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바다 위로 솟은 천태산의 봉우리들과 산중의 작은 절

용수 · 천태 · 전교의 홍통과 말법의 비법

선시초 · 제3편 · 제16~19장

撰時抄 — 竜樹・天台・伝教の弘通と末法の秘法어서 267–273쪽
저술
건치 원년(1275) · 미노부
장
제16~19장 (선시초 36장 가운데)
쪽수
어서 267:09–273:17
시대 구분
정법 후반 → 상법 중반 → 상법 말 → 말법의 처음
계보
용수 · 천태대사 · 전교대사

여섯 편 · 선시초 36장 구성도

36장 → 여섯 편
  1. 序講256 앞저술 · 대의 · 원의
  2. 시를 밝힌다
  3. 정상말 홍교의 역사
  4. 정상말 홍교의 역사
    제3편용수 · 천태 · 전교의 홍통과 말법의 비법지금 읽는 편
    16~19장0267:09~0273:17
  5. 여러 종파의 그릇됨
  6. 말법의 법화경 행자
  7. 말법의 법화경 행자

선시초 여섯 편 가운데 제3편은 「정상말 홍교의 역사」를 다루는 두 편 중 뒤쪽이다. 제2편이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흐름을 연대순으로 훑으며 묘법 유포의 필연을 세웠다면, 이 편은 그 흐름의 정점에 선 세 사람 — 인도의 용수보살, 중국의 천태대사, 일본의 전교대사 — 을 하나씩 불러 세워 그들이 무엇을 폈고 무엇을 펴지 않았는지를 따진다. 문답은 「그렇다면 상법 시대에 이미 법화경이 광선유포된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을 세 번 되풀이하고, 대성인은 세 번 모두 「아니다」라고 답하신다. 용수는 권대승만을 폈고, 천태는 원정 · 원혜를 폈으나 원돈의 계단을 세우지 못했으며, 전교는 계단까지 세웠으나 그것도 「최대의 심밀의 정법」은 아니었다. 그 끝에서 마침내 「어떠한 비법인가」라는 물음이 터져 나온다. 이 편은 선시초 전체에서 역사의 서술이 말법의 비법으로 꺾여 들어가는 경첩이다.

선시초는 「대저 불법을 배우려면 반드시 먼저 시를 익혀야 한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해, 제1편에서 시의 요긴함과 경석의 증거를 세우고, 제2편에서 대집경 오오백세에 맞추어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교를 짚었다. 제15장의 문답은 「정법 시대의 사람이 상 · 말의 사람보다 근기가 뛰어난데 어찌 정법의 처음에 법화경을 쓰지 않았겠는가, 천친은 『법화론』을 지었고 천태는 삼대부를 지었으며 전교는 원돈 계단을 세웠으니 이것이 바로 상법의 광선유포가 아닌가」라는 힐난으로 끝났다. 대성인은 「불법은 시에 의해 홍통되는 것이지 기에 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셨고, 이 편은 그 답을 세 성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용해 확인하는 자리다.

제16장은 용수 · 세친이 법화경의 실의를 펴지 않았음을 밝히고, 그 김에 진언종이 용수의 저술이라고 내세우는 『보리심론』의 진위와 불공 삼장의 오역 · 속임을 따지며, 라집 삼장의 「혀가 타지 않은」 현증으로 역경의 바르고 그름을 가린다. 제17장은 라집 이후의 역자도 혀가 탔다면 그릇되었다는 문답으로 경을 옮긴 사람의 정사가 불법을 배우는 「제일의 대사」임을 맺은 다음, 천태대사의 삼대부와 그를 찬탄하고 귀복한 길장 · 도선 · 법장 · 불공 · 함광의 증언을 늘어놓은 뒤, 그것이 「법화경의 광선유포와 닮았으나」 원돈의 계단이 없고 때가 독송다문견고였으므로 광선유포가 아니라고 판정한다. 제18장은 전교대사가 남도 육종을 꺾고 히에이산에 원돈 대승 별수계를 세운 「일염부제 제일의 기사(奇事)」를 극진히 찬탄한 다음, 그래도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 내지 천태 · 전교가 아직 홍통하지 않은 최대의 심밀의 정법이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고 선언한다. 제19장에서 그 비법의 이름을 묻는 물음에 대성인은 바로 답하지 않고, 먼저 염불 · 선 · 진언이라는 「세 가지 재앙」을 들어 제4편의 파절로 넘어가신다.

이 편을 읽는 열쇠는 「내감냉연 외적시의(内鑑冷然・外適時宜)」다. 정법 · 상법의 성인들은 안으로는 법화경의 실의, 나아가 그 문저의 법을 알고 있었으나 밖으로는 때에 맞추어 각기 그 시대의 법을 폈다. 그들이 펴지 않은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며, 펴지 않은 그 법이야말로 말법을 위해 남겨진 것이다. 이 편 전체의 뜻을 요약하면 「정상에 펴지 않은 것은 말법에 반드시 유포함을 밝히려 함이다」가 된다.

이 편의 장

第16章竜樹菩薩の弘通제16장 용수보살의 홍통 — 용수 · 세친은 권대승만 폈다. 『보리심론』의 진위, 불공의 오역, 라집의 「혀가 타지 않음」
第17章天台大師の弘通제17장 천태대사의 홍통 — 역경의 정사라는 「제일의 대사」, 삼대부와 여러 종파의 귀복. 원정 · 원혜는 폈으나 원돈 계단이 없고 때가 독송다문견고였다
第18章伝教大師の弘通제18장 전교대사의 홍통 — 다카오산 종론과 원돈 계단. 그러나 「최대의 심밀의 정법」은 아직 홍통되지 않았다
第19章末法について料簡す제19장 말법에 대하여 요간하다 — 「어떠한 비법인가」. 삼대비법의 이름과 뜻, 그리고 세 가지 재앙(염불 · 선 · 진언)
갈래 넷
이 편의 네 장제16장 용수보살의 홍통 ·제17장 천태대사의 홍통 ·제18장 전교대사의 홍통 ·제19장 말법에 대하여 요간하다
도표 1 · 여섯 편 가운데 이 편의 자리
제16장 용수보살의 홍통
어서 267쪽 9행~269쪽 12행 · 第16章 竜樹菩薩の弘通

본문

本文 · 一어서 267쪽 9~17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云く竜樹・世親等は法華経の実義をば宣べ給わずや、答えて云く宣べ給はず、問うて云く何なる教をか宣べ給いし、答えて云く華厳・方等・般若・大日経等の権大乗・顕密の諸経をのべさせ給いて法華経の法門をば宣べさせ給はず、 問うて云く何をもつてこれをしるや答えて云く竜樹菩薩の所造の論三十万偈・而れども尽して漢土・日本にわたらざれば其の心しりがたしといえども漢土にわたれる十住毘婆娑論・中論・大論等をもつて天竺の論をも比知して此れを知るなり。 疑つて云く天竺に残る論の中にわたれる論よりも勝れたる論やあるらん、答えて云く竜樹菩薩の事は私に申すべからず仏記し給う我が滅後に竜樹菩薩と申す人・南天竺に出ずべし彼の人の所詮は中論という論に有るべしと仏記し給う、 随つて竜樹菩薩の流・天竺に七十家あり七十人ともに大論師なり、彼の七十家の人人は皆中論を本とす中論四巻・二十七品の肝心は因縁所生法の四句の偈なり、此の四句の偈は華厳・般若等の四教・三諦の法門なりいまだ法華開会の三諦をば宣べ給はず。

풀이

묻기를, 용수 · 세친 등은 법화경의 실의(実義)를 펴지 않으셨는가. 답하기를, 펴지 않으셨느니라. 묻기를, 그러면 어떠한 가르침을 펴셨는가. 답하기를, 화엄 · 방등 · 반야 · 대일경 등 권대승(権大乗)의 현교 · 밀교의 여러 경을 펴시고 법화경의 법문은 펴지 않으셨느니라. 묻기를, 무엇으로써 이를 아는가. 답하기를, 용수보살이 지은 논은 삼십만 게(偈)에 이르나 모두 한토 · 일본에 건너오지는 않았으므로 그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한토에 건너온 『십주비바사론』 · 『중론』 · 『대론』 등으로써 천축에 남은 논까지 견주어 헤아려 이를 아느니라. 의심하여 이르기를, 천축에 남은 논 가운데 건너온 논보다 뛰어난 논이 있지 않겠는가. 답하기를, 용수보살의 일은 내가 사사로이 말할 것이 아니니라. 부처가 수기하시기를 「나의 멸후에 용수보살이라는 사람이 남천축에 나오리라. 그 사람의 소전(所詮)은 『중론』이라는 논에 있으리라」고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용수보살의 유파가 천축에 칠십 가(家)가 있어 칠십 인이 모두 대논사이나, 그 칠십 가의 사람들은 다 『중론』을 근본으로 삼느니라. 『중론』 네 권 스물일곱 품의 간심은 「인연소생법」의 사구게(四句偈)이니, 이 사구게는 화엄 · 반야 등의 사교(四教) · 삼제(三諦)의 법문이요, 아직 법화 개회(開会)의 삼제는 펴지 않으셨느니라.

本文 · 二어서 267쪽 18행 ~ 268쪽 15행
本文 · 어서 원문

疑つて云く汝がごとくに料簡せる人ありや、答えて云く天台云く「中論を以て相比すること莫れ」又云く「天親竜樹内鑒泠然にして外は時の宜きに適う」等云云、妙楽云く「破会を論ぜば未だ法華に若かざる故に」云云、従義の云く「竜樹天親未だ天台に若かず」云云、 問うて云く唐の末に不空三蔵一巻の論をわたす其の名を菩提心論となづく竜猛菩薩の造なり云云、弘法大師云く「此の論は竜猛千部の中の第一肝心の論」と云云、 答えて云く此の論一部七丁あり竜猛の言ならぬ事処処に多し故に目録にも或は竜猛或は不空と両方にいまだ事定まらず、其の上・此の論文は一代を括れる論にもあらず荒量なる事此れ多し、先ず唯真言法中の肝心の文あやまりなり其の故は文証現証ある法華経の即身成仏をばなきになして文証も現証もあとかたもなき真言経に即身成仏を立て候又唯という唯の一字は第一のあやまりなり、 事のていを見るに不空三蔵の私につくりて候を時の人にをもくせさせんがために事を竜猛によせたるか其の上不空三蔵は誤る事かずをほし所謂法華経の観智の儀軌に寿量品を阿弥陀仏とかける眼の前の大僻見・陀羅尼品を神力品の次にをける属累品を経末に下せる此等はいうかひなし、 さるかとみれば天台の大乗戒を盗んで代宗皇帝に宣旨を申し五台山の五寺に立てたり、而も又真言の教相には天台宗をすべしといえりかたがた誑惑の事どもなり、他人の訳ならば用ゆる事もありなん此の人の訳せる経論は信ぜられず、 総じて月支より漢土に経論をわたす人・旧訳・新訳に一百八十六人なり羅什三蔵一人を除いてはいづれの人人も悞らざるはなし、其の中に不空三蔵は殊に誤多き上誑惑の心顕なり、

풀이

의심하여 이르기를, 그대처럼 헤아린 사람이 있는가. 답하기를, 천태는 「『중론』으로써 서로 견주지 말라」 하고, 또 「천친 · 용수는 안으로 비춤이 냉연(泠然)하나 밖으로는 때의 마땅함에 맞춘다」고 하였느니라. 묘락은 「깨뜨리고 모음[破会]을 논한다면 아직 법화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에」라 하였고, 종의는 「용수 · 천친은 아직 천태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느니라. 묻기를, 당나라 말에 불공 삼장이 한 권의 논을 건너오게 하여 그 이름을 『보리심론』이라 하고 용맹보살이 지은 것이라 하였느니라. 홍법대사는 「이 논은 용맹이 지은 천 부 가운데 제일 간심의 논」이라 하였느니라. 답하기를, 이 논은 한 부 일곱 장이니, 용맹의 말이 아닌 것이 곳곳에 많으니라. 그러므로 경의 목록에도 혹은 용맹, 혹은 불공이라 하여 양쪽으로 아직 일이 정해지지 않았느니라. 그 위에 이 논의 글은 일대(一代)를 묶은 논도 아니요 거친 것이 많으니라. 먼저 「오직 진언법 가운데서만」이라는 간심의 글이 그릇되었으니, 그 까닭은 문증(文証) · 현증(現証)이 있는 법화경의 즉신성불은 없는 것으로 하고, 문증도 현증도 자취조차 없는 진언경에 즉신성불을 세웠기 때문이니라. 또 「오직[唯]」이라는 한 글자가 제일의 그릇됨이니라. 일의 모양을 보건대, 불공 삼장이 사사로이 지은 것을 그 시대 사람들에게 무겁게 여기게 하려고 용맹에게 갖다 붙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 위에 불공 삼장은 그릇된 일이 수없이 많으니, 이른바 『법화경 관지의궤』에 수량품의 부처를 아미타불이라 쓴 것은 눈앞의 큰 벽견(僻見)이요, 다라니품을 신력품 다음에 두고 촉루품을 경의 끝으로 내린 것 등은 말할 거리도 되지 않느니라. 그런가 하면 천태의 대승계를 훔쳐 대종 황제에게 선지(宣旨)를 청하여 오대산의 다섯 절에 세웠고, 또 진언의 교상(教相)에는 천태종을 쓰라고 하였으니 이래저래 속이는 일들뿐이니라. 다른 사람의 번역이라면 쓸 일도 있겠으나 이 사람이 번역한 경론은 믿을 수 없느니라. 대체로 월지에서 한토로 경론을 건너오게 한 사람은 구역 · 신역을 합하여 백팔십육 인이니, 라집 삼장 한 사람을 빼고는 어느 사람도 그르치지 않은 이가 없느니라. 그 가운데 불공 삼장은 특히 그릇됨이 많은 위에 속이려는 마음이 드러나 있느니라.

本文 · 三어서 268쪽 15행 ~ 269쪽 12행
本文 · 어서 원문

疑つて云く何をもつて知るぞや羅什三蔵より外の人人はあやまりなりとは汝が禅宗・念仏・真言等の七宗を破るのみならず漢土・日本にわたる一切の訳者を用いざるかいかん、答えて云く此の事は余が第一の秘事なり委細には向つて問うべし、 但しすこし申すべし羅什三蔵の云く我漢土の一切経を見るに皆梵語のごとくならずいかでか此の事を顕すべき、但し一の大願あり身を不浄になして妻を帯すべし舌計り清浄になして仏法に妄語せじ我死なば必やくべし焼かん時舌焼けるならば我が経をすてよと常に高座にしてとかせ給しなり、 上一人より下万民にいたるまで願じて云く願くは羅什三蔵より後に死せんと、終に死し給う後焼きたてまつりしかば不浄の身は皆灰となりぬ御舌計り火中に青蓮華生て其の上にあり五色の光明を放ちて夜は昼のごとく昼は日輪の御光をうばい給いき、さてこそ一切の訳人の経経は軽くなりて羅什三蔵の訳し給える経経・殊に法華経は漢土にやすやすとひろまり給いしか。

풀이

의심하여 이르기를, 무엇으로써 라집 삼장 이외의 사람들이 그릇되었다고 아는가. 그대는 선종 · 염불 · 진언 등 일곱 종을 깨뜨릴 뿐 아니라 한토 · 일본에 건너온 모든 역자를 쓰지 않는 것인가, 어떠한가. 답하기를, 이 일은 나의 제일의 비사(秘事)이니 자세한 것은 마주하여 물으라. 다만 조금 말하리라. 라집 삼장이 이르기를 「내가 한토의 일체경을 보건대 모두 범어(의 본뜻)와 같지 않다. 어찌하면 이 일을 드러낼 것인가. 다만 한 가지 큰 원이 있으니, 몸은 깨끗하지 못하게 하여 아내를 두더라도 혀만은 깨끗이 하여 불법에 망어하지 않으리라. 내가 죽거든 반드시 태우라. 태울 때 혀가 탄다면 나의 경을 버리라」고 늘 고좌(高座)에서 설하셨느니라. 위로 한 사람부터 아래로 만민에 이르기까지 원하여 이르기를 「원컨대 라집 삼장보다 뒤에 죽고 싶다」 하였느니라. 마침내 돌아가신 뒤 태워 드렸더니 깨끗하지 못한 몸은 다 재가 되었으나 혀만은 불 속에서 푸른 연꽃이 피어나 그 위에 있어, 오색의 광명을 놓아 밤은 낮과 같고 낮에는 해의 빛을 빼앗으셨느니라. 그래서야말로 모든 역자의 경들은 가벼워지고 라집 삼장이 번역하신 경들, 특히 법화경은 한토에 수월하게 퍼지셨느니라.

어구 풀이

竜樹용수
범어 나가르주나(Nāgārjuna)의 한역. 150년 무렵~250년 무렵의 남인도 출신 대승 논사로, 부법장(付法蔵)의 제13조(제14조라고도 한다)로 꼽힌다. 바라문 출신으로 처음에 소승을 배웠으나 설산 지방에서 한 노비구에게 대승 경전을 받은 뒤 대승의 선양에 힘써 「팔종의 조사」로 불렸다. 『십이문론』 1권, 『십주비바사론』 17권, 『중관론(중론)』 4권 등을 지었다. 생애는 인물탐구 「용수」 페이지에 자세하다.
世親세친
범어 바수반두(Vasubandhu), 음사 바수반두(婆薮槃豆). 구역에서는 천친(天親), 신역에서는 세친이라 한다. 4~5세기 무렵 북인도 건타라국 출신으로 무착(無著)의 아우다. 처음 설일체유부의 소승을 배워 『구사론』을 지었으나, 형 무착의 인도로 대승에 들어섰다. 소승에 집착해 대승을 비방한 허물을 뉘우쳐 혀를 자르려 하자, 형이 「혀로 대승을 비방했다면 이제 그 혀로 대승을 찬탄해 죄를 갚으라」고 타일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구사론』 30권, 『십지경론』 12권, 『법화론』 2권, 『섭대승론석』 15권, 『불성론』 4권 등을 지어 「천 부의 논사」라 불린다.
十住毘婆娑論・中論・大論십주비바사론 · 중론 · 대론
모두 라집 삼장이 한역한 용수의 저술. 『십주비바사론』은 『화엄경』 십지품의 처음 두 지(地)를 풀이한 논이고, 『중론』은 「팔불(八不) 중도」의 반야 사상을 펼친 논이며, 『대론』은 대품반야경을 풀이한 『대지도론』 100권이다. 대성인은 건너온 이 논들로써 천축에 남은 논의 뜻까지 「견주어 안다(比知)」고 하신다.
因縁所生法の四句の偈인연소생법의 사구게
『중론』의 「인연으로 생긴 법을 나는 곧 공이라 설하며, 또한 이름하여 가명이라 하고, 또한 중도의 뜻이라 한다」는 네 구. 원인과 조건으로 생기는 것은 공이요 가요 중이라는 뜻으로, 공 · 가 · 중 삼제(三諦)가 설해져 있다고 풀이된다. 여기서는 천태대사의 『법화현의』 권2 상에 인용된 글을 따랐다. 길장의 『법화현론』 등에서는 자구에 조금 차이가 있으며, 대정신수대장경본은 「여러 인연으로 생긴 법을 나는 곧 무(無)라 설한다……」로 되어 있다.
内鑒泠然내감냉연
「内鑑冷然」으로도 쓴다. 『마하지관』 권5의 글로, 「천친 · 용수는 안으로 비추어 냉연(泠然)했으나 밖으로는 때의 마땅함에 맞추어 각기 권(権)에 의거한 바가 있었다」고 한다. 「내감」은 마음 안을 거울에 비추듯 보는 것, 「냉연」은 밝게 깨닫는 것이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이 글을 인용하시어 용수 · 천친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사람」이라 하셨다.
中論を以て相比すること莫れ『중론』으로써 서로 견주지 말라
천태대사의 『법화현의』의 말. 법화경의 깊고 넓은 뜻은 용수의 『중론』과 같은 줄에 놓고 견줄 수 없다는 뜻이다.
破会を論ぜば未だ法華に若かざる故に깨뜨리고 모음을 논한다면 아직 법화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에
묘락대사의 『법화현의석첨』의 말. 파회(破会)는 이전의 권교를 깨뜨리고[破] 그것을 일승의 실교로 열어 모으는[会] 것, 곧 법화경의 개권현실이다. 용수 · 천친의 논은 이 점에서 법화경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従義종의
1042~1091. 중국 북송 천태종의 학승. 천태 삼대부(『법화현의』 · 『법화문구』 · 『마하지관』)에 보주를 붙인 『법화삼대부보주』 14권이 주저다.
不空三蔵불공 삼장
705~774. 범어 아모가바즈라(Amoghavajra), 음사 아목거발절라(阿目佉跋折羅), 뜻으로 옮겨 불공금강(不空金剛). 당대 진언종의 세 삼장(선무외 · 금강지 · 불공) 가운데 한 사람으로 중국 밀교를 완성했다. 15세에 장안에 들어가 금강지를 따라 출가했고, 개원 29년(741) 스승이 죽은 뒤 남천축을 거쳐 사자국(스리랑카)에 이르러 밀장과 경론을 얻어 6년 뒤 낙양으로 돌아왔다. 현종 황제의 귀의를 받았고, 『금강정경』 3권 등을 번역해 라집 · 현장 · 진제와 함께 중국 사대 역경가로 꼽힌다.
菩提心論보리심론
1권. 『금강정유가중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론』의 약칭으로 『발보리심론』이라고도 한다. 보리심의 행상을 행원 · 승의 · 삼마지의 셋으로 나누고, 삼마지법을 설하지 않는 현교로는 즉신성불할 수 없다고 한다. 홍법은 지은이가 적혀 있지 않은 것을 기화로 이를 용수의 저술로 삼아 진언만이 즉신성불의 법이라는 근거로 썼다.
竜猛菩薩용맹보살
용수의 다른 이름. 부법장 제13조(제14조라고도 한다). 홍법의 『비밀만다라교부법전』에 「당에서는 용맹보살이라 하며, 예전에 용수라 한 것은 와전되고 줄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어, 진언종에서는 용수보다 용맹이라는 이름을 즐겨 쓴다.
目録にも或は竜猛或は不空と両方にいまだ事定まらず목록에도 혹은 용맹, 혹은 불공이라 하여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목록은 일체경의 목록이다. 원조(円照)의 『정원신정석교목록』(정원록) 제15 「총집군경록」은 용맹과 불공 두 이름을 들면서도 용맹의 저술이라 적지 않고 불공의 번역 안에 넣었다.
唯真言法中유진언법중
『보리심론』의 「오직 진언법 가운데서만 즉신성불하므로 이 때문에 삼마지를 설한다. 여러 가르침 가운데서는 빠뜨리고 말하지 않는다」는 글을 가리킨다.
法華経の観智の儀軌법화경 관지의궤
불공이 번역한 『성취묘법연화경왕유가관지의궤』 1권. 『법화의궤』 · 『성취법화의궤』라고도 한다. 견보탑품의 석가 · 다보 이불병좌를 중심으로 문수 · 약왕 · 미륵 · 보현 등을 밀교식으로 배치한 만다라를 설하고, 이에 따라 수행하면 육근청정을 얻고 법화삼매를 이룬다고 한다. 동밀(東密)에서 법화경을 천박한 것, 대일경을 깊은 비밀로 보는 근거가 되었다.
羅什三蔵라집 삼장
344~409(입적 연도는 『고승전』 권2에 따름. 이설이 있다). 구마라집(Kumārajīva). 뜻으로 옮겨 동수(童寿). 아버지는 인도 한 나라의 재상 집안에서 출가한 구마라염, 어머니는 구자국 왕 백순의 누이 기바다. 일곱 살에 어머니와 함께 출가해 하루에 천 게를 외웠다고 하며, 아홉 살에 계빈국에 유학해 소승을 배우고, 돌아와 수리야소마에게서 대승을 배워 구자국에서 대승을 폈다. 전진의 부견이 장수 여광을 보내 서역을 치게 하자 여광에게 이끌려 중국으로 가던 중 전진이 망해 양주에 머물렀고, 후진의 요흥에게 맞아들여져 홍시 3년(401) 장안에 들어가 국사의 대우를 받으며 역경에 종사했다. 역경 수는 『출삼장기집』에 35부 294권, 『개원석교록』에 74부 384권이라 하며, 『묘법연화경』 8권 · 『대품반야경』 27권 · 『대지도론』 100권 · 『중론』 4권 · 『백론』 2권 등이 대표작이다. 홍시 11년(409) 8월 20일 장안에서 입적했는데, 예언대로 혀만 타지 않아 번역의 바름을 증명했다고 전한다.

정법의 논사는 왜 법화의 실의를 펴지 않았는가

제15장에서 대성인은 「불법은 시에 의해 홍통되는 것이지 기(機)에 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결론지으셨다. 그러나 힐난한 사람은 그것으로 수긍하지 않는다. 정법 시대에는 마명 · 용수 · 제바 · 무착이 나왔고, 천친은 『법화론』을 지어 법화경을 여러 경 가운데 제일이라 했으며, 인도에 법화경을 홍통한 집안이 오십여 가였다고 진제 삼장은 전한다. 그렇다면 정법 시대에도 법화경은 이미 펴진 것이 아닌가. 제16장은 이 물음을 정면으로 받아 「펴지 않으셨다」고 단언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장의 뜻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용수 · 천친 등이 법화의 실의를 펴지 않았음을 밝히는 것은, 정법 · 상법에 펴지지 않은 법이 말법에 반드시 유포됨을 밝히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이 장은 용수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앞 시대의 성인들이 그 법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펴지 않았던」 것임을 확인해 둘 때, 비로소 그 법이 말법을 위해 남겨진 것이라는 논증이 선다. 선시초의 문답이 정법의 용수에서 상법의 천태 · 전교로, 그리고 말법의 비법으로 차례로 올라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성인의 논증 방법도 눈여겨볼 만하다. 용수의 논은 삼십만 게에 이른다고 하나 중국에 건너온 것은 그 일부다. 그렇다면 건너오지 않은 논 가운데 법화의 실의를 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대성인은 이를 두 갈래로 막으신다. 하나는 건너온 『십주비바사론』 · 『중론』 · 『대지도론』으로써 나머지를 「견주어 안다(比知)」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처 자신이 「그 사람의 소전은 『중론』에 있으리라」고 수기했다는 것이다. 용수의 칠십 가 유파가 모두 『중론』을 근본으로 삼는다면, 『중론』의 간심이 무엇인지를 보면 용수 사상의 귀결을 알 수 있다는 논리다.

대승의 두 흐름 — 공종과 유종

「그 사람의 소전은 『중론』이라는 논에 있다」는 구절을 풀려면 먼저 인도 대승의 두 큰 흐름을 정리해 두어야 한다. 인도의 대승은 용수 · 제바가 이끈 대승 공종(空宗)과 무착 · 세친 형제가 이끈 대승 유종(有宗)으로 나뉜다.

용수는 불멸 후 칠백 년 무렵에 나와, 대품반야경을 풀이한 『대지도론』 100권, 팔불중도의 반야 사상을 펼친 『중론』 4권, 관인연문 등 열두 문으로 공의 뜻에 들어감을 설한 『십이문론』 1권을 지었다. 이 계통은 인도에서 중관파(中観派)라 불렸고, 중국에 건너와서는 세 논(『중론』 · 『백론』 · 『십이문론』)을 근거로 하는 삼론종(三論宗)이 되었다. 용수의 제자 가나제바(迦那提婆)는 『백론』 2권을 지어 중관의 공종을 이었다.

이에 대해 무착 · 세친은 불멸 후 구백 년 무렵에 나와 대승 유종으로서의 유가종(瑜伽宗)을 북인도에 폈다. 무착에게는 『섭대승론』 3권과 『유가사지론』 100권(전승에서는 미륵의 설로 본다)이 있고, 세친은 대승 오백 부 · 소승 오백 부, 합하여 천 부의 논을 지어 「천 부의 논사」라 불렸다. 이 계통이 중국에 건너가 법상종(法相宗)이 되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불교를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소승교, 둘은 대승의 「유심유경(唯心有境)」과 「유심무경(唯心無境)」, 셋은 법화경이다. 그 근거가 「쇼미쓰보어서」의 한 대목이다.

小乗には二宗・十八宗・二十宗候へども但所詮の理は無常の一理なり、法相宗は唯心有境・大乗宗・無量の宗ありとも所詮は唯心有境とだにいはば但一宗なり・三論宗は唯心無境・無量の宗ありとも所詮・唯心無境ならば但一宗なり、此れは大乗の空有の一分か、華厳宗・真言宗あがらば但中・くだらば大乗の空有なるべし

소승에는 두 종 · 열여덟 종 · 스무 종이 있으나 다만 그 소전의 이치는 무상(無常)의 한 이치일 뿐이다. 법상종은 유심유경의 대승종이니, 무량한 종이 있더라도 그 소전이 유심유경이라고만 한다면 다만 한 종이다. 삼론종은 유심무경이니, 무량한 종이 있더라도 그 소전이 유심무경이라면 다만 한 종이다. 이것은 대승의 공 · 유의 일부분일 것이다. 화엄종 · 진언종은 올라가면 단중(但中), 내려가면 대승의 공 · 유일 것이다.

「쇼미쓰보어서」, 899쪽

이 분류에서 용수의 중관은 「유심무경」의 삼론종으로, 세친의 유가는 「유심유경」의 법상종으로 갈래를 이룬다. 그리고 화엄 · 진언은 높이 쳐도 「단중」, 곧 별교의 중도에 머문다. 법화경은 이 어느 것과도 같은 줄에 서지 않는다. 대성인이 용수를 「권대승 · 현밀의 여러 경을 폈다」고 하신 것은 이 분류와 그대로 맞물린다. 제18장 語釈이 전하듯, 이 두 흐름은 인도에서 서로 다투었고(중관과 유식), 중국에서는 길장의 삼론과 자은의 법상으로 다투었으며, 일본에서는 원흥사 계통과 흥복사 계통이 공 · 유를 다투었다. 그 오랜 다툼을 끝낸 것이 전교대사였다는 사실이 제18장의 「삼론 · 법상 오랜 해의 다툼」으로 이어진다.

공종(空宗) · 중관파
  • 용수 · 제바
  • 불멸 후 700년 무렵
  • 『대지도론』 100권 · 『중론』 4권 · 『십이문론』 1권 · 『백론』 2권(제바)
  • 중국에서 삼론종
  • 「쇼미쓰보어서」의 분류: 유심무경(唯心無境)
유종(有宗) · 유가파
  • 무착 · 세친
  • 불멸 후 900년 무렵
  • 『섭대승론』 3권 · 『유가사지론』 100권 · 세친은 「천 부의 논사」
  • 중국에서 법상종
  • 「쇼미쓰보어서」의 분류: 유심유경(唯心有境)
소승소전의 이치는 무상(無常)의 한 이치
화엄 · 진언올라가면 단중(但中), 내려가면 대승의 공 · 유
법화경법화 개회의 삼제
공 · 유의 다툼
  1. 인도(중관 대 유식)
  2. 중국(길장의 삼론 대 자은의 법상)
  3. 일본(원흥사 계통 대 흥복사 계통)
  4. 전교대사의 법화 선양으로 그침(제18장)
도표 2 · 대승의 두 흐름과 법화경

사구게와 「법화 개회의 삼제」

『중론』 네 권 스물일곱 품의 간심은 「인연소생법」의 사구게다. 「인연으로 생긴 법을 나는 곧 공이라 설하며, 또한 이름하여 가명이라 하고, 또한 중도의 뜻이라 한다」. 천태대사는 이 게에서 공 · 가 · 중 삼제를 읽어 내어 자기 교학의 큰 기둥으로 삼았다. 그런데 대성인은 이 사구게가 「화엄 · 반야 등의 사교 · 삼제의 법문」이며 「아직 법화 개회의 삼제는 펴지 않았다」고 하신다. 같은 삼제라도 층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공관(空観)의 층위로 풀이할 수 있다. 공관은 이전의 경에도 곳곳에 설해져 있다. 먼저 소승의 공관은 석공관(析空観)이라 한다. 중생의 몸은 오온이 잠시 화합한 것일 뿐 실다운 나는 없다고, 존재를 쪼개고 분석해 공에 이르는 관법이다. 다음으로 대승의 공관은 체공관(体空観)이라 한다. 쪼갤 것도 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실체가 아니라 마음이 지은 것이며, 그 마음 자체도 공이라고 그 자리에서 보는 관법이다.

공 · 가 · 중 삼관에도 다시 두 층이 있다. 별교의 차제삼관(次第三観)은 십주의 지위에서 가(仮)에서 공(空)으로 들어가는 것을 공관, 십행의 지위에서 공에서 가로 나오는 것을 가관, 십회향의 지위에서 중도관을 닦는 것을 중관이라 하여, 셋을 차례로 닦는다. 이에 대해 원교의 원융삼관(円融三観)은 법화경이 밝힌 공 · 가 · 중의 삼관으로, 일제(一諦)가 곧 삼제요 삼제가 곧 일제이며, 그것이 한마음에 갖추어져 있다고 설한다.

「법화 개회의 삼제」란 바로 이 원융의 삼제다. 『중론』의 사구게는 공 · 가 · 중을 말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경이 설한 범위 안에서의 삼제이며, 이승작불과 구원실성으로써 모든 법을 일승으로 열어 합하는 법화경의 개회를 거친 삼제는 아니다. 대성인이 용수의 『중론』을 「사교 · 삼제의 법문」이라 하신 것은 이 점을 짚으신 것이다. 다만 천태는 바로 이 사구게를 실마리로 원융삼제를 세웠으므로, 용수는 법화 원교의 문 앞까지 길을 놓은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이 다음 장의 천태다.

석공 · 체공 · 차제삼관 · 원융삼관
『중론』의 사구게「인연으로 생긴 법을 나는 곧 공이라 설하며, 또한 이름하여 가명이라 하고, 또한 중도의 뜻이라 한다」
사교 · 삼제의 법문
①석공관 · 소승오온을 쪼개어 실다운 나가 없음을 본다
②체공관 · 대승있는 그대로 마음이 지은 것이며 그 마음도 공임을 본다
③차제삼관 · 별교십주: 가에서 공으로(공관) → 십행: 공에서 가로(가관) → 십회향: 중도관(중관)
법화 개회의 삼제
④원융삼관 · 원교(법화경)일제가 곧 삼제, 삼제가 곧 일제, 한마음에 갖춤
판정本文사구게는 「화엄 · 반야 등의 사교 · 삼제의 법문이요 아직 법화 개회의 삼제는 펴지 않았다」華厳・般若等の四教・三諦の法門なりいまだ法華開会の三諦をば宣べ給はず— ①~③ 쪽, ④에는 미치지 않음
도표 3 · 공관의 층위

안으로는 알고 밖으로는 때에 맞추다

용수 · 천친이 법화의 실의를 펴지 않았다는 판정은 대성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대처럼 헤아린 사람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성인은 천태 · 묘락 · 종의 세 사람의 네 마디를 증거로 드신다.

첫째, 천태는 『법화현의』에서 「『중론』으로써 서로 견주지 말라(中論を以て相比すること莫れ)」고 했다. 법화경의 깊고 넓은 뜻은 『중론』의 공 · 가 · 중과 같은 줄에 놓고 견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앞 절에서 본 「사교 · 삼제」와 「법화 개회의 삼제」의 차이를 천태 자신이 못 박은 셈이다. 둘째, 천태는 『마하지관』에서 「천친 · 용수는 안으로 비춤이 냉연하나 밖으로는 때의 마땅함에 맞춘다(天親竜樹内鑒泠然にして外は時の宜きに適う)」고 했다. 셋째, 묘락대사는 『법화현의석첨』에서 「깨뜨리고 모음을 논한다면 아직 법화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에(破会を論ぜば未だ法華に若かざる故に)」라고 했다. 「파회(破会)」란 이전의 권교를 깨뜨리고[破] 그것을 일승의 실교로 열어 모으는[会] 것, 곧 법화경의 개권현실(開権顕実)이다. 용수의 논은 소승을 깨뜨리고 공을 드러내는 데까지는 갔으나, 모든 가르침을 깨뜨리고 다시 모아 일승으로 여는 개회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판정이다. 넷째, 북송의 종의는 『법화삼대부보주』에서 「용수 · 천친은 아직 천태에 미치지 못한다(竜樹天親未だ天台に若かず)」고 했다. 인도의 대논사보다 중국의 천태가 법화경 이해에서 앞선다는 이 말은 다음 장의 천태 찬탄을 미리 비춘다.

네 마디 가운데 가장 무게 있는 것이 『마하지관』 권5의 「내감냉연 외적시의」다. 語釈이 전하는 원문의 뜻은 이렇다. 천친과 용수는 안으로는 일념삼천을 밝게 깨닫고 있었으나, 밖으로는 그 시대에 맞는 가르침을 설하려고 각기 권(権)에 의거했다. 대성인은 이 글을 여러 어서에서 받으신다.

問うて曰く竜樹天親等は如何、答えて曰く此等の聖人は知つて之を言わざる仁なり、或は迹門の一分之を宣べて本門と観心とを云わず

묻기를, 용수 · 천친 등은 어떠한가. 답하기를, 이 성인들은 알면서도 이를 말하지 않은 사람이다. 혹은 적문의 일부분은 폈으나 본문과 관심은 말하지 않았다.

「관심의 본존초」, 245쪽

語釈은 이 대목에 이어지는 「관심의 본존초」의 물음, 곧 「기는 있었으나 때가 이르지 않았던가, 아니면 기와 때가 함께 없었던가」라는 말씀까지 소개한다. 「개목초」에서는 더 분명하다.

一念三千の法門は但法華経の本門・寿量品の文の底にしづめたり、竜樹・天親・知つてしかも・いまだ・ひろいいださず但我が天台智者のみこれをいだけり

일념삼천의 법문은 다만 법화경 본문 수량품의 문(文)의 밑바닥에 잠겨 있다. 용수 · 천친은 알면서도 아직 건져 내지 않았고, 다만 우리 천태지자만이 이를 품었다.

「개목초 상」, 189쪽

여기서 「내감냉연」은 이 편 전체를 꿰뚫는 열쇠가 된다. 용수 · 천친은 알았으나 펴지 않았다. 천태는 품었으나 「이(理)의 일념삼천」에 그쳤다. 전교도 다음 장들에서 보듯 같은 한계를 지녔다. 앞 시대의 성인들이 「알면서 펴지 않은」 법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 법은 누가 언제 펴는가라는 물음이 자연히 생긴다. 선시초는 그 답을 제18장 끝의 「최대의 심밀의 정법」으로 가져간다.

용수가 법화경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그의 저술 안에도 있다. 대성인은 『대지도론』의 한 구절을 거듭 인용하신다.

竜樹菩薩・妙法の妙の一字を釈して譬えば大薬師の能く毒を以て薬と為すが如し等云云、毒と云うは何物ぞ我等が煩悩・業・苦の三道なり薬とは何物ぞ法身・般若・解脱なり

용수보살은 묘법의 묘(妙) 한 글자를 풀이하여 「비유하면 큰 약사가 능히 독을 약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독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번뇌 · 업 · 고의 삼도(三道)다. 약이란 무엇인가, 법신 · 반야 · 해탈이다.

「시문불승의」, 984쪽

대성인은 또 다른 어서에서 이 구절을, 법사품의 「난신난해(難信難解)」를 불멸 후에 몸으로 읽은 단 세 사람의 첫 증거로 드신다.

仏滅後に此の法華経の此の句を読みたる人但三人なり、所謂月氏には竜樹菩薩の大論に云く「譬えば大薬師の能く毒を以て薬と為すが如し」等云云、此れは竜樹菩薩の難信難解の四字を読み給いしなり、漢土には天台智者大師と申せし人読んで云く「已今当説最も為れ難信難解」と云云

불멸 후에 이 법화경의 이 구절을 읽은 사람은 다만 세 사람이다. 이른바 월지에서는 용수보살이 『대론』에서 「비유하면 큰 약사가 능히 독을 약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으니, 이는 용수보살이 「난신난해」의 네 글자를 읽으신 것이다. 한토에서는 천태지자대사라는 사람이 읽고 「이 · 금 · 당의 설 가운데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고 했다.

「제경과 법화경과 난이의 사」, 991쪽

이 글은 이어서 일본의 전교대사를 셋째 사람으로 든다. 용수 · 천태 · 전교, 곧 이 편이 차례로 다루는 세 성인이 바로 그 「세 사람」이다. 용수는 변독위약(変毒為薬)의 「묘」를 알았다. 그러나 그것을 한 종의 교의로 세워 펴지는 않았다. 알면서 펴지 않은 사람, 그것이 선시초가 그리는 용수의 모습이다.

「불멸 후에 이 법화경의 이 구절을 읽은 사람은 다만 세 사람이다」仏滅後に此の法華経の此の句を読みたる人但三人なり— 「제경과 법화경과 난이의 사」 991쪽
  1. 월지용수보살『대지도론』「비유하면 큰 약사가 능히 독을 약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譬えば大薬師の能く毒を以て薬と為すが如し독 = 번뇌 · 업 · 고의 삼도, 약 = 법신 · 반야 · 해탈(「시문불승의」 984쪽)
  2. 한토천태지자대사「이 · 금 · 당의 설 가운데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已今当説最も為れ難信難解
  3. 일본전교대사「이미 설한 사시의 경 · 지금 설한 무량의경 · 앞으로 설할 열반경은 믿기 쉽고 알기 쉬우니 수타의인 까닭이요, 이 법화경은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니 수자의인 까닭이다」已説の四時の経・今説の無量義経・当説の涅槃経は易信易解なり随他意の故に此の法華経は最も為れ難信難解なり随自意の故に
도표 4 · 「난신난해」를 읽은 세 사람

정법 · 상법의 성인들이 법화의 실의를 펴지 않은 것을 밝히는 뜻은 「말법에 반드시 유포함을 밝히기 위함」이다. 그들은 몰라서가 아니라 때가 아니어서 펴지 않았고, 펴지 않은 그 법이 말법을 위해 남겨졌다.

『보리심론』은 용수의 저술인가

이어서 대성인은 진언종의 근거 하나를 무너뜨리신다. 당나라 말, 불공 삼장이 한 권의 논을 가져와 『보리심론』이라 이름 붙이고 용맹(용수)보살이 지은 것이라 했다. 일본의 홍법대사는 이를 받아 「이 논은 용맹이 지은 천 부 가운데 제일 간심의 논(此の論は竜猛千部の中の第一肝心の論)」이라고 높였다. 용수가 진언의 즉신성불을 설했다면, 「용수는 권대승만 폈다」는 대성인의 판정은 흔들린다. 그러므로 이 문답은 곁가지가 아니라 장의 논지를 지키는 방벽이다.

대성인이 드시는 의문은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이 논은 한 부 일곱 장이 있다(此の論一部七丁あり)」 — 짧은 글인데 용맹의 말답지 않은 대목이 곳곳에 많다. 둘째, 그 때문에 일체경 목록에서도 용맹의 저술이라 하기도 하고 불공의 것이라 하기도 하여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語釈에 따르면 원조의 『정원신정석교목록』 제15 「총집군경록」은 두 이름을 들면서도 용맹의 저술이라 적지 않고 불공 역 안에 넣었다. 셋째, 이 논은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총괄한 논도 아니요 거친 데가 많다. 넷째, 간심이라는 「오직 진언법 가운데서만 즉신성불한다」는 글 자체가 그릇되었다. 문증 · 현증이 분명한 법화경의 즉신성불(용녀의 성불)을 없는 것으로 하고, 문증도 현증도 자취조차 없는 진언경에 즉신성불을 세웠기 때문이다. 다섯째, 무엇보다 「오직[唯]」이라는 한 글자가 제일의 그릇됨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불공이 사사로이 지은 것을 그 시대 사람들에게 무겁게 보이게 하려고 용맹에게 갖다 붙인 것이 아니냐고 추단하신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이를 받아 『보리심론』을 용수의 저술이 아니라 불공이 함부로 지어낸 것으로 본다. 語釈은 여기에 문헌학의 근거를 덧붙인다. 이 논은 7세기 무렵 성립했다고 보는 『대일경』 · 『금강정경』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2~3세기 사람인 용수의 저술이 아님은 오늘날 분명하며, 홍법의 시대에도 이미 당대 일행이 받아 적은 『대일경소』를 인용한다는 점 때문에 용수가 아닌 불공의 저작이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판정은 용수 자신의 법화 찬탄과도 맞물린다. 『대지도론』에서 「묘」를 변독위약으로 풀어 법화경의 공덕을 찬탄한 용수가, 다른 논에서는 거꾸로 진언에만 즉신성불이 있다고 「오직」이라는 글자로 못 박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성인이 「오직」 한 글자를 제일의 그릇됨이라 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불공 삼장의 그릇됨과 백팔십육 인의 역경사

대성인은 『보리심론』에서 그치지 않고 불공의 번역 전반을 문제 삼으신다. 첫째, 『법화경 관지의궤』에서 수량품의 부처를 아미타불이라 썼다. 구원실성의 교주 석존을 서방의 아미타불로 바꾼 것이니 「눈앞의 큰 벽견」이다. 둘째, 다라니품(제26)을 신력품(제21) 다음에 두고, 셋째, 촉루품(제22)을 경의 맨 끝으로 내렸다. 법화경의 부촉 구조를 뒤흔든 것이니 「말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 넷째, 「그런가 하면 천태의 대승계를 훔쳐 대종 황제에게 선지를 청하여 오대산의 다섯 절에 세웠다(さるかとみれば天台の大乗戒を盗んで代宗皇帝に宣旨を申し五台山の五寺に立てたり)」. 불공은 당 대종의 깊은 귀의를 받아 오대산의 금각사 등을 밀교의 거점으로 삼았는데, 대성인은 그 절들에 세운 계가 본래 천태의 원돈 대승계를 빌려 온 것이라고 보신다. 제17장과 제18장에서 보듯 원돈의 계는 천태가 세우지 못하고 전교가 히에이산에 세운 것이니, 남의 계를 훔쳐 제 종의 기반으로 삼았다는 비판은 무겁다. 다섯째, 「또 진언의 교상에는 천태종을 쓰라고 하였다(而も又真言の教相には天台宗をすべしといえり)」. 진언종을 세우면서도 교상판석은 천태종의 것을 쓰라 한 것이니, 자기 종의 교판도 세우지 못하고 남의 것을 빌린 것이다. 대성인은 이를 「이래저래 속이는 일들뿐(かたがた誑惑の事どもなり)」이라 하신다. 그래서 대성인은 「다른 사람의 번역이라면 쓸 일도 있겠으나 이 사람이 번역한 경론은 믿을 수 없다」고 하시고, 「불공 삼장은 특히 그릇됨이 많은 위에 속이려는 마음이 드러나 있다」고 결론지으신다.

이와 같은 대목은 「간효팔번초」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然るに月氏より漢土に経を渡せる訳人は一百八十七人なり其の中に羅什三蔵一人を除きて前後の一百八十六人は純乳に水を加へ薬に毒を入たる人人なり

그런데 월지에서 한토로 경을 건너오게 한 역자는 백팔십칠 인이다. 그 가운데 라집 삼장 한 사람을 빼면 앞뒤의 백팔십육 인은 순수한 젖에 물을 타고 약에 독을 넣은 사람들이다.

「간효팔번초」, 577쪽

「간효팔번초」는 라집을 포함해 백팔십칠 인이라 하고, 선시초는 라집을 제외한 수를 백팔십육 인이라 하니 두 글은 같은 셈이다. 「간효팔번초」는 이어서, 이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일체경을 독송하고 십이부경을 가슴에 띄운 듯하더라도 생사를 벗어나기 어렵고, 지금 한 조각 영험이 있는 듯해도 천지가 알 만한 기원은 되지 못하며, 마왕 · 마민이 수호를 더해 법에 험(験)이 있는 듯이 보여도 마침내 그 몸도 단나도 안온하지 못하다고 경고한다. 옛 의사가 약에 독을 섞어 두었는데 그 제자들이 이를 훔치거나 그냥 집어 들어 남의 병을 고치려 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안온하겠느냐는 비유다.

그렇다고 라집 외의 번역을 전혀 쓰지 않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대성인의 어서에도 다른 사람이 번역한 경이 인용되어 있고, 법화경의 개경인 『무량의경』은 담마가타야사(曇摩伽陀耶舎)가 번역한 것을 쓰신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번역이라도 그릇됨이 있으면 버리고 바르면 쓴다. 本文이 불공을 특별히 지목한 것은 그가 수많은 그릇됨을 범했기 때문이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진언의 개조들 — 중국의 선무외 · 금강지 · 불공, 일본의 홍법 · 자각 — 에게는 이런 속임이 많으니, 그 한 예가 「보은초」가 전하는 불공의 기우(祈雨) 이야기다. 불공이 비를 빌자 비가 내리기는 했으나 폭풍우가 되어 그치지 않았고, 「결국은 사자를 붙여 쫓아 보내고서야 바람도 그쳤다(結句は使をつけて追うてこそ風も・やみてありしか)」(「보은초」, 316쪽)는 것이다. 진언 삼삼장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은 선시초 제4편 「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에서, 그리고 본존문답초 제3편 「세 대사의 사적과 불법의 전래」에서 다룬다.

『보리심론』의 다섯 의문
  • ①한 부 일곱 장 — 용맹의 말이 아닌 곳이 곳곳에 많다
  • ②경의 목록에도 용맹 · 불공 두 이름 —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정원록 제15는 불공 역에 넣음)
  • ③일대를 묶은 논이 아니요 거친 곳이 많다
  • ④「오직 진언법 가운데서만 즉신성불한다」 — 문증 · 현증이 있는 법화경의 즉신성불을 없애고, 문증 · 현증이 없는 진언경에 세웠다
  • ⑤「오직〔唯〕」 한 글자가 제일의 그릇됨
→ 추단: 불공이 사사로이 짓고 용맹에게 갖다 붙인 것문헌학: 7세기 무렵 성립한 『대일경』 · 『금강정경』을 인용하므로 2~3세기의 용수가 지었을 수 없다
불공 삼장의 그릇됨
  • ①『법화경 관지의궤』 — 수량품의 부처를 아미타불로: 「눈앞의 큰 벽견」
  • ②다라니품(제26)을 신력품(제21) 다음에
  • ③촉루품(제22)을 경의 끝에
  • ④천태의 대승계를 훔쳐 오대산에 다섯 절
  • ⑤진언종을 세우면서 교상은 천태종의 것을 쓰라
「불공 삼장은 특히 그릇됨이 많은 위에 속이려는 마음이 드러나 있다」不空三蔵は殊に誤多き上誑惑の心顕なり
도표 5 · 『보리심론』과 불공 삼장에 대한 비판

「라집 삼장은 혀가 타지 않았다」 — 현증의 무게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라집 외의 사람들이 그르다고 하는가. 힐난한 사람은 대성인이 선 · 염불 · 진언 등 일곱 종을 깨뜨릴 뿐 아니라 한토 · 일본에 건너온 모든 역자까지 쓰지 않는다며 따진다. 대성인은 「이 일은 나의 제일의 비사이니 마주하여 물으라」고 하시면서도 조금 밝히신다. 그것이 라집 삼장의 서원과 그 현증이다.

라집은 늘 고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토의 일체경을 보니 모두 범본의 본뜻과 다르다. 이를 세상에 밝힐 방법이 없으나 한 가지 큰 원이 있다. 이 몸은 아내를 두어 깨끗하지 못하나 혀만은 깨끗이 하여 불법에 망어하지 않았다. 내가 죽거든 반드시 태우라. 혀가 탄다면 나의 경을 버리라. 사람들은 위로 천자부터 아래로 만민까지 라집보다 뒤에 죽어 그 혀가 타지 않는 것을 보고 싶다고 원했다. 마침내 라집이 죽어 다비하니 몸은 다 재가 되었으나 혀만은 불 속에서 푸른 연꽃 위에 남아 오색의 광명을 놓았다. 이 일이 있었기에 다른 역자의 경들은 가벼워지고 라집의 경, 특히 법화경이 한토에 수월하게 퍼졌다는 것이다.

羅什三蔵の云く我漢土の一切経を見るに皆梵語のごとくならずいかでか此の事を顕すべき、但し一の大願あり身を不浄になして妻を帯すべし舌計り清浄になして仏法に妄語せじ我死なば必やくべし焼かん時舌焼けるならば我が経をすてよと常に高座にしてとかせ給しなり

라집 삼장이 이르기를 「내가 한토의 일체경을 보건대 모두 범어와 같지 않다. 어찌하면 이 일을 드러낼 것인가. 다만 한 가지 큰 원이 있으니, 몸은 깨끗하지 못하게 하여 아내를 두더라도 혀만은 깨끗이 하여 불법에 망어하지 않으리라. 내가 죽거든 반드시 태우라. 태울 때 혀가 탄다면 나의 경을 버리라」고 늘 고좌에서 설하셨다.

「선시초」, 268–269쪽

라집의 서원은 「망어하지 않았다」는 과거의 변명이 아니라 「망어하지 않으리라」는 맹세이며, 그 증명을 자기 죽음 뒤의 현증에 맡긴 것이다. 대성인이 이 대목을 「나의 제일의 비사」라 하시며 「자세한 것은 마주하여 물으라」고 덧붙이신 것은, 역경의 정사를 가리는 일이 단지 문헌의 문제가 아니라 불법의 바르고 그름을 현증으로 가리는 원리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불법은 현증을 제일로 한다」는 원리를 끌어낼 수 있다.

日蓮仏法をこころみるに道理と証文とにはすぎず、又道理証文よりも現証にはすぎず

니치렌이 불법을 시험해 보건대 도리와 증문보다 나은 것이 없고, 또 도리 · 증문보다도 현증보다 나은 것이 없다.

「삼삼장기우사」, 1468쪽

設い日蓮富楼那の弁を得て目連の通を現ずとも勘うる所当らずんば誰か之を信ぜん

설령 니치렌이 부루나의 변재를 얻고 목련의 신통을 나타낸다 해도, 헤아린 바가 맞지 않는다면 누가 이를 믿겠는가.

「현입정의초」, 537쪽

이 밖에도 대성인은 여러 어서에서 「왕법은 상벌을 근본으로 하나 불법은 승부를 먼저로 한다」는 것, 비를 비는 것과 같은 금생의 기원조차 이루지 못하면서 대사 중의 대사인 후생의 성불이 이루어질 리 없다는 것, 그리고 대성인 자신에게 「세 번의 고명(三度の高名)」이 나타났다는 것을 보이셨다. 세 번의 고명은 선시초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현증과 예언의 적중은 불법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와 사상에서도 중시된다. 그러나 불법 안에서 보면, 석존은 가까이는 석 달 뒤의 열반을 예언해 맞혔고 멀리는 법화경에서 「후오백세 광선유포」를 예언했다. 그리고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불법 가운데서도 말법의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예언의 적중과 현증의 진실함이 각별히 뛰어나다.

聖人と申すは委細に三世を知るを聖人と云う

성인이라 함은 삼세를 자세히 아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

「성인지삼세사」, 974쪽

경전을 한역할 때의 바르고 그름을 둘러싼 다툼도, 「라집은 혀가 타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현증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니치칸 상인의 전기에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교호 11년(1726) 2월, 상인은 일생의 마지막 강의로 「관심의 본존초」를 강하고, 강의를 마치는 날 「라집 삼장은 혀가 타지 않는 현증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믿었다. 내가 지금 부루나의 변재와 목련의 신통을 나타낸다 해도 말한 바가 맞지 않으면 믿을 것이 못 된다. 나는 메밀국수를 좋아하니 임종 때 메밀국수를 먹고 한 번 크게 웃고 제목을 부르며 죽을 것이다. 그대로 된다면 내 설법의 한 글자 한 구절도 의심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전기에 따르면 상인은 그해 여름부터 쇠약해졌으나 약을 먹지 않았고, 8월 18일 밤 「오늘 밤 죽을 것이니 당황하지 말라」 하고는 메밀국수를 일곱 젓가락 들고 웃으며 제목을 부르는 가운데 고요히 입적했다. 교호 11년 8월 19일 아침 진시였다고 한다.

역경의 흐름과 관련하여 함께 새겨 둘 것이 대성인이 밝히신 불법서환(仏法西還)의 원리다.

月は西より出でて東を照し日は東より出でて西を照す仏法も又以て是くの如し正像には西より東に向い末法には東より西に往く

달은 서쪽에서 나와 동쪽을 비추고,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을 비춘다. 불법도 이와 같아서 정법 · 상법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말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

「현불미래기」, 508쪽

정법 · 상법의 불법은 월지에서 한토로, 한토에서 일본으로 흘러왔다. 라집의 혀가 증명한 것도 바로 그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불법이 바르게 옮겨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말법의 불법은 거꾸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 「보은초」는 그 법이 「일본 · 내지 한토 · 월지 · 일염부제에 사람마다 지혜가 있고 없음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다른 일을 버리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를 것(日本・乃至漢土・月氏・一閻浮提に人ごとに有智無智をきらはず一同に他事をすてて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べし)」(「보은초」, 328쪽)이라고 한다. 정법 · 상법의 성인들이 서쪽에서 가져온 법을 바르게 옮기고 풀이하는 데 생애를 바쳤다면, 말법의 법은 동쪽에서 일어나 서쪽으로 되돌아간다. 이 원리는 제19장의 「어떠한 비법인가」라는 물음과 바로 이어진다.

장안의 옛 절 정원, 고요한 연못에 홀로 핀 푸른 연꽃 한 송이
그림 · 장안의 옛 절 정원, 고요한 연못에 홀로 핀 푸른 연꽃 한 송이
제17장 천태대사의 홍통
어서 269쪽 13행~271쪽 1행 · 第17章 天台大師の弘通

본문

本文 · 一어서 269쪽 13~18행
本文 · 어서 원문

疑つて云く羅什已前はしかるべし已後の善無畏・不空等は如何、答えて云く已後なりとも訳者の舌の焼けるをば悞ありけりとしるべしされば日本国に法相宗のはやりたりしを伝教大師責めさせ給いしには羅什三蔵は舌焼けず玄奘・慈恩は舌焼けぬとせめさせ給いしかば桓武天王は道理とをぼして天台法華宗へはうつらせ給いしなり、 涅槃経の第三・第九等をみまいらすれば我が仏法は月支より他国へわたらん時、多くの謬誤出来して衆生の得道うすかるべしととかれて候、されば妙楽大師は「並びに進退は人に在り何ぞ聖旨に関らん」とこそあそばされて候へ、 今の人人いかに経のままに後世をねがうともあやまれる経経のままにねがはば得道もあるべからず、しかればとて仏の御とがにはあらじとかかれて候、仏教を習ふ法には大小・権実・顕密はさてをくこれこそ第一の大事にては候らめ。

풀이

의심하여 이르기를, 라집 이전은 그럴 수 있겠으나 이후의 선무외 · 불공 등은 어떠한가. 답하기를, 이후라 하더라도 역자의 혀가 탔다면 그릇됨이 있었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일본국에 법상종이 성행하던 것을 전교대사가 꾸짖으실 때 「라집 삼장은 혀가 타지 않았고 현장 · 자은은 혀가 탔다」고 꾸짖으셨으므로, 간무 천황은 이치에 맞다고 여기시어 천태법화종으로 옮기셨느니라. 열반경 제3 · 제9권 등을 뵈오면 「나의 불법이 월지에서 다른 나라로 건너갈 때 많은 그릇됨이 생겨 중생의 득도가 엷어지리라」고 설해져 있느니라. 그러므로 묘락대사는 「나아가고 물러남은 다 사람에게 달린 것이니 어찌 성인의 뜻에 관계되겠는가」라고 하셨느니라. 지금 사람들이 아무리 경대로 후세를 원하더라도 그릇된 경대로 원한다면 득도도 있을 수 없느니라. 그렇다고 하여 부처의 허물은 아니라고 쓰여 있느니라. 불교를 배우는 법에는 대소 · 권실 · 현밀은 그만두고라도, 이것이야말로 제일의 대사(大事)일 것이니라.

本文 · 二어서 269쪽 18행 ~ 270쪽 4행
本文 · 어서 원문

疑つて云く正法一千年の論師の内心には法華経の実義の顕密の諸経に超過してあるよしは・しろしめしながら外には宣説せずして但権大乗計りを宣べさせ給うことは・しかるべしとはをぼへねども其の義はすこしきこえ候いぬ、 像法一千年の半に天台智者大師・出現して題目の妙法蓮華経の五字を玄義十巻一千枚にかきつくし、文句十巻には始め如是我聞より終り作礼而去にいたるまで一字一句に因縁・約教・本迹・観心の四の釈をならべて又一千枚に尽し給う 已上玄義・文句の二十巻には一切経の心を江河として法華経を大海にたとえ十方界の仏法の露一渧も漏さず妙法蓮華経の大海に入れさせ給いぬ、其の上天竺の大論の諸義・一点ももらさず漢土・南北の十師の義破すべきをば・これをはし取るべきをば此れを用う、 其の上・止観十巻を注して一代の観門を一念にすべ十界の依正を三千につづめたり、此の書の文体は遠くは月支・一千年の間の論師にも超え近くは尸那五百年の人師の釈にも勝れたり、

풀이

의심하여 이르기를, 정법 일천 년의 논사들이 안으로는 법화경의 실의가 현밀의 여러 경보다 뛰어남을 알면서도 밖으로는 펴 설하지 않고 다만 권대승만을 펴셨다는 것은, 그렇다고는 여겨지지 않지만 그 뜻은 조금 들렸느니라. 상법 일천 년의 중간에 천태지자대사가 출현하여 제목인 묘법연화경의 다섯 자를 『현의』 열 권 일천 장에 다 쓰시고, 『문구』 열 권에는 처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부터 끝의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作礼而去)」에 이르기까지 한 글자 한 구절에 인연(因縁) · 약교(約教) · 본적(本迹) · 관심(観心)의 네 가지 풀이를 늘어놓아 또 일천 장에 다 하셨느니라. 이상 『현의』 · 『문구』 스무 권에서는 일체경의 마음을 강하(江河)로 삼고 법화경을 대해에 비유하여, 시방세계 불법의 이슬 한 방울도 빠뜨리지 않고 묘법연화경의 대해에 넣으셨느니라. 그 위에 천축 대론의 여러 뜻을 한 점도 빠뜨리지 않고, 한토 남북 십사(十師)의 뜻은 깨뜨릴 것은 깨뜨리고 취할 것은 쓰셨느니라. 그 위에 『지관』 열 권을 지어 일대의 관문(観門)을 일념에 거두고 십계의 의보 · 정보를 삼천에 담으셨느니라. 이 책의 문체는 멀리는 월지 일천 년의 논사들을 넘고 가까이는 중국 오백 년 인사(人師)들의 해석보다도 뛰어나니라.

本文 · 三어서 270쪽 4~13행
本文 · 어서 원문

故に三論宗の吉蔵大師・南北一百余人の先達と長者らをすすめて天台大師の講経を聞けと勧むる状に云く「千年の興五百の実復今日に在り乃至南岳の叡聖天台の明哲昔は三業住持し今は二尊に紹係す豈止甘呂を震旦に灑ぐのみならん亦当に法鼓を天竺に震うべし、生知の妙悟魏晋以来典籍風謡実に連類無し乃至禅衆一百余の僧と共に智者大師を奉請す」等云云、 修南山の道宣律師天台大師を讃歎して云く「法華を照了すること高輝の幽谷に臨むが若く摩訶衍を説くこと長風の太虚に遊ぶに似たり仮令文字の師千羣万衆ありて彼の妙弁を数め尋ぬとも能く窮むる者無し、乃至義月を指すに同じ乃至宗一極に帰す」云云、 華厳宗の法蔵大師天台を讃して云く「思禅師智者等の如き神異に感通して迹登位に参わる霊山の聴法憶い今に在り」等云云、 真言宗の不空三蔵・含光法師等・師弟共に真言宗をすてて天台大師に帰伏する物語に云く高僧伝に云く「不空三蔵と親たり天竺に遊びたるに彼に僧有り問うて曰く大唐に天台の教迹有り最も邪正を簡び偏円を暁むるに堪えたり能く之を訳して将に此土に至らしむ可きや」等云云、 此の物語は含光が妙楽大師にかたり給しなり、妙楽大師此の物語を聞いて云く「豈中国に法を失いて之を四維に求むるに非ずや而も此方識ること有る者少し魯人の如きのみ」等云云、

풀이

그러므로 삼론종의 길장대사는 남북의 백여 명 선달(先達)과 장로들에게 천태대사의 강경(講経)을 들으라고 권하는 글에서 이르기를 「천 년에 한 번 일어나고 오백 년에 한 번 나온다는 것이 실로 오늘에 있다. 내지 남악의 예성(叡聖)과 천태의 명철(明哲)은 옛적에는 삼업으로 (법화경을) 지니었고 지금은 두 존귀한 이로 이어 나왔다. 어찌 감로를 진단(震旦)에 뿌릴 뿐이겠는가, 또한 마땅히 법고를 천축에까지 울리리라. 나면서부터 아는 묘한 깨달음은 위진 이래 전적(典籍)과 강설 가운데 실로 견줄 이가 없다. 내지 선중(禅衆) 백여 명의 승려와 함께 지자대사를 받들어 청한다」고 하였느니라. 종남산의 도선율사는 천태대사를 찬탄하여 이르기를 「법화를 비추어 밝힘은 높이 뜬 해가 깊은 골짜기에 임하는 것과 같고, 마하연(대승)을 설함은 긴 바람이 허공에 노니는 것과 같다. 설령 문자의 스승이 천 무리 만 무리가 있어 그 묘한 변재를 헤아려 찾는다 해도 능히 다 궁구할 자는 없다. 내지 뜻은 달을 가리키는 것과 같고, 내지 종지는 하나의 궁극에 돌아간다」고 하였느니라. 화엄종의 법장대사는 천태를 찬탄하여 이르기를 「혜사선사 · 지자대사 같은 이는 신이(神異)에 감통하여 그 행적이 지위에 오른 이에 참여하니, 영산에서 법을 들은 기억이 지금에 있다」고 하였느니라. 진언종의 불공 삼장과 함광법사 등 스승과 제자가 함께 진언종을 버리고 천태대사에게 귀복한 이야기를 『고승전』에서 이르기를 「불공 삼장과 함께 몸소 천축에 유학하였을 때 그곳의 한 승려가 물어 이르기를, 대당에는 천태의 가르침이 있어 사(邪)와 정(正)을 가리고 편(偏)과 원(円)을 밝히는 데 가장 뛰어나다 하니, 이를 번역하여 이 땅에 이르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느니라. 이 이야기는 함광이 묘락대사에게 말한 것이니, 묘락대사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르기를 「어찌 중국(인도)에서 법을 잃고 이를 사방의 변두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이쪽에서는 아는 이가 적으니 노(魯)나라 사람과 같을 뿐이다」라고 하였느니라.

本文 · 四어서 270쪽 13행 ~ 271쪽 1행
本文 · 어서 원문

身毒国の中に天台三十巻のごとくなる大論あるならば南天の僧いかでか漢土の天台の釈をねがうべき、これあに像法の中に法華経の実義顕れて南閻浮提に広宣流布するにあらずや、 答えて云く正法一千年・像法の前四百年・已上仏滅後・一千四百余年にいまだ論師の弘通し給はざる一代超過の円定・円慧を漢土に弘通し給うのみならず其の声月氏までもきこえぬ、 法華経の広宣流布にはにたれどもいまだ円頓の戒壇を立てられず小乗の威儀をもつて円の慧定に切りつけるはすこし便なきににたり、例せば日輪の蝕するがごとし月輪のかけたるに似たり、 何にいわうや天台大師の御時は大集経の読誦多聞堅固の時にあひあたていまだ広宣流布の時にあらず。

풀이

신독국(인도) 안에 천태의 삼십 권과 같은 대론이 있다면 남천축의 승려가 어찌 한토 천태의 해석을 바라겠는가. 이것이 어찌 상법 가운데 법화경의 실의가 드러나 남염부제에 광선유포한 것이 아니겠는가. 답하기를, (천태대사는) 정법 일천 년과 상법의 앞 사백 년, 이상 불멸 후 일천사백여 년 동안 아직 논사들이 홍통하지 않은, 일대(一代)를 뛰어넘는 원정(円定) · 원혜(円慧)를 한토에 홍통하셨을 뿐 아니라 그 이름이 월지에까지 들렸느니라. 법화경의 광선유포와 닮기는 하였으나 아직 원돈(円頓)의 계단을 세우지 못하셨으니, 소승의 위의(威儀)로써 원(円)의 혜 · 정에 이어 붙인 것은 조금 마땅치 않은 듯하니라. 비유하면 해가 이지러진 것과 같고 달이 기운 것과 같으니라. 하물며 천태대사의 때는 대집경의 독송다문견고(読誦多聞堅固)의 때에 해당하여 아직 광선유포의 때가 아니었느니라.

어구 풀이

玄弉현장
602~664. 「玄奘」으로도 쓴다. 당대의 승려로 중국 법상종의 개조. 13세에 출가해 율 · 성실 · 구사 등을 배우고, 인도 각지를 순례해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돌아왔다. 『반야경』 600권을 비롯해 75부 1,335권을 번역했다고 하며, 태종의 칙을 받아 16년에 걸친 여행을 기록한 것이 『대당서역기』다.
慈恩자은
632~682. 당대의 승려로 중국 법상종의 실질적 개조(현장을 개조로 세우면 제2조). 이름은 규기(窺基). 17세 때 인도에서 돌아온 현장의 제자로 출가해 역경에 종사하고 법상종을 세웠다. 장안 자은사에 살아 자은대사라 불린다. 『성유식론술기』 20권, 『법화현찬』 10권 등을 지어 「백 본의 소주」라 불렸다. 삼승진실 · 일승방편을 세워, 법상종의 소의경인 『해심밀경』을 진실이라 하고 법화 일승을 방편이라 했다.
並びに進退は人に在り何ぞ聖旨に関らん나아가고 물러남은 다 사람에게 달렸으니 어찌 성인의 뜻에 관계되랴
묘락대사의 말. 경이 바르게 전해지느냐 그르게 전해지느냐는 옮기고 전하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지 부처의 본뜻 탓이 아니라는 뜻이다. 대성인은 이 말로 「그릇된 경을 따라 득도하지 못해도 부처의 허물은 아니다」라는 열반경의 뜻을 받으신다.
天台智者大師천태지자대사
538~597. 이름은 지의(智顗), 자는 덕안(徳安). 천태산에 살아 천태대사라 하고, 수의 진왕 양광(뒤의 양제)에게 보살계를 주고 「지자대사」라는 호를 받았다. 혜문 · 혜사에 이어 천태종 제3조(용수를 개조로 하면 제4조)로,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는 교관을 완성했다. 생애는 인물탐구 「천태대사」 페이지에 자세하다.
玄義・文句・止観현의 · 문구 · 지관
천태의 법화 삼대부. 『법화현의』 10권은 묘법연화경의 제목을 명 · 체 · 종 · 용 · 교의 오중현의로 풀이하고, 『법화문구』 10권은 경문을 한 구절씩 풀이하며, 『마하지관』 10권은 관심의 수행을 밝힌다. 모두 제자 장안대사 관정(灌頂)이 받아 적어 정리했다. 本文의 「천태 삼십 권」이 이것이다.
因縁・約教・本迹・観心인연 · 약교 · 본적 · 관심
『법화문구』의 네 가지 풀이 방법(사석). 인연석은 사실단(四悉檀)으로 부처와 중생이 감응하는 인연에 따라 풀고, 약교석은 장 · 통 · 별 · 원 사교와 오시에 맞추어 풀며, 본적석은 본문 · 적문의 관계로 풀고, 관심석은 그 글을 자기 마음을 관하는 법으로 풀이한다.
南北の十師남북의 십사
중국 남북조 시대 강남의 세 사람과 강북의 일곱 사람의 교판가. 남삼북칠(南三北七)이라 한다. 천태는 이들의 교판을 깨뜨릴 것은 깨뜨리고 취할 것은 취하여 오시팔교를 세웠다. 자세한 내용은 핵심 개념 「오시팔교」 페이지에 있다.
吉蔵大師길장대사
549~623. 중국 남북조에서 당대에 걸친 삼론종의 대성자. 조부 또는 아버지가 안식(파르티아) 사람이어서 「호길장(胡吉蔵)」이라 불렸고, 가상사에 살아 가상대사라 한다. 열두 살에 법랑을 스승으로 삼론을 배우고, 수나라 초 가상사에서 강설하며 『삼론현의』 · 『중관론소』 · 『대승현론』 · 『법화현론』 · 『법화유의』 등을 지었다. 『법화유의』에서는 이승작불을 밝히는 점에서는 법화경이 뛰어나나 보살을 위해 실혜 · 방편의 두 지혜를 밝히는 점에서는 반야경이 뛰어나다고 하여 반야를 가장 높였다.
南岳の叡聖남악의 예성
예성은 지혜가 뛰어난 성인. 남악대사 혜사(慧思)를 가리킨다. 북제의 승려로 천태의 스승이며, 말년에 남악 형산에 살았다. 혜문 아래에서 법화삼매를 체득했고, 악비구에게 독살당할 뻔하는 등 여러 번 목숨을 위협받는 박해를 겪은 뒤 금자 『대품반야경』과 『법화경』을 만들고 「입서원문」을 지었다. 「입서원문」은 정법 오백 년 · 상법 일천 년 · 말법 일만 년의 삼시설에 서서 자신이 말법 82년에 태어났다고 말하는데, 이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말법 사상을 설한 것으로 여겨진다. 주저는 『법화경안락행의』.
天台の明哲천태의 명철
명철은 현명한 철인. 천태대사를 가리킨다.
千年の興五百の実천 년의 흥 · 오백 년의 실
천 년에 한 번 성인이 일어나고 오백 년에 한 번 현인이 나온다는 말이 실로 오늘(천태의 출현)에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道宣律師도선율사
596~667. 수 · 당대 남산율종의 개조. 남산율사라고도 한다. 16세에 출가해 지수율사에게 율을 배우고 종남산에 들어가 『행사초』를 지어 사분율종(남산종)을 세웠다. 정관 19년(645)부터 장안 홍복사에서 현장의 역경을 도왔다. 『속고승전』 · 『광홍명집』 · 『대당내전록』 등을 지었다. 本文의 「修南山」은 종남산을 가리킨다.
摩訶衍마하연
범어 마하야나(mahāyāna)의 음사로 대승이라 번역한다. 여기서는 법화경을 말한다.
法蔵大師법장대사
643~712. 당대 화엄종의 제3조로 화엄교학의 대성자. 현수대사라고도 한다.
迹登位に参わる행적이 지위에 오른 이에 참여한다
적(迹)은 행적, 등위(登位)는 진리를 일부라도 증득한 지위에 오른 것. 그 행적이 초주(初住) 보살의 교화와 응현에 맞먹는다는 뜻이다.
霊山の聴法憶い今に在り영산에서 법을 들은 기억이 지금에 있다
진 천가 원년(560), 천태가 광주 대소산으로 혜사를 찾아갔을 때 혜사가 「옛날 영산에서 함께 법화를 들었다. 숙연이 따라와 지금 다시 왔다」(『수천태지자대사별전』)고 반겼다는 고사에 근거한다.
含光法師함광법사
생몰년 미상. 당대의 밀교승으로 불공의 제자이며 그 역경을 도왔다. 묘락대사의 『법화문구기』 권10 하에, 묘락이 함광을 만나 이 이야기를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高僧伝고승전
여기서는 『송고승전』 30권. 송 태종의 칙지로 찬녕 등이 지었고, 당대 고승을 중심으로 정전 533인, 부전 130인을 실었다. 양 혜교의 『양고승전』, 당 도선의 『속고승전』, 명 여성의 『대명고승전』과 아울러 사조고승전이라 한다.
魯人노나라 사람
공자의 고향 노나라 사람들이 정작 공자의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고사. 중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나온 천태의 가르침이 뛰어남을 모른다는 비유다.
円定・円慧원정 · 원혜
계 · 정 · 혜 삼학 가운데 원교의 정(지관 수행)과 원교의 혜(교학). 천태는 이 둘을 펴 「일대를 뛰어넘는」 법문을 세웠으나, 셋째인 원계(円戒)의 계단은 세우지 못했다.
読誦多聞堅固독송다문견고
대집경 오오백세 가운데 셋째 오백 년(상법의 앞 오백 년). 경을 읽고 외우며 많이 듣는 일이 굳건한 시대로, 천태대사가 이 시대에 해당한다. 오오백세의 배당은 선시초 제1편 「불법을 배우려면 먼저 시를 익혀라」에 자세하다.

라집 이후의 역자와 「제일의 대사」

제17장은 제16장의 라집 문답에 바로 이어지는 새 물음으로 시작한다. 라집 이전의 번역이 그르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 라집 이후의 선무외 · 불공은 어떤가. 대성인은 라집 이후라도 역자의 혀가 탔다면 그릇됨이 있었다고 알아야 한다고 답하신다. 그리고 일본의 실례를 드신다. 헤이안 초기 일본에 법상종이 성행할 때 전교대사는 「라집 삼장은 혀가 타지 않았고, 법상종을 중국에 편 현장 · 자은은 혀가 탔다」고 꾸짖었고, 간무 천황은 이를 이치에 맞다고 여겨 스스로도 법상종을 버리고 천태법화종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전교대사의 남도 파절은 제18장의 다카오산 종론에서 다시 자세히 나온다.

현장은 인도 각지를 순례하고 75부 1,335권을 번역한 대역경가이고, 자은은 그 제자로서 『법화현찬』을 지었으나 삼승진실 · 일승방편을 세워 『해심밀경』을 법화경보다 위에 두었다. 번역의 양이 아니라 번역에 담긴 뜻의 바름이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바름은 결국 현증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대성인의 논리다. 제19장에서 대성인은 현장을 다시 들어 「여섯 번 태어나 월지에 들어가 십구 년」을 고생한 끝에 법화 일승을 방편교, 소승 아함경을 진실교라 했다고 비판하신다.

대성인은 이어 열반경 제3 · 제9권을 인용해, 부처 자신이 「나의 불법이 월지에서 다른 나라로 건너갈 때 많은 그릇됨이 생겨 중생의 득도가 엷어지리라」고 예언했다고 하신다. 묘락대사가 「나아가고 물러남은 다 사람에게 달린 것이니 어찌 성인의 뜻에 관계되겠는가」라고 한 것도 이 뜻이다. 지금 사람들이 경대로 후세를 원하더라도 그 경이 그르게 번역된 것이라면 득도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부처의 허물이 아니라 옮기고 전한 사람의 허물이다.

그래서 대성인은 이 장을 이렇게 맺으신다. 불교를 배우는 법에서 대소 · 권실 · 현밀의 구별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그만두고라도 경이 역자에 따라 그르쳐졌다는 이 점이야말로 「제일의 대사」다. 이 말은 단순히 번역의 문제를 넘어선다. 무엇이 부처의 참뜻인가를 가리는 일, 곧 법의 정사(正邪)를 가리는 일이 수행의 모든 노력에 앞선다는 것이다. 제19장에서 현장과 불공을 두고 「몸을 괴롭혀서 무엇하랴, 마음에 물들여도 소용없다」고 하신 말씀이 이 「제일의 대사」와 짝을 이룬다.

역경의 바르고 그름을 가리는 현증
  1. 라집 이전라집의 말: 한토의 일체경은 모두 범본의 본뜻과 다르다
  2. 라집 삼장(344~409, 401년 장안에 들어감)서원: 「태울 때 혀가 탄다면 나의 경을 버리라」→ 다비: 몸은 재, 혀는 불 속 푸른 연꽃 위에서 오색 광명→ 라집 역의 경, 특히 법화경이 한토에 퍼짐
  3. 라집 이후「역자의 혀가 탔다면 그릇됨이 있었다고 알아야 한다」→ 전교대사:「라집 삼장은 혀가 타지 않았고 현장 · 자은은 혀가 탔다」羅什三蔵は舌焼けず玄奘・慈恩は舌焼けぬ→ 간무 천황, 천태법화종으로
역경사: 구역 · 신역 186인(「간효팔번초」는 라집을 넣어 187인)
열반경: 다른 나라로 건너갈 때 많은 그릇됨이 생긴다
묘락:「나아가고 물러남은 다 사람에게 달렸으니 어찌 성인의 뜻에 관계되랴」並びに進退は人に在り何ぞ聖旨に関らん
「불교를 배우는 법에는 대소 · 권실 · 현밀은 그만두고라도 이것이야말로 제일의 대사」仏教を習ふ法には大小・権実・顕密はさてをくこれこそ第一の大事にては候らめ
도표 6 · 라집 이전 · 이후

라집의 입적 연도에는 이설이 있다. 語釈은 『고승전』 권2에 따라 홍시 11년(409)으로 적는다. 「다비 때 혀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고승전』 계통의 전승에 실려 있다.

정법에서 상법으로 — 물음이 한 걸음 나아가다

역경의 문제를 매듭지은 뒤 문답은 본론으로 돌아온다. 이 장의 자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앞 장까지 정법 시대의 용수 · 천친 등이 법화의 실의를 펴지 않았음을 밝혔고, 이 장에서는 천태에 맞추어 상법 시대에도 법화의 실의가 홍통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힐난하는 사람의 태도가 미묘하게 바뀐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정법의 논사들이 안으로는 알면서 밖으로는 권대승만을 폈다는 대성인의 설명을 「그렇다고는 여겨지지 않지만 그 뜻은 조금 들렸다」고 반쯤 받아들인다. 그리고 곧바로 더 강한 반례를 꺼낸다. 천태대사다. 정법의 논사들은 몰라도, 상법 중간에 나온 천태는 묘법연화경 다섯 자를 『현의』 열 권 일천 장에 다 풀었고, 『문구』 열 권에서는 「여시아문」부터 「작례이거」까지 한 글자 한 구절에 네 가지 풀이를 붙였으며, 『지관』 열 권에서 십계의 의정을 삼천에 거두었다. 게다가 길장 · 도선 · 법장 · 불공까지 귀복했고 그 이름이 인도에까지 들렸다. 이것이 상법의 광선유포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 힐난은 천태에 대한 최고의 찬사로 이루어져 있다. 대성인은 그 찬사를 하나도 부정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本文의 대부분을 천태의 위대함을 늘어놓는 데 쓰시고, 마지막 몇 줄에서 「그러나 광선유포는 아니다」라고 판정하신다. 천태를 낮추어 말법의 법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천태를 최대한 높인 다음 그래도 남는 것이 있음을 보이는 방식이다.

상법의 중간에 나온 천태대사

語釈은 천태의 생애를 길게 소개한다. 천태는 형주 화용현 사람으로, 아버지 진기조는 양나라의 고관이었으나 양 말의 전란으로 떠도는 몸이 되었다. 양친을 여읜 뒤 18세에 상주 과원사의 법서에게 출가하고, 혜광율사에게 방등과 율장을 배운 뒤 대현산에 들어가 법화 삼부경을 익혔다. 진 천가 원년(560) 광주 대소산으로 남악대사 혜사를 찾아가니, 혜사는 「옛날 영산에서 함께 법화를 들었다. 숙연이 따라와 지금 다시 왔다」고 반겼다. 혜사는 천태에게 보현도량을 보이고 사안락행을 설했다. 대소산에서의 엄한 수행 끝에 약왕보살본사품의 「그 가운데 여러 부처가 동시에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선남자여, 이것이 참된 정진이요, 이것을 참된 법으로 여래께 공양함이라 한다」는 구절에 이르러 몸과 마음이 활짝 열려 법화삼매를 얻었다. 이것을 대소개오(大蘇開悟)라 하며, 뒤에 천태가 약왕보살의 후신이라 불리게 된 까닭이다.

혜사에게 부촉을 받은 천태는 32세에 진의 도읍 금릉 와관사에 머물며 8년 동안 법화경 · 『대지도론』 · 『차제선문』을 강설해 이름을 떨쳤으나, 해마다 깨닫는 이가 줄어드는 것을 탄식하고 태건 7년(575) 천태산에 들어갔다. 이듬해 불롱봉에 수선사를 세우고, 최고봉 화정봉에서 수선하던 중 마의 방해를 물리치고 새벽 별을 보며 다시 깨달았다고 한다. 이를 화정강마(華頂降魔)라 한다. 지덕 3년(585) 진주의 거듭된 요청으로 금릉 광택사에 들어가 『인왕경』 등을 강하고, 정명 원년(587) 『법화문구』를 강설했다. 개황 11년(591) 수의 진왕 양광에게 보살계를 주고 지자대사의 호를 받았으며, 고향 형주의 옥천사에서 『법화현의』 · 『마하지관』을 강했다. 개황 17년(597) 진왕의 부름에 응해 산을 내려가던 중 석성사에서 병으로 입적했다. 60세였다. 그의 강설은 제자 장안대사 관정이 받아 적어 법화 삼대부로 정리했다.

대성인 당시의 일본에는 관음보살이 남악대사로 나타나고 남악의 후신으로 쇼토쿠 태자가 나타났다는 설, 약왕보살이 천태대사로 나타나고 천태의 후신으로 전교대사가 나타났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대성인도 이 설을 바탕으로 「화한왕대기」에서 남악대사를 「관음의 화신」, 전교대사를 「천태의 후신」이라 하셨다고 語釈은 전한다. 선시초가 「두 나라에 성인 두 사람이 출현했다」(제18장)고 할 때 천태와 전교를 한 줄로 잇는 것도 이 이해 위에 서 있다.

本文은 천태가 나온 때를 「상법 일천 년의 중간」이라 한다. 대성인이 쓰신 불멸 연대(기원전 949년설)에 따르면 천태는 불멸 후 천오백 년 무렵에 해당하며, 대집경의 오오백세로는 셋째 오백 년, 곧 독송다문견고의 때다. 이 시대 배당이 장의 결론을 좌우한다.

삼대부의 짜임 — 「선시초 문단」을 따라

本文이 「玄義十巻一千枚」 「文句十巻……又一千枚」 「止観十巻」이라고 그 분량까지 들어 찬탄한 삼대부가 권마다 무엇을 다루는지, 니치칸 상인의 「선시초 문단」에 따라 정리해 보자. 길지만 천태 교학의 골격을 한눈에 보여 주는 자료이므로 요점을 옮긴다.

『법화현의』 열 권

『현의』 열 권은 묘법연화경 다섯 자를 명(名) · 체(体) · 종(宗) · 용(用) · 교(教)의 오중현의(五重玄義)로 풀이한다. 여기에 간략한 풀이와 자세한 풀이가 있다. 제1권은 부처의 뜻에 맞춘 간략한 풀이[仏意略釈]로, 표장 · 인증 · 생기 · 개합 · 요간 · 관심 · 회이의 칠번(七番)에 맞추어 오중현을 함께 풀이한다. 제2권부터는 중생의 기정에 맞춘 자세한 풀이[機情広釈]로, 제2권에서 제8권 중간까지는 명현의, 제8권 중간에서 제9권 처음까지는 체현의, 제9권 중간은 종현의, 제9권 끝은 용현의, 제10권은 교현의를 풀이한다. 이를 오중의 각설(各説)이라 한다.

명현의를 풀이하는 제2권 첫머리에서는 먼저 통(通) · 별(別)을 판정하고, 묘와 법의 앞뒤를 정한 다음, 심(心) · 불(仏) · 중생(衆生)의 삼법에 맞추어 「법」 한 글자를 풀고, 이어 「묘」 한 글자를 풀면서 먼저 상대묘(相待妙) · 절대묘(絶待妙)의 두 묘를 밝히고 다음에 십묘(十妙)로 풀이한다. 제2권에서 제6권 끝까지가 적문의 십묘다. 적문의 십묘란 경묘 · 지묘 · 행묘 · 위묘 · 삼법묘 · 감응묘 · 신통묘 · 설법묘 · 권속묘 · 이익묘다. 첫째 경묘에는 십여경 · 인연경 · 사제경 · 이제경 · 삼제경 · 일제경 등 여섯 가지 경계가 있다. 제2권은 십여 · 인연의 두 경계, 제3권 처음부터 중간까지는 사제 · 이제 · 삼제 · 일제를 밝히고, 제3권 중간부터 끝까지는 지묘, 제4권 처음부터 중간까지는 행묘, 제4권 중간에서 제5권 중간까지는 위묘, 제5권 끝은 삼법묘, 제6권은 감응 이하의 다섯 묘를 밝힌다. 이 십묘에는 하나하나 정석(正釈) · 판추(判麁) · 개추(開麁) · 관심(観心)의 네 겹 풀이가 있다.

제7권에 이르러 먼저 여섯 겹의 본적[六重本迹]을 밝힌다. 사리 · 이교 · 교행 · 체용 · 실권 · 이금(已今)이다. 앞의 다섯 겹은 설해지는 법이고, 여섯째 이금은 설하는 가르침이다. 「이적(已迹)」은 화엄부터 안락행품까지, 「금본(今本)」은 종지용출품 이후의 열네 품이다. 다음에 본문의 십묘를 밝힌다. 본인 · 본과 · 본국토 · 본감응 · 본신통 · 본설법 · 본권속 · 본이익 · 본수명 · 본열반이며, 하나하나 세 가지 뜻으로 적(迹)을 떨쳐 낸다. 이어 추묘(麁妙) · 권실(権実)의 두 과를 세워 사(事)에 맞추어 판정하고 열며, 다시 하나하나 이(理)에 맞추어 융통한다. 제7권 끝에서 「연화」 두 글자를, 제8권 처음에서 「경」 한 글자를 풀이한다. 그 뒤 묘락대사가 『석첨』 열 권을 지어 『현의』를 풀이했다.

『법화문구』 열 권

『문구』 열 권은 스물여덟 품을 풀이한다. 제1권에서 먼저 일경삼단(一経三段) · 이경육단(二経六段)의 분과를 밝히는데, 일경삼단을 전체의 나눔으로 삼고 이경육단을 그 안에 담긴 것으로 삼아 적 · 본 이문을 글마다 구절마다 풀이한다. 다음에 인연 · 약교 · 본적 · 관심 사석의 큰 뜻을 보인다.

이어서 경문을 풀이한다. 제1권부터 제3권 중간까지는 서품, 제3권 중간부터 제4권 끝까지는 방편품이다. 방편품에서는 먼저 품의 제목을 풀어 법용 · 능통 · 비묘의 세 가지 방편을 밝히고, 이어 「일체가 다 권」 · 「일체가 다 실」 · 「일체가 권이기도 하고 실이기도 함」 · 「일체가 권도 아니고 실도 아님」의 사구 권실을 밝힌 다음, 셋째 구에서 다시 열 쌍의 권실을 연다. 사리 · 이교 · 교행 · 박탈 · 인과 · 체용 · 점돈 · 개합 · 통별 · 실단이며, 이 열 쌍을 여러 단계로 풀이한다. 결국 그 귀결은 세 가지 방편 가운데 비묘방편, 사구 가운데 「권이기도 함」의 한쪽, 열 쌍 가운데 「실에 즉한 권」, 곧 방편품이라는 제목의 뜻이다. 제3권은 약개삼현일(略開三顕一)의 글, 제4권은 광개삼현일(広開三顕一)의 글을 풀이하며, 그 가운데 먼저 십문요간(十門料簡)을 밝힌다. 통과 별, 성문이 있음과 없음, 두텁고 엷음, 근기가 바뀜과 바뀌지 않음,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 영해함과 영해하지 못함, 수기를 받음과 받지 못함, 깨달음의 얕고 깊음, 이익의 권과 실, 때를 기다림과 기다리지 않음이다.

제5권은 비유품, 제6권은 신해품, 제7권은 약초유품 · 수기품 · 화성유품 · 오백제자수기품 · 수학무학인기품, 제8권은 법사품 · 견보탑품 · 제바달다품 · 권지품 · 안락행품, 제9권은 종지용출품 · 여래수량품 · 분별공덕품, 제10권은 수희공덕품 이하 열한 품을 풀이한다. 이 품들의 장과 단, 한 글자 한 구절에 모두 인연 등 네 가지 풀이를 쓴다. 글은 생략되어도 그 뜻은 뚜렷하다.

네 가지 풀이에서 인연이란 사실단이고, 약교란 사교 · 오시이며, 본적이란 적문 안에서는 체용의 본적을 빌려 쓰고 본문 안에서는 구근(久近)의 본적이다. 관심이란 탁사관(託事観) · 부법관(附法観)의 두 관일 뿐이며 아직 약행관(約行観)은 펴지 않았다. 묘락대사는 『문구기』를 지어 본소의 빠진 곳을 보충했다.

『마하지관』 열 권

『지관』에는 열 개의 큰 장이 있다. 대의 · 석명 · 체상 · 섭법 · 편원 · 방편 · 정관 · 과보 · 기교 · 지귀다. 제1 · 2권은 대의, 제3권은 석명 · 체상 · 섭법 · 편원의 네 장, 제4권은 방편의 한 장, 제5권부터 제10권 끝까지는 정관을 밝히며, 뒤의 세 큰 장은 줄여서 펴지 않았다.

첫째 대의는 다시 다섯으로 나뉘어 오략(五略)이라 한다. 발대심 · 수대행 · 감대과 · 열대망 · 귀대처다. 수대행에서는 상행 · 상좌 · 반행반좌 · 비행비좌의 사종삼매를 밝힌다. 제4권의 방편장에는 이십오 방편이 있으니, 오연을 갖추고(지계청정 · 의식구족 · 한거정처 · 식제연무 · 득선지식), 오욕을 꾸짖고(색 · 성 · 향 · 미 · 촉), 오개를 버리고(탐욕 · 진에 · 수면 · 도회 · 의), 오사를 고르고(음식 · 잠 · 몸 · 숨 · 마음), 오법을 행하는 것(낙욕 · 전념 · 정진 · 교혜 · 일심)이다.

제5권부터 제10권까지의 정관에서는 십경(十境)을 밝힌다. 음입 · 번뇌 · 병환 · 업상 · 마사 · 선정 · 제견 · 상만 · 이승 · 보살이다. 그리고 십경 하나하나에 십승관법(十乗観法)을 갖춘다. 관부사의경 · 기자비심 · 교안지관 · 파법변 · 식통색 · 수도품 · 대치조개 · 지차위 · 능안인 · 무법애다. 그 가운데 제5권의 관부사의경에서 처음으로 일념삼천을 밝힌다. 먼저 십계와 오음세간 · 중생세간 · 국토세간을 간략히 풀고, 이어 십여시를 자세히 풀어 「이 삼천이 일념의 마음에 있다」고 한다. 니치칸 상인은 이것이 「『지관』 한 부의 간심, 삼대부의 안목, 일대 여러 경의 골수」라고 한다. 다만 『지관』은 견경(見境)에 이르러 법륜을 멈추고 뒷부분을 펴지 않았다. 『지관』 제1권 첫머리에 「겨우 견경에 이르러 법륜 굴림을 멈추고 뒷부분을 펴지 않았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지관』 한 부가 법화경의 뜻에 의거한다는 것은 『지관보행전홍결』 권5의 「법화경의 경지(経旨)를 모아 부사의한 십승 · 십경을 이룬다」, 『지관대의』의 「원돈지관은 온전히 법화에 의거한다. 원돈지관은 곧 법화삼매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같은 글에서 분명하다.

『법화현의』 10권제목을 풀다
  • 오중현의(명 · 체 · 종 · 용 · 교)
  • 제1권: 칠번공해(부처의 뜻에 맞춘 간략한 풀이)
  • 제2~6권: 적문의 십묘(경 · 지 · 행 · 위 · 삼법 · 감응 · 신통 · 설법 · 권속 · 이익)
  • 제7권: 육중본적 · 본문의 십묘
  • 제7~8권: 「연화」 · 「경」
  • 제8~10권: 체 · 종 · 용 · 교현의
  • 묘락 『석첨』
『법화문구』 10권경문을 풀다
  • 일경삼단 · 이경육단
  • 인연 · 약교 · 본적 · 관심의 사석
  • 제1~3권 서품 ·제3~4권 방편품 ·제5권 비유품 ·제6권 신해품 ·제7권 약초유품~인기품 ·제8권 법사품~안락행품 ·제9권 용출품 · 수량품 · 분별공덕품 ·제10권 수희공덕품 이하 열한 품
  • 묘락 『문구기』
『마하지관』 10권관심을 밝히다
  • 십대장(대의 · 석명 · 체상 · 섭법 · 편원 · 방편 · 정관 · 과보 · 기교 · 지귀 — 뒤의 셋은 펴지 않음)
  • 오략 · 사종삼매
  • 이십오방편
  • 십경 × 십승관법
  • 제5권 관부사의경: 일념삼천 — 「이 삼천이 일념의 마음에 있다」
  • 견경에서 멈춤
「적문을 겉으로 삼고 본문을 속으로 삼아 백계천여 · 일념삼천의 뜻을 다하였다. 다만 이구를 논하였을 뿐」(「관심의 본존초」 253쪽)
도표 7 · 천태 삼대부의 짜임

『지관』은 적문인가 본문인가

니치칸 상인은 이어 물음 하나를 세운다. 『지관』은 법화경의 적문의 뜻에 의거하는가, 본문의 뜻에 의거하는가. 일본 천태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혜심류와 단나류의 두 견해가 갈렸다. 혜심류는 『지관보행전홍결』의 「본적 이문에서 깨달음을 구하는 이 열 가지 법」 등의 글을 들어 『지관』이 본적 이문에 걸친다고 했고, 단나류는 「지금 법화의 적문의 이(理)를 겨냥한다」는 등의 글을 들어 『지관』은 적문에 한정된다고 했다.

니치칸 상인은 대성인의 두 글로 이 문제를 정리한다.

若し与えて之を論ぜば止観は法華迹門の分斉に似たり

만일 주어서 이를 논한다면 『지관』은 법화 적문의 분제(分斉)와 같다.

「입정관초송장」, 534쪽

이 글은 이어서 「빼앗아서 이를 논한다면 이전의 권대승, 곧 별교의 분제다」라고 한다. 니치칸 상인은 이 가운데 「빼앗는」 쪽은 당시 천태종이 『지관』을 법화경보다 높이던 그릇된 견해를 깨뜨리기 위한 것이고, 실의를 논한다면 적문의 뜻이 되므로 단나류의 견해가 옳다고 본다. 그런데 「십장초」에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前六重は修多羅に依ると申して大意より方便までの六重は先四巻に限る、これは妙解迹門の心をのべたり、今妙解に依つて以て正行を立つと申すは第七の正観・十境・十乗の観法本門の心なり、一念三千此れよりはじまる

「앞의 여섯 겹은 경(수다라)에 의거한다」고 하여 대의부터 방편까지의 여섯 겹은 앞의 네 권에 한정되니, 이는 묘해(妙解)의 적문의 마음을 편 것이다. 「이제 묘해에 의거해 정행(正行)을 세운다」고 하는 것은 제7 정관 · 십경 · 십승의 관법으로 본문의 마음이니, 일념삼천은 여기서 시작된다.

「십장초」, 1274쪽

한쪽은 적문이라 하고 한쪽은 본문의 마음이라 한다. 니치칸 상인은 『안심록』이 이 두 글을 「부문(附文) · 원의(元意)」로 모았다고 소개하면서, 더 깊은 뜻이 있다고 말한다. 적문은 다만 백계천여를 밝혀 아직 국토세간을 밝히지 않았고, 본문은 곧 일념삼천을 밝힌다. 그런데 『지관』의 뜻은 바로 이(理)의 일념삼천을 밝힌 것이다. 삼천을 밝혔다 해도 그것은 이구(理具)일 뿐이므로 적문의 뜻이라 하고, 이구를 밝혔다 해도 그것은 삼천이므로 본문의 뜻이라 한다. 두 판정이 있으나 겉과 속의 차이일 뿐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그 근거가 「관심의 본존초」의 다음 말씀이다.

南岳・天台等と示現し出現して迹門を以て面と為し本門を以て裏と為して百界千如・一念三千其の義を尽せり。但理具を論じて事行の南無妙法蓮華経の五字並びに本尊未だ広く之を行ぜず

남악 · 천태 등으로 시현하고 출현하여 적문을 겉으로 삼고 본문을 속으로 삼아 백계천여 · 일념삼천의 뜻을 다하였다. 다만 이구(理具)를 논하였을 뿐 사행(事行)의 남묘호렌게쿄 다섯 자와 본존은 아직 널리 행하지 않았다.

「관심의 본존초」, 253쪽

천태가 다한 것은 「이(理)의 일념삼천」이었고, 「사행의 남묘호렌게쿄 다섯 자와 본존」은 아직 행하지 않았다. 이 한 줄이 제17장의 결론, 그리고 제18장 끝의 「최대의 심밀의 정법」을 미리 비추고 있다.

여러 종파의 찬탄과 귀복

本文은 천태를 찬탄하고 귀복한 네 갈래의 사람을 차례로 든다. 천태의 법화경 해석은 최고의 권위를 지니며, 석가 불법의 범위에서 법화경 해석은 천태대사에서 그 극에 이른다.

첫째는 삼론종의 길장이다. 길장은 『법화유의』에서 보살을 위해 두 지혜를 밝히는 점에서는 반야경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고 할 만큼 반야를 높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남북의 백여 명 선달과 장로에게 천태의 강경을 들으라고 권하며, 천 년에 한 번 일어나고 오백 년에 한 번 나온다는 성현이 바로 오늘의 남악과 천태라고 했다. 「옛적에는 삼업으로 지니었고 지금은 두 존귀한 이로 이어 나왔다」는 말에는, 혜사가 천태를 처음 만나 「옛날 영산에서 함께 법화를 들었다」고 한 이야기가 배어 있다. 「개목초」에 따르면, 길장은 천태에게 귀복해 7년을 섬기며 강의를 그만두고 대중을 흩었으며[廃講散衆], 몸을 육교(肉橋)로 삼았다.

둘째는 남산율종의 도선이다. 도선은 천태가 법화를 비추어 밝힘이 「높이 뜬 해가 깊은 골짜기에 임하는 것」과 같고, 대승을 설함이 「긴 바람이 허공에 노니는 것」과 같아서, 문자의 스승이 천만이 모여도 그 묘한 변재를 다 궁구할 수 없다고 했다.

셋째는 화엄종의 법장이다. 법장은 혜사와 지자가 신이에 감통하여 그 행적이 초주 보살의 지위에 오른 이에 참여하며, 영산에서 들은 법이 지금도 기억에 있다고 찬탄했다. 화엄종은 뒤에 징관에 이르러 법화를 방편이라 썼으나, 「개목초」에 따르면 징관이 또 「저 종은 이를 실(実)로 삼는다. 이 종의 세운 뜻이 이치가 통하지 않음이 없다」고 쓴 것은 법화경 제일을 인정한 것이다.

넷째는 진언종의 불공과 그 제자 함광이다. 『송고승전』에 따르면 함광이 불공과 함께 인도에 유학했을 때 그곳의 한 승려가 「대당에는 천태의 가르침이 있어 사정을 가리고 편원을 밝히는 데 가장 뛰어나다 하니, 이를 번역해 이 땅에 가져올 수 없겠는가」라고 청했다. 이 이야기를 함광에게 들은 묘락대사는 「어찌 인도에서 법을 잃고 이를 사방의 변두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이쪽에서는 아는 이가 적으니 노나라 사람과 같을 뿐이다」라고 탄식했다. 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를 읽을 수 있다. 하나는 불과 수백 년 전 용수 · 천친 등의 대논사가 나와 대승이 융성했던 인도에서, 천태가 출현할 무렵에는 이미 불법의 진수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불공이 안으로는 천태에게 귀복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남겼으리라는 것이다. 제16장에서 대성인이 불공을 「천태의 대승계를 훔치고 교상은 천태종의 것을 쓰라 했다」고 비판하신 것과 맞물린다.

「개목초」는 진언의 귀복도 하나 더 든다. 선무외 · 불공 등은 태장계의 『대일경』과 금강계의 『금강정경』을 좌우의 신하처럼 두고 법화경을 그 가운데 대왕처럼 두었다는 것이다. 또 법상의 자은은 『법화현찬』 제4에서 「그러므로 또 둘 다 둔다(故亦両存)」고 하여 자기 종의 주장을 정하지 못했는데, 자기 종이 흔들린 것은 마음이 천태에게 귀복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성인은 이 찬탄들을 늘어놓은 뒤 「신독국 안에 천태의 삼십 권과 같은 대론이 있다면 남천축의 승려가 어찌 한토 천태의 해석을 바라겠는가」라는 힐난자의 말로 단락을 맺으신다. 정법 시대의 논사들이 펴지 않은 것을 천태가 폈고, 그것이 거꾸로 인도에서 구해질 만큼 뛰어났다는 점은 대성인도 인정하신다.

삼론종길장남북의 백여 명에게 천태의 강경을 들으라 권함「천 년에 한 번 일어나고 오백 년에 한 번 나온다는 것이 실로 오늘에 있다」千年の興五百の実復今日に在り
남산율종도선「법화를 비추어 밝힘은 높이 뜬 해가 깊은 골짜기에 임하는 것과 같다」法華を照了すること高輝の幽谷に臨むが若く
화엄종법장「영산에서 법을 들은 기억이 지금에 있다」霊山の聴法憶い今に在り
진언종불공 · 함광인도의 승려: 「대당에는 천태의 가르침이 있어 사정을 가리고 편원을 밝히는 데 가장 뛰어나다 하니, 이를 번역해 이 땅에 가져올 수 없겠는가」→ 묘락대사:「노나라 사람과 같을 뿐이다」魯人の如きのみ
도표 8 · 천태를 찬탄하고 귀복한 사람들

천태를 높이시는 대성인, 그리고 「말법의 지금」

대성인이 천태의 입장을 얼마나 존중하셨는지는 「개목초」의 한 구절에서 볼 수 있다.

日蓮が法華経の智解は天台・伝教には千万が一分も及ぶ事なけれども難を忍び慈悲のすぐれたる事は・をそれをも・いだきぬべし

니치렌의 법화경 지해(智解)는 천태 · 전교에게 천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난을 견디고 자비가 뛰어난 점에서는 (천태 · 전교도) 두려움을 품을 것이다.

「개목초 상」, 202쪽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 말씀에서 지해에서는 천태를 최대한 높이시면서 난을 견디고 자비가 뛰어난 점에서는 천태가 오히려 두려움을 품을 것이라 하신 데에 말법 어본불의 입장이 밝혀져 있다. 법화경을 풀이하는 지혜의 깊이로 말하면 천태는 정점이다. 그러나 말법의 중생을 구하는 것은 지해의 깊이가 아니라 법을 몸으로 펴며 난을 견디는 자비다.

그리고 천태 자신이 말법을 그리워했다. 천태의 「후오백세에 멀리 묘도에 젖으리라(後の五百歳遠く妙道に沾わん)」라는 말이 그것이다. 상법의 정점에 선 천태가 자기 시대가 아니라 「후오백세」, 곧 말법의 처음에 묘도가 널리 적셔질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선시초 제1편에서 대성인이 인용하신 천태 · 묘락 · 전교의 「말법을 그리워하는」 글들과 한 줄로 이어진다.

그래서 대성인은 선시초 앞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彼の天台の座主よりも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る癩人とはなるべし

저 천태의 좌주가 되기보다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병든 몸이 되어야 한다.

「선시초」, 260쪽

천태종의 최고 지위인 좌주보다,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는 병든 몸이라도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사람이 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말법에 태어나 이 법을 만난 우리야말로 참으로 최고의 복운을 지니고 태어났다.

本文의 「癩人」은 대성인 당시의 말로, 가장 천대받던 병자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병든 몸」으로 옮겼다.

「법화경의 광선유포와 닮았으나」

이제 대성인의 판정이 나온다. 천태대사는 정법 일천 년과 상법의 앞 사백 년, 불멸 후 일천사백여 년 동안 어떤 논사도 홍통하지 않은 「일대를 뛰어넘는 원정 · 원혜」를 한토에 홍통했고, 그 이름은 월지에까지 들렸다. 여기까지는 힐난자의 말을 모두 인정하신다. 그러나 「법화경의 광선유포와 닮기는 하였으나」 광선유포 그 자체는 아니다. 까닭은 둘이다.

첫째, 원돈의 계단이 없었다. 불도의 수행은 계 · 정 · 혜 삼학으로 이루어진다. 천태는 원교의 정(지관)과 원교의 혜(교학)는 세웠으나, 원교의 계를 주는 계단은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출가자는 여전히 소승의 계를 받고 소승의 위의를 지키면서 원교의 혜와 정을 닦았다. 대성인은 이를 「소승의 위의로써 원의 혜 · 정에 이어 붙인 것」이라 하시고, 「해가 이지러지고 달이 기운 것과 같다」고 비유하신다. 「계 · 정 · 혜 삼학조차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천태가 펴지 못한 원계를 세운 것이 다음 장의 전교대사다.

둘째, 때가 아니었다. 「하물며 천태대사의 때는 대집경의 독송다문견고의 때에 해당하여 아직 광선유포의 때가 아니었다」. 이것이 더 근본적인 이유다. 선시초 제1편에서 보았듯 대집경은 불멸 후 이천오백 년을 다섯 오백 년으로 나누어 해탈 · 선정 · 독송다문 · 다조탑사 · 투쟁견고라 하고, 법화경 약왕품은 「후오백세 가운데 광선유포하여 염부제에서 끊어지게 하지 말라」고 한다. 광선유포의 때는 다섯째 오백 년, 곧 백법은몰(白法隠没)의 투쟁견고의 때다. 천태가 아무리 위대해도 셋째 오백 년에 나온 이상 그의 홍통은 광선유포일 수 없다. 이것이 제15장에서 대성인이 「불법은 시에 의해 홍통되는 것이지 기에 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신 원리의 적용이다.

천태가 남북의 열 교판가를 꺾고 오시팔교의 교판으로 석존 일대의 가르침을 정리한 것은 本文에서 「깨뜨릴 것은 깨뜨리고 취할 것은 썼다」는 한마디로 압축되어 있다. 남삼북칠의 내용과 오시팔교의 짜임은 핵심 개념 「오시팔교」 페이지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다만 선시초가 제19장에서 지적하듯, 천태가 남북을 꺾을 때 진언종은 아직 중국에 건너오지 않았다. 천태의 파절이 미치지 못한 그 자리가 뒤에 큰 화근이 된다.

닮았으나 광선유포는 아니다
인정한 것불멸 후 1,400여 년 어떤 논사도 펴지 않은 「일대를 뛰어넘는 원정 · 원혜」를 한토에 홍통 ·그 이름이 월지에까지 들림
삼학
계소승의 계(원돈 계단 없음)
정원정(지관)
혜원혜(교학)
모자란 것 1 · 계단「소승의 위의로써 원의 혜 · 정에 이어 붙였다」小乗の威儀をもつて円の慧定に切りつける— 「해가 이지러지고 달이 기운 것과 같다」日輪の蝕するがごとし月輪のかけたるに似たり
모자란 것 2 · 때「대집경의 독송다문견고의 때」大集経の読誦多聞堅固の時— 아직 광선유포의 때가 아님
판정「법화경의 광선유포와 닮기는 하였으나」 광선유포는 아니다法華経の広宣流布にはにたれども
도표 9 · 천태 홍통의 판정

천태의 법화경 해석은 석가 불법의 범위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니지만, 대성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이(理)의 일념삼천에 머물러 원돈 계단을 세우지 못했고 때가 독송다문견고였으므로 광선유포가 아니다. 천태 스스로 「후오백세」를 그리워했다는 점이 그 증거다.

제18장 전교대사의 홍통
어서 271쪽 2행~272쪽 18행 · 第18章 伝教大師の弘通

본문

本文 · 一어서 271쪽 2~12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て云く伝教大師は日本国の士なり桓武の御宇に出世して欽明より二百余年が間の邪義をなんじやぶり天台大師の円慧・円定をせんじ給うのみならず、鑒真和尚の弘通せし日本小乗の三処の戒壇をなんじやぶり叡山に円頓の大乗別受戒を建立せり、 此の大事は仏滅後一千八百年が間の身毒・尸那・扶桑乃至一閻浮提第一の奇事なり、内証は竜樹・天台等には或は劣るにもや或は同じくもやあるらん、仏法の人をすべて一法となせる事は竜樹・天親にもこえ南岳・天台にもすぐれて見えさせ給うなり、 総じては如来御入滅の後一千八百年が間此の二人こそ法華経の行者にてはをはすれ、故に秀句に云く「経に云く若し須弥を接つて他方無数の仏土に擲げ置かんも亦未だこれ難しとせず乃至若し仏の滅後悪世の中に於て能く此の経を説かん是則ちこれ難し云云、此経を釈して云く浅は易く深は難しとは釈迦の所判なり浅を去て深に就くは丈夫の心なり天台大師は釈迦に信順し法華宗を助けて震旦に敷揚し叡山の一家は天台に相承し法華宗を助けて日本に弘通す」云云、

풀이

묻기를, 전교대사는 일본국 사람이니라. 간무 천황의 치세에 세상에 나와 긴메이 천황 이래 이백여 년 동안의 그릇된 뜻을 힐난하여 깨뜨리고, 천태대사의 원혜(円慧) · 원정(円定)을 가려 세우셨을 뿐 아니라, 감진 화상이 홍통한 일본 소승의 세 곳 계단을 힐난하여 깨뜨리고 히에이산에 원돈(円頓)의 대승 별수계(別受戒)를 건립하셨느니라. 이 대사(大事)는 불멸 후 일천팔백 년 동안 신독(인도) · 지나(중국) · 부상(일본) 내지 일염부제 제일의 기이한 일이니라. 내증(内証)은 용수 · 천태 등에 비해 혹은 못하기도 하고 혹은 같기도 할 것이나, 불법을 믿는 사람들을 모두 한 법으로 모은 일은 용수 · 천친보다도 넘고 남악 · 천태보다도 뛰어나 보이시느니라. 총괄하면 여래가 입멸하신 뒤 일천팔백 년 동안 이 두 사람(천태 · 전교)이야말로 법화경의 행자이시니라. 그러므로 『법화수구』에 이르기를 「경에 이르기를, 만일 수미산을 집어 다른 곳 무수한 불국토에 던져 둔다 해도 그것은 아직 어렵다고 하지 않는다. 내지 만일 부처의 멸후 악세 가운데 능히 이 경을 설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렵다 하였다. 이 경문을 풀이하여 이르기를, 얕은 것은 쉽고 깊은 것은 어렵다는 것은 석가의 판정이요, 얕은 것을 버리고 깊은 것에 나아가는 것은 장부(丈夫)의 마음이다. 천태대사는 석가를 믿고 따라 법화종을 도와 진단(중국)에 펴 드날렸고, 예산(叡山)의 일가는 천태를 이어받아 법화종을 도와 일본에 홍통한다」고 하였느니라.

本文 · 二어서 271쪽 12행 ~ 272쪽 4행
本文 · 어서 원문

釈の心は賢劫第九の減・人寿百歳の時より如来・在世五十年・滅後一千八百余年が中間に高さ十六万八千由旬・六百六十二万里の金山を有人五尺の小身の手をもつて方一寸・二寸等の瓦礫をにぎりて一丁二丁までなぐるがごとく雀鳥のとぶよりもはやく鉄囲山の外へなぐる者はありとも法華経を仏のとかせ給いしやうに説かん人は末法にはまれなるべし、天台大師・伝教大師こそ仏説に相似してとかせ給いたる人にてをはすれとなり、 天竺の論師はいまだ法華経へゆきつき給はず漢土の天台已前の人師は或はすぎ或はたらず、慈恩・法蔵・善無畏等は東を西といゐ天を地と申せる人人なり、此等は伝教大師の自讃にはあらず、 去る延暦二十一年正月十九日高雄山に桓武皇帝行幸なりて六宗・七大寺の碩徳たる善議・勝猷・奉基・寵忍・賢玉・安福・勤操・修円・慈誥・玄耀・歳光・道証・光証・観敏等の十有余人、最澄法師と召し合せられて宗論ありしに或は一言に舌を巻いて二言三言に及ばず皆一同に頭をかたぶけ手をあざう、 三論の二蔵・三時・三転法輪・法相の三時・五性・華厳宗の四教・五教・根本枝末・六相・十玄・皆大綱をやぶらる、例せば大屋の棟梁のをれたるがごとし十大徳の慢幢も倒れにき、

풀이

이 풀이의 마음은, 현겁 제9의 감겁(減劫) 사람의 수명이 백 세일 때부터 여래 재세 오십 년과 멸후 일천팔백여 년에 이르는 사이에, 높이 십육만 팔천 유순 · 육백육십이만 리의 금산(金山)을, 키 다섯 자의 작은 몸을 가진 사람이 손으로 한 치 · 두 치 되는 기와 조각을 쥐어 한두 정(丁) 거리로 던지듯, 참새가 나는 것보다 빨리 철위산 밖으로 던지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법화경을 부처가 설하신 그대로 설할 사람은 말법에는 드물 것이니, 천태대사 · 전교대사야말로 부처의 설에 서로 닮게 설하신 분이라는 것이니라. 천축의 논사들은 아직 법화경에까지 이르지 못하셨고, 한토의 천태 이전 인사(人師)들은 혹은 지나치고 혹은 모자랐으며, 자은 · 법장 · 선무외 등은 동쪽을 서쪽이라 하고 하늘을 땅이라 한 사람들이니라. 이것은 전교대사의 자찬이 아니니라. 지난 연력 21년 정월 19일, 다카오산에 간무 황제가 행차하시어 육종 · 칠대사의 석덕(碩徳)인 선의 · 승유 · 봉기 · 총인 · 현옥 · 안복 · 근조 · 수원 · 자고 · 현요 · 세광 · 도증 · 광증 · 관민 등 십여 명을 최징 법사와 맞붙여 종론을 하게 하셨는데, 혹은 한마디에 혀를 말아 두 마디 세 마디에 이르지 못하고, 모두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고 손을 맞잡았느니라. 삼론의 이장(二蔵) · 삼시(三時) · 삼전법륜(三転法輪), 법상의 삼시 · 오성(五性), 화엄종의 사교(四教) · 오교(五教) · 근본지말(根本枝末) · 육상(六相) · 십현(十玄)이 모두 그 대강(大綱)을 깨뜨려졌느니라. 비유하면 큰 집의 마룻대가 부러진 것과 같아서, 열 명 대덕의 아만의 깃대도 쓰러졌느니라.

本文 · 三어서 272쪽 4~12행
本文 · 어서 원문

爾の時天子大に驚かせ給いて同二十九日に弘世・国道の両吏を勅使として重ねて七寺・六宗に仰せ下れしかば各各帰伏の状を載せて云く 「竊に天台の玄疏を見れば総じて釈迦一代の教を括つて悉く其の趣を顕すに通ぜざる所無く独り諸宗に逾え殊に一道を示す其の中の所説甚深の妙理なり七箇の大寺六宗の学生昔より未だ聞かざる所曾て未だ見ざる所なり三論法相久年の諍い渙焉として氷の如く釈け照然として既に明かに猶雲霧を披いて三光を見るがごとし 聖徳の弘化より以降今に二百余年の間講ずる所の経論其の数多く彼此理を争えども其の疑未だ解けず、而るに此の最妙の円宗未だ闡揚せず蓋し以て此の間の羣生未だ円味に応わざるか、 伏して惟れば聖朝久しく如来の付を受け深く純円の機を結び一妙の義理始めて乃ち興顕し六宗の学者初めて至極を悟る此の界の含霊今より後悉く妙円の船に載り早く彼岸に済る事を得ると謂いつべし、乃至善議等牽れて休運に逢い乃ち奇詞を閲す深期に非ざるよりは何ぞ聖世に託せんや」等云云、

풀이

그때 천자가 크게 놀라시어 같은 달 29일에 와케노 히로요 · 오토모노 구니미치 두 관리를 칙사로 삼아 거듭 칠대사 · 육종에 분부를 내리시니, 저마다 귀복의 글을 올려 이르기를 「가만히 천태의 『현의』 · 『문구』 등을 보건대, 총괄하여 석가 일대의 가르침을 묶어 그 취지를 남김없이 드러내어 통하지 않는 곳이 없고, 홀로 여러 종을 넘어 특별히 일도(一道)를 보입니다. 그 가운데 설한 바는 매우 깊은 묘리이니, 칠대사 · 육종의 학승들이 옛날부터 아직 듣지 못한 바요 일찍이 보지 못한 바입니다. 삼론과 법상이 오랜 해 동안 다투던 것이 얼음처럼 시원스레 풀리고 환히 밝아져, 마치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해 · 달 · 별의 세 빛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쇼토쿠 태자의 홍화 이래 지금까지 이백여 년 동안 강한 경론은 그 수가 많고 이쪽저쪽이 이치를 다투었으나 그 의심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가장 묘한 원종(円宗)은 아직 드러나 펴지지 않았으니, 아마도 그동안의 중생이 아직 원(円)의 맛에 응하지 못했던 것이겠습니까. 엎드려 생각하건대 성조(聖朝)께서는 오래 여래의 부촉을 받아 깊이 순원(純円)의 기연을 맺으시어 일묘(一妙)의 의리가 비로소 일어나 드러났고, 육종의 학자들은 처음으로 지극한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이 세계의 중생은 이제부터 모두 묘원(妙円)의 배에 올라 속히 피안에 건널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내지 선의 등은 숙연에 이끌려 좋은 운을 만나 기이한 말씀을 보았으니, 깊은 숙연이 아니라면 어찌 성스러운 세상에 태어나 의탁하였겠습니까」라고 하였느니라.

本文 · 四어서 272쪽 12~18행
本文 · 어서 원문

彼の漢土の嘉祥等は百余人をあつめて天台大師を聖人と定めたり、今日本の七寺・二百余人は伝教大師を聖人とがうしたてまつる、仏の滅後二千余年に及んで両国に聖人二人・出現せり其の上天台大師の未弘の円頓大戒を叡山に建立し給う此れ豈像法の末に法華経広宣流布するにあらずや、 答えて云く迦葉阿難等の弘通せざる大法を馬鳴・竜樹・提婆・天親等の弘通せる事前の難に顕れたり、又竜樹・天親等の流布し残し給える大法天台大師の弘通し給う事又難にあらはれぬ、又天台智者大師の弘通し給はざる円頓の大戒を伝教大師の建立せさせ給う事又顕然なり、 但し詮と不審なる事は仏は説き尽し給えども仏滅後に迦葉・阿難・馬鳴・竜樹・無著・天親・乃至天台・伝教のいまだ弘通しましまさぬ最大の深密の正法経文の面に現前なり、此の深法・今末法の始五五百歳に一閻浮提に広宣流布すべきやの事不審極り無きなり。

풀이

저 한토의 가상(길장) 등은 백여 명을 모아 천태대사를 성인으로 정하였고, 지금 일본의 칠대사 이백여 명은 전교대사를 성인이라 불러 드리느니라. 부처의 멸후 이천여 년에 이르러 두 나라에 성인 두 사람이 출현하였느니라. 그 위에 천태대사가 아직 펴지 않은 원돈의 대계를 히에이산에 건립하셨으니, 이것이 어찌 상법의 끝에 법화경이 광선유포한 것이 아니겠는가. 답하기를, 가섭 · 아난 등이 홍통하지 않은 대법을 마명 · 용수 · 제바 · 천친 등이 홍통한 일은 앞의 힐난에서 드러났느니라. 또 용수 · 천친 등이 유포하다 남기신 대법을 천태대사가 홍통하신 일도 또한 힐난에서 드러났느니라. 또 천태지자대사가 홍통하지 않으신 원돈의 대계를 전교대사가 건립하신 일도 또한 뚜렷하니라. 다만 가장 의심스러운 일은, 부처는 다 설하셨으나 불멸 후에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 내지 천태 · 전교가 아직 홍통하지 않으신 최대의 심밀(深密)의 정법이 경문의 표면에 현전(現前)한다는 것이니라. 이 깊은 법이 지금 말법의 처음 다섯째 오백 년에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할 것인가 하는 일이 의심스럽기 그지없느니라.

어구 풀이

伝教大師전교대사
767~822. 이름은 최징(最澄, 사이초). 일본 천태종의 개조. 연력 23년(804) 입당해 천태의 교관을 배우고 돌아와 히에이산을 근거로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는 천태법화종을 세웠다. 생애는 인물탐구 「전교대사」 페이지에 자세하다.
欽明より二百余年긴메이 이래 이백여 년
긴메이 천황의 치세에 백제에서 불교가 공식으로 전해진 뒤 전교대사가 나오기까지의 이백여 년. 이 사이 일본에 전해진 육종의 교의를 本文은 「그릇된 뜻」이라 한다. 육종 전래의 경위는 선시초 제2편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홍교와 묘법 유포의 필연」의 제11장에 있다.
鑒真和尚감진 화상
「鑑真」으로도 쓴다. 688~763. 당의 율승으로,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일본에 건너와 계율을 전했다. 本文의 「소승의 세 곳 계단」을 세운 사람이다.
日本小乗の三処の戒壇일본 소승의 세 곳 계단
감진이 세운 나라 도다이사, 시모쓰케 야쿠시사, 쓰쿠시 간제온사의 세 소승 계단. 출가자는 이 가운데 한 곳에서 소승의 구족계를 받아야 정식 승려가 될 수 있었다.
円頓の大乗別受戒원돈의 대승 별수계
소승계를 거치지 않고 법화 원교의 대승계(범망경의 보살계)만을 따로 받게 하는 수계. 전교대사가 히에이산에 세우기를 청원한 대승 계단이 이것이다.
扶桑부상
일본의 다른 이름. 옛날 중국에서 해 뜨는 동쪽 바다에 작은 섬이 있고, 잎은 오동나무를 닮고 처음 열리는 열매는 죽순을 닮은 부상이라는 나무가 많이 난다고 전해 그 나라를 부상국이라 했다는 데서, 중국의 동쪽인 일본을 부상국이라 불렀다.
秀句수구
『법화수구』. 3권(또는 5권). 전교대사의 저술로 홍인 12년(821)에 이루어졌다. 법화경이 여러 경보다 뛰어난 점을 열 가지(법화십승)로 들어 보이고, 당시 성행하던 법상 · 삼론 · 화엄 · 진언 등의 그릇된 뜻을 깨뜨렸다. 특히 법상종의 득일(得一)이 법화경을 비방한 것을 꾸짖었다.
須弥수미
수미산.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산. 범어 수메루(Sumeru)의 음사로 묘고(妙高) · 안명(安明) 등으로 번역한다. 이 세계 아래에 풍륜 · 수륜 · 금륜의 삼륜이 있고 맨 위 금륜 위에 아홉 산과 여덟 바다가 있어 이를 한 소세계로 삼는데, 수미산은 그 중심으로 물밑에서 높이가 십육만 팔천 유순이라 한다. 수미산 둘레를 일곱 향해와 금산이 번갈아 두르고, 그 바깥 짠 바다 가운데 염부제 등 사대주가 떠 있으며, 맨 바깥을 철위산이 둘러싼다.
浅は易く深は難しとは釈迦の所判なり浅を去て深に就くは丈夫の心なり얕은 것은 쉽고 깊은 것은 어렵다는 것은 석가의 판정이요, 얕은 것을 버리고 깊은 것에 나아가는 것은 장부의 마음이다
『법화수구』의 한 구절로 법화경의 육난구이(六難九易) 법문에 근거한다. 「얕은 것」은 이전의 여러 경으로, 사람들에게 맞추어 설했으므로 믿기 쉽고 알기 쉬우며[易信易解] 홍통도 쉽다. 「깊은 것」은 법화경으로, 석존 깨달음의 진실을 설했으므로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며[難信難解] 홍통도 어렵다. 「장부」는 부처의 십호 가운데 하나인 조어장부(調御丈夫)의 약칭으로, 여기서는 부처의 본뜻을 말한다.
賢劫第九の減현겁 제9의 감겁
지금의 대겁인 현겁 가운데 사람의 수명이 줄어드는 아홉째 감겁. 사람의 수명이 백 세일 때 석존이 출현했다고 한다.
鉄囲山철위산
수미산 세계의 맨 바깥을 둘러싼 쇠의 산. 本文은 수미산 같은 금산을 철위산 밖으로 던지는 일도 법화경을 부처의 설대로 설하는 일보다 쉽다고 비유한다.
高雄山다카오산
다카오산사. 창건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연력 21년(802), 와케 가문의 당주 와케노 히로요가 고모 와케노 히로무시(법균니)의 삼주기를 치르려고 최징을 다카오산사에 청했고, 최징은 여기서 법화회를 강했다. 홍인 3년(812)에 구카이(홍법)가 머물러 진언 도량으로 삼았고, 천장 원년(824) 가와치에 있던 와케 가문의 씨사 진간지와 합쳐 신고코쿠소신곤지로 고쳤다. 지금 교토시 우쿄구의 진고지다.
六宗・七大寺육종 · 칠대사
남도 육종(삼론 · 성실 · 법상 · 구사 · 화엄 · 율)과 나라의 큰 일곱 절. 本文에 이름이 나오는 선의 · 승유 · 봉기 · 총인 · 현옥 · 안복 · 근조 · 수원 · 자고 · 현요 · 세광 · 도증 · 광증 · 관민 등 열네 사람이 그 석덕이다.
二蔵・三時・三転法輪 / 三時・五性 / 四教・五教・根本枝末・六相・十玄여러 종의 교판
육종이 저마다 세운 교판의 이름들. 삼론종의 이장(성문장 · 보살장)과 삼전법륜, 법상종의 삼시교(유 · 공 · 중도)와 오성각별(중생의 성품을 다섯으로 나누어 성불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고 하는 설), 화엄종의 오교와 육상 · 십현 등이다. 전교대사는 이 「대강」을 모두 깨뜨렸다.
弘世・国道히로요 · 구니미치
둘 다 전교대사에게 귀의해 대사를 잘 외호한 단월. 와케노 히로요는 와케노 기요마로의 맏아들로 의학에 밝아 전약두가 되고 대학별당에 올랐으며, 대학료 남쪽에 홍문원을 두어 교육에 힘썼다. 아우 마쓰나와 함께 진고지를 세우고 천태종 개창을 도왔다. 오토모노 구니미치는 헤이안 전기의 공경으로, 연력 4년(785) 아버지 오토모노 쓰구히토가 후지와라노 다네쓰구 암살에 가담한 일로 사도에 유배되었다가 사면으로 돌아왔고, 뒤에 엔랴쿠사 별당과 참의를 지냈다.
三論法相久年の諍い삼론 · 법상의 오랜 다툼
삼론종은 용수의 중관파에서 비롯해 『중론』 · 『십이문론』 · 『백론』으로 반야경의 「일체개공」을 요체로 삼으므로 공종(空宗)이라 하고, 법상종은 무착 · 천친의 유식파에서 비롯해 『유가사지론』 · 『섭대승론』 · 『유식이십론』으로 『해심밀경』의 「유식실유」를 요체로 삼는다. 인도에서는 중관파와 유식파가, 중국에서는 길장의 삼론과 자은의 법상이, 일본에서는 원흥사 계통의 삼론과 흥복사 계통의 법상이 공 · 유를 두고 다투었다. 전교대사가 법화의 진실을 드러내자 남도의 석덕들은 공 · 유의 논쟁이 권교 방편의 설임을 알고 귀복했다.
善議等牽れて休運に逢い乃ち奇詞を閲す선의 등은 이끌려 좋은 운을 만나 기이한 말씀을 보았다
숙연에 이끌려 좋은 인연을 만나, 일찍이 듣지 못한 천태의 깊은 뜻을 볼 수 있었다는 뜻. 휴운(休運)은 좋은 인연, 기사(奇詞)는 범상하지 않은 뛰어난 말이다.
五五百歳다섯째 오백 년
대집경 오오백세의 다섯째 오백 년, 곧 말법의 처음인 투쟁견고 · 백법은몰의 때. 약왕품의 「후오백세」와 같은 때다.

전교대사에 대한 극진한 찬탄

제18장은 선시초에서 전교대사에 대한 찬탄이 가장 짙게 모인 대목이다. 힐난하는 사람이 늘어놓는 전교의 공적은 셋이다. 첫째, 긴메이 천황 이래 이백여 년 동안 일본 불교계를 지배한 육종의 그릇된 뜻을 힐난해 깨뜨렸다. 둘째, 천태대사의 원혜 · 원정을 가려 세웠다. 셋째, 감진 화상이 세운 소승의 세 계단을 깨뜨리고 히에이산에 원돈의 대승 별수계를 세웠다. 이 셋째 일은 불멸 후 일천팔백 년 동안 인도 · 중국 · 일본, 나아가 온 세계에서 「제일의 기이한 일」이다.

여기서 대성인은 미묘한 비교를 하신다. 전교의 내증, 곧 안으로 깨달은 경지는 용수 · 천태에 비해 못하거나 같을 것이다. 그러나 「불법을 믿는 사람들을 모두 한 법으로 모은 일」, 곧 한 나라의 불교를 법화경 하나로 통일한 일은 용수 · 천친보다도, 남악 · 천태보다도 뛰어나 보인다. 깨달음의 깊이와 홍통의 공적을 나누어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멸 후 일천팔백 년 동안 천태와 전교 두 사람이야말로 법화경의 행자다」라고 결론짓는다. 「법화경의 행자」라는 말이 대성인 이전의 인물에게 이렇게 분명하게 붙여지는 것은 드문 일이다. 다만 그것이 정법 · 상법 시대의 「법화경의 행자」임은 장의 끝에서 드러난다.

「얕은 것은 쉽고 깊은 것은 어렵다」 — 육난구이

힐난자는 그 근거로 전교의 『법화수구』를 인용한다. 『법화수구』는 홍인 12년(821)에 이루어진 전교의 만년 저술로, 법화경이 여러 경보다 뛰어난 점을 열 가지로 들고 법상 · 삼론 · 화엄 · 진언 등을 깨뜨렸으며, 특히 법상종의 득일이 법화경을 비방한 것을 꾸짖었다.

인용된 경문은 견보탑품의 육난구이(六難九易)다. 수미산을 집어 다른 곳 무수한 불국토에 던지는 것도 아직 어렵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처의 멸후 악세 가운데 능히 이 경을 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렵다. 전교는 이 경문을 풀어 「얕은 것은 쉽고 깊은 것은 어렵다는 것은 석가의 판정이요, 얕은 것을 버리고 깊은 것에 나아가는 것은 장부의 마음이다」라고 했다. 語釈에 따르면 「얕은 것」은 이전의 여러 경으로, 사람들의 근기에 맞추어 설했으므로 믿기도 알기도 쉽고 홍통도 쉽다. 「깊은 것」은 법화경으로, 석존 깨달음의 진실을 그대로 설했으므로 믿기도 알기도 어렵고 홍통도 어렵다. 「장부」는 조어장부, 곧 부처를 가리키므로 「얕은 것을 버리고 깊은 것에 나아가는 것」이 부처의 본뜻에 맞는 길이다. 전교는 이어 「천태대사는 석가를 믿고 따라 법화종을 도와 중국에 폈고, 예산의 일가는 천태를 이어받아 법화종을 도와 일본에 홍통한다」고 하여, 자신을 천태의 정통 계승자로 세웠다.

대성인은 이 글의 마음을 풀어 주신다. 현겁 제9의 감겁, 사람의 수명이 백 세일 때 석존이 출현한 이래 재세 오십 년과 멸후 일천팔백여 년 사이에, 높이 십육만 팔천 유순의 금산을 키 다섯 자의 사람이 기와 조각 던지듯 참새보다 빨리 철위산 밖으로 던지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법화경을 부처가 설하신 그대로 설하는 사람은 드물다. 수미산 세계의 구조 — 금륜 위의 구산팔해, 그 중심의 수미산, 맨 바깥의 철위산 — 를 떠올리면 이 비유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세계의 중심 산을 세계 밖으로 던지는 일보다 법화경을 부처의 뜻대로 설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 천태와 전교 두 사람이다. 대성인은 이들을 「부처의 설에 서로 닮게[相似] 설하신 분」이라고 하신다. 「서로 닮게」라는 말에 이미 한정이 담겨 있다. 닮았으나 같지는 않다는 것, 제17장의 「광선유포와 닮았으나」와 같은 어법이다.

이 대목에서 대성인은 「법화경을 부처가 설하신 그대로 설할 사람은 말법에는 드물 것」이라고 쓰신다. 전교 자신이 『수호국계장』에서 「정법 · 상법이 조금 지나 말법이 매우 가깝다」고 하고 『말법등명기』에서 자기 시대를 「상법 최말」이라 했다는 것은 선시초 서강 「선시초를 펼치며」에서도 짚었다. 전교는 자기가 상법의 끝, 말법의 문턱에 서 있음을 알고 있었다.

연력 21년, 다카오산의 종론

이어서 「이것은 전교대사의 자찬이 아니다」라는 증거가 나온다. 천축의 논사들은 아직 법화경에 이르지 못했고, 천태 이전의 중국 인사들은 지나치거나 모자랐으며, 자은 · 법장 · 선무외 등은 「동쪽을 서쪽이라 하고 하늘을 땅이라 한」 사람들이었다는 전교의 평가가, 실제 종론의 결과로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연력 21년(802) 정월 19일, 간무 천황이 다카오산에 행차해 남도 육종 · 칠대사의 석덕 열네 사람 — 선의 · 승유 · 봉기 · 총인 · 현옥 · 안복 · 근조 · 수원 · 자고 · 현요 · 세광 · 도증 · 광증 · 관민 — 을 최징과 맞붙였다. 本文은 그 결과를 생생하게 그린다. 어떤 이는 한마디에 혀를 말아 두세 마디도 잇지 못했고, 모두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고 손을 맞잡았다. 삼론의 이장 · 삼시 · 삼전법륜, 법상의 삼시 · 오성, 화엄의 사교 · 오교 · 근본지말 · 육상 · 십현이 모두 그 대강을 깨뜨려졌다. 큰 집의 마룻대가 부러진 것처럼 열 대덕의 아만의 깃대도 쓰러졌다.

語釈은 다카오산사의 내력을 전한다. 이 해 와케 가문의 당주 와케노 히로요가 고모 와케노 히로무시(법균니)의 삼주기를 치르기 위해 최징을 다카오산사에 청했고, 최징은 여기서 법화회를 강했다. 와케 가문은 일찍부터 최징의 후원자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절의 뒷이야기다. 홍인 3년(812)에는 구카이(홍법)가 이 절에 머물며 진언 도량으로 삼았고, 천장 원년(824)에는 진고지로 이름을 바꾸었다. 전교가 법화의 깃발을 세운 바로 그 자리가 뒤에 진언의 도량이 된 것이다. 제19장과 제4편에서 대성인이 비판하시는 「진언이 천태법화종을 가로챈」 흐름이 이 절 하나의 역사에도 비친다.

종론 열흘 뒤인 정월 29일, 천황은 크게 놀라 와케노 히로요와 오토모노 구니미치를 칙사로 보내 칠대사 · 육종에 다시 물었고, 각 종은 귀복의 글을 올렸다. 本文이 길게 인용하는 이 귀복장은 남도 불교가 스스로 패배를 인정한 문서라는 데 무게가 있다. 천태의 『현의』 · 『문구』는 석가 일대의 가르침을 묶어 그 취지를 남김없이 드러내고 홀로 여러 종을 넘어 일도를 보이니, 칠대사 · 육종의 학승들이 옛날부터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다. 삼론과 법상의 오랜 다툼이 얼음 녹듯 풀려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해 · 달 · 별을 보는 것 같다. 쇼토쿠 태자 이래 이백여 년 동안 많은 경론을 강하고 이치를 다투었으나 의심이 풀리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가장 묘한 원종이 아직 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성조가 여래의 부촉을 받아 일묘의 의리가 일어났으니 이 세계의 중생은 모두 묘원의 배에 올라 피안에 건널 것이다. 선의 등은 숙연에 이끌려 이 좋은 운을 만났다.

「삼론 · 법상 오랜 해의 다툼」은 語釈이 자세히 풀이한다. 그것은 제16장에서 본 대승의 두 흐름, 곧 용수의 중관(공종)과 무착 · 천친의 유식(유종)의 다툼이다. 인도에서 중관과 유식이 다투었고, 중국에서 길장의 삼론과 자은의 법상이 다투었으며, 일본에서 원흥사 계통과 흥복사 계통이 공과 유를 다투었다. 수백 년에 걸쳐 세 나라를 건너온 이 논쟁이, 전교가 법화의 진실을 드러내자 둘 다 권교 방편의 설임이 밝혀져 끝났다는 것이다. 제16장의 용수 이야기와 제18장의 전교 이야기는 여기서 하나의 원을 그린다.

  1. ①긴메이 천황불교 공전, 이후 이백여 년 남도 육종
  2. ②감진 화상도다이사 · 시모쓰케 야쿠시사 · 쓰쿠시 간제온사의 소승 세 계단
  3. ③연력 21년(802) 정월 19일 · 다카오산간무 천황 행차, 육종 · 칠대사의 석덕 14인 대 최징:삼론(이장 · 삼시 · 삼전법륜)법상(삼시 · 오성)화엄(사교 · 오교 · 근본지말 · 육상 · 십현)의 대강을 깨뜨림 — 「큰 집의 마룻대가 부러진 것과 같다」
  4. ④같은 달 29일칙사 와케노 히로요 · 오토모노 구니미치 → 귀복장:「삼론 · 법상의 오랜 다툼이 얼음처럼 풀렸다」三論法相久年の諍い渙焉として氷の如く釈け
  5. ⑤히에이산 원돈 대승 별수계「일염부제 제일의 기이한 일」一閻浮提第一の奇事なり대승 계단 칙허는 홍인 13년(822), 최징 입적 직후
도표 10 · 연력 21년의 종론과 원돈 계단

本文은 다카오산의 모임을 간무 천황 앞의 「종론」으로 그린다. 학계에서는 이해 다카오산사에서 열린 최징의 천태 법문 강설에 남도의 고승들이 참석하고 그 뒤 사표를 올린 일로 정리하는 견해가 많다. 원돈 대승 계단의 설립은 최징이 입적한 직후인 홍인 13년(822)에 칙허되었다.

원돈 계단 — 천태가 펴지 못한 원계

전교의 공적 가운데 本文이 가장 무겁게 다루는 것은 원돈 대승 별수계의 건립이다. 감진 화상이 세운 도다이사 · 야쿠시사 · 간제온사의 세 계단은 소승의 구족계를 주는 곳이었고, 일본의 출가자는 누구나 여기서 소승계를 받아야 했다. 제17장에서 대성인은 천태의 한계를 「소승의 위의로써 원의 혜 · 정에 이어 붙인 것」이라고 하셨다. 천태는 원교의 정과 혜를 세웠으나 계만은 여전히 소승의 것이었다. 전교는 이 마지막 빈자리를 채웠다. 소승계를 거치지 않고 법화 원교의 대승계만을 따로 받게 하는 계단을 히에이산에 세운 것이다. 이로써 계 · 정 · 혜 삼학이 모두 원교로 갖추어졌다.

힐난자가 「천태대사가 아직 펴지 않은 원돈의 대계를 히에이산에 건립했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가 이지러지고 달이 기운 것 같던 천태의 홍통이 전교에 와서 둥글게 찼다. 게다가 중국에서 길장 등 백여 명이 천태를 성인으로 정했듯, 일본에서는 칠대사의 이백여 명이 전교를 성인이라 불렀다. 불멸 후 이천 년 가까이 되어 두 나라에 성인 두 사람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상법의 끝, 전교의 때에 법화경은 광선유포한 것이 아닌가. 세 번째 힐난은 가장 강한 힐난이다.

비와호 너머로 바라본 히에이산의 원경과 산중의 작은 당우
그림 · 비와호 너머로 바라본 히에이산의 원경과 산중의 작은 당우

차례로 펴지고, 마지막에 남은 것

대성인의 답은 지금까지의 문답을 한데 모으는 데서 시작한다. 가섭 · 아난 등이 홍통하지 않은 대법을 마명 · 용수 · 제바 · 천친 등이 홍통한 것은 앞의 힐난에서 드러났다(제7장 이하). 용수 · 천친 등이 유포하다 남긴 대법을 천태가 홍통한 것도 앞의 힐난에서 드러났다(제16 · 17장). 천태가 홍통하지 않은 원돈의 대계를 전교가 건립한 것도 뚜렷하다(이 장). 대성인은 힐난자의 말을 하나도 부정하지 않으신다. 정법의 앞 오백 년에서 상법의 끝까지 불법은 앞 사람이 남긴 것을 뒷사람이 펴는 방식으로 차례로 깊어져 왔다.

그런데 바로 그 흐름 끝에 「가장 의심스러운 일」이 남는다. 부처는 모든 것을 다 설했다. 그런데 불멸 후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 내지 천태 · 전교 가운데 누구도 아직 홍통하지 않은 「최대의 심밀의 정법」이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 이 깊은 법이 지금 말법의 처음, 다섯째 오백 년에 일염부제에 광선유포할 것인가. 이 물음으로 장이 끝난다.

이 대목에서 문답의 방향이 완전히 바뀐다. 지금까지의 물음은 「이것이 광선유포가 아닌가」였고, 답은 「아니다」였다. 이제 물음은 「아직 펴지지 않은 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로 바뀐다.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며 확인한 것은, 그 모든 성인이 펴지 않고 남겨 둔 법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16장에서 본 「내감냉연 외적시의」 — 안으로는 알고 밖으로는 때에 맞춘 — 가 여기서 결실한다. 용수는 알면서 펴지 않았고, 천태는 품었으나 이(理)에 그쳤으며, 전교는 계단까지 세웠으나 그것은 적문의 원계였다. 그들이 펴지 않은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고, 그 때가 바로 「말법의 처음 다섯째 오백 년」이다.

「안으로는 냉연히 알고 밖으로는 때의 마땅함에 맞추었다」内鑑冷然・外適時宜— 『마하지관』 권5「이 성인들은 알면서도 이를 말하지 않은 사람이다」此等の聖人は知つて之を言わざる仁なり— 「관심의 본존초」 245쪽
  1. ①정법 앞 오백 년가섭 · 아난소승
  2. ②정법 뒤 오백 년마명 · 용수 · 제바 · 천친권대승
  3. ③상법 중간천태대사원정 · 원혜(이의 일념삼천, 계단 없음)
  4. ④상법 말전교대사원돈 계단(적문의 원계)
  5. ⑤말법의 처음 다섯째 오백 년「최대의 심밀의 정법」이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最大の深密の正法経文の面に現前なり
앞 사람이 남긴 것을 뒷사람이 폈고, 모두가 남긴 것이 말법에 남았다
도표 11 · 정상말 세 성인의 「내감냉연 외적시의」와 아직 펴지 않은 법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 — 의의판문

이 장에서는 오직 한 구절, 「최대의 심밀의 정법이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에 집중해 보자. 「최대의 심밀의 정법」이란 문저에 비침된 삼대비법이다. 그런데 문저에 비침된, 곧 경문의 밑바닥에 잠겨 있는 법을 왜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고 하시는가. 법화경의 「이유[謂れ]」를 알고 의의판문(依義判文), 곧 뜻에 의거해 글을 판정하기 때문에 표면에 현전하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의 「의의판문초(依義判文抄)」는 바로 이 물음을 세운다. 정법 · 상법에 펴지지 않은 대법, 말법에 유포할 정체인 본문의 삼대비법은 일대의 여러 경 가운데서는 다만 법화경, 법화경 가운데서는 다만 본문 수량품, 수량품 가운데서는 다만 문저에 비침된 대법이다. 그런데 대성인은 어찌 「경문의 표면에 뚜렷하다」고 하시는가. 상인은 이렇게 답한다.

若し此の経の謂れを知って、立ち還って之を見る則は、爾前の諸経すら尚本地の本法詮せざる莫し、何に况んや今経の迹本二門をや

만일 이 경의 이유를 알고 다시 돌아와 이를 보면, 이전의 여러 경조차 오히려 본지의 본법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없다. 하물며 이 경의 적문 · 본문 두 문이겠는가.

니치칸 상인, 「의의판문초」

상인은 그 근거로 천태대사가 『법화현의』 권9(「현문 제9」로 적기도 한다)에서 「모두 본지의 실인 · 실과와 갖가지 본법을 써서 여러 중생을 위해 불사를 짓는다」고 한 글을 든다. 부처가 설한 모든 가르침은 본지의 본법을 쓰고 있으므로, 그 본법을 아는 눈으로 보면 경문 곳곳에서 그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인은 결론짓는다.

故に知りぬ、文底の義に依って今経の文を判ずれば、三大秘法宛も日月の如し。故に経文の面に顕然なりと云うなり

그러므로 알라. 문저의 뜻에 의거해 이 경의 글을 판정하면 삼대비법이 마치 해와 달 같다. 그러므로 「경문의 표면에 뚜렷하다」고 하는 것이다.

니치칸 상인, 「의의판문초」

상인은 그 「뚜렷한 글」의 예로 개산 상인(닛코 상인)의 구결이라 전하는 「삼대비법 구결」을 인용한다. 그에 따르면 삼대비법의 의문(依文)은 여래신력품이다. 천태의 『법화문구』가 신력품의 「제법의 뜻을」 이하 네 게송을 「깊은 일을 기린 것」이라 한 데 따라, 그 가운데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자(能持是経)」는 본문의 묘법연화경, 「마침내 일승에 머무르리라(畢竟住一乗)」는 본문 수량의 본존, 「마땅히 이 경을 수지하라(応受持斯経)」는 본문의 계단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본문 수량의 대계를 「허공부동계」 · 「무작의 원계」, 본문 수량의 본존을 「허공부동정」 · 「본문 무작의 대정」, 본문 수량의 묘법연화경을 「허공부동혜」 · 「자수용 본분의 무작의 원혜」라 하여, 계 · 정 · 혜의 삼학을 삼대비법에 배당한다. 본존은 「일체중생의 생사의 애하(愛河)를 짊어지는 배와 뗏목, 번뇌의 험한 길을 실어 나르는 수레」라 하고, 계단에 대해서는 「수지가 곧 지계」라고 한다.

이 배당은 제17장의 결론과 정확히 맞물린다. 천태는 원정 · 원혜를 폈으나 원계가 없었고, 전교는 원계까지 세웠으나 그것은 모두 적문의 계 · 정 · 혜였다. 말법의 삼대비법은 본문의 계(계단) · 정(본존) · 혜(제목)로서, 앞 시대의 삼학과 같은 틀을 지니면서도 그 근본이 다르다. 상인은 「의의판문초」에서 이 밖에도 법사품의 「곳곳마다[在々処々]」, 수량품의 「이 좋은 양약[是好良薬]」, 수량품의 「한마음으로 부처를 뵙고자 하여[一心欲見仏]」 등 많은 글을 삼대비법의 의문으로 든다.

이 경의 「이유」를 알고 모름

그렇다면 「이 경의 이유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니치칸 상인의 「선시초 문단」에서 그 대요를 옮긴다. 상인은 문저의 이유를 알면 세 가지 비법이 경문에 뚜렷하고, 알고 모름 사이에는 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 만 리의 차이가 있다고 하며, 이를 네 겹으로 보인다.

첫째, 불법의 이유를 모르면 불법도 곧 세법(世法)이 된다. 명예와 이익을 구하는 승려가 불법을 세상살이의 다리로 삼는 것이 그것이다. 불법의 이유를 알면 세법이 곧 불법이 된다. 『금광명경』의 「만일 세법을 깊이 안다면 곧 이것이 불법이다」, 법화경 법사공덕품의 「설령 세간의 경서, 세상을 다스리는 말, 살림살이의 일을 설한다 해도 모두 정법에 따르리라」가 그것이다.

둘째, 법화경의 이유를 모르면 법화경도 오히려 이전의 경이 된다. 권경의 사람이 법화경을 독송하는 것이 그것이니, 향나무인 전단을 태워 숯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법화경의 이유를 알면 이전의 경도 곧 법화경이 된다. 대성인이 「이 깨달음이 일어난 뒤에는 행자가 아함 소승경을 읽어도 곧 일체의 대승경을 독송하고 법화경을 읽는 사람이다(此の覚り起りて後は行者・阿含小乗経を読むとも即ち一切の大乗経を読誦し法華経を読む人なり)」(「십법계명인과초」, 437쪽)라고 하신 것이 그것이니, 기와 조각을 바꾸어 금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셋째, 본문의 이유를 모르면 본문도 오히려 적문이 된다. 본문과 적문을 하나로 보는 부류가 그것이다. 본문의 이유를 알면 적문이 곧 본문이 된다. 대성인이 방편품을 독송하신 것이 그것이다.

넷째, 문저의 이유를 모르면 문저도 곧 숙탈(熟脱)이 된다. 삼대비법을 말하면서도 그 문저의 뜻을 모르고 논하는 것이 그것이다. 문저의 이유를 알면 숙익(熟益)도 곧 문저의 비법이 된다. 바로 이 장의 「최대의 심밀의 정법이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는 글이 그것이다.

상인은 이를 화씨의 구슬[和氏の璧]에 비유한다. 모르면 옥을 돌이라 하고, 알면 돌에서 옥을 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법화경의 글을 앞에 두고도, 그 이유를 아는 사람에게는 삼대비법이 해와 달처럼 뚜렷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문상의 글만 보인다. 앞 시대의 성인들이 「알면서 펴지 않은」 것과, 말법의 사람들이 「보면서 모르는」 것 — 이 두 겹의 감추어짐을 걷어 내는 것이 다음 장의 물음이다.

네 겹
니치칸 상인 「선시초 문단」알고 모름 사이에 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의 차이
①불법
모르면불법도 세법이 된다(명리를 구하는 승려)
알면세법이 곧 불법이 된다(『금광명경』 · 법사공덕품)
②법화경
모르면법화경도 이전의 경이 된다(전단을 태워 숯으로)
알면이전의 경도 곧 법화경이 된다(기와를 금으로 · 「십법계명인과초」 437쪽)
③본문
모르면본문도 적문이 된다
알면적문이 곧 본문이 된다(대성인의 방편품 독송)
④문저
모르면문저도 숙탈이 된다
알면숙익도 곧 문저의 비법이 된다(「최대의 심밀의 정법이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
화씨의 구슬 — 모르면 옥을 돌이라 하고, 알면 돌에서 옥을 본다
도표 12 · 이 경의 「이유」를 알고 모름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최대의 심밀의 정법」을 문저에 비침된 삼대비법으로 본다. 그것이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는 것은 법화경의 이유를 알고 뜻에 의거해 글을 판정하기 때문이다. 니치칸 상인의 「의의판문초」와 「선시초 문단」이 그 근거다.

제19장 말법에 대하여 요간하다
어서 273쪽 1~17행 · 第19章 末法について料簡す

본문

本文 · 一어서 273쪽 1~6행
本文 · 어서 원문

問ういかなる秘法ぞ先ず名をきき次に義をきかんとをもう此の事もし実事ならば釈尊の二度・世に出現し給うか上行菩薩の重ねて涌出せるかいそぎいそぎ慈悲をたれられよ、 彼の玄奘三蔵は六生を経て月氏に入りて十九年・法華一乗は方便教・小乗阿含経は真実教、不空三蔵は身毒に返りて寿量品を阿弥陀仏とかかれたり、此等は東を西という日を月とあやまてり身を苦めてなにかせん心に染てようなし、 幸い我等末法に生れて一歩をあゆまずして三祇をこゑ頭を虎にかわずして無見頂相をゑん、

풀이

묻기를,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는 그 최대의 심밀의 정법은) 어떠한 비법인가. 먼저 그 이름을 듣고 다음에 그 뜻을 듣고자 하느니라. 이 일이 만일 참된 일이라면 석존이 두 번 세상에 출현하신 것인가, 상행보살이 거듭 땅에서 솟아나신 것인가. 서둘러 서둘러 자비를 드리워 주시기 바라느니라. 저 현장 삼장은 여섯 번 태어남을 거쳐 월지에 들어가 십구 년을 보내고서 법화 일승은 방편교요 소승 아함경이 진실교라 하였고, 불공 삼장은 신독(인도)으로 돌아가서 수량품의 부처를 아미타불이라 쓰셨느니라. 이들은 동쪽을 서쪽이라 하고 해를 달로 그르친 것이니, 몸을 괴롭혀서 무엇하랴, 마음에 물들여도 소용없느니라. 다행히 우리는 말법에 태어나 한 걸음도 걷지 않고 삼아승기겁을 넘고, 머리를 호랑이에게 내주지 않고도 무견정상(無見頂相)을 얻으리라.

本文 · 二어서 273쪽 6~12행
本文 · 어서 원문

答えて云く此の法門を申さん事は経文に候へばやすかるべし但し此の法門には先ず三の大事あり大海は広けれども死骸をとどめず大地は厚けれども不孝の者をば載せず、仏法には五逆をたすけ不孝をばすくう但し誹謗一闡提の者持戒にして第一なるをばゆるされず、 此の三のわざはひとは所謂念仏宗と禅宗と真言宗となり、一には念仏宗は日本国に充満して四衆の口あそびとす、二に禅宗は三衣一鉢の大慢の比丘の四海に充満して一天の明導とをもへり、 三に真言宗は又彼等の二宗にはにるべくもなし叡山・東寺・七寺・園城或は官主或は御室或は長吏或は検校なりかの内侍所の神鏡燼灰となりしかども大日如来の宝印を仏鏡とたのみ宝剣西海に入りしかども五大尊をもつて国敵を切らんと思へり、

풀이

답하기를, 이 법문을 말하는 것은 경문에 있으니 쉬울 것이니라. 다만 이 법문에는 먼저 세 가지 대사(大事)가 있느니라. 큰 바다는 넓어도 시체를 머물게 하지 않고, 대지는 두터워도 불효한 자를 싣지 않느니라. 불법에서는 오역(五逆)의 죄인도 돕고 불효한 자도 구하나, 다만 정법을 비방하는 일천제(一闡提)로서 지계(持戒)로는 제일인 자만은 용서하지 않느니라. 이 세 가지 재앙이란 이른바 염불종과 선종과 진언종이니라. 첫째로 염불종은 일본국에 가득하여 사중(四衆)의 입버릇이 되어 있느니라. 둘째로 선종은 삼의일발(三衣一鉢)의 크게 교만한 비구가 사해에 가득하여 스스로 천하의 밝은 길잡이라 여기느니라. 셋째로 진언종은 또 저 두 종과는 견줄 수도 없느니라. 히에이산 · 동사 · 칠대사 · 온조사가 혹은 관주(官主), 혹은 오무로(御室), 혹은 장리(長吏), 혹은 검교(検校)이니라. 저 나이시도코로의 신경(神鏡)이 불타 재가 되었어도 대일여래의 보인(宝印)을 부처의 거울로 의지하고, 보검이 서해에 잠겼어도 오대존(五大尊)으로써 나라의 적을 베려 하느니라.

本文 · 三어서 273쪽 12~17행
本文 · 어서 원문

此等の堅固の信心は設い劫石はひすらぐとも・かたぶくべしとはみへず大地は反覆すとも疑心をこりがたし、彼の天台大師の南北をせめ給いし時も此の宗はいまだわたらず此の伝教大師の六宗をしゑたげ給いし時ももれぬ、かたがたの強敵をまぬがれてかへつて大法をかすめ失う、 其の上伝教大師の御弟子・慈覚大師・此の宗をとりたてて叡山の天台宗をかすめをとして一向真言宗になししかば此の人には誰の人か敵をなすべき、かかる僻見のたよりをえて弘法大師の邪義をもとがむる人もなし、 安然和尚すこし弘法を難ぜんとせしかども只華厳宗のところ計りとがむるににてかへて法華経をば大日経に対して沈めはてぬ、ただ世間のたて入の者のごとし。

풀이

이들의 굳은 신심은 설령 겁석(劫石)이 닳아 없어진다 해도 기울 것으로 보이지 않고, 대지가 뒤집힌다 해도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어려우니라. 저 천태대사가 남북(의 열 교판가)을 꾸짖으실 때에도 이 종은 아직 건너오지 않았고, 이 전교대사가 육종을 꺾으실 때에도 빠졌느니라. 이리저리 강적을 피하여 도리어 대법을 가로채 잃게 하느니라. 그 위에 전교대사의 제자 자각대사가 이 종을 내세워 히에이산의 천태종을 가로채 떨어뜨리고 오로지 진언종으로 만들었으니, 이 사람에게 누가 맞설 수 있겠는가. 이러한 벽견(僻見)을 의지할 데로 얻어 홍법대사의 그릇된 뜻을 나무라는 사람도 없느니라. 안연 화상이 조금 홍법을 힐난하려 하였으나 다만 화엄종의 자리만을 나무라는 듯하여, 도리어 법화경을 대일경에 견주어 가라앉혀 버렸느니라. 마치 세상의 중매쟁이와 같으니라.

어구 풀이

上行菩薩の重ねて涌出せるか상행보살이 거듭 솟아난 것인가
상행보살은 법화경 종지용출품에서 땅에서 솟아나온 지용의 보살들의 상수(上首)이며, 여래신력품에서 멸후 악세의 홍통을 부촉받았다. 질문자는 「최대의 심밀의 정법」이 참으로 있다면 그것을 펼 사람은 석존의 재출현이거나 상행보살의 재용출일 것이라고 놀란다.
玄奘三蔵は六生を経て月氏に入りて十九年현장 삼장은 여섯 번 태어남을 거쳐 월지에 들어가 십구 년
경전을 구해 인도로 가는 길에 여섯 번 큰 난을 만나 죽고 일곱 번째 태어나 비로소 인도에 들어갔다는 전승을 가리킨다. 십구 년의 대여행 끝에 얻은 결론이 법화 일승은 방편, 소승 아함이 진실이라는 것이었다고 대성인은 비판하신다.
三祇삼기
삼아승기 백대겁(三阿僧祇百大劫). 아승기는 범어 아상키야(asaṃkhya)의 음사로 「셀 수 없이 큰 수」, 겁은 칼파(kalpa)의 음사로 매우 긴 시간의 단위다. 장교(소승교)의 보살은 삼아승기겁 동안 육바라밀을 닦고, 백대겁 동안 상호(相好)의 인을 심어 오신통을 얻는다고 한다. 本文은 말법의 우리가 이런 수행 없이 그 공덕을 넘는다고 하신다.
頭を虎にかわずして無見頂相をゑん머리를 호랑이에게 내주지 않고 무견정상을 얻는다
석존이 과거세에 살타왕자(薩埵王子)였을 때처럼 몸을 호랑이에게 주지 않고도 성불의 지위를 얻는다는 뜻. 『금광명경』 권4에 따르면 마하라타왕의 셋째 아들 마하살타가 두 형과 대숲에서 놀다가 새끼를 낳고 굶주린 호랑이를 보았는데, 두 형은 떠났으나 살타왕자는 제 몸을 내주어 호랑이를 살렸다(사신사호). 무견정상은 삼십이상 · 팔십종호의 하나로, 부처 정수리의 육계가 높아 누구도 그 꼭대기를 볼 수 없다는 상이며, 바뀌어 불과(仏果)를 가리킨다.
大海は広けれども死骸をとどめず큰 바다는 넓어도 시체를 머물게 하지 않는다
열반경 사자후보살품에 큰 바다의 여덟 가지 부사의가 설해지는데, 그 일곱째로 「시체를 머물게 하지 않는다」고 하고, 「시체란 일천제와 정법을 비방하는 자를 말한다」고 한다. 정법을 비방하는 자는 구제되지 않음을 말한다.
誹謗一闡提の者持戒にして第一なる비방하는 일천제로서 지계로는 제일인 자
일천제는 범어 이찬티카(icchantika)의 음사로 불법을 믿지 않아 성불의 인연이 없는 자. 겉으로는 계를 엄격히 지켜 존경받으면서 정법을 비방하는 자가 가장 무거운 것이니, 本文은 이를 「세 가지 재앙」의 근본으로 삼는다.
官主관주
절의 관수(貫首). 「칸즈」라고도 읽고 「貫首」로도 쓴다. 여기서는 천태좌주를 말한다.
御室오무로
교토 닌나지의 별칭. 우다 천황이 진언종의 익신을 계사로 출가해 닌나지에 머물렀으므로 경의를 담아 오무로 · 오무로고쇼라 불렀다. 뒤에는 이 절의 주지가 된 친왕, 곧 오무로 몬제키를 가리키게 되었고, 本文의 뜻도 이것이다.
長吏장리
온조사(미이데라)의 관수의 이름. 온조사는 오쓰에 있는 천태종 사문파의 총본산이다. 히에이산에서 엔닌(자각) 문도와 엔친(지증) 문도 사이에 대립이 생겨 정력 4년(993) 엔친 문도 천여 명이 온조사로 옮긴 뒤, 산문(엔닌파)과 사문(엔친파)의 항쟁이 이어졌다. 간주사 · 엔랴쿠사 요카와 등에서도 이 이름을 썼다.
検校검교
고야산 곤고부사 · 동사 등 절의 관수, 또는 구마노 삼산 · 이와시미즈 등 신사를 총괄하는 직책의 이름. 本文에서는 널리 사원 · 신사를 거느리는 직책을 말한다.
内侍所の神鏡燼灰となりしか나이시도코로의 신경이 불타 재가 되었다
나이시도코로는 가시코도코로(賢所)로, 신경은 그곳에 모신 황위의 상징인 삼종 신기의 하나 야타노카가미다. 가시코도코로는 여러 번 화재를 만나 신경도 불탔다. 나이시도코로는 본래 헤이안 시대 내리(内裏)의 한 구역으로, 나이시노쓰카사의 여관들이 신경을 지켰기 때문에 신경 자체를 나이시도코로라 부르게 되었다.
宝剣西海に入りしか보검이 서해에 잠겼다
보검은 삼종 신기의 하나인 아메노무라쿠모노쓰루기(구사나기노쓰루기). 단노우라 싸움에서 안토쿠 천황과 함께 서해에 잠겼다.
五大尊오대존
진언 밀교에서 설하는 오대명왕. 부동 · 항삼세 · 군다리 · 대위덕 · 금강야차명왕이다. 각각 본지인 금강계 오불(대일 · 아촉 · 보생 · 아미타 · 불공성취)의 명을 받아 안팎의 장애와 마를 항복시키려고 분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劫石겁석
겁의 길이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돌. 큰 돌을 하늘 사람의 옷으로 스쳐 다 닳아 없어지는 때를 일겁이라 하는 비유로, 매우 긴 시간을 나타낸다.
慈覚大師자각대사
794~864. 엔닌(円仁). 히에이산 엔랴쿠사 제3대 좌주. 시모쓰케 쓰가군 사람으로 15세에 히에이산에 올라 전교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승화 5년(838) 입당해 범서와 천태 · 진언 · 선 등을 배우고 승화 14년(847) 귀국했으며, 인수 4년(854) 엔초의 뒤를 이어 좌주가 되었다. 천태종에 진언 밀교를 끌어들여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이 법화경과 이치는 같으나 인(印)과 진언의 사상(事相)에서 뛰어나다고 했다(이동사승). 『금강정경소』 7권, 『소실지경약소』 7권 등을 지었다.
安然和尚안연 화상
841~몰년 미상. 히에이산의 학장으로 전교대사의 동족이라 한다. 처음 자각의 제자가 되어 현밀 이교를 배우고 뒤에 겐쿄지의 헨조에게서 태장계의 법을 받았다. 원경 원년(877) 입당하려다 이루지 못했고, 원경 8년(884) 겐쿄지 좌주가 되었다. 만년에 히에이산에 오대원을 세우고 저술에 힘써 태밀(台密)의 대성자라 불린다. 『교시문답』 4권, 『실담장』 8권 등이 있다. 홍법의 『십주심론』을 비판했으나 本文이 말하듯 철저하지 못했다.
たて入の者중매쟁이
양쪽 사이에 끼어들어 일을 주선하는 사람. 안연이 홍법의 교판에서 화엄과 법화의 자리를 바꾸었을 뿐 결국 법화경을 대일경 아래에 둔 것을, 양쪽 비위를 맞추는 중매쟁이에 비유하신 것이다.

「어떠한 비법인가」 — 문답의 정점

이 장부터는 열두 번째 문답이 되어, 바로 말법에 대하여 요간한다. 제18장 끝에서 대성인은 가섭 · 아난부터 천태 · 전교까지 누구도 홍통하지 않은 「최대의 심밀의 정법」이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고 하셨다. 질문자는 이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것은 어떠한 비법인가. 먼저 이름을 듣고 다음에 뜻을 듣고 싶다. 그것이 참이라면 석존이 두 번 세상에 나온 것인가, 상행보살이 다시 땅에서 솟아난 것인가. 서둘러 자비를 베풀어 달라.

이 물음 자체가 이미 답의 방향을 가리킨다. 정법 · 상법 이천 년의 어떤 성인도 펴지 않은 법을 펼 수 있는 사람은 석존 자신이거나, 석존에게 직접 멸후 홍통을 부촉받은 상행보살 외에는 없다. 법화경 여래신력품에서 석존은 지용의 보살들에게, 그 상수인 상행보살에게 멸후의 홍통을 별부촉하셨다. 질문자가 무심코 입에 올린 「상행보살의 재용출」은,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대성인을 외용(外用)으로는 상행보살의 재탄, 내증으로는 말법의 어본불로 보는 바로 그 지점과 닿아 있다. 선시초는 이 물음을 받아 이름도 뜻도 바로 밝히지 않고, 제5편 「염부제일의 법화경 행자」에 이르러 그 법을 펴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지인 · 성인 · 대인」으로 밝혀 간다.

비법의 이름과 뜻 — 삼대비법

「최대의 심밀의 정법」이 무엇인지 정리하면 이렇다. 일체의 여러 경 가운데서는 다만 법화경, 법화경 가운데서는 다만 본문 수량품, 본문 수량품 가운데서는 다만 문저에 비침된 대법이다. 그러므로 심밀 가운데 가장 깊은 비밀이요, 대법 가운데 가장 큰 법이다. 또 오백진점겁은 본과(本果)에서 증득한 바요, 수량품의 「다시 앞의 수의 배가 된다(復倍上数)」는 그 처음[当初]은 본인(本因)에서 증득한 묘법이다. 그러므로 「최대의 심밀의 법」이라 한다.

니치칸 상인은 「먼저 이름을 듣고」라는 말에 주목한다. 말법에 유포할 비법은 본문 수량품의 문저에 비침된 가장 깊은 비법, 대법 가운데 가장 큰 법이므로 곧바로 그 뜻을 들을 수는 없다. 그래서 질문자는 「먼저 이름을 듣고 다음에 뜻을 듣고자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과 뜻은 선시초 안에서는 드러내지 않으셨다. 상인은 「보은초」 · 「관심의 본존초」 · 「법화취요초」 · 「본존문답초」의 뜻을 취해 간략히 한 뜻을 보인다. 비법의 이름은 본문의 본존과 본문의 계단과 본문의 제목 다섯 자다. 비법의 뜻은 숙탈의 본존이 아니라 하종(下種)의 본존이요, 숙탈의 계단이 아니라 하종의 계단이요, 숙탈의 제목이 아니라 하종의 제목이라는 것이다.

선시초를 쓰신 이듬해의 「보은초」는 이 이름을 분명히 밝히신다.

問うて云く天台伝教の弘通し給わざる正法ありや、答えて云く有り求めて云く何物ぞや、答えて云く三あり、末法のために仏留め置き給う迦葉・阿難等・馬鳴・竜樹等・天台・伝教等の弘通せさせ給はざる正法なり

묻기를, 천태 · 전교가 홍통하지 않으신 정법이 있는가. 답하기를, 있다. 구하여 이르기를, 무엇인가. 답하기를, 셋이 있다. 말법을 위해 부처가 남겨 두신, 가섭 · 아난 등, 마명 · 용수 등, 천태 · 전교 등이 홍통하지 않으신 정법이다.

「보은초」, 328쪽

一には日本・乃至一閻浮提・一同に本門の教主釈尊を本尊とすべし、所謂宝塔の内の釈迦多宝・外の諸仏・並に上行等の四菩薩脇士となるべし、二には本門の戒壇、三には日本・乃至漢土・月氏・一閻浮提に人ごとに有智無智をきらはず一同に他事をすてて南無妙法蓮華経と唱うべし

첫째는 일본 내지 일염부제가 한결같이 본문의 교주 석존을 본존으로 해야 한다. 이른바 보탑 안의 석가 · 다보, 밖의 여러 부처, 아울러 상행 등 네 보살이 협사가 될 것이다. 둘째는 본문의 계단, 셋째는 일본 내지 한토 · 월지 · 일염부제에 사람마다 지혜가 있고 없음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다른 일을 버리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러야 한다.

「보은초」, 328쪽

「보은초」의 물음 「천태 · 전교가 홍통하지 않으신 정법이 있는가」는 선시초 제18장의 「가섭 · 아난 · 마명 · 용수 · 무착 · 천친 내지 천태 · 전교가 아직 홍통하지 않으신 최대의 심밀의 정법」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선시초에서 「먼저 이름을 듣고자 한다」고 물은 것에, 일 년 뒤의 「보은초」가 「셋이 있다」고 답하신 셈이다. 「보은초」는 이어서 「이 일은 아직 퍼지지 않아 일염부제 안에 불멸 후 이천이백이십오 년 동안 한 사람도 부르지 않았다」고 하신다.

이 편이 세 장에 걸쳐 확인한 것을 이 「셋」 위에 겹쳐 보면 뜻이 또렷해진다. 용수는 권대승을 폈고, 천태는 원정(지관) · 원혜(교학)를 폈으며, 전교는 원계(계단)를 세웠다. 계 · 정 · 혜의 삼학은 상법의 끝에 적문의 범위에서 모두 갖추어졌다. 말법의 삼대비법은 같은 계 · 정 · 혜의 틀을 지니면서도 그 근본을 본문 · 문저로 바꾼다. 본문의 계단, 본문의 본존, 본문의 제목이다. 앞의 성인들이 펴지 않은 것은 이 「본문」이며, 그것이 「최대의 심밀」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이름과 뜻
  1. 일체의 여러 경
  2. 다만 법화경
  3. 다만 본문 수량품
  4. 다만 문저에 비침된 대법
이름본문의 본존 ·본문의 계단 ·본문의 제목뜻숙탈이 아닌 하종의 본존 · 하종의 계단 · 하종의 제목(니치칸 상인 「선시초 문단」)
삼학 대비
천태
원정 · 원혜
전교
원계
말법
본문의 계단(계) · 본문의 본존(정) · 본문의 제목(혜)
보은초「천태 · 전교가 홍통하지 않으신 정법이 있는가 …… 셋이 있다」天台伝教の弘通し給わざる正法ありや……三あり— 「보은초」 328쪽
도표 13 · 말법의 비법

본존의 상모(相貌)는 「보은초」 · 「관심의 본존초」 등 어서의 말씀으로만 소개하고, 그림이나 도식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몸을 괴롭혀서 무엇하랴 — 현장과 불공

질문자는 비법을 묻는 김에 앞 시대의 구법자들을 돌아본다. 현장 삼장은 경전을 구하러 인도로 가면서 여섯 번 죽고 일곱 번째 태어나 비로소 인도에 이르렀다고 할 만큼 고생하고, 십구 년의 대여행 끝에 법화 일승은 방편이요 소승 아함경이 진실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돌아왔다. 불공 삼장은 중국에 건너왔다가 다시 인도로 돌아가 진실의 가르침을 구했으나, 결국 수량품의 부처를 아미타불이라 썼다(제16장의 『법화경 관지의궤』). 이들은 동쪽을 서쪽이라 하고 해를 달로 그르친 것이니, 「몸을 괴롭혀서 무엇하랴, 마음에 물들여도 소용없다」.

이 말은 제17장 첫머리의 「제일의 대사」와 짝을 이룬다. 대소 · 권실 · 현밀의 구별보다 앞서는 것이 법의 정사를 가리는 일이었다. 아무리 큰 고행을 하고 아무리 정성을 다해 배워도, 법의 바르고 그름에 어두우면 아무 소용이 없다. 풀어 말하면 「몸을 괴롭혀 대여행을 해 보아도, 마음을 다해 배워 보아도, 법의 정사에 미혹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한 걸음도 걷지 않고 — 말법에 태어난 다행

그리고 질문자는 말법에 태어난 다행을 말한다. 「한 걸음도 걷지 않고 삼아승기겁을 넘고, 머리를 호랑이에게 내주지 않고도 무견정상을 얻는다」. 말법은 즉신성불의 삼대비법이 유포되는 때이므로 우리는 말법에 태어나 다행이며, 「한 걸음도 걷지 않고」는 빠르게 불과를 이루는 뜻이다.

석존의 인위(因位), 곧 성불하기 전의 수행에 대해 「관심의 본존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迹門爾前の意を以て之を論ずれば……過去の因行を尋ね求れば或は能施太子或は儒童菩薩或は尸毘王或は薩埵王子或は三祇・百劫或は動喩塵劫或は無量阿僧祇劫或は初発心時或は三千塵点等の間七万・五千・六千・七千等の仏を供養し劫を積み行満じて今の教主釈尊と成り給う……教主釈尊は五百塵点已前の仏なり因位も又是くの如し

적문과 이전의 뜻으로 이를 논하면 …… 과거의 인행을 찾아 구하면, 혹은 능시태자, 혹은 유동보살, 혹은 시비왕, 혹은 살타왕자로서, 혹은 삼기 · 백겁, 혹은 동유진겁, 혹은 무량아승기겁, 혹은 초발심 때, 혹은 삼천진점겁 등의 사이에 칠만 · 오천 · 육천 · 칠천 등의 부처를 공양하고 겁을 쌓아 수행을 채워 지금의 교주 석존이 되셨다. …… 교주 석존은 오백진점겁 이전의 부처이며 인위도 또한 이와 같다.

「관심의 본존초」, 242쪽

語釈에 따르면 장교의 보살은 삼아승기겁 동안 육바라밀을 닦고, 다시 백대겁 동안 부처의 상호를 갖출 인을 심는다고 한다. 살타왕자는 굶주린 어미 호랑이와 새끼들을 살리려고 제 몸을 내주었다(『금광명경』 권4). 이런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목숨을 건 보시가 성불의 길로 설해져 왔다. 그러나 말법에서는 삼기 동안 칠만 · 오천 · 육천 · 칠천의 부처를 공양하지 않아도, 살타왕자로 태어나 몸을 호랑이에게 주지 않아도, 삼대비법을 수지하여 빠르게 불과에 이른다. 대성인의 불법에서 보면 이것은 문저 하종의 본존의 힘[力用]에 의한 것이다.

「삼기를 넘는다」는 빠르게 성도하므로 삼아승기겁을 뛰어넘는다는 뜻이고, 「무견정상을 얻는다」는 팔십종호의 첫째인 무견정상을 들어 불과 전체를 나타낸 것이다. 『무량의경』의 「아직 육바라밀을 닦지 못했어도 육바라밀이 저절로 앞에 나타난다」는 글이 이 뜻이다. 보시나 지계 같은 육바라밀의 수행을 몇만 년 몇억 년 닦지 않아도, 묘법 다섯 자를 받아 지니면 그 공덕이 모두 갖추어지며, 나아가 육바라밀의 수행과는 견줄 수 없는 큰 공덕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수지즉관심(受持即観心)」의 법리이며, 제18장에서 본 「수지가 곧 지계」와도 통한다.

먼저 세 가지 대사 — 바다와 대지의 비유

질문자의 간절한 물음에 대성인은 「이 법문은 경문에 있으니 말하기는 쉽다」고 하시면서도 바로 답하지 않으신다. 「다만 이 법문에는 먼저 세 가지 대사가 있다」. 비법을 말하기 전에 반드시 걷어 내야 할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대성인은 두 비유로 시작하신다. 큰 바다는 넓어도 시체를 머물게 하지 않는다. 語釈에 따르면 이는 열반경 사자후보살품에 설해진 큰 바다의 여덟 가지 부사의 가운데 일곱째 「시체를 머물게 하지 않는다」에 근거하며, 경은 「시체란 일천제와 정법을 비방하는 자」라고 밝힌다. 대지는 두터워도 불효한 자를 싣지 않는다. 그리고 불법에서는 오역의 죄인도 돕고 불효한 자도 구하지만, 정법을 비방하는 일천제로서 겉으로는 지계 제일인 자만은 용서하지 않는다.

이 대목은 구조가 미묘하다. 세상의 이치로는 바다도 대지도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있다. 불법은 그보다 넓어서 오역과 불효의 죄인까지 구한다. 그러나 그 넓은 불법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있으니, 바로 정법을 비방하면서 겉으로는 계를 잘 지켜 존경받는 자다. 겉모습이 거룩할수록 사람들은 그를 따르고, 그를 따르는 만큼 정법은 가려진다. 곧 「겉으로만 지계 제일인 듯한 모습을 한 그릇된 법의 무리」다.

세 가지 재앙 — 염불 · 선 · 진언

그 세 가지 재앙이 염불종 · 선종 · 진언종이다.

첫째, 염불종은 일본국에 가득하여 사중(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의 입버릇이 되었다. 누구나 무엇을 하든 입으로 염불을 부르는 시대였다.

둘째, 선종은 삼의일발, 곧 세 벌의 가사와 한 개의 발우만 지닌 검소한 모습을 한 크게 교만한 비구들이 사해에 가득하여 스스로 천하의 밝은 길잡이라 여긴다. 겉의 청빈과 속의 교만이 대비된다. 「지계로는 제일」이라는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모습이다.

셋째, 진언종은 앞의 두 종과는 견줄 수도 없다. 히에이산 · 동사 · 칠대사 · 온조사가 모두 진언에 물들었고, 천태좌주(관주) · 닌나지의 오무로 몬제키 · 온조사의 장리 · 고야산과 구마노의 검교 같은 최고의 권위를 지닌 이들이 하나같이 진언을 받들었다. 궁중도 마찬가지다. 삼종 신기 가운데 신경이 불타 재가 되자 대일여래의 보인을 부처의 거울로 삼아 모시고, 보검이 안토쿠 천황과 함께 서해에 잠기자 진언의 오대존(오대명왕)으로 나라의 적을 베려 한다. 황위의 상징조차 진언의 법구로 대신한 것이다. 이 굳은 신심은 겁석이 닳아 없어져도 기울지 않고 대지가 뒤집혀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대성인 일대의 파절이 어떻게 깊어졌는지 짚어 보자. 「입정안국론」에서는 오로지 염불을 깨뜨려 권실상대가 표면에 드러나 있으나, 선시초와 「보은초」에서는 염불과 선을 깨뜨린 위에 오로지 진언의 그릇된 뜻을 강하게 꺾으셨다. 당시의 진언종은 전교대사가 법화경으로 통일한 히에이산에 진언을 섞어 넣어 온 종교계에 퍼뜨렸고, 궁중에서 만민에 이르기까지 진언을 숭상하게 되었다. 대성인은 이 그릇된 뜻을 깨뜨리고, 나라가 무너지는 현증을 조큐의 난(1221)으로 보이시며, 다음 장들에서 이를 논해 나가신다. 세 종에 대한 본격적인 파절은 선시초 제4편 「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의 몫이다.

염불 · 선 · 진언
「큰 바다는 넓어도 시체를 머물게 하지 않는다」大海は広けれども死骸をとどめず불법은 오역 · 불효도 구하나 정법을 비방하는 일천제로서 지계 제일인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염불종「일본국에 가득하여 사중의 입버릇이 되었다」日本国に充満して四衆の口あそびとす
선종「삼의일발의 크게 교만한 비구」三衣一鉢の大慢の比丘— 스스로 천하의 길잡이라 여김
진언종「저 두 종과는 견줄 수도 없다」彼等の二宗にはにるべくもなし
  • 히에이산 · 동사 · 칠대사 · 온조사
  • 관주 · 오무로 · 장리 · 검교
  • 신경 → 대일여래의 보인 · 보검 → 오대존
진언이 남은 경위
  1. 천태의 남북 파절 때 아직 건너오지 않음
  2. 전교의 육종 파절 때 빠짐
  3. 자각이 히에이산을 진언으로
  4. 홍법을 나무라는 이 없음
  5. 안연: 화엄의 자리만 나무람 —「세상의 중매쟁이」世間のたて入の者
도표 14 · 세 가지 재앙

강적을 피해 대법을 가로채다 — 진언이 남은 경위

왜 진언이 가장 무거운가. 대성인은 그 역사적 경위를 짚으신다. 천태대사가 남북의 열 교판가를 꾸짖을 때 진언종은 아직 중국에 건너오지 않았다. 선무외 · 금강지 · 불공이 당에 밀교를 전한 것은 천태가 입적한 지 백여 년 뒤의 일이다. 전교대사가 남도 육종을 꺾을 때에도 진언은 그 파절에서 빠졌다. 다카오산 종론의 상대는 육종이었고, 진언종은 아직 하나의 종으로 서 있지 않았다. 이렇게 두 번의 강적을 모두 피했기 때문에, 진언은 도리어 세력을 키워 대법을 가로채 잃게 했다.

더 큰 문제는 안에서 일어났다. 전교대사의 제자 자각대사 엔닌이 이 종을 내세워 히에이산의 천태종을 가로채 떨어뜨리고 오로지 진언종으로 만들었다. 자각은 입당해 천태와 함께 진언을 배워 와서, 『대일경』 등이 법화경과 이치는 같으나 인과 진언의 사상에서 뛰어나다는 이동사승(理同事勝)을 세웠다. 전교의 직제자이자 제3대 좌주라는 권위를 지닌 이 사람에게 누가 맞서겠는가. 이 벽견을 의지할 데로 삼으니 홍법대사의 그릇된 뜻을 나무라는 사람도 없어졌다.

안연 화상은 조금 홍법을 비판하려 했다. 홍법은 『십주심론』에서 진언을 제일, 화엄을 제이, 법화를 제삼에 두었다. 안연은 이를 비판했으나 화엄과 법화의 자리만 바꾸었을 뿐, 도리어 법화경을 대일경 아래에 가라앉혀 버렸다. 대성인은 이를 「세상의 중매쟁이와 같다」고 하신다. 양쪽 비위를 맞추며 사이에 끼어드는 사람처럼, 법화도 진언도 다치지 않게 하려다 결국 진언을 높인 것이다. 자각 · 안연, 그리고 지증에 대한 상세한 비판은 선시초 제4편과 본존문답초 제3편 「세 대사의 사적과 불법의 전래」에서 다룬다.

이렇게 제19장은 비법의 이름을 묻는 물음으로 시작해, 그 이름을 말하기 전에 걷어 내야 할 세 재앙으로 끝난다. 정법 · 상법의 성인들이 펴지 않은 법이 말법에 펴지려면, 먼저 그 법을 가리는 그릇된 가르침, 특히 법화경의 이름 아래 법화경을 가라앉힌 진언이 깨뜨려져야 한다. 선시초 제4편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말법에 유포할 비법을 본문의 본존 · 계단 · 제목의 삼대비법으로, 그 뜻을 숙탈이 아닌 하종으로 본다. 그리고 그 비법을 말하기 전에 대성인이 먼저 염불 · 선 · 진언, 특히 진언을 「세 가지 재앙」으로 드신 데에 선시초 · 보은초의 파절이 진언에 집중되는 까닭이 있다.

맺으며

이 편을 맺으며

제3편의 네 장은 하나의 물음을 세 번 되풀이하고, 네 번째에 그 물음의 방향을 뒤집는다. 「이것이 광선유포가 아닌가」. 정법의 용수에 대해, 상법 중간의 천태에 대해, 상법 끝의 전교에 대해 힐난자는 차례로 이렇게 묻는다. 대성인은 세 번 모두 그들의 공적을 하나도 깎지 않고 오히려 최대한 높이신 다음, 그래도 「아니다」라고 답하신다. 용수는 『중론』의 사구게로 공 · 가 · 중을 말했으나 그것은 법화 개회 이전의 삼제였고, 『대지도론』에서 「묘」를 변독위약으로 알았으나 펴지는 않았다. 천태는 삼대부로 일대의 가르침을 법화경의 대해에 거두고 남북을 꺾어 여러 종의 귀복을 받았으나, 원돈의 계단이 없었고 때가 독송다문견고였다. 전교는 다카오산에서 육종을 꺾고 히에이산에 원돈 계단을 세워 계 · 정 · 혜를 모두 원교로 갖추었으나, 그것도 「최대의 심밀의 정법」은 아니었다.

이 판정들을 하나로 꿰는 것이 「내감냉연 외적시의」다. 앞 시대의 성인들은 안으로는 알았고 밖으로는 때에 맞추었다. 그들이 펴지 않은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 법은 말법을 위해 남겨졌다. 이 편 전체의 뜻을 「정상에 펴지지 않은 것은 말법에 반드시 유포함을 밝히기 위함」이라고 요약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제16장 끝과 제17장 첫머리에서 대성인은 그 모든 비교에 앞서는 「제일의 대사」, 곧 법의 정사를 가리는 일을 라집의 혀가 타지 않은 현증으로 보이셨다. 불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르게 옮겨져 왔고, 이제 동쪽에서 서쪽으로 되돌아갈 때를 맞았다.

제18장 끝에서 문답은 방향을 바꾼다. 가섭 · 아난부터 천태 · 전교까지 누구도 홍통하지 않은 「최대의 심밀의 정법」이 경문의 표면에 현전한다. 그것은 문저에 비침된 삼대비법이며, 법화경의 이유를 알고 뜻에 의거해 글을 판정하면 해와 달처럼 뚜렷하다. 제19장에서 질문자는 「어떠한 비법인가」라고 묻는다. 니치칸 상인은 그 이름을 본문의 본존 · 계단 · 제목으로, 그 뜻을 숙탈이 아닌 하종으로 보이고, 이듬해의 「보은초」는 「천태 · 전교가 홍통하지 않으신 정법」이 「셋」이라고 밝히신다. 천태의 원정 · 원혜와 전교의 원계가 적문의 범위에서 갖춘 삼학은, 말법에 이르러 본문의 계단 · 본존 · 제목으로 그 근본이 바뀐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 이름을 말하기 전에 먼저 「세 가지 대사」를 드신다. 염불 · 선, 그리고 그 둘과는 견줄 수 없는 진언이다. 천태의 파절도 전교의 파절도 피해 간 진언은 자각에 의해 전교의 히에이산 안으로 들어와 천태법화종을 가로챘고, 안연은 홍법을 나무라는 척하며 법화경을 대일경 아래에 가라앉혔다. 말법의 비법이 펴지려면 이 그릇됨이 먼저 깨뜨려져야 한다. 선시초 제4편 「정토 · 선 · 진언을 파하다」는 바로 여기서 시작해 정토종 · 선종, 그리고 선무외 · 홍법 · 쇼카쿠보 · 자각을 차례로 깨뜨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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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원전

  • 니치렌 대성인, 「선시초(撰時抄)」, 건치 원년(1275), 일본어판 어서전집 256–292쪽
  • 니치렌 대성인, 「보은초」(293–329쪽), 「관심의 본존초」(238–255쪽), 「개목초」(186–237쪽), 「쇼미쓰보어서」(896–900쪽), 「간효팔번초」(576–589쪽), 「삼삼장기우사」(1468–1472쪽), 「현입정의초」(536–538쪽), 「성인지삼세사」(974–975쪽), 「현불미래기」(505–509쪽), 「입정관초송장」(534–535쪽), 「십장초」(1273–1276쪽), 「십법계명인과초」(427–437쪽), 「시문불승의」(982–984쪽), 「제경과 법화경과 난이의 사」(991–992쪽)
  • 『묘법연화경』, 구마라집 역, T9 no.262 (견보탑품 · 여래신력품 · 약왕보살본사품 · 법사공덕품)
  • 『무량의경』, T9 no.276
  • 『대방등대집경』, T13 no.397
  • 『대반열반경』, T12 no.374
  • 『중론』 · 『대지도론』 (용수 찬, 구마라집 역)
  • 『법화현의』 T33 no.1716 · 『법화문구』 T34 no.1718 · 『마하지관』 T46 no.1911 (천태대사 설, 장안대사 기)
  • 『법화현의석첨』 · 『법화문구기』 · 『지관보행전홍결』 (묘락대사)
  • 『법화수구』 (전교대사)
  • 『보리심론(금강정유가중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론)』 (불공 역)
  • 『송고승전』 (찬녕 등)
  • 니치칸 상인, 「선시초 문단(撰時抄文段)」 · 「의의판문초(依義判文抄)」 (해설서를 통한 재인용)

연구

  • 『선시초 강의』 — 장별 本文 · 現代語訳 · 語釈 · 講義
  • Jan Nattier, Once Upon a Future Time: Studies in a Buddhist Prophecy of Decline, Asian Humanities Press, 1991
  • Paul Groner, Saichō: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Tendai School, Berkele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 Ryūichi Abé, The Weaving of Mantra: Kūkai and the Construction of Esoteric Buddhist Discours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 Jacqueline I. Ston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he Transformation of Medieval Japa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安藤俊雄, 『天台学 — 根本思想とその展開』, 平楽寺書店, 1968
  • The Gosho Translation Committee (tr.), The Writings of Nichiren Daishonin, vol. 1, Soka Gakkai, 1999 (「The Selection of the Time」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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