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존문답초」는 「법화경의 제목을 본존으로 삼으라」는 한 줄로 시작해, 본존의 바른 뜻을 세우고(제1~5장), 그 뜻을 흐린 홍법 · 자각 · 지증 세 대사와 진언의 계보를 따져 물은 뒤(제6~8장), 이 편에 이른다. 제9장은 그 결과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일본의 수십만 사찰이 모두 진언이 되었고, 법화경을 「최제일」이라 몸과 입과 마음으로 함께 읽는 이는 전교대사 이후 사백여 년 동안 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그 공백을 메운 이는 누구인가. 제10장에서 대성인은 붓을 돌려 당신의 출신과 수학, 십종을 가린 판단, 「입정안국론」의 간효를 차례로 적으신다. 다섯 편 가운데 이 편은 「법화경의 행자」라는 갈래에 서서, 앞 편의 진언 비판을 한 사람의 생애로 받아 내고 다음 편의 망국의 현증과 미증유의 본존으로 넘겨주는 다리다.
- 본존의 정의(제1 · 2편)
- 진언 비판과 불법의 흐름(제3편)
- 법화경의 행자(제4편)
- 제9장 일본에 법화경의 행자가 없음을 밝히다
- 제10장 대성인의 사적을 보이다
- 현증과 본존 유포(제5편)
「본존문답초」 전체를 다섯 논지로 나누어 보면, 그 넷째가 「대성인의 십종 파절과 국주간효의 사적을 서술해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임을 밝힌 대목」이다. 앞의 여덟 장이 교리와 역사로 진언을 따졌다면, 이 두 장은 그 따짐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본존을 말하는 글이 왜 중간에 자서전을 품는가. 답은 분명하다. 법의 본존을 세우는 글은 결국 그 법을 몸으로 읽고 세상에 펼친 사람, 곧 인(人)의 자리를 가리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편은 두 개의 「없다」와 하나의 「있다」로 짜여 있다. 사백여 년 동안 삼업상응의 행자가 없었고, 그보다 더 어려운 「능지차경(能持此經)」의 행자는 있으리라 생각조차 할 수 없다(제9장). 그런데 「그러나 니치렌은」(然るに日蓮は)이라는 접속 한 마디로 대성인이 등장하신다(제10장). 아와의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열두 살에 세이초사에 오르고, 「일본 제일의 지자」가 되기를 서원하며, 가마쿠라 · 교토 · 히에이산 · 나라를 다니며 경론을 따지고, 마침내 구사에서 진언에 이르는 아홉 종의 잘못을 가려내 「입정안국론」을 국주에게 올리신 이력이다.
제10장의 끝은 「결국 현증을 끌어와 말하리라」이다. 이 한 줄이 다음 편, 승구의 난과 평가의 멸망, 몽골 조복의 기도를 다루는 망국의 현증으로 이어진다. 이 편을 읽는 독자는 열 개 종파의 판정표와 함께, 그 판정이 한 사람의 서원과 수학과 간효 속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함께 보게 된다.
이 편의 장
본문
然らば日本国中に数十万の寺社あり皆真言宗なりたまたま法華宗を並ぶとも真言は主の如く法華は所従の如くなり若しくは兼学の人も心中は一同に真言なり、 座主・長吏・検校・別当・一向に真言たるうへ上に好むところ下皆したがふ事なれば一人ももれず真言師なり、 されば日本国・或は口には法華経最第一とはよめども心は最第二・最第三なり或は身口意共に最第二三なり、 三業相応して最第一と読める法華経の行者は四百余年が間一人もなしまして能持此経の行者はあるべしともおぼへず、 如来現在・猶多怨嫉・況滅度後の衆生は上一人より下万民にいたるまで法華経の大怨敵なり。
그러하므로 일본국 안에 수십만의 절과 신사가 있으나 모두 진언종이니라. 어쩌다 법화종을 나란히 세운다 하여도 진언은 주인과 같고 법화는 그 종과 같으니라. 혹은 두 가지를 겸하여 배운 사람도 마음속은 한결같이 진언이니라. 좌주(座主) · 장리(長吏) · 검교(檢校) · 별당(別當)이 오로지 진언인 데다, 위에서 좋아하는 바를 아래가 모두 따르는 것이 세상의 일이므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진언사이니라. 그러므로 일본국은 혹은 입으로는 법화경을 최제일이라 읽으나 마음은 최제이 · 최제삼이요, 혹은 몸과 입과 마음이 모두 최제이 · 제삼이니라. 삼업(三業)이 상응하여 최제일이라 읽는 법화경의 행자는 사백여 년 동안 한 사람도 없느니라. 하물며 「능히 이 경을 지니는」(능지차경 能持此經) 행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되지 않느니라. 「여래가 계신 지금도 오히려 원망과 질투가 많거늘 하물며 멸도하신 뒤에랴」라 하신 그 멸도 뒤의 중생은 위로 한 사람부터 아래로 만민에 이르기까지 법화경의 큰 원적(怨敵)이니라.
어구 풀이
- 寺社사사(절과 신사)
- 불교 사찰과 신사를 함께 이르는 말. 중세 일본에서는 신사의 상당수가 사찰과 한 몸으로 운영되어(신불습합) 별당 · 사승이 신사를 관장했으므로, 「수십만의 사사가 모두 진언종」이라는 말은 신사까지 진언의 의례 아래 들어간 실정을 가리킨다.
- 法華宗법화종
- 여기서는 천태법화종, 곧 전교대사가 히에이산에 세운 일본 천태종을 가리킨다. 그 천태종마저 자각 · 지증 이후 진언과 나란히 서고, 실제로는 진언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된 것을 본문은 「주인과 종」에 비유하셨다.
- 兼学겸학
- 두 가지 이상의 종지를 함께 배우는 것. 천태와 진언을 아울러 닦는 태밀의 학풍이 대표적이다. 본문은 겸학하는 이도 「마음속은 한결같이 진언」이라 하여, 겸학이 실제로는 진언 우위로 귀결되었음을 지적하신다.
- 座主・長吏・検校・別当좌주 · 장리 · 검교 · 별당
- 큰 사찰 · 사사의 최고 직명. 다른 어서의 용례에 비추어 보면 좌주는 히에이산 엔랴쿠사, 장리는 온조사(미이데라), 검교는 동대사 · 흥복사 등 나라의 칠대사, 별당은 이즈 · 하코네 · 닛코 · 지코 등 각지 사사의 우두머리를 가리킨다.
- 上に好むところ下皆したがふ위가 좋아하는 바를 아래가 모두 따름
- 지도층의 기호가 곧 아래의 풍조가 된다는 세상의 이치. 좌주 이하 최고위 승려가 진언사가 되었으므로 그 아래 승려 전체가 진언사가 되었다는 논리의 고리다.
- 最第一최제일
- 법화경 법사품 · 안락행품 등에서 석존이 법화경을 여러 경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 하신 말. 이것을 그대로 받드는 것이 법화경의 행자의 출발점이며, 자각 · 지증처럼 「법화 제이」로 읽는 것은 그 금언을 뒤집는 것이다.
- 三業相応삼업상응
- 몸(身) · 입(口) · 마음(意)의 세 행위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한결같은 것. 입으로 「최제일」을 읽으면서 마음으로는 「제이 · 제삼」으로 여기는 것은 삼업이 어긋난 것이다.
- 四百余年사백여 년
- 전교대사가 입멸한 뒤(홍인 13년, 822년)부터 이 글을 쓰신 홍안 원년(1278)까지의 세월. 전교대사를 마지막 법화경의 행자로 보는 대성인의 시각이 이 숫자에 담겨 있다.
- 能持此経능지차경
- 「능히 이 경을 지닌다」. 법화경 분별공덕품 · 견보탑품 등에 나오는 말로, 악세 말법에 삼류의 강적이 다투어 일어나는 가운데 끝까지 법화경을 지니고 펼치는 것을 뜻한다. 삼업상응보다 한층 어려운 경지로 본문은 구별해 세우셨다.
- 如来現在・猶多怨嫉・況滅度後여래현재 유다원질 황멸도후
-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경문. 부처가 계실 때도 이 경에 대한 원망과 질투가 많은데 하물며 멸도 뒤에는 더하리라는 예언이다. 본문은 이 경문 그대로 지금의 중생이 모두 법화경의 원적이 되었다고 하신다.
- 上一人より下万民위로 한 사람부터 아래로 만민까지
- 「위의 한 사람」은 국왕 · 국주. 위정자부터 백성까지 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말로, 다음 장의 국주간효와 제11장의 망국의 현증으로 이어지는 복선이다.
- 大怨敵대원적
- 큰 원수. 법화경을 낮추어 그 금언을 어기는 것은 곧 법화경을 원수로 삼는 것이라는 뜻이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법화경을 「제이」로 읽은 자각 · 지증 두 대사가 바로 이 대원적에 해당한다.
사백여 년, 온 나라가 진언사가 되다
제6장부터 제8장까지 대성인은 홍법 · 자각 · 지증, 곧 동밀(東密)과 태밀(台密)의 개조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진언 밀교가 어떻게 일본에 퍼졌는지를 밝히셨다. 제9장은 그 긴 서술을 한 장면으로 정리한다. 히에이산의 좌주를 비롯해 당시 큰 절들의 최고 지위에 오른 고승들이 한결같이 진언사가 되었고, 그 결과 일본국의 승려가 빠짐없이 진언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본문이 든 네 직명 「좌주 · 장리 · 검교 · 별당」은 막연한 말이 아니다. 다른 어서에는 같은 직명이 절 이름과 함께 나온다.
山の座主・東寺・御室・七大寺の検校、園城寺の長吏・伊豆・箱根・日光・慈光等の寺寺の別当等も皆此の三大師の嫡嫡なり
히에이산의 좌주, 동사(東寺) · 오무로(御室) · 칠대사의 검교, 온조사의 장리, 이즈 · 하코네 · 닛코 · 지코 등 여러 절의 별당 들도 모두 이 세 대사의 적통이니라
이 용례에 기대어 보면 네 직명은 각각 엔랴쿠사(태밀의 본산), 온조사(미이데라 · 지증 계통의 태밀), 나라의 동대사 · 흥복사 등 칠대사, 이즈 · 하코네 · 닛코 · 지코의 사사를 이끄는 자리를 가리킨다. 천태의 산문과 사문, 남도의 옛 대찰, 동국의 영장까지 — 일본 불교의 지도가 그대로 펼쳐지는 셈이다. 그 정점이 모두 「세 대사의 적통」이니, 「위에서 좋아하는 바를 아래가 모두 따른다」는 세상의 이치대로 일본 전체가 진언에 물들었다.
이 장면 속에 대성인을 세워 보자. 누구나 진언이 가장 뛰어나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던 시대에 오직 대성인 한 분이 그 잘못을 엄하게 꾸짖고 법화경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가르침이라고 주장하셨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시 불교계의 권위 전체를 정면으로 상대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대성인은 법화경에 예언된 여러 대난을 만나셨고, 그 대난을 통해 법화경을 몸과 입과 마음으로 남김없이 읽으셨다. 다음 장에서 대성인이 당신의 생애와 교화의 길로 붓을 돌리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입으로는 제일, 마음으로는 제이 · 제삼
본문은 일본국의 법화경 읽기를 세 층으로 나눈다. 첫째, 입으로는 「최제일」이라 읽으면서 마음으로는 「최제이 · 최제삼」으로 여기는 이들. 둘째, 몸과 입과 마음 모두 「제이 · 제삼」인 이들. 셋째, 삼업이 상응하여 「최제일」이라 읽는 이 — 그런 법화경의 행자는 사백여 년 동안 한 사람도 없었다.
「최제일」은 경문이다. 법사품은 이미 설한 경 · 지금 설하는 경 · 앞으로 설할 경 가운데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고 하고, 안락행품은 여러 경 가운데 가장 위에 있다고 한다. 석존의 이 금언을 몸과 입과 마음으로 함께 주장하는 것이 법화경의 행자에게 빠질 수 없는 조건이다. 니치칸 상인은 「보은초 문단(報恩抄文段)」에서 이렇게 정의하셨다.
但法華経のみ『諸経法中最も為れ第一』『諸経中に於て最も其の上に在り』と行ずるを、即ち法華の行者と名づく
오직 법화경만을 「여러 경법 가운데 가장 으뜸」, 「여러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고 행하는 이를 곧 법화의 행자라 이름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자각 · 지증 두 대사의 위치는 분명하다. 둘은 천태종의 좌주이면서 대일경을 제일, 법화경을 제이로 읽었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는 법화경의 대원적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입으로는 법화의 종파를 대표하면서 마음은 진언에 있었으니, 본문의 첫째 층 「입으로는 최제일, 마음은 최제이 · 최제삼」의 원형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승려와 그 승려를 믿는 백성은 이윽고 둘째 층, 몸과 입과 마음이 모두 「제이 · 제삼」인 데까지 내려갔다.
반대편에 전교대사가 있다. 전교대사는 『법화수구(法華秀句)』 권하에서 「当に知るべし、斯の法華経は諸経の中に最も為れ第一なることを」(마땅히 알라, 이 법화경은 여러 경 가운데 가장 으뜸임을)라 하고, 다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天台法華宗所持の法華経は最も為れ第一なり。故に能く法華を持する者も亦衆生の中に第一なり
천태법화종이 지니는 법화경은 가장 으뜸이다. 그러므로 능히 법화를 지니는 이도 또한 중생 가운데 으뜸이다
법화경 최승의 뜻에 선 이 말은 경의 「제일」이 그것을 지니는 사람의 「제일」로 이어진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래서 대성인은 전교대사를 법화경의 행자로 인정하시고, 전교대사가 세상을 떠난 뒤 사백여 년 동안 삼업상응으로 최제일을 읽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사백여 년」이라는 숫자에는 이처럼 전교대사와 그 이후의 단절이 함께 들어 있다. 전교대사의 행적과 그가 맞선 남도와의 논쟁은 인물탐구 전교대사 페이지에서 따로 볼 수 있다.
- ①입과 마음이 어긋남입으로는 법화경을 최제일이라 읽으나 마음은 최제이 · 최제삼口には法華経最第一とはよめども心は最第二・最第三なり(자각 · 지증과 그 문류)
- ②삼업이 모두 어긋남몸 · 입 · 마음이 모두 최제이 · 제삼身口意共に最第二三なり(그들을 따르는 일본국)
- ③삼업상응삼업이 상응하여 최제일이라 읽는 법화경의 행자三業相応して最第一と読める法華経の行者(전교대사 이후 사백여 년 동안 없음)
- ④그보다 위능히 이 경을 지니는 행자能持此経の行者(「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능히 지닌다」는 것 — 삼업상응 위의 한 단계
본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하물며 능지차경의 행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삼업상응도 없는 나라에서 그보다 높은 「능지차경」의 행자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법화경 분별공덕품 제17의 경문과 이어진다.
悪世末法の時、能く此の経を持たん者は、即ち為れ已の上の如く、諸の供養を具足するなり
악세 말법의 때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이는 곧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공양을 갖춘 것이 된다
무게는 이 「능히」에 실린다. 악세 말법이므로 삼류의 강적이 다투어 일어나는데, 그 한가운데에서 끝까지 받아 지니고 펼쳐 나가는 것이 「능히 지닌다」는 뜻이다. 삼업상응으로 법화경 제일을 외치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지만, 온갖 박해와 탄압을 견디며 묘법을 지켜 내는 것은 어려운 일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말법의 본불에게만 들어맞는 일이다.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諸河の水入る事なくば大海あるべからず、大難なくば法華経の行者にはあらじ
여러 강물이 흘러들지 않으면 큰 바다가 있을 수 없고, 대난이 없으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리라
견보탑품 제11의 육난구이(六難九易)도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 여섯 가지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我が滅後に於いて、若し能く、斯の如き経典を奉持せん、是れ則ち難しとす」(나의 멸후에 만약 능히 이와 같은 경전을 받들어 지닌다면 이것이 곧 어려운 일이다)이다. 대성인은 이 육난구이를 몸으로 읽는 것이 법화경의 행자, 곧 말법의 본불이라는 증거라고 하시며 이렇게 쓰셨다.
大海の主となれば諸の河神・皆したがう須弥山の王に諸の山神したがはざるべしや、法華経の六難九易を弁うれば一切経よまざるにしたがうべし
큰 바다의 주인이 되면 모든 강의 신이 다 따르고, 수미산의 왕에게 모든 산신이 따르지 않겠는가. 법화경의 육난구이를 분별하면 일체경을 읽지 않아도 따르게 되리라
이렇게 보면 본문이 「삼업상응의 행자」와 「능지차경의 행자」를 굳이 나누어 세운 데에는 분명한 뜻이 있다. 이 구별이야말로 이 장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총과 별 — 두 갈래의 「법화경의 행자」
대성인이 여러 어서에서 쓰신 「법화경의 행자」라는 말은 크게 두 갈래로 쓰였다. 문하에게도 허락하신 경우와 대성인 자신에게만 한정하신 경우다. 이것은 총(総)과 별(別)의 차이다.
총의 쪽에서 대성인은 시조깅고에게 「貴辺法華経の行者となり結句大難にもあひ日蓮をもたすけ給う事」(귀하가 법화경의 행자가 되어 끝내는 대난도 만나고 니치렌도 도와주신 일, 「시조깅고전답서」 1117쪽)라 하시고, 니치묘 성인에게는 「日本第一の法華経の行者の女人なり」(일본 제일의 법화경의 행자인 여인이로다, 「니치묘성인어서」 1217쪽)라고 기리셨다. 이런 예는 많지만, 모두 대성인의 문하로서 법화경을 믿는 이를 법화경의 행자라 부르신 것이다.
별의 쪽에서는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가 대성인 한 분이라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법화경 권지품 제13에 예언된 삼류의 강적을 실제로 만나신 이가 대성인뿐이기 때문이다. 「개목초」는 이렇게 단언한다.
法華経の第五の巻・勧持品の二十行の偈は日蓮だにも此の国に生れずば・ほとをど世尊は大妄語の人・八十万億那由佗の菩薩は提婆が虚誑罪にも堕ちぬべし、経に云く『諸の無智の人あつて・悪口罵詈等し・刀杖瓦石を加う』等云云、今の世を見るに日蓮より外の諸僧たれの人か法華経につけて諸人に悪口罵詈せられ刀杖等を加えらるる者ある、日蓮なくば此の一偈の未来記は 妄語となりぬ
법화경 제5권 권지품의 이십행의 게는 니치렌이 이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칫 세존은 큰 망어의 사람이 되고,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은 제바의 허광죄에도 떨어졌으리라. 경에 「여러 무지한 사람이 있어 악구 매리하고 칼과 막대기와 기와와 돌을 가한다」 하였으니, 지금 세상을 보건대 니치렌 말고 어느 승려가 법화경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악구 매리를 당하고 칼과 막대기를 맞은 이가 있는가. 니치렌이 없었다면 이 한 게의 미래기는 망어가 되었으리라
다른 어서에서 대성인은 「말대의 법화경의 성인」을 어떻게 알아보는가를 물으시고 스스로 답하신다.
末代の法華経の聖人をば何を用つてかしるべき、経に云く『能説此経・能持此経の人・則如来の使なり』八巻・一巻・一品・一偈の人乃至題目を唱うる人・如来の使なり、始中終すてずして大難を・とをす人・如来の使なり。日蓮が心は全く如来の使にはあらず凡夫なる故なり、但し三類の大怨敵にあだまれて二度の流難に値へば如来の御使に似たり
말대의 법화경의 성인을 무엇으로 알 것인가. 경에 「능히 이 경을 설하고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사람은 곧 여래의 사자이다」 하였으니, 여덟 권 · 한 권 · 한 품 · 한 게를 지니는 사람, 나아가 제목을 부르는 사람이 여래의 사자이니라. 처음과 중간과 끝을 버리지 않고 대난을 뚫고 나가는 사람이 여래의 사자이니라. 니치렌의 마음은 전혀 여래의 사자가 아니니 범부이기 때문이라. 다만 삼류의 대원적에게 원수로 여겨져 두 번의 유배를 당하였으니 여래의 사자와 닮았도다
여기서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라 「말대의 법화경의 성인」이라 하신 데 주목해야 한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것을 말법의 별(別)한 법화경의 행자가 성인, 곧 부처의 경계에 있음을 시사하신 말로 읽는다. 「니치렌의 마음은 전혀 여래의 사자가 아니니」 이하는 겸손하게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 분명하다. 이 인용에서 「능설차경 · 능지차경」이 함께 나오는 것은, 본문의 「능지차경의 행자」가 바로 이 「처음과 중간과 끝을 버리지 않고 대난을 뚫고 나가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난을 견딤은 대자대비 때문
그러므로 본문이 「삼업상응의 행자」와 「능지차경의 행자」를 나누어 세운 뜻은 이렇게 정리된다. 법화경 최승의 뜻으로 여러 종파를 파절하고, 그로써 「유다원질 황멸도후」의 금언 그대로 삼류 강적의 대난을 견디며, 석존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한 법화경의 행자는 대성인 한 분뿐이라는 것.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란 곧 본불의 다른 이름이다.
본문의 두 단계 — 삼업상응의 행자와 능지차경의 행자 — 는 총 · 별의 구별과 겹쳐 읽을 수 있다. 삼업상응은 문하에게도 열린 길이지만, 「능지차경」은 삼류의 강적과 두 번의 왕난을 몸으로 겪으며 경문을 증명한 대성인에게만 온전히 들어맞으며, 그 행자는 말법의 본불의 다른 이름이다.
니치칸 상인은 「문저비침초(文底秘沈抄)」에서 「応に知るべし、大難を忍ぶことは偏に大慈大悲の故なり」(마땅히 알라, 대난을 견디는 것은 오로지 대자대비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대성인이 두 번의 왕난을 비롯한 숱한 대난을 견디신 것은 말법의 일체중생을 구하려는 본불의 대자대비의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본문의 마지막 구절, 위로 한 사람부터 아래로 만민까지 모두 법화경의 대원적이라는 냉엄한 진단은 비난이 아니라 그 대자대비가 향하는 자리를 보여 준다. 원적이 된 나라 한가운데에 원적을 구하려는 한 사람이 서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다음 장이 말한다.
「사백여 년」의 기점은 전교대사의 입멸(822)이다. 전교대사가 세운 히에이산이 자각 · 지증을 거쳐 원밀일치(円密一致)로 기울어 간 경위는 이 어서의 제8장, 곧 제3편 「세 대사의 사적과 불법의 전래」에서 다루었다.
본문
然るに日蓮は東海道・十五箇国の内・第十二に相当る安房の国長狭の郡・東条の郷・片海の海人が子なり、 生年十二同じき郷の内・清澄寺と申す山にまかり登り住しき、 遠国なるうへ寺とはなづけて候へども修学の人なし然而随分・諸国を修行して学問し候いしほどに我が身は不肖なり人はおしへず十宗の元起勝劣たやすくわきまへがたきところに、 たまたま仏菩薩に祈請して一切の経論を勘て十宗に合せたるに倶舎宗は浅近なれども一分は小乗経に相当するに似たり、 成実宗は大小兼雑して謬悞あり律宗は本は小乗・中比は権大乗・今は一向に大乗宗とおもへり又伝教大師の律宗あり別に習う事なり、
그러한데 니치렌은 동해도(東海道) 열다섯 나라 가운데 열두째에 해당하는 아와국(安房國) 나가사군(長狹郡) 도조향(東條鄕) 가타우미(片海)의 어부의 아들이니라. 나이 열둘에 같은 향 안의 세이초사(淸澄寺)라 하는 산에 올라가 머물렀느니라. 먼 지방인 데다 절이라 이름은 붙였으나 수학할 사람이 없었느니라. 그리하여 힘닿는 대로 여러 나라를 수행하며 학문하였으나, 내 몸은 불초하고 사람은 가르쳐 주지 않아 십종(十宗)의 기원과 승렬을 쉽게 분별하기 어려웠던 차에, 마침 불보살께 기청(祈請)하여 일체의 경론을 헤아려 십종에 맞추어 보니, 구사종(俱舍宗)은 얕고 가까우나 일부분은 소승경에 해당하는 듯하며, 성실종(成實宗)은 대승과 소승이 뒤섞여 그릇됨이 있고, 율종(律宗)은 본래는 소승, 중간에는 권대승, 지금은 오로지 대승종이라 여기고 있느니라. 또 전교대사의 율종이 있으니 이는 따로 익히는 일이니라.
法相宗は源権大乗経の中の浅近の法門にてありけるが次第に増長して権実と並び結句は彼の宗宗を打ち破らんと存ぜり譬えば日本国の将軍将門・純友等のごとし下に居て上を破る、 三論宗も又権大乗の空の一分なり此れも我は実大乗とおもへり、 華厳宗は又権大乗と云ひながら余宗にまされり譬えば摂政関白のごとし然而法華経を敵となして立てる宗なる故に臣下の身を以て大王に順ぜんとするがごとし、 浄土宗と申すも権大乗の一分なれども善導法然が・たばかりかしこくして諸経をば上げ観経をば下し正像の機をば上げ末法の機をば下して末法の機に相叶える念仏を取り出して機を以て経を打ち一代の聖教を失いて念仏の一門を立てたり譬えば心かしこくして身は卑しき者が身を上げて心はかなきものを敬いて賢人をうしなふがごとし、 禅宗と申すは一代聖教の外に真実の法有りと云云譬えばをやを殺して子を用い主を殺せる所従のしかも其の位につけるがごとし、
법상종(法相宗)은 원래 권대승경 가운데서도 얕고 가까운 법문이었으나 차츰 자라나 권 · 실(權實)과 나란히 서고, 끝내는 저 여러 종을 쳐부수려 하였느니라. 비유하면 일본국의 장군 마사카도(將門) · 스미토모(純友) 등과 같으니, 아래에 있으면서 위를 깨뜨린 것이니라. 삼론종(三論宗)도 또한 권대승의 공(空)의 일부분이니라. 이것도 스스로는 실대승이라 여기고 있느니라. 화엄종(華嚴宗)은 또한 권대승이라 하면서도 다른 종보다 뛰어나니, 비유하면 섭정 · 관백과 같으니라. 그러나 법화경을 적으로 삼아 세운 종이므로, 신하의 몸으로 대왕과 견주려 하는 것과 같으니라. 정토종(淨土宗)이라 하는 것도 권대승의 일부분이지만, 선도(善導) · 법연(法然)이 꾀를 교묘히 부려 여러 경은 높이 올리고 관경(觀經)은 낮추며, 정법 · 상법의 근기는 높이고 말법의 근기는 낮추어, 말법의 근기에 꼭 맞는다는 염불을 끄집어내고, 근기를 가지고 경을 쳐서 일대의 성교를 잃게 하고 염불의 한 문을 세웠느니라. 비유하면 마음은 약삭빠르고 몸은 천한 자가 제 몸을 높이고, 마음이 어리석은 자를 공경하여 현인을 잃는 것과 같으니라. 선종(禪宗)이라 하는 것은 일대 성교 밖에 진실한 법이 있다고 하느니라. 비유하면 어버이를 죽이고 자식을 쓰며, 주인을 죽인 종이 더욱이 그 자리에 오른 것과 같으니라.
真言宗と申すは一向に大妄語にて候が深く其の根源をかくして候へば浅機の人あらはしがたし一向に誑惑せられて数年を経て候先ず天竺に真言宗と申す宗なし然れども有りと云云、 其の証拠を尋ぬ可きなり所詮大日経ここにわたれり法華経に引き向けて其の勝劣を見候処に大日経は法華経より七重下劣の経なり証拠彼の経・此の経に分明なり此に之を引かず しかるを或は云く法華経に三重の主君・或は二重の主君なりと云云以ての外の大僻見なり、 譬えば劉聡が下劣の身として愍帝に馬の口をとらせ超高が民の身として横に帝位につきしがごとし又彼の天竺の大慢婆羅門が釈尊を床として坐せしがごとし 漢土にも知る人なく日本にもあやしめずしてすでに四百余年をおくれり。
진언종이라 하는 것은 오로지 큰 망어(妄語)이나 그 근원을 깊이 감추었으므로 근기가 얕은 사람은 드러내기 어렵고, 모두가 속은 채 여러 해가 지났느니라. 먼저 천축(天竺)에는 진언종이라는 종이 없느니라. 그런데도 있다고 하느니라. 그 증거를 물어야 하느니라. 요컨대 대일경이 이 나라에 건너와 있으니, 법화경에 맞대어 그 승렬을 보건대 대일경은 법화경보다 일곱 겹 아래의 경이니라. 그 증거는 저 경과 이 경에 분명하나 여기에는 인용하지 않느니라. 그런데 어떤 이는 대일경이 법화경에 대하여 세 겹 위의 주군이라 하고, 어떤 이는 두 겹 위의 주군이라 하니, 터무니없는 큰 벽견(僻見)이니라. 비유하면 유총(劉聰)이 하찮은 몸으로 민제(愍帝)에게 말고삐를 잡게 하고, 조고(超高)가 백성의 몸으로 함부로 제위에 오른 것과 같으며, 또 저 천축의 대만(大慢) 바라문이 석존을 평상으로 삼아 그 위에 앉은 것과 같으니라. 한토(漢土)에도 아는 사람이 없고 일본에서도 의심하지 않은 채 이미 사백여 년을 보냈느니라.
是くの如く仏法の邪正乱れしかば王法も漸く尽きぬ結句は此の国・他国にやぶられて亡国となるべきなり、 此の事日蓮独り勘え知れる故に仏法のため王法のため諸経の要文を集めて一巻の書を造る仍つて故最明寺入道殿に奉る立正安国論と名けき、 其の書にくはしく申したれども愚人は知り難し、所詮現証を引いて申すべし
이와 같이 불법의 사정(邪正)이 어지러워졌으므로 왕법도 차츰 다하였느니라. 끝내는 이 나라가 다른 나라에 패하여 망국이 되리라. 이 일을 니치렌 혼자 헤아려 알았으므로 불법을 위하고 왕법을 위하여 여러 경의 요문을 모아 한 권의 책을 지었느니라. 그리하여 고(故) 최명사 입도 전(最明寺入道殿)께 바쳤으니, 「입정안국론」이라 이름하였느니라. 그 책에 자세히 말하였으나 어리석은 사람은 알기 어려우니, 결국 현증(現證)을 끌어와 말하리라.
어구 풀이
- 東海道十五箇国동해도 열다섯 나라
- 고대 율령제의 지방 구분인 오기칠도(五畿七道)의 하나. 수도에서 동쪽 태평양 연안을 따라 이어진 열다섯 나라를 묶은 이름으로, 대성인은 고향 아와국이 그 열두째에 해당한다고 정확히 짚으셨다. 수도에서 먼 변방이라는 뜻이 뒤의 「먼 지방」과 이어진다.
- 片海の海人が子가타우미의 어부의 아들
- 아와국 나가사군 도조향 가타우미 바닷가 어민의 자식이라는 뜻. 대성인은 「사도어감기초」(891쪽)에서도 당신을 「아와국 바닷가의 전다라(旃陀羅)의 아들」이라 밝히셨는데, 출신을 숨기지 않고 앞세우시는 것이 이 사적 서술의 출발점이다.
- 清澄寺세이초사
- 아와국 기요스미산의 절. 대성인이 열두 살에 올라 도젠보(道善房)를 스승으로 배우신 곳이며, 이 어서를 받은 조켄보(浄顕房)와 기조보(義浄房)가 있던 곳이다. 본문은 이 절을 「절이라 이름은 붙였으나 수학할 사람이 없다」고 하신다.
- 十宗십종
- 당시 일본에 있던 열 종파. 남도 육종(구사 · 성실 · 율 · 법상 · 삼론 · 화엄)과 평안 이종(천태 · 진언)에 정토 · 선을 더한 것. 본문은 그 가운데 천태종을 뺀 아홉 종을 차례로 판정하신다.
- 倶舎宗구사종
- 세친(천친)의 『구사론』 30권에 의거한 학파. 일본에서는 삼론종에 딸린 우종(寓宗)으로 전해져 독립 종파를 이루지 못했다. 아공법유(我空法有)를 말하며 사제의 이치를 관하여 아라한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 成実宗성실종
- 하리발마(訶梨跋摩)의 『성실론』 16권에 의거한 학파로, 일본에서는 역시 독립 종파를 이루지 못했다. 아공법유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인법이공(人法二空)을 말하지만, 소승의 학설을 대승의 뜻으로 풀어 들인 것이어서 본문은 「대소겸잡(大小兼雜)」이라 하신다.
- 律宗율종
- 계율을 닦는 종파. 일본에서는 감진(鑑真)이 전한 것을 시작으로 삼는다. 남산율종의 사분율(四分律)에 선 소승의 계였으나, 스스로 대승계를 겸했다고 주장하고 뒤에는 범망경의 보살계까지 끌어들였다.
- 伝教大師の律宗전교대사의 율종
- 전교대사가 소승계를 버리고 히에이산에 세운 대승 원돈계(圓頓戒)의 흐름. 「신국왕어서」에서는 이를 「대승의 율종」이라 부르신다. 감진 이래의 남도 율종과는 「따로 익히는 일」이라고 본문은 구별하신다.
- 法相宗법상종
- 해심밀경 · 유가사지론 · 성유식론 등 육경십일론(六經十一論)에 의거해, 당의 현장(玄奘)이 전하고 자은대사 규기(窺基)가 연 종파. 삼승진실 · 일승방편을 세워 법화경을 해심밀경보다 낮추었다.
- 三論宗삼론종
- 용수의 『중론』 · 『십이문론』과 제바의 『백론』에 의거해 「공」을 근본 교의로 세운 종파. 오시 교판으로는 반야부의 권대승이지만, 길장(吉藏)이 반야경과 법화경을 「이름은 다르나 체는 같다」고 하여 스스로 실대승이라 여겼다.
- 華厳宗화엄종
- 석존이 성도 직후 처음 설했다는 화엄경에 의거한 종파로, 당의 현수대사 법장(法藏)이 대성했다. 권대승 가운데 가장 높은 법문이어서 「섭정 · 관백」에 비유되지만, 법화경을 낮추고 화엄경을 제일로 세웠으므로 「법화경을 적으로 삼아 세운 종」이라 하신다.
- 浄土宗정토종
- 중국에서 선도가 교의를 짜고 일본에서 법연이 연 종파. 정토 삼부경 외의 여러 경은 높고 깊어 말법의 낮은 근기로는 미치지 못하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길만 남는다고 설했다. 본문은 이를 「근기로써 경을 친다」고 하신다.
- 禅宗선종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워 불법의 진수는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전해졌으며 스스로 좌선 입정으로 체득하는 것이라 주장한 종파. 석존 일대의 성교를 부정하므로 「어버이를 죽이고 자식을 쓰는」 비유로 꾸짖으신다.
- 七重下劣칠중하열
- 대일경이 법화경보다 일곱 겹 아래라는 뜻. 「진언칠중승렬사」의 순서로 말하면 법화경 제일 · 열반경 제이 · 무량의경 제삼 · 화엄경 제사 · 반야경 제오 · 소실지경 제육 · 대일경 제칠이다.
- 大慢婆羅門대만 바라문
- 『대당서역기』 권11에 나오는 남인도 마랍바국(摩臘婆國)의 바라문. 내외의 학문과 역법 · 천문에 통달했다고 자만하여, 대자재천과 석존 등의 상을 네 다리로 삼은 의자를 만들어 그 위에 앉았다. 현애 논사(賢愛論師)에게 논파된 뒤 대승을 비방하다 산 채로 땅에 빠졌다고 전한다.
- 故最明寺入道고 최명사 입도
- 가마쿠라 막부의 집권을 지내고 출가해 최명사 입도라 불린 호조 도키요리(北條時賴). 「입정안국론」을 올릴 때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였으며, 이 어서를 쓰실 때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므로 「고(故)」를 붙이셨다.
「그러나 니치렌은」 — 사적을 적으시는 까닭
제9장이 「법화경의 행자는 한 사람도 없다」로 끝났으니, 제10장의 첫마디 「그러나 니치렌은」(然るに日蓮は)은 그 공백을 정면으로 받는다. 이 장에서 대성인은 당신의 출신과 수학, 당시 일본에 어지러이 서 있던 열 종파의 잘못을 스스로 꿰뚫어 보신 경위를 간결하게 적으신다.
서강에서는 이 대목을, 법화경의 제목인 본존을 드러내고 펼치는 사람인 대성인 자신의 사적을 적고 승구의 난 등 진언 망국의 현증을 다시 들어, 대성인이야말로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이며 곧 인(人)의 본존이심을 밝히는 대목으로 정리했다. 그 정리 전체는 서강 「본존문답초를 펼치며」의 「넷째 — 대성인의 사적과 법화경의 행자」에 있다. 여기서는 그 뼈대 — 입종 이전의 서원과 수학, 그 위에 선 여러 종파의 파절과 국주간효(國主諫曉), 그것이 불러온 대난 — 를 본문의 구절과 맞추어 따라가고, 다쓰노구치(龍口)의 발적현본(發迹顯本)은 이 장의 마지막 절에서 짚는다.
본문은 먼저 출신을 밝힌다. 동해도 열다섯 나라 가운데 열두째, 아와국 나가사군 도조향 가타우미의 어부의 아들. 열두 살에 같은 향의 세이초사에 올라 머무셨다. 수도에서 먼 변방, 절이라는 이름은 있으나 배울 사람이 없는 곳 — 본문의 이 담담한 묘사에는 수학이 깊어질수록 일어나는 대성인의 의문에 분명히 답해 줄 사람이 없었던 사정이 배어 있다. 대성인의 생애 전체의 흐름은 인물탐구 니치렌 대성인 페이지에 정리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본문이 직접 가리키는 대목만 따라간다.
스승 없는 산을 나서 — 제국 유학
답해 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대성인은 여러 나라로 유학의 길을 떠나셨다. 그 여정은 「묘호비구니답서」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日本国に渡れる処の仏経並に菩薩の論と人師の釈を習い見候はばや、又倶舎宗・成実宗・律宗・法相宗・三論宗・華厳宗・真言宗・法華天台宗と申す宗どもあまた有りときく上に、禅宗・浄土宗と申す宗も候なり、此等の宗宗・枝葉をばこまかに習はずとも所詮肝要を知る身とならばやと思いし故に、随分に・はしりまはり十二・十六の年より三十二に至るまで二十余年が間、鎌倉・京・叡山・園城寺・高野・天王寺等の国国.寺寺あらあら習い回り候し
일본국에 건너온 불경과 보살의 논과 인사(人師)의 해석을 배워 보고 싶었고, 또 구사종 · 성실종 · 율종 · 법상종 · 삼론종 · 화엄종 · 진언종 · 법화천태종이라는 종이 여럿 있다고 들은 데다 선종 · 정토종이라는 종도 있으니, 이 여러 종의 지엽까지는 자세히 배우지 못하더라도 결국 그 요체만은 아는 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였으므로, 힘닿는 대로 뛰어다니며 열둘 · 열여섯의 나이부터 서른둘에 이르기까지 이십여 년 동안 가마쿠라 · 교토 · 히에이산 · 온조사 · 고야산 · 덴노사 등 여러 나라 여러 절을 대략 배우며 돌아다녔느니라
열두 살에 입산하고 열여섯에 출가하신 뒤 서른두 살에 이르기까지 이십여 년. 이 수학은 깊은 산에 틀어박힌 연구가 아니라 당시 일본 불교계의 실상을 낱낱이 보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가마쿠라는 막부의 도시였고, 교토는 조정의 도시였으며, 히에이산과 온조사는 태밀의 두 본거지, 고야산은 동밀의 본산, 덴노사는 오랜 역사의 대찰이었다. 이 길은 곧 앞의 장들에서 따져 온 일본 불교의 지도 위를 직접 걸어 다닌 길이다.
- 12세 세이초사 입산나이 열둘에 세이초사라 하는 산에 올라 머물렀느니라生年十二…清澄寺と申す山にまかり登り住しき
- 16세 출가
- 가마쿠라(막부의 도시)
- 교토(조정의 도시)
- 히에이산 · 온조사(태밀의 두 본거지)
- 고야산(동밀의 본산)
- 덴노사
- 32세까지 이십여 년열둘 · 열여섯의 나이부터 서른둘에 이르기까지 이십여 년 동안十二・十六の年より三十二に至るまで二十余年が間「묘호비구니답서」 1407쪽
- 서른둘에 입종
유학을 결심하신 배경에는 당시의 종교 사정이 깊이 얽혀 있었다. 「보은초」는 그 의문을 이렇게 적는다.
世間をみるに各各・我も我もといへども国主は但一人なり二人となれば国土おだやかならず家に二の主あれば其の家必ずやぶる一切経も又かくのごとくや有るらん何の経にても・をはせ一経こそ一切経の大王にてはをはすらめ、而るに十宗七宗まで各各・諍論して随はず国に七人・十人の大王ありて万民をだやかならじいかんがせんと疑うところに一の願を立つ
세간을 보건대 저마다 「나야, 나야」 하지만 국주는 오직 한 사람이다. 둘이 되면 국토가 평온하지 않고, 집에 주인이 둘이면 그 집은 반드시 무너진다. 일체경도 또한 이와 같지 않겠는가. 어느 경이든 한 경이야말로 일체경의 대왕일 것이다. 그런데 십종 · 칠종이 저마다 다투며 따르지 않으니, 나라에 일곱 · 열의 대왕이 있어 만민이 평온하지 못할 것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하고 의심하던 차에 하나의 서원을 세웠느니라
열 종파가 뒤섞여 다투는 가운데, 석존 일대의 경 가운데 대왕의 자리에 있는 경은 무엇인가. 그 의문을 풀기 위한 수학이었다. 본문의 「십종의 기원과 승렬」이 바로 이 물음이다.

「일본 제일의 지자가 되게 하소서」
그러나 더 근본적인 데를 보아야 한다. 법화경이야말로 석존 일대 성교 가운데 최제일이라는 확신은 이미 일찍부터 얻고 계셨으며, 열여섯 해에 걸친 수학은 그 확신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근거가 「선무외삼장초」의 다음 구절이다.
日蓮は安房の国・東条の郷・清澄山の住人なり、幼少の時より虚空蔵菩薩に願を立てて云く日本第一の智者となし給へと云云、虚空蔵菩薩眼前に高僧とならせ給いて明星の如くなる智慧の宝珠を授けさせ給いき、其のしるしにや日本国の八宗並びに禅宗・念仏宗等の大綱・粗伺ひ侍りぬ
니치렌은 아와국 도조향 기요스미산의 주민이니라. 어렸을 때부터 허공장보살께 서원을 세워 「일본 제일의 지자가 되게 하소서」라고 하였느니라. 허공장보살이 눈앞에 고승이 되어 나타나시어 샛별과 같은 지혜의 보주를 주셨느니라. 그 징표인지 일본국의 팔종과 선종 · 염불종 등의 대강을 대략 헤아리게 되었느니라
본문의 「내 몸은 불초하고 사람은 가르쳐 주지 않아 십종의 기원과 승렬을 쉽게 분별하기 어려웠던 차에, 마침 불보살께 기청하여 일체의 경론을 헤아려」라는 구절은 바로 이 서원 — 어린 시절 세이초사에서 허공장보살에게 「일본 제일의 지자가 되게 하소서」라고 세운 서원 — 을 가리킨다. 「불초」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겸손의 말 뒤에, 스승 없이도 일체의 경론을 직접 헤아려 십종을 판정해 낸 지혜가 서 있다. 「팔종과 선종 · 염불종의 대강」을 헤아렸다는 「선무외삼장초」의 말은 본문의 「십종에 맞추어 보니」와 정확히 겹친다.
이 서원과 판정은 이윽고 건장 5년(1253) 4월 28일의 입종으로 이어진다. 서른두 살, 「묘호비구니답서」가 말한 이십여 년의 수학이 끝나는 해다. 그 입종 직후 아와의 지두 도조 가게노부(東條景信)가 대성인을 해치려 했을 때 조켄보와 기조보가 대성인을 안내해 세이초사를 빠져나가게 했다는 사실은 이 어서의 끝부분(제13장)에서 다시 나온다. 이 어서의 수신인에게 기요스미는 대성인의 출발을 함께 지켜본 장소였다.
구사종과 성실종 — 소승과 대소겸잡
이제 본문은 십종 가운데 천태종을 뺀 아홉 종의 판정으로 들어간다. 먼저 구사 · 성실 · 율의 세 종이다.
구사종은 세친의 『구사론』 30권을 의거로 삼는다. 일본에는 삼론종에 딸린 종으로 전해져 학파로만 있었을 뿐 하나의 종파를 이루지는 못했다. 아공법유(我空法有), 곧 「나」라는 실체는 없으나 법(法)은 실재한다고 말하며, 사제(四諦)의 이치를 관하여 아라한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교의는 부파불교 가운데 일체의 법이 실재한다고 설하는 설일체유부에서 나왔으므로 본문은 「일부분은 소승경에 해당하는 듯하다」고 하셨다. 「얕고 가깝다」(浅近)는 판정은 그 목표가 아라한과에 머문다는 데서 나온다.
성실종은 하리발마의 『성실론』 16권을 의거로 삼으며, 일본에서는 역시 하나의 종파를 이루지 못했다. 성실종은 소승의 아공법유에서 한 걸음 나아가 「나」도 「법」도 함께 공하다는 인법이공(人法二空)을 설한다. 그 점에서는 대승의 뜻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소승의 학설에 대승의 뜻을 끌어들여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대승과 소승이 뒤섞여 그릇됨이 있다」(大小兼雑して謬悞あり)고 판정하신 것으로 읽힌다. 아공법유와 인법이공을 둘러싼 무아 · 공의 교리는 핵심 개념 무아 · 오온과 불교 교학 공 · 중도에서 따로 다룬다.
율종의 세 얼굴 — 본래 소승, 중간 권대승, 지금 대승
율종에 대한 본문의 판정은 한 줄이지만 여기에는 가장 긴 설명이 필요하다. 「본래는 소승, 중간에는 권대승, 지금은 오로지 대승종이라 여긴다」는 세 단계가 일본 율종의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율종은 감진이 전한 데서 시작된다. 천평승보 5년(753)에 일본에 온 감진은 동대사에 계단을 세웠고, 이어 시모쓰케(下野)의 약사사와 쓰쿠시(筑紫)의 관세음사에도 계단을 세웠다. 이를 「천하의 삼계단」이라 불렀는데, 모두 남산율종을 원류로 하는 소승의 계단이었다. 감진의 도래와 삼계단의 경위는 이 어서의 제8장(제3편 「세 대사의 사적과 불법의 전래」)에서 다루었다.
그런데 남도의 계단을 대승의 계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교넨(凝然)의 『삼국불법전통연기(三國佛法傳通緣起)』 권하는 「初めて廬遮那殿の前に於て戒壇を立て、天皇、初めて登壇して菩薩戒を受け」(처음으로 노사나전 앞에 계단을 세우고, 천황이 처음으로 단에 올라 보살계를 받았다)라고 적는다. 보살계는 대승계이니, 그렇다면 남도의 계단도 대승 계단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전교대사 때 이미 논쟁이 되었다. 전교대사는 홍인 9년(818) 5월부터 이듬해 3월에 걸쳐 육조식 · 팔조식 · 사조식의 세 가지로 이루어진 『산가학생식(山家學生式)』을 지어 올리고 대승 계단 건립의 칙허를 청했다. 남도의 승강(僧綱)들은 이에 반발해 이를 거부하는 표를 조정에 냈다. 전교대사의 『현계론(顯戒論)』은 그 승강의 반박문 가운데 하나를 이렇게 옮긴다.
僧統奏して曰く、また大乗戒伝来すること久し。大唐の高徳、此土の名僧、相ひ尋ね伝授し、今に至りて絶えずと
승통이 아뢰어 말하였다. 「또한 대승계가 전해진 지 오래이다. 대당의 고덕과 이 땅의 명승이 서로 이어 전수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끊이지 않았다」
일본에는 이미 대승계가 전해져 있다는 남도 쪽의 주장이다. 전교대사는 이렇게 반박했다.
論じて曰く、梵網の戒、先代より伝ふと雖も、この間の受うる人、未だ円意を解せず、所以に声聞の律儀を用ひて梵網の威儀に同ず
논하여 말한다. 범망의 계가 앞 시대부터 전해졌다고는 하나, 그동안 받은 사람들은 아직 원(圓)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성문의 율의를 써서 범망의 위의와 같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천태종이 전하는 계는 범망의 원계(圓戒)이며, 지금까지 일본에 전해진 계는 원의 율의가 아니므로 같은 날에 논할 수 없다고 했다. 범망의 계란 『범망경』에 의거한 십중금계(十重禁戒) ·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의 대승계다. 이 범망계가 이전(爾前)의 원교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천태대사의 오시팔교 교판에 의해서이니, 전교대사가 「天台の釈に非ざれば伝説すべきこと難し」(천태의 해석이 아니면 전하여 설하기 어렵다)고 한 것처럼, 범망경의 대승계가 일본에 전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별교(別教)의 뜻으로였다는 것이 분명하다.
감진이 전한 계가 소승계라는 점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선시초 우기(撰時抄愚記)」에서 이렇게 정리하셨다.
鑑真既に道岸法師に随って菩薩戒を受くるが故に、時の宣しきに随ってこれを授くるならん。既に南山を祖と為す。故に四分小律を出ずべからず。設い菩薩戒を兼ぬと雖も、多くはこれ善戒経・瑜伽論等の意なり、尚梵網の大戒にも及ばず、況や法華の円戒に及ばんをや
감진은 이미 도안 법사에게서 보살계를 받았으므로 때의 마땅함에 따라 이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남산을 조사로 삼았으니 사분의 소율을 벗어날 수 없다. 설령 보살계를 겸했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선계경 · 유가론 등의 뜻이니, 범망의 대계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하물며 법화의 원계에 미치겠는가
감진은 열여섯에 출가하고 열여덟에 도안(道岸) 법사에게서 대승계인 보살계를 받았으며, 그것을 일본에서도 주었다. 그러나 감진이 배운 율은 도선(道宣) 율사를 개조로 하는 남산율종이 설하는 사분율의 소승계였다. 대성인은 「시모야마어소식」에서 이를 분명히 하셨다.
今日本国は最初に仏法渡りて候し比・大小雑行にて候しが人王四十五代聖武天皇の御宇に唐の揚州竜興寺の鑑真和尚と申せし人漢土より我が朝に法華経天台宗を渡し給いて有りしが円機未熟とやおぼしけん此の法門をば已心に収めて口にも出だし給はず、大唐の終南山の豊徳寺の道宣律師の小乗戒を日本国の三所に建立せり此れ偏に法華宗の流布すべき方便なり、大乗出現の後には肩を並べて行ぜよとにはあらず
지금 일본국은 처음 불법이 건너왔을 무렵 대승과 소승이 뒤섞여 행해졌는데, 인왕 제45대 쇼무 천황 때 당나라 양주 용흥사의 감진 화상이라는 사람이 한토에서 우리 조정에 법화경 천태종을 건네주었으나, 원교의 근기가 아직 익지 않았다고 여기셨는지 이 법문은 자기 마음에 거두어 입에도 내지 않으시고, 대당 종남산 풍덕사의 도선 율사의 소승계를 일본국의 세 곳에 세웠느니라. 이는 오로지 법화종이 유포될 방편이니, 대승이 나타난 뒤에도 어깨를 나란히 하여 행하라는 것이 아니니라
- 본래 소승本は小乗
- · 감진이 전한 남산율종의 사분율
- · 동대사 · 시모쓰케 약사사 · 쓰쿠시 관세음사의 천하 삼계단
- 중간에는 권대승中比は権大乗
- · 도선의 분통대승설
- · 「대승계가 전해진 지 오래」라는 남도 승강의 주장
- · 유가론 · 선계경 계통의 보살계를 겸함
- 지금은 오로지 대승종이라 여김今は一向に大乗宗とおもへり
- · 가마쿠라기 에이존 등이 범망경의 보살계를 내세움
- · 히에이산의 대승 원돈 계단
- · 「대승의 율종」(「신국왕어서」 1517쪽)
통수와 별수 — 남도의 계와 히에이산의 계
니치칸 상인이 「설령 보살계를 겸했다 하더라도」라고 하셨듯이, 감진이 전한 계율은 넓은 뜻으로는 대승과 소승을 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계를 받는 방식의 두 가지, 통수(通受)와 별수(別受)를 알아야 한다. 대승의 삼취정계(三聚淨戒)를 통틀어 받는 것을 통수라 하고, 그 가운데 섭율의계를 따로 받는 것을 별수라 한다.
삼취정계는 대승 보살계의 세 갈래다. 일체의 계를 지니는 섭율의계(攝律儀戒), 일체의 선법을 닦는 것을 계로 삼는 섭선법계(攝善法戒),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계로 삼는 섭중생계(攝衆生戒)다. 이 가운데 섭선법계와 섭중생계는 대승계이고, 섭율의계는 대승계와 소승계를 모두 품는다. 남도의 계단에서는 출가한 이가 먼저 소승의 별수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그 뒤에 삼취정계의 대승계를 통수했다. 그러므로 대승과 소승의 계를 겸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전교대사의 대승계는 삼취정계를 통틀어 받는 것을 통수로 삼고, 대승의 별해탈율의인 십중계 · 사십팔경계를 따로 받는 것을 별수로 삼아, 통수와 별수 어디에도 소승계를 쓰지 않는 순연한 대승계였다. 게다가 감진 당시의 대승계는 『유가론』과, 그 유가론의 삼취정계를 받아 성립한 『보살선계경』에 설해진 대승계였으니, 출가와 재가에 두루 통하는 대승 고유의 보살계를 설한 범망경의 대승계에도 미치지 못한다.
- 섭율의계대승 · 소승을 모두 품음
- 섭선법계대승
- 섭중생계대승
그러므로 니치칸 상인은 남도의 대승계가 하물며 법화경의 원계에 미칠 리 없다고 하셨다. 범망경의 대승계가 원계라 하더라도 그것은 이전의 원교의 분제이므로, 상대묘(相待妙)의 뜻에서 승렬을 가리신 것이다. 대성인은 「십법계명인과초」에서 그 차이를 세 가지로 드셨다.
梵網経等の権大乗の戒と法華経の戒とに多くの差別有り、一には彼の戒は二乗七逆の者を許さず二には戒の功徳に仏果を具せず三には彼は歴劫修行の戒なり是くの如き等の多くの失有り
범망경 등 권대승의 계와 법화경의 계에는 많은 차별이 있느니라. 첫째, 저 계는 이승과 칠역죄를 지은 자를 허락하지 않느니라. 둘째, 계의 공덕에 불과(佛果)를 갖추지 않느니라. 셋째, 저것은 역겁수행의 계이니라. 이와 같은 많은 허물이 있느니라
본문의 「본래는 소승, 중간에는 권대승」이라는 말은, 율종이 본래 소승교의 계율에 의거해 세워진 종파인데도 그것을 대승계라고 우긴 것을 가리킨다. 남산율종의 도선이 소승의 사분율을 펼치면서도 「계의 모습은 소승이지만 뜻은 일부분 대승에 통한다」는 분통대승설(分通大乘說)을 내세운 것이 그 한 예이고, 앞에서 본 것처럼 남도의 승강이 일본에는 이미 대승계가 전해져 있다고 주장한 것도 그러하다.
그런데 전교대사가 히에이산에 대승의 원돈 계단을 세운 뒤에는, 율종의 흐름을 잇는 학승들도 모두 소승의 계율을 버리고 대승계를 받아 지녔다. 대성인은 「시모야마어소식」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律宗なんど申す宗は一向小乗なり月氏には 正法一千年の前の五百年の小法又日本国にては像法の中比・法華経天台宗の流布すべき前に且らく機を調養せむがためなり、例せば日出でんとて明星前に立ち雨下らむとて雲先おこるが如し、日出雨下て後の星雲はなにかせん而るに今は時過ぬ又末法に入りて之を修行せば重病に軽薬を授け大石を小船に載するが如し修行せば身は苦く暇は入りて験なく華のみ開きて菓なからん、故に教大師・像法の末に出現して法華経の迹門の戒定慧の三が内・其の中・円頓の戒壇を叡山に建立し給いし時二百五十戒忽に捨て畢んぬ
율종 따위의 종은 오로지 소승이니라. 월지에서는 정법 천 년 가운데 앞의 오백 년의 작은 법이요, 일본국에서는 상법의 중간에 법화경 천태종이 유포되기 전에 잠시 근기를 고르고 기르기 위한 것이니라. 비유하면 해가 뜨려 할 때 샛별이 먼저 서고, 비가 내리려 할 때 구름이 먼저 이는 것과 같으니라. 해가 뜨고 비가 내린 뒤의 별과 구름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런데 지금은 때가 지났느니라. 또 말법에 들어 이것을 수행한다면 중병에 가벼운 약을 주고 큰 돌을 작은 배에 싣는 것과 같으니, 수행하면 몸은 괴롭고 시간은 들어도 효험이 없고 꽃만 피고 열매는 없으리라. 그러므로 전교대사가 상법의 끝에 출현하시어 법화경 적문의 계 · 정 · 혜 셋 가운데 원돈의 계단을 히에이산에 세우셨을 때 이백오십계를 곧바로 버리셨느니라
남도 율종은 전교대사가 대승 계단을 세운 뒤 밀교와 정토교 같은 대승의 세력에 밀려 급속히 쇠퇴했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 다시 일어날 조짐을 보였는데, 특히 서대사(西大寺)의 에이존(叡尊)은 밀교 전성의 시류를 교묘히 타서 진언 밀교의 기도와 함께 대승경인 범망경을 끌어들여, 오로지 보살계를 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는 민중을 속인 것이다. 대성인은 같은 「시모야마어소식」에서 이렇게 지적하셨다.
一類の者等天台の才学を以て見れば我が律宗は幼弱なる故に漸漸に梵網経へうつり結句は法華経の大戒を我が小律に盗み入れて還つて円頓の行者を破戒無戒と咲へ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천태의 학식으로 보면 제 율종이 어리고 약하므로 차츰 범망경으로 옮겨 가고, 끝내는 법화경의 대계를 제 소율에 훔쳐 넣고서 도리어 원돈의 행자를 파계 · 무계라고 비웃으니
이러한 일본 율종의 역사를 바탕으로 본문은 「지금은 오로지 대승종이라 여기고 있다」고 하셨다. 소승으로 시작해, 대승계를 겸했다고 주장하고, 마침내 법화경의 대계를 훔쳐 대승종을 자처하는 데까지 — 본문의 세 마디는 수백 년에 걸친 변신의 요약이다.
전교대사의 율종 — 「대승의 율종」
본문은 율종 판정의 끝에 「또 전교대사의 율종이 있으니 이는 따로 익히는 일이다」라는 한 줄을 덧붙인다. 이것은 소승의 율종과 구별하여, 전교대사가 소승계를 버리고 대승계를 세운 일을 가리킨다. 대성인은 「신국왕어서」에서 이를 「대승의 율종」(1517쪽)이라 부르셨다.
율종의 판정에서 굳이 전교대사의 율종을 떼어 내신 것은 제9장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전교대사는 사백여 년 전의 마지막 법화경의 행자였고, 그가 세운 원돈 계단은 남도의 소승 계단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계단을 이은 히에이산은 자각 · 지증 이후 진언에 물들었다. 율종의 판정에 붙은 이 한 줄은, 대성인이 판정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계신지 — 법화경의 원돈계와 그것을 세운 전교대사의 뜻 — 를 조용히 보여 준다. 다만 전교대사의 계단은 법화경 적문의 계 · 정 · 혜 가운데 계였다는 것을 「시모야마어소식」이 분명히 했듯이, 그것은 상법의 계였다.
아래에서 위를 깨뜨리다 — 법상종
소승의 세 종에 이어 본문은 대승의 다섯 종 — 법상 · 삼론 · 화엄 · 정토 · 선 — 을 차례로 들어 파절한다.
법상종은 해심밀경 · 유가사지론 · 성유식론 등 육경십일론을 의거로 삼으며, 당의 현장이 전하고 태종 황제 때 자은대사 규기가 연 종파다.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그 교의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하셨다.
此の宗の心は仏教は機に随うべし一乗の機のためには三乗方便・一乗真実なり所謂法華経等なり、三乗の機のためには三乗真実・一乗方便・所謂深密経・勝鬘経等此れなり
이 종의 마음은, 불교는 근기에 따라야 하니 일승의 근기를 위해서는 삼승이 방편이고 일승이 진실이니 이른바 법화경 등이요, 삼승의 근기를 위해서는 삼승이 진실이고 일승이 방편이니 이른바 심밀경 · 승만경 등이 이것이라는 것이니라
자은은 삼승의 근기를 가진 사람에게는 부처가 근기에 맞추어 설한 성문승 · 연각승 · 보살승의 삼승의 가르침이 진실이며, 법화경은 일승의 근기를 가진 사람을 위한 경이므로 삼승의 사람에게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의거하는 해심밀경이 권대승 가운데서도 방등부에 속하는 낮은 가르침인데도 「法華経は一切経には勝れたれども深密には劣る」(법화경은 일체경보다 뛰어나지만 심밀경보다는 못하다, 「보은초」 301쪽)라는 교판을 세웠다. 낮은 자리에서 일어나 권 · 실의 대승과 어깨를 나란히 하더니 끝내 그 위를 치려 한 것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하극상의 반란을 일으킨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將門)와 후지와라노 스미토모(藤原純友)에 비유해 「아래에 있으면서 위를 깨뜨린다」고 꿰뚫어 말씀하셨다. 전교대사는 도쿠이치(得一)와의 법론을 통해 법상종을 엄하게 논파했다. 법상종의 유식설과 아뢰야식의 교리는 핵심 개념 구식에서 따로 다룬다.
공의 일부분과 섭정 · 관백 — 삼론종과 화엄종
삼론종은 용수의 『중론』 · 『십이문론』과 제바의 『백론』, 세 논을 의거로 「공」을 근본 교의로 세운 종파다. 오시 교판으로는 반야부의 권대승에 들어가는데, 스스로는 실대승이라 믿고 있다고 본문은 지적한다. 이것은 중국 삼론종을 대성한 가상대사 길장이 반야경을 의거 경전으로 정하고, 법화경과 반야경은 이름은 달라도 같은 일대승장(一大乘藏)이라고 주장한 것을 가리킨다. 「개목초」는 그 주장을 이렇게 옮긴다.
三論の吉蔵等読んで云く『般若経と法華経とは名異体同・二経一法なり』
삼론의 길장 등이 읽어 말하기를 「반야경과 법화경은 이름은 다르나 체는 같으니, 두 경이 한 법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길장은 뒤에 천태대사에게 파절되어 백여 명의 제자를 버리고 칠 년 동안 천태대사를 섬겼다고 전한다. 「공의 일부분」이라는 본문의 말은 삼론의 공이 권대승의 공, 곧 공 · 가 · 중의 원융에 이르지 못한 공이라는 판정이다.
화엄경은 석존이 성도한 뒤 처음 설한 경으로, 권대승교 가운데 가장 높은 법문이다. 중국에서 화엄종을 대성한 이는 현수대사 법장이다. 대성인은 「현방법초」에서 그 교판을 이렇게 요약하셨다.
華厳宗には五教を立て一代ををさめ其の中には華厳・法華を最勝とし華厳・法華の中に華厳経を以て第一とす
화엄종에서는 오교를 세워 일대를 거두고, 그 가운데 화엄 · 법화를 가장 뛰어나다 하며, 화엄 · 법화 가운데서는 화엄경을 제일로 삼느니라
법장은 오교의 교판을 세우고 화엄과 법화를 같은 일승원교로 묶은 다음, 법화경은 삼승을 개회하기 위해 원융의 일승을 삼승교에 맞추어 설한 「동교일승(同敎一乘)」인 데 비해, 화엄경은 곧바로 원융의 법문을 열어 보이므로 삼승교와 다른 「별교일승(別敎一乘)」이라 하여 화엄경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본문이 「권대승이라 하면서도 다른 종보다 뛰어나니 섭정 · 관백과 같다」고 하신 것은, 화엄경이 권대승 가운데 법화경을 뺀 다른 대승경보다 뛰어나서, 법화경을 천자에 비기면 화엄경은 섭정 · 관백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법장처럼 법화경을 낮추고 화엄경을 제일로 세웠으니 「법화경을 적으로 삼아 세운 종」이며, 신하의 몸으로 대왕과 나란히 서려는 자에 비유된다.
근기로써 경을 치다 — 정토종
중국 정토종의 교의를 짠 이는 선도이고, 일본 정토종의 개조는 법연이다. 본문의 「선도 · 법연이 꾀를 교묘히 부려」라는 말은, 그들이 교묘한 이치를 붙여 정토종의 의거 경전인 정토 삼부경 외의 여러 경을 물리친 것을 가리킨다.
그 논리는 이렇다. 정토부 외의 여러 경은 높고 깊은 가르침이다. 정법 · 상법 시대의 중생은 근기가 뛰어나서 그 높은 가르침을 알아듣고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말법의 중생은 근기가 낮아 높은 가르침으로는 알아듣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법의 중생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으로만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 본문의 「여러 경은 높이 올리고 관경은 낮추며, 정법 · 상법의 근기는 높이고 말법의 근기는 낮춘다」는 말이 정확히 이 구조를 집는다. 경을 높이는 척하며 실은 「너희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밀어내는 방식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중생의 근기를 중심에 놓고 세운 그릇된 뜻이다. 대성인은 「선시초」 첫머리에서 「仏法を学せん法は必ず先づ時をならうべし」(불법을 배우는 법은 반드시 먼저 때를 익혀야 한다, 256쪽)라고 하셨다. 불법을 배우는 데서 가장 근본으로 삼아야 할 것은 때(時)이며, 근기는 그에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機に随つて法を説くと申すは大なる僻見なり」(근기에 따라 법을 설한다 함은 큰 벽견이다, 「선시초」 267쪽)라고 파절하셨다. 본문의 「근기로써 경을 친다」는 이 「큰 벽견」의 다른 표현이다. 정토종에 대한 대성인의 파절은 「입정안국론」의 겉의 주제이기도 하므로, 이 장의 마지막 절에서 다시 만난다.
교외별전 — 선종
선종은 「교외별전 · 불립문자」를 내세워, 불법의 진수는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전해졌으며 스스로 좌선 입정하여 체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석존이 설한 일대 성교를 부정하고 배제하는 것이므로, 본문은 「어버이를 죽이고 자식을 쓰며, 주인을 죽인 종이 더욱이 그 자리에 오른 것과 같다」고 지적하셨다. 경전을 낳은 부처를 「어버이」 · 「주인」으로, 경전 밖에서 전해졌다는 선의 법을 그 자리를 빼앗은 「종」으로 보는 비유다. 어버이를 없애고 자식만 쓴다는 것은, 석존의 가르침을 떠나서 석존의 깨달음만 얻겠다는 주장이 스스로 모순임을 말한다.
본문의 비유들을 나란히 놓으면 대성인의 판정 기준이 드러난다. 모든 비유가 위와 아래, 주인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의 질서를 둘러싼 것이다. 일체경에는 대왕이 하나 있어야 한다는 「보은초」의 물음 그대로, 아홉 종의 잘못은 저마다 그 질서를 어떻게 뒤집었는가로 판정된다.
- 구사종판정얕고 가까우나 일부분은 소승경일부분은 소승경에 해당하는 듯하다一分は小乗経に相当するに似たり
- 성실종판정대소겸잡대승과 소승이 뒤섞여 그릇됨이 있다大小兼雑して謬悞あり
- 율종판정본래는 소승, 중간에는 권대승, 지금은 오로지 대승종이라 여긴다本は小乗・中比は権大乗・今は一向に大乗宗とおもへり
- 법상종비유마사카도 · 스미토모아래에 있으면서 위를 깨뜨린다下に居て上を破る
- 삼론종판정권대승의 공의 일부분스스로는 실대승이라 여긴다我は実大乗とおもへり
- 화엄종비유섭정 · 관백신하의 몸으로 대왕과 견주려 하는 것과 같다臣下の身を以て大王に順ぜんとするがごとし
- 정토종판정근기로써 경을 친다機を以て経を打ち비유마음은 약삭빠르고 몸은 천한 자가 현인을 잃음心かしこくして身は卑しき者
- 선종판정일대 성교 밖에 진실한 법이 있다一代聖教の外に真実の法有り비유어버이를 죽이고 자식을 쓰는 것, 주인을 죽인 종이 그 자리에 오름
- 진언종판정오로지 큰 망어一向に大妄語비유유총 · 조고 · 대만 바라문
천축에 없던 종 — 진언의 큰 망어
마지막으로 본문은 진언종을 들어 파절한다. 진언의 그릇된 뜻은 앞의 장들에서 자세히 다루었지만, 본문은 여기서 진언을 「오로지 큰 망어」라고 단언하신다.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진언은 자기 종의 교의를 정당화하려고 갖가지 속임을 겹쳐 왔고, 그 속임이 매우 교묘해서 불법에 어두운 중생은 꿰뚫어 보지 못한다.
진언의 큰 망어를 들자면 끝이 없지만, 본문은 그 한 예로 천축에는 진언종이 없었는데도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드신다. 이것은 대일여래에서 시작해 금강살타 · 용맹(용수) · 용지보살 · 금강지삼장 · 불공삼장으로 전해졌다는 진언 밀교의 상승(相承)이 거짓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대성인은 「소야입도전허어서」에서 진언사들의 주장을 이렇게 옮기셨다.
諸の真言師の云く『仏の滅後八百年に相当つて竜猛菩薩・月氏に出現して釈尊の顕経たる華厳・法華等を馬鳴菩薩等に相伝し大日の密経をば自ら南天の鉄塔を開拓し面り大日如来と金剛薩埵とに対して之を口決す、竜猛菩薩に二人の弟子有り提婆菩薩には釈迦の顕教を伝え竜智菩薩には大日の密教を授く竜智菩薩は阿羅苑に隠居して人に伝えず其の間に 提婆菩薩の伝うる所の顕教は先づ漢土に渡る其の後数年を経歴して竜智菩薩の伝うる所の秘密の教を善無畏・金剛智・不空・漢土に渡す』
여러 진언사가 말하기를 「부처의 멸후 팔백 년에 해당하여 용맹보살이 월지에 출현해, 석존의 현경인 화엄 · 법화 등은 마명보살 등에게 상전하고, 대일의 밀경은 스스로 남천축의 철탑을 열어 대일여래와 금강살타를 직접 마주하여 구결받았다. 용맹보살에게는 두 제자가 있어 제바보살에게는 석가의 현교를 전하고 용지보살에게는 대일의 밀교를 주었다. 용지보살은 아라원에 숨어 살며 남에게 전하지 않았다. 그사이 제바보살이 전한 현교가 먼저 한토에 건너가고, 그 뒤 여러 해가 지나 용지보살이 전한 비밀의 가르침을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이 한토에 건넸다」고 하느니라
구카이의 『진언부법전(眞言付法傳)』 등에도 거의 같은 내용이 적혀 있어, 대성인은 이를 들어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대성인은 이에 대해, 용수가 현교는 제바에게 전하고 밀교는 용지에게 주었다는 증문이 어느 경전에 있느냐고 반문하시고, 「此の大妄語は提婆の欺誑罪にも過ぎ瞿伽利の誑言にも超ゆ」(이 큰 망어는 제바달다의 기광죄보다 더하고 구가리의 거짓말보다도 넘친다, 1029쪽)라고 단정하셨다.
역사의 사실로 보아도 이 상승은 성립하지 않는다. 용수와 금강지삼장은 모두 실재한 역사적 인물이지만 그 사이에는 수백 년의 간격이 있다. 그 사이를 잇는 용지가 아무리 장수했다 해도 사실과는 거리가 먼 전설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구카이의 『진언부법전』에는 금강살타 · 용수 · 용지가 모두 수백 살에 상전했다고 적혀 있으니, 이 상승이 황당무계한 전설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보여 주는 셈이다. 본문의 「그 근원을 깊이 감추었다」는 말은 바로 이 상승의 허구를 가리킨다. 진언의 칠조 상승 계보 자체는 제3편에서 정리했다.
- 대일여래
- 금강살타
- 용맹(남천축 철탑에서 직접 구결)
- 용지아라원에 숨어 살며 남에게 전하지 않음阿羅苑に隠居して人に伝えず
-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이 한토에 전함
일곱 겹 아래의 경 — 대일경과 법화경
이어 본문은 법화경과 대일경의 승렬에 들어가, 대일경은 법화경보다 일곱 겹 아래이며 그 증거는 진언의 경과 법화경에 분명하다고 하신다. 법화경을 여러 경 가운데 제일로 하면 대일경은 제칠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영 7년(1270)에 쓰신 「진언칠중승렬사」도 여러 경의 승렬을 법화경 제일 · 열반경 제이 · 무량의경 제삼 · 화엄경 제사 · 반야경 제오 · 소실지경 제육 · 대일경 제칠로 정하셨다. 또 「진언천태승렬사」는 그 근거가 되는 문증을 들어 여섯 단계로 여러 경의 승렬을 밝히셨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법화경이 일체경보다 뛰어나다. 법사품 제10의 「已に説き、今説き、当に説かん。而も其の中に於いて、此の法華経、最も為れ難信難解なり」(이미 설하였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하리라. 그러나 그 가운데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와 안락행품 제14의 「諸経の中に於いて、最も其の上に在り」(여러 경 가운데 가장 그 위에 있다)의 두 글로 분명하다.
둘째, 무량의경은 여러 경 가운데 뛰어나 깊고 깊은 가운데서도 더욱 깊다. 무량의경 설법품 제2에 「次に方等十二部経、摩訶般若、華厳海空を説いて」(다음에 방등 십이부경 · 마하반야 · 화엄해공을 설하여)라 하고, 십공덕품 제3에 「真実甚深、甚深甚深なり」(진실로 매우 깊고, 깊고 깊으며 깊다)라 한 대로다. 그러나 그래도 법화의 서분이므로 정설인 법화에는 미치지 못한다.
셋째, 열반경도 제호미로서 화엄경보다 뛰어나지만 법화의 서분인 무량의경보다는 못하다. 열반경 여래성품 제4는 「是の経の世に出ずるは彼の果実の利益する所多く一切を安楽なさしむるが如く能く衆生をして仏性を見せしむ、法華の中の八千の声聞記莂を得授するが如く大果実を成じ秋収冬蔵して更に所作無きが如し」(이 경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저 과실이 이익되는 바가 많아 모두를 안락하게 하듯이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불성을 보게 한다. 법화 가운데 팔천의 성문이 수기를 받은 것과 같이 큰 과실을 이루어,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여 다시 할 일이 없는 것과 같다)라고 하고, 묘락대사는 『법화현의석첨』 권1에서 「一家の義意謂く二部同味なれども然る尚涅槃劣る」(일가의 뜻으로 말하면 두 부는 같은 맛이지만 그래도 열반이 못하다)라고 풀이했다.
넷째, 화엄경은 맨 처음의 돈설(頓說)이므로 반야보다 뛰어나지만 열반경에는 못하다.
다섯째, 대반야경은 화엄경에는 못하지만 소실지경보다는 뛰어나다. 『소실지경』 권중 성취구지법품 제17에 「猶成ぜざらん者は或は復大般若経を転読すること七遍」(그래도 이루지 못하는 자는 혹은 다시 대반야경을 일곱 번 전독하라)라고 한 대로다.
여섯째, 소실지경은 대반야경에는 못하지만 대일경 · 금강정경 등보다는 뛰어나다. 『소실지경』 권상 청문품 제1에 「三部の中に於てこの経を王と為す」(삼부 가운데 이 경을 왕으로 삼는다)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다.
- 제1법화경
- 제2열반경
- 제3무량의경
- 제4화엄경
- 제5반야경
- 제6소실지경
- 제7대일경
- 법화경 > 일체경법사품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此の法華経、最も為れ難信難解なり안락행품가장 그 위에 있다最も其の上に在り
- 무량의경은 법화의 서분진실로 매우 깊다真実甚深、甚深甚深なり
- 열반경 < 무량의경『석첨』두 부는 같은 맛이지만 그래도 열반이 못하다二部同味なれども然る尚涅槃劣る
- 화엄경 < 열반경
- 반야경 > 소실지경대반야경을 일곱 번 전독하라大般若経を転読すること七遍
- 소실지경 > 대일경 · 금강정경삼부 가운데 이 경을 왕으로 삼는다三部の中に於てこの経を王と為す
- 홍법대일경 제1 · 화엄경 제2 · 법화경 제3세 겹 위의 주군三重の主君
- 자각 · 지증대일경 제1 · 법화경 제2두 겹 위의 주군二重の主君
이처럼 대일경은 법화경보다 일곱 겹 아래인데도, 홍법은 십주심(十住心)의 교판에서 대일경 제일 · 화엄경 제이 · 법화경 제삼으로 세웠고, 자각 · 지증 두 대사는 대일경 제일 · 법화경 제이로 세웠다. 본문의 「세 겹 위의 주군」 「두 겹 위의 주군」이 바로 이것이며, 대성인은 이를 「터무니없는 큰 벽견」이라 꾸짖으셨다. 일곱 겹 아래에 있는 경을 두세 겹 위로 올려놓았으니 그 뒤집힘의 폭이 비유의 무게를 정한다. 오시팔교의 틀에서 본 여러 경의 위치는 핵심 개념 오시팔교에서 따로 볼 수 있다.
유총 · 조고 · 대만 바라문 — 뒤집힌 위아래
본문은 진언이 대일경을 올리고 법화경을 내린 것을 세 가지 비유로 꾸짖는다. 첫째, 유총이 하찮은 몸이면서 서진의 민제를 사로잡아 바깥에 나설 때 말고삐를 잡게 하여 앞잡이 노릇을 시킨 일. 둘째, 조고가 백성의 몸이면서 황제를 죽이고 스스로 제위에 오르려 한 일. 두 비유 모두 신하나 백성이 천자를 아래에 두거나 그 자리를 빼앗은 사건이다. 법화경이라는 대왕의 경을 대일경이라는 낮은 경이 부리는 모습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셋째 비유는 남인도 마랍바국의 대만 바라문이다. 현장의 『대당서역기』 권11에 따르면 대만 바라문은 안팎의 전적에 그 깊은 데까지 통달했을 뿐 아니라 역법과 천문에도 밝았다. 그래서 앞선 현인도 뒤의 철인도 자신에게는 미치지 못한다고 큰소리치고, 마침내 붉은 전단향 나무로 대자재천 · 석존 등의 상을 네 다리로 삼은 의자를 만들어 그 위에 앉을 만큼 증상만을 일으켰다. 그러나 서인도에서 온 현애 논사와 법론하여 논파당했고, 국왕은 그를 죽이려 했다. 이를 불쌍히 여긴 현애 논사가 국왕에게 용서를 빌어 바라문은 목숨을 건졌으나, 그것을 치욕으로 여겨 분노한 나머지 피를 토하며 논사를 욕하고 대승경을 비방하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지가 갈라져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석존을 의자의 다리로 깔고 앉은 바라문의 모습은, 법화경의 교주를 낮추고 대일여래를 높이는 진언의 교판을 형상으로 보여 준다. 그런데도 진언사의 속임을 한토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일본에서도 이상히 여기는 사람이 없이 이미 사백여 년이 지났다. 본문의 이 「사백여 년」은 제9장의 「사백여 년」과 같은 세월이다. 삼업상응의 행자가 없던 세월이 곧 진언의 속임이 드러나지 않은 세월이었다.
불법의 사정이 나라의 성쇠를 가른다 — 「입정안국론」
제10장의 마지막 절은 「이와 같이 불법의 사정이 어지러워졌으므로 왕법도 차츰 다하였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일을 홀로 헤아려 알았기에 불법과 왕법을 위해 여러 경의 요문을 모아 「입정안국론」을 지어 고 최명사 입도에게 바쳤다고 하신다.
「입정안국론」은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대성인이 서른아홉 살 때 당시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였던 호조 도키요리에게 올린 첫 번째 간효의 글이다. 그 무렵에는 천변지요와 기근 · 역병이 잇따라 나라 안의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었다. 대성인은 이 책에서 재난의 근원이 「世皆正に背き人悉く悪に帰す」(세상이 모두 바른 것을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간다, 17쪽)는 데 있다고 단정하시고, 여러 경문을 끌어 한 나라가 방법(謗法)에 떨어지고 위정자마저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방법을 쓰는 데서 갖가지 재난이 일어남을 밝히셨다. 그리고 이대로 방법을 계속한다면 경문에 설해진 자계반역난(自界叛逆難)과 타국침핍난(他國侵逼難)의 두 난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하셨다.
「입정안국론」은 당시 일본 전체에 퍼져 있던 법연의 전수염불을 파절하는 글이다. 니치칸 상인은 「입정안국론 우기(立正安國論愚記)」에서 「一往の辺は、但哀音の念仏に在り。これ亡国の洪基の故なり」(일왕의 쪽에서는 오직 애음의 염불에 있다. 이것이 망국의 큰 터이기 때문이다), 「故に一部の始終、専ら法然の謗法を破す」(그러므로 한 부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법연의 방법을 깨뜨린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원의(元意)는 염불종만이 아니라 여러 종파의 파절에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 어서에서 진언의 파절을 보이신 바로 뒤에 「입정안국론」을 말씀하신 것이 그 증거다. 그래서 니치칸 상인은 「若し再往元意の辺は、広く諸宗に通ずるなり」(만약 재왕 원의의 쪽이라면 널리 여러 종에 통한다)라고 하시고, 그 문증으로 이 어서의 본문과 함께 「선시초」의 다음 글을 드셨다.
立正安国論を最明寺殿に奏したてまつりし時宿谷の入道に向つて云く禅宗と念仏宗とを失い給うべし
「입정안국론」을 최명사 전께 아뢰어 올렸을 때 야도야 입도를 향하여 말하기를, 선종과 염불종을 없애셔야 한다고 하였느니라
또 「나카오키입도소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去ぬる正嘉年中の大地震・文永元年の大長星の時・内外の智人・其の故をうらなひしかども・なにのゆへ・いかなる事の出来すべしと申す事をしらざりしに、日蓮・一切経蔵に入りて勘へたるに・真言・禅宗・念仏・律等の権小の人人をもつて法華経をかろしめ・たてまつる故に・梵天・帝釈の御とがめにて西なる国に仰せ付けて日本国をせむべしとかんがへて、故最明寺入道殿にまいらせ候いき
지난 정가 연간의 대지진과 문영 원년의 큰 혜성 때에 안팎의 지자들이 그 까닭을 점쳤으나 무슨 까닭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하였는데, 니치렌이 일체경장에 들어가 헤아려 보니, 진언 · 선종 · 염불 · 율 등 권교 · 소승의 사람들을 써서 법화경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에 범천 · 제석의 꾸짖음으로 서쪽 나라에 명하여 일본국을 치게 하리라고 헤아려, 고 최명사 입도 전께 올렸느니라
그러므로 「입정안국론」에서 오로지 법연의 그릇된 법을 앞세워 파절하신 것은 어디까지나 교화의 순서에 따른 것이다. 본문의 「불법을 위하고 왕법을 위하여」라는 말이 바로 이 넓은 원의를 담는다.
- 올린 때
-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대성인 39세
- 받은 이
- 고 최명사 입도(호조 도키요리)
- 재난의 근원
- 세상이 모두 바른 것을 등지고 사람이 다 악에 돌아간다世皆正に背き人悉く悪に帰す17쪽
- 예언
- 자계반역난 · 타국침핍난
마지막으로 불법과 왕법의 관계에 대해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도 「불법의 사정이 어지러워졌으므로 왕법도 차츰 다하였다」고 그 기본 원리를 밝히셨다. 이 원리는 「신국왕어서」에 더 자세하다.
仏法に付きて国も盛へ人の寿も長く・又仏法に付いて国もほろび・人の寿も短かかるべしとみへて候、譬へば水は能く船をたすけ・水は能く船をやぶる、五穀は人をやしない・人を損ず、小波小風は大船を損ずる事かたし・大波大風には小船をやぶれやすし、王法の曲るは小波・小風のごとし・大国と大人をば失いがたし、仏法の失あるは大風・大波の小船をやぶるがごとし国のやぶるる事疑いなし
불법에 따라 나라도 번성하고 사람의 수명도 길며, 또 불법에 따라 나라도 망하고 사람의 수명도 짧아지리라고 보이느니라. 비유하면 물은 능히 배를 돕고 물은 능히 배를 깨뜨리며, 오곡은 사람을 기르기도 하고 사람을 해치기도 하느니라. 작은 물결과 작은 바람은 큰 배를 해치기 어렵고, 큰 물결과 큰 바람에는 작은 배가 깨지기 쉬우니라. 왕법이 굽는 것은 작은 물결 · 작은 바람과 같아 큰 나라와 큰 사람을 잃게 하기 어렵고, 불법에 허물이 있는 것은 큰 바람 · 큰 물결이 작은 배를 깨뜨리는 것과 같으니 나라가 깨지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느니라
불법의 어지러움이 나라의 성쇠를 가르는 근본이라는 이 원리 위에서, 대성인은 「입정안국론」 끝에서 「汝早く信仰の寸心を改めて速に実乗の一善に帰せよ、然れば則ち三界は皆仏国なり仏国其れ衰んや」(그대는 어서 신앙의 작은 마음을 고쳐 속히 실승의 일선에 돌아가라. 그러면 삼계는 모두 불국이니, 불국이 어찌 쇠하겠는가, 32쪽)라고 하셨다. 여러 종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곧바로 정법에 귀의하는 것이야말로 재앙을 없애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는 바탕이라는 것이다.
이 절은 「입정안국론」의 일왕 · 재왕으로 읽힌다. 겉으로는 법연의 염불을 깨뜨렸지만, 진언 파절 바로 뒤에 안국론을 말씀하신 이 어서의 배치 자체가 그 원의가 진언을 포함한 여러 종파 전체에 있었음을 보여 주며, 그 바탕에는 「불법의 사정이 왕법의 성쇠를 가른다」는 원리가 있다.
간효에서 다쓰노구치까지 — 사적이 가리키는 것
그러나 대성인의 이 주장에 당시의 권력자도 백성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릇된 뜻을 파절당해 원한을 품은 염불승 등에게 휘둘려 도리어 대성인을 원수로 여기고 박해를 가했다. 서강에서 정리한 대로, 여러 종파의 파절과 국주간효는 삼류의 강적을 불러일으켰고, 그 정점이 문영 8년(1271) 9월 12일 다쓰노구치의 참수 자리였다. 대성인은 그 자리에서 발적현본하시어 말법의 본불의 내증을 드러내셨다. 「개목초」의 「日蓮といゐし者は去年九月十二日子丑の時に頚はねられぬ、此れは魂魄・佐土の国にいたりて」(니치렌이라 하던 자는 지난해 9월 12일 자시 · 축시에 목이 베였느니라. 이것은 혼백이 사도국에 이르러, 223쪽)라는 글이 그 일을 말한다.
대성인은 국주를 향한 간효를 「선시초」에서 「세 번의 고명(高名)」으로 정리하셨다. 첫째가 「입정안국론」을 올릴 때 야도야 입도에게 한 말, 둘째가 문영 8년 9월 12일 헤이노사에몬노조(平左衛門尉)에게 한 말, 셋째가 문영 11년(1274) 4월 8일 다시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한 말이다. 셋째 간효는 이 어서의 다음 장들과 곧바로 이어진다.
殊に真言宗が此の国土の大なるわざはひにては候なり大蒙古を調伏せん事・真言師には仰せ付けらるべからず若し大事を真言師・調伏するならばいよいよいそいで此の国ほろぶべし
특히 진언종이 이 국토의 큰 재앙이니라. 대몽고를 조복하는 일을 진언사에게 맡겨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큰일을 진언사가 조복한다면 더욱더 서둘러 이 나라가 망하리라
- 열두 살세이초사 입산나이 열둘에 같은 향 안의 세이초사라 하는 산에 올라가 머물렀느니라生年十二同じき郷の内・清澄寺と申す山にまかり登り住しき허공장보살께 서원일본 제일의 지자가 되게 하소서日本第一の智者となし給へ「선무외삼장초」 888쪽
- 열여섯 ~ 서른둘출가와 제국 유학가마쿠라 · 교토 · 히에이산 · 온조사 · 고야산 · 덴노사「묘호비구니답서」 1407쪽
- 건장 5년(1253) 4월 28일, 서른둘입종지두 도조 가게노부의 위해, 조켄보 · 기조보의 도움제13장
- 문응 원년(1260) 7월 16일, 서른아홉「입정안국론」을 고 최명사 입도에게 올림첫째 간효
- 문영 8년(1271) 9월 12일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둘째 간효다쓰노구치 법난과 발적현본
- 문영 11년(1274) 4월 8일셋째 간효대몽고를 조복하는 일을 진언사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大蒙古を調伏せん事・真言師には仰せ付けらるべからず「선시초」 287쪽
- 홍안 원년(1278) 9월, 쉰일곱미노부에서 「본존문답초」를 조켄보에게 보내심
이 장의 사적은 이렇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스승 없는 산에서 세운 서원, 이십여 년의 유학으로 얻은 십종의 판정, 그 판정을 국주에게 들이민 간효, 간효가 불러온 대난, 대난의 정점에서 드러난 본불의 내증. 제9장이 「능지차경의 행자는 있으리라 생각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 그 자리를 이 생애가 채운다. 제9장과 제10장은 그래서 한 쌍이다. 없음을 밝힌 장과, 그 없음 한가운데 선 한 사람의 사적을 보인 장.
본문은 「그 책에 자세히 말하였으나 어리석은 사람은 알기 어려우니, 결국 현증을 끌어와 말하리라」로 맺는다. 이치로 말해서 알아듣지 못하는 이에게는 사실로 보이겠다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 대성인은 승구의 난이라는 역사의 사건을 들어 진언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그릇된 법인 까닭을 밝혀 나가신다.
이 편을 맺으며
제9장은 진언이 일본을 덮은 결과를 「사백여 년 동안 한 사람도 없다」는 말로 정리했다. 좌주 · 장리 · 검교 · 별당이 모두 세 대사의 적통이 되자 그 아래의 승려와 백성이 빠짐없이 진언에 물들었고, 입으로 「최제일」을 읽는 이조차 마음은 「제이 · 제삼」에 있었다. 몸과 입과 마음으로 법화경 제일을 읽은 마지막 사람은 전교대사였다. 본문은 거기서 다시 한 단계를 올려, 삼류의 강적 한가운데에서 끝까지 이 경을 지니는 「능지차경의 행자」를 세웠다. 대성인의 불법의 입장에서 이 두 단계의 구별을 총 · 별의 법화경의 행자와 겹쳐 읽으면, 별(別)한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가 곧 본불의 다른 이름이다.
제10장은 「그러나 니치렌은」으로 그 공백을 채운다. 아와 가타우미의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열두 살에 세이초사에 오르고, 「일본 제일의 지자」를 서원하고, 가마쿠라 · 교토 · 히에이산 · 나라를 다니며 십종의 기원과 승렬을 따지신 끝에 대성인은 아홉 종의 잘못을 가려내셨다. 구사의 소승, 성실의 대소겸잡, 소승에서 대승을 자처하기까지 변해 온 율종, 아래에서 위를 친 법상, 실대승을 자처한 삼론, 법화경을 적으로 삼은 화엄, 근기로써 경을 친 정토, 성교 밖의 법을 내세운 선, 그리고 천축에 없던 종을 있었다 하고 일곱 겹 아래의 경을 두세 겹 위로 올린 진언. 판정의 기준은 하나였다. 일체경의 대왕은 하나이며, 그것을 뒤집는 것이 잘못이다.
그 판정은 서재 안에 머물지 않았다. 「불법의 사정이 어지러워지면 왕법도 다한다」는 원리 위에서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을 국주에게 올리셨고, 그 원의는 염불만이 아니라 진언을 포함한 여러 종파 전체에 있었다. 간효는 대난을 불렀고, 대난의 정점인 다쓰노구치에서 대성인은 발적현본하셨다. 이 편의 두 장은 이렇게 법의 본존을 말하는 글 한가운데에서 그 법을 몸으로 읽은 사람의 자리를 보여 준다.
본문의 마지막 말은 「결국 현증을 끌어와 말하리라」였다. 다음 제5편 「망국의 현증과 미증유의 본존」에서 대성인은 승구의 난에서 세 상황이 유배된 일, 진언의 조복을 쓴 조정의 패배, 평가의 멸망, 그리고 몽골 조복의 기도를 차례로 들어 진언 망국의 현증을 보이신다. 그리고 이 어서의 맺음에서 이천이백삼십여 년 동안 아무도 펼친 적 없는 미증유의 본존을 말씀하신다.
더 읽기
- 니치렌 대성인 — 출생에서 입멸까지 대성인의 생애 전체
- 전교대사 — 『산가학생식』 · 『현계론』과 대승 계단 건립, 도쿠이치와의 논쟁
- 제3편 「세 대사의 사적과 불법의 전래」 — 홍법 · 자각 · 지증의 사적, 감진과 삼계단, 원밀일치
- 제5편 「망국의 현증과 미증유의 본존」 — 승구의 난 · 평가 멸망 · 몽고 조복과 미증유의 본존
- 오시팔교 — 이 편의 여러 경 승렬을 받치는 교판의 틀
- 개목초 — 권지품 이십행의 게와 삼류의 강적, 법화경의 행자
참고 문헌
원전
- 「본존문답초」(홍안 원년 1278),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365–374쪽
- 인용 어서: 「야겐타입도전답서」 · 「시지시로전어서」 · 「시조깅고전답서」 · 「니치묘성인어서」 · 「개목초」 · 「묘호비구니답서」 · 「보은초」 · 「선무외삼장초」 · 「사도어감기초」 · 「시모야마어소식」 · 「십법계명인과초」 · 「신국왕어서」 · 「선시초」 · 「현방법초」 · 「소야입도전허어서」 · 「진언칠중승렬사」 · 「진언천태승렬사」 · 「입정안국론」 · 「나카오키입도소식」
- 『묘법연화경』 T9 no.262 (법사품 · 견보탑품 · 권지품 · 안락행품 · 분별공덕품)
- 『무량의경』 (설법품 · 십공덕품)
- 『대반열반경』 T12 no.374 (여래성품)
- 『소실지경』 (청문품 · 성취구지법품)
- 『법화현의석첨』 (묘락대사)
- 『대당서역기』 (현장) 권11
- 전교대사, 『법화수구』 · 『산가학생식』 · 『현계론』
- 구카이, 『진언부법전』
- 교넨, 『삼국불법전통연기』
- 니치칸 상인, 「보은초 문단」 · 「선시초 우기」 · 「입정안국론 우기」 · 「문저비침초」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연구
- 「0365~0374 本尊問答抄」 강의(제9단 · 제10단 및 서강)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 Ryūichi Abé, The Weaving of Mantra: Kūkai and the Construction of Esoteric Buddhist Discours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