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뜬 보탑을 멀리 산 위에서 우러러보는 아주 작은 대중의 뒷모습

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 — 적문 · 본문의 말법 정의

법화취요초 · 제3편 · 제7~9장

法華経は誰人の為に説かれたか — 迹門・本門の末法正意어서 333–334쪽
저술
문영 11년(1274) 5월 · 미노부 입산 직후
대고중
도키조닌
장
제7~9장 (대단 제2 앞부분)
쪽수
어서 333–334쪽
계보
개목초 제4편 · 관심의 본존초 (오중삼단)

다섯 편 · 법화취요초 15장 구성도

15장 → 다섯 편
  1. 序講331 앞유래 · 제호 · 세 대단
  2. 대단 제1 일대 제경의 대의
  3. 대단 제1 일대 제경의 대의
  4.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
    제3편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 — 적문 · 본문의 말법 정의지금 읽는 편
    7~9장0333:16~0334:14
  5.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
  6. 대단 제3 말법 유포의 대법

「법화취요초」는 세 대단으로 짜여 있다. 대단 제1이 일대성교 가운데 법화경이 가장 뛰어남을 이금당의 교판과 삼오의 이법으로 밝혔다면, 이 편부터 시작되는 대단 제2는 그 법화경이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를 묻는다. 대성인은 이 물음을 「법화경은 누구를 위해 이를 설하는가」라는 한 줄로 세우시고, 그 답을 적문 정종분 → 본문 정종분 → 다보의 증명 · 분신의 조설 · 지용의 용출이라는 세 단계로 펼쳐 가신다. 이 편이 다루는 제7~9장은 그 가운데 앞의 두 단계, 곧 적문의 말법 정의와 본문의 두 뜻, 그리고 재세 중생이 약개근현원으로 득탈했다는 대목이다. 결론은 처음부터 분명하다. 법화경은 적문조차 재세의 성문을 위한 경이 아니라 말법의 중생, 그 가운데서도 니치렌을 위해 설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은 다시 둘로 갈라져, 재세 중생을 건지는 약개근현원과 오로지 멸후를 위한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으로 나뉜다. 이 편은 그 갈라짐의 의미를 오중삼단과 「내증의 수량품」, 등각과 명자묘각의 문제까지 따라가며 읽는다.

대단 제1의 중심 주제였던 이금당의 판정이나 삼오의 이법은 천태대사 · 묘락대사가 이미 논한 바를 대성인이 말법의 눈으로 다시 정리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대단 제2에서 밝혀지는 「법화경의 말법 정의(正意)」와 대단 제3에서 열리는 삼대비법은 앞선 어떤 논사 · 인사도 말하지 않은 대성인 독자의 법문이다. 그래서인지 본문의 문체도 여기서 바뀐다. 대단 제1이 교판을 차례로 서술하는 문장이었다면, 제7장부터는 「물어 이르되(問うて曰く) — 답하여 이르되(答えて曰く)」의 문답이 이어지고, 때로는 「의심하여 이르되(疑つて云く)」가 끼어들어 반론을 세운다. 묻는 이는 상식의 자리에 서 있고, 답하는 대성인은 그 상식을 한 걸음씩 뒤집어 가신다.

이 편의 세 장은 하나의 논리로 이어진다. 제7장은 방편품에서 인기품까지 적문 정종분 팔품을 두 방향으로 읽는다. 위에서 아래로 차례대로 읽으면 보살 · 이승 · 범부를 위한 설법이지만, 안락행품에서 법사품으로 거슬러(逆次) 읽으면 멸후, 그 가운데 말법, 그 가운데 니치렌이 정의(正意)가 된다. 그리고 그 증거로 법사품의 「況滅度後」와 권지품의 「諸の無智の人」을 드시고, 「기쁨이 몸에 넘쳐 스스로 찬탄한다」고 맺으신다. 제8장은 본문으로 옮겨 가 「본문의 마음」에 두 뜻이 있다고 하시며, 천태대사와 다른 일품이반의 배립을 세우신다. 제9장은 그 첫째 뜻, 곧 약개근현원이 재세의 보살 · 천인 · 이승을 어떻게 제자로 삼고 득탈시켰는가를 밝히고, 하늘의 해와 달을 「생신의 묘각의 부처」라고 맺으신다.

다섯 편 가운데 이 편은 셋째 자리에 있다. 대단 제1이 제1 · 2편, 대단 제2가 이 편과 제4편, 대단 제3이 제5편이다. 이 편에서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은 오로지 멸후를 위한 것」이라고 밝혀 둔 명제는, 다음 제4편에서 「그 멸후 가운데서도 말법의 니치렌 등을 위한 것」이라는 경증과 「제일의 양약」의 법문으로 이어진다.

대단 제1일대 제경의 대의를 밝히다제1~6장 · 제1 · 2편
대단 제2금교소피의 시기를 밝히다제7~11장
제3편이 편
  1. 제7장 적문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2. 제8장 본문의 두 뜻을 간략히 보이다
  3. 제9장 약개근현원에 의한 재세 중생의 득탈을 밝히다
제4편
  1. 제10장 광개근현원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2. 제11장 조증 · 조현 등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대단 제3말법 유포의 대법을 밝히다제12~15장 · 제5편
도표 1 · 대단 제2 안에서 이 편의 자리

이 편의 장

第七迹門の末法正意を明かす제7장 적문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 적문 팔품을 유통분에서 거슬러 읽으면 말법, 그 가운데 니치렌이 정의가 된다. 권지품을 몸으로 읽으신 기쁨.
第八本門の二意を略示す제8장 본문의 두 뜻을 간략히 보이다 — 약개근현원은 재세를 위해,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은 오로지 멸후를 위해. 천태와 다른 일품이반과 문저하종삼단.
第九略開近顕遠による在世衆生の得脱を明かす제9장 약개근현원에 의한 재세 중생의 득탈을 밝히다 — 화엄 이래의 보살 · 천인과 성문이 적문에서 제자가 되고 본문에서 묘각에 들었다. 하늘의 해와 달은 생신의 묘각의 부처.
제7장 적문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어서 333쪽 16행~334쪽 3행 · 第七 迹門の末法正意を明か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333쪽 16행 ~ 334쪽 3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曰く法華経は誰人の為に之を説くや、 答えて曰く方便品より人記品に至るまでの八品に二意有り上より下に向て次第に之を読めば第一は菩薩・第二は二乗・第三は凡夫なり、 安楽行より勧持・提婆・宝塔・法師と逆次に之を読めば滅後の衆生を以て本と為す在世の衆生は傍なり滅後を以て之を論ずれば正法一千年像法一千年は傍なり、 末法を以て正と為す末法の中には日蓮を以て正と為すなり、 問うて曰く其の証拠如何、答えて曰く況滅度後の文是なり、 疑つて云く日蓮を正と為す正文如何、答えて云く「諸の無智の人有つて・悪口罵詈等し・及び刀杖を加うる者」等云云、 問うて曰く自讃は如何、答えて曰く喜び身に余るが故に堪え難くして自讃するなり、

풀이

물어 이르되, 법화경은 누구를 위하여 이를 설하셨는가. 답하여 이르되, 방편품으로부터 인기품에 이르기까지의 팔품에 두 뜻이 있느니라. 위에서 아래로 향하여 차례대로 이를 읽으면 첫째는 보살, 둘째는 이승, 셋째는 범부이니라. 안락행품으로부터 권지품 · 제바품 · 보탑품 · 법사품으로 거슬러(逆次) 이를 읽으면 멸후의 중생으로써 근본을 삼고 재세의 중생은 곁(傍)이니라. 멸후로써 이를 논한다면 정법 일천 년 · 상법 일천 년은 곁이요, 말법으로써 바름(正)을 삼으며, 말법 가운데에서는 니치렌으로써 바름을 삼느니라. 물어 이르되, 그 증거는 어떠한가. 답하여 이르되, 「況滅度後(하물며 멸도한 뒤이랴)」의 문이 이것이니라. 의심하여 이르되, 니치렌을 바름으로 삼는 바른 문(正文)은 어떠한가. 답하여 이르되, 「모든 무지한 사람이 있어서 악구매리하고 또 칼과 막대기를 가하는 자」 등이라 하였느니라. 물어 이르되, 스스로 찬탄함은 어찌된 일인가. 답하여 이르되, 기쁨이 몸에 넘치는 까닭에 견디기 어려워 스스로 찬탄하느니라.

어구 풀이

誰人の為に누구를 위하여
대단 제2 첫머리의 물음. 이 장 하나만이 아니라 제7장부터 제11장까지 대단 제2 전체에 걸린다. 적문 정종분(제7장) · 본문 정종분(제8~10장) · 다보의 증명 등 조증 · 조현의 불사(제11장)가 각각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차례로 묻고, 결국 법화경 일경이 말법을 위해 설해졌다는 데로 모인다. 법화경이 설해진 「목적」과 「설법의 대상(所被의 기)」을 함께 묻는 물음이다.
方便品より人記品に至るまでの八品방편품에서 인기품까지의 팔품
방편품 제2 · 비유품 제3 · 신해품 제4 · 약초유품 제5 · 수기품 제6 · 화성유품 제7 · 오백제자수기품 제8 · 수학무학인기품 제9. 적문 십사품 가운데 정종분에 해당한다. 개삼현일을 법설 · 비유설 · 인연설의 삼주(三周)로 설하고 이승에게 성불의 수기를 주는 부분이다. 「인기품」은 수학무학인기품의 약칭.
二意두 뜻
같은 팔품을 두 가지로 읽는 법. 품의 차례대로 읽는 「차제(次第)」와, 유통분에서 거슬러 읽는 「역차(逆次)」. 「관심의 본존초」의 「일왕(一往)」과 「재왕(再往)」에 그대로 대응한다.
逆次に之を読めば거슬러 이를 읽으면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이를 「유통분에서 돌아서서 정종 팔품을 본다(流通分より立ち還って正宗八品を見る)」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정종분의 법을 무엇을 위해 유통하라 하였는가를 먼저 보고, 그 눈으로 정종분을 다시 읽는 것이다.
本と為す · 傍근본으로 삼다 · 곁
「정(正)」과 「방(傍)」의 판정. 설법이 바로 겨냥한 중심 대상과, 그에 따라 함께 이익을 입는 부수 대상을 가른다. 이 대목에서는 재세→멸후, 정 · 상→말법, 말법→니치렌으로 세 번 거듭 정 · 방을 가른다.
正法一千年像法一千年정법 일천 년 · 상법 일천 년
석존 멸후의 시대 구분. 교 · 행 · 증이 갖추어진 정법 천 년, 교 · 행은 있으나 증이 희미해진 상법 천 년, 그 뒤 교만 남고 행 · 증이 없어지는 말법 만 년. 대성인은 정상 이천 년을 「방」, 말법을 「정」으로 판정하신다.
況滅度後하물며 멸도한 뒤이랴
법사품 제10의 「如来の現在すら猶怨嫉多し況や滅度の後をや」의 끝 구절. 법화경을 펴는 사람이 받는 원질(怨嫉)이 부처의 재세보다 멸후에 더 크다고 설하는 문으로, 이 경이 멸후를 정의로 한다는 증거가 된다.
諸の無智の人모든 무지한 사람
권지품 제13 이십행의 게 첫머리 문. 묘락대사가 『법화문구기』에서 「삼류의 강적」으로 나눈 것 가운데 첫째 속중증상만에 해당한다. 대성인이 몸으로 겪으신 악구 · 매리 · 도장의 난을 예언한 문이므로 「니치렌을 정으로 삼는 바른 문」이 된다.
悪口罵詈 · 刀杖악구매리 · 도장
입으로 욕하고 꾸짖는 것과 칼 · 막대기로 해치는 것. 고마쓰바라의 습격, 다쓰노구치 법난 때의 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自讃스스로 찬탄함
경문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스스로 말씀하신 것. 물음은 「경문이 바로 당신을 가리킨다니 자찬이 아닌가」라는 반문이고, 답은 경문을 몸으로 읽은 기쁨이 넘쳐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身業読誦신업독송
법화경을 입이나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읽는 것. 경에 설해진 그대로 난을 받고 경에 설해진 그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강의는 이 장을 대성인의 「신업독송 완료」의 경지를 보이신 장으로 읽는다.
三箇の勅宣 · 二箇の諌暁세 번의 칙선 · 두 번의 간효
보탑품에서 석존이 세 번에 걸쳐 멸후 홍통을 권한 말씀과, 제바달다품의 악인성불 · 여인성불을 통한 두 번의 권유. 「개목초」가 이렇게 부른다. 「개목초」는 두 품을 합해 「오개의 봉조(五箇の鳳詔)」라고도 부르신다.
証前起後증전기후
천태대사가 『법화문구』 권8하에서 보탑 용출의 의의로 든 두 뜻. 앞의 적문 설법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증전」과, 분신을 모으고 본문의 제자를 불러 수량품을 설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기후」.
況滅度後と令法久住황멸도후와 영법구주
법사품의 「況滅度後」와 보탑품의 「令法久住(법을 오래 머물게 하려고)」. 제11장에서 대성인은 이 두 문을 들어 「오로지 우리를 위함이니라」고 판정하신다. 이 장과 제11장이 같은 경문으로 이어진다.

대단 제2를 여는 물음

제7장은 「법화취요초」의 둘째 큰 마디, 곧 대단 제2 「금교소피의 시기를 밝히다(今教所被の時期を明かす)」의 첫머리다. 「금교」는 지금의 가르침인 법화경, 「소피」는 그 가르침이 입혀지는 대상이다. 대단 제1에서 법화경이 일대성교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이제는 그 가장 뛰어난 경이 어느 때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를 물을 차례다.

그래서 이 장은 「법화경은 누구를 위하여 이를 설하셨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이 물음이 제7장 한 장에 그치지 않고 대단 제2 전체에 걸리는 물음이라는 점을 먼저 짚는다. 대단 제2는 이 하나의 물음을 세 단계로 풀어 간다. 첫째로 적문 정종분이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제7장), 다음으로 본문 정종분이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제8~10장), 마지막으로 다보여래의 증명 · 시방 분신불의 조설 · 지용보살의 용출과 같은 조증 · 조현의 불사가 누구를 위해 행해졌는가(제11장). 이 세 단계를 거쳐 법화경 일경 전체가 말법을 위해 설해졌음이 밝혀진다.

물음法華経は誰人の為に之を説くや법화경은 누구를 위하여 이를 설하셨는가
  1. ①적문 정종분 팔품은 누구를 위해?제7장 적문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2. ②본문 정종분은 누구를 위해?제8장 본문의 두 뜻을 간략히 보이다제9장 약개근현원에 의한 재세 중생의 득탈을 밝히다제10장 광개근현원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3. ③다보의 증명 · 시방의 조설 · 지용의 용출은 누구를 위해?제11장 조증 · 조현 등의 말법 정의를 밝히다
결론법화경 일경은 말법을 위해 설해졌다
도표 2 · 「법화경은 누구를 위하여」 — 대단 제2의 세 단계

이 물음과 함께 본문의 문체도 바뀐다. 이 장부터 「법화취요초」는 「물어 이르되 — 답하여 이르되」의 문답으로 전개되고, 때로 「의심하여 이르되」로 반론이 끼어든다. 강의는 이 문체의 변화를 내용의 변화와 겹쳐 읽는다. 대단 제1의 중심 주제였던 이금당의 판정과 삼오의 이법은 천태대사 · 묘락대사가 이미 논한 것이었다. 대성인은 그것을 말법의 자리에서 다시 정리하셨지만, 법문 자체는 앞선 스승들의 해석 위에 있었다. 그러나 대단 제2에서 밝혀지는 「법화경의 말법 정의」와 대단 제3에서 열리는 삼대비법은 대성인 독자의 법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답은 니치렌 대성인 자신의 자리에서 법화경의 의의를 밝혀 가는 문답이다. 상식의 자리에서 묻는 사람에게 대성인이 한 걸음씩 답하시면서 법화경을 읽는 눈 자체가 바뀌어 간다.

제7장 본문은 네 개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문답은 적문 정종분이 말법의 중생을 정기(正機)로 하고, 그 가운데 니치렌을 정의로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뒤의 세 문답은 그 결론에 대해 「증거는 무엇인가」, 「니치렌을 정으로 삼는 바른 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찬이 아닌가」라고 묻고 법화경의 문증을 들어 답한다. 이 세 문답은 법화경을 몸으로 읽기를 마치신 대성인의 경지를 짧게 드러낸다. 그래서 강의는 앞의 한 문답에서는 「적문의 정의가 말법에 있다」는 것의 의의를, 뒤의 세 문답에서는 대성인이 법화경을 몸으로 읽으신 「신업독송」의 의의를 살핀다. 이 해설도 그 순서를 따른다.

적문 정종분의 두 뜻 — 차례로 읽기와 거슬러 읽기

첫째 문답은 법화경 가운데서도 적문 정종분, 곧 방편품 제2에서 수학무학인기품 제9까지의 팔품을 대상으로 한다. 대성인은 이 팔품에 「두 뜻(二意)」이 있다고 하신다.

하나는 방편품부터 품의 「차례(次第)」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읽는 법이다. 그렇게 읽으면 팔품은 첫째로 보살, 둘째로 이승, 셋째로 범부라는 재세 중생을 위해 설해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적문의 유통분인 안락행품 제14 · 권지품 제13 · 제바달다품 제12 · 견보탑품 제11 · 법사품 제10을 「거슬러(逆次)」 읽는 법이다. 그렇게 읽으면 멸후의 중생이 정의이고 재세의 중생은 방의다. 대성인은 멸후 안에서 다시 정 · 방을 가르신다. 정법 천 년과 상법 천 년은 방이고 말법이 정이며, 말법 안에서는 니치렌이 정이다. 적문 정종분은 결국 니치렌 대성인을 위해 설해진 것이라는 판정이다.

차제(次第)로 읽기上より下に向て次第に之を読めば第一は菩薩・第二は二乗・第三は凡夫なり위에서 아래로 차례대로 읽으면 첫째는 보살, 둘째는 이승, 셋째는 범부= 일왕천의(淺義) · 재세 중생을 위함
역차(逆次)로 읽기安楽行より勧持・提婆・宝塔・法師と逆次に之を読めば안락행 · 권지 · 제바 · 보탑 · 법사로 거슬러 읽으면= 재왕심의(深義)
재세방<멸후정
정법 천 년 · 상법 천 년방<말법정
말법 가운데 니치렌정
대응: 「관심의 본존초」一往之を見るに … 再往之を勘うれば일왕 이를 보면 … 재왕 이를 생각하면
도표 3 · 적문 팔품의 두 읽기

강의는 이 두 읽기가 「관심의 본존초」에서 대성인이 「일왕」과 「재왕」으로 구별하신 것과 같은 구조라고 본다.

迹門十四品の正宗の八品は一往之を見るに二乗を以て正と為し菩薩凡夫を以て傍と為す、再往之を勘うれば凡夫・正像末を以て正と為す正像末の三時の中にも末法の始を以て正が中の正と為す

적문 십사품의 정종 팔품은 일왕 이를 보면 이승으로써 정을 삼고 보살 · 범부로써 방을 삼는다. 재왕 이를 생각하면 범부 · 정상말로써 정을 삼고, 정상말 삼시 가운데에서도 말법의 처음으로써 정 가운데의 정을 삼는다.

「관심의 본존초」, 249쪽

곧 품의 차례를 따르는 읽기는 「일왕」의 얕은 뜻이고, 거슬러 읽는 읽기는 「재왕」의 깊은 뜻이다. 「법화취요초」가 「말법 가운데에서는 니치렌으로써 바름을 삼는다」고 하신 것은 「관심의 본존초」가 「말법의 처음으로써 정 가운데의 정을 삼는다」고 하신 것을 사람의 이름으로 드러내신 것이다. 「관심의 본존초」에서 「말법의 처음」이라는 시기로 말씀하신 것을, 문영 11년(1274) 미노부에서는 「니치렌」이라는 이름으로 분명히 하신 셈이다. 사도 시대의 저술이 시기를 말했다면 미노부 입산 직후의 이 어서는 그 시기에 나타난 사람을 지목한다.

첫째는 보살, 둘째는 이승, 셋째는 범부 — 영해의 차례

먼저 「차례」를 따르는 일왕의 뜻부터 경문으로 확인해 보자. 강의에 따르면 「첫째는 보살 · 둘째는 이승 · 셋째는 범부」는 적문 정종분의 설법을 중생이 어떤 순서로 영해(領解)했는가를 보이신 것이다.

「첫째 보살, 둘째 이승」의 차례는 정종분의 첫 품인 방편품 제2의 게송에 나타난다. 방편품은 십여실상과 개삼현일을 설하여 일체중생의 성불이야말로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는 목적임을 밝힌다. 이 설법에 대해 경은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다만 무상도를 설하니, 보살은 이 법을 듣고 의심의 그물이 모두 이미 없어졌고, 천이백의 나한도 모두 반드시 성불하리라」라고 설한다. 보살은 방편품의 설법을 듣고 곧바로 완전히 영해하여 의심이 남지 않았지만, 성문인 나한들은 아직 「반드시 성불하리라」는 미래의 일로 말해질 뿐 영해에 이르지 못했다. 이것이 보살이 첫째, 이승이 둘째인 까닭이다.

「둘째 이승, 셋째 범부」의 차례는 비유품 제3에 나타난다. 비유품에서 법설주의 사리불이 영해하고 미래 성불의 수기를 받자, 이를 본 대중이 「세존께서 이 법을 설하시니 우리가 모두 따라 기뻐합니다. 대지 사리불이 이제 존귀한 수기를 받았으니, 우리도 이와 같이 반드시 성불하여 일체 세간에서 가장 존귀하고 위없는 이가 되리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여러 천자」의 말이지만, 그 앞에 「그때 사부대중인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와 천 · 용 · 야차 · 건달바 · 아수라 · 가루라 · 긴나라 · 마후라가 등의 대중」이 열거되어 있다. 그러니 이 말은 법화경 회좌에 모인 육도의 대중을 대표한 발언이고, 「우리」란 총체적으로 육도의 범부를 가리킨다. 성문 사리불의 영해 뒤에 범부의 영해가 따랐다는 것이 이 문에서 드러난다. 영해의 차례로 읽으면 적문 정종분은 첫째 보살, 둘째 이승, 셋째 범부를 위해 설해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앞에서 인용한 「관심의 본존초」는 재세 삼종 중생의 영해 차례가 아니라 정 · 방을 가르면서 「이승으로써 정을 삼고 보살 · 범부로써 방을 삼는다」고 하셨다. 「약왕품득의초」에도 같은 취지의 말씀이 있다.

方便品より人記品に至るまで八品は正には二乗作仏を明し 傍には菩薩凡夫の作仏を明かす

방편품에서 인기품에 이르기까지 팔품은 정으로는 이승 작불을 밝히고 방으로는 보살 · 범부의 작불을 밝힌다.

「약왕품득의초」, 1499쪽

실제로 방편품부터 인기품까지의 적문 정종분은 이승의 작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방편품에서 이전에 설하지 않았던 십여실상과 개삼현일이 설해진 뒤, 비유품 제3에서 법설주의 사리불이, 수기품 제6에서 비설주의 수보리 · 가전연 · 가섭 · 목련의 사대성문이, 오백제자수기품 제8에서 인연주의 부루나를 비롯한 천이백 성문이, 수학무학인기품 제9에서 아난 · 라후라를 비롯한 이천 성문이 각각 영해하고 미래 성불의 수기를 받는다. 적문 정종분이 이승을 정의로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법화취요초」가 「첫째는 보살, 둘째는 이승, 셋째는 범부」라고 영해의 차례를 따라 소피의 기를 열거하신 것은 본문에 「위에서 아래로 향하여 차례대로 이를 읽으면」이라고 하셨듯이 방편품부터 품 순서대로 읽어 간 경우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정 · 방의 판정을 말씀하신 「관심의 본존초」와, 품을 읽어 내려가는 순서를 말씀하신 「법화취요초」는 같은 팔품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본 것이지 어긋나는 말씀이 아니다. 어느 쪽이든 재세의 중생을 대상으로 한 일왕의 뜻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유통분 다섯 품을 거슬러 읽다

이제 「역차」의 읽기다. 본문은 「안락행으로부터 권지 · 제바 · 보탑 · 법사로 거슬러 이를 읽으면」 적문 정종분 팔품이 말법의 니치렌을 위해 설해졌음이 분명해진다고 하신다. 여기 든 안락행품 제14 이하 다섯 품은 석존이 멸후의 법화경 홍통을 권하고 보살들이 홍경을 맹세하는 적문의 유통분이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역차로 읽는다」는 것을 「유통분에서 돌아서서 정종 팔품을 보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일왕으로는 재세의 중생을 위해 설해진 것처럼 보이는 적문 정종분도, 재왕으로 유통분에서 돌아서서 보면 말법의 니치렌 대성인을 위해 설해졌음이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를 경문으로 확인하기 위해 먼저 다섯 품의 내용을 품의 차례대로, 곧 법사품부터 안락행품까지 개관한다.

법사품 제10은 석존 멸후의 바른 수행으로 오종법사를 설한다. 오종법사는 멸후에 법화경을 수지 · 독 · 송 · 해설 · 서사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과거세에 이미 보살도를 성취했지만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일부러 악세에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하며, 그 존귀함을 다음과 같이 설한다.

我が滅度の後、能く竊かに一人の為にも、法華経の、乃至一句を説かん。当に知るべし。是の人は則ち如来の使なり。如来の所遣として如来の事を行ずるなり。

내가 멸도한 뒤에 능히 남몰래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법화경의 단 한 구절이라도 설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곧 여래의 사자이니 여래가 보낸 바로서 여래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

『묘법연화경』 법사품 제10

또 같은 품은 법화경이 부처의 「비요(秘要)의 장」을 열어 보인 경이기 때문에 이 · 금 · 당 삼설의 모든 경을 넘어서는 난신난해의 경이라고 하고, 그러므로 멸후의 악세에 이 경을 펴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재세보다 큰 난이 있다고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라고 설한다.

견보탑품 제11은 보탑의 용현, 다보여래의 증명, 삼변토전, 이불병좌 뒤에 세 번에 걸쳐 멸후의 홍통을 권한다. 「개목초」가 「세 번의 칙선(三箇の勅宣)」이라 부르는 것이다. 첫째 칙선은 법화경이 부처 멸후 사바세계에 펴져야 할 경임을 밝힌다.

誰か能く此の娑婆国土に於いて、広く妙法華経を説かん。今正しく是れ時なり。如来久しからずして、当に涅槃に入るべし。仏此の妙法華経を以って付嘱して在ること有らしめんと欲す

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서 널리 묘법화경을 설하겠는가.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여래는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들 것이니, 부처는 이 묘법화경을 부촉하여 남아 있게 하고자 한다.

『묘법연화경』 견보탑품 제11

둘째 칙선은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이 모인 것도 「법을 오래 머물게 하기(令法久住)」 위함이라고 밝히고 「내가 멸도한 뒤에 누가 능히 이 경을 호지하고 독송하겠는가. 지금 부처 앞에서 스스로 서원의 말을 하라」고 멸후 홍통의 발서를 권한다. 셋째 칙선은 「육난구이(六難九易)」로 멸후 홍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인 뒤, 큰 서원을 일으키라고 권하고 다시 「모든 선남자여, 내가 멸한 뒤에 누가 능히 이 경을 수지하고 독송하겠는가. 지금 부처 앞에서 스스로 서원의 말을 하라」고 멸후의 홍통을 권한다.

제바달다품 제12는 제바달다의 악인성불과 용녀의 여인성불을 설하여 석존 멸후 악세의 범부에게 법화경의 공덕이 얼마나 깊은가를 밝힌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를 「두 번의 간효(二箇の諌暁)」라 부르시고, 법화경으로 멸후 악세의 범부를 구해야 함을 권한 설법이라고 하신다.

권지품 제13에서는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이 「이십행의 게」로 멸후 홍통의 맹세를 펴는데, 그 안에 「삼류의 강적」이 홍경자를 박해하는 모습이 밝혀져 있다. 이 이십행 게의 내용이 대성인이 만나신 법난의 양상과 일치한다는 것은 뒤에서 자세히 본다.

안락행품 제14는 멸후 악세에 법화경을 펴는 사람이 신 · 구 · 의 · 서원의 사안락행에 머물러야 한다고 설한다. 갖가지 악연에도 몸 · 입 · 마음 어디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경지에 안주하고, 자비와 서원을 근본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강의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 품이 「여래의 멸후, 말법 가운데에서」, 「뒤의 말세 법이 멸하려 할 때에」 등으로 말법이라는 때를 분명히 가리킨다는 점이다. 또 같은 품은 계중명주(髻中明珠)의 비유를 들어, 법화경은 「일체 세간에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렵고 앞서 아직 설하지 않은 것」으로서 부처가 비장해 온 최상의 법이지만 마와 싸우고 삼독을 멸하여 삼계를 벗어나는 이를 위해 이제 처음 설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품의 차례를 따라 본 유통분을, 이번에는 본문의 가르침대로 안락행품에서 거슬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안락행품에서는 「말법」이라는 때가 분명히 제시되고, 그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를 위해 최상의 법인 법화경이 설해졌음이 밝혀진다. ② 권지품에서는 멸후 악세의 법화경 홍통자에게 「삼류의 강적」의 박해가 있다고 밝혀지며, 그 예언은 대성인의 수난 양상과 일치한다. — 이 두 품으로 법화경 적문 정종분이 말법을 위해 설해졌다는 것, 그 가운데서도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인 니치렌 대성인을 정의로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③ 제바달다품에서는 악인성불과 여인성불이 설해진다. ①과 함께 생각하면 법화경이 「말법의 범부」를 정의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④ 견보탑품에서는 세 번의 칙선으로 멸후의 법화경 홍통이 권해진다. ① · ②와 함께 생각하면 이 칙선은 멸후 가운데서도 말법의 홍통을 권한 것으로 자리매김된다. ⑤ 법사품에서는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라고 하여 재세의 난보다 멸후의 난이 크다고 설한다. 이는 그대로 대난을 만나신 니치렌 대성인을 예언한 것이 된다.

  1. ①안락행품 제14如来の滅後に、末法の中に於いて여래의 멸후 말법 가운데에서말법이라는 때와 그때의 법화경 행자
  2. ②권지품 제13이십행 게 · 삼류의 강적대성인의 수난과 일치
  3. ③제바달다품 제12악인성불 · 여인성불말법의 범부가 정의
  4. ④견보탑품 제11세 번의 칙선말법 홍통의 권유
  5. ⑤법사품 제10況や滅度の後をや하물며 멸도한 뒤이랴대난을 만나는 행자의 예언
결론적문 유통분 → 적문 정종분 팔품도 말법의 니치렌을 위함
도표 4 · 유통분을 안락행품에서 거슬러 읽기

유통분은 정종분에서 보인 교법을 유통하는 의의와 공덕을 설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적문 유통분이 말법의 니치렌 대성인을 위해 설해졌다면, 그 유통분이 유통하는 적문 정종분 자체도 말법의 니치렌 대성인을 위해 설해진 것이 된다. 「역차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품을 뒤에서부터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유통분의 목적에서 정종분의 목적을 되짚는다는 뜻이다.

본문의 뜻에서 읽는 적문 — 부촉으로 완결되는 멸후 홍통

강의는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적문을 거슬러 읽는 것은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법화경 본문을 근거로 한 읽기라는 것이다.

법화경을 읽어 보면 석존 멸후의 법화경 홍통이라는 문제는 적문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종지용출품 제15의 지용보살 출현부터 여래신력품 제21 · 촉루품 제22의 멸후 부촉에 이르는 본문 팔품에서 완결된다. 적문 유통분은 멸후 홍통의 난의 양상과 공덕의 크기는 설하지만, 「누가」 멸후에 펴는가는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멸후 홍통의 사람이 정해지는 것은 본문 신력품에서 상행보살을 상수로 하는 지용보살에게 결요부촉이 이루어질 때이고, 그로써 비로소 멸후의 홍통을 맡기는 의식이 완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적문을 유통분에서 거슬러 읽는 것은 본문의 뜻에서 적문을 읽는 것과 통한다.

적문 유통분이 본문과 이어져 있다는 것은 그 흐름이 한 줄로 꿰어져 있다는 점에서 당연하다. 이를 분명히 한 대표적인 석이 천태대사가 『법화문구』 권8하에서 견보탑품의 보탑 용출 의의로 든 「증전(証前)」과 「기후(起後)」의 두 뜻이다. 「증전」은 다보여래가 보탑 안에서 소리를 내어 그때까지의 적문 삼주의 설법이 모두 진실하다고 증명한 것을 말한다. 「기후」는 『법화문구』가 「뒤를 일으킨다는 것은, 탑을 열고자 하면 모름지기 분신을 모으고 현묘한 뜻을 밝혀 부촉해야 한다. 그 소리는 하방까지 사무쳐 근본의 제자를 불러 수량을 논한다」고 하듯이, 보탑 용출이 상행보살 등 본화 지용의 보살을 불러내어 본문 수량품이 설해지는 기연이 된 것을 말한다. 보탑품 이후는 적문 유통분에 속하지만 본문과 깊이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천태대사는 이를 법화경 문장의 흐름을 따라 밝혔지만, 대성인은 신력품에서 부촉을 받은 상행보살의 재탄이라는 자신의 자리에서 밝히신다. 이 장에서는 적문의 「역차」 읽기로, 그리고 뒤의 장에서는 본문 정종분 일품이반의 독자적인 배립으로 분명히 보이신다.

멸후 홍통이 적문에서 끝나지 않고 본문에서 완결된다는 것을 경문으로 따라가 보자. 앞서 본 견보탑품의 첫째 칙선은 「여래는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들 것이니, 부처는 이 묘법화경을 부촉하여 남아 있게 하고자 한다」고 하여 지금 바로 멸후를 위한 「부촉」의 때가 왔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 부촉은 적문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본문의 신력 · 촉루 두 품에서 이루어진다.

권지품에서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은 보탑품의 세 칙선을 받아 「부처가 멸도한 뒤 두렵고 악한 세상에서 우리가 마땅히 널리 설하겠습니다」, 「이 경을 설하기 위해 이 모든 어려운 일을 참겠습니다. 우리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낍니다」 하고 멸후 홍통의 서원을 세웠다. 종지용출품 첫머리에서도 팔항하사를 넘는 타방의 보살들이 멸후 홍경의 허락을 청한다. 그러나 이러한 적화 · 타방 보살들의 발서에 대해 석존은 용출품에서 이렇게 제지한다.

止みね善男子、汝等が此の経を護持せんことを須いじ

그만두어라, 선남자여. 너희가 이 경을 호지함을 쓰지 않으리라.

『묘법연화경』 종지용출품 제15

그리고 「왜냐하면 나의 사바세계에 본래 육만 항하사 등의 보살마하살이 있고, 한 보살마다 각각 육만 항하사의 권속이 있다. 이 사람들이 능히 내가 멸도한 뒤에 이 경을 호지하고 독송하고 널리 설하리라」고 말한다. 자신의 본권속인 보살들이야말로 멸후 홍통의 대임을 감당할 사람들임을 밝힌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무량의 대보살이 대지 아래에서 용출한다. 본화 지용의 보살이다. 이를 본 미륵보살을 비롯한 적화의 보살들이 이 보살들은 누구의 제자이며 어떤 법을 행한 사람들인가를 묻자, 석존은 「내가 구원 이래로 이 대중을 교화하였다」고 답하여 자신의 성도가 구원의 옛날임을 간략히 밝힌다. 이 말은 부처의 시성정각에 대한 회좌 대중의 집착을 흔들어 의심을 일으켰고, 이 의심을 풀기 위해 석존은 여래수량품 제16에서 구원 오백진점겁의 성도를 자세히 설하여 구원의 본지를 밝힌다. 이로써 지용의 보살은 석존의 구원 본지의 제자이며, 구원의 묘법을 지닌 대보살임이 분명해졌다.

분별공덕품 제17 후반 이후의 본문 유통분에서는 수량품에 밝혀진 구원 본지의 묘법을 멸후에 수지하는 공덕과 그 홍통의 방식이 설해진다. 그리고 여래신력품 제21에 이르러 별도로 상행보살을 상수로 하는 지용의 보살에게 별부촉이 행해지고, 촉루품 제22에서 총체적으로 일체 보살에게 총부촉이 행해진다.

보탑품에서 시작되어 신력 · 촉루 두 품의 부촉으로 끝나는 허공회의 의식은 지용의 보살에게 멸후의 홍통을 부촉하기 위한 의식이며, 그 부촉의 법체인 구원 본지의 묘법은 수량품에서 개현된다. 견보탑품 제11부터 촉루품 제22까지의 열두 품은 멸후 홍통의 「부촉」을 일관된 주제로 삼고 있으며, 특히 용출품 이후의 본문에서 「부촉하는 사람」과 「부촉되는 법」이 분명해짐으로써 멸후 홍통이라는 문제가 완결된다. 대성인은 이를 「보탑품에서 일이 일어나 수량품에서 설해 드러내고 신력품 · 촉루품에서 일이 다하였다(宝塔品より事をこりて寿量品に説き顕し神力品・属累に事極りて候)」(「신니부인답서」, 905쪽)라고 말씀하신다.

적문 유통분
  1. 견보탑품 제11보탑 용현 · 다보 증명 · 세 번의 칙선付嘱して在ること有らしめんと欲す부촉하여 남아 있게 하고자 한다
  2. 제바달다품 제12두 번의 간효
  3. 권지품 제13팔십만억 나유타 보살의 서원 · 삼류의 강적
  4. 안락행품 제14말법의 행자
본문
  1. 종지용출품 제15타방 보살의 청을 「止みね善男子」(그만두어라 선남자여)로 제지지용보살 용출 · 약개근현원
  2. 여래수량품 제16광개근현원 · 구원 본지의 묘법 개현
  3. 분별공덕품 제17 이하멸후 수지의 공덕
  4. 여래신력품 제21상행보살 등 지용에게 별부촉(결요부촉)
  5. 촉루품 제22일체 보살에게 총부촉
「신니부인답서」宝塔品より事をこりて寿量品に説き顕し神力品・属累に事極りて候보탑품에서 일이 일어나 수량품에서 설해 드러내고 신력품 · 촉루품에서 일이 다하였다
도표 5 · 보탑품에서 촉루품까지 — 멸후 홍통의 부촉

이렇게 보면 적문 유통분의 품들도 모두 본문에서 멸후 홍통의 대법을 부촉받은 본화 지용의 보살을 위해 설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문 신력품에서 부촉을 받은 지용의 보살, 그 가운데서도 상수인 상행보살의 자리에서 비로소 본문의 입장에서 적문을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더구나 적문 유통분에 예언된 난을 남김없이 받으셨기 때문에 적문을 유통분에서 거슬러 읽는 일이 가능했다고 강의는 본다.

다만 적문 정종분이 말법을 정의로 한다고 해서 대성인이 말법에 적문을 펴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이렇게 말한다.

故に知んぬ、迹門は若し在世に望むればこれ正意なりと雖も、若し本門に望むれは乃これ傍意なること、これ傍意なりと雖も、而も文底を助顕するの功あり。故に在世及び正像に望みて『末法の中には日蓮を以て正と為す』と判ずるなり

그러므로 알라, 적문은 재세에 견주면 정의이지만 본문에 견주면 방의이다. 방의이지만 문저를 도와 드러내는 공이 있다. 그러므로 재세와 정상에 견주어 「말법 가운데에서는 니치렌으로써 정을 삼는다」고 판정하신 것이다.

니치칸 상인, 『법화취요초 문단』

적문은 재세의 중생과 견주어 말하면 말법의 중생, 그 가운데 니치렌 대성인을 위해 설해진 것이다. 그러나 법의 측면에서 본문과 적문을 나란히 놓으면 어디까지나 본문이 정이고 적문은 방이다. 그렇지만 적문은 방이면서도 문저의 묘법을 도와 드러내는 공이 있다. 그래서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재세나 정법 · 상법의 중생과 견주어 적문도 말법의 니치렌을 정의로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누구를 위해」의 판정(시기와 기근의 정 · 방)과 「어느 법이 근본인가」의 판정(법체의 정 · 방)은 서로 다른 축이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역차」의 읽기를 단순한 해석 기술이 아니라, 신력품에서 결요부촉을 받은 상행보살의 자리에서만 가능한 읽기로 본다. 적문 유통분의 예언을 몸으로 다 받으신 분이기에 그 예언에서 거슬러 정종분의 목적을 판정하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적문의 「말법 정의」는 적문을 펴는 것이 아니라, 적문이 문저의 법을 돕는 공을 가진다는 뜻으로 한정된다.

신업독송의 완료 — 「기쁨이 몸에 넘치는 까닭에」

이제 뒤의 세 문답으로 옮겨 간다. 「법화취요초」는 대성인이 사도 유배에서 사면되어 미노부에 들어가신 직후에 쓰신 어서다. 강의는 대성인 일대의 화도에서 사도 유배의 사면이 「신업독송의 완료」라는 중요한 뜻을 지녔다고 본다.

문영 8년(1271) 9월 12일 다쓰노구치 법난을 거쳐 대성인은 말법 본불로서의 내증을 밝히시는 단계에 들어가셨다. 강의는 이로써 대성인의 화도가 이른바 「정종분」에 들어갔다고 본다. 그러나 사도 시기에는 아직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아, 정종분의 내용인 삼대비법은 「관심의 본존초」 등에서 은밀히 보이는 데 머물렀다. 사도 시기는 삼대비법 개현의 준비기, 곧 「정종분의 처음」에 해당한다. 그리고 문영 11년(1274)의 사면으로 대성인의 화도는 새 단계에 들어서고, 사면 직후에 쓰신 「법화취요초」에서 처음으로 삼대비법이 체계적으로 드러난다.

이 장은 법화경 적문이 말법을 정의로 한다는 것을 밝히는 장이면서, 동시에 신업독송을 마치신 대성인의 경애를 드러내는 장이기도 하다. 대성인은 몸으로 읽으신 권지품의 경문을 드신 뒤 마음 한 자락을 이렇게 보이신다. 「기쁨이 몸에 넘치는 까닭에 견디기 어려워 스스로 찬탄하느니라.」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다쓰노구치 법난과 사도 유배의 과정에서 품으신 같은 마음을 자주 토로하신다. 다쓰노구치 법난 때의 마음은 이러하다.

左衛門尉申すやう只今なりとなく、日蓮申すやう不かくのとのばらかな・これほどの悦びをば・わらへかし

사에몬노조의 무리가 「지금이다」 하며 우니, 니치렌이 말하기를 「분별 없는 분들이로다. 이만한 기쁨을 웃으시오」 하였다.

「종종어진무어서」, 913쪽

사도에 계실 때의 마음은 다음 어서들에서 볼 수 있다.

経文に我が身・普合せり御勘気をかほれば・いよいよ悦びをますべし

경문에 내 몸이 꼭 들어맞았다. 감기를 입으면 더욱더 기쁨을 더할 것이다.

「개목초」, 203쪽

日蓮が流罪は今生の小苦なれば・なげかしからず、後生には大楽を・うくべければ大に悦ばし

니치렌의 유죄는 금생의 작은 고통이니 한탄스럽지 않다. 후생에는 큰 즐거움을 받을 것이니 크게 기쁘다.

「개목초」, 237쪽

亦一たびは喜んで云く 何なる幸あつて後五百歳に生れて此の真文を拝見することぞや

또 한편으로는 기뻐하여 말하기를, 어떠한 행운이 있어서 후오백세에 태어나 이 진실한 경문을 배견하는가.

「현불미래기」, 505쪽

此くの如く思ひつづけて候へば流人なれども喜悦はかりなし

이와 같이 생각을 이어 가니 유배된 사람이지만 기쁨이 헤아릴 수 없다.

「제법실상초」, 1360쪽

이 말씀들은 니치렌 대성인 오직 한 분이 법화경의 경문에 꼭 들어맞는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심의 「기쁨」을 나타낸다. 「법화취요초」의 「기쁨이 몸에 넘친다」는 이 기쁨들을 하나로 모은 말이다. 묻는 이는 「경문이 바로 당신을 가리킨다니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대성인은 변명하지 않으신다. 자찬이라는 비난을 그대로 받으시면서, 경문을 몸으로 읽은 기쁨이 너무 커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답하신다.

「신업독송」이란 다음 말씀에서 보이듯 소리 내어 읽는 것만도, 마음으로 읽는 것만도 아니고 법화경을 몸으로 읽는 것이다.

法華経は紙付に音をあげて・よめども彼の経文のごとくふれまう事かたく候か

법화경은 종이에 적힌 대로 소리를 내어 읽어도 그 경문대로 행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중경수법문」, 1001쪽

法華経を余人のよみ候は口ばかり・ことばばかりは・よめども心はよまず・心はよめども身によまず、色心二法共にあそばされたるこそ貴く候へ

법화경을 다른 사람이 읽는 것은 입으로만, 말로만 읽을 뿐 마음으로는 읽지 않는다. 마음으로는 읽어도 몸으로는 읽지 않는다. 색심 두 법으로 함께 읽으신 것이야말로 존귀하다.

「토롱어서」, 1213쪽

신업독송이란 색심 두 법으로 읽는 것, 몸 · 입 · 마음의 삼업 전체로 읽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법화경에 설해진 대로 행동하고 그대로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업독송의 근본에 있는 것은 법화경에 설해진 대로의 불석신명의 실천이다. 「사도어감기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仏になる道は必ず身命をすつるほどの事ありてこそ仏にはなり候らめと・をしはからる、既に経文のごとく悪口・罵詈・刀杖・瓦礫・数数見擯出と説かれてかかるめに値い候こそ法華経をよむにて候らめと、いよいよ信心もおこり後生もたのもしく候、死して候はば必ず各各をも・たすけたてまつるべし、天竺に師子尊者と申せし人は檀弥羅王に頚をはねられ提婆菩薩は外道につきころさる、漢土に竺の道生と申せし人は蘇山と申す所へながさる、法道三蔵は面にかなやきをやかれて江南と申す所へながされき、是れ皆法華経のとく仏法のゆへなり、日蓮は日本国・東夷・東条・安房の国・海辺の旃陀羅が子なり、いたづらに・くちん身を法華経の御故に捨てまいらせん事あに石に金を・かふるにあらずや

부처가 되는 길은 반드시 신명을 버릴 만한 일이 있어야 부처가 될 것이라고 헤아려진다. 이미 경문대로 「악구 · 매리 · 도장 · 와력 · 삭삭견빈출」이라고 설해진 그런 일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법화경을 읽는 것이리라 하니, 더욱더 신심도 일어나고 후생도 든든하다. 죽게 되면 반드시 여러분도 도와 드릴 것이다. 천축에서 사자존자라는 사람은 단미라왕에게 목이 베였고, 제바보살은 외도에게 찔려 죽었다. 한토에서 축도생이라는 사람은 소산이라는 곳으로 유배되었고, 법도삼장은 얼굴에 쇠도장을 지져 강남으로 유배되었다. 이는 모두 법화경의 덕, 불법 때문이다. 니치렌은 일본국 동이 · 도조 · 아와 지방 바닷가 전다라의 아들이다. 헛되이 썩어 버릴 몸을 법화경 때문에 버린다면 어찌 돌을 금과 바꾸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도어감기초」, 891쪽

그래서 대성인은 자신 이외의 불석신명의 실천자에게도 「법화경의 행자」라는 이름을 쓰신다. 그러나 대성인 한 분에게만 해당하는 신업독송의 의의가 있다. 그것은 대성인이 법화경 여래신력품에서 멸후 홍통을 부촉받은 상행보살의 재탄임을 증명하는 신업독송이며, 따라서 상행보살이 지니고 있을 구원 본지의 묘법을 대성인이 한 몸에 갖추고 계심을 증명하는 신업독송이다.

권지품 이십행의 게와 삼류의 강적

이를 바탕으로, 대성인의 수난 양상과 말법 법화경 행자의 수난에 관한 경문의 예언이 일치함을 확인해 보자.

권지품 이십행의 게는 석존 멸후 법화경 행자의 수난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인다. 묘락대사는 『법화문구기』 권8의 4에서 이를 「삼류의 강적」, 곧 속중증상만 · 도문증상만 · 참성증상만이라는 세 부류의 적대에 의한 박해로 풀이했다.

첫째 속중증상만에 대해 권지품은 「모든 무지한 사람이 악구매리하고 또 칼과 막대기를 가하는 자가 있으리라」고 설한다. 불법에 무지한 재가의 무리에 의한 박해다. 이 장의 본문에서 대성인이 「니치렌을 정으로 삼는 바른 문」으로 드신 것이 바로 이 문이다. 고마쓰바라에서 습격한 도조 가게노부, 다쓰노구치 법난과 사도 유배를 집행한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강의는 본다.

둘째 도문증상만에 대해 권지품은 「악세 가운데의 비구는 삿된 지혜로 마음이 아첨하고 굽어 있으며,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여기고 아만의 마음이 가득하리라」고 설한다. 삿된 지혜로 법화경을 행하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사(邪師)들이다. 『열반경』 제9에도 여래 멸후에 이러한 악비구가 있으리라는 것을 「이때 마땅히 여러 악비구가 있으리라 …… 경전을 독송하더라도 여래의 깊고 은밀한 요의를 없애 버리고」라고 지적한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러한 사지(邪智)의 악비구의 대표로 정토종의 법연을 드셨다.

셋째 참성증상만에 대해 권지품은 먼저 그 모습을 이렇게 설한다. 「혹은 아련야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스스로 참된 도를 행한다고 여기고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가 있으리라. 이양을 탐착하는 까닭에 재가인을 위해 법을 설하여 세상의 공경을 받기를 육통의 나한과 같이 하리라.」 인적 드문 곳에 법의를 입고 틀어박혀 스스로는 참된 불도를 행한다 여기며 세상 사람을 가볍게 보지만, 그 본질은 명문 · 명리를 탐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참(僭)」은 분수에 넘치게 교만함을 뜻하니, 「참성」은 성인이 아니면서 성인이라고 교만하는 것이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대반니원경』 권6의 「아라한과 비슷한 일천제가 있어 악업을 행한다」는 문과, 묘락대사 『법화문구기』 권8의 4의 「셋째가 가장 심하니, 뒤로 갈수록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라는 문을 인용하여 참성증상만의 특질을 밝히셨다. 『대반니원경』의 문은 불제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방법 · 불신의 일천제라는 뜻이고, 『법화문구기』의 문은 첫째 속중보다 둘째 도문이, 둘째 도문보다 셋째 참성이 더 두려운 불법의 적대자이며 알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개목초」는 이러한 참성증상만에 해당하는 이로 가마쿠라 극락사의 료칸과 교토 동복사의 쇼이치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드셨다. 모두 계율을 지키는 성승으로 당시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고 권력자의 두터운 비호를 받은 승려다. 겉으로 훌륭한 성승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오히려 그 실체를 간파하기 어려웠다.

권지품은 다시 참성증상만이 법화경 행자를 박해하는 모습을 「항상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우리를 헐뜯고자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와 그 밖의 비구 대중을 향해 비방하여 우리의 악을 말하되, 이는 사견의 사람이며 외도의 논의를 설한다고 하리라」고 설한다. 참성증상만은 대중 사이에 법화경 행자에 대한 비방을 퍼뜨리기 위해 국왕 · 대신 등 권력자에게 행자의 악을 불어넣어 권력을 움직이려 한다. 권력을 이용하는 데 참성증상만의 박해의 특색이 있고, 그래서 지도법사의 『동춘』 권5는 이 문을 「공적인 자리를 향해 법을 헐뜯고 사람을 비방한다(公処に向かって法を毀り人を謗ずる)」고 풀이한다. 「개목초」에 「지금 말법의 처음에는 료칸 · 넨아 등이 위서를 주석하여 쇼군가에 바쳤으니 어찌 삼류의 원적이 아니겠는가(今末法の始には良観・念阿等偽書を注して将軍家にささぐ・あに三類の怨敵にあらずや)」(229쪽)라고 하셨듯이, 대성인에 대한 막부의 탄압은 료칸 등의 참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삼류 강적속중증상만
경문諸の無智の人の、悪口罵詈等し、及び刀杖を加うる者有らん모든 무지한 사람이 악구매리하고 칼과 막대기를 가하는 자가 있으리라
성격불법에 무지한 재가의 박해
해당 인물고마쓰바라의 도조 가게노부, 다쓰노구치 · 사도 유배의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
삼류 강적도문증상만
경문悪世の中の比丘は、邪智にして心諂曲に악세 가운데의 비구는 삿된 지혜로 마음이 아첨하고 굽어
성격사지의 승려
해당 인물「개목초」가 드는 대표: 법연
삼류 강적참성증상만
경문或は阿練若に、納衣にして空閑に在って혹은 아련야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성격성승을 가장해 권력을 움직이는 이
해당 인물「개목초」가 드는 이: 료칸 · 쇼이치
셋을 총괄数数擯出せられ자주자주 쫓겨나리라— 두 번의 유죄(이즈 · 사도)
도표 6 · 권지품 이십행 게의 삼류 강적과 대성인의 수난

또 삼류 강적의 박해 양상을 총괄해 말한 다음 문은, 말법의 법화경 행자가 한 번이 아니라 거듭 유배되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濁世の悪比丘は、仏の方便、随宣所説の法を知らずして、悪口して顰蹙し、数数擯出せられ塔寺を遠離せん

탁세의 악비구는 부처가 방편으로 근기에 따라 설한 법을 알지 못하고 악구하며 얼굴을 찌푸리고, 자주자주 쫓겨나 탑사를 멀리 떠나게 되리라.

『묘법연화경』 권지품 제13

이 문의 「삭삭견빈출(数数見擯出)」 한 구절은 대성인의 두 번의 유죄와 일치하며, 그런 의미에서 대성인이야말로 경문에 예언된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심을 가장 분명히 하는 경문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日蓮・法華経のゆへに度度ながされずば数数の二字いかんがせん、此の二字は天台・伝教もいまだ・よみ給はず況や余人をや、末法の始のしるし恐怖悪世中の金言の・あふゆへに但日蓮一人これをよめり

니치렌이 법화경 때문에 여러 번 유배되지 않았다면 「삭삭」의 두 글자를 어찌하겠는가. 이 두 글자는 천태 · 전교도 아직 읽지 못하셨으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 말법의 처음이라는 징표인 「공포악세중」의 금언에 들어맞기에 다만 니치렌 한 사람이 이를 읽었다.

「개목초」, 202쪽

이처럼 대성인에 대한 박해의 양상과 박해자의 모습은 권지품 이십행의 게에 설해진 것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그리고 이 일치로 대성인이 법화경에 예언된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심이 분명해진다. 이 장의 셋째 문답에서 「니치렌을 정으로 삼는 바른 문」으로 권지품의 첫 문을 드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난신난해의 요법을 펴는 이 — 신독에서 삼대비법으로

경문과 수난의 일치는 대성인이 법화경을 몸으로 읽으셨다는 뜻이다. 강의는 이 신독(身讀)의 더 깊은 의의가 신력품에서 상행보살에게 부촉된 요법을 대성인이 그 한 몸에 갖추고 계시다는 데 있다고 본다. 이를 경문에 근거해 확인해 보자.

먼저 권지품 이십행의 게에는 「우리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낍니다. 우리는 내세에 부처가 부촉하신 바를 호지하겠습니다」라고 설해져 있다. 법화경 행자가 삼류 강적의 박해를 견디는 것은 부처로부터 부촉받은 요법을 신명을 아끼지 않고 호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또 법사품의 「그런데 이 경은 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라는 문에서, 멸후에 재세 이상의 난이 있는 까닭은 펴는 법이 난신난해한 「제불의 비요의 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에 대해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8상에서 「『여래재세유다원질』이란, 사십여 년 동안 곧바로 설할 수 없었고, 이제 설하고자 하여도 오천 명이 곧 자리에서 물러났다. 부처의 세상에서도 오히려 이러한데 하물며 미래이랴. 이치가 교화하기 어려운 데 있다」고 풀이했다. 이를 받아 묘락대사는 『법화문구기』 권8의 3에서 「이 이치를 밝히는 것은 그 뜻이 중생을 교화하기 어려움을 알게 하는 데 있다」고 풀이했다. 지도법사의 『동춘』 권5에도 같은 취지의 석이 있다.

此の経は五乗の異執を拝して、一極の玄宗を立つ。故に凡を斥け聖を訶し、大を排い小を破り、天魔を銘づけて毒虫と為し外道を説いて悪鬼と為し、執小を貶して貧賤と為し菩薩を挫いて新学と為す。故に天魔は聞くを悪み外道は耳に逆い、二乗は驚怪し菩薩は怯行す。此くの如き徒、悉く留難を為す。『多怨嫉』の言、豈虚しからんや

이 경은 오승의 서로 다른 집착을 물리치고 하나의 지극한 현묘한 종지를 세운다. 그러므로 범부를 배척하고 성인을 꾸짖으며, 대승을 밀어내고 소승을 깨뜨리며, 천마를 독충이라 이름하고 외도를 악귀라 하며, 소승에 집착하는 이를 낮추어 빈천하다 하고 보살을 꺾어 신학이라 한다. 그러므로 천마는 듣기를 싫어하고 외도는 귀에 거슬려하며, 이승은 놀라고 보살은 겁낸다. 이러한 무리가 모두 장애를 일으킨다. 「원질이 많다」는 말이 어찌 헛되겠는가.

지도법사, 『동춘』 권5

요컨대 법화경은 수자의 · 난신난해의 극리이므로, 재세에도 이신이해(易信易解)의 이전 경에 집착하는 이들의 원질이 많았고, 멸후에는 중생의 기근이 더 나빠지므로 법화 홍통에 더 큰 난이 일어난다.

견보탑품의 「육난구이」에도 같은 뜻이 설해져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유정천에 서서 대중을 위해 무량한 다른 경을 연설하더라도 아직 어렵다 하지 않는다. 만약 부처가 멸도한 뒤 악세 가운데에서 능히 이 경을 설한다면 이것이 곧 어렵다」고 한다. 안락행품의 「일체 세간에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렵다」는 문도, 이미 보았듯이 법화경이 아직 설하지 않았던 최상의 법이기에 믿기 어렵고, 그래서 말법의 홍통에 난이 많다는 것을 보인다.

앞에서 대성인의 말법 홍통을 예언한 문으로 본 법사품 · 보탑품 · 안락행품의 문들은 모두 법화경이 부처의 수자의 · 난신난해의 요법이라는 점을 멸후 홍통이 어려운 이유로 든다. 그러므로 대성인이 이 경문대로 난을 받으셨다는 것은 수자의 · 난신난해의 요법을 펴고 계시다는 뜻이다.

삼대비법을 드러내어 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 어서에서 법화경 적문도 말법의 니치렌 대성인을 위해 설해졌음을 밝히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강의는 본다. 적문 유통분에 예언된 대로 대성인이 난을 받으셨다는 것은, 적문에서 일왕 이(理)의 측면에서 설해지고 본문에서 재왕 사(事)의 측면에서 설해진 부처의 수자의 요법을 대성인이 지니고 펴신다는 뜻이며, 그 요법이야말로 대성인이 멸후를 위해 건립하신 삼대비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성인은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보이셨다. 「니치렌은 일본 제일의 법화경 행자인 것은 결코 의심 없다. 이로써 헤아리라. 한토 · 월지에도, 일염부제 안에도 어깨를 나란히 할 자는 있을 수 없다(日蓮は日本第一の法華経の行者なる事あえて疑ひなし、これをもつてすいせよ漢土月支にも一閻浮提の内にも肩をならぶる者は有るべからず)」(「선시초」, 284쪽), 「내 몸은 말할 것 없는 범부이지만 경을 지니고 있는 분제로는 당세에 일본 제일의 대인이다(我身はいうにかひなき凡夫なれども御経を持ちまいらせ候分斉は当世には日本第一の大人なり)」(「선시초」, 289쪽), 「교주 석존보다 중대한 행자」(「시모야마어소식」, 363쪽). 또 『어의구전』에서는 삼대비법의 본존이 법화경 행자인 자신의 당체임을 이렇게 밝히셨다.

戒定慧の三学は寿量品の事の三大秘法是れなり、日蓮慥に霊山に於て面授口決せしなり、本尊とは法華経の行者の一身の当体なり

계 · 정 · 혜의 삼학은 수량품의 사(事)의 삼대비법이 이것이다. 니치렌은 확실히 영산에서 면수구결하였다. 본존이란 법화경 행자의 일신의 당체이다.

『어의구전』, 760쪽

「기쁨이 몸에 넘쳐 스스로 찬탄한다」는 짧은 말씀은 이 모든 자각을 품고 있다. 자찬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니치렌으로써 바름을 삼는다」고 하신 것은 개인의 자랑이 아니라, 경문이 예언한 사람이 지금 나타났다는 증언이다. 그러므로 이 장은 단지 적문이 말법을 정의로 한다는 것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본적 이문의 더 깊은 곳에 있는 삼대비법을 열어 보이시는 대성인 자신의 입장을 내비친 대목으로 읽힌다.

「법화취요초」에서 「니치렌」이라는 이름이 법화경의 정의로서 처음 나오는 곳이 이 장이다. 사도에서 쓰신 「현불미래기」는 「후오백세에 태어나 이 진실한 경문을 배견하는」 기쁨을 말씀하셨고, 「관심의 본존초」는 「말법의 처음」을 정 가운데의 정으로 판정하셨다. 이 장의 판정은 이 두 어서의 말씀을 이어받아, 미노부 입산 직후 문인들 앞에 말법 법화경 행자의 자리를 분명히 하신 것이다.

제8장 본문의 두 뜻을 간략히 보이다
어서 334쪽 3~6행 · 第八 本門の二意を略示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334쪽 3~6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曰く本門の心如何、 答えて曰く本門に於て二の心有り一には涌出品の略開近顕遠は前四味並に迹門の諸衆をして脱せしめんが為なり、 二には涌出品の動執生疑より一半並びに寿量品・分別功徳品の半品已上一品二半を広開近顕遠と名く一向に滅後の為なり、

풀이

물어 이르되, 본문의 마음은 어떠한가. 답하여 이르되, 본문에 두 가지 마음이 있느니라. 첫째는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은 앞의 사미(四味)와 적문의 모든 대중을 득탈하게 하기 위함이니라. 둘째는 용출품의 동집생의(動執生疑)로부터의 반 품과 수량품 · 분별공덕품의 반 품, 이상 일품이반을 광개근현원이라 이름하며, 오로지 멸후를 위함이니라.

어구 풀이

本門の心본문의 마음
강의는 여기의 「마음(心)」을 「불의(仏意)」, 곧 부처가 본문을 설한 의도라고 본다. 대단 제2 첫머리의 물음 「법화경은 누구를 위하여」를 이어받아, 법화경 가운데 특히 본문이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를 묻는 말이다.
開近顕遠개근현원
석존이 가야성 근처에서 처음 성도했다는 가까운 성불(近成)을 열어(開), 구원의 성도(遠)를 드러내는(顕) 것. 수량품의 중심 법문이다.
略開近顕遠약개근현원
종지용출품 제15에서 지용보살이 누구의 제자인가를 묻는 미륵의 물음에 석존이 「내가 구원 이래로 이 대중을 교화하였다」고 답한 대목. 구원의 성도를 간략히(略) 내비친 설법이다.
広開近顕遠광개근현원
여래수량품 제16에서 「내가 실로 성불한 지 무량무변 백천만억 나유타 겁」이라고 오백진점겁의 성도를 자세히(広) 밝힌 설법.
前四味앞의 사미
천태의 오미(유 · 낙 · 생소 · 숙소 · 제호) 가운데 법화 · 열반의 제호미 이전의 네 맛, 곧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의 이전 경(爾前経). 「앞의 사미와 적문의 모든 대중」은 화엄시부터 적문까지 교화를 입어 온 재세의 중생 전체를 말한다.
脱せしめん득탈하게 하다
종 · 숙 · 탈 가운데 「탈」. 과거에 하종되고 중간에 성숙된 중생을 마지막으로 해탈시키는 것. 재세 중생의 득탈이 약개근현원의 목적이라는 판정이다.
動執生疑동집생의
약개근현원을 듣고 회좌 대중의 시성정각에 대한 집착이 흔들리고(動執) 의심이 생긴(生疑) 것. 미륵이 대중을 대표해 의심을 말하고 자세한 설법을 청하는 용출품 후반부.
一品二半일품이반
본문 정종분의 범위. 천태대사는 용출품 후반 반 품 · 수량품 한 품 · 분별공덕품 전반 반 품으로 삼았다. 대성인은 이 장에서 약개근현원을 빼고 동집생의 이후의 반 품부터 헤아리신다. 니치칸 상인은 전자를 「약광개현(略広開顕)의 일품이반」, 후자를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이라 부른다.
一向に滅後の為なり오로지 멸후를 위함이니라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에는 재세를 위한 뜻이 섞이지 않는다는 판정. 니치칸 상인은 대성인이 수량품의 「문상의 측면」을 약개근현원 쪽으로 물렸기 때문에 수량품에는 문저의 측면만 남아 오로지 멸후 말법을 위한 것이 된다고 풀이한다.
弥勒の疑請미륵의 의청
용출품 끝에서 미륵보살이 자신들의 의심을 풀기 위해, 또 미래 세상의 사람들을 위해 구원의 성도를 자세히 설해 주기를 청한 것. 이 청에 답해 수량품이 설해지므로, 그 청의 문장에서 수량품이 누구를 위한 설법인지가 드러난다.
五重三段오중삼단
「관심의 본존초」가 세운 교판. 석존 일대의 경을 일대삼단 · 일경삼단 · 적문숙익삼단 · 본문탈익삼단 · 문저하종삼단의 다섯 겹으로 나누어 각각 서분 · 정종분 · 유통분을 세운다.
内証の寿量品내증의 수량품
「관심의 본존초」의 「나의 내증의 수량품」. 문상의 수량품과 구별하여 수량품의 문저에 감추어진 구원원초의 하종의 법체를 곧바로 설해 드러내는 교(能詮)를 가리킨다. 강의는 대성인이 이 장에서 세우신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이 바로 이것이라고 본다.
体内 · 体外체내 · 체외
같은 경을 그 자체의 분제(當分)로 보는 것이 체외, 더 근본의 법 안에 포섭된 것으로 보는 것이 체내. 문저하종삼단에서 일대성교의 체외의 측면은 서분, 체내의 측면은 유통분이 된다.

본문과 말법 정의 — 제8~11장의 개관

제7장에서 적문 정종분이 말법의 니치렌을 위해 설해졌음을 밝히신 대성인은 이제 본문으로 옮겨 가신다. 강의는 제8장을 읽기 전에 제8장부터 제11장까지 네 장 전체를 「본문과 말법 정의와 내증의 수량품」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고, 각 장의 내용을 미리 개관한다.

제8장은 법화경 본문이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에 대해 두 뜻을 든다. 첫째로 재세의 중생을 득탈시키기 위해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이 설해졌고, 둘째로 멸후의 중생을 위해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이 설해졌다는 것이다. 대성인이 여기서 본문 정종분의 일품이반으로 삼으신 배립은 용출품의 약개근현원 부분을 빼고 있다는 점에서 천태대사의 일품이반과 다르다. 이 장의 해설은 대성인이 독자적인 일품이반을 세우신 깊은 뜻을 살핀다.

제9장은 그 첫째 뜻을 더 깊이 밝힌다. 사람 · 하늘 · 이승 · 보살을 가리지 않고 재세의 모든 중생은 본문의 약개근현원으로 비로소 득탈했다는 것이다. 이미 약개근현원으로 재세의 중생이 득탈했으니, 그 뒤에 설해진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은 오로지 멸후의 중생을 위해 설해졌다는 것이 된다. 또 제9장에서는 약개근현원으로 재세의 중생이 「묘각의 위」에 들었다고 하시는데, 이와 관련하여 문저의 입장에서 본 재세 중생의 득탈의 의의를 살핀다.

제10장은 둘째 뜻을 더 자세히 논한다.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은 석존 멸후 가운데서도 말법의 니치렌 대성인을 위해 설해졌다고 하시며, 이를 경문의 자세한 인용으로 증명하신다. 그로써 대성인이 펴시는 남묘호렌게쿄가 말법의 중생을 구하는 「제일의 양약」임이 밝혀진다. 제10장에서는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을 「광개근현원의 수량품」, 「수량품의 일품이반」처럼 수량품에 초점을 맞추어 표현하시는데, 강의는 이것이 「관심의 본존초」에서 보이신 문저하종삼단의 정종분, 곧 「내증의 수량품」의 뜻에 해당한다고 본다.

제11장은 다보여래의 증명, 시방 제불의 설상(舌相), 지용보살의 용출이라는 법화경의 중요한 불사도 말법을 위해 행해졌음을 보인다. 법화경에서 석존의 설법만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여러 불사도 말법을 위한 것이었음을 보이심으로써 법화경 일경 전체가 말법을 위한 경임을 강조하신다.

본문의 마음과 두 뜻 — 천태와 다른 해석

물음의 「본문의 마음」에서 「마음」은 부처의 뜻(仏意)이라고 강의는 본다. 대단 제2 첫머리에 「법화경은 누구를 위하여 이를 설하셨는가」라는 물음이 세워졌고, 이를 이어받아 이 장에서는 법화경 가운데 특히 본문이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를 묻는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가 본문을 설한 의도」를 「본문의 마음」이라 하셨다는 것이다.

그 「본문의 마음」에 「두 가지 마음」이 있다고 하시며, 용출품에 설해진 약개근현원과 일품이반에 설해진 광개근현원을 드신다. 앞의 것은 재세의 중생을 위해, 뒤의 것은 오로지 멸후를 위해 설해졌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 본문의 두 뜻이 대성인 독자의 해석이며, 그때까지 일반에 통용되던 천태대사의 해석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차이는 두 가지다.

첫째, 천태대사는 약개근현원과 광개근현원을 재세 중생에 대한 한 줄기의 설법으로 해석했다. 이에 비해 대성인은 약개근현원은 재세 중생의 득탈을 위해, 광개근현원은 멸후를 위해 분명히 갈라 세우셨다.

둘째, 본문 정종분 일품이반의 배립이 다르다. 천태대사는 용출품의 전반 반 품을 본문의 서분으로 삼고, 약개근현원과 동집생의가 설해진 용출품 후반 반 품, 재세 중생의 단의생신(断疑生信)을 위해 광개근현원을 설한 수량품, 수량품을 들은 중생에게 총체적으로 득탈의 수기를 준 분별공덕품 전반 반 품의 일품이반을 정종분으로 삼고, 분별공덕품 후반 이하를 유통분으로 삼는다. 이에 비해 대성인은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을 정종분의 일품이반에서 빼고, 동집생의 이하의 반 품과 수량품과 분별공덕품 전반 반 품을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으로 삼으셨다. 두 배립의 차이를 간추리면 다음 두 가지다.

① 천태대사의 배립에서는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이 일품이반에 포함되었으나, 대성인의 배립에서는 약개근현원이 일품이반에서 제외되었다. ② 천태대사의 배립에서는 용출품의 동집생의 부분이 광개근현원으로 자리매김되지 않았으나, 대성인의 배립에서는 동집생의 부분이 광개근현원에 포함된다.

천태대사의 일품이반에는 약개근현원과 광개근현원이 함께 들어 있는 데 비해 대성인의 일품이반은 전체가 광개근현원이다. 그래서 니치칸 상인은 앞의 것을 「약광개현의 일품이반」, 뒤의 것을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이라 불러 두 배립의 차이를 이름으로 분명히 했다.

천태대사의 배립(약광개현(略広開顕)의 일품이반)
  1. 서분용출품 전반
  2. 정종분용출품 후반(약개근현원 · 동집생의) + 수량품 + 분별공덕품 전반
  3. 유통분분별공덕품 후반 이하
  4. 성격재세 중생의 동집생의 → 단의생신 → 득탈의 수기
대성인의 배립(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
  1. 약개근현원前四味並に迹門の諸衆をして脱せしめんが為なり앞의 사미와 적문의 모든 대중을 득탈하게 하기 위함— 일품이반에서 제외
  2. 일품이반涌出品の動執生疑より一半並びに寿量品・分別功徳品の半品용출품의 동집생의로부터의 반 품과 수량품 · 분별공덕품의 반 품
  3. 성격一向に滅後の為なり오로지 멸후를 위함
니치칸 상인의 세 가지 다름
  1. 배립의 다름차이 ① 약개근현원의 포함 · 제외 ② 동집생의의 위치
  2. 종탈의 다름천태 = 재세 탈익대성인 = 말법 하종
  3. 이름의 다름천태 = 약개근현의 일품이반 · 재세의 본문대성인 =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 · 말법의 본문 · 문저하종의 본인묘
도표 7 · 일품이반의 두 배립

미륵의 의청 — 대성인 배립의 근거

다음으로 대성인의 일품이반 배립이 경의 설법 흐름에서 보아도 도리에 맞는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 보자. 먼저 관련된 법화경의 내용을 정리해 둔다.

「개근현원」은 석존의 가까운 성불을 열어 구원의 성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용출품에서는 이를 간략히 밝혔으므로 약개근현원이라 하고, 수량품에서는 자세히 밝혔으므로 광개근현원이라 한다.

종지용출품 제15에서 미륵보살은 대지 아래에서 출현한 지용보살과 석존의 인연을 묻는다. 이 물음에 석존은 「내가 구원 이래로 이 대중을 교화하였다」고 답하여 지용보살이 석존의 구원 이래의 제자임을 밝힌다. 이로써 석존의 성도가 구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은근히 드러났으므로 이 설법을 「약개근현원」이라 한다.

이 약개근현원을 듣고 법화경 회좌의 대중은 시성정각에 대한 집착이 흔들리고 의심이 생긴다. 이것이 「동집생의」다. 그래서 미륵보살이 대중을 대표해 의심을 말하고, 자신들의 의심을 풀기 위해, 또 미래를 위해 구원의 성도를 더 자세히 설해 주기를 석존에게 청한다. 이 청으로 용출품이 끝난다.

이 미륵의 의청에 답해 설해진 것이 여래수량품 제16의 「광개근현원」이다. 이 품에서는 「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로 성불한 지 무량무변 백천만억 나유타 겁이다」 등으로 시성정각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을 분명히 깨뜨리고 오백진점겁 구원의 석존 성도를 밝히며, 구원 이래 긴 부처의 수명에 대해 갖가지 의의를 밝힌다. 그리고 분별공덕품 제17 전반에서는 수량품의 설법을 들은 중생에게 득탈의 수기가 주어지고, 마지막에 미륵보살이 영해를 말한다. 여기까지를 일품이반으로 삼는다.

그런데 대성인이 천태대사와 다른 독자의 일품이반 배립을 세우신 근거로 주목되는 것은 수량품이 설해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용출품의 미륵 의청이다. 미륵 의청의 문에서 수량품의 광개근현원이 누구를 위해 설해졌는가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 관련 문은 이렇다.

我等は復、仏の随宜の所説、仏の所出の言、未だ曾て虚妄ならず。仏の所知は皆悉く通達し給えりと信ずと雖も、然も諸の新発意の菩薩、仏の滅後に於いて、若し是の語を聞かば、或は信受せずして、法を破する罪業の因縁を起さん。唯然なり世尊、願わくは為に解脱し、我等が疑いを除きたまえ、及び未来世の善男子、此の事を聞き已りなば、亦疑いを生ぜじ

저희는 부처가 근기에 따라 설하신 바와 부처가 하신 말씀이 일찍이 헛된 적이 없고, 부처가 아시는 바는 모두 다 통달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새로 발심한 보살들이 부처가 멸도한 뒤에 이 말을 듣는다면 혹은 믿고 받지 않아 법을 깨뜨리는 죄업의 인연을 일으킬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해 해설하시어 저희의 의심을 없애 주시고, 또 미래세의 선남자들이 이 일을 듣고 나서 또한 의심을 내지 않게 하소서.

『묘법연화경』 종지용출품 제15

여기서 미륵보살은 자신들은 부처의 말을 믿지만 석존 멸후의 구도자들은 의심을 일으켜 법을 깨뜨릴지 모른다는 우려를 말한 뒤, 하나는 자신들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 또 하나는 미래의 구도자가 의심을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해 달라고 청한다. 그러므로 이 미륵 의청의 문에서 보면, 이에 답해 설해진 수량품의 광개근현원은 재세의 중생을 위해 설해졌다고도, 석존 멸후의 중생을 위해 설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일왕으로는 두 뜻이 나란히 선다.

그러나 무게가 멸후 쪽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륵보살이 게송에서 거듭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我等は仏に従って聞きたてまつれば、此の事に於いて疑い無し、願わくは未来の為に、演説して開解せしめたまえ、若し此の経に於いて、疑いを生じて信ぜざること有らん者は、即ち当に悪道に堕つべし、願わくは今為に解説したまえ

저희는 부처를 따라 들었으므로 이 일에 대해 의심이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미래를 위해 연설하시어 열어 이해하게 하소서. 만약 이 경에 대해 의심을 내어 믿지 않는 자가 있다면 곧 악도에 떨어질 것이니, 바라옵건대 지금 해설해 주소서.

『묘법연화경』 종지용출품 제15

이 문에 따르면 미륵보살은 오로지 부처 멸후의 중생이 의심을 일으켜 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더 자세히 설해 달라고 청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문에서는 미륵보살 등 재세 중생은 석존의 설법을 이미 영해하고 있었다고까지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니치칸 상인은 『관심본존초 문단』에서 이렇게 말한다.

寿量品に両辺あり。文上は在世脱益の為、文底は末法下種の為なり。然るに蓮祖、弥勒の疑請の文意に准じて、文上の辺を退いて湧出品の略開近顕遠に属し、即ち在世脱益と為とするなり。既に文上の辺を退いて略開に属し、在世脱益の為とす。故に寿量品は一向に滅後末法の為と成るなり。これ則ち弥勒の疑晴の文意に依る。故に天台・蓮祖・各一義に拠るなり

수량품에 두 측면이 있다. 문상은 재세 탈익을 위함이요 문저는 말법 하종을 위함이다. 그런데 렌소(대성인)께서는 미륵 의청의 문의에 준하여 문상의 측면을 물려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에 붙이고 곧 재세 탈익을 위한 것으로 삼으셨다. 이미 문상의 측면을 물려 약개에 붙여 재세 탈익을 위한 것으로 삼으셨으므로 수량품은 오로지 멸후 말법을 위한 것이 된다. 이는 곧 미륵 의청의 문의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태와 렌소가 각각 한 뜻에 의거하신 것이다.

니치칸 상인, 『관심본존초 문단』

대성인은 멸후에 무게를 둔 미륵보살의 문의에 의거하여, 수량품 가운데 재세 탈익을 위한 문상의 측면을 수량품에서 물려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에 붙이시고, 이 약개근현원을 재세 중생의 득탈을 위한 설법으로 삼으셨다. 그로써 수량품에는 말법 하종을 위한 문저의 측면만 남으므로 수량품은 오로지 멸후 말법을 위한 것이 된다.

니치칸 상인의 「천태 · 렌소가 각각 한 뜻에 의거하셨다」는 말은, 미륵 의청의 문에 재세 중생을 위한 뜻과 멸후를 위한 뜻의 두 뜻이 보이므로 천태대사와 대성인이 각각 그 가운데 한 뜻에 의거하여 재세 중생 중심의 일품이반과 멸후 말법 중심의 일품이반을 세웠다는 뜻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로써 재세 중생을 중심으로 한 천태대사의 해석만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 멸후에 초점을 맞춘 대성인의 해석도 법화경의 문의에 근거한 정당한 해석임을 보였다고 강의는 본다.

천태대사는 「약개근현원에 의한 동집생의 → 광개근현원에 의한 단의생신 → 득탈의 수기」라는 순서로 일품이반을 해석하여, 본문 정종분을 재세 중생이 득탈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이에 비해 대성인은 멸후에 초점을 맞추셨기 때문에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을 재세 득익을 위한 것으로 삼아 말법을 위한 일품이반에서 빼셨다. 그로써 대성인이 세우신 일품이반에서는 「약개근현원에 의한 동집생의」나 「광개근현원에 의한 단의생신」 같은 재세 중생 중심의 의미 부여가 의미를 잃는다. 동시에 동집생의의 문은 약개근현원에 속하는 문이 아니라, 광개근현원이 설해지는 계기가 된 문으로 자리매김된다. 미륵의 의청은 「미래를 위해」 설해 달라는 청이었으니, 그 청에서 시작되는 일품이반은 처음부터 멸후를 향해 있다.

  1. 미륵 의청(장행)我等が疑いを除きたまえ、及び未来世の善男子 … 亦疑いを生ぜじ저희의 의심을 없애 주시고 미래세의 선남자들도 의심을 내지 않게→ 재세 · 멸후 두 뜻이 나란히 섬
  2. 미륵 의청(게송)願わくは未来の為に、演説して開解せしめたまえ바라옵건대 미래를 위해 연설하시어 열어 이해하게 하소서→ 무게는 멸후
수량품의 두 측면(니치칸 상인)文上は在世脱益の為、文底は末法下種の為なり문상은 재세 탈익, 문저는 말법 하종
문상재세 탈익대성인: 문상의 측면을 약개근현원으로 물림
문저말법 하종
수량품은一向に滅後末法の為오로지 멸후 말법을 위함
天台・蓮祖・各一義に拠るなり천태와 렌소가 각각 한 뜻에 의거
도표 8 · 미륵의 의청과 수량품의 두 측면

세 가지 다름 — 배립 · 종탈 · 이름

이렇게 보면 일품이반을 둘러싼 대성인과 천태대사의 차이는 단순한 배립의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 니치칸 상인은 『관심본존초 문단』에서 두 일품이반 사이에 세 가지 다름이 있다고 했다.

① 배립의 다름 — 앞에서 본 대로, 본문 정종분의 범위를 나누는 법이 다르다. ② 종탈의 다름(탈익의 다름) — 천태대사가 세운 일품이반은 재세 중생의 탈익을 위한 일품이반이고, 대성인이 세우신 일품이반은 말법의 하종을 위한 일품이반이다. ③ 이름의 다름 — 천태대사가 세운 일품이반의 다른 이름으로는 「약개근현의 일품이반」 · 「재세의 본문」 등이, 대성인이 세우신 일품이반의 다른 이름으로는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 · 「말법의 본문」 · 「문저하종의 본인묘」 등이 있다.

이 셋 가운데 종탈의 다름은 뜻(義)의 차이이고, 이름의 다름은 그 뜻의 차이를 여러 관점에서 이름으로 보인 것이며, 배립의 다름은 뜻의 차이에서 귀결되는 본문 정종분의 나눔의 차이다. 곧 대성인이 천태대사와 다른 일품이반의 배립을 밝히신 것은 종탈상대의 관점에서 본문 정종분을 더 깊이 붙잡는 법을 보이신 것이다. 강의는 이 점을 「관심의 본존초」에서 밝힌 「오중삼단」에 비추어 살핀다.

오중삼단 — 서분 · 정종분 · 유통분의 다섯 겹

「관심의 본존초」는 본문의 본존이 말법 중생을 위해 개현된다는 경문상의 증거를 「오중삼단」으로 밝히신다. 이 오중삼단에서 보면 천태대사가 세운 일품이반은 본문탈익의 정종분이고, 대성인이 세우신 일품이반은 문저하종삼단의 정종분으로 자리매김되어 두 배립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오중삼단」은 석존 일대의 모든 경을 교법의 깊고 얕음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에서 서분 · 정종분 · 유통분의 삼단을 갈라 일대 제경의 핵심을 밝혀 가는 교판이다.

① 서분은 정의로 삼는 교법을 설하기 위한 준비 단계가 되는 부분이다. ② 정종분은 바로 본의로 삼고 목적으로 삼는 교법을 설해 보인 부분이다. ③ 유통분은 정종분의 가르침을 유포하여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부분이다.

경전을 서분 · 정종분 · 유통분으로 나누어 해석하는 법은 중국 동진의 도안법사가 시작했다고 전하지만, 그 진위는 지금으로서는 분명하지 않다. 또 6세기에 중국에 전해진 친광보살의 『불지경론』에는 교기인연분(教起因縁分) · 성교소설분(聖教所説分) · 의교봉행분(依教奉行分)이라는 나눔이 보이는데, 대체로 서 · 정 · 유통에 해당한다. 어쨌든 중국에서는 천태대사 이전에 이미 이 경전 해석법이 알려져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3상에서 법화경 서품 제1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初善・中善・後善)」를 돈교의 서 · 정 · 유통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또 『법화문구』 권1상에서는 법화경의 서 · 정 · 유통의 특색에 대해, 서분은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다만 무상불도를 설하기 위한 서이고, 정종분은 바로 부처의 일체종지를 설해 밝히는 것이며, 유통분은 오로지 원만한 교법으로 멀리 후오백세까지 묘도를 적시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대성인은 이 서 · 정종 · 유통의 나눔을 「오중삼단」에서 한 경전의 분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석존 일대 제경의 궁극의 정설을 가려 뽑기 위해, 그리고 그것이 재세 · 멸후 가운데 어느 쪽을 정의로 하여 밝혀졌는가를 보이기 위해 쓰셨다. 그래서 그 적용 범위는 일대성교 전체에 이른다. 다섯 단계는 다음과 같다.

① 일대삼단 — 석존 일대의 모든 경을 한 경으로 보고 서 · 정 · 유통의 삼단으로 나눈다. 화엄경부터 반야경까지의 이전 경을 서분으로, 법화경의 개경인 『무량의경』 한 권 · 법화경 여덟 권 · 결경인 『보현경』 한 권을 정종분으로, 『열반경』을 유통분으로 삼는다.

② 일경삼단 — 일대삼단의 정종분인 법화경과 개결 두 경의 열 권을 다시 서 · 정 · 유통으로 나눈다. 개경인 『무량의경』과 본경 서품 제1을 서분으로, 방편품 제2부터 분별공덕품 제17 전반 반 품까지의 십오품반을 정종분으로, 분별공덕품 후반부터 법화경 끝까지의 십일품반과 결경인 『보현경』을 유통분으로 삼는다.

니치칸 상인은 『관심본존초 문단』에서 이 두 가지를 「총(總)의 삼단」, 나머지 셋인 적문숙익삼단 · 본문탈익삼단 · 문저하종삼단을 「별(別)의 삼단」이라 나누고, 그 차이를 「무릇 총의 삼단은 별의 삼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일왕이라 이름한다. 별의 삼단은 바로 본존을 밝힌다. 그러므로 재왕이라 한다(凡そ総の三段は別の三段を顕わさんが為なり。故に一往と名づくるなり。別の三段は正しく本尊を明かす、故に再往というなり)」고 보였다. 총의 삼단은 별의 삼단을 밝히기 위해 일왕 세운 것이고, 바로 본존이 밝혀지는 것은 별의 삼단이라는 것이다.

③ 적문숙익삼단 — 법화경 적문 십사품을 한 경으로 보고 서 · 정 · 유통을 나눈다. 『무량의경』과 서품 제1을 서분으로, 방편품 제2부터 수학무학인기품 제9까지의 팔품을 정종분으로, 법사품 제10부터 안락행품 제14까지의 다섯 품을 유통분으로 삼는다. 「관심의 본존초」는 그 특징으로 다음을 보이신다. 능설의 교주는 시성정각의 부처이다. 소설의 법체는 백계천여로서, 이 · 금 · 당 삼설에 대해서는 수자의 · 난신난해의 정법이라 할 수 있으나, 본문의 법체와 견주면 본무금유(本無今有)의 법이다. 소피의 중생은 삼천진점겁 과거 대통지승불의 복강 때 하종되어 금일의 앞의 사미를 연으로 하여 법화에 이르러 대통 하종의 종자를 깨달은 적문의 당기중이다. 또 이 팔품을 처음 듣고 결연한 중생 가운데는 법화경에서 성숙하고 해탈하기에 이른 이, 『보현경』 · 『열반경』에서 해탈하는 이, 멸후 정 · 상 · 말에 소승 · 권대승을 연으로 하여 법화에 들어가는 이 등이 있다고 하신다.

④ 본문탈익삼단 — 법화경 본문 십사품에 서 · 정 · 유통을 세운다. 앞에서 본 천태대사가 세운 「약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이 이 정종분에 해당한다. 용출품 전반을 서분으로, 같은 품 후반의 약개근현원 · 동집생의 부분과 수량품 전체와 분별공덕품 전반을 정종분으로, 분별공덕품 후반 이후를 유통분으로 삼는다. 그 특징은 이렇다. 능설의 교주는 시성정각의 석존이 아니라 구원실성의 교주 석존이다. 소설의 법체는 십계의 상주와 국토세간의 상주로 개현된 본유상주의 일념삼천이다. 이는 적문의 본무금유의 백계천여와 하늘과 땅만큼 다르며 일대 제경 가운데 참된 수자의 · 난신난해의 정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저의 법체와 견주면 본적 이문의 법체는 대나무 속껍질 한 겹을 사이에 둔 정도의 아주 작은 차이라고 하신다. 소피의 중생은 적문에 준하므로 생략되어 있다.

「관심의 본존초」는 이어 문저하종삼단을 말씀하시는 가운데, 특히 당기중에 대한 교화의 처음과 끝에 대해 적문의 경우와 붙잡는 법이 다르다는 것을 보이신다. 법화경의 당기중인 이승 · 범부도 실은 삼천진점겁 과거 대통 복강 때가 아니라 오백진점겁의 구원에 하종되었고, 그 이후 금일의 본문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교화에서 성숙되며, 본문에 이르러 등각 · 묘각에 올라 해탈했다는 것이다. 곧 대통 복강이나 금일의 적문은 중간의 교화에 포함되며, 법화경의 당기중은 구원 하종의 법체를 본문에서 깨달아 득탈했다는 것이다.

적문숙익삼단과 본문탈익삼단이 보이는 것은 적문 정종분의 팔품은 재세 중생에 대한 숙익의 교화를 위한 것이고, 본문 정종분의 일품이반으로 재세 중생이 득탈했다는 것이다. 재세 중생이 성불하기 위해 깨달아야 할 구원 하종의 법체와 그 교주는 본문 일품이반에서 개현되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재세 중생이 근본으로 존경해야 할 법과 부처의 개현, 곧 본존의 개현은 본문의 일품이반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본문탈익삼단의 정종분에서 이루어진 본문의 개현은 이전 경 · 적문의 숙익 교화를 거친 재세 중생을 득탈시키기 위한 것이지, 멸후에 유통되어야 할 법체를 밝힌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숙익을 전제로 한 탈익의 본존, 곧 숙탈의 본존을 개현한 것이 본문탈익삼단의 정종분이며, 그러한 숙탈의 교화를 받아 오지 않은 멸후의 중생을 위한 하종의 본존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 하종의 본존이 설해지는 자리를 「내증의 수량품」으로 밝히는 것이 다섯째 「문저하종삼단」이며, 이 어서에서 대성인이 보이신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은 바로 그 문저하종삼단의 정종분인 「내증의 수량품」을 뜻한다고 강의는 본다.

①② 총의 삼단(일왕)
  1. ①일대삼단
    서분화엄~반야의 이전 경
    정종분무량의경 · 법화경 · 보현경
    유통분열반경
  2. ②일경삼단
    서분무량의경 · 서품
    정종분방편품~분별공덕품 전반(십오품반)
    유통분분별공덕품 후반~보현경(십일품반 · 결경)
③④⑤ 별의 삼단(재왕)
  1. ③적문숙익삼단
    서분무량의경 · 서품
    정종분방편품~인기품 팔품
    유통분법사품~안락행품 다섯 품
    교주 시성정각 · 법체 백계천여(본무금유)
  2. ④본문탈익삼단
    서분용출품 전반
    정종분용출품 후반 · 수량품 · 분별공덕품 전반(천태의 일품이반)
    유통분분별공덕품 후반 이하
    교주 구원실성 · 법체 본유상주의 일념삼천
  3. ⑤문저하종삼단
    서분대통불의 법화경~금일의 이전 경 · 적문 · 열반경 · 시방삼세 제불의 경(체외)
    정종분내증의 수량품(대성인의 광개근현원 일품이반)소전은寿量品の肝心たる妙法蓮華経の五字수량품의 간심인 묘법연화경의 오자
    유통분일대성교 · 팔종의 장소(체내)
도표 9 · 오중삼단

문저하종삼단의 서분 — 순원의 문상 본문도 서분이 되는 까닭

이제 문저하종삼단을 서 · 정 · 유통 셋으로 나누어 「관심의 본존초」를 따라 살핀다.

「관심의 본존초」는 문저하종삼단의 서분으로 대통지승불 때의 법화경부터 현재의 이전 경 · 적문 · 열반경에 이르는 모든 경, 나아가 시방삼세 제불의 미진수 경들을 드신다. 석존이 설한 모든 경이 문저하종삼단의 서분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상의 본문은 문저하종삼단의 서분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니치칸 상인은 『관심본존초 문단』에서 결론적으로 문상의 본문도 서분에 속한다고 하면서, 대성인이 서분의 경들로 본문을 드시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보인다.

文上の本門もまた序分に属すべし。序分に属すと雖も、これ小邪未覆に非ず。これ則ち『在世の本門と末法の始は一同に純円』なるが故なり。この故に且くこれを除く

문상의 본문도 서분에 속해야 한다. 서분에 속하지만 이는 소 · 사 · 미 · 복이 아니다. 이는 곧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은 한결같이 순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잠시 이를 뺀다.

니치칸 상인, 『관심본존초 문단』

「소사미복」이란 「소승교 · 사교 · 미득도교 · 복상교」를 말한다. 「관심의 본존초」는 서분의 경들에 대해 「일품이반 밖은 소승교 · 사교 · 미득도교 · 복상교라 이름한다(一品二半よりの外は小乗教・邪教・未得道教・覆相教と名く)」(249쪽)고 하시는데, 문상 본문의 법문은 이 넷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일단 빼셨다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문상의 본문이 소사미복에 해당하지 않는 이유를 「순원이기 때문」이라 하는데, 이 「순원」이란 법의 측면에서 본유상주의 일념삼천을 드러내어 본무금유의 방편을 띠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문상의 법문은 사람과 법 모두 방편을 떨친 순원의 가르침이므로 재세의 중생은 본문에 이르러 득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의 말씀에서 「일품이반 밖」이라 하신 「일품이반」은 문상 본문의 정종분으로서의 일품이반이 아니라 문저하종삼단의 정종분으로서의 일품이반, 곧 이 어서에서 밝히신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이다. 이에 비해 문상의 일품이반은 숙탈을 위한 법이므로 문저하종삼단의 정종분에서 빠지고, 앞에 든 적불 소설의 경들과 함께 서분에 속하게 된다.

또 문저하종삼단의 서분으로 든 법화경 적문 · 이전 경 · 열반경의 모든 경은 정 · 상에 유포한 여러 종의 소의경이 된 것들이다. 이 경들은 석존 멸후 교법이 유포하는 순서에서 바로 법화경 문저의 대법이 말법에 출현하기 위한 서분이 되었다. 「시모야마어소식」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世尊眼前に薬王菩薩等の迹化他方の大菩薩に法華経の半分・迹門十四品を譲り給う、これは又地涌の大菩薩・末法の初めに出現せさせ給いて本門寿量品の肝心たる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を一閻浮提の一切衆生に唱えさせ給うべき先序のためなり

세존께서 눈앞에서 약왕보살 등 적화 · 타방의 대보살에게 법화경의 절반인 적문 십사품을 물려주셨다. 이것은 또 지용의 대보살이 말법의 처음에 출현하시어 본문 수량품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의 오자를 일염부제의 일체중생에게 부르게 하시기 위한 앞선 서(先序)를 위함이다.

「시모야마어소식」, 346쪽

문저하종삼단의 정종분 — 「나의 내증의 수량품」

다음으로 문저하종삼단의 정종분에 대해 「관심의 본존초」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강의는 네 대목을 든다.

첫째는 「과거 대통불의 법화경으로부터 내지 현재의 화엄경 내지 적문 십사품 · 열반경 등의 일대 오십 년의 모든 경과 시방삼세 제불의 미진의 경들은 모두 수량의 서분이다(過去大通仏の法華経より乃至現在の華厳経乃至迹門十四品涅槃経等の一代五十年の諸経・十方三世諸仏の微塵の経経は皆寿量の序分なり)」(249쪽)는 말씀이다. 여기서 「수량」이라 하셨으나 문저하종삼단의 정종분을 말씀하신 것은 분명하다.

둘째는 앞에서 본 「일품이반 밖은 소승교 · 사교 · 미득도교 · 복상교라 이름한다」(249쪽)는 대목이다. 이 「일품이반」이 문저하종삼단의 정종분을 가리킨다는 것은 문맥에서 분명하다.

셋째는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본문을 상대하여 바로 말법 유통의 하종의 법체를 밝히신 대목이다.

在世の本門と末法の始は一同に純円なり但し彼は脱此れは種なり彼は一品二半此れは但題目の五字なり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은 한결같이 순원이다. 다만 저것은 탈이고 이것은 종이다. 저것은 일품이반이고 이것은 다만 제목의 오자이다.

「관심의 본존초」, 249쪽

이 말씀은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에 펴지는 본문을 「탈」과 「종」의 차이로 밝히신다. 재세의 본문은 과거에 하종 · 숙익의 교화를 받아 온 본이유선(本已有善)의 재세 중생을 득탈시키기 위해 설해졌고, 말법의 처음의 본문은 아직 숙탈의 교화를 받지 않은 본미유선(本未有善)을 위한 하종의 법체다. 또 그 법체를 「일품이반」과 「제목의 오자」의 차이로 보이신다. 여기의 「일품이반」은 재세 탈익을 위한 문상의 일품이반으로, 이 어서에서 천태대사가 배립한 약개근현의 일품이반으로 보이신 것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제목의 오자」는 말법 유통의 법체이며, 이 어서에서 대성인이 배립하신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이 드러내는 바(所詮)로 밝히신 것이다.

넷째로 이 능전 · 소전의 관계를 더 분명히 하신 대목이 본화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된 법을 보이신 다음 말씀이다.

所詮迹化他方の大菩薩等に我が内証の寿量品を以て授与すべからず末法の初は謗法の国にして悪機なる故に之を止めて地涌千界の大菩薩を召して寿量品の肝心たる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の衆生に授与せしめ給う

결국 적화 · 타방의 대보살 등에게 나의 내증의 수량품을 주어서는 안 된다. 말법의 처음은 방법의 나라이고 악한 근기이므로 이를 멈추고 지용천계의 대보살을 불러 수량품의 간심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로써 염부의 중생에게 주게 하신다.

「관심의 본존초」, 250쪽

여기서는 석존이 본화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하는 법을 「나의 내증의 수량품」이라 표현하시고, 부촉을 받은 지용의 보살이 말법에 일염부제의 중생에게 주는 법을 「수량품의 간심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라 하신다. 문상의 수량품은 재세 중생을 위한 탈익의 가르침이므로 그대로는 멸후 말법에 유통되는 법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석존은 멸후 홍통을 위해 종자의 법체를 감춘 「나의 내증의 수량품」을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하고, 지용의 보살이 말법에 출현하여 이를 「묘법연화경의 오자」로 드러내 중생에게 주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관심본존초 문단』에서 「나의 내증의 수량품」과 「수량품의 간심인 묘법연화경의 오자」가 같은가 다른가 하는 물음을 세우고 이렇게 답한다.

『我等が内証の寿量品』とは、直爾に久遠元初の本因妙を説き顕す故に、能詮の辺に従って内証の寿量品と名づけ、所詮の辺に従って久遠本地の本因妙と名づくるなり。然るに能詮・所詮に二なく別なし。故に『我が内証の寿量品』とは、即ちこれ脱益の寿量品の文底本因妙の事なり

「나의 내증의 수량품」이란 곧바로 구원원초의 본인묘를 설해 드러내므로, 능전의 측면을 따라 내증의 수량품이라 이름하고 소전의 측면을 따라 구원 본지의 본인묘라 이름한다. 그러나 능전과 소전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나의 내증의 수량품」이란 곧 탈익의 수량품의 문저 본인묘를 말한다.

니치칸 상인, 『관심본존초 문단』

구원원초의 본인묘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는 소전의 측면에 붙인 이름이고, 내증의 수량품은 능전의 측면에 붙인 이름이며, 둘은 한 몸이라는 것이다. 구원원초의 본인묘는 재세 탈익의 수량품의 문저에 감추어져 있으므로, 그 자리는 재세에서는 어디까지나 수량품이다. 그러므로 구원원초의 본인묘를 곧바로 설해 드러내는 능전의 교를 문상의 수량품과 구별하여 「내증의 수량품」이라 이름한다. 대성인이 이 어서에서 말씀하신 멸후를 위한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이란, 바로 「관심의 본존초」에서 멸후 홍통을 위해 지용의 보살이 부촉을 받았다고 하신 「내증의 수량품」에 해당한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이 장의 「일품이반」 배립 변경을 문헌상의 분과 문제로 보지 않는다. 「관심의 본존초」의 문저하종삼단 정종분, 「나의 내증의 수량품」, 「수량품의 간심인 묘법연화경의 오자」가 모두 같은 것을 가리키며, 「법화취요초」는 그것을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은 오로지 멸후를 위함」이라는 명제로 보이셨다는 것이 강의의 핵심이다.

문저하종삼단의 유통분 — 품품의 법문은 제목의 용

이 어서와 「관심의 본존초」는 법화경의 본적 이문이 모두 말법을 정의로 한다는 것을 밝히신다. 이는 바꿔 말하면 문상의 본문 · 적문이 모두 말법의 문저하종 불법이 출현하기 위한 서분이며, 이 대법이 출현한 뒤에는 그 유통분이 된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내증의 수량품」인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을 정종분으로 하는 문저하종삼단에서는 문상의 본적 이문은 모두 서분이고 또 유통분에 속한다. 그래서 『어의구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惣じては流通とは未来当今の為なり、法華経一部は一往は在世の為なり再往は末法当今の為なり、其の故は妙法蓮華経の五字は三世の諸仏共に許して未来滅後の者の為なり、品品の法門は題目の用なり体の妙法・末法の用たらば何ぞ用の品品別ならむや

총체적으로 유통이란 미래 당금을 위한 것이다. 법화경 일부는 일왕은 재세를 위한 것이고 재왕은 말법 당금을 위한 것이다. 그 까닭은 묘법연화경의 오자는 삼세의 제불이 함께 허락하여 미래 멸후의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품품의 법문은 제목의 용(用)이다. 체인 묘법이 말법의 용이 된다면 어찌 용인 품품이 따로이겠는가.

『어의구전』, 766쪽

이 말씀은 법화경 일부 팔 권 이십팔품과, 내증의 수량품이 드러내는 법체인 묘법연화경의 오자의 관계를 밝히신다. 말법에 유통하는 법은 묘법연화경의 오자가 「체」이고 법화경 품품의 법문은 그 「용」이라는 것이다. 말법 유통의 법체는 어디까지나 묘법연화경의 오자이고 법화경 이십팔품은 그 체의 용이다. 그러므로 말법 유통의 법체를 밝히는 내증의 수량품이 정종분이고, 법화경 이십팔품은 그 서분이자 유통분이 된다.

니치칸 상인은 『관심본존초 문단』에서 법화경 이십팔품을 다시 본적 이문으로 나누어 이 관계를 설명한다. 먼저 적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무릇 적문에 또 두 뜻이 있다. 하나는 적문 당분이니 곧 본무금유의 법이다. 『하늘의 달을 알지 못하고 다만 못의 달을 본다(不識天月・但観地月)』는 것이 이것이다. 둘은 본가(本家)의 적문이니 곧 본유상주의 적문이다. 『근본으로부터 자취를 드리우니 달이 물에 비친 것과 같다(従本垂迹・如月元水)』는 것이 이것이다. 앞에서는 적문 당분의 측면으로 서분에 붙였으므로 소사미복이라 하였고, 지금은 본가의 적문으로 유통에 붙였으므로 말법을 정으로 삼는다고 한다.」 본무금유의 백계천여를 밝힌 적문은 그 당분의 측면에서는 서분이지만, 「본가의 적문」, 곧 본문 체내의 적문은 유통분에 속한다는 것이다. 본문의 현본 이후에는 적문도 본문의 본유상주의 일념삼천을 드러내는 교법으로 쓰이므로, 이를 본무금유의 법에 그치는 적문 당분의 측면과 구별하여 본문 체내의 적문이라 한다. 제7장에서 「적문도 말법의 니치렌을 정으로 삼는다」고 하신 것이 바로 이 「본가의 적문」의 측면이다.

다음으로 본문에 대해서는 「문상 탈익의 본문에 또 두 뜻이 있다. 하나는 탈익 당분이고, 둘은 종가(種家)의 탈익이다. 지금 종가의 탈익의 본문을 유통단에 붙인다」고 한다. 문상의 본문에 대해 재세 중생의 득탈을 위해 설해진 당분의 측면과 「종가의 탈익」, 곧 문저하종 체내의 탈익 본문을 나누고, 그 체내의 측면은 하종 불법의 유통분에 속한다는 것이다. 문저하종 체내의 탈익 본문이란, 재세 중생에게 득탈의 이익을 가져다준 문상 본문의 의의를 문저의 입장에서 붙잡은 것이다. 재세 중생의 득탈은 구원원초의 하종의 법체를 깨달은 데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문상의 본문을 구원원초 하종 법체의 체내의 법으로 보면 이는 유통분이 된다. 곧 문저하종 체내의 본문은 말법 유통 법체의 설명이 되므로 문저하종의 유통분이 되며, 그 본문 체내의 적문도 문저하종의 유통분이 된다.

나아가 문저하종삼단의 유통분은 법화경 본적 이문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 복강 때의 법화경을 비롯해 중간의 모든 경, 금일의 이전 경 · 적문의 가르침, 나아가 삼세시방 제불의 미진의 경들도 체외의 측면에서는 문저하종의 서분이 된다는 것을 앞에서 보았는데, 마찬가지로 이 서분의 모든 경이 체내의 측면에서는 모두 문저하종의 유통분이 된다. 대성인은 「소야입도전허어서」에서 「이 대법을 홍통하게 하는 법에는 반드시 일대의 성교를 안치하고 팔종의 장소를 습학해야 한다(此の大法を弘通せしむるの法には必ず一代の聖教を安置し八宗の章疏を習学すべし)」(1038쪽)고 하시어, 석존의 일대성교만이 아니라 정 · 상 두 시대에 유포한 팔종의 장소도 모두 대성인이 펴시는 문저하종 대법의 유통분이 됨을 보이셨다. 니치칸 상인도 『관심본존초 문단』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文底下種の三段とは、正宗は前の如く久遠元初の唯密の正法を以て正宗と為す。総じて一代五十余年の諸教、十方三世の微塵の経々並びに八宗の章疏を以て、或は序分に属し、或は流通に属す。

문저하종의 삼단이란, 정종은 앞에서와 같이 구원원초의 유밀(唯密)의 정법으로써 정종으로 삼는다. 총체적으로 일대 오십여 년의 모든 가르침, 시방삼세의 미진의 경들, 아울러 팔종의 장소로써 혹은 서분에 붙이고 혹은 유통에 붙인다.

니치칸 상인, 『관심본존초 문단』

今この三段は三世の諸仏の微塵の経々一塵も余すことなく、十方世界の仏法の露一滴も漏らさず、皆咸く文底下種の序・流通なり

지금 이 삼단은 삼세 제불의 미진의 경들을 한 티끌도 남김없이, 시방세계 불법의 이슬 한 방울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다 문저하종의 서 · 유통이다.

니치칸 상인, 『관심본존초 문단』

이처럼 일체의 경교가 문저하종의 서분이 되고 유통분이 되는데, 둘 사이에는 저절로 구별이 있다. 그 경교들의 당분의 측면은 서분이고, 문저하종 불법의 체내의 측면에서 붙잡으면 유통분이 된다.

다만 일체의 경교가 체내의 측면에서 문저하종삼단의 유통분에 속한다 하더라도, 유통의 법체는 어디까지나 정종분인 내증의 수량품이 드러내는 묘법연화경의 오자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문저하종삼단에서는 정종분의 소전이 곧 유통의 법체다. 니치칸 상인은 이렇게 말한다. 「재세의 본문, 탈불 소설의 정종은 재세를 위한 것이어서 말법 하종의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유통의 정체로 삼지 않는다. 말법의 본문, 하종의 부처 소설의 정종은 바로 말법 하종을 위한 것이므로 말법 유통의 정체로 삼는다(在世の本門、脱仏所説の正宗はこれ在世の為にして、末法下種の法に非ず。故に流通の正体と為さず。末法の本門、下種の仏の所説の正宗は正しく末法下種の為なり、故に末法流通の正体と為す).」

재세의 중생은 문상 본문의 정종분인 수량품을 듣고 득탈했다. 그 득탈의 근저에는 구원원초 하종 법체의 깨달음이 있다 해도, 문상 탈익의 정종분은 어디까지나 재세 중생의 득탈을 위한 것이며 그 자체가 말법 만 년의 유통의 정체는 아니다. 이에 비해 내증의 수량품, 곧 구원원초의 부처를 밝혔다는 입장에서 읽는 수량품이어야 말법 유통의 정체인 구원원초의 하종의 법체를 드러낸다. 재세에는 정종분이 중심이었으나 멸후에는 유통이 전면에 선다. 『어의구전』이 「총체적으로 유통이란 미래 당금을 위한 것」이라고 하신 뜻이 여기서 다시 확인된다.

정리 — 대성인의 일품이반과 문저하종삼단

이 어서에서 밝히신 대성인이 세우신 일품이반과 「관심의 본존초」에서 밝히신 문저하종삼단의 관계를 니치칸 상인의 가르침에 따라 살펴보았다. 다소 복잡하므로 강의를 따라 조목별로 정리해 둔다.

① 대성인은 천태대사가 법화경 본문의 정종분으로 삼은 일품이반에서 종지용출품의 약개근현원 부분을 빼시고, 용출품의 동집생의 이후를 정종분의 일품이반으로 삼아 이를 광개근현원으로 자리매김하셨다. ②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은 재세 중생의 득탈을 위해 설해진 가르침이고, 대성인이 세우신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은 오로지 멸후를 위해 설해진 가르침이다. ③ 천태대사가 세운 일품이반은 문상 탈익삼단의 정종분이고, 대성인이 세우신 일품이반은 문저하종삼단의 정종분에 해당한다. ④ 대성인이 세우신 일품이반은 상행보살이 멸후 홍통을 위해 석존에게서 부촉받은 「내증의 수량품」과 완전히 같은 뜻이다. ⑤ 「대성인이 세우신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 = 문저하종삼단의 정종분 = 내증의 수량품」은 수량품 문저에 감추어진 구원원초 하종의 법체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를 밝히는 교법이다. ⑥ 그 소전의 측면인 「묘법연화경의 오자」는 구원원초 하종의 법체이면서 동시에 말법 유통의 정체다. 곧 문저하종삼단에서는 정종분의 소전의 법체가 곧 유통의 법체가 된다. ⑦ 문저하종삼단에서는 법화경 문상의 본적 이문을 비롯한 석존의 일대성교와 삼세 제불의 미진의 경들의 체외의 측면을 서분으로, 같은 경교들의 체내의 측면을 유통분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정종분의 소전의 법체인 「묘법연화경의 오자」가 드러났을 때 서분인 일체 경교의 당분의 측면은 깨뜨려지고, 그 체내의 측면은 「묘법연화경의 오자」의 유통분으로 쓰인다.

이 장의 본문은 단 석 줄이다. 그러나 「본문에 두 마음이 있다」는 짧은 판정은 천태대사 이래의 본문 해석을 뒤집는 판정이며, 「관심의 본존초」의 오중삼단과 「내증의 수량품」의 법문을 이 어서 안에 압축해 넣은 판정이다. 다음 제9장은 그 첫째 마음, 곧 약개근현원으로 재세의 중생이 어떻게 득탈했는가를 자세히 밝힌다.

제9장 약개근현원에 의한 재세 중생의 득탈을 밝히다
어서 334쪽 6~14행 · 第九 略開近顕遠による在世衆生の得脱を明かす

본문

本文 · 其の一어서 334쪽 6~11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曰く略開近顕遠の心如何、 答えて曰く文殊弥勒等の諸大菩薩・梵天・帝釈・日月・衆星・竜王等初成道の時より般若経に至る已来は一人も釈尊の御弟子に非ず 此等の菩薩天人は初成道の時仏未だ説法したまわざる已前に不思議解脱に住して我と別円二教を演説す 釈尊其の後に阿含・方等・般若を宣説し給う然りと雖も全く此等の諸人の得分に非ず、 既に別円二教を知りぬれば蔵通をも又知れり勝は劣を兼ぬる是なり 委細に之を論ぜば或は釈尊の師匠なるか善知識とは是なり釈尊に随うに非ず、 法華経の迹門の八品に来至して始めて未聞の法を聞いて此等の人人は弟子と成りぬ

풀이

물어 이르되, 약개근현원의 마음은 어떠한가. 답하여 이르되, 문수 · 미륵 등의 모든 대보살과 범천 · 제석 · 일월 · 중성 · 용왕 등은 처음 성도하신 때로부터 반야경에 이르기까지는 한 사람도 석존의 제자가 아니었느니라. 이들 보살과 천인은 처음 성도하신 때 부처가 아직 설법하시지 않은 이전에 부사의해탈에 머물러 스스로 별교 · 원교 두 가르침을 연설하였느니라. 석존은 그 뒤에 아함 · 방등 · 반야를 펴서 설하셨으나, 이는 전혀 이 사람들이 얻을 몫이 아니었느니라. 이미 별 · 원 두 가르침을 알았으니 장교 · 통교도 또한 알았느니라. 뛰어난 것은 못한 것을 겸한다 함이 이것이니라. 자세히 이를 논한다면 혹은 석존의 스승이라 할까. 선지식이란 이것이니라. 석존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법화경 적문의 팔품에 이르러 비로소 아직 듣지 못한 법을 듣고서 이 사람들은 제자가 되었느니라.

本文 · 其の二어서 334쪽 11~14행
本文 · 어서 원문

舎利弗目連等は鹿苑より已来初発心の弟子なり、然りと雖も権法のみを許せり、 今法華経に来至して実法を授与し法華経本門の略開近顕遠に来至して華厳よりの大菩薩・二乗・大梵天・帝釈・日月・四天・竜王等は位妙覚に隣り又妙覚の位に入るなり、 若し爾れば今我等天に向つて之を見れば生身の妙覚の仏本位に居して衆生を利益する是なり。

풀이

사리불 · 목련 등은 녹야원 이래 처음 발심한 제자이니라. 그러나 권법(権法)만을 허락하셨느니라. 이제 법화경에 이르러 실법(実法)을 주시고, 법화경 본문의 약개근현원에 이르러 화엄 때부터의 대보살 · 이승 · 대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 · 용왕 등은 지위가 묘각에 이웃하고 또 묘각의 지위에 들었느니라.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하늘을 향해 이를 보면, 생신(生身)의 묘각의 부처가 본래의 자리에 머물러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이 이것이니라.

어구 풀이

略開近顕遠の心약개근현원의 마음
약개근현원의 설법 목적. 강의는 여기의 약개근현원이 용출품의 그 대목만이 아니라, 재세 중생의 득탈을 위해 설해진 법문 전체, 곧 천태대사가 세운 「약개근현원의 일품이반」과 같은 뜻이라고 본다.
初成道처음 성도
석존이 부다가야에서 처음 깨달음을 이룬 때. 천태의 오시로는 그 직후 화엄경을 설한 화엄시에 해당한다. 법화경 수량품 이전의 이전 경은 모두 이 시성정각의 부처가 설한 경이다.
不思議解脱부사의해탈
화엄경에 등장하는 보살 · 천인들이 과거세에 선근을 닦아 이미 도달해 있던 경지. 그 경지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갖가지 힘을 갖추었다고 한다. 『화엄경』 세주묘엄품은 집금강신 등 여러 대중에 대해 이 경지를 서술한다.
別円二教별 · 원 두 가르침
천태의 화법 사교(장 · 통 · 별 · 원) 가운데 뒤의 둘. 별교는 이승을 빼고 보살만을 위해 차례로 닦는 수행을 설한 가르침, 원교는 원융하여 한 수행에 모든 수행의 덕을 갖추는 가르침이다. 화엄경에서는 법혜 · 공덕림 · 금강당 · 금강장 보살이 십주 · 십행 · 십회향 · 십지의 법문을 설한다.
勝は劣を兼ぬる뛰어난 것은 못한 것을 겸한다
별 · 원을 아는 이는 그 갈래인 장 · 통도 저절로 안다는 뜻. 「개목초」는 「장 · 통 두 가르침은 또 별 · 원의 지류다. 별 · 원 두 가르침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장 · 통 두 가르침을 안다」고 하신다.
善知識선지식
정직하고 덕 있는 좋은 벗. 어떤 사람이 불도를 이루는 데 좋은 인연이 되는 사람. 본래 스승이라고도 제자라고도 정해지지 않은 존재다. 천태대사는 외호 · 동행 · 교수의 세 가지 선지식으로 나누었다.
未聞の法아직 듣지 못한 법
적문 정종분의 개삼현일로 밝혀진 「일불승」. 부사의해탈에 머문 보살 · 천인에게도 이 법은 처음 듣는 법이었다.
鹿苑녹원
녹야원. 석존이 성도 후 처음으로 다섯 비구에게 법을 설한 곳. 천태의 오시로는 아함시. 사리불 · 목련 등 성문은 이때 이래의 제자다.
権法 · 実法권법 · 실법
권(権)은 임시 방편, 실(実)은 진실.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3하에서 열 가지 관점으로 권실을 밝혔다. 강의는 본문의 「권법」 · 「실법」을 구계의 권법과 불계의 실법으로 읽는다.
位妙覚に隣り지위가 묘각에 이웃하다
묘각 바로 아래의 지위, 곧 등각. 『법화현의』 서왕의 「位大覚に鄰る」를 밟은 표현으로 본다.
等覚 · 妙覚등각 · 묘각
원교 오십이위의 맨 위 둘. 등각은 근본 무명(원품의 무명)을 관하는 데까지 이르러 깨달음이 묘각과 같다고 하나 아직 그것을 끊지 못한 보살의 최고위, 묘각은 그것을 끊어 무상의 불과를 이룬 부처의 지위.
名字妙覚명자묘각
육즉의 둘째 명자즉의 범부 자리에서 단혹의 차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묘각에 이르는 것. 니치칸 상인이 「내증의 수량품」의 성불관으로 드는 말이다.
生身の妙覚の仏생신의 묘각의 부처
「생신」은 「법신」에 대한 말로, 천계 · 인계 등의 몸으로 나타나 있는 모습. 생신 그대로 묘각의 지위에 든 부처. 니치칸 상인은 이를 「명자묘각의 부처」라고 풀이한다.
本位に居して본래의 자리에 머물러
니치칸 상인은 「본위」를 본래의 구원 명자의 묘각의 지위로, 「거(居)」를 그 자리를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약개근현원의 마음」 — 세 마디로 읽는 답

제8장에서 대성인은 「본문의 마음」에 두 가지가 있다고 하셨다. 첫째는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이 앞의 사미와 적문의 모든 대중을 득탈하게 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이 오로지 멸후를 위함이라는 것이다. 제9장은 그 첫째 마음을 더 자세히 밝혀 그 의의를 드러낸다.

첫머리의 물음 「약개근현원의 마음은 어떠한가」는 약개근현원 설법의 목적, 그 의도하는 바를 묻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답으로 대성인 자신의 자리에서 본 「약개근현원의 마음」이 논해진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강의는 이 장에서 말하는 「약개근현원」이 용출품의 약개근현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재세 중생의 득탈을 위해 설해진 법문, 곧 천태대사가 세운 「약개근현원의 일품이반」과 같은 뜻이라고 본다. 대성인은 수량품의 문저에 감추어진 말법 유포의 법체를 밝히는 「내증의 수량품」만을 「광개근현원」이라 하시기 때문에, 말법 유포의 법체를 밝히지 않는 문상의 일품이반을 「약개근현원」이라 부르신다. 제8장에서 니치칸 상인이 「문상의 측면을 물려 용출품의 약개근현원에 붙였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 「약개근현원으로 재세의 중생이 묘각에 들었다」고 하실 때, 그것은 문상 본문 전체의 설법을 들은 재세 중생의 득탈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세 마디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첫째 마디는 「문수 · 미륵 등의 모든 대보살과 범천 · 제석 · 일월 · 중성 · 용왕 등은 … 법화경 적문의 팔품에 이르러 비로소 아직 듣지 못한 법을 듣고서 이 사람들은 제자가 되었느니라」까지다. 재세의 중생 가운데 석존의 설법 이전, 곧 화엄경 때 이미 부사의해탈의 경지에 머물러 스스로 별 · 원 두 가르침을 알고 있던 보살 · 천인들에게, 이전 경에서 장 · 통 · 별 · 원 사교를 설하던 단계의 석존은 스승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이 법화경에 이르러 아직 듣지 못한 법을 듣고서 처음으로 석존을 스승으로 우러러 따르는 자리에 섰다는 것이다.

둘째 마디는 「사리불 · 목련 등은 녹야원 이래 처음 발심한 제자이니라 … 또 묘각의 지위에 들었느니라」까지다. 먼저 석존을 따라 처음 발심한 사리불 · 목련 등 이승의 제자를 드신다. 그들은 처음부터 석존의 제자였으나 이전 경에서는 권법만을 배웠고, 법화경에 이르러 비로소 실법을 받았다. 이어 이 이승도, 앞의 보살 · 천인 등도 법화경 본문의 약개근현원 설법을 듣고 등각의 지위에 이르렀고 또 묘각의 지위에 들 수 있었다고 하시어, 약개근현원으로 재세 중생이 득탈했음을 분명히 하신다. 등각에 이르렀다는 것은 일왕, 재세 중생이 지위의 차례를 거쳐 도달한 문상의 궁극적인 해탈의 모습을 보이신 것이다. 묘각의 지위에 들었다는 것은 재왕, 문저에서 본 해탈의 모습으로, 문저하종의 법체를 깨달아 구원 명자묘각의 극위에 이르렀음을 보이신 것이다.

셋째 마디는 마지막의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하늘을 향해 이를 보면 생신의 묘각의 부처가 본래의 자리에 머물러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이 이것이니라」이다. 약개근현원의 설법으로 보살 · 이승 · 제천 등 재세 중생이 묘각의 지위에 이르렀다는 것이 말법의 중생에게 어떤 의의를 지니는가를 보이신 대목이다. 범천 · 제석 · 사천 · 일월 등 제천은 생신의 묘각의 부처가 각각 본래의 자리에 머물러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모습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화엄의 보살 · 천인과 석존 — 제자도 스승도 아닌 자리

화엄경에 등장하는 대중

첫째 마디에서 대성인은 문수 · 미륵 등의 대보살과 범천 · 제석 · 일월 · 중성 · 용왕 등이 석존의 처음 성도 때 법을 설하기 이전부터 부사의해탈의 경지에 있었다고 하신다. 이는 화엄경의 설법 모습에 근거한 말씀이다.

『화엄경』 권1의 세주묘엄품 제1에는 보살 이하 사십 종의 중생이 등장하며,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도달한 경지와 중생 교화에서 맡는 역할 등이 서술된다. 이 어서에 열거된 중생 가운데 세주묘엄품에 등장하는 것은 범천 · 제석 · 일월 · 중성 · 용왕이다. 보살에 대해서는 같은 품에 보현보살을 비롯한 스무 보살의 이름이 나오지만, 이 어서에 든 문수 · 미륵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두 보살은 입법계품 제39에서 선재동자의 선지식으로 등장하며, 특히 문수사리보살은 다른 중요한 품들에서 설법자로 나와 보현보살과 함께 이 경 보살들 가운데 중심적인 보살이라 할 수 있다. 강의는 대성인이 이 어서에서 문수와 미륵의 이름을 드신 것은 두 보살이 법화경 회좌에 참석하여 법화경의 전개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맡은 대표적 보살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문수는 서품에서 미륵의 물음에 답해 법화경이 설해질 것을 밝히고, 미륵은 종지용출품에서 의청하여 여래수량품 제16이 설해지는 기연을 만든다.

「부사의해탈」은 이 중생들이 과거세에 선근을 닦아 도달해 있던 경지로, 그 경지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갖가지 힘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십 종 대중 가운데 집금강신에 대해 『화엄경』은 이렇게 서술한다.

皆往昔無量劫の中に於いて、恒に大願を発す。願って常に諸仏に親近し供養し、願に随って行ずる所は、已に円満なることを得て彼岸に到り、無辺の清浄なる福業を積集し、諸の三昧の所行の境に於いて悉く已に明達し、神通力を獲て如来の住に随い不思議解脱の境界に入り

모두 지난날 무량한 겁 동안 늘 큰 서원을 일으켰다. 늘 제불을 가까이하고 공양하기를 원했고, 서원에 따라 행한 바가 이미 원만해져 피안에 이르렀으며, 가없는 청정한 복업을 쌓았고, 모든 삼매가 행하는 경계에 대해 모두 이미 밝게 통달했으며, 신통력을 얻어 여래가 머무는 곳을 따라 부사의해탈의 경계에 들었다.

『화엄경』 세주묘엄품

집금강신이 부사의해탈의 경계에 이르러 있었음을 서술한 대목인데, 다른 대중에 대해서도 비슷한 표현이 보인다.

또 이 어서는 이 중생들이 석존 이전부터 스스로 「별 · 원 두 가르침을 연설하였다」고 하신다. 화엄경은 석존 성도 후 최초의 설법이라 하고 비로자나불이 경의 근본 존주라 하지만, 실제로는 석존도 비로자나불도 설법하지 않고 대신 여러 보살 · 천왕 · 선신 등이 법을 설한다. 예를 들어 법혜 · 공덕림 · 금강당 · 금강장의 네 보살이 각각 십주 · 십행 · 십회향 · 십지의 법문을 설한다. 그리고 이 법문들의 내용이 화법 사교로 말하면 「별 · 원 두 가르침」에 해당한다.

제자가 아니다 · 스승이다 · 선지식이다

이 어서는 아함 · 방등 · 반야의 이전 경에서 석존이 설한 장 · 통 · 별 · 원 사교가 화엄경에서 부사의해탈에 머문 보살 · 천인이 설한 별 · 원 두 가르침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하시고, 이 점에서 이전 경을 설한 석존과 화엄경의 보살 · 천인 사이의 관계를 세 가지로 결론지으신다.

① 보살 · 천인은 석존의 제자가 아니다. ② 보살은 오히려 석존의 스승이다. ③ 화엄경의 보살 · 천인은 석존의 선지식이다.

「개목초」에도 같은 가르침이 있으므로, 그것을 보며 이 어서의 뜻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보살 · 천인은 석존의 제자가 아니다」에 대해 「개목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総じて華厳会座の大菩薩・天竜等は釈尊以前に不思議解脱に住せる大菩薩なり、釈尊の過去・因位の御弟子にや有るらん・十方世界の先仏の御弟子にや有るらん、一代教主・始成の正覚の仏の弟子にはあらず

총체적으로 화엄 회좌의 대보살 · 천룡 등은 석존 이전에 부사의해탈에 머문 대보살이다. 석존의 과거 인위 때의 제자일까, 시방세계 앞선 부처의 제자일까. 일대 교주인 시성정각 부처의 제자는 아니다.

「개목초」, 207쪽

화엄경의 보살 · 천인 등은 석존이 가르침을 설하기 이전부터 부사의해탈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으니, 석존의 과거 인위 때의 제자이거나 과거 부처의 제자였을지는 모르지만, 시성정각의 석존의 제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보살은 오히려 석존의 스승이다」에 대해 「개목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方等・般若の別・円.二教は華厳経の別・円・二教の義趣をいでず、彼の別・円・二教は教主釈尊の別・円・二教にはあらず、法慧等の別円二教なり、此等の大菩薩は人目には仏の御弟子かとは見ゆれども仏の御師とも・いゐぬべし、世尊・彼の菩薩の所説を聴聞して智発して後・重ねて方等・般若の別・円をとけり、色もかわらぬ華厳経の別・円・二教なり、されば此等の大菩薩は釈尊の師なり……されば前四味の間は教主釈尊・法慧菩薩等の御弟子なり、例せば文殊は釈尊九代の御師と申すがごとし

방등 · 반야의 별 · 원 두 가르침은 화엄경의 별 · 원 두 가르침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 별 · 원 두 가르침은 교주 석존의 별 · 원 두 가르침이 아니라 법혜 등의 별 · 원 두 가르침이다. 이 대보살들은 사람 눈에는 부처의 제자인가 보이지만 부처의 스승이라고도 할 만하다. 세존이 그 보살들이 설한 바를 듣고 지혜가 일어난 뒤 거듭 방등 · 반야의 별 · 원을 설하셨으니, 빛깔도 바뀌지 않은 화엄경의 별 · 원 두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이 대보살들은 석존의 스승이다. …… 그러므로 앞의 사미 동안은 교주 석존은 법혜보살 등의 제자이다. 비유하면 문수는 석존의 구대(九代)의 스승이라 하는 것과 같다.

「개목초」, 207쪽

석존은 화엄경 회좌에서 법혜 등 여러 대보살이 설하는 별 · 원 두 가르침을 듣고 그에 촉발되어 뒤의 방등시 · 반야시에 같은 별 · 원 두 가르침을 설했으니, 화엄경의 보살은 오히려 석존의 스승이라는 것이다. 화엄경의 대보살들이 설한 별 · 원 두 가르침과 석존이 이전 경에서 설한 장 · 통 · 별 · 원 사교를 견주어, 그 교법의 내용과 설법의 앞뒤 관계로 보면 화엄경의 대보살들은 석존의 스승이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화엄경의 보살 · 천인은 석존의 선지식이다」에 대해 「개목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華厳経に此等の菩薩をかずへて善知識ととかれしはこれなり、善知識と申すは一向・師にもあらず一向・弟子にもあらずある事なり、蔵・通・二教は又・別・円の枝流なり別・円・二教をしる人必ず蔵・通・二教をしるべし、人の師と申すは弟子のしらぬ事を教えたるが師にては候なり

화엄경에 이 보살들을 헤아려 선지식이라 설한 것이 이것이다. 선지식이란 한결같이 스승도 아니고 한결같이 제자도 아닌 것이다. 장 · 통 두 가르침은 또 별 · 원의 지류이다. 별 · 원 두 가르침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장 · 통 두 가르침을 안다. 사람의 스승이란 제자가 모르는 일을 가르치는 것이 스승이다.

「개목초」, 208쪽

이 말씀대로 화엄경에는 많은 보살의 이름을 들고, 그 보살들이 모두 과거세에 비로자나불의 선지식이었다고 서술한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예를 들어 육십권 『화엄경』에서는 시방세계 미진수의 대보살에 대해 「모두 노사나불의 숙세의 좋은 벗으로서 일체가 공덕의 큰 바다를 이루었다」, 「모두 노사나여래 응공 등정각이 보살도를 행하여 무량한 모든 법문을 닦아 익힐 때의 선지식이다」 등으로 말하고, 팔십권 『화엄경』의 해당 대목에서는 「이 모든 보살은 지난날 모두 비로자나여래와 함께 선근을 모으고 보살의 행을 닦았으며, 모두 여래의 선근의 바다에서 났다」, 「이와 같은 보살은 모두 비로자나여래와 함께 지난날 같이 선근을 심고 보살의 행을 닦았다」 등으로 말한다. 보살들은 과거에 비로자나불이 보살행을 닦을 때의 선지식이었던 것이다.

또 육십권 『화엄경』 입법계품 제34에는 「중생이 있어 여래의 자재한 신통력을 보고 듣고 생각하여 아는 것은 모두 부처의 숙세의 선지식이다」라고 하여, 보살에 한하지 않고 여래의 자재한 신통력을 보고 듣고 생각하여 아는 화엄 회좌의 보살 · 인천 등은 모두 비로자나불의 과거 무량광겁의 보살행 과정에서의 선지식이었다고 한다.

그 보살 시절의 선지식이 숙세의 인연으로 화엄 회좌에 와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의 회좌에서는 석존의 스승이라고도 제자라고도 할 수 없는 존재다. 그 위에 굳이 화엄시 이후 아함 · 방등을 거쳐 반야에 이르는 이전 경에서 석존과 보살 · 인천 사이의 사제 관계를 말한다면, 먼저 화엄시에 보살 · 천인 등이 별 · 원 두 가르침을 설하고 그 뒤 아함 · 방등 · 반야의 세 시기에 석존이 그와 같은 별 · 원 두 가르침, 혹은 그보다 못한 장 · 통 두 가르침을 설했으니, 설법의 내용과 앞뒤 관계로 보면 오히려 보살 · 천인 쪽이 석존의 스승이라는 것이다.

  1. ① 제자가 아니다一代教主・始成の正覚の仏の弟子にはあらず일대 교주인 시성정각 부처의 제자는 아니다석존 이전부터 부사의해탈에 머묾
  2. ② 오히려 스승이다世尊・彼の菩薩の所説を聴聞して智発して後・重ねて方等・般若の別・円をとけり세존이 그 보살들이 설한 바를 듣고 지혜가 일어난 뒤 거듭 방등 · 반야의 별 · 원을 설하셨다화엄시 보살의 별 · 원 → 방등 · 반야시 석존의 별 · 원(빛깔도 바뀌지 않음)
  3. ③ 선지식이다善知識と申すは一向・師にもあらず一向・弟子にもあらずある事なり선지식이란 한결같이 스승도 아니고 한결같이 제자도 아닌 것비로자나불의 숙세의 좋은 벗
법화경 적문 팔품에서 「未聞の法」(아직 듣지 못한 법)을 듣고 비로소 제자가 됨
도표 10 · 이전 경에서 석존과 화엄의 보살 · 천인

선지식이란 무엇인가 — 화엄 · 법화 · 천태에서 수호국가론까지

여기서 잠시 이 어서의 문맥을 떠나 「선지식」 자체의 의의를 살펴 두자.

선지식이란 정직하고 덕 있는 좋은 벗으로, 어떤 사람이 불도를 이루는 데 좋은 인연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수행을 나아가게 하는 좋은 인연이 되는 사람은 모두 선지식이며, 그런 의미에서 선지식은 본래 스승이라고도 제자라고도 정해지지 않은 존재다.

화엄경 입법계품 — 선재동자와 쉰셋의 선지식

『화엄경』 입법계품에는 쉰세 명의 선지식을 찾아가 수행한 선재동자의 이야기가 설해진다. 그 선지식 가운데는 보현 · 문수 · 미륵 등 여러 보살과 천신 · 여신 외에 재가의 장자나 거사, 나아가 신분이 낮은 남녀와 동자까지 있어, 나이와 처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선지식이 될 수 있음을 보인다. 또 같은 품은 열 가지 비유로 선지식의 뛰어난 작용을 밝힌다.

善知識は則ち慈母為り、仏家に生ずるが故に、善知識は則ち慈父為り、無量の事を以て衆生を益するが故に、善知識は則ち養育為り、守護して一切の悪を為さざらしむ故に、善知識は則ち大師為り、教化して菩薩の戒を学ばしむるが故に、善知識は則ち導師為り、教化して彼岸の道に至らしむるが故に、善知識は則ち良医たり、一切の煩悩の患を治癒するが故に、善知識は則ち雪山為り、明浄智慧の葉を長養するが故に、善知識は則ち勇猛たり、一切の諸の恐怖を防護するが故に、善知識は則ち牢船為り、悉く生死の海を越度せしむるが故に、善知識は則ち船師為り、一切の法宝の洲にいたらしむるが故に

선지식은 곧 자애로운 어머니이니 부처의 집안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곧 자애로운 아버지이니 무량한 일로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곧 기르는 이이니 지켜서 일체의 악을 짓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곧 큰 스승이니 교화하여 보살의 계를 배우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곧 인도하는 스승이니 교화하여 피안의 길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곧 좋은 의사이니 일체 번뇌의 병을 고치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곧 설산이니 밝고 깨끗한 지혜의 잎을 길러 내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곧 용맹한 이이니 일체의 모든 두려움을 막아 지키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곧 튼튼한 배이니 모두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곧 뱃사공이니 일체 법보의 섬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화엄경』 입법계품

이에 따르면 선지식이 스승으로서의 측면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이 문은 선지식이 가져다주는 수행상의 효과를 보인 것이지, 선지식이 곧 스승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수행자에게 이러한 수행상의 효과를 가져다주는 존재는 모두 선지식이다.

법화경 묘장엄왕본사품 — 선지식은 큰 인연

법화경에서는 묘장엄왕본사품 제27에 선지식의 의의가 이렇게 설해진다.

若し善男子、善女人、善根を植えたるが故に、世世に善知識を得。其の善知識は、能く仏事を作し、示教利喜にして阿耨多羅三藐三菩提に入らしむ、大王当に知るべし。善知識は、是れ大因縁なり。所謂化導して仏を見ることを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の心を発さしむ

만약 선남자 · 선여인이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세세에 선지식을 얻는다. 그 선지식은 능히 불사를 짓고, 보여 주고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들게 한다. 대왕이여 마땅히 알라. 선지식은 큰 인연이다. 이른바 교화하고 인도하여 부처를 볼 수 있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묘법연화경』 묘장엄왕본사품 제27

선지식이란 수행자의 과거 선근으로 얻어지는 존재이며, 정각을 이루는 큰 인연이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선근으로 얻은 선지식이 다시 지금의 불도 수행의 큰 인연이 된다.

천태의 세 가지 선지식 — 외호 · 동행 · 교수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10하에서 앞의 묘장엄왕본사품 문을 풀이하여 선지식을 「외호」 · 「동행」 · 「교수」의 세 가지로 나눈다. 「능히 불사를 짓는다」는 것은 외호의 선지식, 「교화하고 인도하여 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은 동행의 선지식, 「보여 주고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여 보리에 들게 한다」는 것은 교수의 선지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불도 수행을 촉진하는 선지식의 덕용을 나눈 것이며, 앞에서 본 화엄경 입법계품의 열 가지 뛰어난 덕은 모두 이 세 가지 안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마하지관』 권4하는 이 세 가지 선지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저 외호의 선지식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듯, 범이 새끼를 물고 다니듯 알맞게 조화를 얻는다. 예전에 도를 행해 본 사람이라야 능히 할 수 있다」고 한다. 불도를 수행할 때 밖에서 보호하여 수행을 이루도록 돕는 선배가 외호의 선지식이다.

다음으로 동행의 선지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更に相策発して、眠らず散せず、日に其の新たなること有りて、切磋琢磨し、心を同じうして志を斉うして、一船に乗るが如く、互いに相敬重して、世尊を視るが如くす

서로 채찍질하여 일깨우며 잠들지 않고 흩어지지 않으며, 날마다 새로워짐이 있어 절차탁마하고,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가지런히 하여 한 배를 탄 것처럼 서로 공경하고 존중하기를 세존을 보듯 한다.

『마하지관』 권4하

서로 격려하고 절차탁마하여 보리심을 날마다 새롭게 해 가는 동지가 동행의 선지식이다.

교수의 선지식에 대해서는 「능히 반야를 설하여 도와 도 아닌 것을 보이고, 안팎의 방편과 통하고 막히는 장애를 모두 능히 결단해 준다. 교묘하게 법을 설하여 보여 주고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깨뜨린다」고 한다. 가르침을 보이며 보리로 이끌어 들이는 스승 같은 존재가 교수의 선지식이다.

나아가 『마하지관』은 관심에 맞추어 이 세 가지 선지식의 의의를 밝히는데, 그 가운데 법성의 이치야말로 능히 지혜를 일으키므로 관심에서의 교수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수호국가론 — 말대의 참된 선지식은 법화경

다음으로 선지식에 대한 대성인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말대 범부의 수행에서 선지식의 중요성을 설하셨는데, 그 가운데서도 선지식의 본질을 밝히신 것은 「수호국가론」이다. 이 어서는 말대 범부를 위한 참된 선지식은 「법화경」이라고 하시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신다. 강의는 그 요지를 여덟 가지로 정리한다.

① 『마하지관』 권1하의 「혹은 지식을 따르고 혹은 경권을 따라 위에서 설한 일실의 보리를 듣는다」는 문을 인용하여, 일반적으로는 사람을 선지식으로 삼지만 말대에는 선지식이 될 대성인(大聖)이 없으므로 「법」을 선지식으로 삼는다고 하신다. ② 법화경 보현보살권발품 제28의 「만약 법화경이 염부제에 행해지는 것을 수지하는 이가 있다면 마땅히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모두 이는 보현의 위신력이다」라는 문을 인용하여, 말대의 범부가 법화경을 믿는 것은 보현보살이라는 선지식의 힘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③ 같은 보현품의 「만약 이 법화경을 수지하고 독송하고 바르게 억념하고 닦아 익히고 서사하는 이가 있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곧 석가모니불을 보는 것이다」라는 문을 인용하여, 법화경이 곧 석가여래라고 하신다. ④ 법화경 견보탑품 제11에서 두 문을 인용하여, 법화경의 명호를 부르는 곳에 다보여래와 시방의 제불이 와 이른다고 하신다. ⑤ 법화경을 믿는 이에게 와 이르는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과 보현보살이야말로 실경(実経)의 선지식이라고 하신다. ⑥ 『열반경』 권6의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고 식에 의지하지 말라」는 문을 인용하여, 법화경의 상주의 법에 의지하지 않는 불보살은 참된 선지식이 아니라 하시고, 법화경에 의지하지 않는 권교의 선지식을 써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⑦ 묘락대사의 「내훈(内薫)이 아니라면 어찌 능히 깨달음을 일으키겠는가. 그러므로 알라, 깨달음을 일으키는 힘은 진여에 있다. 그러므로 명훈(冥薫)으로 외호를 삼는다」는 말을 인용하여, 선지식의 작용으로 깨달음에 드는 근본은 내훈, 곧 자신의 불성이 안에서 훈발하는 데 있다고 밝히신다. ⑧ 십계호구를 설한 법화경으로만 자신의 불계에 들 수 있으므로 법화경이야말로 재세 · 멸후의 일체중생의 「참된 선지식」이라고 결론지으신다.

요컨대 참된 선지식이란 십계호구를 설하는 「법화경」이며, 그 법화경으로만 자신의 불성이 안에서 훈발하여 선지식의 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법화경 묘장엄왕본사품은 선지식이 수행자 자신의 「선근」을 인연으로 나타난다고 하고, 천태대사는 능히 지혜를 일으키는 「법성」이야말로 관심에서의 교수의 선지식이라 했다. 자신의 불계를 여는 「법화경」이라는 「법」이야말로 선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신 대성인의 가르침은, 묘장엄왕품이나 천태대사의 설을 말대 범부의 신심에 맞추어 더 분명히 보이신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이 어서가 화엄의 대보살을 「선지식」이라 부르실 때, 그 말에는 이 모든 뜻이 겹쳐 있다. 그들은 석존과 함께 수행해 온 벗이었고 이전 경에서는 오히려 스승 노릇을 했지만, 아직 일불승이라는 「법」을 몰랐다. 참된 선지식인 그 법을 들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석존의 제자가 되었다.

아직 듣지 못한 법 — 일불승의 개현과 보살 · 천인

이 어서는 화엄경의 보살 · 천인 등이 법화경 적문의 정종분인 팔품에 이르러 비로소 「아직 듣지 못한 법」을 듣고 석존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신다. 이 「아직 듣지 못한 법」은 적문 정종분의 개삼현일 설법으로 밝혀진 「일불승」을 가리킨다. 일불승이 보살 · 천인에게 아직 듣지 못한 법이었다는 것을 『무량의경』과 법화경 서품 · 방편품 · 비유품의 경문으로 확인해 두자.

무량의경과 서품 —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법화경의 개경인 『무량의경』은 「무량의는 한 법에서 생긴다(無量義とは一法より生ず)」고 설하여, 무량한 법이 생겨난 근원인 실상의 한 법이 있음을 밝힌다. 또 「사십여 년에는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四十余年には未だ真実を顕さず)」고 설하여 사십여 년의 이전 경에는 이 실상의 한 법을 개현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같은 경은 사십여 년의 모든 경으로 소승경 · 방등 제경 · 반야경 · 화엄경의 이름을 들어, 화엄경도 아직 실상을 개현하지 않은 경임을 보인다.

법화경에 들어와 서품 제1에서는 먼저 석존이 「무량의처삼매」에 든다. 무량의처삼매란 무량의의 근거가 되는 삼매로, 무량의가 돌아가는 실상의 한 법을 증득한 경지에 있으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 삼매에 든 석존은 미간의 백호에서 빛을 놓아 동방 일만팔천 세계를 비추고, 마침내 문수사리보살이 미륵보살의 물음에 답해 이 신변은 부처가 묘법연화경을 설하여 「제법실상의 뜻」을 밝힐 상서라고 말한다.

방편품 — 약개삼현일과 광개삼현일

그리고 적문 정종분 팔품의 첫머리인 방편품 제2에서 마침내 아직 듣지 못한 법이 설해진다.

석존은 먼저 부처가 이룬 법은 「무량무변 미증유의 법」이라 찬탄하고, 중생에게는 「제일 희유하고 알기 어려운 법」이라고 설한다. 부처는 법화경 이전에 중생이 갖가지 집착을 떠나게 하려고 갖가지 인연과 갖가지 비유를 써서 무수한 방편의 가르침을 설했는데, 그렇게 자재히 방편의 가르침을 설할 수 있는 까닭은 부처가 무량한 방편과 매우 깊은 미증유의 지견바라밀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 이룬 법 자체는 제일 희유하고 알기 어려운 법이며,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끝까지 다한 「제법의 실상」이다.

그리고 「매우 깊고 미묘한 법은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 「이 법은 보일 수 없으니 말의 모습이 적멸하다」 등으로 부처가 이룬 매우 깊은 묘법은 보이기 어렵고 설하기 어려우며, 성문 · 벽지불 · 새로 발심한 보살 · 불퇴의 여러 보살 등 부처 이외의 중생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부처가 이룬 묘법의 깊음을 찬탄하고 설하기 어려움을 강조한 뒤, 석존은 다시 「세존은 법이 오래된 뒤에 반드시 진실을 설하실 것이다(世尊は法久しくして後、要ず当に真実を説きたまうべし)」고 말한다. 부처는 오랫동안 삼승 방편의 교법을 설한 뒤에 반드시 진실의 묘법을 중생에게 설해 밝힌다는 것이다.

이상이 방편품의 「약개삼현일」 설법의 개요다. 이를 들은 성문 · 연각 · 천룡 · 보살 · 전륜성왕 등 법화경 회좌의 중생은 「부처의 내증의 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어째서 석존은 스스로 내증의 권지 · 실지를 찬탄하고 더구나 그 진실의 법을 반드시 설한다고 하셨는가」 하는 의심을 일으켰다.

그래서 사리불이 대표하여 이 의심을 말한 뒤 「합장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구족의 도를 듣고자 합니다」라고 청한다. 「구족의 도」란 부처가 찬탄한 내증의 법, 곧 일체법을 구족하고 무량의가 거기서 열려 나오는 매우 깊고 미증유한 실상의 한 법을 가리킨다. 이 청원의 말은 사리불만이 아니라 보살 · 천인 등을 포함한 법화경 회좌 모든 사람의 청원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구족의 도」는 보살 · 천인 등이 아직 들은 적이 없는 법이다.

이 청원에 대해 석존은 사리불에게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다시 설할 수 없다. 만약 이 일을 설하면 일체 세간의 모든 하늘과 사람이 모두 놀라고 의심하리라」고 하며 응하지 않는다. 사리불이 청원을 세 번 거듭하자 마침내 석존은 「네가 이미 은근히 세 번 청하였으니 어찌 설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며 아직 듣지 못한 법이 어떤 것인가를 설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광개삼현일」의 설법이다.

석존은 먼저 모든 부처는 오직 「일대사인연」을 위해 세상에 출현한다고 하고, 그 일대사인연을 이렇게 밝힌다.

衆生をして仏知見を開かしめ……衆生に仏知見を示さん……衆生をして仏知見を悟らしめん……衆生をして、仏知見の道に入らしめん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열게 하고 …… 중생에게 불지견을 보이고 ……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깨닫게 하고 ……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의 길에 들게 하려 한다.

『묘법연화경』 방편품 제2

「불지견」이란 방편품 첫머리에서 석존이 찬탄한 부처의 깨달음의 법, 곧 제법실상에 다름 아니다. 그 불지견을 중생에게 개 · 시 · 오 · 입하게 하는 것, 곧 중생을 성불시키는 것이 부처의 일대사인연이며, 부처의 출세 목적은 이것 말고는 없다. 석존은 또 이를 「여래는 다만 일불승으로써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한다. 다른 승인 둘이나 셋은 없다」, 「시방 불토 가운데 오직 일승의 법만 있을 뿐 둘도 없고 셋도 없다」고도 설한다. 「일불승」이란 중생을 성불시키는 유일한 가르침이며, 부처의 가르침은 이 일불승 말고는 없다는 것이 이 문들의 뜻이다.

또 「모든 불선근을 이루었기 때문에 제불이 방편력으로 일불승을 분별하여 셋이라 설한다」고 밝힌다. 중생의 기근을 성숙시키기 위해 부처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일불승을 성문승 · 연각승 · 보살승의 셋으로 나누어 설했고, 그러한 수연의 교법이 이전의 모든 경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법화경 방편품에서는 일불승이 개현되고, 지금까지 이전 경의 삼승의 교법은 모두 일불승을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중생에 대해서도 「제불여래는 다만 보살을 교화한다」, 「성문이나 보살이 내가 설한 법을 한 게송이라도 듣는다면 모두 성불함에 의심이 없다」고 하듯이 성문 · 연각 · 보살의 차별이 없어지고, 모든 중생이 정각을 이루어 성불할 보살로 하나가 된다. 수행에 대해서도 「모든 하는 일은 늘 한 가지 일을 위함이니, 오직 부처의 지견을 중생에게 보여 깨닫게 하려 함이다」라고 하여 모든 수행이 불지견을 여는 것으로 개회된다. 그리고 꽃 한 송이의 공양, 「한 손을 들거나 혹은 머리를 조금 숙이는」 것, 「한 번 나무불이라 부르는」 것 등의 예를 들어, 일불승의 법을 들은 이에게는 어떤 행도 모두 성불의 길이 된다고 한다.

이처럼 광개삼현일의 설법으로 일불승의 의의가 자세히 개현되고, 이전 경에서 분별되어 있던 교법 · 중생 · 수행이 일불승 아래 하나가 되었다. 또 「내가 본래 서원을 세워 일체 대중으로 하여금 나와 같이 같아서 다름이 없게 하고자 하였는데, 나의 옛 소원과 같이 이제 이미 만족하였다」고 하듯이, 일체중생을 불도에 들게 하는 것이 석존의 본래 서원이며 일불승을 설함으로써 그 본서원이 성취되었다고 한다.

보살의 의심이 풀리고, 제천이 처음 듣다

그러면 이 설법을 들은 보살 · 천인 등의 중생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먼저 보살에 대해 방편품은 「모든 보살 가운데에서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다만 무상도를 설하니, 보살은 이 법을 듣고 의심의 그물이 모두 이미 없어졌다」고 설한다. 물론 이전의 대승 제경에서도 법화경의 일불승과 비슷한 원교가 설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겸(兼) · 단(但) · 대(対) · 대(帯)라는 갖가지 형태로 방편을 설하는 가운데 설해진 것이어서, 원교가 유일한 교법이라는 취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보살들은 어떤 법이 참된 성불의 법인지 알지 못해 의심을 품어 왔다. 그런데 개삼현일의 설법에서는 일체의 방편을 버리고 무상도를 개현하여 일체중생을 성불시키는 것이 부처 교화의 궁극 목적임을 밝혔으므로, 이를 들음으로써 보살들의 의문이 얼음 녹듯 풀렸다. 그러므로 일불승을 설한 이 순원의 법은 바로 보살들에게 아직 듣지 못한 법이었다.

천인들에 대해서는 비유품 제3에 「우리는 예로부터 자주 세존의 법을 들었으나 아직 일찍이 이와 같이 깊고 묘한 최상의 법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은 범천 · 제석의 말인데, 전교대사는 『수호국계장』 권하에서 이 대목을 「『우리는 예로부터 자주 세존의 설법을 들었다』 함은 모두 법화 이전의 화엄 등의 대승을 들었다는 것이다. 『아직 일찍이 이와 같이 깊고 묘한 최상의 법을 듣지 못했다』 함은 아직 법화경 유일불승의 가르침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제천에게도 일불승의 가르침은 아직 듣지 못한 법이었던 것이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법화경 적문 개삼현일 설법의 의의에 대해 「또 이제부터야말로 모든 대보살도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 등도 교주 석존의 제자가 된 것이다(又今よりこそ諸大菩薩も梵帝・日月・四天等も教主釈尊の御弟子にては候へ)」(210쪽)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보살 · 천인 등이 석존의 제자가 된 증거로, 견보탑품에서 석존이 보살들에게 멸후 법화경 홍통을 간효하였고 모든 대보살 등이 이 간효에 응하려 했다는 것을 드신다. 제7장에서 본 「세 번의 칙선」이 이번에는 사제 관계 성립의 증거로 쓰이는 것이다.

화엄의 별 · 원 두 가르침과 법화경의 원교

이 어서는 석존이 아함 · 방등 · 반야의 이전 경에서 장 · 통 · 별 · 원 사교를 설했으나 이 이전의 사교는 화엄경에서 보살 · 천인이 설한 별 · 원 두 가르침을 넘어서지 않으며, 법화경의 원교야말로 화엄의 별 · 원 두 가르침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고 하신다. 강의를 따라 화엄경의 별 · 원 두 가르침과 법화경의 원교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해 둔다.

화엄경에서 보살 · 천인 등이 설한 교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십주 · 십행 · 십회향 · 십지 등 차례를 밟아 펼쳐지는(行布次第) 수행을 설한 별교, 다른 하나는 구역 『화엄경』에 「처음 발심할 때 곧 정각을 이룬다(初発心の時、便ち正覚を成ず)」고 하듯이 차례를 넘어 원융한 수행을 설한 원교다.

별교란 따로(別) 보살만을 소피의 근기로 하여 설한 가르침이다. 장 · 통 두 가르침이 성문 · 연각 · 보살의 삼승을 대상으로 하고, 원교가 삼승을 포섭한 넓은 의미의 보살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크게 달라서, 별교는 삼승 가운데서 이승을 빼고 좁은 의미의 보살만을 소피의 근기로 한다. 또 별교의 보살은 자기의 분별과 헤아림을 중심으로 수행을 진행해 가는 권기(権機)이지, 자기의 헤아림을 버리고 여래의 행에 철저한 원기(円機)의 보살이 아니다.

별교는 권기의 보살을 소피의 근기로 하므로 그 설하는 이치인 중도도 분별적으로 설해진다. 상대적인 현상을 초월한 절대 평등의 이치로서 중도가 설해지고, 그러므로 이 중도의 이치는 수행자가 미혹을 끊고 현상의 덮개를 걷어 냄으로써 드러난다고 한다. 그래서 별교에서는 중도의 이치에 공 · 가 · 중 삼제가 갖추어진다 해도 삼제 서로 사이에 간격이 있어 원교가 설하는 원융삼제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또 공 · 가 · 중 삼제를 관하는 일체지 · 도종지 · 일체종지의 삼지를 단계적으로 얻어 간다고 설하고, 단혹에 대해서도 견사 · 진사 · 무명의 삼혹은 별개의 것이므로 각각 따로 수행하여 끊어야 한다고 설한다.

이처럼 별교에서는 모든 면에서 분별적으로 설해지므로 그 행위(行位)도 단계적이다. 그 수행은 행자가 자기의 헤아림으로 분별적으로 진리를 증득하려는 소작으로 자리매김되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행이 개별적이며, 원교의 행처럼 한 행에 일체행의 덕을 갖춘 원만한 행이 아니다. 또 그 차례는 일정한 인을 쌓아 일정한 과를 얻음으로써 십주 · 십행 · 십회향 · 십지 등으로 차례로 올라가는 것이다. 별교가 행자의 사의 · 분별에 맞추어 설한 수타의의 가르침이라면, 원교는 부처의 내증의 불가사의한 경지를 그대로 설해 드러낸 수자의의 가르침이다.

원교가 설하는 이치는 별교와 같이 중도이지만, 별교가 현상을 초월한 원리로 중도를 세우는 데 비해 원교에서는 중도의 이치가 현상과 상즉한다고 설한다. 그러므로 별교처럼 미혹을 끊어 현상의 덮개를 걷고 이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현상 그 자체에서 이치를 직관해 갈 수 있다고 한다. 또 원교에서는 중도의 이치가 공 · 가 두 제와 상즉한다는 원융삼제를 설한다. 삼지도 한마음에 동시에 갖추어진다고 하며, 삼혹의 근본은 삼제원융의 중도의 이치에 대한 미혹인 무명이라고 한다.

원교의 수행은 행자의 분별을 기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여의 작용이 드러난 것이라 하므로, 낱낱의 수행은 진여를 증득한 부처의 생명을 행하는 여래행으로 자리매김된다. 그래서 한 행에 일체행을 이룬 부처의 덕이 갖추어지고, 한 지위에서 곧바로 불과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원교의 특색은 일체가 상즉하는 부처의 경지를 설해 드러낸 수자의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어 받는 데서 성립한다.

소피의 근기
별교이승을 뺀 좁은 의미의 보살(권기)
원교삼승을 포섭한 넓은 의미의 보살(원기)
중도
별교현상을 초월한 원리 · 미혹을 끊어 드러남
원교현상과 상즉 · 현상 그대로 직관
삼제
별교격역(隔歴)
원교원융
삼지 · 삼혹
별교단계적으로 얻고 따로 끊음
원교한마음에 동시에 갖춤 · 무명이 근본
수행
별교행자의 헤아림 · 하나하나 개별 · 십주 · 십행 · 십회향 · 십지로 차례로 오름
원교여래행 · 한 행에 일체행의 덕 · 한 지위에서 곧바로 불과
성격
별교수타의
원교수자의
화엄경의 원교 문初発心の時、便ち正覚を成ず처음 발심할 때 곧 정각을 이룬다
도표 11 · 별교와 원교

원교는 법화경에만 설해진 것이 아니라 화엄경 · 열반경 · 반야경 · 유마경 등 여러 대승경에도 설해진다. 화엄경의 원교의 예는 앞의 「처음 발심할 때 곧 정각을 이룬다」는 문이 보여 주며, 열반경에서 한마음에 오행이 갖추어진다고 설하는 것, 유마경에서 담복이라는 꽃이 그 향기로 다른 꽃의 향기를 동화시켜 버리듯 대승의 법에 드는 이는 모두 곧바로 부처의 덕을 갖춘다고 설하는 것 등도 원교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전 대승경의 원교는 원교 자체를 설해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설해진 것이 아니라 중생의 기근을 조숙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설해진 것이므로, 원교의 설은 있어도 전체로서는 방편 권교를 띠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별교를 겸하여 원교를 설하고, 유마경 등 방등의 모든 경은 사교를 각각 상대시켜 설하므로 원교도 포함되어 있으나 그 가르침의 뜻은 어디까지나 소승에 집착하는 이승을 탄가(弾訶)하는 데 있었다. 반야경에서는 소승과 대승을 융통하여 중생의 소승 집착을 씻어 내기 위해 원교를 설했으니, 원교라고 해도 통 · 별 두 가르침의 방편을 띠고 있다. 열반경은 법화경 뒤의 경이므로 당연히 원교를 설하지만 개현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멸후 유통을 위해 사교를 거듭 설하여(追説) 원교의 의의를 밝힌 것이다.

이처럼 방등시 · 반야시의 모든 경의 원교는 모든 중생의 기근을 조숙시키기 위한 방편 가르침의 일환으로 설해진 것이어서, 법화경처럼 오로지 원교 자체를 개현하기 위해 설해진 것이 아니며 맨 처음 화엄경에서 설해진 원교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방등 · 반야의 별 · 원 두 가르침은 보살 · 천인 등이 설한 화엄경의 별 · 원 두 가르침과 「빛깔도 바뀌지 않았다(色もかわらぬ)」고 하신 것이다.

이전 경이 원교를 포함하고 있어도 전체로서는 방편의 교법이라는 것은 이승작불을 설하지 않는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일체중생을 부처와 같은 경지에 이르게 하려면 법화경처럼 이승작불을 설하여 일체의 차별을 넘어선 부처의 절대 평등의 경지 위에서 참된 원교를 개현해야 한다. 그래서 대성인은 「일대성교대의」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蔵通二教には仏性の沙汰なし但菩薩の発心を仏性と云う、別円二教には衆生に仏性を論ず但し別教の意は二乗に仏性を論ぜず、爾前の円教は別教に附して二乗の仏性の沙汰無し

장 · 통 두 가르침에는 불성의 논의가 없다. 다만 보살의 발심을 불성이라 한다. 별 · 원 두 가르침에서는 중생에게 불성을 논한다. 다만 별교의 뜻은 이승에게 불성을 논하지 않는다. 이전의 원교는 별교에 붙어 있어 이승의 불성의 논의가 없다.

「일대성교대의」, 400쪽

화엄의 대보살들이 별 · 원을 이미 알면서도 법화경에서 처음 「아직 듣지 못한 법」을 들었다고 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들이 알던 원교는 이승을 빼놓은 원교, 별교를 겸하고 방편을 띤 원교였다. 이승까지 성불시키는 순원의 일불승은 그들에게도 처음 듣는 법이었다.

권법과 실법 — 천태의 열 가지 권실

제9장 둘째 절은 석존과 사리불 · 목련 등 성문의 사제 관계에서 시작한다. 보살 · 천인 등이 이전 경에서는 석존의 제자가 아니었고 법화경에서 처음 제자가 된 데 비해, 성문들은 녹야원에서 소승경이 설해진 때 이래 석존의 제자였다. 이미 부사의해탈에 머물러 스스로 별 · 원 두 가르침을 설한 보살 · 천인과 달리, 기근이 미숙하고 외도 · 세속의 견해에 사로잡혀 있던 성문들에게는 소승경조차 아직 듣지 못한 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성문들도 이전 경에서는 「권법」만 배웠고, 법화경에 이르러 비로소 「실법」을 받았다고 하신다.

강의는 먼저 천태대사의 석에 따라 「권실」 자체의 의의를 살핀다. 천태대사는 『법화문구』 권3하에서 사리(事理) · 이교(理教) · 교행(教行) · 박탈(縛脱) · 인과(因果) · 체용(体用) · 점돈(漸頓) · 개합(開合) · 통별(通別)의 익 · 실단(悉壇)의 열 가지 관점에서 권실의 의의를 밝혔다.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사리의 권실 — 부처가 궁구한 법을 이와 사로 나누어, 실상의 한 이치는 상주하므로 「실」, 갖가지 사상(事相)으로 나타나는 일체법은 중생의 심 · 의 · 식의 깨끗함과 더러움에 따라 정해지지 않으므로 「권」이라 한다. ② 이교의 권실 — 이치를 「실」로, 그 이치를 설해 드러낸 교를 「권」으로 하는 관점이다. ③ 교행의 권실 — 사리 두 법을 설해 드러낸 교를 「실」로 하고, 그 교를 따라 하는 행에는 나아감의 깊고 얕음이 있으므로 이를 「권」으로 한다. ④ 박탈의 권실 — 이치에 어긋난 행은 허망한 속박을 낳으므로 「권」, 이치에 따르는 행은 해탈을 가져오므로 「실」로 한다. ⑤ 인과의 권실 — 인인 공 · 가 두 관은 중도의 과에 들기 위한 방편도이므로 「권」, 중도의 과는 최종 목적이므로 「실」로 한다. ⑥ 체용의 권실 — 불보살이 실상에 머물러 남을 교화하는 용을 일으킬 때, 실상은 체이므로 「실」, 남을 교화하는 용은 갖가지 변화가 있으므로 「권」으로 한다. ⑦ 점돈의 권실 — 남을 교화하는 용을 점교와 돈교로 나누어, 체인 실상을 곧바로 설하는 돈교는 「실」, 중생을 차례로 이끌기 위한 점교는 「권」으로 한다. ⑧ 개합의 권실 — 부처 일대의 교화에서 처음 돈에서 점을 여는 것을 「권」, 뒤에 점에서 돈으로 합하는 것을 「실」로 한다. ⑨ 통별의 권실 — 점교에 공통으로 보이는 무상의 익은 「권」, 따로 돈교로 얻는 상주의 익은 「실」로 한다. ⑩ 실단의 권실 — 세계 · 위인 · 대치의 세 실단은 세간법이므로 「권」, 제일의 실단은 출세간법이므로 「실」로 한다.

이 열 가지 권실은 부처가 스스로 증득한 불계의 법을 구계의 모든 법에 사로잡혀 있는 중생에게 열어 보여 가는 갖가지 차원에서 「권」과 「실」로 나눈 것이며, 불계의 법에 가까운 면을 「실」, 구계의 모든 법에 가까운 면을 「권」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태대사의 권실에서 다음과 같은 특질을 엿볼 수 있다.

① 권 · 실은 부처의 내증 · 교화에서 중생의 수행 · 득익에 이르는 갖가지 차원에 적용되는 다면적인 나눔이다. ② 중생이 사로잡혀 있는 구계의 모든 법, 혹은 그것을 고려한 부처의 헤아림에 해당하는 면을 「권」, 부처의 내증인 불계의 법 그 자체, 혹은 부처가 중생에게 불계의 법을 열어 보이는 면을 「실」로 한다. ③ 그러므로 불계의 법을 「실」, 구계의 모든 법을 「권」으로 하는 이른바 구권일실(九権一実)의 나눔이 갖가지 권실 나눔의 근본에 있다.

어문의 「권법」 · 「실법」은 바로 구계의 권법과 불계의 실법을 보이신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이전의 모든 경은 구계 중생의 기근에 맞추어 설한 수타의의 가르침이므로 결국 구계의 권법에 머문다. 이에 비해 법화경은 부처의 경지를 있는 그대로 개현하여 중생에게 전하는 수자의의 가르침이므로 불계의 실법을 중생에게 준다.

실법의 수여 — 들음과 믿음으로 들어간 불계

적문의 개삼현일이라고 해도 그 내용은 관점에 따라 여러 갈래에 걸친다. 강의는 개삼현일 설법에서 보인 주요한 내용으로 다음을 든다.

① 중생의 삼승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고 다만 불지만을 찬탄했다. ② 삼승의 사람은 모두 성불해야 할 중생임을 밝혔다. ③ 삼승의 교를 폐하고 일불승이야말로 부처가 출현한 목적임을 밝혔다. ④ 삼승법이 드러내는 이치는 모두 실상의 한 이치에 포섭됨을 밝혔다. ⑤ 삼승의 수행은 일불승 아래에서 모두 성불을 위한 보살행이 됨을 밝혔다. ⑥ 삼승을 설할 때에도 부처의 본의는 늘 일불승에 있었음을 밝혔다.

이 밖에도 개삼현일의 의의를 보이는 설법 내용이 있겠지만, 강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개삼현일의 의의가 보여짐으로써 중생에게 일불승에 대한 믿음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법화경이 오로지 일불승을 개현한 순원의 가르침이라 일컬어지는 까닭이 있고, 순원의 가르침이기에 불계의 실법을 중생에게 줄 수 있었다.

그러면 적문에서 석존이 성문들에게 불계의 실법을 주었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사리불 · 목련 등 성문들이 적문 개삼현일의 설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경문을 따라 보자.

먼저 법설주의 성문인 사리불은 비유품 제3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세존을 따라 이 법음을 듣고 마음에 뛸 듯한 기쁨을 품어 미증유를 얻었습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今、仏に従いたてまつりて、未だ聞かざる所の未曾有の法を聞いて、諸の疑悔を断じ、身意泰然として、快く安穏なることを得たり。今日乃ち知んぬ。真に是れ仏子なり、仏の口より生じ、法より化生して、仏法の分を得たり

이제 부처를 따라 아직 듣지 못한 미증유의 법을 듣고 모든 의심과 뉘우침을 끊어 몸과 마음이 태연하여 상쾌하고 안온함을 얻었습니다.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참으로 이는 부처의 아들이며, 부처의 입에서 나고 법에서 화생하여 불법의 몫을 얻었습니다.

『묘법연화경』 비유품 제3

또 「이제 부드럽고 깊고 매우 미묘한 음성으로 청정한 법을 펴 설하심을 듣고 저의 마음이 크게 기뻐서 의심과 뉘우침이 영원히 이미 다하여 실지(実智) 가운데 안주합니다」라고도 말한다.

사리불의 이 고백들에서 강의는 세 가지 공통점을 든다.

① 「법」 내지 「법음」을 「들었다」고 한다. 거꾸로 말하면 「들음」으로써 「법」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② 이 법을 들음으로써 지금까지의 「의심」과 「뉘우침」이 걷히고 몸과 마음이 「환희」로 가득 찼다고 한다. ③ 그 결과 「미증유」인 것, 혹은 「불법의 몫」을 얻고, 「실지」 가운데 머물러 「참된 불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고백이 뜻하는 바는 사리불이 얻은 것이 개삼현일 설법의 취지를 이해했다는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부처에게서 사리불에게 생명 전체로 전해진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의는 본다. ①은 법이 부처의 생명의 울림으로 직접 전해져 사리불이 부처의 설법 소리와 함께 그 법을 들었다는 것을, ②는 사리불의 생명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이는 것을, ③은 사리불이 일찍이 들은 적이 없는 불계의 법을 체험하고 그 안에 머물러 더는 물러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실법의 수여란 삼승법처럼 분별하여 설할 수 없는 부처의 경계 그 자체를 중생에게 직접 전하고 닿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강의는 묻는다. 그래서 비유품은 이렇게 설한다.

一切の声聞、及び辟支仏は、此の経の中に於いて、力及ばざる所なり。汝舎利弗すら、尚此の経に於いては、信を以って入ることを得たり、況や余の声聞をや、其の余の声聞も、仏語を信ずるが故に、此の経に随順す、己が智分に非ず

일체의 성문과 벽지불은 이 경에 대해서는 힘이 미치지 못한다. 너 사리불조차 이 경에 대해서는 믿음으로써 들어올 수 있었거늘 하물며 다른 성문이겠는가. 그 밖의 성문도 부처의 말을 믿기 때문에 이 경을 따르는 것이지 자기 지혜의 몫이 아니다.

『묘법연화경』 비유품 제3

「자기 지혜의 몫(己が智分)」이란 이승의 분별지다. 부처의 경계는 분별할 수 없으므로, 사리불처럼 아무리 뛰어난 분별지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으로는 부처의 경계에 들어갈 수 없다.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부처의 지혜와 자비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점은 비설주의 목련 · 가섭 등 사대성문의 영해에서도 분명하다. 신해품 제4에서 그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저희는 오늘 부처의 음성의 가르침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여 미증유를 얻었습니다. 부처께서 성문도 반드시 성불할 수 있다고 설하시니, 위없는 보배 무더기를 구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얻었습니다.」 「위없는 보배 무더기」, 곧 일불승은 성문으로서의 분별지로는 얻을 수 없었고 「부처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얻은 것이다. 또 그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我等今者、真に是れ声聞なり、仏道の声を以って、一切をして聞かしむべし、我等今者、真に阿羅漢なり、諸の世間、天人魔梵に於いて、普く其の中に於いて、応に供養を受くべし、世尊は大恩まします。希有の事を以って、憐愍教化して、我等を利益したもう

저희는 이제 참으로 성문입니다. 불도의 소리로 일체로 하여금 듣게 하겠습니다. 저희는 이제 참으로 아라한입니다. 모든 세간의 하늘 · 사람 · 마 · 범천 가운데에서 두루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세존은 큰 은혜가 있으십니다. 희유한 일로 불쌍히 여겨 교화하시어 저희를 이롭게 하셨습니다.

『묘법연화경』 신해품 제4

여기서는 사대성문이 예전처럼 자리(自利)를 구하여 몸을 재로 만들고 지혜를 없애 가는(灰身滅智) 성문이 아니라, 부처의 체내에 들어 개회된 참된 성문임이 드러나 있다. 불도의 소리를 일체중생에게 듣게 해 가는 것이 참된 성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지혜의 헤아림을 버리고 믿음으로 부처의 경계에 들어간 것이야말로 불계의 실법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믿음으로 부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기에 성문들에게 미래 성불의 수기가 주어졌다.

그러나 강의는 이것이 결코 득탈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어디까지나 부처의 말을 믿고 따라 스스로 성불을 목표로 해야 함을 영해한 것이며, 참된 성불은 본문의 설법을 기다려야 했다. 본문이 「적문에서 실법을 주고, 본문 약개근현원에 이르러 묘각에 들었다」고 두 단계로 말씀하시는 까닭이다.

창가학회의 강의는 「실법의 수여」를 지적 이해가 아니라, 분별지를 버리고 「들음」과 「믿음」으로 부처의 경계에 생명 전체로 들어가는 일로 읽는다. 사리불조차 「믿음으로써 들어왔다」는 비유품의 문이 그 근거다. 다만 적문의 수기는 아직 득탈이 아니고, 득탈은 본문에 이르러서다.

「묘각에 이웃하고 또 묘각에 들었다」 — 문제의 소재

다음으로 이 어서는 모든 대보살 ·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 · 용왕 등, 곧 부사의해탈에 이르렀으면서도 법화경 적문에서 아직 듣지 못한 법을 듣고 처음 석존을 스승으로 섬긴 중생들과, 녹야원 이래의 제자로서 법화경 적문에서 성불의 수기를 받은 사리불 등 이승들이 본문의 약개근현원 설법을 들음으로써 득탈했음을 보이신다. 곧 「지위가 묘각에 이웃하고 또 묘각의 지위에 들었다」는 말씀이다.

「지위가 묘각에 이웃하고」는 천태대사의 『법화현의』 서왕(序王)에서 「여러 성인의 권교(権巧)를 열어 본지의 깊고 미묘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도를 더하고 생을 덜어 지위가 대각에 이웃한다(衆聖の権巧を発して本地の幽微を顕す。故に増道損生して位大覚に鄰る)」고 한 것을 밟으신 표현이라고 강의는 본다. 이 문의 「대각」은 곧 「묘각」이며, 그 이웃 지위란 보살의 최고위인 「등각」이다. 천태대사는 재세 중생이 법화경 본문 일품이반의 본지 개현 설법을 들음으로써 등각위에 이르렀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 해석은 법화경 문상의 설법 모습에 맞는다. 본문 정종분 일품이반 가운데 분별공덕품 제17 전반에서는 재세 중생이 개근현원의 설법을 듣고 얻은 경지를 갖가지로 나누어 밝힌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무생법인」, 곧 조금씩 무명을 끊어 무생무멸의 중도의 이치에 안주하여 흔들리지 않는 경지이며, 원교의 오십이위로 말하면 십주 · 십행 · 십회향 · 십지 · 등각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같은 품에서는 재세 중생이 묘각에 이르렀다고는 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근현원의 설법을 들은 중생이 도달하는 지위는 등각위다. 법화경의 설법에서도, 천태대사의 해석에서도, 재세 중생이 개근현원의 설법을 듣고 이를 수 있었던 지위는 등각위에 머문다.

그런데 대성인은 더 나아가 「묘각의 지위에 들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은 이 어서뿐 아니라 다른 어서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관심의 본존초」에서는 「본문에 이르러 등 · 묘에 오르게 한다(本門に至つて等妙に登らしむ)」(249쪽)고 하신다. 「등 · 묘」란 등각과 묘각이다. 또 「기도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諸の大地微塵の如くなる諸菩薩は等覚の位まで・せめて元品の無明計りもちて侍るが・釈迦如来に値い奉る元品の大石をわらんと思ふに、教主釈尊・四十余年が間は『因分可説果分不可説』と申して妙覚の功徳を説き顕し給はず、されば妙覚の位に登る人・一人もなかりき・本意なかりし事なり、 而るに霊山八年が間に『唯一仏乗名為果分』と説き顕し給いしかば・諸の菩薩・ 皆妙覚の位に上りて釈迦如来と悟り等しく

대지의 미진과 같은 모든 보살은 등각의 지위까지 다다라 다만 원품의 무명만을 지니고 있었는데, 석가여래를 만나 뵙고 원품의 큰 바위를 깨뜨리고자 하였으나 교주 석존은 사십여 년 동안은 「인분은 설할 수 있으나 과분은 설할 수 없다」 하여 묘각의 공덕을 설해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묘각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으니 본의가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 영산 팔 년 동안에 「오직 일불승을 과분이라 이름한다」고 설해 드러내셨으므로 모든 보살이 다 묘각의 지위에 올라 석가여래와 깨달음이 같아졌다.

「기도초」, 1349쪽

이 말씀의 「모든 보살」이란 화엄경 이래의 보살만이 아니라 적문에서 발심하여 초주위에 이른 이승이나 천인 등을 포함한 말씀이라고 강의는 본다. 법화경 회좌에 참석한 재세 중생은 모두 묘각위에 올랐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 왜 대성인은 언뜻 법화경의 설법 모습과 다른 견해를 보이셨는가. 강의는 이 문제가 대성인이 법화경 본문에서의 재세 중생 득탈의 의의를 문저독일본문(文底独一本門)의 입장에서 붙잡으셨다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분명해진다고 하며, 등각과 묘각의 차이부터 살핀다.

등각과 묘각 — 인과 과의 사이

등각과 묘각은 어떤 경지를 말하며,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천태대사의 『법화현의』 권5상은 등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等覚地とは、無始の無明の源底を観達して辺際智満じ、畢竟清浄なり。最後窮源微細の無明を断じて中道の山頂に登り、無明の父母と別る。是を有所断者と名づけ、有上士と名づくるなり

등각지란 무시의 무명의 근원 밑바닥을 관하여 통달하여 변제지(辺際智)가 가득 차고 필경 청정하다. 최후의 근원을 다한 미세한 무명을 끊어 중도의 산꼭대기에 올라 무명의 부모와 이별한다. 이를 끊을 바가 있는 이(有所断者)라 이름하고 위가 있는 사람(有上士)이라 이름한다.

천태대사, 『법화현의』 권5상

곧 등각은 일체 번뇌의 근원인 원품의 무명을 관하는 데까지 도달한 경지이며, 깨달아 아는 점에서는 묘각과 같으므로 「등각」이다. 그러나 아직 원품의 무명을 끊지는 않았으므로 「끊을 바가 있는 이」이고, 따라서 또 중도실상의 경지를 아직 이루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이룬 묘각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위가 있는 사람」이라 이름한다.

다음으로 묘각에 대해 같은 『법화현의』 권5상은 「묘각지를 밝힌다면, 구경의 해탈이요 무상의 불지이다. 그러므로 끊을 바 없는 이(無所断者)라 하고 위 없는 사람(無上士)이라 이름한다. 이는 곧 삼덕이 세로도 가로도 아니어서 구경 후심의 대열반이다」라고 한다. 원품의 무명을 끊어 무상의 불과를 이룬 경지가 묘각이다.

나아가 천태대사는 등각과 묘각의 차이를 이렇게 밝힌다. 「등각을 묘각에 견주면 인이 되고, 보살에 견주면 과가 된다(等覚を妙覚に望めて因と為し、菩薩に望めて果と為す)」, 「십주부터는 참된 인이라 이름하고, 묘각을 참된 과라 이름한다(十住より去って真因と名づけ、妙覚を真果と名づく)」. 등각은 십지 이하 법신 보살이 목표로 하는 과로서 그 한에서는 부처라고까지 할 수 있으나, 묘각에서 보면 아직 인의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묘각만이 참된 과다. 천태대사는 등각을 십지 이하 보살과의 상대에서는 일단 깨달은 이로 인정하지만, 묘각과의 상대에서는 결코 깨달은 이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법화현의』 권5상에서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능히 제법실상을 다 궁구한다』는 것은 곧 묘각의 지위이다」라고 하듯이 묘각이야말로 유불여불의 실상을 증득한 경지라고 한다. 또 『마하지관』 권2하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分真即とは……初めて無明を破して仏性を見、法蔵を開きて真如を顕すを発心住と名づく。乃至、等覚は無明微薄にして智慧転た著る……究竟即の菩提とは、等覚一たび転じて妙覚に入る。智光円満して復増す可かざるを菩提の果と名づく。

분진즉이란 …… 처음 무명을 깨뜨려 불성을 보고 법장을 열어 진여를 드러내는 것을 발심주라 이름한다. 내지 등각은 무명이 엷어지고 지혜가 더욱 드러난다. …… 구경즉의 보리란 등각이 한 번 바뀌어 묘각에 드는 것이다. 지혜의 빛이 원만하여 다시 더할 수 없는 것을 보리의 과라 이름한다.

천태대사, 『마하지관』 권2하

초주위부터 등각까지를 분진즉으로, 묘각을 구경즉으로 하여 등각과 묘각을 분명히 갈라 세운 것이다.

나아가 법화경에서도 등각 이전의 불퇴 법신 보살과 유불여불의 묘각의 부처는 일불승을 아는가 모르는가 하는 기준으로 분명히 나뉜다. 방편품 제2에서는 「불퇴의 모든 보살이 그 수가 항하사와 같아 한마음으로 함께 생각하여 구하더라도 또한 알 수 없으리라」고 설하여 법신의 보살은 일불승을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바로 다음에는 「번뇌 없는 부사의한, 매우 깊고 미묘한 법을 나는 이제 이미 갖추어 얻었으니, 오직 나만이 이 모습을 안다. 시방의 부처도 또한 그러하다」고 설하여 부처만이 일불승을 안다고 단언한다.

등각無始の無明の源底を観達して무시의 무명의 근원 밑바닥을 관하여 통달하고有所断者끊을 바가 있는 이有上士위가 있는 사람묘각에 견주면 인 · 보살에 견주면 과분진즉의 끝분별공덕품과 천태 해석에서 재세 중생이 이른 지위
等覚一たび転じて妙覚に入る등각이 한 번 바뀌어 묘각에 든다
묘각究竟の解脱、無上の仏智구경의 해탈 · 무상의 불지無所断者끊을 바 없는 이無上士위 없는 사람참된 과 · 구경즉唯、仏と仏とのみ乃し能く諸法実相を究尽す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제법실상을 다 궁구한다= 묘각의 지위
등각과 묘각 = 인과 과 = 보살과 부처
도표 12 · 등각과 묘각

명자묘각 — 내증의 수량품의 눈으로 본 재세의 득탈

이처럼 등각과 묘각의 차이는 인과 과의 차이, 곧 보살과 부처의 차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법화경 문상과 천태대사의 석은 재세의 중생이 등각의 지위에 이르렀다고 하여 본문의 개근현원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보이는 것이지만, 그것이 원융자재의 경지를 완성한 궁극의 불과인 묘각과 구별된다는 것은 인을 쌓아 과에 이르는(従因至果) 성불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만약 문상의 수량품의 뜻에 의거하면 능화의 교주가 이미 사십이품의 무명을 끊어 묘각 구경의 지위에 들었다. 능화가 이미 그러하니 소화도 또한 그러하다(若し文の上の寿量品の意に拠れば、能化の教主、已に四十二品の無明を断じて妙覚究竟の位に入れり。能化既に爾なり、所化もまた爾なり)」고 한다. 문상의 수량품에서 능화의 교주란 구원실성의 석존이다. 이 문상 수량품의 부처는 보살행을 닦은 결과로서 오백진점겁 구원의 옛날에 성도했다고 한다. 곧 수행의 결과로서 「된」 부처, 본과의 부처로서 설해져 있다. 그러므로 소화의 득탈도 그러한 종인지과의 성불관에 준하여 보이게 된다.

그런데 대성인이 재세의 중생에 대해 묘각의 지위에 들었다고 하신 것은 문상의 수량품과는 다른 성불관 위에서의 입의라고 강의는 본다. 그 점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이렇게 말한다.

若し本化付嘱の内証の寿量品の意に拠れば、能化の教主、五百塵点の当初、凡夫の御時、本地難思の境智の妙法を則座に開悟し、名字妙覚の成道を唱るなり。これを本地自行の成道と名づくるなり。能化既に爾なり。所化もまた然なり、これ則ち不断煩悩・不離五欲・凡夫即極・即身成仏の極説なり。

만약 본화에게 부촉된 내증의 수량품의 뜻에 의거하면, 능화의 교주는 오백진점의 당초 범부이셨을 때 본지난사(本地難思)의 경지(境智)의 묘법을 즉석에서 깨달아 명자묘각의 성도를 이루셨다. 이를 본지자행의 성도라 이름한다. 능화가 이미 그러하니 소화도 또한 그러하다. 이는 곧 번뇌를 끊지 않고 오욕을 떠나지 않으며 범부가 곧 극위이고 즉신성불하는 지극한 설이다.

니치칸 상인, 『법화취요초 문단』

여기서 말하는 「내증의 수량품」의 내용을 강의는 네 가지로 정리한다.

① 내증의 수량품에서 능화의 교주가 성도한 때는 문상의 수량품에 보인 오백진점겁의 구원이 아니라 그 「당초」, 곧 「구원원초」이다. 「구원원초」란 오백진점겁 구원에서의 성도보다 더 근원적인 성도를 보이는 말이다. ② 근원적인 성도란 범부 그대로 즉석에서 「본지난사의 경지의 묘법」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이 「본지난사의 경지의 묘법」은 모든 부처의 근원인 종자의 법체다. ③ 근원의 성도와 견주면, 문상의 수량품에 보인 오백진점겁 구원에서의 석존의 성도는 수적화타(垂迹化他)를 위해 보이는 갖가지 역용의 근원으로서 「본과」를 이룬 것을 뜻한다. 이에 비해 가장 근원적인 성도, 곧 종자의 법체를 즉석에서 깨달음으로써 이루는 성도를 「본인」의 성도라 한다. 두 성도의 관계를 보면, 본인의 성도가 「본지자행」인 데 비해 본과의 성도는 「수적화타」의 측면에 배당된다. ④ 내증의 수량품에서의 성도의 지위로 말하면, 범부의 지위에서 곧바로 종자의 법체를 깨달아 묘각의 지위에 이르며 단혹에 따른 지위의 차례가 없다. 이를 「명자묘각」이라 한다. 명자란 천태대사의 육즉 가운데 둘째 지위인 명자즉이며,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라고 믿고 이해하지만 아직 단혹하지 못한 지위다. 내증의 수량품에서의 성도는 단혹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묘각에 이르므로 명자묘각이라 한다. 니치칸 상인이 말한 「번뇌를 끊지 않고 오욕을 떠나지 않으며 범부가 곧 극위이고 즉신성불」이란 바로 명자묘각의 뜻을 나타낸다.

이로써 분명하듯이 내증의 수량품에서 능화의 교주가 성도하는 방식은 문상의 수량품에서 능화의 교주가 성도하는 방식과 다르다. 그러므로 각각의 소화 중생의 성도 방식도 당연히 다르다. 문상의 수량품에서는 일체의 혹을 끊어 이룬 본과를 묘각으로 하고 그 성취를 성도로 하며, 그 소화 중생의 득탈은 보살의 최고위인 등각에 머문다. 이에 비해 내증의 수량품에서는 명자의 범부에서 곧바로 묘각을 이룬다. 그리고 재세의 중생이 묘각의 지위에 들었다고 하는 것은 이 내증의 수량품의 입장에 서서의 일이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그러므로 내증의 수량품의 눈을 떠서 돌이켜 재세 본문의 득익을 보면, 처음 발심에서 끝 보처에 이르기까지 모두 구원 명자의 묘각의 지위에 든다(然れは則ち内証の寿量品の眼を開いて、還って在世の本門の得益を見る則は、始め発心より終わり補処に至るまで、皆久遠名字の妙覚の位に入るなり)」고 한다. 「발심」은 초주위, 「보처」는 등각위다. 본문에서 재세 중생의 득익은 초주위부터 등각위까지 갖가지 단계로 설해지지만, 내증의 수량품의 눈으로 보면 단혹의 깊고 얕음에 따른 그 모든 단계가 걷히고 똑같이 구원 명자묘각의 지위에 든 것이 된다.

물론 재세의 중생이 직접 들은 가르침은 문상의 수량품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까지의 숙익의 교화로 불종이 순숙해 있었으므로 문상의 수량품을 통해 내증의 수량품의 뜻을 영해했다. 이 점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당류행사초(当流行事抄)」에서 이렇게 논한다.

等覚に登らしむとは即ち体外の意なり。妙覚に登らしむとは、即ち体内の意なり。……妙覚に至る人は都て経文に之無きなり。然るに体内の意は霊山一会の無量の菩薩、体外の寿量を聴聞して但文上脱迹を信ずるのみに非ず。復文底秘沈の種本を了して久遠元初の下種の位に立ち還りて、本地難思の境智の妙法を信ずるが故に、皆悉く名字妙覚の極意に至るなり。是れ即ち体内得脱の相なり……文底の眼を開いて還って彼の得道を見れば、実に久遠下種の位に還って名字妙覚の極意に至る、此れ即ち真実の跨節の断惑なり

등각에 오르게 한다는 것은 곧 체외의 뜻이다. 묘각에 오르게 한다는 것은 곧 체내의 뜻이다. …… 묘각에 이른 사람은 도무지 경문에 없다. 그런데 체내의 뜻은, 영산 일회의 무량한 보살이 체외의 수량을 듣고 다만 문상의 탈적(脱迹)을 믿을 뿐 아니라, 또 문저에 감추어진 종본(種本)을 깨달아 구원원초의 하종의 지위로 되돌아가 본지난사의 경지의 묘법을 믿으므로 모두 다 명자묘각의 극의에 이른다. 이것이 곧 체내 득탈의 모습이다. …… 문저의 눈을 떠서 돌이켜 그들의 득도를 보면, 참으로 구원 하종의 지위로 돌아가 명자묘각의 극의에 이르니, 이것이 곧 진실한 과절(跨節)의 단혹이다.

니치칸 상인, 「당류행사초」

체내 · 체외란 같은 문상의 수량품에 대해서도, 문저의 뜻을 알지 못하고 듣는 문상의 수량품을 체외라 하고, 문저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듣는 문상의 수량품을 체내라 하는 것이다. 재세의 중생은 불종이 순숙해 있었으므로 문상의 수량품을 듣고 문저의 뜻을 영해했고, 그로써 종자의 법체인 본지난사의 경지의 묘법을 믿어 구원 하종의 지위로 되돌아가 명자묘각의 극의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재세의 중생이 묘각의 지위에 들었다는 것은 일단 구원 하종의 신심의 지위로 되돌아가 거기서 명자묘각의 성도를 이루었다는 것이지, 십주 내지 십지 · 등각에서 단계적으로 묘각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처음과 끝이 변하지 않는 것을 묘각이라 이름한다.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묘각의 실체다. 이른바 『탈은 지금에 있으나 갖추어 본종을 올린다』는 본인묘가 구원 상주하여 『등각이 한 번 바뀌어 명자묘각』의 성도를 이루는 것이 참된 묘각이다(始終の不変なるを名づけて妙覚となす。而も少しも変わらざるが妙覚の実体なり、謂く『雖脱在現・具謄本種』の本因妙・久遠常住にして『等覚一転・名字妙覚』の成道を唱うるが真実の妙覚なり)」고 한다.

「수탈재현 · 구등본종(雖脱在現・具謄本種)」은 묘락대사 『법화문구기』 권1상의 문으로 「탈은 지금에 있으나 갖추어 본종을 올린다」고 읽는다. 「등(謄)」은 말이 뛰어오르는 것이 본뜻으로 「높이 오르다」, 「올라가다」 등의 뜻을 지닌 말이다. 곧 재세 중생은 지금의 본문 수량품에서 득탈했지만 그 득탈의 본인을 자세히 찾으면 구원의 본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다. 니치칸 상인은 이를 재세 중생이 일단 구원 하종의 신심의 지위로 돌아가 문저하종의 본인묘로 득탈할 수 있었음을 보이는 문으로 쓴다. 그래서 「문저비침초(文底秘沈抄)」에서 「탈익은 일왕이다. 그러므로 수탈재현이라 하고, 하종은 재왕의 구등본종이다(脱益は是れ一往なり、故に雖脱在現と云い、下種は是れ再往の具謄本種なり)」라고 한다.

또 「등각일전 · 명자묘각(等覚一転・名字妙覚)」은 재세 중생의 참된 득탈을 요약한 말이다. 재세 중생은 문상 탈익의 교화로 등각에 이르렀으나, 문저의 뜻을 영해하여 한 번 바뀌어 구원 하종의 신심으로 돌아가고 그 신심으로 명자묘각의 지위에 올랐음을 보인다.

이처럼 숙탈의 교화를 받은 재세 중생이라 해도 성도의 근본은 본지난사의 묘법의 하종에 있으며, 그 하종의 법체를 믿고 이해함으로써 명자즉의 지위에서 차례를 거치지 않고 즉신성불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말법에서는 문상을 걷어 내고 일체중생 성도의 본원인 하종의 법체 그 자체가 곧바로 홍통된다. 그러므로 이 어서에서는 대성인이 배립하신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 곧 내증의 수량품을 밝히신 것이다. 재세 중생의 득탈을 문저의 눈으로 다시 보는 이 장의 논의는, 결국 말법에 펴질 법이 무엇인가를 거꾸로 비추어 보이는 논의다.

성도의 때
문상
오백진점겁의 구원
내증
五百塵点の当初오백진점의 당초= 구원원초
성도의 모습
문상
四十二品の無明を断じて妙覚究竟の位に入れり사십이품의 무명을 끊어 묘각 구경에 들었다= 본과 · 종인지과 · 수적화타
내증
凡夫の御時、本地難思の境智の妙法を則座に開悟し범부이셨을 때 본지난사의 경지의 묘법을 즉석에서 깨달아= 본인 · 명자묘각 · 본지자행
소화의 득탈
문상
등각에 머묾(체외)
내증
始め発心より終わり補処に至るまで、皆久遠名字の妙覚の位に入るなり처음 발심에서 끝 보처까지 모두 구원 명자묘각의 지위에 든다(체내)
요약
  • 雖脱在現・具謄本種탈은 지금에 있으나 갖추어 본종을 올린다
  • 等覚一転・名字妙覚등각이 한 번 바뀌어 명자묘각
  • 不断煩悩・不離五欲・凡夫即極・即身成仏번뇌를 끊지 않고 오욕을 떠나지 않으며 범부가 곧 극위이고 즉신성불
도표 13 · 문상의 수량품과 내증의 수량품

등각과 묘각 사이의 「한 번 바뀜(一転)」이라는 표현 자체는 앞서 인용한 『마하지관』 권2하의 「등각이 한 번 바뀌어 묘각에 든다(等覚一たび転じて妙覚に入る)」에 이미 보인다. 천태에게 이 「한 번 바뀜」은 분진즉에서 구경즉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단혹이지만, 니치칸 상인이 말하는 「등각일전 · 명자묘각」은 같은 말을 써서 방향을 거꾸로 하여 구원 하종의 신심의 지위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당류행사초」가 이를 「진실한 과절의 단혹」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뜻이다.

하늘의 해와 달 — 생신의 묘각의 부처의 이익

이 어서는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하늘을 향해 이를 보면 생신의 묘각의 부처가 본래의 자리에 머물러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이 이것이니라」고 하시어, 법화경 본문의 약개근현원에 의한 재세 중생의 득탈을 밝히신 제9장을 맺으신다.

「그렇다면」이란 「보살 · 이승 · 범천 · 제석 · 일월 등 모든 재세 중생이 본문 약개근현원의 설법으로 내증의 수량품을 깨달아 묘각의 지위에 들었으므로」라는 뜻이다. 그리고 묘각의 지위에 든 재세 중생 가운데서 특히 일월 등에 초점을 맞추어 「지금 우리가 하늘을 향해 이를 보면」이라고 하신다. 지금 실제로 하늘에서 빛나는 해와 달 등은 그 본래의 자리에서는 묘각의 부처이며, 그 묘각의 부처가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모습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은 『법화취요초 문단』에서 「생신의 묘각의 부처」는 「명자묘각의 부처」이며, 「본래의 자리에 머물러」의 「본위」는 본래의 구원 명자의 묘각의 지위를 가리키고 「거(居)」는 그 본위를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 위에서 이 문의 뜻을 이렇게 보인다.

文意に云く、既に本門に至って諸菩薩乃至日月等、皆久遠名字の妙覚の位に入る。若し爾れば生身の妙覚の仏、久遠名字の本意を動ぜずして、常恒不退に衆生を利益したまうなり

문의는 이렇다. 이미 본문에 이르러 모든 보살 내지 일월 등이 모두 구원 명자의 묘각의 지위에 들었다. 그렇다면 생신의 묘각의 부처는 구원 명자의 본의를 움직이지 않고 늘 물러남 없이 중생을 이익하게 하신다.

니치칸 상인, 『법화취요초 문단』

「생신」은 「법신」에 대한 말이다. 「법신」이 묘법 그 자체를 체로 하는 몸을 뜻하는 데 비해, 「생신」은 천계 · 인계 등의 몸으로 나타나 있는 모습을 가리킨다. 「생신의 묘각의 부처」란 생신 그대로 묘각의 지위에 든 부처이니, 명자의 범부 그대로 묘각의 지위에 든 「명자묘각의 부처」를 뜻한다. 법화경 본문 회좌의 모든 재세 중생이 명자묘각의 지위에 들었다는 것은 각자의 「생신」의 본의가 묘각의 부처라는 생명 본유의 모습이 밝혀졌다는 것이며, 그 본유의 모습에서 보면 지금 실제로 하늘에 빛나는 해와 달은 묘각의 부처가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모습이 된다.

하늘의 해 · 달 · 별 등의 천체는 어떤 의미에서든 땅 위의 우리 중생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깊은 은혜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구원 명자의 묘법을 깨달아 묘각의 지위에 들었기에 나타낼 수 있는 본유의 자비의 모습이라고 강의는 본다.

니치칸 상인의 『법화취요초 문단』은 이 대목 다음에 「호렌초」 ·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 · 「고우니부인어서」에서 세 문을 인용한 뒤 「결국 본인묘의 교주 석존 · 일월 · 니치렌 대성인은 일체이명의 이익일 것이다(所詮・本因妙の教主釈尊・日月・日蓮大聖人は、一体異名の御利益にても候らん)」라고 한다. 「본인묘의 교주 석존」이란 곧 구원 명자묘각의 부처다. 수량품 문상의 교주 석존은 구원실성의 본과의 부처이지만, 니치칸 상인은 세 어서의 말씀에서 본인묘의 교주와 일월과 니치렌 대성인은 이름은 다르나 체는 같다고 한다. 강의를 따라 세 어서의 말씀을 차례로 살펴 니치칸 상인의 말을 확인해 보자.

호렌초 — 문자가 해가 되고 해가 석가여래가 되다

니치칸 상인이 인용한 것은 다음 말씀이다.

一一の文字変じて日輪となり日輪変じて釈迦如来となり

낱낱의 문자가 변하여 해가 되고, 해가 변하여 석가여래가 되어

「호렌초」, 1050쪽

「낱낱의 문자」란 구체적으로는 법화경 수량품 자아게의 문자를 가리키지만 법화경의 모든 문자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곧 「법화경의 문자」 · 「해」 · 「석가여래」의 셋은 하나라고 하신 것이다. 「호렌초」는 이 말씀 바로 앞에서 이렇게도 말씀하신다.

今の法華経の文字は皆生身の仏なり我等は肉眼なれば文字と見るなり、たとへば餓鬼は恒河を火と見る・人は水と見・天人は甘露と見る、水は一なれども果報にしたがつて見るところ各別なり、此の法華経の文字は盲目の者は之を見ず肉眼は黒色と見る二乗は虚空と見・菩薩は種種の色と見・仏種・純熟せる人は仏と見奉る

지금의 법화경 문자는 모두 생신의 부처이다. 우리는 육안이므로 문자로 본다. 비유하면 아귀는 항하를 불로 보고, 사람은 물로 보고, 천인은 감로로 본다. 물은 하나이지만 과보에 따라 보는 바가 각각 다르다. 이 법화경의 문자는 눈먼 이는 보지 못하고, 육안은 검은색으로 보고, 이승은 허공으로 보고, 보살은 갖가지 색으로 보고, 불종이 순숙한 사람은 부처로 본다.

「호렌초」, 1050쪽

이 말씀에서는 「법화경의 문자」가 곧 「생신의 부처」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불종이 순숙한 사람」이라는 것이 보인다. 불종이 순숙한 사람이란 구원원초의 하종을 깨달아 묘각의 지위에 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강의는 본다. 불종이 순숙한 사람에게는 「법화경의 낱낱의 문자」가 곧 생신의 부처이고, 「해」도 그 본래의 자리는 묘각의 부처이며, 현실에서 묘각의 부처로 나타난 「석가여래」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법화경의 문자」 · 「해」 · 「석가여래」는 모두 똑같이 구원 명자의 묘법을 체로 한다.

또 「호렌초」는 위의 말씀 뒤에 말법에서 법화경을 수지 · 홍통하는 대성인의 행동을 보이신 위에 대성인의 경지를 「마땅히 알라, 이 나라에 대성인이 있다(当に知るべし此の国に大聖人有り)」(1053쪽)고 밝히신다. 강의는 이를 자신이야말로 구원 명자의 묘법을 지닌 말법의 본불임을 보이신 것으로 읽는다.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 — 대일천자는 눈앞의 이익

니치칸 상인이 인용한 것은 다음 말씀이다.

大日天子と申すは宮殿七宝なり其の大さは八百十六里・五十一由旬なり、其の中に大日天子居し給ふ、勝無勝と申して二人の后あり左右には七曜・九曜つらなり前には摩利支天女まします・七宝の車を八匹の駿馬にかけて四天下を一日一夜にめぐり四州の衆生の眼目と成り給う、他の仏・菩薩・天子等は利生のいみじくまします事・耳にこれを・きくとも愚眼に未だ見えず、是は疑うべきにあらず眼前の利生なり教主釈尊にましまさずば争か是くの如くあらたなる事候べき、一乗の妙経の力にあらずんば争か眼前の奇異をば現す可き

대일천자라는 분은 궁전이 칠보이며 그 크기는 팔백십육 리, 오십일 유순이다. 그 안에 대일천자가 계신다. 승 · 무승이라는 두 왕후가 있고, 좌우에는 칠요 · 구요가 늘어서 있으며, 앞에는 마리지천녀가 계신다. 칠보의 수레를 여덟 필의 준마에 매어 사천하를 하루 낮 하룻밤에 돌며 사주 중생의 눈이 되신다. 다른 불 · 보살 · 천자 등은 이익이 훌륭하다는 것을 귀로 듣기는 해도 어리석은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의심할 것이 아니라 눈앞의 이익이다. 교주 석존이 아니시라면 어찌 이와 같이 뚜렷한 일이 있겠는가. 일승 묘경의 힘이 아니라면 어찌 눈앞의 기이함을 나타내겠는가.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 1145쪽

이 말씀에서 대일천자가 「사천하를 하루 낮 하룻밤에 돌며 사주 중생의 눈이 되신다」고 하신 것이 「이와 같이 뚜렷한 일」이며 「눈앞의 이익」 · 「눈앞의 기이함」이다. 「이익(利生)」이란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해가 날마다 새로이 돌아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은 「교주 석존」의 이익이며 「일승 묘경의 힘」이 나타난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대일천자」는 곧 「교주 석존」이며 「일승의 묘경」이다.

또 같은 문에는 「다른 불 · 보살 · 천자 등은 이익이 훌륭하다는 것을 귀로 듣기는 해도 어리석은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다른 불 · 보살 · 천자 등의 이익은 범부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의심할 여지 없는 눈앞의 이익이 대일천자의 경우라고 하신다. 같은 어서는 다시 「일월천이 사천하를 도시는 것은 불법의 힘이다(日月天の四天下をめぐり給うは仏法の力なり)」(1146쪽)라고도 하신다. 해만이 아니라 달도 우리 중생의 눈앞에서 중생 이익의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며, 「교주 석존이 아니시라면 어찌 이와 같이 뚜렷한 일이 있겠는가」라고 하신다. 강의는 여기의 「교주 석존」을 「구원 명자묘각의 부처」로, 「일승의 묘경」을 근원적인 요법인 「구원 명자의 묘법」으로 읽는다.

또 같은 어서에서는 「일념삼천」의 혼을 넣은 불상은 「생신의 부처」이며, 이 일념삼천의 혼이 든 부처를 수지 · 공양하는 사람은 반드시 「범천 · 제석 · 일월 · 사천 등」이 수호한다고 하신다.

고우니부인어서 — 해와 달에 그림자를 띄우는 몸

니치칸 상인이 인용한 것은 「고우니부인어서」의 다음 말씀이다.

日蓮をこいしく・をはしせば常に出ずる日ゆうべに・いづる月ををがませ給え、いつとなく日月にかげをうかぶる身なり

니치렌이 그리우시거든 늘 떠오르는 해와 저녁에 떠오르는 달을 우러러보소서. 언제든 해와 달에 그림자를 띄우는 몸이니라.

「고우니부인어서」, 1325쪽

앞의 두 어서의 말씀으로 「일월」도 그 본래의 자리는 「구원 명자묘각의 부처」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 「고우니부인어서」의 말씀에서는 대성인 자신이 「해와 달에 그림자를 띄우는 몸」이라고 하신다. 강의는 이것이 니치렌 대성인 자신이 「구원 명자묘각의 부처」임을 내비치신 것이라고 본다.

이상 세 문에서 본인묘의 교주 석존과 일월과 니치렌 대성인은 니치칸 상인이 말한 대로 「일체이명」임이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이 어서의 「생신의 묘각의 부처」란 말법에서 구원 명자의 부처로서 중생을 이익하게 하시는 본불 니치렌 대성인 자신을 내비치신 것으로 받들 수 있다고 강의는 맺는다.

  1. 「호렌초」一一の文字変じて日輪となり日輪変じて釈迦如来となり낱낱의 문자가 변하여 해가 되고 해가 변하여 석가여래가 되어법화경의 문자 = 해 = 석가여래仏種・純熟せる人は仏と見奉る불종이 순숙한 사람은 부처로 본다
  2.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教主釈尊にましまさずば争か是くの如くあらたなる事候べき교주 석존이 아니시라면 어찌 이와 같이 뚜렷한 일이 있겠는가대일천자 = 교주 석존 = 일승의 묘경日月天の四天下をめぐり給うは仏法の力なり일월천이 사천하를 도시는 것은 불법의 힘
  3. 「고우니부인어서」いつとなく日月にかげをうかぶる身なり언제든 해와 달에 그림자를 띄우는 몸니치렌 = 일월
결론本因妙の教主釈尊・日月・日蓮大聖人は、一体異名본인묘의 교주 석존 · 일월 · 니치렌 대성인은 일체이명
도표 14 · 「일체이명」 — 니치칸 상인이 인용한 세 어서
미노부 골짜기의 새벽, 산등성이 위로 떠오르는 해와 서쪽 하늘에 남은 흰 달이 함께 떠 있는 풍경
그림 · 미노부 골짜기의 새벽, 산등성이 위로 떠오르는 해와 서쪽 하늘에 남은 흰 달이 함께 떠 있는 풍경

이 장이 다음 장으로 넘기는 것

제9장을 다시 한 줄로 간추리면 이렇다. 화엄 이래의 대보살과 범천 · 제석 · 일월 등은 이전 경에서는 석존의 제자도 아니었고 오히려 스승이나 선지식의 자리에 있었으나, 적문 팔품에서 일불승이라는 아직 듣지 못한 법을 듣고 처음 제자가 되었다. 녹야원 이래의 성문들은 이전 경에서 권법만 받다가 적문에서 실법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본문 약개근현원에 이르러 묘각에 이웃하는 등각에 오르고, 다시 문저의 눈으로 보면 명자묘각에 들었다. 하늘의 해와 달은 그렇게 묘각에 든 부처가 지금도 본래의 자리에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모습이다.

이 결론에서 바로 다음 물음이 나온다. 재세의 중생이 이미 약개근현원으로 남김없이 득탈했다면, 그 뒤에 설해진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제11장에서 대성인은 「부처의 재세에는 한 사람도 무지한 자가 없었다」고 하시어 이 논리를 다보의 증명 · 분신의 조설 · 지용의 용출에까지 넓히신다. 그리고 다음 제10장은 「누구를 위하여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을 연설하셨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여, 그 답을 「멸후의 중생, 그 가운데 말법 금시의 니치렌 등」에서 찾는다. 제9장은 재세의 득탈을 완결시킴으로써, 수량품이 재세를 위한 경이 아님을 밝히는 장이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이 편은 「법화경은 누구를 위하여 이를 설하셨는가」라는 하나의 물음으로 시작했다. 대단 제1이 법화경이 어떤 경인가를 밝혔다면, 대단 제2는 그 경이 누구의 것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 물음과 함께 「법화취요초」는 문답의 형식으로 바뀌고, 천태 · 묘락이 이미 논한 교판의 정리에서 대성인 독자의 법문으로 넘어간다.

제7장은 적문 정종분 팔품을 두 방향으로 읽었다. 차례로 읽으면 보살 · 이승 · 범부를 위한 설법이지만, 유통분에서 거슬러 읽으면 멸후, 그 가운데 말법, 그 가운데 니치렌이 정의가 된다. 이것은 「관심의 본존초」의 일왕 · 재왕과 같은 구조이며, 신력품에서 결요부촉을 받은 상행보살의 자리에서만 가능한 읽기였다. 그 증거로 대성인은 법사품의 「況滅度後」와 권지품 이십행의 게를 드셨고, 「삭삭견빈출」까지 몸으로 읽으신 기쁨을 「기쁨이 몸에 넘쳐 스스로 찬탄한다」고 토로하셨다. 경문대로 난을 받으셨다는 것은 난신난해의 요법, 곧 삼대비법을 지니고 펴신다는 뜻이었다.

제8장은 본문으로 옮겨 「본문의 마음」에 두 뜻이 있다고 하셨다. 약개근현원은 재세의 득탈을 위해, 광개근현원의 일품이반은 오로지 멸후를 위해. 천태대사의 일품이반에서 약개근현원을 빼고 동집생의부터 헤아리신 이 배립은, 미륵 의청의 「미래를 위해」라는 문의에 근거하여 수량품의 문상의 측면을 약개 쪽으로 물리신 것이었다. 그 결과 수량품에는 문저의 측면만 남고, 대성인의 일품이반은 「관심의 본존초」 오중삼단의 문저하종삼단 정종분, 곧 「나의 내증의 수량품」이 된다. 그 소전은 「수량품의 간심인 묘법연화경의 오자」이며, 일대성교와 팔종의 장소는 체외로는 그 서분, 체내로는 그 유통분이 된다.

제9장은 첫째 뜻을 자세히 밝혔다. 이전 경에서 석존의 제자가 아니라 오히려 스승이나 선지식이던 화엄의 보살 · 천인은 적문에서 일불승이라는 아직 듣지 못한 법을 듣고 제자가 되었고, 녹야원 이래 권법만 받던 성문은 적문에서 실법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본문 약개근현원에 이르러 묘각에 이웃하고 또 묘각에 들었다. 문상으로는 등각이지만, 내증의 수량품의 눈으로 보면 구원 하종의 신심의 지위로 돌아가 명자묘각에 든 것이다. 하늘의 해와 달은 그렇게 묘각에 든 부처가 본래의 자리에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모습이며, 니치칸 상인은 그것을 본인묘의 교주 석존 · 일월 · 니치렌 대성인의 「일체이명」으로 읽었다.

세 장을 꿰는 논리는 단순하다. 적문도 말법을 위해, 본문의 광개근현원도 오로지 멸후를 위해, 재세의 중생은 이미 약개근현원으로 득탈을 마쳤다. 그렇다면 남는 물음은 하나다. 광개근현원의 수량품은 멸후 가운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다음 제4편 「광개근현원과 제일의 양약 — 수량품은 말법을 위해」는 이 물음에 「말법 금시의 니치렌 등을 위함」이라고 답하는 제10장과, 다보의 증명 · 시방의 조설 · 지용의 용출까지 「오로지 우리를 위함」이라고 판정하는 제11장을 읽는다. 「모든 병 가운데 법화경을 비방하는 것이 제일의 중병이요, 모든 약 가운데 남묘호렌게쿄는 제일의 양약」이라는 말씀이 거기서 나온다.

더 읽기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법화취요초」(어서전집 331–338쪽) 및 해설에 인용한 어서 — 「관심의 본존초」 · 「개목초」 · 「선시초」 · 「시모야마어소식」 · 「현불미래기」 · 「제법실상초」 · 「전중경수법문」 · 「토롱어서」 · 「사도어감기초」 · 「종종어진무어서」 · 「약왕품득의초」 · 「신니부인답서」 · 「소야입도전허어서」 · 「일대성교대의」 · 「기도초」 · 「호렌초」 ·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 · 「고우니부인어서」 · 「수호국가론」 · 『어의구전』
  • 『묘법연화경』(구마라집 역) T9 no.262 — 방편품 · 비유품 · 신해품 · 법사품 · 견보탑품 · 제바달다품 · 권지품 · 안락행품 · 종지용출품 · 여래수량품 · 분별공덕품 · 묘장엄왕본사품 · 보현보살권발품
  • 『무량의경』 T9 no.276
  • 『대방광불화엄경』(육십권 · 팔십권) — 세주묘엄품 · 입법계품
  • 『대반열반경』 T12 no.374
  • 천태대사, 『법화현의』 T33 no.1716 · 『법화문구』 T34 no.1718 · 『마하지관』 T46 no.1911
  • 묘락대사, 『법화문구기』 T34 no.1719
  • 전교대사, 『수호국계장』
  • 니치칸 상인, 『법화취요초 문단』 · 『관심본존초 문단』 · 「당류행사초」 · 「문저비침초」(강의의 인용을 통해)

연구 · 해설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법화취요초」 영역 수록)
더 읽기

이 편에 인용된 어서

어서 연구 전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