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밤의 외딴섬 — 눈 덮인 묘지 들판의 낡은 작은 당 창 하나에 희미한 등불이 비치고, 너머로 어두운 바다와 먼 산, 하늘 높이 가는 초승달이 뜬 금박 수묵화

말법 법화경 행자의 소유

개목초 · 제4편 · 제25~28장

開目抄 上 — 末法法華経行者の所由(第二十五章~第二十八章)어서 200–203쪽
저술
분에이 9년(1272) 2월 · 사도 쓰카하라
장
제25~28장 (상권)
쪽수
어서 200–203쪽

「이에 니치렌이 생각하여 말하기를(此に日蓮案じて云く)」 — 이 한 구절에서 개목초는 방향을 바꾼다. 제1편부터 제3편까지 대성인은 유교 · 외도 · 불교, 소승과 대승, 권교와 실교, 적문과 본문을 차례로 견주어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 밑에 잠겨 있다」는 결론에 이르셨다. 그런데 그 법이 아무리 깊어도 말법에 그것을 몸으로 읽는 사람이 없으면 경문은 빈말이 된다. 이 편의 네 장은 바로 그 「사람」을 묻는다. 대성인은 자신이 왜 하천한 범부의 몸으로 말법의 변토에 태어났는지, 왜 말하면 반드시 난이 오는 줄 알면서도 말하기로 서원했는지, 이십여 년의 법난이 어떻게 법화경 · 열반경의 예언과 하나하나 들어맞는지를 밝히신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렇다면 왜 하늘은 돕지 않는가」라는 가장 무거운 의문을 스스로 세우고 그것을 「이 책의 간심 · 일생의 대사」라 부르신다.

니치칸 상인의 분단에 따르면 「此に日蓮案じて云く」 아래는 대성인이 법화경에 예언된 말법 단 한 사람의 법화경 행자이며 상행보살의 재탄이심을 밝혀, 말법 하종의 주사친 삼덕의 깊은 은혜를 드러내는 큰 단락이다. 제1장에서 「무릇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이 세 가지 있으니, 이른바 주 · 사 · 친이니라」라고 내건 물음이 여기서 처음으로 「누가 말법의 주사친인가」라는 구체적인 사람의 물음으로 바뀐다. 그러므로 니치칸 상인은 개목초를 「인본존 개현의 서(人本尊開顕の書)」라 부르고, 이 편의 제28장에서 대성인이 「이 책의 간심」이라 하신 의문이 바로 그 인본존 개현의 열쇠라고 본다.

이 편은 개목초 상권(186–210쪽)의 한가운데, 오중상대의 교판이 끝나고 행자론이 시작되는 자리에 있다. 제24장이 「멸후의 난신」 — 부처 멸후에는 경을 바르게 믿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 — 을 맺었으므로, 제25장은 그 어려움을 실제로 짊어진 한 사람의 고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제28장이 세운 「하늘이 돕지 않는다」는 의문은 제29장 이하(제5편)의 이승 · 보살의 수호 문제, 하권의 보탑품 삼개의 칙선과 제바품 이개의 간효(제7편), 권지품 이십행게와 삼류의 강적(제8편)을 거쳐, 「詮ずるところは天もすて給え諸難にもあえ身命を期とせん」(232쪽)이라는 대서원에서 비로소 답을 얻는다. 이 편은 개목초 전체를 꿰는 그 긴 문답의 첫 매듭이다.

  1. ①제1~3편 오중상대의 교판무엇이 참된 법인가
  2. ②제4편 말법 법화경 행자의 소유누가 그 법을 몸으로 읽는가
  3. ③제5편 이하 의문과 응답이승 · 보살의 수호 → 삼개의 칙선 · 이개의 간효 → 삼류의 강적
    詮ずるところは天もすて給え諸難にもあえ身命を期とせん결국은 하늘도 버리시라, 온갖 난에도 부딪치리라, 신명을 걸겠노라 (232쪽)
도표 1 · 이 편의 자리

이 편의 장

第二十五章末法法華経行者の所由제25장 말법 법화경 행자의 소유 — 변토 · 하천 · 빈도의 몸으로 태어난 까닭과, 「말하면 난이 온다」는 줄 알면서 말하기로 서원하신 결단
第二十六章略して法華経行者なるを釈す제26장 간략히 법화경의 행자임을 풀다 — 이십여 년 네 번의 대난이라는 현증과, 법화경 · 열반경 · 천태 · 묘락 · 동춘 · 전교의 문증
第二十七章経文一一に符合するを明かす제27장 경문 하나하나에 부합함을 밝히다 — 권지품 이십행게를 몸으로 읽은 단 한 사람, 그리고 「원겸어업」의 기쁨
第二十八章疑いを挙げて法華経行者なるを釈す제28장 의문을 들어 법화경의 행자임을 풀다 — 「어찌하여 하늘이 돕지 않는가」, 이 책의 간심이자 일생의 대사
제25장 말법 법화경 행자의 소유
어서 200쪽 2행~16행 · 第二十五章 末法法華経行者の所由

본문

원문 대조어서 200쪽 2~16행
本文 · 어서 원문

此に日蓮案じて云く世すでに末代に入つて二百余年・辺土に生をうけ其の上下賤・其の上貧道の身なり、 輪回六趣の間・人天の大王と生れて万民をなびかす事・大風の小木の枝を吹くがごとくせし時も仏にならず、 大小乗経の外凡・内凡の大菩薩と修しあがり一劫・二劫・無量劫を経て菩薩の行を立てすでに不退に入りぬべかりし時も・強盛の悪縁におとされて仏にもならず、 しらず大通結縁の第三類の在世をもれたるか久遠五百の退転して今に来れるか、法華経を行ぜし程に世間の悪縁・王難・外道の難・小乗経の難なんどは忍びし程に権大乗・実大乗経を極めたるやうなる道綽・善導・法然等がごとくなる悪魔の身に入りたる者・法華経をつよくほめあげ機をあながちに下し理深解微と立て未有一人得者・千中無一等と・すかししものに無量生が間・恒河沙の度すかされて権経に堕ちぬ権経より小乗経に堕ちぬ外道・外典に堕ちぬ結句は悪道に堕ちけりと深く此れをしれり、 日本国に此れをしれる者は但日蓮一人なり。 これを一言も申し出すならば父母・兄弟・師匠に国主の王難必ず来るべし、いはずば・慈悲なきに・にたりと思惟するに法華経・涅槃経等に此の二辺を合せ見るに・いはずば今生は事なくとも後生は必ず無間地獄に堕べし、 いうならば三障四魔必ず競い起るべしと・しりぬ、二辺の中には・いうべし、王難等・出来の時は退転すべくは一度に思ひ止るべしと且くやすらいし程に宝塔品の六難九易これなり、 我等程の小力の者・須弥山はなぐとも我等程の無通の者・乾草を負うて劫火には・やけずとも我等程の無智の者・恒沙の経経をば・よみをぼうとも法華経は一句一偈も末代に持ちがたしと・とかるるは・これなるべし、 今度・強盛の菩提心を・をこして退転せじと願じぬ。

풀이

이에 니치렌이 생각하여 말하기를, 세상은 이미 말대(末代)에 들어 이백여 년이요, 변토(辺土)에 생을 받았으며 그 위에 하천(下賤)하고 그 위에 빈도(貧道)의 몸이니라. 육취(六趣)를 윤회하는 동안 인계 · 천계의 대왕으로 태어나 만민을 따르게 하기를 큰 바람이 작은 나뭇가지를 휘게 하듯 하던 때에도 부처가 되지 못하였고, 대승 · 소승경의 외범(外凡) · 내범(内凡)의 대보살로 닦아 올라가 일겁 · 이겁 · 무량겁을 지나며 보살의 행을 세워 이미 불퇴(不退)에 들 만하던 때에도 강성한 악연에 떨어져 부처가 되지 못하였느니라. 알지 못하겠노라, 대통결연(大通結縁)의 제삼류로서 재세에서도 빠진 것인가, 구원 오백(久遠五百)에 퇴전하여 지금에 이른 것인가. 법화경을 행하던 동안 세간의 악연 · 왕난 · 외도의 난 · 소승경의 난 따위는 견디어 왔으나, 권대승 · 실대승경을 다 깨친 듯한 도작 · 선도 · 법연 등과 같은, 악마가 몸에 들어간 자가 법화경을 강하게 칭찬하여 올리고 기근(機根)을 억지로 낮추어 「이심해미(理深解微)」라 세우고 「미유일인득자(未有一人得者)」 · 「천중무일(千中無一)」 등이라 하여 속이는 자에게, 무량생 동안 항하사의 횟수만큼 속아서 권경에 떨어지고, 권경에서 소승경에 떨어지고, 외도 · 외전에 떨어지고, 결국은 악도에 떨어졌음을 깊이 이를 알았느니라. 일본국에서 이를 아는 자는 다만 니치렌 한 사람뿐이니라. 이를 한마디라도 꺼내어 말한다면 부모 · 형제 · 스승의 반대에 더하여 국주의 왕난이 반드시 오리라. 말하지 않는다면 자비가 없는 것과 같으리라고 사유하던 차에, 법화경 · 열반경 등에 이 두 갈래(二辺)를 맞추어 보니, 말하지 않으면 금생은 무사할지라도 후생에는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말한다면 삼장사마(三障四魔)가 반드시 다투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느니라. 두 갈래 가운데에서는 말해야 하느니라. 왕난 등이 일어날 때 퇴전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단념하리라 하고 잠시 망설이던 차에, 보탑품의 육난구이(六難九易)가 바로 이것이니라. 우리 같은 힘없는 자가 수미산은 던질지라도, 우리 같은 신통 없는 자가 마른 풀을 지고 겁화(劫火)에 타지 않을지라도, 우리 같은 지혜 없는 자가 항하사만큼의 경들을 읽어 외울지라도, 법화경은 한 구절 한 게송도 말대에 지니기 어렵다고 설해진 것은 이것이리라. 이번에야말로 강성한 보리심을 일으켜 퇴전하지 않으리라고 서원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末代に入つて二百余年말대에 들어 이백여 년
대성인 당시 일본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연대관(불멸 기원전 949년설)에 따르면 정법 천 년, 상법 천 년이 지나 에이쇼 7년(1052)에 말법에 들어갔다. 개목초를 쓰신 분에이 9년(1272)은 그로부터 이백이십 년쯤 된다. 강의의 현대어 번역은 이를 「불교가 모두 그릇된 말법의 시대에 들어 이미 이백여 년」이라 풀어, 단순한 연수가 아니라 백법은몰(白法隠没)의 때임을 드러낸다.
辺土변토
중앙에서 먼 땅. 인도 · 중국에 대해 일본을 가리킨다는 설과, 일본 안에서도 변두리인 아와노쿠니(房州)를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강의는 니치칸 상인이 뒤의 설을 따라야 한다고 한 것을 따른다.
下賤하천
신분이 낮음. 대성인은 「사도어서」에서 스스로 「旃陀羅が家より出たり」라 하시고, 「본존문답초」에서는 「片海の海人が子」라 하셨다.
貧道の身빈도의 몸
몸에 한 가지도 가진 것이 없다는 뜻. 뒤에는 승려가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널리 쓰였다.
輪回六趣육취 윤회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 · 천의 여섯 갈래를 끝없이 돌며 나고 죽는 것. 대성인은 자신의 과거세를 이 윤회 속에서 돌아보신다.
外凡・内凡외범 · 내범
아직 성자의 지위에 들지 못한 범부의 지위(凡位, 賢位) 가운데, 이치를 어느 정도 아는 자를 내범, 전혀 모르는 자를 외범이라 한다. 장교에서는 외범이 삼현, 내범이 사선근이고, 통교에서는 외범이 건혜지(정관지), 내범이 성지(종지)이며, 별교에서는 외범이 십신, 내범이 십주 · 십행 · 십회향이고, 원교에서는 외범이 오품제자위, 내범이 십신이다. 오품제자위는 분별공덕품에 설한 「멸후의 오품」 — 수희품 · 독송품 · 설법품 · 겸행육도품 · 정행육도품 — 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오품보다 아래인 명자즉의 위(位)에서 오십이위를 거치지 않고 성불한다고 설한다.
不退불퇴
수행해 얻은 공덕과 지위에서 다시 물러나지 않는 경지. 대성인은 「이미 불퇴에 들 만하던 때」에도 악연에 떨어졌다고 하셔서, 수행의 높이보다 악연의 힘이 더 무서움을 보이신다.
大通結縁の第三類대통결연의 제삼류
법화경 화성유품에 설한다. 삼천진점겁 옛날 대통지승불이 열여섯 왕자에게 법화경을 설하고, 왕자들이 저마다 다시 법화경을 설해 중생을 교화했다(대통복강). 그 열여섯째 왕자가 석존의 과거세이며, 이 왕자와 맺은 인연을 대통결연이라 한다. 결연한 중생은 불퇴(제1류) · 퇴대취소(제2류) · 미발심(제3류)으로 나뉜다. 제삼류는 구원의 하종을 잊었기에 대통복강 때 법화경을 듣고도 발심하지 못한 무리이며, 석존 재세의 법화경에도 만나지 못하고 미혹한 채로 말법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久遠五百の退転구원 오백의 퇴전
오백진점겁의 구원에 법화경의 하종을 받았으나 퇴전해 악도에 떨어지고 지금에 이르렀다는 뜻. 대통의 제삼류보다 더 먼 옛날로 거슬러 오르는 가정이다.
道綽도작
(562~645). 수 · 당의 정토교 조사. 병주 문수(지금의 산시성 타이위안) 사람, 성은 위(衛)씨. 열네 살에 출가해 열반경을 배웠으나 현중사에서 담란의 비문을 보고 정토교에 귀의했다.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성도문 · 정토문으로 나누고, 법화경을 포함한 성도문을 「미유일인득자」의 가르침이라 하여 물리쳤다. 저서 『안락집』 2권.
善導선도
(613~681). 초당의 승려로 중국 정토교 선도류의 대성자. 성은 주(朱)씨, 사주 사람(일설에 산둥성 임치). 처음 삼론을 배우고 법화경 · 유마경을 외웠으나 관무량수경을 보고 서방정토에 뜻을 두었다. 정관 연간에 현중사로 도작을 찾아가 배우고, 도작 사후 장안 광명사 등에서 칭명염불을 폈다. 정행 · 잡행의 두 행을 세워 잡행의 자는 「천중무일」, 정행의 자는 「십즉십생」이라 했다. 저서 『관경소』 4권, 『왕생예찬게』 1권 등. 일본의 법연은 『관경소』를 보고 오로지 정토문에 귀의했다고 한다.
法然법연
(1133~1212). 헤이안 말기의 승려, 일본 정토종의 개조. 휘는 겐쿠(源空), 미마사카 사람. 아홉 살에 보리사의 간가쿠에게, 열다섯 살에 히에이산 공덕원의 고엔에게, 이어 구로다니의 에이쿠에게 배웠고, 스물네 살에 교토 · 나라에서 여러 종을 배운 뒤 구로다니 경장에서 대장경을 열람했다. 조안 5년(1175) 마흔세 살에 선도의 「관경산선의」와 겐신의 『왕생요집』을 보고 전수염불에 귀의해 정토종을 열었다. 겐에이 2년(1207) 문하 승려가 궁녀를 출가시킨 일을 발단으로 염불이 금지되고 도사(실제로는 사누키)로 유배되었다가 그해 12월 사면되었고, 셋쓰 가쓰오사를 거쳐 겐랴쿠 원년(1211) 교토로 돌아와 이듬해 여든 살로 죽었다. 저서 『선택집』 2권 등.
理深解微이심해미
「이치는 깊고 이해는 미약하다」. 도작의 『안락집』에서 말법의 중생이 법화경 같은 깊은 이치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한 말로, 정토문만이 말법의 기근에 맞는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未有一人得者・千中無一미유일인득자 · 천중무일
「아직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다」(도작 『안락집』), 「천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선도 『왕생예찬게』). 선도는 다섯 가지 정행 외에 법화경 등 다른 경교의 수행으로 극락에 왕생할 자는 천 명 가운데 한 명도 없다고 했다.
三障四魔삼장사마
불도 수행을 방해하고 선한 마음을 해치는 세 가지 장애와 네 가지 마. 삼장은 번뇌장(탐 · 진 · 치 등의 혹에서 일어나는 장애), 업장(오역 · 십악 등에서, 또 처자 등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장애), 보장(삼악도 · 방법 · 일천제의 과보가 장애가 되는 것, 또 국왕 · 부모 · 권력자에게서 오는 장애)이다. 사마는 번뇌마, 음마(오음이 임시로 화합한 몸 자체가 고뇌의 근원이 됨), 사마(죽음이 목숨을 끊음), 천자마(타화자재천자마의 줄임말, 권력자의 박해 등)이다.
宝塔品の六難九易보탑품의 육난구이
법화경 견보탑품에서 석존이 멸후에 법화경을 지니는 어려움을 보이기 위해 든 여섯 가지 어려움과 아홉 가지 쉬움. 수미산을 던지는 일, 마른 풀을 지고 겁화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일, 무수한 경을 설하는 일 같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도 「아직 어렵다고 하기에 부족하다」 하고, 부처 멸후 악세에 이 경을 설하고 · 쓰고 · 읽고 ·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설하고 · 듣고 그 뜻을 묻고 · 받들어 지니는 일을 「어렵다」고 했다.
劫火겁화
세계가 무너지는 괴겁 때 일어나 모든 것을 태운다는 큰 불. 견보탑품의 「劫焼」.

「이에 니치렌이 생각하여 말하기를」 — 교판에서 사람으로

제25장 첫머리의 「此に日蓮案じて云く」는 개목초의 문체가 바뀌는 자리다. 앞의 스물네 장에서 대성인은 거의 언제나 제삼자의 자리에 서서 유교의 삼황오제, 외도의 삼선 · 육사, 불교의 소승 · 권대승, 이전 · 적문 · 본문을 차례로 저울질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으로 주어가 「니치렌」이 된다. 교판의 언어가 고백의 언어로, 「무엇이 옳은가」의 물음이 「나는 왜 여기 있는가」의 물음으로 바뀐다.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개목초 문단」에 따라 이 「此に日蓮案じて云く」 아래를 하나의 큰 단락으로 묶는다. 그 요지는 대성인이 법화경에 예언된 말법 단 한 사람의 법화경 행자이며 상행보살의 재탄이심을 말씀하여, 말법 하종의 삼덕의 깊은 은혜를 나타내신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제25장은 특히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가 된 「소유(所由)」, 곧 그 까닭과 내력을 말씀하신 장이다.

이 전환은 앞 장과 단단히 이어져 있다. 제24장은 「세상이 점점 말세가 되면 성현은 점점 숨고 미혹한 자는 점점 많아진다」, 그러니 부처 멸후 법화경을 바르게 믿기란 갈수록 어렵다는 「멸후의 난신」을 맺었다. 그렇다면 그 가장 어려운 때, 가장 먼 땅에서 누가 이 경을 믿고 펼 것인가. 제25장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대성인 자신의 생애로 내놓는다. 말법 · 변토 · 하천 · 빈도라는 네 겹의 불리한 조건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먼저 드러내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장 어려운 조건 속에서 경을 지니는 사람이야말로 견보탑품이 말한 「육난」을 실제로 감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강의는 「此に日蓮案じて云く」 아래를, 대성인이 말법 단 한 사람의 법화경 행자이며 상행보살의 재탄으로서 말법 하종의 주사친 삼덕을 갖추신 분임을 밝히는 단락의 시작으로 본다. 제25장은 그 행자가 된 「까닭」을 보이는 장이다.

변토 · 하천 · 빈도 — 말법의 부처는 왜 범부의 몸으로 오는가

「변토」는 어디인가

「辺土に生をうけ」의 변토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전해 왔다. 하나는 불교의 중심지인 인도와 중국에 견주어 일본 전체를 변토라 부른다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안에서도 수도와 멀리 떨어진 아와노쿠니(房州)를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니치칸 상인은 뒤의 해석을 따라야 한다고 했고, 강의도 이를 따른다. 대성인 자신도 여러 어서에서 출생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셨다.

然るに日蓮は東海道・十五箇国の内・第十二に相当る安房の国長狭の郡・東条の郷・片海の海人が子なり

그런데 니치렌은 도카이도 열다섯 나라 가운데 열두째에 해당하는 아와노쿠니 나가사군 도조고 가타우미의 어부의 아들이니라.

「본존문답초」, 370쪽

「그 위에 하천」 — 종성을 밝히심

변토에도 신분이 높은 사람은 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辺土」에 그치지 않고 「其の上下賤」이라 하여 자신의 종성(種姓)까지 밝히셨다. 강의는 말법의 본불이 왜 하천한 집안에 태어나셨는가를 세 가지로 푼다.

첫째, 말법 하종의 법화경 행자는 삼류의 강적이 다투어 일어남으로써 비로소 경문의 예언에 들어맞는다. 만일 대성인이 존귀한 집안에 태어나셨다면 국주도 함부로 박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승려와 속인도 쉽게 업신여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삼류의 강적은 일어나기 어렵고, 법화경의 행자라는 신분도 드러나기 어렵다. 권지품 이십행게가 예언한 「악구매리」 · 「도장와석」 · 「삭삭견빈출」은 업신여김을 받을 수 있는 몸이라야 실제로 일어난다.

둘째, 사지(邪智)와 방법의 극악인이 가득한 말법에는 하종 역연(逆縁)의 공덕으로만 일체중생이 구제된다. 법을 듣고 기뻐하는 순연(順縁)만이 아니라, 법을 듣고 반발하고 비방하는 역연까지 모두 성불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 말법 하종의 원리다. 업신여김을 받는 몸이기에 오히려 그 반발까지 인연으로 삼을 수 있다.

셋째, 자비의 문(悲門)은 하천한 일체 대중을 구제하는 것을 묘(妙)로 삼는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범부의 모습으로, 하천한 대중 한가운데에 태어나셨다.

하천을 업신여기는 자에게 — 「사도어서」와 「나카오키입도어소식」

강의는 다른 종파가 대성인의 출신이 하천하다고 깎아내린 데 대해 다음 두 어서를 깊이 읽으라고 권한다.

日蓮今生には貧窮下賤の者と生れ旃陀羅が家より出たり……心は法華経を信ずる故に梵天帝釈をも猶恐しと思はず身は畜生の身なり色心不相応の故に愚者のあなづる道理なり

니치렌은 금생에는 빈궁하고 하천한 자로 태어나 전다라의 집에서 나왔느니라. …… 마음은 법화경을 믿는 까닭에 범천 · 제석조차 오히려 두렵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몸은 축생의 몸이니라. 색(色)과 심(心)이 서로 걸맞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자가 업신여기는 것이 도리이니라.

「사도어서」, 958쪽

이 구절의 핵심은 「色心不相応」이다. 마음은 범천 · 제석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법화경으로 가득하지만, 몸은 가난하고 천한 범부의 몸이다. 겉모습만 보는 어리석은 자는 그 몸을 보고 업신여긴다. 그러나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대성인이 경문대로의 행자라는 증거가 된다. 같은 어서는 이어서 「大通第三の余流にもやあるらん」이라 하여, 이 장의 「大通結縁の第三類」와 똑같은 자기 성찰을 보이신다.

然るに日蓮は中国・都の者にもあらず・辺国の将軍等の子息にもあらず・遠国の者・民が子にて候いしかば・日本国・七百余年に一人も・いまだ唱へまいらせ候はぬ南無妙法蓮華経と唱え候のみならず、皆人の父母のごとく日月の如く主君の如くわたりに船の如く渇して水のごとくうえて飯の如く思いて候

그런데 니치렌은 중앙 · 도읍의 사람도 아니고, 변방 장군들의 자식도 아니며, 먼 지방 사람이요 백성의 자식이었으므로 …… 일본국 칠백여 년 동안 한 사람도 아직 부르지 못한 남묘호렌게쿄를 불렀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부모처럼, 해와 달처럼, 주군처럼, 나루터의 배처럼, 목마를 때의 물처럼, 굶주릴 때의 밥처럼 여기는 ……

「나카오키입도어소식」, 1332쪽

중앙의 귀족도 변방의 무가도 아닌 「民が子」가 일본국 칠백 년 동안 아무도 부르지 못한 남묘호렌게쿄를 처음 불렀다는 이 대비는, 법의 존귀함이 태생의 존귀함과 아무 상관이 없음을 보인다. 오히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법이 나왔다. 대성인은 사도 유배를 앞두고 고향 세이초사의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같은 자각을 보이셨다.

日蓮は日本国東夷東条安房の国海辺の旃陀羅が子なりいたづらにくちん身を法華経の御故に捨てまいらせん事あに石に金をかふるにあらずや

니치렌은 일본국 동이 도조 아와노쿠니 해변의 전다라의 아들이니라. 헛되이 썩을 몸을 법화경 때문에 버린다면 어찌 돌을 금과 바꾸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도어감기초」, 891쪽

「전다라(旃陀羅, caṇḍāla)」는 고대 인도 사성 바깥의 가장 낮은 신분을 가리키는 말로, 중세 일본에서는 어업 · 수렵 등 살생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로도 쓰였다. 대성인은 이 말을 스스로에게 쓰셔서, 당시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자신을 두셨다. 어서 원문의 표현은 그대로 두고 그 뜻을 이렇게 새긴다.

하천한 몸에 갖춘 존귀 — 니치칸 상인의 「육의」와 범부즉극

육의(六意)

강의는 대성인이 하천한 몸으로 태어나셨으면서도 일본 제일의 존덕을 갖추신 「존귀 중의 지극한 존귀」라 하고, 니치칸 상인이 이 장의 뜻에 따라 밝힌 여섯 가지 존귀를 든다.

一には謂く智慧尊貴なり能く流転の所以を知り給う故なり、二には謂く慈悲尊貴なり能く大悲を以て折伏の心地を決定し給う故なり、三には謂く誓願尊貴なり能く身命を愛せざるの誓願を立て給う故なり、四には謂く行者尊貴なり能く三類の強敵を忍び給うゆえなり、五には謂く本地尊貴なり云云六には謂く三徳尊貴なり云云、且らく当抄の意に依って略して以て六意を示す、何ぞ六意のみに止まらんや、実に無量の徳を備う、誰か尊重讃嘆せざらんや

첫째는 지혜의 존귀이니, 능히 유전(流転)의 까닭을 아시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비의 존귀이니, 능히 대비로써 절복의 마음을 굳히셨기 때문이다. 셋째는 서원의 존귀이니, 능히 신명을 아끼지 않는 서원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넷째는 행자의 존귀이니, 능히 삼류의 강적을 견디셨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본지의 존귀요, 여섯째는 삼덕의 존귀이다. 잠시 이 어서의 뜻에 따라 간략히 여섯 뜻을 보였으나 어찌 여섯 뜻에 그치겠는가. 실로 무량한 덕을 갖추셨으니 누가 존중하고 찬탄하지 않겠는가.

니치칸 상인 「개목초 문단」, 강의 인용
  1. 1智慧尊貴지혜의 존귀유전의 까닭을 아심日本国に此れをしれる者は但日蓮一人なり일본국에서 이를 아는 자는 다만 니치렌 한 사람뿐이니라
  2. 2慈悲尊貴자비의 존귀대비로 절복의 마음을 굳히심いはずば・慈悲なきに・にたり말하지 않는다면 자비가 없는 것과 같으리라
  3. 3誓願尊貴서원의 존귀신명을 아끼지 않는 서원今度・強盛の菩提心を・をこして退転せじと願じぬ이번에야말로 강성한 보리심을 일으켜 퇴전하지 않으리라고 서원하였느니라
  4. 4行者尊貴행자의 존귀삼류의 강적을 견디심 · 제26 · 27장
  5. 5本地尊貴본지의 존귀日蓮といゐし者は去年九月十二日子丑の時に頸はねられぬ니치렌이라 하던 자는 지난해 9월 12일 자시 · 축시에 목이 베였느니라 (223쪽)
  6. 6三徳尊貴삼덕의 존귀日蓮は日本国の諸人にしうし父母なり니치렌은 일본국 모든 사람에게 주 · 사 · 부모이니라 (237쪽)
도표 2 · 하천한 몸에 갖춘 여섯 존귀 — 니치칸 상인의 「육의」

여섯 뜻은 모두 이 장과 이 편의 본문에 근거를 둔다. 하나씩 본문과 맞추어 보면 이렇다.

지혜의 존귀 — 「深く此れをしれり、日本国に此れをしれる者は但日蓮一人なり」. 자신과 일체중생이 무량겁 동안 왜 성불하지 못하고 육취를 떠돌았는가, 곧 「유전의 까닭」을 깊이 아신 지혜다. 그 까닭은 악지식에게 속아 법화경을 버린 데 있다.

자비의 존귀 — 「いはずば・慈悲なきに・にたり」. 말하면 난이 오는 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은 자비가 없는 것이라 하여 절복의 길을 택하신 마음이다.

서원의 존귀 — 「今度・強盛の菩提心を・をこして退転せじと願じぬ」. 권지품의 「我不愛身命 但惜無上道(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끼노라)」를 그대로 몸에 새긴 서원이다.

행자의 존귀 — 제26 · 27장에서 밝히는 이십여 년의 법난, 곧 권지품 이십행게가 예언한 삼류의 강적을 실제로 견디신 일이다.

본지의 존귀 — 니치칸 상인은 여기서 「운운」이라 하여 말을 아꼈다. 행자로서의 겉모습 밑에 있는 본지, 곧 대성인의 내증이 무엇인가는 개목초가 하권에서 밝히는 바다.

삼덕의 존귀 — 제1장에서 내건 주 · 사 · 친의 삼덕을 말법에 갖추신 분이라는 뜻이다. 개목초는 맨 끝에서 「日蓮は日本国の諸人にしうし父母なり(니치렌은 일본국 모든 사람에게 주 · 사 · 부모이니라)」(237쪽)라고 이를 직접 선언하신다.

범부즉극 — 하천한 몸이 곧 본지의 몸

다섯째 「본지의 존귀」와 여섯째 「삼덕의 존귀」는 이 장의 하천 · 빈도와 정면으로 맞선다. 서른두 가지 상호를 갖춘 부처가 아니라 업신여김을 받는 범부의 몸이 어떻게 말법의 주사친일 수 있는가. 개목초는 그 답을 하권에서 다음과 같이 드러낸다.

日蓮といゐし者は去年九月十二日子丑の時に頸はねられぬ、此れは魂魄・佐土の国にいたりて返年の二月・雪中にしるして有縁の弟子へをくれば

니치렌이라 하던 자는 지난해 9월 12일 자시 · 축시에 목이 베였느니라. 이것은 혼백이 사도의 나라에 이르러 이듬해 2월 눈 속에서 적어 유연의 제자에게 보내는 것이니.

「개목초 하」, 223쪽

제8편에서 자세히 다루듯이, 강의는 이 대목의 겉뜻(附文の辺)을 권지품의 「급가도장(及加刀杖)」과 「삭삭견빈출」을 몸으로 읽은 것으로 풀고, 그 속뜻(元意の辺)을 범부인 대성인의 몸이 그대로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으로 나타나신 것, 곧 발적현본으로 푼다. 목이 베인 것은 「니치렌이라 하던 자」, 곧 업신여김을 받던 범부로서의 자취(迹)이며, 사도의 눈 속에서 개목초를 쓰는 것은 그 자취를 벗고 드러난 본지의 혼백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본지가 하천한 범부의 몸을 버리고 다른 데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류노구치 이후에도 대성인은 여전히 가난한 유인(流人)이었고, 쓰카하라 삼매당은 지붕이 새고 눈이 들이치는 묘지 가운데 작은 당이었다. 범부의 몸 그대로가 지극한 부처의 몸이라는 범부즉극(凡夫即極)의 뜻이 여기에 있다. 제25장이 하천 · 빈도를 숨기지 않고 먼저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 몸이야말로 본지가 나타날 자리이기 때문이다. 니치칸 상인이 「본지의 존귀」를 「운운」으로 남겨 둔 뜻도, 이 장에서는 아직 행자의 자리에서 말씀하시고 본지는 하권에서 드러내시는 개목초의 순서를 따른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개목초」는 제25장에서 「행자가 된 까닭」을 말하고, 제49장(223쪽)에서 「日蓮といゐし者は……頸はねられぬ」라 하여 행자의 몸에서 본지를 드러낸다. 앞의 것은 범부로서의 자기 성찰이고, 뒤의 것은 그 범부의 몸 그대로 드러난 본지의 선언이다. 두 대목은 같은 사람을 다른 높이에서 말한다.

「상행보살의 재탄」이라는 자각

강의가 이 단락의 요지에서 「상행보살의 재탄」을 말하는 것은, 대성인 자신의 다른 어서에도 근거가 있다. 미노부에서 쓰신 편지에서 대성인은 자신을 낳은 부모의 인연을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셨다.

日蓮は日本第一の法華経の行者なりすでに勧持品の二十行の偈の文は日本国の中には日蓮一人よめり、八十万億那由佗の菩薩は口には宣たれども修行したる人一人もなし

니치렌은 일본 제일의 법화경 행자이니라. 이미 권지품 이십행의 게의 문은 일본국 가운데 니치렌 한 사람이 읽었느니라.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은 입으로는 펼쳤으나 수행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느니라.

「자쿠니치보어서」, 903쪽

같은 어서는 「日蓮となのる事自解仏乗とも云いつべし(니치렌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자해불승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라 하고, 이어 신력품의 「斯人行世間(이 사람은 세간에 행하여)」의 다섯 글자를 「上行菩薩末法の始の五百年に出現して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の光明をさしいだして無明煩悩の闇をてらすべしと云う事なり(상행보살이 말법의 처음 오백 년에 출현하여 남묘호렌게쿄 다섯 자의 광명을 비추어 무명번뇌의 어둠을 비추리라는 것)」라고 풀이하신다. 제25장의 「하천 · 빈도의 몸」은 바로 이 「斯人」이 말법에 실제로 나타난 모습이다.

무량겁의 고백 — 왜 이제까지 부처가 되지 못하였는가

세 번의 실패

「輪回六趣の間」 아래는 대성인이 자신의 과거세를 돌아보시는 대목이다. 세 겹의 실패가 차례로 그려진다.

첫째, 인계 · 천계의 대왕으로 태어나 만민을 「큰 바람이 작은 나뭇가지를 휘게 하듯」 따르게 했을 때에도 부처가 되지 못했다. 세간의 권력과 복덕이 성불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대승 · 소승경에 따라 외범 · 내범의 대보살로 닦아 올라가 일겁 · 이겁 · 무량겁 동안 보살행을 세워 이제 곧 불퇴에 들 즈음에도, 「강성한 악연」에 떨어져 부처가 되지 못했다. 수행의 높이가 성불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범 · 내범은 사교의 차제로 보면 모두 아직 성자의 지위에 들지 못한 범부의 지위이며, 이전의 경에 따른 수행은 아무리 오래 쌓아도 이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와 달리 대성인의 불법은 오품제자위보다도 아래인 명자즉의 범부가 오십이위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성불한다고 설한다. 이 장의 고백은 역겁수행(歴劫修行)의 길이 끝내 성불에 이르지 못한 것을 대성인 자신의 일로 말씀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그 실패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삼천진점겁 옛날 대통지승불의 법화경을 듣고도 믿지 못한 제삼류의 무리로서 석존 재세의 법화경에도 만나지 못하고 미혹한 채 말법에 태어났는가, 아니면 오백진점겁 구원에 법화경의 하종을 받고도 퇴전해 악도에 떨어졌다가 지금에 이르렀는가.

  1. 법화경
  2. 권경
  3. 소승경
  4. 외도 · 외전
  5. 악도
속이는 말
理深解微이심해미이치는 깊고 이해는 미약하다(도작)
未有一人得者미유일인득자아직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다(도작)
千中無一천중무일천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선도)
대통결연의 세 무리
제1류 불퇴제2류 퇴대취소제3류 미발심
도표 3 · 떨어짐의 사다리

떨어짐의 사다리

그 퇴전의 구체적인 모습이 이어서 그려진다. 세간의 악연, 왕난, 외도의 난, 소승경의 난은 견뎌 냈다. 무너뜨린 것은 그런 바깥의 압력이 아니었다. 「권대승 · 실대승경을 다 깨친 듯한」 학자, 곧 도작 · 선도 · 법연 같은 이가 법화경을 높이 칭찬하면서 동시에 「지금 사람의 기근으로는 감당하지 못한다」며 기근을 낮추었고, 그 말에 무량생 동안 항하사의 횟수만큼 속아 법화경에서 권경으로, 권경에서 소승경으로, 소승경에서 외도 · 외전으로, 마침내 악도로 한 계단씩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사다리의 모양은 제1편부터 제3편까지의 오중상대를 거꾸로 내려가는 모양과 같다. 오중상대가 외도에서 소승으로, 소승에서 권대승으로, 권대승에서 실대승으로 한 단씩 올라가며 참된 법을 가려낸 것이라면, 여기서 대성인이 고백하는 무량겁의 퇴전은 그 계단을 한 단씩 굴러 내려간 역사다. 교판이 머리로 세운 사다리라면 이 고백은 몸으로 겪은 사다리다.

불행의 근본은 바른 법을 만나지 못한 데 있다

강의는 이 대목을, 근대의 종교 철학에 어두운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인간 생명의 실상을 설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가난하게, 혹은 여러 불행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원인을 이 대목이 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과거세에 그릇된 가르침에 속은 데 있고, 그릇된 가르침에 속았다는 것은 곧 바른 법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성인 자신도 과거에 바른 법을 만나지 못했기에, 이번에야말로 결정코 바른 법을 펴서 지옥의 문을 닫으려 하셨다고 강의는 읽는다. 그리고 다음 어서를 같은 뜻으로 든다.

無始より已来法華経の御ゆへに実にても虚事にても科に当るならば争か・かかる・つたなき凡夫とは生れ候べき

무시이래로 법화경 때문에 참으로든 거짓으로든 죄를 입었더라면 어찌 이러한 못난 범부로 태어났겠는가.

「가책방법멸죄초」

과거세에 법화경 때문에 난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지금 이렇게 못난 범부로 태어났다는 것이니, 거꾸로 말하면 지금 법화경 때문에 받는 난이야말로 과거의 퇴전을 끊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강의는 과거세를 알아야 미래를 생각할 수 있고, 미래에 행복해지려면 현세에 바른 법을 믿고 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개목초 자신도 하권에서 이 장의 고백으로 돌아온다. 제56장의 대서원 바로 뒤에서 대성인은 사리불이 육십 겁의 보살행에서 물러난 것은 눈을 달라던 바라문의 책망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고, 「久遠大通の者の三五の塵をふる悪知識に値うゆへなり(구원 · 대통의 사람이 삼천 · 오백진점겁을 지난 것은 악지식을 만났기 때문이니라)」(232쪽)라고 하신다. 제25장에서 「알지 못하겠노라」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것이 제56장에서는 단정으로 바뀌어 있다.

악지식이 가장 두렵다 — 「악마가 몸에 들어간 자」

칭찬하면서 버리게 하는 방법

이 장에서 가장 날카로운 관찰은 도작 · 선도 · 법연이 법화경을 「つよくほめあげ」, 곧 강하게 칭찬하면서 버리게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법화경을 정면으로 비방하지 않았다. 오히려 법화경은 참으로 훌륭한 경이라고 높인 뒤에, 다만 말법의 범부는 기근이 낮아 그 깊은 이치를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이 「理深解微」이며, 그 결론이 「未有一人得者」 · 「千中無一」이다. 경을 높이는 말이 곧 경을 버리게 하는 말이 된 것이다. 대성인이 이들을 「悪魔の身に入りたる者」라 하신 것은 그 말의 효과 때문이다. 법화경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자보다, 법화경을 칭찬하며 사람을 그 바깥으로 데려가는 자가 더 깊이 사람을 무너뜨린다.

열반경의 악상과 악지식

강의는 이 대목을 열반경의 유명한 경문으로 푼다. 대성인은 「창법화제목초」에서 이 경문을 장안대사의 해석과 함께 인용하셨다.

悪象等に於ては心に恐怖する事無かれ悪知識に於ては怖畏の心を生ぜよ何を以ての故に是悪象等は唯能く身を壊りて心を破ること能わず悪知識は二倶に壊るが故に乃至悪象の為に殺されては三趣に至らず悪友の為に殺されては必ず三趣に至らん

사나운 코끼리 따위에는 마음에 두려워하지 말고 악지식에는 두려운 마음을 내라. 왜냐하면 사나운 코끼리 따위는 다만 몸을 부술 뿐 마음을 깨뜨리지 못하나, 악지식은 둘을 함께 부수기 때문이다. …… 사나운 코끼리에게 죽으면 삼취에 이르지 않으나 악한 벗에게 죽으면 반드시 삼취에 이른다.

『대반열반경』, 「창법화제목초」 7쪽에서 인용

강의는 「악상(悪象)」을 세간의 악연으로, 「악지식(悪知識)」을 출세간의 악연, 곧 그릇된 종교에 미혹되어 생명의 근원부터 좀먹히고 복운을 잃어 불행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푼다. 삼취는 지옥 · 아귀 · 축생의 삼악도다. 세간의 재난은 몸을 해칠 뿐이지만, 그릇된 가르침은 마음, 곧 성불의 근본을 해친다. 그러므로 강의는 모든 불행의 근원으로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릇된 종교이며, 세간의 불행과 괴로움은 그로 말미암은 보조적인 인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대성인은 「창법화제목초」에서 이 경문을 받아 「十悪五逆の者よりも謗法闡提のものをおそるべし(십악 · 오역의 자보다 방법 · 천제의 자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이 경의 뜻을 정리하셨다.

「형제초」 — 제육천의 마왕이 지자의 몸에 들어가다

강의는 이어서 「형제초」의 긴 구절을 든다.

されば法華経を信ずる人の・をそるべきものは賊人・強盗・夜打ち・虎狼・師子等よりも当時の蒙古のせめよりも法華経の行者をなやます人人なり、此の世界は第六天の魔王の所領なり一切衆生は無始已来彼の魔王の眷属なり……貪瞋癡の酒をのませて仏性の本心をたぼらかす、但あくのさかなのみを・すすめて三悪道の大地に伏臥せしむ、たまたま善の心あれば障碍をなす、法華経を信ずる人をば・いかにもして悪へ堕さんとをもうに叶わざればやうやくすかさんがために相似せる華厳経へをとしつ・杜順・智儼・法蔵・澄観等是なり、又般若経へすかしをとす悪友は嘉祥・僧詮等是なり、又深密経へ・すかしをとす悪友は玄奘・慈恩是なり、又大日経へ・すかしをとす悪友は善無畏・金剛智・不空・弘法・慈覚・智証是なり、又禅宗へすかしをとす悪友は達磨・慧可等是なり、又観経へすかしをとす悪友は善導・法然是なり、此は第六天の魔王が智者の身に入つて善人をたぼらかすなり、法華経第五の巻に「悪鬼其の身に入る」と説かれて候は是なり

그러므로 법화경을 믿는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도적 · 강도 · 야습 · 호랑이와 이리 · 사자 따위보다도, 지금의 몽골의 공격보다도, 법화경의 행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이니라. 이 세계는 제육천 마왕의 영지이며 일체중생은 무시이래 저 마왕의 권속이니라. …… 탐 · 진 · 치의 술을 먹여 불성의 본심을 속이고, 다만 악의 안주만을 권하여 삼악도의 대지에 엎드리게 하며, 어쩌다 선한 마음이 있으면 장애를 일으키느니라. 법화경을 믿는 사람을 어떻게든 악으로 떨어뜨리려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서서히 속이려고 [법화경과] 비슷한 화엄경으로 떨어뜨리니 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 등이 이것이요, 또 반야경으로 속여 떨어뜨리는 악우는 가상 · 승전 등이 이것이요, 또 심밀경으로 속여 떨어뜨리는 악우는 현장 · 자은이 이것이요, 또 대일경으로 속여 떨어뜨리는 악우는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홍법 · 자각 · 지증이 이것이요, 또 선종으로 속여 떨어뜨리는 악우는 달마 · 혜가 등이 이것이요, 또 관경으로 속여 떨어뜨리는 악우는 선도 · 법연이 이것이니라. 이는 제육천의 마왕이 지자의 몸에 들어가 선인을 속이는 것이니, 법화경 제5권에 「악귀가 그 몸에 들어간다」고 설한 것이 이것이니라.

「형제초」, 1081쪽

이 구절은 제25장의 「悪魔の身に入りたる者」를 더 넓게 펼친 것이다. 마왕은 법화경을 믿는 사람을 곧바로 악도로 떨어뜨리지 못하면 「相似せる」, 곧 법화경과 비슷해 보이는 가르침으로 먼저 옮겨 놓는다. 이것이 제25장의 「권경에 떨어지고, 권경에서 소승경에 떨어지고」의 첫 계단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것은 무지한 자가 아니라 「智者」의 몸이다. 강의는 이 구절을 일체중생 불행의 근원이 그릇된 가르침과 그것을 세운 이들에게 있다고 갈파한 본불의 사자후라고 부른다.

「입정안국론」의 일흉

강의는 마지막으로 「입정안국론」의 한 구절을 들어 이 단락을 맺는다.

悲しいかな数十年の間百千万の人魔縁に蕩かされて多く仏教に迷えり、傍を好んで正を忘る善神怒を為さざらんや円を捨てて偏を好む悪鬼便りを得ざらんや、如かず彼の万祈を修せんよりは此の一凶を禁ぜんには

슬프도다, 수십 년 동안 백천만의 사람이 마의 인연에 녹아 많이 불교에 미혹하였느니라. 곁가지를 좋아하고 바른 것을 잊으니 선신이 어찌 노하지 않겠으며, 원교를 버리고 치우친 가르침을 좋아하니 악귀가 어찌 틈을 얻지 않겠는가. 저 만 가지 기도를 닦기보다는 이 하나의 흉(一凶)을 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입정안국론」, 24쪽

「입정안국론」이 법연의 『선택집』을 「일흉」이라 한 것과, 개목초 제25장이 도작 · 선도 · 법연을 「악마가 몸에 들어간 자」라 한 것은 같은 판단의 두 표현이다. 분오 원년(1260)의 간효에서 분에이 9년(1272)의 개목초까지, 대성인의 비판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강의는 이 대목에서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가르침을 엄하게 꾸짖으면서도, 그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은 미래에 행복할 수 없으니 불쌍히 여겨야 할 이들이라 한다. 비판의 과녁은 가르침과 그것을 세운 이들이며, 그 가르침에 속은 사람들은 구제의 대상이다.

「다만 니치렌 한 사람」 — 말할 것인가, 말하지 않을 것인가

아는 자는 한 사람

「日本国に此れをしれる者は但日蓮一人なり」. 강의는 이 말씀을 참으로 강한 확신이라 하고, 그 「앎」의 내용에 주목하라고 한다. 대성인 한 분이 아신 것은 무엇인가. 온갖 그릇된 가르침이 대중을 악도에 떨어뜨린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명예도 영달도 생각하지 않고 범부의 몸 그대로 신명을 버려 대중의 구제에 나서셨다. 말법에서 오직 한 사람 민중 구제의 근본 원리를 아셨기에 이분이야말로 성인이요 부처라고 강의는 말한다. 니치칸 상인의 「지혜의 존귀」가 바로 이것이다.

두 갈래(二辺)의 저울질

그러나 아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다르다. 대성인은 말하면 무엇이 오는지 아셨다. 「父母・兄弟・師匠に国主の王難必ず来るべし」. 부모 · 형제 · 스승의 반대에 더해 국주의 왕난이 반드시 온다. 그렇다고 말하지 않으면 자비가 없는 것과 같다. 대성인은 이 「말할 것인가, 말하지 않을 것인가」의 두 갈래를 법화경 · 열반경 등에 비추어 보셨다.

말하지 않으면今生は事なくとも後生は必ず無間地獄に堕べし금생은 무사할지라도 후생에는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말하면三障四魔必ず競い起るべし삼장사마가 반드시 다투어 일어나리라父母・兄弟・師匠に国主の王難부모 · 형제 · 스승, 그리고 국주의 왕난
二辺の中には・いうべし두 갈래 가운데에서는 말해야 하느니라
도표 4 · 두 갈래의 저울

말하지 않으면 금생은 편안하나 후생에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바른 법을 알면서 그릇된 법이 사람을 악도로 끌고 가는 것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방법(謗法)에 동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말하면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난다. 두 갈래 가운데 대성인은 「말해야 한다」를 택하셨다. 금생의 편안과 후생의 무간, 금생의 난과 후생의 성불을 견주면 선택은 분명하다.

삼장사마에 대해서는 대성인이 「종종어진무어서」에서 『마하지관』 제5권의 문을 인용해 풀이하신 대목이 있다.

摩訶止観第五に云く「行解既に勤めぬれば三障・四魔・紛然として競い起る

『마하지관』 제5권에 이르기를 「행(行)과 해(解)가 이미 부지런해지면 삼장 · 사마가 어지러이 다투어 일어난다」.

「종종어진무어서」, 916쪽

대성인은 이어서 그 가운데 천자마, 곧 제육천의 마왕이 「或は国主或は父母或は妻子或は檀那或は悪人等について(국주에게, 부모에게, 처자에게, 단나에게, 악인 등에게 붙어서)」 법화경의 수행을 막는다고 하셨다. 제25장의 「父母・兄弟・師匠に国主の王難」은 바로 이 삼장사마가 구체적인 사람의 얼굴로 나타난 것이다. 강의의 어석이 보장(報障)에 「국왕이나 부모, 권력자에게서 오는 장애」를, 천자마에 「권력자에 의한 박해」를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잠시의 망설임과 육난구이

여기서 대성인은 놀라울 만큼 솔직하게 자신의 망설임을 쓰신다. 「王難等・出来の時は退転すべくは一度に思ひ止るべしと且くやすらいし程に」. 왕난이 일어났을 때 물러설 것이라면 처음부터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잠시 망설였다는 것이다. 한번 말하기 시작하고 도중에 물러서면, 말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쁘다. 그 망설임 끝에 떠오른 것이 견보탑품의 육난구이였다.

아홉 가지 쉬움(九易)亦た未だ難しと為さず아직 어렵다고 하기에 부족하다
  1. ①수많은 다른 경을 설하는 일
  2. ②수미산을 들어 다른 무수한 불국토에 던지는 일
  3. ③발가락으로 대천세계를 움직여 멀리 던지는 일
  4. ④유정천에 서서 무량한 다른 경을 설하는 일
  5. ⑤손에 허공을 쥐고 다니는 일
  6. ⑥대지를 발등에 얹고 범천에 오르는 일
  7. ⑦마른 풀을 지고 겁화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일
  8. ⑧팔만사천 법장 · 십이부경을 지니고 설해 듣는 이에게 육신통을 얻게 하는 일
  9. ⑨법을 설해 무수한 중생에게 아라한과 육신통을 얻게 하는 일
여섯 가지 어려움(六難)是れは則ち難しと為す이것은 곧 어렵다
  1. ①부처 멸후 악세에 이 경을 설하는 일
  2. ②멸후에 이 경을 스스로 쓰고 지니거나 남에게 쓰게 하는 일
  3. ③멸후 악세에 잠시라도 이 경을 읽는 일
  4. ④멸후에 이 경을 지니고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설하는 일
  5. ⑤멸후에 이 경을 듣고 받아 그 뜻을 묻는 일
  6. ⑥멸후에 이 경을 받들어 지니는 일
도표 5 · 보탑품의 육난구이 — 아홉 가지 쉬움과 여섯 가지 어려움

견보탑품에서 석존은 다보탑이 허공에 떠 있는 가운데 「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서 널리 묘법화경을 설하겠는가」라고 세 번 부촉의 뜻을 보이고, 그 두 번째에서 아홉 가지 쉬운 일과 여섯 가지 어려운 일을 견주셨다. 수미산을 들어 다른 불국토에 던지는 일, 발가락으로 대천세계를 움직여 멀리 던지는 일, 마른 풀을 지고 겁화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일, 팔만사천 법장을 지니고 설해 듣는 이에게 육신통을 얻게 하는 일조차 「아직 어렵다고 하기에 부족하다」. 그러나 부처 멸후 악세에 이 경을 설하고, 쓰고, 잠시라도 읽고,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설하고, 듣고 그 뜻을 묻고, 받들어 지니는 일은 「어렵다」.

대성인은 이 아홉 가지 쉬움 가운데 세 가지를 골라 「我等程の」라는 말을 세 번 거듭해 자신에게 비추셨다. 「我等程の小力の者」가 수미산을 던지고, 「我等程の無通の者」가 겁화에 타지 않고, 「我等程の無智の者」가 항하사의 경을 외울지라도. 힘도 신통도 지혜도 없는 범부에게 그런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보다도 말법에 법화경 한 구절 한 게송을 지니는 일이 더 어렵다고 부처가 설하셨다. 대성인은 이 경문이 바로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가리킨다고 깨달으셨다. 「とかるるは・これなるべし」. 육난구이는 먼 옛날의 비유가 아니라, 왕난을 앞두고 망설이는 한 범부의 결단을 위한 경문이었다.

대성인은 이듬해 사도에서 쓰신 「현불미래기」에서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가신다.

但し今夢の如く宝塔品の心を得たり

다만 지금 꿈과 같이 보탑품의 마음을 얻었느니라.

「현불미래기」, 509쪽

그리고 곧바로 「若し須弥を接つて他方の無数の仏土に擲げ置かんも亦未だ為難しとせず乃至若し仏の滅後に悪世の中に於て能く此の経を説かん是れ則ち為難し」라는 견보탑품의 경문을 인용하신다. 개목초에서 결단의 근거가 되었던 육난구이가, 「현불미래기」에서는 그 결단을 끝까지 관철한 뒤에 얻은 깨달음의 내용이 되어 있다.

「이번에야말로」

「今度・強盛の菩提心を・をこして退転せじと願じぬ」. 「今度」라는 한 마디에는 앞의 무량겁의 고백이 모두 담겨 있다. 인천의 대왕이던 때에도, 대보살이던 때에도, 대통의 때에도, 구원의 때에도 악연에 떨어졌다. 그러므로 「이번에야말로」 물러서지 않는다. 강의는 이 한마디가 우리의 머리 위를 세차게 내리친다고 하고, 이 짧은 말 속에 대성인의 용맹심과 정진력이 드러난다고 한다. 니치칸 상인이 「서원의 존귀」라 한 것이 이 서원이며, 그것은 권지품의 「我不愛身命 但惜無上道」와 제56장의 「我日本の柱とならむ」의 대서원으로 곧장 이어진다.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의 비유 — 멀리 구름 위로 수미산이 솟고, 들 끝에 큰 불길의 벽과 그 앞의 마른 풀 다발, 앞쪽으로 고요한 풀밭을 지나는 좁은 길이 이어지는 금박 수묵화
그림 · 마른 풀과 겁화 — 보탑품 육난구이의 비유를 담은 풍경

강의는 「일본국에서 이를 아는 자는 다만 니치렌 한 사람」을 민중 구제의 근본 원리를 오직 홀로 아신 성인 · 부처의 확신으로 읽고, 육난구이를 인용한 「退転せじと願じぬ」의 서원에서 대성인의 용맹심과 정진력을 본다.

제26장 간략히 법화경의 행자임을 풀다
어서 200쪽 17행~202쪽 1행 · 第二十六章 略して法華経行者なるを釈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00쪽 17행 ~ 202쪽 1행
本文 · 어서 원문

既に二十余年が間・此の法門を申すに日日・月月・年年に難かさなる、少少の難は・かずしらず大事の難・四度なり二度は・しばらく・をく王難すでに二度にをよぶ、 今度はすでに我が身命に及ぶ其の上弟子といひ檀那といひ・わづかの聴聞の俗人なんど来つて重科に行わる謀反なんどの者のごとし。 法華経の第四に云く「而も此経は如来の現在にすら猶怨嫉多し況や滅度の後をや」等云云、第二に云く「経を読誦し書持すること有らん者を見て軽賤憎嫉して結恨を懐かん」等云云、 第五に云く「一切世間怨多くして信じ難し」等云云、又云く「諸の無智の人の悪口罵詈する有らん」等、 又云く「国王・大臣・婆羅門・居士に向つて誹謗し我が悪を説いて是れ邪見の人なりと謂わん」と、 又云く「数数擯出見れん」等云云、又云く「杖木瓦石もて之を打擲せん」等云云、涅槃経に云く「爾の時に多く無量の外道有つて和合して共に摩訶陀の王・阿闍世の所に往き、 今は唯一の大悪人有り瞿曇沙門なり、一切世間の悪人利養の為の故に其の所に往集して眷属と為つて能く善を修せず、 呪術の力の故に迦葉及び舎利弗・目犍連を調伏す」等云云、天台云く「何に況や未来をや理化し難きに在るなり」等云云、 妙楽云く「障り未だ除かざる者を怨と為し聞くことを喜ばざる者を嫉と名く」等云云、南三・北七の十師・漢土無量の学者・天台を怨敵とす、 得一云く「咄かな智公・汝は是れ誰が弟子ぞ三寸に足らざる舌根を以て覆面舌の所説を謗ずる」等云云、 東春に云く「問う在世の時許多の怨嫉あり仏滅度の後此経を説く時・何が故ぞ亦留難多きや、答えて云く俗に良薬口に苦しと云うが如く此経は五乗の異執を廃して一極の玄宗を立つ、 故に凡を斥け聖を呵し大を排い小を破り天魔を銘じて毒虫と為し外道を説いて悪鬼と為し執小を貶して貧賤と為し菩薩を挫きて新学と為す、 故に天魔は聞くを悪み外道は耳に逆い二乗は驚怪し菩薩は怯行す、此くの如きの徒悉く留難を為す多怨嫉の言豈唐しからんや」等云云、 顕戒論に云く「僧統奏して曰く西夏に鬼弁婆羅門有り東土に巧言を吐く禿頭沙門あり、此れ乃ち物類冥召して世間を誑惑す」等云云、 論じて曰く「昔斉朝の光統に聞き今は本朝の六統に見る、実なるかな法華に何況するをや」等云云、 秀句に云く「代を語れば則ち像の終り末の始め地を尋ぬれば則ち唐の東羯の西・人を原ぬれば則ち五濁の生・闘諍の時なり、 経に云く猶多怨嫉・況滅度後・此の言良に以有るなり」等云云、

풀이

이미 이십여 년 동안 이 법문을 말하매 날마다 · 달마다 · 해마다 난이 겹쳤느니라. 작은 난은 그 수를 알 수 없고 큰 난은 네 번이니라. 두 번은 잠시 접어 두거니와 왕난은 이미 두 번에 이르렀고, 이번에는 이미 나의 신명에까지 미쳤느니라. 그 위에 제자라 하고 단나라 하며 잠깐 청문한 속인 따위까지 와서 무거운 죄에 처해지니 모반 따위를 한 자와 같으니라. 법화경 제4권에 이르기를 「게다가 이 경은 여래의 재세에조차 오히려 원질(怨嫉)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 후에랴」 운운. 제2권에 이르기를 「경을 독송하고 서지(書持)하는 자를 보고 경천하고 증질하여 원한을 품으리라」 운운. 제5권에 이르기를 「일체 세간에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렵다」 운운. 또 이르기를 「여러 무지한 사람이 악구매리하리라」 등. 또 이르기를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를 향하여 비방하고 우리의 악을 설하여 이는 사견의 사람이라 하리라」. 또 이르기를 「자주자주 빈출을 당하리라」 운운. 또 이르기를 「장목와석으로 이를 때리리라」 운운. 열반경에 이르기를 「그때 많은 무량의 외도가 있어 화합하여 함께 마갈타의 왕 아사세의 처소에 가서, '지금 오직 한 사람의 대악인이 있으니 구담 사문이니라. 일체 세간의 악인이 이양을 위하는 까닭에 그 처소에 모여들어 권속이 되어 선을 닦지 않느니라. 주술의 힘 때문에 가섭 및 사리불 · 목건련을 조복시켰다'」 운운. 천태가 이르기를 「하물며 미래에랴. 이치가 교화하기 어려움에 있느니라」 운운. 묘락이 이르기를 「장애가 아직 제거되지 않은 자를 원(怨)이라 하고, 듣기를 기뻐하지 않는 자를 질(嫉)이라 이름한다」 운운. 남삼 · 북칠의 열 스승과 한토의 무량한 학자가 천태를 원적으로 삼았느니라. 득일이 이르기를 「졸렬하도다 지공(智公)이여, 너는 누구의 제자인가. 세 치에도 차지 않는 혀뿌리로 얼굴을 덮는 혀가 설한 바를 비방하는가」 운운. 동춘(東春)에 이르기를 「묻는다, 재세 때에 허다한 원질이 있었는데 부처 멸도 후 이 경을 설할 때 무슨 까닭에 또 유난(留難)이 많은가. 답하여 이르기를, 세속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듯이 이 경은 오승(五乗)의 다른 집착을 폐하고 일극(一極)의 현종(玄宗)을 세우느니라. 그러므로 범부를 물리치고 성인을 꾸짖으며, 대승을 밀어내고 소승을 깨뜨리며, 천마를 일러 독충이라 하고 외도를 설하여 악귀라 하며, 소승에 집착하는 자를 깎아내려 빈천하다 하고 보살을 꺾어 신학(新学)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천마는 듣기를 미워하고, 외도는 귀에 거슬리며, 이승은 놀라 괴이히 여기고, 보살은 겁내며 나아가느니라. 이와 같은 무리가 모두 유난을 일으키니 '원질이 많다'는 말씀이 어찌 헛되겠는가」 운운. 현계론에 이르기를 「승통(僧統)이 상주하여 아뢰기를, 서하(西夏)에는 귀변바라문(鬼弁婆羅門)이 있고 동토에는 교묘한 말을 토하는 독두사문(禿頭沙門)이 있으니, 이는 곧 같은 무리가 은밀히 서로 불러 세간을 속이고 미혹시키는 것이라」 운운. 논하여 이르기를 「옛적에는 제(斉)나라의 광통(光統)에게서 들었고 지금은 본조의 육통(六統)에게서 보노라. 진실하도다, 법화의 '하물며'여」 운운. 수구(秀句)에 이르기를 「시대를 말하면 상법의 끝, 말법의 시작이요, 땅을 찾으면 당의 동쪽, 갈(羯)의 서쪽이요, 사람을 살피면 오탁의 생, 투쟁의 때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유다원질 황멸도후(猶多怨嫉 況滅度後)'라 하였으니 이 말은 참으로 까닭이 있도다」 운운.

어구 풀이

二十余年이십여 년
겐초 5년(1253) 입종선언으로부터 개목초를 쓰신 분에이 9년(1272)까지. 「此の法門」은 염불무간 등 제종을 파절하고 남묘호렌게쿄를 펴는 법문이다.
大事の難・四度큰 난 네 번
강의의 어석에 따르면 첫째 마쓰바가야쓰 법난(분오 원년, 1260), 둘째 이즈 유배(고초 원년 1261~3년 1263), 셋째 고마쓰바라 법난(분에이 원년, 1264), 넷째 류노구치 법난(분에이 8년, 1271)과 이어지는 사도 유배(~분에이 11년, 1274).
王難すでに二度왕난이 이미 두 번
이즈 유배, 그리고 류노구치 법난과 사도 유배. 네 번의 큰 난 가운데 마쓰바가야쓰와 고마쓰바라 두 번은 「잠시 접어 두고」, 국가 권력이 직접 가한 두 번을 「왕난」으로 꼽으신 것이다.
謀反なんどの者のごとし모반 따위를 한 자와 같다
류노구치 법난 때 대성인뿐 아니라 제자 · 단나, 잠깐 법을 들은 속인까지 죄를 물은 것이 반역자를 다스리는 것과 같았다는 뜻.
法華経の第四법화경 제4권
법사품. 「而も此経は如来の現在にすら猶怨嫉多し況や滅度の後をや」는 이 품의 경문이다.
第二제2권
비유품. 법화경을 독송 · 서지하는 자를 보고 경천 · 증질하는 자의 죄보를 설하는 대목.
第五제5권
안락행품 · 권지품 등이 든 권. 「一切世間怨多くして信じ難し」는 안락행품, 「諸の無智の人」 이하는 권지품 이십행게의 경문이다.
阿闍世아사세
범어 아자타샤트루(Ajātaśatru). 미생원(未生怨)이라 번역한다. 석존 재세 때 중인도 마가다국의 왕. 아버지는 빈바사라왕, 어머니는 위제희 부인. 제바달다와 가까이 지내며 불교의 외호자였던 부왕을 가두어 죽게 하고 왕위에 올랐다. 즉위 뒤 마가다를 인도 제일의 강국으로 만들었으나 석존에게 적대해 술 취한 코끼리를 풀어 석존을 죽이려 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다. 뒤에 온몸에 악창이 나자 참회해 불교에 귀의하고 수명을 늘렸으며, 불멸 후 제1회 불전 결집의 외호를 맡았다.
瞿曇沙門구담 사문
구담(Gautama)은 석존의 성. 외도들이 석존을 낮추어 부른 말이다.
天台云く천태가 이르기를
『법화문구』에서 법사품의 「況滅度後」를 풀이한 문. 「理化し難きに在る」는 멸후에는 중생의 기근과 시대가 탁해져 이치로 교화하기 어렵다는 뜻.
妙楽云く묘락이 이르기를
『법화문구기』의 문. 원(怨)과 질(嫉)을 정의했다.
南三・北七남삼 · 북칠
천태대사 이전 중국 남북조 시대의 교판 학파. 강남의 세 파와 강북의 일곱 파. 천태대사가 이들의 교판을 파절하고 법화경 제일의 오시팔교를 세웠다.
得一득일
생몰년 미상. 헤이안 초기 법상종 승려. 徳一 · 徳溢이라고도 쓴다. 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아들이라 전한다. 고후쿠사의 슈엔에게 법상종을 배우고 도다이사에서 홍교했다고 한다. 법화일승은 권교라 하여 삼승진실 · 일승방편을 주장하고 전교대사와 법화경의 권실을 둘러싸고 논쟁했다. 히타치 쓰쿠바산에 주젠지를, 무쓰 아이즈에 에니치지를 세웠다. 저서 『불성초』 1권, 『중변의경』 3권 등.
智公지공
천태대사 지의(智顗)를 낮추어 부른 말.
覆面舌부면설
얼굴을 덮는 혀. 부처의 광장설상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부처가 설한 법화경을 뜻한다.
東春동춘
『천태법화소의찬』(법화경소의찬) 6권. 당의 지도(智度)가 지었다. 지도가 동춘에 살았으므로 그 사람과 책을 「동춘」이라 불렀다. 천태대사 『법화문구』의 주석서로, 먼저 『법화현의』에 따라 오중현의를 개설하고 법화경 본문과 『법화문구기』 등을 자세히 주석하며 자신의 견해를 폈다.
五乗の異執・一極の玄宗오승의 다른 집착 · 일극의 현종
오승은 인승 · 천승 · 성문승 · 연각승 · 보살승. 저마다 다른 경지를 목적으로 삼는 집착을 폐하고, 오직 성불 하나를 궁극으로 세우는 법화경의 깊은 종지를 일극의 현종이라 했다.
新学신학
신발의(新発意), 곧 발심해 막 불문에 든 자. 여기서는 미숙한 초심자라고 낮추어 부른 말이다.
顕戒論현계론
전교대사 최징의 저작 3권. 고닌 10년(819) 대사가 대승계단 건립을 청하는 상표문을 조정에 올리자 남도 육종의 승려들이 반론했고, 이를 파절하기 위해 지었다.
僧統승통
승려를 통할하는 관직. 여기서는 전교대사 당시 나라 칠대사의 승관인 승도 · 율사 등.
西夏서하
역사적으로는 당 하주절도사의 후예 이원호가 세운 나라(대하)를 송나라 사람들이 부른 이름이나, 여기서는 북인도 또는 인도 북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鬼弁婆羅門귀변바라문
2세기 무렵 인도의 바라문.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마가다국 계원사 종탑의 북쪽에 살며 역설적 이론을 일삼았고, 세상을 피해 숲속에서 귀신을 섬겨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늘 휘장을 드리우고 문답했으므로 아무도 정체를 알지 못했는데, 아습박구사보살(마명보살)이 국왕과 함께 가서 문답하자 귀변은 입을 다물었고, 마명이 휘장을 걷어 그 요사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物類冥召물류명소
같은 무리가 은밀히 서로 통해 불러 모음.
斉朝の光統제조의 광통
(468~537). 혜광(慧光). 북위에서 동위에 걸친 승려. 젊어서 도복율사의 『사분율소』에 다시 소를 지어 율을 펴서 사분율종의 조사라 불렸다. 508년 늑나마제가 낙양에 와서 세친의 『십지경론』을 보리유지와 함께 번역했으나 다투어 두 번역이 생기자, 혜광이 둘을 회통해 하나로 만들어 지론종을 일으켰으므로 지론종 남도파의 조사로도 불린다. 남삼북칠 가운데 강북 칠가의 하나. 낙양에서 국승도(국통)에 임명되어 광통율사라 불렸다. 보리달마와 법론해 그를 비방했다고 전한다.
六統육통
전교대사에게 반대한 남도의 여섯 승통.
秀句수구
『법화수구』 3권(또는 5권). 전교대사의 저술, 고닌 12년(821) 성립. 법화경이 여러 경보다 뛰어난 열 가지(법화십승)를 들고, 당시 성행한 법상 · 삼론 · 화엄 · 진언 등의 사의를 파절했다. 특히 법상종 득일의 법화경 비방을 규탄했다.
唐の東羯の西당의 동쪽, 갈의 서쪽
당은 중국. 갈(羯)은 말갈로, 6세기 중반부터 약 1세기 동안 중국 동북부 쑹화강 유역에 살던 퉁구스계 종족을 수 · 당 시대에 부른 이름이다. 당시의 지리관에서 일본은 중국의 동쪽, 말갈의 서쪽에 있다고 여겨졌으므로 이 말은 일본을 가리킨다.

현증에서 문증으로 — 개목초의 목적과 이 장의 자리

강의는 이 장을 풀기에 앞서 개목초 전체의 목적을 다시 확인한다. 개목초의 목적은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이심을 나타내고, 말법의 법화경 행자가 곧 말법 일체중생을 구호하시는 본불이며, 그것이 곧 인(人)의 본존이심을 밝히는 데 있다. 제26장은 이것을 「간략히」 밝히는 장이며, 그 첫 단계로 법화경 행자가 난을 만난다는 문증을 먼저 든다.

장의 구성은 뚜렷하다. 첫 단락은 대성인과 그 권속이 이십여 년 동안 법화경 때문에 난을 만나 온 현증(現証)을 말씀하신다. 이 현증 때문에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임이 풀린다. 둘째 단락 「法華経の第四に云く」 아래는 법화경의 문증을 들어 법화경의 행자는 난을 만난다는 것을 설하고 첫 단락의 현증을 증명하신다. 「涅槃経に云く」는 정법인 법화경의 행자 석존 자신이 난을 만난 것을 보여 대성인의 수난과 맞추신다. 이어서 천태 · 묘락이 난이 오는 까닭을 밝힌 문을 들고, 득일에게서 천태가 큰 원질을 받은 것과 전교대사가 받은 원질의 문을 들어, 하물며 말법에서랴 하는 뜻을 보이신다.

대사의 난 네 번마쓰바가야쓰 · 이즈 · 고마쓰바라 · 류노구치(사도)
  1. 1253입종선언
  2. 1260마쓰바가야쓰 법난
  3. 1261~1263이즈 유배왕난
  4. 1264고마쓰바라 법난
  5. 1271류노구치 법난왕난
  6. 1271~1274사도 유배
  7. 1272년 2월개목초
大事の難・四度なり二度は・しばらく・をく王難すでに二度にをよぶ큰 난은 네 번이니라. 두 번은 잠시 접어 두거니와 왕난은 이미 두 번에 이르렀느니라
도표 6 · 이십여 년의 법난

「二度は・しばらく・をく王難すでに二度にをよぶ」라는 구분은 세심하다. 마쓰바가야쓰의 초암 습격과 고마쓰바라의 매복은 목숨을 위협한 큰 난이었으나, 그 주체는 염불자와 지방 지두였다. 이즈 유배와 사도 유배는 막부가 공식으로 내린 처분이었다. 대성인은 권지품의 「向国王大臣」 · 「数数見擯出」에 해당하는 국가 권력의 박해를 따로 「왕난」으로 꼽으셨다. 그리고 「今度はすでに我が身命に及ぶ」 — 이번 류노구치에서는 마침내 목숨에까지 이르렀다. 강의의 현대어 번역은 이를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풀었다.

「弟子といひ檀那といひ・わづかの聴聞の俗人なんど来つて重科に行わる」. 난은 대성인 한 몸에 그치지 않았다. 제자와 단나, 잠깐 설법을 들었을 뿐인 속인까지 무거운 죄를 입었다. 그 모양이 모반인을 다스리는 것과 같았다는 말씀은, 막부가 이 법문을 종교 문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반역처럼 다루었음을 보인다. 개목초가 시조깅고를 통해 문하 일동에게 보내진 것도 바로 이 박해의 한가운데였다.

「況滅度後」의 세 겹 — 법사품의 예언

장의 문증은 법사품의 한 구절로 시작한다.

而も此経は如来の現在にすら猶怨嫉多し況や滅度の後をや

게다가 이 경은 여래의 재세에조차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 후에랴.

『묘법연화경』 법사품 제10, T9 no.262

강의는 이 「況や滅度の後をや」에 세 겹의 뜻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재세에서 정법 시대로, 둘째는 정법에서 상법 시대로, 셋째는 상법에서 말법 시대로. 「하물며」는 한 번만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내려갈 때마다 거듭 더해진다. 그러므로 말법이야말로 가장 큰 원질이 다투어 일어나는 때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 경문을 늘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개목초 이듬해에 쓰신 「여설수행초」에서 대성인은 난이 닥치자 놀라 신심을 버린 제자들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兼て申さざりけるか経文を先として猶多怨嫉況滅度後況滅度後と朝夕教へし事は是なり

미리 말하지 않았던가. 경문을 앞세워 「유다원질 황멸도후, 황멸도후」라고 아침저녁으로 가르친 것은 이것이니라.

「여설수행초」, 501쪽

같은 어서에서 대성인은 재세에는 능화의 주인이 부처이고 제자도 대보살 · 아라한이었는데도 원질이 많았거늘, 말법에는 스승이 범사(凡師)이고 제자도 투쟁견고 · 백법은몰 · 삼독강성의 악인이니 하물며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況滅度後」의 세 겹째가 대성인 문하의 현실이었다.

경문이 그린 행자의 모습 — 비유품 · 안락행품 · 권지품, 그리고 열반경

법사품에 이어 대성인은 법화경 여러 품의 경문을 잇달아 드신다. 비유품의 「경을 독송 · 서지하는 자를 보고 경천 · 증질하여 원한을 품으리라」, 안락행품의 「일체 세간에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렵다」, 그리고 권지품 이십행게의 「여러 무지한 사람이 악구매리하리라」 ·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를 향하여 비방하리라」 · 「자주자주 빈출당하리라」, 상불경품의 「장목와석으로 때리리라」. 이 경문들을 차례로 놓으면, 법화경을 지니는 자가 업신여김을 받고, 미움을 받고, 욕을 듣고, 권력자에게 고발당하고, 거듭 쫓겨나고, 매를 맞는 하나의 일관된 그림이 된다. 강의의 현대어 번역은 「자주자주 빈출」을 「권력자와 대중에게 박해받아 거듭 쫓겨나리라」고 푼다.

대성인은 여기에 열반경을 더하신다. 무량한 외도가 모여 마가다의 아사세왕에게 가서 「지금 오직 한 사람의 대악인이 있으니 구담 사문이다. 세간의 악인들이 이양을 위해 그에게 모여들어 선을 닦지 않고, 그는 주술의 힘으로 가섭 · 사리불 · 목건련을 조복시켰다」고 참소했다는 것이다. 법화경을 설한 석존 자신이 「대악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강의는 이 인용을 정법인 법화경의 행자인 석존이 난을 만난 것을 보여, 대성인 자신의 수난과 맞추신 것이라고 푼다. 개목초는 뒤에서(제30장) 이 장면을 다시 그려, 육사외도가 한마음으로 아사세 · 바사닉왕에게 「瞿曇は閻浮第一の大悪人なり(구담은 염부제 제일의 대악인이니라)」(205쪽)라고 참소했다고 하신다. 부처조차 대악인이라 불렸으니, 말법의 행자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오히려 부처와 같은 길을 걷는다는 증거다.

천태 · 묘락의 해석 — 「원」과 「질」

법사품의 「況滅度後」를 천태대사는 『법화문구』에서 「何に況や未来をや理化し難きに在るなり」라고 풀었다. 강의의 현대어 번역은 이를, 재세에도 원질이 많았으니 미래에는 더 큰 원질이 있을 것이며, 중생의 기근이 더욱 탁해지고 시대가 탁해지므로 정법은 믿기 어렵고 교화는 어려워진다는 뜻으로 푼다. 원질이 많은 까닭이 법의 결함이 아니라 받는 쪽의 기근과 시대에 있다는 것이다.

묘락대사는 『법화문구기』에서 그 「원질」을 정의했다. 「障り未だ除かざる者を怨と為し聞くことを喜ばざる者を嫉と名く」. 장애가 아직 제거되지 않아 행자를 대할 때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것이 「원」이고, 행자의 설법을 듣기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 「질」이다. 이 정의는 원질이 노골적인 박해만을 뜻하지 않음을 보인다. 마음 깊이 걸리는 것, 듣기 싫어하는 것 — 그 내면의 반발이 원질의 뿌리이고, 그것이 자라 비방과 박해가 된다.

이 정의에 비추어 대성인은 「南三・北七の十師・漢土無量の学者・天台を怨敵とす」라 하신다. 천태대사가 오시팔교로 법화경 제일을 세우자, 남삼북칠의 열 스승을 비롯한 중국의 무수한 학자들이 천태를 원적으로 삼았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일본에서도 법상종의 득일이 「咄かな智公・汝は是れ誰が弟子ぞ三寸に足らざる舌根を以て覆面舌の所説を謗ずる」라고 천태를 꾸짖었다. 세 치도 안 되는 혀로 얼굴을 덮는 부처의 혀가 설한 바를 비방한다 — 득일은 오히려 천태가 부처의 가르침을 비방한다고 공격한 것이다. 득일과 전교대사의 이 논쟁은 이른바 삼일권실(三一権実) 논쟁으로, 일승이 진실인가 삼승이 진실인가를 두고 평생에 걸쳐 이어졌다. 법화경을 바르게 읽는 자가 도리어 경을 비방하는 자라는 누명을 쓴다는 것, 이것이 「원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동춘의 문답 — 왜 멸후에 유난이 많은가

강의는 「東春に云く」의 문답을, 이 경을 들으면 왜 원질이 생기는가를 묻고 그 유난이 오는 까닭을 설한 것으로서 매우 흥미롭다고 한다. 지도의 『천태법화소의찬』은 먼저 묻는다. 재세에도 원질이 많았는데 부처 멸후에 이 경을 설할 때 왜 또 유난이 많은가. 그리고 답한다. 세속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듯이, 이 경은 오승의 다른 집착을 폐하고 일극의 현종을 세우기 때문이다.

인 · 천 · 성문 · 연각 · 보살의 오승은 저마다 다른 경지를 궁극의 목적으로 여긴다. 법화경은 그 모든 목적을 폐하고 오직 성불 하나를 세운다. 그러므로 이 경은 어느 쪽에도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 범부를 물리치고, 성인을 꾸짖고, 대승을 밀어내고, 소승을 깨뜨린다. 천마를 독충이라 하고, 외도를 악귀라 하며, 소승에 집착하는 자를 빈천하다 하고, 보살을 신학이라 꺾는다. 그 결과 네 가지 반응이 일어난다.

此経は五乗の異執を廃して一極の玄宗を立つ이 경은 오승의 다른 집착을 폐하고 일극의 현종을 세우느니라
  1. 천마天魔を銘じて毒虫と為し천마를 일러 독충이라 하고天魔は聞くを悪み천마는 듣기를 미워하고
  2. 외도外道を説いて悪鬼と為し외도를 설하여 악귀라 하며外道は耳に逆い외도는 귀에 거슬리며
  3. 이승(소승에 집착하는 자)執小を貶して貧賤と為し소승에 집착하는 자를 깎아내려 빈천하다 하고二乗は驚怪し이승은 놀라 괴이히 여기고
  4. 보살菩薩を挫きて新学と為す보살을 꺾어 신학이라 하느니라菩薩は怯行す보살은 겁내며 나아간다
多怨嫉の言豈唐しからんや'원질이 많다'는 말씀이 어찌 헛되겠는가
도표 7 · 동춘의 문답 — 네 가지 반응

이 문답이 보여 주는 것은, 유난이 법화경의 결함이 아니라 법화경의 철저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에게 듣기 좋은 가르침은 아무에게도 반발을 사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이의 집착을 깨뜨리고 하나의 궁극을 세우는 가르침은 모든 이의 집착과 부딪친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속담은 다음 장 첫머리의 「重病の者に良薬をあたうれば定んで口に苦しとうれう」로 그대로 이어진다.

강의는 이 문답을 말법에 적용해, 오늘날에도 오승의 다른 집착을 폐하고 일극의 현종인 삼대비법의 불법이 일어나면 여러 유난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동춘이 법화경에 대해 말한 것이, 말법에는 법화경 본문의 문저에 감추어진 남묘호렌게쿄에 대해 그대로 성립한다는 것이다.

현계론과 법화수구 — 전교대사가 받은 원질, 그리고 말법의 때 · 땅 · 사람

귀변바라문과 독두사문

전교대사가 대승계단 건립을 청하자 남도의 승통들은 조정에 상주해 「서하에는 귀변바라문이 있고, 동토에는 교묘한 말을 토하는 독두사문이 있으니, 같은 무리가 은밀히 서로 불러 세간을 속이고 미혹시킨다」고 했다. 귀변바라문은 『대당서역기』에 나오는, 휘장 뒤에 숨어 귀신을 섬기며 역설을 일삼다가 마명보살에게 정체가 드러난 바라문이다. 승통들은 전교대사를 그런 사기꾼에 견준 것이다.

전교대사는 『현계론』에서 이렇게 응수했다. 「옛적에는 제나라의 광통에게서 들었고 지금은 본조의 육통에게서 보노라. 진실하도다, 법화의 '하물며'여.」 북위 · 동위의 광통율사 혜광은 달마를 비방했다고 전하는 고승이고, 남삼북칠 가운데 강북의 한 파를 이루었다. 천태 이전 중국에서 바른 법을 비방한 승관의 이름과 지금 일본에서 전교를 비방하는 여섯 승통이 겹쳐진다. 그리고 전교대사는 이 모든 것을 법사품의 「하물며」가 실현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実なるかな法華に何況するをや」. 비방을 받는 것이 오히려 경문의 진실을 증명한다는 이 태도가, 개목초에서 대성인이 받아 이으신 태도다.

「법화수구」 — 때 · 땅 · 사람의 예언

장의 마지막 문증은 전교대사의 『법화수구』다.

代を語れば則ち像の終り末の始め地を尋ぬれば則ち唐の東羯の西・人を原ぬれば則ち五濁の生・闘諍の時なり、経に云く猶多怨嫉・況滅度後・此の言良に以有るなり

시대를 말하면 상법의 끝, 말법의 시작이요, 땅을 찾으면 당의 동쪽, 갈의 서쪽이요, 사람을 살피면 오탁의 생, 투쟁의 때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유다원질 황멸도후」라 하였으니 이 말은 참으로 까닭이 있도다.

전교대사 『법화수구』, 「개목초 상」 201쪽에서 인용

강의는 전교대사가 말법에 정법이 일어날 때와 곳과 사람을 예언한 것을 매우 깊은 뜻이 있다고 한다. 때는 상법의 끝, 말법의 시작이다. 땅은 당의 동쪽, 말갈의 서쪽, 곧 일본이다. 사람은 오탁의 세상에 태어난 투쟁의 때의 중생이다. 그리고 그때 그곳에서 「況滅度後」의 큰 원질이 일어난다. 이것은 제25장 첫머리의 「世すでに末代に入つて二百余年・辺土に生をうけ」와 정확히 겹친다. 전교대사가 예언한 때와 땅에, 대성인이 태어나셨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도 이 문을 인용하고, 「此の釈に闘諍の時と云云今の自界叛逆西海侵逼の二難を指すなり(이 해석에 '투쟁의 때'라 한 것은 지금의 자계반역 · 서해침핍의 두 난을 가리키느니라)」(254쪽)라고 풀이하셨다. 전교대사의 「투쟁의 때」는 분에이 9년의 니가쓰소동과 몽골의 침공 위협으로 현실이 되었다. 「관심의 본존초」는 그 때에 지용천계가 출현한다고 이어 가고, 개목초는 그 때에 법화경의 행자가 원질을 받는다고 말한다. 같은 예언을 두 어서가 법(法)의 측면과 사람(人)의 측면에서 받는다.

강의는 제26장을, 대성인과 문하가 이십여 년 받아 온 난의 현증을 법화경 · 열반경 · 천태 · 묘락 · 동춘 · 전교의 문증으로 증명해,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이심을 「간략히」 밝힌 장으로 본다. 법사품의 「況滅度後」는 재세 → 정법 → 상법 → 말법으로 세 겹 더해지며, 말법이야말로 원질이 가장 큰 때다.

제27장 경문 하나하나에 부합함을 밝히다
어서 202쪽 1행~203쪽 9행 · 第二十七章 経文一一に符合するを明か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02쪽 1행 ~ 203쪽 9행
本文 · 어서 원문

夫れ小児に灸治を加れば必ず母をあだむ重病の者に良薬をあたうれば定んで口に苦しとうれう、在世猶をしかり乃至像末辺土をや、 山に山をかさね波に波をたたみ難に難を加へ非に非をますべし、像法の中には天台一人法華経・一切経をよめり、 南北これをあだみしかども陳隋・二代の聖主・眼前に是非を明めしかば敵ついに尽きぬ、像の末に伝教一人・法華経一切経を仏説のごとく読み給へり、 南都・七大寺蜂起せしかども桓武・乃至嵯峨等の賢主・我と明らめ給いしかば又事なし、今末法の始め二百余年なり況滅度後のしるしに闘諍の序となるべきゆへに非理を前として濁世のしるしに召し合せられずして流罪乃至寿にも・をよばんと・するなり。 されば日蓮が法華経の智解は天台・伝教には千万が一分も及ぶ事なけれども難を忍び慈悲のすぐれたる事は・をそれをも・いだきぬべし、 定んで天の御計いにもあづかるべしと存ずれども一分のしるしもなし、いよいよ重科に沈む、還つて此の事を計りみれば我が身の法華経の行者にあらざるか、 又諸天善神等の此の国をすてて去り給えるか・かたがた疑はし、而るに法華経の第五の巻・勧持品の二十行の偈は日蓮だにも此の国に生れずば・ほとをど世尊は大妄語の人・八十万億那由佗の菩薩は提婆が虚誑罪にも堕ちぬべし、 経に云く「諸の無智の人あつて・悪口罵詈等し・刀杖瓦石を加う」等云云、今の世を見るに日蓮より外の諸僧たれの人か法華経につけて諸人に悪口罵詈せられ刀杖等を加えらるる者ある、 日蓮なくば此の一偈の未来記は妄語となりぬ、「悪世の中の比丘は・邪智にして心諂曲」又云く「白衣の与に法を説いて世に恭敬せらるること六通の羅漢の如し」此等の経文は今の世の念仏者・禅宗・律宗等の法師なくば世尊は又大妄語の人、 常在大衆中・乃至向国王大臣婆羅門居士等、今の世の僧等・日蓮を讒奏して流罪せずば此の経文むなし、 又云く「数数見擯出」等云云、日蓮・法華経のゆへに度度ながされずば数数の二字いかんがせん、此の二字は天台・伝教もいまだ・よみ給はず況や余人をや、 末法の始のしるし恐怖悪世中の金言の・あふゆへに但日蓮一人これをよめり、例せば世尊が付法蔵経に記して云く「我が滅後・一百年に阿育大王という王あるべし」摩耶経に云く「我が滅後・六百年に竜樹菩薩という人・南天竺に出ずべし」大悲経に云く「我が滅後・六十年に末田地という者・地を竜宮につくべし」此れ等皆仏記のごとくなりき、 しからずば誰か仏教を信受すべき、而るに仏・恐怖悪世・然後末世・末法滅時・後五百歳なんど正妙の二本に正しく時を定め給う、 当世・法華の三類の強敵なくば誰か仏説を信受せん日蓮なくば誰をか法華経の行者として仏語をたすけん、 南三・北七・七大寺等・猶像法の法華経の敵の内・何に況や当世の禅・律・念仏者等は脱るべしや、 経文に我が身・普合せり御勘気をかほれば・いよいよ悦びをますべし、例せば小乗の菩薩の未断惑なるが願兼於業と申して・つくりたくなき罪なれども父母等の地獄に堕ちて大苦を・うくるを見てかたのごとく其の業を造つて願つて地獄に堕ちて苦に同じ苦に代れるを悦びとするがごとし、 此れも又かくのごとし当時の責はたうべくも・なけれども未来の悪道を脱すらんと・をもえば悦びなり。

풀이

무릇 어린아이에게 뜸을 뜨면 반드시 어머니를 원망하고, 중병인 자에게 좋은 약을 주면 틀림없이 입에 쓰다고 투덜거리느니라. 재세에도 오히려 그러하였거늘 내지 상법 · 말법의 변토에랴. 산에 산을 겹치고 파도에 파도를 포개듯이 난에 난을 더하고 비(非)에 비를 더하리라. 상법 가운데에는 천태 한 사람이 법화경과 일체경을 읽었느니라. 남북이 이를 원망하였으나 진 · 수 두 대의 성주가 눈앞에서 시비를 밝혔으므로 적은 마침내 다하였느니라. 상법의 끝에는 전교 한 사람이 법화경과 일체경을 부처의 설과 같이 읽으셨느니라. 남도 칠대사가 봉기하였으나 간무 내지 사가 등의 현명한 군주가 몸소 밝히셨으므로 또한 무사하였느니라. 지금은 말법의 시작 이백여 년이니라. '황멸도후(況滅度後)'의 징표로서 투쟁의 서막이 될 것이므로, 비리(非理)를 앞세우고 탁세의 징표로서 마주 대면시키지도 않고 유죄하며 내지 목숨에까지 미치려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니치렌의 법화경에 대한 지해(智解)는 천태 · 전교에 천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나, 난을 참고 자비가 뛰어난 점은 [천태 · 전교도] 두려움마저 품으시리라. 틀림없이 하늘의 보살핌을 받으리라 생각하였으나 조금의 징표도 없고 더욱더 무거운 죄에 잠기느니라. 도리어 이 일을 헤아려 보면 내 몸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 것인가, 또는 제천선신 등이 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 버리신 것인가, 이모저모 의심스럽도다. 그러나 법화경 제5권 권지품의 이십행의 게는 니치렌이 이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거의 세존은 대망어의 사람이 되고,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은 제바의 허광죄(虚誑罪)에도 떨어지리라. 경에 이르기를 「여러 무지한 사람이 있어 악구매리 등을 하고 도장와석을 가한다」 운운. 지금 세상을 보건대 니치렌 외의 여러 승려 가운데 누가 법화경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악구매리를 당하고 도장 등을 당한 자가 있는가. 니치렌이 없다면 이 한 게송의 미래기는 망어가 되느니라. 「악세 중의 비구는 사지(邪智)하여 마음이 첨곡(諂曲)하고」, 또 이르기를 「백의(白衣)에게 법을 설하여 세상에서 공경받음이 육통의 나한과 같으리라」. 이러한 경문은 지금 세상의 염불자 · 선종 · 율종 등의 법사가 없다면 세존은 또한 대망어의 사람이 되느니라. 「상재대중중(常在大衆中) 내지 향국왕대신바라문거사등(向国王大臣婆羅門居士等)」은 지금 세상의 승려들이 니치렌을 참소하여 유죄하지 않았다면 이 경문은 헛되리라. 또 이르기를 「자주자주 빈출당하리라(数数見擯出)」 운운. 니치렌이 법화경 때문에 여러 번 유배되지 않았다면 '삭삭(数数)'의 두 글자를 어찌하리오. 이 두 글자는 천태 · 전교도 아직 읽지 못하셨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랴. 말법의 시작이라는 징표와 '공포악세중(恐怖悪世中)'이라는 금언이 들어맞는 까닭에 다만 니치렌 한 사람이 이를 읽었느니라. 예를 들면 세존이 부법장경에 기록하여 이르기를 「나의 멸후 일백 년에 아육대왕이라는 왕이 있으리라」, 마야경에 이르기를 「나의 멸후 육백 년에 용수보살이라는 사람이 남천축에 나오리라」, 대비경에 이르기를 「나의 멸후 육십 년에 말전지라는 자가 용궁을 땅으로 만들리라」. 이것들은 모두 부처의 기별과 같이 되었느니라. 그렇지 않았다면 누가 불교를 믿고 받겠는가. 그런데 부처는 '공포악세(恐怖悪世)' · '연후말세(然後末世)' · '말법멸시(末法滅時)' · '후오백세(後五百歳)' 등이라고 정법화경 · 묘법연화경의 두 본에 바로 때를 정하셨느니라. 지금 세상에 법화경의 삼류의 강적이 없다면 누가 불설을 믿고 받겠는가. 니치렌이 없다면 누구를 법화경의 행자로 삼아 부처의 말씀을 도우리오. 남삼 · 북칠 · 칠대사 등도 오히려 상법의 법화경의 적 가운데 들거늘, 하물며 지금 세상의 선 · 율 · 염불자 등이 벗어날 수 있겠는가. 경문에 내 몸이 꼭 들어맞았느니라. 어감기(御勘気)를 입으면 더욱더 기쁨이 더하느니라. 예를 들면 소승의 보살로서 아직 혹(惑)을 끊지 못한 자가 '원겸어업(願兼於業)'이라 하여, 짓고 싶지 않은 죄이지만 부모 등이 지옥에 떨어져 큰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형식대로 그 업을 지어 원하여 지옥에 떨어져 그 고통을 함께하고 고통을 대신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것과 같으니라. 이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지금의 책망은 견딜 수 없을 정도이나 미래의 악도를 벗어나리라고 생각하면 기쁨이니라.

어구 풀이

灸治・良薬뜸 · 좋은 약
아이는 뜸이 자기를 낫게 하는 줄 모르고 뜸을 뜨는 어머니를 원망한다. 병자는 약이 쓰다고 투덜거린다. 바른 법을 설하는 자가 원망받는 이치를 보인 비유로, 앞 장 동춘의 「良薬口に苦し」를 받는다.
像末辺土상말 · 변토
상법 · 말법의 시대와 인도에서 먼 땅. 때가 내려가고 땅이 멀어질수록 원질은 더 커진다.
南北남북
천태대사 당시 중국 강남 · 강북의 여러 학파, 곧 남삼북칠.
陳隋・二代の聖主진 · 수 두 대의 성주
천태대사는 생전에 진의 선제와 후주 숙보, 수의 문제와 양제(진왕 양광)의 귀의를 받았다. 천태가 남북의 학자들과 맞대어 논하게 되었을 때 군주가 그 시비를 밝혔으므로 적이 다했다는 것이다.
南都・七大寺남도 칠대사
나라의 일곱 큰 절. 도다이사 · 고후쿠사 · 간고사 · 다이안사 · 야쿠시사 · 사이다이사 · 호류사(또는 도쇼다이사)를 꼽는다. 전교대사의 대승계단 건립에 반대해 일어났다.
桓武・乃至嵯峨간무 내지 사가
전교대사를 외호한 간무 천황과 사가 천황. 「乃至」는 그 사이의 헤이제이 천황을 줄인 것이다.
闘諍の序투쟁의 서막
대집경의 오오백세 가운데 말법 첫 오백 년인 「투쟁견고」의 시작. 니가쓰소동(자계반역)과 몽골의 침공 위협이 바로 그 서막이라는 뜻.
召し合せられず대면시키지 않고
천태 · 전교 때에는 군주 앞에서 공개 대론으로 시비를 밝혔으나, 대성인은 거듭 공개 대결을 청하셨음에도 끝내 맞대어 논하게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처벌했다는 것.
天の御計い하늘의 보살핌
제천선신의 가호.
勧持品の二十行の偈권지품 이십행게
권지품에서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들이 부처 멸후 악세에 이 경을 펴겠다고 서원하며 읊은 스무 줄의 게송. 멸후에 일어날 박해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묘락대사는 이를 속중 · 도문 · 참성의 세 증상만으로 나누었다(삼류의 강적, 제8편).
八十万億那由佗の菩薩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
권지품에서 이십행게를 읊으며 멸후 홍경을 서원한 보살들. 대성인이 이 땅에 나지 않았다면 이들의 서원은 거짓이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提婆제바
제바달다(Devadatta)의 줄임말. 조달이라고도 하며 천수 · 천열이라 번역한다. 『대지도론』에 따르면 곡반왕의 아들로 아난의 형, 석존의 사촌이다(이설도 있다). 출가 전 실달태자 시절부터 석존에게 적대했고, 석존 성도 뒤 6년에 출가해 12년 동안 수행했으나 악심을 일으켜 퇴전했다. 아사세 태자를 부추겨 부왕을 죽이게 하고, 오백여 비구를 이끌어 교단을 깨뜨렸으며, 기사굴산에서 큰 돌을 던져 석존의 발가락에 피를 내고, 연화색 비구니를 때려 죽였다(파화합승 · 출불신혈 · 살아라한의 삼역죄). 끝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법화경 제바달다품에서 석존의 과거세 스승 아사선인이 제바였다는 인연이 밝혀지고 천왕여래의 기별을 받아 악인성불이 설해졌다.
虚誑罪허광죄
거짓말로 남을 속인 죄. 제바달다는 거짓으로 대중을 속여 교단을 깨뜨렸다.
邪智にして心諂曲사지하여 마음이 첨곡함
권지품의 도문증상만을 그린 경문. 그릇된 지혜를 가지고 마음이 굽어 아첨한다.
白衣・六通の羅漢백의 · 육통의 나한
백의는 재가자. 재가자에게 법을 설해 육신통을 갖춘 아라한처럼 존경받는다는, 참성증상만을 그린 경문이다.
数数見擯出삭삭견빈출
「자주자주 쫓겨난다」. 권지품 이십행게의 마지막 구절. 대성인은 이즈와 사도 두 번의 유배로 이 「数数」를 몸으로 읽으셨다.
恐怖悪世中공포악세중
「두려움이 많은 악세 가운데」. 권지품의 경문.
付法蔵経부법장경
『부법장인연전』. 북위의 길가야 · 담요가 함께 번역한 6권. 석존의 부촉을 받아 정법 천 년 동안 출현해 불법을 편 부법장 스물세 사람의 사적을 기록했다.
阿育大王아육대왕
기원전 3세기 무렵(재위 기원전 268~232년 무렵). 범어 아쇼카(Aśoka). 아수가라고도 쓰고 무우(無憂)라 번역하며 천애희견왕이라고도 한다. 마우리아 왕조 제3대 왕. 치세 전반을 정복 전쟁에 쏟아 거의 인도 전역에 걸친 첫 대국가를 세웠으나, 스스로 저지른 살육의 자취를 보고 마음을 고쳐 평화주의를 지키고 불교를 깊이 믿어 그 자비의 정신을 정치에 반영했다. 팔만사천(수많은)의 탑을 세워 불사리를 공양하고 제3차 결집을 행했다.
摩耶経마야경
『마하마야경』, 『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이라고도 한다. 제나라 담경 번역 2권. 부처가 어머니 마야부인의 은혜를 갚으려고 도리천에 올라 90일 동안 설법한 일, 빈자일등의 가르침, 부처 입멸을 듣고 내려온 마야부인 앞에 부처가 금관을 열고 일어나 무상의 이치를 설한 일을 설한다. 후반에는 부처 멸후 천오백 년까지 법을 펼 사람들의 출현 연대와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竜樹菩薩용수보살
불멸 후 700년 무렵 남인도에 출현해 대승의 교의를 크게 편 대논사. 뒤에 나온 천친보살과 함께 정법 시대 후반의 정법 호지자로 이름 높다. 처음 소승을 배웠으나 히말라야 지방에서 한 노비구에게 대승 경전을 받은 뒤 대승 선양에 힘썼다. 저서 『십이문론』, 『십주비바사론』, 『중관론』 등.
大悲経대비경
북제의 나련제야사 번역 5권. 부처가 열반에 즈음해 범천 · 제석 · 가섭 · 아난 등에게 법을 부촉하고 멸후의 정법 호지자를 예언했다.
末田地말전지
범어 마디얀티카(Madhyāntika). 말전저가 · 말전제라고도 쓴다. 부법장의 제3. 아난에게 법을 받아 스승 멸후 계빈국(카슈미르)에 불교를 폈다. 『대비경』에는 카슈미르의 강에 살던 용을 말전지가 신통력으로 물리쳐 사람이 살 수 있게 되어 가람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는 본래 용이 사는 호수였던 카슈미르를 말전지가 신통력으로 땅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正妙の二本정 · 묘의 두 본
정은 서진의 축법호가 286년에 번역한 『정법화경』 10권, 묘는 요진의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 8권.
願兼於業원겸어업
「원(願)을 업(業)에 겸한다」. 묘락대사 『법화문구기』 권8의 말. 법사품의 「是の人は自ら清浄の業報を捨てて、我が滅度の後に於いて、衆生を愍むが故に、悪世に生まれて、広く此の経を演ぶ」를 받아 「悲願牽くゆえになおこれ業生なり、いまだ通応あらず願いを業に兼ぬ」라고 풀었다. 천태의 적문십묘 가운데 아홉째 권속묘에서 설한 다섯 권속(이성속 · 업생 · 원생 · 신통생 · 응생) 가운데 업생과 원생을 가리킨다.

산에 산을, 파도에 파도를 — 상법의 원질과 말법의 원질

제26장이 문증을 열거했다면, 제27장은 그 문증의 뜻을 풀고 대성인 자신의 몸에 하나하나 맞추신다. 강의는 이 장의 구성을 이렇게 요약한다. 먼저 재세와 정법 · 상법의 원질을 들고, 하물며 말법의 큰 원질은 더욱 심함을 보이며, 「されば日蓮が法華経の智解は……」에서 대성인의 큰 자비와 큰 공덕을 들어 의문을 세운다. 이어 권지품 이십행게를 낱낱이 몸에 맞추어 부처의 말씀에 거짓이 없음과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이심을 확정하신다.

첫머리의 두 비유 — 뜸을 뜨는 어머니를 원망하는 아이,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투덜거리는 병자 — 는 원질의 본질을 보인다. 원망받는 쪽이 오히려 상대를 살리려는 쪽이다. 재세에도 그러했으니, 시대가 상법 · 말법으로 내려가고 땅이 변토로 멀어지면 「山に山をかさね波に波をたたみ難に難を加へ非に非をますべし」.

겹겹이 안개 속으로 물러나는 산줄기와 그 아래 겹겹이 밀려오는 바다 물결 — 앞쪽 바위 해안에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바람을 버티고 선 금박 수묵화
그림 · 겹겹이 이어지는 산과 파도 — 「산에 산을 겹치고 파도에 파도를 포개듯」

대성인은 여기서 상법의 두 사람과 말법의 한 사람을 견주신다.

천태(상법 가운데)원적남북이 원망군주진 · 수 두 대의 성주가 눈앞에서 시비를 밝힘결과敵ついに尽きぬ적은 마침내 다하였느니라
전교(상법의 끝)원적남도 칠대사가 봉기군주간무 · 사가 등의 현명한 군주가 몸소 밝힘결과又事なし또한 무사하였느니라
니치렌(말법의 시작 이백여 년)군주召し合せられずして대면시키지도 않고결과流罪乃至寿にも・をよばんと・するなり유죄하며 내지 목숨에까지 미치려 하느니라
도표 8 · 상법과 말법의 원질

천태와 전교에게도 원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시비를 가려 줄 「聖主」 · 「賢主」가 있었다. 천태대사는 진 · 수 두 왕조의 군주들에게 귀의를 받았고, 전교대사는 간무 · 사가 천황의 외호를 받았다. 군주가 공개 대론의 자리를 열어 시비를 밝혔으므로 적은 다했다. 말법의 대성인에게는 그런 군주가 없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 이래 거듭 제종과의 공개 대론을 청하셨으나, 막부는 끝내 맞대어 시비를 가리지 않고 「非理を前として」, 곧 도리에 어긋난 쪽을 앞세워 유죄하고 목숨까지 빼앗으려 했다. 강의의 현대어 번역은 이를 부처의 예언대로 「하물며 멸도 후에랴」라는 큰 원질이 일어날 전조이자 탁세의 징표라고 푼다. 바른 쪽이 패하는 것 자체가 탁세의 징표다.

「천만분의 일」과 「두려움마저」 — 지해와 자비의 상대

「日蓮が法華経の智解は天台・伝教には千万が一分も及ぶ事なけれども難を忍び慈悲のすぐれたる事は・をそれをも・いだきぬべし」. 강의는 이 「천만분의 일」 등의 말에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대성인이 자신을 낮추시고 천태 · 전교를 세우신 뜻이다. 법화경을 해석하고 펴는 것은 천태 · 전교의 몫이었고, 두 사람은 법화경의 최고 권위자로서 상법 시대에 이를 널리 폈다. 경을 풀이하는 지해에서는 대성인이 그들에 미치지 못한다고 겸양하신다.

둘째는 자비를 견주어, 대성인의 대자대비에 천태 · 전교가 멀리 미치지 못함을 보이신 뜻이다. 말법에 들면 법화경은 이미 백법은몰하여 아무런 힘이 없게 된다. 이때 천태 · 전교조차 두려움을 품을 만한 대자대비의 부처가 출현한다. 그분이 곧 대성인이다. 강의는 이것이 석존 불법의 예언이며 대성인이 그것을 현실로 증명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지해와 자비를 나누어 견주신 것은 의미가 깊다. 경을 해석하는 일은 학문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난을 참으며 경을 펴는 일은 자비 없이는 할 수 없다. 천태와 전교는 군주의 외호 아래에서 경을 풀었고, 대성인은 군주의 박해 아래에서 경을 펴셨다. 「数数見擯出」의 두 글자를 천태 · 전교도 아직 읽지 못했다고 하신 것도 같은 뜻이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이 자비의 크기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が慈悲曠大ならば南無妙法蓮華経は万年の外・未来までもながるべし、日本国の一切衆生の盲目をひらける功徳あり、無間地獄の道をふさぎぬ

니치렌의 자비가 광대하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을 넘어 미래까지도 흐르리라. 일본국 일체중생의 먼 눈을 뜨게 하는 공덕이 있고, 무간지옥의 길을 막았느니라.

「보은초」, 329쪽

의문의 제기 — 행자가 아닌가, 선신이 떠났는가

그런데 이토록 난을 참고 자비가 뛰어나다면 틀림없이 하늘의 가호가 있어야 할 터인데 조금의 징표도 없고 오히려 죄는 더 무거워진다. 「我が身の法華経の行者にあらざるか、又諸天善神等の此の国をすてて去り給えるか・かたがた疑はし」. 강의는 이 의문의 구조를 이렇게 정리한다.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라면 제천선신의 가호가 있어야 한다. 행자가 아니라면 가호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뒤에 말씀하시듯 대성인은 석존의 예언대로 법화경의 행자이시다. 그렇다면 제천선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강의는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에서 말씀하셨듯이 제천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떠났기 때문에 가호의 힘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 선신사국(善神捨国)의 뜻은 개목초 이듬해의 「현불미래기」에서도 말법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此の時に当つて諸天善神其の国を捨離し但邪天邪鬼等有つて王臣比丘比丘尼等の身心に入住し法華経の行者を罵詈毀辱せしむべき時なり

이때에 이르러 제천선신은 그 나라를 버리고 떠나고, 다만 사천 · 사귀 등이 있어 왕 · 신하 · 비구 · 비구니 등의 몸과 마음에 들어가 머물며 법화경의 행자를 매리하고 훼욕하게 할 때이니라.

「현불미래기」, 507쪽

선신이 떠난 자리에 사천 · 사귀가 들어와 권력자와 승려의 몸에 머문다. 제25장의 「悪魔の身に入りたる者」, 「형제초」의 「第六天の魔王が智者の身に入つて」와 같은 구조다. 그러나 이 의문은 여기서 다 풀리지 않는다. 대성인은 다음 장에서 이 의문을 다시 정면으로 세우신다.

이십행게를 몸으로 읽다 — 「数数」의 두 글자

「而るに」 아래에서 대성인은 의문을 일단 접어 두고, 권지품 이십행게를 한 구절씩 들어 자신의 행적과 맞추신다. 강의는 이 대목을, 뒤의 글이 권지품의 게에 부절(符節)을 맞춘 듯 들어맞고 또 대성인 당시의 불교계 현상이 이십행게에 그대로 읽혀 있으므로, 부처에게는 망어가 없고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이심이 의심할 바 없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박해받는 쪽박해하는 쪽
  1. 諸の無智の人あつて・悪口罵詈等し・刀杖瓦石を加う여러 무지한 사람이 악구매리하고 도장와석을 가한다니치렌 외에 법화경 때문에 욕을 듣고 칼과 몽둥이를 당한 승려는 없다
  2. 悪世の中の比丘は・邪智にして心諂曲악세 중의 비구는 사지하여 마음이 첨곡하고지금 세상의 염불자 · 선종 · 율종 등의 법사
  3. 白衣の与に法を説いて世に恭敬せらるること六通の羅漢の如し백의에게 법을 설하여 세상에서 공경받음이 육통의 나한과 같다지금 세상의 염불자 · 선종 · 율종 등의 법사
  4. 常在大衆中・乃至向国王大臣婆羅門居士等늘 대중 가운데 있어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 등을 향하여승려들이 니치렌을 참소하여 유죄
  5. 数数見擯出자주자주 빈출당하리라「数数」此の二字は天台・伝教もいまだ・よみ給はず이 두 글자는 천태 · 전교도 아직 읽지 못하셨느니라이즈 유배와 사도 유배
도표 9 · 권지품 이십행게와 대성인의 행적

이 대응은 두 방향을 가진다. 한쪽은 박해받는 사람, 곧 「悪口罵詈」 · 「刀杖瓦石」 · 「数数見擯出」을 당하는 행자이고, 다른 쪽은 박해하는 사람, 곧 「邪智にして心諂曲」한 비구와 「六通の羅漢の如」 존경받으며 「国王大臣」에게 참소하는 비구다. 대성인은 「日蓮なくば此の一偈の未来記は妄語となりぬ」라 하시는 동시에, 「今の世の念仏者・禅宗・律宗等の法師なくば世尊は又大妄語の人」이라 하신다. 행자가 없어도 경문은 거짓이 되고, 박해자가 없어도 경문은 거짓이 된다. 경문은 두 쪽이 다 갖추어질 때 비로소 실현된다. 이 박해자 쪽을 속중 · 도문 · 참성의 삼류로 나누어 자세히 밝히는 것은 하권의 제49~53장(제8편)이다.

그 가운데서도 대성인이 가장 힘주어 말씀하신 것이 「数数」의 두 글자다. 「日蓮・法華経のゆへに度度ながされずば数数の二字いかんがせん、此の二字は天台・伝教もいまだ・よみ給はず況や余人をや」. 한 번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주자주」 쫓겨나야 이 경문은 실현된다. 천태와 전교는 원질은 받았으나 유배는 당하지 않았다. 대성인은 이즈와 사도 두 번의 유배로 이 두 글자를 몸으로 읽으셨다. 사도에 계실 때의 일을 회상하신 「종종어진무어서」에서도 대성인은 같은 자각을 되풀이하신다.

数数見擯出の明文は但日蓮一人なり、一句一偈・我皆与授記は我なり阿耨多羅三藐三菩提は疑いなし

「삭삭견빈출」의 분명한 경문은 다만 니치렌 한 사람이니라. 「일구일게 아개여수기」는 나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의심할 바 없느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6쪽

「数数見擯出」을 몸으로 읽은 사람은 법사품의 「一句一偈我皆与授記(한 구절 한 게송을 듣고 기뻐하는 자에게도 나는 모두 수기를 준다)」의 수기를 받는 사람이며, 그 성불은 의심할 바 없다는 것이다. 경문을 몸으로 읽는 것, 곧 신독(身読)이 그대로 성불의 확증이 된다. 「恐怖悪世中の金言の・あふゆへに但日蓮一人これをよめり」라는 말씀은 이 신독의 선언이다.

불기(仏記)는 사람이 증명한다 — 아육 · 용수 · 말전지, 그리고 말법의 행자

세 가지 예언과 그 실현

대성인은 이어서 부처의 예언이 사람의 출현으로 실현된 세 예를 드신다. 『부법장인연전』의 「멸후 백 년에 아육대왕」, 『마야경』의 「멸후 육백 년에 용수보살이 남천축에」, 『대비경』의 「멸후 육십 년에 말전지가 용궁을 땅으로」. 이것들은 모두 부처의 기별대로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누가 불교를 믿었겠는가.

아육대왕부법장경我が滅後・一百年に阿育大王という王あるべし나의 멸후 일백 년에 아육대왕이라는 왕이 있으리라
용수보살마야경我が滅後・六百年に竜樹菩薩という人・南天竺に出ずべし나의 멸후 육백 년에 용수보살이라는 사람이 남천축에 나오리라※ 마야경 원문은 七百歳
말전지대비경我が滅後・六十年に末田地という者・地を竜宮につくべし나의 멸후 육십 년에 말전지라는 자가 용궁을 땅으로 만들리라
말법恐怖悪世・然後末世・末法滅時・後五百歳공포악세 · 연후말세 · 말법멸시 · 후오백세(정 · 묘 두 본)日蓮なくば誰をか法華経の行者として仏語をたすけん니치렌이 없다면 누구를 법화경의 행자로 삼아 부처의 말씀을 도우리오
도표 10 · 부처의 예언과 그 실현

아육대왕은 마우리아 왕조의 왕으로, 정복 전쟁의 참상을 보고 마음을 고쳐 불교를 깊이 믿고 팔만사천 탑을 세운 인물이다. 용수보살은 남인도에서 나와 대승을 크게 편 논사이고, 말전지는 아난에게 법을 받아 카슈미르에 불교를 편 부법장의 제3조다. 세 사람 모두 부처가 말한 때에, 부처가 말한 곳에 나타났다.

용수의 출현 연대에 대해, 개목초는 「我が滅後・六百年に竜樹菩薩」이라 하셨으나 『마하마야경』의 원문은 「七百歳已。有一比丘名曰龍樹」로 칠백 년이다. 강의의 어석은 이를 유배 중 경전이 부족한 상황에서 집필하셨기 때문으로 본다. 미노부에서 쓰신 「보은초」에서는 「正く摩耶経には六百年に馬鳴出で七百年に竜樹出でんと説かれて候(바로 마야경에는 육백 년에 마명이 나오고 칠백 년에 용수가 나오리라고 설해져 있느니라)」(327쪽)라고 경문대로 적으셨다.

「니치렌이 없다면 누가 부처의 말씀을 도우리오」

그런데 부처는 법화경에서도 때를 정하셨다. 권지품의 「恐怖悪世」를 비롯해 「然後末世」 · 「末法滅時」 · 「後五百歳」 — 『정법화경』과 『묘법연화경』의 두 본이 한결같이 말법이라는 때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그 때에 법화경의 삼류 강적이 나타나지 않으면 누가 불설을 믿겠는가. 그리고 그 강적에게 박해받는 법화경의 행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누가 부처의 말씀을 증명하겠는가. 「日蓮なくば誰をか法華経の行者として仏語をたすけん」.

이 말씀은 놀라운 역전을 담고 있다. 보통은 경문이 사람을 증명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이 경문을 증명한다. 아육 · 용수 · 말전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부처의 예언은 거짓이 되었을 것이듯, 대성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법화경의 말법 예언은 거짓이 되었을 것이다. 행자는 경문에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문을 살리는 사람이다. 강의는 「例せば」 아래의 이 대목에서 부처에게 망어가 없음을 설하고,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이심을 확신하신 것을 입증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대성인은 「南三・北七・七大寺等・猶像法の法華経の敵の内・何に況や当世の禅・律・念仏者等は脱るべしや」라 하신다. 천태에 반대한 남삼북칠도, 전교에 반대한 칠대사도 상법의 법화경의 적에 든다. 하물며 말법의 행자를 박해하는 지금의 선 · 율 · 염불자가 그 이름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経文に我が身・普合せり」. 경문에 내 몸이 두루 들어맞았다.

대성인 자신의 미래기

강의는 이 대목에서 문하가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을 하나 덧붙인다.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 곧 말법의 본불이시라면, 대성인 자신이 「현불미래기」에서 대성인의 불법이 펼쳐질 것을 예언하셨다는 점이다.

問うて曰く仏記既に此くの如し汝が未来記如何、答えて曰く仏記に順じて之を勘うるに既に後五百歳の始に相当れり仏法必ず東土の日本より出づべきなり

묻는다, 부처의 기별은 이미 이와 같다. 그대의 미래기는 어떠한가. 답한다, 부처의 기별에 따라 이를 헤아리건대 이미 후오백세의 처음에 해당하느니라. 불법은 반드시 동쪽 땅 일본에서 나오리라.

「현불미래기」, 508쪽

석존의 미래기를 대성인이 몸으로 증명하셨듯이, 대성인의 미래기는 문하가 증명해야 한다. 말법의 참된 불법은 하나이며 그것이 널리 펼쳐진다는 예언에 대해, 문하는 본불의 말씀을 망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仏語をたすけん」의 자리가 대성인에서 문하로 넘어온다.

원겸어업 — 난을 기쁨으로 받는 까닭

「어감기를 입으면 더욱더 기쁨이」

「御勘気をかほれば・いよいよ悦びをますべし」. 경문과 몸이 부합했으니 박해는 오히려 기쁨이다. 대성인은 이 기쁨을 「원겸어업」의 비유로 설명하신다. 소승의 보살로서 아직 혹을 끊지 못한 자가 부모 등이 지옥에 떨어져 큰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짓고 싶지 않은 죄이지만 형식대로 그 업을 지어 원하여 지옥에 떨어져, 그 고통을 함께하고 대신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다. 대성인도 그와 같아서, 지금의 책망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겁지만 그것으로 미래의 악도를 벗어난다고 생각하면 기쁨이라는 것이다.

법사품과 묘락의 해석

「원겸어업」은 묘락대사가 『법화문구기』 권8에서 법사품의 경문을 풀이한 말이다. 법사품에서 석존은 약왕보살에게, 멸후에 법화경을 펴는 사람은 「自ら清浄の業報を捨てて、我が滅度の後に於いて、衆生を愍むが故に、悪世に生まれて、広く此の経を演ぶ(스스로 청정한 업보를 버리고 내 멸도 후에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악세에 태어나 널리 이 경을 편다)」고 설하셨다. 묘락대사는 이를 「悲願牽くゆえになおこれ業生なり、いまだ通応あらず願いを業に兼ぬ(비원이 이끄는 까닭에 여전히 업생이다. 아직 신통 · 응현의 몸이 아니니 원을 업에 겸한다)」라고 풀었다.

이 해석의 배경은 천태대사가 『법화현의』에서 적문십묘 가운데 아홉째 권속묘를 밝히며 든 다섯 권속이다. 이성속(理性属) · 업생(業生) · 원생(願生) · 신통생(神通生) · 응생(応生). 업생은 과거세의 죄업 때문에 금세에 태어나는 것이고, 원생은 불법 홍통을 위해 과거세의 서원으로 금세에 태어나는 것이다. 「원을 업에 겸한다」는 것은, 법화경 수행의 공덕으로 본래 편안한 경계에 태어날 자리였는데, 고뇌에 잠긴 일체중생을 불쌍히 여겨 스스로 원하여 악업을 짓고 악세에 태어나 묘법을 홍통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업에 끌려 태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서원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 뜻을 제25장과 겹쳐 읽으면 그 깊이가 드러난다. 제25장에서 대성인은 자신이 무량겁 동안 악지식에게 속아 퇴전한 업 때문에 하천 · 빈도의 몸으로 태어났다고 고백하셨다. 그것은 업생의 고백이다. 그러나 제27장의 원겸어업에 비추어 보면, 그 하천한 몸은 동시에 말법 악세의 중생을 구하려는 서원으로 스스로 택한 몸이기도 하다. 업생과 원생이 한 몸에 겹친다. 니치칸 상인이 「서원의 존귀」와 「본지의 존귀」를 함께 든 것도 이 겹침과 무관하지 않다.

고통을 함께하고, 고통을 대신하다

「苦に同じ苦に代れるを悦びとするがごとし」. 원겸어업의 보살이 기뻐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으로 부모의 고통을 함께하고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성인은 『어의구전』에서 열반경의 문을 받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が云く一切衆生の異の苦を受くるは悉く是れ日蓮一人の苦なるべし

니치렌이 말하기를, 일체중생이 갖가지 고통을 받는 것은 모두 니치렌 한 사람의 고통이니라.

『어의구전』, 757쪽

강의는 「当時の責はたうべくも・なけれども未来の悪道を脱すらんと・をもえば悦びなり」라는 이 강한 말씀을, 스스로 부처라고 하신 말씀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한다. 강의의 현대어 번역도 이 대목을, 대난을 받고 법화경의 예언에 자기 몸이 일치함을 보아 자신이 상행보살이며 말법의 본불임을 확신하여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맺는다. 박해가 경문과의 부합을 확인시키고, 그 부합이 곧 자신의 본지를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난은 기쁨이 된다.

사도에서 쓰신 「사도어서」에는 이와 짝을 이루는 말씀이 있다. 「我今度の御勘気は世間の失一分もなし偏に先業の重罪を今生に消して後生の三悪を脱れんずるなるべし(내가 이번에 받은 어감기는 세간의 허물은 조금도 없다. 오로지 과거 업의 무거운 죄를 금생에 지워 후생의 삼악도를 벗어나려는 것이리라)」(958쪽). 원겸어업이 서원의 측면에서 난을 본다면, 이 말씀은 숙업의 측면에서 같은 난을 본다. 숙업을 금생에 가볍게 받는다는 전중경수의 법리는 제9편에서 다룬다.

강의는 제27장을, 상법과 말법의 원질을 견준 뒤 「천만분의 일」의 겸양과 자비의 상대를 거쳐 의문을 세우고, 권지품 이십행게를 낱낱이 몸에 맞추어 부처에게 망어가 없음과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이심을 확정한 장으로 읽는다. 「悦びなり」라는 마지막 말씀은 스스로 부처라고 하신 말씀으로 받들어야 한다.

제28장 의문을 들어 법화경의 행자임을 풀다
어서 203쪽 10행~14행 · 第二十八章 疑いを挙げて法華経行者なるを釈す

본문

원문 대조어서 203쪽 10~14행
本文 · 어서 원문

但し世間の疑といゐ自心の疑と申しいかでか天扶け給わざるらん、諸天等の守護神は仏前の御誓言あり法華経の行者には・さるになりとも法華経の行者とがうして早早に仏前の御誓言を・とげんとこそをぼすべきに其の義なきは我が身・法華経の行者にあらざるか、 此の疑は此の書の肝心・一期の大事なれば処処にこれをかく上疑を強くして答をかまうべし。

풀이

다만 세간의 의심이라 하고 내 마음의 의심이라 하는 것은, 어찌하여 하늘이 도우시지 않는가 하는 것이니라. 제천 등의 수호신은 부처 앞에서의 서언(誓言)이 있느니라. 법화경의 행자에게는 설령 원숭이일지라도 법화경의 행자라고 이름하면 서둘러 부처 앞에서의 서언을 이루려고 생각하셔야 할 것인데, 그러한 일이 없는 것은 내 몸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 것인가. 이 의심은 이 책의 간심(肝心)이요 일생의 대사(一期の大事)이므로 곳곳에 이를 쓰고, 그 위에 의심을 강하게 하여 답을 마련하리라.

어구 풀이

世間の疑・自心の疑세간의 의심 · 자심의 의심
대성인이 거듭 난을 당하시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품은 의심, 그리고 대성인 자신도 묻지 않을 수 없었던 의심. 강의의 현대어 번역은 세간 사람들이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임을 의심하고, 대성인 자신도 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만한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고 푼다.
天扶け給わざる하늘이 돕지 않으심
제천선신의 가호가 나타나지 않음.
仏前の御誓言부처 앞에서의 서언
제천선신이 부처 멸후 법화경의 행자를 수호하겠다고 부처 앞에서 맹세한 것. 안락행품 · 다라니품 등에 설한다.
さるになりとも원숭이일지라도
강의의 현대어 번역은 「행자가 원숭이가 되어 있더라도」라고 푼다. 행자가 설령 원숭이처럼 하찮은 몸이라도, 법화경의 행자라고 이름하기만 하면 곧 서언을 지켜야 하리라는 강조다.
とがうして이름하여
「~라고 칭하여(号して)」.
此の書の肝心・一期の大事이 책의 간심 · 일생의 대사
「이 책」은 개목초. 「一期」는 한평생. 이 의문이야말로 개목초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대성인 일생의 대사라는 것.
処処にこれをかく곳곳에 이를 쓰다
이 의문을 개목초의 여러 곳에서 거듭 세우겠다는 것. 실제로 개목초는 하권 끝 가까이까지 이 의문을 되풀이해 세우고 답한다.
疑を強くして答をかまうべし의심을 강하게 하여 답을 마련하리라
의문을 약하게 세워 쉽게 답하지 않고, 가장 강한 형태로 세운 뒤 답하겠다는 것.

두 겹의 의심 — 세간의 의심, 내 마음의 의심

제28장은 다섯 줄밖에 안 되는 짧은 장이지만, 개목초 전체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를 진 장 가운데 하나다. 제27장에서 대성인은 권지품 이십행게를 낱낱이 몸에 맞추어 법화경의 행자임을 확정하셨다. 그런데 그 확정 직후에 「但し」라고 다시 의문을 세우신다. 확정했으면 끝내도 될 텐데 왜 다시 묻는가.

그 까닭은 의문이 두 겹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世間の疑」, 곧 세상 사람들의 의심이다. 법화경의 행자라면 왜 저토록 거듭 난을 당하는가. 세간의 눈에 하늘의 가호가 없는 자는 하늘에 버림받은 자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自心の疑」, 곧 대성인 자신의 마음속 물음이다. 대성인은 이 물음을 숨기지 않으신다. 경문과 몸이 부합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면 경문의 다른 대목 — 제천선신이 행자를 수호한다는 서언 — 은 왜 실현되지 않는가. 이것은 남을 설득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류노구치와 사도의 극한을 지나온 한 사람의 정직한 물음이다.

강의의 현대어 번역은 이 장을 이렇게 풀어 앞뒤를 잇는다. 말법의 지금 세상에는 삼류의 강적이 있고 법화경의 행자로서 니치렌이 출현해 있다. 그런데 니치렌은 거듭 큰 난을 받는다. 이에 대해 세간 사람들은 니치렌이 법화경의 행자임을 의심하고, 니치렌 자신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만한 사건이 잇달아 일어난다. 어찌하여 제천선신은 법화경의 행자인 니치렌을 돕지 않는가.

부처 앞의 서언 — 안락행품과 다라니품

「諸天等の守護神は仏前の御誓言あり」. 제천선신의 서언은 법화경 여러 곳에 설해져 있다. 강의의 어석은 안락행품과 다라니품을 든다. 안락행품은 이렇게 설한다. 제천은 밤낮으로 법을 위해 늘 행자를 지키고 보호하며, 듣는 이를 모두 기쁘게 한다. 왜냐하면 이 경은 과거 · 미래 · 현재의 모든 부처가 신력으로 지키시는 경이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설한다. 하늘의 여러 동자가 시중을 들고, 칼과 몽둥이도 가해지지 않으며 독도 해치지 못한다. 만일 사람이 미워하여 욕하면 그 입이 막히고, 다니는 데 두려움이 없음이 사자왕과 같으며, 지혜의 광명은 해가 비추는 것과 같다.

다라니품에서는 약왕 · 용시 등의 보살, 비사문천 · 지국천, 십나찰녀 · 귀자모신 등이 잇달아 법화경의 행자를 수호하겠다고 서원한다. 그 가운데 십나찰녀와 귀자모신은 부처 앞에서 「若し我が呪に順ぜずして 説法者を脳乱せば 頭破れて七分に作ること 阿梨樹の枝の如くならん(만일 우리 주문을 따르지 않고 설법자를 괴롭히면 머리가 깨져 일곱 조각이 되기를 아리수 가지와 같으리라)」라고 맹세했다.

서언안락행품天の諸の童子は以て給使を為さん刀杖も加えず毒も害すること能わじ하늘의 여러 동자가 시중을 들고, 칼과 몽둥이도 가해지지 않으며 독도 해치지 못하리라안락행품若し人は悪み罵らば口は則ち閉塞せん만일 사람이 미워하여 욕하면 입이 막히리라다라니품頭破れて七分に作ること 阿梨樹の枝の如くならん머리가 깨져 일곱 조각이 되기를 아리수 가지와 같으리라
いかでか天扶け給わざるらん어찌하여 하늘이 도우시지 않는가
행자의 현실
  • 악구매리
  • 도장와석
  • 두 번의 유배
  • 류노구치
도표 11 · 부처 앞의 서언과 행자의 현실

이 서언과 대성인의 현실을 나란히 놓으면 의문의 날카로움이 드러난다. 경문은 행자에게 칼과 몽둥이가 가해지지 않는다고 했으나 대성인은 고마쓰바라에서 칼을 맞고 류노구치에서 목이 베일 뻔하셨다. 경문은 행자를 욕하는 자의 입이 막힌다고 했으나 대성인을 욕하는 자는 일본국에 가득하다. 같은 법화경 안에서 권지품은 행자가 박해받는다고 하고, 안락행품 · 다라니품은 행자가 수호받는다고 한다. 제27장이 권지품 쪽의 부합을 증명했다면, 제28장은 안락행품 · 다라니품 쪽의 불부합을 정면으로 묻는다.

개목초는 하권에서 바로 이 경문들을 들어 같은 의문을 다시 세운다. 제55장 「행자가 난을 만나는 까닭을 밝히다」의 첫머리다.

有る人云く当世の三類はほぼ有るににたり但し法華経の行者なし汝を法華経の行者といはんとすれば大なる相違あり此の経に云く天の諸の童子以て給使を為さん刀杖も加えず毒も害すること能わざらん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세상의 삼류는 거의 있는 듯하다. 다만 법화경의 행자가 없다. 그대를 법화경의 행자라 하려 하면 큰 어긋남이 있다. 이 경에 이르기를 「하늘의 여러 동자가 시중을 들고, 칼과 몽둥이도 가해지지 않으며 독도 해치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개목초 하」, 230쪽

제28장에서 대성인 자신이 세운 의문이, 제55장에서는 「어떤 사람」의 반론으로 다시 나타난다. 「処処にこれをかく」라는 예고가 실제로 이렇게 지켜진다.

「이 책의 간심 · 일생의 대사」 — 의문이 인본존을 연다

왜 이 의문이 간심인가

강의는 묻는다. 왜 대성인은 이토록 강하게 의문을 세우셨는가. 그리고 답한다. 「此の疑は此の書の肝心・一期の大事」라 하셨으니, 이 의문은 곧 대성인이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시라는 단정이다. 이것을 단정하시는 것이 말법 하종의 삼덕을 나타내는 까닭이며, 말법의 본불, 곧 인(人)의 본존을 나타내는 까닭이다. 니치칸 상인이 개목초를 「인본존 개현의 서」라 하신 것은, 대성인 자신의 이 말씀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의문이 단정이라는 말은 역설처럼 들린다. 그러나 의문을 가장 강한 형태로 세워 놓고 그것을 끝까지 견디어 넘는 것만이 단정을 단단하게 만든다. 하늘의 가호가 있는 행자라면 누구나 행자라 부를 수 있다. 하늘의 가호조차 없는 자리에서 끝내 물러서지 않는 자만이 말법의 행자다. 「疑を強くして答をかまうべし」라는 말씀에는 이 방법이 담겨 있다. 의문을 약하게 세워 쉽게 넘어가면 답도 약해진다.

의문이 되풀이되는 자리

「処処にこれをかく」라는 예고대로, 개목초는 이 의문을 여러 곳에서 다른 모양으로 되풀이한다.

  1. 제27장 경문 하나하나에 부합함을 밝히다
  2. 제28장 의문을 들어 법화경의 행자임을 풀다此の書の肝心・一期の大事이 책의 간심 · 일생의 대사
  3. 제31장 이승의 수호가 없음을 의심하다
  4. 제42장 보살 등의 수호가 없다는 의문을 맺다
  5. 제55장 행자가 난을 만나는 까닭을 밝히다
  6. 제56장 법화경의 행자를 드러내는 글을 맺다詮ずるところは天もすて給え諸難にもあえ身命を期とせん결국은 하늘도 버리시라, 온갖 난에도 부딪치리라, 신명을 걸겠노라
  7. 제58장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는 큰 이익天の加護なき事を疑はざれ하늘의 가호가 없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
도표 12 · 「이 책의 간심」 — 의문이 되풀이되는 자리

제29장 이하(제5편)에서 대성인은 먼저 이승의 은혜를 따진다. 사리불 · 가섭 등 사대성문은 법화경에서 처음 성불의 기별을 받았으니 그 은혜는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은 법화경의 행자를 지키지 않는가. 이어 보살과 제천도 마찬가지로 법화경의 깊은 은혜를 입었는데 왜 지키지 않는가(제5 · 6편). 하권에서는 보탑품 삼개의 칙선과 제바품 이개의 간효를 들어 부처가 멸후의 홍경을 얼마나 간곡히 당부했는지 보이고(제7편), 권지품 이십행게의 삼류 강적을 낱낱이 밝혀 대성인이 바로 그 행자임을 드러낸다(제8편). 그리고 제55장에서 행자가 난을 만나는 까닭을 과거의 방법과 제천의 사국에서 밝힌 뒤, 제56장에서 마침내 이렇게 말씀하신다.

詮ずるところは天もすて給え諸難にもあえ身命を期とせん

결국은 하늘도 버리시라, 온갖 난에도 부딪치리라, 신명을 걸겠노라.

「개목초 하」, 232쪽

제28장의 「어찌하여 하늘이 돕지 않는가」라는 물음은, 제56장에서 「하늘도 버리시라」라는 대답으로 끝난다. 하늘이 돕느냐 돕지 않느냐는 더 이상 행자임의 기준이 아니다. 하늘이 버려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서원 자체가 행자임의 증명이 된다. 그리고 제58장에서 대성인은 그 서원을 제자들에게 넘겨주신다.

天の加護なき事を疑はざれ現世の安穏ならざる事をなげかざれ

하늘의 가호가 없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 현세가 안온하지 않은 것을 한탄하지 말라.

「개목초 하」, 234쪽

제28장에서 대성인 자신이 세운 의문이, 제58장에서는 제자들이 품지 말아야 할 의문으로 바뀌어 있다. 대성인이 그 의문을 끝까지 몸으로 통과하셨기 때문이다.

「일생의 대사」 — 개목초를 쓰신 까닭

「一期の大事」라는 말은 개목초가 쓰인 상황과 떼어 읽을 수 없다. 대성인은 뒤에 「종종어진무어서」에서 개목초를 쓰신 뜻을 이렇게 회고하셨다.

去年の十一月より勘えたる開目抄と申す文二巻造りたり、頸切るるならば日蓮が不思議とどめんと思いて勘えたり、此の文の心は日蓮によりて日本国の有無はあるべし、譬へば宅に柱なければ・たもたず人に魂なければ死人なり

지난해 11월부터 생각해 온 개목초라는 글 두 권을 지었느니라. 목이 베인다면 니치렌의 불가사의를 남겨 두려고 생각하여 생각한 것이니라. 이 글의 뜻은 니치렌에 따라 일본국의 있고 없음이 정해지리라는 것이니, 비유하면 집에 기둥이 없으면 지탱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혼이 없으면 죽은 사람인 것과 같으니라.

「종종어진무어서」, 919쪽

언제 목이 베일지 모르는 유인이 「니치렌의 불가사의」를 남기려고 쓴 글. 그 글의 간심이 「나는 법화경의 행자인가」라는 물음이라는 것은, 개목초가 교리서이기 전에 한 사람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걸고 쓴 글임을 보인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이 곧 「日本国の有無はあるべし」, 니치렌에 따라 일본국의 있고 없음이 정해진다는 확신이며, 그것이 제56장의 「我日本の柱とならむ」와 겹친다. 「一期の大事」는 그런 무게를 가진 말이다.

강의는 제28장의 의문을, 대성인이 말법의 법화경 행자이심을 단정하는 열쇠로 본다. 그 단정이 말법 하종의 삼덕을 나타내고, 말법의 본불 곧 인본존을 나타낸다. 니치칸 상인이 개목초를 「인본존 개현의 서」라 한 것은 대성인 자신의 「此の書の肝心・一期の大事」라는 말씀에 근거한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제4편의 네 장은 개목초가 교판의 언어에서 사람의 언어로 넘어가는 다리다. 제25장에서 대성인은 말법 · 변토 · 하천 · 빈도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자신을 두고, 무량겁 동안 악지식에게 속아 퇴전해 온 역사를 고백하신 뒤, 「말하면 난이 온다」는 줄 알면서도 육난구이의 경문에 비추어 「이번에야말로 퇴전하지 않으리라」고 서원하셨다. 니치칸 상인은 그 하천한 몸에 지혜 · 자비 · 서원 · 행자 · 본지 · 삼덕의 여섯 존귀를 보았고, 그 본지는 하권의 「日蓮といゐし者は……頸はねられぬ」에서 범부의 몸 그대로 드러난다.

제26장은 이십여 년 네 번의 대난이라는 현증을 법화경 · 열반경 · 천태 · 묘락 · 동춘 · 전교의 문증으로 뒷받침해, 「況滅度後」의 원질이 말법에 가장 크다는 것을 보였다. 제27장은 상법의 천태 · 전교와 말법의 대성인을 견주고, 권지품 이십행게를 한 구절씩 몸에 맞추어 「数数」의 두 글자를 읽은 이가 오직 대성인 한 사람임을 밝혔으며, 원겸어업의 비유로 난을 기쁨으로 받는 까닭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28장은 그 모든 증명 뒤에 「어찌하여 하늘이 돕지 않는가」라는 가장 강한 의문을 세워, 그것을 이 책의 간심이요 일생의 대사라 부르셨다.

다음 제5편은 이 의문을 이어받아 먼저 이승의 은혜를 묻는다. 사리불 · 가섭 등 사대성문은 법화경에서 처음 성불의 기별을 받았으니 그 은혜는 다른 어떤 경보다 깊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법화경의 행자를 지키지 않는가. 이승의 법화 심은을 논하는 그 물음으로 개목초 상권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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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개목초」 상 · 하,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186–237쪽
  • 「사도어서」 · 「종종어진무어서」 · 「사도어감기초」 · 「본존문답초」 · 「자쿠니치보어서」 · 「형제초」 · 「입정안국론」 · 「창법화제목초」 · 「현불미래기」 · 「보은초」 · 「관심의 본존초」 · 「여설수행초」 · 『어의구전』, 같은 책
  • 『묘법연화경』 법사품 · 견보탑품 · 권지품 · 안락행품 · 다라니품, T9 no.262
  • 『정법화경』, T9 no.263
  • 『대반열반경』, T12 no.374
  • 『법화문구』, T34 no.1718 / 『법화문구기』, T34 no.1719
  • 『마하지관』, T46 no.1911
  • 『부법장인연전』, T50 no.2058 / 『마하마야경』, T12 no.383 / 『대비경』, T12 no.380
  • 『대당서역기』, T51 no.2087
  • 도작 『안락집』, T47 no.1958 / 선도 『왕생예찬게』, T47 no.1980 / 선도 『관무량수경소』, T37 no.1753
  • 전교대사 『현계론』 · 『법화수구』 / 지도 『천태법화소의찬』

연구 · 번역

  • 창가교학연구실, 「0186~0237 開目抄」 제25~28장 강의
  • 니치칸 상인, 「개목초 문단」 (강의를 통해 참조)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The Opening of the Eyes」 수록)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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