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목초」 하권은 「법화경의 행자에게 어찌하여 제천의 수호가 없는가」라는 물음을 안고 나아간다. 제6편에서 대성인은 지용보살의 출현과 수량품의 개근현원을 통해 석존이 일체 보살의 근본 스승이요 법화경이 일체 불보살의 종자임을 밝히셨다. 그렇다면 모든 불보살과 제천은 마땅히 법화경의 행자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현실의 대성인은 유죄의 몸으로 눈 덮인 쓰카하라에 계신다. 제7편은 이 모순 앞에서 대성인이 「거듭 경문을 살펴 내 몸에 대어 보리라」 하시고, 석가 · 다보 · 시방 분신의 삼불이 함께 내린 다섯 번의 명령, 곧 보탑품의 삼개의 칙선과 제바품의 이개의 간효를 차례로 펼치시는 대목이다. 그 사이에 화엄 · 법상 · 삼론 · 진언 등 제종의 조사들이 이 경문을 어떻게 잘못 읽었는지, 자기 경을 찬탄한 여러 경문과 법화경의 「이금당」은 무엇이 다른지가 철저히 가려진다. 그리고 악인 제바달다와 용녀의 성불로 일대 성교의 성불 · 불성불이 판정되며, 법화경이야말로 부모를 구하는 「내전의 효경」임이 선언된다. 이 다섯 번의 명령에 놀라 일어난 것이 권지품의 홍경이며, 그것이 다음 편 삼류의 강적으로 이어진다.
제7편의 일곱 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제42장으로, 제31장에서 「이승의 수호가 없음」을 의심한 데서 시작해 제32~41장에서 보살들에 대해 이전(爾前)의 무은(無恩)과 법화의 심은(深恩)을 밝혀 온 긴 논증을 맺는 장이다. 모든 불보살이 법화경에서 비로소 정각을 이루었다면 그들이 법화경의 행자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데, 지금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대성인은 이 사실을 덮지 않고 「일련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가」라고 스스로 물으신다.
둘째는 제43~47장이다. 제43장에서 보탑품의 세 칙선이 원문 그대로 인용되고, 제44장에서 그 경문이야말로 「일본 · 한토 · 월지 · 용궁 · 천상 · 시방세계의 일체경의 승렬을 삼불이 정한 것」임이 선언된다. 이어 화엄 · 법상 · 삼론 · 진언의 조사들이 자기 경을 육난 안에 넣거나 아예 육난구이 밖에 두는 해석을 소개하고(제44장), 열반경의 「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를 기준으로 그 해석들이 「곡회사정 · 장엄기의」임을 파하신다(제45장). 제46장은 법화경의 「이금당」과 묘락의 석을 정의(正義)로 세운 뒤, 밀엄경 · 대운경 · 육바라밀경 · 해심밀경 · 대반야경 · 대일경 · 화엄경 · 열반경의 자찬하는 경문을 길게 늘어놓고, 제47장은 그 경문들을 「왕에 소왕 · 대왕」 「일체에 소분 · 전분」 「오유에 전유 · 분유」의 세 잣대로 가려 홍법의 오판을 밝히신다.
셋째는 제48장이다. 제바품의 두 간효 — 제바달다의 천왕여래 수기와 용녀의 즉신성불 — 를 들어 일대 제경에는 성불의 실체가 없고 오직 법화경에만 악인성불 · 여인성불이 있음을 판정하시며, 이로써 법화경이 부모의 후세를 구하는 참된 효경이 된다. 제1편의 주사친 삼덕 · 유가의 효에서 시작한 「개목초」의 논의가 여기에서 한 바퀴를 돌아 「효」라는 주제로 되돌아온다.
- ① 제35~41장법화의 심은 · 지용출현 · 개근현원 · 탈익과 하종의 삼덕
- ② 제42장이 편보살 등의 수호가 없다는 의문을 맺다의문의 결론日蓮・法華経の行者にあらざるか니치렌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가
- ③ 제43~48장이 편오개의 봉조보탑품 삼개의 칙선 + 제바품 이개의 간효
- ④ 제49~56장 · 제8편삼류의 강적 — 권지품 이십행게로 행자임을 드러냄
- 내외상대
- 대소상대
- 권실상대◀ 이 편 중심
- 본적상대
- 종탈상대◀ 제47장 끝 · 문저
이 편의 장
본문
されば諸経の諸仏菩薩・人天等は彼彼の経経にして仏にならせ給うやうなれども実には法華経にして正覚なり給へり、釈迦諸仏の衆生無辺の総願は皆此の経にをいて満足す今者已満足の文これなり、 予事の由を・をし計るに華厳・観経・大日経等をよみ修行する人をば・その経経の仏・菩薩・天等・守護し給らん疑あるべからず、 但し大日経・観経等をよむ行者等・法華経の行者に敵対をなさば彼の行者をすてて法華経の行者を守護すべし、例せば孝子・慈父の王敵となれば父をすてて王にまいる孝の至りなり、 仏法も又かくのごとし、法華経の諸仏菩薩・十羅刹・日蓮を守護し給う上・浄土宗の六方の諸仏・二十五の菩薩・真言宗の千二百等・七宗の諸尊・守護の善神・日蓮を守護し給うべし、 例せば七宗の守護神・伝教大師をまほり給いしが如しと・をもう、日蓮案じて云く法華経の二処・三会の座にましましし、 日月等の諸天は法華経の行者出来せば磁石の鉄を吸うがごとく月の水に遷るがごとく須臾に来つて行者に代り仏前の御誓をはたさせ給べしとこそをぼへ候にいままで日蓮をとぶらひ給はぬは日蓮・法華経の行者にあらざるか、 されば重ねて経文を勘えて我が身にあてて、身の失をしるべし。
그러므로 제경의 제불 · 보살 · 인천 등은 저마다 그 경경에서 부처가 되신 듯하나, 실제로는 법화경에서 정각을 이루셨느니라. 석가 · 제불의 「중생은 끝이 없으나 건지리라」는 총원(總願)은 모두 이 경에서 만족되었으니, 「이제 이미 만족하였노라(今者已満足)」의 문이 이것이니라. 내가 일의 연유를 헤아려 보건대, 화엄 · 관경 · 대일경 등을 읽고 수행하는 사람을 그 경경의 부처 · 보살 · 하늘 등이 수호하실 것은 의심할 바 없느니라. 다만 대일경 · 관경 등을 읽는 행자들이 법화경의 행자에게 적대한다면, 그 행자를 버리고 법화경의 행자를 수호하여야 하느니라. 예컨대 효자라도 자부(慈父)가 왕의 적이 되면 아버지를 버리고 왕에게 나아감이 효의 극치이니라. 불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법화경의 제불보살 · 십나찰이 일련을 수호하심은 물론이요, 그 위에 정토종의 육방의 제불 · 이십오의 보살, 진언종의 천이백 등, 칠종의 제존 · 수호의 선신도 일련을 수호하셔야 하느니라. 예컨대 칠종의 수호신이 전교대사를 지키셨던 것과 같다고 생각하느니라. 일련이 생각하여 말하노니, 법화경의 이처삼회(二處三會)의 자리에 계셨던 일월 등의 제천은 법화경의 행자가 나타나면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듯, 달이 물에 비치듯 순식간에 와서 행자를 대신하여 불전(佛前)의 서원을 이루셔야 한다고 여겼거늘, 이제까지 일련을 찾아오시지 않음은 일련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기 때문인가. 그러므로 거듭 경문을 살펴 내 몸에 대어 보아 몸의 허물을 알아야 하리라.
어구 풀이
- 今者已満足금자이만족
- 법화경 방편품의 게송 「여아석소원 금자이만족(如我昔所願 今者已満足) — 내가 옛날에 원한 바와 같이 이제 이미 만족하였노라」의 한 구절이다. 이어지는 구절은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 불도에 들게 하노라」이다. 석존이 보살행을 닦을 때 세운 「일체 중생을 나와 같게 하리라」는 서원이 법화경에 이르러 비로소 이루어졌음을 스스로 밝힌 문이며, 대성인은 이를 「제불의 총원은 법화경에서 만족되었다」는 증거로 드신다.
- 衆生無辺の総願중생무변의 총원
- 모든 보살이 공통으로 세우는 네 가지 큰 서원(사홍서원) 가운데 첫째인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를 가리킨다. 개개의 보살이 따로 세우는 별원(別願)에 대해 모든 보살에 공통되는 서원을 총원이라 한다. 중생을 남김없이 건지겠다는 이 서원은 이승을 성불시키지 못하는 이전경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 六方の諸仏・二十五の菩薩육방의 제불 · 이십오의 보살
- 정토종이 의지하는 경문에 나오는 존격들이다. 『아미타경』은 동 · 남 · 서 · 북 · 하 · 상의 여섯 방위에서 항하사 수의 제불이 광장설상을 내어 아미타불의 공덕을 증명한다고 설한다(육방증성). 이십오보살은 아미타불을 염하는 행자를 지키고 임종 때 맞으러 온다고 하는 스물다섯 보살로, 『십왕생경』에 근거한다고 전한다.
- 真言宗の千二百진언종의 천이백
- 진언종의 양부 만다라에 그려진 많은 존격을 어림하여 이르신 말로 풀이된다. 진언종의 행자가 의지하는 제존 전체를 가리킨다.
- 七宗の諸尊칠종의 제존
- 대성인 당시 일본에 있던 여러 종파를 아울러 이르신 말이다. 바로 뒤의 「칠종의 수호신이 전교대사를 지켰다」는 구절과 짝을 이루어, 각 종파가 받드는 제존과 수호신조차 법화경을 세운 사람을 지켰다는 선례를 가리킨다.
- 十羅刹십나찰
- 법화경 다라니품에서 귀자모신과 함께 부처 앞에 나와 법화경을 수지하는 이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열 나찰녀(남바 · 비람바 · 곡치 · 화치 · 흑치 · 다발 · 무염족 · 지영락 · 고제 · 탈일체중생정기)다. 본래 사람의 정기를 빼앗는 귀녀였으나 법화경의 회좌에서 행자의 수호신이 되었다.
- 二処・三会이처삼회
- 법화경이 설해진 두 곳과 세 번의 회좌. 영취산에서 시작된 설법(전영산회)이 견보탑품 제11의 후반에 부처와 모든 청중이 허공으로 옮겨 이어지고(허공회), 약왕보살본사품 제23부터 다시 영취산으로 돌아온다(후영산회). 일월 등의 제천도 이 자리에 함께 있었으므로 법화경의 행자를 지킬 서원의 당사자가 된다.
- 法華経の行者법화경의 행자
- 법화경을 그 교설대로 실천하는 사람. 대성인은 스스로를 「법화경의 행자」 「여설수행의 행자」라 부르셨다. 강의는 이 장의 「법화경의 행자」가 단지 법화경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에 그치지 않고 「말법의 부처」를 뜻한다고 본다.
- 仏前の御誓불전의 서원
- 법화경의 회좌에서 제천선신이 부처 앞에서 법화경의 행자를 지키겠다고 세운 맹세. 안락행품 제14의 「제천은 밤낮으로 늘 법을 위하는 까닭에 이를 호위한다」, 촉루품 제22의 총부촉, 다라니품 제26의 귀자모신 · 십나찰녀의 맹세 등이 그것이다.
- 磁石の鉄を吸うがごとく月の水に遷るがごとく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듯 달이 물에 비치듯
- 감응이 즉시이고 필연적임을 보이는 비유다. 쇠가 있으면 자석은 저절로 끌어당기고, 물이 있으면 달은 저절로 그림자를 비춘다. 행자가 나타나면 제천은 이유를 묻지 않고 곧바로 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전의 「득도」와 법화의 「정각」
제42장의 첫 문장은 제32장부터 제41장까지 이어진 논증을 한 줄로 거두어들인다. 「제경의 제불 · 보살 · 인천 등은 저마다 그 경경에서 부처가 되신 듯하나 실제로는 법화경에서 정각을 이루셨다.」 화엄경을 읽으면 그 회좌의 보살들은 화엄경에서 깨달은 듯하고, 반야경을 읽으면 반야의 공관으로 득도한 듯하며, 대일경을 읽으면 대일여래와 그 권속은 대일경의 법으로 성불한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각 경이 스스로의 범위 안에서 말하는 득도이며, 일체 중생을 성불시키는 근본의 법을 얻은 것은 아니다.
강의는 이 대목을 「법화초심성불초」의 한 단락으로 뒷받침한다.
無量義経には『是の故に衆生の得道差別せり』と云い又『終に無上菩提を成ずることを得じ』と云へり、文の心は爾前の経経には得道の差別を説くと云へども終に無上菩提の法華経の得道はなしとそ仏は説き給いて候へ
무량의경에는 「그러므로 중생의 득도가 차별되었다」 하고 또 「끝내 무상보리를 이룰 수 없다」 하였느니라. 문의 뜻은, 이전의 경경에는 득도의 차별을 설한다 하더라도 끝내 무상보리인 법화경의 득도는 없다고 부처가 설하셨다는 것이니라.
무량의경은 법화경의 개경(開經)으로서 「사십여 년에 아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이전 제경의 성격을 스스로 규정한 경이다. 그 경이 말하는 「득도의 차별」이란 이전경이 근기에 따라 성문에게는 성문의 깨달음, 연각에게는 연각의 깨달음, 보살에게는 역겁수행 끝의 성불을 각각 따로 설했다는 뜻이다. 그 낱낱의 깨달음은 그 경 안에서는 깨달음이라 불리지만, 「끝내 무상보리를 이룰 수 없다」는 말이 보여 주듯 부처의 깨달음 그 자체에는 이르지 못한다. 대성인이 다른 곳에서 이전의 득도를 「당분(當分)의 득도」라 하시고 법화경의 득도를 「진실의 득도」라 하신 것도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강의는 「십계가 모두 성불하는 것을 설해 밝힌 것은 오직 법화경뿐」이라고 정리한다. 이승작불(제11~17장)이 없이는 이승이 성불하지 못하고, 구원실성(제18~24장)이 없이는 석존의 성불 자체가 시성정각이라는 방편의 모습에 머문다. 그리고 제35~41장에서 밝힌 대로, 이전의 보살들 또한 실은 구원의 석존에게서 법화경의 종자를 받은 이들이다. 방편품의 「금자이만족」은 이 모든 것을 석존 자신의 입으로 확인한 문이다. 석존이 보살이었을 때 세운 「중생무변서원도」의 총원은 이승도 악인도 여인도 버리지 않는 법이 설해져야만 성취된다. 그러므로 「석가 제불의 총원이 모두 이 경에서 만족되었다」는 것은 곧 일체 불보살이 법화경에 은혜를 입었다는 말과 같다.
효자와 왕적 — 이전경의 수호신도 법화의 행자를 지켜야 한다
이 전제에서 대성인은 하나의 추론을 세우신다. 화엄경 · 관무량수경 · 대일경을 읽고 수행하는 사람을 그 경의 부처 · 보살 · 천이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대성인은 이것을 부정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대일경이나 관경을 읽는 행자, 곧 진언과 염불의 행자가 법화경의 행자에게 적대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 경의 불보살 자신이 법화경에서 정각을 얻은 이상, 그들은 자기 경의 행자를 버리고 법화경의 행자를 지켜야 한다.
이것을 보이는 비유가 「효자와 왕적」이다. 효자에게 아버지는 지극히 소중하다. 그러나 그 아버지가 왕에게 반역하면 효자는 아버지를 버리고 왕에게 나아간다. 그것이 「효의 극치」라고 대성인은 말씀하신다. 유교의 질서에서 충(忠)과 효(孝)가 부딪칠 때 대의를 따르는 것이 오히려 아버지의 이름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이다. 불법도 그와 같다. 이전경의 불보살에게 자기 경의 행자는 자식과 같지만, 그 행자가 근본의 법을 거스르면 근본을 따르는 것이 불보살 자신의 도리다. 강의는 이를 「부모의 원수 편을 드는 자가 없는 것과 같다」고 풀이한다. 일체 불보살은 법화경을 아버지로 삼아 득도했으니, 법화경에 적대하는 자를 지킬 까닭이 없다.
이 추론에서 대성인은 수호해야 할 이들을 하나하나 헤아리신다. 법화경의 제불보살과 십나찰이 지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위에 정토종이 받드는 육방의 제불과 이십오보살, 진언종의 천이백 존, 칠종의 제존과 수호의 선신까지 모두 일련을 지켜야 한다. 정토의 육방 제불도, 진언의 제존도 자기 경 안에서는 그 경의 행자를 지키는 존격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존격들 역시 법화경에서 정각을 이룬 이상, 법화경의 행자와 자기 경의 행자가 맞설 때에는 법화경의 행자 편에 서야 한다. 대성인의 헤아림은 「수호해야 할 자」의 범위를 법화경 회좌의 존격에서 일체 종파의 존격으로까지 넓히는 데 그 날카로움이 있다.
대성인은 여기에 역사의 선례를 덧붙이신다. 「칠종의 수호신이 전교대사를 지키셨던 것과 같다.」 전교대사가 헤이안 초기 남도 여러 종파의 고승들과 맞서 법화경의 일승을 세우고, 마침내 히에이산에 원돈의 대승계단을 세우는 칙허를 얻은 일은 대성인이 여러 어서에서 거듭 드시는 사적이다. 대성인은 그 과정을 여러 종파가 받들던 신들까지 법화경을 세운 사람을 지킨 증거로 보신다. 그렇다면 같은 법화경을 말법에 세우는 일련에게도 같은 수호가 있어야 한다.
「불전의 서원」과 이처삼회의 제천
이어 대성인은 「일련이 생각하여 말하노니」 하고 논의의 초점을 일월 등의 제천에 맞추신다. 이들은 법화경의 이처삼회에 모두 참석했던 당사자다. 법화경의 설법은 영취산에서 시작해(전영산회), 견보탑품 제11에서 다보탑이 땅에서 솟아 허공에 머물자 석존이 대중을 허공으로 끌어올려 허공회가 열리고, 약왕보살본사품 제23부터 다시 영취산으로 돌아온다(후영산회). 제천은 이 세 회좌를 모두 지켜보았고, 그 자리에서 법화경의 행자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그 맹세는 경문 곳곳에 새겨져 있다. 안락행품 제14는 법화경을 설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諸天は昼夜に、常に法の為めの故に、而も之れを衛護し、能く聴者をして皆な歓喜することを得しめん
제천은 밤낮으로 늘 법을 위하는 까닭에 이를 호위하여, 듣는 이들이 모두 기뻐하게 하리라.
같은 품은 또 「하늘의 동자들이 시중을 들고, 칼과 몽둥이도 가해지지 않으며 독도 해칠 수 없다」고 설한다. 촉루품 제22에서는 석존이 보살과 제천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법화경을 부촉하고(총부촉), 대중은 「세존의 분부대로 받들어 행하겠다」고 세 번 응답한다. 다라니품 제26에서는 약왕 · 용시 두 보살, 비사문천왕과 지국천왕, 그리고 귀자모신과 십나찰녀가 차례로 다라니주를 바치며 법화경의 수지자를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대성인이 말씀하시는 「불전의 서원」은 이 모든 맹세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이 맹세가 성실하다면 그 응답은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듯, 달이 물에 비치듯」 즉시이고 필연이어야 한다고 하신다. 자석은 쇠를 고르지 않고, 달은 물을 가리지 않는다. 행자가 있으면 제천은 반드시 와서 「행자를 대신하여」 난을 받고 불전의 서원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대성인은 이즈 유죄, 고마쓰바라의 법난, 다쓰노구치의 법난을 거쳐 지금 사도에 유배되어 계시다. 「이제까지 일련을 찾아오시지 않음은 일련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기 때문인가.」
「일련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가」 — 의문을 덮지 않는 정직함
이 물음은 「개목초」 전체를 꿰뚫는 물음이다. 상권 제26~28장에서 대성인은 이미 「법화경의 행자이기 때문에 난을 만난다」는 것을 경문에 비추어 밝히셨으나, 동시에 「그렇다면 어찌하여 제천의 수호가 없는가」라는 세간의 의심과 「자심의 의심」을 숨기지 않으셨다. 제31장의 「이승의 수호가 없음을 의심하다」에서 시작된 이 의문은 제32~41장에서 보살들에게로 넓혀졌고, 이 제42장에서 「보살 등의 수호가 없다」는 결론으로 맺어진다.
이전 · 적문 · 본문의 논증으로 보면 제천과 보살이 행자를 지켜야 할 까닭은 넘치도록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수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대성인은 두 길 가운데 어느 쪽도 쉽게 택하지 않으신다. 「제천이 서원을 어겼다」고 단정하지도 않고, 「나는 행자가 아니다」라고 물러서지도 않으신다. 「거듭 경문을 살펴 내 몸에 대어 보아 몸의 허물을 알아야 하리라」 — 판정의 기준을 다시 경문에 두고, 자기 몸을 경문이라는 거울 앞에 세우신다. 이 태도가 다음 장부터 펼쳐지는 「오개의 봉조」와 제8편의 권지품 이십행게 대조로 이어진다.
제천의 수호가 즉시 나타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성인이 다른 어서에서 세 가지를 드셨다고 어석은 전한다.
今に天の加護を蒙らざるは一には諸天善神此の悪国を去る故か、二には善神法味を味わざる故に威光勢力無きか、三には大悪鬼三類の心中に入り梵天帝釈も力及ばざるか
지금까지 하늘의 가호를 입지 못하는 것은, 첫째는 제천선신이 이 악한 나라를 떠났기 때문인가, 둘째는 선신이 법미(法味)를 맛보지 못해 위광과 세력이 없기 때문인가, 셋째는 큰 악귀가 삼류의 마음속에 들어가 범천 · 제석도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인가.
첫째는 「입정안국론」에서 「선신이 나라를 버리고 떠난다」는 경문으로, 둘째는 「간효팔번초」에서 정법을 듣지 못해 법미에 굶주린 선신의 무력함으로, 셋째는 바로 이 「개목초」에서 삼류의 강적의 마음에 큰 악귀가 들어간 정황으로 각각 자세히 논해진다. 특히 셋째의 「삼류」는 이 편 다음의 제49장 이하에서 권지품의 경문으로 정면에서 다루어진다. 그러므로 제42장의 물음은 제8편에 가서야 비로소 온전한 답을 얻는다.
「법화경의 행자」는 말법의 부처 — 총의와 별의
강의는 이 장의 「일련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가」라는 말씀에 담긴 「법화경의 행자」를 한 걸음 더 깊이 읽는다. 강의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법화경의 행자는 「말법의 부처」를 뜻한다. 모든 불보살이 법화경을 종자로 삼아 득도했고, 그 불보살들이 법화경의 행자를 지켜야 한다면, 그 행자는 단지 수행자 한 사람이 아니라 법화경 그 자체를 몸으로 드러낸 분, 곧 말법의 주사친이 된다.
강의는 이것을 인본존의 문제와 연결한다. 「개목초」는 인본존 개현의 서이며, 「관심의 본존초」가 법본존 개현의 서라는 니치칸 상인의 구분이 그 배경이다. 앞 편(제40장)에서 강의가 「인도의 석존을 인본존으로 보느냐, 니치렌 대성인을 인본존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정(邪正)이 갈린다」고 한 것과 같이, 이 장에서도 「법화경의 행자를 부처로 보느냐 보살로 보느냐」에 따라 각 종파의 정사가 갈린다는 것이 강의의 견해다. 법화경의 행자를 「단지 법화경을 수행한 사람」으로만 읽으면 대성인의 인본존으로서의 선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고, 「개목초」를 아무리 거듭 읽어도 대성인의 참뜻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강의는 이것을 불법의 「총(總)의 뜻」과 「별(別)의 뜻」으로 설명한다. 넓은 뜻(총의)으로는 법화경을 수지하는 모든 이가 법화경의 행자다. 그러나 좁은 뜻(별의)으로는 법화경을 경문 그대로 몸으로 읽어 삼류의 강적을 불러일으키고, 그로써 경문이 예언한 말법의 주인공임을 증명한 한 분만이 법화경의 행자다. 이 구별을 모르면 대성인의 말씀을 겸양의 표현으로만 읽게 된다. 강의는 상권의 「백운과 백산 … 은 눈병 든 자 · 사팔눈 · 외눈 · 사안의 자는 잘못 보리라」는 말씀(194쪽)을 이러한 독법에 대한 경고로 받는다.
白雲と白山と白冰と銀鏡と黒色と青色とをば翳眼の者・眇目の者・一眼の者・邪眼の者は・みたがへつべし
흰 구름과 흰 산과 흰 얼음과 은거울, 검은빛과 푸른빛을 눈병 든 자 · 사팔눈인 자 · 외눈인 자 · 삿된 눈을 가진 자는 잘못 보리라.
강의는 제42장을 「모든 불보살이 법화경을 종자로 득도했으므로 법화경의 행자를 지켜야 한다는 도리」와 「그런데 수호가 없다는 현실」 사이의 긴장으로 읽는다. 대성인은 이 긴장을 거듭 경문에 비추어 풀고자 하시며, 그 끝에서 「일련이야말로 법화경의 행자이며 말법의 부처」임을 단정하려 하신다는 것이 강의의 관점이다.
본문
疑て云く当世の念仏宗・禅宗等をば何なる智眼をもつて法華経の敵人・一切衆生の悪知識とはしるべきや、答えて云く私の言を出すべからず経釈の明鏡を出して謗法の醜面をうかべ其の失をみせしめん生盲は力をよばず、 法華経の第四宝塔品に云く「爾の時に多宝仏・宝塔の中に於て半座を分ち釈迦牟尼仏に与う、爾の時に大衆二如来の七宝の塔の中の師子の座の上に在して結跏趺坐し給うを見たてまつる、 大音声を以て普く四衆に告げ給わく、誰か能く此の娑婆国土に於て広く妙法華経を説かん、今正しく是れ時なり、如来久しからずして当に涅槃に入るべし、 仏此の妙法華経を以て付属して在ること有らしめんと欲す」等云云、第一の勅宣なり。 又云く「爾の時に世尊重ねて此の義を宣べんと欲して偈を説いて言く、聖主世尊・久しく滅度し給うと雖も宝塔の中に在して尚法の為に来り給えり、 諸人云何ぞ勤めて法に為わざらん、又我が分身の無量の諸仏・恒沙等の如く来れる法を聴かんと欲す各妙なる土及び弟子衆・天人・竜神・諸の供養の事を捨てて法をして久しく住せしめんが故に此に来至し給えり、 譬えば大風の小樹の枝を吹くが如し、是の方便を以て法をして久しく住せしむ、諸の大衆に告ぐ我が滅度の後誰か能く此の経を護持し読誦せん今仏前に於て自ら誓言を説け」、 第二の鳳詔なり。 「多宝如来および我が身集むる所の化仏当に此の意を知るべし、諸の善男子・各諦かに思惟せよ此れは為れ難き事なり、宜しく大願を発こすべし、 諸余の経典数・恒沙の如し此等を説くと雖も未だ為れ難しとするに足らず、若し須弥を接つて他方無数の仏土に擲げ置かんも亦未だ為れ難しとせず、 若し仏滅後・悪世の中に於て能く此の経を説かん是則ち為れ難し、仮使劫焼に乾れたる草を担い負うて中に入つて焼けざらんも亦未だ為れ難しとせず、 我が滅度の後に若し此の経を持ちて一人の為にも説かん是則ち為れ難し、諸の善男子・我が滅後に於て誰か能く此の経を護持し読誦せん、 今仏前に於て自ら誓言を説け」等云云、第三の諫勅なり、第四・第五の二箇の諫暁・提婆品にあり下にかくべし。
의심하여 이르되, 당세의 염불종 · 선종 등을 어떠한 지혜의 눈으로 법화경의 적인(敵人)이요 일체 중생의 악지식이라 알 수 있는가. 답하여 이르되, 사사로운 말을 내어서는 안 되느니라. 경석(經釋)의 명경을 내어 방법(謗法)의 추한 얼굴을 비추고 그 허물을 보이리라. 날 때부터 눈먼 자는 힘이 미치지 못하느니라. 법화경 제4권 보탑품에 이르되, 「그때 다보불이 보탑 안에서 자리의 반을 나누어 석가모니불께 드리셨다. 그때 대중은 두 여래께서 칠보탑 안 사자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계심을 뵈었다. (석가모니불께서) 큰 음성으로 널리 사중에게 고하시되, 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서 널리 묘법화경을 설하겠는가.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여래는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들리라. 부처는 이 묘법화경을 부촉하여 (이 경이) 있게 하고자 하노라」 하셨으니, 이것이 제1의 칙선(勅宣)이니라. 또 이르되,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시되, 성주 세존께서는 오래전에 멸도하셨으나 보탑 안에 계시면서 오히려 법을 위하여 오셨느니라. 사람들이여, 어찌 힘써 법을 위하지 않겠는가. 또 나의 분신인 무량한 제불이 항하의 모래처럼 와 계심은 법을 듣고자 함이니라. 저마다 묘한 국토와 제자 대중 · 천인 · 용신과 여러 공양의 일을 버리고, 법을 오래 머물게 하려는 까닭에 여기에 오셨느니라. 비유하면 큰 바람이 작은 나무의 가지를 부는 것과 같으니, 이 방편으로써 법을 오래 머물게 하느니라. 여러 대중에게 고하노니, 나의 멸도 후에 누가 능히 이 경을 호지하고 독송하겠는가. 지금 부처 앞에서 스스로 서원의 말을 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제2의 봉조(鳳詔)이니라. 「다보여래와 내 몸이 모은 화불은 마땅히 이 뜻을 알리라. 여러 선남자여, 저마다 자세히 사유하라. 이는 어려운 일이니 마땅히 대원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다른 여러 경전은 그 수가 항하의 모래와 같으니, 이것들을 설한다 하여도 아직 어렵다 하기에 족하지 않느니라. 만약 수미산을 집어 타방의 무수한 불국토에 던져 놓는다 하여도 아직 어렵다 하지 않느니라. 만약 부처의 멸후 악세 가운데서 능히 이 경을 설한다면 이것이 곧 어려운 일이니라. 가령 겁화가 일 때 마른 풀을 짊어지고 그 속에 들어가 타지 않는다 하여도 아직 어렵다 하지 않느니라. 나의 멸도 후에 만약 이 경을 지녀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설한다면 이것이 곧 어려운 일이니라. 여러 선남자여, 나의 멸후에 누가 능히 이 경을 호지하고 독송하겠는가. 지금 부처 앞에서 스스로 서원의 말을 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제3의 간칙(諫勅)이니라. 제4 · 제5의 두 간효(諫曉)는 제바품에 있으니 아래에 쓰리라.
어구 풀이
- 悪知識악지식
-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스승이나 벗. 바른 길로 이끄는 선지식(善知識)의 반대다. 대성인은 당세의 염불 · 선의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법화경을 버리게 하므로 「일체 중생의 악지식」이라 하셨다. 질문자는 그 판정의 근거를 묻고 있다.
- 経釈の明鏡경석의 명경
- 부처의 경문과 그것을 바르게 해석한 천태 · 묘락 · 전교 등의 석. 사람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경석은 방법자의 「추한 얼굴」을 사사로움 없이 비춘다. 대성인은 판정의 근거를 자신의 견해가 아닌 경석에 두겠다고 선언하신다.
- 生盲생맹
- 「쇼모」라고도 읽는다. 본래는 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말하나, 여기서는 사물의 이치와 본질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눈은 보이지만 사지(邪智)와 방법(謗法) 때문에 똑바로 보지 못하는 자다. 현대어역은 이들이 명경을 보이더라도 오히려 업신여기고 원망할 뿐이라고 풀이한다.
- 半座を分ち반좌를 나누다
- 다보여래가 탑 안의 자리 절반을 비워 석가모니불을 앉게 한 일. 이로써 석가 · 다보 두 부처가 한 탑 안에 나란히 앉는 「이불병좌(二佛並坐)」가 이루어진다. 과거불 다보가 현재불 석가의 설법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두 부처가 함께 멸후의 부촉을 주재하는 모습이다.
- 結跏趺坐결가부좌
- 가(跏, 발바닥)와 부(趺, 발등)를 맺는 좌법. 발등으로 좌우 각각 반대쪽 넓적다리를 누른다. 오른발을 먼저 왼 넓적다리 위에 놓고 왼발을 오른 넓적다리 위에 놓아 왼발이 위가 되는 것을 항마좌(降魔坐)라 하여 수행자가 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으로, 그 반대를 길상좌(吉祥坐)라 하여 깨달은 이의 모습으로 본다. 선종은 항마좌, 밀교는 길상좌를 쓴다. 한쪽 발만 올리는 것은 반가부좌다.
- 師子の座사자좌
- 부처가 앉는 자리. 부처를 사람 가운데 사자에 비겨, 그 자리를 사자좌라 한다.
- 四衆사중
-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의 네 무리. 출가와 재가의 남녀 신도 전체를 가리킨다.
- 付属して在ること有らしめん부촉하여 있게 하리라
- 경을 맡겨 멸후에도 세상에 남아 있게 하겠다는 뜻으로, 이를 「부촉유재(付囑有在)」라 한다. 누군가에게 경을 부촉하겠다는 예고이며, 이 예고가 종지용출품에서 지용보살의 출현으로, 여래신력품에서 상행보살 등에 대한 결요부촉으로 실현된다.
- 聖主世尊성주세존
- 여기서는 다보여래를 가리킨다. 다보여래는 동방 보정세계의 부처로 이미 오래전에 멸도했으나, 법화경이 설해지는 곳마다 탑과 함께 나타나 그 진실을 증명하겠다는 서원에 따라 출현했다.
- 分身の無量の諸仏분신의 무량한 제불
- 시방세계에서 석존의 분신으로서 설법하던 무수한 부처들. 다보탑을 열려면 석존의 분신불을 모두 한 곳에 모아야 한다는 다보여래의 서원에 따라, 석존은 사바세계를 세 번 정화하여(삼변토전) 이들을 맞아들였다.
- 大風の小樹の枝を吹くが如し큰 바람이 작은 나무의 가지를 부는 것과 같다
- 큰 바람이 불면 작은 가지는 저절로 그 방향으로 쏠린다. 석가 · 다보 · 분신의 삼불이 한 자리에 모여 멸후의 홍통을 권하니, 그 위력 앞에서 대중의 마음도 저절로 「법을 오래 머물게 하는」 쪽으로 쏠린다는 비유다.
- 六難九易육난구이
- 멸후에 법화경을 유통하는 일의 어려움을 아홉 가지 쉬운 일과 대비하여 보인 견보탑품의 설법. 육난은 ①광설차경난 ②서지차경난 ③잠독차경난 ④소설차경난 ⑤청수차경난 ⑥수지차경난, 구이는 ①여경설법이 ②수미척치이 ③세계족척이 ④유정설법이 ⑤파공유행이 ⑥족지승천이 ⑦대화불소이 ⑧광설득통이 ⑨대중나한이다.
- 劫焼겁소
- 성 · 주 · 괴 · 공의 사겁 가운데 괴겁에 일어나는 큰 화재. 대삼재(화재 · 수재 · 풍재)의 하나로, 세계를 다 태워 버리는 불이다.
- 勅宣・鳳詔・諫勅칙선 · 봉조 · 간칙
- 세 가지 모두 임금의 명령을 뜻하는 말이다. 칙선은 칙명을 널리 펴 알리는 것, 봉조는 천자의 조서를 높여 이르는 말(봉황이 조서를 물고 내려왔다는 고사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간칙은 간곡히 타일러 내리는 칙명이다. 대성인은 같은 부처의 명령을 세 번 다른 말로 부르시며 그 무게를 거듭 드러내셨다. 제49장에서는 제바품의 두 간효까지 합쳐 「오개의 봉조」라 부르신다.
「사사로운 말을 내지 않는다」 — 판정의 근거를 경석에 두다
제43장은 새로운 물음으로 시작한다. 「당세의 염불종 · 선종 등을 어떠한 지혜의 눈으로 법화경의 적인이요 일체 중생의 악지식이라 알 수 있는가.」 제42장 끝에서 대성인은 「거듭 경문을 살펴 내 몸에 대어 보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일은 대성인 자신이 법화경의 행자인가 하는 물음과 동시에, 대성인이 「법화경의 적」이라 부르신 당세의 염불 · 선이 과연 그러한가 하는 물음을 함께 풀어야 이루어진다. 행자가 누구인지 가리는 일은 행자를 박해하는 자가 누구인지 가리는 일과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염불과 선이 특히 이름이 오른 것은 가마쿠라 시대에 이 두 종파가 위로는 막부의 실력자들로부터 아래로는 민중에 이르기까지 가장 넓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물음에 대성인은 먼저 판정의 방법을 밝히신다. 「사사로운 말을 내어서는 안 된다. 경석의 명경을 내어 방법의 추한 얼굴을 비추고 그 허물을 보이리라.」 이것은 대성인의 일관된 방법론이다. 「입정안국론」에서 염불을 비판할 때에도, 「수호국가론」에서 법화경의 우위를 논할 때에도, 대성인은 언제나 자기 견해보다 경문을 앞세우셨다. 이 원칙은 제45장에서 열반경의 「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와 용수 · 천태 · 전교 · 지증의 문증 원칙으로 다시 정식화된다.
다만 거울을 들이밀어도 보지 못하는 자가 있다. 「날 때부터 눈먼 자는 힘이 미치지 못한다.」 어석에 따르면 이 「생맹」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사지와 방법 때문에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현대어역은 이들이 명경을 보여 주어도 도리어 업신여기고 원한을 품을 뿐이라고 풀이한다. 다음 제44장의 「생맹의 자와 사안의 자와 외눈의 자와 각위자사의 자 · 변집가의 자는 보기 어렵다」는 말씀이 그 목록을 더 자세히 한다.
보탑 출현의 두 뜻 — 증전과 기후
대성인이 「경석의 명경」으로 처음 꺼내 드신 것은 견보탑품 제11의 경문이다. 견보탑품은 법화경의 흐름에서 큰 전환점이다. 그 앞의 방편품부터 법사품까지(적문 정종분과 유통분)는 석존이 이승작불을 설하여 「개삼현일」을 이룬 부분이고, 견보탑품부터는 설법의 무대가 허공으로 옮겨 가며 멸후의 홍통이 정면의 주제가 된다.
강의는 보탑의 출현에 「증전기후(證前起後)」의 두 뜻이 있다고 정리한다. 「증전」은 앞을 증명한다는 뜻으로, 다보여래가 탑 안에서 「석가모니세존이여, 설하신 바는 모두 진실이니라」라고 큰 소리로 찬탄하여 그때까지 설해진 적문의 법이 진실임을 보증한 것이다. 「기후」는 뒤를 일으킨다는 뜻으로, 탑을 열기 위해 시방의 분신불을 모으고 대중을 허공으로 끌어올려 멸후의 홍통을 권하고, 마침내 종지용출품에서 지용의 보살을 불러내어 본문의 개근현원과 신력품의 부촉으로 이어 가는 것이다.
강의는 이 두 뜻 가운데 정의(正意)가 「기후」에 있다고 본다. 다보여래와 시방 분신의 제불이 모인 것은 단지 지나간 설법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화경의 멸후 홍통이 석가 · 다보 · 시방 제불의 참뜻」임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이 제43장에 인용된 세 칙선은 바로 그 삼불이 모인 자리에서, 그 삼불의 이름으로 내려진 명령이다.

세 번의 명령 — 부촉유재 · 영법구주 · 육난구이
- 제1 칙선부촉유재誰か能く此の娑婆国土に於て広く妙法華経を説かん、今正しく是れ時なり … 付属して在ること有らしめん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서 널리 묘법화경을 설하겠는가,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 부촉하여 있게 하리라
- 제2 봉조영법구주法をして久しく住せしめんが故に此に来至し給えり … 今仏前に於て自ら誓言を説け법을 오래 머물게 하려는 까닭에 여기에 오셨느니라 … 지금 부처 앞에서 스스로 서원의 말을 하라
- 제3 간칙육난구이此れは為れ難き事なり、宜しく大願を発こすべし이는 어려운 일이니 마땅히 대원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 제4 간효악인성불提婆達多は一闡提なり天王如来と記せらる제바달다는 일천제이나 천왕여래라 수기되었느니라
- 제5 간효여인성불竜女が成仏此れ一人にはあらず一切の女人の成仏をあらはす용녀의 성불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일체 여인의 성불을 나타내느니라
첫째 칙선은 이불병좌의 장면에서 내려진다. 다보여래가 자리 반을 나누어 석가모니불을 맞아들이고, 대중은 두 부처가 칠보탑 안에 나란히 앉은 모습을 우러러본다. 그때 석존이 큰 음성으로 사중에게 묻는다. 「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서 널리 묘법화경을 설하겠는가.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그리고 「여래는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들리라」 하고 멸도의 때가 가까움을 알린 뒤, 「이 묘법화경을 부촉하여 있게 하고자 한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부촉유재」다. 부처의 멸후에도 이 경이 세상에 있도록 누군가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며, 그 「누군가」를 찾는 물음이 이 칙선의 핵심이다.
둘째 봉조는 게송으로 거듭 설해진다. 오래전에 멸도한 다보여래가 여전히 법을 위해 오셨고, 시방의 분신 제불은 저마다 자기 국토와 제자와 공양을 버리고 이 사바세계에 왔다. 그 까닭은 오직 하나, 「법을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令法久住)」다. 석존은 이 장면 전체를 「방편」이라 부르며, 큰 바람이 작은 나무의 가지를 불듯이 삼불의 집결이 대중의 마음을 멸후의 홍통으로 기울게 한다고 설한다. 그리고 「나의 멸도 후에 누가 능히 이 경을 호지하고 독송하겠는가. 지금 부처 앞에서 스스로 서원의 말을 하라」고 맹세를 재촉한다. 현대어역은 이 대목을 「대중 여러분은 어찌 스스로 나아가 말법의 홍통을 맹세하고 불석신명의 서원을 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풀이하여, 명령의 무게가 멸후 · 말법의 홍통에 있음을 강조한다.
셋째 간칙에서 비로소 육난구이가 설해진다. 「다보여래와 내 몸이 모은 화불은 마땅히 이 뜻을 알리라」 — 삼불은 이미 멸후 홍통의 뜻을 알고 있다. 남은 것은 대중이 그 뜻을 깨닫고 대원을 일으키는 일이다. 「여러 선남자여, 저마다 자세히 사유하라. 이는 어려운 일이니 마땅히 대원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이어서 아홉 가지 쉬운 일과 여섯 가지 어려운 일이 대비된다.
이렇게 세 칙선은 차례로 깊어진다. 첫째는 「누가 설하겠는가」라는 물음과 부촉의 예고, 둘째는 삼불이 모인 까닭(영법구주)을 밝히고 맹세를 재촉하는 것, 셋째는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고 대원을 촉구하는 것이다. 대성인이 이것을 칙선 · 봉조 · 간칙으로 이름을 바꾸어 부르신 것도 같은 명령이 점점 무겁고 간절해지는 모습을 드러내시기 위해서로 볼 수 있다.
육난구이 — 쉬워 보이는 것이 가장 어렵다
- ①여경설법이법화경 밖의 항하사 같은 경을 설하는 일
- ②수미척치이수미산을 집어 타방 무수한 불국토에 던지는 일
- ③세계족척이발가락으로 대천세계를 움직여 멀리 다른 나라에 던지는 일
- ④유정설법이유정천에 서서 무량한 경을 설하는 일
- ⑤파공유행이허공을 손에 쥐고 노니는 일
- ⑥족지승천이대지를 발톱 위에 얹고 범천에 오르는 일
- ⑦대화불소이겁화 속에 마른 풀을 지고 들어가도 타지 않는 일
- ⑧광설득통이팔만사천 법장 · 십이부경을 설해 사람들에게 육신통을 얻게 하는 일
- ⑨대중나한이무량한 중생에게 아라한과와 육신통을 얻게 하는 일
- ①광설차경난악세에 이 경을 널리 설하는 일
- ②서지차경난이 경을 스스로 쓰거나 남에게 쓰게 하는 일
- ③잠독차경난악세에 잠시라도 이 경을 읽는 일
- ④소설차경난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이 경을 설하는 일
- ⑤청수차경난이 경을 듣고 받아 그 뜻을 묻는 일
- ⑥수지차경난이 경을 받들어 지니는 일
구이는 하나같이 사람의 힘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수미산을 던지고, 대천세계를 발가락으로 옮기고, 대지를 발톱에 얹어 범천까지 오르고, 겁화 속에 마른 풀을 지고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 그런데 경은 이것들을 「아직 어렵다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육난은 겉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다. 경을 설하고, 쓰고, 잠시 읽고,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듣고 뜻을 묻고,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경은 바로 이것들을 「어렵다」고 한다.
이 역설의 열쇠는 육난 하나하나에 붙은 조건, 곧 「부처의 멸후」 「악세 가운데서」에 있다. 법화경을 설하고 지니는 일이 어려운 것은 그 행위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때와 곳이 법화경을 미워하고 행자를 박해하는 악세이기 때문이다. 육난구이는 그러므로 바로 이어지는 권지품의 「악세 중의 비구」 「도장와석」 「삭삭견빈출」을 미리 가리키는 경문이기도 하다. 대성인이 이 편에서 오개의 봉조를 길게 인용하신 뒤 제8편에서 권지품의 삼류 강적으로 넘어가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육난구이를 더욱 생생하게 풀어 보이셨다.
須弥山と申す山は十六万八千由旬の金山にて候を他方世界へつぶてに・なぐる者ありとも難事には候はじ、仏の滅度の後・当世・末代悪世に法華経を有りのままに能く説かん是を難しとすと説かせ給へり
수미산이라는 산은 십육만 팔천 유순의 금산이온데, 그것을 타방세계로 돌팔매처럼 던지는 자가 있다 해도 어려운 일은 아니옵니다. 부처의 멸도 후, 당세 · 말대 악세에 법화경을 있는 그대로 능히 설하는 것을 어렵다 한다고 설하셨나이다.
같은 어서는 이어서 오천축 제일의 장사였던 제바달다도 큰 돌을 부처에게 던졌을 뿐이고, 한토 제일의 장사 항우도 물을 가득 채운 큰 솥을 들어 올렸을 뿐이라고 하시며, 「수미산을 던지는 자는 있어도 이 경을 설한 대로 읽는 사람은 있기 어렵다」고 맺으신다. 핵심은 「있는 그대로(有りのままに)」와 「설한 대로」에 있다. 경을 읽는 사람은 많아도 경이 설한 그대로 악세에 홍통하여 경이 예언한 난을 몸으로 받는 사람은 드물다.
강의는 육난을 이렇게 풀이한다. 첫째는 악세에 널리 설하는 일, 둘째는 서사, 셋째는 독송, 넷째는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설하는 일, 다섯째는 듣고 그 뜻을 묻는 일, 여섯째는 수지다. 그리고 강의는 「말법의 법화경은 수지즉관심이므로 수지야말로 어려운 일 가운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인다. 「관심의 본존초」가 밝힌 대로 말법의 수행은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받아 지니는 것 하나로 관심(觀心)을 이루는 「수지즉관심」이다. 그렇다면 육난의 마지막인 수지야말로 말법 수행의 전체가 되며,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 된다. 쉬워 보이는 하나의 일 속에 수행의 전부와 어려움의 전부가 함께 들어 있다는 것이 강의의 관점이다.
다섯 번의 명령과 그 뒤
장의 끝에서 대성인은 「제4 · 제5의 두 간효는 제바품에 있으니 아래에 쓰리라」 하고 예고하신다. 보탑품의 세 명령에 제바품의 두 간효를 더하여 모두 다섯이 되며, 제49장 첫머리에서 대성인은 이를 「이상 오개의 봉조」라 부르신다.
已上五箇の鳳詔にをどろきて勧持品の弘経あり
이상 다섯 봉조에 놀라서 권지품의 홍경이 있느니라.
그런데 대성인은 이 다섯 명령 사이에 제44~47장이라는 긴 논의를 끼워 넣으신다. 세 칙선을 인용한 뒤 곧바로 두 간효로 넘어가지 않고, 먼저 「이 경문이 일체경의 승렬을 정한 것」임을 선언하고(제44장), 제종의 조사들이 이 경문을 어떻게 오독했는지를 하나하나 파하신다(제44~47장). 그 까닭은 제43장 첫머리의 질문에 있다. 염불 · 선 등이 「법화경의 적」이라는 판정은 법화경이 일체경 가운데 최상이라는 사실이 확정되어야만 성립한다. 보탑품의 세 명령은 그 승렬을 삼불이 정한 경문이므로, 대성인은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제종의 승렬 판단을 낱낱이 시험하신다.
강의는 보탑품 삼개의 칙선을 「멸후의 홍법을 대중에게 명한 것」으로 읽으며, 이 봉조를 믿을 수 있다면 부처의 참뜻이 어디에 있었는지 곧바로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셋째의 육난구이는 멸후 홍통의 지극한 어려움을 보인 것이며, 말법에서는 수지즉관심의 수지가 「어려운 일 가운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강의의 강조점이다.
본문
此の経文の心は眼前なり青天に大日輪の懸がごとし白面に黶のあるににたり、而れども生盲の者と邪眼の者と一眼のものと各謂自師の者・辺執家の者はみがたし万難をすてて道心あらん者にしるしとどめてみせん、 西王母がそののもも・輪王出世の優曇華よりもあいがたく沛公が項羽と八年・漢土をあらそいし頼朝と宗盛が七年・秋津嶋にたたかひし修羅と帝釈と金翅鳥と竜王と阿耨池に諍えるも此にはすぐべからずとしるべし、 日本国に此の法顕るること二度なり伝教大師と日蓮となりとしれ、無眼のものは疑うべし力及ぶべからず此の経文は日本・漢土・月氏・竜宮・天上・十方世界の一切経の勝劣を釈迦・多宝・十方の仏・来集して定め給うなるべし。 問うて云く華厳経・方等経・般若経・深密経・楞伽経・大日経・涅槃経等は九易の内か六難の内か、答えて云く華厳宗の杜順・智儼・法蔵・澄観等の三蔵・大師・読んで云く「華厳経と法華経と六難の内・名は二経なれども所説・乃至理これ同じ四門観別・見真諦同のごとし」、 法相の玄奘三蔵・慈恩大師等・読んで云く「深密経と法華経とは同く唯識の法門にして第三時の教・六難の内なり」三論の吉蔵等読んで云く「般若経と法華経とは名異体同・二経一法なり」善無畏三蔵・金剛智三蔵・不空三蔵等・読んで云く「大日経と法華経とは理同じ、 をなじく六難の内の経なり」、日本の弘法・読んで云く「大日経は六難・九易の内にあらず大日経は釈迦所説の一切経の外・法身・大日如来の所説なり」、 又或る人云く「華厳経は報身如来の所説・六難・九易の内にはあらず」、此の四宗の元祖等かやうに読みければ其の流れをくむ数千の学徒等も又此の見をいでず、
이 경문의 마음은 눈앞에 있느니라. 푸른 하늘에 큰 해가 걸린 것과 같고, 흰 얼굴에 사마귀가 있는 것과 닮았느니라. 그러나 날 때부터 눈먼 자와 삿된 눈을 가진 자와 외눈인 자와, 저마다 제 스승이 옳다고 여기는 자(各謂自師)와 치우친 견해에 집착하는 자(邊執家)는 보기 어려우니라. 만난을 무릅쓰고 도심 있는 자를 위해 적어 두어 보이리라. 서왕모의 동산의 복숭아나 전륜왕이 세상에 나올 때 핀다는 우담화보다도 만나기 어려우며, 패공이 항우와 팔 년 동안 한토를 다투고, 요리토모와 무네모리가 칠 년 동안 아키쓰시마에서 싸우고, 수라와 제석과 금시조와 용왕이 아뇩지에서 다툰 것도 이보다 더하지 않다고 알지니라. 일본국에 이 법이 나타남은 두 번이니, 전교대사와 일련이라고 알지니라. 눈 없는 자는 의심하리라. 힘이 미치지 못하느니라. 이 경문은 일본 · 한토 · 월지 · 용궁 · 천상 · 시방세계의 일체경의 승렬을 석가 · 다보 · 시방의 부처가 모여 정하신 것이니라. 물어 이르되, 화엄경 · 방등경 · 반야경 · 심밀경 · 능가경 · 대일경 · 열반경 등은 구이 안에 드는가, 육난 안에 드는가. 답하여 이르되, 화엄종의 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 등의 삼장 · 대사는 읽어 이르기를 「화엄경과 법화경은 육난 안에 있으니 이름은 두 경이나 설하는 바 내지 이치는 같으니라. 사문(四門)의 관법은 다르나 진제를 보는 것은 같은 것과 같으니라」 하고, 법상의 현장삼장 · 자은대사 등은 읽어 이르기를 「심밀경과 법화경은 똑같이 유식의 법문이요, 제3시의 가르침으로 육난 안에 있느니라」 하며, 삼론의 길장 등은 읽어 이르기를 「반야경과 법화경은 이름은 다르나 체는 같으니 두 경이 한 법이니라」 하고, 선무외삼장 · 금강지삼장 · 불공삼장 등은 읽어 이르기를 「대일경과 법화경은 이치가 같으니 똑같이 육난 안의 경이니라」 하였느니라. 일본의 홍법은 읽어 이르기를 「대일경은 육난 · 구이 안에 있지 않으니, 대일경은 석가가 설한 일체경 밖의 것으로 법신 대일여래가 설한 것이니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르기를 「화엄경은 보신여래가 설한 것이니 육난 · 구이 안에 있지 않으니라」 하였느니라. 이 사종(四宗)의 원조들이 이와 같이 읽었으므로 그 흐름을 이은 수천의 학도들도 또한 이 견해를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어구 풀이
- 白面に黶のあるににたり흰 얼굴에 사마귀가 있는 것과 같다
- 흰 얼굴의 검은 사마귀처럼 누구의 눈에도 뚜렷하다는 비유. 앞의 「푸른 하늘의 큰 해」와 함께 경문의 뜻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음을 말한다.
- 各謂自師の者각위자사의 자
- 『구사론』의 주석서에 보이는 「여러 외도는 저마다 제 스승이 일체지자라고 여긴다(諸外道各謂自師是一切智)」는 문에서 나온 말이다. 경문보다 제 스승의 말을 앞세우는 사람을 가리킨다.
- 辺執家の者변집가의 자
- 한쪽에 치우친 견해에 집착하는 사람. 자기 종파의 교판에 매여 경문 전체를 보지 못하는 이를 가리킨다.
- 西王母がそののもも서왕모의 동산의 복숭아
- 서왕모는 중국 전설의 신녀로, 신선이 된 여인들은 모두 그를 따랐다고 한다. 곤륜산의 동산(낭풍원)에 살며, 그 동산의 복숭아나무는 삼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고 전한다. 만나기 어려운 것의 비유다.
- 輪王出世の優曇華윤왕 출세의 우담화
- 우담화는 범어 우둠바라(Udumbara)의 음사로, 영서(靈瑞) · 상서(祥瑞)라 번역한다. 삼천 년에 한 번 꽃을 피우며 부처나 전륜성왕이 출현할 때 핀다고 한다. 『법화문구』 권4상은 「우담화는 여기서는 영서라 한다. 삼천 년에 한 번 나타나며, 나타날 때 금륜왕이 나온다」고 풀이한다.
- 沛公が項羽と八年・漢土をあらそいし패공이 항우와 팔 년 한토를 다투다
- 패공은 전한을 연 고조 유방(劉邦)이다. 패현 출신이라 이렇게 불렸다. 진시황이 죽은 이듬해(기원전 209) 군사를 일으켰고, 진이 망한 뒤 서초패왕 항우와 천하를 놓고 팔 년 가까이 다투다가 해하 전투에서 이겨 기원전 202년 황제에 올랐다.
- 頼朝と宗盛が七年・秋津嶋にたたかひし요리토모와 무네모리가 칠 년 아키쓰시마에서 싸우다
- 요리토모는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1147~1199), 무네모리는 헤이케의 마지막 총수 다이라노 무네모리(1147~1185)다. 아키쓰시마는 일본의 다른 이름이다. 겐지와 헤이케가 칠 년에 걸쳐 싸운 일을 말한다.
- 修羅と帝釈と……諍える수라와 제석의 다툼
- 『관불삼매해경』에 따르면, 아수라의 딸 열의(悅意)를 제석이 아내로 맞았는데, 제석이 다른 여인들과 노니는 것을 시기한 열의가 아버지에게 알리자, 아수라가 크게 노해 군사를 일으켜 수미산을 흔들고 사대해의 물을 일으켜 제석을 쳤다. 제석이 선법당에서 향을 피우고 반야바라밀을 지니어 불도를 지키겠다고 서원하자 허공에서 큰 칼바퀴가 내려와 아수라의 귀 · 코 · 손 · 발을 잘랐고, 아수라는 몸을 작게 하여 연뿌리의 실구멍 속에 숨었다고 한다.
- 金翅鳥と竜王と阿耨池に諍える금시조와 용왕이 아뇩지에서 다투다
- 금시조는 천룡팔부의 하나인 가루라(梵 garuḍa)로, 날개와 머리가 금빛이며 용을 먹는다고 한다. 아뇩지는 아뇩달지 · 무열뇌지라고도 하며, 『구사론』 권11은 대설산 북쪽 향취산 남쪽에 있어 네 보배로 기슭을 이루고 맑은 물을 사방으로 흘려 염부제를 적신다고 한다. 『장아함경』 권18에 따르면 용들은 뜨거운 바람과 모래에 몸이 타는 고통, 바람에 옷을 빼앗기는 근심, 금시조에게 잡아먹히는 고통의 세 가지 근심이 있으나 아뇩달 용왕만은 이 못에 살아 근심이 없다고 하며, 『법화문구』 권2하는 금시조가 이 못에 가려는 마음을 일으키기만 해도 곧 목숨이 다한다고 풀이한다.
- 杜順・智儼・法蔵・澄観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
- 중국 화엄종의 초조부터 제4조까지로 꼽히는 이들이다. 특히 제3조 법장(현수대사)은 오교판을 세워 화엄경을 「별교일승」으로 법화경 위에 두었고, 제4조 징관(청량대사)은 「화엄경소」 등을 지어 화엄 교학을 완성했다.
- 四門観別・見真諦同사문관별 · 견진제동
- 사문은 유문(有門) · 공문(空門) · 역유역공문 · 비유비공문의 네 관문이다. 들어가는 관법은 넷으로 다르지만 진제를 보는 깨달음은 같다는 뜻으로, 화엄 · 법화 두 경도 이와 같이 이름은 다르나 이치는 같다고 주장한 것이다.
- 玄奘・慈恩현장 · 자은
- 현장(602~664)은 인도에서 유식학을 배우고 많은 경론을 가져와 번역한 당의 삼장이며, 자은대사 규기(632~682)는 그의 제자로 법상종을 세웠다.
- 第三時の教제3시의 가르침
- 법상종은 해심밀경에 의거해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세 시기로 나눈다(삼시교판). 제1시는 아함 등 「유(有)」를 설한 가르침, 제2시는 반야 등 「공(空)」을 설한 가르침, 제3시는 해심밀경 등 유식의 「중도」를 설한 가르침이다. 법상종은 법화경도 제3시에 넣어 심밀경과 같은 자리에 두었다.
- 吉蔵길장
- 가상대사(549~623). 수 · 당 초의 삼론종을 대성한 학승으로, 회계 가상사에 머물러 가상대사라 불렸다. 반야경과 법화경이 이름만 다르고 체는 같다는 「명이체동(名異體同)」을 주장했다.
- 善無畏・金剛智・不空선무외 · 금강지 · 불공
- 당대에 인도에서 와서 밀교를 전한 세 삼장. 선무외는 대일경을, 금강지와 그 제자 불공은 금강정경 계통을 번역 · 전했다. 이들은 대일경과 법화경이 이치는 같고 인 · 진언의 사상(事相)만 대일경이 뛰어나다는 「이동사승(理同事勝)」을 세웠다(제41장).
- 法身・大日如来の所説법신 대일여래의 소설
- 홍법(구카이)은 석존이 설한 가르침(현교)은 응화신의 방편이고, 대일경 등 밀교는 법신 대일여래가 스스로의 깨달음을 설한 것이라 하여 석존 일대의 경 밖에 두었다.
- 報身如来の所説보신여래의 소설
- 화엄경을 노사나불, 곧 보신불이 설한 것으로 보아 응신인 석존이 설한 육난 · 구이의 범위 밖에 두려는 주장이다.
「경문의 마음은 눈앞에 있다」 — 보지 못하는 다섯 부류
제43장에서 보탑품의 세 칙선을 인용하신 대성인은 이 장의 첫머리에서 그 경문의 뜻이 얼마나 명백한지를 두 비유로 강조하신다. 「푸른 하늘에 큰 해가 걸린 것과 같고, 흰 얼굴에 사마귀가 있는 것과 같다.」 삼불이 모여 멸후의 홍통을 명하고, 법화경 밖의 항하사 같은 경을 설하는 것은 쉬운 일이며 이 경을 악세에 설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했으니, 법화경이 일체경 가운데 가장 깊고 가장 뛰어나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분명하다.
강의는 이 대목을 이렇게 정리한다. 보탑품에서 석가 · 다보 · 분신의 삼불이 멸후의 홍교를 권하고 말법 홍통의 어려움을 육난구이로 보인 것은, 일대 제경의 천심 · 승렬을 판정함에 법화경이 가장 깊고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 국중의 제종 학자들은 모두 이 일에 미혹하여 부처에 대한 반역자가 되어 있다.
그 미혹의 원인을 대성인은 다섯 부류의 「눈」으로 나누신다. 생맹(날 때부터 눈먼 자), 사안(삿된 눈), 일안(외눈), 각위자사(제 스승만 옳다는 자), 변집가(치우친 견해에 집착하는 자)다. 앞의 셋은 상권 194쪽의 「눈병 든 자 · 사팔눈 · 외눈 · 사안」과 같은 계열의 비유로, 보는 능력 자체가 손상된 상태를 말한다. 뒤의 둘은 보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보려는 대상을 미리 정해 놓은 상태다. 「각위자사」는 본래 『구사론』 주석서가 외도를 평한 말이니, 대성인은 불교 안의 학자들이 자기 종파의 조사를 절대화하는 모습을 외도의 그것에 비기신 것이다. 이 다섯 부류에게는 명경을 들이밀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대성인은 「만난을 무릅쓰고 도심 있는 자를 위해 적어 두어 보이리라」 하신다. 이 글이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설득하려는 글이 아니라, 도를 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을 위한 글임을 밝히신 것이다. 제47장의 「우리 일문의 사람을 위해 적는다」는 말씀이 이와 짝을 이룬다.
만나기 어려운 법, 그보다 큰 다툼
이어지는 비유는 두 갈래다. 하나는 만나기 어려움의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싸움의 크기의 비유다.
만나기 어려움의 비유로는 서왕모의 복숭아와 우담화가 들어진다. 서왕모의 동산 복숭아는 삼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고, 우담화는 삼천 년에 한 번 꽃을 피워 전륜성왕이나 부처가 세상에 나올 때를 알린다. 대성인은 지금 적어 보이려는 것이 이보다도 만나기 어렵다고 하신다. 법화경의 참뜻이 바르게 드러나는 일, 그리고 그것을 바르게 들을 수 있는 일은 삼천 년에 한 번의 기적보다 드물다는 것이다.
싸움의 비유로는 중국의 초한전, 일본의 겐페이 전쟁, 그리고 불전 설화의 두 싸움이 들어진다. 유방과 항우는 진이 무너진 뒤 천하를 놓고 팔 년 가까이 싸웠고, 미나모토와 다이라는 칠 년에 걸쳐 일본 전역에서 싸웠다. 『관불삼매해경』이 전하는 아수라와 제석의 싸움은 수미산과 사대해를 뒤흔들었고, 금시조와 용왕은 아뇩달지를 두고 다투었다. 현대어역은 이 비유를 「일련과 제종의 다툼은 이보다 더 격렬하고 중대한 투쟁임을 알라」는 뜻으로 풀이한다. 강의도 대성인이 「이 파절은 만나기 어려운 것을 만나는 것이니 뜻 있는 자는 이를 들으라」 하시고, 「그 파절의 어려움은 보통이 아니다」라고 덧붙이셨다고 읽는다.
이 두 갈래의 비유는 서로 얽혀 있다. 법화경의 참뜻은 그 자체로 만나기 어렵지만,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려면 그것을 가로막는 제종의 오래된 해석과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 국가의 흥망을 건 전쟁보다도 크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라, 일체 중생의 성불 · 불성불이 걸린 법의 다툼이라는 뜻이다. 제45장에서 대성인이 「이 사람들의 뜻을 함부로 그르다고 하면 … 끝내는 국왕에게 참소하여 목숨에 미치리라」고 하신 것도 이 싸움의 무게를 몸으로 아시기 때문이다.
「일본국에 이 법이 나타남은 두 번」
이 장의 중심은 다음 한 구절이다.
日本国に此の法顕るること二度なり伝教大師と日蓮となりとしれ、無眼のものは疑うべし力及ぶべからず此の経文は日本・漢土・月氏・竜宮・天上・十方世界の一切経の勝劣を釈迦・多宝・十方の仏・来集して定め給うなるべし
일본국에 이 법이 나타남은 두 번이니, 전교대사와 일련이라고 알지니라. 눈 없는 자는 의심하리라. 힘이 미치지 못하느니라. 이 경문은 일본 · 한토 · 월지 · 용궁 · 천상 · 시방세계의 일체경의 승렬을 석가 · 다보 · 시방의 부처가 모여 정하신 것이니라.
「이 법」이란 보탑품의 경문이 정한 「법화경이 일체경 가운데 최상」이라는 법, 다시 말해 법화경의 참된 뜻이다. 일본에 불교가 전해진 지 칠백 년이 넘었고 수많은 고승이 나왔지만, 이 법이 바르게 드러난 것은 단 두 번뿐이라고 대성인은 단언하신다.
첫 번째는 전교대사다. 전교대사는 당에 건너가 천태의 교학을 배우고 돌아와, 남도 여러 종파의 고승들과 법론하여 법화경의 일승이 그들의 가르침보다 뛰어남을 밝혔다. 그리고 그의 사후 이레 만에 히에이산에 대승계단을 세우는 칙허가 내려졌다.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이를 「상법의 때에 법화경을 바르게 세운 일」로 높이 평가하신다. 두 번째가 일련, 곧 대성인 자신이다. 전교대사 이후 히에이산 자체가 자각 · 지증에 의해 진언에 기울었고(제46장), 그 결과 일본에서 법화경의 참뜻은 다시 가려졌다. 그것을 말법에 다시 드러내는 이가 대성인이라는 선언이다.
강의는 이 구절에서 대성인의 「위대한 확신」을 본다. 이 구절의 뜻은 곧 「말법에서 일련이 홍통하는 법화경은 일본 · 조선 · 중국 · 인도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가장 공덕 있는 것」이라는 단언이라고 강의는 풀이한다. 그리고 그 확신의 근거는 대성인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일본 · 한토 · 월지 · 용궁 · 천상 · 시방세계의 일체경의 승렬을 삼불이 모여 정했다」는 데에 있다. 용궁은 용수가 대승경을 얻어 왔다고 전하는 곳(제47장), 천상은 천계에서 설해진 경까지 포함한다는 뜻이다. 어디에서 어떤 경이 설해졌든, 그 모든 경의 승렬은 보탑품의 이 경문으로 이미 결정되었다. 이것이 대성인이 「사사로운 말」 대신 「경석의 명경」을 내겠다고 하신 실질이다.
제종의 조사들은 어떻게 읽었는가
그러면 법화경 이외의 경은 구이 안에 드는가, 육난 안에 드는가. 이 물음은 제종에게 피할 수 없는 시험이다. 보탑품의 문에 따르면 「법화경 밖의 항하사 같은 경을 설하는 것」은 구이의 첫째, 곧 쉬운 일이다. 그렇다면 화엄경 · 심밀경 · 반야경 · 대일경을 소의로 삼는 종파는 자기 경을 「쉬운 일」의 자리에 두어야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조사들이 내놓은 답을 대성인은 다섯 가지로 정리하신다.
첫째, 화엄종의 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은 화엄경과 법화경이 똑같이 육난 안에 있으며, 이름은 둘이나 설하는 바와 이치는 같다고 했다. 그들은 이를 「사문관별 · 견진제동」으로 설명한다. 유문 · 공문 · 역유역공문 · 비유비공문의 네 관문은 들어가는 길은 다르나 진제를 보는 깨달음은 하나이니, 두 경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엄종의 교판, 특히 법장의 오교판은 실제로는 화엄경을 별교일승으로서 법화경 위에 두는 체계다. 「같다」고 말하는 것은 법화경을 끌어내려 화엄경과 나란히 두는 첫걸음이었다.
둘째, 법상종의 현장 · 자은은 해심밀경과 법화경이 똑같이 유식의 법문이며 제3시의 가르침이라 했다. 법상종의 삼시교판에서 제3시는 가장 높은 자리이므로 겉으로는 법화경을 높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상종은 「오성각별」을 세워 무성(無性)의 중생은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므로, 법화경의 「일체 중생 개성불도」는 부정당한다. 법화경을 심밀경과 같은 자리에 둔다는 것은 법화경을 유식의 틀 안에서 읽겠다는 뜻이다.
셋째, 삼론종의 길장은 반야경과 법화경이 이름은 다르나 체는 같다(명이체동)고 했다. 반야의 공(空)이 곧 법화의 실상이라는 이해다. 이 역시 법화경의 이승작불 · 구원실성이라는 고유의 내용을 공의 이치 하나로 녹여 버리는 독법이다.
넷째, 진언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은 대일경과 법화경이 이치는 같고 똑같이 육난 안의 경이라 했다. 제41장에서 보았듯 이 「이동(理同)」은 「사승(事勝)」, 곧 인과 진언의 사상(事相)에서는 대일경이 낫다는 주장과 짝을 이룬다. 대성인은 바로 앞 장에서 선무외가 천태의 일념삼천을 훔쳐 대일경의 핵심으로 삼았다고 파하셨다.
다섯째, 일본의 홍법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대일경은 육난 안에도 구이 안에도 없으며, 석가가 설한 일체경 밖에 있는 법신 대일여래의 설법이라는 것이다. 홍법은 이 논리로 『십주심론』에서 법화경을 제8, 화엄경을 제9, 진언을 제10의 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화엄경을 보신 노사나불의 설법이라 하여 역시 육난 · 구이 밖에 두었다.
이 다섯 가지 독법은 두 갈래로 나뉜다. 화엄 · 법상 · 삼론 · 진언 삼장의 독법은 자기 경을 법화경과 「같은 자리(육난 안)」에 올려놓는 방식이고, 홍법과 「어떤 사람」의 독법은 자기 경을 아예 「다른 차원(육난 · 구이 밖)」에 두는 방식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은 하나다. 보탑품의 경문이 정한 승렬의 판정에서 자기 경을 빼내는 것이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이 둘째 방식에 대해, 대일여래는 석존의 분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파하셨다.
一つには大日経は法華経に劣るのみに非ず涅槃経・華厳経・般若経等にも及ばざる経にて候を法華経に勝れたりとする謗法の失なり、二つには大日如来は釈尊の分身なり而るを大日如来は教主釈尊に勝れたりと思ひし僻見なり
첫째는 대일경은 법화경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열반경 · 화엄경 · 반야경 등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이온데 이를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한 방법의 허물이요, 둘째는 대일여래는 석존의 분신이온데 대일여래가 교주 석존보다 뛰어나다고 여긴 그릇된 견해이니라.
이 장은 「이 사종의 원조들이 이와 같이 읽었으므로 그 흐름을 이은 수천의 학도들도 이 견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끝난다. 조사의 오독은 조사 한 사람의 잘못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종파의 교판이 되면 수백 년에 걸쳐 수천의 학도가 그 틀 안에서만 경을 읽게 된다. 제45장에서 대성인이 「선사의 그릇된 뜻을 바로잡지 않는 까닭에」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 구조를 가리킨다.
강의는 보탑품의 삼불 증명과 육난구이가 「일대 제경 가운데 법화경이 가장 깊고 가장 뛰어남을 명명백백히 보인 것」인데도 일본의 제종 학자들이 모두 이에 미혹해 부처에 대한 반역자가 되었다고 본다. 대성인은 그 미혹을 깨우고 반역을 멈추게 하려고 큰 용맹심으로 파절에 나서셨으며, 「일본국에 이 법이 나타남은 두 번이니 전교대사와 일련이다」라는 말씀은 말법에 일련이 홍통하는 법화경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공덕 있는 것이라는 단언이라는 것이 강의의 관점이다.
본문
日蓮なげいて云く上の諸人の義を左右なく非なりといはば当世の諸人面を向くべからず非に非をかさね結句は国王に讒奏して命に及ぶべし、 但し我等が慈父・雙林最後の御遺言に云く「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等云云、不依人等とは初依・二依・三依・第四依・普賢・文殊等の等覚の菩薩が法門を説き給うとも経を手ににぎらざらんをば用ゆべからず、 「了義経に依つて不了義経に依らざれ」と定めて経の中にも了義・不了義経を糾明して信受すべきこそ候いぬれ、竜樹菩薩の十住毘婆沙論に云く「修多羅黒論に依らずして修多羅白論に依れ」等云云、 天台大師云く「修多羅と合う者は録して之を用いよ文無く義無きは信受すべからず」等云云、伝教大師云く「仏説に依憑して口伝を信ずること莫れ」等云云、 円珍智証大師云く「文に依つて伝うべし」等云云、上にあぐるところの諸師の釈・皆一分・経論に依つて勝劣を弁うやうなれども皆自宗を堅く信受し先師の謬義をたださざるゆへに曲会私情の勝劣なり荘厳己義の法門なり・仏滅後の犢子・方広・後漢已後の外典は仏法外の外道の見よりも三皇五帝の儒書よりも邪見・強盛なり邪法・巧なり、 華厳・法相・真言等の人師・天台宗の正義を嫉ゆへに実経の文を会して権義に順ぜしむること強盛なり、しかれども道心あらん人・偏党をすて自他宗をあらそはず人をあなづる事なかれ。
일련이 탄식하여 이르되, 위의 여러 사람의 뜻을 함부로 그르다고 하면 당세의 여러 사람은 얼굴조차 돌리지 않을 것이요, 그름에 그름을 거듭하여 끝내는 국왕에게 참소하여 목숨에 미치게 하리라. 다만 우리의 자부께서 쌍림 최후의 유언에 이르시되 「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 하셨으니, 「사람에 의하지 말라」 함은 초의 · 이의 · 삼의 · 제사의, 보현 · 문수 등 등각의 보살이 법문을 설하실지라도 경을 손에 쥐지 않는다면 쓰지 말라는 것이니라. 또 「요의경에 의하고 불요의경에 의하지 말라」고 정하셨으니, 경 가운데서도 요의경 · 불요의경을 규명하여 신수해야 하느니라.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에 이르되 「수다라의 흑론에 의하지 말고 수다라의 백론에 의하라」 하였고, 천태대사는 이르되 「수다라와 맞는 것은 기록하여 이를 쓰라. 문도 없고 뜻도 없는 것은 신수해서는 안 된다」 하였으며, 전교대사는 이르되 「불설에 의빙하고 구전을 믿지 말라」 하였고, 원진 지증대사는 이르되 「문에 의하여 전하라」 하였느니라. 위에 든 여러 스승의 석은 모두 일부는 경론에 의하여 승렬을 가리는 듯하나, 모두 자종을 굳게 신수하고 선사의 그릇된 뜻을 바로잡지 않는 까닭에 곡회사정(曲會私情)의 승렬이요 장엄기의(莊嚴己義)의 법문이니라. 불멸 후의 독자 · 방광과 후한 이후의 외전은 불법 밖의 외도의 견해보다도, 삼황오제의 유서보다도 사견이 강성하고 사법이 교묘하니라. 화엄 · 법상 · 진언 등의 인사가 천태종의 정의를 시기하는 까닭에 실경의 문을 억지로 맞추어 권교의 뜻에 따르게 함이 강성하니라. 그러나 도심 있는 사람은 편당을 버리고 자종 · 타종을 다투지 말며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어구 풀이
- 讒奏참주
- 사실을 꾸며 윗사람에게 남을 헐뜯어 아뢰는 것. 대성인에 대한 박해가 늘 권력자에게 올린 참소로 시작되었음을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밝히셨다.
- 雙林最後쌍림 최후
- 쌍림은 사라쌍수를 말한다. 사라(梵 śāla)는 견고 · 고원의 뜻이다. 구시나가라성 밖 발제하 기슭, 석존이 누운 자리의 사방에 두 그루씩 짝을 이룬 사라수가 있었으므로 쌍수 · 쌍림이라 한다. 석존이 이곳에서 열반경을 설하고 입멸했으므로, 열반의 때를 「쌍림 최후」라 한다.
- 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
- 열반경 권6의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불도 수행에서는 부처가 설한 경문을 의지처로 삼아야 하며, 논사 · 인사의 말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열반경은 이것을 「의의불의어(뜻에 의하고 말에 의하지 말라)」 「의지불의식(지혜에 의하고 식에 의하지 말라)」 「의요의경불의불요의경」과 함께 「법의 사의(四依)」로 설한다.
- 初依・二依・三依・第四依초의 · 이의 · 삼의 · 제사의
- 열반경 사의품에서 부처의 멸후에 중생이 의지할 만한 사람을 네 단계로 나눈 것(사람의 사의). 대성인은 이렇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도, 나아가 보현 · 문수 같은 등각의 보살이라도 경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면 따라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 等覚の菩薩등각의 보살
- 보살의 수행 계위 가운데 부처(묘각) 바로 아래의 지위. 깨달음이 거의 부처와 같다는 뜻에서 등각이라 한다. 보현 · 문수가 그 대표다.
- 了義経・不了義経요의경 · 불요의경
- 요의경은 뜻이 완전히 드러난 경, 곧 부처가 참뜻을 설한 경이고, 불요의경은 참뜻을 다 드러내지 않은 방편의 경이다. 이 구별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대승과 소승을 견주면 대승이 요의 · 소승이 불요의이고, 권경과 실경을 견주면 이전의 권대승이 불요의 · 법화경이 요의이며, 종탈상대하면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가 요의이고 이십팔품의 법화경은 불요의가 된다고 어석은 풀이한다.
- 修多羅黒論・修多羅白論수다라의 흑론 · 백론
- 용수의 『십주비바사론』의 문. 경전에 근거하지 않은 논은 그릇된 논(흑론)이고, 경전에 근거한 논은 바른 논(백론)이라는 뜻이다. 수다라는 범어 수트라(sūtra)의 음사로 계경 · 경이라 번역하며, 십이부경의 하나로서 글자 수에 구애되지 않고 뜻에 따라 법상(法相)을 설한 산문(장행)을 가리키기도 한다.
- 修多羅と合う者は録して之を用いよ수다라와 맞는 것은 기록하여 쓰라
- 천태대사의 『법화현의』 권10상의 문. 경론과 맞는 것은 쓰고, 경론에 문증도 뜻도 없는 것은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 仏説に依憑して口伝を信ずること莫れ불설에 의빙하고 구전을 믿지 말라
- 전교대사의 『법화수구』 권하의 문. 의빙은 의지하여 기댄다는 뜻이다. 인사의 사견이 섞인 구전 따위를 믿지 말라는 경계다.
- 円珍智証大師원진 지증대사
- 원진(814~891). 히에이산의 학승으로 당에 건너가 밀교를 배우고 돌아와 천태좌주가 되었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자각(엔닌)과 함께 그를 진언에 기울어 법화경을 낮춘 이로 엄하게 비판하셨으나, 이 장에서는 그의 「문에 의하여 전하라」는 말까지 들어 문증 원칙의 증인으로 삼으신다.
- 曲会私情・荘厳己義곡회사정 · 장엄기의
- 곡회사정은 경문을 굽혀 자기의 사사로운 뜻에 맞추는 것, 장엄기의는 자기의 견해를 꾸며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경론을 인용하더라도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경을 거기에 맞추면 이렇게 된다.
- 犢子・方広독자 · 방광
- 둘 다 「부불법(附佛法)의 외도」, 곧 불법에 붙어 있으면서 외도의 견해에 떨어진 이들이다. 독자는 소승 독자부의 부주로, 외도에서 불교로 들어왔으나 「불가설의 아(我)」를 세워 무아의 이치에 미혹했다. 방광은 대승을 배웠으나 대승의 이치에 미혹해 「일체법은 불생불멸이요 공하여 있는 바가 없다」고 하여 외도의 견해에 떨어졌다. 묘락대사는 『지관보행전홍결』에서 「독자는 소승에 의해, 방광은 대승에 의해 아견을 세웠다」고 했다.
- 三皇五帝の儒書삼황오제의 유서
- 중국 상고의 성왕들(삼황 · 오제)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유가의 서적. 제1편에서 다룬 유가의 삼덕과 연결된다.
- 偏党편당
- 한쪽 무리에 치우쳐 편드는 것. 자기 종파라는 이유로 편들고 다른 종파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태도를 말한다.
대성인의 탄식 — 파절의 대가를 아시고
제44장에서 제종 조사들의 독법을 늘어놓으신 대성인은 이 장의 첫머리에서 먼저 탄식하신다. 「위의 여러 사람의 뜻을 함부로 그르다고 하면 당세의 여러 사람은 얼굴조차 돌리지 않을 것이요, 그름에 그름을 거듭하여 끝내는 국왕에게 참소하여 목숨에 미치게 하리라.」
이 말씀은 추측이 아니라 이미 겪으신 일이다. 대성인은 「입정안국론」을 올린 뒤 마쓰바가야쓰의 초암을 습격당하셨고, 이즈로 유배되셨으며, 고마쓰바라에서 칼을 맞으셨다. 그리고 「개목초」를 쓰시기 불과 다섯 달 전인 문영 8년(1271) 9월 12일에는 다쓰노구치에서 목이 베일 뻔하셨고, 지금 사도에 유배되어 계시다. 그 박해는 하나같이 제종의 승려들이 권력자에게 올린 참소에서 비롯되었다. 현대어역은 이 대목을 「당세의 여러 사람은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조차 돌리지 않고 더욱 사지가 강성해져, 결국은 국주에게 참소하여 일련을 목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대성인은 「다만(但し)」 하고 말을 돌리신다. 참소와 죽음의 위협이 있다 해도 진실로 불법을 구한다면 따라야 할 기준이 있다. 그것은 석존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이다.
쌍림 최후의 유언 — 법의 사의
석존은 구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마지막 설법을 하고 입멸했다. 그 설법이 열반경이며, 그 안에 멸후의 불제자가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지를 정한 「법의 사의」가 있다. 대성인은 그 가운데 「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와 「요의경에 의하고 불요의경에 의하지 말라」의 두 가지를 드신다.
「사람에 의하지 말라」에 대해 대성인은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신다. 의지할 만한 사람으로 경이 인정한 초의부터 제사의까지의 사람은 물론, 보현 · 문수 같은 등각의 보살이 법문을 설한다 해도 「경을 손에 쥐지 않는다면」 쓰지 말라는 것이다. 등각의 보살은 부처 바로 아래의 지위로, 인간의 지혜로 보면 거의 부처와 같다. 그런 보살이라도 그 말의 근거가 경문에 있지 않다면 따를 수 없다. 기준은 말하는 사람의 높낮이가 아니라 말의 근거가 부처의 경에 있느냐에 있다.
대성인은 「보은초」에서도 같은 유훈을 인용하시며 「사람」의 범위를 이렇게 밝히셨다.
涅槃経と申す経に云く「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等云云 依法と申すは一切経・不依人と申すは仏を除き奉りて外の普賢菩薩・文殊師利菩薩乃至上にあぐるところの諸の人師なり
열반경이라는 경에 이르되 「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의법이라 함은 일체경이요, 불의인이라 함은 부처를 제외한 그 밖의 보현보살 · 문수사리보살 내지 위에 든 여러 인사이니라.
부처를 제외한 모든 이 — 보살도, 논사도, 인사도 — 의 말은 경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이것이 대성인이 일관되게 지키신 문증의 원칙이며, 제43장의 「사사로운 말을 내지 않는다」의 근거다.
그런데 「법에 의하라」고 해도 경 자체에 깊고 얕음이 있다. 그래서 두 번째 유훈 「요의경에 의하고 불요의경에 의하지 말라」가 필요하다. 경 가운데서도 부처가 참뜻을 다 드러낸 요의경과 방편으로 설한 불요의경을 가려서 받아들여야 한다. 어석이 풀이하듯 이 구별은 상대적이다. 대승과 소승을 견주면 대승이 요의이고, 이전의 권대승과 법화경을 견주면 법화경이 요의이며, 종탈상대에서는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가 요의이고 문상의 이십팔품은 불요의가 된다. 어느 단계에서 견주느냐에 따라 요의 · 불요의의 자리가 바뀌므로, 경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경이 일대 성교 가운데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다음 장들에서 대성인이 「이금당」과 「세 잣대」로 제경의 위치를 가리시는 까닭이다.
용수 · 천태 · 전교 · 지증 — 문증의 계보
- ① 석존 · 열반경인도法に依つて人に依らざれ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了義経に依つて不了義経に依らざれ요의경에 의하고 불요의경에 의하지 말라
- ② 용수 · 『십주비바사론』인도修多羅黒論に依らずして修多羅白論に依れ수다라의 흑론에 의하지 말고 수다라의 백론에 의하라
- ③ 천태 · 『법화현의』중국修多羅と合う者は録して之を用いよ文無く義無きは信受すべからず수다라와 맞는 것은 기록하여 쓰라, 문도 없고 뜻도 없는 것은 신수해서는 안 된다
- ④ 전교 · 『법화수구』일본仏説に依憑して口伝を信ずること莫れ불설에 의빙하고 구전을 믿지 말라
- ⑤ 지증일본文に依つて伝うべし문에 의하여 전하라
대성인은 석존의 유훈에 이어 인도 · 중국 · 일본의 논사와 인사 네 사람의 말을 차례로 드신다. 이것은 문증의 원칙이 대성인의 독자적인 주장이 아니라 불교사 전체를 꿰는 공통의 원칙임을 보이시기 위해서다.
용수는 『십주비바사론』에서 경전에 근거하지 않은 논을 흑론, 경전에 근거한 논을 백론이라 했다. 용수는 대승 불교의 기초를 놓은 논사로서 제종이 모두 조사로 받드는 인물이다. 그 용수가 자기 논서조차 경에 근거해야 한다고 했으니, 그를 조사로 삼는 종파는 이 원칙을 거부할 수 없다.
천태대사는 『법화현의』에서 「수다라와 맞는 것은 기록하여 쓰고, 문도 없고 뜻도 없는 것은 신수하지 말라」고 했다. 「문」은 경문의 직접적인 근거, 「뜻」은 경문의 취지에서 끌어낼 수 있는 근거다. 문도 뜻도 없는 주장은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이 말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전교대사의 말은 『법화수구』 권하에서 나온다. 어석은 그 앞뒤를 이렇게 전한다.
誠に願はくは一乗の君子、仏説に依憑して口伝を信ずること莫れ。誠文を仰信して、偽会を信ずること莫れ。天台所釈の法華経宗は、諸宗に勝る。寧んぞ所伝を空しうせんや
진실로 바라건대 일승의 군자는 불설에 의빙하고 구전을 믿지 말라. 참된 경문을 우러러 믿고 거짓된 회통을 믿지 말라. 천태가 해석한 법화경종은 제종보다 뛰어나다. 어찌 전해 받은 것을 헛되이 하겠는가.
어석에 따르면 이 문은 법화경이 다른 경보다 뛰어난 까닭을 열 가지로 논한 대목 가운데 셋째인 「무문자설과분승(無問自說果分勝)」의 끝에 놓여 있다. 전교대사는 남도의 학승들이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전해 받았다」는 권위를 내세우는 데 대해, 구전이 아니라 불설 그 자체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맞섰다.
마지막으로 대성인은 원진 지증대사의 「문에 의하여 전하라」를 드신다. 지증은 자각(엔닌)과 함께 히에이산을 진언 쪽으로 기울게 한 인물로, 대성인은 「보은초」 등에서 그를 엄하게 비판하셨다. 그 지증조차 「문에 의하라」고 했다는 것은, 문증의 원칙이 진언에 기운 이들까지도 부정할 수 없는 원칙임을 보여 준다. 상대가 받드는 인물의 말로 상대를 비추는 것, 이것이 이 장의 논법이다.
곡회사정 · 장엄기의 — 경을 인용하면서 경을 등지다
그런데 제44장에서 본 제종의 조사들도 경론을 인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화엄종은 「사문관별 · 견진제동」이라는 천태의 개념을 빌렸고, 법상종은 해심밀경의 삼시설을 근거로 삼았으며, 홍법은 육바라밀경의 오장설을 끌어왔다(제46 · 47장). 대성인도 「모두 일부는 경론에 의하여 승렬을 가리는 듯하다」고 인정하신다.
그러나 그들의 승렬은 「곡회사정의 승렬이요 장엄기의의 법문」이다. 그 원인을 대성인은 두 가지로 지적하신다. 하나는 「자종을 굳게 신수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선사의 그릇된 뜻을 바로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이 먼저 정해져 있다. 자기 종파의 소의경이 가장 뛰어나다는 결론을 의심하지 않고, 조사가 세운 교판을 고치지 않는다. 그 위에서 경론을 인용하면, 경론은 결론을 검증하는 기준이 아니라 결론을 꾸미는 장식이 된다. 「법에 의한다」는 형식을 갖추면서 실제로는 「사람에 의하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 구조를 불교사의 두 선례에 비기신다. 하나는 불멸 후의 독자와 방광이다. 독자는 소승에 의거해 「불가설의 아」를 세웠고, 방광은 대승에 의거해 모든 것을 공무로 돌리는 견해에 떨어졌다. 둘 다 불교의 말을 쓰면서 불교의 뜻을 어긴 「부불법의 외도」다. 다른 하나는 후한 이후의 외전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것은 후한 명제 때로 전하는데, 그 뒤로 중국의 사상가들은 불교의 개념을 자기 사상 안으로 끌어들였다. 대성인은 이들이 「불법 밖의 외도의 견해보다도, 삼황오제의 유서보다도 사견이 강성하고 사법이 교묘하다」고 하신다. 불교를 전혀 모르는 외도보다 불교의 말을 빌린 사견이 더 위험한 것은, 겉모습이 정법과 닮아 있어 가려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권 제8장에서 대성인은 이미 「외도 · 외전이 불교의 뜻을 훔친다」는 주제를 다루셨다.
강의는 이 구조를 불교사 전체에 적용해 설명한다. 석존이 인도에 출현하기 전 외도는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논의를 하고 있었으나, 석존이 출현하자 외도들은 다투어 불교를 받아들여 사견이 강성해졌다. 불법이 중국에 전해진 후한 명제 때에도 외도는 재빨리 불교를 받아들였고, 후한 이후 외도의 사견은 강성해졌다. 그리고 천태대사가 출현해 일념삼천의 법문을 밝히자, 그때까지 덧없는 논쟁을 되풀이하던 권교의 종파들이 다투어 이 일념삼천의 뜻을 자종에 끌어들여 사견이 성해졌다. 제41장에서 대성인이 「화엄종의 징관이 이 뜻을 훔쳐 화엄경의 『마음은 솜씨 좋은 화가와 같다』는 문의 핵심으로 삼았다」 「선무외가 천태의 일념삼천을 훔쳐 넣어 진언종의 간심으로 삼았다」고 하신 것이 그 구체적인 예다. 대성인은 이 장에서 이것을 「화엄 · 법상 · 진언 등의 인사가 천태종의 정의를 시기하는 까닭에 실경의 문을 억지로 맞추어 권교의 뜻에 따르게 함이 강성하다」고 맺으신다. 강의는 대성인이 이렇게 하여 기성 종파의 교의를 근본에서 파절하셨다고 본다.
「편당을 버리고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은 앞의 엄한 파절과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도심 있는 사람은 편당을 버리고 자종 · 타종을 다투지 말며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대성인의 파절은 「우리 종파가 옳고 너희 종파가 그르다」는 다툼이 아니다. 자종이라서 편들고 타종이라서 배척하는 것이야말로 「곡회사정」의 뿌리다. 대성인이 요구하시는 것은 자종과 타종이라는 틀을 버리고 경문 하나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그 기준 앞에서는 대성인 자신의 말도 예외가 아니다. 제42장에서 「거듭 경문을 살펴 내 몸에 대어 보리라」 하신 것이 그 증거다.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말씀도 무겁다. 대성인은 징관 · 자은 · 가상 · 홍법의 승렬 판단을 정면에서 비판하시지만, 그들을 모욕하시지는 않는다. 제47장에서 대성인은 그들을 「불안(佛眼)과 같은 사람」이라 부르시고, 그런 사람조차 이 문에 미혹했다고 하신다. 비판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세운 그릇된 법이다. 이 구별이 「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는 원칙의 다른 얼굴이다.
강의는 이 장을 제종의 그릇된 해석을 파하는 단으로 본다. 먼저 「의법불의인」 등의 문을 들어 제종의 정사는 무엇보다 부처의 문증을 제일로 삼아야 하며 후세 논사 · 인사가 세운 자기류의 견해를 근본으로 삼아서는 안 됨을 보이고, 이어 법화경의 정의를 보이며, 특히 진언의 사의를 타파한다. 외도가 불교를 취해 사견이 강성해지고, 권교가 천태의 일념삼천을 취해 사견이 성해진 흐름을 대성인이 근본에서 끊으셨다는 것이 강의의 관점이다.
본문
法華経に云く「已今当」等云云、妙楽云く「縦い経有つて諸経の王と云うとも已今当説最為第一と云わず」等云云、又云く「已今当の妙玆に於て固く迷う謗法の罪苦長劫に流る」等云云、 此の経釈にをどろいて一切経・並に人師の疏釈を見るに狐疑の冰とけぬ今真言の愚者等・印真言のあるを・たのみて真言宗は法華経にすぐれたりとをもひ慈覚大師等の真言勝れたりとをほせられぬれば・なんど・をもえるは・いうにかいなき事なり。 密厳経に云く「十地華厳等と大樹と神通勝鬘及び余経と皆此の経従り出でたり、是くの如きの密厳経は一切経の中に勝れたり」等云云、 大雲経に云く「是の経は即是諸経の転輪聖王なり何を以ての故に是の経典の中に衆生の実性・仏性・常住の法蔵を宣説する故なり」等云云、 六波羅蜜経に云く「所謂過去無量の諸仏・所説の正法及び我今説く所の所謂八万四千の諸の妙法蘊なり、摂して五分と為す一には索咀纜・二には毘奈耶・三には阿毘達磨・四には般若波羅蜜・五には陀羅尼門となり此の五種の蔵をもつて有情を教化す、 若し彼の有情契経調伏対法般若を受持すること能わず或は復有情諸の悪業・四重・八重・五無間罪方等経を謗ずる一闡提等の種種の重罪を造るに銷滅して速疾に解脱し頓に涅槃を悟ることを得せしむ、 而も彼が為に諸の陀羅尼蔵を説く、此の五の法蔵譬えば乳・酪・生蘇・熟蘇及び妙なる醍醐の如し、総持門とは譬えば醍醐の如し醍醐の味は乳・酪・蘇の中に微妙第一にして能く諸の病を除き諸の有情をして身心安楽ならしむ、 総持門とは契経等の中に最も第一と為す能く重罪を除く」等云云、解深密経に云く「爾の時に勝義生菩薩復仏に白して云く世尊・初め一時に於て波羅痆斯仙人堕処施鹿林の中に在て唯声聞乗を発趣する者の為に四諦の相を以て正法輪を転じ給いき、 是甚だ奇にして甚だ為れ希有なり一切世間の諸の天人等・先より能く法の如く転ずる者有ること無しと雖も、而も彼の時に於て転じ給う所の法輪は有上なり有容なり是れ未了義なり是れ諸の諍論安足の処所なり、 世尊在昔第二時の中に唯発趣して大乗を修する者の為にして一切の法は皆無自性なり無生無滅なり本来寂静なり自性涅槃なるに依る隠密の相を以て正法輪を転じ給いき、 更に甚だ奇にして甚だ為れ希有なりと雖も、彼の時に於て転じ給う所の法輪亦是れ有上なり容受する所有り猶未だ了義ならず、 是れ諸の諍論安足の処所なり、世尊今第三時の中に於て普く一切乗を発趣する者の為に一切の法は皆無自性・無生無滅・本来寂静・自性涅槃にして無自性の性なるに依り顕了の相を以て正法輪を転じ給う、 第一甚だ奇にして最も為れ希有なり、今に世尊転じ給う所の法輪・無上無容にして是れ真の了義なり諸の諍論安足の処所に非ず」等云云、 大般若経に云く「聴聞する所の世・出世の法に随つて皆能く方便して般若甚深の理趣に会入し諸の造作する所の世間の事業も亦般若を以て法性に会入し一事として法性を出ずる者を見ず」等云云、 大日経第一に云く「秘密主大乗行あり無縁乗の心を発す法に我性無し何を以ての故に彼往昔是くの如く修行せし者の如く蘊の阿頼耶を観察して自性幻の如しと知る」等云云、 又云く「秘密主彼是くの如く無我を捨て心主自在にして自心の本不生を覚す」等云云、又云く「所謂空性は根境を離れ無相にして境界無く諸の戯論に越えて虚空に等同なり乃至極無自性」等云云、 又云く「大日尊秘密主に告げて言く秘密主云何なるか菩提・謂く実の如く自心を知る」等云云、華厳経に云く「一切世界の諸の群生声聞乗を求めんと欲すること有ること尠し縁覚を求むる者転・復少し、 大乗を求むる者甚だ希有なり大乗を求むる者猶為れ易く能く是の法を信ずる為れ甚だ難し、況や能く受持し・正憶念し・説の如く修行し・真実に解せんをや、 若し三千大千界を以て頂戴すること一劫身動ぜざらんも彼の所作未だ為れ難からず是の法を信ずるは為れ甚だ難し、大千塵数の衆生の類に一劫諸の楽具を供養するも彼の功徳未だ為れ勝れず是の法を信ずるは為れ殊勝なり、 若し掌を以て十仏刹を持し虚空の中に於て住すること一劫なるも彼の所作未だ為れ難からず是の法を信ずるは為れ甚だ難し、 十仏刹塵の衆生の類に一劫諸の楽具を供養せんも彼の功徳未だ勝れりと為さず是の法を信ずるは為れ殊勝なり、十仏刹塵の諸の如来を一劫恭敬して供養せん若し能く此の品を受持せん者の功徳彼よりも最勝と為す」等云云、 涅槃経に云く「是の諸の大乗方等経典復無量の功徳を成就すと雖も是の経に比せんと欲するに喩を為すを得ざること百倍千倍百千万倍、 乃至算数譬喩も及ぶこと能わざる所なり、善男子譬えば牛従り乳を出し乳従り酪を出し酪従り生蘇を出し生蘇従り熟蘇を出し熟蘇従り醍醐を出す醍醐は最上なり、 若し服すること有る者は衆病皆除き所有の諸薬も悉く其の中に入るが如し、善男子仏も亦是くの如し仏従り十二部経を出し十二部経従り修多羅を出し修多羅従り方等経を出し方等経従り般若波羅蜜を出し般若波羅蜜従り大涅槃を出す猶醍醐の如し醍醐と言うは仏性に喩う」等云云。
법화경에 이르되 「이금당(已今當)」 등이라 하였고, 묘락은 이르되 「설령 경이 있어 제경의 왕이라 하더라도 『이 · 금 · 당의 설 가운데 가장 제일이다』라고는 하지 않았다」 하였으며, 또 이르되 「이금당의 묘에 여기서 굳게 미혹하면 방법의 죄고가 장겁에 흐른다」 하였느니라. 이 경석에 놀라 일체경과 인사의 소석을 보니 여우 같은 의심의 얼음이 녹았느니라. 지금 진언의 어리석은 자들이 인(印)과 진언이 있음을 믿고 진언종은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자각대사 등이 진언이 뛰어나다고 하셨으니 그러하리라 따위로 생각하는 것은 말할 가치도 없는 일이니라. 밀엄경에 이르되 「십지 · 화엄 등과 대수와 신통 · 승만 및 그 밖의 경은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왔느니라. 이와 같은 밀엄경은 일체경 가운데 뛰어나니라」 하였고, 대운경에 이르되 「이 경은 곧 제경의 전륜성왕이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이 경전 가운데 중생의 실성(實性) · 불성 · 상주의 법장을 펴서 설하기 때문이니라」 하였느니라. 육바라밀경에 이르되 「이른바 과거 무량한 제불이 설하신 정법과 내가 지금 설하는 바, 이른바 팔만사천의 여러 묘법온(妙法蘊)이니, 이를 거두어 다섯으로 나누느니라. 첫째는 소달람(素怛纜), 둘째는 비나야, 셋째는 아비달마, 넷째는 반야바라밀, 다섯째는 다라니문이니, 이 다섯 가지 장으로 유정을 교화하느니라. 만약 저 유정이 계경 · 조복 · 대법 · 반야를 수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또 유정이 여러 악업, 곧 사중 · 팔중 · 오무간죄와 방등경을 비방하는 일천제 등 갖가지 중죄를 짓는다면, 이를 소멸시켜 속히 해탈하고 단번에 열반을 깨닫게 하고자 그들을 위하여 여러 다라니장을 설하느니라. 이 다섯 법장은 비유하면 유(乳) · 낙(酪) · 생소 · 숙소 및 묘한 제호와 같으니, 총지문은 비유하면 제호와 같으니라. 제호의 맛은 유 · 낙 · 소 가운데 미묘하기가 제일이어서 능히 여러 병을 없애고 여러 유정의 몸과 마음을 안락하게 하느니라. 총지문은 계경 등 가운데 가장 제일이니 능히 중죄를 없애느니라」 하였느니라. 해심밀경에 이르되 「그때 승의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께서는 처음 한때 바라날사의 선인타처 시록림에 계시면서 오직 성문승에 발취한 자를 위하여 사제의 상으로 정법륜을 굴리셨나이다. 이는 매우 기이하고 매우 희유하여 일체 세간의 여러 천 · 인 등이 일찍이 법답게 굴린 자가 없었으나, 그때 굴리신 법륜은 위가 있고 용납할 바가 있어 아직 요의가 아니니, 여러 쟁론이 발붙일 곳이었나이다. 세존께서는 지난날 제2시 가운데 오직 대승을 닦으려 발취한 자를 위하여, 일체법은 모두 자성이 없고 생도 멸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고 자성이 열반이라는 것에 의하여 은밀(隱密)의 상으로 정법륜을 굴리셨나이다. 더욱 매우 기이하고 매우 희유하나, 그때 굴리신 법륜 또한 위가 있고 용납할 바가 있어 아직 요의가 아니니, 여러 쟁론이 발붙일 곳이었나이다. 세존께서는 이제 제3시 가운데 널리 일체승에 발취한 자를 위하여, 일체법은 모두 자성이 없고 생멸이 없으며 본래 적정하고 자성이 열반이며 무자성의 성(性)이라는 것에 의하여 현료(顯了)의 상으로 정법륜을 굴리시나이다. 제일로 매우 기이하고 가장 희유하니, 이제 세존께서 굴리시는 법륜은 위가 없고 용납할 바가 없어 이것이 참된 요의이며, 여러 쟁론이 발붙일 곳이 아니옵니다」 하였느니라. 대반야경에 이르되 「듣는 바 세간 · 출세간의 법에 따라 모두 능히 방편으로 반야의 매우 깊은 이취에 회입하고, 짓는 바 여러 세간의 사업도 또한 반야로써 법성에 회입하여, 한 가지 일도 법성을 벗어나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하였느니라. 대일경 제1에 이르되 「비밀주여, 대승의 행이 있으니 무연승(無緣乘)의 마음을 일으켜 법에 아성(我性)이 없다고 하느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저 옛날 이와 같이 수행한 자와 같이 온(蘊)의 아뢰야를 관찰하여 자성이 환(幻)과 같음을 아느니라」 하였고, 또 이르되 「비밀주여, 그는 이와 같이 무아를 버리고 심주(心主)가 자재하여 자심의 본불생을 깨닫느니라」 하였으며, 또 이르되 「이른바 공성은 근과 경을 떠나 모양이 없고 경계가 없으며 여러 희론을 넘어 허공과 같으니라. 내지 극무자성이니라」 하였고, 또 이르되 「대일존께서 비밀주에게 고하여 말씀하시되, 비밀주여, 무엇이 보리인가. 이르자면 실답게 자심을 아는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화엄경에 이르되 「일체 세계의 여러 중생 가운데 성문승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적고, 연각을 구하는 자는 더욱 적으며, 대승을 구하는 자는 매우 드무니라. 대승을 구하는 것은 오히려 쉬우나 능히 이 법을 믿는 것은 매우 어려우니라. 하물며 능히 수지하고 바르게 억념하며 설한 대로 수행하고 진실로 이해함이랴. 만약 삼천대천세계를 머리에 이고 일 겁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그 하는 일은 아직 어렵지 않으나, 이 법을 믿는 것은 매우 어려우니라. 대천세계 티끌 수의 중생에게 일 겁 동안 여러 즐거움의 도구를 공양한다 해도 그 공덕은 아직 뛰어나지 않으나, 이 법을 믿는 것은 뛰어나니라. 만약 손바닥으로 열 불찰을 들어 허공 가운데 일 겁 동안 머문다 해도 그 하는 일은 아직 어렵지 않으나, 이 법을 믿는 것은 매우 어려우니라. 열 불찰 티끌 수의 중생에게 일 겁 동안 여러 즐거움의 도구를 공양한다 해도 그 공덕은 아직 뛰어나다 하지 않으나, 이 법을 믿는 것은 뛰어나니라. 열 불찰 티끌 수의 여러 여래를 일 겁 동안 공경하고 공양한다 해도, 만약 능히 이 품을 수지하는 자의 공덕은 그보다 가장 뛰어나니라」 하였느니라. 열반경에 이르되 「이 여러 대승 방등경전은 또한 무량한 공덕을 성취한다 하나, 이 경에 견주고자 하면 비유할 수 없으니 백 배 · 천 배 · 백천만 배, 내지 산수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는 바이니라. 선남자여, 비유하면 소에서 젖이 나오고 젖에서 낙이 나오고 낙에서 생소가 나오고 생소에서 숙소가 나오고 숙소에서 제호가 나오는데, 제호가 가장 으뜸이어서 이를 먹는 자가 있으면 온갖 병이 다 없어지고 있는 모든 약이 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부처도 또한 이와 같아서 부처로부터 십이부경이 나오고, 십이부경으로부터 수다라가 나오고, 수다라로부터 방등경이 나오고, 방등경으로부터 반야바라밀이 나오고, 반야바라밀로부터 대열반이 나오니 오히려 제호와 같으니라. 제호라 함은 불성에 비유한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어구 풀이
- 已今当이금당
-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내가 설한 경전은 무량 천만억이니, 이미 설했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하리라. 그 가운데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에서 나온 말이다. 「이미 설한 경(已)」 「지금 설하는 경(今)」 「앞으로 설할 경(當)」 모두를 상대로 법화경이 가장 뛰어나다는 뜻이다.
- 妙楽묘락
- 묘락대사 담연(711~782). 당대에 천태 교학을 부흥시킨 천태종 제6조(천태를 초조로 할 때 제9조로 세기도 한다)로, 『법화현의석첨』 『법화문구기』 『지관보행전홍결』을 지어 천태삼대부를 주석했다. 화엄 · 법상 · 선 등 당대에 성한 제종에 맞서 천태의 정의를 지켰다.
- 狐疑の冰호의의 얼음
- 여우는 의심이 많아 얼음 위를 건널 때 얼음 밑 물소리를 들으며 머뭇거린다는 데서 「호의」라는 말이 나왔다. 그 의심이 얼음처럼 굳어 있다가 녹아 풀렸다는 비유다.
- 印真言인 · 진언
- 밀교 수행에서 손으로 맺는 인계(印契)와 입으로 외는 진언(다라니). 진언종은 이 사상(事相)이 있으므로 이치만 설한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했다(이동사승).
- 慈覚大師자각대사
- 엔닌(794~864). 전교대사의 제자로 당에 건너가 밀교를 배우고 돌아와 천태좌주가 되었다. 법화경과 대일경은 이치는 같으나 사상에서 대일경이 뛰어나다는 설을 히에이산에 받아들여 천태종의 밀교화를 이끌었다. 대성인은 「보은초」 「선시초」 등에서 그를 엄하게 비판하셨다.
- 十地華厳等と大樹と神通勝鬘십지 · 화엄 등과 대수와 신통 · 승만
- 십지는 화엄경 십지품을 따로 낸 「십지경」, 대수는 「대수긴나라왕소문경」 4권(구마라집 역), 신통은 「불설보살행방편경계신통변화경」 3권(구나발타라 역), 승만은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 1권(구나발타라 역)이다.
- 密厳経밀엄경
- 「대승밀엄경」. 당의 지바하라가 번역한 3권본과 불공이 번역한 3권본이 있다. 아뢰야식과 여래장을 「밀엄」의 경계로 설하며, 모든 경이 이 경에서 나왔다고 스스로 찬탄한다.
- 大雲経대운경
- 「대방등무상대운경」 6권(담무참 역). 「대방등무상경」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실성 · 불성 · 상주를 설하는 점에서 열반경과 같은 계통의 경이다.
- 六波羅蜜経육바라밀경
-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 10권. 당 덕종 때 인도 승 반야(般若)가 번역했다. 일체의 가르침을 다섯 장으로 나누고 다라니장을 제호에 비긴 것이 이 장의 인용이며, 홍법은 이 경문을 근거로 법화경을 제4의 숙소미에 두었다(제47장).
- 素怛纜・毘奈耶・阿毘達磨・般若波羅蜜・陀羅尼門소달람 · 비나야 · 아비달마 · 반야바라밀 · 다라니문
- 합하여 다섯 장(五藏)이라 한다. 소달람은 경장으로 부처의 설법을 그대로 기록한 것, 비나야는 율장으로 계율을 설한 것, 아비달마는 논장으로 경의 뜻을 철학적으로 밝힌 것, 반야바라밀은 혜장으로 제법에 통달하여 번뇌를 끊고 이치를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설한 것, 다라니문은 비밀장으로 총지라고도 하며 수행하지 않고 계율도 지키지 않고 번뇌에 덮인 이를 그대로 곧장 해탈시켜 열반의 경계에 이르게 하려고 설한 가르침이라 한다.
- 契経・調伏・対法・般若계경 · 조복 · 대법 · 반야
- 계경은 경장, 조복은 율장(율은 사람들의 번뇌를 조복하는 것을 주로 하므로), 대법은 논장(지혜로써 이치의 경계를 마주하여 가린다는 뜻에서), 반야는 혜장이다.
- 四重・八重・五無間罪사중 · 팔중 · 오무간죄
- 사중죄는 비구의 가장 무거운 죄로 살생 · 투도 · 사음 · 망어의 넷이다. 팔중죄(팔바라이)는 비구니의 가장 무거운 죄로, 사중에 네 가지 계를 더한 것이다. 오무간죄는 오역죄로 살부 · 살모 · 살아라한 · 파화합승 · 출불신혈이다.
- 勝義生菩薩승의생보살
- 해심밀경 무자성상품의 대고중. 부처에게 삼시의 법륜에 대해 묻고 확인하는 역할을 맡는다.
- 波羅痆斯仙人堕処施鹿林바라날사 선인타처 시록림
- 바라날사는 바라나라고도 하는 갠지스강 유역의 나라 이름이다. 선인타처 · 시록림은 모두 녹야원의 다른 이름으로, 석존이 성도 후 처음 사제를 설한 곳이다. 옛날 오백 선인이 하늘에서 궁녀를 보고 욕심을 일으켜 신통을 잃고 숲속에 떨어졌다는 고사, 보살의 화신인 사슴 왕이 새끼 밴 사슴을 대신하여 죽으러 나서자 이에 감동한 왕이 큰 숲을 사슴들에게 베풀었다는 고사에서 이 이름들이 나왔다.
- 有上・有容유상 · 유용
- 「위가 있다」는 것은 더 높은 가르침이 있다는 뜻, 「용납할 바가 있다」는 것은 반론이 들어설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해심밀경은 제1시 · 제2시의 법륜을 이렇게 평하고 제3시의 법륜만 「무상 · 무용」이라 했다.
- 隠密の相・顕了の相은밀의 상 · 현료의 상
- 참뜻을 숨긴 채 설하는 방식과 참뜻을 분명히 드러내어 설하는 방식. 해심밀경은 제2시(반야)를 은밀, 제3시(해심밀)를 현료라 했다.
- 会入회입
- 모아서 들게 한다는 뜻. 세간 · 출세간의 모든 법과 사업이 반야의 이치, 곧 법성 하나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 秘密主비밀주
- 금강살타(梵 Vajrasattva)를 말한다. 금강수비밀주라고도 한다. 대일여래의 내권속인 여러 집금강의 우두머리로, 진언종은 대일여래를 제1조, 금강살타를 제2조로 세운다. 대일경의 대고중이며 대일경을 결집하여 용수에게 전했다고 한다. 보현보살과 같은 몸에 이름만 다르다고 한다.
- 無縁乗무연승
- 대상에 얽매이지 않는 수행. 현대어역은 「법에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을 일으켜 일체법에 아성(我性)이 없다고 수행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 蘊の阿頼耶온의 아뢰야
- 온은 오음(신역에서는 오온), 곧 생명을 이루는 색 · 수 · 상 · 행 · 식의 다섯 요소다. 아뢰야는 제8식 아뢰야식으로, 선악의 행위의 영향을 쌓아 두었다가 인연에 따라 그 과보를 낳는 생명의 작용이다.
- 本不生본불생
- 모든 것이 본래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뜻. 진언종은 범자 「아(阿)」 자가 이를 나타낸다 하여 아자본불생(阿字本不生)을 교의의 핵심으로 삼았다.
- 如実知自心여실지자심
- 「실답게 자심을 아는 것」. 대일경 주심품에서 보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으로 제시된 구절로, 진언종 교학의 근본 명제다.
- 十仏刹십불찰
- 불찰은 불국토이니, 열 불국토 곧 열 개의 삼천대천세계를 말한다.
- 醍醐제호
- 우유를 정제하는 다섯 단계(유 · 낙 · 생소 · 숙소 · 제호) 가운데 마지막의 가장 맛있는 것. 열반경은 이 오미를 부처의 가르침이 차례로 나오는 순서에 비겼고, 천태는 이를 석존 일대의 오시(화엄 · 아함 · 방등 · 반야 · 법화열반)에 배당했다.
법화경의 「이금당」과 묘락의 석 — 일가의 정의
제45장에서 문증의 원칙을 세우신 대성인은 이 장에서 그 원칙에 따라 「일가(一家)의 정의」, 곧 천태 일가가 전한 법화경의 바른 뜻을 먼저 세우신다. 그 첫머리가 법화경 법사품의 「이금당」이다.
已に説き、今説き、当に説かん。而も其の中に於いて、此の法華経、最も為れ難信難解なり
이미 설했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 설하리라. 그러나 그 가운데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우니라.
천태 교학의 해석 전통에서 「이미 설했다」는 법화경 이전 사십여 년의 제경을, 「지금 설한다」는 법화경 직전의 무량의경을, 「앞으로 설하리라」는 법화경 뒤의 열반경을 가리킨다. 석존 일대의 모든 경을 시간의 세 단계로 남김없이 아우른 뒤 그 전부를 상대로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난신난해」는 그 법이 가장 깊다는 뜻이며, 따라서 이 문은 법화경이 일대 제경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선언이 된다.
묘락대사는 이 문의 무게를 두 가지 석으로 드러냈다. 하나는 「설령 경이 있어 제경의 왕이라 하더라도 『이 · 금 · 당의 설 가운데 가장 제일이다』라고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 경이 스스로를 「제경의 왕」이라 찬탄한다. 그러나 그 찬탄은 이미 설한 경 · 지금 설하는 경 · 앞으로 설할 경 전부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다. 법화경만이 일대의 모든 경을 상대로 스스로를 제일이라 했다. 다른 하나는 「이금당의 묘에 여기서 굳게 미혹하면 방법의 죄고가 장겁에 흐른다」는 것이다. 법화경의 묘가 다른 경과 견주어 드러나는 측면, 곧 「이금당의 묘」에 미혹하여 법화경을 낮추는 것은 단순한 학문상의 오류가 아니라 방법이며, 그 죄는 오랜 겁에 걸쳐 고통을 낳는다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 경석에 놀라 일체경과 인사의 소석을 보니 여우 같은 의심의 얼음이 녹았다」고 하신다. 법사품의 문과 묘락의 석이라는 기준을 손에 쥐고 일체경과 제종의 주석서를 다시 읽자, 어느 경이 어디에 서는지가 저절로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제45장의 「요의경에 의하라」는 유훈이 여기서 구체적인 잣대를 얻는다.
그런데 진언의 어리석은 자들은 이 잣대를 보지 못한다. 그들은 대일경에 인과 진언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진언종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자각대사 같은 이가 진언이 뛰어나다고 했으니 틀림없으리라고 여긴다. 대성인은 이를 「말할 가치도 없는 일」이라 하신다. 인과 진언은 수행의 형식이지 법의 깊이가 아니며, 자각대사의 말은 제45장의 원칙에 따르면 「사람」의 말일 뿐이기 때문이다. 제41장에서 대성인은 선무외가 천태의 일념삼천을 훔쳐 넣은 뒤 「그 위에 인과 진언을 꾸며」 이동사승의 석을 지었다고 이미 파하셨다.
「비슷한 문」을 회통하다
일가의 정의를 세우신 뒤 대성인은 곧바로 여덟 경의 문을 길게 인용하신다. 밀엄경 · 대운경 · 육바라밀경 · 해심밀경 · 대반야경 · 대일경 · 화엄경 · 열반경이다. 이 경문들은 하나같이 자기 경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한다. 강의는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전의 경에도 성불득도가 가능한 듯이 설한 가르침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는 법화경을 설하기 위한 전 단계로 설한 것이며, 이전경 자체에 득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화경과 비슷해 보이는 문이 있어서 거기서 그릇된 해석이 생겨나므로, 대성인은 그 「비슷한 문(相似の文)」을 회통하기 위해 먼저 여덟 경의 문을 드신 것이다.
이 여덟 경문은 아무렇게나 고른 것이 아니다. 제44장에서 대성인은 화엄 · 법상 · 삼론 · 진언의 조사들이 자기 경을 육난 안에 넣거나 육난 · 구이 밖에 두었다고 하셨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소의경 안에 이런 자찬의 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성인은 제종이 의지하는 바로 그 문을 남김없이 꺼내 놓으신다. 다음 제47장에서 그 문들을 법화경의 이금당 · 육난구이와 견주어 「달에 별을 나란히 놓은 것 같다」고 판정하시기 위해서다.
- ①밀엄경是くの如きの密厳経は一切経の中に勝れたり이와 같은 밀엄경은 일체경 가운데 뛰어나니라찬탄의 방식 · 근원(모든 경이 이 경에서 나왔다)
- ②대운경是の経は即是諸経の転輪聖王なり이 경은 곧 제경의 전륜성왕이니라찬탄의 방식 · 왕(불성 · 상주를 설하므로)
- ③육바라밀경総持門とは契経等の中に最も第一と為す총지문은 계경 등 가운데 가장 제일이니라찬탄의 방식 · 오미(다라니장 = 제호)홍법이 의지
- ④해심밀경無上無容にして是れ真の了義なり위가 없고 용납할 바가 없어 이것이 참된 요의이니라찬탄의 방식 · 삼시(제3시 = 요의)법상종이 의지
- ⑤대반야경一事として法性を出ずる者を見ず한 가지 일도 법성을 벗어나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찬탄의 방식 · 회입(모든 법이 반야로 돌아감)삼론종이 의지
- ⑥대일경秘密主云何なるか菩提・謂く実の如く自心を知る비밀주여 무엇이 보리인가, 실답게 자심을 아는 것이니라찬탄의 방식 · 자심 · 본불생진언종이 의지
- ⑦화엄경是の法を信ずるは為れ甚だ難し이 법을 믿는 것은 매우 어려우니라찬탄의 방식 · 난신화엄종이 의지
- ⑧열반경醍醐は最上なり제호가 가장 으뜸이니라찬탄의 방식 · 오미(대열반 = 제호)
여덟 경문을 하나씩 — 각 경은 무엇을 찬탄했는가
밀엄경 — 「모든 경이 이 경에서 나왔다」
대승밀엄경은 아뢰야식과 여래장을 「밀엄」의 경계로 설하는 경으로, 당대에 지바하라와 불공이 각각 번역했다. 이 경은 십지경 · 화엄경 · 대수긴나라왕소문경 · 신통변화경 · 승만경 등 여러 경이 모두 자기에게서 나왔다고 하며, 그러므로 일체경 가운데 뛰어나다고 한다. 근원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높이는 찬탄이다. 그러나 이 찬탄은 여기 열거된 대승경들을 상대로 한 것일 뿐, 일대 성교 전체, 특히 법화경을 상대로 한 것은 아니다.
대운경 — 「제경의 전륜성왕」
대운경은 열반경을 번역한 담무참이 번역한 경으로, 중생의 실성 · 불성 · 상주를 설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제경의 전륜성왕」이라 부른다. 전륜성왕은 세간의 왕 가운데 가장 높은 왕이다. 그러나 대성인이 제47장에서 「왕에 소왕 · 대왕이 있다」고 하시듯, 왕이라는 이름만으로는 그 왕이 어느 범위를 다스리는지 알 수 없다. 불성 · 상주를 설한다는 근거도 열반경 계통의 찬탄이므로, 다음의 열반경 문과 함께 가려야 한다.
육바라밀경 — 「다라니장은 제호」
육바라밀경의 인용은 이 장에서 가장 길다. 이 경은 과거 제불과 석존이 설한 팔만사천의 법온을 경장 · 율장 · 논장 · 반야장 · 다라니장의 다섯으로 나누고, 이것을 유 · 낙 · 생소 · 숙소 · 제호의 오미에 차례로 비긴다. 그리고 다섯째의 다라니장(총지문)을 제호라 하며, 그것은 앞의 네 장을 수지하지 못하는 유정이나 사중 · 팔중 · 오역 · 방법 · 일천제 등 중죄를 지은 유정을 위해 설한 것으로 능히 중죄를 없앤다고 한다.
이 경문은 일본 진언종에게 특히 중요하다. 홍법은 이 오장 · 오미설을 근거로 진언(다라니)을 제호에 두고, 법화경을 반야장 쪽, 곧 제4의 숙소미에 넣었다. 제47장에서 대성인이 「일본의 홍법대사가 이 경문에 미혹하여 법화경을 제4의 숙소미에 넣었다」고 정면으로 비판하시는 대목의 근거가 바로 이 인용이다. 또한 이 경은 천태대사보다 훨씬 뒤인 당 중엽에 번역되었다는 사실도 제47장의 논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해심밀경 — 「제3시의 법륜이야말로 참된 요의」
해심밀경은 현장이 번역한 5권본이 법상종의 소의경이다. 인용된 문은 무자성상품에서 승의생보살이 부처의 일대 설법을 세 시기로 정리하여 확인하는 대목이다. 제1시는 녹야원에서 성문승을 위해 사제를 설한 법륜으로 「유상 · 유용, 미요의」다. 제2시는 대승을 닦는 자를 위해 일체법 무자성 · 무생무멸 · 본래적정 · 자성열반을 「은밀의 상」으로 설한 법륜으로, 이 역시 「유상 · 유용, 미요의」다. 제3시는 일체승에 발취한 자를 위해 같은 이치를 「현료의 상」으로 설한 법륜이며, 이것만이 「무상 · 무용, 참된 요의」다.
이 문은 법화경의 「최위제일」과 매우 비슷해 보인다. 앞의 가르침을 미요의라 하고 지금의 가르침을 참된 요의라 하는 구조가 법화경의 「사십여 년 미현진실」 「세존법구후 요당설진실」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법상종이 법화경을 심밀경과 같은 제3시에 넣은 근거가 여기에 있다(제44장). 그러나 해심밀경의 제3시가 말하는 「일체승」은 삼승이 각각 다른 과보로 나아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법상종이 이 경에 의거해 「오성각별」을 세우고 무성의 중생은 성불하지 못한다고 한 것이 그 증거다. 이승작불도 구원실성도 없는 「요의」는 법화경의 요의와 이름만 같을 뿐이다.
대반야경 — 「한 가지 일도 법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반야경은 현장이 번역한 600권의 방대한 반야부 경전의 집성이다. 인용된 문은 세간 · 출세간의 모든 법과 세간의 모든 사업이 반야의 깊은 이취, 곧 법성에 회입하여 한 가지 일도 법성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법화경 방편품의 「제법실상」이나 법사공덕품의 「세간의 생업을 다스리는 일이 모두 실상과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와 비슷하게 들린다. 삼론종의 길장이 반야경과 법화경을 「명이체동」이라 한 것도 이런 문 때문이다. 그러나 반야경의 회입은 모든 것을 공의 이치로 돌리는 것이며, 그 반야경의 회좌에서 이승은 여전히 성불의 수기를 받지 못했다. 이 점은 상권 제14장의 「반야경 등의 이승 가책」에서 이미 밝혀졌다.
대일경 — 「실답게 자심을 아는 것이 보리」
대일경은 선무외와 일행이 번역한 진언종의 근본 소의경이다. 인용된 네 문은 모두 첫 품인 주심품에서 나온다. 무연승의 마음으로 법에 아성이 없음을 알고, 오온과 아뢰야를 관찰하여 자성이 환과 같음을 알며, 무아조차 버리고 심주가 자재하여 자심의 본불생을 깨닫고, 공성은 근과 경을 떠나 극무자성에 이르며, 마침내 「무엇이 보리인가. 실답게 자심을 아는 것이다」라고 한다. 진언종은 이 「여실지자심」을 법화경의 일념삼천과 같은 이치로 보아 「이동」을 주장했다.
그러나 대성인이 제41장에서 지적하셨듯이 대일경에는 이승작불 · 구원실성 · 일념삼천의 법문이 없다. 선무외는 천태의 「마하지관」을 보고 지혜를 얻어 대일경의 「심실상」 「아일체본초」의 문에 천태의 일념삼천을 훔쳐 넣었을 뿐이다. 자심을 안다는 말은 같아도, 그 자심에 십계가 서로 갖추어져 있다는 법문 없이는 일념삼천이 되지 않는다.
화엄경 — 「이 법을 믿는 것은 매우 어렵다」
화엄경의 문은 법화경의 육난구이와 가장 닮았다. 성문승을 구하는 자는 적고, 연각을 구하는 자는 더 적고, 대승을 구하는 자는 매우 드물지만, 대승을 구하는 것은 오히려 쉽고 이 법을 믿는 것이 매우 어렵다. 삼천대천세계를 머리에 이고 일 겁을 움직이지 않는 것도, 손바닥에 열 불찰을 얹고 허공에 일 겁을 머무는 것도 아직 어렵지 않으나, 이 법을 믿는 것은 매우 어렵다. 화엄종이 자기 경을 육난 안에 넣은 근거가 이것이다.
그러나 이 장의 흐름에서 보면 두 경문은 그 중심이 다르다. 화엄경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이 법을 믿는 것」 자체다. 법화경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부처의 멸후 악세 가운데서」 이 경을 설하고 지니는 것이다. 화엄경의 난신은 법의 깊이에 대한 찬탄이지만, 법화경의 육난은 멸후 · 말법의 홍통이라는 시간과 그 시간에 일어날 박해를 함께 내다본 명령이다. 그리고 화엄경의 회좌에서도 이승은 「귀머거리와 벙어리 같았다」고 하여 성불에서 제외되었다.
열반경 — 「제호는 최상」
마지막 열반경의 문은 대승방등경전이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지만 이 경에 견주면 백천만 배로도 비유할 수 없다고 하고, 이어 유에서 제호까지의 오미를 들어 부처로부터 십이부경 · 수다라 · 방등경 · 반야바라밀 · 대열반이 차례로 나온다고 하며 대열반을 제호, 곧 불성에 비긴다. 천태가 석존 일대를 오시로 나누고 오미에 배당한 근거가 바로 이 문이다.
이 문은 열반경을 법화경보다 위에 두는 근거로도 쓰일 수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열반경을 최상으로 본 남북의 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천태는 법화 · 열반을 똑같이 제호미의 법화열반시에 두면서도, 법화경은 일체 중생을 성불시켜 수확을 마친 「대수(大收)」의 가르침이요, 열반경은 그 뒤에 남은 이삭을 줍는 「군습(捃拾)」의 가르침이라 하여 법화경을 근본에 두었다. 열반경 스스로도 법화경 회좌에서 팔천 성문이 수기를 얻어 큰 열매를 이룬 것을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저장하여 더 할 일이 없는 것에 비긴다. 제호의 비유를 쓰는 경은 열반경과 육바라밀경 둘이지만, 둘의 제호는 그 뜻이 전혀 다르다. 이 차이를 가리는 것이 제47장의 「오유에 전유 · 분유」라는 잣대다.
비슷함과 같음은 다르다
여덟 경문을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제종이 왜 자기 경을 법화경과 같다고, 혹은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각 경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일체경 가운데 최상이라 했다. 근원(밀엄경), 왕(대운경), 제호(육바라밀경 · 열반경), 요의(해심밀경), 법성(대반야경), 자심(대일경), 난신(화엄경). 그 말들만 떼어 놓으면 법화경의 「이금당 최위제일」과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성인이 이 장의 첫머리에서 세우신 묘락의 석이 바로 이 구별의 열쇠다. 「설령 경이 있어 제경의 왕이라 하더라도 『이 · 금 · 당의 설 가운데 가장 제일이다』라고는 하지 않았다.」 다른 경의 찬탄은 그 경이 마주한 상대, 그 경이 설해진 자리 안에서의 찬탄, 곧 「당분(當分)」의 찬탄이다. 현대어역이 제47장에서 「이전 사십여 년의 경경에서 당분에 각각의 경을 찬탄한 문」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법화경의 「이금당」만이 일대의 모든 경, 이미 설한 경과 지금 설하는 경과 앞으로 설할 경 모두를 넘어선 자리에서 스스로를 제일이라 했다.
그리고 그 찬탄의 근거가 되는 내용이 다르다. 제11장 이래 「개목초」가 거듭 밝혀 온 대로, 법화경의 고유한 내용은 적문의 이승작불과 본문의 구원실성이며, 그 둘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십계호구 · 일념삼천이 성립한다. 여덟 경문은 어느 것도 이 두 가지를 설하지 않는다. 비슷한 말이 있어도 비슷한 법은 없다. 강의가 이 장의 제목을 「상사의 문을 회통하다」라 하고, 「이전경 자체에 득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강의는 이 장을 이렇게 본다. 이전의 경에도 성불득도가 가능한 것처럼 설한 가르침이 있으나, 그것은 법화경을 설하기 위한 전 단계로 설한 것이어서 이전경 자체에 득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법화경과 비슷한 문이 있어 거기서 그릇된 해석이 생기므로, 대성인은 그 상사의 문을 회통하기 위해 먼저 여덟 경의 문을 인용하셨다.
본문
此等の経文を法華経の已今当・六難・九易に相対すれば月に星をならべ九山に須弥を合せたるににたり、しかれども華厳宗の澄観・法相・三論・真言等の慈恩・嘉祥・弘法等の仏眼のごとくなる人・猶此の文にまどへり、 何に況や盲眼のごとくなる当世の学者等・勝劣を弁うべしや、黒白のごとく・あきらかに須弥・芥子のごとくなる勝劣なを・まどへり・いはんや虚空のごとくなる理に迷わざるべしや、 教の浅深をしらざれば理の浅深を弁うものなし巻をへだて文・前後すれば教門の色弁えがたければ文を出して愚者を扶けんとをもう、 王に小王・大王・一切に少分・全分・五乳に全喩・分喩を弁うべし、六波羅蜜経は有情の成仏あつて無性の成仏なし何に況や久遠実成をあかさず、 猶涅槃経の五味にをよばず何に況や法華経の迹門・本門にたいすべしや、而るに日本の弘法大師・此の経文にまどひ給いて法華経を第四の熟蘇味に入れ給えり、 第五の総持門の醍醐味すら涅槃経に及ばずいかにし給いけるやらん、而るを震旦の人師争つて醍醐を盗むと天台等を盗人とかき給へり惜い哉古賢醍醐を嘗めず等と自歎せられたり、 此等はさてをく我が一門の者のためにしるす他人は信ぜざれば逆縁なるべし、一渧をなめて大海のしををしり一華を見て春を推せよ、 万里をわたて宋に入らずとも三箇年を経て霊山にいたらずとも竜樹のごとく竜宮に入らずとも無著菩薩のごとく弥勒菩薩にあはずとも二所三会に値わずとも一代の勝劣はこれをしれるなるべし、 蛇は七日が内の洪水をしる竜の眷属なるゆへ烏は年中の吉凶をしれり過去に陰陽師なりしゆへ鳥はとぶ徳人にすぐれたり。 日蓮は諸経の勝劣をしること華厳の澄観・三論の嘉祥・法相の慈恩・真言の弘法にすぐれたり、 天台・伝教の跡をしのぶゆへなり、彼の人人は天台・伝教に帰せさせ給はずば謗法の失脱れさせ給うべしや、当世・日本国に第一に富める者は日蓮なるべし命は法華経にたてまつり名をば後代に留べし、 大海の主となれば諸の河神・皆したがう須弥山の王に諸の山神したがはざるべしや、法華経の六難九易を弁うれば一切経よまざるにしたがうべし。
이 경문들을 법화경의 이금당 · 육난 · 구이와 견주면 달에 별을 나란히 하고 구산(九山)에 수미산을 맞댄 것과 같으니라. 그러나 화엄종의 징관, 법상 · 삼론 · 진언 등의 자은 · 가상 · 홍법 등 불안(佛眼)과 같은 사람들도 오히려 이 문에 미혹하였느니라. 하물며 눈먼 것과 같은 당세의 학자들이 승렬을 분별할 수 있겠는가. 흑백처럼 분명하고 수미산과 겨자씨처럼 뚜렷한 승렬에도 오히려 미혹하였거늘, 하물며 허공과 같은 이치에 미혹하지 않겠는가. 교(敎)의 천심을 알지 못하면 이(理)의 천심을 분별하는 자는 없느니라. 권(卷)을 달리하고 문이 앞뒤로 떨어져 있으면 교문의 빛깔을 분별하기 어려우므로, 문을 내어 어리석은 자를 도우려 하느니라. 왕에는 소왕 · 대왕이 있고, 일체에는 소분 · 전분이 있으며, 오유(五乳)에는 전유(全喩) · 분유(分喩)가 있음을 분별해야 하느니라. 육바라밀경에는 유정의 성불은 있으나 무성의 성불은 없으니, 하물며 구원실성을 밝히지 않았느니라. 오히려 열반경의 오미에도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법화경의 적문 · 본문과 견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일본의 홍법대사는 이 경문에 미혹하시어 법화경을 제4의 숙소미에 넣으셨느니라. 제5의 총지문의 제호미조차 열반경에 미치지 못하거늘 어찌하신 것인가. 그런데도 「진단의 인사가 다투어 제호를 훔쳤다」고 천태 등을 도둑이라 쓰셨으며, 「애석하구나, 옛 현인은 제호를 맛보지 못하였다」 등이라 스스로 탄식하셨느니라. 이것들은 그만두고, 우리 일문의 사람을 위하여 적노라. 다른 사람은 믿지 않으니 역연(逆緣)이 되리라. 한 방울을 맛보고 큰 바다의 짠맛을 알며, 한 송이 꽃을 보고 봄을 헤아리라. 만 리를 건너 송에 들어가지 않아도, 삼 년을 걸려 영산에 이르지 않아도, 용수처럼 용궁에 들어가지 않아도, 무착보살처럼 미륵보살을 만나지 않아도, 이처삼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일대의 승렬은 이를 알 수 있느니라. 뱀은 이레 안의 홍수를 아니 용의 권속인 까닭이요, 까마귀는 한 해의 길흉을 아니 과거에 음양사였던 까닭이며, 새는 나는 덕이 사람보다 뛰어나니라. 일련은 제경의 승렬을 아는 것이 화엄의 징관 · 삼론의 가상 · 법상의 자은 · 진언의 홍법보다 뛰어나니라. 천태 · 전교의 자취를 따르는 까닭이니라. 저 사람들은 천태 · 전교에게 귀복하지 않으셨다면 방법의 허물을 벗어나실 수 있었겠는가. 당세 일본국에서 제일로 부유한 자는 일련이리라. 목숨은 법화경에 바치고 이름은 후대에 남기리라. 큰 바다의 주인이 되면 여러 하신(河神)이 모두 따르고, 수미산의 왕에게 여러 산신이 따르지 않겠는가. 법화경의 육난구이를 분별하면 일체경을 읽지 않아도 (일체경이) 따르리라.
어구 풀이
- 九山に須弥を合せたる구산에 수미를 맞대다
-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서 세계의 아래에는 풍륜 · 수륜 · 금륜의 삼륜이 있고, 맨 위 금륜 위에 아홉 산과 여덟 바다(구산팔해)가 있어 하나의 소세계를 이룬다. 수미산(梵 Sumeru, 묘고 · 안명이라 번역)은 그 한가운데 솟은 산으로 높이 팔만사천 유순이며, 일곱 향해와 일곱 금산이 번갈아 둘러싸고 그 밖에 짠 바다가 있어 염부제 등 사대주가 떠 있고 맨 바깥을 철위산이 두른다. 일곱 금산은 안쪽부터 지쌍산 · 지축산 · 담목산 · 선견산 · 마이산 · 장애산 · 지지산으로, 바깥으로 갈수록 높이가 절반씩 줄어 맨 바깥 지지산은 육백이십오 유순이다. 이전경과 법화경의 차이가 다른 산들과 수미산의 차이처럼 뚜렷하다는 비유다.
- 仏眼のごとくなる人불안과 같은 사람
- 세상에서 부처의 눈을 지닌 듯이 우러름을 받던 고승들. 대성인은 징관 · 자은 · 가상 · 홍법의 학식과 명망을 인정하시면서, 그런 이들조차 이 문에 미혹했다고 하신다.
- 教の浅深・理の浅深교의 천심 · 이의 천심
- 현대어역은 이를 「능전(能詮)의 교」와 「소전(所詮)의 이」로 풀이한다. 교는 이치를 나타내는 가르침(경문)이고, 이는 그 가르침이 나타내는 이치다. 교의 깊고 얕음을 알지 못하면 그 교가 나타내는 이치의 깊고 얕음도 알 수 없다.
- 王に小王・大王왕에 소왕 · 대왕
- 같은 「왕」이라도 작은 나라의 왕과 천하의 대왕이 있다. 여러 경이 스스로를 「왕」이라 하더라도 어느 범위의 왕인지를 가려야 한다는 잣대다.
- 一切に少分・全分일체에 소분 · 전분
- 같은 「일체」라는 말이라도 일부를 가리키는 일체(소분)와 전부를 가리키는 일체(전분)가 있다.
- 五乳に全喩・分喩오유에 전유 · 분유
- 유 · 낙 · 생소 · 숙소 · 제호의 오미 비유에도, 석존 일대의 경 전체에 배당한 비유(전유)와 한 경 안에서 그 경의 범위에 한정해 쓴 비유(분유)가 있다는 잣대다.
- 有情の成仏あつて無性の成仏なし유정의 성불은 있고 무성의 성불은 없다
- 유정은 범어 사트바(sattva)의 번역으로, 구마라집 등의 구역에서는 「중생」, 현장 등의 신역에서는 「유정」이라 했다. 무성은 무불성의 줄임말로, 법상종의 오성각별설에서 중생의 종교적 능력을 성문정성 · 연각정성 · 보살정성 · 부정성 · 무성의 다섯으로 나눈 것의 하나다. 무성은 삼승의 종자가 없어 영원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육바라밀경은 유정의 성불은 설하나 모든 유정이 성불하는 것은 아니며 무성의 자는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 第四の熟蘇味제4의 숙소미
- 오미 가운데 넷째. 홍법은 육바라밀경의 오장 · 오미설에 따라 법화경을 반야 쪽의 숙소미에 넣고, 진언(다라니)을 제호미에 두었다.
- 醍醐を盗む제호를 훔치다
- 홍법이 그의 저술에서 「진단(중국)의 인사들이 다투어 제호를 훔쳐 저마다 자종의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 것. 천태 등이 법화경을 제호라 한 것은 본래 진언의 제호를 훔친 것이라는 비난이다.
- 逆縁역연
- 법을 믿지 않고 오히려 비방함으로써 맺어지는 인연. 바로 믿어 맺는 순연(順緣)에 대비된다. 비방하더라도 법을 들은 인연이 남아 언젠가 성불의 길에 들게 된다는 것이 불법의 이해다.
- 万里をわたて宋に入らずとも만 리를 건너 송에 들어가지 않아도
- 대성인 당시 중국은 송대였다. 불도를 구하려고 굳이 만 리의 파도를 넘어 중국에 가지 않더라도, 라는 뜻이다.
- 三箇年を経て霊山にいたらずとも삼 년을 걸려 영산에 이르지 않아도
- 동진의 승려 법현이 예순이 넘은 나이에 법을 구하러 인도로 떠난 일을 가리킨다. 법현은 399년 장안을 떠나 전후 십오 년에 걸쳐 중앙아시아 · 인도 · 스리랑카 · 자바를 거쳐 돌아왔다.
- 竜樹のごとく竜宮に入らずとも용수처럼 용궁에 들어가지 않아도
- 용수가 불법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해 고뇌할 때 대룡보살이 그를 바다의 용궁으로 데려가 칠보의 함을 열고 대승경전을 주었다는 전승을 가리킨다(「용수보살전」).
- 無著菩薩のごとく弥勒菩薩にあはずとも무착보살처럼 미륵보살을 만나지 않아도
- 무착이 처음 소승을 배웠으나 얻는 바가 없다가, 뒤에 유식파의 개조인 미륵을 만나 대승을 배운 일을 가리킨다. 후세의 전설에서 이 미륵은 도솔천의 미륵보살과 동일시되었다.
- 蛇は七日が内の洪水をしる뱀은 이레 안의 홍수를 안다
- 뱀은 물가의 습지에 많이 살아 예로부터 물의 신의 모습 또는 그 사자로 여겨졌다. 대성인은 「소야입도전답서」에서도 같은 비유를 쓰셨다.
- 烏は年中の吉凶をしれり까마귀는 한 해의 길흉을 안다
- 까마귀는 온몸이 검은 깃털, 크고 음산한 울음소리, 날카로운 눈빛 때문에 예로부터 신의 뜻을 전하는 새로 여겨져 한 해의 길흉을 알린다고 했다.
- 河神하신
- 강을 다스리는 신으로 수신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하백(河伯)이라 하며, 『포박자』에는 강을 건너다 빠져 죽은 사람을 천제가 하백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달에 별, 구산에 수미 — 교를 모르면 이를 모른다
제46장에서 여덟 경문을 늘어놓으신 대성인은 이 장의 첫머리에서 곧바로 판정을 내리신다. 「이 경문들을 법화경의 이금당 · 육난 · 구이와 견주면 달에 별을 나란히 하고 구산에 수미산을 맞댄 것과 같다.」 별도 빛나지만 달과 나란히 두면 빛이 사라진다. 구산도 산이지만 수미산 곁에서는 언덕일 뿐이다. 여덟 경의 자찬은 저마다 빛나는 말이지만, 일대를 모두 상대한 「이금당」 곁에서는 그 빛을 잃는다.
그런데도 징관 · 자은 · 가상 · 홍법 같은 이들, 세상에서 「부처의 눈과 같다」고 우러름을 받던 이들이 이 문에 미혹했다. 하물며 그 눈이 없는 당세의 학자들이 승렬을 가릴 수 있겠는가. 강의는 여기서 대성인의 지적을 이렇게 정리한다. 제종의 원조들이 모두 경문에 미혹하여 경의 승렬천심을 알지 못하니, 오늘날 제종의 학자들이 교의 승렬천심을 알 리 없는 것은 당연하며, 여기에 불교의 혼란이 있고 불교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는 근본이 있다.
대성인은 미혹의 구조를 두 단계로 밝히신다. 「흑백처럼 분명하고 수미산과 겨자씨처럼 뚜렷한 승렬에도 오히려 미혹하였거늘, 하물며 허공과 같은 이치에 미혹하지 않겠는가.」 경문의 말, 곧 교(敎)의 승렬은 흑백처럼 눈에 보인다. 법화경이 「이금당 최위제일」이라 했고 다른 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경문을 펼치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교가 나타내는 이치(理)는 허공처럼 형체가 없다. 눈에 보이는 교의 승렬조차 잘못 본 사람이 형체 없는 이치의 승렬을 바르게 볼 수는 없다.
여기서 나온 말씀이 「교의 천심을 알지 못하면 이의 천심을 분별하는 자는 없다」이다. 이 한 구절은 진언의 「이동사승」, 화엄의 「소설 내지 이치는 같다」, 삼론의 「명이체동」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치는 같다」고 했다(제44장). 그러나 이치가 같은지 다른지는 그 이치를 나타내는 교의 깊이로만 알 수 있다. 이승작불도 구원실성도 설하지 않은 교가 그것을 설한 교와 같은 이치를 나타낼 수는 없다. 교의 차이를 무시하고 이치만 같다고 하는 것은 측량할 수 없는 허공을 두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과 같다.
대성인은 이어서 「권을 달리하고 문이 앞뒤로 떨어져 있으면 교문의 빛깔을 분별하기 어려우므로 문을 내어 어리석은 자를 도우려 한다」고 하신다. 법화경과 이전의 경은 권도 다르고 문도 흩어져 있어서 나란히 놓고 보지 않으면 비교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성인은 제46장에서 여러 경문을 한자리에 모으셨고, 이제 그것을 가리는 잣대를 내놓으신다.
세 가지 잣대 — 소왕과 대왕, 소분과 전분, 전유와 분유
- ①王に小王・大王왕에는 소왕 · 대왕이 있다예소왕대운경의 「제경의 전륜성왕」은 그 경이 상대한 범위 안의 왕대왕법화경은 일대 제경을 모두 상대한 왕
- ②一切に少分・全分일체에는 소분 · 전분이 있다예소분밀엄경 · 대반야경의 「일체」는 일부를 가리키는 일체전분법화경의 「이 · 금 · 당」은 일대 전부를 가리키는 일체
- ③五乳に全喩・分喩오유에는 전유 · 분유가 있다예분유육바라밀경의 오미는 그 경 안의 다섯 장에 배당한 비유전유열반경의 오미는 석존 일대의 경 전체에 배당한 비유
대성인이 내놓으신 잣대는 세 가지다.
첫째, 「왕에는 소왕 · 대왕이 있다.」 왕이라는 칭호는 같아도 작은 나라의 왕과 천하를 다스리는 대왕은 다르다. 대운경이 스스로를 「제경의 전륜성왕」이라 하고, 밀엄경이 「일체경 가운데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그 경이 마주한 범위 안에서의 왕이다. 강의는 이 잣대를 「법화경이야말로 대왕 가운데 대왕이라는 것은 불교의 승렬천심을 알면 당연히 이해될 것」이라고 풀이한다.
둘째, 「일체에는 소분 · 전분이 있다.」 「일체」라는 말도 일부를 가리킬 때가 있고 전부를 가리킬 때가 있다. 대반야경이 「한 가지 일도 법성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고 밀엄경이 「일체경 가운데 뛰어나다」고 할 때 그 「일체」는 그 경의 회좌에서 설해진 법, 또는 그 경이 견준 몇몇 경에 한정된다. 법화경의 「이 · 금 · 당」만이 이미 설한 경 · 지금 설하는 경 · 앞으로 설할 경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은 「전분」의 일체다.
셋째, 「오유에는 전유 · 분유가 있다.」 이것이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잣대다. 오미의 비유를 쓰는 경은 둘이다. 열반경은 부처로부터 십이부경 · 수다라 · 방등 · 반야 · 대열반이 차례로 나오는 것을 유에서 제호까지의 오미에 비겼다. 이것은 석존 일대의 가르침 전체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배당한 비유, 곧 「전유」다. 천태가 오시교판을 세운 근거가 이것이다. 반면 육바라밀경은 경 · 율 · 논 · 반야 · 다라니의 다섯 장을 오미에 비겼다. 이것은 일대의 시간적 순서와 상관없이 가르침의 종류를 다섯으로 나눈 것이며, 그 경 안의 범위에서만 통하는 비유, 곧 「분유」다. 같은 「제호」라는 말이라도 전유의 제호와 분유의 제호는 무게가 다르다.
육바라밀경의 한계
이 잣대로 대성인은 육바라밀경을 가리신다. 「육바라밀경에는 유정의 성불은 있으나 무성의 성불은 없으니, 하물며 구원실성을 밝히지 않았느니라.」
육바라밀경은 다라니장이 중죄를 지은 유정까지 단번에 해탈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어석이 풀이하듯 그것은 유정의 성불을 말할 뿐, 모든 유정이 성불한다는 것은 아니다. 법상종의 오성각별설에 따르면 중생은 성문정성 · 연각정성 · 보살정성 · 부정성 · 무성의 다섯 부류로 나뉘며, 무성의 중생은 삼승의 종자가 없어 영원히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다. 육바라밀경은 이 틀을 넘지 못한다. 이승작불, 곧 일체 중생 개성불도의 법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구원실성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오히려 열반경의 오미에도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법화경의 적문 · 본문과 견줄 수 있겠는가」 하신다. 열반경은 「일체 중생 실유불성」을 설하여 일천제까지 불성이 있다고 했으니, 무성의 성불이 없는 육바라밀경은 그 열반경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열반경은 앞서 본 대로 법화경의 「대수」 뒤에 이삭을 줍는 「군습」의 경이다. 육바라밀경을 법화경의 적문(이승작불)이나 본문(구원실성)과 견준다는 것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홍법의 「제4 숙소미」와 「제호를 훔쳤다」는 말
그런데 일본의 홍법대사는 바로 이 육바라밀경의 문에 미혹하여 법화경을 제4의 숙소미에 넣었다. 대성인은 「제5의 총지문의 제호미조차 열반경에 미치지 못하거늘 어찌하신 것인가」 하고 물으신다. 육바라밀경의 제호(다라니장)조차 열반경의 제호에 미치지 못하는데, 그 경의 숙소미에 법화경을 넣었으니 이중의 전도다.
홍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진단의 인사가 다투어 제호를 훔쳤다」고 써서 천태 등을 도둑이라 했고, 「애석하구나, 옛 현인은 제호를 맛보지 못하였다」고 하여 자기만이 참된 제호를 맛보았다는 듯이 스스로 탄식했다.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이 홍법의 말을 다시 인용하시고, 그 말이 얼마나 근거 없는지를 연대로 밝히셨다.
問うて云く弘法大師の十住心論・秘蔵宝鑰・二教論に云く「此くの如き乗乗自乗に名を得れども後に望めば戯論と作す」又云く「無明の辺域にして明の分位に非ず」又云く「第四熟蘇味なり」又云く「震旦の人師等諍つて醍醐を盗んで各自宗に名く」等云云
물어 이르되, 홍법대사의 『십주심론』 · 『비장보약』 · 『이교론』에 이르기를 「이와 같은 승승(乘乘)은 저마다 승의 이름을 얻었으나 뒤의 것에 견주면 희론이 된다」, 또 「무명의 변역이요 명(明)의 분위가 아니다」, 또 「제4의 숙소미이다」, 또 「진단의 인사들이 다투어 제호를 훔쳐 저마다 자종의 이름으로 삼았다」 등이라 하였느니라.
法華経を醍醐味と称することは陳隋の代なり六波羅蜜経は唐の半に般若三蔵・此れをわたす、六波羅蜜経の醍醐は陳隋の世にはわたりてあらばこそ天台大師は真言の醍醐をば盗ませ給はめ
법화경을 제호미라 칭한 것은 진 · 수의 시대요, 육바라밀경은 당의 중엽에 반야삼장이 이를 전하였느니라. 육바라밀경의 제호가 진 · 수의 시대에 전해져 있었다면야 천태대사가 진언의 제호를 훔치셨다 하겠지만.
천태대사(538~597)가 법화경을 제호라 판정한 것은 진 · 수의 시대이고, 육바라밀경은 그로부터 이백 년 가까이 지난 당 중엽에 반야삼장이 번역했다. 천태가 살아 있을 때 중국에 없던 경의 제호를 어떻게 훔칠 수 있는가. 대성인은 같은 대목에서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드신다. 일본 법상종의 득일(도쿠이치)이 「천태대사는 심밀경의 삼시교를 깨뜨렸으니 세 치 혀로 다섯 자 몸을 끊는 격이다」라고 천태를 헐뜯자, 전교대사가 「심밀경은 당 초에 현장이 전한 것이요 천태는 진 · 수의 사람이니, 천태가 입멸한 뒤 여러 해가 지나서야 심밀경이 전해졌다. 죽은 뒤에 전해진 경을 어찌 깨뜨릴 수 있겠는가」 하고 따져 득일이 대답하지 못했다는 일이다. 홍법의 「도둑」 비난은 이 득일의 비난보다 더 심한 억지다.
- ①6세기 후반(진 · 수)천태대사(538~597), 열반경의 오미를 근거로 법화경을 제호로 판정
- ②7세기 중엽(당 초)현장, 해심밀경을 번역해 전함 → 법상종 삼시교판의 근거→ ④
- ③8세기 후반(당 중엽)반야삼장, 육바라밀경을 번역 — 다라니장 = 제호
- ④9세기 초(일본)득일 「천태가 심밀경의 삼시교를 깨뜨렸다」 ↔ 전교 「천태 입멸 뒤에 전해진 경이다」← ②
- ⑤9세기 전반(일본)홍법, 『십주심론』 · 『비장보약』 · 『이교론』에서 법화경 = 제4 숙소미, 「진단의 인사가 제호를 훔쳤다」
게다가 법화경을 제호라 한 것은 천태 개인의 사사로운 말이 아니다. 열반경 자체가 오미의 비유를 설했고, 천태는 그 경문에 근거해 일대를 오시로 나누었을 뿐이다. 홍법의 비난은 결국 천태가 아니라 열반경을 설한 부처에게 향한 것이 된다. 「선시초」의 같은 대목에서 대성인은 홍법이 천태뿐 아니라 화엄의 법장, 삼론의 가상, 법상의 현장, 그리고 후한 이래 중국의 모든 삼장 · 인사를 「도둑」이라는 한마디로 묶어 버렸다고 지적하신다.
「우리 일문을 위하여 적노라」 — 한 방울과 한 송이
여기까지 제종의 오독을 가리신 대성인은 「이것들은 그만두고, 우리 일문의 사람을 위하여 적노라」 하고 말의 방향을 돌리신다. 다른 사람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고 비방하더라도 그것이 법과의 인연, 곧 역연이 된다. 이 글의 독자는 처음부터 대성인의 문하이며, 제44장의 「도심 있는 자를 위해 적어 두어 보이리라」가 여기서 「우리 일문을 위하여」로 구체화된다. 강의는 이 대목을 대성인의 실로 위대한 확신을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 몸이 저절로 다잡아지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한 방울을 맛보고 큰 바다의 짠맛을 알며, 한 송이 꽃을 보고 봄을 헤아리라.」 바닷물을 다 마셔 보아야 짠 줄 아는 것이 아니고, 모든 꽃이 피어야 봄인 줄 아는 것이 아니다. 법화경의 이금당 · 육난구이라는 한 방울, 한 송이를 바르게 알면 일대의 승렬은 저절로 알 수 있다.
그래서 대성인은 다섯 가지 「~하지 않아도」를 늘어놓으신다. 만 리의 바다를 건너 송에 들어가지 않아도 — 대성인 당시 일본의 많은 승려가 법을 구해 송으로 건너갔다. 삼 년을 걸려 영산에 이르지 않아도 — 동진의 법현은 예순이 넘어 장안을 떠나 인도의 영취산까지 갔다. 용수처럼 용궁에 들어가지 않아도 — 용수는 용궁에서 대승경전을 얻었다고 전한다. 어석은 「용수보살전」의 그 대목을 이렇게 전한다.
大竜は菩薩の、その是の如くなるを見、惜んで之を愍み、即ち之を接して海に入り、宮殿の中に於て、七宝の蔵を開き、七宝の華函を発き、諸の方等深奥の経典、無量の妙法を以て之に授け
대룡은 보살이 그러함을 보고 아깝게 여기고 가엾이 여겨, 곧 그를 맞아 바다에 들어가 궁전 가운데서 칠보의 창고를 열고 칠보의 꽃 상자를 열어, 여러 방등의 깊고 오묘한 경전과 무량한 묘법을 그에게 주었다.
무착보살처럼 미륵보살을 만나지 않아도 — 무착은 미륵에게서 유식의 대승을 배웠다고 전한다. 이처삼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 법화경이 설해진 바로 그 자리에 있지 않아도. 이 다섯은 불교사에서 「법을 얻는 길」로 존경받아 온 모든 방식이다. 그 어느 것도 거치지 않고도 대성인은 일대의 승렬을 아신다고 하신다. 강의는 이 대목에서 대성인이 「일대 불법의 승렬을 모두 알고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어지는 뱀 · 까마귀 · 새의 비유는 그 앎이 어디서 오는지를 보여 준다. 뱀은 용의 권속이라 이레 안의 홍수를 알고, 까마귀는 과거세에 음양사였기에 한 해의 길흉을 알며, 새는 나는 덕이 사람보다 뛰어나다. 畜生조차 저마다의 까닭이 있어 사람이 모르는 것을 안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 이 비유를 자신에 대한 비방에 대한 답으로 쓰셨다.
烏と申す鳥は無下のげす鳥なれども鷲鵰の知らざる年中の吉凶を知れり、蛇と申す虫は竜象に及ばずとも七日の間の洪水を知るぞかし、設い竜樹天台の知り給はざる法門なりとも経文顕然ならばなにをか疑はせ給うべき
까마귀라는 새는 하찮은 새이지만 독수리 · 수리가 모르는 한 해의 길흉을 알고, 뱀이라는 벌레는 용과 코끼리에 미치지 못하나 이레 사이의 홍수를 아느니라. 설령 용수 · 천태가 알지 못하신 법문이라 하더라도 경문이 분명하다면 무엇을 의심하시겠는가.
신분이나 학문의 권위가 아니라 「경문이 분명하다면」이 기준이다. 대성인 자신은 「천한 몸」이라 업신여김을 받았지만, 경문에 의지하는 한 고승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제45장의 「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를 대성인 자신에게 적용한 모습이다.
「일련은 제경의 승렬을 아는 데 뛰어나다」 — 당세 제일의 부자
이 장의 마지막 단락에서 대성인은 마침내 정면으로 선언하신다. 「일련은 제경의 승렬을 아는 것이 화엄의 징관 · 삼론의 가상 · 법상의 자은 · 진언의 홍법보다 뛰어나니라. 천태 · 전교의 자취를 따르는 까닭이니라.」
그 근거는 대성인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천태 · 전교의 자취를 따르는」 데 있다. 천태와 전교는 법화경을 경문 그대로 일대 제경의 정점에 둔 정통이다. 그 자취를 따르는 이는 경문을 따르는 이이며, 그러므로 자기 종파의 조사를 따르는 이들보다 바르게 볼 수 있다. 현대어역은 이 대목을 더 깊이 읽어, 석존 출세의 본회인 법화경을 부처가 설한 대로 바르게 해석하고 홍통한 천태 · 전교의 자취를 그대로 이어, 말법에 일련이 본불로서 출현하여 삼대비법을 건립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저 사람들은 천태 · 전교에게 귀복하지 않으셨다면 방법의 허물을 벗어나실 수 있었겠는가.」 현대어역은 이를 「저 징관 등은 천태 · 전교에게 귀복하지 않았다면 방법의 죄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풀이한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들에서 삼론의 가상이 천태대사에게 귀복하여 섬겼다는 전승을 드시기도 했다. 승렬을 그르친 이들이 그 허물을 벗어나는 길은 결국 천태 · 전교, 곧 법화경으로 돌아오는 것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当世・日本国に第一に富める者は日蓮なるべし命は法華経にたてまつり名をば後代に留べし
당세 일본국에서 제일로 부유한 자는 일련이리라. 목숨은 법화경에 바치고 이름은 후대에 남기리라.
유배지 쓰카하라의 무너진 삼매당에서, 눈보라 속에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한 처지에서 하신 말씀이다. 강의는 이 말씀을 「참으로 그러하리라, 당연한 일」로 받으며 「결코 자랑이 아니다」라고 한다. 강의에 따르면 대성인은 유이가하마 근처의 목의 자리(다쓰노구치)에서 무작삼신 · 자수용보신을 증득하셨고, 그 내증은 수량품 문저 하종의 사행(事行)의 일념삼천인 남묘호렌게쿄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수량품 문저 본인묘의 교주이시며, 일체경을 읽지 않아도 일체경의 불보살이 대성인을 따르고 일체경의 공덕이 대성인에게 구름처럼 모여든다. 「제일로 부유한 자」란 이 공덕의 부(富)를 말한다.
강의는 이 장의 선언들 — 「일대의 승렬을 안다」 「징관 · 가상 · 자은 · 홍법보다 뛰어나다」 — 을 두고, 본불이 아니라면 어찌 이렇게 단언할 수 있겠느냐고 하며, 그 마음의 장엄함이 광명처럼 빛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징관 · 가상 · 자은 · 홍법이 일대의 불법을 모르는 자라고 대성인은 단언하셨으며, 그 확신 없이는 이 말씀을 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비유가 이를 확인한다. 「큰 바다의 주인이 되면 여러 하신이 모두 따르고, 수미산의 왕에게 여러 산신이 따르지 않겠는가.」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 듯, 모든 산이 수미산을 중심으로 둘러서 있듯, 일대 제경의 공덕은 법화경으로 모인다. 그러므로 「법화경의 육난구이를 분별하면 일체경을 읽지 않아도 따르리라.」 현대어역은 「일체 경교의 불보살이 모두 이 행자에게 따르리라」고 풀이한다. 제42장에서 「이전경의 불보살도 법화경의 행자를 지켜야 한다」고 하신 논의가 여기서 「일체경이 법화경의 행자에게 따른다」는 결론으로 되돌아온다.
강의는 이 장에서 대성인의 「실로 위대한 확신」을 거듭 읽는다. 제종의 원조가 모두 경의 승렬천심을 몰랐으니 오늘의 학자는 더욱 모르며, 「왕에 대왕 · 소왕이 있듯 법화경이야말로 대왕 가운데 대왕」이다. 그리고 「당세 일본국 제일의 부자는 일련」이라는 말씀은 자랑이 아니라, 다쓰노구치에서 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을 증득하시고 문저 하종의 남묘호렌게쿄를 내증으로 하는 본인묘의 교주이시기에 일체경의 불보살이 따르고 일체경의 공덕이 모여든다는 뜻이라는 것이 강의의 관점이다.
본문
宝塔品の三箇の勅宣の上に提婆品に二箇の諫暁あり、提婆達多は一闡提なり天王如来と記せらる、涅槃経四十巻の現証は此の品にあり、 善星・阿闍世等の無量の五逆・謗法の者の一をあげ頭をあげ万ををさめ枝をしたがふ、一切の五逆・七逆・謗法・闡提・天王如来にあらはれ了んぬ毒薬変じて甘露となる衆味にすぐれたり、 竜女が成仏此れ一人にはあらず一切の女人の成仏をあらはす、法華已前の諸の小乗教には女人の成仏をゆるさず、諸の大乗経には成仏・往生をゆるすやうなれども或は改転の成仏にして一念三千の成仏にあらざれば有名無実の成仏往生なり、 挙一例諸と申して竜女が成仏は末代の女人の成仏往生の道をふみあけたるなるべし、儒家の孝養は今生にかぎる未来の父母を扶けざれば外家の聖賢は有名無実なり、 外道は過未をしれども父母を扶くる道なし仏道こそ父母の後世を扶くれば聖賢の名はあるべけれ、しかれども法華経已前等の大小乗の経宗は自身の得道猶かなひがたし何に況や父母をや但文のみあつて義なし、 今法華経の時こそ女人成仏の時・悲母の成仏も顕われ・達多の悪人成仏の時・慈父の成仏も顕わるれ、此の経は内典の孝経なり、 二箇のいさめ了んぬ。
보탑품의 세 칙선 위에 제바품에 두 간효가 있느니라. 제바달다는 일천제(一闡提)이나 천왕여래(天王如來)라 수기되었느니라. 열반경 사십 권의 현증은 이 품에 있느니라. 선성 · 아사세 등 무량한 오역 · 방법의 자 가운데 하나를 들어 머리를 들고 만을 거두며 가지를 따르게 한 것이니라. 일체의 오역 · 칠역 · 방법 · 천제가 천왕여래에 나타나 마쳤느니라. 독약이 변하여 감로가 되니 뭇 맛보다 뛰어나니라. 용녀의 성불은 이 한 사람만이 아니라 일체 여인의 성불을 나타내느니라. 법화 이전의 여러 소승교에는 여인의 성불을 허락하지 않았고, 여러 대승경에는 성불 · 왕생을 허락하는 듯하나 혹은 개전(改轉)의 성불이어서 일념삼천의 성불이 아니므로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성불 · 왕생이니라. 거일예제(擧一例諸)라 하여, 용녀의 성불은 말대 여인의 성불 · 왕생의 길을 밟아 연 것이니라. 유가의 효양은 금생에 한정되느니라. 미래의 부모를 돕지 못하니 외가의 성현은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느니라. 외도는 과거 · 미래를 알지만 부모를 돕는 길이 없느니라. 불도야말로 부모의 후세를 돕나니, 그러므로 성현의 이름이 있어야 하느니라. 그러나 법화경 이전 등의 대소승의 경 · 종은 자신의 득도조차 이루기 어려우니 하물며 부모이겠는가. 다만 글만 있고 뜻이 없느니라. 이제 법화경의 때야말로 여인성불의 때에 비모(悲母)의 성불도 나타나고, 제바달다의 악인성불의 때에 자부(慈父)의 성불도 나타나느니라. 이 경은 내전(內典)의 효경이니라. 두 간효를 마치노라.
어구 풀이
- 二箇の諫暁이개의 간효
- 제바달다품 제12에 설해진 두 가지 일, 곧 제바달다의 성불(악인성불)과 용녀의 성불(여인성불)을 대성인이 부처의 「간효」로 받아 부르신 말이다. 간효는 간곡히 타일러 깨우친다는 뜻이다. 제43장의 보탑품 세 칙선과 합쳐 「오개의 봉조」가 되며, 「여인성불초」에서도 「이 제바품에 두 간효가 있다」고 하셨다.
- 一闡提일천제
- 범어 잇찬티카(icchantika)의 음사로 단선근(斷善根) · 신불구족(信不具足)이라 번역한다. 정법을 믿지 않고 비방하여 성불의 인(因)인 선근을 끊은 사람이다. 열반경은 처음에 일천제는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다가, 뒤에 「일체 중생 실유불성」의 입장에서 일천제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설한다.
- 天王如来천왕여래
- 제바달다가 미래에 성불할 때의 이름. 제바달다품에서 석존은 과거세에 자신에게 법화경을 가르친 아사선인(阿私仙人)이 바로 제바달다였다고 밝히고, 그가 무량겁 뒤에 천왕여래가 되리라고 수기한다. 악인성불을 밝힌 문이다.
- 涅槃経四十巻の現証열반경 사십 권의 현증
-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 40권(북본)은 「일체 중생 실유불성」을 설하여 일천제의 성불까지 이론으로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일천제가 성불한 실례는 법화경 제바품의 천왕여래 수기에 있다는 뜻이다. 이치는 열반경에, 그 이치의 실증은 법화경에 있다.
- 善星선성
- 선성비구. 석존이 출가하기 전에 둔 아들이라고도 한다. 열반경 권33에 따르면 출가하여 십이부경을 수지하고 사선정을 얻었으나, 그것을 참된 열반이라 여기고 고득외도에 가까이하여 불법을 부정하는 악견을 일으켰으며, 석존에게 악심을 품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 阿闍世아사세
- 중인도 마가다국의 왕. 제바달다에게 꾀어 부왕 빈바사라를 가두어 죽게 하고 어머니 위제희까지 해치려 했다. 뒤에 몸에 악창이 나 괴로워하다가 기바의 권유로 석존에게 귀의하여 병이 낫고, 석존 멸후에는 경전 결집을 후원했다고 전한다.
- 五逆・七逆오역 · 칠역
- 오역은 살부 · 살모 · 살아라한 · 파화합승 · 출불신혈의 다섯 가지 무거운 죄다. 칠역은 『범망경』에 설해진 일곱 가지 무거운 죄로, 출불신혈 · 살부 · 살모 · 살화상 · 살아사리 · 파갈마전법륜승 · 살성인이다. 오역의 살아라한을 칠역에서는 살화상 · 살아사리 · 살성인으로 나누었고, 파화합승은 파갈마전법륜승에 해당한다. 주로 스승을 해치는 큰 죄를 자세히 한 것이다.
- 頭をあげ万ををさめ枝をしたがふ머리를 들어 만을 거두고 가지를 따르게 한다
- 그물의 벼리를 들면 모든 그물코가 따라 올라오고, 나무의 줄기를 들면 가지가 따라오듯, 가장 무거운 죄인 한 사람의 성불을 밝힘으로써 같은 부류의 모든 악인의 성불을 거두어 밝혔다는 뜻이다.
- 毒薬変じて甘露となる독약이 변하여 감로가 된다
- 감로는 하늘의 불사약이다. 성불의 길을 가장 멀리한 악인이 법화경의 힘으로 성불하는 것을, 독이 그대로 최상의 약으로 바뀌는 데 비긴 말이다. 법화경의 묘한 공능을 보인다.
- 竜女용녀
- 바다 속 용궁에 사는 사갈라용왕의 딸로, 여덟 살의 뱀 몸을 한 축생이다. 제바달다품에서 문수사리보살이 법화경을 설하는 것을 듣고 발심하여 불퇴전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지적보살과 사리불 등이 그 성불을 믿지 않자 「나는 대승의 가르침을 펴서 괴로운 중생을 건지리라」고 말하고, 석존에게 보주를 바친 뒤 순식간에 성불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체 여인성불의 본보기이자 즉신성불의 표현이다.
- 改転の成仏개전의 성불
- 역겁수행 속에서 몸을 바꾸어 다시 태어나 성불하는 것. 이 한 생에 그 몸 그대로 성불하는 일생성불 · 즉신성불에 대비되는 말이다. 이전의 대승경이 여인은 여인의 몸을 고쳐 남자가 된 뒤에 성불한다고 설하는 것이 그 전형이다.
- 一念三千の成仏일념삼천의 성불
- 한 생명에 십계 · 십여시 · 삼세간, 곧 삼천이 갖추어져 있다는 법리에 바탕한 성불. 구계의 몸을 버리지 않고 그 몸 그대로 불계를 나타내므로 즉신성불이 된다.
- 挙一例諸거일예제
- 하나를 들어 나머지 모두에 예로 삼는다는 뜻. 용녀 한 사람의 성불이라는 사실로 일체 여인성불의 방정식을 삼으셨다는 것이다.
- 外家の聖賢외가의 성현
- 불교 밖의 가르침, 여기서는 유가의 성인 · 현인을 가리킨다. 제2 · 3장에서 대성인은 삼황오제 · 공자 등을 「과거 · 미래를 알지 못하므로 부모 · 주군 · 스승의 후세를 돕지 못한다」고 하셨다.
- 孝経효경
- 중국 십삼경의 하나. 효, 곧 자식이 어버이를 공경하고 섬기는 도리를 기록한 책으로,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의 문인이 엮었다고 전한다. 1권. 대성인은 법화경을 이에 견주어 「내전의 효경」이라 하셨다.
제바달다품의 자리 — 보탑품에 이어지는 두 간효
제48장은 「보탑품의 세 칙선 위에 제바품에 두 간효가 있다」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제43장 끝에서 「제4 · 제5의 두 간효는 제바품에 있으니 아래에 쓰리라」 하고 예고하신 것이, 제44~47장의 긴 승렬 판정을 거쳐 여기서 이루어진다. 강의는 이 장을 「이개의 간효를 인용하여 일대 제경의 성불 · 불성불을 판정하는」 장이라 규정한다. 보탑품의 세 칙선이 「누가 멸후에 이 경을 넓히겠는가」라는 명령이었다면, 제바품의 두 간효는 「이 경이 아니면 누구도 성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그 명령의 까닭을 깨우치는 것이다.
제바달다품 제12는 견보탑품 제11 바로 뒤에 놓여 있으며,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전반은 석존이 과거세에 국왕으로서 법을 구하던 이야기다. 왕은 위없는 법을 구해 왕위를 버리고, 「묘법연화경을 지닌 이가 있으니 나를 섬기면 설해 주리라」는 아사선인에게 몸을 맡겨 과일을 따고 물을 긷고 땔감을 줍고 밥을 지으며, 자기 몸을 평상 삼아 선인을 앉히기까지 하며 천 년을 섬겼다. 석존은 그때의 왕이 자신이요 그 선인이 지금의 제바달다라고 밝히며, 「제바달다라는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육바라밀과 삼십이상 등을 갖추어 정각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제바달다가 무량겁 뒤에 천왕여래가 되어 천도(天道)라는 나라에서 법을 설하리라고 수기한다. 후반은 견보탑품의 장면을 잇는다. 다보여래를 모시고 온 지적보살이 본토로 돌아가려 하자 석존은 문수사리를 만나 보라고 하고, 바다의 사갈라용궁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문수가 돌아와 용녀의 성불을 이야기하며, 이를 의심하는 지적과 사리불 앞에서 용녀가 실제로 성불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성인은 「여인성불초」에서 이 품의 두 부분을 천태의 해석에 따라 이렇게 정리하셨다.
此の提婆品に二箇の諌暁あり所謂達多の弘経釈尊の成道を明し又文殊の通経竜女の作仏を説く
이 제바품에 두 간효가 있으니, 이른바 달다의 홍경으로 석존의 성도를 밝히고, 또 문수의 통경으로 용녀의 작불을 설하느니라.
「달다의 홍경」이란 제바달다가 아사선인으로서 과거세의 석존에게 법화경을 설한 일이며, 「문수의 통경」이란 문수가 용궁에서 법화경을 넓힌 일이다. 두 이야기는 모두 법화경을 넓히는 일, 곧 홍경과 관련되어 있다. 견보탑품에서 삼불이 「누가 이 경을 넓히겠는가」라고 물은 바로 뒤에, 과거에 이 경을 넓혀 석존을 성불시킨 이가 다름 아닌 제바달다였고, 지금 바다 속에서 이 경을 넓혀 용녀를 성불시킨 이가 문수였다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 흐름에서 보면 두 성불은 단지 기이한 일화가 아니라 멸후 홍경을 권하는 간곡한 깨우침, 곧 「간효」가 된다.
제바달다품은 성립과 전래에 사정이 있는 품이다. 「여인성불초」는 이 품이 한때 장안의 궁에 따로 남겨져 스물일곱 품의 경만 세상에 유통되다가, 뒤에 이 품이 법화경에 없음을 밝힌 사람이 있어 장안에서 찾아내어 지금의 스물여덟 품이 되었다는 전승을 전한다. 문헌학 쪽에서도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406년)은 처음에 이 품을 따로 두지 않았고, 남제 때 따로 번역된 제바달다품이 뒤에 편입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축법호가 번역한 『정법화경』과 현존 범어 사본에서는 제바달다와 용녀의 이야기가 견보탑품에 해당하는 품 안에 이어져 있다.
이 품은 앞의 제37장에서도 한 번 등장했다. 대성인은 거기서 『관무량수경』의 위제희 부인이 아들 아사세의 악행 앞에서 「세존께서는 또 무슨 인연으로 제바달다와 권속이 되셨습니까」라고 물었으나 부처가 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시고,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제바품에 있다고 하셨다.
されば観経を読誦せん人法華経の提婆品へ入らずばいたづらごとなるべし
그러므로 관경을 독송하는 사람은 법화경의 제바품에 들어가지 않으면 헛일이 되리라.
부처가 왜 원적과 함께 태어났는가 하는 물음은 이전의 경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제바달다가 실은 과거세의 스승이요 선지식이었으며 미래에 천왕여래가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뒤에 펼쳐지는 수량품의 구원실성이 밝혀질 때 비로소 풀린다. 제48장은 제37장에서 남겨 둔 이 물음을 「성불 · 불성불」의 판정이라는 큰 틀 안에서 다시 거두는 장이기도 하다.
제바달다의 천왕여래 — 일천제의 성불
강의는 이 장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극악인인 제바달다와 축생의 몸인 여인 용녀의 성불은 일대의 제경에 전혀 그 유례가 없다.」 두 사람은 이전의 경이 성불에서 가장 먼저 제외한 두 부류, 곧 악인과 여인을 대표한다. 대성인은 「법화초심성불초」에서 이 사정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仏世に出でさせ給いて四十余年の間多くの法を説き給いしかども二乗と悪人と女人とをば簡ひはてられて成仏すべしとは一言も仰せられざりしに此の経にこそ敗種の二乗も三逆の調達も五障の女人も仏になるとは説き給い候つれ
부처가 세상에 나오시어 사십여 년 동안 많은 법을 설하셨으나 이승과 악인과 여인은 가려 버리시어 성불하리라고는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이 경에서야말로 썩은 종자 같은 이승도, 삼역죄의 조달(제바달다)도, 오장의 여인도 부처가 된다고 설하셨느니라.
이승작불은 이미 제2편(제11~17장)에서 다루어졌다. 남은 두 부류가 제바품에서 성불한다. 그러므로 제바품의 두 간효는 적문의 이승작불과 함께 「십계 모두의 성불」이라는 법화경 고유의 내용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다.
제바달다는 어떤 사람인가
제바달다는 석존의 사촌으로, 아난의 형이다. 출가하여 석존의 제자가 되었으나 교단의 주도권을 탐내어 석존에게 반역했다. 대성인은 「주사친어서」에서 그의 생애를 이렇게 요약하셨다.
仏は一閻浮提第一の道心者にてましまししに怨をなして我は又閻浮提第一の邪見放逸の者とならんと誓つて万の悪人を語いて仏に怨をなして三逆罪を作つて現身に大地破れて無間大城に堕ちて候いしを天王如来と申す記別を授けらるる品にて候
부처는 일염부제 제일의 도심 있는 분이셨는데, (제바달다는) 원한을 품고 「나는 또 염부제 제일의 사견방일한 자가 되리라」 맹세하여 온갖 악인을 꾀어 부처에게 원한을 품고 삼역죄를 지어 산 몸으로 대지가 갈라져 무간대성에 떨어졌거늘, (그에게) 천왕여래라는 기별(記別)을 주신 품이옵니다.
삼역죄란 부처의 몸에 피를 낸 것(큰 돌을 굴려 석존의 발가락을 다치게 함), 화합승을 깨뜨린 것(오백 비구를 이끌고 교단을 나감), 아라한을 죽인 것(연화색 비구니를 때려 죽임)이다. 그는 아사세 왕자를 꾀어 부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게 했고, 아사세와 함께 술 취한 코끼리를 풀어 석존을 해치려 했다고도 전한다. 「개목초」 상권 제30장에서 대성인은 석존이 겪은 「구횡의 대난」을 헤아리며 「제바가 큰 돌을 날린 일」 「화색비구니가 제바에게 살해된 일」을 드신 바 있다.
本文이 제바달다를 「일천제」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단지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 부처를 직접 해치고 교단을 깨뜨림으로써 성불의 인이 되는 선근 자체를 끊은 사람이다. 강의는 그를 「석존 일대에 걸친 방법의 사람으로서 일체 세간의 모든 선을 끊었다」고 한다. 이전의 경에서 그런 사람의 성불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 그가 법화경에서 천왕여래의 수기를 받았다.
열반경 사십 권의 현증
本文은 이어 「열반경 사십 권의 현증은 이 품에 있다」고 하신다. 열반경은 법화경 뒤에 설해진 경으로, 「일체 중생 실유불성」을 설하여 일천제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밝힌 점에서 이론상으로는 일천제 성불의 경이다. 그러나 열반경 자체에는 일천제가 실제로 성불했다는 실례가 없다. 현대어역은 이 대목을 「열반경 사십 권에는 일체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고 설하고 일천제의 성불을 설하지만, 그 현증은 법화경 제바품에 보인 대로다」라고 풀이한다.
이것은 제46장에서 본 법화경과 열반경의 관계와 짝을 이룬다. 열반경은 제호의 비유를 쓰고 「일체 중생 실유불성」을 설하므로 법화경보다 뛰어나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천태가 법화경을 「대수」, 열반경을 「군습」이라 한 것처럼, 열반경이 이론으로 설한 것은 이미 법화경에서 실제로 이루어졌다. 이치를 말하는 경보다 그 이치가 실제로 증명된 경이 근본이다. 「현증(現證)」이라는 말에는 그런 무게가 있다.
한 사람을 들어 만을 거두다
「선성 · 아사세 등 무량한 오역 · 방법의 자 가운데 하나를 들어 머리를 들고 만을 거두며 가지를 따르게 한 것이다.」 석존 재세에는 제바달다 말고도 수많은 악인이 있었다. 석존의 아들이라고도 하는 선성비구는 악견을 일으켜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고, 아사세왕은 아버지를 죽였다. 그 무수한 오역 · 방법의 무리 가운데 대성인은 가장 무거운 한 사람, 제바달다를 드신다. 그물의 벼리를 들면 그물코가 모두 따라 올라오듯, 가장 무거운 죄인의 성불이 밝혀지면 그보다 가벼운 모든 악인의 성불은 저절로 밝혀진다.
그래서 「일체의 오역 · 칠역 · 방법 · 천제가 천왕여래에 나타나 마쳤다」고 하신다. 오역은 살부 · 살모 · 살아라한 · 파화합승 · 출불신혈이고, 『범망경』의 칠역은 여기에 스승을 해치는 죄를 더 자세히 나눈 것이다. 강의는 이 모든 죄인의 성불이 천왕여래의 수기 하나로 결정되었다고 읽는다. 「주사친어서」의 말씀도 같은 논리다.
提婆達多程の悪人だにも仏になるまして末代の人はたとひ重罪なりとも多分は十悪をすぎずまして深く持ち奉る人仏にならざるべきや
제바달다만 한 악인조차 부처가 되느니라. 하물며 말대의 사람은 설령 죄가 무겁다 해도 대개는 십악을 넘지 않느니라. 더구나 깊이 (이 경을) 지니는 사람이 어찌 부처가 되지 않겠는가.
독약이 변하여 감로가 된다
이 대목의 맺음은 「독약이 변하여 감로가 되니 뭇 맛보다 뛰어나다」이다. 성불에서 가장 먼 독(악인)이 그대로 성불이라는 감로가 된다. 이것은 법화경만이 지닌 힘이며, 그러므로 법화경은 제46장에서 여러 경이 저마다 「제호」라 자찬한 맛들보다 뛰어난 「뭇 맛 가운데 최상의 맛」이다. 대성인이 다른 어서에서 거듭 쓰신 「변독위약(變毒爲藥)」, 곧 독을 바꾸어 약으로 삼는다는 법화경의 공능이 바로 이것이다.
대악현선에서 선악불이로
강의는 「제바달다 천왕여래」의 문을 이전과 법화경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더 깊이 읽는다.
이전의 경에서도 제바달다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의에 따르면 이전의 경은 「악이 없으면 선을 드러낼 수 없다. 그러므로 제바달다는 무수겁 이래 늘 석존과 함께 있어, 석존은 불도를 행하고 제바는 비도(非道)를 행하며 서로를 깨우쳐 왔다」고 설한다. 악은 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대조물이라는 이해, 곧 「대악현선(對惡顯善)」이다. 그러나 이 이해에서 악은 끝까지 악으로 남는다. 제바달다는 석존의 선을 드러내는 배경일 뿐, 그 자신이 성불하는 것은 아니다.
법화경에서는 다르다. 강의는 「대악현선이 끝나면 악의 전체가 곧 선이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는 선악불이 · 사정일여 · 역즉시순이 된다」고 하며, 이것이 「이전의 경에서는 아직 설해지지 않았던 깊은 뜻」이라고 한다. 악이 선의 대조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악 그 자체에 불계가 갖추어져 있어 악인이 그 몸 그대로 성불한다. 거스르는 인연(역연)이 그대로 따르는 인연(순연)이 된다. 제47장에서 대성인이 「다른 사람은 믿지 않으니 역연이 되리라」 하신 것도 이 법리 위에 서 있다.
대성인은 「가책방법멸죄초」에서 제바달다의 운명이 이전과 법화경에서 어떻게 갈렸는지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提婆達多は仏の御敵・四十余年の経経にて捨てられ臨終悪くして大地破れて無間地獄に行きしかども法華経にて召し還して天王如来と記せらる
제바달다는 부처의 원적이라 사십여 년의 경경에서 버림받고 임종이 나빠 대지가 갈라져 무간지옥에 갔으나, 법화경에서 불러 돌려 천왕여래라 수기되었느니라.
「불러 돌린다(召し還す)」는 말이 중요하다. 이전의 경에서 제바달다는 버림받고 지옥에 떨어진 채 끝났다. 법화경은 그를 지옥에서 불러 돌려 부처의 수기를 준다. 이것은 「관심의 본존초」가 밝힌 십계호구, 그 가운데서도 지옥계에 불계가 갖추어져 있다는 법리의 경문상 증거다.
経に云く提婆達多乃至天王如来等云云地獄界所具の仏界なり
경에 이르되 「제바달다 내지 천왕여래」 등이라 하였으니, 지옥계에 갖추어진 불계이니라.
강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성인 자신의 체험에서 이 법리를 읽는다. 대성인은 사도 쓰카하라에 도착한 직후의 심경을 기록한 「종종어진무어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釈迦如来の御ためには提婆達多こそ第一の善知識なれ今の世間を見るに人をよくなすものはかたうどよりも強敵が人をばよくなしけるなり眼前に見えたり
석가여래를 위해서는 제바달다야말로 제일의 선지식이니라. 지금의 세간을 보건대 사람을 잘되게 하는 것은 편드는 이보다 강적이 사람을 잘되게 하였느니라. 눈앞에 보이느니라.
같은 대목은 「일련이 부처가 될 제일의 편드는 이는 가게노부요, 법사로는 양관 · 도륭 · 도아미타불과 헤이노사에몬노조 · 고노토노이시니, 이분들이 없었다면 어찌 법화경의 행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하고 맺어진다. 대성인을 박해한 도조 가게노부, 극락사의 양관, 건장사의 도륭, 염불자 도아미타불, 그리고 다쓰노구치의 법난을 지휘한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와 집권 호조 도키무네가 모두 대성인을 「법화경의 행자」로 만든 선지식이라는 것이다. 제바달다품에서 석존이 「제바달다라는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성불했다고 한 것과 정확히 같은 구조다. 원적을 선지식으로 바꾸는 이 관점이 「역즉시순」의 실천적 의미이며, 제42장에서 「일련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가」라고 물으신 의문에 대한 깊은 답의 하나이기도 하다. 박해는 행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라 행자임을 만드는 인연이다. 이 논의는 다음 편의 삼류 강적과 제57장의 전중경수에서 정면으로 펼쳐진다.
용녀의 성불 — 일체 여인의 성불
제5의 간효는 용녀의 성불이다. 대성인은 「용녀의 성불은 이 한 사람만이 아니라 일체 여인의 성불을 나타낸다」고 하신다.
이전의 경은 여인을 어떻게 보았는가
이 말씀의 무게는 이전의 경이 여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보아야 드러난다. 대성인은 「여인성불초」에서 이전 경의 문을 그대로 드신다.
華厳経に云く女人は地獄の使なり能く仏の種子を断ず外面は菩薩に似て内心は夜叉の如し云云銀色女経に云く三世の諸仏の眼は大地に堕落すとも法界の諸の女人は永く成仏の期無し云云
화엄경에 이르되 「여인은 지옥의 사자요 능히 부처의 종자를 끊는다. 겉모습은 보살과 같으나 속마음은 야차와 같다」 하였고, 은색녀경에 이르되 「삼세 제불의 눈이 대지에 떨어진다 해도 법계의 모든 여인은 길이 성불할 기약이 없다」 하였느니라.
여기에 「오장삼종(五障三從)」이 더해진다. 오장은 여인은 범천왕 · 제석 · 마왕 · 전륜성왕 · 부처의 다섯이 될 수 없다는 것이고, 삼종은 어려서는 부모를, 커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유교의 규범이다. 「여인성불초」는 「내전에는 오장을 밝히고 외전에는 삼종을 가르쳤다」고 하여, 안팎의 가르침이 함께 여인을 낮추었다고 하신다. 本文이 「법화 이전의 여러 소승교에는 여인의 성불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신 것은 이 사정을 가리킨다. 천태대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天台大師云く他経には但菩薩に記して二乗に記せず但男に記して女に記せずとて全く余経には女人の授記これなしと釈せり
천태대사는 「다른 경에서는 다만 보살에게 수기하고 이승에게는 수기하지 않으며, 다만 남자에게 수기하고 여자에게는 수기하지 않는다」 하여, 다른 경에는 여인의 수기가 전혀 없다고 해석하셨느니라.
제바품의 용녀
제바달다품 후반의 장면은 이렇다. 문수가 용궁에서 돌아와 「바다 속에서 오직 묘법연화경만을 설했다」고 하자, 지적보살은 석존조차 무량겁의 난행고행 끝에 성불했는데 어찌 짧은 시간에 성불할 수 있겠느냐고 의심한다. 그때 용녀가 나타나 부처를 찬탄하는 게송을 읊고, 사리불은 「여인의 몸은 더럽고 법기가 아니며, 또 여인에게는 오장이 있다」고 소승 · 권교의 입장에서 따진다. 용녀는 삼천대천세계만큼 값진 보주를 부처에게 바치고, 부처가 곧 받자 「내가 성불하는 것은 이보다 빠르리라」 하며 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불의 모습을 보인다. 대성인은 이 장면을 이렇게 풀이하셨다.
八歳の竜女蛇身をあらためずして仏前に参詣し価直三千大千世界と説かれて候如意宝珠を仏に奉りしに仏悦んで是を請取り給いしかば此の時智積菩薩も舎利弗も不審を開き女人成仏の路をふみわけ候されば女人成仏の手本是より起つて候
여덟 살 용녀가 뱀의 몸을 고치지 않고 부처 앞에 나아가 「값이 삼천대천세계에 해당한다」고 설해진 여의보주를 부처에게 바치니, 부처께서 기뻐하시며 이를 받으셨으므로, 이때 지적보살도 사리불도 의심을 풀고 여인성불의 길을 밟아 열었느니라. 그러므로 여인성불의 본보기가 이로부터 일어났느니라.
용녀는 여인이요, 여덟 살 어린아이요, 사람이 아닌 축생이다. 이전의 경이 성불에서 제외한 조건을 겹겹이 지닌 존재다. 그런 용녀가 역겁의 수행 없이 「뱀의 몸을 고치지 않고」 성불했다. 전교대사는 『법화수구』에서 이를 이렇게 정리했다.
伝教大師の秀句に云く能化の竜女歴劫の行無く所化の衆生も歴劫の行無し能化所化倶に歴劫無し妙法経力即身成仏す
전교대사의 『수구』에 이르되 「능화의 용녀도 역겁의 수행이 없고 소화의 중생도 역겁의 수행이 없다. 능화와 소화가 함께 역겁이 없으니, 묘법의 경력으로 즉신성불한다」 하였느니라.
「능화」는 교화하는 이, 「소화」는 교화받는 이다. 용녀가 성불한 뒤 남방의 무구세계에서 법을 설해 수많은 중생을 성불시키는 모습까지 경은 설한다. 교화하는 용녀도 교화받는 중생도 역겁의 수행을 거치지 않았다. 성불의 힘은 수행의 시간이 아니라 「묘법의 경력」에 있다. 이것이 즉신성불이다.
제바달다품의 경문에는 용녀가 성불하는 순간 「홀연히 남자로 변하여(變成男子)」 보살행을 갖추고 남방 무구세계에서 등정각을 이루었다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두고 불교학에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창가학회 교학은 대성인이 「뱀의 몸을 고치지 않고」 「계완의 모습을 고치지 않고 즉신성불했다」고 하신 해석을 따라, 용녀의 성불을 몸을 바꾸어 이루는 개전의 성불이 아닌 즉신성불로 본다. 강의도 용녀의 성불을 「일체 여인성불의 본보기이자 즉신성불의 표현」으로 풀이한다.

거일예제 — 말대 여인의 길을 밟아 열다
本文은 「거일예제라 하여, 용녀의 성불은 말대 여인의 성불 · 왕생의 길을 밟아 연 것」이라고 하신다. 거일예제는 하나를 들어 나머지 모두를 예로 삼는 것이다. 제바달다 한 사람의 성불이 일체 악인의 성불을 거두었듯, 용녀 한 사람의 성불은 일체 여인의 성불의 방정식이 된다. 「여인성불초」는 이어서 석존의 이모 마하파사파제 비구니가 권지품에서 일체중생희견여래의 수기를 받고,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다라도 구족천만광상여래가 되었다고 하신다. 용녀가 연 길을 다른 여인들이 따라 걸은 것이다.
그 길은 재세의 여인에게만 열린 것이 아니다. 대성인은 「말대의 여인」이라고 분명히 하셨다. 대성인의 문하에는 많은 여성 신도가 있었고, 대성인은 그들에게 보낸 많은 편지에서 용녀의 성불을 들어 격려하셨다. 「주사친어서」의 맺음 부분은 용녀의 게송 「나는 대승의 가르침을 펴서 괴로운 중생을 건지리라」를 이렇게 풀이한다.
竜女我女人の身を受けて女人の苦をつみしれり然れば余をば知るべからず女人を導かんと誓へり
용녀는 「내가 여인의 몸을 받아 여인의 괴로움을 쌓아 알았노라. 그러므로 다른 이는 알 바 없고 (오직) 여인을 이끌리라」 맹세하였느니라.
여인의 괴로움을 몸으로 아는 이가 여인을 이끈다. 용녀의 성불은 여인이 구제의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법을 설하는 주체가 되는 길을 연 것이기도 하다.
개전의 성불과 일념삼천의 성불
本文은 법화경 이전의 경을 둘로 나누어 판정하신다. 소승교는 여인의 성불을 처음부터 허락하지 않았다. 여러 대승경은 여인의 성불과 왕생을 허락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개전의 성불」이어서 「일념삼천의 성불」이 아니므로 「유명무실」이다.
개전의 성불이란
강의는 개전의 성불을 이렇게 풀이한다. 여러 대승경은 여인이 여인의 몸을 고쳐 남자로 바뀐 뒤에 성불한다고 설한다. 마찬가지로 악인은 악을 바꾸어 선인이 된 뒤에 성불한다고 설한다. 지금의 몸을 버리고 다른 몸으로 바뀐 뒤의 성불이므로 즉신성불이 아니다.
本文이 「성불 · 왕생」이라고 「왕생」을 함께 드신 데에는 까닭이 있다. 대성인 당시 일본에서 가장 널리 퍼진 염불은 『무량수경』에 설해진 아미타불의 서원에 의지했다. 그 서원 가운데에는 여인이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고 기뻐하여 보리심을 일으키고 여인의 몸을 싫어하면, 목숨이 다한 뒤 다시는 여인의 몸이 되지 않게 하겠다는 서원이 있다. 여인은 여인의 몸 그대로 극락에 왕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몸을 벗어난 뒤에야 왕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성인이 말씀하시는 「개전의 왕생」이며, 本文은 그것조차 「유명무실」이라 판정하신다.
일념삼천의 성불 — 십계가 동시에
이에 대해 법화경의 성불은 「일념삼천의 성불」이다. 강의는 「법화경에서는 일념이 곧 십계 · 십여 · 삼천으로 열리므로 십계는 동시에 성불한다」고 하며, 묘락대사의 「한 몸 한 생각이 법계에 두루 한다」는 석을 든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이 석을 인용하셨다.
妙楽大師云く当に知るべし身土一念の三千なり故に成道の時此の本理に称うて一身一念法界に遍し等云云
묘락대사가 이르되 「마땅히 알라, 몸과 국토가 일념의 삼천이니라. 그러므로 성도할 때 이 본래의 이치에 맞아 한 몸 한 생각이 법계에 두루 한다」 하였느니라.
십계의 한 계 한 계에 십계가 갖추어져 있다면, 지옥계의 제바달다에게도 축생계의 용녀에게도 불계가 본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 몸을 바꿀 필요가 없다. 바꾸지 않고 그 몸 그대로 불계를 나타내는 것이 즉신성불이다. 「관심의 본존초」는 제바달다의 성불을 「지옥계에 갖추어진 불계」로, 용녀의 성불을 「축생계에 갖추어진 십계」로 각각 십계호구의 문증으로 드셨다.
経に云く竜女乃至成等正覚等云云此れ畜生界所具の十界なり
경에 이르되 「용녀 내지 등정각을 이루었다」 등이라 하였으니, 이는 축생계에 갖추어진 십계이니라.
염리단구의 부처
반대로 십계호구를 모르는 이전의 경에서는 성불하려면 구계를 싫어하고 끊어야 한다. 강의는 「일대성교대의」의 한 대목을 들어 이를 설명한다.
法華経已前の諸経は十界互具を明さざれば仏に成らんと願うには必ず九界を厭う九界を仏界に具せざるが故なり……此れをば妙楽大師は厭離断九の仏と名くされば爾前の経の人人は仏の九界の形を現ずるをば但仏の不思議の神変と思ひ仏の身に九界が本よりありて現ずるとは言わず
법화경 이전의 여러 경은 십계호구를 밝히지 않으므로, 부처가 되기를 원할 때에는 반드시 구계를 싫어하느니라. 구계를 불계에 갖추지 않기 때문이니라. …… 이를 묘락대사는 「염리단구의 부처」라 이름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이전 경의 사람들은 부처가 구계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다만 부처의 불가사의한 신통변화라고 생각하고, 부처의 몸에 구계가 본래 있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느니라.
「염리단구」는 구계를 싫어하여 떠나고 끊는 것이다. 인간의 몸, 여인의 몸, 악인의 몸을 버려야 부처가 된다면, 그 성불은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의 성불이 아니다. 「일대성교대의」의 같은 대목은 이어서 「법화경 이전에는 다만 권자(權者)의 부처만 있었을 뿐 실제의 범부가 부처가 된 일은 없었다」고 하신다. 이전의 경에서 성불했다고 하는 이들은 실은 부처가 방편으로 나타낸 모습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다(有名無實)」의 뜻이다. 제42장에서 「제경의 제불 · 보살은 그 경경에서 부처가 된 듯하나 실제로는 법화경에서 정각을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 여기서 성불의 법리로 뒷받침된다.
내전의 효경 — 「개목초」의 첫머리로 돌아가다
本文의 마지막 단락은 갑자기 주제를 바꾸는 것처럼 보인다. 유가의 효, 외도, 불도, 그리고 「내전의 효경」. 그러나 이것은 「개목초」 전체의 구조에서 보면 필연적인 귀결이다.
「개목초」는 효에서 시작했다
「개목초」는 「무릇 일체 중생이 존경해야 할 것이 셋 있으니, 이른바 주 · 사 · 친이 이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했다. 제1편에서 대성인은 유가 · 외도 · 불교의 주사친을 차례로 살피셨고, 유가에 대해서는 효의 본보기(중화 · 패공 · 무왕 · 정란)와 충의 본보기를 드신 뒤 그 한계를 이렇게 판정하셨다.
而りといえども過去未来をしらざれば父母主君師匠の後世をもたすけず不知恩の者なりまことの賢聖にあらず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므로 부모 · 주군 · 스승의 후세를 돕지 못하니, 은혜를 모르는 자요 참된 현성이 아니니라.
제48장의 「유가의 효양은 금생에 한정된다. 미래의 부모를 돕지 못하니 외가의 성현은 유명무실이다」는 바로 이 판정의 반복이다. 외도는 과거 · 미래의 삼세를 알지만(제4장에서 대성인은 외도가 과거 이생 · 삼생 내지 팔만 겁을 비추어 본다고 하셨다) 부모를 도울 길이 없다. 불도만이 부모의 후세를 도울 수 있으니 참된 성현의 이름은 불도에 있다.
그러나 이전의 경은 「글만 있고 뜻이 없다」
그런데 대성인은 여기서 다시 한 번 가르신다. 불도라 하더라도 법화경 이전의 대소승 경과 그것을 소의로 하는 종파는 「자신의 득도조차 이루기 어렵다. 하물며 부모이겠는가.」 이전의 경에도 부모를 구하라는 글, 추선 공양의 글은 있다. 그러나 이승 · 악인 · 여인이 성불하지 못하는 경으로는 부모를 성불시킬 수 없다. 현대어역은 이를 「성불이니 추선 공양이니 하는 글만 있고 그 뜻이 없으므로 현증도 없다」고 풀이한다.
강의는 이 대목을 이렇게 정리한다. 이전의 경에서는 수행하는 본인의 성불조차 허락되지 않으니 하물며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모처럼 출가하여 불도 수행에 들어가도 자기 부모조차 구하지 못하는 불효자가 된다. 출가는 본래 부모를 떠나는 일이다. 출가자가 부모의 은혜를 갚는 길은 스스로 성불하여 부모까지 성불시키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그 성불의 법이 없는 경에 의지한다면, 출가는 부모를 버린 것으로 끝나고 만다.
대성인은 「보은초」 첫머리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셨다.
外典の孝経にも父母主君に随はずして忠臣孝人なるやうもみえたり内典の仏経に云く恩を棄て無為に入るは真実報恩の者なり等云云比干が王に随わずして賢人のなをとり悉達太子の浄飯大王に背きて三界第一の孝となりしこれなり
외전의 효경에도 부모 · 주군을 따르지 않고서 충신 · 효자가 되는 경우도 보이느니라. 내전의 불경에 이르되 「은혜를 버리고 무위에 드는 것이 진실로 은혜를 갚는 자이다」 하였느니라. 비간이 왕을 따르지 않고서 현인의 이름을 얻고, 실달태자가 정반대왕을 등지고서 삼계 제일의 효가 된 것이 이것이니라.
출가는 겉으로는 부모를 등지는 일이지만, 그 끝에서 부모를 성불시킬 때 「삼계 제일의 효」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경이 법화경뿐이다.
비모의 성불과 자부의 성불
그래서 대성인은 「이제 법화경의 때야말로 여인성불의 때에 비모의 성불도 나타나고, 제바달다의 악인성불의 때에 자부의 성불도 나타난다」고 하신다. 여인이 성불할 수 없다면 어머니는 성불할 수 없다. 악인이 성불할 수 없다면, 살아가며 크고 작은 악을 짓지 않을 수 없는 범부인 아버지는 성불할 수 없다. 용녀의 성불은 모든 어머니의 성불을, 제바달다의 성불은 모든 아버지의 성불을 보증한다. 강의는 「법화경은 제바와 용녀의 성불로부터 자부와 비모가 성불할 수 있음이 실증되었으니, 법화경이야말로 일대 불경 가운데 참된 효경」이라고 한다.
「이 경은 내전의 효경이다.」 유가의 『효경』이 금생의 부모 섬김을 가르친다면, 법화경은 부모의 삼세에 걸친 성불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불교 안의 참된 효경이다. 「개목초」는 주사친의 「친」, 곧 부모의 은혜를 묻는 데서 시작하여, 제48장에 이르러 그 은혜를 참으로 갚는 법이 법화경임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이 효의 논리는 제1편에서 대성인이 밝히신 대로 주 · 사 · 친의 삼덕 전체로 이어진다. 부모의 성불을 가능하게 하는 법을 넓히는 이야말로 말법의 친덕을 갖춘 이다.
성불이란 무엇인가 — 강의의 결론
강의는 이 장의 끝에서 「성불」이라는 말 자체를 다시 묻는다. 불법에서 성불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며, 불도 수행의 목적은 성불에 있다. 그렇다면 성불이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가.
강의의 설명은 십계론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생명의 상태는 크게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 · 천 · 성문 · 연각 · 보살 · 불의 열 범주로 나뉜다. 이 열 가지 생명은 때로는 잠기고(명복) 때로는 나타나며(현현) 우리의 일생을 이어 간다. 그 가운데 잠겨 있는 부처의 생명을 나타내고 증득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우므로, 때와 근기에 맞는 불법을 수행하여 그것을 나타내고 증득하려 한다. 이 부처의 생명을 나타내어 증득하는 것을 성불이라 하며, 그 성불의 상태는 영원히 행복한 생명의 상태라는 것이 강의의 정의다.
강의는 행복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집이 생기면, 돈이 생기면, 화려한 생활을 하면 행복하리라는 「상대적 행복」이다. 다른 하나는 강의가 「절대적 행복」이라 부르는 것으로, 이것이 성불의 경애다. 여러 조건이 있더라도 살아 있는 그 자체가 즐겁고, 그 행복이 영원히 이어지며, 어떤 것에도 부서지지 않는 금강불괴의 것이다. 강의는 이 경애가 인생에 가장 필요하고 가장 존귀하지만, 철학을 하거나 수양을 하거나 이른바 단순한 수행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지극히 번거로운 방법으로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삼대비법의 본존을 수지하고 신행에 힘씀으로써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이 경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강의의 결론이다.
이 결론은 제48장의 논지와 곧바로 이어진다. 제바달다와 용녀의 성불이 보여 준 것은, 성불이 특별한 사람이 오랜 수행 끝에 다른 존재로 바뀌어 도달하는 먼 경지가 아니라, 지금 이 몸에 본래 갖추어진 불계를 나타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악인도 여인도 축생의 몸도 그 몸 그대로 성불한다면, 성불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강의가 「모든 사람이 똑같이」라고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제43장에서 강의가 말법의 수행을 「수지즉관심」이라 하고 육난 가운데 수지를 「어려운 일 가운데 어려운 일」이라 한 것과 함께 읽으면, 이 성불의 길은 열려 있되 그것을 끝까지 지니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 어려움이 다음 편의 권지품 이십행게와 삼류의 강적이다.
강의는 제48장을 이렇게 본다. 극악인 제바달다와 축생의 몸인 여인 용녀의 성불은 일대 제경에 유례가 없다. 이전의 경에서는 수행하는 본인의 성불조차 허락되지 않으니 남을 구할 수 없고, 출가해도 부모를 구하지 못한다. 법화경은 제바와 용녀의 성불로 자부와 비모의 성불을 실증했으니 일대 불경 가운데 참된 효경이다. 또 이전의 대악현선과 달리 법화경에서는 선악불이 · 사정일여 · 역즉시순이 되며, 이전의 개전의 성불과 달리 법화경의 성불은 십계가 동시에 성불하는 일념삼천의 즉신성불이다. 그 성불의 경애는 금강불괴의 절대적 행복이며, 삼대비법의 본존을 수지하는 신행으로 누구나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강의의 관점이다.
이 편을 맺으며
제7편은 하나의 의문에서 출발했다. 모든 불보살이 법화경에서 정각을 이루었다면 그들은 법화경의 행자를 지켜야 한다. 이전경의 불보살조차, 효자가 왕적이 된 아버지를 버리고 왕에게 나아가듯, 자기 경의 행자를 버리고 법화경의 행자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처삼회에서 맹세한 제천은 지금까지 사도의 대성인을 찾아오지 않았다. 「일련은 법화경의 행자가 아닌가.」 대성인은 이 의문을 덮지 않고 「거듭 경문을 살펴 내 몸에 대어 보리라」 하셨다(제42장).
그 「경문」으로 대성인이 처음 꺼내신 것이 보탑품의 세 칙선이다. 석가 · 다보 · 시방 분신의 삼불이 한 자리에 모여 「누가 이 경을 넓히겠는가」 묻고(부촉유재), 법을 오래 머물게 하려고 모였다고 밝히며(영법구주), 멸후 악세에 이 경을 설하고 지니는 일이 수미산을 던지는 일보다 어렵다고 했다(육난구이, 제43장). 대성인은 이 경문을 「일본 · 한토 · 월지 · 용궁 · 천상 · 시방세계의 일체경의 승렬을 삼불이 정한 것」으로 받으시고, 이 법이 일본에 나타난 것은 전교대사와 일련의 두 번뿐이라고 선언하셨다(제44장).
그 사이에 대성인은 제종의 조사들이 이 경문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하나하나 시험하셨다. 화엄 · 법상 · 삼론 · 진언은 자기 경을 육난 안에 넣었고, 홍법은 대일경을 아예 육난 · 구이 밖에 두었다(제44장). 대성인은 열반경의 「법에 의하고 사람에 의하지 말라」와 용수 · 천태 · 전교 · 지증의 문증 원칙을 기준으로 그들의 승렬을 「곡회사정 · 장엄기의」라 판정하시되, 「편당을 버리고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덧붙이셨다(제45장). 법화경의 「이금당」과 묘락의 석을 정의로 세우신 뒤 자찬하는 여덟 경문을 늘어놓으시고(제46장), 「왕에 소왕 · 대왕」 「일체에 소분 · 전분」 「오유에 전유 · 분유」의 세 잣대로 그 경문들이 법화경과 견주면 「달에 별, 구산에 수미」임을 밝히셨다. 홍법의 「제호를 훔쳤다」는 비난은 연대로 무너졌고, 대성인은 「일련은 제경의 승렬을 아는 데 징관 · 가상 · 자은 · 홍법보다 뛰어나다」 「당세 일본국 제일의 부자는 일련」이라고 선언하셨다(제47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바품의 두 간효가 인용되었다. 일천제인 제바달다가 천왕여래의 수기를 받고, 여덟 살 축생의 몸인 용녀가 그 몸 그대로 성불했다. 일대 제경에 유례가 없는 악인성불과 여인성불로, 이전의 경의 성불은 「개전의 성불」이요 「유명무실」이며 법화경의 성불만이 「일념삼천의 성불」임이 판정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법화경은 비모와 자부의 성불을 나타내는 「내전의 효경」이 된다(제48장). 「개목초」 첫머리의 주사친, 그 가운데 친의 은혜를 묻던 물음이 여기서 답을 얻는다.
이 편의 다섯 명령, 곧 「오개의 봉조」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법화경이 일대 제경 가운데 유일한 성불의 경이라면, 그 경을 멸후 악세에 넓히는 일은 부처의 가장 간절한 명령이다. 그리고 그 일은 육난구이가 보여 주듯 지극히 어렵다. 다음 제8편 「삼류의 강적과 법화경의 행자」(제49~56장)는 「이상 다섯 봉조에 놀라서 권지품의 홍경이 있다」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다섯 명령에 놀란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들이 권지품에서 멸후 홍경을 맹세하며 읊은 이십행게는, 그 홍경에 반드시 따르는 세 부류의 강적 — 속중증상만 · 도문증상만 · 참성증상만 — 을 예언한다. 대성인은 「팔십만억 나유타의 보살들이 정한 것이 어찌 헛말이 되겠는가」 하시며 그 경문 하나하나를 당세에 비추고 자신의 몸에 대어 보신다. 제42장에서 「거듭 경문을 살펴 내 몸에 대어 보리라」 하신 약속은 그곳에서 이루어진다.
더 읽기
- 개목초 제8편 · 삼류의 강적과 법화경의 행자 — 오개의 봉조에 놀라 일어난 권지품의 홍경과 삼류의 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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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교학 五 · 일념삼천 — 제바달다 · 용녀의 성불을 받치는 십계호구와 일념삼천
- 관심의 본존초 · 관심 — 「지옥계에 갖추어진 불계」 「축생계에 갖추어진 십계」의 문증
- 인물탐구 · 전교대사 — 「일본국에 이 법이 나타남은 두 번」의 첫째 사람
참고 문헌
원전
- 『묘법연화경』 방편품 제2 · 법사품 제10 · 견보탑품 제11 · 제바달다품 제12 · 안락행품 제14 · 촉루품 제22 · 다라니품 제26, T9 no.262
- 『무량의경』, T9 no.276 / 『대반열반경』(40권), T12 no.374 / 『화엄경』(60권), T9 no.278 / 『대일경』, T18 no.848
- 『대승밀엄경』 · 『대방등무상대운경』 ·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 · 『해심밀경』 · 『대반야바라밀다경』 · 『아미타경』 · 『무량수경』 · 『범망경』 · 『관불삼매해경』
- 용수 『십주비바사론』 / 『용수보살전』
- 천태대사 『법화현의』, T33 no.1716 / 『법화문구』, T34 no.1718
- 묘락대사 『지관보행전홍결』, T46 no.1912 / 『법화문구기』, T34 no.1719
- 전교대사 『법화수구』
- 홍법 『십주심론』 · 『비장보약』 · 『변현밀이교론』
- 니치렌 대성인 「개목초」 · 「관심의 본존초」 · 「선시초」 · 「보은초」 · 「주사친어서」 · 「일대성교대의」 · 「여인성불초」 · 「법화초심성불초」 · 「선무외삼장초」 · 「종종어진무어서」 · 「도키전답서」 · 「소야입도전답서」 · 「가책방법멸죄초」 (창가학회판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
연구
- 창가교학연구실, 「0186~0237 開目抄」 제42~48장 강의 (니치칸 상인 「개목초 문단」에 의거)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