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탑품의 세 칙선과 제바품의 두 간효, 곧 「다섯 개의 봉조」를 받든 보살들은 권지품에서 부처님 멸후의 홍교를 맹세했다. 그 맹세의 노래인 이십행게에는 말법에 법화경을 넓히는 사람에게 세 부류의 원수가 일어나리라는 예언이 새겨져 있다. 개목초 제8편은 이 예언을 거울로 꺼내 들고, 가마쿠라 시대 일본의 승속을 그 거울에 비춘다. 비추어진 것은 둘이다. 하나는 이미 나라 안에 가득한 삼류의 강적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강적에게서 욕설과 칼과 유배를 받은 단 한 사람의 행자다. 그런데 행자라면 왜 하늘이 지켜 주지 않는가 — 상권 제28장에서 「이 글의 간심」이라 하신 물음이 여기서 정면으로 다루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문답 끝에 대성인은 「하늘도 버리시라, 온갖 난도 만나리라, 신명을 기약하리라」라는 결의와 함께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 일본의 안목이 되리라, 일본의 대선이 되리라」라는 서원을 세우신다.
개목초는 첫머리에서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 셋」으로 주사친을 내걸었다. 상권은 유교 · 외도 · 불교를 차례로 견주는 오중의 상대로 법화경 본문에 이르렀고, 하권은 이승과 보살이 법화경에 진 깊은 은혜, 지용보살의 출현, 보탑품 · 제바품의 다섯 칙명을 거쳐 왔다. 그 긴 논증이 이 편에서 마침내 「말법에 누가 그 경을 몸으로 읽었는가」라는 한 점으로 모인다. 강의는 이를 「법화경의 행자를 드러내는 단락」이라 부르고, 이 결론이 곧 서두의 주사친 삼덕으로 돌아간다고 본다.
이 편의 논리는 거울의 논리다. 대성인은 경문을 「명경(明鏡)」이라 부르며, 세 강적의 모습이 나라 안의 선 · 율 · 염불의 고승과 그 단나들 위에 「한 점의 흐림도 없이」 떠올랐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거울은 동시에 비추는 사람 자신도 비춘다. 「저 삼류의 원적에 우리가 들어 있는가, 법화경의 행자 안에 있는가」라는 물음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개목초를 읽는 모든 사람에게 되돌아온다.
이 편은 또한 개목초가 쓰인 현장 그 자체를 담고 있다. 「니치렌이라 하던 자는 지난해 9월 12일 자축의 때에 목이 베였다. 이는 혼백이 사도국에 이르러…」라는 첫머리의 고백은 다쓰노쿠치 법난과 사도 유배를 거친 대성인이 눈 덮인 쓰카하라에서 이 글을 쓰고 있음을 스스로 밝힌다. 강의는 니치칸 상인의 「개목초 문단」을 따라 이 대목을 대성인의 발적현본과 연결해 읽는다.
이 편의 장
- 제1편주사친 삼덕1~10장
- 제2편권적상대11~17장
- 제3편본적상대18~24장
- 제4편말법 법화경 행자의 소유25~28장
- 제5편이승 · 보살의 법화 심은29~34장
- 제6편지용출현과 개근현원35~41장
- 제7편보탑품 삼개의 칙선 · 제바품 이개의 간효42~48장
- ● 제8편삼류의 강적과 법화경의 행자49~56장
물음: 삼류는 이미 있다. 행자는 누구인가 — 그리고 왜 하늘은 지키지 않는가(28장의 물음에 대한 답)
- 제9편전중경수 · 섭수와 절복 · 결권57~61장
본문
已上五箇の鳳詔にをどろきて勧持品の弘経あり、明鏡の経文を出して当世の禅・律・念仏者・並びに諸檀那の謗法をしらしめん、日蓮といゐし者は去年九月十二日子丑の時に頸はねられぬ、 此れは魂魄・佐土の国にいたりて返年の二月・雪中にしるして有縁の弟子へをくればをそろしくて・をそろしからず・みん人いかに・をぢぬらむ、 此れは釈迦・多宝・十方の諸仏の未来日本国・当世をうつし給う明鏡なりかたみともみるべし。勧持品に云く「唯願くは慮したもうべからず仏滅度の後恐怖悪世の中に於て我等当に広く説くべし、 諸の無智の人の悪口罵詈等し及び刀杖を加うる者有らん我等皆当に忍ぶべし、悪世の中の比丘は邪智にして心諂曲に未だ得ざるを為れ得たりと謂い我慢の心充満せん、 或は阿練若に納衣にして空閑に在つて自ら真の道を行ずと謂つて人間を軽賤する者有らん利養に貪著するが故に白衣の与に法を説いて世に恭敬せらるることを為ること六通の羅漢の如くならん、 是の人悪心を懐き常に世俗の事を念い名を阿練若に仮て好んで我等が過を出さん、 常に大衆の中に在つて我等を毀らんと欲するが故に国王・大臣・婆羅門・居士及び余の比丘衆に向つて誹謗して我が悪を説いて是れ邪見の人・外道の論議を説くと謂わん、 濁劫悪世の中には多く諸の恐怖有らん悪鬼其身に入つて我を罵詈毀辱せん、濁世の悪比丘は仏の方便随宜の所説の法を知らず悪口し顰蹙し数数擯出せられん」等云云、 記の八に云く「文に三初に一行は通じて邪人を明す即ち俗衆なり、次に一行は道門増上慢の者を明す、三に七行は僣聖増上慢の者を明す、 此の三の中に初は忍ぶ可し次の者は前に過ぎたり第三最も甚だし後後の者は転識り難きを以ての故に」等云云、 東春に智度法師云く「初に有諸より下の五行は第一に一偈は三業の悪を忍ぶ是れ外悪の人なり次に悪世の下の一偈は是上慢出家の人なり第三に或有阿練若より下の三偈は即是出家の処に一切の悪人を摂す」等云云、 又云く「常在大衆より下の両行は公処に向つて法を毀り人を謗ず」等云云、 涅槃経の九に云く「善男子一闡提有り羅漢の像を作して空処に住し方等大乗経典を誹謗せん諸の凡夫人見已つて皆真の阿羅漢是大菩薩なりと謂わん」等云云、 又云く「爾の時に是の経閻浮提に於て当に広く流布すべし、是の時に当に諸の悪比丘有つて是の経を抄略し分ちて多分と作し能く正法の色香美味を滅すべし、 是の諸の悪人復是くの如き経典を読誦すと雖も如来の深密の要義を滅除して世間の荘厳の文飾無義の語を安置す前を抄して後に著け後を抄して前に著け前後を中に著け中を前後に著く当に知るべし是くの如きの諸の悪比丘は是れ魔の伴侶なり」等云云、 六巻の般泥洹経に云く「阿羅漢に似たる一闡提有つて悪業を行ず、一闡提に似たる阿羅漢あつて慈心を作さん羅漢に似たる一闡提有りとは是の諸の衆生方等を誹謗するなり、 一闡提に似たる阿羅漢とは声聞を毀呰し広く方等を説くなり衆生に語つて言く我れ汝等と倶に是れ菩薩なり所以は何ん一切皆如来の性有る故に然も彼の衆生一闡提なりと謂わん」等云云、 涅槃経に云く「我涅槃の後乃至正法滅して後像法の中に於て当に比丘有るべし持律に似像して少かに経を読誦し飲食を貪嗜し其の身を長養す、 袈裟を服ると雖も猶猟師の細視徐行するが如く猫の鼠を伺うが如し、常に是の言を唱えん我羅漢を得たりと外には賢善を現わし内には貪嫉を懐かん啞法を受けたる婆羅門等の如し、 実に沙門に非ずして沙門の像を現じ邪見熾盛にして正法を誹謗せん」等云云。
이상 다섯 개의 봉조(鳳詔)에 놀라서 권지품의 홍경(弘經)이 있었느니라. 이제 명경의 경문을 꺼내어 당세의 선 · 율 · 염불자와 그 여러 단나의 방법(謗法)을 알게 하리라. 니치렌이라 하던 자는 지난해 9월 12일 자축(子丑)의 때에 목이 베였느니라. 이는 혼백이 사도국에 이르러, 해가 바뀐 2월 눈 속에서 적어 유연(有緣)의 제자에게 보내는 것이니, 두려우면서도 두렵지 않으니라. 보는 사람은 얼마나 겁을 내겠는가. 이는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께서 미래 일본국 당세를 비추어 두신 명경이니라. 유품(形見)이라고도 보아야 하느니라. 권지품에 이르기를 「오직 바라옵건대 염려하지 마옵소서. 부처님 멸도하신 뒤 공포스러운 악세 가운데에서 저희들이 마땅히 널리 설하겠나이다. 여러 무지한 사람들이 악구매리(惡口罵詈)하고 칼과 막대기를 가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저희들은 모두 마땅히 참겠나이다. 악세 가운데의 비구는 사지(邪智)하여 마음이 첨곡(諂曲)하고, 아직 얻지 못하였는데도 얻었다고 여기며, 아만의 마음이 가득하리이다. 혹은 아련야(阿練若)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스스로 참된 도를 행한다고 여기고 세간 사람들을 가볍게 업신여기는 자가 있으리이다. 이양(利養)에 탐착하는 까닭에 백의(白衣)를 위하여 법을 설하고, 세상의 공경을 받는 것이 육통(六通)의 나한과 같으리이다. 이 사람은 악한 마음을 품고 늘 세속의 일을 생각하며, 아련야라는 이름을 빌려 즐겨 저희들의 허물을 들추어내리이다. 늘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저희들을 헐뜯고자 하는 까닭에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 및 그 밖의 비구들을 향하여 비방하여 저희들의 악을 말하되 '이는 사견(邪見)의 사람이며 외도의 논의를 설한다'고 하리이다. 탁겁 악세 가운데에는 여러 공포가 많으리니, 악귀가 그 몸에 들어가 저희들을 매리하고 헐뜯고 욕보이리이다. 탁세의 악한 비구는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근기에 따라 설하신 법을 알지 못하고, 악구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저희들은 자주자주 쫓겨나리이다」라고 하였느니라. 『법화문구기』 제8에 이르기를 「글에 셋이 있다. 처음 1행은 두루 사인(邪人)을 밝힌 것이니 곧 속중(俗衆)이다. 다음 1행은 도문증상만(道門增上慢)의 자를 밝힌다. 셋째 7행은 참성증상만(僭聖增上慢)의 자를 밝힌다. 이 셋 가운데 처음은 참을 수 있고, 다음 자는 앞보다 더하며, 셋째가 가장 심하다. 뒤로 갈수록 점점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느니라. 동춘(東春)에서 지도(智度) 법사가 이르기를 「처음 '유제(有諸)' 이하 5행 가운데, 첫째 1게는 삼업의 악을 참는 것이니 이는 바깥의 악인이다. 다음 '악세' 이하 1게는 증상만의 출가인이다. 셋째 '혹유아련야' 이하 3게는 곧 출가의 자리에 일체의 악인을 거두어들인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상재대중' 이하 2행은 공처(公處)를 향하여 법을 헐뜯고 사람을 비방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느니라. 열반경 제9에 이르기를 「선남자여, 일천제(一闡提)가 있어 아라한의 모습을 짓고 한적한 곳에 머물며 방등 대승경전을 비방하리라. 여러 범부들은 이를 보고 모두 참된 아라한이요 대보살이라고 여기리라」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그때 이 경이 염부제에 마땅히 널리 유포되리라. 이때 여러 악한 비구가 있어 이 경을 베어 줄이고 나누어 여러 부분으로 만들어, 정법의 색 · 향 · 맛을 능히 없애리라. 이 여러 악인은 또 이러한 경전을 독송한다 하여도 여래의 깊고 비밀한 요의(要義)를 없애고, 세간의 장엄한 꾸밈말과 뜻 없는 말을 늘어놓으리라. 앞을 베어 뒤에 붙이고 뒤를 베어 앞에 붙이며, 앞뒤를 가운데에 붙이고 가운데를 앞뒤에 붙이리라. 마땅히 알라, 이러한 여러 악한 비구는 마(魔)의 반려이니라」라고 하였느니라. 6권 『반니원경』에 이르기를 「아라한을 닮은 일천제가 있어 악업을 행하고, 일천제를 닮은 아라한이 있어 자비심을 일으키리라. 나한을 닮은 일천제가 있다 함은 이 여러 중생이 방등을 비방하는 것이요, 일천제를 닮은 아라한이란 성문을 꾸짖고 널리 방등을 설하며 중생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과 함께 보살이다. 왜냐하면 일체가 모두 여래의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이니, 그런데도 저 중생들은 그를 일천제라고 하리라」라고 하였느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내가 열반한 뒤, 내지 정법이 멸한 뒤 상법 가운데 마땅히 비구가 있으리라. 지율(持律)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조금 경을 독송하며, 음식을 탐하고 즐겨 그 몸을 기르리라. 가사를 입었으나 마치 사냥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다가가는 것 같고, 고양이가 쥐를 엿보는 것 같으리라. 늘 '나는 나한을 얻었다'고 말하리라. 겉으로는 어질고 착함을 나타내고 속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품으리니, 아법(啞法)을 받은 바라문 등과 같으리라. 실은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나타내고, 사견이 치성하여 정법을 비방하리라」라고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 五箇の鳳詔다섯 개의 봉조
- 석존이 멸후의 법화경 홍통을 제자들에게 권한 다섯 명령. 견보탑품 제11의 「세 개의 칙선(三箇の勅宣)」과 제바달다품 제12의 「두 개의 간효(二箇の諫暁)」를 합쳐 이른다. 봉(鳳)은 새들의 왕으로 천자를 나타내는데, 불교에서는 부처를 가리키는 말로 써서 「봉조」는 부처님의 명령이라는 뜻이 된다. 개목초는 제43~48장에서 이 다섯을 차례로 풀었다.
- 勧持品권지품
- 법화경 제13품. 약왕 · 대요설 등 2만 보살과 8십만억 나유타의 보살들이 부처님 멸후 악세에서 이 경을 넓히겠다고 맹세하는 품이다. 그 맹세의 노래가 이른바 「이십행게」이며, 삼류의 강적은 이 게송에 나온다.
- 阿練若아련야
- 범어 아란야(araṇya)의 음사로 아란야(阿蘭若) · 아란나 · 아련여라고도 쓴다. 「일 없고 한적한 곳(無事閑靜處)」이라는 뜻으로, 인가에서 떨어진 산사 등을 말한다. 권지품에서는 참성증상만이 고요한 산사에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그릇된 법을 설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 納衣납의
- 승려의 옷. 분소의(糞掃衣)라고도 한다. 사람이 버린 헝겊을 주워 기워 만든 법의로, 이를 입는 것은 십이두타행의 하나로 꼽힌다.
- 白衣백의
- 재가 신자. 석존 당시 인도의 세속인이 모두 흰옷을 입었으므로 이렇게 불렀다.
- 六通の羅漢육통의 나한
- 육통은 육신통이다. ① 신족통(신경통 · 여의신통) — 몸을 자유롭게 변화시키고 어디든 가는 능력, ② 천안통 — 멀고 가까움 ·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무엇이든 보는 능력, ③ 천이통 — 무엇이든 듣는 능력, ④ 타심통 — 남의 생각을 아는 능력, ⑤ 숙명통 — 중생의 과거세를 아는 능력, ⑥ 누진통 — 일체의 번뇌를 끊어 다하는 능력. 숙명통까지의 다섯은 외도의 선인도 이룰 수 있으나 누진통은 아라한의 지위에서만 이룬다. 권지품은 참성증상만이 세상의 공경을 받는 모습을 「육통의 나한과 같다」고 그린다.
- 記の八『법화문구기』 제8
- 묘락대사 담연이 천태대사의 『법화문구』를 주석한 『법화문구기』 권8. 권지품 게송을 셋으로 나누어 「속중 · 도문증상만 · 참성증상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이 글이며, 「삼류의 강적」이라는 개념의 직접 출처다.
- 東春に智度法師云く동춘에 지도 법사가 이르기를
- 지도는 당대 천태종의 승려로 묘락대사의 제자다. 『천태법화소의찬(天台法華疏義纘)』 6권을 지었다. 지도가 동춘(東春)에 살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책을 「동춘」이라 불렀다. 천태대사의 『법화문구』를 주석한 책으로, 먼저 『법화현의』에 따라 오중현의를 개설하고 이어 법화경 본문과 『법화문구기』 등에 걸쳐 자세히 주석하며 자기의 견해를 펼친다.
- 方等大乗経典방등 대승경전
- 방등은 범어 바이풀랴(vaipulya)의 번역으로 비불략이라 음사하고 방광 · 광대라고도 번역한다. ① 십이분경의 하나로 넓고 큰 이치를 설한 것, ② 대승 또는 대승경, ③ 오시팔교의 방등시 — 화엄 · 반야 · 법화 · 열반을 뺀 대승경전의 총칭으로, 아함 다음에 설해져 이승과 보살에게 공통하는 가르침을 설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②의 대승경전이다.
- 一闡提일천제
- 범어 잇찬티카(icchantika)의 음사로, 불법을 믿지 않고 정법을 비방하여 선근을 끊은 사람을 가리킨다. 열반경은 일천제를 성불의 길에서 가장 먼 자로 거듭 논하며, 개목초 제55장의 「상품의 일천제인」 논의도 여기서 이어진다.
- 般泥洹経반니원경
- 동진의 법현이 번역한 『대반니원경』 6권. 반니원은 석존의 입멸을 뜻하며 대반열반 · 열반이라고도 한다. 북량의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 40권(북본)의 앞 10권 분량에 해당한다.
- 唖法を受けたる婆羅門等の如し아법을 받은 바라문 등과 같다
- 아법은 바라문의 수행인 무언행(無言行)으로, 궁극의 진리는 말로 다할 수 없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겉으로는 현인처럼 꾸미지만 속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품고, 위엄 있는 얼굴만 할 뿐 설법도 못 하고 신자를 이끌지도 못하며 법문을 물어도 답하지 못하는 악승의 모습을, 무언행에 들어가 입을 다문 바라문에 비유한 것이다.
- 子丑の時자축의 때
- 자시(子時)는 밤 11시~1시 무렵, 축시(丑時)는 1시~3시 무렵. 강의는 자시를 대성인이 가마쿠라에서 끌려 나오신 9월 12일 한밤중으로, 축시를 다쓰노쿠치의 처형 자리에 앉으신 때로 본다.
- 有縁の弟子유연의 제자
- 인연 있는 제자. 강의는 이 글을 직접 받아 가마쿠라에 전한 시조깅고(中務三郎左衛門尉)를 「유연 가운데에서도 특히 유연」한 사람으로 든다.
다섯 봉조에서 권지품으로 — 이 장의 자리
제48장까지 대성인은 보탑품의 세 칙선과 제바품의 두 간효를 차례로 풀었다. 보탑품에서 석존은 세 번에 걸쳐 「누가 내가 멸한 뒤에 이 경을 지닐 것인가」라고 부촉을 구했고, 제바품에서는 악인 제바달다와 여인 용녀의 성불을 보여 이 경의 힘을 증명했다. 이 장의 첫 구절 「이상 다섯 개의 봉조에 놀라서 권지품의 홍경이 있었다」는 그 다섯 명령을 받든 보살들의 응답이 곧 권지품이라는 뜻이다. 강의는 이 장을 「권지품의 증문을 끌어 일본국 당세의 사람들이 모두 삼류의 강적이며, 니치렌이야말로 법화경의 행자임을 드러내려는 단락」이라고 규정한다.
권지품의 보살들은 「저희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끼겠나이다(我不愛身命 但惜無上道)」라고 맹세한다. 그런데 그 맹세의 노래는 단순한 결의문이 아니다. 그 안에는 멸후 악세에서 이 경을 넓히는 사람이 무엇을 만날지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무지한 사람의 욕설과 칼과 막대기, 사지하고 아만이 가득한 비구, 아련야에 숨어 세상의 존경을 받는 성자인 체하는 승려, 그리고 그들이 국왕 · 대신에게 행자를 고발하여 「자주자주 쫓겨나게」 하는 일. 대성인은 이 경문을 「명경」이라 부르며, 이 거울을 꺼내어 「당세의 선 · 율 · 염불자와 그 여러 단나의 방법을 알게 하리라」고 선언하신다.
강의는 「명경의 경문」 이하에서 경문과 해석을 끄는 뜻을 둘로 나눈다. 첫째, 당세의 선 · 율 · 염불자 등이 바로 법화경의 세 원적임을 보이는 것. 둘째, 「니치렌이라 하던 자」 이하에서 이 글을 쓰는 자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보이는 것이다. 개목초는 호조 집권을 비롯한 천하 만민이 귀의하는 선 · 율 · 염불의 고승을 참성증상만 · 도문증상만이라 하고, 이들에게 귀의한 국왕 · 대신과 민중을 속중증상만이라 하여 무간지옥에 떨어질 자라고 단언한다. 이렇게 쓰면 거듭 대난이 닥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탁악의 세상에서 정법을 넓히는 것은 일단 두려운 일이지만, 대성인은 「이미 목이 베였고 혼백만이 사도에 이르러 쓰는 글」이므로 어떤 난이 오더라도 전혀 두렵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목이 베였다」 — 다쓰노쿠치와 혼백
「니치렌이라 하던 자는 지난해 9월 12일 자축의 때에 목이 베였다.」 문영 8년(1271) 9월 12일, 대성인은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에게 체포되어 그날 밤 가마쿠라 교외 다쓰노쿠치의 처형장으로 끌려가셨다. 처형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대성인은 이를 「목이 베였다」고 과거형으로 적으신다. 그리고 지금 쓰는 자를 「혼백이 사도국에 이르러」라고 하신다.
강의는 이 대목을 니치칸 상인의 「개목초 문단」을 따라 두 겹으로 읽는다.
부문(附文)의 측면 — 경문을 몸으로 읽다
먼저 글에 붙어서 읽는 측면이다. 「목이 베였다」는 권지품의 「칼과 막대기를 가하는(及加刀杖)」 난이며, 「혼백이 사도국에 이르렀다」는 「자주자주 쫓겨나리라(數數見擯出)」의 경문에 해당한다. 대성인은 이미 홍장 원년(1261) 이즈로 유배되셨고, 이제 사도로 두 번째 유배를 당하셨다. 「자주자주」라는 두 글자가 대성인의 몸에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대성인이야말로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고 맹세한 말법 법화경의 행자이심을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고 강의는 말한다.
원의(元意)의 측면 — 범부의 몸이 그대로 자수용신으로
그러나 강의는 이것이 「부문의 측면」일 뿐이라고 한다. 원의의 측면에서 보면, 이 대목은 대성인의 범부의 몸이 그대로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으로 나타나신 것, 곧 발적현본(發迹顯本)을 말한다. 강의의 현대어역도 「범부의 육신은 다쓰노쿠치에서 끊어지고, 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여래로 나타나 사도국에 이르렀다」고 옮긴다.
강의는 시각의 상징을 들어 이를 풀이한다. 축시는 음(陰)의 끝이고 인시(寅時)는 양(陽)의 시작이니, 죽음의 끝이자 삶의 처음, 곧 생사의 중간이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三世の諸仏の成道はねうしのをわり・とらのきざみの成道なり
삼세 제불의 성도는 자축의 끝, 인시의 때의 성도이니라
그러므로 자축의 때는 대성인의 범부의 몸이 죽음에 이르는 끝이고, 목을 베이려던 인시는 구원원초 자수용신의 삶이 시작되는 때라고 강의는 읽는다. 강의는 또 보슈(房州)의 니치가(日我)가 『본존초견문(本尊抄見聞)』에서 「개목초에 혼백이 사도에 이른다 함은 범부의 혼백이 아니라 구원 명자 본불의 혼백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한다. 석존은 2월 8일 샛별이 뜰 때 크게 깨달으셨고, 대성인은 9월 12일 샛별이 빛나는 인시에 구원원초의 본불로 나타나셨다는 것이 강의의 이해다.
발적현본 — 적을 열고 본을 드러내다
「발적현본(發迹顯本)」은 본래 법화경 본문의 말이다. 수량품에서 석존은 가야성에서 처음 성불했다는 모습, 곧 「적(迹)」을 열어 젖히고, 실은 오백진점겁의 먼 옛날에 성불했다는 「본(本)」을 드러냈다. 개목초 상권 제20장은 이전 · 적문의 한계를 바로 이 말로 짚으셨다.
迹門方便品は一念三千・二乗作仏を説いて爾前二種の失一つを脱れたり、しかりといえども・いまだ発迹顕本せざれば・まことの一念三千もあらはれず二乗作仏も定まらず
적문 방편품은 일념삼천 · 이승작불을 설하여 이전의 두 가지 허물 가운데 하나를 벗어났느니라. 그러나 아직 발적현본하지 않았으므로 참된 일념삼천도 나타나지 않고 이승작불도 정해지지 않느니라
강의는 같은 말을 대성인의 다쓰노쿠치에 쓴다. 이 경우 「적」은 무엇이고 「본」은 무엇인가. 제55장의 강의가 그 틀을 보여 준다. 대성인은 교상(敎相), 곧 경문에 비추어 드러난 모습으로는 수량품의 부촉을 받아 말법에 나타난 본화 지용의 상수 상행보살이시고, 관심(觀心), 곧 내증으로는 구원의 본불이시다. 다쓰노쿠치 이전까지 대성인이 세상에 보이신 모습은 「경문대로 난을 받는 법화경의 행자」, 상행보살의 재탄생이라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그대로 둔 채, 목이 베인 그 자리에서 범부의 몸이 곧 구원원초의 자수용신임을 드러내신 것이 대성인의 발적현본이라고 강의는 본다. 서강의 강의도 이 문을 「대성인이 다쓰노쿠치에서 발적현본하신 것을 보인 문」이라 하고, 「범부의 몸의 목은 베였으나 본불로서의 생명은 사도로 가서 일본국의 모든 사람을 구하려 하신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범부즉극 — 「구원 명자의 본불」
강의가 인용한 니치가의 말에서 눈여겨볼 것은 「명자(名字)」라는 두 글자다. 천태 교학은 수행의 지위를 이즉 · 명자즉 · 관행즉 · 상사즉 · 분진즉 · 구경즉의 육즉(六即)으로 나눈다. 명자즉은 처음으로 묘법의 이름을 듣고 믿는 범부의 자리다. 「구원 명자의 본불」이란, 오랜 수행의 계단을 올라 범부의 몸을 벗어난 끝에 얻은 부처가 아니라, 명자즉의 범부 그대로가 구원의 본불이라는 뜻이 된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면 범부즉극(凡夫即極) — 범부가 그대로 궁극의 부처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어의구전』에서 「즉(即)」 한 글자를 이렇게 풀이하셨다.
即とは凡夫即極・諸法実相の仏なり
「즉」이란 범부즉극, 제법실상의 부처이니라
강의의 현대어역이 쓴 「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여래」라는 말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구원원초(久遠元初)」는 수량품의 석존이 오백진점겁에 성불했다는 「구원실성」보다 더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성불의 근본 원인이 된 때를 가리키는 니치칸 상인 교학의 말이다. 「자수용신(自受用身)」은 스스로 깨달은 법의 즐거움을 스스로 받아쓰는 부처의 몸이라는 뜻으로, 중생을 위해 갖가지 모습을 나타내는 응신과 대비된다. 창가학회 교학은 니치칸 상인의 해석을 따라, 수량품 문상의 석존이 수행의 결과(本果)의 자리에서 설한 부처라면 대성인은 수행의 근본 원인(本因)인 범부의 자리 그대로 부처인 본인묘(本因妙)의 교주라고 본다. 「범부의 육신은 다쓰노쿠치에서 끊어지고」라는 현대어역의 표현은 범부를 버리고 부처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범부의 몸에 즉하여 본불의 생명이 드러났다는 뜻이다. 그래서 개목초는 「혼백」이 쓴 글이면서도, 사도의 눈 속에서 추위와 굶주림을 겪는 한 범부가 쓴 글이기도 하다.
다쓰노쿠치의 그 밤
대성인은 뒷날 「종종어진무어서」에서 그 밤의 일을 자세히 적으셨다. 처형의 자리에서 울며 「지금입니다」라고 하는 시조깅고에게 대성인은 「이만한 기쁨을 웃으시오」라고 하셨고, 그때 하늘에 빛나는 것이 지나갔다.
不かくのとのばらかな・これほどの悦びをば・わらへかし、いかに・やくそくをば・たがへらるるぞと申せし時、江のしまのかたより月のごとく・ひかりたる物・まりのやうにて辰巳のかたより戌亥のかたへ・ひかりわたる
「못난 분이시구려. 이만한 기쁨을 웃으시오. 어찌 약속을 어기시오」라고 말했을 때, 에노시마 쪽에서 달처럼 빛나는 것이 공처럼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빛나며 건너갔느니라
칼을 든 자는 눈이 어두워 쓰러지고 병사들은 두려워 물러났다고 같은 글은 전한다. 「종종어진무어서」의 강의가 이 단락을 「다쓰노쿠치 법난과 발적현본」의 장으로 묶어 읽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개목초의 「목이 베였다」는 한 줄은 이 밤을 겪은 사람이 다섯 달 뒤에 쓴 자기 증언이다.
니치칸 상인이 개목초를 「인본존 개현의 서」라 하고, 이듬해 쓰신 「관심의 본존초」를 「법본존 개현의 서」라 한 구분은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둔다. 개목초는 처음에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으로 주사친을 내걸었고, 끝에서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237쪽)라고 맺는다. 그 사이에서 범부의 몸 그대로 주사친의 덕을 갖춘 본불이 드러나는 자리가 이 한 줄이다.
강의는 「목이 베였다 · 혼백이 사도에 이르렀다」를 두 겹으로 읽는다. 글에 따르면 권지품의 「급가도장」 · 「삭삭견빈출」을 몸으로 읽은 증거이고, 원의에 따르면 범부의 몸이 그대로 구원원초 자수용신으로 나타난 발적현본이다. 개목초가 인본존 개현의 서라는 니치칸 상인의 판단은 바로 이 대목에 근거를 둔다.

에치에서 쓰카하라까지
강의는 이 글이 쓰이기까지의 경위를 이렇게 정리한다. 다쓰노쿠치의 난을 벗어나신 대성인은 9월 13일 낮 무렵 사가미의 에치(依智)에 도착해 사도 수호대 혼마 로쿠로자에몬노조의 저택에 드셨다. 20여 일을 머무신 뒤 10월 10일 에치를 떠나 28일 사도에 도착하셨다. 11월 무렵부터 곧바로 개목초의 저술에 착수하여 쓰카하라에서 겨울 내내 생각을 다듬으신 뒤, 이듬해 2월 시조깅고에게 맡겨 가마쿠라로 보내셨다.
대성인 자신도 「종종어진무어서」에서 쓰카하라의 거처를 이렇게 회고하신다.
十一月一日に六郎左衛門が家のうしろ塚原と申す山野の中に洛陽の蓮台野のやうに死人を捨つる所に一間四面なる堂の仏もなし上はいたまあはず四壁はあばらに雪ふりつもりて消ゆる事なし
11월 1일에 로쿠로자에몬의 집 뒤 쓰카하라라는 산야 가운데, 낙양의 렌다이노처럼 죽은 사람을 버리는 곳에, 사방 한 칸의 당이 있었는데 부처도 없고, 위는 판자 이음이 맞지 않으며 사방 벽은 성기어 눈이 쌓여 사라지는 일이 없었느니라
「해가 바뀐 2월 눈 속에서 적어」라는 짧은 구절 뒤에는 이런 정황이 있다.
「두려우면서도 두렵지 않다」 — 개목초를 받은 제자들
「유연의 제자」에 대해 강의는, 무릇 제자라면 모두 인연이 있지만 이 글을 받은 시조깅고는 다쓰노쿠치 법난 때 말고삐에 매달려 울며 따라갔고, 대성인이 베이신다면 함께 자결하겠다는 결의를 보였으니 유연 가운데에서도 특히 유연한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두려우면서도 두렵지 않다」의 두 구절은 권지품의 두 경문에 대응한다고 강의는 본다. 「탁겁 악세 가운데에는 여러 공포가 많으리라」가 「두렵다」에 해당하고,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낀다」가 「두렵지 않다」에 해당한다. 일본국의 모든 사람이 법화경의 큰 원적인 세상에서 정법을 넓히는 일은 공포의 악세이므로 일단은 두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대성인은 「아불애신명 단석무상도」의 말법 행자이시므로 무엇 하나 두려울 것이 없다. 반면 아직 그 결의가 서지 않은 사람은 「보는 사람은 얼마나 겁을 내겠는가」의 부류다.
이 구절을 두고 『녹내계몽(錄內啓蒙)』은 「망령의 글이므로 두렵다는 뜻이요, 여러 해 인연 있는 스승이므로 두렵지 않으며, 보통의 남이 보면 망령의 글이므로 겁을 내리라」고 주석했다. 니치칸 상인은 이 주석이 대성인의 정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하여 「蒙の義笑うべし」 — 계몽의 해석은 웃을 만하다고 물리쳤다고 강의는 전한다. 두려움과 두렵지 않음은 망령과 산 사람의 차이가 아니라, 악세의 실상과 그것을 넘어서는 불석신명의 결의 사이의 긴장이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사도에서 쓰신 「사도어감기초」에서 이미 같은 심경을 밝히셨다.
既に経文のごとく悪口罵詈刀杖瓦礫数数見擯出と説かれてかかるめに値い候こそ法華経をよむにて候らめといよいよ信心もおこり後生もたのもしく候
이미 경문과 같이 악구매리 · 도장와력 · 삭삭견빈출이라고 설해져 있는 그러한 일을 당하는 것이야말로 법화경을 읽는 것이라 여겨, 더욱더 신심도 일어나고 후생도 든든하옵니다
명경이자 유품
「이는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께서 미래 일본국 당세를 비추어 두신 명경이니라. 유품이라고도 보아야 하느니라.」 강의는 이 아래를 「글을 부촉하는 뜻」이라고 한다. 석가 · 다보 · 시방 제불은 권지품에 일본국 당세의 선 · 율 등 삼류의 원적이 다투어 일어나는 모습을 비추어 두었는데, 그것이 그대로 니치렌 한 몸에 비추어 나타났다. 곧 니치렌의 한 몸이 명경이다. 이 명경을 보고 자신의 방법을 알며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을 알라. 이 경문을 보라, 이것이 니치렌의 유품이다 — 권지품의 경문을 유품으로 보라는 것은 곧 이 개목초를 유품으로 삼으라는 뜻이며, 이것이 이 글에 권지품을 인용하신 뜻이라고 강의는 정리한다.
다쓰노쿠치를 지난 사람이 남기는 「유품」이라는 말에는 유언의 무게가 있다. 사도 유배는 살아 돌아오기 어려운 형벌이었고, 개목초는 그 유배지에서 문하 전체에게 보낸 글이다. 개목초의 뒤 장(제58장)에 나오는 「나와 나의 제자, 여러 난이 있어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리라」는 말씀도 이 유품의 정신 위에 놓인다.
명경의 경문 — 권지품 이십행게와 묘락 · 지도의 분과
권지품의 게송은 「오직 바라옵건대 염려하지 마옵소서(唯願不爲慮)」로 시작한다. 이 품의 앞부분에서 약왕보살 등은 사바세계의 중생이 악하고 교만하여 교화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이 땅에서 경을 넓히겠다고 맹세하고, 이어 8십만억 나유타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뜻을 헤아려 「시방세계에 두루 다니며 이 경을 넓히겠다」고 사자후한다. 이십행게는 이 보살들의 노래다. 개목초 제27장에서 대성인은 이 게송을 「니치렌이 이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존은 대망어의 사람이 되고, 8십만억 나유타의 보살은 제바의 허광죄에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50장에서 「8십만억 나유타의 여러 보살이 정하신 것이 허망이 되겠는가」라고 다시 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게송의 원적들에게 처음으로 세 부류의 이름을 붙인 사람이 묘락대사다. 『법화문구기』 권8은 게송을 셋으로 나누어 처음 1행을 속중, 다음 1행을 도문증상만, 셋째 7행을 참성증상만이라 했다. 그리고 「처음은 참을 수 있고, 다음 자는 앞보다 더하며, 셋째가 가장 심하다. 뒤로 갈수록 점점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강의의 현대어역은 그 까닭을 「무지한 대중보다 승니, 승니보다 성인으로 우러름을 받는 자 쪽이 그 사지와 방법을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악의 크기가 드러난 폭력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오히려 존경과 권위에 가려져 알아보기 어려울수록 깊다는 통찰이다.
증상만(增上慢)은 「아직 얻지 못했으면서 얻었다고 여기는(未得謂得)」 교만이다. 법화경 방편품에서 석존이 진실을 설하려 할 때 5천의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난 일이 있는데, 경은 그들을 증상만이라 했다. 삼류 모두에 「증상만」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박해의 뿌리가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 자신이 이미 바른 법을 지녔다고 믿는 교만에 있음을 보여 준다.
묘락의 제자 지도 법사는 『동춘』에서 같은 게송을 조금 다르게 나눈다. 「유제」 이하 5행 가운데 처음 1게는 삼업의 악 — 칼과 막대기의 박해와 원질 — 을 참는 것이니 바깥의 악인이요, 다음 「악세」 이하 1게는 증상만의 출가인이며, 셋째 「혹유아련야」 이하 3게는 「출가의 자리에 일체의 악인을 거두어들인 것」이라 했다. 또 「상재대중」 이하 2행은 「공처를 향하여 법을 헐뜯고 사람을 비방한다」고 하여, 국왕 · 대신 등 국가 권력에 행자를 고소하는 모습으로 풀었다. 묘락이 세 부류의 「사람」을 가렸다면, 지도는 그 사람들이 「어디에 모이고 무엇을 하는가」 — 출가의 자리에 모든 악이 모이고, 그 악이 공권력을 통해 행자를 친다 — 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대성인은 제52장에서 바로 이 「출가의 자리」가 당세 일본의 어디인가를 묻고, 「공처를 향한다」를 료칸 · 염아의 고소에서 확인하신다.
대성인은 일찍이 「창법화제목초」에서도 이 세 부류를 풀이하셨다. 그 풀이는 개목초보다 앞서지만 같은 구조를 보여 준다.
経並に釈の心は悪世の中に多くの比丘有つて身には三衣一鉢を帯し阿練若に居して行儀は大迦葉等の三明六通の羅漢のごとく在家の諸人にあふがれて一言を吐けば如来の金言のごとくをもはれて法華経を行ずる人をいゐやぶらんがために国王大臣等に向ひ奉つて此の人は邪見の者なり法門は邪法なりなんどいゐうとむるなり
경과 해석의 마음은, 악세 가운데 많은 비구가 있어 몸에는 삼의일발을 지니고 아련야에 머물며 행의는 대가섭 등 삼명육통의 나한과 같아 재가의 여러 사람에게 우러름을 받고, 한마디를 토하면 여래의 금언처럼 여겨지면서, 법화경을 행하는 사람을 말로 깨뜨리기 위해 국왕 · 대신 등을 향하여 「이 사람은 사견의 자요, 법문은 사법이다」라고 말하여 멀리하게 하는 것이니라
아라한을 닮은 일천제 — 열반경 · 『반니원경』의 증언
대성인은 법화경과 그 해석에 이어 열반경을 세 번, 6권 『반니원경』을 한 번 인용하신다. 법화경이 강적의 「부류」를 보였다면, 열반경은 그 강적의 「얼굴」을 보다 생생하게 그린다.
경을 베어 붙이는 악비구
열반경 권9의 첫 인용은 「일천제가 아라한의 모습을 짓고 한적한 곳에 머물며 방등 대승경전을 비방하는데, 범부들은 그를 참된 아라한이요 대보살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참성증상만의 핵심이 여기 있다. 그는 밖에서 보면 성자다. 강의는 이 일천제가 바로 『반니원경』이 말하는 「아라한을 닮은 일천제」와 같은 사람이라고 연결한다.
둘째 인용은 정법이 널리 유포될 때 나타나는 악비구를 그린다. 그들은 경을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경을 독송한다. 그러나 경을 「베어 줄이고 나누어」 정법의 빛깔과 향과 맛을 없애고, 「여래의 깊고 비밀한 요의」를 지운 자리에 세간의 화려한 꾸밈말을 채운다. 앞을 뒤에 붙이고 뒤를 앞에 붙이는 이 편집의 이미지는, 경의 한 부분을 떼어 내어 경 전체의 뜻을 뒤집는 해석에 대한 날카로운 비유다. 대성인은 제51장에서 호넨이 법화경을 『관무량수경』 안에 끌어넣어 「버려라 · 닫아라 · 놓아 두라 · 내던져라」라고 한 일을 바로 이런 악비구의 소행으로 들게 된다. 경은 그들을 「마의 반려」라고 부른다.
아라한을 닮은 일천제와 일천제를 닮은 아라한
『반니원경』의 인용은 대구로 되어 있다. 「아라한을 닮은 일천제」는 겉모습은 성자이나 방등 대승을 비방하는 자다. 「일천제를 닮은 아라한」은 성문의 소승을 꾸짖고 널리 대승을 설하며, 중생에게 「나는 너희와 함께 보살이다, 일체가 모두 여래의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자다. 그런데 세상은 도리어 이 사람을 일천제라고 부른다.
이 대구는 개목초 전체의 역설을 압축한다. 존경받는 고승이 사실은 법을 비방하는 자이고, 세상이 사견의 자로 고발하는 사람이 사실은 일체중생의 불성을 설하는 자다. 강의는 「일천제를 닮은 아라한」을 오늘에 비추어, 범부의 몸임을 자각하면서 깊이 불의를 믿고, 하종 불법의 신자로서 범부끼리 손을 맞잡고 함께 성불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일체가 모두 여래의 성품을 지녔다」는 말은 그대로 상불경보살의 예배 — 「너희는 모두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 — 와 겹친다. 불경보살 역시 증상만의 사부대중에게 막대기와 기와 · 돌로 맞았다. 대성인이 제55장에서 불경보살을 「일승의 행자」로 드는 것은 이 맥락과 이어진다.
『반니원경』(6권, 법현 역)은 일천제의 성불을 인정하지 않는 경으로 알려졌고, 그 때문에 중국에서 이 경만 보고 「일천제도 성불한다」고 주장한 축도생이 승단에서 쫓겨났다. 뒤에 담무참이 번역한 40권 『대반열반경』이 전해지면서 도생의 주장이 경에 맞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개목초 제55장은 이 도생을 「일승을 지닌 자」로서 난을 받은 사람으로 든다.
지율을 흉내 내는 비구 — 사냥꾼과 고양이
마지막 열반경 인용은 상법 시대에 나타날 비구의 모습이다. 계율을 지키는 듯한 모습을 하고, 경은 조금 읽으며, 음식을 탐해 몸을 기른다. 가사를 걸쳤으나 보시를 노리는 모습은 사냥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다가가는 것과 같고, 고양이가 쥐를 엿보는 것과 같다. 늘 「나는 아라한을 얻었다」고 말하고, 겉으로는 어질고 착함을 나타내나 속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품는다. 법문을 물으면 아법을 받은 바라문처럼 입을 다문다. 실은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하고, 사견이 치성하여 정법을 비방한다.
대성인은 뒷날 「법화초심성불초」에서 같은 경문을 쉬운 말로 풀어, 세간에 귀하게 여겨지는 승려야말로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人に吉と思はれ人の心に随いて貴しと思はれん僧をば法華経のかたき世間の悪知識なりと思うべし此の人を経文には猟師の目を細めにして鹿をねらひ猫の爪を隠して鼠をねらふが如くにして在家の俗男俗女の檀那をへつらいいつわりたぼらかすべしと説き給へり
사람들에게 좋게 여겨지고 사람의 마음에 맞추어 귀하다고 여겨지는 승려를 법화경의 원수, 세간의 악지식이라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이런 사람을 경문에는 사냥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사슴을 노리고 고양이가 발톱을 숨기고 쥐를 노리는 것처럼 하여, 재가의 속남 · 속녀 단나에게 아첨하고 속이고 홀린다고 설하셨느니라
개목초가 이 경문들로 비춘 것은 가마쿠라 시대 일본의 선 · 율 · 염불의 고승과 그 단나들이며, 다음 장들에서 대성인은 그 대응을 하나하나 이름을 들어 확인하신다.
본문
夫れ鷲峯・雙林の日月・毘湛・東春の明鏡に当世の諸宗・並に国中の禅・律・念仏者が醜面を浮べたるに一分もくもりなし、 妙法華経に云く「於仏滅度後恐怖悪世中」安楽行品に云く「於後悪世」又云く「於末世中」又云く「於後末世法欲滅時」分別功徳品に云く「悪世末法時」薬王品に云く「後五百歳」等云云、 正法華経の勧説品に云く「然後末世」又云く「然後来末世」等云云、添品法華経に云く等、天台の云く「像法の中の南三北七は法華経の怨敵なり」、 伝教の云く「像法の末・南都・六宗の学者は法華の怨敵なり」等云云、彼等の時はいまだ分明ならず、 此は教主釈尊・多宝仏・宝塔の中に日月の並ぶがごとく十方・分身の諸仏・樹下に星を列ねたりし中にして正法一千年・像法一千年・二千年すぎて末法の始に法華経の怨敵・三類あるべしと八十万億那由佗の諸菩薩の定め給いし虚妄となるべしや、 当世は如来滅後・二千二百余年なり大地は指ば・はづるとも春は・花は・さかずとも三類の敵人・必ず日本国にあるべし、 さるにては・たれたれの人人か三類の内なるらん又誰人か法華経の行者なりとさされたるらん・をぼつかなし、 彼の三類の怨敵に我等入りてやあるらん又法華経の行者の内にてやあるらん・をぼつかなし、周の第四昭王の御宇二十四年甲寅・四月八日の夜中に天に五色の光気・南北に亘りて昼のごとし、 大地・六種に震動し雨ふらずして江河・井池の水まさり一切の草木に花さき菓なりたりけり不思議なりし事なり、 昭王・大に驚き大史蘇由・占つて云く「西方に聖人生れたり」昭王問て云く「此の国いかん」答えて云く「事なし一千年の後に彼の聖言・此の国にわたつて衆生を利すべし」彼のわづかの外典の一毫未断見思の者・しかれども一千年のことをしる、 はたして仏教・一千一十五年と申せし後漢の第二・明帝の永平十年丁卯の年・仏法・漢土にわたる、此は似るべくもなき釈迦・多宝・十方分身の仏の御前の諸菩薩の未来記なり、 当世・日本国に三類の法華経の敵人なかるべしや、 されば仏・付法蔵経等に記して云く「我が滅後に正法一千年が間・我が正法を弘むべき人・二十四人・次第に相続すべし」迦葉・阿難等はさてをきぬ一百年の脇比丘・六百年の馬鳴・七百年の竜樹菩薩等・一分もたがはず・すでに出で給いぬ、 此の事いかんが・むなしかるべき此の事相違せば一経・皆相違すべし、所謂舎利弗が未来の華光如来・迦葉の光明如来も皆妄説となるべし、爾前返つて一定となつて永不成仏の諸声聞なり、 犬野干をば供養すとも阿難等をば供養すべからずとなん、いかんがせん・いかんがせん。
무릇 취봉(鷲峯) · 쌍림(雙林)의 해와 달, 비담(毘湛) · 동춘(東春)의 명경에 당세의 여러 종과 나라 안의 선 · 율 · 염불자의 추한 얼굴을 띄워 보니 한 점의 흐림도 없느니라. 묘법화경에 이르기를 「부처님 멸도 후 공포스러운 악세 가운데에서」라 하고, 안락행품에 이르기를 「뒤의 악세에서」, 또 「말세 가운데에서」, 또 「뒤의 말세 법이 멸하려 할 때에」라 하고, 분별공덕품에 이르기를 「악세 말법의 때」, 약왕품에 이르기를 「후 오백세」라 하였느니라. 정법화경 권설품에 이르기를 「그러한 뒤의 말세」, 또 「그러한 뒤 올 말세」라 하였고, 첨품법화경에도 이르기를 운운하였느니라. 천태가 이르기를 「상법 가운데의 남삼북칠(南三北七)은 법화경의 원적이다」라 하고, 전교가 이르기를 「상법의 끝, 남도 육종의 학자는 법화의 원적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들의 때에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느니라. 이는 교주 석존 · 다보불이 보탑 안에 해와 달이 나란히 하듯 계시고, 시방 분신의 제불이 나무 아래에 별을 늘어놓은 듯 계신 가운데에서, 정법 1천 년 · 상법 1천 년, 2천 년이 지나 말법의 처음에 법화경의 원적이 세 부류 있으리라고 8십만억 나유타의 여러 보살이 정하신 것이니, 허망이 될 수 있겠는가. 당세는 여래 멸후 2천2백여 년이니라. 대지를 가리켜 빗나가는 일이 있을지라도, 봄에 꽃이 피지 않는 일이 있을지라도, 세 부류의 적인은 반드시 일본국에 있으리라. 그렇다면 누구누구가 세 부류 안에 들며, 또 누가 법화경의 행자라고 지목된 것인가. 미덥지 못하도다. 저 세 부류의 원적에 우리가 들어 있는가, 또 법화경의 행자 안에 있는가. 미덥지 못하도다. 주(周)의 제4대 소왕(昭王) 치세 24년 갑인 4월 8일 한밤중에 하늘에 오색의 빛 기운이 남북에 걸쳐 낮과 같았느니라.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강과 우물과 못의 물이 불었으며, 모든 초목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으니 불가사의한 일이었느니라. 소왕이 크게 놀라자 태사(大史) 소유(蘇由)가 점쳐 말하기를 「서방에 성인이 태어났습니다」라 하였느니라. 소왕이 묻기를 「이 나라는 어떠한가」 하니, 답하기를 「일이 없습니다. 1천 년 뒤에 그 성인의 말씀이 이 나라에 건너와 중생을 이롭게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 저 보잘것없는 외전의, 견사혹을 터럭만큼도 끊지 못한 자이건만 1천 년 뒤의 일을 알았느니라. 과연 불교는 1천15년이라 하던 후한의 제2대 명제(明帝) 영평 10년 정묘의 해에 한토에 건너왔느니라. 이는 견줄 바도 없는 석가 · 다보 · 시방 분신불의 어전에서 여러 보살이 한 미래기(未來記)이니라. 당세 일본국에 세 부류의 법화경의 적인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부법장경』 등에 기록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멸한 뒤 정법 1천 년 동안 나의 정법을 넓힐 사람 24인이 차례로 이으리라」 하셨느니라. 가섭 · 아난 등은 그만두고라도, 1백 년의 협비구(脇比丘), 6백 년의 마명(馬鳴), 7백 년의 용수보살 등이 조금도 어김없이 이미 나오셨느니라. 이 일이 어찌 헛될 수 있겠는가. 이 일이 어긋난다면 한 경이 모두 어긋나리라. 이른바 사리불이 미래에 화광여래(華光如來)가 되고 가섭이 광명여래(光明如來)가 된다는 것도 모두 망설(妄說)이 되리라. 이전(爾前)이 도리어 확정되어 영원히 성불하지 못하는 여러 성문이 되리라. 「개나 여우에게는 공양할지언정 아난 등에게는 공양하지 말라」는 것이 되리니, 어찌하랴, 어찌하랴.
어구 풀이
- 鷲峯・雙林の日月취봉 · 쌍림의 해와 달
- 취봉은 영취산, 쌍림은 사라쌍수의 숲으로, 각각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한 곳이다. 「취봉 · 쌍림의 해와 달」은 법화경과 열반경을 해와 달에 비유한 말이다.
- 毘湛・東春の明鏡비담 · 동춘의 명경
- 묘락대사의 『법화문구기』와 지도 법사의 『천태법화소의찬』을 명경에 비유한 것. 비담은 묘락대사가 살던 곳의 이름이고, 동춘은 지도 법사가 살던 곳의 이름이다. 경은 해와 달, 해석은 거울이라는 위계가 이 한 구절에 담겨 있다.
- 後五百歳후 오백세
- 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내가 멸도한 뒤 후 오백세 가운데 염부제에 널리 선포하여 유포하리라」의 구절. 대집경의 오오백세(五五百歲) 가운데 다섯 번째 5백 년, 곧 투쟁언송 · 백법은몰의 시대를 가리키며, 대성인은 이를 말법의 처음으로 보셨다.
- 正法華経の勧説品정법화경 권설품
- 『정법화경』은 법화경의 「육역삼존(六譯三存)」 가운데 하나로, 서진의 축법호가 번역한 10권 26품의 경이다. 권설품은 그 제6권에 있으며 구마라집 역의 권지품에 해당한다. 구마라집 이전의 번역이라 「고역(古譯)」이라 부른다. 축법호는 인도 북방 월지국 출신으로 돈황에 살았으며, 여덟 살에 출가하여 대승경이 중국에 충분히 전해지지 않은 것을 탄식해 서역을 두루 다니며 여러 언어를 배우고 평생 경전 번역에 바쳐 「돈황보살」로 존칭되었다.
- 添品法華経첨품법화경
- 정식 이름은 『첨품묘법연화경』. 육역삼존의 하나로, 수의 인수 원년(601)에 사나굴다와 달마급다가 번역했다. 7권 27품. 구마라집 역 『묘법연화경』을 바탕으로 하고, 구마라집 역에 빠져 있던 약초유품의 후반 등을 보충했다.
- 南三北七남삼북칠
- 천태대사 이전 중국 남북조 시대의 교판을 세운 여러 학파. 강남의 세 학파와 강북의 일곱 학파를 말하며, 천태대사는 이들이 열반경이나 화엄경을 법화경보다 위에 둔 것을 논파했다.
- 南都六宗남도 육종
- 나라 시대의 삼론 · 성실 · 법상 · 구사 · 화엄 · 율의 여섯 종. 전교대사가 법화 일승과 대승계단을 세울 때 이들의 학승이 맞섰다.
- 昭王소왕
- 생몰년 미상. 기원전 10세기 무렵 주의 제4대 왕. 전승에 따르면 재위 24년 4월 8일 밤 강과 우물 · 못에 물이 넘치고 대지가 진동하며 하늘에 오색의 빛이 나타나 서방까지 뻗었다. 소왕이 신하 소유에게 물으니 서방에 위대한 성인이 태어났으며 1천 년 뒤 그 성인의 말이 이 나라에 전해질 것이라 답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지금 전하지 않는 『주서이기(周書異記)』에 있는 것으로 불교 사서 『불조통기(佛祖統紀)』 등에 소개되어 석존 탄생 시기의 근거로 쓰였다.
- 付法蔵経부법장경
- 『부법장인연전』이라고도 한다. 북위의 길가야 · 담요가 함께 번역한 6권. 석존의 부촉을 받아 정법 1천 년 사이에 나타나 불법을 넓힌 후계자(부법장)의 사적을 기록했다. 본문은 「24인」이라 하나 이 전기는 23인을 싣고 있어, 전승에 따라 23인 또는 24인으로 센다.
- 脇比丘협비구
- 범어 파르슈바(Pārśva). 협존자 · 협나한이라고도 한다. 부법장의 제9(제10이라고도 함). 카니시카왕의 명을 받아 제4결집을 주도했다고 하며 『대비바사론』 편찬에 중심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여든에 출가하여 젊은이들의 비웃음을 받자, 삼장의 이치에 통하고 삼계의 욕을 끊으며 육신통과 팔해탈을 갖추기 전에는 결코 옆구리를 자리에 대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3년 만에 그것을 이루어 사람들이 「협존자」라 불렀다.
- 馬鳴마명
- 범어 아슈바고샤(Aśvaghoṣa). 2~3세기 무렵 인도의 불교 사상가 · 시인. 부법장의 제11(제12라고도 함). 처음에는 바라문 학자로 이름을 떨치며 불교를 비난했으나 부나사에게 논파되어 귀의했다. 카니시카왕이 중인도를 정복했을 때 배상금 대신 마명이 북인도로 보내져 왕의 보호 아래 불법을 크게 넓혔다. 석존의 일생을 노래한 『불소행찬(붓다차리타)』 5권이 있고, 『건치범찬』 · 『대장엄론』 등도 그의 저작으로 전한다.
- 竜樹菩薩용수보살
- 범어 나가르주나(Nāgārjuna). 150~250년 무렵 남인도에 나와 대승을 크게 넓힌 논사. 부법장의 제13(제14라고도 함). 처음에는 소승을 배웠으나 히말라야 지방의 한 노비구에게 대승경전을 받은 뒤 대승 선양에 힘썼다. 『중론』에서 공의 사상으로 실재론을 비판해 뒤의 불교 · 인도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고 「팔종의 조사」로 일컬어진다. 대성인은 천친과 함께 정법 시대 후반의 정사(正師)로 자리매김하셨다.
- 華光如来・光明如来화광여래 · 광명여래
- 법화경 비유품에서 사리불이 받은 미래 성불의 이름이 화광여래이고, 수기품에서 마하가섭이 받은 이름이 광명여래다. 이전 경에서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꾸지람을 받던 성문들이 법화경에서 처음 수기를 받았다.
해와 달과 거울 — 경과 해석이 비춘 당세
강의는 이 장을 앞 장 인용의 「풀이(釋)」로 본다. 앞 장이 권지품과 열반경과 묘락 · 지도의 해석을 끌어온 것이라면, 이 장은 그 인용들이 왜 당세 일본을 가리키는지를 논증한다. 그 논증의 줄기는 셋이다. 첫째, 법화경 곳곳이 말법을 가리키고 있으니 삼류는 지금 일어나야 한다. 둘째, 외전의 예언조차 적중했고 부처님이 부법장경에 남긴 예언도 적중했으니 보살들의 미래기가 빗나갈 리 없다. 셋째, 만일 빗나간다면 법화경 전체가 무너진다.
첫 구절은 인용의 위계를 정리한다. 법화경과 열반경은 해와 달이고, 묘락과 지도의 해석은 거울이다. 해와 달이 비추고 거울이 그 빛을 받아 상을 맺듯이, 경이 예언하고 해석이 그 예언을 분류했으며, 그 거울에 당세 여러 종의 「추한 얼굴」이 한 점의 흐림 없이 떠올랐다. 대성인은 자신의 판단을 경과 해석이라는 공공의 기준 위에 세우신다. 이것은 개인의 원한이나 주관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말법을 가리킨 경문들
대성인은 법화경 안에서 말법을 가리키는 구절을 하나씩 모으신다.
- 권지품於仏滅度後恐怖悪世中부처님 멸도 후 공포스러운 악세 가운데
- 안락행품於後悪世뒤의 악세에서於末世中말세 가운데에서於後末世法欲滅時뒤의 말세 법이 멸하려 할 때
- 분별공덕품悪世末法時악세 말법의 때
- 약왕품後五百歳후 오백세
- 정법화경 권설품然後末世그러한 뒤의 말세然後来末世그러한 뒤 올 말세
- 첨품법화경같은 뜻의 문
이 나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멸후의 악세」가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법이 멸하려 할 때」 · 「말법」 · 「후 오백세」라는 특정한 시대로 거듭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것이 구마라집 역 한 본의 우연한 표현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성인은 일부러 축법호의 『정법화경』과 사나굴다 · 달마급다의 『첨품법화경』까지 들어, 현존하는 세 번역이 모두 같은 시대를 가리킨다는 것을 보이신다. 「육역삼존」 — 여섯 번 번역되었고 셋이 남았다는 법화경 번역사의 상식이 여기서 증거로 쓰인다.
약왕품의 「후 오백세」는 대성인에게 특별한 구절이다. 이 품은 「내가 멸도한 뒤 후 오백세 가운데 염부제에 널리 선포하여 유포하고 끊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여, 말법의 처음이 곧 이 경이 널리 퍼질 때임을 밝힌다. 그러므로 「후 오백세」는 원적이 일어나는 때이자 광선유포의 때다. 삼류의 강적과 광선유포는 같은 시대의 두 얼굴이다.
「그들의 때에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 천태 · 전교와 말법
대성인은 천태와 전교도 원적을 말했음을 인정하신다. 천태대사는 상법 시대 중국의 남삼북칠을 법화경의 원적이라 했고, 전교대사는 상법 말 일본의 남도 육종 학자를 법화의 원적이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때에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강의의 현대어역은 그 까닭을 「천태 · 전교의 시대는 바로 법화 본문이 유포될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원적의 모습도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고 옮긴다. 경문이 원적이 일어날 때로 정한 것은 「2천 년이 지나 말법의 처음」이다. 천태 · 전교가 만난 남삼북칠과 남도 육종은 상법 시대의 그림자였을 뿐, 경문이 정한 삼류 그 자체는 아니었다. 더구나 제27장에서 대성인이 말씀하셨듯이, 천태에 대해서는 진 · 수 두 왕조의 성군이, 전교에 대해서는 간무 · 사가 등의 현명한 군주가 직접 시비를 가려 주었기 때문에 적은 끝내 다했다. 말법의 처음인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시비를 가리기는커녕 대론의 자리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유배와 사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이 예언은 범상한 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교주 석존과 다보불이 보탑 안에 해와 달처럼 나란히 앉고, 시방 분신의 제불이 보리수 아래에 별처럼 늘어선 허공회의 장엄한 의식 가운데에서 8십만억 나유타의 보살들이 정한 것이다. 제43장의 세 칙선이 바로 이 자리에서 내려졌다. 「허망이 될 수 있겠는가」라는 반문은 그 자리의 무게에서 나온다.
「대지를 가리켜 빗나가더라도」 — 예언의 확실성
「당세는 여래 멸후 2천2백여 년이니라. 대지를 가리켜 빗나가는 일이 있을지라도, 봄에 꽃이 피지 않는 일이 있을지라도, 세 부류의 적인은 반드시 일본국에 있으리라.」 대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빗나갈 수가 없고, 봄이 오면 꽃은 반드시 핀다. 이 두 비유는 대성인이 여러 어서에서 확신을 표현할 때 즐겨 쓰신 것이다. 「고니치보어서」에서는 「큰 바다 밑 천 길의 돌은 떠오를지라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땅에 떨어지지 않을지라도」 니치렌은 가마쿠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고, 유배의 무게를 같은 형식으로 말씀하셨다(927쪽).
「멸후 2천2백여 년」은 중세 일본에서 통용된 불멸 연대 — 석존의 입멸을 주 목왕(穆王) 52년 임신(기원전 949년)으로 보는 계산 — 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개목초를 쓴 문영 9년(1272)은 멸후 2220년이 된다. 같은 계산에서 소왕 24년 갑인은 석존의 탄생 해이며, 본문의 「1천15년」은 입멸에서 후한 명제 영평 10년(67)까지의 햇수로 맞아떨어진다. 오늘날의 역사학은 석존의 연대를 이보다 훨씬 늦게 잡지만, 개목초의 논증은 당시의 공통된 연대관 위에 서 있다.
이어 대성인은 두 가지 예언의 적중을 증거로 드신다.
외전의 예언 — 소왕과 태사 소유
주의 소왕 24년 4월 8일 한밤중, 하늘에 오색의 빛이 남북으로 뻗어 낮과 같았고, 대지가 진동하며 비도 없이 강물이 불고 초목에 꽃이 피었다. 태사 소유는 「서방에 성인이 태어났다」고 점치고, 「1천 년 뒤에 그 성인의 말이 이 나라에 건너와 중생을 이롭게 하리라」고 답했다. 과연 불교는 1015년 뒤 후한 명제의 영평 10년에 중국에 전해졌다. 이 전설은 개목초 상권 제9장의 「한토의 불교 전래」에서도 다루어진 것이다.
대성인의 논점은 「견사혹을 터럭만큼도 끊지 못한」 외전의 점술가조차 1천 년 뒤를 맞혔다는 것이다. 하물며 이번 예언은 「견줄 바도 없는」 석가 · 다보 · 시방 분신불의 어전에서 보살들이 한 미래기다. 낮은 것이 적중했으니 높은 것은 더욱 적중한다는 논법이다.
불교 안의 예언 — 부법장의 24인
다음은 부처님 자신의 예언이다. 석존은 『부법장경』 등에서 「내가 멸한 뒤 정법 1천 년 동안 나의 정법을 넓힐 사람 24인이 차례로 이으리라」고 하셨다. 가섭 · 아난은 부처님 재세의 제자이니 그만두더라도, 멸후 1백 년의 협비구, 6백 년의 마명, 7백 년의 용수보살 등이 「조금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강의의 어구 풀이가 전하는 협비구의 이야기 — 여든에 출가하여 비웃음을 받자 옆구리를 자리에 대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3년 만에 삼장에 통했다는 일 — 와, 바라문 학자로서 불교를 공격하다 귀의해 카니시카왕의 북인도에서 불법을 넓힌 마명의 생애, 그리고 공의 사상으로 대승의 기초를 놓은 용수의 생애는 모두 이 「차례로 잇는다」는 예언의 실현으로 놓인다.
- 주 소왕 24년 갑인 4월 8일오색의 빛, 소유 「서방에 성인이 태어났다 · 1천 년 뒤 그 말이 이 나라에」
- 입멸 후 1백 년 협비구 · 6백 년 마명 · 7백 년 용수「24인이 차례로 이으리라」
- 후한 명제 영평 10년(67)불교, 한토에 전래 (1천15년)
- 말법의 처음, 멸후 2천2백여 년(1272)「법화경의 원적 세 부류가 있으리라」
「우리가 삼류에 들어 있는가」 — 자기에게 돌아오는 물음
이 장 한가운데에 놓인 두 번의 「미덥지 못하도다(をぼつかなし)」는 이 편 전체의 긴장을 담고 있다. 첫 번째는 「누구누구가 세 부류 안에 들며, 누가 법화경의 행자라고 지목되었는가」이다. 두 번째는 「저 세 부류의 원적에 우리가 들어 있는가, 법화경의 행자 안에 있는가」이다.
첫 물음은 바깥을 향한다. 세 부류가 반드시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대성인은 이 물음에 제51장부터 차례로 답하신다. 둘째 물음은 안을 향한다. 「우리(我等)」라는 말에는 대성인 자신과 제자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포함된다. 거울은 남의 얼굴만 비추지 않는다. 강의가 앞 장에서 말했듯이, 이 명경을 보고 「자신의 방법을 알라」는 것이 대성인의 뜻이다. 삼류를 가리키는 논의가 남을 단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기 점검의 물음으로 돌아오는 구조가 여기에 있다.
수기가 망설이 되면 — 「한 경이 모두 어긋나리라」
장의 끝에서 대성인은 논증을 극한까지 밀고 가신다. 만일 삼류와 행자에 대한 예언이 빗나간다면 「한 경이 모두 어긋난다」. 법화경은 하나의 예언만 틀려도 전체의 진실성이 무너지는 경이다. 그러면 비유품에서 사리불이 화광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도, 수기품에서 가섭이 광명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도 모두 망설이 된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이전 경의 판정이 확정된다. 성문은 영원히 성불하지 못하는 자가 되고, 이전 경이 성문을 꾸짖어 「개나 여우에게는 공양할지언정 아난 등에게는 공양하지 말라」고 한 말이 진실이 된다. 「어찌하랴, 어찌하랴」라는 거듭된 탄식은 그 귀결의 참담함을 드러낸다.
이 논법은 개목초 상권의 핵심과 맞물려 있다. 상권은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이라는 법화경의 두 대사(大事)를 오중상대로 드러냈다. 그 이승작불이 바로 사리불 · 가섭의 수기다. 제29~34장에서 대성인은 이승이 법화경에 깊은 은혜를 입었으니 마땅히 법화경의 행자를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 이제 그 수기의 진실성이 말법의 예언과 한 몸으로 묶인다. 예언이 적중해야 수기도 진실하고, 수기가 진실해야 법화경이 진실하다. 그리고 그 예언의 적중을 증명하는 것이 삼류의 출현과 행자의 실재다.
강의는 이 장의 강의에서 석존의 예언이 대성인의 출현으로 증명되었듯, 대성인 자신의 예언도 적중했다고 말한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에서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을 예언하셨고, 개목초를 쓴 바로 그 2월에 호조 일문의 내란(이른바 2월 소동)이 일어났으며, 문영 11년(1274)에는 몽골군이 쳐들어왔다. 대성인은 「보은초」에서 이렇게 회고하신다.
去ぬる文永九年二月のどしいくさ同じき十一年の四月の大風同じき十月に大蒙古の来りしは偏に日蓮がゆへにあらずやいわうや前よりこれをかんがへたり誰の人か疑うべき
지난 문영 9년 2월의 동사(同士) 싸움, 같은 11년 4월의 큰바람, 같은 해 10월 대몽골이 온 것은 오로지 니치렌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미리 이를 헤아려 두었느니라. 누가 의심하겠는가
강의는 이처럼 석존의 예언과 대성인의 예언이 모두 적중했으니, 대성인이 남기신 광선유포의 예언 또한 허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으로 이 장을 맺는다. 그 광선유포의 모습을 대성인은 「제법실상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一人はじめは南無妙法蓮華経と唱へしが、二人・三人・百人と次第に唱へつたふるなり、未来も又しかるべし、是あに地涌の義に非ずや
니치렌 한 사람이 처음에는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렀으나, 두 사람 · 세 사람 · 백 사람으로 차례로 불러 전하였느니라. 미래도 또한 그러하리라. 이것이 어찌 지용의 뜻이 아니겠는가
강의는 이 장을 예언의 연쇄로 읽는다. 외전의 예언과 부법장의 예언이 적중했듯이 권지품의 예언도 적중하며, 그 적중을 증명하는 사람이 대성인이다. 그리고 대성인 자신의 예언이 적중했으므로 광선유포의 예언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삼류의 강적이 일어나는 것은 이 예언이 살아 있다는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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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の有諸無智人と云うは経文の第二の悪世中比丘と第三の納衣の比丘の大檀那と見へたり、随つて妙楽大師は「俗衆」等云云、東春に云く「公処に向う」等云云、 第二の法華経の怨敵は経に云く「悪世中の比丘は邪智にして心諂曲に未だ得ざるを為れ得たりと謂い我慢の心充満せん」等云云、 涅槃経に云く「是の時に当に諸の悪比丘有るべし乃至是の諸の悪人復是くの如き経典を読誦すと雖も如来深密の要義を滅除せん」等云云、 止観に云く「若し信無きは高く聖境に推して己が智分に非ずとす、若し智無きは増上慢を起し己れ仏に均しと謂う」等云云、道綽禅師が云く「二に理深解微なるに由る」等云云、 法然云く「諸行は機に非ず時を失う」等云云、 記の十に云く「恐くは人謬り解せん者初心の功徳の大なることを識らずして功を上位に推り此の初心を蔑にせん故に今彼の行浅く功深きことを示して以て経力を顕す」等云云、 伝教大師云く「正像稍過ぎ已て末法太はだ近きに有り法華一乗の機今正しく是其の時なり何を以て知ることを得る安楽行品に云く末世法滅の時なり」等云云、 慧心の云く「日本一州円機純一なり」等云云、道綽と伝教と法然と慧心といづれ此を信ずべしや、彼は一切経に証文なし此れは正しく法華経によれり、 其の上日本国・一同に叡山の大師は受戒の師なり何ぞ天魔のつける法然に心をよせ我が剃頭の師をなげすつるや、法然智者ならば何ぞ此の釈を選択に載せて和会せざる人の理をかくせる者なり、 第二の悪世中比丘と指さるるは法然等の無戒・邪見の者なり、涅槃経に云く「我れ等悉く邪見の人と名く」等云云、妙楽云く「自ら三教を指して皆邪見と名く」等云云、 止観に云く「大経に云く此よりの前は我等皆邪見の人と名くるなり、邪豈悪に非ずや」等云云、弘決に云く「邪は即ち是れ悪なり是の故に当に知るべし唯円を善と為す、復二意有り、 一には順を以つて善と為し背を以つて悪と為す相待の意なり、著を以つて悪と為し達を以つて善と為す相待・絶待倶に須く悪を離るべし円に著する尚悪なり況や復余をや」等云云、 外道の善悪は小乗経に対すれば皆悪道小乗の善道・乃至四味三教は法華経に対すれば皆邪悪・但法華のみ正善なり、爾前の円は相待妙なり、絶待妙に対すれば猶悪なり前三教に摂すれば猶悪道なり、 爾前のごとく彼の経の極理を行ずる猶悪道なり、 況や観経等の猶華厳・般若経等に及ばざる小法を本として法華経を観経に取り入れて還つて念仏に対して閣抛閉捨せるは法然並びに所化の弟子等・檀那等は誹謗正法の者にあらずや、 釈迦・多宝・十方の諸仏は法をして久しく住せしめんが故に此に来至し給えり、法然並に日本国の念仏者等は法華経は末法に念仏より前に滅尽すべしと豈三聖の怨敵にあらずや。
제1의 「여러 무지한 사람이 있어(有諸無智人)」라 함은 경문의 제2 「악세 가운데의 비구」와 제3 「납의의 비구」의 큰 단나로 보이느니라. 그러므로 묘락대사는 「속중」이라 하였고, 동춘에는 「공처를 향한다」라고 하였느니라. 제2의 법화경의 원적은, 경에 이르기를 「악세 가운데의 비구는 사지하여 마음이 첨곡하고, 아직 얻지 못하였는데도 얻었다고 여기며, 아만의 마음이 가득하리라」 하였느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이때 마땅히 여러 악한 비구가 있으리니, 내지 이 여러 악인은 또 이러한 경전을 독송한다 하여도 여래의 깊고 비밀한 요의를 없애리라」 하였느니라. 『마하지관』에 이르기를 「만일 믿음이 없는 자는 높이 성인의 경계로 밀어 올려 자기의 지혜로 미칠 바가 아니라 하고, 만일 지혜가 없는 자는 증상만을 일으켜 자기가 부처와 같다고 여긴다」라 하였느니라. 도작선사가 이르기를 「둘째는 이치가 깊고 이해가 미약하기 때문이다」라 하였고, 호넨이 이르기를 「여러 행은 근기에 맞지 않고 때를 잃었다」라 하였느니라. 『법화문구기』 제10에 이르기를 「아마도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는 자는 초심의 공덕이 큼을 알지 못하고 공덕을 위의 지위로 미루어 이 초심을 업신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행은 얕으나 공덕은 깊음을 보여 경의 힘을 드러낸다」라 하였느니라. 전교대사가 이르기를 「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 법화 일승의 근기는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안락행품에 이르기를 '말세 법이 멸할 때'라 하였다」라 하였느니라. 혜심(慧心)이 이르기를 「일본 한 나라는 원교의 근기가 순일하다」라 하였느니라. 도작과 전교와 호넨과 혜심, 어느 쪽을 믿어야 하겠는가. 저쪽은 일체경에 증문이 없고, 이쪽은 바로 법화경에 의거하였느니라. 더구나 일본국 사람 모두에게 히에이산의 대사는 수계의 스승이니라. 어찌 천마가 붙은 호넨에게 마음을 기울여 자기의 머리를 깎아 준 스승을 내던지는가. 호넨이 지자라면 어찌 이 해석들을 『선택집』에 실어 화회(和會)하지 않았는가. 남의 이치를 감춘 자이니라. 제2의 「악세 가운데의 비구」라고 지목된 것은 호넨 등 무계 · 사견의 자이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우리들은 모두 사견의 사람이라 이름한다」 하였고, 묘락이 이르기를 「스스로 삼교를 가리켜 모두 사견이라 이름한다」 하였느니라. 『마하지관』에 이르기를 「대경(大經)에 이르기를 이보다 앞에는 우리들을 모두 사견의 사람이라 이름한다 하였으니, 사(邪)가 어찌 악이 아니겠는가」 하였느니라. 『지관보행전홍결』에 이르기를 「사는 곧 악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오직 원교만이 선이다. 또 두 뜻이 있다. 하나는 따름을 선으로 삼고 어긋남을 악으로 삼으니 상대(相待)의 뜻이다. 집착을 악으로 삼고 통달을 선으로 삼으니, 상대 · 절대 모두 반드시 악을 떠나야 한다. 원교에 집착하는 것조차 악이거늘 하물며 그 밖의 것이랴」 하였느니라. 외도의 선악은 소승경에 대하면 모두 악도이고, 소승의 선도 내지 사미 · 삼교는 법화경에 대하면 모두 사악이며, 오직 법화경만이 정선이니라. 이전의 원교는 상대묘(相待妙)이니, 절대묘(絶待妙)에 대하면 오히려 악이요, 앞의 삼교에 거두면 오히려 악도이니라. 이전 그대로 그 경의 극리를 행하여도 오히려 악도이거늘, 하물며 『관무량수경』 등 화엄 · 반야경 등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법을 근본으로 삼고, 법화경을 관경에 끌어넣어 도리어 염불에 대하여 「놓아 두라 · 내던져라 · 닫아라 · 버려라(閣抛閉捨)」 한 호넨과 그 교화를 받은 제자 · 단나 등은 정법을 비방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은 법을 오래 머물게 하려는 까닭에 이곳에 오셨느니라. 호넨과 일본국의 염불자 등은 법화경이 말법에 염불보다 먼저 멸진하리라 하니, 어찌 세 성인의 원적이 아니겠는가.
어구 풀이
- 公処に向う공처를 향한다
- 공처는 관청. 속중증상만이 법화경의 행자를 공권력에 고소하고 참언하는 것을 말한다. 지도의 『동춘』이 권지품 「상재대중」 이하 2행을 풀이한 말이다.
- 高推聖境・非己智分높이 성인의 경계로 밀어 올려 자기의 지혜로 미칠 바가 아니다
- 『마하지관』 권1의 문. 법화경의 참뜻을 난해한 것으로 돌려 우리의 지혜로는 미칠 수 없다 하고, 겉으로는 법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아집을 세워 법을 끌어내리는 태도를 말한다. 제53장에서 염불자의 말을 비판하는 근거로 다시 쓰인다.
- 道綽禅師도작선사
- (562~645) 수 · 당대 정토교의 조사 가운데 한 사람. 병주 문수(지금의 산서성 태원) 사람으로 성은 위씨. 열네 살에 출가하여 열반경을 배웠으나, 현중사에서 담란의 비문을 보고 감동하여 정토교에 귀의했다. 담란의 설을 이어 석존 일대의 성교를 성도문과 정토문으로 나누고, 법화경을 포함한 성도문을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다(未有一人得者)」는 가르침이라 하여 배척하고 정토문에 귀의할 것을 설했다. 제자에 선도 등이 있고 저서에 『안락집』 2권 등이 있다.
- 理深解微이심해미
- 도작이 『안락집』에서 한 말. 성도의 법문은 이치가 깊어 말세 중생의 어리석은 지혜로는 그 이치를 깨닫는 것이 극히 미약하여 성불할 수 없다고 하여, 염불 이외의 가르침, 특히 법화경을 깎아내린 말이다. 강의는 이것이 천태대사가 지적한 「믿음이 없고 지혜가 없는」 모습에 해당하며, 도작 스스로 제2 도문증상만임을 증명한 것이라고 본다.
- 法然호넨
- (1133~1212) 일본 정토종의 개조. 이름은 겐쿠(源空). 『선택본원염불집』을 지어 칭명염불만을 정행으로 세우고 법화경을 비롯한 여러 경과 행을 버리게 했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 등에서 이를 일본 방법의 근원으로 논파하셨다.
- 記の十『법화문구기』 제10
- 묘락대사의 『법화문구기』 권10. 여기 인용된 문은 법화경을 처음 믿고 기뻐하는 초심의 공덕이 얼마나 큰지를 밝혀, 공덕을 높은 지위의 성인에게만 돌리고 초심자를 업신여기는 잘못된 이해를 경계한 것이다.
- 慧心혜심
- (942~1017) 겐신(源信). 일본 천태종 에신류의 조사. 야마토국 가쓰라기군 다이마향에서 태어나 어려서 출가하여 천력 4년(950) 히에이산에 올라 지에대사 료겐에게 배웠다. 열세 살에 득도 수계하여 겐신이라 했고, 요카와의 에신인에 머물렀으므로 에신 승도 · 요카와 승도라 불렸다. 관화 원년(985)에 『왕생요집』 3권을 완성했는데 이는 일본 최초의 정토교 저술로 정토종 성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만년에 『일승요결』 3권을 지어 법화경의 일승 사상을 강조했다. 이 책은 관홍 3년(1006) 무렵의 작품으로,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음을 밝히고 법상종의 오성각별설을 논파했다.
- 日本一州円機純一일본 한 나라는 원교의 근기가 순일하다
- 혜심의 『일승요결』의 구절. 일본 나라 안이 모두 원교인 법화경에 인연 있는 근기이고, 장 · 통 · 별 삼교에 인연 있는 자는 없다는 뜻이다.
- 受戒の師・剃頭の師수계의 스승 · 체두의 스승
- 일본의 승려는 전교대사가 세운 히에이산의 대승계단에서 계를 받았으므로, 전교대사는 일본 승려 모두에게 계를 준 스승이요 머리를 깎아 준 스승이다. 호넨 역시 히에이산에서 출가했다.
- 選択『선택집』
- 『선택본원염불집』의 약칭. 호넨의 저작 1권. 구조 가네자네의 청으로 건구 9년(1198)에 지었다고 한다. 주로 정토삼부경과 선도의 『관무량수경소』를 끌어 염불의 법문을 펼친다. 16장으로 나뉘며, 석존 일대의 불교를 성도문과 정토문, 난행도와 이행도, 잡행과 정행으로 나누어 정토삼부경 이외의 법화경을 비롯한 모든 가르침을 배제하고, 아미타불의 서원에 근거한 칭명염불이야말로 극락에 왕생하는 최고의 수행이라 했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 · 「수호국가론」 등에서 그 잘못을 논파하셨다.
- 弘決『지관보행전홍결』
- 10권. 당의 묘락대사 담연이 지은 『마하지관』의 주석서. 제목의 해석을 비롯하여 무정불성에 관한 열 가지 논란, 화엄종의 「법화는 점돈, 화엄은 돈돈」이라는 설을 깨뜨리는 등, 『마하지관』의 묘지를 밝히면서 천태종 안팎의 이설을 논파했다.
- 相待妙・絶待妙상대묘 · 절대묘
- 여러 경을 견주어 그 승렬을 판정하는 것을 상대묘라 한다. 소승경과 대승경을 견주면 대승이 뛰어나고, 대승 가운데 권대승은 열등하며 실대승인 법화경이 뛰어나다. 이에 대해 최고의 법화경, 문저 하종의 남묘호렌게쿄가 나타나면 일체의 경교가 모두 이 일법에 포함되어 남묘호렌게쿄의 일법으로 돌아간다고 보는 것을 절대묘라 한다.
- 閣抛閉捨각포폐사
- 『선택집』에서 호넨이 법화경 등 정토 이외의 가르침에 대해 「놓아 두라(閣) · 내던져라(抛) · 닫아라(閉) · 버려라(捨)」라고 한 말. 대성인은 흔히 「사폐각포」라 하여 염불 비판의 핵심으로 삼으셨다.
- 三聖세 성인
- 석가 · 다보 · 시방 분신의 제불. 견보탑품에서 「법을 오래 머물게 하려고(令法久住)」 모였다.
속중 — 세상의 단나와 「공처」
이 장부터 대성인은 세 부류를 당세 일본에 하나씩 맞추어 가신다. 순서는 경문대로가 아니다. 먼저 제1 속중이 무엇에 기대어 서는가를 밝히고, 이어 제2 도문을 길게 논하며, 제3 참성은 다음 장으로 넘기신다.
「제1의 '여러 무지한 사람'이라 함은 경문의 제2 '악세 가운데의 비구'와 제3 '납의의 비구'의 큰 단나로 보인다.」 속중은 혼자 서지 않는다. 그들은 도문과 참성의 승려를 믿고 따르는 재가의 후원자다. 무지한 사람이 법화경의 행자를 욕하고 칼과 막대기를 드는 것은 그들 스스로 판단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존경하는 승려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묘락은 이들을 「속중」이라 했고, 지도는 「공처를 향한다」 — 관청에 고소한다 — 고 했다.
강의는 속중증상만이 나타나는 계기를 이렇게 말한다. 그릇된 불법을 깨뜨리고 바른 불법을 설하겠다고 결심한 때부터, 같은 집안에서도, 이웃에서도, 일터에서도 이런 증상만과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은 필연이다. 상대의 방법을 꾸짖지 않으면 속중증상만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강하게 꾸짖으면 경문 그대로 비난과 박해의 표적이 된다. 삼류는 정법을 넓히는 사람의 행동이 불러내는 것이다.
대성인은 뒷날 「법화초심성불초」에서 속중의 모습을 이렇게 풀이하셨다.
一には在家の俗男俗女なり此の俗男俗女は法華経の行者を憎み罵り打ちはりきり殺し所を追ひ出だし或は上へ讒奏して遠流しなさけなくあだむ者なり
첫째는 재가의 속남 · 속녀이니라. 이 속남 · 속녀는 법화경의 행자를 미워하고 욕하며, 때리고 베고 죽이며, 사는 곳에서 쫓아내고, 혹은 위에 참소하여 멀리 유배 보내고 무정하게 원수로 삼는 자이니라
강의는 속중증상만을 「정법을 강하게 설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적」으로 본다. 세 부류는 정법을 넓히는 행동이 없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그것이 나타났다는 것은 경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도문증상만 — 「믿음이 없고 지혜가 없는」 학승
제2의 원적은 「악세 가운데의 비구는 사지하여 마음이 첨곡하고, 아직 얻지 못하였는데도 얻었다고 여기며, 아만의 마음이 가득하다」고 경에 그려진 자다. 대성인은 이 원적의 정체를 세 겹의 증거로 밝히신다.
첫째는 열반경이다. 「여러 악한 비구가 있어 경전을 독송하더라도 여래의 깊고 비밀한 요의를 없앤다.」 도문증상만은 경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경을 읽는 학승이다. 그러나 그 읽기가 경의 요의를 지운다.
둘째는 『마하지관』 권1의 진단이다. 「만일 믿음이 없는 자는 높이 성인의 경계로 밀어 올려 자기의 지혜로 미칠 바가 아니라 하고, 만일 지혜가 없는 자는 증상만을 일으켜 자기가 부처와 같다고 여긴다.」 천태는 법을 잘못 대하는 두 방향을 가려냈다. 하나는 믿음이 없어 법을 지나치게 높이 올려 버리는 것 — 「그것은 성인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지혜가 없어 자기를 지나치게 높이는 것 — 「나는 이미 부처와 같다」. 앞의 것은 겸손처럼 보이고 뒤의 것은 교만처럼 보이지만, 둘 다 법과 자기 사이의 바른 관계를 잃었다는 점에서 같다.
셋째는 그 진단에 꼭 들어맞는 실례다. 중국 정토교의 도작선사는 성도문을 버려야 할 이유의 둘째로 「이치가 깊고 이해가 미약하기 때문(理深解微)」이라 했다. 일본의 호넨은 「여러 행은 근기에 맞지 않고 때를 잃었다(諸行は機に非ず時を失う)」고 했다. 강의는 도작의 말이 천태가 말한 「믿음 없는 자」의 모습과 그대로 일치하며, 도작 스스로 제2 도문증상만임을 증명한 것이라고 본다. 법화경은 너무 깊어 우리 같은 둔한 근기는 알 수 없다 — 이것이 바로 「높이 성인의 경계로 밀어 올리는」 일이다.
도작의 『안락집』은 성도문으로 깨달음을 얻기 어려운 이유로 둘을 들었다. 첫째는 위대한 성인(석존)이 가신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고, 둘째가 이치는 깊은데 이해는 미약하기 때문이다. 본문의 「둘째는(二に)」이 이 두 번째 이유를 가리킨다.
이 잘못을 정면으로 바로잡는 문이 묘락의 『법화문구기』 권10이다. 「잘못 이해하는 자는 초심의 공덕이 큼을 알지 못하고 공덕을 위의 지위로 미루어 이 초심을 업신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행은 얕으나 공덕은 깊음을 보여 경의 힘을 드러낸다.」 법화경은 처음 믿고 기뻐하는 한 생각의 공덕조차 헤아릴 수 없이 크다고 설한다. 그러므로 「우리 근기로는 미치지 못한다」는 말은 겸손이 아니라 경의 힘을 부정하는 것이다. 수행은 얕아도 공덕은 깊다는 이 원리는, 범부가 그대로 묘법을 지니어 성불한다는 말법의 수행관과 직접 이어진다.
대성인은 개목초 상권 제25장에서 이미 이 염불 조사들의 말을 자신의 숙세와 관련지어 말씀하셨다.
権大乗・実大乗経を極めたるやうなる道綽・善導・法然等がごとくなる悪魔の身に入りたる者・法華経をつよくほめあげ機をあながちに下し理深解微と立て未有一人得者・千中無一等と・すかししものに無量生が間・恒河沙の度すかされて権経に堕ちぬ
권대승 · 실대승경을 다 깨친 듯한 도작 · 선도 · 호넨 등과 같은, 악마가 몸에 들어간 자가 법화경을 크게 칭찬하여 올리고 근기를 억지로 낮추어 「이심해미」라 세우고 「한 사람도 얻은 자가 없다」 · 「천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 등으로 달랜 데에, 한량없는 생 동안 항하의 모래 수만큼 속아서 권경에 떨어졌느니라
법화경을 「크게 칭찬하여 올리고」 근기를 「억지로 낮추는」 것 — 법을 높이는 척하며 실제로는 버리게 하는 이 화법이 도문증상만의 본질이다.
도작 · 호넨인가 전교 · 혜심인가
대성인은 도작 · 호넨의 말에 맞서는 두 문을 드신다. 하나는 전교대사의 문이다. 「정법 · 상법이 거의 지나고 말법이 매우 가까이 있다. 법화 일승의 근기는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무엇으로 아는가. 안락행품에 '말세 법이 멸할 때'라고 하였다.」 호넨이 「때를 잃었다」고 한 바로 그 말법이야말로 전교는 법화경의 때라고 했다. 그리고 그 근거는 법화경 자신의 문이다.
다른 하나는 혜심의 문이다. 「일본 한 나라는 원교의 근기가 순일하다.」 호넨이 「근기에 맞지 않는다」고 한 바로 그 일본 사람들을 혜심은 모두 법화경의 근기라고 했다. 더구나 혜심은 일본 정토교의 원류인 『왕생요집』의 저자다. 정토교 쪽에서도 존중하는 혜심이 만년의 『일승요결』에서 법화 일승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호넨의 판단이 일본 불교의 전통에서도 근거가 없음을 보여 준다.
「도작과 전교와 호넨과 혜심, 어느 쪽을 믿어야 하겠는가. 저쪽은 일체경에 증문이 없고, 이쪽은 바로 법화경에 의거하였다.」 강의의 현대어역은 이를 「염불만이 말법에 이익이 있다는 논의는 일체경 어디에도 증문이 없으나, 법화경은 모든 경 가운데 제일이며 말법에 유포된다고 분명히 밝혔으므로 마땅히 전교 · 혜심의 설에 의거해야 한다」고 풀이한다.
대성인은 여기에 인륜의 논점을 더하신다. 일본국의 승려에게 히에이산의 전교대사는 계를 준 스승이요 머리를 깎아 준 스승이다. 그런데 어찌 천마가 붙은 호넨에게 마음을 기울여 그 스승을 내던지는가. 개목초 첫머리가 주사친 삼덕 가운데 「사(師)」를 세운 것을 생각하면, 스승을 버리는 것은 그 자체로 삼덕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리고 호넨의 저술 방식을 비판하신다. 「호넨이 지자라면 어찌 이 해석들을 『선택집』에 실어 화회하지 않았는가. 남의 이치를 감춘 자이다.」 학문하는 사람이라면 반대 근거를 함께 실어 놓고 그것과 자기 설을 조화시키든 논파하든 해야 한다. 그런데 『선택집』은 천태 · 묘락 · 전교 · 혜심의 법화경 유포에 관한 해석을 싣지 않고 염불 조사들의 해석만 끌어왔다. 열반경이 말한 「앞을 베어 뒤에 붙이는」 악비구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제2의 '악세 가운데의 비구'라고 지목된 것은 호넨 등 무계 · 사견의 자」라고 대성인은 결론지으신다.
사견은 곧 악 — 상대와 절대의 선악
호넨을 「사견의 자」라고 부르는 근거로 대성인은 경과 해석을 겹겹이 드신다. 열반경은 「(법화경 이전에는) 우리들은 모두 사견의 사람이라 이름한다」고 했고, 묘락은 이를 「스스로 (장 · 통 · 별의) 삼교를 가리켜 모두 사견이라 이름한 것」이라 풀었으며, 『마하지관』은 「사가 어찌 악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이전의 가르침에 머무는 것은 그 자체로 사견이고, 사견은 곧 악이다.
『지관보행전홍결』은 여기서 선악의 두 차원을 가른다.
- 상대(相待)의 뜻 — 따름을 선으로 삼고 어긋남을 악으로 삼는다. 실상에 따르면 선이고 실상에 어긋나면 악이다. 여러 가르침을 서로 견주어 우열을 가리는 차원이다.
- 절대(絶待)의 뜻 — 집착을 악으로 삼고 통달을 선으로 삼는다. 견줄 대상이 없는 차원에서는 무엇을 지녔느냐보다 그것에 어떻게 서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그리고 홍결은 「상대 · 절대 모두 반드시 악을 떠나야 한다. 원교에 집착하는 것조차 악이거늘 하물며 그 밖의 것이랴」라고 맺는다. 최고의 가르침인 원교마저 집착하면 악이 된다면, 원교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르침에 집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성인은 이 원리를 단계로 펼치신다.
- 외도의 선악 → 소승경에 대하면 모두 악도
- 소승의 선도 · 사미 삼교 → 법화경에 대하면 모두 사악
- 오직 법화경만이 정선
이전의 원교도 상대묘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 경 안에서 원교는 장 · 통 · 별과 견주어 뛰어나다는 의미의 원교일 뿐, 모든 가르침을 열어 하나로 모으는 법화경의 절대묘에 대하면 오히려 악이다. 이전 경의 극리를 그대로 행해도 악도라면, 하물며 화엄 · 반야에도 미치지 못하는 『관무량수경』 같은 작은 법을 근본으로 삼은 호넨은 어떠한가. 그는 법화경을 관경 안에 끌어넣어 염불에 비해 「놓아 두라 · 내던져라 · 닫아라 · 버려라」라고 했다. 큰 것을 작은 것 안에 넣어 버리는 이 전도가 바로 「정법 비방」이다.
「법을 오래 머물게 하려고」 — 세 성인의 원적
장의 끝은 견보탑품으로 돌아간다. 석가 · 다보 · 시방의 제불이 허공회에 모인 까닭은 「법을 오래 머물게 하려는(令法久住)」 것이었다. 제43장에서 대성인이 풀이하신 세 칙선의 첫째 — 「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서 널리 묘법화경을 설하겠는가」 — 가 바로 이 영법구주의 부촉이다.
그런데 호넨과 일본국의 염불자들은 「법화경은 말법에 염불보다 먼저 멸진한다」고 한다. 세 성인이 법화경을 오래 머물게 하려고 모였는데, 그들은 법화경이 먼저 사라진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 성인의 원적」이다. 도문증상만의 죄는 한 사람의 행자를 박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허공회에 모인 모든 부처님의 뜻에 맞서는 것이다.
정토교에서는 『무량수경』 하권의, 장래에 경도(經道)가 멸진한 뒤에도 자비로 이 경만은 백 년 동안 머물게 하리라는 취지의 구절을 들어, 말법에 다른 경이 사라진 뒤에도 염불의 가르침만은 남는다고 설했다. 「법화경은 말법에 염불보다 먼저 멸진한다」는 대성인의 요약은 이런 주장을 가리킨다.
본문
第三は、法華経に云く「或は阿練若に有り納衣にして空閑に在つて乃至白衣の与に法を説いて世に恭敬せらるることを為ること六通の羅漢の如くならん」等云云、 六巻の般泥洹経に云く「羅漢に似たる一闡提有つて悪業を行じ一闡提に似たる阿羅漢あつて慈心を作さん、 羅漢に似たる一闡提有りとは是諸の衆生の方等を誹謗するなり一闡提に似たる阿羅漢とは声聞を毀呰して広く方等を説き衆生に語つて言く我汝等と倶に是れ菩薩なり所以は何ん一切皆如来の性有るが故に然かも彼の衆生は一闡提と謂わん」等云云、 涅槃経に云く「我れ涅槃の後・像法の中に当に比丘有るべし持律に似像して少かに経典を読誦し飲食を貪嗜して其の身を長養せん袈裟を服ると雖も猶猟師の細視徐行するが如く猫の鼠を伺うが如し、 常に是の言を唱えん我羅漢を得たりと外には賢善を現し内には貪嫉を懐く啞法を受けたる婆羅門等の如く実には沙門に非ずして沙門の像を現じ邪見熾盛にして正法を誹謗せん」等云云、 妙楽云く「第三最も甚し後後の者転識り難きを以つての故に」等云云、東春云く「第三に或有阿練若より下の三偈は即是出家の処に一切の悪人を摂す」等云云、 東春に「即是出家の処に一切の悪人を摂する」等とは当世・日本国には何れの処ぞや、叡山か園城か東寺か南都か建仁寺か寿福寺か建長寺か・よくよく・たづぬべし、 延暦寺の出家の頭に甲冑をよろうを・さすべきか、園城寺の五分法身の膚に鎧杖を帯せるか、 彼等は経文に納衣在空閑と指すにはにず為世所恭敬・如六通羅漢と人をもはず又転難識故というべしや華洛には聖一等・鎌倉には良観等ににたり、 人をあだむことなかれ眼あらば経文に我が身をあわせよ、止観の第一に云く「止観の明静なることは前代未だ聞かず」等云云、 弘の一に云く「漢の明帝夜夢みし自り陳朝に洎ぶまで禅門に予り厠て衣鉢伝授する者」等云云、補注に云く「衣鉢伝授とは達磨を指す」等云云、 止の五に云く「又一種の禅人乃至盲跛の師徒二倶に堕落す」等云云、止の七に云く「九の意世間の文字の法師と共ならず、事相の禅師と共ならず、 一種の禅師は唯観心の一意のみ有り或は浅く或は偽る余の九は全く此無し虚言に非ず後賢眼有らん者は当に証知すべきなり」、 弘の七に云く「文字法師とは内に観解無くして唯法相を構う事相の禅師とは境智を閑わず鼻膈に心を止む乃至根本有漏定等なり、 一師唯有観心一意等とは此は且く与えて論を為す奪えば則ち観解倶に闕く、 世間の禅人偏えに理観を尚ぶ既に教を諳んぜず観を以つて経を消し八邪八風を数えて丈六の仏と為し五陰三毒を合して名けて八邪と為し六入を用いて六通と為し四大を以つて四諦と為す、 此くの如く経を解するは偽の中の偽なり何ぞ浅くして論ず可けんや」等云云、 止観の七に云く「昔鄴洛の禅師名河海に播き住するときは四方雲の如くに仰ぎ去るときは阡陌群を成し隠隠轟轟亦何の利益か有る、臨終に皆悔ゆ」等云云、 弘の七に云く「鄴洛の禅師とは鄴は相州に在り即ち斉魏の都する所なり、大に仏法を興す禅祖の一・其の地を王化す、時人の意を護りて其の名を出さず洛は即ち洛陽なり」等云云、 六巻の般泥洹経に云く「究竟の処を見ずとは彼の一闡提の輩の究竟の悪業を見ざるなり」等云云、妙楽云く「第三最も甚だし転識り難きが故に」等、 無眼の者・一眼の者・邪見の者は末法の始の三類を見るべからず一分の仏眼を得るもの此れをしるべし、向国王大臣婆羅門居士等云云、東春に云く「公処に向い法を毀り人を謗ず」等云云、 夫れ昔像法の末には護命・修円等・奏状をささげて伝教大師を讒奏す、今末法の始には良観・念阿等偽書を注して将軍家にささぐ・あに三類の怨敵にあらずや。
제3은 법화경에 이르기를 「혹은 아련야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내지 백의를 위하여 법을 설하고 세상의 공경을 받는 것이 육통의 나한과 같으리라」 하였느니라. 6권 『반니원경』에 이르기를 「나한을 닮은 일천제가 있어 악업을 행하고, 일천제를 닮은 아라한이 있어 자비심을 일으키리라. 나한을 닮은 일천제가 있다 함은 이 여러 중생이 방등을 비방하는 것이요, 일천제를 닮은 아라한이란 성문을 꾸짖고 널리 방등을 설하며 중생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과 함께 보살이다. 왜냐하면 일체가 모두 여래의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이니, 그런데도 저 중생들은 그를 일천제라고 하리라」 하였느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내가 열반한 뒤 상법 가운데 마땅히 비구가 있으리라. 지율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조금 경전을 독송하며, 음식을 탐하고 즐겨 그 몸을 기르리라. 가사를 입었으나 마치 사냥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다가가는 것 같고 고양이가 쥐를 엿보는 것 같으리라. 늘 '나는 나한을 얻었다'고 말하리라. 겉으로는 어질고 착함을 나타내고 속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품으리니, 아법을 받은 바라문 등과 같이, 실은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모습을 나타내고 사견이 치성하여 정법을 비방하리라」 하였느니라. 묘락이 이르기를 「셋째가 가장 심하다. 뒤로 갈수록 점점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였고, 동춘에 이르기를 「셋째 '혹유아련야' 이하 3게는 곧 출가의 자리에 일체의 악인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하였느니라. 동춘에 「곧 출가의 자리에 일체의 악인을 거두어들인다」 함은 당세 일본국에서는 어디이겠는가. 히에이산인가, 온조사인가, 도지인가, 남도인가, 겐닌사인가, 주후쿠사인가, 겐초사인가. 잘잘이 따져 보아야 하느니라. 엔랴쿠사의 출가자가 머리에 갑주를 두른 것을 가리켜야 하겠는가. 온조사의 오분법신(五分法身)의 살갗에 갑옷과 무기를 두른 것이겠는가. 그들은 경문에 「납의로 한적한 곳에 있다(納衣在空閑)」고 지목한 것과는 닮지 않았고, 「세상의 공경을 받는 것이 육통의 나한과 같다(爲世所恭敬 如六通羅漢)」고 사람들이 여기지도 않으며, 또 「점점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轉難識故)」이라고도 할 수 없느니라. 도읍에서는 쇼이치(聖一) 등, 가마쿠라에서는 료칸(良觀) 등이 이에 닮았느니라.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눈이 있다면 경문에 제 몸을 맞추어 보라. 『마하지관』 제1에 이르기를 「지관의 밝고 고요함은 앞 시대에 아직 듣지 못하였다」 하였고, 『홍결』 제1에 이르기를 「한의 명제가 밤에 꿈을 꾼 때부터 진(陳)의 조정에 이르기까지 선문에 끼어들어 의발을 전수한 자」라 하였느니라. 『보주(補註)』에 이르기를 「의발 전수라 함은 달마를 가리킨다」 하였느니라. 『지관』 제5에 이르기를 「또 한 부류의 선인(禪人)이 있어, 내지 눈먼 이와 절름발이인 스승과 제자가 둘 다 함께 떨어진다」 하였느니라. 『지관』 제7에 이르기를 「아홉 가지 뜻은 세간의 문자 법사와 같지 않고, 사상(事相)의 선사와 같지 않다. 한 부류의 선사는 오직 관심의 한 뜻만 있으되 혹은 얕고 혹은 거짓되며, 나머지 아홉은 전혀 이것이 없다. 헛된 말이 아니니, 뒤의 현인으로서 눈 있는 자는 마땅히 증득하여 알지어다」 하였느니라. 『홍결』 제7에 이르기를 「문자 법사란 안으로 관해(觀解)가 없고 오직 법상만 꾸미는 자이다. 사상의 선사란 경(境)과 지(智)를 익히지 않고 코끝과 명치에 마음을 머물게 하는 자이니, 내지 근본유루정(根本有漏定) 등이다. '한 스승은 오직 관심의 한 뜻만 있다' 등이라 함은 이는 잠시 주어서 논한 것이고, 빼앗으면 관도 해도 함께 빠졌다. 세간의 선인은 오로지 이관(理觀)만 숭상하여 이미 교를 익히지 않고, 관으로써 경을 풀어 팔사(八邪) · 팔풍(八風)을 세어 장육(丈六)의 부처라 하고, 오음 · 삼독을 합하여 팔사라 이름하며, 육입을 써서 육통이라 하고, 사대를 사제라 한다. 이렇게 경을 푸는 것은 거짓 가운데의 거짓이니, 어찌 얕다고 논할 거리나 되겠는가」 하였느니라. 『지관』 제7에 이르기를 「옛날 업(鄴) · 낙(洛)의 선사는 이름이 강과 바다에 퍼져, 머물 때에는 사방에서 구름처럼 우러르고 떠날 때에는 밭두렁 길에 무리를 이루어 수레 소리가 요란하였으나, 또한 무슨 이익이 있었는가. 임종에 모두 뉘우쳤다」 하였느니라. 『홍결』 제7에 이르기를 「업 · 낙의 선사라 함은, 업은 상주(相州)에 있으니 곧 제(齊) · 위(魏)가 도읍한 곳이다. 크게 불법을 일으켜 선조(禪祖)의 한 사람이 그 땅을 교화하였다.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그 이름은 내지 않는다. 낙은 곧 낙양이다」 하였느니라. 6권 『반니원경』에 이르기를 「구경의 곳을 보지 못한다 함은 저 일천제의 무리가 짓는 구경의 악업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느니라. 묘락이 이르기를 「셋째가 가장 심하다. 점점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였느니라. 눈 없는 자, 한쪽 눈인 자, 사견의 자는 말법 처음의 세 부류를 볼 수 없느니라. 한 분(分)의 불안(佛眼)을 얻은 자라야 이를 알리라.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 등을 향한다」 운운. 동춘에 이르기를 「공처를 향하여 법을 헐뜯고 사람을 비방한다」 하였느니라. 무릇 옛날 상법의 끝에는 고묘(護命) · 슈엔(修圓) 등이 주장(奏狀)을 올려 전교대사를 참소하였고, 지금 말법의 처음에는 료칸 · 염아(念阿) 등이 위서(僞書)를 꾸며 쇼군 가문에 올렸느니라. 어찌 세 부류의 원적이 아니겠는가.
어구 풀이
- 叡山・園城・東寺・南都히에이산 · 온조사 · 도지 · 남도
- 히에이산 엔랴쿠사는 천태종의 본산, 온조사(미이데라)는 천태종 사문파의 본산, 도지는 진언종의 근본 도량, 남도는 나라의 여러 대사원이다. 헤이안 이래 일본 불교의 중심 사원들을 차례로 든 것이다.
- 建仁寺・寿福寺・建長寺겐닌사 · 주후쿠사 · 겐초사
- 가마쿠라 시대에 새로 세워진 선종 사원. 겐닌사는 교토, 주후쿠사와 겐초사는 가마쿠라에 있다. 겐초사는 호조 도키요리가 송에서 온 난계도륭(蘭溪道隆)을 개산으로 맞아 세운 절이다.
- 園城寺の五分法身の膚に鎧杖を帯せる온조사의 오분법신의 살갗에 갑옷과 무기를 두르다
- 오분법신은 계신 · 정신 · 혜신 · 해탈신 · 해탈지견신의 다섯으로, 불법으로 깨끗해진 생명을 말한다. 개장(鎧杖)은 갑옷과 무기. 당시 세력을 떨친 승병을 가리킨다. 승병은 7~8세기 무렵부터 나타났으나 헤이안 시대에 사령 자위를 위해 급격히 늘었고, 엔랴쿠사의 승병은 산법사(山法師), 온조사의 승병은 사법사(寺法師)라 불리며 특히 세력이 컸다. 대성인 재세 무렵에는 고비를 넘겨 세력이 점차 약해졌으나, 때로 무리를 지어 도읍에 들어가 강소(強訴)하는 등 횡포가 여전했다.
- 華洛화락
- 「낙」은 중국 고대의 도읍 낙양으로, 바뀌어 도읍을 가리킨다. 일본에서는 교토를 말한다.
- 聖一쇼이치
- (1202~1280) 가마쿠라 시대 임제종의 선승. 엔니(円爾) · 벤엔(弁円)이라고도 한다. 가정 원년(1235) 송에 들어가 무준사범 아래서 약 6년간 선을 배우고 인가를 받아 귀국했다. 하카타의 조텐사에서 활동한 뒤, 섭정 구조 미치이에의 발원으로 교토에 세운 도후쿠사의 개산으로 맞아들여졌다. 교학 면에서는 선과 밀교의 겸수를 특징으로 한다. 호조 도키요리에게 계를 주는 등 국정의 요인들에게 영향력을 가져 명성을 떨쳤다. 생전에 쇼이치 화상의 이름을 받았고, 사후 정화 원년(1312)에 국사호를 받아 쇼이치 국사라 불린다.
- 良観료칸
- (1217~1303) 가마쿠라 중기 진언율종(사이다이사류 율종)의 승려 닌쇼(忍性). 료칸보라고도 한다. 나라 사이다이사의 에이손(叡尊)에게 배운 뒤 계율을 넓히려고 간토로 내려갔다. 문영 4년(1267) 가마쿠라 고쿠라쿠사에 들어갔으므로 고쿠라쿠사 료칸이라 불린다. 강의의 어구 풀이에 따르면 막부 요인과 가까이 지내며 비인(非人) 조직을 장악하고 그 노동력으로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등 여러 이권을 쥐었고, 기도승으로서 막부의 요청에 따라 기우와 몽골 조복의 기도를 행했다. 문영 8년(1271) 여름 대성인이 기우의 승부를 걸어 이겼으나, 료칸은 이를 원망하여 막부 요인들에게 대성인을 박해하도록 움직였고, 이것이 다쓰노쿠치 법난과 사도 유배의 큰 요인이 되었다.
- 衣鉢伝授의발 전수
- 선종의 시조 달마가 제2조 혜가에게 정법안장을 전할 때 그 증표로 가사와 발우를 주었다는 데서 나온 말. 이는 부처님 멸후 부법장 제1 마하가섭이 교화를 마치고 법을 아난에게 부촉한 뒤 계족산에 들어가, 석존에게서 불법을 이어받은 표시로 경전과 옷을 받들고 미륵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이야기에 근거한다. 이후 선종에서는 서천 28조 · 동토 6조를 세우고 의발을 부법의 증표로 삼았다. 대성인은 「성우문답초」에서 선종이 세우는 인도 28조설의 잘못을 논파하셨다.
- 補注『보주』
- 『법화삼대부보주』의 약칭. 북송 천태종의 승려 종의(從義)가 지은 14권. 천태삼대부인 『법화현의』 · 『법화문구』 · 『마하지관』에 보충 주석을 단 것이다.
- 九の意아홉 가지 뜻
- 『마하지관』 권7에서 천태는 석존 일대의 성교를 바르게 해석하고 행하기 위한 조건을 열 가지 뜻(十意)으로 밝혔다. 「아홉 가지 뜻」은 그 가운데 제9 「범어와 한어를 번역하여 명수(名數)를 함께 통하게 한다」를 뺀 나머지 아홉이다. 천태는 이 번역 명수에 대해서는 아직 널리 찾을 겨를이 없다고 했다. 처음 아홉을 가리킨다는 설, 제9의 번역 명수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으나 강의는 취하지 않는다.
- 文字の法師・事相の禅師・一種の禅師문자 법사 · 사상 선사 · 일종 선사
- 『홍결』에 따르면, 문자 법사는 안으로 관해가 없이 법상의 이론에만 달리는 자, 사상 선사는 경과 지를 돌보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행의 형식에만 사로잡힌 자, 일종 선사는 오직 관심 한 가지만 닦되 실은 관도 해도 함께 없는 자다.
- 八邪八風を数えて丈六の仏と為し팔사 · 팔풍을 세어 장육의 부처라 한다
- 팔사는 사견 · 사사유 · 사어 · 사업 · 사명 · 사방편 · 사념 · 사정으로 팔정도의 반대이며 괴로움을 낳는 원인이다. 팔풍은 이(利) · 쇠(衰) · 훼(毁) · 예(譽) · 칭(稱) · 기(譏) · 고(苦) · 낙(樂)이다. 삼신 가운데 응신불을 장육불이라 하는데 키가 1장 6척이라 한다. 교를 배우지 않는 세간의 선인이 팔사와 팔풍을 합해 열여섯이니 1장 6척의 부처라고 하는 식의, 근거 없는 아견의 예다.
- 五陰三毒を合して名けて八邪と為し오음 · 삼독을 합하여 팔사라 이름한다
- 오음은 색 · 수 · 상 · 행 · 식, 삼독은 탐 · 진 · 치다. 다섯과 셋을 합해 여덟이니 팔사라고 하는, 세간 선인의 제멋대로 된 관해를 말한 것이다.
- 鄴洛の禅師업 · 낙의 선사
- 강의의 어구 풀이는 이를 선종의 달마로 본다. 업은 춘추 시대 제의 고을로, 삼국의 위도 이곳에 도읍했으며 지금의 하북성 임장현 서쪽이다. 낙은 낙수 북쪽의 낙양으로 후한 · 서진 · 북위 · 수 등이 도읍했다. 업과 낙은 모두 달마의 선법이 퍼진 땅이다.
- 無眼の者・一眼の者・邪見の者눈 없는 자 · 한쪽 눈인 자 · 사견의 자
- 눈 없는 자는 불법에 전혀 무지한 자, 한쪽 눈인 자는 불교의 일부분만 아는 어설픈 자, 사견의 자는 불법을 제멋대로 굽혀 해석하여 사설을 세우는 자다.
- 護命・修円고묘 · 슈엔
- 고묘는 법상종의 승려로 미노에서 태어나 간고사에서 배웠다. 홍인 9년(818)에 전교대사와 기우를 겨루어 졌다고 전한다. 슈엔도 법상종의 승려로, 고묘와 함께 전교대사의 『현계론』을 비난하며 대승계단 설립에 강하게 반대했다.
- 念阿염아
- (1199~1287) 가마쿠라 시대 정토종의 승려 료추(良忠). 아미호는 넨아미다부쓰(然阿彌陀佛)로 줄여 넨아(然阿)라 한다. 「념(念)」은 음이 통하는 글자를 쓰신 것으로 보인다. 호넨의 손제자로 대성인 당시 가마쿠라 염불자의 중심이었다. 문영 8년(1271) 6월 료칸의 기우가 실패한 뒤 대성인은 교빈에게서 고소를 당했는데, 대성인이 낸 반박서 「교빈소장회통」에서 료칸 · 도아미다부쓰와 함께 넨아미다부쓰가 이 소장에 관여했음이 밝혀져 있다. 진제이류의 조사 쇼코보 벤초의 문류를 이어 정토종 제3조로 일컬어진다.
제3의 강적 — 세 경문이 그린 「성자」의 얼굴
강의는 이 장을 「삼류 가운데 제3 참성증상만을 밝히고, 선 · 율 두 종이 바로 당시의 참성증상만에 해당함을 밝힌 장」이라 규정한다. 대성인은 이 장을 이 편에서 가장 길게 쓰셨다. 묘락이 「셋째가 가장 심하다」고 한 이 적은 알아보기 가장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보는 데 가장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먼저 세 경문이 겹쳐진다. 법화경은 그를 아련야에 누더기 옷을 입고 머물며 백의에게 법을 설하여 육통의 나한처럼 공경받는 자로 그린다. 『반니원경』은 그를 「나한을 닮은 일천제」라 부른다. 열반경은 그를 지율을 흉내 내고 보시를 노리며 겉으로는 어질고 속으로는 탐욕과 질투를 품은 비구로 그린다. 제49장에서 한 번 인용한 경문들을 대성인은 이 장에서 거의 그대로 다시 인용하신다. 그것은 이제 그 경문들을 구체적인 인물에게 대어 보기 위해서다.
강의는 경문이 보여 주는 참성증상만의 특징을 넷으로 정리한다.
- ①존경세간에서 명승 · 지식으로 우러름 받고 성인처럼 존경받아 세상이 의지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爲世所恭敬 如六通羅漢세상의 공경을 받는 것이 육통의 나한과 같으리라
- ②탐욕그러나 속으로는 사견이 강하고 탐욕스러워, 재가를 위해 조금 법을 설하며 사냥꾼과 고양이처럼 보시만 노린다猶猟師の細視徐行するが如く猫の鼠を伺うが如し마치 사냥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다가가는 것 같고 고양이가 쥐를 엿보는 것 같으리라
- ③원질정법의 행자를 원질하고 비방한다好んで我等が過を出さん즐겨 저희들의 허물을 들추어내리이다
- ④고소끝내 국가 권력에 고소하여 정법 홍통자를 유배와 사형에까지 이르게 한다向国王大臣婆羅門居士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 등을 향한다
이 네 특징에는 순서가 있다. 존경 → 탐욕 → 원질 → 고소. 참성증상만의 힘은 첫째 특징, 곧 세상의 존경에서 나온다. 그 존경이 있기에 그의 비방은 「여래의 금언처럼」 들리고, 그의 고소는 공권력을 움직인다. 「선시초」에서 대성인은 이 점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等の経文は正法の強敵と申すは悪王悪臣よりも外道魔王よりも破戒の僧侶よりも持戒有智の大僧の中に大謗法の人あるべし
이러한 경문은, 정법의 강적이라 하는 것은 악왕 · 악신보다도, 외도 · 마왕보다도, 파계의 승려보다도, 계를 지키고 지혜가 있는 큰 스님 가운데에 대방법의 사람이 있으리라는 것이니라
정법의 가장 큰 적은 노골적인 악인이 아니라 「지계 유지의 대승」 가운데 있다. 이 역설이 참성증상만이라는 개념의 핵심이다.
「출가의 자리」는 어디인가 — 히에이산에서 겐초사까지
지도는 『동춘』에서 제3의 3게를 「출가의 자리에 일체의 악인을 거두어들인 것」이라 했다. 대성인은 묻는다. 그 「출가의 자리」는 당세 일본국의 어디인가. 히에이산인가, 온조사인가, 도지인가, 남도인가, 겐닌사인가, 주후쿠사인가, 겐초사인가. 이 일곱의 나열에는 순서가 있다. 앞의 넷은 헤이안 이래의 천태 · 진언 · 남도의 옛 대사원이고, 뒤의 셋은 가마쿠라 시대에 새로 일어난 선종의 사원이다.
먼저 옛 대사원을 검토하신다. 엔랴쿠사의 출가자가 머리에 갑주를 쓰고, 온조사의 승려가 계 · 정 · 혜 · 해탈 · 해탈지견의 오분법신을 갖추었다는 그 몸에 갑옷과 무기를 두른 모습 — 이른바 승병 — 이 「출가의 자리에 모인 악인」인가. 대성인은 아니라고 판단하신다. 그들은 경문이 말하는 「납의로 한적한 곳에 있는」 모습과 닮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육통의 나한처럼」 공경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묘락이 말한 「점점 알아보기 어렵다」는 조건에 맞지 않는다. 승병의 횡포는 누구나 아는 악이다. 알아보기 쉬운 악은 제3의 강적이 될 수 없다.
엔랴쿠사와 온조사는 같은 천태종이면서 헤이안 중기 이래 산문(山門)과 사문(寺門)으로 갈라져 대립했고, 엔랴쿠사 승병이 온조사를 불태운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대성인이 제53장에서 「절과 탑을 불태워 유배당하는 승려는 수를 모른다」고 하신 것도 이런 사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신다. 「도읍에서는 쇼이치 등, 가마쿠라에서는 료칸 등이 이에 닮았다.」 교토의 쇼이치(엔니)는 송에서 선을 배우고 돌아와 도후쿠사의 개산이 되었으며, 섭정 구조 미치이에의 귀의를 받고 호조 도키요리에게 계를 주어 명성을 떨쳤다. 가마쿠라의 료칸(닌쇼)은 엄격한 계율의 실천과 자선 · 공공사업으로 막부와 민중 모두에게 존경받았다. 두 사람 모두 경문의 「세상의 공경을 받는 것이 육통의 나한과 같은」 모습에 꼭 들어맞는다. 그리고 바로 그 존경 때문에, 그들이 법화경의 원적이라는 사실은 「점점 알아보기 어렵다」.
대성인은 「시모야마어소식」에서 료칸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셨다.
爰に両火房と申す法師あり身には三衣を皮の如くはなつ事なし一鉢は両眼をまほるが如し二百五十戒堅く持ち三千の威儀をととのへたり世間の無智の道俗国主よりはじめて万民にいたるまで地蔵尊者の伽羅陀山より出現せるか迦葉尊者の霊山より下来するかと疑ふ
여기에 료카보(兩火房)라는 법사가 있으니, 몸에는 삼의를 살갗처럼 떼어 놓는 일이 없고, 한 발우는 두 눈을 지키듯 하며, 250계를 굳게 지키고 3천의 위의를 갖추었느니라. 세간의 무지한 도속은 국주로부터 만민에 이르기까지 지장존자가 가라타산에서 나타난 것인가, 가섭존자가 영산에서 내려온 것인가 하고 의심하느니라
「료카보(兩火房)」는 「료칸보(良觀房)」를 비튼 이름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대성인은 권지품을 읽고 「그 제3의 강적은 이 자인가」라고 보셨다고 회고하시며, 문영 8년(1271)의 기우 대결로 이어지는 경위를 말씀하신다.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쇼이치와 료칸의 이름을 드신 바로 뒤에 대성인은 이렇게 덧붙이신다.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눈이 있다면 경문에 제 몸을 맞추어 보라.」
이 한 구절은 삼류 논의 전체의 성격을 규정한다. 대성인이 그들을 참성증상만이라 부르는 것은 개인에 대한 원한 때문이 아니다. 경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니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판단에 이의가 있다면 대성인을 원망할 일이 아니라 경문에 자기 몸을 대어 보라. 그 거울 앞에서는 지목된 사람도, 지목하는 사람도, 그 판단을 듣는 사람도 똑같이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제50장의 「우리가 삼류에 들어 있는가」라는 물음이 여기서 다시 울린다.
천태가 본 선(禪)의 병 — 『마하지관』과 『홍결』
이어서 대성인은 『마하지관』과 묘락의 『홍결』, 종의의 『보주』를 연달아 인용하신다. 이 인용들은 천태와 묘락이 이미 그들의 시대에 「선(禪)」이라는 이름 아래 일어난 병을 진단해 두었음을 보여 준다. 쇼이치가 선승이고, 가마쿠라의 새 사원들이 선종 사원이라는 점에서 이 인용은 그대로 당세를 향한다.
「지관의 밝고 고요함은 앞 시대에 듣지 못하였다」
『마하지관』의 서두에서 장안대사는 「지관의 밝고 고요함은 앞 시대에 아직 듣지 못하였다」고 했다. 천태의 지관은 그 이전 어떤 선법에도 없던 새로운 것이라는 자부다. 묘락은 『홍결』 권1에서 이를 풀어, 한 명제가 밤에 금인(金人)을 꿈꾸어 불교가 전래한 이래 천태의 진(陳) 대에 이르기까지 선문에 끼어들어 의발을 전수한 자들이 있었다고 했고, 종의의 『보주』는 「의발 전수」가 달마를 가리킨다고 했다. 곧 천태가 「앞 시대에 듣지 못했다」고 한 말에는 달마 계통의 선법이 포함된다. 천태의 지관은 그들의 선과 같은 것이 아니다.
눈먼 스승과 절름발이 제자
『마하지관』 권5는 「한 부류의 선인」을 들어 「눈먼 이와 절름발이인 스승과 제자가 둘 다 함께 떨어진다」고 했다. 강의의 현대어역은 이를 「관행에만 힘쓰고 교해의 학문을 게을리하는 눈먼 스승과, 선정의 행을 게을리하고 이론만 희롱하는 절름발이 제자가 함께 떨어진다」고 풀이한다. 교(敎)와 관(觀) 가운데 한쪽만 갖춘 것은 눈과 다리 가운데 하나만 가진 것과 같다. 눈먼 이가 절름발이를 업고 가면 서로 돕는 듯 보이지만, 길을 잘못 들면 둘 다 떨어진다.
열 가지 뜻과 세 부류의 스승
『마하지관』 권7에서 천태는 자신의 법문이 갖춘 열 가지 뜻을 말하고, 그 가운데 아홉 가지 뜻은 「세간의 문자 법사와 같지 않고, 사상의 선사와 같지 않다」고 했다. 또 「한 부류의 선사는 오직 관심의 한 뜻만 있으되 혹은 얕고 혹은 거짓되며, 나머지 아홉은 전혀 없다」고 하고, 「헛된 말이 아니니 뒤의 현인으로서 눈 있는 자는 마땅히 증득하여 알지어다」라고 맺었다.
묘락은 『홍결』 권7에서 이 세 부류를 하나하나 풀었다.
- 문자 법사文字の法師안으로 관해가 없고 오직 법상만 꾸민다『홍결』内に観解無くして唯法相を構う안으로 관해가 없고 오직 법상만 꾸미는 자이다
- 사상 선사事相の禅師경과 지를 익히지 않고 코끝과 명치에 마음을 머물게 한다, 근본유루정『홍결』境智を閑わず鼻膈に心を止む경과 지를 익히지 않고 코끝과 명치에 마음을 머물게 하는 자
- 일종 선사一種の禅師오직 관심의 한 뜻 — 잠시 주어서 논한 것, 빼앗으면 관도 해도 함께 빠졌다『홍결』奪えば則ち観解倶に闕く빼앗으면 관도 해도 함께 빠졌다
사상 선사가 닦는 것은 「근본유루정」, 곧 번뇌가 남은 채로 얻는 세간의 선정이어서 생사를 벗어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일종 선사에 대해 천태는 「관심의 한 뜻은 있다」고 했지만, 묘락은 그것이 「잠시 주어서(與えて)」 한 말일 뿐 「빼앗아(奪えば)」 말하면 관도 해도 없다고 한다. 여기서 쓰인 「여탈(與奪)」은 천태 교학의 논법으로, 상대의 장점을 일단 인정해 주는 자리와 근본에서 부정하는 자리를 구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묘락은 세간 선인의 해석을 예로 든다. 그들은 이관(理觀)만 숭상하여 교를 배우지 않으므로, 자기의 관념으로 경문을 풀어 버린다. 팔사와 팔풍을 합하면 열여섯이니 1장 6척의 장육불이라 하고, 오음과 삼독을 합하면 여덟이니 팔사라 하며, 육입을 육통이라 하고, 사대를 사제라 한다. 숫자를 맞추어 경의 개념을 제멋대로 대응시키는 이 해석을 묘락은 「거짓 가운데의 거짓」이라 하고, 「얕다고 논할 거리조차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경문에 의거하지 않는 관심이 얼마나 쉽게 자의적인 해석으로 흐르는지를 보여 주는 예다.
업 · 낙의 선사 — 명성과 임종
마지막으로 『마하지관』 권7은 「옛날 업 · 낙의 선사」를 든다. 그 이름은 강과 바다에 퍼졌고, 머물 때는 사방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우러르며 떠날 때는 밭두렁 길에 무리를 이루어 수레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또한 무슨 이익이 있었는가. 임종에 모두 뉘우쳤다.」 묘락은 『홍결』에서 업이 제 · 위의 도읍이고 낙이 낙양이며, 「선조의 한 사람」이 그 땅을 교화했으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이름은 내지 않는다고 했다. 강의는 이 선사를 달마로 본다.
이 인용이 여기 놓인 뜻은 분명하다. 명성의 크기는 법의 바름을 증명하지 않는다. 구름 같은 귀의자와 요란한 수레 행렬은 참성증상만의 첫째 특징 — 세상의 존경 — 그 자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임종에 드러난다. 6권 『반니원경』이 「구경의 곳을 보지 못한다 함은 저 일천제의 무리가 짓는 구경의 악업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 한 것도 같은 뜻이다. 일천제의 악업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으며,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눈 없는 자 · 한쪽 눈인 자 · 사견의 자
「눈 없는 자, 한쪽 눈인 자, 사견의 자는 말법 처음의 세 부류를 볼 수 없다. 한 분의 불안을 얻은 자라야 이를 알리라.」
천태가 「뒤의 현인으로서 눈 있는 자는 마땅히 증득하여 알라」고 한 말이 여기서 대성인의 말로 이어진다. 참성증상만은 알아보기 어렵다. 불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눈 없는 자)은 그 존경받는 모습만 보고, 불법의 한 부분만 아는 사람(한쪽 눈인 자)은 그 계율과 학식을 보고 감탄하며, 불법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사람(사견의 자)은 오히려 그들에게 동조한다. 그들을 알아보려면 「한 분의 불안」이 필요하다. 강의의 현대어역은 이를 「정법을 믿어 얻은 한 분의 불안」이라 옮긴다. 바른 법에 대한 믿음이 곧 보는 눈이 된다.
개목초라는 제목 자체가 「눈을 뜨게 하는 글」이다. 삼류를 알아보는 눈과 법화경의 행자를 알아보는 눈은 같은 눈이다. 이 편의 논의는 그 눈을 여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공처를 향하여 — 고묘 · 슈엔에서 료칸 · 염아로
장의 끝에서 대성인은 권지품의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를 향하여」와 지도의 「공처를 향하여 법을 헐뜯고 사람을 비방한다」를 들어, 참성증상만의 넷째 특징 — 권력에 고소함 — 을 역사 속에서 확인하신다.
상법의 끝 — 전교대사와 남도의 학승
「옛날 상법의 끝에는 고묘 · 슈엔 등이 주장을 올려 전교대사를 참소하였다.」 전교대사가 히에이산에 대승계단을 세우려 하자, 남도의 법상종 학승 고묘 · 슈엔 등은 이에 반대하여 조정에 글을 올렸다. 전교대사는 『현계론』을 지어 반박했고, 대승계단의 칙허는 대사가 입적한 직후에야 내려졌다. 대성인은 「법화행자봉난사」에서 이 일을 이렇게 전하신다.
南都七大寺の高徳等護命僧都景信律師等三百余人伝教大師を罵詈して曰く西夏に鬼弁婆羅門有り東土に巧言を吐く禿頭沙門あり此れ乃ち物類冥召して世間を誑惑す
남도 칠대사의 고덕들, 고묘 승도 · 게이신 율사 등 3백여 인이 전교대사를 매리하여 말하기를 「서하(西夏)에 귀변 바라문이 있었고 동토에 교언을 토하는 대머리 사문이 있다. 이는 같은 무리가 은밀히 불러 세간을 속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느니라
말법의 처음 — 료칸 · 염아의 위서
「지금 말법의 처음에는 료칸 · 염아 등이 위서를 꾸며 쇼군 가문에 올렸다.」 문영 8년(1271) 여름, 막부의 명으로 료칸이 기우의 기도를 할 때 대성인은 승부를 제안하셨다. 료칸의 기도는 비를 내리지 못했다. 그 직후 염불승 교빈(行敏)의 이름으로 대성인을 고소하는 소장이 나왔고, 대성인은 「교빈소장회통」에서 그 배후에 료칸과 넨아(염아) · 도아미다부쓰가 있음을 밝히셨다. 이어 그들은 막부의 유력자와 그 부인들에게 손을 써서 대성인을 모함했다. 「종종어진무어서」는 이 경위를 이렇게 전한다.
さりし程に念仏者持斎真言師等自身の智は及ばず訴状も叶わざれば上郎尼ごぜんたちにとりつきて種種にかまへ申す故最明寺入道殿極楽寺入道殿を無間地獄に堕ちたりと申し建長寺寿福寺極楽寺長楽寺大仏寺等をやきはらへと申し道隆上人良観上人等を頸をはねよと申す
그러는 사이에 염불자 · 지재(持齋) · 진언사 등은 자기의 지혜로는 미치지 못하고 소장도 뜻대로 되지 않자, 높은 신분의 비구니 부인들에게 매달려 여러 가지로 꾸며 말하기를, 「(니치렌은) 사이묘지 입도님과 고쿠라쿠지 입도님이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하고, 겐초사 · 주후쿠사 · 고쿠라쿠사 · 조라쿠사 · 다이부쓰사 등을 불태워 버리라 하며, 도류 상인 · 료칸 상인 등의 목을 베라고 한다」고 하였느니라
이 참소가 다쓰노쿠치 법난과 사도 유배로 이어졌다. 권지품의 「국왕 · 대신에게 향하여 비방한다」는 경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전교대사를 참소한 고묘 · 슈엔과, 대성인을 참소한 료칸 · 염아는 시대를 사이에 두고 같은 자리에 선다. 「어찌 세 부류의 원적이 아니겠는가.」
강의는 참성증상만의 특징을 「세상의 존경 · 속의 탐욕 · 행자에 대한 원질 · 권력에의 고소」의 넷으로 정리하고, 이 넷이 가마쿠라 시대의 선 · 율 고승, 특히 료칸에게서 모두 확인된다고 본다. 묘락의 「셋째가 가장 심하다」는 말처럼, 이 적의 무서움은 그 존경과 권위가 악을 가린다는 데 있다.
본문
当世の念仏者等・天台法華宗の檀那の国王・大臣・婆羅門・居士等に向つて云く「法華経は理深我等は解微法は至つて深く機は至つて浅し」等と申しうとむるは高推聖境・非己智分の者にあらずや、 禅宗の云く「法華経は月をさす指・禅宗は月なり月をえて指なにかせん、禅は仏の心・法華経は仏の言なり仏・法華経等の一切経をとかせ給いて後・最後に一ふさの華をもつて迦葉一人にさづく、 其のしるしに仏の御袈裟を迦葉に付属し乃至付法蔵の二十八・六祖までに伝う」等云云、此等の大妄語・国中を誑酔せしめてとしひさし、 又天台・真言の高僧等・名は其の家にえたれども我が宗にくらし、貪欲は深く公家・武家を・をそれて此の義を証伏し讃歎す、昔の多宝・分身の諸仏は法華経の令法久住を証明す、 今天台宗の碩徳は理深解微を証伏せり、かるがゆへに日本国に但法華経の名のみあつて得道の人一人もなし、誰をか法華経の行者とせん、寺塔を焼いて流罪せらるる僧侶は・かずをしらず、 公家・武家に諛うて・にくまるる高僧これ多し、此等を法華経の行者というべきか。
당세의 염불자 등이 천태법화종의 단나인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 등을 향하여 말하기를 「법화경은 이치가 깊고 우리는 이해가 미약하며, 법은 지극히 깊고 근기는 지극히 얕다」 등이라 하여 멀리하게 하는 것은, 「높이 성인의 경계로 밀어 올려 자기의 지혜로 미칠 바가 아니라 한다(高推聖境 非己智分)」는 자가 아니겠는가. 선종이 이르기를 「법화경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선종은 달이니라. 달을 얻었으면 손가락은 무엇에 쓰겠는가. 선은 부처의 마음이요 법화경은 부처의 말씀이니라. 부처님은 법화경 등 일체경을 설하신 뒤 마지막에 한 송이 꽃으로 가섭 한 사람에게 주셨으며, 그 표시로 부처님의 가사를 가섭에게 부촉하셨고, 내지 부법장의 28조와 6조에 이르기까지 전하였다」 등이라 하느니라. 이러한 대망어가 나라 안을 속이고 취하게 한 지 오래되었느니라. 또 천태 · 진언의 고승 등은 이름은 그 집안에서 얻었으나 자기 종에는 어두우며, 탐욕이 깊고 공가 · 무가를 두려워하여 이 뜻에 굴복하여 찬탄하느니라. 옛날 다보 · 분신의 제불은 법화경의 영법구주를 증명하셨으나, 지금 천태종의 석덕(碩德)은 이심해미에 굴복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일본국에는 다만 법화경의 이름만 있고 득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느니라. 누구를 법화경의 행자로 삼겠는가. 절과 탑을 불태워 유배당하는 승려는 수를 모르고, 공가 · 무가에 아첨하여 미움을 받는 고승도 많으니, 이들을 법화경의 행자라 하겠는가.
어구 풀이
- 天台法華宗の檀那천태법화종의 단나
- 일본의 국왕 · 대신과 민중은 본래 전교대사가 세운 천태법화종의 단나였다. 염불자들이 그 단나들을 향해 법화경을 멀리하게 했다는 것은, 원래 법화경에 귀의하던 사람들을 그 경에서 떼어 놓았다는 뜻이다.
- 高推聖境・非己智分고추성경 · 비기지분
- 『마하지관』 권1의 문. 「높이 성인의 경계로 밀어 올려 자기의 지혜로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읽는다. 법화경의 참뜻은 난해하여 우리의 지혜로 미칠 바가 아니라 하여 법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듯 보이게 하면서, 실제로는 아견을 세워 법을 끌어내리는 것을 말한다.
- 禅宗の云く等선종이 이르기를
- 선종이 세운 주장. 영취산의 법회에서 석존이 꽃을 들어 말없이 대중에게 보이자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는데,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달아 얼굴을 펴고 미소 지었다고 한다(염화미소). 『대범천왕문불결의경』에 「정법안장 · 열반묘심 · 미묘한 법문이 있으니, 문자를 세우지 않고 교 밖에 따로 전하여 가섭에게 부촉한다」고 있어, 석존이 마음에 간직한 미묘한 법을 가섭에게만 부촉했다고 한다. 가섭에서 아난 · 상나화수로 대대로 전하여 달마에 이르고, 이후 중국에서 일본으로 넓혀졌다고 한다.
- 法華経は月をさす指법화경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 선종에서는 『원각수다라요의경』의 「수다라의 가르침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는 문에 의거하여, 경문에 설해진 가르침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아 달을 보면 손가락이 쓸모없듯, 선법으로 진여의 달을 깨달으면 손가락인 경문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 迦葉가섭
- 범어 마하카샤파(Mahākāśyapa)의 음사 마하가섭의 약칭. 대음광이라 번역한다. 석존 십대제자의 한 사람으로 바라문 출신이며, 왕사성에서 석존을 만나 제자가 된 지 여드레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의식주의 욕심에 집착하지 않고 엄격한 수행 생활을 관철하여 두타제일이라 불린다. 석존 멸후 부법장의 제1로서 왕사성 밖 필발라굴에서 제1결집을 주재했고, 이후 20년간 소승교를 넓힌 뒤 아난에게 법을 부촉하고 계족산에서 입적했다고 한다. 법화경 신해품에서 수보리 · 가전연 · 가섭 · 목련의 사대성문이 삼거화택의 비유를 통해 개삼현일의 불의를 깨닫고 기뻐했으며, 수기품에서 가섭은 미래에 광명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
- 付法蔵の二十八부법장의 28
- 서천 28조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말하는 법통으로, 인도에서 석존의 오의를 이었다는 스물여덟 조사다. 『전법정종기』 권4 · 5에는 부법장 24인에 바사사다 · 불여밀다 · 반야다라 · 보리달마를 더해 28조로 한다. 그러나 『부법장인연전』 권6에서는 제24조 사자존자 이후 부법의 사람이 끊어졌다고 한다.
- 六祖6조
- 동토 6조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선종을 전한 여섯 고승. ① 보리달마 ② 혜가 ③ 승찬 ④ 도신 ⑤ 홍인 ⑥ 혜능.
- 証伏증복
- 상대의 설이 옳다고 인정하여 굴복하는 것. 천태 · 진언의 고승이 염불 · 선의 주장에 굴복하여 오히려 찬탄했다는 뜻으로 쓰였다.
- 令法久住영법구주
- 법화경 견보탑품 제11의 문. 「법을 오래 머물게 한다」고 읽는다. 미래 영원에 걸쳐 묘법이 전해지게 하는 것이다.
「법은 지극히 깊고 근기는 지극히 얕다」 — 염불자의 말
강의는 이 장을 「바로 니치렌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임을 드러내기에 앞서, 여러 종의 사의(邪義)를 보여 일본국의 승려들이 법화경에 반대하는 모습을 드러낸 장」이라 규정한다. 앞의 세 장이 삼류를 사람에 따라 가렸다면, 이 장은 그 사람들이 내세우는 「말」을 가린다. 그리고 그 말들이 일본국을 어떤 상태로 만들었는지를 보인 뒤, 「누구를 법화경의 행자로 삼겠는가」라는 물음으로 다음 장을 연다.
첫째는 염불자의 말이다. 그들은 천태법화종의 단나인 국왕 · 대신 · 거사들에게 「법화경은 이치가 깊고 우리는 이해가 미약하며, 법은 지극히 깊고 근기는 지극히 얕다」고 말한다. 강의의 현대어역은 이를 「말법에 법화경을 넓혀도 법은 지극히 깊고 이를 믿는 중생의 근기는 지극히 얕으므로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풀이한다. 대성인은 이것이 바로 『마하지관』이 말한 「높이 성인의 경계로 밀어 올려 자기의 지혜로 미칠 바가 아니라 한다」는 자의 모습이라고 하신다. 제51장에서 도작의 「이심해미」를 도문증상만의 증거로 든 논리가, 여기서 당세 일본의 염불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강의의 어구 풀이는 「고추성경 · 비기지분」의 태도를 이렇게 짚는다. 겉으로는 법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견해를 고집하여 법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법화경은 훌륭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말은 법화경을 칭찬하는 형식으로 법화경을 버리게 한다.
「경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 선종의 교외별전
둘째는 선종의 말이다. 「법화경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선종은 달이다. 달을 얻었으면 손가락은 무엇에 쓰겠는가. 선은 부처의 마음이요 법화경은 부처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염화미소의 전승을 든다. 부처님은 일체경을 설하신 뒤 마지막에 한 송이 꽃을 들어 가섭 한 사람에게 법을 전하셨고, 그 표시로 가사를 주셨으며, 그 법이 서천 28조와 동토 6조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두 개의 축이 있다. 하나는 「교(敎)와 심(心)의 분리」다. 경전은 말이고 선은 마음이니, 마음을 얻으면 말은 버려도 된다. 다른 하나는 「계보의 권위」다. 가섭에서 달마를 거쳐 오늘의 선사에 이르기까지 끊어지지 않고 전해진 법이 경전보다 위에 있다.
강의의 어구 풀이는 이 두 축의 근거를 각각 짚는다. 염화미소와 교외별전은 『대범천왕문불결의경』에, 「손가락과 달」은 『원각경』에 근거한다. 그리고 28조의 계보에 대해서는, 선종의 『전법정종기』가 부법장 24인에 네 사람을 더해 28조를 세웠지만, 정작 『부법장인연전』 권6은 제24조 사자존자에서 부법이 끊어졌다고 기록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제50장에서 대성인이 「24인이 차례로 이으리라」는 예언의 적중을 법화경의 진실성의 증거로 드신 바로 그 부법장의 전기가, 선종이 내세우는 28조의 계보를 뒷받침하지 않는 것이다. 대성인은 「성우문답초」에서 이 28조설의 잘못을 따로 논파하셨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중국에서 후대에 성립한 경전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며, 송대 이후 선종 문헌에서 염화미소 전승의 전거로 거론되었다.
대성인은 이들의 주장을 「대망어」라 하시고, 그것이 「나라 안을 속이고 취하게 한 지 오래되었다」고 하신다. 「취하게 한다(誑酔)」는 말이 날카롭다. 사람들은 속았을 뿐 아니라 그 말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름은 있으나 그 종에 어둡다 — 천태 · 진언 고승의 굴복
셋째는 법화경의 종인 천태종과 진언종의 고승들이다. 그들은 「이름은 그 집안에서 얻었으나 자기 종에는 어둡다」. 천태종의 승려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 천태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모른다. 그리고 「탐욕이 깊고 공가 · 무가를 두려워하여」 염불과 선의 주장에 굴복하고 오히려 찬탄한다.
강의는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을 세운다. 법화경이 존귀하다면 천태종은 법화경의 종이니 천태종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강의의 답은, 천태종에는 법화경의 문자만 있고 그 공덕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둘이다. 하나는 말법에 이르러 문상의 법화경이 그 공덕을 잃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각 · 지증 이래 천태종이 진언을 받아들여 「구슬을 깨뜨린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천태종도 그릇된 종이라고 하셨다고 강의는 말한다. 바른 종교가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 참뜻을 잃고 불법을 깨뜨리는 모습이 되는 것은 슬퍼할 일이라고 강의는 덧붙인다.
이 대목에서 대성인은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신다. 「옛날 다보 · 분신의 제불은 법화경의 영법구주를 증명하셨으나, 지금 천태종의 석덕은 이심해미에 굴복하였다.」 허공회에서 다보여래와 시방 분신의 제불은 「법을 오래 머물게 하려고」 모여 법화경이 진실임을 증명했다. 그런데 그 법화경을 지켜야 할 천태종의 대학자들은 「법화경은 너무 깊어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는 말이 옳다고 증명해 주고 있다. 같은 「증명」이라는 행위가 정반대의 방향을 향한다.
「법화경의 이름만 있고 득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결과가 「일본국에는 다만 법화경의 이름만 있고 득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상태다. 일본은 전교대사 이래 법화경의 나라였다. 법화경을 읽는 사람도, 법화경으로 기도하는 사람도, 법화경을 강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법화경으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없다.
그러면 「누구를 법화경의 행자로 삼겠는가.」 대성인은 두 부류의 후보를 들어 차례로 지우신다. 하나는 「절과 탑을 불태워 유배당하는 승려」다. 사원 사이의 무력 충돌로 상대의 절을 불태우고 그 죄로 유배되는 승려는 수를 셀 수 없다. 그들도 유배라는 고난을 겪었지만, 그것은 법화경 때문이 아니라 세간의 죄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공가 · 무가에 아첨하여 미움을 받는 고승」이다. 권력자에게 아첨하다가 미움을 사는 것도 법화경을 위한 고난이 아니다.
이 두 후보를 지우는 기준은 제55장에서 다시 나타난다. 대성인은 거기서 「전생에 법화경 비방의 죄가 없는 자가 금생에 법화경을 행하는데, 이를 세간의 허물에 붙이거나 죄 없는 이를 해치면 곧 현벌이 있다」고 하신다. 법화경의 행자의 고난은 「세간의 허물」 때문이 아니라 「법화경 때문」이어야 한다. 대성인은 「사도어서」에서 자신의 유배에 대해 「이번의 어감기는 세간의 허물이 조금도 없다」(958쪽)고 분명히 하셨다. 이 장의 끝에 놓인 두 후보는, 겉으로 비슷한 고난이라도 그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행자인지 아닌지가 갈린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대조다.
본문
仏語むなしからざれば三類の怨敵すでに国中に充満せり、金言のやぶるべきかのゆへに法華経の行者なし・いかがせん・いかがせん、 抑たれやの人か衆俗に悪口罵詈せらるる誰の僧か刀杖を加へらるる、誰の僧をか法華経のゆへに公家・武家に奏する・誰の僧か数数見擯出と度度ながさるる、 日蓮より外に日本国に取り出さんとするに人なし、日蓮は法華経の行者にあらず天これを・すて給うゆへに、誰をか当世の法華経の行者として仏語を実語とせん、 仏と提婆とは身と影とのごとし生生にはなれず聖徳太子と守屋とは蓮華の花菓・同時なるがごとし、法華経の行者あらば必ず三類の怨敵あるべし、三類はすでにあり法華経の行者は誰なるらむ、 求めて師とすべし一眼の亀の浮木に値うなるべし。
부처님 말씀이 헛되지 않으므로 세 부류의 원적은 이미 나라 안에 가득하느니라. 금언이 깨어질 것인가, 법화경의 행자가 없으니 어찌하랴, 어찌하랴. 대체 누가 많은 속인에게 악구매리를 당하였는가. 어느 승려가 칼과 막대기를 맞았는가. 어느 승려를 법화경 때문에 공가 · 무가에 고소하였는가. 어느 승려가 「자주자주 쫓겨나리라(數數見擯出)」와 같이 거듭 유배되었는가. 니치렌보다 밖에 일본국에서 꺼내려 해도 사람이 없느니라. 니치렌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니, 하늘이 이를 버리시기 때문이니라. 그렇다면 누구를 당세의 법화경의 행자로 삼아 부처님 말씀을 진실한 말씀으로 하겠는가. 부처와 제바는 몸과 그림자 같아서 생생세세에 떨어지지 않고, 쇼토쿠 태자와 모리야는 연꽃의 꽃과 열매가 동시인 것과 같으니라. 법화경의 행자가 있다면 반드시 세 부류의 원적이 있으리라. 세 부류는 이미 있으니 법화경의 행자는 누구이겠는가. 구하여 스승으로 삼아야 하리니, 한쪽 눈의 거북이 떠다니는 나무를 만나는 것과 같으리라.
어구 풀이
- 数数見擯出삭삭견빈출
- 법화경 권지품 제13에 「탁세의 악한 비구는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근기에 따라 설하신 법을 알지 못하고, 악구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자주자주 쫓겨나 탑과 절을 멀리 떠나리라」고 설해진 문. 석존 멸후에 법화경의 행자를 박해하는 모습의 하나로, 거듭 추방되고 유배되는 것을 말한다. 「삭삭」은 자주라는 뜻으로 두 번 이상을 말한다. 대성인은 이 경문대로 이즈와 사도에 유배되셨으며, 이 「삭삭」 두 글자에 뜻을 두어, 이 문을 신구의 삼업으로 읽어 낸 이는 대성인 한 사람뿐이라고, 곧 자신이 말법의 법화경의 행자라고 말씀하셨다.
- 公家・武家に奏する공가 · 무가에 고소한다
- 공가는 교토의 조정, 무가는 가마쿠라 막부. 권지품의 「국왕 · 대신 · 바라문 · 거사를 향하여 비방한다」가 당세에서는 조정과 막부에 대한 고소로 나타났다.
- 仏と提婆부처와 제바
- 제바달다는 석존의 사촌으로 출가하여 제자가 되었으나 교단을 빼앗으려다 실패하자 석존을 해치려 했다. 경전은 제바가 과거세부터 생생마다 석존과 원수가 되었다고 전한다. 법화경 제바달다품에서 석존은 제바가 과거세의 스승이었음을 밝히고 그에게 천왕여래의 수기를 주었다.
- 守屋모리야
- (?~587) 모노노베노 모리야. 아스카 시대의 중앙 귀족. 비다쓰 · 요메이 천황 때 오무라지가 되어, 아버지 오코시의 배불론을 이어받아 숭불파인 대신 소가노 우마코와 대립했다. 비다쓰 천황 때 역병이 돌자 불법을 숭배한 탓이라 하여 당탑을 부수고 불상을 태웠다. 요메이 천황이 죽은 뒤 아나호베 황자의 즉위를 꾀했으나 황자가 우마코에게 살해되어 실패했고, 누카타베 황녀(뒤의 스이코 천황)와 그 조카 우마야도 황자(쇼토쿠 태자)를 받든 우마코와 여러 호족 가운데 고립되어 공격을 받고 패사했다.
- 蓮華の花菓・同時연꽃의 꽃과 열매가 동시
- 연꽃은 꽃이 필 때 이미 그 안에 열매(연밥)를 품고 있다.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갖추어지는 비유로, 「묘법연화」의 「연화」가 인과구시(因果俱時)를 나타낸다고 풀이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쇼토쿠 태자와 모리야가 동시에 나타나 서로 떨어질 수 없었음을 말한다.
- 一眼の亀の浮木に値うなるべし한쪽 눈의 거북이 떠다니는 나무를 만나는 것과 같다
- 부처와 부처가 설하는 정법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이는 비유로, 맹귀부목의 비유라고도 한다. 법화경 묘장엄왕본사품 제27에 「부처님을 만나기 어려움은 우담바라꽃과 같고, 또 한쪽 눈의 거북이 떠다니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 있다.
「니치렌보다 밖에 일본국에 꺼낼 사람이 없다」
강의는 이 장을 법화경의 행자를 드러내는 단락의 정점으로 본다. 앞의 네 장에서 대성인은 세 부류의 원적이 이미 일본국에 가득함을 논증하셨다. 이제 남은 물음은 하나다. 원적이 있다면 그 원적에게 박해받는 행자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부처님 말씀이 헛되지 않으므로 세 부류의 원적은 이미 나라 안에 가득하다. 금언이 깨어질 것인가, 법화경의 행자가 없으니 어찌하랴.」 원적은 있는데 행자가 없다면 부처님의 예언은 절반만 맞은 것이 되고, 그것은 곧 예언 전체가 거짓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대성인은 경문의 네 가지 난을 하나씩 들어 묻는다.
「누가 많은 속인에게 악구매리를 당하였는가. 어느 승려가 칼과 막대기를 맞았는가. 어느 승려를 법화경 때문에 공가 · 무가에 고소하였는가. 어느 승려가 '자주자주 쫓겨나리라'와 같이 거듭 유배되었는가.」 네 물음은 모두 「법화경 때문에」라는 조건 아래 있다. 제53장에서 절과 탑을 불태워 유배된 승려와 권력에 아첨하다 미움받은 고승을 지운 것은 바로 이 조건 때문이었다. 이 조건을 붙이면, 네 난을 모두 몸으로 받은 사람은 「니치렌보다 밖에 일본국에서 꺼내려 해도 사람이 없다.」
개목초 상권 제27장에서 대성인은 이미 이 논증을 펼치셨다.
今の世を見るに日蓮より外の諸僧たれの人か法華経につけて諸人に悪口罵詈せられ刀杖等を加えらるる者ある、日蓮なくば此の一偈の未来記は妄語となりぬ
지금 세상을 보건대 니치렌 밖의 여러 승려 가운데 누가 법화경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악구매리를 당하고 칼과 막대기 등을 맞은 자가 있는가. 니치렌이 없다면 이 한 게의 미래기는 망어가 되었으리라
그리고 사도 쓰카하라에서의 심경을 전하는 「종종어진무어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仏滅度後二千二百余年が間恐らくは天台智者大師も一切世間多怨難信の経文をば行じ給はず数数見擯出の明文は但日蓮一人なり
불멸도 후 2천2백여 년 동안 아마도 천태지자대사도 「일체세간에 원망이 많아 믿기 어렵다」는 경문은 행하지 않으셨으리라. 「자주자주 쫓겨나리라」의 명문은 다만 니치렌 한 사람이니라
천태와 전교는 법화경을 깊이 이해했으나 「삭삭견빈출」을 몸으로 겪지는 않았다. 제27장에서 대성인이 「니치렌의 법화경 지해는 천태 · 전교에 천만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지만, 난을 참고 자비가 뛰어난 것은 두려움마저 품을 만하다」고 하신 것이 바로 이 차이다.
「니치렌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다」 — 의문의 반전
그런데 그 결론 바로 뒤에서 대성인은 스스로 그것을 뒤집으신다. 「니치렌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니, 하늘이 이를 버리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성인 자신의 결론이 아니라 세간의 의문을 대성인이 대신 말씀하신 것이다. 강의는 이 의문의 실상을 이렇게 풀이한다. 대성인은 나라 안의 모든 종교가 정법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민중이 고통에 허덕인다고 하시고, 행복해지려면 대성인의 불법을 믿는 길밖에 없다고 설하셨다. 그런데 대성인은 멀리 사도로 유배되어 살아 돌아오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고, 주요한 제자 · 단나는 붙잡히거나 쫓겨나거나 주군의 압박을 받아 누구 하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설하는 것과 현실의 모습이 너무나 어긋나지 않느냐는 것이 세간의 의문이다.
이 의문은 개목초 상권 제28장에서 이미 제기되었다. 대성인은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此の疑は此の書の肝心・一期の大事なれば処処にこれをかく上疑を強くして答をかまうべし
이 의문은 이 글의 간심이요 일생의 대사이므로 곳곳에 이를 쓰고, 게다가 의문을 강하게 하여 답을 마련하리라
「의문을 강하게 하여」 — 대성인은 의문을 약하게 만들어 쉽게 답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것을 가장 강한 형태로 세운 뒤에 답하신다. 이 장의 「니치렌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다, 하늘이 버리셨으니」는 그 의문이 가장 날카롭게 세워진 순간이다. 그리고 다음 제55장에서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로 시작하는 문답을 통해 이 의문에 정면으로 답하신다. 강의는 「제천 가호의 유무와, 대난을 만나는 이유와, 그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다음 장들에서 자세히 설해진다고 이 장을 맺는다.
부처와 제바, 태자와 모리야 — 행자와 원적은 함께 있다
「부처와 제바는 몸과 그림자 같아서 생생세세에 떨어지지 않고, 쇼토쿠 태자와 모리야는 연꽃의 꽃과 열매가 동시인 것과 같다. 법화경의 행자가 있다면 반드시 세 부류의 원적이 있으리라.」
몸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석존이 계신 곳에는 생생세세 제바달다가 있었다. 그림자가 있다면 그것을 드리우는 몸도 있어야 한다. 이 비유는 삼류와 행자의 관계를 논리적인 필연으로 만든다. 원적이 있다는 것은 행자가 있다는 증거다.
쇼토쿠 태자와 모리야의 예는 일본 불교사의 시작을 가리킨다. 불교가 일본에 전해졌을 때 숭불파와 배불파가 대립했고, 모리야는 불상을 태우고 당탑을 부수었으며, 쇼토쿠 태자는 소가노 우마코와 함께 모리야를 쳐서 불법을 일으켰다. 일본에서 불법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그 적도 함께 나타났다. 「연꽃의 꽃과 열매가 동시인 것과 같다」 — 꽃이 필 때 이미 열매가 그 안에 있듯이, 정법이 일어날 때 원적도 동시에 일어난다.
대성인은 사도에서 이 원리를 자신의 체험으로 말씀하셨다.
釈迦如来の御ためには提婆達多こそ第一の善知識なれ今の世間を見るに人をよくなすものはかたうどよりも強敵が人をばよくなしけるなり
석가여래를 위해서는 제바달다야말로 제일의 선지식이니라. 지금 세간을 보건대 사람을 잘되게 하는 것은 편드는 사람보다 강적이 사람을 잘되게 하였느니라
강적은 행자를 증명한다. 그뿐 아니라 강적이 행자를 행자답게 만든다. 같은 글에서 대성인은 「니치렌이 부처가 되는 제일의 편은 가게노부 · 료칸 · 도류 · 도아미다부쓰와 헤이노사에몬노조 · 사가미노카미 님」이라고까지 말씀하신다. 몸과 그림자의 비유는 여기서 역설적인 감사로 바뀐다.
한쪽 눈의 거북 — 「구하여 스승으로 삼으라」
「세 부류는 이미 있으니 법화경의 행자는 누구이겠는가. 구하여 스승으로 삼아야 하리니, 한쪽 눈의 거북이 떠다니는 나무를 만나는 것과 같으리라.」
이 장은 「스승」이라는 말로 끝난다. 법화경의 행자를 찾는 것은 단지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문제가 아니다. 그를 찾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개목초 첫머리의 주사친 삼덕 가운데 「사(師)」가 여기서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그 만남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맹귀부목의 비유로 말씀하신다. 이 비유는 법화경 묘장엄왕본사품에서 「부처님을 만나기 어려움은 우담바라꽃과 같고, 한쪽 눈의 거북이 떠다니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 설해진다. 강의의 어구 풀이는 대성인이 「마쓰노전후가니부인답서」에서 이 비유를 자세히 풀이하신 글을 소개한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큰 바다 밑에 손발도 지느러미도 없는 거북이 사는데, 배는 쇠가 달구어진 듯 뜨겁고 등껍질은 설산처럼 차갑다. 거북의 소원은 배를 식히고 등을 데우는 것이다. 천 년에 한 번 바다 위로 떠오르는데, 그때 성스러운 나무인 적전단의 떠다니는 나무를 만나 그 구멍에 배를 넣어 식히고 등을 햇볕에 데우기를 바란다. 그러나 바다는 넓고 거북은 작으며 떠다니는 나무는 드물다. 다른 나무는 만나도 전단은 만나기 어렵고, 전단을 만나도 배에 꼭 맞는 구멍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 게다가 거북은 한쪽 눈이 비뚤어져 있어 나무가 서쪽으로 흘러가면 동쪽으로 보고, 서둘러 타려고 헤엄칠수록 더 멀어진다. 대성인은 부처님이 이 비유를 들어 법화경을 만나기 어려움을 설하셨다고 하신다.
이 비유가 이 자리에 놓인 뜻은 두 겹이다. 하나는 법화경의 행자를 만나는 것이 그만큼 드물고 귀한 일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쪽 눈」이라는 말에 있다. 제52장에서 대성인은 「눈 없는 자, 한쪽 눈인 자, 사견의 자는 말법 처음의 세 부류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한쪽 눈의 거북은 떠다니는 나무가 눈앞에 있어도 방향을 잘못 보아 멀어진다. 행자가 이미 세상에 있어도, 바르게 보는 눈이 없으면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법화경을 몸으로 읽다 — 행자와 주사친
강의는 이 장의 「니치렌보다 밖에 일본국에서 꺼내려 해도 사람이 없다」는 단정이, 개목초 처음에 내건 주사친 삼덕의 부처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개목초는 처음에 오중상대를 세워 석존 일대 불교의 승렬천심을 판정하고, 숙탈(熟脫)의 대은을 밝힌 뒤, 이어 니치렌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임을 밝혀 말법 하종의 삼덕의 깊은 은혜를 드러낸다. 이것이 이 글 전체를 꿰는 대의라고 강의는 정리한다.
강의는 「법화경의 행자」라는 말이 단지 법화경을 독송하거나 법화경으로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통념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경을 읽는 데에는 입으로 읽는 것, 뜻으로 읽는 것, 몸으로 읽는 것이 있다. 천태 · 전교도 아직 몸으로 읽지는 못했다. 그런데 법화경 법사품은 「한 게 한 구를 듣고 한 생각이라도 따라 기뻐하는 자에게 내가 모두 수기를 주리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고 설한다. 그렇다면 법화경 전체를 몸으로 읽으신 대성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실 리가 없다. 더구나 그것을 얻으신 때가 말법이다. 대성인을 말법의 부처라고 우러르는 한 까닭이 여기 있다고 강의는 말한다.
대성인은 사도 쓰카하라에서 이 경문을 자신에게 대어 읽으셨다.
一句一偈我皆与授記は我なり阿耨多羅三藐三菩提は疑いなし
「한 구 한 게에 내가 모두 수기를 준다」는 것은 나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의심 없느니라
그러므로 강의는 대성인을 단지 보살의 지위로만 보는 이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법화경의 행자는 주사친 삼덕을 갖춘 부처를 뜻한다는 것이 강의의 입장이다.
강의는 「니치렌보다 밖에 일본국에서 꺼낼 사람이 없다」를 개목초 전체의 결론으로 읽는다. 오중상대로 숙탈의 삼덕을 밝힌 상권과 하권 앞부분의 논증이 여기서 「말법에 법화경을 몸으로 읽은 단 한 사람」에게 모이며, 그 사람이 곧 말법의 주사친이다.
본문
有る人云く当世の三類はほぼ有るににたり、但し法華経の行者なし汝を法華経の行者といはんとすれば大なる相違あり、此の経に云く「天の諸の童子以て給使を為さん、刀杖も加えず、 毒も害すること能わざらん」又云く「若し人悪罵すれば口則閉塞す」等、又云く「現世には安穏にして後・善処に生れん」等云云、 又「頭破れて七分と作ること阿梨樹の枝の如くならん」又云く「亦現世に於て其の福報を得ん」等又云く「若し復是の経典を受持する者を見て其の過悪を出せば若しは実にもあれ若しは不実にもあれ此の人現世に白癩の病を得ん」等云云、 答えて云く汝が疑い大に吉しついでに不審を晴さん、不軽品に云く「悪口罵詈」等、又云く「或は杖木瓦石を以て之を打擲す」等云云、涅槃経に云く「若しは殺若しは害」等云云、 法華経に云く「而かも此の経は如来の現在すら猶怨嫉多し」等云云、仏は小指を提婆にやぶられ九横の大難に値い給う此は法華経の行者にあらずや、不軽菩薩は一乗の行者といはれまじきか、 目連は竹杖に殺さる法華経記莂の後なり、付法蔵の第十四の提婆菩薩・第二十五の師子尊者の二人は人に殺されぬ、此等は法華経の行者にはあらざるか、 竺の道生は蘇山に流されぬ法道は火印を面にやいて江南にうつさる・此等は一乗の持者にあらざるか、外典の者なりしかども白居易北野の天神は遠流せらる賢人にあらざるか、 事の心を案ずるに前生に法華経・誹謗の罪なきもの今生に法華経を行ずこれを世間の失によせ或は罪なきをあだすれば忽に現罰あるか・修羅が帝釈をいる金翅鳥の阿耨池に入る等必ず返つて一時に損ずるがごとし、 天台云く「今我が疾苦は皆過去に由る今生の修福は報・将来に在り」等云云、心地観経に曰く「過去の因を知らんと欲せば其の現在の果を見よ未来の果を知らんと欲せば其の現在の因を見よ」等云云、 不軽品に云く「其の罪畢已」等云云、不軽菩薩は過去に法華経を謗じ給う罪・身に有るゆへに瓦石をかほるとみへたり、又順次生に必ず地獄に堕つべき者は重罪を造るとも現罰なし一闡提人これなり、 涅槃経に云く「迦葉菩薩仏に白して言く世尊・仏の所説の如く大涅槃の光一切衆生の毛孔に入る」等云云、 又云く「迦葉菩薩仏に白して言く世尊云何んぞ未だ菩提の心を発さざる者・菩提の因を得ん」等云云、 仏・此の問を答えて云く「仏迦葉に告わく若し是の大涅槃経を聞くこと有つて我菩提心を発すことを用いずと言つて正法を誹謗せん、 是の人即時に夜夢の中に羅刹の像を見て心中怖畏す羅刹語つて言く咄し善男子汝今若し菩提心を発さずんば当に汝が命を断つべし是の人惶怖し寤め已つて即ち菩提の心を発す当に是の人是れ大菩薩なりと知るべし」等云云、 いたうの大悪人ならざる者が正法を誹謗すれば即時に夢みて・ひるがへる心生ず、又云く「枯木・石山」等、又云く「燋種甘雨に遇うと雖も」等・又「明珠淤泥」等、 又云く「人の手に創あるに毒薬を捉るが如し」等、又云く「大雨空に住せず」等云云、此等多くの譬あり、 詮ずるところ上品の一闡提人になりぬれば順次生に必ず無間獄に堕つべきゆへに現罰なし例せば夏の桀・殷の紂の世には天変なし重科有て必ず世ほろぶべきゆへか、 又守護神此国をすつるゆへに現罰なきか謗法の世をば守護神すて去り諸天まほるべからずかるがゆへに正法を行ずるものにしるしなし還つて大難に値うべし金光明経に云く「善業を修する者は日日に衰減す」等云云、 悪国・悪時これなり具さには立正安国論にかんがへたるがごとし。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당세의 세 부류는 거의 있는 듯하다. 다만 법화경의 행자가 없다. 그대를 법화경의 행자라 하려 하면 크게 어긋나는 점이 있다. 이 경에 이르기를 「하늘의 여러 동자가 시중을 들리라. 칼과 막대기도 가해지지 않고 독도 해치지 못하리라」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만일 사람이 악하게 욕하면 입이 곧 막히리라」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현세에는 안온하고 뒤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리라」 하였느니라. 또 「머리가 깨어져 일곱 조각이 되어 아리수(阿梨樹)의 가지와 같으리라」 하였고, 또 이르기를 「또한 현세에서 그 복의 과보를 얻으리라」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만일 다시 이 경전을 수지하는 자를 보고 그 허물을 들추어내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이 사람은 현세에 백라(白癩)의 병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답하여 이르되, 그대의 의문은 크게 좋도다. 이 기회에 의심을 풀어 주리라. 불경품에 이르기를 「악구매리」라 하고, 또 이르기를 「혹은 막대기와 나무와 기와와 돌로 그를 때렸다」 하였으며, 열반경에 이르기를 「혹은 죽이고 혹은 해친다」 하였고, 법화경에 이르기를 「더구나 이 경은 여래가 계신 지금도 오히려 원질이 많다」 하였느니라. 부처님은 새끼손가락을 제바에게 상하시고 아홉 가지 횡난(九橫の大難)을 만나셨으니, 이는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신가. 불경보살은 일승의 행자라고 하지 못하겠는가. 목련은 죽장(竹杖) 외도에게 죽었으니 법화경에서 수기를 받은 뒤의 일이니라. 부법장의 제14 제바보살과 제25 사자존자 두 사람은 사람에게 살해되었으니, 이들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겠는가. 축도생(竺道生)은 소산(蘇山)으로 쫓겨났고, 법도(法道)는 얼굴에 불도장을 찍혀 강남으로 옮겨졌으니, 이들은 일승을 지닌 자가 아니겠는가. 외전의 사람이었으나 백거이와 기타노의 천신(天神)은 멀리 유배되었으니 현인이 아니겠는가. 일의 마음을 헤아려 보건대, 전생에 법화경을 비방한 죄가 없는 자가 금생에 법화경을 행하는데, 이를 세간의 허물에 붙이거나 혹은 죄 없는 이를 해치면 곧 현벌이 있는 것이리라. 아수라가 제석을 쏘고 금시조가 아뇩지(阿耨池)에 들어가는 것 등이 반드시 도리어 한때에 스스로를 해치는 것과 같으니라. 천태가 이르기를 「지금 나의 병과 괴로움은 모두 과거에서 말미암고, 금생에 닦는 복은 그 과보가 장래에 있다」 하였고, 『심지관경』에 이르기를 「과거의 인을 알고자 하면 그 현재의 과를 보라. 미래의 과를 알고자 하면 그 현재의 인을 보라」 하였으며, 불경품에 이르기를 「그 죄가 끝나고 나서(其罪畢已)」라 하였느니라. 불경보살은 과거에 법화경을 비방하신 죄가 몸에 있었으므로 기와와 돌을 맞은 것으로 보이느니라. 또 순차생(順次生)에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자는 무거운 죄를 지어도 현벌이 없으니, 일천제인이 이것이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처럼 대열반의 빛이 일체중생의 털구멍에 들어간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아직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은 자가 보리의 인을 얻겠나이까」 하였느니라. 부처님이 이 물음에 답하여 이르시기를 「부처님이 가섭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이 대열반경을 듣고서 '나는 보리심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정법을 비방하면, 이 사람은 곧 그날 밤 꿈속에 나찰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리라. 나찰이 말하기를 '이놈, 선남자여, 네가 지금 만일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마땅히 너의 목숨을 끊으리라' 하리니, 이 사람은 두려워 깨어나서 곧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리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대보살이니라」 하셨느니라. 아주 큰 악인이 아닌 자가 정법을 비방하면 곧 꿈을 꾸고 마음을 돌이키게 되느니라. 또 이르기를 「마른 나무 · 돌산」 등, 또 「탄 종자는 단비를 만나도」 등, 또 「밝은 구슬이 진흙에」 등, 또 이르기를 「사람의 손에 상처가 있는데 독약을 쥐는 것과 같다」 등, 또 이르기를 「큰비는 허공에 머물지 않는다」 등이라 하였으니, 이처럼 많은 비유가 있느니라. 요컨대 상품의 일천제인이 되면 순차생에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지므로 현벌이 없느니라. 예컨대 하(夏)의 걸(桀)과 은(殷)의 주(紂)의 세상에는 천변이 없었으니, 무거운 죄가 있어 반드시 세상이 망할 것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또 수호신이 이 나라를 버렸으므로 현벌이 없는 것이리라. 방법의 세상은 수호신이 버리고 떠나 제천이 지키지 않으므로, 정법을 행하는 자에게 영험이 없고 도리어 대난을 만나느니라. 『금광명경』에 이르기를 「선업을 닦는 자는 날마다 쇠하여 줄어든다」 하였으니, 악한 나라 · 악한 때가 이것이니라. 자세히는 「입정안국론」에 헤아려 둔 바와 같으니라.
어구 풀이
- 天の諸の童子以て給使を為さん하늘의 여러 동자가 시중을 들리라
- 안락행품 제14의 게송. 안락행을 닦는 이를 하늘의 동자들이 섬기고, 칼과 막대기와 독이 해치지 못하며, 그를 욕하는 자의 입은 막힌다고 설한다. 개목초 제28장에서 「제천의 수호」의 경증으로 인용된 문과 같은 계열이다.
- 現世には安穏にして後・善処に生れん현세에는 안온하고 뒤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리라
- 약초유품 제5의 문. 이 법을 들은 중생은 현세에 안온하고 후생에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설한다. 「현세안온 후생선처」라는 말로 널리 알려졌다.
- 阿梨樹の枝の如くならん아리수의 가지와 같으리라
- 「여아리수지(如阿梨樹枝)」의 문. 법화경 다라니품 제26에서 십나찰녀가 법화경을 지니는 이를 수호하겠다고 맹세하며 「만일 나의 주문을 따르지 않고 설법자를 뇌란하면 머리가 깨어져 일곱 조각이 되어 아리수의 가지와 같으리라」고 벌을 설한다. 천태는 『법화문구』에서 「아리수의 가지가 땅에 떨어지면 법이(法爾)로 깨어져 일곱 조각이 된다」고 풀었다. 아리는 인도 등에 자라는 꿀풀과 식물 아르자카(arjaka)의 음사로, 영어 이름은 홀리 바질(holy basil)이다. 한 줄기 끝에서 많은 줄기가 나와 꽃을 피우므로, 머리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비유로 불전에 자주 쓰인다.
- 亦現世に於て其の福報を得ん또한 현세에서 그 복의 과보를 얻으리라
- 보현보살권발품 제28의 문. 이 경을 지니는 이는 현세에 복의 과보를 얻는다고 설한다.
- 白癩の病백라의 병
- 보현보살권발품 제28에서 법화경 수지자를 헐뜯는 자가 받는다고 설한 병. 옛 경전에서 피부가 희게 변하는 중한 병을 가리킨 말로, 오늘날의 의학적 병명과 그대로 대응하지 않으며 지금은 쓰지 않는 표현이다. 경문은 이를 법화경 수지자를 헐뜯는 죄의 현세의 과보로 들었다.
- 不軽菩薩は一乗の行者といはれまじきか불경보살은 일승의 행자라고 하지 못하겠는가
- 불경보살은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제20에 설해진 상불경보살로, 석존의 과거세 수행의 모습 가운데 하나다. 위음왕불의 상법 시대에 불도를 닦으며,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나는 깊이 그대들을 공경하여 감히 업신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보살도를 행하여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구마라집의 한역에서 스물네 글자이므로 「스물네 글자의 법화경」이라 한다)을 외며 만나는 모든 사람을 예배했으나, 증상만의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이 수행이 성불의 인이 되었다고 설해진다.
- 目連は竹杖に殺さる목련은 죽장에게 죽었다
- 목련은 범어 마우드갈랴야나(Maudgalyāyana)로 목건련 · 마하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석존 십대제자의 한 사람으로 신통제일. 『비나야잡사』 권18에 따르면 석존 입멸 전 나열성(왕사성)에서 탁발할 때 죽장 외도들에게 둘러싸였다. 한 번은 벗어났으나 과거세의 숙업임을 알고 스스로 외도에게 죽임을 당해 업을 멸했다고 한다.
- 提婆菩薩제바보살
- 범어 아랴데바(Āryadeva). 성제바 · 가나제바라고도 한다. 2~3세기 무렵 남인도의 승려. 제바는 하늘(天), 가나는 한쪽 눈이라는 뜻이다. 한 눈을 하늘에 공양하여 한쪽 눈이 되었다고 『부법장경』에 전하며, 한 여인에게 주어 부정함을 깨닫게 했다고도 한다. 용수 아래서 출가하여 여러 나라를 다니며 중생을 구했다. 남인도의 왕이 외도에 귀의한 것을 구하려 왕 앞에서 모든 외도를 논파했는데, 스승이 굴복한 것을 부끄러워한 한 외도의 제자가 원한을 품고 제바를 찔렀다. 제바는 목숨이 다하기 전에 도리어 그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 그를 구했다고 한다. 저서에 『백론』 · 『사백론』 등이 있다.
- 師子尊者사자존자
- 범어 아랴싱하(Āryasiṃha). 부법장의 마지막 전등자로, 제23(제24라는 설도 있음)으로 센다. 6세기 무렵 중인도 사람. 『부법장인연전』 권6에 따르면 계빈국에서 크게 불사를 일으켰으나, 사견이 강한 국왕 미라굴이 불교의 탑과 절을 부수고 승려들을 죽인 끝에 날카로운 칼로 사자존자의 목을 베었다. 그때 피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고 흰 젖만 솟았다고 하는데, 이는 존자가 백법(바른 가르침)을 지녔고 성불했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마하지관』 권1은 미라굴왕을 단미라왕이라 했다. 『경덕전등록』 권2에 따르면 사자존자를 벤 뒤 왕의 오른손이 땅에 떨어지고 이레 안에 왕도 죽었다고 한다.
- 竺の道生축도생
- (?~434) 동진에서 남조 송에 걸친 고승. 축법태에게 출가했고, 뒤에 장안으로 가서 구마라집 문하에 들어가 그 문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 되었다. 『반니원경』을 배우고 일천제 성불의 뜻을 세워 당시 불교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여러 승려의 큰 원질을 받아 송의 도읍 건강(남경)에서 쫓겨나 소주의 호구산으로 피했다. 그곳에서 완고한 돌을 향해 이 뜻을 설하자 돌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뒤에 여산에 들어가 「나의 설이 경의에 어긋난다면 현신에 병을 나타낼 것이요, 실상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목숨이 다할 때 사자좌에 오르기를 원한다」고 맹세했다. 이후 담무참 역 열반경이 전해져 정설임이 증명되었고, 맹세대로 원가 11년(434) 여산에서 법좌에 올라 설법을 마치자 잠들듯 입적했다고 한다.
- 法道は火印を面にやいて江南にうつさる법도는 얼굴에 불도장을 찍혀 강남으로 옮겨졌다
- 법도(1086~1147)는 송대의 승려로 본래 이름은 영도(永道). 선화 원년(1119) 휘종 황제가 조칙을 내려 부처를 대각금선, 보살을 대사, 승려를 덕사, 비구니를 여덕이라 하는 등 불교의 칭호를 없애고 도교 풍으로 고치려 하자, 법도는 글을 올려 간했다. 황제는 노하여 그의 얼굴에 불도장을 찍고 강남의 도주로 내쫓았다. 이듬해 불교의 칭호가 회복되자 영도도 용서받아 돌아왔고, 호법의 공으로 「법도」라는 이름을 받았다. 다만 『불조통기』(1269년 성립) 권47에는 법도가 얼굴에 먹으로 글자를 새기는 형을 받았다고 되어 있어 불도장이 아니다.
- 白居易백거이
- (772~846) 중당의 시인. 태원 사람으로 자는 낙천이며 백낙천으로 알려졌다. 한림학사를 거쳐 태자좌찬선대부에 이르렀으나, 원화 10년(815) 참언 때문에 강주 사마로 좌천되었다. 불교 신봉자로 유명했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에서 예언하신 자계반역난 · 타국침핍난이 현실이 된 것을 두고, 안국론이야말로 백낙천이 정치를 간한 「신악부」보다 뛰어난 간효의 글이며 그 예언은 부처님의 미래기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 北野の天神기타노의 천신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 우다 천황에게 중용되고 다이고 천황 때 우대신에 올랐으나, 좌대신 후지와라노 도키히라의 참소로 다자이후의 권수(權帥)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사후 천변지이가 이어지자 원령을 두려워한 조정이 그의 죄를 사면하고 교토 기타노에 기타노 덴만궁을 세워 주신으로 모셨다.
- 修羅が帝釈をいる아수라가 제석을 쏜다
- 『관불삼매해경』에 따르면, 향산의 건달바의 딸과 아수라 사이에 태어난 딸 열의(悅意)를 제석이 아내로 맞았다. 어느 날 제석이 여러 채녀와 환희원에서 노는 것을 보고 질투한 열의가 아버지 아수라에게 알리자, 아수라는 크게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제석이 사는 희견성과 수미산을 흔들고 사대해의 물을 일으켜 공격했다. 제석이 선법당에서 향을 사르고 반야바라밀을 지니어 불도를 호지하겠다는 대서원을 세우자 허공에서 큰 칼바퀴가 내려와 아수라의 귀 · 코 · 손 · 발을 잘랐다. 아수라는 두려워 떨었으나 달아날 곳이 없어 작은 몸이 되어 연뿌리의 실구멍 속에 숨었다고 한다. 다른 설에는 제석이 아수라의 딸을 힘으로 빼앗아 아수라가 분노했다고 하며, 그 딸의 이름은 사지(舍脂, Śacī)다. 여기서는 감정에 휩쓸려 함부로 싸움을 일으킨 아수라가 반드시 제석에게 진다는 뜻이다.
- 金翅鳥の阿耨池に入る금시조가 아뇩지에 들어간다
- 금시조는 고대 인도 전설의 새로 천룡팔부의 하나. 범어 가루다(garuḍa)의 번역으로 가루라라고 음사한다. 날개와 머리가 금빛이라 이렇게 부르며, 수미산 아래에 살며 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아뇩지는 아뇩달지로 무열지 · 청량지라고도 한다. 『구사론』 권11에 따르면 대설산의 북쪽, 향취산의 남쪽에 있는 큰 못으로, 맑고 찬 물을 사방으로 흘려 염부주를 적신다. 『장아함경』 권18에 따르면 이 못에 사는 아뇩달 용왕은 용이 겪는 세 가지 괴로움 — 뜨거운 바람과 모래에 몸이 타는 괴로움, 거센 바람에 옷을 빼앗기는 근심, 금시조에게 노려지는 괴로움 — 이 없다. 『법화문구』 권2하는 「이 못에는 세 가지 근심이 없다. 만일 새가 마음을 일으켜 가려 하면 곧 목숨이 다한다. 그러므로 무열지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금시조가 아뇩지의 용을 잡아먹으려 해도 그 전에 목숨이 다하여 결코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 心地観経『심지관경』
- 『대승본생심지관경』. 여기 인용된 「과거의 인을 알고자 하면 현재의 과를 보고, 미래의 과를 알고자 하면 현재의 인을 보라」는 문은 삼세에 걸친 인과를 간명하게 보인 구절로 널리 인용된다.
- 其の罪畢已그 죄가 끝나고 나서
- 상불경보살품의 문. 불경보살이 박해를 받으며 예배행을 계속한 끝에 「그 죄가 끝나고 나서」 임종에 육근청정을 얻었다고 설한다. 대성인은 이를 불경보살에게도 과거 비방의 죄가 있었다는 증거로 읽으셨다.
- 順次生순차생
- 이번 생 바로 다음의 생. 순현업(이번 생에 과보를 받는 업) · 순차업(다음 생에 받는 업) · 순후업(그 뒤의 생에 받는 업)의 구분에 따른 말이다.
- 迦葉菩薩가섭보살
- 열반경 가섭보살품의 대고중으로, 가섭동자 · 가섭동자보살이라고도 한다. 십대제자의 마하가섭과는 다른 사람이다. 열반경에서 부처님께 서른여섯 가지 물음을 드렸으며, 이전 40여 년의 회좌에도, 법화의 회좌에도 참여하지 못했던 군습(捃拾)의 근기라고 한다.
- 明珠淤泥명주어니
- 열반경에서 일천제가 성불할 수 없음을 비유한 열 가지 비유 가운데 셋째의 말. 밝은 구슬을 흐린 물에 넣으면 그 위덕으로 물을 맑게 할 수 있으나, 진흙 속에 던지면 맑게 하지 못한다고 하여, 오무간죄와 사중금을 범한 중생을 흐린 물에, 일천제를 진흙에 비유했다.
- 桀・紂걸 · 주
- 하 왕조의 마지막 왕 걸과 은 왕조의 마지막 왕 주. 중국에서 폭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며, 둘 다 그 폭정 끝에 나라를 잃었다.
- 金光明経『금광명경』
- 호국 삼부경의 하나. 국왕이 정법을 버리면 사천왕 등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 여러 재난이 일어난다고 설한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에서 이 경을 선신이 나라를 버리는 경증으로 인용하셨다.
「그대를 행자라 하려면 크게 어긋난다」 — 물음의 경증
강의는 이 장의 자리를 이렇게 정한다. 앞 장에서 대성인은 「니치렌은 법화경의 행자」라고 결정하셨으나, 세간에서는 대성인에게 제천선신의 가호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의심했다. 이 장은 왜 제천선신의 가호가 없고 법화경의 행자가 난을 만나는지를 보이는 장이다.
물음은 「어떤 사람」의 입을 빌려 가장 강한 형태로 세워진다. 그는 먼저 삼류가 있음을 인정한다. 「당세의 세 부류는 거의 있는 듯하다.」 그러나 「법화경의 행자가 없다」. 그 근거로 그는 법화경 자신의 경문을 여섯 개나 든다.
- 안락행품 — 「하늘의 여러 동자가 시중을 들리라. 칼과 막대기도 가해지지 않고 독도 해치지 못하리라」 (행자를 지키는 문)
- 안락행품 — 「만일 사람이 악하게 욕하면 입이 곧 막히리라」 (비방자를 벌하는 문)
- 약초유품 — 「현세에는 안온하고 뒤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리라」 (행자를 지키는 문)
- 다라니품 — 「머리가 깨어져 일곱 조각이 되어 아리수의 가지와 같으리라」 (비방자를 벌하는 문)
- 보현보살권발품 — 「또한 현세에서 그 복의 과보를 얻으리라」 (행자를 지키는 문)
- 보현보살권발품 —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이 사람은 현세에 백라의 병을 얻으리라」 (비방자를 벌하는 문)
여섯 경문은 두 계열로 나뉜다. 하나는 행자 자신이 보호받고 복을 얻는다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행자를 해치는 자가 현세에 벌을 받는다는 문이다. 강의의 현대어역은 이 물음의 끝에 이렇게 덧붙인다. 「법화경의 행자는 현세에 행복하고 행자를 박해하는 자는 현세에 법벌을 받아야 하는데, 다쓰노쿠치의 목 베는 자리에서 사도까지 유배된 지금, 가마쿠라 막부가 안온한 것은 어찌 된 일인가.」 경문의 약속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행자는 보호받지 못했고, 박해자는 벌받지 않았다. 그러니 그대는 행자가 아니다 — 이것이 물음의 논리다.
이 물음은 대성인의 적대자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사도어서」에서 대성인은 제자들 가운데에도 「니치렌 어방(御房)은 스승이지만 너무 강하다. 우리는 부드럽게 법화경을 넓히자」며 물러선 자가 있었음을 전하신다(961쪽). 개목초가 문하 일동에게 보내진 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물음은 사도 유배라는 현실 앞에서 흔들리던 제자들의 마음 그 자체였다.
「그대의 의문은 크게 좋다」 — 문증과 현증
대성인의 답은 「그대의 의문은 크게 좋도다. 이 기회에 의심을 풀어 주리라」로 시작한다. 의문을 꺼리지 않고 환영하신다. 제28장에서 「의문을 강하게 하여 답을 마련하리라」고 하신 그 자세다.
답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법화경의 행자는 난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경에 설해져 있음을 보이고(문증), 이어서 실제로 법화경과 정법을 지닌 사람들이 난을 만났음을 역사에서 보이신다(현증). 그런 다음에야 「왜 난을 만나고 왜 현벌이 없는가」의 이치를 설하신다.
문증 — 경은 난을 설한다
물음이 든 경문이 법화경의 문이라면, 대성인의 답도 법화경의 문이다. 상불경보살품은 불경보살이 「악구매리」를 당하고 「막대기와 나무와 기와와 돌로」 맞았다고 설한다. 열반경은 정법을 지니는 자가 「혹은 죽이고 혹은 해침」을 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법사품은 「이 경은 여래가 계신 지금도 오히려 원질이 많다. 하물며 멸도한 뒤이랴」라고 설한다. 같은 법화경 안에 「안온」의 문과 「원질」의 문이 함께 있다. 물음은 앞의 것만 보았다.
현증 — 난을 만난 사람들
이어 대성인은 난을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차례로 드신다. 그 배열에는 의도가 있다. 부처 → 보살 → 성문 → 부법장의 조사 → 중국의 고승 → 외전의 현인. 위로는 부처님에서 아래로는 불법 밖의 현인까지, 바른 것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박해를 받았다.
- 석존새끼손가락을 제바에게 상하고 아홉 가지 횡난(九横の大難)
- 불경보살악구매리, 막대기 · 나무 · 기와 · 돌
- 목련법화경 수기 뒤 죽장 외도에게 죽음
- 제바보살(부법장 제14)외도의 제자에게 찔림
- 사자존자(부법장의 마지막)계빈국 왕에게 목을 베임
- 축도생일천제 성불을 세워 소산(호구산)으로 쫓겨남
- 법도휘종에게 간하여 얼굴에 불도장, 강남으로 유배
- 백거이참언으로 강주 사마로 좌천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기타노 천신)참소로 다자이후에 유배
석존 자신이 제바달다가 굴린 돌에 발가락을 상하는 등 아홉 가지 횡난을 만나셨다. 그렇다면 석존도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가. 불경보살은 스물네 글자의 법화경을 넓히다 한 나라의 박해를 받았는데, 그를 일승의 행자라 하지 않겠는가. 목련은 법화경에서 다마라발전단향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은 뒤에 죽장 외도에게 죽었다. 「법화경 수기 뒤의 일」이라는 대성인의 덧붙임이 날카롭다. 법화경을 만나 성불이 보증된 뒤에도 난은 피할 수 없었다.
부법장의 조사들도 그러했다. 제바보살은 외도를 논파했다가 원한을 품은 외도의 제자에게 찔렸는데, 숨이 끊어지기 전에 오히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구했다. 사자존자는 사견의 왕에게 목을 베였다. 제50장에서 대성인이 「24인이 차례로 이으리라」는 예언의 적중을 든 그 부법장의 계보는, 법을 이은 계보인 동시에 법 때문에 박해받은 계보이기도 했다.
본문은 사자존자를 「부법장의 제25」라 하는데, 『부법장인연전』의 계보에서 사자존자는 마지막 전등자로서 제23 또는 제24로 센다. 계보를 세는 방식이 전승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의 두 고승은 특히 「일승을 지닌 자」로 불린다. 축도생은 『반니원경』 6권만 전해졌을 때 경의 깊은 뜻을 헤아려 「일천제도 성불한다」고 주장했다가 승단에서 쫓겨났다. 돌을 향해 설하자 돌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전설은 사람이 듣지 않아도 진리는 진리라는 것을 말한다. 뒤에 40권 열반경이 전해져 그의 주장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법도는 북송 휘종이 불교의 칭호를 도교식으로 바꾸려 할 때 글을 올려 간하다가 얼굴에 형을 받고 유배되었다. 대성인은 사도 쓰카하라에서 바로 이 법도를 떠올리셨다. 「종종어진무어서」에 「법도 삼장이 휘종 황제에게 책망받아 얼굴에 쇠도장을 찍히고 강남에 내쳐진 것도 바로 지금인 듯하다」(916쪽)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대성인은 불교 밖으로 나가신다. 백거이와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외전의 사람」이지만, 모두 참언으로 멀리 유배되었다. 그들이 현인이 아닌가. 정법의 행자만이 아니라 세간의 현인도 박해를 받는다.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그르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이렇게 대성인은 물음의 전제 — 「행자라면 난을 만나지 않는다」 — 를 무너뜨리신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 답이 끝나지 않는다. 물음이 든 경문들, 곧 「안온」과 「현벌」의 약속은 그러면 거짓인가. 대성인은 「일의 마음을 헤아려 보건대」라고 하시며, 같은 경의 두 계열이 어떻게 함께 진실일 수 있는지를 세 가지 까닭으로 풀어 가신다.
첫째 까닭 — 과거의 방법이 없는 행자라면 현벌이 있다
강의는 이 장의 이치를 셋으로 정리한다.
- ① 행자 쪽의 까닭법화경의 행자에게 과거세의 법화경 비방의 죄가 있는가 없는가 — 없으면 박해자에게 곧 현벌, 있으면 행자가 난을 받아 그 죄를 갚는다天台云く今我が疾苦は皆過去に由る지금 나의 병과 괴로움은 모두 과거에서 말미암는다不軽品其の罪畢已그 죄가 끝나고 나서
- ② 박해자 쪽의 까닭박해자가 순차생에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일천제라면 현벌이 없다上品の一闡提人になりぬれば順次生に必ず無間獄に堕つべきゆへに現罰なし상품의 일천제인이 되면 순차생에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지므로 현벌이 없다
- ③ 나라 쪽의 까닭수호신이 방법의 나라를 버리고 떠났으므로 현벌이 없고 행자는 도리어 대난을 만난다謗法の世をば守護神すて去り諸天まほるべからず방법의 세상은 수호신이 버리고 떠나 제천이 지키지 않는다
첫째 까닭은 행자 자신에게 있다. 「전생에 법화경을 비방한 죄가 없는 자가 금생에 법화경을 행하는데, 이를 세간의 허물에 붙이거나 죄 없는 이를 해치면 곧 현벌이 있는 것이리라.」 행자에게 과거의 방법이 없다면 그를 해치는 자는 곧바로 벌을 받는다. 물음이 든 「입이 막힌다」 · 「머리가 일곱 조각이 된다」는 경문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한 것이다.
대성인은 이를 두 비유로 보이신다. 아수라가 제석을 공격하자 허공에서 칼바퀴가 내려와 아수라의 귀와 코와 손발을 잘랐고, 아수라는 연뿌리의 실구멍에 숨었다. 금시조가 아뇩지의 용을 잡아먹으려 하면 그 못에 다가가기도 전에 목숨이 다한다. 「반드시 도리어 한때에 스스로를 해친다.」 바른 것을 해치려는 힘은 그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러면 행자에게 과거의 방법이 있다면 어떤가. 대성인은 세 개의 문을 드신다. 천태는 「지금 나의 병과 괴로움은 모두 과거에서 말미암고, 금생에 닦는 복은 그 과보가 장래에 있다」고 했다. 『심지관경』은 「과거의 인을 알고자 하면 현재의 과를 보라. 미래의 과를 알고자 하면 현재의 인을 보라」고 했다. 그리고 상불경보살품은 불경보살이 박해를 받다가 「그 죄가 끝나고 나서」 육근청정을 얻었다고 설한다. 대성인은 이 「기죄필이」의 네 글자에서, 불경보살에게도 과거에 법화경을 비방한 죄가 있었고 그 때문에 기와와 돌을 맞았다고 읽으신다.
이 읽기는 대성인 자신에게 그대로 향한다. 개목초 바로 다음 달, 같은 사도에서 쓰신 「사도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日蓮も又かくせめらるるも先業なきにあらず不軽品に云く其罪畢已等云云不軽菩薩の無量の謗法の者に罵詈打擲せられしも先業の所感なるべし
니치렌도 또한 이렇게 책망받는 것은 선업이 없지 않기 때문이니라. 불경품에 이르기를 「그 죄가 끝나고 나서」 등이라 하였느니라. 불경보살이 한량없는 방법의 자들에게 매리 · 타척당한 것도 선업이 불러온 것이리라
그리고 같은 글에서 대성인은 이 난의 의미를 「전중경수(轉重輕受)」의 원리로 말씀하신다. 과거의 방법의 죄는 본래 미래 영겁에 걸쳐 하나씩 나타나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법화경의 적을 강하게 꾸짖었기 때문에 그것이 한꺼번에 모여 일어났다.
此八種は尽未来際が間一づつこそ現ずべかりしを日蓮つよく法華経の敵を責るによて一時に聚り起せるなり
이 여덟 가지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하나씩 나타나야 할 것이었는데, 니치렌이 강하게 법화경의 적을 꾸짖었기 때문에 한때에 모여 일어난 것이니라
개목초도 바로 다음 장(제57장)에서 『반니원경』의 「현세에 가볍게 받는 것은 호법의 공덕력에 의한 것」이라는 문을 들어 이 원리를 자세히 펼친다. 첫째 까닭은 이렇게, 행자의 난을 「벌」이 아니라 과거의 무거운 죄를 금생에 가볍게 받아 끝내는 「호법의 공덕」으로 바꾸어 읽는 길을 연다.
둘째 까닭 — 일천제에게는 현벌이 없다
둘째 까닭은 박해자 쪽에 있다. 「순차생에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자는 무거운 죄를 지어도 현벌이 없으니, 일천제인이 이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인 이치다. 현벌은 오히려 구제의 표시다. 대성인은 이를 열반경의 문답으로 보이신다. 가섭보살이 묻는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대열반의 빛이 일체중생의 털구멍에 들어간다면, 아직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은 자도 보리의 인을 얻는가. 부처님이 답하신다. 이 경을 듣고도 「나는 보리심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며 정법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날 밤 꿈에 나찰이 나타나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네 목숨을 끊겠다」고 위협한다. 그 사람은 두려워 깨어나 곧 보리심을 일으킨다.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대보살이다.
대성인은 이 문을 이렇게 요약하신다. 「아주 큰 악인이 아닌 자가 정법을 비방하면 곧 꿈을 꾸고 마음을 돌이키게 된다.」 비방에 곧바로 두려운 결과가 따르는 것은, 그 사람에게 아직 돌이킬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벌은 그 사람을 깨우는 꿈속의 나찰이다.
그러나 극악의 일천제에게는 그 꿈조차 오지 않는다. 열반경은 그 까닭을 열 가지 비유로 설하며, 대성인은 그 가운데 다섯을 드신다.
- 마른 나무 · 돌산(枯木・石山) — 마른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고 돌산에는 풀과 나무가 나지 않는다.
- 탄 종자(燋種) — 불에 탄 씨앗은 단비를 만나도 싹트지 않는다.
- 진흙 속의 밝은 구슬(明珠淤泥) — 밝은 구슬은 흐린 물은 맑게 하지만 진흙 속에서는 빛을 내지 못한다.
- 손의 상처와 독약 — 손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독약을 쥐면 상처가 더욱 나빠진다.
- 허공에 머물지 않는 큰비(大雨不住空) — 큰비가 허공에 머물지 않고 반드시 땅에 떨어지듯, 일천제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요컨대 상품의 일천제인이 되면 순차생에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지므로 현벌이 없다.」 벌이 다음 생에 이미 확정되어 있으므로 이번 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성인은 하의 걸왕과 은의 주왕의 예를 드신다. 그 폭정의 시대에 오히려 천변이 없었던 것은, 죄가 너무 무거워 반드시 세상이 망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경고는 돌이킬 수 있는 자에게 주어진다. 돌이킬 수 없는 자에게는 경고가 없다.
셋째 까닭 — 수호신이 나라를 버렸다
셋째 까닭은 나라 전체에 있다. 「수호신이 이 나라를 버렸으므로 현벌이 없는 것이리라. 방법의 세상은 수호신이 버리고 떠나 제천이 지키지 않으므로, 정법을 행하는 자에게 영험이 없고 도리어 대난을 만난다.」
이것은 「입정안국론」의 핵심 논리다. 세상이 정법에 등을 돌리고 악법에 귀의하면 선신은 나라를 버리고 떠나며, 그 빈자리에 악귀가 들어와 재난이 일어난다. 선신이 떠난 나라에서는 정법의 행자를 지킬 존재가 없다. 그러므로 행자는 영험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대난을 만나며, 박해자는 벌을 받지 않는다. 『금광명경』의 「선업을 닦는 자는 날마다 쇠하여 줄어든다」는 문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세상, 그것이 「악한 나라 · 악한 때」다. 대성인은 「자세히는 '입정안국론'에 헤아려 둔 바와 같다」고 하셔서, 이 셋째 까닭이 문응 원년(1260) 이래 일관된 주장임을 밝히신다.
대성인은 뒤에 「보은초」에서 같은 이치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かかる謗法の国なれば天もすてぬ天すつればふるき守護の善神もほこらをやひて寂光の都へかへり給いぬ但日蓮計り留り居て告げ示せば国主これをあだみ
이러한 방법의 나라이므로 하늘도 버렸느니라. 하늘이 버리니 오랜 수호의 선신도 사당을 불태우고 적광의 도읍으로 돌아가셨느니라. 다만 니치렌만이 남아 머물러 알려 보이니 국주가 이를 원수로 여겼느니라
물음은 「하늘이 지켜 주지 않으니 행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성인의 답은 「하늘이 이 나라를 버렸기 때문에 행자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사실 — 하늘의 가호가 없다는 것 — 이 물음에서는 행자를 부정하는 근거였으나, 답에서는 나라의 방법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대성인은 「하늘도 버리시라」고 말씀하신다. 하늘의 가호는 더 이상 행자임을 판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현벌의 유무를 정리하다
강의는 세 까닭을 하나로 묶어 이렇게 정리한다. 이 글의 뜻에 따르면, 일본국은 악한 나라 · 방법의 나라이므로 제천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 방법의 자에게 현벌이 없다. 만일 성군의 시대, 정법의 나라라면 법화경의 행자를 비방하는 자에게는 곧 현벌이 있다.
요컨대 「행자는 안온하고 비방자는 현벌을 받는다」는 경문은 세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의 일이다. 행자에게 과거의 방법이 없을 것, 비방자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 확정된 일천제가 아닐 것, 제천선신이 나라를 지키고 있을 것. 그런데 대성인의 경우는 세 조건이 모두 반대다. 대성인에게는 과거세의 방법이 있고(그렇게 대성인은 말씀하신다), 일본국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 정해진 역연(逆緣)의 중생이며, 제천은 방법의 나라를 버리고 떠났다. 그러므로 비방하는 막부는 도리어 안온하고, 니치렌 일문은 대난을 만난다.
이렇게 보면 물음이 든 여섯 경문과 대성인이 든 문증 · 현증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같은 법화경이 조건에 따라 두 모습을 설한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을 따져 보면, 대성인이 난을 만나는 것은 행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말법의 악한 나라에서 법화경을 바르게 행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본불에게 왜 과거의 방법이 있는가 — 시동범부
강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의 물음을 세운다. 니치렌 대성인은 교상(敎相)으로는 본화 지용의 대보살이시고, 관심(觀心)으로는 그 내증이 구원의 본불이시다. 그런데 왜 과거세에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시는가.
강의는 그 까닭을 둘로 든다.
첫째는 「범부와 같음을 보이는(示同凡夫)」 측면이다. 사지와 방법에 물든 말법의 중생을 교화하려면, 그들과 같은 거친 범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대중을 이끌어 그 고뇌에서 구해 낼 수 없다.
둘째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나타나는 부처라는 측면이다. 말법의 중생은 모두 방법의 자이고 고뇌에 잠겨 있으며, 남묘호렌게쿄로만 구원받는 근기다. 그때 나타나는 부처에 맞추어 말씀하신 것이다. 방편품은 「제불 세존은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하신다」고 설하고, 그 일대사인연이란 중생에게 부처의 지견을 열고(開) · 보이고(示) · 깨닫게 하고(悟) · 들어가게(入) 하는 것이라 한다. 말법에 출현하신 대성인의 불지견은 남묘호렌게쿄다. 이 남묘호렌게쿄를 중생에게 개시오입하려 해도 중생은 모두 방법의 자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남묘호렌게쿄의 근기다. 천태는 『법화문구』 권4에서 「중생에게 그 기(機)가 있어 부처를 감응하므로 인(因)이라 하고, 부처가 그 기를 받아 응하므로 연(緣)이라 한다」고 했다. 중생의 기연이 무르익어 부처를 감응하고, 부처가 이에 응하여 세상에 나와 법을 설하는 것이므로, 부처는 중생과 같이 방법의 인을 지닌 모습을 취하여 출현하신다고 강의는 말한다.
강의는 이를 「소병소뇌(少病少惱)」의 비유로 설명한다. 법화경 곳곳에서 보살들은 부처님께 「병도 적고 괴로움도 적으신지요」라고 문안한다. 부처님은 세간의 괴로움을 떠나신 분이니 병과 괴로움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소병소뇌」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에게는 병이 없지만 중생의 병을 자신의 병으로 삼으시기 때문이다. 대성인도 마찬가지로 말법의 본불이시니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중생이 방법의 인 때문에 고통받고 있으므로, 중생의 방법을 자신의 방법으로 삼아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성인께서 어떤 대난도 의연히 넘어서신 모습을 우러르며, 그것을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의 방법을 소멸하는 길을 보여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의는 말한다. 대성인의 대난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대법을 지니는 데서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을 참고 굽히지 않아 성불의 피안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강의는 대성인이 「과거의 방법」을 말씀하신 것을 시동범부와 중생의 기에 응하는 부처라는 두 측면에서 읽는다. 부처가 중생의 병을 자신의 병으로 삼아 「소병소뇌」라 하듯, 대성인은 말법 중생의 방법을 자신의 방법으로 삼아 그 죄를 멸하는 길 — 난을 받아 무거운 죄를 가볍게 받아 끝내는 길 — 을 몸소 보이셨다.
현벌은 정말 없는가 — 그 뒤의 사실
그렇다면 금생에는 법화경의 행자에게 아무 이익이 없고, 비방하는 자는 평생 안온한가. 강의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대성인은 사도에서 돌아오신 뒤 9년 동안 미노부산에서 안온하게 지내셨다. 반면 입종 때부터 대성인을 해치려 했던 도조 가게노부는 일찍 몸을 망쳤고, 세이초사의 엔치보 · 묘신보는 무거운 병에 걸렸으며, 도아미는 시력을 잃었고,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는 대성인이 입멸하신 뒤 일족이 모두 멸망했다. 강의는 이 일들이 여러 어서에 기록된 대로라고 말한다.
대성인 자신도 「종종어진무어서」에서 현벌이 보이지 않는 까닭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머리가 깨어져 일곱 조각이 된다」는 것은 칼로 베듯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今の世の人人は皆頭阿梨樹の枝のごとくにわれたれども悪業ふかくしてしらざるなり
지금 세상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아리수의 가지처럼 깨어졌으나 악업이 깊어서 알지 못하느니라
벌은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악업이 깊을수록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이는 둘째 까닭 — 극악의 일천제에게는 경고의 꿈조차 오지 않는다 — 과 같은 이치다.
꿈속의 나찰 — 벌과 발심
강의는 열반경의 꿈 이야기를 실천의 문제로 다시 읽는다. 진실한 불법인 말법 하종의 법문을 믿으라고 권받았을 때 이를 거부하고 발심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지닌 과거세의 불행의 원인이 곧 나타나 현세에 생활 위의 괴로움으로 느껴진다. 이를 보통 「벌」이라 부르지만, 이 벌로 말미암아 열반경의 사람처럼 진실한 불법에 발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벌은 신앙함으로써 꿈처럼 사라진다고 강의는 말한다.
이 읽기에서 벌은 응징이 아니라 각성이다. 열반경의 나찰은 사람을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러 왔다. 그리고 그 꿈을 꾼 사람을 경은 「대보살」이라 부른다. 대성인이 「아주 큰 악인이 아닌 자」에게는 곧 꿈이 오고 마음을 돌이킨다고 하신 것은, 현벌이 있다는 것이 곧 그 사람에게 아직 길이 열려 있다는 뜻임을 보여 준다.
이 장은 개목초에서 가장 촘촘한 논증의 하나다. 대성인은 물음의 경문을 하나도 부정하지 않으신다. 법화경의 모든 문은 진실하다. 다만 그 문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행자 · 박해자 · 나라의 세 층에서 가려내셨다. 그 결과 「행자인데 왜 난을 만나는가」라는 물음은 「말법의 악국에서 행자이기 때문에 난을 만난다」는 답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답 위에서 다음 장의 결의 — 「하늘도 버리시라」 — 가 나온다.
본문
詮ずるところは天もすて給え諸難にもあえ身命を期とせん、身子が六十劫の菩薩の行を退せし乞眼の婆羅門の責を堪えざるゆへ、久遠大通の者の三五の塵をふる悪知識に値うゆへなり、 善に付け悪につけ法華経をすつるは地獄の業なるべし、大願を立てん日本国の位をゆづらむ、法華経をすてて観経等について後生をごせよ、父母の頸を刎ん念仏申さずば、 なんどの種種の大難・出来すとも智者に我義やぶられずば用いじとなり、其の外の大難・風の前の塵なるべし、 我日本の柱とならむ我日本の眼目とならむ我日本の大船とならむ等とちかいし願やぶるべからず。
요컨대 하늘도 버리시라, 온갖 난도 만나리라, 신명(身命)을 기약하리라. 신자(身子)가 60겁의 보살행에서 물러선 것은 눈을 구걸한 바라문의 책망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요, 구원(久遠) · 대통(大通)의 사람들이 삼오(三五)의 진점겁을 지낸 것은 악지식(惡知識)을 만났기 때문이니라. 선에 붙이든 악에 붙이든 법화경을 버리는 것은 지옥의 업이 되리라. 대원을 세우리라. 「일본국의 왕위를 물려주리니 법화경을 버리고 『관경』 등에 붙어 후생을 기약하라」, 「염불을 하지 않으면 부모의 목을 베리라」 하는 따위의 갖가지 대난이 일어날지라도, 지자에게 나의 뜻이 깨뜨려지지 않는 한 결코 따르지 않으리라. 그 밖의 대난은 바람 앞의 티끌이리라.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안목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대선(大船)이 되리라 하고 맹세한 원은 깨뜨리지 않으리라.
어구 풀이
- 詮ずるところ요컨대
- 「따져 들어가 귀결하는 바」라는 뜻. 상권 제28장에서 「이 글의 간심」이라 하며 세운 의문, 곧 법화경의 행자에게 왜 제천의 가호가 없는가를 제49장부터 제55장까지 논해 온 끝에 그 결론을 내리는 말이다.
- 天もすて給え하늘도 버리시라
- 제천선신의 가호가 없어도 좋다는 뜻. 강의는 「하늘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온갖 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목숨을 다해 주사친 삼덕의 부처를 드러내려는 마음」이라고 풀이한다.
- 身命を期とせん신명을 기약하리라
- 목숨이 다하는 때를 기한으로 삼아 법을 넓히겠다는 결의. 권지품의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무상도를 아낀다(我不愛身命 但惜無上道)」를 그대로 몸으로 행하겠다는 것이다.
- 身子신자
- 범어 샤리푸트라(Śāriputra). 음사하여 사리불, 의역하여 신자라 한다. 석존 십대제자의 한 사람으로 지혜제일이라 불린다. 이전 경에서는 성문으로서 거듭 꾸지람을 받았으나 법화경 비유품에서 미래에 화광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
- 六十劫の菩薩の行60겁의 보살행
- 사리불이 먼 과거세에 보살도를 닦은 기간. 대성인은 「형제초」에서 이를 선다라불(禪多羅佛)이라는 부처님의 말세에 세운 보살행이라 하시고, 그 수행이 40겁 가까이 이르렀을 때 일어난 일을 전하신다.
- 乞眼の婆羅門눈을 구걸한 바라문
- 『대지도론』 권12에 나오는 이야기. 보시바라밀을 행하던 사리불에게 한 바라문이 와서 눈을 달라고 했다. 사리불이 눈 하나를 빼어 주자, 바라문은 그 냄새를 맡고는 더럽다고 침을 뱉어 땅에 버리고 발로 밟았다. 사리불은 「이런 사람들은 제도하기 어렵다. 차라리 스스로를 다스려 일찍 생사를 벗어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여 보살도에서 물러나 소승으로 돌아섰다. 「형제초」는 이 바라문을 보살행이 이루어질까 두려워한 제육천의 마왕이 둔갑한 것이라 하고, 사리불이 그 때문에 한량없는 겁 동안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하신다.
- 久遠大通の者구원 · 대통의 사람
- 「구원」은 석존이 성불한 오백진점겁의 먼 옛날, 「대통」은 삼천진점겁의 옛날 대통지승불이 출현한 때를 말한다. 구원실성의 석존에게서, 또는 대통지승불의 제16왕자였던 석존에게서 법화경의 설법을 듣고 하종을 받았으면서도 끝내 믿고 지니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 三五の塵삼오의 진점
- 삼천진점겁(화성유품)과 오백진점겁(수량품)의 아득한 시간. 법화경을 버리고 물러선 사람들이 그만한 기간을 악도에서 헤맸다는 뜻이다.
- 悪知識악지식
- 그릇된 가르침으로 사람을 불도에서 멀어지게 하는 스승이나 벗. 바른 법으로 이끄는 선지식의 반대. 강의는 「사교 · 사사가 얼마나 민중을 불행하게 하는가를 깊이 통감하여 하신 말씀」이라고 본다.
- 観経『관경』
- 『관무량수경』 1권. 유송의 강량야사 역. 악한 아들 아사세가 있는 탁악세를 한탄하며 극락정토를 원하는 위제희 부인에게, 석존이 신통력으로 여러 정토를 보이고 그곳에 태어나기 위한 세 가지 정업을 설하며, 특히 아미타불과 그 정토의 모습을 열여섯 가지 관법으로 나누어 설한 경이다. 정토교의 근본 경전의 하나다.
- 後生をごせよ후생을 기약하라
- 「ごす」는 「기(期)하다」. 법화경을 버리고 염불로 내세의 극락왕생을 기약하라는 권유다.
- 智者に我義やぶられずば用いじ지자에게 나의 뜻이 깨뜨려지지 않는 한 따르지 않으리라
- 도리와 경문에 의한 법론에서 지자에게 진다면 모를까, 그 밖의 어떤 유혹이나 위협으로도 자기의 법의를 굽히지 않겠다는 선언.
- 柱・眼目・大船기둥 · 안목 · 대선
-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 나라의 눈, 사람들을 건네는 큰 배. 강의와 현대어역은 이를 각각 주덕 · 사덕 · 친덕에 배대하여, 말법의 주사친이 되리라는 서원으로 읽는다. 흔히 「삼대서원」이라 부른다.
「하늘도 버리시라」 — 의문에 대한 마지막 답
강의는 이 장을 「법화경의 행자를 드러내는 단락의 결문」이라 하고, 여기서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로서의 심경과 결의를 말씀하셨다고 본다. 그리고 「이 대확신과 대결의 위에 서지 않으면 법화경의 행자라고도, 말법의 본불이라고도 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이 장의 첫 구절 「요컨대」는 아주 먼 데서부터 이어진다. 상권 제28장에서 대성인은 「천태 · 전교보다 난을 참고 자비가 뛰어나니 하늘의 가호가 있어야 할 터인데 조금의 징표도 없다. 나는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가, 아니면 제천이 이 나라를 버리고 떠났는가」라는 의문을 세우시고, 이것이 「이 글의 간심이요 일생의 대사」이므로 곳곳에 쓰고 의문을 강하게 하여 답을 마련하겠다고 하셨다. 그 뒤 이승의 법화 심은(제29~34장), 지용보살과 수량품의 삼덕(제35~41장), 보탑품 · 제바품의 다섯 봉조(제42~48장)를 거쳐, 이 편에서 삼류의 강적과 법화경의 행자를 가리고(제49~54장) 행자가 난을 만나는 세 까닭을 밝히셨다(제55장). 「요컨대」는 이 긴 문답 전체의 귀결을 맺는 말이다.
그런데 그 귀결은 「그러므로 하늘은 결국 나를 지킬 것이다」가 아니다. 「하늘도 버리시라.」 제55장에서 대성인은 하늘의 가호가 없는 까닭을 이치로 밝히셨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그 이치마저 넘어서신다. 하늘이 지키든 지키지 않든, 난이 오든 오지 않든, 그것은 법화경의 행자로서의 길을 정하는 조건이 아니다. 정하는 것은 오직 「신명을 기약하리라」는 결의다. 개목초의 큰 의문은 여기서 논리로 해소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문 자체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자리로 옮겨진다.
강의는 이 구절을 「하늘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온갖 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목숨을 다해 주사친 삼덕의 부처를 드러내려는 마음」이라고 풀이한다. 하늘의 가호를 구하는 것은 결국 자기 바깥에 성불의 보증을 찾는 일이다. 「하늘도 버리시라」는 그 보증을 스스로 내려놓고, 법과 자기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권지품의 보살들이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고 맹세했을 때 그들이 말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제49장에서 「두려우면서도 두렵지 않다」고 하신 그 「두렵지 않음」이 이 장에서 결의의 말로 완성된다.
강의는 「하늘도 버리시라, 온갖 난도 만나리라, 신명을 기약하리라」를 개목초가 세운 큰 의문 — 「법화경의 행자에게 왜 하늘의 가호가 없는가」 — 에 대한 마지막 답으로 읽는다. 하늘의 가호는 행자임을 판정하는 기준이 아니며, 행자를 행자로 만드는 것은 불석신명의 결의다. 이 결의가 없으면 법화경의 행자도 말법의 본불도 아니라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사리불의 퇴전과 삼오의 진점 — 부처에 약하고 중생에 약하다
결의를 말씀하신 바로 뒤에 대성인은 두 가지 퇴전의 예를 드신다. 하나는 사리불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 · 대통의 사람들이다.
눈을 구걸한 바라문
사리불은 먼 과거세에 60겁 동안 보살행을 닦았다. 그 보시의 행이 거의 이루어질 무렵 한 바라문이 와서 눈을 달라고 했다. 사리불은 눈 하나를 빼어 주었다. 그러나 바라문은 그 눈의 냄새를 맡더니 더럽다며 침을 뱉어 땅에 버리고 발로 짓밟았다. 사리불은 이런 사람들은 도저히 제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보살도를 버리고 자기 한 몸의 해탈을 구하는 소승으로 물러섰다. 『대지도론』 권12가 전하는 이야기다. 대성인은 「형제초」에서 이 일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舎利弗は昔禅多羅仏と申せし仏の末世に菩薩の行を立てて六十劫を経たりき、既に四十劫ちかづきしかば百劫にて・あるべかりしを第六天の魔王・菩薩の行の成ぜん事をあぶなしとや思いけん、婆羅門となりて眼を乞いしかば相違なく・とらせたりしかども其より退する心・出来て舎利弗は無量劫が間・無間地獄に堕ちたりしぞかし
사리불은 옛날 선다라불이라는 부처님의 말세에 보살의 행을 세워 60겁을 지냈느니라. 이미 40겁에 가까워졌으니 100겁이면 이루어질 것이었는데, 제육천의 마왕이 보살의 행이 이루어질 것을 위태롭게 여겼던지 바라문이 되어 눈을 구걸하였느니라. 사리불은 어김없이 주었으나 그로부터 물러서는 마음이 생겨, 사리불은 한량없는 겁 동안 무간지옥에 떨어졌느니라
이 이야기의 날카로움은 사리불을 물러서게 한 것이 칼이나 유배 같은 큰 박해가 아니었다는 데 있다. 그는 눈을 주었다. 큰 보시를 해냈다. 그를 꺾은 것은 그 보시가 짓밟히는 것을 본 순간의 낙담, 「이런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마음이었다. 강의는 사리불이 물러선 까닭을 「난을 두려워하고 몸을 아꼈기 때문」이라 하고, 이런 일은 니치렌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그리고 이것은 「부처에 약(約)한 말씀」이라고 한다. 곧 법을 넓히는 쪽, 부처의 입장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를 사리불의 반면교사로 보이신 것이다.
말법의 중생은 개목초가 거듭 말했듯 모두 방법의 자이고, 행자를 욕하고 칼과 막대기를 든다. 행자가 내어 주는 법을 받기는커녕 침을 뱉고 짓밟는다. 그 사람들 앞에서 「이들은 제도할 수 없다」고 돌아서는 순간, 행자는 사리불이 된다. 제55장의 불경보살이 기와와 돌을 맞으면서도 「그대들은 모두 부처가 되리라」며 예배를 그치지 않은 것과, 사리불이 눈 하나에 돌아선 것은 정반대의 길이다.
구원 · 대통의 사람들
「구원 · 대통의 사람들이 삼오의 진점겁을 지낸 것은 악지식을 만났기 때문이다.」 화성유품은 삼천진점겁 전에 대통지승불의 열여섯 왕자가 법화경을 다시 설하여 수많은 중생에게 인연을 맺게 했다고 설하고, 수량품은 석존이 오백진점겁 전에 성불했다고 설한다. 그 먼 옛날에 이미 법화경의 하종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뒤 삼천진점겁, 오백진점겁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악도에서 헤맸다. 현대어역은 그 까닭을 「악지식에 물들어 권교에서 소승교로, 소승교에서 외도로 물러서 갔기 때문」이라고 옮긴다.
이 경로는 제25장에서 대성인이 자신의 과거세를 돌아보며 말씀하신 것과 똑같다. 거기서 대성인은 「대통 결연의 제3류로서 재세를 놓쳤는가, 구원 5백에서 물러서서 지금에 이르렀는가」라고 하시고, 도작 · 선도 · 호넨 같은 자들에게 속아 「권경에 떨어지고, 권경에서 소승경에 떨어지고, 외도 · 외전에 떨어지고, 결국은 악도에 떨어졌다」고 하셨다. 대성인은 이 퇴전의 역사를 남의 일로 말씀하지 않으셨다. 제55장에서 「과거의 방법」을 자기 몸에 받아들이신 것과 같은 자세다.
강의는 이 구절을 「중생에 약한 말씀」이라 한다. 사리불의 예가 법을 넓히는 부처의 쪽에서 물러섬을 경계한 것이라면, 이 예는 법을 받는 중생의 쪽에서 악지식이 얼마나 큰 불행을 낳는지를 보인 것이다. 강의는 대성인이 「사교 · 사사가 얼마나 민중을 불행하게 하는가를 깊이 통감하여」 이 말씀을 하셨다고 본다. 같은 사도에서 쓰신 「사도어서」도 법화경을 비방한 당세의 사람들을 두고 같은 말을 쓰신다.
当世の諸人は翻す心なし譬喩品の如く無数劫をや経んずらん・三五の塵点をやおくらんずらん
당세의 여러 사람은 마음을 돌이킬 마음이 없으니, 비유품에 설한 것처럼 무수겁을 지내리라, 삼오의 진점겁을 보내리라
「선에 붙이든 악에 붙이든」
「선에 붙이든 악에 붙이든 법화경을 버리는 것은 지옥의 업이 되리라.」 강의는 이 구절을 앞의 두 예와 묶어 읽는다. 보살행에서 물러서지 않고 신명을 기약하는 것은 모든 선을 거두는 것이고, 악지식을 만나는 것은 모든 악을 거두는 것이다. 사리불은 보시라는 「선」을 행하던 중에 물러섰고, 구원 · 대통의 사람들은 악지식이라는 「악」을 만나 물러섰다. 계기가 선이든 악이든, 법화경을 버리면 그 결과는 같다. 그러므로 「선악 어느 쪽이든 법화경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경계하신 것이라고 강의는 풀이한다.
이 말은 다음 구절로 곧바로 이어진다. 바로 뒤에 나오는 「일본국의 왕위를 물려주리라」는 좋은 것을 내밀어 법화경을 버리게 하는 길이고, 「부모의 목을 베리라」는 두려운 것을 들이밀어 법화경을 버리게 하는 길이다. 법화경을 버리게 하는 힘은 박해의 모습으로만 오지 않는다.
「일본국의 왕위를 물려주리라」 — 유혹과 위협
「대원을 세우리라.」 대성인은 여기서 스스로 두 가지 극한의 시험을 상정하신다.
첫째는 유혹이다. 「일본국의 왕위를 물려주리니 법화경을 버리고 『관경』 등에 붙어 후생을 기약하라.」 한 나라의 최고 지위라는, 세간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이다. 강의는 이것을 「매우 큰 유혹이지만, 이것은 또 참고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둘째는 위협이다. 「염불을 하지 않으면 부모의 목을 베리라.」 강의는 이것이야말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 목숨이라면 이미 다쓰노쿠치에서 내놓으셨다. 그러나 부모의 목숨은 다르다. 강의는 「효양제일이신 대성인에게는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라고 하면서, 그것마저 「나의 뜻이 깨뜨려지지 않는 한 따르지 않으리라」고 하신 결심에는 오직 감사로 목이 멜 뿐이라고 말한다.
대성인이 부모를 얼마나 깊이 생각하셨는지는 다쓰노쿠치로 끌려가시던 밤의 말씀에서 볼 수 있다. 「종종어진무어서」는 대성인이 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日蓮貧道の身と生れて父母の孝養心にたらず国の恩を報ずべき力なし、今度頸を法華経に奉りて其の功徳を父母に回向せん、其のあまりは弟子檀那等にはぶくべし
니치렌은 가난한 승려의 몸으로 태어나 부모의 효양도 마음에 차지 않고 나라의 은혜를 갚을 힘도 없다. 이번에 목을 법화경에 바쳐 그 공덕을 부모에게 회향하리라. 그 나머지는 제자 · 단나들에게 나누어 주리라
목숨을 법화경에 바치는 것이 곧 부모에 대한 최고의 효양이라는 이 말씀은, 「부모의 목을 베리라」는 위협이 왜 대성인을 꺾지 못하는지를 보여 준다. 부모를 위해 법화경을 버린다면 그것은 부모를 지옥의 업에 함께 끌어들이는 일이 된다. 법화경을 지키는 것이 부모를 참으로 구하는 길이다. 바로 앞 제48장, 제바품의 두 간효를 맺는 자리에서 대성인은 효양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儒家の孝養は今生にかぎる未来の父母を扶けざれば外家の聖賢は有名無実なり、外道は過未をしれども父母を扶くる道なし仏道こそ父母の後世を扶くれば聖賢の名はあるべけれ……此の経は内典の孝経なり
유가의 효양은 금생에 한하고 미래의 부모를 돕지 못하니 외가의 성현은 이름만 있고 실이 없느니라. 외도는 과거와 미래를 알지만 부모를 돕는 길이 없느니라. 불도야말로 부모의 후세를 도우므로 성현이라는 이름이 있을 만하니라. …… 이 경은 내전의 효경이니라
법화경이 「내전의 효경」이라면, 부모의 목숨을 볼모로 법화경을 버리라는 요구는 효를 이유로 효의 근본을 버리라는 요구가 된다.
강의는 니치칸 상인이 「일본국의 왕위를 물려주리라」 이하의 글에 대해 「한 번 이 글을 우러르면 눈물이 몇 줄기나 흐른다. 후대의 제자들은 이를 마음 깊이 새기라」고 하셨다고 전하고, 이를 깊이 마음에 새기자고 말한다.
대성인은 뒷날 「선시초」에서, 몽골 내습을 앞둔 문영 11년(1274) 4월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하신 말씀을 이렇게 회고하셨다.
王地に生れたれば身をば随えられたてまつるやうなりとも心をば随えられたてまつるべからず
왕의 땅에 태어났으므로 몸은 따르게 되는 듯하여도 마음은 따르게 할 수 없느니라
몸은 권력 아래 있을 수 있다. 유배도 당하고 목에 칼이 닿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 곧 법에 대한 판단은 권력이 따르게 할 수 없다. 「왕위」와 「부모의 목」이라는 두 극한의 상정은 바로 이 마음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선언이다.
「지자에게 나의 뜻이 깨뜨려지지 않는 한」 — 도리만이 승부를 정한다
「갖가지 대난이 일어날지라도, 지자에게 나의 뜻이 깨뜨려지지 않는 한 결코 따르지 않으리라. 그 밖의 대난은 바람 앞의 티끌이리라.」
이 구절에는 대성인이 어떤 경우에 자기 뜻을 거두겠다고 하시는지가 분명히 적혀 있다. 단 하나, 지자에게 도리로 논파당했을 때다. 왕위로도, 부모의 목숨으로도, 유배와 사형으로도 대성인의 판단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경문과 도리에 의한 논증에서 진다면 따르겠다고 하신다. 대성인이 끝까지 열어 두신 문은 오직 「도리」의 문이다.
이것은 개목초 전체의 방법이기도 하다. 개목초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문과 해석을 들어 논증하는 글이다. 제50장에서 대성인은 자신의 판단을 「취봉 · 쌍림의 해와 달, 비담 · 동춘의 명경」이라는 경과 해석의 공공의 기준 위에 세우셨고, 제52장에서는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눈이 있다면 경문에 제 몸을 맞추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을 올린 이래 거듭 공적인 자리에서의 법론 대결을 요구하셨다. 문영 5년(1268) 몽골의 국서가 온 뒤에는 막부의 요인과 여러 대사원에 서한을 보내 공개 대론을 청하셨다. 그러나 대론의 자리는 끝내 주어지지 않았고, 돌아온 것은 고소와 다쓰노쿠치와 유배였다. 「지자에게 나의 뜻이 깨뜨려지지 않는 한」이라는 말에는, 도리로 응하지 못하고 권력으로 응한 상대에 대한 판정도 담겨 있다.
「그 밖의 대난은 바람 앞의 티끌이리라.」 도리의 패배가 아닌 한, 어떤 대난도 바람 앞에 날리는 티끌처럼 가볍다. 이 말은 같은 해 사도에서 쓰신 「사도어서」의 말씀과 겹친다.
悪王の正法を破るに邪法の僧等が方人をなして智者を失はん時は師子王の如くなる心をもてる者必ず仏になるべし例せば日蓮が如し
악왕이 정법을 깨뜨리려 할 때 사법의 승려들이 그 편을 들어 지자를 없애려 하면, 사자왕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는 반드시 부처가 되리라. 예컨대 니치렌과 같으니라
기둥 · 안목 · 대선 — 말법의 주사친이 되리라는 서원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안목이 되리라, 나는 일본의 대선이 되리라 하고 맹세한 원은 깨뜨리지 않으리라.」
강의는 이 세 구절을 「일본의 주 · 일본의 사 · 일본의 친이 되리라는 맹세」, 곧 「말법 금시의 주사친의 부처가 되리라는 맹세」라고 한다. 현대어역도 기둥에 「주의 덕」, 안목에 「사의 덕」, 대선에 「친의 덕」을 괄호로 붙이고, 「주사친의 삼덕으로 말법의 일체중생을 지옥의 고통에서 구해 내려는 맹세」라고 옮긴다.
- 我日本の柱とならむ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주덕主德나라를 떠받치고 지키는 덕
- 我日本の眼目とならむ나는 일본의 안목이 되리라→사덕師德바른 길을 보고 이끄는 덕
- 我日本の大船とならむ나는 일본의 대선이 되리라→친덕親德고통의 바다에서 건네는 자비의 덕
기둥 — 주덕
기둥은 집을 떠받친다. 기둥이 쓰러지면 집이 무너진다. 대성인은 다쓰노쿠치 법난 바로 그날, 체포하러 온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선시초」에서 회고하신다.
日蓮は日本国の棟梁なり予を失なうは日本国の柱橦を倒すなり
니치렌은 일본국의 동량이니라. 나를 잃는 것은 일본국의 기둥을 쓰러뜨리는 것이니라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을 예언하셨다. 이 말은 개목초를 쓰신 바로 그 2월, 호조 일문의 내란으로 현실이 되었다. 대성인은 개목초 다음 달에 쓰신 「사도어서」에서 그 일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日蓮は此関東の御一門の棟梁なり・日月なり・亀鏡なり・眼目なり、日蓮捨て去る時・七難必ず起るべしと去年九月十二日御勘気を蒙りし時大音声を放てよばはりし事これなるべし
니치렌은 이 간토의 어일문의 동량이요, 해와 달이요, 귀경이요, 안목이니라. 니치렌을 버리고 떠나게 할 때 칠난이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지난해 9월 12일 어감기를 입었을 때 큰 소리로 외친 것이 바로 이것이니라
서강의 강의는 이 글에서 「동량」은 주덕, 「해와 달 · 귀경 · 안목」은 사덕이라 하고, 같은 글의 「니치렌은 당세에는 이 어일문의 부모이니라」를 친덕이라 한다. 기둥이 된다는 것은 권력을 쥐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치는 것, 곧 사람들을 지키는 덕이다. 대성인은 유배된 죄인의 몸으로 스스로를 나라의 기둥이라 하셨다. 그 기둥을 쓰러뜨린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를, 대성인은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의 예언으로 보이셨다.
안목 — 사덕
안목은 눈이다. 나라의 눈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바른 길로 이끄는 것, 곧 스승의 덕이다. 「개목초」라는 제목이 「눈을 뜨게 하는 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서원은 이 글 전체의 이름과 맞닿아 있다. 제52장에서 대성인은 「눈 없는 자, 한쪽 눈인 자, 사견의 자는 말법 처음의 세 부류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삼류의 강적을 알아보고 법화경의 행자를 알아보는 눈을 일본국에 열어 주는 것, 그것이 「일본의 안목」이 되는 일이다.
개목초 상권 제5장에서 대성인은 석존을 이렇게 찬탄하셨다.
大覚世尊は此一切衆生の大導師・大眼目・大橋梁・大船師・大福田等なり
대각세존은 이 일체중생의 대도사 · 대안목 · 대교량 · 대선사 · 대복전 등이니라
내외상대에서 석존에게 바쳐진 「대안목」 · 「대선사」라는 말이, 개목초의 끝에 가까운 이 장에서 「일본의 안목」 · 「일본의 대선」이라는 대성인 자신의 서원으로 다시 나타난다. 상권에서 석존에게 돌린 삼덕이 하권의 끝에서 말법의 행자에게 이어지는 구조가 이 두 말 사이에 놓여 있다.
대선 — 친덕
대선은 사람들을 태워 생사의 고해를 건너게 하는 큰 배다. 부모가 자식을 품어 기르듯,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태우는 자비의 덕, 곧 친덕이다. 대성인은 「보은초」에서 자신의 자비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日蓮が慈悲曠大ならば南無妙法蓮華経は万年の外・未来までもながるべし、日本国の一切衆生の盲目をひらける功徳あり、無間地獄の道をふさぎぬ
니치렌의 자비가 넓고 크다면 남묘호렌게쿄는 만년을 넘어 미래까지도 흐르리라. 일본국 일체중생의 눈먼 것을 연 공덕이 있고, 무간지옥의 길을 막았느니라
서강의 강의는 이 글의 「자비광대」를 친덕, 「눈먼 것을 연다」를 사덕, 「무간지옥의 길을 막는다」를 주덕으로 읽는다. 한 문장 안에 세 덕이 다시 갖추어져 있다.
첫머리와 끝맺음 사이
개목초는 「무릇 일체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이른바 주 · 사 · 친이 이것이니라」(186쪽)로 시작했다. 그리고 유교의 삼덕, 외도의 삼덕, 불교의 삼덕을 차례로 판정하며 오중상대로 법화경 본문에 이르렀고, 하권에서는 수량품 석존의 탈익의 삼덕을 밝힌 뒤 말법 하종의 삼덕으로 나아갔다. 강의는 제54장에서 「니치렌보다 밖에 일본국에 꺼낼 사람이 없다」는 단정이 곧 주사친 삼덕의 부처라는 결론이라고 했다. 이 장의 삼대서원은 그 결론을 대성인 자신의 맹세의 말로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개목초는 마지막 장에서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237쪽)라는 선언으로 이 첫머리의 물음에 답한다.
「맹세한 원은 깨뜨리지 않으리라」 — 서원과 출세의 본회
삼대서원의 마지막 말은 「맹세한 원(ちかいし願)」이다. 「맹세한」은 과거형이다. 이 원은 개목초를 쓰는 지금 처음 세운 것이 아니라 이미 세운 원이며, 이 장에서 대성인은 그것을 「깨뜨리지 않으리라」고 다시 확인하신다.
그 처음의 맹세는 상권 제25장에 적혀 있다. 이 법문을 한마디라도 꺼내면 부모 · 형제 · 스승에게, 그리고 국주의 왕난이 반드시 닥칠 것이요, 말하지 않으면 자비가 없는 것이 된다. 대성인은 그 두 길 사이에서 망설이셨고, 보탑품의 육난구이를 떠올리며 결단하셨다.
二辺の中には・いうべし、王難等・出来の時は退転すべくは一度に思ひ止るべしと且くやすらいし程に宝塔品の六難九易これなり……今度・強盛の菩提心を・をこして退転せじと願じぬ
두 길 가운데에서는 말해야 하리라. 왕난 등이 일어났을 때 물러설 것이라면 처음부터 그만두어야 하리라고 잠시 망설이던 차에, 보탑품의 육난구이가 바로 이것이었느니라. …… 이번에 강성한 보리심을 일으켜 물러서지 않으리라고 원하였느니라
「왕난이 일어났을 때 물러설 것이라면 처음부터 그만두라」 — 입종 때의 이 결단이 20년의 법난을 거쳐, 사도의 눈 속에서 「하늘도 버리시라, 온갖 난도 만나리라」로 다시 말해진다.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원과 「깨뜨리지 않으리라」는 원은 같은 원이다. 그 사이에 사리불의 퇴전과 구원 · 대통의 퇴전이 놓여,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비춘다.
강의는 이 서원을 「대성인 출세의 본회」라고 한다. 「일본의 주 · 사 · 친이 되리라」는 맹세, 곧 말법의 주사친의 부처가 되리라는 맹세야말로 대성인이 세상에 나오신 근본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의는 「성인어난사」의 한 구절을 든다.
仏は四十余年・天台大師は三十余年・伝教大師は二十余年に出世の本懐を遂げ給う、其中の大難申す計りなし先先に申すがごとし、余は二十七年なり
부처님은 40여 년, 천태대사는 30여 년, 전교대사는 20여 년에 출세의 본회를 이루셨느니라. 그 사이의 대난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앞서 말한 바와 같으니라. 나는 27년이니라
강의는 이 글에 따라 대성인이 출세의 본회를 입종 후 27년에 이루셨으며, 「일본의 주사친의 삼덕이 되리라」고 맹세하신 서원이 여기서 이루어졌다고 우러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글로 보더라도 대성인을 말법의 본불로 우러르는 데 무슨 이의가 있겠는가」라고 이 장의 강의를 맺는다.
강의는 삼대서원을 「말법 금시의 주사친의 부처가 되리라는 맹세」로 읽고, 이것이 대성인 출세의 본회라고 본다. 기둥 · 안목 · 대선은 주 · 사 · 친에 배대되며, 개목초 첫머리의 「주사친」과 끝맺음의 「주사부모」를 잇는 자리에 이 서원이 놓인다. 「하늘도 버리시라」는 결의와 「맹세한 원은 깨뜨리지 않으리라」는 서원이 함께 법화경의 행자를 드러내는 단락을 맺는다.
이렇게 제49장에서 시작된 「법화경의 행자를 드러내는 단락」은 끝난다. 권지품의 명경을 꺼내 삼류의 강적을 비추었고(제49~53장), 그 거울에 「니치렌보다 밖에 일본국에 꺼낼 사람이 없다」는 행자의 모습이 비쳤으며(제54장), 그 행자가 왜 난을 만나는지를 세 겹의 이치로 밝혔고(제55장), 마지막으로 행자 자신의 결의와 서원이 말해졌다(제56장). 그러나 「왜 난을 만나는가」의 물음은 아직 하나가 남아 있다. 행자 자신의 과거의 업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다음 장은 「의심하여 이르되, 어떻게 그대의 유죄 · 사죄 등을 과거의 숙습이라고 알겠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이 편을 맺으며
이 편의 여덟 장은 하나의 거울을 꺼내 드는 데서 시작했다. 보탑품의 세 칙선과 제바품의 두 간효에 응하여 보살들이 맹세한 권지품의 이십행게, 그리고 그 게송에 「속중 · 도문 · 참성」의 이름을 붙인 묘락의 해석과 지도의 『동춘』, 아라한을 닮은 일천제를 그린 열반경과 『반니원경』이 그 거울이었다(제49장). 대성인은 그 거울이 말법의 처음을 가리킨다는 것을 법화경 곳곳의 문과 외전 · 부법장의 예언 적중으로 논증하시고, 「대지를 가리켜 빗나가더라도 세 부류의 적인은 반드시 일본국에 있으리라」고 단언하셨다(제50장). 그리고 그 거울에 비추어 제1 속중과 제2 도문을 염불의 도작 · 호넨과 그 단나들에게서(제51장), 가장 알아보기 어려운 제3 참성을 세상의 존경을 받는 선 · 율의 쇼이치 · 료칸에게서 보셨다(제52장). 염불 · 선의 대망어와 천태 · 진언 고승의 굴복으로 일본국에는 「법화경의 이름만 있고 득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제53장).
삼류가 있다면 행자도 있어야 한다. 「니치렌보다 밖에 일본국에 꺼낼 사람이 없다」(제54장). 그러나 그 행자에게 하늘의 가호가 없다는 의문이 남는다. 대성인은 그 의문을 피하지 않고 가장 강한 형태로 세운 뒤, 행자 자신의 과거의 방법, 박해자의 일천제성, 선신이 버리고 떠난 나라라는 세 겹의 이치로 답하셨다(제55장). 그리고 마지막에 이치를 넘어선 결의를 말씀하셨다. 「하늘도 버리시라, 온갖 난도 만나리라, 신명을 기약하리라.」 왕위의 유혹도 부모의 목을 건 위협도, 지자에게 도리로 깨뜨려지지 않는 한 따르지 않는다.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 일본의 안목이 되리라, 일본의 대선이 되리라」(제56장). 강의는 이 삼대서원을 말법의 주사친이 되리라는 맹세로 읽는다. 개목초 첫머리에 내건 「주사친」이 여기서 한 사람의 서원의 말로 돌아온 것이다.
이 편의 논의는 남을 단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제50장의 「우리가 삼류에 들어 있는가, 법화경의 행자 안에 있는가」와 제52장의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눈이 있다면 경문에 제 몸을 맞추어 보라」는, 거울 앞에 선 모든 사람에게 되돌아오는 물음이다. 그리고 사리불의 퇴전과 구원 · 대통의 퇴전은, 그 물음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춘다.
다음 제9편(제57~61장)은 제55장에 남겨진 물음, 곧 「어떻게 그대의 유죄 · 사죄를 과거의 숙습이라고 알겠는가」에서 시작한다. 대성인은 『반니원경』의 문으로 과거의 무거운 죄를 현세에 가볍게 받는 「전중경수」의 이치를 밝히시고(제57장), 「나와 나의 제자, 여러 난이 있어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리라」(234쪽)는 불구자득의 큰 이익을 말씀하신다(제58장). 이어 말법에 섭수와 절복 가운데 무엇이 때에 맞는 수행인지를 가리시고(제59~60장), 마지막에 「니치렌은 일본국 제인에게 주사부모이니라」라는 선언으로 개목초 전체를 맺으신다(제61장).
더 읽기
- 개목초 제4편 · 말법 법화경 행자의 소유 — 「이 글의 간심」이라 하신 의문이 처음 세워지는 자리(제25~28장)
- 개목초 제7편 · 보탑품 삼개의 칙선 · 제바품 이개의 간효 — 권지품의 홍경을 불러낸 다섯 봉조
- 개목초 제9편 · 전중경수 · 섭수와 절복 · 결권 — 제55장에 남은 물음과 「주사부모」의 선언
- 개목초 서강 · 개목초를 펼치며 — 인본존 개현의 서라는 판단과 글 전체의 구성
- 인물탐구 · 니치렌 대성인 — 다쓰노쿠치 법난과 사도 유배의 생애
- 인물탐구 · 시조깅고 — 다쓰노쿠치에 함께 가고 개목초를 받아 전한 「유연의 제자」
참고 문헌
원전
- 『묘법연화경』 방편품 · 비유품 · 약초유품 · 수기품 · 화성유품 · 법사품 · 견보탑품 제11 · 제바달다품 제12 · 권지품 제13 · 안락행품 제14 · 여래수량품 제16 · 분별공덕품 · 상불경보살품 제20 · 약왕보살본사품 · 다라니품 · 묘장엄왕본사품 · 보현보살권발품, T9 no.262
- 『정법화경』(축법호 역) · 『첨품묘법연화경』(사나굴다 · 달마급다 역)
- 『대반열반경』, T12 no.374 / 『대반니원경』(6권, 법현 역)
- 『관무량수경』, T12 no.365 / 『대승본생심지관경』 / 『금광명경』
- 『대지도론』, T25 no.1509
- 『부법장인연전』(길가야 · 담요 역)
- 천태대사 『마하지관』, T46 no.1911 / 『법화문구』, T34 no.1718
- 묘락대사 『지관보행전홍결』, T46 no.1912 / 『법화문구기』, T34 no.1719
- 지도 『천태법화소의찬』(동춘) / 종의 『법화삼대부보주』
- 도작 『안락집』 / 호넨 『선택본원염불집』 / 혜심(겐신) 『일승요결』
- 니치렌 대성인 「개목초」 · 「창법화제목초」 · 「선시초」 · 「보은초」 · 「시모야마어소식」 · 「법화초심성불초」 · 「사도어감기초」 · 「종종어진무어서」 · 「고니치보어서」 · 「사도어서」 · 「법화행자봉난사」 · 「형제초」 · 「성인어난사」 · 「제법실상초」 · 「우에노전답서」 · 『어의구전』 (창가학회판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연구
- 창가교학연구실, 「0186~0237 開目抄」 제49~56장 강의 및 서강 (니치칸 상인 「개목초 문단」에 의거)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The Opening of the Eyes」 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