 관해 깨달음으로 더 나아가려는 것이었다. 곧 혜원에게 염불이란 부처를 상념하는 것, 관불(觀佛)이었다. 『반주삼매경』에는 왕생정토도 설해져 있어 그의 결사 가운데서 왕생정토를 원하고 설하는 이도 많이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여러 행 가운데 한 고리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혜원 이후에도 중국 정토교의 주류는 자력 수행의 한 고리로서의 염불삼매, 곧 관불로서의 염불이었고, 타력 염불을 강조한 담란 · 도작 · 선도의 계보는 오히려 방류였다고 강의는 본다. 그들의 교학은 그 방류의 교의를 정당화하려는 것이었기에 억지 해석과 무리한 논법이 많다는 것이다.

담란 — 난행도 · 이행도와 타력

담란(曇鸞) 정토 사상의 특징은 ① 난행도와 이행도의 구별, ② 아미타불 본원력의 강조, ③ 칭명염불의 강조 셋이다. 이것들이 도작 · 선도를 거쳐 일본 정토종에 이르는 교의의 기본 골격이 되었다.

담란은 『왕생론주(정토론주)』 첫머리에서 용수의 『십주비바사론』 이행품에 기대어 「난행도」와 「이행도」 두 길을 구별한다. 난행도에 대해서는 「오탁의 세상, 부처 없는 때」에 보살이 불퇴전의 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고, 그 이유로 ① 외도가 설하는 선법이 보살의 법과 헷갈린다, ② 성문의 자리(自利)가 대자비를 해친다, ③ 돌아봄 없는 악인이 뛰어난 덕을 깨뜨린다, ④ 전도된 선과(善果)가 불도 수행을 방해한다, ⑤ 오직 자력뿐이고 타력이 없다 — 다섯을 든다. 반면 이행도란 「부처를 믿는 인연」으로 「부처의 원력」을 타고 정토에 왕생해, 거기서 「불력」의 받침으로 대승 정정취(正定聚)에 드는 것이며, 이 자리에 들면 열반에 이르는 것이 약속된다고 한다. 이 설명으로 보면 담란이 말하는 난행도는 타력의 받침이 없는 자력만의 길이다. 그리고 담란은 아미타불을 믿음으로써 그 불원력으로 이행도를 얻는다고 했다.

강의는 이 담란의 설이 다음 점에서 용수 『십주비바사론』의 취지를 벗어났다고 본다. 첫째, 담란은 「오탁의 세상, 부처 없는 때」이므로 난행이라 하지만, 『십주비바사론』에는 이런 시대적 제약을 난행의 조건으로 삼는 사고가 어디에도 없다. 둘째, 담란은 「난행도 = 자력」과 「이행도 = 타력」을 갈라 두 개의 다른 길로 설하지만, 이런 구분도 『십주비바사론』에는 없다. 애초에 그 논에는 「난행」이라는 말은 있어도 「난행도」라는 말은 없다. 그 「난행」이란 보살이 무시이래의 죄업을 소멸하고 청정한 경지를 얻어 불퇴전의 자리에 이르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곧 불퇴전에 이르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난행이다. 용수가 말하는 「이행도」란 「안락한 방편」이라는 뜻으로, 어디까지나 난행을 행할 때 취하는 방편(수단)이다. 용수에게 난행도와 이행도라는 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셋째, 용수가 말하는 이행도는 「신방편(信方便)」, 곧 부처를 믿는 길인데, 그 길을 받치는 불력에 대해서도 용수는 시방의 제불 · 과거칠불 · 미래의 미륵불 등 삼세 일체의 불력에 귀의해야 한다고 설하지, 결코 담란처럼 아미타 한 부처로 한정하지 않는다. 본래 대승경에서 시방의 제불을 설한 것은 인도에 나신 석존 한 부처에 집착하는 소승을 깨고 부처의 보편성 · 근원성을 보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므로 아미타 한 부처의 본원력에 매달려 그 왕생정토야말로 부처 없는 세상의 이행도라 하는 담란의 설은 『십주비바사론』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의적 · 독선적 설이라는 것이다.

담란은 이 난이 이도설을 기반으로 세친의 『왕생정토론』을 이행도를 설한 책으로 극찬하지만, 이 책에 대한 해석도 자의적이다. 담란 『왕생론주』의 주지는 자력에 대해 타력을 강조한 데 있으나, 세친의 『정토론』에는 그런 타력 개념이 없다. 그 정식 이름은 『무량수경우바제사원생게』인데, 「우바제사」란 경에 설해진 뜻을 교상과 맞추어 밝히는 것이다. 세친은 이 논에서 유식 유가행파의 입장에 서서 무량수경의 뜻을 유식설로 법상적으로 밝히고, 아미타여래와 그 국토를 자심을 관하는 실천에 쓰려 했다. 이 의미에서 이 논은 오히려 무량수경을 소재로 자력 수행을 설한 것이라고까지 말해진다.

담란은 이를 타력의 입장에서 풀었다. 『정토론』이 설하는 수행법인 「오념문(五念門)」은 ① 예배 — 몸으로 아미타불을 예배함, ② 찬탄 — 입으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불러 찬탄함, ③ 작원 — 마음으로 왕생정토를 일심으로 원함, ④ 관찰 — 지혜로 아미타불 · 보살 · 정토를 관함, ⑤ 회향 — 고뇌하는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으려 늘 원을 세움의 다섯이다. 세친은 그 목적을 각각 ① 왕생정토의 뜻을 일으키기 위해, ② 아미타의 이름이 보이는 무량광의 뜻에 여실히 상응하기 위해, ③ 마음을 한 대상에 모으는 수행을 여실히 행하기 위해, ④ 대상을 관하는 수행을 여실히 행하기 위해, ⑤ 대자비심을 성취하기 위해서라 하여, 신업 · 구업 · 의업 · 지혜에 의한 자행과 중생 구제의 이타를 밝혀 무량수경에 기댄 체계를 이루려 했다. 그러나 담란은 이 세친의 뜻을 무시하고 철저히 타력을 강조해, ② 찬탄은 결정된 믿음으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며 그 칭명의 힘으로 중생의 뜻과 원이 채워진다, ③ 작원은 왕생을 원하면 아미타불 명호 등의 힘으로 일체의 악을 그칠 수 있다, ④ 관찰로 정토의 참모습이 밝혀지는 것은 행자의 힘이 아니라 여래 본원력으로 정토의 장엄이 저절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담란의 『왕생론주』는 세친 『정토론』의 「주(註)」가 아니라 오히려 세친을 빌려 자기 뜻(己義)을 말한 것이라 할 만하며, 이런 경향은 도작 · 선도에게서 더 심해진다고 강의는 본다.

도작 — 성도문 · 정토문

열반경 학자였던 도작(道綽)은 현중사에서 담란의 업적을 새긴 비문을 읽고 그것을 계기로 정토교로 돌아섰다고 전한다. 그의 『안락집』의 특색은 ① 성도문과 정토문의 구별, ② 칭명염불이야말로 시기상응의 법, ③ 아미타 보신의 강조 셋인데, 모두 담란의 기의를 이어 더 보충 · 발전시킨 것이며, 교판의 색채를 더 강하게 내세운다.

도작의 「성도문」 · 「정토문」 구별은 담란의 난행도 · 이행도 구별을 발전시킨 것이다. 『안락집』은 대승의 「두 가지 승법」을 들어 「첫째는 성도, 둘째는 정토」라 하고, 성도문에 대해서는 이른바 「이유일증(二由一證)」을 들어 「지금 때」에 맞지 않는 가르침이라 한다. 이유(二由)란 「성도의 한 가지는 지금 때에 증득하기 어렵다. 하나는 대성(大聖)과 떨어진 것이 아득히 멀기 때문이요, 둘은 이치는 깊고 이해는 미약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담란이 「오탁의 세상, 부처 없는 때」에는 타력의 이행도가 필요하다고 한 것을 바탕으로, 도작은 석존이 입멸한 지 아득히 오래되어 성도로는 증득하기 어렵다고 한다. 『안락집』의 다른 곳에서는 대집경이 설하는 「오오백세(五箇の五百歳)」를 들어 시기와 법은 상응해야 한다고 하는데, 도작은 이를 첫째 이유의 근거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유 「이심해미(理深解微)」는 성도문이 법으로는 이치가 깊으나 그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이해가 미약하다는 것이니, 역시 법과 근기의 불일치를 이유로 성도문을 난행도라 한 것이다. 또 도작은 성도문이 난행이라는 경증으로 대집경에서 인용했다며 「나의 말법 때에 억억의 중생이 행을 일으켜 도를 닦아도 아직 한 사람도 얻는 자가 없다」는 글을 든다.

반면 정토문에 대해서는 「지금은 말법이요 바로 오탁악세다. 오직 정토 한 문만이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라 하여, 말법의 지금은 정토문만이 깨달음에 드는 유일한 길이라 한다. 이렇게 도작은 시기와 법의 상응을 제일의로 삼아 정토문을 골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란이 자력과 타력을 구별해 타력의 이행도를 강조했다면, 도작은 그 타력 이행도야말로 말법을 위해 설해진 도라고 강조해 정토문을 정당화하려 했다.

다만 도작이 말하는 성도문은 왕생정토를 가르치는 정토문 이외의 가르침이라는 정도일 뿐 그 내용은 엄밀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 정토문에 대해서도 말법 상응이라는 관점에서 「참회하고 복을 닦아 마땅히 부처의 명호를 불러야 할 때」, 「칭명이 바로 정(正)이다」라고 하면서도, 칭명염불을 정행으로 세우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그가 의지한 관무량수경을 비롯한 경전 대부분이 관상염불을 중심으로 하고 칭명은 그 한 고리였기 때문이다. 이 관상염불을 억지로 걷어 내고 칭명염불을 정행으로 세운 이가 뒤의 선도다.

또 도작은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의 성격을 보불(報佛) · 보토(報土)로 규정해 왕생성불이 확실함을 강조했다. 그 이유는 첫째, 설령 정토문의 이행으로 왕생하더라도 왕생한 곳의 부처가 진실한 부처가 아니어서 정정(正定)에 들어 성불할 수 없다면, 아미타불의 본원력을 대전제로 하는 담란 · 도작 계통의 정토교가 뿌리째 무너지기 때문이다. 둘째, 범부가 왕생할 수 있는 정토라면 그다지 고귀한 곳이 아니지 않느냐는 의문이 뿌리 깊었기 때문이다. 특히 천태대사를 비롯해 정영사 혜원, 삼론종의 길장 등 당시 중국 불교계의 쟁쟁한 학자들이 하나같이 아미타불과 그 정토를 「화불(化佛)」 · 「화토(化土)」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작은 「현재의 미타는 보불이요, 극락 보장엄국은 보토다」라고 하여 「아미타 정토 = 보불보토」론을 폈으나, 강의는 이것이 논이라기보다 단정적 주장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유일한 경증으로 든 『대승동성경』의 글도 그렇게 확정할 수 없을 만큼 모호하며, 아미타불은 극락에서는 보신이지만 예토에 나타날 때는 화신이라 하거나, 아미타 정토는 예토에 이웃한 곳이면서 정토의 초문이라 하는 등 궁여지책을 썼다는 것이다.

선도 — 정행 · 잡행과 이존(二尊)의 관경 해석

담란 · 도작을 이어 정토교를 대성한 이가 선도(善導)다. 일본 정토종의 개조 법연이 「오로지 선도 한 스승에 의지한다(偏に善導一師に依る)」고 하고, 정토진종의 개조 신란이 「선도만이 홀로 부처의 바른 뜻을 밝혔다」고 했듯이, 선도의 교학이 없었다면 일본 정토계 여러 종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의는 선도의 「정토교 대성」이 실로 억지스러운 경전 해석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선도 설의 특색은 ① 정행과 잡행을 갈라 칭명염불을 정행으로 확립한 것, ② 무량수경의 아미타 본원의 입장에서 관무량수경을 해석해 이른바 정토 삼부경을 정의(正依)로 하는 사고를 보인 것, ③ 아미타 정토 = 보불보토론을 더 전개한 것 등이다.

먼저 『관경소』에서 편 관무량수경 해석이다. 담란 이하 계통의 핵심 주장은 칭명염불이라는 이행이 정토 경전의 본지이며, 무량수경에 설해진 아미타불의 본원력 때문에 이 이행으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고, 정토에 왕생하면 쉽게 성불해 갈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정토 경전 대부분은 칭명염불이 아니라 관상염불로 염불삼매를 삼았다. 특히 관경은 「십육관법」을 설하고, 이 관불삼매가 특히 중시되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데 선도는 십육관법 가운데 칭명염불을 설하는 부분이 있다는 데 착안해 관불삼매와 염불삼매 둘 다 경의 주지라 했다. 여기서 이미 무리가 있지만, 선도는 더 나아가 관경도 일심으로 왕생정토를 원하는 것을 강조하며 그것이 한 경의 본질이니, 그 본질에서 보면 관경도 무량수경 · 아미타경과 마찬가지로 칭명염불을 본지로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억지 해석을 보강하려고 관경의 교주로 석존과 아미타불 두 분(二尊)을 세웠다. 곧 정종분인 십육관법 가운데 앞의 십삼관을 정선(定善)으로 하여 위제희 부인의 물음에 답한 석존의 설로 하고, 뒤의 삼관을 산선(散善)으로 하여 아미타불이 묻지 않았는데 스스로 설한 것(無問自說)으로 했다.

관경에는 「제불을 보기 때문에 염불삼매라 한다」는 글이 있어, 정선에 의한 관불삼매가 이 경의 종지임은 분명하며 종래에는 십육관법이 모두 정선이라고 해석되었다. 그것을 선도는 억지로 산선의 뜻을 세워 거기에 십삼관의 관불삼매와 다른 칭명염불이 보인다고 했다. 게다가 교주를 아미타불로 바꾸어, 염불에 의한 아미타불 정토 왕생이야말로 관경의 본지라 했다. 강의는 선도가 칭명염불을 정당화하려고 전혀 근거 없는 경전 해석을 베푼 것이며, 이는 담란이 세친의 『정토론』을 타력의 입장에서 억지로 푼 것과 통하고, 이런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들 정토교의 정당성 없음을 드러낸다고 본다.

선도의 불신 · 불토론도 도작처럼 아미타불과 서방정토를 보불 · 보토라 한다. 경증으로는 도작이 든 『대승동성경』 외에 무량수경 · 관경의 글을 들지만, 모두 독선적 해석으로 갖다 붙인 것일 뿐이다. 그토록 고귀한 불토에 어떻게 범부가 왕생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애초에 왕생은 중생의 힘이 아니라 부처의 본원에 의한 것이라고 답한다. 이 논리의 바탕에는, 아미타불은 법장보살 때 세운 본원을 성취한 「과보」로 보신불이 되었으므로 그 본원을 타야만 아미타불의 보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일종의 순환논법이 있다고 강의는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정행」 · 「잡행」의 구별이다. 이는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상응하는 범부 쪽 수행 내용을 자세히 밝히려 한 것이다. 선도는 왕생의 정인으로 관경에 설해진 지성심 · 심심 · 회향발원심의 삼심을 들고 그 가운데 특히 「심심(深心)」을 중시한다. 심심은 「깊이 믿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깊은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자신이 죄악이 깊고 무거운 범부라는 자각, 다른 하나는 그런 자신이 부처의 본원력으로 반드시 왕생한다는 절대의 믿음이다. 그리고 뒤의 절대의 믿음에 「사람에게 나아가 믿음을 세움(人に就いて信を立つ)」과 「행에 나아가 믿음을 세움(行に就いて信を立つ)」 두 방식이 있다 하여, 앞의 것은 석존과 제불이 아미타불의 구제를 설하는 말을 믿는 것이라 하고, 뒤의 「행에 나아가 믿음을 세움」에서 정행과 잡행을 논한다.

선도는 세친 『정토론』의 오념문에 기대어 불도 수행에 독송 · 관찰 · 예배 · 칭명 · 찬탄공양의 다섯 가지를 세우고, 아미타불을 향해 하는 이 다섯 수행을 「정행」, 다른 부처를 향해 하는 것을 「잡행」으로 갈랐다. 나아가 「일심으로 오로지 미타의 명호를 염하여, 행주좌와에 시절의 오래고 가까움을 묻지 않고 생각생각마다 버리지 않는 자, 이를 정정(正定)의 업이라 이름하니, 저 부처의 원에 따르기 때문이다(一心に専ら弥陀の名号を念じて、行住坐臥の時節の久近を問わず、念念に捨てざる者は、是れを正定の業と名づく、彼の仏願に順ずる故なり)」라 하여, 정행 가운데 칭명을 정정업, 나머지 넷을 조행(助行)으로 하고 정정업의 전수(專修)야말로 부처의 본원에 따르는 수행이라 했다.

이 구분에 따르면, 예컨대 아미타 정토 왕생을 설하지 않는 경전을 독송하는 것은 독송잡행이고, 아미타불 아닌 다른 부처를 예배하는 것은 예배잡행이다. 곧 정행 · 잡행의 구분은 아미타불 · 정토 삼부경 이외의 일체의 부처와 경을 골라 버리는 기능을 한다. 담란의 난행도 · 이행도, 도작의 성도문 · 정토문은 구분의 구체적 내용에 아직 분명하지 않은 데가 있었으나, 선도의 정행 · 잡행에 이르러 여러 부처와 경을 버린다는 입장이 분명해졌다. 이것이 법화경을 포함한 대승경전, 석가불을 비롯한 불보살을 「사폐각포」하라는 법연(法然房源空)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1. 담란난행도 · 이행도 (자력 · 타력)『왕생론주』, 용수 『십주비바사론』을 벗어남
  2. 도작성도문 · 정토문 (이유일증 · 시기상응)『안락집』唯浄土の一門のみ有りて通入す可き路なり오직 정토 한 문만이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길
  3. 선도정행 · 잡행 (칭명 = 정정업)『관경소』, 이존(二尊)의 관경 해석
  4. 법연선택 · 사폐각포『선택집』聖道を捨てて、浄土に入らしめんが為なり성도를 버리고 정토에 들게 하기 위함
도표 9 · 정토교의 「버림」이 짙어지는 과정

법연 — 여덟 가지 「선택」과 사폐각포

중국 여러 스승의 설을 종합하고 교판으로 정비해 한 종을 세운 이가 일본의 법연이다. 그는 무량수경 · 관무량수경 · 아미타경의 「정토 삼부경」과 세친의 『정토론』을 정토교 정의의 경론(三經一論)으로 정하고, 보리유지 · 담란 · 도작 · 선도 · 회감 · 소강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사자상승 계보를 세워 그 계보로 정토교의 정통이 전해졌다고 했다.

법연 설의 핵심은 주저 『선택본원염불집(선택집)』의 제목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법연에 따르면 「선택」이란 「취사의 뜻」으로, 여러 경 · 여러 행을 버리고 칭명염불 한 행을 골라 취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선택은 아미타불 · 석존 · 타방의 화불 자신이 한 것이라 한다. 그는 이를 경문으로 설명하려고 네 경에서 부처에 의한 여덟 가지 「선택」을 든다. 강의는 법연의 말을 보이며 하나하나 비판을 가한다.

아미타불에 의한 선택으로는 선택본원 · 선택섭취 · 선택화찬 · 선택아명의 넷이 꼽힌다.

① 「선택본원」 — 무량수경에서 법장보살이 이백십억 부처 국토에서 행해지는 여러 행 가운데 중생 왕생의 행으로 염불 한 행을 골랐다는 것이다. 불보살의 서원에는 일체 불보살이 세우는 총원과 각 불보살 고유의 별원이 있는데, 무량수경은 아미타불의 별원으로 「사십팔원」을 설한다. 그 제18원에, 중생이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면 반드시 왕생한다고 되어 있다. 법연은 이를 근거로 염불 한 행이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골라진 왕생의 행이라 한다. 그러나 무량수경에는 첫째, 지극한 마음으로 왕생을 원하면 왕생한다고는 되어 있어도 그것이 칭명염불 한 행이라고는 설해져 있지 않다. 둘째, 설령 지극히 원하는 것이 칭명염불이라는 해석을 인정해도, 그 한 행을 골라 다른 행을 「버린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법연은 법장보살이 이백십억 불토의 여러 행에서 부정한 행을 버리고 청정한 행인 염불 한 행을 골라 취했다고 하지만, 무량수경에는 청정한 행을 「섭취(攝取)」했다고만 되어 있다. 법연은 이를 「선택」과 같은 뜻이라 했으나, 이 「섭취」는 「닦았다 · 수행을 마쳤다」는 뜻이지 「골랐다」는 뜻이 아니다. 법연은 자설을 보강하려고 무량수경 이역(異譯)의 「선택」이라는 말을 내놓지만, 그것은 법장보살이 자기의 사십팔원을 선택했다는 뜻이지 여러 행에 대해 칭명염불을 취사선택한다는 뜻이 없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바로 그 제18원에 「오직 오역과 정법 비방은 제외한다(唯、五逆と誹謗正法とを除く)」고 되어 있는데도 법연은 이 한 구절을 거의 가볍게 넘긴다. 특히 「정법 비방」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 대성인은 법화경을 버려야 한다고 한 법연의 「선택」이야말로 이 「정법 비방」에 해당한다고 하셨다. 선택본원을 비롯한 법연의 여러 「선택」은 대부분 선도의 경전 해석에 기대어 세운 것이며, 인사의 아견을 의지처로 삼고 법에 의지하지 않는 독선으로 꿰여 있다. 「정법 비방은 제외한다」는 단서를 무시하는 것도 이 근본적 비뚤어짐에서 나온다고 강의는 본다.

② 「선택섭취」 — 아미타불이 관무량수경에서 정선 · 산선의 여러 행을 보이면서도 마지막에는 염불하는 중생만 골라 구제했다는 것이다. 이는 선도의 독선적 관경 해석에 기댄 설이다. 관경은 열여섯 가지 관법을 들어 관불삼매를 강조하는데, 선도는 이 관법들이 끝내 칭명염불에 「섭취」되었다 했고, 법연은 이를 받아 관경에서는 정 · 산의 여러 행과 마주 세워 칭명염불을 「선택」했다고 한 것이다.

③ 「선택화찬」 — 관무량수경에서 아미타불이 염불하는 중생을 맞으러 왔다는 것을 들어, 아미타불 자신이 칭명염불을 골랐다는 것이다. 이는 십육관 가운데 하품상생의 설에 근거한다. 거기서는 대승경전의 이름을 듣는 문경(聞經)의 공덕을 설한 뒤, 임종 때 염불하면 그 공덕으로 아미타불이 내영한다고 설한다. 법연은 이를 아미타불이 문경에 대해 칭명염불을 골랐다고 했지만, 이 또한 그릇된 해석이며 경은 문경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임종 공덕의 전제로 삼는다. 특히 그 대목에는 「방등경전을 비방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 정법 비방이 없는 것이 대전제다. 또 이 대목은 열등 · 악한 근기인 하품 중생의 임종 때 관불을 설하는 것이며, 여기서 염불이 설해지는 것은 임종의 고뇌에 응한 관불삼매 속의 한 수단, 곧 방편이다. 나아가 관경 자체가 아들 아사세왕의 악업에 괴로워하며 세상을 싫어하는 위제희 부인에게 설한 대기설법이며 방편경이다.

④ 「선택아명」 — 『반주삼매경』에서 늘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사람에게 아미타불이 온다는 것을 든다. 그러나 이 경도 관불을 위한 지관행을 설하는 경전이다. 그 대의를 버리고 작은 한 구절을 골라 아미타불의 선택이라 하는 것은 고의로 문장을 잘라 쓴 것일 뿐이다.

이상이 아미타불에 의한 선택이라는 것인데, 모두 선도 · 법연이 세운 기의 위의 선택일 뿐 경전에 아미타불이 선택했다고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의는 본다.

법연은 이어 석존에 의한 칭명염불의 선택으로 선택찬탄 · 선택유교 · 선택부촉의 셋을, 제불에 의한 선택으로 선택증성 하나를 든다. 무량수경 끝에서 석존이 왕생의 행으로 여러 행을 들면서도 마지막에 여러 행을 버리고 염불만을 무상공덕이라 찬탄했다는 것이 「선택찬탄」, 관무량수경에서 석존이 여러 행을 설하면서 아난에게 염불 한 행만을 부촉했다는 것이 「선택부촉」, 아미타경에서 육방의 제불이 칭명염불 왕생의 진실을 증명하려고 설상(舌相)을 보였다는 것이 「선택증성」이다. 강의는 이것들이 아미타불의 선택보다 더 문제가 많다고 본다. 아미타불의 경우는 정토 경전 범위 안의 논의지만, 석존이나 제불의 선택이 되면 일체경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법화취요초는 이 장 이후의 전개에서 법화경의 입장에서 석존과 제불의 관계, 참된 부촉 · 증명을 밝혀 가며, 그것이 법연이 말하는 석존 · 제불의 선택에 대한 파절이 된다. 여기서는 두 가지만 지적된다. 첫째, 법연이 든 여러 경의 글에 염불을 찬탄하거나 증명한 말이 보이기는 하지만, 어느 경우도 법연의 주장처럼 여러 행과 마주 세워 염불을 선택하고 여러 행을 「버리기」 위해 찬탄 · 증명한 것이 아니다. 둘째, 이것들을 석존이나 제불의 선택(취사)이라 한다면 시야를 일체경으로 넓혀 찬탄 · 유교 · 부촉 · 증명을 판정해야 하는데, 법연은 이를 게을리했다. 다른 행을 「버린다」고까지 하면서 그것이 석존이나 제불의 참뜻인지를 일체경에 걸쳐 검토하지 않았으니, 교판을 세우는 태도로서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법연은 『선택집』에서 칭명염불이 아미타불만이 아니라 일체 부처의 선택임을 강조하고, 그 권위를 근거로 염불 이외의 여러 행 · 정토 경전 이외의 여러 경을 버리고 염불을 전수하라고 설했다. 대성인은 이를 「사폐각포」 네 글자로 나타내시고, 이 가르침이 부처의 본의가 아닐 뿐 아니라 법화경을 비방하므로 방법(謗法)임을 밝히셨다. 강의는 『선택집』의 주된 글을 들어 그 방법의 말들을 보인다.

聖道・浄土二門を立つる意は、聖道を捨てて、浄土に入らしめんが為なり

성도 · 정토 두 문을 세우는 뜻은 성도를 버리고 정토에 들게 하기 위함이다.

법연, 『선택집』 — 성도문을 「버리라」

唯大乗と云うて、而も権実を選ぶこと無し。然れば則ち正しく華厳・方等・般若・法華・涅槃等の諸大乗経に当たれり

다만 대승이라 하고 권실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바로 화엄 · 방등 · 반야 · 법화 · 열반 등의 여러 대승경에 해당한다.

법연, 『선택집』 — 잡행에 법화경을 넣음

随他の前には、暫く定散の門を開くと雖も、随自の後には、還って定散の門を閉づ。一たび開いて以後、永く閉じざるは唯是れ念仏の一門なり

수타의 앞에서는 잠시 정 · 산의 문을 연다 해도 수자의 뒤에는 도리어 정 · 산의 문을 닫는다. 한 번 열린 뒤 길이 닫히지 않는 것은 오직 염불 한 문이다.

법연, 『선택집』 — 여러 행을 「닫으라」

計れば、夫れ速かに生死を離れんと欲せば、二種の勝法の中には且く聖道門を閣きて、選んで浄土門に入れ。浄土門に入らんと欲せば、正雑二行の中には且らく諸の雑行を抛ちて、選んで正行に帰すべし

헤아리건대, 무릇 속히 생사를 떠나고자 하면 두 가지 뛰어난 법 가운데 잠시 성도문을 놓아두고 골라서 정토문에 들라. 정토문에 들고자 하면 정 · 잡 두 행 가운데 잠시 여러 잡행을 던지고 골라서 정행에 돌아가라.

법연, 『선택집』 — 「놓아두라」 · 「던지라」

이 밖에도 『선택집』에는 「모름지기 성도를 버리고 정토에 돌아가라(須らく聖道を棄てて浄土に帰すべし)」, 성도문에 법화경을 넣는 「이제 이 집의 뜻은 오직 현대(顯大)와 권대(權大)를 둔다. 그러므로 역겁우회의 행에 해당한다. 이에 준해 생각하면 마땅히 밀대(密大)와 실대(實大)도 두어야 한다(今此の集の意は、唯顕大及び権大を存す。故に歴劫迂廻の行に当たる。是に準じて之を思うに、応に密大及び実大をも存すべし)」, 잡행을 버리라는 「더욱 모름지기 잡을 버리고 전(專)을 닦으라. 어찌 백이면 백 왕생하는 전수정행을 버리고 천 가운데 하나도 없는 잡수잡행을 굳이 고집하랴(弥須らく雑を捨てて専を修すべし。豈百即百生の専修正行を捨てて、堅く千中無一の雑修雑行を執ぜらんや)」 같은 글이 있다. 법연에 이르러 방법의 정도가 한층 짙어졌다고 강의는 본다.

『선택집』의 네 글자
捨(버리라)聖道を捨てて、浄土に入らしめんが為なり성도를 버리고 정토에 들게 하기 위함
閉(닫으라)還って定散の門を閉づ도리어 정 · 산의 문을 닫는다
閣(놓아두라)且く聖道門を閣きて잠시 성도문을 놓아두고
抛(던지라)且らく諸の雑行を抛ちて잠시 여러 잡행을 던지고
法華経は?법화경은?正しく華厳・方等・般若・法華・涅槃等の諸大乗経に当たれり바로 화엄 · 방등 · 반야 · 법화 · 열반 등에 해당한다— 법화경이 「버릴 것」에 들어감
도표 10 · 사폐각포

법연 교판의 체계상 오류

법연 교판의 대전제는 담란의 난행도 · 이행도와 도작의 성도문 · 정토문 구별이며, 그 본질은 시기와 법의 상응 여부에 있다. 말법의 「시」는 부처가 입멸한 지 아득히 지난 오탁악세이고 중생의 「기」도 악하고 열등하다. 그러므로 자력 수행을 기본으로 하는 성도문은 법리가 깊어도 중생의 이해가 얕아 시기에 맞지 않는 난행도이고, 부처의 본원력으로 쉽게 왕생할 수 있는 정토문만이 시기에 맞는 이행도라는 것이다. 정토종의 교판은 이처럼 본래 「교의 승렬」보다 「행의 난이」를 중시하고 「시기」를 관점으로 「이행」을 고르는 것이며, 그래서 석존 일대의 경을 성도 · 정토 두 문으로 나눈다.

이 견해에는 이미 단순한 「난이」만이 아니라, 시기에 맞는 정토문 특히 칭명염불 한 행은 뛰어나고 시기에 맞지 않는 성도문은 못하다는 「승렬」의 판정이 들어 있다. 그것이 담란 · 도작 · 선도로 이어지며 분명해지고, 이를 더 강조한 것이 법연의 교판이다. 염불은 본래 중생에게 쉬우므로 골라야 할 행이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 종을 세우는 교판으로 약하므로, 「중생이 고르는 쉬운 행」이 「부처가 고른 뛰어난 행」임을 밝혀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택집』 제3 「본원편」은 아미타불이 여러 행을 본원으로 삼지 않고 칭명염불 한 행을 본원으로 삼은 이유로 「승렬」과 「난이」 두 뜻을 든다.

「승렬」의 뜻에 대해서는 「명호는 만덕이 돌아가는 곳」이라 하여, 아미타불의 내증 · 외용의 공덕이 모두 그 명호에 담겨 있으므로 명호의 공덕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반면 다른 행은 「그렇지 않아 각기 한 귀퉁이를 지킨다. 그러므로 못하다」고 하여, 「못한 것을 버리고 뛰어난 것을 취한다」고 결론짓는다. 「난이」의 뜻에 대해서는 겐신(源信)의 『왕생요집』의 글을 든 뒤 「염불은 쉬우므로 일체에 통한다. 여러 행은 어려우므로 여러 근기에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체중생을 평등히 왕생케 하려고 어려운 것을 버리고 쉬운 것을 취해 본원으로 삼으신 것이리라」고 한다. 아미타불이 이행을 본원으로 삼은 것은 평등의 자비 때문이라는 것이다.

먼저 「난이」의 뜻을 보면, 여기 인용된 『왕생요집』 권하 제8 「염불의 증거」에서는 염불을 권하는 것이 다른 묘행을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라 남녀귀천 ·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이행이며 특히 임종 때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법연은 이를 칭명이 일체중생을 평등히 구하는 법이라는 문증으로 삼았지만, 오히려 여기서 종래 정토교와 법연의 차이가 드러난다. 『왕생요집』은 칭명이 편리하다고 할 뿐 다른 행을 배척하지 않는 데 비해, 법연은 부처가 평등의 자비에서 「어려운 것을 버리고 쉬운 것을 취했다」고 한다. 법연 이전 정토교에서 칭명을 고르는 이유는 「편리함」에 있었고 칭명은 여러 행의 한 부분이었으나, 법연에 이르러 칭명은 부처가 일체중생에 대한 평등의 자비로 고른 것으로 설명되고, 「난이」가 「다른 행과 함께 칭명도 쓴다」가 아니라 「칭명을 골라 다른 행을 버린다」는 기준이 되었다. 다음으로 칭명에 만덕이 담겨 있어 가장 뛰어나고 여러 행은 부분적이어서 못하다는 「승렬」의 뜻은 정토계 경론에조차 문증이 없고 도리상으로도 아무 근거가 없는 독단이며, 이행을 멋대로 승행으로 끌어올리려는 망설이라고 강의는 단정한다.

법연이나 선도의 설이 서는 자리는 오직 하나, 무량수경에서 아미타불의 본원으로 칭명염불이 골라졌다는 데 있다. 「칭명염불은 아미타불의 본원으로 골라진 유일한 왕생의 행이며, 아미타불의 본원은 이미 성취되어 지금 서방 극락정토로 세워져 있으니, 칭명염불로 불원력을 타고 쉽게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논리의 뼈대이고, 「칭명염불은 가장 뛰어날 것이다」 · 「일체의 부처가 칭명염불을 선택할 것이다」 같은 말은 여기서 파생된 것이다. 강의는 이 논리의 결함을 넷으로 든다.

첫째, 그들이 유일한 의지처로 삼는 무량수경 제18원에는 「내가 부처가 될 때, 시방의 중생이 지극한 마음으로 신락하여 내 나라에 나고자 하여 내지 열 번 염(念)하는데, 만약 나지 못한다면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라(我、仏を得たらんに、十方の衆生、至心に信楽して、我が国に生ぜんと欲して、乃至十念せんに、若し生ぜずば、正覚は取らじ)」고 되어 있어 직접 칭명염불을 설하지 않는다. 선도는 「십념」을 「열 번 염불을 부르는 것」으로 풀었지만, 이는 글자 그대로 「왕생을 원하는 마음을 열 번 일으키는 것」이다. 아미타불이 본원으로 칭명을 골랐다고 해석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둘째, 그들이 이 제18원을 궁극의 근거로 삼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선도가 이 원을 강조한 것은 이행을 중시한 담란의 생각을 이어 그것을 근거 짓기 위해서였을 뿐이니, 그들의 설은 법리상의 근거를 전혀 갖지 않는다. 셋째, 더 근본적인 결함은 일체경 가운데 정토 삼부경의 위치가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일체경을 성도문과 정토문으로 나누어 정토문의 경전을 취한다고만 하고 논을 진행한다. 그러나 정토 경전의 범위 안에서 아무리 칭명염불이 정행이고 뛰어난 행이라 주장해도, 그것이 「다른 여러 행을 버리라」는 교판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 법화경에서 밝혀진 것처럼 여러 대승경에서 다른 국토의 제불이 설해진 것은 소승의 「오직 한 부처만 있다(唯有一佛)」는 설을 깨기 위함이지 이 국토를 싫어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국토를 싫어하고 서방 극락정토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아 거기 왕생하기 위한 정행이 무엇이냐를 논하는 것 자체가 모래 위의 누각이다. 넷째, 정토종이 금과옥조로 삼는 「이행이므로 시기상응」이라는 주장은 세간의 귀에 들어가기 쉽지만 역시 근거 없는 독단이다. 너그럽게 말하면 인생의 한 국면, 혹은 역사의 어느 한 시기에 염불이 시기에 맞는 면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바세계를 싫어하고 이 국토를 떠나 왕생하기를 권하는 가르침이 참으로 인생과 역사를 이끄는 보편적 가르침일 수는 없다. 무량수경에는 미래 세상의 「백세(百歳)」를 위해 이 경을 남긴다고 하고, 이역에는 멸후 천 년 뒤의 백 세로 연한이 정해져 있다. 이를 법연은 「말법 만 년 뒤의 백 세」로 억지로 해석했지만, 어쨌든 이런 연한의 규정 자체가 염불 가르침의 본질, 곧 한정된 때의 가르침이라는 성격을 드러낸다고 강의는 본다.

총괄하면 정토종의 특징은 「법」의 구명에 게으르다는 데 있으며, 불교 종파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 단적인 드러남이 「정법 비방」에 대한 무감각이다. 사람의 악성(惡性)을 강조한 나머지 그 밑바닥에 있는 「법」에 대한 맹목을 보지 못한다. 난행이란 이 근본적 맹목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열등한 근기 · 악한 근기에 있는 것이 아니니, 이행이라서 구원받는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또 아미타불의 평등한 자비로 세운 이행이라 만인을 구한다고 해도, 그 아미타불은 법연이나 선도 같은 인사가 경전에 자기 범정(凡情)을 투영해 만든 화불일 뿐이라고 강의는 본다. 참된 부처는 참된 「법」으로 중생을 구하며, 「법」은 모든 중생의 생명에 두루 있으므로 다른 국토에 왕생하지 않아도 이 국토에서 구제된다고 설하는 것이 참된 부처다.

「법」을 가볍게 보는 정토종의 본질은 담란 이래 여러 스승의 경전 해석 태도에 드러나며, 법연은 이 면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는 「오로지 선도에 의지한다(偏依善導)」고 공언했을 뿐 아니라 끝내 선도를 「미타의 화신」이라고까지 부르며 기울었다. 『선택집』의 서술 태도에서도, 선도의 해석을 불경과 거의 같이 다루어 경전 자체보다 선도의 해석을 더 중시한다고까지 말해진다. 그래서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에서 이렇게 법연의 본질을 꿰뚫으셨다.

曇鸞・道綽・善導既に権に就いて実を忘れ先に依つて後を捨つ未だ仏教の淵底を探らざる者なり、就中法然は其の流を酌むと雖も其の源を知らず、所以は何ん大乗経の六百三十七部二千八百八十三巻・並びに一切の諸仏 菩薩及び諸の世天等を以て捨閉閣抛の字を置いて一切衆生の心を薄んず、是れ偏に私曲の詞を展べて全く仏経の説を見ず

담란 · 도작 · 선도는 이미 권(權)에 나아가 실(實)을 잊고, 앞의 것에 의지하여 뒤의 것을 버렸으니, 아직 불교의 깊은 바닥을 살피지 못한 자들이니라. 그 가운데서도 법연은 그 흐름을 떠 마셨으나 그 근원을 알지 못하느니라. 까닭이 무엇인가. 대승경 육백삼십칠 부 이천팔백팔십삼 권과 아울러 일체의 제불 · 보살 및 여러 세천(世天) 등에 사폐각포의 글자를 두어 일체중생의 마음을 업신여기니, 이는 오로지 사사로이 굽은 말을 펴고 전혀 불경의 설을 보지 않은 것이니라.

「입정안국론」, 24쪽

강의는 정토 교판의 핵심을 「행의 난이를 교의 승렬로 바꿔치기한 것」으로 본다. 쉬우니까 고른다던 염불이 법연에 이르러 「부처가 고른 가장 뛰어난 행」이 되고, 그 「선택」이 법화경까지 버리는 사폐각포가 되었으며, 그 밑바닥에 제18원의 「정법 비방은 제외한다」를 외면한 「법」에 대한 무감각이 있다는 것이다.

구사종 · 성실종 · 율종 — 「사아함과 율 · 논만 불설」

경 · 율 · 논의 삼장과 사아함

本文은 구사종 · 성실종 · 율종의 교판으로 「사아함과 아울러 율 · 논은 불설이요, 화엄경 · 법화경 등은 불설이 아니라 외도의 경이다」라는 설을 드신다. 「사아함과 아울러 율 · 논」이란 인도 소승 교단에 전승된 경장 · 율장 · 논장의 삼장이다. 경장은 석존의 가르침을 모은 것으로 북전에서는 아가마, 남전에서는 니카야라 한다. 율장은 교단의 계율을 모은 것이고, 논장은 경과 율에 대한 연구 · 해석의 책이다.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일어날 무렵 인도 소승 교단은 열여덟 또는 스무 부파로 갈라져 저마다 삼장을 전승하고 있었고, 일어나는 대승불교에 대해 자기들이 전한 삼장만이 불설이고 그 밖은 불설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아함」은 범어 아가마의 음사로 「전승된 가르침」의 뜻이며 소승 삼장 가운데 경장에 해당한다. 소승 여러 부파의 아함 경전 가운데 북전으로 중국에 번역된 것에 장아함경 22권 · 중아함경 60권 · 잡아함경 50권(별역 잡아함경 16권) · 증일아함경 51권의 네 가지가 있어 「사아함」이라 한다. 장아함은 비교적 긴 경을, 중아함은 중간 길이의 경을, 잡아함은 짧은 경을 모은 것이고, 증일아함은 짧은 경을 1에서 11까지 법수(法數)에 따라 주제별로 분류 · 편찬한 것이다. 남전에서는 사아함과 거의 같은 내용이 「니카야」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장부 · 중부 · 상응부 · 증지부라 불린다. 이 가운데 상응부는 짧은 경을 주제별로 모았으므로, 이에 대응하는 잡아함도 본래 주제별로 편찬되었으리라 추정된다. 니카야에는 이 네 부 외에 소부(小部)가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것은 중국에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는 『법구경(담마파다)』 · 『숫타니파타』 같은, 성립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전이 들어 있다.

구사종

구사종은 세친의 『구사론』 30권을 소의로 세운 종이다. 세친은 대승의 논사로 활약했지만, 『구사론』은 그가 아직 소승 설일체유부에 속해 있던 시절의 저술이다. 설일체유부의 교의는 가다연니자가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지은 『발지론』으로 확립되었다고 하며, 이를 주석한 『대비바사론』의 설을 새로운 구성으로 요약한 것이 『구사론』이다. 다만 이 논은 유부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같은 소승의 경량부 입장에서 비판한 관점도 보인다.

『구사론』 등에 보이는 유부의 기본 입장은 「아공법유(我空法有)」다. 중생의 생명은 오온이 임시로 화합해 이루어졌을 뿐이므로 일정불변의 아(我)는 없다는 것이 「아공」이다. 그러나 생명을 이루는 오온 같은 제법은 삼세에 걸쳐 실재한다고 하여 이를 「법유」라 한다. 또 이 부파는 현상을 이루는 실재의 제법을 「오위칠십오법」 — 색법 · 심왕 · 심소유법 · 심불상응행법 · 무위법의 다섯으로 크게 나누고 다시 일흔다섯으로 세분한 것 — 으로 분류해 이로써 일체 제법이 다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제법에서 일체 현상이 이루어지는 갖가지 인과를 분석해, 지금의 생명이 고보(苦報)를 받는 것은 과거의 번뇌와 업 때문이므로 번뇌를 멸하면 열반에 들 수 있다고 한다.

『구사론』은 중국에서 처음 진(陳)대에 인도의 진제 삼장이 한역했으나 활발히 연구된 것은 당대 현장의 신역 이후다. 그 문하의 보광 · 법보 · 신태가 각기 주석서를 지어 「구사의 삼대소」라 불린다. 그러나 이 논은 어디까지나 대승 유식을 배우기 위한 전제였으므로 중국에서는 한 종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법상종에 딸린 우종(寓宗)에 머물렀다. 일본에는 당에 들어가 현장에게 배우고 돌아와 법상종을 연 도쇼(道昭) 등이 전해 남도 육종의 하나로 꼽혔지만, 역시 법상종의 우종을 벗어나지 못했다.

성실종

성실종은 인도 하리발마의 『성실론』 16권에 근거한 종이다. 「성실」이란 석존이 설한 경 · 율 · 논 삼장을 풀어 이룬다(釋成)는 뜻이다. 이 논은 서론과 고 · 집 · 멸 · 도 사제를 각기 논한 다섯 취(聚)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은 유부의 아공법유를 비판하고 인법이공(人法二空)을 주장하는 데 특징이 있다. 중생의 생명은 오음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공일 뿐 아니라 그 구성 요소인 제법도 공이라는 것이다. 또 대승의 영향을 받아 부처의 가르침에서 일체법의 유 · 무를 말하는 설은 모두 방편설이며 부처의 제일의가 아니라 하고, 유 · 무에 치우친 단 · 상 이견을 떠난 「성중도(聖中道)」가 참된 불교라 설했으나, 이 중도에 대한 설명은 분명하지 않다. 이 논의 주안은 어디까지나 유부의 법유에 맞서 법공을 주장하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천론으로는 가명심 · 법심 · 공심의 삼심을 멸하면 열반에 들 수 있다고 한다. 가명심은 갖가지 현상을 실유로 여기는 마음으로, 그 현상이 오음으로 이루어진 가유(假有)임을 알아 이 마음을 멸해야 한다. 현상이 가(假)인 까닭으로는 인성가 · 상속가 · 상대가의 삼가(三假)를 밝힌다. 가명심을 멸해도 현상을 이루는 오음의 존재를 인정하는 마음, 곧 법심이 남으므로 오음을 무(無)로 관해 이를 멸해야 하고, 이 공관으로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도 아직 일체가 공이라는 생각, 곧 공심이 남으므로 이 공에 사로잡힌 마음까지 멸해야 참된 열반을 얻는다고 설한다. 이렇게 『성실론』은 인공만이 아니라 법공도 말한다는 점에서 유부와 다르다. 그러나 그 공은 분석해 가면 무라는 석공관(析空觀)으로, 공을 분석적 · 허무적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결국 유부와 같으며, 무로 보는 범위를 넓혔을 뿐이다. 그래서 말로는 중도를 세우지만 결국 번뇌를 다 멸한 열반을 설하므로 소승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평가된다.

『성실론』은 5세기 초 구마라집이 한역해 문하에서 연구가 진척되었다. 특히 문하 사철(四哲)의 하나로 꼽히고 번역에도 참여한 승예는 번역이 끝나자 구마라집의 명으로 곧바로 강설해 스승의 칭찬을 받았다고 전한다. 『양고승전』에 따르면 이후 유송 대에 역시 구마라집 문하의 승도가 최초의 주석서를 지었다. 양대에 들어서는 개선사 지장 · 장엄사 승민 · 광택사 법운 등 뛰어난 성실 학자가 많이 나와 성실학파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렇게 『성실론』은 양 · 진을 거쳐 수대까지 연구되었으나, 천태대사와 삼론종 길장이 소승이라 판정한 뒤로 차츰 쇠퇴했다. 일본에는 삼론종과 함께 전해졌다.

율종

율종은 삼장 가운데 율장에 근거한 종이다. 「율」은 범어 비나야로 제어 · 조복 · 규율의 뜻이며, 석존 재세 때 출가 제자가 지켜야 할 생활 규범과 교단의 규율을 뜻했다. 율장은 이런 율을 설한 전적이다. 반면 「계」는 범어 실라의 번역으로 시라(尸羅)라 음사하며, 본래 행위 · 습관 · 도덕을 뜻하던 것이 그릇된 행위를 막고 악을 그치는 방비지악(防非止惡)의 뜻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출가 · 재가를 묻지 않고 불교도가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다. 이처럼 계와 율은 본래 다른 것이었으나 뒤에는 섞여 쓰였고, 「계율」이라는 숙어도 계의 뜻이나 율의 뜻으로 일정하지 않게 쓰였다.

인도에서는 소승 교단이 열여덟 또는 스무 부파로 갈라져 있었으므로 율장도 부파마다 전승되었다. 화지부의 『오분율』 30권, 설일체유부의 『십송율』 61권, 법장부의 『사분율』 60권, 대중부의 『마하승기율』 40권처럼 부파 고유의 율장이 전해졌고, 이 네 율장이 중국에 번역되어 「사대광율(四大廣律)」이라 불렸다. 중국 전래는 404년 북인도 계빈의 불야다라가 『십송율』을 전해 구마라집 등이 함께 번역한 것이 처음이다. 410년에는 같은 계빈의 불타야사가 『사분율』을 외워 내어 축불념과 함께 번역했고, 418년에는 인도의 불타발타라가 『마하승기율』을, 424년에는 계빈의 불타십이 『오분율』을 한역하여, 불과 스무 해 사이에 네 율이 잇달아 전해졌다.

남북조 시대에는 오로지 『십송율』이 연구되었으나, 수 말 · 당 초 무렵에는 『사분율』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교넨(凝然)의 『팔종강요』에 따르면 당대에는 『사분율』에 세 분파가 있어, 상주의 법려 율사, 종남산의 도선 율사, 장안 숭복사 동탑의 회소 율사가 각기 다른 설을 세워 다투었다. 법려는 상주 일광사에서 한 파를 세워 그 계통을 상부종(相部宗)이라 하고, 법려에게 배운 회소는 뒤에 스승의 설을 비판해 그 파는 동탑종이라 불렸다. 그러나 중국 율종의 주류로 번영한 것은 종남산 풍덕사를 근거지로 도선(道宣)이 연 남산율종이며, 일본에도 감진(鑑眞)을 통해 전해졌다. 율종이라 하면 이 남산율종을 가리킨다.

『사분율』은 물론 소승의 율장이지만, 도선은 가르침은 소승이라도 뜻은 일부 대승에 통한다 하여 사분율종을 「분통대승(分通大乘)」이라 판정했다. 또 성공교 · 상공교 · 유식원교의 삼교에 석존 일대의 가르침이 모두 담긴다는 교판을 세우고, 사분율종은 가르침으로는 본래 성공교의 일부지만 분통대승이므로 계 · 정 · 혜 삼학 위에 원융무애의 도를 갖추어 소승의 계법 그대로 일승의 묘의를 갖추었으니 유식원교의 실대승에 해당한다고 설했다. 도선의 시대에는 이미 대승경이 퍼지고 대소승의 승렬이 판정되어 있었으므로, 『사분율』을 대승의 뜻에 통하는 것으로 하는 이런 교판을 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대 중국에서는 대승 불교도가 소승의 계율주의를 가볍게 본 탓도 있어 승풍이 크게 어지러워 퇴폐가 극에 달했고, 그 때문에 승려가 도리어 속인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사람들의 신앙심을 잃게 하는 결과가 되어 있었다. 대승불교가 일어난 뒤에 소승에 근거한 사분율종이 세워진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 불교계를 배경으로 도선은 지계 · 지율의 정신을 중시하고 대승적 견지에서 『사분율』을 재구성했다. 그래서 그 계율관도 소승의 구족계 같은 전통 계율을 밟으면서 대승의 보살계를 받아들여, 출가자는 처음 다섯 해 동안 소승의 율을 배우고 그 뒤에 대승의 보살계를 배워야 한다고 설한다. 대승 · 소승의 가르침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해진 것이니 근기의 우열이 문제이지 이치에는 차이가 없다는 도선의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도선은 현장이 『유가론』을 번역할 때 그 일에 참여하기도 하여, 그가 받아들인 대승계는 『유가론』이 설하는 유가계 계통의 보살계였다고 한다. 이 유가계는 대승계인 삼취정계 가운데 율의계로 『사분율』의 이백오십 계를 받아들인 데 큰 특색이 있다. 곧 대소 양계를 겸하고 있어, 소승계를 배제한 『범망경』의 대승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도선이나 그 계율을 일본에 가져온 감진이 『사분율』의 소승계를 기본으로 하면서 보살계로 범망의 순대승계를 받아들이려 한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강의는 본다. 전교대사가 『현계론』에서 오로지 범망의 보살계로 대승계를 세우고 남도의 계율에 반대한 것도, 범망경이 소승의 경 · 율 · 아비담론을 배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한순간이라도 소승의 마음을 일으키면 경계(輕戒)를 범한 것이라 하여 보살승은 소승의 계율에 같이해서는 안 된다고 설하기 때문이다. 남도 측은 일본에도 이미 범망의 보살계가 전해져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소승계와의 병용이었으므로 범망경의 원의(圓意)를 모르고 쓴 것이 되어 오히려 불계를 범하는 자기모순을 드러냈다.

감진은 전기에 따르면 16세에 출가해 18세에 보살계를 받고 뒤에 소승의 구족계를 받았다고 한다. 전교대사는 감진이 이렇게 대승계 뒤에 소승계를 받은 것은 소승 근기의 중생을 이끌기 위해, 곧 이타를 위해 임시로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태 교학에 통한 감진이 대승의 보살계를 알면서, 그리고 일본에 천태 삼대부를 가져왔으면서도 오로지 소승계를 넓힌 것은 중생의 근기에 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성인이 「시모야마어소식」에서 「감진 화상이라는 사람이 한토에서 우리 조정에 법화경 천태종을 전해 주셨으나, 원기(圓機)가 아직 익지 않았다고 여기셨던지 이 법문을 자기 마음에 거두어 입 밖에도 내지 않으셨다(鑑真和尚と申せし人漢土より我が朝に法華経天台宗を渡し給いて有りしが円機未熟とやおぼしけん此の法門をば已心に収めて口にも出だし給はず)」(344쪽)라고 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승 교도의 대승비불설

이렇게 세 종의 성립과 교의를 보았다. 대성인은 이 소승 세 종이 「소승의 가르침만이 석존이 설한 것이고 화엄경 · 법화경 같은 대승경은 불설이 아니라 외도다」라고 비난한다고 드셨다. 일본의 이 세 종이 실제로 그렇게 대승경전을 비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성인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세 종이 소승의 가르침으로 한 종을 세우고 거기에 집착하고 있음을 깨뜨리신 것으로 강의는 읽는다.

인도 · 중국에서는 대성인이 「현방법초」에서 「천축 · 진단에는 소승종의 사람이 대승을 깨뜨리는 일이 많다. 일본국에는 그 뜻이 없다(天竺・震旦には小乗宗の者・大乗を破する事これ多し日本国には其の義なし)」(454쪽)라고 지적하셨듯, 소승 교도가 대승경을 비판하는 일이 흔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 대승경을 불설이 아니라 외도의 가르침이라 비난하는 것이 소승 교도의 상투구였다. 예컨대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일어났을 때 상좌부 학자들이 「대승은 불설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는 것이 용수의 『대지도론』에 보인다. 그 권63 신방품(信謗品)에는 「부처가 친히 설한 것을 제자가 외워 익히고 써서 경권을 만드는데, 어리석은 이는 비방해 말하기를, 『이것은 불설이 아니다. 이것은 마나 마민(魔民)이 지은 것이며, 단멸의 사견을 가진 자가 손으로 쓰고 꾸민 말재주 있는 자의 설이다』라 한다」는 취지의 글이 있다. 또 미륵의 『대승장엄경론』이나 무착의 『섭대승론』도 먼저 대승경이 불설임을 논증하고 있으니, 소승 교도의 대승비불설 비난이 꽤 뿌리 깊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열반경 권26의 다음 글을 든다.

諸仏菩薩・三乗を説く。而も是の経の中には純ら一乗を説く。謂く、大涅槃なり、此くの如きの言、云何が是れ仏の正典に当らん。諸仏は畢竟して涅槃に入りたまう。是の経には仏は常楽我浄、涅槃に入りたまわずと云う。是の経は十二部の数に在らず、即ち是れ魔の説なり。是れ仏説に非ず。善男子、是くの如き人は我が弟子なりと雖も、是の涅槃経を信順する能わず

제불 · 보살은 삼승을 설한다. 그런데 이 경에서는 오로지 일승, 곧 대열반을 설한다. 이런 말이 어찌 부처의 바른 경전에 해당하겠는가. 제불은 마침내 열반에 드신다. 그런데 이 경은 부처가 상락아정하여 열반에 들지 않으신다고 한다. 이 경은 십이부경의 수에 들지 않으니 곧 마의 설이요 불설이 아니다 — 선남자여, 이와 같은 사람은 나의 제자라 해도 이 열반경을 믿고 따르지 못하리라.

『대반열반경』 권26, T12 no.374

이 경문의 취지는, 석존 멸후에 어리석고 계를 깨뜨리는 성문의 악비구가 나와 제법을 무상 · 무아 · 무락 · 무정이라 설하고, 「부처는 반드시 번뇌를 멸해 열반에 든다」는 소승의 가르침에 집착하여, 부처가 상락아정의 상주 경계에 있음을 설하는 열반경을 「부처가 설한 것이 아니라 사견의 사람, 육사외도가 지은 마설이다」라고 비방하리라는 것이다.

이런 대승비불설은 인도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보였다. 승우(僧祐)의 『홍명집』 권12에는, 승가제바가 와서 소승경을 넓히자 혜의 · 혜관의 무리가 그 소승의 가르침을 우러러 이치의 극치라 하고 방등의 경은 모두 마서(魔書)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승가제바는 계빈 출신으로 4세기 말 증일아함경 · 중아함경 · 『아비담심론』 등을 중국에 가져온 승려다. 같은 승우가 엮은 『출삼장기집』 권5에도, 담마야사의 제자 법도가 오로지 소승을 배워 대승경 읽기를 금했다는 것, 혜도가 반야경을 의심하고 담락이 소승에 치우쳐 법화경을 비방했으며 승연이 열반경을 비방해 혀뿌리가 문드러졌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 승연은 『양고승전』 권8에 따르면 구마라집의 제자 승숭에게서 『성실론』과 비담을 배운 성실 학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일어났을 때, 그리고 중국에 대승불교가 퍼져 갈 때 소승 교도의 대승비불설 비난이 있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혹은 말하되 혹은 말하되」 — 자각 · 지증의 태밀 교판

本文은 아홉 종의 교판을 늘어놓으신 뒤 끝에 「혹은 말하되 혹은 말하되」라고 적으셨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이 『혹은 말하되』 등은 자각 · 지증의 뜻이리라(この『或は云く』等は慈覚・智証の義なるべし)」라고 풀었다. 아홉 종 외에 「자각 · 지증의 뜻」, 곧 천태 밀교(태밀)의 교판도 파절해야 할 것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어서는 태밀을 구체적으로 들지 않는다. 그러나 「법화 제일」의 정의를 무너뜨린 장본인으로 잊을 수 없는 것이, 천태법화종을 안에서부터 바꾸어 일본 불교의 타락을 불러온 자각 · 지증의 사의다. 일본 천태종은 본래 천태대사의 설에 근거해 법화경을 소의로 세운 종이었다. 그러나 엔랴쿠지 제3대 좌주 엔닌(자각)과 제5대 좌주 엔친(지증)에 의해 진언밀교를 한 종의 요체로 삼게 되었다. 대성인은 「보은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叡山の仏法は但だ伝教大師・義真和尚・円澄大師の三代計りにてやありけん、天台座主すでに真言の座主にうつりぬ名と所領とは天台山其の主は真言師なり、されば慈覚大師・智証大師は已今当の経文をやぶらせ給う人なり、已今当の経文をやぶらせ給うは・あに釈迦・多宝・十方の諸仏の怨敵にあらずや、弘法大師こそ第一の謗法の人とおもうに、これは・それには・にるべくもなき僻事なり、

히에이산의 불법은 다만 전교대사 · 의진 화상 · 원징 대사의 삼대뿐이었던가. 천태 좌주는 이미 진언의 좌주로 옮겨 갔으니, 이름과 소령은 천태산이되 그 주인은 진언사니라. 그러므로 자각대사 · 지증대사는 이금당의 경문을 깨뜨리신 사람이니라. 이금당의 경문을 깨뜨리신 것은 어찌 석가 · 다보 · 시방 제불의 원적이 아니겠는가. 홍법대사야말로 제일의 방법인이라 생각했는데, 이것은 그것과 견줄 수도 없는 그릇된 일이니라.

「보은초」, 308쪽

자각 · 지증에 의한 천태종의 밀교화는 홍법의 진언밀교보다도 불법상 더 큰 죄를 지은 것이 된다. 홍법은 법화경 · 화엄경 등 대승경을 한데 묶어 현교로 하여 모두 진언밀교보다 못하다 하고, 십주심판으로 법화경을 대일경 · 화엄경 다음의 「제삼의 열(劣)」로 깎아내렸다. 이에 대해 자각 · 지증은 일단 법화경과 진언 여러 경을 같다고 하는 「원밀일치(圓密一致)」설을 취했으나, 결국 중국의 선무외 · 일행이 세운 「이동사승」의 망설에 근거해 진언 여러 경을 제일, 법화경을 제이로 낮추었다.

원밀일치와 전교대사의 밀교관

이 태밀 교판의 「원밀일치」에 대해, 그것이 전교대사 이래 일본 천태종의 기조이며 자각 · 지증은 거기에 따랐을 뿐이라는 견해가 있다. 원밀일치란 법화경과 진언 경전을 같다고 보는 사고로, 이에 따르면 일승원교가 곧 밀교이고 삼승경이 현교가 되어, 현밀이교는 삼승과 일승의 구별에 다름 아니게 된다. 전교대사도 법화일승이야말로 참된 밀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현교 = 삼승 · 밀교 = 일승」의 구별은 얼핏 전교대사의 생각과 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구별을 처음 설한 자각에게는 전교대사의 「밀교 = 일승」관에서 크게 벗어난 데가 있어, 오히려 구카이의 현밀이교판과 같아지고 만다고 강의는 본다. 태밀과 전교대사 밀교관의 근본 차이는, 전교대사가 법화경의 회좌 위에서 진언밀교를 법화일승에 포섭한 데 비해, 자각은 거꾸로 진언밀교를 근본으로 하고 그 한 부분으로 법화경의 뜻을 인정했다는 데 있다. 법화경과 진언밀교 가운데 어느 쪽을 근본으로 하느냐에서 둘은 정반대다.

자각의 『소실지경소』를 보면, 먼저 현교란 삼승경이라 하고 그 이유로 「아직 이사구밀(理事倶密)을 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화엄 · 유마 · 반야 · 법화 등의 여러 대승경」은 「이밀(理密)」을 설하므로 밀교라 할 수 있지만 아직 「사밀(事密)」을 설하지 않았으므로, 이사구밀을 밝혀 「여래 비밀의 뜻」을 다 설한 「비로자나 · 금강정경」과 구별된다고 한다. 강의는 이 설이 두 가지 점에서 전교대사의 밀교관을 벗어났다고 본다. 첫째, 일단 원밀일치를 세우지만 결국 진언밀교만이 이사구밀이며 법화경 등보다 뛰어나다고 하니 구카이의 현렬밀승판과 다를 바 없다. 둘째, 법화경의 원교를 화엄 · 유마 · 반야 등 이전의 원교와 같은 줄에 두고 본다. 자각은 이 여러 경이 모두 이밀을 설한다고 하지만, 그가 말하는 이밀이란 「세속과 승의의 원융불이」로, 대승 일반에 보이는 차원에서 법화경을 파악할 뿐 법화경에서 구체적으로 개현된 「여래비밀」 같은 참된 의미의 밀교를 이해하지 못했다.

전교대사가 법화경이야말로 밀교로 여겼음을 보이는 『법화수구』의 글로 강의는 다음을 든다. ① 「저 묘법화경은 내증의 본법이다. 그러므로 경을 남겨 근기가 익기를 기다린다. 저 화엄 등 여러 경은 수의(隨宜)의 설법이다. 그러므로 근기를 따라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其れ妙法華経は、内証の本法なり、故に経を留めて機の熟を待つ。其れ華厳等の諸経は、随宣の説法なり。故に機に随いて時を待たず)」, ② 「과분의 일체 소유의 법, 과분의 일체 자재한 신력, 과분의 일체 비요의 장, 과분의 일체 심심한 일을 모두 법화경에서 펴 보이고 드러내 설한다(果分の一切の所有の法、果分の一切の自在の神力、果分の一切の秘要の蔵、果分の一切の甚深の事、皆、法華経に於いて宣示顕説す)」, ③ 「직도직지는 이현(已顯)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법화경종은 여러 경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直道直至は已顕に興こる、是の故に法華経宗は、諸経の中の最勝なり)」, ④ 「즉입(卽入)이라는 말은 즉신과 다름이 없다. 다른 종이 의지하는 경에는 모두 즉신입이 있고 일부 즉입이 있다 해도 팔지 이상을 미루어 범부의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 천태법화종에는 갖추어 즉입의 뜻이 있다(即入の言は即身と異なること無し。他宗所依の経には、都て即身入し、一分即入すると雖も、八地已上を推して、凡夫の身を許さず。天台法華宗には、具さに即入の義有り)」. 이 글들은 직접적으로는 법상종 도쿠이치(德一)를 파절하려는 것이지만, 구카이가 세운 설도 이 파절의 내용에 들어간다. ①과 ②는 진언밀교가 부처의 자내증 혹은 과분을 설한 가르침이라는 구카이의 설에 대해 법화경이야말로 내증 · 과분의 설임을 보인 것이고, ③과 ④는 진언밀교에만 즉신성불의 직도가 있다는 구카이의 설에 대해 성불의 직도는 법화경에만 있음을 보인 것이다. 불신론에서도, 구카이가 대일여래는 법신불이므로 뛰어나고 석존은 응화불이므로 못하다고 한 데 대해, 전교대사는 법화경의 구원실성의 부처야말로 구체구용(具體具用)의 상주 삼신이라 했다.

이렇게 전교대사는 분명히 「법화경의 밀교」를 근본으로 하고 그 위에서 진언밀교를 개회해 썼다. 종래 전교대사가 자각 등과 같은 원밀일치의 입장에 섰다는 증거로, 구카이에게 보낸 서간의 「차나(遮那)의 종은 천태와 융통한다」나, 구카이에게로 떠난 제자 다이한(泰範)에게 보낸 서간의 「법화일승과 진언일승에 어찌 우열이 있으랴」 같은 글이 들려 왔다. 그러나 이는 진언밀교에 집착하는 구카이나 다이한을 법화일승으로 이끌기 위한 말이지, 결코 법화경과 진언밀교를 무조건 같다고 한 것이 아니라고 강의는 본다.

이동사승 — 자각 · 지증 · 안넨

자각은 원밀일치를 더 넓혀, 중국 진언종 원정(元政)의 시사에 따라 「일대원교」론을 세웠다. 여래의 일체 가르침이 모두 원교라는 것인데, 법화경이 아니라 진언밀교를 근본으로 한다. 자각은 전교대사의 법화 근본의 입장에서 크게 떠났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앞서 본 『소실지경소』의 설이다. 법화경 등 여러 경은 이밀, 진언밀교는 이사구밀이므로 이(理)에서는 둘이 같으나 사(事)에서는 밀교가 뛰어나다는 「이동사승」설이 여기 보인다. 태밀의 교판은 자각과 지증이 큰 줄기를 세우고 오대원 안넨(安然)이 정비했다고 하는데, 그 기조가 이 이동사승설이다.

자각 단계에서는 뜻은 어떻든 표현 자체로는 진언 경전이 뛰어나고 법화경이 못하다는 「원렬밀승(圓劣密勝)」의 뜻이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지증 · 안넨으로 가면서 법화경을 낮추는 표현이 분명해지고, 구카이의 설과 다를 바 없는 원렬밀승판으로 기울어 간다. 지증은 『대일경지귀』에서 천태대사 오시교판의 「법화시」를 다시 ① 초선 = 법화경, ② 중선 = 열반경, ③ 후선 = 다라니 법문으로 나누고, 「법화 · 열반을 이전으로 삼는다(法華・涅槃を以て爾前と為す)」고 했다. 천태종에서 전대미문의 「법화경 = 이전경」이라는 그릇된 뜻이 세워진 것이다. 또 같은 책에서 대일경을 오시판의 방등부에 속한다고 한 당결(唐決)을 격하게 비판하며 「이제 이 삼마지론을 살피건대 오직 이 비밀교에만 있다. …… 그러므로 대승 가운데 왕이요 비밀 가운데 가장 비밀이라 한다. 법화도 오히려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가르침이랴(今此の三摩地論を案ずれば、唯此の秘密教に在り。…故に大乗の中の王、秘中の中の最秘と云う。法華尚及ばず、矧や自余の教をや)」라고 한다. 여기서 밀교가 뛰어난 까닭으로 든 「삼마지문」의 삼마지는 삼매와 같은 뜻으로 선정을 말하며, 이 삼매에 드는 문으로 신 · 어 · 의에 걸친 삼밀의 법을 세운다. 또 지증은 천태지관뿐 아니라 진언밀교에도 뛰어난 사람을 히에이산 좌주로 삼아야 한다고 조정에 상주했다.

안넨은 자신의 입장을 나타내는 데 분명히 「진언종」이라는 이름을 쓰기에 이른다. 『교시쟁』에서는 여러 종의 승렬을 판정해 진언종 · 불심종 · 법화종 · 화엄종 · 무상종 · 법상종 · 비니종 · 성실종 · 구사종의 차례를 세운다. 배열 순서는 조금 다르지만 구카이의 십주심판처럼 법화경을 「제삼의 열」로 낮춘 것이다. 또 지증이 오시판에 그릇된 해석을 더한 데 이어, 안넨은 천태대사의 화법사교에 멋대로 해석을 베풀어 장 · 통 · 별 · 원 · 밀의 「오교」판을 세웠다. 『보리심의초』 권5에서 「이제 진언종은 일체 불교를 판정해 오교로 삼는다. 첫째 장, 둘째 통, 셋째 별, 넷째 원, 다섯째 밀이다(今真言宗は、一切仏教を判じて五教と為す。一に蔵、二に通、三に別、四に円、五に密)」라 하고, 그 근거로 「소실지소에 이비밀교 밖에 다시 이사구밀의 교를 세운다. 그러므로 앞의 넷 밖에 다시 다섯째를 더한다(蘇悉地疏に理秘密教の外、更に事理倶密の教を立つ。故に前四の外、更に五を加う)」라는 자각의 설을 든다. 또 장 · 통 · 별 삼교는 수타의어, 원교는 수자타의어, 밀교는 수자의어로 나누어 밀교만이 부처의 순수한 수자의 가르침이라 한다.

같은 논법 — 법장의 동별이교와 태밀 · 홍법

태밀은 이렇게 이동사승설에 근거한 원렬밀승판을 근본으로 법화경을 낮추어 갔다. 강의는 이 태밀 교판의 논법이 화엄종 법장의 오교판 · 동별이교판과 놀랄 만큼 닮았다고 지적한다. 법장은 화엄경과 법화경을 함께 원교로 하고, 그 원교 안에 동교 = 법화경, 별교 = 화엄경을 나누어 별교가 뛰어나다고 했다. 태밀도 법화경과 진언밀교를 이(理)에서는 똑같이 원교로 자리매김한 뒤, 사밀을 갖춘 점에서는 밀교가 뛰어나다고 한다. 이 이론 위에 지증의 변칙 오시판이 만들어졌다. 나아가 구카이의 십주심판도 법화경을 대일경 등과 같은 원교로 하면서 「제삼의 열」로 낮추니, 같은 논법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가장 뛰어나다고 할 경을 아견으로 정해 놓고, 그것을 교판으로 밝힐 때 불설에 근거해 법화경을 낮추는 논법을 취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일단은 천태 교판에 근거하거나 그것을 배경으로 법화경의 최승을 인정하고 자종의 경이 그와 같다고 한 뒤, 이어서 경전에 없는 다른 근거를 내세워 자기 경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동사승」설이 바로 그 전형이다. 대성인은 「법화진언승렬사」에서, 다른 경에 없는 부분적 법을 설했다는 이유로 뛰어나다고 한다면 아함경에는 세계 건립 · 현성의 위계가, 무량수경에는 사십팔원이, 반야경에는 십팔공이 설해져 있는데 대일경에는 그것들이 없으니 대일경이 그 경들보다 못하게 된다고 지적하시어 이동사승설의 근본 모순을 찌르셨다.

법장(화엄)일단 인정화엄 · 법화 모두 원교뒤집음그러나 별교일승(화엄) > 동교일승(법화)
태밀(자각 · 지증 · 안넨)일단 인정법화 · 대일 모두 원교, 「理同」(이(理)는 같다)뒤집음그러나 사밀(事密)을 갖춘 대일이 뛰어남 「事勝」(사(事)는 뛰어나다) → 장 · 통 · 별 · 원 · 밀의 오교판
홍법(동밀)일단 인정법화도 일승뒤집음그러나 십주심의 ⑧ 「無明の辺域」(무명의 변역(무명의 언저리)) → 「제삼의 열」
공통일단 법화의 최승을 인정한 뒤 경에 없는 근거로 자경(自經)을 위에 둠
대성인의 반론(법화진언승렬사)부분의 법으로 뛰어나다면 대일경은 아함 · 무량수 · 반야보다도 못하게 된다
도표 11 · 같은 논법의 세 교판

강의는 「혹은 말하되 혹은 말하되」를 니치칸 상인을 따라 자각 · 지증의 태밀 교판으로 읽는다. 법화를 근본으로 진언을 개회한 전교대사와 달리, 태밀은 진언을 근본으로 법화를 그 한 부분으로 삼았으며, 「이동사승」은 법장 · 홍법과 같은 「일단 인정한 뒤 경 밖의 근거로 뒤집는」 논법이라는 것이다.

일곱 종 열여덟 조사의 사적

其の二에서 대성인은 이 교판들을 세운 일곱 종 열여덟 조사의 이름을 늘어놓으시고, 그들이 모두 지혜와 덕이 뛰어난 고승이며 그 설은 경 · 율 · 논에 근거하고 바름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어 널리 존숭되어 왔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당시 상식으로는 니치렌 같은 말세의 치우친 승려가 비판해도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다.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전해지는 조사들의 사적 대부분을 일단 사실로 인정하신다. 그러나 그 교판은 저마다 본질에서 법화경 비방이 있음을 밝혀 엄하게 파절하신다. 강의는 먼저 조사들의 사적을 차례로 소개한 뒤 대성인의 파절 관점을 정리한다.

本文智は日月に斉く徳は四海に弥れり지혜는 해와 달과 같고 덕은 사해에 두루 미쳤느니라
  • 화엄종杜順두순智儼지엄法蔵법장澄観징관
  • 법상종玄弉현장慈恩자은
  • 삼론종嘉祥가상道朗도랑
  • 진언종善無畏선무외金剛智금강지不空불공
  • 율종道宣도선鑒真감진
  • 정토종曇鸞담란道綽도작善導선도
  • 선종達磨달마慧可혜가
도표 12 · 일곱 종 열여덟 조사

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 — 화엄종

화엄종 제1조 두순(杜順)은 수 문제와 당 태종의 존중을 받아 제심존자 · 돈황보살로 존칭되었다. 갖가지 기서를 나타내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우러러졌다고 전한다. 특히 실천 면에서 뛰어났다고 하며, 화엄경에 근거한 관행인 『법계관문』을 지어 화엄 교학의 원류를 이루었다. 제2조 지엄(智儼)은 화엄경 강설에 힘써 운화존자 · 지상대사로 존칭되었다. 『수현기』 · 『공목장』 등을 지어 두순의 가르침을 교리적으로 정비했다. 그에게서 비롯된 동별이교판은 뒤의 법장 · 징관이 법화경을 화엄경보다 못하다고 하는 교판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성인은 두순 · 지엄에 대해 「실경의 글을 모아 권의 뜻에 따르게 한 사람들이다(実経の文を会して権の義に順ぜしむる人人なり)」(「법화행자봉난사」, 966쪽)라고 하셨다.

제3조 법장(法藏)은 당 측천무후의 두터운 귀의를 받고 중종 · 예종 등 역대 황제의 계사가 되는 등 당 왕조에 중용되어 현수대사 · 국일법사로 불렸고, 현종에게서 홍려경(鴻臚卿)의 자리를 추증받았다. 그 밖에 강장대사 · 향상대사 · 현수보살 등의 존칭이 있다. 화엄경 신역과 강설에 힘쓰는 한편 『화엄오교장』 · 『탐현기』 등 많은 책을 지어 화엄종의 교의를 확립했다. 강설 때 입에서 광명을 냈다는 전설이 있다. 제4조 징관(澄觀)은 당 덕종 이하 역대 황제의 귀의를 받아 청량국사 · 대통국사의 호를 받았고 세상에서 화엄보살로 존칭되었다. 화엄 교학뿐 아니라 남산율 · 상부율 · 남종선 · 북종선 · 천태 · 삼론 등도 닦고 인도 · 중국의 학문과 기예에도 널리 통했다고 한다. 화엄경 주석에 온 힘을 쏟아 『화엄경소』 · 『연의초』 등을 지어 화엄경 제일의 뜻을 강조했다.

법장은 앞서 본 대로 오교판과 동별이교판으로 교묘하게 화엄경 제일의 교판을 세웠다. 징관은 이를 받아, 화엄경과 법화경은 같은 원교이지만 화엄경은 석존이 대보살들에게 근본의 법을 설해 출세의 본회를 이룬 경이고 법화경은 이승 · 범부 등의 근기를 기른 뒤 화엄경에 들게 하려고 설한 경일 뿐이라 하여 법화경을 낮추었다. 대성인은 이를 「소의의 화엄경에 이승작불 · 구원실성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기소(記小) · 구성(久成)이 있다고 생각하고, 화엄보다 뛰어난 법화경을 자기 경보다 못하다고 하는 것은 비뚤어진 견해다(所依の華厳経に二乗作仏・久遠実成をあかさざるに記小久成ありと・をもひ華厳よりも超過の法華経を我経に劣ると謂うは僻見なり)」(「현방법초」, 458쪽)라고 파절하셨다. 곧 법장 · 징관은 화엄경에 이승작불 · 구원실성이 설해져 있지 않은데도 설해져 있다고 여겼을 뿐 아니라, 그것이 설해진 법화경을 화엄경보다 못하다고 하는 벽견을 세웠다. 또 징관이 천태대사의 일념삼천을 훔쳐 화엄경의 「마음은 솜씨 좋은 화가와 같다(心如工畫師)」 같은 글을 풀이한 것에 대해 대성인은 「징관은 지계의 사람이라 대소의 계를 티끌만큼도 깨뜨리지 않았으나 일념삼천의 법문은 훔쳐 갔느니라(澄観は持戒の人・大小の戒を一塵をもやぶらざれども一念三千の法門をば・ぬすみとれり)」(「쇼미쓰보어서」, 896쪽)라고 통렬히 파절하셨다.

현장 · 자은 — 법상종

법상종의 개조 현장은 인도 구법 여행과 방대한 불전 번역으로 이름 높다. 29세에 그때까지 중국에 번역된 경론으로는 불분명한 점이 많던 유식 · 구사를 연구하려고 인도로 떠났고, 16년 뒤 불사리 · 불상과 함께 불전 657부를 가지고 장안으로 돌아왔다. 당 태종은 현장에게 귀의해 대자은사에 번경원을 세우고 가져온 경전의 번역을 맡겼다. 현장이 옮긴 경론은 모두 75부 1,335권에 이른다. 경 · 율 · 논 삼장을 가져오고 그에 통달한 고승이라는 뜻에서 현장 삼장, 또는 그냥 삼장법사로 존칭되었다.

현장의 제자 규기는 현장이 가져온 유식학을 정비 · 대성해 법상종의 실질적 개조가 되었다. 대자은사에 살았으므로 자은대사라 불렸고, 많은 경론을 주석해 「백본의 소주(百本の疏主)」라 일컬어졌다. 대성인이 「형제초」에서 「불사리를 붓끝에서 비 내리게 하고 이에서 빛을 내신 성인이다(仏舎利を筆のさきより雨らし牙より光を放ち給いし聖人なり)」(1081쪽)라고 쓰신 것은, 『미륵상생경』의 소를 쓸 때 붓끝에서 불사리 27알이 떨어졌다거나 죽은 뒤 관을 열자 이가 구슬처럼 빛났다는 전설을 받으신 것이다. 현장 · 자은은 천태대사가 아직 보지 못한 해심밀경 · 『유가론』 · 『유식론』 등을 방패로 「삼승진실 · 일승방편」을 주장하여 법화일승을 강조하는 천태대사의 교학과 정면으로 맞섰다.

가상 · 도랑 — 삼론종

삼론종의 대성자 가상대사 길장은 높은 학덕이 널리 알려져 도를 구하는 이가 끊이지 않고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그가 산 남북조 말에서 당 초는 난세였으나 진의 계양왕, 수 양제, 당 고조 등 어느 왕실에서도 중시되었다. 특히 삼론과 여러 대승경전의 강의 · 주석에 힘을 쏟았고, 법화경도 삼백 번 넘게 강설하며 찬앙했으며 주석서도 『법화현론』을 비롯해 여섯 편이 남아 있다. 그 자신이 「젊어서는 사론을 넓히고 끝에는 오로지 일승을 익혔다(少くして四論を弘め、末には専ら一乗を習い)」고 말했듯, 후반생에는 삼론보다 법화경 학자로서의 자각이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길장이 만년에 천태대사에게 귀복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속고승전』이나 『국청백록』에 따르면 길장은 천태대사에게 법화경 강의를 청했다고 하고, 『불조통기』에는 천태대사의 『법화현의』를 한 번 보자 자기의 법화경 주석을 불살랐다는 기록이 있다.

本文의 도랑(道朗)에 대해서는 ① 북량 시대 하서의 도랑, ② 양 · 수 시대 흥황사의 법랑 둘 가운데 하나로 생각된다. 둘 다 삼론의 전지자인데, 앞의 이는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을 도운 사람이고 뒤의 이는 길장의 스승이다. 『속고승전』에서 길장의 스승 이름이 「흥황사 도랑」으로 되어 있어 예부터 법랑과 도랑이 섞여 쓰였고, 대성인도 「보은초」에서 삼론종의 대표 조사로 길장과 함께 「흥황」의 이름을 드시므로, 本文의 도랑은 흥황사의 법랑으로 보인다고 강의는 본다. 법랑은 진 무제의 칙명으로 흥황사에 머물며 용수의 유풍을 귀히 여겨 삼론을 잘 드날리고 많은 인재를 모았다. 길장은 스승 법랑의 가르침을 조술해 삼론종을 세웠다고 한다.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진언종

선무외 삼장은 동인도 오다국의 왕자로 13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형의 시기를 사 양위하고 불도를 구해 출가했다. 나란다사의 달마국다에게 배워 진언의 관정을 받고, 스승의 권유로 중국으로 떠나 716년 당의 서울 장안에 들어갔다. 여행 중에 설법의 말이 허공에 금자로 늘어섰다는 등 많은 신변을 나타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현종에게 쓰여 그 비호 아래 대일경 · 소실지경 등을 번역했다. 또 천태종 승려 일행을 끌어들여 『대일경소』를 짓게 하고, 천태대사의 일념삼천의 뜻을 대일경의 글에 갖다 붙여 이동사승의 뜻을 세워 법화경을 낮추었다. 어느 여름 기우를 명받아 비를 내렸으나 큰바람이 불어 피해가 컸다고 하며, 제자가 본 바에 따르면 죽은 뒤의 상이 어두운 흑색이었다고 전한다. 대성인은 「보은초」 등에서 이를 법화경 비방으로 지옥에 떨어진 상이라 하셨다.

금강지 삼장은 중인도의 왕족, 혹은 남인도의 바라문 출신이라 하며, 10세에 출가해 나란다사에서 중관 · 유식을 배운 뒤 남인도에서 용지에게 금강정 계통 밀교를 닦았다. 중국에서 종을 열기로 결심해 약 3년의 바닷길을 거쳐 720년 장안에 들어갔다. 현종의 국사로 대우받고 여러 절에 진언 관정의 도량을 열어 포교했다. 뒤에 불공 · 일행을 보좌로 삼아 번역에 종사해 금강정경 계통 밀교 경전을 옮겼다. 기우 등의 기도에 실패한 탓인지 만년에는 불우했던 것으로 보이며, 죽은 뒤 제자 불공의 힘으로 대종에게서 대홍교삼장의 호를 추증받았다.

불공 삼장은 사자국(스리랑카) 출신으로, 14세에 중국으로 가는 금강지를 만나 스승으로 섬기고 함께 중국에 왔다. 금강지가 죽은 뒤 한때 귀국해 용지에게서 대일 · 금강정 양부의 밀교를 받았다며 746년 경론 100부 1,200권을 가지고 중국에 돌아왔다. 이때 불공과 동행한 제자 함광이 뒤에 묘락대사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불공의 인도 일시 귀국은 법화경에 근거한 진언 수법인 『법화의궤』 등을 가져온 것으로 보아, 속으로는 스승 금강지의 밀교로는 천태대사의 법문에 맞설 수 없다고 여겨 새로운 경론을 구하러 간 기미가 엿보인다. 귀당한 해에 불공은 현종의 칙명으로 기우를 닦았으나 선무외처럼 비는 내렸으되 큰바람이 불었다고 전한다. 그 실패 탓인지 하서로 물러나 번역에 전념했으나, 안사의 난을 틈타 서울로 돌아와 반란군 조복 기도를 하여 현종에게 중용되었다. 그 뒤 현장 이후 들어온 많은 미번역 경론을 옮겨 대종에게서 대광지삼장의 호를 받았다. 불공은 선무외 · 금강지가 연 진언종을 중국에 뿌리내리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대성인은 불공이 속으로는 천태대사에게 귀복했다고 하시는 동시에, 그의 경론 번역에 대해 「불공 삼장은 특히 잘못이 많은 데다 속이는 마음이 드러나 있다(不空三蔵は殊に誤多き上誑惑の心顕なり)」(「선시초」, 268쪽)라고 엄하게 비판하셨다. 특히 『보리심론』은 용맹(용수)의 저작으로 되어 있으나 불공의 기의가 많이 끼어 있어, 대성인은 용맹의 저작이 아니라 불공이 지은 위서라 하셨다. 그 책에 「오직 진언법 가운데서만 즉신성불한다(唯真言法の中にのみ即身成仏す)」고 한 것에 대해, 용수가 참된 즉신성불의 가르침인 법화경을 제쳐 두고 진언만을 즉신성불의 법이라 할 리가 없다 하시며 「천하 제일의 벽견이다(天下第一の僻見なり)」(「오타전부인답서」, 1007쪽)라고 하셨다. 어쨌든 이 진언 세 스승의 번역과 주석은 일본 진언종의 「이동사승」이나 「제삼의 열」 같은 그릇된 해석의 기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성인은 이 세 스승을 한데 묶어, 사람들을 지옥에 떨어뜨리는 사사(邪師)로 자주 엄하게 파절하셨다.

도선 · 감진 — 율종

남산율종의 개조 도선은 현장의 번역에 참여하는 한편 계율의 강설과 저술에 전념해 세상에서 남산율사 · 남산대사라 불렸다. 모두 35부 180권의 저술이 있고, 특히 『속고승전』 · 『광홍명집』 같은 많은 사전(史傳)으로 이름 높다. 감진은 중국에 있을 때 이미 4만 명 넘게 수계했다고 하며 율승 가운데 제일인자로 일컬어졌지만, 천태학 · 밀교학도 닦았다. 742년 일본 승려 요에이(榮叡) · 후쇼(普照)의 요청으로 일본 포교를 결심했으나 다섯 번 도항에 실패하고, 753년 여섯 번째에 마침내 일본에 건너왔다. 이때 이미 66세였고 그 사이에 실명해 있었다. 일본에서는 쇼무 상황 · 고켄 천황의 귀의를 받아 도다이지 · 시모쓰케 야쿠시지 · 쓰쿠시 간제온지에 계단을 세웠고, 계율 도량으로 도쇼다이지를 열었다. 또 많은 불전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천태 삼대부를 비롯한 천태 관계 논서는 뒤에 전교대사가 열람해 일본 천태종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감진은 그 밖에 조각 · 약초 등에서도 새로운 지식을 전했다고 한다.

담란 · 도작 · 선도 — 정토종

정토종 제1조로 꼽히는 담란은 당시 영지로 존숭되던 오대산에서 출가해 삼론의 흐름을 이어 사론 연구에 몰두했다. 50세 무렵 대집경 주석을 짓다가 병에 걸려, 불로장생의 법을 구해 당시 선술사로 이름난 도홍경을 찾아가 선경(仙經)을 얻었다. 그 돌아오는 길에 인도의 역경승 보리유지를 만나 선경보다 나은 불로장생의 법이 불법 속에 있느냐고 묻자, 참된 대선(大仙)은 생사를 해탈하는 것이라는 깨우침을 받고 관무량수경을 받았다. 이후 오로지 정토계 경론을 연구해 타력 염불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현중사를 열어 많은 사람을 염불 신앙으로 이끌었고 동위의 왕에게서 신란(神鸞)이라는 존칭을 받았다.

도작은 처음 열반경 연찬에 힘썼으나 현중사에서 담란을 기리는 비문을 보고 감명해 그 절에 머물며 염불 포교를 뜻했다. 관무량수경 강설이 평생 이백 번을 넘었고 스스로 매일 칠만 번 염불했다고 한다. 칭명의 수를 중시해 팥이나 염주로 부른 염불의 수를 세는 방법을 고안했으므로 「소두염불(小豆念佛)」이라 불렸다. 당 태종이 몸소 현중사의 도작을 찾아 공양했다고 전한다.

선도는 어려서 출가해 각지를 구도 편력하다가 마침내 관무량수경을 얻고 감명해 도작을 스승으로 섬겼다고 한다. 스승이 죽은 뒤 장안에 나가 광명사에서 칭명염불을 넓혀 수없는 남녀를 교화했다고 전한다. 일체의 명리를 피해 여인에게는 눈을 내리깔고 보지 않았다 하며, 날마다 십만 번 염불하고 평생 아미타경 십만 권을 쓰고 삼백 점 넘는 정토변상도를 그렸다고 한다. 한편 『왕생전』 · 『불조통기』 등은 선도가 광명사의 버드나무 위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달마 · 혜가 — 선종

중국 선종의 초조로 꼽히는 보리달마의 사적은 지나치게 꾸며진 전설이 많아 실상을 알기 어렵다. 전설대로 말하면 달마는 동인도 향지국 국왕의 셋째 왕자로, 반야다라를 스승으로 섬겨 법을 이어 인도 부법장 제28조가 되었다. 6세기 초 중국에 왔을 때 양 무제에게 불려 강경과 가람 건립의 공덕을 질문받자, 왕에게 근기가 없다고 보고 「무공덕」이라고만 답하고 떠났다고 한다. 뒤에 소림사에 들어가 9년 동안 벽을 향해 좌선을 이어 벽관바라문이라 불렸고, 혜가에게 법을 부촉하고 죽었다고 한다. 그 뒤 송운(宋雲)이 인도에서 돌아올 때 파미르에서 달마가 짚신 한 짝을 손에 들고 인도로 돌아가는 것을 만났고, 돌아와 달마를 묻은 관을 열어 보니 짚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후세에 지어진 갖가지 전설이 있다. 당대에 선종이 성해지면서 원각대사의 호가 추증되었다. 제2조 혜가는 40세에 눈 내리는 소림사로 달마를 찾아가 입문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자, 스스로 왼팔을 끊어 구도의 마음을 보였다고 전한다.

「지혜는 해와 달 같고 덕은 사해에 두루」 — 대성인의 파절 관점

일곱 종 열여덟 조사의 사적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 모두 구도자 · 홍통자로서 보통 사람을 넘는 모습이 전해진다. 구도자의 전형으로는 법을 구해 멀리 인도까지 간 현장이나 불공, 달마에게 입문하려고 팔을 끊었다는 혜가를, 홍통자로는 밀교를 넓히려고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선무외 · 금강지, 몇 번의 도항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일본에 율종을 전한 감진을 들 수 있다. 둘째, 학문이 뛰어나고 인덕이 높다. 학문으로는 각 종의 교학을 실질적으로 대성한 법장 · 징관 · 자은 · 가상 · 도선을, 인덕으로는 일체의 명리를 피했다는 선도를 대표로 들 수 있다. 셋째, 왕실의 귀의를 받아 한 시대를 풍미한 이가 많다. 삼론의 가상, 화엄의 법장 · 징관, 진언의 불공, 그리고 송대 남종선의 조사들이 권력자의 귀의를 받았고, 정토종의 조사들은 많은 민중의 귀의를 받았다. 넷째, 갖가지 신이 · 기서를 나타냈다고 한다. 화엄의 두순, 법상의 자은, 진언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선종의 달마가 그 예다.

이렇게 전해진 사적에서 本文의 「지혜는 해와 달과 같고 덕은 사해에 두루 미쳤다」, 「왕과 신하는 나라를 기울여 귀의하고 백성은 이를 우러른다」는 말씀이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적으신 것이다. 대성인은 이 인사들이 세운 교판의 본질을 법화경 비방으로 꿰뚫어 보시고, 그 점을 근본으로 엄하게 비판하셨다. 강의는 대성인의 비판을 다섯 갈래로 모은다.

첫째, 경론을 바르게 판별하지 못한 어두운 스승 · 어리석은 사람이다.

漢土の三論宗の吉蔵大師並びに一百余人.法相宗の慈恩大師・華厳宗の法蔵・澄観.真言宗の善無畏・金剛智・不空・慧果・日本の弘法・慈覚等の三蔵の諸師は四依の大士に非ざる暗師なり愚人なり、経に於ては大小・権実の旨を弁えず顕・密両道の趣を知らず論に於ては通申と別申とを糾さず

한토 삼론종의 길장대사와 아울러 일백여 인, 법상종의 자은대사, 화엄종의 법장 · 징관, 진언종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혜과, 일본의 홍법 · 자각 등 삼장의 여러 스승은 사의(四依)의 대사(大士)가 아닌 어두운 스승이요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경에서는 대소 · 권실의 뜻을 가리지 못하고 현 · 밀 두 길의 취지를 알지 못하며, 논에서는 통신(通申)과 별신(別申)을 따지지 못하느니라.

「소야입도전허어서」, 1034쪽

둘째, 법화경을 저마다의 입장에서 곡해했다.

諸宗の元祖等・法華経を読み奉れば各各其の弟子等は我が師は法華経の心を得給へりと思へり、然れども詮を論ずれば慈恩大師は深密経・唯識論を師として法華経をよみ、嘉祥大師は般若経・中論を師として法華経をよむ、杜順・法蔵等は華厳経・十住毘婆沙論を師として法華経をよみ、善無畏・金剛智・不空等は大日経を師として法華経をよむ、此等の人人は各法華経をよめりと思へども未だ一句一偈もよめる人にはあらず

여러 종의 원조들이 법화경을 읽으니 저마다 그 제자들은 우리 스승이 법화경의 마음을 얻으셨다고 생각하느니라. 그러나 요지를 논하면, 자은대사는 심밀경 · 유식론을 스승으로 삼아 법화경을 읽고, 가상대사는 반야경 · 중론을 스승으로 삼아 법화경을 읽으며, 두순 · 법장 등은 화엄경 · 십주비바사론을 스승으로 삼아 법화경을 읽고,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등은 대일경을 스승으로 삼아 법화경을 읽느니라. 이 사람들은 저마다 법화경을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한 구 한 게도 읽은 사람이 아니니라.

「묘미쓰상인어소식」, 1239쪽

셋째, 법화경 구원실성의 부처를 모르는 은혜 모르는 자, 재능 있는 축생이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묘락대사의 석을 들어 「묘락대사는 당 말 천보 연간의 사람이니라. 삼론 · 화엄 · 법상 · 진언 등의 여러 종과 아울러 그 의경을 깊이 보고 널리 살펴, 수량품의 부처를 모르는 자는 아버지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헤매는 재능 있는 축생이라고 썼느니라(妙楽大師は唐の末・天宝年中の者なり三論・華厳・法相・真言等の諸宗・並に依経を深くみ広く勘えて寿量品の仏をしらざる者は父統の邦に迷える才能ある畜生とかけるなり)」(215쪽)라 하시고, 「재능이라 함은 화엄종의 법장 · 징관, 내지 진언종의 선무외 삼장 등은 재능 있는 인사이지만 자식이 아버지를 모르는 것과 같다」고 이어 말씀하셨다. 학식과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자신의 참된 아버지인 수량품의 부처를 모르면, 아버지의 나라에서 길을 잃은 자식과 같다는 것이다.

넷째, 사람들을 꾀어 떨어뜨리는 악지식이다.

法華経を信ずる人をば・いかにもして悪へ堕さんとをもうに叶わざればやうやくすかさんがために相似せる華厳経へをとしつ・杜順・智儼・法蔵・澄観等是なり、又般若経へすかしをとす悪友は嘉祥・僧詮等是なり、又深密経へ・すかしをとす悪友は玄奘・慈恩是なり、又大日経へ・すかしをとす悪友は善無畏・金剛智・不空・弘法・慈覚・智証是なり、又禅宗へすかしをとす悪友は達磨・慧可等是なり、又観経へすかしをとす悪友は善導・法然是なり

법화경을 믿는 사람을 어떻게든 악으로 떨어뜨리려 하나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차츰 꾀어내려고 비슷한 화엄경으로 떨어뜨렸으니 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 등이 이들이니라. 또 반야경으로 꾀어 떨어뜨린 악우는 가상 · 승전 등이요, 또 심밀경으로 꾀어 떨어뜨린 악우는 현장 · 자은이요, 또 대일경으로 꾀어 떨어뜨린 악우는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홍법 · 자각 · 지증이요, 또 선종으로 꾀어 떨어뜨린 악우는 달마 · 혜가 등이요, 또 관경으로 꾀어 떨어뜨린 악우는 선도 · 법연이니라.

「형제초」, 1081쪽

다섯째, 법화경을 지니는 범부보다 훨씬 못하다.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약왕품의 「능히 이 경전을 수지하는 자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중생 가운데 또한 제일이다」를 들어, 화엄경을 지닌 보현보살 · 해탈월보살 · 용수 · 마명 · 법장대사 · 청량국사 · 측천황후 · 심상대덕 · 로벤 승정 · 쇼무 천황, 심밀 · 반야경을 지닌 승의생보살 · 수보리 · 가상대사 · 현장 삼장 · 태종 · 고종 · 관륵 · 도쇼 · 고토쿠 천황, 대일경을 지닌 금강살타 · 용맹 · 용지 · 인생왕 ·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현종 · 대종 · 혜과 · 홍법대사 · 자각대사, 열반경을 지닌 가섭동자보살 · 오십이류 · 담무참 삼장 · 광택사 법운 · 남삼북칠의 열 스승보다도, 「말대 악세의 범부로서 한 계도 지키지 않아 남에게는 일천제처럼 여겨지더라도 경문대로 이금당보다 뛰어나 법화경 밖에는 부처가 되는 길이 없다고 강성하게 믿고, 게다가 한 푼의 이해도 없는 사람들은 저 대성들보다 백천만억 배 낫다고 하는 경문이니라(末代悪世の凡夫の一戒も持たず一闡提のごとくに人には思はれたれども、経文のごとく已今当にすぐれて法華経より外は仏になる道なしと強盛に信じて 而も一分の解なからん人人は、彼等の大聖には百千万億倍のまさりなりと申す経文なり)」(290쪽)라고 말씀하셨다.

이 밖에도 갖가지 각도에서 파절하셨지만, 이것만으로도 대성인이 파절의 기준을 「법화경의 정의를 아느냐 모르느냐」 한 점에 두셨음이 분명하다. 조사들이 아무리 학문이 뛰어나고 덕이 높아 보여도, 아무리 평판이 높아도, 법화경의 정의를 모르고 그것을 거스른다는 한 점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도사로서 자격이 없으며, 오히려 사람들을 미혹하게 한 그 죄는 지극히 크다는 것이다. 其の二가 조사들의 지혜와 덕을 먼저 그대로 인정하신 것은, 바로 이 기준의 무게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다음 제3장은 「그렇기는 하지만(爾りと雖も)」으로 시작한다.

  1. ①暗師・愚人어두운 스승 · 어리석은 사람経に於ては大小・権実の旨を弁えず경에 대해서는 대소 · 권실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소야입도전허어서, 1034쪽)
  2. ②曲解법화경을 자종의 경으로 읽음未だ一句一偈もよめる人にはあらず아직 한 구 한 게도 읽은 사람이 아니다(묘미쓰상인어소식, 1239쪽)
  3. ③不知恩수량품의 부처를 모름寿量品の仏をしらざる者수량품의 부처를 알지 못하는 자(개목초, 215쪽)
  4. ④悪知識비슷한 경으로 꾀어 떨어뜨림相似せる華厳経へをとしつ비슷한 화엄경으로 떨어뜨렸느니라(형제초, 1081쪽)
  5. ⑤凡夫に劣る법화경을 믿는 범부보다 못함彼等の大聖には百千万億倍のまさりなり저들의 대성(大聖)보다 백천만억 배나 뛰어나니라(선시초, 290쪽)
기준은 하나: 법화경의 정의를 아느냐
도표 13 · 대성인의 조사 파절 다섯 갈래
제3장 법화경 최제일의 정판을 밝히다
어서 331쪽 10행 ~ 332쪽 10행 · 第三 法華経最第一の正判を明かす

본문

本文 · 其の一어서 331쪽 10~11행
本文 · 어서 원문

爾りと雖も宝山に来り登つて瓦石を採取し栴檀に歩み入つて伊蘭を懐き取らば悔恨有らん、 故に万人の謗りを捨て猥りに取捨を加う我が門弟委細に之を尋討せよ。

풀이

그렇기는 하나 보배의 산에 와서 올라 기와와 돌을 주워 오고, 전단의 숲에 걸어 들어가 이란(伊蘭)을 안아 온다면 후회와 한이 남으리라. 그러므로 만인의 비방을 돌아보지 않고 감히 취사(取捨)를 가하노라. 나의 문제자들은 자세히 이를 찾아 밝히라.

本文 · 其の二어서 331쪽 12~14행
本文 · 어서 원문

夫れ諸宗の人師等或は旧訳の経論を見て新訳の聖典を見ず或は新訳の経論を見て旧訳を捨置き 或は自宗の曲に執著して己義に随い愚見を注し止めて後代に之を加添す、 株杭に驚き騒ぎて兎獣を尋ね求め智円扇に発して仰いで天月を見る非を捨て理を取るは智人なり、

풀이

무릇 여러 종의 인사(人師)들은 혹은 구역의 경론을 보고 신역의 성전을 보지 않고, 혹은 신역의 경론을 보고 구역을 버려두며, 혹은 자종의 굽은 뜻에 집착하여 자기 뜻에 따라 어리석은 견해를 주석으로 적어 남겨 후대에 이를 덧붙였느니라. 그루터기에 놀라 소란을 떨고는 토끼를 찾아 구하고, 둥근 부채로 지혜를 일으키고는 우러러 하늘의 달을 보듯이, 그릇됨을 버리고 이치를 취하는 이가 지혜로운 사람이니라.

本文 · 其の三어서 331쪽 14행 ~ 332쪽 1행
本文 · 어서 원문

今末の論師・本の人師の邪義を捨て置いて専ら本経本論を引き見るに 五十余年の諸経の中に法華経第四法師品の中の已今当の三字最も第一なり、

풀이

이제 말(末)의 논사와 본(本)의 인사의 사의(邪義)를 버려두고 오로지 본경(本經) · 본론(本論)을 끌어와 보건대, 오십여 년의 여러 경 가운데 법화경 제4권 법사품의 「이금당(已今當)」 세 글자가 가장 제일이니라.

本文 · 其の四어서 332쪽 1~2행
本文 · 어서 원문

諸の論師・諸の人師定めて此経文を見けるか、 然りと雖も或は相似の経文に狂い或は本師の邪会に執し或は王臣等の帰依を恐るるか、

풀이

여러 논사와 여러 인사도 틀림없이 이 경문을 보았으리라. 그러나 혹은 비슷한 경문에 미혹되고, 혹은 본사(本師)의 그릇된 회통에 집착하며, 혹은 왕과 신하 등의 귀의를 잃을까 두려워했던가.

本文 · 其の五어서 332쪽 2~8행
本文 · 어서 원문

所謂金光明経の「是諸経之王」密厳経の「一切経中勝」六波羅蜜経の「総持第一」大日経の「云何菩提」華厳経の「能信是経・最為難」般若経の「会入法性・不見一事」大智度論の「般若波羅蜜最第一」涅槃論の「今者涅槃理」等なり、 此等の諸文は法華経の已今当の三字に相似せる文なり・ 然りと雖も或は梵帝・四天等の諸経に対当すれば是れ諸経の王なり或は小乗経に相対すれば諸経の中の王なり或は華厳・勝鬘等の経に相対すれば一切経の中に勝れたり 全く五十余年の大小・権実・顕密の諸経に相対して是れ諸経の王の大王なるに非ず 所詮所対を見て経経の勝劣を弁うべきなり、強敵を臥伏するに始て大力を知見する是なり、

풀이

이른바 금광명경의 「이는 모든 경의 왕(是諸經之王)」, 밀엄경의 「일체경 가운데 뛰어나다(一切經中勝)」, 육바라밀경의 「총지가 제일(總持第一)」, 대일경의 「무엇이 보리인가(云何菩提)」, 화엄경의 「능히 이 경을 믿는 것이 가장 어렵다(能信是經 · 最爲難)」, 반야경의 「법성에 회입하여 한 일도 보지 않는다(會入法性 · 不見一事)」, 대지도론의 「반야바라밀이 최제일(般若波羅蜜最第一)」, 열반론의 「이제 열반의 이치는(今者涅槃理)」 등이니라. 이들 여러 글은 법화경의 「이금당」 세 글자와 비슷한 글이니라. 그러나 혹은 범천 · 제석 · 사천왕 등의 여러 경에 마주하면 이것이 모든 경의 왕이요, 혹은 소승경에 상대하면 모든 경 가운데 왕이요, 혹은 화엄 · 승만 등의 경에 상대하면 일체경 가운데 뛰어난 것이니라. 결코 오십여 년의 대소 · 권실 · 현밀의 여러 경에 상대하여 이것이 모든 경의 왕들 가운데 대왕이라는 것이 아니니라. 요컨대 소대(所對)를 보고 경과 경의 승렬을 가려야 하느니라. 강적을 쓰러뜨리고서야 비로소 큰 힘을 알아보는 것이 이것이니라.

本文 · 其の六어서 332쪽 8~10행
本文 · 어서 원문

其の上諸経の勝劣は釈尊一仏の浅深なり全く多宝分身の助言を加うるに非ず私説を以て公事に混ずる事勿れ、 諸経は或は二乗凡夫に対揚して小乗経を演説し、或は文殊・解脱月・金剛薩埵等の弘伝の菩薩に対向して全く地涌千界の上行等には非ず、

풀이

게다가 여러 경의 승렬은 석존 한 부처의 천심일 뿐이요, 결코 다보 · 분신의 조언(助言)을 더한 것이 아니니라. 사사로운 설(私說)을 공적인 일(公事)과 섞지 말지어다. 여러 경은 혹은 이승과 범부를 상대로 소승경을 연설하고, 혹은 문수 · 해탈월 · 금강살타 등 넓혀 전하는 보살을 향한 것이요, 결코 지용천계의 상행 등을 향한 것이 아니니라.

어구 풀이

宝山・栴檀・伊蘭보산 · 전단 · 이란
석존의 일대성교를 보배의 산과 전단(향나무) 숲에 비기고, 그 가운데서 낮은 교법을 고르는 것을 기와와 돌, 악취 나는 독초 이란을 집어 오는 일에 비유했다. 이란은 냄새가 지독하다는 풀(나무)로 흔히 전단과 대비된다.
我が門弟委細に之を尋討せよ나의 문제자는 자세히 이를 찾아 밝히라
교법의 승렬을 깊이 연찬하라는 문하에 대한 권유. 대고중 도키조닌을 비롯한 문하가 직접 경론을 따져 보라는 뜻이다.
旧訳・新訳구역 · 신역
구역은 구마라집 등 당 초 이전의 번역, 신역은 현장 이후의 번역. 구역에만 기댄 종(삼론 · 성실 · 남삼북칠)과 신역에만 기댄 종(법상 · 진언)이 각기 일부 경론을 최고로 삼은 잘못을 가리킨다.
株杭に驚き騒ぎて兎獣を尋ね求め그루터기에 놀라 토끼를 찾아 구함
우연히 그루터기에 부딪쳐 죽은 토끼를 얻은 뒤 그루터기만 지켜보지 말고 토끼 자체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비유. 수단(그루터기)에 매이지 말고 목적(토끼)을 구하라는 뜻이다.
智円扇に発して仰いで天月を見る둥근 부채로 지혜를 일으켜 하늘의 달을 우러름
달을 가리키려고 둥근 부채를 보였으면, 부채를 보고 알았을 때 부채를 버리고 하늘의 참 달을 보아야 한다는 비유. 경론의 일부(부채)에 매이지 말고 참된 이치(달)를 취하라는 뜻이다.
末の論師・本の人師말의 논사 · 본의 인사
강의는 인도의 말류 논사와 중국 · 일본 각 종의 조사가 된 인사를 가리킨다고 푼다.
本経本論본경 · 본론
석존이 설한 경전과 바른 논서. 인사의 해석이 아니라 근본 경론에 직접 기대야 한다는 「의법불의인」의 태도다.
已今当の三字이금당 세 글자
법사품 「我が所説の経典無量千万億にして已に説き今説き当に説かん、而も其の中に於て此の法華経最も難信難解なり」의 「이(已) · 금(今) · 당(當)」. 이설 = 이전의 여러 경, 금설 = 무량의경, 당설 = 열반경이다.
相似の経文상사의 경문
이금당처럼 자기 경을 제일이라 하는 다른 경론의 글. 겉보기는 비슷하나 비교의 대상이 다르다.
本師の邪会본사의 사회
자종 조사의 그릇된 회통(會通). 경문을 조사의 해석에 맞춰 억지로 맞추는 것이다.
所対소대
비교의 대상. 무엇에 대해 「제일」이라 하는가. 이 장의 핵심 개념이다.
私説・公事사설 · 공사
석존 한 부처만의 설법이 「사설」, 다보여래와 시방 분신 제불의 증명으로 뒷받침된 일체 부처의 공적 불사(佛事)가 「공사」다.
多宝分身다보 · 분신
견보탑품에서 법화경의 진실을 증명하러 나타난 다보여래와, 시방에서 모여든 석존의 분신 제불.
弘伝の菩薩홍전의 보살
문수 · 해탈월 · 금강살타처럼 이전 여러 경의 대고중으로 그 경을 넓혀 전하는 보살. 강의는 「보살승을 넓히는 보살」의 뜻으로 읽는다.
地涌千界の上行等지용천계의 상행 등
종지용출품에서 대지에서 솟아난 삼천대천세계 티끌 수(千界)의 보살과 그 상수 상행보살. 신력품에서 멸후 홍통을 부촉받는다.

「그렇기는 하나」 — 만인의 비방을 무릅쓴 취사

이 장에서 대성인은 앞 장에서 늘어놓으신 제종의 그릇된 교판을 받아,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이금당」을 「법화경 제일」의 의문(依文)으로 세우고, 이 글이 다른 종이 교판의 근거로 삼은 여러 글보다 뛰어난 까닭을 밝히신다. 강의는 이 장의 가르침에 기대어 「법화경 제일」을 주제로 고찰한다.

먼저 其の一은 앞 장 끝에서, 그릇된 교판을 세운 제종의 원조들이 왕신 만민의 존숭을 받고 있다고 하신 것을 받는다. 설령 제종의 원조들에게 거슬러 만인의 비방을 받더라도 대성인은 굳이 교법의 승렬 · 사정(邪正)을 바르게 취사하신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시고, 문제자들에게도 이 교법의 승렬을 깊이 연찬하라고 권하신다.

「보배의 산에 와서 올라 기와와 돌을 주워 오고, 전단의 숲에 걸어 들어가 이란을 안아 온다면」이란, 석존의 일대성교를 보배의 산이나 전단의 숲에 비기고, 그 가운데서 제종의 교판을 따라 낮은 교법을 취하는 것을, 보물과 전단을 버리고 기와 · 돌이나 이란을 모으는 모습에 비유하신 것이다. 경론 자체는 모두 부처의 말씀이니 「보배의 산」이다. 문제는 그 산에 올라 무엇을 집어 오느냐다. 제1장의 「오천 · 칠천여 권」이 보배의 산이라면, 제2장의 아홉 종은 그 산에서 저마다 다른 돌을 집어 들고 그것이 보배라고 외친 셈이다.

보배의 산과 전단의 숲 — 산기슭 한쪽에 따로 놓인 기와 · 돌과 들풀
그림 · 보배의 산과 전단의 숲 — 산기슭 한쪽에 따로 놓인 기와 · 돌과 들풀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이 구절로 시작하는 제3단을 「금가(今家)의 정판(正判)」을 밝히는 단이라 한다. 앞 단의 「제종의 유해(謬解)」에 대한 것으로, 니치렌 대성인에 의한 바른 교판의 뜻이며, 「법화경 제일」이 그것이다. 이 단에서는 「법화경 제일」의 까닭을 ① 문증, ② 증명의 유무, ③ 대고(對告)의 존비 세 가지로 밝혀 가신다. 其の三~其の五가 ①, 其の六 앞부분이 ②, 其の六 뒷부분이 ③에 해당한다.

니치칸 상인 『법화취요초 문단』
  1. ①문증(文證)其の三~五已今当の三字最も第一なり이금당 세 글자가 가장 제일이니라상사의 경문과는 소대가 다르다
  2. ②증명의 유무其の六 앞全く多宝分身の助言を加うるに非ず결코 다보 · 분신의 조언을 더한 것이 아니니라사설 대 공사
  3. ③대고의 존비其の六 뒤全く地涌千界の上行等には非ず결코 지용천계의 상행 등을 향한 것이 아니니라
도표 14 · 금가의 정판 — 법화경 제일의 세 까닭

그릇된 해석이 생긴 까닭 — 구역 · 신역 · 자종의 굽음

其の二에서는 제종 인사들에게 갖가지 그릇된 해석이 생긴 이유를 셋으로 밝히신다. ① 구역의 경론은 보았으나 신역의 경전은 보지 않았다. ② 신역의 경론만 보고 구역의 경론을 무시했다. ③ 자종의 그릇된 가르침에 집착해 제멋대로의 생각으로 어리석은 주석을 써서 후대에 남겼다.

①에 해당하는 대표는 구역의 반야경과 『중론』 · 『십이문론』 · 『백론』 같은 경론을 의지처로 하는 삼론종이다. 같은 구역의 『성실론』에 의한 성실종, 『섭대승론』에 의한 섭론종, 『십지경론』에 의한 지론종을 비롯한 이른바 남삼북칠의 여러 종 · 여러 스승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 종들은 수대 이전에 성립했으니 성립 당시 당 초 이후의 신역 경론을 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시대적 제약과 함께, 구역 가운데 일부 경론으로 종을 세웠고, 신역 경론이 나온 뒤에도 자종 소의의 경론에 집착함으로써 그릇된 해석을 후대에 남겼다.

이에 대해 천태대사도 진 · 수 사람이니 물론 신역 경론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갖가지 경이 설해진 까닭을 부처 스스로 밝힌 것이 법화경이며, 천태대사는 그 법화경에 근거해 구역의 일체 경론을 체계적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법화경 제일」의 교판을 증명했다. 그 뜻은 신역 경론까지 저절로 포섭한다고 강의는 본다. 신역을 보았느냐 못 보았느냐가 아니라, 경이 설해진 까닭을 밝힌 경을 기준으로 삼았느냐가 갈림길이라는 것이다.

②의 대표는 현장이 옮긴 해심밀경 · 『성유식론』 같은 유식 관계 경론을 의지처로 하는 법상종, 그리고 인도에서 새로 들여온 대일경 · 금강정경 같은 밀교 관계 경론으로 세운 진언종이다. 이 종들은 새로 들어온 경론을 앞세우고 구역 경론을 돌아보지 않았다. 요컨대 ①과 ②는 제종이 경론 전체를 살피지 않고 일부 경론을 전제 없이 최고로 삼음으로써 그릇된 해석이 생겼음을 밝히신 것이다.

③에는 대소 상대를 기조로 하는 화엄종, 또는 정토 관계의 자의적 주석서를 써서 한 종을 세운 담란 · 도작 · 선도 등의 정토종이 해당할 것이다. 경론에 기대지는 않지만 자기 뜻에 집착한다는 점에서는 선종도 넣을 수 있다. 이렇게 제종의 교판은 일부 경론이나 자종의 사의에 사로잡혀 세운 그릇된 해석이며, 그것으로는 교법의 승렬을 바르게 붙잡을 수 없다.

本文의 그루터기와 토끼, 둥근 부채와 하늘의 달 비유는 이런 제종 교판의 모습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읽힌다. 일부 경론이나 자종의 사의에 사로잡혀 세운 교판은 그루터기에 매여 토끼를 구하지 않고 둥근 부채에 매여 하늘의 달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거꾸로 그런 그릇된 해석을 버리고 도리에 맞는 교판으로 바른 판정을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길이라고 보이신 것이다.

못가의 툇마루에 놓인 둥근 부채 하나와 하늘 높이 뜬 보름달, 고요한 물에 비친 달그림자
그림 · 못가의 툇마루에 놓인 둥근 부채 하나와 하늘 높이 뜬 보름달, 고요한 물에 비친 달그림자

이금당의 세 글자 — 본경본론에 서다

其の二에서 그릇됨을 버리고 이치를 취하는 지혜로운 사람의 길을 보이셨고, 其の三부터는 그 취해야 할 「이치」인 바른 교판을 밝혀 가신다. 먼저 버려야 할 「그릇됨」은 「말의 논사」와 「본의 인사」의 사의라 하시고, 취해야 할 「이치」를 밝히려면 오로지 「본경본론」, 곧 석존의 경전과 바른 논서에 기대야 한다고 보이신다. 그 결과 석존 일대의 여러 경 가운데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이금당」 글이 교법의 승렬을 판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하신다. 강의는 대성인이 이금당의 글을 최중요로 삼으신 까닭을 어서에 보이는 몇 가지 관점에서 살핀다.

이 · 금 · 당이 가리키는 것

「이금당」은 법사품 제10의 「내가 설한 경전이 무량 천만억이니, 이미 설했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하리라. 그런데 그 가운데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我が所説の経典無量千万億にして已に説き今説き当に説かん、而も其の中に於て此の法華経最も難信難解なり)」를 줄여 부른 것이다.

천태대사는 이 글의 「이미 설했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하리라」를 풀어 「이제 처음 이(已)라 한 것은 대품 이상의 점 · 돈의 여러 설이다. 금(今)이란 같은 자리에서 설한 무량의경을 말한다. 당(當)이란 열반을 말한다(今初めに已と言うは、大品已上の漸頓の諸説なり。今とは同一座席にして、無量義経を謂うなり。当とは涅槃を謂うなり)」고 했다. 「이미 설했다」는 대품반야경 이전에 설해진 일체의 경, 곧 화엄경에서 반야경에 이르는 이전의 여러 경이다. 「점돈」이라고 굳이 덧붙인 것은, 돈교라는 화엄경도, 점교라는 아함 · 방등 · 반야의 여러 경도, 곧 이전의 일체 경전이 모두 「이미 설했다」에 들어감을 보인다. 「지금 설한다」는 법화경과 같은 자리, 곧 영취산에서 법화경의 개경으로 설해진 무량의경이고, 「앞으로 설하리라」는 법화경 뒤에 설해지는 열반경이다. 그러므로 석존 일대 설법 가운데 법화경 이외의 일체 경을 「이금당의 삼설」이라 한다.

이렇게 법화경 앞뒤에 설해진 일체의 경을 분명히 가리킨 위에서, 그 경들에 대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 「최제일」을 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금당 글 바로 앞에 「약왕이여, 이제 그대에게 이르노니, 내가 설한 여러 경 가운데 이 경에서 법화가 가장 제일이다(薬王今汝に告ぐ、我が所説の諸経、而も此の経の中に於いて、法華経最も第一なり)」라는 글이 있고, 이 「법화 최제일」의 뜻을 두 가지 점에서 더 자세히 밝힌 것이 이금당 글이기 때문이다. 첫째, 이설 · 금설 · 당설의 일체 경에 대해 법화가 최제일이라 하여 소대(비교 대상)를 분명히 했다. 둘째, 법화경이 가장 「난신난해」하다 하여 최제일인 까닭을 밝혔다. 강의는 이 둘 가운데 이 어서의 주제인 첫째를 먼저 살피고, 이어 둘째의 「난신난해」를 다룬다.

법사품我が所説の経典無量千万億にして已に説き今説き当に説かん、而も其の中に於て此の法華経最も難信難解なり내가 설한 경전이 무량 천만억이니 이미 설했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하리라, 그런데 그 가운데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
이금당已説이설
가리키는 경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이전의 점 · 돈 여러 경
난이易信易解믿기 쉽고 알기 쉬움
이금당今説금설
가리키는 경무량의경같은 자리의 개경
난이易信易解믿기 쉽고 알기 쉬움
이금당当説당설
가리키는 경열반경법화 뒤의 경
난이易信易解믿기 쉽고 알기 쉬움
이금당法華経
가리키는 경삼설을 넘어섬
난이難信難解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움最第一
천태대사 『법화문구』今初めに已と言うは、大品已上の漸頓の諸説なり。今とは同一座席にして、無量義経を謂うなり。当とは涅槃を謂うなり이제 처음 이(已)라 한 것은 대품 이상의 점 · 돈의 여러 설이다. 금(今)이란 같은 자리에서 설한 무량의경을 말한다. 당(當)이란 열반을 말한다
도표 15 · 이금당의 삼설과 법화경

삼설을 넘어선 법화경 — 왜 이금당인가

이 어서는 다른 경의 여러 글과 비교해 「이금당 세 글자」가 교법의 승렬을 밝히는 최중요의 글이라 하신다. 제종이 의지하는 경전에도 자기 경을 제일이라 하는 글이 있지만, 그것은 한정된 의미의 제일이며, 법화경처럼 이금당의 삼설에 대해 제일이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화경과 개경 · 결경 안에는 이금당 말고도 법화경의 최승을 보이는 문증이 많다. 그런데도 대성인은 왜 특히 이금당을 최중요로 삼으셨는가. 「진언견문」은 법화경 최승을 보이는 글들을 다음과 같이 늘어놓는다. 무량의경 설법품 「사십여 년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四十余年・未顕真実)」, 방편품 「세존은 법이 오래된 뒤에 반드시 진실을 설하시리라(世尊は法久くして後要ず当に真実を説きたもうべし)」, 법사품 「약왕이여, 이제 그대에게 이르노니, 내가 설한 여러 경이 있으나 이 경 가운데 법화가 가장 제일이다」와 「이미 설했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하리라」, 보탑품 「내가 불도를 위해 무량한 국토에서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널리 여러 경을 설했으나 그 가운데 이 경이 제일이다(我仏道を為つて無量の土に於て始より今に至るまで広く諸経を説く而も其の中に於て此の経第一なり)」, 안락행품 「이 법화경은 모든 여래의 제일의 설이니 여러 경 가운데 가장 깊다(此の法華経は是れ諸の如来第一の説なり諸経の中に於て最も為甚深なり)」와 「이 법화경은 제불여래의 비밀의 장이니 여러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此の法華経は諸仏如来秘密の蔵なり諸経の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 약왕품 「이 법화경도 또한 이와 같아 여러 경 가운데 가장 그 위다(此の法華経も亦復是くの如し諸経の中に於て最も為其の上なり)」, 「이 경도 또한 이와 같아 여러 경 가운데 가장 존귀하다(此の経も亦復是くの如し諸経の中に於て最も為其の尊なり)」, 「이 경도 또한 이와 같아 여러 경 가운데 왕이다(此の経も亦復是の如し諸経の中の王なり)」, 「이 경도 또한 이와 같아 일체 여래가 설한 것, 혹은 보살이 설한 것, 혹은 성문이 설한 것, 여러 경법 가운데 가장 제일이다(此の経も亦復是の如し一切の如来の所説若しは菩薩の所説若しは声聞の所説諸の経法の中に最為第一なり)」(147쪽).

이런 갖가지 문증이 있는데도 이 어서가 특히 이금당을 드신 까닭을 강의는 이렇게 본다. 「이금당」이라는 석존 일대의 설법 전체와 대비해 법화경이 가장 뛰어남이 가장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십여 년 미현진실」이나 「세존은 법이 오래된 뒤에 반드시 진실을 설하시리라」는, 법화경 이전 사십여 년에 설해진 방편의 경들에 대해 법화경이 진실의 경임을 보인 분명한 글이다. 이로써 사십여 년 이전 여러 경과 법화경의 승렬은 분명해지지만, 법화경 뒤에 설해지는 열반경과의 승렬은 분명하지 않다. 또 여러 품의 「이 경이 제일」 · 「가장 깊다」 · 「가장 그 위에 있다」 · 「가장 존귀하다」 · 「여러 경 가운데 왕」 같은 글은 무엇에 대해 제일인지가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다른 경의 비슷한 글과의 차이를 밝히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에 비해 법사품의 이금당은 「이 · 금 · 당」 세 글자로, 이미 설한 이전의 여러 경, 지금 같은 자리에서 설한 개경 무량의경, 그리고 앞으로 설할 어떤 경과 비교해도 법화경이 제일임을 분명히 말한다. 따라서 이금당은 석존 교설의 전부를 대상으로 한 승렬 판정이며, 여기에 「이금당 세 글자가 가장 제일」이라 하신 까닭이 있다.

대성인은 「소야전답서」에서 「아함경은 유미(乳味)와 같고 관경 등 일체의 방등부 경은 낙미(酪味)와 같으며, 일체의 반야경은 생소미, 화엄경은 숙소미, 무량의경과 법화경과 열반경은 제호와 같다(阿含経は乳味の如く観経等の一切の方等部の経は酪味の如し、一切の般若経は生蘇味・華厳経は熟蘇味・無量義経と法華経と涅槃経とは醍醐のごとし)」(1059쪽)라고 오미로 여러 경의 승렬을 판정하신 뒤, 다시 「열반경은 제호와 같고 법화경은 오미의 주인과 같다(涅槃経は醍醐のごとし法華経は五味の主の如し)」(1059쪽)라고 하셨다. 앞의 글에서는 이전 여러 경에 대해 무량의경 · 법화경 · 열반경을 한데 묶어 제호미의 경이라 하신 데 비해, 뒤의 글에서는 열반경에 대해서까지 법화경을 「오미의 주인」으로 세워 승렬을 나누신다. 「오미」와 「오미의 주인」의 차이에 대해서는 「오미는 수명을 기르고, 수명은 오미의 주인이다(五味は寿命をやしなふ寿命は五味の主なり)」(1059쪽)라고 하셨다. 오미의 여러 경과 오미의 주인인 법화경의 차이를, 수명을 기르는 것과 수명 그 자체의 차이로 보이심으로써 둘의 근본적 승렬을 보이신 것이다.

일단 오미의 범주 안에서 나누면 법화경은 무량의경 · 열반경과 함께 제호미로 자리매김된다. 그러나 더 엄밀히 말하면 법화경의 가치는 그것만으로 다 말할 수 없으며, 그 가치를 보이시려고 이전경 · 무량의경 · 열반경, 곧 이금당의 삼설과 나누어 법화경을 「오미의 주인」이라 하신 것으로 강의는 읽는다. 이 근본적 승렬은 다음 말씀들에도 보인다. 「이금당의 여러 경의 설에 빛깔을 달리하여 무거운 일임을 드러내기 위해, 보정세계의 다보여래는 몸소 멀리 오시어 증인이 되셨다(已今当の諸経の説に色をかへて重き事をあらはさんがために宝浄世界の多宝如来は自はるばる来給いて証人とならせ給う)」(「시모야마어소식」, 359쪽), 「무릇 생각해 보면 일승의 묘경은 삼성(三聖)의 금언이요 이금당의 명주(明珠)로서 여러 경의 정수리에 있다(夫れ以みれば一乗の妙経は三聖の金言・已今当の明珠諸経の頂に居す)」(「오타입도전답서」, 1011쪽).

또 다음 말씀처럼 「이금당 세 글자」는 석존 일대만이 아니라 시방 삼세 제불이 설한 여러 경과 상대해 법화경을 최승으로 삼는 교판이라 하신다. 이금당의 삼설과 법화경의 근본적 승렬이 밝혀지면 필연적으로 여기에 이르게 된다.

已今当の三字は五十年並びに十方三世の諸仏えの御経、一字一点ものこさず引き載せて法華経に対して説せ給いて候を十方の諸仏・此座にして御判形を加えさせ給い各各・又自国に還らせ給いて我弟子等に向わせ給いて法華経に勝れたる御経ありと説せ給はば其の所化の弟子等信用すべしや

이금당 세 글자는 오십 년과 아울러 시방 삼세 제불의 경을 한 글자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끌어 실어 법화경에 대해 설하신 것인데, 시방의 제불이 이 자리에서 판형(判形)을 더하시고 각각 또 자기 나라로 돌아가시어 제자들을 향해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있다고 설하신다면 그 교화를 받은 제자들이 믿겠는가.

「보은초」, 296쪽

그렇다면 그 근본적 승렬이란 어떤 것인가. 강의는 이를 「난신난해의 까닭」에서 논한다.

난신난해의 까닭 — 비요의 장 · 수자의 · 절대묘

법사품은 이금당의 삼설에 대해 법화경이 가장 난신난해하다고 한다. 여기서 강의는 천태 · 묘락 · 전교의 석에 따라 법화경이 왜 난신난해인지를 고찰한다.

천태대사의 『법화문구』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8상에서 법화경이 난신난해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大品等の漸頓は皆方便を帯し、信をとること易しと為す。今の無量義は一より無量を生じ、無量未だ一に還らず、是れ亦信じ易し、今の法華は、法を論ずれば、一切の差別融通して一法に帰す。人を論ずれば、則ち師弟の本迹倶に皆久遠にして二門悉く昔と反す。信じ難く解し難し。鋒に当たる難事を法華に已に説く、涅槃は後に在れば則ち信ず可きこと易なり

대품 등의 점 · 돈은 모두 방편을 띠고 있으니 믿음을 얻기 쉽다. 지금의 무량의는 하나에서 무량을 낳되 무량이 아직 하나로 돌아가지 않으니 이 또한 믿기 쉽다. 지금의 법화는, 법을 논하면 일체의 차별이 융통하여 한 법으로 돌아가고, 사람을 논하면 사제의 본적이 모두 구원이어서 두 문이 다 옛날과 반대되니,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 창끝을 맞받는 어려운 일을 법화에서 이미 설했으니, 열반은 뒤에 있으므로 믿기 쉽다.

천태대사, 『법화문구』 권8상, T34 no.1718

이설인 이전의 여러 경은 모두 방편을 띠고 있어 이신이해다. 방편이란 중생의 마음(情意)에 따라 법을 설하는 것이니 중생에게 믿기 쉽고 이해하기 쉽다. 금설인 무량의경은 무량의 뜻이 한 법에서 나왔음을 밝힐 뿐, 무량의 뜻이 돌아가는 그 한 법 자체는 아직 밝히지 않았으므로 역시 이신이해다. 이에 비해 법화경은 이전경 · 무량의경에 아직 설해지지 않은 일승법을 밝혀 일체의 차별을 융통하고, 나아가 처음으로 시성정각을 깨뜨려 석존과 중생이 구원 이래의 사제 관계에 있음을 밝혀 그 이전 경들이 설한 바와 반대되므로 난신난해다. 마지막으로 당설인 열반경은 이미 법화경에서 난신난해의 법문이 밝혀진 뒤에 그것을 뒤따라 설한 경이므로 이신이해다.

이 설명으로 이금당의 삼설이 이신이해이고 법화경이 난신난해인 이유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법화경이 난신난해라는 것이 왜 이신이해인 삼설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되는가. 이를 밝히려고 강의는 법사품에서 이금당 바로 다음에 설해진 경문에 주목한다.

「제불의 비요의 장」

薬王、此の経は是れ、諸仏の秘要の蔵なり。諸仏世尊の、守護したもう所なり。昔より已来、未だ曾て顕説せず

약왕이여, 이 경은 제불의 비요(祕要)의 장(藏)이니라. 제불 세존이 수호하시는 바이니라. 옛날부터 지금까지 아직 일찍이 드러내 설하지 않았느니라.

『묘법연화경』 법사품 제10, T9 no.262

여기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아직 일찍이 드러내 설하지 않았다」에 대해 『법화문구』는 「삼장 가운데서는 이승의 작불을 설하지 않고, 또 아직 발적현본하지 않았으며, 돈 · 점의 여러 경은 아직 융회하지 않았다(三蔵の中に於いて二乗の作仏を説かず。亦未だ発迹顕本せず。頓漸の諸経は未だ融会せず)」고 풀고, 법화경에 대해서는 「이 경은 갖추어 옛날에 감추었던 법을 설한다. 곧 비밀장을 여는 것이니 또한 곧 비밀장이다(此の経は具に昔に秘する所の法を説く。即ち是れ秘密蔵を開すれば、亦即ち是れ秘密蔵なり)」라고 푼다. 곧 법화경에서 이전경 · 무량의경에서 설해지지 않았던 제불 비장의 요법이 중생에게 열려 보여졌다는 것이다.

수타의와 수자의

또 천태대사는 『법화현의』에서 이금당의 삼설이 이신이해인 것은 그것이 「수타의(隨他意)」이고 법화경은 「수자의(隨自意)」이기 때문이라 한다. 권10상에서는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의 이전경과 열반경의 이름을 들어 「무릇 이 여러 경은 모두 다른 이의 뜻에 맞추어 다른 이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한 것이다. 부처의 뜻을 말하지 않았으니 의취가 어디로 가겠는가. 지금의 경은 그렇지 않다. …… 다만 여래가 가르침을 편 원시(元始)와 중간의 취여(取與)를 논하여 점 · 돈이 때에 맞는다(凡そ此の諸経は皆是れ他意に逗会し、他をして益を得せしむ。仏意を譚せず、意趣何くにか之かん。今経は爾らず。…但だ如来布教の元始、中間の取与を論じて、漸頓時に適う)」고 한다. 법화경 이외의 여러 경은 다른 이의 뜻에 맞추어 설한 것이어서 부처의 뜻을 설하지 않아 참뜻을 다하지 못했고, 법화경은 여래 화도의 원시 · 중간을 논해 점 · 돈 여러 경의 교의(敎意)를 밝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태대사는 다시 법화경을 「대사(大事)의 인연, 구경의 종흘(終訖), 설교의 강격(綱格), 대화(大化)의 전제(筌蹄)」라 했다.

『법화현의』 권10의 다음 글도 같은 뜻이다.

已今当の説には、最も難信難解と為す。前の経は是れ已説にして随他意なり、彼には此の意を明かさず。故に信じ易く解し易し、無量義は是れ今説にして、亦是れ随他意なり。亦信じ易く解し易し。涅槃は是れ当説なり。先に已に聞くが故に亦信じ易く解し易し。…秖是れ教の意を説く。教の意は是れ仏意なり。仏意は即ち是れ仏智なり

이 · 금 · 당의 설에 대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 앞의 경은 이설로서 수타의이니 거기서는 이 뜻을 밝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기 쉽고 이해하기 쉽다. 무량의는 금설로서 또한 수타의이니 역시 믿기 쉽고 이해하기 쉽다. 열반은 당설이니 앞서 이미 들었으므로 또한 믿기 쉽고 이해하기 쉽다 …… 다만 가르침의 뜻을 설한다. 가르침의 뜻은 곧 부처의 뜻이요, 부처의 뜻은 곧 부처의 지혜다.

천태대사, 『법화현의』 권10, T33 no.1716

전교대사도 『법화수구』 권하에서 법화경은 수자의이기에 난신난해라고 한다.

当に知るべし、已説の四時の経、今説の無量義経、当説の涅槃経は、易信易解なることを。随他意なるが故に。この法華経は最も為れ難信難解なり。随自意なるが故に

마땅히 알라. 이설의 사시(四時)의 경, 금설의 무량의경, 당설의 열반경은 이신이해이니 수타의이기 때문이요, 이 법화경은 가장 난신난해이니 수자의이기 때문이다.

전교대사, 『법화수구』 권하

이렇게 이금당의 삼설에 대해 법화경이 난신난해인 까닭은 「수자의」로 요약된다. 수자의란 부처가 스스로의 뜻에 따라 법을 설하는 것이니, 앞서 법사품의 글에 따라 본 법화경의 난신난해의 까닭, 곧 부처가 스스로 감추어 온 성불의 요법을 설해 드러낸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절대묘 — 「이금당의 묘」

나아가 천태대사는 법화경이 이금당의 삼설과 다른 점으로 「절대묘(絶待妙)」를 든다. 『법화현의』 권2하에서 먼저 「권(權)을 열어 실(實)을 드러내면 모든 거친 것이 다 묘하니 절대묘다(権を開し実を顕さば、諸麤皆妙なり、絶待妙なり)」라 하고, 이 절대묘를 드러낸 법화경과 그 이전 여러 경의 관계를 「법화는 뭇 경을 총괄하되 일이 여기서 다한다. 부처가 세상에 나온 본뜻이요 모든 교법이 돌아가는 곳이다(法華は衆経を総括して、而も事は此に極まる。仏の出世の本意なり、諸の教法の指帰なり)」, 「가로로 두루하고 세로로 다하여 모두 법화에 돌아와 모인다(横に周く豎に窮まり、悉く法華に帰会す)」고 한다. 열반경과의 관계는 「열반은 명을 이어 주는 소중한 보배이니, 거듭 손바닥을 치는 것일 뿐(涅槃は命を讀うの重宝なり、重ねて掌を抵つのみ)」이라 한다.

또 『법화현의』는, 법화경의 절대묘를 모르고 법화경은 이승작불의 사상(事相)만을 설하는 경전일 뿐이라 하는 당시의 비난에 대해 「사람이 이 이치를 보지 못하고 이를 인연의 사상이라 하여 업신여김을 그치지 않으면 혀가 입 속에서 문드러지리라(人、此の理を見ず、是れを因縁の事相と謂って軽慢すること止まざれば、舌、口中に爛れん)」고 깨뜨린다. 이 글에 대해 묘락대사는 『법화현의석첨』 권6에서 「지금에 이르러 바야흐로 구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얻었다 한다. 이금당의 묘에 여기서 굳게 미혹한다. 혀가 문드러져 그치지 않는 것은 오히려 화보(華報)일 뿐이니, 방법의 죄고는 긴 겁에 흐른다(今に至って方に求めずして自ずから得たりという。已今当の妙茲に於いて固く迷えり。舌爛れて止まらざるは猶為華報なり。謗法の罪苦、長劫に流る)」고 풀었다. 법화경에서만 드러난 절대묘를 「이금당의 묘」라 부르고, 그것을 모르고 법화경을 낮추는 방법의 죄가 깊고 무거움을 강조한 것이다.

천태 · 묘락 · 전교 세 대사의 석을 정리하면, 이금당의 삼설에 대해 법화경이 난신난해인 까닭으로 ① 법화경에서만 「제불의 비요의 장」이 밝혀졌다, ② 법화경만이 「수자의」의 교법이다, ③ 법화경에서만 「절대묘」가 열려 보여졌다는 셋을 들 수 있으며, 이것들은 결국 모두 같은 것을 뜻한다. 법화경은 수타의 여러 경의 교의를 보여 부처의 뜻을 열어 드러내고, 일체중생을 똑같이 부처의 지혜에 들게 하려고 설한 수자의의 경이며, 거기에 다른 일체의 경전에서 드러나지 않은 절대묘, 곧 불계의 묘가 열려 드러났다. 이 점에서 법화경은 이금당의 일체 경을 넘어서 뛰어나다는 것이다.

천태 · 묘락 · 전교의 석
  1. ①秘要の蔵비요의 장법사품此の経は是れ、諸仏の秘要の蔵なり이 경은 제불의 비요의 장이니라『법화문구』此の経は具に昔に秘する所の法を説く이 경은 갖추어 옛날에 감추었던 법을 설한다
  2. ②随自意수자의『법화현의』教の意は是れ仏意なり。仏意は即ち是れ仏智なり가르침의 뜻은 곧 부처의 뜻이요, 부처의 뜻은 곧 부처의 지혜다『법화수구』この法華経は最も為れ難信難解なり。随自意なるが故に이 법화경은 가장 난신난해이니 수자의이기 때문이다
  3. ③絶待妙절대묘『법화현의』権を開し実を顕さば、諸麤皆妙なり、絶待妙なり권을 열어 실을 드러내면 모든 거친 것이 다 묘하니 절대묘다『석첨』已今当の妙이금당의 묘
결론셋은 하나 — 부처의 뜻(佛意 · 佛智)을 연 경이기에 가장 믿기 어렵다
도표 16 · 난신난해의 세 까닭

대성인의 난신난해 — 본문의 「삼설 밖」

대성인은 기본적으로 위의 천태대사 등의 석을 밟아 이금당의 뜻을 보이신다. 예컨대 열반경 권6의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를 들어 「이 경이 가리키는 요의경이란 법화경이요, 불요의경이란 화엄경 · 대일경 · 열반경 등 이금당의 일체경이니라. 그러므로 부처의 유언을 믿는다면 오로지 법화경을 밝은 거울로 삼아 일체경의 마음을 알아야 하리라(此の経に指すところ了義経と申すは法華経・不了義経と申すは華厳経・大日経・涅槃経等の已今当の一切経なり、されば仏の遺言を信ずるならば専ら法華経を明鏡として一切経の心をばしるべきか)」(「보은초」, 294쪽)라고 하셨다. 또 「니이케전어소식」에서는 법화경이 이금당의 삼설보다 뛰어난 까닭으로 수자의를 드신다.

諸経は随他意なり仏一切衆生の心に随ひ給ふ故に、法華経は随自意なり一切衆生を仏の心に随へたり、諸経は仏説なれども是を信ずれば衆生の心にて永く仏にならず、法華経は仏説なり仏智なり一字一点も是を深く信ずれば我が身即仏となる

여러 경은 수타의니 부처가 일체중생의 마음에 따르시기 때문이요, 법화경은 수자의니 일체중생을 부처의 마음에 따르게 하셨느니라. 여러 경은 불설이지만 이를 믿으면 중생의 마음이라 길이 부처가 되지 못하고, 법화경은 불설이요 불지(佛智)이니 한 글자 한 점이라도 이를 깊이 믿으면 내 몸이 곧 부처가 되느니라.

「니이케전어소식」, 1437쪽

절대묘를 밝히기에 법화경이 이금당의 삼설보다 뛰어나다는 뜻은, 「법화경제목초」의 「묘락대사의 석에 이르되 『이금당설 최위제일』 하셨으니, 이 경의 한 글자 가운데 시방 법계의 일체경을 담았느니라(妙楽大師の釈に云く『已今当説最為第一』等云云、此の経の一字の中に十方法界の一切経を納めたり)」(943쪽)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대성인은 천태대사 등의 석을 밟아 이금당의 뜻을 보이시지만, 「난신난해」에 대해서는 법화경이 이전경에 대해 난신난해일 뿐 아니라, 법화경 안에서도 본적을 나누어 본문이야말로 가장 난신난해임을 강조하신다. 여기에 천태대사에게는 보이지 않는 독자성이 있다고 강의는 본다. 대표적인 예가 제1장에서 본 「제경과 법화경과 난이의 사」의 글이다.

日蓮読んで云く外道の経は易信易解・小乗経は難信難解・小乗経は易信易解・大日経等は難信難解・大日経等は易信易解・般若経は難信難解なり・般若と華厳と・華厳と涅槃と・涅槃と法華と・迹門と本門と・重重の難易あり

니치렌이 읽어 이르되, 외도의 경은 이신이해, 소승경은 난신난해. 소승경은 이신이해, 대일경 등은 난신난해. 대일경 등은 이신이해, 반야경은 난신난해니라. 반야와 화엄, 화엄과 열반, 열반과 법화, 적문과 본문에 겹겹의 난이가 있느니라.

「제경과 법화경과 난이의 사」, 991쪽

여기서는 ① 외도와 소승경, ② 소승경과 대일경, ③ 대일경과 반야경, ④ 반야경과 화엄경, ⑤ 화엄경과 열반경, ⑥ 열반경과 법화경, ⑦ 법화경의 적문과 본문이라는 칠중의 상대로, 법화경 본문이 궁극의 난신난해임을 밝히시고, 중생의 생사의 어둠을 비추고 원품의 무명을 끊는 실의는 법화경 본문 밖에 없다고 하신다.

日蓮読んで云く니치렌이 읽어 이르되제경과 법화경과 난이의 사, 991쪽
  1. ①외도(易)—소승(難)
  2. ②소승(易)—대일경 등(難)
  3. ③대일경 등(易)—반야(難)
  4. ④반야(易)—화엄(難)
  5. ⑤화엄(易)—열반(難)
  6. ⑥열반(易)—법화(難)
  7. ⑦적문(易)—본문(難)
生死の長夜を照す大燈・元品の無明を切る利剣は此の法門に過ぎざるか생사의 긴 밤을 비추는 큰 등불, 원품의 무명을 끊는 날카로운 칼은 이 법문에 지나지 않으리라
도표 17 · 칠중의 난이

이 궁극의 난신난해 법문인 본문 실의의 내용은 「관심의 본존초」의 가르침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어서는 두 곳에서 법사품의 글과 천태 · 장안 · 전교의 석을 들어 난신난해를 논하시는데, 첫째 곳에서는 자기 몸에 불계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둘째 곳에서는 교주 석존이 우리의 기심(己心)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난신난해라 하신다. 뒤의 글은 다음과 같다.

但し会し難き所は上の教主釈尊等の大難なり、此の事を仏遮会して云く『已今当説最為難信難解』と次下の六難九易是なり、天台大師云く『二門悉く昔と反すれば信じ難く解し難し鉾に当るの難事なり』章安大師の云く『仏此れを将つて大事と為す何ぞ解し易きことを得可けんや』伝教大師云く『此の法華経は最も為れ難信難解なり随自意の故に』等云云

다만 회통하기 어려운 곳은 위의 교주 석존 등의 큰 난문이니라. 이 일을 부처가 미리 회통하여 이르시되 「이금당설 최위난신난해」라 하셨고, 그 다음의 육난구이(六難九易)가 이것이니라. 천태대사는 「두 문이 다 옛날과 반대되니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워 창끝을 맞받는 어려운 일이다」라 하고, 장안대사는 「부처가 이것을 대사(大事)로 삼으셨으니 어찌 이해하기 쉬울 수 있으랴」라 하며, 전교대사는 「이 법화경은 가장 난신난해이니 수자의이기 때문이다」라 하였느니라.

「관심의 본존초」, 244쪽

이 「교주 석존 등의 큰 난문」이란 교주 석존이 범부의 기심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논란이다. 이 어서에서는 이 「기심에 불계를 갖춘다」의 난신난해를 회통해 이른바 「수지즉관심」을 설하시고, 석존의 인행 · 과덕의 두 법을 구족한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를 수지하면 범부의 기심에 저절로 불계가 갖추어진다고 하신다. 그리고 범부의 기심에 갖추어진 상주의 불계는 법화경 본문 수량품에서 처음 드러났다고 하시며, 이 「본문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다섯 자」가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되고, 지용의 보살이 말법에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으로 건립한다고 하신다. 곧 석존 일대의 여러 경 가운데 법화경 본문에서만 범부의 기심에 갖추어진 진실한 불계가 설해지고 참된 십계호구 · 일념삼천이 드러났으며, 대성인은 이 법문이야말로 일대 여러 경 가운데 가장 난신난해라 하신 것이다.

그래서 같은 어서에서는 「또 적문과 아울러 앞의 사미 · 무량의경 · 열반경 등의 삼설은 모두 수타의의 이신이해요, 본문은 삼설 밖의 난신난해 · 수자의니라(又迹門並びに前四味・無量義経・涅槃経等の三説は悉く随他意の易信易解・本門は三説の外の難信難解・随自意なり)」(249쪽)라 하시어, 법화경 적문을 이금당의 삼설과 함께 수타의 · 이신이해에 넣고 본문만을 수자의 · 난신난해라 하셨다. 대성인은 엄밀히는 법화경 본문을 가리켜 삼설을 넘어선 난신난해의 법문이라 하신 것이며, 그 까닭은 본문에서만 범부 성불의 실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삼설 밖」의 시각은 다음 제2편의 「삼오의 이법」과 제3 · 4편의 본문 말법 정의론으로 곧장 이어진다.

강의는 대성인의 「난신난해」가 천태의 「이전 대 법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적문 대 본문」에까지 이른다는 데 독자성이 있다고 본다. 「관심의 본존초」가 적문까지를 이금당의 삼설과 함께 이신이해에 넣고 본문만을 「삼설 밖」이라 한 것이 그 근거다.

이금당이 뜻하는 네 가지

이상에서 귀결하는 이금당의 뜻으로 강의는 어서에 보이는 네 가지를 든다. ① 성불의 유무, ② 석존이 세운 종, ③ 여러 경 · 여러 종을 깨뜨림, ④ 멸후를 위한 글.

성불의 유무

대성인은 이금당이 보이는 여러 경의 승렬의 밑바닥에 있는 것을 성불의 유무로 보신다.

法師品の已今当・無量義経の歴劫修行・未顕真実何なる事ぞや五十余年の諸経の勝劣ぞかし、 諸経の勝劣は成仏の有無なり、慈覚智証の理同事勝の眼・善導法然の余行非機の目・禅宗が教外別伝の所見は東西動転の眼目・南北不弁の妄見なり

법사품의 이금당, 무량의경의 역겁수행 · 미현진실은 무슨 일인가. 오십여 년 여러 경의 승렬이니라. 여러 경의 승렬은 성불의 유무니라. 자각 · 지증의 이동사승의 눈, 선도 · 법연의 여행비기(餘行非機)의 눈, 선종의 교외별전의 소견은 동서가 뒤바뀐 눈이요 남북을 가리지 못하는 망견이니라.

「교행증어서」, 1279쪽

여러 경이 아무리 성불을 설해도 실제로 중생을 성불시키는 힘이 없으면 관념론일 뿐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중생 성불의 역용을 갖춘다는 점으로 법화경을 최승으로 삼으신다. 「소야전답서」에서는 「법화경은 어찌하여 여러 경보다 뛰어나 일체중생을 위해 쓰이는가 하면, 비유하면 초목은 대지를 어머니로, 허공을 아버지로, 단비를 먹이로, 바람을 혼으로, 해와 달을 유모로 삼아 자라나 꽃 피고 열매 맺는 것과 같이, 일체중생은 실상을 대지로, 무상을 허공으로, 일승을 단비로, 이금당 제일의 말씀을 큰바람으로, 정혜력장엄을 해와 달로 삼아 묘각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대자대비의 꽃을 피워 안락한 불과의 열매를 맺어 일체중생을 기르시느니라(法華経は何故ぞ諸経に勝れて一切衆生の為に用いる事なるぞと申すに譬えば草木は大地を母とし虚空を父とし甘雨を食とし風を魂とし日月をめのととして生長し華さき菓なるが如く、一切衆生は実相を大地とし無相を虚空とし一乗を甘雨とし已今当第一の言を大風とし定慧力荘厳を日月として妙覚の功徳を生長し大慈大悲の華さかせ安楽仏果の菓なつて一切衆生を養ひ給ふ)」(1060쪽)라고 하셨다. 이금당 제일의 말씀이 중생의 생명을 일으키는 「큰바람」에 비유되어 있다.

또 법화경에서만 성불의 길이 성립하므로 법화경을 이금당의 삼설을 넘어선 경이라 하신다. 「경문대로 이금당보다 뛰어나 법화경 밖에는 부처가 되는 길이 없다고 강성하게 믿고(経文のごとく已今当にすぐれて法華経より外は仏になる道なしと強盛に信じて)」(「선시초」, 290쪽), 「혹은 또 이금당의 삼설 가운데 부처가 되는 길은 법화경에 미치는 경이 없다고 하는 것은 바른 부처의 금언이니라(或は又已今当の三説の中に仏になる道は法華経に及ぶ経なしと云う事は正しき仏の金言なり)」(「법화초심성불초」, 545쪽). 법화경이야말로 일체중생을 실제로 성불시키는 힘을 가진 경이기에 대성인은 법화경 제일을 강하게 주장하셨다.

석존이 세운 종

이금당은 석존이 말한 말씀이며, 이는 곧 부처 스스로 법화경을 일대의 간요로 삼는 「법화종」을 세웠음을 뜻한다. 그래서 대성인은 「법화초심성불초」에서 「법화종은 석가가 세운 종이니라. 그 까닭은 이설 · 금설 · 당설 가운데서는 법화경이 제일이라고 설하셨으니, 이것이 석가불이 세우신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법화경을 불립종(佛立宗)이라 하고 또는 법화종이라 하며 또 천태종이라고도 하느니라(法華宗は釈迦所立の宗なり其の故は已説・今説・当説の中には法華経第一なりと説き給う是れ釈迦仏の立て給う処の御語なり、故に法華経をば仏立宗と云い又は法華宗と云う又天台宗とも云うなり)」(544쪽), 「법화 밖의 경에는 전혀 이금당의 글이 없느니라. 이설이란 법화 이전의 사십여 년의 여러 경을 말하고, 금설이란 무량의경을 말하며, 당설이란 열반경을 말한다. 이 삼설 밖에 법화경만이 성불하는 종이라고 부처가 정하셨느니라(法華より外の経には全く已今当の文なきなり已説とは法華より已前の四十余年の諸経を云う今説とは無量義経を云う 当説とは涅槃経を云う此の三説の外に法華経計り成仏する宗なりと仏定め給へり)」(544쪽)라고 하셨다. 이에 비해 여러 경을 제일로 하는 인사 · 논사의 설로 세운 여러 종은 당연히 부처가 세운 법화종보다 못하다. 「여타의 종은 부처가 열반하신 뒤에 혹은 보살, 혹은 인사들이 세운 종이니라(余宗は仏・涅槃し給いて後・或は菩薩或は人師達の建立する宗なり)」(544쪽)라고 하신 그대로다.

여러 경 · 여러 종을 깨뜨리다

이금당은 이금당의 여러 경에 대해 법화경이 최승임을 정한 글이므로, 이금당의 여러 경과 그것을 의경으로 하는 여러 종을 파절하는 글이 된다. 대성인은 「이금당의 삼설을 헐뜯고 법화경 한 부를 찬탄하는 것은 석존의 금언이요 제불의 방례(傍例)이니, 감히 니치렌의 자의가 아니니라(已今当の三説を非毀して法華経一部を讃歎するは釈尊の金言なり諸仏の傍例なり敢て日蓮が自義に非ず)」(「교빈소장회통」, 180쪽), 「법화 가운데는 여러 경을 깨뜨리는 글이 있으나 여러 경 속에는 법화를 깨뜨리는 글이 전혀 없다. 요컨대 이금당의 삼설로 교법의 방편을 깨뜨리는 것은 더욱이 니치렌 성인의 거친 말이 아니라 모두 석존 출세의 금구(金口)니라(法華の中に諸経を破るの文之有りと雖も諸経の裏に法華を破るの文全く之無し、所詮已今当の三説を以て教法の方便を破摧するは更に日蓮聖人の莠言に非ず皆是れ釈尊出世の金口なり)」(「시주쿠원신장」, 848쪽), 「법화경이 출현한 뒤에는 이금당의 여러 경이 버려지는 것은 물론이니라(法華経出現の後は已今当の諸経の捨てらるる事は勿論なり)」(「시모야마어소식」, 360쪽)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금당은 여러 경에 집착하는 일체의 여러 종을 파절하는 글이 된다. 「수호국가론」에서는 상대가 자기 경이 법화경보다 앞이라고 답하면 「미현진실」의 글로, 뒤라고 답하면 「당설」의 글로, 같은 때라고 답하면 「금설」의 글로 책하라고 가르치신다.

先と答えば未顕真実の文を以て之を責めよ敢えて彼の経の説相を尋ぬること勿れ、後と答えば当説の文を以て之を責めよ、同時と答えば今説の文を以て之を責めよ

앞이라고 답하면 미현진실의 글로 이를 책하라. 굳이 그 경의 설상(說相)을 묻지 말지니라. 뒤라고 답하면 당설의 글로 이를 책하고, 같은 때라고 답하면 금설의 글로 이를 책하라.

「수호국가론」, 75쪽

어떤 경이든 법화경의 앞이거나 뒤이거나 같은 때일 수밖에 없으니, 이금당 세 글자 앞에서 빠져나갈 곳이 없다. 거꾸로 이금당의 판정은 석존이 세웠을 뿐 아니라 다보 · 시방 제불이 증명했으므로, 설령 석가불이라도 뒤에 독단으로 깨뜨릴 수 없다고 하신다. 「교주 석존 · 다보 · 시방 제불은 법화경으로 이금당의 여러 설에 상대하여 모두 진실이라 정하시고, 그 뒤 세존은 영산에 은거하시고 다보 · 제불은 각기 본토로 돌아가셨으니, 삼불을 빼고 누가 이를 깨뜨리랴(教主釈尊・多宝・十方の諸仏は法華経を以て已今当の諸説に相対して皆是真実と定め然る後世尊は霊山に隠居し多宝諸仏は各本土に還りたまいぬ、三仏を除くの外誰か之を破失せん)」(「소야입도전허어서」, 1035쪽), 「이금당의 경문은 부처조차 깨뜨리기 어렵거늘 하물며 논사 · 인사 · 국왕의 위덕으로 깨뜨릴 수 있겠는가(已今当の経文は仏すら・やぶりがたし・何に況や論師・人師・国王の威徳をもつて.やぶるべしや)」(「중생신심어서」, 1595쪽).

멸후를 위한 글

「수호국가론」에서는 석존 스스로 법화경을 멸후에 유통시키려고 한 말씀으로 이금당의 글을 인용하신 뒤 「글의 뜻은 일대 오십 년의 이금당 삼설에서 최제일의 경이니, 팔만성교 가운데 특히 미래에 남기고자 하여 설하신 것이니라(文の意は一代五十年の已今当の三説に於て最第一の経なり、八万聖教の中に殊に未来に留めんと欲して説き給えるなり)」(47쪽)라고 하셨다. 이어 견보탑품 제11에서 영법구주를 위해 다보여래가 나타나고 시방의 제불이 모여든 것, 석존과 보살들에게 「각기 삼설의 여러 경이 다 멸한 뒤에 확실히 미래 오탁난신의 세계에서 이 경을 넓히라(各三説の諸経滅尽の後・慥に未来五濁難信の世界に於て此の経を弘め)」(48쪽)는 서언을 세우도록 요청한 것, 그에 응해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이 멸후 홍통을 맹세한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여래신력품 제21의 지용보살에 대한 부촉,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로 법화경의 말법 광선유포가 설해진 것을 말씀하신다. 대성인은 여기서 이금당의 글이 멸후를 위해 설해진 것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 「멸후를 위한」 이금당은 이 장 끝의 其の六에서 다보 · 분신의 증명과 지용의 상행으로 다시 이어진다.

  1. ①성불의 유무諸経の勝劣は成仏の有無なり여러 경의 승렬은 성불의 유무니라교행증어서, 1279쪽
  2. ②석존이 세운 종法華宗は釈迦所立の宗なり법화종은 석가가 세운 종이니라법화초심성불초, 544쪽
  3. ③여러 경 · 여러 종을 깨뜨림先と答えば未顕真実の文を以て之を責めよ앞이라고 답하면 미현진실의 글로 책하라수호국가론, 75쪽
  4. ④멸후를 위한 글殊に未来に留めんと欲して説き給えるなり특히 미래에 남기고자 하여 설하신 것이니라수호국가론, 47쪽
도표 18 · 이금당의 네 뜻

인사들은 왜 이금당을 보고도 따르지 않았는가

其の四에서는 「이금당」이라는 법화경 최승의 분명한 증문을 알면서 왜 여러 논사와 인사가 그릇된 교판에 집착했는지를 말씀하신다. ① 여러 경에서 이금당과 비슷한 글에 미혹되어 저마다의 경을 제일로 여겼다, ② 자종 조사의 사의에 집착했다, ③ 속으로는 법화경 제일임을 알면서도 왕과 신하 등의 귀의를 잃을까 두려워 말하지 못했다 — 이 셋이다. 강의는 ①을 인도의 말류 논사와 중국 각 종 조사의 잘못으로 보고, 이 잘못이 각 종 사의의 원류가 되었다고 본다. ②와 ③은 중국 · 일본 여러 종 말류의 잘못의 원인을 보이신 것으로 읽는다.

이런 오류 · 집착 · 보신이 겹쳐 각 종은 이금당의 글을 무시해 왔다. 그 결과 「십종 · 칠종까지 저마다 쟁론하여 따르지 않는다(十宗七宗まで各各・諍論して随はず)」(「보은초」, 294쪽)는 말씀처럼, 각 종이 제멋대로의 교판을 세워 다투게 되었다. 이에 대해 대성인은 「열반경이라는 경에 이르되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의법이란 일체경이요, 불의인이란 부처를 제외한 그 밖의 보현보살 · 문수사리보살 내지 위에 든 여러 인사니라(涅槃経と申す経に云く『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等云云 依法と申すは一切経・不依人と申すは仏を除き奉りて外の普賢菩薩・文殊師利菩薩乃至上にあぐるところの諸の人師なり)」(「보은초」, 294쪽)라는 말씀처럼, 불설을 근거로 하고 인사의 석에 의지하지 않는 「의법불의인」을 근본 원칙으로 맞서셨다. 其の四의 세 원인은 인사의 잘못이 어디서 생겼는지를 보이신 것이며, 바꾸어 말하면 「불의인」해야 할 이유를 보이신 것이다. 이 「불의인」은 여러 어서에서 「논사 · 역자 · 인사 등에는 의지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경문을 요지로 삼으리라(論師・訳者・人師等にはよるべからず専ら経文を詮とせん)」(「파료칸등어서」, 1293쪽), 「인사의 석으로 승렬을 논하는 일은 없다(人師の釈を以て勝劣を論ずる事無し)」(「일대성교대의」, 397쪽), 「인사를 근본으로 삼으면 부처를 거스르게 된다(人師を本とせば仏に背くになりぬ)」(「현방법초」, 451쪽), 「인사의 말은 쓸모없다(人師の言語は無用なり)」(「교행증어서」, 1278쪽)라고 거듭 강조된다.

그런데 「의법불의인」을 근본 원칙으로 하시는 대성인의 입장에서는, 제종 그릇된 해석의 근원이 된 ①이 특히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강의는 본다. ①은 일단 경전을 밟고 있어, 그 의미에서 「의법불의인」의 원칙에 맞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②와 ③은 사람에 의지한 잘못이니 「불의인」으로 곧장 깨뜨릴 수 있지만, ①은 「법」 자체를 근거로 내세운다. 그래서 이 어서는 이하에서 ①의 점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를 더해 가신다. 그것이 其の五의 「상사의 경문」 여덟 가지다.

상사의 경문 여덟 — 각 글의 소대

其の五에서 열거하신 여러 경론의 글은 모두 법화경 이외의 저마다의 경을 최승으로 삼는 것이며, 그렇게 최승의 경을 판정한다는 의미에서 법화경을 제일로 하는 이금당과 비슷하다. 대성인은 여기서 이 글들이 어떤 경과 비교해 자기 경을 제일로 하는지, 곧 「소대」를 알아야 한다고 하신다. 강의는 그 가르침에 따라 먼저 여덟 글이 뜻하는 바를 하나씩 검토하고, 이어 소대의 문제에서 이금당의 뜻을 고찰한다.

상사의 글金光明経「是諸経之王」금광명경 「이는 모든 경의 왕」
소대 · 판정소대범천 · 제석 · 사천왕 등이 설한 경(외도의 이욕 · 십선)
상사의 글密厳経「一切経中勝」밀엄경 「일체경 가운데 뛰어나다」
소대 · 판정소대십지경 · 화엄경 · 승만경 등 일부 대승경
상사의 글六波羅蜜経「総持第一」육바라밀경 「총지 제일」
소대 · 판정소대소승 삼장 · 반야 (오장 가운데)
상사의 글大日経「云何菩提」대일경 「무엇이 보리인가」
소대 · 판정일체경 대비의 글이 아님 · 십주심의 근거로 오용
상사의 글華厳経「能信是経・最為難」화엄경 「능히 이 경을 믿기가 가장 어렵다」
소대 · 판정소대성문 · 연각 · 대승의 삼승(장 · 통)
상사의 글般若経「会入法性・不見一事」반야경 「법성에 회입하여 한 일도 보지 않는다」
소대 · 판정소대소승법을 개회하지 않는 권대승 · 법개회뿐 인개회 없음
상사의 글大智度論「般若波羅蜜最第一」대지도론 「반야바라밀 최제일」
소대 · 판정육바라밀 가운데 반야가 제일이라는 뜻
상사의 글涅槃論「今者涅槃理」열반론 「이제 열반의 이치는」
소대 · 판정열반의 이치 자체를 말한 글 · 법화 이후의 추설(追說)
도표 19 · 상사의 경문 여덟과 그 소대

금광명경 「이는 모든 경의 왕」

먼저 금광명경의 「이는 모든 경의 왕이다」를 드신다. 이는 금광명경 서품 제1 첫머리의 「이 금광명은 모든 경의 왕이다(是の金光明は、諸経の王なり)」에 해당한다. 경은 이어서 모든 경의 왕인 까닭으로 금광명경의 위덕을 든다. 금광명경을 들으면 여러 선신의 가호로 무량한 괴로움과 악을 멸하고 무량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 글에 대해 「금광명경의 시제경지왕의 글은 범천 · 제석의 여러 경에 상대한 것(金光明経の是諸経之王の文は梵釈の諸経に相対し)」(「오타전허어서」, 1003쪽)이라 하셨고, 本文의 「범천 · 제석 · 사천왕 등의 여러 경에 마주하면 이것이 모든 경의 왕」이라는 말씀도 이 금광명경의 글에 대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 말씀은 금광명경 권2 사천왕품 제6의 「모든 범천이 설한 출욕론, 석제환인의 갖가지 선론, 오통을 얻은 신선의 논처럼, 세존 · 범천 · 석제환인 · 오신통인의 백천억 나유타 무량한 뛰어난 논이 있다 하더라도, 이 금광명경은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글에 근거하신 것으로 읽힌다. 이 글은 범천 · 제석 등이 설했다는 외도의 이욕 · 십선 같은 가르침과 상대해 금광명경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경의 왕」도 바로 이 의미의 최승이며, 이금당처럼 일체경과 상대해 최승이라 한 것이 아니다.

금광명경의 이 글이 특정 종파 교판의 의문으로 쓰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경은 일본에서 일찍부터 진호국가의 경전으로 중시되었고, 특히 의정 역 『금광명최승왕경』의 이름과 그에서 유래한 최승회(最勝會)가 성대하게 행해졌으므로 「가장 뛰어난 경」으로 이름이 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대성인은 자기 경을 제일로 하는 글의 대표로 먼저 금광명경의 글을 드신 것이 아닌가 하고 강의는 본다.

밀엄경 「일체경 가운데 뛰어나다」

다음은 밀엄경의 「일체경중승」이다. 자세히는 『대승밀엄경』 권상 입밀엄미묘신생품 제2에 「십지 · 화엄 등, 대수(大樹)와 신통, 승만 및 다른 경은 모두 이 경에서 나왔다. 이와 같은 밀엄경은 일체경 가운데 뛰어나다(十地華厳等、大樹と神通し、勝鬘及び餘経は、皆此の経より出づ。是くの如き密厳経は、一切経中の勝なり)」고 되어 있다. 십지경 · 화엄경, 대수긴나라왕소문경, 보살방편경계신통변화경, 승만경 등의 이름을 들어 이것들이 모두 밀엄경에서 나왔다 하고, 그로써 밀엄경이 일체경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다. 여기 든 화엄경 등은 모두 보살행을 칭양한 경전이다. 밀엄경은 대일여래가 머무는 삼밀장엄의 세계인 밀엄정토를 설하고, 위의 경들에 설해진 보살행은 모두 이 깨달음의 세계를 본지로 하므로 그 깨달음의 세계 자체를 설하는 밀엄경이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대성인은 本文에서 「혹은 화엄 · 승만 등의 경에 상대하면 일체경 가운데 뛰어나다」고 하시고, 「오타전허어서」에서도 「밀엄경의 일체경중승의 글은 바로 위에 십지경 · 화엄경 · 승만경 등을 들어 그 경들에 상대하여 일체경 가운데 뛰어나다는 것이다(密厳経の一切経中勝の文は次上に十地経・華厳経・勝鬘経等を挙げて彼彼の経経に相対して一切経の中に勝ると云云)」(1003쪽)라고 하셨다. 이것도 일부 한정된 경 가운데서의 최승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니치칸 상인은 이 글의 「일체」에 대해 「이는 널리 끝까지 미치는 『일체』가 아니라 다만 소분(少分)의 일체다(これ普く尽際に及ぶの『一切』に非ず、只これ少分の一切なり)」라고 풀었다.

육바라밀경 「총지 제일」

셋째, 육바라밀경의 「총지 제일」이다. 이는 진언종의 구카이가 현렬밀승판의 경증으로 삼은 것으로, 자세히는 이 경 권1 귀의삼보품 제1에 「총지문은 계경 등 가운데 가장 제일이 된다. 능히 무거운 죄를 없앤다(総持門とは契経等の中に最も第一と為す。能く重罪を除く)」고 되어 있다. 이 경은 과거 · 현재의 제불이 설한 팔만사천의 법을 ① 소달람(계경), ② 비나야(조복), ③ 아비달마(대법), ④ 반야바라밀다(반야), ⑤ 다라니장(총지문)의 「오장(五藏)」으로 나눈 뒤, 앞의 사장을 수지하지 못하고 오역죄 · 방법죄 등 갖가지 무거운 죄를 지은 중생을 속히 깨닫게 하려고 다라니장을 설한다고 한다. 그리고 오장을 차례로 유 · 낙 · 생소 · 숙소 · 제호의 오미에 배당해 다라니장을 제호미로 하여 최제일로 삼는다.

구카이는 『변현밀이교론』에서 ①~③을 소승의 삼장, ④를 대승의 삼장에 배당해 이를 현교로 하고, ⑤를 밀교의 삼장에 배당해 밀교야말로 제호미의 가르침이라 하여 현렬밀승을 세웠다. 그뿐 아니라 법화 · 열반을 제호미로 하는 천태의 교판을 두고 제호의 이름을 훔쳤다고 비방했다. 이에 대해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육바라밀경은 유정의 성불은 있되 무성의 성불은 없으니 하물며 구원실성을 밝히랴. 오히려 열반경의 오미에도 미치지 못하니 하물며 법화경의 적문 · 본문에 대할 수 있으랴. 그런데 일본의 홍법대사는 이 경문에 미혹되시어 법화경을 제4 숙소미에 넣으셨느니라(六波羅蜜経は有情の成仏あつて無性の成仏なし何に況や久遠実成をあかさず、猶涅槃経の五味にをよばず何に況や法華経の迹門・本門にたいすべしや、而るに日本の弘法大師・此の経文にまどひ給いて法華経を第四の熟蘇味に入れ給えり)」(222쪽)라고 하셨다. 육바라밀경에는 유정 · 비정에 걸친 참된 성불의 법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그 한계를 짚으시고, 이 경이 설하는 오미판은 열반경의 오미판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유정 · 비정에 걸친 성불과 구원실성을 밝힌 법화경을 제4 숙소미에 배당한 구카이의 미혹을 엄하게 깨뜨리신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개목초 우기』에서 육바라밀경의 오장 가운데 ①~③을 소승의 삼장, ④를 통 · 별 이교, ⑤를 이전의 원교에 배당하여, 이 경이 말하는 오미와, 일대 오시를 통틀어 비유한 열반경의 오미는 물과 불처럼 다르다고 밝혔다. 요컨대 육바라밀경의 「총지 제일」은 이런 이전 여러 경 가운데서의 최승을 말할 뿐이다.

대일경 「무엇이 보리인가」

넷째의 「운하보리」는 대일경 권1 입진언문주심품 제1의 「비밀주여, 무엇이 보리인가. 이르되 실답게 자심을 아는 것이다(秘密主、云何が菩提・謂く、如実に自心を知るなる)」를 줄여 보이신 것이다. 비밀주는 대일경의 대고중인 금강살타이며, 위의 글은 그 금강살타에게 대일여래가 「보리란 실답게 자심을 아는 것이다」라고 가르치는 글이다.

주심품은 이 글을 시작으로 갖가지 주심을 설하는데, 진언종의 구카이는 이 품의 설로 십주심의 교판을 세우고 「운하보리」의 글을 최고의 비밀장엄심의 의문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비밀장엄심을 설하는 진언 경전을 최승으로 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한 현교의 화엄경이나 법화경은 못하다고 판정했다. 곧 이 「운하보리」의 글을 진언 경전을 제일로 판정하는 근거로 삼은 것이다. 십주심판은 제2장에서 자세히 검토했고, 특히 제8 · 9 · 10의 주심에 경증이 없음을 밝혔다. 요컨대 십주심판은 천태의 법문을 훔쳐 넣어 대일경을 해석한 중국 일행의 『대일경소』에 근거해 구카이가 자의로 세운 교판이며, 대일경 주심품에는 대일경이 일체경보다 뛰어나다는 말이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

또 이 품이 설하는 주심이란 마음을 세밀히 분석한 것이며, 대일경은 그런 갖가지 마음이 조화하는 만다라의 세계를 설하고 그것으로 마음의 실상을 삼는다. 강의는 그것이 연기의 이법을 상징화한 것이며 이(理)에 치우친 실상일 뿐이라고 본다. 대성인이 「관심의 본존초」에서 「이전 · 적문의 원교도 오히려 불인이 아니거늘 하물며 대일경 등의 여러 소승경이랴. 하물며 화엄 · 진언 등 칠종 등의 논사 · 인사의 종이랴. 너그럽게 논하면 앞의 삼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빼앗아 말하면 장 · 통과 같다. 설령 법은 매우 깊다고 일컬어도 아직 종 · 숙 · 탈을 논하지 않으니 도리어 회단(灰斷)과 같아 교화의 시종이 없다는 것이 이것이니라(爾前迹門の円教尚仏因に非ず何に況や大日経等の諸小乗経をや何に況や華厳・真言等の七宗等の論師・人師の宗をや、与えて之を論ずれば前三教を出でず奪つて之を云えば蔵通に同ず、設い法は甚深と称すとも未だ種熟脱を論ぜず還つて灰断に同じ化の始終無しとは是なり)」(249쪽)라고 하셨듯, 대일경이 설하는 이에 치우친 실상은 중생 성불에 아무 쓸모가 없으며 결국 소승교와 같다.

화엄경 「능히 이 경을 믿기가 가장 어렵다」

다음으로 화엄경의 「능신시경 · 최위난」을 드신다. 자세히는 이 경 권7 현수보살품 제8의 2에 「일체 세계의 모든 중생은 성문도를 구하고자 하는 이가 적고, 연각을 구하는 이는 더욱 적으며, 대승을 구하는 이는 매우 드물다. 대승을 구하는 것은 오히려 쉬우나, 이 법을 능히 믿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되어 있다. 이 글은 성문승 · 연각승 · 대승의 삼승을 들어 화엄경이 그보다 믿기 어려운 법, 따라서 최승의 법이라는 증문으로 쓰여 왔다. 얼핏 법화경의 개삼현일과 비슷하지만, 강의는 이것이 장 · 통 이교의 삼승법과 상대해 그것을 넘어선 중도의 법을 설하는 별교로서의 화엄경이 뛰어나다는 것일 뿐이라고 본다. 법화경의 개삼현일은 화엄경까지 포함한 일체의 삼승을 열어 일승에 거두어 넣고, 거기에 참된 일승을 드러낸 것이다. 법화경의 이금당은 이런 개삼현일, 나아가 개근현원으로 묘법을 드러낸 법화경을 최승이라 한 것이니, 화엄경의 위 글과는 근본적으로 뜻이 다르다. 그런데도 화엄종의 지엄 · 법장 · 징관은 이 글을 의문으로 화엄경을 최승이라 했다. 화엄종의 교판은 제2장에서 자세히 보았다.

반야경 「법성에 회입하여 한 일도 보지 않는다」

여섯째로 인용하신 반야경의 「회입법성 · 불견일사」는 『대반야바라밀다경』 권326 초분불퇴전품 제49의 2의 「들은 바 세간 · 출세간의 법을 따라 모두 능히 방편으로 반야바라밀다의 깊고 깊은 이취(理趣)에 회입하고, 짓는 바 세간의 사업도 또한 반야바라밀다로 법성에 회입하여, 한 일도 법성을 벗어나는 것을 보지 않는다」를 줄여 보이신 것이다. 중생이 듣는 세간 · 출세간의 법을 모두 방편으로 삼아 반야로 법성에 거두어 넣고, 한 일도 법성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승경은 일반적으로 번뇌 · 생사도 보리의 종자라 하여 악법 · 악인을 개회하지만, 소승의 법과 그것을 행하는 이승에 대해서는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永不成佛)고 꾸짖는다. 그런데 위의 반야경 글은 얼핏 소승경을 포함해 일체경을 반야로 개회하는 듯 보여, 그런 반야를 설하는 반야경이야말로 여러 대승경 가운데 최승인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천태대사는 『법화현의』 권9상에서 「반야 가운데서는 이승이 행하는 염처 · 도품이 모두 마하연이라 하고, 탐욕 · 무명 · 견애 등도 모두 마하연이라 밝혀 선악의 법을 모두 다 회통하지만, 또한 악인과 이승의 사람 등은 회통하지 않는다. 그 작불을 가리지 않으니 이는 곧 별 · 원에 속한다(般若の中に、二乗所行の念処道品は皆摩訶衍なり。貧欲・無明・見愛等も皆摩訶衍なりと明かして、善悪の法、悉く皆会せらるるも、亦悪人及び二乗の人等を会せず。其の作仏を弁ぜざるは、此れ即ち別円の摂なり)」고 했다. 이승이 행하는 사념처 등 갖가지 도가 반야경이 말하는 출세간의 법이고, 탐욕 · 무명 · 견애 등이 세간의 법이며, 마하연이란 대승교다. 곧 반야경에는 세간 · 출세간의 선악의 법을 모두 대승이라 하는 「법개회(法開會)」는 있으나, 이승 · 악인의 성불이 설해지지 않았으므로 「인개회(人開會)」가 없다. 따라서 반야경은 아직 참된 원교가 아니라 별교에 속한다는 것이다. 대성인도 「일대성교대의」에서 「반야경 가운데서는 이승이 배우는 법문은 개회하되 이승의 사람과 악인은 개회하지 않는다(般若経の中には二乗の所学の法門をば開会して二乗の人と悪人をば開会せず)」(396쪽)라고 하셨다.

반야경에 법개회만 있고 인개회가 없다는 것은 그 개회가 아직 철저하지 않고 추상적 · 관념적임을 뜻한다. 실제로 중생에게 성불의 길을 열어야 참된 개회이며, 이승 · 악인의 성불을 설해 사람과 법을 함께 부처의 지혜의 세계에 열어 넣은 법화경이야말로 참된 개회의 경이다. 그러므로 반야경의 「회입법성 · 불견일사」는 소승의 법을 개회하지 않는 여러 권대승경에 대비한 한에서 반야경을 최승이라 한 것이며, 법화경에 비하면 반야경은 참된 개회를 설하지 않은 방편 권경이고 법화경의 인법 개회로 비로소 의의를 부여받는 것이다.

대지도론 「반야바라밀 최제일」

다음으로 용수의 『대지도론』에서 「반야바라밀최제일」을 드신다. 이는 이 논 권46의 「본기경 · 단일체중생의경 · 화수경 · 법화경 · 운경 · 대운경 · 법운경 · 미륵문경 · 육바라밀경 · 마하반야바라밀경, 이와 같은 무량무변 아승기의 경은 혹은 부처의 설, 혹은 화불의 설, 혹은 대보살의 설, 혹은 성문의 설, 혹은 도를 얻은 여러 천(天)의 설이다. 이 일들이 화합한 것을 모두 마하연이라 이름한다. 이 여러 경 가운데 반야바라밀이 가장 크므로 마하연이라 설한다」는 글의 마지막 구절을 줄여 보이신 것이다.

같은 『대지도론』 권100에서는 반야보다 뛰어난 깊은 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반야바라밀은 비밀의 법이 아니다. 그런데 법화 등 여러 경에는 아라한의 수결작불을 설하니, 대보살은 능히 수지하여 쓴다. 비유하면 큰 약사가 능히 독으로 약을 삼는 것과 같다(般若波羅蜜は秘密の法に非ず、而して法華等の諸経には阿羅漢の受決作仏を説き、大菩薩は能く受持し用う。譬えば大薬師の能く毒を以て薬と為すが如し)」고 답해, 반야경보다 뛰어난 법화경의 이름을 든다. 이로 보아도 용수가 법화경을 반야경보다 못한 경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반야바라밀이 가장 크다」는 앞의 글은 무슨 뜻인가. 이는 예부터 문제가 되어 왔는데, 에신 승도 겐신은 『일승요결』에서 「반야바라밀 최대」는 경의 승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바라밀 가운데 반야바라밀을 제일로 한다는 것이라고 회통했다. 강의는 이 설이 타당하다고 본다. 앞의 글은 법화경 · 반야경을 포함한 열 경의 이름을 들어 설한 이는 갖가지이지만 모두 대승교라 하고 있으며, 「반야바라밀 최대」는 그 이유를 말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육바라밀 가운데 반야바라밀이 가장 뛰어나므로 이 대승교들에 반야바라밀이 설해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대지도론』에는 앞의 글 바로 앞에 「육바라밀 가운데 첫째로 큰 것은 반야바라밀이다(六波羅蜜の中、第一に大なるは、般若波羅蜜なり)」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앞의 글의 「반야바라밀」은 겉으로 설해졌든 아니든 대승교 전체에 공통하는 것이며, 반야경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열반론 「이제 열반의 이치는」

마지막으로 세친의 저작으로 전하는 『열반론』에서 「금자열반리」를 드신다. 이 책에 「사제의 가르침 내지 반야바라밀 · 법화도 또한 번뇌에 더럽혀진 바라 이름한다. 이제 열반의 이치는 유동이 없고 득실이 없고 기멸이 없다. 그러므로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취지로 되어 있는 것을 줄여 보이신 것이다. 사제를 설한 소승교에서 반야경 · 법화경에 이르기까지 그 설의 이치는 번뇌에 더럽혀지는 바라 하고, 지금 열반의 이치는 유동 · 득실 · 기멸이 없으므로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글 표면으로는 소승교에서 법화경까지 일체의 경에 대해 열반경을 제일로 하는 글로 이해될 수도 있다.

확실히 열반경은 전편에 걸쳐 「여래상주」와 「일체중생실유불성」의 뜻을 강조하며, 그 의미에서 이 글처럼 불변상주의 이치를 밝힌다. 법화경에도 같은 뜻이 설해지지만, 법화경은 상주불변의 이치를 개념적으로 강조하기보다 중생에게 실제로 불지견을 열게 하는 것을 주안으로 한 가르침이다. 바꾸어 말하면 법화경은 중생의 관심을 실제로 성취시키는 데 주목적이 있으며, 개삼현일과 개근현원의 가르침은 그를 위해 필연적으로 밟아야 할 길이었다. 이 의미에서 이 법화경이 설해지지 않으면 모든 교법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법화경은 중생의 관심을 실제로 성취시키는 가르침이므로, 거기 열리는 법은 중생의 미혹을 깨는 역용이 있고, 따라서 번뇌를 정화한다는 의미에서 반드시 번뇌와 함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한에서 번뇌에 「더럽혀진 바」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는 곧 법화경의 실천성 · 역동성을 뜻한다고 강의는 본다. 반면 열반경은 멸후 유통을 위해 법화경을 뒤따라 설한 가르침으로, 법화경의 내용을 개념적으로 정리해 설하는 동시에 그 가르침을 굳게 지켜 가기 위한 갖가지 경계를 설한다. 그래서 그 설의 이치는 불변상주의 것으로 설해지며, 그것이 「유동이 없고 득실이 없고 기멸이 없다」고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열반경의 이치는 한 면의 진리에 머물 수밖에 없고, 법화경처럼 진리의 전체적 현현은 바랄 수 없다. 열반경은 법화경이 설해진 뒤의 경으로서야말로 의의가 있으며, 거기에 「큰 거둠 뒤의 이삭줍기(大收の後の捃拾)」, 「큰 진을 깨뜨린 선봉 뒤의 잔당 소탕」으로 자리매김하는 까닭이 있다. 따라서 『열반론』의 「금자열반리」는 일체경에 대해 열반경을 최승이라 보이는 것이라기보다 열반의 이치 자체를 말한 글로 이해해야 하며, 법화경의 이금당을 뒤집는 것이 아니다.

소대를 보라 — 강적을 쓰러뜨려야 큰 힘을 안다

이 어서는 법화경의 이금당에 「상사」한 여러 경론의 글을 드신 뒤, 결론으로 「결코 오십여 년의 대소 · 권실 · 현밀의 여러 경에 상대하여 이것이 모든 경의 왕들 가운데 대왕이라는 것이 아니니라. 요컨대 소대를 보고 경과 경의 승렬을 가려야 하느니라. 강적을 쓰러뜨리고서야 비로소 큰 힘을 알아보는 것이 이것이니라」라고 깨뜨리신다. 이 글들은 이금당처럼 저마다의 경을 제일이라 하지만 그 「소대」, 곧 비교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러 경론의 비슷한 글은 어떤 한정된 일부 경을 소대로 하여 최승을 말할 뿐이고, 법화경의 이금당은 일체의 경을 소대로 하여 최승을 밝힌다.

本文은 소대의 차이를 세 가지로 예시하신다. ① 「범천 · 제석 · 사천왕 등의 여러 경」, 곧 외도의 경을 소대로 하는 것, ② 「소승경」을 소대로 하는 것, ③ 밀엄경의 글처럼 「화엄 · 승만 등의 경」, 곧 일부 대승경을 소대로 하는 것.

「보은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大日経・華厳経等の一切経をみるに此の経文に相似の経文・一字・一点もなし、或は小乗経に対して勝劣をとかれ或は俗諦に対して真諦をとき或は諸の空仮に対して中道をほめたり、譬へば小国の王が我が国の臣下に対して大王というがごとし、法華経は諸王に対して大王等と云云

대일경 · 화엄경 등 일체경을 보건대 이 경문에 비슷한 경문은 한 글자 한 점도 없느니라. 혹은 소승경에 대해 승렬을 설하고, 혹은 속제에 대해 진제를 설하며, 혹은 여러 공 · 가에 대해 중도를 칭찬하였느니라. 비유하면 작은 나라의 왕이 자기 나라의 신하에 대해 대왕이라 하는 것과 같으니, 법화경은 여러 왕에 대해 대왕이라 하느니라.

「보은초」, 295쪽

여기서는 소대로 ④ 소승경, ⑤ 속제(그에 대해 진제가 뛰어나다 함), ⑥ 공 · 가 이제(그에 대해 중도가 뛰어나다 함)를 드신다. 또 「소야지로입도전답서」에서는 「화엄 · 방등 · 반야 · 심밀 · 대운 · 밀엄 · 금광명경 등의 여러 가르침 가운데 경과 경의 승렬을 설하기는 하나, 혹은 소승경에 대해 이 경을 제일이라 하고, 혹은 진 · 속 이제에 대해 중도를 제일이라 하며, 혹은 인 · 진언 등을 설한다는 것으로 제일이라 한다. 이런 설이 있다 해도 결코 이금당의 제일이 아니니라(華厳・方等・般若・深密・大雲・密厳・金光明経等の諸教の中に経経の勝劣之を説くと雖も或は小乗経に対して此の経を第一と曰い或は真俗二諦に対して中道を第一と曰い或は印・真言等を説くを以て第一と為す、此等の説有りと雖も全く已今当の第一に非ざるなり)」(1068쪽)라고 하셔서, ⑦ 소승경, ⑧ 진 · 속 이제(그에 대해 중도를 제일로 함), ⑨ 인 · 진언을 설한다는 것으로 제일로 함 — 셋을 드신다.

이 세 어서에서 「소승경」을 소대로 하는 것은 공통으로 들려 있다. ② · ④ · ⑦은 대소 상대에 속하며, 권대승경 전반에 통하는 기조라 할 수 있다. ①의 「범천 · 제석 · 사천왕 등의 여러 경」은 세속적 진실을 설하는 것이니 ⑤처럼 「속제」를 소대로 하는 것이며, 내외 상대에 속한다. ⑥ · ⑧은 공 · 가 이제를 설하되 아직 중도를 설하지 않은 대승의 여러 경을 소대로 하여 중도를 설하는 경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으로, 반야경이나 화엄경 같은 별교 경전의 글에 보인다. ⑨는 인 · 진언을 설하지 않는 여러 경을 소대로 하여 인 · 진언을 설하는 대일경 등 진언 경전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으로, 진언종의 입의다. 그러나 이것들은 특정 관점에서 대승경 상호의 승렬을 세우는 것이므로 ③과 같은 부류다. 결국 소대의 관점에서 여러 경론의 비슷한 글을 나누면 세 종류가 된다.

本文(법화취요초)
①梵帝・四天等の諸経범천 · 제석 · 사천왕 등의 여러 경②小乗経소승경③華厳・勝鬘等の経화엄 · 승만 등의 경
보은초(295쪽)
④小乗経소승경⑤俗諦속제⑥空仮공 · 가
소야지로입도전답서(1068쪽)
⑦小乗経소승경⑧真俗二諦진 · 속 이제⑨印・真言인(印) · 진언
一속제를 소대로(내외 상대)
①梵帝・四天等の諸経범천 · 제석 · 사천왕 등의 여러 경⑤俗諦속제
二소승경을 소대로(대소 상대)
②小乗経소승경④小乗経소승경⑦小乗経소승경
三일부 대승경을 소대로(대승 상호의 한정된 상대)
③華厳・勝鬘等の経화엄 · 승만 등의 경⑥空仮공 · 가⑧真俗二諦진 · 속 이제⑨印・真言인(印) · 진언
법화경의 이금당 = 일체경을 소대로 (권실 상대)法華経は諸王に対して大王법화경은 여러 왕에 대해 대왕
도표 20 · 상사의 글 — 소대에 따른 세 갈래

이 가운데 이금당과 비슷해 가장 헷갈리는 것은 대승경을 소대로 하는 「三」일 것이다. 대성인은 「다이가쿠사부로전어서」에서 이렇게 가르치신다.

仏説の如く之を勘うれば法華経の外華厳経・大集経・般若経・大日経・深密経等の諸経は但小衍相対なり但法華経計りに限つて已今当を以て眷属の修多羅と為す

불설대로 이를 살피면, 법화경 외의 화엄경 · 대집경 · 반야경 · 대일경 · 심밀경 등 여러 경은 다만 소연(小衍) 상대일 뿐이요, 오직 법화경에 한하여 이금당으로써 권속의 수다라로 삼느니라.

「다이가쿠사부로전어서」, 1204쪽

「소연 상대」란 소승경과 마하연(대승)의 상대, 곧 「대소 상대」다. 화엄경 · 대집경 · 반야경 · 대일경 · 심밀경 등의 글은 모두 대소 상대 위의 입의일 뿐이고, 법화경만이 이금당의 일체경을 자기의 「권속의 수다라(경)」로 삼아 최승을 선언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대성인은 「그러나 천태 이전의 여러 스승은 법화경 등 일체의 대승경을 소연 상대로 풀어, 왕과 신하의 차별 없이 위아래를 섞었으니 불법이 아직 드러나지 않아 우치의 허물이 있느니라. 천태 이후 여러 종은 소연 상대의 경들로 권실 상대를 정하니, 천태의 지혜를 훔친 것이니라. 해와 달을 등지고 등불을 향하며, 언덕과 무덤을 화산(華山) · 항산(恒山)에 견주는 것이 이것이니라(然りと雖も天台已前の諸師・法華経等の一切の大乗経を小衍相対を以て之を釈す、王臣の差別無く上下之を混す仏法未だ顕れず愚癡の失之有り、 天台已後に諸宗小衍相対の経経を以て権実相対之を定む、天台の智之を盗めり、日月に背いて灯炷に向い・丘塚を華恒に比する是なり)」(1204쪽)라고 하시어, 여러 경의 대소 상대와 법화경의 권실 상대를 섞어 온 두 유형을 보이신다. 첫째 유형은 천태대사 이전 남삼북칠에 보이는 것으로, 법화경 등 대승경을 대소 상대만으로 판정한 것이다. 둘째 유형은 천태대사 이후에 성립한 화엄종 · 진언종 등에 보이는 것으로, 천태대사가 세운 권실 상대의 뜻을 자종의 의경인 화엄경 · 대일경을 정당화하려고 훔쳐 넣은 것이다. 제2장에서 본 법장의 동별이교, 홍법의 십주심, 태밀의 이동사승은 모두 이 둘째 유형의 구체적 모습이다.

이렇게 법화경 이외의 여러 대승경에 보이는 교판은 대소 상대를 기조로 한 것이며, 대승교 안에서의 상대를 말하는 경우에도 특정 관점에서의 한정된 상대를 보인 것이어서, 대소 상대를 넘어 권실 상대를 보인 것이라고는 결코 할 수 없다. 권실 상대는 법화경 적문의 개삼현일로 처음 밝혀진다. 화도의 흐름 위에서 갖가지 소승 · 대승의 이전 여러 경이 무엇을 위해 설해졌는지, 그 교의를 밝혀 일체의 원의가 일체중생 성불을 실현하는 법화경에 귀착함을 보이고, 대소 상대에서 영불성불이라 꾸짖었던 이승의 성불을 밝혀야 했던 것이다. 이 인 · 법 두 면의 개회로 권실의 상대가 분명해졌으며, 이 두 면이 없는 화엄경 · 대일경 등은 아무리 다른 대승경과의 승렬을 강조해도 결코 권실 상대의 경이라 할 수 없다.

本文의 「강적을 쓰러뜨리고서야 비로소 큰 힘을 알아본다」는 이 소대론의 결론이다. 작은 나라의 왕이 자기 신하에게 대왕이라 불리는 것으로는 그 힘을 알 수 없다. 이 · 금 · 당이라는 일체의 강적과 맞서 이긴 경만이 참된 대왕이라는 것이다.

강의는 其の五의 핵심을 「소대」 한 낱말에 둔다. 여러 경의 「제일」은 외도 · 소승 · 일부 대승이라는 한정된 상대 위의 제일이고, 이금당만이 일체경을 상대로 한 권실 상대의 제일이며, 그 권실 상대는 인 · 법 두 면의 개회로만 성립한다는 것이다.

사설과 공사 — 다보 · 분신의 증명

其の六에서는 이금당의 교판이 여러 경론의 비슷한 글보다 뛰어난 까닭을, 앞의 「소대」에 이어 두 관점에서 더 보이신다. 첫째는 다보여래와 시방 분신불에 의한 증명의 유무, 둘째는 여러 경과 법화경의 대고(對告)의 차이다.

대성인은 여러 경의 승렬을 세운 것은 석가 한 부처뿐이었던 데 비해 법화경의 이금당 교판에는 석존 한 부처만이 아니라 다보여래와 시방의 분신 제불의 증명이 있다는 데 큰 차이가 있다고 하시고, 이를 「사설(私說)」과 「공사(公事)」의 차이라 하신다. 「사설」이란 사적인 설법, 곧 석존 한 부처만의 설법이고, 「공사」란 공적인 불사, 곧 일체 부처의 증명으로 뒷받침된 설법과 그 의식이다. 따라서 이금당 교판에 다보 · 분신 제불의 증명이 있다는 것은, 이 교판이 일체의 부처에게 승인된 보편적 · 근본적 교판임을 뜻한다.

이 점에서 강의는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의 가르침이 시사적이라 본다. 이 어서에서는 삼세의 제불이 함께 판정한 교상으로 「자행(自行)의 법」과 「화타(化他)의 경」의 차이를 드신다. 자행의 법이란 일체의 부처가 스스로 행한 성불의 근본 법이고, 화타의 경이란 중생을 교화하려고 방편으로 설한 갖가지 교법이다. 이 구분은 일체의 부처가 모두 증명을 더한 교판이라고 하신다. 이는 「수호국가론」의 다음 글에도 분명히 보인다.

釈迦如来の内証は皆此の経に尽くし給う其の上多宝並に十方の諸仏来集の庭に於て釈迦如来の已今当の語を証し法華経に如く経無しと定め了んぬ

석가여래의 내증은 모두 이 경에 다하셨고, 그 위에 다보와 아울러 시방 제불이 모여든 자리에서 석가여래의 이금당의 말씀을 증명하여 법화경과 같은 경은 없다고 정하여 마치셨느니라.

「수호국가론」, 73쪽

법화경에는 석가여래의 내증, 곧 자행의 법이 다 설해져 있고, 그러므로 석가여래는 이금당의 교판을 세웠으며, 이 석가여래의 말씀에 다보불 · 시방 제불이 증명을 더해 법화경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경은 없다고 정했다는 말씀이다.

다음으로 법화경의 구성에서 이금당과 다보 · 시방 제불의 증명의 관계를 확인한다. 먼저 다보불의 증명을 보면, 이금당은 법사품 제10의 글이고 다보불의 증명은 바로 다음 견보탑품 제11에서 이루어지므로, 법화경의 전개에서 둘이 밀접한 관계에 있음은 분명하다. 시방 분신 제불의 증명은 여래신력품 제21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품은 지용의 보살에 대한 부촉이 행해지고 보탑품에서 시작된 허공회 의식의 목적이 성취되는 품이다. 보탑품에서 다보불의 증명이 있은 뒤 시방의 제불이 모여들고 석존은 멸후 홍통을 위해 부촉할 것을 선언하는데, 그 부촉이 신력품에서 지용의 보살에게 행해진다. 곧 허공회의 의식은 이금당으로 판정된 최승의 법을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하기 위한 의식이며, 그 마지막 단계에서 시방 제불의 증명이 이루어진다. 이 의미에서 시방 제불의 증명도 이금당과 맺어져 있다고 강의는 본다.

따라서 다보불과 시방 제불의 증명은 모두 부처의 자행의 법을 설한 법화경의 최승을 증명하는 것이며, 그 법화경을 멸후에 홍통하려고 행한 것이 허공회 의식인데, 그 발단과 마지막 단계에 놓임으로써 멸후를 위한 증명의 의미를 띤다. 이렇게 보면 이금당이 한 부처의 「사설」이 아니라 일체 부처의 「공사」인 까닭은 두 가지다. ① 이금당의 교판은 일체 부처의 자행의 법을 설한 법화경을 최승이라 판정한,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교판이다. ② 이금당의 교판은 석존 멸후 일체중생의 성불을 위해 판정된 것이며, 부처에게도 중생에게도 가장 중요한 교판이다.

  1. 법사품 제10已今当説最為難信難解이 · 금 · 당의 설에 대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이금당 (석존의 판정)
  2. 견보탑품 제11皆是真実모두 진실다보여래의 증명 · 시방 분신 제불 내집 · 부촉의 선언
  3. 종지용출품 제15지용의 보살 출현
  4. 여래신력품 제21상행 등에 부촉 · 시방 제불의 증명(출광장설)
석존 일불의 「私説」
일체 부처의 「公事」
全く多宝分身の助言を加うるに非ず私説を以て公事に混ずる事勿れ결코 다보 · 분신의 조언을 더한 것이 아니니라, 사설을 공사와 섞지 말지어다
도표 21 · 이금당과 허공회

「이일찰만초」와 이금당 — 하나로 만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강의는 이 어서의 초고와 이금당의 관계를 덧붙인다. 이 어서에는 두 개의 초고가 있고, 그 첫 초고의 제목이 「이일찰만초(以一察萬抄)」였다(서강에서 다룸). 「이일찰만」은 「하나로 만을 살핀다」는 뜻인데, 이 「하나」를 「보은초」는 이금당의 글이라 하신다. 「보은초」에서는 한토 · 일본에 건너온 경들 가운데는 법화경보다 뛰어난 경이 없을지 모르나 인도나 용궁 · 도리천 · 도솔천 등에는 더 뛰어난 경이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하나로써 만을 살펴라. 뜰과 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는 것이 이것이니라(一をもつて万を察せよ庭戸を出でずして天下をしるとはこれなり)」(295쪽)라고 하시고 이금당의 글을 인용하신다. 그리고 이 글은 다보불 · 시방 제불이 증명을 더한 것이므로 일체의 불토에서 법화경을 넘어서는 것은 없다고 답하신다.

이는 「이금당」 세 글자에 석존 일대의 여러 경만이 아니라 시방 불토의 일체 경이 다 담겨 있음을 뜻하며, 그 시방 불토의 일체경을 소대로 하여 법화경이야말로 최승이라 한 것이 이금당 교판이 지닌 뜻이다. 첫 초고의 제목이 「이일찰만」이었다는 사실은, 이 어서가 처음부터 이 「하나」, 곧 이금당의 세 글자를 축으로 구상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대고의 존비 — 홍전의 보살과 지용의 상행

其の六은 이어서 앞서 드신 여러 경의 교판이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에 대해 두 가지를 보이신다. ① 이승 · 범부를 위해서는 소승경을 선양했다. ② 법화경 이외의 여러 대승경을 제일로 하는 교판은 문수 · 해탈월 · 금강살타 등 적화 · 타방의 보살을 향해 설한 것이지 본화 지용의 보살을 향해 설한 것이 아니다. 이는 여러 경의 교판이 이승 · 범부나 적화 · 타방의 보살을 위해 설해진 것이어서 법화경의 이금당 교판과는 근본 입장이 다름을 밝히신 것이다.

여러 대승경의 교판은 삼승법 가운데 보살승을 넓히는 보살을 향해 설한 교판이며, 그 의미에서 역시 대기적 · 방편적 교판이다. 本文이 이 보살들을 「홍전의 보살」이라 하신 것은 「보살승을 넓히는 보살」의 뜻으로 강의는 읽는다. 이에 비해 법화경의 이금당 교판은 석존 멸후에 일불승을 넓히는 지용의 보살을 위해 판정된 것이므로 여러 대승경의 교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천태대사는 『법화현의』 권10상에서 이금당의 뜻을 밝히며, 법화경에는 여러 경에 비해 의심과 막힘이 많다는 것을 언급하고 그 이유로 법화경이 「보살의 법」이 아니라 난신난해의 「부처의 법」을 설하기 때문이라 한다. 「이 가르침을 설하려 할 때 의심과 막힘이 겹겹이었으니 적 · 본 두 글과 같다. 본문 가운데서는 보살이 부처에게 부처의 법을 설해 주시기를 청한다. 어찌 보살이 보살에게 보살의 법을 설해 주기를 청하는 것에 견주겠는가. 이 뜻에 나아가면 저보다 더함이 있다(将に此の教を説かんとするに疑晴重畳なり、具さに迹本の二文の如し。本門の中には、菩薩、仏に仏法を説きたまえと請ず。豈、菩薩の菩薩に菩薩の法を説きたまえと請ずるに此せんや。若し此の意に就かば、彼に加ること有らん)」. 또 화엄경의 보살과 법화경 지용의 보살의 차이에 대해 「저 대중은 시방에서 구름처럼 모인 이들로 모두 노사나불 숙세의 지식이다. 이 경에 구름처럼 모인 지용의 보살은 모두 석존을 따라 발심한 이들로 『이들은 나의 소화(所化)다』라 한다. 이는 일단은 같으나 소밀(疎密)이 없지 않다(若し彼の列衆は十方より雲集す。皆是れ廬遮那仏宿世の知識なり。此の経の雲集地涌の菩薩は、皆釈尊に従って発心す。『是れ我が所化なり』と。此れ一往は則ち斉しけれども、而も疎密無きに不ず)」고 한다. 화엄경에 구름처럼 모인 보살이 노사나불의 지식(벗)인 데 비해 지용의 보살은 처음 발심한 제자이므로 그 관계가 친밀하며, 따라서 석존의 내증인 난신난해의 일불승을 넓히는 것은 지용의 보살이라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은 이 대목을 「대고의 존비」를 밝힌 곳이라 한다. 다만 강의는 여기서 말하는 「대고」가 교판을 「알려 주는 상대」라는 뜻이지, 한 경의 주된 청자라는 의미의 대고중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법화경의 대고중은 사리불 등 이승이나 미륵 등 적화의 보살이지 지용의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금당의 교판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맡겨지는가」를 묻는 것이며, 그 답이 지용천계의 상행이다.

이로써 대단 제1의 앞부분, 교법의 관점에서의 판정이 끝난다. 이금당의 문증, 다보 · 분신의 증명, 지용의 상행이라는 세 까닭으로 법화경 최제일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름이 나온 상행보살은 이 어서의 맺음에서 「본문의 세 가지 법문」을 세우는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한다. 다음 편은 같은 승렬을 이번에는 교주 석존의 인위 · 과위, 곧 「삼오의 이법」으로 다시 판정한다.

강의는 其の六의 두 관점을 허공회의 처음과 끝에 겹쳐 읽는다. 다보의 증명은 이금당 바로 다음 보탑품에서, 분신 제불의 증명과 지용 상행에 대한 부촉은 신력품에서 이루어지니, 이금당은 처음부터 「멸후를 위해, 지용의 보살에게 맡겨질」 교판이었다는 것이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이 편의 세 장은 하나의 물음을 세 단계로 풀어 갔다. 제1장에서 대성인은 오천 · 칠천여 권의 경론을 앞에 두고, 자기 소견으로도, 사람과 종에 기대어서도 그 승렬 · 천심 · 난이 · 선후를 가릴 수 없다는 곤경을 먼저 드러내셨다. 첫 구절의 「월지 서천으로부터 한토 일본으로」는 정법 · 상법의 불법동점을 말하면서, 이 어서의 맺음이 말하는 말법의 불법서점과 짝을 이룬다. 그리고 「승렬 · 천심 · 난이 · 선후」 네 낱말은 니치칸 상인의 풀이대로 교 · 이 · 법체 · 차제라는 겹겹의 각도에서 가장 뛰어난 법을 골라내기 위한 설계도였다.

제2장은 그 「분비」의 실상이다. 화엄의 오교십종 · 동별이교, 법상의 삼시교 · 오성각별, 삼론의 이장 · 삼전법륜, 진언의 현밀이교 · 십주심, 선의 능가 · 수능엄 · 교외별전, 정토의 난이 이도 · 성정 이문 · 정잡 이행 · 선택, 소승 삼종의 대승비불설, 그리고 「혹은 말하되 혹은 말하되」에 숨은 태밀의 이동사승. 창가학회의 강의는 이 교판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그것들이 모두 일부 경론에 매이거나, 경 밖의 근거를 끌어오거나, 「행의 난이」를 「교의 승렬」로 바꿔치기하거나, 「교」 자체를 부정하는 데서 생겨났음을 보였다. 그리고 그 교판을 세운 열여덟 조사의 지혜와 덕을 일단 그대로 인정하신 대성인이, 그 모든 것을 「법화경의 정의를 아느냐」 한 점으로 다시 판정하신다는 것을 확인했다.

제3장에서 대성인은 「그렇기는 하나」 하고 돌아서신다. 만인의 비방을 무릅쓰고 「본경본론」에 직접 서서 법사품의 「이금당」 세 글자를 최제일로 세우신다. 이 · 금 · 당은 석존 일대의 모든 경을 빠짐없이 소대로 삼으며, 법화경이 그 모두보다 「난신난해」한 까닭은 제불 비요의 장을 열고, 수자의로 설하며, 절대묘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성인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적문까지를 삼설과 함께 이신이해에 넣고 본문만을 「삼설 밖」의 난신난해라 하셨다. 다른 경의 「제일」은 외도 · 소승 · 일부 대승을 상대로 한 한정된 제일이며, 다보 · 분신의 증명이 없는 「사설」이고, 지용의 상행이 아닌 홍전의 보살을 향한 것이다. 소대 · 증명 · 대고의 이 세 가지가 「법화경 최제일」의 정판을 떠받친다.

이 편이 확정한 것은 「경으로서」의 법화경 최제일이다. 다음 제2편은 같은 물음을 「부처로서」 다시 묻는다. 법화경이 일대에 넘어서는 이십 가지 가운데 가장 요긴한 둘, 곧 「삼오의 이법」 — 삼천진점겁의 인위와 오백진점겁의 과위 — 를 기준으로, 교주 석존이 이 국토 중생에게 어떤 인연을 지닌 부처이며 대일 · 아미타 · 약사 등 시방의 제불이 왜 그 「소종(所從)」인지를 밝힌다. 이 편 끝에 이름이 나온 상행보살과, 이 편 첫머리에 비친 「동에서 서로」의 흐름은, 그 뒤 제3~5편에서 말법과 삼대비법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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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법화취요초」 및 해설에 인용한 여러 어서 — 창가학회판 일본어 어서전집
  • 니치칸 상인, 『법화취요초 문단』 (창가학회 강의를 통해 인용)
  • 『묘법연화경』 T9 no.262 · 『무량의경』 T9 no.276
  • 『대반열반경』 T12 no.374
  • 『해심밀경』 T16 no.676 · 『금광명최승왕경』 T16 no.665
  • 『대일경』 T18 no.848
  • 『대지도론』 T25 no.1509 · 『십주비바사론』 T26 no.1521
  • 천태대사, 『법화현의』 T33 no.1716 · 『법화문구』 T34 no.1718 · 『마하지관』 T46 no.1911
  • 묘락대사, 『법화현의석첨』 T33 no.1717
  • 전교대사, 『법화수구』
  • 길장, 『법화현론』 · 법장, 『화엄오교장』 · 담란, 『왕생론주』 · 도작, 『안락집』 · 선도, 『관경소』 · 법연, 『선택본원염불집』

연구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법화취요초 영역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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