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의 본존초」는 일념삼천의 출처를 묻는 데서 시작해, 관심과 본존을 밝히고, 오중삼단으로 경전 전체를 꿰뚫은 뒤, 제6편에서 신력품의 결요부촉에 이르렀다.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는 상행 등 지용의 사대보살에게만 맡겨졌다. 그렇다면 그 보살들은 언제 이 세상에 나오는가. 이 편은 그 물음에 대한 대성인의 대답이다. 정법 · 상법 이천 년에는 나오지 않았고, 말법의 처음에 반드시 나온다. 그 시절을 경문과 천태 · 묘락 · 전교의 예언, 그리고 눈앞의 대지진과 대혜성으로 증명한 뒤, 대성인은 「일념삼천을 모르는 자에게는 부처가 대자비를 일으켜 다섯 자 안에 이 구슬을 싸서 말대 유치의 목에 걸게 하신다」는 한 문장으로 본초 전체를 맺으신다.
제29장은 문답으로 짜여 있다. 묻는 이는 놀라고, 거듭 묻고, 마침내 「말하지 않으면 그대는 인색의 허물에 떨어질 것」이라고 다그친다. 대성인은 세 번 거절하고 네 번째에야 「시험 삼아 대강 말하리라」 하시며 입을 여신다. 강의는 이 문답이 법화경 수량품의 삼청삼계(三請三誡)와 같은 의식이라고 본다. 석존이 수량품에서 여래비밀신통지력을 설하려고 대중을 세 번 말리고 네 번 청하게 했듯이, 대성인도 말법에 법을 받아 지닐 사람, 곧 그 법을 건네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자리에서 같은 의식을 취하셨다는 것이다. 이 장의 결론은 「부처가 세상에 나온 것은 영산 팔 년의 사람들을 위함이 아니요 … 말법의 처음 나와 같은 자를 위함이니라」라는 한 줄에 모인다.
제30장은 예언의 장이다. 강의 장 제목은 「如来の謙識を明かす」로 실려 있으나 강의 본문은 첫 줄에서 「如来の兼讖を明かす」라고 쓰고, 이어 「참문(讖文)」이라는 말을 거듭 쓴다. 「겸참(兼讖)」은 미리 해 둔 예언이라는 뜻이다. 석존 · 천태 · 묘락 · 전교의 네 예언이 하나같이 말법의 처음을 가리키고, 그 때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하는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서리라」 하고 선언하신다. 제31장은 총결, 곧 본초 전체의 맺음이다. 그리고 하루 뒤에 쓰신 송장은 이 글을 받는 이에게 「이 일은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大事)」라고 당부하고, 「서너 사람이 자리를 나란히 하여 읽지 말라」고 경계하는 짧은 편지다.
이 편의 장
이 편을 읽기 전에 제4편(제19장 「말법에 와서 비로소 이 불상을 출현시키실 것인가」)과 제6편(제27장 「본문의 사의(四依)는 지용천계로서 말법의 처음에 반드시 출현하리라」, 제28장 신력품의 결요부촉과 촉루품의 총부촉)을 다시 떠올려 두면 좋다. 이 편은 그 두 곳에서 남겨 둔 물음 — 그 불상, 곧 본존은 누가 언제 세우는가 — 에 답하는 편이다.
본문
疑つて云く正像二千年の間に地涌千界閻浮提に出現して此の経を流通するや、答えて曰く爾らず、驚いて云く法華経並びに本門は仏の滅後を以て本と為して先ず地涌千界に之を授与す何ぞ正像に出現して此の経を弘通せざるや、答えて云く宣べず、重ねて問うて云く如何、答う之を宣べず、又重ねて問う如何、答えて曰く之を宣ぶれば一切世間の諸人・威音王仏の末法の如く又我が弟子の中にも粗之を説かば皆誹謗を為す可し黙止せんのみ、求めて云く説かずんば汝慳貪に堕せん、答えて曰く進退惟れ谷れり試みに粗之を説かん、 法師品に云く「況んや滅度の後をや」寿量品に云く「今留めて此に在く」分別功徳品に云く「悪世末法の時」薬王品に云く「後の五百歳閻浮提に於て広宣流布せん」涅槃経に云く「譬えば七子あり父母平等ならざるに非ざれども然れども病者に於て心則ち偏に重きが如し」等云云、 已前の明鏡を以て仏意を推知するに仏の出世は霊山八年の諸人の為に非ず正像末の人の為なり、又正像二千年の人の為に非ず末法の始め予が如き者の為なり、然れども病者に於いてと云うは滅後法華経誹謗の者を指すなり、「今留在此」とは「於此好色香薬而謂不美」の者を指すなり。 地涌千界正像に出でざることは正法一千年の間は小乗権大乗なり機時共に之れ無く四依の大士小権を以て縁と為して在世の下種之を脱せしむ謗多くして熟益を破る可き故に之を説かず例せば在世の前四味の機根の如し、 像法の中末に観音・薬王・南岳・天台等と示現し出現して迹門を以て面と為し本門を以て裏と為して百界千如・一念三千其の義を尽せり、但理具を論じて事行の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並びに本門の本尊未だ広く之を行ぜず所詮円機有つて円時無き故なり。 今末法の初小を以て大を打ち権を以て実を破し東西共に之を失し天地顚倒せり迹化の四依は隠れて現前せず諸天其の国を棄て之を守護せず、此の時地涌の菩薩始めて世に出現し但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幼稚に服せしむ「因謗堕悪必因得益」とは是なり、 我が弟子之を惟え地涌千界は教主釈尊の初発心の弟子なり寂滅道場に来らず雙林最後にも訪わず不孝の失之れ有り迹門の十四品にも来らず本門の六品には座を立つ但八品の間に来還せり、是くの如き高貴の大菩薩・三仏に約束して之を受持す末法の初に出で給わざる可きか、 当に知るべし此の四菩薩折伏を現ずる時は賢王と成つて愚王を誡責し摂受を行ずる時は僧と成つて正法を弘持す。
의심하여 이르되, 정법 · 상법 이천 년 사이에 지용천계(地涌千界)의 보살이 염부제에 출현하여 이 경을 유통하느냐. 답하여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라. 놀라서 이르되, 법화경 전체와 아울러 본문은 부처의 멸후를 근본으로 삼아 먼저 지용천계에게 이 경을 수여하셨거늘, 어찌하여 정상에 출현하여 이 경을 홍통하지 않느냐. 답하여 이르되, 말하지 않으리라. 거듭 물어 이르되, 어찌하여 그러하냐. 답하되, 이를 말하지 않으리라. 또 거듭 묻되, 어찌하여 그러하냐. 답하여 이르되, 이를 말하면 일체 세간의 사람들이 위음왕불의 말법과 같이 비방할 것이요, 또 나의 제자 가운데서도 대강이라도 이를 설하면 모두 비방을 하리니 잠자코 있을 뿐이니라. 구하여 이르되, 설하지 않으면 그대는 간탐(慳貪)의 허물에 떨어지리라. 답하여 이르되, 나아가도 물러나도 막혔도다. 시험 삼아 대강 이를 설하리라. 법사품에 이르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 수량품에 이르되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 분별공덕품에 이르되 「악세 말법의 때」, 약왕품에 이르되 「후오백세에 염부제에서 광선유포하리라」, 열반경에 이르되 「비유하면 일곱 아들이 있을 때 부모가 평등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러나 병든 아들에게는 마음이 곧 치우쳐 무거워지는 것과 같으니라」 등이라 하였느니라. 이상의 밝은 거울로써 부처의 뜻을 헤아려 보건대, 부처가 세상에 나오신 것은 영산 팔 년의 사람들을 위함이 아니요 정법 · 상법 · 말법의 사람을 위함이니라. 또 정상 이천 년의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말법의 처음 나와 같은 자를 위함이니라. 「그러나 병든 자에게」라 함은 멸후에 법화경을 비방하는 자를 가리키느니라.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는 「이 좋은 색향의 약을 두고도 맛이 좋지 않다고 이르는」 자를 가리키느니라. 지용천계가 정상에 나오지 않은 까닭은 이러하니라. 정법 일천 년 동안은 소승과 권대승의 때이니 기근도 때도 함께 없었으므로, 사의(四依)의 대사(大士)는 소승과 권교를 연으로 삼아 재세에 하종된 이들을 탈익시켰느니라. 비방하는 이가 많아 숙익을 깨뜨릴 것이므로 이를 설하지 않았느니, 예컨대 재세의 앞 사미(四味)의 기근과 같으니라. 상법의 중간과 끝에는 관음 · 약왕이 남악 · 천태 등으로 나타나 출현하여, 적문을 겉으로 삼고 본문을 속으로 삼아 백계천여 · 일념삼천의 뜻을 다하였느니라. 다만 이구(理具)를 논했을 뿐, 사행(事行)의 남묘호렌게쿄의 다섯 자와 아울러 본문의 본존은 아직 널리 행하지 않았으니, 결국 원교의 기근은 있었으나 원교의 때가 없었던 까닭이니라. 이제 말법의 처음에는 소승으로 대승을 치고 권교로 실교를 깨뜨려 동과 서를 함께 잃고 하늘과 땅이 뒤집혔느니라. 적화(迹化)의 사의는 숨어서 앞에 나타나지 않고, 제천은 그 나라를 버리고 지켜 주지 않느니라. 이 때 지용의 보살이 비로소 세상에 출현하여 다만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로 유치한 이들에게 복용시키느니라. 「비방한 인(因)으로 악에 떨어지나 반드시 그 인으로 이익을 얻는다」 함이 이것이니라. 나의 제자들은 이를 생각하라. 지용천계는 교주 석존의 초발심의 제자이니라. 적멸도량에도 오지 않았고 사라쌍수의 마지막에도 찾아오지 않았으니 불효의 허물이 있느니라. 적문의 열네 품에도 오지 않았고 본문의 여섯 품에서는 자리를 떴으니, 다만 여덟 품 동안에만 와서 돌아왔을 뿐이니라. 이와 같이 고귀한 대보살이 세 부처와 약속하여 이를 받아 지녔거늘 말법의 처음에 나오시지 않겠느냐. 마땅히 알라. 이 사보살은 절복을 나타낼 때에는 현왕(賢王)이 되어 우왕(愚王)을 꾸짖고, 섭수를 행할 때에는 승(僧)이 되어 정법을 넓혀 지니느니라.
어구 풀이
- 地涌千界지용천계
- 법화경 종지용출품 제15에서 대지를 가르고 솟아 나온 무수한 보살들. 「천계(千界)」는 삼천대천세계를 미진으로 부순 수만큼 많다는 경문(「千世界微塵等」)에서 온 말이다. 상행 · 무변행 · 정행 · 안립행의 사보살이 그 상수이며, 제28장에서 본 대로 신력품에서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를 부촉받았다.
- 威音王仏の末法위음왕불의 말법
-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제20의 이야기. 위음왕불이 멸도한 뒤 정법이 사라진 세상에서 증상만의 비구들이 「아심경여등(我深敬汝等)」의 스물네 자를 외우며 예배하는 불경보살을 욕하고 막대기와 돌로 때렸다. 경문은 그 때를 「상법」이라 하는데, 대성인은 정법이 다한 뒤의 탁한 시대라는 뜻에서 「말법」이라 부르셨다. 그 비방으로 그들은 천 겁 동안 아비지옥의 고통을 받았다.
- 慳貪간탐
- 아끼고 탐함. 여기서는 법을 알면서도 남에게 베풀지 않는 법의 인색(法慳)을 말한다. 법시(法施)를 아끼는 것은 보살의 큰 허물이다.
- 進退惟れ谷れり진퇴유곡
- 『시경』 대아 「상유(桑柔)」의 「進退維谷」에서 온 말. 나아가도 물러나도 골짜기에 막혔다는 뜻으로, 설하면 사람들이 비방해 악도에 떨어지고, 설하지 않으면 간탐의 허물이 되는 두 갈래의 곤경을 가리킨다.
- 況んや滅度の後をや하물며 멸도한 후이랴
- 법화경 법사품 제10 「如来現在 猶多怨嫉 況滅度後(여래의 현재에도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의 끝 구절. 강의는 대성인이 이 구절을 「난이 많다」는 뜻보다 「경의 정의(正意)가 멸후에 있다」는 뜻으로 쓰셨다고 본다(아래 해설).
- 今留めて此に在く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
- 수량품 제16 양의(良醫)의 비유. 독약을 먹고 본심을 잃은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是好良薬 今留在此 汝可取服 勿憂不差(이 좋은 양약을 지금 남겨 여기에 두니 너희는 가져다 먹으라. 낫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라)」라 하고 다른 나라로 떠난다.
- 悪世末法の時 · 後の五百歳악세 말법의 때 · 후오백세
- 분별공덕품 제17의 게송 「悪世末法時 能持是経者(악세 말법의 때에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와,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我滅度後 後五百歳中 広宣流布 於閻浮提 無令断絶(내가 멸도한 후 후오백세 중에 염부제에 광선유포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라)」. 「후오백세」는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 가운데 다섯째, 곧 말법의 처음이다(제30장 어구 풀이 참조).
- 涅槃経の七子열반경의 일곱 아들
- 『대반열반경』의 비유. 부모는 일곱 아들을 똑같이 사랑하지만 병든 아이에게 마음이 더 쏠린다. 부처의 자비가 평등하면서도 가장 고통받는 이에게 치우친다는 뜻이다(품 · 대정장 쪽은 확인 중).
- 四依の大士사의의 대사
- 『열반경』 사의품에서 말하는 의지할 만한 네 종류의 사람. 부처의 멸후에 법을 펴는 논사 · 인사(人師)를 가리키며, 용수 · 천친 같은 정법 시대의 보살, 남악 · 천태 같은 상법 시대의 사람을 모두 포함한다. 제27장의 「본문의 사의」와 대비해 이 장에서는 「적화의 사의」라고도 한다.
- 前四味앞 사미
- 천태가 『열반경』의 오미(乳 · 酪 · 生酥 · 熟酥 · 醍醐) 비유로 부처의 일대 설법을 다섯 시기로 나눈 것 가운데 앞의 넷, 곧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법화경의 제호미를 받기 전에 사십여 년 동안 근기를 길러 온 단계다.
- 観音・薬王・南岳・天台관음 · 약왕 · 남악 · 천태
- 남악대사 혜사(515–577)는 관세음보살의 후신, 그 제자 천태대사 지의(538–597)는 약왕보살의 후신이라 일컬어진다. → 천태대사
- 迹面本裏적면본리
- 「적문을 겉(面)으로, 본문을 속(裏)으로」. 천태가 법화경을 펼 때 적문의 제법실상 · 십여시를 앞에 세우고 본문의 구원실성을 뒷받침으로 삼아 일념삼천을 완성한 방식을 가리킨다.
- 円機有つて円時無き원기는 있으나 원시는 없다
- 원교(법화경)를 받아들일 근기는 있었으나 그것이 널리 퍼질 때는 아니었다는 뜻. 어구 해설(語釈)은 상법에도 「원기가 있다」고 하신 것은 한 번 허락해 주는 해석(一往の与えた釈)이며, 상법에 삼대비법을 받을 원기가 조금 있었다 해도 시대가 말법과 같은 하종의 때는 아니었다고 풀이한다.
- 因謗堕悪必因得益인방타악필인득익
- 「비방한 인으로 악도에 떨어지나 반드시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익을 얻는다」. 묘락대사가 『법화문구기』에서 상불경품을 해석하며 역연(逆緣)의 공덕을 밝힌 글로, 원문은 「因謗堕悪必由得益」이다(아래 해설).
- 寂滅道場・雙林最後적멸도량 · 쌍림 최후
- 적멸도량은 석존이 성도한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로, 거기서 처음 설한 것이 『화엄경』이다. 쌍림은 석존이 입멸한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로, 마지막 설법이 『열반경』이다. 처음과 끝 어느 자리에도 지용의 보살은 오지 않았다.
- 三仏세 부처
- 허공회에 모인 석가모니불 · 다보여래 · 시방분신의 제불. 지용의 보살은 이 세 부처 앞에서 멸후 홍통을 맹세하고 부촉을 받았다.
- 賢王・僧현왕 · 승
- 사보살이 말법에 나타나는 두 모습. 절복을 드러낼 때는 어진 왕으로, 섭수를 행할 때는 출가한 승으로 나타난다.
세 번 청하고 세 번 말리다 — 문답의 의식
제29장은 짧은 물음 하나로 시작한다. 「정상 이천 년 사이에 지용천계가 염부제에 출현하여 이 경을 유통하느냐.」 대답도 짧다. 「그렇지 않다.」 강의는 이 첫 문답을 「정상미출(正像未出)」, 곧 정법 · 상법 시대에는 지용의 보살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략히 보인 대목이라고 정리한다. 이 짧은 부정이 장 전체의 결론을 먼저 던져 놓은 셈이다.
묻는 이는 놀란다. 그의 놀람에는 근거가 있다. 제26장부터 제28장까지 본 대로 법화경은 처음부터 「부처의 멸후」를 근본으로 삼아 설해졌고, 본문에 이르러서는 특히 멸후를 위해 지용천계를 불러내 이 경을 맡겼다. 법을 맡겼다면 멸후 곧바로 나와서 펴야 마땅하지 않은가. 왜 정법 천 년, 상법 천 년을 그냥 보냈는가. 이것이 「놀라서 이르되」의 물음이다.
대성인은 대답하지 않으신다. 「말하지 않으리라(宣べず).」 다시 묻는다. 「어찌하여 그러하냐.」 「이를 말하지 않으리라.」 또 묻는다. 「어찌하여 그러하냐.」 그제야 대성인은 말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신다. 이를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위음왕불의 말법에 불경보살을 비방한 증상만의 무리처럼 비방할 것이고, 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대강이라도 이것을 들으면 모두 비방할 것이니 잠자코 있겠다는 것이다. 묻는 이는 마지막으로 다그친다. 「설하지 않으면 그대는 간탐에 떨어지리라.」 법을 알고도 베풀지 않는 것은 보살의 허물이다. 여기서 대성인은 「나아가도 물러나도 막혔다」고 탄식하시고, 「시험 삼아 대강 설하리라」 하시며 비로소 입을 여신다.
강의는 이 문답의 짜임을 이렇게 나눈다. 「놀라서 이르되」, 「거듭 물어 이르되」, 「또 거듭 묻되」의 세 구는 삼청(三請), 곧 세 번 청함이다. 「말하지 않으리라」, 「이를 말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를 말하면 …」으로 이어지는 세 대답은 삼계(三誡), 곧 세 번 말림이다. 마지막의 「구하여 이르되」는 중청(重請), 거듭 청함이고, 「나아가도 물러나도 막혔다 …」는 중계(重誡)에 해당한다.
이 짜임은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첫머리와 꼭 같다. 수량품은 부처가 대중에게 「너희는 여래의 성실하고 진실한 말을 믿고 이해하라(汝等当信解如来誠諦之語)」를 세 번 말하는 데서 시작한다. 미륵을 비롯한 대중은 합장하고 「원컨대 설해 주소서. 저희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받겠습니다(唯願説之 我等当信受仏語)」를 세 번 청하고, 다시 한 번 거듭 청한다. 부처는 그들이 세 번 청하고도 그치지 않는 것(三請不止)을 보고서야 「너희는 자세히 들으라. 여래의 비밀 신통의 힘을(汝等諦聴 如来秘密神通之力)」 하며 구원실성을 설한다. 강의는 석존이 이렇게 세 번 청하고 세 번 말리며, 네 번 거듭 청한 뒤 네 번째 말림을 거쳐서야 수량품의 간심인 여래비밀신통지력을 설한 것은, 수량품을 설하는 일이 석존 출세의 본회(本懷)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대성인은 왜 이 대목에서 같은 의식을 취하셨는가. 강의의 대답은 분명하다. 대성인도 말법에 출현하여 그 본회인 문저심비(文底深秘)의 삼대비법의 본존을 우리에게 받아 지니게 하려 하시는데, 이 장은 그 본존을 건네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중대한 대목이므로 수량품과 같은 의식을 취하셨다는 것이다. 수량품의 삼청이 「설하는 법」의 무게를 드러낸다면, 제29장의 삼청은 「그 법을 펴는 사람」의 무게를 드러낸다.
강의는 제29장의 삼청 · 삼계 · 중청 · 중계를 수량품 첫머리의 의식과 겹쳐 읽는다. 석존이 본회인 수량품을 설할 때 그랬듯이, 대성인도 말법의 본존을 건네줄 사람을 밝히는 자리에서 같은 의식을 갖추셨다는 것이다.
- 청 1①驚いて云く놀라서 이르되
- 계 1②答えて云く宣べず말하지 않으리라
- 청 2③重ねて問うて云く如何거듭 물어 이르되, 어찌하여
- 계 2④答う之を宣べず이를 말하지 않으리라
- 청 3⑤又重ねて問う如何또 거듭 묻되, 어찌하여
- 계 3⑥之を宣ぶれば…黙止せんのみ이를 말하면 … 잠자코 있을 뿐
- 중청⑦説かずんば汝慳貪に堕せん설하지 않으면 그대는 간탐에 떨어지리라
- 중계 · 설법⑧進退惟れ谷れり試みに粗之を説かん진퇴유곡, 시험 삼아 대강 설하리라
- 계× 3汝等当信解如来誠諦之語너희는 여래의 성실하고 진실한 말을 믿고 이해하라
- 청× 3唯願説之 我等当信受仏語원컨대 설해 주소서. 저희는 믿고 받겠습니다
- 중청거듭 청함
- 설법汝等諦聴 如来秘密神通之力너희는 자세히 들으라, 여래의 비밀 신통의 힘을
다섯 개의 밝은 거울 — 부처의 뜻은 말법에 있다
입을 연 대성인이 먼저 꺼내시는 것은 다섯 개의 경문이다. 법사품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 수량품의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 분별공덕품의 「악세 말법의 때」, 약왕품의 「후오백세에 염부제에서 광선유포하리라」, 그리고 열반경의 일곱 아들의 비유. 대성인은 이것을 「이상의 밝은 거울(已前の明鏡)」이라 부르신다. 거울에 비추면 얼굴이 드러나듯, 이 다섯 경문에 비추면 부처의 뜻이 어디를 향하는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법사품 — 「하물며 멸후」는 정 · 상 · 말로 나아간다
법사품의 「如来現在 猶多怨嫉 況滅度後」는 대성인이 여러 어서에서 법화경 행자가 받는 난의 근거로 인용하시는 경문이다. 부처가 살아 있을 때도 원망과 질투가 많았거늘 멸후에는 더할 것이라는 뜻으로 흔히 읽는다. 그러나 강의는 이 대목에서 대성인이 법사품을 쓰신 뜻은 그것이 아니라고 본다. 여기서의 법사품은 「멸후에는 재세보다 난이 많다」는 뜻으로 쓰신 것이 아니라, 「하물며 멸후의 정법이랴」, 「하물며 멸후의 상법이랴」, 「하물며 멸후의 말법이랴」 하고 단계를 밟아 나아가 마침내 말법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셨다는 것이다. 「況(하물며)」이라는 한 글자가 재세에서 멸후로, 멸후에서도 정법에서 상법으로, 상법에서 말법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가는 사다리 노릇을 한다는 읽기다. 현대어역도 이 구절에 「법화경이 재세보다 멸후를 정(正)으로 한다는 뜻이 설해져 있다」는 풀이를 붙인다.
수량품 — 남겨 둔 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수량품의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는 양의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떠나며 남긴 말이다. 아버지는 독약을 마신 아들들에게 좋은 약을 지어 주었지만, 본심을 잃지 않은 아들들은 곧바로 먹고 나았고, 본심을 잃은 아들들은 약을 보고도 「맛이 좋지 않다」며 먹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약을 남겨 두고 다른 나라로 떠나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보낸다. 그 소식을 듣고 슬픔에 깨어난 아들들이 마침내 약을 먹는다.
대성인은 이 경문에 스스로 주석을 다신다.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는 『이 좋은 색향의 약을 두고도 맛이 좋지 않다고 이르는』 자를 가리키느니라.」 약을 남겨 둔 대상은 이미 약을 먹은 아들들이 아니라, 약을 보고도 거부한 아들들이다. 재세에 법을 듣고 깨달은 사람들이 아니라, 멸후에 법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남겨 둔 약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현대어역은 이를 「곧 정법을 비방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풀이한다.
분별공덕품과 약왕품 — 말법을 직접 이름 부르다
분별공덕품의 「악세 말법의 때」와 약왕품의 「후오백세에 염부제에서 광선유포하리라」는 해석을 거칠 필요도 없이 말법을 직접 가리키는 경문이다. 현대어역은 이 두 경문을 「분명히 말법의 광선유포를 예언하고 있다」고 정리한다. 약왕품의 이 구절은 제30장에서 「부처의 기문(記文)」의 첫째로 다시 인용된다.
열반경 — 병든 아이에게 쏠리는 마음
다섯째 거울은 열반경의 비유다. 일곱 아들을 둔 부모가 아들들을 평등하게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운데 병든 아이가 있으면 마음이 그 아이에게 치우쳐 무거워진다. 대성인은 이 「병든 자」를 「멸후에 법화경을 비방하는 자」라고 못 박으신다. 수량품에서 약을 거부한 아들과 열반경의 병든 아들은 같은 사람이다. 부처의 자비는 평등하지만, 가장 깊이 병든 자, 곧 가장 구하기 어려운 시대의 가장 구하기 어려운 중생에게 가장 무겁게 쏠린다.
「말법의 처음, 나와 같은 자를 위함이니라」
이 다섯 거울에 비추어 대성인은 두 단계의 결론을 내리신다. 첫째, 부처가 세상에 나온 것은 영산회상에서 팔 년 동안 법화경을 들은 사람들을 위함이 아니라 멸후 정 · 상 · 말의 사람들을 위함이다. 둘째, 그 가운데서도 정상 이천 년의 사람들을 위함이 아니라 말법의 처음, 「나와 같은 자(予が如き者)」를 위함이다.
강의는 이 「나와 같은 자」라는 말에 주목한다. 앞에서 수량품과 같은 의식을 갖추어 밝히려 한 것이 「건네줄 사람」이었다면, 대성인은 여기서 지용의 보살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그 사람이 바로 대성인 자신의 전체임을 밝히려고 「말법의 처음 나와 같은 자를 위함이니라」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어 강의는 한 가지 주의를 덧붙인다. 이렇게 읽으면 대성인은 지용의 대도사 상행보살의 본지가 드러난 분이라고 보아, 대성인을 상행보살이라고 단정해 버릴 우려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교상(敎相), 곧 겉으로 드러난 가르침의 면이지 내증(內證), 곧 대성인이 안으로 깨달으신 경지의 면은 아니다. 내증의 면에서 보면 법을 건네주는 사람 자체가 건네주는 법체(法體)와 곧 하나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구원원초의 자수용신(自受用身) 그 자체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의는 말한다. 교상으로는 상행보살의 재탄, 내증으로는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라는 이 구분은 「현불미래기」 강의 등에서도 「외용은 상행보살, 내증은 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으로 정리되는 창가학회 교학의 기본 틀이다.
「현불미래기」(문영 10년 윤5월)는 이 「관심의 본존초」를 쓰신 지 한 달 남짓 뒤에 쓰신 글로, 같은 물음을 다른 각도에서 다룬다. 거기서도 대성인은 「末法の始めを願楽するの言なり(말법의 처음을 원하고 즐기는 말이니라)」(505쪽)라 하여 천태 · 전교의 예언이 말법의 처음을 바라보았다고 하시고, 마지막 장에서 그 처음에 출현할 「부처와 같은 성인」을 말씀하신다. 두 글을 함께 읽으면 제29장과 제30장의 논지가 한층 또렷해진다.
정상에 나오지 않은 까닭 — 기근도 때도 없었다
경문으로 부처의 뜻이 말법에 있음을 보인 대성인은 이제 처음의 물음, 「왜 정상에 나오지 않았느냐」에 정면으로 답하신다. 강의는 「지용천계가 정상에 나오지 않은 것은 …」의 대목을 「정상미출의 까닭」을 밝힌 부분, 「이제 말법의 처음 …」의 대목을 「말법필출(末法必出)」, 곧 말법에는 반드시 나오는 까닭을 밝힌 부분으로 나눈다.
정법 천 년 — 소승과 권대승으로 재세의 하종을 거두다
정법 천 년 동안은 소승과 권대승의 시대였다. 대성인은 「기근도 때도 함께 없었다(機時共に之れ無く)」고 하신다. 현대어역은 이를 「수량 문저 하종의 삼대비법 같은 것은 그것을 믿을 근기의 중생도 없었고, 삼대비법이 유포될 시대도 아니었다」고 풀이한다.
그러면 정법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익을 얻었는가. 강의는 「어서에도 분명하듯이」 정법은 해탈견고 · 선정견고의 때였다고 설명한다. 『대집경』의 다섯 오백 년 가운데 첫 오백 년은 해탈견고, 곧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해탈을 얻는 이가 많은 시기이고, 둘째 오백 년은 선정견고, 곧 선정을 닦는 이가 많은 시기다. 이 시대에는 석존과 인연을 맺은 중생이 많아서 아직 이 대양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석존 재세에 이미 하종을 받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법 시대의 사의의 대사들, 곧 가섭 · 아난에서 마명 · 용수 · 천친에 이르는 논사들은 소승과 권대승을 「연(緣)」으로 삼아 재세에 하종된 이들을 「탈(脫)」시켰다. 씨앗은 이미 재세에 뿌려졌으니, 정법 시대에 할 일은 그 씨앗이 익은 것을 거두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 용수보살 · 천친보살
그들이 법화경 본문의 대법을 설하지 않은 까닭도 대성인은 밝히신다. 「비방하는 이가 많아 숙익을 깨뜨릴 것이므로 이를 설하지 않았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갑자기 문저의 대법을 설하면 비방할 뿐이고, 그렇게 되면 과거세에 하종을 받고 이제까지 길러 온 선근, 곧 숙익(熟益)마저 깨뜨리게 된다. 대성인은 이것을 「재세의 앞 사미의 기근과 같다」고 비유하신다. 석존이 성도한 뒤 바로 법화경을 설하지 않고 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로 사십여 년 동안 중생의 근기를 길렀듯이, 정법 시대의 사의도 소승 · 권대승으로 근기를 길러 탈익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제5편에서 본 오중삼단의 틀로 말하면, 정법 시대는 「재세 하종 · 멸후 탈익」의 연장선 위에 있다.
상법의 중간과 끝 — 관음과 약왕이 남악 · 천태로
상법 시대가 되자 사정이 바뀐다. 강의는 석존과 인연을 맺은 이가 점점 줄어 소승 · 권교의 약으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촉루품의 총부촉과 약왕품 이하 네 품의 「군습유촉(捃拾遺囑)」에 따라 관음과 약왕이 남악과 천태로 나타나 실대승으로 민중을 구했다.
「군습유촉」은 제28장에서 본 개념이다. 지용의 보살이 신력품에서 별부촉을 받고 촉루품 뒤에 물러간 다음, 약왕품부터 열반경까지는 적화 · 타방의 보살들에게 거듭 법을 맡겼다. 추수가 끝난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듯이(捃拾), 본격적인 부촉에서 남은 것을 그들에게 맡겼다는 뜻이다. 남악 · 천태가 법화경을 편 것은 이 「이삭줍기」의 부촉에 따른 것이다.
강의는 남악이 관음의 후신, 천태가 약왕의 후신이라는 전승의 근거도 설명한다. 남악은 관세음보살보문품으로, 천태는 약왕품으로 법화경의 묘리를 체득했고, 그 본지를 이 두 성자가 스스로 감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천태는 젊은 날 대소산(大蘇山)에서 남악 밑에서 법화삼매를 닦다가 약왕품의 「是真精進 是名真法供養如来(이것이 참된 정진이요 이것을 참된 법으로 여래를 공양함이라 한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몸과 마음이 활연히 열리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수천태지자대사별전』 등. 이른바 대소개오). 약왕보살이 자기 몸을 태워 부처께 공양한 이야기를 담은 품에서 깨달은 것이, 그를 약왕의 후신이라 부르는 바탕이 되었다.
적문을 겉으로, 본문을 속으로
그렇게 나타난 남악 · 천태는 「적문을 겉으로 삼고 본문을 속으로 삼아」 백계천여 · 일념삼천의 뜻을 다했다. 강의는 백계천여를 남악에, 일념삼천을 천태에 배당한다. 이것이 이른바 「적면본리(迹面本裏)」다. 강의의 설명으로는, 적문의 이(理)만으로는 일념삼천의 뜻을 다할 수 없으므로 본문의 이를 속에 써서 일념삼천의 뜻을 다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제1편 · 제3편에서 본 논점과 이어진다. 적문의 제법실상 · 십여시는 일념삼천의 「틀」을 주지만, 부처가 시작 없는 과거부터 상주한다는 본문의 구원실성이 없으면 불계도 구계도 상주하지 않으므로 십계호구는 실제로 성립하지 않는다(제3편 · 「개목초」의 「本無今有」 비판). 천태는 『마하지관』에서 일념삼천을 세울 때 적문의 십여시를 앞세웠지만, 그것이 성립하는 바탕에는 본문의 구원이 깔려 있었다. 겉은 적문, 속은 본문이다. → 五 일념삼천 · 四 구원실성
이구(理具)를 논했을 뿐 — 사행의 다섯 자와 본문의 본존은 아직
그러나 대성인은 바로 한계를 짚으신다. 「다만 이구를 논했을 뿐, 사행(事行)의 남묘호렌게쿄의 다섯 자와 아울러 본문의 본존은 아직 널리 행하지 않았다.」 현대어역은 이를 「오직 이성(理性)에 갖추어진 일념삼천을 이론으로 설했을 뿐」이라고 풀이한다. 일념삼천이 모든 생명에 「이(理)로서 갖추어져 있다」고 밝힌 것이 천태의 공적이라면, 그것을 실제 수행의 「사(事)」로 드러내는 남묘호렌게쿄의 다섯 자와 그 다섯 자를 나타낸 본문의 본존은 아직 널리 행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까닭이 「원기는 있으나 원시는 없었다(円機有つて円時無き)」이다. 법화경을 받아들일 근기, 곧 원기는 상법에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그 법이 널리 퍼질 때, 곧 원시는 아니었다. 어구 해설은 앞에서 본 대로 이것을 「한 번 허락해 준 해석」이라고 본다. 상법에 원기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한 번 인정해 준 것일 뿐이고, 시대 자체는 말법과 같은 하종의 시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대어역도 「말법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행의 남묘호렌게쿄가 홍통될 시대가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정법 1000년
- 사람
- 四依の大士사의의 대사: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 · 천친 등
- 법
- 小乗権大乗소승 · 권대승
- 이익
- 在世の下種之を脱せしむ재세의 하종을 탈익시킴
- 『대집경』
- 해탈견고 · 선정견고
- 설하지 않은 까닭
- 謗多くして熟益を破る可き故비방이 많아 숙익을 깨뜨릴 것이므로
상법 1000년
- 사람
- 観音・薬王 → 南岳・天台관음 · 약왕이 남악 · 천태로
- 법
- 迹門を以て面と為し本門を以て裏と為して적문을 겉, 본문을 속으로百界千如・一念三千백계천여 · 일념삼천
- 한계
- 但理具を論じて다만 이구를 논했을 뿐
- 까닭
- 円機有つて円時無き원기는 있으나 원시는 없음
- 『대집경』
- 독송다문견고 · 다조탑사견고
말법의 처음
- 사람
- 地涌の菩薩始めて世に出現し지용의 보살이 비로소 출현
- 법
- 但妙法蓮華経の五字다만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
- 이익
- 幼稚に服せしむ유치한 이에게 복용시킴하종
- 『대집경』
- 투쟁언송 · 백법은몰
적면본리와 사행의 다섯 자 — 강의가 논파하는 세 가지 이설
강의는 이 대목에서 다른 문류의 해석 세 가지를 들어 논파한다. 아래는 강의의 논지를 그대로 정리한 것이다.
첫째 — 「말법은 본면적리」라는 설
강의에 따르면, 오늘날 여러 문류는 「말법 지금은 본문의 때」라는 대성인의 말씀을 잘못 받아들여, 천태의 적면본리를 뒤집은 「본면적리(本面迹裏)」를 내세운다. 법화경 본문의 열네 품을 겉으로 하고 적문의 열네 품을 속으로 한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것이 문상(文上)의 탈익만 알고 문저(文底)의 하종을 모르는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대성인의 뜻은 법화경 문상 탈익의 본적 이문(本迹二門)을 모두 「적」으로 하고, 문저 하종의 묘법을 「본」으로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천태 및 여러 문류의 생각과 대성인의 뜻은 물과 불처럼 다르다고 강의는 말한다. 강의는 나아가 이 대성인의 뜻을 지닌 것은 창가학회뿐이라고 단언한다.
강의는 이 논지의 근거로 두 어서를 인용한다.
天台・伝教等の御時には理なり今は事なり……彼は迹門の一念三千・此れは本門の一念三千なり天地はるかに殊なりことなり
천태 · 전교 등의 때에는 이(理)요 지금은 사(事)이니라 …… 저것은 적문의 일념삼천이요 이것은 본문의 일념삼천이니 하늘과 땅만큼 아득히 다르니라
迹門を理具の一念三千と云う脱益の法華は本迹共に迹なり、本門を事行の一念三千と云う下種の法華は独一の本門なり
적문을 이구의 일념삼천이라 하느니라. 탈익의 법화는 본적이 모두 적이요, 본문을 사행의 일념삼천이라 하느니라. 하종의 법화는 독일(獨一)의 본문이니라
今日熟脱の本迹二門を迹と為し久遠名字の本門を本と為す
금일 숙탈의 본적 이문을 적으로 삼고, 구원 명자의 본문을 본으로 삼느니라
「치병대소권실위목」은 홍안 5년(1282) 도키조닌에게 보내신 편지로, 천태 · 전교의 일념삼천과 대성인의 일념삼천이 「이」와 「사」로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고 밝히신다. 「본인묘초」의 두 구절은 「탈익의 법화」와 「하종의 법화」를 나누어, 전자에서는 본문 · 적문이 모두 적이고 후자만이 「독일의 본문」이라고 정리한다. 강의는 이렇게 천태의 적면본리와 대성인의 본면적리가 분명히 다른데도, 그 「본」이 무엇인지를 헷갈려 문상의 본문을 겉에 세운 것이 첫째 이설의 잘못이라고 본다.
둘째 — 「입으로 부르면 그것이 사행」이라는 설
강의는 이어 이런 주장을 소개한다. 「말법의 어리석은 사람은 이관(理觀)을 감당하지 못한다. 묘법을 입으로 부를 때 삼천을 갖춘다. 그러므로 입으로 부르는 것을 사행이라 이름한다.」 천태의 관법처럼 마음으로 일념삼천을 관하는 것은 「이관」이고, 말법의 사람은 그것을 할 수 없으니 입으로 부르는 것 자체를 「사행」이라 부른다는 설이다.
강의는 이것이 이행(理行)의 남묘호렌게쿄도, 사행의 남묘호렌게쿄도 모르는 의견이라고 논파한다. 대성인은 천태가 입으로 부른 제목도 「이행의 제목」이라 하셨고, 오직 문저 하종의 묘법을 입으로 부르는 것만을 「사행의 제목」이라 하셨다는 것이다. 사행이냐 이행이냐를 가르는 기준은 입으로 부르느냐 마음으로 관하느냐가 아니라, 부르는 그 법체가 무엇이냐에 있다.
강의는 이 기준을 적용해 이렇게 결론짓는다. 일본 각지 여러 문류의 제목은 모두 이행의 제목이다. 그들이 믿는 법체가 탈익의 법화경, 곧 본적이 모두 적인 적문 이의 일념삼천이기 때문이다. 오직 당류(當流)의 제목만이 본문 사행의 제목이다. 그 법체가 문저 하종의 법화경, 곧 독일 본문의 사의 일념삼천이기 때문이다.
셋째 — 「본문의 본존은 구성의 석존」이라는 설
셋째로 강의는 본문의 「아울러 본문의 본존(並びに本門の本尊)」을 구원실성의 석존, 곧 구성(久成)의 석존으로 보는 설을 든다. 강의는 이것을 큰 그릇된 견해라고 비판한다. 이 초의 대지(大旨)는 문저 하종의 「법의 본존」을 밝힌 것이지 문상 탈익의 「사람의 본존」을 밝힌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의는 이 점을 헷갈리면 곧 사종(邪宗)이 된다고 경계한다. 이 논점은 제4편(제17~20장)에서 강의가 「이 불상」을 석가상으로 읽는 설을 논파한 것과 같은 줄기다.
「아직 널리 행하지 않았다」의 뜻
강의는 마지막으로 본문의 「未だ広く之を行ぜず(아직 널리 이를 행하지 않았다)」를 둘러싼 해석을 다룬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천태종의 본존은 구성의 석존이고, 천태의 『법화참법』에도 「나무묘법연화경」이라는 말이 있으니, 천태도 자신은 이것을 행했다. 다만 아직 재세의 권교를 겸한 원기(在世帯権の円機)와 같은 시대였기 때문에 「널리」 행하지 않았을 뿐이다.
강의는 이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천태종의 본존이 설령 구성의 석존이라 해도 그것은 재세 탈익의 교주이지 문저 하종의 본문의 본존이 아니다. 천태가 묘법을 입으로 불렀다 해도 그것은 이행의 제목이지 사행의 남묘호렌게쿄가 아니다. 그러므로 천태가 「자신은 이것을 행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아직 널리 행하지 않았다」는 무슨 뜻인가. 강의는 그 참뜻이 말법의 「널리 행함(廣行)」을 바라보는 데 있다고 본다. 천태 자신이 행했느냐 행하지 않았느냐를 논하는 말이 아니라, 말법에 널리 행해질 것과 대비해서 「아직」이라고 하신 것이다. 강의는 이것을 「정상에는 아직 홍통하지 않았다(正像未弘)」 같은 표현과 같은 용법이라고 하고, 대성인의 참뜻은 아마 「아직 일찍이 이를 행하지 않았다(未だ曾て之を行ぜず)」로 읽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곧 제20장에서 본존을 「미증유(未曾有)」라 하신 문구와 같은 뜻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와 「사」를 가르는 기준이 수행의 형식(관하느냐 부르느냐)이 아니라 법체(문상 탈익의 법이냐 문저 하종의 법이냐)에 있다고 본다. 그 기준으로 본면적리설 · 구창사행설 · 구성석존 본존설을 차례로 논파하고, 「아직 널리 행하지 않았다」를 「아직 일찍이 행하지 않았다」의 뜻으로 읽는다.
말법의 처음에 반드시 나온다 — 다만 다섯 자로 유치한 이에게
「이제 말법의 처음 …」부터는 말법필출의 까닭이다. 대성인은 말법의 모습을 네 구로 그리신다. 소승으로 대승을 치고, 권교로 실교를 깨뜨리고, 동과 서를 함께 잃고,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현대어역은 「동을 서라 하고 서를 동이라 하여」라고 풀어, 무엇이 높고 무엇이 낮은지,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가지인지가 완전히 뒤바뀐 혼란을 그린다. 정법 시대에는 소승 · 권대승이 근기를 기르는 「연」이었지만, 말법에 이르면 그 소승 · 권교가 도리어 실교를 치는 무기가 된다. 같은 가르침이라도 때가 바뀌면 약이 독이 된다.
그런 때에 상법에 정법을 폈던 적화의 사의는 숨어서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남악 · 천태 같은 이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제천선신은 그 나라를 버리고 지켜 주지 않는다. 「입정안국론」의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떠난다」는 논지와 같은 그림이다. 사람도 하늘도 의지할 곳이 없는 바로 그 때, 지용의 보살이 「비로소(始めて)」 세상에 출현한다.
「다만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로」
지용의 보살이 가지고 오는 것은 「다만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다. 강의는 이 구절이 제19장의 「말법에 와서 비로소 이 불상을 출현시키실 것인가(末法に来入して始めて此の仏像出現せしむ可きか)」(248쪽)와 상응한다고 본다. 제19장의 「비로소」와 여기의 「비로소」가 같은 때를 가리키고, 제19장의 「이 불상」과 여기의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가 같은 것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 구절을 둘로 나누어 읽는다.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는 곧 본문의 본존이고, 「유치한 이에게 복용시킨다(幼稚に服せしむ)」는 관심이다. 본존과 관심이 이 한 구절에 함께 들어 있다. 그리고 수량품의 양의의 비유에 대어 보면, 「묘법의 다섯 자」는 「이 좋은 양약(是好良薬)」이고, 「유치한 이에게 복용시킨다」는 「너희는 가져다 먹으라(汝可取服)」에 해당한다. 앞에서 대성인이 「지금 남겨 여기에 두노라」를 멸후의 비방자를 위한 것이라 하신 것과 이어 보면, 말법의 처음에 지용의 보살이 그 남겨 둔 양약을 가지고 와서 가장 깊이 병든 아이들에게 먹인다는 그림이 완성된다.
「유치(幼稚)」라는 말은 제24장에서 말법의 중생을 「덕이 얇고 때가 무거우며 유치하고 빈궁하며 고로(孤露)하여 금수와 같다(徳薄垢重・幼稚・貧窮・孤露にして禽獣に同ずるなり)」(249쪽)고 하신 말과 이어지고, 제31장의 「말대 유치의 목」으로 다시 나온다. 스스로 일념삼천을 관할 힘이 없는 어린아이 같은 중생,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부처의 자비가 가장 무겁게 쏠리는 중생이다.
「비방한 인으로 악에 떨어지나 반드시 그 인으로 이익을 얻는다」
이어 대성인은 묘락의 한 구절을 인용하신다. 「因謗堕悪必因得益」. 어구 해설에 따르면 이것은 묘락대사가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을 해석하면서 역연(逆緣)의 공덕을 밝힌 글로, 원문은 「因謗堕悪必由得益」이다. 『법화문구기』의 해당 대목은 문답으로 되어 있다고 어구 해설은 소개한다.
묻는다. 비방한 인으로 악도에 떨어진다면, 보살은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고통을 짓는 인을 만들어 주는가. 답한다. 선한 인이 없는 자는 비방하지 않아도 역시 떨어진다. 비방한 인으로 악도에 떨어지더라도 반드시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익을 얻는다. 사람이 땅에 넘어졌다가 도리어 땅을 짚고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바른 비방(正の謗)으로써 삿된 떨어짐(邪の堕)을 건진다.
불경보살은 증상만의 비구들이 자신을 비방할 것을 알면서도 예배하며 법을 설했다. 그들은 비방한 죄로 천 겁 동안 아비지옥에 떨어졌지만, 그 고통을 다한 뒤 다시 불경보살을 만나 무상도로 교화를 받았다. 비방이라는 형태로라도 법과 인연을 맺은 것이 결국 성불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어역은 이를 말법에 적용해, 말대 유치의 사지(邪智) 방법(謗法)의 중생은 처음 묘법 다섯 자의 대양약을 받아도 믿지 못하지만, 설령 비방해서 악도에 떨어지더라도 반드시 그것이 인이 되고 하종이 되어 즉신성불의 대양약을 먹게 된다고 풀이한다.
땅에 넘어진 사람은 땅을 짚고 일어난다. 이 비유는 하종의 논리를 가장 짧게 보여 준다. 정법 시대의 사의는 비방이 숙익을 깨뜨릴까 두려워 대법을 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법에는 깨뜨릴 숙익도 없다. 처음부터 씨앗이 없는 중생이니, 비방이든 신수든 법과 맺어지는 것 자체가 씨앗을 심는 일이 된다. 정법의 「설하지 않음」과 말법의 「설함」은 이렇게 하나의 논리에서 나온 반대 방향의 결론이다.
초발심의 제자와 불효의 허물 — 고귀한 대보살의 약속
「나의 제자들은 이를 생각하라(我が弟子之を惟え).」 대성인은 여기서 말투를 바꾸어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이제부터 하시는 말씀은 논증이라기보다 제자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일이다.
지용천계는 교주 석존의 「초발심의 제자」다. 강의는 이를 지용의 보살이 석존의 「구원 명자(久遠名字)의 제자」라는 뜻으로 읽는다. 수량품에서 석존은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던 때(我本行菩薩道)」를 말하고, 종지용출품에서는 지용의 보살을 「내가 이 사바세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뒤 이 보살들을 교화하여 그 마음을 조복하고 도의 뜻을 내게 했다」고 소개한다. 석존이 처음 발심하여 교화한 제자, 가장 오래된 제자라는 뜻이다. 현대어역은 「최고 존귀의 대보살」이라고 덧붙인다.
그런데 이 가장 오래된 제자들이 스승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석존이 성도하고 처음 『화엄경』을 설한 적멸도량에도 오지 않았고, 마지막 설법인 『열반경』의 사라쌍수 아래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대성인은 이것을 「불효의 허물(不孝の失)」이라고 하신다. 스승이 깨달음을 연 날에도, 스승이 세상을 떠나는 날에도 오지 않는 제자는 불효하다는 세간의 상식에 비추어 하신 말씀이다.
법화경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적문의 열네 품에는 오지 않았다. 본문에서도 약왕품 제23 이후의 여섯 품에서는 자리를 떴다. 지용의 보살이 법화경의 자리에 있었던 것은 종지용출품 제15에서 촉루품 제22까지의 여덟 품뿐이다. 제28장에서 본 대로, 촉루품에서 석존이 「법좌에서 일어나」 총부촉을 마치고 「다보불의 탑을 옛날처럼 돌려 놓으라」 하자 지용의 보살은 대지 아래로 돌아갔고, 약왕품 이하는 적화 · 타방의 보살들을 위한 「군습유촉」의 자리였다.
강의는 이 「불효의 허물」이라는 논법이 세계실단(世界悉檀)에 따라 하신 말씀이라고 본다. 실단(悉檀)은 부처가 중생을 이끄는 네 가지 방식으로, 『대지도론』에서 세계실단 · 위인실단 · 대치실단 · 제일의실단을 든다. 세계실단은 「요욕실단(樂欲悉檀)」이라고도 하며, 세간 사람들이 바라고 납득하는 바에 따라 법을 설하여 기쁨의 이익을 주는 방식이다. 지용의 보살이 정말로 불효하다는 뜻이 아니라, 「스승의 중대사에 오지 않은 제자는 불효」라는 세간의 상식을 빌려, 그러니 말법에 나오지 않으면 그 불효의 허물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로 말법필출을 납득시키신 것이다.
그리고 대성인은 결정적인 근거를 더하신다. 이렇게 고귀한 대보살이 석가 · 다보 · 시방분신의 세 부처와 「약속하여」 묘법의 다섯 자를 받아 지녔다. 현대어역은 「세 부처에게 약속하여 묘법 다섯 자를 물려받아 수지했다」고 풀이한다. 신력품에서 지용의 보살은 「부처님의 멸후, 세존의 분신이 계시는 국토와 멸도하신 곳에서 마땅히 널리 이 경을 설하겠습니다」(제28장)라고 맹세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말법의 처음에 나오시지 않겠느냐(末法の初に出で給わざる可きか)」는 반어로, 반드시 나온다는 뜻이다.
- 寂滅道場적멸도량 · 화엄오지 않음
- 前四味아함 · 방등 · 반야오지 않음
- 迹門の十四品적문 열네 품: 서품~안락행품오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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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왕과 승 — 절복과 섭수의 두 모습
제29장은 한 문장으로 끝난다. 「마땅히 알라. 이 사보살은 절복을 나타낼 때에는 현왕이 되어 우왕을 꾸짖고, 섭수를 행할 때에는 승이 되어 정법을 넓혀 지니느니라.」
섭수(攝受)와 절복(折伏)은 부처의 두 가지 교화 방식이다. 섭수는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여 품으면서 차츰 바른 법으로 이끄는 방식, 절복은 그릇된 생각을 꺾어 바른 법에 굴복시키는 방식이다. 「개목초」에서 대성인은 이 둘을 「물과 불 같다」고 하시고, 어느 쪽을 앞세울지는 때와 나라에 따른다고 하셨다.
無智・悪人の国土に充満の時は摂受を前とす安楽行品のごとし、邪智・謗法の者の多き時は折伏を前とす常不軽品のごとし
무지하고 악한 사람이 국토에 가득할 때에는 섭수를 앞세우니 안락행품과 같고, 사지(邪智)와 방법(謗法)의 사람이 많을 때에는 절복을 앞세우니 상불경품과 같으니라
같은 글에서 대성인은 「말법에는 섭수와 절복이 있으니 이른바 악국(惡國)과 파법(破法)의 두 나라가 있기 때문이니라」라고도 하신다. 제29장 본문이 이 장의 결론을 섭수 · 절복으로 맺은 것은, 말법의 처음에 출현하는 지용의 보살이 어떤 방식으로 법을 펴는가를 보이신 것이다.
왜 절복이 「현왕」인가 — 법체의 절복과 화의의 절복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강의는 이 의문을 정면으로 제기한다. 사보살이 절복을 행할 때는 성승(聖僧)으로 출현한다. 곧 대성인이 그분이시다. 대성인은 출가한 승으로서 일생 절복을 행하셨다. 그런데 왜 여기서는 절복을 「현왕이 되어」라고 하시고, 섭수를 「승이 되어」라고 하셨는가.
강의의 대답은 절복에 두 가지 뜻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법체의 절복(法體の折伏)」이다. 법 자체가 그릇된 법을 꺾는 것으로, 천태가 「법화는 절복이니 권문의 이를 깨뜨린다(法華折伏破權門理)」고 한 것이 이것이다. 법화경이라는 법 자체가 권교를 깨뜨리는 절복의 성격을 지닌다는 뜻이다. 둘째는 「화의의 절복(化儀の折伏)」이다. 교화의 형식, 행동의 모습으로서의 절복으로, 강의는 열반경의 「정법을 호지하는 자는 오계를 받지 않고 위의를 닦지 않으며 마땅히 칼과 활과 창을 지녀야 한다」는 구절을 든다. 선예국왕(仙豫國王) 같은 이가 이것이다. 열반경에는 선예국왕이 대승을 비방하는 바라문들을 처단하여 정법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강의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지금 이 대목은 화의의 절복을 바라보며 법체의 절복을 판단하므로, 법체의 절복을 「섭수」라고 이름하신 것이다. 그래서 「섭수를 행할 때에는 승이 되어 정법을 넓혀 지닌다」고 하셨다. 대성인이 승으로서 행하신 절복은 법체의 절복이다. 그것은 무력을 쓰는 화의의 절복에 비하면 「섭수」라고 불릴 만하다. 그리고 「절복을 나타낼 때에는 현왕이 되어 …」라는 구절은 또한 광선유포의 때를 겸하여 판단하신 것이라고 강의는 본다. 법이 널리 퍼져 국가의 차원에서 정법이 지켜지는 때의 모습을 아울러 내다보셨다는 읽기다.
「정법을 호지하는 자는 오계를 받지 않고 …」라는 열반경 구절은 대성인 자신도 「입정안국론」과 「개목초」에서 인용하신다. 다만 대성인이 이 경문을 인용하시는 뜻은 무력을 권하는 데 있지 않다. 「입정안국론」은 이 경문들을 인용한 뒤 결론에서 비방자를 처벌하는 대신 그들에게 보시를 끊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신다. 현대어역이 「무력으로써 우왕을 꾸짖는다」고 옮긴 것도, 국가 권력을 가진 왕이 정법을 지키는 모습을 경문의 표현대로 옮긴 것이다. 여기서는 강의의 「화의의 절복」을 「법을 펴는 행동의 형식」이라는 뜻으로 읽고, 열반경의 무기 구절을 그 형식의 극단적인 예로 이해한다.
강의는 절복에 「법체의 절복」(법 자체가 권문을 깨뜨림)과 「화의의 절복」(교화 형식으로서의 절복)이 있다고 보고, 화의의 절복을 기준으로 하면 승이 행하는 법체의 절복은 「섭수」라 불린다고 해석한다. 「현왕」의 구절은 광선유포의 때를 겸하여 판단하신 것이다.
「창가학회의 중대 사명에 환희용약해야 할 어문」
강의는 제29장을 이 한마디로 맺는다. 「어쨌든 창가학회의 중대 사명에 환희용약해야 할 어문이다.」 말법의 처음에 지용의 보살이 출현하여 다만 다섯 자로 유치한 이들을 구한다는 이 장의 선언을, 강의는 오늘의 신앙인이 짊어진 사명의 선언으로 읽는다. 대성인이 「나의 제자들은 이를 생각하라」고 직접 부르신 것도, 지용의 보살의 출현이 먼 과거의 신화가 아니라 그 말씀을 읽는 제자들 자신의 일이라는 뜻이었다.
- 화의의 절복
- 열반경 刀剣・弓箭・鉾槊を持すべし칼 · 활 · 창을 지녀야 한다— 선예국왕
- 광선유포의 때를 겸하여 판단(강의)
- 법체의 절복 = 法華折伏破権門理법화는 절복, 권문의 이를 깨뜨림
- 화의의 절복에 견주어 「섭수」라 이름함
- 니치렌 대성인의 홍교(강의)
본문
問うて曰く仏の記文は云何答えて曰く「後の五百歳閻浮提に於て広宣流布せん」と、天台大師記して云く「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おわん」妙楽記して云く「末法の初冥利無きにあらず」伝教大師云く「正像稍過ぎ已つ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等云云、末法太有近の釈は我が時は正時に非ずと云う意なり、 伝教大師日本にして末法の始を記して云く「代を語れば像の終り末の初・地を尋れば唐の東・羯の西・人を原れば則ち五濁の生・闘諍の時なり経に云く猶多怨嫉・況滅度後と此の言良とに以有るなり」 此の釈に闘諍の時と云云、今の自界叛逆・西海侵逼の二難を指すなり、此の時地涌千界出現して本門の釈尊を脇士と為す一閻浮提第一の本尊此の国に立つ可し月支震旦に未だ此の本尊有さず、 日本国の上宮・四天王寺を建立して未だ時来らざれば阿弥陀・他方を以て本尊と為す、聖武天皇・東大寺を建立す、華厳経の教主なり、未だ法華経の実義を顕さず、伝教大師粗法華経の実義を顕示す然りと雖も時未だ来らざるの故に東方の鵝王を建立して本門の四菩薩を顕わさず、所詮地涌千界の為に此れを譲り与え給う故なり、 此の菩薩仏勅を蒙りて近く大地の下に在り正像に未だ出現せず末法にも又出で来り給わずば大妄語の大士なり、三仏の未来記も亦泡沫に同じ。 此れを以て之を惟うに正像に無き大地震・大彗星等出来す、此等は金翅鳥・修羅・竜神等の動変に非ず偏に四大菩薩を出現せしむ可き先兆なるか、天台云く「雨の猛きを見て竜の大なるを知り花の盛なるを見て池の深きことを知る」等云云、妙楽云く「智人は起を知り蛇は自ら蛇を識る」等云云、天晴れぬれば地明かなり法華を識る者は世法を得可きか。
물어 이르되, 부처의 기문(記文)은 어떠하냐. 답하여 이르되, 「후오백세에 염부제에서 광선유포하리라」 하셨고, 천태대사는 기록하여 이르되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妙道)에 젖으리라」 하였으며, 묘락은 기록하여 이르되 「말법의 처음에 명리(冥利)가 없지 아니하리라」 하였고, 전교대사는 이르되 「정상이 거의 지나가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는 해석은 나의 때는 정시(正時)가 아니라는 뜻이니라. 전교대사가 일본에서 말법의 처음을 기록하여 이르되 「시대를 말하면 상법의 끝 말법의 처음이요, 땅을 찾으면 당의 동쪽 갈(羯)의 서쪽이요, 사람을 살피면 오탁의 생이며 투쟁의 때이니라. 경에 이르되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 하였으니 이 말은 참으로 까닭이 있느니라」 하였느니라. 이 해석에 「투쟁의 때」라 한 것은 지금의 자계반역(自界叛逆) · 서해침핍(西海侵逼)의 두 난을 가리키느니라. 이 때 지용천계가 출현하여 본문의 석존을 협사(脇士)로 삼는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서리라. 월지(인도)와 진단(중국)에도 아직 이 본존은 계시지 않았느니라. 일본국의 상궁(上宮) 태자는 사천왕사를 건립하였으나 아직 때가 오지 않았으므로 아미타, 곧 타방의 부처를 본존으로 삼았느니라. 쇼무 천황은 도다이사를 건립하였으니 화엄경의 교주이니라. 아직 법화경의 실의를 드러내지 못하였느니라. 전교대사는 대강 법화경의 실의를 드러내 보였으나 그러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동방의 아왕(鵝王)을 건립하고 본문의 사보살은 드러내지 않았느니라. 결국 지용천계를 위하여 이를 물려주신 까닭이니라. 이 보살은 부처의 칙명을 받아 가까이 대지 아래에 있느니라. 정상에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거니와 말법에도 또 나오지 않으신다면 대망어(大妄語)의 대사이니라. 세 부처의 미래기도 또한 물거품과 같으리라. 이로써 생각하건대, 정상에 없던 대지진 · 대혜성 등이 일어났느니라. 이것들은 금시조 · 아수라 · 용신 등이 일으킨 변동이 아니요, 오로지 사대보살을 출현시킬 선조(先兆)이리라. 천태가 이르되 「비가 세찬 것을 보고 용이 큰 줄을 알고, 꽃이 성한 것을 보고 못이 깊은 줄을 안다」 등이라 하였고, 묘락이 이르되 「지혜로운 사람은 일어날 일을 알고 뱀은 스스로 뱀을 안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하늘이 개면 땅이 밝아지느니, 법화를 아는 자는 세법(世法)을 얻을 것이니라.
어구 풀이
- 記文 · 讖기문 · 참
- 부처가 미래를 미리 적어 둔 글. 강의는 이를 「참문(讖文)」이라 부르고, 이 장을 「여래의 겸참(兼讖)을 밝힌」 장이라 한다. 「겸(兼)」은 미리, 「참(讖)」은 앞날을 내다본 말이라는 뜻이다.
- 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おわん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
- 천태대사 『법화문구』 권1의 글. 원문은 「다만 그 때 큰 이익을 얻을 뿐 아니라,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는 까닭에」. 어구 해설은 이 인용의 원래 뜻을 이렇게 푼다. 「후오백세」는 말법의 처음, 「멀리」는 만년 바깥(萬年の外)까지, 「묘」는 찬탄하는 말이고 「도」는 문저심비의 대법, 「젖는다」는 유포한다는 뜻이다. 곧 말법의 처음부터 만년 바깥, 미래영겁까지 문저심비의 삼대비법이 퍼져야 한다는 글이다.
- 末法の初冥利無きにあらず말법의 처음에 명리가 없지 않다
- 묘락대사 『법화문구기』의 글. 도섬(道暹)의 『보정기(輔正記)』는 이를 「말법의 때에 이르러 현익(顯益)은 없으나 명리(冥利)는 있다」고 풀었다. 어구 해설은 여기의 「명리」를 하종익으로 본다. 정상 시대에 눈앞에 나타난 숙익 · 탈익과는 전혀 다른 이익이라는 것이다.
- 正像稍過ぎ已つて末法太だ近きに有り정상이 거의 지나가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
- 전교대사 『수호국계장(守護國界章)』 권상의 하의 글. 원문은 「지금 사람의 근기는 모두 바뀌어 소승의 근기는 전혀 없다. 정상이 거의 지나가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 법화일승의 근기가 지금 바로 그 때다.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안락행품의 말세 법멸의 때이기 때문이다」. → 전교대사
- 唐の東・羯の西당의 동쪽 · 갈의 서쪽
- 일본의 위치를 가리키는 말. 「갈(羯)」은 말갈(靺鞨)로, 6세기 중반부터 약 한 세기 동안 중국 동북부 쑹화강 유역에 살던 퉁구스 계통의 종족을 수 · 당 시대 중국에서 부른 이름이다. 당시의 지리관에서는 일본이 그 땅보다 서쪽에 있다고 여겼다.
- 自界叛逆・西海侵逼자계반역 · 서해침핍
- 「입정안국론」(문응 원년, 1260)에서 예언하신 두 난. 자계반역은 나라 안의 반란, 서해침핍은 서쪽 바다로부터의 외적 침입(타국침핍)이다. 이 글을 쓰신 문영 10년 무렵 자계반역은 전해(문영 9년, 1272) 2월의 이른바 「니가쓰 소동」(호조 도키스케의 난)으로 현실이 되었고, 몽골의 침입 위협은 문영 5년(1268) 국서 도래 이래 날로 커지고 있었다. 실제 침공(문영의 역)은 이듬해 문영 11년(1274) 10월이다.
- 脇士협사
- 늘 부처의 양옆에 서서 부처의 교화를 돕는 보살. 협시(夾侍 · 脇侍)라고도 한다. 석존에게는 문수 · 보현, 아미타불에게는 관음 · 세지, 약사여래에게는 일광 · 월광 보살이 협사로 따른다.
- 上宮・四天王寺상궁 · 사천왕사
- 상궁은 상궁태자, 곧 쇼토쿠 태자(574–622)의 다른 이름. 우마야도노 황자라고도 한다. 스이코 천황의 섭정으로 관위 12계와 17조 헌법을 정하고 견수사를 보냈으며, 사천왕사를 비롯한 절을 세우고 법화경 · 승만경 · 유마경의 주석서 『삼경의소』를 지었다고 전한다(실제 저작 여부는 학계에서 논의 중). 「세간은 헛되고 거짓되며 오직 부처만이 참되다(世間虚仮 唯仏是真)」는 말이 전한다. 불교 수용을 두고 모노노베노 모리야와 맞섰으며, 대성인은 두 사람을 서로 대립하는 것의 비유로 쓰기도 하셨다.
- 聖武天皇・東大寺쇼무 천황 · 도다이사
- 쇼무 천황(701–756)은 나라 시대에 국분사 제도를 세우고 도다이사를 건립했다. 도다이사의 대불은 『화엄경』의 교주 비로자나불이다.
- 東方の鵝王동방의 아왕
- 「아왕(鵝王)」은 부처의 다른 이름. 부처의 삼십이상 가운데 손발가락 사이에 물갈퀴 같은 막이 있는 상(手足指縵網相)이 거위(鵝)의 발과 닮았다 하여 생긴 이름으로, 중생을 손가락 사이로 빠짐없이 건진다는 상징이다. 약사여래는 동방 정유리세계의 교주이므로 「동방의 아왕」이라 한다. 전교대사가 히에이산에 세운 근본중당의 본존이 약사여래다.
- 大妄語の大士대망어의 대사
- 큰 거짓말을 한 보살. 부처 앞에서 멸후 홍통을 맹세하고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 맹세가 거짓이 된다는 뜻.
- 大地震・大彗星대지진 · 대혜성
- 정가 원년(1257) 8월 가마쿠라를 덮친 대지진(정가의 대지진)과 문영 원년(1264) 7월에 나타난 대혜성(문영의 대혜성)을 비롯한 일련의 천변지이. 「입정안국론」 집필의 직접적인 계기가 정가의 대지진이었다.
- 金翅鳥금시조
- 고대 인도 전설의 새로, 천룡팔부의 하나인 가루라(迦樓羅)의 번역어. 날개와 머리가 금빛이라 이렇게 부른다. 날개를 펴면 336만 리에 이르고 수미산 아래 살며 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경론에는 대지가 움직이는 원인을 용 · 금시조 · 아수라 등의 움직임으로 설명하는 설이 있다(출전은 확인 중).
- 雨の猛きを見て竜の大なるを知り비가 세찬 것을 보고 용이 큰 줄을 안다
- 천태의 글. 결과의 크기를 보고 원인의 크기를 안다는 비유다. 대성인은 「현불미래기」(509쪽)에서도 같은 글을 인용하신다(출전 권수는 확인 중).
- 智人は起を知り蛇は自ら蛇を識る지혜로운 사람은 일어남을 알고 뱀은 스스로 뱀을 안다
- 묘락대사 『법화문구기』 권9중의 글. 종지용출품에서 지용의 보살이 홀연히 대지에서 솟아오르자 보처의 미륵보살이 그 인연을 설해 달라고 청한 대목을 해석한 것이다. 지혜로운 이는 일이 일어날 유래를 미리 알고, 뱀은 뱀만 아는 길을 안다는 뜻이다. 어구 해설은 원문이 「智人は智を知り」로 되어 있다고 적는다.
- 天晴れぬれば地明かなり하늘이 개면 땅이 밝다
- 하늘(법)이 맑게 개면 땅(세간)이 저절로 밝게 드러난다는 비유. 법화경을 아는 이는 세간의 이치도 저절로 얻는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세 단의 짜임 — 왜 예언을 묻는가
제30장은 「부처의 기문은 어떠하냐」라는 짧은 물음으로 시작한다. 강의는 이 장의 짜임을 셋으로 나눈다. 처음은 물음, 다음은 대답이다. 그리고 대답은 다시 세 부분이다. 첫째로 참문(讖文), 곧 예언의 글을 인용하고, 둘째로 그 글을 해석하며, 셋째로 지용 출현의 전조를 밝힌다.
왜 여기서 예언을 묻는가. 강의는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석존 일대 불교의 이익은 정법 · 상법에 한정된다. 말법에는 석가 불법의 이익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말법에 부처가 없다고 하는 것은 삼세시방 부처들의 본회가 아니다. 삼세시방의 부처들이 말법에 부처가 출현하기를 바라고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물음에 답하여 대성인이 말법 구제의 본불로 출현하셨다고 강의는 본다. 강의는 그 출현을 두 단계로 말한다. 유이가하마 이전에는 지용의 보살로서, 그 이후에는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으로서 스스로 증득하고 말법 구제의 본불로 출현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문영 8년(1271) 9월 다쓰노쿠치 법난을 경계로 대성인이 상행보살의 재탄이라는 겉모습(垂迹)을 벗고 구원원초 자수용신의 본지를 드러내셨다는 창가학회 교학의 「발적현본(發迹顯本)」 설명과 같은 뜻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상 시대 법화경의 대도사들이 이것을 예언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강의는 그 근거로 「삼세를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는 뜻을 든다. 대성인도 「선시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外典に曰く未萠をしるを聖人という内典に云く三世を知るを聖人という
외전에 이르되 「아직 싹트지 않은 것을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 하였고, 내전에 이르되 「삼세를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 하였느니라
부처와 그 법을 이은 성인은 삼세를 안다. 그렇다면 석존과 천태 · 묘락 · 전교는 반드시 말법의 일을 미리 적어 두었을 것이다. 제30장은 그것을 하나하나 꺼내 보이는 장이다.
네 개의 예언 — 석존 · 천태 · 묘락 · 전교
강의는 네 예언을 이렇게 정리한다. 석존은 멸후 이천 년에서 이천오백 년 사이에 부처가 출현할 것을 예언했다. 천태도 같이 후오백세 광선유포를 예언했다. 묘락은 말법의 처음을 가리켜 명익(冥益)이 있다고 하여 법화경의 유포를 예언했다. 전교는 말법이 매우 가깝다고 하여 자기의 법화경 유포가 정시가 아님을 보이고, 이어 때와 곳을 밝혀 말법의 처음의 광선유포를 예언했다.
석존 — 「후오백세」
첫째는 제29장에서도 인용한 약왕품의 「후오백세에 염부제에서 광선유포하리라」다. 『대집경』은 부처 멸후의 이천오백 년을 오백 년씩 다섯으로 나누어, 해탈견고 · 선정견고(정법), 독송다문견고 · 다조탑사견고(상법), 그리고 투쟁언송 · 백법은몰의 다섯째 오백 년을 말한다. 강의가 「이천 년과 이천오백 년 사이」라 한 것이 이 다섯째 오백 년, 곧 말법의 처음이다. 본초의 정식 제목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초」의 「오오백세(五五百歲)」가 바로 이것이다. 제목에서 예고한 때를 본초는 마지막 장에서 경문으로 확인한다.
천태 —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
천태의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는 『법화문구』 첫머리에서 법화경의 이익을 말하는 대목이다. 원문은 법화경이 설해진 「그 때」에 큰 이익을 얻을 뿐 아니라 후오백세에도 멀리 묘도에 젖는다는 뜻이다. 어구 해설은 대성인이 이 글을 인용하신 원래 뜻을 한 글자씩 풀었다. 「멀리」는 만년 바깥까지를 가리키고, 「묘도」의 「도」는 문저심비의 대법이며, 「젖는다」는 유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말법의 처음부터 만년 바깥, 미래영겁에 이르기까지 문저심비의 삼대비법을 유포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천태 자신은 상법 시대 사람이지만, 그의 눈은 이미 자기 시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천태대사
묘락 — 「명리가 없지 않다」
묘락의 「말법의 처음에 명리가 없지 않다」는 『법화문구기』의 글이다. 「명리(冥利)」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이익, 「현익(顯益)」은 눈에 드러나는 이익이다. 도섬의 『보정기』는 이 글을 「말법의 때에 이르면 현익은 없지만 명리는 있다」고 풀었다. 어구 해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성인이 이 글에서 말씀하시는 명리는 하종익이라고 본다. 정상 시대에는 숙익과 탈익이 눈앞에 드러났다. 재세에 뿌린 씨앗이 익고 거두어지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익이다. 그러나 말법의 이익은 씨앗을 처음 심는 이익이다. 씨앗은 땅 속에서 보이지 않게 자란다. 「명」이라는 말은 그 보이지 않음을 가리킨다. 제29장의 「반드시 그 인으로 이익을 얻는다」가 바로 이 명리의 논리다.
전교 — 「말법이 매우 가깝다」, 그리고 때 · 땅 · 사람
전교의 첫째 글 「정상이 거의 지나가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는 『수호국계장』의 한 구절이다. 원래 맥락에서 전교는 「지금 사람의 근기는 모두 바뀌어 소승의 근기는 전혀 없고, 법화일승의 근기가 지금 바로 그 때다」라고 하여, 자기 시대에 법화경을 펴야 하는 근거로 이 말을 썼다. 그러나 대성인은 이 글을 다르게 읽으신다.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는 해석은 나의 때는 정시가 아니라는 뜻이니라.」 전교가 「말법이 가깝다」고 한 것은, 뒤집어 말하면 자기 시대는 아직 말법이 아니라는 고백이고, 법화경이 진정으로 퍼질 때, 곧 정시는 자기 뒤에 온다는 예언이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법화취요초」에서도 같은 글을 같은 뜻으로 읽으신다.
「末法太有近」の五字は我が世は法華経流布の世に非ずと云う釈なり
「말법태유근(末法太有近)」의 다섯 자는 나의 세상은 법화경이 유포될 세상이 아니라는 해석이니라
어구 해설은 이 글을 전교대사가 말법에 본불이 출현하여 삼대비법을 광선유포하실 것을 마음으로부터 기다린 말이라고 보고, 「현불미래기」의 「말법의 처음을 원하고 즐기는 말이니라」(505쪽)를 함께 든다. 전교는 자기 시대를 위해 쓴 말 속에서 자기 너머의 시대를 그리워했다.
전교의 둘째 글은 더 구체적이다. 「시대를 말하면 상법의 끝 말법의 처음이요, 땅을 찾으면 당의 동쪽 갈의 서쪽이요, 사람을 살피면 오탁의 생이며 투쟁의 때이다.」 때와 땅과 사람을 차례로 짚은 이 글은 말법의 처음, 일본, 오탁 투쟁의 사람을 가리킨다. 「당의 동쪽 · 말갈의 서쪽」은 당시의 지리관으로 일본을 가리킨다. 그리고 전교는 법사품의 「오히려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이랴」를 인용하며 「이 말은 참으로 까닭이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어역은 이 끝구절을 「말법의 세상과 비추어 보면 실로 깊은 까닭이 있는 말」이라고 푼다. 제29장에서 대성인이 법사품의 「하물며 멸후」를 정 · 상 · 말을 지나 말법을 가리키는 말로 읽으신 것과 이 전교의 읽기가 정확히 겹친다.
투쟁의 때 — 자계반역과 서해침핍
전교의 「투쟁의 때」를 대성인은 곧바로 눈앞의 현실과 잇는다. 「이 해석에 『투쟁의 때』라 한 것은 지금의 자계반역 · 서해침핍의 두 난을 가리키느니라.」
이 두 난은 대성인이 13년 전 「입정안국론」에서 예언하신 것이다. 「입정안국론」은 『약사경』의 칠난 가운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 난, 곧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이 정법을 버린 나라에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글을 쓰신 문영 10년(1273) 4월에는 그 가운데 하나가 이미 현실이 되어 있었다. 전해 2월 가마쿠라와 교토에서 호조 일족 사이의 내란, 이른바 「니가쓰 소동」이 일어났다. 대성인은 같은 해 「사도어서」에서 이렇게 쓰셨다.
宝治の合戦すでに二十六年今年二月十一日十七日又合戦あり
호지의 합전이 있은 지 이미 이십육 년, 올해 2월 11일과 17일에 또 합전이 있었느니라
「서해침핍」은 아직 실제 침공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문영 5년(1268) 몽골의 국서가 도래한 뒤로 사신이 잇따라 오고 서쪽 바다의 긴장은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실제 침공은 이 글이 쓰인 이듬해 문영 11년(1274) 10월에 일어났다. 대성인은 이 두 난을 전교가 말한 「투쟁의 때」가 지금 눈앞에 왔다는 증거로 보셨다. 예언된 때가 지금이라면, 예언된 사람도 지금 나와야 한다.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
그리고 대성인은 이 장의 중심이 되는 선언을 하신다. 「이 때 지용천계가 출현하여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삼는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서리라. 월지와 진단에도 아직 이 본존은 계시지 않았느니라.」
강의는 이 선언이 경문과 천태 · 묘락 · 전교의 예언에 부합하여 대성인이 출현하시고 분명히 밝히신 말씀이라고 본다. 그리고 본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아래는 강의의 논지를 그대로 정리한 것이다.
강의의 해석 —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삼는」 본존
강의는 이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묘법 다섯 자의 문저심비의 본문의 본존임은 말할 것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앞 장(제19장)에서 「탑 안의 묘법연화경의 좌우에 석가모니불 · 다보불(塔中の妙法蓮華経の左右に釈迦牟尼仏・多宝仏)」(247~248쪽)이라 하신 것이 바로 이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삼는다」는 뜻이며, 또한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과 같은 뜻이라고 본다. 제29장의 「이 때 지용의 보살이 비로소 세상에 출현하여 다만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로 유치한 이에게 복용시킨다」도 같은 뜻이라는 것이 강의의 읽기다. 제19장, 제29장, 제30장의 세 구절이 같은 한 가지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강의가 논파하는 다른 읽기
강의는 이 구절에 대한 다른 종파의 읽기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지용천계가 출현하여 본문의 석존의 협사가 된다」로 읽는 것이다. 「本門の釈尊を脇士と為す」의 「협사로 삼는다」를 「(지용천계가) 본문 석존의 협사가 된다」로 읽어, 본존의 중심을 본문의 석존에 두는 읽기다. 다른 하나는 「본문의 석존이란 가운데의 묘법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강의는 이 두 읽기가 본존초 한 권의 대지와 앞에 나온 여러 글에 비추어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잘못에서 본존의 혼란이 생겨 많은 사람을 그르치고 있으니 두려운 일이라고 경계한다.
강의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일염부제 제일」이라 하신 이상, 종파마다 다르다 해도 모두 부처를 본존으로 삼는 것이므로, 이 초의 본문의 석가 · 다보를 협사로 삼는 묘법 다섯 자의 본존을 부처로 우러러야 한다. 강의는 이것을 부처로 삼지 않는 니치렌 문하를 「스승에게 적대하는 무리(師敵對の輩)」라고 비판한다.
「월지와 진단에도 아직 없었다」
「월지와 진단에도 아직 이 본존은 계시지 않았다」는 구절에 대해 강의는, 대성인이 본존의 찬문에 「일염부제 안에 미증유의 대만다라(一閻浮提の内未曾有の大曼荼羅なり)」라고 쓰신 것과 같은 뜻이라고 본다. 제29장 끝에서 강의가 「아직 널리 행하지 않았다」를 「아직 일찍이 행하지 않았다」로 읽고 그것을 본존의 「미증유」와 잇는 것도 이와 같은 줄기다.
왜 인도와 중국에는 없었는가. 강의는 하늘에 해가 둘이 없고 나라에 임금이 둘이 없는 것처럼, 이 법을 펴는 스승(能弘の師)이 일본에 태어나셨고 인도 · 중국에는 태어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일본에서 인도 · 중국으로 불법이 건너간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강의는 본다. 대성인은 이 글을 쓰신 직후의 「현불미래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仏法必ず東土の日本より出づ
불법은 반드시 동쪽 땅 일본에서 나오리라
월지에서 진단으로, 진단에서 일본으로 동쪽을 향해 온 불법이, 이제 일본에서 다시 서쪽을 향해 돌아간다. 「불법서환(佛法西還)」이라 불리는 이 전망은 제30장의 「월지 · 진단에도 아직 없었다」와 표리를 이룬다.
강의는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삼는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을 묘법 다섯 자의 문저심비 본문의 본존으로 읽고, 제19장의 「탑 안의 묘법연화경의 좌우에 석가모니불 · 다보불」, 제29장의 「다만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와 같은 뜻으로 본다. 「지용천계가 본문 석존의 협사가 된다」는 읽기와 「본문의 석존이 곧 가운데의 묘법」이라는 읽기는 본초의 대지에 어긋난다고 논파한다.
일본 불교사 속의 세 본존 — 쇼토쿠 태자 · 쇼무 천황 · 전교대사
대성인은 이어 일본 불교사에서 세 사람을 차례로 드신다. 그들은 모두 큰 공덕을 쌓은 이들이지만, 「때가 오지 않았으므로」 이 본존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첫째는 상궁태자, 곧 쇼토쿠 태자다. 그는 일본에 불교가 공식 전래된 뒤 수용파와 배척파가 대립할 때 수용파의 중심으로 배척파 모노노베노 모리야를 이기고 일본 불법 흥륭의 기초를 놓았다. 『삼경의소』에서 법화경을 주석했다고 전하고, 사천왕사를 세웠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가 「아직 때가 오지 않았으므로 아미타, 곧 타방의 부처를 본존으로 삼았다」고 하신다.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세계의 부처로, 이 사바세계의 교주가 아닌 「타방」의 부처다.
둘째는 쇼무 천황이다. 그는 도다이사를 세웠는데, 그 본존은 화엄경의 교주 비로자나불이다. 「아직 법화경의 실의를 드러내지 못했다.」 화엄경은 석존이 성도 직후 적멸도량에서 설한 경으로, 제29장에서 본 대로 지용의 보살이 오지 않은 자리다.
셋째는 전교대사다. 대성인은 전교를 앞의 두 사람과 구별하신다. 「대강 법화경의 실의를 드러내 보였다.」 전교는 히에이산에 천태법화종을 세우고, 남도 육종과 논쟁하여 법화경의 우위를 밝혔으며, 원돈계단의 건립을 청원했다. 법화경의 실의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앞의 두 사람과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동방의 아왕을 건립하고 본문의 사보살은 드러내지 않았다」. 히에이산 근본중당의 본존은 동방 정유리세계의 약사여래였다. 법화경의 실의를 알았으면서도 본문의 사보살, 곧 지용의 상수인 상행 등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까닭을 대성인은 한 문장으로 맺으신다. 「결국 지용천계를 위하여 이를 물려주신 까닭이니라.」 전교가 몰라서 드러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일은 지용천계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는 것이다. 제28장에서 본 별부촉, 곧 묘법 다섯 자가 지용의 보살에게만 맡겨졌다는 사실이 여기서 일본 불교사의 해석으로 다시 나타난다. → 전교대사
대망어의 대사가 되지 않으려면
대성인은 이 단락을 지용의 보살 쪽에서 다시 한 번 다지신다. 「이 보살은 부처의 칙명을 받아 가까이 대지 아래에 있느니라.」 종지용출품에서 지용의 보살은 사바세계 아래의 허공에 머물러 있다가 부처의 부름을 받고 솟아 나왔다. 촉루품 뒤에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바로 이 땅 아래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정상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말법에도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부처 앞에서 멸후 홍통을 맹세한 「대망어의 대사」가 된다. 그리고 석가 · 다보 · 시방분신, 세 부처의 미래기도 물거품이 된다. 강의는 이 대목이 앞의 참문들에서 끌어낸 지용 출현의 필연을 뜻한다고 본다. 지용의 보살이 진실한 보살이고 세 부처의 말씀이 진실하다면, 그들은 지금 반드시 나와야 한다. 이것은 신앙의 고백인 동시에 논리의 귀결이다.
대지진과 대혜성 — 사대보살 출현의 선조
마지막 단락에서 대성인은 눈을 하늘과 땅으로 돌리신다. 「정상에 없던 대지진 · 대혜성 등이 일어났느니라.」 정가 원년(1257)의 대지진은 가마쿠라의 집과 절을 무너뜨렸고, 문영 원년(1264)에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큰 혜성이 나타났다. 기근과 역병도 이어졌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천변지이를 용이나 금시조, 아수라 같은 존재의 움직임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성인은 「이것들은 금시조 · 아수라 · 용신 등이 일으킨 변동이 아니요, 오로지 사대보살을 출현시킬 선조이리라」 하신다.
강의는 이 대목이 대지진 · 대혜성의 출현을 지용 출현의 선조로 삼아 지용 보살의 출현을 결론짓는 것이라고 본다. 정상에도 없던 큰 지진, 큰 혜성이라는 것은 위대한 부처의 출현을 뜻한다는 것이다. 대성인은 같은 생각을 「현불미래기」에서 더 자세히 쓰셨다.
而るに去ぬる正嘉年中より今年に至るまで或は大地震・或は大天変・宛かも仏陀の生滅の時の如し、当に知るべし仏の如き聖人生れたまわんか、大虚に亘つて大彗星出づ誰の王臣を以て之に対せん
그런데 지난 정가 연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혹은 대지진, 혹은 대천변이 마치 부처가 태어나고 멸도한 때와 같으니, 마땅히 알라, 부처와 같은 성인이 태어나시려는가. 큰 하늘을 가로질러 대혜성이 나왔으니 어떤 왕이나 신하로써 이에 대응시키겠는가
부처가 태어날 때와 멸도할 때 대지가 진동했다는 경전의 기록처럼, 지금의 대지진 · 대혜성은 어떤 왕이나 신하의 길흉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현불미래기」는 이것이 「세간의 길흉의 대서(大瑞)가 아니라 오로지 이 대법이 흥하고 쇠하는 대서」라고 맺는다.
비가 세차면 용이 크고, 꽃이 성하면 못이 깊다
이 논리를 대성인은 천태의 비유로 뒷받침하신다. 「비가 세찬 것을 보고 용이 큰 줄을 알고, 꽃이 성한 것을 보고 못이 깊은 줄을 안다.」 옛 사람들은 비를 용이 내린다고 여겼다. 비가 세차면 그 비를 내린 용이 크다는 것을 안다. 연꽃이 크고 무성하게 피면 그 꽃이 뿌리 내린 못이 깊다는 것을 안다. 결과의 크기가 원인의 크기를 알려 준다. 정상에도 없던 큰 지진과 큰 혜성은 정상에도 없던 큰 일, 곧 지용의 보살의 출현을 알려 준다. 「현불미래기」도 위 인용 바로 뒤에 이 천태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신다(509쪽).
지혜로운 사람은 일어남을 알고, 뱀은 스스로 뱀을 안다
이어 묘락의 글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일어날 일을 알고 뱀은 스스로 뱀을 안다.」 어구 해설이 밝히듯, 이것은 원래 종지용출품에서 지용의 보살이 솟아오르자 미륵이 그 인연을 물은 대목을 해석한 글이다. 미륵은 지용의 보살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일이 일어나는 까닭을 미리 알고, 뱀은 뱀이 다니는 길을 뱀끼리 안다.
강의는 이 글에 대성인 자신의 증언이 담겨 있다고 본다. 지혜로운 이는 제 지혜를 알고 뱀은 제 발을 안다는 뜻으로, 대성인은 자신이 지용의 보살 곧 자수용신이기 때문에 이 일을 분명히 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지진과 혜성을 보고 그것이 누구의 출현을 알리는지 아는 것은, 바로 그 출현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개면 땅이 밝다
제30장의 마지막 구절은 「하늘이 개면 땅이 밝아지느니, 법화를 아는 자는 세법을 얻을 것이니라」다. 강의는 이 구절에서 대성인이 자신은 법화경의 행자이기 때문에 세간의 법을 안다고 하시고, 그러므로 천변지이는 곧 지용 출현의 선조라고 분명히 단언하셨다고 본다. 법화경이라는 하늘이 맑게 개어 있으면, 세상이라는 땅에서 일어나는 일의 의미가 저절로 밝게 드러난다. 지진과 혜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반란과 외적의 위협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아는 것은 법화경을 아는 이의 눈이다.
현대어역은 이 구절을 한 걸음 더 나아가 풀이한다. 법화를 아는 것은 하늘이 개는 것과 같고, 그에 따라 세법도 저절로 밝아지며, 삼대비법의 본존이 건립되어 즉신성불의 적광토가 눈앞에 세워진다는 것이다. 「천청지명(天晴地明)」은 앎의 비유이면서, 법이 바로 서면 세상이 바로 선다는 「입정안국」의 비유이기도 하다.
강의는 이 장의 끝에서 대성인의 지혜에 비추어 생각하면, 쇼와 20년(1945) 일본의 패전은 삼천 년 이래 미증유의 일로 타국침핍난 가운데 가장 큰 것이며, 정상에도 말법의 오늘까지도 보지 못한 일이라고 하고, 이것이 일염부제 제일 · 문저심비 · 삼대비법의 독일 본문의 본존이 일본 전역에 광선유포될 선조가 아니겠느냐고 맺는다. 이 강의가 전후 창가학회 재건기의 강의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본문
一念三千を識らざる者には仏・大慈悲を起し五字の内に此の珠を裹み末代幼稚の頸に懸けさしめ給う、四大菩薩の此の人を守護し給わんこと太公周公の文王を摂扶し四皓が恵帝に侍奉せしに異ならざる者なり。 文永十年太歳癸酉卯月二十五日 日蓮之を註す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부처가 대자비를 일으키시어 다섯 자 안에 이 구슬을 싸서 말대 유치의 목에 걸게 하시느니라. 사대보살이 이 사람을 수호하실 것은 태공과 주공이 문왕을 보좌하고 사호(四皓)가 혜제를 모신 것과 다르지 않으니라. 문영 10년 태세 계유 4월 25일 니치렌이 이를 적다.
어구 풀이
- 一念三千を識らざる者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자
- 스스로 일념삼천을 관하여 깨달을 힘이 없는 말법의 중생. 강의는 「말법 지금의 이즉단망(理卽但妄)의 범부」라고 한다. 이즉(理卽)은 천태의 육즉(六卽) 가운데 첫째로, 이치로는 부처와 같지만 아직 그것을 듣지도 알지도 못한 단계다.
- 五字の内に此の珠を裹み다섯 자 안에 이 구슬을 싸서
- 「이 구슬」은 일념삼천의 구슬, 「다섯 자」는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 귀한 구슬을 주머니에 싸듯이 일념삼천을 묘법 다섯 자에 담았다는 비유다.
- 末代幼稚말대 유치
- 말법의 어린아이 같은 중생. 제24장의 「덕박구중 · 유치 · 빈궁 · 고로」, 제29장의 「유치에게 복용시킨다」와 같은 말이다.
- 頸に懸けさしめ給う목에 걸게 하시다
- 구슬을 목에 걸어 주면 잃어버리지 않고 늘 몸에 지닌다. 스스로 구슬을 찾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위해 부모가 목에 걸어 주는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 四大菩薩사대보살
- 지용의 보살의 상수인 상행 · 무변행 · 정행 · 안립행.
- 太公周公の文王を摂扶し태공과 주공이 문왕을 보좌하다
- 태공망 여상과 주공 단이 주나라 문왕을 돕고 주 왕조를 세운 일. 「섭부(攝扶)」는 보좌한다는 뜻이다. 어구 해설은 제16장의 「태공 · 주공 단 등은 주 무왕의 신하요 성왕 유치의 권속」과 같은 뜻이라고 하고, 주공 단은 무왕이 죽은 뒤 어린 성왕을 도와 주 왕조를 떠받쳤다고 덧붙인다.
- 四皓が恵帝に侍奉せし사호가 혜제를 모시다
- 사호(四皓)는 진나라 말 난리를 피해 상산(商山)에 숨은 네 은사 동원공 · 기리계 · 하황공 · 녹리 선생. 모두 수염과 눈썹이 하얀(皓) 노인이어서 이렇게 불렸다. 한 고조가 유약한 태자 영(盈)을 폐하고 척부인의 아들 여의를 세우려 하자, 태자의 어머니 여후가 장량과 꾀하여 사호를 태자의 보좌로 모셨다. 고조는 자신이 불러도 오지 않던 상산의 네 노인이 태자 뒤에 스승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 폐적을 거두었다. 이 태자가 고조 사후 즉위한 제2대 혜제(惠帝)다.
- 文永十年太歳癸酉卯月二十五日문영 10년 계유 4월 25일
- 1273년. 「태세(太歲)」는 그 해의 간지를 나타내는 말이고, 「묘월(卯月)」은 음력 4월이다. 대성인 52세, 사도 이치노사와에서다.
- 註す적다
- 주를 달아 적는다는 뜻. 본초의 첫머리에는 「본조 사문 니치렌 찬(本朝沙門日蓮撰)」이라 되어 있다.
다섯 자의 주머니에 싼 일념삼천의 구슬
제31장은 두 문장뿐이다. 그러나 강의가 「본단은 마지막 결문(結文)이다」라고 하듯, 이 두 문장은 본초 전체를 맺는 문장이다. 본초는 「마하지관 제5에 이르되」로 시작하여 일념삼천의 출처를 묻는 데서 출발했다. 그리고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으로 끝난다. 처음과 끝이 일념삼천이다. 그 사이에서 일념삼천은 천태가 『마하지관』에서 밝힌 「관하는 법」에서, 부처가 다섯 자에 싸서 중생의 목에 걸어 주는 「받는 법」으로 바뀌었다.
강의의 해석 — 이즉단망의 범부를 위한 대자비
강의는 이 문장의 뜻을 이렇게 푼다. 말법 지금의 이즉단망의 범부는 자수용신 곧 일념삼천의 부처를 알지 못하여 불행에 빠져 있다. 그러므로 구원원초의 자수용신 곧 니치렌 대성인은 대자비를 일으키시어 묘법 다섯 자의 본존에 자수용신 즉 일념삼천의 상모(相貌)를 도현(圖顯)하시어 말대 유치의 목에 걸어 주셨다. 곧 이것을 믿게 하라는 뜻이다.
현대어역도 같은 방향으로 옮긴다.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말법의 우리 중생에게 구원원초의 본불은 대자비를 일으키시어, 묘법 다섯 자에 일념삼천의 구슬을 싸서 독일 본문의 본존으로 말대 유치의 목에 걸게 하셨다는 것이다.
강의가 받아들이지 않는 두 해석
강의는 이 구절의 「구슬」을 무엇으로 보느냐를 두고 두 해석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는 「묘법 다섯 자의 주머니 안에 본과수득(本果修得)의 사의 일념삼천의 구슬을 쌌다」는 해석이다. 석존이 구원에 수행하여 얻은 과위(本果)의 일념삼천을 다섯 자에 담았다는 읽기다. 다른 하나는 「묘법 다섯 자의 주머니 안에 이의 일념삼천의 구슬을 쌌다」는 해석이다. 천태가 밝힌 이구의 일념삼천을 담았다는 읽기다.
강의는 이 두 해석이 모두 문저심비의 뜻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다만 「묘법 다섯 자의 주머니 안에 구원원초의 자수용신 즉 일념삼천의 구슬을 쌌다」고 배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말일동(久末一同)」, 곧 구원원초와 말법이 하나라는 뜻을 생각해 보면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이란 니치렌 대성인이시라는 것을 가슴에 분명히 새기지 않으면 말법의 대불법은 밝아지지 않는다고 강의는 강조한다.
다섯 자의 체는 일념삼천의 본존, 그 체는 대성인
강의는 이 관계를 한 걸음 더 풀어 말한다. 묘법 다섯 자는 그 체가 일념삼천의 본존이고, 일념삼천의 본존의 체는 대성인이시다. 강의는 이를 천태의 「일심은 곧 일체법이요 일체법은 다만 일심이다」라는 말에 견준다. 『마하지관』 권5상의 일념삼천 대목에 나오는 이 말처럼, 대성인의 한 마음에 갖추어진 일념삼천의 본존은 곧 묘법 다섯 자의 본존이라는 것이다. 사람(人)과 법(法)이 둘이 아니라는 인법일개(人法一箇)의 논리가 이 구슬의 비유 안에 들어 있다. → 六 남묘호렌게쿄
- ①本果修得の事の一念三千の珠본과수득의 사의 일념삼천의 구슬강의가 받아들이지 않는 해석
- ②理の一念三千の珠이의 일념삼천의 구슬강의가 받아들이지 않는 해석
- ③久遠元初の自受用身即一念三千の珠구원원초의 자수용신 즉 일념삼천의 구슬강의의 해석
옷 속의 구슬과 목에 건 구슬
법화경에는 구슬의 비유가 하나 더 있다. 오백제자수기품의 「의리주(衣裏珠)」, 옷 속에 매어 둔 구슬의 비유다. 가난한 사람이 친구 집에서 술에 취해 잠들자, 친구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 구슬을 그의 옷 속에 꿰매어 주고 떠난다. 그는 그것을 모른 채 떠돌며 가난하게 살다가, 오랜 뒤에 친구를 다시 만나 비로소 옷 속의 구슬을 알게 된다. 성문들이 과거에 이미 성불의 인을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잊고 작은 깨달음에 만족했다는 비유다.
옷 속의 구슬은 이미 지니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구슬이다. 제31장의 구슬은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부처가 직접 목에 걸어 주는 구슬이다. 옷 속에 숨겨진 것이 아니라 목에 걸려 늘 보이는 곳에 있다. 스스로 찾을 힘이 없는 이에게는 찾을 필요가 없게 해 준다. 이것이 제16장에서 본 「수지즉관심」, 곧 「우리가 이 다섯 자를 수지하면 저절로 그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신다」는 말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여기서는 두 비유를 나란히 놓아, 재세의 성문을 위한 법화경의 구슬과 말법의 유치를 위한 다섯 자의 구슬이 어떻게 다른지를 읽는다.
사대보살의 수호 — 태공 · 주공과 상산의 사호
둘째 문장은 수호의 약속이다. 「사대보살이 이 사람을 수호하실 것은 태공과 주공이 문왕을 보좌하고 사호가 혜제를 모신 것과 다르지 않으니라.」
대성인은 두 가지 고사를 드신다. 하나는 주나라의 건국이다. 태공망 여상은 위수 가에서 낚시하다가 문왕에게 발탁되어 문왕과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 왕조를 세웠다. 주공 단은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아우로, 무왕이 일찍 죽은 뒤 어린 성왕을 대신해 정사를 맡아 주 왕조의 예악과 제도를 갖추었다. 다른 하나는 한나라의 태자 영의 이야기다. 아버지 고조가 그를 폐하려 할 때, 고조도 불러내지 못한 상산의 네 노인이 그의 뒤에 섰고, 그 덕분에 그는 자리를 지켜 혜제가 되었다.
두 고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보호받는 쪽은 아직 힘이 약한 왕이나 태자이고, 보호하는 쪽은 그를 훨씬 넘어서는 지혜와 덕을 지닌 신하나 스승이다. 그러나 신하와 스승은 왕을 대신하지 않는다. 왕을 왕으로 세운다. 제16장에서 대성인은 같은 비유를 쓰셨다. 「지용천계의 보살은 기심의 석존의 권속이니라. 예컨대 태공 · 주공 단 등은 주 무왕의 신하요 성왕 유치의 권속」(247쪽). 거기서는 지용의 보살이 우리 기심의 석존의 권속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이 비유를 쓰셨고, 여기서는 그 권속이 다섯 자를 받아 지닌 말대 유치를 지킨다는 것을 밝히신다.
이 비유에서 말대 유치는 보호받는 왕의 자리에 있다.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중생이, 다섯 자의 구슬을 목에 건 순간 사대보살이 신하로서 섬기는 왕이 된다. 강의는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 본존을 신수하고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면 우리 몸이 곧 일념삼천의 본존, 대성인과 같은 몸이 되므로, 삼세시방의 부처와 보살, 범천 · 제석 · 사천왕 등이 우리를 수호한다. 이것이 바로 「유치의 목에 걸게 하신다」는 뜻이다.
「현불미래기」에서도 대성인은 같은 약속을 하신다.
諸天善神並びに地涌千界等の菩薩・法華の行者を守護せん此の人は守護の力を得て本門の本尊・妙法蓮華経の五字を以て閻浮提に広宣流布せしめんか
제천선신과 아울러 지용천계 등의 보살이 법화경의 행자를 수호하리니, 이 사람은 수호의 힘을 얻어 본문의 본존,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로 염부제에 광선유포하리라
불력 · 법력을 우러러 신력 · 행력을
강의는 제31장의 해설을 이렇게 맺는다. 그러므로 다만 불력(佛力) · 법력(法力)을 우러러 신력(信力) · 행력(行力)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니치칸 상인의 「일생을 헛되이 보내고 만겁에 후회하지 말라(一生空しく過して万劫悔ゆるなかれ)」는 강한 경계로 배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슬은 이미 목에 걸렸다. 사대보살의 수호도 약속되었다. 남은 것은 그 구슬을 지닌 사람이 믿고 행하는 일이다. 부처와 법의 힘은 저쪽에서 오지만, 믿음과 행의 힘은 이쪽에서 내야 한다. 사력(四力)이 갖추어질 때 수호의 약속이 현실이 된다.
강의는 「다섯 자 안에 싼 구슬」을 구원원초의 자수용신 즉 일념삼천으로 읽고, 「본과수득의 사의 일념삼천」설과 「이의 일념삼천」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섯 자의 체는 일념삼천의 본존이고 그 체는 대성인이다. 이 본존을 신수하는 이를 사대보살이 수호하니, 불력 · 법력을 우러러 신력 · 행력을 다하라고 맺는다.
- 太公・周公文王태공 · 주공이 문왕을 보좌
- 주 왕조 건국
- 주공은 어린 성왕도 보좌(제16장 成王幼稚の眷属성왕 유치의 권속)
- 四皓恵帝상산의 사호가 태자 영, 곧 혜제를 모심
- 폐적의 위기에서 자리를 지킴
- 四大菩薩末代幼稚사대보살이 말대 유치를 수호
- 四大菩薩の此の人を守護し給わんこと사대보살이 이 사람을 수호하실 것
문영 10년 4월 25일 — 「니치렌이 이를 적다」
본초는 날짜와 서명으로 끝난다. 문영 10년 계유 4월 25일. 대성인은 이 무렵 사도의 쓰카하라에서 이치노사와로 옮기신 지 거의 한 해가 지났다. 문영 8년(1271) 9월 다쓰노쿠치 법난과 사도 유배, 쓰카하라 삼매당의 첫 겨울, 문영 9년(1272) 2월의 「개목초」 완성을 지나, 이듬해 봄에 이 글이 완성되었다. 「개목초」가 「사람」, 곧 말법의 주사친 삼덕을 밝힌 글이라면, 「관심의 본존초」는 「법」, 곧 말법의 중생이 받아 지닐 본존을 밝힌 글이라는 것이 창가학회 교학의 일반적인 이해다(서강 참조).
첫머리에서 「본조 사문 니치렌 찬」이라 하신 글을, 끝에서는 「니치렌이 이를 적다(註す)」로 맺으셨다. 이튿날 대성인은 이 글에 짧은 편지를 붙여 시모사의 도키조닌에게 보내신다. 그것이 다음에 읽을 송장이다.
본문
観心本尊抄送状 帷一つ・墨三長・筆五官給び候い了んぬ、観心の法門少少之を注して大田殿・教信御房等に奉る、此の事日蓮身に当るの大事なり之を秘す、 無二の志を見ば之を開祏せらる可きか、 此の書は難多く答少し未聞の事なれば人耳目之を驚動す可きか、設い他見に及ぶとも三人四人座を並べて之を読むこと勿れ、仏滅後二千二百二十余年未だ此の書の心有らず、国難を顧みず五五百歳を期して之を演説す乞い願くば一見を歴来るの輩は師弟共に霊山浄土に詣でて三仏の顔貌を拝見したてまつらん、恐恐謹言。 文永十年太歳癸酉卯月廿六日 日 蓮 花押 富木殿御返事
관심의 본존초송장 홑옷 한 벌, 먹 세 자루, 붓 다섯 자루를 보내 주신 것을 잘 받았느니라. 관심의 법문을 조금 적어 오타님과 교신 스님 등에게 드리느니라. 이 일은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이니 이를 비밀로 하느니라. 둘이 없는 뜻을 보거든 이를 열어 보이시라. 이 글은 힐난이 많고 답이 적으며 아직 듣지 못한 일이므로 사람들이 귀와 눈을 놀라게 하리라. 설령 다른 사람이 보게 되더라도 서너 사람이 자리를 나란히 하여 이를 읽지 말라. 부처가 멸도한 후 이천이백이십여 년 동안 아직 이 글의 마음은 있지 않았느니라. 나라의 난을 돌아보지 않고 오오백세를 기하여 이를 펴 설하느니라. 바라건대 한 번 보고 온 이들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영산정토에 나아가 세 부처의 얼굴을 배견하리라. 두렵고 삼가 아뢰느니라. 문영 10년 태세 계유 4월 26일 니치렌 화압 도키님 답서
어구 풀이
- 帷가타비라(홑옷)
- 여름 옷의 한 가지. 본래 「한쪽」이라는 뜻으로 옛날에는 안감 없는 옷의 총칭이었다. 헤이안 중기에는 공가 의장의 속옷인 홑 고소데를 가리켰고, 고소데가 겉옷이 된 뒤로는 삼베나 명주 홑옷을 가타비라라 불렀다. 4월 말, 여름을 앞둔 때의 선물이다.
- 墨三長・筆五官먹 세 자루 · 붓 다섯 자루
- 「장(長)」은 먹을 세는 단위(정 · 挺), 「관(官)」은 붓대를 세는 단위(관 · 管)를 소리를 빌려 쓴 것으로 보인다.
- 大田殿오타님
- 오타 고로자에몬노조 조묘(大田乘明, 오타조묘). 가마쿠라 막부 문주소(問注所)의 관리로, 동료인 도키조닌의 절복으로 입신했다. 이후 도키조닌 · 소야교신 · 긴바라 법교 등과 함께 시모사 나카야마를 중심으로 대성인을 외호한 강신자다. 도키 · 소야와 친교가 깊어 공동으로 받은 편지도 많다.
- 教信御房교신 스님
- 소야 지로베노조 교신(曾谷教信, 소야교신). 시모사 가쓰시카군 소야 사람으로, 도키조닌에 이어 대성인의 제자가 되었다. 뒤에 적문을 읽지 않겠다는 아견(迹門不讀)을 일으켜 대성인의 훈계를 받은 일이 있다(아래 해설).
- 日蓮身に当るの大事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
- 대성인 자신의 몸에 걸린, 그 몸으로써 밝히는 가장 중대한 일.
- 開祏개탁
- 열어 보임. 강의는 흔히 쓰는 「拓」이 아니라 「祏」(돌 석 대신 보일 시 변) 자를 쓰신 데 주목하여, 참으로 가슴을 열고 배견하라는 뜻을 읽는다. 블로그 本文에는 이 글자가 깨져 있어 강의 講義의 표기로 보충했다.
- 難多く答少し힐난이 많고 답이 적다
- 본초가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물음이 많고 대답은 짧고 함축되어 있다는 뜻.
- 三人四人座を並べて서너 사람이 자리를 나란히 하여
- 여럿이 모여 앉아 함께 읽는 것을 경계하신 말.
- 仏滅後二千二百二十余年불멸 후 이천이백이십여 년
- 대성인 당시의 일반적인 연대관(석존 입멸을 주 목왕 52년 임신, 기원전 949년으로 보는 설)에 따르면 문영 10년(1273)은 불멸 후 2222년에 해당한다.
- 国難나라의 난
- 현대어역은 「왕난을 받아 사도 외딴섬에 유배되어 있는 몸」이라 풀이한다. 대성인 자신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받은 난을 가리킨다.
- 五五百歳오오백세
- 다섯째 오백 년, 곧 말법의 처음. 본초의 정식 제목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와 같은 말이다.
- 霊山浄土 · 三仏の顔貌영산정토 · 세 부처의 얼굴
- 영산정토는 석존이 법화경을 설한 영취산의 정토. 「세 부처」는 허공회에 모인 석가모니불 · 다보불 · 시방분신의 제불로, 모든 부처를 뜻한다.
- 富木殿御返事도키님 답서
- 받는 이는 도키조닌. 도키조닌이 보낸 공양에 대한 답서의 형식이다. → 도키조닌
사도에서 온 편지 — 홑옷과 먹과 붓
송장은 공양에 대한 감사로 시작한다. 홑옷 한 벌, 먹 세 자루, 붓 다섯 자루. 여름을 앞둔 4월 말, 유배지의 스승에게 제자가 보낸 선물이다. 먹과 붓은 사도의 대성인에게 무엇보다 귀한 물건이었다. 대성인은 1년 전 「사도어서」에서 이렇게 쓰셨다.
佐渡の国は紙候はぬ上面面に申せば煩あり一人ももるれば恨ありぬべし此文を心ざしあらん人人は寄合て御覧じ料簡候て心なぐさませ給へ
사도국은 종이가 없는 데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로 쓰면 번거롭고,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원망이 있을 것이니, 이 편지를 뜻있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보고 헤아려 마음을 위로하시라
종이도 귀한 섬에서 대성인은 「개목초」와 「관심의 본존초」를 쓰셨다. 도키조닌이 보낸 먹과 붓은 그 집필을 떠받친 공양이었다. 「관심의 본존초」의 진필은 도키조닌이 보존했고, 오늘날 지바현 이치카와시의 나카야마 법화경사에 전한다.
「관심의 법문을 조금 적어 오타님과 교신 스님 등에게 드린다」는 구절은, 받는 이가 「도키님 답서」로 되어 있으면서도 이 글이 오타조묘와 소야교신에게도 함께 주어진 것임을 보여 준다. 도키 · 오타 · 소야는 모두 시모사의 이웃으로, 대성인의 사도 유배 중에 서로 연락하며 단결해 신앙을 지켰다. 대성인은 다쓰노쿠치 법난 직후 세 사람에게 함께 보내신 「전중경수법문」에서 이렇게 격려하신 일이 있다.
一人も来らせ給へば三人と存じ候なり
한 사람이 오시더라도 세 사람으로 여기겠노라
「관심의 법문을 조금 적었다(少少之を注して)」는 겸손한 표현이다. 본초 전체가 「조금」일 리 없다. 그러나 대성인은 이렇게 쓰시고, 바로 다음 문장에서 이 글의 무게를 밝히신다.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 — 둘이 없는 뜻으로 열라
「이 일은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이니 이를 비밀로 한다.」 강의는 이 「대사」의 내용을 이렇게 설명한다. 「관심의 본존초」에는 말법 만년 바깥 미래까지도 유포되어 일체중생이 즉신성불할 본존이 밝혀져 있다. 그러므로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몸에 해당한다(身に当る)」는 말은 무게가 있다. 제29장에서 대성인은 부처의 출세가 「말법의 처음 나와 같은 자를 위함」이라 하셨고, 제30장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일어남을 알고 뱀은 스스로 뱀을 안다」를 인용하셨다. 본초가 밝힌 지용 보살의 출현과 본존의 건립은 남의 일을 해설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쓰시는 대성인 자신의 몸에 걸린 일이었다. 그러므로 「비밀로 한다」.
강의는 이렇게 일기(一期)의 대사를 말씀하시기 때문에 「둘이 없는 뜻을 보거든 이를 열어 보이시라(無二の志を見ば之を開祏せらる可きか)」라고 하셨다고 본다. 그리고 「개탁」의 「탁」 자에 주목한다. 흔히 쓰는 「拓」(돌 석 변)이 아니라 「祏」(보일 시 변)을 쓰셨으니, 참으로 가슴을 열고 배견하라는 뜻을 이 글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祏」는 본래 사당에서 신주를 모시는 돌 상자를 뜻하는 글자다. 아무에게나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둘이 없는 뜻, 곧 순일한 신심을 보았을 때 경건하게 열어 보이라는 뜻이다. 현대어역은 「순일한 신심으로 둘이 없는 뜻이 있으면 이를 열어 배독하라」고 옮긴다.
「서너 사람이 자리를 나란히 하여 읽지 말라」
대성인은 이 글이 왜 비밀이어야 하는지 이유를 덧붙이신다. 「이 글은 힐난이 많고 답이 적으며 아직 듣지 못한 일이므로 사람들이 귀와 눈을 놀라게 하리라.」 본초는 문답으로 짜여 있고, 묻는 이의 힐난은 길고 날카로운 반면 대답은 짧고 함축되어 있다. 게다가 그 내용은 일찍이 누구도 설하지 않은 「미문(未聞)」의 법문이다. 준비 없이 읽으면 놀라고, 놀라면 오해한다.
그래서 대성인은 「설령 다른 사람이 보게 되더라도 서너 사람이 자리를 나란히 하여 이를 읽지 말라」고 엄하게 경계하신다. 강의는 이 경계와 관련해 니치칸 상인의 일화를 든다. 니치칸 상인은 사십여 명에게 이 본존초를 강의하면서 「사십여 명은 차라리 한 사람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셨다고 한다. 여럿이 모여 앉아 있어도 각자가 한 사람으로서 이 글과 마주하는 순일한 마음이 아니면 본존초를 배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 말에서 우리가 얼마나 유일무이한 신심에 서지 않으면 본존초를 배견하기 어려운가를 보여 준다고 한다.
이 경계가 얼마나 절실했는지는 뒷날의 일이 보여 준다. 송장의 받는 이 가운데 한 사람인 소야교신은 건치 원년(1275) 무렵 본초의 「일품이반 밖은 소승교 · 사교 · 미득도교 · 복상교라 이름한다(一品二半よりの外は小乗教・邪教・未得道教・覆相教と名く)」(249쪽) 같은 글을 잘못 해석하여, 적문은 득도할 수 없는 가르침이니 읽지 않겠다는 생각을 일으켰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득의초」(972쪽)에서 본초 곳곳에서 「적문을 버려라」고 쓰신 것은 지금 우리가 읽는 적문이 아니라 히에이산 천태종의 때 지난 적문을 깨뜨린 것이라고 바로잡으셨다. 제5편에서 본 오중삼단의 정밀한 논리를 한 구절만 떼어 읽으면 이런 오해가 생긴다. 「힐난이 많고 답이 적다」는 대성인의 염려는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이천이백이십여 년 동안 없던 마음 — 오오백세를 기하여
「부처가 멸도한 후 이천이백이십여 년 동안 아직 이 글의 마음은 있지 않았다.」 본초의 제29장에서 대성인은 정상 이천 년에 지용의 보살이 나오지 않은 까닭을 밝히셨고, 제30장에서는 인도에도 중국에도 아직 이 본존이 없었다고 하셨다. 송장의 이 구절은 그것을 한 줄로 요약한다. 용수도 천친도, 남악도 천태도, 전교도 이 글의 마음, 곧 문저의 일념삼천과 그것을 다섯 자에 싼 본존을 밝히지 않았다.
「나라의 난을 돌아보지 않고 오오백세를 기하여 이를 펴 설한다.」 현대어역은 이 「국난」을 대성인 자신이 받은 왕난, 곧 사도 유배라고 풀이한다. 국가 권력의 박해를 받아 외딴섬에 유배된 몸이면서도 그것을 돌아보지 않고, 오오백세, 곧 말법의 처음이라는 때를 기하여 이 법문을 펴신다는 것이다. 본초의 정식 제목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초」가 송장의 이 구절에서 다시 울린다. 「오오백세에 비로소(始)」 밝히는 관심의 본존. 제목이 예고하고, 제29장 · 제30장이 경문과 예언으로 증명한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사제 함께 영산정토에
송장의 마지막은 서원이다. 「바라건대 한 번 보고 온 이들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영산정토에 나아가 세 부처의 얼굴을 배견하리라.」 강의는 이 「한 번 보고 온 이는 사제 함께 영산정토에 나아가자」는 힘찬 금언에 한층 몸이 죄어드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현대어역은 이 구절에 「반드시 굳게 믿어 끝까지 관철하여」를 덧붙인다.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글을 받아 읽은 이가 끝까지 믿음을 지킬 때, 스승과 제자가 함께 영산의 정토에서 석가 · 다보 · 시방의 부처를 뵙게 된다. 제31장에서 사대보살이 말대 유치를 수호한다고 하신 약속이, 송장에서는 스승이 제자와 함께 영산에 가겠다는 약속으로 이어진다.
강의가 송장에서 읽는 것
강의는 송장의 해설에서 몇 가지를 더 말한다. 정상 이천 년의 어떤 대논사 · 대인사보다도, 저 천태종의 좌주보다도 말법의 가장 낮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더 뛰어나다는 대성인의 유계(遺誡)는 실로 다만 이 본존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본존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삼악도의 고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체중생 즉신성불의 본존이 엄연히 계시는데도 일본의 대다수 사람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모처럼 본존을 신앙하면서도 설한 대로 행하지 않는 이가 많다. 강의는 창가학회원이야말로 「세 부처의 얼굴을 배견한다」는 일이 이루어질 자격이 있다고 하고, 그러려면 어떤 강적과 대난도 넘어서는 금강 보기(寶器)와 같은 굳은 신심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강의는 본초를 읽는 순서를 권한다. 「관심의 본존초」를 배독할 때는 먼저 이 송장을 배독하여 본초의 중대함을 잘 확인한 뒤 본문에 들어가고, 본문의 배독을 마치면 다시 이 송장을 배독하여 거듭 생각하고 세 번 반성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송장을 맨 끝에 두면서도, 서강에서 그 첫머리를 미리 소개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강의는 송장의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를 본초에 일체중생 즉신성불의 본존이 밝혀져 있기 때문이라고 읽고, 「개탁(開祏)」의 글자에서 가슴을 열고 배견하라는 뜻을 본다. 「서너 사람이 나란히 앉아 읽지 말라」는 경계를 니치칸 상인의 「사십여 명은 차라리 한 사람」이라는 말로 풀며, 송장을 본초의 처음과 끝에 거듭 읽으라고 권한다.
- ①공양에 대한 감사帷一つ・墨三長・筆五官給び候い了んぬ홑옷 · 먹 · 붓을 받았노라
- ②받는 이観心の法門少少之を注して大田殿・教信御房等に奉る관심의 법문을 조금 적어 오타님 · 교신 스님 등에게 드림
- ③무게此の事日蓮身に当るの大事なり之を秘す이 일은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이니 비밀로 함
- ④여는 조건無二の志を見ば之を開祏せらる可きか둘이 없는 뜻을 보거든 열어 보이라
- ⑤읽는 자세三人四人座を並べて之を読むこと勿れ서너 사람이 나란히 앉아 읽지 말라
- ⑥때仏滅後二千二百二十余年未だ此の書の心有らず불멸 후 2220여 년 이 글의 마음은 없었음五五百歳を期して之を演説す오오백세를 기하여 펴 설함
- ⑦서원師弟共に霊山浄土に詣でて三仏の顔貌を拝見したてまつらん사제 함께 영산정토에서 세 부처를 배견하리라
이 편을 맺으며
제7편은 하나의 물음에서 출발했다. 묘법 다섯 자를 맡은 지용의 보살은 언제 나오는가. 제29장은 세 번 청하고 세 번 말리는 수량품의 의식을 갖추어 그 대답을 꺼냈다. 다섯 개의 밝은 거울에 비추면 부처의 뜻은 영산 팔 년의 사람들에게도, 정상 이천 년의 사람들에게도 있지 않고, 말법의 처음 「나와 같은 자」에게 있다. 정법에는 기근도 때도 없어 사의의 대사가 소승 · 권교로 재세의 씨앗을 거두었고, 상법에는 남악 · 천태가 적문을 겉, 본문을 속으로 하여 일념삼천을 이론으로 다했으나 사행의 다섯 자와 본문의 본존은 아직 행하지 않았다. 원기는 있었으나 원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이 뒤집힌 말법의 처음, 지용의 보살은 비로소 나와 다만 다섯 자로 유치한 이들에게 약을 먹인다. 비방하는 자도 그 비방을 인으로 일어선다. 이 보살들은 절복을 나타낼 때는 현왕으로, 섭수를 행할 때는 승으로 나타난다.
제30장은 그 때를 예언으로 증명했다. 석존의 후오백세, 천태의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 묘락의 「명리가 없지 않다」, 전교의 「말법이 매우 가깝다」와 「당의 동쪽 · 갈의 서쪽 · 투쟁의 때」. 그 투쟁의 때는 자계반역과 서해침핍으로 눈앞에 와 있다. 이 때 「본문의 석존을 협사로 하는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선다. 쇼토쿠 태자도 쇼무 천황도 전교대사도 때가 오지 않아 세우지 못한 본존이다. 정상에 없던 대지진과 대혜성은 비가 세찬 데서 용의 크기를 알듯 그 출현의 크기를 알린다. 하늘이 개면 땅이 밝다.
제31장은 이 모든 것을 두 문장으로 맺었다.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부처는 대자비를 일으켜 다섯 자 안에 구슬을 싸서 목에 걸어 준다. 사대보살은 태공 · 주공이 문왕을, 상산의 사호가 혜제를 섬기듯 그 사람을 지킨다. 그리고 송장은 이 글을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라 부르고, 둘이 없는 뜻으로 열고, 서너 사람이 나란히 앉아 가볍게 읽지 말며, 사제 함께 영산에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이것으로 「관심의 본존초」 일곱 편의 본론이 끝난다. 다음 절에서 여덟 편 전체를 돌아본다.
관심의 본존초 여덟 편을 돌아보며
처음과 끝 — 일념삼천에서 일념삼천으로
「관심의 본존초」는 「마하지관 제5에 이르되 세간과 여시는 하나이니 열고 합함의 차이니라」로 시작했다. 그리고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으로 끝났다. 처음에 대성인이 물은 것은 일념삼천의 출처였다. 끝에 대성인이 보이신 것은 그 일념삼천이 누구에게 어떻게 건네지는가였다. 이 여덟 편은 그 사이의 길을 따라왔다.
서강에서는 본초가 문영 10년(1273) 사도 이치노사와에서 쓰였고, 정식 제목이 「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초」이며, 「개목초」가 사람의 본존을 연 글이라면 이 글은 법의 본존을 연 글로 일컬어진다는 것을 보았다. 제목 속 「오오백세」의 때는 이번 편 제29~30장과 송장에서 경문과 예언으로 확인되었다.
제1편에서 제3편까지 — 관하는 법에서 받는 법으로
제1편(제1~4장)은 일념삼천의 출처를 『마하지관』 권5에서 찾았다.
夫れ一心に十法界を具す一法界に又十法界を具すれば百法界なり
무릇 일심에 십법계를 갖추고 한 법계에 또 십법계를 갖추니 백법계니라
천태는 이 일념삼천을 『마하지관』 제5권 정수지관(正修止觀)에 와서야 처음 밝혔고, 그것이 정과 비정, 곧 초목과 국토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대성인은 확인하셨다. 일념삼천은 천태가 자기 마음을 관하여 얻은 「관법」의 극치였다.
제2편(제5~10장)은 「관심」을 정의했다.
観心とは我が己心を観じて十法界を見る是を観心と云うなり
관심이란 나의 기심을 관하여 십법계를 보는 것, 이것을 관심이라 하느니라
그러나 내 얼굴을 보려면 거울이 필요하듯, 내 마음의 십계를 보려면 법화경과 천태의 글이라는 명경이 필요하다. 대성인은 인계에 갖추어진 육도와 삼성을 하나하나 보이시고, 가장 믿기 어려운 불계마저 범부의 마음에 갖추어져 있음을 밝히셨다. 난신난해의 극치였다.
제3편(제11~16장)은 그 난신난해를 푸는 열쇠를 내놓았다.
釈尊の因行果徳の二法は妙法蓮華経の五字に具足す我等此の五字を受持すれば自然に彼の因果の功徳を譲り与え給う
석존의 인행과덕의 두 법은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에 구족하니, 우리가 이 다섯 자를 수지하면 저절로 그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시느니라
수지즉관심이다. 스스로 관하여 삼천을 깨닫는 길이 아니라, 다섯 자를 받아 지니는 것이 곧 관심이 되는 길. 본초의 중심 전환이 여기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다섯 자를 받아 지닌 이의 국토는 「삼재를 떠나고 사겁을 벗어난 상주의 정토」인 본시의 사바세계다.
이번 편 제31장의 「다섯 자 안에 이 구슬을 싸서 말대 유치의 목에 걸게 하신다」는 이 제3편의 수지즉관심을 비유로 다시 말한 것이다. 일념삼천을 알지 못하는 자도 다섯 자를 받아 지니면 그 구슬을 지닌 사람이 된다. 처음 일념삼천의 출처를 물을 때 그것은 천태의 관법이었으나, 끝에 와서는 부처가 목에 걸어 주는 구슬이 되었다. 「관(觀)」에서 「수지(受持)」로, 이(理)에서 사(事)로. 이것이 본초 전체가 그리는 궤적이다.
제4편에서 제6편까지 — 본존과 그 때
제4편(제17~20장)은 그 다섯 자를 수지할 대상, 곧 본존을 밝혔다. 권적숙익의 본존, 본문탈익의 본존, 그리고 「말법에 와서 비로소 이 불상을 출현시키실 것인가」로 끝나는 문저하종의 본존. 제19장의 이 물음은 이번 편 제29장의 「이 때 지용의 보살이 비로소 세상에 출현하여 다만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로」, 제30장의 「일염부제 제일의 본존이 이 나라에 서리라」로 답을 얻었다.
제5편(제21~25장)은 오중삼단으로 법화경 전체와 일대 성교를 꿰뚫어,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을 대비했다.
在世の本門と末法の始は一同に純円なり但し彼は脱此れは種なり彼は一品二半此れは但題目の五字なり
재세의 본문과 말법의 처음은 똑같이 순원이니라. 다만 저것은 탈이요 이것은 종이며, 저것은 일품이반이요 이것은 다만 제목의 다섯 자니라
「저것은 탈, 이것은 종」. 이번 편 제29장에서 정법의 사의가 재세의 씨앗을 「탈」시켰고 말법의 지용은 「종」을 심는다는 대비가 바로 이 오중삼단의 결론이 시간 위에 펼쳐진 것이다. 제30장의 「명리」가 하종익이라는 어구 해설도 같은 줄기다.
제6편(제26~28장)은 본문의 서 · 정 · 유통을 경문으로 짚고, 신력품의 결요부촉에서 묘법 다섯 자가 상행 등 지용의 사대보살에게만 맡겨졌음을 보였다. 문수 · 관음 · 약왕 · 보현 같은 적화 · 타방의 보살은 말법의 홍법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지용은 언제 오는가. 이번 편은 그 물음으로 시작했다.
「관심」과 「본존」이 만나는 자리
본초의 제목은 「관심의 본존」이다. 관심은 수행하는 이의 쪽, 본존은 받아 지니는 대상의 쪽이다. 여덟 편을 지나 보면, 이 두 말이 처음에는 따로 있다가 끝에서 하나로 만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제2편에서 관심은 「나의 기심을 관하여 십법계를 보는 것」이었다. 제3편에서 그것은 「다섯 자를 수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제4편에서 그 다섯 자를 나타낸 본존이 밝혀졌다. 그리고 제31장에서 부처는 그 본존을 말대 유치의 목에 걸어 주었다. 받아 지니는 일(관심)과 받아 지닐 대상(본존)이 목에 건 구슬 하나 안에서 만난다. 강의가 제29장에서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는 본존이고 「유치에게 복용시킨다」는 관심이라고 읽은 것도 같은 만남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구슬을 건네는 이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이 이번 편의 일이었다. 대성인은 「나와 같은 자」, 「지혜로운 사람은 일어남을 알고 뱀은 스스로 뱀을 안다」, 「니치렌의 몸에 해당하는 대사」라는 말로, 이 법이 해설의 대상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몸에 걸린 일임을 보이셨다. 법(본존)과 그 법을 건네는 사람이 하나라는 것. 이것이 이 연구가 六 남묘호렌게쿄 페이지에서 「인법일개」라 부른 것의 「관심의 본존초」 속 모습이다. → 六 남묘호렌게쿄
다시 송장으로
강의는 본초를 배독할 때 먼저 송장을 읽고, 본문을 마친 뒤 다시 송장을 읽으라고 권했다. 여덟 편을 지나 다시 송장을 읽으면, 처음 읽을 때는 막연했던 말들이 구체적인 뜻으로 돌아온다. 「힐난이 많고 답이 적다」는 제11장부터 이어진 끈질긴 문답이다. 「아직 듣지 못한 일」은 수지즉관심과 문저하종의 본존이다. 「이천이백이십여 년 동안 없던 마음」은 천태도 전교도 행하지 않은 사행의 다섯 자다. 「오오백세를 기하여」는 제29장과 제30장이 증명한 말법의 처음이다. 그리고 「사제 함께 영산정토에」는 그 다섯 자를 목에 건 이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킨 뒤에 이를 자리다.
「관심의 본존초」는 사도의 외딴섬에서, 종이도 귀한 유배지에서, 제자가 보낸 먹과 붓으로 쓰였다. 그 글은 일념삼천이라는 가장 깊은 철학에서 출발해, 그것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의 목에 구슬을 걸어 주는 데서 끝났다. 이 연구가 여덟 편에 걸쳐 따라온 것은 그 길이다.
- 서강如来滅後五五百歳始観心本尊抄여래멸후 오오백세 시 관심본존초문영 10년 사도
- 一일념삼천의 출처1~4장夫れ一心に十法界を具す무릇 일심에 십법계를 갖춘다천태의 관법
- 二관심5~10장観心とは我が己心を観じて十法界を見る관심이란 기심을 관하여 십법계를 보는 것
- 三수지즉관심11~16장我等此の五字を受持すれば自然に彼の因果の功徳を譲り与え給う우리가 이 다섯 자를 수지하면 저절로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신다
- 四세 가지 본존17~20장末法に来入して始めて此の仏像出現せしむ可きか말법에 와서 비로소 이 불상을 출현시키실 것인가
- 五오중삼단21~25장彼は脱此れは種なり저것은 탈, 이것은 종
- 六서 · 정 · 유통26~28장결요부촉, 다섯 자는 지용에게
- 七시절과 총결29~31장 · 송장五字の内に此の珠を裹み末代幼稚の頸に懸けさしめ給う다섯 자 안에 구슬을 싸서 말대 유치의 목에 걸게 하신다
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관심의 본존초」 · 「관심의 본존초송장」(문영 10년, 1273).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238–255쪽
- 니치렌 대성인, 「현불미래기」(505–509쪽) · 「법화취요초」(331–338쪽) · 「선시초」(256–293쪽) · 「개목초」(186–237쪽) · 「사도어서」(956–961쪽) · 「전중경수법문」(1000–1001쪽) · 「관심의 본존득의초」(972쪽) · 「치병대소권실위목」(995–998쪽) · 「본인묘초」(870–877쪽 부근, 쪽 확인 중)
- 『묘법연화경』 T9 no.262 — 법사품 제10 · 종지용출품 제15 · 여래수량품 제16 · 분별공덕품 제17 · 상불경보살품 제20 · 여래신력품 제21 · 촉루품 제22 · 약왕보살본사품 제23 · 오백제자수기품 제8
- 『대반열반경』 T12 no.374
- 천태대사, 『마하지관』 T46 no.1911 · 『법화문구』 T34 no.1718
- 묘락대사, 『법화문구기』 T34 no.1719
- 전교대사, 『수호국계장』(권상의 하)
- 니치칸 상인, 「관심본존초 문단」(강의를 통해)
연구 · 강의
- 창가교학연구실 블로그, 「0238~0255 如来滅後五五百歳始観心本尊抄」 제29장 · 제30장 · 제31장 · 관심본존초송장 (2020)
- 창가학회 교학부, 『世界広布の翼を広げて 教学研鑽のために — 観心本尊抄』 제2판, 聖教新聞社, 2024
- 茂田井教亨, 『観心本尊抄研究序説 — 宗学体系化への試み』, 立正大学 학위논문, 1989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